요즘은 을씨년스런 날씨가 계속된다. 오늘따라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오후 두시즈음 되니 아예 소낙비로 쏟아졌다. 여름 장마비를 연상시키는 큰비다. 이러다가 장마가 지는게 아닌가하는 불안마저 든다. 어제 하루 어쩌다 바짝 개여서 모두들 좋아했는데 오늘 다시 비가 내리니 사무실에서도 뭔가 다르게 부산하다. 물론 밖은 더욱 스산해서 기분이 여간 말이 아니다.
오전에는 정협홈페이지 개통식이 있어서 정협회의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고등학교때 동창생을 만났다. 학교때는 그렇게 가깝게 보낸사이는 아니였는데 오랜만에 만나니 그래도 무척 반가웠다. 서로 지나간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잠간 나누고 일때문에 연락처만 서로 남기고 헤여졌다. 오후에는 비즈니스관련 손님들과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그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술이나 한잔하자는것이다. 마침 저녁 약속도 없던터라 기꺼이 시간을 잡았다. 둘이서 오랜만에 학교때 이야기를 나누며 잔을 기울였다.
솔직히 나는 학교를 나온후부터는 사업에만 정신이 팔려있다보니 동창들한테 약간 소홀함이 없지않아 있었다. 그러다보니 동창들의 소식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 많은 동창들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누구는 어디서 뭘하고 있고 누구는 어디에 가 있고, 누구는 어떻게 돈을 벌었다는 등 거의 모르는게 없었다. 심지어 학교때 한반도 아니였던 아이들의 사정까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궁금했던 학교동창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척 기쁘게 술을 마셨다.
실은 재작년에 우리도 동창모임을 가지려고 했었는데 무산됐던적있다. 동창모임을 시작하는 목적부터 불순했던것이다. 모임을 이끄는 사람들이 그간 자신의 성공한 모습을 자랑하려는것이 목적이 되니 모임을 만들기도 전에 시끌시끌했다. 그통에 나는 아예 참가를 포기하고 말았다. 요즘 실태를 보면 거의 그렇다. 동창모임에서 누구는 무슨차를 타고 왔는지? 누가 권력이 있고 급이 있는지? 누가 돈많고 빽이 센지를 살피고 있는 실태이니 그야말로 ‘자기자랑 대회’다.
동창모임은 학생때 원모습으로 돌아가서 순수해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을 모시고 함께 성장해온 친구들을 만나서 서로 격려하고 도웁는 그런 모임이 되여야하는데 자기 과시에 들떠있고 힘있는 사람은 힘자랑하고 돈있는 사람은 돈 자랑하고, 돈없고 힘었는 사람은 주눅이 들어있는 그런 동창모임이라면 참가하지 않는것이 낳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질투심이 있다. 질투는 항상 남과의 비교에서 생긴다고 한다. 영국의 철학자인 프란시스 베이컨이 한 말이다. 그뒤에 그는 ‘비교없는 곳에 질투는 없다’라고 했다. 인간은 질투할때 자신과 남을 비교하고 있다. 자신이 남보다 열등할때, 욕심이 많은 사람은 질투의 노예가 되여버리기가 쉽다. 베이컨은 영국의 철학자로 데카르트와 나란히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려진다. 그는 정치가이며 재판관이기도 했다. 관찰과 경험이야 말로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하는 베이컨이기 때문에 많은 인간의 사는 모습을 냉철한 눈으로 바라보고 그런 말을 하였을 것이다.
질투를 해학적인 중국말로 번역하면 홍안병(红眼病)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질투한 번뇌로 눈이 빨갛게 되는 상태를 상징적으로 비유한것이다. 질투는 인간의 어떤 심리적인 질병이다. 인간은 본래부터 불완전하니까. 그런 마음이 있는것도 어찌보면 당연한것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이런 질투심은 몇개 단계로 나누어 볼수 있다.
첫번째 단계는 비교해서 마음이 산란해지는 단계이다. 옆집에 심은 과일이 내가 심은 과일보다 더 붉고 열매가 더 크다면 마음속으로 이웃집의 과일나무가 바람에 확 날려갔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이런 기형적인 질투 심리가 바탕이 되면 잠을 자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잠을 자지 못하니 눈이 벌겋게 출혈될수 밖에 없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질투하는 사람을 홍안병에 걸렸다고 하는것이다.
그렇게 눈이 벌겋게 될 정도가 되면 벌써 2단계에 올라가는 상태다. 1단계가 심리적이 상태에 그쳤다면 2단계에서는 적어도 말로 표출을 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이때 어떤 사람들은 아예 적나라한 비방과 욕설을 서슴치 않는다.
“걔가 돈 많이 벌었다며? 그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너는 아니? 다 그렇고 그런일을 해서 번돈이 라더라, 그런 돈이라는거야 한손으로 들어와서 다시 한손으로 나가는 거지. ” 라고 한다. 또 어떤사람들은 “너 부자가 됐는데 한턱 내야되지 않겠니. 본래 돈 많은 사람이 내야 하는거지 뭐.” 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상대를 쓰러뜨리기 어렵다. 이때가 되면 세번째 단계로 접어드는것이다. 이때는 그냥 말로하는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겨지는것이다. (니가 나보다 자리가 높은데 얼마나 잘 사나 보자, 나는 더 높은 상급에게 익명편지를 써서 니가 탐오를 하고 나쁜일을 했다고 고발할테다.)라고 행동에 옮긴다. 질투를 행동에 옮긴다는것은 평등해지려는 즉 공평해지려는 야릇한 심리현상때문이다. 자기가 그 사람을 끌어내리는것은 자신이 그 자리를 대체하려는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긁어내림으로서 나하고 같아지거나 낮아진다는데 만족감을 얻는것이다. 이런 심리를 들여다보면 이상하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게작게 가지고 있고 자비감과 자존심이 짬뽕되면서 만들어진 기형적인 심리상태인것이다. 특히 조직 속의 인간관계에서 질투심이 생기는것은 예로부터 피할수 없는것으로 되여왔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질투는 인간에게 타고난 준비된 것’이라고 말하고 아이스큘로스(그리스 비극작가)는 ‘질투심을 조금이라도 갖지 않고,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성격의 소유자는 없다.’라고 관찰하고 있는것이다.
동창모임에서 잘난척 하는 사람들은 질투를 받을수 밖에 없다. 우리는 친구가 많으면 좋다는것쯤은 이제는 상식으로 잘 알고 있을것이다. 그런 친구를 가장 많이 만나는 동창모임에서 잘난척 하는 사람들, 부를 자랑하려는 사람들, 권력을 자랑하려는 사람들은 존경을 얻기보다는 질투를 얻어갈수 밖에 없다. 질투와 함께 따라 다니는것은 항상 비방과 중상,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원수로까지 된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한다. 주는것이 없이도 괜시리 밉고 해꼬지 하고 싶어지는것은 질투때문이다.
동창모임에 참가했던 친구들은 돈많은 친구들의 술을 실컷 얻어먹고 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그자식 그렇게 안봤는데, 오늘 동창모임 가보니 완전 나쁜놈으로 변했더라구. 잘난척하고 흰소리나 치고. 나원 더러워서…….’
그래서 동창모임에서는 더 근신하고 조심해야 한다. 잘난척해서 득될게 없음을 알아야한다. 잘난척해서 우리는 질투를 사고 그런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면 씹혀서 처참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이 그렇지만 재능도 그렇게 숨길줄 알아야 한다. 질투를 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출사하기전에 우선 재능을 숨기는 법부터 익혔다. 오래전에 읽은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录)’에 나오는 말인데 韬晦无露圭角라는 말이있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숨겨서 뾰족한 모서리를 드러내지 말라는 말이다. 여기서 도회(韬晦)란 감싸서 밖으로 나타내지 않는 것, 규각(圭角)이란 뽀족한 모서리를 말하나 여기서는 사람의 재능을 상징한다.
송대에 두언(杜衍)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문하생 중 한 사람이 어느 현의 지사에 임명되었다. 이때 이 말을 인용하여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는 행동이 좋다는 충고를 해준것이다. 그 문하생이 “왜 그래야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두연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지금 자네의 경우는 작은 현 지사로 임명되였는데, 앞으로 승진은 상사의 사소한 평가 하나하나에 달려 있는것이다. 따라서 섣불리 재능을 펼친다면 상사에게 미움을 받을 뿐이다. 쓸데없이 화를 부르는것은 어리석다. 그런 이유로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는 행동을 하라는것이다.”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시대에서도 통하는 행동지침서다. 두연의 이런 충고를 괜히 노파심이라고 웃어넘긴다면 큰코 다칠일이 눈앞에 있다.
본래부터 술이란 안주가 좋으면 더 잘 마시게 된다. 오늘따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좋은 안주에 술한잔 기울이니 밖의 궂은 날씨도 잊어버린채 늦게까지 함께 보냈다. 멀리서 번쩍이는 번개의 불빛이 술집벤치까지 환하게 비춘다. 이어서 땅이 꺼지게 우뢰소리가 울렸다. 흠칫 놀라 들었던 술잔을 내려놓는데 "삼국연의"의 한 장절이 떠올랐다. ‘청매안주로 술을 마시며 영웅을 논하다’의 장절이다. 그 영웅 조조도 유비의 재능을 질투했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