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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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고시조와 현대시조 댓글:  조회:12290  추천:2  2013-01-02
                                 고시조와 현대시조                            (특강재료)                    여러분, 특강이라고 할 것은 없구요 함께 조선시대를 풍미하였던 “시조”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도록 합시다. 자기 민족의 언어환경 속에서 자라온 여러분은 이질적인 한국어 (조선어)의 정형시인 시조를 흔상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고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문학사를 배우고 한국의 시조에 깜깜이면 좀 곤란할 것입니다. 긴말 접어두고요, 자, 그럼 이제 시조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시조(時調)는 고려 중엽에 발생한 전통시 양식의 하나로 조선시대에 유행한 시가이죠. 고려 후기에 이르러 신흥 사대부들이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경기체가 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유교적 이념을 표출하기 위해 또 다른 표현 형식을 개척하는 과정 에서 창안된 순국문학 양식입니다.     시조의 기원은 한시기원설, 별곡기원설,민요기원설,향가기원설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있어요. 시조라는 명칭은 ‘시절가조’에서 나온 것으로서 시절가란 이 시절의 노래라는 뜻인데요 여기에 곡조를 뜻하는 조가 붙은 것입니다. 그리고 옛 가락, 또는 본디의 가락이라는 뜻을 가진 고조에 상대되는 개념을 지닌 말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시조를 가리켜 단가라고도 하는데 이는 노래의 길이가 짧은 데서 연유한 것입니다.    시조의 명칭이 ‘가락’ 또는 ‘노래’와 연관이 깊은 것은 시조가 본래 노래로 향유 되었던 사실과 관계가 깊은데 오늘날 한(조선)민족이 시조라고 부르는 것은 본디 가곡이라고 부르는 음악의 노랫말, 똑같은 노랫말을 가지고 시조라는 음악으로 노래 하기도 했기때문인데 이것은 오늘날 그대로 내려오고 있는 음악적 관습이에요.    시조의 형식은 전체가 초, 중, 종장의 3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 장은 3-4자 정도로 된 네 개의 단어 또는 어절로 되어 있어요. 이 말 덩어리들은 마디 또는 토막 혹은 음보라 불려요. 따라서 시조의 한 장은 대체로 15자 안팎이 되며 작품 한 편은 대체로 45자 안팎이 되지만, 이런 형식을 글자 수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규칙은 없었기 때문에 글자 수에 변화가 많은 것도 형식적인 특징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종장의 첫째 마디는 반드시 3자로, 종장의 둘째 마디는 대체로 5자가 넘도록 표현하는 경향이 굳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시조의 형식을 설명할 때 두 개의 마디가 합쳐야 뜻이 있는 말이 되여야 하기에 이를 ‘구’라 하여 시조를 3장 6구의 형식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3행으로써 1연을 이루며, 각 행은 4보격으로 되어 있고. 이 4보격은 다시 두 개의 숨묶음으로 나뉘는데, 그 중간에 사이쉼을 넣게 되어 있고. 각 음보는 세 개, 또는 네 개의 음절로 구성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초장 : 3, 4, 3, 4 중장 : 3, 4, 3, 4 종장 : 3, 5, 4, 3     하지만, 이 기본형은 어디까지나 가상적인 기준형일 뿐, 고정적인 것은 아니지요. 즉, 기본형이라는 거예요. 음수율을 살펴보면, 3, 4조 또는 4, 4조 기본운율인데 이 기본운율에서 1음절 또는 2음절 정도를 더 보태거나 빼는 것은 무방해요. 하지만, 이미 알고 있듯이 시조의 종장에 제1구는 3음절로 고정되며, 제2구는 반드시 5음절 이상이어야 한는 규칙이 유전되어 왔습니다. 종장의 격식도 격식이려니와 시조의 주제가 심화, 확충되는 부분이므로 특히 알심들이는 부분이 됩니다    흔히 초장의 3,4,3,4 하는 이것이 바로 자수율로서 말 그대로 시조 율격을 이루는 근간으로 보았던 것인데 한국 조윤제선생이 이 자수율로 고시조의 1,000여편을 분석해 본 결과 자수율에 맞는 작품의 수는 30%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자수율을 대신해서 나온 것들이 음수율, 음보율 하는 것인데, 즉 시조의 율격은 소리의 길고 짧음으로도 조화시킵니다. 음수율외 소리의 장단이 서로 잘 어울려도 율격이 이루어집니다. 이상의 형식적 전형은 평시조를 가리킨 것이고, 이와는 달리 그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사설시조는 형식에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시조의 종류를 일반적으로 다음 같이 분류하고 있습니다.     평시조 : 전체 (초장 · 중장 · 종장) 45자 안팎의 단형시조.     엇시조 : 평시조의 초장, 중장 중 어느 한 구가 길어진 시조.     사설시조 : 사설 시조 : 3장 중 두 구 이상이 평시조보다 길어진 시조.     양장시조 : 초장과 종장만으로 된 변형된 시조.     단장 시조: 종장만으로 멋을 내려고한 변형 시조. 그 밖에 형식적 특징으로 내용 상 연결된 2수 이상의 기본형을 나열하여 한편의 작품을 이룬 경우를 연시조라고 합니다.     옛시조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유교적 충의사상을 노래한 시조들이 많죠. 말하자면 절개와 의리, 회고, 경물을 읊는것, 안빈낙도, 풍류 등 관념적인것이 대부분입니다…자연 속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삶을 노래하는 작품들도 많은데 이러한 작품들 역시 순수한 자연을 노래한 것이라기 보다는 유교적 충의이념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기녀들의 작품에는 그들의 애정 세계가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양반·귀족처럼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주변 생활이 중심이 된 재담(才谈), 욕설, 음담 (淫谈),애욕 등을 서슴없이 대담하게 묘사,풍자하고, 형식 또한 민요,가사, 대화 등이 섞여 통일성이 없는 희롱사(戏弄词)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시조는 조선시대의 특유의 문학양식이지만 지금도 그 전통을 살려 시조창작이 맥을 끊지 않고 한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어요. 고시조의 형식이 갖는 자질 가운데서 오늘에 남겨진 것이 있다면 첫째는 시조가 3장으로 씌어진다는 것, 둘째는 시조의 각 장이 대략 15자 안팎이라는 것, 셋째는 그러한 형식에서 글자의 수가 엄밀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다는 정도입니다.     이러한 형식성을 낳게 만들었던 여러가지 조건들은 시대 발전과 더불어 이미 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시조는 노래로 부르는 것이라든가, 정해진 음악이 있어 그 음악성에 부합하는 작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든가, 그 노래에도 엄격한 규칙이 있다든가 하는 것들은 이미 시조의 기본 자질이 아니라는 설명이 되겠습니다.     시조는 시대별로 갑오(甲午)1894년 이전 시조를 '고시조'(古時調)라 하고, 그 이후 시조를 '현대시조' 라 부릅니다. 현대 시조는 우리 민족의 성정(性情)에 가장 알맞은 문학 양식인 시조를 민족시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고시조의 형식상의 제약을 탈 피하여 현대인의 생활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한 시조로서 노래 가사라는 면을 벗어나 명확히 시라는 의식하에 씌어졌는데 작가(시인)들이 읊었고 평시조가 주류를 이루며, 연시조가 많습니다.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구별점이 무언가구요? 네, 고시조가 주로 유교적 충효사상을 다룬데 비해, 현대시조는 주제가 다양하고 개성적 자아의 내면을 표현하였는 데 현대인의 다양한 정서와 가치관을 다루지요. 다음 사색적이고, 관조적이며 이미지, 상징 등 현대시의 기법을 도입한것입니다. 내용상 감각적이며 실제적인 생활을 다룬만큼 현실에서 많이 취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형식상에서도 정형성을 벗어나서 비교적 자유스러워서 자유시에 접근할 정도로 파격을 하는 경우도 있고 3연6행(句别排行)의 시조가 많으며 자유시 형태를 취합니다. 순수한 우리말을 많이 사용한것이 이채롭고 표현상에서 회화적,시각적이고 제목을 달고 작자를 밝히고 있습니다.       개화기 이후 3.4.3.4 의 고정된 형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성과 감정에 알맞은, 비교적 자유로운 리듬으로써 지어졌습니다. 근년에 자유시와 비슷한 형태로 행과 연을 나누어 배치, 구성하여 짓는 경향이 강하며 현대적인 생활 용어로 느낌이나 생각 을 표현하고 있어요. 또한, 개인 정서와 생활에 밀착된 다양한 주제를 표현하며, 다양한 표현 기교를 사용합니다. “비”'  라는 시조를 예로 들어봅시다.                    그대  (2)  그리움이(4) 고요히(3) 젖는 이 밤(4)                  한결(2) 외로움도(4) 보배인양(4) 오붓하고(4)                  실실이(3) 푸는 그 사연(5) 장지 밖에(4) 듣는다(3)        그런데 이 시조의 시행을 현대시처럼 배치할 수도 있습니다.                                               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인양 오붓하고                               실실히                                푸는 그 사연                                    장지밖에 듣는다                  원문보다 감각상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또 시조면서도 현대맛이 나이지요. 진행상 매끄럽지만, 기본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거니와 더구나 초월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현대시조에서 추구할 것은 중요하게 사상(철리)이에요. 그냥 옛시조처럼 음풍영월하 거나 일상잡사, 연정을 읊조릴 수도 있으나 현대시조인만큼 정형시로서의 시조의 특색을 살리면서 지성적인 계시성이 있어야 읊조려볼 가치가 있게 될테죠.     그냥 “달아 달아 밝은 달아”하면 리태백이 노던 달이 나오게 될 것이고 광한궁에 상아의 고독쯤밖에 더 나올게 없을 것입니다. 시조라는 형식은 옛것이지만 문화전통 인만큼 계속 계승 발양되어야 한다면 현대시조의 현재적 좌표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 필요하고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대시조는 그저 현대+시조라는 명칭에 그칠게 아니라 현대성과 시조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명실상부하게 역사적 사명을 다한 고시조의 빈 공간을 메꿀 수 있는 충전이 되고, 되돌아와 시조성을 확보해야 자유시와 또 다른 현대시조의 미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현대성을 무시하고 시조성만 고집하면 현대인의 까다로운 미의식에 걸맞는 공감대를 확충하기 어렵거니와 복고주의 혹은 국수주의 경향에 맴돌게 될것이고 반대로 시조성을 무시하고 현대성에만 편향한다면 자유시와 한물밥이 되여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자유시의 변종쯤으로 되고말 것입니다.     현대시조라면 시행배렬 같은 형식미, 표면적인 현대감각이 문제인것이 아니죠. 고시조가 갖지 못한 현대적 사상, 정감을 침투시켜 시조가 거듭나야 할 이유가 증명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현대시조라면 그냥 글귀나 맞추고 감정을 희롱하는것으로 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시조는 현대사상을 담는 그릇이 될뿐입니다. 약탕관은 옛것이라도 새 처방으로 지은 령약을 얼마든지 다릴수 있다는 말이지요. 시조의 뿌리는 깊으나 새롭게 가꾸지 않으면 뿌리부터 썩고 나중에 꽃도 피지못하는 고목이 되여질테니까요. 자유시와 경쟁하려면 문제는 어떻게 가꾸어야 고시조가 우리 민족의 문학의 백화원에서 다시 꽃피울 수 있느냐입니다. 거두절미하고 현대시조라면 무엇보다 현대인이 공명하고 기꺼이 받아들여 새겨보는 사상(일상적인 것이라도) 이 담겨 명멸해야 할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시조 한수 예로 들어보자요.                                              나비야 청산가자 범나비 너도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서나 자고가쟈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닢에서나 자고가쟈        이 시조에서 드러난 의미는 어느 한량이 나비에 기탁하여 꽃과도 어울려 보려하고 잎과도 어울리려는 방종한 기질을 호탕하게 노래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선비의 호탕한 의미지향이 아니예요. 작품의 의미지향은 나비와 함께 가는 길이 순탄치 않은 것을 암시하고 있어요.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면 지친 몸을 꽃에 의탁해야 하고 거기서 박대를 받으면 잎에라도 의탁해야 하는, 미래의 전망이 불투명한 고단하고 암울한 행로를 노래하고 있는것이 심층적 주제입니다.     시인은 단 세 줄의 시행에서 바로 이러한 관계를 꿈꾸고 이러한 대동세계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의 시적 자아는 개체의 욕망으로 일그러진 마음이 아니라, 갈고 닦은 마음이며, 자연이나 우주 같은 마음이라야 가능합니다. 대단하죠? 이렇게 갈고 닦은 깊은 생각을 담은 것이 이 시조의 궁극적 “의미”이며 이러한 시적 의미가 독자의 정서와 완벽하게 부합되어 노래처럼 불리워진 것입니다. 시가 '음성과 의미의 조화적 통일체'란 말이 여기서 확인된 것입니다.     현대시조는 고시조의 음악적 음율을 상실하고 노래하는 시에서 읽는 시로 전환됨에 따라 남은 것은 시조가 갖는 '형식장치' 뿐입니다. 이제 현대시조는 고시조처럼 시조 창의 변주곡에 담아 시적 의미와 정취를 심오하게 하는 수단을 더 이상 가질 수 없으므로, 악곡적 음율이 사라진 공백을 언어의 음성적 자질로 미봉하여 음성과 의미의 조화적 통일체를 실현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만큼 시창작, 특히는 시조창작에서는 시어 하나의 선택과 배치에서도 음악적 율조를 활용해야 하고, 듣는 시에서 읽는 시로의 전환으로, 시각적 조형미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어의 내적 질서를 바탕으로 고시조의 선율적 기능에 버금 가는 율동적 실현과 공간적 조형미를 창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언어의 음성적 질서에서 구해야 하므로 그만큼 '언어를 대상화'하게 된 것이지요.     노래하는 시에서 읽는 시로의 전환은 음악적 율동에서 언어의 음성 자원을 동원한 율동으로 바뀌게 되고 이에 따라 시적 표출에서 “언어를 대상화”하게 된 사정은 현대시조나 현대시나 마찬가지입니다. 한어시도 운률을 중시하고 있잖아요. 그러나 그 지향점은 정반대였으니 현대시는 이전의 전통시가였던 고시조의 엄정한 형식 장치에 대한 반발과 거부의 시정신으로 나아가고, 현대시조는 그것을 적극 수용하여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현대시가 전통적 율격으로부터의 해방을 이념으로 삼아 개성적 율동을 지향하면서 과격하고 극단적 방향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자유시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현대시의 이러한 자유율적 행로도 시의 멋과 맛이고 전통율격에 대한 이탈과 거부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소월, 한용운, 김영랑, 서정주의 절창은 전통율격을 철저히 외면한 데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창조적으로 수용하고 변용하는 데서 오히려 가능했습니다. 소월시 [진달래꽃]이 시조는 아니지만 그 아름다운 조선말의 음률미를 지금까지 따를 시가 없습니다.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소월시에는 친근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인의 정서에 공감되기도 하거니와 4음3보격이라는 전통율격에 바탕을 두고 엮어졌기 때문이죠. 전통율격은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와 더불어 우리 말의 율동적 아름다움을 가꾸어온 경험적인 미의식의 결정체로서 우리 민족의 심미적 공감에 의해 공유하던 율동형이 양식화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고, 전통율격양식의 리듬을 타고 실현된 것이기에 여러분도 감미로움을 느끼고, 또 쉽게 암기하여 마음에 새겼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고시조이든 현대시조이든 그저 음풍영월에 만족할 것이 아니고 형식미 추구에서 체현되는 현대멋이 아니라 사상, 시조의 주제적의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구별이라면 구별일것입니다. 여기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언어적 이해가 잘 안되면서도 열심히 청취하고 의문점을 구김없이 제기하면서 적극 호응해준 여러분들이 돋보이고 대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010년 3월  23일                                                                           빈해대학 한국어연구쎈터 ( 최균선)     
119    명상시조(100수) 81-100 댓글:  조회:9521  추천:1  2012-12-30
  (81-100)    81.  지금은 함박꽃을 촌스럽다 하는때라              창턱에 인조꽃도 그보다 좋다하네                  돈바람 요괴풍이라 그럴만도 하오리   82.  내공로 네것되고 네잘못 내해이냐                  고기는 내해이고 웅장만 네몫이냐                 우자야, 도깨비세상 되여진줄 모르냐   83.  물막이 따로하고 고기잡이 각각인가                 건국의 피어린뜻 육탄으로 이루더니                 선렬들 피뿌린 땅에 잡풀들이 무성타   84.  가난에 속상해도 명이라 삼키지만                  불평등엔 못참는것 민심이 아니던가                득인심 득천하임을 위정자는 알리라 85.  사노라 살아온일 허황해 허망한듸                 욕심아 늬놈만은 바라바락 용쓰느냐                 물불을 가리지않고 날치다가 죽을라 86.  허허한 이 세상에 류성같은 과객이라                   허무한 만단회포 청산에 묻어두고                웬쑤의 인생살이를 류수처럼 살리라                   87.  새벽잠 늦꿈속에 날샌줄 몰랐노라                동산의 노을빛에 하늘이 너무밝아                밤새운 음풍영월이 제무안에 취하네   88.  높은들 어떠하며 낮은들 어떠하랴                 죽이야 풀어져도 가마에 있지않냐                 권귀도 비천한자도 저승길엔 동행자   89.  참새떼 재깔댄들 꾀꼴새 되여지랴                   잰나비 흉내낸들 인간이 되여질고                 제노라 으시대여도 못난꼴은 본새라     90.  기재도 불운하면 초야에 썩어있고                  기회가 틀어지면 불우가 탄식하리                 나쁜때 나쁜인간이 득세하면 황당해   91.  호박에 줄을긋고 수박이라 하는자나            사슴을 말이라고 회유하던 조고이나                허위로 리득챙기니 가증하다 하리라   92.  들은말 半信하면 현자라 하여이고                     어느말 믿어얄지 잘알면 지자인데                가짜가 진짜되는 때 허허실실 몰라라   93.  잡초는 무더위를 탓하지 않거니와             나무도 추풍락엽을 원망하지 않거늘                 늙음이 촉급하다고 개탄하니 우습다    94.  황련맛 모르고야 꿀단줄 어이알리                     인생의 단열매는 苦生树에 맺히나니                  살다가 중도이페면 어리석다 하리라   95.  실농군 등허리에 구슬땀 고랑질때                    게으른 가난뱅이 게침에 목이멜라                매미가 얼어죽는데 이상할것 있나뇨   96.  독주를 마실이가 세상에 있으랴만                    웃으며 독배하는 毒주는 美色주라                탐관이 탐색하노니 그와같다 하리라   97.  독재는 만성독약 차차차 병들리라                    환상증에 걸려들면 천하에 독존이요                망상증 당겨올때는 치매증이 오리라   98.  세계는 부한자의 세계가 아니란다                          소수의 권력자의 세계도 아니란다                 마음을 가진 사람의 세계란다. 아닌걸,   99. 자기를 낮춘다고 낮아질리 없건마는                        발꿈치 돋우면서 키자랑 해야하노               스스로 낮추는자가 높은줄을 모르냐   100.  권력을 람용할 때 진미를 만끽하냐                          때때로 절제하면 다른멋이 풍기느냐                   알괘라 절대권력은 절대적인 부팬줄                                     2010-2012년 7월  30일     
118    명상시조(100수) 61-80 댓글:  조회:8777  추천:1  2012-12-24
                           (61-80)              61. 꽃닢이 지는모습 하롱하롱 슬프다만                 때되여 자리내는 뒤모습은 의로워라                륜환의 신구교체가 아쉬운들 어이리    62. 꽃잎이 지는도다 화사한 그 한철을                향기로 만방하며 꿀즙을 빚어주고                열매로 락화의 뜻을 새겨두니 갸륵타   63. 분분한 락화는 눈물진 결별인가                  스스로 져야함을 분명히 아는꽃을               자리에 련련한이들 보옵시면 좋으련   64. 록음은 승화시라 흥망은 섭리로다               조용히 스러져서 열매를 맺어주는               꽃들의 희생정신을 눈물겨워 하노라   65. 이른봄 먼저웃는 진달래 반가웁고            눈속에 만개하는 매화꽃 장하도다                우리도 저와같으면 멋에겨워 살리라   66. 생명의 흥망성쇠 아쉬워 아니건만                  병들어 절로지는 락엽이 다시뵈네                목숨은 부대끼관듸 조락이란 이러해   67. 사막의 불사신이 생명을 죽이도다                   사구에 묻혀버린 억겁이 허무하여                뜨거운 모래바람에 펄럭이는 넋이여 68. 본연의 원시성을 그뉘가 말할손가                생명은 촉급하고 회귀를 모르나니                사람이 자성하던들 속절없는 인생요 69. 지기란 희귀하야 하늘에 별따기나                언제나 너도좋고 나좋은 호인이면                지음이 없으매로 평생두고 섭하리   70. 청운몽 간절한들 연줄없이 이뤄질고                    알뜰한 남가일몽 깨지니 아쉬우리                두어라 운수소관을 탓하던들 어이리   71. 늙도록 풍월짓고 웅문도 별렀건만                    되짚어 생각하니 부질없고 속절없다.                명성을 날린다한들 부운같지 않으랴 72. 울울한 락락장송 보니난 숙연하다                     사람은 늙어지면 저같지 못하리라               어찌타 장생불로에 애솔같이 되리오   73. 천궁은 가도가도 못미칠 미궁인데                  인류의 정복욕은 갈수록 난당일세                   화성도 목성이랑도 지구촌을 만들려   74.  강술에 담배안주 빈입을 다신후에                      취기에 조을듯이 송림에 앉았더니                청풍이 불러왔느냐 남가일몽 오는다 75. 숫사자 개지낳고 암탉을 불러내고                      흰구름 고기되여 바위를 낚아채는                시상이 기특하시여 몽롱시라 하는가   76. 소쩍아 밤새웠냐 부엉도 울었단다            뻐꾹아 남둥지에 알낳고 좋았더냐                 황페한 시골마을은 이것저것 한이라 77. 못참은 그리움에 만장지서 띄웠더니                 핸드폰 하는말이 “잘있슴다” 한마디네                지금은 혈육의정도 함축하는 시댄가        78. 만월도 스러지니 야위여 못보것다                 둥글고 스러지는 섭리를 말리랴만               풍만해 아름다움을 저리보고 알괘라   79. 청풍은 간데없고 구름만 오락가락                 공수래 공수거를 바람이 전하는데                나는야 돈바람타고 갈곳몰라 하노라   80. 탐욕에 검어졌냐 흑심에 끄을렸냐                  백조도 먹물독에 빠지면 가마귀라               풍조를 따랐노라고 변명하면 되리라
117    명상시조(100수) 41-60 댓글:  조회:9290  추천:1  2012-12-19
                                    (41-60)    41. 내 지금 하는 일에 어느게 맞는건지            어느게 틀리는지 죽을때 알게 될가                몰라도 좋아하는 일 슬카장 하리로다   42. 인생이 울적하야 가슴답답 괴로울제           서선생 마주하니 마음이 밝아지네               세상에 배우기보다 확실한것 있으랴   43. 소원의 희망봉에 내먼저 오르려면            남들이 장기놀때 시간을 쪼개거라                흘린땀 성공의 꽃을 만개하게 하리라   44. 인간의 됨됨이에 시금석 무엇일고            유혹이 꼬실때에 거부심 아니고녀                탐욕은 눈이 멀어서 천길나락 모르디   45. 성공은 쌓아지지 날아오지 않더니라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탐해서야                개천도 차차 합수로 창판만경 이룬듸   46. 사람의 얼굴이란 조물주의 걸작인데           웃을줄 몰라하는 얼굴도 인면인가               맹수도 웃는 얼굴을 알아본다 하는듸   47. 좋은길 따라걷고 좋은 말 골라하고           두손를 놀릴제는 좋은 일 하리로다               마음에 계률로 삼고 안빈락도 하리라   48. 하늘은 제스스로 돕는자를 돕거니와           게으른 치부몽은 빈궁을 비웃나니               가난에 한탄을 말고 뿌리부터 캐거라   49. 제복이 그 사람을 만든단 말씀이야            자리가 구실을 시킨다는 뜻이련만                밭머리 허수아비는 참새들도 웃더라   50. 차지한 위치덕에 한몫을 챙기고도            제잘나 이룬듯이 뽐내니 우습지라                현대판 고아내들이 그들인가 하노라   51. 인간이 우매하야 하느님 눈감는데            하느님 탓이라고 불평을 부리면서                알뜰히 기도하시니 허황하다 하리라   52. 어떨궁 좋다마는 김치국 찾지마라           공상에 환상업고 망상에 목매달면               살아도 껍데기밖에 없을줄로 아노라   53. 멀리를 내뛰려고 물러선 태세인데           우자는 나가기만 고집하니 가련할사               부차의 와신상담이 옛말뿐이 아니여   54. 제멋에 피여나서 무심히 웃는꽃을            날반겨 웃는듯이 져혼져 좋아하네               두어라 감각시댄들 자기조차 속이냐   55. 사람이 먼저 나고 돈이라 생겼건만           주객이 전도되니 세상사 기특하네               돈주인 어느 뉘시고 노예들은 누군고                             56. 막히면 수심깊이 고이며 기다리고           넘치면 차고흘러 바다로 가는물은               골골이 모이고 합쳐 장강대하 이루네                   57. 인생은 환득환실 많은것 잃더라도           량심을 개먹이면 남는것 뭣이던고                   유인이 최귀라함은 량지때문 아니랴 . 58.  아래물 흐린것이 웃물이 탓이라면             정계천 흐린물은 어드메서 흐렸을가                 탁류라 썩은 물에는 상중하가 없더라   59. 태산이 치솟은들 하늘에 가닿으며           곤륜이 아아한들 창공을 뚫을손가               소인이 제노라한들 군자될줄 있시랴   60. 나지나 않았더면 죽을일 없으리라                  득중유실 실중유덕 득득실실 실이복득               (得中有失,失中有得,得得失失,失而复得)                  얻음에 죽기살기냐 얻었던들 잃는것을        
116    명상시조(100수) 21 ㅡ40 댓글:  조회:8949  추천:1  2012-12-16
                     ( 21-40 )   21.  태없는 산봉인데 다가올리 있으랴            스승도 웅좌처럼 받을어 모시려면                천리길 마다할소냐 한달음에 뵈오라   22.  처처에 부글부글 거품의 시대로고             허위는 둥둥 뜨고 진실은 억눌리고                  물거품 거품마다에 허황함만 요란타   23.  기회를 기다릴제 혜안은 밝혀두라            인내가 지혜이니 신념은 일관하고               충실을 쌓아간다면 때가 절로 오리라   24.  스스로 해부하여 아집을 내치거라             자존도 아닌것이 독선될가 저어되네                 자기를 알고나서면 방향이야 외낄가   25.  인품은 관후하되 정의는 신장하소             仁자를 새겨가는 정의란 小义이고                 단군님 홍익인간을 大义라고 하니라   26.  사랑의 상록수는 믿음이 옥토거늘             리해의 해볕아래 성실로 맺혀지면                주렁진 행복의 열매 새콤달콤 하리라           27.  사랑해 포용하면 세상을 얻을테요            공연히 미워하면 모두를 잃으리라                사람의 爱爱憎憎은 그토록이 무서워   28.  진실에 눈을 뜨면 세상사 시끄럽고            진리를 지키려면 고통이 따르리라                백년도 못사는 인생 대바르게 살잔다     29.  타인을 진솔하게 착하게 대하리라             덕이란 쌓은데로 간다고 일렀거늘                 리기에 아득바득은 고달파서 못살리                    30.  류수는 순리대로 낮은곳 좇아가고             일월은 륜환하고 별무리 오손도손                 억겁의 운행법칙에 위배됨이 없더라   31.  운명이 얄궂어도 부디나 절망마라             불행은 단골인즉 락심하면 바보니라                 험난한 가시밭길도 끝날날이 있나니   32.  알차서 고개숙인 조이삭 숙연한데            저보아 허수아비 가라질 웃는구나                속비고 으시대는꼴 보기조차 싫에라                                33.  동장군 눈날리며 만리를 호령한들            오려는 양춘가절 당할줄이 있으랴                세사도 이같을진저 순리대로 하리라   34.  실실히 내리는비 방울방울 감로수라             새움이 푸릇푸릇 봄잔치 흐드럽다.                 호시절 구십춘광에 록음방초 승화시   35.  오고파 오는봄도 갈때는 미련없고             제멋에 피던꽃도 질때면 락화인데                 권좌에 련련하시니 섭리마저 모르셔   36.  토선생 낮잠잘때 거부기는 일심불란             사람도 분발하여 일구월심 진취해야                 유치를 갈아번지고 성공일랑 꽃피듸   37.  시작은 유예말고 내밀손에 확 밀어라               관둬야 할때이면 애석할일 없을진저                 설자리 앉을자리를 못가리여 욕볼라 38.  천리마 한번굴러 백리를 뛴다더냐            첫걸음 떼였다면 뗀김에 내처가소                황소도 걸음다그쳐 천리길을 가느니   39. 준비도 요긴타만 시작이 절반이요            배움에 때있어도 그칠날 없노매라                아희야, 평생배우며 스스로를 가꿔라   40.  어두워 우왕좌왕 갈길몰라 당황하면             별빛에 길을 물어 믿음따라 그냥가라                 밤새워 걸은 사람을 아침해가 반기리
115    (칼럼) 원, 저리 얄팍한 심통이라구야! 댓글:  조회:10148  추천:2  2012-12-15
                                  원, 저리 얄팍한 심통이라구야!                                                         최 균 선        심통(心统)이란 마음의 자리라는 말이지만 흔히 부정적으로 쓰인다. 례하면 “심통이 사납다”. “심통이 놀부같다.”등이다. 사람의 심리를 일컬어 심사, 심정이라 하는데 심통은 온당하지 못하고 고집스러운 마음인 심술과 배짝이 맞는것으로서 거개 남에 대한 긍정, 부정심리에서 금그어지고 또 그렇게 체현된다.     긍정과 부정은 론리학에 속한 개념으로서 사물의 내부에 내재한 두가지 완전히 상반된 규정성일뿐만아니라 대립적이면서도 변증통일관계에 처해있다. 량자는 호상 포함하고 있고 호상 전화되기도 한다. 즉 긍정속에 부정이 포함되여있어 일정한 의의에서 긍정은 곧 부정이 되며 긍정적사물에 자아부정의 인소도 내포하게 되여있다.     반대로 부정속에 긍정도 포함되는바 일정한 의의상에서 부정은 곧 긍정이 되는바 부정은 긍정을 소멸하는 환절이다. 우리가 저것이 무엇인가? 하고 판단할 때 “이것”이라고 긍정하게 되며 동시에 “그것”이 아니라는 부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긍정과 부정은 쌍둥이자매이다.     시비가 분분하고 각자 주장으로 시끌벅적한 시대라해도 긍정, 부정이 없으면 어떠한 력량도 생길수 없는 그만큼 긍정이 전무하면 역시 명백한 부정도 없게 된다. 풀어말한다면 명확한 긍정이 없다면 당연히 유력한 부정도 나올수 없다는 설명이 되겠다. 백사에 긍정도 바람직하지 않으나 만사에 부정도 능사는 아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시시비비에서 긍정과 부정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정하는가? 두말할것없이 사심ㅡ자기 리해득실이다. 대부분의 언어상황에서 긍정과 부정의 뜻이 이어지면 부정문이 되고 부정에 부정의 뜻이 이어지면 긍정의 뜻이 된다. 물론 두개의 긍정의 뜻이 합쳐져서 부정의 뜻이 되는 언어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긍정, 부정에는 반긍정, 반부정이란것도 있는데 내키지 않지만 반긍정이라도 하지 않으면 얄팍한 속창이 다뒤집어 보이기에 긍정은 하되 “그런데, 그러하다지만, 한것같기도 한데, 그렇게 보이는듯 하다, 그런것같기도 한데…”라는 식으로 토를 달아야 시름놓는다. 반부정도 “그렇기는 해도, 하지만, 그런데, 그런듯 하지만…”등 군더더기로 내심의 공허를 덮으려 하며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소리로 자신의 저의를 얼머부린다. 반긍정이나 반부정은 오십보 백보차이로서 자아인격의 폭로이다.     밉다고, 내편이 아니라고 내비위만 내세우면 눈에 콩깎지가 씌우게 되고 판단의 기준이 사악한 리기에 기울지고만다. 무조건 “너는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싶으면 색안경을 써야 한다. 타방을 긍정할줄도 안다는것은 인간의 덕목의 하나인 겸허성을 겸비했다는것을 의미한다. 부정으로 빚어진 사람은 남보기에 도고한것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리함으로서 그의 인격에 무슨 도금이 되는것도 아니고 빛이 나는것도 아니다.    “아참, 저렇게 가시가 많은 나무에도 저토록 예쁜 꽃이 피는구나!”하고 감탄하면 긍정의 마음을 가진것이고 반대로 “저리도 예쁜 꽃이 피는 나무에 젠장 무슨 놈의 가시가 저리도 많아?”라고 나무리면 부정적인 심태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부정, 긍정의 사유모식이 있고 그만큼 그의 자유적판단결과이다.     그러나 만약 긍정의 력량을 착오적인 곳에 쓴다면 부정이 된다. 물론 부정의 힘을 쓸수 없고 오직 긍정적력량만 써야 된다는것은 아니다. 한즉 우주만물의 음양의 도리를 잘 알고 긍정, 부정의 력량을 사용해야 한다. 대방이 밉다는 아집으로 남을 부정하려들지 말아야 한다. 부정적인 관념, 시각을 긍적적관념, 시각으로 전환해야 정면적인 인간이 된다. 불원이면 영원히 크지 못하는 미숙아가 될것이다. 부정의 다른 결과는 멸시가 되겠지만 결코 그 존재마저 훼멸되는것은 아니다.     남을 무조건 부정하는것으로 자기를 긍정하며 심리평형을 가지려 하지만 남을 긍정할줄도 앎으로써 역으로 부정의 힘도 유력해진다는 도리도 모르고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는데 특히 나와 사이가 틀어지고 앙숙인 경우에는 지어먹은 마음으로 무작정 부정의 몽둥이부터 휘두르면 얼핏 보아도 내심의 허약성을 드러낸다는것이 뻔해서 민망스럽다. 덮어놓고 상대방을 부정하려드는 사람들은 거개 사촌이 기와집을 지으면 배아파 한다는 속담의 주인공들이다. 말하자면 질투의 화신들이다.    그저 부정하지 않으면 자기 존재감을 상실한듯 여기는 자들은 남을 부정할 건덕지가 정없을 때는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같다고 나무린다는 속담처럼 이것저것 얼토당토않게 깎아내리고야 심리평형을 찾는다. 이런 심통은 그야말로 얄팍하여 가소로움을 자아낸다. 이런 심리적렬근성은 아마도 세계민족지림에서 우리 민족이 특허권을 따냈다고 해야할것 같다. 그만큼 유일한 비애의 족속으로 남아있고…     례를 든다면 자기가 맹종하는 “권위자”혹은 세인들이 거개 콩이라고 언명하는데도 자기의 리속과 엉큼한 심통으로 하여 한사코 팥이라고 우겨댄다면 이런 언동은 해설이 필요없이 “내심통은 이렇게 얄팍하오”하고 자아를 폭로하는격이 된다. 설사 콩이라 해도 콩으로 메주를 써서도 안된다고 억지를 쓴다. 진짜 콩을 삶아 메주를 쓰면 필경 뜰것이고 메주가 뜨면 메주냄새가 나고 그게 향긋한 냄새라도 내게는 공기오염이라고 억지를 써야 한다. 장은 오래되면 냄새가 난다고 신발견을 한듯이 고아대는 이런 심태에서 “나의 실패는 경험쌓기이고 남의 실패는 잘코사니다”라는 론리가 아닌 궤변이 난당이다. 이런 무조건 부정의 저의는 너무 비릿하다. ­   친구의 가살스러운 칭찬보다 적의 뼈저린 비평이 더 낫다는 말이 있던지…자신심에 넘친 사람은 결코 불문곡직하고 부정의 방패를 내들려하지 않는다. 그 방패는 나의 시각도 가리울수 있기때문이다. 아량 즉 도량이 전혀없는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넋을 가진 허접스러운 존재이다. 적에게서도 따라 배울것은 배우는것이 현대적관념이고 현대인으로서 마땅히 갖추워야 할 심리자세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묵어빠진 격언대로 처사하면 황당무계할뿐만아니라 가증하기까지 하다. 감탄, 탄복에는 필경 사적인 감정인소가 작용하기 마련이지만도 판단의 정당성에는 객관성이 선행해야 한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 다. 남을 부정하고 또 부정하면 은연중에 긍정이 되고 결과적으로 자기부정이 된다. 이것은 절대진리이다. 따라배울바도 부정적으로만 대한다면 그저 경멸이 따를뿐이다.     아량ㅡ도량이 넓은 사람이 되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작정하고 아량이 좁은 흉금으로 젠체하면 참으로 귀찮은 존재일수밖에 없다. 부정에 찌뜰린 심태가 전민 족적인것, 나아가서 국가적인것이라면 그 민족은 희망이 없는 민족이며 그 나라는 국격이 여실히 들여다보이는 “소인국”으로서 미래가 없다. 과언인가??? ­    내게 넘치는 존재감, 자신감이 없을수록 남을 긍정할줄도 알아야 한다. 세상에 미련보다 더 미련한 일은 없다! 아량을 갖추는 그만큼 세계가 넓어진다. 긍정의 힘은 내삶의 라침반이자 원동력이다! 남을 긍정할줄 알아야 자유경쟁도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 글로벌시대, 실력경쟁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성이다. 힘의 론리시대, 대방에 대한 부정적태도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그저 사대주의자들의 곰팡내나는 암투에 그치고말것은 당연하다. 긍정과 부정은 론리학개념이지만 세사의 철칙이기도 하다.                                                                       2012년 12월 13일
114    명상시조 (100수) 1ㅡ20 댓글:  조회:8975  추천:1  2012-12-12
                                                          명상시조 (100수)                                       최 균 선                                  ( 1 ㅡ20 )   1.  은하수 흐르는 밤 명상도 얼기설기          늙으면 만단회포 류성같이 흐르는가              감탄표 없는 인생에 물음표만 걸려라                                      2.  네박자 인생에 긴타령 엮어지랴          세월이 살같아여 목숨도 초로인데                 괴롭고 슬프던 일도 식후한담 되더라                     3.  인생길 굽이굽이 고생은 장고생이          락이면 장락인가 삶이란 운무산속             지각한 晚年享受란 꿈속에도 네뚜리        4.  세상사 다사다난 행불행 무상이라          가던길 오던길은 돌아서면 기점인데             욕망아 너는 어찌타 돌아설줄 모르냐    5.  산사람 그럭저럭 살기가 마련인데          죽으면 어제런듯 가뭇없이 닞히리니              생시에 좋은 인상만 산흔적이 되오리   6.  몰라도 아는체요 못살며 잘사는체          없어도 있는체요 위선자 군자인체              체체체 분식하는게 현시대의 풍조라   7.  잘난놈 점지받고 못난놈 숙명인가          몹쓸놈 난놈되고 착한놈 뒤몰리고              각투장 인간세상이 이런줄을 알겠네   8.  비애와 즐거움은 동전잎 앞뒤여라          개이면 청천이요 구름끼면 비내릴라              만남에 헤여짐이요 리별끝에 상봉이   9.  태여나 나는 울고 부모는 웃었니라          살다가 죽어가면 곁사람 우느니라              무상한 인생살이는 희노애락 범벅이                      10. 후회병 고질되면 불치증 되리로다           후회를 심었으면 참회를 거두시라               뒤늦게 깨우친다면 후회막급 되리라 11. 서산에 해가지고 동산에 달이 뜬다           기뻐도 그하루요 슬퍼도 한밤이라              기분은 가질탓인즉 그럭저럭 사세나      12. 가진것 얼마냐로 인격이 흥량되냐            됨됨이 말종이면 부자도 개차반이               없어도 적덕하는이 칭송받고 살리라       13. 군계에 봉황되면 그아니 좋으랴만           운좋아 평지돌출 眼下에 무인일세                아서라 조이밭속에 가라지를 보았지 14.  만권책 읽었다고 천리를 내다보랴            세상을 두루돌며 한가지 보고오면                인생에 유익한 배움 더없을가 하노라   15. 웃고파 피는웃음 심신의 보약이요           울고파 솟은눈물 심령의 강장제라              스스로 애끓지 말고 속달하며 사자네   16. 망각의 맷돌이야 저절로 도는것을            새길것 새겨두고 잊을것 닞으시라                엊저녁 지던 해님도 아침같이 웃나니 17. 골짜기 없다면야 높은산 치솟을가            결함이 없는사람 세상에 없더란다                정도로 돌아온다면 랑자회두 금불환                                            (浪子回头金不换)   18.  망망한 원항선에 순풍만 있으리요             항로가 일관하고 마음이 안정되면                 역풍도 순풍이 되여 등대곶에 이르리   19.  오락에 신들린듯 밤낮을 몰두하면            사람이 오락노냐 오락이 사람놀지                인생은 장기두기도 촉급하야 한인데   20.  마작이 병이되야 좌불안석 못참것다            마작쪽 섞는소래 세월도 오락가락                미쳐야 미친다건만 마작만은 불가라
113    (중편소설) 밀림의 련가 댓글:  조회:11567  추천:1  2012-12-09
                                          밀림의 련가                               ㅡ생각하는 인생은 희극이요                                 느끼는 인생은 비극이여라ㅡ                                              최 균 선                                 나는 운명과 박투하며 살았네.                               자국자국 한과 눈물로 찍어온                               가시밭속 서러운 나의 인생길                               돌이켜 생각하니 가슴 저리네                                      나는 운명에 도전하며 살았네                               사나운  비바람에 휘둘리우며                               지그재그로 걸어온 내 인생길                               이제다시 가라면 나는 못가네                                            1. 고동하의 달밤       뿡ㅡ덜커덩, 칙ㅡ푹…     목재를 실어나르는 가소린차는 드디어 팔가자역을 떠나 좁고 구불구불한 소철길을 호똘거리며 고동하림장으로 달리기시작했다. 이렇게 위태위태하게 달리는 기차는 처음 타보는지라 기분이 별로였다. 화집령을 바라고 산굽이를 기여오르는 기차는 더구나 꿈떴다. 차창으로 울창해진 삼림의 정경이 환영처럼 스쳐갔다.     목재판이란 어떤곳인지…어른들 말로는 사지판이라 하는데 힘들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라는것만은 알것같다. 그런 사지판으로 좋아서 가는것이 아니지만 가야 한다니까 울며겨자먹기로 가는판이다. 하긴 모아툰에 이사를 와서 든 집값 180원을 그냥 물지 못해서 원집주인 엄동기가 하루같이 성화를 대는 판에 차라리 목재돈을 벌어다 탁 둘러메치고싶은 역반적인 심정이기도 하였다.     자그만한 차바곤은 선발대로 들어가는 목재군들의 걸걸한 롱담, 욕지거리로 떠들썩했다. 팔가자역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나에게 말을 걸어오던 거구에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50대의 령감이 내앞에 앉아 련신 곰방대만 빨고있다가 침을 찍 내뱉더니 다시 말을 걸어왔다.     ㅡ애, 긍께이제 니가 목재판 일할러 간다끼가? 허허 요상허디, 늬 열여덜이라고예? 늬 아부지두 답답한 량반일다, 뭐라꼬? 아부지 없다고? 그라모 늬는 고생문 단단히 열렸구마이, 늬같은 종내기가 우예 목재판 다 간다꼬 덤비치기가? 아, 이 내옆에 얼라도 늬맹키로 어리지만 밥하러 가능기라. 아따 사정이 그캐도 한창 공부할 나이에 만다꼬 가노? 늬들은 다 몬갈곳이구머이,…허허, 참…     전라도사투리인지 경상도말투인지 한마디 건너 알아들을수는 없어도 성미가 걸걸한 령감님이 관심조로 하는 말인줄은 가슴에 뜨겁게 안겨왔다.     ㅡ 고맙수꾸마, 관심해주어서…저 그런데 어른앞에서 담배피워도 되겠수꾸마?     ㅡ 아, 긍께 늬고향은 함북도인가베…말끝마다 꾸마랑게 뭔말이꼬? 암튼 니캉 내캉 인자 다같은 목재군잉게 뭐 갠타. 피우거라이, 내사 좀 잘란다.    령감은 곰방대통을 담배주머니에 넣고는 왕방울같은 눈을 꾹 감더니 잠을 청하는 모양이였다. 그냥 령감곁을 떠나지 않고있다가 차에 올라서도 령감곁에 앉은 낯모를 처녀가 내가 못알아듣는 말을 해석해주는 바람에 우리는 간접적으로 안면이 트이게 되였다. 초면에 처녀와 허투루 말을 건네는게 실례이겠지만 같이 노가다판으로 들어가는 신세인지라 마음에 가까이 다가선다.     ㅡ 이분 말씀을 나는 잘 못알아듣겠던데 동무는 어떻게 그리 잘…     ㅡ 우리 웃집에 사는 아바임다. 그냥 들어서 잘 알아듣슴다     ㅡ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목재판에 가게 되였소?     ㅡ 동녀라고 불러도 됨다, 그렇게 된 사정이 있어요. 말하기는 저…     나는 말끝을 흐리는 처녀에게 캐묻는게 실례인것 같아서 말을 사렸다. 그녀는 나를 직시하지는 않았지만 얼굴에 더없이 부드럽고 순수하고 따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굴은 상기되여 있었고 치렁치렁한 량태머리는 중들이 가슴에 늘어뜨린 념주처럼 가슴의 볼록한 곳을 가리우있었다. 아직 활짝 핀 얼굴은 아니지만 고요하고 아름다워 순수한 자연미가 너무너무 보기좋았다.     열덟살이나 되였을가? 얼굴이 하도 해맑아서 농촌태생이라고 믿기가 어려울만 큼 청초하였다. 새초롬해진듯 꼭 다물린 입술, 량볼에 볼우물을 파며 웃을때면 머루 알같은 눈이 먼저 웃었고 눈속에 티없이 맑은 순정이 흘러넘쳤다. 이런 생김새는 단순한 녀인들의 특징을 보여주는듯했지만 진주가 녹아흐르는 듯한 눈에서 내비치는 은연한 빛은 나이보다 너무 일찍 숙성한 처녀애라는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그린듯이 아릿다운 한 처녀의 모습이 눈이라는 창문을 거쳐 내마음의 골방에 통채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런걸 첫눈에 정들었다고 하는것일가?…      기차가 다시 꽥ㅡ하고 멱따는 소리를 내는걸 보니 림장조도실(调度室)이 있는 고동하역에 도착한 모양이였다. 목재군들이 수선수선 이불짐서껀 둘레메고 내릴차비를 하였다. 차에서 내려보니 대약진때 인수거도로 유명해진 화집령이 저 만치 보이고 물도 흘러보지 못한 거도가 죽은 구렁이처럼 구불구불 수림속에로 숨어들었고 동쪽으로 훤히 열린 개활지대에 새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남도령감이랑 목수일을 할줄 아는 장정들은 고동하에서 서북으로 뻗은 소철길 을 따라 70리를 더 들어가고 새초를 베기 위해 남은 우리는 풍막도 치고 화식칸으로 쓸 간이건물도 짓느라 서둘러댔다. 어느새 팔월의 긴긴 해가 저물고 고동하기슭에 밤의 장막이 드리우는듯 싶더니 보름께 달이 화집령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저녁을 대충 얻어먹은 나는 목이멘듯 주절대는 고동하에 발을 잠그고 유일하게 다루는 퉁소로 한곡조 넘기다가 제풀에 싱거워서 그만두었다. 스스로 무슨 목가적기분을 돋구려는것은 아니고 그저 혼자의 애원성이고 밸풀이로 내뿜는 소리이다.     늦여름 시들해진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밀림의 밤의 소야곡으로는 더 좋았기때문이다. 맑은 물결에 별들이 튕기고 바위숲에 부엉이가 고독을 울어싸고있는 고동하의 달밤은 쓸쓸하였다. 밀림을 비추는 달빛은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다. 어둑어둑한 숲뒤의 봉우리들은 “가둘양차”라고 하던 말을 증명해주는듯 사면팔방에 첩첩하다…     이튿날 낫이랑 내주었지만 산판에 도착하면 준다던 로동신은 언제 주려는지 주지 않았다. 헝겊신 하나를 달랑 신고 떠난 나는 맨발로 새판에 들어서지 않을수 없었다. 아침녁 발이 선뜩한것은 둘째치고 굵고 징글맞은 미추리가 어찌나 많은지 휘두르는 낫에 허리가 동강나 꿈틀거렸고 며칠전에 베여놓은것을 묶을때도 풀밑에 똬리를 틀고있어서 기겁초풍할 지경이였다.       그렇게 열흘쯤 견디다 못해 광신대대에서 왔다는 두젊은친구들과 의논이 맞아서 도망길에 올랐다. 화집령에서 룡수평역까지 하루에 대였다. 그렇게 도망쳐나왔지만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의 걱정처럼 천대장이 그밤으로 사원대회를 열고 목재전선 의 “도주병”이라며 한바탕 닦아세우는 바람에 이틀후 다시 집을 떠났다. 팔가자에 도착하니 방정맞게도 며칠전 폭우에 고동하로 들어가는 소철길이 끊겼다고 했다.     야단이 났다. 주머니엔 얼마간의 잔돈이 남았는데 밥은 어떻게 먹고 잠은 어디서 잔단말인가? 해가 거의 질무렵까지 길거리에서 속을 태우다가 목재지휘부로 찾아들 어갔다. 마침 나와같이 도망쳤던 친구도 하나 와있었다. 지휘부에서 뭐하는 사람인지 몰라도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욕사발을 퍼붓는데는 귀가 멍멍해질 지경이였다.     ㅡ네가 도망쳤단 그 자식이냐? 너희들 도대체 무슨 사람이야? 어디라구 함부로 도망친단 말이야? 지금은 옛날 목재판이 아니라 목재생산제1선이란 말이다. 오늘은 초대소에서 자고 래일 생산대로 돌아가라, 마침 각생산대에서 목재소 한마리씩 먼저 들여보내게 되였어, 너희들이 생산대의 목재소를 몰고들어갈 임무를 맡으면 되겠어, 립공속죄도 할겸말이야, 다시 도망쳐봐, 아예 감옥에 처넣고 말테니…     죄지은놈이 무슨 할말이 있으랴! 이튿날 생산대에 돌아와서 목재지휘부의 명령을 말했더니 그러지 않아도 통지를 받고 소를 몰고갈 사람을 고르는 중이라면서 차라리 잘되였다고 하였다. 한이틀 엄마곁에서 자고 사흘째 되던날 이른아침, 이틀분 사료랑, 이불짐이랑 쳐맨 소두마리를 몰고 마을을 떠났다…                                                    2. 심산의 밤길            교통이 불편하기로 말이 아니던 그 시절을 산 사람들치고 밤길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을것이요 먼먼 밤길을 걸으면서 다리뼈가 맏아들이라는 속담의 뜻을 몸으로 터득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게다. 그러나 나의 밤길은 례사 밤길이 아니다. 혹떼러갔다가 혹을 붙인격이랄가? 아니면 도망친 업보인가? 밤길에도 산속의 밤길, 가랑잎에 쪽잠도 그리운 밤길을 가는 체험은 참으로 각별하였다.     여드레 팔십리라 둥글이는 과시 량반걸음을 하였다. 룡수평서 하루밤 묵고 다시 화집령을 넘어 사흘째 되던날, 고동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산판을 향해 길을 재우쳤다. 서북쪽으로 옛소철길을 따라70리쯤 가면 우리 공사의 산판이 나진다고 해서 소들을 채질했지만 길은 축나지 않고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다. 몇십리나 걸었는지 가고가도 산판에 등불은 보이지 않고 어둠만 이 천고의 밀림을 무겁게 휩싸고있었다.     안내할 이도 없었고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가다가는 서고 주밋거리다가 다시 걷노라니 흐릿한 밤하늘인지라 남쪽도 알수 없고 북쪽도 알수 없고 몇리나 남았는지도 알수 없는 외가닥길만 숨박곡질하듯 어둠속에 숨어버리였다. 그냥 갈가? 그래도 한걸음 더 나아가지도 못하고 돌아서지도 못했다. 무시무시한 밀림의 밤, 그 고요와 적막함과 으스스 등곬을 파고내리는 공포의 전률은 생전 처음이였다.     그런대로 힘센 둥글이만 믿고 불안한 걸음을 재촉하는데 멀리 수림사이로 한오리 불빛이 새여나와 내눈에 닿았다. 천만다행이라 안도의 한숨을 쥐여짜면서도 시름은 여전히 바장거리였다. 고요하면 두려움이 있고, 두려움이 있으면 더구나 적막한 법이라. 조심스러운 움직임속에 고요가 뒤따라서고 어둠속에서 움직이며 움직이는것으로 희망의 등불을 부르며 허둥지둥 앞으로 걸었다.     길이 아니면 가지말라고 하였지만 누군가 걸어서 길이 생겼거늘 막다른 골목에야 이르랴싶었다. 길을 알지 못하여 길이 헛갈렸지만 그런줄도 모르고 발길 시키는대로 소궁둥이에 희망을 얹고 마음이 앞서달렸다. 절망하지 않으면 다른 골령에 들어섰 더라도 다시 돌아나오면 될것이다. 마침내 무주공산에서 기진맥진해 쓰러지지 않고 목재군들의 장막이 웅기중기 들어선 개활지에 이르렀다. 숨이 활 풀리였다.     그런데 이런 맹랑한 일이라구야. 그곳은 지신공사의 산판이였다. 십여리 골안을 헛탕친것이였다. 그러나 빈궁이 독판치는 그 시대였어도 인정은 푸근했다. 앳된 청년이 겁도없이 허둥댄것이 안쓰러웠던지 시래기국에 밥을 말아주던 식당아줌마가 그렇 게 고마울수 없었고 새 날이 밝으면 가라고 극진하게 말리는 인부들의 풋풋한 인정도 가슴뜨겁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약정된 오늘 도착하지 못하여 공연히 야단칠 지휘부의 박창장은 둘째치고 어른들의 얼굴들이 떠올라서 더 앉아뭉갤수가 없었다.     골안을 빠져나가서 오른쪽 골로 한 20리 들어가면 광신공사 목재판이 나진다고 하기에 용기를 내여 떠났다. 인제 방향이 서고 목적지가 정해져서 무서움도 멀찍이 물러섰다. 소고삐를 허리에 매고 련이어 말아문 담배불로 어둠을 쫓으며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산짐승도 잠든 시간, 별빛을 빌어 걷는 길은 인생길이 어떠한가를 암시 하는듯 싶었다. 심산속의 길은 적막을 깔고 누워있다. 캄캄한 산에서 외롭지 않을수 있었던것은 체대가 덜썩 큰 검정소와 얼룩배기때문이였으리라. 그리고 두려움속에서 주저앉지 않고 내처 걸으면 귀속을 찾을수 있다는것을 밀림이 일깨워준듯 싶었다.    나는 허위허위 걷고 내상념은 저만치 앞에서 껑충거리였다. 인생길에도 산속의 험난한 밤길이 있기마련이다. 오래동안 돌아설수도 없는 역경에 처한 사람의 인생행로는 혼자 묵묵히 걷는 나그네의 밤길이다. 그러나 나는 휘적휘적 걷고 또 걷는다. 비록 남보다 제일 먼저 새벽을 맞기위한 지어먹은 행보가 아니다. 그러나 밤길을 걸어야 할 운명이라면 새벽은 나에게로 먼저 손짓하게 되여있다.    이처럼 일단 인생길에 오르면 좋든궂든 내처 걷게 되여있는 삶의 도보요 주막은 멀어도 어디에든 기어이 닿고야 말겠다는 끈기를 지팽이로 삼고 걷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의 길이다. 남이야 지름길로 가든, 탄탄대로를 따라 노래를 부르며 가든 내앞에 놓인 길만을 걸어야 한다. 되돌아설 리유가 없다. 돌아서도 동서남북 세상은 넓어도 내가 가야 할 그 어둠속에 뻗은 불가피면의 밤길이다.    먼먼 밤길을 걷는것은 어스레한 외눈박이 가로등아래에 소풍처럼 그렇게 기분이 들리는 발걸음이 아니다. 먼길에는 동반자가 있으면 길이 꽤 줄수 있다. 그런데 함께 가다가 곰을 만나서 아무말도 없이 먼저 나무에 올라간 친구같은 그런 동반자라면 홀로 걷기만 못하다. 이미 나진 길이라도 낯선 곳에서 혼자 걷는 길이라면 초행길 이요 더구나 어두은 밤을 헤치며 가야하는 산속의 길은 절실한 체험의 길이다.     아무도 내다리를 대신할수 없다. 숙명으로 이어진 길이요 그 길을 걷는 주체는 나이다. 안내자가 없다. 나혼자서 걷는다. 눈을 싸맨 나귀가 석마돌을 돌리며 먼길을 떠난듯이 내처 걷는 길일지라도 그냥 걸어야 한다. 몸뚱이가 걷는게 아니다. 인간의 근본지표는 정신으로서 내육체안에 무엇이 있다. 그것은 정신만이 아니다. 나를 앞으 로 떠미는 무엇이 있다. 보이지도 잡을수도 느낄수도 무게도 없는 그것이 무엇일가? 바로 삶에 대한 욕망이고 자존의 끈기이다. 인생길에는 그것이 요긴하다…     마침내 허위단심 우리 우리공사의 산판에 이르렀을 때는 한밤중이였다. 흰자위가 커진 아바이들의 핀잔반 칭찬반을 들으며 잔뜩 얼어든 몸과 피곤을 난로가에 뉘였을 때 안도의 한숨도 침먹은 지네처럼 게나른해졌다. 극도로 지친 나그네에게는 한귀퉁 이 잠자리가 행복의 보금자리였고 등걸잠을 잤지만 꿈도 곯아빠진 숙면이였다.                                                             3, 밀림의 련가             소는 전직사양원들이 거두게 되였으니 나는 할일이 없었다. 명령에 따라 다시 화집령초지에 내려가 이불짐을 풀었지만 신이 없다(기실 그동안 3원주고 로동신 ㅡ찌까다비를 사신었다)는 구실로 화식칸의 잡부로 되였다. 마른나무를 주어다가 패고 불도 때는게 내가 하는 일이였다. 그러다보니 동녀와 더 친숙해졌다.     동녀는 곁에 사람이 없을 때 환영한다는 뜻인지 원망하였다는 뜻인지 한바탕 푸념질했다. 그러는 동녀가 밉지 않은것은 무슨 심사인가? 동녀는 나의 옷견지도 씻어주고 양말도 기워주었다. 횅창 달이 밝은 밤, 다른 친구들은 트럼프를 치며 육담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나는 고동하물소리와 동무하며 퉁소로 심산의 적막을 달래였다.     그런 밤이면 동녀도 나의 퉁소리에 홀린듯 묻어나와 저만치 비켜앉았다. 실로 목가적인 정경이였다. 그러나 그러는 동녀와 나를 아니꼽게 지켜보는 눈길이 있었다. 나보다 두어살 이상인 유신촌에 신철이라는 친구였다. 그는 동녀에게 반해서 혼신이 허궁 떠있던차였다. 그러다보니 나를 드러내놓고 미워했다. 그런 눈치를 모를리없는 나였지만 짐짓 모르는체 하면서도 마찰이 생기면 가만두지 않으리라 벼르고있었다.     어느날 밤, 동녀가 고동하버들숲에 숨어앉아 제빨래를 하고있는것을 알고 은연중 가까이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호시탐탐하던 신철이가 따라섰다. 신철이는 직방배기로 자기와 약혼하자고 욱다짐하는듯 녀자를 풀밭에 쓰러뜨리고 손을 놀리기시작한 모양이였다. 나는 퉁소를 불며 그쪽으로 슬슬 다가갔다. 열이 올라 황소처럼 씨근덕거렸을 신철이가 화닥닥 놀라서 달아나는 모습이 보이였다. 그러나 나는 동녀가 창피해 할가봐 나서지 않고 퉁소소리로 오래오래 달빛 차거운 밤의 평화를 축원했다… 목재소들이 한겨울 먹을 새초를 다 장만하자 우리 젊은패들은 천수동으로 옮겨가 이전에 늘였던 전화줄을 거두라는 임무를 맡았다. 떠나기 전날 내가 앉은 강가에 동녀가 살며시 다가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린듯이 서있었다. 달빛아래에서 똑똑히 분별할수는 없었지만 애수에 잠긴듯한 눈길이 내 쪽을 향해 있었다.     고동하급류는 소용돌이치고 고패치며 부글부글 끓는듯싶었다. 천년을, 만년을 흘렀을 고동하 세찬물결은 북으로 북으로 달리고있다. 문득 산다는게 흐르는 강물같 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정의 소용돌이가 지나고 오욕의 거품이 걷히고나면 결국 침전되여 남는건 자신을 거쳐갔던 기쁨과 슬픔들 그리고 그 대상들. 닿을 인연이면 누가 어찌해도 닿을것이지만 떠나야 할 인연이라면 잡을수 없다는 리치를 이 밤 고동하가 가르쳐주는듯싶었다.     강물은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가노라, 같이 가자고, 뒤물결이 앞물결을 밀며 흐르는 급류, 출렁출렁 처절썩, 나의 빈가슴 울리며 밤낮을 모른다. 내청춘의 격정도 저리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밤에도 고동하는 흐른다. 두꺼운 어둠 속에서 풀숲에서 잠든 산천어의 지느러미를 쓰다듬으며 흘러흐른다. 은색달빛도 말을 걸어오기도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동녀도 (내침묵이 강물처럼 흐른다 해도 당신을 말없이 사랑하며 진정 당신을 위해서 당신의 넓은 가슴에 바다를 닮은 마음으로 머물께요)하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좋을가? 련애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시인을 만든다고 하였던가? 녀자들은 아무리 눈물이 헤퍼도 사랑하지 않는 남자앞에서는 절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던가? 그런데 저 봐! 동녀의 커다란 눈에 물기가 번쩍이고 있잖아?     부엉부엉ㅡ부엉이 울음소리가 더없이 처량했다. 나는 강기슭에서 물러나와 주위 를 둘러보았다. 산봉우리들이 높이높이 솟아오른다. 산은 검푸른 하늘아래에서 고독을 참아가며 서로서로 어깨를 겯고 묵묵히, 우두커니 서있을수밖에 없었던 결박당한 노예무리를 련상시키였다. 울분은 쌓이고 쌓이여 삶에 대한 슬픔을 낳고 망연은 자실을 얹어주고 역으로 삶에 대한 더욱 집요한 갈망을 낳아준다. 그리하여 침묵과 고독속에서 노래하는 고동하가 나져서 지금 굽이굽이 감돌아 흐르며 기슭을 차분히 적셔주고있다. 강은 그래서 인류의 생명의 젖줄기로도 되는것이다.      ㅡ 아이참, 무슨 생각을 혼자서 그리 오래 하나요? 사람이 서있는것 안보여요? 참, 나 그쪽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흔해빠진 동무라고 할수두 없구…     ㅡ 그럼, 이름을 부를께, 정우라구 말이야,     ㅡ 아이ㅡ 어떻게 그렇게 해요? 나이는 비슷하지만…     ㅡ 그럼 내용만 말하면 되겠네. 하하하…     ㅡ 웃긴? 천수동으로 간다면서요? 거기 없으면 나는…어떻게 해요?     ㅡ 걱정마오, 이번에 신철이도 함께 가니까 시끄럽게 굴 기회가 없을터이니…     ㅡ 높은 전선대에랑 올라간다는데 몸을 주의하세요. 아이, 내가 싱겁게…     ㅡ 고맙소, 동녀도 진짜 산판에 들어가면 감기에랑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오.     ㅡ 고마워요, 이렇게 날 지켜주고 관심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예요.     나도 동녀에게 늘 고마움을 품고있었다. 가마목에 앉은년이 떡하나 더 먹는다고 화식칸에서 만두하나라도 더 얻어먹기 마련이지만 동녀는 가끔씩 자기몫의 만두를 남겼다가 나를 주군했다. 그게 내게는 그저 배고픔을 달래는 만두만이 아니다. 나는 이런게 사랑인지 알수 없었지만 동녀가 그저 좋았고 늘 마음이 따스해지였다.    …한 보름이면 된다던 일이 뜻대로 끝나지 않아 스므날을 넘겼다. 천수동어귀 마을의 농가에 숙소를 정하고 긴 천수동골안을 오르내리며 전선줄을 거두었다. 우리 절로 “모다까”라 부르는것을 낡은 철길우에 올려놓고 운수도구로 썼다. 먼곳에 갔을 때는 내리막에서 올라앉기도 했다. 제동장치가 없는 도로꼬가 바람이 날라치면 속수 무책으로 가속에 명을 맡길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일을 치고야 말았다.     늘찬 내리막에 들어서자 모다까는 “어디 한번 호사해봐라”하듯이 냅다구르는 데는 등곬에 얼음이 비껴갔다. 이대로 그냥 가다가는 올리막까지 이르지 못하고 무슨 사고가 날것같았다. 속도가 더 나기전에 뛰여내리기로 작정했다. 소조장의 명령일하 에 일제히 뛰여내렸다. 량켠에 덤불들이 두툼해서 괜찮으려니 했지만 겁이 많은 문씨가 힘껏 내뛰지 못하여 철길에서 굴러떨어지며 타박상을 입었다. 다행히 뼈를 상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병원도 없는 허허 천수동에서 여럿이 함께 고생할번했다.     그럭저럭 전선줄을 다 거두었을 때는 10월에 들어섰다. 가을만큼 짧은 계절이 있을가, 여름이 끝났는가 싶으면 어느새 늦가을이다.  천수동의 산천도 가을 끝자락에 섰다. 오색단풍이 짙게 물든 련산련봉, 단풍은 어디서나 단풍이지만 일송정에서나 모아산에서 보는 단풍은 비길바가 못된다. 수십종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심산유곡답게 특이한 절대경이였다. 가을의 절정, 산기슭, 산중턱, 산봉에 민낯을 드러낸 기암과 절벽이 산을 뒤덮은 울긋불긋한 단풍과 대조를 이루기도 하거니와 조화를 이루기 도 하여서 내마음을 사로잡았다.     여름해살은 바늘처럼 내리꽂힌다면 열기가 다바랜 가을해살은 나비의 날개처럼 가볍게 내려앉는다. 숲속, 아침이 열려오는 그 찬란하고 황홀한 빛의 기막힌 조화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푸른 음향마저 흐를것같은 10월의 깊은 하늘만이 열이 식어가는 해를 높이 띄우고있다. 나는 어줍잖게 일기장에 서투른 시줄을 끄적였다.                                     불붙는 저 단풍은 내마음이런가                 심산속 색채가 고운 시월단풍은                 무정한 서리가 그린 걸작이건만                 나는 어이하여 가슴을 불태우나      봄은 공연히 싱숭생숭해 나는 계절, 가을은 움직이는 계절, 무언가 무르익히기 위해. 다른 한번은 충만된 푸름을 위해서 온다. 그래서 봄에는 처녀들이, 가을에는 남자들이 흐물거리는것일가? 사실, 단풍든 심산속에서 동녀의 얼굴이 못견디게 그리워졌다. 마치 열련에 빠져있다가 전선에나 나온 전사의 그것처럼 사뭇차게 생각나 면서 시도때도 없이 가슴이 뭉클거린다. 동녀가 내주머니에 편지같은것을 넣어놓고 얼굴이 홍시가 다 되여서 돌아서던 일이 생각나 웃음이 칵 물리였다.     …지금도 무어라 불러야 내마음에 꼭 들지 몰라요. 그리고 내가 어린 처녀로서 이런 편지를 먼저 쓴다는것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줄 알고 있어요. 그러나 나 쓰지 않을수 없어요. 전번처럼 간다는 말 한마디없이 훌쩍 도망치던 일이 생각나서 이번에도 천수동서 그냥 집으로 돌아갈가봐 겁이 났거든요.     리해하여 주어요. 내마음을, 처음 볼때에는 나이답지 않게 후리후리한 체대에 크지는 않으나 매서워보이는 눈이 좀 서먹서먹했지만 날이 가고 눈에 익어갈수록 떡 벌어진 어깨, 넓고 두둑한 앞가슴, 그리고 장작을 팰때 불뚝거리던 억센 두팔…그 모든것이 무섭고 강한것을 물리치고 외롭고 약한것을 얼싸 껴안아줄수 있는 그런 남자라고 믿어졌어요, 우리 집엔 남자 하나 없고 언니 둘이 있었는데 인제 다 시집을 가서 나는 외롭고 고독하게 컸어요.     초중생인 나는 수준이 형편없어요, 그러나 이런 편지는 진실한 마음으로 쓰는게지 미사려구로 엮는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줄줄 잘도 내려가네요. 호…남자라는 존재에 어섯눈을 뜬 처녀로서 제일 행복한 일이 있다면 지금 바로 사랑을 하고있다는 그것이 아닐가요? 사랑, 정우, 이 두단어는 생각만해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게 하는 단어이고 나의 혼을 빼가는 소리예요.    얼때기없이 이 목재판에 와서 하냥 걱정이 가슴을 꽉막히게 하고있었는데 오빠를 만나게 된후 마치 하느님이(우리 엄마 교를 믿거든요) 안배해 놓은 연극같아요. 나로 말하면 산다는게 오빠를 사랑하게 되면서 시작된것 같고 내가 훌쩍 철이 들어버린것 같아요. 웃으면 안돼, 나 거짓말을 모르는 녀자이니까….                                                        4, 산판의 풍경       산판에 돌아와보니 토장(저목장)은 대강 닦아놓았지만 목재군들이 들어야 할 숙소는 아직 몇채 더 지어야 하길래 분주히 돌아치였다. 나는 남도치령감님의 조수로 귀틀집을 짓는 일을 거들었다. 동녀는 화식원으로 있다보니 따로 만날수는 없었지만 밥을 타는 구멍으로 아침저녁 눈대화는 할수 있었다. 혹간 점심시간에 만나면 큰 나무뒤에 숨어서 몇마디씩 나누고 다 기운 장갑같은것을 건네받군 했지만 그저 좋기만 했다.     첫눈이 내리면서 각 공사에 목재군들이 꾸역꾸역 들이닥치였다. 골골에 밥짓는 연기, 숙소의 난로연기로 사람사는 냄새가 풍기였다. 발구길을 닦는 일이 끝나자 나는 남도령감의 지도를 받으며 채벌군질 한다고 덤벼쳤다. 보통 키가 40-50메터 나가는 아름드리 홍송, 백송, 가문비나무를 도끼질로 깊숙히 턱을 떼고 엉덩이에 쳐맨 개가죽을 깔고앉아 헐씨근 톱질하느라면 무슨 큰 일이나 하는듯 느껴졌지만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싫증이 나고말았다.     나무를 넘어뜨릴 방향을 잘못잡아서 얼른 넘어가지 않고 그루에서 빙그르르 돌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아찔하군 하였다. 그럴때에 무작정 들고뛰면 나무에 딱살을 맞을것이니 침착하게 그루를 안고돌며 나무초리를 올려다 보라는 어른들의 교도가 귀에 못박혔지만 그저 외우면 되는 일이 아니였다. 더구나 재수없이 나무가 넘어지면서 맞은켠 나무가지에 걸려 덕대를 지워놓는 날에는 목숨을 내걸고 앞에 나무를 또 재껴야 했다. 진땀이 빠작빠작 나는 일이였다.     집재가 시작되자 생산대 소이니 내가 부려야 한다는 핑게로 집재군이 되였다. 기실 집재군이 돈을 잘 번다고 해서 욕심낸것이다. 나무를 싣고 굵은 바로 칭칭 동인후 탕개를 단단히 틀어야 한다. 그 모든 일은 남도령감이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그일도 오래하지 못하였다. 웬간히 큰 무티는 두대씩 싣고 너무 큰놈은 땅을 파고 발구도매를 들이밀어 간신히 싣기는 했지만 소가 아무리 버둑거려도 나무가 꿈적하지 않을때가 있었다. 다른 집재군들은 인정사정 없이 소궁둥이가 피터지게 두드려패지만 나는 차마 그렇게 할수 없었다.     더구나 경사도가 강한 빙판길을 내려올 때 사람은 뒤에서서 안전하지만 바들바들 떠는 소가 너무 불쌍해져서 눈물이 다 나오군 했다. 한번은 그리 크지 않은 나무를 실었건만 토장에 들어서는 가파로운 길목에서 얼룩이가 낑낑거리며 한발작도 더 내디려하지 않았다. 뒤에 발구군들이 늘어서서 재촉한다. 나도 성이 나서 어깨에 메였던 둔장으로 얼룩이 궁둥이를 팬다. 그래도 소는 겁이 나서 맴돌뿐이다.     나는 앞에가서 코뚜레를 거머쥐고 죽어라고 당겼지만 끙끙 소리만 냈다. 커다란 눈에 물기가 가득차 있었다. 소가 울고있는것이다. 소가 운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것 이다. 아니, 나의 얼룩이는 분명 울고있었다. 몰고 들어올때보다 바싹 여윈 몸둥이가 전률하고있었다. 뒤에서 재촉이 성화같았다. 누군가 소궁둥이를 북두드리듯 두드려 팼다. 소귀에 경읽기란 말은 딱맞는 말은 아니다. 얼룩이는 결심내린듯 두어걸음 떼더니 두무릎을 착꿇고 미끄럼질로 내려갔다. 얼마나 엮어빠진 소인가!     평평한 길에 이른 얼룩이가 뒤에 오는 충격을 어찌 감당하고 그랬는지 앞다리를 훌쩍펴고 일어서는게 아니겠는가? 기적이였다. 그러나 두무릎은 살이 거의 나올 지경으로 되여 붉은 피가 질펀하다. 나는 얼룩이목을 안고 쓰다듬어주면서 저목장으로 들어갔다. 그후부터 나는 돈을 못벌더라도 소를 혹사시킬수 없었다. 혹여 소까 지 잡는 날에는 그 후과가 어떨지 너무나 뻔했기때문이다.     그래서 알맞춤한것만 골라 싣다보니 다른 사람들처럼 립방수를 올리지 못하였다. 매일 지휘부회계에게 립방수를 보고할 때는 락후분자로 되였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집재할게면 다른 사람에게 소를 넘기란다. 그럴가하고 생각하다가 나날이 여위여가고 마냥 휘청이는 얼룩이가 불쌍해서 차마 남의 손에 맡길수 없었다. 드디어 얼룩이가 지쳐버리자 지휘부에서는 병약자와 함께 하산시켰다. 무슨 일이나 잘 안되는 판이라 뚝심이 있으면 해낼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저목장에 원목을 쌓아올리는 목도군으로 되였다. 물론 누구에 짝지지 않는 목도군이 되기까지는 많이 몰리였다.     대식품을 먹으며 겨우 목숨을 연명해가는 지방보다는 좀 나은편이였지만 목재군들로 말하면 먹는것이 말이 아니였다. 쏘련에서 들여왔다는 무슨 록두알같기도 하고 풀씨같기도 한것을 섞은 수수밥에 국이란 소금물에 삶은 시래기 한덩이씩 놓아주는게 고작이였다. 겨울이 깊어지자 샘줄기도 숨어버려 물고생이 막심했다. 그래서 눈을 퍼들여다가 녹여서 세수물로 쓰고 밥을 하여야 했다.     소금국에서는 솔잎냄새가 풍기였지만 두어사발씩 들이키는 사람도 푸술했다. 긴긴 밤 썰썰해진 사람들은 사양원으로 들어온 엄동기가 난로곁에서 두병을 썰때면 몇개씩 후무려서는 난로에 구워먹었다. 손바닥같이 넙적한 두병을 굽는 냄새가 그처럼 구수할수 없었으며 구운두병이 그렇게 맛이 있을수 없었다. 엄동기는 량표를 절약려고 밥을 타내다가는 두병을 섞어서 죽을 쑤어먹었다. 배고픈 고생이야 누군들 다르랴만 그러는 엄동기를 곱게 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지방에서는 대약진운동이 마침내 흐지부지해졌지만 산판에서는 그 후유증으로 인력으로 “小头木”을 끌어내리는 야간작업이 밤마다 계속되였다. 한공이라도 더 벌려고 열성을 부린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지휘부에서 내리먹이는 바람에 억지춘향이 되는격이였다. 동녀도 밤작업에 나서서 한대라도 더 끌어내리려고 애를 썼다. 나와 그는 자연스럽게 짝패가 되였다. 그러나 립방수를 적을 때면 나는 그냥 동녀에게 양보하였다. 그것이 고마워서 동녀는 나의 밥사발에 각별히 신경을 써주었고 장갑이랑 가져다 기워주면서 여러가지로 왼심을 써주었다.…     목재군들은 물론 소들도 지쳐 하나둘 죽어나갔고 새로 생력군의 소들이 들어왔다. 토비굴같이 기다랗게 지은 귀틀막은 썰렁했다. 쇼루즈(烧炉子)령감이 눈한번 붙이지 못하고 도목나무를 때여 난로가 벌겋게 달아있지만 겉바람이 세차서 난로 가까이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무슨 불을 제정신없이 때는가고 불평이였고 난로에서 멀리 구석진 곳에 누운 사람들은 춥다고 욕설질이였다. 인심이란 참으로 종잡을수 없는것이다.     나는 난로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데다 마침 기둥머리에 석유등이 있어서 얼마간씩 책줄이나 훑을수 있었다. 내가 재수가 좋아서가 아니였다. 후비대로 소를 몰고 들어온 방령감이 량표를 절약하려고 길에서 거의 굶다싶이 했다더니 저녁에 빈속에 “무철알”밥을 우겨댄게 탈이였는지 급성위장염같은 증세를 보이며 배를 안고 맴돌아쳤다. 촉한에 걸려서 그런가고 난로가에 자리를 옮겨주었지만 그새장새였다.     밤인지라 10리길도 넘는 곳에 있는 의사를 데려올수도 없고 해서 소화제를 얻어 먹인다하며 법석을 떨어도 배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의사질을 하다가 우파로 몰려 쫓겨났다는 의사가 두루 살펴보더니 이대로 두면 곤난하다며 홍문으로 비누물을 불어넣어 “灌肠”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누가 남의 홍문에 비누물을 입으로 불어넣는단 말인가? 사람이 죽는다 산다하며 괴로워하는 모양을 지켜보면서 모두 안타까운 얼굴을 짓고있었으나 아무도 선뜻이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대대지휘부 박창장이 들어오더니 한 사람을 지명하였다. 우리 마을에서 온 송권준이라는 한족이였는데 젊어서는 연길별동대에 들어가 삼도만 토비 숙청에도 참가한 사람이였지만 출신때문에 부대에서 밀려나와 다시 농민이 된 사람이 다. 사람이 마음은 고왔지만 조금 교활한데가 있었다.    상급이라면 껍적 죽는 시늉도 하는 그인지라 “예, 예”하며 의사가 풀어준 비누물 을 고무관즈로 빨아들여 방령감의 홍문으로 불어넣었다. 비누물이 꽤나 들어갔는데도 방령감은 효험이 없는지 그냥 쩔쩔 매였다. 그러다가 10시를 넘기지 못하고 그만 숨을 거두고말았다. 사람들은 허탈감에 빠졌지만 후사를 처리해야 했다. 그냥 사람 들속에 시체를 뉘여둘수는 없었던것이다.     급히 관을 짜서 입관시켜야 하는데 관널이 문제였다. 선톱질로 널을 켜내서라도 밤새 관을 짜기로 하였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기승부리며 죽을놈을 나오라고 휘파 람을 불었다. 누가 이 추운밤에 톺틀에 올라가 선톱질을 할것인가? 역시 톱질에 의력 이 텄다는 송권준이가 자원해나섰다. 밑에서 톱을 당겨줄 사람이 있어야 했다.     결국 내가 나서게 되였다. 나를 찍는듯한 박창장의 눈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방령감의 아들인 소학교동창 봉만이 낯을 보아서도 모른체할수 없었다. 그렇게 두어시간 역사질해서 홍송널을 두쪽을 뽑아 대충대패질하고 관을 짜야 했다. 한참 뚝딱거려 관이 만들어진 다음 입관하였다. 몸이 너무 불어서 겨우 넣고 대못질 한다음 밖에 내다놓았다. 그런데 밤중에 오줌누러 나갔던 나그네가 기겁초풍해서 뛰여들었다.     ㅡ 저, 저 밖에 관널이 돋기고 있수다.     늙은이들이 시체에 부증이 오면서 그런게라 하였다. 촘촘히 박은 대못이 돋아날 정도이면 가히 짐작이 갔다. 이젠 큰망치로 못을 박아넣어도 그냥 관뚜껑이 들리며 삐걱삐걱 무서운 소리를 내고있었다. 모두 소름이 끼쳐 몸을 떨어댔다. 남도령감이 제안을 내놓았다.     ㅡ 거시기 법대루라면 안되능기지만 8호쇠줄로 관을 두세곳 묶을수밖에 없당께. 재게 철사를 얻어서 묶어놓음세.     그의 제안에 따라 몇몇이 나가서 관을 철사로 칭칭 동여놓았더니 관널이 더 돋기지는 않았다. 이튿날, 나와 권준이가 발구에 관을 싣고 고동하역에 가서 가소린차에 실어 팔가자로 보냈다. 그렇게 난 자리인지라 아무도 탐내지 않았던것이다.                                                                                5. 생사의 고비       자리는 명당인데 말째인것은 한사람 건너에 자리잡은 신철이가 밤이면 바이얼린을 꺼내 턱에 끼고 활을 당기며 제감정에 도취하는 꼴통이였다. 괜찮게 켜는듯했지만 진종일 고역에 시달리고 추위에 부대끼던 일군들은 질색하는 모양이였다. 그렇다고 누가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하는 판국이였다. 삑삑거리는 소리에 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 저녁은 보다못해 내가 한마디 하였다.     ㅡ 어이, 신형, 당신은 제감각이 좋아 고개를 흔들어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장가가 아니란 말이요, 옛말이나 좀 듣다가 잠을 잡시다.     ㅡ이 새끼, 네가 뭔데 감히 누굴보고 흥소리야,     현철이가 거칠게 나왔다. 누워있던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났다. 어둠컴컴한 숙소안이 대번에 긴장이 감돌았다. 말은 내가 먼저 건것이니 해결도 내가 지어야 했다. 문티를 굴리고 목도를 하면서 나는 신철이가 키는 커도 맥살은 못추는것을 보아낸지라 드잡이를 해도 겁날게 없다고 자신하고있었다.     ㅡ네입은 마구낸 창구녕이냐? 입만 벌리면 누운소 똥누듯 욕설이 나오니? 내가 널 무서워할줄 아니? 하겠으면 어디 밖에 나가 볼가?     내가 악지 세게 나온것도 있지만 잔뜩이나 불평이던차라 거의 다 내편을 드는 판이 되였다. 입살이 더러운 남도치도 한마디 께끼였다.     ㅡ남다 자는 이 밤중에 그 무신 지룰들이가? 젊은눔들 노는 꼬라지들허군, 그랑 버르장이 없으면 어떡케 사람질하노? 둘다 종아리 확 부찔러뿌릴라, 어험 !     아무리 노가다판이라도 이상제하는 챙겨야 하는 판이라 말다툼을 미루기로 했다. 말다툼이 다시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더구나 앙숙이 되고말았다. 그런데 결국 꼴을 먹은것은 나였다. 양력설전에 있은 일이다. 동녀가 하루 일을 쉬는 새에 기워준다고 가져간 벙어리장갑을 가지러 화식칸에 갔다가 곧 돌아섰는데 그것이 빌미로 되여 사달이 났던것이다.     이튿날 국에 조금씩 썰어서 넣어주려고 삶아놓은 큼직한 돼지고기덩이가 감쪽같이 축났던것이다. 그날밤 내가 화식칸에서 무엇을 들고나오는것을 본사람이 있다고 해서 적발비판회에 나서게 되였다. 증명인이란 바로 신철이였다. 재수가 없을라치면 소똥에 엎어져 개똥에 코를 깬다더니 내가 그 꼴이였다. 내가 아무리 청백을 증명하 려 했지만 출신이 나쁘다는 그 한가지 리유로 마구 몰아부치며 탄백을 받아내려는 판이였다. 누구보다도 한마을에서 온 엄씨가 두팔을 걷어부치고 열을 올리였다.     ㅡ저눔의새끼 원래 나쁜눔이우, 내가 한마을서 살기에 속창을 잘 아는데 저자식 고개는 숙여도 속은 퍼렇게 산놈이라이, 마을에서 비판을 받을때도 한번 잘못했다고 승인하는 법이 없었소. 저 자식이 내가 썰어놓은 두병도 몇번을 후무려서 구워먹기도 했소, 손버릇이 나쁜놈이니 필경 고기를 훔쳤을게요. 이 새끼야, 고기덩이를 어데다 감추었는지 바른대 자백하지 못하겠니? 내 저눔을 그저…    곁에서 말리지 않았으면 주먹까지 휘두를 잡두리였다. 죄는 도깨비가 짓고 고목 이 벼락을 맞는다더니 속담 그른데 없었다. 그러나 지도부에서 아무리 비판의 불길을 지피려해도 원체 서로 다른 대대에서 온 사람들이고 평시에 서로 척을 진일도 없기에 거지반 반신반의하며 마지못해 앉아있는 판이였다. 게다가  나의 잠자리밑이랑 두어번 뒤졌지만 고기가 없었던것이다.     ㅡ 보지 못한 도둑놈은 함부루 찍어말하문 안된당께, 증거를 가지고 사람 족치소.     통말을 잘하는 남도령감이 장훈을 불렀다. 밤깊도록 비판해봐야 거개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게 비판하는 바람에 회의가 싱겁게 되였다. 한이틀 불러내여 꼭 죄가 있어야 한다는식으로 이런저런 갖잖은 일까지 꿰여들고 닥달질하더니 웬영문인지 더 내세우지 않았다. 후에 안일이지만 신철이가 자기를 불러내느라 왔다갔고 정우동무도 기운 장갑을 찾으러 왔지만 문밖까지 함께 나왔노라고 동녀가 증명해나섰던것이다. 일은 그렇게 해명되였지만 동녀는 말밥에 오르면서 처지가 난감하게 되였다. 게다가 지도부의 눈에 나서 식당에서 밀려나 검척원으로 되였다. 강추위속에서 손시린 고생, 발시린 고생을 하는 동녀를 보느라니 가슴이 아팠다.    돼지고기사건후였다. 신철이는 더구나 동녀에게 행패질하지 못해 안달했다. 눈을 뜰수 없을지경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어느날 점심무렵이였다. 손발이 너무 얼어들어서 발을 동동 구르던 동녀는 집재군들이 좀 뜸해진 틈을 타서 바람막이움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방정맞게도 뒤미처 집재군이 들이닥쳤다. 순서대로 하면 검척을 한 다음에 나무를 굴려서 쌓아야 했다. 내가 동녀를 부르거나 저쪽에 다른 검척원을 대신 시키자고하니 신철이가 픽 랭소를 던졌다.     ㅡ이 빌어먹을 토끼새끼년은 어데로 바라간거야? 자, 추운데 이 문티를 제꺽 굴려다놓고 점심먹으러나 갑시다. 년이 알아서 처리하지 않을라구 헝,    저목조의 조장인 신철이가 우기는바람에 모두 덩둘해서 시키는대로 했다. 동녀가 미구에 달려나왔지만 다른 집재군들이 련속 들이닥치는 바람에 그 나무를 미처 돌볼 사이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 집재군이 자기 나무가 얼마인가 차문하게 되였을 때는 이미 나무무지속에 묻힌뒤였다. 성이 독같이 난 집재군의 입에서 쌍욕이 터져나왔다. 마음이 여린 동녀는 할수 없이 목재무지로 다가갔다.     파리길에서 경사진 높다란 언덕을 수평으로 채워나가면서 나무를 쌓아가기에 그 나무는 아래서도 우에서도 재일수 없게 묻혀버렸다. 그러나 동녀는 듥쑹날쑹한 나무 를 밟으며 내려서야 했다. 잠풍한 날에도 위험한데 사람이 막 날려갈지경인 사나운 날씨엔 더구나 위험했다. 내가 대신 재여가지고 올라오겠다고 해도 기어이 제가 잰다 고했다. 눈보라는 더욱 기승부렸다. 팔을 뻗쳐 나무를 재려던 동녀가 발을 빗디디며 떨어지는 찰나 얼결에 삐죽이 나온 나무초리에 허궁달리게 되였다.     내가 잽싸게 내려가 동녀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눈보라가 휙 몰아치면서 둘다 평형을 잃고말았다. 내가 먼저 떨어지고 동녀가 내몸에 떨어지는 바람에 크게 상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무등걸에 허리를 박아서 한동안 눈속에 누워있었다. 동녀가 울음을 터칠때 우에서 낄낄거리는 신철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거의 열흘이나 10여리 길을 걸어서 림장병원에 침을 맞으려 다녀야 했다.     핑게핑게 도라지캐러 간다고 그낌에 하산하겠다고 신청하였지만 박창장은 오히려 꿰병이라며 웬간하면 일하라고 독촉질했다. 다행히 척추는 다치지 않아 그런대로 일할수 있었지만 그동안 숱한 공을 잃고말았다. 자리에 누어있어야 했던 며칠은 동녀가 밥을 타다가 주었다. 나와 신철이의 사이는 일촉즉발의 상태로 팽팽해졌고 언젠가 한번은 둥글쇠싸움이 나야 할 판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끝내 일이 터졌다. 큰 목재는 여섯이 아니면 여덟명까지 목도하게 되였는데 큰나무는 방치라는것을 매고 목도하였다. 그래야 올리막, 내리막에 무게게 자연적으로 조절되는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철이가 방치를 매는 날에는 어쩐 셈판인지 무게가 나와 갈경갈경한 조령감이 메는 뒤쪽에 쏠리여 허리가 받아당하지 못할 지경이였다. 맥골을 못쓴다고 늘 구박받던 조령감이 가만히 알려주었다. 신철이가 방치를 맬때 무슨 롱간질을 한다는것이였다. 다음 나무를 멜때 내가 신철이네와 위치를 바꾸자고 하였다.    ㅡ 왜?    ㅡ 좌우간 좀 바꾸기우, 우리가 그냥 뒤쪽에서 메야한다는 법이 없지 않소?    ㅡ 너 무랄이니? 메라면 멜게지 뭔 즌소리야? 즌소리는?    ㅡ 뭐라구? 다시 말해보라,    ㅡ 다시 말하자면 너같이 성분이 나쁜 새끼는 내마음대로 짓밟을수 있단말이다.     개니 돼지니 욕해도 참을수 있지만 성분소리만 나오면 참지 못하는 나였다. 중학교 2학년때도 그랬다. 한어시간에 곁에 애와 구시렁거리다가 선생이 불호령을 내렸다. “정우, 일어섯!” 나는 얼결에 엉거주춤 일어섰다. “나가! 당장! ” 나는 수업을 지연시킬수 없어 복도에 나왔다. 때는 엄동설한이라 복도는 한지나 다름없었다. 변변 히 입지 못해서 잔뜩이나 추위를 타는 나는 한참 서있으려까 금방 온몸이 언명태가 다 되였다. 창피를 무릅쓰고 교실에 들어갔다.     ㅡ 왜 들어왔어? 시간이 끝날때까지 복도에 서있으란 말을 못들었어?    ㅡ 듣기는 했지만 너무 추워 얼어죽을것 같습니다. 저 못나갑니다.    ㅡ 뭐? 이 새끼, 선생과 땅땅 접어들구, 야, 임마 넌 성분이 나쁘다더니 아주 질이 나쁜 놈이구나, 이 자식, 너 공부 좀 잘하면 다야? 나쁜놈의 새끼…    아이들의 눈길이 내한테 확 쏠리였다. 이런판에 입에서 뱀이 나가는지 구렝이 나가는지 가릴게 없었다. 내입에 생각하지 않던 말이 불쑥 튕겨나갔다.    ㅡ 에씨, 자기는 쏘련포로병이 돼가지구..    ㅡ 뭐야? 이 새끼?     한어선생이 한걸음에 달려내려와 내귀쌈을 불이 번쩍나게 갈겼다.     ㅡ 왜 때려요? 학생에게 반주임도 하지 않는 말을 해서 됩니까?    한어선생님은 들었던 손을 내리웠다. 나는 밖으로 뛰여나갔다. 너부죽한 얼굴에 칼자국이 나있고 구레나룻이 짙은 한어선생님은 학도병으로 끌려나갔다가 쏘련군이 만주리로 넘어오자 두손을 번쩍들고 포로되였다고 소문나 있었다. 하학시간이 되자 나는 교장실에 불려갔다. 교장선생이 나늘 한바탕 닦아세우고 내보낸후 한어선생님을 비평하는 소리가 귀결에 들렸다. 다음은 체육시간이여서 스케트를 타는데 한어선생 님이 나를 불러 구석쪽으로 끌고가더니 먼저 사과했다.     ㅡ정우야, 내가 실언했다. 아무 죄없는 어린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참 안됐다. 하지만 너두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였어…     나는 가슴이 울컥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ㅡ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선생님의…     ㅡ 그래? 너도 잘못을 뉘우치면 됐어, 하긴 너의 그 성격이 내 마음에 들었어…     한어선생님은 나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혹간씩 공사소 재지에서 맞띄우면 진심으로 인사하였다. 한어선생님도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그렇게 맺혔던 원한은 흘러간 세월에 떠나가버렸지만 그 말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판이다. 나는 우선 참기로 하고 그냥 목도채를 어깨에 걸었다.     몇걸음 나가던 나는 조령감에게 눈치질하고 불시로 목도채를 어깨에서 탁 내렸다. 그바람에 앞에서 메던 넷이 뒤로 훌렁 나자빠졌다. 신철이가 악을 먹고 달려들며 털모자를 쓴 내머리를 호되게 후려쳤다. 이제 나도 더 무엇을 고려할게 없었다. 옆으로 훌쩍 비켜서며 목도채로 신철이의 등때기를 후려쳤다. “아이쿠 !”소리와 함께 신철이가 고꾸라졌다. 원래 훗대가 돈독하지 못한 나였지만도 우선 속이 후련했다.     나의 살기띤 험상궂은 얼굴에 모두 어안이 벙벙해 서있었다. 내가 다시 목도채를 추겨드는데 조령감이 내팔을 잡고 극구 말려놓고는 신철이를 눈속에서 안아일으켰다. 신철이의 눈에서 독기가 뿜어나왔지만 함부로 짓밟을수 없는 존재라는것을 조금 느낀듯 겁기가 어려있었다. 나는 내가 한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이런 막노는 노가다판에서는 약하게 보일수록 더욱 짓밟히기 십상이다. 거세지는 못해도 악지세게 나와야 아무도 기시하지 못한다는것을 그동안 체험으로 느꼈던것이다.     쉬는참에 둘이서 따로 떨어져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데 조령감이 이야기를 했다.     ㅡ 자네에 하는 말이네만 나 젊어서는 조선팔도에서 이름있는 전문목도군이였네.     우리 짝패가 딱 여덟이였는데 형제의를 맺아 수족같은 친구들이였지. 우리는 전문 기차에 원목을 메여올리는 일을 찾아했네. 한번은 광고가 나붙었네. 무산역에 아주 큰 무티를 기차에 싣지 못하고 2년이나 묵어있었다네. 일본목재경영소에서 아주 많은 돈을 준다고 광고하였지. 그래서 우리는 한달음에 달려갔네.     나무는 과연 소문대로 거물이였어, 거의 가슴까지 올라오는 놈이였는데 직경이 거의 90이 나간다던지, 그놈을 차바곤에 메여올려야 했네. 우리는 사흘을 걸려서 받침대서껀 빈틈없이 준비하였네. 무티를 메느날 무산읍에서 숱한 구경군들이 나왔네. 목도채를 어깨에 올려놓으니 나무와 땅사이가 한 한뽐 푼히 되였네. 앞에 선 친구 둘이 차판에 올라서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 “아이쿠!”하고 비명을 질렀네.     그러나 허기영, 치기영 하고 먹이는 선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나무는 한걸음 한 걸음 움직이였네. 차바곤에 나무를 돌려서 내려놓자 제일 나이 어린 막내가 졸도하였 네. 병원에 가보니 목덜미에 박힌 주먹같은 썩살이 문드러져 피가 터졌던거야, 그때 그 막내가 목도채를 벗어메치면 뒤에 우리는 다 죽었을거야, 무티가 워낙 이만저만 한 놈이 아니였거든, 그때 돈은 꽤나 받았지만 거지반 그 아우의 치료비에 들어갔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아나? 이런 시시한 목도판에서는 되는대로 메면 메는 거지만 목도라는게 말이네 힘을 합쳐 하는게 아니라 마음을 합쳐야 하는거라구. 그런 데 저 신철이라는 젊은이가 사람이 참 못됐어, 노가다판에서 굴러먹은 내가 저런 햇송아지를 두려워 가만있는줄 아나? 나도 출신때문에 그저 죽여줍시사, 하는거라구, 저애숭이가 심통이 바르지 못한게 분명하니 앞으로 사달이 나지 않게 주의하게…     조령감과 나에게 각별한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역시 천지가 아득하게 눈 보라가 휘몰아치는 어느 날이였다. 내옆. 제일 바깥쪽에 나무를 굴리느라 둔장질하던 조령감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발이 미끌며 평형을 잃은 조령감이 그만 바람에 휘 감겨 나무무지 사이에 떨어진것이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슴팍까지 싸인 눈속에서 눈사람이 다된 조령감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내가 나무를 타고 내려가 부축했을 때 조령감은 눈섭이고 수염이고 눈범벅이 되여있었는데 남의 일이라도 가슴이 찡했다. 일이고 나발이고 조령감을 업어 숙소에 가져다 눕히였다. 옆구리를 박아서 켕길뿐 허리는 일없다고 하였다. 조령감은 그렇게 한 열흘 쉬고 나서야 목도판에 나올수 있었다. 그후 조령감은 자기가 가져온 토담 배랑 나누어주면서 남달리 살갑게 굴었다.     며칠후였다. 나무를 일정한 높이로 쌓아야 하기에 다음 층을 시작할 때에는 끝 머리에 조심조심 올려놓아야 했다. 자칫하면 아래로 굴러떨어지기때문이다. 그리 크지 않은 나무라서 모두 헐겁게 여겼는지 힘이 합쳐지지 않았다. 나무가 거의 올라 앉는 찰나 내가 우쩍 힘을 쓰다보니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지며 한발을 내디고말았다. 내친김에 경사지게 쌓인 나무들을 건정건정 뛰여넘는데 뒤에서 동녀의 새된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텅, 퉁탕!”하는 소리에 뒤돌아보지 않아도 사태의 엄중성을 직감했다. (인제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뇌리를 쳤다. 그 무서운 절망감이 폭발력을 올리뿜 었는지 아무튼 나는 두세 걸음에 나무무지 끝머리에서 2메터쯤 아래에 있는 소철길 위로 힘껏 뛰여내렸다. 사신을 앞세우고 굴러내린 문티가 쿵, 하고 내뒤에 떨어졌다. 철길이 조금 높았기에 홈차기에서 더 튕겨오르지 못했기망정이지 나는 떡돌에 치운 개구리가 될번했다. 정신이 아뜩했다. 짓쫗은 무릎이 아파났을뿐 사지가 멀쩡한것 같았다. 그러나 얼이 나간뒤라 한동안 엎어진채 있었다.     ㅡ 정우야, 아무데도 상하지 않았지?     ㅡ 정우동무!!     조령감의 다급한 소리와 동녀의 절망적인 부르짖음소리가 귀를 때렸다. 간신히 머리를 들어보니 모두들 위에서 내려다보며 련신 무어라 소리쳤다. 어느새 뛰여내렸 는지 동녀가 내팔을 잡아 일으키려 애썼다.    ㅡ아무데도 상한데 없지요? 응? 그렇지?     나는 천명이라고 생각하며 엎어진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릅팍이 쑤셔났지만 극력 아무렇지도 않은체하며 언덕을 올라갔다. 후에 동녀가 알려준데 의하면 그날도 검척 할게 없어 남자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무가 굴러떨어질가봐 도비로 잡아당기고 있는듯 했는데 신철이가 손동작을 하는듯 싶더니 나무가 굴러떨어진 그런 위험한 일이 벌어진것 같다고 하였다.     나는 가슴이 섬찍했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는이상 무엇을 어떻게 캐여볼 계제가 못되였다. 저녁에 낮에 있었던 일을 누가 꺼냈는지 하늘이 도운 목숨이라고 한동안 떠들썩했다. 남도령감은 내무릎을 살펴보았고 우파의사도 요도팅크를 꺼내여 가득 발라주었다. 그후부터 신철이를 지켜보는 나의 눈길은 분명 험악했을것이다.     얼마후, 쌓아놓은 문티들을 헐어서 기차에 싣는 일을 하던 날이다. 문티들은 쌓 기도 힘들지만 허물기가 더욱 위험했다. 내가 조금 사선으로 끼인 나무끝을 도비로 끄적거려 파내자 원목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나무한대가 철길가에서 지휘하던 신철이 앞에까지 굴러가는 순간 “아이구!”하며 그가 발목을 안고 맴돌이쳤다.     욱 모여들어 이것저것 물었지만 그저 아파 죽는시늉만 하였다. 당장 업어서 대대위생소라도 호송해야 했다. 나는 내가 잘못해서 상한것이라고 생각하며 두말없이 등을 들이댔다. 신철이를 없고 꽤나 먼 숙소로 돌아왔을때는 나의 솜내복까지 흠뻑 젖었다. 의사가 와서 살펴보려 하니 신철이가 비명을 지르며 다치게도 못했다.     그렇게 신철이는 엄중환자가 되였고 나는 의무간호원이 되였다. 일을 하고 돌아 와서는 밥도 타다주고 요강으로 쓰는 세수대야까지 섬겨야 했다. 며칠 지나자 앓음소 리는 뜸해졌으나 약을 바르고 칭칭 동인 붕대를 다시 풀어보지 못하게 아우성쳤다. 그렇게 열흘간 누워있다가 송엽장을 짚고 변소출입을 하게 되였다. 지휘부에서 하산 할수 있다는 증명까지 떼주는 바람에 나는 한시름을 푹 놓게 되였다.     문제는 신철이를 소발구에 앉혀서 70리 떨어진 고동하역까지 실어가는 일이였다. 나는 내가 가해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걸리는 점은 있어서 호송을 자원 해 나섰다. 걸음가벼운 소를 주어서 길이 잘 축이났다. 앞에서 소고삐를 당기며 걷는 나는 속으로 이 산속에 콱 처박아버리고싶은 생각이 불쑥 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마음속에서 끓어번진 증오심에 그치고말았다.      그러데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은 뒤에 있었다. 늦은 오후에 고동하에 이르렀는데 마침 기차가 원목을 가득싣고 금방 떠나려는 참이였다. 급해맞은 신철이는 내가 부축하기도 전에 굴러떨어지듯 하더니 이불짐을 들고 선불맞은 노루처럼 기차를 향해 내뛰는것이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한참 뛰던 신철이가 내게 대고 소리쳤다.     ㅡ 야, 이 개새끼야, 그날 네놈이 그 문티에 치여죽지 않은게 다행인줄 알아라. 나는 간다, 그동안 잘 부려먹어서 감사하다. 너 그년과 콱 잘살아라.     그가 무어라고 자꾸 지껄여댔지만 나는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아무 반응도 못하고 쇠말뚝처럼 섰을뿐이다. 나는 굶은 속으로 그냥 돌아서지 않을수 없었다. 이제 돌이켜보니 나만 부엏게 속히워 벙어리 랭가슴을 앓은것도 그렇지만 하산증을 떼주 면서 치료를 잘하라고 당부하던 박창장도 속창이 터질일이다. 말씨 한번 걸죽한 남도령감이 듣지 못하는 욕설을 퍼부었다.     ㅡ 세상에 저런 문딩이 다 있다니? 어허, 나참 디러워서, 그동안 고양이 불알앓는 소리에 잠을 설친 일을 생각하면 분통이 숫구멍까지 솟구친당께. 짜아식, 능구렝이라두 그런 능구렝이 봤나? 암튼 정우, 늬 고생많았다. 그래두 사람은 먼저 착하구 보능기여, 그런 놈의 새끼는 아무데가도 싹수가 없는 놈인게루 업보를 받지 않나 보래이, 어참, 나 제정때 벼라별 노가다판에서 굴러다녔지만두 저런 버러지같은 놈은 못보았당께. 속은 우리가 분하고 분하디. 에익, 칵…        사실 지도부에서는 내말을 반신반의 한다고 하였다. 내말이 사실이라면 괘씸한 “도주병”을 다시 잡아들여야 한다고 벼르던차 어디서 어떻게 들어온 소식인지 신철 이네 온가족이 한창 불어치는 조선바람에 두만강을 건너가버렸다고 하였다. 신철이가 꾀병을 앓은 원인이 거기에 있은것이다. 박창장은 닭쫓던개 울쳐다보는격이 되였고 나는 또 한번 인간의 내심속에 들어찬 이런저런 악과 허위를 절감하며 가슴을 쳤다.                                                                                                                            6. 함께 걷는 길                                  춥고 지리한 심산의 겨울도 3월에 접어들면서 따스해지기 시작한 양광에 맥을 못추고 봄기운이 겨울이 누웠던 자리에 서서히 들어서기시작했다. 겨우내 목재를 실어내리던 발구길은 한낮이 되기도전에 눈석임물로 질척거려서 집재하기가 점점 힘들어졌건만 하산명령이 없었다. 목재생산임무를 넘쳐 수행해야 한다는것이다. 집재 군들이 소를 다죽이겠다며 쉬는날이 잦아졌다.     인심도 뒤숭숭해졌다. 채벌군중에 위성을 날리는 날에 70립방을 베여 넘겼다고 황통을 불어 지휘부의 표창까지 받아서 별호가 70립방이 된 사람이 그만 본의 아니게 제형을 죽인 변고가 생겼다. 70립방의 형은 베여 놓은 나무를 따라가며 토막 내는 “절통군”이였다. 어느날 점심무렵 벌목하던 동생이 배가 고프고 맥도 진했는지 《넘어간다.넘어간다.》라는 하산도(下山到)를 웨치지 않고 벙어리채벌을 하는 바람에 바로 아래쪽에 앉아 톺질하던 형이 그만 벼락치는 소리를 내며 넘어지는 나무초리에 치여 목마른 죽음을 당했던것이다…     아래골안에 지신공사에서도 인명사고가 났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후에 알고보니 내매부네가 있는 승지촌에서 온 오령감이 한낮결에 난로에 땔 강대나무를 베러나갔 는데 날씨가 따뜻한지라 안전모는커녕 털모자도 쓰지 않았단다. 마침 오래 말라있던 강대나무를 발견하고 도끼질했는데 명이 그뿐이였던지 썩은 옹이가 울리면서 거꾸로 떨어져 맨수건을 동인 정수리에 박히는통에 끽소리 못하고 죽었다 한다. 지휘부에서 막판일수록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며 최후의 결전을 동원했지만 잘 먹혀들지 않았다.     실어내리는 나무가 없으면 저목장에서 목도군들도 일손을 쉬여야 했다. 남들은 하산준비로 떡구시를 판다 떡메를 만든다 하며 분주했지만 그런 자질구레한 일에 흥심이 없는 나는 쉬는 날이면 별목적없이 도끼를 차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한나절씩 앉아있었다. 목재생산임무를 초과완수한다고 수종을 가리지 않고 마구 채벌한 밀림은 새봄을 맞고있건만 어수선하기만 하였다. 눈이 녹아버리면서 여기저기 파괴와 아픔이 젖어들고 있는 끈끈한 습기속에 모든것이 탈진한듯 수림은 미동도 없다. 오직 절망적인 하소연과 적막과 공허만이 짙게 안겨들뿐이다.    목재생산이란게 무어냐? 결국은 삼림을 파괴해버리는 우둔한 짓이 아니던가? 나로서는 생산과 파괴의 오묘한 경제학적인 원리를 알수 없었지만 이제 3십년이 못 되여 이 땅에 림업자원은 결딴나고 말것임을 분명하게 느껴졌다. (까짓걸, 내같은 하층인이 알게 뭐냐, 잘들 해봐라.)      나는 체념을 털어버리며 수림깊숙히 걸어들어갔다. 들어갈수록 태고적에 우수가 고즈넉하여 더없이 좋았다. 나는 알지 못할 위안을 받군한다. 눈앞의 리익을 챙기기 에 이것저것 고려하지 않는 생각하는 략탈자들의 침해를 받지 않고 아직은 순수의 그것대로 남아있는 밀림의 내연성이, 고목들의 침묵과 사색하는듯한 그 자태가 좋았 다. 수림이야말로 대자연의 걸작이며 청산이야말로 대자연의 기념비가 아니던가?     심산의 나무들은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는듯싶다. 완고하게 그리고 금욕적으로 기 다리며 세월과 더불어 침묵의 힘을 키우고있을가? 그러나 나무들이 언젠가 닥쳐올  종말을 예감하고 말이 없다고 앞질러 생각하면 공연히 서글퍼지는 마음이다. 도끼에 밑둥이 찍히고 톱날에 허리가 동강나고 그리고 산지사방으로 끌려가서 오리오리 갈리 는 자기네들의 운명을 자각하고있기에 저 가문비나무는 눈물을 흘리는게 아니며 저 봇나무는 늘 창백한 모습으로 서있는게 아니랴!     또 그래서 더 빽빽히 어깨를 겯고 더 키돋움을 하며 애목들을 키워가는게라고 생 각하면 밀림의 그 웅숭깊은 넋이 한없는 감동을 안겨준다. 아무튼 아직까지도 숲은 강하고 억세고 저 오래오랜 침묵은 많은 무엇을 의미하고있는게 사실이다.     나는 하얀 봇나무아래 절로 넘어진 진대통에 걸터앉아 애수와 고독에 흐는끼고 있었다. 내가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마른 나무가지를 밟는 소리가 났다. 이 깊은 숲에 누가 들어왔을가? 화들짝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동녀가 나무뒤에서 살며시 나타났다.     ㅡ아니? 동녀였구만, 내가 여기 있는줄은 어떻게 알고…     ㅡ난 요즘 정우동무가 숲에 들어올 때마다 슬며시 따라서군했어요. 그저 멀리에 가만히 앉아있었을뿐이였어요. 그런데 그냥 무슨 근심이 있는 사람처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혹시 집생각을 하나요? 마을에 사랑하는 처녀라두 두고 왔나요?     ㅡ이 나이에 처녀가 다 뭐야?       나는 말은 대수롭지 않게 내뱉았지만 동녀에게 정들대로 정들어 상상병을 앓는판이다. 나에게 있어서 동녀는 어쩐지 생소한 사람같지 않았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어덴가 아렴풋한 기억속에 남아 있던 그 사람같았다. 그러나 감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여직 그냥 옛날만 더듬다가 말군하였다…       ㅡ참, 동녀도 집에 가고싶겠지뭐? 산에 들어온지도 여덟달이나 되였으니 어째 집생각이 나지 않겠소? 그런데 어떻게 이런 노가다판에 다 오게되였소?       ㅡ그렇게 되였어요. 집이 하도 구차해서 엄마가 가지말라는것을 내고집대로 왔 어요. 결국은 얼마 벌지도 못하면서…우리 목재군들이 뜯겨도 너무 많이 뜯긴다는 느낌이 자꾸 들어요. 저기 회계질하는 신학무가 신철이 삼촌이래요. 그들은…     ㅡ쉿, 누가 듣겠소, 나도 그런 생각이 들지만 근거도 없이 말하다가… 나는 대견한 눈길로 동녀를 한동안 응시하다가 주머니에서 정교하게 만든 나무통을 꺼냈다.     ㅡ자, 이걸 받소. 준다준다하면서 남의 눈이 무서워서…오늘은 어떻게 만나면 줄가하고 가지고 나왔더니… 전번 고동하에 량식을 실러갔다가 공소부에서 산거요.     ㅡ 아니? 아이, 고와라. 고급분과 구름이네. 비싸겠는데 날 주자구 샀단말이예요?     ㅡ 고맙긴, 내가 그동안 너무 신세져서 오히려 고마운편이요. 오빠가 주는것으로 여기고 받아두오.     ㅡ 오빠라구요? 언제 오빠가 됐는데? 그럼 난 이걸 받을 생각이 없어요.     ㅡ 왜?…그럼 한 남자가 주는것으로 주면 받겠단말이요?      동녀는 얼굴이 일년감빛이 되여 입속으로 종알거렸다.     ㅡ그래요, 그런 마음으로 준다면 아까워서 쓰지 않고 두고두고 보겠어요…     며칠후 저녁무렵에 하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그러나 몇개월을 솔잎냄새 나는 눈녹인물을 먹으며 고역에 지쳐버린 목재군들속에서 70리도 넘는 고동하에 가서 소철을 탈게면 아예 이밤으로 떠나 관지역에 가서 화룡차를 타는게 낫다는 의론 이 벌어졌다. 그러자면 험한 남산령을 넘고 게굴라즈(계관리자산)라는 몇십리 골안을 빠져나가 천수동에 떨어지고 와룡동을 거쳐 관지역까지 200여 리길을 이튿날 오후 두시까지 대야 했다. 하건만 산판에 진저리치는 사람들이 한시가 급하다며 아예 저녁을 먹고 그냥 떠난다고 설레발쳤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걸직한 육담을 하는것을 잊지 않은 목재군들이였다. 말하자면 몸이 허약해져 먼저 집에 돌아간 덕신공사의 한 나그네가 역전까지 마중나온 안해와 함께 령을 넘어가다가 골짜기에 끌고내려가 해토무렵의 언땅에 자빠뜨려놓고 몇달 가물었던 운우지정을 쏟았는데 “범의 촉한”에 걸려서 집에 돌아간 며칠만에 죽었다는 소문도 있으니 모두들 집에 돌아가면 “범의 촉한”에 걸리지 않도록 너무 덤벼치지 말라고 하였다. 그게 무슨 뜻인지 나로서는 알수 없었지만 한심했다. …소를 몰고 가야 할 사람들이 남고 모두 너도나도 간다고 나서는 바람에 나도 덩둘해서 이불짐을 꿍졌다. 다른 사람들은 매우시랑, 떡구시랑 넣다보니 짐이 무거웠 지만 나는 책몇권을 넣은 이불짐 하나뿐이였다. 내가 떠난다니 어디서 소식을 탐문 했는지 동녀도 부득부득 따라나섰다. 남도령감을 따라가지 왜 그러냐고 했더니 늙은이의 길동무인줄 아는가고 성냈다. 밤길을 갈만하냐고 다짐땄지만 한사코 간단다.    …사실 마음이 급해서 밤길에 나서긴했지만 그렇게 경쾌한 걸음은 아니였다. 동녀는 잘 걷는가싶더니 두어고개를 넘어서부터 휘청거렸다. 그러다보니 앞사람들과 점점 떨어질수밖에 없었다. 단둘이 걷는 심산의 밤길은 무시무시했다. 부엉이 울음에도 와뜰 놀라는 동녀는 나에게 매달려 걷다싶이 했다. 나는 동녀 앞에서는 사내라는 체면을 잃을수 없어 극력 의젓하게 보이려 애썼다.     ㅡ 아무 소리도 말고 걸음을 재우치오. 저기 어딘가 어른이 나타난것같소. 쉬ㅡ     ㅡ 아이 무서워, 오빠 어쩔가? 돌아설수도 없고…    ㅡ 언제는 오빠가 싫다더니 갑자기 오빠소리는?    ㅡ 아이, 미워라, 언제 그런걸 따질경황이 있나요?     동녀는 나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으며 좀처럼 걸으려하지 않았다. 등뒤에 서라 해도 그저 오돌오돌 떨기만 했다.     ㅡ 그리 무서울걸 밤길을 떠난게 잘못이지. 참, 못된 계…     ㅡ 아니, 정우오빠가 있는데 왜 무서워요? 하나도 무섭지 않네. 자, 가자요!     나는 피씩 웃었다. 그제야 속히운줄 안 동녀가 내가슴을 주먹질하다가 내킨김에 와락 안겨들고말았다. 나도 얼결에 힘있게 껴안았다. 아무말도 없이 그대로 섰다.     ㅡ 아이, 정말 맥이 다 빠져서 한걸음도 걸을수 없네. 좀 쉬였다가자요.     ㅡ 이제 겨우 5십리나 걸었을가? 앞에 간 사람들을 놓치면 나도 길을 모른단 말이요. 그 이불짐 인주오. 내 멜빵을 잡고 눈을 감은채 걸으면 좀 나을거요.    ㅡ 정말 졸려서 죽겠어요. 여기서 한잠 자고갔으면…     나는 못들은체 했으나 웃음이 나왔다. 동녀는 거의 매달리다싶이 하며 걸었다. 그렇게 서로 부축하고 끌고하면서 천수동에 들어서니 날이 활짝 밝았다. 동녀가 간장에 졸인 짠지를 넣은 주먹밥을 내놓아 걸으면서 먹었다. 와룡촌에서도 길가에 앉아 주먹밥을 먹었다. 동녀가 아니였더면 나는 그냥 빈배로 걷다가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막 쓰러지려는 동녀를 끌고 오후 두시께 관지역에 도착했다. 기진맥진한 동녀를 거의 안아올리다싶이 하고 겨우 차에 올랐다.     동녀는 기차가 떠나기전에 내 어깨에 머리를 얹고 곯아떨어졌다. 사람들이 야릇한 눈길로 보았지만 그런걸 따질 정황이 아니였다. 룡정역에 내리니 동녀의 어머니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동녀가 나를 인사시켰다. 모진 세파에 시달린 늙수그레한 동녀의 어머니는 처음에 나를 경계하는 눈으로 일별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면구스러울 정도로 다시 찬찬히 뜯어보았다. 나는 그 눈길을 피하며 딴전을 부렸다.     ㅡ참 이러구 있을게 아니라 어디가서 좀 요기나 합시다. 우린 하루 종일 굶어서 걸었거든요. 제게 량표도 있고 돈도 있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앞장섰다. 정말이지 말할맥도 없었다. 그냥 빈속으로 모아산 아래까지 걸어간다는것은 안될일이였다. 식당이래야 벽돌장같이 시뻘건 수수떡이 있었다. 그나마 늘 사먹을수 있는게 아니다. 동녀모는 나에게 이것 저것 자꾸 물었다.    ㅡ 총각은 딱 누구를 닮은 모습인데 얼핏 생각나지 않네, 전에는 어데서 살았소?    ㅡ 예, 저 룡문교건너 룡강촌이 태생지입니다.    ㅡ 에구, 그렇구나!그럼 부친의 명함이 정묵이지, 자넨 애명이 야조이구?!    ㅡ 예, 어렸을때는 마을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불렀수꾸마.    나의 확답에 동녀의 어머니의 얼굴에 미묘한 그늘이 얼핏 비껴갔다.    ㅡ아이구, 그랬구만. 그래 이애가 누군지 몰라보았소? 하기사 야가 여섯살때 토성포로 이사했고 세월이 10여년이나 흘렀으니까 그럴만도하지…쯧쯧….     나도 놀랐거니와 동녀는 더구나 눈이 올롱해졌다. 아득히 흘러간 동년시절이 불현듯 생생하게 떠올랐다.      ㅡ 아이, 참, 이제보니 오빠구나, 어쩐지…물어본다 물어본다 하면서…그랬구나. 야, 정말 꿈만같네.    우리는 이렇게 알고나서야 옛그날의 모습들을 다시 확인하며 계면쩍게 웃었다.    ㅡ 세월이 빠르기두 하지. 너희들이 어느새 이렇게 커서 목재판에 다 굴러다니구, 그래 작은 엄마는 지금 생존이신가? 할빈서 식모살이를 한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는데 그리구 형들은 다 함께 있는가?    ㅡ아닙니다. 할빈에서 식모로 고생하다가 3년전에 돌아갔습니다. 형들은 제각기 다 흩어져있습니다. 큰형은 조선에 나가구 둘째형도 할빈에 있수꾸마.    ㅡ 에구 그 에미네는 고생두 많더니 끝내 락두 못보구 말았구나. 쯔쯧쯧…그럼 큰 어머니를 뫼시구 있겠구나. 원 저런….     동녀모는 나를 다시다시 건너다 보면서 어두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집이 잘 살때에는 나의 생모와 형님동생하던 사이였는데 두집은 거의 같은 시기에 남편들을 전염병으로 잃은데다가 두과부는 일송정아래 서덜밭에서 김도 함께 매고 겨울이면 함께 허드레장사랑 하면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 나갔던것이다.    ㅡ우리 또 만나요. 네?    동녀의 얼굴은 유난히 흥분에 젖어있었다. 여느때보다 정차게 깜박거리는 정찬눈, 긴속눈섭에 기쁨이 흘러넘치였고 선이 또렷하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입술은 이슬을 기다리는 꽃망울처럼 방싯이 벌려있었다. 천진하고 순결한 처녀들은 사랑이라는 황홀 한 이성지합의 세계에 끌리기만 하면 모든것을 사랑으로 느끼는 법이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남자의 머리우에 후광을 씌워줌으로써 백마왕자로 만들어버 린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슴속에서 불같이 타오르는 애정으로 남자를 속속들이 물들이려 한다. 소녀들의 실수란 언제나 착한것이라 밀어부치는데서 온다는것을 모른다. (그래, 산사람이니까 만날수야 있겠지, 그러나 마주보는 청산같을거야…)나는 이렇게 대답하려다가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동녀는 나를 오래오래 눈박아보았다.                                                                               7. 애욕의 피리       동녀모녀와 갈라져서 해저문 강둑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나의 머리속에는 흘러간 어린시절이 주마등마냥 스쳐지나갔다. 두집 어른들이 하도 친하게 지내서 그 런지 나와 동녀도 사이가 자별했다. 눈만 뜨면 서로 찾아다녔고 함께 놀다가도 한이 불속에서 자기도 했다. 너는 각시, 너는 신랑재하며 붙어다니 던 소꿉동무였던 동녀가 그처럼 사랑스러운 처녀로 변한것을 떠올리며 가슴이 클클해 났다.    비록 새 사회의 테두리밖에 뿌리워진 가련한 두씨앗들이였지만 모든 아이들이 가지는 제나름의 동년세계가 있었고 꿈이 있었으며 닫는 개꼬리도 밟는다고 먼지속에 나딩굴던 랑만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 그런 동녀를, 고향의 죽마고우를 다시 만나게 되였으니 기우가 아닐수 없었다. 유년의 작은 세계는 더큰 세계의 모델이 될수 있다.    그 친밀성이 동심에 강하게 인상지어지면 질수록 성인생활의 더 큰 세계에서는 그 옛날의 장난과도 같은 세계가 더정하게 느껴지는법이다. 이것은 의식의 발전이 아니라 리성의 발전이라 할것이다. 아무튼 나의 생활에서 동녀와의 기우는 가슴이 설레이게 하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이 세상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깊고 얕은 내심의 상처가 있지만 그 아픔은 저 혼자만이 감내하게 되여있다. 나의 상처를 두고 누군가 동정의 눈물은 흘수는 있어도 나의 상처의 아픔을 체험할수 없고 입술을 깨물어줄수 없다. 모든 사람들의 아픔이나 슬픔이 내아픔이고 내상처가 되는것처럼 따뜻이 보듬어줄 사람이 어데 있으랴!      룡정이 지척이였지만 농사일에 뒤몰린 우리는 그동안 편지가 두어번 오갔을뿐 만 나지 못했다. 동녀는 편지에 새벽농대에 입학했다고 소식을 전해왔고 내가 한번 만나 러 간다고 하는 편지에 아직은 잠시 자기앞에 얼굴을 나타내지 말라고 하였다. 동성 중학교 나의 동창들도 여럿이 있는데 겨우 학교에 들어온 자기에게 몹시 불리하다는것이였다. 물론 리해하여 달라고 해석을 얹었지만 서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해가 지나고 이듬해 초겨울 재차 고동하 목재판에 들어가 다섯달을 일하고 나오니 3년 세월이 훌쩍 지난셈이다.    “9.3” 광신공사 운동대회때 만나기로 약속했다. 동녀는 길흥대대 배구선수로 나왔고 나는 유신대대 축구대원으로 출전하게 되였다. 동녀는 배구를 잘 쳤다. 갈켠 한 몸집처럼 동작이 날썌였다. 2일간 운동대회를 하는기간 한번 렬군속식당에 가서 국수를 함께 먹고는 서로 찾을 겨를도 없었다. 운동대회가 끝나서 어둑어둑 날이 저물었는데 동녀가 찾아와 함께 자기 집으로 가자고 끌었다.    ㅡ 집에 엄마가 별랗게 보겠는데?    ㅡ 걱정마, 엄마는 지금 저 명동공사 공소부식당에서 화식원으로 가있어요.    ㅡ 그럼 더구나 못가지,    ㅡ 누가 밤을 자고가라고 붙들줄 아나베, 피ㅡ    오래동안 그리워하기만 하던 동녀였는지라 나는 속으로 호박이 넝쿨채로 굴러들 어 온다고 은근히 좋아했다. 식당에서 동녀가 좋아하는 국수를 먹고 길흥촌 7대에 있 다는 동녀의 집으로 갔다. 작은 골목길에 허수룩한 초가집이였는데 그나마 한칸이 그 의 집이란다. 방안에 들어서니 눈에 띄일만한것이란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서발막 대 휘둘러도 거칠것이 없다는 그런 정도의 가난한 살림이였다. 하긴 나도 까래가 없 어서 가마니짝을 쪼개서 방에 펴고 살지만 이건 너무 말이 아니였다.    우리는 드디어 방애군이 없는 곳에서 단둘이 마주앉았다. 두눈이 딱 마주쳤다. 한쌍의 흑진주에 다시 한번 눈이 부시였다. 현혹하리만큼 매혹적이라는 표현은 너무 창백하다. 갑자기 가슴속에서 들말이 네굽을 놓고 들뛰였다. 열기띤 나의 심장의 급 촉한 박동이였다. 뒤따라 전신에 련속 짜릿한 환희의 전류가 굽이치면서 틈새리가 있기만 하면 분수처럼 솟구쳐올라올것 같았다. 공기도 응고되고 시간도 걸음을 멈추고 온 세상이 장미빛에 싸인듯 느껴졌다.     떨어질줄 모르는 두쌍의 눈길들이 방전하는듯 싶더니 화산용암같은 열기가 뿜겨 나오는것을 서로 확인하며 대방을 녹이고있었다. 간다간다하며 아이 셋을 낳고 간다더니 내사 일어난다 일어난다 하며 어둠을 맞았고 밤길에라도 돌아간다고 엉덩이를 들썩거렸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이야기를 하다하다 밤이 깊어지니 나는 주저앉았고 동녀도 나무라는 기색이 없었다.       우리는 좁은 가마목에 나란히 누웠다. 이 시각을 위해서 동녀가 당돌하게 이런 밤을 마련한것일가? 그러나 아무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감히 녀자의 마음의 골방에 들어가볼 계책도 없었고 두렵기도 하였다. 사랑하는 녀자를 지척에 두고 거세여지는 숨을 죽여야 하는 나의 가슴은 끓어도 백도로 끓어 사품치고있었다. 시시각각으로 기습해오는 호기심과 신비와 추구와 만족감 등 온갖 잡념들이 줄끊어진 구슬마냥 흩어지고 다시 한줄에 뀌여지기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이성과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마음을 다잡는 숫총각이 있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동녀를 사랑하게 되였다는것은 기막힌 아름다움을 차지할수 있다는것, 그런 아름 다움을 받아안은 나야말로 량성으로 얽혀도는 이 인간세상에서 녀자복이 있다는것, 아무도 방애할것도 없는 깊은 밤, 생생한 녀자의 몸을 가슴넘치게 껴안고 신비의 처 녀지를 열수도 있다는 욕망에 시간은 달리고 가슴은 벌겋게 후끈 달아오르고있다.     혈기방장한 젊은 남녀는 좋아졌을 때 아무짓이나 저지를수 있다. 가마안에서 펄펄 끓는 물을 식히려면 퍼냈다, 다시 넣었다 할것이 아니라 아예 아궁이에서 타는 장작개비를 끄집어내야 한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꺼낼수 있단말인가? 나는 제좋은 멋으로 자기를 동원하고있었다. 사랑하는 남녀끼리 억제하려는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몸에도 해롭다. 남녀의 감정은 시내물을 막는것과 같은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왜냐하면 진실한 감정은 한가지 좋은 점 즉 애정생활을 가미하는 불가결의 조미료이기때문이다. 사랑은 선사하는게 아니라 육체와 함께 바치는 일이다.     오직 생활자체가 그 어떤 의의를 가질때만이 지식도 명예도 보람이 있는것이다. 농민인 나로서는 사치한 앞날을 지향할수는 없지만 삶의 원초적인 의미만은 느끼며 살권리는 있다. 그런 막연하던 생각이 갑자기 나의 삶에 어떤 의미를 해석해주고 있다. 지금 나의 삶의 가장 진실한 의미는 무엇인가? 왜 생에 대한 애착이 이 시각 더없이 강렬해지는것인가?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솟아나는 기쁨의 원천을 찾았다.     바로 이것이다. 동녀의 말랑말랑한 입술과 아름다운 가슴과 그리고 그 신비의 미개척지였다. 나는 언어의 빈곤증을 느끼고있다. 말은 비록 마음의 고백이라고 하지만 이성간의 오묘한 감정을 곧이곧대로 형상적으로 전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천진하고 순결하고 록음방초 우거진 숲속에 밑바닥을 알수 없는 작은 호수를 품고있는 오아시스같은 녀자라고 믿고싶었다. 처음 신비의 갑문을 여는 청년남녀들은 미칠듯 열렬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한다고 누가 썼더라면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인가?    정욕과 흥분에 온몸이 전률할 때 어느 청년이 감정상에서의 은밀한 활동을 하지 않을가? 나는 그의 내의밑으로 손을 넣어 하미과같이 잔뜩 농익은 젖무덤을 보듬어 보다가 손으로 전달받는 향수로는 성차지 않아 옷을 훌쩍 걷어올리고 녀인들에게만 있는 아름다운 가슴의 풍경선을 보고싶었다. 분명 금방 시루에서 쪄낸 잘 부풀어오른 만두빛 같을 하얀 두봉우리, 그리고 그 두봉우리사이에 얼굴을 묻는다…간지럼 잘타는 동녀가 방울새의 울음같은 소리를 내며 가슴을 들먹이였다…     …동녀의 급촉한 숨소리가 나의 혈관속에 불을 확 지폈다. 그녀의 속살이 파르르 떨리는듯싶었다. 동녀도 나를 힘껏 아래로 당겨안으며 미쁜 신음소리를 내였다. 나의 머리는 터질듯이 한껏 부풀어올랐다. 당장이라도 팡ㅡ하고 터질것같다. 우리는 감정 의 격류속에 빠져들어 자기 완성을 재촉하고있었다. 무겁게 느껴질만큼 부풀어오른 동녀의 젖무덤이 내 가슴아래서 뭉클거린다.     동녀가 울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물을 샅샅이 빨아넘기였다. 눈물샘이 터진듯이 살폿이 감은 눈가에 곧 질벅해지는 눈물, 눈물은 짭짜름했다. 나는 그가 괴로워서 그 러는줄로 알고 팔을 풀려고 약간 움쭉거렸다. 내목을 감았던 동녀의 오동통한 두팔 이 힘을 주어왔다. 나는 내심 그의 열정에 놀랐다. 자기를 절제하려던 나의 미동은 잠시였다.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동녀의 가슴에서 한초도 떨어지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상상은 해보았지만 이렇게 너무 빨리 동녀와 살을 섞을줄은 바라지 못했던 나인 지라 더는 놓쳐버릴수 없는 희열이 내육신에 굽이굽이 파도쳐갔다. 농익은 동녀의 육체가 나를 끝없는 무아의 안개속으로 빨아들였다. 녀자의 입에서 뜨거운 입김과 더 불어 간간히 탄성이 터져나온다. 너무도 아름차게 안겨드는 격정 그 자체인가?...     이제 부끄러울것도 구애될것도 없다. 우리는 다시, 또 다시 뜨거운 열정을 불태 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련속 불길을 내뿜는 활화산같은 욕정이였다. 동녀는 지칠줄 모르는듯 나를 받아들이였고 더 깊숙히 빠져들게 하였다. 창문이 희붐하게 밝아서야 우리는 몸을 풀었다. 방안은 썰렁했건만 나는 땀에 촉촉이 젖어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아무런 가동작도 필요하지 않은듯 무아경지에 잠겨 누워있었다…….     ㅡ정우오빠, 악몽을 꿨는가요? 어찌 그리 무서운 소리를 내요? 아이, 무서워… 잠기어린 동녀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으나 밑창없는 환몽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놀래우기에는 족하였다. 와뜰놀라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내가 한창 미친 환각에 빠져있었고 저도 모르게 짜낸 신음같은 오열이 그녀에게는 우리에 갇힌 짐승이 으르 렁거리는 소리처럼 들렸을가? 나는 혼자 좋다가 만 자신이 형편없다고 느끼였다.    ㅡ 아, 내가 꿈을 꾸었나? 꿈을 꾸지 않은것같은데…    ㅡ 새벽이 오는것같아요. 오빠…나…이렇게 누웠는데 아무 감각도…내가 얼마나 생각하고 생각하고 해서 결정한것인데…오빠는 감정이 도끼등이였나요?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할게요. 오늘 나를 다 가져요, 나도 그러고 싶어요. 지금 내가 오빠와 한평 생 같이할수 있는 방법은 이러는것밖에 없었어요.     엄마는 오빠가 룡강촌 최씨네 널대문집에 아들이란것을 알고 질색해요,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시국이 시국이라서 오빠와는 안된다고 딱 말리는거예요. 나도 밑바 닥은 오빠와 다를게 없지만 엄마가 내가 어릴때 성분이 좋은 사람에게 재가한후 지금 내성분은 빈농으로 돼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벌떡 일어나 앉으려는데 동녀의 팔이 내가슴을 눌렀다.     ㅡ 움직이지마, 그냥 이렇게 누워있어요.     ㅡ 나도 동녀엄마의 마음을 알고있어. 그렇게 할수밖에 없겠지? 운명같아, 나… 그런데 내가 동녀말대로 하면 후과가 어떻게 될가? 오늘은 동녀가 좋아서 그러자고 해도 곧 후회할지 누가 알게? 내가 혼자 괴로워한줄 너도 알았지? 그러면서도 자는 체하고 내가 폭발적인 동작을 할가봐 경계하였지?    ㅡ 바보, 이러는 내가 저절로도 부끄러워 죽을지경인데 그게 무슨 말이야,    동녀가 내 이불안으로 홀짝 건너오더니 내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꼼짝마…) 나는 다시 장소도, 시간도 잊고 고요한 수면위에 누워 함께 떠내려가는듯한 황홀경속에 빠져버렸다. 동녀의 머리카락이 나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다시 질풍노도가 내몸의 밑으로부터 밀려오고있었다. 분명 내밀고있을 그녀의 조그마한 입에서 달콤한 열기가 뿜기고 숨을 할딱거리고있다. 동녀가 옆으로 미끄러지며 나를 제몸위에 끌어당기려는 몸짓을 했지만 나는 그냥 부등켜안고 씩씩거리기만 했다.     ㅡ 야, 오늘 우리 그저 이렇게 하고있자, 더두 말구, 나 이렇게라도 너무 좋아… 지금 일을 치면 쓴죽이 될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우린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니? 그리고 정말 모르지 세월이 더 험해지면 너의 마음도 어떻게 별할지…     나는 스므살 청년답지 않게 스스로에게 자신의 처지를 일꺠우며 피를 역류시키 고 있는 격정의 정수리에 갖지않은 리성의      랭수를 끼얹고 있는것인가?내 얼굴은 분명 보기싫게 이그러지고 있었을것이다. 동녀는 내 가슴우에 엎디여 창문으로 새여드 는 희미한 빛을 빌어 나의 얼굴을 굽어보았다. 그러는 동녀를 올려다보는데 뜨거운 눈물이 주루룩 내얼굴에 떨어졌다. 가슴속에는 한없는 비애가 고패쳤다. 그 처량한 기운이 점점 팽창하며 가슴을 조이는듯했다. 동녀는 다시 자기의 풍만한 가슴으로 나를 있는 힘껏 짓눌렀다. 그러면서 연신 ( 바보야, 바보야…)하고 뇌까렸다.     나의 가슴밑에서 숫처녀의 철옹성을 열어주려던 동녀는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르 나 오히려 그 보드라운 손으로 나의 맨가슴을 더듬고있었다. 나는 그러는 녀자를 부서져라 거칠게 휘감았았다. 그러나 짜릿한 부딪침속에서 무언가 폭발하가봐 이를 악물며 그렇게 엉켜있기만 하였다. 육욕은 서정이 아니며 이성에게서 부단히 전달되 는 신비한 감각은 리성을 얼마든지 무너뜨릴수도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육신은 더 이상 태동하지 않았다. 내가 갑자기 너무 크낙 한 충격에 웅성을 잃고 이발빠진 호랑이가 되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혹시 병신인지도 모르지…)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뜨겁고 쫀득쫀득한 동녀의 입술이 내입을 덮어버렸다. 오래오래…또 다른 욕정이 입에서 입으로 흘러들고있었다…     ㅡ믿어지지 않을만큼 이상한 남자야, 고마워, 그러나 이렇게까지 나오는 나를 몰라주니 너 정말 괴짜야? 오늘은 좋아, 나 오빠에게 시집가고말테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려요. 내가 농대를 졸업하고 우리 같이 살자, 응?! 동녀가 내가슴에서 슬며시 물러나자 나도 일어나서 부엌봉당에 걸터앉아 담배 한대를 뽑아들었다. 동녀한테 온다니까 큰 마음먹고 산 30전짜리 영춘담배다.     ㅡ 불을 때줄래? 아침을 일찌기 해먹고 우리 함께 해란길로 내려가자. 나 오늘 학교로 돌아가야 하니까. 응? 내가 부엌에 내려가 석탄불을 피우려고 한참이나 부시럭거리는데 동녀가 홀짝 뛰여들어 내곁에 비비고 앉았다. 가뜩이나 좁은 부엌이 꽉찼다. 온 부엌안이 뭉글거 리고 따스한 육감으로 가득차올랐다.     ㅡ 나무만 때던 촌바이가 석탄불 피울줄이나 알겠나? 자, 이렇게 내가 불을 피워 줄테니 풍구를 살살 돌리며 천천히 석탄을 떠넣으면 돼…     동녀는 배구선수답게 가벼운 동작으로 부엌에서 뛰쳐나가더니 토기함밖에 쌀을 씻어서 가마에 앉혔다. 가마가 싱싱 끓어번졌다. 검댕이가 묻어있는 내얼굴을 내려다 보는 동녀의 정찬 눈길에 나와 그의 온세계가 담겨있었다. 그옛날 일송정 산기슭에서 달래랑, 밥조개랑 캐놓고 세감지를 놀던 일이 방불히 떠오르며 나는 빙긋이 웃음을 물었다. 동녀도 하얀 두볼에 붉은 볼우물을 파고있었다. 웃음이란 전염되는법이다. 나도 바보처러 벌쭉 웃어버렸다.     ㅡ 왜 웃어요? 어릴때도 그렇게 웃을 때는 딱 바보같더라니까 호호호…     ㅡ 우리 그때 먹지도 못하는 밥을 많이도 지었지?     ㅡ 그때 심술도 많이 부렸지요?     ㅡ 얘, 밥이 타는것같구나.     ㅡ 좀 타면 어때요? 가마치랑 나눠먹지뭐, 선밥보다 낫지 않아요?     인제 제법 유모아까지 해댄다. 내게 이렇게 고운 녀자가 있게 되였다는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와 함께 살며 나를 의식해주는 동녀가 나에게 있다는것은 한평생을 두고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목수가 재목을 가늠하듯 동녀의 말쑥하고 곱살한 얼굴을 새삼스레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일부러 지어내는것이 아닌 아주 자연스러운 미안해 하는 표정과 래일을 약속하는 밝은 미소가 9월의 국화꽃처럼 피여있었다.     사랑하는 녀자가 생겼다는것은 한 청년의 생활과 운명에서 획기적인것이다. 사람은 사랑을 하며 현명해질수 없다고 누가 말했던지…그러나 나는 내가 사랑앞에서 현명해질수 없어도 좋았다. 동녀를 보면 우울한 기분, 슬픈생각, 운명의 장난에 대한 억울한 생각도 잠시 사라지고 그대신 인생을 사랑하게 되고 모든 사람을 용서할수 있을것만 같았느니 말이다.     우리는 나란히 집을 나서 룡정발전창 뒤 일컬어 련애공원이란 백양나무숲을 지나 해란촌을 꿰지른 길로 천천히 걸어내려갔다. 만남이 없으면 우정과 사랑이 없듯이 리별이 없으면 그리움도 없다. 우리는 룡산다리에 란간에 기대여 조용히 흐르는 해란강물결을 굽어보며 많은 말을 주고받았다.    ㅡ 동녀, 출신이니 계급이니, 문벌이니 하는것을 초월해서 불행한 두운명이 서로 결합한다면 어떠한 인생고도 겪어나갈수 있다고 생각하오. 우리도 자기 생명의 빛을 발산할 권리마저 포기할수는 없지, 나를 믿고 따라주오. 개살구, 호박꽃에도 봄볕은 따사로울때가 있으리마 믿소. 동녀가 나와 함께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소.     나의 호소는 절절하였고 눈물겨움도록 진심이였다. 무참히 서리맞은 순정의 동산에 새봄이 오는 기쁨을 가슴깊이 느끼면서 나는 동녀의 손을 꽉 잡아쥐였다. 그렇게 헤여진후 우리는 자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과 그리움을 체크하군 하였다.    그렇게 또 일년이 훌쩍 지나갔다. “9.3”명절을 앞둔 어느 날 동녀에게서 편지가 날아왔다. 여느때보다 얇다란 봉투가 어떤 예감을 안겨주는듯 싶었다. 오가는 련정을 편지의 길이로 흥량할수는 없지만 여태껏 이렇게 엷은 편지봉투를 보낸적이 없는 동녀였다. 나는 편지봉투를 뜯기가 겁이났다. 내가 동녀의 순정과 충성을 의심한적이 없었지만 오늘은 별스러운 감각이 들뿐이다. 과연 길게 쓰지 않았다.         정우오빠,          이렇게 불러보는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콱 죽어버리기도 싶지만 그렇게 강한 녀자가 못된 자신이 저주스러워요. 눈물로 마음를 딖아내고 또 수백번 딖아내도 견딜수가 없어 가슴이 먼저 울고있으니 몇글자 적지도 못합니다.     오늘 따라 하늘이 새까맣게 흐려있군요. 불붙는 가슴을 찬비에 적시며 눈물를 삼키고 억지로 써요. 내마음에속에서는 언녕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이 편지를 정서적으로 쓸 경황도 없고 그렇게 쓸 필요도 없게 되였어요. 내가 왜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해야 하는지 나도 모릅니다. 어머니를 비롯해서 내 주위의 사람들이 다 미워집니다. 당신마저도…     정우오빠, 작별입니다. 우리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꿈에나 생각했겠어요? 그러나 운명은 우리를 여기서 갈라놓는것 같아요, 아니, 모든게 제잘못이에요, 배반 하고 가는 년이 무슨 구실이야 없겠어요. 그러나 나는 배반하고싶어 배반하는것이 아 니라는것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왜냐고 묻지도 마세요, 그것을 해석할 힘도, 용기도 없어요, 그리고 해석을 한다 하더라도 오빠는 납득되지 않아할것이고 이미 엎지른 물사발, 아니 내가 잘못해서 떨어뜨린 꽃병이 된 나. 죽을때까지 오빠를 생각하겠지만 만나는 일이 없이 산골에 처박혀 살다가 죽을것입니다.     부디 좋은 녀자를 만나 행복하시라고 축원할 마음의 여지도 없어요. 내가 좋아서 등을 돌리는것이라면 가면으로라도 축복하겠지만 나 거짓을 말할수 없군요. 너무너무 사랑했던 나의 남자. 그러나 가져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나를 잊어주세요. 눈물 이 자꾸 나서 더 쓰지 못합니다. 부디 오래오래 살면서 좋은 앞날을 개척하기를 빌고 빌어요. 잘있어요.                                                                   1963년 8월 21일                                                                                                        당신을 사랑했던 동녀      그런줄 모르고 나는 알뜰한 사랑의 정을 보듬으며 동녀를 만날 일만 생각하면서 나날을 보냈으니 내가 얼마나 바보스러운가? 몽둥이에 호되게 얻어맞은듯 얼이 쑥 빠져버린다. 이게 도대체 무슨 감투끈이란 말인가? 나는 동녀를 내사랑의 천사로 새기 며 나의 에덴동산을 그려보았는데 참으로 알수 없는것이 녀자의 마음이란 말인가? 이 세상에 사랑의 천사란 없는것인가?     사랑에는 중간계단이란 없다. 사랑이 요람으로 되지 않으면 무덤으로 되고말뿐이다. 나는 동녀에게 저주를 퍼부을수도 없었다. 영문을 모르고 그녀를 저주의 기둥에 매달수야 없지 않은가? 어떤 불안을 앞세운 사랑이였지만 이렇듯 싱겁게 끝날줄은 꿈 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너무도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마음을 독하게 먹을수도 없이 어정쩡한채 나는 뜨거눈 눈물을 삼킬수밖에 없었다.                                                                             에필로그       천구백구심삼년 사월, 새해 사범지망생의 면접시험을 보기 전날 점심무렵이였다. 한사무실에 있는 문선생이 수업을 마치고 만났는지 복도에 한 녀자손님이 찾는다고 일렀다. 문을 열고 나서자 눈에 안겨오느니 낡은 코트를 입은 늙수그레한 녀인이 어 줍어하며 마주 다가왔다.     ㅡ아이구, 믿기지 않은 마음으로 찾아왔더니 정말이였네,     알듯말듯한 얼굴이였다. 그러나 그녀자의 입에서 내이름이 나오자 그가 누구인지 를 떠올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나온 내삶의 궤적이 엿가락처럼 한꺼번에 뒤틀려버리는듯한 허탈감과 고통스러움이 나를 어리둥절하에 하였다. 오랜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깡그리 잊지는 않아으나 다시 기억의 노트에 이름이 올려질 가봐 겁나던 녀자의 얼굴을 얼없이 바라보았다. 동녀였다.     ㅡ렴치없이 찾아왔지만 제가 동녀라구요, 나는 첫눈에 알아보았는데…     나는 동녀에게 무어라 말할수 없었다. 수국처럼 탐스럽기만 하던 그녀의 얼굴이 아니였다. 녀자들이 나이들면 으례히 그러하겠지만 옛날의 아름다운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생고를 많이도 겪었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련민의 정이 왈칵 솟아났다. 말아삼킬듯 서글서글하던 눈은 어데로 가고 눈물이 그들먹하게 고인 한쌍의 빛을 잃은 눈은 마주보기가 민망스러웠다.     옛날엔 할낏 쳐다볼때마다 전기에 닿인것처럼 심장마저 쩌릿해났는데 왜 내가 이렇게 무감동의 상태에 굳어지는가? 반가움과 신비의 대신 슬픔이 목구멍까지 울컥 치밀어오르면서 울화만 타래쳐올랐다. 나도 무정세월에 언뜻 중늙은이가 다되였지만 동녀에게만은 세월이 유독 잔혹한듯한 느낌이 들었다. 멍청해 선 내모습과 딱한 표정 을 지은 한 농촌녀인의 모습이 남의 눈에 걸릴가봐 교문밖을 빠져나와 연집강 강둑 아래로 내려가 앉았다.     ㅡ이렇게 찾아올줄은 몰랐지요? 나도 죽어도 찾아오고싶지 않은 길이였어요. 용 서해달라는 말도 할수 없어요. 다만 에미된 마음은 속일수 없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우리 막내딸이 도문5중을 졸업했는데 이 사범학교에 온다고 야단이에요. 그런데 키가 표준에 말랑말랑해서 반주임이 정우선생님을 소개해주더군요. 몇해전까지 한교연실에 있다가 연길로 전근해 간 선생이라며 제이름 대고 청들라고 해서…    내게는 지금 면접시험에서 보지도 못한 동녀의 막내딸을 위해 힘을 쓸것인지 말 것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나긴 세월의 갈피갈피에 얽혀있을 그녀의 이왕지사를 캐여물을 생각도 없었다. 해보아야 모두가 지난 이야기요 들어봐야 속만 상할 일이 아닌가? 무어라 할말이 없다는 동녀를 넌지시 지켜보는 내마음은 그저 착잡하다는 메마른 단어로 형용하기엔 너무 역부족이였다.     동녀는 팔도서 살다가 도문시 벽수동으로 이사가고 나그네가 술중독으로 맨날 주정을 패다가 죽은후 도문시내에 들어가 양복점을 하며 산다고, 아들은 대학을 졸업시켰다고 많은 말을 했지만 나는 위로해야 할지, 축하해야 할지 몰랐다. 한때 너 무너무 깊이 사랑했던 녀자의 처경이 불행하게 되여있다면 고통스러워 해야 하는가? 잘코사니를 불러야 하는가? 내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그렇게 처절한것이였다.     얌치만 군밤처럼 주어먹은 그런 입살 드센 농촌아낙네가 된것같지 않은 동녀였지만 어째 순수의 인간의 정이라도 달아오르지 않을가? 동녀의 시린 가슴에는 삼검불 로 얽혀진 번뇌의 덩어리로 가득차 있을것이다. 그냥 목이 메여하고 숨이 가빠하는 모습이 그것을 알려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젯날 동녀에 대한 나의 태도는 싫증을 모르는 끝없는 감각속에서 두심장이 조 화로운 희열을 만들어내는것이였다. 동녀도 아름다운 동경이 폭풍우에 휘말린 쪽배와 같이 뒤집어질수 있다는것을 자각하였으리라. 그녀는 딸을 부탁한다는 말을 곱씹으며 일어섰다. 나는 그를 바랠 성의가 나지 않았다. 강둑길을 따라 휘청휘청 걸어가는 그 의 무너져버린 모습을 보며 나는 망두석처럼 멀거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동녀의 편지.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나의 정다운 당신,     며칠을 벼르고 며칠을 두고 이렇게 쓴 편지를 당신에게 두고가니 읽어주세요. 이 편지를 쓰는 며칠동안 몇십년 동안의 일들이 안개처럼 눈앞에 피여올랐어요. 부끄러 움과 자기 미움은 구름처럼 밀려오고 아름다운 추억은 벌떼처럼 밀려들었어요. 모든 것이 뒤엉키여 한덩어리를 이루는 통에 어느것도 쫓아버릴수 없었어요. 나는 인생을 실패하고나서 진정한 사랑을 지키기란 얼마나 어려운것인가를 깨달았어요.     이제 말해야 아무 소용이 없지만 어려운 세월 그렇듯 조심조심 지켜오고 소중히 간직해온 처녀의 순정을 열어놓고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아들딸 낳고 무더기 사랑을 쏟으면 살아가고 싶었던 이 동녀였습니다. 출신이라는 보이지 않으나 무서운 바줄을 사랑의 도끼로 툭툭 끊어버리고 고독과 외로움을 모르는 순박한 농민의 안해로 살아 도 원망하지 않을 저였어요. 당신이 그렇게 내행복과 사랑을 마련해줄 사람이라고 믿고 따랐는데 내인생이 이렇게 꼬일줄을 정말 몰랐어요, 저를 저주해도 좋아요..     이 동녀가 마음먹고 당신을 배반하려 한것이 아니에요. 이렇게 부끄러운 과거를 자세하게 쓰면 오히려 구차한 변명으로 생각되겠지만 꼭 당신에게만 하는 호소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절규이기도 하니 끝까지 읽어주면 노여움이 조금 풀릴지… 그렇게 제가 생각하지 않은 때, 생각하지 않은 곳으로, 그리고 생각하지 않던 남자에 게 시집을 가지 않으면 안되게끔 악몽을 꾼후 나는 평생 눈물을 삼키며 살았어요.     내인생의 비극이 막이 열릴 문어귀에서 제가 똑똑한 녀자답게 처신하지 못한 죄값이지요. 일이 그렇게 되니 나는 당신에게 더 무엇을 바랄수 없는 찢어진 녀자가 되였고 수없이 가슴을 치며 짓씹은 후회라도 다 거짓말처럼 들릴거예요. 아들을 낳고 딸을 낳고나서 시들어버린 내사랑의 동산에 새봄이 오는줄로 알았지만 그렇지 못했어 요. 당신이 없는 행복이란 내게 없다는것을 내내 생각하며 이렇게 늙어버렸어요…     운명은 사람을 잘 조롱한다고 하였지만 내가 인생을 잘못 리해한것이였어요. 당신과 밤을 패며 입방아만 찧고 아침을 함께 지어먹었던 그날, 우리가 함께 집을 나설때 옆집에 아주머니가 보았던거예요. 그걸 후에 우리 엄마한테 얘기한후 일이 심상치 않다며 하루빨리 남자를 찾아 시집을 보낸다고 서둘렀어요.     엄마의 견결한 반대에 두언니들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갈팡질팡하던 때 내가 그만 실신하게 되였으니 나의 몸과 마음은 물이 몽땅 새여나간 나무통처럼 텅비여버렸어요.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터갈라지고 쪼각쪼각 박산나있어요. 다행히 참한 아들 딸들이 있어 위로되지만 애들이 내 아픈 과거를 돌려줄수 없고 내가 사랑한 남자에게 서 받으려던 잃어버린 사랑을 메꾸어줄수 없으니 나는 그냥 괴롭고 슬퍼요…     왜 그날밤 그렇게 머저리처럼 있었던가요? 사랑하는 녀자를 곁에 눕혀놓고도 혼 자 끙끙거리는 당신의 괴로운 인내를 녀자의 피부로 느끼며 나는 마음의 속옷을 하나 하나 벗어던지며 기다렸어요, 끓고있는 당신의 뜨거운 육체에서 금시라도 폭발할 격정이 봇도랑물처럼 터지리라는 예감에 내살이 포르르 떨리고있었다는것을 몰랐던 가요? 아,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내가 부끄럽고 그래서 더 슬퍼지는것입니다…      더 읽어내려갈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것 같았다. 마른 하늘에 천둥소리, 지진, 때 아닌 안개…나는 머리속이 헝클어졌도 가슴이 답답해 났다. 하늘이 너무 창백하였고 층집과 나무들과 강물이 거꾸로 돌아가는것 같았다. 나는 강둑에 박아놓은 커다란 돌 처럼 그자리에 굳어졌다. 구중천에 날아가버린 황당하고도 허무한 사랑의 꿈, 나는 연거퍼 담배를 붙여물었다. 담배에 암을 초래하는 물질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냥 지골로 되여있다. 너무 여러대를 피워서 입술이 씁쓸해났고 혀바닥이 뻣뻣해 나고 속이 메슥메슥해났다. 동녀가 앞에 있다면 거칠고 거친 욕을 퍼부을것 같았다.     마음을 조금 갈아앉힌후 편지를 마저 읽어내려갔다. 잘 알수 없는 몽골문편지나 읽는듯이 간신히 한줄한줄 읽었다. 동녀가 왜 나에게 이런 만장지서를 남겨주었는지 모른다. 자기를 용서하지 않으려는 옥생각으로 사범생이 되려는 자기 딸에게마저 관 심의 손길을 거두지 말라는 절절한 내심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녀로서의 리 유인지 변명인지의 전후사연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9.3”에 또 룡정에서 가만히 만날 기대를 안고있는데 팔도에 있는 잘 아는 집의 남자가 놀러왔다는것이였다. 그는 룡정 토성포에서 살때 이웃이 되여 자기 엄마와 언니동생하며 살던 집의 아들이였는데 그때 벌써 로총각이였다. 동녀는 어릴때부터 친척오빠처럼 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들이 팔도로 이사간후 엄마를 따라 팔도에 가서 살구랑, 왜지랑 가져다 먹군하다보니 무랍없는 사이가 되였단다.     남자가 자기네 집에가서 왜지도 먹고하면서 놀러가지 않겠는가고 말을 꺼내자 엄마가 적극 나섰단다. 별로 가고싶지 않았지만 엄마가 왜지를 먹어본지 오래다며 기어이 다녀오란다. 그래서 그 남자를 묻어갔는데 가고보니 딴판이였단다. 온마을 사람들이 그집에 모여앉아 있는데 자기가 들어서니 시내새기가 이런 산골에 시집을 오려하니 조련찮다는둥 로총각이 어디서 선녀를 데려왔다는둥 하며 치하하는데는 무슨 감투끈이지 도무지 알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 남자의 누이되는 아주머니를 끌어 내다 따지니 이미 엄마랑 의논이 된 일인데 모르고 따라왔느냐고 하였다. 지금 한창 약혼택을 내는중이라는 말에 기혼할번 했단다.     동녀가 길길이 뛰다가 집으로 돌아간다고 고집을 쓰자 그 누이되는 녀자가 자기 집에 데려다놓고 해석에 해석을 가하다가 정 마음에 없으면 그저 집안망신을 한셈치 고 밝는 날 곱게 집에 돌려보냈겠다고 구슬렸단다. 그래서 저녁도 굶은채 밤새 흐느 끼면서 잠못들다가 밤중에 가슴이 답답하고 몸의 어딘가 찢기는듯 아파서 깨여나 보니 술내가 진동하는 그 남자가 이미 자기를 짓뭉개고 있더라는것이였다. 동녀가 발악을 하며 뿌리쳤지만 일은 이미 돌이킬수 없게 되였다고 한다…그리고 한달후 자 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것이다.     …그때만도 처녀가 어떻게 실신했든 한남자에게 몸을 맡겼으면 울며겨자먹기라도 시집을 가야 하던 시대였으니 조금 리해될것같으면서도 이건 무슨 3류소설을 엮는 것같아서 놀림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아무튼 편지사연은 그러했다. 이제 그녀 를 위해 애석해 하고 분노하고 통탄한들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동녀가 자기의 인생을 변명하기 위해 녀자의 잔머리를 굴려 황당한 이야기로 연막을 치려하는것 같 지도 않아서 나는 더구나 어처구니 없었다. 누군가는 사람이 과거를 회억하는 기쁨때문에 살아가고 또 그것때문에 고통도 지워버릴수 있다고 썼더라만 내게는 어느것도 아니였다. 우리의 이번 만남은 실로 황 당하고 진저리쳐지는 만남이였다. 인생길은 선회라고 리해해야 하는가?굽이굽이 돌아 올라가기도 하고 또 에돌아 내려올수도 있는건가?     이미 해빙이 된 연집강에 산등을 타고 내려오는 봄바람이 훈훈하였지만 내게는 강물이 다시 얼어붙고 나는 그 살얼음 위를 맨발로 헤매는 환각이 왔다. 인생이란 얼마나 고약한가? 동녀의 딸을 가르치게 될수도 있으니 참으로 내 인생은 지그재그라 할것이다. 그리고 더없이 초라한 내모습이 아닐수 없다.    무릇 사랑이란 유감과 고통만을 안겨준다지만 잃어버린 사랑은 더구나 치명적이 아니겠는가? 어긋난 사랑의 갈림길에서 세월은 많이도 비껴갔지만 나의 사랑의 피난처는 어디에 있었고 내 사랑의 보루는 어디에 있었던가? 어쩌면 숙명이기도 한 우리 의 사랑이라 하겠지만 아름다운 사랑도 이토록 헤여날길이 없는 슬픔이 되는것을 다시한번 새겨주고 간 나의 미운 동녀야, 해저문 인생길은 평안무사하기만 바란다….                                        1963년  9월 ㅡ 1993년 8월                
112    시래기찬가 댓글:  조회:8721  추천:1  2012-12-06
시래기찬가   □ 최균선   해마다 김장철이면 장거리에 웬간한 잎은 다 뜯어버리고 하얀 속괭이만 알뜰히 다듬어서 댕그랗게 쌓아놓은 통배추들을 보면서 먹음직스러운 생각을 앞세우기전에 지천으로 널린 떡잎들에 눈길이 쏠리는것은 내가 옹졸한 샌님이여서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묵은 세기 90년대 초까지도 가을이면 감자캐기거나 배추장만하기가 사업단위별로 대사로 되였다. 간혹 제비를 쥐여 차례진 배추이랑이 남의것보다 좀 못한듯 싶으면 은근히 왼심이 쓰이던건 세대탓인가? 그래서 지금 세월에는 그때처럼 신경쓸 일은 옛기억으로 물러갔지만 언젠가 읽었던 한국시인의 시 한수가 떠오르며 회심의 미소가 저절로 입가에 물려질 때가 많다.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배 스무배로 키운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 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것도 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   시래기를 시적소재로 인간을, 인생의 어떤 면을 철학적으로 시사하면서 따뜻한 마음을 차분한 목소리로 일깨워주어 감칠맛을 돋군다. 가장 오래동안 세찬 바람을 맞으며 살다가 마침내 그렇게 버리우는 떡잎사귀의 숙명은 강한 인내심의 의미를 심어주기도 하거니와 더우기는 자기 성찰을 하도록 말없이 편달하고있다. 우리가 말하는 시래기를 두고 가을에 무우를 뽑고나서 김장을 하고 그때 남은 무청을 말린것이라고도 해석한다. 해석이야 어찌 되든 습관대로 배추떡잎을 그냥 시래기라 불러두자. 요는 시에서 련상되는 삶의 현장과 인생자세이다. 먹을 때만 질감을 느끼다가도 하찮게 여기는 시래기를 두고 시를 지은 사유가 참으로 멋지다고 해야 하리라. 어려운 나날을 살아온 로세대들치고 시래기와 깊은 인연을 맺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게다. 나도 밭 갈고 씨 뿌리며 살던 그때 소똥으로 바른 음달진 벽에 걸어둔 시래기가 더 맛있다길래 해마다 생소똥을 바른 벽에 걸대를 만들어놓고 시래기다래를 주렁주렁 걸어놓았다. 겨울 한철은 거의 때마다 “시래기국”을 먹었건만 왜 시상을 못떠올렸는지…어렵게 살아야 했던 세월, 겨우나이로 시래기 한가지만은 넉넉하게 마련하느라고 떡잎 하나에도 왼심을 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종종 안겨왔을뿐이다. 제일 먼저 해볕을 본만큼 또한 오래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살다가 마침내 버림 받고 먹혀버리는 떡잎의 숙명은 강한 인내심을 상기시키며 자기 성찰을 하도록 편달한다는 점에서 시래기는 더욱 의미롭다. 시래기에는 어렵던 그 시절 우리들의 살림살이가 밀착되여있다. 나는 가끔 시래기같은 어머니의 그 손을 생각하며 끈끈한 비애에 잠기곤 한다. 온갖 번뇌들을 훌훌 벗어던지고 숙연히 서있는 겨울나무가지같은 내 어머니의 손. 굵은 정맥사이로 주름잡힌 손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왜 그리 가슴이 시려오던지. 그 손 또한 락엽이 되여 추억속으로 깊이 묻혀만 가고있다. 지난 세월, 무조건적으로 베푼 어머니의 사랑을 되씹어보며 깊은 사랑과 그리움을 건져내게 된다. 시래기같은 생을 살아오시며 자식을 보듬던 어머니가 황천에서 고달픈 꿈을 풀고계실가? 어머니는 존재의 근원이다. 인간이 어머니의 헤아릴수 없는 마음을 짐작할 때 인간의 존재가치가 형성된다고 할수 있다. 어머니와 동고동락을 해왔던 시래기의 미학을 통해서 돌이킬수 없는 자신의 불효도 검토해보게 된다. 따라서 어머니는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게 해줄뿐만아니라 부끄러움과 회한을 되찾아주고있다. "시래기"'로 상징되는 어머니의 형상은 령혼의 노래로, 삶의 아름다운 문양으로 남아있다.   서리에 맞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 겨우내 찬바람 맞는 시래기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얼마인가   시래기처럼 살다가 죽고싶어한다면 결코 바람직한 삶은 아니다. 그러한 생명관은 슬프다. 시래기같이 살았던 어머니의 영상이 늘 내마음에 머물고 있는것은 그것때문이다. 내가 생명을 받았다는 그 자체가 다 갚을수 없는 덕택이니 보은은 섭리이다. 자식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며 고생을 숙명인양 삼키며 그렇게 긴 세월동안 인고로 영위해온 그런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을 키우는것이 바로 인간성회복의 길이 아니랴! 하찮은 시래기를 통해서 삶의 진수를 꿰뚫고 생의 기쁨을 느끼는 그런 인생순응적 삶에서 어찌 악이 나오며 탐욕이 생기겠는가. 이런 생활이야말로 참을 희구하는 눈물겨운 삶의 표본이 아닐수 없다. 서리맞은 배추의 떡잎들은 축 처지여 볼품이 없다가도 따스한 해볕이 내리쪼이면 다시 싱싱하게 살아나는 그 끈덕진 생명의욕에 가슴이 쓰리고 안스럽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장거리에 쌓아놓은 하얀 통배추들을 보면서 그보다 지천으로 널린 떡잎들에 왼심을 쓰는것은 내가 옹졸한 샌님이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시래기”—우거지에는 확실히 우리 조선족어머니들의 삶의 미학이 푹 배여있음은 잊을수 없으리라.
111    (중편소설) 아름다운 착각 댓글:  조회:11456  추천:1  2012-11-29
 (중편소설)                      아름다운 착각                                                                                          최 균 선                                                                                                  실락자의 봄       세상만사가 조화라더니 내운명이야말로 조화가 아닌가, 그렇듯 모질게도 마음속에서 휘몰아치던 설한풍을 간신히 몰아내고 뒤늦어 깃든 두번째 봄날에 사랑의 꽃나무를 알뜰히 가꾸고있는데 실종된지 8년이나 되는 안해 경이가 어느 구름에서 비방울이 떨어질지 알수 없는 비운을 몰고왔으니말이다.     나는 3년전에 벌써 경이의 사망신고서를 내였었다. 그런데 새안해가 될 리미와 막 결혼하려는 때에 경이의 사망신고를 취소해야 하였으니 신혼차야에 구곡간장을 찢는게 아니고 무엇이냐, 내곁에서 자취를 감춘 기나긴 세월, 지지리도 나를 울리였던 그녀가 저때도 아니고 딱 이때에 살아서 돌아왔으니 일희일비라고 해야 할지?    10년전, 나는 친구안해의 소개로 경이를 알게 되였다. 듣던바처럼 기막히게 매혹적인 미녀였다. 인형처럼 정교한 얼굴에 살갗은 우유빛인데 꿈꾸는듯 몽롱한 눈길, 조금은 파리하고 우울한 기색은 가슴저린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다병한 미인을 련상시켰다. 몸매는 물찬제비처럼 매끈하게 쭉 빠졌지만 너무 가냘프고 온몸에 애수가 뚝뚝 흘러서 측은하게 여겨지기까지했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도전이라도 하려는듯 유별나게 높은 가슴을 쑥 내밀고있어서 조금도 헝클어지지 않은 곡선미속에 미인의 도고함을 과시하고있었다.     그녀는 일찍 부모의 사랑을 잃고 외할아버지손에서 어렵게 자라왔다고 한다. 동정의 닭알에서 여러번 사랑의 암탉이 기여나왔다지만 남자인 내가 오히려 애틋한 동정심으로부터 녀자애를 아껴주고 싶었고 목숨으로 지켜주고 싶었으니 동정의 닭알 에서 수탉이 기여나왔다고나 할가부다. 아무튼 나는 하늘이 점지해준 가연이라 생각하고 즉석에서 맺고끊었다.      그런데 흥소리가 방간이라고 경이를 본 아버지는 별스러운 선견지명을 내놓았다. 사상학의사인 아버지는 계집애가 얼굴이 저렇게 요망스러울만큼 생기고서야 력사가 복잡하지 않을수 있느냐고, 녀자의 과거는 곧 미래이기도 하다면서 그만큼 사연많은 녀자는 믿음성도 없다고 점이라도 친듯이 딱 찍어말했다. 그야말로 되는 호박에 손가락질이였다.     마가 한자 오르면 도(道)도 한자 오르는법이다. 워낙 쇠힘줄인 내가 부득부득 우겨대자 아버지는 마지못해 응낙은 했지만 밤이 길면 꿈자리 사납다면서 내막을 캐여볼새도 없이 총망히 결혼식을 올리게 하였다. 그런데 사랑이란 참으로 아름다운 오해이던가?결혼후 나는 너무나 담담한 경이에게서 인차 향기없는 모란을 련상하였다. 어쩌면 아버지의 예감이 맞아떨어지는지 몰랐다.     동방화촉의 밤은 서먹서먹해 그렇더라도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그냥 새초롬한 얼굴이였다. 날이 가고 달이 가도 경이는 웃음을 잃은 천사였다. 말하지 않는 그 내속을 어찌 알랴만 나는 무턱대고 신혼의 불붙는 정열로 경이의 마음속 고드름을 녹여 주려고 왼심썼다. 포사를 한번 웃기려고 봉화대에 불을 질러 제후들을 롱락했다는 주유왕이 부러웠다. 만약 경이가 한번이라도 웃을수만 있다면 내사 골목길에 불이라도 확 싸지를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경이의 얼굴을 아직 철이 되지 않아 망울을 터치지 않은 한송이 꽃으로 좋게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세괃은 성미를 싹 죽이고 장비바느질같이 서투르나마 경이의 웃음을 창출하기 위한 애정유희도 많이 구상했다. 모두 허사였다. 다행 이도 이성지합의 필연적결과는 속이지 않아서 이듬해에 옥동자를 낳아주었다.     모성애가 녀자를 새롭게 태여나게 한다더니 경이에게 차차 반가운 변화가 생겼다. 고운웃음은 종시 피여날줄 몰랐지만 시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했고 내게도 더없이 곰살갑게 굴었다. 너무 유순했고 얼이라도 빠지지 않았나 의심이 갈만큼 절대순종이여서 그만하면 옥에 티라고 사랑더하기만 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변함없는 사랑의 열화속에 살을 섞으며 사노라면 그녀의 마음속에도 사랑의 봄이 오고 웃음꽃도 만발할 날이 있을것이라고 믿어야만 했다.     그만큼 나는 성애에 들어가서는 경이가 고달파할 정도로 극성을 부렸고 왕후처럼 떠받들었다. 그러는 나를 두고 어머니가 무골충같이 색시버릇 잘못 굳힌다고 야단이였지만 나는 오히려 더 엎어졌다. 미인안해를 얻으면 단명하다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의 결혼생활의 전부의 내용은 미인안해에게 끝까지 헌신하는 그속에서 나도 이성지합의 락을 누리는것이였다.      내가 하도 귀중한 꽃병을 다루듯 매사에 극성을 부렸기에 우리의 신혼생활은 고요한 늪처럼 평온했다. 하긴 버젓한 남편으로서 전혀 웃지 않는 안해의  얼굴을 마주하는것보다 더 속상한 일이 없었지만 얼음장속에서도 해동의 봄물이 흐르지 않던가, 내심하게 기다려야 했다. 나는 그렇게 죽을둥살둥 모르게 경이를 사랑했던것이다. 사랑의 계산식에는 더하기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그렇게 출중한 인물이면 돈많고 지위높은 사람을 톡톡 튕겨가며 고를수 있었 으련만  미남도 아니요 가진것도 없는 남자에게 일생을 기탁해준것이 은근히 고마워 서 더하기에 더하기 사랑만 샘솟았는지 모른다. 나는 바보같이 경이를 위해서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히다고 아들애가 돌을 잡던 그해 어느날 아침 슬며시 집을 나간 경이가 종시 돌아오지 않을 줄이야, 그렇게 귀애하던 아들마저 내버리고 훌쩍 떠나갈 독종일줄은 정말 몰랐다. 하루아침에 안해를 잃은 나는 미칠것 같았다. 실종신고를 낸후 몇년을 두고 공안국에서 확인해보라는 녀자시체란 시체는 다 보았지만 하늘로 솟았는지 땅속에 잦아들었는지 경이는 그냥 종무소식이였다. 가슴찢기는 하루하루의 사연을 일기로 적었다면 아마 애정3부곡은 되였을것이다.                                            운명의 숨박곡질       그동안 수십번이나 가택수색을 하듯이 집안을 발칵 뒤집고 책장속도 몇십번이나 뒤져냈지만 이렇다 할 선색을 찾지 못하다가 집을 바꾸게 되여 낡은 침대를 마스면서 비자를 받지 못한 한국려권과 웬 려행지도책이 나졌다. 지도에는 광동까지 색필로 붉은선이 그어져 있었고 한귀퉁이에 (불산) 두글자가 적혀있었다    나는 어떤 직감의 충동하에 아이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무작정 광동으로 떠났다. 그러나 감자밭에서 바늘찾는격으로 반년남아 고생만 죽게하고 안해의 그림자조차 찾지 못했다. 려비도 다떨어져 날품을 팔며 근근득실하다가 우연히 만난 고향친구를 따라 청도에 와서 한국기업의 잡역으로 취직하였다. 차차 나의 내속을 알자 사장이 정식직원으로 써주었고 몇년후 시장개척부경리로 발탁시켜주었다.      무정세월은 모든것을 망각의 푸른 이끼속에 지워버린다지만 나는 내내 경이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조화많은 내운명속에 두번째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한 녀자가 불쑥 뛰여들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리미라는 청순하게 생긴 처녀가 비서로 들어왔던것이다. 매일같이 상종하면서 서로에게 어떤 자기감응이 있었던지 우리는 얼마후 친해졌다. 하지만 애숭이 젊은이들처럼 그렇게 서뿔리 염정에 빠져들어 죽자살자 할 그런 심리여유는 없었다.     나이도 들고 아이도 커가는지라 나는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내내 분촌있게 대하면서 사업적인 일이 아니고는 그 이상으로 가까이하지 않기로 작심했던것이다. 그런데도 리미가 집요하게 나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나로 말하면 호박이 절로 넝쿨채 떨어진격이였지만 그냥 경이의 그림자를 느끼다보니 덥석 받아안을수 없었다.    어느 비오는 날 저녁, 그가 나에게 우산을 내밀었다. 내가 말없이 우산을 받아 들고 사무실문을 나설 때 리미도 따라나섰다. 숙소까지 묻어설 잡도리같았다. 나는 아무래도 결판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쏘파에 걸터앉았다. 역시 그녀가 비슷한 대화의 계주봉을 먼저 내밀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혼자 걸어가려 하지요?》 《리미, 난 너보다 열살이나 년상이고 아이두 있는 나그네야, 넌  아직 너무 젊고 예쁜데 너로서의 행복이 따로 있을거 아니야, 나를 자꾸 딱하게 굴지말아주렴, 그러지 않아도 죽을것만같은데…》 《지나간 슬픔에 눈물을 흘리는건 사내답지 않아요. 자기 심장을 속이지도 말고 거짓말도 하지 말아요. 더구나 군자연하는 자세로 나를 거절하지도 말구요. 난 경요소설에 홀린 그런 애숭이소녀가 아니라요. 그리구 감각에 떠밀려 갈팡질팡하는 정이 헤픈 모던껄도 아니구요. 난 진우씨의 인생그라프와 마음의 골짜기를 다 훓고있고 나의 선택에도 절대적으로 자신이 있어요. 나 진우씨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요.》 《어쭈, 이 엉뚱한 아가씨야, 한국물이 잘들었네. 내가 무슨 네가 가지고 싶으면 가지는 물건이라구 포기고 아니고야, 나 참, 한국 련속극들에서 그런말 들을때면 정말 우습더라.》    말은 가볍게 받아챙겼지만 속으로 웬간히 당황했다. 지금 계집애들의 감각지상주의를 조금 경험해보기도했지만 이런 막밀어부치기에는 왼고개가 탈리지 않을수 없었다. 《우스워도 이 리미아가씨는 절대 포기안해!이렇게 꽉 잡아둘거야, 알아서 하라요.》     리미는 기관총쏘듯 단숨에 말을 내뱉고는 어느새 나의 가슴에 포탄처럼 날아들었다. 나도 본능적으로 그녀를 부둥켜안았다. 그녀의 작은 입에서 굵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마 내가 어망결에 숨이 막히도록 그러안았던 모양이다. 나는 머리를 절레 절레 흔들며 그녀를 밀어내며 길이 탄식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그러는 그녀가 밉지는 않았다. 오히려 때아니게 일찍 시들어버린 사나이가슴에 청춘의 불길을 지펴주는듯 싶어지면서 은근히 기대되기도 했던 극적장면이였다. 리미는 얼굴이 아주 잘생긴것처럼 속창도 알짜배기였다.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도 투철하게 보아냈고 무엇하나 빗보지 않았다. 세워놓고 눈빼먹을 장사판에서 판단도 빨라서 경험을 쌓았다는 나로서도 혀를 내두를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비서로는 대낮에 등불을 켜고 찾아도 못찾을 당찬 처녀였고 유능한 사업형이 면서도 현숙하고 다정다감한 녀자였다.    녀자들이란 천성적으로 뛰여난 관찰력이 있는걸가, 그리고 본능적으로 부드러운 심정을 갖추고 있는걸가? 하는 생각을 리미에게서 계발받았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였다. 그녀가 일상적인 말을 할 때에도 그렇게 하는것이였다. 사실 나는 녀자들이 부드러우면서도 심오한 말을 얼마나 잘 하는가에 대해서는 경험결핍자였다.     리미에게 매료되면서도 나는 처음엔 제딴에 아주 순결한 인간애에 만족할뿐이라고 자긍하고 있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물리쳐버릴수 없는 남자의 본능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발견하고 펄쩍 놀래군하였다. 세상에서 기침과 가난과 사랑 세가지를 숨길수 없다더니 사랑이야말로 첫째로 숨길수 없는것이였다. 리성은 단속의 채찍질을 하자만 남자의 야성적인 본능은 야릇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서히 내육신을 뜨겁게 달구고있었다.      제아무리 결백한 넋이라도 아릿다운 이성과의 오랜 교제에서 언젠가는 련인만이 갖게되는 신비스럽고 격렬한 감정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가뭄이 든 밭에는 작달비가 제격이듯이 멍이든 마음에 수요되는 녀성의 사랑과 애무는 아무도 말릴수 없는 욕구인것이다. 리미가 늘 내곁에 있으므로해서 어둡고 황페하던 나의 정신가원에 꽃피고 산새우짖는 두번째 봄이 깃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즈음 제나름의 애정론으로 자신을 변호하고있었다. 나는 사람이 일생동안 오직 한번만 사랑해야만 한다는 신조를 그리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도《사랑합니 다》를 껌처럼 씹는 빙충맞고 야비한 인간도 질색이다. 이른바 사랑의 차수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기때문이다. 사랑의 용량은 한사람의 참된 심령의 용량이 아니겠는가?만약 한사람의 마음을 심곡이라 한다면 한차례 사랑은 한 갈래의 강물과 같은것이고 여러차례의 애정은 수많은 파도와 같다. 한사람의 마음이 모래톱과 같다면 한차례 사랑은 다만 한가닥 작은 홈채기만 낼것이요 여러차례 애정은 수많은 물거품에 불과할것이다,    성패로 전반 인생을 론할수 없듯이 성패로 사랑을 론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기실 잊지 못하는 사랑이란 바로 실패한 사랑으로서 한생을 두고 미련이라는 무거운 보따 리를 지고다닐것이고 만약 자기가 싫증난것이라면 곧 잊고 새로운 추구를 할것이다. 사랑은 한사람의 인생마당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이 된다. 그러나 아무도 성공한 꿈만 꾸었다고 장담할수 없다.    사랑이냐 아니냐에 금을 긋게된다면 좀 너그러워서 안될것 없다. 그러면서도 인생길에 있을수 있는 종종의 아름다운 조우를 보류할 권리가 있는것이다. 항구의 풋사랑같은 잠간의 해후이든 백년을 기약한 장구한 얽힘이든, 그리고 늦게 만난것을 한탄할 행운스러운 인연이든 잃어버린 녀자에 대한 끈끈한 정이든, 서로 용서못하는 오해이든 사소한 분규이든 사랑에서 출발한것이라면 모두 관용의 대문안에 일이다.    살아서 펄펄 뛰는 사람에게는 애정생활이란 불멸의 기념비가 아니라 흐르는 물결과 같은것이다. 그러기 우리들은 서로 지난날의 한단락의 애정생활에 숨겨진 아픈 사연을 자백하고 철저히 망각하도록 대방을 강요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생각은 리미가 나에게 계발해준것이기도 하다.   사랑에 정의를 내린다는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쨌거나 한사람을 사랑한다는것은 곧 마음이 아파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사랑이 깊고 진정일수록 거의 부성애나 모성애 비슷한 감정이 끼여든다는것을 지성적인 사람이면 절실히 느겼을것이다. 그저 성적 으로 반했다면 그것은 동물의 발정과 다를배 없으며결코 사랑때문에 마음이 아파하지 않을것이다. 이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여서 격렬한것 같지만 깊이가 없으며 원천이 없는 시내물처럼 미구에 고갈되고말것이다.    사랑이란 이성세계의 탐험으로서 새록새록의 발견이 가져다주는 희열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수 없다. 바로 그 희열이 이성의 신변에 정착하게 하며 가정에 안녕을 가져다준다. 지금 리미가 그것을 안겨주고있다. 그러나 사랑은 렵기도 아니고 려행도 아니며 더구나 점유로 끝나는 등산과 같이 후회없이 내리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훌륭한 사랑은 서로의 해탈을 의미한다고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 사랑의 자유를 람용하지도 말아야 한다. 흔히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떠난다고 말들 하는데 기실 아름 다운 거짓말이다. 그러기에 경이가 나를 사랑하기에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진통제라더니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나는 그렇게 이갈리게 밉게만 생각되던 경이가 지금은 마음의 뒤뜨락에 묻혀지고 분하다는 마음도 색바래여서 그저 회색바탕우에 새겨진 그림자를 보는 그런 느낌으로 가끔씩 그녀와 더불어 보내버린 청춘을 회고하게 되였다. 하지만 사랑의 나무는 쉽게 심어지는것도 아니고 간단히 뿌리를 뽑을수도 없다는것을 내가 배우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러가버리고 만사가 엉뚱하게 번져진후이다. 사람은 항상 뒤늦게 배우고 경험선생은 언제나 꿩구 어먹은 자리에서 강의해 주는법이던가,      경이가 존재하지 않아도 지구는 잘만 돌아간다. 나와 리미사이에서는 화제가 샘물처럼 솟아났고 내삶과 희망이 새로운 빛갈로 물들어갔다. 비록 한사람이 시련의 강을 건너서 늦게 만났지만 우리는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녀가 된셈이다. 어느날, 함께 광주에 갔다가 호텔에 든 밤이였다. 늦도록  이야기하다가 가서 자겠노라고 일어서는 그녀를 뒤에서 와락 그러안았다. 한껏 성숙한 처녀의 젖무덤이 두손에 가득 넘쳐났다…나의 조심스러운 손놀림을 기다릴것 없다는듯 어느새 껍질을 홀랑 벗어버리고 알몸이 된 리미의 옥체가 리성을 송두리째 뺐다. 리미의 아름다운 가슴에 얼굴을 묻은 나는 오로지 성에 허기진 넋뿐이였다. 뜨거운 불덩이가 속깊은 곳을 태우는 작열이 정염의 불길을 지폈는지 리미도 고운신음을 물고 몸부림쳤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되였다. 고통과 불행의 페허우에 세워준 사랑 탑에 어찌 감격해 하지 않으랴!사랑!이 얼마나 감미로운것인가, 어쩌면 삶이란 또 수없이 반복되는 성애의 시도가 아니겠는가? 나는 새로운 삶의 내용을 쓰고있다고 생각하며 미친듯 열정을 달구었다. 섹스가 사랑이라는 잠옷을 입고있는 동안은 아름다운 행위로 착각되는 법임에랴! 이제 밝는 날 마주앉으면 서로 머쓱해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젊은 생명력의 확충을 만끽하며 서로를 즐기는것뿐이였다. 이것이 인간이고 이것이 남녀의 본능이 아니겠는가?     …꽃도시라더니 그야말로 그윽한 꽃향기가 실린 밤바람이 별빛과 함께 방에 흘러들었다. 그런 향기속에 남녀의 포옹은 사랑이상의 의미를 가지고있다. 봄밤은 깊어가는데 열정은 조을줄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애무하며 서로의 마음도 보듬어 주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두번다시 얻을수 있은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나는 드디어 리미와 결혼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녀도 나의 불쌍한 아들 진표의 좋은 새어머니로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이제 우리가 할일은 더욱 뜨겁게 포옹하고 가슴을 밀착시키며 개간된 처녀지에 행복의 새씨앗을 뿌려가는것이다. 그러나 재미난 곳에 늘 범이 나온다고 내가 망각속에 그 모든 한과 눈물을 겨우 묻어두고 결혼을 준비하는 나날에 난데없는 편지가 날아들었다. 얼핏 보아도 눈에 익은 글발이였다. 환한 대낮이였건만 나는 저승사자의 최후통첩이나 읽는듯 떨리는 손으로 겨우 봉투를 찢었다. 거의 단편소설원고에 해당한 만장지서였다.          ㅡ안녕하세요?저 경이예요. 너무 놀라지 않았는지요?당신에게 이런 편지를 쓸 자격이 없는 저인줄 알아요. 지난 8년동안 당신이 저를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망령으로 여겨주길 바랐어요. 당신은 두말할것없이 나를 세상에서 더없이 랭혹무정한 몹쓸년이라고 저주했을거예요. 달갑게 받겠어요. 그래요. 제가 한일은 저로서도 량심적으로 용서할수 없는것이예요. 다만 정에 약한 녀자의 첫사랑은 원점으로 돌아간다는것만 알아주세요.     이제와서 할말이 없지만 생각되는것이 너무 많아요. 어떻게 하든 당신과 내아들에게 입힌 상처와 손실은 미봉할수 없는거예요. 이제 저승에 가서 다시 당신의 곁에 갈수 있다면 저를 하녀로 받아주세요. 진우씨, 난 여러번 당신의 눈빛에서 당신이 저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 한다는걸 직감했어요. 제가 당신곁을 떠나 조용히 말없이 사라져버리기로 마음먹은 리유도 바로 나의 말못할 과거와 태산같은 감정빚 때문이였어요. 이 세상에서 영원히 갚을수 없는 빚이야말로 감정의 빚인가바요……     유식한 멍청이는 무식한 멍청이보다 더 심한 멍청이라더니 나야말로 그 누구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멍청인가 싶다. 나는 편지를 읽다말고 얼이 쑥 빠진 멍청이처럼 경이가 걸어왔을 지나간 시공간속을 환각속에서 방황했다…                                     꽃은 누구를 위해 피였는가,       딸은 제어머니의 운명을 답습하기 일쑤라더니 경이도 뛸데없이 어머니의 인생길을 답습했다. 경이의 어머니는 자기 미모와 다혈질적인 그 기질때문에 처녀때부터 뒤소리를 달고다닌 녀자였다. 그러다가 가다오다 만난 남자와 결혼은 했지만 늘 뜬 구름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경이도 실은 남편의 씨앗이 아니였다. 마침내 그녀는 어린 딸을 남겨두고 영영 떠나가버렸다. 후에야 안일이지만 그때까지 그냥 그리워 하였던 자기의 첫사랑과 만나 함께 도주해버린것이다.    그들은 수만리나 떨어진 광동 불산속의 절에 가서 이승의 마지막 정을 다 불태우 고 함께 호수에 몸을 던졌다. 그것도 희한하게 두몸이 한데 친친 감긴채 수면에  떠올라 기문을 남겼던것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한이 되여 한짓이였는지 그네들 두넋만 알고있을 일이였다.      그후 경이의 아버지는 정신타격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숨이지는 순간까지도 경이를 자기의 피줄로 알고 매정하고 불충한 안해의 뒤를 쫓아가고말았다. 그런데 피는 못속이는 법이라 할지? 운명이 미리 써놓은 인생극본이라 할지, 경이도 커서 드디어 제어머니의 운명을 답습하게 될줄이야. 경이는 워낙 머리가 남달리 좋아서 공부를 잘했지만 경제난에 시달리는 외할아버지의 고집대로 대학꿈을 포기하고 지구사범 학원에 지망하고말았다. 역시 운명신이 쓴 경이의 인생각본이라고 생각할수 밖에 없었다 경이는 자기를 가르친 문학선생을 사랑하게 되였던것이다.     그는 곧 중년이 될 남자였고 꽤 큰 딸도 있었다. 그는 학교에서 손꼽는 수재로서 박학다재하였고 한창 풍도가 넘치는 멋진 정열의 시인이기도 했다. 경이는 숙명처럼 자기 선생님의 그 멋과 뜨거운 정열에 매료되였던것이다. 그는 경이만이 아니라 조숙한 녀학생들이 은근히 따르는 우상이였다.     그렇게 점잖고 우아했던 남자가 본의 아니게 한 소녀의 감정의 건반을 세차게 두드렸고 그로해서 아직 꼭 닫겨있던 그녀의 사랑방을 기둥채 흔들리게 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미구에 신들린것처럼 소녀가 살며시 열어놓은 사랑방속으로 서서히 끌려들 어가고 말았다. 교정은 에덴동산이 아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기회를 타서든지 만나기마련이다. 그들은 만나면 약속한듯 침묵속에서 몇시간이고 앉아있을수 있었고 경이가 스승으로가 아니라 한 남자로서 여기고 기대여 울때 그는 말없이 받아주었다.     그도 한창 멋모르고 덤벼치는 녀자애를 인간적으로 좋아했지만 결코 본분이 무너지는것을 원치않았고 덕성과 명예가 부서지는것을 두려워했다. 특히 량심과 책임감으로부터 가정을 버릴수 없다는것은 무엇보다 명백했다. 그러나 경이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현대파소녀들의 그런 무서운 정애로 끈덕지게도 추구했다.    사랑에 갓 눈이 뜬 처녀애들의 직감은 무서우리만치 예리하고 관찰도 세심하다. 경이가 바로 그런 직감과 사랑의 눈으로 시간마다 교묘하게 선생님을 훔쳐보면서 많고 많은것을 읽었고 또 자기가 읽은 그 내용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듯 유능하고 경험많은 박사처럼 강의에 막힘없이 침착하고 당당하게 자가의 해박한 지식을 펼쳐 보이는 자신감속에서 얼핏얼핏 드러나는 고달픔의 정체는 무엇일가?열림과 닫힘의 기묘한 부조화와 열정과 허무가 교차하는 미묘한 표정은 어째서 나올가? 물론 경이 혼자만이 느끼는 리성과 정감의 뉴앙스였다.      경이자신은 자기 사랑의 감정이 그동안 받은 그 고마운 물심량면의 관심과 배려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고 고집했지만 백설 (그 선생의 필명이 백설이였다)은 어쨌든 사전에 꾸민 불명예스러운 감정교역과 같이 황당하다면서 내켜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그는 철저한 도덕가였고 엄연한 스승이였다. 그럴수록 심혼을 달군것은 녀자애였다. 그녀는 스스로도 놀랄만큼 엉뚱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이 세상에는 열려진 녀성의 신비의 문앞에서 무릎꿇지 않을 군자란 없다고 믿는 그녀 자신의 말대로 한다면 류행 소녀애들의 유치한 불장난이 아니라 운명을 내건 비상한 그런 사랑이였던것이다.                        답이 나오지 않는 사랑계산식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하던 은밀한 정을 용케도 감춰온 긴5년이 지나가고 마침내 그녀는 학교문을 나서게 되였다. 이젠 가슴을 조이면서 선생님의 사무실에 새여들 필요도 없었다. 사제간에 지켜야 할 법규도 다른 사람들의 눈을 무서워할 일도 없고 낡은 인습이 내리는 불륜이라는 평판도 두려울것 없었다.     숨기고 감추고 쌓이고 포개졌던 정한이 드디어 화산처럼 폭발해 세인을 깜짝 놀래워도 좋았다. 그저 사랑하는 남자와 녀자가 남았을뿐이다. 나차이가 현격하면 어떠랴. 지금 세상에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해 사는 애젊은 녀자가 어디 한둘인가?다른 녀자애들은 돈잎에 순정을 말아먹기가 일쑤이지만 경이ㅡ자기만은 순수한 사랑을 한다고 생각하는터이다.     그렇게 정열에 넘친 멋진 남자, 감정은 늙을줄 모르며 사랑은 퇴직을 모른다고 말하던 남자가 아닌가, 또 사실 선생님은 나이 보다 너무 젊어보이고 어느모로 보나 쨍그랑 소리가 나는 분이다. 불가사의한 일이란 없이 막되는대로 번져가는 이 시대 에 단 직업도덕감에 얽매여 자기를 찾지 못하고있는 불쌍한 남자라고 생각하는 경이는 그래서 더구나 숭배로부터 샘솟은 자기 사랑이라고 설교하고있었다.     경이는 고향에 가지않고 선생님의 숨결이 흐르는 K시에 영원히 남아있으려고 마음먹었다. 돈 만원쯤 어느 교장의 옆채기에 찔러주면 이 도시의 어느 교단에 오를수 있었지만 그렇게 구지레하게 놀고싶지 않았다. 일단 담임을 맡아 일이년쯤 약삭 빠르게 돌면 만원 하나 쏙 빠져나온다는 선배들의 말에 귀가 솔깃하기도했지만 혈혈 단신이나 다름없는 그가 어디서 목돈을 마련하랴,     사랑하는 자기 님은 고향에 돌아가서 수속을 제대로 밟고 훌륭한 인민교원이 되라고 강요하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교직도 사기밥통인데 어느놈의 배를 채우라고 아까운 돈을 망탕 밀어넣는단말인가, 그렇게 옥생각을 먹고 결단을 내린 경이였다.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느 광고회사에 취직하였다. 급한 돈부터 좀 벌어놓고 백설씨가 기어이 교원이 되여야 한다면 아까운대로 돈을 먹일 타산이였다.    하지만 그녀가 자기 사랑책의 첫페지에《즐거워라!》를 썼지만 부록에《괴로워라!》를 써야 한다는것을 안것은 졸업하고난 뒤였다. 그저 졸업하면 만사대길인줄 알았던 그녀는 괘씸한 선생님이 자기를 그냥 울릴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야 말로 자기에게 애인이 생겼다고 느낄때 참인생이 시작되였다고 기뻐했으나 뒤미처 고뇌의 수렁에 빠지게 된것이다. 잘 만나주지 않는 선생님에게 많은 편지를 썼다. 비록 회답이 올가말가했지만 경이로서는 그 이상으로 사랑을 할수가 없었다. 이젠 모교에 들어설멋도 없고 더구나 선생님의 사무실에 살짝 새여들어갈 리유도 없었다. 전화도 감히 걸지 못하고 그저 편지지만 죽어났다. 그러나 선생님은 무엇이 바쁜지 회답도 잘하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청년은 누구나 다 시인이 되고 사랑의 편지는 곧 결말이 없는 서정시가 되는법이라던가, 경이는 이밤도 자취방에서 숨벅찬 편지를 썼다. 번마다 새로 시작하는것이 아니라 그냥 이어서 쓰는 편지였다. 그녀는 그렇게 이어가는 대화가 좋았다. 그래서 안녕히도 절대 쓰지 않는다.     …돌아서서 가없는 하늘과 넓은 대지사이에 조그마한 점으로 서있는 외롭고 무력한 저를 느낄때마다 전 먼저 선생님을 생각해요. 오색령롱한 희망과 꿈과 발발하는 야망이 저멀리 아득한 지평선으로 흘러가버릴가 두려워요. 이러는 제가 싫어요. 내 작은 가슴엔 하소연과 탄식만 남았어요. 선생님 말처럼 이 모든것이 시작만 있다가 훌쩍 깨져버리는 허황한 꿈이란 말인가요?한순간의 신기루란 말인가요?     선생님은 이 시대엔 오직 계산된 감정이 있을뿐이지 사랑의 기적은 없는법이라고 했지요?아니예요. 나. 이 경이가 사랑의 기적을 쌓아서 온세상에 자랑할거예요!선생님을 만나기전까지는 저의 인생마당은 웃음꽃도 없고 기쁨의 잔물결도 없는 황량한 사막이였고 동토대였으니까요. 선생님이 바로 행운스럽게도 만난 나의 유일한  오아시스예요. 감로수가 흐르고 행복의 숲이 무성하는 오아시스이예요.     너무 방종하다고 핀잔해도 두렵지 않아요. 저는 선생님에게서 한녀자애가 응당 차지해야할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어요. 선생님은 스승으로가 아니라 한남자의 신분으로 말없이 가르쳐주었지요. 물론 선생님의 잘못은 조금도 없어요.     아무튼 우리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기전까지는 저는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자신을 맡겨볼가, 고요한 작은 저수지처럼 소리죽여가며 한생을 살아볼가, 하고 생각하였어요. 그러나 선생님을 알고부터는 잃어버렸던 내인생에 대한 신념과 랑만을 되 찾았어요. 그보다 더 소중한것은 남자의 진실한 이미지를 알았고 그것이 발산하는 거대한 추진력을 가슴으로 느낀것이예요.     저의 인생항로에는 선생님을 사랑하는 이외에는 딴길이 없고 내사랑의 동산밖에는 엉겅퀴만 무성하다는걸 예감했어요. 그래서 저는 사랑의 늪에 뛰여들어 나에게만 속하는 대안에로 노저어가기로 목숨을 내걸었어요. 사랑은 애꾸눈, 미움은 장님이라지만 이 경이는 장님이 되고 바보가 되여도 좋아요. 선생님이 곧 제 인생항로의 등대예요. 사랑의 심연에 빠진 저에게는 해도 달도 보이지 않고 오직 한껏 좁아진 선생님과 나만의 공간이 있을뿐, 이미 맨발이 되여진 마당에 물을 두려워할가요?     저를 어린애로만 보지 말아요. 처음엔 자신도 기약없이 불쑥 뛰여든 사랑에 불안하고 당황했어요. 아지랑이같은 꿈과 동경속에 (꿈과 동경은 그렇게도 비실체 적이여서 흔히 물거품이 되기가 십상이라고) 귀에 못박히도록 말씀했지만 어쩔수 없었어요. 선생님에 대한 사랑의 감정과 소원이 마술사의 손에서 굴러다니는 불덩이처럼 내작은 가슴에서 나날이 커가고있는것을 말려낼수 없었어요.     사랑은 생명의 성스러운 첫연소가 아닐가요? 처녀애들이 사랑에 깊이 빠지면 으례히 겪게되는 애틋한 번민, 때도없이 솟구치는 눈물, 쓰거운 단맛, 아름다운 괴로움과 슬픔이 내작은 가슴을 꽉 채워서 선생님을 마주하면 그냥 그렇게 울고싶었던거예요. 고독하고 외로운 소녀가 흔히 뜨거운 사랑독에 잘 빠진다더니 아마 저를 두고 한 말같아요. 사람이 그리워 울면서 자란 나, 그저 속절없는 정많고 눈물이 많고 가진것이란 선생님에 대한 숭배와 애모뿐이였던 풋병아리같던 소녀, 그게 저였지요, 지금은 아네요. 선생님의 이 경이는 인차 멋진 숙녀로 탈바꿈할테니 지켜보세요.     인젠 알았죠?그런데 여보세요!(이렇게 불러보는 제 얼굴이 얼마나 빨갛게 달아 오르고있을가를 좀 상상해 보세요.) 아, 하지만 지금껏 그렇게 혼신을 다바쳐 노를 저어왔건만 대안은 보이지 않아요?왜 뽀얀 안개만 감돌뿐 빛이라곤 한가닥도 없나요?내 마음의 등불은 언제 밝혀지나요?     나는 선생님에게 이렇게 날마다 눈물로 하소하고있어요. 선생님은 이슬머금은 한송이 순정의 꽃이 불쌍하지도 않아요?이러다가 자칫 스러져버릴 내희망의 꽃을 살뜰하게 일구어줄 마음이 정녕 없나요?사랑해주세요.《경이야!》하고 불러보세요. 그러면 제가슴에서 터져나오는《자기야ㅡ》하는 절규가 메아리쳐갈거예요. 저는 때때로 선생님에게서 제가 그렇게 목마르게 동경하던 부성애같은 감정도 느끼며 혼자 감동에 울기도했어요. 얼마나 비장하고 어마어마한 사랑인가요? 이런 사랑은 나, 경이만이 할수 있는거애요.      이제 우리 손잡고 사랑속에서 꽃피는 인생의 봄을 즐기고 우리 둘이 가꾼 사랑의 열매가 주렁질 인생의 가을을 흔상할 때 나 경이는 너무 행복해서 기절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인생의 막바지에 오를 때 제가 당신을 부축하면서 걸어간다면 우리는 헛되이 사랑하지 않았다고 웃어도 보고 울어도 보겠지요. 이것이 저의 숙명적인 인생그라프라고 생각해요. 아니라고 하지 말아요, 이 경이가 왈칵 울어버릴테니까. 녀자의 눈물은 말없는 웅변이라는걸 잘 아실 당신이 아닌가요?                 …경이가 이렇게 결말없는 편지를 수없이 날려보내도 선생님은 말이 없었다. 그래도 락심할줄 모르는 경이는 그냥 편지를 이어간다.      ㅡ너무도 하늘이 맑아었요. 너무도 하늘이 맑아서 슬퍼졌던가봐요. 눈물이 나온걸 보면, 눈물을 흘리고나니까 제마음도 하늘처럼 맑아진것같아요. 이제부터 맑은 하늘을 볼때마다 맑은 하늘이야말로 선생님이 맑게 웃으면서 힘내라고 보낸 선물처럼 생각할래요. 그런데 또 갑자기 맑던 하늘이 시꺼멓게 흐려지면서 비가 쏟아지네요. 선생님 창가에 흐르는 비물이 다 흘리지 못한 저의 눈물이라고 여겨주세요. 부디 매정하게 닦아버리지 말구요.     …홀로 세방에 앉아있으면 너무너무 외롭고 슬퍼요. 이런 밤이면 하늘에는 별하나 유별나게 밝게 속삭여요. 저 별이 선생님이 아니고 누구겠어요?별을 바라보노라면 안개속같은 혼미함이, 꽃밭같기도 한 현란함이, 별같기도 한 찬란함이, 파도 같은 격렬함이 선생님 숨결과 뒤섞여 휘감기며 소용돌이치고있어요.     소녀같은 감상이라고 웃지말아요. 나는 대낮에도 선생님의 꿈을 꾸고있어요. 선생님이란 존재때문에 아침은 항상 보라빛으로 밝았고 낮은 장미빛으로 물들었고 밤은 달과 별무리로 장식되여있어요. 내운명이 구멍이 숭숭한 우산이라면 당신은 그것을 기워주는 손이 되여 주셔야 해요? 아니면 나 못살테니까요.    언제면 만나주실지 알수 없지만 세월의 흐름에 서로를 떠내보내지 말자요, 시간속에 허물어질 저의 사랑탑이 아니니깐요. 터무니없는 고집이라고 하지 마시고 서로 생각하는 기쁨으로 새날을 기약하자요. 선생님생각에 너무 힘겨울 때 지꿎은 그 생각을 잠시나마 떨쳐버리려고 눈을 꼭 감아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잠을 청하기도 무서운 일이예요. 꿈속에서 그냥 울다가 님이 탁 밀쳐버리면 울면서 깨여나고 깨여나서는 그냥 울어야 하기때문이예요.    그러나 랭장고문을 쾅 닫으며 먹어서는 안돼! 하고 으름장을 놓을 때 그게 무얼가?금하는 음식일수록 구미가 더 당기듯이 잊어버리려고 애쓸수록 놓치기 싫은 마음, 추억의 불씨로 솟구쳐 정감의 사르개를 활활 태운다구요.    ㅡ선생님의 뜨거운 숨결이 방불히 들려옵니다. 저의 가슴속에 선생님께서 살아계시여 숨소리는 그냥 울리고있습니다. 저는 학교때 방학이 제일 두려웠어요. 긴긴 방학간에 선생님이 나모르게 어데론가 훌쩍 사라져버릴가봐서요. 력서장을  뜯으면서 난 어쩔줄 몰랐어요. 지금 가까이 살면서도 볼수 없으니 더 보구싶어요…울고싶어요.      그렇듯 황홀한 사랑에 혼신을 맡기고 있음에도 저의 마음속에 이름할수 없는 애수가 차분히 깃들어 눈물이 샘처럼 솟는것을 선생님은 해석할수 있나요?더없이 숭고한 사랑의 표식이 때에 따라서 억누를수 없는 애틋한 슬픔이 되는때가 있다는 것은 녀자애들만의 수수께끼이지요. 언젠가 선생님이 이 신비한 수수께끼를 풀어주기를 기다릴테예요…     …어느새 또 귀뚜라미 구슬프게 울어싸는 서러운 가을이 왔군요. 선생님, 정다웁던 시내물속에도 가을의 찬기운이 흐르네요.  불러봐도 울어봐도 대답이 없는 나의 무정한 선생님! 졸업하고 선생님곁을 떠나 두번째로 맞는 이 가을은 그리움때문에 참을수가 없어요. 단풍은 불타다못해 저렇게 검누렇게 보기싫어져가고…     불치의 사랑병도 세월속에서는 숙어든다고 하지만 내사랑은 영생의 상록수래요. 밤마다 이맘때면 우썩 키돋움하는 내그리움의 꽃나무를 뿌리채뽑아 체념의 칼로 오리오리 찢어서 한숨으로 삶고 짓이겨서 이렇게 엷은 종이장마다에 바르노라면 밤하늘에 오락가락하는 저 구름처럼 내 속절없는 편지들도 흘러가버리고 영영 소식이 없을가봐 가슴이 미여져요.     베여버리면 더구나 무성하게 자라서 온몸을 짓눌러 숨도 못쉬겠기에 이렇게 편지에 덜어내야 하고 그 덜어낸 사연들은 미처 보내지 못하고 서랍속에서 박정한 주인에게 침묵의 항의를 하고있지요. 림대옥이 울기위해 가보옥의 신변에 왔다면 저는 운명적으로 선생님 한분만을 사랑을 위해 이 세상에 온것이 아닐가요? 선생님에게는 저의 사랑이 인생의 삽화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인생의 전부이며 삶 그 자체예요. 믿어달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믿으니까요.    ㅡ선생님, 저 하늘에서 깜박이던 별하나가 영문없이 사라져버리고나면 제마음이 평온할가요?내사랑이 끝끝내 용납되지 못한채 묵묵히 고통을 짓씹어야 함을 처음부터 알기에 여태 제나름의 소망을 안고 이 슬픈 계절도 용케 넘겨왔겠지요.    선생님, 지금 나는 그런 황이든 슬픔과 속절없는 미련때문에 내마음 그대로가 참사랑이였음을 믿으면서도 더는 지탱하기 어려워졌어요. 정말 사랑의 극치가 체념이 되는거나 아닌지, 혜지로 빛나는 선생님의 눈에 넘치던 미소도 이제 겨울이 오면 가을을 잊고 봄이 오면 또 겨울을 잊듯이 그렇게 조금씩 잊을수만 있다면 이제라도 먼곳으로 훨훨 날아갈거예요.     이럴때면 선생님이 우스꽝스레 곡을 붙이며 느러지게 읋던 “청산별곡”이 생각 나고 그것을 내좋도록 “사랑별곡”으로 고쳐읊어요. 열번, 스므번…         살어리 살어리랏다. / 사랑애 살어리랏다./그림움이랑 눈물이랑 먹고 / 사랑에 살어리랏다. /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내님이여. // 울지마, 울지마 비둘기야 /         마당앞에 구구구하는 비둘기여./ 너처럼 시름많은 나는 /자나깨나 우니노라. /야속해 야속해 야속한 님 어서오세요 얄라 // 이렇게 저렇게 하여 / 낮은 어정쩡 보냈지만 / 편지도 전화도 없는 / 밤에는 또 어찌하리까 / 누구를 맞히려던 살인가 / 쥬피터의 살은 아니네 / 맞지도 맞히지도 못하고 / 혼자서 우니노라.    이렇게 나혼자 외우는 사랑시는 끝나는듯 그냥 이어지고 그리움은 갈수록 가슴에 씨앗처럼 알알이 차네요. 만약 저 하늘에서 희미한 별찌 하나 떨어지면 (믜리도 괴리도 없을)테지요.    …언젠가 사랑은 영원히 미완성인것을 사람들이 완성으로 만들려한다고 하셨지요. 유한한것을 무한으로 만들려는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라고, 그러나 저의 사랑은 저의 생명의 불꽃이 꺼져버리는 순간까지 타고야 말거예요. 목숨을 건 사랑은 청춘의 정열과 신념의 기름을 한방울도 남김없이 불사른 뒤에야 꺼지는법. 이것이 사랑의 운명이라고 하겠지요. 인간의 본능이라 하겠지요?     그런데 왜서 자신의 모든것을 기꺼이 내바치려 하는데도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혼자 속썩야 하나요?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사랑때문에 죽을수도 없는 어려운 인생의 짐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저는 돈이 흩날리고 순정이 팔려가는 어지러운 이 시대의 풍조에 둥둥 떠가는 그런 허랑한 녀자애가 아니예요.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저는 선생님이라는 한 인간을 진정 사랑하기에 지칠줄은 모르고 살아요. 진실한 령혼과 령혼, 뜨거운 가슴과 가슴의 운명적인 만남이 허무하게 무너진다는것은 죽기보다 더 슬픈 일이 아닐가요?      …그러나 언제면 나 할말이 궁해져 사랑시도 시들어질가요? 아니예요. 충정은 시작만 있고 끝은 없을거야요. 내것인줄만 알고 사랑하는 그날까지 들숨과 날숨이 있는한 정다운 당신의 이름을 부를거야요. 언젠가 혹시 누구에겐가 시집을 가야한다 면 정없이 돌아서는 박정한 당신을 더는 잡아둘수 없음을 확인하며 나는 울어야겠지요. 그리고 주어진 내운명만큼 만족해야 하겠죠. 할말은 다한듯싶건만 쓸모없는 편지나마 자꾸 써내려가야하는 저 너무 가슴아파요. 한사람 사랑하는 일 너무나 신이 날텐데 왜 이렇게 힘이 드나요?오가는 세월에 생각은 많이 달라지고 불붙던 정애도 사그라지면 눈물이 핑 돌아 추억에 매달리겠지요?     아, 내 심장이 다 빠져나간 그때에 허전해진 마음을 누가 달래줄수 있을가요? 당신이 곁에 없는 길따라 슬픈 내인생길에 나혼자 그림자만 밟으며 걸어가야겠지요? 길잃은 유령처럼 정처없이 ……                                    사랑은 2×2는 5인가?       백설씨는 경이의 편지들을 매번 감동없이는 읽을수가 없었다. 그저 련정의 편지가 아나라 자기로서도 그렇게 진지하게 쓸수 없는 한편 또 한편의 서정수필이여서만이 아니였다. 푸르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것은 일종 행복의 노을빛이 아닐수 없었다.     기실 회답을 하지 않았을뿐이지 백설씨도 경이를 잊고있는것은 아니였다. 처음 경이에게서 색다른 기미를 감촉했을 때 그저 생활에서 소설을 읽게 되였다며 웃어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였다. 련정이란 한 처녀애의 몸에 기묘하고도 명백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것을 처음 발견하고 놀랐다. 그저 앳된 풋병아리로만 보아 오는새에 마치 꽃이 하루아침새에 활짝 피듯이 훌쩍 커버린것이다. 온몸에 둥그스레 살이 오르면서 갓왔을때의 모나던 부분들이 부드러워져갔고 녀성미에 자신만만함이 은근히 내비치고있었다.     어쩌면 자기 생활에 전설같이 뛰여든 이 불나비소녀는 자기를  골려주려고 이 세상에 태여난것인가? 골샌님의 가슴속 골방에 속절없이 쌓아둔 량심과 도덕을 송두리채 빼앗아갈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참으로 의상하게 변해가고있음을 자각할 때 체념을 웨쳐댔지만 자기를 이겨낼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애와 함께 있으면 오가는 말이 없어도 주위의 생물은 더 말할것 없고 죽은 사물도 생기가 살아났다. 창가로 내다보이는 낮다란 서쪽산등성이까지도 룡처럼 꿈틀대는 것같은 환각을 주었고 사무상우에 올려놓은 그애의 하얀손도 보잘것없는 책상도 조화로운 배경으로 되여주는것 같았다.     사무실의 지저분한 분위기도 경이가 뿜어내는 신비한 힘때문에 향기로 가득차 버린다. 그애의 얘기를 듣는것은 일종의 생명감과 정감의 향수였다. 경이에게 사람을 감동시키는 무형의 장치가 있어 그 장치를 풀어놓으면 무심히 내뱉는 평범한 말도 일종의 환희를 느끼게 하니말이다. 그애가 소리없이 울때는 더구나 어쩔줄 모르고 그저 자기 가슴에 기대는대로 가만히 지켜볼수 있을뿐이였다. 흔히 녀자의 한방울의 눈물이 남자의 깊은 동정을 살수있다더니 경이의 눈물은 방울방울이 그대로 눈의 웅변이였고 말없는 명령이였으며 그대로 련민이였고 동정심을 초월시키는 신비였다.     그러나 그는 애써 자기를 다잡아야 했다. 그럴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메마르기 시작한 자기 마음의 보리밭에 모닥불을 질러놓고 언젠가는 포르르 날아가버리고말 한마리 파랑새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수 있는가?진실이 침묵하고 돈이 란무하는 세월에 세대차이를 무시하고 년장자에게 달라붙는 녀자애들이 그래 돈냄새에 취해서 하는 선택이 아니던가? 정애도 돈으로 빚는 세월이 아니던가?     돈도 없고 지위도 없는 일개 서생에게 녀자애가 련정을 가진다면 그게 무엇인가?결과는 후회로 얼룩진 쓰디쓴 악과일뿐이 아니겠는가?그게 아니라면 정말 사랑의 기적이라도 생기는걸가?알수 없었다. 알려고도 생각하지 말아야 했디. 언젠가 동년의 꿈을 다시 찾고싶다며 응석부리는 경이의 고집에 못이겨 스키장으로 갔었다. 호되게 추운 일요일이였다. 그는 경이가 뺨을 에이는듯한 눈보라쯤은 아랑곳없이 눈동자가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며 이글거리고 있는것을 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인채 바라보았다. 흩날리는 눈발속으로 시선은 엉켰고 어쩌다 호젓한 곳에서 시름놓고 바라보고 싶었다는 표시를 서로 말없는 미소속에 확인했다. 경이가 그의 가슴에 차분히 기대여 정차게 올려다보았다.    《사랑해요, 선생님!》   《얘, 그런 말은 그렇게 가볍게 내뱉는거 아니야…》     말은 그렇게 애매하게 했지만 눈에서 불꽃이 튀였다. 경이의 눈에서도 광채가 이는것을 그는 확인했다. 녀자애의 입김은 천도복숭아의 새콤한 향기같이 유별나게 싱그러웠고 그 향기는 그를 후끈 달게했다. 그는 폭발할것같은 정열을 리성의 마지막 방선으로 자제하며 심장에 압축된 호흡을 조금씩 쏟아냈다. 그러자 경이는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막으며 말하는 인형처럼 쏙닥거렸다.   《불씨를 당기면 저는 재가 되여버릴거예요. 전 자신이 류별나게 뜨거운 체질을 가진 녀자라는것을 잘 알고있거든요. 그 후과를 지금의 선생님은 감당해낼수 없을거얘요. 안그래요?나의 훌륭하신 서ㅡ언생님!》     그 순간 그는 스스로 얼굴이 확 달아오를는감을 느꼈다. 심장속에서 끄르륵 소리가 나는것같았다. 정녕 피가 쫄아붙는 소리였을가?그는 경이를 말없이 굽어보았고 경이는 아직 삭이지 못한 열기가 그의 눈동자속에 흔들거리는것을 보자 금방 하늘에 날아올라 울어대는 종달새처럼 까르르ㅡ하고 웃으며 새매처럼 그의 팔에서 빠져나가 눈발위를 달려갔다.《날 붙잡아요ㅡ》생긴 그대로 청춘의 폭발력이였다. 그는 달리는 녀자애의 뒤모습을 얼없이 바라보았다. 북국의 설원에서 붉은 여우에게 홀린듯한 짜릿한 전률이 온몸에 퍼져나갔다. 하얀 은세계속에 멀리 사라져가는 이 유별난 처녀애의 웃음저편에서 자기를 기다리는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것같았다.    그해 겨울방학은 경이에게서 아무소식도 없었다. 옳았다. 오는가 하면 어느새 훌쩍 사라져버리고 이제 다시 안오나 싶을 때 나타나서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듯 시치미를 뚝 뗀다. 가는새없이 가버린 청춘이 아쉬워 주눅이 들어있는 남자의 가슴에 무지개를 띄울듯말듯 하다가 씻은듯 소식을 끊었던 아지랑이같은 소녀…한 순간의 회오리였으려니 생각하고 겨우 잊을만하니 개학에 홀연 다시 나타났고 그렇게 티없이 밝게 웃어주었다.   《안녕하세요?제가 오지말았으면 했죠?》    …참된 사랑은 거의 사색을 대신한다. 사랑은 그밖의 모든것을 불사르는 세찬 불길이다. 정열에다 론리를 요구하는것은 범에게 날고기를 먹지 말라는것과 같은것이다. 천체력학에 완전한 기하학적 형태가 없듯이 인간의 정욕에도 절대적인 론리적판단이 있을수 없다. 지금은 다 제잘난 멋에 사는 시대이다. 모든것이 멋대로이고 무질서가 질서가 되고 부도덕이 도덕화되는 때에 사랑이 2×2=5가 되지 못한다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는 불현듯 다 퇴근하고 혼자남아서 무엇인가 끄적이고있는 사무실로 처음 찾아왔던 소심스러운 처녀애의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처음 그는 그저 놀랐을뿐이였다. (먼지바람 사나운 이 세상에 어쩌면 저렇듯 청초한 아름다움이 존재할수 있단말인가?) 순간순간 마주치는 소녀의 눈빛은 전혀 때묻지 않은 수정 그자체였다.     아직 보슴털도 채가시지 않았으나 자연스럽게 다듬어진 보드랍고 우아한 관능미를 구비한 애련한 얼굴은 비너스니 선녀니 요정이니 하는 잡스러운 말로는 그 표현이 절대 충분하지 않는 그런 미모였다. 몸매는 아직 야위였으나 한마디로 금방 물속에서 나온 인어를 방불케했다. 소녀는 분명 어리였지만 지금껏 그가 보아왔던 귀염성있는 녀자애들과는 완연히 다른 타잎의 미소녀였다.    《선생님,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방해되지 않나요?》     열여덟 햇병아리의 입에서 나오는 인사치례도 제격이였다. 말끄러미 건너다보는 시선은 아편꽃처럼 애련하기만한것이 아니라 어떤 신비의 그것이였다…소녀는 정색해서 응시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열정이 서린 시선이 자기 마음의 진실을 나에게 열심히 설득하고 있었다……   ㅡ경이는 처녀애들이 다 그러하듯 강추위에 앵두볼이 되여가지고 그냥 깔깔거리며 눈속에서 딩굴어댔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백설씨는 완전히 시적경지에 빠져들며 아무 구속도없는 대자연속에서의 그들 둘만의 만남을 련상하였다. 진달래꽃 붉은 불길이 대지의 묵은 가슴을 불태우는 봄날, 어느 산등성이 꽃떨기속에서 산들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나비처럼 팔랑이는 경이의 뒤모습이며 뒤를 돌아보며 쌩긋 웃는 맑진 그 미소는 순결무후한 순정의 표시일것이다.     자기의 두눈처럼 그윽해진 가을하늘을 머리에 떠이고 불타는 단풍을 바라볼때 사색하는 그 모습은 성숙에로 치닫는 조약일수도 있고 그리고 오늘처럼 눈보라치는 어느 겨울 밤거리에서 갑자기 가볍게 손저으며《선생님, 잘있어요, 나는 가요.》할 때 그것은 이미 돌이킬수 없는 인생의 패필(败笔)일것이다…하지만 그는 도덕과 인격을 버리고 황당한 추리로써 자기의 불가사의한 사랑에 연막을 치기시작했다. 그후부터 기회를 만들어가면서 사랑의 기적을 야금야금 쌓아갔다. 정다운 눈길로 남이 알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사소한 일로 녀자애를 울리고 오해도 하고 얼굴도 붉히며 탄식하기도 하였고 의미심장한 침묵도 지키였다.     그러면서 경이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일단 녀자를 진짜 좋아하게 되면 녀자의 아무리 버릇없는 행동도 애교로 받아들이는게 나이 든 남자들인것이다. 그래서 경이가 걸맞지 않게 당신이라 한던가 별스럽게《자기야,》하고 불러도 그저 빙그레 웃으 며 묵인했다. 스스로도 바보가 된것이 면괴했지만 웃음이 전염되는데야,                                              아름다운 착각      백설씨는 드디어 경이를 데리고 경박호로 갔다. 그는 호젓한 호수가 숲속에서 경이가 내미는 작고 보드라운 손을 자기의 커다란 손안에 감싸쥐였다. 서로 바라보며 눈길로 많은 정회를 주고받았다. 얼마나 아릿답고 천진하고 활발한 녀자애인가, 다정 다감하고 청신한 그 얼굴에서 내비치는 청춘의 희열이 생명의 찬가를 부르고있다. 경이가 끌리듯 던지듯 상체를 실어왔다.     생생한 육체에서 풍기는 체취는 향그럽고 달콤하였다. 그는 눈을 꼭감고 엉뚱한 화면들을 떠올렸다. 그는 도덕, 명예, 신분같은 거치장스러운 장애물우로 둥ㅡ둥 떠올랐다. 그는 벌써 해가 지지않는 행복의 만리창공에 날고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갑자기 호수물이 쫙 갈라지면서 거울을 잃었다는 전설속의 공주가 사뿐사뿐 걸어나와 자기곁에 다가서는 황홀경밖에 없었다.     그들은 달이 솟을때까지 호수가에서 거닐었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신비하고 매혹적인 신화속의 밤이였다. 밝은 달빛은 수림을 야릇한 몽환경으로 색칠하고있었다. 그들은 발길가는대로 정처없이 걸었다. 마음을 한껏 취하게 하는 현실의 동화속을 걷고있는 그들은 자신의 사랑과 무시무시한 정적속에 숨이 막힌듯 말한마디 없었다. 경이는 그것이 좋았다.    그들은 밤이 이슥해서야 하숙방으로 돌아왔다. 며칠 세맡은 집은 마을과 떨어져 호젓하였다. 밤, 곡조가 전혀 맞지않는 개구리합창만이 이 마을에 생명이 존재한다는것을 알리고있는 산촌의 깊은 밤이다, 정부가 없는 남자는 반병신이라고 여기는 열려진 시대에도 백설씨로 말하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순진한 샌님이였다. 그러나 열광의 녀자애는 청교도같은 사내를 가만두지 않았다. 녀자애의 달콤한 목소리가 어색한 침묵을 찢어놓았다.   《이런 밤을 꿈속에서도 기다렸어요. 선생님… 》   《여긴 선생이 없잖아…》조금 떨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우습게 들렸다. 녀자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입을 감싼다.  《그래요, 여기엔 제멋대로 풀어놓은 자아감각밖에 없어요.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그 고전적인 틀을 마사버리는거예요. 한 남자와 한 녀자의 데이트, 이것만이 진실이죠. 이밤은 우리 둘꺼야…》     그랬다. 경이로서는 힘겹게 마련한 이 밤이 너무너무 행복하였고 성스러웠다. 겁이 많던 그의 마음은 그토록 당돌해졌고 구속이 없어졌다. 스스로도 놀라웠다. 그동안 진정 우수를 몰랐고 애달픈 눈물을 흘린적이 없었던것처럼 느꼈으며 오로지 환락에 찬 눈부신 해빛만이 있었던듯 싶었다.  《너 인젠 제법이구나. 지금 계집애들이란…》 《그래요. 제가 제법인게 있다면 이렇게 선생님을 내꺼로 만들게  된거예요. 저의 사랑은 눈앞에서 가물가물하다가 스러지는것이 아니였어요. 씨실과 날실이 한코한코 얽혀서 베천이 되듯이 그렇게 엮어온거예요. 당신이 생각한것처럼 현대소녀의 불장난 이 아니였어요. 이래도 안믿을래ㅡ요?》     경이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따뜻한 모습으로 남자를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정어린 눈, 따뜻한 웃음이 남실거리는 타는듯한 입술, 그렇게 청초하고 다정스럽게 보이는 경이의 얼굴에서 백설씨는 지금 감당하기 어려운 벅찬 호소가 자기에게로 다가오는것을 느끼면서 몸을 떨었다. 두눈길이 허공에서 작열했다. 녀자애가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경이는 진실을 말할 때 눈속에 밝은 빛이 움직였다. 이 시각엔 또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자 더욱 진한 색갈을 띠고있었다. 《오늘 절 마음껏 차지해요. 당신에게만 주려고 고스란히 지켜온 저의 가장 소중한 선물이예요. 그리고 제가 줄수 있는 유일하고 영원한 선물이기도 하구요》    숨을 할딱거리는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갈대처럼 한들거렸다. 백설씨의 마음속에 따뜻한 사랑이 솟구쳤다. 《이러면 안되는거야, 그리고 너도 곧 후회하며 나를 원망할것이고…난 널 사랑하기에 허무게 망가뜨리고 싶지않은거야. 한송이 청초한 꽃그대로 곱도록 지켜보는것으로 만족하자꾸나. 내마음을 알겠니?이 못된 계집애야!》 《선생니ㅡ임ㅡ나ㅡ안…난… 당신꺼예요. 그리구 당신도 다 내것이야!당신의 이 심장도, 그 상상력도, 멋진 미소도…》     그의 가슴에 쓸어지듯 안겨든 녀자의 입술이 막 벌어진 석류처럼 빨갛게 물들면서 소로록 뜨거운 숨소리가 새여나왔다. 배설씨는 참지 못할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는 금방 터져버릴것같은 흥분을 억지로 짓누르며 조용히 천천히 녀자애의 동실한 어깨에 손을 얹었다… 《사랑해요!정말 후회없이…》귀가에 산새소리가 울리며 그녀의 따가운 입술이 솟구쳐왔다. 녀자는 아직 경험이 없으련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입술을 맡겼고 남자는 그녀의 심연속에서 솟아나오는 명주오리같은 보드라운 숨결을 그대로 빨아들였다. 경이는 다급한듯 떨리는 손으로 단추를 더듬었다. 위에서부터 네개의 단추, 그 하나하나가 따일때마다 처녀의 마지막 방선이 하나하나 무너지는 표식이련만 아무 미련도 없는듯이 손길이 더 빨라졌다. 앞섶이 열리자 눈이 부시게 선명한 물방울 무늬가 시선을 빨아버렸다. 두개의 풍만한 봉우리가 숨을 쉬고있었다.     마침내 라체가 된 순백의 육체가 환영처럼 눈앞에 조용히 펼쳐졌다. 그것은 완연한 조각예술품이였다. 분명 그것은 생동하는 한폭의 명화 그대로였다. 장엄한 신의 걸작이다. 턱에서 목으로, 목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가슴으로 유연하게 뻗어내린 상체 의 곡선미는 어떤 유능한 화가라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할것이다. 허리의 연한 곡선은 둔부를 따라 휘영청 타고돌아 비단실이 끌려내려간것럼 발끝까지 줄달음 쳐내려갔다. 그것은 사람의 육체라기보다 너무나 순결하고 아름다운, 그래서 성스럽기까지 한 절대적인것이였다.      백설씨는 경이가 이끄는대로 부드러운 몸위에 올랐다. 경이가 머리를 부둥켜안으며 입안에 달콤한 노래를 넣어주자 문득 그 노래는 시간이 생겨나기 이전에 처음 부른 그 입으로부터 자기에게까지 전해온것이며 인간이 멸종되지 않는한 계속 불려질 애욕의 노래를 경이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른 입에 넣어주려고 온몸을 불태웠다.    …경이는 어느새 끝없는 신비의 세계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렸다. 마음속에서 남성에 대한 놀라움이 눈을 뜨기시작했다. 남자!자기 가슴우에서 느껴지는 그 남성의 힘에 대한 첫감각과 동시에 자신의 성결한 처녀성이 떠나가는 마지막 몸짓으로 격정을 숨기며 눈물을 흘렸다. 아ㅡ아ㅡ!그녀가 그렇게도 목마르게 바라던 사랑의 전부의 내용이 그렇게 씌여지고있었다…     경이는 자꾸 선생님을 부르며 달큰하게 속삭였다. 아픔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라고, 행복해서 짓는 줄끊어진 구슬이 흐른다고, 오래동안 사무치게 마음속으로만 풀리기 바랬던 그 안타까운 정한이 비로소 희열속에 풀리는 소리라고…  《아이, 난몰라, 어쩜 좋아!사랑해요. 선생니임ㅡ》     오래오래 하나로 녹아붙었던 육체가 둘로 나뉘여졌을 때 경이는 얼굴을 가리고 울다가  이윽해서《선생님, 나의 님…우린 지금 어데 있나요?》하고 부르며 남자의 가슴에 그대로 묻혀버렸다…    사람들은 밤을 육체와 령혼을 달근질하는 황금시간이라고 좋아한다, 그러나 밤 그자체는 그저 랭담하게 인간사회의 치부를 덮어버리는 장막일뿐이다. 실한오리 걸치지 않은 음양의 인간들이 뒤엉켜 뒹굴면서 구비구비 풀어내는 그 욕정의 신음에도 눈이 멀어있다. 그러지 않으면 인간은 수치란말을 만들지 않았을것이다.     남자의 넓은 가슴에서 어린애처럼 엎드려 자는듯 꼼짝도 않던 경이가 잠꼬대같이 속삭이였다. 비둘기가 구구하는 소리를 알아들을수 없어도 싫지  않은것처럼 그 종알대는 소리가 듣기좋았다. 그 소리는 정에 달뜬 녀자가 내는 노래의 곡조와 시가 어울린 기묘한 애욕의 피리가 아니겠는가?녀자는 뇌까리고 남자는 침묵으로 답복해도 서로의 가슴에 전파로 전해지기에는 충분하였다. 정애에는 설명이나 해석이 필요없는 법이다. 백설씨는 잠기가 실린 경이의 상기된 얼굴을 조심스레 받쳐들었다. 《저 하늘에 별들을 봐, 별들이 몇억광년의 아득한 하늘에서 너의 눈동자속에 고이기 위해 건너온것이 아닐가?나는 늘 너의 눈에서 별을 보고있었지!너의 눈이 그대로 한쌍의 별이거든, 저 하늘에 별들은 새날이 밝으면 사라져버리지, 그러나 경이야, 너의 눈동자속에  별들은 언제나 나를 향해 반짝이겠지?응! 》 《새날이 밝아오면 별들이 사라진다구요, 기막히게 처량하고 심각한 서정이예요. 새빛이 우리에게 이를때면 별들이  숨어버린다구요?이 행복한 순간이 아득한 별처럼 사라질가봐 이 경이가 두려워하는데 무슨 그런 다짐을…으응! 당신과 난 죽을때 까지 꼭 하나인거야, 알았지?! 》    둘이는 다시 가슴과 가슴을 녹여붙였다. 그렇게 온밤 밀려오고 밀려가는 격정의 파도속에서 밤을 하얗게 빨래질했다. 창가에 내려앉았던 별들도 무색해서 서둘러 숨어버렸다…그러나 치정에 빠진 남녀는 그런줄도 몰랐다.                                    별은 왜 창백해졌을가?       그러나 그들이 진실한 넋으로 이룩한 사랑의 기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았다. 백설씨의 안해가 남편의 염사를 알게 되자 사태는 더 수습할 여지가 없게되였다. 그녀는 리혼을 제기하고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다. 작은 도시가 들썽했다. 비록 법에 걸리는 일은 아니였지만 백설씨는 슬며시 자취를 감추었다. 풍문에는 남방에서 떠돌다가 절친한 동창의 연줄로 미국으로 날아가버렸다고 했다…     경이만 끈떨어진 뒤웅박신세가 되여버렸다. 진우가 그녀를 소개받았을때가 바로 그 무렵이라고 편지에 쓰고있다.     ㅡ진우씨는 몰랐지만 저는 껍데기만 남은 녀자였지요. 이미 자기를 잃고있는 녀자를 진우씨는 좋아했지요. 물론 그것은 저의 잘못이여요. 진우씨도 많은 녀자들이 진우씨와 결합하여 아이를 낳고 싶어할 그런 훌륭한 남자였지요. 진우씨의 살뜰한 사랑에 목이 멜때가 많았지만 이미 한남자에게 쏟은 감정의 격류를 돌려세울수가 없었어요.     진표가 생긴후 저는 꿈에서 깨여났어요. 전 그애만을 사랑하며 살아가리라 미음먹고 진우씨를 사랑하려고 무척 노력하였어요, 그러나 그게 생각대로 잘되지 않았어요. 진표가 돐을 잡던해에 멀리계신 그이께서 저에게 편지를 보내왔어요. 몇십장의 편지였어요. 그이는 자신이 살아서 숨쉬는 한 심장속에 새긴 새별을 잃을수 없다며 자기 신변에로 불렀어요.    저는 항거할수 없는 그이의 사랑의 힘에 끌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어요. 나는 날개라도 돋혀 한달음에 그이의 품속으로 날아가고싶었요. 렴치없는 말이지만 진심이 그랬어요. 시인도 아니건만 시줄이 엮어질만큼 그렇게 격동되여 곧장 회답을 했어요. 이몸이 죽어 열백번 죽어서 넋이라도 있고없고 날아가겠노라고….                                                    나혼자 애모쁘게 생각한 사람                          끝끝내 마음닫고 떠나간 당신                          눈물로 슬픈사연 헹구던 일을                          세월이 흘러간들 잊을수 있나                            두번을 다시못할 내사랑 당신                          나몰래 혼자떠난 무정한 님아                          아픔에 찢기여도 가슴을 치며                          혼자서 당신만을 그리던 나야                            아직도 소원하나 있으라 하면                          두몸이 하나되여 사랑을 하며                          당신을 보듬다가 죽어갈 때에                          내곁을 지켜줄이 당신이 하나                                                    다시는 찾지못할 내사람 그대                          그리워 가슴곳곳 피멍이 들고                          가슴타 재되여도 몾잊을 당신                          세월도 씻어가지 못하는 사람     나 미친년이지요. 그만큼 그이는 내게 둘도없이 소중하고 귀중한 분이였어요. 설사 그이의 정식안해가 될수 없더라도 가고싶었고 한평생 그이만 바라보며 살고싶었어요. 그러나 천진란만한 우리 진표가 불쌍해서 차마 훌쩍 가버릴수 없었어요. 지어내는 거짓말같지요 ?     어떤 때엔 엄마처럼 호수밑에 푹 갈앉아 세상의 모든 영욕을 잊고싶기도 했어요. 죄많은 어머니의 넋이 몸부림치고있는 차디찬 그 호수물로 내가슴을 태우는 괴로움의 불을 끄고싶어서 정말 지도에 그려져있는 그 이름모를 절로 가는길에 오를번 했어요. 그때마다 선생님에 대한 나의 참을수 없는 마음이 내발목을 잡았어요.    그러면서도 이승에서 단하나의 선택이 허용된다면 아무리 굴욕적일지라도 그이와 함께 생활하고싶었어요. 저는 그이 모르게 죽어서는 안된다고 고쳐생각했어요. 나는 그이 먼저 떨어지는 별이 되지 않겠다고 그이의 눈을 보며 맹세를 했어요. 그리고 그이도 내허락없이는 죽을수 없어요. 그이는 나를 꼭 불러들일 그런 훌륭한 분이라고 믿고 기다렸어요. 나는 죽을때도 그이의 품속에 안겨서 눈을 감을거예요.     나는 먼저 한국에 가려고 로무송출수속을 했어요. 그러나 일이 생각대로 되여 주질않았어요. 귀신에게 마음을 빼앗긴 나는 밀항이라도 해서 한국땅에 들어서고 그이를 오라고 부를작정을 했어요. 나는 모든 사연을 당신에게 말할수 없었어요. 정직하고 선량한 당신이 내가 기로에 빠지는것을 말렸을거니까요. 그래서 간다온다 소리없이 집을 나갔어요. 진표때문에 울면서 떠났다고 한다면 진우씨는 믿지 않겠지요. 사랑은 배반했지만 모성애야 배반할 있겠나요. 비웃어도 좋아요…     사랑을 각양각색의 책이라한다면 저의 애정사야말로 사연많은 한부의 심령소설이라 할수 있겠죠. 이런 말을 새겨들을 진우씨의 심정이 아닌줄 알지만… 저로서는 소녀시절의 활발했던 사랑은 한부의 재미나는 련화화였어요. 진우씨가 저에게 쏟아부은 그 장중하고 자중하던 애정은 수정본이라 할수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런 사랑을 받을 체질이 못되였어요.     그이와 파란곡절속에서 동고동락한 사랑은 한글자 한글자 내 심혈로 쓴 초사본이라할수 있어요. 헤여졌다가 다시 맺은 저의들의 사랑은 수정보충한 재판서라고 하겠구요. 우리의 생사불변의 사랑은 절판이 난 책일것이예요. 무슨 정신여가가 있어 서 글장난인가고 불만이시겠지만 진우씨가 이제라도 그이에 대한 경이의 사랑이 어떤것이였는가를 리해해 달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니 그렇게 알아줘요. 저로서는 달리 표현할수 없어요.     이제 본제를 말씀드리겠어요. 사랑한다는것은 곧 둘이서 하나를 완성해가는것이라지만 나에게는 행복과 고통과 슬픔이 함께 그려진 모순된 미완성의 풍경화라고나 할가요. 그이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니 진표에 대한 엄마의 애정이 그을린셈이랄가요, 그이를 만나고 저는 제가 환상하던것처럼 완미하게 행복해질수 없는것이 한없이 슬펐었어요. 모성애와 사랑의 갈림길에서 그냥 도덕의 견책을 받으며 시달렸으니까요. 역시 사랑을 받는 녀자와 사랑을 주어야 할 엄마는 이률배반적인가봐요.     진표가 보고싶어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냈어요. 제가 직접 당해보고서야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을 뜯으며 사랑하는 애인 우론쓰끼와 아들사이에서 방황하던 안나 까레니나의 심정을  절실히 알았어요. 그이가 아무리 따뜻하게 품어주어도 도저히 아들을 잊고 살수가 없었요. 내같은 몹쓸년에게도 모성애만은 살아있다고 한다면 세상사람들이 비웃을테지요. 그러나 그건 사실이였어요. 진우씨만은 믿어주길 바래요. 엎지른 물같은 과거지사이지만도…     …마침내 저는 절로 자기 신체를 망가뜨린셈이 되였어요. 너무 울고 속을 태워서 심장병에 걸렸어요. 그것도 아주 가망이 없는 정도이지요. 업보라고 말해도 할말이 없어요. 그러나 나는 그이에 대한 나의 사랑과 아들에 대한 사랑을 의심해본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그 모든것이 다 내손으로 씌여진 인생극본이니까요.     다만 마지막 소원하나가 있어요. 이번에 제가 여기로 온것은 꿈에도 보고싶던 진표를 딱 한번만이라도 볼수 있을가해서였어요. 허락해주세요. 초롱속에 새의 울음은 처량하고 곧 죽어가는 사람의 유언은 선량하다하지 않나요. 그저 친척아줌마의 신분 으로 한번만 보고가면 전 죽어도 눈을 감을거예요.     당신앞에 용서못받을 죄인이지만 마지막 소원을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허락을 기다리겠어요.…                                                 에필로그            편지를 간신히 다 읽은 나는 분통이 터졌다. 가슴속에서 증오와 저주가 화산처럼 치솟았고 나중엔 자기 마음같지 않게 련민과 관용이 화산재로 갈앉았다. 경이는 긴 편지를 넘을수 없는 골짜기 저쪽에서 쓰고있었다. 결혼후 당신이라 불러준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생각까지 새삼스레 나면서 이가 뿌드득 갈렸다. 그러나 리미가 빤히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을 잃을수는 없었다. 나는 그 진정책으로 자기를 달랠수 있는 온갖 구실을 찾았다. 애정이란 대방을 리해해주고 그의 의사에 따라 순응하는 유순한 정이며 리기와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의 모든 용기를 대방에게 바치는것이다. 이런 정과 용기야말로 특이한 애정이라 할수 있다…그럴수밖에 있으랴!그렇게 흔하게 들리는《당신》소리도 그녀는 아끼고 있지 않은가, 경이에게는 오직 하나의《자기야!》가  있을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눌러생각해도 분하고 절통했다. 나의 눈속에 쌍심지가 거꾸로 서는듯 싶었다. 아래위 이가 맞쫓기면서 덜그럭소리가 나서 자신도 몸서리쳐졌다. 열이 올라서 얼굴이 주홍빛이 되여버렸을것이 분명했다. 가슴속에 무서운 복수의 우뢰가 울었다. 나의 표정을 말없이 지켜보고있던 리미가 련민의 정으로 젖어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랭정하세요. 오늘은 정말 당신답지가 않네요. 남자들은 첫사랑을 잃은후에도 자신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닌가요?그렇지만 마지막사랑을 잃는다면 생활의 의의와 자기에 대한 신심과 삶에 대한 기쁨, 모든것을 잃게 되지 않을가요?물론 진우씨가 저를 진정 사랑하고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예요. 이 배속에 있는 아이의 장래를 봐서라도 너그럽게 대하세요.》    나는 잠자코 들으면서 그저 코김만 거세게 내뿜었다. 나는 끝내 자기를 다잡았다. 다행히도 나는 불을  달아놓기만 하면 극도로 흉악해지는 그런 악착한 성질의 남자는 아니였다. 《그의 사망신고를 철소하세요. 그로하여금 많지 않은 여생에 당당정정하게 이승에서의 인륜지락을 누리게 해주세요. 전번에 내가 당신 대신 비행장에 나가 마중했는데 정말 피골이 상접해서 내가슴이 다 찌르르해났어요. 그는 한남자의 팔에 매달려 겨우 지탱하고 있었는데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한다는 그 선생님이겠지요. 그의 표정도 착잡하기 그지없었어요.… 》    욱하는 내성미를 랭철함으로 잘 조절할줄 아는 리미의 충고처럼 종용과 관용은 별개이다. 관용과 용서는 동전의 앞뒤면과 같은것으로서 진정 의지가 강한 사람만이 할수 있는 절제심 그 자체이다. 관용이란 마음가짐이요 용서란 력동적이고 적극적인 힘이다. 관용과 용서란 대방만이 아니라 자신도 수련시킨다. 나는 마침내 관용의 대문을 빠끔히 열고 그렇게도 저주했던 경이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용서하지 않으면 이제와서 무엇이 달라진단말인가, 사람은 완성된것도 없거니와 완성될수도 없다. 사랑에 완성이 없을진대 관용의 대문을 활짝 열어주는것이 그녀의 사랑을 완성시키는 길인지도 모른다.     …며칠후, 나는 진표를 데리고 경이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갔다. 나는 경이의 망가진 모습을 측연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렇게 아름답던 사람이 저렇게 변할수 있단말인가 련민의 정이 왈칵 치밀어오르면서 목이 꺽 메였다. 그녀에게서 이젠 곱게 생긴건 눈과 입뿐이였다 (무엇이 녀자를 그렇듯 사랑에 활활 불타오르게 했을가?이 녀자의 몸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할수 있은 유일한 남자란 어떤 남자일가?지금 저 녀자는 몹시 괴로와하고있다. 그녀가 지금 무엇을 괴로와 하는가?이제 바랄수 있는 것이란 과연 무엇인가?한 남자애의 탄생은 한녀자가 두남자에게 사랑을 나누어주어야 한다는것을 의미한다던 말이 안타깝게 떠올랐다…)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리워 전구들의 불빛이 반디불처럼 아롱거렸다. 눈물이 글썽한 그녀의 눈속에서 수천개의 별들이 반짝이는건만 같았다. 이 녀자는 세속의 관념을 물리치고 사랑에 자기의 전부의 운명을 걸고 떠났다가 회한을 안고 내앞에 나타난것인가?아닐수도 있다. 그녀에게서는 사랑이 죽음보다 더 강한것이였니까. 그러면 그게 무엇일가?오직 내가 절감할수 있은것은 미모는 스러졌으나 가치는 의연 히 눈부시는 극히 희소한 그런 녀자가 바로 경이라는것이다.    우리는 서로 마음을 토로할수 없었지만 이윽토록 바라볼수 있었다. 무슨 할말이 더 있으랴, 그저 마주보는 청산도 유정하다 하거늘…그러나 나는 그 이상 경이를 괴롭히고싶지 않아서 나와버렸다. 뒤에서 뼈를 깎는듯 오열을 토하는 소리와 흐느낌 소리가 뒤통수를 쳤다.    병실에서 멀리 걸어나왔지만 목덜미에 그냥 바늘이 꽂히는것 같았다. 어쩐지 따끔해지다가도 확대경의 초점에 모아진 해빛을 쐬는 그런 견디기 어려운 느낌이기도 했다. 그만큼 경이의 회한많은 눈길이 내뒤를 바싹 쫓고있는듯싶었다.     그렇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공간에서 오직 한사람에게만 확실한 감정을 가지고 그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반복하지 않는 녀자는 독종이 아니면 너무 숭고하다 해야 하리라. 참된 사랑을 함에서 유일한 정신적기둥은 맑은 량심과 인격력량이다. 이왕자사를 돌이켜볼 때 유일하게 안위되는것은 자기 행위의 정직과 진정이다. 지금 내게 만약 이런 안위마저 없다면 나는 정말 미쳐버릴것이다.     행복에로 가는 길은 따로 없다. 행복의 길은 현재 내가 걷고있는 이 길 자체일뿐이 아니겠는가?내가슴속에 별은 지지않았지만 리미의 손을 잡고 사랑의 페허우를 걸어가야 한다. 이제 더는 리미의 손을 놓는 일이 없어야 할것이다.    …한달후 나는 결혼식을 올렸고 건강이 조금 좋아진 경이와 그녀의 유일한 남자는 다시 한국으로 날아갔다. 거기서 다시 미국으로 간다고했다. 머리우로 떠가는 비행기를 망연히 바라보는 나는 차라리 진표를 경이에게 딸려보냈을걸… 하고 후회해 보기도 했다. 그가 언제면 다시 자기의 생명을 탕진하면서까지 그리워한 아들을 볼수 있겠는지…그리고 아들은 커가면서 자기를 버린 어머니를 용서할런지…경이는 자기에게 첫사랑의 결실이 있다면서도 왜 진표를 못잊어 하는지…    누군가 인생의 의미는 사랑의 슬픔에서 깨우쳐지고 사랑의 의미는 인생의 실패를 통해서 강화된다고했다  나는 그 모든것이 인생의 조화가 아니라면 아름다운 착각이 빚은 인생희비극이라고 생각할수밖에 없었다.                     별처럼 아름다름다웠던 사랑이여,                꿈처럼 행복했던 나의 사랑이여,                                    잠간 머믈고 간 이른 봄바람처럼                              기약없이 멀어져간 아픈 사랑아,       아, 사랑은 타버린 불꽃이던가,             아, 사랑은 추억의 강물이던가,                      아, 한으로 까맣게 잊으려해도                                왜 나는 너를 못잊고 있는거냐,                                         2004년 10 월 5 일                《연변문학》 2005년 제 2 호
110    (소설) 도깨비의 향연 댓글:  조회:11242  추천:1  2012-11-22
                                            도깨비의 향연                                                    최 균 선       허길은 하늘아래 첫동네인 연경동에 태줄을 묻고 잔뼈를 굳히며 어렵게 자라났다. 허길의 애비 허동이가 농사일은 하기싫고해서 해마다 공사판을 쫓아다니였지만 일은 잘하지 않고 건들거리다보니 공수도 많이 올리지 못하였다. 일년내내 뼈빠지게 일해도 어떨가 하는판에 그따위로 살다보니 남들보다 구차하지 않을수 없었다.       게다가 술이라면 십리길도 뛰여가는 술귀신이자 내번지고 마신다하면 밑창이 없는 술고래였다. 주풍도 망태기여서 한잔 걸치면 이상제하없이 시비를 걸고 말썽을 피우며 주먹질에 재미를 보는자였다. 집이 가난한것이 뉘탓이기나 한것처럼 집에 들어와서 그저 죽어지내는 애매한 안해를 개패듯하였다. 마을나그네와 웃으며 말했다는둥 어쩌다 시내에 갔다가 멋진 남자에게 한눈을 팔았다는둥 아무튼 두들겨팰 리유는 새라새롭게 생겼다. 그렇게 피멍들게 매질하고는 밤이면 소리없이 흐느끼는 녀자를 밤새도록 죽였다살구는 그런 체질이여서 별명이 물개×이였다.     허길이 에미는 워낙 원근에 소문난 미인였다. 소똥무지에 함박꽃이 꽂힌격으로 허동이에게 시집와서 갖은 구박을 받으며 사는 신세가 된데는 그야말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사연이 있었다. 주먹깨나 쓰는 허동이는 연미공사내에서는 제노라하는 자였다. 품행이 악질이다보니 원근에 처녀들은 허동이라하면 기겁초풍했다. 허동이도 스스로 자기가 한심했지만 하루아침새 고쳐질 악습이 아니였다. 나이는 자꾸 먹어가지 녀자맛은 언제 볼지 막연해서 속이 곪아터질지경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짝패들을 휘동해서 현성에 영화구경을 갔는데 영화표를 사는 줄에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여온 녀자가 끼여있었다. 영화관부근에 있는 렬군속식당에서 출납질하는 순금이라는 처녀였다. 쳐녀의 풍만한 몸집에 게침을 흘리던 허동이는 얼핏 좋은 궁리가 떠올라 졸개들에게 쑥덕거렸다. 지시를 받은 졸개들이 그녀의 앞뒤에 끼 여들어 영화표를 샀다. 그러다보니 녀자는 허동이 옆에 앉게 되였고 량쪽에는 허동이 쌉살개들이 배동하게 되여 드티고 옮길자리도 없었다.     영화가 시작되여 어둠컴컴해지자 허동이가 동작을 개시했다. 녀자는 소리도 못치고 이리저리 비탈고 있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영화관 빠져나갔다. 미구에 졸개들이 그녀의 뒤를 쫓았다. 허동이의 지시대로 “사슴몰이”를 시작한 것이다. 영화관 마당을 벗어나서 집쪽으로 구불어가려는데 두억시니 두셋이 앞을 막아섰다.    큰길로 곧게 걷다고 곁길로 빠지려하니 다른 놈들이 우우하며 길을 막았다. 그자들이 이리몰고 저리 모는바람에 녀자는 소리한번 질러보지도 못하고 시내변두리에 있는 현체육장에까지 몰려가게 되였다. 인적이 드문 곳까지 오게 된 처녀는 울상이 되여 바들바들 떨고있는데 드디어 백마왕자가 나타났다. 졸개들이 망을 보고 허동이는 야외에서 초야권을 행사하게 되였다. 순금이는 그렇게 보쌈을 당한격으로 허동에게 시집을 오게 되였던것이다…        마을에서는 집집이 산기슭이나 골짜기에 뙉밭을 일구고 해바라기를 심어서 소금간장값이나 해결하였는데 골밖에 사람들은 연경동을 해바라기 동네라고도 불렀다. 허길이네도 해바라기밭이 있었다. 허길은 목소리가 고운 어머니가 늘《천만송이 해바 라기 태양따르고 억만인민 한마음으로…》를 흥얼거리는걸 들으며 자랐다. 이 노래는 어데가서나 들을수 있는 노래였기에 허길이도 가사를 거의 외갈내고 있어서 곧잘 따라불렀다. 그러나 어린허길이로서는 해바라기가 어떻게 태양을 따르는지 몹시 궁금했다. 엄마가 왜 그냥 이 노래만 부른는지도 알수 없었다.      《엄마, 해바라기가 왜 태양을 따르나요?》     엄마는 아무말도 않고 허길이 손을 잡고 산기슭의 해바라기밭에 나갔다. 총총히 들어선 해바라기들은 한결같이 머리를 건뜩 쳐들고 해를 향해 웃고있었다.     《봤지? 지금 점심때니까 해를 바라보지 않니? 이제 저녁때 너절로 나와보아라. 그리고 래일 아침에도 나와보면 알게 될거야.》     해가 서산에 기울어지자 허길은 밭에 나와봤다. 아닌게아니라 그 많은 해바라기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일매지게 납작한 노랑얼굴을 서쪽으로 향하고있었다. 해가 꼴깍 넘어가자 해바라기들은 상심한듯 고개를 푹 떨구고 서있는것이였다. 허길은 어린마음에도 이상해서 눈이 둥그래졌다. 이튿날 아침에도 늦잠을 자지 않고 일찍 달려나와 보았더니 엄마 말이 맞았다. 해바라기들은 어느새 돌아섰는지 일제히 동산에 솟은 붉은해를 바라보며 노랗게 웃고있었다. 그는《야호!》하고 환성을 올렸다.     그날 이후부터 허길은 심심하면 밭에 나와 싫도록 해바라기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놀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해바라기의 환하게 웃던 얼굴에 조그마한 벌레들이 다닥다닥 덮혀있는것을 보았다.크기는 록두알만했는데 색갈은 여러가지였다. 허길은 무슨 벌레인지 어째서 해바라기의 얼굴에서 기여다니는지 놀라서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 저건 무슨 벌레인가요?》         엄마는 아무 대답도 않고 해바라기대들을 하나하나 세차게 흔들어주기만 했다. 《고운 벌레인데 왜 날려보내나? 털지마!》 《이건 딱정벌레인데 그냥 놔두면 해바라기를 다죽이고말아, 해충이란거야.》     엄마 말이 맞았다. 이튿날, 아침에 나와보니 어제 해충이 기여다니던 해바라기들은 더는 해를 따라 돌지 않고 고개를 푹 떨구고 울고있었다. 며칠후에 보니 정말 말라죽었다. 허길은 해바라기가 불쌍해서 엉엉 울면서 딱정벌레를 하나하나 잡아서는 발로 꽁꽁 밟아죽였다. 그 넓은 해바라기밭을 헤집고 다니며 무척 많이도 죽였지만 딱정벌레는 그냥 바글거렸다. 엄마를 불러왔다. 《…농약을 쳐야하겠구나.》 《농약이요? 그럼 빨리 농약을 쳐요. 예? 엄마?》 《래일 시내 외삼촌네집에 갔다가 올 때 농약을 사다가 치자꾸나.》 《엄마, 나두 같이가나요? 야! 좋아라.》    이튿날 진종일 걸어서 고개를 몇개 넘어서야 현성에 도착했다.현성이 내려다 보이는 산마루에서 허길은 새로운 발견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저기 저 곳이 시낸가요? 해바라기얼굴 같아요》 아닌게아니라 그렇게 보니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현성은 해바라기화판같았다. 《용쿠나. 정말 비슷하구나. 우리 허길이 장차 큰 사람이 되겠네. 호호호…》 《저긴 딱정벌레가 없나요? 아! 저기 한마리 기여다니네. 뭐? 하야라구요? 야! 나도 크면 저런 딱정벌레를 타고다닐테야,》 허길이 엄마는 아들을 놀란 눈길로 바라보았다. 《엄마, 우리도 그런 골안에서 살지 말고 저기 시내에서 살자,응?》 《그래, 네아버지가 그렇게 하자면 이사해 오자꾸나.》    …허길이의 생떼질에 못이겨 세식구는 한족들이 많이 사는 시내변두리에 집을 세맡고 이사해 왔다. 얼마후 허동이가 살판을 만났다. 돌아가며 잡아내고 투쟁하고 두드리고 마스고 빼앗는 미친운동이 일어나자 반란파두목이 되여 사람을 때리고 주리 를 틀고 죽이는 못된짓이란 못된짓은 다하며 하늘이 낮다하고 길길이 뛰며 지랄발광했다. 엄마의 치마꼬리에 붙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비판대회인지 하는데로 다니며 그는 아버지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를 알게 되였다.    처음엔 아버지와 아버지가 부려먹는 사람들의 주먹질, 몽둥이질, 채찍질에 피투성이된 사람들의 모습이 오줌이 나올만큼 무서워서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그러다가 차차 담도 커지고 하면서 아버지가 대단히 센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해방군아저씨처럼 우에 군복을 입고 군모를 쓰고 팔에 붉은 완장을 두르고 한손에 그냥 몽둥이를 들고다니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렇게 멋져보일수가 없었다.     자기도 크면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네도 벌벌 떨게 하는 아버지처럼  위풍당당한 사람이 되겠다고 벼르고있었다. 그런데 그 꿈은 얼마후 산산쪼각이 났다. 그렇게 멋있고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던 아버지도 어느 날 모자에 별을 단 사람들에게 팔을 비탈린채 어디론가 붙잡혀갔던것이다. 허길이가 아버지보다 더 멋있어보이는 아저씨들의 팔에 매달려 발을 동동 구르며 울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그러나 엄마는 울지 않았고 아버지를 보러가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안되여 동네아이들이 (너 아버지는 사람을 많이 때리고 빼앗고 죽이기까지 한 나쁜 사람이여서 총살당했다더라)하고 알주었다. 허길이는 아버지가 총살당할만큼 나쁜놈이였는가고 따지고 물어서 그만 엄마를 울리고야 말았다. 그 말을 들은 이후부터 허길이의 어린마음에도 동네사람들이 어째 자기를 곱게 보지 않는다는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그것이 아버지때문이였음은 알리없었다. 엄마는 그후 다시는 해바라기 태양따르네를 흥얼거리지 않았고 일밭에 나가는외 그냥 몰래 울기만 했다.     허길의 어머니는 마을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눈총을 당하며 속을 태우다가 허길이가 여덟살을 잡던해 봄, 젊디젊은 나이에 농약을 마시고 죽었다. 사람들은 인물이 아깝다고 한동안 두고외웠다. 그래서 허길이는 외삼촌과 다른 친척집으로 돌아다니며 컸다. 어느 날 허길이는 너무 심심해서 뜨락에서 서성거리다가 이웃집 암탉이 헛간문어귀에 알을 떨구는것을 보았다. 허길이는 이웃집아지미가 인차 나올 기미가 아니자 제꺽 제호주머니에 넣고 뺑소니쳤다.     뒤늦게야 나온 주인아줌마가 분명 낳았을 닭알이 없어진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암탉을 욕하는지 아니면 아까 마당에서 삽살개처럼 맴돌던 허길이를 빗대고 욕하는지 동네가 들썽하게 욕설을 퍼붓고있었다. 제집 뒤울안 벼짚낟가리 뒤에 숨어 서 달걀을 어떻게 하면 삶아먹을가 하고 궁리하던 허길이는 숨이 한줌만해져서 한식경이 지나도록 대갈쪽도 내밀지 못했다.  허길이가 달걀을 주어가지고 제집으로 들어가는것을 본 아래집 다서살내기가 제엄마에게 가만히 일러주었다. 《어무니, 허길이가 달걀을 바지주머니에 넣고 저 뒤울안에 숨었어. 내 아줌마 한태 알려줄가?》 《이새끼야,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말아, 그러다가 독사새끼같은 그놈에게 코피터지자구그래?》     아이는 엄마가 눈을 무섭게 흘기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낙네는 해지도록 욕지거리를 그치지 않았다. 허길이가 열다섯살이 되였다. 공부를 딱 하기싫어서 매일 학교를 때려치고 집부 근에서 쏘다니다가 어떤 잔치집문앞에 번쩍번쩍하는 구두가 있는것을 보고 슬쩍 후무려서 집에 가져왔다. 어떤 사람이 그걸 보았다. 구두임자가 나와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욕질을 하자 허길이가 가져갔다고 알려주려는데 마누라가 제꺽 남편의 입을 막았다. 《미쳤어요? 삐치지 말아요. 그 놈팽이가 얼마나 독종인줄 모르세요?》     허길이는 그 구두를 신고 학교에 가서 녀자애들 앞에서 으시대였다. 허길이가 스므살을 먹었다. 어는 날 짝패와 함께 칼을 들고 으슥한 산길에 숨어있다가 장을 보고 돌아가는 한 녀자를 풀밭에 자빠뜨려놓고 돌아가며 궁둥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지녔던 돈이며 손목시계랑 빼앗아냈다. 그것을 먼 밭에서 김매던 어떤 아낙네가 보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며칠후 그들은 또 길목을 지키고있다가 한 남자를 가로막았다. 그 사람이 순순히 말을 듣지 않자 칼로 호박을 찌르듯이 하여 죽인후 구렁텅이에 처넣었다. 그리고는 휘파람을 불며 유유히 사라졌다. 그때도 며칠전 륜간하는것을 몰래 보았던 아낙네가 밭고랑에 엎디여 몸서리치는 그 장면을 다보았다. 허길이가 한짓임을 잘 알면서도 파출소에서 나와 조사할 때 끝내 말하지 않았다. 보복이 무서웠던것이다. 게다가 남편이 무사하게 살아가겠으면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량심을 속여 둘수밖에 없었다. 허길이는 점점 더 기승을 부렸다. 아무도 아는체하지 않았다.     허길이가 스믈대여섯이 되였다. 개혁개방이 되고 신주대지에 공사바람, 장사바람이 휘몰아쳤다. 공부는 못했지만 돈욕심은 뉘게 뒤지 않는 그도 한몫 벌어보자고 별렀다. 그는 위치가 좋은곳을 골라서 미곡점을 꾸리고 있는 김씨를 음으로 양으로 다스려서 턱 차지했다. 원체 잘되던 미곡점이 그가 주인이 되자 오는 손님은 없고 나쁜소문만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흰모래를 섞어서 판다는것을 모두 알면서도 그의 위인됨을 알고 뒤에서 욕할뿐이였다. 《대명천지 이 밝은 세상에서 그렇게까지 나쁜놈이 어데 있단말인가? 왜들 그 꼬리방즈를 무서워하는게야? 난 고발하겠어,》 《그만둬, 우리가 그 자식한테서 쌀을 사지 않으면 그만이 아닌가,》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손해를 볼게 아닌가? 구데기 무서워 장못담그겠네. 그 자식을 그렇게 만든건 다 이 현성에 사는 사람들이 어벌을 키워준탓이라니!》 《사람들이 한두번 쌀을 사가는라면 다 알게 될게 아닌가? 이제 그자 하나가 무서운게 아니라 이 시내를 휩쓸고다니는 졸개들이라구, 여북하면 공안국에서도 못본체 내버려두겠나? 시끄러움을 청해서 고생하지 말란 말일세.》     그런데 무슨 도깨비수작을 꾸몄는지 허길의 장사는 점점 잘 되였다. 여러곳에 분점을 내오고 상점들도 차려놓았으니 어데 쌀을 사든 허길의 손바닥안에 있었던것이 다 자그마한 현성에서 그의 장사속이 얼마나 검은가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허길의 사업은 날로 번창해갔다. 요즈음은 택시업도 벌리고 내막을 모르는 외지손님들을 독차지하고있다. 누가 불평이라도 부리면 친신졸개인 만개를 시켜서 반주검이 되게 하였다. 그래도 누가 묻는 일이 없었다. 그의 재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젊은청년들도 더는 보아내지 못하겠다고 윽별렀다. 그러나 역시 부모들이 극구 말리는 바람에 손을 쓰지 못하고 열불을 토해내고만 있었다. 《그를 제껴치우는건 어렵잖아, 갈거시같은 놈을 누가 못해내? 그자는 이미 돈으로 매수해서 뒤를 튼튼히 다져놓고있다구, 우리가 마구 접어들면 돌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구, 우리 계획을 잘 세워보자구, 자꾸 밤길만 걷다가 어느 모퉁이에서 귀신을 만나지 않나 두구보라구, 헝 잡아치울놈의새끼!》     부자하나 생기면 세동네가 망한다더니 허길이때문에 망해나간 사람들이 얼마인지 모른다. 그러나 허길이는 잘되기만 했다. 처음엔 ××위원이라더니 차차 상무위 원이 되고…그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되였다. 현에 얼마 안되는 기업도 하나하나 제손아귀에 넣었다.     그가 자가용을 타고 출근할때면 굉장했다. 마치 중앙에서 내려온 수장이나 본듯이 아첨하는 무리들이 차를 막고 꼭 문안을 드리군했다. 길가에서 눈에 드는 녀자가 있으면 그날밤은 그녀자가 그의 여윈 궁둥이밑에서 신음해야 했다. 잘되는 놈 넘어져 도 떡함지에만 넘어진다고 현성으로 들어오는 고속공로를 닦는 일도 그가 총지휘로 되였다. 총투자액이 천만원인데 무작정 100만원을 후무려서 이름좋게 양로원에 몇백원, 학교들에 천원좌우씩 기부하여 미명이란 미명은 한몸에 얻어가지고 다녔다.     그러나 가슴이 덜렁 내려앉게 하는 중대사건이 터졌다. 허길의 개다리들중에서 가장 악질적인 우두머리의 시체가 들미동 산굴에서 발견된것이다. 법의가 루설한데 의하면 몽둥이 찜질을 당해 숨졌는데 머리통이고 엉덩이 뼈고 성한데 없이 밴새속이 되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동안 모질게 두들겨팼으면 한장정이 그렇게까지 뼈를 못추리게까지 되였겠는가고 혀를 홰홰 내저으면서도 죄는 지은데로 간다던 옛말 그른데 없다고 손벽을 쳤다.     그렇게 기고만장해 하던 허길도 이번에는 속이 꿈틀했다. 자기도 언제 만개처럼 몽둥이에 감자떡이 될지 알수 없었다. 하여 늘 개무리들을 데리고 다녔고 밤에 절대 나다니지 않았다. 어쩌다 거리를 한바퀴 돌았다.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던 소민들이 이상한 눈길로 힐끔거리는것이 몹시 속상하게 했다.     그저 이렇게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기로 작심했다. 흉수를 잡기전에는 절대 장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선포하고 현병원사체실에 보관했던 만개의 시체를 끌어내다가 만원짜리 관을 갖추어넣고 졸개들을 시켜 만개의 초상을 덩실하게 올려놓은 관을 메고 시내를 몇바퀴 돌게했다. 복수를 다지는 졸개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길가던 사람들이 몸서리를 쳤다. 허길이가 악바리를 쓸수록 속으로 윽윽 벼르는 배짱좋은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이미 허개를 잡아치우고 자기도 죽을 각오를 하고 기회만 노리는 터이였다.     그날도 졸개들과 흥탕거리다가 밤늦게 외딴 별장에 돌아왔다. 허길이가 거들먹거리며 차에서 내리는데 마른 하늘에 벼락치듯 “따꿍!”하는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옹위하고 왔던 졸개들이“아야마야 !”하고 혼비백산해서 아비규환을 부르며 길바 닥에 납작 업드리는놈으루. 차뒤에 숨는놈으루, 차안으로 기여드는 놈으루 란리가 났다. 평시에 개잡은 포수처럼 우줄렁거리던 기개가 남천방이 된셈이다. 하긴 어중이떠중이들이 약한자들 앞에서나 거센체하다가 만개까지 비명횡사하고 나서는 서리맞은 늘메기들이 다 되여있던 그들이다. 그래도 허길이가 우두머리답게 제꺽 분위기를 파악했다. 가까운 곳에서 누가 초대형 폭죽에 불을 달아 던졌던것이다. 허길이가 돼지멱따는 소리로 고아댔다. 《야잇! 어느 개자식이냐? 죽고싶어 환장한 놈이구나, 야, 썩어문드러질 새끼들아, 폭죽소리도 몰라서 쥐구멍을 찾냐? ×팔것들! 얼른 일어나 추격하지 못해? 빨랑 잡아오란말이야, 빨리!!!》    네댓명되는 졸개들이 저쪽으로 우루르 밀려갔다. 허길이도 공연히 간이 덜렁거렸지만 분노는 분노대로 숫구멍을 올리뚫고있었다. (개새끼, 잡기만 해봐라, 껍질을 벗겨버릴테다.) 별장지기가 허겁지겁 달려나와 굽신거렸다. 《얼른 집안에 들어가십시다. 이게 무슨 숭숭한 개판인지…똥개도 무서워서 얼씬거리지 못하였는데 웬 잡놈이 장난질이야? 어험,제길헐눔의쌔끼…》     허길이는 졸개들이 침입자를 잡아오겠지 하고 서둘러 별장층계를 올랐다. 어데서 누군가 지켜보고있는듯 해서 등곬이 써늘했지만 극력 태연한체 마른 염소기침을 해댔다. 별장지기가 앞장서 올라가서 출입문을 열어젖히고 기다리는 순간, 다시 난데없이 “땅!”하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폭죽소리같지 않았다. 겁이 많은 별장지기 로철령감이 움찔 놀라 주저앉을번하는 순간“아악!”하고 허길이의 비명소리가 어둠을 찢었다. 사람은 이미 거꾸러져 버둥거리고있었다.     폭죽을 터뜨린자를 잡으러갔던 졸개들이 헛탕을 치며 돌아오다가 다시 들리는 총소리에 허망 놀라서 천방지축 별장을 향해 달려왔다. 하늘같이 떠받들던 큰형님이 층계아래에 굴러떨어져 딩굴고 있었다. “총에 맞았다, 병, 병원으로…”그리고는 뒷 말도 잊지 못하고 꿈틀댔다.     현병원급진실에 실려간 허길이는 죽지 않았다. 누군가 렵총에 산탄을 넣어서 한방 먹인것이다. 콩알같은 무철알 몇개가 등허리와 엉덩이 깊숙히 박혀있을뿐이였다. 진짜 총을 구할수도 없었겠지만 산탄을 넣고 쏜것을 보아서는 인명사고까지는 내지 않으려고 한것같았다. 허길에 렵총에 얻어맞고 입원했다는 소식에 현성이 또 한번 들썽했다. (아무래도 총을 쏠바엔 새알같은 무철알이 가슴에 박히게 할것이지 개목숨을 살려줄게 뭐람?)하고 애석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열흘 지나서 허길이가 출원했지만 이번에는 단단히 기가 꺾여서 매일 네거리에서 주민들의 알현을 받던 행사도 집어치웠다. 흉수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 졸개들만 죽어났다. 그러나 작정하고 한 일인지라 파출소에서도 선색을 잡지 못하고 골머리를 앓고있었다. 한달넘게 두문불출하던 허길이는 그냥 굴쥐가 되여서는 체통이 서지 않는다고 다시 시내행차를 시작했다.      그동안 녀자도 가까이 하지 않던 그였던지라 속에서 무엇이 꿈틀댔다. 그동안 묵였던 정욕을 어데다 풀어야 속이 개운할것 같았다. 그날, 저녁무렵 집으로 돌아오던 허길이는 차창밖으로 보지 못했던 녀자애가 눈에 쑥 들어왔다. 이 바닥에는 있음직하 지 않은 미인이였다. 비록 학생모양이였지만 대단한 미색이였다. 허길이는 땅바닥에 떨어져버린 위세를 춰세우려고 졸개들을 시켜 녀자애를 병아리채듯해서 차에 구겨박았다. 녀자애가 발악하며 소리치는 바람에 길가던 사람들이 욱 모여들어 차앞을 가로 막고 웅성거렸다. 아무리 찰도깨비가 판을 치는때라 해도 이건 너무 한일이였다.     사람들이 더 모여들기전에 차를 빼야 했다. 허길이는 무작정 차를 내몰라고 욱다짐했다. “부르릉!”발동을 건 자동차가 무작정 굴러가는데야 비키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시내를 벗어나 별장으로 내뺀 허길이가 녀자애를 침실에 가둬놓고 졸개들더러 경계를 잘 서라고 일렀다. 성난김에 보리방아를 더 잘 찧는다고 이래저래 밸이 꼬인 판에 생생한 풋살구를 한바탕 윽개놓을 작정이였다. 침실에 들어서니 계집애가 바들바들 떨면서도 악을 쓰고있었다. 나이는 열일 곱살밖에 안되련만 악지세였다. 《왜 이래요? 이러면 안돼요? 아저씨, 절 놓아주세요? 네》 《야, 이년아, 오늘 이 허나으리의 세례를 받고나면 더 이뻐질건데 징징거리긴는? 얼른 곱도록 옷이랑 벗고 접대하기나 해》 《아저씨, 저 아직 학생이에요. 저 이제 고중가고 대학공부까지 해야 할 녀자애 예요. 아저씨네 집에도 나만한 딸이 있잖아요? 그런데 어찌…나 아저씨가 누군지 알아요. 이 현성에서 이름이 있는 분이지요? 작년에 우리 학교에 의연금도 보내시고 연설도 하셨지요? 그날 저는 제일 앞에 앉아서 감동받으며 아저씨의 연설을 들었어요. 아저씨는 돈을 많이 버는 목적은 어릴때 자기처럼 돈이없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말씀했지요? 저도 아저씨의 돈으로 지금 장학금이랑 타면서 공부해요. 그리고 늘 고맙게 생각하는데…》 《그래? 거 잘됐구나, 신세는 신세로 갚아야지? 안그래? 오늘 너 운이 좋구나. 이 아저씰 기쁘게 해주면 고중갈 돈 한꺼번에 다 줄게, 이런 호판이 어디있니?네가 하두 곱게 생겨서…우리 멋있게 놀아보자 응?》     허길이는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녀자를 침대에 메꽂았다. 녀자애가 죽기내기로 발버둥치는 바람에 하마트면 사타구니에 일격을 당할번 했다. 성이 독같이 난 허길이는 과일칼을 가지고 녀자애의 옷을 갈갈이 찢어버렸다.  그런데도 계집애가 어찌나 지독스레 발악하는지 주먹으로 관자노리를 답새겨 기절한것을 두어번 짓뭉개고 일어나느라니 녀자애가 이미 숨이 간들거리는것같았다. 속이 철렁했다. 그러나 그는 졸개들을 시켜 녀자 애를 시내병원문앞에 가져다 던지라고 했다. 의사들이 발견하고 구급하느라 했지만 이튿날 아침 녀자애가 그만 죽고말았다.     온시내가 발칵 뒤집혔다. 모두 의분에 치떨며 자원적으로 몇백명이 뭉치여 현정부마당에서 흉수를 잡아내라고 함성을 질렀다. 약한 정어리들은 스스로 떼를지어 큰 물고기처럼 보이게 하는 단결의 본능적인 지혜를 가지고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약세 군체는 단결하여야만 지배자의 큰힘과 맞서서 자신의 권리를 지킬수 있다는 도리를 읽어낼수 있다. 자고로 단결만이 민중의 유일한 무기라는것은 절대진리이다.     녀자애부모들이 성으로 고소하러갔다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허길은 속이 얼어들었다. 범이 없는 골안에서 슬기가 왕질한다고 자그마한 산골현성에서 횡포를 부렸지만 아직 성까지는 연줄을 달지 못했는지라 불방석에 앉은듯 안절부절했다. 자신이 너무 기광을 부려서 죽을날도 앞당긴다는 후회감도 없지 않았다.     그즈음 또 골치거리가 하나 풀리지 않고있었다. 다른 사람이 임대하기로 한 현의 알짜 공장을 강다짐으로 가로채기는 하였지만 허길의 심보를 아는 로동자들이나 기술자들이나 몽땅 파업하고 일하지 않는 바람에 한창 잘나가던 공장에 기계가 돌아가지 않았다. 하루 손해보는 돈이 얼마인지 모른다. 속이 바질바질 탔다.     그렇다고 그많은 사람들을 다 때려죽일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로동자들이 먹을걸 달라고 정부에 항의를 제기하고 있어서 우에 어른들도 난처해하고있었다. 이래저래 밸이 날 일밖에 없는데 하루는 졸개들이 어떤 50대 사내를 잡아다 대령시켰다. 심문 해보니 쌀을 살돈이 없을정도로 쪼들리다가 공장에 가만히 기여들어가 구리덩이를 훔치는것을 잡았다는것이였다.      악이 바친 허길이가 사내를 이리 밟고 저리 차고 하다가 졸개들더러 버릇을 고쳐놓으라고 명령해놓고 자기는 담배를 피우며 인간박해의 짜릿한 쾌감을 맛보았다. 사람이 거의 숨이 넘어가게 되자 거리에 내다버리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일이 크게 벌어지고말았다. 사람을 때려 거의 죽게 만든 졸개들이 혹시 살인송사에나 걸릴것 같아서 채죽지 않은 그를 자동차로 깔아죽이고야 만것이다. 제딴엔 아예 교통사고로 위장한다고 한노릇이 고의치사죄로 백일하에 드러난것이다. 꼬리가 길면 밟 히는 법이고 대명천지에 무법일수 없었다. 졸개들이 하나둘 수갑을 차게 되였다.     이젠 자기의 부귀영화도 끝장이 난것을 예감한 허길이는 늘 찰거마리처럼 들어붙는 애화를 불러냈다. 속이 탄데 풍만한 계집의 몸이나 지근지근 짓밟으서 답답한 속을 풀려고 작심한것이다.홍도술집의 으슥한 단간방, 허길이는 애화가 들어서자마자 껴안고 손짓발짓을 해대기 시작했다. 갓서른, 한껏 무르익고 있는 애화는 체대가 덩실했고 살도 알맞춤 올라서 몽글거리는데 한껏 부푼 젖무덤이 탱탱했다. 우유빛 살갗에 어글어글한 눈은 늘 정염으로 불타는듯해서 마주하기만 해도 마음에 불을 싸지르군 했다. 《아이 참, 왜 이리 덤벼쳐? 남자들이란 다 미친수캐인가봐.》 《야, 너 몇놈이나 접했게? 죽인다? 아침에 술이 있으면 취하는게 장땅이지, 허, 내가 죽게 되면 너도 볼장을 다볼텐데, 미꾸라지는 시궁창에서 살찌는 법이야,》     녀자와 밤은 예나제나 붙은 말이다. 그러나 현대의 밤이 태양광선 이상의 현혹과 광채를 가지고 녀자의 라체를 샅샅이 비춰내는데 반해, 옛날에 밤은 어둠의 장막으로 발을 치고있는 녀자의 모습은 그 이상으로 감싼것이다. 허일이야 알리없겠지만 옛날의 남자는 어떤 특정한 녀자의 얼굴을 아름다움, 육체의 아름다움에 홀렸던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달은 항상 달인것처럼 녀자도 단 하나의 녀자였을것이다.     그들은 어둠속에서 희미한 소리를 듣고 옷냄새를 맡고 머리카락을 대고 요염한 촉감을 손으로 더듬어 느끼고 그래도 밤이 밝으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바의 그런것들을 녀자라고 생각하였으리라. 그렇다면 과연 색기란 무엇일까? 그늘에서 남편에 안겨 애무를 바라는 그 모습에 많은 남자는 말하기 어려운 매혹을 느낀다. 방종하여 노골적인것보다도 억제된 애정을 숨기려해도 숨겨지지 않아서 때로 무의식적으로 말씨나 몸짓끝에 드러나는것이 한층 남자의 마음을 이끈다. 색기라는것은 대게 그런 애정의 뉴앙스이리라. 그러나 허길이에게는 이런 고상한 성애가 인연이 없다. 허길이는  다시 슬슬 손을 넣어 녀자의 몸에서 제일 여리고 깊은 곳을 더듬으며 짜릿한 감각을 맛보느라 암내맡은 둥글이처럼 잔뜩 벌름코를 치켜든다. 《야, 이년아, 자꾸 비틀지 말구 얌전히 있어봐, 그까짓 대학생 남편이면 뭘해! 월급쟁이 오줌 ×끝에 떨어지지, 헤헤, 나 싹 정리하고 애화랑 살가부다!》 《어이구,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 조선족남자들은 무슨 기업을 벌려놓고 먼저 개혁하는게 녀편네더군요. 한달전에 세번째 녀자를 낚았다는걸 누가 몰라서 흥! 이렇게 놀면 되잖아? 갈보들에게 흘리고 다니는 정이 진정이면 얼마나 진정인데? 》 《감정이란 한두번이면 때가 끼는법이긴 하지만 애화는 아니야, 정말이란데, 》 《걷어치워요. 더 젊고 고운년 꼬리치면 또 그말이겠지? 아까 전화하던 계집애 누구야? 또 돈보구 꼬리치는 암여우가 맞지? 》 《풋살구가 입맛은 바꾸지만 새콤거려, 이렇게 들척지근한 애화가 제일이거던 허허허…이민족끼리 만나면 어떻게 좋다던가…히히》     허길은 뒤말은 삼켜버렸다. 대학생남편을 얻어간다고 자기를 배반한 순녀를 생각할때마다 이가 갈리고 그래서 모든 녀자들에게 검은 보복의 심리가 꿈틀거려 돈이라면 감겨드는 쓸개빠진 년들을 무자비하게 죽탕치던 그였으나 이 애화만은 그냥 좋았다. 이 현성에서 가수로도 명성이 뜨르르한 녀자였다. 《결혼이요? 꿀떡을 삼키고있네. 흥, 그래 돈 얼마나 있게?》 《나도 잘 몰라, 아무튼 난 부자가 되였거든, 아따 달걀을 먹어 감각이 좋으면 되지 꼭 어느 암탉이 낳았는가를 알아야겠어? 하긴 이 허길씨가 명성이 와자자하고 우에 어른들도 잘 봐주는 사람이니까 전도가 양양할수밖에 없는거야 》     사람들은 흔히 령험하다고 떠받들면 젠체하면서 자기 주제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게 관습이다. 애화는 사내손을 와락 뽑아버리고 저만치 물러앉아 제자랑에 침이 튕기는줄도 모르는 파렴치한을 다시 건너다 보았다. 지금은 무엇을 좀 하는 사람이 아니래도 배자랑을 하는게 류행인데 저 천만부자는 그냥 마른 미꾸라지다. 낯색은 천생 아프리카족속이고 턱은 족제비같은데 얼굴에서 희한한것은 칼로 대수 찢어놓은것같은 입술새로 보이는 하얀 쥐이발이다.그래서 얼굴전체에 녕악스러운 인상밖에 없다. 제말로는 시궁창에서 미꾸라지가 살이 찐다고 하지만 녀자에게 너무 빠져서 그런지도 그냥 마른 명태를 련상시킨다.     체구도 보잘것없이 왜소하지만 이 시내에서 토패왕인것은 사실이다. 애화는 오래동안 저울질하다가 마음에 감탄표를 찍는척했다. 례의 능갈친 웃음이 입가에 살며시 물리였다. 이 멍청한 남자의 어벌을 다 빼먹을때까지 놓고싶지 않았다. 《좋아요, 그러나 정부노릇은 신물나니까.우리 결…》 《좋았어, 그까짓것, 니 그 비루먹은 당나귀는 돈뭉치나 주어 내쫓으면 그만이지, 아니면 매타작을 해서 승인받으면 다니까, 자 이리와!》     허길이는 족제비가 물동이같은 씨암탉을 물고 늘어지듯이 애화를 안고 늘어졌다. 갑싹한 몸둥이가 들까불때마다 녀자는 웃었다. 도무지 어린애 말타기같았다. 그러나 곧 사준다는 고급승용차를 슬슬 몰고다는 감각에 취했고 어느 골안에 지었다는 별장을 자기 이름으로 해주겠다는데 취해서 웃었다. 그런것을 남자는 제가 잔뜩 만족시켜주어서 킬킬거리는거라고 생각하며 열이 머리끝까지 오른듯 꽥꽥 소리까지 지른다. 《아이, 어서요. 한번 붙으면 찰거마리라니까, 먼저 요기를 좀 하고…나를 준다는 별장을 내눈으로 보고 흐드러지게 만들어줄게요? 어때요?  》     고양이는 때리면 털을 곤두세우고 사람은 칭찬해주면 웃는다. 륙로가 통하지 않으면 수로로 가지. 배가 번져지더라도 구명대가 있기마련, 그런 자식을 찾아봐야지. 이럴땐 그도 쪽나무 널판장역할이야 하겠지. 애화는 이 판에서 악명이 자자한 놈팽 이라는데 치를 떪고있지만 세상의 어떠한 일에도 지망자는 있는법, 돈많은 사람에게 사람들이 잘 모여드는 세상이다. 어떠한 권위도 군자도 그것에 혹하지 않을수 없다. 그것에서 행운아들이 드문히 나오기도 하나 현재의 희극속에 비극이 잉태되여있지 않다고 누가 장담 할수 있는가?    허길이는 장소가 마뜩치 않아서 애화가 여느때같지 않게 달아오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별장에 가서 밤새도록 죽탕쳐보리라 작심하고 애화를 싣고 소골령너머 별장으로 차를 몰게 했다. 산속의 밤은 정욕의 피리를 불기에 너무 안성맞춤이였다. 애화도 공연스레 열정을 내고있었다. 허길은 거마리같이 파고들기는 해도 줄기차게 들뛰는 준마의 체질은  아니였다. 이미 맥은 다빠지고 욕망만 꿈틀대며 애화를 뭉개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불길한 징조이니 급히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비서의 전갈이였다. 한창 몸이 달아 오를가 하는판에 호사다마라 아쉬웠지만 부랴부랴 별장을 나왔다.  운전수를 찾기도 성가시여 직접 핸들을 잡았다. 기분이 말이 아니였다, 그런데도 년은 또 돈을 내라고 쫑알거리며 귀찮게 굴었다. 《야, ×팔년아, 돈을 그만 가졌으면 되였지, 할때다 돈타령이야, 요즘 이 어른이 컨디션이 안좋으니까 그만 까불어, 알았지?》 이렇게 으름장을 놓았지만 잔뜩 버릇을 잘못 굳혀놓은지라 애화는 그런 으름장쯤은 개방귀만치 여기고있었다. 그래서 자꾸 쫑알거렸다. 듣다못해 오른손으로 탁 쥐여 박으려는 순간에 그만 관능적으로 핸들을 홱 돌리고말았다.《아차!》하는 찰나에 차는 이미 벼랑쪽으로 기울어졌다. 차는 보기좋게 곤두박질쳤다. 원래 명이 박복한 놈이 분에 넘치는 복을 누린다고 설쳐대더니 하늘이 굽어본것인지도 모른다. 하기사 좋은 때 그만두고 그만두는 때가 좋은 때이고 말지 않으면 좋지 않은 때가 아닌가.     이튿날 교통찰들이 달려왔을 때는 이미 황천객이 되여진 허길이였다. 죽으면서 혼자가기는 싫었던지 녀자를 어찌나 꽉 껴안았던지 원래는 살수도 있었을 애화도 질식해 죽고말았다. 허길이가 죄값을 치르러 지옥에 간지 며칠안되여 두세급 높은 데서 특별정찰조가 내려 왔다. 범죄자는 제갈길을 스스로 찾어갔지만 오랜 세월을 안하무인으로 한개 현성을 쥐락펴락하도록 내버려둔 유관부문의 인사들의 잔치상도 뒤엎어질수밖에 없었다.    해가 비치면 먼지도 번쩍거린다. 그러나 먼지는 어디까지나 먼지일뿐 금싸락은 아닌것이다. 먼지가 한때 번쩍거리게 한것이 누구들이였던가? 허도깨비는 저승사작에게 덜미를 잡혀갔지만 그 후유증은 누가 책임져야 할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마음가짐을 하는것을 반성이라할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것은 변화이지만 잘못된 환경에 적응하는것은 흐린물에서 미꾸라지가 룡트림하는격이다. 외곡된 사고와 행동과 인식이 바른 방향으로 전환되면 개과천선이다. 해당된 자들이 반성하는지 어쩌는지 알배없이 주민들은 거리에서 꽹과리를 울리며《해방》의 날을 경축하였다.     허길은 병든시대가 낳은 괴태이다. 인생의 갈림길어구에,이라고 쓴 두개의 패말을 박아놓고 길손들에게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것으로는 생활의 정도를 가리게 할수 없다. 생활을 흔히 교과서라고 하지만 교과서처럼 그렇게 명랑한 참고답안이 미리 짜여져있는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사람은 욕망의 유혹으로 령혼에 상처를 입고나서 참회한다. 그러나 그 상처를 낫게 할 약초는 인생마당에서 자라지 않는다. 그리하여《너는 욕망의 골짜기에 굴러떨어진 인간이거늘 지옥으로 가거라.》하고 말한다면 억울하다고 하리라. 생활이 엄혹함을 어쩌리오. 오만가지 변괴가 마음에서 나오거늘 저승에만 귀신이 많은줄 알고 인간세상에 요괴가 많은줄은 모르더라. 기실 허길이의 인생궤적은 새옹지마도 아니고 사필귀정으로서 스스로 “도깨비의 향연”, 아니 악마의 최후의 만찬을 앞당겼을뿐 언녕 가야 할데로 간것이다. 그러한 악인들은 얼마나 될가? 아마도 해바라기 밭에  귀찮은 딱정벌레처럼 자꾸자꾸 까나고있을것이다.                                                  2008 년 6월 20일                                                                                                                        
109    (소설)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거라 댓글:  조회:9858  추천:1  2012-11-13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거라 !                                                   최 균 선   《엄마, 내 눈, 내 눈, 보이지 않아요》    그때까지 실실상태에 있던 리미가 정신을 차리고 하는 첫마디는 그처럼 공포에 절어있었고 처절했다. 이제 겨우 열여섯살, 아직 활짝 피려면 몇년이 지나야 한다. 그는 병상에서 몸부림치고있었다. 마치 인간의 냄새가 없는 어디에 숨어버리고 싶어 하는 모습이였다.     그러나 그의 동작이래야 손가락이나 움직일 정도였다. 겨우 뜨고있는 오른쪽 눈에서《공포》두글자만 흘러넘쳤다. 한쪽눈은 며칠전에 안구축출수술을 하여 붕대가 감겨있었다.     《얘야, 무서워 말아, 그놈은 다시 네앞에 나나타날수 없게 되였다. 경찰이 잡아갔어. 좀 진정해다오, 이것아, 응》     리미는 방대춘이라는 악마의 이름도 떠올리기를 꺼려했다.     궂은비가 내리리는 그날 밤은 리미의 인생에 악몽같은 불행을 덮씌운 날이였다. 중학교 3학년생인 리미가 자습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데 한마을에 사는 안면있는 방대춘이란 사나이가 마주쳐왔다.   《리미야, 너 아버지 부탁을 받고 널 데리러 왔다.》   《우리 아버지는요?》   《얘, 긴말할 시간이 없다. 늬들 아버지랑 엄마랑은 지금 마을뒤산에 숨어있단다. 집에가면 변을 당한다. 너 외삼촌이 일을 저질러서 지금 사람들이 너희들 식구들을 도륙낸다고 벼르고있다. 그래서 늬들…》     나이보다 숙성하고 령리한 리미는 반신반의하다가 아버지의 장기친구이기도 한 이웃아저씨인지라 방대춘의 모터찌클뒤좌석에 고분고분 올라탔다. 시내를 벗어난 모터찌클은 리미네 마을을 에돌아 곧추 뒤산으로 치달았다. 방태춘이는 수림이 우거진 숲속에서 모터찌클을 세우고 리미를 안아내렸다.     산속은 쥐죽은듯이 적막했다. 멀지 않은 곳에 파먹고 내버린 석탄굴이 악마의 아구리처럼 공포를 자아낼뿐이다.   《리미야, 얼른 들어가자, 저 굴안에서 기다리고 있을거야》    주밋주밋하며 굴어귀에 다가서는데 방태춘이가 갑자기 리미의 길다란 머리채를 휘여잡고 씨벌거렸다.《들어갓, 여기서 오늘 밤 나와 함께 노는거다.》    방금전까지 그렇게 온화하던 방태춘의 목소리는 몸서리치게 랭랭했다. 그제야 리미는 펄쩍 놀랐다. 이 무인산중에서 반항해봤대야 힘이 약한 그로서는 소용없음을 직감한 리미는 빌고들기로 작정했다.   《아저씨, 그게 무슨 말인가요, 울아버지, 엄마랑은요??》   《흐흐흐, 너 그렇게 손쉽게 얼리워 올줄은 몰랐는걸, 맹랑한 계집애라구야. 잔말 말고 시키는대로 하는거다. 알았지?》    리미는 그제야 사태의 엄중성을 깨달았다. 반항했대야 이 산중에서 구원을 받을수 없고 야수의 성깔만 건드릴것이니 책략을 바꾸기로 작심했다.   《방아저씨, 아저씨는 울아버지의 좋은 친구잖아요, 난 이제까지 아저씨로 대접했지요? 난 아저씨를 존경해요, 아저씨도 알다시피 난 이제 열여섯살밖에 안되고 아직 학생이예요, 이웃집 아저씨로서 어쩜 딸같은 저의 일생을 망칠수 있나요? 아저씨에게 이렇게 무릅꿇고 빌게요 네?》     그러나 진심으로 비는 그의 가련한 목소리가 야수의 심통을 찔렀는지 대답이 세괃은 주먹세례였다.  《아저씨, 성나면 마음대로 때리세요, 그러나…이제 이틀후이면 고중입학시험을 쳐요. 놓아줄거죠, 네? 아저씨,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절대 말하지 않을게요》   《다잡아 놓은 고기를 강물에 다시 넣는 바보인줄 아니? 헝, 그리고 날 속여넘기려구?》    방대춘은 징그럽게 웃으며 리미의 머리채를 홱 잡아채여 뒤로 번져놓았다. 리미는 이것이 근근히 악몽의 시작이라는것을 미처 몰랐다. 그는 이 악마가 자기를 살려두지 않을것이라고 직감했다. 더는 빌고싶지 않았지만 어머니만은 해치지 말아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역시 한바탕 두들겨맞고 말았다.     방대춘은 전지불로 리미의 얼굴을 찬찬히 비추어보았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놓고 양공질하다가 천천히 만찬을 시작하듯이 비둘기같은 소녀애를 오래 애먹이다고 윽개여놓을 심산이였다,   《오늘은 네가 내손에 죽고 래일은 이 자리에서 네에미를 죽일거다. 그리고 네애비도 역시 내손에 튀를 해치울거다. 무섭지? 히히히》     리미로서는 방대춘이가 왜 이렇게 악독한 마귀로 변했는지 알수 없었다.   《어쨌든 당신이 나를 죽일것은 알고있어요. 그러나 죽기전에 다시 한번 빌어요. 나를 마음대로 하고 죽이겠으면 죽여요. 그러나 우리 어머니만은 살려둬요. 네?!》    속담에 죽어가는 새의 울음소리 애처롭고 죽어가는 사람의 유언은 선량하다는데 이미 인성을 잃은 이 인간은 그런 속담의 의미도 모르고 있는것인가, 아니면 최저의 인간성마저 상실하고 광란하는것일가?  《이 계집애야, 죽는 목숨에 무슨 비는게 그리 많니? 손이 발이 되게 빌어봐라. 내가 이미 인육만찬을 계획한지 오래고 오래거든. 하하하…그러나 한가지만은 인도주의적으로 답복하지. 내가 너를 가지고 논다음 여러가지 방법으로 죽일수 있다. 돌로 짓찧어 죽일수도 있고 칼로 얼겅채를 만들수도 있지. 에ㅡ또 목을 졸라죽일수도 있고 목을 달아맬수도 있는데 어느 방법으로 죽고싶으냐? 네가 해달라는대로 하자꾸나, 응? 히히히》    한참 히히덕거리고난 방대춘은 허리춤에서 비닐바오래기를 꺼내더니 리미를 친친 동여매여놓고는 굴밖으로 나가버렸다. 온밤을 대성통곡하며《사람 살려요》를 수백번이나 부르는 사이에 날이 밝았고 어머니가 자기처럼 랍치되여 올가봐 근심하며 긴 하루해를 보냈다. 눈물도 이미 다 말라버렸고 소리칠맥도 없었다. 그는 땅바닥에 옆 구리가 터진 보리자루마냥 쓰러지고말았다.    인기척에 깨고보니 사위가 캄캄했다. 다시 무서움에 발발 떨고있는데 전지불빛이 번쩍이더니 방대춘이가 킬킬거리며 다시 나타났다.  《얘, 나 온 하루 너의 어머니랑, 아버지랑 함께 너를 찾아다녔다. 애두, 참 어째 도망가지 못하고 아직까지 여기있니? 그래 어떻게 죽을것인가 결정했니?》     리미는 그만 두눈을 꽉 감아버렸다. 숨도 쉴수 없었다. 그 흔한 소녀의 울음도 터지지 않았다. 방대춘이 라이타를 켜더니 얼구을 한번 비춰보고 머리칼에 갖다대였 다. 그리고 다시 킬킬거렸다.  《죽기전에 머리를 지져주는거다. 하, 나 기실 마음이 착한 사람이야, 일이 이 지경이 되였으니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감옥밥을 먹게 되지, 그러니 네 나이가 아깝지만 늬 그 잘난 에미대신 먼저 죽어야 하는거다.날 원망하지도 말고 원혼이 되여서 날 찾지도 말아라, 알았니? 그리고 내가 선택해 주지, 돌로 쳐죽여야 하겠다. 아프긴 하겠지만 억세게 참으면 될거다. 너 혁명가들의 견강한 의지를 좋아하지? 안그래? 응, 자꾸 몸을 떠는걸 보니 추운 모양이구나, 좀 있다가 널 잘 덥혀줄게 기다려라.》    리미는 죽음보다 더 몸서리치게 하는 방대춘의 악마상을 보며 가녀린 몸을 잔뜩 옹소그리며 사시나무 떨듯 부르르 떨었다. 방대춘은 얼마나 큰지 모를 땅땅한 물건으로 리미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리고 온 몸 아래위를 미친듯이 짓찧기시작했다. 리미는 빌엄두도 못내고 고스란히 돌다듬이질 당하며 매한번 내리칠때마다 이를 악물고 하나, 둘, 셋…하고 세기 시작했다.      다섯개를 넘으면 그만두고 딴짓을 하려니 하고 속으로 빌면서 비명을 지르는데 악마는 히덕거리며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열개를 넘으면 그만 두려니하고 요행을 바랐는데 스믈세번이나 내리치고서야 손을 멈추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내리친 돌은 이리저리 뒹구는 리미의 오른 눈을 사정없이 짓쫗아놓았다. 리미는 까무라치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먼 꿈속에서처럼 징그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해놓고 하니 정말 딴멋인데. 히히히, 먼저 산매장을 해주지. 래일까지 죽지 않으면 다시 놀아줄게,》    뒤이어 크고 리미는 작은 돌들이 몸우에 하나둘 놓이는 감을 느꼈다. 그러나 죽은체 하기로 작심하고 입을 악물었다. 정신이 점점 가물가물해졌다. (엄마는 왜 아직도 날 깨우지 않을가? 오늘 고중시험을 치는 날인데…아니야, 내가 어제밤에 산 매장을 당하였지 않았나…)    이윽고 리미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꿈인지 생시인지 알수 없었다. 한눈은 죽어라 고 아파나는데 한눈에 희미한 광선이 비쳐들었던것이다. 그러나 한눈이 어찌나 아파나나는지 돌에 머리를 쳐박고 죽고싶었다. (엄마, 왜 날 부르지 않나요? 오늘 입학시 험을 치는줄 번연히 알면서두요, 엄마, 흑흑흑)…    참을수 없는 동통이 리미의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그는 집이 아니라 어둠컴컴한 굴안의 축축한 바닥에 누워있었고 아래도리가 허전해진 감이 들었다, 한치앞도 보이지 않았다. 낮인가? 밤인가? 모진 아픔속에도 사유는 그냥 멋대로 달렸는지 생각이 났다. 자기가 크고 작은 돌무지속에 매장당하여있다는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방대춘 이라는 악마의 징그러운 웃음소리가 귀전을 때리는듯 하였다.     아무도 들어올리 없는 후미진 산속의 페갱된 탄굴에 묻혀버린것이다. 그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수 없었다. 갑자기 엄마가 악을 쓰며 끌려들어오는 환각에 다시 온몸을 떨며 《아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입속에 가득찼던 흙모래 확 뿜겨나 가는것 같았다. (그래, 그놈이 오기전에 어떻게든 살아서 도망치자. 엄마가 나처럼 되여서는 절대  안된다. 그 악마를 나 죽어도 용서하지 않을거다. 지옥에 가서라도 복수하고야 말테다.)    리미는 한동안 꼼짝않고 누워서 힘을 기르고나서 어떻게 움직여보려고 마음먹고 아픔을 씹어삼키며 마음을 걷잡았다. 한참후 리미는 두발을 움직여 보았다. 발목이 꽁꽁 묶여있는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그는 두다리를 있는 힘껏 버둥거려보았다. 맥이 진하면 좀 쉬고 쉬고나서 다시 용을 썼다. 그저 악마가 갑자기 들이닥치지 말기를 빌면서 젖먹던 힘까지 다 내여 몸을 비틀며 두다리를 버둑거렸다.    몸우에 돌들이 더러 굴러떨어지는것 같았으나 무거운 돌덩이들이 그냥 가슴과 배를 지지눌러서 숨이 가빴다. 당장 심장이 튀여나오고 곧 죽어버릴것같기도 하였다. 리미는 귀동냥으로 들은 말들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방대춘이란 놈은 무슨 죄를 범해서인지 감옥에 오래동안 있었고 자식도 없었다. 그러나 리미네는 그를 업신여기지 않았고 잘 대해주었다.     그자는 리미의 엄마가 꾸리는 상점에서 맥주도 마셨고 아버지와 함께 늘 장기도 두곤 하였다. 그가 세맡은 집은 3층이여서 아버지는 그의 모터찌클을 리미네 집앞에 세워두게 하였다. 잡혀온 그날 밤에도 이런 사연들을 그자에게 말한것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한 리미는 절대 죽어서는 안된다고 이를 갈았다. 리미는 그자가 가느란 비닐오래기로 두팔을 묶었다는 기억이 났다. 그는 앞으로 묶인 두 손목을 놀려보았다. 두팔목은 이미 마비되여서 아무런 감각도 없는듯 싶었다. (이 악마같 은 놈아, 제발 다시 나타나지만 말아다오. 난 어떻게 하나 살아서 나가고 나가서 널 복수할테다.)     그는 갑자기 배가 몹시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맥을 버릴수는 없었다. 죽어도 엄마앞에서 죽으면서 그자의 악심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가 곰곰히 생각하며 살펴보니 돌들로 매장하다보니 숨쉴틈이 있었고 공간도 조금 있었다. 리미는 안 깐힘을 써서 두팔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한참 쉬고 나서 이발로 묶은 신끈의 매 듭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맥이 진했다. 다시 졸음이 오기시작했다.    얼마후 다시 깨여났다. 그는 자기가 자서는 안된다는것을 알았다. 두발을 다시 버둥거렸다. 그러나 몸우에 쌓인 돌들은 찰떡덩이기나 한것처럼 끄떡도 없었다. 그렇 게 자꾸 버둥거리다가 아픔과 기아와 기진맥진이 한꺼번에 몰려와 기혼하고말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된것은 몸우에서 무엇인지 작은 생명이 기어다니며 찍직거리는것 같았다. 그러다가 아래배 살가죽이 찢기는듯 하였다. 쥐다. 쥐가 그를 물어뜯고 있는것이다. 리미는 정신이 펄쩍 들었다. 리미가 평소에 제일 무서워하는것이 쥐였다. (아이, 엄마는 어디에 있을가? 내가 이렇게 죽게 된거도 모르고 있을거야, 아니 엄마 아버지는 지금 사처로 나를 찾아다닐거다.)    엄마생각이 나자 엄마까지 여기에 잡아다가 죽이겠다던 방대춘의 살기뜬 목소리가 방불히 귀전을 때리는것 같았다. (엄마야, 제발 그놈에게 얼리우지마. 나 죽는것 괜찮아. 엄마가 죽으면 아버지도 잇따라 죽을수도 있어, 제발 여기 오지마, 엄마야,) 리미는 목이터져라 단말마적으로 소리를 쳤다.  《엄마, 엄마, 어엄마아 ㅡ》    리미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치자 배우에서 꾸물대던 쥐가 어데론가 내빼는것 같았다. 그러자 가버린 쥐가 아쉬웠다. 그래도 이 지옥같은 굴속에서 동무해주는것은 이 쥐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쥐야, 쥐야, 가지마, 어서 오렴, 나 물어뜯겨도 괜찮아 쥐야. 다시 올라와!》   리미는 마치 정다운 친구와 속삭이듯 몇번이고 쥐와 속삭였다. 그는 다시 생각을 달렸다. (며칠이나 지났을가? 고중시험은 언녕 끝났을거야,) 이렇게 생각이 엉뚱한데로 굴러가자 머리를 흔들었다. (시험은 명년에 다시 치면 되는거다, 어떻게든 살 아남으면 모든것이 잘 될거다. 엄마, 그 놈은 우리와 무슨 원쑤를 졌기에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구나요? 난 그놈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머리도 숙이지도 않았어요.)     …그가 다시 깨여났을 때 진정 빛을 보았다. 리미는 환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빛은 하늘에서 해가 선물하는 그런 밝디 밝은 양광임에 틀림없었다. 그가 눈을 거의 뜨지 않고있었지만 광명은 그의 눈속으로, 마음속으로 비쳐들어왔던것이다. 리미는 두발을 움직여 보았다. 너무너무 가벼웠다.    눈을 떠보았다. 그러나 모든것이 희미할뿐이였다. ( 이 악마야, 난 네놈을 다시 보고싶지 않다. 물러가, 물러가란말이야, 아악, 이 악마야) 리미는 방대춘이라놈이 말처럼 다시 찾아와서 다시 돌로 짓찧어놓고 마구 뭉개놓으려 전지불을 비추는것으로 알았다. 그는 울지 않았다. (한쪽눈은 그놈이 망가놓았지. 인제 아프지도 않구나. 나 이번엔 어떻게든 그놈을 가만놔두지 않을거다. 그때 정신을 잃었으니 말이지 네놈을 마구 물어뜯어 죽이거다. 그래 덤벼봐라)    《리미야, 리미야, 무서워마, 여긴 병원이다. 나 엄마다, 엄마란 말이다.》     리미는 엄마의 따스한 손이 자기 두손을 꼭 쥐여잡아주며 자꾸 엄마라고 말하자 저으기 마음이 진정되였다.     《엄마야, 나 정말 살아난거야, 엄마, 이게 천당이여서 다시 엄말 보는거 아니야? 아버지는? 아버지는 왜 날 안아주지 않는거지,》    정말 아버지의 두툼한 손이 두볼을 쓰담는것을 느끼며 리미는 다시 생각은 더 듬어보았다.…며칠이나 흘렀는지 갑자기 웅성웅성하는 말소리가 들리고 한두개 아닌 전지불이 굴속을 환하게 비추면 돌틈사이에도 비쳐들었다. 엄마의 통곡소리가 터지고 여러 사람들이 몸우에 돌을 치우고있었다. 그리고 아버지 등같은데 업히워 오래오래 굴속을 나가고있었다. 그리고 자동차에 눕혀지고…그 다음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리미의 어머니는 이 작은 현성에서 이름짜한 미인이였다. 딸이 실종된후 친척친 우들을 다 동원하여 찾아다녔지만 며칠가도 찾지못하자 공안국에 제보하였다. 그동안 리미의 내외와 함께 안달이 난 모습으로 동분서주하던 방대춘이가 갑자기 들이 닥친 경찰들에게 덜미를 잡혀 끌려갔다.    방씨는 아닌보살하며 억울하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다가 이틀밤이나 잠을 자지 못해서 헛소리를 쳤는지 말문을 열기시작했다. 그리고 경찰에게 끌려서 자기가 리미를 생매장한 굴속을 가리키고는 땅에 풀썩 주저앉았다. 경찰이 아무리 목덜미를 잡아 추켜들었지만 소아마비환자처럼 다리를 펴지 못하였다. 그러나 얼마후 기적같이 살아있은 리미가 리청수의 등에 업혀나오자 벌떡 일어나서 달려나갈듯한 태세를 취하다가 경찰이 확 잡아채는 바람에 콩마대처럼 쿵하고 뒤로 자빠져버렸다.     그는 이런 인간망나니였다. 리미의 어머니는 딸이 실종되자 대뜸 방대춘이를 의심했다. 이웃집에 김연이가 그날 저녁 학교에서 같이 나오는데 방대춘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리미를 태우고 갔다고 말해주었던것이다. 리미어머니는 딸이 필경 인신 매매하는 놈팽이들에 잡혀 먼곳에 팔려갔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아하였다.    방대춘은 감옥에 갔다온 사람치고 무척 공순해 보였고 마음이 활달해 보였다. 다만 게으르고 거짓말을 곧잘하는 결점이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던터였다. 더구나 리미가 없어졌다고 리미어머니가 울며불며 달아다니자 누구보다 안타까워  하면서 여기저기 뛰여다닌 사람도 방대춘이였던것이다.     리미아버지를 따라 이웃도시에까지 찾아갔고 리미의 부모가 통곡하면 같이 가슴을 치며 방성대곡하며 이를 뿌득뿌득 갈기까지 한 사람이였다. 그래서 의심이 바람에 실려간 구름처럼 가시였다.     그렇게 사흘이나 지나갔다. 리미를 구해냈을 때는 왼쪽 안구가 외상성파렬로 영못쓰게 되였다. 얼굴은 돌에 짓찟겨 엉망이 된데다가 일부 피부가 죽어서 썩어들기 시작했다. 회음부도 썩어들기 시작했고 온몸이 딩딩 붓겨있었다. 그야말로 무슨 힘이 그를 살아남게 했는데 의사들도 도리머리를 저었다.     의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리미의 왼쪾눈알을 축출해냈다. 그대로 두다간 생명도 구할수 없다는 확진이 나왔던것이다. 《엄마, 아빠, 울지마요, 죽었다 살아났는데 난 현실을 접수할 마음준비가 되여 있었어요. 금후 어떻게든 살아갈수 있겠지요. 흐흑!나 그놈이 총살당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지옥에 가서라도 복수할거예요. 두고보세요. 내가 살아남은 리유가 바로 그 한가지예요.》그는 말을 채맺지도 못하고 홱 돌아누워 눈물을 줄줄 흘렸다.…  《오냐,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거라,》                                                                       2007년 8월 7일
108    (소설) 6호병실 진찰일지 댓글:  조회:10074  추천:1  2012-11-02
                                          6호병실 진찰일지                                                                                           최 균 선    H시 정신병원의 신경과 주치의사인 복경준씨는 원장의 지시대로 6호병실의 환자들이 출원할수 있는가를 확진하려고 준비했다. 여러가지로 진찰하려고 하다가 먼저 대화형식으로 정신상태를 알아본후 결정하기로 작심했다.     점심에 한잔 하자는 친구의 초청도 사절하고 마음을 다잡고 조수를 데리고 6호병실로 들어갔다. 환자들에게 무서운 의사로 소문난 복의사가 들어서자 모두 부들부들 떨었다. 복의사는 우거지상을 하고선 환자들이 가련했지만 례의 그 미묘한 미소를 지어내며 대화진찰을 시작했다.  ㅡ 1호 (미용사), 당신의 직업은 무엇이였던가요?  ㅡ 예, 제말인가요, 예예, 저는 자연산을 인조상품으로 개조하는 일을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말하자면 녀자들을 성형수술을 해주는 사람입니다. 예,  ㅡ 그러니까 가짜미인들을 제조한단말인가?     ㅡ 예, 녀자들의 얼굴에 바람벽을 바르듯 온갖 조합료을 발라서 주름살을 없애는듯 하고  필요한 곳을 째거나 여기것을 저기에 옮기거나 작은것을 크게 하거나 큰것을 알맞춤하게 하거나 납작하고 꺼진것은 불룩하게 돋구거나 처진것을 춰올리거나 등등 수정을 하여 본인도 몰라볼만큼의 미인을 제조해냅니다. 히히히…   ㅡ 그래, 전국적으로 가짜를 타격하는 운동을 벌리고 있다는것을 알면서도 그런 얄팍한 짓거리를 했단말인가? 아무리 본인들이 원했다기로, ㅡ 알지요, 알구말구요, 하지만 저의 상품은《인권백피서》의 보호를 받고있기에 법에 걸릴 념려는 없구먼요. 예  그렇습니다용. 저는 전문 녀자들의 가슴을 미용하다가 더 큰 돈을 벌려고 얼굴성형수술을 하기시작했는데 재수없이 첫사람으로… ㅡ 그래서 가슴성형술의 방법을 아는가? ㅡ 알다뿐이요, 최근에 류행된 선진적인 방법으로는  다음같은… ㅡ 그럼 어디 옳게 말하는지 소개해보시오 ㅡ 자체지방으로 풍만하게 하는법인데 자신의 조직을 취하여 흉부자체의 지방조직과 자동적으로 융합되게 하여 하나의 통일체를 형성하게 합니다요. 이 방법은 간단하고 유효한 방법인데 절대적으로 안전합니다.예 맞구요. 예예, 맞습니다용. ㅡ 다음 방법이 있소? ㅡ있습니더, 있구말구요 주사를 놓아 불구기도 하고 보충해서 메우는 방법, 물리적으로 확대하는 방법 등 실용적인 방법이 많습니다예. 그리고 수술한후 아주 질감이 나고 관상용이나 애무용으로도 그저 그만인데요 ㅡ보기보다는 올똘한데 정신이상이 생기게 된 원인은 무엇이요? ㅡ 글쎄 모르겠습니다. 다만 할빈에서 이마가 좁고 얼굴이 넓은 한 녀자의 관자노리에 머리칼을 넣어 보기좋게 만들려고 했는데 그만 사달이 생겼습니다. 그 녀자가 망태기된 얼굴을 들고 책임지라고 달려들 때 너무 놀라서 그랬던지… 복의사는 병력서를 다시 훓어보았다. 원적이 할빈이 옳았다. 환자가 자기 잘못을 잘 기억하고있는것을 보아서 출원시켜도 될것같았다. ㅡ 당신은 량심이 검어서 그렇지 정신상태는 정상적이요. 하긴 가짜천지가 된게 당신 한사람의 잘못은 아니니까. 래일 출원하시오. 다시 그런 가짜 상품을 제조하는가 마는가 하는것은 당신의 자유요. 그러나 인명사고를 내는 날엔 여기 정신병원이 아니라 선선한 구들에 들어가 앉아야 할것이요.     복경준의사는 지금 정신병주치의사이지만 성형수술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던차여서 외항은 아니였다. 그러나 미용이 시대조류로 되여진 이 시대, 그것에 돈벌이에서 한몫 잡을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도 따르기에 생각을 접고있는터이다. 사실 한국연예 인들처럼 한사람건너 코마루를 높이고 지방을 빼고 얼굴모양을 바꾸는 등 “인조미녀”가 대량 생산되지만 사이비한 거짓말도 많고 사건도 많이 빚어졌다.     불완전한 통계에 근거하면 근10여년래 전국적으로 발생한 미용이 오히려 얼굴을 망태기로 만든 사건이 루계로 20여만건이 되며 상한사람이 30여만에 달한다. 광고에 턱없는 과대와 기편성이 없다고 누가 말할수 있는가? 그러나 “외모지상주의”열 풍은 갈수록 세차게 불어치고있다. 하긴 녀자들로 말하면 미모가 가장 믿음성있는 추천장이 되니까 그럴법도 하다. 외모가 일자리찾기와 수입과 전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누가말려낸단 말인가? 한국에는 “귀가 잘생긴 거렁뱅이는 있어도 코가 아름다운 거렁뱅이는 찾을수 없다”는 말이 류행되는만큼 스스로 “성형왕국”라고 교오하고있는판이다. 복의사는 곁길로 빠지는 잡생각을 털어버리고 진찰에 몰두하기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진찰일지를 펼쳐들었다. ㅡ 그럼 2호 (경제연구원) ㅡ 예, 여기 있습니다. ㅡ 당신의 직업은 무엇이요? ㅡ 예 워낙은 학문을 연구했습니다. ㅡ 학문? 무슨 학문을 연구했는데? ㅡ 금전으로 더 합법적이고 더욱 잔혹하고 더욱 공개적이고 더욱 은페적으로 사람을 못살게 굴어서 나중에 귀신으로 변화게 하는 첨단적학문이지요, 예, 헤헤헤… 아쉽게도 정신이 오락가라하서면부터 연구가 중단됐습니다. 복의사는 웃음이 튀여나오는것을 참고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보았다. 농촌에서는 엉터리리론을 풀거나 궤변을 늘여놓으면 개똥철학을 푼다고 비꼰다. 철학의 황혼기에 들어선 지금 개똥철학을 풀기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냥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신 개똥경제학을 역설하는 사람들이 많아진것만은 사실이다. ㅡ당신의 그 개똥경제학에 관한 실례를 들어보시오. ㅡ예, 많이 알지요, 그럼 서술의 편리를 위해 객관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아래《개똥경제학》의 사이비리론의 례를 들어본다. 자산위원회주임 ×××씨는 《석유, 전신, 전력 등 업종들에는 거의 롱단이 없다. 기업이 국가의것이고 또 인민들의것으로서 얻은 리익은 전부 인민을 위한것이다.》라고 하였다. 동성제약 집단총재 ×××는“중국의약풍운방” 장려대회에서《약품을 만두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약값은 비싼것이 아니다. 약값을 내리는것을 동의하지 않는다.》하고 유명짜한“만두론”을 제기하여 유명하게 된바있다. 북경화운방산동사장 임××은 “2005년 제1차 중국방산가격평가회”에서《상품 주택에서 마땅히 폭리를 얻어야 한다. 폭리획득은 끝까지 밀고나가야 한다.》고 헛소리를 줴치자 달리깨비 춤추면 베졸배도 춤춘다고 어떤《정영학자》들은 주택값이 비등하는것을 억제시킬 량책을 내놓을 대신《시장경제이므로 부동산거품현상이란 말을 믿지 말아야 한다.》《주택값이 폭등 하는것은 정상적현상이다. 시장경제가 아닌가?》,《주택값이 폭등하는것은 좋은 현상이다. 이는 주민들의 수입이 많아졌다는것 을 설명한다.》등 궤변으로 백성들을 우롱하였다. 《중국의 빈부차이는 아직도 크지 않다. 차이가 클수록 사회가 진보한다.》는 유론도 꺼리낌없이 내놓는가 하면  일컬어 려××라는《경제학자》는《8억 농민과 정리실업로동자들은 중국의 거대한 재부이다. 그들의 수고로움이 없다면 어찌 소수사람들의 향락이 있을수 있겠는가? 그들의 존재와 현상태를 유지하는것은 아주 필요하다.》는 고명한 론단을 내놓아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개혁리익에서 가장 손해를 본 사람들은 령도간부들이고 다음은 로동자들이고 세번째는 농민들이다》《현재 대학학비가 많은것이 아니라 적다.》고 한 자들도 있다. 전국인대 농업,농촌위원회위원 임××은 《기점이 너무 높으면 저수입자들이 납세 자로 되는 영예를 박탈하는것과 같다.》라고 하면서 고양이 쥐생각을 하고 악어의 눈물을 흘리고있다. 이런 언론들은 비록 탐관오리들과 부패분자들의 언론은 아니고 식후에 이발을 쑤시며 한담하듯 생각머리없이 줴치는 망언들이라 류의할 가치도 없지만 사회적으로는 아주 악렬한 영향을 조성하고있다. 이런《학자》들을 부패관원과 부패한 간상배들과 한바지가달안에서 춤추는 부패학자들이라 한다.《정영》들은“권위”라는 외투를 걸치고 사회진실을 외곡하고 민중을 오도하는 패류들이라고 질타하고있다. 웃물이 흐렸는데 아래물이 맑을소냐? 어데서였던지 코를 틀어쥐지 않고서는 끝까지 읽을수 없었던 문장을 연구한적이 있다. 이야기의 경개를 간추리면 다음같다.   해내외에 십분 명망있는 한 주류경제학자에게 출중한 두제자가 있었는데 비상히 총명하고 전도유망한 청년들이여서 교수는 은근히 양양자득하고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경제학관점을 자주 발표하였는데 례컨대《중국현대화의 표지는 북경대학교수들이 고급자가용과 별장을 가지는것》이라거나《수재(水災)는 중국의 경제를 1.35%증장시켰다.》거나《부패와 회뢰는 개혁진행에 윤활제이다.》라는 등등 불세출의 “리론”들이다. 이 글은 누군가의 회색유모아일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오도하는 상술한 경제론리야말로 더구나 검은유모아가 아닐수 없다. 이런 개똥경제학은 아니 배우기만 못하고 그렇게《학자》가 된자들은 학술에 먹칠하고있다. 그들이 영예의 후광을 쓰고 도처에서 일인자연하며 망발하고있는데 개똥경제학의 입문도 닦지 못한 자기로서는 이런 불세출의 위대한《학자님》들이라 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ㅡ 음, 알겠소. 당신도 래일 출원해서 제갈대로 가시오. 나쁜 연구는 하지말고, 3호, (가짜약판매업자) ㅡ 당신은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요? ㅡ 아!옛, 저는 전문“화학무기”를 팔았습니다요. 다른 사람의 생명을 걸고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가 들통이 나서 잡히게 되였는데 그만 혼비백산하면서… ㅡ 주로 무슨 가짜약을 만들었소? ㅡ 예, 허리와 다리아픈데 붙이는 고약을 만들었습니다. 약명은 “풍습골자고(风湿骨刺膏)”라는겐데 잘 팔렸습니다요. ㅡ주로 무슨 약재를 썼소? 약재이름을 알기나 하는가? ㅡ예, 잘 알지유,시장에서 홍화(红花), 당귀(当归), 천궁(川穹), 익모초(益母草), 우석(牛夕)등 십여종의 중초약과 푸얼민(扑尔敏)등 몇가지 서약과 제남에서 구입한 화약품과 조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일정기간 동통은 감소할수 있으나 병근은 근본 치료하지 못하기에 차차 장사가 잘안되여서…  ㅡ 아따, 닥치시오. 당신같은 어중이떠중이들이 있길래 우리 생명기사들의 진지인 의료계통의 형상이 망태기가 되였단 말이요. 당신 안되겠소. 저쪽에 물러서시오. 자, 다음은? 4호(류리걸식자), 당신은 무엇때문에 거렁뱅이질 한것이요?     ㅡ 예, 자선을 베풀아주십시오. 저는 빈궁해서 비럭질하였습지요.     ㅡ 모두가 잘 살려고 버둥거리는판에 빈궁이란게 무언데?     ㅡ 성실한 로동자가 응당한 보수를 받고 살자면 가정살림이 팍팍한데 항간에서는 빈궁하다고 말하지요.     ㅡ 그게 말이 되는가? 그래 어디서 아이를 납치해다 다리를 분질러 병신을 만들어놓고 돈을 벌었다는거요? 야차같은 놈팽이군.     ㅡ 아니, 아니요, 나 그런짓은 하지 않고 그저 일하기 싫어서…장애자로 가장하고 돈비럭질을 하다가 한번은…     복의사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끼가 비껴갔다. 일전에 보았던 일이 떠올랐기때문이다. 한번은 서시장을 지나가다가 발에 나무판대기를 쳐맨 한 중년남자가 돈을 구걸하고있는것을 보았는데 민망할정도로 불쌍해보였다. 그런데 의사의 본능으로 자세히 관찰해보니 불구자같지 않았다. 비록 발에 판대기를 댓지만 두발의 생긴 모양이 똑같은걸 보아서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때는 점심때가 훨씬 지난때였는데 푼더분하게 생긴 한 늙은녀인이 지나가다가 손에 든 계란빵을 주머니채로 내주며 먹으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점잖게 거절하는것이였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수 있는 노릇이였다. 배고파서 비럭질을 할수는 있는데 왜 기어이 돈만 받자고 하는가? 크고작은 도시마다, 거리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지천으로 널렸는데 그들중에는 정말 로동력을 상실한 자도 있고 궁지에 빠져 비렁뱅이의 행렬에 들어선 자들도 있지만 그만큼 적지 않은 자들이 장애자로 위장하고 가련상을 지으며 돈을 비럭질하다가도 “퇴근”할때는 어느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고 펀펀히 걸어다니는 완인으로 둔갑하며 대도시의 어떤 자들은 신사로 변하여 유흥소에 들어가 아가씨와 흥탕거리기도 한다.     경우야 어찌되였든 참을수 없을정도로 굶주렸을때는 빌어먹을수도 있다. 그러나 위장한 거렁뱅이에게는 만두 한쪼각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자들은 산다는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들이 정말 손발을 놀리기 싫어서 비럭질하다가 진짜 굶어죽을 지경이 되였을 때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될것이다. ㅡ제먹을 빵은 제손으로 벌어야 한다는 유명한 명언을 아는가? ㅡ명언같은것 네미덜머리고요...난 억지로 붙들려온것이지 정신병자가 아닙니다. 내보내주 십시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제가 직접 나서서 벌어들이겠습니다.  ㅡ 그런가? 그럼 진실한 내막을 조사해본후 당신을 보낼데로 보내겠소. 자, 그럼 다음 사람 가까이 오시오. 5호(비서) ,당신은 여기로 들어오기전에 매일 무슨 일을 했소?  ㅡ 예, 령도의 사적보고를 썼습니다. 명백하게 말할수는 없고 진짜 무슨 일을  해내지 못했는데 개구리를 소만큼 불구듯이 찬란한 업적을 만들어내고 과장해서 쓰느라면 제정신이상이 아니였습니다. 압력은 점점 세지고 실면증이 오더니 그만 저도 모르게 헛소리가 나가고 헤식은 웃음이 피식피식 나가더니만 제안해가 이렇게 저를 여기에 집어넣고 한국에 나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진짜 정신분렬이 왔는지…  ㅡ 흥, 너무 좋아서 분렬증이 온단말이요? 곁에서들 보건대 비서들이란 아주 잘나가는 사람들로 여겨지는데, 령도자의 그림자처럼 붙어다니고 크고작은 회의에서 자기가 써준 발언고를 읽을 때 아마 자아감각이 좋았겠지? 그래서 령도의 몸에는 비서 의 그림자가 투영되여있고 비서의 몸에는 령도자의 그늘이 드리워져있겠지요?  ㅡ 모르면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의사선생이 본건 다 가상이요. 기실 령도로 말하면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신임하지 않는게 비서란 말입니다. 우아하게 말하면 한 령도자의 조수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령도의 복무기계에 불과합니다. 예, 말하자면 말 입니다. 밤새워 써낸 발언고나 총화보고가 대번에 마음에 들때가 적거든요.    령도자분이 대략적인 사로를 잡아주거나 골자를 적어주면 그것을 전개해야 하는데 손오공처럼 령도의 배속에 들락거릴수 없는 이상 영원히 령도의 생각과 일치할수 없으며 영원히 불합격의 문장이 되는것입니다. 소설가보다 더 상상력이 수요됩니다. 거리미학이란 예술용어가 있지요. 내가 말하는 거리란 일정한 거리를 말합니다. 비유하여 말하자면 몬나리자의 그림을 볼때처럼 멀리서 보면 신비한 미소를 띠고 서있는 아름다운 녀인으로 안겨오지요. 에헴, 그리고…     ㅡ 말이 길어지는것을 보니 좀 어떤거 아니요? 짧게 말하시요     ㅡ 예예, 나도 그만 덞어간것같군요, 말만 시작하면 길어져서…어디까지 말했던가요? 옳지!  참,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보면 본래 유화라서 얼룩덜룩 덧칠한게 알리고 아주 조잡한 감이 들지요. 즉 근거리에서 보는 사물은 추(丑)를 산생한다 이 말임다. 기실 비서와 령도는 늘 함께 있어 근거리 접촉을 하고있지만 개체인간으로서의 비서의 우점은 령도의 그늘에 가리워 보이지 않고 어두운 면만 잘 드러나지요. 안그래요?     비서란 한개 단위내에서는 그래도 지식인으로소 보통 수재라 불리지요. 지식분자들이 단위에서 왕왕 눈밖에 나기 쉽습니다요. 지식인이라는 칭호가 가져다 준 비서란 왕왕 경쟁의 우세가 아니고 경쟁의 렬세란 말임다. 비서란 단위에서 학습하기 좋아하고 배움에 게을러서는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글을 쓰는 붓쟁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벌레를 조각하는것같은 기량이라고 얕보기가 일쑤지요.     그게 가장 자극적이고 두려운게 아닙니다. 가장 두려운것은 예ㅡ비서들에게 책뒤주라는 모자를 씌우는거지요. 사회상에서는 책벌레, 책뒤주란 보통 고지식하고 무능력자란 말과 동의어로 되고있지 않나요?     당신이 비서라면 진종일 눈코뜰새 없어 이것저것 열람하고 부랴부랴 써내고 고심참담하게 경영하는것이 오히려 생활상에서는 약점이 되는겁니다. 속에 별로 든것도 없고 책보기도 싫어하고 무슨 재능이란것도 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멋스럽게 살줄알며 늘 의기양양해 있는것입니더. 그래도 령도강위로 제발할 때 흔히 비서는 령도자의 안중에 없거든요. 간혹씩 금강산 그늘이 관동80리라는 말처럼 그 밑에서 평지돌출하는 사람도 있어 볼바에는 간부를 배양, 단련시키는 위치인것같지만 그와 정반대라는것입니다. 노래하는 수고로움이야 더 말할것도 없지만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노상 틀에 박힌 글만 써내다보니 자기 애호인 창작같은것을 엄두에도 못내고 귀중한 청춘을 랑비하면서도 결국은 당안재료에만 남은 글은 있지만 자기것으로는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아희생을 가장 많이하는 사람들입니다.     때때로 령도의 칭찬을 받을때가 있지만 어쩐지 례의적이고 지어낸것같은 느낌을 떨어버릴수 없어요. 한번은 친구가 입원한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침대에 누워 꼼짝달 싹하지 않고있는 식물인을 일별하였는데 듣자니 그렇게 7년째나 누워있다더군요. 그의 안해가 내가 어느 사무실의 비서라고 하니까 이 사람도 원래 비서였는데 너무 지쳐서 저렇게 식물인이 되였다더군요. 그말을 듣는 순간 나도…    ㅡ  음, 흥미로운 일이군, 말하는 품을 보니 원래 지성인인데 참 안되였습니다. 그럼 진짜 무슨 일을 해냈지만 크게 자랑하고 싶지 않아한다면 어떻게 씁니까?     ㅡ 그래도 써야 하지요. 진주는 땅속에 있으면 빛을 발산하지 못하지요.     ㅡ 음 알겠소, 래일 출원하시오. 당신은 불쌍한 지식인이요. 예 그다음 사람… 6호(투기상) ㅡ 당신은 매일 하는 일이 뭐였소?     ㅡ 예, 용서하십시오. 이제부터 성실해지겠습니다. 지금 자아완성에 노력하고있습니다. 투기모리배의 주요한 적은 자기 내심에서 산생된다는것을 알았거든요. 투기와 인성의 희망과 공포심은 불가분리니까요. 교역할 때 시장형세가 불리하면 마지막날이 되기를 기원하지만 내가 잃은것이 내가 타산하는것보다 더 많은법이라는것을 알게 되지요. 시장형세가 내가 바라는대로 나가면 또 두려웠습니다. 왜서인가요? 장사를 해보지 못한 사람은 암만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요.     투기매매에서 투기는 시기를 리용한다는것이고 또바(倒)란 낮은 가격으로 수매하여 높은 가격으로 팔아서 높은 리윤을 얻는것이지요. 나같은 사람이 사회에 부지기수라구요. 벼락부자가 뭐 순순히 돈을 버는줄 아십니까?  ㅡ 그만 짓걸이라구요. 어쨌건 돈으로 상실한 인성과 령혼을 도금하는것이요? 보아하니 당신 정신은 말짱하지만 한동안 더 정신치료를 받아야 하겠소. 지금 상태에서 사회에 내보내면 더구나 미친듯이 투기모리를 하겠으니까. 썩 물러가서 자아완성을 하시오. 조수, 벌써 여섯 번째인가? 허, 생각보다 문제가 복잡하구만, 7호, (××과장), ㅡ 스스로 당신에 대해 정의를 내려보시오. ㅡ 미관말직에 있은 사람인데 무슨 큰 소감이 있겠소? 기어이 말해야 한다면 바로 엉덩이가 머리를 지휘한다는것이요. ㅡ 대뇌가 인간의 일체를 지휘하는 중추부인데 그게 무슨 궤변이요, 그럼 머리는 달고다녀서 무얼한단말이요? 공연히 건들거리기나 할걸. ㅡ모르는 소리, 벼슬마당에 잠규칙이나 알고 말하시요, 당신이 의사지만 승급하려면 잘 들어두시요. 첫째로 진리를 추구해서는 안되고 또한 사물의 본래의 진면목을 알려해서는 안되는것이요. 둘째로 마음에 챙김이 없는 말을 할줄 알아야 하고 특히 거짓을 말하면서도 얼굴을 붉히지 않은 기능을 닦은것입니다. 셋째로 설사 학력이 높다해도 진짜 지식자랑을 하지 말아야 하오, 흔히 지식이 있으면 독립적사고를 잘하는데 그게 관장(官场)에서는 금기이지요. 모난돌이 정을 맞으니까.아, 네, 관원들가운데 저저히 석사, 박사인데 진짜가 몇이나 되는줄 압니까? 진정한 학자들은 청운의 사다리를 쳐다보지도 않지요. 어쩌다 벼슬을 했다해도 영원히 합격된 관리가 될수 없습니다. 음, 넷째로는 벼슬이란게 뭐겠습니까? 한마디로 리익추구이지요. 백성들은 부정부패라고 하지만 당사자들가운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요. 다섯째로 무슨 벼슬을 하든 먼저 사람이 되여야 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 먼저 되여야 한다는것은 서책에서 말하는 덕재가 겸비하다는 뜻이 아니구요 관계학을 정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요. 여섯째로 농민의 사상과 방식으로 일체사물과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농민식사상일가요? 지금 우리의 사회가 어떻게 알락달락하고 요란하든 기실 모두 농민사회에서 살고있는거예요. 외표야 어떠하든 조상삼대를 올리따지면 다 뼈속에는 다 농민기질이 박혀있는것입니다. 흔히 농민들의 가치관념의 특징이라면 시야가 좁아서 눈앞에 리익에 혹한다고 평가하지요. 맞아요. 그게 오히려 순박한 표현이지요. 사실 관장에서도 올리맞추고 내리깎아도 결국 농민의식을 벗어나지 못해요. 일곱째로는 예, 아첨하고 아부하는것을 보통 저질기질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천만에, 여간 총명하지 않고서는 장악할수 없는 처세술이고 삶의 현장에서 최고의 고급예술이랍니다. 납득이 안간다구요? 그러니 당신은 그저 우리같은 사람들앞에서 쎈체하고 병원밖에 나가면 어리둥절한 책뒤주들인걸요. 여덟번째인가? 아무튼 인생일사가 정말이란게 없으니까 벼슬마당에서는 정식이란게 없어야 합니다. 예 또…     ㅡ 그만하시요, 뭘 자꾸 시부렁거리는거요?     ㅡ 당신 의사질은 잘하는지 몰라도 지력이 차하구만, 나뽈레옹의 명언을 빈다면 사람은 어떤 제복을 입게 되면 그 제복에 맞게 사고하고 틀거지를 차린단말이요. 비유해 말하면 엉덩이가 대뇌를 지배한다 이말이요. 그러나 머리는 동급자들과의 암투에는 쓸모있단말이요. 의사선생이 보기보다 너무 아둔하군. ㅡ 뭐, 뭐라구? 당신 안되겠구먼, 어디라구 갖잖은 관료틀을 피우면서…흥!오래 묵어야겠소. 자, 여덟번째가 누구요? 얼른 나서시오. 8호(광고명인) ㅡ 당신은 어째서 정신에 모병이 생겼다구 생각하는가? ㅡ 무슨 약광고를 했는가? ㅡ 정신병치료광고입니다. ㅡ 어떻게 광고했기에? ㅡ 국민의 신임을 리용하여 거액의 광고비를 챙기다가 이번에 광고법에 걸리여 그만 정신이 아찔했는가 봅니다. ㅡ 당신은 “여기 은전 삼십냥이 없소.”하는 식으로 그럴듯하게 속임수를 쓸 때 얼굴이 뜨겁지도 않았단말이요? ㅡ 이 선생이 정말 백면서생이군, 돈이 말할 때 진리는 침묵하는것이요. 그리고 리익앞에서는 수치심도 물러선다는것도 모르오? 당신은 환자가족들에게 혹 붉은봉투를 받아챙기지 않소? 그때 그런 심리인것입니다. 잘해보시오. ㅡ 제길, 말문이 막히는군, 그래 정신이상이 오게된 경과를 말해보시오. ㅡ 사실 어느날 밤 꿈을 꾸고 정신이 흐리마리해지더니… ㅡ 응, 그래 그 얘기를 해보시오 ㅡ 그날밤 생뚱같이 꿈에 죽었는데 염라대왕앞에 끌려가게 되였습니다. 염왕이 나를 보자 대번에 천둥같이 호령하더군요. ㅡ 이놈의시키, 너 광고상이였다지? 그동안 이를 소만큼 과대포장하는 기술을 많이 익혔겠구나. 어허허, 그놈 근사한디, ㅡ 예? 대왕님? 그게 무슨 소리요? 아니올시다. 광고란 원래 상품경제시대의 산물로서 경제활성화와 경제효익을 도모하는 아주 고상한 사업입네다. ㅡ 그러냐? 더 들을것 없구, 어험, 네가 갈곳은 천당과 지옥중에 한곳이니 네눈으로 직접 잘보고 선택하도록 하라. ㅡ 염라왕이 저를 데리고 널다란 지하광실에 들어섰는데 열려진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녕악스럽고 징글맞은 상판대기의 악귀들이 득실거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몸서리치며 이게 무슨 곳이가 물었더니 염라왕이 천연덕스레 “보았지? 여기가 천당이니 라”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대왕님께 차라리 지옥에나 데려다달라고 사정했습니다요. 과연 다른 곳에 데리고 갔는데 안을 들여다보니 릉라비단으로 온몸을 감은 신사숙녀들이 질탕먹고 마시고는 뒤엉켜서 희희락락하는데 저절로 감탄성이 터지는거 있지요? (저승에도 이런 극락세계가 있구나!!!)하고 좋아하는데 염라왕이 왕청벅박골같은 소릴하지 않겠습니까? “ 그래 여기가 좋으냐? 여기가 지옥이네라. 이제 거처를 정해라” “ 예, 더 여부가 있겠습니까? 소인은 지옥에 떨어지겠나이다. 헤헤헤…” ㅡ 제말에 염라대왕님이 징글맞게 웃더니 라졸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ㅡ 여봐라. 이 광고상을 지옥에 데려다 주어라. ㅡ 라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아까 본 소위 천당이라는곳으로 끌고갔습니다. 제가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틀렸나이다. 대왕님, 저는 분명히 지옥에 있겠다고 하였나이다. 제발 저의 말을 믿어주세요 ㅡ 오냐 분명 지옥에 보내는도다. 웬 잔소리인고? ㅡ 아니오이다. 방금 본 이 지옥에… ㅡ 에끼, 미욱한놈 네가 본것은 광고하기 위한것인줄 모르냐? 광고란 이런게다. ㅡ 그리하여 악귀들이 득실대는 천당에 밀려들어가고 뒤에서 커다란 철대문이 쾅하고 닫기는 소리에 와들짝 놀라서 꿈을 깨였는데 그날부터 머리가… ㅡ 당신, 정신상 아무 문제도 없지만 심보가 틀렸단말이요, 구새통같은 심통을 가지고 살다가 언젠가는 정신병이 올거고…좀 더 지켜봅시다. 에헤, 제9호! 9호.(모단위 공회주석) 자기정의를 내리시오. ㅡ 이전에는 공회란 로동자, 직원들의 믿음의 기구였는데 지금은 흔히 제2선에 물러나 가는곳이라는 인상이 보편화되였지요. 평시에 제가 한 일이란 특정된 날에 합창시합이나 조직하고 춤을 배워주고 명절이면 복리품을 나눠주거나 상급과 로임인상 문제를 토론하거나 직공교육을 하거나 하였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공회조직을 현시대에 걸맞게 개혁하지 않으면 있으나마나한 허상으로 될것입니다. ㅡ 그래서요? 당신은 로동자, 직공들이 믿고 따르는 사람이 되였습니까?   ㅡ 그런데 저는 마음과 달리 직원들의 켠에서 복리를 추진하기보다 령도를 위해서 명철보신한 사람이 되였습니다. ㅡ 그렇습니까? 정말 별 볼일이 없는 사람이군, 정신이상이란게 별건줄 압니까? 정상적인 사람이 정상적인 사업을 하지 않고 비리를 따르고 거기서 모종 리익을 보려하는 사람입니다. 래일 보따리를 싸시오. 자 마지막, 10호. (게으름뱅이) , ㅡ 당신은 무얼하던 사람이요? ㅡ 무직업자입니다. ㅡ 글쎄말입니다. 너무 먹고 자고해서 머리까 뗑하더니 그만 천벌을 받은것인지. 아마 게으름병이 극치에 달해서 정신에 이상이 온것같수다. 히히히… ㅡ 일반적으로 무위도식자는 뇌세포에 손상받을 일도 없었겠는데 이상하군그래, 어디 말해보시오, 어느정도로 게을렀기에? ㅡ쉽게 한두가지 례를 든다면 발가락에 무좀이 먹는 한여름에도 일주일건너 한번 발을 씻으나마나한데 그나마 마른수건으로 닦아낼 때가 푸술함다. 머리도 두달에 한번 감으면 고작이고 목욕은 더울 때 물한대야면 다하고도 남슴다. 드믈게 치솔질을 해도 좌우로 흔들기 귀찮아서 숫제 턱을 두어번 흔들고 등이 가려워도 벽에 고정해 놓은 등긁개에 등을 대고 앉았다섰다하는 수준이니 알만하지 않겠는가?    그 날도 역시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지요. 그런데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슴다. 거슴츠레 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니, 어느 간 큰 도둑이 대낮에 담을 넘고있는것이 보였슴다. 하지만 나는 일어나기 싫어서 마음속으로만 '어, 도둑이네...저놈 담장을 넘어 마당에 들어오기만 해봐라'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잠이 들었지우.     이내, 다시 '쿵'소리가 들렸슴다. 내가 힘겹게 눈을 떠보니 도둑이 담에서 뛰여내려 마당을 살금살금 걸어오고 있었슴다. 그러나 이번에도 무겁게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렸슴다. '집안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내가 깊이 잠든줄로 안 도둑은 살금살금 집안으로 들어와 내옆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갑디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잠에 취한채 중얼거렸슴다. '저놈이 안방으로 들어가네... 뭐든 가지고 나오기만 해봐라!' 얼마후, 도둑은 값이 나갈만한 물건들을 한보따리 짊어지고 나갔슴다. 그리고 대문쪽으로 걸어갔슴다. 나는 대문을 열고 나가는 도둑의 뒷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채 잠꼬대처럼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구제불능인 노무새끼, 다시 오기만 해봐라!) ㅡ 당신처럼 게으른 사람은 난생처음이요. 그래 정신이 좀 드는가? ㅡ 여기 들어와서 맨날 약을 먹으니까 어디가서 하수도를 치기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쯤하면 출원할수 있을가요? ㅡ 음. 알겠소,    복경준의사는 6호병실의 진단을 마치고나서 생각이 더 복잡해졌다. 보통병실에 환자들이 오가잡탕이라면 고급병실에 소위 한다하던 환자들은 어떨지? 정상인으로 말하면 이 사회전체가 하나의 크낙한 병원이라고 하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아닌게 아니라 우울한 심리는 왕왕 사회에 대한 절망과 인성에 대한 절망감에서 오는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먼저 사회의 병태들 꿰뚫어보지만 개변할수 없다는것을 알면서도 물결따라 되는대로 흐르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심리가 모순투성이고 자기도 모르게 우울증에 걸려들다가 심하면 분렬증이 오는것이다. 정신이 올똘할때까지는 심리적으로 사회상의 허위와 추악한 현상에 불만하여 자기식으로 반항하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오히려 그러는것 이 “병태적”인것으로 간주되는 현실이다. 이런 병태적사회에서 기인된 우울증에서 벗어날수 있는 사람은 두가지 부류인데 극단적으로 사회화된 사람과 극단적으로 자아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소신대로 살라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복의사는 진찰일지를 덮고 밖에 나와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찌보면 사회란 본래 하나의 크낙한 “정신병원”으로서 병증도 가지각색이고 특징도 제나름이다. “병자”들도 때론 모이고 때론 분산된다. 어떤 “병종”은 집중되고 어떤 병종은 잡거하고있다. 총체적으로 아주 떠들썩하다. 어느 학자가 중국사람들의 전형적인 정신특질의 하나가 매 사람들에게 통일된 가치관이 부재라고 하였다. 이 사회에 통일된 가치표준이 결핍하기에 사람들의 정신상태도 갈팡질팡할때가 많게 된다. 병태적사회에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많이 생길수밖에 없는 법이다.    일찍 사회학가들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아 류사한 자연과학방법으로 사회문제를 연구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들은 사회를 하나의 생물유기체에 비유할 때 사회문제의 발생은 사회속에 어떤 사람들의 질병으로부터 기인된다고 인정하였는바 이를테면 사회와 협조적인 관계를 맺을수 없다는것이다. 현시대 정황을 보아도 그렇다.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이 시대에 정신질환은 날이 갈수록 우심해지고있지 않은가? 높은 차원에서 말하면 사회적병태는 사회도덕문제인것이다.     20세기60년대 국제사회에 일종 새로운 사회병태론이 출현되였는데 그것은 전통적관념에 비하여 더욱 격진적이였는바 어떤 사람들이 병태적이 된것은 사회자체가 병태적이기때문이라고 간주하였다. 그들의 구호는 “부도덕적사회가 부도덕적인 사람을 제조해낸다”는것이다. 전통적관념은 개인의 도덕자률을 강조하였지만 새로운 병태론은 옹근사회도덕을 개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있다.    정신병환자들에 대한 치료목적도 중요하지만 치료결과가 더 중요한것이다. 개념의 전변은 근본적인 전변이라고들 말한다. 정신병에는 따로 예방이란게 거의 없다. 그것을 병이라 하지만 기실 심리질환일뿐이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심리장애가 오는 가? 생각이 생각을 부르고 잡념이 잡념을 마중하는 바람에 복의사는 머리를 세괃게 몇번 흔들고는 스스로 해답을 찾을수 없는 심각한 문제를 체념하기로 하였다. 그게 오히려 해탈이니까…                               2006 년 4 월 12 일          
107    (소설) 바르게 살려는 녀자 댓글:  조회:13008  추천:1  2012-10-23
                                   바르게 살려는 녀자                                             최 균 선                                                                                         1.       남행렬차, 경편렬차칸은 언녕 잠내가 짙어있다. 초영은 보던 잡지를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처녀의 몸으로 떠난 이번 길은 모험의 길이기도 했다. 그동안 공장에서 산품을 내보내고 받아들이지 못한 돈이 쌓이고 쌓여 운영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그래서 내놓은 책략이 통고를 내붙여 빚을 받아올 지원자를 공개초빙하게 되였다. 그맘때 엄마의 고질병을 치료해야 할 딱한 처지에 빠져있던 초영이는 받은 돈에 10%장려금을 준다는데 매료되여 칼물고 뜀뛰기에 나섰던것이다. 돈이면 귀신도 석마를 돌리는가? 초영이는 자기 수완을 믿기보다 그쪽에서 원공장장이고 오랜 관계호로 있던 백부의 인정을 봐서라도 꽉막히게 나오지는 않으리라는 요행심리였다. 하긴 공장에서도 초영이가 빚받이군으로 나설때 작고한 백창장의 덕을 볼수 있겠다고 타산하고 승낙했다.     그러나 초영이는 엄마의 병을 고쳐드려야겠다는 하나의 욕심에 일체를 걸고나섰지만 마치 불행의 나락으로 향해가는 느낌이였다. 끝없는 생각과 고민과 나름대로의 작전계획을 세우노라 뇌리를 짜는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려로의 고달픔이 덮쳐와 그녀를 깊은 꿈나락으로 이끌어갔다…꿈인지 생시인지 누군가 지근지근 발을 밟는 느낌이 들어 억지로 천근같은 눈까풀을 쳐드느라 안깐힘을 썼다.   《왜 이래요? 지저분하게스리.》    어찌나 째지게 소리쳤던지 가슴이 쩌렁 울렸다. 그 서슬에 감겼던 눈까풀이 펄쩍 떠지였다. 깨고보니 꿈이였다. 아니, 꿈이 아니였다. 맞은켠에 앉은 멋지게 생긴 구레나룻의 남자가 또 한번 발끝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야무지게 쏘아보던 눈길이 탁자에 놓아둔《청년생활》이 안겨왔다.    (조선족이구나. 비단보에 개똥…)   《오해하지 마시오. 아가씨, 이런 밤차를 타고 먼길 갈땐 꿈속에서라도 신경을 살려야 합니다. 낯선고장에선 인심도 인심나름이니까요.》    사내는 말하면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켰다. 그리고는 커다란 망치같은 주먹으로 시렁우에 트렁크를 탁탁 쳐댔다. 일종의 시위같았다. 그제야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아차린 초영은 옆을 보았다. 엉큼하게 생긴 남자가 일어나면서 구레나룻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구레나릇은 경멸의 눈길을 한번 돌릴뿐 굳어진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격투직전의 투사같이 감때사나운 눈에서 불꽃이 튕기고있었다.   《조선족이군요. 정말 고마워요.》   《아가씨곁에 의무보호병이 있다는걸 알려주려 했을뿐이지요.》   《좋은분 만나 다행이예요. 그렇지 않았더면 어쩔번했겠어요. 호—》    서른살쯤 되였을가? 아니야 기껏해 스물예닐곱살일거야. 저 구레나룻터가 아니라면…첫눈에는 조금 무서워보이던 사내의 준수한 얼굴에서 어떤 믿음을 읽으며 초영은 안도의 한숨을 호ㅡ내쉬였다. 떨리던 가슴이 차차 가라앉았다.   《멀리 가시나요. 실례지만요.》   《난 별로 목적한 곳이 없어서 멀다면 멀구. 가깝다면 가까울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바다에 뛰여들어 헤염쳐보려는 판이지요. 허허…》    가슴에 난류를 실어오는 그 소탈한 웃음이 초영이의 잠기를 말끔히 쫓아버렸다.  《이번엔 내가 좀 눈붙입시다. 짐 좀 살펴봐주시겠습니까?》  《네, 그러세요.》   사내는 등받이에 기대더니 눈을 감았다. 굵다란 누에눈섭이 한두번 꿈틀거렸고 그 사람을 끄는 형형한 불꽃도 사라졌다. (좋은 분같이 느껴져…)초영은 황보를 떠올리며 미안쩍은 생각이들어 얼굴을 붉혔다. 황보씨도 미남형이다. 헌데 어덴가 가벼워보이는 도련님타잎이였다. 아마 그의 멋스러운 체격과 잘생긴 얼굴에 마음끌려 백년약속을 주었는지도 모른다.(그인 좀 인정에 린색한 남자야. 이럴때 곁에서 지켜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가.)황보와 갈라진다는 생각을 꿈에도 가져보지 않았으나 어째 탐탁하지 못한감을 느끼지 않는것도 아니였다. 무슨 공사를 꾸린다고 덤벼치다가 쫄딱 녹아나고 지금은 고정직업도 없이 무위도식하는게 첫째로 안심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도 썩 내키지 않았다.     고요히 쪽잠에 든 맞은켠 구레나룻에 다시 눈길이 끌림은 어쩐일이지? 꿈속에 서마저 자기를 다스릴만큼 견정해보이는 사내의 모습을 뜯어보며 초영이는 기발한 착상이 떠올랐다.(그래, 저이의 도움을 청해보자. 보수를 톡톡히 주면…)그녀는 이제 곧 벌어질《격전》에 심장이 파르르 떨려옴을 느꼈다.     차창으로 붉은 해살이 비껴들때 구레나룻은 깨여났다. 해빛에 번쩍이는 그의 두눈에서 튕기던 불꽃은 사라지고 그대신 일종 따스한 정을 안겨주는 그윽한 빛이 굴절되여나왔다. 그는 사람좋게 웃어뵈였다. 혼자 먼길을 떠난 초영에게는 그것이 놓쳐버릴수 없는 정신기둥으로 우뚝 일어섰다. 망설이던 용기가 입술을 밀어제치고 불쑥 뛰여나왔다.  《돌봐주신 값으로 제가 한턱 내지요. 거절하지 않겠지요.》    역시 그동안 단련을 받아온 초영임에 틀림없다. 그녀는 더 동의를 구할것도 없다는듯 눈길로 사내를 얽어가지고 앞서 걸어나갔다. 사내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녀자의 뒤모습에 흘린듯 잠간 멈췄다가 코꿰운 송아지처럼 순순히 따라나갔다…                                                                       2.       A시에 도착한 초영은《원양무역수출입본공사》 왕경리를 만나는데 급급해하지 않았다. 그대신 은밀하게 왕경리의 인격, 기호, 성미서껀 일일히 료해하는데 신경을 쓰면서 행동반경을 세밀하게 그렸다.《적정》을 충분히 장악했다고 생각되여서야 왕경리의 사무실에 돌연히 나타났다. 왕경리는 초영이가 공손히 받쳐올리는 명함장을 자상히도 훑어보더니 초영이의 얼굴에 눈길을 박은채 놀라는듯한 시늉을 지어보이였다.    《연변한끝에서 오셨군요. 먼길을 또 걷게 해서 미안합니다. 어서 앉으시오. 》    《네. 고마워요.》    《허허, 그 친구들이 이번엔 장백산선녀까지 출동시켰구만. 하하…관음보살님 같이 신통력이 있는 녀사인가 봅니다그려…》     왕씨는 차물을 붓는다 과일을 내놓는다 하며 온갖 친절을 베풀었다.   《일백팔십번 변하는 손오공을 꼼짝못하게 하는 보살님이면야 얼마나 좋겠어요. 허지만 어려운 일도 왕왕 우둔한자의 단순함과 진솔함때문에 끌릴때가 있다지 않아요? 전 그런 우둔함과 진솔이 가져다줄 요행을 바라고 왔을뿐입니다.》   《말뜻을 알겠습니다. 한어가 류창하기를 이만저만이 아닌데요. 그게 역시 신통력의 열쇠일수도 있지요…》   《높이 보아주셔셔 감사해요. 제가 우리 거기서 정말 신통력이 대단한 녀자로 이름짜하게 알려지도록 잘 합작해 주시겠어요?》  《백녀사 아주 재미있는 녀자군요. 급해마십시오. 먼곳에서 온 귀빈이자 채권자 인데 점심식사나 함께 하면서 천천히 상의해봅시다.》    술좌석에는 업무경리들과 재무부장이 참석했다. 초영이의 교제술이 왕경리를 탄복시켰다. 초영은 채무에 대한 말은 일절 꺼내지 않았다. 이튿날 답례연회석에서도 소위 감정교류에만 마음을 쓰는듯 대범하게 놀았다. 초대연이 끝나자 초영이는 왕경 리를 단독으로 다방에 청해놓고 정식담판을 벌렸다.   《백녀사,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요?》   《지금 전 어떻게 하면 손오공처럼 작은 파리로 변해서 왕경리의 배속에 들어가 심장을 움켜잡을가 궁리하고있어요. 호호…》   《말솜씨 한번 먹었군요. 그러지 않아도 내가슴속에서 7급지진이 일고있거든요. 하하…무슨 특별한 방안이라도 있는건가요?》   《방안이란건 없어요. 왕경리의 기업인다운 량심과 의무감을 믿을뿐입니다.》   《상업전선에서는 량심이라든가 어떤 군자의 협정같은것이 별로 소용없답니다.》   《정 떼질쓰면 저도 그만큼 질기게 나올거예요. 당신의 사무실에 매일 출근할것이고 저녁이면 왕경리의 객실에 매일 손님으로 갈겁니다. 숨어버리지야 않겠지요?》   《잠적할수도 있지요.》   《중도망은 있어도 절도망이야 있겠어요? 왕경리가 그까짓 돈때문에 인격마저 버리지 않으리라 믿는데요.》   《그래서 안되면요?》   《법률의 무기가 있지 않습니까?》   《여긴 우리 지반인걸요.》   《아무튼 이번에 돈을 받지 않으면 살아서 돌아가지 않겠어요. 수백명로동자들의 밥통이 깨질판인데 당신네 밥통이라도 흔들어놓을것이예요.》   《무섭군요. 허.그동안 백녀사네 공장에서 몇분이 빚받이를 왔다갔지만 이렇게 책임감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하긴 그때 우리도 성의가 전혀 없었지만 피차일반입니다. 우리도 많은 물건을 외상으로 주어 몇백만원이 깔려있습니다. 귀공장은 백창장이 있을때부터 우리의 련계호인데 어찌 끝까지 생떼질 쓰겠습니까?》   《백창장을 아시나요? 우리 큰아버지인데요, 그럼?》   《아참, 인연이란 별스럽기도 하네, 초영이가 백창장의 조카라? 좋습니다. 래일 재무부장 손동무가 해결할겁니다.…오늘저녁 비행기로 해남도에 가야하니 끝까지 배동할것같지 못하오.》  《네. 말씀한대로 하시면야…언제 또 만나게 되겠지요.》    이튿날 과연 재무부장 손씨가 찾아왔다.   《이렇게 너무 사무적으로 해서야 어디 재미있습니까! 오늘은 제가 공사를 대표해서 송별연을 차리지요.》   《절 숙맥으로 보지 마세요. 현금 얼마간과 지표를 봐야 송별주를 마실수 있습니다.》   《그럼요. 백녀사와 벗으로 사귀고싶으니까 믿어도 됩니다.》    그날 저녁, 초영은 자기가 든 호텔식당에 손씨를 불렀다. 단둘이 마주앉아 기울이는 술잔에 초영이도 웬간히 취했다. 그러나 손씨는 거의 곤죽이 되게 만들어 놓았다. 손씨를 부축해서 자기방에 올라간 초영이는 들어서자바람으로 재촉했다.  《그 지표 좀 봅시다. 진짜면 맘대로 하게 할게요.》  《어디 보라구. 몽땅 결산하지는 못했지만 100만원 행표지, 어때? 이 손모가 신용지키지? 자 어서요.》   이때 복도에서 구두발소리가 들려오더니《똑똑!》문을 노크했다.  《차예!》  《백아가씨, 니…니?》   초영이는 손씨의 손에서 지표를 살짝 빼내고는 문을 차고나갔다.   《제대로 되였소? 그럼 빨리, 복무대에 결산을 다 봐두었소. 밖에 택시도 대기했소. 갑시다》   《네. 수고했어요.》    …검은색 택시는 시위를 벗어난 화살같이 시외로 달렸다.…   …한달후, 초영이가 개선하여 돌아왔다. 한곳이 아니라 두곳에 빚을 받아가지고 왔다. 물론 구레나룻의 미더움이 컸다. 초영은 황보숭을 찾아 달려갔다.   《축복해주세요. 성공했단 말이예요. 어머니를 치료할수 있게 되였어요.》   《난 반갑지 않소. 남자들도 못받아온 돈을 녀자가 가서 받다왔다니, 흥 정말 막간극이 재미있겠는데.》   《무엇이 어째요? 녀자는 그래…》   《녀자는 돈이 생겼으면 이미 나빠졌다는걸 설명해야 하오? 미안하지만 썩 내 눈앞에서 사라지란 말이요. 그 더러운 돈을 가지고!》   《아니 왜 그러는거예요? 다정한 말한마디 해줄대신 어쩜 그럴수 있나요?》   《난 돈과 순결은 바꾸지 않소. 그러니 내눈앞에서 썩 꺼지란 말이요》   《황보씨가 말하는 뜻을 알겠어요. 좋아요. 부산과에 함께 가보자요.》   《필요없어. 지금 병원에서 무얼 못해넣는게 있다구.》   초영은 처음으로 생소한 사람을 보듯 황보숭을 매섭게 쏘아보고는 홱 돌아서 나와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결김에 한 행동일뿐이다. 초영은 천천히 해석하느라면 황보숭이도 자기를 믿어주리라 믿었다. 허지만 그것은 한낱 소박한 념원뿐이였다. 황보숭은 초영이의 행각에 철저히 의심을 품고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공장안에서도 복창이터질 뒤공론이 파죽가마 끓듯하고 있었다.   《마창장님, 이건 사람들이 너무 하잖아요? 사람을 이렇게까지 억울하게 굴다니요.》   《초영이, 이번에 공장을 위해 큰공을 세웠소.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어떤일은 해석할수록 더구나 우스워지지. 여기 은전 삼십냥이 없소 하는격이 랄가?》    초영은 억이 딱 막혔다.   《아니?! 마창장도 그렇게 말하나요? 어쩌면…어쩌면…으흑》    초영은 문을 쾅 닫고 나왔다. 마창장은 좀 안된듯한 표정이였지만 순간이였다.    초영은 숭허물없이 지내던 정실에게 자기 고충을 털어놓고 조언을 바랐다.  《언니, 언니의 청백을 누가 증명할수 있겠어요? 언닌 해석이 필요하다구 믿어요? 진짜는 가짜가 될수 없구 가짜는 진짜가 될수 없는 법이잖아요.》  《오—너두?! 그래 좋아,더 말하지 말자.》     차간에서 제일 믿어주던 박아주머니도 그저 듣고만 있을뿐 반응이 랭랭했다. 아무도 초영이를 알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그가 받게 된 10여만원의 장려금때문에 배를 앓는 판이였다.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고 초영이의 일에 잘코사니를 부르는것은 정실이였다. 황보숭이를 은근히 따랐지만 인물고운 초영에게 빼앗긴지라 불난김에 훔치지 않을리 없었다. 정실이는 데쳐놓은 겨울시래기처럼 후줄근해 다니는 초영이의 몰골을 보며  (미안해. 이번에야 내가 당당히 황보숭의 보배가 될걸. 그래 안됐다. 미인아가씨…)    초영이가 상림아주머니처럼(제가 안가는걸 그랬어요. 제가…)하고 중얼거리기 시작해서 두주일만에 정신병원에 들어가고말았다. 신경문란이 왔던것이다. 초영이가 정신이 좀 안정될 무렵, 병실로 두리모를 쓴 사람이 찾아왔다.  《모두들 왜 절 잡아먹지 못해 앙탈인가요. 제가 무슨 죄를 범했기에…》  《랭정하시오. 우린 좋은 사람은 억울하게 굴지않소. 어떤 사람이 동무의 수입에 문제가 있다고 적발하였소. 그리구 이번 행각에두 더러운 교역이 있다구했소. 이제 조사해보면 알겠지만.》     마른하늘에 벼락이란 아마 이런 경우를 두고 한것이리라. 금방 미칠것 같았다.  《수입이라구요? 시작도 안되였는데 결과가 있어요. 맘대로 하세요》     초영은 더 말치않고 엉엉 울어버렸다. 삭막해진 인정의 사막에서 누가 초영이를 구해줄것인가. 며칠동안 벙어리 랭가슴앓듯 속을 태우던 초영이는 결김에 왕경리에게 편지를 써서 전번 그의 요청에 응할 뜻을 내비쳤다. 한달 지났을가 연변에 장사차로 나왔던 왕경리가 마공장장을 찾았다. 《당신네 조선족들은 우점도 많지만 흉금이 절반인게 탈이라니. 우리가 당신네 그 미인에게 홀딱 반한것만은 사실이요. 단순히 미녀라는 의미만이 아니요. 당신들은 지금 진짜 순금에 똥칠을 하고있단말이요. 초영인 탄복할만한 일군이요. 로동자들을 생각하며 눈물흘릴 때 우린 량심에 촉동을 받구 비리한 장사속이 해소되였던거요. 여기서 싫으면 내가 데려가겠소. 공소과 업무경리로말이요.》    마씨는 왕씨의 말에 불쾌해졌다.  《우리 공장로동자들이 어떻다는거요? 여보 왕선생, 당신이 뭐게 남의 산소쓰는데 와서 제돌삐뚫었소 천광이 얕소 하며 이 야단이요.》  《좋소, 좋소, 더 말하지 않겠소. 아무튼 우린 당신네같은 사람들과는 더 거래하고싶지 않다는것만 말해두지.》  《흥, 그러면 누가 겁날줄 아오? 중국에 당신네밖에 없다구?》    왕경리는 콩팥칠팥하는 마씨를 어이없이 건너다보며 전임 공장장이였던 백덕윤을 문득 떠올렸다. 그때는 손이 잘맞아 돌아갔던것이다. 초영이가 백덕윤의 조카딸이라는것을 알았을 때 더구나 그래서 그녀의 행차가 헛걸음이 되지 않게 어려운 여건임에도 큰 마음먹고 결산해주었다는것을 초영이도 미처 몰랐을것이다.     왕씨는 병원에까지 초영이를 찾아가서 위로도 해주고 돈도 내놓고갔다. 또 한번 소문의 폭죽이 터졌다.(흥, 웬간한 사정이 아니구야 몇천리밖에서 찾아왔겠소. 미진한 정을 풀자구 왔겠지. 돈두 숱해 주었다오. 그 왕씨가 비서로 데려간다더군…)공장안에서 류언비어가 제멋대로 딩굴고 날개돋고 했지만 초영이는 깜깜 몰랐다.    초영이는 편지에 그렇게 썼지만 왕씨가 정작 오라고하니 완곡하게 사절했다. 엎어진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고 진탕물을 끼얹은 사람들앞에서 그것을 깨끗이 씻어보여야 했다. 그러나 공장에서는 영향면을 고려한다면서 초영이를 다시 차간에 내려보냈다. 높이 띄웠던 배구공을 여지없이 깎아내리친격이였다. 하느님을 창조한것도 로마인이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것도 로마인이라더니 초영이야말로 그 격이다.                                                                   3.     운명이란 한번 어떤 인간을 희롱하기만 하면 그 못된장난질이 지꿎기마련이다. 이래저래 세상이 보기싫어진 초영이는 방구석에 들어박혀 눈물과 절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였다. 이왕지사를 생각할수록 부아통이터진 초영이는 어느날, 수면제 한줌을 삼키고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그러나 초영이는 죽지 못했다. 잔뜩 신경을 살리고있던 엄마에게 들키여 구급된것이다. 병원에서 나온 초영은 식음을 전페하였다. 그후 죽는다 산다하며 두어번 병원출입을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초영은 살기로 작정했다. 몸이 웬간히 좋아지자 건강미체조쎈터에 열성분자가 되였다.     어느날 최신류행의 모던껄처럼 차리고 영화관에 갔다. 영화에 흥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공중앞에서 자기는 건재하다는것을 과시하려는 녀자의 심리에서였다. 그가 표를 사고 돌아서려는데 귀에 익은듯한 목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초영이 아니요?》   《어머나, 어쩜—그동안 어디에 있었어요? 언제 돌아왔어요?》    어찌나 반가웠던지 처녀로서의 수집음도 잃고 와락 매달렸다. 그는 다른 누가 아니라 구레나룻이였다. 2년나마 남방의《바다》에서 헤매다가 별로 큰것도 건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고만것이다. 며칠전, 안해—미화가 쫑알거리는 잔소리가 싫어서 거리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저도 모르게 영화관앞에까지 왔다고 한다.    초영이는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아, 선우정씨, 얼마나 만나보고싶었던 사람인가.)초영은 자기가 제일 즐겨읽는 소설들의 작자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외롭고 쓸쓸한 녀자, 바른 인생길 걸으려고 모지름썼건만 모래바람 거친 이 길, 비틀어진 생활의 비탈길을 걷는 초영이는 인파속에 사라진 그 남자를 그리며 엉뚱한 동경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아이, 내가 무슨 욕심을…그인 안해가 있다지 않는가)골목길 어둠을 즈려밟는 초영이의 어두운 마음의 하늘에 반짝 류성이 지나갔다…     어느 날, 친구들에게 이끌려 나이트클럽에 온 선우정은 무대에 눈길을 모았다. 소문의 녀가수가 등장했다. 빠리의 멋쟁이아가씨처럼 요란한 옷차림의 가수는 선우정의 가슴에 반가움보다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아니?! 그가 ?오리무중에 빠져있는 동안 그녀의 아릿다운 노래소리가 청중의 열광을 터뜨리였고 넓은 홀이 박수소리와 휘파람소리로 소란해졌다. 《한곡 더, 50원이다. 내가 지정한 곡을 부르오.》 《100원이요.<님과 함께라면>을 불러주오.》 《<바다가 륙지라면>이요, 자, 150원!》   여기저기서 제짝패끼리 호기를 불러댔다. 《여러분이 요청한대로 차례차례 불러드리겠어요.》 《안돼! 내가 청한 노래를 먼저 불러야 해!》   가운데를 차지하고앉아 제일 떠들어치던 짝패들속에서 코수염쟁이가 꽥꽥 게사니 울음을 울어대였다. 《저 껄렁한 새끼들이 누구와 맞서자구! 자, 200원이다!》 《미꾸라지들이 보채네. 자, 여기 천원이 있다. 저 가수의 노래 우리 다 샀어!》 그 번잡속에서 점잖게 맥주만 마시면서 노래를 론평하고있던 세청년들속에서 누군가 장훈을 불렀다. 《어이, 친구들, 여기가 무슨 경매장이요. 노래가 예술인데 예술적으로 즐기자구, 저 아가씨의 자유를 침범하지 말자구 하는 말이네.》 《이봐. 어이씨들, 뭐 들가방경리급이나 되는가본데 육신이 가렵지 않으면 얌전히들 있어봐.》   코수염쟁이가 어줍잖게 한국인말씨를 흉내내고있었다.    나이트클럽에 나와서 처음 당해보는 행패질인지라 겁이 더럭났지만 그속에 황보숭이 끼여있는것을 보자 마음속에 불기둥이 치솟았다. 황보숭은 초영이가 순결하다는것을 알자 다시 회복하자고 여러번 찾아왔지만 여지없이 내쳐버렸다. 그래서 오늘 황보숭이 잔뜩 비틀어진 심사로 사단을 일으키고있는것이다. 《여러분, 하찮은 제노래로 기분잡칠것 없어요. 가수가 많으니까요. 전 퇴장하겠습니다.》   초영이는 외투를 걸치고 출입구쪽으로 걸어나갔다. 《어, 아가씨. 그래서 되겠소? 아가씬 저기 우리 황보아우의 본처였다는데 남편 의 명령을 거역해서야 안되지. 으허허허…》 《저리 비켜요. 류망!》 《뭐라구. 입은 까졌는데. 그런데 그렇게 바락바락 악을 쓰는게 더 귀엽네.》   옆에 어중이떠중이들도 맞장구쳤다. 초영이가 안절부절하는데 귀익은 목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여보게들. 무식한 사람들 같잖은데 이게 무슨 실례요. 모두 길을 비키시오.》 《여허—넌 어데서 삐여져나온 망아지냐? 오, 네가 서우인지 염소인지 하는 껄렁 이구나. 듣자니 우리 아우님의 미혼처를 넘본다며? 어디 좀 체조를 시켜볼가.》 《네 아우란게 어떻게 생겨먹은 물건이니?》 《여기 이 어른이다 짜식! 너 상급생이라구 그때 우쭐댔지? 저 녀잔 원래 내가 주무르던 녀자였어. 네가 무슨 상관이길래 ××에 보리알 삐치듯 하는거냐!》   황보숭이 가슴을 툭툭 치며 나섰다. 《그러냐! 이제보니 장미꽃이 썩은 소똥에 꽂힐번했구나. 그럼 오늘 나에게서 교육 좀 받아야겠다. 너절한 자식!》 구레나루터가 시퍼런 주먹을 언뜻하더니 황보가《아이쿠》하며 벽에 뒤통수를 박았다. 좀해서는 격동되지 않던 그는 수모받는 초영이앞에서 더는 자제할수 없었다. 《저새끼! 감히?! 얘들아, 저 털보새끼의 문지 좀 털어줘라.》 코수염쟁이가 선참 달려들자 선우정이 초영이를 밀어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선우정의 친구들도 달려나왔다. 광증이 난 일곱마리 황소가 날뛰였다.…급해맞은 초영이가 《110》을 불렀다. 아츠러운 경적소리에 황보숭네패가 줄행랑을 놓았다. 《어이, 나 칼에 찔렸네.》   선우정이 쓰러질듯 땅에 주저앉았다. 《어디? 몹시 찔렸나, 동초, 택시불러!》 선우정이 친구의 부추김을 받아 택시에 오를때 초영이가 달려왔다. 《잠간요.》 《아가씨는?》 《저도 함께 가야해요.》   택시는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갔다. 선우정은 엉뎅이를 두곳이나 깊이 찔렸다. 그날밤, 초영이는 선우정의 곁에 지키고앉았다. 《미안해요. 저때문에…》 《집에 가야는걸 그랬소. 공연히》 《안요. 전 여기에 있어야 해요.》   이튿날 아침, 스물댓 되여보이는 깔끔하게 생긴 녀자가 병실에 뛰여들어오더니 독기어린 눈으로 초영이를 피나게 찍어보았다. 《거기는 누구죠. 남의 남편곁에》 《아—네. 사모님이시겠군요. 사실 그런게 아니라 저분이…》 《뭘 그런게 아니요. 썩 물러가요. 내가 모를줄알구! 흥》   초영이는《잘 치료하세요.》 한마디를 남기고 미화의 눈총에 가슴이 펑 뚫린채 빠져나왔다. 그날 이후 선우정은 더구나 안해의 닥달질을 받아야 했다.                                                                   4.       세월이 흘렀다.     움트는 4월, 하늘엔 커다란 구름송이가 멋진 돛을 달아올리고 바람결따라 푸른 바다를 누벼가고있었다. 구름너머 해는 쨍쨍한 빛바늘로 열심히 봄빛을 수놓고있다. 도시의 풍경선엔 봄냄새가 아직 짙지 않았건만 거리에 인파만은 벌써 아롱다롱했다. 계절을 당겨오는 류행녀인들은 벌써 여름단장을 다투듯 겨끔내기로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여름녀자들은 벗지 못해 입는다던가. 선우정은 그런 모습들에 한번쯤 회심의 미소를 날렸다할가.     선우정은 자전거핸들을 시초대소쪽으로 꺾고 슬슬 바퀴를 굴려갔다. 선진사적보고를 듣고오라는 명령을 받은것이다. 호텔의 너렁청한 마당에 녀자용자전거 한대가 외롭게 서있었다.(허, 나보다 더한 열성분자가 있군)혼자 중얼거리던 그는 낮꿈 한자락 펼쳐보고나 왔을걸 하는 후회를 늦게나마 굴리며 회의실에 구겨진 바지를 디밀었다. 어스레한 빛속에 과연 웬 녀자가 벽가까이에 앉아있었다.    어떤 강한 힘이 선우의 발길을 끌어당겼다. 혼자 앉았기가 싫었을수도 있다. 《초면이지만 함께 앉아 얘기를 나누어도 될가요.》   녀자는 송충에게 찔린듯 몹시 흠칫하다가 고개를 탈며 낮은 소리로 응했다. 《빙긍빙글 도는 의자는 아니여도 앉으면 임자인데요.》저절로 돌려지는 고개를 억지로 숙이는 그녀의 얼굴에 반가움과 놀라움, 당혹감같은것이 얼핏 스쳐가다가 슬며시 가라앉았다. 물론 그것은 초영이 자신의 느낌이였을뿐. 선우정은 몰라보았다.  《기자인가요? 이렇게 일찍 오셨으니. 오늘 회의는 우리가 주인공 같네요.》    녀자는 그래도 한사코 고개를 저쪽에 돌리고있었다.(역시 소탈한 그 웃음 그대로구나. 저인 지금?) 생각과 함께 본능적인 반응이 례절성을 대치해버렸다.    (어데서 듣던 목소린데…왜 고개는 그냥 돌리지 않는담!)  《전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잔뜩 주조되였다가 나중엔 자기풍자로 된 실례가 너무 많아서 하는 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럴거예요.》  《어느 단위에서 왔나요.》  《제가요? 제가 어느 부류에 속하길 바라는가요? 선우정작가님.》  《아니, 초영이 아니요? 연극을 놀아도 원…》  《아이유, 귀인은 잊음이 헤프다더니 인제야 알아보시네요. 이름만은 기억해주 셔서 황송해요.》  《아니, 그렇게 변할줄이야. 그리고 또…》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 선우정은 마음이 숭숭 구멍이 뚫려있었다.(그 녀자 정말 칠면조인걸.)그는 풍편에 초영이가 원래 다니던 그 공장의 공장장이 되였다는 소문을 들은것 같았으니말이다. 선우정은 그냥 가버릴가 하다가 다시 회의장에 들어 가 구석쪽에 자리잡았다. 초영이가 한창 연설하고있었다.  《전 무슨 전형이랄것도 없습니다. 자기의 생존권을 상실하지 않으려고 모지름 써왔을뿐입니다…제가 말하고싶은것은 정리실업당한 사람들 모두가 무능력자거나 라태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장 믿음직한 지기는 마주보는 거울속에 있다지 않습 니까. 누구나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무너져버릴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정리실업자 들의 가슴속에서 무엇이 꿈틀거리고있는지 아십니까?…》    뒤에서 수군댔다.(저 아가씨…)선우정은 연설자의 말을 듣고있다기보다 그 본인을 뒤돌이켜보고있었다. 드디여 총화연설이 있었다. 《이자 방금 백초영동무가 정리실업후 어떻게 생활의 좌절속에서 굴하지 않고 자기 할일을 찾아했는가 하는 선진경험을 말했는데 심사숙고해야 할 일입니다. 이 생활의 격류속에서도 자기 할일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도 귀찮은 존재로 느껴 질것입니다. 모두 새생활을 개척해나가는 현대관념이 수립되여야 하겠습니다.…》     선우정은 별로 적은것 없는 수첩을 주머니에 꿍져박고 첫사람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자전거를 밀고 큰길에 나섰는데 가로수뒤에서 초영이가 가로막아나섰다.  《절 피하셨죠. 나쁜녀자라구.》    변함없이 꼭꼭 박히는 흑진주 두알이 선우정의 동공에 폭 박혀왔다. 그 꿰뚫어 보는듯한 특유의 눈에 도전비슷한 익살이 비껴있었다.  《아니요. 찾음을 방불케 하는 피함이였다고 생각해두면 더 운치있지 않을가?》  《전 잊은적 없었어요.》  《그런데…한 시내에 살면서 이게 얼마만이요.》 《무서웠거든요. 작가부인님이. 그리구…》 《작가라니?!》 《제가 선생님의 애독자인줄 모르셨죠. 벌써 10년전부터인데요. 작가님인줄은 그날 알았지만도요…제가 이래뵈두…》 《고맙소. 하지만 난 되다가만 붓쟁이요. 그리고 난 초영이를 나쁜면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지. 세상에 나쁜녀자가 있다면 그게 다 남자들이 만들어놓은거야. 지금 세월에 똑바로 걷는 사람이 몇이나 있다구. 제인생은 제가 책임져야 하는 판이니 스스로 황제구 황후이지 안그래? 초영이.》 《소설가가 다르군요. 그 말씀 들을때마다 구겨졌던 마음이 펴지는것 같아요.》 《그렇다면 불행중다행이구만. 헌데 나에게 무슨 갓자를 붙이지 말아요. 돈을 내구 노래 몇번하면 가수요, 글 몇편 쓰면 작가요, 연극 좀 잘 놀면 스타니 뭐니 하는데 좀 싱거워요. 이 세상에 도적놈들이 너무 많은것처럼 무슨놈의 가가 그리도 많은지. 마치 명패옷을 사입혀주는듯이 말이요.》 《안요. 전 진심이예요. 제 마음속엔 선우님이 작가이고 소설가예요.》    선우정은 어깨를 으쓱했다.(허, 참, 남자앞에서 하는 녀자의 칭찬은 베일을 쓰고 하는 키스와 같다던데…)하고 생각하면서도 입은 다른 말을 내뱉았다. 《칭찬은 누구에게나 모르핀같은거 아니겠소. 허허…》 《우리 저 다방에 좀 앉았다가요. 녜?》 《것두 좋지. 오래간만에 녀동생을 만났는데…》   선우정의 입에서 녀동생이라는 말이 불쑥 튀여나오자 초영이의 눈이 쌜쭉해졌다. 그들의 이야기는 진한 커피처럼 풀어졌다. 《그래 부인님 잘 있어요? 아마 그때 저때문에 몹시 성나셨겠죠? 선생님두 애먹이구요.》 《뭐 별로…하지만 지금은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생겼으니 안심해요.》 《??!!》     선우정은 씁쓸하게 웃었다. 미화는 남편이 멋없이 떠돌아다니다가 돈만 축내구 돌아와서도 태평스럽게 소설을 쓴답시고 제정신이 아닌데다가 웬 고운녀자때문에 칼까지 맞고 돌아다니지 해서 여간 뒤틀려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국돈벌이 나간다 고 가더니 돈많은 사장령감에게 찰싹 들어붙고말았던것이다. 《그래서 가운데 방해될것두 없구하니 밀구 당기구 할것없이 제갈길 가기로 했소. 참, 그동안 초영이도 가정일구고 아기자기 살겠지? 초영이는 워낙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는 녀자니까.》 《저요? 호—참 저때문은 아니였던가요?》 《아니, 아니요, 참 소설감 제공한다지 않았어? 그간 경력을 상상할수도 있겠지 만 들으면 가슴을 칠것같아.》 《작가신분으로 들으시겠어요?》 《아니, 오빠로서.》 《오빠? 그만두자요.》 《아니? 왜 그래? 그럼 량심으로 듣지.》 《좋아요. 얘기하지요. 소설로 써요. 제목은 <바르게 살려는 녀자>예요.》    …선우가 칼에 찍힌 그날 이후 초영이는 가수노릇을 꿍져박았다. 이쯤하면 제모습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선우가 피로써 지켜주는 마음의 저변에 깔린 그 기대를 보아서라도 더는 자기를 학대할수 없었고 마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의 눈에 너절한 녀자로 남아있고싶지 않았던것이다.                                                                    5.       원래 초영이는 공장에 적은 두었으나 할일이 없었다. 공장일도 시원하게 풀리는것같지 않았다. 왕씨한테 날아가서 새롭게 시작할가 생각도 했지만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고있어서 종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마침내 공장이 거덜나고 파산이 선고되여 경매에 붙여졌다. 초영이는 밑져 본전이라고 왕경리에게 소식을 전했다. 왕경리가 경매에서 이기고 공장을 접관했다. 그는 초영에게 총경리를 맡기고 경제권, 인사권까지 도거리맡겼다. 그는 초영이의 재능을 믿어의심치 않았던것이다.    초영이는 텔레비대학을 다니며 배운 관리학지식을 한껏 발휘해볼 기회가 생기자 죽기내기로 접어들었다. 그는 일본중소기업가들의 경영관리모식을 모방했다. 우선 번다한 지도기구를 간소화해버렸다. 놀고먹는 수탉들은 제갈데로 가게 하고 로동자들도 자원원칙하에서 알쭌하게 묶어세웠다. 죽을고비에 살길이 나진다고 저저히 진정 한 주인공의 자세로 나왔다.     반년지나 로임을 착착 내주고 일년후에는 장금까지 쑥쑥 올라갔다. 물론 왕경리가 뒤를 받쳐주었고 그만큼 초영이도 실속있게 해제꼈다. 2년후, 전시 18개 국유 기업에서 세집이 겨우 밥벌이하고 나머지 열다섯집은 말이 아닌판에 유독 초영이네 공장만이 만가동을 걸고 들끓었다. 그해 년말, 기업개혁경험교류회의가 제정한 날자에 열렸다. 초영이는 선진기업가로서의 자호감에 가슴뿌듯했다. 드디여 자기의 가치를 찾았고 이제 녀성기업가로 더 높이 나래쳐볼 판이였다…     그러나 호경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자고로 돼지는 살찌면 운이 좋지않다는 말이 있다. 선진기업이 되였다하니 겉으로는 둥둥 띄우고 밑에서 벽을 구멍내고있었다. 닭을 잡아서 금달걀을 빼내려한 우직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차차 그렇게 번져갔다. 아 글타글 벌어서 여기저기 “부조금”으로, “공헌”을 흘러나가는데 막아낼수 없었다. 여기저기에 낯을 내야만 했다. 순진한 초영이는 기실 세상이 돌아가는 내막을 다 모르고 아롱다롱한 꿈을 꾸었던것이다. 초영이는 마침내 연약한 녀자의 몸으로 더는 공장을 운영할수 없다는것을 느끼고 사퇴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후엔 환경처에 청소공으로 들어가 새롭게 시작하게 되였던것이다… 《장하오. 난 초영이의 능력을 믿고싶소. 그리구 생활속에서 시대소설을 읽게 해줘서 고맙구요.》 《처음 페부에 스미는 말 해주어서 제가 오히려…》 《자, 저녁식사나 하지. 소설소재값을 외상으로 해서는 안되겠으니까.》 《어머, 인정 한번 찐하시네요. 오늘은.》 《무슨 말이요. 바위는 겉으로만 보는거 아니요. 뿌리가 깊다구. 내가 딱 그런 바위라는 말은 아니지만.》     선우와 초영이가 저녁까지 걸치고 거리에 나서니 택시차도 뜸해진 밤중이였다. 《바래줘요. 택시를 말고요.》 《그래. 초영이와 함께 걸을수 있는 길이라면 만리길도 기꺼이 가고싶소.》     초영이가 선우의 팔을 살며시 꼈다. 어스름달빛속에 길게 늘여진 희끄무레한 두 그림자…아, 어려운 인생길에 백년을 기약한 인연이라면 얼마나 좋을가?)너무나 지쳐버린 자신에게 시름놓고 기댈수 있는 커다란 기둥처럼 가슴 깊이에서부터 솟아있은지 오랜 선우를 살며시 훔쳐보며 초영은 한숨을 호—내쉬였다. 전생의 연분까지는 몰라도 돌이켜보면 어려운때마다 운명적이였던 그 만남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로처녀의 가슴속에 보라빛 동경의 세계를 구축하게 하였던것이다.    이밤, 등을 꼬브린 하현달이 창안을 엿보다가 그만 지쳐서 서천에 기울고 밤은 새벽을 당겨왔는데도 초영은 두눈을 초롱초롱 뜨고 누웠다. 녀자는 단순히 추워서 이성의 따스한 품속을 그리는게 아니다. 서른살을 바라보는 녀자의 생리수요도 스스 로 속일수 없는것이였다.     그러나 감각만을 추구하기에는 너무나 자성적이였던 초영인만큼 황보숭에게서 실망한후 사랑의 쪽문에 아예 녹쓴 자물쇠를 잠그었었다.(그이는 자유의 몸이라 했었지? 그말에 어떤 암시는 없었을가?)물과 젖처럼 마음과 마음이 녹아들고 령혼과 령혼의 얽힘속에서만 맛볼수 있는 안전하면서도 보람차고 정서적인 그 모든 감각을 줄수 있는 남자는 선우밖에 더 없다고 생각하니 더구나 마음이 짜릿해났다. 자신은 사랑의 렬차를 놓쳐버린 지각생이지만 선우라는 사나이가 몰고가는 인생렬차에 올라타야만 살것같았다.     남들은 찢어지고 잊을수 없는것이기에 첫사랑이라지만 처음 만나고 그에게서 도움을 받을때 벌써 자기의 첫사랑은 아이들의 소꿉질같은 실패작이 아닐가 하는 위구심을 보듬은 그녀였다. 순정의 꽃대문을 꽁꽁 닫아두었지만 무시로 찾아돠 두드리는 선우정을 생각하면 화가 복이 되는듯 싶기도 하였다. 행복의 한쪽문이 닫기면 다른 한쪽문이 열릴수도 있는게 인생현장이 아닌가…     그날, 차안의 도적에게 려비를 털리우고말것을 그 고마운 사나이가 수호신처럼 지켜주었으니말이지 어쩔번했던가. 대번에 믿음이 확 실린 초영이는 식당에서 맥주를 나누며 도와달라고 실토정했고 제이름 밝히는것은 꺼려하면서도 사나이는 쾌히 응낙 해왔다. 하여 그 아슬아슬한 시각에 절주있는 구두발소리로 침착성을 다져주었고《차예!》하는 엄엄한 목소리로 결전의 신호를 보내주었던것이다. 그는 다른 도시에 가서도 초영이의 든든한 뒤심이 되여주었다.그가 아니였더면 초영이는 빚은 커녕 메돼지잡으러 갔다가 집돼지 잃은격이 되고말았을것이다.     물론 그때는 일종의 두려움같은 심정으로 존경했고 오빠에 대한 녀동생의 마음으로 고마워했을뿐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존경과 신뢰가 어떤 숙명적묵결을 지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에서 남자는 공격형이고 녀자는 방어형이라는 전통적인 애정 스케줄도 지금 초영이에겐 색바랜 계률이다. 그래. 래일 먼저 전화를 쳐야지…)    초영이는 터질듯 부푼 자기의 젖가슴에 다시다시 수집은 순정을 보듬어보며 선우를 찾아 에덴동산에 올랐다.…    그날, 세번째로 초영이를 만나게 된 선우도 사나이로서 응당 가져보게 되는 녀자의 매력에 깊은 한숨을 톱았던것은 사실이다.(서로 마주보는 청산이 되지 않기를 바래요)하며 눈가에 미풍을 싣던 초영이의 동탕한 얼굴을 사진찍으며 선우도 속말을 하였다.(그래. 우리의 사랑은 덜기가 아니라 더하기로만 돼야겠지. 사랑했었다구. 알겠니? 귀여운 녀자야!)    선우는 워낙 점액질이여서인지 불붙는 사춘기에도 이성에 대해서는 한심하게 보수적이였다. 아마 어려서 부모를 잃고 새끼 특무로 몰리며 조약돌처럼 값없이 자란탓일수도 있었다. 그러나 철들어 자기 생명창조에 들어가서는 패기가 넘쳤다. 고중 이나마 간신히 마치고 환경위생처에서 쓰레기차를 몰면서도 경리라는 별호를 가질 만큼 활약적이였고 궁량이 넓었다. 그는 주어진 운명에 고스란히 한목숨 내대고 싶지 않았던것이다. 어릴때 굳어진 렬등감에 비관적성격이 굳어졌지만 생활과는 열렬히 포옹하고있는터이다.     막로동자치구 책벌레라면 드물긴 했지만 확실히 그는 많이도 읽었고 아는것도 많았다. 그는 행정적으로는 최하층의 존재였지만 사회는 그를 유망한 문인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였다. 그는 쓰레기차운전수로부터 환경처선전간사로 소환되였고 자기 인생마당에 자신의 동상을 열심히 조각해왔었다.     썩 늦게 장가를 갔지만 그의 모든 열망은 녀자의 몸에가 아니라 독서, 창작이였다. 그래서 신혼의 나날, 착착 감겨드는 안해에게서 받는 자극도 오래가지 못했다. 련애할때는 다감하고 재미가 샘솟는 녀자라고 여겼는데 차차 지내보니 금시 자글자글 끓는듯 하다가도 어느새 앵돌아져 살얼음이 선뜩하고 또 그우를 걷게 하는 미화에게 진저리쳐질때면 더구나 책과 펜을 벗삼았다.     미화가 바닥까지 환히 꿰뚫어보이는 시내물같기도 하고 틀어놓아야 요란스레 흘러나오는 수도물같은 녀자였다면 초영이는 겉흐름은 유유하나 속깊은 곳에서 사람을 휘감아치는 소용돌이가 있어 영원히 자맥질하게 만들 호한한 강물같은 녀자라고 느껴졌다. 선우는 그 깊이를 알수 없는 사랑의 강물에서 익사하고싶었던것이다.     바람새 부드럽고 해볕 따스한 일요일날, 초영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비록 로처녀이긴해도 동정을 지켜온 초영이와 늦은봄의 련가를 엮는다는것이 너무 로맨틱하지 않을가 저어되기도 했지만 초영이와 함께라면 점점 삭막해지는 이 인정세계에서 둘만의 오아시를 가꾸며 오래오래 즐겁게 살아갈것만 같았다.     초영이의 얼굴은 찬란한 광한에 싸여있었다. 그도그럴것이, 사랑에 취한 녀자의 얼굴은 어느때보다 아름다운 법이다. 정차게 깜박거리는 긴 속눈섭에 하많은 사연들이 맺혀있는듯 싶었다. 도안이 너무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무늬간 적삼에 받쳐입은 품위있어보이는 스커트와 잘도 어울리는 미끈한 몸매가 그렇게 매력적일수가 없었다. 그녀의 온몸에서 싱싱한 향기가 풍겼고 미모의 녀자들이 거개 그러하듯 대리석같이 싸늘한 느낌을 줄대신 우아하고 부드러운 모습이 더구나 이채로웠다.  《나오셨군요. 안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요. 경박하다고 숙보지는 않겠죠?》    예이제 눈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지성적타잎의 녀자가 걸어오는 눈전화이다.  《천사가 부르는데야 기쁘게 달려왔지. 초영이, 초영인 내 마음속에 뿌리내린지 오랜 사랑의 금자탑이였다구요. 사랑스러운 내 미인아!》    선우의 눈에서 발산하는 전파였다. 그들은 림간의 소로를 따라 가고 또 갔다. 낮다란 고개도 두개나 넘고 굽이도 몇개 돌았다. 선우가 조용히 웃고있는 함박꽃 한송이를 꺾어들었다. 《제가 곧 시들어버릴 함박꽃으로 보이지는 않나요?》 《너무 싱싱해서 독기가 풍기는것 같아. 가시속에 꽁꽁 숨어온 들장민가?!》 《아이 미워라, 그럼 왜 먼저 찾아주시지 않았나요?》 《난 이미 한고개 넘어온 지친 나그네처럼 벼랑우에 핀 꽃을 멀리서 보아야만 하는 그런 처지일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누가 먼저 훌쩍 꺾어가면 어쩔려구요?.》 《하긴 지금도 꽃을 슬며시 바라보는 속절없는 잎일수도 있으니말이요.》 《싫어요. 꽃은 잎에 받들려있어야 시름놓고 꽃꿈을 꾼다나요. 호호…》 《어이구, 제법 상징사가 나오는군.》 《닮았어요. 선우씨를.》     아닌게 아니라 초영이는 선우와 만나면 자신이 그의 말투를 따르게 된다는것을 느끼고는 혼자 웃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별로 생각하지도 않고 경구 비슷한 말로 운치있게 자기의사를 표달하는 선우에게 늘 탄복이 갔고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이 시각, 영원히 지지않을 사랑의 태양이 머리우에서 축복해주는듯 싶었고 미지의 그 세계속에서 선우와 함께 훨훨 나래치고싶었다.     그녀의 늦어진 사랑은 풋내기소녀들의 첫사랑과 달랐다. 소녀들의 첫사랑은 수집음과 망설임속에서 천천히 타오를수도 있고 천천히 열을 가할수도 있는것이다. 그러나 초영이의 사랑은 오래동안 잠자던 활화산이 폭발하듯 거대한 화염을 토하고 있다. 선우도 피부로 그것을 읽고있다. 조금은 철늦어진 꽃을 보는 느낌이였지만 초영이의 얼굴은 홍조로 물들어있었고 온몸이 그대로 불타오르고있었다. 《저 혼자 너무 힘들었어요. 저를 지켜주세요. 전 지쳤어요.》 《믿어주어 고맙소. 우리 함께 끝까지 걸어보자구. 전체가 울퉁불퉁한 길은 없을테니까. 내 사랑의 바위밑에서 용솟아 마를줄 모르는 옹달샘이 되여주오.》     어린애같이 차분하게 안겨드는 초영이의 날씬한 허리를 감싸안으며 선우는 눈으로 물었다.(난 나그네인데 후회하지는 않겠나?)   초영이는 대답대신 긴 속눈섭을 살며시 맞붙이며 꽃술같은 입술에 물기를 머금었다. 선우의 탄력있는 입술이 입술을 애무할때 초영이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6.       요즈음 초영이는 두가지 사랑의 선물을 열심히 준비하고있었다. 하나는 선우가 꿈꾸던 첫소설집을 펴내게 하는것이였고 다른 하나는 부끄러우면서도 몸을 달구게 하는 그 장엄한《례식》을 올리는 일이였다.     선우에겐 비밀로 붙이고 독단독행할 예정이였다. 그래도 선우님은 다 받아주리라 믿었던것이다. 그동안 알뜰히 모아두었던 소설들을 다시 정히 타자하고 표제도, 삽화 도 저혼자 해냈다. 제목은 선우의 대표작이라 할수 있는《미완성작》으로 선정했다. 서문도 직접 심장이 시키는대로 소박하게 진솔하게 썼다.     드디여 최신정장본으로 된 소설집이 나오고 서점매대에 진렬되였다. 련며칠 서점에 지켜서서 보니 책은 잘 팔리고있었다. 그는 선우를 위해 축원의 뜨거운 눈물을 머금었다. 초영이는 시집가는 첫날색시의 울렁이는 가슴으로 선우와 오래간만에 마주앉았다. 《참 세상에 희한한 일도 있지요. 서점에 선우정소설집이 나와있지 않겠어요. 제목은 <미완성작>이였는데 어찌나 잘 팔리는지 저도 한권 샀어요. 보실래요?》 《지금 무슨 생무우같은 롱담하는거야?》 《롱담이 아니라니까요. 자 보세요.》 《아니, 이게 무슨 감투끈이야. 누가 내 작품을…》 《범죄자는 눈앞에 있어요. 저작권침해죄로 기소하지는 않겠지요?》 《아니? 초영이가?!… 그런데…초영이! 고맙소. 내가 꿈꾸는거야 아니겠지.》 《당신의 실현된 꿈은 저의 사랑의 선물이예요. 필을 꺾지 말고 써내세요. 두번째, 세번째 소설집을 펴내자요. 제가 피를 팔아서라도…》 《고마워, 초영이. 그래 써야지…청산이 있는데 땔나무걱정은 없을레라…》    선우정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지금은 소설을 쓰기도 어렵다. 상품으로서의 소설은 다르지만도 인간희비극의 세부와 복잡다단한 인간의 감정을 피상적으로 그릴수 있겠으나 생활의 저변에서 흐르고있는 인간고와 비리와 사람들 가슴속에서 배회하는 볼수도 만질수도 없는 그 진실한 그림자를 굵은선으로 그려내고 생생하게 재현시키기란 정말 힘에 부치는 일이 아닐수 없다. 《그래도 쓰세요.》    그들은 교외쪽으로 택시를 몰게 하였다. 남산언덕에서 불야성의 거리를 내려다보며 초영이가 속삭였다. 《선우씨, 우리 결혼해요. 내 전반생은 회색구름속 오솔길이였지요. 당신이 곁에 있어주면 꽃구름만 필거에요.》 《나도 초영이를 사랑한지 오래였소. 그러나 바람새 세찬 세월에 뜬구름이 되지는 말아주오, 나도 녀자에게 지친 나그네라오》    초영이는 선우의 푸근한 가슴에 차붓이 기대였다. 그렇듯 고요한 이 밤의 정취속에서 그녀의 마음은 물먹은 해면처럼 나긋나긋해지고 뜨겁게 달아있었다. 그 모든 애달픈 사연은 사라져버리고 머리우엔 찬란한 별빛이 끝없이 흐르고있었다. 그녀는 한줄기 가벼운 바람결에 떨어지는 꽃잎처럼 풀밭에 무너져내렸다. 어금이 사이에서 사랑이 부서지는듯한 달콤한 신음이 새여나갔다……     밤안개같은 몽롱으로, 봄날언덕의 아지랑이의 가물거림으로, 세찬물결의 충격과 흔들림에 따라 여지없이 뭉개지는 꽃밭의 어지러움으로 엇갈리는 의식속에 두사람의 몸에서 불덩이들이 연신 빠져나가 풀들을 누렇게 태우고있었다.   …초영은 누구에게 빼앗길가 두려워하듯 선우의 근육질의 어깨에 바싹기대여 산을 내렸다. 발밑에 비탈길은 울퉁불퉁해도 걸음만은 가벼웠다. 선우와 함께라면 그 어떤 비탈길도 휘청거리지 않고 똑바로 걸을 자신에 넘쳐 가슴은 한껏 높아지는 그 만큼 둘이의 사랑은 2×2=5라고 생각하며 가마목에 엿가락처럼 흐믈흐믈해졌다…                                                1995년2월10일
106    (소설) 사랑의 의미 댓글:  조회:11488  추천:0  2012-10-18
                                                           사랑의 의미                                                                  최 균 선       생물종이 바뀌여져서 잠들줄 모르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창출해내는 소리와 큰 거리, 작은 골목들에 즐비한 식당들에서 풍겨나오는 느끼한 냄새, 길가의 집집들의 텔레비에서 울려나오는 련속극소리와 류행가소리…     어느 잡스러운 놈이 몰래 덮개를 들어가서 로출된 하수구에서 솟구쳐나오는 썩은 냄새와 무어라 꼭 짚어서 말할수 없는, 사람들이 발산하는 이런저런 이상야릇한 열기로 변경도시의 야경은 요기를 띠고 잔뜩 신들려있다. 낮은 땀흘리는 사람들것이고 밤은 향락할 여유가 있는 유한계층들의것이라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리라.      이튿날 필주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병원이였다. 침대곁에 낯모를 미모의 아가씨가 그린듯서서 자기에게 조용히 미소를  쏟고있었다. 알맞춤한 키에 몸매는 물찬제비같았고 해당화처럼 탐스럽고 화사한 얼굴에 말아삼킬듯 서글서글한 그녀의 정깊은 눈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녹여주는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흐르고있었다. 그속에 미묘한 전파가 흐르고있었다.      (아!? 당신이였군요? 언제 왔어요? 어쩌면?…)     필주의 눈이 그 눈전화를 받고있다. (당신이 유나이지? 아름다운 내추억속의 소녀야! 너였구나,) 필주는 잠시 눈을 살며시 감았다. 부끄럼을 잘 타서 늘 얼굴이 익을사해있던 어여쁜 소녀애의 모습이 세월을 거슬러 동년의 언덕에서 웃고있는듯 싶었다 “아이참 죄송해요. 나때문에 그만…” “아가씨는 …? ” “당신은 저의 생명의 은인이예요. 어제밤 제가 쓰러진것을 업어내온 사람이 당신이라고 하더군요. 난 먼저 깨여났지요. 고마워요.” “고맙긴, 그런 경우엔 겁쟁이도 한시간쯤은 영웅인체 할수 있답니다. 한시간은 너무 길고 적어도 3분쯤은 그렇게 할수 있을것입니다. 하하하…” “목숨을 건 일인데 무슨 장난처럼 말하네요. 전 정말 죽는가 했었는데…”     그린듯 고운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듯싶더니 어느새 똥랑똘랑 떨어지고있었다. “아, 그러니 전혀 낯선 얼굴이 아니구만. 우리 고모네 맞은켠집에 살던? 이름은 유나이고…역시 우린 어떤 인연이 있는 모양입니다. 아마도 어제 신이 아가씨를 구해주라고 나를 보낸것같습니다. 안그래요?”  “네, 당신은 필주라고 하지요? 전 이번에 정말 수호신을 만난것이야요. 우린 어릴 때 몇번 강변에랑 가서 놀았지요? 그때 방학이 되면 고모네집에 놀러온다고 하던 말이 기억에 남았어요. 고중을 다니면서부터 놀러오지 않는것같던데 이번엔 어쩐 일로…? 두분이 다 한국에 나가고 집이 빈지 몇달 된다고 하던데요?”  “네. 그래요. 고모네집이 내집과 같아서 열쇠도 그냥 가지고있지요. 어제 저녁에 기차에서 내리자바람으로 집에 안나가고 먼저 여기 들렸어요. 고모부의 서재에서 욕심나는 책이랑 가져가려구요. 그런데 이런 공교로운일이 있을줄이야, 어느 집에서 먼저 불이 난것같은데 아가씨는 어떻게 되여 그 위급한 관두에 혼자 쓰러지게 되였나요? 다른 식구들은?…”  “예,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있었는데 3년전에 엄마가 그만 저 사망……”  “아참, 홀어머니의 손에서 커가는 애라고 저의 고모가 말씀을 하던것을 깜박 잊고있었군요. 정말 훌륭한 아주머니이셨는데…미안합니다.” “아니요, 참 그런데 고모에게서 관내 어느 대학에 갔다는 말은 들었는데 지금은 어데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나 재작년에 졸업하고 서부지구지질탐사국에서 일합니다. 늘 배낭을 걸머지고 승냥이처럼 산발을 누비고다니지요.”     그저 우연한 상봉만이 아니였다. 서로가 어떤 기연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은 대번에 친숙해졌다. 유나로 말하면 방학마다 룡정에서 놀러오던 준수하게 생기고 마음도 계집애처럼 부드러웠던 필주란 사내애가 그냥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존재였는데  이번엔 생명의 은인으로 되였으니 정녕 운명적인 만남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아직은 서로간에 어떤 고백도 약속도 할수는 없지만 서로를 응시하는 시선속에는 그 이상의 절절함이 숨어있었고 이미 서로의 그 진한 무언의 고백을 감지하고있다는 신호가 깔려있었다.     희고 번듯한 이마, 숱많은 새까만 눈섭, 산줄기처럼 곧추 뻗어내린 코마루, 골깊은 인중아래 륜곽이 선명한 붉은입술…세월은 한 소년을 이렇듯 준수한 남자로 만들어주었다. 그 남자가 넓고 미더운 등으로 자기를 불속에서 업어내왔다는 사실이 유나를 다시 한번 목이메게 하였다. 이미 다 숙성한 처녀이고 여러 남자들의 추구를 받고있는 그녀였지만 가슴에 처음으로 끝도 한도없이 만들어지는 인연의 실이 청실홍실 늘여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몰래 얼굴을 붉히고있었다. 남자가 아무리 험한길로 멀리멀리 가도 끊어지지 않고 동이 나지 않을 그런 금실이라고 믿었다.     가슴이 설레이기는 필주도 마찬가지였다. 한창 나이에 일년치고 절반이상을 산속에서 천막을 치고 되는대로 자고 먹고하는 생활을 하여야 하는 그로 말하면 인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고 아기자기하게 살고싶기도 한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랑할 사람이 없는 사람일것이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 바로 사랑을 하는 사람일것이다. 사랑, 이 얼마나 젊은 혼을 사로잡는 감미로운 말인가?     필주와 유나는 그렇게 알게되였고 드디어 첫사랑의 뜨거운 열풍에 혼신을 불태우게 되였다. 녀자애가 비록 대학도 졸업하지 못하고 백화상점에 영업원으로 박봉을  타고있는 흔하디 흔한 그런 도시아가씨였지만 필주에게는 둘도없는 백설공주였고 자신은 백마왕자이고싶었다. 유나는 당당한 대학졸업생이 평범한 녀자인 자기를 그렇게도 좋아하는지 야릇했지만 녀자로서는 그이상의 행복한 일이 있을수 없었다. 문벌도 없고 재산도 없다. 밑천이라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미모뿐이다.     …사랑하는 녀자를 홀로 남겨두고 머나먼 곳으로 다시 떠나야 하는 필주의 마음은 더없이 아팠다. 떠나기 전날 유나가 필주를 찾아 룡정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달빛을 밟으며 해란강둑길을 거닐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백년후의 일을 생각하며 가슴을 달구었다. 필주가 식지를 내들었다. 유나도 촉기빠르게 길고 매끈한 자기 식지를 내들었다. “유나! 사랑해!!이밤 손가락을 걸고 한 우리의 사랑은 백년을 가도 변치않는거야, 자신있으면 걸어,” “필주씨도 마음이 변하면 안돼요. 알았지? 나 유나는 렬녀춘향처럼 일부종사를 맹세한다. 호호호…”     연두색 적삼에 받쳐입은 짧은치마는 그녀의 준치같이 미끈한 몸매를 더없이 우아하게 해주면서도 조금은 현대파적인 거리아가씨를 련상시켜주었다. 그림속에 선녀를 련상시키는 이쁘장한 얼굴은 달빛아래 빨갛게 홍조를 머금고 있었는데 온몸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음을 암시해주고있었다. 그토록 은근하게 달래오던 갈망이 그대로 불길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몇번은 떨리는 혀가 엉켰고 다음은 본능적인 몸짓이 더욱 격렬해졌다. 미칠듯한 열정과 흥분에 휩싸여있을 때 누구에겐들 감정상에서의 은밀한 활동이 발로되지 않으랴!     유나는 소녀시절의 부끄러운 꿈을 회상했다. 그때의 몽롱하던 꿈이 오늘 필주라는 멋진 남자로 구체화되여서 지금 자기를 억세게 안아주고있다는 느낌이 황홀하기만 했다. 바야흐로 몸과 몸이 하나로 엉켜질것을 바라는 필주의 뜨거운 입김을 얼굴에 느끼며 남자와의 첫비밀을 가져얄 자신이 두렵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여서 숨이 막혀버릴것만 같은 감동으로 몸을 비틀었다. 이자리에 아예 누워버리고싶기도 하였다.  “필주씨. 나 다 내줄게 가져, 다가져, 아무때건 나는 당신거니까.”  “고마워, 유나!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나 너를 곱게곱게 지켜주다가 화촉동방 에서 순결하고 향기로운 꽃을 마음껏 흔상할테야, 알았지? ”     필주는 더욱더 녀자의 몸을 밀착시키고 오래오래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을뿐 그 이상의것을 요구해오지 않았다. 그러나 유나는 녀자의 본능으로 남자가 무엇을 바라 고있다는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기에 불덩이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필주의 몸을 받을 준비를 하고있었다.  “사랑해요, 필주씨!지금 내가 원하는거애요. 나도…”     필주는 처녀의 푹신한 육체를 부시고 파뭉개고 다시 조합하고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소중함을 이렇게 경솔하고 창졸하게 파괴하고싶지 않은 내심의 갈등때문에 몸서리쳤다. (아, 얼마나 아릿답고 사랑스럽고 순결하고 다정다감한가! 눈을 꼭감고 자기의 줄키스를 열렬하게 받아무는 이 녀자의 머리속엔 어떤 화면들이 떠오르고 있을것인가? 한창 흐드러지게 꽃피여있는 꽃이 한줄금 격정의 비를 바라는 심정일가? 그러나 나는 이 녀자에게 리성의 우산을 씌워주고있구나…) 유나는 그저 말없이 남자가 하는대로 자기를 맡겨두고 숨소리만 끓여올렸다…     필주가 떠나는 날 유나는 목에 매달리며 울먹거렸다.  “필주씨, 곧 일자리를 바꿀거죠? 난 당신없는 날을 상상할수 없어요. 그리구 나 원래 고독과 기다림에 견뎌내는 검질긴 체질이 아니애요. 어서 달려와 날 지켜야해요. 알았지? 응!”     필주는 말없이 녀자를 꼭 껴안아줄뿐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랑하는 남자는 훌쩍 가버렸다. 유나는 삽시에 모든 끈이 떨어져나가고 혼자 남겨진것같은 허탈감이 그녀의 가슴을 가득 채워주었다. 고독속에 누구를 그리워한다는 마음은 슬픔이면서도 절절한 희열이 숨겨진 기쁨이기도 하건만 저혼자 익어가는 가을이 쌀쌀한 바람과 함께 밀려들 때 그녀의 마음에도 붉게 타다못해 누렇게 황이든 락엽이 한잎 두잎 쌓여가기시작했다. 견우직녀처럼 그리운 님을 만날 그 일년이 그에게는 진짜 십년맞잡이로 느껴지였다. 유나는 자기의 일기장에 사랑시를 끄적이는것으로 필주에 대한 그리움을 보듬었다.                     첫사랑의 감회는                     몽롱한 초생달                     수집어 자꾸만                     엷은 구름속에 숨네요.                       첫사랑의 감회는                     피기를 기다리는 꽃망울                     조용히 조용히 봄비의                     애무를 기다리네요                    첫사랑의 감회는                    심령의 탐색인가요                    모지름쓰며 또 다른                    절반의 자기를 찾네요.        그런 지루한 나날속에 격정에 넘지치던 첫사랑의 서정시는 그리움에 애간장이 녹고 기다림에 지친 그녀의 마음속에서 차차 산문시로 번져가고있음을 발견했을 때 그녀는 무서움에 몸을 바르르 떨었고 방울방울 눈물을 흘렸다.     필주는 다음해 음력설에야 날아왔다. 비행장에 달려나간 유나가 거칠어진 남자의 얼굴을 얼없이 쳐다보다가 불쑥 튀여나온 말이 걸작이였다.   “아이, 미워죽겠어!”  “보고싶어 미칠번했어.”  “거짓뿌리, 그렇게 나 보고싶으면 그동안 일터를 바꾸어버릴게지?”  “나 배운것이 지질탐사가 아니야? 그리구 사람은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할 때 가장 빛나는법이야, 좀 기다려줘, 실적을 쌓으면 연구원으로 들어앉게 될거야. 그땐 유나를 그냥 업고다닐테니까. 하하하…아니면 이번에 아예 결혼해버릴가? 응!” “싫어, 결혼하고나서 더구나 어떡해? 독수공방 생과부가 되라구? 혹시나 그새에 아이나 생기면 혼자 어떻게 키워요?” 유나는 잔뜩 성난 눈길로 필주를 쏘아보며 동가슴을 막 두드려댔다. 그리고 앵돌아져서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견우직녀의 상봉은 그렇게도 짧았고 그나마도 티각태각하다보니 나날은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폭포처럼 쏟아져내리는 정신없는 나 날이였다. 헤여지던 날. 유나는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응석부리듯 말했다.  “이번엔 직업을 바꿀거지? ”  “… …”     다시 시들해진 봄을 밀어내고 6월이 푸름을 자랑하며 폭염속의 계절에로 걸어가는듯싶더니 어느새 호화롭던 가을이 찬서리속에 스러져갔다. 유나는 필주를 다시 인식해야겠다는 두려운 생각에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그런 두려운 생각은 그녀 자신이 지배할수 없을만큼 집요하게 갈마들었다. 만남이 없으면 리별이 없듯이 리별이 없으면 그리움도 없다. 필주는 먼곳에 있다.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하지 편지들은 더구나 그리움만 덧쌓을뿐이였다.     이번에는 필주가 늦가을에 왔다. 차디찬 기류에 실린 가을바람이 각일각 락엽을 재촉한다. 푸른 여름옷을 떨쳐입었던 강둑의 백양나무는 어느새 여름옷을 다 벗기우고 누렇다못해 거밋하게 풀이죽은 잎들을 지난밤 도적비에 질척해진 강둑에 맥없이 던지고있었다. 한잎, 또 한잎…  “당신 직업을 바꿀거야? 안바꿀거야? 나 더는 고독과 기다림에 지치고싶지 않아! 나 벌써 스믈 일곱이야, 오래지 않으면 여덟, 할망구가 될날도 멀지 않았구,”    필주는 아무대답도 주지 않고 녀자를 더 살뜰하게 껴안아주었다.  “나 비둘기같이 구구하며 사는 잉꼬부부가 되고싶단말이여, 그러나 당신은 나에 게 그런 행복을 줄수 없어,”  “내가 목숨처럼 사랑하는데두? 사랑이면 다 아니야? 이 성급한 계집애야!”     필주는 길게 해석조로 말할수 없었다. 말은 비록 마음의 고백이라지만 내심의 충동을 형상적으로 표달하기에는 너무나 창백무력한것이다.  “남녀의 사랑은 함께 하면서 크는거야, 기억과 추억속에서 크는줄 알았나봐, 그리고 편지나 전화속에서 사랑의 불길이 타오를수 있어? 아무래두 우린 만나긴했지만 두갈래 철길같아, 영원히 평행선으로 달리는…”  “그러니까 갈라지자구? 무엇때문에? 시간은 사랑의 시금석이고 리별은 고험의 천평이라지 않아? 기다림은 사랑의 열화를 지펴올릴 도화선이구!”  “에이, 나몰라! 나 어떡해? 사랑의 별명이 단속이란 말두 몰라? 남자들이 자꾸 못살게 묻어다닌단 말이야! 나 자기를 지켜낼 힘이 없어…직업을 바꿔요. 네? 대학생들이 어디 철밥통에 매달려 살기좋아하나요. 하해하면 알락달락한 꽃밥통이 지천으로 널려있는데, 지금 그런 로임으로 현대적인 신혼살림을 꾸릴수 있어?”     비록 유나가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남자가 진정 목숨까지 내댈수 있을만큼 자기f를 사랑한다는걸 너무나 잘 알고있다. 그리고 영구하리라는것도 알고있었다. 그러나 자기 직업에 대한 남자의 집착이 무엇때문인지 읽을수 없었다. 남자의 툭한 손가락에 녀자의 가녀린 손가락을 걸고 심장속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쌓아올린 맹세의 금빛기둥에 어느새 녹이 잔뜩 낀때문일가? 마치도 뱀이  허물을 벗는것이 고통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해마다 벗어야 하듯이 유나는 자기도 격에 맞지 않는 사랑의 갑을 벗고야말리라는것을 가슴으로 알고있었다.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놓아줘요. 이젠 남자가 없으면 못살것같아, 난 늘 나를 지켜봐줄 남자를 찾을거야,”     필주는 말할수 없는 비애와 분노를 느꼈다. 거센 숨소리를 삼키느라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둥근달은 손가락걸고 백년가연을 맹세하던 그밤의 달처럼 둥글었으나 그 달빛은 아니였다. 즐거울때는 달도 따라 웃어주는법이지만 괴로울 땐 달마저 함깨 차거워지는법인가? 달빛이 오늘처럼 싸늘하다는것을 처음으로 느끼는듯싶었다. 필주는 녀자아이를 죽이고싶었고 갈기갈기 찢어발기고싶었다.  “나 죽음으로 담보할만큼 널 사랑한단말이야!  나쁜 계집애같은게,”  “미안해요. 그러나 죽음으로 담보하는 사랑이라해서 다 숭고한 사랑이 아니고 더구나 행복한 사랑은 아닐수 있잖아요? ”    “좋다. 네입으로 처음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정말 천사의 말처럼 들렸어, 그런데 지금 사랑한다는 말은 순전히 타협하기 위한 입발림이야, 흥, 그래, 가라구!너의 치마폭에 싸여도는 남자를 찾아가란말이여, 넌 행복이란 끈덕진 인내라는것을 영원히 알것같지 못하구나. 그리구 꼴뚜기는 생선이 아니란걸 알게될거야, 하지만 네가 엮으려는 그 사랑책에 부디 눈물자국이 없기를 바란다. 안녕히!”     필주는 그렇게 짜내듯 몇마디 뱉아놓고 홱 돌아섰다. 눈물이 나올것같았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에 실패하면 운명의 작간이라고 자기를 위안하지만 필주에게는 이 시각 자아위안 할 마음의 여유가 조금도 없었다. 괴로워할수록 순수하다는 증거이고 순수할수록 참사랑의 표지인것이다. 필주는 형언할길없이 괴로웠다. (에라, 갈테면 가라, 영원함과 완성이란걸 바란 내가 어리석지…)     그는 휴가기도 마치지 않고 앞당겨 이 괴로운 땅을 떠나버렸다. 세월이 흘러갔다. 그의 사랑은 승화되여 끝없는 배려로 두터워지고 증오란 그저 밑에 깔아앉은 찌꺼기였다. 사랑은 유나의 배반으로 철저히 깨졌지만 달빛아래 손가락걸고 자기 마음의 한복판에 단단히 박아세운 맹세의 기둥을 빼버릴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진실한 감정에는 결론이 없었지만 리성적으로는 차츰 매듭을 짓고 있었던것이다…     소년시절에 아리숭한 감정속에 은근히 좋아하였던 녀자애. 그 녀자애가 한껏 성숙한 미녀로 되여 자기품에 안기게 된것은 인생의 기적이라 할것이였다. 그렇게 완미한 녀자의 사랑을 받게 되였다는것은 기막힌 아름다움을 차지하였다는것, 그런 아름다움을 받아안은 자기야말로 음양으로 이루어진 이 인간세상에서 누구보다 부자라는것, 하기에 온 세상에서 행복을 혼자 껴안은듯한 느낌이 들때마다 날개라도 돋힌듯 용기백배하여 면면한 산발들을 훨훨 날아넘었고 우등불가에 지새는 심산의 밤에도 고독을 모르고 먼곳의 유나에게 심령의 전파를 보내고 또 보냈다.     필주와 결별한 첫며칠 유나도 애석함과 후회와 가책으로 모대기다가 마침내 필주에게 사죄하려고 모아산고개를 넘었다.그러나 필주는 이미 유감과 한을 안고 먼먼 천애이역으로 날아간지 며칠되였다. 유나는 그렇게 필주와 갈라졌지만 생각처럼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필경은 자기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였고 순정을 바쳐 사랑하기로 마음을 싹 내준 남자였던것이다. 생각할수록 필주에 대한 좋은 일면과 달콤했던 추억만 봄풀처럼 파랗게 되살아났다. 필주의 어머니가 차갑게 바라보던 눈길이 칼 처럼 심장을 푹 찌를줄은 몰랐다. (아, 녀자란 남자를 등을 밀어 문밖에 쫓아내고서도 문을 닫으며 눈물짓는 모순되고 연약한 동물인가?…… )     남자와 녀자의 마음은 바이얼린줄마냥 부동한 손가락으로 부드럽거나 힘있거나 아름답거나 귀에 거슬리는 등 같지 않은 선률을 탈수 있다. 같은 사람일지라도 누가 튕기겠는지는 아무도 알수 없다. 얼마후 그녀의 감정세계에 자상하고 부드럽고 친절한 남자가 뛰여들었다. 그는 유나를 다람쥐 채바퀴 돌리듯이 싸고돌았다. 일생을 기탁할만한 남자라고 믿고 백년을 허락했다. 필주에 대한 추억의 보따리을 안고 방황하던 그녀의 마음밭에 사랑의 태양이 웃고 정열의 불비가 쏟아져내렸다.     그들은 결혼했다. 신혼은 꿀처럼 달콤했고 생활은 차분한 려행산문처럼 한페지 한페지 엮어졌다. 아이가 생겨났다. 유나는 모든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주부들처럼 아이를 키우고 밥을 짓고 빨래하고 남편에게 몸을 바치며 평온한 생활의 호수에서 자맥질했다.     그러나 놓쳐버린 새가 귀중함을 느끼는게 인간심사의 약점이던가, 유나는 자기도 모르게 가끔씩 필주의 그 정열적이고 호협하던 모습을 그려보군했다. 지금의 남편도 별로 나무랄것없는 좋은 사람이였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해서 꼭 사랑스러운 사람 인것은 아니다. 련애와 결혼은 그렇게도 달랐다. 자기가 바라던것이 고요히 펼쳐진  호수와 같은 그런 애정생활이 아니였음을 유나는 날이 갈수록 절절하게 느꼈다. 소용돌이도 없고 파도도 없는 들판 한가운데를 유유히 흐르는 그런 강물도 아니였으니  더구나 물에 물탄것처럼 맥맥하였다.     어느 날, 한국에서 돌아온 필주의 고모가 유나에게 필주가 죽었다는 비보를 전해주었다. 운남의 어느 깊은 산속에서 탐사를   하다가 실족하는 바람에 벼랑에 떨어져 비명횡사했다는것이였다. 유나는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놓고 공원의 소나무숲에서  슬프게 슬프게 울었다. 그제야 그는 자기를 알았다.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래도 필주가 깊이깊이 숨어서 자기를 지켜보고 함께 숨쉬고있었다는것을, (필주씨, 구천에서라도 이 무정하고 자사자리한 저를 징벌해주세요…)     며칠후 단위에 나가니 수직실아바이가 등기편지 한통을 내주었다. 봉투안에 한장의 보험단이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가슴이 후두두했다. 그는 필주의 어머니가 쓴 짤막한 편지를 읽고서야 사연을 알게 되였다.   “유나아가씨, 이 보험단은 며칠전 아들의 유물을 정리하다가 발견했소. 이속에 있는 전부의 보험액은 아가씨의것으로 되여있소. 필주가 아가씨를 사랑해서부터 보험을 시작한것같소. 그애는 아가씨와 헤여진후에도 그냥 보험금을 낸것같소. 나는 그애 가 이 보험단이 나중에 아가씨의 손에 쥐여질것이라는것을 상상못했줄아오. 그애는 그렇게 만리이역에서 외롭게 떠돌면서도 아가씨에 대한 사랑을 안고 웃으면서 살았으리라 믿소. 그애는 다른 녀자를 얻으라고 권고할때마다 자기가 손가락을 걸고 한 사랑의 맹세는 백년을 두고 한것이라면서 종시 말을 듣지 않았소.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아가씨가 밉고 괘씸한 마음같아선 아예 불태워버리고싶지만 죽어가면서도 아가씨의 이름을 불렀을 아들애의 가긍한 마음을 저버릴수가 없어서 그냥 보내니 알아서 요량껏 처리하오…”     편지를 다 읽어내려갈수 없었다. 가슴이 미여지는것같았다. 얼굴을 하늘로 들고다닐수 없을것 같았다. 그는 화장실로 달려들어가서 수도물을 틀어놓고 얼굴을 씻고 또 씻었다. 그러나 샘처럼 솟는 눈물을 다 씻어낼길이 없었다.       누구에게서나 사랑은 영원히 미완성고로서 우리가 체득한것보다 언제나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법이다. 안온한 가정생활속에서 청춘은 차차 사라져가고 자기가 추구하던 사랑도 시들어가고 기이한 인연으로 맺었던 첫사랑의 마지막 잎사귀도 떨어졌 건만 유나의 가슴속에 새롭게 새겨진 필주에 대한 깊고깊은 사랑과 사랑한다는 말의 마지막 의미는 결코 세월과 더불어 늙지도 않을것이며 죽어가지도 않을것이였다.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한것이다. 그러나 유나는 너무 늦게 알았고 그리함으로써 평생의 후회막급으로 남았다. 그래서 그 의미가 유나에게는 더 각별하리라.                                            2004 년 11 월 20 일
105    (소설) 출세기 댓글:  조회:10602  추천:0  2012-10-13
                                                 출세의 길                                                    최 균 선                                                          1       대학을 졸업할때까지만도 꿈도 푸르렀고 패기도 넘치던 그였다. 다른 동학들은 일체 “련합군”을 출동시켜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뚫으려고 동분서주할 때 그는 배포유하게 도서실에 가서 싱갱이질했다.  《야, 이 연변시골내기야, 너에겐 노을길만 펼쳐질줄 아느냐? 어느때라구 죽치구 앉아서 백일몽을 꾸냐?》     한침실에 친구들이 답답해서 지청구를 대면 영균이는 사람좋게 히죽이 웃기만했다. 사실 친구들에게 내색을 내지 않아서 그렇지 그도 속에 이미 타산이 서있었던것이다. 이 몇년래 졸업생들은 저저히 정부기관이나 합자기업에 들어가려고 뛰여 나녔지 학교에 남아서 분필가루를 먹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영균이는 어릴때부터 교원이 되는것이 최대의 리상이였는데 대학을 졸업하고나서도 자기의 개성으로 볼때 교원이 가장 합당하다고 여기고있었다. 그는 장차 대미술가가 되려고 윽벼르고 있었다.   《나 학교에 남아 석사공부할 작정이야, 늬들 먼저 나가 돈많이 벌어라. 나중에 웃는놈이 제일 통쾌하게 웃는다더라. 이제 두구보라구.》   《어랍쇼, 꿈만은 알락달락하군그래, 하하하…》     영균이의 대답에 모두 왼고개를 탈았다. 하긴 지금 세월에 학교에 남아서 교편을 잡는다는것은 미친놈으로 간주되였다. 그러나 영균이, 그 자신은 확실히 교단에 희망을 세워둔지 오래다. 그는 자기의 오래 묵은 리상의 나무가 허무하게 말라죽지는 않 을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시골의 코흘리개시절부터 그는 교원을 너무너무 숭상해왔다. 선생님은 지고무상의 사람이였고 선생님의 말이면 곧 성지였다.     소학교 다닐때 일이다. 한번은 선생님이 회충약을 나누어주면서 한번에 열알씩 먹으라고 지시했다. 그의 엄마는 외동아들에게 무슨 탈이라도 생길가봐 몇번에 나누어 먹으라고 얼리고 닥치고 했지만 선생님의 말인데 어떻게 어기는가고 고집을 부리 며 시킨대로 다먹어버렸다. 그처럼 선생님을 하늘같이 우러러 모시던 영균이였다.      그러나 친구들의 말처럼 세상은 그런게 아니였다. 친구들이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뛰여보라고 권유했지만 그저 시무룩히 웃어넘겼다. 그러나 그 웃음이 똥집을 달게 하는 한숨으로 되여버렸다. 아닌게 아니라 친구들의 말이 적중했다. 그의 꿈이 잔 뜩 불구었던 고무풍선처럼 터질줄이야, 금테안경을 건 계주임이 말하기를 시교육 위원회에 올려보내기는 했지만 그만이 비준되지 않았다는것이였다. 원래 학교에서는 학생을 더많이 모집하기 위해 새로 숱한 전업을 설치하기로 하고 백여명의 우수생을 학교에 남기였는데 유독 영균이만 실망을 안았던것이다. 영균이는 그만 울상이 되였다. 계주임을 비롯하여 보도원, 학생처장 등이 영균에게 사상공작을 들이댔다.     아직 반에는 사범전과대학에 갈수 있는 명액이 하나 있다면서 무마하였다. 만약 영균이 자신이 그 학교에라도 가겠다면 얼마든지 추천할수 있다는것이였다. 영균이는 같은 도시이고 해서 장차 그곳을 발판으로 다시 모교에 와서 교편을 잡을 장원한 타산을 하고 동의하였다. 그러자 계주임은 립공속죄라도 하듯이 적극적으로 전화련계를 달아주며 활동하였다. 원래 대학에 남기려던 우수생이니 사전에 가면 중용할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며칠후 영균이는 사범전과대학으로 찾아갔다. 사전의 중문계주임이란 사람은 빙글의자에 앉은채 눈길도 돌리지 않고 쌀쌀한 말을 짜내듯 띄염띄염 내뱉았다.     ㅡ아, 전화는 받았는데 그 문젠 안될것 같소. 이미 편제가 다찼으니까말이요. 만약 정오겠다면 후근부문은 좀 고려할수 있지…     사범전과대학에서 그렇게 삐딱하게 나오자 학교에서도 어떻게 해볼수 없다면서 맥을 놓아버렸다. 결국 영균이는 제쪽지에 물러나서 시드는 애호박신세가 되였다. 평소에 영균이를 될성부른 젊은이라고 좋게 보아오던 한 교수가 가만히 알아보았는데 결코 편제문제가 아니였다. 배가 유난히 나온 사범전과대학의 그 중문계주임이란자가 사사로이 말했다는 내용을 전해 듣는 순간 영균이는 뒤잔등에 랭수를 뒤집어쓰는 것같았다. 그는 그의 말을 두고두고  되새겼다.     ㅡ흥, 그 자식도 계주임이고 나도 계주임인데 그가 무슨 직접상급이라구 누굴 보고 이래라저래라 하는거야,     ㅡ지금 세상이 이렇게 돼먹었다구, 알겠나? 달리 생각해보게…     영균이는 쓰디쓴 웃음을 짓씹어삼켰다. 결국 애매하게 뽈처럼 이리저리 채워다닌것이 분하고 절통하였다. 제2차분배로 지구에 내려갈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구에서도 빽이 없는 그는 현에 돌아올수밖에 없었다. 군이는 현정부선전부에나 들어갈가 하고 애를 쓰다가 역시 빽이 없는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몇번이나 체념을 불러보았다.     영균이는 배치를 기다리는 동안 고향마을 하마래에 돌아와 막연한 기다림에 시달리며 속절없는 나날을 보내였다. 밥술을 놓기 바쁘게 두만강가의 떨어져나간 벼랑턱에 걸터앉아 해를 동무하였다. 령혼의 크낙한 고통과 인격유린의 불만을 넘치게 안아 보고나서야 그는 자신의 어리숙함에 침을 뱉지 않을수 없었다. 시간은 그 어떤것도 색바래게 하는 법이다. 상당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졸업후의 그 나날에 있었던 희노애락을 여유롭게 돌이켜볼수 있었다.     오늘도 석양은 평두산으로 넘어가는 산마루에서 저혼자 얼굴을 붉히고있다. 영균이가 저혼자 망망한 세사와 불만가득한 자기 인생길에 속절없는 회한을 널고있 든말든 서쪽하늘을 곱게 물들이던 장미색 저녁노을이 비단필을 펼친듯 수림과 곡식밭 과 그리고 지붕위에 소리없이 흘러내리며 저녁연기 피여오르는 시골의 평화를 감싸안 고있었다. 한여름의 푸른산과 황혼녘의 시원한 골바람이 그의 긴머리카락을 보듬어주었다. 그는 버릇처럼 환상같은 자기 세계에 빠져들었다…     복지는 결코 대도시나 번거로운 벌방지역에만 아니라 인간의 진실한 마음이 서로 얽히는 이 시골에서도 찾을수 있을것이다. 탐욕과 암투와 음모와 교역이 아직 꿈틀대지 않는 이 한적한 마을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수는 없을가? 그런 케케묵은 생각속에서 이 저녁처럼 호젓하게 저므는 날이면 영균이는 소외와 슬픔과 고독이 무엇인가를 새삼스레 되씹지 않을수 없었다. 석양의 잔광이 피빛으로 타다가 바야흐로 암담한 색채의 너울을 뒤집어쓰고있는 어스름속에 침묵으로 밤을 맞는 백바위를 바라볼때면 인간의 끓는 정열과 욕망이 너무도 사소한 빛에 지나지 않음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천년고독에도 말이 없는 산은 그의 가가슴의 상처에 참고견디는 철학을 주었다.     이 마래곡에서 지금 유일하게 속심을 나눌수 있는 친구인 인표가 문득 생각났다. 대학입학통지서를 받아쥐고도 돈이 없어 못가고 심통만 부리는 인표가 말한적이 있 었다.  《형님, 나는 요즘 한가지 철학을 터득했어, 슬픔의 진의를 깨달으면 삶은 더소중해지는것이라구, 비록 어둡고 슬픈 자각이지만 말이야…》     그는 영균이를 자기보다 더불운한 처지라고 곧잘 위로했다. 인표는 영균형의 체념비슷한 자각이 어느 대학교단에서 손을 젓고있어야 할 모습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할 때 울분이 터지는것을 숨길수 없었다. 그것은 찢어진 기폭같은것이였 고 피가 퇴색한 청춘의 기발이기도 했다. 한많은 시름을 싣고 흘러내리는 두만강물결 에 흘려보낸 사연같이 다시 거슬러 올라올길 없는 자탄같기도 한것이였다.  《쓴맛에서 단맛을 그리는게 인생인지도 모르지》  《흥, 셈평좋은 소릴 하구있네. 속은 시래기가 되여가지고 공연히 단맛을 찾는체 하는게 아니요? 랭수먹고 된똥을 누려하듯이 말이요. 미각을 아예 상실했다는게 오려 솔직한 고백이잖아?》  《아니, 미각이 망각된 곳에서 새맛을 보게될지도 모르지 않니? 좀 막연하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기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는 영균이를 알수 없다는듯 바라보다가 기어이 부르튼 소리를 한마디 한다.   《형님, 난 죽지부러진 기러기야, 모두가 날고있는데 젠장, 난 이 시골의 외로움에 참을수 없어, 아예 떠나버리고 말거야》 그리고는 다잡을길 없는 마음을 위로하기나 하듯이 품속에서 작은 피리를 꺼내여 애절한 가락을 뽑아낸다.  《야, 나도 그래. 외로움을 겪는다는것은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지. 쓸쓸히 지는 락엽을 보는때처럼 말이다. 가을마다 그렇게 떨어지고 다시 가지에 이파리가 돋고… 내생각의 나무에도 움이트고 그리곤 또 바람에 날려가고…내 인생이 그렇구 그런지도 몰라, 후유…너 참 피리를 귀신처럼 잘부는구나. 언제 배웠길래?》   《난 피리를 입으로 부는게 아니라 심장으로 부는거야, 마음이 찢기며 새여나오는 구슬픈 소리가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거든.》   《그래, 음악은 즐거워서 만든것이라기보다 비애를 쏟아내느라고 만들어졌을수도 있지. 난 외롭고 고달플 때에는 저 명동골에 깊이 들어가서 이 가슴이 터지도록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군했지. 지금은 그저 휘파람만 불어도 모든 잡념들이 비애를 얼싸안고 달려온단 말이야, 사람은 슬프면 눈물이 나온다지않아? 어찌생각하면 눈물이 나니까 슬프다고 하는것인지, 에익, 정말 개떡같은 내인생, 보잘것없고 하찮 은 인생살이야…》     단둘이 산마루에 앉아 한탄소리로 시간을 삶을때면 오랑캐령너머로 눈길을 돌리며 한숨을 토했다. 고개너머로 흰구름이 흘러가고 어느 수풀에서 해설피 게으른 울음을 우는 황소의 목멘 영각소리가 더욱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형님, 그 좋은 조각기술이랑 배웠다가 이 마래곡을 조각하겠소? 어디가서 그림이라도 그려서 팔구려. 나같으면 언녕…》 인표의 말이 맞을지 모른다. 언제까지나 땀에 젖어 밭에서 돌아오는 아버지의 등 허리를 훔쳐보며 안스러움을 삼키는것도 일은 아닌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각을 좇아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 움직임은 결단내리면 어떤 테두리를 과감히 벗어나서 부정적적이거나 아니면 습관된 행위로 굳어져내려온 관념의 계률을 마사버리고 제한 몸을 내댈 결심이 앞서야 한다. 그런데 자신은 그저 서생으로 운치있는 미술가로 한생을 장식하려했던것이니 그 꿈이 부당하게 깨여져야 하는 아쉬움이니 아픔과 슬픔을 그리고 몸부림이 이제 평생의 한으로만 남아야 할지도 모른다. 《 형님, 우리 이렇게 썩지 말고 얼른 떠나버립시다. 하다못해 어느 건축장에서 모래치기를 하더라도 여기보다야 가슴이 열릴거 아니요?》     영균이는 고집을 쓰면 벽이라도 박차고 나갈 인표의 칼칼한 성미기 부러웠다. 그리고 그라면 어떤 곳에 가든지 기죽지 않고 뚫고나갈것이라는 믿음이 앞섰다. 그런데 자기는 고향집뜨락에 줄느런히 선 포풀라나무에 넓다란 잎사귀가 한여름 푸른 꿈을 키우다가 다시 황들어 지던 지난 가을, 영균이는 밀리고 밀리다가 마침내 본지방에 떨어져서 분배문제로 뛰여다녔다. 그런데 조락의 가을처럼 간곳마다 실망이 흩날리고 다시 산기슭에 희망의 봄꽃이 피였다. 포풀라가지마다에 푸른기운을 떨치건만 영균의 직업분배는 결국 환멸로 끝 나버리고 이렇게 시골바닥에 주저앉아 묵은 꿈을 찢어발기여 짓씹고있으니 한심하지 않으랴, 분노의 웨침같기도 하고 때로는 막무가내한 신음소리를 오랑캐령너머로 날려 보내는게 하는 일이였다. 두만강물결에 구름이 떠가듯이 세월은 흘러가건만 지나간 일들은 제자리에 굳어진채로 다가만 온다.     그의 일기장에는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 기록이 담겨있었다.     92년 7월 3일:     나는 끝내 4년이란 짧고도 긴 대학생활을 마치고 졸업식이 끝나자 이튿날로 귀향의 려로에 올랐다…     7월 6일:     나는 한가슴 부푸는 희망을 안고 고향의 현성에 돌아왔다. 고향은 날따라 일신해가고있었다.…     7월 10일:     분배수속에 수요될 모든 증건을 챙겨가지고 교육국에 갔다. 부임증에 부임단위가 여기가 아니라며 인사국으로 가라고했다…    7월 14일:    현인사국에 갔다. 8월초에야 본인이 어디로 가게 될 지 알수 있으니 집에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8월 5일:     현인사국에 가서 문의하니 아직 결론을 짓지 못했다면서 더 기다리라고 했다. 9월초에 다시 와보라고 했다. 큰맘 먹고 조심스레 문의했다. 어느 단위와 협의가 잘 안되여서 이렇게 시일이 걸리는가고 했더니 전현내의 모든 대학, 중등전문학교. 전과대학생. 전업군인들이 모두 도착해야 통일적으로 규획할수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인사방면의 사업실질에 대해 무지하다는것을 시인하면서도 시종 불길한 예감이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9월 9일:    고향마을 소학교의 전화를 빌어 현인사국에 문의하였더니 10월초에 다시 보자고 대답이 왔다. 속에서 열불이 터졌지만 내 손에 자루가 없으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견지하는자가 승리한다니까 기다릴수밖에 없다.    10월 9일:     현인사국에 가니 등기표를 내주며 필요한 등기를 하라고 했다. 마음이 격동 되였던 탓인지 워낙 박필이 아닌 나였지만 글씨가 엉망이 되여진것 같았고 갑자기 사유가 막힌듯해서 잡다한 여러가지 등기란을 한참씩이나 연구해 보고서야 써넣을수 있었다.    10월 14일:     마침내 현문화국에 부임장을 가지고 들어섰다. 국에 인사과장이 웃음띤 얼굴로 열정적으로 맞아주었다. 그러면서 갓졸업한 대학생들은 반드시 기층에 내려가서 일년간 단련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감개무량한 어조로 이미 고향건설에 이바지하려고 돌아온 이상, 그리고 원래 농민의 아들이기에 어떤 단련도 겪어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비록 오른 손을 들고 당기앞에서 선서하는것처럼 숭엄한 분위기는 아니였지만 아무튼 나로서는 장엄한 맹세였다.인사고장은 뜻이 있는 젊은이라고 한바탕 추어올리더니 신덕진정부로 발령을 내렸다. 그러나 발령장은 93년 4월1일에야 직접 받을수 있다고 했다. 다음 구체 사업은 부임지에 가서 진정부의 지시에 따르라고 했다. 나는 실망했지만 금방 제입으 로 한 맹세가 있어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여 땀만 뻘뻘 흘렸다.                                                                     2       인표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마래곡에는 더 이상 영균이를 잡아둘 리유가 없었다. 일찍 당당한 대학생이 될수도 있었으나 출신때문에 꿈이 깨여져버린 아버지는 한사코 시골선비냄새을 피우며 훈계한다. 등산은 꼭대기부터 내려오는것이 아니라 맨골짜기에서 한걸음씩 올라가는것이라고, 인생이 어찌 고봉에서부터 시작되겠느냐며 당이 시키는대로 복종하고 차차 노력하여 향상하라고, 그래도 지금 세월에는 철밥통을 차지하고있는것이 당상이란다.      93년 4월1일:영균이는 마침내 발령장을 받아쥐고 기쁜지 슬픈지 모를 범벅이 된 심정으로 고향에서 60여리나 떨어져있는 신덕진에 도착했는데 공교롭게도 일요일 이여서 려관방에 행장을 풀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영균이는 신덕진정부의 선전간사로 다사다난한 인생행로를 시작했다. 진정부의 선전간사란 심부름군으로서 삐치지 않는 일이란  없었다. 령도의 발언고도 작성해야 하고 흑판보, 선전란도 책임져야 하고 구호도 써야 했다. (자넨 이 향에서 제일 많이 먹물을 먹은 사람이니까 이 일이야 아무래도 자네가…)하는 식이였다. 그러나 영균이는 (못하겠소.)하는 소리 한마디 없었다.     그러다보니 영균이는 누구나 일을 부탁하기 쉬운 사람으로 알려져서 너나없이 벼라별 자질구레한 일까지 다시켰다. 정 일이 딸려서 좀 밀렸다가 하면 안되는가 사정하면 적반하장격으로 재세를 부린다니, 사람이 게으르다느니 하면서 오히려 뒤공론들이 분분했다.     그도 속밸이 없는것이 아니였다. 속으로 (자기들은 하지 않고 차물이나 마시며 신문이나 보고 할일이 있으나 없으나 트럼프를 치면서도 국록은 국록대로 타먹으면서…) 하고 듣지 못하는 욕질도 해댄다.     어느 날, 현에 회의를 갔다가 돌아온 향당위 곽서기의 얼굴에 언제 소나기가 울지모를 검은구름이 잔뜩 끼여있었다. 현위서기가 신덕진의 선전사업이 형세에 바짝 따라서지 못한다고 지명비판을 했던것이다. 하긴 신덕진이 어느 한번 유선방송에 방송된적도 없었고 신문에 난일도 없었으니 비판을 받아도 싼일이였다. 하지만 서울서 매맞고 송도서 주먹질이요 시에미 역증에 개배때기를 차는격이라 현에서 당한 수모를 영균에게 화풀이하는 그 자신도 속으로는 허구펐을테지만 서슬이 퍼랬다.     《동무, 선전간사란 무엇을 하고 밥을 먹는 사람이요? 초중학생들처럼 그저 선전란이나 꾸리고 바람벽에 구호나 써갈기는게 선전간사가 하는 일인가말이요? 비슷한 신문보도 한편 만들어 못낸단 말이여? 대학은 다닌거 사실인가?》     영균이로서는 처음 받아보는 인격모욕이였다. 억이막혀 말도 나가지 않았다. 취임한지 겨우 다섯달밖에 안되는데 신덕진이 이름이 못난게 내탓이란말인가? 그래 그 모든일이 당신들 령도들이 시켜서 한일이 아니고 내가 심심해서 한 일이란 말인가? 영균이가 입을벌려 발명이나 하려는데 서기는 아예 들을것도 없다는듯 손을 홱 저어버리고는 지시를 내렸다.     《지금 무엇을 해석할 때가 아니란말이요. 자기 위치를 얼마나 잘 지켰는가를 잘 검토해보고 우리 진의 선전사업을 어떻게 혁신할것인가를 생각하란말이요.》     진당위에서는 련며칠 연구하고 선전사업을 억세게 틀어쥘데 대한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면 우선 진정부임직원들 모두가 선전사업에 뛰여들도록 고무격려할수 있는 기제를 마련해야 했다. 만약 현급이상의 간물이나 방송에 채용되면 부동한 급별에 따라 현금으로 장려하기로 결정하고 즉시 선포했다.     영균이는 아주 영명한 결책이라고 생각했다. 중상금의 자극하에 잠자고있던 문필 가들이 용솟음쳐나올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한달, 두달이 지나도 향응하는자가 하나도 없었다. 알고보니 갑산에 개는 많아도 잡아먹을것이 없다더니 진정부내에 사람은 득실거려도 글을 좀 쓴다하는 사람이 없었던것이다. 원고비가 형편없는지라 누구도 흥미를 가지지 않은탓도 있겠다고 좋게 생각했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짐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끄는 소가 늘 채찍을 맞는법인가, 바빠맞은것은 영균이였다. 다른 사람들이 쓰지 않는다해서 자신도 쓰지 않는다면 실직행위가 될게 뻔했다. 그는 선전간사로서 솔선수범해야겠다고 작심했다. 그런데 실속있는 신문보도를 쓰려 면 군중속에 깊숙히 침투해야 했다.     그는 아예 사무책상을 내치고 각 향촌대대, 학교, 향진기업에 내려가 함께 먹고 함께 일하면서 수많은 감동적인 보도감들을 발굴해서는 밤도와 가며 원고를 정리해서 투고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부나 가리지 않고 자전거 만리행을 하면서 줄기차게 페달을 밟은만큼 연줄연줄 써냈다.     그런데 처음에는 한강에 돌을 던진격이였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았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피는 법이요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법이라고 자신을 편달 하면서 끈덕지게 해냈다. 마침내 현유선방송에 신덕진의 사적들이 음파를 통해 전현 에 울려퍼졌고 신문에도 두부모만큼이라도 륙속 활자화되여 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질투의 눈길로 보는것도 모르고 그 자신은 격동에 가슴을 들먹이였다.     곽서기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였다.   《젊은이 제격이라니, 이 곽모가 사람을 잘못 받지 않았군, 자, 힘을 더 내라구, 응? 이후부턴 다른 일은 관계하지 말고 전문 원고조직만 하라니, 뒤는 내가 드팀없이 받쳐 줌세나.》    서기가 친히 고무격려하고 뒤심이 되여주니 고생도 락이였다. 더분발했고 글이 나가는 차수에 따라 필력도 부쩍 늘어갔다.   신문원고는 현의 범위를 벗어나서 지구. 성급신문에도 꽝꽝 발표되였다.     영균이는 진에서 명인이 되였고 수재로, 보배로 떠받들리였다. 현선전부에서도 매우 중시하고있단다. 자칫하면 승진할지도 모른다고 수군수군했다. 자연히 눈들마다 에 피발이 서기시작했다. 시기와 질투와 암해의 화살들이 아무데서나 날아왔다. 얼토 당토하지 않는것이였지만 여론은 한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할수도 있었다.  《그게 뭔가말이여, 진정부의 돈을 타먹으면서 본진의 사무실이나 지키면서 간사질이나 잘 할일이지, 아무일도 관계하지 않고 그저 제글이나 쓰려고 눈이 빨개가지고 돌아다니니, 아까운 공가의 전기나 랑비하면서 밤을 새우고…》     그러나 이미 천리초원을 질주하기 시작한 준마를 아무도 말려낼수 없었다. 신문원고로부터 한차원 높여서 이젠 시도 한수 한수 발표하기시작했고 수필도 나갔다. 년말이 되였다. 군이는 문자로 나간 신문원고와 문학작품을 복사하여 책으로 묶고 목차까지 달았다. 그리고 별책으로 원고의 급별에 따라 명세서도 만들어서 서기에게 바쳤다.     실물앞에서 사람들의 심사는 더구나 비틀려졌다. (흥, 그자식 잘한다고 잔뜩 추어올리니 써갈기기도 써갈겼군, 도대체 장금이 얼마나 되는거야, 786원이나 되잖아? 년말 장금보다 더 많으니…원고비는 또 얼마겠냐? )     의견들과 불평들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왔다. (선전간사가 선전원고를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가? 로임에 원고비에 장려금에…이건 너무 공평하지 못해,) 아래우가 들끓는 바람에 난처해진것은 곽서기였다. 처음엔 아주 건설적인 동기로 통크게 제정한 일이고 당위성원들이 다수가결한 일이건만 원계획에 무슨 차실이 없나해서 다시 검토해보기도 했다.     년초에 제정한대로 그많은 장금을 내주자니 여론이 끓는 팥죽가마이고 안주자니 당위서기로서 말이 서지 않는것이 되고 별로 두려운것은 아니지만도 본인이 어떤 정서로 나올지 몰라서 고려되였다. 문필가가 일단 옥필을 꺾는날엔 신덕진의 선전 사업은 령으로 내려갈것이 불보듯했다. 신덕진이 또 다시 무명무실해진다는것은 안될 일이였다.     신덕진의 일호인물로서 실언하고 유예미결해서야 체통이 서겠는가고 마음이 바른 사람들이 암시할 때 저절로 얼굴이 붉어지면서 공연히 글을 너무 많이 써낸 영균이가 밉기까지 했다. 진당위확대회의에서 재삼 심중하게 연구토론한후 영균에게 진재정이 잠시 곤난하기에 장금은 후에 정황을 보아가며 체현시키겠다고 통지하였다.     영균이는 이미 짐작했던 일인듯이 아무 내색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후부터 영균이는 신문원고를 한편도 쓰지 않았을뿐만아니라 보기조차 싫어하였다. 그대신 문학작품을 쓰느라 밤을 새였다. 쓰기는 숙사에서 가만히 썼지만 발표는 세상에 하는 일이였다. 그래서 또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사람이 어떻게 돼먹은 사람인가? 선전 간사로서 신문원고도 쓰지 않고 제글만 써내갈기니? 명색에 맞게 처사해야지…     영균이의 소설이 나가면서부터 여기저기서 바지런히 3~4백원짜리 송금표가 올 때마다 배를 앓는 사람들이 많았다. 결국 영균이는 본직업에 충성하지 않고 군중 단결이 아주 차하므로 행정사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결을 받았다. 얼마후 그를 진에서도 제일 편벽한 소학교에 교원으로 내려보내고 말았다.     진정부를 떠나던 날, 누구도 내다보지 않았다. 마치 정배살이를 가는 죄인을 내다볼것 무어냐? 하는 심사들이였다. 다만 곽서기가 체신을 지키느라고 대문밖까지 나와서 례절성적으로 영균이의 손을 잠간 잡았다놓았을뿐이였다.   《태양아래 가장 신성한 천직을 맡게 되였으니 본직업에 충성하고 특장도 계속 발휘하기 바라오. 동문 전도가 양양하니까 앞으로 어찌될지 누가 알겠소?》     영균이는 서글프게 웃고말았다. 곽서기자신도 자기가 한말이 먼 후날 현실로 될번할줄은  몰랐을것이다.                                                                                   3       5년 세월이 흘러갔다. 그동안 최하층민중의 생활속에 자연히 파묻히게 된 그는 몸은 비록 시골소학교에 묻힌 로총각의 신세가 되였지만 성내외에 지명도가 있는 중견작가로 성장했다. 요즈음 성작가협회회원까지 된 당당한 명인이였다.     그동안 현성의 중심소학교에서는 물론 중학교들에서도 욕심을 냈지만 어찌된 감투끈인지 끝내 시골학교를 벗어나지 못했다. 교육국국장도 그를 접견하였고 현위선전부장도 그를 표양하였고 현의 령도에서도 매우 중시한다고 했다. 처음에 난생 처음 모모한 사람들의 륭숭한 접대를 받고 떠받들리다보니 꿈속에서도 미소를 지었고 늘 마음이 둥둥 떠다녔다.     《젊은이, 훌륭하네. 젊은인 우리 현의 교원대오의 보배이고 자랑이란 말일세.》     교육국장이 영균이의 손을 굳게 잡아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젊은 작가동지, 대단하오. 우리현의 선진인물들을 모델로 소설을 많이 쓰오. 시대정신과 개혁개방의 아주 좋은 형세를 많이 반영하여 주오.》     선전부장이 영균이의 손을 굳게 잡고 친절하게 고무격려해주었다. 영균이는 늘 격동되여있었다. 현문련같은데서 전문 문예일군으로 활약하면 창작조건도 좋지 않을 가 하는 제좋은 궁리도 자주 하였다. 그래서 한번은 기회를 엿보다가 말김에 하는것 처럼 자기의 욕망을 선전부장에게 넌지시 여쭈어보았다.     《오! 그것참 생각을 잘했소. 내 연구해보지. 아까운 인재를 놓치기는 하지만 전반국세를 돌보아야지. 좋소. 별로 문제없을같구만.》     교육국 하국장이 통쾌하게 대답했다. 소뿔은 단김에 빼라고 이튿날 현위의 맹서기를 찾아가서 쭈밋거리며 자기의 포부와 리상을 삼가 아뢰였다.     《좋은 포부요. 그 뜻이 맘에 드는구만, 문제없소. 우리가 먼저 유망한 작가들의 고충을 헤아려서 해결해 주어야했었는데… 》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 그해 교육계통에서 직업을 바꿀수 있는 명액이 세개 내려왔다. 영균이가 뒤심이 단단하기에 가능성이 제일 많았다.     이 문제를 가지고 현위에서 전문 확대회의를 열었다. 맹서기가 현중학교의 한 사람과 영균이를 제기했다. 선전부장이 중심소학교 교장과 영균이를 추천했다. 교육 국하국장이 신덕진의 중심소학교의 한 녀교원을 제기했다. 세사람의 이름을 적고보니 한명이 초과되였다. 부득불 민주가결을 짓기로 했다. 한사람이 한사람씩 추천하기로 했다. 결국 영균이를 누구도 추천하지 않았다.     후에 영균이는 세분 령도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교육국 하국장이 영균이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고 미소를 머금었다.     《금년에 정말 가석하게 되였소. 명년에 우선 고려하겠소.》     영균이는 감격해마지않았다. 선전부장도 군이의 손을 잡아쥐고 친절하게 말했다.     《명액이 넷이였다면 되는건데…참 어쩌겠소. 일이란 순으로 해야 하는게 아니겠소? 명년엔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지…》 영균이는 눈물이 글썽해서 감지덕지했다. 안된다고 하기보다 기다라는것은 얼마 나 신나는 일인가? 현의 맹서기도 자애롭게 손을 잡아주며 고무격려하였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오. 원칙과 민주를 체현하다보니 섭섭하게 되였구 만…락심하지는 마오. 교육일선에 더 적극적으로 투신하면서 누구에게 부끄럼없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좋은 작품도 많이 창작하기 바라오…》 영균이는 말없이 고개만 힘있게 조아렸다. 그러나 그 이듬해에 영균이는 다시 전근을 제기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장편소설이 나가면서 명성이 더구나 들썽해졌다. 그렇게 또 5년 세월이 흘렀다.     새로 임명된 현위선전부장은 작가 영균이를 알아보았다. 무척 반가와하였다. 그는 황망히 일어나 차물을 붓는다, 담배를 권한다 하며 부산을 떨었다. 양부장은 영균이가 온 뜻을 말하자 선선히 응낙했다. 영균이는 백락을 너무 늦게 만났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일년이 다지나도록 아무 소식도 없었다. 순진하기만했던 영균이는 그제야 세상이 돌아가는 내막을 깨닫고 출세의 길을 철저히 체념해버렸다.     영균이의 장편소설《인생은 비탈길》이 성의 우수도서상을 타게 되였을뿐만 아니라 영화로까지 개편되여 인기를 끌었다. 성작가협회에서는 작가의 고향에서 시상식을 개최하기로 하였다. 지금은 현위서기로 된 10년전의 선전부장였던 황도씨는 전화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10년전 자기가 한 낙언이 떠올랐고 그렇게 감지덕지해 하던 서생티가 넘치던 어줍은 얼굴이 방불히 눈앞에 서있듯싶었다. 그는 전화를 걸어 영균이를 찾았다. 그러나 영균이는 문예계통에서 사업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유관령도를 찾아 한바탕 훈계하였다.     《어찌된 일이요? 인재를 그렇게 중시하지 않다니? 성에서도 이름을 꼽는 인재를 그렇게 파묻어두어도 되는거요? 말짱 관료주의자들이구만. 당장 현문련에 와서 사업하도록 즉각 발령을 내리시오. 이게 무슨 망신이요? 표창대회가 열리기전에 일을 다 마무리해야지 큰 일 날줄아오.》     영균이는 정말 꿈에도 바라던 일이 갑작스레 해결되여 심장이 터져나갈듯이 부풀 어올랐지만 인차 마음의 평온을 찾고 례절스럽고 완곡하게 사절해버렸다.     표창대회에 참석한 황서기는 격앙된 목소리로 강화하였다.     《영균작가는 우리 상길현의 태생이고 고향에서 잔뼈가 굳어 지식의 날개를 키운 후에도 나서자란 고향을 잊지 않고 여기서 사업하고 고향의 물을 마시며 거작들을 륙속 펴냈습니다. 물론 본인의 재질도 우선이겠지만 우리 현에서 알심들여 배양하고 육성한 인재라고 부끄럼없이 말할수 있습니다. 그의 오늘의 성취는 력대의 현당위와 해당부문의 관심과 배려와 갈라놓고 생각할수 없습니다. 예,우리 현위에서는 시종 인재를 중히여겼지요…》     현임 양선전부장도 10년래 어떻게 생활상, 창작사업상 관심하고 배려를 돌렸 는가를 감개무량해서 역설했다. 영균이는 어이없어 재채기가 나왔지만 바보처럼 웃는체했고 본능적으로 박수를 쳤다. 아마 거울을 보았으면 그보다 더 멍청스러운 표정은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후 성작가협회에서 전업작가로 초빙한다는 공문을 현위에 내려보냈다. 현위 황서기는 본때스럽게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였다. 전근수속을 밟으러 온 영균이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동무는 우리 현의 특수인재이기에 다른 보통교원과는 다르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에 청시하고 연구토론해야 결정을 지을수 있습니다. 》     결국 영균이의 대붕의 꿈은 깨여졌다. 그냥 소학교에 주저앉아야 할 운명이였다. 황서기가 각부문에 지시를 내린것이다.     《이 몇년래 교원대오내에서 인재류실이 엄중한데 더구나 영균이같은 대작가를 우리 현에서 떠나보낼수 있겠는가? 그것은 우리 현의 간판을 없애는것과 같은것 이다》라는 황씨의 어명이 영균에게 전해진것은 썩 후의 일이였다. 생각하던 끝에 어쩌는가 보느라고 양부장에게 이제라도 문련에 갈 의향이 있다고했더니 대답이 아주 맺고 끊는듯이 단마디 명창이였다.     《아! 그것말이요? 이미 편제가 다 차서 자리가 없소!》     영균이는 고향에 더는 미련이 없었다. 이튿날 그는 현교육국에 사직서를 바쳤다. 그리고 그 걸음으로 역전에 나갔다. 아무도 그가 어데로 갔는지 모른다.      그런데 석달후 그가 다시 나타났다. 사람들의 의론처럼 갈곳이 없거나 고향에 미련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래동안 끌어오던 결혼문제를 락착짓기 위해서였다. 그의 안해될 처녀는 황서기의 천금녀였다. 둘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나이였다.     녀자의 집에서 견결히 결혼을 반대하자 둘이는 손에 손잡고 만리이역에로 날아가버렸다. 소문엔 군이를 현문련주석자리에 위임하겠으니 함께 돌아오라고 황도씨가 딸에게 수차 전화를 띄웠다는둥 현공안국에서 현위서기의 천금녀를 유괴해간 영균이 를 잡으려 갔다는둥 시골현성에 벼라별 소문으로 파죽가마끓듯 했다…                                 2008년 6 월 23 일  
104    황혼애가 (2000년대) 댓글:  조회:10688  추천:4  2012-10-07
                        황혼애가(2000년대)                                고향이여 세월의 묵은 언덕우에 선 내고향! 동구밖 굽이진 뚝길은 그대로인데 함께 뛰놀던 옛친구들은 가고없고 허물린 옛집터에 잡초만 엉성하네   천년을 씻어어내린 아란석 사이로 고패치던 맑은 강물도 메말랐구나 푸들치던 버들치들도 보이질 않고 물장구 신나던 개구쟁이도 없어라 일송정 정자가에 빈바람만 스치여 울바자 잠자리 날개들도 찢겼는가 부엉이 울던밤 반딧불 반갑더니만 비암산 비둘기야 너도 슬퍼우느냐   어서오라 맞아줄 피붙이들도 없고 은모래 반짝이던 강기슭 굽이굽이 버들숲 간데없고 뽕나무도 없건만 추억속에 고향이라 정겨워 서럽네   아, 가슴저리게 그리웁던 고향아! 동년을 키워준 칼바위도 낮아져서 세월의 비바람 무정한줄 알겠다만 색바랜 꿈결에 옛정만은 푸르구나                                            2005년 8월 20일 (일송정에서)                     바다의 숨결   갈매기 사랑에 가슴 부푸는가 파도는 바람을 안고 설레이며 대해의 은총을 읊조리누나   풍어기 펄펄 날리는 고기배 오늘도 어족들을 싹쓸이해 바다는 격파솟아 성토하네   해빛도 부서지는 만경창파 만천하의 강물을 받아주는 호한한 그 아량을 새기노라 하늘은 바다를 감싸안고 바다는 창천을 우러러 령장들을 성토하는데…   2009년, 6월    (황해가에서)              바다의 그리움                      어스름 바다가에 마주서면 빈바다 얼어붙은 백사장에 하늘이 부서진듯 눈내리고 어두운 그리움이 서성인다                           펄펄펄 흩날리는 눈꽃들은 소리도 못내보고 녹아내려 검푸른 물결우에 실리는데 파도는 장송곡을 부르는가   전할길 바이없는 내그리움 눈처럼 하이얗게 부서져서 흐느껴 쿨쩍이는 거품처럼 내마음 골방에서 부글댄다   슬픔을 쫓아내려 숨고르고 피더운 가슴으로 노래하며 후회를 내버리려 휘저으니 허허한 밤바다만 안기누나   어두운 저너머를 바라보며 어째서 왔는지도 다잊은듯 무거운 침묵으로 굳어진채 해풍에 덜덜떨며 내가섰다   혼자서 마주보는 밤바다에 목까지 차오르는 그리움을 끝내는 토해내지 못한설음 처절썩 바다기슭 적시누나                                    2009년 1월 30일 (청도에서)                                          어머니        열달을 잉태해          피흘리며 낳으신             소중한 새생명이                 자신의 살점임에         고생만 삼키시고           단즙만 짜내시여                   왕거미 되셨건만                    쓴줄도 모르셨소         평생을 내주시며           받을줄 모르시고               다함이 없으시던                   고마운 어머니여                          북망산 황천깊이            소원을 베고누운               당신의 그 사랑은                   불효도 보듬으리                                                              2010년   9월   12일                    금사탄시 햇살이 송송송 쪼아먹은 금사탄 은모래 금모래가 고요히 어둠을 재우는데 상념은 저만치 굼닐어라   하많은 기억이 달려와서 해묵은 야망을 보듬으면 동해의 아들이 되고프던 옛시절 청춘도 푸르러라   밀물은 격정을 몰아오며 어둠에 묻히여 갈앉는데 썰물은 그리움 실어가고 석별만 기슭에 젖는구나                         돌아서 가야지 하다가도 못떠나 바다물 움켜쥐면 파도가 솟구쳐 달려와서 내발목 적시며 말리누나   가노라 바다야 잘있거라 차분히 누웠던 모래밭도 말없이 바래듯 가슴열고 밤바다 바람도 옷깃잡네                            2011년 7월 16일                   (금사탄에 써본 시)   흘러간 고향마을   제비야, 잊지않고 이 봄도 너는야 왔구나 정든땅에   보은박씨 꼬옥 물고왔어도 옛고장 황페해져 놀랍지   구름헤쳐 몇만리 먼먼 길에 지쳐버린 날개를 접고보니   빨래줄에 걸렸던 묵은 노래도 새끼를 낳던 옛둥지도 없구나   이제 딴마을 어느집 헛간에나 새생명의 보금자리 틀어야겠지   제비야, 상전벽해가 아니란다 돈바람이 내가원을 쓸어갔니라.   2011년   8월   25일  (묻혀버린 고향의 논벌을 보며)        싸리나무 베듯하면   연집하 무성한 싸리나무 해마다 모조리 베내건만 보란듯 더구나 기승부려 길길이 무성해 야단이네 베내도 태워도 악착하니 비온뒤 죽순이 저같으랴 개천에 돌밭도 좋다하니 옥토면 더구나 우쭐하리   옳거니 뿌리가 살았거늘 왕성한 생명력 뉘당햐랴 부패도 싸리를 베듯하면 지천에 뻗어서 야단나리            2012년 8월 6 일                                        너 시혼아!                             시는 보슬비속에 젖어있냐?                           꽃지는 소리에 잠자고있냐?                           사랑의 입김속에 녹아있냐?                           돌돌돌 물소리에 흘러오냐?                                                      열여덟 청년은 저저시인이라                           시의없는 심령은 사막이던들                           란삽한 랑만의 횡설수설아녀                           진실한 령혼심처에 웨침이야                             시야, 너는 무엇을 먹고사냐?                           하고픈 말, 운률먹고 사노라                           상아탑속에 구겨진 잠꼬대도                           간드러진 삘리리도 아니노라                             네가슴속에 고패치는 메아리                           알쏭달쏭 잠언도 수수께끼도                           권태를 잠재우는 하품소리도                           병없는 신음소리도 아니여라                                                                               시는 정서의 파도 서정적호소                           정서의 반응에 론증은 몰라라                           시는 멋없이 증명하진 않지만                           가슴가슴에 정감을 확인시켜라                             슬퍼서 행복해서 감동의 순간                           최상의 언어를 최고로 엮으매                           언어의 모자이크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신묘 자체여라                                                     시는 차분히 격정을 갈앉혀주고                           눈물젖은 너의 비애를 보듬으리                           시를 쓰노라고 애간장을 태워도                           즐거움만 얻자고 쓰지는 마시라.                             시는 자득 (自得)이라 하더라만은                           싸구려감동, 미사려구가 아니여라                           너와나 서로의 가슴을 흔들어주는                           마술사의 신비한 힘이 시혼인것을,                             씨없는 해바라기도 보기는 좋다만                           네고백이 나의 고충이 되여질때에                           나의노래 네마음의 금선을 울릴때                           시는 숨쉬고 거기서 살고 나래치리                             붓을놓자 풍우가 놀라고                           시편이 완성되자 귀신이 우는구나…                           시성에야 어찌 미치랴만 시를 쓰되                           진실한 마음의 메아리-시를 쓰거라                                               2012년 9월 25일                             
103    (소설) 령혼의 저곡에서 댓글:  조회:9764  추천:1  2012-10-02
                                              령혼의 저곡에서                             사실은 허구보다 더 기이한 법이다. 그러나 비극을                           희극으로 오해하는 일처럼 세상에 두려운 일도 없다.                                                                    ㅡ작자ㅡ                                                                                                                                        최 균 선                                                                                   1.       영모는 벌써 열번도 넘게 놀러오라는 하나꼬의 전화를 받았다. 하도 열정적인 그녀자의 초청을 거절할수도 없었거니와 자기도 알수 없는 일종 호기심도 나서 방학을 한 이튿날로 오사까행 렬차에 몸을 실었다. 오사까에 도착하니 그녀는 언녕 자가용을 가지고 역에 마중나와 있었다. 하나꼬의 집은 오사까교구에 있었다. 집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더없이 유족한 생활을 하고있다는것을 대뜸 보아낼수 있었다.     아담하게 꾸며진 객실벽 한가운데 걸려있는 커다랗게 확대한 한 남자의 사진이 눈길을 확 끌었다. 안경을 걸었지만 눈빛이 기지에 넘치고 무척 온화해 보이는 얼굴에서 눈길을 뗄수 없었다.  어느새 실내옷으로 갈아입은 녀자가 진한 향수냄새 풍기며 나왔다. 영모는 눈길 로 사진을 가리키면서 넌짓이 물었다.    《당신의 남편되시는분입니까?》    《아니, 저의 정부예요. 몹시 사랑했어요. 저이때문에 리혼하구 아들의 부양권두 상실하고 말았지요.》    《아주 인정미가 넘쳐있군요. 참 좋은분 같아보입니다.》    《어쩜, 그렇게 사람을 잘 보아내는가요? 그래요, 열정적이구 랑만두 넘치는 분이였지요. 저이도 기실 조선사람이지요. 역시 긴상이구요. 저분의 아버지가 제국시대에 무슨 죄를 지어서 중국에서 잡혀와 여기 감옥에 있다가 대동아전쟁이 끝나자 풀려 난후 일본녀자와 결혼해서 저분을 낳았대요. 그래서 조선사람의 성미가 다분하지요.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아주 익숙한 얼굴이라고 했지요? 다 까닭이 있었던거예요. 자세히 보세요. 어쩜 남남끼리 이리도 비슷하게 생길수 있을가요? 》  《나의 얼굴이 저분과 비슷하다구요? 알수 없는 수수께끼군요.》  《저이가 다 말해주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아마도 력사가 복잡한것 같아요.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조선인이 기시를 받고있어서 모르는 사람들앞에서는 조선사람이라는것을 나타내려하지 않았을 뿐이였지요. 자기 자식들도 이 땅에서 태여나면 전도가 암담하다고 그때까지 결혼하지 않았대요. 그래서 날 어찌나 사랑해주었는지…그런데 불행하게도 몇년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난 고독한 녀자가 되였어요.》     영모는 하나꼬가 보통 일본녀자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솔직하고 예리한 눈길을 가지고있음을 발견했다. 녀자가 자기에서 눈길을 뗄줄 모르자 등허리가 스멀스멀해 났다. 40고개를 바라보는 하나꼬는 젊은녀자들을 찜쪄먹을만큼 멋을 내고있었다.     아까 역에서 만났을 때 영모는 웬간히 놀랐다. 무늬가 화려한 하오리를 입고 일본식으로 틀어올린 머리에 선글라스까지 낀 그의 모양은 똑 마치 뒤골목의 기생을 련상시켰다. 아무튼 하나꼬는 영모에게 있는정 없는정 다 쏟아주며 깍쟁이 나라의 주부답지 않게 극진히 대접했다.   《 긴상, 내가 야마구찌교수댁에서 낸 숙제는 답이 나왔나요?》     영모는 자기를 동생으로 삼으려는 이 일본녀자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아무리 궁리해도 알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확답을 줄수 없었다. 그가 쭈밋거리자 하나 꼬는 역시 그 유혹하는듯한 눈길로 영모를 어루더듬으며 아양떨었다.  《괜찮아요. 정 마음 없으면 그만두는거죠. 자, 이돈 받아요. 여기 일본에는 소비가 높아서 류학공부하기 힘들것이예요. 이 돈 다른 뜻이 없으니까 부담없이 받아요. 긴상의 얼굴을 보면 꼭 마치 그이의 젊었을 때 모습을 보는것같아서 애정이 왈칵 솟구치는걸 어쩔수 없어요.》     영모의 두손이 저도 모르게 두툼한 봉투를 받았다. 그것을 보는 하나꼬의 입에 미묘한 웃음이 비껴갔다. 그녀는 영모를 역까지 바래주면서 련련한 정을 금치못는 련인처럼 렬차가 떠날때까지 손을 저었다. 영모는 이 일본녀자가 정말 고독에 못이겨 친구라도 삼자는것이 아닐가 다시 생각해 보았다. 세상에 까닭없는 사랑이 없고 까닭없는 미움이 없다지 않는가? 녀자가 그렇게 진심으로 나온다면 친구질을 못할것도 없었다. 돈걱정없이 몇년 공부만한다는것은 아무에게나 차례지는 행운이 아니다. 도꾜에 돌아온 며칠후, 영모는 하나꼬가 보내온 최고급의 세비로 두벌을 받았다. 영모는 돈많은 녀자의 남다른 배려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왼고개를 비틀었다.     …영모가 일본에 오던날, 영모의 옆자리에 관광겸 회사일로 왔다는 나이 지긋한 일본녀인이 앉았다. 보기엔 찬바람이 쌩 돌것같던 녀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는데 말소리가 처녀애들처럼 어찌나 간드러진지 이 녀자가 도대체 몇살이나 될가하고가 의심이 날지경이였다. 아무 빽도없이 빚을 가득지고 일본류학을 떠난 영모로서는 제쪽에서 먼저 열정을 쏟아내는 녀자를 마다할 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좋은 일이 있을지 누가 알랴,     여러해를 국내일본회사들에서 굴러먹어서 말에 구애될것이 없는 영모는 대뜸 녀자의 호감을 샀다. 그녀는 그저 너무너무 익숙한 얼굴이라며 무척 친절하게 다가왔다. 어떻게 되여 익숙한 얼굴이 될수 있느냐고 물으니 차차 알려주겠다며 화사하게 웃기만 했다. 유별나게 반짝이는 눈이나 웃는 모습이 환각을 가져올만큼 어떤 매력을 남기고있어서 그다지 역겹지는 않았다.     하나꼬라고 하는 그녀자는 어렵게 류학을 온다는 영모의 가벼운 한숨에 동정어린 눈길을 주면서 정나미돌게 속삭였다. 《선생, 사람을 알아볼줄 아는 사람은 첫눈에 대방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빈구석을 짚어내지요. 마치 거울을 보면서 오점을 인차 발견해내듯이, 이 하나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녀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나 녀자의 환심을 살생각이 꼼지락거렸다. 석사과정을 거의 마치고있는 친구 최헌군도 운수좋게 일본양아버지를 삼아 별걱정없이 공부하고있지 않는가, 그러나 영모는 대번에 엎어질수는 없었다. 비록 도금하러 일본땅에 오긴하지만 워낙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있는 그였다. 아마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선입견에 거부감이 얹혀 진탓이리라.     영모의 할아버지는 통화에서 유격대의 지하련락원으로 활약하다가 40 년대초 그만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여 도꾜감옥에 압송된후 소식이 끊기고말았다.그런데 초면강산인 이 일본녀자와 친해지고싶은 생각이 솟으니 별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야말로 항일투사의 손자가 중일친선의 새편장을 쓰게될지 알수 없는 일이였다. 녀자는 의미있게 웃으면서 혹시 도움이 될수도 있을것이라며 은근하게 굴었다. 그렇게 친해진 하나꼬였다. 그의 주선으로 좋은 대학에 입학했고 야마구찌라는 교수도 소개받았다.     오사까에 다녀온지 두어달 지나서 하나꼬가 영모를 찾아왔다. 영모앞에 나타난 하나꼬는 혈색이 무척 좋아보였고 젊은색시들처럼 희한한 양장을 하고 굽높은 구두에 값이 막중할 보석가락지까지 끼고있었다. 역시 멋진 선글라스까지 척끼고 폼을 잡고 있는데 그야말로 섹시한 로처녀를 방불케했다.     하나꼬는 영모에게 비싼 일본료리를 사먹이고 다방에 끌고 들어갔다. 한 녀자가 자기의 진실을 말하려 할 때 흔히 자기의 혼인사에 대해 말하는게 보통이다.  《긴상, 내 얘기 좀 들어봐요. 애인이 사망된후 고통과 슬픔을 달래려고 여러 남자들을 사귀였어요. 하지만 내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나의 그이와 너무도 비슷한 긴상을 우연히 만나게 되였어요? 정말 꿈만같아요. 긴상, 나는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당신은 나를 사랑할수 있나요? 》     영모는 대낮에 괴물을 보는듯 하나꼬를 바라보았다. 처음엔 돌봐주고싶다더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녀자는 애교어린 목소리로 정담을 했지만 영모는 오히려 뱀을 만난듯 등곬이 써늘해났다. 놀라웠다. 아직 나이는 둘째치고 가다오다 만난 이국사람에게 어쩌면 그렇듯 쉽게 사랑이란 말을 꺼낼수 있단말인가? 영모는 그 말을 내뱉은 녀자를 얼없이 바라보며 바보처럼 웃었다.   《왜 그렇게 웃죠? 내가 무슨 못할 말이라도 했나요?》   《정말 제가 행복의 천사를 만난것같군요. 친구하자던 목적이 결국 이것이였군요. 어쩌면 그런 천방야담을 생각해내게 되였는지요? 밥알에서 싹이 나는 그런 기적입니 다. 미안합니다. 합당한 일본남자를 골라보시지요.》   《애인을 삼는데 국적이 다 뭐게요? 세상뜬 그이를 내놓고는 마음에 꼭 드는 남자를 나는 아직 못봤거든요. 오직 당신이야말로 나의…》    영모는 례절이고 개나발이고 훌쩍 일어나 나와버렸다. 하숙집에 돌아온 영모는 귀신에게 홀렸다가 깨여난듯 마음이 뒤숭숭했다. 세상일이 조화라더니 이런 제길할 조화가 있는가? 아버지가 아시면 하늘이 낮다고 길길이 뛸것이다. 이 땅에 원혼으로 떠돌아다닐 할아버지의 넋은 또 어떻게 나오실가? 아무리 영원한 친구가 없고 영원한 원쑤가 없다고 하지만 영모로서는 그게 아니였다.    헌데 하나꼬는 검질기게 나왔다. 며칠을 어둡고 침침하고 슬슬 불안해지는 마음 으로 학교에 나가며 말며하는데 하나꼬가 100만엔짜리 지표를 보냈다. 그리고 편지 에 또 그 빌어먹을 애인말을 꺼냈다.   《영모씨. 이렇게 불러도 좋아요? 당신은 나의 애인으로 될 마음이 전혀 없나요? 나이차가 우리의 사랑에 담벽이 되는가요? 난 아직도 탄력이 있는 피부와 정열을 가지고있어요. 당신은 중국식전통관념의 속박을 받고있지만 돈많고 열렬히 따르는 녀자를 애인으로 삼아 마음껏 사랑을 누리며 공부도 시름놓고 할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잡고싶지 않은가요? 난 누구에게나 매인 몸이 아니여서 마음껏 즐길수 있어요. 절로 굴러들어오는 호박을 발로 차내던지는것은 무모한 짓이지요.     나에게는 나의 그이가 남겨놓은 돈이 아주 많아요. 내가 한평생 쓸수 없이 많거든요. 나를 따르면 이 많은 돈이 다 당신의 소유로 될수 있어요. 나의  재산도 상속받을수도 있거든요. 이런 행운은 아무 남자에게나 차례지는것이 아니지요. 잘 고려해 보아요. 나 억지사랑은 싫어요. 이번에 보내는 돈은 나의 저그마한 성의얘요…》    영모는 녀자의 사랑타령이 역겨웠지만 돈냄새는 역겹지 않았다. 시궁창에 떨어진 호떡이라도 호떡이렸다. 범의 코등에 돈도 떼먹야 난놈이지, (헝, 그래 오냐, 이 바 람둥이 왜갈보야, 돈 자꾸자꾸 보내주면 이 어른이 잘 써줄테니까,) 영모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돈을 찾아내왔다.     절로 나오는 코노래속에 쎈티멘탈한 느낌이 불쑥불쑥 튀여나왔다.(하긴 늙은 할미꽃이지만 이국녀자맛이 있을지두 모르지…)일본녀자들이 침대우에서 남자를 특별히 잘해준다는 말을 자주 들어오던 그였다. 어릴때부터 돈고생을 모질게 해온 영모는 모든 감정에 대해 무게를 달아보며 금전의 딱지를 붙이는 그런 괴짜이다보니 여직 이렇다 할 녀자친구도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진한 화장에 가리워진 하나꼬의 바탕좋은 얼굴과 열기띤 가느다란 눈과 아직 채꺼지지 않고 솟아있는 하얀 젖가슴이 보이는듯 싶었다. 저절로 얼굴이 화끈해났다. 아직 한번도 분출하지 못한 로총각의 불붙는 정염이 속에서 꿈틀거리는것도 숨길수 없었다. 몸의 어덴가 궁금중에 떨리는듯 하였다.     (지금 세월에 동정이 다 무어냐? 까지껏, 꿩먹고 알먹기가 아닌가, 먹지못하는 고기에 침만 흘리라고 해,) 며칠후 영모는 하나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기빵이면 그만이지 빚은 맵시를 두고 옴니암니 따질것없다고 결단을 내린것이다. 《아이구머니나, 끝내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됐군요. 당신의 건장한 모습을 생각 하면 벌써 속살이 파르르 떨려요.호호호ㅡ그리고…난 당신이 수요돼, 당신의 사랑과 애무와 당신의 일체가!》  《동경으로 오시지요. 뜻대로 해드리지요. 》  《그ㅡ래요? 사실은 나 동경에 빌라가 있어요. 그럼 나 비행기로 곧 가요.》 하나꼬가 날아왔다. 그들은 긴자의《천국》에서 최고급의 일본료리로 배불리고 불빛이 명멸하는 번화가의 주록세계를 거닐었다. 하나꼬는 통천하를 얻은듯 가슴가득 넘치는 희열과 흥분을 안고 소녀처럼 영모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속닥거렸다. 《여긴 내가 님과 함께 늘 오던 곳이예요. 오늘밤 맘껏 즐기자요. 온천욕도 하고 미식도 맘대로예요. 오늘 밤만은 빌라에 가지 말고 련인려관에 가자요. 우리 거기서 신혼의 밤잔치를 베풀어요. 아! 벌써부터 살이 떨리네…》                                                                                  2.       하나꼬는 정말 통이 크게 놀았다. 최고급호텔방에 앉은 영모는 황홀하기만 해서 몸둘바를 몰랐다. 연길 백산호텔에도 총통방이라는게 있다고 하더라만 그저 심드렁하게 넘겼지만 자기가 여기 도꾜의 최고급방에 들줄은 몰랐다. 그는 오래동안 자기를 추스르고 했지만 자기가 이 시각부터 타락하게 된다는 허구픈 생각만 고패쳤다.     그는 잠자리날개같이 투명한 잠옷을 걸치고 한들거리며 걸어오는 하나꼬를 시들하게 바라보며 짜내듯 내뱉았다.    《당신은 동생같은 나를 정부로 삼자는것을 전혀 리해할수 없군요. 나중에 어쩌자는건가요?》    《긴상, 당신 아직 이 일본의 밤생활을 모르는군요. 여기 귀부인들은 젊고 잘난 총각들만 골라서 즐긴다구요. 기실 현대에는 남녀사이의 나차이가 큰 문제가 아니라요. 오히려 당신은 큰누님같은 녀자의 정욕이 얼마나 자극적이고 달착지근한지 몰라서 그래요. 그리고 그보다 더 큰복을 이 일본땅 어데서 찾는다구요. 흥.》     영모는 철두철미한 육체교역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젊은 웅성의 자극을 갈망하는 이 일본녀자를 바라보며 무료함과 비애를 느꼈다. 그랬다. 향락주의자로 되려면 우선 리지적인 추리과정을 거쳐 의식적으로 미리 향락의 대상을 골라잡고 예측할수 있는 악과를 피면할 궁냥도 있어야 하는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기로서는 외려 상반대로 향락의 대상이 되여 뛸데없는 금전의 포로로 되여지려 할뿐이다. 선택하는것도 자유이고 선택하지 않는것도 일종 자유이다. 하건만 영모ㅡ자기는 어떠한 자유도 없이 붙잡혀온 새끼사슴이 주인이 칼을 대기만 기다리는 그런 처경이랄가, 자기도 알수 없는 욕망이 괴상한 열대식 물처럼 꿈틀 거리며 뻗어와 꼼짝 못하게 칭칭 얽어 놓는것을 어쩔수 없다. 한편으로는 자기의 숫총각을 내대고 금전과 야망을 얻고싶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소중한 인격과 동정을 돈앞에 구겨박으려는 자신의 용속함에 몸서리치기도 했다.     점도록 목석처럼 앉아 심드렁한 눈길만 비틀거리고있는 남자의 랭담에 언녕 신경이 까칠해진 그녀였지만 일본녀자의 특유의 그것으로 남자를 유혹하기에 쉽게 지치지 않았다. 하나꼬, 그녀는 지금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너무나 잘알고있다. 본토 남자들중에서 젊고 건장한 남자를 돈으로 못살것은 없지만 홍콩의 어느 영화배우처럼 잘생기고 건장하고 정나미 넘치는 이 남자만큼 시들어버리려는 정염을 불사르는 남자는 없을듯 싶었다. 그래서 놓치고싶지 않았던것이다.     녀자는 그저 자기를 한껏 방임하고 남자가 녀자를 즐긴다는 성관념은 너무 진부한것이다. 녀자도 돈만 있으면 아무리 추녀라도 웅성을 마음껏 롱락하고 즐길수 있다는것이 하나꼬의 고집이였다. 죽은 오까무라도 자기보다 몇살이 아래인 남자였지만 밤마다 얼마나 정열에 불탔던가? 하긴 하나꼬는 영화배우를 내놓고 일본에서는 보기드믄 미녀였다. 그 자신은 자기의 미모에 대한 넘치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왔던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세월의 비바람이 그렇듯 안타까워하는 미인의 심정은 아랑곳 없이 미모를 서서히 거두어간다는 현실에 눈을 딱감고 버티려했다.     그러나 아무리 질좋은 기타도 쳐주는 사람이 있어야 소리나고 격조높은 노래에 반주될 때에라야만이 조화되는법이다. 하나꼬는 하나꼬대로 윽벼르고있었다. 애인이 죽은후 한번도 만족시켜보지 못한 욕정이 그대로 활활 타오르는 불뭉치가 되여 육신을 지지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시들어가는 꽃이 한줄금의 폭우를 기다리는 심정, 비는 바야흐로 내릴것같지만 아직도 우산을 씌워놓고있다. 하건만 아무리 혈기방장한 영모일지라도 잠풍한 날에 고요한 늪마냥 감정의 물결은커녕 육욕의 물보라같은것도 일지 않았다. 지금은 중국 에서도 돈많은 녀자가 젊은웅성을 살수 있는것이다. 영모는 자초에 돈과 육체교역을 단순히 남자대 녀자로만 생각했던 자신이 다시 한번 허무하게 무너지고있었다.     하나꼬는 알몸으로 죽은듯이 이불우에 누워있었다. 세월의 언덕에 서서히 무너져 내린 하얀 젖무덤만이 가느다란 지진을 일으키고있었다. 불을끄고 영모는 녀자의 곁에가 누웠다. 이상야릇한 전률이 육신에 쭉 건너갔다. 로총각의 본능적인 심리에서 오는 전류일가? 하나꼬는 개구리를 노리고있던 늘메기처럼 스르르 감겨들었다. 영모는 저도모르게 숨이 거칠어졌다.     《이 하나꼬도 인격이 있고 신분이 있는 녀자여요. 원래는 이러자는것이 아니였는데 참을수 없었요. 모두 가져요. 당신 할탓에 있어요. 괜찮아 처음이니까, 응, 그렇게 날 속으로부터 폭발시켜요.》     처음엔 삯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그저 인형을 만지듯이 했지만 영모의 손끝에서도 필경은 이성의 오묘한 감성이 전달되기시작했다. 하나꼬도 비록 서툴고 성의없는 남자의 손길이였지만 젊은이성에게서 전해지는 이상야릇한 쾌감이 푸떡푸떡 뛰면서 전신에 쫘악 퍼져나갔다. 온몸이 해면처럼 나른해지면서 방종한 웅성이 마구 짓쳐들어가건만 하나꼬는 연신 환성을 터뜨린다.  《당신 멋져! 기실은 말이야, 옛날에도 우리 일본녀자들은 키작고 암팡지게 생긴 일본남자들보다 늘씬하고 끼끗한 조선남자들을 좋아했다나. 우리 외할머니도 조선남자에게 시집을 갔어, 그러니까 내 혈관속에 반도인의 피가 흐르고 있거든요. 우린 그만큼 연분이 있는거잖아?》     그녀는 작고 보드라운 손으로 영모의 남기를 교묘한 솜씨로 자극하였다. 그 몸놀림이 마치 오랜 훈련을 받은 고급기생처럼 얼마나 익숙하고 자극적인지 영모는 한번 또 한번 무아몽중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3.       그렇게 첫날밤을 정욕으로 빨래질한 하나꼬는 주일마다 영모를 찾아와서 자기의 별장으로 데려갔다. 거기서 하나꼬는 더구나 기탄없이 육욕의 향연을 벌렸다. 그냥 수동적이고 교역적이던 영모도 차츰 생리감각에 적응되여 가긴했으나 뒤끝에 허무와 자비심, 굴욕감으로 차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녀자나이40이면 승냥이가 다 된다던가, 그래 그런지 그녀는 버거울만치 찰거마리처럼 들어붙었다.     하나꼬는 스스로도 자기가 이 세상에서 괴이하게 생겨먹은 녀자라는것을 얼굴을 붉히며 생각할때가 많았다. 그는 결코 막굴러먹는 갈보의 기질은 아니였던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식을줄 모르는 정염의 불길이 미칠정도로 온몸을 휩싸는것을 어쩔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밤마다 여느 중년녀자들처럼 조용히 잠을 청하려하여도 자궁속의 어디선가 알수 없는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어서 미칠듯히 초조한것을 참을수 없었다.     그것은 또 까닭없이 그녀의 심장을 마구 고동치게 하면서 잠이란놈을 멀리멀리 쫓아버리군했다. 그리하여 하나꼬는 자기를 억제하지 못하고 한주일이 멀다하고 영모에게 매달려 온힘을 다 빼버리며 만족했을 때에야 이상야릇한 자부심을 가지고 잠들수 있었다. 허무, 삶의 커다란 허무를 성으로 채우지 못하고 그냥 맨숭맨숭해서 받아들인다는것은 삶에 종지부를 찍는것과 같다. 돈많은 그녀로서 허무감을 채우데는 성유희만큼 현실적이고 감각적인것은 없었던것이다.     하나꼬도 배울만큼 배운 녀자요 사회명류는 아니지만 린근에서는 꽤나 알아주는 녀사였던것이다. 그는 곧잘 인생에 대해 자기 나름으로 생각해보군 했다. 고도의 물질문명을 창조했다는 일본사회는 제정신이 아니다. 돈과 소위 사랑이란것, 이 두가 지의 광기가 란무하고있을뿐이다. 특히 돈의 광기는 날이 갈수록 심해간다. 일본인들은 돈과 애욕에 열중하고있다. 그래서 자기는 중뿔나게 애욕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녀자가 아니라 시대와 사회가 낳은 기형녀일뿐이라고 자기를 변호할수 있었다. (인간이란 나만 그런것이 아니라 모두 이런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있었다. 악마가 자기의 음욕을 비틀고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천사처럼 영모에게 웃음을 던지고있다. 이 허위적인 교역이 언젠가는 악과를 낳을수도 있다는 공포심도 가지고 있기에 세월이 흘러가고 자기의 육체가 하루하루 시들어가는것을 애석하게 느끼면서 광기의 일종인 성적인 히스테리를 몰아오고있는 그녀였다.     하나꼬는 집에 혼자 있을때면 대낮에도 샤와를 하던 발가숭이 그대로 큰거울앞에 서서 자기 몸을 이리저리 비추어보며 한창시절 아름다왔던 자기 몸매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녀자의 육체란 얼마나 잘 만들어진것인가? 그러나 발가벗겨 놓으면  너무나 애처러울만큼 연약하고 어찌보면 미완성의 유화같았다.     탄성이 빠져나가는 몸에서 조금 위안을 가져볼수 있는것은 신경을 써서 잘 보양한 하얀 피부의 부드러움뿐이였다. 그녀의 탐스럽고 매끄럽게 흘러내린 그속에 풍만함이 은근히 자리잡았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간곳없다. 녀성의 풍요함을 영원히 잃어버린것이다. 원래 그리 크지 않던 유방은 지금 신선한 멋이 조금도 없다.  그러나 영모와 나란히 누우면 희열에 몸이 달며서 모래언덕같은 영모의 두둑한 가슴을 파고들며 처녀애처럼 애교를 부리고싶어진다.  《녀자란 태양과 대지의 딸이지요.그래서 녀자는 미묘한 동물로서 애무와 긴 키스를 각별히 수요하고 있는거래요. 흔히 녀자에게 매여노는 남자를 머리가 없다고 하고 정에 린색한 남자를 박정하다고 하고 야성적인 맛이 없는 남자는 불알이 없다고 한대요. 그러나 긴상. 당신은 어느것도 아닌 진짜 사나이예요.》     영모는 그러는 하나꼬가 어처구니없었다. 세상에 태여나서 처음 맛보는 녀자가 이런 구미여우일줄이야, 영모는 석사과정을 겨우 마쳤다. 하나꼬가 잘 알고있는 야마구찌선생이 그녀의 양동생이라고 눈감아주지 않았더면 아마 석사증도 받지 못했 을것이다. 그래서 영모는 그 한가지에만은 하나꼬에게 감사하지 않을수 없었다.    영모가 더구나 하나꼬에게 감지덕지할 일은 그후에 있었다. 귀국하려는 영모에게 대련에 부동산개발투자금으로5백만의 거금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하나꼬는 먼저 표현이 좋아야 돈을 가질수 있다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극단적인 요구를 내세웠다. 자기의 회사를 가지는것이 평생의 꿈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질줄은 꿈밖이였다.     그는 돈앞에서 자기를 잃기로 작심했다. 갑부의 꿈이 이룩되려는 판에 이미 쓸대로 쓴 연장을 아낄필요도 없었다. 마침내 대련에 자리잡은 영모는 아직도 부동산개발의 황금시기가 지나지 않아서 한몫 단단히 잡을수 있었건만 하나꼬의 말대로 하지 않고 쾌속효률의 증권교역에 손을 댔다. 그런데 날고 뛰는 전문가들사이에서는 영모는 촌닭에 불과했다. 결국 5백만엔은 까마귀 밥이 되고말았다.     하나꼬는 기막혔지만 영모가 그동안 기특하게 굴던 로고를 생각하고 영모가 회사의 이름으로 재투자를 요구하자 또 5백만엔을 내놓았다. 그러나 조건부가 붙었다. 첫째 그 사이에 사귄 녀자친구와 갈라지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자기 사람이 되여야 한다는것이였다. 이것은 영모로 말하면 혹독한 조건이였다. 몇년 나먹은녀자와 놀아먹다가 이제야 마음에 드는 생화를 꺾어 청신한 감각적으로 생활하게 된 영모로는 다시 버러지로 되라는것과 같았다.   《뭐요? 내 사랑을 버리라구? 언제면 나를 놓아줄수 있습니까?》     영모는 펄쩍 뛰였다. 영모의 그런 모양에 하나꼬는 랭소했다. 간교한 하나꼬는 벌써 영모의 약혼녀와 만나서 그동안 둘사이에 있었던 로맨스를 털어놓아 처녀를 기절시켜버렸다.   《당신은 아직 어려요. 그러니까 당신은 그냥 내몸의 한개 부분이 되여 내 지배하에 있어야 해요. 당신이 젊은녀자와 가정을 이루면 내게 전심전의로 충성할수 없을것이 아닌가요? 난 그걸 그냥 참아낼 인내성도 관용도 없어요.》     영모는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는 자기가 너무도 쉽게 리기적인 교역에 내바친 감정과  육체를 두고 사랑하는 미나와의 행복을 훼멸시킨 치사한 자기 행각에 몸부림쳤다. 그는 다시 미나의 앞에 나타날 용기가 없었다. 전화로 며칠간 도꾜로 일 보러간다고 했다. 미나는 아무 대답이 없이 전화를 끊었다.     다시 일본에 건너간 영모는 하나꼬의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하나꼬와 3년을 동거하면서 그녀의 손에 든 인형처럼 되였다. 하나꼬의 회사도 불경기상태여서 그녀를 떠날수 없었고 일본을 떠날수 없었다. 그러다가 회사의 파견을 받고 북경주재 총재로 부임하게 되여서야 잠시 하나꼬에게서 떨어질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영모에게 전용차를 내주었고 공비로 아빠트까지 세내주었다. 그러나 미나는 영모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포해왔다. 어떻게 그 소식을 알았는지 하나꼬가 결혼하자고 제기해왔다. 영모의 정식안해가 되는것이 그의 꿈이였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은 차차 의논하고 먼저 대련에 본부를 옮기고 같이 생활해야 한다는것이였다.     영모는 얼마전에 술집에서 만난 연변처녀 영미와 죽자살자하는 판이였다. 하나꼬는 하루건너 전화질했다. 하루는 자기가 죽을병에 걸렸으니 한번 왔다가라고 명령조로 말했다. 그러나 영모는 구미여우가 자기를 꼬여가려고 여기고 들은체도 않했다. 성이 상투밑까지 오른 하나꼬는 병이 좀 호전되자 북경으로 날아왔다. 하나꼬는 언제건 영모가 마음이 변하여 자기를 내칠줄 알고 영모의 일본류학 동창이였던 철훈 이란 사람을 끄나불로 붙여두고 영모의 일거수 일투족을 수시로 자기에게 회보하도록 해놓았던것이다. 하나꼬는 영모에게 손가락질 하며 욕질했다.    《사람이 량심없어도 유분수지, 발발이를 기른것보다 못해,》     영모는 하나꼬가 악다구니질 하건말건 눈한번 치껴들지 않았다.    《좀 랭정하시지요. 마님, 그러다가 혈압이 터지겠네.》    《뭐, 랭정하라구? 내가 그동안 먹혀주고 입혀주고 쓰게 한 돈이 5천만엔이야, 인민페로 환산하면 얼마인지 아니? 한번 계산해봐, 눈이 꼭뒤에가 붙을걸, 이제라도 네가 돌아서면 용서해주고 같이 사는거야, 불원이면 다 게워내! 이 하나꼬가 돈이 썩어나서 그저 처넣을줄알아? 내돈으로 녀자에게 아빠트를 사주었다면서? 》     영모는 온몸이 떨렸지만 참고 참았던 분노를 터뜨렸다.    《내 청춘손해를 돈으로 계산할수 있어? 당신에게 쏟아넣은 청춘만 팔아도 5천만엔이 더 된다,》     영모가 갈범처럼 길길이 뛰자 하나꼬는 타협조로 나왔다.    《그래, 그렇다 치자요. 우리 서로 다투지 말고 다시 시작하자요.》    《썩 물러가지 못해! 그냥 당신에게 노리개로 될줄알아?! 넌덜머리가 난다. 넌덜머리가!》     하나꼬는 더 참을수 없다는듯이 영모의 귀썀을 철썩 갈겼다.    《바가야로! 니놈이 다 무엇이게 날 욕해? 돈에 꼬리저은 수캐같은놈, 어디 두고보자, 네놈을 18층지옥에 처넣지 않나?》     이튿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있는데 류학동창 철훈이가 요긴한 일이 있다고 불러냈다. 식당의 독방에 들어서니 억대우같은 세사나이가 살기등등해 일어서며 그를 욱 에워쌌다.   《우린 하나꼬녀사가 보낸 사람들이야, 그가 당신에게 선대한 5천만엔을 언제 돌릴수 있냐? 모가지가 성하려거든 그 돈을 네가 이미 썼다고 서명하시지?》  《뭐라구? 너희들이 무얼 안다구 그래! 그돈은 투자금이야. 이건 나와 하나꼬가  처리할 일인데 왜 네놈들이 참견이냐? 》  《시끄러웟, 너와 이렇쿵저렇쿵 입방아찧기도 싫으니까 서명하든지 공안국에 가서 해결하든지 마음대로 해!》    독불장군이였다. 말을 듣지 않으면 하나꼬가 고용한 이자들이 쥐도새도 모르게 자기를 요정낼수도 있었다. 영모는 떨리는 손으로 서명했다. 그리고 아빠트 구매비, 회사건립비, 등으로 5천만엔을 받았다고 주명까지했다. 일주일후 법원에서 호출령이 내렸다. 하나꼬가 기소한것이다. 영모는 하늘이 핑그르르 돌아갔다…     그렇게 충성을 다지던 영미는 어느새 낌새를 채고 잠적해버렸다. 가고올데가 없게 된 영모는 행차뒤 나발격으로 하나꼬에게 타협하는 전화를 걸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만나자고 간청했다. 하나꼬는 좀 생각해 보고 오겠노라고 대답했다. 년이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게라고 생각하며 영모는 일루의 희망에 매달렸다. 하나꼬를 기다리며 그는 몸서리치는 참회에 빠져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정신기둥이 철저히 무너진것이다. 돌이키면 자신의 인생활극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머리칼을 와락와락 잡아뜯으며 오열을 토했다. 5천만엔, 5천만엔! 그 돈은 아가리를 짝 벌린 구렁이처럼 자기를 삼키려하고있다. 흔자만자 흘려버리고 려행에 날리고 장사에 떼우고 증권교역에 탕진되여버린 돈, 결국 남은것이 무엇이가?                                                                                  4.       영모는 이미 녹쓸어버린 빈가슴의 항아리에다 참회의 숯불을 담고있었다. 돌이켜 생각하기도 부끄러운 치정이였다. 그런 무거운 정신보따리를 걸머지고서도 그냥 하나꼬의 성노리개로 충당되였다는 무서운 과거가 이 시각 그를 미치도록 괴롭혔다. 늦게나마 영모의 가슴속에서 회한과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검은 불길처럼 타래쳐 올랐다. 아니 올줄알았던 하나꼬가 이튿날 찾아왔다.   《이제야 이 하나꼬가 만만치 않다는걸 안모양이군요, 그래 참회하고 다시 나와 살자구 결심이나 했나요?》 이기죽거리는 하나꼬를 보는 영모의 눈에서 불이 일었다.  《하나꼬, 너, 너ㅡ 더러운년! 내청춘, 내정신, 내미래를 훼멸시킨 악독한 여우야, 나 법정에서 마귀같은 네년의 기소에 항소할테다. 여기는 일본이 아닌 중국이야, 법은 네년을 공정하게 징벌할거야!》    그러나 그말이 너무도 무력하다는걸 하나꼬도 그 자신도 잘 알고있었다. 하나꼬가 남자처럼 머리를 흔들며 앙천대소했다. 《하하하…뭐 공정한 법이 날 징벌한다구? 지금은 중일국교가 맺아졌구, 중국사람들은 아직도 우리 일본사람을 막대하지 못한단말이야, 대학을 다녔냐? 류학도 이 하나꼬가 아니였으면 네절로 마치기나 했을것같냐? 그러나 인젠 나도 싫어,》     하나꼬는 듣기에도 거북한 쌍욕을 한껏 퍼붓고는 한들거리며 돌아서서 문께로 걸어갔다. 깨진 방울이 소리가 날리있으랴, 모든것이 끝장났다는 무서운 상념이 영모의 뇌리를 쳤다.   《야, 이 갈보야, 나만 이렇게 망가질줄 아냐? 너희들은 나의 철천지 원쑤놈들 이야, 이 악마같은 년아, 오늘 너와 나 함께 죽자꾸나, 》     이렇게 모진 소리를 치며 영모는 하나꼬를 덮쳤다. 하나꼬가 미처 몸을 피할새도 없이 미처 구원을 청할새도 없이 미쳐버린 영모의 무지한 두손이 가냘픈 녀자의 목을 죽어라고 죄이였다. 하나꼬가 데리고 온 사나이들이 들이닥쳤을 때는 하나꼬가 이미  얼굴이 다 죽어있었다…    사건자체는 끝나지 않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어야 할것같다. 그러나 우리가 사색할 문제는 긴 여운으로 남을수 있다. 이 세상의 어떠한 일에도 지망자는 있는법, 돈많은 사람에게 사람들이 잘 모여드는 세상이다. 어떠한 권위도 군자도 그것에 혹하지 않을수 없다. 그것에서 행운아들이 드문히 나오기도하나 현재의 희극속에 비극이 잉태되여있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수 있는가?      사람은 욕망의 유혹으로 령혼과 육체에 상처를 입고나서 참회한다. 그러나 그 상처를 낫게 할 약초는 인생마당에서 자라지 않는다. 그리하여 《너는 욕망의 골짜기에 굴러떨어진 인간이거늘 지옥으로 가거라.》하고 말한다면 억울하다고 하리라.     생활이 엄혹함을 어쩌리오. 오만가지 변괴가 마음에서 나오거늘 저승에만 귀신이 많은줄 알고 인간세상에 요괴가 많은줄은 모르더라.                                                 2006년 9 월 20 일  수개               
102    언어의 빈곤증인가? 아니면... 댓글:  조회:8738  추천:1  2012-09-29
                              언어의 빈곤증인가? 아니면...                                                           최균선       근간 독도문제를 두고 한,일간에 갈등을 빚어오다가 “위안부”책임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시야비야가 격해지고 요즘 다시 독도문제로 소위 “동맹국”사이가 껄끄러워지고 있는것같다. 수많은 양을 잡아먹었고 지금도 잡아먹고싶어 혀를 나불거리는 승냥이와 양의 동맹이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가? 이에 앞서 2009년에도 독도문제로 한국언론매체가 한동안 끓었다. 그때 이런 기사보도가 있었더랬다. 《 외교부 대변인 명의 논평 발표     정부는  25일 일본 정부가 고등학교 교과서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서 사실상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것과 관련,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어떤 주장을 하든지 관계 없이 한.일 간에 어떠한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외교통상부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이번 일본 고교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개정은 일본의 미래세대에 그릇된 영토관념을 주입해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데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바, 이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기사에 외교대변인 명의의 론평은 그야말로 긁는것도 아니고 꼬집는것도 아닌 중용철학이였다. 이미 엄정한 령토소유문제가 물위에 떠올랐는데 “한일간에 어떠한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어떻게 리해해야 하는가? 감히 날이 선말은 못하고 국민의 눈길이 가려워서《우려》아니면《유감》,《실망》,  《적극 검토하는중》따위로 표현하는데는 정말 실망이다. 하긴 현대 세계적외교통용술어가 이러루하긴 하지만도 말이다.     일본서는 생떼질인데 마치 상론조로 나오는듯싶다. 아베 신조(安倍晉二)라는 전일본총리가 자민당이 다시 집권하고 자신이 총리에 오르면 “미야자와 담화”와 “고노 담화”,“무라야마 담화”등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담은 그동안의 일본정부립 장을 모두 고치겠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의 당국자는"일본 극우 정치인의 상식 없는 발언"이 라고 일축하며 "과거사 문제 해결은 한·일 양국이 미래 지향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데 필수적인 부분인데 일본이 준비돼 있지 않은 듯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참으로 언어빈곤인지 민족정신의 부재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준비돼 있지”않은것이 아니라 근본 그 무슨 “준비”를 념두에도 두지 않은 족속들이 아닌가? 그 무슨 “준비”문제로  알고있으니 강력한 요구가 아니고 그저 속으로 바라던 바일때에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뜻대로 되지 아니하여 마음이 몹시 상한데가 있다는 “실망스럽다”는 말을 선택하게 된다. 분개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실망”을 일본이 송구해 할가?     또 정부당국자는 일본각료들의 잇다른 “책임 회피’발언과 관련”우익인사들의 고도담화를 인정한다면서 강제적으로 했다는 구체적증거가 없다며 부분적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한심하고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고 쓰고있는데 “안타깝다고 비판했다”는 어떤 비판인지 모르겠다. “안타깝다”는 애가타고 답답한 느낌이 있다, 일이 뜻대로 안되여 애가타고 답답한 느낌이다. 안타까움이 비판이 된다면 감각이 가려울가? 아플가? 그야말로 알쏭달쏭이다. 누이좋고 매부좋자는식인가?    문턱이 다른 남의 집의 일이나 결국 단군민족의 정체성, 존엄에 소급되는 문제이므로 관심이 가는것은 민족인으로서의 본성이다. 일본서 수십년전부터 새삼스레 말썽을 일으킨 독도는 위키피디아 일본어판에는 한일중간수역에 있다는걸 강조하고있다. 그런데 어제 보도에 의하면 (김 장관은 그러면서 "일본은 센카쿠에 대해서는 ICJ 제소 움직임이 없다는 점에서 행동이 일관되지 않으며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장관은 또 "노다 총리 회견은 국내용이며 일본 전후세대 정치인은 (2차대전 피해국에) 미안해하는 마음이 없는데, 이는 역사를 제대로 안 가르쳐서 그런 것"이라면서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요구했다.)고 한다.    전문인원이 아니라도 일본이 독일처럼 침통한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는데다 한술 더뜨는격으로 독도에 대한 집착은 이른바의 력사교육의 부재, 력사인식의 부재에 있지 않음이 불보듯 뻔한데 배앓이를 하는데 머리를 짚어보는격이 아닌가? 그게 어찌 력사인식의 차원만이겠는가? 이른바 “이중잣대”란 말은 마치 “저애는 무서워 못때리고 왜 나만 때리니?”하는 약해빠진 아이의 하소연같이 들린다. 각설하고,     (그 연장에서 김 장관은 28일 유엔 기조연설에서 '위안부' 문제 등 역사문제를 포괄적으로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comfort women)' 대신 '전시여성의 인권 문제(women's human rights in wartime)', '성노예(sex slave)' 등으로 표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물론 외교적언어는 선택되여야 하지만 력사적으로 “위안소” 로 새겨져있는데도 “성노예”가 아니면 “위안녀”인가? 언어의 빈곤증인가? 아니면 민족정신의 부재인가? 결코 언어의 빈곤증을 느낄 계제는 아닌것같다. 언어의 빈곤증은 사상의 빈곤증이다. 손바닥만한 독도 그 자체로는 일본이 그렇게 발톱을 걸일이 아니라 여러가지 숨은 야망이 있다는것은 지각이 있는 사람이면 다꿰뚫어보고있다.     (일본정부가 어떤 주장을 하든지 관계없이 한.일 간에 어떠한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는 대목은 웃기는 표현이다. “승냥이님,먹고싶어도 양은 잡아먹지 마쇼, 예”하는 말과 같게 들린다. 좋게 생각하면 근본적으로 자국 ‘입장’은 시종일관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일본이 말속에 말을 깔아두든, 자기네 령토라고 침탈하든 그들의 리익을 고려해서 문제시되지 않는다는 뜻인지? 하긴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관계발전에 부정적영향을 우려한다니까 나오는 말이 유감일수밖에 더 있겠는가고 생각하게 된다. 오독인가? 오독이라해도 한심하지 않을수 없다.     “정부는  (2013년-필자)28일 일본 외무상이 의회 외교연설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단호한 대응 방침을 밝혔다.  정부는 이날 조태영 외교통상부 검색하기">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일본 신정부의 외무대신이 독도에 관한 부당한 주장을 제기함으로써 독도에 대한 영유권 훼손을 기도한 데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비난했다.”      유감스럽게 생각하는게 어떤 비난인지 알수 없고 단호히 대응한다는게 비난하는것에 그치는것인지 알수 없으되 이와 대조적으로 조선은 겐바 고이치로 일본외상이 독도가 일본의 고유령토라고 발언한것은 “령토강탈에 환장한 히스테리적망동”이라고 질타했다. 통신은 "일본 외상의 발언은 조선민족의 자주권에 대한 란폭한 침해이며 령토에 대한 정치적침략행위로 독도는 력사적, 지리적, 법률적으로 명백한 조선의 령토"라고 못박았다.(중략)     통신은 또, "흑백을 전도하고 도적이 매를 드는것과 같은 일본당국자들의 독도 망언은 결코 력사인식의 무지나 법률적판단의 착오로부터 나온것이 아니라 대동아 공영권의 옛꿈을 꾸는 일본우익반동들의 군국주의사상에 철저히 기인된것"이라고했 다. 이런 말이야말로 당당한 주권국가로서 상대국에 향하는 선언인것이다.     말, 국익을 전제로한 대외발언은 이렇게 명명백백해야 하는것이 아닐가? 콩도 아니고 팥도아닌듯이 말하면 말을 아니함만 못하다. 국가로서의 대한(大韩) 에 분노를 불태우며 대방의 요해를 겨누어 치명의 직격탄을 날릴 대변인, 언론인은 태여나지 못했는가? 아니면 례의를 지키고있는가? 일제의 침략이 빌미되여 단군의 5천년 혈통이 두동강나서 반세기도 넘게 저마끔 력사의 수레바퀴를 제산으로 올리밀고있는 이 마당이지만 민족정신은 하나가 되여야 하지 않겠는가. 뭉쳐도 위태위태한 범세계 적인 민족주의, 국가주의적인 각투장에서 말이다.                                                                                                     2013년 2월 28일 수정보충
101    옥상수잡감 댓글:  조회:9094  추천:0  2012-09-26
                             옥상수(屋上树)잡감                                          최 균 선        연길시내 곳곳에 낡은 층집이나 그리 오래되지 않은 층집의 옥상에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게 되는데 수종도 백양나무, 버드나무, 비술나무 등 각가지다. 그런 나무들이 눈에 띄일때마다 갖잖은 사색이 옥상으로 날아오르군 한다. 산동지구 여러도시들의 낡은집에 옥상수들을 많이 보았는데 씁쓸한 찬탄에 싱거운 걱정이 얹혀졌다. 기특하게도 그중 많은것이 비술나무인데는 조금 경이롭게 느껴진다. 비술나무씨앗이 전파력이 독특해서인가, 특별히 강한 생명력때문인가?     비술나무는 느릅과에 속하며 이명으로 비슬나무라고도 한다. 비술나무는 내한성이 강해서 만주땅 어디서나 볼수 있으며 내조성은 약하나 내공해성이 강하기에 가로수나 공원수로 잘 심는다. 한약방에서는 비술나무가지를 약재로도 쓰는데 통증, 대소 변불통 등 치료제로 좋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잎은 국으로도 끓여먹을수 있고 봄철이면 사람들의 미각을 자극한다고 한다. 그런줄 알고 먹은것은 아니지만 배고프던 어린시절, 나는 비술나무에 하얀 햇잎이 돋아날때면 좇아다니며 많이도 먹었다.      이 몇해 외지에 있다가 돌아와보니 지은지 20년된 아빠트여서인지 길건너 맞은켠7층집은 말이 아니게 불성모양이다. 어느 날 남쪽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맞은켠집 옥상에 어린나무 한그루가 자라고있음을 발견하였다. 우연히 날려와 씨를 묻은게 언제인지 어려운 처지에 놓인만큼 서두르지 않고 아주 천천히 자란모양이다. 바람의 방향조차 모르는 나무와 쑥대들의 보금자리가 되여진 옥상, 그런 환경에서 견디며 자랐다는것은 나무가 상처를 제속에 새기는것일가?     어느 틈사리에 실뿌리를 뻗치고 수액을 빨아올리며 바람이 불때마다 흔들리며 혹독한 겨울을 지나면서 나무는 말라가는듯 했다. 그러다 봄볕이 호듯호듯 내리쬐니 저도 비술나무노라고 잎을 피우고 열심하더니 가지를 뻗는다. 제아무리 기를 쓰고 자란다해서 거목이 될 희망이 있는것도 아니여서 건물로 말하면 파괴성적인 귀찮은 존재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존재가 리유일진대 너무 미워할수도 없으리라     최근년간 한국에서랑 옥상터밭이니 옥상정원이니가 류행되면서 인공적으로 이루는 경관과는 왕창 다른 얘기이다. 지붕위를 현대방수설비로 가옥도 잘 보존할수 있는 전제하에서 놀음질처럼 무슨 남새랑 심는것은 날따라 비좁아지는 도시공간, 몰켜서 사는 생활공간을 충분히 리용하려는 발상에서 이채로운 록색공정을 벌이는것은 일거량득이지만 오랜 층집의 옥상에 절로 부착되여 생존공간을 차지하고있는 경우는 인간의 지혜의 산물도 아니고 종자의 힘을 과시하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제때에 베여버리지 않으면 뿌리가 굵어질게고 그러노라면 지붕이 틈새가 생길것이고 비가 새여 우대량이 방중(雨大量房中)이 될것은 시간문제이다. 나무는 누구라 상관하지 않으니 멋대로 자라지만 그렇게 무관심과 자기중심의 시대, 옹근 층집이 내 집이라면 그냥 저렇게 멋없이 자라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게라는 생각이 자리를 튼다.  나혼자의 층집이 아니고 모두의 아빠트이고 게다가 내가 맨꼭대기집에서 살지 않으니 비가 새여들 걱정도 없음에 내버려둔 살풍경이라고 할 때 여기서도 역시 인심의 한구석이 들여다 보이는듯싶었다.    궂은비 내리는 날이나 눈내리는 날이면 회색하늘을 배경으로 부조화를 이룬 옥상수가 비에 촉촉히 젖는 모습, 눈바람속에 오돌오돌 떠는 모습이 생명찬가를 엮는다고 해야 할지, 주인들의 무관심과 라태를 시사한다고 해야 할지…그 끈덕진 생명력 과 존재욕망 자체로는 기특하게 생각되면서도 그래서 상념이 엉뚱하게 굴러간다.     혹여나 억지춘향일수도 있지만 옥상의 비술나무의 생명력과 적응성을 우리 배달민족과 련계시켜본다. 옛그날, 나라잃고 고향을 빼앗기여 남부녀대하고 살길찾아 만주벌판 곳곳에 새삶의 첫괭이를 박았던 우리 선조님들의 생명력도 저 비술나무에  못지않으리라. 층집위에서도 살아남은 비술나무처럼 우리 조상들은 돌꼭대기에 놓여진 신세였지만 억세게도 살아남았고 피어린 100년민족사를 엮어오지 않았는가!     비술나무는 저렇게 지금 푸르러 있지만 래일을 기약한 존재물은 아니다. 그처럼 끈진 삶의 의욕을 가지고 살아온 우리 민족군체에 많은 사람들의 삶의 궤적도 지금은 바람에 실려 정처없이 날려가다가 락착하여 위태로운 삶터를 찾은 비술나무씨와 비슷한 생명운동을 벌이고있지 않는가? 외국으로, 연해지구로, 그리고 산지사방으로 헤여져 모여서 혹간씩 자그마한 동네숲을 만들어가기도 하고 여물속에 삶은 콩알처럼 드물게 섞여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으니 말이다.     외국에 국적을 올리고 정착했든, 대도시에 어느 한구석을 차지하고 조선족거리를 이루며 살든 결과적으로는 옥상의 비술나무로 되지 않기만 바라는 마음이다. 언제 베여질지도 모르고 언제 후딱 뽑혀버릴지도 모를 그런 불확실한 환경에서 살고있는 옥상의 비술나무의 운명과 닮지 않았으면 하고 기원한다. 우리 민족들의 전통관념속에는 뿌리박은터라는 낱말이 특별히 의미깊은바 땅에 뿌리박는 지혜를 의미한다.     조선민족, 조선족은 농경민족이라는 전통관념속에는 과거 4천년을 한해라도 농사짓지 않고 살아본적이 없는 민족으로 새겨져있다. 그러다가 돈바람에 돈을 좀 쥐게 되자 도시에서의 편안한 삶을 바라고 도시문화생활을 해보겠다고 저저히 진출하는 그날부터 옥상에 부착한 나무들처럼 현재의 삶의 위태로움을 감지하지 못하고 도시에 진출한 사람들의 그후의 가슴아픈 사연들이 많다.     나무의 생명의 뿌리는 저렇게 옥상에 간신히 뻗는게 아니라 마음껏 지심으로 뻗을수 있는 대지가 적격이다. 특히 생명과 행복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의 결과로 생활터전을 도시로 옮겨온 이들은 옥상수의 래일을 읽으려하지 않을것이다. 옥상의 재배수는 현대물질문명의 풍경선이라 할세 저렇게 스산한감을 주는 옥상의 나무들은 그냥 살풍경에 가까운 비정상의 기관일뿐이라는 느낌이다.                                            2011년 12월 24일  (2012.9. 26.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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