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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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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3D마스크 댓글:  조회:725  추천:9  2020-09-21
단편소설   3D마스크   김혁   ​   거울 앞에 마주서서 마스크를 착용했다. 방송 전문프로에서 알려준대로 하얀 색의 무직포(无纺布)면을 안으로 하고 남색 방수층을 바깥으로 하고 금속 띄가 있는 부분을 우로 향하게 착용했다. 혹여 거꾸로 끼지 않았나 다시 살펴 보았다. 손바닥으로 량볼쪽을 잘 펴주어 마스크와 안면 사이에 틈이 없도록 했다. 추위를 막고자 방한복을 입고 옷에 달린 후드를 눌러쓰고 립체형 마스크를 착용하니 삼엄하게 꾸민 품이 마치 공상영화에 나오는 등등한 로보트처럼 보였다.   3중 구조의 필터를 적용해 감염원으로부터 호흡기 보호가 가능한 방역용에 적용되는 마스크였다. 안감은 피부자극 테스트를 완료한 원단이며, 사용자가 착용후 답답하지 않도록 3D 방식의 구조 설계로 면적을 넓혔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예방을 위해선 이러한 등급의 3D마스크가 요즘들어 너나가 다투어 사들이는 필수품이다. 이전에는 딸애 또래들이 멋을 부리고 개성을 살리기 위해 마스크를 짐짓 착용했지만 요즘들어 마스크는 그무슨 기호와 멋의 선택이 아닌 제1 필수품으로 자리매김되여 있었다. 사재를 털어 마스크를 기부하는 기업인들도 있는가 하면 그 와중에 마스크를 사재기 하여 한 몫 챙기는 야말스러운 인간들도 있어, 요즘 마스크는 부쩍 많이 떠오르는 화두였다.     이 마스크를 사고저 시가지 곳곳의 약방들을 참빗질 했다. 두, 세시간 씩 줄을 서기도 했다. 목타는 기다림 속에 규정대로 한정량이나마 다섯 장의 마스크를 사들고는 또 다른 약방으로 달려 갔다. 그렇게 련 며칠간 진동한동 뛰여다니며 온 가족이 한동안 착용할 수십장의 마스크를 구해들였을때 그 성취감은 그야말로 무인도 기암 틈새에 감추어진 보물함이라도 찾아든 심경이였다. 개선장군의 심정으로 집에 돌아와 안해와 딸애에게 마스크를 보란듯이 내놓았다.   - 수고했어요. 여보   - 아빠 최고!   금붙이를 생일선물로 받기라도 한듯, 마스크를 착용해 보며 딸애와 안해는 그렇듯 기뻐했다. 출근도 못하고, 학교에도 가지 못한채 집에 붙박혀 무형의 초조감에 꺼둘려 있던 그들의 얼굴에 오랜만에 화사한 미소가 피여 올랐다. 그 무슨 신화 속 신농씨(神农氏)처럼 신산유곡을 헤매며 약초를 구하듯 애면글면 약방들을 누비다 돌아온, 목이 타하는 나에게 안해가 랭장고에서 시원한 과일시럽을 꺼내 컵에 그득 따라주었다. 가슴 한자락 습윤하게 적셔주는 시럽의 청량함을 느끼던 나는 은연중 사과배 꽃이 백사지(白沙地) 같이 피여 있는 과수원을 떠올렸다. 그리고 과수원 사과배 나무 아래 서있는 쪼글어 든 사과배 같은 얼굴 하나를 떠올렸다.   - 어머니에게도 마스크 몇장 가져다 드려야겠소   나는 그 어떤 계시의 부름을 받은 신자처럼 급기야 소리를 높여 말했다.   - 아무렴요, 그런데 여보…   안해가 미간을 찌프렸다.   - 어찌 다녀 오겠어요, 구역통제기간이라, 차도 못 뛸턴데     안해가 마치 현애탄을 건너는 사람을 걱정하는 듯 한 어조로 말했다. 하긴 안해의 말이 맞았다. 혹한과 함께 덮쳐든 귀축 같은 바이러스때문에 세상은 질겁해 저마다 문을 꽁꽁 닫았고 빈지를 한겹 한겹 걸었다. 초유의 사태에 아파트 단지마다 봉쇄관리에 들어갔고, 현성과 시가지 사이의 뻐스며, 일체 차량의 통행이 금지되였다. 어머니가 계시는 향촌마을도 언녕 여느 마을처럼 봉쇄되여 외부인원들의 출입이 금지되여 있을터다.   - 그래도 한번 가봐야겠소, 이 사태에 로인네가 홀로 어떻게 지내는지, 설 문안조차도 못갔는데...   무던한 며느리였던 안해는 아무 말없이 내가 사온 마스크 중에서 한세트를 덜어내여 내주었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다. 립춘에 내린 눈은 아직도 녹지않고 있었다. 꽁꽁 봉한 모자와 마스크 틈새로 서려드는 랭기가 선뜻 차가웠다.   아파트 단지를 출입하려면 “통행증”을 내고 자신의 동선을 일일이 체크해야 했다. 한 가족 중에 하루에 한사람 밖에 바깥 출입을 못하게 되여 있다. 아파트 관리원 몇몇이 특별히 붉은 조끼를 차려 입고 아파트 단지의 대문가에서 지키고 있었다. 통행증을 내보이고 아파트 동 번호와 층수를 말하고 출입등록부에 신분증 번호와 전화번호를 일일이 적었다. 지키는 사람도, 드나드는 사람도 모두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고 마스크 우로 드러난 미간에는 단단한 긴장이 서려있었다.   대문가에 커다란 방역 포스터가 몇장 붙어 있었다. 진지한 표정의 만화 캐릭터에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손을 자주 씻읍시다”라는 예방수칙이 적혀 있었고, 또 한 포스터에는 무한의 절경 황학루 앞에 피여난 화사한 벚꽃과 이 곳의 명물인 사과배꽃이 어우러져 핀 중에 “힘내세요 무한!”이라는 비원과 응원의 문구가 커다랗게 씌여져 있었다. 다른 포스터에는 “겨울이 왔으니 봄은 멀지 않으리”라는 영국시인 쉴레의 명시의 한 구절도 패러디 해 씌여 있었다.   거리는 텅 비여 있었다. 실북 나들듯 하던 차량도, 희희락락 오가던 사람도, 온 거리를 왁자하게 메우던 소음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우뚝우뚝 솟은 건물들은 마치 빙동되여 방치된 어물을 방불케 했고, 그 사이를 걷노라니 마치 한부의 블록버스트급 영화제작을 마치고 비여진 세트장이라도 걷는 양 싶었다. 시가지를 꿰질러 홀로 걷노라니 몽매(梦寐)에라도 들린 듯 싶었고 쓸쓸한 감 까지 들었다.   (우리가 왜 이지경에까지 이르렀을가?)   나는 아침나절에 누군가 위챗 모멘트에 올린 한구절을 떠올렸다. “자연의 역습”의 저자 월터스가 갈파한 경구였다.   “현대사회는 ‘환경전염병’이라는 자연의 역습에 직면해 있다. 광우병, 에이즈, 사스와 같은 환경전염병은 동물을 매개로 감염되지만, 실제 이를 불러들인 주범은 욕망의 충족을 위해 자연에 개입해 온 인간들이다.”   엄슬(严瑟)한 바이러스에 맞닥뜨려 집에서 연금아닌 연금생활을 하면서 은연중 사색하는 버릇을 키우게 되였다.     시가지를 벗어나는 경계에서 또 한번의 검역이 있었다. 신분증 번호를 대였고 겸역원이 들이미는 전동 면도기를 방불케 하는 체열검사기 앞에 고스란히 이마를 들이 대였다.   - 36도 5! 정상입니다.   제복차림에 마스크를 꼭 낀 녀자 검역원의 눈섭은 김에 불려 하얀 서리가 앉아 있었다.   - 어데를 멀리 가세요? 이 사태에   검역원이 텅 비다 못해 적요가 감도는 고속도로를 홀로 걸어 온 나에게 물었다.   - 어머니를 보러 갑니다. 걱정돼서요   나는 열심히 대답을 주었고 검역원이 사뭇 정중하게 목례를 했다.   - 건강하세요!   요즘 항간에서 가장 많이 주고받는 인사를 검역원과 서로 주고 받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나는 마스크 뒤에 숨은 미소를 다시 떠올렸다. 남들이 뛰쳐나오는 병원체 속으로 다시 뛰여드는 용감한 “역행자”들의 소식이 련일 뉴스의 톱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포기를 모르고 병마와 맞서 싸우며 희망의 백신을 만드는 그들의 고전은 눈물겨웠다. 마스크 뒤에 숨어있는 견강한 미소가 결국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해줄 이 사회의 건강한 힘의 원천이 되지않을가 생각해 보았다.   마스크 사이로 벅찬 입김을 털며, 씨엉씨엉 걸음을 옮기며 시가지를 벗어나 또 한식경을 걸으니 국도 곁에 과수원이 무대장막 뒤의 진풍경처럼 펼쳐졌다. 우리의 선인들이 척박한 동토의 땅에 보습을 박고 이룩해낸 결실, 명물 사과배 밭이였다. 과수원에서 나서 자란 나에게서 이곳은 익숙했다. 봄이면 사과배꽃이 백사지 같이 환하게 피였고 가을에는 사과배 향이 언덕넘어 골골을 메우곤 했다.   봄이 되여 사과배 꽃이 피면 꽃에 수분을 해주어야 했다. 과수원의 사원들뿐만 아니라 집집에서 동원한 일가 친척들이 몰려들어 그날이 명절이였다. 작은 링게르병에 담긴 화분을 솜방망이로 찍어 꽃술에 묻혀 주곤 했다. 꽃가루 알레르기에 재채기를 해가면서 너나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열심히 수분을 했다. 그래야만 수확의 계절에 가지가 휘여들도록 사과배가 알알이 달릴 수 있었다. 그때는 화분 알레르기때문에 너나가 마스크를 착용했는데 요즘은 느닷없는 바이러스의 침투때문에 마스크의 풍경을 다시 보아야 했다. 그리고 요즘들어 바이러스의 위협에 지지름 당하면서부터 평면으로만 안일하게만 보이던 세상이 이 3단 폴더형 설계의 마스크처럼 립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좀 쉴가 하다가 그냥 걸음을 재촉했다. 과수원이 보인다고 다 온 것이 아니였다. 어머니의 집은 무연하게 펼쳐진 저 과수원 막바지의 더기 아래에 있었다. 홀어머니를 시가지의 엘레베이트가 장착된 좋은 집에 모시려 해도, 조건이 좋은 경로원에 모시려해도 어머니는 굳이 머리를 저었다. 머리를 얹어서 여태까지 한평생 묻혀 살던, 아버지의 유골도 잠자고 있는 이 과수원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가을이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장년의 주먹보다도 더 큰 일등배를 아들 집에 전해오곤 했다. 무거운 사과배 박스를 이고 뻐스를 두번 갈아타며 오시곤 했다. 그러다 년세가 깊어져 요즘은 거동이 불편함에도 인편에 보내주시는 걸 잊지았다.   - 배가 먹기 질리고 치아가 시려 못 먹음 즙으로 갈아서 먹어도 괜찬타, 먹을만허다.   친히 만드신 사과배 시럽도 보내주셨다. 딸애가 밤늦게 공부하다가도 마셨고, 나도 회사의 행사끝에 숙취에 힘들때면 그 사과배 시럽을 마시면 한결 속이 풀리곤 했다. 그런 어머니가 요사이는 가는 귀도 멀어져 일껏 갖추어 드린 핸드폰을 아무리 울려도 잘 듣지조차 못하신다. 그러다가도 며칠이 지나서 뜬금없이 “전화왔대고나, 이궁 못 받았고나”하고 혀를 끌끌 차며 며칠 전에 드린 전화에 응답을 하시곤 했다. 바이러스가 엄습해 오자 걱정되여 전화를 드렸지만 받지 않으시는걸 보면 아마 또 듣지 못하셨나 보다. 그런 어머니가 안쓰러웠고 바이러스 때문에 설 문안도 못가 본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방역용 마스크 몇장이라도 꼭 챙겨 드리고 싶었다.   드디여 국도와 농로가 린접한 곳에 이르렀다. 평소 자가차로 대여 오려면 20분도 못 될 거리를 도보로 오려니 세시간 좋이 걸은 것 같다. 란장 속에서도 서설인듯 큰 눈이 내렸고 사과배 나무가 렬을 지어 서있는 언덕과 농로는 눈 이불로 하얗게 덮여 있다.   문뜩 앞에서 누군가 오는 것이 보였다. 길에서 만난 검역원들 외에는 사람이라고는 보지 못했는데 이 눈길로 누군가 오는 것이 보였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길을 뽀드득, 뽀드득 발자국 소리로 고요에 구멍을 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천지에 깔린 백설의 시린 빛때문에 눈시울을 좁히고 언덕길로 위태위태 걸어내려오는 그 사람을 헤아려 보던 나는 문뜩 어떤 예감에 가슴이 뜀을 느꼈다. 작은 체구에 숙어든 어깨, 왜소한 몸집의 그 사람은 겨울 옷으로 꽁꽁 일신을 감쌌어도 그 체구의 륜곽으로 보아 분명 내 어머니임을 나는 느낄수 있었다.   - 어마이!   나는 엎어지듯 언덕길로 달려올라 갔다. 그리고 마스크를 내려 어머니에게 얼굴을 드러내 보였다.   - 아이고 이게 뉘기냐? 우리 큰 아덜   사람하나 없는 자드락 길에서 마주친 나를 우두망찰 쳐다보던 어머니가 나의 손을 와락 부여 잡았다.   - 이렇게 외통 길에서 만나다이, 다들 오금 무사하냐? 손네는 핵교 못가서 어떡하냐? 며누리 몸은 괜찮고? 이 란시통에 어떻게들 지내냐   어머니는 나를 만나자 바람으로 외려 당신쪽에서 걱정을 삼태기로 쏟아 내셨다.   -우린 다 괜찮습니다. 설에 문안조차 못오고 죄송합니다. 어머이   -일없다. 어쩌겄냐? 다 그놈 육시랄 “옘병”때문이지,   맨 끝가지에 높이 달린 사과배 알을 쳐다 보듯 고개를 한껏 들어 나를 쳐다보며 어머니가 말했다.   - 그런데 어델 가십니까? 어머이 날씨가 찬데, 이 란시에   나는 반가이 그리고 원망조로 말했다.   - 쬐꼼 거기 가만이 있어바라   걸어 온 길이 벅찬 듯 숨을 거세게 삭이며 어머니가 호주머니에서 무언가 뒤적뒤적 거렸다. 신문지에 꽁꽁 감싼 무언를 꺼내들었다. 털장갑을 낀 손이 말째인 듯 어머니가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넣어 장갑을 벗었다. 갈수년(渴水年)의 과수나무 가지 같은 앙상한 손이 드러났다. 그 손으로 신문지를 벗겨 내렸다. 드디여 드러난 그 것은 마스크였다.   - 응, “입 가리개”다. 니들한테 줄려고 시방 갖고 가는 길이다.   시골에서는 때로 송아지 주둥이에 가리개를 하곤 했다. 설사를 하는 송아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쌀겨를 먹거나 벽을 핥거나 할때면 입가리개를 하루동안 해두곤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사람들이 끼는 마스크도 “입 가리개”라 부르곤 했다.   - 향정부에서 내려와 마을 사람들에게 가리개 열장씩 나눠 주더라. 내사 그러께 쯤 쓰던게 있으니까, 니들을 줄려고 이렇게 가져왔다. 새물내 나는건 시내 사는 니들이 껴야 멋이지, 내사 무슨, 더군다나 이거 꼭 껴야 그 “코로나”인지, “코뚜레”인지하는 옘벵이 까딱 곁에 와 붙지를 못하지.   그러고보니 어머니는 평소에 쓰던 보통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새롭게 빨아 착용했을터지만 분명 오래동안 쓰던, 때국을 벗지 못한 마스크임이 일견에도 알렸다. 순간 나는 코잔등이 매콤해짐을 느꼈다.   - 그래 우리 한태 이 “입 가리개” 전해주려고 길을 나섰나요? 이 추위에, 이 먼길을   나는 어머니의 벗은 손에 다시 장갑을 끼여드렸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찬히 뜯어 보았다. 털수건 속 동리(冻梨) 같이 쪼그라든 얼굴, 합죽이에 종이장 처럼 붙어 있는 낡은 마스크, 원색을 알아볼 수 없게 물 간 목수건, 그리고 헤여진 신 코숭이에 묻은 흙과 눈… 당신은 정작 때국에 절은 낡은 마스크를 쓰시면서도 자식들에게 새 마스크를 전하려고 어머니는 차가 끊긴 이 먼 길을 나서신 것이였다. 나는 돋솟아 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품에서 내가 가지고 온 마스크를 꺼내들었다.   - 저도 어머이한테 마스크를 전해 주려고 오는 길입니다. 어머이   어머니가 벌을 쫓는 사람처럼 손사래를 쳤다.   - 내사 누에 고치처럼 하루 죙일 집에 백혀 있는 몸이니, 이거문 된다. 새거사 니들이 써야지   - 어머이, 요즘 이 전염병은 무서운 것이여서 평소 쓰던 마스크로는 예방할수 없어요. 꼭 방역용 마스크를 껴야 한답니다. 어머이   3층으로 돼 있는, 바깥부터 안까지 각기 방수층, 려과층, 쾌적층(舒适层)으로 만들어진, 마스크 착용시 잘 흘러 내리지 않으며 립체적 구조로 쾌적한 호흡이 가능하다는, 3d 립체마스크의 공능까지 어머니에게 설명해 드릴 수 없었다. 말해도 알아 듣지 못하 실 것이였다.   - 어머이의 “입가리개”는 제가 받을게요. 그러니 어머이도 제 효도를 받으셔야죠.   나는 어머니가 가져 온 마스크를 품에 넣고 내가 가져온 마스크 한세트를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그중 한 개의 포장지를 뜯어서는 어머니에게 정히 씌워 드렸다.   -고우세요 어머이   내가 립체 마스크를 착용한 어머니를 보며 만족하게 웃었다. 마스크 속에서 어머니도 분명 웃는 듯 했다. 벌의 더듬이처럼 눈섭꼬리가 올라갔고 마스크가 움찔했다.   - 갑시다,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   - 내사 집이 조기 코 앞인데, 촌 길목 다 막고 검사하길래 정작에 외지 사람들은 못들어 간다. 치븐데 얼시덩 집으로 돌아가거라, 집엘   어머니의 힘이 들어가 있는 손이 다독다독 나의 등을 밀었다.   - 아무쪼록 몸 건강하십쇼. 어머이   그 말을 하고나니 또 눈물이 울컥 차올라 나는 얼른 길에 나섰다.   언덕길을 내리다 다시 돌아보니 어머니는 샛길의 그 언덕 우에 아직도 서 계셨다. 새 마스크를 착용한 어머니의 모습이 새뜻해 보였다. 돌아가시라고 어머니를 향해 손짓을 했다. 어머니도 나를 향해 손을 저으셨다.   - 얼시덩 가거라, 얼시덩   멀리 서 계셨지만 어머니의 다수운 목소리가 다 들리는 듯 했다. 과수원의 자락, 조매로운 꿈 길 같은 곳에 선 어머니는 마치 오래전에 뿌리 내린 한 그루의 사과배 나무를 방불케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등 뒤로 무연하게 펼쳐진 과수원, 사과배 나무가지 마다에 눈은 소복히 내려서 쌓여, 하얀 배꽃이라도 피운 듯 하였다. 마치 봄이라도 정녕 온 듯 싶었다.   - 겨울이 왔으니 봄은 멀지 않으리!   방역 포스터에 씌여진 쉴레의 시구가 떠올랐다. 어머니의 따뜻한 체온이 배여있는 마스크를 품에 꼭 간직한 채 나는 다시 먼 길에 올랐다.   “연변일보” 2020년 3월 13일    
25    동주의 남자 댓글:  조회:1489  추천:12  2017-11-21
중편소설 ​ "동주의 남자" (발취) ​ 김 혁​ ​ ​ 영화 "동주"의 한 장면​ ​ ​ -      한범, 보이니 그 언덕? 시가지 변두리에 나지막히 솟아있던 그 언덕. 룡정에서 맨 먼저 해솟는 동쪽의 그 언덕, 코 큰 카나다사람들의 선교부가 있고 제창병원(濟昌病院)이 있고 하얀 깃 세라복이 이쁜 녀학생들의 명신학교가 있고 우리가 책상을 나란히 했던 은진중학이 있던 그 언덕, 북간도 사람들이고 보면 너나없이 선망했던 마음의 대처, 간도의 “서울”, 룡정에 우리 살던 그 언덕, 해환에서 동주, 한범에서 몽규 몽실한 아명들을 의젓한 이름으로 바꾸고 우리 새로 시작한 그 언덕,  버틸 주, 꿈 몽, 새로운 주춧돌 놓고 새로운 꿈을 펼치려 막 올랐던 우리들의 언덕, 보이니 한범? 보이니 몽규? ​ 청춘의 언덕 - 룡정 은진중학 1935년   ​ ​ 롱구공이 튀였다. 몽규는 용수철을 밟은듯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동주도 솟아오른다. 점프해서 공을 낚아챈다. 떨어진 공을 걷어내며 몽규가 다시 자유투를 날린다. 철렁 공이 바스켓을 뚫었다. 날으는 몸짓들이 대공을 가르는 새와도 같다.   롱구를 마친 몽규와 동주는 공을 안고 운동장을 나와 백양나무 그늘아래 나란히 앉았다. 은진중학이라는 넘버가 달린 유니폼이 땀으로 흥건하다. 옷자락으로 땀을 훔쳐내는 몽규에게 동주 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역시 너였어 한범, 주장다워” 몽규는 벌씬 웃어보인다. 은진중학 롱구부 클럽의 주장이였다. 롱구에서 둘이는 클럽의 력장이라 할수 있었다. 롱구에서는 점수가 많이 벌어졌다가도 쉽게 좁히거나 역전 시킬수가 있어서 흥미진진할 때가 있는데 그 반전은 거의 다 몽규의 몫이다.  그늘아래 땀을 삭히며 둘은 언덕아래 펼쳐진 룡정 시가지를 내려다 보았다. 푸릇푸릇 자라는 벼의 색조로 물들은 세전이벌, 세전이벌을 은검처럼 가로 지른 해란강, 강우에 무지개처럼 가로 걸린 룡문교, 짐군, 인력거군들이 우르르 모여들어 삼산봉-룡정행 기차를 시간 맞춰 기다리는 룡정역, 새 연극포스터를 건물 이마전에 떠인 “성세”극장, 잡화상, 포목상, 리발소, 양복점이 어깨를 비비대며 서있는 오층대거리, 돌을 아귀맞추어 쌓아올린 룡두레 우물,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과 누런 황소가 뒤섞여 붐비는 우시장,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오니 간도성 룡정이로다.   선들선들 바람에 몸을 맡기며 동주가 나지막히 노래를 불렀다.   굽이굽이 감도는 해란강변에 충암절벽 기암이요 일송정이라   몽규가 따라 불렀다. 그런데 아름다운 “룡정경치가”는 음치인 몽규에게서 다른 곡조처럼 불리고 있었다.동주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한범, 넌 아무래도 롱구쪽으로 해야겠다. 곡조가 다 틀리잖냐” 그래도 몽규는 개의치 않고 짐짓 더 소리를 높혀 부른다.  울뚝불뚝 북망산 공동묘지는 외국사람 모여 사는 영국더기라 동주는 웃으며 그 자꾸만 삐여져 나가는 음조에 자기의 가락을 정확하게 집어넣었다.   동주의 아버지 윤영석 일가가 명동에서 룡정으로 이사를 와서 영국더기에 머물게 된것은 1932년 가을께였다. 명동학교를 졸업하고 동주와 몽규 그리고 마을 아이들은 명동에서 20여리나 떨어진 대랍자(大拉子)에 있는 중국인 학교를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그 먼 산길을 매일이고 걸어서 통학하는 어린것들의 힘에 부친 모습이 어른들에게는 늘 마음에 걸렸다. 한편 “물은 낮은데로 흐르지만 사람은 높은 곳으로 오르듯이” 북간도의 오지에 발 닿는대로 뿌리를 내리고 오로지 입에 풀칠하기 위해 뛰였던 사람들은 가마에 앉힐 쌀 걱정이 덜어지고 생활이 윤택해지자 대처로 나가고싶은 배부른 욕심들을 품기 시작했다. 그 시선들이 몰부어진곳이 룡정이였다. 동주의 아버지 윤영석도 몽규의 아버지 송창희도 그 열망의 대류에 합류했다. 룡정은 명동에서 북쪽으로 약 30리가량 떨어진 그닥 멀지않은 거리에 있었지만 동주는 자라면서 여태 한번도 가보지 못하였다. 동주가 처음 본 인구 10만명이 숨쉬고있는 간도의 서울- 룡정은 컸고 눈부셨다. 토담과 초가지붕만 보아오던눈에 기와 지붕과 네모번듯 벽돌층집 그리고 붐비는 네거리와 그 거리가 빚어내는 성마른 소음은 손바닥만한 동네에서 붐볐던 그에게 아름찬 모습으로 다가왔고 아련한 현기증까지 자아내게 했다. 동주네 일가는 “영국더기” 아래에 새롭게 깃을 틀었다. 터밭과 타작마당, 깊은 우물과 작은 과수원까지 딸리고 지붕얹은 큰 대문이 있는 마을에서 제일 큰 기와집, 그런 큰 집에서 한껏 넉넉하게 살다가 20평짜리 초가집에 부모, 동주와 녀동생 혜원이 태여난지 얼마안되는 남동생 일주, 거기에다 은진중학에 입학한 송몽규까지 합류한 8명의 식구가 20평짜리 초가집에서 옹색하게 붐벼야하는 환경속에서 룡정생활은 시작되였다. 그럼에도 소년들의 새로운 꿈은 이사오던 날 시가지 입구에서 보았던 룡두레 우물처럼 날로 깊어만 갔다. 둘이 함께 입학한 은진중학은 영국더기의 넓다란 부지에 본관과 기숙사, 그리고 대강당을 가지고있는, 명실상부 북간도의 최고의 신식근대교육기관으로 이름이 높았다.  민족정신과 독립운동의 산실이 명동촌의 명동학교였다면 이제는 룡정의 은진중학이 그 맥을 잇고있는것이다. 이곳에서 윤동주는  몸과 마음을 담금질하기 시작했다.    “요즘 난 지용님의 시집을 읽고 있어. 더기아래 룡정의 풍경에 눈을 박은채 동주가 말했다. 무아지경으로 소리내여 한수를 읊었다.   “… 나는 자작(子爵)의 아들도 아무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희여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   지용님의 ‘카페 프란스’야! 좋지! 어쩜 시가 이렇게 아름다울수 있다니!” 동주의 눈동자에 경모의 빛이 잔뜩 배여 들어 있었다. “지용님은 동시도 성인시 못잖게 잘 쓰시는 분이다. 나도 요즘은 동시가 좋다. 동시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몇수 써봤는데 한수 들어볼래?” 문학에 대한 화제만 나오면 자기를 잃고 말수가 부쩍 많아지는 동주였다. 동주는 자작 동시 한수를 읊었다.   아롱아롱 조개껍데기 울언니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   여긴여긴 북쪽나라요 조개는 귀여운 선물 장난감 조개껍데기   데굴데굴 굴리며 놀다 짝 잃은 조개껍데기 한 짝을 그리워하네   “어! 제법인데, 바다소리가 막 들리는거 같네” 몽규가 갈채를 올렸다. 하지만 동주는 머리를 저었다. “멀었어 난. 역시 임자는 따로 있는것 같다. 지용님도 그렇고 윤석중님도 그렇고. 그분들의 동시를 읊노라면 빠져든다. 아주 흠뻑. 그분들의 동시는 화려한 수사로 재치있게 묘사하는 수준에서 끝나는것 보다 아름다우면서도 감동을 주고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시편들이다. 어떻게 하면 그분들 같은 글 써낼수 있을가 밤잠마저 잘수 없다. 부끄럽지만.” 동주는 깊은 고민을 보였다. 그런 동주를 미덥게 바라보다가 몽규가 한마디 했다. “동주 넌 언젠가 문학으로 대성할거다. 그런 예감이 들어 내가” “그런 날이 올가?” 동주가 절박한 음성으로 물었다. “오구말구. 꼭 올게다.”  “그런데 말이다 한범…” 동주가 정색해진 얼굴로 다른 화두를 꺼냈다.  “그럼 이제 이 북간도마저도 만주국 황제의 천하가 된단 말이냐?” “철마(鐵馬. 기차)가 씽씽 내달리는 세월에 가소롭게 황제가 다 뭐냐?” 몽규가 소리나게 코방귀를 끼였다. “만주국은 허수아비제국이고 황제님 푸이도 사실은 꼭두각시나 다름없지. 탈을 씌운 사람도 춤판에 내 몬 사람도 다 일본놈들 아니고 뭐냐.” “남의 집 가사일에 감놔라 배놔라하면서 놈들이 원하는건 대체 뭐냐?” 동주가 물었다. 몽규가 롱구공을 빙그르르 돌리다가 대답했다. “일본놈들이 하필이면 자금성 황궁에서 쫓겨난 푸이에게 도포를 주어입히고 룡관을 씌워 황제랍시고 내세운 깜냥은 알고보면 간단하지. 저희들 작은 섬나라보다 땅넓고 풍부한 이곳의 물산을 강탈하고 또 이곳에 숨어있는 우리 조선사람들의 독립운동을 말살하여 안정적인 식민지 조선을 관리하고자 하는 야욕에서가 아니겠냐. 쪽바리 놈새끼들” 몽규는 열변을 토하며 찰삭 공을 내리쳤다. 공이 튕겨올랐다. 몽규는 동주네 집에서 석달을 앞두고 태여났다. 동주보다 겨우 몇달 손우였지만 생각이나 말하는 품이 늘 자신보다 달랐고 앞섰다. 각진 이마와 날카로운 코에 목소리는 우렁차며 굵직했고 언제보나 적극적인 인상이다. 그닥 크지않은 몸집이지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미지의 힘을 마른 체구안에 감춰놓은듯 했다.   언제나 내성적이고 조용한 동주에 비해 몽규는 결단이 빠르고 생각한것은 우선 행동에 옮기고 보는 약간은 과격한 성품이였다. 명동마을 아이들중에서도 그랬고 지금 룡정으로 이사온뒤에서도 은진중학에서몽규는언제나 리더격이였다. 명동학교때 동주와 “새 명동” 등사판 문예지를 꾸릴때도 그가 앞장섰고 성탄절이면 연출 선생님을 모시고 교회에서 하는 연극에서도 음치이지만 몽규가 주로  이래라 저래라하며 배역을 정하곤 했다. 몽규의 입에서 나오면 억지소리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동주도 익환이도 마을아이들은 모두다 몹시도 몽규를 따랐다. 요즘 항간의 화제는 온통 만주국이였다. 동주네 일가가 룡정으로 이사를 했던 시기는 북간도가 세상의 거친 회오리 바람속에 휩쓸리던때였다. 1931년9월 18일에 만주사변을 일으켜 본격적으로 만주 침략에 나선 일본은 동삼성과 열하 및 내몽고 동부를 판도로 하는 이른바 “만주국”이라는 이름의 괴뢰국을 세우고 청나라의 마지막황제였던 부의(傅儀)를 왕으로 올려앉힌것이다. “야욕에 가득찬 간교한 놈들, 허욕에 머리가 빈 어리숙한 놈들이 어우러져 살판치니 세상은 란세가 아니겠냐?” 롱구공을 만지작거리다가 몽규가 동주를 둘러보았다. “이 풍진세상을 만났으니 우리 해환의 희망은 무엇인가? 몽규가 안 그래도 건 음성을 더 걸쭉하게 해갖고 운문을 써가며 묻는다. 그 눈길이 여느때보다 진지하다. “익환인 평양으로 간단다”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동주는 동문서답을 했다. “뭐 평양으로? 익환이가”” 몽규가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익환이는 그냥 전도사가 되는게 꿈이래. 평양으로 신학공부를 떠난단다. 아버지 문재린목사님의 뜻이란다.”  “그럼 우리 해환이는?” 몽규의 눈길이 동주를 찔러왔다. 동주는 잠시 머뭇거렸다. 궁색해진 자신이 어색해 몽규의 손에서 롱구공을 앗아내려 했다. 그런데 롱구공을 묘기를 부리듯한 손놀림으로 몽규가 공을 등뒤로 감추었다. 그러면서도 그 눈길은 집요하게 동주를 잡고 놓지않는다. 동주는 저도모르게 몽규를 피해 눈길을 더기아래로 돌렸다. 세전이벌을 가로지른 해란강이 보였다. 아우라져 돌돌돌거리며 해란강은 끝없이 흘러간다. 어디로 가는것일까. 이 많은 물들은 다 어디서 오며 기어이 어디로 가는것일까. 물의 끝은 어디일까? 그리고 나의 끝은 어디일까? 이런 질정없는 생각을 굴리다가 동주가 입을 열었다. “난, 그냥 시인이 되고싶다. 정지용처럼, 좋은 시를 쓰고싶다. 시집도 내고싶어.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시집을 말이다. 책방에 내 이름자 박힌 책이 올려지고 사람들이 내 시를 돌려가며 읊조리고… 그런 날이 있을가 한범아?” 하지만 꿈을 말하는 동주의 목소리는 윤기없이 갈라져있었다. 아름찬 꿈을 남앞에 꺼내놓는것이 스스로도 부끄러운듯 동주는 자기소망에 대한 회의를 외려 남에게 묻고말았다. “꿈이 차암 소박하다.” 몽규가 풀밭에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그말이 칭찬인지 힐난인지 몰라 둘은 몽규를 지켜보았다. 누구나 몽규를 대할때 그 얼굴의 분위기가 미치는 힘이 컸다. 그 얼굴에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칼의 매서움을 릉가하는 카리스마같은것이 배여있다. “그럼 한범이 꿈은 뭐냐? 어떤 거창한 꿈이기에” 이번에는 동주가 진지하게 따져 물었다. “전번 상하이 사건있잖아, 그 벤또(도시락)폭탄사건말이다.” 몽규가 화제를 돌렸다. “난 그분이 참 존경스럽다. 와늘 존경스러워” "윤봉길 그분 충남 예산 사람이라면서” “김구 선생의 ‘애국단’ 성원이였지” “그 폭탄세례에 두놈이 뒈지고 한놈은 눈통이 멀어버리고 한놈은 다리짝 잃고. 다친 놈은 기수부지래.” “천황만세를 웨치던 놈들이 삽시에 애고 사람살려를 웨쳐댔겟지” “통쾌하다. 안중근의병장이 이또를 확 쏴버린 다음으로 이렇게 통쾌한적이 없었다. 핫핫핫.” 둘은 지난 봄철에 상해 훙구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기념열병식장에서 있은 세상을 놀래운 윤봉길 의사의 폭탁투척의거를 두고 화제를 만들었다. 그들의 한옥타브 높아진 소리에 백양나무가지에 앉았던 새 한 마리가 푸드득 날개를 치며 하늘로 날아 올랐다. “내 꿈은 말이다” 몽규의 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분들같은 독립운동가가 되는거다.” 몽규가 형형한 눈빛이 되여 말을 이었다. “해환이 너 우리집 송창빈 삼촌의 얘기 들어봤지. 나의 창빈삼촌은 홍범도 부대소속의 독립군이였잖냐. 쪽바리왜놈들과 싸우다 전사하셨지. 이런 가문에서 태여난 한범이가 아니였더냐. 그저 이렇게 죽치고 앉아있을수만 없지” 몽규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달리다가 공중에 붕 뜨며 덩크슛을 날렸다. 공은 준확하게 바스켓에 들어갔고 착지한 몽규가 씨익 웃으며 동주를 보고 말했다. “해환아 다시 한판 붙어 보지 않을래?”   - 한범, 내가 맨 처음 쓴 시가 있다.   “초 한대”라는 시   내방에 풍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까지 백옥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 버린다.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초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풍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양초의 심지가 지르륵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양초의 그을음내를 맡으며 난 여태껏 쓴 시의 끝머리에 처음으로날짜를 명기해 적었다. 그리고 아 한범,넌 모를거다 나의 이 처녀시는, 치기와 어눌함으로 가득한 이 시는 너때문에 씌졌다는걸… ​   "중편소설 "동주의 남자" 제4장절에서 발취 "연변문학" 2017년 1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4    “피에 누아르”의 춤 댓글:  조회:2452  추천:39  2017-10-19
  . 단편소설 . “피에 누아르”의 춤 김 혁     이바닥의 변두리 그곳의 변두리 보다 더 멀리서왔지, 너와 다른 나의 출신  ... ... 난 이방인 이라지 그래 아직까지 찬바람 배인 이방인 난 이방인 이라지 얼마나 걸릴까 너희들이 되기까진 난 이방인 이라지  아직까지 낯선 냄새 풍기는 이방인 난 이방인 이라지 I'm a Stranger Stranger Stranger ... ... 난 이방인 이라지 그래 아직까지 찬바람 배인 이방인 난 이방인 이라지 얼마나 걸릴까 진실된 곳이 되기까진 난 이방인 이라지  끝까지 낯선 냄새풍기는 이방인 난 이방인 이라지  ... ... - 심바 자와디 “이방인”중에서 1,  족욕기에 그녀의 두발이 곱다라니 담겼다. 족욕기는 내가 련인을 위해 특별히 주문해 산 것이였다.  측백나무의 결이 곱게 살아난 목제 족욕기에 담긴 그녀의 발은 하나의 정교한 조각품을 방불케 했다. 내 련인의 발보다 더 고운 발이 이 세상 더없으리라 난 확신하고 있는터다.  푼수라 웃을터이지만 내 련인의 발은… “예술의 발”이기 때문이다.  내 련인은 이 도회지 발레극단의 수석 무용수다. 발레극이란 무언지 보지도 못하고 조선족 집거촌에서 자란 녀자애가 그 수석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었는지는 그 자신만이 알 터이다.  무리한 훈련에 련인의 엄지가 변형이 가기 시작하고 있다. 토스쥬를 신을때마다 아픔에 얼굴을 찡그리곤 한다. 그 것이 나에겐 형벌 같은 시각의 아픔이다. 하지만 그렇게 변형이 간 그 발이 내게는 아름답다. 그건 예술에 의한, 예술을 위한 발이니깐… 이제 몇달 후의 출국공연을 앞두고 그녀는 밤늦도록 련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니 그 발은 전에 비해 더 한 중압감으로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녁이면 나는 족욕기에 온도가 알맞춤한 물을 만들어서는 련인의 발을 담가준다. 씻어주고 안마해 준다.  “슬리퍼 대령이요, ‘잠자는 공주’님” 나는 련인의 발을 수건에 감싸 물기를 닦아주고는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냈다. 발레극단에서 그녀의 보류 절목은 “숲속의 잠자는 공주”이다, 그래서 듣는 이들은 닭살 돋는다 할터지만 나는 내 녀자를 어디서나 그렇게 불렀다.  그녀는 나를 “까뮈”라고 부른다. 내가 까뮈에 대한 연구테마로 박사학위를 타게 되였던 것이다. 곧 그 졸업론문집이 출간된다. 그리고 “숲속의 잠자는 공주”는 이제 보름 후면 실존주의 철학자에 심취된 한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나는 진기품을 보자기에 감싸 듯이 말끔히 닦은 그녀의 발을 슬리퍼 속에 밀어 넣어주었다.  “딩동” 이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느닷없는 초인종 소리에 나와 련인은 소스라쳐 놀라했다. 신문뉴스도 끝난 이 시간대에, 더우기 보름 후면 결혼식을 치르게 될, 일껏 꾸민 신혼의 보금자리로 찾아 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혹시 택배 시킨거라도 있나?” “택배가 오면 이 시간에 오겠나요? ” “음식 배달이라도 시켰나” “내가 야식 먹는걸 본적 있나요? 참” 딩동! 딩동! 초인종 소리는 어깨전을 툭툭 건드리 듯 듣그럽게 울렸다.   “누구세요?” 나는 짐짓 목소리를 걸죽히 해서 중압감 있는 소리를 만들며 문을 땄다.  초인종을 누른 사람의 키가 무척이나 작았기에 나이 시선이 급히 아래로 쏠렸다. 그리고 순간 옹근 아파트를 들깨우며 극적인 소리가 터져 올랐다.  “올쿠나, 맞꾸나, 우리 양머리 조캐” 보통 장년의 키보다 한 눈금 내려 온 작은 키, 다복솔 같이 더부룩한 머리칼, 오짓물을 바른 듯 윤나게 검은 얼굴, 눈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메밀 눈, 모나게 유난히 도드라진 울대뼈… 칙칙한 재킷차림의 침입자를 나는 한동안 헤아려 보았다.  “외삼촌?” 곱슬머리인 나를 그렇게 부를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 나의 입으로 드디여 뜨악한 한 마디가 새여 나왔다. 외삼촌이 풀쩍 뛰다싶이 하며 나의 곱슬머리를 두손으로 마구 엉클어 놓았다. 련인과의 로맨틱한 밤의 향연을 꿈꾸며, 은근한 향이 나는 “리앙뜨” 샴푸로 금방 감은 머리가 바람에 새집이 지듯 엉클어 졌다.  “조캐, 이게 얼마만이냐 이게, 응 조캐?” 외삼촌은 흥분으로 넘어질듯 비틀거렸다. 그런 외삼촌의 팔뚝을 내가 덴겁히 잡아 부추켜 주었다.  십일년인가, 아니 이제 십이년이 되는 듯 했다. 외삼촌을 못본지가… 외삼촌은 출입문 쪽 봉당에 철퍼덕 퍼더리고 앉아 신을 벗었다. 이제 기온이 막 치솟는 초여름이였지만 삼촌은 운두가 굉장히 높은 육중한 겨울신발 같은 것을 착용하고 있었다.   내가 쪼그리고 앉으며 외삼촌을 거들어 주려 했다. 그런 나의 손을 외삼촌이 탁 뿌리쳤다.  “치에라 임마” 예전에 들어 못보던 사투리 같은 걸 내뱉으며 외삼촌은 강한 거부를 보였고 나는 그만 떨떠름해 지고 말았다. 신발을 다 벗고 외삼촌이 무릎을 짚으며 일어 섰다. 힘들게 벗은 발은 꿉꿉한 냄새가 날 것 같은 까만 양말차림이였다.  “조캐, 아이고 양머리 조캐야” 외삼촌은 다시 나의 머리를 쥐여박으려다가 키가 닿지않자 그만 두었다. 그런 외삼촌에게서 술 냄새가 좀 나는 듯 했다.  너무나 격한 상봉식에 극장의 맨 앞자리에서 조금 민망해진 관객 같은 표정으로 문칮거리고있는 련인에게 내가 인사를 시켰다.  “울 외삼촌이요. 한국 갔던… 내 여자친굽니다” 그녀가 얼른 몸을 일으키며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오호!” 또 온 집채를 흔들 듯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카 며눌이구마” 곧 결혼 할 사이지만 막상 그런 호칭을 처음 들어 보는 그녀가 낯꽃을 확 붉혔다. 어색한 듯 족욕기를 들고 화장실로 사라졌다. “저녁… 드셨어요?” “묵었따. ‘백전풍’네 집에서 묵었다, 백전풍이 기억나지 울 뒷 집에 살던…” 성이 백씨인데다 백전풍병을 앓고 있는 동네 이웃을 삼촌은 말하고 있었고 나는 인차 칠하다 만 회벽집처럼 얼룩덜룩한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말하면서도 외삼촌의 눈길은 나의 몸에 들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또 톱질하 듯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 제꼈다.  “야! 우리 양머리 조캐, 천상선녀 같이 고분 여자두 얻구, 이제는 또  높으신 박사라메, 니 출세했구랴, 출세했어!”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양철통을 엎어놓고 란타하는 소리처럼 왁살스럽게 높다. 외삼촌의 목소리가 원체 이렇게 높았던지 나는 다시 뜨악해 졌다.  쿵! 쿵! 곁 집에서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전해 왔다. 전에 없던 소음에 항의하는 소리였다. 화장실 문이 빠꼼히 열렸고 그녀가 한쪽 눈만 내놓은 채 다람쥐처럼 살금 우리 쪽을 훔쳐 보고있었다.   그렇게 출국한 외삼촌과 12년만에(삼촌의 말로는 13년 7개월이라고 했다.) 다시 만났고 외삼촌은 덜컥 우리 신혼 집에 눌러 앉아 버렸다.  2,   나는 철이 들기까지 외삼촌네 집에서 붙박이로 자랐다.  무능자처 아버지를 매정하게 뿌리치고 어머니는 다른 남자를 따라 대처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나가버렸고, 울화술만 대두병으로 부어 마시던 아버지는 결국 알콜중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시시콜콜 앓다가 여섯살배기 나를 버렸고 이승을 버렸다. 사고무친이 돼버린 나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이 외삼촌네 집에 얹혀있을 수 밖에 없었다.  외삼촌은 난쟁이를  겨우 면한 바라진 몸매였다. 외삼촌과 나의 어머니는 부모도 없이 오누이가 의지해 살았다. 잔병치레를 끝없이 했던 나의 어머니를 위해 외삼촌은 초중도 나오지 못하고 학업을 버린채 목재판이며 탄광소들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다보니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못갔다.  그런 외삼촌이였지만 조카인 나에게만은 지극정성이였다. 자식도 버리고 외간 남자와 야밤도주를 해 버린 누님 대신 미안한 보상을 자처해서 조카에게 하련 듯 했다. 그런 처경에도 내내 반급 일등인 나를 두고 학부형회에 가서는 “우리 아들”이라고 흥감스럽게 말했고 그런 외삼촌이 나는 죽도록 싫었다.  내가 월등한 성적으로 시가지의 고중에 붙을 무렵 외삼촌은 한국으로 나갔다.  한국으로 나가던 날 내가 그렇게 감질내였던 “니키”표 운동화를 사주며 미안천만 해 하던 외삼촌의 얼굴이 지금도 또록이 기억난다. “내 서울가서 돈 많이 벌어 보낼게, 미안하다 불쌍한 우리 조캐, 조캐 미안하다”  내 곱슬머리를 마구 엉클어 놓으며 외삼촌은 그 한 마디를 복창하 듯이 거듭 했고 그 얼굴은 당금 눈물이라도 쏟을 것처럼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역시 나처럼 출국하고 의지가지 없는 아이 셋을 집에 류숙시키고 있는 반주임네 집에서 자랐다. 그동안 어떤 증오를 기저에 깐 배심 같은 힘이 나의 몸에서 기생하고 있었다. 그 것은 나를 저버린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외삼촌을 비롯한 친지들에 대한 원망이였고 또 그들에게 뭔가를 보여 주고픈 배심이였다. 고아나 진배없이 돼버린 내가 도회지의 일류 중점대학에 붙을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도 있지만 바로 그러한 복잡하게 혼효(混淆)된 힘의 용오름이였던 같다.  그동안 어머니는 한국에서 석달에 한번씩 생활비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전화 한 통 오는 법이 없었다. 어머니는 사춘기의 내게 있어서 석달에 한번 씩 오는 송금봉투와 같은 존재로 각인되여 남았다. 때로 돈보다 대신 전화 한 통이라도 오 는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더우기 설명절 같은 때면 그런 야속함이 나의 우두망찰한 동공 속에 애수처럼 흥건하게 고여들었다.  나의 그녀 역시 어쩌면 나와 판박이로 꼭 같은 리력을 갖고 있었다. 부모들은 어린 그녀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함께 출국해 버렸고 할머니가 세상뜨자 가문 해의 수수짱처럼 깡말라 버린 그녀는 이모네, 고모네 집을 전전하면서 자랐다. 그런 동질적인 아픔이 있었기에 대학가 예술학원에서 얼짱으로 손꼽히는 그녀가 키도 작고 용모도 수수함에서 한 눈금 내려온 나의 불가능한 미션 같은 청혼을 두말없이 받아준 것이였다. 모두들 “수선화가 소똥에 꽂혔다”고 한탄들이 자지러졌다. 하지만 아픈 가슴끼리 맞댄 우리 두 사람의 애정은 쭈욱 변함이 없어 결혼까지 눈앞에 둔 것이였다.     그녀의 발레극단과 가까운 곳에 간신히 마련한 셋방 집은 “토끼 굴”처럼 협착하기 그지없었다. 침실 하나에 거실 겸 주방이 딸린 집이였다. 미안쩍은 대로 외삼촌을 거실의 쏘파에서 쉬라고 했다.  “어구매, 내가 일하던 그 곳에 비함 천당이다!” 외삼촌은 녹쓴 치륜처럼 삭아 떨어진 치아를 보이며 왁살스럽게 웃고는 쏘파에 널브러져 버렸다.  화적 같은 용모를 가진 외삼촌은 예기치 못한 길목에서 풀쩍 나타났고 그 이후로 우리의 수난은 시작되였다. 신혼 토끼들의 불면의 밤이 시나브로 막을 열었다. 삼촌이 코를 골았다. 그 것도 여간 고는 편이 아니였다. 음을 맞추지 못한 낡아빠진 첼로의 G음처럼 삼촌은 코골이의 악장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코 고는 소리가 우리의 작은 신혼집을 소음의 파도 너울우에 싣고 늠실거렸다. 그녀는 물론 나도 한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  밤을 꼬박 팬 그녀의 눈가에 도렷하게 그늘이 졌다. 머리가 어지러워 내가 먼 륙교아래까지 가서 사온 꽈배기와 콩물도 먹지못하고 출근했다. 대신 그녀가 좋아했던 꽈배기와 콩물을 외삼촌이 흡족해 하며 깡그리 먹어버렸다.  저녁이면 외삼촌은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조캐야. 우리 양머리 조캐야”하고 까랑한 목소리로 아파트 단지를 왕창 울리며 들어왔다.  술은 번마다 백씨네 집에서 먹었다고 했다. 술을 마시고 나면 외삼촌은 많은 말을 했는데 원체 언어 표달이 어누룩하고 그동안 어디서 배웠던지 어느 육자배기에도 붙이지 못할 사투리를 막 람발했다. 게다가 술이 들어가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니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꼭 같은 내용들이 레코드 풀 듯 되풀이 되자 사투리와 술에 절어 곱슬머리처럼 고불고불 굽이쳐 나온 말들이 거개가 자신이 일하던 업체 사장들에 대한 분노의 발설임을 나는 간신히 헤아려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삼촌이 나의 테불우에 놓여진 액자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잘 생긴 나그네 누구냐?, 장인 어른이시냐?” 나는 그만 고소를 머금고 말았다. 액자 속 담배를 물고 쿨한 자세를 취한 이는 나의 연구분야의 장본인인 알베르 까뮈였다. 자유주의적, 인도주의의 모습을 제시한 소설가이자 극작가, 리론가, 모랄리스트이며,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 나아가서는 전세계에서 그의 세대의 대변가이자 다음 세대의 스승으로 추앙되였던 이 위대한 존재에 대해 외삼촌에게 어떻게 해석할지 머뭇거리는데 외삼촌이 불쑥 또 한마디 했다.  “담배를 무척 즐기나 보네, 접때 같으면 내 울 동네 독한 화건종 담배를 갖다드렸을건데” 삼촌이 호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궐연 한개비를 꼬집어 내여 입에 물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쑥스럽게 웃으며 다시 궐연을 담배갑에 꽂아 넣었고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며칠전 안해가 집안에서 담배만은 안된다고 단단히 까박주었던 것이다.  “이분 작가입니다, 프랑스 사람” 그제야 내가 삼촌이 궁금해 하며 나의 장인으로 오인하는 액자속 인물에 대해 짧게나마 설명했다.  “작가? 쁘랑스 사람? 음허허, 그런걸 난 또” 삼촌이 두어깨를 들썩이며 극적으로 웃어제꼈다.  처음 까뮈의 “이방인”을 읽었을때 나는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를 상상하기가 조금은 어려웠었다. 정작 이를 론문테마로 잡고 천착한뒤에 “부조리의 인간”에 메스를 들이 댄 그의 작품의 진수에 대해 깨쳐 알기 시작했다.  지금 내 눈앞의 외삼촌도 부조리한 인간에 다름아니다. 어쩌면 외삼촌이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의 또 다른 분신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외삼촌의 부조리의 원인은 대체 무엇일가? 술을 마신 날이면 코골이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됐다. 나의 그녀는 린치를 당하는 사람처럼 귀를 막고 몸부림쳤다.  “미안해”를  련발하면서 나는 그녀를 소음에서 막아주련듯 꼭 품어줄뿐이였다.  아침마다 그녀는 내가 사온 꽈배기와 콩물을 먹지도 못한 채 출근했고 그 것은 또 모두 외삼촌의 아침거리로 충당되고 말았다.  어느 한번은 삼촌이 보이지 않자 둘이 충동에 밀려 와락 껴안고 입맞춤을 하고 있는데 삼촌이 불쑥 쏘파뒤에서 머리를 쑥 내밀었다. 우리는 화들짝 놀라며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런 삼촌의 손에는 쏘파뒤편에서 주어낸 동전 한 잎이 들려져 있었다. 삼촌의 얼굴이 모주먹은 사람처럼 순간에 붉어졌다. 허겁지겁 밖으로 나가다가 탁자를 걷어 찼고 문설주에 이마를 탁 쫗고 말았다.   “언제까지 여기 있으실 작정이얘요?” 내 심중은 그날 이후 며칠째 이마에 작은 혹을 달고 있는 외심촌을 향해 이런 말을 뭉뚱그리고 있었지만 뱉지는 못하고 있었다. 첩첩 소리를 내며 꽈배기를 씹어 대는 삼촌의 두툼한 입술을 보노라면 어느 한번 원족 갔다가 뱀에게 물린 나의 발목을 입으로 독즙을 빨아내고 한달내내 괴물처럼 부어 있던 외삼촌의 입술이 순간 떠올랐다. 그런 외삼촌을, 조금 툽상스럽지만 10여년만에 만난 외삼촌을 그렇다고 내쫓을 수도 없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였다. 원체 고고한 “백조의 호수”의 곡조가 흐르던 집 안에서는 외삼촌이 끝간데 없이 흥얼거리는 곡조의 아귀가 맞지 않는 끈적한 트로트 가락으로 차 넘쳤다.  나는 원체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곁집 남정이 복도에서 피우는 담배연기에도 그녀는 질색하며 창문을 쾅하고 닫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외삼촌이 복도에서 담배를 피웠다. 퇴근하여 들어서며 그녀는 식지로 코끝을 가리였다. 그런 그녀의 이마살은 잔뜩 찌프려져 있었다. 그렇다고 랑하의 창문에 매달려 투신하려는 사람처럼 몸을 반쯤 밖으로 내밀고 담배를 피우는 외삼촌을 말리기도 무엇했다.  이동안 그녀의 량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 원체 재깔이며 말이 많던 그의 앵도같은 입술은 꾹 닫혀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보 여린 그녀는 막상 퇴근할 때면 찬거리는 세 사람 분으로 사들고 있었다.  그러다 굳게 닫혔던 그녀의 입이 급기야는 열렸다. 며칠 만에 열린  그 입술은 투명한 고음을 뱉어 냈다. 그 소리는 랑하에서도 들을 수 있었고 퇴근하던 나는 덴겁히 집으로 뛰여 들어갔다.  그녀가 봉당에 선채로 두 손으로 얼굴을 잔뜩 싸쥐고 있었다. 외삼촌이 누웠는 쏘파쪽으로 눈길을 돌리던 나의 두 눈 역시 허깨비라도 본 듯 뒤집히고 말았다.  쏘파 아래에 무언가 놓여있었다. 쏘파아래에… 발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낮술을 한 듯 소파에 누워있던 외삼촌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뜨악하니 느침이 흘러내리는 입 언저리를 닦던 외삼촌이 그제야 무언가 기수챈 듯 얼른 그 발을 주어들었다. 주체할바를 모르다가 덮고 자던 재킷으로 그 발을 후딱 덮어 버렸다.  “미, 미안해 조카 며눌이” 우리 둘의 경악한 두쌍의 눈은 못볼 것을 본 것처럼 온통 외삼촌의 발에 몰부어 져 있었다.  외삼촌은 격자무늬가 있는 재킷으로 신통히도 발을 닮은 그 의족을 감쌌다. 그리고는 외발로, 하지만 그렇게 재빠른 속도로 겅중겅중 밖으로 뛰쳐 나갔다.    3,  우리들의 결혼식은 교내 식당에서 열렸다. 전국에서도 몇 손 안에 꼽히는 이 유명대 여느 졸업생으로서도 볼 수 없었던 결혼식이였다.  그녀와 나는 두 사람다 남다른 결혼식을 치르려 했다. 그렇다고 지중해의 수중결혼이나 세계 최고봉의 티벳 안나푸르나 산아래에서의 그런 랑만이 팽창해 오르는 결혼식이 아니였다. 결혼식은 나의 졸업론문집 “까뮈의 ‘이방인’ 연구”의 출간기념회와 더불어 치르었다. 이 품위있는 결혼식에 모두들 갈채를 올렸다.  지도교수들의 축하에 이어 나의 출간기념 소감 그리고 몇달 후 출국공연을 앞둔 신부의 춤표현도 있었다.  그녀는 몇달 후면 한국으로 가서 한 발레극단의 창작발레 “이방인”의 일원으로 뛰게 되여 있었다. 한국에서 온 늙은 발레 교수에게서 레슨을 받았고 그 유명 교수가 나의 그녀의 숨은 기량을 보아내였다.  “여느 무용수들과는 체형도 다르고 유연성이나 근력도 다르다”며 그녀의 타고난 끼와 끈기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그 늙은 교수가 많은 경쟁자 속에서 대담하게 나의 그녀- 조선족 무용수를 기용한 것이였다.  나의 졸업작품처럼 그녀가 해외에서 처음 선보이는 춤 역시 까뮈와 관계있었다. 이러한 예술적인 교감이 우리 둘 사이를 더 돈독히 하게했다.  그녀의 춤사위는 더없이 우아했고 모두들은 결혼식이 아니라 극장에 모여 온 듯 그녀의 춤에 온통 정신이 몰부어져 있었다.  이때 덜컥!하고 문이 열렸다. 그렇게도 큰 소리로 왁살스러움에 가깝게 열렸다. 춤사위는 뚝 멎었고 모두들의 눈길이 문가에 쏠렸다.  오, 마이갓! 순간 나의 입으로 헛비명이 새여 나가고 말았다.  목발을 짚은 사람 하나가, 걷우어 올린 왼쪽 바지아래로는 허무처럼 아무도 없이 텅 빈 사람 하나가 겅둥겅둥 뛰여 들어오고 있었다. “누구신데요?” 하객 몇이 나가며 저돌적인 그의 행보를 가로 막았다.  “조캐, 내 조캐가, 결혼식 한다던데…” 급히 뛰여 온양 얼굴이 땀벌창이 된 외삼촌은 헉헉대며 아래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서 빌렸는지 쥐색 양복을 입고 있었고 넥타이도 매고 있었는데 땀으로 흥건한 누른 셔츠에 매인 천박하게 뻘건 넥타이가 게게히 풀려 있었다.  나는 덴겁히 달려나가 채문하는 하객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왜 이렇게 오셨어요? 말도 없이?” 내가 한껏 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외삼촌이 맹하니 나를 쳐다 보았다. “하나 밖에 없는 조카인디. 외삼촌으로 생겨먹어 와야지” 외삼촌이 녹쓴 치륜처럼 삭아 떨어진 치아를 보이며 웃었다.  “누구시니? 친지분이 오셨어?” 나의 지도교사가 가까이 와 악수의 손을 내밀며 관심조로 물었다.  “네, 저…우리 마을서 살던 이웃집…사람…” 나는 혀아래 소리로 말을 뭉뚱그렸다.  외삼촌의 얼굴이 얼음망치에라도 맞은 듯 와락 굳어져 버리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지도교수의 악수를 청하는 손이 가슴패기까지 다가와서야 외삼촌이 그제야 헤덤비며 나의 스승의 두손을 헐렁하니 부여 잡았다. 문칮거리며 말했다.  “내 조카” 나와 외삼촌의 눈빛이 마주쳤다.  “조, 조카 친구를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했슴다” 외삼촌이 목구멍으로 갱엿이라도 넘기 듯 우물거렸다. 탕!하고 목발이 넘어졌다. 덴겁히 허리를 굽혔으나 목발이 손에 닿지 않아 외삼촌이 허우적 거렸다. 나는 급히 목발을 주어 삼촌의 겨드랑이에 끼워 주며 부축하려 했다.  “치에라 임마” 삼촌이 나의 손을 뿌리쳤다. 거부하는 손길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절뚝이며 외삼촌이 구석 쪽의 의자를 찾아 앉았다.  외삼촌은 나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목발에 옹근 몸체를 의지 한 채 높게 걸린 결혼식 현수막을 쳐다보고 있었다. 충혈된 동공이 텅 비여 보였다.  결혼연은 다시 이어졌다. 하객들의 축사, 축가, 교배주, 학우들의 지꿏은 장난,  합영이 이어졌다.   그 환락의 란장(亂場) 속에서 어느 순간 나는 외삼촌이 보이지 않음을 발견했다.  창가로 다가갔다. 괴물 같은 외삼촌의 느닷없는 출현에 기쁜 날 온통 신경을 들고있던 신부도 다가왔다.  신부가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창유리 한 곳을 짚었다. 창밖으로 교정 저쪽 금방 피여 난 조팝나무꽃 화단곁으로 목발을 짚고 가고 있는 삼촌의 뒤모습이 보였다.  목발을 짚고 한쪽 발로 잽사게 걷고있는 외삼촌의 걸음사위가 발레에서 한 다리 발끝으로 서는 “푸앵트 기법”처럼 보였다.  이내 외로운 짐승처럼 꿈지럭이던 삼촌의 잔등은 교정의 솔나무 숲 사이로 사라졌다.  이때 친구가 다가와 빨간색 봉투를 내게 건넸다. “아까 그 고향 이웃집에서 오셨다는 분이 주시던데” 축의금이였다.  축의금이 오늘 치고는 액수가 제일 많았다.    4, 며칠 후 외삼촌이 그간 머물러 있으며 신세를 졌던 백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외삼촌에게서 나의 핸드폰 전화를 알았다고 했다. 나더러 당장 자기네 가게로 오라고 했다. 가게는 그녀네 그녀의 발레극단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보신탕집이였다.  “네 삼촌 엊저녁 비행기로 돌아갔다” 가게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수년 만에 만나지만 서로 수인사를 할 새도 없이 백씨가 입을 열었다.  백씨가 술을 내왔다.  “나 개고기를 먹지 않는데요, 낮술도 안 먹어요” 백씨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스스로 한 잔 소주를 따랐다. 주욱 마셨다. 하얗게 분칠한 창극 속의 인물처럼 하얀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진한 고량주 냄새와 함게 토해내는 첫 마디가 충격적이였다.  “니 엄마는 14년전에 이미 죽었다” 나는 집채가 일렁이는 듯한 충격에 휘청거렸다.  백전풍 환자의 험상궃은 얼굴을 한 지라 내가 개구멍 바지 시절부터 무섭게 보아 온 백씨는 늙어서 더구나 추레해진 얼굴로 괴담같이 무서운 말을 많이 했다.  출국붐이 금방 시작되던 때라 당시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심했고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가 나의 엄마는 층집에서 추락사했다고 했다. 그래서 삼촌이 급히 엄마의 시신을 처리하러 출국했고 그 걸음에 눌러앉아서 돈을 벌어서는 여태 엄마의 이름으로 나에게 부쳐 보냈다는 것이였다.  나의 손이 저도 모르게 소주잔을 잡았다. 백씨가 얼룩이 진 손으로 한 잔 부어주었다. 나는 단숨에 한 모금 들이 마셨다. 쫘악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술기운과 함께 이름 못한 슬픔, 서러움과 미안함과 같은 것이 전신의 혈관을 타고 전신에 퍼져내려갔다.  그러다 외삼촌은 공사장에서 콘크리트를 반죽하는 레미콘에 미끄러져 들어가 발 하나를 잃었다고 했다. 일년도 안되여 의족을 부착하고 다시 공사장에 나타났다. 여기 저기 전전하며 소박맞으면서도 쉬운 일이라도 찾아하려 헤맸다고 했다.   “그 지역서 유명하다 네 삼촌, 네 외삼촌 별명이 ‘우산귀신’이다, 발 하나 없이 외다리로 폴짝 폴짝 뛰여다니며 일한다고” 백씨가 또 한잔 비웠다. 자신의 잔을 비우고 나의 잔에도 첨잔해 주었다. “노가다판서 하필이면 다리 한 짝 없는 사람 쓸 필요가 있나, 그 것도 불법체류 조선족을, 그래서 여기저기서 쫓겨다니다 요행 일자리라도 생기면 악착스럽게 일했다그러데.” 백씨의 목소리가 꺼룩하게 젖어 들었다. “첨엔 외다리라는 걸 속이려고 무척 애를 썼단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성한 사람보다 다른 기미가 들통나군 했지, 더구나 오래된 의족이 낡은 구두처럼 판나고 삐걱거리더라네. 그래서…” 헐값으로 만든 의족이 탐탁치 않았는데 다시 만들려해도 값이 엄청 비싸 고향으로 의족을 만들어 잠간 온 터라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의족값이 한국 못잖게 비싸자 치수까지 재놓고는 맞추지도 않고 외발로 가버렸다고 했다. “불쌍한 사람…”   백씨가 한 숨을 하얗게 내뱉었다. 구태여 주섬주섬 의족공장의 치수 견본서를 내 앞에 내놓으며 보라고 했다.    번성거리는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나는 고개를 숙이며 한 손으로 소주잔을 다른 한 손으로 그 의족 견본서를 그러잡았다.  5, 안해가 무대우에 섰다. 돔 모양의 천정에 샹들리에가 드리운 호화로운 극장, 푸른 커튼이 내려진 무대에서 토스쥬를 신은 발레리노들과 발레리나들 앞에 나섰다. 푸른색 빌로도 커버를 씌운 의자에는 관객들로 꽉 차 있었다. 스커트가 무릎위로 껑충 뛰여오른 “로맨틱 롱튀튀(발레복의 이름)”를 입은 안해의 예쁜 모습은 그야말로 무용복의 이름처럼 로맨틱의 극치였다.  몇달 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드디여 창작발레극 “이방인”이 첫 막을 열었다. 현지 매체에는 까뮈의 극이 처음 발레무대에 오른다는 뉴스보다는 조선족 발레수가 무대에 선다는 것이 이슈거리였다. 공연 며칠전부터 대서 특필로 예고소식을 냈다.  사랑하는 이의 첫 해외 출연 모습을 보고 싶었던 나는 사비로 비행기 티켓을 끊고 안해와 함께 서울행차를 했다.  공연에 앞서, 서울에서 도착하자 바람으로 외삼촌을 찾았다.  그리고 그이의 비보를 들었다.  외삼촌은 부모와 꼭 같은 간병으로 진단을 받자 한 달 만에 죽었다고 했다. 암진단이 내린지는 오래 됐고 진단서를 받고도 그냥 일했다고 했다. 그러니 저번 고향 행차가 자신으로서는 마지막임을 외삼촌은 어쩌면 알고 다녀간 것이였다. 죽기전에, 살같을 괴롭히는 둔중한 의족이 아닌, 좀 더 편한 의족을 신어보는 것이 삼촌의 소원이라고 했다.  외삼촌은 조선족을 도우는 어느 자선단체의 숙소에서 운명했다. 중국의 연고자에게 통지하려 하자 고향에 연고자가 아무도 없다고 했다고 한다. 죽음의 막바지, 무원조함에 내뱉았을 처연한 말마디가 날카론 송곳처럼 나의 앙가슴을 찔러 댔다. 그 자선단체의 사무실을 찾아 나는 우두망찰 천장을 우러르고 서버렸다.  소음이 자오록한 공사장에서 목발을 짚은채 무거운 자재를 메고 외발로 겅중겅주 뛰여다니는 외삼촌이 환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속죄의 마음으로 외삼촌에게 vip공연 티켓을 갖고 왔던 안해도 그만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우중충한 마음을 억누르며 안해는 예술의 전당 무대우에 섰다.  발레극의 안무인 내 안해를 발탁했던, 그 늙은 발레교수가 공연에 앞서 특별히 나의 그녀를 무대앞에 모셔 소개를 했다.  소감을 부탁하는 사회자의 말에 이윽토록 안해는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눈에 붙인 반짝이 화장때문이였던지 안해의 눈에는 이슬이 비쳐든 듯 보였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늘 발레극의 제목이 '이방인'이고 저의 남편도 다름아닌 까뮈의 ‘이방인’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슴다. 비행기에서 남편에게서 이방인에 관한 얘기를 들었슴다. 그리고 낱말 하나를 배웠슴다.” 그녀가 생소한 단어를 배우는 소학생 처럼 또박또박 말을 새겨 뱉았다. “‘피에 누아르’라는 낱말을요” “피에 누아르?” 관중석이 웅성거렸다.  “’피에 누아르’ 프랑스어로 ‘검은 발’이라는 뜻이라고 함다. 그리고 ’이방인’을 쓴 까뮈가 바로 ‘피에 누아르’였다고 함다.  까뮈는 프랑스에서 알제리로 이주해 온 가난한 로동자 집안 출생이였는데 알제리에서 태여난 프랑스인을 가리키는 ‘피에 누아르’로 불렸다고 함다.  ‘피에 누아르’들은 유럽인도 아니고 아랍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통 알제리 인도 아니였기에 늘 편견과 기시를 받았다고 함다.” 그녀가 고개를 수긋하고 잠시 문칮거리다가 다시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우리 조선족이 바로… ‘피에 누아르’가 아닌가 생각해 봄다.” 좌석이 다시 한번 크게 웅성거렸다. 안해가 좌석을 향해 깊숙이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말했다. “이 발레를 이방인으로 해외에서 떠도는 모든 조선족 ‘피에 누아르’들에게 바침다.” 그녀는 감성으로 무대를 누볐다. 눈부신 무대 조명 속에 그의 눈에 간간이 비친 이슬을 나는 가려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춤사위를 쫓는 나의 눈에도 주체할길 없는 눈물이 그득 차 있었다.  안해의 춤사위를 지켜보며 나는 무용수들의 분장실 캐비넷에 넣어둔 안해의 트렁크를 떠올렸다.  그 속에는 내가 외삼촌에게 미처 드리지 못한 중국에서 맞추어 가져 온 “발” 한 짝이 들어 있었다. (끝)   “민족문학” 2017년 제5기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3    www.아픔.com 댓글:  조회:3054  추천:20  2015-12-04
     . 중편소설 .   www.아픔.com   김 혁     황금의 발   발이 보였다. 무작스럽게 큰 발이였다. 발은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그 무슨 구름장우에서 날아내린 요괴가 발로 지상을 내려 밟듯이 발모양의 아크릴 간판은 옥상의 허공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아스스 빛을 뿜고 있었다. “황금족도”  남자는 간판이름을 소리내여 또박또박 읽었다.  “’황금의 발’이라, 이름 한번 거창한데” 거창한 이름을 가진 발안마원앞에서 한손은 트렁크를 끈채, 석고를 댄 다른 한손은 목에 붕대로 감아 걸어 가슴앞에 데룽데룽 드리운채 서서, 행복은 간판이름을 읽었다.  황금이라는 용어가 안마원의 높은 소비급별을 말해주는듯해서 그더러 한참이나 쭈뼛거리게 만들었다. 그러기를 한참, 한번 들어가보기로 했다. 사실 이 시간대에 이곳 말고는 주변에 불밝힌 려인숙이 없었던것이다. 스적스적 안마원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막상 들어서보니 조도가 낮은 핑크빛 벽등이 밝혀져 있는 안마원은 휑뎅그레했다.  컹, 컹 소리를 앞세우며 구석 어디선가 강아지 한마리가 튀여 나왔다.  베개통만한, 길게 늘어뜨린 털이 눈을 가린 장모의 강아지였다. 작은 강아지는 대적이라도 만난듯 두눈을 호동그랗게 뜨고 행복을 향해 맹렬하게 짖어댔다. 벽등의 빛을 담은 눈망울이 핑크색이다.  부드러운 핑크빛을 따라 반가운 마음에 들어섰는데 맞아주는이는 없고 외려 죄꼬만 강아지가 들어서기도 전에 축객령을 내린다. 다시 나갈가 몸을 돌리려는데 인기척이 났다.  “지노야, 지노” 헐렁한 마고자를 걸친 녀자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정수리에서 핑크빛이 부서져 내렸다. 강아지가 소리를 멈추고 녀자의 다리에 감겨들었다. 녀자가 강아지를 들어올려 품에 안았다. 좀 마른편, 40대초반으로 보이는 녀자는 커다란 눈을 들어 행복을 핼금 쳐다보며 말했다. “안마사가 없는데요” 손님의 답을 기다리지않고 또 한마디했다.  “제가 해드려도 될가요” 그 한마디를 눈을 내리 깔며 말했다. 눈초리가 처마처럼 내리덮혔다.  “아니, 안마는 됐구요.” 늦은밤에 안마원을 찾아 그냥 투숙이나 하려던 행복은 문칮거리며 말했다.  “그냥 방 하나 들면 안될가요” “그러세요. 방이 많아요” 번거로워 할줄로 알았는데 녀자가 쉽게 답이 나왔다. 녀자가 강아지를 내려놓고 앞에서 방으로 안내했다. 강아지가 녀자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찌걱 찌걱, 조립식 나무바닥이 신음소리를 냈다.  4호방으로 안내한 녀자가 문켠에 서서 말했다.  “계산은 나갈때 하면 되구요. 그럼...” 간단한 안내를 마치고 녀자와 강아지는 핑크빛 너울 저쪽으로 사라져버렸다.  녀자의 뒤를 바싹 따른 치켜 올린 강아지의 꼬리가 핑크빛 야광봉처럼 보였다.  찌걱 찌걱, 조립식 나무바닥이 신음소리를 냈다.  좁은 방이였다. 형광막이 작은 텔레비죤이 바람벽에 걸려 있었고 그곁에 분명 포샵을 받았을 거대한 가슴을 가진 수영복차림의 녀자가 모래톱에 선정적으로 드러 누운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방에 창문이 없었다.  방에서 야릇한 냄새도 났다. 방향제냄새였다. 그냥 방향제이면 좋으련만 화장실용 방향제를 뿌린것 같았다. 컴퓨터도 없었다.  창문이 없는 방을 둘러보노라니 불현듯 숨막히는 압박감이 가슴을 조여왔다.  행복은 침대가녁에 걸터앉으려다 말고 방을 나왔다.  안마원은 물밑속처럼 괴잠잠하다.  어두운 복도에서 주춤거리다가 불이 새여나오는 방을 향해 다가갔다. “저기요…” 주인장을 불렀다. 컹!하고 또 강아지가 짖었다. “지노야!” 녀자의 소리가 들렸다. 이어 나무바닥이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고 문이 열리며 주인장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세요?” 핑크빛을 머리에 떠인채 녀자가 물었다.  “저, 인터넷이 되는 방이 없어요?”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혔다. “돈은 더 드릴테니깐요.” 녀자가 잠간 동을 두더니 말했다. “따라오세요” 조립식 나무바닥이 다시 찌걱찌걱 신음소리를 냈다.  그제야 행복은 주인장 녀자가 한 다리를 쩔룩이고 있음을 알아차릴수 있었다. 그녀가 발을 옮길때마다 행복은 왠지 다친 팔에 따끔따끔 통증이 도져오는 느낌이였다.  방금보다는 좀더 큰 방이였다.  침대, 탁자, 텔레비죤같은 시설 외에도 욕조가 딸린 화장실도 있었다. 창문도 있었다. 커튼을 열어 보았다.  멀리 네온사인이 분만해오르는 도시의 야경이 보였다.  무엇보다 창문아래의 탁자에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제법 신형으로 보이는, 스크린이 큼지막한 컴퓨터였다.  “계산은 나갈때 하면 되구요. 그럼...” 녀자가 또 한번 나무바닥을 울림통삼아 연주하듯이 절주맞은 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행복의 시선이 탁자우에 놓인 사진틀에 머물렀다. 액자속에는 사춘기 소년으로 보이는, 계집애처럼 얼굴이 하얀 남자애와 엄마인듯한 녀인이 목을 얼싸 안고 있었다. 남자애와 엄마는 행복감으로 입매에 웃음을 가득 물고 있다.  그 엄마가 바로 주인장이였다. 커다란 눈망울에 웃는 입매가 시원한, 밉지 아니한 얼굴이였다.  아크릴 간판이 내리쏟는 불빛이 창문의 커튼에 어룽거렸다.  씻기도 귀찮아 행복은 그대로 침대에 벌렁 드러 누워 버렸다.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다시 일어나 트렁크를 열었다.  왼손으로 서툴게 트렁크의 지퍼를 열고 무언가 조심스레 꺼냈다. 한손은 석고를 대여 한손으로 하기에 행동이 서툴었지만 조심스럽게 그 물건을 꺼내 탁자우에 올려 놓았다.  탁자우에 정히 올려 놓은 그것은… 납골함이였다.  납골함을 멀끄러미 한겻이나 지켜보았다.  가벼운 한숨 한번 짓고나서 남자는 컴퓨터 앞에 마주 앉았다.   사라진 과원   “싫담다, 아이 만나겠담다” 상대는 딱 잘라 말했다.  “처제, 그래도 처제가 좀 설복해 보오” “싫담다. 애가 만나기 싫담다” 수화기 저쪽의 목소리는 염천의 마른 저수지바닥처럼 건조했다. 칼로 베듯 단호하게 그 한마디만 복창했다.  “애가 아이 만나겠다고, 죽어도 아이 만나겠다고 잡아떼는데 낸들 무슨 수가 있슴까?” 행복은 높은 말벽에 부딛쳐 있었다.  건조한 고성이 수화기속 구멍을 타고 귀구멍을 후볐다.  행복은 전화부스앞에 멍하니 서버렸다.  상대가 전화를 놓았던지 딸깍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뚜뚜…하는 통화 단절음이 들려 왔다. 그제야 행복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픈 팔을 부여잡고 돌아섰다.  “돈은 내고 가야지, 돈” 전화부스속 아낙이 앙칼지게 소리 질렀다.  바삐 지폐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이건 또 무슨 귀신딱지람니까?” 아낙이 염소수염 령감이 그려진 퍼런 지폐장을 받아들고 뜨악한 기색을 지었다.  행복은 앗차하고 소리를 지를번했다. 그가 내놓은것은 천원짜리 한화였던것이다.  호주머니를 뒤집어봐도 인민폐가 없었다. 나올리가 없었다.  “어쩌지요. 어제밤 금방 귀국해서 환전할새가 없었네요.” 행복이 난감한 기색을 지었다.  “거스름돈 안 받을게요. 기념으로다가 받아두세요” 행복이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바르며 말했다.  “움마 별꼴이다. 정말” 아낙이 그냥 가라는듯 턱짓을 해보았다.  “감사합니다” 행복이 몇걸음 가다가 뒤돌아 보았다. 아낙이 전화부스에서 몸을 반쯤 내민채 돈을 쳐들고 해빛에 비추어보고있었다.  어디로 갈가 멍하니 행동방경을 구하다 무엇이 생각났던지 행복은  종종걸음을 다우쳤다.    행복은 또 한번 그 자리에 얼빠져 버렸다. 번지수를 잘못찾고 축문을 한참 외운 무덤앞에서 어찌할바를 모르는 묵은 문상객의 심경이면 이럴가?   이 놀라움, 이 난감함… 마을은 사라지고 없었다. 토네이도에 날아갔던지, 아니면 쓰나미에 밀려 갔던지… 행복이네 마을 과수4대는 사라지고 없었다. 공상영화의 한장면처럼 마을은 말끔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산등성이에 무성한 사과배나무숲을 배경으로 그 아래 앉았던 노란지붕 회벽집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무연한 록음이 눈뿌리 모자라게 펼쳐져 있다. 시원한 록음이 이렇게 공포로 안겨오기는 처음이였다.  산과 언덕이 바뀌는 이변을 행복은 실감하고 있었다. 하긴 16년만에 밟아보는 고향이였다. “십년이면 뽕밭이 바다로 변한다”는데 십년하고도 반십년만에 찾았으니 바뀔법도 했다. 하지만 그 변화가 하도 심해 행복은 현실감을 잡지못해 허우적거렸다.  록음을 가르며 무언가 휙 날아 지났다. 그 물체에 눈길을 주었다.  하얀 그것이 새려니 했는데 아니였다. 그것은 공이였다.  공이 날으고 있었다.  금방 티샷을 날린 골프모자를 쓴 이가 그 공을 쫓아가고 있다.  콩나물대가리를 한껏 확대해 놓은것같은 골프채를 메고 종종 걸음으로 삼각기발을 세운 홀쪽으로 가고 있다. 뒤로 앙증맞은 전동차가 말 잘듣는 강아지처럼 졸졸 뒤따른다. 마을은 사라지고 대신 골프장이 들어 서 있었다.  골프장은 마을의 초가를 밀어내고 과수원을 밀어내고 산등성이를 타고 멀리까지 뻗었다. 휙 공이 가까이 까지 날아와 떨어졌다.  유니폼차림의 아가씨 하나가 말총머리를 찰랑 거리며 달아와 공을 주어들었다.  “여기 과수4대 자리가 맞지요?” 아가씨는 외계인을 보기라도 하듯 행복을 빤히 쳐다보다가 모른다는둥 머리를 절레절레 젓고나서 뛰여 가버렸다.  아가씨의 도도록한 엉덩이를 멍하니 지켜보는데 클럽하우스에서 누군가 나와서 행복을 향해 다가왔다.  가까이 올수록 제복차림을 가려볼수 있었다. 경비원으로 보이는 30대의 남자는 약지로 코구멍을 후비며 다가와서는 행복을 향해 물었다.  “용건이 뭡니까? 여기 막 들오면 안되는데…” “아, 이 마을 살던 사람인데, 여기 과수4대자리 맞지요?” 경비원이 풀럭 실소를 터뜨렸다. “골프장이 선지도 8년째인데…” 경비원이 눈시울을 좁히며 행복의 일신을 훑어보았다. 식지 약지를 바꾸어가며 코구멍을 열심히 후볐다. 3등배처럼 못생긴 큼믹한 코를 가진 경비원이 말했다.  “과수4대 없어요. 4대가 아니라 7대 8대 13대 다 없어요. 싹 다 이사가고 밀어버렸지요.” “그럼 여기 과수나무도 다 베여버렸답니까? 그 많던 배나무를” “그럼요” 경비원이 코에서 후벼낸 이물질을 탁 튕겨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휙익, 공이 하얀 새처럼 머리우를 날았고 행복은 탄환이 없는 총을 작대기처럼 든 사냥군처럼 멍한 시선으로 그 공의 비상을 쫓았다. “아저씨! 그만 나가세요. 이젠” 이번에는 약지로 귀구명을 후비면서 경비원이 재촉했다.       “애폴”이라는 이름의 사이트였다.  술취한 나그네가 허우적이며 재를 넘다가 우연히 만난 주막같이 또 한번 걸치려 들리게 된 채팅 사이트… 사과라는 이름이 좋아서 들려보았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그렇고 그런”사이트였다. 녀자 욕탕에 잘못 들어왔나 움찔하기까지 했다. 온통 로출이 심한 녀자들이 선정적인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행복은 그전에는 “그렇고 그런” 사이트에 한번도 들어가 본적이 없는 백지같은 순둥이였다. 컴퓨터를 켜고 유희실에 들어가 트럼프장이나 번지는 정도의 그였지만 그런던 어느 날 배너광고가 깜박거리며 뜨는지라 무심하게 누르고 들어갔더니 눈이 휘둥그레해질 장면이 펼쳐졌다.  몸매도 좋고 말씨도 상냥한 아가씨들이 홀딱 벗은 알몸으로 그를 부르고 있었다. 천국이 따로 없나 싶었다. “무료 체험”은 몇분도 안돼서 끝났고 아쉬운 감각이 들었다. 자리에 누웠으나 아가씨들의 환장하게 눈부신 몸매가 눈앞에 아른 거렸다. 잠을 깡그리 반납해야 했다.  새벽녘에 일어나 다시 컴퓨터를 켰다. 결국 돈을 결제하고 화상채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동포 인부들을 개떡주물듯이 하대하는 건설현장의 십장을 뻰찌로 머리통을 갈겨 쓰러뜨리고는, 몇달이고 허접한 모텔에 숨어 살때 들어가게 된 사이트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쌍화점”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아가씨였다.  멀미날듯 하얀 피부를 가지고 늘 토끼귀 머리띠를 하고있는, 그녀의 코의 왼편 언저리에 아래우로 두개의 짐이 가지런히 있었다. 그녀와 나눈 대화들, 그녀의 웃음 한 조각, 눈빛 하나, 관능적인 몸짓조차도 행복은 기억하고 있다.  “왜 해피맨이죠? 닉네임이?” 어느날 그녀가 행복의 닉네임의 의미를 물어왔다.  행복은 자신의 옅은 영어수준으로 그냥 이름자를 번역해 지은것이라고 차마 말 못했다. 간단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냥” 두 글자가 대화창에 떴다. “글쎄 그냥 단거 맞죠. 그냥 넘 평범해서요. 닉네임이…” 코를 찡긋하며 그녀가 웃었다. 웃음을 타고 벗은 가슴이 흔들거렸다.     “사실 제 얼굴에 점이 두개 있어요, 찾을수 있어요?” 행복이가 고정상대로 되자 어느날엔가 그녀가 비밀을 드러내 보였다. “여기 채팅하는 애들 모두다 화장빨, 조명빨, 각도빨 그리고 성형빨이더군요. 오늘 제가 저의 진모를 보여드릴게요. 서비스로다가요” 그녀가 민낯을 드러냈다. 화장을 지운 아가씨의 코언저리에 점이 두개 있었다.  “이쁘네요.” “뭐가요? 제가요?”  “점이요” 행복의 말에 아가씨가 간지러움을 당한듯 쿡쿡 웃었다. 가슴이 더 크게 흔들거린다.  명주실같은 웃음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전해져 왔다. 귀전에 훈풍이 이는듯 하다.  “사실 미인들은 모두 짐이 있대요. 코에 있는 점 미인점이라 하죠.” 말해놓고 나서 아가씨가 또 쿡쿡 웃었다. 토끼귀 머리띠가 흔들거렸다.  “한국 배우들 봐요. 녀자들 다 얼굴에 짐이 있던데… 한가인, 전지현 그리고 장동건의 녀자도 모두 코에 점 있어요, 아 정말 배용준의 녀자도 코에 점이 있네요. 그래서 제 닉네임을 ‘쌍화점’이라 달았죠 뭘. 괜찬잖아요 닉네임이, ‘수호천사’, ‘꿀벅지’ 이런 닉네임에 비하면…아 정말 ‘박살공주’라 단 애도 다 있어요” 또 쿡쿡 웃는다.  눈밑의 애교살이 예쁜, 잘 웃는 애다.  눈밑에 애교살이 있는 얼굴 하나가 머리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사실 코 옆에 점이 있다면 심성이 착해 사람들에게 리용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그래요. 뜻하지 않는 상황으로 손해를 많이 보는 사람이라나뭐라나. 관상쟁이들 말이얘요. 그래서 화장으로 가리고 있는거죠.” 그녀가 혼자말처럼 종알거렸다.  “아저씨, 맞죠” 어느날 쌍화점이 물었다. “왜 날 아저씨라 단정하남? 그쪽에서 보여? 내가?” 행복이가 허를 찔린듯 바삐 키보드를 두드렸다. “아니 요즘은 모두다 핸드폰에 채팅앱을 깔고 해요. 컴퓨터로 하는건 나이가 많은 이들이 대부분이죠.” “나이가, 죄끔 많지” 행복이 넉살을 떨었다.  “여하튼 좋아보여요. 아저씬…” 말하면서 아가씨가 브래지어를 풀었다. 묵직한 가슴이 출렁 드러났다. “내가 보이나 그쪽에서” “아니요. 그냥 감각으로다가…” 그러던 아가씨가 팔로 가슴을 쓸어안으며 또 한번 물어 왔다. “아저씨 조선족 맞죠?” 행복은 알몸으로 마주한것이 그녀가 아니라 자기이기라도 한듯 순간 당황해 했다. 쿡쿡 상대가 웃었다. 흔들거리는 가슴… “아뇨, 농담이얘요. 그냥”   그렇게 살갑던 “쌍화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창은 그냥 꺼져있다.  귀향하기 전날도 “애플”에 들어갔다.  하지만 애타게 찾는 그녀는 없었다.  떠나면서 그녀에게 자신이 조선족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그동안 즐거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제도 오늘도 그녀의 창은 그냥 이사를 떠 난 빈집 마냥 비여져 있다.  서운한 마음에 다른 창을 눌렀다. 한참 다른 사람들과 채팅중이던 아가씨가 반겨 맞았다. “반갑습니다. 해피맨님” 그녀의 방에는 채팅하는 남자들은 많았다.  그녀는 서슴없이 얇은 잠자리같은 원피스를 벗어 던졌다.  브라자도 하지않은 가슴이 출렁 드러났다. 분명 보정물을 넣은듯 비현실적으로 큰 가슴이였다. 팬티도 벗어버렸다. 검은 숲이 보였다.  수박덩이만한 가슴을 쓸어안고 아가씨가 류행가요에 맞추어 몸을 비꼬며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위 아래 위 위 아래 위 아래 위 위 아래   빙글 빙글 빙글 돌리지 말고 넌  아슬 아슬하게 스치지 말고 넌 그만 좀 건드려 애매하게 건드려 넌 자꾸 위 아래로 흔들리는 나   위 아래 위 위 아래 위 아래 위 위 아래   행복은 덴겁히 볼륨을 낮추며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밖에서 컹,컹 강아지가 짖는 소리가 들린듯 했다. “지노야 지노!” 주인장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찌걱찌걱 조립식 나무바닥이 신음소리를 냈고 쾅하고 문닫는 소리가 들렸다. 안마원은 또다시 괴잠잠해졌다.    십장생(十長生)   행복은 다시 골프장을 찾았다.     수화기 저쪽에서는 그냥 기계음을 다시 풀듯이 “싫담다 아이 만나겠담다”그 한마디뿐이였다. 그때마다 무가내로 돌아서곤했다.  이제는 전화부스의 아낙도 일면식이 있다는듯 행복이을 보고 고개를 까땍해보였다.     며칠이고 안마원에 박혀있었다.  전화를 하려 안마원 앞 사거리의 전화부스를 몇번 찾았고 은행을 찾아 출입문앞에서 먹이를 찾아 서성이는 시라소니같은 아낙네들에게서 한화를 인민폐로 환전한것이 그 몇번의 외출이였다. 그러다 행복은 문득 할일을 찾은듯 다시 몸을 일으켜 골프장을 찾아온것이였다. 이제 말끔히 사라진 고향의 기억은 산마루를 눈금으로 더듬어 찾아야만 했다.  산이라야 봉분처럼 밋밋한 완만한 산이였다.  산세라고는 운운할수도 없는 밍밍한 산이였지만 그 이름없는 산을 서기로운 춤사위같이 저마다 가지를 뻗치고 잎을 단 사과배나무들이 운치를 더해 주었었다.   봄이면 사과배꽃이 백사지처럼 하얗게 피여 온 산마루를 덮었고 가을이면 탐스러운 사과배들이 주렁져 향기가 백리를 달렸다.  그러던 산이, 마을의 진산(鎭山)격이였던 산이 이제는 더는 과일을 달지못하는 산, 콩크리트로 뒤덮인 산으로 돼버렸다.  산정을 향해 오르는 길은 모두 아스팔트길로 닦여져 있었다.  붕대에 감은 한손은 그냥 가슴앞에 드리고 흰 보자기에 감싼 무언가를 들고 행복은 허위단심 산정을 향해 올랐다.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황토길이 이어졌고 먼지를 차며 한참 오르다 행복은 길녘에 멈춰서 버렸다.  다행이 그가 찾고저 하는것이 남아 있었다.  이 산마루에서 가장 수령이 많은 사과배나무였다. 이 산마루의 사과배는 모두 이 사과배나무로 부터 접종해 나온것이라할수 있었다.  마을에서는 일찍 사과배나무곁에 “사과배모수(母樹)기념비”라는 키높이의 표지석을 세워 선조사과배나무를 기념했다.  그사이 표지석은 철책에 둘러져 있었고 철대문에는 1등사과배만큼 큼지막한 자물쇠가 잠겨져 있었다.  철창을 부여잡고 들여다 보았다.  나무는 이제는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행복이가 떠나기전에도 앙상한 가지에 나마 꽃을 달고 사과배도 달았던 나무였다.  표지석도 그 모서리가 닳아 떯어져 있고 주위는 잡풀로 무성하여 살풍경이였다. 사과배나무는 이제는 고인이 된 마을의 최로인의 달작(達作)의 결과물이였다.  최로인이 백여년전에 이 마을로 이사오면서 함경남도에서 가지고 온 사과나무가지에 이곳의 배나무가지를 지접했다.  혹독하게 추운 이곳의 기후에도 나무는 용케도 살아남아 이듬해부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았다.  사과도 아니고 배도 아닌 그것은 어른들의 주먹만큼 크고 살이 많았고 당도가 높았다. 맛본 사람들마다 천도(天桃)못지않다고 감흥스럽게 엄지를 빼들었다.  마을사람들이 하나 둘 지접해 갔고 어느때부터인가 마을은 과수원으로 변모해 갔다. 한때 이 마을의 사과배는 관내뿐아니라 일본, 로씨야까지 수출되여 마을이 린방에 이름을 떨치게 되였다.    그런 사과배나무가 어떤 강력한 주문에 사라지듯이 말끔히 사라지고 없다. 그저 한그루의 나무만이 남아 그젯날의 영욕을 말해주는듯 했다.  한손에 깁스를 한지라 보자기의 매듭을 입에 물고 다른 한손으로 철창을 잡은채 행복은 키높이의 쇠울짱에 매달렸다.  바지아래단이 쇠울짱의 끝머리에 걸려 찌익 파렬음을 냈다. 바지를 째여가며 겨우 뛰여 넘었다.  사과배나무아래에서 헐떡이며 보자기를 풀었다.  납골함이 드러났다.  봉안했던 납골함을 열었다.  3년만에 빛을 보는 유골이였다.  곱게 빻은 쌀가루같은 뼈가루가 보였다.  뼈가루를 움켜쥐였다. 퍼석퍼석한 뼈가루를 나무주위에 흩뿌렸다.  나무를 마주하고 고개를 숙인채 고해성사를 하는사람처럼 말했다. “최할아바이 배씨가 왔습니다. 성이 배씨라서인지 배농사를 그렇게 잘하던 배씨가 왔습니다. 배농사를 그렇게 참하게 하던 친구라서 이제 아바이 곁에 모시니 같이 말동무를 하세요.”   바람이 일었다. 배꽃가루 같이 뼈가루가 하얗게 날렸다.  문뜩 나무가지에 인공수분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은 수분용총으로 나무에 대고 쏘면 되지만 그때는 작은 링게르병에 넣은 꽃가루를 면봉으로 찍어서는 꽃술에 하나하나 묻혀주곤 했다. 머리에 꽃수건을 두른 안해는 행복의 곁에서 조근조근 끝간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수분했곤했다.  눈밑의 애교살이 예쁜 안해는 무엇이 그리 우수운지 행복이의 변변찮은 우수개에도 황조롱이처럼 까르르 웃곤했다.  곁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외톨이 배씨는 “그림이 따로 없구마이”하고 부러운 눈길로 지켜보곤 했다.  배씨네 과원은 행복이네와 이웃해 있었다. 꽃가루 알레르기에 연거번거 재채기를 하면서도 친구는 자기집 수분을 마치고는 행복이네 사과배수분을 도와주곤했다. 성이 배씨여서인지 배농사를 제법 잘 짓던 단짝친구였다. 뼈가루가 하얗게 배인 손바닥을 멀거니 내려다 보며 되뇌였다. “여보게 배씨. 집에 왔네. 포근한 배나무밑에서 시름놓고 쉬게나. 고향고향하더니… 그렇게 집에 오고싶어 하더니… 이게 무슨 꼴이니”  그만 울컥해나는 심정을 주체하지못해 행복은 나무앞에 쭈크리고 앉았다. 석고를 댄 팔을 어루쓸며 혼자서 눈물을 왈칵 쏟았다.  납골함을 주체할길 없어 다시 보자기에 싸들고 다시한번 힘겹게 쇠울짱을 뛰여넘었다.  황토길을 따라 산을 내리다 아스팔트길로 들어서는 접합점에서 행복은 걸음을 멈추었다.  “천천히 같이가세나” 친구가 부르는듯 해 다시 뒤돌아보았다.  철책에 둘러쌓인채 앙상한 가지를 뻗쳐든 사과배가지가 음울하게 보였다.    털레털레 산을 내려 강가에 이르렀다.  지친듯 돌서덜 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강이 에돌아나가는 산언저리가 모두 골프장으로 닦여 있다. 잘 정돈된 잔디밭이 눈뿌리 모자라게 안겨왔으나 감상할 흥심이 일지 않았다.  보자기를 헤치고 비여버린 납골함을 꺼냈다. 나무아래 그대로 내쳐두고 올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데 버릴수도 없었던 납골함이였다.  친구가 3년넘어 들었던 “유택”인데 허접한 물건버리듯 할수 없었던것이다. 납골함을 들여다 보았다.  “실로 잘 맹글었구만” 납골함을 새삼스럽게 들여다 보았다.  밤빛 옻칠을 올린, 원통형의 나무 납골함이였다. “라전(螺鈿)기법으로 만든거여. 자네네 중국에서 당나라때에 나온 작법인데 한국까지 전해졌고 우리가 더 때깔곱게 만들었지.” 늙은 장의사가 이 납골함을 추천했다. “중국에선 야광패(夜光貝)를 사용했지만 우리는 전복껍데기를 많이 사용했지. 야광패는 두꺼울테지만 우린 전복껍데기를 종이장같이 얇게 갈아서 붙였지.   패각(貝殼)이 알록달록 청록빛깔을 띤것이 화려하지 않은가. 이런 박패법(薄貝法)은 중국에서도 한때는 없었던것이여” 얇게 간 조개껍질을 여러 가지 형태로 오려서 납골함의 겉면에 박아 넣거나 붙여 장식하는 알둥말둥한 칠공예기법을 장황하게 소개하면서 장의사는 극구 비싼 납골함을 팔려고 했다.  행복은 두말없이 40만을 내주고 납골함을 사서는 친구를 모셨다. 불쌍하게 간 친구를 좋은 함에 모시고 싶었던것이였다. 납골함에는 십장생(十長生) 자개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해, 구름, 산, 바위, 물, 학, 사슴, 거북, 소나무, 불로초 등등 예로부터 오래 산다고 믿어 왔던 소재 열가지를 한데 모아 불로장생(不老長生)한다는뜻으로, 자개무늬로 새겨넣은 십장생이였다.  하지만 친구는 불로장생은 커녕, 마흔으로 가는 서른아홉 문턱에서 죽었다.  부두에서 야간작업을 하다가 배씨는 사고로 비명에 갔다. 그것도 집채만한 랭동 컨테이너에 깔려 처참하게 숨졌다.  컨테이너 하역이나 운반작업은 수십톤에 이르는 중량물을 취급하는데 하물이 락하하며 작업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자주 발생하곤했다. 원체 혈붙이가 없는 고아이고 또 타향에서 당한 횡사인지라 시체를 거두어 줄 이도, 울어줄이도 없었다. 친구 행복이가 혼자서 상주로 되여주었고 조문객으로 되여주었다.  홀로 친구의 장을 치르고 행복은 익숙하던 부두를 떠났다. 정육점의 다져진 고기모양으로 질크러진 친구의 처참한 모습이 눈앞에 삼삼거려 더는 이곳에서 일할수가 없었던것이였다.  그리고 조건이 더 나쁜 건설업체를 전전했다. 흔히 말하는 노가다를 뛰였다.  그러면서도 그 무슨 값비싼것만 챙겨넣은 패물함처럼 납골함만은 지니고 다녔다.  친구의 유골을 차마 타향땅에 뿌릴수 없었다. 술만 마시면 유난히도 고향타령을 하던 친구를 꼭 고향에 가져다 안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중 성질머리가 더럽기로 삼국지의 장비 뺨 칠 공사장의 십장에게 납골함이 발각되고 말았다. 숙소 침대밑에 간직했는데 짐을 움직이다 딸려나왔고 십장의 씰룩한 눈길에 띄웠던것이다.  “이거 뭐꼬? 이거 사람 뼉다구 부수어 넣는 함 아닝교? 허벌라게 놀래뿌려꾸마 잉... 이거 무슨 신주단지라고 숙소에까지 모셔갖고 왔다냐?  이런 썩을 놈의 짱꼴라 조선족새끼들땜에 나가 환장해불겄구만… 왐마 너 죽을텨?” 평소 함께 일하는 동포 인부들을 향해 야유와 폭언을 오물쏟듯 쏟아내여 “욕쟁이 십장”으로 불리는 자였다.  조금만 일을 잘못 해도, 혹여 숨을 돌리려 쪼그리고 앉아 쉬다가 발각돼도 욕의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눈깔은 폼으로 달고 다니냐”, “나이는 똥구멍으로 처 묵냐”, “확 척추를 접어뿔랑께”, “창자를 쑥 뽑아 순대 만들어 줄까부다”… 온갖 팔도 방언을 다 동원해 욕설에 욕설을 물동이로 정수박이에 퍼붓듯 하곤했다.  십장이 온갖 폭언을 동원해 욕을 삼태기로 퍼부으며 발로 납골함을 툭툭 걷어 찼다.  행복이가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판난 목면장갑을 낀 손에는 도라이바가 들려 있었다.  “내 친구요. 불쌍하게 죽은 내 친군데… 욕보이게 하면 네 죽고 내 죽고 해볼테요” 사이즈가 무지 큰 도라이바가 십장의 정수리를 겨누고 있었고 행복의 얼굴은 평소의 그것같지 않게 험악하게 변조되여 있었다. 늘 사람좋은 웃음을 짓고 십장의 폭언에도 대꾸 한마디 없던, 양순해보이는 그에게서 이런 완악한 표정이 나올수 있다는데서 동료인부들도 십장도 그만 못박혀 버렸다.  “눈구멍에 띄지않는데 잘 간직해 둬라.” 십장이 스르르 꼬리를 내리며 돌아섰다. 그러면서 구시렁댔다.  “왓따! 미련 바부탱이 짱꼴라 조선족놈들땜에 나가 환장해 불겠구만…”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해 간직해 온 납골함이였다.  10여년간 불법체류자 딱지를 달고 지내온 터라 귀국수속이 어려웠지만 더욱 어려운것은 친구의 납골함을 지니고 나오는 문제였다. 사망증명서 서류를 지니고 령사관등 부서들을 몇번이고 들락거려서야 겨우 유골을 지니고 귀향할수 있었다.     행복은 납골함의 덮개를 열었다.  텅빈 납골함이 친구의 우묵한 눈처럼 행복이를 올려다 본다.  납골함에 반근들이 고량주 한병을 넣었다. 한근들이는 술병이 너무커 넣을수 없어 반근들이를 넣은것이였다.  한국술은 도수가 너무 낮아 물맛이고 도수 높은 매운 고향술을 마음놓고 마셨으면 좋겠다고 술마실때마다 입술을 감빨던 친구가 생각나서였다. 고향술을 담은 납골함을 두만강 강물에 띄워보냈다.  함은 수면우에서 빙그르르 맴을 돌다가 넘어질듯 기우뚱거리면서 강심으로 떠갔다.  그 모습이 마치 술 한잔 걸치고 왜틀비틀 숙소로 향하던 친구의 뒤모습 같아 보였다. 복도 징그럽게 없는 친구놈…  행복은 손등으로 눈굽을 찍어 누르며 되녀였다.  “한잔 드시게. 그리고 잘 가시게”   안마원에는 오늘도 눈씻고 봐도 손님이라곤 없다. 조도가 낮은 벽등이 켜진 복도에 들어서며 행복은 주인장을 불렀다.  “저기요” 대답이 없다. 주춤거리다가 불이 새여나오는 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다음 순간, 행복의 입으로 헛비명이 새여 나왔다. 현실감을 다잡기위하여 두눈을 부릅떴다.  편한 내의 바람으로 쏘파에 앉아 졸고있던 녀인, “돌아오셨어요”하고 천연스레 큰 눈망울을 들어 묻는 주인장의 한쪽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와 놀란 가슴을 안추렸다. 무서운 몽매(夢寐)에 꺼둘린듯한 마음이였다.  행복은 소리나게 자기 머리를 툭 쥐여박았다.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어젖힌 자신을 후회했다. 그리하여 못볼 광경을 본것이 아닌가…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나지막한 노크소리였지만 행복은 깜짝 놀라했다.  문을 열자 랑하에 서있는 주인장이 보였다. 통너른 훌렁한 몸뻬를 입은 그녀의 다리쪽에 눈길이 갔다. 다리는 멀쩡했다.  “무슨 일인데요?” “저, 바, 바느실이 없나해서요.” 행복은 급기야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뭐 따진것이라도 있나요? 주세요. 제가 꿰매 드리지요” 행복은 쭈뼛거리다가 쇠울짱에 걸려 째여진 바지를 곱다라니 내놓았다. “그럼…” 주인장이 바지들 받아들고 돌아섰다. 찌걱찌걱… 나무바닥이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인절미   “콩 고물 달람까? 팥 고물 달람까?” 음식난전에서 부지런히 떡을 네모지게 썰면서 떡가게 주인은 고개도 들지않은채 묻는다.  오래된 솜씨인듯 손놀림이 나비의 날개짓처럼 현란하다.  안해는 돈벌고 돌아와서는 복떡방 하나 차리는것이 소원이였다.  생전에 장모가 떡을 잘 만들었다. 그 무슨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이 아니여도 여러 종류의 떡을 빚고 쳐서는 한보따리 딸집으로 가져다 주곤했다. 그런 어머니의 음식솜씨를 물려 받았던 안해였다.  “인절미가 왜 인절미인지 아세요?” 어느 한번 안해가 떡에 관한 화제를 꺼내들었다.  “옛날 임금님이 반란을 일으킨 병사들을 피해 한양을 떠났는데 피난길에서 녀인 하나가 한 광주리 가득 떡을 푸짐하게 담아 왕께 진상하였다합니다. 그 떡이 너무나 맛나서 왕은 ‘떡은 떡인데 대체 떡 이름이 무엇이오?라고 물었답니다. 그런데 녀인은 떡이름을 대답하지 못했답니다. 그러자 임금은 이 떡을 어느 집에서 만들어왔느냐고 물었고 녀인은 근처 임씨 집에서 만들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임씨가 만든 기막히게 맛있는 절미(絶味)의 떡이라, 임절미(任絶味)라 하는게 어떻겠소?’하면서 웃었고 그때로부터 떡을 ‘임절미’라고 부르게 되였고, 나중에 부르기쉽도록 ‘임’자를 ‘인’으로 바뀌어 ‘인절미’라고 부르게 되였다나 뭐라나… 여튼 우리 집안은 떡과 인연이 있나 봐요” 안해의 성은 임씨였다.  그렇게 떡 만들기를 좋아했던 안해는 출국해서도 줄곧 복떡방에서 일했다.  이곳에서는 명절뿐만 아니라 백일, 첫돌, 혼례, 회갑까지 떡이 필수였고 직장인은 아침 식사대용으로, 녀성들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떡을 찾기도 해서 명절이 아니여도 밀려드는 주문량으로 24시간이 모자랄때가 많았다.  인절미, 시루떡, 송편등 일반적인 떡으로부터 주인장이 직접 개발한 이색적인 떡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만큼 허리 펼사이없이 온 하루 오금에 비파소리가 나도록 돌아쳐도 일은 진득진득 도무지 끝이 없었다. 섬약한 안해였지만 일만 접하면 몸을 던졌다. 눈앞이 안보일 정도로 부연 수증기가 자욱한 떡방에서 멥쌀을 일고 불려서는 기계에 넣어 가루를 냈다.  종일 수증기속에서 일하다보니 가슴이 답답하다면서 앙가슴을 종주먹으로 두드려대였다. 그런 안해의 가슴패기에는 멍이 들어 있었다.  힘든 일이였지만 강보의 애를 동생에게 맡기고 떠나온 그로서는 힘들고 심란한 심기를 무마할수 있는것이 또 일이였다.  행복은 인천 연안부두에 있었고 안해는 서울에 있었다. 불법체류를 쌍으로 달고있는 부부가 함께 마땅한 일자리를 찾는다는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래서 요행 찾은 일자리를 두사람은 아꼈다.  밭은 거리였지만 두 사람은 일년가도 한두번 만나기 어려웠다. 요행 만나서는 식사 한번 하고는 다시 헤여져 각자 달려가곤했다.  만날때마다 다투어 버렸다. 힘든 투정에, 고향에 두고 온 딸 걱정담에 다투기가 일쑤였다. 고향서 싸움한번 안해본 잉꼬부부로 소문나 있던 두 사람은 어쩐 영문으로 타향에 와서 털 세우고 볏 세운 투계닭처럼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또 싸우고 있었다.  그러다 행복이가 부두의 일자리를 때려치우고 증발되듯 사라진뒤에는 4년이 되도록 서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국의 맨 끝자락 전남에 숨어있는 그녀를 안해가 용케도 찾아왔다. 그리고 피짚먹는 소처럼 눈만 껌벅이며 얼뜬해 있는 행복이 앞에 안해는 리혼이라는 막장 카드를 내밀었다…  떡장수의 손짓이 멈추었다.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그 사이 처제는 어느덧 30대를 훌쩍 넘긴 중년이 되여 있었다. 물러버린 떡처럼 어제의 풋풋하던 생기를 잃고 있었다.  시집도 가지않은 처녀의 몸으로 강보의 조카를 맡아 친딸맞잡이로 키우고 있는 처제였다. 그 처제가 시장거리에서 떡가게를 차리고있다는 소문만 들었던 행복은 며칠간 시가지 사방 시장의 음식가게를 참빗질해서 용케도 처제를 찾아낼수 있었다.  전화로 매몰차게 거절의사를 전하던 처제가 전화마저 받지않자 막무가내로 찾아 나선것이였다.  하늘에서 바늘 찾기로 헤매다가 막상 찾아내여 앞에 서고보니 무슨 말부터 건넬지 몰라 행복은 문칮거렸다. “장사는 잘되시오? 처제” 지극히 공식적인 인사를 건네고나니 자신이 시러배처럼 생각되였다.  처제는 아무말도 없이 다시 고개를 떨어뜨리고 떡을 썰었다.  역증이 들어간 손놀림이 빨라졌다. 잔뜩 힘이 들어간 팔뚝에 퍼렇게 지렁이가 섰다.  칼이 도마에 부딪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냥 서있기도 무엇해 또 한마디 했다.  “처제, 배씨가 죽었네” 칼놀림이 뚝 멈추었다가 다시 빨라졌다. 도마를 쫓는 소리가 더 요란하게 울렸다.  한때 처제를 무척 쫓아다녔던 배씨였다. 무혈무친 고아로서 마을에서도 윤이 나지못한 사림을 하고있는 배씨가 처제의 눈에 뵈일리 없었다. 하지만 바탕은 꺼슬꺼슬 무명이여도 마음씨만은 부드러운 비단같은 배씨여서 처제는 오빠맞잡이로 한때 절친하게 지내기도 했었다.  떼돈 벌어와서는 처제와 결혼하고 친구 행복이와는 동서지간이 되고말겠다던 배씨의 꿈은 타향에서 그렇게 처참하게 으깨졌고 박살나버렸다.  처제는 그냥 아무말도 없다. 힐긋 곁눈길로 팔에 석고를 댄 행복의 팔뚝을 훔쳐보고는 다시 고개를 수긋하고는 떡을 썬다.  “콩고물 팥고물 몫몫으로 싸주오.” 뻘쭘해서 처제와의 대화거리를 찾으려 허둥이던 행복은 그냥 떡에로 화제를 돌리고 말았다.  일매지게 썬 떡을 콩고물과 팥고물을 듬뿍 무쳐 각각 싸주었다.  떡구럭을 받으며 행복이 슬쩍 말을 끼여 넣었다. “5월5일이면 애 생일이 아니오. 그러니 꼭 한번 만나보고 싶소. 만나서…” 처제의 흰청많은 눈동자가 질러오는 바람에 핸복은 말끝을 흐렸다. 그 눈길은 이제와서 어떻게 애 생일은 기억하고있냐는듯한 눈길이였다.  사실 한국에 와서 행복은 고향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아동절이 6월1일이 아니라 5월5일임을 알게 되였다. 그에서 딸애의 생일이 얼추 떠올랐고 그렇게 기억해 둔것이였다.  “애가 여기 없어요.” 떡을 썰어 근을 달아서는 종류별로 포장지에 싸면서 처제가 말했다. 머리를 수긋하고 혼자말처럼 말했다.  “일자리를 찾아 관내로 들어간지 오래요. 이제 걔도 열여덟이니 이모 말이 귀에 안잡혀들어요. 자립하겠다고 설쳐대는데...막을수가 있어야지요. 황차 친엄마도 아닌것이…” 처제가 후딱 고개를 쳐들었다. 다시 흰청이 많이 드러난 눈으로 행복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강보의 애가 처녀꼴이 잡히도록 여직 뭘하다 이제야 나타났냐? 눈길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사실은 처제…” 행복은 무언가 변명거리라도 찾으려 허둥댔다. 그동안 자신이 헤쳐왔던 가시밭길을 몇마디로 응축해 뱉어내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해석을 하려고 입을 여는데 처제가 칼등으로 도마를 탕 내리쳤다.   “자꾸 처제처제 하지 말아요. 이제 와서 처제는 무슨 말라빠진…” 목소리가 얼음채찍이 되여 남자를 후려쳤다. 떡구럭을 든채 휘적휘적 돌아서 나오는데 처제, 아니 옛 처제의 고음이 행복의 발목을 부여 잡았다. “여봐요” 행복이 일루의 희망을 품고 입귀를 말아올려 웃음을 지어보이며 돌아섰다.  처제가 플라스틱 가면같은 얼굴로 말했다. “떡값은 내고 가야지요”   어떤 장례   떡구럭을 들고 지척지척 안마원으로 다가가는데 주인장이 무언가 들고 나오는것이 보였다.  종이박스를 두손으로 받쳐든 주인장은 행복이를 보자 기다리던 친지에게 하소하듯 말했다. “지노가 죽었어요.” 오리무중에 빠진듯한 표정의 행복이를 보고 덧붙였다. “강아지가요.” 아침나절에도 안마원을 나서는 자신을 졸졸 따라나서는지라 동그란 머리통을 다독여주고 털을 쓸어주었던 강아지였다.  며칠전 한밤중에 안마원에 들어서는 자신을 향해 새되게 짖어대던 장모의 강아지는 그사이 익숙해진듯 행복의 다리에 감겨들곤했다. 하는짓이 이뻐서 맥주병과 함께 사들고 들어서던 북어를 찢어 입에 물려도 주었었다.  축 쳐진 어깨로 서있는 녀자가 받쳐든 종이박스우에는 자그만 꽃삽이 놓여져 있었다. 아마 강아지를 묻으러 가는것 같았다. “도와 드릴가요” 녀자가 거부를 보이지않았다. 요행 택시를 불러세웠다. 안마원이 비행장부근 시가지 외곽에 위치해 있었지만 택시는 외곽에서도 더 깊숙히 산쪽을 향해 달렸다.  뒤좌석에 올라 타서는 두사람은 아무말도 없었고 그런 두사람을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훔쳐 보았다. 말 한마디도 없고 그냥 행선지도 없이 산쪽으로 가자는 두사람의 모습이 아무래도 수상쩍었던 모양이였다.  차안에서는 거북한 침묵이 흘렀고 그 침묵을 깨련듯 기사가 라디오를 틀었다. 디이얼을 돌려 FM 주파수를 맞추자 점심뉴스가 흘러나왔다. - 지속되는 저온랭해로 하여 왕년에 비해 사과배꽃이 만개하지 못한 연고로 올해 “사과배꽃축제”가 원 지정된 날자보다 지연될 예정입니다…  - 어제 오전, “해외귀국자창업좌담회”가 열렸습니다. 귀국한 해외로무업자들은 해당 부문에서 귀향하여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보편적 특혜성이 강한 창업우대정책들을 출시할것을 한결같이 건의 했습니다… - 성인 사이트에 접속한 사람들을 협박해 금품을 뜯은 이들이 검거됐다고 외신이 전혔습니다.  한국 인천 서부경찰서는 인터넷 성인 사이트를 만들어 놓고 사이트에 접속한 사람들을 협박해 현금을 받아 낸 조선족 A씨를 공갈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이들은 중국 현지에까지 컴퓨터시스템을 들여놓고 신원을 알수없는 녀성들을 고용해 다시 한국의 고객들과 화상채팅으로 접속하도록 유도한 뒤 라체쇼를 보여주며 함께 음란한 행위를 하는 모습을 록화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 현금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뉴스를 듣는 행복의 뒤덜미가 붉어져 있었다. 다행이 주인장은 뉴스를 듣는둥 마는둥 하고있었다. 가는내내 고개를 숙인채 종이박스에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정오뉴스가 끝날무렵에 택시가 어느 산더기앞까지 와서 멈추어 섰다. 둘은 부시럭거리며 종이박스와 삽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절기는 초여름이였지만 막상 숲에 들어서니 바람이 셌다. 숲바람이 우수수 소리내며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화분통을 호비작이던 꽃삽이라 땅파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한손을 상한터라 작은 종이박스 하나를 묻을 땅을 한참이나 파야했다. 여름이 성큼 가까와졌음에도 땅은 아직도 채 풀리지 않은것 같았다. 겉흙을 치우기까지는 쉬워도 정작 깊게 파려니 힘이 들었다. 잠간새에 뒤덜미가 흥건해졌고 이어 줄지은 땀방울이 벌건 흙속으로 뚤렁뚤렁 떨어져 내렸다. 그동안 녀자는 종이박스를 품에 꼭 껴안고 있었다. 때때로 종이박스에 볼을 대기도 했다. 구덩이에 내려놓기에 앞서 녀자가 종이박스에 입을 맞추었다. 하관이라도하듯 천천히 구덩이에 박스를 내려놓았다. 흙을 덮었다. 흙덩이가 부실부실 떨어져 쌓이자 녀자가 목멘소리로 부르짖었다. “지노야 잘가!” 앙증맞게 작은 봉분이 생겨났다. 얼핏 보면 그냥 흙더미로 보일, 하지만 봉분을 삽등으로 두드리고 공글어 정성스럽게 작은 “유택”을 만들었다.  행복은 삽을 던지며 봉분앞에 주저앉았다.  멀거니 서있던 녀자도 그냥 서있기가 힘들었던지 봉분곁에 한쪽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았다. 산속 어딘가에서 이름 모를 새가 울음을 토하고있었다. 새 울음소리가 저리도 애닮고 청명하고 요란하다. 너무나 애닯아 괴이쩍게 들리기 까지했다. 거기에 훌쩍거리는 녀자의 나지막한 울음소리가 겹쳐들었다. 손바닥으로 이리저리 눈언저리를 훔쳐내고 녀자가 새의 투명한 고음에 귀를 기울였다. 붉어진 눈시울로 녀자가 입을 열었다. “트럭에 치였어요. ‘해방패’, 그 덤턱스럽게 큰 차에 치였으니 살아남겠어요. 차들이 고속으로 오가는 시교 길곁집이라 그렇게 조심했건만… 차는 뺑소니쳤고” 오전나절에 강아지가 차에 치이던 경상에 대해 말했다.  “나와 육년째 같이 살던 애였는데…” 녀자가 또 훌쩍 코를 치걷었다. “어쩜 우리 집안은 차와 전생에 무슨 원쑤관계를 졌던지. 저도 차에 치여 이 모양 이꼴이 됐죠. 그것도 한국서 말입니다.” 녀자가 엊저녁 행복에게 들켜버린 자신의 몰골을 해석하련듯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남보다 일찍 서울로 나갔어요.  잘 나가다가 불체자 단속반에 맞띄웠죠. 단속반을 피해 겁모르고 3층에서 뛰여 내렸죠.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더랬습니다. 그까진 좋았죠. 그런데 일어나서 길을 뛰여 건느다 차에 치인거죠… 돈 벌러 나갔다 다리 한짝을 내주었습니다.”  녀자가 행복이를 건너보았다. 녀자의 시선이 행복이의 깁스를 한 팔에 머물러 있었다. 어떻게 된 상처냐고 묻는듯 했다. “일하다가 10층 발판우에서 쇠파이프 한가닥이 떨어지는 바람에…” 마른 침 한번 삼키고나서 행복이도 입을 열었다. “뼈를 다쳤죠. 락하방지그물이 펴져 있다지만 빈 구석이 많습니다. 팔에 맞았으니 다행이라 생각해 둬야죠. 머리나 어깨나에 맞았더라면…” “저도 다행이라 생각해 둡니다.” 녀자가 자조처럼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때 서울 연지동에서는 단속반을 피해 층집에서 뛰여내렸다 죽기까지 했습니다. 쉰넘은 흑룡강 녀자가 말이얘요. 요즘은  많이 느슨해졌지요. 불체자가 업체주인의 귀뜸을 받고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다쳤는데 이런걸 산업재해로 봐야한다는 판결까지 나온적 있답디다.”  후유~ 주르르 제 설음많은 사연을 토해놓고 나서 녀자가 직성이 풀린듯 하얗게 한숨을 내쉬였다.  호주머니에서 물컹거리는것이 맞혀오자 행복은 그것을 끄집어 냈다. 정오도 지난지라 배가 허출해 났다. 녀자를 향해 내밀었다. “드세요.” 녀자의 눈이 빛났다. “움마 떡이네요” “네 떡입니다. 잠시만요” 막상 떡을 앞에 두고 수저가 없어 쩔쩔 매다가 행복이가 몸을 일으켰다. 다박솔의 가지를 꽃삽으로 툭 쳐서 꺾어 들었다. 껍질을 벗겨서 저가락을 만들어 녀자에게 넘겨주었다. 녀자가 배시시 웃었다. 웃는 입매가 고왔다.  녀자가 떡하나 집기를 기다려 행복은 흙묻은 손을 앞섶에 쓱쓱 문지르고나서 집게손을 해들고 떡을 집어 입에 넣었다.  녀자가 애모쁘게 봉분의 흙을 어루만졌다. 떡을 우물거리며 분명치 않는 어조로 말했다.  “우리 지노는 이제 아픔도 배고픔도 없는 좋은 곳으로 갔을터지요” 다시 새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저리도 애닮고 청명하고도 요란한… 순간 행복은 목이 꺽 메였다. 떡이 한덩이의 설음으로 되여 목에 떡 걸려버렸다. 무지근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모지름을 썼다.  “움마. 걸렸네요” 녀자가 종주먹을 해갖고 행복이의 등짝을 학교운동대회때 응원북을 치듯 사납게 두드려댔다.  겨우 떡이 넘어갔고 눈물이 쑥 나왔다.    슬픔의 합성   물밑속처럼 괴잠잠한 고요만이 감돌던 안마원에서 소요가 인것은 자정이 넘은 늦은 밤이 였다. “게 서욧! 이봐요 아저씨” 행복은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밖에서 주인장이 달려나가며 지르는 고성이 들려왔다. 행복은 아픈 팔을 붕대를 감아 목에 걸 사이도 없이 방을 뛰쳐나왔다. 안마원 문전에서 주인장이 분명 손님으로 보이는 나그네와 실랑이를 벌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요?” 행복이가 따져 물었다. “발안마 받고 돈 안내고 그냥 튀려잖아요” 주인장이 흑기사라도 만난듯 행복을 향해 하소했다.  덤턱스럽게 키가 크고 목덜미가 굵은 사내였다. 손님은 몹시 취해 있었다.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있었고 발은 허방을 밟으며 휘청거리고 있었다. 행복을 향해 삿대질하며 혀꼬부라진 소리를 냈다.  “당신 뭐야” 행복에게 바싹 다가선다. 가까이 다가오는 그에게서는 아직도 술냄새가 천지를 지동했다. 사내가 휘청거리며 행복이의 어깨를 떠밀었다.    그 덩치에 조금은 겁이 났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돈 내고 곱다라니 가시오” “당신 누구냐고” “취했구만 빨리 집에 가시오. 결산은 제대로 하시고.” “나 결산 안할란다 왜?” “왜 안해유. 봉사 받았으면 돈은 제대로 내야지. 남자로 생겨서” 손님이 피식 물찌똥같은 웃음을 갈겼다. 주인장녀자를 돌아다 보았다. “안마사가 너무 박색이잖아.” 팔짱을 가새지르고 섰던 주인장이 격분과 탄식을 한꺼번에 뿜었다.  “나 원, 살다살다, 별꼴 다보갰네” 찌르릉 통증같은 흥분이 행복이의 팔을 거쳐 정수리까지 관통했다.  커다랗게 다가온 사내의 낯짝에 행복이 얼굴을 바짝 가져다 붙혔다. 썩은 과일같이 문뱃내 나는 그 얼굴에 대고 소리소리 질렀다. “나가 원 환장해 뿔겄네, 이런 미련 바부탱이 썩을놈들이 남자 망신 다 시키누만, 좋은건 입으로 처묵고 나이는 똥구멍으로 처묵냐, 확 척추를 접어뿔랑께, 창자를 쑥 뽑아 순대 만들어 줄까부다, 왐마 너 죽을텨?”     취한도, 주인장 녀자도 경악함에 지릅뜬 눈으로 행복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50원짜리 지폐 한장이 쑤욱 행복의 손으로 넘겨져 왔다.     그리고 사내는 꽁지에 불달린듯 쥐처럼 어둠의 구멍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깨에 힘을 주며 행복은 지폐장을 주인장에게 넘겨주고는 안마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돌아서서 웃음을 참으려는듯 주먹을 말아 입에 대였다 그의 어깨가 겉잡지 못하고 오르내렸다.    똑똑  노크소리가 울렸다.  문을 열자 주인장이 족탕기를 들고 서있다. “금방은 고마웠어요. 이젠 지노도 없고 아무도 없는데… ” 녀자는 안마원 유니폼 차림이였다.  “발안마 해드릴게요.” “아니 괜찮습니다” 행복이가 덴겁히 밀막았다.  “공짜로 해드릴게요. 피곤이 풀릴거얘요.” 녀자가 문을 밀고 들어섰다. 행복은 덴겁히 컴퓨터를 껐다.  나무로 만든 족탕기에 발을 담갔다.  물은 따뜻했고 녀자의 손은 부드러웠다.  “어제는 째진 바지도 꿰매주고… 페만 끼치네요” 행복이 쑥스러워 하며 말했다.  그날 저녁 비행장과 가까운 이곳에 투숙하게 된것이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 터미널 앞의 택시들이 귀국하는 사람들에게 바가지료금을 덮어씌운다기에 택시를 거부하고 시가지쪽을 향해 무작정 걸어가다가 들리게 된곳이 바로 이곳, 짜장 이름 그대로인 “황금”의 쉼터였다.  녀자는 나지막한 미소로 화답했다. 미소를 머금은채 실습기의 초보안마사처럼 열심히 발을 주물고 있다.  “한국에서 들려와서 입원수속을 하면서 리혼수속도 함께 했어요.” 발을 주무르다 녀자가 또 묻지도 않은 이야기의 하편을 이어나갔다.  “아이는 남편쪽에 넘어갔구요. 그동안 엄마 얼골도 모르고 자란 애가 기어이 아버지와 함께 하려 했지요.  다리를 잃고 가족까지 잃어야하는 녀자에게 시댁쪽은 아무런 측은지심도 없어 했어요. 원체 극구 나가지 말라는것을 제가 부득부득 우겨 나갔으니깐요.” 이야기하면서 녀자는 발을 누르고 주무르고 쓸어주었다.  “집만은 제게 남겨주었어요. 남편도 그사이 살려고 애썼나봐요. 숭어 뛰니 망둥이도 뛴다고 이렇게 떼돈 번답시고 발안마원도 차려놓고있었더군요. 제가 보낸 돈으로요. 그런데 잘 안됐나봐요. 그냥 제게 리혼합의금 삼아 넘겨줬죠. 다시 영업구조로 만든 집을 고치기도 싫고 그래서 사주에도 없는 발안마사가 돼버렸죠.  하필이면 발이 없는 녀자가 발안마원을…” 녀자가 처량하게 웃었다.  하나의 얼굴이 행복의 뇌리에 그물그물 떠올랐다. 마지막 리혼카드를 들고 자신을 찾아 남도끝까지 왔던 안해였다. 그날도 모텔방 문켠에 서서 안해는 이렇게 처량하게 웃었다. “이렇게 두더지처럼 숨어버리면 내가 못찾을줄 알았지” 그리고 한달도 못되여 안해는 비명에 갔다.  희귀병이라고했다.  “원발성폐고혈압”이라는 듣도보도 못했던 병으로 판명되였다.  중환자실 입원 20여일 만에 타향에서 삶의 의지로 강건했던 맥을 그만 놓아버렸다.  그냥 숨차다며 앙가슴을 두드려왔는데 그제야 폐질병을 잠재우고 있었음을 알수 있었다.  리혼후 한달도 못된 죽음이였기에 처제는 형부를 몹시도 원망하고 있는것이였다. “보시다싶이 안마원 잘 안돼요. 안마원 이름은 한번 거창하다만…” 녀자쪽 설음은 계속되였다. “위치도 나쁘고… 무엇보다 다른 곳에선 젊고 이쁜 애들 쓰니깐요. 요정같은 애들이 손님 발도 주물고 다른곳도 주물러주니깐” 녀자가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런거 까지 하면서 치사한 돈 벌고는 싶지않고… 그러니 뉘라서 이런 쉬여빠진 아낙네를 찾겠어요, 더구나 병신 아낙을, 그래서 요행 손님 있으면 받고 없으면 그냥 살림집처럼 쓰고 있죠.”  족탕기에서 발을 들어올려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발크림을 미끌미끌 발라 구석구석 문질러주었다. 미끄러지듯 녀자의 말도 흘렀다.  “상처가 아물고, 의족도 습관이 되고… 다른건 다 참을만 했어요. 그런데 제일 어려운건… 아들애를 못보는것이였어요. 남편은 아들애를 못만나게 했어요. 애가 돌도 못되여 돈에 환장해 집을 뛰쳐나간 년이니 볼 자격이 없다는것이였죠.” 행복은 부지중 소리나게 한숨을 뿜고 말았다. 어쩌면 다리 부러진 노루 한자리에 모이듯 꼭 같은 동병상련의 처지였다.   “무엇보다 애에게 이런 병신엄마가 있다는걸 속이고 싶었던거겠죠” 녀자가 서글프게, 독백하듯 말했다. 긴 연극대본 같은 이야기를 쉼표없이 하고 또 했다. 그동안 말동무가 그리웠나보다. 더욱이 애견까지 잃은 날이라 더욱 허전해버린 그 마음을 행복은 알것 같았다.  녀자의 매끄럽던 손길이 또 한번 멈추었다.  주인장의 눈길이 그윽히 향한 곳에 사진액자가 있었다. 엄마와 애가 목을 얼싸 그러안고 환하게 웃는… “저 사진 합성이얘요” 행복이가 적이 놀라했다.  “심통하죠” 녀자가 다시 손을 놀리며 말했다.  “어럽게 애가 있는 학교를 찾아냈어요. 애원했더니 선생님이 애가 박혀있는 단체사진 한장 주더군요. 사진관가서 돈 엄청 퍼주고 다른 사람들 사진에 머리만 합성해 바꿔넣은거얘요. 심통하죠.” 행복은 다시 새삼스럽게 사진을 보았다. 신통한듯 신통하지도 않은듯 두 사람의 웃음이 액자에 포박된듯 보였다.   “애는 그냥 학교 담넘어 체육시간에 봤어요. 이름은 진호라고 바뀌여 있었구요. 내가 지은 이름은 복이였는데 행복이라는 복. 리복이…” 행복이가 움찔했다. 다리 부러진 노루들이 힘겹게 산등성이를 넘고있는 환영을 행복은 보고 있다.  “아프나요?”  녀자가 발을 쥔 손에서 힘을 뺐다.   행복이가 머리를 저었다.  “계속해요. 이야기를” 이야기에 은연중 빠져들어가고있는 자신을 느꼈다. “이제 초중생이 되였네요. 에미 없이도 그렇게 밝게 이뿌게 큰 애가 고마웠어요. 그런데 며칠후 또 찾아가보니 애가 전학해 갔더군요.”  녀자가 훌쩍 코를 치걷었다.  “여기가 내 아들애를 위해 꾸며놓은 방이랍니다. 혹시 언젠가는 찾아올가 해서요. 그날 손님이 인터넷 되는 방에 들려니 처음 내줬지요.” 녀자는 다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원체 손님들이 그냥 발안마만 받고 밤을 지내지 못하게 했어요. 그런데 손님은 왠지… 인상이 참 좋아보이더군요.” 녀자가 수삽한 빛을 감추려는듯 문뜩 발안마를 끝냈다. 부시럭거리며 발크림과 수건들을 챙겼다.  족탕기를 들고 나가려던 녀인이 행복을 향해 물었다. 너무 낮게 말했기에 행복이 다시한번 되물었다.  “무어라구요?” 녀자가 혀아래 소리로 말했다. “혹시… 다른 안마는 안받으시겠어요” 행복은 녀자의 눈을 피해 시선을 돌렸다.  조도낮은 탁상등의 음음한 빛속에서 빛나오르는 녀자의 눈동자를 느낄수 있었다. 그 눈동자는 채 꺼지지않은 콕스불처럼 은근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 은근한 빛은 모르고 대이면 손이라도 델것 같았다.  녀자가 또 한번 혀아래 소리로 말했다. “공짜로 해드릴게요” 무거운 족탕기를 들고서있는 그녀가 안쓰러워 보였다.  행복은 일어나서 녀자의 손에서 족탕기를 받아 구석에 놓았다.  녀자는 탁자로 다가갔다. 아들애와의 합성사진을 손으로 쓸어 넘겨뜨렸다.  그리고는 유니폼을 머리우로 확 벗어버렸다.  세월의 중하를 못이겨 축 처진 유방이 참담하게 드러났다.  행복은 못나게도 슬몃 부끄럽게 일어서는 자신을 느꼈다. 녀자의 향그러운 육향을 느껴본지도 몇년이나 되였던지 생각나지 않았다. 헤아릴수도 없었다. 그저 컴을 마주하고 기계적이고 변형적인 만족을 얻은것이 다였다. 말라버린, 하지만 봄을 맞아 수분을 기다리는 늙은 과수같은 그 몸뚱아리를 향해 다가갔다.   녀자가 깁스를 한 행복의 손을 들어 가슴에 얹어주었다. 어줍게 가슴을 만졌다. 건과(乾果)같은 녀자의 유두가 손에 들어왔다.  본능에 넘쳐 그 가슴을 와락 옴켜잡았다. 그러다 팔에 통증을 느끼며 나지막히 신음을 뿜었다.  녀자가 옷을 벗었고 의족도 벗었다. 행복은 짚이영에 튕긴 불씨를 치우듯 후딱 탁상등을 꺼버렸다.  그리고 다음순간 두 사람은 안타깝게 허둥거렸다.  어둠에 익숙하지 못해서가 아니였다.  한 사람은 오른 팔, 한 사람은 왼 다리,  상처입어 갈가리 해체된 몸뚱아리를 어떻게 맞추어야할지 몰라 헤맸다.  두 사람은 지접(止接)이 잘못된 괴상한 과수의 가지처럼 왜곡된 형상으로 한데 얽혔다.  그리고는 부서진 뼈가 잇기듯, 찢겨진 피부가 아물어 붙듯 서로에게 들붙었다. 오늘만 있고 래일이 없는 곤충처럼, 단말마로 서로를 탐했다.  등으로 땀이 흘러내렸다. 얼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로 얼룩진 녀자의 얼굴이 척척했다. 그 척척한 얼굴에 자기 얼굴을 붙여 대였다. 다른 하나의 눈물이 마르려는 그 눈물자국우에 길을 만들고 있었다.  입술과 입술이 얽혔다.  서로는 서로의 눈물을 마셨다.  그리고 마침내 녀자는 간호원 여러명이 달라붙어 분쇄성골절을 입은 팔에 딱딱한 석고를 마구 댈때처럼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안마원 아크릴간판의 네온사인은 꺼져있었고 두꺼운 커튼을 뚫고 새벽의 빛이 간신히 스며들고 있었다.    해피 투게더   “해피 투게더”라는 커피점이라고 했다.   그집에서 뜨거운 우유를 곁들인 카페라떼를 잘 만들었고 그래서 딸애가 잘 다닌다고 했다.  행복은 그야말로 칡넝쿨 한가닥에 의지해 낭떠러지에 간신히 붙어있다가 구원의 큼지막한 손을 부여잡은듯한 심경이였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넣어보려 했는데 처제의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딸애가 외지에서 돌아왔는데 만나겠다는것이였다.  기쁨에 겨워 손을 휘젓다가 찔러오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 기뻐서 하늘로 박차오를듯 하는 그녀를 전화부스속의 아낙이 못볼것을 본듯한 눈길로 내다 보았다. 안마원의 “황금의 발” 네온사인이 꺼지고 날이 밝을때까지 온 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  막상 아침이 오자 깜박 잠이 들었고 파아란 교복을 입고 귀가에 단발머리 찰랑이는 딸애가 멀리서부터 뛰여오자 홍소를 터뜨리며 맞아 달려가는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였다. 이번에는 또 점심때가기다려졌다. 딸애를 만날수 있다는 복음을 듣고 시가지로 나가서 리발을 하고 면도를 했다.  새 점퍼 하나를 사입고 구두도 새로 사 신었다.  두살배기, 입가에 밥풀 가득 묻힌 채 숟가락을 허공에 휘저으며 밥상앞에서 그날따라 신나하던 애를 처제의 집에 두고 집을 나서서는 16년만에 처음 보는 딸애, 그 딸애앞에 정갈하고 멋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깁스를 한 팔을 얼굴을 찡그려가며 겨우 소매에 밀어  넣었다. 목에 붕대를 해 걸지 않았다.  “행복하세요” 안마원 주인장이 문밖까지 따라나오며 어제까지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지만 오늘은 유난히 행복해 보이는 행복을 향해 손을 저어주었다.  그래 행복해야지… 짐짓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커피점에 들어섰다.  어쩌면 커피점 이름도 “해피 투게더”인 커피점은 도시복판 건물의 13층에 있었다.  엘레베이트에서 내려 연신 머리를 매만지며 “해피투게더”라는 상호가 새겨진 유리문앞에서 행복은 마주섰다. 쌍방망이질 하는 마음을 다잡았다.  유리문에는 예쁜 손글씨로 쓴 커피메뉴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지만 그 사이로 커피점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앉은 처제가 보였다. 그러면 처제와 마주 앉아 문쪽으로 등을 돌린 쪽이 딸애일것이다.    행복은 심호흡을 길게하고나서 액세사리로 꾸민 문손잡이를 잡고 안으로 밀었다.  향긋하면서도 알싸한 커피향이 훅 끼쳐왔다.  이때 딸애가 일어섰다. 카운터쪽으로 가서 금방 내린 커피를 손수 받아왔다.  처제가 문가에서 문칮거리고있는 행복을 보아내고 손짓했다. “어서 오세요” 그리고 커피잔을 내려놓는 애를 향해 말했다. “왔다. 저기 네 아빠가 왔어” 이모가 턱짓을 했고 딸애가 머리를 돌렸다. 드디여 딸애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쪽을 향해 디밀던 행복이의 발길이 난딱 멈추어졌다.  얼음채찍에 맞은듯 순식간에 얼어붙은 표정으로 남자는 무엇을 보았던가! 장발에. 흑옥같은 눈동자에, 멀미날듯 하얀 피부를 가진 열예닐곱살 딸애, 웃음을 지을가 말가 주저하는 그애의 코의 왼편 언저리에 아래우로 박혀있는 두개의 짐을 그는 분명 보았다.  어떻게 13층 높이에서 비상구 계단으로 단숨에 달아내렸던지 행복은 몰랐다. 계단의 손잡이를 부여잡고 깊은 수면속에서 헤여나온 사람처럼 헐떡거렸다.   공사현장에서 전동드릴을 처음 잡았을때처럼 전신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두 손으로 올올이 잡아뽑을듯 머리칼을 으득부득 부여잡았다. 으으윽,  목구멍에서 괴상한 신음이 새여 나왔다. 이어 그 신음은 그악한 악성(惡聲)으로 변조되여 갔다.  아아악,  피를 뽑는듯한 절규를 뽑으며 남자는 깁스를 한 팔을 들어 사정없이 벽을 후려쳤다.  석고의 파편이 튀였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다시 부러져 너덜거리는 팔을 부여잡으며 그자리에 주르르 주저앉아버렸다. 통증이, 쓰나미같은 거대한 통증이 팔에서부터 심장으로 서서히 번져 나갔다. … … ... ...   “도라지" 2015년 6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2    원죄(原罪) 댓글:  조회:2635  추천:40  2015-09-22
(김혁 소설 중문으로 읽기) ​ 中篇小说      原 罪    原著: 金   革 译者:沈胜哲   1.      案子的负责人是吴警官。      吴警官的警察生涯也将近13个年头了,可他还头一回碰到这种家伙。  即使那些块头大的家伙,只要迈进派出所审讯室的大门,面对威严的警官,也免不了要垂头丧气。可是,两天以来,这个小家伙连嘴都没张一下。无论谁去问话,他都紧紧地闭着嘴,用冷酷的沉默来表示抗议。真是个另类!      那个极度轻率和没皮没脸的孩子坐在铁椅子上,若无其事地望着这边。看到吴警官走进来,那孩子调整了一下坐姿。      吴警官拽过椅子坐在他的对面,用低沉的声音问。  ——为什么?      孩子望着吴警官,没回答。孩子显得很疲倦,可是眼神还很亮。吴警官又问了一句。  ——为什么?      孩子直勾勾地盯着吴警官,迫不得已地答道。  ——不为啥。      吴警官大声问。  ——我问你为什么?  ——不为啥。      吴警官气呼呼地掏出香烟叼在嘴里,打火机怎么也点不着火,他把打火机撇到一边。吴警官一下子扑过去毫不留情地打了孩子的耳光。一边打一边怒吼。  ——我穿警服都快13年了,还头一回看到你这样的家伙。我们所里有规定,不准打犯人……但是……你这小畜生。我就是挨罚也不能饶了你这不要脸的狗东西。饶不了你!     几位警官进来拉开了吴警官。  ——算啦。算啦。吴警官。      孩子用直勾勾的眼神抬头看着吴警官,脸肿得像个刚出锅的馒头。      吴警官气喘吁吁地回到办公室,重新拿起了值班警官做的记录。      绰号:“张国荣”      性别:男      年龄:16岁      某校初中3年1班      犯罪经过:杀人    2.      正在播放早间新闻。      煤气台上火苗正旺。      菜刀在砧板上飞舞。      辣白菜汤正在翻滚。     电饭煲里冒着热气。      用饭勺盛好了米饭。      从冰箱里拿出泡菜。      整齐地摆好了碗筷。  熟练地做完这一切,望着餐桌的人是爸爸。  爸爸在围裙上擦了擦手进了卧室。  卧室的墙上贴着香港明星张国荣的照片,国荣趴在那里还在酣睡。爸爸拍拍孩子。  ——国荣啊,国荣!太阳都照屁股啦。迟到了,可别怪爸爸呀。    3.      每天早晨为了赶上学时间,家里就像发生了战争。国荣推着自行车急急忙忙走出院子,爸爸追出来塞给他两瓶酸奶。  ——不要,我又不是小孩子。  ——拿着。第三节下课的时候把它喝了,对身体有好处。      国荣很不情愿地接过来跨上了自行车。骑了几下以后,回头看了一眼,发现爸爸还在守望着自己。      骑到十字路口国荣停下来,从口袋里掏出那两瓶酸奶,整齐地摆在路边的垃圾箱上。      然后,跨上自行车飞奔而去。    4.      派出所。      一个端庄文雅的女学生坐在那里。梳着长辫子的女学生显得坐立不安犹犹豫豫地开了口。  ——他本来是个好孩子。      女学生说着说着发出抽泣声。      吴警官看了一眼打印出来的女学生的证词。        绰号:“录像公主”      性别:女      年龄:16岁      某校初中3年1班    5.      大白天,录像带出租屋里空荡荡。“录像公主”坐在窗边正整理还回来的录像带。      吊在门上的风铃发出清脆的声音。国荣手里拿着录像带走进来。看到国荣,“录像公主”的脸上露出了灿烂的微笑。  ——这么快就看完了?  ——嗯。  ——还接着看不?  ——嗯。        国荣不情愿地答道。  ——你的兴趣也太特别了吧。别的男孩子都喜欢看成龙的功夫片……像个女孩子似的,看什么《冬日恋歌》呀?!哎,我给你推荐最有意思的。《魔戒3》到货了。      “录像公主”从货架上找出录像带递过来,国荣一边付帐,一边摇摇头。  ——还是接着看原先的吧。      “录像公主”推开国荣的手。  ——收起来吧。同学之间还……      国荣把钱扔到柜台里。走到门口,回过头说了一句。  ——其实,这个录像带不是我看的。  ——那是谁?  ——我爸。    6.      录像带出租屋的前面有一家“足道馆”。前一阵子,流行了一段按摩院。最近,好像人人得了脚气,又流行起足道馆来了。      拎着录像带的国荣停在“足道馆”前面。      迎着耀眼的阳光望过去,女按摩师正在往晾衣架上搭着白毛巾。      晾衣架上还有一件乳罩。      女按摩师脚上的拖鞋,就像一伸一缩的舌头被拽来拽去。湿漉漉的脚丫子触到拖鞋的时候,传来了滑溜溜的轻快节奏。      按摩师刚转过身就和国荣的视线碰到了一起。国荣惊慌失措地转过脸,装出一副若无其事的样子。      晾完毛巾,按摩师蹲在“足道馆”门前的台阶上,掏出一把瓜子嗑起来。      转过胡同口,国荣立刻就像只猫似的贴在墙壁上,偷偷地望着按摩师的容貌,简直看入了迷。国荣的耳畔传来清脆的嗑瓜子的声音。      接近中午时分,坐在阳光下的女人,看起来就像散发光彩的光环。    7。      爸爸是个看录像的狂热分子。每天大部分时间都花费在看录像上。……韩国电视连续剧。今天也不例外,一边看着早已过时的连续剧《冬日恋歌》,一边流着泪。      看到国荣从自己的房间里出来,爸爸偷偷抹了一下眼角。  ——爸爸,别再看了。  ——咋啦?  ——你就非得看那个过时的《冬日恋歌》?  ——你们不懂。多好的电影啊。别说……南朝鲜人拍的电影还真不错。  ——那以后,再也别叫我去换录像带啦。  ——还不是因为那家出租屋是你的同学家开的吗?!就那个叫什么“录像公主”的孩子。  ——要看,就换个别的吧,也不怕别人笑话。      爸爸的眼睛还是离不开电视画面。国荣拿起遥控器关掉了电视。回卧室的时候,还故意用力哐当一声关上了房门。  ——嘿!臭小子,这脾气,真是……      爸爸重新打开电视,把录像带倒回来继续看起来。      8.  派出所。  一个戴着耳麦的孩子坐在那里。也许是音乐太带劲了,孩子在晃着头,还不时地摇动着身体。  直到警察过来拍了一下他的肩膀,孩子才慌忙摘下耳麦。  ——他本来不是坏孩子。      吴警官拿起了打印好的记录。        绰号:“舞王”      性别:男      年龄:16岁      某校初中3年1班      9.      国荣经常跑到房顶上去。      他喜欢那里。但并不是因为在那里可以俯瞰全市的风景。虽然小了一点,那里是国荣和同伴们的秘密联络地点。      国荣和“舞王”他们在嘈杂的音乐声中跳着街舞。      孩子们的舞姿好像一只只飞向天空的小鸟。从手指到肩头的曲线像波涛在荡漾。这种街舞虽然不需要特殊的技巧,只要随着节奏摆动身体就可以,但是,孩子们的脸上仍旧显露着某种韵味。      连续跳了几个曲子,累得他们汗流浃背。孩子们靠在屋顶的栏杆上喝着罐装可乐,抽起了香烟。  ——照这样下去,这个学期的街舞大赛咱们一定能拿名次。      一个倒三角脸型的孩子冲着国荣举起了拇指和食指。      那个长得像猫脸那样饱满,充满傲气的孩子,就是“舞王”。  ——国荣,你真棒!进步很快。      别说是在小组里,就是在全校,“舞王”的街舞实力也是出了名的。能得到他的认可,这说明自己的实力也不一般了。国荣非常得意。  ——我是谁啊?是张国荣啊。看名字就知道有艺术细胞,不是吗?!      有一个同伴挤眉弄眼地说。  ——所以,你叫国荣啊?可是,我听说你爸爸被国营公司炒了鱿鱼,所以,给你起的名字是国营啊!        孩子们笑得把嘴里的可乐都喷了出来。长得贼眉鼠眼的家伙,还有那个做倒立挫了脖子,现在还缠着石膏绷带的家伙总是那么可恶。  ——不管怎么说,国荣他家,有他妈从韩国汇钱回来,还开了一家足道馆,净是好事!      又一个同伴补了一句。  ——妈的,又是足道馆呵?都一家挨一家了。  ——这个地方的人,除了开酒吧还会什么呀?去韩国赚了大钱,回来就知道开酒吧,要不就是桑拿和茶座。      “舞王”冲着国荣问。  ——你妈出国几年了?  ——第6年了。      回头又问了脖子上缠着石膏绷带的小子。  ——你呢?你妈是不是更早?  ——差不多7年。爸爸和妈妈一起去的,是我上幼儿园大班的时候出去的。怎么办好呢?我现在都想不起来他们长什么模样了。      这些话引起了共鸣,孩子们你一句我一句,乱成了一团。  ——打电话的时候,怎么哀求也不回来。  ——再忍几年吧。等妈妈挣了大钱回去咱们就能过上好日子了。总是这么说。  ——挣大钱又能怎么样?该在的时候不在,到那时也许就用不着妈妈了。  ——啥叫孤儿啊?这就是孤儿耶。      “舞王”的语调提高了八度。  ——我们的父母都应该好好反省了。      国荣自言自语地嘟囔道。  ——这么说,凑到一起的我们,是一群受伤的小鹿阿。  ——所以,组长给咱们组起了那么带劲的名字啊。“屋顶上的迷路儿”。  ——起得好。      孩子们这么一说,“舞王”神气地说。  ——我呀,除了跳舞还懂啥呀?没有街舞就是个躯壳。      这些孩子们为了马上就要举行的街舞大赛赌上了一切。可是,“舞王”却突然垂头丧气地说。  ——我在想管他什么大赛不大赛的,干脆都放弃算啦。  ——喂,组长,你又怎么了?  ——其实,我姨最反对我跳舞了。  ——为什么?你姨不是对你挺好的吗?  ——好是好,再好还能比得了父母吗?名头还是个老师呐,每句话都离不了警告。警告!嗓门活像个警笛。警笛!我为什么非得让我妈和我姨捏来捏去呢?嗯?真他妈不想回家。真想在网吧包月住在那儿。妈的。  ——行啦。别净扯那些没用的,说点正经事儿吧。  ——喂,你们听到“愤怒的酱曲”那个组,说什么了没有?他们在练什么?  ——不是爱情,就是离别,还能有什么呀?  ——所以,咱们要么选最激情的,要么选最新式的。妈的,爱情真让人讨厌。拉倒吧。  ——离别,更烦人。      国荣嘟囔着顺着组长说。  ——好。咱们再练一次。      孩子们重新投入到了街舞当中。屋顶变成了狂热的舞台。      音乐突然消失了。      一个结结实实的女人掐着腰站在屋顶的入口处,正虎视眈眈地盯着他们。孩子们的目光一起朝着“舞王”看去。      脖子上缠着石膏绷带的小子悄悄地对孩子们说。  ——把耳朵捂住。警笛要响了。      从屋顶发出的划破天空的高音,震动了整个小区。  ——哎哟,这帮小子!不好好学习,都跑到这里来啦!你们的父母为了你们,在韩国拼死拼活地干活,可你们……    10.      国荣拎着替爸爸换回来的录像带,走到“足道馆”门前,不知不觉地停下脚步。      袒露胸背的按摩师正在晾毛巾。每当她弯腰的时候,都会露出那优美的前胸。      国荣呆呆地望着那光景。      按摩师晾完毛巾蹲在“足道馆”门前的台阶上,掏出一把瓜子嗑起来。        按摩师的目光和躲在房角偷看的国荣的视线碰到了一起。清澈的目光和高高的鼻梁活像一幅从时尚杂志上撕下来的画。她的目光犹如清爽的露珠朝着国荣飞来。国荣吓得拔腿就跑。    11.      漂亮的按摩师姐姐总是蹲在“足道馆”门前的台阶上嗑瓜子。      姐姐把瓜子扔到地上。然后,念起了咒语。      葵花长得飞快,很快超过了屋顶,开出的花覆盖了整个房盖儿。      按摩师姐姐围着葵花跳起了非常性感的舞蹈。      国荣躺在花盘上欣赏着舞蹈。      ——国荣啊,国荣啊,快起来,吃饭啦……      传来了爸爸那铜钟般的呼声,太遗憾了,原来是一场梦。      按摩师姐姐总是浮现在眼前,国荣已经无法摆脱对按摩师姐姐的思念了。    12.      一个长得敦敦实实的孩子被传唤到派出所。  ——他怎么会干那种事儿呢?他是个好孩子啊!      吴警官看了一眼打印好的证人身份记录。      绰号:“巧克派”      性别:男      年龄:16岁      某校初中3年1班    13.      “巧克派”坐在电脑前,国荣站在旁边。“巧克派”嚼着巧克力派摆弄着电脑。握着鼠标器的小胖手移动起来异常灵活。      屏幕上出现了长白山天池的全景和国荣的脸庞,然后是一位中年妇女的面容。  ——这是我妈。是个大美人。      “巧克派”正在用软件合成照片,国荣站在旁边感慨地说。  ——用妈妈汇来的钱旅游,去了长白山,可不知怎么回事,没看到天池。      后来,作文得了大奖,又有了一次机会,可还是没看到天池。天公老是不作美。别人都到天池照全家福,多有意义啊!可我……      “巧克派”在全神贯注地操作着,国荣把巧克力派的包装纸撕开递给了他。国荣和妈妈以晴朗的长白山天池为背景的合成照片终于完成了。      国荣兴奋不已。虽然是合成的,但是,他觉得这张照片足以让整个房间充满温馨。  ——你真是个天才。你赶上比尔盖滋了。晚上我请客,吃羊肉串儿。    14.      桌上摆着比任何时候都丰盛的菜肴。国荣的爸爸和一个老头儿正在对饮。      爸爸毕恭毕敬地拿起酒瓶。  ——金校长,孩子就拜托了。      那个叫金校长的老头儿是从乡下进京来的“巧克派”的爷爷。老头儿哈地一声,蛮有滋有味地干了一杯。  ——什么校长,就叫我胖墩儿他爷爷吧。学校早就关门啦,我这个校长已经有好几年没事可干了。      这回轮到老头儿敬爸爸了。  ——谢谢你,把孩子交给我这样的老朽,来,我敬你一杯。      爸爸的脸上泛起了一丝歉意。  ——我原来就滴酒不沾。就用这个……      国荣的爸爸拿起了酸奶。以酸奶代酒喝了一杯之后冲着客厅喊道。  ——国荣啊,你来敬一杯。金校长答应做你的家庭教师了。        开始的时候,说好只喝一杯。结果,一杯一杯,一直喝到了酒瓶见了底儿。爸爸和国荣搀扶着酩酊大醉的老头儿,把他送到了家。  ——虽然是在农村学校,可他有好几个学生在“奥数”得了奖。话又说回来……他什么都好,就是太贪杯。      回家的路上,爸爸对国荣说。    ——交给学校的钱就够多的了。怎么还请家庭教师啊?      国荣有些内疚地说。爸爸慈祥地望着国荣说。  ——这是你妈的意思。所以你要好好学习呀。      国荣犹豫了一下,开口说。  ——爸爸,我……买自行车行不行?  ——你不是有自行车吗?还能骑呀。  ——不是那种老古董,我想要别的孩子都骑的那种。  ——快走吧。太晚了。  ——买?还是不买呀?  ——再说吧。    15.      早晨。      国荣拖着自行车离开了家门。      爸爸追出来塞给他一样东西,又是酸奶。  ——不要。  ——拿着。第三节下课的时候把它喝了,对身体有好处。      骑到十字路口,国荣停下来从口袋里掏出两瓶酸奶,整齐地摆在路边的垃圾箱上。      捡破烂的老头儿喜出望外地赶紧把酸奶装进口袋里。    16.      “录像公主”被吴警官叫到了派出所。  ——他好像有点不太喜欢他爸……不太清楚。他是抱怨过:爸爸老是看录像。    17.      录像带出租屋的霓虹灯亮了。      国荣拎着录像带靠在窗户边往里张望。      “录像公主”独自一人坐在那里看书,国荣立刻走进去。听到清脆的风铃声,“录像公主”抬起头,国荣拿出了录像带。  ——看完了?有意思吗?  ——不知道。  ——接着看不?  ——嗯。都看三回了。走火入魔了。就像女人似的。      看到国荣气呼呼的样子,“录像公主”偷偷地笑了。  ——你怎么总是一个人呵?你妈去哪儿了?  ——我妈身体不太好。再说,在这么狭窄的地方坐一天,该多难受啊?!所以我想帮帮她。  ——你爸在韩国不是挺能挣吗?别让你妈干了。最近,录像带的生意好像也不怎么好。  ——这是我妈的意思。她常说爸爸在韩国那么辛苦,我也不能白吃饭呐。累是累了点,可还是能赚出妈妈那一份儿。      国荣叹了一口气。  ——比我爸强。      “录像公主”反驳道。  ——你爸咋啦?对你不是挺好吗?  ——你不懂!      国荣莫名其妙地冷笑一声。他缓慢地环视了一会儿室内,然后问道。  ——你一个人不害怕吗?以后,每天晚上我来给你做伴儿怎么样?  ——别瞎操心。我没事儿。      国荣拿起录像带掏出钱。  ——行了。拿去看吧。  ——不是我看的。是我爸的钱。      “录像公主”差点笑出声来。  ——真是。一家人还分什么你的我的呀  ——你说得对。其实,都是我妈的。我爸做什么了?      门上的风铃发出了清脆的声音,“录像公主”的妈妈走了进来。  ——国荣来啦?这回成我们家的回头客了。        妈妈兴冲冲地从架子上选了一盘录像带递给国荣。  ——什么呀?  ——是新出的电影。拿去给你爸爸看吧。叫什么《天国的阶梯》,你爸爸一定喜欢。      国荣在犹豫。  ——拿去吧。这是免费赠送的。      国荣皱了一下眉头。  ——哎哟。有这么多人在旁边接济,怪不得爸爸拿录像当饭吃呢。      “录像公主”的妈妈笑了。  ——我倒是喜欢他们。有这些人,我们才能混饭吃啊。国荣啊。你怎么总想挑你爸的毛病呢?这可不好。爸爸也有自己的难处。      国荣紧闭着嘴,弯腰鞠一躬,径直走出大门。    18.      按摩师姐姐正在晾毛巾。      国荣愣愣地望着那光景。      按摩师晾完毛巾,仍旧蹲在“足道馆”前面的台阶上,掏出瓜子嗑起来。      按摩师的目光和躲在房角偷看的国荣的视线碰到了一起。国荣吓得拔腿就跑。按摩师像只野猫,忽地一下站起来追过去。  ——站住!站住!还不给我站住?      姐姐身上好像长了翅膀跑得飞快。跑到小区的空地,国荣实在是跑不动了。按摩师姐姐抓住国荣的胳膊,气喘吁吁地质问。  ——是不是你?      国荣一下子糊涂了,不耐烦地反问。  ——啥?啥呀?  ——你还想装蒜?走!找你父母去,走!  ——为什么呀?我作错什么了?  ——走。到你父母那儿再说。      背后响起了沙哑的声音。国荣的爸爸站在那里。  ——我是他的父母。什么事儿?      按摩师姐姐突然瞪大了眼睛。  ——妈呀。房东!      按摩师姐姐好像是在观看网球比赛,目光在国荣和爸爸之间扫来扫去。  ——这么说,他是您的孩子啊?      到了足道馆的接待室,按摩师姐姐从冰箱里拿出凉爽的杏仁饮料来招待爸爸和国荣。      按摩师姐姐不知所措地说。  ——其实……就因为我晾的东西老是被人偷。      爸爸提高嗓门说。  ——这么说,你把我家孩子当成了专偷女人内裤的变态狂了?  ——不,不是。是这样的,这孩子看到我拔腿就跑,所以……      姐姐百思不解地嘟囔着。        姐姐被爸爸折腾的样子,国荣看在眼里急在心上。      爸爸站起来慢悠悠地说。  ——别冤枉人家的宝贝孩子,还是快交房租吧,算起来……已经超了半个月啦。      姐姐轻轻地拍了拍跟在爸爸后面的国荣的小脸蛋,压低嗓门悄悄地说。  ——sorry(对不起),sorry。      国荣美滋滋地捂着脸,脸上热乎乎的。    19.      “巧克派”的爷爷饶有兴致地问国荣。  ——看你喜欢作作文,是不是想当文学家呀?  ——不是,随便写的。    ——那你喜欢什么?  ——街舞!      国荣异常兴奋地说。  ——过几天有一场街舞大赛,取上名次的小组,会被邀请去韩国访问。  ——去韩国是你的愿望?  ——不,不是为了旅游,到了韩国不是能见到妈妈吗!      国荣那充满憧憬的眼神在台灯下显得特别明亮。老头儿摘下老花镜,望着国荣的脸庞陷入在沉思之中。      辅导结束后,老头儿正要出门,爸爸递给他一个小纸袋。  ——这是什么?  ——不好意思,买杯酒吧。对我家孩子那么好。  ——你以为我是冲着钱来的吗?  ——儿媳妇怕我自己在乡下寂寞,把我请到这里来。老实说,在这冷漠的城里人当中,我该多难熬啊,我呀,就是为了开心。      爸爸犹豫一会儿,把老头儿让到了厨房。  ——那就喝一杯再走吧。      老头儿脸上露出了喜色。  ——嗯,这个建议不错!      没过多久,老头儿就有了醉意。不能喝酒的爸爸只能在旁边摆弄着酸奶瓶小心应酬。      老头儿醉醺醺地磨叨着。  ——那是有50年历史的学校啊。我是最后一任校长。我从年轻的时候就一直在那儿,有感情啊……  ——说起来也真是……村里建的学校早已成历史了。       老头儿突然提高了嗓门。  ——庚申年大讨伐时,被日本鬼子烧成了废墟,是我们重新建立起来的学校啊。      老头儿颤抖着干了一杯。  ——在那日本鬼子的镇压下,我们的教育热情也没减退过。为什么现在到了这种境地了呢?嗯?老头儿激动得想再来一杯,国荣的爸爸劝道。  ——有点多了。校长,今天就到这儿吧。  ——校长?      老头儿吐出苍凉的笑声。  ——连个学校都保不住的家伙,还算什么校长?就叫胖墩他爷爷吧。心烦啊!只能喝点这东西了。      喝一杯以后,老头儿突然唱起了校歌。      白云飘飘的山冈下      小小的瓦房多典雅      培养民族精神的母校……        “巧克派”进来了。拽着爷爷说。  ——别喝啦。身体又不好。      回头又冲着国荣的爸爸刺儿一句。  ——我妈说别再劝爷爷喝酒啦。        国荣和“巧克派”正要扶起爷爷的时候,老头儿卷着舌头嘟嘟囔囔地说。  ——真是有了感情,那个学校……    20.      “舞王”在回答吴警官的提问。  ——因为爸爸不给买自行车,他是发过火。可是……    21.      晚自习总是那么晚才结束。尽管如此,朝气蓬勃的孩子们还是说说笑笑地走出了校门。      国荣和“录像公主”并排推着自行车出了校门。看到他们亲密的样子,同学们吹着口哨擦肩而过。      笑眯眯的国荣突然停下脚步,回头看了看。国荣的爸爸扶着自行车站在那里。      “录像公主”急忙走掉了。国荣朝着爸爸走过去。  ——不让你来,怎么又来了?我又不是幼儿园的孩子。  ——那也是,深更半夜的,危险。    ——有啥危险的?      虽然国荣不耐烦,爸爸还是很高兴。  ——快走吧。我做了一大堆好吃的,得给我儿子好好补一补。      国荣也不管爸爸,飞快地骑到前面。爸爸吃力地追上来说。——有谁追你啊?慢点骑!别摔着!      国荣偷偷地看一眼爸爸。  ——爸,我们打赌好不好?看谁骑得快。我要是赢了,您得答应我一件事儿。  ——什么?  ——给我买自行车。      爸爸想了一会儿,答应了。  ——好,不过……我要是赢了,也有个要求。  ——什么呀?  ——期末考试你得进前10名。  ——那就这么定了。      在夜深人静的大道上,两个人拼命地蹬着脚踏板。      国荣刚刚骑到前面,爸爸马上追了上来。两个人你追我赶,不亦乐乎。      在明亮的路灯下,两个人的笑声洒满了街道。    22.      国荣骑着崭新的自行车飞奔在大道上。      国荣的新自行车超过了摩托车。      又超过了小轿车。      所有人的视线都集中到国荣身上。      国荣得意扬扬地骑着崭新的自行车。      自行车的轮子离开车体飞向天空。      从梦中醒过来,发现院子里放着一辆自行车,爸爸终于买来了自行车。      可是,国荣刚刚上翘的嘴角,一下子垂下来了。      看到爸爸正在拿着抹布仔细地擦车的样子,国荣忍不住大声喊道。  ——谁让你买别人骑过的二手货来着?      爸爸继续擦着自行车。  ——这和新的没什么两样。      因为和自己梦想中的款式相差太远,国荣哭丧着脸委屈地说。  ——现在自行车多便宜啊,简直就是白给,白给!都知道咱家有钱,还骑二手货,我这面子往哪儿放啊?  ——那倒是……可钱这东西,省着点用没坏处。再说,这钱挣得多不容易啊。都是你妈在外国用血汗换来的呀!      爸爸说得很坚决。国荣无可奈何地拖着自行车出了院子。爸爸追出来硬是塞给他两瓶酸奶。      国荣骑了一会儿,停下来从口袋里掏出酸奶,整齐地放在路边的垃圾箱上。      捡破烂的老头儿又把酸奶装进自己的口袋。    23.      竭尽全力跳了一阵子街舞的孩子们,胡乱擦一下脸上的汗水,靠在屋顶的栏杆上抽着香烟。      国荣朝着“舞王”伸出手。  ——给我也来一支。  ——奇了怪了。今天是怎么了?不用换尿布了?      国荣笨手笨脚地抽了一口。      “舞王”担心地问。  ——出什么事儿啦?      国荣被烟呛得咳嗽了好一阵子,气得他把香烟使劲摔在地上。  ——真气人。  ——怎么了?说吧。咱们“屋顶上的迷路儿”之间还有什么不能说的?      国荣气呼呼地说。  ——就那个,我爸,你说,我让他给买自行车,结果买了一辆别人骑个臭够的二手货。    ——你们家又不是救济户,凭什么呀?      脖子上缠着石膏绷带的哥们插一句。  ——也许是从捡破烂老头儿手里转手的呐。  ——谁知道。我爸,真不可思议。      国荣的舞伴也磨叨一句。  ——也许你爸交不上录像费了吧?      孩子们笑得前仰后合。国荣冲着脖子上缠着石膏绷带的家伙,狠狠地瞪了一眼。      “舞王”换了个话题。  ——行了。停!再练一遍最后那段,妈的。趁我姨那个警笛还没响。      嘈杂的曲子震荡着屋顶,孩子们又开始了街舞的排练。      舞伴总是嬉皮笑脸地看着国荣,忍无可忍的国荣扑过去打了他一拳,舞伴也毫不示弱,两个人互相拽着脖领子在地上滚来滚去。孩子们跑过来分别拉开了他们俩,一时间,屋顶变成了阿修罗斗场。    24.      院子里洒满月光。月光下国荣脸上明显地露出了伤痕。手里不知是什么在闪着青光,原来是水果刀。      国荣用水果刀扎向自行车轮胎。      气喘吁吁地疯了似的扎向轮胎。      扑哧一声,轮胎撒了气。      国荣咬牙切齿地怒视着自行车。        可是,第二天早晨发现,不知什么时候爸爸已经把自行车恢复了原状。      国荣扔下自行车一瘸一拐地走出大门。他是在屋顶上和缠石膏绷带那小子闹着玩儿的时候崴了一下。      爸爸推着自行车追了出来。      国荣钻进出租车。      爸爸望着远去的出租车叹着气,从口袋里掏出两瓶酸奶。    25.      下午,在温暖的阳光下,按摩师姐姐蹲在“足道馆”前面的台阶上嗑瓜子。      脸上带着伤的国荣一瘸一拐地出现了。按摩师姐姐用手势叫住他。国荣犹豫一下走了过去。      按摩师姐姐递给他一把瓜子,国荣尴尬地接在手里。姐姐用手势让他坐下,国荣不自然地坐到姐姐旁边。  ——上次,真对不起。      按摩师姐姐凑到国荣跟前看了半天,就像发现了新大陆似的说道。  ——哎哟,这么一看,你长得还真像你爸爸呀。      按摩师姐姐发出银铃般的笑声,可是她身上的汗臭味儿熏得国荣喘不过气来,他憋着通红的脸,低头嗑瓜子,可也没忘记反驳姐姐。  ——不,我像我妈。  ——真像你爸爸。你看这眼睛,这嘴。  ——不,我不是告诉你了吗?!我像妈妈。      国荣大声说。按摩师姐姐吓了一跳。她觉得很有趣儿,就接着问。  ——怎么了?说像爸爸你不高兴?      国荣吐了一口瓜子皮,把话题一转。  ——生意好吗?”足道馆”      按摩师姐姐叹一口气。  ——能好吗?到处都是按摩院。连房钱都挣不出来啊。你爸爸还总说:小娘们不知天高地厚瞎投资,自己赔钱不说还让别人跟着倒霉。      国荣用同情的目光望着按摩师,看到她的眼睛马上低下头。  ——你脸怎么了?打架了?  ——没。  ——肯定是打架了。对不?让我看看你的脚,我看你瘸得挺厉害。来,跟我来。      姐姐把国荣拽进足道馆。      封闭的足道馆的房间。        姐姐不顾国荣的反对把他按在床上,抓住脚脖子做起了按摩。姐姐的手刚碰到脚脖子,国荣的心脏就莫名其妙地跳起来。      姐姐的手就像是在为患病的亲人洗澡那样即小心又充满深情。      姐姐的身上散发着一股密林深处特有的松树的香气。每当闻到这种香气的时候,国荣都觉得恍恍忽忽。  ——我的手可是神手啊。就靠它吃饭呐……      这时他才注意到姐姐穿的是微微飘动的睡衣。露在外面的皮肤洁白无暇,就像皮球那样富有弹性。而且,还不时地能从领口处看到前胸的轮廓。      国荣慌忙转过头去。不知所措的目光在地面上徘徊。他看到了密匝匝地镶嵌在地上的正方形纹理,觉得它非常漂亮。      房间里一片寂静。国荣讨厌沉默,便开口问道。  ——怎么办啊?  ——什么?  ——生意这么不好。  ——是啊,我又没有路子,长得又一般。所以……  ——不,挺漂亮的。  ——……所以,以后实在不行,就只能嫁到韩国去了……      姐姐抬起头看着国荣问。  ——我漂亮吗?      国荣使劲点了点头。  ——你觉得我这长相,韩国老头儿能要我吗?      国荣一激灵,像是被马蜂蜇了似的。    26.      国荣就像上必修课似的又来到了录像带出租屋。“录像公主”独自一人正在看录像。  ——又是你一个人?  ——嗯,妈妈去亲戚家了。明天舅舅要去韩国。  ——韩国,韩国,又是韩国?都疯了。真是。      近来,出国成了人们茶余饭后的主要话题,国荣讨厌地讽刺了一句。“录像公主”盯着电视画面问。  ——今天借什么?《天国的阶梯》,你爸看完了吗?  ——不知道。从今往后,我再也不替他跑腿了。      录像公主装出一副惋惜的样子。  ——哎哟,那我家就该少一个回头客了。      国荣望了一眼一直吸引“录像公主”的画面。  ——自己看什么呢?  ——嗯,是韩国电影《假如爱有天意》。  ——音乐片?  ——不是,爱情片,悲剧。  ——最近,这帮导演怎么总是拍这种电影啊?这么好的日子,非得让人流泪才痛快呀?好像谁欠了他们眼泪似的。  ——你这一辈子,就不流泪呀?  ——当然,男人宁可流血也不能流泪!好像是哪个名人说的。  ——我可好哭。      她这么一说,“录像公主”的眼圈红红的,真像是涂了一层粉红色的眼影。  ——女孩子嘛。      “录像公主”用遥控器关了电视。一边倒着还回来的录像带,一边回忆着过去。  ——我爸出国的时候,我哭了好长时间。  ——妈妈走的时候,我可没哭。      “录像公主”望着国荣。  ——你怎么那么狠啊?  ——不是狠,那时候我太小,还什么都不懂。不管怎么说,我不会哭。就是爸爸死了我看也不会。  ——你这小子,真坏。      国荣突然压低嗓门儿神秘地问。  ——诶?有那个吗?  ——什么?      国荣的嗓门儿压得更低了。  ——那种带子。        “录像公主”糊涂了。  ——什么叫那种带子?      国荣的脸上泛起一丝诡秘的微笑。  ——你不懂?A级片。      “录像公主”轻轻拍一下国荣的肩膀。  ——疯啦,疯啦!这家伙今天是怎么了?  ——人家都说,哪家出租屋都藏几盘那种带子,专给回头客看。  ——我们家可没有。      她断然地大声说。然后,认真地问。  ——如果有,你想看啊?      国荣点点头。  ——嗯?想看?      还有这么厚脸皮的家伙?“录像公主”瞪大眼睛盯着国荣摇了摇头。  ——你可真是,别那样。别人该嚼舌头了。人家该说你,妈妈不在跟前孩子都学坏啦。      国荣满脸不高兴的样子。      “录像公主”想换个话题打开了录像。  ——提高一下你的欣赏水平吧。看这个。真是好电影。能让你知道什么是真爱。      国荣不得已装出看录像的样子。这时画面上出现了接吻的场面。长长的热吻。“录像公主”慌忙关掉了录像机。绯红着脸说。  ——太晚了。该关门了。你也回家吧。      说着,“录像公主”开始整理柜台了。国荣徘徊一会儿,也帮忙收拾了一大堆录像带。没想到刚摞好的录像带哗啦一下子撒了一地。  ——你走吧,我自己来。      “录像公主”推了一把国荣,蹲在那儿捡起带子。国荣也跟着捡了起来。两个人互相都感觉到了对方的呼吸。国荣悄悄地把嘴唇贴在“录像公主”的脸上。国荣被一把推开,摔个大跟头。国荣又把嘴唇靠近“录像公主”的脸蛋,这回“录像公主”老老实实地蹲在那里。两个人笨拙地亲着嘴。      墙上的海报进入了眼帘。一张美国电影《随风消逝》的剧照,里面的恋人也在紧紧地拥抱。    27.      国荣骑到十字路口,停下来从口袋里掏出两瓶酸奶。      捡破烂的老头站在垃圾箱旁边。老头看到国荣咧嘴一笑。      国荣把掏出来的酸奶又重新放进口袋。      老头儿脸上的笑容消失了。      国荣骑上自行车飞快地奔向学校。        中午休息时间。孩子们热热闹闹地打开了饭盒。      国荣装作路过“录像公主”的旁边,把酸奶放到她的书桌上。    28.      正在准备晚餐的爸爸紧紧地皱着眉头。让爸爸这么头疼的是那个用来煎鸡蛋的平底锅。掉漆的平底锅看起来就像欧洲地图那么花花绿绿。  ——这个家伙,真是不中用了。      爸爸长长地叹了一口气。看到爸爸因为一个破锅那么苦闷,国荣不耐烦地瞪一眼。爸爸仍在懊悔地嘟囔着。  ——可也是。这是你妈妈用过的呀。是啊,你妈妈出国都已经几年了?      爸爸用塑料布把锅紧紧地包好放到橱柜的最里面。回头看见国荣愣愣地站在那里,无可奈何地说。  ——走吧。今天就到外面去吃一顿吧。  ——上饭店?哎哟,爸爸今天是怎么了?那么小气的爸爸。      爸爸勉强笑了笑。  ——妈妈给汇钱啦。      国荣也跟着笑了。    ——一个月一次,解馋的日子啊。      父子俩异口同声地笑了。可那笑声并不那么开心。    29.      好久没进饭店了,食欲好得不得了。不大一会儿功夫,串羊肉的钎子就堆了一大堆。国荣喝可乐,爸爸喝酸奶。      爸爸嚼着插在酸奶瓶里的吸管说。  ——你知道吗?你妈妈之所以去韩国打工就是因为这酸奶。      还真头一回听说,国荣猛然抬起头。  ——别看我现在是个穷光蛋,过去,咱们家就靠我赚的钱维持的。      爸爸一边把羊肉串儿放到熊熊燃烧的炭火上,一边打开了话匣子。  ——说来话长啊……都怪我呀。爸爸放了高利贷。虽然,你妈妈那么反对。可谁想到借钱的那个人破产了。那个人是干什么的呢……      爸爸高高地举起酸奶瓶。  ——他是做这个的!  ——别说利息啦,那个人连本钱都还不起了。只好用酸奶来顶帐,那时候咱们家堆满了酸奶箱子。后来那个人连夜逃跑了。      说着爸爸又把吸管使劲插进酸奶里,然后拼命地吸起来。  ——后来,我就拼命地喝酸奶。就好像是在吸那个人的骨髓。那个让咱们家遭殃的家伙。      放下酸奶,爸爸绝望地笑着说。  ——可是,在韩国,你妈妈干活的地方又偏偏是酸奶工厂。真是命运啊,命运。      国荣看到爸爸的嘴边粘满了白白的酸奶。冒着青烟的羊肉串儿早已烤焦了。    30.      下雨了。屋顶就像个大浴盆正在接着雨水。      瓢泼大雨中“舞王”好像是在举行祈雨祭祀似的疯狂地扭动着。孩子们都老老实实地看着他。一个孩子走过去摘下他的耳麦。  ——够了。别跳了。到底发生什么事儿啦?这大雨天把我们都叫到这儿,这是干什么呀?      “舞王”抹了一下湿漉漉的脸,吐出了心中的怒火。  ——妈的。让我转学。我姨。  孩子们连声追问。  ——转到哪儿?  ——只要有钱,哪儿不能去?问题是……  ——问题?  ——我姨,就那个“警笛老姨”让我转到汉族学校去。  ——为什么呀?你姨她。      孩子们不知所措地说。  ——现在,上汉族学校的人还少吗?没什么可奇怪的。  ——我们班去汉族学校的就超过10 个人。他们说只有学好汉语,以后到了社会才能有出路。      “舞王”忧心忡忡地说。  ——你们都知道我不会中国话。一说中国话就跑调。  ——是啊。  ——妈的。我除了跳舞,还会什么呀?  ——没办法吗?  ——什么办法?  ——劝你姨的办法呀。  ——谁能说动她呀?那个霸道劲儿。家里还不得乱套啊?妈的,手续都办好了。早就!      “舞王”歇斯底里地叫道。孩子们哑口无言。  ——咋办啊?我咋办啊?还有咱们“屋顶上的迷路儿”。      “舞王”哭丧着脸,抓住孩子们的肩膀一个一个地问。没有我,你们行吗?行吗?      孩子们都低下头,没有一个敢站出来。      有一个人小声说。  ——没有你,我们小组就是个没头苍蝇。      “舞王”沉默了一会儿,重新戴上耳麦跳起来。      疯狂地扭动着,喊叫着。  ——来,过来!和我再跳一回。这是最后一次啦。来,过来啊!孩子们一个一个靠了过去。随着“舞王”在雨中狂舞起来。          “屋顶上的迷路儿”们跳得正欢,雨下得越来越大。      水没过了双脚,没过了大腿,最后,水面上只能看见孩子们的小手在摇荡。      打个寒战坐起来一看,原来是场梦。      狂风暴雨依然在国荣的耳边回响。      爸爸依然如故地坐在对面,呆呆地望着闪着雪花点的电视画面,录像带退出一半……    31.      国荣推着自行车正要出校门,听到有人喊他。      原来是几天前跟他打架的那个脖子上缠着石膏绷带的舞伴儿。这小子手腕上也缠上了绷带。好像是在练习倒立的时候扭伤了。他走过来伸出小手,国荣阴沉着脸。  ——你我不都是社会上所说的“单亲子女”吗?咱们别打架啦。“舞王”又不在跟前。      国荣抓住了从绷带里露出来的手指尖。  ——“舞王”走了有一个多月了吧。  ——一个半月了。      这小子这么一说,国荣一下子觉得闷闷不乐。  ——他这一走,我们真成了迷路儿了。      突然,这小子的脸色变成了铁青色。胡同口出现了一群小孩。他神色紧张地低声说。  ——是那帮小子。  ——谁呀?  ——“曲子组”      有一个个头大一点的孩子朝国荣喊道。  ——你过来一下。      也许是因为对他们小组的名字有偏见,他的脸看起来还真像酱曲子。国荣不得已走过去。那个脖子上缠着石膏绷带的小子赶紧望风而逃。      “曲子脸儿”用脚碰了碰自行车。孩子们把国荣围在中间,你一言他一语地起哄道。  ——你们是跳舞的那帮小子,对吧。那个什么来着“屋顶上的迷路儿”  ——不是屋顶上没妈的孩子啊?  ——听说你们想打败我们?怎么看不到那个自称“舞王”的家伙啊。听说转到汉族学校了?  ——臭小子,这回连咱们的话都得忘了。      看着孩子们的粗鲁举动,国荣讨厌地皱起眉头。  ——瞧这小子,你看到没有?      “曲子脸儿”冲着国荣的头连推几下。别的孩子也帮腔威胁道。  ——低头!你能不能把头低下?!      国荣目不转睛地盯着他们,“曲子脸儿”上前一脚就把自行车踹翻在地。  ——这小兔崽子,真是个没教养的家伙。来呀。给我教训教训他!      孩子们呼啦一下子扑上来,一顿拳打脚踢。    32.      爸爸笨拙地按了一下电脑开关。随着一声响动,国荣和妈妈站在天池边微笑的合成照片浮现在电脑屏幕上。爸爸愣愣地望着那张照片。      突然,门声大作,国荣进来了。  ——干什么呢?在我的房间。      国荣极不耐烦地问。  ——可你,你怎么回来得这么早啊?      爸爸磕磕巴巴地问。国荣扑通一下倒在床上。  ——怎么不说话?!出什么事儿啦?      爸爸连问了几次,国荣背过身去,把被子蒙到头顶。      爸爸过去坐在床边。  ——我说……你哪儿不舒服啊?肚子?头痛?上医院?要不想吃什么了?爸爸给你做。      国荣突然掀起被子喊道。  ——我讨厌你……出去!出去!      爸爸惊呆了。就像狠狠地挨了一闷棍,僵硬地站在那里。过了一会儿,默默地走出了房门。      国荣又气呼呼地倒在床上。他目不转睛地望着电脑上出现的合成照片。        妈妈好长时间没来电话了。想当年,突然刮起出国热,就在那时,妈妈留下小小的国荣去了韩国。      开始的时候,每个礼拜妈妈都来一次电话,后来,一个月来一次……最近,一点都没规律。一开始,通话的时间长得让人心疼电话费,可现在越来越短了。      每当国荣有气无力的语音随着叹气声被吸进话筒之后,就会从听筒里传出妈妈夹带哭声的话音……每次都是这样。      短暂的通话结束之后,刺耳的嘟嘟声总会撞击鼓膜,国荣总是感到莫名的绝望和茫然,他在心中呼喊着妈妈。      不知什么时候,暮色已经降临。电脑显示器发出的光芒照得墙壁和天棚色彩斑斓。一串儿热泪从国荣伤痕累累的眼窝里涌出来。国荣压低声音抽泣着。       33.      一只缠着绷带的小手,从晾衣架上拽下乳罩。      刚从“足道馆”出来的按摩师姐姐看到了他的背影。  ——喂,站住。      那小子惊慌失措地拔腿就跑。按摩师呼喊着紧追不舍。      跑到胡同口,这小子慌里慌张地躲到垃圾箱后面。按摩师跑过去了。接着这小子抖着满身的垃圾站了起来。他正要放心大胆地拐进另一个胡同,突然飞来重重的一拳。拳头的主人是国荣。      国荣从他的怀里翻出了乳罩。  ——你这可耻的家伙。      国荣啪啪打了几下这小子凹凸不平的后脑勺。  ——小子,多丢人啊?嗯?      这小子抽搐一下嘴角。  ——我老实告诉你,你可千万别告诉“足道馆”的人。      国荣的目光犹如在看一头怪物。  ——其实,我家只有我和爷爷。妈妈,姐姐,还有我姨都去韩国了。剩下的只有我和爷爷了。净是臭男人。      国荣忍不住又抽了一下他的后脑勺。  ——那你就偷女人的内衣呀?你这臭小子!我也和爸爸过。别人要是都像你,做女人内衣的工厂该发大财啦,小土崽子!      这时按摩师姐姐正好返回来,国荣急忙把乳罩藏了起来。  ——你们在这儿干什么呢?      按摩师姐姐仔细地观察着那个小子。  ——是不是你?刚才。      国荣挡住那小子若无其事地问。  ——怎么了?姐姐。      按摩师姐姐掐着腰气呼呼地说。  ——放跑了。差点没抓住那小兔崽子。      姐姐又仔细地看着那小子。  ——他是我们小组的。你别看他这样,他可是个好孩子啊!  ——气死我了。生意不好不说,就因为这帮变态种,连内衣都丢没了。      按摩师姐姐牢骚满腹地走掉了。  ——谢谢你!      这小子感激地望着国荣,可是,国荣又狠狠地抽了一下他的后脑勺。  ——谢什么谢。到了晚上,再给人家送回去。    34.      ——听说国荣的爸爸为了他还专门学过烹饪呐。      可是,国荣并不喜欢爸爸那么做。其实,有一个每天为你做饭的爸爸多好啊。      吴警官正在留心地听着“巧克派的”的述说。    35.      国荣的爸爸在商场仔细地挑选着平底锅。      看到一个大男人那么细心地挑选厨房用具,售货员们围在一起笑个不停。      拎着平底锅爸爸又走进了自行车卖场。      爸爸看了好一阵子陈列在那里的自行车。      弯得恰似非洲羚羊犄角的奇特的自行车把手,还有那闪闪发光的车身,深深地吸引了爸爸的目光。    36.        爸爸喜欢厨房。每当吃饭的时候,爸爸总是那么兴奋。也不知是从什么时候开始的,布置一桌丰盛的饭菜已经成了爸爸的兴趣,也是惟一能显示成绩的事情。大容量的电冰箱和漂亮的煤气台,高压电饭锅等各种厨具摆满了厨房。这些都是爸爸特意买来的,当然用的都是妈妈汇来的钱。      今天,爸爸兴奋地把国荣叫到了厨房。  ——今天的饭菜肯定更好吃。      国荣心不在焉地拨弄着饭粒,过一会儿,抬起哭丧的眼睛。  ——今天爸爸买了新锅,下了好大的决心才买的呀。      爸爸就像电视里的广告模特那样举起那个锅。      国荣自言自语地说:真没办法。  ——怎么样?好吃不?用新锅炒的菜。真是手巧不如家什妙啊……      爸爸似乎是要证实新锅的效果,不停地给国荣夹菜。  ——多吃点。那些因为妈妈不在身边,不能按时吃到可口饭菜的孩子最可怜了。      国荣偷偷又把爸爸夹的菜放到了原处。      爸爸看国荣没什么反应,换了好几个话题,最后,小心翼翼地问。  ——国荣啊,那个电脑。  ——什么?  ——那张电脑里的照片……  ——阿,那是“巧克派”帮我合成的。  ——做得真好。  ——那胖子是我们班里的“电脑博士”。有他爸从韩国给他邮钱,电脑也是买的最好的。  ——做得确实好。真像!      爸爸连连赞叹不已,突然,严肃地问。  ——可是……可是那照片里怎么没有我呀?    37.      国荣和“录像公主”正在挑选电影录像带。      在一旁帮忙拎着购物篮子的国荣掏出了酸奶。  ——变魔术啊?你怎么每天都有酸奶啊?      “录像公主”奇怪地问。  ——买的,为了给你。  ——去,谁信呵。      国荣又掏出一个递给她。“录像公主”摇摇头。  ——我行了。你也喝点儿吧。  ——我不喝。  ——喝吧。对身体有好处。  ——其实,是我爸给的,每天两瓶,我可不乐意。  ——哎哟,多慈祥的爸爸呀。      “录像公主”羡慕不已地感叹道。  ——所以呀,就该你来喝。要是我爸爸给的,别说是两瓶就是一箱我都能喝。      国荣迫不得已喝了一口。  ——太甜了,干吗喝这种东西啊?这个就像我爸。  ——什么像你爸呀?  ——这酸奶的味道有像我爸的地方。不像可乐那么刺激,也不像绿茶那么清爽,就像变了味儿似的,酸不溜丢的……      “录像公主”百思不得其解,带着责怪的口吻说。  ——你怎么这样啊?多好的爸爸呀  ——我可不喜欢。  ——为什么?  ——都怪爸爸,害得妈妈到韩国遭罪,就因为爸爸没能耐。      正在挑选录像带的“录像公主”抬起头疑惑地望着国荣,真是想不通,他怎么对爸爸那么不满意,还那么看不起爸爸呢?  ——你真有点怪怪的。就那么恨你爸?  ——就恨!就恨!!!      国荣忿忿地吐出了心中的不快,然后,话题一转。    ——马上就要举行街舞大赛了。这次一定要好好露一手。    38.      “录像公主”的妈妈站在门前仰望着屋顶。      国荣的爸爸爬到屋顶上,正在检查出租屋的霓虹灯广告牌。      国荣的爸爸喝了一口“录像公主”的妈妈递上来的可乐,接着又转过身去忙碌起来。      “录像公主”的妈妈用长长的竹杆儿挑起一条毛巾递上去,国荣的爸爸不好意思地接过毛巾擦了擦汗。      从音响店回来的国荣和“录像公主”正好看到这个光景。  ——爸干啥呢?      国荣满脸不高兴地冲爸爸喊道。  ——她家的霓虹灯坏了,我来修修。      “录像公主”的妈妈也在旁边解释说。  ——有你爸爸帮忙,我都不知该怎么谢啦。  ——多好啊,有爸爸在身边。  ——哼!      国荣鼓起腮帮气囔囔地大声问。  ——你会修吗?    39.      老实说国荣不喜欢课外辅导,学了这么长时间一点效果都没有。可是,因为是用妈妈从韩国寄回来的血汗钱请的老师,国荣也不敢怠慢。  望着哈欠连连的国荣,老头儿笑着说。  ——拿起书瞌睡虫就来捣乱,是吧?  ——明天有街舞大赛,我们练舞练过头了,有点累了。  ——有信心拿奖吗?  ——有,跳舞还有点自信,大奖不敢说,优秀奖应该没问题。  ——好!不但学习要好,还要展示一下全面发展的榜样。      每当课程快要结束的时候,爸爸总会准备好夜宵进来劝爷爷喝一杯。  ——今天就到这儿吧。时间不早了,简单喝一杯吧。      老头儿摇摇头。  ——就喝一杯吧。就一杯……这可是头一回啊,您不想喝酒……      国荣也奇怪地望着爷爷。  ——这两天不知怎么了,肚子有点胀。我得回去睡觉了。      走到门口,爷爷回过头对国荣说。  ——大赛一定得拿奖啊!    40.      爸爸和按摩师姐姐默默地站在“足道馆”门前。两个人的脸色都有些不自在。按摩师局促不安地连连嗑瓜子。  ——这么说吧……这个礼拜之内,要是还拿不出钱的话,我也没什么好法子,只好倒地方了。  ——再给我半个月时间行不行?会有办法的。  ——谁信啊?我可没少吃亏呀。  ——您也太死心眼儿了吧。我就差您这一次,您就这么不开面儿啊?我也是没办法呀。  ——我也不容易啊。用孩子他妈从韩国汇来的钱,好不容易才做这么一点事儿,可连这点事儿都做不好,你说我怎么向孩子他妈交代呀?      爸爸转身离开之前,冲着还在苦苦哀求的按摩师说。  ——你记住。我这个房子位置好,想租的人都排成队了。      平时结结巴巴的爸爸,这时候完全是另一副样子。      按摩师无奈地蹲在台阶上默默地嗑着瓜子,吐出的瓜子皮散落在脚下。      毫无表情的姐姐嗑完瓜子,使劲拍拍手,两个胳膊放在膝盖上,把脸深深地埋进了胳膊中间。      国荣一直躲在房角注视着她。      不知为什么,看着姐姐白里透红的膝盖,他感到有些心酸,真想过去抚摩那可怜的膝盖。      41.      爸爸沉浸在电视剧当中。虽然不是什么悲伤的场面,爸爸的眼圈还是有些发红,看来他还没发现一直坐在旁边的国荣。国荣干咳几下,凑到爸爸身边。  ——爸爸,我有话跟你说。      爸爸目不转睛地盯着画面摆摆手。  ——等一下。关键时刻,等一会儿再说。      突然,门铃响了。急促的铃声响个不停。  ——这么晚了,是谁呀?      爸爸打开大门。      是“巧克派”。他连哭带喊地冲进来。  ——爷爷,爷爷他昏过去了。妈妈也不在家……        “巧克派”的爷爷吐了一滩血倒在洗手间,白瓷砖上的鲜血让人不寒而栗。      爸爸急忙过去背起爷爷,可力不从心憋得脸通红,腿也直打晃。  ——躲开!      国荣一把推开爸爸,自己背起了爷爷。      看到猫着腰站在旁边的爸爸,国荣突然觉得爸爸的个子比想象的矮了很多。    42.      “巧克派”的爷爷微笑着出现在电脑画面上。      “巧克派”茫然地望着画面,国荣把手放在他的肩上。      “巧克派”嘴里含着巧克力派放声大哭。      爷爷把充满酒气的肉体留在这里,带着他洁净的灵魂走了。    43.      安慰了一会“巧克派”之后,回来的路上,国荣的脚步停在“足道馆”的门前。工人们正在拆卸“足道馆”的招牌。      国荣惊讶地问。  ——怎么了?你们在干什么?  ——什么怎么了。停业了。  ——什么?这儿的人呢?  ——不知道。    44.      爸爸仍旧沉浸在电视剧当中。国荣狠狠地瞪着爸爸,可爸爸一点感觉都没有。爸爸这种毫不在意的态度激怒了国荣。  ——爸爸,足道馆为什么关门了?  ——等一下,关键时刻。      国荣拿起遥控器就把电视关掉了。爸爸抢过来又打开了电视。国荣又把它关掉了。  ——这……这孩子怎么了?你怎么居然……  ——我问你,足道馆为什么会关门?  ——什么为什么?生意不好呗。      爸爸说着又打开了电视。国荣再一次把电视关掉了。  ——是不是你把她赶走的?      国荣第一次如此激动,这时爸爸才感到惊讶。      国荣带着哭腔大喊大叫。  ——是你撵走的!就是你撵走的,对吧?      泪水即将夺眶而出,国荣一脚把门踹开跑出了院子。        无垠的开满向日葵的大地。      国荣踉踉跄跄地飞奔过去。      姐姐站在向日葵的中间,挥手召唤着国荣。      国荣跑过去紧紧抱住姐姐的腰。        原来不是姐姐,而是一具稻草人。      国荣愣愣地站在没有招牌的“足道馆”前面。      那位善良而又漂亮的,爱说爱笑的姐姐早已不知去向。    45.      国荣从屋顶眺望着街道。下面的风景好似一副散落在那里的拼图。“录像公主”站在国荣的旁边。  ——我叫什么名字?      “录像公主”不知如何是好。  ——你叫国荣啊!  ——是啊,我的绰号是张国荣。现在,我要像张国荣那样跳下去!      国荣抓着栏杆,身体向前倾斜着。“录像公主”急忙抓住他。      国荣挣扎着,呼喊着。  ——为什么?为什么会这样?我们连决赛都没进去啊?  ——“舞王”也不在,他的位置就显得空了。  ——我们那么拼命地练……膝盖破了,手腕也崴了。  ——行了,不是还有下次吗?  ——下次?下次是什么时候啊?不还得等一年吗?      “录像公主”看到国荣如此伤心,不解地问道。  ——得奖对你那么重要吗?  ——当然!你们把得奖看成名誉,可是,我不!  ——那你?  ——得了奖的小组不是能去韩国吗?我的目标是那个,那个!      国荣靠着栏杆一屁股坐到地上。  ——得了奖不就能去韩国吗?去了韩国不就能看到妈妈了吗?      国荣脸抽搐了好半天,终于放声大哭起来。        天空犹如国荣的心情布满了乌云。看来马上就要下雨了。从屋顶下来的国荣呼啦一下推开了房门。      按理爸爸应该坐在沙发上和电视做伴儿,可他不在房间。      洗手间的方向发出了声响,门开了。当国荣看到走出洗手间的那个人时,瞬间,感到一股热流直冲脑门。出来的人不是爸爸,而是“录像公主”的妈妈。      大雨终于泼下来了。      哗啦哗啦哗啦……      大雨拍打着立在屋顶上的广告牌发出了嘈杂的声音。      重新回到屋顶的国荣站在雨中任凭风雨吹打。      国荣感觉到一阵闷雷般的震荡从心底掠过。穿过前胸直逼后脑勺的震荡……带来了茫然的恐惧。        46.      摆好丰盛的餐桌,爸爸独自坐在那里。      爸爸走近国荣的房门口小心地敲敲门。  ——国荣啊,国荣啊,出来吃饭吧。不管怎么说,总得吃饭啊。      国荣已经整整一天没出来了。      徘徊在门前的爸爸又敲响了房门。  ——你听我说……你好像误会了。爸爸和出租屋家的大婶儿没有任何关系。是你误会了。是误会,误会……      无论怎么哀求房间里还是没有一点动静,爸爸只好回到厨房。坐立不安的爸爸,目光落到了新买的平底锅上。爸爸似乎找到了宝贝,认真地擦起来。        深夜。国荣从房里探出头。      急着去厕所的国荣,脚步停在客厅里。电视还在亮着。录像早已结束,机器还在吱吱地空转。爸爸手里握着遥控器蜷缩在沙发上睡得正香。     别人家的爸爸都很勤快手也粗大。可爸爸就知道花妈妈的钱,利用妈妈的关系,白白净净的手活像个女人。T恤衫的下面还露着一大堆赘肉。        国荣看到爸爸睡得那么难看,一时觉得爸爸又可怜又可气。紧接着,一股莫名其妙的冲动在心底涌动。昏暗的灯光下,两只活像野兽的眼睛射出了凶狠的蓝光。        国荣进了厨房。      胡乱地翻来翻去。      找出了菜刀,又放下了。      找出了水果刀,又放下了。      目光落在爸爸刚刚擦好的闪闪发光的平底锅上。      国荣把锅紧紧地握在手里。        爸爸还在鼾睡。      一瞬间,国荣的眉宇和眼圈缩成一团,脸上的肌肉在抽搐。国荣吸了一口气,用手里的新锅朝爸爸的头部拍过去。      他就像瞎了眼的恶狼,疯狂地胡乱地抽打着。        刚刚还狂风大作的暴雨,不知什么时候已经停了。      国荣推开一条门缝探出头四处张望。      国荣把爸爸的尸体拖出家门。      又朝库房拖去。      国荣慌慌张张地用旧衣物盖住了尸体。      他擦着脸上的血迹刚要回身,突然似乎发现了什么,朝库房的角落走去。      国荣瞪大了双眼。      黑暗中,一台自行车在闪闪发光。那可是国荣梦寐以求的自行车啊!    47.      午夜里,国荣骑着崭新的自行车狂奔在空旷的大道上。      国荣到达的地方是派出所。      国荣仰望着挂在楼上的公安徽章。他骑进了派出所的大院。      国荣不敢去敲门,骑着自行车在院子里转来转去。      值班警察从窗户伸出头。  ——谁呀?      国荣还在继续转圈儿。      警察跑出来了。  ——半夜三更干什么呢?你以为这是你家呀?      国荣好像根本没听见似的继续转着。  ——你他妈的疯啦      警察上前想抓住他。国荣加快了速度。      警察和国荣你追我赶地在派出所的院子里展开了角逐战。    48.      拘留所会客室。      “巧克派”坐在国荣的对面。  ——需要什么?      国荣低着头默默无语。  ——究竟需要啥?      国荣慢慢抬起头。        国荣的舞伴儿也来了。腿上还缠着绷带。  ——我们组织了一个新小组。为了拿大奖正在玩命地练。拿了大奖好去韩国呀。      国荣还是默默不语。舞伴儿眯着小眼睛偷偷看着国荣小声说。  ——对不起!我也想去韩国看我妈妈。        “舞王”也来了。      “舞王”冲着默默无语的国荣生气地问。  ——为什么???        “录像公主”已经等了好半天。        她把一打酸奶放在国荣面前。  ——怎么想起酸奶了?你不是不喜欢吗?      国荣默默地撕开包装。  ——都拿着!拿去喝吧。喝完了我再给你带。      泪水挡住了“录像公主”的视线,她说不下去了。    49.      吴警官望着铁窗里的国荣。下午的阳光从窗户射进来,洒在孩子小小的后背上。投在墙上的剪影,让人觉得孩子比以往更幼小。      吴警官新奇地看着国荣的眼睛。黑黑的瞳孔是那么天真、单纯、没有一丝恐怖,所以更觉得茫然……      吴警官意思到那是渴望温暖的眼神。        国荣蜷缩在牢房的角落里。他特意找了个角落。      手里拿着酸奶。      看了好半天,才把吸管插进瓶里。      一小口,一小口喝起来。      酸奶瓶弯曲了。吸管犹如吸毒者手里的烟枪,发出了咕噜噜的声音。      可是,国荣还在吸着吸管。      国荣的眼里噙满了泪水。    50.      “巧克派”的房间。      “巧克派”嚼着巧克力派全神贯注地摆弄着电脑。      受朋友的委托,他在制作电脑合成照片。      合成照片完成了!      长白山天池边,国荣和妈妈还有爸爸含着微笑……                               ——完——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1    소설로 읽는 "간도참안" 댓글:  조회:3256  추천:20  2015-08-09
  30년대 상해에서의 독립운동가들의 사투를 그린 영화 "암살"이 흥행가도를 달리면서 여주인공 안옥윤의 어머니가 겪은 "간도참안"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영화 “암살”에서 톱스타 전지현이 주연한 안옥윤은 “간도참안”에서 어머니를 잃는다. 또 한 부의 의열단활동을 다룬 영화 “아나키스트” (개봉: 2000.04.29, 감독: 유영식 출연: 장동건, 정준호, 김상중, 이범수, 김인권)에서도 주인공 상구는 경신년 간도 대학살에서 친지를 잃고 상해로 와서 의열단에 가입한다.  “간도참안”은 "경신참변", “경신간도학살사건”이라고도 불린다.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5일간 일어났던 청산리전투에서 크게 패하면서 일본군은 그 보복으로 한인사회· 항일단체. 학교· 교회 등을 초토화시켰다. 간도참변으로 한인 3,700여 명이 피살되었다고 전해지며, 이 참변으로 간도를 포함한 만주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한인 사회 및 항일단체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간도참변”중에서도 가장 비참했던 사건은 “장암동 학살사건”이다. 필자는 올해 창작한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의 앞머리에 주인공의 어머니가 겪은 간도참변에 대해 핍진하게 재현하였었다.  그 부분을 절록하여 먼저 선보인다. 중국 최초 위안부소설로 될 필자의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은 올해 말까지 조선족 권위문학지 "연변문학"에 연재중, 명년초 출판 될 예정이다.  ------------------------------ 끝순은 사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종아리를 치는 억새풀을 와락와락 헤치며 발목에 차 오르는 시내물을 첨벙첨벙 박차며 돌부리에 발을 채이여 넘어졌다가는 다시 그악스럽게 일어나 달리고 또 달렸다.  치마자락이 자작나무가지에 걸렸다. 급한 마음에 확 잡아채자 치마 자락이 찢겨 나갔다. 너덜너덜 해진 치마자락을 날리며 또 달렸다. 찢겨진 천쪼박이 그루터기에 걸려 애처롭게 나붓겼다. 거치적거리는 치마자락을 추슬려 가슴앞자락에 껴안고 끝순이는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입매에 움찔움찔 품은 울음이 당금이라도 터질듯한 표정을 하고 치뛰고있었다.  누가봐도 놀라운 풍경이였다. 그 진동한동 단말마의 힘으로 뛰는 달음박질에 놀라서가 아니였다. 다름아닌 그녀는 막달 산모였것이다. 항아리처럼 큰 배를 안고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 그녀가 놀라웠고 또 산모가 그렇게 달음박질해 될가 걱정되는 풍경이였다.  그렇게 허위단심 뛰고 있는 그녀의 뒤로 칼고함이 울었다. 고함질은 끈적한 흡반처럼 촉수를 뻗쳐 한사코 그녀를 따라왔다. 그녀에게 들붙으려 하고 있었다.  “도마레(서랏)!” “서랏! 게 서지 못해!” 무리 승냥이가 우는듯한 소리, 사금파리를 긋는듯한 듣그러운 악청이였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그녀를 쫓고 있었다. 그녀를 쫓고 있는 한 무리의 남자들은 모두다 제복차림을 하고 있었다. 제복차림의 그들의 손에는 총검을 세운 장총이 들려 있었다.  고함소리는 긴 채찍이 되여 그녀의 등짝이며 귀전을 사정없이 후려 쳤지만 그녀는 소리의 몰매를 맞아가면서도 뛰고 있었다.  물론 끝순이는 그 고함의 뜻을 알지 못했다. 추적자들의 그 고함소리는 왜말이였기때문이였다.  이 모든게 꿈일거라고 끝순은 생각했다.  꿈이라도 지지리 나쁜, 머리털이 돋아 세상 처음 꾸는 나쁜 꿈,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꿈일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이 몽매(夢寐)에 휘둘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가 깨워주는 사람도 없는, 지독하게 가위 눌린 꿈이라고 끝순이는 생각했다.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낳았다.  그렇게 경황없는 상황에서도 여태 꾸어봤던 나쁜 꿈들이 머리속으로 휘리릭 지나갔다.  강 건너 청나라 사람네 집 검은 개에게 쫓기던 날 끝순은 악몽을 꾸었었다.  꿈에 온 얼굴에 이빨투성이인 괴물이 그녀를 한사코 쫓아오고 있었다. 그 강한 렬육치(裂肉齒)에 걸리면 뼈라도 부수어 깨질것 같았다.  악몽에 꺼둘려 분절이 불분명한 헛숨 빠지는듯한 소리를 하는 그녀를 남편이 흔들어 깨웠다.  미끄러운 우물가에서 물동이를 깨뜨리고 우물에 빠질번 했던 그 겨울의 저녁 꾼 꿈도 기억에 남았다.  떨어져도 떨어져도 끝없는 천길나락을 무작정 떨어져 내리는 꿈이였다. 그녀가 어찌나 헛비명을 질러댔던지 놀라 깨여난 아버지가 데거치른 발길질로 그녀의 엉덩이를 호되게 걷어찼고 그제야 꿈에서 깰수 있었다.  그런 꿈에 비하면 이는 말도 안되게 혹독한 꿈이였다.  렬육치를 가진 커다란 괴물이 한사코 쫓아오고 누군가 그녀의 등짝을 사정없이 걷어 차 우물에 빠뜨려넣었는데 밑창 모를 밑바닥에는 또 커다란 렬육치를 가진 괴물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런 꿈의 련속이였다.  악몽같은 참극은 아침 우물가로 부터 일어났다.  우물이 있는 마을 동구밖 들머리에 집이 있어 우물댁으로 불리는 아낙은 아침 일찍 우물가로 나섰다가 그만 아닌 밤에 찬 우물물이라도 뒤집어 쓴듯 그 자리에 우두망찰 서버렸다.  어느새 닥쳐 왔던지 우물가에 한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수효가 얼마나 많았던지 우물댁은 그 수효가 주는 엄슬함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꼭같이 가라말을 타고 꼭같이 센또보시(전투모)를 쓰고 꼭같이 누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였다. 그리고 등에는 꼭같이 기다란 장총을 메고 있었다.  우두머리인듯한 자가 말고삐를 당겨 휘적휘적 앞으로 나왔다. 운두높은 모자에 둘린 붉은 테와 제복의 목깃에 달린 붉은 계급장이 시선을 찔렀다. 계급장에는 노란 별 세개가 박혀 있었다. 허리에 혁대를 두르고 긴 칼을 차고 있었고 손에는 말채찍이 들려 있었다. 움쑥한 눈으로 우물댁을 째려보던 그가 손에 든 말채찍을 저었다. 그러자 몇몇 사병이 말에서 뛰여 내렸고 한 사람을 말에서 끌어 내렸다. 그 사람은 대자형으로 오라를 지워져 있었다. 구타를 당한 모양, 눈확이 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입가녁도 찢어져 있었다. 입가녁에 말라붙은 피자국이 보였다. 흰 옷 군데군데에도 피자국이 새여 나와 있다 그 사람을 밀어 우물댁의 앞에 내세웠다. 모진 고초에 넋이 나간듯 그 사람은초점 잃은 눈으로 우물댁을 퀭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사병 하나가 총의 개머리판으로 사정없이 그 사람의 어깨박죽을 내질렀다. 휘청이던 그 사람이 가까스로 마른 입술을 열었다. 저승에서 새여나오는듯한 꺼져가는 소리로 물었다. “량, 량씨네 집이 어디임둥?” 우물댁은 그냥 얼빠진 상태였다. 그 사람이 마른 입술 한번 다시며 다시 힘겹게 물었다. “영신학교 량교장네 집 말입꾸마” 그제야 정신 차린듯 우물댁이 손을 들어 마을어구의 한 집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이 가을바람에 들린 허수아비의 빈 팔소매처럼 푸르르 떨리고 있었다.  투르르~ 말이 투레질을 했고 “붉은 계급장”이 채찍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무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기마병들이 얼빠진 우물댁을 내쳐 둔채, 결박된 사람을 앞세우고 마을길로 들어섰다.  이때였다.  앞에서 떠박질려 가던 흰옷 입은 사람이 후딱 마을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결박된 상태로 뛰면서 소리 질렀다. 행주 비틀듯 쉬여버린 소리를 한껏 짜내며 피를 뿜는 고함을 질렀다. “날래 뜁소. 왜놈들이 왔습꾸마 날래 뛰…” 그는 마지막 구절을 마무리 하지 못했다. 말을 달려 한 달음에 따라간 “붉은 계급장”의 서슬푸른 군도가 아침의 대기를 갈랐고 그 사람의 머리가 허공에 붕 뜨더니 뒤미처 호박덩어리처럼 굴러떨어졌다. 머리를 잃은 몸뚱아리는 몇걸음 더 달려나가다가 콩단처럼 쿵! 그 자리에 넘어갔다.  기병들의 말이 머리없는 몸뚱아리를 마구 짓밟으며 마을로 우르르 쳐들어 갔다.  총개머리판에 떠밀리면서, 대검에 쑤시우면서 마을 사람들은 학교 마당에 집결되였다.  봄철이면 운동회가 열리고, 동네의 크고 작은 일이나 정기행사가 이루어지던 학교마당이였다. 곧 열리게 될 봄철 운동회 준비로 마당에는 소나무가지를 꺾어 만든 솟을 문이 만들어져 있었다. 각 종목에서 우승한 팀들은 그 소나무 솟을 문앞에서 교장으로부터 상패와 상물을 받군했다.  축제전야의 열기로 설레이던 마당은 이제 시퍼런 분위기로 때글때글 얼어 있다. 등등하게 차려입은 누런 군복과 번뜩이는 칼날을 세워든 사병들은 대적이라도 만난듯 표정들이 험상스레 굳어있다. 세워든 날카로운 총검이 아침나절의 해살에 번뜩인다. 기죽은 사람들은 태덩이처럼 미동도 크게 못하고 저마다 어깨를 한껏 옹그리고있다.  끝순은 남편곁에 꼭 붙어 섰다. 그런 그의 긴장한 손을 남편이 꼭 쥐여 주었다. 병색이 완연해 쑥갓 꽃잎처럼 얼굴이 노란 남편이 걱정스레 그녀를 지켜본다. 남편은 영신학교 교원이였다. 룡정대성중학을 졸업한 남편은 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쳤다. 무지렁이같은 과년한 끝순에게 대처에서 온, 학교교직원인 남편은 남들의 시샘을 자아낼법 했다.  이 모든 것은 지독하게 과묵했지만 인간성이 올곧았던 아버지의 공로이기도 했다.  마을사람들은 학전(學田)을 떼여 선생들의 월급을 마련했는데 그중 옹색한 살림에서도 아버지가 부치는 학전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그때 남편은 그녀의 집에서 돌림밥을 가장 많이 먹었다. 그런 남편이 나중에는 아예 이 집에 눌러 앉게 된것이다.  남편의 결점이라면 몸이 허약한 편이였다. 늘 때국이 낀 요를 무릎에 두르고 아래목에 앉아 기침을 무더기로 토했고 집안 대들보에는 약봉지가 마늘타래처럼 조롱조롱 매달려 있곤 했다.  그런 남편이라도 끝순은 하늘같이 높이 뵈였고 금슬 좋은 둘 사이에 막 사랑의 결실을 보려던 참이였다.  마을사람들은 흘끔흘끔 곁눈질로 운동장 가녁을 훔쳐본다.  운동장 가녁에는 버드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이곳에 맨 처음 이주해 터를 잡았던 선친들이 공터에 심었던 버드나무였고 그 공터자리에 지금은 학교가 선것이다. 마을의 당산나무 격이였던 그 버드나무에 눈길이 미치자 사람들은 두려움에 심장이 파고듦을 느낀다.  버드나무에는 사람이 매달려 있다.  학교의 량교장이다. 높이 매단데서 교장의 다리가 허공에서 버둥거린다. 마치 날다가 악착한 거미줄에 봉변들 당한 나방처럼 교장의 흰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인다.  교장이자 마을의 터주대감이다. 마을의 대소사를 관장했뿐더러 깊은 오지의 학교를 멀리 아라사(俄羅斯)에서도 한인학생들이 찾아오도록 유명한 학교로 만들었다. 또한 북간도의 반일단체인 의군부와도 련계를 갖고있어 그들은 늘 이 사슴골을 찾군했다. 그 덕망높은 량교장을 왜놈들이 꽁꽁 묶어 그 무슨 도살직전의 짐승처럼 나무에 매단것이다.  포승을 당했지만 량교장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다. “붉은 계급장”은 한 손은 허리에, 한손은 허리춤에 지른 군도자루에 얹고 있다. 아무말 없이 움쑥한 옴팡눈으로 마을 사람들을 노려보며 활동사진 찍듯 하나하나 동공에 담는다. 금방 사람의 피를 본 군도가 허리춤에서 데룽거린다.  호동그란 동공은 눈앞 사람들의 멱이라도 움켜 잡을듯이 또렷하고 팽팽하다. 그 눈길에 질려 사람들은 눈길이 지나갈때마다 오싹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계급장이 말채찍을 들어 까땍했다. 앙바틈한 사병 하나가 사람들앞에 나섰다. 강똥 싸는 사람처럼 턱을 난딱 쳐들고 소리소리 질렀다.  “록골(鹿溝)사람들은 듣거라.  이 분은 이 지역을 관장하고 있는 우리군 제14사단의 스즈키(鈴木)대위님이시다.” 스즈키라 불리운 “계급장”이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앙바틈한 사병이 그냥 쉼표 없는듯한 한 톤으로 말을 이었다. 어눌하나마 제법 조선말을 구사하고 있다. “스즈키 대위님께서 록골 사람들에게 우리가 찾아온 요지를 말하고자 하신다.” 대위가 앞에 나섰다. 말채찍으로 손바닥을 툭툭 치면서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리도(利刀)라도 휘두르는듯 날이 서있다. “지금부터 당신들은 무조건, 우리들의 행동에 교오조(공조)해 주길 바란다. 언감 대일본제국에 불온한 마음을 품고있는 후테이 센징(不逞鲜人)들을 색출하라는 닌무(임무)를 받고 이 부라끄(마을)를 찾아 왔다.” 땅딸보 사병이 축음기 되돌리듯이 그 말을 반복했다.  스즈키의 목청이 순간 듣그럽게 한 옥타브 불거져 올랐다. “유감스럽게도 이 부라끄 사람들 모두 다 대일본제국에 맞서는 후테이 센진이라는 정보를 우리는 입수 할수 있었다.”  대위의 얼굴이 불판처럼 시뻘겋게 달궈졌다.  화딱지가 난듯 뻐센 억양으로 내지르는 그 소리가 발작적이였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그 당수(黨首)들을 소고끄(즉각) 처결하려 한다!” 대위의 시선이 버드나무쪽을 향해 팽팽하게 꽂혔다. 움쑥한 눈에는 벼락을 맞아 쓰러진 고목밑둥이에서 밤이면 이는 퍼런 린광같은것이 번뜩이였다.  스즈키가 시뻘건 얼굴로 칼집에서 칼을 쓰윽 뽑아들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병사들이 일렬을 짓고서서 장총을 장전했다. 시커먼 총구가 쳐들렸다. 시커먼 총구가 버드나무를 겨누었고 량교장을 겨누었다. 비대한 몸집의 대장이 앞에 나서며 구령을 불렀다. 요이(준비)- 멱따는듯한 구령소리가 울렸다. 핫샤(발사)! 탕! 탕! 탕! 되알진 총소리가 울렸다. 총소리가 평화롭던 사슴골을 뒤흔들었다. 고막을 찢을듯한 총소리에 아이들이 울었고 개가 짖었다. 버드나무 잎들이 찢겨져 우수수 날렸다. 탄환은 삽시에 나무에 결박된 량교장의 온 몸을 벌집내 버렸다.  놀란 비명이 터져 올랐다.  사람들중에서 아낙네 하나가 울부짖으며 버드나무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뒤를 묻어 총각애 하나도 따라 나갔다. “여보”, “아부지” 탕! 탕! 또 한번 총성이 울렸고 량교장의 마누라와 아들애가 버드나무를 눈앞에 두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참극에 마을사람들은 순간 아뜩해 졌다. 모두가 넋나간 표정으로 그 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왜놈들이 량교장을 원쑤 취급하는데는 나름 리유가 있었다. 나날이 심해가는 식민지정책에 아직도 강을 건너는 월강민(越江民)들이 줄을 잇는 가운데 망명객과 반일투사들이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도피하면서 사슴골은 은연중 반일활동의 책원지로 성장하고 있었던것이다. 게다가 지난 봄 룡정에서 일제에 항거해 온 시가지를 뒤흔들며 웨친 반일시위속에도 사슴골 사람들은 어김없이 끼여 있었다.  그날 룡정의 장관에 대해 끝순은 눈앞에서 목도했다. 룡정으로 나가는 남편을 기어이 따라나섰던것이였다. 룡정행차가 처음인 그녀는 그저 대처구경을 간다는 단순한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이날 사슴골의 사람들은 영신학교 교원, 학생들과 함께 전날 밤부터 주먹밥을 만들어 지니고 수십리 새벽길을 죄여 룡정에 도착했다.  처음 와 본 룡정거리는 수런거리는 소요와 팽만한 기운으로 늠실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룡정의 서전(瑞甸)벌판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흰두루마기며 치마저고리를 입은 남정네들과 녀인들 지어 백발로인들과 삼척동자들도 가세하여 구름떼처럼 모여들고 있었다. 북간도 각 지역에서 사람들은 내물의 지류가 강을 바라고 흘러들듯이 사면팔방에서 룡정이라는 이 “간도의 서울”이자 조선인들의 의지를 대변하는 구심점을 향해 흘러 들고 있었다. 집회장소는 어느 보통학교 마당이였다. 회장 중앙에는 "정의인도", "조선독립 만세!"라는 오장기가 세워져 있었다. 회장주변에는 교회당의 종루가 솟아 있었다.  끝순은 눈시울을 좁히며 종루를 쳐다보았다.  종루에는 조무래기들이 새까맣게 올라가 있었다. 이 작은 시가지에서 전에 없었던 장관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뎅 뎅 서전벌우로 펼쳐진 한자락 대공(大空)을 흔들며 종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의 환호속에 두루마기차림의 사람이 나서서 대회를 선포했다. 그리고 랑랑한 소리로 "독립선언서포고문"을 랑독했다. "우리 조선인들은 해방을 선언하노라. 지위를 선언하노라. 정의를 선언하노라. 인도주의를 선언하노라! 우리는 영광스런 력사를 지닌 민족이요, 또한 근로한 민족이노라. 그런데 우리를 훼멸하고 타파하려는 자가 있도다… 지사의 눈물은 바다를 채웠고 우민의 원한은 창천에 미쳤도다. 하늘의 귀가 백성의 목소리에 향하고 하늘의 눈이 백성의 시야로 향하여 세운이 일변하고 일도가 갱신할제 정의의 종소리는 큰 거리에 울리고 자유의 항선은 앞 나루에 닿았도다. 오인(吾人)은 천민 속의 한 사람이오, 약자 속의 한 사람이라. 오늘 천명에 순종하고 인심에 응하여 천만 민중이 일제히 한입같이 자유찬가를 부르며 쌍수를 굳게 쥐고 평등의 태도로 전진하는 바이로다. 저 동양문명의 수뇌, 동양평화의 보루라고 자처하는 일제의 침략으로 하여 현 정세에 변천을 가져왔도다...  민중들은 한 맘 한 뜻으로 단합 하야 침략자들이 간도 땅을 짓밟지 못하도록 할지어라. 모든 사람은 다 이런 신성한 책임이 있거늘 우리 간도의 80만 조선족 민중은 황천의 명소에 갈지 언정 인류의 평등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 바칠 바이어라." 포고문이 다 랑독되자 "만세!"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한 이들은 한민족의 뿌리와 력사적 소명의식을 자각하고 목청껏 만세를 외치고 또 외쳤다. 만세소리는 해란강가에서 오래도록 메아리 쳤다.  만세소리 높이 부르며 시위행진이 거행되였다. 남편의 손에 이끌려 끝순이도 시위대오를 따라나섰다. 장사진을 이룬 시위대오는 앞뒤 끝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시위대오 맨 앞장에는 기수가 "조선독립을 성원"이라는 오장기를 들고나섰고 각지 학교의 교원과 학생들로 구성된 300여명의 “충렬대”가 앞장에 섰다. 그 뒤로는 각지에서 모여온 군중대오가 따라 섰다.  "조선독립만세!" "일제의 침략을 반대한다!" "친일주구를 타도하자!" 시위자들은 구호를 높이높이 외치면서 호호탕탕하게 룡정 도심에 자리를 틀고 앉은 일본 간도총령사관을 향하였다.  갚자기 앞에서 수런거리는 소요가 일었다. 령사관 가까이에서 시위군중들과 막아서는 군경들 사이에 몸 싸움이 시작되였던것이다.  격노한 군중들은 돌멩이를 가로막는 군경들을 향해 뿌리면서 계속 밀고 나갔다. 그 긴박감과 결연함에 왜놈들은 질겁했다. 탕! 이때 총성이 울렸다. 맨 앞장에 오장기를 들고 나섰던 기수가 쓰러졌다. 일제경찰과 그 사주를 받은 중국경찰들이 당황한 나머지 시위대를 향해 일제히 발포하기 시작한것이다. 총소리는 콩볶듯 울렸고 앞장 선 사람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적수공권의 시위대오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여 흩어졌다. 혼란속에서 어떻게 남편의 손에 끌려 룡정을 벗어났던지 끝순은 알수 없었다.  후에 량교장한테서 들은데 의하면 그날 일제군경들의 탄압으로 어지러운 총소리속에서 10여명 시위자가 당장에서 숨을 거두고 2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고했다. 이러한 연유로 일본군은 사슴골을 불령선인들의 진원지의 하나로 간주하고 호시탐탐 습격할 기회를 노렸던 것이였다.  눈앞에서 피를 물고 죽어가는 교장을 보는 순간, 그제야 마을사람들은 덜컥 무섬증의 덫에 치여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끝순이도 바위덩어리처럼 무거운 공포에 전신을 쩌눌림 당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것 같은 공포속에 아직 태여나지 않은 아기를 보호하련듯 둥시런 배를 두팔로 감싸며 몸을 웅그렸다.  비대한 몸집의 사병이 두려움에 떨고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땅딸보가 나서 그 말을 통역했다. “죠시(녀자)들은 가만 있고 성년 난세(남자)들은 모두 나와라. 하야꾸(빨리)” 남자들이 쭈볏쭈볏 무리속에서 나왔다. 사병들이 그런 남자들의 잔등을 총의 개머리판으로 무자비하게 내질렀다.  사병이 아낙네들 뒤에 웅그리고 섰는 한 남자를 발견하자 멱살을 잡아 끌어 내였다. 말채찍으로 따귀를 갈겼다. 그 남자의 얼굴에 벌건 핏금이 건너갔다. 쑥대 머리칼을 잡아채며 질질 끌고 갔다.  아버지도 끌려갔다. 원체 말수 적은 아버지는 아무말도 없이 끌려가고 있었다. 끝순의 남편도 끌려갔다. 끌려가던 신랑이 뒤를 돌아보았다.  쑥갓 꽃잎처럼 노란 얼굴로 끝순이를 빤히 쳐다 보았다.  그 눈길은 분명 막달 산모인 끝순에 대한 걱정으로 차 있었다. 남편의 그런 살틀한 시선을 느끼는 끝순이의 눈매는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자꾸만 뒤돌아보며 문칮거리는 남편의 잔등을 사병이 사정없이 군화발로 걷어찼다.  아낙네들은 모두 학교 마당에 남겨 둔채 서른 명 남짓한 마을의 남정들은 모두 끌려 학교교실로 들어갔다.  남겨진 아낙네들은 대체 무엇하려는건지 영문을 몰라 그저 두려운 눈길로 이 모든것을 지켜 볼뿐이였다.  사병들이 교실문을 걸어 잠그었다. 교실에 남정들을 가두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몇몇 사병이 운동장에 세워진 소나무 솟을 문을 부셨다. 그 소나무와 널판자들을 가져다 교실주위에 쌓아놓았다. 마을사람들이 뒤산에서 일껏 해와서 마당에 차곡차곡 무져놓은 땔나무도 가져다 교실주위에 쌓았다. 떡갈나무, 생솔가지를 꺽어놓고 조짚단도 가져다 쌓았다.  구경 모를 행동들이였지만 웬지 심상치 않은 그 거동들에 아낙네들의 가슴은 두려움에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사병 몇명이 진록색 수통을 들고 달려 왔다. 물통 마개를 열더니 교실에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골고루 부었다. 휘발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낙들의 눈망울이 불안으로 흔들렸고 심장이 널뛰듯 점점 더 높뛰였다.  “애 아버지, 애 아버지” 누군가 쿨쩍쿨쩍 울기 시작했다. 붉은 계급장의 대위가 뒤를 돌아다 보았다. 옴팡눈의 번뜩임에 그 울음소리가 쑥 잦아 들었다. 준비를 마친 사병들이 다시 일렬을 짓고 섰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또 한번 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끝순은 깜짝깜짝 놀라 했다. 시커먼 총구가 쳐들렸다. 시커먼 총구는 학교의 창문을 겨누었다. 사병 하나가 관솔불을 붙여들고 나서더니 교실주위에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던졌다.  확 불이 댕겼다. 마른 솔가지와 장작더미에 휘발유까지 끼얹은 장작더미에는 삽시에 불이 댕겼고 나무기둥과 새끼를 얼기설기 꼰 회벽으로 만든 학교는 삽시에 화염에 휩쌓였다.  오리무중에 빠져있던 아낙네들이 순간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연기가 미친듯 머리를 풀어헤치며 하늘로 치솟았고 불길이 혀를 날름이며 창문으로 뻗쳐들었다. 불길은 연기와 함께 창의 문설주우로 널름거리며 기여 올라 처마를 핥기 시작했다.  기침소리와 비명소리를 뿜으며 갇혔던 사내들은 맨주먹으로 학교의 창을 내질러 깼다. 깨진 창으로 머리칼이며 옷자락에 불이 붙은 남정네들이 하나 둘 뛰쳐 나왔다. 탕! 탕! 왜병들은 뛰쳐나오려는 사람들을 향해 가차없이 발포했다.  연기속에서 뛰쳐나와 괴롭게 기침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총검을 꽂았고 군도를 휘둘렀다.  남정들의 목이 두부모마냥 섬벅섬벅 베여진다. 순식간에 떨어져 나뒹구는 머리통들이 학교마닥에 공처럼 뒹굴었다. 총소리가 랑자하게 학교마당을 흔들었고 사슴골을 흔들었다. 불길을 못이겨 연기속에 몸부림치며 머리를 내밀던 남정들은 반신을 창문턱에 걸채인채 죽어 갔다.  그 와중에 우물집 남정이 창문에서 뛰여 내려 몇발자국 뛰였으나 탄환이 등짝을 관통하며 피를 물고 쓰러졌다.  허집사가 연기속에 머리를 내밀다가 이마에 탄환을 맞고 머리통이 수박처럼 으깨졌다.  최포수가 뛰여 나왔으나 시체에 걸채여 몇걸음 못가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득달같이 달려간 사병이 쓰러진 그의 등짝을 총검으로 내리찍었다. 총상과 자상으로 너덜해진 최포수가 단말마로 몸을 일으켰다. 무엇인가 움켜잡을듯 손을 뻗쳐 허공을 허비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우물댁이 새된 비명을 지르며 불타는 교사를 향해 뛰여 나갔다.  그런 그의 어깨죽지를 사병 하나가 갈퀴손으로 찍어 당겼다.  그 손을 뿌리치며 우물댁이 기어이 뛰여 가려 했다.  그러자 사병하나가 뒤에서 그녀의 등을 총검으로 찔렀다. 칼날이 호박 지르듯 푹 들어갔다 벌건 혈액을 묻히고 다시 나왔다. 우물댁의 등에서 피의 분수가 치뿜겼다. 비명한번 못지르고 우물댁은 그 자리에 폭 고꾸라 졌다.  그뒤를 따라 달려 나가던 최포수의 딸도 어깨에 칼을 맞고 쓰러졌고 휘적이며 뛰여 나가던 회령댁은 휘두르는 군도에 팔 하나가 뎅겅 잘려 나갔다.  떨어져 뒹구는 자기 팔을 주어들고 어떻게 주체할길 없어 회령댁이 악악 비명만을 죽기내기로 질러댔다.  공포에 사로잡혀 헤갈하는 사람들을 죽이기란 마른 풀대 꺾기보다 더 쉬웠다. 왜병들은 살아보려 몸부림하는 목숨들을 마음대로 찌르고 베고 토막쳤다. 그야말로 아비지옥(阿鼻地獄)과 규환지옥(叫喚地獄)에 떨어진듯한 참경이였다. 퍼런 린불이 피여오르는 무간나락에서 악귀들의 손에 마음대로 꺼둘리우고 있는 사슴골 사람들이였다. 불타오르는 교사를 향해 뛰쳐 나가려던 아낙네 몇의 발길이 뒤미처 두려움에 묶였다. 아낙네들은 감히 나서지 못했고 그저 선자리에서 옷고름을 집어 뜯으며 발로 땅을 헤집어 파며 목놓아 절규했다. 기함을 할 듯이 비명에 비명을 질렀다. “여보” “아버지” “오빠” 갈래갈래의 창자를 비트는 듯한 비명과 비명속에 불길은 높아갔다.  학교가 드디여 화살에 관통된 붕새처럼 어깨죽지를 꺾으며 물러 앉았다.  지붕이 폭삭 내려 앉고 불길과 회색연기와 불똥들이 마지막으로 하늘향해 치솟았다.  눈앞에서 자행되는 참극속에 목놓아 울며 끝순은 이상한 환상에 갈마들었다.  아버지나 남편이 제발 창문으로 나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였다. 하지만 뛰쳐 나오면 총칼의 수풀이 기다리고 있고 나오지지 않으려면 불지옥이 기다리고 있는것이였다.  이 모든것은 꿈일거야, 꿈이였어 하고 버거운 배를 부등켜 안은채 공포의 들숨 날숨을 헐떡이며 끝순은 생각했다. 기허한 몸은 허깨비에라도 사로잡힌듯 했다. 바람에 뒤척이는 공기의 갈피마다에는 매캐함과 피비린내가 섞여 숨을 쉴수 없었다.  꿈틀, 배속의 아기도 놀란듯 뒤척였다.  끝순은 둥시런 배를 부여안으며 그자리에 주르르 물앉았다.  언제 왜놈들이 물러갔는지 누구도 몰랐다. 공포와 절망의 늪에서, 죽음의 냄새속에 허우적거렸던 사람들은 사슴바위쪽에서 해가 이울기 시작해서야 이 피비린 도륙이 막을 거두었음을 알게 되였다.  악마구리 끓듯 하던 마을이 얼마쯤 소강상태를 찾자 누군가 먼저 다가가 폭상 물앉은 재더미를 헤치기 시작했다. 아직도 불티를 머금은 재더미는 열기를 안고 있었다.  기둥을 치우고 채 타지앉은 서까래들을 치우자 재더미 속에서 뒹구는 시체들이 보였다.  시체들은 화덕속에 던져진 멸치처럼 까맣게 타들어 있었고 꼬부라져 있었다.  누가 누군지 분별할수가 없었다. 불타다 남은 나무 기둥과 사람의 송장을 혼돈하기도 했다.  아낙네들은 그저 앙가슴을 탕탕 줴지르며 이제 쉬여버린 목소리로 다시 꺼억꺼억 울음을 짜냈다.  섬약한 그네들이 할수 있는것이란 울음에 또 울음이였다. 울음을 우는것만이 참혹하게 죽어간 남정들에 대한 애도요, 어찌할수 없는 무기력감에 대한 변명인것 같았다. 그래서 너나 할것없이 승벽내기라도 하듯이 목청높여 울고 울고 울었다.  그 란리속에서 누군가 홍소를 터뜨리며 재더미우를 뛰여 다녔다.  왜병들의 만행에 광증을 일으킨 돌배집 할멈이였다. 할멈은 가을벌판의 새쫓듯 간헐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맨발로 아직도 불티를 튀기고 있는 재더미우를 마구발방 뛰여다녔다.  학교마당에 가맣게 탄 시신들이 건어물처럼 놓였다.  33구의 시신, 교회의 목사님을 모시러 룡정으로 나간 병욱이네를 빼면 마을 남정 전부가 왜놈들의 손에 도살 당한것이였다.  도무지 누구의 시신인지 가릴수 없어 시체를 합장하기로 했다.  마을 어구의 산자락에 합장할 거대한 묘소를 팠다. 아낙들의 힘이였기에 묘소를 파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스름이 내리고 빛이 사위여도 달빛을 빌어 묘소를 팠다.  어느새인가 울음은 멈추어져 있었고 모두들 아무 말도 없이 구덩이를 파는데 열중할뿐이였다. 온몸에 울혈이 맺혀 들쑤시는 몸으로 아낙들은 남정네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끝순이도 삽을 들고 나섰다. 아버지와 남정을 잃은 그를 대신해줄 사람도 없었다. 또 막달 산모가 쟁기를 들고 나서도 누구 하나 그에 생각이 미칠 겨를도 없었다.  힘겹게 삽질을 하면서 끝순은 줄느런히 누웠는 시신쪽에서 남편과 아버지의 시신이 어느것이였을가 골똘히 생각했다.  남북골인 남편의 머리통과 야위인 몸 맨두리를 보아 어느 한 시신이 자기 남편인것 같은데 집사댁이 자기 남편인것 같다고 했고 게다가 북산댁까지 나서서 자기 오빠같다고 했다. 그러니 시신을 정확히 확인 할 방법이 없었다.  눈물과 씨름하면서 아낙들은 용케도 장사(葬事)를 치러 나갔다. 훌쩍 훌쩍 코물을 치걷으며 시신을 하나 하나 구덩이에 내려 눕혔다.  시신우에 거적을 덮고 벗겨온 봇나무껍질을 덮고 흙을 덮었다.  마을 앞산 더기에 거대한 봉분이 생겨났다.  그리고 봉분을 다 덮을 무렵에 밤비가 내렸다. 안개처럼 수물대는 가랑비가 내렸다. 자기의 눈물에 젖은 사람들은 이번에는 하늘의 눈물에 젖었다. 비도 아니고 안개도 아닌 자디잔것들이 눅눅한 습기를 몰고와, 소리없는 눈물처럼 내려 사람들의 가슴을 더 습하게 만들었다. 막상 봉분을 대하자 또 슬픔이 북받쳐 올라 아낙들이 우르르 무덤에 덮쳤다. 가랑비에 젖는 무덤이 애처로워 몸으로 막아주련듯 했다. 다시 일렁이던 울음보들이 터져 올랐다.  비에 젖어가는 밤의 골짜기에서 쇠지랑물 냄새가 났다.  온 골짜기를 자오록히 덮는 그것은 슬픔의 냄새였다.  어둠과 가랑비와 슬픔속에서 무덤에 엎드린 아낙들의 울음소리는 그칠줄 몰랐고 울음 소리는 비 소리를 덮었다.  그날 왜놈들의 분탕질에 정갈하던 마을은 삽시에 쑥밭이 되였다. 왜놈들이 지른 불에 마을의 학교와 교회당 그리고 전부의 가옥이 불탔다.  불은 이틑날 아침까지 타올랐는데 그 연기기둥은 수십리 떨어진 룡정에서도 보였다.  악귀들의 손에 남정들은 몰살되였고 지어 골골대는 닭과 컹컹짖는 개들 마저도 사람들과 함께 도륙되였다. 그야말로 마우계견(馬牛鷄犬)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이튿날 또 한번 우물가에서 어느 아낙의 비명이 새청맞게 터져 올랐다.  피범벅, 흙범벅이 된 옷가지를 씻어라도 볼 양으로 나섰던 북산댁은 우물가에서 머리통을 부여 잡고 두눈을 휩뜬채 악악 비명만을 지르고 섰다.  뚜드럭 뚜드럭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소리를 내며 우물가로 수십기의 기마병들이 몰려 들고 있었던것이다.  불에 덴 사람이 부지깽이를 보고 질겁하듯 전신을 인두질 하며 휩쓸고 간 화상의 아픔을 수습하기도 전에 악귀같은 누런 군복의 왜병들을 다시 본 아낙은 비명을 련발하다 그 자리에 혼절하고 말았다. 불개미처럼 버글버글 몰려든 무리의 맨 선두에서 노란별 세개를 박은 붉은 계급장을 단 대위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그야말로 다시 보고싶지않은 귀면같은 얼굴이였다.  아낙네들이 또다시 사병들의 총 개머리판에 윽박지름을 당하며 무덤앞에 모여섰다.  돌연한 암벽이 우뚝우뚝 키를 돋혀 좁혀 오는듯해 아낙들은 공포감에 숨조차 바로 쉬지 못했다.  저승의 차사(差使)가 손짓을 하듯 대위가 말채찍을 들어 무덤을 가리켰다.  “파라” 아낙네들이 일순 영문을 몰라 대위를 쳐다보았다. 몸집이 앙바틈한 그 사병이 나와 어눌한 조선말로 말했다.  “하까(무덤)를 파라. 무덤을 파란 말이야” 아직도 오리무중인듯 어리둥절한 기색을 지은 집사의 아낙이 나서며 물었다. “뫼, 뫼를 파란 말임둥? 어째서 말임둥?” 사병의 총 개머리판이 아낙의 머리를 가격했다. 아낙이 머리통을 부여잡으며 무덤가에 쓰러졌다. 부여잡은 손가락틈새로 피가 번져 나왔다.  “하야꾸(빨리)” 땅딸보 사병이 무덤을 가리키며 감때 사납게 웨쳤다. 이때 새청맞은 비명이 터져 올랐다. 어제 일으킨 광증이 다시 발작한 돌배집 할멈이였다. 할멈은 비명을 지르며, 홍소를 터드리며 맨발로 겅중겅중 무덤주위를 뛰여 다녔다.  “야까마시이 (시끄럽군)” 붉은 계급장이 뇌까렸고 사병 하나가 총박죽으로 윽박지르며 할멈을 높은 곳으로 끌고 갔다.  할멈을 벼랑가에 세워놓고 조준하던 사병이 총을 내리웠다. 사병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지어졌다. 총을 거두고 사병이 군화발로 할멈의 등짝을 사정없이 내질렀다.  할멈이 돌덩이처럼 산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할멈이 떨어져 내린 산아래에서 메새가 화드득 날아 올랐다. 아낙들이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마에 들린듯 쥐여주는 쟁기를 받아들고 서둘러 채 마르지도 않은 무덤을 다시 파헤치기 시작했다. 흙을 밀고 봇나무껍질을 걷우어 내고 거적을 치웠다. 무덤속에 누워있는 사람의 그것같지않은 형체의 시신들이 보였다. 아낙들속에서 억누르지못한 울음소리가 새여 나왔다.  그 시신들을 끄집어 내라고 하였다. 왜병들의 윽박지름에 시신을 끄집어 내여 하라는대로 무덤가에 덧쌓아 놓았다.  그리고 사병 하나가 또 진록색의 수통을 들고 왔다.  휘발유를 시신우에 부었다.  불을 달았다. 연기 기둥이 솟았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송장타는 노릿한 냄새가 아낙들의 가슴을 아프게 헤집어 놓았다.  또 한번 지자러진 울음소리가 터져 올랐다.  연기는 소나무 우둠지높이까지 치솟았고 끝순의 회동그랗게 치뜬 눈길은 그 연기를 쫓고 있었다. 머리를 젖혀 파란 하늘을 검은 망사처럼 가리는 연기를 지켜보며 끝순은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아직도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않나하는 자문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 울음소리가 귀전에 들렸고 시체타는 냄새를 코로 맡을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사납디 사나운 흉몽이 정녕 실제로 내 신변에서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뼛골을 파고드는 공포에 새삼스레 소름이 와삭 돋았고 악몽의 나락에서 벗어나련듯 끝순은 목구멍으로 앓는 소리를 내며 뒤걸음쳤다.  비치적대며 뒤걸음친 발걸음은 저도모르게 산더기에서 몇발자국 내려와 있었다.  사병들은 아직도 화염에 쌓인 시체더미에 눈길이 쏠려 아낙네들중에서 빠져나오는 끝순을 보지 못했다.  산더기아래에서 왜병들과의 거리를 의식한 순간 끝순은 뛰기 시작했다.  “저년 잡아라” 뒤에서 고함소리가 울렸다. 분명 자기를 향해 지르는 소리임을 느껴 끝순은 얼핏 머리를 돌려 보았다. 사병 하나가 자기를 향해 삿대질 하고 있었고 그 호령에 맞추어 두명의 사병이 그를 향해 달려 왔다. 들짐승같이 눈을 번득이며 자신을 향해 득달같이 덮쳐오는 무리를 보고 끝순은 기겁을 했다.  “어매!” 짧은 비명 한번 지르고 나서 끝순은 뛰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지 모르고 그저 뛰기만 했다. 이 귀신나락같은 곳을 벗어만 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몸을 버겁게 놀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뛰기 시작했다.  무거운 몸은 어느새 산 자락을 내렸고 개울을 건넜고 앞산 산자락을 향하고 있었다.  사슴을 신통히 닮은 바위가 있는 곳, 그래서 사슴골이라 마을이름이 지어졌다. 그 바위를 사람들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생각했고 기자석(祈子石)처럼 간주해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그곳으로 가면 이 두려움에서, 이 악몽에서 벗어날수 잇을것 같았다.  전설속의 사슴이 뿔을 세워 악귀들과 맞서고 커다란 뿔을 펴들어 그 아래 자기를 보호해 줄수 있을것 같았다. 지쳐 곱아드는 무거운 몸을 포근한 등에 실어 멀리 멀리로 실어다 줄수 있을것 같았다.  “서라, 서지않으면 쏠테다” 뒤에서 헐떡이며 악에 받쳐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등덜미를 물어뜯는 개의 짖음처럼 가까이 들려 왔다. 하지만 끝순은 멈추지않고 뛰기만 했다.  탕! 총성이 울렸고 끝순은 종아리를 각목으로 가격을 받은 것처럼 풀썩 넘어갔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배를 껴안으며 모로 넘어갔다.  신음을 흘리다 모지름쓰며 다시 일어섰다.  몇보 달리자 그제야 다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종아리 아래가 시뻘겋게 물들어 있는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다리를 질질 끌며 끝순은 또 달리기 시작했다.  깜박깜박 흘지는 정신의 끄트머리를 간신히 붙들고 내뛰였다.  고무신에 흘러내린 피가 고여 질퍽거렸다.  잡풀이 뒤덮인 산자락에 좁은 길이 가리마처럼 뻗어있었고 그 길로 우차가 덜컹거리며 느릿느릿 오고 있었다.  골이 깊고 길이 외진 이곳에서 마을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였다.  그 우차를 향해 허위단심 뛰여 갔다.  우차에서 누군가 놀라며 뛰여 내렸다.  “아니 너 끝순이 아니냐?” 우차에서 뛰여 내린 이는 장목사였다.  마을의 목회를 위해 일주일에 한번 꼴로 룡정에서 수십리 상거한 사슴골까지 찾아오던 장목사였다.  목회자로서의 설교뿐아니라 간간히 왜적들의 국권수탈에 대한 설분이며 민족의 독립에 대해서며를 알기쉽고 조리정연하게 이야기해주어 마을사람들의 존경을 자아냈던 인끔높은 장목사였다. 마을의 량교장과도 사이가 도타왔고 학교의 교사들이 일이 있을때면 대신 교학도 맡아주었던 장목사였다.  “목사님, 아이고 장목사님!” 끝순이 구명은인이라도 만난듯 목사의 팔목을 부등부등 부여잡았다. 오금이 풀려 무릎을 꺾으며 쓰러졌다. 목사가 그를 안아 일으켰고 소몰이군이 그들어 그를 안아 우차우에 눞혔다.  일본사병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피흘리며 쓰러진 끝순이와 총검을 비껴들고 뛰여 오는 사병들을 본 목사가 사태의 엄중성을 직감했다.  “끝순일 부탁하네. 빨리 뛰게나” 목사가 소몰이군에게 당부했다. 소몰이군이 덴겁히 소를 돌려세웠다. 코뚜레를 끌며 손에 들었던 버드나무가지로 소잔등을 마구 후려갈겼다. “가자, 가자, 날래 뛰여라” 공포에 휘감긴 소몰이군의 어조가 괴상한 음조로 변형되여 있었다.  채찍질에 소가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우차의 들춤질에 끝순은 잠간의 혼수에서 깨여났다. 몸을 반쯤 일으키며 뒤를 돌아다 보았다.  장목사가 사병들을 맞받아 뛰여 가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오? 무슨 일이기에 하필 임산부를 잡으려는것이오?” “도시리도끄(비켜라)!” 사병들이 장목사를 향해 감때사납게 웨쳤다.  하지만 장목사는 벽처럼 사병들의 앞을 가로 막아섰다. 사병 하나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장총을 들어 멀어져 가는 소수레를 향해 발포했다.  탕,  총알이 머리우로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귀전을 스치는 총성에 끝순은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어이쿠!” 소몰이군이 손에 들었던 버들가지를 팽개쳤다. 그리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고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사병이 다시 총에 장탄을 했고 우차우의 우두망찰 앉아있는 끝순을 향해 조준했다.  장목사가 덮쳐들며 총가목을 잡아 우로 쳐들었다. 탕! 탄환이 허공을 갈랐다.  “칙쇼 (망할놈) 죽고싶냐” 사병이 장목사의 배구럭을 군화발로 걷어찼다.  그런 사병의 군화발을 장목사가 그러 안았다. 한사코 그러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질질 끌려가면서도 놓아주지 않았다.  악에 받친 사병이 총창을 거꾸로 들어 장목사의 어깨를 내리 찔렀다. 하지만 장목사의 두손은 집게처럼 사병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사병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총검으로 장목사의 등을 마구 내리 찔렀다.  등뒤에서 장목사의 비명이 들려 왔다.  두 손을 허우적거리는 장목사의 입으로 꿀럭꿀럭 검은피가 새여 나오고 있었고 총검의 찔린 몸의 이곳저곳에서 피의 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온 몸으로 피를 흘리며 장목사가 마지막 절규를 뿜었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이 모든 광경을 우차에 실려 가며 끝순은 놀라움에 휩뜬 눈동자에 담고 있었다.  이 변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소는 는지럭거리며 걷고 있었다.  장목사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병이 발길로 장목사를 산길아래로 차서 내리뜨렸다. 퉤, 하고 사병이 목사의 피범벅이 된 몸뚱아리를 향해 침을 뱉었다.  사병들이 다시 우차를 향해 조준하려던 총을 거두었다. 바퀴 구으는 소리 요란한 우차우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사병들이 헐레벌레 쫑아와 소고삐를 잡아 당겼다. 소가 멈춰 섰다.  소수레길 왼쪽은 비탈진 산자락이였고 그 자락의 끝으로는 강이 사품쳐 흐르고 있었다.  사병들이 총을 거꾸로 메고 허리를 굽혀 산자락 아래를 굽어 보았다. 아무리 굽어보아도 끝순은 보이지 않았다.  “칙쇼! 어디로 샜나? 강에 빠져 뒈져나 버려” 씨벌이다가 산자락 아래를 향해 몇방 빈총을 갈겼다.  탄환에 찢긴 진달래 꽃잎이 우수수 날렸다.  그와 함께 놀란 메새들이 날아오르며 강가는 온갖 새소리로 왜자했다.  한동안 산자락을 훓다가 빈물을 켠 사병들이 돌아섰다. 산자락에 군락을 이룬 관목림속 우묵한 곳에 끝순은 몸을 숨기고 있었다.  종아리를 관통한 총상에서 흘러내린 피가 엎드린 땅을 적셨다.  하지만 감히 상처를 처치할 념을 못했다. 강언덕우에서 씨부렁거리는 왜말이 아직도 바람을 타고 간간히 들려오고있었다.  극심한 공포에 끝순은 한기에라도 들린듯 부들부들 떨었다. 그저 눈을 멍쩡히 뜨고 자신의 다리에서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묽숙한 피를 멀거니 지켜보기만 했다.  속이 미식거리고 목이 말랐다.  한결 굵어진 해빛이 산그늘에 숨어 있는 그녀의 몸우에 빛무리를 우와우왁 내리 붓고 있었다. 왜놈들에게 들킬가 끝순은 자꾸만 나무 그늘속에 몸을 옹송그렸다.  한동안 소리가 없자 끝순은 앙당그렸던 목을 빼들고 나무가지사이로 빠끔 머리를 내밀었다.  돌아서던 사병들이 장목사가 쓰러진 쪽에 다시 멈춰서 있었다. 장목사의 몸이 아직도 꿈틀거리는것을 확인하자 사병하나가 총을 들어 그의 머리에 겨누고 쏘았다.  탕! 메새들이 다시 한번 푸르르 날아 올랐다.  소쩟소쩟  소쩍새가 이제는 울 기력마저 없는 미망인들의 호곡을 대신하는양 덩이진 울음을 연신 토해 냈다.  이윽고 끝순은 떨리는 손으로 너덜너덜해진 치마자락의 한귀를 잡아 입으로 가져갔다. 덜덜 맞부디치는 이발로 치마자락을 물고는 고개를 홱 젖혀 북 찢었다. 치마자락이 찢겨나가며 속곳이 다 드러났고 희멀끔한 허벅살이 다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을 따질 게제가 못되였다.  천쪼박으로 총상을 입은 다리를 질끈 동이였다.  그러다 끝순이 신음을 토해냈다.  다리의 통증이 느껴져서가 아니였다. 그보다도 더큰 통증이 배에 덮쳐왔다.  너무나도 큰 통증에 끝순은 뒤로 벌렁 자빠져 버렸다.  통증은 아래배로 부터 스멀스멀 기여와 온 몸을 휩쌓다. 극심한 통증에 끝순은 입을 딱 벌렸다. 하느라지가 다 보이도록 입을 벌렸다.  사슴바위를 떠인 산 봉우리가 그녀를 향해 꼰지기라도 할듯 거꾸로 동공에 비쳐왔다. 그 골짝사이로 하늘변을 덮으며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검은 연기가 보였다.  한 가슴 울기처럼 가득찬 슬픔과 동통이 한꺼번에 피덩어리처럼 뭉쳐 목구멍 가득히 뻗질러 올라오고 있었다. “어매!” 방금까지는 들쉼조차 함부로 쉬지 못하던 끝순이 동통을 못이겨 소리내여 비명을 질렀다.  강보에 어머니를 잃고 홀아비 손에서 자랐던 그녀는 보지도 못한 어머니를 소리내여 불렀다.  혼몽한 의식속에 산자락을 덮으며 흐드러지게 피였는 진달래꽃이 보였다. 허우적거리는 손으로 진달래나무가지를 부여잡았다. 뭉그려 힘을 준 손에서 진달래가 뿌리채 뽑혀 나왔다. 배꼽노리로부터 불덩이 같은것이 불쑥 치솟는듯 했다.  아래배로 못견디게 우럭우럭하는 뜨거운 열기를 느껴 끝순은 두 손으로 흙바닥을 호벼파며 몸부림했다. 창자를 비트는듯한 비명과 함께 끝순은 하체로 진달래꽃처럼 선연한 피를 울컥 쏟으며 태생부터 불운한 아이를 몸밖으로 밀어 냈다.  팽팽하게 켕켰던 힘살이 느즈러질 무렵 꽉 깨문 터진 입술로 배릿한 피를 머금고 끝순은 치마자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아기를 받았다. 꿈지럭거리는 아이를 보듬어안고 이발로 데룽데룽 달린 태줄을 물어 끊었다. 그런 경황중에서도 아이의 아래도리에 눈길이 갔다. 계집애였다. 굵은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이제 평생 울 분량을 다 울어버렸나 했더니 눈물은 다시 멈출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아이의 얼굴에 대였다. 아이가 흠칫 하더니 드디여 응애 하고 첫 울음을 터뜨렸다.  막상 고고의 소리가 아기의 꽃순같은 입에서 터져 나오자 끝순은 와뜰 놀라며 아기를 품에 꼭 껴안았다. 덴겁히 사위를 둘러 보았다. 다행이 왜병들은 물러가고 없었다.  강녘은 죽음처럼 조용했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여 있다. 앞산에도, 뒤산에도, 양지 음지를 가리지 않고 피여 있다.  산등성이에도 고개마루에도 바위 틈에도 그리고 마을 언저리까지 밀고 내려와 피여 있다.  하지만 진달래가 가녁을 령롱하게 수놓았던 마을은 이제 더는 없다.  볼을 스치는 배릿한 강바람에는 옅은 진달래 향이 섞여 있었다.  그 바람의 위무의 손길에 끝순은 젖은 눈물을 말렸다.  솟쩍 솟쩍 어디선가 소쩍새가 한이 서린 울음을 덩이로 토하고 또 토해 냈다.  - 김 혁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중에서 "연변문학" 2015년 3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0    틱(Tic) 댓글:  조회:2513  추천:12  2014-11-17
. 미니소설 .   틱(Tic)   김 혁 * 흠!하고 녀석이 코방구 뀌는것같은 소리를 냈다. “웃었어? 네가 지금 웃었어” 최형사는 단단히 화가나서 녀석을 노려 보았다. 생각같아서는 녀석에게 귀싸대기를 한대 갈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녀석은 아직 이마빡에 솜털이 뽀송뽀송한 십대의 미성년자였다. 또PC에서 일어난 사건이였다. 가해자는 곁자리 또래 아이의 머리에 뜨거운 라면을 끼얹었다. 그리고도 성차지 않아 라면 포크로 아이의 얼굴을 훑었다. 피해자의 얼굴에는 상처자국이 이마로 부터 볼을 거쳐 턱밑까지 쌍줄기 레루처럼 그어져 있었다. 눈을 다치지 않은것만도 다행이였다. 원인은 간단했다. 아이들은PC방에 온종일 붙박혀 있다가 점심때가 되면 라면을 끓여먹곤 하는데 자신은 눅거리를 먹고있는데 곁의 애가 비싼 “오뚜기” 라면을 먹기에 아니꼬운 생각이 발동해 싸움을 걸었고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것이였다. “네같은 놈은 ‘오뚜기’라면이 아니라 콩밥 먹어야 돼” 취조실을 나오는데 흠!하고 애가 또 코방구를 끼였다. 최형사의 인내심은 그야말로 극에 달했다. 취조실을 나오며 그의 손은 줄창 이마를 벅벅 긁어 대고 있었다.   ** 퇴근길, 아들애를 맞으러 차를 몰고 유치원을 향해 달리면서도 최형사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었다. “요즘의 애들이란 참” 최형사의 탄식이 차창 한자락에 하얗게 서려들었다. 와이퍼(刮水器)버튼을 눌렀다. 흔들 흔들 부지런한 손길처럼 좌우로 오가며 와이퍼가 차창을 닦는다. 요즘의 아이들이 이 우왕좌왕하는 와이퍼 같다고 최형사는 생각했다. 유치원 문가에서 배웅하는 선생님에게 배꼽인사를 올리고 나서 아들애가 덤벙이며 뒤좌석에 뛰여 올랐다. “오늘 재밌었어 아들” 최형사는 아들애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안해와 갈라지고 부양권을 넘겨 받은뒤 엄마 노릇까지 맡아하는 최형사다. 아들애는 아무말도 없이 아비를 향해 눈만 깜박이였다. 커다랗게 쌍겹진 눈시울을 자꾸만 깜박인다. 백미러로 아들애의 기색을 살피던 최형사는 뒤로 머리를 돌리며 물었다. “눈에 티라도 들었나. 왜 자꾸 눈을 깜박 거려? “아니요.” 아들애는 시들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또 눈을 깜박인다.   ***  “틱장애입니다.” 일요일, 요행 시간을 내여 아들애를 데리고 병원을 찾은 최형사에게 의사가 말했다. 아들애의 눈 끔벅임 증상이 심했다. 처음에는 그 거동이 앙증맞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기승스레 눈시울을 끔벅거렸다. 잘 때를 빼고는 온 종일 마치 눈첩첩이처럼 눈시울을 끔벅거리는것였다. 유치원 선생도 아이가 웬지 자꾸 눈을 슴벅인다고 귀뜸을 주었다. 그래서 급기야 병원을 찾은것이다. “틱이라니요?” 최경형사는 무슨 말인지 오리무중에 빠져 의사의 입매만 바라 보았다. “틱 (Tic) . 비정상적인 움직임, 이상한 소리를 내는 증상을 말합니다.” “중한 병인지요?” 최형사가 다잡아 물었다. 놀래는 최를 안정 시키련듯 중년의 녀의사가 미소를 지었다.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충동조절장애와 같은 정신 및 행동 장애로 일어나는 증상입니다. 그 증상들을 보면 얼굴을 찡그린다더거나 입맛을 다신다더거나 코를 킁킁거린다더거나 눈을 깜빡인다던거나, 목에서 '흠' 하는 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형사의 뇌리로 하나의 형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의사가 설명을 이었다. “틱장애는 스트레스나 긴장, 신경전달물질 이상 등이 주원인입니다. 보통 긴장하거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황이면 일어나지요.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같은것을 자주 하는데 그렇게 어떤 상황에 흥분하는 상태에서 증상이 악화됩니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을 보면 흔히 심리적인 영향도 크게 작용할것이라 생각됩니다.    긴장감에 안색이 구겨지는 최에게 의사가 말했다. “그렇게 심한 병은 아니니 너무 근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관심이나 야단을 치는 경우 증상이 더욱 악화되기도 합니다. 요즘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경우 상당수가 이런 저런 틱을 가지고 있거나 과거에 틱을 가지고 있었다는 집계가 있습니다. 심리조절능력이 낮은 아이들은 생각밖에 스트레스가 많아 틱환자가 많습니다.” 간단한 약처방을 떼주면서 의사가 덧붙였다. “아이들에게 틱 장애가 생기는 주요 원인은 흔히 어른들로 인해 인기된 경우가 많답니다. 어른들이 문젭니다” 처방전을 받아드는 최형사의 손이 강심장의 형사답지않게 저으기 떨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길, 아이는 뒤좌석에서 그냥 눈만 슴벅거리고 있고 최형사는 말을 잃고있었다. 밤의 풍경을 담고 달리는 차창은 하나의 스크린인양 어제의 화면을 불러냈다. 이마를 긁고 있는 소년 “손 내려! 너 그 손 내리지 못해” 투명한 고음이 귀청을 찢는다. 소리의 임자는 아이의 이모다. 이모는 때때로 그렇게 사이렌 소리같은 고음을 지르며 자그만 일에도 아이를 신칙했고 그럴수록 당황한 아이의 손은 버릇처럼 이마로 올라간다. 주체하지 못하고 자꾸 이마를 긁적거린다. “어디 니 맘대로 해봐.” 아이의 손을 잡아떼던 이모가 아이의 얼굴에 입을 바찍 갖다대고 감때 사납게 소리 지른다. 아이의 손이 더욱 빨리 움직인다. 미구에 아이의 이마에 선명한 손자국이 생기고 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이 미친놈아, 내가 무슨 죄를 만나서 지 어미가 버리고 달아난 조카를 거두고 이런 신세가 됐노” 이모가 울음 섞인 소리로 악청을 지른다. 빵! 빵! 곁을 스치는 차의 경적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 그제야 최형사는 소스라쳐 깨면서 핸들을 단단히 부여 잡았다. 백미러로 아들애를 건너다 보았다. 비쩍 마른 아들애는 언제보나 피기없는 얼굴에 심드렁함을 애가 좋아하는 변형금강 가면처럼 쓰고 있다. 무뚝뚝하던 말투를 고쳐 교환수처럼 상냥한 소리를 내며 물었다. “아들 랠이 생일인데 젤 큰 소원이 뭐야? 뭐 사줄가? 변형금강 인형 사줄가? 아님 놀이동산 갈가? 아니면 피자 먹고 싶어? 아빠가 사줄게.” 아이가 아빠를 빤히 쳐다보았다. 촉촉히 젖은 눈시울을 슴벅거리면서 힘아리 없이 중얼거렸다. “엄만 언제 와? 이번 생일엔 엄마가 왔음 좋겠어” 칙- 차가 급정거를 했다. 최형사는 운전석에서 내려 뒷좌석문을 열고 올랐다. 아들애를 꼭 껴안아 주었다.   **** PC방 사건에 대한 취조는 생각밖에 길게 이어졌다. 일을 저지른 가해자의 보호자를 불렀지만 며칠 지나도 오는 이가 없다. 드디여 애가 열쇠를 잃은 문처럼 봉하고만 있던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리혼한뒤 해외로, 내지로 싹 다 가버리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전번달 그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운명했다고 했다. 거두어 줄 사람이 없어 그동안 PC방에서 먹고자면서 나날을 보냈다는 아이다. 처음 아이의 계집애같이 가는 목소리를 들으며 최형사의 손이 자주 이마로 올라갔다. 점심시간이 되였다. 최형사가 아이에게 무언가 내밀었다. “오뚜기” 라면이였다. 흠! 하고 아이의 입으로부터 신음같은 소리가 새여 나왔다.     “장백산” 2014년 1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9    제33회 "연변문학"상 수상작품- "뼈" 댓글:  조회:3085  추천:11  2014-10-23
제33회 "연변문학"상 수상작품 . 중편소설 .   뼈 - “중국조선족테마소설” 계렬   김 혁   [그림: 미국화가 조지아 오키스의  "붉은 산과 뼈" ]     수요일: 랭면과 도적   주문한 국수가 나왔다. 그윽한 육수물에 반쯤 담겨진 찰진 국수발, 그우에  소고기 육편, 닭고기 완자, 절반 베인 삶은 달걀, 사과배 조각으로 곱게 고명을 얹은 국수가 나왔다. 국수는 그 무슨 음식이 아니라 한점의 정교한 조각품을 방불케 했다. 그 국수를 수근은 멀거니 내려다 보았다. 임금님전에 올리는 수라상을 먼저 점검하는 내시처럼 조심스레 면발을 입에 넣었고 잣과 깨가 동동 뜨는 육수물 한모금 떠서 맛보았다. 쫄깃했고 시원달콤했다. 몇해만에 먹어보는 고향 랭면인가! 입안 그득 고여드는 흥그러운 이 맛… 국수 한 그릇이 순간에 굽이 났다. 멸치를 우려 양파를 넣고 계란을 풀어 만든 육수물에 부추와 호박나물을 잔뜩 넣은 물국수며, 썬 김치와 참기름, 고추장으로 비빔한 비빔국수도 고향의 랭면맛보다 못했다. 또 한그릇 주문했다. 풍성한 면발을 다시 한번 허겁지겁 입에 넣던 수근은 국수발을 입에 가득 문 채 그만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먹고픈 국수를 마음대로 먹던 나날들과 국수를 함께 먹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수근은 기어이 눈물을 보이고야 만것이다. 눈물의 육수를 밑굽까지 비우고 수근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유명세를 떨쳐 온 랭면집이 신축공사중이여서 림시 개설한 분점임에도 화장실에까지 사람들로 붐비였다. 온 세상 사람들이 작심하고 랭면만 먹으러 모여 온듯했다. 하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한철이라 그럴법도 했다. 수근이네 마을 사람들도 한때는 시내행차를 하면 남정네고 아낙네고 할것없이 랭면부를 찾아서는 기어이 랭면 한그릇씩 맛보군 했다. 랭면 맛보기는 시골사람들이 시내구경에서의 그무슨 통과의례처럼 되여 있었다.    화장실에 걸린 대형 거울앞에서 저마다 포장수저에 딸려 온 이쑤시개를 꼬나든 사람들이 허연 이를 드러내고 이발청소를 하고 옷무새와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 그들처럼 화장실 거울앞에 마주서던 수근은 홀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짧은 비명을 흘리며 후다닥 화장실을 뛰쳐나왔다. 금방 앉았던 자리, 국수 두 그릇을 허겁지겁 비웠던 그 식탁곁에 놓았던 트렁크가 보이지 않았다. 쥐색 바탕에 긴 손잡이와 바퀴달린 트렁크가 보이지 않았다. 수근은 툭툭 주먹으로 제 이마를 때렸다. 흥분할때나 급할때면 저도모르게 나오는 반사적인 습관이다. 트렁크, 여게 놨던 트, 트렁트를 못봤나요? 급한나머지 수근은 말까지 더듬었다. 지진이라도 인듯 비명을 동반한 수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입에 문 국수발을 끊치도 못한채 곁자리의 아낙이 머리를 저었다. 선머슴아이의 서투른 빗질처럼 주위를 마구 훑던 수근의 눈길이 랭면집의 창문밖을 향했다. 랭면부 맞은켠의 뻐스정류소에서 막 떠나려는 공공뻐스가 보였다. 또 한번 기급한 비명을 지르면서 수근은 랭면부를 뛰쳐나갔다.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죽기살기로 뻐스를 쫓아갔다. 금방 출발한 뻐스라 속도를 내지않았기에 수근은 단박에 뻐스를 추월할수 있었다. 뻐스앞에서 두손을 쫘악 벌리며 차를 가로막았다. 끼익! 쇠갈기소리를 내며 뻐스가 멈춰섰고 운전기사에게서 앙칼진 욕설이 터져나왔다. 뻐스문을 원쑤처럼 쿵쾅 두드려대는 얼나간 사람같은 그에게 대체 무슨 영문이냐고 기사는 욕설과 함께 문을 열어주었다. 뻐스기사가 퍼붓는 욕설에도 술렁이는 차객들의 소리에도 개의치않고 수근은 땀냄새와 열기로 랑자한 사람들 틈바구니를 뚫고 들어가 대번에 쥐색 트렁크를 끌고있는 20대의 남자를 짚어냈다. 깡마른 몸에 메밀눈을 한 그 남자의 멱살을 와락 잡아쥐면서 감때 사납게 웨쳤다. 도둑이야! 이 놈이 내 가방을 훔쳤소. 도적으로 지명된 사내가 몸부림치며 항변했다. 그런데 사내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말은 하지않고 가을밭 참새라도 쫓는듯 으아! 으아!하고 새된 고음을 지르며 손발을 휘저었다. 아마 벙어리인가보오. 설마 벙어리가 그런짓 했을까! 한편의 단막극이라도 보듯 호기심에 흥미를 동반한 눈길들이 수근이와 도적사이의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파출소로 갑시다! 운전사량반 파출소로 가주시오! 수근이가 운전석쪽을 바라고 구원을 바라는 사람처럼 웨쳤다. 그 소리에 차객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가뜩이나 더워서 귀찮은 날씨에 재수없는 일에 휘말려 시간을 빼앗긴다며 불평불만들이 터져나왔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서로 확인해 보면 될거 아니오. 맞추는 사람이 임자고 못맞추는 사람이 도적인게 확실하지. 기사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가와 제안했다. 사람들중에서 중년남자 하나가 원주필을 뽑아 내밀었다. 벙어리가 말을 못하니 안에 뭐가 들었는지 자기 오른 손바닥에 쓰라고 했다. 수근이는 자기 왼 손바닥에 쓰라고 했다. 억울하다는듯한 표정만 짓고있던 벙어리가 손짓발짓 해가며 차에서 내리겠다고 괴성을 질러댔다. 그러는 그의 손목을 중년남자의 우악진 손이 단단히 감쳐쥐였다. 마지못해 벙어리가 그 중년사내의 손에 뭔가 적었다. 기사가 손바닥을 펴들고 들여다 보았다. 벙어리가 쓴것은 “의복”이라는 두 글자였다. 원주필을 받아들고 수근이도 적었다. 힘주어 커다랗게 적었다. 손바닥에 적혀진 글자를 헤아려 보던 중년사내의 두눈이 휘둥그래 졌다. 땀에 흥건한 사내의 손바닥에 적혀진 글자는 한 글자였다. 그 글자를 운전기사며 차객들에게 보여줬다. 그들의 눈동자 역시 순간에 영화감독의 큐!사인을 받은 어설픈 엑스트라의 과장된 연기처럼 일제히 휘둥그래졌다. 땀에 젖어 글자의 획들이 이니셜 대문자처럼 굵어진 글자가 사내의 커다란 손바닥에 넘쳐날듯 씌여져 있었다. 뼈. 당신 정신 온전한 사람 맞소? 정신을 한국에 두고 왔나? 선진국 가서 11년이나 구을다왔다는 사람이 이 정도밖에 안되오?  아니 무슨 사람이 벌건 대낮에 사람 뼈덩이를 싸들고 시내 복판을 활주하는가 말이요? 엉! 파출소에서 수근은 당직 경찰에게 보리쌀 닦이듯 하고있었다. 경찰들이 우루루 모여들어 못볼 괴물이라도 보듯 수근이를 지켜보았다. 수근은 툭툭 주먹으로 제 이마를 때리며 무어라 적당한 변명의 말을 찾지 못해 했다. 벙어리 도적과 어딘가 심상치않는 도적맞힌 사람을 싣고 뻐스는 부근의 파출소로 왔다. 경찰들이 대번에 그 벙어리 도적을 알아보았다. 전과범인데 그 말고도 무리를 지어 소매치기를 다니는 벙어리도적들이 더 있어 수사망을 펼치고 있는 중이였다. 그런데 도적맞혔다는 물건을 확인하며 트렁크를 여는 순간 담당 경찰은 매일 흉악범을 상대로 하는 경찰답지않게 초풍할지경으로 놀라했다. 트렁크안에 두개의 비닐주머니가 들어 있었는데 그 비닐 주머니에 나뉘여 담겨져있는것은 뼈였다. 텅 빈 눈구멍이 선연하고 이발이 들쭉날쭉한 해골바가지며, 굽이 나간 접시같은 골반, 길다란 정갱이 뼈… 분명 사람의 뼈였다. 내 아부지 어무니 뼙니다. 수근이가 서둘러 설명했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부모님의 산소가 모셔져있는 산소의 이장통지를 접하고 서둘러 귀국했다고 했다. 왕복티켓을 끊었는데 급히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서둘러 화장하려다가 그 뼈를 하마트면 도적맞힐뻔했다는것이다. 묘를 이장하고 뼈를 화장할려면 민정국 사무소의 증명서류가 있어얀다는것도 모르오? 이 사람이 이거 크게 경을 칠 사람이구만. 별의별 사건을 다 겪지만 이런 해괴한 일은 처음이라는듯 담당경찰은 부아통이 터져있었다.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해서야 수근은 파출소에서 놓여 나왔다. 수근의 신분증이며 려권 그리고 연고자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등 신상명세며 장황한 설명, 그리고 뼈들의 오래 된 상태를 보아 상황파악은 되였다. 반양머리에 흙빛 피부, 황소처럼 둥글고 구순한 눈길을 한 그의 목소리에서, 표정에서 그리고 온몸에서는 진솔한 사람의 냄새가 났다. 더욱이 수근이네 고향의 묘지 이장통지도 신문사에 물어 확인했다. 그제야 경찰은 수근이를 믿는 눈치였다. 온 오후를 닥달질 당하고 나니 울컥 야속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법도 했다. 백주에 다른 물건도 아닌 사람의 뼈를 들고 시가지 곳곳을 쏘다녔으니 오해를 살만도 했다. 고향마을으로 가는 마지막 뻐스가 있으려나 생각하며 트렁크를 달달 끌고 어스름이 내리는 도로변을 따라 수근은 뻐스역으로 향했다. 그런 수근의 어깨를 누군가 가볍게 건드렸다. 누구냐고 돌아서는 순간 코잔등에 주먹 하나가 날아 들었다. 두손으로 코를 부여잡는데 이번에는 옆구리에 발길이 날아들었다. 얼굴이며 잔등에도 주먹과 발길질의 란타가 날아들었다. 한 두사람이 아니였다. 느닷없는 타작매에 수근은 도로변 하수구에 뒹굴었다. 폭행을 감행한 괴한들은 재빨리 어둠에 스며들듯 도망쳐버렸다. 수근은 몸부림치며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서는 수백개의 불나방이 날아다니는듯하고 코에서는 뜨거운것이 쏟아져 내렸다. 괜찮아요? 채소구럭을 든 할머니 하나가 다가와 코피를 쏟고있는 그에게 휴지를 내밀었다. 휴지를 돌돌 말아 코속에 쑤셔넣으며 경황속에서도 수근은 트렁크를 찾았다. 다행이 트렁크는 있었다. 트렁크도 온하루 불운함에 치대고있는 주인장처럼 길녘에 뒹굴고 있었다. 트렁크를 끌고 도로변의 화단에 걸터앉아 엉망이 된 몸과 마음을 수습했다.   그들이 누군지 알것같았다. 시가지에 벙어리도적떼들이 출몰한다던 파출소 경찰의 말이 떠올랐다. 틀림없이 그들이라고 수근은 단정했다. 무작정 구타를 날리는 그들은 한결같이 수근이가 한낮 뻐스우에서 들었던 그 벙어리도적과도 같은 으아으아하는 특유의 괴음을 지르고 있었던것이다. 그야말로 수선하기 그지없는 하루였다. 고향가는 막차를 놓칠가 서둘러 몸을 일으키던 수근이가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옆구리에 송곳으로 쑤시는듯한 통증이 왔다. 트렁크의 손잡이에 의지한채 수근은 아픔을 삭이느라 몸부림쳤다. 아마 뼈라도 다친 모양이다.   화요일: 수몰지(水沒地)의 사람들   오랜만에 귀국한 수근은 바로 고향마을을 찾았다. 부모의 묘소를 이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튿날 아직도 마을에서 맨 마지막 사람으로 거짓말처럼 살아있는 팔순의 조막령감을 등에 업고 고향의 뒤산으로 올랐다. 뒤로는 11년만에 만나는 소꿉친구 병태가 다리를 잘숙잘숙 절며 따라섰다. 어쩌면 이제 겨우 40대중반의 나이에 풍을 맞아 손이 곱아들고 다리를 끌었다. 그런 성찮은 몸으로도 병태는 친구를 돕겠다며 기어이 따라 나선것이다.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고향사람들도 모두 마을을 떠나버렸다. 백여호를 웃돌던 동네에 겨우 여섯호가 남았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다섯호는 관내에서 온 한족들, 마을 원주민이라고는 병태와 그의 할아버지뿐이였다. 말(마을)에 남은 사람이라곤 벵신(병신) 꼬라지된 나와 꼬부랗게 늙은 우리 할배밖에 없다. 못생긴 낭기(나무) 선산 지킨다더니… 병태는 십여년만에 나타난 친구를 향해 씁쓸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주름이 찾아든 얼굴에서 세월여류(岁月如流)를 확인하면서 서글프게 웃었다. 지난 한밤을 간소한 술상이라도 벌려놓고 잔에 잔을 비우며 얘기 꼭지를 거듭 틀었다. 수근의 등에 업힌 조막령감은 다름아닌 병태의 할아버지다. 그 뒤로 쟁기를 챙겨들고 마을의 장씨성을 가진 한족나그네가 묻어 섰다. 병태가 “장보톨”이라 칭하는 그는 수근이가 한국으로 로무를 나간뒤 마을에 들어온데서 처음 보는 사람이다. 묘 이장을 위해 하루삯 300원을 주기로 하고 데리고 나섰다. 이장을 전문 하는 사람을 찾아 쓸려니 천원돈 아니면 안한다고 배포를 부렸다. 요즘 세월에 이장과 같은 장례절차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적었고 또 일 자체가 부정타는 일이라며 “겨울 딸기”격으로 부르는것이 값이였다. 그래서 생각다못해 년로한 병태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선것이다. 난장이를 겨우 면한듯 작고 왜소해서 조막령감이라 불리는 병태할아버지는 마을의 년장자격이다. 왜정때 글도 읽었고 마을에서 회계노릇도 오래 해오면서 일찍부터 마을의 대소사에 빠지지 않았던 몸이였다. 그러니 이장도 할줄 안다고 했다. 더우기 수근의 아버지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몸소 참가했던 령감이였다. 이장도 이장이려거니와 수근은 부모의 묘소를 어디에 모셨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수근이가 네살적엔가 세상떴으니 얼굴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형님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어쩌면 수근이가 한국으로 나간지 두달만에 갑작스레 세상떴다. 어머니의 비보를 듣고도 금방 출국한 몸이라 돌아와 장례에도 참가하지 못했던 수근이였다. 마른 사과처럼 쪼글쪼글 늙은 조막령감은 이제 죽기전에 고향의 뒤산에 한번 오르고 싶다며 뜨락에도 겨우 나서던 몸을 일으켰다. 할아버지도 오래전에 중풍에 쓰러졌던 몸이다. 병태네 가족병력사에서 풍이 래력이다. 아버지도 풍을 맞고 돌아가셨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산수의 나이를 넘긴 몸이지만 많은 차도를 보여 다행이였다. 마을의 고샅길을 가로질러 뒤산으로 올랐다. 산은 옆구리를 조금 틔워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온 사람에게 길을 내주었다. 지질한 잡목과 잡풀이 발에 채였다.처음에 업고보니 령감은 바짝 여위여 빈 벼가마니처럼 가벼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팔막진 산길을 업고 오르려니 점점 더해지는 무게가 수근의 등짝을 압박해 왔다. 게다가 더위가 만만치 않았다. 정수리가 잉걸불을 인듯 뜨거웠다. 직수굿이 입 다물고 걷는데 땀이 등판을 적셨다. 그렇다고 몸이 온전치 못한 병태와 바꿀수도 없는 일이였다. 도시의 수원(水源)과 발전(发电)을 위한 저수지 확장공사를 하면서 묘지는 물론 수근이네 마을 전체는 이제 수몰지(收沒地)로 물에 잠기게 된다. 그러면 부모의 분골을 두만강에 뿌리기로 수근은 마음먹었다. 원체 마을 뒤산에는 묘들이 수십 기가 있었지만 고향을 뜨면서 이장해 나가고 또 방치해두어 찾는이가 거의 없는 마을묘지는 버려진거나 다름없었다. 소식을 접하고 한국에서 헐레벌레 찾아왔는데 그 묘소들을 이장할 시간이 이제 겨우 하루가 남았다.  산자락에서는 벌써 불도젤이며 포크레인들이 부릉부릉 쇠이빨을 맹렬하게 갈아대듯 굉음을 울리며 작업이 시작이다. 무쇠팔로 나무들을 중둥을 쳐 쓰러뜨리고 바위돌을 밀어내고 흙을 깎아낸다. 거대한 쇠스랑에 찍혀 청청한 솔이 흰뼈를 드러내며 툭툭 분질러지고 있었다. 불도젤은 납작 엎드렸으나 미처 몸을 다 숨기지 못한 임자없는 봉분들을 마구 밀어제끼고 있다. 불도젤이며 포크레인, 트럭들이 뿜어내는 성마른 소음과 매콤한 연기가 산마루의 새소리와 풀냄새를 뒤덮어버리고 있었다. 산이 낮아지고 숲이 사라져가고 있다. 조(저)기 조(저)쪽 같아 뵈는데… 조기 늘근(늙은) 솔낭기 지(제) 혼자 서있는데, 응, 조기 조쪽으로 가보지무… 내 짐작이 틀림없을게다 조막령감의 조막손이 느릅나무, 가문비나무, 사시나무숲을 지나 홀로 허허롭게 섰는 늙은 소나무 하나를 가리켰다. 산등성이의 확 트인 양지 바른 곳, 그 곳에 동그랗게 몸을 웅크린 봉분이 하나보였다. 비석도 상석도 없고 묵은 풀이 우묵한 봉분은 조금 내려앉아 보였다. 무덤앞에 령감을 내려놓자 령감이 조그많고 험한 손으로 봉분을 투덕투덕 두드렸다. 맞따! 이 뫼짜리(자리) 맞따. 여기서 조기 렬사비 아래쪽으로 꼳꼬지(곧게) 내려다 봐라. 과수밭 아래쪽 조기가 딸내미 셋이 몽땅 싸이판 나간 양봉재(쟁이) 강서방네 집이고 강서방네 곁집이 쏘련 나갔다 죽은 박서방네 집, 그 집 곁이 바루 수근이 너네 집이 아니고 뭐냐. 령감의 조막손이 가리키며 확인하는 산자락아래에 수근의 집 그리고 강서방네 집, 박서방네 집은 꿈 꾼듯이 사라지고 없다. 살던이들이 죽거나 떠나버린데서 언녕 주저앉아 오간데 형체조차 없고 빈 집터에는 쑥부쟁이, 능쟁이같은 잡초의 춤만이 무성하다. 그 거뭇한 빈자리들이 수근의 가슴을 저릿하게 했다. 용하게 찾아낸 오래된 봉분앞에 신문 몇장을 펴고 고량주와 명태포, 사과배 그리고 소시지나 과자들로 간략하게나마 제상을 차렸다. 조막령감이 시키는대로 배워가며 례를 치렀다. 종이컵에 술을 부어 무덤에 올렸다. 무릎꿇 절을 올리면서 말했다. 아부지 어무이! 더 좋은데 모실려고 집을 허무니  놀라지 맙소! 따른 술을 봉분우에 끼얹었다. 묘주위를 돌며 세번 크게 웨쳤다. 파묘(破墓)! 파묘! 파묘! 그제야 드디여 봉분에 삽을 박았다. 시간이 오래된 봉분이다. 아버지는 40여년전에 어머니도 11년전에 돌아가신지라 봉분은 풀뿌리로 얽혀 무척 단단했다. 곡괭이를 꽂고 앞뒤로 몇번씩 흔들어야 겨우 촘촘하게 쩔은 떼장을 한 뼘씩 벗겨낼수 있었다. 겉흙을 한꺼풀 벗겨내고 삽날을 힘들게 박아넣으면서 수근은 일이 쉽지않음을 알아챘다. 흙이 생각보다 단단했고 거치적거리는 돌멩이들도 심심찮게 나왔다.   굳은 흙이 삽날끝을 구부러뜨리자 “장보톨”은 씨부렁거리며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로 상한 날끝을 두드려 폈다. 철겅철겅 삽질소리가 황량한 산의 정적을 깼다. 쟁기소리와 더불어 조근조근 조막령감의 이야기도 끼여들었다. -원래는 이 축축한 땅에 내 먼저 묻힌 조상량반들께 때맞춰 공양을 드려야 그게사람 된 도리가 아니겠냐? 그리구 저 고향땅에서 쌀이고 풀이고 그만큼 뜯어먹고 훑어먹었음 묌(몸)이라두 죽어 저 땅에 묻혀 비료(거름)돼서 그 값이라도 하는게 옳이 된 도리지. 그런데 요쌔(요즘)는 모두 로문 (늙은) 한 어시고 이뿐 처자고 막 버리고 훌훌 떠나버리니 나 원참, 돈이 좋아 그런다마는 사실은 그 돈이 웬쑤(원쑤)인게다. 웬쑤! 조막령감이 한가슴 가득한 울기(鬱气)를 토해내며 짐짐하게 짓무른 눈꼬리로 수근이를 쳐다보았다. 자기에게 채문하고 확답을 구하는듯한 그 눈길에 수근은 눈길을 돌렸다. 고개를 수긋하고 그저 부지런히 일에만 몰두했다. 한국에서 일에 절은 몸이라지만 삼복염천에 땅을 파자니 쉽지가 않았다. 얼굴에는 땀이 비오듯 흐르는건 물론 허리가 아프고 오랜 막일에서 얻은 관절통에 손목 인대가 끊어질듯 했다. “장보톨”도 힘겨웠던지 중국말로 무어라 욕을 섞어가며 거칠게 곡괭이질을 해댄다. 수근은 한숨 쉬고 하자며 호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병태에게 뿌려주었다. 이거 한국담배꾸마 병태가 담배 한개비를 할아버지 입에 물려주었다. 남조선 골련(권연)이라니 어디 한대 먹어보자. 한국꺼라해서 다 조은건 아니겠지우. 담배하문 그래도 여기 화건종 담배가 최곱지 장보톨”에게도 권했다. “장보톨”은 담배를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더니 불을 붙여물고는 그늘을 찾아 쪼그리고 앉았다. 엄지와 검지로 끝을 잡고 필터밑까지 알뜰히 태워댔다. 금방 붙여 물었던 담배의 불똥을 끊어내며 이번에는 병태가 그로서의 울기를 뿜어댔다. 그쪽은 뭐 달도 여기보다 더 크다 그러덤둥? 더 밝다 그러덤둥? 그래서 다 말벌에 쐰 사람처럼 달아나 거기로 가버린담둥? 담배연기가 몽환처럼 묘소주위에 굼닐었다. 신코에 속흙을 잔뜩 묻힌채 삽자루에 손을 걸치고 수근은 산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농익고 꽉찬 여름이 들에서 일렁이고 있다. 풍성한 여름은 왔건만 마을은 텅 비여 보였다. 대부분 밭은 중국사람들에게 헐값으로 양도해 버렸고 더 많이는 버려졌다. 논의 한 가운데 그동안 보이지 않던 고압선 송전탑이 우뚝우뚝 마을을 침노(侵擄)한 괴물처럼 서있다. 집과 집의 노란 이영들끼리 접붙어 있던 다정한 모습은 오간데 없고 모두가 떠나버려 주저앉았거나 주저앉으려는 집들은 괴물에 쫓겨 비여진 흉가를 방불케했다. 왕년에 정답기만 하던 마을길도 형언하기 어렵게 더러웠다. 길복판에 말똥이며 버려진 농기계의 내연기관 부속품이 뒹굴었고 죽어서 털인형처럼 된 강아지 시체도 보였다. 뒤산 자락에는 과수밭이 펼쳐졌는데 과수에 경험이 적은 외지사람들이 되는대로 다루었던지 사과배가 불다 만 풍선처럼 조그많게 달려 있다. 원체 곡창이라 불리던 마을이였다. 과수가 잘되고 자식농사가 잘되는 곳이라 린근에 소문이 자자한 마을이였다. 하지만 오늘의 고향의 풍경은 장수가 맞지않아 버려진 낡은 화투장같이 진부하고 초라했다. 그 진부한 풍경도 이제 물에 수장되여 말끔히 사라져버릴 판이다. 선조들이 이 곳에 터를 마련하면서 심은 벼와 사과배나무, 그 척박하던 땅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픈 간절한 념원과 종내는 주렁주렁 열매를 달았던 나날들에 대한 기원을 망가뜨린건 수근이만이 아니였다. 과수밭 언덕배기에 세워진 렬사비가 유독 눈을 찌른다. 비바람에 지워지고 오래동안 먹을 넣지않아 비명이며 렬사들의 이름조차 말끔히 지워지고 하얀 몸체만 남았다. 항일에 몸을 던져 마을을 지켰던 사람들의 기념비는 이제는 괴괴한 무덤같은 마을을 위해 세워진 커다란 비석처럼 보인다. 고향마을을 내려다보며 넋놓고 섰는 수근이를 보고 병태가 말했다.  뭘 볼게 있다고 자꾸만 내려다 보고 그러냐. 없다, 싹 다 가버리고 아무도 없어. 그래도 수근이 니는 지금 이렇게 면례(이장)라도 하니 다 꽃이라 생각해라. 이제 말(마을)이 물에 잠기면 부모님 효도해 묻을 곳도 없다. 후유, 처박혔다 물밑에서 밖으로 솟아나온 사람처럼 수근은 거칠게 한모금 한숨을 내뿜었다. 두자 반 정도 파 내려가자 흙 색깔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흘러 드디여 관이 드러났다. 관널은 아직도 형태 그대로 보존되여 있었다. 홍송으로 만든 관은 십여년 잘가고 백송으로 잘 만들어진 관은 50년까지도 간다고 조막령감이 말했다. 관덮개사이에 삽날을 끼워넣고 힘주어 제꼈다. 덮개가 부서졌다. 관덮개가 생각보다 너무 싱겁게 열렸다. 벌건 황토속에 허연 뼈들이 드러났고 시지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왔꼬나. 뻬(뼈), 뻬 나왔다아!" 조막령감이 울음같은  환성을 질렀다. 오랜 시간이 흐른지라 육탈이 된 뼈는 비교적 완정하게 남아있었다. 색깔이 누렇고 새까맣게 변색한 뼈들이 수근이를 올려보고 있었다. 좌남우녀로 합장한다니 왼켠의 더 시커멓게 삭은 유골이 아버지, 오른켠의 아직도 흰빛을 잃지않고 있는 유골이 어머니임이 틀림없다. 수근은 툭툭 주먹으로 제 이마를 때렸다. 수근의 눈시울이 자우룩히 젖어들었다. 조막령감이 일렀다. 호미깽이 가져왔냐? 이제부턴 광차이(삽) 치우고 호미깽이로 긁어라. 살살 긁어얀다. “장보톨”을 묘혈에서 내보내고 수근은 혼자서 유골을 수습했다. 호미를 들고 조심조심 바닥을 긁었다. 수근이 니 아부지 상새날때(세상뜰때) 니들 지끔 나이보다도 더 아랠땐데  니 아부지가 하필이문 해토머리에 상새났거든. 뫼짜리를 잡겠는데 땅이 안 풀려서 쇠처럼 땅땅한게 당최 팔수 있어야지. 그래서 막 빵포(남포)질 해서 언땅 파헤치고 그랬지. 그래도 그때는 온 동네가 다 나와서 제집일처럼 애고대고 울어주는데 제사 한번 제대로 했지. 령감은 망자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꺼내들었다. 수근이 호미로 굵은 흙알갱이를 헤치고 흙속에서 뽑아낸 뼈들을 몽당비자루로 흙을 말끔히 털어내고는 또 술로 씻어 신문지우에 하나 하나 펴놓았다. 에궁, 귀하신 뻬를 모시는데 신문찌라니. 요짐(즈음)은 참 벱(법)도 업는 세월이다. 처음부터 소나무아래 잔디둔덕을 등판 삼아 비스듬히 기대여 앉아서 조막령감은 끝간데없이 잔소리를 했다. 그만큼 수근이가 서툴렀던것도 사실이다. 원체는 한지(韩紙) 나 삼베를 페(펴) 재이문 하다못해 봇낭기 껍질이라두 쫘악 벳겨서 그우에다가 뻬를 올려 놓는게 벱인데 담배때문에 기침이 터져나와 멈추었다가 그것도 잠간, 령감의 사설은 계속되였다. 수근이 급히 오다보니 한지를 살 새가 없어 그랬소꼬마. 또 요쌔는 어디가서 베천같은거 구할데두 없구. 그래두 서울에서 이렇게 한번 온다는게 간단치 않스꼬마, 남들은 뫼를 막 밀어버려두 모르는체 하는 판인데… 병태가 친구랍시고 수근이 편을 들었다. 하지만 조막령감은 유감천만을 감추지못해 했다. 원체는 한지에 뻬를 모셔 놓는고 말고도 죽은 사람 명정(銘旌)도 쓰는게 벱이다. 이장도 장례인데 명정을 써야지. 칠성판에 뻬를 다 주어놓고 마지막에 뻬에 명정을 덮어 내가는게지. 글고(그리고) 옛날엔 멜레(면례)하기 하루전에 미리 파묘할 뫼짜리에 가서 술과 과실을 차려놓코 멜레한다는 축문을 외운다. 요쌔는 뉘기두 축문같은거 쓸줄을 모르지만. 하기사(물론) 옛날 벱이 너무 다사(번잡)한것도 탈이겠지만 또 낡았다고 그 벱을 넘 안지케(켜)도 탈 난다. 낡았다고 함부로 막 던지고 그러는데 사실 낡은 겔(것일)수록 금처럼 빛이 더 난다는 고 간단한 도리를 요쌔 사람들은 왜 모르는지... 요쌔 젊은이들은 너무 벱을 모르는게 탈이다. 하기사 사람이라 생겨 먹은것은 몽땅 혼궁기(구멍) 열렸는지 밖으로 나가지 못해 매삼질(안절부절 못하다) 해대니. 집안 꼴, 동네 꼴이 초상난 집처럼 저 줏쌀(꼴)이지… 축문에다 쓰는 그게 무슨 뜻임둥? 곁에서 삽에 묻은 흙을 모난돌로 긁어내며 잔일일망정 도와주던 병태가 물었다. 꼬치꼬치 묻긴 어째 묻냐? 네가 후날 멜레라도 하겠다는게냐? 이 말(마을) 당장 물에 잠길건데… 하면서도 조막령감은 오늘의 제주(祭主)인 수근에게는 이장절차를 소상하게 계수(继受)해 주었다. 유세차(维岁次) 감소고우(敢昭告于)… 그 축문이 무너 뜻인고 하니 오늘 뫼를 열어 옮겨 갈게니 토지신 아바이 좀 도와줍쏘사!하는 그런 말이지 수근은 밭은 기침소리에 뒤섞인 조막령감의 민속특강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머리우로 쏟아지는 령감의지청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뼈들을 열심히 줏고있었다. 호미로 긁고 비질을 하고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유골에 묻은 흙과 달라붙는 벌레들을 제거하고 뼈조각들을 퍼즐이라도 맞추듯 빠치지않고 맞추었다. 이장 하재코(하지않고) 불에 태워 날릴게면 뻬를 한데 막 모아놔도 일(상관)없다. 다시 매장을 하게꺼든 손가락뻬 발가락뻬 한 도막이래두 섞지말구 순서있게 맞춰야지. 뿌서졌거나 토막이 난 뻬는 흩어지지 않게스리 가는 낭기 가지에 실로 묶어둬야고… 조막령감이 그렇게 말했지만 수근은 뼈 한조각 흘릴세라 낱낱이 주어 맞추어놓았다. 뼈를 들어내는 수근의 손이 저으기 떨렸다. 하나씩 들어낼 때마다 흙바닥에 숨 죽여있던 오래된 먼지와 냄새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하나같이 해빛을 싣고 바람에 실려 가벼운 몸짓으로 춤을 추었다. 그것은 선친들이 흘린 삶의 비늘이였고 숨결이였다. 하긴 그렇키도 하다. 세상 어데없는 길지를 골라 왕릉 부럽잖케 꾸메(며)본들 어쩌겠노? 썩어 문드러진 묌이 이승에 구불러 댕기는 개똥보다 못하이 다시 생각해 봄(보면) 후날 이러케 멜레고 뭐고 하누라 애 먹지 말고 뻬를 싹 태워서 날레(려) 보내는것도 옳타. 뫼짜리 만들어 논들 또 어쩌겠냐. 선산을 모시긴 고사하고(커녕) 싹 다 달아나 버려 한식이나 추석이 돼도 흙 덮어줄 사람, 풀 베줄 사람도 없는데. 앙가슴에 걸린 기침을 삭이느라 쌔근거리며 말하는 조막령감의 목소리가 축축히 젖어들었다. 아버지의 유골을 다 줏고 이제 어머니가 남았다. 어마이 내 왔소꼬마, 수근이 인제사 왔소꼬마 중얼거리며 수근은 두개골을 두손에 받쳐들고 찬히 뜯어보았다. 마을 목재가공소에서 함부로 기계를 만지다가 사고로 요절한 형님때문에 수근이는 늦둥이로 이 세상에 올수 있었다. 하지만 늦자식을 본 기쁨도 잠시, 아버지도 가슴에 묻었던 자식을 잊지못한듯 인차 뒤따라 갔다. 시름시름 앓다가 병명도 모른채 어느 날 숨을 놓아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형님은 물론 아버지의 형상은 수근에게 있어서 어디에 흘렸던지 떠오르지않는 가족사진앨범처럼 흐릿한 기억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실때 슬픔보다는 죽은 아버지때문에 잘 차려진 제밥이 더 신나고 탐난 철부지 나이였던 수근이였다. 모두들은 형님보다도 수근이가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스스로도 등그런 턱뼈 부근이 어머니의 턱선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다. 햇감자색의 얼굴에 얼굴모양도 감자처럼 둥글은 감자장을 잘 끓여주던 어머니, 한국으로 떠나는 그의 손을 잡고 꼭 떠나야만 하겠냐며 눈시울을 확 붉히던 어머니, 미처 제사에도 오지 못해 제주 한잔 올리지못한 불효를 떠올리니 속에서 왈칵 뜨거운 것이 치솟았다. 한낮의 열기를 받아 안은 두개골은 따듯했다. 두 손으로 보듬은 그 두개골에 낯을 붙이고 수근은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어무이, 어무이… 철 모르고 울어대는 뻐꾹의 소리같이 울음소리가 느닷없었고 그 느닷없는 오열은 깊었다. 병태가 묘혈속으로 손을 뻗쳐 수근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놔 둬라, 실컷 울게 놔 둬… 울고나면 명치끝에 박혔던 어열이 쑥 빠져 시원할게다. 그렇게 말하는 조막령감의 목소리도 축축히 젖어있다. 령감이 백태가 낀 눈동자를 조막손으로 훔치더니 간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로회한 안면근을 실룩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제 오늘 성튼 몸이 북망산이 웬 말이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초록같은 우리 인생 장생불사를 어이하리 새빠지게 일만하다 그냥 가니 너무 섧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우리부모 날 낳고서 애간장을 녹였는데 천지신명 몰라보고 부모은공 내 몰랐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가도가도 끝도 없네 한이 없네 인생살이 너도가고 나도 가고 저승에서 반기세나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여가는 오래된 김치처럼 삭아 있었다. 느지럭 느지럭한 소리가 여름 새벽 달팽이 기여가듯 하면서 나오다가 후렴구에 가서는 소(沼)를 만난 폭포처럼 빨라진다, 시름 한숨과 설음이 한 움큼 담긴 상여가는 수근의 울음과 함께 했다. 내 어릴적에 말(마을)서 죽은 사람 상디(상여) 나갈때 하던 소리(곡)인데 원래는 이 보다 더 길다. 오랜만에 할라이(려니) 가사가 당최 기억이 나질 않네. 령감이 이 하나 없는 합죽한 입을 벌리며 처량하게 웃었다. 노래의 울림에 붙들려있던 수근은 눈물을 닦고 묘혈에서 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골은 한지나 삼베가 아닐망정  신문지 넉장우에 나란히, 고히 모셔졌다.     목요일: 명태포 그리고 사랑   병태가 가물가물 알려준 회사는 시가지의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명태포를 만드는 회사라고 했다. 이름은 유한회사라고 달았지만 실은 페교된 학교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철제대문우에 떠인 간판이 제법 컸다. 제품의 자호와 가공소의 전화번호가 아이들 머리통보다 더 커다랗게 씌여져있다. 회사의 경기는 그런대로 괜찮은듯 했다. 마당에는 제품 운수용으로 쓰이는듯한,차체에 제품 자호를 새긴 봉고차가 주차되여 있고 건물벽에는 제품의 자호가 새겨진 포장박스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는 술안주로 명태포가 류행이였다. 생맥주에 곁들이면 그 맛이 일품이였다. 옛적에는 골목길의 작은 잡화점들에서 생맥주와 명태포를 곁들어 팔았는데 그 맛이 지금까지 전해내려와 다방, 차집, 까페, 지어 레스토랑에서 까지도 아직도 명태포는 맥주안주 일순위로 나가고 있다. 그래서 명태포 가공소들의 운영경기가 좋았다. 한국에서는 왠지 명태로 국을 끓여먹지 포를 뜨는 경우가 적었다. 그래서 주말에 간혹 한잔으로 일독을 풀때면 고향의 명태포생각이 간절해지곤했다. 그 수요를 헤아려 가리봉동의 어느 연변에서 온 사람이 차린 식당에서 명태포를 들여다 팔고 있다지만 그곳까지 찾아가 비싼쪽으로 찾아 먹을 게제가 못되여 그동안 고향의 맛을 잊고 살아온 수근이였다. 통증이 호주머니속 이물질처럼 그냥 의식되는 옆구리를 지긋이 누르고 수근은 이곳까지 찾아왔다.  고향에서만 볼수있는 고약딱지 “호골고”를 옆구리에 붙혔다. 애초에 한국으로 보따리장사를 나갔던 사람들은 우환청심환이며 “호골고”따위를 들고 나갔었다. 하지만 이런 약은 지금 출국뿐만아니라 시중에서도 판매가 금지되여있었다. 병태가 집구석에 고히 감추어두었던 그렇게 효험있는 고약을 찾아내 붙여 주었지만 통증은 막을수 없었다. 아마 뼈를 다친것 같으니 한번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라고 병태가 권했다. 하지만 수근은 그럴 기분이 없었고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저 운나쁘게 당한 자신을 원망할뿐이였다. 한국에서 일하다 다쳐도 웬만한 상처는 견디며 악착같이 일해 온 그 관습이 못 견딜 아픔을 견디게 해주고있었다. 마치 듬성듬성한 징검다리를 건너듯 수근은 조심스럽게 회사마당으로 들어섰다. 가공소라고 패말이 달린 곳에서 인기척이 났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유리창너머로 들여다본 가공소안의 풍경은 분주했다. 작업대에 마주앉아 수십명의 녀공들이 마른 명태의 대가리며 지느러미며 꼬리들을 가위로 자르고 비닐 포장지에 담고 있다. 머리에 위생모자를 얹고 얼굴에 마스크를 하고 팔에 토시를 두른채 가위며 손칼로 명태의 몸퉁이를 분리하는 녀공들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쭈볏거리다가 용기를 내여 가공소의 문을 노크했다. 노크소리가 낮았던지 동정이 없다. 다시 한번 힘주어 노크를 했다. 이번에야 들었던지 녀공 하나가 나왔다. 혹시 여기 명월이라고 있습니까? 과수마을에서 온… 그말에 일본새대로 나왔던 녀자가 수근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스크속 녀자의 안면 근육이 얇게 일그러졌다. 녀자가 휘청거리는듯 벽에 어깨를 기대며 섰다. 다가오는 정오의 해빛을 수직으로 받아서였던지 녀자는 몹시 지친듯해 보였다. 그의 손에는 다듬다가 만 마른 명태가 그대로 쥐여져 있었다. 야윈 몸체에 비해 손마디가 부은 듯 굵어보였다. 녀자가 위생모자를 쓴 이마 아래로 야생초처럼 듬성듬성 흘러내린 잔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올렸다. 피로에 쌍꺼풀 진듯한 눈우로 순간에 흘러 넘치는 눈물을 수근은 놀랍게 지켜보았다. 귀바퀴의 연골을 타고 흘러 내린 머리를 헤치며 녀자가 마스크를 벗었다. 수근의 입으로 헛바람같은 비명이 새여나왔다. 눈앞에 선 녀공이 다름아닌 수근이가 찾고저하는 명월이, 바로 그의 전처 명월이였다. 꼭 11년만에 보는 명월이는 보름달같던 어제의 얼굴을 잃고 있었다. 사위인 초승달같이 뺨이 훌쩍 패였고 풍만하던 몸매의 곡선도 허물어져 보였다. 더우기 푹꺼지고 언저리가 거뭇해진 우묵눈이 그 어떤 고충을 보여주는듯 했다. 명월은 아무말도 없이 우묵눈을 들어 수근이를 쳐다만 보았다. 눈동자는 깊었다. 그것은 마른 우물처럼 한없이 텅 비여 보였다. 녀자의 말없는 입술이 움찔움찔 울음을 품고있었다. 그 눈길의 고문이 두려워 수근이는 다급히 다음 말을 이었다. 아들애를 한번 보고싶다고 했다. 혀아래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욱이, 우리 욱이를 한번만 보고싶어서… 순간 녀자의 목소리가 앙칼지게 솟아올랐고 손이 수근이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뭐? 욱이? 그 드센 손길에 수근은 볼을 감싼채 어정쩡해 있었다. 명태로 후려갈긴지라 수근의 뺨에 벌거죽죽한 얼룩이 지나갔다. 명월의 안면이 우그러지더기 급기야 울음이 터져나왔다. 명월이는 무너지듯 그자리에 쭈그리고 앉더니 두팔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톱질하듯 어깨를 들썩이며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서러운 울음에 한마디만 잘라내 복창하싶이 담아냈다. 당신이 욱이를 볼 면목이 있어? 당신이 욱이를 볼 면목이 있냐고, 당신이… 깊은 오열이였다. 그 오열이 너무 깊어서 수근은 그녀를 달래지도 못했다 울음소리에 녀공들이 우르르 달려나왔다. 일부는 명월이를 달래고 일부는 수근이를 에워쌌다. 누굽니까? 당신? 녀공들이 세괃게 따져 물었다. 불량배 보듯한 수십쌍의 눈길들이 수근의 전신을 더듬었다. 그녀들의 눈길에 어려있는 적의에 수근은 어쩔바를 몰라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신분을 어떻게 밝힐지 몰라 땀을 흘렸다. 내가 저 울고있는 녀자의 전남편이요.하고 밝히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이때 녀공들의 틈새를 비집고 남정네 하나가 나왔다. 됐쏘. 쭝우(中午) 다 됐쏘, 모두 들가서 밥이 먹쏘. 거쿨진 몸매에 목소리가 우렁찬, 매우 적극적인 인상을 한 그 남자의 말에 모두가 수근이를 에워쌌던 울바자를 풀었다. 녀공들의 부축임을 받으며 명월이도 가공소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는 그녀의 어깨가 아직도 딸국질하듯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 여기 책임이 맡은 경리라 했쏘. 어째 밍웨(明月) 찾았쏘? 밍웨 찾아 무슨 일이 있어 했쏘? 웃자란 보리밭처럼 무성한 구레나룻 사이에서 내비치는 치아가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한족남자는 조선말을 제법 구사하고 있었다. 수근은 뭐라고 운두를 뗄지 여전히 머뭇거렸다. 옷깃을 매만지며 머뭇거리는데 호주머니속 담배가 만지워 졌다. 담배를 꺼내 경리라는 그 사람에게 권했다. 남자가 머리를 젓더니 호주머니에서 자기 담배를 꺼냈다. 벌건 포장지의 담배갑에서 한대 뽑아 수근에게 권했다. 수근이 그 담배를 받아 들었다. 쩔꺽하고 라이터가 코앞에 다가왔다. 불을 붙여 몇모금 련이어 빨았다. 그러다 독한 담배연기에 수근이 밭은 기침을 토해냈다. 두 사람은 봉고차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유난히도 거쿨진 몸매를 한 사내는 용건이 뭐냐고 자꾸 따져 물었고 하필이면 이 한족사람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수근은 허둥거렸다. 자신이 뱉어낸 담배연기가 허공에서 묽어지고 희박해지더니 정오의 해살속으로 사라지는것을 수근은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 십년세월 허위단심 헤쳐온 연무같이 앞길이 보이지않던 나날들은 수근에게는 다시 떠올리기에도 힘든 시간이였다. 애초에는 안해 명월이가 먼저 가짜결혼으로 출국하기로 했다. 지금보다는 더 광분에 넘쳐, 출국이라는 좁은 소로에서 농약먹은 송사리떼처럼 몸부림쳤던 당시 가짜결혼을 빙자한 출국은 흔히 볼수있는 놀랄것 없는 풍경이였다. 그런데 리혼수속까지 하면서 감행했던 출국은 브로커에게 돈만 떼운채 무산되고 말았고 대신 크게 기대를 안했던 수근이 쪽이 먼저 그 어려운 출국의 겹대문을 열어젖혔다. 내라도 먼저 들어갈께 인차 따라오오. 하면서 먼저 나갔지만 안해는 또 한번의 출국시도에서 가짜 비자가 들통나 인천공항에서 발목 묶였고 그렇게 문전에도 못가 닿고 여러번의 축객령을 받고나니 종시 출국의 대문을 열어젖히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수근이는 수근이 대로 한국에서의 고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막상 서울땅을 밟고나면 무릎아래 지페장이 지천으로 널려있으려니 했지만 막상 무릎팍만 멍들고 깨졌을뿐 그들의 앞길에는 가시밭길만이 펼쳐져 있었다. 나도 그렇게 무지개 꽃밭만은 아니였다오! 아까 명월이의 울음섞인 타매에 이렇게 목울대를 타고 넘어오는 말을 수근은 꿀꺽 삼켰었다. 친지들 눈에 수근은 이미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왜곡되여 있었다. 그들은 수근이를 마치 비극의 원흉이기나 한듯이 끔찍하게 바라보고있었다. 서울에서의 나날은 수근에게서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준 두 얼굴의 시간대였다. 11 년 여를 보낸 꽉 막혀 있던 세월. 춥고 배고프고, 고달팠던 극한의 나날들이여다. 애초 일을 시작했을무렵에는 고된 일은 그런대로 견딜수 있었지만 참기 어려운건 동족지간에도 꺼리낌없이 행해지는 몰리해와 멸시였다. 공사장에서 사장님은 물론 다같이 노가다에 혹사하는 같은 직종일지라도 한국이들은 고국을 찾아 허위단심 찾아온 그들에게 “똥포”놈들이라 폭언을 퍼부었다. 마흔살 되도록 그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온갖 욕설을 삼태기로 퍼부으면서도 사장님은 나의 욕이 니들 시골닭들에게는 인생에서 비타민이 될거야!라고 비죽거리며 말했다. 그 비굴과 모멸의 “비타민”을 매일처럼 삼키며 오로지 고향에 남겨둔 가족을 위해 일했다. 불도가니속에서 세멘트포대를 숙명처럼 짐져나르고 벽돌과 타일을 희망처럼 쌓고 붙혔다. 그러던 어느날, 십여층 높이에 결어 만든 비계우에서 스파이더맨처럼 매달려 타일을 붙이던 중국에서 온 로무자 둘이 추락사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비극이 일자“비타민”사장이 그날밤으로 잠적해 버렸다.  동포모임과 서울의 교회들에서 적극 나서 해결하려 했지만 시간만 끌다가 미해결, 결국은 그동안 손톱 벗겨지게 일해온 로임은 한강에 띄워보낸격이 되고 말았다. 몰지각한 한국 사장님들에 의해 로임체불은 그후로도 여러번 되풀이 되였다.   왜 유독 나만 바라고 번개치고 소낙비는 쏟아지냐! 개탄하며 수근은 술독에 자맥질해 들었다. 막판 뒤집기로 목돈 한번 뽑아볼양으로 여기저기서 꾸어대여 스크린 경마도박에 붙었다가 그만 감당못할 천문수자같은 빚에 깔렸다. 빚재촉을 피해 강원도 치악산자락에까지 숨어 들기도 했다. 그동안 알콜중독 기미를 보였고 교회에서 꾸리는 자선단체에서 하루이틀 연명하다가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슬리고 다시 일에 열심을 보인것도 겨우 몇해전, 그렇게 걸채이고, 넘어지고, 기고, 일어나기까지 십여년 세월이 경마장의 종자말처럼 눈깜짝 할사이에 눈앞에서 달려지나갔다. 밭문서, 집문서 들이대고 여기저기 꾸어서는 빚짐 내여 로무의 길을 열었던 집에서는 통화할때마다 빚에 졸려 울상이였지만 그 동안 수근은 어쩌면 땡전 한푼 집에 보내지 못하고 말았다. 조금만 기다려! 일자리 바꿨는데 이번엔 자리 잘 잡은거 같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봐! 하고 판에 박은 말만을 낡은 축음기처럼 되풀이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그 락언이 번마다 거짓말로 끝나버리곤 했다. 들들 볶던 소리는 나중에는 원망으로 번졌고 절규로 이어졌다. 매번 전화저쪽에서 찌르륵거리는 교신음에 섞여 터져나오는 안해의 목갈린 절규가 무서웠고 귀찮아져 나중에는 전화를 받지조차 않았다. 그러다 종내는 가짜 리혼이 진짜 리혼이 되여버렸다. 안해와 련계가 끊긴지 7년째 되던 해, 로무차로 한국에 나온 고향사람에게서 안해가 개가를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것이다. 비록 련계를 끊은건 그 자기쪽이였지만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수근은 자다가 찬물을 뒤집어 쓴 사람처럼 얼빠져 버렸다.  좌절과 렬패감같은것에 사로잡혀 포장마차를 찾았고 날이 새도록 알콜로 몸과 맘을 마취시켰다. 어쩌면 잡을 만한 지푸라기 한 오라기도 없이 끝 모를 절망의 물너울에서 허우적거렸던 나날들, 그 나날들을 누가 알아줄가! 그렇게 입밖에 내기조차 싫었던 그동안의 힘겨운 나날에 대해 수근은 처음보는 한족사내에게 낱낱이 털어놓았다. 하고싶지않은 이야기였지만 변명처럼 하고나니 외려 속이 후련했다. 수근의 말을 들어주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아무말도 없이 가공소로 들어갔다. 이어 다시 나온 그의 손에 고량주 한병과 명태포 두개가 쥐여져 있었다. 사내가 건네는 명태포를 받아들었다. 부욱 찍어 입에 넣었다. 구수했고 들척지근했다. 역시 고향의 음식은 설명으로는 불가한 그런 맛이 있었다. 사내가 유리컵에 술을 반쯤 부어 수근에게 권했다. 코생이 많이 했쏘. 수근은 그 반컵의 술을 단숨에 비웠다. 명태포를 안주로 수근은 연신 잔을 비웠다. 몇잔을 더 거치자 독한 술에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구레나룻을 한번 쓸어내리며 한족사내가 수근이를 찬히 지켜보았다. 내 한마디 말이 하까? 스스로 컵에 술을 부어 한모금 마시고나서 한족사내가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엔 당신들 정말이 꽈이(怪)하다 했쏘. 우리 중국말 속담에 “급하면 따뜻한 두부는 먹을수 없다”는 말이 있쏘. 당신들은 어째 누구나 다 그리 쪼우지(着急)해 했쏘? 뭐가 그리 쪼우지해서 밭이 뿌요(不要), 집이 뿌요, 애들이 뿌요, 푸무(父母) 뿌요하고  가뻐리고 해쏘? 써울(首尔)이다 르을번(日本)이다 가고 그리 했쏘. 돈이 잘 벌어오오 좋쏘. 돈이 좋긴 했쏘. 그런데 그렇게 돈이 마니 벌어쏘 그담엔 쩐머빤(怎么办)? 팡즈(房子) 메이라(沒了), 밭이 메이라, 로우퍼(老波) 메이라, 푸무 쓰(死)라, 위쓰왕퍼(鱼死网破) 그리 됐쏘 했는데. 우리 중국말 속담에  “새는 먹이에 죽고 사람은 돈에 죽는다”는 말이 있쏘. 요즘부터 산이 밭이 카이파(开发)하면서 보상이 많이 해주는데 조선족들이 눅거리해서 밭이 다 넘겨주구 이제 와서 땅 치며 후회해쏘. 후회 한들 소용없다 해쏘. 완라(晩了). 세상에는 후회약이라는거 없다 해쏘. 난 당신들이 “호로박에 무슨 약이 담갔는지(葫芦里装什么药)?” 부즈또(不知道)해쏘. 정말 부즈또 해쏘… 수근이는 술때문에 아닌 다른 갈증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어쩐지 할말이 몽땅 증발된것 같았다. 한족사내의 일장 훈화를 들으며 수근은 아무런 항변도 할수없는 자신을 의식했다. 그의 말처럼 스스로도 호로박에 무슨 약을 담그어 왔는지 담그려는지 알수 없을때가 있었다. 고된 로무에 혹사하는 와중에 자신도 시시때때 생각했던 문제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누구도 그에 명쾌한 확답을 줄수 없어 했다. 눈앞의 리익에만 근시안이 충혈되여 아예 답 같은것을 생각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아무말도 못하고 수근은 그저 명태포만 체념처럼 울근울근 씹어 댔다. 사내가 말을 이었다. 밍웨는 지금 헌씽푸(很幸福), 헌씽푸하니까 근심이 아니해도 됐쏘. 수근이 멍하니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런 수근의 눈길을 마주보며 사내가 말했고 그 입에서 튀여나온 말의 파편이 수근의 귀속을 아프게 관통했다. 밍웨는 지금 내 로우퍼(老波)니까! 머리속에서 하얀 새떼가 화르르 날개를 펴며 날아갔다. 잠간동안이나마 수근은 아득해질수 밖에 없었다. 금방 마신 소주의 취기가 그제서야 뭉게뭉게 올라왔다.   톱니바퀴처럼 세상은 여전히 이가 물려 돌아가는데 자신을 감고 도는 피대줄은 이미 제거되고 없었다. 왠지 아주 오래 전에 앓았던 치통처럼 불쑥 치밀어 오른 통증이 수근의 가슴을 훒었고 부지중 비명을 흘리며 수근은 고약딱지를 잔뜩 붙인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금요일: 스케트 보드   조붓한 수로를 비집는 물고기떼처럼 교문으로 아이들이 우르르 밀려나왔다. 학교 문앞은 삽시에 시끌벅적해 졌다. 갑작스레 비좁아진 학교 앞길로 자동차들과 사람들이 곡예를 하듯 서로 비켜갔다. 교문을 나선 아이들은 곧장 학교 근처에 올망졸망 들어앉은 문방구에 들어가거나 김밥집, 운남 쌀국수집, 오징어 꼬치집으로 들어갔다. 더러는 핫도그나 오징어 꼬치, 붕어빵을 입에 물고 길거리에서 먹는 아이들도 있다. 교문곁에서 수근은 수위아저씨마냥 두눈을 지릅뜨고 많은 수효의 아이들을 낱낱이 헤아렸다. 수근은 지금 오전내내 아들애를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중간체조 시간에 아이를 잠간 만났었다. 아침 첫뻐스로 시가지로 나와 명태가공소의 한족경리가 일러준대로 학교를 찾았고 학교수위에게 애의 이름과 반급을 댔다. 수위가 안된다고 잡아뗐다. 한국에서 십여년만에 돌아와 아이를 찾는다고 간곡히 요청을 들었다. 그의 간청이 통했던지 수위는 지금은 수업중이니 기다리라고했다. 그렇게 두어시간 꼬박 기다려 중간체조시간이 되였다. 수위가 반급 선생에게 일렀고 반급 녀선생이 아이 하나를 렬을 지은 아이들속에서 점명해 내더니 교문쪽을 향해 어깨를 떠밀었다. 아이가 쭈볏거리며 다가왔다. 니가 욱이구나. 아이를 반기는 수근의 목소리가 마른 저수지처럼 갈라졌다. 누가 구태여 알려주지 않아도 단박에 가려볼수 있을만큼 아이는 수근을 판박이로 꼭 떼닮고 있었다. 반양머리에 얼굴 구멍새가 큼직큼직했다. 게다가 피부도 수근이를 닮아 옻칠을 한것처럼 검었다. 네살때 두고 떠난 녀석은 가을 맨드라미처럼 키도 훌쩍 자라 수근이의 머리높이를 넘었다. 턱아래 울대뼈가 도발적으로 도드라졌고 코밑도 제법 감실했다. 어쩌면 애비없이도 잘 자라준 아들이 고마웠고 한편 그동안 아비로서 빈자리를 보여준 자괴감으로 수근은 숙제못하고 선생앞에 불리워 나간 학생처럼 어깨가 숙어졌다.    안해의 이름은 달이고 아들의 이름은 욱(旭)이, 솟는 해였다. 하지만 그 달과 해의 궤적에 수근은 자신의 행보를 맞추지 못했다. 누구져? 애가 이마살을 모으며 물어왔다. 내가, 내가 니 애비다. 부끄러워 뱉을수도, 그렇다고 넘길수도 없는 수박씨의 딱딱한 감촉처럼  입안에 따글따글 굴러다니던 말을 수근은 한 옥타브 낮은 소리로 내뱉았다. 급기야 말까지 더듬으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을때 아이의 주먹이 자기 이마로 올라갔다. 어쩌면 제수체어도 수근이와 꼭 같았다. 아이는 이마를 자근자근 두드리며 휴일의 단맛을 깨뜨리며 함부로 남의 집 초인종을 울리고 낡은 신문 있소?하고 묻는 페품수거꾼을 보듯이 수근이를 쳐다보았다. 명월이가 집에 돌아가 얘기하지 않았던지 아이의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예기치 않은 아버지의 등장이 놀라웠고 이제 와서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것인지하는 뜨악한 기색이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의 이마에 주먹을 얹은채 아무말도 못했다. 굳게 닫힌 입매로 인해 둘의 분위기는 어정쩡했다. 아이가 불현듯 몸을 휙 돌렸다. 체조해야죠. 체조시간인데… 아이는 한마디 뱉고는 체조대오를 향해 뛰여갔다. 중간체조가 끝났지만 아이는 아버지앞에 나타나지않았다. 그래서 수근은 점심시간까지 꼬박 교문앞에서 기다린것이다. 아이들속에서도 훌쩍 큰 키로 맨드라미 홀씨처럼 홀홀히 떠가는 아이를 수근은 보았다. 수근이 다급히 달려가 애의 애의 손을 잡았다. 정오의 해볕이 머물러 반짝이던 애의 얼굴이 금세 흐려졌다. 왜요? 여기서 뭘하세요? 아직도 가지 않고? 애가 짜증을 드러내며 물었다. 널 기다렸다! 애가 또 왜요?고 물었다. 어쩌면 아버지를 대하는 아들애의 어투는 감격어린 느낌표가 아니라 도전적인 물음표뿐이였다. 아들애를 만나면 하고픈, 생각해둔 말이 많았지만 막상에 애가 반문하자 순간에 잊어져 그저 점심이라도 맛있는 쪽으로 사주고 싶다고 했다. 나 친구들과 먹을건데요. 아들은 한켠에서 기다리고있는 애들을 턱짓으로 가리켜 보였다. 말을 뱉기와 바쁘게 몸을 돌리는 아들의 손을 수근이 다시 한번 잡았다. 애가 손을 뿌리쳤다. 그 뿌리침이 생각보다 드세여 수근은 잠간동안 멍해졌다. 애의 거부는 드세였고 그 눈에서 적의같은것이 번쩍이는것을 수근은 놀라웁게 볼수 있었다. 손을 빼려고 몸을 틀려는 애의 손을 수근이가 부득부득 잡았다. 그 무슨 몸싸움이라도 하듯 빨판처럼 잡은 그 손을 잡아떼던 애가 몸부림을 멈추었다. 막무가내라는듯 한 표정이 애의 볼에 머물렀다. 입술을 욱신거리며 씹어대던 애가 물음 하나 꺼내들었다. 점심은 됐고… 나 뭘 하나 사줄수 있어요? 그말이 수근에게는 복음처럼 들렸다. 수근이 바짝 마른 입술을 벌려 웃으며 말했다. 그래그래 사줄게! 하나가 아니라 열개라도 말해봐. 사고픈게 뭔데 아들애가 학교앞 광장에서 놀고있는 애들쪽을 가리켰다. 챙 모자에 통 넓은 바지 차림의 애들 몇몇이 로라스케이트인지 발구인지 같은것을 밟고 몸을 날리고 있었다. 애들은 얼음강판을 지치듯 날렵하게 맴을 돌거나 비상하는 새처럼 훌쩍 몸을 날리며 반공중에 뜨기도 했다. 나도 저런거 하나 사줘요. 스케트 보드(滑板)요. 학교부근에 대형체육용품전문점도 있었다. 애의 뒤를 묻어 그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애는 단박에 스케트 보드 매장으로 다가갔다. 요즘 애들중에서 스케트 보드놀이가 가장 류행이라고했다. 좀 위험해 보이는데… 수근이가 매장의 광고판에서 하늘향해 날고 있는 진짜 사람만한 크기의 스케트보드맨을 보면서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애는 듣는둥 마는둥 온통 스케트 보드에 정신 팔려 있었다. 요즘 이런거 류행인데 부모가 한국 간 애들은 사고 못 간 애들은 못사요. 이거 꽤 비싸거든요. 애가 동문서답을 했다. 수근이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안 사줄래요? 아니 뭐 그런뜻이 아니고… 수근은 급히 지갑을 꺼냈다. 애가 원하는것을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털었다. 출국한 부모가 한국서 돈 잘 부쳐주는 애들은 수입제 쪽으로 사고 그렇지 못한 애들은 그저 국산제를 사요. 아이가 여러가지 가격대의 보드를 들고 점원보다 더 상세하게 그 성능의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 그 알둥말둥한 보드에 대한 설명보다 출국한 부모와 출국하지 못한 부모로 등급이 지어지는 아이들의 판단방식에 놀라웠다. 가격이 저렴한 국산이 아니라 수입산쪽으로 사주었고 애가 만만치 않은 가격에 차마 입을 떼지못하는 보드 헬멧, 보드 의복, 장갑까지 세트로 큰 돈을 깨서 사주었다. 팔꿈치며 무릎보호대를 사는것도 잊지않았다. 아들애에게 난생 처음 뭔가 사주는 아버지였다. 수백,수천이 아니라 그동안 벌어온 뼈돈 모두를 통째로 달라고 손을 내밀어도 수근은 껌값 내주듯이 선뜻 아들애에게 내줄수 있을것 같았다. 아버지가 맞긴 맞나 보네요. 이렇게 사달라는 걸 다 사주는걸 보니. 그제야 아들녀석의 얼굴에 그늘이 벗겨져 있었지만 잇달아 내뱉는 말은 맹랑하기 그지없는것이였다.  나 니애비 맞다! 조심스레 그말을 뱉으면서 또다시 커다란 회한에 사로잡혀 수근은 아들애를 껴안으려 했다. 아들애가 몸을 훌쩍 피했다. 선물을 아름벌게 안고 체육용품전문점을 나서던 아들애의 입에서 또 한번 물음이 흘러나왔다. 왜 인제야 왔어요.? 어디서? 뭘 하다가요? 반양머리우에 헬멧을 얹은 애는 락하산을 타고 핼리곱터에서 날아내려 현상범 앞에 총부리를 겨눈 특공전사같은 모습으로 수근에게 따져 물었다. 아이는 보드에 몸을 실었다. 저만치 미끄러져 갔다가 카메라줌으로 끌어당긴듯 순식간에 다시 수근이 앞으로 돌아와 물었다. 엄마와는 왜 갈라졌죠? 둘 다 좋은 사람 같은데? 아들애는 아버지의 확답같은것을 기다리지 않고 물음을 던진듯 했다. 수근이가대답할 사이도 없이 나래 펼친 새처럼 두 팔 휘저으며 저만치 미끄러져 갔다. 새로 산 스케트 보드는 애의 발에 접착테프로 붙인듯 했다. 눈앞이 현란하도록 몇가지 묘기를 보이고나서 애는 학교앞 골목길로 흡수되듯 사라져 버렸다. 욱아! 수근은 터져나오는 부름소리를 입안에서 갈무리했다. 아들애가 련속 던진 몇개의 물음덩이가 돌팔매처럼 그의 신상 곳곳을 강타했다. 그리고 그 물음들에 신빙성있는 확답을 주지못하는 자신이 놀라웠고 스스로 야속하기까지 했다. 가슴 한복판으로 쏴르르르, 한 줄기 찬 바람이 소리를 내며 스쳐간다. 서울의 어느 재한조선족 모임이 꾸리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고향의 이장통지뉴스를 보고 수근은귀향을 생각했다. 여태껏 고향을 잊고있었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왠지 출처불명의 다금침이 수근이를 흔들어댔다. 망설임은 드디여 결심으로 굳어지고 일종의 의무감으로 번졌다. 그래서 강산도 한번 돌아눕는다는 10여년만에 잊고있던 고향으로 왔다. 하지만 고향이란 가슴에 품고있을때는 따뜻하지만 실제 대하는 순간 그 온기가 식어갔다. 그 온도는 시간의 길이와 정비례하나 싶었다. 더불어 살과 웃음과 땀을 나눈 인물과 풍경들이 알량하고 뜨악하게 인멸되고 개조된것이 탓일가? 아니면 돈에만 매여 그 따뜻함을 잊고 찬피로 살아 온 무심함이 탓일가? 주먹을 이마에 올린채 수근은 학교앞에서 폭염에 달구어진 아스팔트길우에 당혹에 잠긴 모습으로 그렇게 서있었다.     토요일: 수장(水葬)   온 몸을 끌어당길듯 잠잠하게 하지만 두터운 몸짓으로 유영하는 저 푸른 강줄기, 예나 지금이나 고향의 그 강은 그곳에서 그렇게 흐르고있다. 고향산의 아래도리를 완만하게 감싸안으며 흐르는 강은 무심한 세월의 속내를 알아버린듯 무심하게 떠났다가 잠간 돌아온 사람에게도 젖은 몸을 오롯이 내맡긴채 무심한척 흐르고있다. 수근은 강녘의 너누룩한 돌바위를 마주하고 앉았다. 화장터에 가서 2차화장을 하련다면 인차 뼈들을 화장해 준다지만 이틀채 찾은 화장터는 천국행의 티켓을 먼저 끊은 망자들로 초만원이였다. 어쩌면 우리가 무심히 대했던 그렇게 많은 죽음에 대해 장의관 홀에 서서 수근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아마 월요일쯤 돼야 순번이 차례질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래일 일요일이면 수근이가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장의사에게 매달리며 사정이야기를 거듭했지만 무가내였다. 세멘트독이 오른 손바닥을 맞부비며 초조함에 몸을 떨던 수근은 드디여 하나의 용단을 내렸다. 그리고 출국을 하루 앞두고 고향의 강으로, 두만강가로 나온것이다. 우선 물을 끼얹어 너누룩한 바위를 깨끗이 닦았다. 이 며칠을 분신처럼 함께 했던 트렁크를 열었다. 뼈들을 꺼내 깨끗해진 바위우에 하나 하나 올려 놓았다. 뼈들은 은근히 깊어가는 오전나절의 해빛에 옥양목처럼 하얗게 빛났다. 그 뼈들을 한겻이나 지켜보다 수근은 손아귀에 품을만한 돌멩이 하나 골라들었다. 들숨 한번 긋고나서 수근은 돌멩이로 뼈들을 짓찧기 시작했다. 어떤 제물을 빻는 사람처럼 열심히 뼈들을 가루내였다. 강가에는 조화(弔花)라도 단듯 하얀 억새꽃들의 춤이 무성하다. 가끔 물새의 울음소리가 강가의 고요에 작은 구멍을 낼뿐 강가는 적연했다. 물새소리에는 사람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면서 구슬피 두드리는 각별한 정조가 깃들어있다. 그 소리때문이였던지 수근은 당금 울음이 터질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있었다. 오른쪽 옆구리에 통증을 느껴 왼손으로 하다보니 오전나절을 수근은 강의 흐름을 마주하고 있었다. 열심히 육탈된 뼈를 빻았고 축축한 슬픔을 널어 말렸다. 가루가 된 그 뼈들을 손아귀에 담았다. 한웅큼 모래나 자갈돌보다 묵직한, 허망한 질감이 손바닥을 가득 채웠다. 그 뼈가루를 지켜보노라니 가슴이 각진 소금을 뿌린것 같이 따갑고 쓰라렸다. 쓰라림은 뼈를 다친 옆구리의 통증보다 더 진한 아픔으로 수근이의 전신을 휩쓸었다. 짜디짠 눈물을 촛농처럼 뜨겁게 흘리며 한 웅큼 가득 움켜쥔 손을 스르르 풀었다. 뼈의 조각들이 별찌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슬픔과 추억과 허무로 화석질이 된 덩어리들을 한 웅큼 한 웅큼 물에 흘려 보냈다. 물살에 휩쓸리는 뼈의 파편들은 직사하는 해볓을 받아 물속에서 조가비처럼 빛났다. 그 뼈들이, 빛쪼가리들이 물살에 빨려드는것을 수근은 낱낱이 지켜보았다. 수천, 수만개의 물비늘이 산란하게 시야를 어지럽히며 흘러가고있는 그 와중에도 수근의 눈길은 침점하면서 물과 한몸이 되는 뼈들의 마지막 길을 뒤쫓고 있다.    잊어버린것들, 잃어버린것들, 버림받은것들, 상처 받은것들, 용서를 바라는것들… 세상만사 모든것들이 저 강물처럼 흘러간다. 수근의 마음속에 응어리졌던것들이 강물의 흐름에 실려 뭉텅 뭉텅 흘러갔다. 옆구리를 잡고 수근은 몸을 일으켰다. 물새 한마리가 강가까지 나와 물에 부리를 박다말고 푸르르 갈대속으로 도망쳐갔다. 강의 흐름을 쫓던 눈길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시근시근한 눈을 씀벅거렸다. 하늘 모퉁이를 나풀나풀하게 장식한 하얀 깃털구름을 바람이 밀어내고 있었다. 구름은 비좁은 마을길을 빠져나가는 상여처럼 느릿느릿 떠가고 있었다. 며칠전 조막령감이 부르던 상여가가 생각났다. 사무치던 그 가사말이 또렷이 생각 나 수근은 나지막이 상여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초록같은 우리 인생 장생불사를 어이하리 새빠지게 일만하다 그냥 가니 너무 섧네 우리부모 날 낳고서 애간장을 녹였는데 천지신명 몰라보고 부모은공 내 몰랐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일요일: 뼈와 뼈끼리   공항 터미널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씨줄이 마르건만 오늘도 공항에는 여전히 고향을 뜨는 사람들로 초만원이다. 그들의 얼굴마다는 그 어떤 기대감, 불안감으로 혼효(混淆)되여 설레임의 파장이 홍조처럼 머물고 있었다. 수근이도 떠날 시간이 되였다. 그날 이장을 마치고 텅빈 묘혈을 내려다 보면서 수근은 이장하는것은 죽음을 수습하는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 두니 또 한번 떠나는 자신에 대해 용서가 되는듯 했다.  병태가 공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불편한 몸으로 나오지 말라고 만류해도 이제 보고 언제 또 보려나 하면서 소경 매질하듯 후둘거리며 굳이 나왔다. 텅 빈 들판에 버려진 허수아비같은 몸으로 고향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가는것을 혼자서 지켜보았을 친구가 수근은 안쓰럽기만 했다. 수근은 맨 웃쪽 단추를 잃어버리고 실밥만 남아 깃이 벌어진 친구의 와이셔츠 앞섶을 자꾸만 여며주었다. 명월이 고깝게 생각하지 마라, 그래도 네 어머니의 병간수를 도맡아 했고 세상뜬 다음 장례도 명월이가 혼자 손으로 다 치렀다. 물론 욱이도 명월이 혼자 힘으로 키운거지. 궁여지책으로 한족남자에게 얹혔다만 잘 살고있으니 그나마 잘 된 일이 아니겠냐. 친구의 위안의 말에 오히려 수삽해 나는 기분을 주체할수 없어 수근은 말머리를 돌렸다 확장공사는 언제부터 시작하는감? 그 저수지… 기성 사실로 다가왔지만 이제 곧 물에 잠길 마을이 수근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 물음에는 나는 이대로 또 떠난다만 넌 어쩔거니 하는 괘념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걱정이 가시지않은 눈길로 수근은 친구를 지켜보았다. 괜찮타, 우리집 논이 그대로 있어 개발이 시작되면 꽤 보상받을거니 그 돈으로 흥떵거리며 잘 살거다. 모른다 수근이 니보다 내가 더 잘 살지도. 그래 제발 잘 살아라. 친구야. 그러지뭐, 그 돈으로 좋은약도 쓰고 그래그래. 시내가까이 자그만 집도 한채 마련하고 그래그래 몽달귀신이 되기전 늦으막 이 몸이 처녀장가갈지도 모르지 그래그래. 세상물정 밝으신 우리 조막할배 모시고 오래오래 살거다 그래그래 두사람은 짛고 박고 말장난을 주고받았다. 서로 자꾸만 위로의 말을 갖다붙였지만 스스로 듣기에도 어딘가 시원치 않았다. 때지난 구닥다리 유모어같은 말에 서로가 객적은 웃음을 짓고말았다. 갑자기 병태의 핸드폰이 울며 두사람의 석연찮은 리별을 깨뜨렸다. 핸드폰을 받는 병태의 얼굴이 어두워 졌다. 핸드폰을 다급히 수근에게 넘기며 병태가 말했다. 어떡하니 수근아? 욱이가 크게 다쳤대. 골과병원의 병실에 아이는 링게를 꽂은채 누워 있었다. 목에 깁스를 하고 미동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다. 공항에서 헐레벌레 달려 온 수근이를 명월이가 놀란 눈길로 쳐다보았다. 수근이는 고향에 있는동안 련계를 위해 가공소 경리에게 남긴 병태의 전화로 아들애의 부상소식을 접한것이다. 수근은 병상으로 덮치듯 다가가 아이를 들여다 보았다. 링게를 맞으며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통증이 느껴지는듯 잠결에도 끙끙 신음소리를 냈다. 오늘이 떠나는 날 아니던가요? 아무말도 없었지만 침대가에 걸터앉은 명월이의 표정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요. 어딜 다쳤는데? 명월은 말없이 엑스레이 필림과 처방지를 내밀었다. 목뼈와 갈비뼈에 골절상을 입었는데 목뼈에 금이 가고 갈비 석대가 골절되였다고 적혀 있었다. 타지말라는 보드인지 뭔지 하는거 기예 타다가 저렇게 된거죠. 명월이가 원망조로 말했다. 수근은 잠시나마 정신이 아득해 질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자기가 처음 사준 선물때문에 아이가 크게 락상(落伤)을 당한것이다. 아이를 마주한채 두 사람은 그렇게 침대를 사이두고 앉아 있었다. 명월이는무슨 말인가 하려다 입술을 달싹였다가 결국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각자 자신의 생각 속을 헤매는 표정이다. 견고한 침묵이 어색해 수근은 엑스레이 필림을 쳐들고 다시 들여다 보았다. 필림에는 앙상한 겨울나무와도 같은 뼈들이 목판화처럼 각인되여 있었다. 그 겨울나무사이로 명월의 얼굴이 보였다. 필림너머로 본 명월의 얼굴은 흑백으로 바래져 있었다. 수근은 새삼 색바랜 어제를 돌이켜 보았다. 그때는 가난했으되 얼마나 행복했던가. 서로를 껴안고 보듬으며 더 나은 래일을 깊이깊이 희구(希求)했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어제는 마치 감광제(感光剂)가 고루 발리지 않은 필림과도 같다. 어느 부분은 환히 빛나며 뚜렷이 떠오르고 어느 부분은 아주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날 지칫지칫 가공소를 나서면서 수근은 저도모르게 뒤를 돌아다 보았다.그냥 그렇게 돌아나오기엔 무언가 설명 못할 미진함 같은것이 발목을 잡아채는 끈끈한 느낌때문이였다.    명월이가 마당에 나와있었다 수근이를 눈바램하는 명월이는 벽에 기대여 상체의 자세를 놓아버린 모습이였다. 그 모습은  슬픔같은 물컹거리는것들을 딛고 있는듯 휘청이여 보였다. 모든 파탄 나버린 관계들의 복원과 재가동은 이제 불가능했다. 이제는 과거형을 쓰게 된, 한 때라는 시간으로 한정지어야 하는 전처라는 관계에 새삼스런 서글픔이 느껴졌다. 어제는 함께 키워왔으나 이제는 너무도 멀리 사라져버린 꿈과 그것의 실현 불가능에 대한 인식때문에 수근은 갑작스레 고향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오래전에 떠나버린 고향을 다시 찾는다는것은 고향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는 또한 도전이였다. 어차피 그곳에 남겨놓은 막연한 시간과 심상들을 구체적으로 만나야하기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에 가 있든 고향의 비릿한 살 냄새가 그를 괴롭게 했다. 도무지 정이 다시  붙을것 같지 않던 가난한 고향은 그 냄새로 인해 때때로 그리웠다. 그래서 역마살을 달래듯 고향으로 돌아왔고 회귀성 어류처럼 그 옛날 자신이 걸었던 삶을 되짚어서 나가며 그 망각속 깊이에 묻었던 추억의 뼈를 기어이 파내여 뼈를 줏고 뼈를 나르고 뼈를 다시 영영 수장(水葬)했는지도 모른다.  명월의 가르마에 벌써 새치가 희끗희끗하다. 수근은 다만 지난한 삶의 마지막 고샅에 선 그녀에게 더 이상의 불행이 없기를 빌고 빌었다. 아이가 뒤척이더니 잠에서 깨였다. 몽롱한듯 수근이를 쳐다보던 아이가 비죽비죽 울기시작했다. 아파? 아이의 땀방울이 돋은 이마전을 쓸어주며 수근이가 물었다. 아이가 더욱 크게 울음소리를 냈다. 울면서 말했다. 다 당신때문이야. 당신때문… 수근이는 흠칫 몸을 떨었다. 깁스를 하여 미동도 할수 없는 몸이지만 아이의 얼굴표정만은 살아 있었다. 그 표정이 보여주는 아이의 원망은 깊었다. 그렇게 자식에게 미움을 주고 원망을 키운 자신의 어제가 통감되였다. 미안하다. 이 애비가 미안하다. 어눌하게, 그렇게 수근은 말했다. 이 일주일간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이 이 말이였다.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로는 설명이 모자랐지만 또 그말밖에 할말이 따로 없어 이 생애 다 해야할 말을 미리 당겨다 쓰듯 그 말만을 복창에 복창을 거듭했다. 미안하다미안하다미안하다미안하다…. 콧날이 왈칵 시큰해지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뚤렁뚤렁 아이의 얼굴에 떨어져내렸다. 이장도 끝내 부모님의 육골을 고향의 강에 안치하고 발길을 돌렸지만 아직도 뭔가 묘연하고 암담하기만 한 응어리가 발걸음을 자꾸 옥죄였는데 그 응어리가 바로 아이였음을 수근은 다시금 느낄수 있었다. 몸을 숙여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몸을 숙이자 가슴이 구겨진 은박지같이 조여 왔고 통증이 송곳처럼 옆구리를 쑤셨다.  아픔을 참으며 수근은 아이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옆구리의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이, 형언길없는 아픔이 수근의 전신을 훑고 있었다. 몸 한 귀퉁이가 이지러지는것 같은 통렬한 아픔이 전신을 휩쌌다. 하지만 놓칠세라 수근은 아이를 꼭 보듬어 안았다. 뼈아픈 사람들끼리 뼈 아픈 몸을 껴안고 뼈 아픈 울음을 울었다.   월요일: 상 실   비행기는 두시간만에 떠난지 11년이 되여 고향생각에 멀미하는 사람을 고향역에까지 실어다 주었다. 아직 스모그에 오염되지 않은 고향의 공기를 수근은 걸탐스레 들이마셨다. 공항에서 44선뻐스를 타고 장도뻐스역으로 향하던 수근은 생각을 고쳐 신문사역에서 내렸다. 허위단심 달려온 고향, 겨불내나는 가슴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했던것이다. 바로 랭면이였다. 그저 복무청사라는 지극히 평범한 이름 하나, 알뜰한 상표가 없이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랭면이라는 대명사로 자리매김 된 그 청사의 랭면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복무청사 랭면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는 수근은 건너마을의 만월처럼 둥근 얼굴의 처녀와 첫 대면도 랭면집에서 가졌었다. 첫 대면에서 두 사람은 렴치를 내려놓고 국수그릇을 깡그리 비웠다. 어쩌면 식성도 맞았다. 아이를 배였을때 남들은 시쿤것이 먹고싶다했지만 그녀는 시원한 랭면이 먹고푸다고 했다. 그래서 무거운 배를 안고 뻐스를 타고 와서 곱배기로 먹었던 그들이였다.  한국으로 나가면서도 마지막 날 랭면을 먹었다. 이제 이렇게 맛나는 고향의 음식을 언제면 먹어보랴는 심정에서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부터 수근은 왠지 참을수 없는 공복을 느꼈다. 기내식을 먹었지만 왠지 소리치며 달려드는 공복감을 달랠수 없었다. 고향에 당금 닿게 된다는 달 뜬 상념에 고향의 음식이 못견디게 그리워 졌다. 타향에서 내내 마음의 공복을 키운 탓이리라. 고향으로 돌아와서 첫 일과를 무엇부터 시작할가 생각이 많았던 그는 이제야 행동반경을 구한듯 랭면집으로 찾아나선것이였다. 마치 길 잃은 강아지 밟아 온 자기 냄새를 맡듯 수근은 익숙한듯 낯설은 이 시가지를 기억으로 헤맸다. 트렁크를 끌면서 묻고 찾고한끝에 도심의 광장에까지 대여 왔다. 광장 동쪽켠에 오래 된 랭면집이 있었다. 광장에서 동녘을 향한 순간 수근의 입에서 헛비명이 새여나갔다. 수근은 망창한 기색으로 그 자리에 얼어 붙었다. 수근이가 찾고저 하는 랭면집이 보이지 않았다. 랭면집으로 이름높던 그 건물이 오간데 없었다. 마술사의 주술에 걸린듯 건물은 사라져 보이지않고 아픈 몸체의 내장에 생긴 공동(空洞)처럼 텅 빈 공터만이 그를 맞아주었다. 공터는 새로운 기초를 다지느라 성마른 기계들의 소음만이 무성할뿐이였다. 수근은 공터를 마주하고 얼음기둥처럼 그렇게 서버렸다…     “연변문학” 2013년 5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8    리화동(梨花洞) 1937 댓글:  조회:3494  추천:36  2014-10-13
. 중편소설 .   리화동(梨花洞) 1937   김 혁   겨울강 강은 철판처럼 단단히 얼어붙어 있다. 헐벗은 강언덕에는 하늘 향해 메마른 가지를 뻗쳐든 돌배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간밤 내린 눈이 앙상한 가지에 얹혀 꽃이라도 피운듯 하다. 조밀한 아침안개의 품에서 금방 벗어난 돌배나무를 강바람이 아츠러운 소리로 건드리며 지난다. 언덕배기 어스레한 배나무숲사이로 무언가 어슬렁 거리는것이 보인다. 언덕아래에서 후미진 곳에서도 무언가 어슬렁 거리며 나타난다. 들개다. 산에서 내리는 들개와 산에 오르려는 들개, 두패의 들개떼가 돌배나무가 있는 언덕에서 조우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십여마리는 실히 되여 보이는 개떼들은 서로를 확인하는 순간 돌처럼 경직돼 버린다. 몸을 앞으로 숙이고 발톱을 사린채 상대를 뚫어져라 쏘아 본다. 목덜미의 가시털을 몽당비처럼 세운다. 충혈된 눈깔을 호동그라니 치뜬다. 입귀를 한쪽으로 치켜올려 강렬한 렬육치(裂肉齿)를 드러내 보인다. 목구멍으로는 으르르~ 맹수의 울음을 끌어올려 이빨 사이로 뿜어낸다. 대치의 숨가쁜 시간이 흐른다. 그러다 대치의 꼭지점에 다달은듯 팽팽한 기운을 찢으며 들개 하나가 반공중에 솟아 올랐고 그를 마주해 개때들이 일제히 솟아 올랐다. 허공에서 떨어짐과 함께 개들은 순간에 한데 섞였다. 으르릉, 깨갱 포효와 신음이 한데 섞여 강가는 악마구리 끓듯하다. 눈밭을 무대로 덮치고 뒹굴고 물고 뜯고 씹고 허비고 그야말로 한바탕의 혈전을 치른다. 저마다의 털들이 원색을 알아볼수 없게 흙과 피로 뒤범벅이 되여서야 싸움은 겨우 끝났다. 그누가 승자라 할것 없이 상처를 입은 개들이 혀를 빼물고 헐떡인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인지 모를 싸움 한번 거창하게 치르고나서 개떼들은 신음을 갈무리하며 언덕우로 오르고 언덕을 내린다.   얼어든 강의 복판에 아이들이 서있다. 과수원 돌배나무처럼 렬을 짓고 죽 늘어 서있는 아이들의 눈길은 일제히 강가의 언덕을 향해 몰부어져 있다. 퀭해진 눈길로 개떼들의 피터지는 싸움을 지켜본다. 경악으로 휑하니 벌린 입귀로 입김이 솥김처럼 무성하게 피여 오른다. “무섭땅!” 어지러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가진 애 하나가 쭝얼거렸다. 한결 매운 강가의 매서운 추위보다는 눈앞에서 사투를 목도한 공포에 아이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상처를 핥던 개떼들이 언덕너머로, 강굽이로 사라져서야 애들은 다시 애초에 강을 찾았던 리유를 생각해 낸다. 이른 아침부터 밥술 떨어지기 바쁘게 팽이치기를 나온 개구장이들이다. “됐다. 이제 우리 팽이놀이하자” “맞다! 팽이놀이 하자” 방금전 본의 아니게 목도한 혈전의 공포에서 벗어나련듯 아이들은 극구 신나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필요이상의 환성을 지른다. 아침나절의 미지근한 겨울해빛에도 강은 은박지처럼 빛을 튕겨내고 있다. 그 박명(薄明)의 차거운 빛살우로 팽이가 돌아 간다. 박달나무로 만든 팽이는 얼음장을 파고들듯 무섭게 돌아간다. 평평한 머리의 중심을 오목하게 파고 몸체에 줄무늬를 낸 원뿔형의 팽이는 강이 비좁다하게 잘도 돌아 간다. 좌충우돌 하며 팽이를 후려치는 아이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강은 아이들이 지르는 투명한 고음으로 가득했다. 그 소리에 얼음장이 깨지기라도 할듯하다. 아이들의 손에는 저마다 팽이채가 들려 있다. 엄지손가락만한 굵기의 나무가지를 다듬은 뒤 무명실을 꼬아서 달아주면 제법 그럴듯한 팽이채가 된다. 아이들의 몸과 숨소리와 피여오르는 입김이 한데 얽힌다. 팽이채의 끈과 끈이 서로 얽혔다. 확 잡아채도 끈은 끈끈이주걱풀처럼 단단히 얽혀 도무지 떨어지지를 않는다. 큰 개똥이와 작은 개똥의 팽이채가 얽혔다. “씨!” 작은 개똥이가 볼부어 하며 다시 한번 팽이채를 확 잡아챈다. 하지만 끈은 오래된 칡넝쿨처럼 단단히 얽혀 있다. 작은 개똥이는 벙어리 장갑을 벗어들고 얽힌 끈을 풀기 시작했다. 덩치가 더 커보이는 큰 개똥은 끈을 푸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다. 그러는 아이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하나는 하늘을, 하나는 땅을 본다. 추위에 코물이 벌창해져 엿가락처럼 줄줄 흘러내린다. “헛방 치지말구 팽이를 쳐라, 이 사팔뜨기” 작은 개똥이 한편 끈을 풀면서 한편 단단히 타이른다. “그래 헛방 치지말구 팽이를 쳐라, 이 사팔뜨기야” 다른 애들도 작은 개똥이와 합세하여 중구난방 떠들어 댄다. 동네북이 되여도 개이치 않고 큰 개똥이는 하하거리기만 한다. 후룩! 하고 요란하게 코를 치걷자 떨어질듯 위태롭던 코물이 굶은 걸신(乞神)의 입에 들어가는 국수발처럼 벌름한 코구멍으로 쑤욱 들어가 버린다. 작은 개똥이가 얼어드는 손가락을 호호 불어가며 겨우 끈을 풀어냈다.  “다시하자, 다시” 작은 개똥이 팽이채의 끈을 팽이 허리에 돌돌 감고는 팽이를 얼음우에 대였다.  팽이채를 옆으로 확 잡아채자 팽이가 총알처럼 튕겨 나가며 핑그르르 돌기 시작한다. 애들이 우루루 달려 들었다. 팽이가 도는 방향을 따라 무작정 때린다. 팽이를 따라 아이들이, 강이,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또 한번 끈과 끈이 얽혔다. 작은 개똥이의 팽이채에 얽힌 팽이채의 임자는 또 큰 개똥이다. “네 절로 풀어라” 작은 개똥이가 체증에 넘쳐 팽이채를 큰 개똥에게 내민다. 큰 개똥이 비실비실 웃기만 한다. 웃입술까지 흘러내린 코물을 핥으며 말한다. “모른다. 내는, 못 푼다 내는…” “저 사팔뜨기는 아무것두 모룬다, 셈도 열개까지 못 세는데” 이름은 같은 개똥이여서 키 차이를 보고 “큰 개똥”, “작은 개똥”이라 불리지만 막상 덩치 큰것이 작은것에 비해 굼뜨고 우통한 편이다. “내는 셀줄 안다, 셈…” 큰 개똥이 “빈대도 낯짝이 있다”는 양” 뿌루퉁해 우겼다. “그럼 어디 세봐라 열개까지. 내 그럼 저 팽이 널 주마” 팽이의 임자가 얄기죽거리며 말했다. 강판에서 빙그르르 잘도 돌아가는 팽이를 지켜보며 큰 개똥이 거위춤을 꿀꺽 삼켰다. 팽이의 유혹에 빠졌던지 큰 개똥이 얼어든 손을 꼽으며 셈을 세기 시작한다. “한나, 둘, 서, 야들, 아후, 열” 아이들이 일제히 푸하 웃음보를 터뜨렸다. “다 틀렸잖아. 다시 세봐 다시” “한나, 둘, 야들 열…” 애들의 웃음에 당황했던지 큰 개똥이의 셈세기는 점점 더 엉망이다. 작은 개똥이가 못말린다는듯 웃으며 장갑끝을 입으로 벗겨 물고 또 한번 힘들게 끈을 풀어 냈다. 그러나 이번에 작은 개똥이의 팽이채는 팽이를 후려치지 않았다. 짜증으로 가득한 작은 개똥이의 팽이채는 마파람으로 울며 큰 개똥의 볼을 향해 철썩 날아 들었다. 가뜩이나 터실터실한 큰 개똥의 볼에 채찍 자국이 입녘으로부터 귀전까지 선명한 자국을 남기며 죽 지나갔다. 후루룩 치걷어 올라가던 코물이 뚤렁 떨어져 내렸고 급기야 큰 개똥이 우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골안을 내리는 곰 울음같은 소리가 강안을 흔들었다. 그러건 말건 아이들은 어리석고 미련한 뒤틈바리를 내쳐둔채 저희들끼리만 어울려 팽이치기에 여념없다. 목놓아 울던 큰 개똥이가 옷소매로 코밑을 쓰윽 닦았다. 분에 못이겨 강똥 싸듯 끙끙 거리다던 큰 개똥이 엉큼엉큼 달려가 팽이채로 작은 개똥의 등짝을 철썩 후려갈겼다. 작은 개똥이 흠칫하며 돌아 섰다. 두 아이는 서로를 향해 팽이채를 휘둘렀다. 끈이 얽혀버리자 팽이채를 버리고 서로 붙안고 강바닥에 뒹굴었다. “죄꼬만 개또이 이겨라” “큰 개또이 져라” 팽이치기 보다 쌈박질이 더 신난듯 애들이 얼음판우에 뒹구는 두 애를 에워싸고 소리소리 지른다. 버려진 팽이가 그냥 돌아간다. 쌈박질 하는 애들이 싫은듯 돌고 돌아 강녘에 이른다. 돌고돌다 지친듯 왜틀비틀 하는 그 팽이를 느닷없는 신발하나가 사정없이 짓밟았다. 앞 코숭이가 뭉툭하고 위협적으로 빛나는 커다란 군화발이다.   우물가 잘그랑! 질그릇 깨지는 소리가 우물가를 흔들었다. 강파르게 얼어 든 우물가로 종종걸음으로 다가가던 아낙이 그만 엉덩방아를 찧었고 그 서슬에 물도 긷지못한채 물동이를  떨구어 깨고 만것이다. 뒹구는 똬리를 주어든 북산댁이 비명인지 욕설인지 분간 못할 욕을 체증과 함께 내퍼부었다.     “에궁, ‘아까운 고기국 쏟고 거기 덴다’더니 올 동삼에만 물똥이 벌써 몇개채 깨먹누” 오만상이 되여 엉덩이를 툭툭 털며 몸을 일으키는데 우물가를 지나는 아낙 하나가 보였다. 광대줄이라도 타는듯 둥싯둥싯 뒤똥거리며 걷는 그 아낙의 부른 배가 남산만하다. 해토머리 쯤이면 둘째를 출산하게 될 남산댁이다. 그 아낙을 지켜보는 북산댁의 메밀눈이 호동그랗게 커졌고 감파랗게 빛났다. “에궁 내 아침부터 어째 ‘배꼽에 옴이 붙나’했더니 어떤 밉상이를 보자고 그랬고나” 좁고 동그란 남산댁의 어깨가 흠칫했다. 허나 그것은 잠시, 남산댁은 자기를 향해 쏟아지는 야유를 들은척 마는척 여전히 늦은 보법으로 미끄러운 우물가를 조심조심 지나고 있다. 툭 불거진 광대뼈를 가진 북산댁의 야유가 광대뼈처럼 높다랗게 수위를 높혔다. “에궁 ‘눈 구멍에 식초가 들었나’ 눈 시려 못 보겠다. 퉤” 하지만 남산댁은 여전히 응답조차 없다. 터진 꽈리 보듯하며 매끈한 이마를 수긋하고 갈길을 간다. “에궁, 빤드럽기를 여시 저리 가라 할년”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는실난실 걷던 남산댁의 발걸음이 드디여 난딱 멈추었다. “뉘기냐? 뜨슨 밥 먹구 찬 소리만 골라 하는 년이?” 남산댁이 보얗게 눈을 흘겼다. 북산댁이 물동이 파편을 걷어찼다. “아침부터 물똥이 깨먹고 재수 없어 그런다 왜?” 남산댁이 닷발쯤 입을 빼물고 퉁퉁대는 북산댁을 흘려보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꼭 저같이 생겨먹은 말만 하는구나. 물똥이를 걷어차다 못생긴 상통 다 깨겠네” “뭐 못 생긴 상통?” 북산댁의 얼굴이 온통 달구어진 철판처럼 달아올랐고 어조가 사금파리 긋듯 고음으로 삐여져 올랐다. “넌 대체 얼마나 잘 생긴 상통이게? 낯값하느라 남의 나그네를 야스락 야스락 꼬셔먹냐?” “누가 누굴 꼬셔?” 북산댁이 힝 하고 말처럼 웃었다. “에궁, 벽에도 귀가 있소. 지들이 한 짓거리 지들이 잘 알터지” 북산댁의 눈길이 두터운 털등거리를 밀고 불러오른 남산댁의 둥시런 배를 아래우로 훑었다. “그 속에 든것이 누구 씨 종자인지 알턱이 뭐야?” “아무리 터진 입이라구 함부로 놀리지 마라. 네 눈에는 지아비가 하늘처럼 뵈일지 모르지만 다른 아낙들 눈에는 그저 퉁소쟁이, 풍각쟁이에 지나지 않을뿐, 네가 생각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에궁, 되똑 쳐든 코대가 금강산 비로봉만큼이나 높구마이.” 북산댁은 그저 꽹가리 울듯한 높은 악청만을 무기로 삼는다. 남산댁이 야유조로 내뱉았다. “조신해야 할 상중(喪中)에 나덤벙이질 마라. 그렇게 분수를 모르니 온 마을서 천박둥이 신셀 면하지 못하지” “이런 썅 참아줬더니 못하는 말이 없구나” 북산댁이 덫에 치인듯 울부짖었다. 몇달전에 남편을 잃은 북산댁이였다. 아래 마을 친지의 환갑잔치에 장끼인 대금 불어주러 갔던 남편이 밤늦도록 돌아오지않았다. 술 마시고 늦은 밤에 기어이 집으로 돌아가얀다며 과수원길에 들어섰다는 남편의 시신은 며칠후 배나무숲에서 발견되였다. 시신은 처참하게 찢겨 있었다. 어떤 맹수의 이빨과 발톱에 찢긴것 같다고 했다. 늙은 촌장과 김생원은 들개를 흉수로 지목했다. 마을 변두리에서 어슬렁거리던 들개떼가 날이 갈수록 점점 야수성을 보이고 있었던것이다. 울고싶은데 얼뺨 맞은 격으로 남산댁의 말에 정곡이 찔린 북산댁이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북산댁이 오늘따라 집요하게 달려들자 그동안 북산댁의 뒤손가락질과 흠구덕에 시달려왔던 남산댁은 부른 몸이라는 체신도 잊고 판가리를 할양으로 북산댁을 향해 달려 들었다. 서로 얼굴에 침방울이 튀길 거리에서 얼굴을 딱 마주대고 두 아낙은 우물터가 떠나도록 입싸움을 해댔다. “됐소. 적당히들 하우. 꼭두 새벽부터 무슨 분탕질이우?” 이때 남정네의 석쉠한 목소리 하나가 싸움의 복판을 가로 질렀다. 박씨였다. 뒤짐지고 어디론가 곰바지런히 걸음을 옮기던 박씨가 아낙네들의 백열화되는 싸움을 보고 한마디 한것이다. “왜가리를 삶아먹나? 동네가 떠나겠소” 또 하나의 목소리가 끼여들었다. 박씨네 이웃 김씨다. 우물가를 지나던 그 역시 싸움의 자초지종을 목격한것이다. 버럭 소리 한번 지르고 지나치려던 김씨가 한마디를 덧붙혔다. “앵무새들 곱새춤에 왜가리춤은 또 뭣이고? 구경났네 구경났어” “건 또 어느 장단에 붙혀 하는 말이우?” 박씨가 아니꼽게 물었다. “미친 굿판에 미친 장단이다 왜?” 김씨의 말에 뼈가 들었다. “어째 무작정 투정질이우? 간밤에 잠이라도 설쳤수?” “그래 이 나이에 아직도 잠투정이다. 오늘 제대로 투정 한번 해보자”  “어째 말이 짧다?” “내가 워낙 혀가 짧다. 혀짤배기다 왜?” 김씨가 별렀던 말을 덧붙혔다. “내 혀가 짧아 누구네 손 처럼 길지를 못하지. 남의 집 살림 파고드는 손처럼 ” “건 또 어느 장단이우? 또 그 돌배 타령이우?” 박씨가 체증기에 넘쳐 소리 질렀다. 김씨네와 박씨네는 집도 서로 이웃, 과수원도 서로 이웃해 있었다. 지난 가을 김씨네 밭의 돌배가 표나게 도적맞혔고 김씨는 그것이 박씨의 소행이라고 믿고 시시때때 따지고 든다. “나 박씨가 곁집 세간에 손 댈 정도로 그렇게 치졸스런 인간이 아니우.” “그래도 켕기고 꿀리는데가 있나보지. 꼬박꼬박 말대답 하는걸 보면” 변명을 이어대던 박씨가 울컥해나며 김씨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가던 길 곱사리 갈거지 왜 아침 부터 걸고들고 지랄이우? 사팔뜨기가 나불대니 두눈이 멀쩡한자가 병신취급당하는구먼.” “뭐라고?” 김씨가 급소를 찔린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김씨와 그의 아들애까지 모두 사팔눈을 가지고 있었던것이다. 코앞에 까지 다가온 손가락을 쳐던졌고 그 서슬에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졌다. 두 사람은 엉겨붙어 치고박고 하였다. 아낙들의 비명이 우물가에서 터져 올랐다. 졸지에 아낙들의 입싸움이 남정들의 피튀는 몸싸움으로 바통을 넘겼다. “’시앗 싸움에 요강 장사’라더니 이건 또 뭐얘요?” 남산댁이 서로 멱살 잡고 치고박고하는 남정들을 뇌꼴쓰레 쏘아보며 낯꽃을 흐렸다. “에궁, 이 년이 끝까지 잘난척 하네. 오늘 어디 잘난 년과 못난년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 북산댁이 남산댁의 머리채를 끄잡았고 남산댁이 북산댁의 저고리 고름을 옴켜잡았다.   촌장의 집. 마을 사람들이 온돌이 비좁다하게 모여 있다. 며칠후면 꼭 백세 천수를 맞이하게 될 마을 어르신의 백세연을 어떻게 치를것인가? 토의 한번 해볼양으로 촌장이 불러 마을의 체면깨나 있다는 남정들이 모두 모인것이다. 그속에 눈두덩이가 퍼렇게 물들고 코구멍에 솜을 틀어 막은 박씨와 김씨도 보인다. 집안은 저마끔의 소견과 함께 뻐끔뻐금 피워대며 내뱉은 담배연기로 산자락의 운무처럼 자욱하다. 턱수염 한모숨이를 기른 김생원이 붓대를 고누잡고 주련을 쓰고 있다. 붓놀림에 따라 염소수염이 한드랑거린다. 모두가 말없이 현란한 붓놀림을 지켜보고있는데 쥐오줌 자국으로 얼룩덜룩 습기를 머금은 천정우에서 찍찍거리는 쥐들의 다툼 소리가 났다. 천장을 빤히 쳐다보다 또 한명의 생원이 느닷없이 시 한수 읊었다.   “이본무가의아옥(而本无家依我屋)               기의호내반천위 (旣依胡乃反穿为)   고지이역무장려 (固知而亦无长虑)   아옥전시이실의 (我屋颠时而失依)”   역시 김씨성을 가진 생원, 주련을 쓰고있는 김생원이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면 시구를 읊는 김생원은 팔자수염을 기르고있다. 턱수염 김생원이 뿔테 도수 안경을 걸고 있다면 팔자수염 김생원은 백동물부리 대통을 잡고 있다. “무슨 말이온지?” 촌장이 팔자수염 김생원을 보고 황공스러운 낯빛으로 물었다. “어흠” 건가래 한번 떼고나서 팔자수염 김생원이 시구의 뜻을 해석해 주었다.   “너는 집도 없어 내 집에 사는데  네가 사는 집에 구멍은 왜 뚫나. 너 정말이지 생각이 짧구나. 내 집 무너지면 너도 살 곳 없는데.”   “아” 사람들이 귀신경문읽듯 괴까다로운 그 말들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알았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김생원일세” 찬탄들이 자지러졌고 그 일매진 찬탄성에 어깨가 오른 팔자수염 김생원이 불도 없는 대통을 소리나게 뻑뻑 빨았다. 팔자수염을 비비꼬며 또 한번 “어흠” 하고 건가래를 뗐다. “어험” 이때 한쪽에서도 누군가 건가래 한번 요란하게 뗐다. 주련을 쓰고있던 턱수염 김생원이였다. “조서(嘲鼠), ‘쥐를 비웃다’의 한 구절이로구먼. 조선 영조때 권구라는 재상의 시였소.” 팔자수염 김생원의 미간에 내 천(川)자가 지어졌다. 자기의 시구에 하필이면 주석을 다는 턱수염 김생원이 팔자수염 김생원은 밉살머리스럽다. 턱수염 김생원이 쓴 글발을 지켜보는 팔자수염 김생원의 표정이 또 한번 심상치 않다. “틀렸네. 틀렸구랴” “백세수연(寿筵)”이라고 쓴 글발중의 “연” 자를 대통으로 그루박았다. “수연의 연자는 잔치 연(宴)자로 써야지.” 팔자수염 김생원이 그무슨 금맥이라도 짚어낸 사람의 표정으로 소리를 높혔다.  “’갈고리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한테 주련은 왜 맡기셨소?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데 그러다 마을 어르신의 백세연을 망치겠소. ” 턱수염 김생원이 코등까지 흘러내린 안경너머로 팔자수염 김생원을 쏘아 보았다. “어험!”하고 헛기침 한번 요란하게 했다. “엑끼 이 사람아, ‘시거든 떫지나 말든가’. 내가 잔치 연자를 몰라서 그렇게 쓴줄 아는가 여기서 수연의 연자는 잔치 연(宴)을 써도 되지만 댓자리 연(筵)자를 써도 되네.” 팔자수염 김생원이 얼른 말을 받았다. “좋은 날 (日), 집 면(宀)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녀식(女)들이 춤을 추는 잔치날이라고 해서 잔치 연(宴)일세 어흠!” “빈 수레 한번 요란하군. 대자리를 펴고 그 우에 음식을 차리지 않나. 그래서 자리 연(筵)을 쓴거지. 옛날부터 왕과 신하가 대자리우에 마주 앉아 나라일을 담론하던 자리라 하여 ‘연석 (筵席)’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는가 어험!” 턱수염 김생원은 잡고있는 붓자루를 허공에 마구 저으며 거오스럽게 말을 이었다. 오지에 묻혀 사는 골샌님들이라도 고분고분한 성격들이 아니다. “고담웅변경사연(高谈雄辩惊四筵)이라 즉 ‘뛰여난 말솜씨가 사방에 대자리 깔고앉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네’라는 시구가 있네. 두보의 음중팔선가(饮中八仙歌)에 나오는 한 구절인데 거기에 나오는 자리 연(筵)이 아니던가 어험!” “시성 두보를 읊는다 그말이지. 그럼 두보와 쌍벽을 이루는 시선 태백님의 시가 있소. ‘춘야연(春夜宴) 도리원(桃李园)’에 나오는 춘야연의 그 ‘연(宴)’자가 아니던가 어흠!” “지지기일 부지기이(只知其一不知其二)라 하나를 알고 둘은 모르시누먼. 그 ‘춘야연 도리원’이라는 시에 바로 ‘개경연이좌화(开琼筵以坐花)’라 즉 ‘옥같은 자리를 열어서 꽃을 향해 앉고’라는 구절이 있소. 그에 나오는 연(筵)자가 아니던가 어험!” 턱수염 김생원이 붓자루를 저어대며 고담준언을 토하는 바람에 먹방울이 팔자수염 김생원의 얼굴에 튀였다. 그 먹방울을 훔친다는것이 팔자수염 김생원의 얼굴이 온통 비온뒤 마당에서 쥐 달아다닌 꼴이 되였다. 찍찍 천정우에서 쥐들의 다툼 소리가 났고 사람들속에서 킥킥 웃음이 새 여나갔다. “에라 이 쫌생원아” 바작바작 신경을 긁는 턱수염의 소리에 팔자수염이 문뜩 부끄러움이 치밀었던지 소반을 와락 뒤엎었다. 소반우에 놓았던 붓이며, 벼루며 먹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이런 선무당같은 쫄망구가 어디서 패악질이냐?” 짧고 빤 아래턱을 가린 턱수염을 파르르 떨던 김생원이 붓으로 팔자수염 김생원의 얼굴에 대고 장님 지팽이 휘두르듯 마구 저었다. 원체 먹자국이 튀였던 팔자수염 김생원의 얼굴이 이제는 지우다 만 광대의 분장처럼 얼럭덜럭했다. 팔자수염 김생원이 벼루를 들어 턱수염 김생원의 얼굴에 와락 끼얹었다. 먹물을 뒤집어 쓴 턱수염 김생원의 얼굴도 순간에 저승사자의 상통을 닮은꼴이다. “뭣하고 있는겁니까? 지금? 점잖은 사람들끼리” 촌장이 참다못해 버럭 소리 질렀다. “뭣들하고 있소 지금? 유식깨나 떨던 사람들이” 지난해 금방 자리를 낸 로촌장도 뒤질세라 소리를 높혔다. “어르신의 백수연은 우리 마을의 둘도 없는 경삽니다. 그런 경사를 두고 기꺼울망정 이게 무슨 망발입니까?” 촌장이 당위(当为)를 과시하며 야발스러운 책상물림들을 향해 훈계의 말을 했다. “누구보다 앞서 기꺼워해 줄 사람들이 그러면 쓰겠소. 더구나 먹물깨나 드셨다는 분들이” 로촌장이 젊은 촌장의 말을 가로지르며 말했다. 젊은 촌장의 얼굴이 불쾌감으로 자잘하게 구겨졌다. “았따, 형은 좀 가만있소. 남의 말 잘라 먹지 말고” 젊은 촌장이 자신의 말에 토를 다는 로촌장이 아니꼬운듯 말했다. 사실 두 사람은 친 형제, 장형(长兄)과 말제(末弟)사이다. “왜 자리를 냈다고 이젠 성쌓고 남은 돌 취급이냐?” 로촌장이 섧은듯 젊은 촌장을 향해 어성을 높였다. “분주살 스럽소, 좀 헤적헤적 나부대지 마오.” “뭐? 나부댄다고? 그래 내가 틀린 말을 했냐?” “옳은 말이던 틀린 말이던 날을 가려 하오. 자리를 내고도 아직도 맘보는 파래서 사사건건 대사소사에 삐쳐드니 주책바가지라 남들이 웃소.” “뭐? 주책 바가지? 이놈이 날 아주 깨진 바가지 취급하는구나” 젊은 촌장의 야멸스러운 말에 로촌장이 본통이 터진듯 시근거렸다. “그래도 익은 밥 설은 밥 이 바가지에 담아 먹고 그 바가지덕에 이만큼 살아들왔잖아?” 젊은 촌장은 늙은 촌장의 푸념을 듣는척도 않고 한구들 널린 붓이며 벼루들을 챙겼다. 그러던 젊은 촌장의 손길이 후딱 멈추었다. 손바닥을 펴들고 들여다 보았다. 벼루가 금이 가 손바닥에 먹이 흥건히 묻어 들었던것이였다. 젊은 촌장이 손에 든 벼루를 바닥에 내쳤다. “에익 더러워 못해 먹겠네. 헌 벼루가 새 벼루를 치는구만” 야유가 담긴 그 말을 가려듣고 로촌장이 다시 화통이 터져 소리를 질렀다. “뭐라? 애송이놈 한테 자리를 내줬더니 네가 지금 제 형을 ‘말하는 허수아비, 밥먹는 장승 도깨비’ 취급을 하냐?” 분기탱천해 하는 로촌장이였지만 젊은 촌장의 염장질은 끝나지 않았다. “집안 두엄을 남들앞에서 들추지 마오. 냄새 나오.” 동생에게 자리를 내놓았지만 마을의 애경사(哀庆事)에서 여전히 촌장 행세를 하며 동생을 안중에도 넣지않던 형이였고 그런 형이 저으기 못마땅했던 동생이였다.  “아무리 동생이고 후임이라고 내가 손아귀에 쥐인 계란인양 굴리는대로 구를줄 알았소?” 젊은 촌장이 때라도 만난듯 심중을 와락 발설했다. 그만큼 형제사이의 시샘과 원망의 앙금이 깊었다. 마을의 지경을 다져 왔고 또 다지고 있는 신구 촌장이고 또한 형제간의 싸움이라 젊은 촌장의 무례하고 압핍(狎逼)한 거동에도 사람들은 아무말도 못했다. 뚱하니 그저 기싸움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젊은 녀석이 에둘러서도 아니고 곧장 코앞에서 들이지르니 분기가 치받쳐 로촌장이 앙가슴을 줴지르기만 했다. 분김에 손에 잡히는 대로 나뒹구는 팔자수염 김생원의 대통을 쥐여 뿌렸다. 젊은 촌장이 어깨를 숙이자 대통이 곧추 박씨의 이마빡에 날아들었다. 박씨가 이마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데 김씨가 깨고소하니 웃었다. “눈먼 돌에 개구리 상통 깨눈구나.” “깨를 볶냐. 고소해죽는구나 이 자식이” 박씨가 쌤통이라는듯 키득거리고 있는 김씨의 머리통을 몽당 비자루를 쥐여들고 후려쳤다. 김씨가 대통을 잡아들고 맞섰다. 대통의 중등이 분질러 나갔고 몽당치마의 살이 죄다 빠져버렸다. 둘이는 다시 멱을 잡았다. 온돌이 좁다하게 뒹굴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고 뭣들하고 섰냐?” 늙은 촌장이 집안의 그릇이라도 깨질가 찬장쪽으로 밀리는 사람들을 밀쳐대며 젊은 촌장을 향해 또 한번 분통을 터뜨렸다. “말리려거든 형이 직접 말리시우. 두집의 과수분배는 형님이 맡아 하지 않았소.” 젊은 촌장이 상관없는 사람처럼 두 팔을 가새지르고 서서 코방구를 뀌였다. “불은 누가 놓고 이제와서 물은 누가 부으라고 해. 마을을 이꼴로 만든 사람이 누군데” 말리는 사람도 있었고 그 틈바구니에서 평소에 고까웠던 박씨나 김씨를 향해 슬그머니 발길질을 넣는 사람도 있었다. 천정에서 검붉은 먼지가 떨어져 내렸고 놀란 쥐떼들이 찍찍 거리며 천정이 무너질듯 달아 다녔다. 좁은 집안은 오해와 질시와 서로의 리익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복닥복닥 빚은 연기와 열기와 분진으로 매캐했다. 자지레한 사람들이 일구어내는 는지럭는지럭하는 열기가 사위스러웠다. 이때 무작스러운 발길에 사립문이 덜컹 떨어져 나갔다. 채찍처럼 후려치는 한기를 안고 한떼의 사람들이 집에 들이 닥쳤다. 거쿨진 몸퉁이를 가진 사람들이였다. 한결같이 누런 빛깔의 제복을 차려입고 장총을 꼬나들고 있다. 험악한 인상에 총대의 맨 끝에는 또 뾰죽한 창날을 서슬푸르게 세우고 있다. 집안이 좁다하게 마구발방 들뛰던 사람들이 순간 고자누룩해졌다. 움쑥한 눈을 휘등그레 뜨고 들어선 사람들을 퀭하니 바라보았다. 맨 앞장에서 군화를 신은 자가 흙투성이 된 발로 가마목에 뛰여 올랐다. 가증맞은 쪼막수염이 코밑에 붙어있는 자였다. 가증한 쪼막수염아래 입술이 매섭게 앙다물려 있다. 시푸르뎅뎅한 얼굴로 아웅다웅에 신들려 있는 사람들을 노려 본다. 지옥의 문지기처럼 쫙 찢어진 눈초리로 노려 본다.   과수원. 사람들은 총박죽에 어깨를 떠박질려 과수원 앞 공터에 모였다. 농한기면 돛자리 깔고 소주잔과 시시풍뎅한 소리와 홍소가 오가던 과수원 공터는 엄슬한 분위기로 때글때글 얼어 있다. 등등하게 차려입은 두꺼운 군복과 번뜩이는 칼날을 세워든 사병들은 대적이라도 만난듯 표정들이 굳어있다. 세워든 칼이 마치 맹수의 발톱처럼 날카롭고 쳐든 총구가 마치 맹수의 눈처럼 번뜩인다. 기죽은 사람들은 태덩이처럼 미동도 크게 못하고 추위속에 옹그리고있다. 모두들 숨을 꺽 죽이고 있는데 사람들의 뒤를 묻어 온 황둥개 한마리가 어쩐지 례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꼈던지 컹컹 짖어 댔다. 위협적으로 빛나는 군화를 신은 쪼막수염이 또 한번 매눈처럼 찢어진 눈매로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그 눈이 먹이감을 보아내고 활강(滑降)하는 매의 눈처럼 살기에 반짝인다. 동공은 눈앞 사람들의 멱이라도 움켜 잡을듯이 또렷하고 팽팽하다. 쪼막수염이 식지를 까닥했다. “어이 통역관” 기장을 뗀 군모를 쓴 사람 하나가 구을듯이 그 앞에 대령했다. 목을 움츠리고 거듭 굴신하는데 벋짱다리인듯 한다리를 질질 끌고 있다. 쪼막수염이 뭐라 씨부렁이는 말을 귀바퀴에 손바닥 대고 토씨 하나 빠침없이 담는다. 기장을 뗀 군모를 쓴 벋짱다리가 사람들앞에 나섰다. 행주 비틀듯 목청 다 짜내여 소리소리 질렀다. 한 손은 허리에 한손은 허리춤에 달려 데룽거리고있는 군도자루에 얹은 쪼막수염을 두 손으로 받들어 가리키며 말했다. “이 분은 이제부터 이지역을 관장하게 된 주둔군 731지대 이또 소좌님이시다.” 컹컹 한켠에서 황둥개가 짖었다. 쪼막수염이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하더니 입을 열었다. “언감 대일본제국에 불온한 마음을 품고있는 후테이 센징(不逞鲜人)들을 색출하려 임무를 받고 나섰다가 이 마을을 지나게 됐다.” 통역관이라 불리운 자가 번역하기 좋도록 쪼막수염은 한자 한자 끊어서 발음했다. 목소리가 리도(利刀)라도 휘두르는듯 날이 서있다. ”지금부터 당신들은 우리들의 행동에 공조해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해 주길 바란다.” 컹컹 개가 그냥 짖었다. “곱다랗게 공조하는 사람들에게는 포상할것이요, 거부하는 사람들은…” 쪼막수염이 말끝을 흐리더니 혁대에서 권총을 빼들었다. 짖어대는 개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땅! 되알진 총소리와 함께 개가 훌쩍 솟다가 피를 휘뿌리며 떨어져 내렸다. 총소리는 고막을 찢을듯 했다. 갑작스러운 총소리에 어미의 바지춤에 매달린 아이들이 울음보를 터뜨렸다. 녀인들이 덴겁히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연기가 피여 오르는 권총을 꼬나든채 쪼막수염이 사람들을 째려보았다. “거부하는 사람들은 저 이느노꼬(개새끼)와 같은 꼴이 될것이다” 사람들은 황황한 눈길로 머리통이 묵사발이 되여 뒹구는 개를 곁눈질해보았다. “묻겠다. 부라끄(부락) 이름이 뭐더냐?” 벋짱다리 통역관이 사람들중에서 털 귀마개를 한 젊은 남자 한 사람 불러내여 마을 이름을 물었다. “마,마을 이,이,이름은 리리리리리이화아아아도,동임다” 귀마개를 한 남자가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뭐라고?” “리리이이이이화도,도오옹” 킥, 맨앞에서 누군가 웃었다. 털모자도 없이 귀가 벌겋게 얼어든 나그네가 옷소매에 량손을 집어넣은채 참지못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그 사람 더듬뱅이요. 하필이면 더듬뱅일” 땅! 실소가 멈추기도전에 총성이 울었고 말더듬이가 푹 고꾸라졌다. 웃음을 흘리던 나그네가 경악한 나머지 불침에라도 찔린듯 펄쩍 뛰였다. 쪼막수염이 총구에서 연기가 몰몰 피여오르는 권총을 들고 다가왔다. 총아구리로 웃고섰던 나그네의 턱을 올리받쳤다. 총아구리가 따가워 나그네가 으으으 비명을 질렀다. 쪼막수염이 갱엿이라도 씹듯 질겅질겅거리며 말했다. “그럼 니가 말해봐 부라끄(부락) 메이쇼(명칭)가 뭔지” “리,리화동입니더” 이번에는 나그네가 말을 더듬었다. “사라니 기나사이(다시 말해봐)!” 쪼막수염이 감때 사납게 소리질렀다. “다시 말해봐 미친개 좆 떨듯 떨지말고” 곁에서 통역관이 가세해 소리질렀다. “리화동입니더” 나그네가 겨우 그 한마디를 뱉어내였고 말을 마무리함과 함께 땅 총소리가 울렸다. 옷소매에 량손을 집어넣은채 나그네가 넘어갔다. 말더듬이의 사체우에 덧놓이며 쓰러졌다. 끌려 온 사람들은 너나할것없이 눈알을 까집었다. 뜨물이라도 뜨스하게 덥혀먹여 키우던 개도 아까운데 이건 개처럼 사람도 함부로 마구 잡아죽이고있는것이다. 두렷한 공포가 거적을 확 씌우듯 덮쳐 들었다. 살을 에이는 한기보다 더 한 공포에 들리여 사람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쪼막수염이 통역관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했다. 통역관이 벋짱다리를 질질 끌고 다가가 귀전에 손바닥을 착 붙혔다. 쪼막수염이 씨나락 까는듯한 소리로 통역관의 귀에 대고 무어라고 쑤근거렸다. 알았다는듯 머리를 연신 주억거리고나서 통역관이 우묵한 옴팡눈으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몽툭한 손가락으로 사람들중에서 박씨를 지목해 냈다. “어이, 저 수염 텁수룩한 넘 나와바라” 다음에는 김씨를 짚었다. “저 텁수룩이도 나와” 두 사람을 마주 세웠다. 통역관이 물었다. “배꼽 뒤집어지게 밥 잔뜩 처 먹고 배꺼지라고 싸움질들이냐?” 옴팡눈을 희번득거리며 물었다. “왜 싸웠냐? 용건이 뭐냐?” 김씨가 때라도 만난듯 하소연을 터뜨렸다. “저 각다귀같은 놈이 우리 집 돌배를 훔쳤소” “아니올시다. 없는 일이우.” 박씨가 손 사래를 치며 급변명했다. 아침부터 있은 드잡이에 박씨의 오른쪽 앞니 귀퉁이가 부서져 나가 말이 샌다. “우리집 과수가 잘 되니 김씨가 샘이 나서 지어낸 말이우.” “그럼 그렇게 많은 돌배를 쥐라도 올라가 후렸단 말인가? 꼭 같게 쉰그루씩 나눈 배가 우린 그냥 쌀과 바꾸어 먹고도 모자란데 니는 무엇이 그리 흔해서 과실주까지 담궈 마시고 있잖나? 훔친게 분명하이.” “새 까먹은 소리 하지마우. 할아버지가 천식이 있어 아껴 먹던 배로 기관지에 좋다는 배 술을 담갔던것뿐이우. 그래 내가 언턱거리 잡힐 일이라도 한게 있수?” 두 사람이 다시 언성을 높혔다. 한 옥타브 두 옥타브 언성을 높여가며 자기의 생각들을 발괄하였다. 사실 박씨네 배는 김씨네 배를 분양받은것이였다. 남보다 먼저 과수농사를 시작한 김씨는 혼자서 그 많은 배밭을 다루어내기 버겁고 하니 이웃인 박씨더러 함께 하자고 들쑤셨다. 마침 그 전해에 여느때보다 배가 잘 열림을 보아온지라 박씨는 귀가 솔깃하여 김씨네 돌배나무의 상당수를 분양받았다. 원체 약삭빠른데다 부지런한 박씨라 이웃 김씨의 어깨너머로 배운 재배기술을 빨리도 익혔다. 그렇게 몇해후부터는 박씨네 과수원이 김씨네에 비해 더 반듯했고 같은 땅에서 과일도 어쩌면 더 많이 달렸다.  이에 자기가 원조라 배를 내밀던 김씨의 안색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더욱 그의 심술딱지를 자극한것은 현성에서 있은 농사장원표창회에서 먼저 시작한 그도 아닌 박씨가 과수부분 장원을 따낸것이다. 이는 김씨의 불타는 시샘에 불쏘시개를 덧놓았다. 그날부터 박씨를 향한 김씨의 강샘은 시작되였고 나중에는 의심벽에 까지 이르게 된것이였다. “배 고픈건 참아도 배 아픈건 못 참는” 성미가 습벽을 넘어 체질이 돼 버린 사람들의 모습은 이 마을에서 별로 희귀한 경상이 아니였다. “집에 ‘오노’가 있나?” 두사람 사이를 가로지르고 쪼막수염이 물었다. 생경하나마 조선말을 몇마디 씩 사이사이 끼워넣어 지껄인다. “’오노’라니요?” 두 사람이 어안이 벙벙해 졌다. “도끼 말이다. 도끼” 통역관이 설명했다. 김씨가 얼른 답했다. “물론 있읍죠” “가서 가져와라” 김씨가 털레털레 집으로 달려가 큼지막한 도끼를 들고 달려왔다. “과수가 어데 있는데?” 김씨가 통역관의 등뒤 언덕우를 가리켰다. 손가락으로 지경을 표시하며 말했다. “저쪽이 박씨네 꺼, 이쪽이 우리 껍니다.” “기르!” 이또가 한마디 내 뱉았다. “네?” “찍어라” 통역관가 번역했다. 김씨가 되물었다. “네? 무엇을 찍는뎁쇼?” “배나무를 찍어 넘기란 말이야. 화근을 모조리 찍어버리면 이제 다툴 일 없게 되잖겠냐” 통역관이 시끄럽다는듯 말했다., 김씨의 입가에 얼핏 야릇한 미소가 얼비쳤다. “박씨네 과수를 모조리 찍어 넘기란 말입니껴? 쉰그루 몽땅 말입니껴?” 통역관이 피식 물찌똥같은 웃음을 웃었다. “왜 박씨네껄 찍어. 당신네 과수를 찍으란 말이야. 의심은 그쪽에서 시작되지 않았소. 이제 찍어서 불이나 한구들 뜨습게 때시오. 한겨울 불소시개로는 과람할거요.” 김씨의 얼굴이 납빛으로 물들었다. “어이구, 이게 웬 마른 벼락입니껴? 과수를 다 베넘기면 우린 무얼 먹고 살란 말입니껴?” 사병 하나가 총박죽으로 김씨의 잔등을 윽박질렀다. “하야꾸 (냉큼)” 박씨가 곁에서 들릴듯 말듯 모기소리로 한마디 했다. “자업자득이우” 이윽고 언덕우에서 도끼질 소리가 들려왔다. 김씨의 넋두리도 섞여 들려 왔다. “망했다. 망했어”     총창에 떠밀려 석대째 찍어 넘기고 나서 김씨가 더는 못하겠다고 나누웠다. “다 찍어넘기면 무얼 먹고 살란 말입니껴? 이제 그만 찍읍시다. 제발 제발 빕니다용.” 그런 김씨의 가슴패기를 향해 사병의 군화가 날아들었다. 빨리 찍으라고 총박죽으로 어깨를 윽박질렀다. 김씨가 다시 도끼를 집어 들었다. 터진 입가장이 실룩실룩 경련을 일으켰다. “이 배나무는 내 목숨과도 같은거여. 그런걸 찍으라니 차라리 내 목숨과 바꿔 볼테여” 증오의 광염이 푸들푸들 타오르는 눈길로 김씨가 도끼를 들고 사병을 향해 달려 들었다. 탕! 총소리가 울렸고 베인 과수나무처럼 김씨가 넘어갔다. 어깨에 총을 맞은 김씨는 눈밭에서 괴롭게 뒹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였고 발포한 사병이 장관의 눈치를 보았다. 쪼막수염이 다가가 온몸이 벌레처럼 꼬부라져 신음하고있는 김씨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스스로 저승길을 재촉하는구나” 이또가 혁대에서 권총을 빼내여 박씨의 머리통에 대고 쏘았다.   피 묻은 도끼가 이번에는 박씨의 손으로 넘어갔다. “기르(찍어라)!” 도끼를 받는 박씨의 손이 곱아들어 있었다. 덜렁. 제대로 받지 못해 도끼를 떨구어 버렸다. 추위때문이 아니였다. 김씨의 참화에 넋이 빠져버린 박씨였다. 하루가 멀다하게 드잡이를 하며 천하의 저주를 골라 퍼붓던 구인(仇人)이였지만 막상 눈앞에서 피를 물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니 처량맞기 그지없었다. 총을 든 사병이 박씨의 뱃구레를 발로 걷어 찼다. “모조리 찍어 넘겨! 꾸물거리다간 저 자식처럼 되고 말거다” 통역관이 위협조로 말했다. 도끼를 주으려 허리를 굽히던 박씨가 오금이 풀려 주르르 주저앉았다. 얼굴이 걸레처럼 구겨져 울부짖었다. “우리가 왜 요 모양 요 꼴이 되였수?” 박씨가 곱아든 손으로 도끼를 쥐여들었다. 굿소리에 들린 무당처럼 쟁기를 쥔 손이 춤추듯 덜덜 떨렸다. 홀연 천둥같이 고함지르며 박씨가 도끼등으로 자기 이마를 사정없이 올리 박았다. 피의 분수가 터져 올랐다. 이마빡이 온통 피칠갑이 되여 김씨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통역관이 대자로 넘어진 김씨를 들여다보았다. “나 원, 도끼로 제 발등 찍는다더니만 도끼로 제 이마를 까는 놈 첨 봤네”   다음에는 북산댁과 남산댁이 마주 섰다. 북산댁에게 호비운 남산댁의 하얀 볼에 붉은 빗금이 사납게 번져있다. 쪼막수염의 찢어진 눈이 흥미롭게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 코밑 물집을 긁다가 생채기가 덧난 피딱지처럼 가증스러운 쪼막수염이 옴찔거린다. 마을 변두리로부터 마을어구에로 마을 어구에서 마을 복판까지 연줄로 이어지는 그 이악한 싸움의 내용들에 대해 금방 이 지역을 관장하게 된 이또는 알고싶어 했다. 알고싶었다. “저년이 어떤 년입네까? 여시같은 년, 천하 내숭 혼자 떠는 년입죠” 북산댁이 눈물코물 흘려가며 남산댁과 자기 남편이 눈 맞고 배맞은 사연을 양념 듬뿍 쳐가며 이야기 했다. 코앞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참화를 잠간 잊은듯 사람들 저마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북산댁과 남산댁의 싸움은 온 마을이 눈 돌리고 귀 기울이는 가십거리였다. 그것은 온 마을 남정들의 가슴을 할랑이게 만든 남산댁의 월등한 미모로부터 기인된것이였다. 어쩌면 거무튀튀한 돌같은 마을 녀자들중에서 그녀 혼자만이 물에 씻긴 조약돌처럼 해반드르르했다. 이 배꽃마을이 서서 그 이름에 걸맞게 그렇듯 배꽃처럼 화사한 녀자는 처음이였다. 북산댁은 그에 비하면 명함도 내놓지 못했다. 남산댁이 배꽃이라면 그녀는 감자꽃이라고나 할가? 아니 감자꽃도 아니고 그냥 우둘투둘 툽상스럽게 생긴 토스레 감자 그 자체였다. 게다가 남산댁은 남편도 잘 만났다. 그보다 몇살 손아래인 “아기 신랑” 남편은 골이 깊고 길이 외진 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경성의 고등학부에 붙은 수재였다. 마을훈장의 자제로서 촌티나 빈티를 전혀 찾아볼수 없는 그 남편은 아직도 경성에서 학업에 매진하고있다. 방학때면 머리에 얹은 학모에서는 모표가 번쩍이고 웃저고리에서는 일매진 단추가 번쩍이는 교복을 차려입고 그야말로 금의환향으로 돌아오는 남편을 맞아 때맞추어 새물내 나는 색동 한복을 떨쳐입고 남산댁은 동구밖 우물가로 마중나가곤했다. 그때마다 남편의 손에서 트렁크를 받아드는 남산댁의 얼굴은 도화색으로 화사하게 물들었고 그들먹한 자호감으로 매끈한 광채를 머금곤 했다. “성춘향 리몽롱이 저리 가라 하겠소. 남재녀모라더니 실루 천생배필이오.” 마루문을 빼꼼히 열고 그림같은 그 풍경을 훔쳐보며 마을 사람들은 쯧쯧 소리나게 혀를 차며 찬탄을 혹은 시샘을 금치못해 했다. 아무리 눈씻고 봐도 북산댁은 남산댁과 아무쪽에도 비하지 못했다. 박색인 북산댁이라도 그나마 남편은 잘 얻어 걸려든 편이였다. 경성까지는 못되여도 현성의 학교라도 나온 남편이였고 대금같은 악기도 다룰줄 알았다. 그 남편과 남산댁의 남편은 마을에서 유일한 친구였었다. 문제는 북산댁의 남편과 남산댁의 남편이 동시에 남산댁을 향해 동네가 떠나게 구애를 펼쳤는데 북산댁의 남편이 그만 녀신같은 그녀의 “간택”을 받지못하고 만것이다. 그것은 말그대로 버덕과 골안, 현성의 남자(县城男)와 경성의 남자(京城男)의 차이였다. 하늘같은 실의를 머금은 현성의 남자는 남산댁네가 마을이 떠나가게 결혼식을 치른 며칠후 “꿩 대신 닭”이라는듯 북산댁과 벼락결혼을 해버렸다. 하필이면 북산댁과 결합한것은 “현성남(县城男)”의 집안이 북산댁네 집 신세를 무던히 진 과거가 있은터였다.   춘궁기에 쪼들려 구들목 가득 잔밥들이 배고프다고 악바리처럼 울다가 쓰러져 울음소리도 내지못하고있는 “현성남”의 집에 북산댁네 아버지가 토스레 감자를 한가마나 통째로 지고와 건네준적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강을 건너 이 마을에 정착하기 전까지 떠나 온 옛 고향마을에서 두 집안은 서로 이웃이였다. 이미 두 집안끼리 “지복위혼(指腹为婚. 임신부가 있는 두 집안에서 아이들이 태여나기전에 혼약을 맺는 일)”을 맺은터였다. 그래서 심약한 “현성남”은 부모의 의지대로 토스레감자같은 북산댁과 “지복위혼”을 이어나가기로 했던것이다. 지지리 못난 마누라가 싫었던 “현성남”은 결혼후로 술을 입에 대였고 늦게 배운 술에 절어들어 마을과 린근 마을의 술도가들을 모조리 소탕할 지경이였다. 현성에서 온 남자는 어느덧 마을에서 두번째 가면 섧다할 고주랑망태로 변해 버렸다. 그런 남편과 남산댁 사이를 얽혀 생각하게된것은 현성에서 있은 농사장원표창대회에서 박씨가 과수장원으로 뽑히면서 그날저녁 마을에서 벌어진 축하연때부터였다.  누구보다 술을 많이 마시고 취기가 도도해진 남편이 불쑥 장농에 넣어두었던 대금을 꺼내가지고 왔다. 주흥으로 불어댈망정 대금소리가 제법 구성졌다. 하소하는듯 떨리는듯 구곡간장 들쑤시는 그 소리에 남산댁이 스르르 몸을 일으켰다. 대금산조에 맞추어 남산댁이 자청으로 타령 한소절을 뽑았다.   아아니이  아니 노오지는 못하아리라 차앙문을 닫아도 스으며드는 다알빛 마아음을 달래도 파고드는 사아랑 사아랑이 다알빛인가 다알빛이 사아랑인가 보일 듯 아아니 보오이고 잡힐듯 허어다가 놓쳤으니 아아니이 아니 노오지는 못하아리라   불고 뽑고하는 품이 어쩌면 두 사람은 죽이 그렇게도 잘 맞았다. 구석에 죽치고 앉아 둘이 난짝 어울려 돌아가는 꼴을 보는 북산댁의 광대뼈 도드라진 안면이 면풍에라도 들린듯 푸들푸들 뛰였다. 축하연이 끝나고 산끝자락 남산댁네 집에서 온 마을이 요동질치도록 부부싸움이 거하게 펼쳐졌지만 그날 이후로 마을에 희사가 있을때면 두 사람의 대금산조와 “사랑가”는 꼭 대미를 장식하는 보류절목이 되여 버렸다. 그후로 북산댁집안의 싸움화제에는 꼭 남산댁이 거론되곤했다. 남편이 그저 춤노래의 음절을 맞추는 사이지, 눈 맞추는 일은 결코 없다고 맹세를 거듭했지만 부아살이 꼭두로 뻗친 북산댁은 남편의 대금을 돌절구로 쳐서 박산내기까지 했다. 무작스러운 녀편네를 둔 “경성남”은 그저 술로 마음을 달랬다. 천지분간 못하도록 술에 취해 마루건 측간이든 자빠져서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타령을 했다. 동네가 떠나갈듯 악청을 뽑았다.   아아니이  아니 노오지는 못하아리라   마을에서 대금소리를 더는 들을수 없었고 북산댁의 시샘도 아이들의 짗궇은 돌멩이에 흐렸던 샘물 가라앉듯 슬몃 가라앉았다. 그러다 어느날인가부터 남산댁의 몸피가 굵어지며 임신의 조짐을 보였고 그 몸매를 뚫어져라 눈박아 보던 북산댁의 의심이 다시 도가집에 모인 사람들의 귀처럼 바짝 쳐들렸다. 남산댁의 그 “경성남(京城男)”은 학업이 딸린다면서 지난 겨울방학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남산댁의 배가 되박처럼 불러있는것이다. 사실은 남산댁이 자랑을 입에 달고 다니는 그 “경성남”남편이 서울에서 이름 번드르르한 유지의 딸과 눈맞아 돌아가며 이쁜 고향 마누라를 외면한다는 소문도 흘러든지 오래다. 마을에서 사람들이 쉬쉬대며 찧어대는 입방아 소리가 높아갔다. 그럴수록 그 찧어대는 돌확속에 든것이 백옥미같은 남산댁 그리고 보리쌀같은 자기라고 북산댁은 생각되였다. “가루받이를 하지않은 배나무에 꽃이 필 턱 있나?” “필시 슬그머니 수분해준 수펄이 있다 그말일세.” “꽃이 흐드러지게 피여있는데, 그것도 혼자서 살랑살랑 요분질하고 있는데 어느 수펄인들 홀따닥 홀리지 않겠나?”  “아무렴 홀리고 말고.” “산 높고 물이 막힌 천리길을 경성의 수펄이 날아들수는 없을거고” “맞네. 맞아. 필시 골안의 수펄일세” 시럽쟁들의 이죽거리는 패담에 북산댁의 높은 광대뼈가 험상궃게 씰긋거렸다. 밤이면 과수밭에 기여들어 난딱 끌어안고 뒹구는 남편과 남산댁의 허연 궁둥이가 환시처럼 눈앞에 어른거렸고 뼈를 삭이는 농탕질 소리가 귀전에 환청으로 들려왔다. 남산댁은 “토끼가 고기 씹고 호랑이 풀 뜯었다”는 식의 전혀 기성화되지 않은 일을 철석같이 믿어버렸다. 문제는 아무리 북산댁이 난동을 피우며 배속 아이의 임자를 대라해도 남산댁이 그냥 함구하고 있는것이다. 그럴수록 쉬쉬하는 소문은 떡고물 뭍이듯 점점 더 두터워 갔고 나중에는 쉬쉬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북산댁이 울꺽 설음에 치받쳐 악다구니를 쳤지만 남산댁은 여전히 그 모양 그 본새로 아무말도 없다. 통역관에게서 간추린 사연을 듣고난 쪼막수염이 허리춤에서 데룽거리는 칼집에서 군도를 쑥 뽑아 그에게 넘져주었다. 그리고는 턱짓을 했다. 알았다는듯 군도를 받아들고 통역관이 남산댁을 향해 벋짱다리를 끌며 다가 갔다. “뉘길까? 이 함함한 배를 둥시렇게 불려준 사람이” 통역관이 이죽거리며 물었다. 남산댁이 기다란 눈초리를 들어 통역관을 한번 보고는 깔낏하게 눈길을 돌렸다. 통역관이 칼등으로 남산댁의 배를 쓱 문질렀다. 남산댁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배를 감싸안았다. “뉘기냐고? 그 씨도둑놈이?” 통역관이 궁금해 미치겠다는듯 또 한번 채근해 물었다. 남산댁이 또 한번 깔낏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대답을 단념한듯한 표정이다. 예쁘게 그러나 깊이 닫힌 눈꼬리를 홀린듯 쳐다보던 통역관이 칼을 쳐든채 이번에는 북산댁쪽으로 다가갔다. 군도를 거꾸로 잡고 북산댁에게 칼자루쪽을 내밀었다. 그 용의를 몰라 북산댁이 통역관쪽을 벙하니 쳐다보았다. 통역관이 잔인하게 웃었다. “속시원히 갈라봐. 저 안에 든것이 네 남편의 씨종잔지 아닌지. 갈라보면 알거 아니냐?” 북산댁이 얼떨결에 군도를 받았다. 작대기처럼 뵈이는 칼이 정작 무거웠다. 군도의 무게가 두 손 가득 느껴지자 북산댁의 얼굴에 야릇한 표정이 떠올랐다. 광대뼈를 들추며 지어지는 그 표정이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사람의 본색은 원체 궃은날 궃은 자리에서 비로서 확연히 드러나는것이였다. 북산댁이 가치작거리는 치마를 단단히 추슬려 입었다. 곧추 남산댁을 향해 다가갔다. 두 눈에 암상이 닥지닥지한 북산댁이 두손으로 으득부득 칼을 꼬누어 들고 남산댁을 향해 일보일보 죄여 간다. “너,너 미쳤구나” 남산댁이 배를 부등켜 안은채 뒤걸음 쳤다. 보기에 자닝스러운 그 걸음이 어랜애처럼 지적지적 위태로웠다. 오로지 칼을 부여잡고 덜퍽스러운 젖두덩이를 덜렁대며 남산댁을 향해 죄여 간 북산댁이 문제의 부푼배를 향해 무작정 찌르려 했다. 탕! 후터분한 공기를 찢으며 총성이 울었고 북산댁의 손에서 군도가 떨어져 나갔다. 북산댁이 콩단처럼 뒹굴었고 그와 함께 남산댁도 얼음땅에 주저 앉아버렸다. “미친년. 찌르는 짓시늉을 하라했더니 정말로 쑤셔박으려 드네” 통역관이 씨부렁대며 흙묻은 군도를 집어들어 바지단에 쓰윽 문댔다. 굴신하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쪼막수염에게 올려 받쳤다. 다음순간 총알이 잔등을 관통하며 쓰러졌던 북산댁이 후딱 머리를 쳐들었다. 선불맞은 짐승처럼 피를 흘리며 지척에 있는 북산댁을 향해 기여갔다. 피 발린 두 손을 오무려 남산댁의 얼굴을 호비려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꾸역꾸역 신음을 자아올리며 단말마의 모지름을 쓰던 북산댁이 마침내 끝내는 풀지못한 그 문제의 부푼 배우에 쓰러지고 말았다. 자기 배우에 덩그렇게 놓인 북산댁의 머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남산댁이 쩔쩔 맸다. 구원을 청하는듯한 그의 눈길이 잠깐 어느쪽인가 쳐다보았다. 그러다 눈시울이 질크러지도록 두눈을 딱 내려 감은채 그저 생광목 찢는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퍼더리고 앉은 두 다리 새로 붉은 피가 새여나와 눈밭을 벌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두 김생원이 호명되여 나왔다. 턱수염 김생원의 도수 안경은 란투중에 깨져 거미줄인양 금이 갔고 팔자수염 김생원의 대통 물주리는 백동이 벗겨져 나가고 중등 부르져 맨 나무자루 한 토막만 볼썽사납게 남았다. 그래도 그 물주리를 버릇처럼 쥐고 있는 김생원이다. 두 사람의 옷에 서로 흩뿌린 먹자욱이 아직도 력력하다. 공자를 판독하고 맹자를 완독하고 순자를 다독했다는 두 사람은 만나면 서렬싸움을 벌리고 있었다. 마치 조정의 사대당들의 싸움같은것이 골 깊은 오지에서도 벌어지고 있는것이다. 그렇다고 개화당같은 조금이나마 개운할 론리도 없었다. 그저 수구파와 수구파끼리 고리타분한 문자놀이와 말싸움을 사계절 내내 싫증모르고 되풀이하고 있는것이다. 턱수염 김생원이 한숨 한번 짓고나서 입을 열었다. “어리석음이 화를 부르는구료.” 나름 감개에 넘쳐 말을 이었다. “미워하는 일, 시기하는 일, 원망하는 일… 모두다 내가 스스로 만드는 일일세. 정작 저 사람은 아무 일도 없는데 내가 저사람을 미워하면 내가 괴로울뿐. 어리석은 사람들이 사는 모양은 다 이러하이. 세상 탓을 하지 말고 나를 들여다 볼 일일세. 다 내가 만든 일로 내가 불행하게 되는게 아니겠나. 보게나. 그따위 짜부라지게 못생긴 돌배 한 두개를 두고 다투다 지 목숨까지 잃누만. 공연히 의심하다 엄마 잃고 배속 태덩이까지 잃고.” 팔자수염 김생원이 말을 받았다.” “그렇다고 온 마을 사람들 죄다 싸잡아 백안시 하지 말게. 잔치’연(宴)’자도 쓸즐 모르는 위인이.” 팔자수염 김생원은 여전히 전의 화제를 집요하게 움켜잡고 퉁겨댔다. “뭐 내가 백안시를 한다고? 백안시를 하면 자네같은 청맹과니가 했을거지. ‘맹자단청(盲者丹靑)’이란 말이 있네. 그렇게 먼눈으로 청홍황흑백 오색단청을 쳐다 봤자 무슨 소용일가? 어험!”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 하는구먼 어흠!” 팔자수염이 퉁겨대든 말든 턱수염 김생원은 혼자에게 하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삼국시대 조식(曹植)의 ‘칠보지시(七步之诗)’가 생각나누만. 자두연두(煮豆燃豆)두재부중읍(豆在釜中泣)본시동근생(本是同根生)상전하태급(相煎何太急)이라.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거늘 골육상잔이 웬 말인고하는 그 천하 절구말일세.” 공포가 슴배여 어딘가 떨리는 음조였지만 턱수염 김생원은 꼬박꼬박 긴 말을 늘여 놓았다. 습관처럼 턱수염을 엄지와 검지로 비비꼬는것도 잊지 않았다. “당나귀 귀치례라더니 거북털 처럼 없는 수염 내리 쓸고 있군.” 팔자수염이 턱수염을 비웃고는 말했다. “서재에 붙박혀 고스란히 학문을 연찬하는 진유(真儒)보다 집집의 기둥에 춘련이나 써 붙여주며 잔 재주 떠벌리는 처세에 능한 세유(世儒)가 칭송받으니 이 마을이 날이 갈수록 잡음으로 들끓을수 밖에 어험!”     턱수염이 바람에 모필 한가닥 살랑이듯 가볍게 웃으며 따졌다. “그럼 자네가 진유고 내가 세유란 말이오? 입으로는 천하의 가언을 지껄이고 있다만 떡고물 떨어지는 일에 얌치도 없이 달려들 사람이 바로 자네 아니겠나 이 바닥에서 사실 누가 량유(良莠. 벼와 가라지) 인지 누가 훈유(薰蕕) 향기나는 풀과 냄새나는 나쁜 풀)인지 종당에는 알게 될걸세 어흠!”    한켠에서 피가 튀고 시체가 뒹구는 참극에 무섬증이 일었지만 이런 형국이 오히려 두 생원의 승부사 기질을 더 짜릿하게 자극하고있었다. 두 생원은 위태로운 칼끝우에서 번드르르한 말타령을 늘여놓으며 넌덜머리나는 춤사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한켠에서 들어주던 통역관이 버럭 소리질렀다.     “뭐라 지껄여치고 있냐? 귀신축문 외우냐? 말끝마다 꼴랑꼴랑한 문자만 골라 쓰고 있네”     통역관이 벋짱다리를 들어 두 사람을 걷어차며 사이를 갈랐다. 하지만 두 유생의 싸움은 끝날줄 모른다. 서로 입이라도 맞출양 코맞대고 마주서서 허연 입김을 피워 올리며 뜨슨 침을 서로의 낯에 튕기며 유식한 말마디를 극구 골라 서로를 험담하고있다.    쪼막수염의 인내가 한계를 넘었다. 여전히 긴장태세를 풀지않고 총창을 가슴패기까지 받쳐든 사병을 향해 쪼막수염이 손을 홱 저었다. 병사 하나가 득달같이 달려나왔다. 와락 달려들어 다짜고짜 총검으로 먹물 자국이 번진 김씨의 잔등을 푹 들이 찔렀다. 호박살 찌르듯 깊숙히 들어간 날창이 마주서 대거리를 하던 두 사람을 한데 꿰였다. 팔자수염 김생원의 손에서 허세처럼 늘 잡고 있던 대통이 떨어져 나갔다. 두 생원의 눈이 심지를 돋군 화등잔처럼 동시에 커졌다. 명태두름처럼 한데 꿰인 두 사람이 극통으로 몸부림쳤다. 순식간에 얼음물에 빠진 자처럼 경련 일으키며 입으로 꿀럭꿀럭 피를 쏟았다. 턱수염 김생원이 코앞에 닿아있는 팔자수염 김생원의 일그러진 얼굴을 처량하게 지켜보았다. 금 실린 안경너머로 그 얼굴이 더없이 추레해 보였다. “함혈분인(含血喷人)이라더니 우리 마지막 까지 서로를 매도하며 피를 머금어 남에게 뿜는구만” 팔자수염 김생원이 꺼져드는 소리로 말을 받았다. “선오기구(先汚其口)라. 그러자면 먼저 제 입이 피로 더러워질뿐” 턱수염 김생원이 입술을 짓씹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와우각상쟁하사(蝸牛角上争何事. 달팽이뿔같은 세상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팔자수염 김생원도 간신히 입귀를 비틀어 자조같은것을 만들며 아래구를 받았다.  “석화광중기차신(石火光中寄此身. 부시돌 불속에 이 몸을 붙였네)” 사병이 와락 창을 빼자 등짝에서 먹물처럼 검붉은 피가 솟구쳐 흘렀다. 두 사람은 바람에 불리는 허수아비인양 왜틀비틀거리다가 동시에 넘어갔다. 두 사람은 엇누워 죽었다. 피를 본 이또가 흥분하며 멱따는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은 마치 수렵에 열광하는 렵사와도 같다. “다음은 손쬬(촌장) 나와라!”   사람들의 눈길은 가장 오래된 돌배나무를 향해 얼빠진듯 고정되여 있다. 오래된 나무를 배경으로 늙은 촌장과 젊은 촌장이 섰다. 손을 뒤로 결박당한 늙은 촌장은 젊은 촌장의 어깨를 밟고 섰다. 젊은 촌장은 그 아래서 늙은 촌장의 발을 받치고 섰다. 늙은 촌장의 목에 동아줄이 걸려 있다. 과수나무에 그네를 매달았던 굵은 동아줄이다. 젊은 촌장이 맥이 진해 주저앉기라도 하면 늙은 촌장은 영락없이 목이 졸려 교수(绞首)를 면치못한다.    사병들은 총대를 거꾸로 땅에 박고 총박죽에 두 팔을 얹은채 흥미진진하게 하회를 기다린다.     지독한 형벌을 고안해 낸 통역관은 더구나 흥분한 모습이다.     “애썼다, 동생. 이제 그만 끝내자.”    늙은 촌장이 절벽에 매달린 자같이 기를 쓰며 연신 처져 내리는 몸을 추슬려 올리는 젊은 촌장을 안쓰럽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안되오. 밉던 곱던 우린 한 피줄 한 혈통이오.”     “미안하다.” 늙은 촌장이 목메여 말했다. “미안하다, 모든것이. 내가 완력과 재주가 없어 구멍 숭숭난 마을을 그대로 네게 넘겼구나. 미안하다.” 헐떡이며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도 동생은 아득바득 형의 발목을 한사코 부여잡고 발끝에 힘을 괴인다. “그런 처경에서도 네가 칠삭둥이로 보여 사사건건 너만 탓해댔지” 늙은 촌장이 한숨에 섞어 어제를 반추했다. “’서울 남대문에 문턱이 없는데 가보지도 못하고 문턱이 있다’고 우겨댔구나. 미안하다.” 형의 굵은 눈물이 뒤미처 동생의 뒤통수로 떨어져 내렸다. “아니오. 난 또 하필이면 그 ‘문’에 기어이 문턱을 놓으며 엇서댔소. 젊은 혈기를 믿고 만용을 부린 내가 잘못이오.” 형의 뜨거운 눈물이 느껴지자 동생도 마음속에 맺혔던 옭매듭을 풀려했다. 형이 또 한번 하늘 우러르며 탄식을 뿜어 냈다. “마을이 곤액 한번 단단히 치르는구나. 어디 란마(乱麻)에 든 이 마을을 구해줄 사람이라도 없소???”  “장님이 장님을 업고 썩은 나무다리를 건느려 했으니 강에 빠지는 길밖에 안 남았소” 이번에는 동생이 한숨을 토해냈다. 형의 한숨이 그 한숨에 덧놓였다. 두 사람의 눈섭은 한숨이 피여올린 입김으로 하얗게 성에가 매달렸다. 절벽에 매달려 잡을 옹두리 하나 없는 형국이 되여서야 두 사람은 뒤늦은 리해와 깊은 회오에 빠져 든것이다. 늙은 촌장의 벌창해진 눈물샘에서 눈석이같은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눈물은 볼의 살갗에 흘러내리기 바쁘게 얼어붙었고 그 얼음길 우로 새로운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홀연 늙은 촌장이 언덕배기 아래를 굽어보며 대함을 질러댔다. “미안하이, 남산댁” 남산댁이 쓰러졌다 들려나간 자리에는 아직도 하혈한 피가 괴여 시커먼 룡탕 하나가 동그마니 얼어든 자국을 남기고있었다. 마을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늙은 촌장을 향해 몰부어졌다. 쉬쉬하는 소리가 새여나왔다. 늙은 촌장의 눈길이 이번에는 볼썽사납게 쓰러져 있는 북산댁의 사체에 머물렀다. “그리고 미안하이 북산댁” 늙은 촌장이 대롱거리며 오열을 뿜어냈다. 그리고는 동생을 향해 말했다. “나 이렇게 못난 놈이니 그만 내버려둬.” 동생은 아무런 화답도 없었다. 발끝을 세워 얼어든 흙속에 박아넣으려 허비적거리며 극구 앙버텼다.  “애썼다. 동생, 이제 그만 끝내자. 동생” 젊은 촌장은 힘에 부쳐 후들거리며 그저 숨 모자란 물짐승처럼 입만 뻥긋댄다. 풀리는 삭신에 힘을 주느라 목줄기에 퍼렇게 지렁이가 섰다. “오모 시로이~(재미 없잖아!)” 쪼막수염이 체증을 뿜으며 총을 빼들고 두 사람을 겨누었다. 총소리와 함께 쓰러진쪽은 젊은 촌장이였다. 그와 함께 늙은 촌장의 발이 허방치듯 들렸다. 늙은 촌장이 눈알을 까집으며 발버둥을 쳤다. 돌배나무가지가 끊어질듯이 요동쳤다. 이윽고 나무의 요동질이 멈추었다. 장형과 말제는 하나는 나무에 달려 하나는 나무 그루터기에 쓰러져 죽었다.   “이 귀축같은 놈들아!” 이때 등뒤에서 소리 하나가 터져 올랐다. 가래가 그렁이는 소리일망정 필사의 힘을 다해 지르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마을의 년장자어르신이였다. 이제 곧 백세연을 치르게 될 바로 그 로인장이다. 허리가 곱꺾인 로인장은 털등거리도 입지 않고 아래는 속곳, 우에는 맨 저고리 차림으로 과수원에까지 나왔다. 웬체 잔시비 큰 싸움으로 매일이고 수런거리던 마을이였지만 오늘따라 그 소요로움은 커서 로인장이 웬일이냐고 비척걸음으로 밖으로 나왔고 그러다 돌연한 장면들을 목도하게 된것이다. 아래턱을 달달 떨며, 목갈린 소리를 드높이며 비척비척 다가오던 로인장은 끝내 저만치에서 철퍼덕 엎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덴겁히 달려가 로인장을 안아들었다. 로인장은 이미 마시는 숨조차 버거워 하고있었다. 로인장이 혼탁해진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잎을 모조리 떨구어낸 돌배나무는 하늘향해 앙상하게 가지를 쳐들고 있다. 그 겨울에 꺼둘린 돌배나무를 로인장이 멀거니 쳐다보았다. 이 마을에서 맨 처음 강을 건넜왔던 로인장이였다. 조롱박처럼 달린 아이들을 업고 안고 둘러메고 강을 건너와 볼모지에 괭이를 박고 맨처음 심은 것이 바로 돌배나무였다. 떠나온 고향마을에서 배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이곳의 돌배나무에 접목을 했다. 버려진 우물을 가시고 그 우물을 자아올려 한지게 두지게 길어올려서는 나무뿌리를 적셨다. 태를 묻었던 고향보다 맹추위가 깊은 이 곳에서 나무가 얼어튈가 창호지를 하려던 천쪼박까지 다 떼내여 나무둥치를 감쌌다. 그렇게 지극정성을 바친 돌배나무는 봄이 되자 하얀꽃을 피워 올리다 하얀 꽃이 떨어지자 짙은 초록색 이다가  다 익어지자 노란빛에 가까운 연두색꽃이 되였다. 그리고는 황금색의 납작한 열매를 선물했다. 강 건너 그것보다 더 크고 더 때깔고운 돌배가 나무가 휘도록 주렁주렁 달렸다. 여느 돌배의 떨떠름함이 가시고 단물이  새록새록 배여 나오는 신종 돌배였다. 이렇게 애지중지 키운 돌배나무가 리화동마을이 린근에 유명한 과수촌으로 이름을 날리게 까지의 단초(端初)를 열어놓은것이였다. 한대 두대 심어 이제는 숲을 이룬 돌배나무숲은 마을에 절경을 수놓았다. 보듬은 산더기는 서기롭게 하얀 빛을 떠이였고 기름지게 가꾼 들판은 정다운 취록(翠绿)으로 빛났다. 크고 너른 배나무 그늘 아래 마을사람들은 새곰달콤한 풍요를 즐겼다. 그로서 리화동이라는 마을이름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 풍요로운 경상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심을 잃고 더는 애초의 바지런한 손길이 가지않은 돌배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지탱하듯 위태롭게 뻗치고있다. 그 어설피 뻗은 앙상함에 마을이 떠인 하늘이 조각조각 쪼각나 있다. 로인장이 모지름하며 머리를 쳐들었다. 백세연을 앞두고 로촌장이 “바리깡”에 새로 기름을 쳐서는 들고 찾아가 로인장의 파뿌리 같이 하얗게 센 머리를 파르라니 깎아주었고 수염도 가위로 단정하게 다듬어주었다. 로인장이 단정한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워낙은…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마을이였었는데…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데 사람들만이 어지러이 들노는구나” 눈이 화등잔같이 우묵해진 어르신은 가슬가슬하게 들뜬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을 이었다. “쇠가 쇠를 먹고… 살이 살을 먹는다더니... 이 모두 업보로다” 비리비리하게 깡마른 로인장이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던지 짱짱한 소리로 한마디를 단말마로 내질렀다. “업보로구나!” 머리우에서 대롱거리는 마른 나무잎을 만지기라도 할듯 데거친 손이 허공을 향해 쳐들렸다. 그러다 로인장의 삭정이 같은 팔이 툭 떨어져 내렸다.  로인장은 짤각눈조차 감지 못하고 멀거니 뜨고 있었다. “아이고, 어르신”  “아이고, 래일모레면 백세 상수(上寿)를 채우실 분이신데” 지자러진 곡성이 터져 올랐다. “아이고, 축수연이 초상연으로 돼버렸구만이라” “아이고, 어르신” 코물눈물 찍어내던 중 누군가 흐느낌을 섞어 물었다. “그나저나 시신을 어데로 모셔야 하는감?” “어데 모시겠수? 강 건너 고향마을의 장지에 모셔야지” “강 건너 온 사람을 하필 강 건너에 다시 모시겠수?” “이 마을에 모셔야지” “마을 배나무숲 언덕배기에 모심이 좋을듯 하이.” “고향에 처자의 뫼가 있지않나. 그러니 강건너에 모셔야지” “앗따 말이 많네, 평생 이 마을에 수고로움을 바치신 분이니 이 마을에 모심이 마땅하이” “강 건너에 모셔야해” “과수원에 모셔야해” 시신을 사이두고 의견이 두패로 갈렸다. 떠들썩하던 소동이 얼마쯤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나 했더니 다시 싸움이 시작되였다. 서로는 어르신의 죽음과 마을의 참화도 잊은채 심한 맞대거리에 빠져있었다. 듣고보면 허황하고 시시풍덩한 일조차 저마다 내가 옳다고 피대를 세우고 내가 이겨야 한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여름밤 개구리들처럼 시끄럽게 째깍거리기만 하더니 이어 돌주먹 쇠주먹이 마구잡이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서로의 멱살을 잡고 머리채를 꺼두르며 뒹굴었다. 그 뼛센 싸움짓거리에 관망하는 사람들이 그만 모골이 송연해 질 지경이였다. 아무런 소득도 없는 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가칠한 어투에 뻐센 억양의 사투리로 격조없는 불뚝성들이 서로 판가리를 하고 있다. 독선에 사로잡혀 한사코 상대를 파괴시키는 가운데 파괴된 자신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을은 무참히 망그러지고 서서히 바서지고 있었다. 도우시데 (왜? 어째서?) 이또의 미간이 의문을 품고 일그러졌다. 이마살을 모은채 왠지 동족상쟁의 광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활동사진 찍듯 하나하나 동공에 찍어보았다. 불개미처럼 모여 버글대는 사람들을 지켜보다 이또가 더는 참을수 없다는듯 소리질렀다. 솟또! (조용히 해) 화딱지가 난듯 그 소리가 발작적이였다. 통역관이 냉큼 그 말을 받아서 소리소리 질렀다. “그만들 하랍신다. 송장 빼고 장사 치르겄냐?” 하지만 사람들은 주체못하고 있었고 란투는 계속 되고있었다. “칙쇼! 그만들 두지 못해?” 이또가 또 한번 소리 지르며 사병들을 돌아다 보았다. 철컥 철컥 철컥 이또의 눈동자에서 귀린(鬼燐)같은 푸른 불꽃이 퍼르르 타올랐고 그 눈짓에 밀린 사병들이 총을 장전했다. 하지만 그 소리도 듣지못한채, 듣는척도 않고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또의 쪼막수염이 씰룩했다. 이또가 손을 홱 저었다. “고로스! (죽여라)” 탕! 탕! 탕! 탕! 탕! 탕! 총성이 울렸다. 돌배나무의 몸체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마른 돌배나무 잎들이 찢겨져 우수수 날렸다. 밑동을 잘린 배나무처럼 사람들이 하나둘 넘어 갔다. 돌배나무가지에 쌓였던 눈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이윽고 악마구리 끓듯 하던 마을은 괴괴한 정적속에 잠겨버렸다.   강가. 아이가 팽이를 치고있다. 군화발에 짓밟혀 짜부라진 팽이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아이는 부지런히 팽이채를 휘두른다. 마을에서 어떤 천재지변이 이는지도 모르고 혼자서 넓은 강과 팽이의 향연을 향수하는것이 아이는 즐거운듯 하다. 강기슭 악귀들이 지른 불에 불길이 훨훨 솟는 마을은 꼭 마치 가위 눌린 몽매(梦寐)속 세상과도 같이 끔찍하다. 불란리 물란리의 아수라장에도 세상천지 혼자서 놀음에 탐해 있는 그 아이를 지켜보던 통역관의 입가에 씰룩 야릇한 웃음이 새겨졌다 사라진다. 뻗장다리를 끌며 다가가 통역관이 무언가 아이에게 넘겨준다. 철덩이에 나무자루가 달린, 방망이를 신통히 닮은 물건이다. 수류탄이다. 통역관이  수류탄의 심지를 애의 식지에 돌돌 말아주었다. “좀 있다 이걸 당겨봐라” “우째요?” 아이가 맹한 눈길로 되묻는다. 그런 아이의 한쪽 눈알이 통역관의 상판을 올려다 보고 한쪽 눈알은 수류탄을 내려다 본다. “당기면 이 속에서 보물이 나올끼다” “보물이요?” 퍼렇게 얼어들었던 아이의 얼굴에 화색이 비껴들었다. “그래 보물이지. 암 보물이고 말고. 니가 이 염병할 마을에서 마지막 보물이다.” 통역관은 또 하나의 볼거리를 연출해낸듯 크그극 웃었다. 잔인하게 웃으면서 히끗 쪼막수염을 쳐다본다. 아이를 둘러 싼 쪼막수염과 사병들이 낄낄 음습한 웃음을 웃었다. “그래 당겨봐라.” 통역관이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간활한 어조로 말했다. “천천히 열까지 세고 그담에 당겨봐. 천천히, 꼭 열까지 세얀다. 열까지” 통역관이 아이를 꾀이며 얼른 피하라고 사병들에게 손을 저었다. 그와함께 아이의 셈이 시작되고 셈은 순간에 끝났다. “한나 둘 여덜 아홉 열” 쾅! 굉음이 일었다. 뿌연 흙먼지가 만장처럼 펄럭이였다. 이윽고 고요가 흘렀다. 어디선가 승냥이의 그것을 닮아 가는 들개의 울음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려 올뿐이였다. 하천과 산맥이 뒤바뀌는 괴멸의 란리를 겪은 마을은 언제 그런일 있었냐는듯이 정적의 얼음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그 고요는 기괴하기 까지 했다. 까악 까악 돌배나무우에서 새청맞은 비명을 지르는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그 정적사이를 비집었다. 까마귀떼는 비명같은 울음소리를 지르고는 음음한 하늘로 빠르게 빠르게 날아가 버렸다. 구물구물 지평까지 밀고 내려온 구름 사이로 희끗희끗한 눈송이들이 번지기 시작했다. 눈송이는 조화(弔花)처럼 어지러이 나붓기며 내렸다. 내려서 마을을 하얗게 봉분처럼 뒤덮어버렸다.   … … … …   “연변문학” 2014년 10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ny No 4 in c minor D.417 tragic 1,2,3,4.......순으로 연속듣기
17    화 두 (話頭) 댓글:  조회:2455  추천:14  2014-08-27
                . 대화체소설 .  話頭 김 혁    우문(愚問): 우리는 누구입니까? 현답(賢答): 구름이 너더냐? 산이 너더냐? 빗줄기가 너더냐? 그것들이 너더냐? 우문: 우리는 누구입니까? 현답: 나는 누구더냐? 내 안에 있는 너가 나더냐? 이 소리를 듣는 너가 나더냐? 우문: ??? ??? ??? ×  ×  ×  ×  ×  ×  ×  ×  ×  ×  ×  ×  ×  ×  ×  ×        햄거거 집- - 우와! 사람이 많네 - 주말도 아닌데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아? - 우리 식보가 언제부터 이렇게 바꼈나. 쌀밥에 된장국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 난 이 햄버거집이 싫은데... - 야 ! 헌데 넌 왜 햄버거하면 왜 이집 밖에 모르냐. 도 있고 도 있고 햄버거 집 쌔고 버렸는데 - 도 있잖아. - 후훗, 너 혹시 이곳 마담네 딸 은근히 좋아하고 있는거나 아냐? - 아니면 손님 소개해주고 수수료 받아 챙기남? - ! 무슨 그렇게 좆나게 삐딱한 소릴 하고 그래. 이 팀장이 고작 그럴 위인으로 보이냐? - 촌뜨기처럼 그저 한곳 밖에 모르니 하는 소리야 - 앤 항상 그래.  pc방 가도 그저 가던 곳밖에 몰라. - 야  우리 가자, 로 가. - 갈려면 니들 끼리 가! 난 그냥 이곳서 먹을래. 솔직히 나 좆나게 지쳐죽겠다. 이제 한발자국도 못가겠어. 그래도 가고프면 니들이 날 업고 가라 - 이구구, 명색이 사내라는게 우리 녀자들보다 못하네 - 야 이눔 지지배들아, 오늘 점심은 내가 쏘는거야. 받아먹는 주제에 웬 불평들이 그리 많어. - 복잡한대로 먹고 보자. 님이 어쩌다 한방 터뜨리는데 - 그럼 그렇게 하지뭐. 이러다 입에 들어온 고기점 놓칠라. - 언녕 그래야지. 엿가락도 길게 빼면 미워지는 법. 자, 그럼 주문들 하시지. 넘 비싼건 빼고. 너부터 말해봐. - 난... 소고기 버거에 치킨에 고구마깡에 야채샐러드에 콜라. 팹시 콜라 아니고 코카콜라 아, 그리고 딸기 아이스크림. - 이 눔 지지배야! 우리가 뭐 좆나게 돈 많은 니들 집처럼 한때먹는데도 진수성찬 차려가며 먹는줄 아냐? 간단히 해. - 워머! 어쩌다 청하면서 이 정도는 돼야지 뭘. - 그래 수준은 돼야지. - 좋아하네. 여자라면 여자시늉이라도 내야지. 남자이상으로 식욕이 좆나게 왕성해 갖고. - 아침 컵라면만 먹었더니만 배가 고파 그런다 왜? - 먹는데라면 꼭 진공청소기 같다니깐. - 안 사줄려면 말어. 우리 끼리 가 먹을래 - 됐다. 거기 앉어. 어쩌겠냐 내가 덫에 치인것으로 생각하고 잡수어줍시사 할테니 마니마니 잡숴봐. - 음 이제 팀장 모습이 보이네. - 넌?  - 난 떡볶이 하나면 돼. 마음 쓸려면 쥬스나 한 컵 더 줘. 당근쥬스! - 이 돈 절약하게 됐다. - 이제 됐지? 나 주문하는 사이 니들은 자리나 찾아봐. - 그래 빨리 가서 많이 챙겨와. - 헌데 사람 정말 많다. 얘. 오늘 프로축구하는 날도 아닌데... - 야 저쪽에 자리 나는거 같다. - 어데? - 저기 봐라 저기. 지금 막 일어서고 있잖니. 보여? - 워매, 거긴 화장실쪽이잖아. - 그렇다고 서서 먹을래? 얼른 따라와 봐. 그렇게 요탈조탈하다간 떡볶이 아니라 죽물도 없다. - 참. 화장실 곁 식사는 나서 처음이다. - 야, 이 지지배들아. 기껏 맡아놨다는 자리가 좆나게 화장실과 이웃이냐? - 말도 마 이런 자리라도 땀나게 겨우 찾은거다. 냄새도 안나는데 뭘. - 그래도 여하튼 화장실 곁이 잖아. 어쩐지 찜찜해 - 아 이 눔 지지배들아. 음식 받지 않고 뭐해? 팔 떨어져. 내가 무슨 니들 사환군 이냐? 좆나게 무거운데 - 아이고 귀청 떨어지겠다. 소리는 왜 지르구 그래 - 야 조용히 해. 남들이 보는데... - 야 너 말버릇 세탁해야 겠다. 너 그걸 입에 물고 사냐? 말끝마다 좆나게가 뭐냐? - 쟤가 한국드라마 넘 봐서 그래. - 니들 보다 낫다. 좆나게 안되는 서울말에 함경북도 사투리 막 짜장면처럼 비비는 니들보담은 - 워머, 남을 많이 먹는다 불평해 놓고선 앨 좀봐 무슨 햄버거 두개씩이나 먹냐? - 남자잖아 - 어때 맛이 괜찮냐? -응. 덕분에 목구멍 때 벗긴다. - 이곳 떡볶인 넘 매워. 쪽은 달곰새곰 맛있는데. - 헌데 이 눔 지지배들아 다음달 부턴 어쩐다냐? - 뭘? - 우리 춤 련습장하는곳 자리 내라는데 - 왜? 세값 꼭 꼭 내고 했는데 - 그곳 이제 술집 만든다나 - 또 술집이냐. 두집 건너 술집인데 - 이곳 사람들 술집 말고 뭘 차릴줄 아는거 있냐? - 이제 어데가서 그만큼 좋은 자릴 얻남? - 나 몇곳 알아봤는데 다 지금 이곳보다 값이 좆나게 비싸 - 학교자리도 가봤어 - 어느 학교? - 그 전번에 페교된 학교 있잖아. 조선족소학교 - 야 근데 우리 조선족 학교들 왜 그냥 페교가 된다냐? - 야 팀장님이 말씀하시는데 말 가지치지 말어 - 네 잘못했어요. 그냥 말씀하세요 팀장님 - 조선족학교가 자꾸만 페교되는건 머리굵은 어른들 문제고... 헌데 그냥 비워둔 페교라면서 세값은 세값대로 받을려 그러데 - 위치가 좀 좋은곳은 세값이 엄청 비싸고. 그런데다 난 요사이 주머니 사정도 좀... - 야 너 또 나더러 세값 선대하라는건 아니지? 울 아부지도 요사인 장사가 잘 안돼. - 난 더구나 어려워. 전번 돈도 전학하는데 드는 비용이라고 아빠하고 거짓말 했는데. - 너 아버지가 교육자라면서 - 근데는 왜? 그저 교육자가 아니고 박사시다 - 넘 뻐기지마. 나도 교원하는 삼촌 있다. - 옳다 니들 팔뚝 굵다. 울 아부진 개잡는 백정이야. - 개잡든 돼지잡든 돈만 잘 벌면 되지 요즘 세월에 - 보신탕 매일 먹고 좀 좋아서 그러냐 - 그래두 니들이 그럴때면 난 부러워. 박사아빠 아무나 있냐   - 그럼 그 박사아버지가 거짓말박사를 키워냈냐? - 자꾸 토를 달지마. 그거야 다 우리 댄스팀을 위해 그런거지 - 아냐 롱담. 물론 팀장인 내가 나서 해야할 일이지만... 어제 편지가 왔는데 우리 아버지 다쳤대. 고기잡다 허리 다쳤어. 꾼 돈 갚지 못해 배에서 내리지도 못해. 그런 허리로 그냥 잔일이라도 찾아 하셔. 엄마가 번돈도 다 약값으로 들어가는거야... 그리고 고기배 탄 사람들 얼마나 어려운지 니들 모를거야. 그곳 사람들 여기서 나간 사람들을 발샅의 때처럼 알고 행패질 한 대. 사건 니들도 알지? 이곳 사람들 그쪽 사람들 사시미 칼로 막 찔러 죽인거. 그일도 우리 이곳 사람들 좆나게 못살게 구니 막부득이 일어난 거야. 아버진 어쩌는지? 성질 되게 급하신 분이신데. 그 성질 죽이며 비위 맞추려니 오죽하겠냐. - 참 우린 모두 왜 이렇냐? 울 아빠 박사라지만 엄마도 출국해서 돈 벌잖아. 서울 어느 갈비집서 사발씻어 돈 벌어. - 울엄만 어떻고. 니들 엄마 서울이면 울 엄만 대구다. 정말 니 엄마도 대구 쪽이였지. - 그래 아부지구 엄마구 한꺼번에 나갔지. 아버지는 배타고 엄마는 대구에서 일자리 찾구. - 대구 나가는 판이야 대구! 어른들은. - 그래도 넌 돈 부쳐보내는 엄마에 이곳서 보신탕집 차려놓구 돈 잘 버는 아빠에 좋잖냐. 니들집에선 보모까지 두었다면서. - 보모? 흥! - 흥이라니? 왜 그래? 넘 편해서 그러냐 - 솔직히 나 그 여자 죽이고 싶어. 아빠도 죽이고 싶고. - 얘가 왜 이래? - 넘 많이 걷어 먹고 체했냐. - 아빤 엄마한테 미안해. 넘 미안해! - 됐다. 그만 고정해. - 니들은 몰라. 내 맘 어떤지. 내게 어떤 말못할 사연이 있는지. - 됐다. 슬픈 얘기라면 그만 스톱. 공연히 앨 울리겠다.  - 니 엄만 나간지 얼마 됐냐? - 6년째다. 6년! - 넌? 니 엄만 더 오래되지? - 비슷해 7년 - 우리 집도 7년. 아부지며 엄마며가 함께 나간지. 내가 유치원 대반 다닐적에 나갔다. 어쩌지? 이제 부모가 어떻게 생겨 먹었던지 가물가물 잊어질가 하는데.  고아가 따로 있냐? 이런게 바로 고아지. - 그래. 나도 전화로 아는 엄만 그저  목소리만 익숙해 - 이제 그만 와달라고 전화로 애걸해도 안 와. 몇해만 더 기다려라. 엄마가 떼돈 벌어가지고 가서 그때 우리 잘살자 그러면서 - 떼돈 벌어오면 또 어쩔건데. 있어야 할때 없는 엄마가 그때가면 소용없을지도 모르는데 - 여하튼 부모들 우리들과 마음의 번지수가 달라 - 그래. 알고도 모를게 우리 부모 맘이야. 세모돌인지? 네모돌인지? - 우리 부모들 모두가 정오표를 내야 돼 - 그러고 보니 우린 다리 부러진 노루 한자리에 모인 거구나 - 재미없어 모든게. 그저 댄스 하나만 빼고. 그왼 아무런 취미도 없네 - 그렇게 좋은 댄스기에 우리 기어이 해 나가야 잖냐 - 그럼 애초처럼 우리 또 강가로 나가 련습해야 하남? - 강은 싫어. 우리가 뭐 잔나비냐? 사람들 구경거리만 돼갖고 - 그럼 어떡해? 댄스콩클도 당금인데 - 좆나게 시끄럽다. - 근데 다른 팀은 어떤 쪽으로 준비한대? - 뭐 또 사랑 아니면 리별이겠지. - 우리가 선제한 춤노래도 그저 그렇잖아 결국 사랑이지 - 야 근데 니들 그 팀 얘기 들어 봤냐? - 무슨 얘기?? - 팀 팀장하고 한 팀 애 좋아하는거 - 그 새침데기 같은 애하고 - 그래 - 하필이면 그애하고 좋아해? 팀장이야 홀리우드의 톰 클로즈처럼 잘 생겼잖아 - 문제는 그게 아니고 - 그게 아니고 뭔데? - 극 비밀인데 니들만이 알어. 나가서 말하면 절대 안돼 - 뭔데? 신비한척하며 그러니?  - 고 새침데기가... - 고 새침데기가? - 톰 클로즈의 애기를 밴거야! - 어머머, 그게 정말이니 - 어른들 말에 얌전한 개 골로 빠진다더니 - 확실해. 둘이 세방까지 맡고 살았다는데 뭐 - 건 나도 알아 - 근데 한심하다. 걔가 몇살인데? 울 하고 동갑아니야 - 아냐 울보다 한살 많을가. - 걔들 부몬 뭘 한대? 애들한테 관심도 없다냐? - 부모 같은 소리 하고 있어 - 출국한지 언젠데 - 어휴 이제 어쩐다냐? 걔들은? - 학교 그만뒀 잖아. 원인은 그거야. - 가도 한참 갔구나. 너무 갔다. 애 - 간거야 그애들 부모지 기실은 - 됐다. 아무리 밑천 안드는 말이라고 남 소리 그만해. 걔들도 우리하고 같은 처지야 - 그래 겨울개구리처럼 이제 입다물어. - 사실 난 걔들이 부러워. - 애개개. 야 넌 또 왜 이래? - 나도 걔들처럼 세집 나와버렸음 좋겠다. - 왜? 너 삼촌 잘 해주잖아. - 잘해는 준다만 아무리 잘한들 부모만큼만 하겠냐. 명색이 교원이랍시고 말끝마다 그저 훈계야. 훈계. 것도 출국한 부모들 들먹이면서. 기실 삼촌네 쓰고사는 집 울 엄마 부쳐보낸 돈으로 산 집이야. 그 덕에 불때는 집 스팀 집으로 바꾸고 신세 고쳤지. 그래도 날 은근히 시끄러워하는 눈치가 보이데. 내가 엄마하고 삼촌 사이에서 비빔밥처럼 비비 우며 살아야할 리유가 뭐야? 엉? 집 들어가기가 정말 좆나게  싫어. 아예 pc방 전세 내고 거기서 살가 보다. 야, 니들중 나하고 함께 세방 맡을애 없냐? - 어머머 세방같은 소리하고 있네 - 어떤 앨 또 미혼모 만들어 볼려고 - 됐다. 시시껄렁한 소리 그만하고 본제로 돌아가   - 그래. 다른 팀 보다 더 나은 곡 선제하자 그게 화제였지. - 그래 우리 춤노래 한 번 바꿔 볼가? - 이제와서? 넘 늦지않을가? - 어떤쪽으로? - 여하튼 좆나게 신나거나 새로운 것이 보이는 쪽으로. 사랑은 이젠 신물나 - 리별은 더 싫은거구 - 야 헌데 . 네가 리별이라도 맞았냐. 왜 그래? 새침깔고 - 아까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저기압이냐? 아직도 떡볶이가 맵냐? - 아냐. 기분 깼다면 미안해. 좀 골치거리가 있어 그래 - 무슨 일인데 이 언니가 좀 들어주자. - 그래 같은 팀인데 곤난이 있으면 말하고 살아야지 - 나더러 전학하래 - 누가? - 울 아빠가 - 왜? 원인이 뭔데? - 어디로 전학하는데? - 돈만 대면 좋은 학교 어데라도 갈순 있지만  문제는... - 문제는? - 나더러 한족학교 가래? - 뭐? 박사님이? - 왜 그런다니? 박사님이? - 요즘에야 한족학교 가는 애들 푸술하지 않냐? 뭐 이상한 일이 아니지 - 그래도 민족교육을 한다는 박사님마저 그럼 안되지 - 그래 안되지 - 니들도 나 한어못하는거 알지. 한어 하면 음조 다 틀리는거 - 그래 완전히 음치지 음치(砲調). - 야 접때 중국료리집에 갔을때 일 기억나냐? - 전번 댄스콩클 결전에 올라 한턱 쐈을때 그러냐? - 응 그때 얘가 그 한족 복무원보고 하고 한바탕 한어로 주문했는데 복무원이 뭐랬어? 분명 한어말로 주문했는데 복무원이 알아못듣고 그랬지. - 푸하하하하 - 오호호호호 - 그만해 남은 골치 아파 죽겠는데 니들은 골려나 주고 그러니 - 됐다 됐어. 부모님들 그렇게 잡아 끌면야 별수 없지. 그 문젠 잠시 건너 뛰자. 다시 본제로 돌아가 - 맞아. 본편을 계속 이어보자. 그럼 사랑이나 리별 주제를 빼고 어떤 주제로 춤을 만들어 보겠니 - 그렇찮아도 귀찮아 죽겠는데 사랑이요 리별이요 이런 노랜 관두자. 관둬 - 그래. 지금 사람들 머리 싸매고 덤벼야 하는 주제는 싫어해 - 그럼? - 그 노래 어때? - 어느 노래? 머리를 쓸어 올리는 너의 모습 시간은 조금씩 우리를 갈라놓는데 어디서부터인지 무엇 때문인지 작은 너의 손을 잡기도 난 두려워 사랑보다는 먼 우정 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마음을 이젠 떠나리 - 야 결국은 또 사랑이잖아 - 아냐 우정도 들었어. 요사인 우정에 관한 노래 적어. - 그래 우정이 있어야지. 우정이 있기에 우리 팀 맴버들도 이렇게 똘 똘 뭉쳐 있잖아 - 근데 후훗... 왜 우리 사인 우정만 있고 사랑은 없다냐 - 그야 니들 지지배들이 관중보기 미안하게 생겨서지 - !!! 너 죽을래? - 됐다 고만. 이자 그 말 취소다 취소. 본제로 가자 - 우정이 좋긴한데 새삼스레 걸 쳐드니 좀 촌스러워 보이잖냐 - 그래 좀 그렇다. - 그럼 이건 어떠냐?     지금도 리해할수 없는 얘기로   넌 핑계를 대고 있어 - 아이고 넘 낡은 노래 잖아 - 아냐 가사를 바꿔 하는거야. 출국만 하면 우리 자식같은건 감감 잊어버리는 우리 엄마들께 하는 노래야. 노래말서 라는 단어를 로 바꿔 불러봐 - 내게 그런 핑계를 대지마 립장 바꿔 생각을 해봐 엄마가 지금 나라면은 웃을수 있니 혼자 남는 법을 내게 가르쳐 준다며 롱담처럼 진담인듯 건넨 그 한마디 이렇게 쉽게 날 떠날줄은 몰랐어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내게 슬픈 사랑을 가르쳐준다며 엄마는 핑계를 대고 있어 - 어때 괜찮지? 이렇게 부르면 공감있을거야. 모든 애들한테 - 괜찮은건 같은데... - 문제는 판권이야 - 그러다 작사 작곡가가 걸고 들면 어쩔래 - 그래. 자기 노래를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고 혼돈탕으로 만들었다고 - 아, 있다! - 왜 자꾸 소리는 지르구 그래? 간 떨어지겠다. - 입에 묻은 기름이나 씻고 말해요. 팀장님 - ! 어때? 내용도 좋고 요즘 시국에도 딱 맞고 하지 않니? - 맞다. 그 노래 좋을거 같아 태여났지 넌 피곤한 세상에 난 찾았어 또 느꼈어 이대로 세상을 살겠는가 배워야 하는것 꿈, 부모의 꿈을 들어봐 아이들은 웨치고 있어 태양을 찌를듯이 솟은 빌딩 앞만 보고 뛰여가는 아이들 숨가빠 난 지쳤어 세상을 흔들어 TV를 꺼 관심을 꺼 포장된 인생으로 날 관심하는척 하지마 또 다른 꿈에 난 지쳤어 난 나 생긴대로 살아가 남보다 잘 되라 내게 강요하지마 누구나 나름대로 꿈은 소중해 부모들의 꿈을 대신 살아가야 하나 돌아보지마 앞만 보며 가 넘어져도 손 내밀 사람은 없어 메마른 세상 담의 문을 열어 높은 하늘로 날아가 봐 너도 할수 있어 다른 세상을 열어봐 - 좋았어, 이 노래로 하자!!! - 아 배불러 - 어떻게 맛있게들 잡수셨나? 우리 맴버들 - 응. 덕분에 - 잘먹었다 나도. 떡볶이가 좀 매워서 그렇지. - 그럼 오늘은 이만 헤여지자. 랠 또 반급 활동이 있으깐 - 정말 래일 반급 주제활동 있다면서. - 그래 야외로 나간다 그러던데 - 강으로 간대 - 강에 가서 뭐하게? - 야, 넌 우리 반 아니고 물밑천국에서 살았니? 얘는 포치할땐 뭘하고 그래? - 랠이 세계환경일이래. 두만강가에 가서 쓰레기 줏고 그런단다. - 아, 김샌다. 우리가 무슨 환경미화원이냐? - 여하튼 오랜만에 강으로 나가니 기분 과히 나쁘진 않아. - 그럼 랠에 다시 만나. - 굳바이! - 바이!    호텔 로비- "안녕하십니까?" "아 - 금방 론문 발표하신 선생님이시구만요" "네. 론문 이라기 보담은 걱정담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 참 좋은 테마를 쥐셨습니다." "하, 글쎄 시골서 살다보니 느낀바를 그대로 적어 봤을 뿐이지요. "아니요. 정곡을 찌르는 좋은 견해였습니다." "선생님도 론문 준비하셨겠지요" "네 전 이제 두 사람 뒤에 배치 됐어요" "어떤 테마를..." "전 출국자녀문제에 대해 다루어 봤슴다." "그것도 좋은 론문이라 생각되는 데요." "저... 여기서 담배 피워도 괜찮을가요?" "괜찮을거애요. 로비인데요 뭘" "자 그럼 담배 피십쇼." "운남담배네요. 좋은건데... 하지만 전 이런 시골 골연쪽으로 핍니다." "표요? 하, 민족문제를 관심하는 선생이 다르긴 다르네요. 담배도 지방산을 선호합니다그려." "네. 그것 보담은 관내담배는 슴슴해 놔서." "진짜 담배군이시네요" "떼볼려구 여러번 애써봤는데 뜻대로 안되네요" "그럼 저도 한대 빌려 봅시다." "담배맛이 괜찮을겁니다. 그래도 골연맛은 독초쪽으로 피워야" "쿨룩쿨룩... 어허, 것 참 매운데요" "하하 그멋에 피 는것 아니 겠습니까?" "이곳서 담배 하나만은 잘 만든다니깐요." "담배뿐 아니죠. 술도 잘 만들죠" "맞습니다. 술이 참 유해요. 이곳 술이" "담배와 술공장이 이곳 기둥 산업이 아닙니까" "헌데 고작 기둥산업이라는것이 먹고 피우는걸 만드는 것뿐이니" "하, 글쎄 그리고 또 한다는건 유흥업소 뿐이지요" "형세가 준엄해도 술담배에만 빠져 락천가만 불러대니 문제네요. 이것도" "참, 쎄미나에 참가해서 생각되는바가 많슴다." "선생님은 조사도 까근히 하셨더군요." "네 그 조사표에 집계된 수자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만요" "확실히 문제입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보세요. 요 몇년사이 통계만 봐도 우리 자치주에서 조선족 유치원은 48프로 줄고 완전 소학교수는 29프로 줄고 조선족 재학생수는 42프로나 줄어 들었습니다. 지난 한해에 만도 전국적으로 조선족 학생수가 4만명, 학교가 221개소가 줄었답니다. 이제 이대로 몇해만 지나면 현유의 121개의 조선족학교의 평군학생인수는 30명가량밖에 안된다 그래요. 참으로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려되는 수자지요. 정말 다리에서 힘이 빠질때가 많습니다. 그뿐입니까 한족학교로 전학하는 애들이 날마다 불고 있지요. 이 일던때 그영향으로 한족학교 가는애들이 많다가 그 후엔 즘즘해 졌는데 근년에 들어서는 그때보다 엄청 많아 졌습니다. 자치주 수부에서만도 우리 말 버리고 한족학교에 다니는 조선족학생수가 2000명을 넘긴다고 그래요. 산재지역도 아니고 국내유일의 조선족자치주에서도 상당한 수의 사람들가운데서 조선어경시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실로 중시를 일으키지 않을수 없다고 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 언어를 경시하니 학교들이 문을 닫을수 밖에 없지않습니까?” "네. 하, 글쎄 저희 모교도 반년전에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자그만 운동장 둘레에 백양이 우거지고 하얀 곱돌(滑石)이 박힌 화단에 백일홍이 곱게 피던 정말 정이 붙는 학교였었는데" "그 시골마다의 아담한 학교들이 이젠 옛말로 사라지네요." "어느 일요일엔가 휴식삼아 자전거타고 찾아가 보니 하, 글쎄 이런 변이라구야. 학교가, 제 모교가 고기 개 사양기지로 변해 버렸더군요. 내가 동년을 보낸 곳이 그렇게 허무하게 변한 꼴을 보니 기분이 참, 뭐라 형언하기 어렵더군요." "학부형들 마다 출국바람에 들떠있고 개인 안일만 생각해 아이 하나만 낳으려 하니 우리 인구가 줄고 따라서 학생인구도 고갈 되고 있지요." "운동대회를 열거나 원족 가보면 알리지요. 일전엔 량부모 모두 등장해서 야단법석이더니 이제 나타나는건 하, 글쎄 쪼그랑 할배 할머니들 밖에 없데요." "많은 부모들은 부모처자를 위하여 자기 한몸을 혹사하는 것으로 가정의 행복을 바꾸어 오지요. 허나 유감스런 것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이러한 리산의 삶 때문에 가정파괴, 자녀포기와 같은 가슴아픈 후과도 낳고 있다 그것입니다." "네. 그 무책임한 부모들이 버리는건 단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며 인륜의 가치며를 다 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기에 출국자녀들 문제가 엄중합니다. 출국가족자녀들이 성적이 보편적으로 내려가고 도덕품성이 하강된 것은 어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지요. 부모들은 해외 나가있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자책감을 돈이나 열심히 부쳐 보내는것으로 미봉하려 하지요. 그런데 애들은 애대로 부모고생을 모릅니다. 꿀먹은 뒤 사탕을 먹으니 달지 않은 것처럼 그 행복이 어떻게 오는 건지를 모르는거지요. 그리고 부모가 없는 실락감을 느끼는 애들이 바라는건 단지 돈 뿐이 아니지요. 부모사랑이 결핍된 아이들은 외곬으로 나가기 십상입니다. 부모가 보낸 돈 겁 없이 쓰면서 유희청 아니면 pc방 출입에 나 넋을 잃고 다니지요. 매일 한번씩 다른 골칫거리문제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전번에 어느 학교 애들은 pc방에서 채팅한 돈을 물수 없게 되자 하, 글쎄 돈많은 집 애를 갇우어 놓고 그 집에 돈 내라 인질극까지 벌렸더군요. 그래서 교화소 까지 들어 갔다면서요. 나원 참" "우리 학교 애들입니다. 부끄런 실토정이지만" "거 담배 한번 더 빌립시다. 요" "허허 독해서 피워 내기 어렵다면서요?" "네 웬지 독초생각이 금방 나네요" "저도 형님이 로무를 가고 조카놈 한놈을 대신 맡고 있는데... 사실 말이지 그 놈 다루기가 제 새끼 보다도 어렵습니다. 소경 밥 먹이듯 이건 국이다 이건 나물이다 처처에서 아껴줘도 잘 안되네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매일이고 댄스춤 에만 미쳐 다녀요. 약되라고 말 좀 할라치면 부모없는 자기를 괄시한다고 서러워하고. 참, 속수무책입니다." "하, 글쎄 교육자라 일컫는 우리들이 이러하니 다른 집들이야 여북하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이번 연구 쎄미나는 참으로 잘 열린 회의라고 봅니다." "네 참으로 오랜만이죠 이런 쎄미나" "이런 쎄미나는 하루 이틀에 그치지 말고 한 일주일쯤 시간을 푼푼히 잡고서 해결책을 쭈욱- 연구해봐야 하는건데" "이렇게 큰 규모로 조직할려니 주최측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래일엔 머리도 쉬울겸 야외 답사도 조직한다 던데요" "네 명동으로 간다고 일정표에 씌여 있더군요." "좋습니다. 윤동주의 고향. 몇번 가봐도 감회가 그냥 새롭네요. 선생님도 가봤겠지요 물론" "네. 반급 주제모임을 가지면서 학생들 데리고 갔더랬습니다." "시인도 시인이지만 그곳에 가면 요즘엔 또 새로운 감수가 들고 그래요. 그 명동학교의 연혁사를 보면서 말이애요" "규암 김약연 선생이 거의 백년전에 세운 서숙이였지요" "네 맞슴다." "경신년 대토벌때 일본놈들이 불 질러 페허로 만든것을 사생의 힘으로 다시 복구 했다잖아요." "당시 그런 상황에서도 학교에서는 천여명의 애국청년들을 배양해 냈지요" "부끄럽습니다. 선인들에 비하면." "그렇게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식을줄 몰랐던 교육열이, 소 팔아 자식 공부시키는 미풍으로 알려 졌던 우리 민족의 교육열이 왜 이런 쇠퇴일로를 걷게 되였는지??" "명색이 교육자들이라 맡은 소임은 해야겠는데... 요즘 상황으로 보면 이거 하늘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아니라 만점 부끄런 일이 아니겠습니까?" "자 이제 그만 들어가지요. 선생님의 론문차례도 다 되여 오는것 같은데" "론문도 론문이거니와 어떤 실제적인 해결책이 중요합니다. 명확히 못을 쳐야지요." "그럼요!" "후일 다시 만나서 속타는 얘기 나눠 봅시다." "네. 오늘 얘기 좋았습니다. 담배도 잘 피웠구요." "속이 타 들어가는데 그놈 담배라도 피워야 죠"              사우나 안마실-     방송국 스튜디오- 아나운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주말마다 여러분과 만나는 프로 시간입니다.         오늘은 민족문제연구실에서 우리 중국조선족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연구에 주력하고 계시는 박사님 한분을 모시고 라는 테마를 가지고 대담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열선 전화가 열려 있으니 시청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을 바랍니다.        자 그럼 박사님을 이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사님! 박사: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아나운서: 지난 한 세기는 중국조선족에게 있어서 실로 자랑찬 한세기, 빛나는 한세기 였습니다. 하다면 세기교차의 시점에서 새롭게 다가온 한세기 21세기에 우리 민족은 세인앞에 어떤 양상을 펼쳐 보일것인가? 이는 당면 우리 조선족사회의 커다란 관심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많은 우리의 지성인들이 이 문제를 에워싸고 폭넓은 사색과 깊이 있는 연구를 해왔습니다. 실제적인 연구를 해오신 박사님께서도 이면에서 내놓을 고안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면 우선 우리 조선족 군체의 형성과정으로부터 이야기해 주십시요. 박사: 네. 우리 조선족 사회에 대한 평가와 그 향후의 진로에 대해 우리 민족이고 보면 저저마다 심려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은 이민, 정착, 형성, 발전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장 100여년의 시간을 경유하게 되였습니다. 이 과정은 우리에게 있어서 엄청난 시련의 극복과정 이였습니다. 이주현장에서 우리는 청나라 봉건통치계급, 군벌정권, 일본제국주의의 착취와 유린을 겪으면서 피눈물나는 노력으로 황무지를 개간하고 목숨을 바쳐 반일, 반봉건투쟁에 가입하였고 때문에 중국의 성립과 더불어 중국 민족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였습니다. 또한 해방후 50년 력사를 통해 우리 민족은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하였지요. 이는 사실이 증명해 주고 있는 거지요.  아나운서: 허나 개혁개방정책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진부했던 관념을 타파함과 아울러 우리 중국선족사회는 미증유의 충격을 받게 되였습니다. 그런 변혁의 와중에 불협화음(不協和音)도 뚜렷이 들리게 되는군요. 박사: 네.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발달국가들이 일전에 겪어온 보편적인 과정을 우리는 지금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산업화 초기에 처해 있습니다. 아직은 발전도상의 나라이므로 가난에서 벗어나려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거죠. 따라서 이 와중에 파생되는 부면현상도 크게 눈에 안겨 오는 겁니다. 도시화의 물결, 출국바람에 의해 농촌을 중심으로 하던 우리 조선족공동체는 급속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10여년전 부터 우리의 농촌인구는 해마다 5프로의 속도로 감소되여 왔는바 동북에서 이미 20여만명이 산해관이남의 도시로 나가 버렸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녀성들이 도시로 나가고  섭외혼인으로 외국에 나가는 류실때문에 총각들이 결혼할수 없는 악상황이 초래 되여 결과 농촌의 인구가 줄어들고 따라서 경작지가 묵어나고 학교가 페교되고 있습니다. 보다싶이 우리는 지금  제2차 실향의 시대라는 무거운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제1차 실향의 시대는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에 있었지요. 그때는 일제의 등살에 견디지 못하여 살길을 찾아 고향을 등지고 이국 타향까지 왔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2세, 3세가 겪는 실향에는 어떤 합리적인 해석을 붙일수 있을가요? 어느 한 학자는 고향을 떠나는데서 현대문명이 시작된다는 주장을 펼친적 있습니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볼 때 이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대문명의 부름에 응하여 고향을 탈출한 것이 한 집단의 문화조락을 초래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민족교육상황의 삭막함이 그 조락을 보여주는 실증입니다. 교육의 실종은 종당에 문화의 소실로 이어지는것입니다. 조그마한 빌미만 있어도 사람들은 도회로, 국외로 머리를 두고 고향을 떠납니다. 이로써 밀항, 위장결혼 같은 불장난이 례상사로 일어나는거죠. 동양전통문화에 물젖어 온 우리들은 고향의식이 굳어질대로 굳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서 고향을 떠나는것처럼 슬픈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정든 땅과 함께 정든 목소리, 정든 웃음들을 잃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정을 인생의 전부처럼 믿고 살아온 소박한 우리들에겐 땅을 떠난다는 것은 인생자체를 잃어버린다는것과 다름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의 로무진출상황을 꼼꼼히 검토해 보면 어딘가 편향이 있음을 보아낼수 있어요. 그 대표적인 실례가 바로 한국 인력시장 진출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다보니 국내진출에 대한 주의력이 부족하였다는 점입니다. 사실 세계서 가장 큰 로무시장은 바로 중국에 있는것입니다. 건축공사장에서 일하는 건축공과 실내 장식공, 식당과 대형슈퍼, 백화점, 3자기업의 종업원, 가정부... 돈벌이 업종이 맣고도 맣지요. 통계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이미 2억이 이러한 제2, 제3산업에로 이전하였는데 장차 1억 8000만이 계속 이런 이전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실로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지요.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듯 엄청난 신변의 로무시장은 외면하고 어렵고 모험이 뒤따르는 한국나들이에만 열성을 올려왔을가요? 우리의 의식에서 그 뿌리를 찾아보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적은 돈이라도 꾸준히 벌어보려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대신 쉽게 단숨에 떼돈만 벌어보려는 허황하고 팽창된 욕망을 랭철하게 반성해보아야 할것입니다. 국내 로무시장으로 진출하는데는 사증발급 등 까다로운 수속도 필요없고 큰 투자도 필요없으며 또 큰 모험도 없습니다. 여기서 수요되는 것은 오직 하나 즉 능력입니다. 상당수의 조선족  로력들은 한국로무길이 막히거나 연해도시의 한국인 회사만 떠나면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합니다. 바로 능력문제입니다. 언어와 식견과 표달능력이 안되고 일을 해제끼는 능력이 안되고 이를 악물고 고생하는 정신이 안되지요. 그들의 우세란 고작 한국어뿐이니 계속 한국로무나 한국기업이라는 테두리속에서 맴돌기 마련이지요. 오늘의 로무시장은 경쟁이 날로 가심화되고 있습니다. 뚝힘만 파는 단순한 렴가 로동력은 필연코 경쟁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선 자신의 의식과 사고방식을 점검해 보면고 자신의 자질을 한층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 너넓은 국내국외의 로무시장에서 더 넓은 출로를 개척해 나갈수 있을 것입니다. 아나운서: 이 몇년간 줄곧 열점화제를 빚고 있는 출국붐에 대해서 박사님은 어떻게 보시는 지요? 박사: 랭전시대의 종식(終熄)과 더불어 주변나라들과의 관계의 개선으로 우리는 전보다 국외에 갈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되였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다 싶이 우리는 아직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행정에 있습니다. 가난하기에 부에 대한 애착이 더 깊습니다. 이는 리해할만한 일입니다. 본토에서의 수입의 몇배, 재간없이도 품팔이로 얼마든지 돈을 벌수 있다는 그 에 부자의 꿈이 현실로 될 가능성이 주어졌습니다. 그러자 모두 그 유혹의 블랙홀(黑洞에) 빠져 든 것입니다. 출국을 위해 계산도 없이 3푼, 5푼 리자를 맡아 가지고 나섭니다. 그렇게 나섰다가 한국사기군의 가짜 려권에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일엽편주에 운명을 걸고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들통이 나 가 되기도 합니다.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겁니다. 이러한 오도된 출국열조가 전염병처럼 우리 민족사회에 만연되여 질서가 파괴되고 온갖 비리가 생출되고 있습니다. 60년대, 70년대에 한국 사람들에게도 우리와 꼭같은 환상이 있었습니다. 이였지요. 끝없이 미국행을 꿈꾸었던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먹는 것만이라도 해결하기 위해 농촌에서는 도시로 모여들었고 외국으로 나갔습니다. 이제 국민소득 1만딸라를 이루어 을 창조해 온 오늘날 한국인들은 이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국사람들이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60년대 경제화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어제가 보여주다 싶이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는 왜 돈을 벌며 누구를 위해 돈을 버는가의 문제입니다. 물질적인 부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가족과 가정의 희생 위에서라면 과연 코리안 드림은 의미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아나운서: 잠간만요. 박사님! 여기 시청자로부터 열선전화 한통이 걸려 왔습니다. 받아 보시죠. 시청자: 박사님임둥? 수고하꾸마.         난 농촌에서 소궁둥이나 두드리던 순 농사꾼이꾸마. 이태전에 남들이 하는대루 나두 어선 타고 돈 좀 벌어 볼까해서 로무수속 넣었다가 가짜 송출회사한테 사기 당했으꾸마. 5만소시나 당했단 말임당.         그게 다 5푼 변리로 맡은건데... 지금 정말 물 방법이 없으꾸마. 빚군은 맬 죽인다 살린다지 한국은 나갈 뱅법이 없지... 정말 살 생각이 없슴다.         우린 어쩌문 좋슴둥? 예?? 아나운서: 네. 또 한번 듣게 되는 딱한 사연이구만요.      박사: 모두가 아시다싶이 근년래 대량의 중국조선족공민들이 몰지각한 한국인들에게 거액을 사기 당했습니다.      이 침통한 교훈은 가치판단의 혼돈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첫단추를 잘못 끼운거와 같지요. 그러니 따라서 문제가 속출하는 겁니다.     이를 우리는 금전만능, 극단적 리기주의 풍조의 필연적인 결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국외에서 로동력이 부족해 외국인력이 수요되는 이상, 인력송출이 우리 조선족의 일대 산업으로 자리를 굳힌 이상, 외국과 우리사이에 엄청난 소득격차가 유지되는 이상 그 유혹은 계속 될 것 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큰 희망사항이라면 정부가 나서서 더 성숙된 정책화 , 제도화로 로무송출문제를 완전히 오픈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초미(焦眉)의 문제는 돈에 대한 집착에 따르는 정신적 피해를 줄이고 나중에는 정신적 가난뱅이로 전락하는 비극을 두절하자는 것입니다. 이에 뒤따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자아확립과 주체성확립이지요. 주지하다싶이 우리 민족은 강을 건너 온 천입민족 입니다. 하기에 보따리족의 의민의식은 소실되지 않고 있습니다. 민족정책의 혜택으로 주인대접을 받으면서도 심저(心底)에는 과객심리가 무시로 작용하군 하는 것입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오고 날아가고 하는 하루살이 심리가 말이죠. 이러한 이민의식은 중국조선족 사회가 정치 경제 문화 제 분야에서 새롭게 발전하는데 큰 장애 인소로 되고 있습니다. 이민의식과 정착의식의 이중성에서 우왕좌왕하고 잇는 오늘의 우리 민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망향가만 부르고 있겠습니까? 언제까지 한국품팔이에 명줄을 달고 있겠습니까? 출국꿈의 부작용은 자기꿈을 잃는다는 데서 깊이 찾을수 있는 것입니다. 남에게 운명을 기탁한다는것은 바로 자기를 잃는다는 것입니다. 아나운서: 그러면 우리는 어떤 자신의 이미지를 창출해 내야 할가요? 박사: 네 좋은 물음입니다.       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좌표를 설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어 하는 말이지요. 우리의 삶의 터전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근대사 이후를 봐도 농장지 개척, 항일투쟁, 해방투쟁,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을 거쳐 우리는 자기의 눈물겨운 희생과 노력으로 자신의 지위를 인정받고 민족자치구역을 만들고 민족공동체를 영위하여 왔습니다. 이를 쉽게 버린다는 것은 제 눈을 제 손가락으로 찌르는 것이라 말할수 있지요. 우리는 어디까지 왔으며 어데로 가야하는가? 자아확인과 주체성확립의 재정립이 필요한 오늘입니다. 이러한 재 확립으로 새로운 차원에로 자신을 이끌어야 합니다. 미국 이 예측 보도한데 의하면 이제 10여년후면 중국의 국민총생산액은 한국이나 일본을 초월하고 미국을 따라 갈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단지 너무나 락관적인 예측만이 아닙니다. 지금의 템포로도 알수 있다싶이 이제 얼마 안 되여 중국의 경제는 일취월장할 것입니다. 그때의 우리가 살고 있을 이 땅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요. 우리 주변이 점차 고소득으로 발전해 외국품팔이가 격에 맞지 않을때 그제야 이곳에 돌아와 뭔가 이룩할려 든다면 남의 꽁무늬를 따르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겁니다. 이제 10년 20년후의 밝은 전망, 이 앞날을 위해서도 우리는 지금을 허타이 버릴수 없는 것입니다. 뜀틀을 넘기 위해 준비하는 선수 같은 벼린 자세가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입니다. 아나운서: 네. 지금까지 우리는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우리 조선족문제 연구에 주력하고 게시는 박사님을 모시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확립과 향후 나아갈 길에 대한 진지한 담론을 나누어 봤습니다. 박사님이 피력하시다 싶이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확인하고 우리 민족의 총명과 슬기를 되살리며 목전의 진통을 이겨내고 세인 앞에 뿌듯이 나설 그날의 밝은 조선족의 군체형상을 기대해 보면서 오늘 프로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좋은 말씀 주신 박사님 감사합니다.                강 가 -   ×  ×  ×  ×  ×  ×  ×  ×  ×  ×  ×  ×  ×  ×  ×  × 우문: 우리는 누구입니까? 현답: 구름이 너더냐? 산이 너더냐? 빗줄기가 너더냐? 그것들이 너더냐? 우문: 우리는 누구입니까? 현답: 나는 누구더냐? 내 안에 있는 너가 나더냐? 이 소리를 듣는 너가 나더냐? 우문: 우리는 누구입니까? 현답: 계속 정진해라. 갈 길이 멀고나 ... ... ...  ♡    "장백산" 1998년 5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6    환형산(環形山)에 내리는 비 댓글:  조회:2474  추천:10  2014-08-17
  . 중편소설 . 환형산(環形山)에 내리는 비                       김 혁        옥탑방(閣樓)에서는 아파트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높은 곳에서 보이는 인간들은 모두 바닥에 납작하게 눌려서, 마치 게처럼 땅 우를 기여 다니고 있다.   광장의 모습은 컴퓨터를 뜯어보면 뒷면에 부착 된 전자기판의 회로처럼 오밀조밀하다.   그다지 크지 않은 공터는 블록타일로 깔려 있고 변두리 네 귀에 나트륨 등이 초병처럼 서있다.   광장 가녁에 벤치가 놓여 있고 그 뒤에 단을 지어 만든 화단에는 그냥 탈없이 자라는 코스모스 다리아 따위를 심었다. 때로 바람이 바뀌면 환기용 창으로 아릿한 꽃 냄새가 흘러든다.        한쪽 구석의 놀이터에는 철봉대 몇 개가 부설 되여 있고 그네도 매여 있다.   옥탑방은 흡사 대극장의 2층에 설치된 호화좌석과도 같다. 좋은 가시도(可視度)의 위치에서 아파트광장의 구석구석을 부감(俯瞰)할 수 있는 것이다.                                            커트  (鏡 頭): 1   소년은 초롱 속의 한 마리 부리 붉은 새처럼 옥탑방에만 붙박여 있다.   아니, 갇혀있다.   기다리던 여름방학 이였지만 소년은 들큼한 환상으로 기다렸던 방학을 나름대로 지내지 못하고 있다. 죄다 이모 때문이다. 소년의 학습성적이 추락하는 승강기 꼴이니 이 방학엔 옴쭉 말고 죽쳐 앉아 성적제고에 전념하란다. 그러니 실제 소년은 본의 아니게 감금 된 셈이다. 옥탑방에서 텔레비전은 아예 볼 수 없고  컴퓨터를 놀려해도 이모가 굳이 우체국으로 찾아가 인터넷접속을 끊어 버렸다. 친 엄마는 출국해 버리고 이모에게 얹혀 사는 신세니 소년은 응석 같은 것은 물론 거부 같은 것은 더구나 몰랐다. 감금이 싫어진 소년이 하는 짓거리란, 옥탑방의 창으로 아파트 광장을 내려다보는 일이다.   그러다 어느 날엔 가부터 갑작스레 소년은 옥탑방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옥사(獄舍)같아 뵈던 옥탑방이 사물사물 좋아진 것은 소년이 이불장 위에서 소학시절 심취 되였던 그것을 뒤져 낸 다음부터였다.   그것은 천문망원경 이였다. 《매 눈(鷹眼)》이라는 상표딱지가 붙여진 천문망원경. 배률이 아주 높아 별자리들을 확인해  볼 수 있고 달 표면에 웅기중기 솟은 환형 산까지도 볼 수 있는 망원경이다. 소학시절 소년은 학교 천문애호가서클의 책임 이였고  천문망원경의 사용권과 보관은 소년에게 주어 졌었다. 그러다 소년이 다니던 조선족 소학교는 어느 날엔 가 번개라도 맞은 듯이 갑작스레 폐교 되였고 그 아수라장에서 누가 천문망원경에 대해 구태여 따져 묻지도 않았기에 망원경은 소년에게 문을 닫은 모교에 대한 아픈 기억과 함께 남아 있게 되였다.   ... 달에는 지구와 달리 대기가 없다. 공기 층이 없기 때문에 우주에서 떠돌던 암석이나 먼지들이 떨어지게 되면 막을 수가 없다. 그래서 크고 작은 분화구들이 많이 생기며 환형 산(環形山)이 형성되게 된다. 달에서 매우 흔한 지형은 환형 산일 것이다. 달은 아주 오래 전에 류성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는데 류성이 달 속으로 파고들면서 표면을 파헤치고 구덩이를 만들어내었다. 실제로 반반한 모래에 돌멩이를 세게 던지면 이와 비슷한 구덩이가 만들어지는 원리와 같다. 이렇게 생성된 분화구들은 평평한 바닥과 뾰족하고 둥근 테두리를 갖고 있으며 중앙에 봉우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달 표면에는 우리가 살고있는 도시가 수십 개나 들어갈 수 있는 크기(60-300km)의 분화구들이 234개나 있다고 한다...   맨 처음 망원경으로 무대 배경처럼 코앞에 다가온 환형 산을 보면서 가슴 벌렁 이였던 그 날의 감수를 소년은 내내 잊지 못해 한다. 그날의 격정은 그의 동년의 메모장에 커다란 획을 그으며 남아 있다. 그후로 천문서클에 누구보다 열성을 보였고 하면서 알둥말둥한 천문상식을 죽어라 외우기도 했다.   허나 요즘 들어 소년은 천문망원경으로 달을 보지 않는다.   하늘을 보지 않는다.   천문망원경으로 소년은 ...   사람을 본다.   《매 눈》표 천문망원경으로 보면 멀리 산의 꼭뒤, 건물들의 이마, 안테나들의 촉수들이 손에 잡힐 듯이 잡혀 온다. 그러니 가까이 광장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물론 더 극명하게 보인다.   광장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은 몇 명 안 된다. 일요일마다 광장에서 롱구를 치고있는 23번 유니폼(先手服)을 입은 자기또래의 사내애며, 저녁 무렵이면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눈을 내리깐 채 발을 간댕이는 소녀며...   그리고... 아파트 광장 건너 4동6층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샅샅이 드러난다. 매 호의 창문마다는 하나의 텔레비전 형광 막으로 되여 자신들의 모습을 리허설(試演)을 앞둔 극단 마냥 소년 앞에 펼쳐 보인다.    4동1단원6층에는 지지리 늙은 할망구가 살고 있다.   몸이 불편 한 할망구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낯빛이 노란 할머니는 베란다에 앉아 매일이고 그렇게 하염없이 밖을 내다본다. 그런 할머니의 품에는 늘 고양이가 안겨져 있다. 포만감 서린 고양이의 얼굴과 주름이 자글자글 한 무표정한 할머니의 얼굴이 사뭇 대조적이다.    4동2단원6층에서는 매일이고 마작 판이 벌어진다.   술 먹은 터에 얼굴이 잘 구운 찐빵처럼 불그레해진, 만족스런 표정의 나그네들이 저 저마다 담배 대를 입 귀에 지긋이 물고 피여 오르는 연기에 실눈을 좁힌 채 부지런히 마작 쪽을 쌓고 헤치고 섞는다.   4동3단원6층에는 렵기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어떤 녀자가 홀로 살고 있다.   소년에게 망원경으로 천체가 아닌 사람을 보려는 념두가 생긴 것은 모두다 이 녀자 때문이다.   달빛이 은으로 칠한 풍경을 토하던 어느 밤이였다.   그날 밤, 아래층에서 울리는 드라마의 주제곡 소리를 듣다말고 소년은 망원경으로 화단의 꽃을 보고 있었다. 광장에 불 밝혀 진 나트륨 등의 빛을 받아 꽃은 부옇게 빛나고 있다. 지나치게 클로즈업(特習) 된 꽃의 색조에 잠시 어지럼을 느껴 렌즈를 돌리던 소년의 렌즈 속에 풍경 하나가 잡혀 들었다. 자석에 끌리는 쇠 가루 마냥 소년은 렌즈를 그쪽에 맞췄다. 망원경의 조리개를 돌리자 4동3단원6층의 광경이 무대처럼 드러났다.   녀자는 금방 머리를 감고 나서 드라이어(吹風器)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훈풍에 날리듯 머리카락이 표표히 날리고 있었다. 간편한 속옷차림 이여서 많이 드러난 피부들이 환장하게 눈에 시였다.   드라이어를 흔들 때마다 녀자의 위태롭게 엷은 속옷을 들추고 솟은 지극히 풍만한 가슴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소년의 입에서 단내가 났고 눈앞에 엄청 밝은 전구가 켜진 듯하다. 가슴이 부서질 듯 쿵쾅거린다. 푸른 목초지 에서 양이 뛰노는 듯한 심장의 박동을 스스로도 들을 수 있었다.   녀자가  드라이어를 내려놓았다. 낚아채듯 속옷을 뒤집어 벗는다. 물 속에 거꾸로 처박히듯 소년은 흡- 하고 숨을 들이켠다. 녀자가 백양의 가지처럼 두 팔을 우로 한껏 뻗으며 겨드랑이의 치모가 보이게 기지개를 켠다. 하품을 하고 나서 녀자가 벗은 몸으로 창가로 다가온다. 소년은 덴겁해 창가에서 몸을 사렸다. 가슴은 상사 말을 품은 높이 뛴다. 소년은 네발  짐승처럼 헐레벌레 기여 가 침대 전에 놓여진 탁상 등의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불을 꺼버렸다.   이윽고 소년은 용기를 내여 다시 창으로 머리를 반쯤 내밀었다. 3단원6층을 내다보았다. 창에 두터운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 소년은 벽에 등을 댄 채 스르르 미끄러져 내렸다. 소년의 몸은 간단없이 떨리고 있었다.     의구심에 사로잡혀 황황한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문손잡이를 트는 소리가 들린다. 소년은 덴겁해 하며 망원경을 침대우의 이불 밑에 밀어 넣었다. 이모는 시시 때때 그의 방에 뛰여들곤 한다. 뛰여들어서는 소년이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지 공부에 몰두하는지를 확인하군 했다. 마치 나치스 집중 영의 살벌한 순경처럼. 이모의 눈이 무서워 소년은 천문망원경의 삼각 틀도 세우지 못한 채 그저 렌즈의 경통(經筒)만 창턱에 얹어 놓고 밖을 보군 했다.   문이 벌컥 열리며 이모가 들어섰다. 딸깍 불이 들어 왔다. 그런데... 들어 선 사람은 이모가 아니였다. 이모가 칠삭둥이로 낳았다는 철없는 아들녀석도 아니였다. 들어 선 사람은 뜻밖에도 4동3단원6층의 그 녀자였다.   《잘, 잘못했어요》   《나 처음이 애요. 오늘 딱 한 번이 애요》   《제발, 제발 우리 이모에게 이르지 말아 주세요》    죄의식에 쫓겨  더듬이며 소년은 자기의 행위를 반성했다. 녀자가 소년을 향해 다가 왔다. 소년은 죽치고 앉은 채로 뒤로 비실비실 물러섰다.   그런데 녀자의 얼굴에는 그다지 격노하는 기색이 없었다. 녀자가 불현듯 블라우스를 낚아채듯 벗어 버렸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가슴이 출렁 튕겨나왔다.   그 가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소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괜찮아. 만져 봐》   녀자가 떨리고 있는 소년의 손을 가슴에 얹어 주었다. 보드라운 살갗의 감촉이 느껴지자 소년은 불에 닿은 듯 손을 옴츠렸다. 붉은 입술 속 하얀 옥치를 보이며 녀자가 웃었다. 이번에 소년의 머리를 거대한 가슴사이에 감싸안았다. 지극히 포근했다. 그리고 지극히 숨이 막혔다.    그냥 내리누르는 묵직한 중압감에 몸부림치다 소년이 깨여 나 보니 외사촌동생이 베개로 자기의 얼굴을 짓누르고 있었다.   《일어나! 몇 신데 아직도 꿈 밭이냐.》   일어나 밥 먹으라고 녀석이 쥐여 당겼지만 소년은 한사코 이불을 잔뜩 껴안으며 몸을 옹송그렸다. 잔뜩 부풀려져 있는 자기의 신심을  녀석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기 위해 서였다. 미몽을 깨뜨린 덤벙이녀석이 잡아죽이도록 미워졌다.   그날 이후로 소년은 다시 열성스런 천문서클의 그때로 돌아간 듯 했다. 초조히 밤을 기다렸고 어둠이 내리기 바쁘게 천문망원경을 집어들었다.   망원경으로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기 시작했다.                           커트 (鏡 頭): 2   소년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두 사람이다.   하나는 4동의 4층엔 가에 살고 있는 나그네이다.   할리우드 영화중의 변태 광처럼 생긴 온몸이 깡마른 나그네.   어느 밤, 맞은 켠 아파트의 창을 향해 망원경의 조리개를 신나게 돌리 던 소년의 눈에 뜻밖의 광경이 잡혀 들었다. 4동 4층인가의 방에서 펼쳐지고 있는 즉물적인 광경이 본의 아니게 잡혀 들었다. 그 할리우드 영화중의 변태 광처럼 생긴 온몸이 깡마른 나그네가 텔레비전에 충혈 된 눈을 박은 채 팬티를 까고 막 물 오른 가지처럼 부풀어 오른 그것을 열심히 주물러대는 광경이다. 나그네가 뚫어져라 눈 박고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금발머리에 가슴이 거대한 녀자가 그를 향해 자기의 치부를 벌려 보이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함께 살고있는 이모이다. 두 사람 다 판에 박은 듯 한 일면이 있다. 항용 풀 먹인 옷 같은 엄숙성으로 굳어있는 얼굴이 싫었고 미이라를 방불케 하는, 몸 안의 물기를 몽땅 쏟아낸 듯  비쩍 마른 몸매가 싫었고 음절과 음절사이의 곡선을 무시해 버리고 그저 직선으로 솟구치기만 하는 목소리가 싫었다.   그보다도 이모의 자기와 외사촌동생의 일거수 일투족을 촘촘히 규제하는 강요가 싫었다. 조그만 일이 있어도, 례하면 반 급의 녀학생들에게서 전화가 오거나 남녀의 키스장면이 나오는 조금 그런 비디오를 보거나... 하는 날이면 하늘이 두 쪽 날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직살 나게  야단치 군 한다.   《부모들은 지들을 위해 타향서 쌍 코피 터지도록 일하는데》   이는 말 사이에 양념처럼 튀여나오는 이모의 관용구(慣用句)다.   영악한 후각으로 우리가 담배를 피워 낸 냄새나 알콜이 조금 섞여있는 음료를 마신 냄새를 맡아내곤 한다. 그러면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지도자동지들처럼 더  쓰잘데없고 긴긴 일장 훈화가 시작된다. 그것이 인생설교를 빗댄 어른들의 자기 발설임을 소년은 안다. 컴퓨터를 할라치면 시시각각 그들 쪽을 흘깃거리다 모니터 앞에 머리를 불쑥 들이밀기도 한다 들기도 한다. 소년이 그런 사이트에 들지 않나 해서. 기실 외사촌끼리 그런 그림들을 다운로드(下載)하여 D판에 감추고 시시때때 들여다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컴퓨터 접속을 하지 않았는데도 오래 하면 바이러스 옮는다! 꺼라! 고 어처구니를 벌리기도 한다.   부엌에서 이불거죽을 삶으며 늙어 온 세대지만 그 앞에서 컴세대인 소년과 외사촌동생은 용빼는 수가 없다. 고집도 어찌나 센지 그가 지구가 네모다 면 옛! 맞슴다! 하고 답해야 한다. 소년뿐 아니라 외사촌동생도 지어미에게서 심연처럼 가로놓인 불투명한 기류를 느낀다. 어른들의 관심이 간섭으로 여겨지는 사춘기이다.     이모는 시가지의 중점학교에서 한어교원 노릇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만둔 게 아니고 밀려났다. 년령도 년령이려니와 요즘 들어 엄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강위(崗位) 시험에서 합격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콤플렉스가 있어서인지 이모의 성깔은 나날이 가시를 닮아 가는 모양이다. 교원자리에서 밀려나 이모는 학교 문방구에서 일했다. 그러다 남세스럽다고 나와 지금은 전화박스 하나를 세 맡고 수금원 노릇을 한다.   이모가 나온 지 얼마 안 되여 조선족 학교들에서 이중언어 교학을 실시하면서 한족교원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많은 조선족교원들이 자리에서 밀려났다. 그제야 이모의 콤플렉스는 조금 풀린 듯 했다. 학교에서 밀려 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이런 시국을 미리 보아내고 원견성이 있어 학교에서 나온 것처럼 이모는 남들과 말하곤 했다. 그런 이모의 얼굴에 평소에 보기 힘든 웃음 살이 어리광치는 것을 소년은 놀랍게 본적 있다. 또한 전화박스에서의 수입도 짭짤한 모양.   외사촌동생은 칠삭둥이여서 육아상자에 몇 달 있다 세상에 나온 녀석이다. 그래서인지 녀석이 하는 행위는 언제 봐도 유치의 최고봉이다. 매운 구석이라곤 어디에도 없는 녀석은 매일 평균 세 번씩 지 엄마의 욕을 먹어야 자기의 인생을 진행해 나갈 수 있다. 조카인 소년과는 할 수 없으니 번마다 그가 어른들의 스트레스 해소의 제물(祭物)이 되는 지도 모른다.   그런 녀석이 하필이면 댄스에 맛을 들였다. 밥을 먹으면서 까지도 이어폰(耳機)을 끼고 발 많은 문어처럼 손발을 허우적이며  댄스음악을 듣는다. 그러다 지어미한테 철썩 소리가 나도록 뒤통수를 얻어맞기도 한다. 지랄도 자꾸 하면 요령이 생기는 법인지 녀석은 댄스를 제법 추었다. 고난도 동작을 하다 손목뼈를 상하는 일도 더러 있었지만. 이는 당연히 이모에게는 하늘이 세 쪽 날 일 이였다. 번마다 련습장을 찾아가 녀석을 연행해오곤 했다. 하고싶은 일을 못하게 하는 엄마에 대한 불만이 녀석의  배속에 오글오글 숨어 있다. 그래서인지 집에만 들어서면 녀석의 입 륜곽은 마냥  하현달처럼 아래로 쳐져 있다.   그 인상이 요즘 들어서는 더더욱 구겨져 아예 걸레로 되였다. 외사촌동생의 그 감정의 파장을 소년은 안다.   오토바이에 약수 병을 처매 달고 집집에 약수를 날라주던 나그네가 있다. 어쩌면 전문 흙 밭을 들추며 개미를 잡아먹는 식의 수(食蟻獸)같이 입이 앞으로 유난히 튀여나온 나그네다.   그런데 어쩌면 이모가 그 《식의 수》와 별로 좋아하는 눈치다.   어느 날인가 이모의 방에서 울려나오는 다른 음색과 가락으로 랑자한 코고는 소리를 듣고 소년도 외사촌동생도 잠에서 깨였고 그 이튿날부터 약수 나르는 나그네는 자연스레 그들의 아침상이나 저녁상에 합석하곤 했다.   밖에서 오토바이소리만 나도 외사촌동생은 안절부절을 못한다. 마치 올 곳에 온 듯이 태연하게 그들의 저녁상에 끼여들어 나그네가 개미처럼 이 반찬 저 반찬을 들추는 것을  원쑤처럼 지켜보다 외사촌은 문을 박차고 나가곤 했다.   《하필이면 광천수 나르는 나그네냐?? 명색이 교원이라는 엄마가》   한 살 어리지만 소년보다 머리 하나는 큰 녀석은 변성기에 접어든 컬컬한 고함 질로 소년에게 성토한다.   《그렇게 단칼에 베지 마라. 니 엄마도 고충이 있을 거다.》   형이랍시고 어르지만 소년이 보기에도 덜 좋은 풍경이다. 녀석의 아버지, 소년의 이모부는 인력송출대오에 끼여 리비아의 노가다판으로 나갔다. 이제 4년쯤 될 거다.   소년에게도 아버지라는 존재는 몽롱하다.   어릴 적 한 달에 한번 정도 아버지가 집에 찾아오곤 했는데 그때면 양고기 뀀을 먹는 날 이여서 소년은 좋았다. 그렇게 양고기 뀀과 같기 부호를 그었던 아버지는 언젠 가부터는 아예 나타나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때 겨우 식자 본을 떼고있던 소년을 동생에게 맡기고 한국으로 나갔다.   이제 어머니의 얼굴 역시 소년에게 몽롱해 진다.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소임을 하련 듯 한 달에 한번 꼴로 전화가 왔고 또 돈도 우송하곤 했다. 그날이면 이모네 온 집 식구가 또 나가서 뀀을 먹는 날이다. 한국 경주에서 일하고 있다는 엄마가 어느 한번  사진을 보내왔다. 요행 차려진 휴가 일에 유람을 나가 찍은 사진이란다. 그 이름난 전설의 에밀레종 앞에서 찍은 사진 이였다. 오랜만에 더듬어 보는 낯설은 엄마의 모습보다 엄마가 배경으로 한 그 종에 깃 든 옛말이  주는 흥미가 소년에게는 더 컸다. 그래서 종에 새겨 진 문양을 유심히 더듬어 보았던 소년이였다.   엄마는 소년에게 그저 한 컷의 사진으로만 남았고 전화 속의 목소리로만 남았다. 돈 많이 벌어 가지고 온 다지만  소년의 코밑이 가무스레해 지고 울대뼈가 복숭아씨 삼킨 듯 도드라진 나이가 되여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                       커트 (鏡 頭): 3      공격적으로 치켜 든 군더더기 없는 턱에 머리를 솔잎처럼 세운 그 애는 일요일마다 광장에 등장한다. 4동4단원인가에 살고있는 것 같다. 애는 23번 유니폼을 입고 있다. NBA를 주름잡는 롱구 거성 맥클, 쵸단의 번호이다.    《매 눈》표의 렌즈 속에 잡혀 든 롱구 공이 지구처럼 커다랗게 보인다. 말쑥한 새 공이다. 롱구 틀도 없는 광장에서 《23번》은 뛰고 솟고 구울 고 한다. 공 튀는 소리가 광장에 가득하다.   소년은 그 애를 안다. 소년과 한 학급에 있던 애. 학교 축구팀의 중앙공격수로 이름이 있는 애다. 마냥 짧게 치 깎고 다니는 머리 때문에 키가 한결 더 커 보이는 그 애의 별명은  《안정환》이다. 성이 안씨인데다 공 다루는 수준이 한국의 축구스타 안정환 이처럼 신기에 가깝기 때문. 그리고 그 애만 나서면 우리 팀은 안정환(安定丸)을 먹는다. 그 애는 학교축구팀의 령혼 인물이다. 소년의 학교축구팀이 전주의 학교들에서 해마다 펼치는 리그전에서 번번이 보좌에 오를 수 있은 것은 모두다 그 애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서였다. 애가 수면을 헤 가르는 숭어처럼 몸을 솟구며 헤딩으로 꼴 문을 터뜨릴 때 소년은 곁에 선 계집애들과 함께 자기를 잃고 새된 환성을 지르기곤 했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왜소한 체구와 벋장이 발에 대해 처음으로 자비를 느껴 거울 앞에서 구구히 살폈던 소년 이였다.  그런 《안정환》이가 축구 공 대신 롱구 공을 안고 23번 유니폼을 입고 나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소년의 마음은 빼여 난 스타가 이적해 간 뒤의 축구팀을 지켜보는 팬과도 같은 심경이다.  얼마 전에 애는 한족학교로 전학을 해 갔다. 그 애처럼 한족학교로 전학을 가는 것이 요즘 풍조다.   이모도 외사촌동생에 한족학교로 전학을 하라고 구구히 권장한 적 있었다.   요즘 세월엔 한어를 잘 해얀다! 한어 잘해야 좋은 직장 얻을 수 있다! 이 바닥에서 굴러먹을 수 있고!   그때마다 녀석은 안가! 죽어도 안가! 하고 필요이상으로 악청을 지르곤 했다.   공부가 반 급의 평균을 깎아먹는 수준인 녀석에게서 또 가장 약한 고리가 한어이기도 했다. 그런 체신에 이질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무리에 묻히는 것이 그에게는 공포감 자체 그 것 이였다. 이모가 집요하게 달려들자 녀석은 손을 칼처럼 세워 자기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엄마가 자꾸 이러면 나 쓱- 할거야.》   녀석이 하도 심각한 표정으로 진저리를 치는 바람에 이모는 한숨을 한번 짓고 나서 더는 그 일을 꺼내지 않았다. 허나 그로서 이모의 속셈이 수그러든 건 아니였다. 어느 하루 옥탑방으로 올라 온 이모가 전에 없이 험상을 풀고 푸근함이 담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넌짓이 소년과 물었다.   《넌 기본도 못 되는 우리 녀석과는 달라.. 공부도 잘 하고 총기도 있고. 그럼 넌 어떻게 생각하니? 한족학교 가는 거?》   소년도 덴겁해 손을 칼처럼 세워 자기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안정환》의 부모가 어떻게 그를 전학의 길에 오르게 했는지 누구도 알 바가 없다. 그가 떠나던 날, 환송파티에 온 애들이 많았다. 애에게 아름 벌게 선물이 안겨졌다. 그 애가 좋았던 학교의 몇몇 녀자 애들은 입을 감싸쥐며 어깨를 들먹이며 울기까지 했다. 체육선생이 조선말로 학교축구팀의 로고가 찍혀 진 스포츠모자를 그에게 씌워 주었다.   《가서 잘 해라. 글구.. 조선말 잊지 말고》   그 어조는 평소에 면도날 같던 체육선생의 소리답지 않게 어쩐지 음울했다.   《안정환》이 떠난 뒤로 학교의 축구팀은 생기를 잃었다.   한족학교로 전학 해 간 뒤 그의 체육기질을 보아 내여  학교 롱구팀에 편입 되였다고 했다. 그 학교에서는 축구보다 롱구 쪽을 선호하고 있었다. 이제 《안정환》이 아니라 23번《맥클 쵸단》인 그 애에게서 소년은 어제 날의 벽파 속에 자유자재로 요동하던 물고기 같은 정열을 보아낼 수 없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23번》은 롱구 공을 손으로 다루는 것 아니라 발로 차고 있었다. 소경 매질하듯 되는대로 찬다. 광장 변두리에 일매지게 축조된 차고(車庫)의 벽에 대고 차고 있었다. 둔 중한 공은 힘겨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 벽을 부수 어라도 뜰 일듯이  탕탕 부딪힌다.   《야, 지금 롱구 하냐? 축구 하냐? 제대로 못해?》   4동 4층인 가에서 아버지인 듯 한 나그네가 창을 열고 소리소리 지른다.   그러나 《23번》은 아랑곳 않고 공을 찬다. 롱구 공을 찬다. 렌즈 속에 잡힌 《23번》의 표정은 무슨 힘에 붙잡힌 듯 필사적이다. 어스름이 내릴 때 보아서인지 마냥 맑고 강인하고 용맹스러운 모습이던 그 애에게서 어떤 음영이 느껴진다.   공처럼 둥글고 커다란 열 엿새 만월이 옥상 우에 떠오른다.   탕! 탕! 공 부딪는 소리가 그때까지도 광장에 가득하다.   잘그랑! 문뜩 어디선가 유리 깨지는 파렬음이 울린다.                        커트 (鏡 頭): 4   이제 어둠이 내리면   혼자 남는 게 너무 싫어   불빛 거리로 헤매다   지쳐버리면 잠이 드네   그대는 인디안 인형처럼 멀리 떠나갔지만   나의 마음은 인디안 인형처럼   워 워 워 워 워 ~   오늘밤에도 꿈결에 찾아 헤매네     ... 《인디안 인형》이라는 노래에 맞추어 댄스를 추었던 녀자애였다.   오관이 무척 귀엽게 생긴 애, 눈이 커서 얼굴 전체가 불안해 보이는 애였다.   그리고 피아노를 잘 치는 녀자애였다.   중학생을 위한 텔레비전 프로에 나와 피아노곡조를 선보인적 있었고 그후에도 학교에서 조직하는 문예활동에서 마냥 보류 종목으로 녀자애가 나와서 피아노를 치곤 했다. 흰 면 티에 짧은 스커트를 입고 매끈한 종아리 밑에서 복사뼈까지 목이 올라오는 흰 운동화를 신은, 너무 깨끗해서 눈에 뜨이는 애다. 녀자애는 수채화 같은 맑은 인상으로 소년에게 남아있다.   허나 진정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녀자애가 피아노 치는 모습이 아니다. 어느 날, 학급의 짱이 몇몇을 청했다. 한국 갔던 아버지가 드디어 돌아와 열기 띈 모습인 그 며칠, 짱은 내내 돈 쌈지가 불룩해 있었다. 노래방으로 갔다. 《미성년출입금지》라는 표말이 붙어있는 큰방에서 밤을 패며 놀았다.   그 모임에서 녀자애를 보았다. 《인디안 인형》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다음절로 넘는 간이 곡이 나오는 사이 머리 흔들고 엉덩이 흔들며 춤을 추기도 했다. 그 노래가 좋았던지 다음에도 차례가 돌아오자 또 그 노래를 불렀다. 엄격하게 양육되고있는 양순한  녀학생으로만 알았는데 그녀에게 이런 파격이 있는 줄을 소년은 몰랐다.   풍향이 바뀌면 건너 아파트에서 울려나오는 피아노소리가 소년의 귀에까지 잡혀 오기도 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 온, 여하튼 무슨 명곡일거라고 소년은 판정했다. 녀자애가 치는 피아노 우에는 석고상 하나가 놓여 있다. 봉두란발에 험한 인상을 가진 사람의 흉상(胸像),  역시 어떤 유명한 음악가의 초상일거라고 소년은 판정했다.   집에 붙박여 피아노를 두드려 대다가도 저녁 무렵이면 애는 광장으로 나온다. 흔들거리는 그네에 몸을 싣고는 꿈결처럼 몽롱한 눈길을 하고 멍해 있기가 일쑤다. 그런 역삼각형의 얼굴에 물 그림자 같은 수심기가 스쳐 지나고있음이 렌즈 속에 잡혀 온다. 노래방의 샹들리에 불빛 속에서 봄물 오른 꽃가지처럼 발육이 잘 된 몸을 흔들며 춤에 빠져있던 모습과는 판 다른 얼굴이다.   그 애가 자기와 한 구역 내에 살고있고 또 다름 아닌 마작 패들이 운집해 드는 그 4동2단원6층에 산다는 것을 소년이 알게 된 것은 잊혀졌던 천문망원경을 더듬어 낸 다음의 일.   한쪽 방에서는 나그네들이 모여 마작 쪽을 번지고 녀자애는 자기 방에서 피아노를 두드려 댄다. 때로 나그네들에게 라면을 삶아 마작 상에  까지 날라  주고 꽁초로 그득 찬 담배재떨이를 털어 주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부유(浮游)하는 먼지처럼 일렁이는 담배연기 속에서 녀자애의 모습은 무대의 인공 운무 속에 선 듯 보였다. 담배연기 때문인지 아니면 울어서였던지 빨갛게 짓무른 눈을 하고 있다.    저녁으스름이 내려 광장은 흑백수묵화처럼 흐려졌다. 종일 피아노 앞에만 앉아있던 녀자애는 또 광장으로 나왔고 예전처럼 그네에 몸을 실었다.   그 모습을《매 눈》으로 쫓던 소년은 옥탑방에서 나와 광장으로 내려갔다. 미루적거리던 소년의 발길은 놀이터로 향한다. 소년이 용기를 살려 놀이터에까지  다가갔을 때 녀자애는 막 몸을 일으키고있다. 무심하고 메마른 표정으로 소년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소년을 쳐다보지 조차 않는다.    《야!》   녀자애가 가버리려 하자 소년이 덴겁해 녀자애를 부른다. 녀자애는 그냥 가고 있다.        《야, 인디안 인형!》   어떻게 호칭을 달아 야할지 몰라 망설이던 소년에게서 이런 부름이 퉁겨 나간다. 필요이상으로 소리가 높다. 녀자애가 머리를 돌린다. 둥실하게 키워 진 눈길로 소년을 쳐다본다. 녀자애의 밝은 흰자위가 희다못해 쪽빛이다. 그 맑은 눈빛이 찔러 오는 순간, 다 자라 남 같아진 오누이처럼 소년은 내숭 기를 느낀다. 겨우 한 마디 짜낸다.    《너 2반이지? 나 4반.》   《그런데는?》    녀자애가 짧게 반문한다.   《너 피아노 잘 하지. 이란 노래 좋아 하구》   《그래서 방금 날 그렇게 불렀어?》   소년이 그렇다고 바삐 머리를 끄덕여 보인다.   《너 매일 치는 곡이름 뭐냐?》   녀자애가 훌쩍 떠나 버릴 가봐 소년은 연신 말을 주어 댄다.   《쇼팽의 . 너 음악에 관심 있니?》    《아니. 그저 음악 하는 사람 보면 존경스러!》   소년은 진심의 말을 한다. 녀자애의 입가에 애 잎사귀 같은 미소가 매달린다. 그 작은 미소가 소년의 긴장을 적절히 이완시켜 준다. 그리고 반가운 것은 얼굴로 내려오는 생 머리를 간간이 귓바퀴로 걷어올리며 녀자애는 자리를 뜰념을 않는다. 아마 그도 말동무가 그리웠나 보다.   소년은 호주머니에서 담배 갑을 꺼낸다. 한 개비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녀자애 앞에서 좀 로련된 모습을 보이기 위한 거동이다. 입을 오므리며 담배연기를 동그랗게 만들어 내뿜는다. 동그라미가 잘 돼주지 않는다.     《엄마 출국했냐?》    목구멍을 간질이는 연기에 작은 기침 한번  하고 나서 소년이 묻는다. 학교에서 태반의 학생들이 출국자녀였기에 이런 물음은 아이들끼리 편지문안처럼 의례 있는 것이다. 녀자애가 머리를 까딱인다.   《일본? 한국?》   《한국》   《울 엄마도 한국》   《몇 년째냐?》   《5년》   《울 엄만 7년》   소년의 입으로 부지중 한숨이 새여 나온다.   《너 음악 전공할래?》   《아냐. 엄마가 돈 부치면서 꼭 피아노 사얀대서 아빠가 사준 것 뿐》   《잘 하던데... 음악 아니면 뭐 할래? 그냥 공부만 할래?》   《몰라 이제 엄마가 돌아오면 다시 보지 뭐》   《엄마가 안 오면?》   《몰라...》   이번에는 녀자애가 한숨을 쉰다.    밤, 풍향이 바뀌자 피아노소리가 들려 온다. 그 소리를 향해 소년은 《매 눈》의 초점을 맞춘다. 흰건반 검은건반 사이를 뛰어다니는  녀자애의 가는 손가락들이 보인다.   《부모들은 이제 우릴 잊은 거 같애. 이사할 때 낡은 인형을 흘리고 가듯이》   놀이터에서 녀자애가 하던 말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돌아올 줄 모르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송금 한 돈으로 허구한날 마작 놀이에만 빠져있는 가정에서 기계적으로 피아노를 두드려 대는 녀자애, 그의 얼굴에 주근깨처럼 뒤덮인 체념의 그림자를 소년은 어둔 밤이지만 가려 볼 수 있었다.    문손잡이 트는 소리가 들려 온다. 소년은 잽싸게 망원경을 이불 속에 밀어 넣는다. 덤벙이며 들어선 놈은 이모가 아니라 외사촌 동생.   《형, 빨리 내려와 전화 받어. 큰 엄마한테서 온 전화야》   녀석이 복음을 전달하듯이 윤나는 소리를 지르지만 왠지 소년은 전화 받기조차 귀찮아 진다. 전하는 소식은 또 판에 박은 듯 타향에서 고생하는 어머니의 우울할 고행 담일 것이고 잘해라! 버텨라! 는 그 단말마의 비명 같은 것일 거였다.   《내가 잔다고 그래.》    벌렁 침대 우에 누워 버린다.   《이그, 부모들은 지들을 위해 타향서 쌍 코피 터지도록 일하건만》   아래층에서 분명 소년을 들으라는 듯 한 옥타브 높아 진 이모의 푸념소리가 들려 온다.   소년은 침대에 누운 채로 책상우의 목조사진틀 속에 들어있는 어머니를 말끄러미 건너다본다.   커다란 구리 종 앞에서 포즈를 취한 40대의 낯선 녀인이 렌즈를 의식하고 애써 웃음을 만들고 있다.   엄마와 그 사이는 이제 지구에서 달, 아니 지구에서 명왕성만큼 한 궤도를 도는 사이가 되었다. 소년은 엄마의 치마꼬리를 잃어버린 미아(迷兒)가 된지 오래다.   무관심만큼 사람을 황페하게 만드는 횡포는 없다. 그래서 소년 또래의 출국자녀들은 너나가 일정량의 우울함을 누군가에게서 배급받은 것 같은 모습들이다. 기분이 아주 들떴다간 금세 죽어 드는 불온정한 상태로 나날을 보낸다. 밝은 곳에 있어도 늘 그늘이 진 듯한 표정이다.    돈 많이 벌어 갖고 갈게! 그때까지만 기다려! 전화에서 마다 엄마는 물먹은 소리로 이 한 가지 내용을 복창하곤 했다.   그러나 소년들의 또래에게 있어서 엄마들의 미래는 핑계이고 두통거리이다.   돈을 많이 벌어 갖고 와서는 어쩔 건데? 있어야 될 때 없어준 엄마는 아이들 맘속에 진정한 엄마가 아닌데. 부모의 다스운 손길 없이 자란 사랑에 굶주린 애들이 굽이진 외길을 너무 나가 되돌아 올 수 없는 곳에까지 갔는데...   엄마가 시주로 종속에 처넣은 그 설화 속의 아이처럼 소년의 마음도 밤마다 에밀레! 에밀레! 울고있는 줄 엄마는 아는지 모르는지...   이제 피아노 소리도 끊기고 광장은 어항 속처럼 조용하다.   누가 잃어버린 눈섭같이 애잔하고 매운 달이 홀로 떠있다.                       커트 (鏡 頭): 5    4동1단원6층의 할망구는 언제 보나 불가사의다.   애초에 소년은 할머니가 한 점의 조각 물이 아닌 가로 착각했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꼭 마치 숨 없는 밀랍인형 같다.   아침, 출근 무렵이면 할망구는 누군가에 밀려 베란다에 나타난다. 맥도널드(麥當勞)전문 앞에 개장과 함께 나타나는 광대처럼.  출근시간에 맞춰 어김없이 나타난다. 베란다로 나타나서는 어스름이 내릴 때까지 말없이 계속 그 본새로 앉아만 있다. 단단한 핀에 고정 된 박제 표본인양 내내 그 모양 그 상태다.   할망구의 무릎에는 엷은 양탄자가 씌워져 있고 품에는 고양이가 안겨져 있다. 일신이 오목같이 까만 고양이는 집안에서 팽이 치듯 돌다가도 할머니의 무릎에 곧잘 찾아 든다. 찾아 들어서는 할머니의 품에 골을 박고 나른히 존다. 고양이가 움죽거리면 할머니가 손으로 쓰다듬는다. 그럴 때면 할망구가 그 무슨 조각 물이 아니라 생생한 살아있는 존재임을 느끼고 지켜보는 소년으로 하여금 꿈틀 놀라게 한다.    고양이도 할망구의 정서에 옮았던지 움직이기를 싫어하고 내내 그의 품에 안겨 있다. 다스운 한낮의 해살 아래 할머니도 고양이도 조는 듯 마는 듯 앉아 있다.   때로 하릴없는 소년은  렌즈 속에 들어 온 할망구 얼굴의 자글자글한 주름을 세기도 한다. 할망구 얼굴의 주름은 많기도 하여 소년은 다 세여 내는 수가 없었다. 시든 상추같이 쪼그라든 얼굴이었지만 할망구는 눈만은 의안(義眼)처럼 부조화스럽게 홀로 말똥말똥하다. 그 말똥말똥한 눈길로 할망구는 광장의 모든 것을 주시하고 있다.   그렇게 움직일 줄 모르는 조각상 같던 할망구가 어느 날인가 광장에 나타났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소년은 조리개를 돌려 렌즈의 초점을 맞추었다. 가두의 아줌마 몇몇이 6층에서부터 휠체어에 앉은 할망구를 들어 내렸다. 할망구를 소풍시키려는 것인가. 륜번으로 휠체어를 밀고 광장주위를 맴돈다. 화단 앞에 휠체어를 세우고 할머니를 옹위하여 무슨 이야기인가 신나게 나눈다. 그 중에는 소년의 이모도 끼여 있다. 할망구가 앉은 휠체어를 조심스레 밀며 광장을 도는 그를 지켜보며 소년은 여태 몰랐던 다른 한 이모에 마음의 초점을 맞춘다.   할망구의 우는 듯 웃는 듯 하는 얼굴이 렌즈를 메우며 커다랗게 보여온다. 부대처럼 빈   볼을 풀럭이며 치아가 몽땅 물러나 마치 빗 틀 같은 이 몸을 드러내고 할망구는 어떤 분명치 않는 표정을 짓는다. 그것이 꼭 웃음일거라고 소년은 판정한다.   홀로 지내는 할망구라 했다. 중풍으로 쓰러진지 2년 채. 6층에서 꼭 2년만에 밖으로 나와 본다고 했다. 자식 셋이 모두다 출국했는데 돌아올 념을 않고 그저 얄팍한 돈 깍지만 우송해 온다고 했다. 그 돈으로 시간보모를 두고 살아간다고 했다. 손자손녀도 있는데 지 부모들을 닮아 몰인정해서 좀처럼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밥상에서 할망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이모는 남의 일 같지 않다며 눈물도 몇 방울 떨군다.   할망구의 품에 내내 안겨져 있던 고양이가 어느 날 문뜩 보이지 않았다. 일신이 오목같이 까만 그 고양이가.   그리고 그날, 이모네 집에 난데없는 이변(異變)이 일었다. 약수 나르는 그 나그네가 여느 때와 같이 어흠! 어흠! 헛 목청을 가다듬으며 저녁식사 시간 맞추어 들어왔다. 그런데 이날 따라 마냥 사람 좋은 얼굴이던 《식의 수》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다.   《어떤 새끼가 죽은 고양이 피를 내 오토바이에 뿌렸어》   약수 나르는 나그네의 작업복 앞섶에 피가 묻어 있다. 차체에 피를 게 발라 놓고 오토바이 앞 바구니 속에 죽은 고양이도 처넣었다고 했다.   《누가 그렇게 못된 짓 한다나요? 왜요?》   이모가 서둘러 작업복을 벗겨 비누 물에 담근다. 나그네는 식의 수처럼 튀여 나온 입에 담배를 꽂아 물고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데데한 나그네로 만 여겼던 그가 이런 심각한 표정도 지울 수 있다는 것이 소년에겐 경이롭다.    느닷없는 활극에 어쩐지 께름칙한 느낌이 들어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나서 소년은 외사촌동생의 방문을 떼고 들어간다. 방안에 술렁이는 어떤 음모의 냄새를 소년은 육감으로 맡는다. 용변을 참는 아이처럼 갑자 지르다 밥을 대충 먹고 일어 선 동생과 기습하듯 따져 묻는다.   《너지?》   《뭐? 》   《고양이 잡아 피 뿌린 눔》   뚱한 표정을 짓고있던 동생의 얼굴이 극적인 표정으로 변하며 목구멍에서 웃음이 기여 나왔다. 녀석은 어깨가 흔들릴 정도로 킬킬댄다.   《왜 그랬냐? 주제가 뭐냐?》   《외국 공포영화에서 봤는데 덜 좋은 사람에게 고양이 피 뿌리면 그 사람 저주받는대 까만 고양이 피! 》   평소엔 쥐 죽은 듯 잠잠하다가 엉뚱한 괴력을 발휘한 녀석은 딴에는 장한 거사라도 치른 듯 길게 찢어진 입을 들썩이며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에이, 못 배워먹은 녀석》   소년은 동생의 울퉁불퉁한 머리통을 쥐여 박는다. 그래도 웃음은 고장난 발동기처럼 제어가 되지 않는다. 무뇌(无腦)적이고 행동파 적인 그 모습이 밉살스러워 또 한번 쥐여 박는다. 단단히 쥐여 박는다.   《왜 때려?》   동생이 후딱 몸을 일으킨다. 키만 허청 컸지 심보가 여려 겨우 한 살 위인 소년과 접고만 들던 동생이 소년의 손목을 부여잡는다. 손이 축축하고 악력이 느껴진다. 화가 난 짐승처럼 형을 노려본다. 메밀 눈 눈자위엔 몇 올 선연한 핏줄기가 실지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다른 애들이 날 보고 니들 집에선 광천수 돈 안내고 먹지하고 놀려 댈 때면 내 기분 어떤지 알어?   저 사람이 누군데? 저 사람이 누군데? 왜 내 아부지 샤쯔 입고 내 아부지 치솔 통 쓰고 내 아부지 면도 기 써? 누군데 내 아부지 베개 베고 자냐 말이야?》   쏟아 붓듯이 말하고 난 녀석이 손을 스르르 놓는다. 얼굴구조가 조합을 바꾸더니 입 귀가 하현달처럼 처진다. 방금 전의 만용을 잃고 삐질  삐질 울음을 짜낸다.   피해의식이 가득한 얼굴을 쳐들어 녀석이 형을 쳐다본다.     《형은 몰라 내가 왜 이러는 지. 몰라. 누구도 몰라. 》   소년은 할말을 잃는다. 원체 할망구의 고양이를 죽인 죄에 대해 단죄하려 했는데 엉뚱한 쪽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녀석과 비슷한 내용, 비슷한 부피로 감동을 먹고 있는 자신을 느낀다. 녀석의 어처구니 짓거리가 일순 리해가 되는 듯도 했다.   장면을 수습할 길 없어 소년은 방을 나선다. 문을 떼던 소년이 엉거주춤 멈춰 선다. 문가에 이모가 서있다. 한 손으로 얼굴을 싸 쥔 이모의 얼굴이 금시 울음을 터뜨릴 듯 잔뜩 구겨 져 있다.   그 궁상을 피해 소년은 옥탑방으로 올라간다. 이모네 집에 얹혀 살지만 옥탑방이라는 자그만 자기의 공간이라도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소년은 생각한 적 있다. 방에 들어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창가로  다가간다. 창가에 팔을 얹고 밖을 내다본다.   맞은 켠 옥상의 물 탑 뒤로 펼쳐진 서쪽 하늘에 조각 달 하나가 도끼 날처럼 섬뜩하게 박혀 있다.                        커트 (鏡 頭): 6    그녀는 소년이 준비 없이 목격한 꽃 이였다. 소년의 상상 속에 저장된 이미지가 가리키는 녀자였다.   그날 본의 아니게 렌즈 속에 그 녀자를 집어넣은 후로 소년은 야생화의 독향(毒香)에 취한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그 녀자의 얼굴이며 라신(裸身)이 눈앞에서 어른거렸고 이모 몰래 컴퓨터 속에 가만히 업로드해 놓은 서양녀자 누드사진처럼 가슴깊이에 박혀 꺼내보고 싶은 충동을 시시 때때 없이 유발시킨다.   소년은 그녀를 누님이라 지칭(指稱)했다. 누나가 없는 사내애들이면 다 그러하듯 자상한 누나가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보는 년령대가 있는 것이다.   책장을 펼쳐도 공부는 좀처럼 소년을 수용하려 들지 않는다. 밤이 깊어도 잠은 좀처럼 소년을  수용하려 들지 않는다. 그때면 망원경을 끄집어내곤 한다. 배률(倍率)높은 《매 눈》 의 힘을 빌어 소년은 누님의 일상사를 클로즈업해 본다.   아침잠에서 깨여 커튼을 여는 누님을 본다.   화장을 벗은 얼굴이지만 그냥 아릿답기만 하다. 겨드랑이의 소담한 치모가 보이게 기지개를 켜고는 하품을 해서 맑아 진 눈으로 거울을 들여다본다. 때로 누님의 이마 전에 생겨나는 여드름조차 소년에겐 벅찬 발견이다.    칫솔질을 하는 누님을 본다.   한입 가득 치약거품을 물고 누님은 거울을 향해 악동이 같이 웃는다.   고른 치아가 옥돌 같다   화장을 하는 누님을 본다.    머리를 간편하게 뒤로 묶어  반듯한 이마를 드러낸 채 누님은 채광이 좋은 창가에서 화장을 한다. 화장 발이 좋은 얼굴이 점차 색 먹은 수채화처럼 생동해 질 때 소년은 눈이 부셔 찡긋거리다.   전화를 받는 누님을 본다.   전화에서 반가운 소식을 전해들은 양 누님이 웃는다. 모란이 벌어지는 듯 한 아름다운 웃음이다.     외출하는 누님을 본다.   해 빛이 밝은 날이면 차양이 너른 모자를 쓰고 누님은 밖에 나선다. 모자에 쌓인 누님의 얼굴이 맑고 현명해 보인다.    귀가하여 샤워준비를 하는 누님을 본다.   낚아채듯 블라우스를 벗어 던지고 스타킹을 손으로 훑어 내린다. 잘 뻗은 눈부신 흰 다리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벗은 몸이 빛을 뿌린다. 그때면 소년의 몸은 파렬 직전의 고무풍선처럼 팽팽해진다.   때로 누님은 창턱에 마주 앉아 밖을 내다보곤 한다.   파마세트로 머리를 만 채  매우 밝은 목덜미를 내놓고 손으로 얄팍한 턱을 괴이고 밖을 내다본다. 앞자락이 갸웃이 열려 있었고 깊숙한 유방의 륜곽이 드러나 보인다. 밝은 채광에 흑란(黑蘭)의 줄기처럼 유려한 눈섭을 찡긋 이며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밖을 빤히 내다본다. 누님이 자기를 보아낼 가 주저하면서도 소년은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조리개를 부지런히 돌리며 누님과의 거리를 한껏 좁히려 애쓴다. 누님의 눈을 가까이 에서 들여다본다. 하늘이 비치도록 시린 눈이다.    창가에 누님의 영상이 흘깃하다 사라져도 소년의 얼굴은 걷잡을 수 없는  미열로 달아오른다. 누님의 모습, 하다못해 뒤 모습이라도 보기 위해 소년은 내내 창가에서 망원경을 겨누고 대기해 있다. 렌즈를 눈확에 붙이고 조리개를 틀어잡고 어깨를 솟군 채... 마냥 그 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어깨가 뻐근하다.   온몸이 땀으로 미끄덩거린다. 땀이 흘러 바지 단이 맨살이 들어 붙는다.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한 옷에서 마른 건어물 냄새 같은 것이 난다. 허나 혹서의 더위 속에서도 소년은 수렵 자처럼 대기해 있다. 이제는 하루라도 누님을 보지 못하면 안 되였고 누님의 모습만 보이면 가슴은 형언할 길 없는 기쁨과 야릇한 만족감으로 차 오른다.   애초에는 호기심이 증폭 되여 시작한 짓거리이지만 이제 소년은 자신을 주체할 길 없어 했다. 훔쳐보고 싶은 충동은 소년의 신심을 괴롭히며 종양처럼 자라고 있다. 무슨 악취미 같아서 소년은 그만두리라 마음을 뼈 물기도 했다.   망원경 속에 본의 아니게 안겨 온 멀리 교회당의 뾰족지붕과 그 우에 솟은 십자가를 보며 어떤 속죄감에 그을 줄도 모르는 성호(聖號)십자를 긋기도 했다.   이모며 사촌동생을 보기도 어색해 졌다. 그들이 자기가 하는 짓거리를 꼭 눈치 챈 듯 느껴졌다. 마냥 남의 결점에 머물러 있기 좋아하는 그들의 시선이 형체를 뚫고 소년의 내부를 응시하는 듯 했다. 그래서 눈길을 느낄 적마다 어색하게 머리를 다른 쪽으로 돌리곤 했다.   그날은 이 여름 들어 기온이 치솟을 대로 치솟아 징그럽게도 더운 날 이였다. 진한 어둠이 내려도 한낮의 열기를 삭히지 못해 했다.   누님의 창을 향해 조리개를 돌리던 소년의 손목에서 경쾌함이 바수어졌다. 신경 줄이 올올이 직립 함을 소년은 느낀다. 누님의 집에 남자가 나타난 것이다. 구름우의 천사처럼 혼자 사는 줄 여겼는데, 옛말 속의 공주처럼 높은 성채에서 혼자 사는 줄로 여겼는데...   그리고 나타난 사람은 나이가 어중간한 신사였다. 누님이 달려가 깨끔 발로 한쪽을 딛고 신사에게 안긴다. 그의 목에 팔을 친친 동여매고 발을 간댕거려본다.   누님의 아버지일가?   허나 다음 순간 소년은 머리 속에 피가 꽉 차 오름을 느꼈다. 신사, 누님의 아버지 벌로 돼 보이는 신사의 손이 누님의 앞섶을 들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속옷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 가 누님의 부픈 가슴을 탐욕스럽게 움켜잡는 것이다. 그에 그치지 않는다. 벌건 입술로 누님의 목 줄기를 부비여 대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서둘러 배추 잎을 벗기듯 누님의 옷 견지를 하나하나 벗겨 내린다. 누님이 몸을 배틀며 그의 품에서 벗어난다.  덴겁해하며 커튼을 친다.   커튼이 소년의 시선을 가리워 버렸다. 소년의 눈앞에 아릿한 어둠이 잠시 어린다. 허나 막을 길 없던 련상작용 그리고 상상력들이 소년의 눈앞에서 그냥 진행되고 있다. 의관이 버젓한 그 령감태기가 누님의 온몸을 주물러 대는 모습이. 주린 듯 핥아 대는 모습이. 소년은 사막에 불길이 치솟아 모래가 불타고 그 아비규환의 복판에 서있는 느낌이 들었다.   달무리 진 달이 불그스름했다. 비라도 쏟아질 듯이 뭉뭉한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한번 얼굴을 보인 뒤로 령감태기는 자주 나타났다.   그런데 소년을 괴롭히는 것은 누님이 그 령감태기를 아주 좋아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령감태기를 보면 웃음기에 함함하게 벌어지는 누님의 입 모양새를 보아도 그런 정서는 알린다. 령감태기가 무어라고 말하면 한 문제만 틀린 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웃기도 한다. 매우 재미있는 유머를 들은 사람들 마냥 거침없이 웃어젖히기도 한다. 때로 누님은 와이셔츠와 속옷 나부랭이를 빨아 베란다에 놓인 간이 건조대에 널어놓는다. 호수가 큰 그 옷가지들은 일견에도 남자의 것, 분명 그 령감태기의 것 일거다.  그런 날이면 소년은 비를 앞둔 구름처럼 방향을 걷잡을 수 없는 심기를 느낀다.   《왜 그렇게 저기압이야? 형?》하며 아이스크림을 넘겨주는 외사촌동생을 발길로 밀어 던지는가하면 밥 먹으러 내려 오라 이모가 불러도 듣는 둥 마는 둥 옥탑방에서 내려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한낮, 또 그 령감태기가 유령처럼 나타나자 소년은 더는 참아내지 못하고 옥탑방을 달아 내렸다.   《불 끄러 가냐? 왜 그리 급해 쌌냐?》    외사촌 동생이 불러도 응대조차 않고,   《밥은 안 먹냐? 당금 점심 시간인데 또 어디로 가냐? 쟤 요사인 밥도 잘 안 먹고 왜 저런 다냐? 돌멩이도 삭힐 땐데》   의중(意中)을 알 수 없어하는 이모의 걱정 어린 푸념을 뒤로 던지며 소년은 4동3단원을 향해 달려갔다. 달리며 소년은 고슴도치처럼 바싹 털이 솟는 자신을 느낀다.   4동3단원6층.   그 앞에서 소년은 턱 끝까지 말려 오른 호흡을 가다듬는다.   분명 누님의 집 앞까지 와서 소년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버린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문가에 묶인 듯 서있는 소년을 소스라쳐 놀라게 하며 문에서 쇠 소리가 난다. 소년은 급히 몸을 돌려 층계에서 달아 내린다.   령감태기가 나온다. 이마에 번드르르하게 배인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기름 낀 배를 불룩 내밀고 령감태기는 층계를 내린다. 직사각형의 멋진 가죽 가방을 든 령감태기는 계단을 하나하나 세듯 천천히 걸어 내린다. 단원의 출입 문가에서 자기를 빤히 지켜보고 있는 소년을 시큰둥하게 쳐다본다.   령감태기에게서 향수냄새가 난다. 솔잎 향기 같은.  송곳처럼 코 점막을 후비는 향수냄새에서 소년은 그가 한국사람임을 판정한다. 이곳 남자들은 좀처럼 화장품을 쓰지 않는다. 전번 학기 학교에 컴퓨터를 기증한 한국상공인에게서도 이런 향수냄새가 났고 한국에서 로무를 마치고 돌아 온 학교 짱의 아버지 몸에서도 이런 향수 냄새가 났다.   느려 터진 팔자걸음으로 아파트 구역 내에서 령감태기는 사라진다. 소년은 무슨 대결이라도 한 듯이 몸이 피로해짐을 느낀다. 광장의 놀이터로 간다. 그네에 몸을 싣고 멍청한 꼴이 되어 허깨비처럼 몸을 흔든다.                       커트 (鏡 頭): 7    어디선가 울음소리 들린다.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함께 내는 울음소리다. 구역 내에서 공명이 되어 울리는 울음소리는 사뭇 괴기스럽기 까지 하다.   《무슨 일일 생겼나본데요.》   심란해진 눈길로 외사촌동생이 묻는다.   《엊저녁 그 할매가 세상 떴다 누나. 4동에 살던 그 할매. 외롭게 두 지내드니만. 이제야 친척들이 모여와 우는 시늉이라도 한다. 남의 눈이 무서운 게지.》   이모가 코를 훌쩍 치 걷으며 말한다. 아침밥은 절 로들 챙겨먹어라 하고는 가두사람들과 함께 장례에 참가 해얀다며 부랴부랴 집을 나선다.   철저히 홀로 이였던 할망구가 세상 뜨자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소년에겐  경이롭기까지 하다. 광장에는 차 앞머리에 검은 꽃을 단 령구차가 대기해 섰고 나그네들의 어깨에 실려 관 하나가 층계로 내려왔다. 죽어서 그저 불에만 넣지 말아 달라는 것이 할망구의 마지막 소원이란다.   뜻밖에도 관을 메고 나선 이들은 4동2단원6층에서는 매일이고 마작의 향연을 펼치던 나그네들 이였다. 어쩜 너나가 한결 같이 마누라들이 출국해서 부쳐 보낸 뼈 돈을 까먹으면서 놀이에나 빠져 있다는 나그네들에게도 이렇게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경이로운 풍경이다.   소년으로서는 처음 보는 관이다. 흥미를 느껴 소년은 조리개를 돌린다. 망원경으로 상여행렬을 쫓는다. 굵어지는 아침 해 빛에 옻칠을 먹이지 않은 하얀 관은 야릇한 빛을 발하고 있다.   장례행렬이 떠나자 광장에는 다시 고요가 깃 든다.   구역 내를 빠져나가는 령구차를 마지막까지 쫓다가 소년은 망원경을 내린다. 다시 망원경을 쳐든다. 누님의 창에는 두툼한 커튼이 내려져 있다.   느닷없이 신산(辛酸)해 진  기분을 소년은 떨칠 수 없어 한다. 아이공 대공 괴음(怪音)으로 울어대던 통곡소리가 계속 귀전에 끈끈히 남아 있다.   그 잡친 기분을 무마하련 듯 소년은 망원경에만 매 달려 있다. 어떤 동정을 기대 하는 수렵 자처럼.   점심 무렵이 되여서야 누님 방의 커튼이 걷혀졌다.   그와 함께 소년은 또 한번 눈동자를 키운다.   누님의 집에 또 사내 하나가 나타난 것이다.   늘 찾아오던 그 령감태기가 아니였다. 이번에는 좀 어수룩한 입성의 사내다. 나이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지만, 시골에서 일에 절어 온 듯 흙빛이 나는 피부가 나이를 좀 얹어 보이게 만든다. 찜통더위에 땀을 벌벌 흘리면서도 소매 긴 와이셔츠를 입고 있다. 색이 천박해 보이는 와이셔츠는 구지레하게 땀에 절어 있다. 사내는 전쟁 피난을 가는 사람처럼 보퉁이 하나를 들고 문가에 서있다.   누님이 랭장고에서 음료수 한 병을 가져다준다. 목 울대를 울리며 사내는 급박하게 음료수를 들이켠다. 다 마시고 나서 빈 병을 어찌할지 몰라 주춤거린다. 누님이 빈 병을 받아 휴지통에 던져 넣는다. 사내는 여전히 방 한복판에 어색하게 서있다. 누님이 앉으라는 시늉을 하는 것 같다. 사내는 쏘파에 앉지 않고 맨 바닥에 벌렁 주저앉아 버린다. 누님이 쏘파에 앉으라고 권하는 듯 하다. 그러자 사내가 허연 이를 드러내고 겸연쩍게 웃는다. 계속 맨 땅에 앉아 있다.   《파이내플 이요! 파이내플 이요!》   광장에서 과일 장사치가 메가폰에 대고 외치는 싸구려 소리가 공명으로 들린다.   마냥 웃비가 걷힌 하늘처럼 명랑하던 누님의 얼굴이 이날 따라 다르다. 누님의 입 모양새는 그렇게 함함하게 벌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는 듯 하다.   한 사람은 쏘파우에 한 사람은 바닥에 그냥 그렇게 앉아만 있다. 누님은 매니큐어를 바른 자기 손톱을 들여다보고 사내는 머리를 수굿하고 장판지의 문양을 들여다본다.   가려는지 사내가 몸을 일으킨다. 누님이 문가까지 바랜다. 돈 잎 몇 장을 구겨 사내의 손에 쥐여 주나 사내는 한사코 뿌리친다. 그러면서 사내는 또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억지로 입술을 비틀어 만드는 웃음 같다.   이윽고 사내가 광장에 나타난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 사내는 벤취로 다가간다. 벤취에 앉지 않고 하필이면 벤취 뒤의 화단 가에 쪼그리고 앉는다.   누군가 아파트 베란다에 놓인 화분 통을 들여간다.   잔인한 뙤약볕아래 사내는 그냥 쪼그리고 앉아 있다.     누군가 아파트 베란다에 나와 홑이불을 턴다.   오목렌즈로 내리 비추는 듯한 끔찍한 해살 아래 사내는 내내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있다.    캄캄한 얼굴을 하고 무엇을 씹듯 입술을 일그러뜨린 채.   더운 한낮 이여서 광장에는 사람 하나 없다.   사내가 나간 뒤로 누님은 다시 쏘파에 앉아 버린다. 멍하니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을 들여다본다. 누님의 몸가짐이 평소보다 좀 산란해 보인다.   소일거리가 생각났던지 누님이 사내가 가져 온 보퉁이를 푼다. 법랑그릇에 그득 넘쳐 나게 담은 것은 껍질 채로 삶은 옥수수다. 무슨 곤충의 날개 같은 껍질을 벗기자 황옥(黃玉)같이 노란 알이 박힌 옥수수가 드러난다. 희귀한 얼굴로 그 옥수수를 들여다 보다 누님이 옥수수를 한입 떼 문다. 누님의 입 모양새가 그제야 함함하게 벌어진다.   한 개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나서 누님이 두 번째 옥수수의 껍질을 벗긴다. 그 옥수수도 순식간에 하얀 고갱이만 남는다. 세 번째로 집어든다. 탐식(貪食)하는 그 모양을 지켜보는 소년의 입가에 웃음이 감돈다. 누님이 한입 떼여 문 세 번째 옥수수를 내려놓는다. 목이 메게 한입 그득한 옥수수를 넘긴다. 그런 누님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급기야 누님의 눈확에서 이슬이 넘쳐난다. 옥수수 알보다 큰 눈물방울이 누님의 볼을 타고 뚤렁 뚤렁 떨어져 내린다. 누님이 울고 있음을 뒤늦게 야 보아내고 소년은 잠시 어리둥절해 진다.   손바닥으로 눈물 젖은 볼을 이리저리 훔쳐내고 나서 누님은 베란다로 달려나온다. 머리를 내밀고 광장을 굽어본다.  광장에는 아무도 없다.   해 빛이 박살난 유리조각처럼 부서져 내린다. 부서져 내려서는 광장의 블록타일 우에서 탱글탱글 튀여 오른다.   해 빛은 세상중심을 관통할 듯 투명하다.                                   커트 (鏡 頭): 8   광장은 그냥 그 모습 그대로이다.   아침이면 너나가 바삐 광장을 질러 출근길에 오르고, 한 낮이면 잡상인들이 광장 변두리를 돌며 메가폰으로 각자의 매물에 대한 홍보의 소리를 지르고, 저녁이면 부지런한 가두의 아낙들이 나와 화단의 꽃 포기를 손봐주고... 낡은 필림 되감듯이 비슷한 내용 비슷한 모습들이다.   허나 소년에게 보이는, 소년의 《매 눈》에 잡혀 오는 광장은 다르다.    일요일마다 광장에서 울리던 공 다루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23번 유니폼(先手服)을 볼 수가 없다.   대신 어디서 온 애들인지 왁작거리며 배드민턴을 치곤 한다.   쇼팡의 야상곡도 들리지 않는다.   소년이 알 수 없는 다른 곡이 울린다. 아직 손에 익지 못한 듯 중복을 거듭하는 곡조는 가락 맞는 곡조라기보다 심란한 아낙이 국자로 솥전을 두드려대는 소리 같다.   저녁 무렵이면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눈을 내리깐 채 발을 간댕이는 인디안 인형을 볼 수도 없다. 그네 줄이 끊어져 버렸는데 누가 나서 이어주는 사람도 없다.    4동1단원6층에는 빈 휠체어만 뎅그러니 놓여있다.    4동2단원6층 마작 판에도 새로운 사람들이 가세해 들었다.    4동 4층인 가에 사는 할리우드 영화중의 변태 광처럼 생긴 온몸이 깡마른 나그네, 그리고 이모가 사이가 좋은 약수를 날라주는 《식의 수》도 끼여 있다.    술 먹은 터에 얼굴이 잘 구운 찐빵처럼 불그레해진, 만족스런 표정의 나그네들은 저 저마다 담배 대를 입 귀에 지긋이 물고 피여 오르는 담배연기에 실눈을 좁힌 채 부지런히 마작 쪽을 쌓고 헤치고 섞는다.   그리고 4동3단원6층. 좋아하는 배우 때문에 편애하는 영화처럼 자기의 옹근 정감과 옹근 시간을 잡아먹는 누님을 보면서 요사이 소년은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자기의 행위가 드러날 가 늘 두려움에 의식의 목을 짓눌리고 있지만 요즘의 두려움은 그런 두려움이 아니다.   이제 누님의 아파트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직사각형의 멋진 가죽가방을 든 신사타입의 령감태기도, 삶은 옥수수를 그릇 넘쳐나게 들고 왔던 얼굴이 흙빛이던 그 시골총각도...     누님만의 일인 극을 보게 되였지만 소년은 일전 같은 신명이 솟지 않는다.   어느날인가부터 누님이 갑자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집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분류하여 종이박스에 챙겨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누님의 집에 많은 사람들이 왔다.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다. 중국식당의 료리들을 청해 놓고 온 저녁을 술판을 벌렸다. 누님은 술에 취한 듯 했다.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시간이 자정으로 흘러서야 탕진한 듯 사람들이 몸을 일으켰다. 가면서 누구나 할 것 없이 누님과 포옹을 했다.   짐들을 처리한데서 갑절 커 보이는 집에 누님만 남았다.   한 상 가득 널린 음식상을 치울념 않고 누님은 쏘파에 앉아만 있다. 두 손으로 무릎에 처박을 듯 숙인 머리칼을 싸쥐고 어깨를 흔든다. 이리저리 아무 생각도 없이 흔든다.   무슨 생각이 났던지 일어나 핸드백을 뒤진다. 핸드백에서 무언가 꺼낸다. 란발을 한 채 그것을 들여다본다. 소년의《매 눈》이 누님의 손에 들려진 그것에 초점을 맞춘다. 조리개를 틀고 있는 손이 사뭇 팽팽하게 떨고 있다. 렌즈 속에 클로즈업된 그것이  총탄처럼 소년의 동공에 와 박힌다.   그것은 비행기 표이다.    누님이 어딘가 가려나 보다?    누님이 어딘가 가려나 보다.    누님이 어딘가 가려나 보다!   소년의 손에서 망원경이 미끄러져 내린다. 불을 켜두지 않은 옥탑방의 눅신한 어둠 속에 소년은 묶인 듯 서버린다.   《비행기는 몇 시에 뜨나요?》   객실로 내려가서 지글대는 텔레비전을 방임한 채 끄덕 끄덕 졸고있는 이모와 소년은 묻는다. 부러 심상한 투로 묻지만 소년의 목청은 필요이상으로 높았고 자기가 듣기에도 파장이 맞지 않다. 이모가 흠칫 놀라며 깨여 난다.   《어디... 행인데?》   이모가 코잔등에서 흘러내린 안경을 벗으며 묻는다. 그 물음에 소년은 할말이 궁색해 진다. 사실 누님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있는 그.   《국내 행은 낮에 있고 한국 행은 보통 아침 일곱 시와 저녁 네 시에 있는 거 같드라. 니 엄마가 갈 땐 비행기도 못타보고 그저 기차로 가서 다시 배타고 갔는데》   소년이 오랜만에 먼저 이모와 말을 건네였고 하도 진지한 태도로 물어왔기에 이모도 정확한 답을 주려 애썼다.  《헌데 너 왜 그러냐?》   소년은 아무 말도 없이 다시 태엽 준 인형처럼 옥탑방으로 올라간다.   망원경을 주어 든다.   누님이 쏘파 등걸 이에  두 팔을 얹고 그 팔 우에 볼을 얹은 채 잠들어 있다.   소년은 창가에 무릎을 꿇는다. 누님의 얼굴을 표나게 바라본다. 달의 환형 산까지 보이는 천문망원경이지만 망원경의 배률이 더 높지 않은 것이 소년에겐 한스럽다. 누님의 모든 것, 얼굴이며 몸매며 지어 누님의 발톱 하나까지 동공에 아로새기고 싶다.   그리고 누님이 래일 이른 새벽이 아닌 한 낮에 외출하기를 소년은 바라고 바랐다.   어떤 독실한 신도처럼 창가에 무릎을 꿇고 소년은 밤을 새운다.    거대한 밤의 망토 뒤에서 한 겹씩 엷어지는 어둠 속에 섬세하게 깃 드는 새벽을 소년은 눈으로 피부로 느낀다.   새벽, 건너편 아파트 4동3단원6층. 그 방에서 드디여 소년이 바라지 않던 일이 일고 있다.   숙취에 일어나지 못할 것 같던 누님이 일찍이도 깨여난다. 시계추처럼 부지런을 떤다. 화사한 옷가지를 챙겨 입는다. 바퀴가 달린 커다란 트렁크를 밀고 집을 나선다. 문을 나서다 말고 집안을 한바퀴 돌아본다. 그리고 문이 닫힌다. 멀리 아파트지만 쾅! 하고 쇠 소리를 내며 닫히는 문소리를 소년은 분명 듣는다. 그 소리는 소년의 신심을 란타하며 환청으로 울린다.   누님이 가는구나. 저렇게 가는구나. 끝내는 가는구나.   낮 행이 아니고 새벽 행으로 가는 걸 보니 분명 한국으로 가는구나.   소년은 옥탑방을 달아 내린다. 6층에서 달아 내린다.   너무 일찍 해서 광장에는 조깅을 나온 사람조차 없다.   저 앞에 누님이 보인다. 몸에 꼭 끼이는 청바지를 입고 바퀴가 달린 트렁크를 끌고 아파트 구역 내를 빠져나간다. 새벽대기 속에 트렁크의 바퀴 구르는 소리가 선명히 울린다. 피리소리의 주술에 걸린 뱀처럼 소년은 그 소리를 따라 간다.   대로 가에서 누님이 멈춰 선다. 택시를 대절해 기다린다. 잎새에서 아침 이슬이 떨어져 내리는 가로수에 몸을 감추고 소년도 멈추어 선다.   택시가 오지 말았으면   아직 새벽인데 택시가 오지 말았으면   누님을 훔쳐보며 두서없는 소년의 마음은 이렇게 되뇌고 있다. 측면에서 봐도 누님은 까닭 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새벽안개를 헤 가르며 택시가 온다. 오지 마라! 오지 마라! 주문을 외워도 택시는 온다. 누님 앞에 와 칙 멈춰 선다. 모범택시라는 자호가 찍혀진 그 택시에 이 순간 소년도 고양이 피를 뿌리고 싶다.   이른 아침에 미모의 녀자를 승객으로 맞는 택시 기사는 기분이 좋은 듯 경쾌한 동작으로 누님의 트렁크를 받아 차체의 뒤 함에 싣는다.     《누나! 누나!_》   소년이 가로수 뒤에서 뛰쳐나온다. 누님을 부른다. 허나 목구멍에서 소리는 움츠러든다. 가슴으로만 부른다. 누님의 길을 가로막고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공중에 흩어진다. 소년의 볼로 주체할 길 없는 눈물이 도랑을 지어 흘러내린다.   차 문을 열다말고 누님이 소년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야릇한 눈초리로 아침부터 길가에서 눈물을 질질 흘리고있는 아이를 본다. 누님의 얼굴이 가수(假睡)상태에서 본 정물처럼 륜곽이 흐릿했다.   탕! 택시 문이 닫히고 갈개는 말처럼 몸을 한번 뒤로 당겼다가 택시가 떠난다.   소년의 그렁하게 젖은 동공 속에서 택시는 굽이를 돌았고 멀리로 사라져 버린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광장은 행락객(行樂客)들이 떠난 유원지처럼 텅 비여 있다.   솨 아! 낮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화단의 꽃들이 힘에 겨운 듯 봉오리를 가누고 있다.   비바람에 놀이터의 그네도 흔들거리고 있다.   유리에 툭툭 빗방울이 듣고 있었다.   아래층에서 텔레비전이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옥탑방의 창가에 서서 소년은 광장을 내다본다.   어느 류역의 이방인(異邦人)인 양 서글피 내다본다.   천문망원경이 발치에 뒹굴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달이 뜨지 않는다. 때문에 소년은 환형 산을 볼 수 없다.   이날 따라 달이 몹시도 보고픈 데.   ... 달에서 매우 흔한 지형은 환형 산일 것이다. 달은 아주 오래 전에 류성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는데 류성이 달 속으로 파고들면서 표면을 파헤치고 구덩이를 만들어내었다. 이렇게 생성된 분화구들은 평평한 바닥과 뾰족하고 둥근 테두리를 갖고 있으며 중앙에 봉우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달 표면에는 우리가 살고있는 도시가 수십 개나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분화구들이 234개나 있다고 한다...   문뜩 소년이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비 내리는 광장을 내다보며 소년은 언젠가 천문애호가 서클시간에 외워두었던 천체지식에 대해 외워 본다. 비 소리가 소년의 소리를 잘라먹는다. 허나 소년은 그냥 왼다. 무아에 빠진 사람처럼 소리 높이 왼다.   비 내리는 광장은 종영되는 영화처럼 저물어 간다. ♤ "도라지" 2003년 5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5    바다에서 건진 바이올린 댓글:  조회:2486  추천:19  2014-08-02
. 중편소설 .   바다에서 건진 바이올린                   김 혁         “만물의 변화란 실제에 있어서 그저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허나 바로 형식의 내면에 항구불변의 생존의 의지가 잠자고 있다.”  - 쇼펜하우어 “생존공허설”중에서    “우리의 정신세계 및 리념의 구축은 언제나 현실세계의 경험에서 비롯하여 다시 여러가지 형태로 변형되여 전개되며 나중에 우리는 그 한 형식의 내용으로 과제를 해결하군 한다.” - 야마다까 가이요 “인간의 심층심리분석”중에서    “무릇 변형은 모두 그 자체로서의 리유가 있다.” -저자     이변(異變)의 바다    …관광기를 보낸 바다의 모래사장은 짜장 려객선을 고동에 실어보낸 뒤의 항만 그 모습이였다. 보이잖는 신의 채찍질에 쫓기는듯 줄달음쳐와 백사장을 처절썩 때리고는 뒤걸음쳐가는 멍든 빛깔의 모습과 낡은 태엽으로 풀어내리는 시계처럼 단조로운 음향, 시끌벅적하던 관광기에는 자취없던 바다새들이 사장에 찍어놓은 상형문과도 같은 죄꼬만 발자국, 그 스스로 각인해놓은 자취를 굽어보며 뿜어내는 새들의 괴이쩍은 목울음이 바다가의 고적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그러한 사장의 한 귀퉁이에서 소요가 일었다. 바다의 거품속에서 태여난 비너스인양 어데선가 불쑥 솟아난 조무래기 몇몇이 쫓거니 앞서거니 하면서 백사장을 달리고 있었다. 윤택하지 못하여 린색함에 가까웠고 바다바람도 훈풍을 제쳐놓은 한산한 바람이였지만 조무래기들은 저마다 알몸이였다. 바다새보다는 퍽 아름다운 홍소를 지르며 추위를 모르고 달려가는 조무래기들뒤로 새들의 발자국보다 조금 큰 귀여운 자국들이 꿈을 홈파고 있었다. 하얗고 조그만 몸뚱이들, 그리고 저마다의 사타구니에서 우습강스럽게 달싹이고 있는 고추들, 바다의 꼬마요정 같은 그 귀여운 모습들에 바다가는 금시 생기를 되찾은듯하였다.  홀연 맨 앞에서 톱상어처럼 본때스레 내달리고 있던 애가 우뚝 멈춰 섰다. 급촉한 멈춤이였기에 애의 작은 발이 모래속으로 움푹 빠져들어갔다. 애는 쳐들린 눈매를 하고 앞을 지켜보았다. 뒤따라 섰던 애들도 그 애의 모습을 되풀이하며 하나 둘 그 자리에 급정거를 해버렸다. 잔 돌멩이 하나 없이 혹여 작은 조갑지들만이 달그락거리던 사장에 거밋한 물체 하나가 탄성한계로 늘어져있는 것이 보였다. 보통장년의 키만한 그 실체는 조무래기들에겐 엄청 큰 괴물로 안겨왔다. 애들은 눈에 버팀목을 한채 식지를 입에 물고 숨을 꺽 죽였다. 맨 앞장선 애의 넌들넌들 흘러내리던 코물이 커다란 기포로 되여 부풀어오르다가 빵 소리를 내며 터졌다. 와악! 하고 애가 고함을 질렀고 그 소리를 폭발물로 하여 조무래기들은 혼겁한 소리들을 련발하며 돌아서서 내뛰기 시작했다.    사장의 웃쪽으로부터 한 나그네가 내려오고 있었다. 소일거리를 찾는 유한자인듯 살집 좋은 나그네는 구름과 같은 보법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는 나그네의 풍성한 아래배를 달려오던 애가 골받이 하고 말았다. 그 서슬에 애와 나그네가 뒤로 벌렁 나가 넘어졌다.    “저기… 사람이… 사람이 죽었심더…”   호젓한 바다가를 찾아 소풍하려던 나그네는 아닌밤중에 웬 홍두깨냐는듯 으깨진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의 너무도 진지한 표정에 밀려 나그네는 애의 식지가 가리킨 곳을 향해 스적스적 걸어갔다. 반신반의에 절은 나그네의 눈길에 아닌게아니라 시체 하나가 비쳐들었다. 마구 엎딘 자세인 그것은 분명 여름철에 흔히 보게 되는 익사자(溺死者)의 모습이였다.     맨먼저 사내의 눈길을 포박한 것은 익사자의 앞으로 뻗친 손이였다. 손마디가 기름하여 여느 사람들의 손보다 훨씬 큰 손, 허나 결코 거쿨지지 않고 보기 좋은 손이였다. 그 무슨 의욕에서였던지 손마디는 무언가 움켜잡는 동작을 하고있었다. 머리칼은 유난히 작아 보이는 머리통에 찰싹 붙어있었는데 꼭 마치 바위에 엉겨붙은 청태처럼 보였다. 그런데… 익사자의 전신을 훑어내리던 나그네의 눈길이 다리부분에 와서 뚝 멎어버렸다. 나그네는 두눈을 슴벅거리며 불뚝 불거진 눈매를 하고 다시 익사자의 아래몸뚱이에 시선을 주었다.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맙소사… 물고기의 꼬리가, 물고기의 꼬리가 두가닥 지느러미를 축 늘어뜨린채 응당 다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나그네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그네는 익사자의 알몸뚱이 전신에 정교한 문신마냥 촘촘히 박혀있는 비늘을 보아낼수 있었다. 나그네는 꿈을 꾸고있는 기분이였다.    “이크크…” 나그네의 입으로 헛바람 섞인 괴상한 소리가 새여나왔다. 느닷없는 공포가 신상에 까맣게 밀착해왔다. 조무래기들 앞에 선 년장자라는 체신도 잊고 공포의 그물에서 벗어나련듯 허우적거리며 나그네는 내뛰기 시작했고 그 거동에 다시 겁기를 되살린 조무래기들도 괴성을 지르며 함께 내뛰였다. 비대한 몸집을 놀리며 굴러갈듯이 달리는 나그네와 그 뒤를 바싹 쫓아선 알몸의 개구장이들. 그것은 바다속 말향고래와 그 뒤를 바싹 따라선 새끼 흡반어를 련상케 하는 기이한 광경이였다.   어떤 외출       … 발바닥이 괴로웠다. 어느 짬에 어떤 알맹이가 들어갔는지 그 자그만 이물질이 내내 그의 발바닥을 괴롭히고 있는겄이였다. 그렇다고 숱한 사회지명인사들이 둘러앉은 회의장소에서 신발을 벗고 그 속의 이물질을 털어내는 불미한 거동을 할수도 없었다. “일요석간지” ㄷ시 주재기자 철인(哲人)씨는 지금 엉뚱한 곳에서 취재수첩을 펼쳐들고있었다. 여느때와는 달리 정열의 개미들처럼 보도할 수치들이 우글거려야 할 취재수첩은 하얀 백지나 다름없는 상태, 필을 장신구처럼 만지작이며 그는 한 글자도 적어내려가지 못하고있었다. 며칠전 ㄷ시 해변료양소 부근에서 괴상한 익사체 하나가 발견되였다. 웃통은 분명 중년남자의 몸체인데 아래도리는 물고기꼬리가 달려진 괴상한 생명체라는것이였다. 소문은 불과 며칠도 못되여 이 해변도시의 구석구석에까지 촉수를 뻗쳤다. 조무래기들, 조무래기 반급의 동학들, 부모들, 부모들의 직장동료들, 직장동료들의 안해들 남편들… 이런 순으로 소문은 열에 십, 십에 백, 백에 천으로 해일마냥 온 도시를 삼켜버렸다. 이에  과학기술대학과 의학원의 몇몇 교직원들이 커다란 홍미를 갖고 그 기이한 생명체를 소장했고 소식간담회까지 가진것이였다. 맨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철인은 애들의 못된 장난으로 여기고 웃고 지나가려 했다. 한 사람 건너 두 사람 건너 그 기문이 륜곽 크게 자리잡혔을 때도 강호곡예단의 돈벌이를 위한 조야한 짓거리, 혹은 피서지들의 신기한 광고수단쯤으로 생각해두었었다. 과학기술대학에서 그 “장난 혹은 돈벌이나 광고”를 위한 이른바 “기이한 생명체”를 위해 소식간담회까지 연다고 회의통지가 오자 “미친 수작이야.”하고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극력 큰 신문거리를 만들어내지 못해 몸서리를 하고있는 신문사 본부에 어떤 이들이 련락주었던지 주필께서 친히 장거리전화를 걸러 그에게 주말판 톱감으로 쓸 터이니 꼭 사진까지 곁들여 보도를 해내라고 분부를 내렸다. 하여 철인은 마지못해 간담회에 출석했고 맹활약을 보이던 여느때의 기자답지 않게 한쪽구석에 자리지킴만 하고 있었던것이였다. “,,, 이 괴상한 불명체의 정체에 대해 우리는 한 두마디로  억단을 내릴수 없습니다. 이 생명체가 항간에서 늘 말하는 미인어인지? 아니면 약물의 부작용, 혹은 근친결혼으로 초래된 기형아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과학환상영화에서 늘 보게 되는 별나라사람인지? 여하튼 기상천외한 일이라 해야겠습니다…”    간담회 참가자들이 필요이상 격동된 낯빛을 하고 너나없이 목청을 한 옥타브씩 살리고있었다. 그러나 그에 무감각한듯 철인은 도수안경너머로 이물질이 잠복해있는 신발을 멀거니 내려다볼뿐이였다. “아디다스표”신발, 기자의 한달 로임과 맞먹을 엄청난 값의 신발이였다. “명월”표 딸기술공장 ㄷ시 도매경영부의 방경리, 즉 그의 소꿉친구 방황씨의 적선이 있었기에 철인은 난생처음 그렇게 값진 신발을 신어 보는것이였다. 어느 변강의 시골에서 한 달을 사이 두고 이웃에서 둘은 태여났다. 발가벗고 고향의 강에서 무법자처럼 물장난도 쳤고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한학급에서 지내면서 시험답안 보고쓰기에서 “내조”를 해주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고등학부시험에서 방황은 음악계를, 철인은 신문계를 택했다. 그 후로 방씨는 고향소재지의 예술단에서 수석바이올린수, 국가1급 악사로 부상했고 철인은 “일요석간지”에 취직해 지금은 ㄷ시 주재기자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 그러던 방씨가 생명으로 아끼던 바이올린을 버렸다. 음악계와 고향사람들의 경아의 눈총속에 ㄷ시 “명월”표 술도매부 경영부 경리로 탈바꿈해 둘이는 다시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되였던것이다. 친구의 그루바꿈에 둘이는 다시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되였던것이다. 친구의 그루바꿈에 그 누구보다도 반감을 보였던 철인이였지만 여하튼 배달족이 몇몇 없는 산재지역에서 도타운 친구와의 만남인지라 기쁘기만 하였다. 그런 친구 방황이가 어느 날인가 행적을 감추어버렸다. 그렇게 증발되듯한지가 어언 넉달째 잡혀온다. 간담회의 연막탄 같은 담배연기속에서 철인은 자기를 내내 괴롭히고 있는 것이 신발속의 이물질인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이물질, 곧바로 그 “아디다스”를 사준 친구의 실종에 대한 불안임을 문뜩 느낄수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질서없이 떠올리는 사이 간담회는 어느새 끝났고 회의 책임자의 안내하에 모두는 의학원의 랭동실로 향했다.    … 랭기가  훅- 끼쳐왔다. 타일을 깐 바닥은 앙금진 랭기로 하여 유난히도 번들거렸다. 카드가 붙여진 커다란 서랍이 일매지게 서렬을 짓고있었다. 모두들 책임자가 건네주는 대로 마스크를 걸고 가운을 걸치고 슬리퍼를 바꾸어 신었다. 긴장이 서린 거친 호흡소리와 자박자박 슬리퍼 끄는 소리, 공연한 마른기침소리가 랭동실의 농도짙은 정적을 흔들었다. 랭동서랍을 지켜보며 철인은 은연중 약방의 각종 약재가 들어있는 서랍을 머리에 떠올렸다. 저 서랍속에 생명을 박제당한 하나 또 하나의 불우한 인간들이 들어있겠지? 개구리표본처럼… 하고 생각하니 부르르 진저리가 쳐졌다. 인솔자가 조심스레 그 중의 한 랭동서랍을 당겨 뽑았다.  “오???”  “정-말-이-네-에-?”  “입은 왜 저렇게 부죽히 나왔노?”  “머리칼을 좀 봐. 고수머리같군 그래.”   경아성속에 마그네슘섬광이 요란스레 번쩍이였다. 철인이만은 침체된 모습으로 맨 뒤에 동그마니 서있었다. 도수안경에 불려앉는 물방울을 닦아내며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 친구 어데로 갔을가?”   불감증의 도시   …친구의 점적에 대한 철인이의 불안은 간담회가 끝나 의학원대문을 나설 때까지 계속되고있었다. 제품구입외출이나 무역상담회를 위한 행차는 아닌 것 같았다. 평소에 그런 행사가 있다해도 열흘, 혹은 보름을 넘기는 때가 적었고 돌아오면 역에 내리기 바쁘게 철인이한테로 핸드폰을 쳐주군 하였다. 그리고는 둘이 함께 맥주집으로 흘러들어 억병으로 마셔대군 하였다. 그런데 이번 걸음은 장장 넉달을 잡았고 도타운 친구는 여전히 얼굴을 내밀지 않고있다. 더욱이 방황이가 맨 마지막으로 걸어온 전화가 철인을 불안케 하고있는것이였다. 핸드폰은 분명 달리는 차속에서 치고있었다. 어미가 흐릿한 말을 뭉그려 내뱉는 핸드폰의 임자는 만취한 상태였다.    “철인아야? 나 황이야. 황이란 말이야! ‘명월’경영부 방경리를 몰라?”    곁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여들어왔다. 분명 녀자의 웃음소리였다. 차의 오디오를 한껏 틀어놓아 무엇인가 지끈지끈 란타하는 것 같은 음악소리가 수화기의 벽을 쿵쿵 울리며 전해 오고있었다. 그 시끌벅적함속에서도 철인은 분명 그 음악의 곡조를 헤아려들을수 있었다.  베이료츠-“어떤 예술가의 생애”의 음조였다. 한 예술가의 흥망성쇠를 희곡적인 정절로 지은 17세기의 교항곡ㅡ 이 음악을 친구 방황이는 가장 즐겨 들었다. 더우기 하는 일이 여의치 못하거나 번뇌에 잠겼을 때, 만취했을 때면 꼭 이 곡을 틀군 하였다. 때문에 곁에서 곡조를 함께 익히게 된 철인이였다. 하지만 이 곡조만 나오면 철인은 또한 골살을 찡그리군 했다. 침울하기 그지없고 어덴가 염세적인 분위기가 저층에 짙게 깔린 음악이였던것이다. 지금 곡은 4악장에서 조약하고 있었다. 4악장의 제명은 “단두대에로”, 교향곡속의 화자가 사랑도 잃고 리상도 잃게 되자 련인을 죽이고 단두대로 오르는 바로 그 부분이였다. 원체 침울한 곡조는 핸드폰의 맑지 못한 전달과, 승용차의 엔진소리, 방황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괴성에 혼반되여있었고 그 음부마다 야릇한 불안의 덩이가 되여 철인의 고막이며 가슴이며를 울리고있었다.    “취한거요? 지금 뭣 하고있는거요?”  철인은 불안감을 곰삭이며 소리 높여 채문했다.    “나 지금 좋은 곳으루 가고있네. 엄마품으루, 그 따스하고 포근한 양수속으로 가고있네. 후핫하하하.”    용의를 알수 없는 허튼소리끝에 발작적인 웃음소리가 터져 올랐다. 등줄기를 서늘히 파 내리는 괴상한 웃음소리였다. 웃음소리를 중등내며 핸드폰도 끊겼다. 덴겁하여 방황의 핸드폰넘버를 눌렀다.    “용호가 전화기를 열지 않았습니다.”  기계적인 교환의 말소리만 들려올뿐이였다. 다시 방황의 저택에 전화를 걸었으나 받는 사람이 없었다. 장거리전화로 본 공장에 있는 그의 안해에게 련락하려 했으나 외출중이였다. 그날 저녁 철인은 잠을 잃고말았다. 가장 도타운 친구의 여태껏 밟아온 려정에 대해 새삼스레 반추해보게 되였다.    방황은 분명 전생에 음악과 인연의 끈을 가지고있는 사람이였다. 개구쟁이시절 강녘에서 버들피리 꺾어 불때부터 그는 그 간단하고 조야하기 그지없는 원시적인 도구로 여느 애들이 도저히 불어낼수 없는 곡조를 지어내군 했었다. 학교적 바이올린에 현혹했던 그는 숙소동학들에게서 소란스럽다는 리유로 곧잘 소박만군 했다. 그때면 그는 바이올린을 들고 조용히 자리를 뜨군 했다. 어느 겨울날 오밤중에 기숙사 화장실출입을 했던 학교사감은 그만 화장실 문곁에 뿌리내리고말았다. 매큼한 냄새가 충천하는 화장실 창문쪽에서 방황이가 몽유병환자마냥 두 눈 지그시 감고 바이올린에 신들려있었고 그 광경에 버릇된듯한 모양, 학생 하나가 한 켠에서 무감각하여 자기 “사무”를 보고 있는것이였다. 동학들은 누구나 그를 두고 못말려! 하는 태도들이였고 어떤이는 차분한 바이올린곡조를 들으면서 일을 치르면 리뇨가 잘된다고 악의없는 조롱을 하기도 했다. 음악학원응시시험에서 방황은 여느 응시생들과는 달리 간단한 기법연주를 보인 것이 아니라 수준급 바이올린스트들도 연주하기 어려워하는 “파그니니 24수 수상곡”을 켰다. 그 나이에 비해 더없이 탁마된 모습에 시험관들이 경아로 입을 딱 벌렸고 주감독은 격동된 나머지 “강압령”두 알을 삼키고나서 방황의 그 천부적인 손을 으스러져라 하고 부여잡았다. 그의 결혼 역시 음악을 전제로 한것이였다. 예술단 분조배우들과 함께 시골에 온돌공연을 갔다가 “베틀가”를 곧잘 부르는 시골학교의 음악교원과 호흡이 맞았던것이였다. 항시 천부적인 이들에게서만 볼수 있는 특유의 격정과 불온정감을 담을 듯 구부구불 온곱지 못하게 흘러내린 고수머리, 까닭 없이 그러나 지적인 기품이 어려 오만스레 들려진 유난히 운두높은 코와 그 코끝에 위태롭게 걸려진 도수안경, 쉼없이 맞비비거나 박자쳐주군 하면서 정서미를 환기시켜주는 기름진 손마디… 이 친구를 대할 때마다 철인은 곧 “사물놀이”의 곡조를 머리에 떠올리군 했다. 필사로 음조의 한계에까지 치닫다가도 돌처럼 추락해내려 음조를 껌벅 죽이기도 하면서 사람들을 무아의 경지에로 환혹해가는 그런 부풀디 부푼 정감의 덩어리로 주물된 존재로 방황에 대한 인상을 각인하게 된것이다…     갑자기 터져오른 경적이 철인의 친구에 대한 련민의 추적을 중둥 잘랐다. 의학원 정문곁에 벤츠600 한대가 정차해있었고 그 차의 경적은 분명 철인을 바라고 울려지고 있는것이였다. 철인은 차를 향해 미적미적 다가갔다. 도어의 커피색유리가 스르륵 내려졌고 안으로부터 낯익으나 그닥 반갑지 않고, 그러나 요사이 꼭 찾고만싶었던 얼굴 하나가 불쑥 나왔다. 방황의 안해, 적절히 말하면 후실- 황금전(黃金錢)이였다.    “오래간만이네요, 철인씨.’    황금전이 입귀로 웃었다. 허연 차아가, 허옇다 못해 어덴가 푸른 기운이 감돌고있는 가짜 치아가(방황은 안해가 이발미용을 하고 유방확대수술까지 받았다는것조차 철인한테 털어놓는 시럽쟁이 친구였다) 유난히 철인의 시선을 자극했다. 이 녀자만 만나면 마냥 까닭모를 한기를 느끼군 했다. 푸른 칠갑을 올린 눈두덩, 허연 이발, 자주빛 루즈를 진하게 바른 입술, 그리고 목이며 손목이며 손가락에서 현시하고있는 금은장신구들이 그 랭의를 더 해주는상싶었다. 어쩌다 친구지간에 술잔을 기울이려고 방황의 저택을 찾을 때도 녀자의 손맛이 배인 맛갈스런 김치나 국 대신 포장식품들을 가위로 썩둑썩둑 잘라 부어놓는 그녀가 철인에게는 방황의 애젊은 후처이기보다는 “명월”표 딸기술공장 황금전공장장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안겨들군 했다. 방황의 첫혼인이 보뚝에 물이 새는 것을 막아보려 애도 써봤던 철인이였다. 그보다도 음악의 드넓은 대륙에서 활보하는 방황이를 물에서 화페의 바다로 끌어들이고 행복했던 가정을 쑥밭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이 녀자라는데서 오는 거부감은 컸다.    “그러잖아도 찾으려던 참이였습니다.”    철인이 반갑다는듯한 기색을 만들어 보이면서 본제를 꺼냈다.    “용건이 뭔데요?”    “제 친구 말입니다. 방황씨가 여태 소식 없어서… 그러다 형수은 그 멋진 남편을 덜컥 잃기라도 하면 어쩔려구요.”    “웃기시네-“    웃음의 홍수가 차창사이로 터져 나왔다. 어덴가 과장된 웃음을 계속하면서 황금전이 외려 반문을 내들었다.    “철인씨는 뭐 우리 주정뱅이나그네의 파출부라도 되나봐. 돌장이도 아닌 사람 제집 찾지 못할 가봐서요.”    “그저 웃고만 있을 일 같지 않은데요. 한 두달도 아니고 넉달이나 소식 한 장 없으니…”    심각한 낯빛의 철인이 승용차 지붕을 손으로 짚으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여하튼 고마워요. 걱정해주셔서. 피서지를 찾았거나 마작친구들과 밤새기를 하고있는 것쯤으로 생각해두세요. 자, 김기사 이젠 고만 가보지요.”    황금전은 떠올릴감이 못 된다는듯 청량제 같은 어투로 철인의 걱정을 무질러버렸다.     “의학원 제약공장서 요사이 뭐 인체태반으로 미용보건품을 만들었다나요. 몇갑 써볼가 해서요. 자, 그럼… 놀러 오세요.”    유리가 철판처럼 사이를 가로막으며 올려졌고 부귀, 우월감, 오만과 휘발유냄새를 뒤로 던지며 차는 철인의 앞을 휘익- 스쳐지나버렸다. 철인은 한동안 망연한 기색이 되여 그 자리에 뿌리내려버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와 살밭은 사람에 대한 저런 불감스런 자세가 그의 불만의 면적을 크게 해 주고있었다. 하면 자기가 괜스런 걱정을 키우고 있지 않나 하는 자문이 들었다. 발바닥의 괴로움이 다시 한번 감지되여왔다. 철인은 신을 벗어들고 체증기어려 동작으로 털어댔다. 번거롭다는듯 털어댔다. 그러나 마음속에 덩어리진 이물질은 종시 털어낼수 없었다.   낯선 자를 위한 족보      ᅀㄷ시 해변료양소 구역에서 발견된 불명의 생명체에 대한 가설A—  “미국의 일부 과학자들은 해양심처이 어떤 곳에 지력이 고도로 발달한 생명체 해저인이 있을수 있다고 인정하고있다.    그 사례로 보면: 1973년 4월 단니 데르모니라고 하는 화물선 선장이 버무다삼각주 부근의 스트리움 항만에서 려송연처럼 길죽한 머리를 가진 해저인을 발견했다.  미국의 UFO전문가 이반, 쌍드센도 1963년 버우더거 동남부의 바다에서 수상괴물을 발견했다. 해군기지에서도 이를 발견하고 한 척의 구축함과 잠수정을 내여 500해리를 수색해냈으나 끝내 잡지 못하고말았다.    수중괴물을 발견한 사례는 이뿐만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널리 전해 지고있다. 미국 북부의 쎈푸른호, 카나다의 웬니버거시스호, 일본의 오까다호, 뿐만 아니라 스위스, 뉴질랜드, 오스트랄리아 등지에서도 련이어 수중괴물이 나타 나고있다. 근자에 멀리도 아닌 우리 주변의 장백산천지에서도 수중괴물이 나타나 과학계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있다. 이러한 사례와 이 불명체의 형태에 대한 수치로 비해볼 때 새로운 종류의 수중괴물로 우리는 가설해볼수 있다…”    ᅀㄷ시 해변료양소 구역에서 발견된 불명의 생명체에 대한 가설 B-    추산에 의하면 은하계에는 태양계와 비슷한 성계가 400억개나 있다. 그중 10분의 1은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다. 지구와 비슷한 물질결구조건을 가지고있으면 생명을 온양하고 발전시킬수 있다. 이로써 우주인의 가설이 설립되는것이다. 지혜가 우리보다 앞선것으로 추정되고있는 그들의 지구방문사례도 세계 각지에서 전설같이 전해지고있다. 이로 볼 때…”    ᅀㄷ시 해변료양소 구역에서 발견된 불명의 생명체에 대한 가설 C-    “프랑스의 과학자 미께르 오덴은 인류의 선조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내놓았다. 학설에 의하면 인류의 어떤 행위는 원숭이와 비슷하지만 포유동물들의 온화함과 민감성, 우애의 본성은 인류와 더 근사한 점이 많다는것이다. 원숭이는 눈물을 흘릴줄 모르지만 바다고래와 같은 기타 해양포유동물들은 눈물을 흘린다. 인류는 유일하게 염분을 함유한 눈물을 흘리는 령장류 동물이다. 이는 일찍 해양생활을 한데서 기인된것일수 있다. 사람과 바다포유동물에게는 피하지방이 있지만 원숭이에게는 없다… 이런 허다한 연구로부터 인류의 선조는 수중이 모종 령장동물로 가능성연구를 할수 있다. 우리 시에서 발견한 기이한 생물체가 이 가설을 증명해줄 유력한 사체표본일는지 모른다….”    … 얼마전 그 문제의 기이한 생명체에 대한 연구회가 발족되였고 따라서 연구학가들이 각종 가설을 들고 나와서 갑론을박의 쟁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철인은 또 한번 수동적인 자세가 되여 연구회 회장 한구석에 자리지킴을 하고있었다. 생명체 발견에 대한 보도에 열성을 보이지 않은데서 주필로부터 단단히 신칙을 받았던 그였다. 연구회는 시적으로도 손꼽히게 호화의 극으로 달리고있는 료리집에서 열리고있었다. 식탁우에서 과학적 가설과 그에 따른 수치가 여태 먹어 못본 료리처럼 오르내리고있는것이다. 몇몇이 점액질 같이 끈적한 가설을 지루하게 늘여놓는 외 모두는 감질난 눈매로 하회— 풍성한 만찬을 기다리고있었다. 연구회 후원인과 곁을 묻어선 허드레들이 진짜 연구원들보다 더 많았던것이다. 로임족들이 들어서기엔 이슬람교도들의 메카의 성지로 들어서기처럼 어마어마한 이곳 행차를 철인은 해본 적 있었다.    바로 몇 달전 방황이와 함께였다. 한 구석에서 소형악대가 울려주는 음악을 들으며 음식의 맛보다 호화로움과 마른 호기를 맛보았었다. 친구를 대동해왔던 방황은 얼마안되여 흠뻑 취해버렸다. 손이 떨리면 바이올린 켜는데 지장이 된다며 술을 끊었던 방황이가 요사이 술을 다시 붙였고 또한 평소와는 달리 빨리 취하군 했다. 마냥 진한 독백같던 소리도 햇내기 배우가 대사외우듯 더듬거렸고 그 억양도 시르죽어있었다. 게 다리 한짝을 입에 물고 그 속의 들큼한 속살을 빨아내느라 량볼에 기승스레 홈을 파던 방황이가 느닷없이 악대쪽을 바라고 식혜먹은 상을 지었다. 요염하나 내용 없게 생긴 얼굴을 한 녀가수가 까닭없는 애수를 쥐여짜며 류행가요를 부르고있었다.    “그만 집어쳐!”     방황이가 필요이상으로 격동돼 하며 그쪽을 바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 괴성에 가까운 소리에 곡이 뚝 멎었다. 식객들의 눈길이 한결같이 그를 바라고 몰부어졌다.    “왜 이래? 취했나.”    철인이 덴겁하여 친구의 팔뚝을 부여잡았다. 그 손을 뿌려치고 방황은 비칠거리며 악대쪽으로 다가갔다. 쟈즈북, 쌕스폰, 기타, 바이올린… 악사들을 하나하나 참빗질하면서 눈꼴 사납게 내려다보았다.    “쇠통 이렇게 염소 감기앓는 소리밖에 없어?”    방황이 방게 다리로 쟈즈북에 달린 쟁쟁이를 후려갈겼다. 때애앵- 듣그럽고 아츠러운 소리가 울렸다. 정장차림의 악사들은 눈앞의 이 주정뱅이를 일순 어떻게 주체할 길 없어 멍하나 당하고만 있었다. 젊은 식객 하나가 기분 잡친듯 씩씩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철인이 황급히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허리를 굽석여보였다.  “죄송합니다. 이거 대단히 죄송합니다. 제 친구가 취한것같구만요.”  철인의 진실에 사죄에 막힌듯 그 사람은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한면 방황의 취기는 여전히 곰삭을줄 모르고 외려 충천해있었다. 바이올린수앞으로 바싹 다가들었다.  “나무통을 켜고있는거야 지금?”  사람좋아보이는 바이올린수는 방황의 실태에 그저 웃어주고만 있었다. 방황은 그에게서 바이올린을 앗아들었다.  “나 가르쳐줄 테니 어디 좀 봐라.”  방황이 바이올린 활로 흘러내리는 안경테를 추어올렸다.  “바이올린연주가란 투우사의 진정, 나이트클럽 마담의 활력, 불교도의 경건함을 갖추어야 하는거야.”  방황이 바이올린을 턱에 가져다대고 활대를 추켜들었다. 주정뱅이의 손에서 흘러나온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차분하고 음악감있는 곡조가 울려나왔다. 식객들의 아니꼬움에 비틀렸던 눈길이 풀리고 점점 흠상의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웬 변고냐며 주방으로부터 달려나왔던 마담이 걱정을 해소한듯 한켠에 서버렸고 악사들도 저마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취기에 자기를 주체할길 없어하던 방황은 곡상에 빠져버린듯했다.  그때 수석바이올린수였던 그에게는 그렇다 할만한 바이올린조차 없었다. 도회지의 경기가 불황에 처한 조그마한 악기공장에서 대강 만들어낸 그런 바이올린밖에 없었다. 질좋은 수입제 바이올린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안면을 몰수하고 퇴근하면 유치원생들의 가정음악교사를 맡아보았었다. 돈후한 성정미의 안해 역시 그를 도와 학교에서 퇴근하며 부업거리를 맡아했다. 부근의 술공장을 찾아 술상표를 붙여주는 일이였다. 경기가 호황이였던 “명월”표 딸기술공장에는 림시공들이 많이 수요되였고 하여 포장직장의 흐름식작업대곁에는 8시간외 부업거리를 찾아나선 도회지의 소시민들이 많았다. 그러는 안해를 맞으러 방황이가 녀공장장 황금전의 눈에 들었다. 우리 민족타입의 용모와는 이색적인데가 있는 고수머리, 운두높은 코와 음악가의 독특한 제슈체어가 마음에 들었던것이다. 방황은 인차 TV광고화면에 올랐다. 슈베르트의 곡 한곡조를 연주해보이고나서 황금빛의 술이 담긴 굽높은 술잔을 들어보이면서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표딸기술에서 당신은 음악과 같은 차분함과 격정을 맛보게 될것입니다.” 그저 그런 한대목이였다. 그런데 “그저 내린 한대목”에서 방황은 자기가 목청 쉬게 가정교사를 맡아본 보수와 안해가 손금 다슬게 벌어온 푼돈보다 곱으로 되는 광고비를 받을수 있었다. 여느 녀사업가들의 이미지가 그러하듯 가정의 비운을 여러 차례 겪고 단신으로 지내던 녀공장장과 도회지 음악권내에서 큰 기침을 할만했던 방황은 재빨리 의기투합이 되였다. 조강지처와 아홉살난 아들애를 버렸다는 자격지심이 한동안 방황이를 못견디게 괴롭혔으나 새로운 세계가 주는 유혹에 인차 그한 자책을 잊어버린듯 했다. 진짜바이올린의 꿈을, 음악대가의 기품에 맞는 생활을 인제야 이루게 되였다고 그는 생각는듯 했다.…  곡이 끝나자 악사와 식객들은 넓은 아량으로 주정뱅이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방금전까지도 술량이 많은 것 같다고 막던 철인은 술컵에 맥주를 가득 따라 내밀었다.  “멋졌어! 정말이야. 이 알코올량반.”  안경을 벗어들고 넥타이끝으로 안경알을 닦아내는 방황이의 손이 사뭇 떨리였다.  “4년말이야. 꼭 4년만에 바이올린을 다시 만져보는것이였어. 그런데…”  철인의 술을 받아 단숨에 굽내고는 방황은 탈진한듯한 눈길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염세, 권태와 소외가 혼반죽된 표정이 그의 얼굴에 지어지고있었다.  “그런데… 너희들 음악떨거지들 듣기엔 비슷한 것 같애도 엉망이였다. 그저 흉내에 지나지 않아. 이 손으로…”  방황이 술기운에 떨리는 손을 쳐들어 눈가까이에 대였다.  “이 천재의 손으로 이제는 누룩이나 주무르고 술집녀자나 주무를수밖에 없게 됐단 말이요.”  탕갈된 자존을 찾을길 없어하며 방황은 주먹으로 식탁을 탕! 내리쳤다. 빈 접시들이 반자 높이로 떴고 금방 온화함을 찾았던 식객들에 다시 의문과 적의가 서려들었다…….  기이한 생명체 연구회에서 철인은 내내 아교풀처럼 뇌리속에 끈끈히 도배된 친구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방황이의 행적에 대한 여러가지 방정식을 풀고있었다.  외로운자의 침실  초인종의 버튼이 시한탄의 점화단추처럼 보였다. 허나 철인은 그 단추를 누르고야말았다. 둔중한 방문이 열리며 집주인이 몸을 반쯤 내밀었다.  “어머? 철인씨 아니세요? 한밤중에 어찌된 행차죠?”  황금전이 문고리를 잡은채 물었다.  “긴히… 여쭐 말 있어서요.”  “무슨 급한 일이기에 이렇게 오밤중에 찾아요셨죠? 래일로 미루든지 하실걸… 나… 사무에 바쁜 몸인데…”  황금전은 마지못해 문을 열고 들어오라는 기미를 보였다. 덜 반가운 눈매였다. 집안에서 질식할듯한 담배연기가 운무처럼 떠돌고있었다. 안방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일었다. 마작쪽 벌걱이는 소리였다.  (원체 사무를 보고있었군!)  철인은 의미있는 눈길로 황금전을 건너다보았다. 황금전은 손에 든 마작쪽을 만지작거리며 막무가내라는듯 웃어보였다.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지금 막 끝내는 중이얘요. 공상은행서 친구들이 오는 바람에 …”  철인은 객실의 쏘파에 눌러앉아버렸고 황금전은 안방으로 휑하니 사라져버렸다. 마작 씻는 소리가 다시 듣그럽게 울려왔다. 불명체연구회끝에 친구의 행적에 대한 념과로 수삽해나는 마음을 무마하련듯 술을 많이 마셨고 지나치던 걸음에 술기운을 빌어 황금전을 찾은것이였다.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되여버린 철인은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마작 씻는 소리의 회수만 세고있었다.  “요빙(一瓶)”… “빠완(八万)”…”펑(风)”…”차(叉)”…얼완(二万)…”후라(胡라)”… 좌르륵- 좌르륵 지금 마작에 여념없는 녀공장장은 철인이와 방황이네 촌마을을 끼고있는 도회지의 사람이였다. 철인이네 마을은 린근에 소문난 딸기촌이였다. 120호에서 90여호나 딸기재배를 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에 영양단지모까지 했으며 지면비닐박막피복재배를 도입해 마을사람들의 수입이 짭짤했다. 그러던중 이 순발력 있고 손탁이 세기로 소문난 녀인이 마을에 나타났다. 술공장의 원료로 이 마을의 딸기를 독점해 사들였다. 번거롭게 뙤약볕에 나앉아 싸구려를 부르던 절차를 생략해버린 마을의 딸기재배호들은 모두 그에게 쏠렸다. 새로 내놓은 술품종에 마을이름을 따서 “명월표”라 하였다. 그런데 조선족을 포함한 동북지역사람들의 호방한 성격에는 과일술보다 배갈쪽이 더 도타운편이였다. 하여 연해지구로 진출했고 공장장의 새남편 방황이가 ㄷ시 도매부의 경리라는 생광스러운 직을 가지고 출두하게 되였다. 그런데 이것이 호황이였던 술공장이 불황의 습지로 향해 내디딘 첫발자욱일줄은 그들도 생각지 못했다. 황금전이 배후에서 법도처럼 하나에서 열까지 원격조종을 하고 방황이 열심히 뛰였지만 무지랭이의 샘처럼 일은 꼬여만 갔다. 소비수준이 껑충 높은 연해도시에서 루이십삼이요, 나뽈레옹코냑이요, 인두마요, 금돛배요, 훤니스요 하고 명표술에 익숙해지는 그들에게서 “명월”표는 봉황발치의 촌닭이나 다름없었다. 포장에도 신경쓰고 광고전략에도 땀을 빼보이며 방황이는 진동한동 달아다녔으나 원체 아름다운 음부로 채워져야 할 예술가의 머리에 금전의 수치가 오르내리니 기량발휘가 뜻대로 되여주지 않았다. 제품이 적치된데다가 딸기재배호들의 적극성과 후사를 고려하여 울며 겨자먹기로 사들인 그 딸기마저 썩어나가다보니 “명월표”술공장은 완연 병사(病死)직전의 상태에서 대들보가 무너지는듯한 퇴력감을 느끼고있었다. 그한 상계의 풍진변화에 동조하지 못한 책임이 방황으로 해서 인기되기나 한듯 녀공장장은 모든 체증을 방황에게 내뿜었다. 그제야 방황은 “명월”표가 음악같이 차분하고 정감에 배인 미주인 것이 아니라 쓰디쓴 고배임을 감득할수 있었다…  “사무”는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철인은 용케도 그때까지 눌러앉아있었다. 친구에 대한 근념과 감정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주고있었다.  “방황씨의 일 때문에 왔죠. 맞죠?”  마작상대들을 바래고나서 황금전이 객실로 들어와 팔짱을 끼고 섰다. 워낙 그런 녀자여서 례절을 기대할 게제가 못된다고 철인은 생각해왔었다. 황금전은 탁자우에 담배갑을 집어들고 한개비 뽑아 내밀었다.  “알고있겠지만 전 원체 담배를 대지 않습니다.”  “언제보나 철인씬 고정하셔… 지푸래기 같은 친구에 대해 이렇게 걱정하는것 봐도 그렇고.”  황금전은 담배에 불을 당겨 입에 물었다.  “그런 얘긴 삼가해주십쇼. 그녘에서 남편되는분이라면 저한텐 둘도 없는 소꿉친구의 립장이니깐.”  철인의 인내가 스프링처럼 조약하며 목청이 한옥타브 올랐다.  황금전은 담배연기를 훅 내뿜었다. 겨우 두어모금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틀어박았다. 철인은 또다시 랭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죄다 털어놓아야겠어요. 언제든 다른 사람은 아닌 가까운 친구한테는 말하려던 참이였어요. 우리는…”  황금전은 손끝에 묻은 담뱃재를 뽀드득 소리나게 문질렀다.  “우린 일년째나 별거한 사이였어요.”  철인은 고개를 번쩍 쳐들며 그녀의 입을 지켜보았다. 그 놀라움에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은채 황금전은 말을 계속했다.  “이번에 내가 이곳으로 온것도 그 사람 찾으러 온 것이 아니예요. 이곳 도매부가 파국이 돼버리니 수습해보려고 온 참이였죠.”  “그렇다고 해서 어디 박혀있는지 행적조차 묻지 않아 될일입니까?”  철인은 또 한번 격해지며 물었다. 황금전이 침실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보세요. 보면 알게 될거예요.”  침실, 방황의 침실이라 일컫는 그곳에 들어선 철인은 다른 시대의 다른 곳에 온듯한 표정을 짓고말았다. 수족관에 잘못 들어서지 않았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일전에 함께 잠자군 했던 친구의 침실은 엉뚱하게 변모되여있었다. 온 벽에는 수위의 깊이로 본 해양동물분포도가 붙어있었고 침실바닥에는 어물가게점의 그것처럼 네모지고 둥근 어항들이 가득 놓여져있었다. 창의 카텐에는 풍어기의 도안이 찍혀있었고 창턱에는 조가비며 바다돌들이 무둑히 쌓여있었다. 책궤속의 악보책이며 음악리론저서들은 사라지고 대신 줄느베르의 “바다송”, “해양생물학”, “잠수기법”, “돌고래의 이야기”… 등으로 죄다 해양과 관련된 서적들이 빼곡히 꽂혀져있었다. 침대우에 소책자 하나가 펼쳐져있었다. 안데르쎈의 동화 “인어공주”였다. 벽에는 또 락서처럼 무언가 씌여져 있었다. 근자에 문예지에 심심찮게 글을 퍼내고있는 어느 한 청년시인의 “바다의 환상”이라는 제명의 시였다.  “손바닥을 펴들고  이랑짓는 실파도 같은 손금을 본다.  창을 뚫고 금시 갯내음의 향이 풍겨오는듯  때로 나는 찬란한 어족이 되여  무양히 굼닐 바다를 환상해본다.”  어덴가 불안한 충동감으로 갈긴듯 글체는 매우 란잡했다.  “그 사람… 변태얘요.”  황금전은 침을 뱉듯 입가로 내뱉었다.  “종일 목욕통에서 그짓하려고 들어요.”  황금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사마저 꺼내들었다.  “제가 물고기료리 좋아한다구 손찌검까지 하려 들어요. 물고기가 우리 선조요 뭐요 미친 사람 같은 소릴 하면서. 또 잠자기전 나보구 꼭 라는 동화를 읽어달라구 해요. 몇십번이나 읽어줘도 계속 그 본새얘요. 꼭마치 유치원신입생같아요. 예술가들의 개성이 독특해서 그런지는 알수 없지만 전 참을수 없어요.ㅇ”  철인은 일순 자기를 어떻게 주체했으면 좋을지 몰라했다. 어느때인가 맥주를 마시다가 방황이 건명태를 맛나게 뜯고있는 자기를 보고 “너희들은 지금 생명을 참살하고있어!” 하고 버럭 소리지르며 명태를 앗아내던 일이 문뜩 떠올랐다. 그때 취한줄로만 알고 그런대로 방치해두었던 철인이였다.  (그러면 이 친구가 정신질환을 앓고있었단 말인가?)  황금전이 광고팜플렛 하나를 안색이 어두워지고있는 철인앞에 내밀었다.  “언젠가부턴 이 계집년하고 놀아나고있어요. KTV녀자라나요. 이번에도 아마 이 년을 끼고 어데론가 꺼져버린 것 같아야ㅛ.”  팜플렛 겉가위에는 “명월표”술병을 들고 선정적인 웃음을 짓고있는 광고모델 하나가 찍혀있었다. 어데선가 꼭 본듯한 모습이였다. 팜플렛속의 녀자  언젠가 와본적 있는 KTV를 철인은 어렵게 찾아내였다. 문전에서 한동안 멈칫거리다가 흔들이문을 들이밀었다. 채광이 들어올수 없게 밀페식으로 만든 안은 어두웠다. 한낮에도 색등을 켜고있있었다. 일순 들이닥친 어둠 때문에 철인은 눈시울을 좁혔다. 카운터에서 복부원하나가 뒤늦게 철인을 보아내고 몸을 일으켰다. “오셨어요.” 하면서 귀에서 무언가 끄집어내였다. 레시바였다. 잘칵하고 휴대폰록음기를 끄면서 그녀는 또 한번 물음을 던져왔다.  “노래하러 오셨어요? 몇분이죠?”  철인은 어데서부터 착수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호주머니에서 광고팜플렛을 꺼내들었다. 겉가위의 모델을 식지로 그루박았다. “이 아가씰 찾아보려고 합니다.”  카운터속 그녀의 눈꼬리가 이상하다는듯 쳐들리고있었다. 팜플렛을 받아들던 그녀가 저도 모르게 경아성을 질렀다.  “어머- 얘가 이런데 다 나왔어. 인물값을 하긴 하는가봐. 그런데…”  아가씨는 철인이한테로 다시한번 의문에 쳐들린 눈매를 보내왔다.  “예하곤 어떻게 되는 사이죠?”  “잘 아는 사이입니다. 요긴한 일 있어 그러니 불러주십시오.”  도수안경의 점잖은 타입과 박진하게 청구하는 진솔한 철인의 태도에 아가씨는 경계의 눈빛을 거두고있는듯했다.  “금방 손님들과 노래하러 들어갔어요. 좀 기다려주실래요.”  철인은 카운터 맞은켠의 쏘파에 눌러앉았다. 그 아가씨가 해바라기 한접시를 가져다주었다. 심심찮게 까라며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 귀에 레시바를 걸었다. 음악에 맞춰 가볍게 머리를 저어댔다.  이곳으로 철인은 방황과 같이 온적 있었다. 이전과 달리 시간에 매이고 공리에 매여있는 방황에게는 철인이를 만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시간인듯했다. 하여 스트레스를 풀 곳을 찾을 때면 어김없이 철인을 동반하군 했다. 많은 유흥업소들의 경쟁중에서 일부 KTV들은 술좌석배동녀들을 두고 그로써 손님을 끌었기에 이런 곳은 양지를 멀리한 뒤안길로 사람들의 인상속에 메모되여있는터였다. 그런 행렬속에 조선족아가씨들이 많이 끼인데서 가슴아픈 나머지 철인은 “연해도시의 조선족 탈선녀”들이라는 보도를 쓴 일도 있었다. 그날 방황은 글쓰는 사람이면 체험이 많아얀다며 안면 가려워하는 그를 부득부득 KTV로 잡아끌었다. 한꺼번에 아가씨 넷을 불러들였다. 방황의 경리신분을 알고있는듯 넷은 살이라도 베여줄 듯 다가들며 간친스레 해롱거렸다. 한증막같이 더운 밀페식방, 노래반주기로 흐르는 애상적인 곡조, 팔굽에 물컹 맞혀오는 아가씨의 거대한 젖가슴… 철인은 자꾸만 부자연스러워지는 자신을 주체할길 없어하였다. 허나 방황은 이런 곳에 절어온듯한 모습이였다. 악기다루듯 그녀들을 능숙하게 다루어냈다. 부어주는 술도 쭉쭉 굽을 내고 까서 디밀어주는 해바라기도 넙적넙적 받아먹고나서는 아가씨의 궁둥이를 잔뜩 그러안고 볼과 볼을 딱 붙인채 춤을 추기도 했다. 잠간사이 방황은 취기가 력력했다. 그한 은밀한 짓거리에도 생증이 났던지 지갑에서 벌건 지페 한묶음을 꺼내들었다. 꽤 큰 수목의 돈이였다. 돈을 본 아가씨들의 눈이 맹수의 그것처럼 빛났다.  “오늘 저녁 이 종이장이 엷어질 때까지 해보는거야.”  그 액수의 부피감에 정비례되여 아가씨들은 환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만큼 우리 열싸게 노는거야. 자, 우리 수수께끼 풀이를 해볼가? 우선 저 반주기 끄고 …”  필경은 예술에 투혼했던 피는 속일수 없는법, 방황은 격에 틀리게 그네들과 명곡 알아맞추기 유희를 벌려나갔다. 작곡가 이름이나 주어내면 상으로 지페 한장 뽑아 아가씨의 앞가슴에 쑤셔박아주고 맞추지 못할 때엔 가차없이 궁둥이를 철썩 갈기고 벌주를 들이대기도 했다.  “모자라트 운명교향곡도 몰라!” 철썩!  “뭐 넌 그래도 베토벤님은 알고있구나. 옜다!”  “야, 넌 그저 한국노래밖에 몰라. 부옇게 남자한테 떼우고 징징 우는 소리밖에 없는거. 너 이란 사랑의 교향곡 못들어봤니?”  철인은 그러는 방황의 짓거리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저도 몰래 무대우에서 열련하던 그전날의 모습과 오늘날 KTV방에서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고있는 방황의 모습을 견주어보았다. 다른 공식의 삶을 살고있는 지금의 방황에게서 철인은 한마리의 화려한 나비가 남기고 떠나버린 빈 고치나 다름없는 허무를 느끼고있었다. 철인은 그 어떤 반감과 실의에 빠진듯한 눈길로 한동안 그를 건너다보고있었다. 그 내내 고쳐짓지 못한 랭철한 눈빛이 방황의 눈과 맞부딤 했다. 방황은 질린듯 시선을 거두었다.  “왜 그래? 선생은? 술도 마시잖고.”  낯꽃을 붉히며 방황이 물었다.  “나 지금 웬 소년 하날 생각코있는중이요.”  철인은 여전히 사색에서 빠져나오지 못한채 혼자말처럼 말했다.  “뉜데?”  “화장실에서도 바이올린련습을 해왔던 어떤 남자앨.”  녀급을 조여안았던 방황의 팔이 스스르 풀렸다. 덫을 맞은듯 방금전의 안색을 험상궂게 바꾸며 곁에 바싹 다가앉은 아가씨의 어깨를 데퉁스레 밀어냈다.  “받쳐주는 녀자도 못따먹고 너 왜 그런 말만 하고 앉았어? 에익, 김 샌다- 술이나 따라아!”  순간 빙점으로 내려간 기분전환에 시끌벅적하던 방에 일순 정적이 흘렀다. 암울해진 표정으로 거품이 느긋이 흘러내리는 맥주 한컵을 단숨에 굽낸 방황은 그때까지 한손에 잔뜩 거머쥔 지페한장을 수습할 길 없어하다가 허공에 홱 내쳐버렸다. 돈나비가 너울너울 란무했다. 방황은 맥죽거품이 게발려진 안경너머로 그 돈의 란무를 바보처럼 지켜보았다. 그러다 곁에 앉은 아가씨의 무릎에 무너져내렸다. 피난처를 찾는 장꿩처럼 그 무릎에 머리를 한껏 처박았다. 그러는 그의 두어깨가 톱질하고있었다. 나중에 그는 괴상한 곡성으로 울기 시작했다….  드디여 저쪽 밀페식방의 문이 열리며 취기에 불깃불깃 색을 먹은 남정 몇몇이 나오고 그뒤에 농염한 술좌석 배동녀들이 줄레줄레 나와 손님을 문께까지 바래주었다.  “춘매, 손님 오셨다- “  카운터의 아가씨가 손님들이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나른히 돌아서는 아가씨들중의 하나를 불렀다. “나한테로? 손님이?”  달달 볶은 머리를 한, 눈이 유난히 큰 아가씨가 반문하며 다가왔다. 철인 식지로 안경테를 추어올렸다. 춘매. 그날 방황이 낸 명곡제목을 많이 맞추어 팁을 제일 많이 탔던 그녀를, 팜플렛속에 찍혀진 그녀를 철인은 대번에 알아낼수 있었다.  “뉘신데요?”  기억에 없다는듯 아가씨는 철인을 바라고 눈갓을 치켜올렸다. 매일마다 기계적으로 손님을 치러내는지라 모를법도 했다.  “모르겠어요? 그럼 나를 알아 못본다쳐도 명월술 도매부의 방경리는 알고있겠지요.”  철인 다급함을  참지 못해 본문을 내들었다. 순간, 아가씨의 안색이 해갈하게 질리고있음을 철인은 희미한 불빛에서도 보아낼수 있었다. 아가씨의 포만한 입술이 바르르 떨리고있었다. 그 입술을 옥물며 춘매아가씨는 고개를 틀었다.  “나 그런 사람 몰라요.”  “왜 회피하려 드는겁니까?”  “나 그런 사람 몰라욧!”  발작적인 투명한 고음을 내지르며 그녀는 몸을 홱 돌려 휴게실로 들어가려 하였다.  “춘매아가씨!”  그러는 그녀의 발목을 철인이 저력감있는 부름이 휘감아 당겼다.  “그럼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죠?”  철인은 팜플렛을 그녀앞에 펼쳐들었다. 그녀는 질린듯 그 자리에 멈춰서버렸다. 철인은 그녀의 경계의 마음을 해소하련듯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난 이런 사람입니다. 방겨일와 가까운 사이면 혹시 이 이름을 들어본적 있을겁니다.’  … 둘은 KTV의 빈방에 마주앉았다. 잠자버린 TV화면과 희미한 불빛아래에 가라앉은 주홍빛주단이 방안의 괴적함을 더해주고있었다. 철인은 방황과의 도타운 관계사며 그의 실종이며에 대해 우선 간추려 이야기해주었다.  “담배 있나요?”  여직 곰상히 들어주고만 있던 춘매가 물어왔다.  “사내란 놈이 담배를 몰라놔서. 저 한갑 요구하지요. 내가 한턱 내는 세치고.”  카운터의 아가씨가 “힐톤” 한갑을 가져왔다. 수상쩍은듯한 눈으로 둘이를 훔쳐보았다.  “그 사람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많은 애들중에 날 특별히 좋아했어요. 내가 다른 애들보다 노래기량이 좀 삐여난편이였거든요.”  담배를 몇모금 맛나게 빨고나서 실눈을 지으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리구, 돈 많다고 녀자와 지분거리는걸 업으루 삼고있는 그런 사람 같지도 않았어요. 여직 제 몸 한번 만져보지 않았더랬어요.”  아치를 틀며 피여오르는 담배연기를 지켜보며 느릿한 어투로 그녀는 기억을 더듬어갔다.  “광고사진을 찍고 돈도 많이 줬어요. 그리구… 내가 고향에 돌아가 유치원 꾸리는걸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그네도 있고 회전목마도 있는 유아원 … 유치원교양원이 되는 것이 저에게는 둘도 없는 소원이였어요. 지금 이런 일을 하게까지 되였습니다만…”  자조의 그늘이 드리운 어조로 말하며 그녀는 씁쓸하니 웃었다.  “그러다 그 집 사람한테 들통이 나버렸지요. 그 녀공장장… 사람잡게 생긴 광대뼈를 가진 녀자 있잖아요. 우린 한동안 사이가 뜸해졌댔어요. 그러다 어느날 … 넉달전이니깐… 6월중순쯤이였죠? 그 사람이 문득 찾아왔어요. 몸도 쉬울 겸 마음도 쉬울 겸 멀리 놀러 가자는것이였어요. 바이올린 하나만 달랑 들고서 말이예요. 우린 해변료양소로 내려갔더랬어요.”  “네에??? 해변료양소로요?”  철인 몸을 후딱 일으키며 웨지다싶이 물었다. 왜서 그렇게 온몸으로 경악했는지 자신도 알길 없었다. 그저 순간 무언가 뇌리에서 번개처럼 번쩍 톱날을 긋는 것이 있었다. 그의 반응을 느끼지 못한채 낡은 레코드처럼 춘매는 추억의 연장작업에 열심하고있었다.  “그날 밤, 주숙을 잡고서 시종 들뜬 마음이였어요. 비록 버려진 몸이지마는 그렇게 신분있고 인격좋은 사람한테 모든걸 주고싶었어요. 그런데… 목욕실에 들어간 그 사람이 … 종내… 나올줄을 몰랐어요…”  그녀의 어조가 흐릿하게 변조되여갔다.  “…나는 더는 기다려내지 못하고…목욕실 문틈으로… 아!’  당시처럼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새여나갔다.  “그런 피부를 가진 사람 처음 봤어요. 신다리로부터 온통 고기비늘같은 것이… 모든게… 모든게… 악몽이였어요… 대체 뭐가 뭔지 나도 모르겠어요.”  두손에 얼굴을 묻으며 그녀는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울기 시작했다. 철인은 느닷없이 부르르 진저리가 쳐짐을 금할수 없었다. 이어 그녀는 산발한 머리를 쳐들었다. 코물을 흡 들이마시고나서 축축히 젖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윽해서야… 목욕수건으로 몸을 꽁꽁 여미고 그 사람은 침실로 나왔어요… 그 사람 아무 말 없이 나를 오래도록 쏘아보다가… 창가에 앉아 술응ㄹ 마시기 시작했어요. 나란 사람이 있다는걸 잊기라도 한것처럼… 난 한구석에 쪼크리고 앉아 떨고만 있었구요…”  그녀는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집어삼키며 이야기를 꼬아내려가고있었다. 그에 따라 철인의 신경말초는 튀도록 만궁이 되여있었다.  “한밤중에 그 사람은… 바다가로 나갔어요… 바이올린을 안고서… 그날 밤, 료양소의 사람들은 장밤내내 울리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후로… 그 사람은 돌아오지를 않았어요…”  철인은 거칠어지는 호흡을 애써 곰삭이였다. 놀라운 충격이 달군 인두처럼 그의 가슴을 지지고있었다. 땀에 흥건해진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문지르며 다시 담배갑을 집어들고있는 그녀를 바라고 한마디 했다.  “나 담배 한대 주십시오.”  토템의 그늘  노래하는 사람, 춤추는 사람, 이야기하는 사람, 까닭없이 홍소를 터뜨리는 사람… 못봤던 그림책을 보는 설동한 눈매를 하고 철인은 혼돈의 이상세계를 찾아왔었다. 정신병원 정원의벤취우에 철인은 원장님과 마주앉았다. 조선족으로서 이방족들 못잖게 정신학연구계에서 권위인물로 지목되고있는 원장을 취재하려 온것이였다. 그들은 벤치에서 해바라기하러 나온 정신질환환자들의 군상을 이윽토록 지켜보고있었다.  “아름다운 에스빠냐 아가씨  사람들은 모두다 그녀를 좋아한다네.”  화단곁에서 온 얼굴에 덕지덕지 연지곤지를 바른 녀환자가 두손을 사려잡고 목청 깨져라고 노래부르고있었다.  “뛰뛰- 빵빵- “하얀 장갑을 낀 젊은 총각환자가 입으로 연신 자동차 경적소리를 내며 화단을 에워싸고 달리고있었다.  “… 통계로 보면 전국의 정신질환환자는 해마다 붇고 있는 급증세를 보이고있습니다. 그 발병률은 11.7프로입니다. 말하자면 1억이나 넘는 사람이 이러저러한 정신질환을 가지고있다는 겁니다. 놀라웁지요. 이는 10년전에 비해…”  배가 불룩한 녀환자 하나가 다가왔다. 원장을 바라보고 못나게 웃었다.  “원장선생님, 구토가 나고 시쿤 음식이 당겨요. 나 아마 임신한 것 같아요.”  “정말… 그 사람 어릴적 엉뎅이를 개에게 물린적 있습니다.”  물빛고인 눈으로 철인은 쳐다보고나서 단심이 다른 교실로 걸어들어갔다. 둔중한 손풍금에 눌려진 갸냘픈 어깨, 허나 불행을 디딤돌로 삼고 그 어떤 결의에 각인된듯 높이 솟은 그 어깨를  철인은 한동안 지켜보았다. 이어 교실에서 다시 싱그러운 악기소리 울리기 시작했다. “도- 레- 미- 화- 쏠- 라-씨- 도- ” “도- 씨- 라- 쏠- 화- 미- 레- 도- ”   찬란한 미지수    △ㄷ시 해변료양소 구역에서 발견된 불명의 생명체에 대한 가설 D---  “… 우리는 이를 극비밀적인 새로운 령역의 연구제품이 류기된것으로 볼수 있다. 근년래 유전학에 대한 연구는 비약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단단한 유전정보를 다른 동물의 수정란에 주입하여 개량품종을 얻을수 있다. 즉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낼수 있는것이다. 이는 드 무슨 과학환상영화나 소설책에서만 보아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닭의 성숙된 란세포내에 정보핵산을 분리시킨 다음 그것을 게사니의 수정란에 주입시켜 게사니닭이란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낸적 있다… “  이른바 불명체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고있었다. 그에 따라 관광국 려행사들에서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불명체의 이름으로 유람선명을 명명하고 불명체의 이름으로 청량제품의 상표를 달고 불명체가 발견된 곳을 관광명소로 지정하고… 모든것은 돈벌이를 위해 용뇌하고있는 이들에 의해 이런저런 해괴한 제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오고있었다. 고향에서 돌아온 철인은 한동안 무슨 일엔가 열심하더니 이어 불명체연구장소를 찾았다. 어느 한 발언자의 흥감스런 가설이 끝나기 바쁘게 연단으로 뛰여올랐다. 연구회 주최인이 발언목록을 쳐들고 순서표에 명단 없는 철인을 제지시키려 했지만 그러는 그를 밀치다싶이 하고 연단으로 올랐다. 철인은 잠시동안 번들거리는 이마와 번뜩이는 안경들을 휘둘러보았다. 달력에는 언녕 가을이 깃들었고 회의실엔 에어컨까지 켜놓았지만 그는 까닭없는 열기를 느끼고있었다. “… 제 친구 방황이는 원체 수석바이올린수였습니다.”  철인이 잠겨드는 목청을 살리며 입을 열었다.  “… 파크니니만큼은 못되여도 그렇게 되려고 애를 쓰던 바이올린수였습니다. 그 노력은 눈물겨운 것이였습니다. 겨울날 학교 화장실에서마저 기량련습을 해오며 성장했던 그에게는 예술이 꿈이였고 전부였으며 희망이였습니다.”  모두들 의문에 눈확을 지릅뜨고 철인을 올려다보았다. “무덤앞에서 유세차. ”하고 축문을 읽지 않나. 처가집 번지수를 잘못 찾지나 않았나 하는듯한 눈길이였다. 연구회 장소에서 외곬으로 나가고 아주 틀리게 나간 웬 동닿잖는 소리나는듯 얼빠진 눈매를 하고있었다. 그러건말건 철인은 제나름대로의 격정으로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 물론 그는 천부적인 이들에게서 흔히 볼수 있는 불안하고 가난한 예술가였습니다. 수석바이올린수에게 변변한 바이올린 하나 없었습니다. 그 꿈을 이룩하기 위해 그는 가정교사역도 해봤고 그의 안해는 퇴근길이면 술공장을 찾아 잡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상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목숨으로 여겼던 바이올린을 버린거지요.”  모두들 저도 모르게 그 “동닿지 않은 이야기”에 끌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주최인도 최면된듯 한켠에서 잠자코 들어주기만 했다.  “바이올린을 다루었던 손으로 그는 누룩을 주물러야 했습니다. 술공장을 경영하게 되였던것이죠. 허나 세상돌림을 아름다운 곡조로만 파악해왔던 그에게 있어서 상계란 너무나 생소한 곳이였으며 지어 가혹한 곳이였습니다. 권세욕, 물욕, 명예욕, 도전, 암투, 질투, 음모… 리상과 괴리된 풍진세상에서 오도된 심리로 하여 그는 무서운 대가를 자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영의 실책으로 빚어낸 거액의 손실이 큰 대가였지만 그보다도 더 큰 것은 처자의 사랑을 잃었고 나아가서는 음악을 잃은 것이였습니다. 곤혹스러운 나머지 그는 정신질환을 앓게 되였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에서 실패한 몸과 마음으로 진정한 바다를 찾아가게 되였습니다. 우리 시의 해변료양소앞바다에 몸을 던지고말았지요. 바이올린을… 안고서 말입니다.”  장내가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터져나오려는 오열을 삼키려 철인은 한동안 뜸을 들었다.  “그 친구의 왼손 약지에 파렬상이 생긴 허물이 있습니다. 왼편 귀쪽에는 무사마귀 하나가 있구요. 그리고 오른쪽 치골에서 웃쪽 방향으로 부채형이 되게 개에게 물린 이발자욱이 있습니다. 문치 두대는 5년전에 해넣은것인데 당시 썩 선진적이 못되는 비닐재료로 만든것이여서 지금은 도태품종입니다.”  철인은 문건가방에서 증실재료 한묶음을 꺼내여 무겁게 쳐들었다. “이것은 의학원의 몇몇 사생들과 제가 이런저런 가설로 그 정체를 해명코저 하는 불명생명체의 몸에서 증실해낸 상처자욱, 사마귀와 인공이에 대한 도편자료들입니다.”  장내는 비등점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럴수 없어!- ”  누군가 웨치다싶이 말했고 누군가는 눈알을 꼬집었다. 철인은 장내의 반응를 완연 무시한채 여태껏 사색해왔던 문제를 연구제안처럼 내들었다.  “물질문명의 전성시대는 장기간 응고되였던 사화결구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있습니다. 그 기존질서가 허물어지면서부터 사람들의 가치관, 도덕관 지어 인생관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변화가 모든이들에게 준 곤혹은 컸지요. 더욱이 그 변화에 당착한이들이 남보다 감성이 빼여난 지성인들이라할 때 그 곤혹의 중하는 더욱더 무거운것이였습니다.  제 친구 방황이는 그 중하에 부대끼면서 방황해온 허다한 사람들중의 하나였습니다. 시대가 배태한 둘도 없는 희생품으로 되고말았지요… 친구는 라는 비극적인 교향악을 가장 즐겨들었더랬습니다. 지금 보면 그의 숙명적인 예감은 적중한것이였습니다…”  철인은 단숨에 오랫동안 체중되였던 것을 뿜어내버렸다. 폭넓은 달변을 쏟아내고는 그 자리를 뛰여나오고말았다. 엘레베터도 타지 않고 27층의 과학기술청사마천루의 계단을 달아내렸다. 그러는 그의 볼로 땀과 주체할길 없는 눈물이 발을 잇고있었다.   열반의 바이올린    … 억겁으로 마냥 그러하듯이 바다는 설레임을 그칠줄 모르고있었다. 오성(悟性)을 깨치려는 독실한 신교자와도 같이 끊임없는 번민과 방황속에 거구를 뒤척이고있는것이다.  철인은 해변료양소앞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서있었다. 잠망경을 끼고 고무발을 한 잠수인 2명이 잠수작업을 거듭하고있었다. 바다는 연신 두사람을 삼켰다가 토해내군 한다. 신비한 무저동같이 그 깊이와 내용을 알길 없는 바다를 철안은 착잡한 심경으로 지쳐보았다. 여러 번 수확없이 숨돌리러 나온 잠수인들은 바람이 세다느니 물이 차다느니 게두덜거리면서도 철인의 진지한 청구의 눈매에 밀려 다시 바다에 자맥질해들어가군 했다. 흡수되듯 잠겼다가는 튕겨나듯 솟구쳐 나온는 단조로움만 거듭하던중에 잠수인 하나가 숭어마냥 풀떡 몸을 솟구치더니 환음을 질렀다.  “건졌다!- ”  잠수인의 손끝에 걸려나온 것은 와이샤쯔였다. 방황이가 선호해입던 “한립표”와이샤쯔였다. 다른 한 잠수인은 도수안경하나를 쳐들고 나왔다. 철인은 그 안경을 받아 물기를 닦아내였다. 분명 방황의 호기스럽고 운두높은 코끝에 위태스레 걸려있던 도수안경, 자기와 꼭 같은 도수의 450도짜리 안경이였다.  “건졌다아!- ”  또 한번 환음이 터져나왔다. 허나 이번의 소리는 방금전보다 훨씬 더 높고 배가 된 기쁨에 부풀어있었다. 바이올린이였다. 잠수인의 물에 잠긴 몸우로 불쑥 쳐들린 황금의 바이올린이였다. 잠수인의 물에 잠긴 몸우로 불쑥 쳐들린 황금의 바이올린은 검푸른 바다빛에 대조되여 무척이나 정감적인 색채를 발산하고있었다. 철인은 엎어지듯 달려가 빼앗다싶이 그 바이올린을 받아안았다. 바이올린의 선에는 푸른 해초가 추억처럼 엉켜붙어있었다. 철인은 떨리는 손으로 그 풀들을 말끔히 뜯어냈다. 바이올린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바이올린의 공명함은 말없이 우멍눈 같은 외눈으로 철인은 바이올린이 뿜어내고저 하는 곡조를 분명 들을수 있었다. 베이료쯔의 “어느 예술가의 생애”며 파그니니의 “24수 수상곡”이며 언제나 진한 독백 같던 친구의 한옥타브 높은 말소리며… 환청같이 울리는 그 주술적인 음악소리에 철인은 참월한 감개에 빠져들었다. 철인은 바이올린에 볼을 꼭 대였다. 백사장에 무릎을 털썩 꿇고는 소리죽여 울었다.  어느새인가 모두들은 가버리고 노호하고있는 바다가에는 철인이 혼자뿐이였다. 철인은 호주머니에서 무언가 끄집어냈다. 책이였다. 방황이가 가장 즐겨듣던 안데르쎈 동화 “인어공주”였다. 철인은 책을 펼쳐들고 바다와 마주한채 조용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상대가 눈앞에 있기라도 한듯 열심히 읽고 있는 그의 어깨너머 황혼의 잔영이 슬프게 보였다.  “… 깊음 바다속의 물은 아릿다운 수레국화의 꽃잎마냥 푸르고 환히 꿰뚫어보이는 수정구마냥 맑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깊고도 깊어 닻줄을 아무리 길게 풀어놓아도 닿지 못한답니다. 바다밑에서 바다우까지 닿자면 수없이 많은 교회당의 높은 뾰족탑을 하나 또 하나 올리쌓아야 합니다. 그렇게 깊숙한 바다밑에 인어들이 살고있었습니다…”  안주하지 못한 바다혼들의 마음을 무마해주었던지 차분한 이야기에 바다는 셀레임을 멈추기 시작했다. 철인은 무아경에 빠진채 계속 동화를 읽어내려갔다.  “… 해가 바다우에 떠올랐습니다. 해빛이 부드럽고 따사롭게 차디찬 바다의 거품우에 비쳤으므로 인어공주는 자기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을 보았고 머리우로 아름답고 투명한 생물들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배의 흰 돛과 구름들을 보았습니다.    인어공주가 물었습니다.    다른 목소리가 대답하였습니다.    인어공주는 팔을 쳐들고 하늘의 태양을 바라보았습니다. 눈물은 눈에 가득히 넘쳐나고있었습니다… “  신들린듯했던 책읽기가 끝났다. 철인은 책을 바다멀리로 힘껏 뿌리쳤다. 친구 방황의 호흡이 서린 바다에 전해보냈다. 책은 긴 호를 긋다가 바다의 품에 떨어져안겼다. 바이올린을 꼭 껴안고 썰물에 몸을 싣고 가는 “인어공주”를 친구에게 보내는 진지한 명복을 철인은 오래오래 지켜보았다.  아스라한 허허바다 청자빛 그 한끝을 충혈시키며 비장한 오페라극의 종장에 막이 내리듯 주홍빛 저녁노을이 내리고있었다…     “도라지” 1996년 5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4. 산들 바람 Op.30 No.5-휴베이   ♪
14    라이프 스페이스 댓글:  조회:2834  추천:10  2014-07-22
. 중편소설 .   라이프 스페이스 (Life space . 生活空間)     김혁     …양은 자그만 플라스틱함속에 갇혀있었다. 성냥감크기와 맞먹을 함이였다. 전자애완놀이감(电子宠物)이라 했다. 독실의 뙤창처럼 함에는 작은 형광막이 달려있었다. 그 아래 배렬된 팥알만한 버튼중에서 ON을 누르면 형광막속에 양 한마리가 (적절히 말하면 양의 형체가) 나타난다. 탄소연필의 굵직한 선으로 그려진듯한 양은 소학생의 도화책에 그려진 그것처럼 엉성함에 가까운 모양을 짓고있었다. 허나 그것을 애숭이의 원시적인 놀이감으로 치부해선(절대) 안되였다. 맴, 맴— 파렬음으로 울줄도 알았고 배고픔과 추위, 지어 밝음과 어둠에 대해 표현할줄도 알았다. 울음소리와 함께 hungry(배고프다)dark(어둡다)는 표시가 형광막의 웃모퉁이에 나오면 인차 버튼을 눌러 먹이를 주거나 물을 주어야 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보채는 아이처럼 끝없이 울어댈것이고 소홀하면 “죽”어버릴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그 놀이감은 던져버리게 되는것이다. 시상에! 별 기뜩찬 물건 다 있네?  생일날, 남편이 전자오락물을 선물했을 때 색시는 거짓말 같은 놀이감의 공능에 대한 설명에 생게망게 눈확을 키웠다. 일본사람들이 발명한 오락제품, 양 말고도 개, 돼지, 캉가루, 말… 벼라별 형태가 다 있다고  했다. 허나 남편은 굳이 그녀에게 양을 골라주었다. 그녀가 양띠생이였던것이다.  색시는 놀이감에 깊이 빠져들었다. 놀이방법에 익숙해감에 따라 양(전장양)은 그녀의 손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양의 따스한 털을 만지듯이 형광막을 애틋하게 어루쓸기도 했고 모방음이지만 양의 단조롭게 풀이되는 울음소리에도 색시는 전률 같은 련민을 느끼군 했다. 경건한 신교자의 손에 마냥 들려있는 념주나 성경책처럼 전자양은 그녀의 손아귀에서 떠날줄을 몰랐다. 잘 때에도 벗어둔 목걸이와 함께 머리맡에 꼭 놓아두군 했다. 밤에 몇번씩은 깨여나 형광막에 켜지는 파르슴한 야광불빛을 빌어 “잠자는 양”을 오래도록 지켜보기도 했다. 전자양을 지켜볼 때마다 색시는 고향의 앞뜰에서 어리쳐놀던 자기집 바둑이를 생각했다. 미채복(迷彩服)을 입은듯이 무의가 유난히도 선명하고 코가 마냥 개구장이 코처럼 축축한 바둑이였다. 바둑의 눈은 갈색 비슷한 색조를 머금고있었다. 모든 유순하고 귀염성스런 동물의 눈은 모두 그런 애련한 빛갈을 띄고있다고 색시는 생각했다. 바둑이는 작년 봄에 죽었다. 강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먹고 죽었다. 강의 웃목에 언젠부텀가 종이공장이 섰고 그때부터 강은 구질한 녀인네의 속곳을 빨아낸 물처럼 혼탁하게 변해버렸다. 그 물에서 부유하고있는 고기들은 이전의 고기들처럼 약삭빠르지 못했다. 그래서 손쉽게 잡을수 있었고 바둑이에게까지 생전부페가 차례졌는데… 온몸으로 경련하던 바둑이는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 솜뭉테기처럼 구겨박힌 바둑이를 안고 그녀는 몹시도 울었다. 양징맞게 생긴 발이 상할세라 버선까지 신겼던 바둑이였다. 버선을 신은 바둑이는 그녀를 따라 동네 마실돌이를 곧잘 다니군 했고 때가 늦어지면 그녀 봉당에 벗어둔 그녀의 신우에 누워자군 했다. 그런 바둑이를 무엇이 주살했는지 그녀는 그 영문을 쇠통 알길이 없었다. 바둑이도 이렇게 플라스틱함에 넣어 자기 신변에 꼭 간직할수 있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색시는 생각해보았다. 꿈결에 바둑은 늘 그녀를 찾고 반기였는데 깨여나보면 그 애모쁜 생령은 전자양으로 화하여 색시의 숨결가까이에 있는것이였다. 색시는 정덩이가 큰 녀자였다. 원체 눈가에 입귀에 일신에 배여있는 정덩이가 요사이는 버거운 충만감으로 더 크게 팽만해오르고있었다. 가정이라는 신비한 궁정에 처음 들어선 색시는 하늘같은 충족감을 아름벌게 안고있는것이였다. 그리고 색시는 임신 석달이였다. 새록새록 달라지는 몸태와 마음가짐이 그녀를 더욱더 그녀답게 건신스럽게 만들었다. 바둑이가 다시금 꿈결을 찾아드는것도 전자양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는것도 바로 이러한 몸과 마음의 변화로부터 비롯된것이였다. 원체 헐렁한 멋으로 입던 블라우스가 조붓해오르고 완벽하던 몸 맨두리가 자기의 그것 같지 않게 날로 삐여지고 무거워오르는것을 의식할 때면 색시는 경아와 행복감으로 반죽된 전률에 가슴을 할딱거렸고 그 가슴을 눅잦히려 들 때마다 전자양을 들여다보군 했다. 괜스레 먹이도 주고 물을 주기도 했다. 그러면 전자양은 분수를 지키련듯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그런 양이 용용 귀여워 색시는 혼자 웃군 했다. 전자양은 색시의 유일한 벗이였다. 남편이 출근한 뒤면 혼자 집에 남아야 했다. 아직 가벼운 일쯤은 찾아할수 있다고 했지만 남편이 혼겁을 떨며 굳이 집에서 놀게 했다. 색시네 고향에서 녀인들은 만삭이 되여서도 밭일까지 거들군 했다. 허나 시가지 사람들은 그들과는 달랐고 원체 꼼꼼한 남편은 더욱 달랐다. 조금난 무거운 물건을 들어도 시한폭탄이라도 쥔듯 제지시켰고 찬물에 손을 넣어도 불덴 사람처럼 소리질렀다. 그런 남편이 색시는 감사했고 그로 해서 행복하기도 했지만 그에 따르는 고충은 남편 모르게 큰것이였다. 고향의 향정부 강당같이 널직한 집은 7층높이에 있었다. 일전 같으면 개암 뜯으러 산자락을 톱던 본때로 단숨에 치달아 오르련만 몸태가 변한 지금에 와서는 오르기가 조금 힘들었다. 그러니 그녀는 날개죽지여물지 못한 새같이 언제나 보금자리를 지켜 죽치고 앉아있어야만 했다. 어느 한번 례사롭게 층계를 내여갔다와서 남편에게 단단히 신책을 들었다. 얼음아가위꼬챙이(冰糖葫芦)를 파는 장사군령감의 사구려소리를 용케 가려듣고 아래를 향해 구명을 바라는 사람처럼 기다리라 목청 깨지게 소리질러놓고는 힘겹게 사들고 올라온 아가위를 바작바작 깨물어 단숨에 먹어치웠다. 남편이 볼가봐 꼬챙이들을 짧게 끊어 휴지통에 버렸는데 남편이 귀신같이 알아차렸던것이다. 층계를 내리다 넘어지면 어쩌냐? 격렬한 운동은 아이에게 불리하다! 게다가 불결한 한족령감태기가 “침을 발라” 만든 아가위를 먹고 병이 나면 어쩔려구? 하고 남편은 필요이상으로 야단을 떨쳤다. 그후로 모든 물건은 남편이 사올렸고 쓰레기도 남편이 내려버렸으며 그녀의 소풍도 남편의 배동과 부축임이 있어야 진행될수 있었다. 색시는 자기가 플라스틱함속에 갇힌 전자양과 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갑하고 자꾸만 갑갑했다. 허나 갑갑한 외로움보다 더 큰 고충이 하나 있었다. 집은 남편이 회사로부터 분여받은것이였다. 높고 크고 비싼 집이였다. 집값은 그녀가 듣고 기겁초풍할 정도로 비쌌다. 그만큼한 앳된 나이에 이만한 집을 쓰고 사는 젊은이들이 이 큰 도회지에서도 많지 않았다. 모두가 남편이 잘난 덕분이였다. 남편은 그냥 두고보아도 오나벽하게 좋은 집에 또 집값의 절반쯤을 내치고 장식을 했다. 응접실의 등을 바꾸어달고 베란다로 나가는쪽을 늄합금으로 격리시키고 침실의 벽을 새로운 색조로 칠하고 문변두리마다 나무로 둘레를 치고 주방의 천정을 낮게 드리우고 화장실의 멀쩡한 타일을 뜯어 새로 달고 … 침대며 쏘파며 책상이며 탁자며 옷장이며 경대며를 사들였다. 새집들이 하던 날 세상에! 하고 색시는 황홀감과 만족감에 전률했다. 허나 그 전률은 얼마 못가서 다른 전률로 변해버렸다. 별천지같은 집은 온통 황금빛의 냄새로 충일해오르고있었다. 그것은 멋의 냄새였고 풍요의 냄새였다. 허나 시각적으로 직결되는 냄새보다 치부에 선뜩 닿는 냄새가 있었다. 회벽의 냄새, 장식페인트의 냄새, 가죽쏘파의 냄새, 가구의 점착제 냄새… 그 냄새는 작렬하는 고추가루폭탄처럼 색시를 향해 던져졌다. 색시는 물밑에 가라앉은 사람처럼 학학대며 냄새의 수면우로 떠오르려 허둥거렸다. 냄새는 독즙을 바른 동침끝처럼 색시의 코속을 찔렀고 눈확을 찔렀다. 색시는 덴겁히 달려가 창을 벌컥 열어젖혔다. 하늘이라도 받아 마실듯 심호흡을 했다. 허나 텐넬을 나선 후각의 질주는 다시 다른 텐넬속으로 몰입되여갔다. 밖은 매연으로 꽉 차있었다. 매연은 유괴하는 악당처럼 큼직하고 바짝 마른 헝겊뭉치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검은 보자기로 그녀의 눈을 감쌌다. 울컥 욕지기가 치밀어올랐고 구정물이라고 받아마신듯한 이질감에 색시는 진저리를 쳤다. 창속으로 몸을 움츠렸다. 창속에서 눈앞까지 박두해온 냄새의 독아가 다시 한번 새시를 단단히 그리고 집요히 물어떼였다. 첫날부터 색시는 기침하고 토하고 열이 올라 꼬박 밤을 지샜다. 그녀와는 달리 남편은 무사튼튼했다. 기동차가 앞을 스쳐도 휘발유냄새가 좋다며 코를 흡— 들이마시였다. 색시는 문을 열면 페부가 아프도록 찡한 향간의 싱싱한 공기, 앞뜨락이 미여지게 만개한 초록빛 소채의 냄새, 몇걸음에 닿을수 있는 앞강물의 물내음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하다못해 우사를 지날 때 맞혀오든 소똥의 냄새도 이에 비하면 외제향수와 같은 향유로 느껴질것이였다. 임신오조도 없이 무양히 지내던 색시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남편은 그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병원에 갔대야 《우황청뇌환》 몇갑을 달랑 던져주었고 저마다 신체소질차이니 용빼는 수가 없다고 했다. 남편은 그러는 색시가 보기에 안쓰러워 호텔방을 잡아주었다. 에어콘이 있는 방에서 그녀는 물을 금시 갈아댄 어항의 고기처럼 새로운 률동을 찾았다. 애매한 돈을 일주일가량 휘뿌리다 색시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남편이 통풍에 신경을 무척 쓴 덕분에 냄새의 무리는 많이 주자를 놓았다. 허나 잔여는 여전히 악당처럼 집요히 색시를 추적해왔다. 다시 열을 내며 토악질해대며 색시는 냄새에 불편해지는 심기를 바로 잡고 그에 적응하려 애를 썼다. 개살구에 체한 속을 삭이려 애쓰던 그때처럼 애쓰고 또 써서 들쉼날쉼이 능해진 수연초단자처럼 정상으로 환원하기 시작했다. 허나 그후로 색시는 늘 묵지근한 두통을 짐짝처럼 달고 다녔다. 꼭 그녀처럼 냄새의 중독하에 시달리는 사람이 또 한사람 있었다. 색시의 시아버님이였다. 색시의 남편은 우로 누님 셋을 둔 막내였고 그의 아버지는 마흔을 넘겨 아들을 보았다고 한다. 막내동인 남편이 이제는 삼십을 넘겼으니 그 나이가 어중간한 누님 두분은 불성사납게 (꼭 같은 페암으로) 일찍이 가고 세째누님과 둘이만 남은터였다. 집도 널직하고 아들도 이만하면 사회동량이니 부담없이 옵시사 하고 모셔온 아버지는 일흔에서도 몇고개 허위허위 넘어선 나이였다. 시아버지를 맨 처음 대하던 때 색시의 첫인상은 남편이 아버지와 도무지 닮은양이 없다는것이였다. 년로한 연고도 있었겠지만 남편같은 당당함과 박력과 그에 밑받침된 튼실함을 유전의 뿌리로 내렸을 시아버지에게서 도무지 체취할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이 적은 로인이 이 세상 어디도 없었다. 다박솔 수염속에, 가려 보이잖는 입은 밥 자시는데만 사용되는거나 아니냐고 요행 합석한 어느 밥상에서 색시는 버릇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만큼 어려운 시아버님이였다. “사위사랑은 장모에게, 며느리사랑은 시아버지에게 있다”고들 하는데 색시는 이 가문의 문턱을 넘은 뒤로 시아버님과 말 몇마디조차 나누어보지 못했다. 남편이 잘해주어서 세상 부럼 없었지만 시아버지의 침묵으로 각인된 뒤모습을 볼 때마다 색시는 어려웠고 야속했다. 냄새의 세례를 이겨낸지 얼마 안되여 또 다른 골치거리가 그녀에게 생겨났다. 한밤중이면 색시는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깨군 하였다. 야밤에도 주책에 가깝게 쏘다니는 차량의 악지스런 소리에 이명(耳鸣) 비슷한 증세까지 생긴 그녀의 귀에 그 소리는 다른 농도와 줄기로 잡혀들었다. 랭동기의 작동소리는 아니였고 화장실에 켜둔 일광등이 내는 소리도 아니였고 (농가의 구석에서 울던 여치소리는 더구나 아니였다)… 하지만 분명 집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색시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속옷바람으로 침실을 나섰다. 소리는 다른 한 침실, 시아버님의 방에서 나고있었다. 방은 불을 죽인 상태인데 소리는 실타래처럼 굴러나오고있었다. 목구멍깊은 곳에서부터 울림의 파장으로 때로는 궁글게 때로는 유연하게 이어지군 했다.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소리를 들어보면 신음같기도 애원같기도 한 소리였다. 온 집안에서 굼닐고있는 화학품의 이질적인 냄새때문에 아버님도 그녀처럼 앓고있는지라 색시는 이튿날 두통약을 자시게 하고 그런대로 묵과해두었다. 허나 밤마다 그 소리의 파장은 멈출줄을 몰랐고 대신 잔잔한 흐느낌으로부터 높은 소리로 껑충 뛰여올랐다. 게다가 나중에는 새로운 내용물까지 보태여져 완정한 말마디까지 이루었다. 그 말마디는 대체로 한두가지뿐, 입속에 뭉그려 내뱉았지만 그 불투명한 갈파중에서 색시는 한마디만은 가려들을수 있었다. 소리는 저녁마다 어김없이 혹은 짐짓 그러는듯이 울렸고 때론 마디마디가 강약을 가미쳐주며 악청으로 변조되기까지 했다. 가자! 돌아를 가! 가자! 돌아를 가아! 그 소리에 저녁이면 색시는 잠 같은것을 아예 깨끗이 반납해야 했다. 놀라 남편의 품을 파고든적도 한두번 아니였다. 그런 경황도 모르고 남편은 이불자락을 잔뜩 구겨안은채 세상 모르고 잠의 나락에 빠져있었다. 아침, 색시가 아버님이 큰병에 든거나 아니냐고 걱정을 달고 물었다. 너무 신경쓰지 마. 시골서 상경하여 임자처럼 습관이 안돼서 그러는거… 남편은 그녀의 걱정을 한마디로 일축해버렸다. 자기에게 잘해주는 남편의 일상에서 화락한 정의 소유자임을 느끼고있었으나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 정의 열도가 달랐다. 자기를 향한 잉걸불의 익어번짐이 아니라 타고 버린 콕스처럼 미열이였다. 부자간 역시 평소에 말의 나눔 같은것조차 적었고 부모가 자식에 대한 높음과 권위 같은것도 없었다. 그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서로를 다치지 않지만 또 서로를 바라볼수는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살아가고있었다. 집에는 늘 황량한 침묵이 흐르고있었다. 남편이 효도에 등한시한거나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들 때도 있었으나 남편의 문벌이나 인끔으로 봐선 그런 무지막지한 정도일수는 없었다. 자기보다 훨씬 조건이 월등한 집에 들어서서 자격지심에 그 무엇이든 생광스럽고 다르게 보이는 색시에게 있어서 도회지사람들의 정감표달방식은 자기들과는 달리 이런 식인가보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있는 도회지 량반들이 마음의 무늬를 도무지 읽어낼수 없었다. 시아버지는 식사조차 따로 했다. 늘 저러셨어! 개다리소반에 놋그릇으로 혼자서 자시는것이 아버지의 본분이고 품위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지금이 어느땐데… 소반도 없고 놋그릇도 없어. 색시와 함께 단둘의 식탁을 마련하고 안해입에 좋은 찬을 골라 넣어주며 옥시글거리는 식사가 좋은 모양, 남편은 명절을 제외하곤 시아버지와 겸상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이 안쓰러워 밥도 더 떠들고 입가심물도 들고 아버님방에 들어설라치면 외려 아버님이 성가스러운지 수저를 들다말고 며느리가 나가기를 기다리는것이였다. 그리하여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하고 색시는 아버님문방에 곽밥 조달하듯이 음식상을 차려만 올렸고 한겻이 지나보면 빈 그릇들이 싱크대우에 올려져있는것이였다. 간혹 아버님방을 떼고 들어서 보면 아버님은 늘 침대가 아니라 늘 베개나 쏘파방석 같은것을 안고있었다. 그것도 그저 안고있는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빼앗기기라도 할것 같이 부등부등 그러안고있었다. 얼굴은 협심증환자처럼 고통스러워보였다. 크게 아픈것으로 알았으나 그런게 아니였고 평소에 어쩌다 문을 열고 들어서보면 아버님은 여구하게 꼭 그런 모양을 하고있었다. 아빠트단지에도 로인활동실이 있으니 가서 화투장이라도 번지라고 권유했으나 령감님은 평생 놀음과는 강을 사이두고 살아왔다고 했다. 문구장에 구경이라도 가라고 권하고싶었으나 도시 가녁쪽에 있는 문구장으로 가려면 뻐스를 두세번 갈아타야 했다. 아버님이 어떻게 지루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견뎌나가는지 색시는 궁금했다. 시간의 형벌을 이겨내느라 아버님은 저렇게 힘들고 괴상한 동작을 반복하고있는걸가? 간식으로 빵이나 쥬스 같은것을 들여가도 아버님은 잡숫질 않았다. 혹간 시원한 사과배를 보면 숟가락으로 호비작여서는 힘들게 자시군 했다. 그리고 어느결에 숟가락은 싱크대에 올려져있고 로인님방의 문은 다시 견고한 성체의 문처럼 굳게 닫히군 했다. 화장실로 가다가 며느리와 맞띄게 되면 아버님은 웃음이라도 지어보려 했다. 허나 풍상에 할퀴여 화석화된 얼굴에서 그 흔한 웃음은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웃음 비슷한 근육조합을 만들어보였는데 그것이 오히려 색시에게는 우는것처럼 보였다. 그런 우는것 같은 웃음도 차차 사라지고 그저 잠시의 일별이 그것을 대체했다. 물건을 가득 집어넣은 호주머니처럼 처진 눈확을 치켜올리며 며느리를 쳐다보는 아버님의 목청에서는 침묵과 함께 응고된 가래침이 목젖의 울림으로 떨꺽 하는 예상외의 높은 소리를 내군 했다. 자시는것이 적어서 화장실출입마저 드물어갔고 로인님의 방문은 청태 돋은 동굴의 문처럼 깊이깊이 닫혀있었다. 그 문이 영원히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색시는 불안감과 함께 떠올린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새도 남편이 하는 모양으로 시아버님과 두서없이 애매한 거리를 만들고있었다. 시아버님 스스로가 재여 만들어낸 거리일수도 있지만 그 거리는 초점을 잘 맞추지 않는 망원렌즈의 부면(负面)으로 내다본것처럼 흐릿하고 불확실했다. 그러고보니 늘 색시곁에 있고 색시와 가장 도타운것은 그 전자양일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런 짓거리도 잠간사이, 양에게 “먹이”를 먹이고 “물”을 먹이고나면 색시는 심심하고 갑갑하고 울적해지는것이였다. 어느 한번 남편이 관상용 물고기를 사왔다. 둥근 어항을 사고 그속에 비닐로 만든 수초를 넣고 분경(盆景)같은 가짜 암석을 넣었다. 산소방출기도 어항에 부착해놓았다. 산소기는 수은대를 쳐든 흡독자처럼 꾸르륵꾸르륵 기승스레 물방울을 뿜어올리고 있었다. 그 인공의 풀과 인공의 돌과 인공의 공기속에 물고기 두마리가 안주를 했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것 같이 전신이 새까만 물고기였다. 캐씽구라미라고 하는 아열대의 물고기였다. 웃기는 놈들이야 암놈 숫놈이 꼭 붙어서 살지. 그러다 개중에 한놈이 죽게 되면 남은 놈은 따라서 죽는대. 우리처럼 잉꼬부부! 남편은 물고기네 세간을 들여앉히고나서 색시의 기색을 살폈다. 그녀의 기쁨과 무료를 위해 일껏 마련한것이였다. 임자 금붕어가 어떻게 우는지 알어? 남편은 아직도 무감각한 그녀의 흥심을 유발시키련듯 평소의 그같지 않게 얼굴을 우스꽝스레 변형시켜보았다. 금붕! 뿔루루루-금붕! 뿔루루루-하고 울지. 시상에! 색시는 남편에게 매달리며 웃었다. 오래만에 웃어보는 큰 웃음이였다. 남편의 노력에 보응해주려는 뜻도 없지 않은 그런 웃음이였다. 창턱에다 물고기의 령지를 잡아주었다. 어항속은 진기한 호박(琥珀)속처럼 생동했다. 높은 창턱이라 창밖의 풍경과 겹쳐보면 어항은 꼭마치 마천루의 꼭대기로 부표하는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매연으로 자오록해지는 저녁께면 어항은 탁한 물밑에 버려진 수정구처럼 보였다. 캐씽구라미가 유연한 몸집을 격렬히 비틀 때면 외부로부터 덮씌워오는 불안으로부터 자신의 마지막 깨끗한 령지를 보호하려는 그런 상념의 몸놀림으로 보였다. 흑옥같은 물고기의 눈을 들여다보며 색시는 캐씽구라미는 왜 이렇게 새까말가? 깨끗한 섬지역에서? 도시에 이주해 살며 미연에 그을려 이렇게 된걸가? 하고 의문을 가져보았다. 전자양과 함께 그녀에게 새로운 기쁨을 주었던 개씽구라미는 도회지에 이사온지 며칠 못가 죽고말았다. 수면우에 떠올라 탄성한계로 늘어졌는데 마냥 정열적으로 흔들던 기발같던 꼬리는 아래로 드리워져있었다. 암놈인지? 수놈인지? 하나가 먼저 죽었는데 남편의 말처럼 다른 놈도 인차 따라 죽었다. 색시는 섬찍한 눈길로 어항을 들여다보았다. 바둑이가 죽었을 때와 못지 않는 충격이 예리한 쇠못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런줄도 모르고 산소방출기는 무치한 흡독자처럼 꾸르륵꾸르륵 수연대의 소리를 계속 내고있었다. 수도물탓일거야. 수도물을 하루밤 재워 줘야 하는건데. 혹시 먹이때문인지도 몰라. 지금은 물고기 먹이도 가짜가 있으니깐… 남편은 캐씽구라미의 죽음을 두고 형사처럼 추리를 반복하고있었다. 남편의 말처럼 수도물에 문제가 있는것 같았다. 이곳의 수도물에서는 늘 이상한 냄새가 났다. 장농에 넣어둔 장뇌환냄새 같은 … 식기에 담가두고보면 이튿날이면 노란 침전물이 생기군 했다. 그래서 아침이면 남편은 꼭꼭 7층을 달아내려 약수물을 받아오군 했다. 약수차는 아침마다 촌마을의 배달부처럼 어김없이 왔다. 간혹 시간때문에 받지 못할 때면 멋스레 포장한 트링크에 들어있는 순정수(纯净水)를 사왔다. 걸러내고 또 걸러냈다는 물은 깨끗하기는 했지만 자갈 삶은 물같이 무맛이였다. 그리고 색시는 분명 플라스틱용기의 뇌리치근한 냄새를 음미해낼수 있었다. 수도물때문에 곤경을 치른적도 있었다. 처음엔 배탈이 났는데 그쯤은 약과이고 수도물로 그곳을 씻었더니 염증을 앓았다. 결벽에 가까운 그녀와 마냥 양장을 고수하는 깔끔한 남편이 불결해서가 절대 아니였다. 그렇다면 캐씽구라미는 분명 물탓에 잘못된것이였다. 아니면? 남편은 다른 한쌍의 캐씽구라미를 모셔왔다. 물을 정성껏 갈고 먹이도 포장먹이가 아니라 늪이나 물웅뎅이에 사는 비싼 진홍빛 기생물을 사서 주었더니 별고없이 자랐다. 그렇게 탈없이 자라주는 물고기가 색시는 괜스레 감사하기만 했다. 물고기에 대한 관심이 차차 적어지자 색시는 다시 한번 어김없이 다가오는 계절처럼 선연한 무료를 느꼈다. 전자애완물의 버튼을 열싸게 누르고 캐씽구라미네 집—어항을 똑똑 노크도 해보고 하다가 색시는 어떤 물건에 눈길이 미치고 생각이 미쳤다. 방이 세개 딸린 집이라 그들 부부가 한칸, 시아버님이 한칸 차지하고 남은 한칸을 남편은 작업실로 만들었다. 그곳에 컴퓨터 한개가 놓여있었다. 남편은 어느 이름있는 컴퓨터공장의 위탁으로 컴퓨터대리판매부를 하나를 차리고있었다. 컴퓨터가 그렇게 잘 나가주어 남편은 성공한 실러리맨으로 떠올랐고 가정 역시 먹고 입는 걱정없이 잘 꾸며져가고있는것이엿다. 전에 색시는 컴퓨터를 본적 없었다. 컴퓨터를 보자 맨 처음으로 텔레비죤과 꼭 같은 물건이라 생각해두었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은 컴퓨터를 배워주었다. 작동원리를 배워주었고 유희를 배워주었다. 컴퓨터에 재미를 붙일무렵, 남편은 그녀가 컴퓨터를 배울감이 아니고 또 컴퓨터앞에 오래 앉아있으면 건강에 해롭다며 가르침을 일방적으로 포기해버렸다. 그후로는 그저 컴퓨터의 먼지를 닦으면서 만져보았던 그녀였다. 색시는 어덴가 두려움이 동반된 심정으로 남편의 작업실로 들어섰다. 컴퓨터는 도고한 수녀처럼 백포를 뒤집어쓰고있었다. 색시는 조심스레 백포를 벗겼다. 컴퓨터가 문지광같은 외눈으로 그를 지릅떠보고있었다. 색시는 무거운 몸을 굽혀 힘들게 작업대밑에 달린 구멍에 프라그를 꽂아넣었다. 폭탄의 점화단추를 누르듯 작동버튼을 눌렀다. 팽—하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가 밝아졌다. 비온뒤의 닭이 쏘다닌 흔적 같은 형상의 영어자모들이 모니터속에 오글오글 숨어있었다. 키보드를 눌렀다. 남편이 배워준 기억을 애써 살리며 유희실을 찾았다. 그녀는 무얼 찾는데서는 선수였다. 자기손 같지 않게 말을 잘 듣지 않는 손을 구명물처럼 키보드에 얹혀있었다. 드디여 유희실로 들어섰다. 시상에! 색시는 커다란 배에 두손을 얹고 성취감에 이몸이 모이도록 웃었다. 트럼프유희였다. 수자와 꽃의 색을 맞추는 간단하기 그지없는 유희였다. 검은색과 붉은색의 꽃을 서로 엇바꾸어 박아넣으면서 A로부터 K까지 맞추어내는 유희였다. 손때 오른 트럼프장을 침 발라가며 번져가는 번거로움이 생략되고 키보드만 가볍게 치면 트럼프장이 척 번져눕는 신선스런 컴퓨터유희였다. 검은 하트 8이 올라가고 붉은 다이아몬드 7이 올라가고 검은 스페이드 6이 올라가고 붉은 클로버 5가 올라가고… A, 2, 3, 4, 5, 6, 7, 8, 9, 10 , J ,Q, K 붉은 하트 검은 스페이트 검은 하트 붉은 스페이드… 붉은 클로버 검은 다아몬드 검은 클로버 붉은 다아몬드… 적목탑을 쌓고 허무는 아이처럼 무진한 재미에 탐해버렸다. 배속의 아이도 그때면 즐거운듯 꿈틀이며 어떤 정감의 반향을 보이고있었다. 눈이 아물아물해나고 어깨가 욱신욱신해나서야 색시는 직성이 풀이였다. 그러다 전자애완물처럼 캐씽구라미처럼 어느날 그것도 시들해졌고 색시는 다시 한번 죽음같이 깊은 적적함에 빠져들었다. 전자양은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은듯 어제도 저제도 그런 모습이였고 캐씽구라미는  “수연대”의 꾸르륵 소리속에 블루스를 추듯 짝지어 놀고 컴퓨터는 수녀처럼 백포를 뒤집어쓰고있다. 그리고 시아버님의 방문은 그냥 호전(好战)파 장군이 없는 성채처럼 굳게 닫힌채로이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벅적지근하게 칼고함이라도 질렀으면 벽이 시원히 뚫릴것 같았다. 그러나 창을 열지 않는것은 이곳의 법도처럼 간주되여오고있었다. 해동이 되기 바쁘게 도시에는 집짓기공사가 성세호대하게 펼쳐지고있었다. 색시네 아빠트앞 공터에서도 새집짓기가 한창이였다. 격렬한 전기드릴소리, 무언가 왕창왕창 깨물어 먹는듯한 콩크리트 믹서(搅拌机)의 소리, 거대한 트럭이나 뜨락또르, 견인차, 크레인의 동음소리…부르릉… 쾅쾅… 꺼르르르릉… 게다가 풀썩 분만해오르는 화약같은 먼지… 창만 열면 어쩌구려 복마전에 잘못 들어선 기분이였다. 그러나 그저 갑속에 (삐까번쩍 빛나는 호화주택이여도 어쩐지 갑속같은) 옥속에 수인처럼 갇혀 자질구레한 시간의 나락을 손톱 벗겨지게 한알한알 까먹고있는것만 같았다. 딩동! 하고 초인종이 울리길 색시는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노올자! 아무개야 노올자! 하던 동네의 주책에 가까운 마실돌이가 그렇게 그리울수 없었다. 옆집으로 서로 좋은 음식도 오가고 유쾌한 잡담도 오갔으면 좋으련만 이웃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한족집이였고 층계에서 간혹 마주쳐도 옷매장에 세워놓은 마네킹 같이 무표정으로 지나쳐버린다. 손잡이조차 없이 견고한, 불수강 열쇠로 뚜지고 힘껏 당겨야 하는 방범문(防盗门)이 쾅! 하고 닫히고나면 층계나 랑하는 그저 괴괴한 적막만이 감도는 사각(死角)지대이다. 딩동! 초인종소리만 울리면 사람이 그리운 색시는 무거운 몸매를 재빨리 놀려 문가로 다가간다. 견고한 방범문 빗장을 성큼 빼여낸다. 문을 함부로 열어주면 안돼. 자물쇄걸이도 없는 임자네 그곳과 달라. 떼강도가 우왁! 덮칠는지고 모르니깐… 남편이 신신당부했지만 색시는 초인종소리만 울리면 본가집어머니를 반기는양 자빠질듯 달려가 문을 따군 했다. 그만큼 그녀는 사람의 냄새를 그리워했던것이다. 남편은 방범문에 달린 작은 렌즈로 사람을 확인하라했지만 색시는 어쩐지 그것이 싫었다. 방범문의 렌즈로 내다본 사람의 얼굴은 떡반죽을 심술껏 비탈아 당긴 모습이였다. 그런 형상이 색시는 싫었고 그런 불신의 확인이 색시는 싫었다. 딩동! 문을 따고보니 낯모를 남자가 서있다. 광고팜플렛을 강다짐처럼 그녀의 손에 쥐여주고 의무를 다 래행한듯 층계를 계단을 건너뛰며 성큼성큼 내려간다. 그 광고지로 색시는 종이학을 접는다. 저도 모르게 죽은 바둑이 생각이 나 강아지를 접는다. 딩동! 문을 따고보니 낯모를 아낙네가 서있다. 쇠수세미를 불쑥 내밀며 사라고 한다. 박박 긁어댈 쇠가마도 없지만 입성이 꾀죄죄한 아낙네의 고충을 헤아려 하나 사든다. 2원50전인데 3원을 내고 거스름돈은 찾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는 텔레비죤에서 보아 너무나 잘알고있는 날씨에 대해 구태여 묻는다. 비가 오나요? 안오나요? 왜? 온다구 했는데… 딩동! 문을 따고보니 이번에는 낯모를 아가씨가 서있었다. 생리대를 들고 공장가격보다도 눅으니 사라고 한다. 필요없게 된 몸이지만 공장가격보다 눅다니 한박스 사둔다. 묻지도 않은 말을 아무 사람하고나 말한다. 난 이런걸 많이 써요. 생리통도 심했구요… 딩동! 문을 따고보니 키가 꺽두룩한 사내 하나가 식칼을 들고 서있다. 식칼장사이다. 그리고 벙어리이다. 으바바 으바바… 괴성을 질러대며 식칼로 콩크리트바닥을 마구 쫓는다. 콩크리트바닥에서 불꽃이 번쩍번쩍 튕긴다. 식칼이 그렇게 단단하다는 뜻이다. 남편이 엄청난 액수로 한국산 주방도구 한세트를 사놓은것이 있지만 색시는 벙어리의 처경이 불쌍해 하나 사준다. 벙어리는 그녀를 향해 엄지를 빼들어보이고는 식칼이 든 방수포주머니를 절걱이며 층계를 내린다. 그러다 발을 겁디뎌 비명을 지른다. 타마디! 색시를 도적눈깔 해갖고 쳐다보다 구을듯이 층계를 내려간다. 시상에! 색시는 가짜벙어리 장사군임을 뒤미처 기수채고 조롱당한 느낌으로 자탄을 내지른다. 딩동! 문을 따고보니 반갑게도 시누이가 오셨다. 입덧이 날 때이니 몸보양을 잘해야 한다며 먹을것을 한구럭 사들고 왔다. 구운 통닭이였다. 미국식 작시법으로 만든것인데 캔더키프라이드닭이라고 했다. 기름기 있는 그런것이 전혀 입에 당기지 않았지만 감격해하며 받았다. 색시는 촌에서 명절 때면 팥을 두툼히 넣어 해먹던 시루떡이 무척 먹고싶었다. 곁에서 국먹어라 나물먹어라 하며 살뜰하게 돌봐줄 친지 하나 없는 색시였다. 시아버님에게 알릴가 하며 일어서는데 시누이가 막았다. 지나던 걸음에 들린터이니 조금 앉았다 일어서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괴춤에서 돈 300원을 내놓았다. 먹고싶은것을 사먹고 나머지가 있으면 아버지에게도 고기쪽으로 떠올리라는것이였다. 시누이는 늘 그랬다. 요행 와서는 친아버지 얼굴도 보지 않고 가버리기가 일쑤었다. 그러나 부양의 의무는 잊지 않으련듯 예정했던 부양비보다는 조금 넘쳐나게 달마다 어김없이 꼭꼭 가져왔다. 올캐가 애기설이하는 마당에 아버지를 그 기간이라고 내가 모셔야 하는건데… 시누이는 마냥 미안쩍은 기색이였지만 색시는 아량해주었다. 시누이는 살림이 궁한것은 물론 자기 남편보다 더 강하게 아버지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고있는것을 색시는 감득할수가 있었다. 귀가 린색한 아버님은 딸이 온줄도 모르고있었고 시누이는 엉뎅이가 따뜻해질새도 없이 훌쩍 일어나 가버렸다. 문켠에서 발길을 멈추고 몸태가 삐여진 꼴을 보니 낙자없이 “주전자” 달린 놈일거야!라고 더닥을 했다. 색시는 시누이가 사온 닭구이를 가슴패기쪽으로 잘게 찢어들고 시아버님 방으로 들어갔다. 시아버님은 여전히 그 본새 그 모양이였다. 온수온돌인 바닥에 베개를 잔뜩 그러안고 잠들어있었다. 색시는 음식그릇을 시아버님곁에 놓아주고 소리를 죽여 문을 닫았다. 남편이 돌아오려면 아직도 반천은 걸려야 했다. 전자양에게 먹이를 주고나서 컴퓨터에 마주 앉았다. 패가 잘 떨어지지 않았다. 체중기에 넘쳐 꺼버렸다. 어항가까이에 가서 힘들게 들여다보았다. 죽지 마라, 죽지 마라!하고 캐씽구라미부부를 위해 건강을 빌었다. 용접실로 들어가 텔레비죤을 켜고 VCD를 봤다. 몇번이고 되풀이해본 VCD원판중에서 요행 보지 않은듯한 새 영화를 골라냈다.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원판의 뒤명에 잠이 깔린 얼굴이 비쳐들었다. 한되박 쏟아놓은듯한 잠때문에 더 무료해보이는 얼굴이였다. SF영화였다. 과학자들이 몇억년전에 멸종된 공룡을 복제해내는 기괴한 스토리였다. 쥬라기니, DNA니 대사로 오가는 기술용어들은 쇠통 알아들을길 없었으나 영화로 재현한 공룡만은 볼만했다. 축축한 뒤뜨락의 담에 찰싹 붙어있던 벽호(壁虎)를 몇백배로 확대한 모양이였다. 오전자로 드디여 공룡을 배육해내고 무서운 공룡이 은행나무숲이 아닌 마천루속에서 적음감을 잃고 자기를 제조한 주인공을 잡아먹으려 할 때 남편이 돌아왔다. 영화얘기를 하자 남편이 그녀의 경탄을 가볍게 받았다. 재미 있었어? 놀랄것 없어. 이제 사람도 복제해낼수 있다는데 뭘… 시상에! 사아람두요??? 색시는 개구쟁이시절 강가에서 찰흙을 짓이겨 사람의 형체를 만들며 소굽에 빠져들던 일을 생각했다. 사내애들은 흙인형의 아래도리에 짐짓 과장된 성기를 달아붙이고 계집애들앞에 흔들며 훗훗거리군 했었다. 그래 정말 사람을 주물러 만들수 있단말인가? 무엇으로? 찰흙으로? 아니면? 남편이 말하던 인간복제에 관한 소식이 어느날 방송에서 흘러나오고있었다. …1997년 2월 영국로슬린 연구소에서 성년양의 유전세포로 새끼면양을 성공적으로 복제해냈습네다. 그후 과학자들이 류사한 기술을 리용하여 소, 쥐 등 동물도 복제해냈습니다. 복제기술이 ㅅㅇ숙되여감에 따라 인류에 대한 복제도 완전 가망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구라파 19개 나라들에서는 인류복제에 대해 명확하게 반대해나섰습네다. 공중들이 인류복제를 반대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습네다. 첫째, 복제인의 신분을 확정하기 어려운바 그들과 피복제자지간의 관계가 현유의 륜리체계에 접수될수 없습네다. 둘째, 인류의 후대번식과정에서 더는 량성이 공동으로 참여하지 않게 되면 현유의 사회관계, 가정구조의 접수하기 어려운 거대한 충격을 조성하게 된겁네다. 셋째, 생물다양성으로 볼 때 유전자구조가 완저히 같은 복제인의 대량 출현으로 하여 신형의 질병이 널리 전파될수… 색시는 라지오를 꺼버리고말았다. 귀신씨나락 까는듯한 소리는 최면가의 주문같이 그녀의 무료함을 더해줄뿐이였다. 다시 낡은 레코트 풀듯이 전자양을 돌보고 붉은 클로버와 컴은 다이아몬드와 붉은 하트, 검은 다이아몬드를 병렬시키고 캐씽구라미를 들여다보고 아버님에게 점심식사를 만들어드리는 과정에 색시는 중대한 결정 하나를 내렸다. 오래만에 밖으로 나가보려는것이였다. 요령껏 건조하기 그지없는 일상에 날로 참담해지는 심기를 조절해나가던 그녀의 인내에는 균렬이 생겼고 가출소녀같은 외곬 탈선으로 그 균렬어린 마음을 무마하고싶어졌던것이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집중영을 탈출하는 난민같은 긴장과 스릴과 쾌감 같은것이 그녀의 등을 자꾸만 밀어주는것이였다. 옷장에서 속박맞고있던 외출복을 꺼냈다. 초봄에 입을 때보다 퍽 줄어든상싶었다. 옷장에 달린 체경에서 거대한 배를 가진 녀인 하나가 색시를 마주보고있었다. 코언저리에 깔린 잠때문에 얼굴은 피곤하고 우울해보였다. 색시는 체경속의 녀인을 향해 웃음을 지어보였다. 허나 그 웃음은 그닥 명랑치 못했다. 웃음을 잘 만들지 못하던 시아버님 얼굴이 떠올랐고 명랑한 웃음을 되찾으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일념에 그녀는 저으기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허나 남편의 지엄한 분부를 부적처럼 가슴에 갈물이한 그녀는 물구나무서는 사춘기때같은 복잡한 심정으로 거울앞에서 서성이다가 드디여 문을 나서고말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색시는 층계를 내렸다. 초여름 그리고 정오의 해살은 쨍 하고 소리낼것 같이 비추어왔다. 색시는 눈시울을 좁혔다. 소리가7층에서 듣던 때와는 더 가배된 실감으로 귀청을 때렸다. 집앞의 공지에서는 헬멧을 쓴 인부들이 점심도 잊은채 땀에 번들거리는 구리빛 팔뚝을 과시하며 공연히 오갔고 전장처럼 모래며 진흙산이 솟은 사이로 거대한 트럭이 모래를 멱차게 싣고 비근대며 들어서고있었다. 부르릉 엔징 우는 소리가 글러브를 낀 권투수의 강타처럼 색시의 가슴놀이와 퀴바퀴를 강타해왔다. 색시는 질색을 하며 공지를 빠져나왔다. 대로를 지나니 강의 지류처럼 합착된 어느 뒤안길에 장거리가 펼쳐져있었다. 푸른 빛으로 살아오른 야채들이 여름을 알려주는듯했다. 익은 음식가게에서 색시는 만두 두개를 사들었다. 먹고싶은 시루떡은 가게에 없었다. 식욕을 느끼며 한입 떼물었다. 들척지금한 팥고물냄새가 울컥 치밀었다. 까닭없이 그 냄새가 싫었다. 고물을 다 털어버리고 껍데기만 멋적게 대충 씹어넘겼다. 목이 말라 올랐다. 랭식가게로 다가가 랭동한 과일시롭 한컵을 요구했다. 얼음이 서걱이는 과일시롭은 찼다. 헌데 사카린냄새 같은것이 났다. 한컵을 채 비우지 못하고말았다. 이번에는 도마도 한개를 집어들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도마도는 푸른 기운이라곤 없이 저질립스틱이라고 바른것처럼 붉에 농익어있었다. 허나 씹고보면 즙액은 기대와는 달리 생고기 씹는 맛이였고 게다가 열기를 머금기까지 해서 데친것처럼 데시근했다. 돌아보니 집에서 멀리 나와있었다. 앉아 쉬고싶었으나 시끌벅적한 장거리에서 마땅한 자리를 찾을길 없었다. 장거리곁에 소극장 하나가 있었다. 색시네 고향으로 온돌공연대가 가끔 내려오군 했다. 마을사람들은 돈 대신 쌀 한되박씩 들고와서는 공연을 보군 했다. 그중에서 소품이 가장 재미있었다. 소품을 할 때면 색시와 마을사람들은 하느라지가 다 보이도록 입을 벌리고 흐아흐아 서까래가 내려앉게 방성대소를 하군 했다. 그때 그 맛을 되살리며 다리도 쉬움결 색시는 극표 한장을 사들었다. 오늘은 《의자》라는 극이 공연되고있었다. 원체 극이 잘 나가지 않는 요즘 세월에 낮공연인지라 극장에는 관리자가 가련할 정도로 적었다. 애숭이 몇몇, 더운 날씨에도 밀착해앉은 련인 한쌍, 그리고 되게 할일없어보이는 나그네 한사람뿐이였다. 극장의 천정에서 선풍기가 날개를 헤아려볼수 있을 정도로 느릿느릿 돌고있었다. 드디여 종소리가 울리고 불이 꺼지고 막이 열리였다. 구들장을 울리게끔 웃음을 선물하던 익살누성이소품 같은 그런 극이 아니였다. 캐씽구라미처럼 까만색으로 정장을 한 나그네 하나가 방에 의자 하나를 가져다 놓는다. 모자란것 같아서 또 하나를 가져다 놓는다. 그래도 모자란것 같아서 또 하나를 가져다 놓는다. 그래도 모자란것 같아서… 시상에! 별 지랄같은 극도 다 있네… 삐걱이는 편치 못한 의자에 앉아서 관객들은 재미라곤 서캐꼬리만치도 없는 《의자》를 구경하고있었다. 불평을 쉬새없이 까내는 해바라기 껍질을 함께 휘뿌리면서, 나중에 방에 의자가 꼴똑 들어차고 정장의 주인공, 단 한사람밖에 없는 주인공이 설 자리가 없어 문턱에 올라섰다가 뒤로 나동그라짐과 함께 극은 끝났다. 박수도 갈채도 생화도 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하며 정채로운 위장면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돈지갑을 날치기당한 사람 같은 얼굴로 극장을 나서고있었다. 되게 할일없어보이고 생기라곤 없어보이던 나그네가 막이 이미 내린 무대쪽을 향해 하나 먹어라! 고 쑥떡감자를 먹이였다. 외국에서 들여온 극이라 했다. 공연안내팜플렛에는 관객들의 관람에 편리를 주게끔 극에 대한 해제가 첨가되여있었다. 물질적욕구로 팽창하는 오늘의 피페한 인문환경과 그로써 자초하는 인간 스스로의 파멸을 리얼하게 보여준 실험극… 색시는 놋요강 두드리는 소리같은 그 뜻을 다 알지 못했다. 그저 무대우에 놓여지는 의자들에서 그것보다 더 값진 집의 쏘파를 생각했고 그 쏘파거죽에서 풍겨오던 진저리쳐지는 냄새를 다시 떠올렸다. 쉰듯한 만두와 사카린냄새뿐인 시롭과 데친듯 물컹한 도마도와 공돈을 날린 극구경으로 색시의 긴긴 적막끝에 용기와 희망으로 뼈무른 외출이 막을 내렸다. 몸태의 변화때문이였던지 전에 없이 무픞이 접히는 피곤기가 몰려들었다. 스산한 랑패감으로 어깨를 추츠리며 7층까지 올랐다. 헐떡이며 문을 따던 색시는 전에 없는 풍경에 그만 그 자리에 무춤 멈춰서고말았다. 시아버님이 화장실문앞에 서있었다. 어데서 찾아냈는지 도라이바를 들고 문열쇠와 실랑이를 벌리고있었다. 갑작스레 들어선 며느리를 보고 시아버님도 흠칫 하던 일을 멈추었다. 시아버님은 항용 그러하듯이 내의바람에 맨발이였다. 둥근 내의깃으로 마른 목줄기가 겅충 드러나있었다. 내의 아래섶을 두손으로 사려쥐며 며느리의 표정을 살폈다. 떨꺽! 입에 고인 침덩이를 삼키는 소리가 요란했다. 치아의 구조로 원체 벌려졌는 입술을 어눌하게 놀려 오래만에 완정한 말마디를 만들어내였다. 잠글쇠가 … 짜부라졌더구나… 기래서 고치는 중이다… 무덤속에서 울려나오는것 같은 소리를 하고나서 아버님은 피하듯이 몸을 돌렸다. 막대기에 옷을 걸쳐놓은듯한 깡마른 몸매가 “성채”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색시가 문을 나설 때까지 화장실문 자물쇠는 아무런 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망가져있었다. 시아버님이 한 일이라고 추정할수밖에 없었다. 아버님이 로망에 드셨나? 색시는 저녁을 지을 생각도 없이 쏘파에 나동그라졌다. 매연이 카텐처럼 꺼수수 덮이는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어항속의 캐씽구라미들이 혼돈속의 춤을 추고있었다. 남편은 여느때처럼 늦게 귀가했고 몸에서는 술냄새가 났다. 미안하다, 많이 기다렸지. 과학기술대학서 우리 상점의 컴퓨털 스무대나 합동했지 않구 뭐냐. 인사턱으로 한잔 마셨어. 몹시 취한 모양 화장실로 가서 이발을 닦고 오면서도 남편은 자물쇠가 망가진것을 기수채지 못하고있었고 색시도 구태여 낮에 있은 일들을 말하지 않았다. 맛없는 만두 시롭 도마도와 재미없는 《의자》에 대해 무척 말하고싶었지만 그저 남편의 흐트러진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사람들 안마까지 시켜주겠다 했지만 뿌리쳐버렸어. 솔직히 말해서… 남편은 색시의 벗은발을 어루만졌다. … 솔직히 말해서 우리 색시처럼 예쁘고 참한 녀자… 요즘 세월에 흔치 않아. 이제 당금 애엄마될 너에게 난, 난 미안한짓 안할거다. 안할거다… 색시는 남편의 야지랑스런 모습을 덤덤한 눈빛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종래로 신입병사처럼 긴장과 정직으로 굳어져있던 남편에게서 풀린 모습을 보는 경우가 로전사의 방심한 오발탄처럼 날로 늘어갔다. 알콜의 사촉으로 남편의 정감은 고무풍선처럼 잔뜩 부풀어있었다. 안해를 으스러져라 포옹하려다가 거대한 배때문에 곤난하게 되자 돌아가 뒤로 안해를 그러안았다. 헐렁한 옷속으로 쉽게 손을 집어넣어 원체 팽만했고 지금은 더 터질듯 위태롭게 부풀어오른 가슴을 희한하게 어루만졌다. 색시의 몸이 꿈틀했다. 오래동안 그 일을 잊었구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잡혀들었다. 색시는 모두가 퇴근해버린 컴퓨터상점의 영업실에서 남편과 맨처음으로 관계를 가졌었다. 컴퓨터로 무언가 치고있던 남편이 홀연 곁에 곰상스레 앉아있는 그녀를 작업대우에 쓰러뜨렸다. 서른을 넘겨 자기보다 열한살 아래인 녀자를 사귄 남편은 분출해오르는 욕망의 염열에 헤덤볐고 남편될 사람의 사람됨에 반한 그녀는 별로 거부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서투르게 그리고 격렬하게 그녀를 다루었다. 단단한 작업대에 놓인 등쪽이 아파왔다. 허나 그보다 더 극심한 아픔이 다른쪽으로 전해왔고 잠시후 이름할수 없는 충종감이 달군 인두처럼 그녀의 몸 구서구석을 지겼다. 그녀의 주체할길 없는 손은 머리우로 뻗어 컴퓨터의 키보드우에 놓여져있었다. 남자에게서 정열의 파장이 올 때마다 그녀의 손은 그 파장을 부여잡기라도할듯이 키보드판을 부서져라 움켜잡군 했다. 그 식지가 건반을 건드리는 바람에 모니터에 글자가 현시되였다. 그녀는 터져나오는 무아의 감미를 숙녀답게 깨물어 입속으로 삼켜버렸고 그 방치할수 없는 감미를 그녀 대신 컴퓨터가 말해주고있었다. 그녀도 전률했고 컴퓨터의 모니터도 전률했다. 그 느낌이 모니터에 하나하나 현상되여나갔다. !!! !!! !!! ! !! !! 그때의 부끄러우면서도 행복하고 벅차던 감각이 다시 해조처럼 밀려와 색시더러 몸을 잊게 했다. 남편은 조심스럽고 힘들게 그녀를 범했다. 그런데… 바쁜 체위로 몸을 굽힌데서 그녀의 얼굴 가까이까지 닿은 남편의 머리칼에서 휘발유냄새가 났다. 그리고 담배냄새, 매연냄새도 조미료처럼 곁들여지고있었다. 향수냄새도 미약하나마 휘장뒤에 숨은 도적놈의 발구린내처럼 새여나오고있었다. 남편은 친구가 모터찌클로 집까지 데려다주었다고 했다. 모터찌클에 앉아 며연이 담처럼 가로막는 거리를 술기운으로 뛰여넘고 해갈라왔을 남편… 혹여 어느 안마방에서 안해의 몸태때문에 못박는 욕망의 보상을 변형적으로 받고 왔을 남편(?). 원체 냄새에 심각한 알레르기를 갖고있는 그녀는 그 현념으로 얼룩진 냄새에 견디기 어려워했다. 남편은 어렵게 격정의 막바지에 올랐으나 그녀는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냄새에 대한 이질감때문에 격정은커녕 형벌같은 시간을 참고있었다. 남편이 기계처럼 생각되였다. 컴퓨터작업대우에서 컴퓨터와 한덩이가 되여 맨처음 그 일을 치렀을 때 그녀가 가진 생각이였다. 오늘 남편은 또 휘발유냄새까지 풍기고있지 않는가! 기계와의 STX! 시간과 환경이라는 담금질속에 쇠처럼 식어가고 딱딱해져가는 정감의 장도를 색시는 섬세한 후각으로 마음으로 읽어내고있었다. 미안해, 힘들었지… 남편은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나서 이불속으로 기여들어갔고 인차 OFF가 눌러진 컴퓨터처럼 잠이 들어버렸다. 그러나 색시만은 잠들기 어려워했다. 땀 흘리며 무대우로 의자를 나르고있는, 캐씽구라미처럼 까만 정장을 한, 아니 남편처럼 정장을 한 배우가 생각났다. 배우의 분장한 얼굴과 원체 허연 남편의 얼굴이 겹놓였다. 남편이 의자를 나르고있었다. 침실로 날라들이고있었다. 더 놓을 자리가 없어 색시는 문턱우로 올라섰다. 그런데 남편은 창문가로 다가오더니 그녀를 창밖으로 밀어던지고 그 자리에 의자를 놓는것이였다. 색시는 소스라쳐 놀라며 환각에서 깨여났다. 자기가 환각속에 섰던 창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창으로 누군가의 눈이 침실을 들여다보고있지 않는가. 7층높이인지라 카텐까지 달지 않고 방심해있는 그들을 눈을 지릅뜨고 들여다보고있었다. 그것은 … 공룡의 눈이였다. 색시는 다시 한번 진저리를 치며 꿈에서 깨였다. 더위에 열기로 가득찬 침실이였지만 살진 가슴패기로는 식은땀이 줄지어 내리고있었다. 시원한 약수를 마시고싶어 랭장고가 놓여진 주방으로 나갔다. 공교롭게도 시아버님이 어둠을 헤집으며 화장실로 가고있었다. 색시는 얼른 화장실 바깥벽에 달린 스위치를 눌러 화장실의 불을 켜주었다. 아버님은 여전히 아무말도 표정도 없었다. 떨꺽 소리가 나게 침을 삼키고는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색시는 망가진 화장실문 자물쇠를 생각하며 침실로 들어가려 했다. 이때 아버님이 기거하고있는 칸의 방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그속으로부터 … 아버님이 나오고있었다. 화장실의 문도 때맞추어 열렸다. 내의바람에 겅충한 목을 하고 치아의 구조때문에 벌려진 입술로 아버님은 애써 웃음을 만들고있었다… 시상에! 색시는 푸른 입술을 덜덜 떨었다.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청이 톱밥을 삼킨듯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색시는 온밤을 이렇게 깨고 잠들고 잠들고 깨고 하면서 연거번거 악몽에 시달렸다. 진짜로 현실상채를 확인했을 때 이번에는 아버님의 방으로부터 건조한 고성이 터져나오고있었다. 가자, 돌아를 가! 돌아를 가아!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오더니 랭장고문부터 열어젖혔다. 맨 웃층에 있는 소고기며 돼지고기의 정육덩어리들을 끄집어내여 복도에 쓰레기상자맞잡이로 놓여진 종이박스에 던져버렸다. 당혹감에 두눈을 동그랗게 치뜨는 색시에게 경고하듯 어미(语尾)가 분명하게 남편은 말했다. 이제부터 고기먹지 마라. 돼지고기, 더우기 소고기 먹지 마! 무슨… 일인데요? 란리가 났어. 란리들이… 남편은 핸드폰가방속에서 석간지 한장을 끄집어내여 펼쳤다. 톱소식을 식지로 구멍낼듯이 그루박았다. 구라파에 번진 공포의 광우병 구라파는 온통 공황상태에 빠졌다. 광우병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영국으로서 현재까지 16만 1663건이 보고됐고 스위스에서 205건, 아일랜드에서 123건, 뽀르뚜갈 13건, 주로 구라파에서 발견됐지만 중동의 오만, 카나다, 포플랜드에서도 한두건씩 발생이 보고됐다. 영국정부는 460만마리가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다 도살하는데 최소 6년은 걸릴것이라고 밝혔다. 20세기는 생산성이라는 광기가 세계를 지배한 세기였다. 풀 먹고 사는 소에게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농후사료”를 만들어 먹이였다. 그쪽이 방목보다 수익성이 높고 노력도 덜 들기때문이다. 그래서 몇천년동안, 풀만 먹고 살아온 초식동물이 양고기와 동물내장 같은 육류를 먹게 된것이다. 스크래프병에 걸린 양은 사료원료가 됐고 이를 먹은 소들이 광우병에 걸려 떼죽음을 당했다. 소가 미친것이 아니다. 인간의 문명상태계가 미쳐가고있다는 신호이다.  속보: 영국산 소고기 전면 금수 조치가 해제되기도전에 이번에는 벨기산 돼지고기가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에 오염됐다는 뉴스가 터졌다. 닭과 닭알도 함께 오염됐다는 소식이 뒤따랐다. 전세계적으로 벨지산 돼지고기 회수 소동이 벌어졌다… 시상에! 기럼 우리 이제부터 고기란거 못먹어요? 한동안은 먹지 말자. 설마 우리 여기까지 그런 병이 돌가요? 설마가 사람 죽인다구. 서양거라면 쓰레기두 입수해들이는 우리잖아. 절대루 먹으면 안돼. 더우기 임잔 이제 혼자 몸이 아닌데! 이거 진짜루 말세가 오는건감?? 남편은 침몰하는 배에 난 구멍을 혼자 막는 사람처럼 황황한 기색이였다. 그바람에 색시도 남편의 불안에 옮아들기 시작했고 은연중에 처참히 죽은 바둑이를 머리에 떠올렸다. 페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고 죽어간 바둑이처럼 영문없는 액사를 당할수 있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멀리서가 아니라 가까이에서 눈도 코도 다 보이게 실감되여왔다. 이제부터 우리 뭘 먹구 산대요? 하, 고기말고도 먹을거야 많지, 그 있잖아… 남편이 홀연 말을 갑자질렀다. …여하튼 지방이 많은 고기는 몸에 좋지 않아. 지금 녀자들 밥 같은거 아예 먹지 않다싶이허구 살아가잖아. 다이어트 한답시구. 그렇다구 매일 과일로 하루 세끼를 에울순 없잖아요? 원체 흥감스러운데가 있고 벼룩을 보고도 비행기야! 과장을 잘하는 남편에게 색시는 자꾸만 의문덩이를 내들었다. 우리 녀자들이야 밥에 짠지면 그런대로 괜찮지만 하루 건너 연회석인 당신 남정들은 어쩌겠어요? 고기 안먹구. 뭐, 그런대로 응부하지 뭐. 저녁식사는 콩나물국 하나만 달랑 놓고 했다. 그 며칠간 색시는 내내 음식공포증에 시달렸다. 텔레비죤이며 방송에서 광우병에 대해 련속보도를 했고 이곳 검역소들에서도 그 성향에 맞춰 자지방 육류에 대한 전면검사를 벌렸다. 그런데 사람들의 심기란 알고도 모를 일이였다. 색시는 원체 육류쪽에 식성이 없는 사람이였는데 목먹는다고 하니 외려 시원한 소갈비국 생각에 미칠것만 같았다. 콩나물국에 소고기다시다를 넣어 먹어보았지만 “꿩대신 닭”이라고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에게서 단단히 신칙을 들었다. 독품을 몰수하듯이 다시다를 들추어냈고 일본산의 그 양념도 정육덩이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복도의 쓰레기상자에 날라들었다. 남의걸 잘 들여오고 잘 배워내는게 일본이라고. 봐, 문자조차 우리걸 가져다 획을 뜯어 만드는 잔나비들인디. 이것저것 확대경을 들고 대하고, 지뢰구역에 들어선듯 조심하는 남편이 저러다가 다른 병을 앓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가 미치다니? 색시는 일전 동네에서 미친 남자 한사람을 보았었다. 시가지의 어느 한 고무공장에서 일하며 농사군딱지를 벗은듯 마른 호기를 부리던 사람이였는데 펄펄 끓는 력청(沥清)에 전신화상을 입으면서 미쳐났다. 그 사람은 고무만 보면 달려들어 이발로 물어뜯군 했다. 향정부마당에 놓인 자동차나 자전거 다이야를 보면 물고 늘어지군 했다. 모철, 논두렁에 벗어놓은 고무신을 물어뜯기도 했고 애들 고무지우개도 엿가락처럼 씹어대군 했다. 그렇다면 소는 어떻게 미쳐날가? 원체 대 큰 소의 이발이 송곳이로 버려지고 둥그런 발톱이 모가 나서 영화속의 공룡처럼 사람을 한입에 베여무는 환각에 사로잡히며 색시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캐씽구라미가 미쳐나 어향에서 뛰쳐나와 땅우에서 풀쩍풀쩍 뛰여다니는 환영도 떠올랐다. 컴퓨터도 병을 앓는다던데? 어떻게 앓을가? 열이 날가? 우리가 구토설사하는것처럼 부속품을 토해낼가? 아니면 암종양이 생기듯이 형광막이 부풀어오를가? … 애 낳을 준비로 집에 붙박혀 침대우에서 노량으로 뒹굴며 녀자는 질정없이 생각을 적었다가는 지우고 지우고는 다시 적고 하였다. 여하튼 일전에는 홍역이나 감기 같은것을 병으로 치부하고 알약쯤으로 응부했는데 부르기조차 어려운 병들이 많이도 생겨나고있었다. 홍안병, 콘디롬마, 에이즈, 마천루종합증, 고소공포증, 자페증(自闭症), 컴퓨터천년충(千年虫), 광우병 등등등등… 이러한 절실한 우려에 시달리지 않고있을 사람이 있다면 단 한사람뿐 다름아닌 시아버님일것이다. 색시는 그런 시아버님이 오히려 부러워나기까지 했다. 허나 시아버님은 시아버님대로의 다른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한번 진지상을 차려들고 아버님방에 들어섰다가 색시는 시아버님이 무엇으로 등을 긁고있는것을 보았다. 황황히 뒤로 감추긴 했지만 색시는 그것이 무언지 일견에 보아낼수가 있었다. 아무말없이 응접실로 들어가 텔레비죤을 살펴보았다. 낚시대처럼 뽑아올리던 안테나가 보이지 않았다. 두가닥중에서 한가닥을 끊여내였다. 아버님은 그 안테나로 등을 긁고있었다. 일전에 아버님에게 참대로 만든 등긁개를 사드렸었다. 손잡이에 “복”자까지 새겨진 정교하게 만들어진 등긁개였다. 등긁개를 잃어라도 버렸나? 허나 출입시에 색시는 분명 침대머리에 놓여있는 등긁개를 보았다. 다행이 유선텔레비가 들어온 집이여서 텔레비안테나는 담쌓고 남은 벽돌신세였다. 그렇다지… 실로 로망이 드신걸가? 아니면 가려운걸 보시니 목욕하고싶은걸가? 아버님, 목깡할 때가 되잖았어요? 남편에게 안테나 사건에 대해 대주지 않고 색시는 완곡하게 물었다. 화장실문 자물쇠에 대해서도 남편이 묻지 않자 입을 봉하고있은 그였다. 뭐? 목욕?? 남편이 놀라듯 응수해옸다. 그리고 머리를 가로저었다. 필요이상으로 머리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시상에! 목깡 안하구 살아요?? 색시가 폭발하듯 소리질렀다. 그러고보니 새집들이후 아버님이 목욕한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의 빨래는 남편이 세탁소로 가져가군 했다. 색시가 하려 들면 남편이 부득부득 앗아냈다. 아버님의 더러워진 옷가지와 이부자리를 챙겨가는 남편의 행동에서 요행 효도의 흔적을 보았던 색시였다.  뭐 그런게 아니고… 헌데 당신 별거 다 신경쓰고 그래? 남편이 면풍든 사람처럼 어눌하게 입을 놀리며 확답을 갈무렸다. 자기쪽에서 증을 버럭 냈다. 아버님의 그 야릇한 증세는 등긁개로 대용된 안테나에만 그치지 않았다. 색시의 몸태가 변하기 시작하자 남편은 카세트테프 하나를 사주었다, 아침저녁으로 들으라고 했다. “태교(胎教)음악테프”였다. 산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좋다고 했다. 과연 고향의 여울물소리, 새소리를 듣는듯 맑은 곡조가 귀맛에 좋았다. 그런데 그 테프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님방에 들어서보니 시아버님이 몽땅 뽑아놓아 실타래처럼 엉켜진 테프를 주체할길 없어 당황해하고있는중이였다… 장식을 요란히 했고 맨웃층이여서 채광이 잘 들다보니 집은 늘 건조했다. 그래서 가습기(加湿器) 하나를 사놓았다. 보온병보다 조금 작은 가습기는 구석쪽에서 물안개를 퐁퐁 피워올리며 인공으로 딱딱해진 구석구석을 습윤하고 차분한 손길로 어루쓸어주고있었다. 자고나면 코와 입안이 늘 말라들군하는 색시에게서 가습기는 필수품이였다. 그 가습기가 보이지 않다가 령감님의 방에서 나왔다. 가습기의 부속품은 오간데 없고 그 플라스틱외각속에 아버님이 가래침을 뱉아낸 휴지덩이들이 골똑 차있었다. 염오와 반감이 상대가 년장자임을 알아볼 사이도 없이 욱- 치밀어올랐다. 색시는 처음으로 시아버님앞에서 불손하게 파동하는 정서를 엿보였다. 아버님은 아무런 항변도 없었다. 남의 집 창호지에 구멍을 내고 훈장앞에 불리워간 학생처럼 겅충 드러난 뒤덜미를 피나도록 긁고만 있었다. 그런 아버님이 색시는 불쌍해나기도 했다. 오죽 갑갑했으면 저런 방식으로 응어리진 적막을 해소하랴싶었다. 그래서 눈감아주었고 의연히 남편에게 일러바치지도 않았다. 그러한 관용은 기계에 대한 편집광(偏执狂)적인 로인의 증세를 더욱더 유발시켰다. 색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디스크는 령감님의 방에서 거울대용으로 사용되고있었다. 귀가 린색한 아버지를 위해 남편이 사준 보청기는 언녕 줄이 끊겼고 령감님은 그것이 뭐 박하사탕인듯이 입안에 놓고 달그락달그락 굴리군 했다, 그녀가 줄겨먹는 사과나 홍당무우즙을 짜내는 목즙기속에 감자가 들어있기도 했고 삼복염천의 에어콘에서 찬바람이던것이 금시 더운 열기로 변하여 확확 풍겨나오기도 했다. 요즘 들어 “성채”속의 주인은 “호전파장군”으로 둔갑하여 활동이 많아졌고 개구장이같은 못된 궁냥으로 다른 사람도 아닌 며늘아기를 괴롭히고있는것이였다. 아버님이 젊어서 손재간 피우셨나보죠? 라지오수리라든가 아니면 시계수리 같은… 색시는 아버님의 그 소재를 파악할길 없는 야릇한 행위— 기계에 대한 분수넘는 애착심리를 해제해보려고 남편에게 에둘러 물었다. 남편이 그 말을 듣자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아부지 일평생 가대기만 만져봤을뿐이야. 기계수리라니? 랭수 먹다 이발 부러질 소리… 그러던 남편의 기색이 심각한 빛으로 바뀌였다. 아부진 여태껏 시계조차 차보질 못했어. 우리 가문에 불효났지. 불효났어! 남편은 스스로의 애락한 감개에 빠져들었다. 묻지도 않은 말을 주근주근 터놓기 시작했다. 우리 고장은말이지, 임자네 고장보다말이지, 훨씬 깊은 산골이였다구… 적삼우로 부푼 색시의 배를 어루만지며 남편이 말을 이었다. 부끄런 말이지만 이곳의 대학에 붙어서야 난 처음 기차란걸 타봤어. 웃지 마! 그런 생둥이의 아버지나깐 이곳에 첨 온 아버지가 어떤 감수였겠나. 어디 생각해봐. 이건 “관청에 온 시골닭”도 아니구 뭐랄가? 아버질 닭에 비하긴 좀 그러긴 하지만두. 여하튼 눈알이 까집히고 정신이 홰홰 돌아갈 그런 세상별천지였을거야. 나까지도 첨엔 그랬는데… 아버진말이지. 이곳에 도무지 도무지 적응이 안돼하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 몸살을 앓으셔. 그런데말이지 돌아가려 해도 이젠 다 끝난 장이야. 시내에 물을 대여주려고 우리 동리 골물을 터쳐 땜을 만들었어. 원체 쬐꼬만 동리인지라 물에 깝뿍 잠기고말았지. 그래서 아부지껜 이제말이지 고향이라는거 더는 없어… 남편은 컴퓨터키보드를 만져 모니터에 자기 생각을 현시하듯이 안해의 배를 만지며 감개를 풀어내고있었다. 전자회로가 끊어지는 소리 같은 한숨이 울렸고 색시의 가슴쪽에 손을 얹은채 남편은 OFF가 되여 잠에 곯아떨어졌다. 남편이 추억을 더듬고 있는 사이 색시는 남편의 고향과 진배없는 자기네 고향을 더불어 그 애련에 합탁시켜보았다. 나서 자란 보금자리에 대한 애틋한 정의 공감을 진하게 느끼며 남편의 손우에 자기손을 얹었다. 그런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너나 나나 내용물이 꼭 같은거라고… 그것과 자물쇠며 안테나며 테프며 가습기며 보청기며 에어콘이며 어떤 련관의 끈이 있는걸가? 현념은 줄창 속곳에 달라붙은 가시처럼 색시를 괴롭혔다. …시상에! 난 몰라!! 시아버님에 대한 색시의 시상에 류다른 관용과 인내는 남편과 고향담을 애틋하게 나눈 그 이튿날 문득 한계를 넘고 작렬했다. 색시로 말하면 해도 너무 한 일이 끝내 일고야말았다. 색시에게는 손목시계 하나가 있었다. 전자시계가 란무하고 시계를 차지 않는게 시체멋인 요즘세월에 구식이고 윤택조차 없는 식계를 색시는 굳이 고수했다. 남편이 비싼쪽으로 사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거부했고 시계는 그녀 신체의 한부분이기라도 한듯이 그녀 몸에 단단히 달려있었다. 지나간 고담처럼 끝없이 주절거리는것 같은 시계는 늘 색시를 대신해 눈물겨운 이야기로 시간가는줄 모르게 해주고있었다. 손목시계는 색시의 언니것이였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색시에게는 언니는 유일한 살붙이였다. 치렁치렁한 외태머리를 왼쪽어깨에 곱게 드리우고 다니는 언니는 보기 드문 고전(古典)미인으로 남편이 괴여올리는 색시보다 많이 예뻤다. 동네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색시보다 두살 이상이였지만 퍽 조숙했고 언니에 엄마 역도 더불어 맡아왔다. 그렇게 예쁘고 좋기만 하던 언니, 조실부모의 박명을 타고난터에 우리들이라고 함께 천년만년 살고지고하자던 언니는 지금의 색시나이만 할 때 먼저 갔다. 동생을 뿌리치고 먼저 갔다. 바둑이가 죽은 그 이듬해에 죽었다. 바둑이가 먹고 죽은 물고기가 살고있는 강을 오염시킨 그 공장에서 일하다 죽었다. 언니는 포장차간에서 일했는데 종이토리를 감는 기계에 머리택가 끌려들어가는 액사를 당했던것이다. 색시가 오늘이고 래일이고 한 본새로 단발을 고집하는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때 지금의 남편과 회사의 직원들이 공장에 판매를 왔었다. 언니를 잃고 하늘같은 슬픔에 잠긴 그녀를 보고 남편은 껴안아주고싶도록 련민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기대에서 종이가 만장처럼 나붓기는 차간을 배경으로 울고 섰는 그녀가 그렇게 슬프도록 아름다워보일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번의 판매에서 남편은 실패했다. 허나 수익은 컸다. 색시를 얻은것이였다. 어디서 어떻게 기대야 할지 막연했던 색시는 컴퓨터처럼 기민한 남편의 추구와 일점 오차 없는 미래에 대한 설계에 숫접게 그의 뒤를 묻어서고말았다. 손목시계는 언니가 공장에서 년종상금으로 탄것이였고 언니의 유일한 유품, 그들 가정의 제일 값지다는 기물이였다. 그런 애환과 사랑 이야기가 담겨져있는 손목시계가 어느결인가 시아버님의 눈에 띄였고 호기심의 제물(祭物)로 되였던것이다. 시아버지의 그닥 깨끗하지 못한 요우에 먹다남은 물고기의 잔해처럼 널린 시계바늘, 시계태엽, 시계치륜들을 보고 색시는 치한으로부터 기습을 당한것처럼 비며을 질렀다. 아부지잇!— 저녁, 울었던 흔적이 력력한 색시에게서 사연을 접해들은 남편은 방문을 왁살스럽게 열어젖혔다. 아버지는 면부근육기능을 상실한 사람처럼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불러놓고 그런 처치곤란한 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남편도 속수무책이였다. 시계 차고프면 차고프다 말씀이나 할것이지 기래요? 아부진 … 남편은 결김에 자기의 값비싼 손목시계를 벗어 아버지의 손에 콱 쥐여주고는 그냥 나와버렸다. 그것이 책망인지 안니면 불효에 대한 반성인지 남편자신도 알길이 없었다. 밤, 산산이 해체된 추억의 시계바늘을 맞추고 태엽을 다시 감으며 색시는 장밤을 울었다. 그 전자양조차 돌보지 않아 남편이 몸소 “먹이”를 주었다. 이튿날 남편은 회사에서 말미를 맡았다. 전에 없던 일이였다. 색시를 배동해 택시에 올랐다. 울음으로 밤샘을 하고난 색시는 남편을 두들겨 깨우고는 고향으로 가보고싶다고 했다. 맞아줄 이도 없는 고향이지만 그저 가보고싶다고 했다. 가봤대야 모기밖에 누가 우릴 더 반기겠어? 하는 남편에게 매달리며 죽은 바둑이가 보이고  죽은 언니가 보이는 꿈자리때문에 자기보담은 아이를 위해 고향으로 가서 방토를 해보겠다고 했다. 억지를 쓰며 간청해서 남편의 수긍을 받아냈다. 택시의 뒤좌석에 색시를 힘겹게 부축해 앉히며 남편은 그동안 색시를 너무 등한시했고 배동하여 외출 한번 못했다는 자책지감이 들어했다. 그러고보니 거금으로 삯낸 택시비지만 아깝지 않았다. 눅신한 열기에 엿물처럼 눌러붙은 아스팔트길로 택시는 느릿느릿 글러갔다. 앞에도 뒤에도 흘레하는 잠자리마냥 붙어선 장대한 물결의 차량들이 도시의 혈관속에서 뇌혈전환자마냥 행동의 자유를 잃고있었다. 도시에서는 경적이 금지됐으므로 운전기사들은 그저 차창밖으로 한쪽만이 검게 그을린 팔뚝을 저으며 불손한 어성들을 뜅겨냈다. 붉은등은 그들과 척지기라도 한듯이 피줄선 눈을 지릅뜨고있었고 땀을 뻘뻘 흘리는 교통감리들은 지휘봉을 몽둥이 삼아 질서를 지키지 않는 기사들의 정수리를 후려치고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고있는것처럼 보였다. 그런 와중에도 사람의 물결은 채바퀴를 새여나가는 모래알모양 차량사이를 비집고 흩어져나가고있었다. 어데를 봐도 차와 사람과 소음과 열기뿐이였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갈수 있다는 들큼한 상념에 조용히 하회를 기다리고있던 색시가 견디기 어려웠던지 뒤좌석의 구멍난 틈새로 해면을 호비작호비작 뜯고있었다. 오랜만에 정성껏 분을 두들긴 얼굴이 땀에 씻겼고 물이 빠진 강바닥의 돌처럼 자잘게 얼굴에 깔린 잠이 형체를 드러냈다. 기사가 기다림에 생중난 그들을 위문해주련듯 라지오를 틀었다. …오늘은 세계 인구날(人口日)입네다. 20세기를 돌이켜볼 때 우리는 많고많은 대변혁이나 사건중에서 그 어느 문제도 인구폭발문제처럼 지구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것이 없다는걸 쉽게 발견할수 있습네다. 지구의 생태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자원을 소모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 많은 인구를 먹여살리는가 하는것이 오늘날 인류앞에 놓여진 중대한 난제입네다. 세계인구의 장성속도는 놀아울 정도로 빨라지고있습네다. 세계인구는 1804년에 10억에 달했지만 1920년에는 20억, 오늘에는 60억에 접근하고있습네다… 씨부랄! 새끼만 까고들 있었나? 운전기사가 방송을 들으며 걸죽한 욕설을 입에 담았다. 그러는 기사의 뒤통수를 향해 색시가 보얗게 눈을 흘겼다. …유엔의 추측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50년후면 세계인구는 89억에 달할것이며… 아따, 기사아저씨이! 하필이면 교과서 읽는 소릴 듣고 앉았어요. 남편이 흥미 덜하다는듯 방송의 따분한 내용물에 반감을 표했다. 기사도 그 반감에 동감인양 방송을 바꿔 테프를 꽂았다. 중국 노래가 울려나왔다. 향간에서 류행되고있는 “자주 집으로 가봐요”라는 제명의 노래였다. 자주 집으로 가요 집으로 가봐요 어머니를 도와 그릇도 씻어드리고 아버지의 굽은 등을 도닥여도 줘요… 그 노래가 지금의 심기에 꼭 맞는듯 부부는 눈을 맞추었다. 색시가 곡조에 맞춰 노래가락을 흥얼거렸다. 도심에서 떠난 택시가 도시를 완연 벗어나 시교와 린접된 국도에 들어서기까지 꼬박 한시간을 잡았다. 그제야 색시는 속도를 느꼈고 택시에 앉은 자신들을 다시금 실감했다. 또 두어시간가량 달려 어느 고개마루에 오른 차가 갑자기 급정거를 했다. 다 왔어요? 남편의 어깨에 기대여 땀에 젖어 졸고있던 색시가 눈을 떴다. 그런데 남편도 그렇고 백미러에 비쳐진 기사의 눈고 그렇고 고개 아래를 뚫어져라 내려다보고있었다. 그 눈길들은 분명 무언가 찾고있었다. 그 눈길과 색시의 눈도 합세하였다. 시상에! 순간 색시는 헛밟은것처럼 움찔했다. 하마트면 비명을 지를번했다. 고개 아래에는 강이 있었고 그 강우에는 색시네 고향으로 통하는 유일한 경로인 다리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 다리로 색시네 고향의 많은 사람들이 건너왔다. 허나 전쟁이라도 피하는것처럼 건너는 왔지만 건너가는 사람은 적었다. 색시도 남편을 따라 그 다리를 건너오면서 가는 목이 꺾이도록 뒤를 돌아보았었다. 그런데 그 다리가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강에는 색시네 아빠트앞 공터처럼 헬멧을 쓴 인부들이 까맣게 널려 먹이를 나르는 개미떼처럼 분주히 오가고있었다. 강녘에 “다리확장공사시공중, 통행금지!”라고 씌여진 패말이 보였다. 씨부랄! 하고 기사가 맹랑한 소리를 냈고 람루한 기분으로 남편은 색시의 표정을 읽었다. 색시는 누가 다치면 울음을 터뜨릴것 같은 얼굴을 하고있었다. 고향으로 한번 가보려던 감몽은 그렇게 잠시 깨여졌고 다시 전자양과 캐씽구라미와 클로버 하트 다이몬드 스페이드와의 시틋한 상봉이 색시를 맞아주었다. 날은 환장할 정도로 더웠다. 찜통더위에 사람도 땀흘리고 하루종일 작동상태인 에어콘도 땀을 흘렸다. 색시는 무거운 배를 퍼더버리고 앉아 두손은 뒤로 바닥을 짚고 헐떡이기가 일쑤었다. 남편이 사다주며 백당부를 한 안태보(安胎宝)약이 손 펼치면 잡힐데 있었지만 색시는 약먹을 물 뜨러 가기조차 귀찮았다. 다행히 비가 올 기미가 보여 색시는 좋았다. 대줄기 작달비라도 한줄금 두들겨 내렸으면 내연기관처럼 달아오른 도시의 열기를 식혀낼수 있을것 같았다. 허나 소낙비 직전의 무더위는 발광에 가까웠다. 물속의 캐씽구라미조차 더위에 지쳐 금붕! 금붕! 울어대는것 같았다. 더위때문인지 아버님의 악동이 같은 해괘한 짓거리를 더는 볼수 없어 색시는 그나마 편했다. 종내 비를 기다려내지 못하고 색시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목욕을 하고싶어졌다. 땀으로 끈적끈적한 몸뚱아리를 박박 씻고싶었고 더위는 포박되여 까닭없이 심술궂어지는 심기도 씻어내리고싶었다. 몸태때무에 변형이 된 옷을 힘들게 벗어내렸다. 욕조에 들어앉을수 없어 바닥에 타올을 깔고 앉았다. 자그만 화장실에도 열기는 밀도 짙게 재여있었다. 금방 받아낸 수도물이라도 금세 미적지근해지는것이였다. 소래에 물을 받아 어깨에 끼얹었다. 물은 가슴패기의 깊은 곬을 따라 흘렀고 완만하게 둥시런 배를 감싸고 흘러내렸다. 일전에는 남편과 둘어서 꼭꼭 “원앙욕”을 하군 했다. 욕조에 둘이 비집고 앉아 서로의 요긴한 부분을 샅샅이 만지며 목욕절반 장난반으로 롱탕질을 쳐댔다. 그에 생각이 미치자 빈 욕조를 바라고 색시는 혼자서 얼굴을 붉혔다. 이것이 마지막 목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해산 기일이 이제 며칠이 남지 않았기때문이였다. 색시는 자기배같지 않은 만삭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남들처럼 임신무늬가 생기지 않은 배는 깨끗하고 풍요로워보였다. 그속에 다른 사람도 아닌 나의 아기가 보채지도 않고 점잖게 어머니와의 상봉을 마지막차처럼 기다리고있다고 생각하니 색시는 금세 비누거품처럼 부풀어오르는 행복에 켜워지는것이였다. 아가야 넌 어떤 얼굴로 나를 맞아주려나? 이때였다. 색시는 꽈르릉! 하는 천둥소리를 들었다. 드디여 비가 내리고있나보다. 그런데 천둥소리는 유난히도 가까이에서 들렸다. 화장실문이 열렸기때문이였다. 그리고 사진기의 마스네슘섬광처럼 번쩍이는 번개불빛의 후광속에 화상실문가에는 … 시상에! 사람이 서있었다. 내의바람에 껑충한 목을 하고 치아의 구조때문에 입을 헤 벌린채로 맨발바람의 누군가가 허깨비처럼 서있었다. 시아버님이였다! 색시는 덴 가마에 올라선것처럼 악당치는 소리를 질렀다. 엉뎅이에 깔린 타올을 재빨리 끄집어내여 본능적으로 몸을 가리려 했으나 부풀어오를대로 오른 치부를 다 가릴수가 없었다. 그저 악몽의 문짝에 옷자락이 끼여 오도가도 못하는 심야의 녀인처럼 온몸으로 경악하며 악! 악! 하고 색시는 단말마의 비명을 질러댔다. 오늘 보니 두상(头像)이 무지스럽게 커보이는 시아버지는 정지된 시계처럼 동공 하나 움직이지 않고 버캐를 허옇게 문 입술을 실룩이며 침 한번 삼켰다. 떠얼컥! 비좁은 화장실에서 그 소리는 쇠덩어리의 실추소리처럼 둔중하게 울렸다. 그러는 령감의 손에 어데서 찾아냈는지 망치 하나가 불끈 쥐여있었다. 떨어져 갓도는 단추알처럼 령감의 눈알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확 살아오른 눈빛이 멈춘 그곳에 온수기가 달려있었다. 어떻게 화장실을 빠져나왔고 재빠르게 옷가지들을 꿰여입었는지 그 순간만은 색시의 뇌리속에 하얗게 지워지고 없었다. 화장실에서 천둥소리같은 질타성이 탕! 타아앙! 울려나옸다. 령감님이 망치를 들고 온수기를 사정없이 후려서 부서뜨리고있었다. 색시는 무거운 몸매의 사람 같지 않게 층계를 단숨에 달아내렸다. 독전(毒箭)같은 비가 그녀의 전신에 꽂혀들었다. 비물에 질척해진 공지를 가랭이에 흙탕꽃을 피워가며 색시는 첨벙첨벙 뛰여갔다. 대로곁에 공중전화박스가 있었다. 구명선처럼 덮쳐가 헤덤비며 번호를 눌렀다. 틀려서 다시 눌렀다. 전화기를 꼭 잡은 다른 한손은 전기드릴을 잡은 인부의 손처럼 달달 떨리고있었다. 여보시요? 여보시요? 말씀하세요. 여보시요? 드디여 남편이 근무하는 회사가 걸렸고 받은 사람은 고맙게도 남편이였다. 어쩐지 눈물이 돋솟아올았다. 색시는 악에 받쳐 소리소리 질렀다. 못살아!- 집 가까이에 있는 다방에서 색시는 영 오지 않을것 같던 남편과 마주 앉았다. 창밖은 여전히 흐려있었고 암울한 날씨처럼 남편의 표정은 차마 보아내려갈수 없도록 험했다. 뜨거운 차 한잔이 다 들어가고 그만한 따스함이 두려움에 오갈든 가슴에 채워져서야 색시는 진정을 할수가 있었다. 머리칼에서는 아직도 비물이 뚤렁뚤렁 빈 차잔에 떨어져내렸다. 남편이 또 티슈를 집어 건네주었다. 남편은 처음 보는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아니, 담배필터를 씹고있었다. 그리고 차물을 랭수처럼 들이켰다. 차잎이 입가에 추레하게 달라붙었다. 울엄만 아부지보다 다섯살우였어… 남편이 긴긴 침묵때문에 가라앉은 목청을 가다듬고나서 한 말이였다. 색시는 아직도 피해의식이 가득찬 얼굴을 들어 남편의 입을 쳐다보았다. 아부진 아홉살에 엄마한테 장가들었지… 그런 남편을 색시는 제지시킬 힘조차 나지 않았다. …아부지와 엄만 진갑까지 함께 쇠였댔어. 점욕당한 자기처럼 흥분하지 않고 무관한 입담거리를 꺼내고있는 남편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만해욧!- 늦여름 땡볕에 오른 고추가 되여 색시는 힘을 모아 기성을 질렀다. 카운터에서 계산에 골몰하고있던 웨이터가 흠칫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남편은 여전히 침착했다. 또 한개비의 담배를 꺼내들었다. 필터쪽을 떼내여 입에 넣고 지근지근 씹었다. 동강난 말을 서두르지 않고 붙여나갔다. …그런 부모를 둔 우리 형젠 무척 행복했었지. 부모에게 더 큰 기쁨을 주려고 우린 그분들을 이곳으로 모셔왔어. 물론 아버지와 어머닌 안오겠다고 버퉁겼어. 우린 강다짐으로 끌었어. 그것을 효도라 생각허구… 색시는 네 맘대로 지랄춤 춰바라는듯 잠자코 있었다. 들끓던 분노가 체념으로 잦아들고있었다. 남편이 얼굴을 들어 그런 색시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흐려있었다. 허나 강했다. 엄만… 엄만 누님네 집에 들었어. 막내동인 내게 부접거리를 얹을수 없다면서말야. 내가 누님보다 드 크고 더 좋은 집을 쓰고있었지만. 그러던 엄만, 엄만… 잠언풍의 말투로 흐르던 남편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얼굴에는 황사장(黄沙场)의 맞바람을 지나는듯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엄만… 이사짐을 푼 그날 저녁 죽었어. 목욕하다가 … 목욕하다가 온수기에 감전되여 죽은거야!… 아! 색시의 입에서 헛바람같은 경아성이 새여나왔다. 개천에서 나와 립신양명한 아들딸의 효성어린 지청구에 못이겨 돌맹이 하나 풀 한잎에 정한이 스민 고향을 떠났고 극락인지 아니면 염마전인지 쇠통 알길없는 도시에 겁먹은 눈길로 들어섰던 부모님, 한짝도 락오없이 짝지어 세파의 구름길을 헤쳐나는 홍안(鸿雁)같은 부모님들이였는데… 색시는 그제야 운무에 가렸던 시아버님의 그 광기에 가까운 집착의 근원을 리해할수가 있었다. 그 실어증(失语症)에 가까운 과묵과 두문불출의 자기학대에 대해 알것만같았다. 반세기 넘어 죽음같은 고해의 현애탄도 다 넘어왔는데 천륜지락이 당금 아지랑이처럼 펼쳐질무렵 어이없게 그렇게 가버린 누님같던 부인네의 죽음을 두고 도깨비 보물함처럼 도무지 영문을 알길 없는 철천지의 기계를 바라 두눈을 흡뜬 시아버님의 피로문 절망을 며느리는 방불히 보는것만 같았다. 불쌍한 아버님! 리해, 그리고 량해가 저 하늘의 천둥과 번개처럼 순간에 엇갈렸다. 꼭같은 비운이 지울래야 지울수 없는 흉터같이 속살깊이 남아있는 그녀였기에 가슴을 짓누르고있는 그러한 정감의 바위돌의 무게를 색시는 너무나 잘알고있는것이였다… 색시는 남편의 뒤를 묻어 다시 집에 들어섰다. 집은 폭풍우가 지나간 숲처럼 고요했다. 화장실문은 열린채로이고 추락해버린 비행기의 잔해처럼 온수기의 흉칙하게 찌그러진 외각과 튕겨난 파편이 욕조며 타일바닥에 지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어항에 부착된 산소방출기는 꾸르륵꾸르륵 흡독자같은 “수은대”의 소리를 그냥 내고있었고 그 극독을 받아 마시기라도 한듯 캐씽구라미가 꿈틀거리며 단말마적인 춤을 추고있었다. 남편이 아버님의 방을 노크했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순간 짧고 다급한 비명이 적요한 실내를 찢었다. 자멸을 시도한 시아버님은 구급을 들이댔으나 효험을 보지 못하고말았다. 집도(执刀)의사가 아버지의 배속에서 수술해낸것을 소반우에 받쳐들고 나왔다. 햐얀 가제우에 놓인 시아버지가 삼켰을 물건을 보는 순가 색시는 흑- 찬바람을 들이키고말았다. 전신의 신경들이 올올이 직립을 했다. 검붉은 피덩이에 반죽되여나온 그것은 남편이 언젠가 아버님에게 주었던 시계의 잔해였다. 바늘, 치륜, 태엽… 랑하의 벽에 등을 맞대고 섰던 색시는 손바닥으로 벽을 만지며 스르륵 미끌어져내렸다. 단단한 일격의 두통이 왔고 속이 메슥거려올랐다. 그것은 잠시, 복부를 척살(刺杀)하는것 같은 진통을 느껴 색시는 배를 부여잡았다. 사려문 어금이로 신음이 새여나왔고 신다리를 타고 뜨거운 압류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색시는 밀랍인형처럼 허실상몽으로 내내 그렇게 누워만 있었다. 그리고 내내 울었다. 사람의 몸에서 그렇게 많은 눈물이 흘러나올수 있다는것이 울고있는 색시에게마저도 이상했다. 그렇게 울고있는 자신의 처경이 불쌍해 다시 눈물이 장마의 힘을 받은 개천처럼 흘렀다. 세상이 그렇듯 참독할수가 없었다. 시상에! 어쩜 그럴수가! 아버님은 처참히 스스로를 보냈고 색시는 , 열달잉태의 고임(苦任)에 시달렸던 색시는 그만 죽은 아기를 낳았다. 병원의 간호장도 남편도 아기를 보고 혼겁을 했다. 색시자신도 그 아기에게 눈길이 미치는 순간 실성을 하고말았다. 아기는 공상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외계인같은 그런 끔찍한 얼굴을 하고있었다. 귀도 없고 코도 없고 눈은 외눈이였고 팔은 생략된채 고기의 지느러미같이 손만이 량어깨에 달려있는 … 장시간의 심리의 불온증세와 외부로부터 온 복사(辐射)같은 물질의 충격으로 빚어진 기형이라고 의사들은 분석했다. 꿈은 그렇게 동강이 났고 꿈은 잃은 색시는 거대한 상실감에 몸져누워버렸다. 일주일째나 색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전자병의 후유증처럼 색시가 받아안은 충격은 시간의 힘으로 떼칠수 없는것이였다. 맥을 버린 안해와 붕괴된 일상을 어떻게 환원시켰으면 좋을지 몰라 남편은 살이 패일 지경이였다. 장시간의 말미를 맡고 안해를 동무해주었다. 방급전에도 저녁찬거리를 장만하려 장으로 나갔고 안해의 잊혀진 식성을 자극할 음식물을 만들어내려고 해가 기울도록 무진 애를 쓰고있었다. 남편마저 자리를 비운 집안은 죽음처럼 고요했고 호화스러운 부장품(附葬品)을 가득 채워놓은 관속과도 같았다. 어항의 산소방출기가 뿜어내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리군했으나 그것은 방창처럼 고요의 의미를 더 부여해줄뿐이였다. 홀연 어데선가 가냘픈 소리가 새여나왔다. 소리는 옷장속에서 새여나오고있었다… 맴, 매앰- 전자양의 울음소리였다. 그동안 전자양을 남편이 보살펴주었다. 그 전자양이 배고팠던지 아니면 목말랐던지 울어대고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 애련한 소리는 색시에게 있어서 지휘관의 부름과도 같은것이였다. 허나 더위 먹은 소 여물 반가운줄 모르듯 세상사가 귀찮아진 지금에 와서 그 소리는 역겹게만 들려왔다. 맴, 매앰- 전자양은 계속 시끄럽게 울어대고있었다. 전자양이 꼭마치 아기들처럼 울었다. 색시는 시끄러웠고 체증기가 치밀어 올랐다. 앓고있던 사람 같지 않게 벌떡 일어나 옷장문을 왁살스럽게 열어젖혔다. 그 전자물건은 옷장에 걸린 색시의 옷호주머니속에서 울고있는것이였다. 색시는 그것을 끄집어내여 침실밖에 힘껏 뿌리쳤다. 침실문을 쾅- 닫아버렸다. 허나 전자양은 울음을 멈추지 않고있었다. 젖 달라 보채는 아이들처럼 악패듯 울었다. 색시는 드디여 분노했다. 비여진 령감님의 방에서 무언가 찾아들고 나왔다. 망치였다. 가증스런 그 전자물은 벼룩이처럼 쏘파밑에 굴러들어 울고있었다. 간신히 손을 집어넣어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망치를 들어 힘껏 짓쫗았다. 전자양이 튕겨나며 “뺑소니”를 쳤다. 색시는 무릎걸음으로 쫓아가 다시 한번 내리쫗았다. 파편쪼각이 얼굴에 튀였고 색시는 울컥 뿜겨나오는 피의 분수를 환영으로 보았고 처음으로 파괴의 호쾌한 쾌감을 맛보았다. 이번에는 작업실의 문을 발길로 차 열었다. 컴퓨터가 백포를 뒤집어쓰고 수녀처럼, 검은 수건을 쓴 마귀할멈처럼 내숭떨며 놓여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색시의 눈에 발광체가 그물거렸고 드러난 견갑골에는 팽팽한 긴장이 서려있었다. 색시는 망치를 두손으로 단단히 부여잡고 작업대를 향해 한발두발 죄여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퍽 늦게서야 집에 들어섰다. 가까이가 아니라 물목이 구전한 중심 장거리에까지 다녀온것이였다. 각종 소채가 남편의 손에 들려진 구럭을 임신부의 배처럼 불려주고있었다. 그속에는 소갈비 한짝과 소고기의 정육덩어리도 들어있었다. 여보, 나 소고기 사왔어. 오래만에 소고기맛을 보는구만. 남편은 침실쪽을 향해 소리 높이 말했다. 외국에서도 소고기 수금령을 해제했으니 이제 시름놓고 고길 먹게 됐소. 그래도 푸른 검역도장이 찍힌걸 확인하고 사왔지. 안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였다. 요사이 그런 안해에게 버릇된 남편은 안해쪽을 방치해둔채 주방에 들어섰다. 제법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준비를 서둘렀다.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보련듯 응접실로 나가 텔레비죤을 틀었다. 개시곡의 경쾌한 곡조가 한적하던 실내를 뒤흔들었다. 요란맞은 그림영화가 나왔고 이어 저녁뉴스가 나왔다. …환경검출소에서 어제 내린 비의 강우질을 검출한 결과 놀라운 소식이 발표되였습네다. 어제 우리 도시에는 산성비가 내렸던것입네다. 산성비는 건축물을 부식하고 생태계통을 파괴하며 인체건강에 커다란 해를 주고있습네다. 우리 도시는 이미 국가이산화류황동제지역에 들어섰습네다… 남편은 소식을 들으며 마늘을 까고 파를 썰고 갈비를 두드렸다. 남은 고기를 랭장고의 얼음층에 넣으려고 문을 열었던 남편은 그만 당혹감에 두눈을 올롱하니 치뜨고말았다. 랭장실에 아침까지 보이지 않던 물건이 들어있는것이였다. 소랭이에 음식물을 담아 들여놓았나 생각했던 남편은 그 실체를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고말았다. 그것은 그 무슨 음식그릇 같은것이 아니라 … 어항이였다. 그채로 집어넣은 어항은 이미 돌결되여 있었다. 유리외각은 깨여져버리고 물이 어항처럼 반구체(半球体)를 이루고있었다. 남편은 유리쪼각에 손을 긁히면서 얼음을 끄집어내였다. 얼음은 고목에서 파낸 호박(琥珀)처럼 투명했다. 그리고 주방불빛에 투영되여 등롱처럼 반짝이고있었다. 그속에 물고기 두마리가 얼어붙어있었다. 상상도 못할 변고를 당한 물고기는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있었다. 원체 눈꺼풀이 없는 고기의 눈이 더 커보였다. 박제된 공간에서 캐씽구라미는 공포에 잔뜩 질린 눈으로 역시 그런 눈을 하고있는 주인을 지켜보고있었다… □                                    "도라지" 2000년 1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Don't say goodbye          
13    텍사스, 텍사스 댓글:  조회:2110  추천:12  2014-07-18
. 단편소설 .   텍사스, 텍사스   김 혁     “텍사스의 밤”이라 했다. “텍사스의 봄”, “불타는 텍사스”… 골목길에는 텍사스라는 상호를 넣은 네온싸인 간판들이 많이 보였다. 안마시술소의 맹인 안마사의 손에 몸뚱아리를 맡긴채 박은 두눈을 느스름히 감았다. 래일이면 이 지긋지긋한 곳도 이젠 빠이빠이다. 티켓은 이미 끊었고 박은 드디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였다. 13년만의 귀향이다. 요즘은 방문취업비자가 만료돼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박과 같은 사람들이 30만을 웃도는데 년말부터 순차적으로 비자가 만료돼 떼를 지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급소를 찔린 사람처럼 아우성을 쳤고 어떡하나 돌아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했다. 하지만 박씨만은 그들과 달랐다. 하루빨리 돌아가고만 싶었다. 더는 이곳에서 알탕갈탕 살고 싶지 않았다. 연무같이 앞길이 보이지않던 이 십수년의 세월, 허위단심 헤쳐온 나날들은 박에게는 다시 떠올리기에도 힘든 시간이였다. 십여년전, 안해가 그보다도 먼저 가짜결혼으로 출국을 했다. 너나가 출국이라는 좁은 외나무다리에 발을 올려놓기 시작하던 당시 가짜결혼을 빙자한 방식은 흔히 볼수있는 놀랄것 없는 풍경이였다. “내 먼저 들어갈터니 인차 따라오세요” 속을 졸이면서 떠난 안해는 용케도 그 어려운 출국의 겹대문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뒤를 따라선 박씨가 문제였다. 첫 출시도는 브로커에게 돈만 떼운채 무산되고 말았다. 다시 가짜비자를내서 감행했던 모험 역시 인천공항에서 들통나 가차없이 축객령을 당했다. 그러다 요행 세번째만에 남보다는어렵게 출국의 문을 열어 젖혔던 박씨였다. “왜 텍사스촌이라 부르지요? 텍사스라면 미국쪽이지 않습니까?” 박씨가 궁금한듯 안마사에게 물었다. 내내 웃음을 고수하고 있어 가면같아보이는 얼굴의 안마사가 말했다. “서부영화에 열광하던 때가 있었어요. 요즘에는 잘 안보지만. 매일이고 비디오 가게를 찾아 클리튼 이스트우드의 서부영화들을 빌려보곤 했지요. 그런 서부영화들을 보면 주인공들이 총싸움도 하고 포카(카드 게임)도 치고 하는 술집 있잖아요. 그 술집들을 보면 형태가 아래 층에선 술을 팔고 윗층에선 여자를 데리고 자는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지요. 이곳에서 처음영업소들이 들어섰을때 모두 그러한 형식들이였는데 그래서 영업소마다 서부의 이름을 따서 ‘텍사스" 달았다 그러네요.” “아, 네” “그리고 또 한국전쟁후 이런 영업소를 주로 찾는 사람들은 미군들이였는데 그때는 미국에 대한 막역한 동경심때문에 이름이 붙은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은…” 그랬다. 막역한 동경심이였다. 서울에 가면 떼돈을 벌수 있다는 막역한 동경심으로 박씨네도 미련없이 고향을 버리고 서울행을 택했다. 그런데 한국에 나간 이후로 안해는 소식이 끊어져 버렸다. 밭문서, 집문서 들이대고 여기저기 꾸어서는 빚짐 내여 출국로무의 길을 열었던 박씨는 빚에 졸려 매일을 뜨거운 양철지붕에 맨발로 올라선 처경이였다. 하지만 웬일인지 안해는 어쩌면 땡전 한푼 집에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일자리 겨우 얻었는데 이번엔 자리 잘 잡은거 같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요! 하고 안해는판에 박은 말만을 낡은 축음기처럼 되풀이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그 락언이 번마다 거짓말로 끝나버리곤 했다. 매주마다 전화를 쳐서 원망을 토하는 그를 바라고 안해쪽에서 고성이 터져 올랐다. “나 지금 서울에서 돈방석에 앉아있는게 아니야, 나도 힘들다고요!” 박씨는 깜짝 놀라 수화기를 멍청하니 들여다 보았다. 시골 무지렁이 안해였다. 요즘 세월에 보기드물게 사극에서나 나올법한 고태에 절은 안해였다. 안해와 처음 사귀던 때, 반년이 지나도록 박씨는 그의 손 한번 잡아 보지 못했다. 어느 한번, 술에 취한 박씨는 취기가 발동해 안해를 부득부득 그러 안다가 그만 비명을 흘리고 말았다. 안해가 그의 어깨박죽을 물었던것이다. “차암, 순수하기로 옛날 같으면 렬녀 될사람이야.” 웃어 넘겼지만 그때 물린 자리가 지금도 그의 어깨에 도도록한 흉터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렇게 마냥 조신스런 몸가짐으로 모기소리처럼 한 옥타브 낮게 속삭이던 안해가 그를 향해 소리소리 지르고 있는것이다. 그날 이후로 안해는 전화를 받지조차 않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친지들 눈에 박씨의 안해는 이미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왜곡되여 있었다. 그들은 동정, 추측 혹은 조소 어린 눈길로 박씨를 끔찍하게 지켜보고있었다. 먼저 한국에 갔다온 고향사람들이 띄염띄염 안해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식당일에 절은지라 무릎병이 도져 오래동안 일을 못했다고했다. 또 누구는 고시원에서 청소원으로 일하다가 불이 나면서 대피하다가 다쳤다고도 했다. 하지만 캐물을라치면 누구나 근자에는 본적이 없다고 했다. 서울에 도착하기 바쁘게 박씨는 안해를 찾았다. 하지만 안해는 깨끗이 증발하고 없었다. 안해를 찾지도 못했는데 박씨의 발등에 불이 떨어 졌다. 건설현장에서 하루하루 힘겨운 막로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그들에게 공사를 맡긴 원청업체가 공사대금을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체임이 수천만원까지 불어났다. 서울에 있는 동포단체의 도움으로 민사소송 끝에 승소했지만 원청업체 대표는 어느새 종적을 감춘 뒤였다.결국은 그동안 손톱 벗겨지게 일하며 벌어온 로임은 한강에 띄워보낸격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박씨는 체불도 못받은채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 감탕밭길보다도 더 헤쳐나가기 어려운것은 안해를 찾는 길이였다. 휴일이면 욱신거리는 삭신을 춰세우며 안해를 찾으러 진동한동 뛰여다녔다. 고향사람들 친지들을 다 찾아 물어도 안해는 이 세상 천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마다 좌절과 렬패감같은것에 사로잡혀 박은 포장마차를 찾았고 날이 새도록 알콜로 몸과 맘을 마취시키곤 했다. 그러다 타향에서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교회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간신히 몸을 춰 세웠다. 그리고 박씨는 귀향하기로 마음먹었다. 돈은 몇장 챙기지 못해도 어서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조촐한 곳이라도 따뜻한 고향의 온돌목에 상처입은 몸과 마음을 뉘이고 싶었다. 고향을 떠나기 전날 그동안 고생에 고생을 이어온 자신에 스스로 보상이라도 줄 양으로 좋은 안주에 술을엄청 마셨고 어쩌구려 취한 발길은 평소에는 엄두도 못내던 안마시술소 까지 찾아 든것이였다.   “이제 이곳도 당금 문을 닫게 된답니다.” 안마사가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왜요?”    “정부로부터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됐어요. 좋은 일이지요. 토지보상문제가 해결되면 봄쯤에는 아마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게 될겁니다. 30층 되는복합 아파트도 들어서고 랜드마크 건물들이 들어선다고 하던데. 그래도 마지막까지 버티며 골목 업소들에선 간간이 영업을 하고 있지요.”    안마사가 한마디 꼬리를 달았다. “우리 안마술사들은 그래도 자격증 같은것이 있어 괜찮지만 여기서 일하던 그렇게 많은 안마사들은 이제어디로 갈런지.” 안마사가 탄식같은것을 내뿜었다. 그러면서 새삼스레 박에게 물었다.  “근육이 너무 뭉쳐 있네요. 한번 풀어 보시겠어요?” 느닷없이 안마사의 음성은 방금전보다 한옥타브 낮아져 있었다. “다른 안마를 받아 보시겠냐구요?” 그 은근한 물음에서 박씨는 어떤 핑크빛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예” 박이 웅얼거리며 답했다. 그동안 참고 견뎠던 정염이 다시 상기되여 아래배에 힘이 불끈 솟아 올랐다. “잠간만 기다리세요” 안마사가 맹인치고는 재빠른 동작으로 익숙하게 방을 더듬어 나갔다. 인차 문이 다시 열렸고 녀자가 들어왔다. 벽에 붙은 전신 거울로 녀자의 모습이 력력히 보였다. “미스 정입니다.” 화장기 진한 녀자는 귀바퀴의 연골을 타고 흘러 내린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다가왔다. 교태어린 코맹맹이 소리로 자아소개를 하고는 다짜고짜 상의를 벗었다. 묵직한 가슴을 흔들며 녀자가 엎드린 박의 등에 올라 탔다. 녀자의 손이 거침없이 박의 몸뚱아리의 구석구석을 훑었다. 담대한 터치에 박은 일순 당황했으나 오랜만에 받아보는 녀자의 손길에 물먹은 솜이 되여버렸다. 박은 흐트러지는 숨을 애써 고르며 녀자의 손에 자기를 맡겼다. 뱀처럼 굼닐던 녀자의 손이 문뜩 멎었다. 녀자의 손은 박의 어깨에에 와 멎어 있었다. 녀자가 머리를 숙이며 박의 어깨를 들여다 보았다. 어깨에 난 상처를 찬히 들여다 보았다. 순간 녀자의 입에서 헛비명이 새여 나갔다. 희윱스레한 불빛을 빌어 피로에 쌍꺼풀 진듯한 녀자의 눈우로 순간에 흘러 넘치는 눈물을 박은 놀랍게 볼수 있었다.  녀자가 얼굴을 싸쥐며 방을 뛰쳐 나갔다.  박은 그 무슨 의학용 표본마냥 박제라도 된듯 그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창밖에서는 “텍사스”라는 상호가 새겨진 네온싸인이 명멸하고 있었다.     “장백산” 2014년 2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2    불의 제전(祭典) 댓글:  조회:2280  추천:19  2014-07-07
     2005년 “연변문학” 윤동주 문학상 수상작품      ... ...   모든 악장(樂章)은 끝났는데 그치지 않고 울리는 선률이여 착지(着地)할 수 없는 다리여 멈출 수 없는 팔이여   몸체에서 떨어져 나간 채 떠돌아다니는 팔 조약하는 자세로 뻗쳐있는 다리여...   모든 악장은 끝났는데 착지할 땅이 없어 허공에서 수직으로 거듭 꽂히기만 하는 다리 없는 토슈즈여            -  정한모의 《춤의 판타지아》에서                                                                       진, 불을 느끼다           진(眞)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엄동이면 홀쭉한 배로 눈빛이 매워져 부락까지 내려오는 늑대가 아니였다. 숲을 지나다 무심히 건드려도 사정없이 이마빼기를 쏘는 말벌이 아니였다. 부락사람들을 떼죽음으로 들것에 들려 나가게 하던 온 몸에 창이 생기는 병도 아니였다.    진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불 이였다!    초동머리 적, 화덕 앞에서 장난 질 치다가 그만 이글거리는 화덕에 엎어졌다. 어머니가 재빨리 일으켜 세웠지만 얼굴 반 편이 불에 데이고 말았다. 지금은 왼편 이마 전에 동전잎 만한 흉터로 남았지만 불이 주던 강렬한 인상의 아픔은 마음 속 깊은 곳에 력력히 찍혀있다.    불을 무서워하던 진이 불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어느 봄, 부락에서 화신제(火神祭)가 있은  날부터였다.    마을의 남쪽에 우뚝 치솟은 산, 적봉(赤峰)기슭에서 화신제 잔치가 펼쳐졌다.    매양 봄이 오면 부락에서는 불을 다시 지핀다. 족장과 부락의 년장자들이 적봉의 동혈(同穴)에 모신 불로부터 집집의 아궁이의 불까지 모두 꺼버리고 새로 불을 지핀다. 불도 일년 내내 같은 불을 계속해서 쓴다면 기운이 쇠진한다는 뜻에서 부락사람들은 새 불을 일으켜 새 봄을 맞이하곤 했다. 이 날이면 부락 사람들 모두가 떨쳐나 해가 떨어지도록 화당(火塘)에서 타오르는 불을 둘러싸고 광열의 춤을 추곤 했다.    그렇게 진이네 부락, 남하(南河) 사람들은 불을 숭배하는 족속 이였다.    그날 명절기분에 아침부터 붕- 떠있는 사람들을 묻어서 진은 화신제가 열리는 적봉기슭으로 나왔다. 화당은 여느 때보다 더 넓게 꾸며져 있었고 그 속에는 불 땀이 좋은 잘게 팬 장작들이 가득 무져있었다.    정오가 되었다. 화신제가 열리는 시간이다. 장대한 키 꼴을 가진 족장 굉(宏)이 마을 년장자들의 옹위하에 나타났다. 름름한 얼굴로 사람들을 둘러보고 나서 굉이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족장을 따라 수 천명의 부락사람들이 무너지듯 무릎을 꺾었다. 족장의 입에서 격앙된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이 땅을 굽어살피시는 천지신명이시여! 추위와 기아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불을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춥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배를 곯지 않게 해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이 불처럼 따뜻하게 하소서...    부락사람들이 따라서 족장의 말을 복창하였다.   - 우리에게 불을 주소서!    우리에게 불을 주소서!!   하늘 우러러 비원(悲願)을 마치고 나서 족장이 무언가 머리 우에 받쳐 올렸다.    거울, 금박 칠을 올리고 테두리에 문양을 새긴, 양경(陽鏡)이라는 이름의 불을 지피는데 사용되는 거울 이였다.   족장이 양경을 들어올릴 때 그 번쩍이는 빛이 눈에 쏘여와 진은 눈시울을 좁혔다. 족장이 양경을 들어 화당의 장작개비에 대고 비추었다. 정오의 태양은 찬란했고 양경에서는 태양의 빛이 반사 되여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모두들은 숨을 꺽 죽이고 양경을 지켜보았다. 수천 쌍의 눈이 오목거울이 실어낸 빛줄기가 몰 부어져 있는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때, 북소리가 울렸다.    둥둥! 나지막한 북소리가 울렸다.   나지막하지만 사람들의 눈 귀를 순간에 앗아가는 북소리가 울렸다.    십 여명의 동자들이 저마다 손 북을 두다리며 동굴부터 나오고 있었다. 동자들은 저마다 머리에 빨간 천을 두르고 있었고 빨간 버선을 신고 있었다.    무용단의 춤추는 아이들 이였다. 화신제때면 춤을 추는 아이들을 부락에서는 화동(火童)이라고 불렀다. 부락에는 화신무용단(火神舞踊團)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화신무용단성원들은 족장 굉 다음으로 부락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들 이였다.    화동들의 북소리가 점점 잦아졌다. 잦아지는 북소리와 더불어 동굴에서 짐승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    화견(火犬)이였다.    불을 먹고사는 불개였다.    일신이 붉은 털로 덮여있는 개는 무용단에서 기르는 령물이였다.    개가 하늘을 바라고 컹컹 짖었다. 이어 동굴로부터 또 한 사람이 나왔다. 백발동안의 로인이였다. 유난히도 긴 눈섭을 가진 로인은 붉은 수건으로 이마를 질끈 동이고 있었다. 웃동은 벗고 있었는데 햇볕에 그을린 몸체는 검붉었다. 허리에는 붉은 띠를 두르고 있었고 신은 동자들처럼 역시 빨간 버선 이였다.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명(明)이였다.    명은 무자(舞者)였다.    화신무용단을 거느리는 최고의 무용수였다. 무자는 부락에서 뛰여난 무용수에게 주는 급별 이였고 한 부락에 무자는 단 한 명뿐 이였다. 무자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 그 칭호는 부여된다.   부락사람들의 응시 속에 무자는 두 팔을 량 쪽으로 뻗었다. 머리를 뒤로 젖혔다. 북소리의 박자에 맞추어 무동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소리와 함께 홀연, 새가 하늘로 솟아오르듯이 몸을 훌쩍 솟구며 무자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훨훨! 훨! 훠어얼!   불이여 타올라라   타올라라 불이여...      북소리가 높아져 갔다.    양경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줄기가 굵어져 갔다.    자작나무에서 실연기가 피여 오르기 시작했다.    컹컹! 불개가 짖어댔다.    무자의 춤사위가 거세여져 갔다.      훨훨! 훨! 훠어얼! 내가 불 이여라  네가 불 이여라      북소리가 높아져 갔다.    양경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줄기가 점점 굵어져 갔다.   자작나무에서 파란 실연기가 피여 오르기 시작했다.    컹컹! 불개가 사납게 짖어댔다.    무자의 춤사위는 절정에 치달아 있었다. 풋풋한 땀 냄새를 떨어뜨리며 춤에 몸을 내던지고있는 무자는 꼭 마치 신들린 사람 같았다. 그는 부락사람 모두를 흥분하게 만드는 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드디여 자작나무에  불이 확! 댕겨졌다.    - 불이다아!    사람들이 환희에 넘쳐 괴음들을 질렀다. 우르르 화당을 둘러쌌다. 따스한 불의 기운에 눈을 느스름히 감으며 만족의 신음을 토했다.  족장이 양경을 거두며 껄껄 방성대소를 하였다.    그러나 무자의 춤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무자의 왕소금이 돋은 등어리가 화염처럼 꿈틀거렸다. 불을 둘러싸고 무자는 맴을 돌고 있었다. 불을 탐하는 한 마리 짐승처럼 불을 먹으려, 불을 먹으려.      북채에 달린 붉은 술이 춤사위에 맞추어 나 붓기고 있었다. 북소리도 끊기지 않고 있었다. 노래 소리도 끊기지 않고 있었다. 북소리 속에서 노래 소리 속에서 무자는 완연 타오르는 한 줄기 불이 되어있었다.     훨훨! 훨! 훠어얼! 내가 불 이여라  네가 불 이여라  우리는 불 이여라     진이 철이 들어 처음 보는 화신무(火神舞)였다. 잔뜩 키워진 동공으로 햇빛과 불줄기와 사람들이 어우러져 열기로 출렁이는 춤 마당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진의 기억 속에서 잠자고 있던 그런 풍경인 것 같았다.    진은 단쇠가 물에 닿았을 때처럼 아찔한 충격을 느꼈다.    진의 작은 가슴은 금세 뜨거운 불씨 한 톨을 머금은 듯 했다. 그 불씨는 혈관을 타고 진의 사지로 뻗어 나갔으며 나중엔 명치끝에 모여 타올랐다. 그 불길은 진의 작은 육신을 태워 버릴 것만 같았다. 정체불명의 충동이 륵막쯤에서 솟구쳤다. 불의 장력(張力)에 끌리듯  진은 저도 모르게 량팔을 펴들고 팔죽지를 길게 뻗쳤다. 무자의 춤사위를 모방하여 머리를 뒤로 젖혀버렸다. 정오의 대공에서 태양은 빛나고 있었고 진은 눈확 가득 넘쳐 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길 없어 했다.     해가 떨어지고 달이 떠올라도 화신제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화신제는 홰불놀이로 이어졌다. 달이 뜨면 아이들이 각자 홰불을 들고 벌판에 모여든다. 밭 가운데 지경을 그어 놓고 홰불싸움을 벌린다. 어른들이 불 싸움이  위험하다고 아이들을 못나가게 하는 법은 없다. 오히려 홰불을 더 크게 만들어 주면서 나가서 용감히 싸우라고 등을 떠민다. 예로부터 홰불싸움에 나가지 못하면 성인대접을 못 받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곧 홰불싸움은 일종의 성인식(成人式)이였다.    들은 불 천지였다. 함성이 일었고 서로 부딪는 홰불에서 불 찌가 꽃 살처럼 튀였다. 불이 무서웠던 진이 홰불을 들고 맨 앞에서 달린다. 어제 날 불이 무서웠던 진이 아니였다. 목청 깨져라 소리소리지르며 홰불을 휘두르는 진은 어느 결에 훌쩍 웃자라 있었다.    온 몸이 검댕이 투성이가 되어 들어서는 진을 보고 어머니가 놀란 눈매를 지었다.    - 홰불 놀이에 갔어요.   얼굴이 거멓게 그을린 진이 이발을 하얗게 빛내며 말했다. 어머니가 다가가 진을 껴안아 주었다. 그을음 냄새가 나는 진의 머리를 꼭 껴안아 주었다.   - 우리 진이 다 컸구나.    어머니는 화신제날이면 집집마다 먹는, 빨간 실고추를 넣어 해처럼 둥글게 부친 전(煎)으로 저녁상을 마련해 놓았다. 떡을 뜯다 말고 진이 입을 열었다. 나지막하나 힘이 실린 소리로 말했다.    - 오마니 나 춤 배우고 싶어.                                 진, 불을 찾아가다        적봉(赤峰)은 잠든 화산(休火山) 이였다.    그리고 불을 숭배하는 남하(南河)족 에게서 적봉은 성산(聖山)이였다.    역시 불을 숭배하는 건너 부락 산북(山北)족에게도 적봉은 성산 이였다.    남하족과 산북족은 본디 뿌리가 같은 족속 이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던지 왜서였던지 서로 창을 들이대고 화살을 쏘아대면서 반목했고 지금은 두 부락으로 나뉘여져 살고 있는 것이다.    두 부락사이에 지경으로 표시하는 돌 각담이 쌓여져 있다.    적봉의 화산 돌을 주어 쌓은 담 이였다.    담은, 어찌나 길었던지 그 길이를 재일 수 없었다.    모두들 남하 부락을 끼고 흐르는 강만큼 길 거라고 했다.    담은, 어찌나 높았던지 그 높이를 재기 어려웠다. 모두들 적봉의 반 높이는 될 거라고 했다.     그 담을 사람들은 《곡성(哭城)》이라 부른다. 두 부락에서 상잔의 변을 일으키면서 무수히 죽어간 령혼들이 그 담 부근에 묻혀 밤이면 음울한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화신무용단은 적봉 기슭에 화산 석으로 지은 돌집에 있었다. 불춤을 배워주는 그곳을 가리켜 부락에서는《화택(火宅)》이라 하였다.   화신제를 치른 이튿날, 진은 화산 석으로 계단을 깐 산길을 치달아 《화택》으로 찾아갔다.    멀리서부터 북소리가 들려왔다. 《화택》의 볕바른 마당 복판에 석등(石燈)이 세워져있었고 그 등을 둘러싸고서 화동들이 맴을 돌며 춤 기량을 익히고 있다.    절박한 마음으로 다가서는 진의 앞을 개 한 마리가 뛰쳐나와 막았다. 불청객인 진을 바라고 컹컹 짖어 댔다. 개의 입에서 불똥이 튀였다. 화신제 날 보았던 불개였다. 온 몸통에 붉은 색 털이 뒤덮인 것이 인상적이다.    가락 맞게 울리던 북소리가 뚝 멎었다. 집 앞 평상(平床)에 앉아있던 무자 명이 몸을 일으켰다.      - 불독아!    명의 부름을 들은 개가 그의 발치에 가 공손하게 쪼그리고 앉았다.    긴 눈섭을 날리며 명은 진을 지켜보았다.       - 뭐냐 너?   진이 명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 진이라고 하옵니다. 화동이 되곺슴다. 거두어 주십쇼.   명의 긴  눈섭이 움찔했다. 조금은 놀란 듯 한 얼굴로 진을 보았다.      - 너 누구의 문하(門下)였더냐?     - 아직 스승이 없슴다.     - 그럼 학당패(學堂牌)를 내보여라   《학당패》는 부락에서 학당을 나온 사람들에게 발급하는 징표였다.      - 패가 없슴다. 공부도 못한 놈임다.   큭큭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화동들의 눈길이 일제히 진을 향해 쏠려 있다. 별 한심한 놈 다 보겠다는 눈길들 이였다.  명이 이마 살을 모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 가라! 여긴 거지를 수용하는 곳도 활량이나 키우는 곳도 아니어늘.    명이 짧게 뱉고 나서《화택》으로 들어가 버렸다. 화동들이 북채를 잡았고 북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진이 성큼성큼 춤의 대오를 향해 다가갔다. 어느 화동의 손에서 북과 채를 앗아 냈다. 애들이 진에게서 북을 되 빼앗아 내려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뜰에서 작지 않은 소요가 일었다. 덮쳐드는 애들에게서 잽싸게 빠져 나와 진이 성큼 평상 우에 뛰여올랐다.    - 아니 저 새끼가?!   스승만이 앉을 수 있는 평상 우에 흙발로 뛰여오르는 진을 보고 격노했으나 다음순간 애들은 그 자리에 주춤 서버리고 말았다.    북소리 울리며 진이 춤을 추기 시작했던 것이다. 평상을 무대로 삼아 진이 춤을 추었다. 그리고 화동들이 일제히 눈확을 키웠다. 그네들이 일년 사계절 배워도 익히지 못한 춤사위가 진에게서 그럴듯하게 지어 지고 있었다.    《화택》의 문이 삐걱 열렸다. 명이 다시 나왔다. 내심 놀라워하며  물었다.    - 어데서 배운 춤이냐?   숨을 고르며 진이 대답했다.   - 어제 무자님이 추는 모습을 보았더랬슴다.   명의 긴 눈섭이 다시 한번 움찔했다.       족장을 위시하여 마을의 장로 10명이 적봉의 동굴 속 석상(石卓)을 둘러싸고 모여 앉았다. 동굴에는 화신상(火神像)이 모셔져있었고 그 앞의 화당에는 불이 이글거리고 있다.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마다 장로들은 불씨가 모셔져 있는 동굴 속에 모이곤 했고 부락의 대소사는 모두 이들에 의해 결정되곤 했다. 부락의 운명을 손에 쥐고있는  터주대감들의 발치에 무자 명이 두 손을 모으고 서있다. 족장의 미심쩍은 눈길이 명의 얼굴에 가 머물렀다. 명이 다시 한번 간청했다.   - 크게 일 불은 불씨에서 알아 볼 수 있습니다. 나 무자의 눈썰미를 믿어 주십시오.    족장이 크악! 큰소리로 가래침을 뱉고 나서 입을 열었다.    - 자. 투석(投石)을 시작하게나.    장로들이 부스럭거리며 저마다 옷소매 속에 무언가 꺼냈다. 돌멩이였다. 적봉에서 주어 온 붉은 돌멩이와 강에서 주어 온 흰 돌멩이였다. 붉은 돌멩이는 긍정을 표하고 흰 돌멩이는 부정을 표하는 뜻 이였다. 달라당! 달라당! 석상 우에 돌멩이를 놓는 소리가 동굴 속에서 공명이 되여 울렸다. 족장이 석상 우에 놓여진 돌멩이를 헤아리고 나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선포했다.    - 학당패가 없는 진을 무용단에 받아들이는 문제 최종결재요. 백석(白石)이 4개, 홍석(紅石)이 6개, 채택되었소!    명의 얼굴에 미소가 피여 올랐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진이 명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명이 진에게 북 하나와 북채 하나를 넘겨주었다. 화동 하나가 다가와  북채 끝에 붉은 술을 달아 주었다. 명이 북채를 들어 보였다.    - 이곳에서 북채를 가리켜 뭐라 하는지 아느냐? 몽척(夢尺)이라 한다. 이제 이걸 잡고 네 꿈을 펼쳐 보아라.   진은 북과 북채를 가슴에 꼭 품었다. 유난히 빛나는 눈으로 스승을 쳐다보았고 스승의 머리우로 솟아있는 적봉을 쳐다보았다.    적봉은 소소리 높았다.   적봉이 품고 있는 들을 굽어보았다.    들은 무연하게 넓었다.    들에는 화경(火耕)이 시작 이였다. 화전농들이 놓은 불이 들을 메우며 번져 나가고 있었다. 불길은 봄을 맞아 놀란 듯 피여 난 들꽃처럼 온 벌판을 수놓고 있었다. 조무래기들이 떼를 지어 불을 쫓으며 연기를 쫓으며 소리지르고 있었다.    - 불아. 쥐를 그을러라. 불아, 쥐를 그을러라   진은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짐승 한 마리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키는 것을 느꼈다. 한껏 충일 된 가슴으로 그 아이들처럼 진도 목청 깨져라 소리 질렀다.    - 내가 화동이 되였어요!   - 내가 화동이 되였어요!                                                                   진, 불 앞에 맹세하다       - 내 몸을 움직여서 내 몸을 도구로써 연주할 수 있는 춤, 그것처럼 직접적이고 감동적인 예술이 어데 있겠느냐? 우리의 육체에 더하여 우리의 몸 속에 령혼도 담고 있으니 몸과 혼이 하나가 될 때까지 춤을 추어라.     스승의 급훈을 받으며 진은 장대한 래일에로 열린 길의 첫 자국을 떼였다.     진의 어머니가 화신제날에만 먹는, 마른 실고추를 넣은 전(煎)을 가득 부쳐 가지고 《화택》으로 찾아 왔다. 무자 명이 나와 어머니에게서 떡을 담은 그릇을 받았다.    - 애가 만나지 않겠답니다.    어머니가 머리를 후딱 쳐들었다. 놀란 눈매를 지어 졌다.    - 3년 후, 진짜 춤꾼으로 이름을 닦은 뒤 떳떳하게 어머님을 만나 갰대요. 참, 옹골찬 애를 두셨군요.    어머니가 옷소매로 뜨거워나는 눈시울을 찍어눌렀다.    - 알겠습니다. 애를 잘 부탁합니다. 어떡하나 애를 선생님 같은 큰 춤꾼으로 만들어 주십쇼.    어머니는 《화택》을 향해 눈길 한번 주고 나서 돌계단을 따라 산을 내렸다.    《화택》의 창문 틈으로 진은 어머니의 사라지는 뒤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머니의 따뜻한 온기가 묻어있는 떡 그릇을 든 채 배여 나온 물 멀기를 지우려 눈을 슴벅 이였다.    - 기다려 주십쇼 오마니.   누군가 그런 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낮에 진의 북채에 붉은 술을 달아 주던 화동이였다. 화동이 진을 향해 가슴에 손을 얹었다.    - 나 교(狡)라고 해.   진도 얼른 가슴에 손을 얹었다.    - 나 진.   며칠 후, 진은 새로 사귄 친구 교를 따라 적봉의 동굴을 찾았다. 산 중턱에 있는 동굴로 오르는 계단은 무척 좁고 가팔랐다. 그 계단을 두 사람은 헐씨금거리며 올랐다. 그들의 뒤를 녀자애 하나가 바싹 쫓아왔다. 그 뒤를 불독이도 따랐다.    _ 야 교! 교오~ 어델 가는 거냐? 새로 온 아이를 끌고?    무용단에서 함께 춤 하는 녀자애 염(艶)이였다. 부모한테 버림받고 길에서 걸식하는걸 무자 명이 불쌍해 데려다 밥 먹여 주며 춤꾼으로 키운 애였다. 염의 부름을 듣는 척도 않고  교는 진을 끌고 곧추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화당에서는 언제 나와 같이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불이 둘 이의 얼굴을 발갛게 비추었다. 불을 만난 불독이 화당을 헤집으며 한 입 베여 물었다. 따가워 흥흥거리며 불덩이를 삼켰다. 진과 교는 화신 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교가 입을 열었다.    - 화신이시여 증명해 주옵시사. 나 교와..   교가 팔꿈치로 진을 건드렸다. 진이 바삐 말을 받았다.   - 나  진은...   - 춤에 생을 바치기로 일심을 먹었사옵니다. 신께서 우리의 행보를 지켜주시고 축복해 주시옵소서.    말을 마치고 나서 교가 화당가에 흩어진 재를 모아 담고 굴 천정의 종유석(鐘乳石)을 타고 흘러내리는  락수를 받았다.    - 야, 니들 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    뒤미처 따라온 염이 그들의 짓거리를 지켜보며 물었다. 교가 재물을 삭힌 물을 단숨에 들이 마셨다. 진도 그의 본을 내여 재를 락수 물에 삭혀 단숨에 들이 마셨다. 가슴에 손을 얹고 이구동성으로 서약했다.    - 신께서 우리의 행보를 지켜 주시옵소서!   그제야 영문을 알아낸 염의 얼굴에 감동의 빛이 머물렀다. 염도 그들 곁에 무릎을 꿇었다. 손을 가슴언저리에 얹고 따라서 서약했다.     - 신께서 우리의 행보를 지켜 주시옵소서!   진, 세상과 부딪치다     적봉,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산은 세월가도 벌거벗은 진솔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적봉, 그 넉넉한 산세의 품에 안겨 북소리의 주술을 타고 화동들은 서서히 자랐다.    적봉, 그 기슭에 자리잡은 《화택》에서 북소리는 가득했다.    초가집 지붕에 처마 물 떨어지는 소리와도 같고 멀리 물레방아 방앗공이 떨어지는 소리와도 같은 그 은은한 북소리가 매일같이 부락의 아침을 깨웠다.   춤이 좋은 사람들이 모여든 《화택》은 몽환이 뒤얽힌 또 하나의 세계였다. 거기에 박혀 고치에서 나오려는 작은 벌레처럼 날개를 털면서 진은 춤을 추었다. 춤을 추는 진에게서 삶의 즐거움이 묻어 났고 그 얼굴에는 분명 천상의 기쁨이 어려 있었다. 학당패가 없기에 마냥 말석의 위치가 차례 졌지만 춤을 출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은 가슴이 들떴다. 그 와중에 초동머리를 겨우 면한 나이에 무용단에 입단했던 진이 어느새 코밑이 거뭇한 청장년으로 자라 있었다     뜰의 평상에 앉아 명이 진과 교와 염을 불렀다. 그들의 작고 느린 성장을 독려해 왔던 명에게 세 사람은 이미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의 위치에 서있었다.     - 이제 너희들이 한번 익힌 기량을 펴 보일 때가 왔다.   남하족은 3년에 한번 꼴로 무용제를 펼치곤 했다. 다른 부락에서도 이 성대한 축제에 동참해 춤꾼들을 송파(送派)하곤 했다. 경색에서 방(枋)에 오른  이들을 부락에서 크게 장려했다. 부림 소 한 마리와 밭 세마지기를 상으로 내렸고 그 집안의 화세(火稅)를 3년간 면해주었다. 그보다도 이는 무용권내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화신무용단에서의 위치의 승격을 의미하는 것 이였다.    무용제는 남하족과 산북족을 가르는 지경인 곡성부근에서 거행 되였다. 행사는 사흘씩 열렸다. 이는 화신제날에 못지 않은 부락의 큰 행사였다. 부락사람들이 좋은 나들이옷들을 꺼내 입고 희희락락 모여들었다. 담 곁에 커다란 무대가 설치되었고 족장과 장로들, 그리고 무용계의 권위들이 나와 평을 맡았다. 역시 투석(投石)으로 평점을 했다.    진의 어머니는 무용제가 열리기 몇 일전부터 서둘렀다. 아들에게 줄 《천인병(千人餠)》을 빚었다. 한 집 한 집 다니며 쌀을 한줌씩 빌었다. 그렇게 빌린 쌀을 찧어 떡을 빚었다. 그 백명, 천명의 손을 거친 정성어린 떡을 먹고 진이 방에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춤 경색이 열리는 장소까지  나가지 못했다. 아들의 성적에 념려되여서였다. 그저 무용제가 열리기 전날 《화택》으로 찾아가 명에게 《천인병》이 들었는 떡보자기를 넘겨줬을 뿐 이였다.      드디여 무용제가 열렸다. 수천의 깃털이 날아오르듯 명절의 장소는 노란 햇빛으로 가득 했다.    등장을 앞두고 진은 어지간히 긴장된 모습 이였다. 이는 3년간 해달을 이고 뛴 고심에 대한 한 차례의 검증 이였다. 학당패도 없는 몸으로 온갖 수모를 삼키며 뛴 자기의 존재를 증명할 기회였다. 혜안으로 발탁해 준  무자 명에 대한, 홀몸으로 아들의 양명을 바라며 지내온 어머니에 대한 보답의 시간이기도 했다.     진의 긴장을 보아내고 스승이 먼저 교를 내보냈다. 언제 보나 자신으로 넘쳐있는 교.   교는 홍석 8개, 백석 2개의 평점을 받았다.    - 잘했어!    명이 무대에서 내려온 교를 포옹해 주었다.    염을 올려 보냈다.    염은 홍석 6개 백석 4개의 평점을 받았다.    명이 염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허나 염은 울상이 되어 담 아래 쪼그리고 앉아 버렸다.    맨 나중에 진이 올랐다. 긴장의 너울을 뒤집어쓴 채 손아귀에 흥건한 땀을 쥐고 올랐던 진은 무대에 오르자,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자 짜장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머리 우에서 빛나 오르는 태양은 어머니가 빚어준 《천인병》처럼 둥글었다. 그 병을 잡으련 듯 진은 팔을 길게 뻗쳤다. 태양은 뜨거운 열기의 손을 펼쳐 진의 온 몸을 만져주고 있었다. 그 빛의 은혜에 보답하련 듯 진은 하늘을 우러르며 뛰고 솟고 굴렀다. 진이 팔다리를 저을 때마다 춤사위에 묻어 오르는 햇빛을 사람들은 보았다.   잘헌다아!!!   무대아래의 사람들이며 돌담에 가맣게 매달린 산북사람들마저도 갈채를 질렀다. 진의 춤사위를 면밀히 주시해보는 명의 긴 눈섭이 격동에 푸들푸들 뛰였다.    진은 홍석 9개 백석 1개의 평점을 받았다. 지금까지 제일 높은 평점 이였다. 화동들이 무대에서 내려오는 진을 우르르 에워쌌고 환성을 지르며 진을 헹가래쳐 올렸다.    이튿날, 돌담에 경색 결과를 알리는 방이 나붙었다. 격전 뒤에 찾아드는 무기력 감으로 해가 적봉꼭대기에 오를 때까지 꼬박 내리 잠을 자고 난 진은 게 나른해서 방을 보러 갔다. 방 앞에 가맣게 모여 목을 빼들었던 사람들의 눈길이 일시에 진을 향해 몰 부어졌다. 그 눈빛들을 축복처럼 받으며 진은 의기양양 돌담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다음순간, 진의 입으로 헛비명이 새여 나갔다.    -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방의 으뜸에 오른 사람은 진이 아니였다. 무용단 성원도 아닌, 집에서 사인무용도사를 모시고 있는 어느 응모자가 방의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랑말을 타고 시중군을 거느리고 생색을 내며 춤 경색 장에 나타난 한 존재를 진은 머리에 떠올렸다. 그는 홍석 10개로 만점의 평점을 맡았다.     현기증으로 눈앞이 어지러워하고 있는 진을 향해 개가 뛰여왔다. 불독이 진을 바라고 다급하게 짖어 댔다. 진의 바지가랭이를 물어 당겼다. 불독이 그렇게 안달을 떠는 모습을 진은 지금껏 보지 못했다. 불길한 예감이 늦은 더듬이로 진의 머리 속을 후볐다. 진은 얼른 불독의 뒤를 따라나섰다.    불독은 진의 집으로 곧추 뛰여가고 있었다. 진이 헐레벌레 달려 이른 그곳에 집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의 큰 참화(慘禍)가 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의 집에 불이 났던 것 이였다. 《천인병》을 빚어 만드느라 며칠 밤을 새였던 어머니가 그만 아궁이 앞에서 잠에 떨어졌는데 튀여나온 불똥에 집이 타고 어머니는 불 속에서 헤여나오지 못한 것 이였다.                                       진, 가르침을 받다     그해 여름을 진은 염병에 걸린 사람처럼 지냈다.    그해 여름을 진은 가슴이 내려앉는 현기증 속에서 보냈다.    그해 여름을 진은 어머니를 여읜 슬픔과 방에서 떨어진 렬패(劣敗)감에 사로잡혀 보냈다.    산다는 게 이처럼 불확실한 것 이였을까? 불운이 예고하고 닥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에게 닥친 불운은 너무나 급작스러웠고 엄청난 것 이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춤 경색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의 백부가 부락에서 가장 큰 대호(大戶)였다. 돈으로 구워삶은 것이 뻔했다. 그 내놓고 거래되는 부정에 진은 경악을 금치 못해 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진은 북채를 잡지 못했다. 불 앞에 나서지 못했다. 불이 무서웠다. 불은 이미 진의 생활 전체를 휘둘렀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육신을 사른 불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진은 다시 어제 날의 불을 무서워하던 아이로 돌아가 있었다. 동인인 교와 염의 권고도 스승 명의 엄벌도 진을 북채를 잡지 못하게 했다. 손 끝 하나 까딱하기 싫은 무력감에 짓눌려 우두커니 누워있기만 했다.    세상의 외진 곳으로 달아나고만 싶었던 진은 홀로 적봉으로 오르는 계단을 톺았다. 화신 상이 모셔져 있는 그 동굴 속으로 향했다.     타닥타닥. 장작이 튀는 소리를 내며 언제 나처럼 화당에서 불이 이글거리고 있다. 불이 더운 숨을 내뱉는다. 빠져나가지 못한 연기들이 알큰한 냄새를 풍기며 동굴 안으로 퍼진다.  깊은 물에 잠기듯 어지러우면서도 아늑하다. 그 불의 기운에 진은 잠시 멍해지고 만다.    진은 화신상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화신상이라야 흙으로 빚어만든, 아이들 인형 에 다름없어 보이는 작은 토우(土偶)였다. 화당의 정 가운데 삼발이(三脚架)를 놓았는데 그 우에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정좌한 형상인 토우를 모셨다. 푸짐한 불빛이 토우의 작은 몸에 금박을 입혔다.      - 불이 무섭더냐?   문뜩 동굴 속에서 하나의 질문이 메아리친다. 진이 움찔 놀라며 머리를 쳐들었다. 토우가 눈을 번쩍 치뜨고 있다. 그리고 입술을 어눌하게 놀리며 묻는다.     - 참말로 불이 무섭더냐?   그 조화(造化)에 놀라 멍청해 있는 진에게 또 한번 물음은 날아왔다. 작은 토우의 목소리는 생각밖에 웅장하였다. 소리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으므로 목소리는 종소리처럼 동굴을 맴돌았다. 진이 급기야 머리를 끄덕였다. 낯빛이 심한 어지러움으로 무눌져 심각한 혼돈에 자맥질하는 것 같다. 절실한 두려움으로 입을 열었다.   - 무섭습니다. 참말로. 무서워서 더는 가까이 하지 못하겠습니다. 더는 춤을 출 수 없을 거 같아요.    불구덩이의 불은 진한 선홍빛으로 물들어 진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 색조 현란한 꽃잎 같은 불빛에 진은 눈이 아프다.  토우가 그런 진을 내려다보았다.    - 괴로움도 좋은 데 쓰면 약이 된다. 어머님을 여인 것은 어차피 한번은 거쳐야할 고통의 벼랑인 셈이다. 그러나 춤에서 락방한 것은 네가 아직 완숙치 못한 신을 신고 섣불리 길을 나선 결과다.    무엇이 되겠다고 규정하는 순간 세상은 그것이 욕망임을 안다. 네 이름자껍질에 너무 집착하지 말어라.    진은 미처 다 아지못한 표정으로 화신을 쳐다보았다.   - 저 불을 보아라. 보았느냐?   - 네 보았습니다.    화끈한 느낌이 드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 내리며 진은 답했다. 불의 화기에 살갗이 따끔거린다. 허옇게 각질이 일어난 얼굴이 그 화기에 쓸려 쓰라리다.    토우가 입을 열었다.    - 우리가 신에게 불을 내려주기를 바랬더니 신은 불을 주었다. 불만 준 것이 아니라 죽음도 더불어 주었다.     불에는 청정(淸淨)한 불과 부정(不淨)한 불이 있다. 불은 락원에서도 빛나고 지옥에서도 탄다. 불이 따스하고 그 빛도 화려해서 사람들을 매혹시키지만 불에 닿는 것은 파손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런 의미서 불은 감미로움이며 또 고통이다.   네 몸을 태우는 불은 결국은 네 자신의 손에서 인다. 큰불에도 꿈쩍 않고 버티며 살아가다가도 내부에서 튕기는 불꽃에 끝내는 마음이 타서 무너지고 만다. 외부의 불보다 더 무서운 불은 언제나 너의 내부에 있다.   네 마음속의 부정한 불을 버려라.     진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말을 마친 토우는 눈을 내려 감고 입을 다물고 있다. 자신의 감성을 리성의 쇠도리깨로 내려친  화신의 말 마디마디가 선명한 울림으로 진의 가슴에 꽂혔다. 지그재그 모양을 그리는 빛이 머리를 뚫고 쏜살같이 지나가는 듯하다. 질러져 있던 쇠 빗장이 조금 열리려고 한다.    밤, 화택의 동자들은 아닌 밤의 북소리에 잠에서 깨였다. 진이 석등을 밝혀놓고 마당에서 뛰고 있었다.                                      진, 사랑에 눈뜨다        곡성부근에서는 간혹 장이 펼쳐지곤 했다. 칼자루를 잡은 이들에 의해 같은 족속끼리 서로 반목했지만 생계를 위해 암암리에 펼쳐지는 민간 적인 교역은 막아내는 수가 없었다.     돌담의 틈새로 서로 건너가고 서로 건너와서는 서로의 토산물을 바꾸곤 했다.    남하에서 나는 과일과 산북에서 나는 약재를 바꾸기도 했고 산북에서 구워 만든 도자기와 남하에서 결어만든 대바구니를 바꾸기도 했다. 바람이 잦다싶으면 두 부락 사람들이 슬렁슬렁 모여들었고 구석구석에 자잘한 생필품들로 난전이 펼쳐졌다.    이에 대해 부락의 족장들은 한눈은 감고 한눈은 뜨고 있다. 그러다가도 지나쳤다싶으면 문뜩  장터에 뛰여들어서는 재수 없이 걸려든 이들에게 벌금을 시키고 징벌로 태형(笞刑)을 가했다.    그날은 좋은 날씨였다. 날씨는 너무 맑아 해가  쨍그랑쨍그랑 명랑하게 소리내어 웃는 것처럼 보인다. 진은 교와 염과 함께 장으로 나갔다. 개가 킁킁대며 뒤를 따른다. 어데 가나 진의 뒤를 묻어 다니는 불독이다.      교는 떠오르는 일월이 새겨져있는 도자기를 사들었다. 선물할 사람이 있다고 했다. 진은 북채에 달았던 붉은 술이 닳아져 패물 난전을 찾았다. 패물이 일매지게 늘여진 가게에서 붉은 술을 보아내고 값을 물었다.    - 그냥 넣으세요.   진은 눈을 치떴다. 패물가게의 주인은 진을 보고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가게의 물품으로 보아 산북의 장사치였다. 섶을 깔끔하게 여민 옷매무새의 녀자는 산수화 속의 인물처럼 단아하고 고즈넉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진을 보고 녀자가 웃으며 말했다.    - 화신무 추는 걸 봤습니다. 저번 춤 경색 때...    - 춤 좋아해요?   진이 물었다.    - 예.  녀자가 아미를 숙이며 대답했다. 녀자의 볼에 홍조가 번졌다.    곁에서 불독이 어딘가를 바라고 컹컹 낮은 소리로 짖었다. 그러자 그쪽에서도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산북종의 화견(火犬) 한 마리가 조금 떨어진 돌담 근처에 오줌을 지린다. 녀자가 손짓으로 개를 불렀다. 개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진이 귀엽게 개의 머리를 다독여 주었다. 반들반들한 코가 손바닥에 와 닿는다.    - 홍모(紅毛)얘요. 우리 개. 귀엽죠.    - 저, 저의 개는 불독인데요.   진도 자기 개 자랑을 했다.    - 전 유(柔)라고 합니다. 우린 건너 말서 살아요.   어느 사이 산북종과 남하종의 개는 서로 어울려 꼬랑이를 흔들며 목털을 비빈다. 그런 개들을 재미있게 지켜보다 녀자가 붉은 술을 진에게 내밀었다.    - 선물하지요. 이름난 화신무용단 춤꾼인데...   그런 그들을 한 쪽에서 염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매초롬하여 지켜 보고있다. 그의 손에도 붉은 술 한 개가 들려 있었다.     이때 개들이 다급하게 짖어댔다. 장터에서 급작스런 소요가 일었다. 누군가의 깨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올랐다.    - 포리(捕吏)가 온다아!    진은 얼핏 고개를 돌렸다. 대도를 차고 창을 꼬나든 남하의 포리들이 득달같이 달려오고 있다. 사람들이 우왕좌왕 흩어지면서 닭이 풍겨 올랐고 개들이 짖어댔다. 남하의 사람들은 가까이 숲 속으로 몸을 감추었고 산북의 사람들은 돌 각담을 넘느라 허둥대였다. 서로 찾고 부르는 사람, 넘어져 비명 지르는 사람, 포리들에게 잡혀 울부짖는 사람,.. 장거리는 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분만해 오르는 먼지 속에 진은 담을 넘지 못해 설레 발치는 녀자를 보았다. 산북의 그 녀자를 보았다. 무거운 패물이 가득 든 함을 껴안은 채 녀자는 담을 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그러다 밀쳐 넘어졌다. 패물들이 땅에 흩어져 널렸다. 포리들의 추상같은 호령을 등뒤로 하며 진은 달려가 흩어진 패물들을 주어 담아주었다. 그리고는 담 아래 넙죽 엎드렸다. 자기 등을 밟고 넘으라고 손짓해 보였다.    - 빨리 타요!   머뭇거리던 녀자는 포리들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진의 등을 밟고 담으로 올랐다. 그리고 담 우에 선 채로 진을 내려다보았다. 녀자의 눈에 진한 감동이 어려있음을 진은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녀자는 청람색 치맛자락을 부풀리면서 담 저쪽으로 뛰여내렸다. 진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진의 목에 쇠사슬이 철렁 걸렸다.     장을 보다가 두수없이 걸린 사람들은 태형 20대의 엄벌을 받아야 했다. 산북의 장사치를 도왔다는 죄명에 진도 태형을 받았다. 그러나 화신무용단성원이고 무자 명의 간청이 있었기에 매는 10대로 줄었다. 하지만 엉덩이가 흐드러져 진은 근 며칠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자리에 엎드린 자세로 진은 벽에 걸린 북과 북채를 바라보았다. 경황 중에도 손에 꼭 품고 온 붉은 술이 북채에 달려 있었다. 장터에서 돌아온 뒤로 산북녀자의 붉은 도화 볼이  진의 눈에 어려 삼삼히 떠나지 않았다. 단지 일별만으로 그만두기엔 무언가 설명 못 할 미진함 같은 것이 진의 마음에 걸려 있었다. 발목을 잡아채는 듯한 끈끈한 느낌, 그것을 일컬어 인연이라 해야 할까.    유!  마음속에서 돋아 오르는 순(筍)같은 것을, 참을 수 없는 근지러움으로 감지하면서 진은 입속말로 녀자의 이름을 자그맣게 되뇌여보았다. 그날이후로 진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태형을 받은 사람답지 않게 볼에는 붉은 화색이 돌았고, 가끔 떠오르는 입가의 부드러운 미소는 마음속의 희열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런 진을 두고 교며 염이 이상한 듯 눈을 마주쳤다.    컹! 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불독의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환청인 듯 싶어 창을 열고 보던 진이 경희에 차 소리질렀다.    - 홍모야!   어떻게 그 먼길을 달려왔던지 산북종의 홍모가 뜰에 나타나 짖고있다. 홍모의 목에 바구니가 걸려 있었고 바구니에 서찰 한 통이 담겨져 있었다.    적봉에 해 떨어지면 곡성 곁의 과수밭으로 오세요.  - 유   진은 흥분에 몸을 떨며 홍모를 그러안았다. 붉은 털을 어루만져 주었다.                                                                  진, 담을 넘다        밤, 진은 담을 넘었다.    밤, 진은 긴장과 흥분을 억누르며 곡성을 넘었다.    밤, 진은 야경순찰사들에게 잡히는 날이면 월경죄로 옥에 떨어 질 위험도 무릅쓰고 담을 넘었다.     담을 넘자 날카롭고 사나운 풀숲이 이어졌다. 바늘같이 메마른 풀 넝쿨들이 다리를 긁고 팔을 긁었다. 어느 결에 손등에 새빨간 핏방울이 맺혔다. 그러나 주술처럼 닥쳐온 사랑의 전갈은 그로 하여금 서슴지 않고 담을 넘고 숲을 가르게 했다.     오래 동안 방치해 둔 데서 무인지경인 곡성부근은 둘도 없는 옥토로 되였다. 두 부락의 과농(果農)들은 가만히 이곳에 숨어들어 과수밭을 일구었다. 점호를 앞둔 화동들처럼 종대로 나란히 렬을 지은 과수나무, 그 나무들이 천국의 풍경을 그리며 어우러져 있는 곳에서 진은 유를 만났다.    - 오셨군요.     옷에 가득 봄밤 냄새를 묻히고 나타난 진을 유가 수태를 머금고 반겼다. 그 한마디는 천년의 행복보다 길고 아름다웠다. 어둠 속 이였지만 그 얼굴에서 피어오르는 온유함과 기쁨, 밝음을 진은 분명 보았다.    둘은 과수나무에 등을 붙이고 나란히 섰다. 유는 말없이 풍성한 머리다발을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손가락에 말렸다가 도르르 풀어지는 머리칼이 진에겐 싱싱한 이파리처럼 보였다. 얼핏 드러나는 어깨가 동그랗고 목선이 매끈하다. 그 모습에 진은 어질머리가 인다.    부끄러움을 잉태한 침묵이 과수밭에 흘렀다. 달은 떠오르지 않고 있다. 그것이 다행 이였다. 그렇지 않다면 유의 붉어진 볼과 진의 손 둘 바를 모르는 모습을 샅샅이 비출 것 이였다. 홀연 진의 발치에서 불덩이가 폴짝 뛰여올랐다. 어지간히 놀란 진이 그처럼 풀쩍 뛰였다. 유가 웃었다. 그 불덩이를 주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작은 몸체에 가늘고 긴 다리를 가진 벌레였다. 벌레들은 더듬이 끝에 자그만 불을 켜 달고 있었다.    - 당랑이 얘요. 화당랑(火螳螂). 짝짓기 할 때면 정수리에 불을 켜들죠.    유가 알려 주었다. 그제야 진은 마을의 년장자들에게서 화당랑이라는 신기한 벌레에 대해  들은 생각이 났다. 화당랑은 산북에서만 나는 곤충인데 산북사람들은 화당랑을 잡아두었다가는 밥 지을 때 불을 지피면서 땔나무와 함께 아궁이에 집어넣는다고 했다. 유리 병 속에 가두어 놓고 그 불빛을 빌어 책을 읽기도 한다고 했다.    - 이 세상 당랑을 모조리 잡아죽이고 싶은 적이 있었어요.   유가 문뜩 감개에 젖은 소리를 했고 그 소리에 진은 놀라하며 유를 쳐다보았다. 유가 이야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무더웁던 유월, 산북사람들과 남하사람들은 서로에게 창부리를 들이대고 활촉을 겨누었다. 토포(土 )까지 제작해 가지고 서로에게 포탄을 퍼부으며 상잔에 혈안이 되었다. 포에 화약을 재워 넣고 화당랑을 집어넣으면서 사격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 화당랑을 잘못 떨군 바람에 화약통이 폭발하면서 유의 할아버지를 비롯한 몇 명이 비명에 갔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유에게서 화당랑은 보지 못한 할아버지를 죽인 원흉으로 생각 되였다. 밤만 되면 뜰에 뛰여드는 화당랑을 잡아서는 발로 짓이겨 죽였다고 한다.   - 다시 생각해보니 버러지에게 무슨 죄가 있겠어요. 모두다 한 혈통끼리 죽인다 살린다 원쑤를 만든 사람들의 탓이지요.    진은 사색 깊은 유의 얼굴을 새삼스레 지켜보았다. 손바닥에 쳐든 화당랑의 불빛이 유의 반 쪽 얼굴을 물들이고 있었고 그 절반 얼굴만으로도 유는 예뻤다.    - 이제는 화당랑과 친구가 됐는걸요.   유가 입술을 오므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은은한 휘파람소리가 과수밭에 메아리쳤고 다음순간 진은 희한한 광경에 입을 퀭하니 벌리고 말았다. 휘파람 소리를 듣고 풀숲의 여기저기서 화당랑들이 폴짝 폴짝 뛰쳐나왔다. 저마다 정수리의 더듬이에 불을 켜들고 뛰여왔다. 뛰여 와서는 진과 유를 에워싸고 맴을 돌았다.     주위가 등롱을 켜든 것처럼 환해 졌다. 유의 청순한 얼굴이며 갈람한 몸매가 불빛에 드러났다. 길고 숱 많은 머리털이 흩어져 후광처럼 유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진의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릴 적 불에 데였던 왼편 이마 전에 동전잎 만한 흉터가 력력히 돋아났다.    진은 유의 손을 당겨 잡았다. 진의 몸 속에 욕망의 열기가 서서히 고여 오고있었다. 여태껏 춤밖에 모르고 지내온 일심이 욕망의 건드림에 흔들렸다. 유가 수줍은 손을 뺄 듯 뺄 듯하다가 자기의 허리 전에 놓아주었다. 허리띠가 잡혀 졌다. 진이 떨리는 손으로 허리띠를 잡아 당겼다. 유가 핑그르르 맴을 돌았고 당랑의 날개 같은 옷이  스르르 벗겨져 내렸다. 유의 농익은 몸매가 드러났고 진은 넉을 잃고 바라보았다. 불빛 어린 유의 몸매는 뇌쇄(惱殺)적으로 아름다웠다. 작은 입술이 꽃잎처럼 뚜렷하다. 어깨가 좁다랗고 가슴은 높다. 엉덩이는 알밤같이 도드라졌다. 화당랑의 움직임과 함께 유의 몸매에는 수묵화 같은 그림자가 지어지고 있었다. 그 그림자들은 유의 볼에 머물렀다가는 뛰여서 목선 아래의 쇄골에 머물렀다가는 뛰여서 높은 가슴에 머물렀다. 묵직한 가슴아래 머무른 그림자가 아름다웠다. 풍요로운 배를 타고 내려 기름진 숲에까지 그림자는 머물렀다.    진이 유의 살갗에 손을 가져갔고  손길이 닿자 유는 진을 향해 전신이 무너져 내렸다. 진의 손과 혀 바닥은 불줄기가 되었다. 불줄기가 되어 유의 일신을 훑어 내렸다. 유가 신음을 흘렸다. 소리가 높아졌고 그 소리에 당랑들이 일제히 더듬이에 켜든 불을 죽였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서로의 불을 켜들었다. 두 사람의 몸 속에 내연하고있던 불들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밀어젖히며 받아 안으며 애욕의 춤사위를 벌렸다. 과수나무를 품은 산줄기도 이렁이렁 떠도는 것 같다.    적봉에 떠올랐던 달이 서천으로 콩알처럼 굴러 떨어질 때에야 진은 유와 갈라졌다. 진과 유의 사랑을 목격한 화당랑 하나가 손바닥에 놓여져 진의 밤길을 밝혀 주고 있었다. 진은 경쾌한 몸짓으로 담을 넘었다.    이때 진과 멀지 않은 곳에서 그처럼 날렵하게 담을 넘는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                                       진, 스승을 잃다     대각소리가 울렸다. 투명한 고음으로 소리는 부락을 뒤흔들었다. 족장 굉이 두 볼을 팽팽히 살리며 대각을 불었고 그  소리에 부락 사람들이 바삐바삐 적봉 기슭에 모여들었다. 화신제를 빼고 보면 오랜만에 부락의 모든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족장과 10명의 장로들이 사람들 앞에 나섰다. 저마다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살벌한 기운이 굼베굼베 적봉의 산발을 타고 서려 올랐다.     해가 뜨겁다. 등이 후끈 달아오른다. 불덩이를 담은 커다란 솥뚜껑이 등판에 얹혀 있는 것만 같다. 뙤약볕을 이고 어떤 불길한 예감에 짓눌려 있는 사람들 앞에 포리들이 결박을 지운 사람 하나를 끌어냈다. 사람들의 입에서 놀란 비명이 새여 올랐다. 끌려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마을에서 가장 인끔 높은 무자- 명이였다.    사람들의 맨 앞에 줄지어 선 화신무용단 성원들은 그 누구보다도 두려움에 지지름을 당하고 있었다. 무엇이 자기의 스승님을, 온 부락에 인끔 높은 무자를 오라를 지워 끌어낸 것인지 영문을 알길 없어 했다.    족장이 크악! 크악! 가래침을 돋구어 뱉고 나서 입을 열었다.    - 명은 화신무용단을 이끄는 책임자로서 사사로이 지경(地境)을 넘어 산북에 기여 들었다.  산북 무용단의 춤을 훔쳐보다가 산북 사람들에 의해 나포 되였고 다시 반송 되였다. 이에 본 부락에서는 부락의 명성을 더럽히고 두 부락지간에 결성된 상호불침입 조약을 깨뜨린 죄로 명에게 엄벌을 가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진은 그 누구보다 높뛰는 가슴을 느꼈다.    - 명! 너 자기의 죄를 시인하느냐?   명이 머리를 쳐들었다. 까랑까랑한 소리로 대답했다.    - 그게 왜서 죄인지 알 수 없구려. 난 그저 분단돼 있으며 맥(脈)을 달리 한 우리 춤의 파생된 부분들을 찾아 다시 화합의 춤 마당을 만들어 보려 했을 뿐이요. 한 무자의 소박한 꿈이 죄라면, 만약 그것도 죄라면 같은 피들을 갈라놓고 서로의 심장에 창을 박으며 피바다를 만든 어떤 사람들의 죄 값은 어떻게 치러야 하는 거요???   - 저런 발칙한 놈 봤나? 그런 망언도 서슴없이 하다니    명의 말은 예리한 비수가 되어 족장의 정곡을 찔렀고 장로들이 기겁을 하며 염소수염을 달달 떨었다. 족장이 씹어 뱉듯 말했다.    - 투석으로 결정합세다.    원로들이 부스럭거리며 돌멩이들을 내놓았다. 홍석, 백석, 백석, 홍석... 그 돌멩이들을 헤아려 보고 나서 족장이 소리 높여 심판결과를 선포했다.    - 월경죄에 상전모욕죄로 명에게 척목형(刺目刑)을 가한다.    좌중이 놀란 소리로 들끓었다.《척목형》이란 그 형벌의 참혹함으로 부락에서 오래 동안 끊겼던, 두 눈을 찔러 멀게 하는 극형(極刑)이였다. 사람들의 소요를 족장의 다음 말이 눌렀다.    - 허나, 그 동안 명이 화신무용단을 이끌고 부락에 공헌한 점을 헤아려 쌍목형( 目刑)은 면하고  단목형(單目刑)으로 실시한다.    《단목형》은 한쪽 눈만 찌르는 형벌이다. 포리들이 우르르 덮쳐들어 명을 말뚝에 비끄러매였고 형구(刑具)들을 날라 왔다.    - 선생님!!!   무동들이 부르짖으며 뛰쳐나가려 했다. 그런 화신무용단성원들을 포리들이 창으로 윽박질러 뒤로 물러서게 했다.    포리들이 명의 이마를 쇠사슬로 감아 말뚝에 단단히 비끄러 매였고 그중 하나가 화로에 시뻘겋게 달군 부저가락을 들고 명을 향해 다가갔다. 명은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지릅뜬 눈으로 벌겋게 달아올라 찌르륵거리는 부저가락을 지켜보았다. 땀으로 얼룩진 명의 얼굴은 검붉은 색이 심하게 번져 부패한 나무 잎 같다. 연기를 내뿜는 듯한 긴 숨을 토하고 나서 어금니에 힘을 주며 말했다.   - 왼 눈의 시력이 약하니 오른 눈을 보존해 주소.      상체가 우람하고 목이 굵고 짧은 포리가 볼따구니로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고 나서 발로 명의 허벅지를 밟았다. 눈께 까지 흘러 내려 온 명의 긴 눈섭을 걷어올렸다. 몇 번이고 견주다가 명의 왼 눈을 푹- 들이찔렀다.    피를 문 비명이 울렸다. 사람들 속에서 염이 혼절해 넘어 갔다.     교와 진 그리고 염이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하늘에 별은 얼음 조각인 양 차갑게 빛났다. 주위는 너무나 조용해서 별이 흐르는 소리도 들릴듯하다. 왼쪽 눈에 안대(眼帶)를 댄 명은 평상에 앉아 자기가 아껴온 제자들을 굽어보았다. 끔찍한 시달림의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뒤, 스승의 하나밖에 없는 눈은 이제 고요하다.    - 교, 받거라   명이 북채를 들어 교에게 넘겨주었다. 스승의 북채였다. 손때가 올라 반질반질한, 끝머리에 명이라는 스승의 함자가 새겨진 북채였다.    - 이제 화신무용단의 중임을 네가 맡아보거라.    교가 놀란 듯 스승을 쳐다보았다.    - 나 원체 너희들을 나를 초월한 절세의 춤꾼으로 키워 보려 꿈꾸어 왔는데... 지금의 이 모양 이 심기로는 안 되겠다. 조용히 나의 마음, 나의 리론을 정리해 볼 터이니 일 후 무용단의 대소사를 네가 챙겨 주렴아.       스승은 아무 것도 없는 빈 몸으로 《화택》을 나섰다. 창백한 별 빛을 발끝으로 차며 산을 내렸다. 진이 뒤를 따랐다. 산 기슭아래  길이 나설 때까지 스승을 바랬다.    - 이제 그만 돌아가거라.    진의 등을 밀면서 한 마디를 남겼다.    - 진정한 춤꾼으로 된다는 것은 결코 록록한 일이 아니어늘 진아, 작은 일에 연연하지 말고 춤에 전력하거라.    아스라한 적봉을 한번 쳐다보고 나서 명은 길을 떠났다. 옷자락을 떨치며 떠나는 스승의 뒤 모습을 지켜보다 진은 무릎 꺾어 큰절을 올렸다.     《화택》쪽에서 불독이 짖어 대는 소리가 들린다.     진은 또 한번 적봉의 동굴 속 화신 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 왜 하필이면 우리의 스승입니까? 왜 스승께서 당치않은 죄로 소중한 신체까지 바쳐야 합니까? 왜 동족을 짓밟고 올라선 사람들이 외려 정의로운 자로 둔갑해서 예술밖에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에게 문죄를 해야 합니까? 가르쳐 주십쇼!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진의 눈에 붉은 기운이 몰려들었고 목소리는 갱엿이라도 걸린 듯 메여 있었다. 호소하듯 떨리는 소리로 말하는 진을 지켜보며 토우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 너에게 뿔 황소를 재낄만한 대력사(大力士) 같은 힘이라도 있느냐?   그 뜻 모를 질문에 진이 어리둥절해져 머리를 저었다.    - 없삽니다.   - 너에게 만전옥답을 가진 대호(大戶)처럼 금붙이라도 있느냐?   - 없삽니다.   - 너에게 남에게 죄를 내리는 족장과 같은 권세라도 있느냐?   - 없삽니다.    - 그렇다면 거대한 뿌리를 가진 이 력사의 왜곡 앞에서 네가 할 일이란 대체 뭐 갰느냐?    진이 대답을 못했다. 토우가 말에 력점을 찍었다.    - 춤(舞)이다.    진이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그 한마디를 주고 나서 흙 인형은 눈을 내려 감고 있다. 진, 사랑을 잃다         명이 떠난 뒤에도 《화택》에서 북소리는 울렸다. 그러나 그 소리는 어제 날 같은 중후함과 신명을  잃고 있었다. 스승의 당부를 받은 교는 화신무용단의 질서를 유지하려 했지만 모두들은 중심을 지탱해주던 철심 하나가 쑥 빠져나가는 듯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힘에 부쳤던지 교 역시 무용단 일에 더는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전처럼 닭이 첫 홰를  침과 함께 일어나 북소리를 울리는 사람은 그저 진밖에 없었다. 스승이 형(刑)을 받던 정경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라 진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스승처럼 역시 담을 넘은 자기의 행적을 누가 엿본 것 같아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스승의 상처받은 신상이나 자기의 파격적인 사랑에 대한 괘념이  들 때면 진은 북채를 잡았고 춤을 추곤 했다. 춤이 사념과 번뇌를 벗게 해주는 명약 이였다. 그만큼 진은 이제 춤의 진미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었다.      거미줄이 서리고 먼지에 묻혀 있던 곡성 곁 과수밭의 막사는 진과 유로 말하면 천국의 루각임에 다름없었다. 밤이면  타는 목마름으로 화급하게 담을 넘었고 막사로 가서 유를 만났다. 이제 진과 유는 더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유는 진의 반려였고 춤의  동력 이였으며 생활의 전부였다. 그들은 부락사이의 반목의 물결이 밀어낸 금기의 가장자리에서 만난 사람들 이였다.    - 언제면  우리가 남들 앞에서 떳떳이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그날이 올까요?     유의 말소리가 낮게 막사에  깔렸다. 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유가 여느 때보다 감상에 젖은 소리를 했다. 모호한 슬픔, 그리고 약간의 불안기 같은 것이 유의 엷은 눈꺼풀을  스쳐 감을 진은 본다.    - 창천(蒼天)에도 눈이 있다면 우리들의 사랑을 갈라놓지 않을 거요.   깊은 밤  소반에 정안수 한 그릇을 떠놓고 달보고 절하며 가약을 맺었던 둘 이였다. 함께 있다는 현실감을 붙잡기 위해 유는 진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그  눈은 언제 나처럼 사랑이 담겨져 그윽하다. 그러던 유가 머리를 갸우뚱했다.    - 이상해요.   -  뭐가?   - 오늘따라 당랑이 불을 켜지 않아요? 왠지?   유의 예감은 적중했다. 말을 마치기 바쁘게 막사 밖에서  《홍모》가 다급하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우르르 발 구름소리와 함께  막사의 문설주에 걸친 가마니때기가 훌떡 젖혀지면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만큼 엄청나게 밝은 홰불 빛이 밀려들었다. 그 엄청난 광량(光量)에 둘은 흠칫 몸을 떨었다.      진과 유는 가지런히 옥사의 대청에 꿇리여 앉았다.     매처럼 좁고 빛나는 눈길을 가진  산북의 족장이 포교(捕校)의 동반을 받으며 나타났다. 매 눈으로 두 사람을 한동안 쏘아보았다. 그 눈길이 참기 어려운 고문 이였다. 드디여  침묵을 깨며 족장이 포리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 남하 놈팽일 10대 치고 풀어줘라.    포리들이  어리둥절해서 족장을 쳐다보았다.   - 젊은 놈들이 혈기가 끓어올라 붙어먹은 짓이고 또 여태 두 부락사이에서 처음 있은 일이라  형을 가볍게 내렸다. 그저 이 이후로 더는 남의 부락 녀자를 넘보는 발칙한 짓을 안 저지르겠다는 다짐장만 쓰면 없는 일로 묵과하겠다. 그리 알고  대답을 올려라.    - 어서 족장 님의 너그러운 관용에 감사를 올리지 않고  뭘 해?   포교가 곁에서  윽박질렀다. 진이 머리를 가로 저었다.   - 사랑에는 지경(地境)이 없습니다. 우린 잘못한 것이 없어요.    - 이런 간뎅이가 부었나? 봐줬더니만 새 이불홑청에다 오줌싸려 드는구나.    포교와 포리들이 흘금거리며  저희들 족장의 눈치를 보았다. 시퍼렇게 돌아서는 족장의 눈에 퍼런 번개가 친다.    - 그래 다짐 안 하겠느냐?    진은 유를 건너보았다. 유도 진을 지켜보고 있다. 둘은 서로의 눈빛에서 힘을 얻었다. 진이 이를 사려 물고 머리를  가로 저었다. 포교가 몸을 으스스 떨었다.    - 넨장, 환장하겠어.   족장이 포교를 불러 귀가에 무어라고  속닥거렸다. 포교가 머리를 주억거렸다. 이어 포교가 두 사람을 향해 호령했다.    - 그렇다면 산북의 법대로 산북사람을  단죄하겠다는 족장 님의 분부 시다.    진과 유가 머리를 쳐들었다.    - 너희가 이 벌을 이겨낸다면 하늘의  뜻으로 알고 내 허락해 주리다.    족장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족장의 눈에서 서슬 퍼런 랭기가 흘렀고 그 눈빛에 대청의  사람들은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 불기와 지짐이라고 들어 봤느냐?   대령해 선 포리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표정들이 크나큰 경악에 어려 일그러진다.    그 형벌에 대해 진은 어른들에게서 귀동냥해 들은 적 있었다.《불기와  지짐》이란 유부남과 간통한 녀자나 풍류방(風流房)의 기녀, 그리고 남들에게 저주를 퍼부은 무당 년들에 가하는 잔학한 형벌 이였다. 발가벗겨 매여  달고 치부와 온 몸의 곳곳을 달군 기와 장으로 뜸질하는 형벌이다.    진이 주체할 길 없이 높아진 소리로 반문했다.   - 저 녀자에게 무슨 죄가 있나이까? 남의 유부남을 빼았앗나이까? 뒤 골목에서 몸을 팔았나이까? 아니면 온 마을에 마마가  돌라고 저주라도 했나이까?   유가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수정처럼 차게 빛나는 눈으로 족장을 직시했다.   -  망극하나이다. 족장 님께서 그런 형벌로라도 저희들의 사랑에 허락을 주신다면 소녀는 달갑게 받겠나이다.    - 안돼. 유!   진이 다급히 소리 질렀다.     - 후회 안 하겠느냐?   족장이 더욱 빛깔이 깊어진  매 눈을 치뜨며 유를 보았다. 살갗 깊숙이 박히는 그 시선을 받아내며 유가 한층 나직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 사랑을 위한  일이 온데 무슨 후회가 있겠사옵니까.     포리들이 쩔그럭거리며 형틀을 챙겼다. 유는 포리들에게 잡혀 몸부림치며 안  된다고 소리소리지르는 진을 바라보았다. 사랑이 가득한 눈길로 진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몸을 돌렸고 스스로 옷을 벗었다. 순백의 몸뚱이를 빛내며  차가운 형틀 우에 누웠다. 포리들이 어리친 눈길로 족장을 쳐다보았다. 족장의 볼이 불끈 경련하고 있었다.   벌겋게 단 기와  장들이 차례순으로 유의 여린 살갗 우에 놓여졌다.    치직- 살 타는 냄새가 대청에 퍼졌고 그와 함께 노란 연기가 피여 올랐다.  기와 장에 살갗이 척척 묻어 났다. 그러나 대청의 사람들은 녀자의 비명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유! 유!!  유!!!   부르짖으며 진은 눈을 지 질러 감았다. 눈앞에서 수십 마리 나방 떼가 어른거린다. 눈을 감아도 한 장 한 장의  기와장이 유의 몸에 놓여지는 형상이 선명히도 떠올랐다. 때마다 진은 자기도 달군 기와장에 대인 듯 몸을 꿈틀거렸다.   랭혹한  표정으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족장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옥사를 박차고 나갔다. 말에 올라탔다. 말등자를 바로 밟지 못해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부하들이 얼른 달려가 부축했다. 말고삐를 당기려다 말고 족장이 감탄인지 욕설인지 분명치 않은 소리로 내뱉었다.     - 지독헌 년      과수밭,  진은 유를 업어다  뉘였다. 맹금(猛禽)의 부리에 걸려든 듯 유는 온 몸이 찢겨져  있었다. 우박을 맞은 꽃잎처럼 유는 지치러 들어 있었다. 만개한 꽃 같은 커다란 화흔(火痕)이 온 등판에 번져나가 있었다. 유의 몸에 약초를  짓찧어 붙여주는 진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지어 내렸다. 눈물에 약초를 반죽해 진은 유의 온몸에 붙여 주었다. 《홍모》가 끙끙대며 혀를 내밀어  주인의 덟어진 얼굴을 핥는다.    - 진...  언제 깨여났던지 의식이 돌아온 유가 진을 불렀다. 힘겹게 돌아누운  그녀의 퀭한 눈 그늘이 섬뜩하도록 어둡게 느껴졌다. 가까스로 눈망울을 크게 열고 유는 진을 쳐다본다. 진이 눈물을 훔쳐내며 다급히 유의 머리  전에 엎드렸다.     - 진, 날 꼭 안아주세요.    그 나지막한 소리를 귀 울림같이 들으며 진이 유를  껴안았다. 상처자리가 아파 유가 이마 살을 모았다. 진의 품속에서 그녀는 작은 공 벌레처럼 꼬부라졌다. 그런 유를 두고 진은 어쩔 바를  몰라했다. 손아귀에 힘을 주면 유의 몸이 유리잔처럼 깨여져버릴 것만 같았다.    진의 품에 안겨 유는 진을 올려다보았다. 상처  입은 산짐승의 눈처럼 개개한 눈동자로 진을 쳐다보았다. 입가에 반월형의 주름을 만들면서 처량하게 웃었다.   - 진, 날 잊지  말아줘요.     유의 눈 기운이 혼혼해 졌다. 그리고 몸이 점점 나뭇가지처럼 딱딱해졌다. 진이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가슴을 문지르고 팔을 문지르며 손끝에서부터 발끝으로 번져 나가는 퍼런 빛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유의 몸은 점점 차갑게 식어만 갔다. 진의 어깨에  둘려졌던 유의 팔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 안돼! 날 버리지마 유. 죽지마 유! 안돼. 죽지마.    진은  눈물의 폭포를 쏟아내며 유를 불렀다.    - 날 버리면 안돼 유, 족장이 우리 사랑을 허락했는데. 하늘이 우리 사랑을  허락했는데. 죽으면 안돼 유! 유!!   과수밭에 어스름이 내린다. 막사주위에서 화당랑들이 뛰여와 더듬이에 불을 켜들었다. 불  화환이 되어 막사 주위에서 빙글빙글 맴을 돌고 있었다.                                             진, 스승을 찾아가다      두 부락을 가른 곡성의 거대한 몸체가 묵묵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우직한 선머슴 같은 성채의 무릎  아래에서 부락사람들은 갈라져 살고 있다. 세월의 더께가 청태처럼 까실까실 앉은 돌 각담은 이젠  슬픔 짙은 빛깔로 음울하게 서 있을  뿐이다.    진은 매일이고 곡성 곁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진은 까치발을 하고 담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진은 멀리 산북의 밋밋한 산등성이를 타고 펼쳐진 과수밭을 점도록 바라보곤 했다. 그 과수밭에, 밤이면 화당랑이 저마다  더듬이에 등롱을 켜들던 그 천국의 풍경 같은 과수밭에 이제 사랑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어지러운 꿈의 자락에 이끌리듯 밖으로 나와 담장 곁에  붙어선 그 눈빛에는 항상 애수와 여한이 안개처럼 젖어 있다. 그는 이 몇 달 동안 마치 다른 시간의 경계를 지나 온 것처럼 단정하던 얼굴빛을  잃어버렸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잡초처럼 어지러웠고 얼굴에는 어두운 골이 깊게 파여 있었다.    은밀하게 빚었던 사랑에 대한  향수를 이루지 못한 채 유는 갔다.    스스로 그어 돋우어진 상처를 운명인 양 받아들이며 유는 갔다.    하늘이  준 만큼 사랑이며 목숨을 건사하는 일이 그렇게 힘들고 덧없음을 진에게 깨쳐주며 유는 갔다.     어디선가 바람 한 줄기  불어와 먼 곳의 향기를 묻혀 놓는다. 과수밭에는 하얀 꽃이 백사지 같이 피여 있다. 두 부락의 사람들은 곡성지경에 남북과(南北果)라는 과일을  심었다. 도작(盜作)하는 과수농들이 가만히 산북종과 남하종을 접종하여 배육해 낸 과일, 과육이 많고 그렇게 달콤했다. 가을이면 달디단 과즙의  향이 백 리 밖까지 내달렸다. 가만히 재배하지만 두 부락의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과일 이였다.    접목 되여 꽃 피우고  열매를 다는 과일처럼 사랑하는 사람끼리 함께 어울려 꽃을 피우려 했는데, 풍성한 결실을 맺으려 했는데...    - 차라리  꿈이였더면은 … 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다 슬픔에 사무쳐 눈을 감았다.    그 사이 불독이 새끼를 낳았다. 산북의 《홍모》와의  사랑의 결정 이였다.    미물도 저렇게 거침없이 사랑을 나누는데...   새끼 개의 함함한 털을 쓰다듬으며 감개에  젖어 진은 또 다시 눈물을 쏟았다.    심산(心散)하기 그지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진은 구명(求命)처럼 한 사람을 머리에  떠올렸다.      호수 위로 어둠이 성깃성깃 내리고 있다. 어둠 살이 묻어나는 호수는 극도로 붓을 아낀 수묵화 같았다. 스승 명은  깊은 산 속 호수 가에 기거하고 있었다. 속세를 떠나 깊게 은둔해 있었다.    오래 동안 보지 못했던 스승은 많이 늙어 있었다.  탈색시킨 광목 같이 노리끼리하게 파리해진 얼굴 군데군데에 앉은 검버섯, 들뜬 잇몸, 허나 하나밖에 없는 눈빛만은 귀기가 어릴 정도로 형형하게  살아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진은 목 울대가 조여들고 콧등이 시큰해 난다.      호수가의 너누룩한 돌에  정좌하여 스승은 반듯한 수면을 지켜보고 있다. 독락(獨樂)하는 듯한 표정으로 소리 없이 앉아 있었다.       - 스승님.  진이 가까이 다가가며 불렀지만 스승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다. 진도 스승을 불러놓고는 뒤를 이을 어떤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복잡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에 가득 찬 어제와 오늘과 수없이 다가올 래일들을 뭉뚱그릴 한마디의 말을 찾을 수  없어 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얼굴로 스승을 찾았던 진은 스승의 골몰한 모습에 말을 삼키고 스승의 눈길을 쫓았다.   호수의 복판에서 불이 피여 오르고 있었다. 파란 불길이 피여 오르고 있다. 오래 된 못에 침전된 가스로 생기는 불 이였다.  미약한 바람에도 불길은 춤꾼의 허리처럼 흔들거렸다. 스승이 몸을 스르륵 일으켰다. 강물 한가운데 떠서 삿대 없이 스스로 흘러가는 뗏목처럼 스승이  몸을 움직였다. 진을 방임한 채 혼자처럼 스승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런 스승의 춤사위가 이전보다 많이 바뀌어있음을 진은 느낄 수  있었다.    춤을 추며 명이 입을 열었다. 낮은 목소리가 수면 우에 어린다. 저음의 피리소리 같다.  - 물의 흐름을 찬이 보아라.    물은 맑고 깨끗한 심상을 지녔다. 물은 풍요한 덕성을 지니고 있어서 세상  모든 것을 부드럽게 만져준다. 불의 흐름이 강한데 비해 물의 흐름은 유연하다.    불의 열정을 지니되 물처럼 행동할 것을  바란다. 불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일소해 버린 다면 물은 세상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새로운 창조를 기약할 수 있다. 거친 불 뒤의 물은  새로운 재생을 말해 준다.    불춤을 추는 우리가 물로 만나자는 의미는 불의 열기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열기를 더 크게  살리기 위함이다. 탁하고 어지러운 것이 사그러진 후의 순결한 재생을 위함이다.    네가 물의 흐름을 모를 때 불의  타오름도 다 리해할 수 없을 거다. 이것이 내가 산북의 춤과 우리 춤에서 더듬어 낸 전부다 ....   스승의 낯설면서도 익숙한  춤사위에서 진은 그 전하고자 하는 춤의 언질을 뒤미처 받아 안았다.  세상을 버리려는 듯, 세상을 안으려는 듯한 그 무아의 몸짓에서  한낱 애욕의 틈바구니에 보잘것없이 서있는 자신을 보았다.   호수에 꽃은 없었지만 진은 분명 향기를 맡았다. 시린 상처가 피워  올리는 향기였다.                                진, 동인들을 보내다             밤  늦도록 진은 석등이 타오르는 뜰에서 하나 하나의  춤사위에 땀 벌창이 된 몸을 싣고 있다.    오랜만에 스승을 뵈였다. 회한과 미련으로 삶의 갈피마다 어찌할 수 없이 저지르게  되는 인간적 약점으로 부대끼면서 그런 드팀없는 스승을 대하는 진은 눈가에 슬몃 부끄러운 눈물이 맺혔다. 마음자리 마디마디에 접붙여진 스승의 말을  떠올려 보노라니 자기를 떠밀어온 모든 감정과 책무, 삶을 속박했던 육신의 욕망, 그리고 그 주기에서조차 벗어난 기분이었다. 그래서 다시 북채를  잡았고 새로운 춤사위에 자신을 잡아넣었다. 스승의 언질을 들으면서 진은 단전(丹田)에서부터 올라오는 새로운 기(氣)를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운은 진으로 하여금 확실하게 북채를 잡게 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진저리치도록 가슴아프게, 때로는 너무 서글프다 못해 더러 유쾌한 느낌을  주면서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그는 춤에 자기를 바쳤다.      춤을 추면서 한편 진은 교를 기다리고 있다.  불독이 진의 곁에서 불안하게 서성거린다. 한나절부터 불독의 새끼가 보이지 않았다. 불독을 따라 새끼를 찾아 나섰던 진은 어느 개울가에서 개의  목에 걸어주었던 액세서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개의 털을 발견했다. 언뜻 짐작이 가는 쪽이 있었고 진은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눈곱이 잔뜩 끼고  진득한 콧물이 흐르는 개, 새끼 잃고 주눅들어 처량해하는 불독이  가여워 턱과 배를 부드럽게 문지르자 개는 진의 팔에 얼굴을 비벼댔다.    문뜩 노래 소리가 들렸고 돌계단으로 누군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교였다. 턱없이 큰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교가 올라 오고있다. 교는 몹시 취해 있었다. 늘 불쾌하게  취해있는  교의 그런 모습이 진의 속을  울컥 뒤집었다. 뜰에 섰는 진을 발견하자 교의 눈빛이 잠깐 굳었다.    - 왜? 너도 한잔 할려나?   교가 주기가 력력한 눈으로 앞을 막는 진을 쳐다보았다. 괴춤에 달린 술 조롱박을 내밀었다. 그  조롱박을 진이 밀쳤다. 교의 몸에서 풍기는 썩은 과일 같은 술 냄새를 참으며 진이 물었다.     - 개를 어찌한  거니?   - 몰라   시치미를 따며 지나치려는 교의 손목을 진이 감쳐 잡았다.    - 말해봐.  개를 어찌한 거냐구? 불독의 새끼를.    교가 몸을 가누며 진을 쳐다보았다. 입 귀에 야비한 웃음을 물고 자기의 배를  가리켰다.   - 이 속에 들었다. 왜?   진의 귀에 입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 개고기  냄새를 맡으면 하늘의 신선도 내려온대.    - 뭐야?   짐작한 바였지만 그의 입으로 사실을 확인한 진은 격노를  참지 못했다. 교의 면상을 주먹으로 내 질렀다. 교가 석등 앞에 뒹굴었다. 그런 교의 멱살을 끄잡아 진이 일으켰다.    - 너  왜 이러고 있어? 선생님의 당부도 잊었어? 지금 넌 이 무용단의 유일한 책임이야.    요즈음 교의 행동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교는 완연 딴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춤에 도통 관심이 없었던 반면, 제멋대로 《화택》을 뛰쳐나갔다는 밤늦어야 돌아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얼마 전에는 무용단 애들을 끌고 족장이 첩을 맞아들이는 잔치로 가서 춤을 추어주었다. 그때 함께 가자고 잡아끄는 교를 진은 단호히  밀쳤다.    - 우리는 신을 노래하는 무용단성원이지 족장의 노리개가 아니다. 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적봉의 나래 부러진 매로  살지언정 속세의 나래 성한 닭으로 살지 말라던 그 말씀이.    하지만 교는 몇몇 애들을 끌고 기어이 잔치에 참석했다. 오늘도  족장의 생일이라 보신용으로 개를 잡아 바친 것 이였다. 일전에 장에서 산 일월이 새겨져있는 도자기도 교는 족장에게 선물했다. 그렇게 권세  자들에게 비굴과 아첨을 보이는 교에게 진은 릉멸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동인에 대한 굳은 믿음에 균렬이 생기고있음을 진은 느낀다.   진이 《화택》으로 들어가 벽에 걸린 북채를 벗겨들고 나왔다. 스승 명이 교에게 넘겨준 북채였다.    -  선생님의 믿음에 미안하지도 않아? 남들 앞에 본을 보여 줘야 할 네가 왜 이러는 거냐? 왜?   일심으로 춤의 길을 걷자고  맹세하던, 그렇게도 양양하던 꿈 몰이의 초반이 생각나 진이 교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 혼자서 잘난 척  말어.   교가 손사래를 쳤다.    - 나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밥되는 거 없고 돈 되는 거 없는  춤에 명줄을 달고 싶지 않다구.    교가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말했다.    - 이 숨막히는 곳에 나를 가둬놓고  안주하며 난 세상에 춤만이 최고라 믿어왔어. 헌데, 헌데 모두가 허상 이였어.      그 말에 자제에도  불구하고 진의 언성이 높아졌다. 북채를 쳐들며 말했다.   - 이 몽척(夢尺)에 미안하지 않아? 그래 신 앞에서 다짐한  초지(初志)를 버리겠단 말이냐? 꿈을 이루려고 맹세했던 우리가 아니였나?   교가 웃겨 하는 표정을 감추려하지도 않았다.   - 맹세? 뭘 맹세해? 무자가 된답시고? 무자가 되는 길이 뭔지 너 알어? 난 이제야 알 것 같다. 무자, 그 표준의 금을  긋는 사람들은 권세 있는 사람들이야. 너도 봤지. 춤 경색에서 춤을 잘 춰도 못 춰도 평점은 그 사람들이 내린다구. 이게 현실이야. 이 세상에  진정한 무자(舞者)란 없어.     교가 물지 똥 같은 랭소를 피식 흘리며 진의 손에서 북채를 앗아냈다. 석등의  불 집에 던져 넣었다.    - 너 미쳤냐?   진이 덴겁해 불 집에 손을 넣어 북채를 끄집어 내였다. 불붙는  북채를 훅훅 불어 불을 껐다. 타다가 반 남아  남은 북채를 들여다보며 혼자 말처럼 말했다.    - 무릎이  부스러지더라도 나는 이 길을 갈 생각이다. 달리 다른 길을 알지 못하므로.    교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도  아집 강하고 딱 부러진 진의 성격에 질려 버렸음이 확실했다. 술이 조금 깨인 듯한 눈으로 진을 보다 말했다.    - 나 이곳을  떠날 거야.      며칠 안 되여 교는 과연 《화택》을 떠났다. 밤중에 슬그머니 떠나버렸다. 산을 내린 교는  엉뚱한 방향에서 출세 줄을 탔다. 부락의 곡창지기라는 작은 벼슬을 가졌다. 북채를 들었던 손에 쌀 담는 되를 들었다.    교의  떠남에 유감을 보이던 염도 뒤미처 떠났다. 응집된 환상이 깨어진 뒤에 동인들은 자아를 찾아 뿔뿔이 흩어져간다.   염은 결혼을  했다. 상대는 부락의 대부호의 조카였다. 무용경색에서 돈 많은 삼촌 때문에 방에 올랐던 그 조랑말 타고 으스대던 사람, 지금은 그도  산북장사치들과의 밀수거래로 부락에서 손에 꼽는 부호로 되었다.    사인교가 화택에 까지 와서 염을 맞아갔다. 떠나면서 염은  진에게  무언가 남겨 주었었다. 북채에  다는 붉은 술 이였다.    - 지난 봄, 장거리서 산 거야. 원체  일찍 주려 했었는데...   염은 뒤 말을 흐렸다.    - 춤으로 대성하길 바란다. 못난 우릴 닮지  말고.     염이 사인교에 올랐다.   - 잘 살아 봐. 행복해야 돼.    조금 서글픈  마음을 감추며 진이 조용히 축복해 주었다. 자기를 향해 짓는 그 미소 속에 사람을 꿰뚫어보는 힘이 느껴져서 염은 좀 무안해졌다.   사인교가 《화택》을 떠났다. 사인교의 뒤를 따라가며 불독이 컹컹 짖어 댔다. 진은 사인교를 둘러싸고 장구 치고 나팔을 불며  내려가는 혼례대오를 지켜보았다.      - 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뭘까. 세상은 얼마나 자질구레한 것들을  필요로 하는 걸까. 세상 것 가운데 욕망과 황금과 치환할 수 없는 것이 정녕 있는 걸까.     《화택》의 뜰에서 진은  초겨울 빈 들판에 홀로 꽂힌 허수아비인 양 오래도록 서있었다. 뿌리를 보이면 죽는다는 모종(苗種)을 옮기듯 반 도막남은 북채를 조심스럽게  손바닥으로 감싸쥐고 서있었다. 그러다 진이 그 누구의 지령을 받은 사람처럼 북채를 쳐들었다. 휘둘렀고 북소리를  따라 몸을 솟구었다.  마치 자신을 소진(消盡)시키듯 격렬한 춤을 추었다.   사인교가 멀리 굽이를 돌 때까지 북소리는 끊기지 아니하였다.   햇빛이 완전히 사월 때까지 북소리는 끊기지 아니하였다.    적봉에 달이 뜰 때까지 북소리는 끊기지  아니하였다.                                   진, 금기를 범하다     비의 계절 이였다.    비의 오지랖 넓은 손길에 세상 천지 젖지 않은 것이라곤 아무도 없다.   비는 벌창해진 성미로 산 홍수를 몰아왔다. 홍수는 적봉기슭의 《화택》을 무너뜨렸고 부락 사람들의 가옥이며 전답을 밀어  버렸다.    초미(焦眉)의 문제는 부락에서 불씨가 하나 둘 꺼진 것 이였다. 무심했던 사람들은 급기야 당황해 졌다. 불씨를  얻으러 백방으로 애썼다. 그러나 저장해둔 발화목(發火木)들이 비에 눅눅해진지라 나무를 비벼대도, 화도(火刀)를 극성스레 쳐대도 불을 일으켜 내는  수가 없었다. 족장이 총애하는 교를 불러 화신무도 추게 하면서 화신에게 치성을 드렸지만 종시 불을 일으켜내는 수가 없었다.     마을에서 며칠째 취연(炊煙)을 볼 수가 없었다.    마을에서 밤이면 집집마다 켜들던 호롱불을 볼 수 없었다.     마을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석등이 꺼진 《화택》의 뜰에서 진은 비에 갇힌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대줄기 비를 맞으며 진은 산을 내렸다. 곡성을 넘었고 무언가를 짊어지고 다시 넘어 왔다.    그의 등에 진 것은 불을 저장하는  장화통(藏火筒)이였다. 진은 담 곁의 높은 산 더기에 잠간 멈추어 서서 비안개에 뽀얗게 가려진 산북의 산을 바라보았다. 물빛 알갱이들이 허공  속을 내리긋는 게 보였다. 과수밭가에 묻고 온 유가 이 찬비에 떨고있을 것을 생각하니 목이 메였다. 한편 남하의 곤궁을 헤아려 불씨를 선선히  넘겨준 산북 사람들이 고마웠다.      적봉 동굴 속의 화신을 모신 화당에 다시 불이 피여 올랐다. 집집의  창문마다 불빛이 송이송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굴뚝에는 연기가 피여 오르기 시작했다. 기쁨과 감격에 들뜬 마을사람들이 삶은 음식을 들고 《화택》에  찾아왔다. 불씨를 얻어준 진을 에워싸고 춤 마당을 펼쳤다. 진의 춤사위에는 전에 없는 활력이 묻어 있었다. 그들과 어우러지면서 자신이 만들고  있는 춤에 대한 보람을 진은 피부로 느낀다.     세상을 삼켜버릴 것처럼 성이 나 흘러 넘치던 비가 조금씩 줄기 시작했고 드디여 멎었다. 그리고 하늘 깊숙이 스민 붉은 빛이  서서히 부락의 상공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어느 아침, 누군가 적봉을 가리키며 깨지는 소리를  질렀다. 적봉의 산정에서 놀라웁게도 검은 실연기가 피여 오르고 있는 것이다. 적봉은 연기를 뿜고 있었고 달빛인지 별빛인지 모를 박명(薄明)에  서려있다. 수상쩍은 기운을 내뿜고 있는 산을 쳐다보며 말세가 오려나고 부락사람들은 저마다 불안에 몸을 으스스 떨었다.    그  경악의 불길에 기름을 부으며 대각 소리가 울렸다. 족장 굉이 두 볼을 팽팽히 살리며 대각을 불었고 그 소리에 부락 사람들이 바삐바삐 적봉기슭의  《화택》에 모여들었다. 족장을 위시하여 10명의 장로들이 앞에 나섰다. 누구의 이마에나 음습하게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사람들은 읽을 수  있었다. 살벌한 기운이 축축한 대기 속에서 굼닐었다.    포리들이 결박을 지운 사람을 끌어냈다. 진이였다.     월경(越境)하여 산북의 불씨를 훔쳤고 또 사사로이 불씨를 나누어주었다는 것이 죄였다. 불씨는 매년 초봄, 부락에서 화신제를 연 뒤 부락의  권위인물이 가가호호에 나누어주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한낱 춤꾼이 족장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불씨를 나누어주었으니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죄장이 들 씌워진 것이다. 게다가 누군가 진이 일전에 지경을 넘어 산북의 녀자와 사랑을 나눈 일까지 들고 나왔다.    족장이  크악! 크악! 가래침을 돋구어 뱉고 나서 입을 열었다.    - 진은 이웃 산북에 넘어가 불씨를 훔쳤다. 이는 두 부락사이의  적대감정을 극화시키는 도화선으로 될 수 있다. 그리고 부락의 허락도 없이 아무사람에게나 나누어주었다. 여러분이 그의 죄를 낱낱이 까밝혀 문죄하기  바란다.    진은 연막 낀 눈으로 족장과 장로들을 바라보았다. 그 동안 홍수에 밀린 《화택》을 수건하고 넘어진 석등도 세우며  밤을 패였던 진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 피로해 보였다.     장로 하나가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 진이 비록 불을 훔쳐왔다지만 일방적으로 그를 문죄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진은 마을사람들이 불을 지피지 못해 추위와 배고픔에 허덕이는  정경을 보고 그들을 구하자는 일념에 그 후과를 알면서도 월경했던 것이옵니다.       또 한 사람이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었다.   - 아시다시피 적봉이 이상한 기운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한낱 춤쟁이가 망동한데서 산신을 노엽힌  결과라고 봅니다. 그를 중죄로 다스려 신의 감정을 무마시키는 것이 도리인가 봅니다.    - 잠깐요. 상기의 죄를 지었다하더라도  진은 화신무용단의 맥을 이어나갈 인재입니다. 그런 그에게 중형을 내리면 우리 남하족은 하나의 출중한 춤꾼을 잃게 될 겁니다. 족장 님께서  명찰하시옵소서.      진은 함구무언 머리를 숙이고만 있었다. 숙인 머리통 속의 새하얀 속살과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촘촘히 밴 땀을 보이고 있다. 그의 반발은 무력하고 막막했다. 그의 정당성의 전개를 허용할 만한 어떤 종류의 빌미도 족장은 만들어  주질 않았다. 그런 족장의 태도는 진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족장이 길어지는 변론을 무참히 끊어 버렸다.     -  투석으로 결정하세나.    장로들이 부스럭거리며 저마다 옷소매 속에서 돌멩이를 꺼내들었다. 사람들 저마다 숨을 꺽 죽이고 돌멩이를  지켜보았다. 홍석은 문죄(問罪). 백석은 사면(赦免)이였다.    홍석이 다섯 개 백석이 다섯 개가 나왔다.     투표를 다시 했다.    역시 홍석 다섯 개 백석 다섯 개가 나왔다.    - 문죄와 사면으로 의견이 각이 한데  공정을 위해 몇 사람 더 선발해 아퀴를 짓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장로하나가 제안했다. 마을에서 신분 있다는 몇  사람을 불러냈다. 그 사이에 교와 염도 끼여 있었다.    투석이 다시 되었다. 염이 선 참으로 백석을 던졌다. 그런데 교가  머뭇하고 있었다. 불안한 시선을 연신 좌우로 날려보내고 있었다. 교가 침을 소리나게 삼키고 나서 꼭 움켜 쥔 손을 펼쳤다.     홍석이였다.    염이 당혹한 눈길로 교를 쳐다보았다. 교는 염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비껴보고 있었다. 그들은 형제인  것이다. 한 무용단에서 예술의 비상을 위한 둥지를 틀었고 매일이고 나래 치는 련습을 하면서 고통과 영욕을 같이 나누었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웅성대는 속에 족장이 소리 높여 심판결과를 알렸다.    - 결과가  나왔다. 홍석이 15개, 백석이 13개. 명의 전철을 밟은 진을 쌍목형으로 문죄한다.     - 안되오. 진이 우리에게  불씨를 주었는데 오히려 그에게 벌을 내리다니.    사람들이 와글와글 떠들었다. 두꺼운 겹 주름이 뒤룩뒤룩 덮인 시푸르뎅뎅한  얼굴로 족장이 사람들을 흘려보았다. 그리고 손짓으로 포리들을 불렀다. 족장에게 사람들의 반대의 소리는 쥐가 벽을 갉아대는 소리쯤으로 들렸다.  포리들이 형틀이며 화로, 부저가락 등으로 형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두 번씩이나 중복되는 잔혹한 행태에 몸서리를 쳤다. 포리들이 진을  말뚝으로 끌어갔다. 말뚝에 머리를 얽동이려 하였다.    - 잠깐만   진이 소리질렀다.    - 청구 하나가 있나이다.    - 뭐냐?    족장이며 모두들의 눈길이 진에게 쏠려 졌다.   - 마지막으로 화신무를 한번 추고 싶습니다.    족장이 턱짓을 했다. 포리들이 결박을 풀어 주었다. 염이  눈물을 삼키며 북과 북채를 찾아 주었다. 아스라한 절망이 감돌던 진의 눈이 호수 같은 온정을 찾아 있었다. 북채, 반도막이 난 그 북채를 진이  추켜들었다.    북 소리가 울렸다. 습기를 먹은 북이 좀 틀린 듯 하나 더 웅숭깊게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사람들의 골수를  쪼개고 들어갈 정도로 처량했다. 진이 덫에 치인 짐승처럼 몸을 흔들었다. 마음속 가득 찬 공포와 울화를 털어 내련 듯 격렬하게 몸을 흔들었다.  춤에는 애절한 인내와 맵싸한 고통이 배여 들어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슬픈 사연을 흐느껴 하소연하기도 하고 벅찬 가슴을 감싸며 하늘을 우러러  열락(悅樂)의 몸짓을 짓기도 한다. 진은 마지막 춤으로 응어리진 정한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둘러선 사람들은 저마다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마지막이라는 한정어(限定語)가 가슴을 찔러서다.    평상 우에서 진이 춤을 마무리했다. 하나의 청동 조각처럼 굳어져 춤의 마지막  소절을 마쳤다. 진은 호흡을 고르며 눈을 들어 사위를 둘러보았다. 포악을 떠는 족장이며 형구를 갖추며 채비를 하고있는 포리들이며, 속수무책의  련민으로 쳐다보는 마을사람들이며, 그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염이며, 슬그머니 돌아서 사람들 틈바구니를 빠져가고 있는 교의 뒤 잔등이며,  끙끙대며 젖은 털을 혀로 핥는 불독이며, 아아 하게 솟은 적봉이며. 멀리 길게 누웠는 곡성이며...를 동공 속에 낱낱이 새겨 두었다.   - 시간이 되었다.    족장의 포효가 울렸고 포리들이 진에게 결박을 지우려 평상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진이  들린 사람처럼 간간하게 웃었다. 하늘 우러러 대갈일성(大喝一聲)을 지르며 두  손가락을 곧추 세워 자신의 눈을 힘껏 들이찔렀다.                                       진, 불과 만나다         토우 앞에, 진은 꿇어앉았다. 무릎은 으깨져 피투성이였다. 더듬으며 넘어지며 찾아온  화신이 모셔졌는 동굴, 피범벅이 된 얼굴에 화당의 온기가 끼쳐왔다. 아직도 온몸 골골샅샅에 밴 채 응어리로 남아도는 통증에 정신이 가물가물해  졌다. 진은 화신이 모셔졌을 곳을 짐작으로 확인해 가까스로 자세를 바로 했다. 피를 뚝, 뚝 흘리는 듯한 자신의 심장을 부여잡고 앉았다.   흙 인형이 입을 열었다.    - 고통스럽느냐?   - 예,    터진 입술을  혀로 적시면서 진은 꺼져 가는 소리로 말했다. 용암으로 지져놓아 움푹 패인 듯한 몸과 마음의 깊은 고통을 술회할 길 없어 몸부림하는 그의 텅 빈  눈확으로 눈물이 배여 나왔고 그것은 이내 묽은 피물이 되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 고통에서 해탈 할 방책을 대줄  가?   - 대주옵소서.     화신이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    - 춤을 버려라.   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몸부림하는 그의 손에 옷 속에 품은 반도막의 북채가 만져졌다.    - 버릴 수  있겠느냐.   진이 말이 없자 토우가 다시 한번 물었다. 북채를 뿌지직 소리나게 잡으며 진이 또박또박 말했다.    - 못, 못 버리겠삽니다.    그런 진을 지켜보다 토우가 감개를 토했다.   - 업연소치(業緣所致)라. 모든 것은  업에 의해 이루어진다더니, 너무나도 질긴 업장이로구나.    진에게 들붙은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신은 입을 다물어 버렸고 이윽고  눈도 감아버렸다.     적봉의 산정에서 피여 오르던  실연기가 굵어져 갔다.    적봉 우를 까맣게 뒤덮으며, 괴이쩍은 울음을  울며 새들이 날아갔다.    적봉으로부터 화산재가 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화산재는 부락을 무채색의 전경으로  만들었다. 하늘은 재빛 모포를 뒤집어 쓴 듯 하다. 산도 집도 사람도 온통 재 빛이었고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도 먹물 이였다. 재가 날리는 바람  속에는 온통 녹슨 쇠붙이 냄새와도 같은 것이 스며 있었다.    그와 함께 마을사람들은 산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뢰소리를 방불케 하는 그 소리는 산 속 깊이로부터 울려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날짐승들의 불안한 소리에 뒤섞여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소리도 있었다.    북소리였다. 북 소리는 적봉아래의 《화택》으로부터 울려오고 있었다. 《화택》은 화산재가 뒤섞인 재 빛 운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북소리는 운무를 비집으며 집요히 울려나오고 있었다.    - 천렬지화(天裂之火)가 닥치려나 보다.   머리에 화산재가 한 켜나 앉은 족장이 몸을 으스스 떨었다.    드디여 어느 아침, 꽈르릉! 지축을 흔드는  소리와 함께 적봉의 꼭대기로부터 화염이 뿜겨 나왔다. 잠자고 있던 적봉이 몸을 틀며 용트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은 삽시에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남부녀대하고 집과 가축을 버린 채 사람들은 천방지축 마을을 뜨기 시작했다. 산의 골을 타고 진 붉은 용암이 터져 내렸다.  용암은 홍수처럼  골을 이루며 흘러 내렸다. 흘러내려 가옥들을 태웠고 나무와 풀을 핥았으며 곡성을 밀어 버렸다. 사람들은 아우성이며  불을 피해 사방으로 달아났다.     그 난장 속에서 한 사람이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용암이 흘러내리는 쪽을  마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진이였다. 적봉으로 난 돌계단을 톺아 더듬이며 비칠이며 진은 산을 오르고 있었다. 불안한 듯 주위를 경계하며 불독이  사납게 짖어댔다. 날카로운 이빨이 불빛 속에서 번뜩인다. 불독이 진의 바지가랭이를 물어 당겼으나 주인의 확고한 발길을 돌려내는 수가 없다.  주인의 용의를 알아 개는 이젠  주인의 앞에 나섰다. 앞에서 향도를 해주었다.   용암이 터져 오르는 굉음에 귀때기가  잘려나갈 듯 했다. 날리는 화산재에 목이 메였다. 회오리를 만들며 불어온 불의 열기가 진의 얼굴을 할퀸다. 머리칼을 불불이 세운다. 그러나 진은  손톱 세우고 덤벼드는 불의 열기를 맞받아 앞으로  걸어간다. 어릴 적 불에 데였던 진의 왼편 이마 전에 동전잎 만한 흉터가 력력히  돋아난다. 북과 북채를 가슴 앞에 꼭 그러안은 채 진은 오로지 돌계단으로 오르고 있다. 그 길이 진에게는 자기가 념원하는 궁극에로 통한  회랑(回廊)을 걸어가는 것과도 같게 생각 되였다. 그는 지금 화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벌창해진  용암이 계단을 핥으며 흘러 내렸다. 불붙는 소리가 우우 귀가에 들려 왔다. 가까워지는 불을 느껴 진이 사력을 다해 북을 두다렸다. 불의 춤을  추었다. 불의 노래를 불렀다.       훨훨! 훨! 훠어얼! 불이여 타올라라 타올라라  불이여     캐갱! 앞에서 날아오는 불덩이들을 삼키며 길을 안내하던 불독이 비명을 질렀다. 처연하게 짖으며 용암에 묻혔다 순식간에 하얀  뼈의 몸뚱이만 남았고 그것도 잠시, 순식간에 그 뼈마저 용암이 녹여버렸다.    훨훨! 훨! 훠어얼! 내가 불 이여라 네가 불 이여라   진의 옷에 불이 붙었다.  진의 머리칼이며 눈섭에 불이 붙었다.  진의 손에 든 북이며 북채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불의  찬가는 끊기지 아니하고 있었다.  진은 불 속으로, 그 죽음 같은 황홀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진은 한 몸을 던져 어떤  경계(經界)의 우주 속으로 뛰여들고 있었다.  진은 마침내 불과 한 몸이 되어 열반(涅槃)하고있었다.   훨훨! 훨! 훠어얼! 우리는 불로 만나리라 숯이 된 뼈 하나로 세상 불타는 것들을 노래하리라 ...  ... ... ...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1    가람이여, 어허널널 가람이여! 댓글:  조회:3206  추천:13  2014-06-30
. 중편소설 .   가람이여, 어허널널 가람이여!   김 혁   가람: 1, (伽藍), 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곳을 가리켜 말함. 2, 떡갈나무의 방언 3, 고유어로서 강이라는 순 우리말.   두만강, 1885년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은 강가 너부죽한 청바위에 뺨을 붙이고 엎드리였다. 팔을 뒤로 꺽이여 오라를 지고 무릎을 꿀리여 앉은것이다. 실피줄이 도드라진 눈을 지릅뜨고 얼음장판에 넘어져 허둥대는 소처럼 막무가내로 거센 코김만 내뿜고 있다. 그 사형수를 울바자 치듯 둘러싸고 꼭뒤에 붉은 술 달린 벙거지를 쓴 사병들이 살벌하게 창을 꼬나들고 서있다. 상체가 우람하고 목이 굵고 짧은 도부수(刀斧手)가 앞으로 나섰다. 볼따구니와 턱이 온통 수염으로 덮히고 눈이 왕방울 같은 도부수는 흐느적거리는 륙자배기 걸음걸이로  느릿느릿 다가왔다. 푸짐한 먹이라도 만난 큰 짐승처럼 사형수를 한겻이나 노려보다가 등뒤에 짊어진 대도를 쓱 뽑아들었다. 도부수의 손에 들린 선들선들한 큰 칼을 본 사형수는 진작 혼백이 구중천으로 날아올라 두 눈을 까집었다. 도부수가 큰 대접을 바위돌우에 놓고 술 항아리를 기울여 대접에 술을 부었다. 술 한 대접을 단숨에 들이켰다. 또 한 대접 부어서는 술 한 모금 입에 물었다. 푸! 하고 칼에 술을 내뿜었다. 그리고는 옷소매로 쓱 닦아내렸다. 상오(上午)의 박명(薄明)아래에서도 칼은 위협적으로 빛났다. 도부수가 웃통을 벗어젖혔다. 한 가슴 부르르한 다복솔 같은 털과 나무밑둥이 처럼 실팍한 두 팔을 드러낸채 도부수는 칼을 뿌지직 움켜잡았다. 사형수의 상투는 흐트러져 파랗게 질린 얼굴을 뒤덮고있다. 꺼수수 풀린 짚단 같은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퀭한 섬 그늘 같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도부수가 칼로 사형수의 정맥이 두드러진 목줄기를 견주었다.     칼 아래 놓인 목숨의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은 “월강죄”로 단두대에 오른 강 건너 사람이였다.      이 10여년간 조선땅 북녘에는 가뭄이 계속되였다. 해마다 해동머리부터 가물은 어김없이 시작되였는데 여름이 다 가도록 천하의 자린고비보다 더 린색한 하늘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군했다. 전대미문의 왕가물이 잦으니 흉작(凶作)이 겹칠수밖에 없었다. 바늘 끝도 안 들어가게 척박한 땅에서 아무리 아등바등 손톱을 박으며 일해도 씨를 뿌린만큼 거둘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충재(虫灾)도 겹쳤다. 가뭄과 벌레떼는 악마구리의 날개처럼 함경도의 무산, 회령, 종성, 온성, 경흥 등 6진을 꺼수수 덮었다. 게다가 관리배들의 부패와 학정은 가뭄이나 벌레보다 무서웠다. 천재와 인재에 연거번거 지지름을 당한 굶주린 사람들은 풀 뿌리를 캐먹고 나무껍질을 벗겨먹으며 목숨을 연명했다. 집집마다 굶어 죽고 벌레가 묻어 나른 병에 병들어 죽은 사람들이 나왔다. 길가에는 임자없는 시체가 나뒹굴기도 했지만 란장속에 거두어 들일 여력마저 없어 했다. 기사년(饥死年)이란 이때 나온 말이였다.      살길이 꽉 막혀버리고만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들이 막무가내로 선택한 길은 두만강을 건너는것이였다. 두만강을 건너  만주땅으로 도둑농사를 가곤했다. 한편 강건너 청나라 통치자들은 장백산 이북의 천리땅을 만족의 발상지라하여 "룡흥지지(龙兴之地)"라 이름했다. 그리고는 엄한 봉금책(封禁策)을 실시했다. 만족을 내놓고 타민족이 만주에 가까이 하는것을 불허했다. 이렇게 "봉금령"이 내려진후 만주땅은 수백년간 내리 잠을 잤다. 방치된 그곳은 숲이 울창하고 땅도 비옥해 그야말로 천부지토(天府之土)로 되여있었다. 어찌나 땅이 비옥한지 농사가 절로 되였다. 잡풀이 우거진 땅에 불을 질러 밭을 만든후 씨를 뿌려두면 비옥한 땅에서 곡식은 소리치며 자랐다. 그대로 두었다가 가을에 가서 추수해오면 되였다. 이로소 강을 건너는것은 북녘 사람들의 유일한 삶의 길이 되고말았다. 그러나 이 길마저 순순히 열리는것은 아니였다. 청나라 조정에서는 월강하다 잡힌 자들을 "월강죄(越江罪)"라하여 막중한 범죄로 다스렸고 마구 목을 쳤다.    강안에는 가만히 월강하는 자들을 감시하기 위한 포막들이 몇 구간에 하나씩 섰고 “월강죄”로 목을 친 사람들의 수급을 걸어놓고 효시하는 장면을 언제든지 볼수 있었다. 수급들이 버드나무 가지에 추녀끝에 메주 달리듯 걸려 데룽거렸다. 그저 가난이 죄였다. 죽어서도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지릅뜬 눈을 한 그 머리들은 한을 담고 강 건너 고향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향에 남아있는 처자들은 강을 건넌 남정 때문에 내내 속을 졸여야 했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를 지어 불렀다.   월편에 나붓기는 갈대잎가지는 애타는 내 가슴을 불러야 보건만 이 몸이 건너면 월강죄란다   기러기 갈 때마다 일러야 보내며 꿈길에 그대와는 늘 같이 다녀도 이 몸이 건너면 월강죄란다.   "월강곡"이라는 노래였다. 강안 사람들이고 보면 누구나 이 노래를 부를줄 알았다. 강가 찌그러져 가는 초가집들에서 흘러나오는 그 음울한 노래소리는 사람들의 골수를 쪼개고 들어갈 정도로 처량했다. 하지만 “월강곡”의 처연한 곡조속에서도 남정들은 그냥 강을 건넜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다. 앉아서 굶어 죽으면 어떻고 월강하다 잡혀 죽으면 어떠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판인데 강부터 건너고 보자” 사형까지 불사하는 가혹한 “월강죄”가 위세를 부렸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사람들은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며 강을 건너고 있는것이였다. 밑바닥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굶주림에 대해서 거의 동물적인 두려움을 갖기 마련인데 그들에게 있어서 생존이란 바로 굶주림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것에 다름이 아니였다.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또 다른 두려움을 불러왔다.   도부수의 칼이 하늘높이 솟았다. 바로 그때였다. 강 저쪽 얕은 여울목으로 말 몇 필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다급히 강물을 박차고 있는 말발굽아래서 튕겨오른 물방울이 꽃살을 피웠다. 말 잔등에 앉은 사람들이 손을 휘저으며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거리가 멀어서 무슨 소리인지 가려 들을수가 없었다. 도부수의 칼이 허공에서 일순 멈추었다. 그러자 사병들중 우두머리인듯한 자가 귀찮다는듯 손을 목 울대뼈 아래로 그었다. 그러면서 이 새로 짧게 내뱉었다. - 베여라! 꺼억! 도부수가 술 트림 한번 했다. 윙! 칼이 허공에서 울었다. 피의 분수가 솟아 올랐다. 몸퉁이가 철썩 넘어졌고 머리통이 넌출 끊긴 호박처럼 떨어져 내려 모래사장에데구르르 굴렀다. 말 탄 사람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말이 강안에 닿기 바쁘게 굴러 떨어질듯이 내려 달려온 사람이 그 참상을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무릎을 탁 쳤다. - 뉘시오? 사병들속에서 맨드라미처럼 키 큰 우두머리가 나서며 거만하게 따져 물었다.   - 나 종성부사요. 길림장군 명안께서 "월강죄인불가진살(越江罪人不可塵杀)"이라는 령을 내렸는데 왜 아직도 함부로 형을 행하고있소? 봉금하고 목을 쳐도 월강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자 길림장군 명안과 오대징은 강을 건너 와 두만강지역에서 이미 다수를 차지한 조선인들을 다 내쫗을수 없고 개간한 토지를 황무지로 만들수도 없다면서 “봉금령”을 페지할것을 조정에 상주했다. 결국 청나라는 아라사(俄罗斯)의 침략에 시달리는 등 복잡한 정세속에서 조선이주민을 리용하여 두만강지역을 개간할 타산으로 1885년에 드디여 “봉금령”을 페지하는 령을 내린것이였다. “봉금령”이 페지된지 며칠 안되여 두만강일대를 순찰하던 종성부사는 아직도 강 저쪽에서 “월강죄”로 조선사람을 주살한다는 소문을 듣고 순찰일행을 거느리고 이렇게 강건너 사형장에 까지 득달같이 뛰여온것이였다. - 죽은 자는 뉘더냐? 종성부사가 따져 물었다. “강 건너 사는 김씨성의 포수라 아뢰오.” 형을 집행하던 자가 알려주었다. -       봉금해제가 내리기전에 이미 형이 내린 자라 그냥 목을 쳤을뿐이오.    우두머리가 아무렇지도 않은듯 뇌까리고는 무리를 향해 손을 저었다. 사형수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절그렁대며 쟁기들을 거두었다. 우두머리가 조소의 눈길을 흘리며 마차에 올랐고 회자수들은 표연하게 강기슭을 떠나버렸다. 강안에는 일순 정적이 깃들었다. 목에서 떨어져나간 머리와 싸늘히 식어가는 몸뚱이만이 마치도 커다란 감탄부호마냥 모래사장에 뉘여져 있을뿐이였다. 휘꿍! 휘꿍! 강 저쪽에서 날아온 새 한 마리가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포목찢는 소리로 울어댔다. 새소리에는 축축한 물냄새가 묻어났다. 새 소리에 잠간 귀를 기울이다 종성부사가 사무쳐 하늘을 우러렀다. - 새와 같은 미물들도 마음대로 오가는데 그 새를 잡는 사람이 외려 “월강죄”라 이름지어 멸화(灭祸)를 자초하는구나. 조화(弔花)라도 단듯 희끗희끗 수술머리를 떠인 갈대들이 강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강기슭에 뒹구는 잘려진 머리통은 눈을 감지못하고 있었다. 지릅뜬 두눈 가득 한을 담은채 흐르는 강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해란강, 1919년   뒤산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솔바람 소리와 산새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섰다가 검은 무명치마를 거꾸로 뒤집어 쓰고 처녀는 강에 풍덩 뛰여들었다. 청국인 쑹(宋)”가네 지팡(地方)살이를 하는 김씨네 맏딸이였다.    아침에 아버지가 그녀를 “쑹”가네 집에 보내야겠다고 끝내 그 한마디를 신음처럼 내뱉았고 오후 나절에 그녀는 값없는 목숨을 버릴양으로 강물에 뛰여든것이다. 솥가마, 풍로, 냄비, 숟갈, 쪽박 따위로 살림 나부랭이라고 꾸려가지고 김씨네 일가가 눈물의 강을 건너 이곳에 이른지도 어언 10년세월을 넘겼다. “뽕밭이 바다로 변한다”는 시간이였지만 아직도 이주민들에게는 생소한 산천이요, 생소한 사람들이였다. 가난에 겨죽만 먹다가 남부녀대하고 "돈 소리가 절렁절렁 난다”는 강 건너 짚신이 닳도록  걸어서 이곳 북간도땅으로 찾아 들었는데 여기서도 그들을 맞아 준것은 여전히 지팡살이였다. “지팡살이”, 이 곳에서 머슴살이를 달리 하는 말이다. 들어오던 해는 듣던 소문대로 풍년이였으나 늦게 들어와서 적게 맡은 땅 조차 가꾸지 못했고 이듬해에는 흉년이였다. 그 이듬해로 미뤘더니 이듬해에도 흉년이 졌다. 송씨성을 가진 “지팡”에게서 소작료를 꿀수밖에 없었다. 김씨네 일가족은 등이 휘고 손톱이 벗겨지도록 일했다. 정수리가 익어 번지는 여름 불볕을 이고 밭에 나가 삯김을 매고 꼴을 베였다. 삯방아 찧었고 길쌈도 했다. 그렇게 죽을만큼 일했건만 “하루밤에 고손까지 본다”는 바퀴벌레처럼 빚짐은 늘어만 갔다. “쑹”가는 걸핏하면 서슬이 퍼래져서 빚재촉을 해댔다. 그 소작료를 못갚아 매일이고 아버지는 말가웃(一斗半)이나 되게 한숨을 내쉬군 했다. 빚때문에 설명절에 아버지는 “쑹”가에게 철떡 철떡 목이 돌아가도록 줄 따귀를 맞았다. - 초우, 빠피야! (扒皮啊. 네미럴, 껍질 벗겨 죽일라!) 기다란 장죽을 꽁무니에 찌르고 피발이 올올한 눈을 딜딜 굴리는 “쑹”가의 악청이 귀청을 징징 칠때면 온 집안 사람들은 공벌레처럼 몸을 옹송그리며 오소소 몸을 떨군 했다.   그러던 며칠전 “쑹”가가 김씨네 집에 나타났다. 문짝이 떨어져나가고 없는 문설주에 매단 가마니때기를 헤치며 나타난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쑹”가의 얼굴을 보고 아버지가 몸을 흠칫 떨었다. 까만 서까래가 드러난 수수깡 천정에는 그을은 거미줄이 흐늘흐늘 드리우고, 빈대 죽인 자리로 얼룩진 흙벽을 둘러보며 “쑹”가가 찍-하고 이새로 침을 뱉았다. 구름깔개(참나무를 밀어서 결은 자리)를 깔아 놓은 구들에 걸터앉으며 장죽을 꺼내 물었다. 김씨가 얼른 부시돌을 쳐 담배를 붙여올렸다. “쑹”가는 아무말도 없이 느스름히 눈을 감고 담배를 빨았다. 살찐 쥐가 텃세를 하듯 거만이 하늘을 찔렀다. 연기가 작은 집안을 운무처럼 감쌌고 그속에 최면된듯 앉아 그녀는 짤막한 기침을 겁기처럼 나지막하게 내뱉았다. 이윽고 “쑹”가의 거적눈이 들려지더니 그녀를 얼핏 곁눈질해보았다. 그 눈길이 “쑹”가네 집 대문에 채필(彩笔)로 그려 붙인 삼국풍진도(三国風尘图)속 장비의 부릅뜬 눈길과도 같아 그녀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 비릿한 눈길이 그녀에게는 참기 어려운 고문이였다. 담배연기를 입가로 흘리며 ”쑹가”가 아버지를 보고 입을 열었다. 왠지 평소에귀때기를 자를듯 높던 목소리가 이날 따라 낮고 은근하다. "뽀미(苞米) 얼씨찐(20斤), 쑈미(小米) 얼씨찐(20斤), 얜(盐) 시찐(10斤) … 쩌머양(怎么样)? 꾸냥(姑娘)이 워디(我) 줬소?" 때국으로 번질거리는 소매 끝동이로 코물을 훔치면서 “쑹”가가 삭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누릿하고 퀴퀴한 더운 입김이 후끈 낯을 스치자 김씨가 몸을 떨었다. “안되우, 쑹띠팡(宋地方), 이것만은 안되우다.” 뒤미처 아버지의 입에서 비명이 새여나갔다. “쑹”가의 낯빛이 와락 굳어졌다. 띵띵하게 살 오른 뺨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쑹”가가 입에서 장죽을 빼였다. 크악! 크악! 가래를 돋구어 퉤!하고 내뱉었다. 장죽을 신바닥에 대고 탁탁 털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런  “쑹”가의 발목에 아버지가 매달렸다. “올 가슬까지만 참아주. 올 가슬엔 내 꼭 갚으리다. 쑹디팡, 쑹디팡!” “쑹”가를 그 무슨 석가모니불처럼 불러 젖히며 아버지는 또 한번 간곡한 애원을 했다. 그런 아버지를  “쑹”가가 내려다 보았다. “쑹”가의 살 오른 뺨이 성난 두꺼비 배처럼 불떡불떡 하고있었고 눈빛이 뱀의 그것처럼 파란 린불을 달고 번들거렸다. “쑹”가가 장죽으로 아버지의 코를 삿대질했다. "초우! 빠피야!” 그 악악거리는 소리가 그릇이 깨여져 서걱거리는 사금파리의 소리처럼 머리발이 쭈뼛 서게했다.  모진 욕설로 입가심을 하고 “쑹”가가 돌아가자 아파서 누덕이불을 머리우까지 뒤집어 쓰며 쓰고 누워 숨소리 한번 없던 어머니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눈물 없는 울음을 우는 그녀를 누가 빼앗아 가기라도 할듯 품에 허겁지겁 껴안았다. 그녀의 뺨을 두손으로 자꾸만 어루쓸었다. “애고 우리 딸, 애고 우리 딸, 이 일을 어쩌면 좋뉘! 애고 불쌍한… 애고…” 가슴이 꺽꺽 막혀 그 몇마디만 어머니는 복창하다싶이 했다. 모진 짐승이라도 만난듯 겁기에 질려 그녀의 곁에 꼭 붙어 앉았던 피죽도 못 얻어먹은 깡마른 녀동생들의 입매도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이어 울음의 끈 주머니를 풀어헤친 지어미를 따라 동생들도 울음을 터뜨렸고 온 집안이 삽시에 울음바다로 되였다. 아버지는 문가에 말뚝처럼 붙박혀 서있다. 노상 이주민들과 악착스럽게 으르렁 으르렁하는 “쑹”가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런 못된 요구를 넌짓이 내미는 “쑹”가앞에서 머리가 띵하고 속이 뉘엿거리여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고이 기른 내 딸내미를 뙤놈에게 내주라고? 마른 벼락이 내릴것 같아서 내사 죽으면 그양 굶어죽었지 차마 아이 된다.” 아버지가 가슴에 구멍이라도 낼듯 탕탕 두드렸다. 그랬던 아버지가 마른 벼락도 체념한듯 그녀를 “쑹”가에게 주기로 한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아버지가 오죽하랴 싶었지만 그녀야말로 “마른 벼락”을 맞은 기분이였다.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열살이나 더 많은, 두꺼운 겹주름이 뒤룩뒤룩 덮은 시푸르뎅뎅한 얼굴에 삭은 톱니처럼 듬성한 누런 이발을 가진, 말마디마다 추임새처럼 가래침 한 번에 “빠피야” 한 번을 넣으며 이주민들에게는 악귀의 대명사로 불리는, 되놈에게 어찌 이팔의 잉어처럼 싱싱한 몸을 내준단말인가? 생각만 해도 비명소리도 나오지 않아 앓는 목소리를 내며 뒤걸음질치다 그녀는 도망치듯 강가로 나와버렸다. 강녘에서 그녀는 해종일 하신(河神)에게 제물로 시집가는 볼모처럼 눈물을 흘렸고 궁여지책으로 나중에는 강물에 몸을 던진것이였다.   … 강 저쪽에는 해라는 총각이 살았고 강 이쪽에는 란이라는 처녀가 살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하루, 강에 살던 도깨비가 나타나 마을사람들이 거둔 낟알을 깡그리 빼앗아 갔답니다. 해와 란이는 마을사람들을 이끌어 도깨비와 맞섰습니다. 해가 휘두른 장검에 목이 떨어진 도깨비의 머리가 다시 붙으려는 순간 란이가 치마폭에 담아온 매운 재를 확 뿌리자 도깨비의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떨어졌습니다. 도깨비를 물리치고 해와 란이는 잔치를 치르고 잘 살았고 그때로부터 그 처녀총각의 이름을 달아 강 이름을 해란강이라 하였답니다. 야학에서 총각선생님이 들려주던 이야기가 지척에 들려 오는듯하여 그녀는 눈을 떴다. 정말로 야학 총각선생이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이름을 다급히 불러젖히고 있었다. 그러는 총각선생의 일신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오? 엉?!” 강에서 건져 올린 그녀가 드디여 정신을 수습하자 야학선생이 따져 물었다. 둥그런 도수안경속의 의문스런 눈길이 그녀를 향해 찔러왔고 한 켠에 쪼그리고 앉은채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치마자락을 쥐여 짜며 그녀는 축축한 사연을 말리듯 신뢰하는 총각선생에게 털어놓았다. 맹금(猛禽)의 부리에 찢긴 듯한 처연한 모습으로 옹송그리고 앉아 말하는 그녀에게서 그치지 않은 울음이 아직도 딸국질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하소연을 들은 총각선생의 눈에서 파란 불빛이 번쩍하였다. "허 그러게 뙤놈 (胡人)이라지! 그놈들께 인륜(人倫)이 있겠소? 없소! 딱각발이 왜놈들이나 청국 띠팡들은 꼭 같이 우리 껍질 벗기려 드는 악귀들이오." 강 기슭에는 정적이 흘렀다. 물소리와 산비둘기 같은 소리로 흐느끼는 낮은 울음소리만 깔려 있을뿐이였다. “갑시다!” 이윽고 총각선생이 한마디 내뱉았고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 사이에 깊이 고개를 묻고있던 그녀가 놀라며 후딱 머리를 쳐들었다.  “나와 함께 갑시다. 나도 뙤놈들이 득실거리는데다 왜놈들마저 득세하고있는 이 곳을 뜨기로 맘 먹은지 오래되오.” “어디루요?” “봉천으루 갑시다. 그 쪽은 서간도로 부른다오. 여기 북간도처럼 살길 찾아 강 건너온 사람들이 많은 곳이오. 물론 나를 믿어만 준다면 말이요.”    다소 격앙된 소리로 말하고있는 총각선생의 도수안경속 눈에는 붉은 기운이 몰려있었다. 이른 봄, 일본의 침탈에 항거해 조선 각지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의 여파를 타고 이곳 북간도에서도 일제를 규탄하는 대규모적인 집회가 일었다. 3만여명이 룡드레촌에 운집해 들어 “일제를 타도하자”, “조선독립을 성원한다”는 구호를 목청높이 웨쳤다. 집회는 일제의 잔혹한 탄압을 받았다. 당장에서 10여명이 흉탄에 쓰러졌다. 그 집회에 용약 가담했던 총각선생도 일제의 용의선상에 그 이름이 올라있었다. 그래서 당장 이곳을 뜨기로 마음먹었던 총각선생이였다. 처녀는 단정한 총각의 얼굴을 부신듯이 곁눈질해보았다. 하얀 피부. 깎은 듯한 용모. 얼굴에 어쩌면 여드름 자국 같은것도 하나 없다. 쭈뼛거리는 그녀에게 총각선생이 손을 내밀었다. 보는것만으로도 멀미기가 치밀 만치 끼끗한 용모를 가졌던 그 훤칠한 총각은 처녀의 아버지 김씨네와 같은 해에 이곳까지 당도한 리훈장의 아들이였다. “배워라, 논밭을 팔고 집을 팔아서라도 글을 배워라!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량반이 되고 잘살 수가 있다.” 푸른빛이 돌만큼 하얗게 맑은 무명두루마기를 입은 리훈장이 마을에 야학을 차려놓고 권학(劝学)을 부르짖었다.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띠팡들의 종살이에서 벗어날수 있고 왜놈들의 총칼에서 벗어날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교편을 물려받은 아들도 따라서 향학(向学)을 부르짖었다. 온 마을에서는 총각선생에 대한 찬사들이 침이 마르도록 입안에서  바퀴 굴렀다. 마을처녀들 너나의 선망의 대상이였던 총각선생이 지척에서 내미는 따스한 손길앞에서 처녀는 일렁이는 눈물 보가 터질것만 같았다. - 정말요? 저 같은 종살이집 딸년하구? 허탈한듯 무릎을 쓸면서 그녀는 쓸쓸하게 웃었다. 총각선생은 잠간 강에 눈길을 주었다. -       이 강의 전설이 생각나누만. 악귀의 손에서 강을 지켜낸 해와 란의 전설이. 그들처럼 운명에 맞섭시다. 우리도 한번 해와 란이 되여 보는거요. 총각선생은 시선을 돌려 그녀의 자두알처럼 동그란 얼굴을 바라보았다. 따뜻한 기운이 흐르는 시선이였다. 생존때문에 남의 집 지팡살이로 짐승같은 삶을 살아야만 했던 나날들이, 차별 당하며 가슴 조렸던 날들이, 체한것처럼 명치끝에 얹혀 있던 울분들이 그 온유한 빛의 시선에 순간에 몽땅 녹아내리는것만 같다. 순간 강기슭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그의 몸 전체로 따뜻한 해볕이 골고루 쏟아졌다. 그 따사로운 해살이 그의 갈비뼈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그의 몸안에 가득한 물기를 말려주는것 같았다. 보자기처럼 들씌워졌던 깜깜한 어둠속에서 그녀는 빛을 보았다. 그 빛이 가리키는 길이 어떤 길이든 처녀는 지금 어딘지 떠나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그 앞길에 무언가 신기루처럼 어른거리기는것이 보이는상 싶었다. 그보다도 그 길을 향도하는 사람에게서 어떤 아련한 마음의 균형을 느꼈다. 그만큼 낮은 땅에서 높은 차별 받으면서도 따뜻한 정(情)을 바라 살아가고 있었던 그녀였다. 가슴이 높뛰는 현기증속에서 구휼(救恤)같은 그 손길을 처녀는 수줍게 받았다. 이른봄, 눈석이물이 흘러내리는 강은 아직 차갑다. 하지만 다시 보니 강의 몸매는 결코 거칠지 않았다. 따스한 여름을 앞둔 봄빛이 은연중 고여있는 탓이리라. 복숭아빛 뺨을 붉히며 눈을 내리 깔고 총각에게 손을 맡긴채 처녀는 강기슭을 타고 걸었다. 과즙(果汁)처럼 청량한 강바람이 뺨을 어루만진다. 바람에는 푸르고 정결한 해란강의 숨결이 어려 있다. 강은 봄양기에 태질하듯 수줍게 몸을 뒤척이며 어디론가 흘러 간다.   송화강, 1937년   탕! 총성이 울렸다. 되알진 총소리는 지척에서 울렸다. 녀전사는 관목림사이로 강쪽을 내다보았다. 누렁옷을 입은 일본병사들과 검정옷을 입은 지방 괴뢰군들이 뒤섞여 수림을 향해 달려오고있었다. 촉각을 세우고 냄새를 맡으며 그들의 뒤를 바싹 쫓고 있는 자들은 얼핏 보아도 수십명은 잘 되였다. 두릿두릿 동정을 살피며 다가오던 놈들이 드디여 그들을 발견하고 사격을 시작한것이다. - 놈들! 이를 사려 물며 녀전사는 소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앞장섰던 괴뢰군 한 놈이 넉장거리로 나가 거꾸러졌다. 그 기세에 총성이 잠간 멎는듯 했으나 그것도 잠시, 이어 우박처럼 총탄이 날아들었다. 녀전사와 꼬마병사는 관목림숲에 납작 엎드렸다. 총소리에 귀때기가 잘려갈듯 했고 총탄에 잘린 나무잎들이 꺼수수 날리고 흙먼지가 자오록이 피여 올랐다. -       우린 포위당했어. 소총을 들어 또 한방 먹이면서 녀전사가 부르짖었다. 이제 겨우 열입곱살 난 꼬마전사도 소총을 들어 놈들을 겨누어 한방 쏘았다. 그러나 비발처럼 날아드는 탄환의 세례에 두 사람은 새된 소리를 지르며 다시 그 자리에 엎드렸다. 큰 덧저고리를 입고 무릎아래로는 가뜬하게 행전을 치고 청렬한 내음의 솔향기가 그득한 숲을 누비던 동북항일련군 제2로군의 두명의 전사가 밀영에서 나와 민가로 내려갔다 오다가 그만 놈들의 포위망에 든 것이였다. 녀전사가 등에 짊어졌던 묵직한 보짐을 풀어 내렸다. 그 보짐을 꼬마전사에게 넘겨주었다. - 이걸 꼭 껴안고 여기서 꼼짝말고 있어. 내가 놈들을 저쪽으로 유인해 갈테니. 꼬마전사가 보짐을 무겁게 받아 안았다. 보짐에 싸인 그것은 재봉틀이였다. 30대의 녀전사는 항일련군 피복공장의 주요 책임자였다. 조선을 삼키고 이어 중국 동북에 발톱을 뻗치기 시작한 일제에 항거해 일떠난 동북항일련군에는 공동의 적 일제에 대한 사무치는 원한으로 동참한 조선인 전사들이 많았고 녀전사들도 적지않았다. 일정한 규모로 성장한 항일대오였지만 부대에는 재봉틀이 겨우 다섯대밖에 없었다. 그것으로 수천명 항일련군 전사들의 옷을 짓기에는 힘에 부쳤다. 거의 전부를 수작업으로 대체했다. 때문에 피복공장의 전사들은 고된 임무에 시달려야 했다. 재봉틀 한대라도 더 있어도 그들의 많은 일손을 덜 것이였다. 그러던중 얼마전 현성으로 이사를 온 한 가족이 재봉틀을 갖추고 있더라는 말을 전해 듣고 그들은 위험도 무릅쓰고 산을 내린것이였다. 일견에도 꽤 유족하게 살고있는 그 집을 설복하여 재봉틀을 사가지고 밀영에 돌아가던중 마을에 도사리고있던 밀정의 밀고로 그만 일본놈과 괴뢰군들에게 뒤를 밟히고 만것이였다. - 누님! 꼬마가 녀전사의 옷소매를 부여잡았다. 분명 경황에 질린 눈길이였지만 꼬마전사는 사내답게 말했다. -       내가 나설게요. 누님이 이 마선을 지고 가세요. - 안돼! 이곳 지형은 내가 더 잘 아니깐. 지금은 이 마선을 잘 보존해 돌아가는것도 중요한 임무야. 녀전사가 꼬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런 꼬마의 군복 어깨솔기가 따져 있는 것이 보였다. -       이제 내가 돌아가서 잘 기워줄 테니 그런만큼 이 마선을 보존해야 돼. 탕! 탕! 나무등거리를 마구 쫗던 딱따구리가 날카로운 부리로 귀속이라도 쪼아대듯 총성이 고막을 흔들어 댔다. -       그래도 제가 갈게요. 피복공장에 누님이 없으면 안돼요. 꼬마가 부득부득 우겼다. 두 사람의 시선이 섬광처럼 부딪혔다. 구겨진 군복우로 솟은 꼬마전사의 야윈 목을 바라보다가 그녀는 다시 한번 단호히 부르짖었다. - 이건 명령이야! 꼬마는 비로소 녀전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앙 다문 입술, 질끈 묶어 올린 머리 아래로 야생초처럼 듬성듬성 흘러내린 잔머리… 그녀의 얼굴은 세월의 풍진을 고스란히 담아 강파르고 거칠었다. 그리고 눈빛은 깊고 강했다. 꼬마전사의 어깨죽지를 툭 쳐주고나서 녀전사는 관목림을 뛰쳐나갔다. 도담하게 달려오는 놈들의 무리를 향해 마주섰다. 총을 들어 탕탕 련발로 사격을 가했다. 닭이 풍겨대듯  뛰여오던 놈들의 대오가 흐트러졌다. 그러는 사이 녀전사는 강줄기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대에서 너나가 존경하는 누님이였다. 어려서 길쌈 잘하는 어머니 손에서 자라서 옷짓는데 막힘이 없었다. 손재주가 있어 일찍이 재봉기술을 익힌 어머니는 어렵사리 재봉틀을 마련하여 장터에다가 조그맣게 양복점을 차렸었다. 사실 양복점이라는 거창한 명칭과는 거리가 멀었고 번듯한 새 옷을 만드는것보다는 수선이나 짜깁기 따위가 전문이였다. 그런데 그 재봉틀을 고향에 까지 발톱을 뻗친 일본주둔군부대에 빼앗겼다. 그 횡포를 막아 나서다가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류치장에 갇혔고 감옥에서 받은 혹형이 빌미가 되여 류치장을 나와 며칠만에 죽고 말았다. 마을에 잠입해온 항일련군 녀전사의 고동의 연설에 그녀는 벌창해진 눈석이 물처럼 흘러내리던 서러운 눈물을 닦았다. - 여러분! 놈들은 우리 민족의 금수강산을 빼앗고 그것도 성차지 않아 총검으로 우리의 부모와 형제들도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왜놈들은 우리의 고향을 빼앗고 우리의 피땀을 짜내고 등가죽을 벗기고 뼈를 갉아먹는 원쑤입니다. 그런 왜놈들의 총칼아래 평생 우마와 같은 생활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눈물과 한탄만으로는 빼앗긴 고향을 찾을수 없고 복된 생활을 찾을수 없습니다. 일제를, 반드시 극악한 저 일제를 쳐부셔야 우리는 진정 복된 살림을 누릴수 있을겁니다. 여러분! 단발머리 녀전사의 목소리, 그것은 그녀에게 어떤 신탁(神托)처럼 들렸다. 또한 그 소리는 그의 내면에서 용암처럼 다져져 언젠가 뿜어만 내고 싶었던 소리이기도 했다. 그녀는 홀어머니와 작별하고 분연히 항일대오를 따라나섰다. 그녀는 작은 체구였지만 강의한 의지와 불타는 정력을 지닌 녀성이였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미지의 힘을 마른 체구안에 감춰놓은 합격된 녀전사였다.   가혹한 전쟁속에서도 사랑은 꽃피여 그녀는 항일련군의 정치부주임과 결혼하여 딸아이 하나를 보았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가 채 돌이 잡히기도 전 일제의 소탕전과 맞서다 희생되고 말았다. 몇해전의 이른 봄, 일본관동군의 “춘기 대소탕”이 시작되였다. 씨를 말리려드는 적들의 소탕을 피하여 부대는 신속히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 그녀와 여덟명의 녀전사들 앞에 가혹한 선택이 주어졌다.  부대의 대의를 위해 아이들을 당지 사람들에게 맡기고 떠나라는 명령이 내려졌던것이다. 그녀의 아이는 북간도에서 지주놈팽이의 강제혼인을 피해 총각선생과 함께 도망쳐 왔다는 한 조선인 녀인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소탕이 끝나 다시 그 마을을 찾았을때 마을은 이미 일제의 대토벌에 불타버리고 쑥밭이 되여있었다. 그녀는 물론 여덟명의 녀전사들도 끝내는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 아이를 잃고 그녀의 가슴에 선명한 피금이 그어졌다. 곰실거리며 재롱떨던 애의 모습이, 맡기고 떠나는 그녀의 옷깃을 작은 손으로부득부득 움켜쥐고 세상이 떠나갈듯 울어대던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밟혀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살점을 잊고 있다는 생각에, 남편을 잃고 그 아이를 버리고도 자신이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에 문득문득 놀라곤 했다. 하지만 더 큰 책무와 사명감이 그의 그런 질정없이 떠오르는 잡념을 지우게 했다. 눈물을 닦고 그녀는 다시 총가목을 부여잡았고 송화강반을 누비며 놈들과의 처절한 사투에 뛰여들었다. 겨울로 가는 날씨는 사뭇 차가웠고 강바람은 세찼다. 힘이 풀리는 무릎을 닦아세우며 녀전사는 오로지 강줄기를 따라 달리고 달렸다. 소총을 들어 맞불질하며 한무리의 악귀들을 자기쪽으로 유인해갔다. 꼬마와 다른 방향으로 달리면서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아름드리 자작나무, 활철나무, 떡갈나무들의 우듬지가 하늘을 가리웠고 꼬마와 재봉틀을 꽁꽁 가리워주고 있었다. 놈들은 각일각 죄여왔다. 씨부렁이는 왜놈들의 말소리와 군화소리, 헐떡이는 숨소리마저 들리는듯 했다. 놈들에게 쫓겨 녀전사는 강가 산언덕으로 치달아 올랐다. 강녘에는 커다란 화강암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기괴한 바위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황량했지만 그래서 아름다웠다. - 산채로 잡아라! 놈들은 점점 포위망을 좁히면서 그녀를 생포하려고 하였다. 벼랑끝까지 몰린 그녀가 방아쇠를 당겼다. 절컥! 격침이 빈 소리를 냈다. 탄약이 떨어진것이다. 그녀는 지체없이 총을 거꾸로 들어 바위에 대고 짓찧었다. 총신이 도끼날에 패인 장작개비처럼 너덜너덜 조각이 났다. 놈들에게 쟁기 하나 남겨주지 않으려는것이였다. - 산채로 잡아랏! - 투항하면 목숨은 보존케 해주마 놈들의 위협과 권유의 너스레와 음산한 웃음소리가 강량안에 가득히 명멸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멈추어 서서 바람에 새집이 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발아래 강을 내려다보았다. 넓은 들을 가로지르며 산개하는 푸른빛으로 흐르고 있는 강, 그 언저리에 들락날락 솟은 산 봉우리, 산자락에 자리잡은 초가집들… 가녁에서 어슬렁이며 이리떼가 으르렁대고 있지만 강산은 왜 이리도 아름다울가! 바람 한줄기 불어 그녀의 숱 많은 머리카락에 먼 곳의 익숙한 향기를 묻혀 놓는다. 바늘땀으로 뚫어진 양말을 호던 어머니가 인자하게 웃는다. 딸애의 하얀 손이 나비의 날개짓처럼 나풀거린다. 새로 누빈 솜옷을 입은 전사들의 기쁨 어린 얼굴이 저마다 씩씩하다. 쏟아지는 정오의 해살을 온 몸에 받으며 푸짐한 빛속에 그녀는 뻗쳐 서었다. 여유롭기까지 한 초연함에 그의 턱밑까지 닥쳐왔던 일본병정들이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그 초연함은 놈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악마구리 끓듯 극악스레 소리소리 지르며 다가오는 놈들을 지켜보다 그녀는 서슴지 않고 검푸른 강을 향해 몸을 던졌다.   볼가강, 1956년   유람선이 볼가강을 누빈다. 풍요로운 쏘련대지의 젖줄로 령토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며 누빈다는 강, 또한 고난과 착취의 강으로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야 했던 풍운의 그 강을 오늘은 대형 유람선이 여유있게 누빈다.   강으로는 강기슭의 산봉우리와 나무들이 천국의 풍경을 그리며 어우러져 흐르고 가담가담 보이는 선창작에서 흘러나오는 유람객들의 웃음소리가 습윤한 강의 대기를 후르르 휘젓는다. 류학생 김군은 기발과 꽃과 표어로 단장된 배의 란간을 두손으로 잡고 섰다. 배전에 이는 물이랑처럼 그의 가슴은 감개의 소용돌이로 설레고 있었다. 불과 몇해전만해도 김군은 자신이 조선족의 첫 류학생이 되여 쏘련으로 오게 되라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고향에서 3,40년대 혹간 일본으로 류학을 갔던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에 그렇듯 큰 고통을 안겨준 일제가 광분했던 시기 적국의 나라로 류학을 갔다는것은 지금와서 보면 그 무슨 광채로운 일로 치부되지 않았다. 하기에 사회주의 강국인 쏘련에로 선발된 그야말로 고향의 진정한 첫 류학생이라 할수 있었다. 1954년 봄, 세상에 건국의 고고성을 지른지 얼마 안되여 항미원조의 전장으로 달려나가 발톱까지 무장한 미제와 싸워 이기는 등 거창한 대사를 거쳤던 중국은 거구를 떨치고 일어나 사회주의 강국에로의 활보를 꿈꾸고있었다. 사회주의 기치를 떠메고 나아갈 동량들을 배양할 취지로 전국적인 범위에서 시험을 쳐서 쏘련으로 나가는 류학생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금방 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되여 이 땅의 조선민족이 자치권리를 부여받고 또 자체의 민족대학을 일떠세웠던 고향의 조선족학생들에게도 선발기회는 주어졌다. 학교에서는 각 학과에서 한,두사람씩 뽑아 이 시험에 참가시키기로 했다. 잘만하면 우리 민족대학에서도 쏘련류학생이 나올수 있다며 사생들은 모두다 흥분해 마지 않았다. 재학생들중에서 조문학교의 연구생이였던 김군과 리양이 추천되는 영광을 지녔다. 젊음에 향상심도 있으니 노력만 기울이면 선발 될 가능성도 있을거다고 학교측은 면려의 손길을 그들의 어깨에 얹어 주었다. 명작선독과에서 쏘련작품에 대해 겨우 몇편 정도 읽은것이 전부인 김군은 처음에는 몹시 주저했다. 변강의 오지인 이 곳에서 사회주의 강대국으로서 모두들에게 천당처럼 여겨지는 쏘련으로, 레닌, 스딸린과 고리끼가 있는 그곳으로 류학을 간다는것은 엄두도 못낼 일이였던것이다. 선생들의 적극적인 권장에 힘 입어서였지만 김군이 “촌닭이 장안에 날아들기로” 도담하게 류학생 시험에 응하게 된데는 하나의 또 다른 리유가 있었다. 그 리유라면 은근한 배심에서였다. 그는 이번에 함께 추천된 리양을 은근히 사모하고 있었다. 리양도 싫은 얼굴이 아니여서 학교의 가까운 동학들게게는 그들 사이가 그 무슨 큰 비밀이 아니였다. 그런데 이를 알고 리양의 부친이 극구 반대해 나섰다. 아직은 두 사람 다 학업에 연찬해야 할 시기라며 반대표를 든것이였다. 사실 이는 리양의 아버지의 핑계였다. 연구생들중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학업을 계속 연찬해나가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반대의 리유는 결국 평생 훈장 가족이였던 그의 집에서 농민 출신인 김군의 집에 대해 탐탁하지 못하게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였다. 리양의 아버지는 학교에서 뛰여난 성적을 보이고있는 김군에 대해 모른는바가 아니였지만 피일차일 응낙은 주지 않고 미루고 있었다. 이에 한번 자기의 실력으로 가문의 영광을 떨쳐보리라는 심산에다 또 밑져야 본전이라고 한번 겨루어보는것도 괜찮겠다는 복잡한 생각으로 김군은 류학생 선발에 응시하게 된것이였다. 두 사람의 명단은 인차 교육부에 올려 보내졌고 정치심사, 신체검사등 잡다한 절차를 거쳤다. 두 사람다 신체는 무사튼튼했다. 까다로운 정치심사에서도 무난히 합격되였다. 두 가족 모두 토지개혁때 빈농으로 획분되였고 또 가문에 항일에 몸바친 렬사도 있으니 문제될것이 없었다. 정치심사, 신체검사의 관문을 넘어 난생처음 북경으로 가서 선발시험을 치렀다. 중국어문, 쏘련공산당사, 중국문학과 문학개론, 쏘련문학등등으로 수많은 과목들… 그동안 학업의 로적가리를 쌓아올린 그들의 노력여하에 대한 대점검이였다. 어쩐지 신심이 없었다. 같이 간 리양 역시 꼭 같이 풀기 죽은 모습이였다. 중국어수준이 낮아 어떤 시험문제도 잘 알아보지도 못했다는것이였다. 학교교정의 라일락이 꽃술이 피던 무렵, 드디여 소식이 왔다. 그런데 학교에서국가교육부에서 내려보낸 쏘련류학생명단을 공포하였는데 그속에 리양의 이름은 없었다. 리양은 그만 락방하고 만것이다. 리양은 퍼그나 상심해 했다. 리양의 아버지의 상심은 더구나 컸다. 결국 김군에게만이 유일하게 쏘련의 일류대학인 모스크바대학에 가서 4년간 쏘련문학을 연구할 티켓이 주어졌다. 리양은 그만이라도 합격된것에 축하를 보낸다며 그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학교에서는 이젠 류학생인 김군에게 양복 한벌을 맞추어 주었고 특제한 가죽트렁크도 내주었다. 옷깃이 가슬가슬해진 낡은 면직 중산복을 벗고 난생처음으로 양복을 입어 보았다. 처음 입어보는 양복이라 넥타이도 한참 배워서야 맬 줄 알았다. 옷이 날개라고 양복차림에 구두까지 받쳐 신고보니 제법 대처에 사는 신사같았다. 체경속의 낯설은 자기의 모습을 지켜보며 꿈처럼 여기던 쏘련류학이 이제는 정말 실현된다고 생각하니 김군은 두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한편 은근한 생각이 다시 한번 머리를 쳐들었다. 이제 떳떳한 쏘련 류학생이 되였으니 다시한번 리양의 아버지를 찾아 두사람 사이를 두고 청을 드려볼 생각이였다. 중앙철도부에서는 류학생들을 위하여 전용렬차를 내주었다. 전용렬차에 앉아 쏘련으로 향발하는 류학생수가 1,000명이 넘었다. 오래지 않아 중국에서도 경제건설의 고조가 일어날것이니 인재준비를 위하여 국가에서는 수천명의 청년들을 쏘련이나 동구라파 사회주의국가에 보내기로 한것이다. 출발을 앞둔 역에서 렬차의 차창을 열어젖힌 그의 눈길은 붐비는 사람들속에서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리양이였다. 하지만 출발신호가 울려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가 칙칙소리와 함께 김을 뿜으며 역구를 떠날때에야 역사의 기둥 저 켠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가 나왔다. 조신스럽게 나섰지만 그녀의 모습은 김군의 눈길에 대번에 잡혀들었다. 그녀는 남들과 동그마니 떨어진곳에서 조용히 손을 저었다. 높뛰는 가슴을 부여안은 새 중국의 첫 류학생들을 싣고 전용렬차는 북경에서 발차했다. 모스크바까지 대여 가려면 꼬박 일주일은 걸려야 한다고 했다. 만주리 건너편의 오뜨뽀르라고 하는 국경도시를 지나서 렬차는 너넓은 씨비리평원을 가로지르며 달리고 달렸다. 풍경 좋은 바이깔호며 끝간데 없이 펼쳐진 초원, 하얀 봇나무수림, 그속에 아담하게 깃든 통나무 목조건물들, 그리고 이따금씩 나타나는 꼴호즈(집단농장) … 무연한 씨비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거느리고 기차는 달리고 달렸다. 일주일간의 기나긴 려행을 마치고 렬차는 드디여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모스크바대학은 모스크바 서남쪽, 산자락으로 모스크바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있었다. 옛날, 왕공귀족들이 별장을 지어놓고 수렵을 했다고 하는 곳이였다. 10월혁명 당시 모스크바로 진격해 온 볼쉐위크 전사들이 이 언덕에 대포들을 걸어놓고 백파세력의 대본영인 크레믈리궁전을 겨누었고 궁전안에 웅크리고있던 백파들은 혼비백산하여 곧 손을 들었다. 이로소 “10월 혁명”은 승리했고 모스크바는 쉽게 인민의 손에 넘어올수 있었다고 한다. 1775년에 로씨야의 위대한 과학자이며 시인인 미하일 로모노쏘브의 창의에 의해 세워진 모스크바대학은 쏘련에는 력사가 가장 오랜 종합대학이였다. 학생수가 2만이 훨씬 넘었는데 그중 외국류학생도 3,000명이나 되였다. 대부분이 중국이나 조선 그리고 동구라파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온 학생들이였고 아프리카나 인도같은 나라들에서 온 피부색 다른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중국은 쏘련과 가장 친한 나라여서 류학생수도 많았다. 모스크바대학에는 근 400여명의 중국류학생이 있었다.   배의 이물쪽에서 그녀가 다가왔다. 김군은 그녀와 이렇게 만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류학온지 2년만에 볼가강의 유람선우에서 꿈같은 해후상봉을 했다. 굵고 풍성한 쌍 머리태에 생기 넘치는 뿌듯한 얼굴의 리양이였다. 많은 사람들중에서도 그녀의 온몸이 고스란히 김군의 눈꺼풀안으로 들어왔다. 며칠전부터 모스크바를 무대로 제6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렸다. 축전은 말 그대로 세계청년들의 명절로 되여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이 성회에 운집해 들었다. 중국에서도 수백명의 예술단과 운동선수등 청년대표들로 조직된 방대한 대표단이 축전에 참가했다. 그중에는 반갑게도 김군의 고향에서 온 가무단의 조선족 배우 몇 명도 끼여 있었다. 모스크바주재 중국대사관에서는 모스크바에서 류학생들속에서 중국 대표단을 위해 봉사할 봉사인원과 통역을 뽑았는데 마침 방학이라 김군도 자원봉사로 이 축전에 참가했다. 그러다 여기서 조선족배우들을 위한 통역으로 함게 쏘련으로 날아온 리양을 발견하게 된것이다. 쏘련과 연변의 대표들사이에서 거침없이 통역하고 있는 그녀를 김군은 한켠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녀의 눈길이 드디여 김군의 시선과 맞부딤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삽시에 호동그래졌다. 그것은 잠시 해바라기처럼 그녀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여올랐다. 타향에서 그리던 련인을 만난 그녀의 얼굴에도 분명 천상의 기쁨이 어려 있었다. 김군은 지난 가을, 학교강당에서 류학생들과 함께 쏘련혁명승리를 기념행사에 모처럼 방문 온 모택동주석에게서 영접을 받고 그의 손을 잡았을때처럼 또 한번 가슴이 크게 벌렁거림을 느꼈다. 그동안 그녀를 향한 사념은 비 온뒤의 제비쑥처럼 매일이고 소리치며 자라 이제는 주체할수 없을만큼 아름벌게 자라올랐는데 이곳 볼가강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것이였다. -       강이 크지요. 다가와 김군과 나란히 배의 란간을 짚고 서며 그녀가 말했다. 귀전에 와 닿는 목소리가 사각거리는 풀잎처럼 달콤했다. 예기치 않은 그녀의 등장이 아직도 놀라웠고 현실감을 붙잡기 위해 김군은 다시금 그녀를 바라보았다. 피곤한 일정에 돌아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빛은 상쾌한 물방울처럼 톡톡 튀고있었다. - 쏘련의 강들도 아름다고 넓지만 고향의 강이 나름 생각 날때도 많지. 저 강기슭에 황소가 풀 뜯고 강변에서는 아줌마들이 방치질하며 빨래질 하는 그런 몽상에 사로잡힐때도 있다오. 그녀에게 들붙은 시선이 거둬지지 않아 하며 김군은 대답했다. 강기슭으로 야금공장, 전차공장, 뜨락또르 공장의 건물들이 흘러 지났다. - 정말 이곳에도 조선인들이 있다오. 우즈베크나 까자흐스딴에 적지 않게 살고있지. 조선인 꼴호즈(집단농장)도 여러개 되오. 30년대에 원동 연해주에서 중앙아세아로 강제이주되여 온 사람들이라고 하오. 강을 건너 이주해온 우리 조선족과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지. 저번에 한반 친구들과 함께 조선인 꼴호즈에 놀러갔었는데 글쎄 거기에는 아직도 상투를 틀고있는 조선 로인이 있는 것이 아니겠소. 그곳에서 나는 잠시 시간과 공간 감각을 잃어버렸지. 마치 고향에 돌아오기라도 한듯한 착각에 빠졌더랬소. 그들도 벼농사를 짓고있었소. 우리들 처럼.,, 다행이 이곳은 땅이 흔하고 또 여름에는 해빛이 잘 들기때문에 벼가 제법 잘된다오. 더군다나 우리 민족은 워낙 근면하고 일을 잘했기 때문에 정부에서 주는 로력훈장같은것을 받은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하데. “레닌기치”라고하는 조선말신문도 자체로 발행하고. 이 신문은 조선인생활을 주로 보도하는 신문이라오. 독립군의 홍범도장군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홍범도장군만은 쏘련의 조선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구만. 홍범도에 관한 연극도 만들어 공연한적 있다오. 내가 홍범도 장군이 왜놈들과 섬멸전을 펼친 옛 간도땅에서 왔다고 하니 모두들 반가워 포옹하고 키스하고 야단법석이더구만. 술은 어찌도 권하는지 꼴호즈에 있는 며칠동안 내내 술독에 빠져 살았다오. 둘의 웃음소리가 배우에서 얽혔다.  -       학위론문은 거의 끝나가요? - 아직도 통과해야할 과목들이 많소. 맑스주의철학, 문학리론, 로씨야문학에다가 외국어 과목까지. 외국어는 로어로 대체할수 있다고하는데 류학생 시험치면서 로어를 죽기내기로 배웠으니 조금 시름은 덜었고… -       그동안 많은 책을 읽었겠네요. 원체 책읽기 좋아하잖아요 오빠는… - 그래. 그중에서도 숄로호브의 소설이 가장 인상에 남소. “뿌리우다”신문에 실린”인간의 운명”이 라는 소설이지. 숄로호브는 지금 쏘련에서 명망이 가장 높은 작가요. 전쟁시기 안드레이 쏘꼴로브라는 한 병사가 겪은 불운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요. 모스크바방송국에서도 여러 번 소설을 랑독하였는데 듣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부모세대들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보았소. 가난에 쫓겨 강을 건넜고 강을 건너서는 청나라 사람들의 수탈에 시달리고 또 왜놈들과 맞서 총을 들었던 우리 부모님들, 그들의 기구한 운명을 이야기한다면 숄로호브에 못잖을 우리식 “인간의 운명”이 되지 않을가하는… 강바람에 머리칼 휘날리며 달변을 토하는 김군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그녀는 선망 가득한 눈길로 그의 말을 씨토하나 빠짐없이 경청하고있었다. 그녀의 수즙은듯한 손이 김군의 손우에 놓였다. 하지만 김군은 감전된 사람처럼 손을 움직일수가 없다. - 이제 이곳에서 까츄사, 또냐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고있으려니 고향의 개나리처녀를 잊고 있겠지요? 그녀가 도발적으로 물었다. 그녀의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묻어났다. 그녀는 차분한가 싶으면 열정적이고 도발적이다 싶으면 순정적이였다. 롱반진반으로 말하며 픽하고 웃는 그 입매가 싱그러웠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배전의 강물을 굽어보는 목선이 티없이 고왔다. 김군이 머리를 저었다. 아무말도 없이 양복 호주머니에 꽂았던 만년필을 뽑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       쏘련까지 온 사람한테 좋은 기념선물을 주어야 하겠는데 미처 마련할 시간이 없네. 김군이 그녀의 조붓한 앞섶에 만년필을 꽂아주었다. -       하지만 내게는 나름 소중한 물건이요. 이 만년필로 난 류학생 시험에 입시되였거든. 그녀의 사랑에 달뜬 높은 가슴이 감동에 오르내렸다.   배의 저켠에서 행복한 사람들이 와와 웃었다. 유람선 한쪽에서 세계각지에서 모여온 젊은 배우들이 오락마당을 펼쳐지고있었다. 주최측인 쏘련의 배우들이 지방민요 “볼가강 배 끄는 인부들의 노래”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둘은 손을 잡고 맑고 고아한 성가같은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줄을 단단히 묶어라 태양을 향해 노래를 부르세 아이다다, 아이다다 아이다다, 아이다다   볼가강은 어머니의 강 넓고도 깊구나 아이다다, 아이다다 아이다다, 아이다다   노래소리에 귀를 빌려주고있는 그녀의 하얀 손에 힘이 들었는 손을 덧놓으며 김군은 속삭이듯 말했다. - 기다려주오. 나 이제 고향에 돌아가리다.     홍기하, 1976년        아이 둘이 강기슭에 섰다. 강기슭에 표어판처럼 꼿꼿이 서서 뿔 난 짐승처럼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둘 다 웃동은 벗어내치고 있고 아래도리는 국방색 팬티 바람이다. 금방 강을 헤염처 넘어온 아이들의 머리칼은 찰싹 붙어있고 몸에서 물이 이랑을 지어 또랑또랑 흘러내리고 있다. 아이들은 힘에 부친듯 헐떡이고 있지만 눈빛만은 아직도 서로에게 호적수이며 강적이다. 그 뒤에 국방색 모자를 눌러 쓴 한 아이가 기 죽은 모습으로 서있다. - 문혁아, 문화야 이제 그만해라. 아이가 말리려 들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혀아래 소리였고 아이는 두 꼬마맹장의 만용에 기죽은 모습이다. -       안돼! 둘은 이구동성으로 삑하고 소리 질렀다. -       오늘이 어떤 날인데 문혁이라는 애가 물이랑 흐르는 얼굴을 쓱 훔치며 까랑까랑한 소리로 말했다. -       주석님께서 장강을 헤염쳐 건넌 십주년 되는 날이 아니더냐! -       그래 주석님께서 장강을 헤엄쳐 건넌 십주년 되는 날이지! 문화라는 애가 앵무새처럼 그 말을 꼭 같이 복창했다. 10전의 여름, 모택동주석께서 73세의 고령에 바다처럼 넓은 장강을 가로질러 헤염쳐 건넜다. 아이들의 부모가 모두가 주문해 읽고있는 “인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모택동주석은 30리 구간을 1시간5분 만에 헤염쳐 건넜다고 한다. 그리고 모주석은 장강을 혀염쳐 건넌 소감으로 “수조가두 유영”이라는 시구를 남겼다. 이는 색맹처럼 오로지 단 하나의 붉은 색조에만 사로잡혔던 당시의 전국인민들에게서 인심을 격동시키는 거대한 고무와 힘이 아닐수 없었다. 이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는 해마다 여름이면 모주석의 장강횡단을 기념하는 수영대회가 열리곤했다. 이날, 변강오지의 이곳에서도 “모주석의 장강도하 10주년을경축”하는 수영대회는 열렸다. 이른 아침부터 붉은 인파가 백지에 엎질러진 잉크처럼 강기슭에 번져나가고있었다. 강기슭 방파제에는 붉은 기가 밀집하게 꽂혀져 있었고 강기슭의 버드나무가지마다는 붉은 꽃으로 단장되여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불러왔던 푸근한 이름의 고향의 강을 붉은기의 강이라 하여 “홍기하(紅旗河)”라고 고쳐 불렀다. 북소리, 징소리 요란하고 강가 버드나무에 처맨 확성기에서 혁명가곡이 귀가 멍멍하게 울려나오는 가운데 열기 띤 구호소리가 목청 깨져라 터져오르는 강기슭은 시끌벅적했다. 일전의 무양하던 강은 고요를 잃었다. 둥챵! 둥챵! 둥둥챵! 둥챵! 둥챵! 둥둥챵!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은 좋다네! 좋다네! 정말 좋다네!” “모주석의 무산계급혁명로선을 따라 힘차게 전진하자!-” 붉은 기발, 붉은 꽃, 붉은 표어, 붉은 얼굴들… 강가는 온통 붉은 빛의 물결로 장관이였고 구호소리와 노래소리로 랑자하였다. 같은 노래, 같은 구호가 낡은 축음기 풀듯 싫증 모르고 반복되고있었다. 밭에서도 농민들이 일하다 말고 둘러앉아 전간(田间)경축회의를 열고있었다. 논두렁마다에도 붉은기가 꽂혀있었다. - 붉은해 솟았네 천리변강 비추네. 모두들은 뒤질세라 쉼 모르고 혁명가곡을 련창으로 불렀고 만세! 만세! 하고 목줄기에 지렁이가 서도록 사력을 다해 구호를 웨치고있었다. 혼잡한 악음에 귀때기가 잘려나갈듯 얼얼해났지만 그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멈추려 하지 않았다. 혁명적 행동에서 남한테 뒤지지 않고 최고의 열성을 보이려 들었다. 한 여름의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뜨겁디 뜨거운 해빛이 정수리에 날카로운 동침을 꽂고있었다. 그 지나친 열기속에서 아이들의 작은 가슴들이 손풍금의 바람통같이 펄럭이였고 얼굴은 처음 홍주를 맛보았을 때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강의 무법자인 한떼의 송사리새끼들처럼 그 “붉은 물결”이 만들어내는 소용돌이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최면된 무리같은 어른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아이들도 터무니없이 즐거워 하고있었다. 모주석께서 당년에 위용을 떨쳤던 무한에서는 이날을 맞아 5천여명이 장강을 가로지르는 수영 경기를 펼쳤다고 했다. 그중에는 200여명의 소학생들로 조직된 수영대오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안전을 고려하여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수영은 조직하지 않았다. 이에 수영이 끝난 저녁나절에 아이들이 강을 찾았고 급기야 두 아이가 홍기하를 건너는 내기를 펼친것이였다. 수영실력이 괜찮은 두 아이였지만 두번이나 홍기하를 건너왔음에도 속도가 어금버금 비슷했고 드디여 내기는 서로에 대한 질시와 타매로 이어졌다. 두손을 허리춤에 척 올려붙인 문화라는 아이가 물었다. -       그럼 너 위대한 수령 모주석의 광휘롭고 호매로운 “수조가두 (水调歌头) 수영(游泳)을 외울줄 아니? -       아, 알지. -       그럼 한번 외워봐라 - 자, 장강물을 마시고… 문혁이가 어물댔다. -       너 모르는구나. 어디 한번 들어봐라. 금방 장강물을 마셨는데 또 무창어를 맛보누나 만리장강을 가로 건너서 눈 들어 초나라 하늘 바라보네. 문화가 얼음에 박밀듯 모주석의 시사를 일점불차없이 외웠다. 도도록한 정수리를 한 문혁이라는 애의 얼굴이 홍주를 마신것 처럼 달아올랐다. 더듬이다가 급기야 독설을 내뿜었다. -       잘 외면 뭣하냐? 반혁명분자의 새끼가? -       너 뭐래? 누가 반혁명이냐? -       니 애비는 마우재들 쏘련땅에 류학갔다 온 검은 학술권위가 아니냐! -       그럼 니 애빈 뭐냐? 격노한듯 이번에는 문화라는 애가 더듬거렸다. - 니 애빈 그물에서 빠진 우경기회주의분자다! 설전은 독한 욕설로 번져졌고 나중에 두 아이는 서로의 머리칼을 부여잡고 모래톱에서 뒹굴었다. 애들보다 키 하나는 작아 초라니 같아뵈는 “국방색 모자”는 피짚먹다 눈 찔린 망아지처럼 커다란 눈을 슴벅거리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 쌈하지마, 쌈하지마! 힘으로 하지 말고 말로 하라!(不要武斗要文斗)고 모주석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냐! 그러니 쌈하지마 이윽고 얼굴에 생채기 하나씩 훈장처럼 달고 두 아이는 다시 강가에 섰다. 붉은 저녁노을이 들고 있는 강은 흡사 현성의 광장에서 펄럭이는 혁명구호가 새겨진 붉은 프랑카드를 방불케 했다. 온 하루의 여름열기와 사람열기에 달아오른 강이 헐떡이며 뿜어내는 희뿌연 공기, 달착지근한 단내 같은것이 울컥 아이들의 코속을 파고 들었고 붉은 색을 본 송아지와 같은 숨가쁜 충동이 아이들의 머리속을 파고들었다. 한동안 강을 지켜보다 한 애가 콱 박아두듯 한 마디 했다. - 다시 하자 -       그래 다시 하자 두 아이는 그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또 한번 첨벙 강에 뛰여 들었다. 아이들이 강을 누비는 속도는 눈에 띄이게 늦어졌다. 이제 완연 힘에 부친것이였다. 가까스로 강심에 까지 이르자 두 아이는 그만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흡사 “홍위병” 형님누나들이 “충성무”를 추듯 두손이 허공에서 단말마적으로 허우적거렸다. 두 아이의 모습은 현성의 담벽에 붙어 비바람속에 바래지고있는 구호속의 느낌표처럼 희미해지다가 나중에는 보이지 않았다. 기슭에 섰던 “궁방색 모자”는 다급한 뇨의(尿意)같은것을 느꼈다.  강물에 빨려드는 친구들을 보며 그저 강심을 바라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러다 뒤미처 집쪽을 향해 어른들을 부르려 허둥지둥 달려갔다. 문혁아~ 문화야~ 비보를 듣고 달려온 교원과 부모들이 강안을 미친 사람들처럼 헤맸다. 피를 내뿜는듯한 절규가 강기슭에서 터져올랐다. 하지만 아무도 답하는 이가 없다.  방파제에 꽂혀진 붉은기만이 바람에 펄럭이고 일뿐. 붉게 피멍 든 강은 아무 말도 없다.   황해, 1996년   해양 외사수사대의 형사 10명이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른 새벽이였다. 짜증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얼굴들이다.     낮게 드리워진 운무속에서 수평선은 거무스름할뿐 선명하지 않다. 뿌연 아침 안개를 헤치며 항구로 들어오는 배들이 선창에 켜든 불빛 몇 가닥만이 가물가물 부서지는것이 보였다. 제보를 받은 문제의 화물선은 항구에 대기중이다.     화물이 다 내려오기를 기다려  형사들은 급히 화물선에 뛰여올랐다. 후레시를비추며 배의 고물쪽 이물쪽 이곳 저곳을 뒤졌다. 곤충의 더듬이질처럼 긴 형광봉을 들고 배의 이곳저곳을 쑤셔대고 있다. 배 밑창으로 내려가서 냄새나는 그곳까지 전부 뒤졌지만 밀입국자들은 없다.     형사들은 긴 한숨을 내쉰다. 이번에도 허탕을 쳤나보네하는 눈길들이다. 넌덜머리가 난다는 표정이 더 섞여있다. 그러잖아도 불황에다 갑갑한 정치. 경제가 풀리지 않는 일로 우울할 일이 많은데… - 분명 제보는 들어 왔는데... 수사대 로반장은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몇해전부터 조그만 목선에 목숨을 건 밀입국이 서남해안에서 시작되였다. 10톤 안팎의 목선이나 정기화물선을 리용하고있는 밀입국자들 대부분은 “코리안 드림”을 쫓아 나선 중국조선족들이다. 항해도중에 폭풍을 만나 목숨을 잃거나 목적지가 아닌 곳으로 표류하는 일도 비일비재였지만 이들의 모험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있다. 밀입국은 지난 94년에 처음 적발되였다. 당시는 한해에 4건정도 밀입국자는 95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 96년엔 벌써 18건, 7백67명으로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때문에 로반장네와 같은 수사대들은 밀입국자들에 대한 감시망이 어수룩하지 않냐는 여론의 질타에 시달리기도 했다. 목숨을 건 항해길에 오른 밀입국자들의 경로를 살펴보면 중국 단동의 압록강에서 출발하여 공해상으로 빠져나오면 선명(船名) 미상의 고기잡이 어선단 등에 끼여있다가 한국에서 나온 배를 바꿔 타거나 야간이나 기상악화를 기다려 한국 령해로 잠입한다. 위해, 대련항 쪽으로 나오는 등 경로도 여러 갈래이다. 밀입국자들은 주로 중국의 길림성, 료녕성, 흑룡강성에 사는 조선족들이다. 이 가운데는 농민들뿐만아니라 교원, 회사원등 계층들까지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그 경과를 보면 밀입국자들은 모집책들의 안내로 일단 해안가와 린접한 도시의 려관등에 집단 투숙해서는 통보를 기다린다. 밀입국 모집책, 브로커들을 당지에서는 중국말로 “사두(蛇头)”라 부른다. “사두”에게 주는 사례비는 통상 1인당 인민페로 5만원이다. 한국 해양경찰청은 이런 밀입국 알선조직이 100개는 넘을것으로 보고있다. 이렇게 일, 여덟명으로 이루어진 알선책이 이제는 점조직 형태로 발전하고있고 전에는 10톤급 소형 목선을 리용했는데 요즘은 중형으로 바뀌였고 또 한 척당 밀입자수도 20여명에서 80명으로 늘어나고있다. 예상항로에 경비정을 증가배치하고 취약시간대에 지어 함정 및 헬기를 리용해 순찰활동을 강화하고 있지만 그 수단이 점점 창궐해져 바다속 바위틈에 숨어 웅크린 낙지 발판을 떼내듯 두절하기가 쉽지 않다. 밀입국 과정을 로반장은 검거 된 밀입국자들에게서 상세하게 들은적 있다. 그야말로 스릴러 영화의 한장면 같다. 밀입국자들은 야음을 타서 알선책들이 지점해 준 배의 밑창에 웅크리고 들어 앉는다. 각자 깡통 하나씩 배부 받는다. 그 작은 깡통을 급한 배설을 해결하기 위한 화장실격으로 사용한다고한다. 배가 출항하면 빛을 감추기 위해 손전등을 끈다. 새까만 어둠이다. 내내 이 어둠으로 가야 한다. 배밑창에서 나는 매캐한 기름냄새, 비릿하게 삭은 생선냄새가 코를 찌르고 털털거리는 배의 발동기 소리가 귀전에 대고 돌리듯 고막을 때린다. 좁은 밑창에서 처음 보는 남녀일지라도 코 닿을듯 비비고 앉는데 마주보는 눈동자는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캄캄한 어둠만 있을 뿐이다. 장소가 비좁으니 드러누워 잘 수도 없고 그냥 두 무릎속에 머리를 파묻고 자야한다. 시간의 흐름을 알수가 없다. 낮인지 밤인지도 알수없는 배 밑창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발동기소리, 파도소리와 너나의 긴장으로 헐떡이는 숨소리뿐이다. 그러다 닫혀진 천장을 두드리는 신호가 세번정도 울리면, 굳게 닫힌 천정문이 열린다. 음식을 담은 바구니가 내려오고 밥속에 깨소금을 섞은 주먹밥을 배급받는다. 네번 두드리는 신호가 울리면 검문경비정이 지나가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신호이기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긴장과 공포에 서려 높뛰는 심장소리마저 서로 가려들을듯 하다. 거개가 평소 바다를 멀리한 사람들이라 흔들리는 배 밑창에서 멀미에 시달린다. 한사람, 두사람 토악질을 해대고 그 악취속에 욕지거리와 한탄소리가 절로 터져오른다. 밤이 되면 배 밑창 뚜껑을 열어 공기를 좀 마시게 하면서 날이 좋으면 항해를 하고, 날이 나쁘면 이름도 모르는 어느 섬 주변에서 풍랑을 피하면서 며칠간을 헤맨 끝에 끝내 뭍에 다다른다.   해상밀입국자를 상대하고 있는 로반장이지만 어느 때부터 그들에 대해 농도와 줄기가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시골 사는 동생이 국제장가를 들어 조선족 처녀를 색시로 데려 왔다. 함경북도 억양이 센 투박스러운 말투이나 늘 선한 얼굴로 때묻지 않은 웃음을 짓는 그녀에게서 로반장은 중국조선족에 대해 차츰 알게 되였다. 왜 본토의 총각들 떼여놓고 한국으로 시집오냐? 왜 하필이면 도둑 삵괭이같은밀입국이냐?고 어느 한번 동생네 집에서 술 한잔 걸치고 로반장은 외사과 성원 답지않게 철없는 물음을 그녀에게 따져 물은적 있다. 그렇게 묻는 취기 오른 그의 낯빛이 심한 혼돈으로 무눌져 심각한 어지러움에 자맥질하는것 같았다. 그만큼 부모님을 떠나 자식을 떼놓고, 련인을 버리고 위장결혼, 밀입국에 환장하다싶이 된 서로 다른 이 이데올로기의 벽에 갇혔던 바다 저쪽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했다.  조선족 제수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저 형언하기 어려운 눈길을 들어 푸른 제복의 시형을 얼핏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또 얼굴을 숙인다. 남의 집 장독대를 깨고 훈장앞에 끌려나온 초등생 같이 두려움과 어줍음이 혼반된 시르죽은 눈길이다. 결국 말 한마디 안 했지만 많은 말을 품은 그 그늘진 눈길이 처연하다 못해 가슴 한자락을 아련하게 했다. 밀입국의 경우, 한국의 높은 고용임금과 그에 따른 조선족들의 코리안 드림에 대한 기대, 한국내 영세 중소기업체들의 저임금 외국인 고용 선호등이 그 주되는 원인이라는것을 로반장은 알고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 가족의 일원에 까지 다가온 조선족, 그들의 고뇌와 아픔을 껴안기 까지는 한국사회에서 아직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여야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허탕을 친 형사들이 하나 둘 허탈하게 갑판우의 로반장곁으로 몰려드는데 수사대의 나이 지긋한 형사가 로반장의 귀에 대고 수군댔다. - 저 기름탱크에서 좀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요.    늙은 형사와 함께 기름저장탱크로 다가갔다. 탱크에 올라가 철제덮개를 열어젖혔다. 비린내가 귀뺨을 후려치듯 훅 끼쳐 올라온다. 탱크안은 깊은 우물속 같이 깜깜했다. 그런데 그 칙칙한 어둠속에서 무언가 반짝이는것이 있었다. 쌍으로 대칭이 되여 무수히 반짝이는 그것은 직감적으로 사람의 눈이였다. 탱크속에 후레시를 들이 비추었다. - 여깄다아!  늙은 형사가 감때사납게 소리 질렀다. 형사들이 우르르 기름탱크로 몰려왔다. 달팽이처럼 작게 웅크린채 탱크밑바닥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밀입국자들은 강렬한 조명에 로출되자 가엾게 몸을 떨었다. 불빛아래 그 얼굴들이 꼭 두억시니의 그것 같다고 로반장은 일순 생각했다. 밀입국자들이 갑판으로 끌어 올려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열, 스물… 흙에서 파낸 넝쿨에 열매가 달려 나오듯이 련줄로 끌려 나온다. 겨우 10여평방가량 되는 물탱크에 20여명을 잠복시켰다. 알선자들은 해경의 적발을 피하기 위해 탱크에 밀입국자들을 상자 포개듯 밀어 넣고 문을 닫고 그물을 씌워 위장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저마다 옷차림은 두껍고 칙칙했고 꼭 같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불안한 시선을 연신 좌우로 날려보내고 있다. 며칠이나 들까부는 바다에서 시달려 왔던지 얼굴은 탈색시킨 광목같이 누리끼리하고 파리해진 입술들은 까칠하다 못해 허물같은 살갗을 드러내고 있다. 저마다 잠을 그 동안 못잔듯 눈자위가 움푹 꺼져 있어 무덤에나 누워 있으면 딱 알맞을 송장 꼴을 해 가지고 나온다. 가차없이 끌려나 온 밀입국자들이 점호를 앞둔 학생들처럼 이렬 종대로 나란히 갑판에 섰는 가운데 그들중에서 간간이 흐느낌 소리가 새여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아예 그 자리에다 드러눕더니 상처 입은 짐승처럼 사지를 축 늘어뜨린채 고통스럽게 울기 시작하였다. -       일어나요! 일어나! 자제에도 불구하고 형사들의 언성이 높아졌다. 로반장은 형사들을 휘동하여 밀입국자들에게 형광조끼를 입히고 수갑을 채우고 경찰서로 련행하기 위해 경광등을 매단 차에 실었다. 실의에 빠진 탓일까! 형사의 손아귀에 딸려가는 그 커다란 덩치들이 맥없이 밀려났다. 이들은 이제 외국인 보호소에 수용한뒤 벌금을 부과하고 려권과 려비를 줘서 돌려보낸다. 다시는 한국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공항등에 입국금지 조치를 내린다. 한국인 선장도 수갑을 채워 차로 떠밀었다. -       돈 얼마 받았어? 수갑 채우던 형사가 체증기에 넘쳐 따져 물었다. 하지만 선장은 예상했다는듯 입을 꼭 다문채 누구의 물음에도 쌩한 침묵으로만 맞선다. 그런 선장의 밀랍처럼 딱딱한 얼굴에도 역시 피곤과 졸음기같은것이 는적는적 묻어났다. 아무리 어깃장을 놓아도 현재 밀입국을 알선하거나 밀입국자를 고용할 경우 고용기간에 따라 범칙금 500만원부터 5년이하 징역을 감수해야 한다. 갑자기 이물쪽에서 비명소리가 터져올랐다. 늙은 형사가 다시 다가와 낮은 소리로 말했다. - 사체가 발견됐습니다. - 엉! 무엇이? 로반장은 서둘러 달려갔다.   밀입국자의 시신 하나가 맨 나중에 끌려져 나왔다. 시신은 갑판우에 방수포로 몸이 덮여 그 무슨 커다란 어물처럼 놓였다.  사인은 보이는 바와 같이 간단했다. 비좁은 공간에서 수십명이 뒤엉켜 오랜 시간 배를 탄 탓에 너나가 불편을 호소했고 그러다 그중 한명이 질식해 숨진 것이다. 코리안 드림을 위해 밀입국하려던 그의 꿈은 망망대해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시신곁에 함께 온 친지인듯한 녀자가 다리를 뻗고 목놓아 울고있었다. 아뜩한 절망의 충격을 털어 내지 못해 그저 목청 다 짜내 울고만 있다. 비명인지 욕설인지 분명치 않은 소리를 넋두리처럼 내뱉고있다. 경찰차에 실린 이들이 차창을 통해 이 광경을 내다보고 있다. 우두망찰해 넋을 놓고 휑- 하니 풀린 눈빛을 허공에 두고 있는 이도 있다. 초점이 풀어진, 탁하게 충혈 된 눈, 거의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텅 빈 짐승의 눈을 들여다보는것 같아서 로반장은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 기가 막히네!  기가 막혀!!    - 아주 돌아버렸어요. 돈에 환장을 한 거지요” 짜증이 섞인 소리였지만 형사들의 목소리에는 윤기가 묻어나지 않았다. 새벽부터 단잠에서 깨여 투덜거리며 당장에 요절이라도 낼듯 달려왔지만 형사들도 눈앞의 참극에 그만 아연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일전 전남 여수에서도 중국 절강성 녕파항에서 20톤급 어선을 타고 밀입국을 기도했던 밀입국자들 중 25명이나 운반어선에서 질식사하는 참사가 일었었다.  로반장은 허탈하다는듯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끈끈한 느낌이 드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 내렸다. 가슴에 각진 소금을 뿌린것 같이 따갑고 쓰라렸다. 차에 오르다말고 로반장은 세상을 삼켜버릴것처럼 성이 나 흘러 넘치는 항구 앞바다를 바라보았다. 중국 조선족들에게 한국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가? 밀입국은 중국 조선족내에서 번져가고 있는 “코리안 드림”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 모든것은 한국에만 가면 한 밑천 잡는다는 허황된 기대감 때문이였다. 한국에서 2∼3년간 일을 하면 중국에서 평생동안 일해야 벌수 있는 거액을 만질수 있다는 유혹에 전답을 팔고 빚을 내여 비싼 알선비용을 대면서까지 밀항선에 몸을 싣는다. 그 부에 대한 성급한 집착때문에 조선족이 같은 조선족 또는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 몇 년간 조선족 사기 피해자가 1만7,000여명에 이르고 피해액이 600억여원에 이를것으로 추정된다. 한탕심리에 이끌린 허황된 꿈, 부에 대한 집착으로 현실 탈출을 위한 처절한 위험한 활극, 이 활극은 언제 가면 끝날것인가? 항구에 들어서는 배를 보고 갈매기떼가 날아들었다. 마치 물풀이 흔들리듯 나래짓하며 날아드는 갈매기들. 그 새떼들의 질서없는 군무에서 로반장은 소리없는 아우성을 보았다. 새들은 다른 새들을 추월하려고 퍼드득 거리며 허공에 온통 어지러운 부호를 수놓는다. 무리지어 내려서는 불안한듯 주위를 경계하며 항구에 널린 먹이를 쪼아댔고 그러다 다른 먹이를 찾아 다시 푸드득 날아오른다. 한차례 큰 비를 뿌릴것처럼 날씨가 끄무레해진다. 안개가 밀렵꾼처럼 밀려와 항구를 둘러싸고 있다. 바다는 끝간데가 보이지 않도록 사방으로 펼쳐져 있고 그 우로 재빛 하늘이 오래된 비극을 연기하는 극장가의 스크린처럼 묵직하게 걸려 있다…   갠지스 강, 2010년   나마스떼 (안녕하세요?)     가이드가 두손을 합장하고 아침인사를 했다. 나도 겨우 한 마디 배운 인도어로 화답을 했다. - 나마스떼! 아침 5시로 모닝콜을 맞추었는데 가이드가 먼저 와 초인종을 울려주었다. 갠지스 강의 일출과 순례행사를 보기 위해 강행되는 려행기간의 피로도 무릅쓰고 일찍 일어난것이였다.   굳이 인도로 려행을 오려 작심한것은 한국의 유명대에서 공부하던 내가 박사론문의 테마를 잡으면서 부터였다. 나의 론문테마가 “한룡운과 타고르의 시문학 비교”였던것이다. 사력을 다해 공부에 전념한끝에 드디여 거짓말처럼 박사론문이 통과되였다. 이 몇주일간 우리 일가족은 숫제 명절분위기였다. 한국의 유명대 류학에 입시된후로 우리 가족은 나로하여 또 한번 기쁨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가문에서 훈장을 한 이도 있고 항일에 투신한 렬사도 있지만 박사가 나기는 처음이라고 모두들은 온 세상을 얻기라도한듯 기뻐마지않고 있었다. 출국열에 환혹돼 밀입국을 하다 친지가 비명횡사한 아픔도 있는 이 가족에서 나의 립신양명은 그 무엇보다 가문의 영광을 떨친것으로 그 박사모의 값어치는 무거운것이였다. 고향의 신문매체에서도 전화, 메일로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조선족 하면 한국에서 노가다나 아저씨나 식당아줌마로 칭하던 시대가 나와 같은 젊은 엘리트 세대들의 출현으로 이제 끝난다고 여론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일가족이 나에 대한 장려턱으로 마련한 려행코스에서 나는 단연 인도를 선택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를 연구테마로 삼고있는 동안 그의 깊은 학문에 매료되였었다. 더욱이 20년대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를 써서 일제의 마수아래 놓여진 우리 민족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 시인이라는 점에서 그의 문학과 생에 대한 애착이 컸다.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예언가적으로 우리 민족에게는 무한한 격려를 주었던 시구를 노트에 적었고 시를 외워 문학도들의 모임에서 읊조리기도 했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종로구 대학로에 세워진 타고르 흉상앞을 지나면서 꼭 한번 인도행차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뼈물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이가 문학의 중심 이미지로 삼게 되였다는 갠지스 강을 보고싶었다. 나는 흡사 누구의 부름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서둘러 신비의 국도 인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디라 간디 공항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갠지스 강이 흐르는 도시 바라나시로 날아 왔다. 지글지글 끓는 해가 정수리 가까이에 걸려 온 세상이 한껏 예열해 둔 가마솥 같은 바라나시. 불더위에 혼겁하기는 했지만 가장 인도다운 도시, 진짜 인도와 인도사람을 볼수있는 도시가 바로 바라나시라고 했다. 이곳은 년간 100만 이상의 순례객들이 찾아드는 유명한 힌두교 성지였다. 중국 운남성 곤명에서 인도로 류학 온 중국인 학생이 공항에 나와 나를 맞아주었다. 인터넷으로 알게 된 그녀는 아르바이트 삼아 중국인 유람객들을 상대로 가이드를 하고있었다. 아버지가 곤명에서 특색 음식점을 차렸는데 인도의 카레음식을 특별 메뉴로 개발했고 거기에서 인도에 대해 흥취를 느꼈다고 했다.  눈매가 서글서글하고 얼굴이 가무스레하여 인도녀자들을 사뭇 닮은 그녀의 인도명은 “리따”였다. 아버지세대가 즐겨보았던 인도영화 “류랑자”에서 나오는 녀주인공의 이름을 본땄다고 했다. 리따는 물이라는 뜻, 인도사람들이 녀자애에게 즐겨 붙이는 이름으로 거리에서 리따!하고 부르면 누군가는 꼭 뒤돌아 볼 지경으로 넘쳐난다고 했다. 그녀 “리따”는 바라나시에서 두번째로 좋다는 라딧선 호텔에 나더러 려장을 풀게 했다. 이곳에서 갠지스 강까지는 아주 가깝다고 했다. 호텔에서 나와 릭샤에 올랐다. “릭샤”란 자전거에 련결된 2인승 수레, 인력거 비슷한것이였다. 이른 아침인데도 거리는 벌써 인파로 흘러 넘쳐난다. 인구 강국임을 일깨워 주기라도 하듯이. 바라나시는 인구가 400만 되는 도시로 인도에서 인구밀도가 기장 높다고 한다.    - 여기서 북동쪽으로 200킬로메터가량 더 가면 히말라야산의 줄기도 볼수 있답니다. “리따”가 가이드답게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나름 흔들리는 릭샤에서 혼돈을 경험하고있었다. 여기저기서 자동차, 오토바이의 경적 소리가 란무하고 차가 역주행하며 달려 와 식겁하기도 하는데 무리지어 나타난 소떼들 때문에 릭샤가 급정거를 하기도 한다. 릭샤를 타기전 왜 “리따”가 마스크를 내주었는지 이제야 리해가 간다. 오래된 아스팔트길은 여기저기 깨져 흙먼지가 날렸다. 고향 시골마을의 비포장 농로에 다름 아니다. 매연과 흙먼지 둘러쓸것을 미리 알고 차근한 가이드가 마스크를 준비해둔것이였다. 소뿐만 아니라 돼지도 어그적 거리며 느림보로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골목 에서 마음대로 쓰레기통을 뒤지는 소들과 소가 실례한 변도 보였다. - 이곳 사람들은 소를 신성시 한답니다. 소똥을 말려 땔감으로 사용하기도 하지요. 가이드가 알려주었다. -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소는 없어서는 안될 가족의 일원이였습니다. 나는 어제날 고향 시가지의 모습과 비슷한 광경을 둘러보며 동감을 표했다. 길이 고르지 않은 탓에 젊은 기사는  많이 힘들어했다. 그렇게 20분간 가량 달려 드디여 갠지스 강에 도착했다. 릭샤에 앉아 허깨비처럼 흔들리운지라 수레에서 내리니 발이 허공을 밟은듯 휘청거렸다. 기사분이 헉헉거리며 팁은 1딸라씩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리따”가 1인당 1딸라씩 팁으로 줘야한다고 귀뜸을 했었다. 릭샤를 타는 동안 힘들어하는 기사분을 보면서 팁을 더 드려야겠구나 생각했던 차라 두 사람분에 1딸라를 더 얹어서 3딸라를 주었다. - 쑥그리아 (고맙습니다)” 두손을 합장하며 기사는 많이 고마워 했다.   나름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강가는 인산인해였다. 비수기였는데도 유난히 사람들이 많았다. 갠지스 강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행해진다는 힌두교 종교의식 “아르띠 뿌자”를 보러 세계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강기슭을 메우고있었다. 강기슭에 축조된 힌두사원들에도 사람들은 넘쳐날듯 했다. 강가에는 체육장의 좌석처럼 가트가 주욱 펼쳐져 있었는데 앞서 온 사람들로 비빌틈이 없었다. 약삭빠른 “리따”덕분에 겨우 가트에서 빈자리를 찾아내여 다행히 엉덩이를 붙일수 있었다. 이곳 말로 계단을 “가트” 라고 부른다. 힌두교 사원에서는 갠지스강을 따라 길다란 강둑과 가트를 만들고 그 강가에서 신을 향해 드리는 최고의 경배라는 “아르띠 뿌자”를 거행한다. 힌두사원의 스피커에서 랑랑한 랑독소리가 울려나왔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절에서 스님이 불경을 읽는것과 비슷한 억양으로 들려오는 그 소리는 설법이라고 “리따”가 알려주었다. 이어 스피카에서는 신을 향한 최고의 경배의 마음을 담은 노래라는 “아르티송”이 흘러나왔다.  활활 타오르는 불덩어리를 든 사제들이 갠지스강과 련결되는 가트에 서서 아르티송에 맞춰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것이 보였다. - “아르띠”는 불을 뜻하고 “뿌자”는 힌두교의 제식을 뜻합니다. “리따”가 또 알려주었다. 신과 대화를 하며 음악에 맞춰 불을 돌리며 행하는 사제들의 몸 동작과 음악, 그 분위기가 성스러운 종교 의식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경쾌한 퍼포먼스처럼 느껴졌다. 인도인들에게 종교는 “삶” 그 자체인것 처럼. 사제들의 주위에는 인도각지에서 모인 순례자들이 빼곡하게 서서 경건한 마음을 모아 기도를 드리고 소원을 담은 나무잎 배를 강물에 띄운다. 꽃과 양초와 각자의 소원들을 실은 나무잎 배들이 넘실거리는 강물에 실려 저 멀리로 동동 떠간다. “소원의 배”를 만들어 파는 아이들이 나타났다. 빨갛고 노란 꽃과 작은 초를 큰 나무잎에 담아 놓고는 사달라며 끈질기게 청구한다. 그 청구에 못이겨 나도 그 “배” 한척 사들었다. 가이드가 어느새 짜이(인도차) 한잔을 사들고 와 건네 주었다. 인도인들처럼 뜨거운 짜이 한잔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그동안 이곳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지만 차는 마실만 했다. 성지순례지라 이곳은 고기는 물론 술도 안되는 절대 채식(菜食)의 도시였다. 가트에 앉아 짜이를 훌훌 불며 마셨다. 홍차와 우유, 인도식 향신료가 재료이고 설탕이 많이 들어가 엄청 달달한 맛이였다.     짜이를 마시며 발아래로 흐르고있는 갠지스강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성스러운 물이 흐른다는 인도인들의 어머니 강 갠지스. 힌두교 신자인 인도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갠지스강은 성산 히말라야 산맥에서부터 발원한다. 인도의 생명과도 같은 강이며 힌두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강이다. 힌두어로 강 기슭라는 뜻으로 불렸는데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을때 영어식 발음인 갠지스라고 불리게 되였다고한다. 몇달간의 우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이 지역에서도 갠지스강은 유일하게 마르지 않는 강이다. 장장 2천여키로메터를 유피주와 비하르주를 가로지르며 달려 뱅골만으로 흘러드는 강은 전세계적으로는 의례적으로 강 자체가 신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이다. 유명세를 떨치는 이름임에도 갠지스 강은 사실 완전 흙탕물이다. 물살이 아주 거친데다가 아침나절 히말라야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여서인지 너무 차가워서 손이 시릴 정도였다. 하지만 서슴없이 강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이 강 절반을 덮다시피하고 있었다. 웃통을 다 벗고 아예 강으로 들어앉아 목욕을 하는 남자들, 가트에서 내려와 손만 담구고 강물을 찍어 바르고 있는 베일 쓴 녀자들,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나와 강물에 얼굴을 씻기는 어머니들… 그들은 흙탕물도 찬 물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 이 강에 몸을 적시는것 자체가 신을 만나는것이라 생각한답니다. 인도사람들은… “리따”가 곁에서 내레이션처럼 그냥 해설을 붙여주었다. 인도사람들은 갠지스강에서 목욕하는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한다. 뿐만아니라 죽어서도 자신의 골회가 이 강에 뿌려지기를 소원한다. 이 갠지스강을 그냥 강물로 생각하지 않고 “생명의 물”, “성스러운 물”로 여기기때문이다. 흔히 목욕이 몸의 때를 벗기는 과정이라면 갠지스강에서 인도인들의 목욕은 마음의 때를 벗기는 과정이였다. 플라스틱 통에 강물을 담는 사람들도 보였다. 성수라 하여 물통에 갠지스강의 물을 받아 집으로 가져가 가족끼리 마시고 집 앞에 그 강물을 뿌리면 자신의 집앞에도 갠지스강이 흐른다고 믿는다고 한다. 배탈이 날까 념려되기도 했지만 그 열심한 모습에 저도모르게 숙연한 마음 한귀퉁이에서 일었다. 가트 저쪽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여 올랐다. - 저쪽은 화장을 하는 곳입니다. 난데없는 웬 연기냐하고 뜨악해 하는 나의 표정을 보아내고 “리따”가 알려주었다. 화장하는곳은 망자의 가족외에 외인이 출입할수 없다고 했다. 우리민족의 장례관습과는 달리 렴(殮)이나 입관을 하지 않은 상태로 시신을 강녘 땅바닥에 그냥 뉘여 놓고 유족들이 절을 하고 입을 맞춘다. 모두와의 작별 인사가 끝나면 강옆에 단을 쌓고 화장을 한다. 시신은 화장하기전에 먼저 강물에 한번 적시고 준비한 나무를 태워 화장을 시작한다고했다. 부자는 향나무로, 일반인은 일반 나무를 사용하는데 한줌 재가 될때까지 완벽히 태울 많은 량의 나무를 준비하는 부자가 있는가 하면 적은 량의 나무밖에 준비하지 못해 시신을 미처 다 태우지 못하고 강에 던져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또 비싼 화장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는 빈민들은 시신을 그대로 갠지스에 수장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햐얀 연기가 갠지스의 한 자락을 휘덮고 시신은 재로 변해간다. 가족들은 가트에 조용히 앉아 친인이 재로 사그러드는 과정을 담담하게 지켜본다. 그리고는 햐얀 뼈가루를 두 손으로 움켜 강물에 휘뿌린다. 죽은 후에 뼈가루를 강물에 흘려보내면 극락세계를 갈수 있다고 믿고있는 힌두교인들이다. 화장한 재를 갠지스강에 뿌리면 일생에서 지은 죄가 모두 정화되여 다음 생에서도 편하게 살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슬퍼하지 않고 좋은 마음으로 망자를 보낸다. 그래서 인도의 최고의 효자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을 갠지스 강으로 모셔와 갠지스 강 물로 목욕을 시키고 돌아가시면 화장하여 이 강에 그 재를 뿌려주는 자녀라고 한다. 땅의 품을 떠난 망자의 운명은 이제 신의 것이다. 이렇게 힌두교의 삶은 태여나 갠지스강에서 세례를 받는데서 시작해 숨을 거둔 뒤에 화장돼 이 강에 뿌려지는것으로 끝난다. 갠지스강은 또 한 사람의 력사를 넓은 품에 품어 주었고 장례의식은 마친 사람들이 렬을 지어 내 곁을 스쳐지났다. 슬픔과 아픔을 신에게 맡겨보낸 그 얼굴들은 체념처럼 맑고 평온했다. 사실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것을 가트 저쪽에서 피여오르는 하얀 연기를 보며 생각했다. 누구는 목욕을 하고, 누구는 잠을 자고, 누구는 빨래를 하고, 누구는 그 옆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고, 누구는 소원을 빌고, 누구는 물건을 팔고, 누구는 친인을 불태우는 의식을 하고 있는 곳. 인도인들은 이렇게 이 신의 강에서 대대로 살아가고있었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서 튀여나온것처럼 유난히 커다랗고 둥근 아침해가 갠지스강 상류쪽에서 떠올랐다. 아침의 온유한 해살에 강은 금세 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내내 자리를 뜰념을 앉고 빈 짜이잔을 손에 든채 나는 가트에 점도록 앉아 있었다. 달디단 짜이같은 감흥이 온몸을 뜨겁게 훑어내렸다. 강에 몸을 적시지 않아도 몸 구석구석이 깨끗해 지고 머리속이 명징해지는 느낌이였다. 강은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나의 기억속에서 잠자고 있던 그런 풍경인 것 같았다. 망막에 들어오는 타국의 낯설은 풍경을 나는 낯설지 않게 오래동안 바라보았다. 갠지스 강에 와서야 삶이 버거워 보이는 이곳 사람들이 행복속에 여유있게 살고있음을 알것 같았다. 그들은 강의 규칙과 리듬에 자신의 리듬을 맞추면서 살고있었다. 계속 흐르고 흘러야만하는 힘든 삶, 하지만 지금보다 나은 래세를 바라고 강과 함께 흐르고있는것이였다.    나를 이 땅에 존재할수 있게 해준 그 시초를 만날수 있는 곳. 갠지스강. 이곳 사람들에게 갠지스강은 그냥 흐름만이 있는 강이 아니라 력사가 흐르고 그 력사와 함께 숨 쉬고 있는 그런 불멸의 공간이였다. - 김선생네 고향에도 강은 있겠지요? 역시 어떤 정서에 젖어드는듯 떠오르는 해를 빤히 쳐다보다가 “리따”가 감상적으로 물었다. 인도에 까지 오면서도 연변에는 못 가봤다는 “리따”는 인도의 갠지스 강까지 찾아 든 조선족인 나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갖고있었다. -       물론이지요. 나는 감회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채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 어떤 강이죠? 강의 이름은 어떻게 부르나요? 고향의 강을 떠올리니 저도모르게 코잔등이 매콤해진다. 나의 뇌리속에 진달래꽃이 지천으로 피였는 산과 들, 그 들의 둘레를 감싸며 산줄기의 아래도리를 품은 채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가는 세상 그 어느 강보다도 유순한 강이 떠올랐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대를 지나온 강의 궤적이 눈물겨웁다. 나는 타향의 강가에서 그제야 고향의 강이 여태까지 연출해낸 풍경의 언어를 다시금 읽어 내려갔다. 고향잃은 이주민들이 허위단심 넘은 눈물의 강, 우리 족속의 얼을 말살하려 혈안이 된 일제에 맞서 피로 적신 강, 자치권리를 부여받고 기름지게 가꿔 가던 강, 또 다시 변혁의 바람에 물줄기가 마르려는 강, 하지만 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소중하고 그래서 성스러운 강… 강의 풍경은 흘러와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 진풍경속에 녹아있던 강의 실체, 우리 족속의 삶의 위상이 차츰 내 가슴속에서 큰 물이랑을 만들며 출렁이기 시작한다. 루루 수천년을 흐르다 흐르다 신이 되여버렸다는 갠지스강, 어쩌면 고향의 강은 이와 꼭 닮지 아니한가! 강의 흐름에 눈과 마음을 맡긴채 나는 꿈꾸듯이 말했다. -       그 강의 이름은 두만강이랍니다! … …     "도라지" 2012년 1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10    댓글:  조회:2423  추천:43  2014-06-27
  . 중편소설 .     뼈 - “중국조선족테마소설” 계렬   김 혁         수요일: 랭면과 도적   주문한 국수가 나왔다.  그윽한 육수물에 반쯤 담겨진 찰진 국수발, 그우에  소고기 육편, 닭고기 완자, 절반 베인 삶은 달걀, 사과배 조각으로 곱게 고명을 얹은 국수가 나왔다. 국수는 그 무슨 음식이 아니라 한점의 정교한 조각품을 방불케 했다. 그 국수를 수근은 멀거니 내려다 보았다. 임금님전에 올리는 수라상을 먼저 점검하는 내시처럼 조심스레 면발을 입에 넣었고 잣과 깨가 동동 뜨는 육수물 한모금 떠서 맛보았다.  쫄깃했고 시원달콤했다.  몇해만에 먹어보는 고향 랭면인가! 입안 그득 고여드는 흥그러운 이 맛… 국수 한 그릇이 순간에 굽이 났다. 멸치를 우려 양파를 넣고 계란을 풀어 만든 육수물에 부추와 호박나물을 잔뜩 넣은 물국수며, 썬 김치와 참기름, 고추장으로 비빔한 비빔국수도 고향의 랭면맛보다 못했다. 또 한그릇 주문했다. 풍성한 면발을 다시 한번 허겁지겁 입에 넣던 수근은 국수발을 입에 가득 문 채 그만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먹고픈 국수를 마음대로 먹던 나날들과 국수를 함께 먹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수근은 기어이 눈물을 보이고야 만것이다. 눈물의 육수를 밑굽까지 비우고 수근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유명세를 떨쳐 온 랭면집이 신축공사중이여서 림시 개설한 분점임에도 화장실에까지 사람들로 붐비였다. 온 세상 사람들이 작심하고 랭면만 먹으러 모여 온듯했다. 하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한철이라 그럴법도 했다.  수근이네 마을 사람들도 한때는 시내행차를 하면 남정네고 아낙네고 할것없이 랭면부를 찾아서는 기어이 랭면 한그릇씩 맛보군 했다. 랭면 맛보기는 시골사람들이 시내구경에서의 그무슨 통과의례처럼 되여 있었다.    화장실에 걸린 대형 거울앞에서 저마다 포장수저에 딸려 온 이쑤시개를 꼬나든 사람들이 허연 이를 드러내고 이발청소를 하고 옷무새와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 그들처럼 화장실 거울앞에 마주서던 수근은 홀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짧은 비명을 흘리며 후다닥 화장실을 뛰쳐나왔다. 금방 앉았던 자리, 국수 두 그릇을 허겁지겁 비웠던 그 식탁곁에 놓았던 트렁크가 보이지 않았다. 쥐색 바탕에 긴 손잡이와 바퀴달린 트렁크가 보이지 않았다. 수근은 툭툭 주먹으로 제 이마를 때렸다. 흥분할때나 급할때면 저도모르게 나오는 반사적인 습관이다.  트렁크, 여게 놨던 트, 트렁트를 못봤나요? 급한나머지 수근은 말까지 더듬었다. 지진이라도 인듯 비명을 동반한 수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입에 문 국수발을 끊치도 못한채 곁자리의 아낙이 머리를 저었다. 선머슴아이의 서투른 빗질처럼 주위를 마구 훑던 수근의 눈길이 랭면집의 창문밖을 향했다.  랭면부 맞은켠의 뻐스정류소에서 막 떠나려는 공공뻐스가 보였다. 또 한번 기급한 비명을 지르면서 수근은 랭면부를 뛰쳐나갔다.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죽기살기로 뻐스를 쫓아갔다. 금방 출발한 뻐스라 속도를 내지않았기에 수근은 단박에 뻐스를 추월할수 있었다. 뻐스앞에서 두손을 쫘악 벌리며 차를 가로막았다. 끼익! 쇠갈기소리를 내며 뻐스가 멈춰섰고 운전기사에게서 앙칼진 욕설이 터져나왔다. 뻐스문을 원쑤처럼 쿵쾅 두드려대는 얼나간 사람같은 그에게 대체 무슨 영문이냐고 기사는 욕설과 함께 문을 열어주었다. 뻐스기사가 퍼붓는 욕설에도 술렁이는 차객들의 소리에도 개의치않고 수근은 땀냄새와 열기로 랑자한 사람들 틈바구니를 뚫고 들어가 대번에 쥐색 트렁크를 끌고있는 20대의 남자를 짚어냈다. 깡마른 몸에 메밀눈을 한 그 남자의 멱살을 와락 잡아쥐면서 감때 사납게 웨쳤다.  도둑이야! 이 놈이 내 가방을 훔쳤소.  도적으로 지명된 사내가 몸부림치며 항변했다. 그런데 사내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말은 하지않고 가을밭 참새라도 쫓는듯 으아! 으아!하고 새된 고음을 지르며 손발을 휘저었다.  아마 벙어리인가보오.  설마 벙어리가 그런짓 했을까! 한편의 단막극이라도 보듯 호기심에 흥미를 동반한 눈길들이 수근이와 도적사이의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파출소로 갑시다! 운전사량반 파출소로 가주시오! 수근이가 운전석쪽을 바라고 구원을 바라는 사람처럼 웨쳤다. 그 소리에 차객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가뜩이나 더워서 귀찮은 날씨에 재수없는 일에 휘말려 시간을 빼앗긴다며 불평불만들이 터져나왔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서로 확인해 보면 될거 아니오. 맞추는 사람이 임자고 못맞추는 사람이 도적인게 확실하지.  기사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가와 제안했다. 사람들중에서 중년남자 하나가 원주필을 뽑아 내밀었다. 벙어리가 말을 못하니 안에 뭐가 들었는지 자기 오른 손바닥에 쓰라고 했다. 수근이는 자기 왼 손바닥에 쓰라고 했다.  억울하다는듯한 표정만 짓고있던 벙어리가 손짓발짓 해가며 차에서 내리겠다고 괴성을 질러댔다. 그러는 그의 손목을 중년남자의 우악진 손이 단단히 감쳐쥐였다. 마지못해 벙어리가 그 중년사내의 손에 뭔가 적었다.  기사가 손바닥을 펴들고 들여다 보았다. 벙어리가 쓴것은 “의복”이라는 두 글자였다.  원주필을 받아들고 수근이도 적었다. 힘주어 커다랗게 적었다. 손바닥에 적혀진 글자를 헤아려 보던 중년사내의 두눈이 휘둥그래 졌다. 땀에 흥건한 사내의 손바닥에 적혀진 글자는 한 글자였다. 그 글자를 운전기사며 차객들에게 보여줬다. 그들의 눈동자 역시 순간에 영화감독의 큐!사인을 받은 어설픈 엑스트라의 과장된 연기처럼 일제히 휘둥그래졌다. 땀에 젖어 글자의 획들이 이니셜 대문자처럼 굵어진 글자가 사내의 커다란 손바닥에 넘쳐날듯 씌여져 있었다. 뼈. 당신 정신 온전한 사람 맞소? 정신을 한국에 두고 왔나? 선진국 가서 11년이나 구을다왔다는 사람이 이 정도밖에 안되오?  아니 무슨 사람이 벌건 대낮에 사람 뼈덩이를 싸들고 시내 복판을 활주하는가 말이요? 엉! 파출소에서 수근은 당직 경찰에게 보리쌀 닦이듯 하고있었다. 경찰들이 우루루 모여들어 못볼 괴물이라도 보듯 수근이를 지켜보았다. 수근은 툭툭 주먹으로 제 이마를 때리며 무어라 적당한 변명의 말을 찾지 못해 했다. 벙어리 도적과 어딘가 심상치않는 도적맞힌 사람을 싣고 뻐스는 부근의 파출소로 왔다. 경찰들이 대번에 그 벙어리 도적을 알아보았다. 전과범인데 그 말고도 무리를 지어 소매치기를 다니는 벙어리도적들이 더 있어 수사망을 펼치고 있는 중이였다.  그런데 도적맞혔다는 물건을 확인하며 트렁크를 여는 순간 담당 경찰은 매일 흉악범을 상대로 하는 경찰답지않게 초풍할지경으로 놀라했다.  트렁크안에 두개의 비닐주머니가 들어 있었는데 그 비닐 주머니에 나뉘여 담겨져있는것은 뼈였다. 텅 빈 눈구멍이 선연하고 이발이 들쭉날쭉한 해골바가지며, 굽이 나간 접시같은 골반, 길다란 정갱이 뼈… 분명 사람의 뼈였다.  내 아부지 어무니 뼙니다.  수근이가 서둘러 설명했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부모님의 산소가 모셔져있는 산소의 이장통지를 접하고 서둘러 귀국했다고 했다. 왕복티켓을 끊었는데 급히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서둘러 화장하려다가 그 뼈를 하마트면 도적맞힐뻔했다는것이다.  묘를 이장하고 뼈를 화장할려면 민정국 사무소의 증명서류가 있어얀다는것도 모르오? 이 사람이 이거 크게 경을 칠 사람이구만. 별의별 사건을 다 겪지만 이런 해괴한 일은 처음이라는듯 담당경찰은 부아통이 터져있었다.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해서야 수근은 파출소에서 놓여 나왔다. 수근의 신분증이며 려권 그리고 연고자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등 신상명세며 장황한 설명, 그리고 뼈들의 오래 된 상태를 보아 상황파악은 되였다. 반양머리에 흙빛 피부, 황소처럼 둥글고 구순한 눈길을 한 그의 목소리에서, 표정에서 그리고 온몸에서는 진솔한 사람의 냄새가 났다. 더욱이 수근이네 고향의 묘지 이장통지도 신문사에 물어 확인했다. 그제야 경찰은 수근이를 믿는 눈치였다.  온 오후를 닥달질 당하고 나니 울컥 야속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법도 했다. 백주에 다른 물건도 아닌 사람의 뼈를 들고 시가지 곳곳을 쏘다녔으니 오해를 살만도 했다.  고향마을으로 가는 마지막 뻐스가 있으려나 생각하며 트렁크를 달달 끌고 어스름이 내리는 도로변을 따라 수근은 뻐스역으로 향했다. 그런 수근의 어깨를 누군가 가볍게 건드렸다. 누구냐고 돌아서는 순간 코잔등에 주먹 하나가 날아 들었다.  두손으로 코를 부여잡는데 이번에는 옆구리에 발길이 날아들었다. 얼굴이며 잔등에도 주먹과 발길질의 란타가 날아들었다. 한 두사람이 아니였다. 느닷없는 타작매에 수근은 도로변 하수구에 뒹굴었다. 폭행을 감행한 괴한들은 재빨리 어둠에 스며들듯 도망쳐버렸다.  수근은 몸부림치며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서는 수백개의 불나방이 날아다니는듯하고 코에서는 뜨거운것이 쏟아져 내렸다.  괜찮아요? 채소구럭을 든 할머니 하나가 다가와 코피를 쏟고있는 그에게 휴지를 내밀었다. 휴지를 돌돌 말아 코속에 쑤셔넣으며 경황속에서도 수근은 트렁크를 찾았다. 다행이 트렁크는 있었다. 트렁크도 온하루 불운함에 치대고있는 주인장처럼 길녘에 뒹굴고 있었다. 트렁크를 끌고 도로변의 화단에 걸터앉아 엉망이 된 몸과 마음을 수습했다.    그들이 누군지 알것같았다. 시가지에 벙어리도적떼들이 출몰한다던 파출소 경찰의 말이 떠올랐다. 틀림없이 그들이라고 수근은 단정했다. 무작정 구타를 날리는 그들은 한결같이 수근이가 한낮 뻐스우에서 들었던 그 벙어리도적과도 같은 으아으아하는 특유의 괴음을 지르고 있었던것이다.  그야말로 수선하기 그지없는 하루였다. 고향가는 막차를 놓칠가 서둘러 몸을 일으키던 수근이가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옆구리에 송곳으로 쑤시는듯한 통증이 왔다. 트렁크의 손잡이에 의지한채 수근은 아픔을 삭이느라 몸부림쳤다. 아마 뼈라도 다친 모양이다.   화요일: 수몰지(水沒地)의 사람들   오랜만에 귀국한 수근은 바로 고향마을을 찾았다. 부모의 묘소를 이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튿날 아직도 마을에서 맨 마지막 사람으로 거짓말처럼 살아있는 팔순의 조막령감을 등에 업고 고향의 뒤산으로 올랐다.  뒤로는 11년만에 만나는 소꿉친구 병태가 다리를 잘숙잘숙 절며 따라섰다. 어쩌면 이제 겨우 40대중반의 나이에 풍을 맞아 손이 곱아들고 다리를 끌었다. 그런 성찮은 몸으로도 병태는 친구를 돕겠다며 기어이 따라 나선것이다.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고향사람들도 모두 마을을 떠나버렸다. 백여호를 웃돌던 동네에 겨우 여섯호가 남았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다섯호는 관내에서 온 한족들, 마을 원주민이라고는 병태와 그의 할아버지뿐이였다.  말(마을)에 남은 사람이라곤 벵신(병신) 꼬라지된 나와 꼬부랗게 늙은 우리 할배밖에 없다. 못생긴 낭기(나무) 선산 지킨다더니… 병태는 십여년만에 나타난 친구를 향해 씁쓸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주름이 찾아든 얼굴에서 세월여류(岁月如流)를 확인하면서 서글프게 웃었다. 지난 한밤을 간소한 술상이라도 벌려놓고 잔에 잔을 비우며 얘기 꼭지를 거듭 틀었다. 수근의 등에 업힌 조막령감은 다름아닌 병태의 할아버지다. 그 뒤로 쟁기를 챙겨들고 마을의 장씨성을 가진 한족나그네가 묻어 섰다. 병태가 “장보톨”이라 칭하는 그는 수근이가 한국으로 로무를 나간뒤 마을에 들어온데서 처음 보는 사람이다. 묘 이장을 위해 하루삯 300원을 주기로 하고 데리고 나섰다. 이장을 전문 하는 사람을 찾아 쓸려니 천원돈 아니면 안한다고 배포를 부렸다. 요즘 세월에 이장과 같은 장례절차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적었고 또 일 자체가 부정타는 일이라며 “겨울 딸기”격으로 부르는것이 값이였다.  그래서 생각다못해 년로한 병태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선것이다. 난장이를 겨우 면한듯 작고 왜소해서 조막령감이라 불리는 병태할아버지는 마을의 년장자격이다. 왜정때 글도 읽었고 마을에서 회계노릇도 오래 해오면서 일찍부터 마을의 대소사에 빠지지 않았던 몸이였다. 그러니 이장도 할줄 안다고 했다. 더우기 수근의 아버지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몸소 참가했던 령감이였다.  이장도 이장이려거니와 수근은 부모의 묘소를 어디에 모셨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수근이가 네살적엔가 세상떴으니 얼굴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형님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어쩌면 수근이가 한국으로 나간지 두달만에 갑작스레 세상떴다. 어머니의 비보를 듣고도 금방 출국한 몸이라 돌아와 장례에도 참가하지 못했던 수근이였다.  마른 사과처럼 쪼글쪼글 늙은 조막령감은 이제 죽기전에 고향의 뒤산에 한번 오르고 싶다며 뜨락에도 겨우 나서던 몸을 일으켰다. 할아버지도 오래전에 중풍에 쓰러졌던 몸이다. 병태네 가족병력사에서 풍이 래력이다. 아버지도 풍을 맞고 돌아가셨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산수의 나이를 넘긴 몸이지만 많은 차도를 보여 다행이였다. 마을의 고샅길을 가로질러 뒤산으로 올랐다. 산은 옆구리를 조금 틔워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온 사람에게 길을 내주었다.  지질한 잡목과 잡풀이 발에 채였다.처음에 업고보니 령감은 바짝 여위여 빈 벼가마니처럼 가벼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팔막진 산길을 업고 오르려니 점점 더해지는 무게가 수근의 등짝을 압박해 왔다.  게다가 더위가 만만치 않았다. 정수리가 잉걸불을 인듯 뜨거웠다. 직수굿이 입 다물고 걷는데 땀이 등판을 적셨다. 그렇다고 몸이 온전치 못한 병태와 바꿀수도 없는 일이였다. 도시의 수원(水源)과 발전(发电)을 위한 저수지 확장공사를 하면서 묘지는 물론 수근이네 마을 전체는 이제 수몰지(收沒地)로 물에 잠기게 된다. 그러면 부모의 분골을 두만강에 뿌리기로 수근은 마음먹었다. 원체 마을 뒤산에는 묘들이 수십 기가 있었지만 고향을 뜨면서 이장해 나가고 또 방치해두어 찾는이가 거의 없는 마을묘지는 버려진거나 다름없었다. 소식을 접하고 한국에서 헐레벌레 찾아왔는데 그 묘소들을 이장할 시간이 이제 겨우 하루가 남았다.  산자락에서는 벌써 불도젤이며 포크레인들이 부릉부릉 쇠이빨을 맹렬하게 갈아대듯 굉음을 울리며 작업이 시작이다. 무쇠팔로 나무들을 중둥을 쳐 쓰러뜨리고 바위돌을 밀어내고 흙을 깎아낸다. 거대한 쇠스랑에 찍혀 청청한 솔이 흰뼈를 드러내며 툭툭 분질러지고 있었다. 불도젤은 납작 엎드렸으나 미처 몸을 다 숨기지 못한 임자없는 봉분들을 마구 밀어제끼고 있다.  불도젤이며 포크레인, 트럭들이 뿜어내는 성마른 소음과 매콤한 연기가 산마루의 새소리와 풀냄새를 뒤덮어버리고 있었다. 산이 낮아지고 숲이 사라져가고 있다.  조(저)기 조(저)쪽 같아 뵈는데… 조기 늘근(늙은) 솔낭기 지(제) 혼자 서있는데, 응, 조기 조쪽으로 가보지무… 내 짐작이 틀림없을게다 조막령감의 조막손이 느릅나무, 가문비나무, 사시나무숲을 지나 홀로 허허롭게 섰는 늙은 소나무 하나를 가리켰다. 산등성이의 확 트인 양지 바른 곳, 그 곳에 동그랗게 몸을 웅크린 봉분이 하나보였다. 비석도 상석도 없고 묵은 풀이 우묵한 봉분은 조금 내려앉아 보였다. 무덤앞에 령감을 내려놓자 령감이 조그많고 험한 손으로 봉분을 투덕투덕 두드렸다.  맞따! 이 뫼짜리(자리) 맞따. 여기서 조기 렬사비 아래쪽으로 꼳꼬지(곧게) 내려다 봐라. 과수밭 아래쪽 조기가 딸내미 셋이 몽땅 싸이판 나간 양봉재(쟁이) 강서방네 집이고 강서방네 곁집이 쏘련 나갔다 죽은 박서방네 집, 그 집 곁이 바루 수근이 너네 집이 아니고 뭐냐. 령감의 조막손이 가리키며 확인하는 산자락아래에 수근의 집 그리고 강서방네 집, 박서방네 집은 꿈 꾼듯이 사라지고 없다. 살던이들이 죽거나 떠나버린데서 언녕 주저앉아 오간데 형체조차 없고 빈 집터에는 쑥부쟁이, 능쟁이같은 잡초의 춤만이 무성하다. 그 거뭇한 빈자리들이 수근의 가슴을 저릿하게 했다.  용하게 찾아낸 오래된 봉분앞에 신문 몇장을 펴고 고량주와 명태포, 사과배 그리고 소시지나 과자들로 간략하게나마 제상을 차렸다. 조막령감이 시키는대로 배워가며 례를 치렀다. 종이컵에 술을 부어 무덤에 올렸다. 무릎꿇 절을 올리면서 말했다. 아부지 어무이! 더 좋은데 모실려고 집을 허무니  놀라지 맙소! 따른 술을 봉분우에 끼얹었다. 묘주위를 돌며 세번 크게 웨쳤다. 파묘(破墓)! 파묘! 파묘! 그제야 드디여 봉분에 삽을 박았다. 시간이 오래된 봉분이다. 아버지는 40여년전에 어머니도 11년전에 돌아가신지라 봉분은 풀뿌리로 얽혀 무척 단단했다. 곡괭이를 꽂고 앞뒤로 몇번씩 흔들어야 겨우 촘촘하게 쩔은 떼장을 한 뼘씩 벗겨낼수 있었다. 겉흙을 한꺼풀 벗겨내고 삽날을 힘들게 박아넣으면서 수근은 일이 쉽지않음을 알아챘다. 흙이 생각보다 단단했고 거치적거리는 돌멩이들도 심심찮게 나왔다.    굳은 흙이 삽날끝을 구부러뜨리자 “장보톨”은 씨부렁거리며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로 상한 날끝을 두드려 폈다.  철겅철겅 삽질소리가 황량한 산의 정적을 깼다. 쟁기소리와 더불어 조근조근 조막령감의 이야기도 끼여들었다.  -원래는 이 축축한 땅에 내 먼저 묻힌 조상량반들께 때맞춰 공양을 드려야 그게사람 된 도리가 아니겠냐? 그리구 저 고향땅에서 쌀이고 풀이고 그만큼 뜯어먹고 훑어먹었음 묌(몸)이라두 죽어 저 땅에 묻혀 비료(거름)돼서 그 값이라도 하는게 옳이 된 도리지. 그런데 요쌔(요즘)는 모두 로문 (늙은) 한 어시고 이뿐 처자고 막 버리고 훌훌 떠나버리니 나 원참, 돈이 좋아 그런다마는 사실은 그 돈이 웬쑤(원쑤)인게다. 웬쑤! 조막령감이 한가슴 가득한 울기(鬱气)를 토해내며 짐짐하게 짓무른 눈꼬리로 수근이를 쳐다보았다. 자기에게 채문하고 확답을 구하는듯한 그 눈길에 수근은 눈길을 돌렸다. 고개를 수긋하고 그저 부지런히 일에만 몰두했다.  한국에서 일에 절은 몸이라지만 삼복염천에 땅을 파자니 쉽지가 않았다. 얼굴에는 땀이 비오듯 흐르는건 물론 허리가 아프고 오랜 막일에서 얻은 관절통에 손목 인대가 끊어질듯 했다.  “장보톨”도 힘겨웠던지 중국말로 무어라 욕을 섞어가며 거칠게 곡괭이질을 해댄다.  수근은 한숨 쉬고 하자며 호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병태에게 뿌려주었다.  이거 한국담배꾸마 병태가 담배 한개비를 할아버지 입에 물려주었다.  남조선 골련(권연)이라니 어디 한대 먹어보자.  한국꺼라해서 다 조은건 아니겠지우. 담배하문 그래도 여기 화건종 담배가 최곱지 장보톨”에게도 권했다. “장보톨”은 담배를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더니 불을 붙여물고는 그늘을 찾아 쪼그리고 앉았다. 엄지와 검지로 끝을 잡고 필터밑까지 알뜰히 태워댔다. 금방 붙여 물었던 담배의 불똥을 끊어내며 이번에는 병태가 그로서의 울기를 뿜어댔다.  그쪽은 뭐 달도 여기보다 더 크다 그러덤둥? 더 밝다 그러덤둥? 그래서 다 말벌에 쐰 사람처럼 달아나 거기로 가버린담둥?  담배연기가 몽환처럼 묘소주위에 굼닐었다.  신코에 속흙을 잔뜩 묻힌채 삽자루에 손을 걸치고 수근은 산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농익고 꽉찬 여름이 들에서 일렁이고 있다. 풍성한 여름은 왔건만 마을은 텅 비여 보였다. 대부분 밭은 중국사람들에게 헐값으로 양도해 버렸고 더 많이는 버려졌다. 논의 한 가운데 그동안 보이지 않던 고압선 송전탑이 우뚝우뚝 마을을 침노(侵擄)한 괴물처럼 서있다. 집과 집의 노란 이영들끼리 접붙어 있던 다정한 모습은 오간데 없고 모두가 떠나버려 주저앉았거나 주저앉으려는 집들은 괴물에 쫓겨 비여진 흉가를 방불케했다. 왕년에 정답기만 하던 마을길도 형언하기 어렵게 더러웠다. 길복판에 말똥이며 버려진 농기계의 내연기관 부속품이 뒹굴었고 죽어서 털인형처럼 된 강아지 시체도 보였다. 뒤산 자락에는 과수밭이 펼쳐졌는데 과수에 경험이 적은 외지사람들이 되는대로 다루었던지 사과배가 불다 만 풍선처럼 조그많게 달려 있다.  원체 곡창이라 불리던 마을이였다. 과수가 잘되고 자식농사가 잘되는 곳이라 린근에 소문이 자자한 마을이였다. 하지만 오늘의 고향의 풍경은 장수가 맞지않아 버려진 낡은 화투장같이 진부하고 초라했다. 그 진부한 풍경도 이제 물에 수장되여 말끔히 사라져버릴 판이다.  선조들이 이 곳에 터를 마련하면서 심은 벼와 사과배나무, 그 척박하던 땅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픈 간절한 념원과 종내는 주렁주렁 열매를 달았던 나날들에 대한 기원을 망가뜨린건 수근이만이 아니였다.  과수밭 언덕배기에 세워진 렬사비가 유독 눈을 찌른다. 비바람에 지워지고 오래동안 먹을 넣지않아 비명이며 렬사들의 이름조차 말끔히 지워지고 하얀 몸체만 남았다. 항일에 몸을 던져 마을을 지켰던 사람들의 기념비는 이제는 괴괴한 무덤같은 마을을 위해 세워진 커다란 비석처럼 보인다.  고향마을을 내려다보며 넋놓고 섰는 수근이를 보고 병태가 말했다.   뭘 볼게 있다고 자꾸만 내려다 보고 그러냐. 없다, 싹 다 가버리고 아무도 없어. 그래도 수근이 니는 지금 이렇게 면례(이장)라도 하니 다 꽃이라 생각해라. 이제 말(마을)이 물에 잠기면 부모님 효도해 묻을 곳도 없다.  후유, 처박혔다 물밑에서 밖으로 솟아나온 사람처럼 수근은 거칠게 한모금 한숨을 내뿜었다.  두자 반 정도 파 내려가자 흙 색깔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흘러 드디여 관이 드러났다. 관널은 아직도 형태 그대로 보존되여 있었다. 홍송으로 만든 관은 십여년 잘가고 백송으로 잘 만들어진 관은 50년까지도 간다고 조막령감이 말했다. 관덮개사이에 삽날을 끼워넣고 힘주어 제꼈다. 덮개가 부서졌다. 관덮개가 생각보다 너무 싱겁게 열렸다. 벌건 황토속에 허연 뼈들이 드러났고 시지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왔꼬나. 뻬(뼈), 뻬 나왔다아!" 조막령감이 울음같은  환성을 질렀다. 오랜 시간이 흐른지라 육탈이 된 뼈는 비교적 완정하게 남아있었다. 색깔이 누렇고 새까맣게 변색한 뼈들이 수근이를 올려보고 있었다. 좌남우녀로 합장한다니 왼켠의 더 시커멓게 삭은 유골이 아버지, 오른켠의 아직도 흰빛을 잃지않고 있는 유골이 어머니임이 틀림없다.  수근은 툭툭 주먹으로 제 이마를 때렸다. 수근의 눈시울이 자우룩히 젖어들었다. 조막령감이 일렀다. 호미깽이 가져왔냐? 이제부턴 광차이(삽) 치우고 호미깽이로 긁어라. 살살 긁어얀다. “장보톨”을 묘혈에서 내보내고 수근은 혼자서 유골을 수습했다. 호미를 들고 조심조심 바닥을 긁었다. 수근이 니 아부지 상새날때(세상뜰때) 니들 지끔 나이보다도 더 아랠땐데  니 아부지가 하필이문 해토머리에 상새났거든. 뫼짜리를 잡겠는데 땅이 안 풀려서 쇠처럼 땅땅한게 당최 팔수 있어야지. 그래서 막 빵포(남포)질 해서 언땅 파헤치고 그랬지.  그래도 그때는 온 동네가 다 나와서 제집일처럼 애고대고 울어주는데 제사 한번 제대로 했지.  령감은 망자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꺼내들었다.  수근이 호미로 굵은 흙알갱이를 헤치고 흙속에서 뽑아낸 뼈들을 몽당비자루로 흙을 말끔히 털어내고는 또 술로 씻어 신문지우에 하나 하나 펴놓았다. 에궁, 귀하신 뻬를 모시는데 신문찌라니. 요짐(즈음)은 참 벱(법)도 업는 세월이다.  처음부터 소나무아래 잔디둔덕을 등판 삼아 비스듬히 기대여 앉아서 조막령감은 끝간데없이 잔소리를 했다. 그만큼 수근이가 서툴렀던것도 사실이다.  원체는 한지(韩紙) 나 삼베를 페(펴) 재이문 하다못해 봇낭기 껍질이라두 쫘악 벳겨서 그우에다가 뻬를 올려 놓는게 벱인데  담배때문에 기침이 터져나와 멈추었다가 그것도 잠간, 령감의 사설은 계속되였다.  수근이 급히 오다보니 한지를 살 새가 없어 그랬소꼬마. 또 요쌔는 어디가서 베천같은거 구할데두 없구. 그래두 서울에서 이렇게 한번 온다는게 간단치 않스꼬마, 남들은 뫼를 막 밀어버려두 모르는체 하는 판인데… 병태가 친구랍시고 수근이 편을 들었다. 하지만 조막령감은 유감천만을 감추지못해 했다. 원체는 한지에 뻬를 모셔 놓는고 말고도 죽은 사람 명정(銘旌)도 쓰는게 벱이다. 이장도 장례인데 명정을 써야지. 칠성판에 뻬를 다 주어놓고 마지막에 뻬에 명정을 덮어 내가는게지.  글고(그리고) 옛날엔 멜레(면례)하기 하루전에 미리 파묘할 뫼짜리에 가서 술과 과실을 차려놓코 멜레한다는 축문을 외운다. 요쌔는 뉘기두 축문같은거 쓸줄을 모르지만.  하기사(물론) 옛날 벱이 너무 다사(번잡)한것도 탈이겠지만 또 낡았다고 그 벱을 넘 안지케(켜)도 탈 난다. 낡았다고 함부로 막 던지고 그러는데 사실 낡은 겔(것일)수록 금처럼 빛이 더 난다는 고 간단한 도리를 요쌔 사람들은 왜 모르는지... 요쌔 젊은이들은 너무 벱을 모르는게 탈이다. 하기사 사람이라 생겨 먹은것은 몽땅 혼궁기(구멍) 열렸는지 밖으로 나가지 못해 매삼질(안절부절 못하다) 해대니. 집안 꼴, 동네 꼴이 초상난 집처럼 저 줏쌀(꼴)이지… 축문에다 쓰는 그게 무슨 뜻임둥? 곁에서 삽에 묻은 흙을 모난돌로 긁어내며 잔일일망정 도와주던 병태가 물었다.  꼬치꼬치 묻긴 어째 묻냐? 네가 후날 멜레라도 하겠다는게냐? 이 말(마을) 당장 물에 잠길건데… 하면서도 조막령감은 오늘의 제주(祭主)인 수근에게는 이장절차를 소상하게 계수(继受)해 주었다.  유세차(维岁次) 감소고우(敢昭告于)… 그 축문이 무너 뜻인고 하니 오늘 뫼를 열어 옮겨 갈게니 토지신 아바이 좀 도와줍쏘사!하는 그런 말이지  수근은 밭은 기침소리에 뒤섞인 조막령감의 민속특강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머리우로 쏟아지는 령감의지청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뼈들을 열심히 줏고있었다. 호미로 긁고 비질을 하고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유골에 묻은 흙과 달라붙는 벌레들을 제거하고 뼈조각들을 퍼즐이라도 맞추듯 빠치지않고 맞추었다.  이장 하재코(하지않고) 불에 태워 날릴게면 뻬를 한데 막 모아놔도 일(상관)없다. 다시 매장을 하게꺼든 손가락뻬 발가락뻬 한 도막이래두 섞지말구 순서있게 맞춰야지. 뿌서졌거나 토막이 난 뻬는 흩어지지 않게스리 가는 낭기 가지에 실로 묶어둬야고… 조막령감이 그렇게 말했지만 수근은 뼈 한조각 흘릴세라 낱낱이 주어 맞추어놓았다.  뼈를 들어내는 수근의 손이 저으기 떨렸다. 하나씩 들어낼 때마다 흙바닥에 숨 죽여있던 오래된 먼지와 냄새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하나같이 해빛을 싣고 바람에 실려 가벼운 몸짓으로 춤을 추었다. 그것은 선친들이 흘린 삶의 비늘이였고 숨결이였다.  하긴 그렇키도 하다. 세상 어데없는 길지를 골라 왕릉 부럽잖케 꾸메(며)본들 어쩌겠노? 썩어 문드러진 묌이 이승에 구불러 댕기는 개똥보다 못하이 다시 생각해 봄(보면) 후날 이러케 멜레고 뭐고 하누라 애 먹지 말고 뻬를 싹 태워서 날레(려) 보내는것도 옳타. 뫼짜리 만들어 논들 또 어쩌겠냐. 선산을 모시긴 고사하고(커녕) 싹 다 달아나 버려 한식이나 추석이 돼도 흙 덮어줄 사람, 풀 베줄 사람도 없는데.  앙가슴에 걸린 기침을 삭이느라 쌔근거리며 말하는 조막령감의 목소리가 축축히 젖어들었다.  아버지의 유골을 다 줏고 이제 어머니가 남았다.  어마이 내 왔소꼬마, 수근이 인제사 왔소꼬마 중얼거리며 수근은 두개골을 두손에 받쳐들고 찬히 뜯어보았다.  마을 목재가공소에서 함부로 기계를 만지다가 사고로 요절한 형님때문에 수근이는 늦둥이로 이 세상에 올수 있었다. 하지만 늦자식을 본 기쁨도 잠시, 아버지도 가슴에 묻었던 자식을 잊지못한듯 인차 뒤따라 갔다. 시름시름 앓다가 병명도 모른채 어느 날 숨을 놓아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형님은 물론 아버지의 형상은 수근에게 있어서 어디에 흘렸던지 떠오르지않는 가족사진앨범처럼 흐릿한 기억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실때 슬픔보다는 죽은 아버지때문에 잘 차려진 제밥이 더 신나고 탐난 철부지 나이였던 수근이였다.  모두들은 형님보다도 수근이가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스스로도 등그런 턱뼈 부근이 어머니의 턱선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다. 햇감자색의 얼굴에 얼굴모양도 감자처럼 둥글은 감자장을 잘 끓여주던 어머니, 한국으로 떠나는 그의 손을 잡고 꼭 떠나야만 하겠냐며 눈시울을 확 붉히던 어머니, 미처 제사에도 오지 못해 제주 한잔 올리지못한 불효를 떠올리니 속에서 왈칵 뜨거운 것이 치솟았다.  한낮의 열기를 받아 안은 두개골은 따듯했다. 두 손으로 보듬은 그 두개골에 낯을 붙이고 수근은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어무이, 어무이… 철 모르고 울어대는 뻐꾹의 소리같이 울음소리가 느닷없었고 그 느닷없는 오열은 깊었다. 병태가 묘혈속으로 손을 뻗쳐 수근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놔 둬라, 실컷 울게 놔 둬… 울고나면 명치끝에 박혔던 어열이 쑥 빠져 시원할게다. 그렇게 말하는 조막령감의 목소리도 축축히 젖어있다.  령감이 백태가 낀 눈동자를 조막손으로 훔치더니 간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로회한 안면근을 실룩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제 오늘 성튼 몸이 북망산이 웬 말이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초록같은 우리 인생 장생불사를 어이하리 새빠지게 일만하다 그냥 가니 너무 섧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우리부모 날 낳고서 애간장을 녹였는데 천지신명 몰라보고 부모은공 내 몰랐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가도가도 끝도 없네 한이 없네 인생살이 너도가고 나도 가고 저승에서 반기세나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여가는 오래된 김치처럼 삭아 있었다. 느지럭 느지럭한 소리가 여름 새벽 달팽이 기여가듯 하면서 나오다가 후렴구에 가서는 소(沼)를 만난 폭포처럼 빨라진다, 시름 한숨과 설음이 한 움큼 담긴 상여가는 수근의 울음과 함께 했다.  내 어릴적에 말(마을)서 죽은 사람 상디(상여) 나갈때 하던 소리(곡)인데 원래는 이 보다 더 길다. 오랜만에 할라이(려니) 가사가 당최 기억이 나질 않네. 령감이 이 하나 없는 합죽한 입을 벌리며 처량하게 웃었다.  노래의 울림에 붙들려있던 수근은 눈물을 닦고 묘혈에서 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골은 한지나 삼베가 아닐망정  신문지 넉장우에 나란히, 고히 모셔졌다.     목요일: 명태포 그리고 사랑   병태가 가물가물 알려준 회사는 시가지의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명태포를 만드는 회사라고 했다. 이름은 유한회사라고 달았지만 실은 페교된 학교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철제대문우에 떠인 간판이 제법 컸다. 제품의 자호와 가공소의 전화번호가 아이들 머리통보다 더 커다랗게 씌여져있다.  회사의 경기는 그런대로 괜찮은듯 했다. 마당에는 제품 운수용으로 쓰이는듯한,차체에 제품 자호를 새긴 봉고차가 주차되여 있고 건물벽에는 제품의 자호가 새겨진 포장박스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는 술안주로 명태포가 류행이였다. 생맥주에 곁들이면 그 맛이 일품이였다. 옛적에는 골목길의 작은 잡화점들에서 생맥주와 명태포를 곁들어 팔았는데 그 맛이 지금까지 전해내려와 다방, 차집, 까페, 지어 레스토랑에서 까지도 아직도 명태포는 맥주안주 일순위로 나가고 있다. 그래서 명태포 가공소들의 운영경기가 좋았다.  한국에서는 왠지 명태로 국을 끓여먹지 포를 뜨는 경우가 적었다. 그래서 주말에 간혹 한잔으로 일독을 풀때면 고향의 명태포생각이 간절해지곤했다. 그 수요를 헤아려 가리봉동의 어느 연변에서 온 사람이 차린 식당에서 명태포를 들여다 팔고 있다지만 그곳까지 찾아가 비싼쪽으로 찾아 먹을 게제가 못되여 그동안 고향의 맛을 잊고 살아온 수근이였다.  통증이 호주머니속 이물질처럼 그냥 의식되는 옆구리를 지긋이 누르고 수근은 이곳까지 찾아왔다.  고향에서만 볼수있는 고약딱지 “호골고”를 옆구리에 붙혔다. 애초에 한국으로 보따리장사를 나갔던 사람들은 우환청심환이며 “호골고”따위를 들고 나갔었다. 하지만 이런 약은 지금 출국뿐만아니라 시중에서도 판매가 금지되여있었다. 병태가 집구석에 고히 감추어두었던 그렇게 효험있는 고약을 찾아내 붙여 주었지만 통증은 막을수 없었다. 아마 뼈를 다친것 같으니 한번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라고 병태가 권했다. 하지만 수근은 그럴 기분이 없었고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저 운나쁘게 당한 자신을 원망할뿐이였다. 한국에서 일하다 다쳐도 웬만한 상처는 견디며 악착같이 일해 온 그 관습이 못 견딜 아픔을 견디게 해주고있었다.  마치 듬성듬성한 징검다리를 건너듯 수근은 조심스럽게 회사마당으로 들어섰다. 가공소라고 패말이 달린 곳에서 인기척이 났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유리창너머로 들여다본 가공소안의 풍경은 분주했다. 작업대에 마주앉아 수십명의 녀공들이 마른 명태의 대가리며 지느러미며 꼬리들을 가위로 자르고 비닐 포장지에 담고 있다. 머리에 위생모자를 얹고 얼굴에 마스크를 하고 팔에 토시를 두른채 가위며 손칼로 명태의 몸퉁이를 분리하는 녀공들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쭈볏거리다가 용기를 내여 가공소의 문을 노크했다. 노크소리가 낮았던지 동정이 없다. 다시 한번 힘주어 노크를 했다. 이번에야 들었던지 녀공 하나가 나왔다.  혹시 여기 명월이라고 있습니까? 과수마을에서 온… 그말에 일본새대로 나왔던 녀자가 수근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스크속 녀자의 안면 근육이 얇게 일그러졌다. 녀자가 휘청거리는듯 벽에 어깨를 기대며 섰다. 다가오는 정오의 해빛을 수직으로 받아서였던지 녀자는 몹시 지친듯해 보였다. 그의 손에는 다듬다가 만 마른 명태가 그대로 쥐여져 있었다. 야윈 몸체에 비해 손마디가 부은 듯 굵어보였다. 녀자가 위생모자를 쓴 이마 아래로 야생초처럼 듬성듬성 흘러내린 잔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올렸다. 피로에 쌍꺼풀 진듯한 눈우로 순간에 흘러 넘치는 눈물을 수근은 놀랍게 지켜보았다. 귀바퀴의 연골을 타고 흘러 내린 머리를 헤치며 녀자가 마스크를 벗었다. 수근의 입으로 헛바람같은 비명이 새여나왔다. 눈앞에 선 녀공이 다름아닌 수근이가 찾고저하는 명월이, 바로 그의 전처 명월이였다. 꼭 11년만에 보는 명월이는 보름달같던 어제의 얼굴을 잃고 있었다. 사위인 초승달같이 뺨이 훌쩍 패였고 풍만하던 몸매의 곡선도 허물어져 보였다. 더우기 푹꺼지고 언저리가 거뭇해진 우묵눈이 그 어떤 고충을 보여주는듯 했다.  명월은 아무말도 없이 우묵눈을 들어 수근이를 쳐다만 보았다. 눈동자는 깊었다. 그것은 마른 우물처럼 한없이 텅 비여 보였다. 녀자의 말없는 입술이 움찔움찔 울음을 품고있었다. 그 눈길의 고문이 두려워 수근이는 다급히 다음 말을 이었다. 아들애를 한번 보고싶다고 했다. 혀아래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욱이, 우리 욱이를 한번만 보고싶어서…  순간 녀자의 목소리가 앙칼지게 솟아올랐고 손이 수근이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뭐? 욱이?  그 드센 손길에 수근은 볼을 감싼채 어정쩡해 있었다. 명태로 후려갈긴지라 수근의 뺨에 벌거죽죽한 얼룩이 지나갔다. 명월의 안면이 우그러지더기 급기야 울음이 터져나왔다. 명월이는 무너지듯 그자리에 쭈그리고 앉더니 두팔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톱질하듯 어깨를 들썩이며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서러운 울음에 한마디만 잘라내 복창하싶이 담아냈다.  당신이 욱이를 볼 면목이 있어? 당신이 욱이를 볼 면목이 있냐고, 당신이… 깊은 오열이였다. 그 오열이 너무 깊어서 수근은 그녀를 달래지도 못했다  울음소리에 녀공들이 우르르 달려나왔다. 일부는 명월이를 달래고 일부는 수근이를 에워쌌다.  누굽니까? 당신? 녀공들이 세괃게 따져 물었다. 불량배 보듯한 수십쌍의 눈길들이 수근의 전신을 더듬었다. 그녀들의 눈길에 어려있는 적의에 수근은 어쩔바를 몰라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신분을 어떻게 밝힐지 몰라 땀을 흘렸다. 내가 저 울고있는 녀자의 전남편이요.하고 밝히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이때 녀공들의 틈새를 비집고 남정네 하나가 나왔다.  됐쏘. 쭝우(中午) 다 됐쏘, 모두 들가서 밥이 먹쏘. 거쿨진 몸매에 목소리가 우렁찬, 매우 적극적인 인상을 한 그 남자의 말에 모두가 수근이를 에워쌌던 울바자를 풀었다. 녀공들의 부축임을 받으며 명월이도 가공소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는 그녀의 어깨가 아직도 딸국질하듯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 여기 책임이 맡은 경리라 했쏘. 어째 밍웨(明月) 찾았쏘? 밍웨 찾아 무슨 일이 있어 했쏘?  웃자란 보리밭처럼 무성한 구레나룻 사이에서 내비치는 치아가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한족남자는 조선말을 제법 구사하고 있었다.  수근은 뭐라고 운두를 뗄지 여전히 머뭇거렸다. 옷깃을 매만지며 머뭇거리는데 호주머니속 담배가 만지워 졌다. 담배를 꺼내 경리라는 그 사람에게 권했다. 남자가 머리를 젓더니 호주머니에서 자기 담배를 꺼냈다. 벌건 포장지의 담배갑에서 한대 뽑아 수근에게 권했다. 수근이 그 담배를 받아 들었다. 쩔꺽하고 라이터가 코앞에 다가왔다. 불을 붙여 몇모금 련이어 빨았다. 그러다 독한 담배연기에 수근이 밭은 기침을 토해냈다.  두 사람은 봉고차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유난히도 거쿨진 몸매를 한 사내는 용건이 뭐냐고 자꾸 따져 물었고 하필이면 이 한족사람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수근은 허둥거렸다. 자신이 뱉어낸 담배연기가 허공에서 묽어지고 희박해지더니 정오의 해살속으로 사라지는것을 수근은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 십년세월 허위단심 헤쳐온 연무같이 앞길이 보이지않던 나날들은 수근에게는 다시 떠올리기에도 힘든 시간이였다.  애초에는 안해 명월이가 먼저 가짜결혼으로 출국하기로 했다. 지금보다는 더 광분에 넘쳐, 출국이라는 좁은 소로에서 농약먹은 송사리떼처럼 몸부림쳤던 당시 가짜결혼을 빙자한 출국은 흔히 볼수있는 놀랄것 없는 풍경이였다.  그런데 리혼수속까지 하면서 감행했던 출국은 브로커에게 돈만 떼운채 무산되고 말았고 대신 크게 기대를 안했던 수근이 쪽이 먼저 그 어려운 출국의 겹대문을 열어젖혔다.  내라도 먼저 들어갈께 인차 따라오오. 하면서 먼저 나갔지만 안해는 또 한번의 출국시도에서 가짜 비자가 들통나 인천공항에서 발목 묶였고 그렇게 문전에도 못가 닿고 여러번의 축객령을 받고나니 종시 출국의 대문을 열어젖히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수근이는 수근이 대로 한국에서의 고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막상 서울땅을 밟고나면 무릎아래 지페장이 지천으로 널려있으려니 했지만 막상 무릎팍만 멍들고 깨졌을뿐 그들의 앞길에는 가시밭길만이 펼쳐져 있었다.  나도 그렇게 무지개 꽃밭만은 아니였다오!  아까 명월이의 울음섞인 타매에 이렇게 목울대를 타고 넘어오는 말을 수근은 꿀꺽 삼켰었다. 친지들 눈에 수근은 이미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왜곡되여 있었다. 그들은 수근이를 마치 비극의 원흉이기나 한듯이 끔찍하게 바라보고있었다. 서울에서의 나날은 수근에게서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준 두 얼굴의 시간대였다.  11 년 여를 보낸 꽉 막혀 있던 세월. 춥고 배고프고, 고달팠던 극한의 나날들이여다.  애초 일을 시작했을무렵에는 고된 일은 그런대로 견딜수 있었지만 참기 어려운건 동족지간에도 꺼리낌없이 행해지는 몰리해와 멸시였다. 공사장에서 사장님은 물론 다같이 노가다에 혹사하는 같은 직종일지라도 한국이들은 고국을 찾아 허위단심 찾아온 그들에게 “똥포”놈들이라 폭언을 퍼부었다.  마흔살 되도록 그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온갖 욕설을 삼태기로 퍼부으면서도 사장님은 나의 욕이 니들 시골닭들에게는 인생에서 비타민이 될거야!라고 비죽거리며 말했다. 그 비굴과 모멸의 “비타민”을 매일처럼 삼키며 오로지 고향에 남겨둔 가족을 위해 일했다. 불도가니속에서 세멘트포대를 숙명처럼 짐져나르고 벽돌과 타일을 희망처럼 쌓고 붙혔다.  그러던 어느날, 십여층 높이에 결어 만든 비계우에서 스파이더맨처럼 매달려 타일을 붙이던 중국에서 온 로무자 둘이 추락사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비극이 일자“비타민”사장이 그날밤으로 잠적해 버렸다.   동포모임과 서울의 교회들에서 적극 나서 해결하려 했지만 시간만 끌다가 미해결, 결국은 그동안 손톱 벗겨지게 일해온 로임은 한강에 띄워보낸격이 되고 말았다. 몰지각한 한국 사장님들에 의해 로임체불은 그후로도 여러번 되풀이 되였다.    왜 유독 나만 바라고 번개치고 소낙비는 쏟아지냐! 개탄하며 수근은 술독에 자맥질해 들었다. 막판 뒤집기로 목돈 한번 뽑아볼양으로 여기저기서 꾸어대여 스크린 경마도박에 붙었다가 그만 감당못할 천문수자같은 빚에 깔렸다. 빚재촉을 피해 강원도 치악산자락에까지 숨어 들기도 했다. 그동안 알콜중독 기미를 보였고 교회에서 꾸리는 자선단체에서 하루이틀 연명하다가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슬리고 다시 일에 열심을 보인것도 겨우 몇해전, 그렇게 걸채이고, 넘어지고, 기고, 일어나기까지 십여년 세월이 경마장의 종자말처럼 눈깜짝 할사이에 눈앞에서 달려지나갔다. 밭문서, 집문서 들이대고 여기저기 꾸어서는 빚짐 내여 로무의 길을 열었던 집에서는 통화할때마다 빚에 졸려 울상이였지만 그 동안 수근은 어쩌면 땡전 한푼 집에 보내지 못하고 말았다.  조금만 기다려! 일자리 바꿨는데 이번엔 자리 잘 잡은거 같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봐! 하고 판에 박은 말만을 낡은 축음기처럼 되풀이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그 락언이 번마다 거짓말로 끝나버리곤 했다. 들들 볶던 소리는 나중에는 원망으로 번졌고 절규로 이어졌다. 매번 전화저쪽에서 찌르륵거리는 교신음에 섞여 터져나오는 안해의 목갈린 절규가 무서웠고 귀찮아져 나중에는 전화를 받지조차 않았다.  그러다 종내는 가짜 리혼이 진짜 리혼이 되여버렸다. 안해와 련계가 끊긴지 7년째 되던 해, 로무차로 한국에 나온 고향사람에게서 안해가 개가를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것이다. 비록 련계를 끊은건 그 자기쪽이였지만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수근은 자다가 찬물을 뒤집어 쓴 사람처럼 얼빠져 버렸다.  좌절과 렬패감같은것에 사로잡혀 포장마차를 찾았고 날이 새도록 알콜로 몸과 맘을 마취시켰다.  어쩌면 잡을 만한 지푸라기 한 오라기도 없이 끝 모를 절망의 물너울에서 허우적거렸던 나날들, 그 나날들을 누가 알아줄가!  그렇게 입밖에 내기조차 싫었던 그동안의 힘겨운 나날에 대해 수근은 처음보는 한족사내에게 낱낱이 털어놓았다. 하고싶지않은 이야기였지만 변명처럼 하고나니 외려 속이 후련했다.  수근의 말을 들어주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아무말도 없이 가공소로 들어갔다. 이어 다시 나온 그의 손에 고량주 한병과 명태포 두개가 쥐여져 있었다. 사내가 건네는 명태포를 받아들었다. 부욱 찍어 입에 넣었다. 구수했고 들척지근했다. 역시 고향의 음식은 설명으로는 불가한 그런 맛이 있었다. 사내가 유리컵에 술을 반쯤 부어 수근에게 권했다.  코생이 많이 했쏘.  수근은 그 반컵의 술을 단숨에 비웠다. 명태포를 안주로 수근은 연신 잔을 비웠다. 몇잔을 더 거치자 독한 술에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구레나룻을 한번 쓸어내리며 한족사내가 수근이를 찬히 지켜보았다.  내 한마디 말이 하까? 스스로 컵에 술을 부어 한모금 마시고나서 한족사내가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엔 당신들 정말이 꽈이(怪)하다 했쏘. 우리 중국말 속담에 “급하면 따뜻한 두부는 먹을수 없다”는 말이 있쏘. 당신들은 어째 누구나 다 그리 쪼우지(着急)해 했쏘? 뭐가 그리 쪼우지해서 밭이 뿌요(不要), 집이 뿌요, 애들이 뿌요, 푸무(父母) 뿌요하고  가뻐리고 해쏘? 써울(首尔)이다 르을번(日本)이다 가고 그리 했쏘. 돈이 잘 벌어오오 좋쏘. 돈이 좋긴 했쏘. 그런데 그렇게 돈이 마니 벌어쏘 그담엔 쩐머빤(怎么办)? 팡즈(房子) 메이라(沒了), 밭이 메이라, 로우퍼(老波) 메이라, 푸무 쓰(死)라, 위쓰왕퍼(鱼死网破) 그리 됐쏘 했는데. 우리 중국말 속담에  “새는 먹이에 죽고 사람은 돈에 죽는다”는 말이 있쏘.  요즘부터 산이 밭이 카이파(开发)하면서 보상이 많이 해주는데 조선족들이 눅거리해서 밭이 다 넘겨주구 이제 와서 땅 치며 후회해쏘. 후회 한들 소용없다 해쏘. 완라(晩了). 세상에는 후회약이라는거 없다 해쏘.  난 당신들이 “호로박에 무슨 약이 담갔는지(葫芦里装什么药)?” 부즈또(不知道)해쏘. 정말 부즈또 해쏘…  수근이는 술때문에 아닌 다른 갈증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어쩐지 할말이 몽땅 증발된것 같았다. 한족사내의 일장 훈화를 들으며 수근은 아무런 항변도 할수없는 자신을 의식했다. 그의 말처럼 스스로도 호로박에 무슨 약을 담그어 왔는지 담그려는지 알수 없을때가 있었다. 고된 로무에 혹사하는 와중에 자신도 시시때때 생각했던 문제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누구도 그에 명쾌한 확답을 줄수 없어 했다. 눈앞의 리익에만 근시안이 충혈되여 아예 답 같은것을 생각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아무말도 못하고 수근은 그저 명태포만 체념처럼 울근울근 씹어 댔다.  사내가 말을 이었다. 밍웨는 지금 헌씽푸(很幸福), 헌씽푸하니까 근심이 아니해도 됐쏘.  수근이 멍하니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런 수근의 눈길을 마주보며 사내가 말했고 그 입에서 튀여나온 말의 파편이 수근의 귀속을 아프게 관통했다. 밍웨는 지금 내 로우퍼(老波)니까! 머리속에서 하얀 새떼가 화르르 날개를 펴며 날아갔다. 잠간동안이나마 수근은 아득해질수 밖에 없었다. 금방 마신 소주의 취기가 그제서야 뭉게뭉게 올라왔다.    톱니바퀴처럼 세상은 여전히 이가 물려 돌아가는데 자신을 감고 도는 피대줄은 이미 제거되고 없었다.  왠지 아주 오래 전에 앓았던 치통처럼 불쑥 치밀어 오른 통증이 수근의 가슴을 훒었고 부지중 비명을 흘리며 수근은 고약딱지를 잔뜩 붙인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금요일: 스케트 보드   조붓한 수로를 비집는 물고기떼처럼 교문으로 아이들이 우르르 밀려나왔다. 학교 문앞은 삽시에 시끌벅적해 졌다. 갑작스레 비좁아진 학교 앞길로 자동차들과 사람들이 곡예를 하듯 서로 비켜갔다. 교문을 나선 아이들은 곧장 학교 근처에 올망졸망 들어앉은 문방구에 들어가거나 김밥집, 운남 쌀국수집, 오징어 꼬치집으로 들어갔다. 더러는 핫도그나 오징어 꼬치, 붕어빵을 입에 물고 길거리에서 먹는 아이들도 있다. 교문곁에서 수근은 수위아저씨마냥 두눈을 지릅뜨고 많은 수효의 아이들을 낱낱이 헤아렸다. 수근은 지금 오전내내 아들애를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중간체조 시간에 아이를 잠간 만났었다.  아침 첫뻐스로 시가지로 나와 명태가공소의 한족경리가 일러준대로 학교를 찾았고 학교수위에게 애의 이름과 반급을 댔다. 수위가 안된다고 잡아뗐다. 한국에서 십여년만에 돌아와 아이를 찾는다고 간곡히 요청을 들었다. 그의 간청이 통했던지 수위는 지금은 수업중이니 기다리라고했다.  그렇게 두어시간 꼬박 기다려 중간체조시간이 되였다. 수위가 반급 선생에게 일렀고 반급 녀선생이 아이 하나를 렬을 지은 아이들속에서 점명해 내더니 교문쪽을 향해 어깨를 떠밀었다. 아이가 쭈볏거리며 다가왔다.  니가 욱이구나. 아이를 반기는 수근의 목소리가 마른 저수지처럼 갈라졌다. 누가 구태여 알려주지 않아도 단박에 가려볼수 있을만큼 아이는 수근을 판박이로 꼭 떼닮고 있었다. 반양머리에 얼굴 구멍새가 큼직큼직했다. 게다가 피부도 수근이를 닮아 옻칠을 한것처럼 검었다. 네살때 두고 떠난 녀석은 가을 맨드라미처럼 키도 훌쩍 자라 수근이의 머리높이를 넘었다. 턱아래 울대뼈가 도발적으로 도드라졌고 코밑도 제법 감실했다.  어쩌면 애비없이도 잘 자라준 아들이 고마웠고 한편 그동안 아비로서 빈자리를 보여준 자괴감으로 수근은 숙제못하고 선생앞에 불리워 나간 학생처럼 어깨가 숙어졌다.     안해의 이름은 달이고 아들의 이름은 욱(旭)이, 솟는 해였다. 하지만 그 달과 해의 궤적에 수근은 자신의 행보를 맞추지 못했다. 누구져? 애가 이마살을 모으며 물어왔다. 내가, 내가 니 애비다. 부끄러워 뱉을수도, 그렇다고 넘길수도 없는 수박씨의 딱딱한 감촉처럼  입안에 따글따글 굴러다니던 말을 수근은 한 옥타브 낮은 소리로 내뱉았다. 급기야 말까지 더듬으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을때 아이의 주먹이 자기 이마로 올라갔다. 어쩌면 제수체어도 수근이와 꼭 같았다.  아이는 이마를 자근자근 두드리며 휴일의 단맛을 깨뜨리며 함부로 남의 집 초인종을 울리고 낡은 신문 있소?하고 묻는 페품수거꾼을 보듯이 수근이를 쳐다보았다. 명월이가 집에 돌아가 얘기하지 않았던지 아이의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예기치 않은 아버지의 등장이 놀라웠고 이제 와서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것인지하는 뜨악한 기색이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의 이마에 주먹을 얹은채 아무말도 못했다. 굳게 닫힌 입매로 인해 둘의 분위기는 어정쩡했다. 아이가 불현듯 몸을 휙 돌렸다.  체조해야죠. 체조시간인데… 아이는 한마디 뱉고는 체조대오를 향해 뛰여갔다.  중간체조가 끝났지만 아이는 아버지앞에 나타나지않았다. 그래서 수근은 점심시간까지 꼬박 교문앞에서 기다린것이다. 아이들속에서도 훌쩍 큰 키로 맨드라미 홀씨처럼 홀홀히 떠가는 아이를 수근은 보았다. 수근이 다급히 달려가 애의 애의 손을 잡았다. 정오의 해볕이 머물러 반짝이던 애의 얼굴이 금세 흐려졌다.  왜요? 여기서 뭘하세요? 아직도 가지 않고? 애가 짜증을 드러내며 물었다. 널 기다렸다! 애가 또 왜요?고 물었다. 어쩌면 아버지를 대하는 아들애의 어투는 감격어린 느낌표가 아니라 도전적인 물음표뿐이였다. 아들애를 만나면 하고픈, 생각해둔 말이 많았지만 막상에 애가 반문하자 순간에 잊어져 그저 점심이라도 맛있는 쪽으로 사주고 싶다고 했다.  나 친구들과 먹을건데요. 아들은 한켠에서 기다리고있는 애들을 턱짓으로 가리켜 보였다. 말을 뱉기와 바쁘게 몸을 돌리는 아들의 손을 수근이 다시 한번 잡았다. 애가 손을 뿌리쳤다. 그 뿌리침이 생각보다 드세여 수근은 잠간동안 멍해졌다.  애의 거부는 드세였고 그 눈에서 적의같은것이 번쩍이는것을 수근은 놀라웁게 볼수 있었다. 손을 빼려고 몸을 틀려는 애의 손을 수근이가 부득부득 잡았다. 그 무슨 몸싸움이라도 하듯 빨판처럼 잡은 그 손을 잡아떼던 애가 몸부림을 멈추었다. 막무가내라는듯 한 표정이 애의 볼에 머물렀다. 입술을 욱신거리며 씹어대던 애가 물음 하나 꺼내들었다. 점심은 됐고… 나 뭘 하나 사줄수 있어요? 그말이 수근에게는 복음처럼 들렸다. 수근이 바짝 마른 입술을 벌려 웃으며 말했다. 그래그래 사줄게! 하나가 아니라 열개라도 말해봐. 사고픈게 뭔데 아들애가 학교앞 광장에서 놀고있는 애들쪽을 가리켰다.  챙 모자에 통 넓은 바지 차림의 애들 몇몇이 로라스케이트인지 발구인지 같은것을 밟고 몸을 날리고 있었다. 애들은 얼음강판을 지치듯 날렵하게 맴을 돌거나 비상하는 새처럼 훌쩍 몸을 날리며 반공중에 뜨기도 했다.  나도 저런거 하나 사줘요. 스케트 보드(滑板)요.  학교부근에 대형체육용품전문점도 있었다. 애의 뒤를 묻어 그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애는 단박에 스케트 보드 매장으로 다가갔다. 요즘 애들중에서 스케트 보드놀이가 가장 류행이라고했다. 좀 위험해 보이는데… 수근이가 매장의 광고판에서 하늘향해 날고 있는 진짜 사람만한 크기의 스케트보드맨을 보면서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애는 듣는둥 마는둥 온통 스케트 보드에 정신 팔려 있었다. 요즘 이런거 류행인데 부모가 한국 간 애들은 사고 못 간 애들은 못사요. 이거 꽤 비싸거든요. 애가 동문서답을 했다. 수근이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안 사줄래요? 아니 뭐 그런뜻이 아니고… 수근은 급히 지갑을 꺼냈다. 애가 원하는것을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털었다.  출국한 부모가 한국서 돈 잘 부쳐주는 애들은 수입제 쪽으로 사고 그렇지 못한 애들은 그저 국산제를 사요. 아이가 여러가지 가격대의 보드를 들고 점원보다 더 상세하게 그 성능의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 그 알둥말둥한 보드에 대한 설명보다 출국한 부모와 출국하지 못한 부모로 등급이 지어지는 아이들의 판단방식에 놀라웠다. 가격이 저렴한 국산이 아니라 수입산쪽으로 사주었고 애가 만만치 않은 가격에 차마 입을 떼지못하는 보드 헬멧, 보드 의복, 장갑까지 세트로 큰 돈을 깨서 사주었다. 팔꿈치며 무릎보호대를 사는것도 잊지않았다.  아들애에게 난생 처음 뭔가 사주는 아버지였다. 수백,수천이 아니라 그동안 벌어온 뼈돈 모두를 통째로 달라고 손을 내밀어도 수근은 껌값 내주듯이 선뜻 아들애에게 내줄수 있을것 같았다. 아버지가 맞긴 맞나 보네요. 이렇게 사달라는 걸 다 사주는걸 보니.  그제야 아들녀석의 얼굴에 그늘이 벗겨져 있었지만 잇달아 내뱉는 말은 맹랑하기 그지없는것이였다.   나 니애비 맞다! 조심스레 그말을 뱉으면서 또다시 커다란 회한에 사로잡혀 수근은 아들애를 껴안으려 했다. 아들애가 몸을 훌쩍 피했다. 선물을 아름벌게 안고 체육용품전문점을 나서던 아들애의 입에서 또 한번 물음이 흘러나왔다.  왜 인제야 왔어요.? 어디서? 뭘 하다가요? 반양머리우에 헬멧을 얹은 애는 락하산을 타고 핼리곱터에서 날아내려 현상범 앞에 총부리를 겨눈 특공전사같은 모습으로 수근에게 따져 물었다. 아이는 보드에 몸을 실었다. 저만치 미끄러져 갔다가 카메라줌으로 끌어당긴듯 순식간에 다시 수근이 앞으로 돌아와 물었다. 엄마와는 왜 갈라졌죠? 둘 다 좋은 사람 같은데? 아들애는 아버지의 확답같은것을 기다리지 않고 물음을 던진듯 했다. 수근이가대답할 사이도 없이 나래 펼친 새처럼 두 팔 휘저으며 저만치 미끄러져 갔다. 새로 산 스케트 보드는 애의 발에 접착테프로 붙인듯 했다. 눈앞이 현란하도록 몇가지 묘기를 보이고나서 애는 학교앞 골목길로 흡수되듯 사라져 버렸다.  욱아! 수근은 터져나오는 부름소리를 입안에서 갈무리했다. 아들애가 련속 던진 몇개의 물음덩이가 돌팔매처럼 그의 신상 곳곳을 강타했다. 그리고 그 물음들에 신빙성있는 확답을 주지못하는 자신이 놀라웠고 스스로 야속하기까지 했다. 가슴 한복판으로 쏴르르르, 한 줄기 찬 바람이 소리를 내며 스쳐간다.  서울의 어느 재한조선족 모임이 꾸리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고향의 이장통지뉴스를 보고 수근은귀향을 생각했다. 여태껏 고향을 잊고있었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왠지 출처불명의 다금침이 수근이를 흔들어댔다. 망설임은 드디여 결심으로 굳어지고 일종의 의무감으로 번졌다. 그래서 강산도 한번 돌아눕는다는 10여년만에 잊고있던 고향으로 왔다.  하지만 고향이란 가슴에 품고있을때는 따뜻하지만 실제 대하는 순간 그 온기가 식어갔다. 그 온도는 시간의 길이와 정비례하나 싶었다. 더불어 살과 웃음과 땀을 나눈 인물과 풍경들이 알량하고 뜨악하게 인멸되고 개조된것이 탓일가? 아니면 돈에만 매여 그 따뜻함을 잊고 찬피로 살아 온 무심함이 탓일가? 주먹을 이마에 올린채 수근은 학교앞에서 폭염에 달구어진 아스팔트길우에 당혹에 잠긴 모습으로 그렇게 서있었다.     토요일: 수장(水葬)   온 몸을 끌어당길듯 잠잠하게 하지만 두터운 몸짓으로 유영하는 저 푸른 강줄기, 예나 지금이나 고향의 그 강은 그곳에서 그렇게 흐르고있다.  고향산의 아래도리를 완만하게 감싸안으며 흐르는 강은 무심한 세월의 속내를 알아버린듯 무심하게 떠났다가 잠간 돌아온 사람에게도 젖은 몸을 오롯이 내맡긴채 무심한척 흐르고있다.  수근은 강녘의 너누룩한 돌바위를 마주하고 앉았다. 화장터에 가서 2차화장을 하련다면 인차 뼈들을 화장해 준다지만 이틀채 찾은 화장터는 천국행의 티켓을 먼저 끊은 망자들로 초만원이였다. 어쩌면 우리가 무심히 대했던 그렇게 많은 죽음에 대해 장의관 홀에 서서 수근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아마 월요일쯤 돼야 순번이 차례질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래일 일요일이면 수근이가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장의사에게 매달리며 사정이야기를 거듭했지만 무가내였다. 세멘트독이 오른 손바닥을 맞부비며 초조함에 몸을 떨던 수근은 드디여 하나의 용단을 내렸다. 그리고 출국을 하루 앞두고 고향의 강으로, 두만강가로 나온것이다. 우선 물을 끼얹어 너누룩한 바위를 깨끗이 닦았다.  이 며칠을 분신처럼 함께 했던 트렁크를 열었다. 뼈들을 꺼내 깨끗해진 바위우에 하나 하나 올려 놓았다. 뼈들은 은근히 깊어가는 오전나절의 해빛에 옥양목처럼 하얗게 빛났다. 그 뼈들을 한겻이나 지켜보다 수근은 손아귀에 품을만한 돌멩이 하나 골라들었다. 들숨 한번 긋고나서 수근은 돌멩이로 뼈들을 짓찧기 시작했다.  어떤 제물을 빻는 사람처럼 열심히 뼈들을 가루내였다.  강가에는 조화(弔花)라도 단듯 하얀 억새꽃들의 춤이 무성하다. 가끔 물새의 울음소리가 강가의 고요에 작은 구멍을 낼뿐 강가는 적연했다. 물새소리에는 사람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면서 구슬피 두드리는 각별한 정조가 깃들어있다. 그 소리때문이였던지 수근은 당금 울음이 터질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있었다.  오른쪽 옆구리에 통증을 느껴 왼손으로 하다보니 오전나절을 수근은 강의 흐름을 마주하고 있었다.  열심히 육탈된 뼈를 빻았고 축축한 슬픔을 널어 말렸다.  가루가 된 그 뼈들을 손아귀에 담았다. 한웅큼 모래나 자갈돌보다 묵직한, 허망한 질감이 손바닥을 가득 채웠다.  그 뼈가루를 지켜보노라니 가슴이 각진 소금을 뿌린것 같이 따갑고 쓰라렸다. 쓰라림은 뼈를 다친 옆구리의 통증보다 더 진한 아픔으로 수근이의 전신을 휩쓸었다.  짜디짠 눈물을 촛농처럼 뜨겁게 흘리며 한 웅큼 가득 움켜쥔 손을 스르르 풀었다.  뼈의 조각들이 별찌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슬픔과 추억과 허무로 화석질이 된 덩어리들을 한 웅큼 한 웅큼 물에 흘려 보냈다.  물살에 휩쓸리는 뼈의 파편들은 직사하는 해볓을 받아 물속에서 조가비처럼 빛났다. 그 뼈들이, 빛쪼가리들이 물살에 빨려드는것을 수근은 낱낱이 지켜보았다.  수천, 수만개의 물비늘이 산란하게 시야를 어지럽히며 흘러가고있는 그 와중에도 수근의 눈길은 침점하면서 물과 한몸이 되는 뼈들의 마지막 길을 뒤쫓고 있다.     잊어버린것들, 잃어버린것들, 버림받은것들, 상처 받은것들, 용서를 바라는것들… 세상만사 모든것들이 저 강물처럼 흘러간다.  수근의 마음속에 응어리졌던것들이 강물의 흐름에 실려 뭉텅 뭉텅 흘러갔다.  옆구리를 잡고 수근은 몸을 일으켰다. 물새 한마리가 강가까지 나와 물에 부리를 박다말고 푸르르 갈대속으로 도망쳐갔다. 강의 흐름을 쫓던 눈길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시근시근한 눈을 씀벅거렸다. 하늘 모퉁이를 나풀나풀하게 장식한 하얀 깃털구름을 바람이 밀어내고 있었다. 구름은 비좁은 마을길을 빠져나가는 상여처럼 느릿느릿 떠가고 있었다.  며칠전 조막령감이 부르던 상여가가 생각났다. 사무치던 그 가사말이 또렷이 생각 나 수근은 나지막이 상여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초록같은 우리 인생 장생불사를 어이하리 새빠지게 일만하다 그냥 가니 너무 섧네 우리부모 날 낳고서 애간장을 녹였는데 천지신명 몰라보고 부모은공 내 몰랐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일요일: 뼈와 뼈끼리   공항 터미널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씨줄이 마르건만 오늘도 공항에는 여전히 고향을 뜨는 사람들로 초만원이다. 그들의 얼굴마다는 그 어떤 기대감, 불안감으로 혼효(混淆)되여 설레임의 파장이 홍조처럼 머물고 있었다. 수근이도 떠날 시간이 되였다. 그날 이장을 마치고 텅빈 묘혈을 내려다 보면서 수근은 이장하는것은 죽음을 수습하는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 두니 또 한번 떠나는 자신에 대해 용서가 되는듯 했다.   병태가 공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불편한 몸으로 나오지 말라고 만류해도 이제 보고 언제 또 보려나 하면서 소경 매질하듯 후둘거리며 굳이 나왔다.  텅 빈 들판에 버려진 허수아비같은 몸으로 고향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가는것을 혼자서 지켜보았을 친구가 수근은 안쓰럽기만 했다. 수근은 맨 웃쪽 단추를 잃어버리고 실밥만 남아 깃이 벌어진 친구의 와이셔츠 앞섶을 자꾸만 여며주었다. 명월이 고깝게 생각하지 마라, 그래도 네 어머니의 병간수를 도맡아 했고 세상뜬 다음 장례도 명월이가 혼자 손으로 다 치렀다. 물론 욱이도 명월이 혼자 힘으로 키운거지. 궁여지책으로 한족남자에게 얹혔다만 잘 살고있으니 그나마 잘 된 일이 아니겠냐.  친구의 위안의 말에 오히려 수삽해 나는 기분을 주체할수 없어 수근은 말머리를 돌렸다  확장공사는 언제부터 시작하는감? 그 저수지…  기성 사실로 다가왔지만 이제 곧 물에 잠길 마을이 수근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 물음에는 나는 이대로 또 떠난다만 넌 어쩔거니 하는 괘념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걱정이 가시지않은 눈길로 수근은 친구를 지켜보았다.  괜찮타, 우리집 논이 그대로 있어 개발이 시작되면 꽤 보상받을거니 그 돈으로 흥떵거리며 잘 살거다. 모른다 수근이 니보다 내가 더 잘 살지도.  그래 제발 잘 살아라. 친구야. 그러지뭐, 그 돈으로 좋은약도 쓰고 그래그래. 시내가까이 자그만 집도 한채 마련하고 그래그래 몽달귀신이 되기전 늦으막 이 몸이 처녀장가갈지도 모르지 그래그래. 세상물정 밝으신 우리 조막할배 모시고 오래오래 살거다 그래그래 두사람은 짛고 박고 말장난을 주고받았다. 서로 자꾸만 위로의 말을 갖다붙였지만 스스로 듣기에도 어딘가 시원치 않았다. 때지난 구닥다리 유모어같은 말에 서로가 객적은 웃음을 짓고말았다.  갑자기 병태의 핸드폰이 울며 두사람의 석연찮은 리별을 깨뜨렸다. 핸드폰을 받는 병태의 얼굴이 어두워 졌다. 핸드폰을 다급히 수근에게 넘기며 병태가 말했다.  어떡하니 수근아? 욱이가 크게 다쳤대. 골과병원의 병실에 아이는 링게를 꽂은채 누워 있었다. 목에 깁스를 하고 미동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다. 공항에서 헐레벌레 달려 온 수근이를 명월이가 놀란 눈길로 쳐다보았다.  수근이는 고향에 있는동안 련계를 위해 가공소 경리에게 남긴 병태의 전화로 아들애의 부상소식을 접한것이다.  수근은 병상으로 덮치듯 다가가 아이를 들여다 보았다. 링게를 맞으며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통증이 느껴지는듯 잠결에도 끙끙 신음소리를 냈다.  오늘이 떠나는 날 아니던가요? 아무말도 없었지만 침대가에 걸터앉은 명월이의 표정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요. 어딜 다쳤는데? 명월은 말없이 엑스레이 필림과 처방지를 내밀었다. 목뼈와 갈비뼈에 골절상을 입었는데 목뼈에 금이 가고 갈비 석대가 골절되였다고 적혀 있었다.  타지말라는 보드인지 뭔지 하는거 기예 타다가 저렇게 된거죠. 명월이가 원망조로 말했다. 수근은 잠시나마 정신이 아득해 질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자기가 처음 사준 선물때문에 아이가 크게 락상(落伤)을 당한것이다.  아이를 마주한채 두 사람은 그렇게 침대를 사이두고 앉아 있었다. 명월이는무슨 말인가 하려다 입술을 달싹였다가 결국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각자 자신의 생각 속을 헤매는 표정이다. 견고한 침묵이 어색해 수근은 엑스레이 필림을 쳐들고 다시 들여다 보았다.  필림에는 앙상한 겨울나무와도 같은 뼈들이 목판화처럼 각인되여 있었다. 그 겨울나무사이로 명월의 얼굴이 보였다. 필림너머로 본 명월의 얼굴은 흑백으로 바래져 있었다. 수근은 새삼 색바랜 어제를 돌이켜 보았다.  그때는 가난했으되 얼마나 행복했던가. 서로를 껴안고 보듬으며 더 나은 래일을 깊이깊이 희구(希求)했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어제는 마치 감광제(感光剂)가 고루 발리지 않은 필림과도 같다. 어느 부분은 환히 빛나며 뚜렷이 떠오르고 어느 부분은 아주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날 지칫지칫 가공소를 나서면서 수근은 저도모르게 뒤를 돌아다 보았다.그냥 그렇게 돌아나오기엔 무언가 설명 못할 미진함 같은것이 발목을 잡아채는 끈끈한 느낌때문이였다.     명월이가 마당에 나와있었다 수근이를 눈바램하는 명월이는 벽에 기대여 상체의 자세를 놓아버린 모습이였다. 그 모습은  슬픔같은 물컹거리는것들을 딛고 있는듯 휘청이여 보였다.  모든 파탄 나버린 관계들의 복원과 재가동은 이제 불가능했다. 이제는 과거형을 쓰게 된, 한 때라는 시간으로 한정지어야 하는 전처라는 관계에 새삼스런 서글픔이 느껴졌다.  어제는 함께 키워왔으나 이제는 너무도 멀리 사라져버린 꿈과 그것의 실현 불가능에 대한 인식때문에 수근은 갑작스레 고향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오래전에 떠나버린 고향을 다시 찾는다는것은 고향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는 또한 도전이였다. 어차피 그곳에 남겨놓은 막연한 시간과 심상들을 구체적으로 만나야하기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에 가 있든 고향의 비릿한 살 냄새가 그를 괴롭게 했다. 도무지 정이 다시  붙을것 같지 않던 가난한 고향은 그 냄새로 인해 때때로 그리웠다.  그래서 역마살을 달래듯 고향으로 돌아왔고 회귀성 어류처럼 그 옛날 자신이 걸었던 삶을 되짚어서 나가며 그 망각속 깊이에 묻었던 추억의 뼈를 기어이 파내여 뼈를 줏고 뼈를 나르고 뼈를 다시 영영 수장(水葬)했는지도 모른다.   명월의 가르마에 벌써 새치가 희끗희끗하다. 수근은 다만 지난한 삶의 마지막 고샅에 선 그녀에게 더 이상의 불행이 없기를 빌고 빌었다. 아이가 뒤척이더니 잠에서 깨였다. 몽롱한듯 수근이를 쳐다보던 아이가 비죽비죽 울기시작했다.  아파? 아이의 땀방울이 돋은 이마전을 쓸어주며 수근이가 물었다. 아이가 더욱 크게 울음소리를 냈다. 울면서 말했다. 다 당신때문이야. 당신때문… 수근이는 흠칫 몸을 떨었다. 깁스를 하여 미동도 할수 없는 몸이지만 아이의 얼굴표정만은 살아 있었다. 그 표정이 보여주는 아이의 원망은 깊었다. 그렇게 자식에게 미움을 주고 원망을 키운 자신의 어제가 통감되였다.  미안하다. 이 애비가 미안하다. 어눌하게, 그렇게 수근은 말했다. 이 일주일간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이 이 말이였다.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로는 설명이 모자랐지만 또 그말밖에 할말이 따로 없어 이 생애 다 해야할 말을 미리 당겨다 쓰듯 그 말만을 복창에 복창을 거듭했다.  미안하다미안하다미안하다미안하다…. 콧날이 왈칵 시큰해지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뚤렁뚤렁 아이의 얼굴에 떨어져내렸다. 이장도 끝내 부모님의 육골을 고향의 강에 안치하고 발길을 돌렸지만 아직도 뭔가 묘연하고 암담하기만 한 응어리가 발걸음을 자꾸 옥죄였는데 그 응어리가 바로 아이였음을 수근은 다시금 느낄수 있었다.  몸을 숙여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몸을 숙이자 가슴이 구겨진 은박지같이 조여 왔고 통증이 송곳처럼 옆구리를 쑤셨다.  아픔을 참으며 수근은 아이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옆구리의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이, 형언길없는 아픔이 수근의 전신을 훑고 있었다. 몸 한 귀퉁이가 이지러지는것 같은 통렬한 아픔이 전신을 휩쌌다. 하지만 놓칠세라 수근은 아이를 꼭 보듬어 안았다. 뼈아픈 사람들끼리 뼈 아픈 몸을 껴안고 뼈 아픈 울음을 울었다.   월요일: 상 실   비행기는 두시간만에 떠난지 11년이 되여 고향생각에 멀미하는 사람을 고향역에까지 실어다 주었다.  아직 스모그에 오염되지 않은 고향의 공기를 수근은 걸탐스레 들이마셨다. 공항에서 44선뻐스를 타고 장도뻐스역으로 향하던 수근은 생각을 고쳐 신문사역에서 내렸다. 허위단심 달려온 고향, 겨불내나는 가슴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했던것이다. 바로 랭면이였다. 그저 복무청사라는 지극히 평범한 이름 하나, 알뜰한 상표가 없이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랭면이라는 대명사로 자리매김 된 그 청사의 랭면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복무청사 랭면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는 수근은 건너마을의 만월처럼 둥근 얼굴의 처녀와 첫 대면도 랭면집에서 가졌었다. 첫 대면에서 두 사람은 렴치를 내려놓고 국수그릇을 깡그리 비웠다. 어쩌면 식성도 맞았다.  아이를 배였을때 남들은 시쿤것이 먹고싶다했지만 그녀는 시원한 랭면이 먹고푸다고 했다. 그래서 무거운 배를 안고 뻐스를 타고 와서 곱배기로 먹었던 그들이였다.   한국으로 나가면서도 마지막 날 랭면을 먹었다. 이제 이렇게 맛나는 고향의 음식을 언제면 먹어보랴는 심정에서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부터 수근은 왠지 참을수 없는 공복을 느꼈다. 기내식을 먹었지만 왠지 소리치며 달려드는 공복감을 달랠수 없었다. 고향에 당금 닿게 된다는 달 뜬 상념에 고향의 음식이 못견디게 그리워 졌다. 타향에서 내내 마음의 공복을 키운 탓이리라. 고향으로 돌아와서 첫 일과를 무엇부터 시작할가 생각이 많았던 그는 이제야 행동반경을 구한듯 랭면집으로 찾아나선것이였다. 마치 길 잃은 강아지 밟아 온 자기 냄새를 맡듯 수근은 익숙한듯 낯설은 이 시가지를 기억으로 헤맸다.  트렁크를 끌면서 묻고 찾고한끝에 도심의 광장에까지 대여 왔다.  광장 동쪽켠에 오래 된 랭면집이 있었다. 광장에서 동녘을 향한 순간 수근의 입에서 헛비명이 새여나갔다.  수근은 망창한 기색으로 그 자리에 얼어 붙었다.  수근이가 찾고저 하는 랭면집이 보이지 않았다. 랭면집으로 이름높던 그 건물이 오간데 없었다.  마술사의 주술에 걸린듯 건물은 사라져 보이지않고 아픈 몸체의 내장에 생긴 공동(空洞)처럼 텅 빈 공터만이 그를 맞아주었다. 공터는 새로운 기초를 다지느라 성마른 기계들의 소음만이 무성할뿐이였다.  수근은 공터를 마주하고 얼음기둥처럼 그렇게 서버렸다…     “연변문학” 2013년 5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9    고양이 똥 커피 댓글:  조회:2474  추천:12  2014-06-18
. 미니 소설 .   고양이 똥 커피   김 혁     주문한 커피가 들어 왔다. 너구리를 닮은 짐승의 꼬리를 한 손으로 치켜들고 다른 한 손은 커피잔으로 배설물을 받고 있는 상표가 붙었는 커피 포장함에는 “Luwak”이라는 영문자모가 새겨져 있었다. 그래 루왁이야. 허사장이 흥감스럽게 입을 열었다. - 이 루왁커피 한잔에 얼마 하는지 알어? 허사장이 좌석의 유일한 녀편집을 향해 물었다. 녀편집이 머리를 저었다. 총편님은요? 이 커피 한잔에 얼마 하실것 같아요? 허사장이 이번에는 주필을 보고 물었다. 문예지 주필도 맹랑한 기색으로 머리를 저었다. 오늘의 주인공 김작가가 한번 맞춰 보시지? 물음의 바통은 집요하게 나에게 까지 넘겨져 왔다. 나도 그만 시무룩하게 웃고 말았다. 모두들 그저 허사장의 입만을 지켜보았다. 조도(照度)가 낮은 레스토랑의 주홍빛 불빛아래 허사장의 얼굴이 흥감스럽게 번들거렸다. 올백 머리의 이 사장님의 협찬으로 궁핍한 문학지의 올해 상이 요행 개최되였고 그 상의 대상을 바로 내가 수상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축하주까지 마셨는데 사장이 2차를 가자고 또 부득부득 끌어서 함께 한 자리였다. 허사장이 손가락 다섯개를 좌악 폈다. 손가락에 낀 세개의 알반지가 유표하게 번뜩이였다. 50원이요? 아니 500원이야! 우와! 한잔에 500원이면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 커피값만해도 5천원은 나가겠네요. 좌석에서 감탄들이 자지러 졌다. 나는 그만 떨꺽하고 마른 침을 삼키고 말았다. 내가 받은 대상의 금액이 5천원이다. 불현듯 세계에서 제일비싸다는 이 커피를 들이민 사장의 심사가 뇌꼴스러워 났다.  루왁이 뭘로 만든 커피인지 알아? 허사장이 또 물음을 물어 왔다. 년세가 한참 위인 주필이 동석했음에도 자연스레 반말이 튀여 나온다. 녀편집이 머리를 저었다. 머리에 지른 나비모양의 장식핀이 떨어질듯 위태롭다. 그냥 머리만 저어대는 품이 웬지 바보스러운 구석이 보였다. 평소에는 예쁘고 순발력있는 편집으로 알았는데… 고양이 똥이야 네 고양이 똥이요 그래 고양이 똥이지 호동그래진 편집의 눈길을 보고 허사장이 재미나다는듯 흐억흐억 웃었다. 내력있는 커피였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그 제조과정에 대해 본적 있었다. 아무리 사람이 영악하기로서니 어찌 짐승의 똥을 먹을 생각을 했을가하고 기어이 자료를 찾아보았었다. 커피 포장지에 그려진 그 동물 이름은 “긴 꼬리 사향고양이”였다. 인도네시아 커피 농장에서 이놈들이 잘 익은 커피 열매를 따 먹고 사는데 소화 안 된 씨가 배설물에 섞여 나온다. 농장사람이 우연히 커피 씨앗을 골라 정제하여 볶아냈더니 특유한 향의 커피가 나왔고 이를 상품화한 한것이 바로 세상에 이름 떨친 “루왁”커피였다. 무슨 고양이 똥으로 만든 커피가 1kg에 미화 1천불이나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루왁”의 독특한 향과 맛이 사향고양이 체내에서 소화되는 과정에 아미노산이 분해되면서 특유의 맛을 내는것으로 설명했다. 꽃속의 꿀 성분이 꿀벌 위장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꿀이 되는것과 같은 원리라는것이다.     엄청난 고가이지만 정작 사람들이 이 해괴한 커피를 찾는것은 그 엄청난 가격때문이라 했다.  돈깨나 있는 사람들의 과시욕이 이 커피를 엄청난 가격임에도 찾게 만든다는것이다. 뽀이가 직접 와서 커피를 끓여 주었다. 커피메이커에서 보글보글 김이 피어오르면서 룸안에는 야릇한 향기가 자욱하다.   하지만 사장의 내내 흥감스럽고 상스러운 말과 몸짓들이  향기로운 커피의 향을 밀어내며 룸의 기운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질감이 한 가슴 가득했지만 협찬자의 흥을 깨는것도 례의가 아닌것 같아 나는 없는 화제를 만들려 했다. 고양이를 좋아한 작가들이 적지않습니다. 그래요. 좋지요. 고양이 한켠에서 졸고있던 주필이 몽롱하게 말꼬리를 잡는다. 잡지사를 위해 협찬 한푼이라도 받아오려 자신의 여직 지켜왔던 체통을 죽여가면서 목덜미를 낮추는 늙은 주필님이시다. 헤밍웨이도 마크트웬도 모두 고양이를 좋아했답니다. 디켄즈도 애묘인이였지요. 나는 기왕 고양이똥 커피를 마시는 자리라 고양이로 화제를 만들려 했다. 이쁜 편집님은 우리 회사에 들어오지 않을라나? 그 용모가 아까우이. 문학이 뭐 밥을 먹여주나?” 녀편집과 이죽거리던 허사장이 마지못해 나를 향해 응수했다. 디켄즈가 뭔데? 그것도 커피인감? 얼마짜리 커피인데? 에이 롱담도 심하시다 주필이 안면근육을 애써 동원해가며 웃었다. 디켄즈가 누군지 내가 알턱이 있나?” 디켄즈를 몰라요? 대단한 영국작가인데 녀편집도 참지못하고 한마디 했다. 몰라 허사장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난 무슨 커피 상표인줄 알았지. 그리고 마크 트웬은 또 누구고? 그것도 커피인가? 허사장이 흐억흐억하고  또 그 축축한 웃음소리를 냈다. 주필은 입 한번 다시고나서 다시 가수(假睡)상태로 들어 갔고 나는 나대로 단절된 대화를 이으려고 애썼다. 왜서였던지 나는 디켄즈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시대의 빈곤과 부패에 대한 신랄한 비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족의 속물근성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했던 디켄즈였다. 디켄즈는 밥 딜런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웠는데 사랑하던 고양이 밥이 죽자 장신구에 고양이의 이름을 새겨 책상우에 놓아두었답니다. 뭐 고양이 이름이 밥이라 푸하하” 사장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런 감수성으로 디켄즈는 “두도시의 이야기”와 같은 대표작을 써냈답니다. 흐억흐억, 고양이 이름이 밥이라 웃긴다 웃겨… 디켄즈는 영국에서 쉑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명한 작가로… 고양이 이름이 밥이라니 흐억흐억, 밥이 먹구 싶네. 배고파 히히히. 드디여 커피가 다 끓었다. 김작가 한번 맛보시지 나는 시음(試飮)을 하듯이 커피를 한모금 입에 물었다. 나름 커피 매니아였지만 루왁만은 처음 마셔보는 나였다. 이때 사장이 커피를 입에 넣고 숭늉이라도 마시듯 훌룰훌룩 입가심을 했다. 드디여 내 안쪽에 억눌려 있던 이질감들이 토사물처럼 터져 나왔다. 우왁!하고 나는 그만 1킬로에 1천불을 한다는 루왁커피를 입으로 내뿜고 말았다.     “장백산” 2014년 1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8    련꽃밥 댓글:  조회:2790  추천:19  2014-05-31
《길림신문》 제1회《두만강》문학상 소설본상 수상작품 . 단편소설 .   련꽃밥   김 혁       택시가 한참 달려서야 나는 사진기의 건전지가 다 떨어져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마을을 찾아서 사진 한장 남기려 했는데 건전지가 다 떨어지다니… 간밤에 고향으로 간다는 흥분에 충전을 깜박한데다가 연도에서 좋은 풍경들을 보고 마구 눌러댄터에 사진기의 건전지가 수명을 다한것이다. “이 걸로 찍어요. 아빠” 이마살을 모으는 나에게 아들애가 사진기를 내밀었다. 플로라이드 사진기다. 장난감이지만 제법 인회되여 나올수 있는, 즉석사진기였다. 귀국해서 아들애한테 세상 그 무엇도 다 사줄테니 뭐가 갖고싶은가 하니 플로라이드 사진기라했다. 촬영쪽에 애호가 있는 나를 닮긴닮았나보다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녀석의 반급 애 하나가 역시 그 아비가  외국에서 돌아오면서 사온것이 플로라이드 사진기였던것이다. 그자리에서 인화되여 툭 떨어져 나오는 사진에 녀석들은 어지간히 신기했던 모양이다. 돌생일을 쇠자 일주일도 못되여 출국한 이후, 이번에 처음으로 보는 나의 아들이다. 가무스름한 피부에 놀란듯 망울진 눈동자에 외겹눈꺼풀가지 녀석은 나를 꼭 빼닮았다. 그동안 할머니의 집에서 지내다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운명하자 처가편 이모의 집에서 지냈고 그네들이 모두 출국하자 또 학교에서 꾸리는 단친가족숙소로 전전하면서 지내온 불쌍한 녀석, 애련한 녀석은 공항에서 두눈을 끄먹거리며 선뜻 나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아홉살배기로서는 무언가를 빨리 알아버린듯한 울울한 그 눈동자가 나를 슬프게 했다. 그 눈동자를 보며 나는 아들애에게 뭔가 보상을 주리라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6장밖에 찍지 못하는 플로라이드의 사진기도 필림이 겨우 한장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웃으면서 아들애의 초동머리를 만져주었다. “련화마을로 가는 뻐스, 취소한지 오랩니더” 련화마을로 간다는 말에 모두가 머리를 저었고 그러다 어렵게 설복해 차머리를 돌린 택시 기사가 말했다. “왜겠어요? 이제 그 마을도 페촌이 됐는걸요 뭘” 백미러로 당혹이 서려드는 나의 얼굴을 힐긋 쳐다보며 기사가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뽕밭이 바다로 변한다”는 십년이 가까운 아홉해가 지났으니 고향은 많이 달라질법도 했다. 한때는 제법 번성을 자랑했던 마을이였다. 마을앞의 커다란 자연 못에 련꽃이 무성해 련화촌으로 불리던 마을이였다. 어쩌면 내 안해의 이름도 련화였다. 고향마을에는 녀자고보면 태반은 련화라는 이름을 달고있었다. 그래서 “작은 련화”, “큰 련화”, “앞집 련화” ,”뒤집 련화”, 지어 “못생긴 련화”, “애꾸눈 련화”로 구분하기까지 했다. 모두다 련꽃처럼 예쁘게 꽃피고 번성하게 열매맺기를 팔자소관에 새겨넣은 결과였다. 련꽃같은 안해와 나는 함께 출국의 길에 올랐다. 밀입국으로 허위단심 오른 길이 어쩌면 생각밖에 무난히 틔였다. 나는 해산물 류통회사 창고에서 물건을 싣고 나르는 일을 했다. 추운 랭동창고에서 일했지만 한 묶음에 수십킬로나 되는 랭동어물을 짐져 나르려니 땀이 등줄기를 적셨다. 그리고 어깨 부들기가 까져 피가 배여 나왔다. 촌에서 나서 자랐다지만 향의 문화소에서 책상물림으로 일했던 나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였다. “이궁, 이럭케 하구 밥을 얻어 먹울수 있겠슴둥?” 사장님이 개그 프로에서 마냥 비하의 상대로 삼는 연변방언을 흉내내며 무거운 짐을 지고 행사장의 풍선아치처럼 허둥대는 나의 엉뎅이를 발로 찼다. 어깨의 피가 딱지로 앉고 다시 멍으로 자리잡을때에야 나는 간신히 일에 적응할수 있었다. 안해는 초밥집에서 일했다. 해종일 빙빙 돌아가는 회전초밥집의 식탁에서 밀밀 밀려나오는 크고작은 그릇씻기를 멀미나게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한번 안해의 얼굴이 매스컴을 탔다.  불량제품을 고발하는TV프로에서 바퀴벌레가 기여다니는 초밥집의 위생상태를 몰카로 찍어 고발한것이였다. 구청에서 벌금을 부과했고 초밥집 체인점 사장의  얼굴까지TV에 나왔다. 그런대로 사장님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를 했지만 하지만 그 뒤에 멍하니 섰는 안해의 얼굴은 력력히 그대로 나왔다. 그 와중에 안해의 불법체류자신분도 드런났고 안해는 강제송환조치를 당했다. 혼자 서울에 나 역시 불법체류자의 신분이 드러날가 전전긍긍했다. 그 약점을 옴켜쥔 악덕업주에게서 연거번겨 로임체불을 당하했다. 그 성화를 피해 경남의 한 치벽지에까지 내려갔다. 그곳에서 한우를 키우는 농장에서 일했다. 고향마을에는 소를 키우는 집이 많았으므로 다른 업종에 비해 이 일이 그나마 내게는 쉬웠다. 인차 안해는 재입국했다. 불법체류자로 송환되였던 안해는 이번에는 위장결혼이라는 험로를 택했다. 그런데 당시 인민페6만원이라는 거금을 받고 위장결혼을 허락했던 남자가 출국이 성사되자 정식 결혼을 제안했다. 지지리 늙도록 결혼의 관문을 넘지못했던 그 로총각은 한사코 안해를 놓아주지 않았고 그 횡포와 공갈을 못이겨 결국 안해는 그에게 눌러앉고 말았다. 자국에서도 타국에서도 보호를 받을수없는 위법의 선택을 했으니화를 스스로 자초한 셈이였다. 역시 스스로 덫에 오르는 이 길을 알면서 묵인했던 나자신도 그 누구를 탓할수 없었다. 앙다물다 부러진 이발을 자기배속에 삼킬수밖에 없었다. 안해는 그 남자와 쌍둥이 남자애까지 낳았다고 했다. 역시 출국해 타지에서 앞갈망뒤갈망하고 있던 련화마을사람에게서 그 소식을 전해 듣던 날, 건초더미에 쇠스랑이를 꽂아 넣은채 나는 그 자리에 못박혀 버리고 말았다. “왜 그래 김씨?” 농장 주인이 다가와 물었다. “눈에 티가 들었슴다.” 나는 고개를 탈며 눈가로 흠씬이 배여나온 이슬 멀기를 지웠다.   안해는 련화마을에서 첫손에 꼽히는 예쁜 녀자였다. 마을 문화관에서 일하며 그림솜씨에 사진찍는 재주도 갖고있는 나에게 안해가 먼저 마음을 열었다. 마을앞 련못가가 우리들의 밀회장소였다. 저녁놀이 지는 련못가에 그녀를 세우고 찍은 “황금 련못”이라는 사진작품은 진에서 조직한 향촌문화경색대회에서 금상까지 받았다. 금상으로 “갈매기”표 사진기를 상금으로 받아안았다. “이제 우리 행복한 나날들을 낱낱이 기록합시다” 상으로 받은 사진기를 그녀앞에 자랑했고 그녀는 옥석이라도 만지듯 조심스레 사진기를 만지며 기뻐마지 않아했다. 그날 밤, 련꽃잎이 늠실이는 련못가에서 안해는 벙그는 꽃잎같은 몸을 나를 향해 열었다. 귀국해 그동안 친척집에 맡겨둔 짐들을 찾다가 그 사진을 다시 보았다. 사진은 겉봉에 “향선진사업자라”는 글발이 새겨진 낡은 노트의 갈피에 꽃혀 있었다.  사진은 색이 바래지려하고있었다. 하지만 사진속 련꽃은 아직 아름다웠고 녀인의 미소도 아직 채 바래여지지 않고있었다. 사진속 련못을 지켜보노라니 또 다른 련못이 늠실거리며 나의 동공에 나의 뇌리에 차올랐다. 한우농장 주인은 서울에 계시는 아버지를 늘 외웠다. 산수(傘壽)의 년세인 아버지는 유명한 동양화 화가라 했다. 여태 서울에서 예술활동을 하던 아버지가 이제 거동이 불편해지자 굳이 번화한 도시에서 모셔오려 했고 로인장을 위해 마당에 특별히 련못을 만들기로 했다. 로인장이 련꽃을 많이 그렸다고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곳에도 련꽃이 린근에서 알아주는 특산이여서 해마다 련꽃축제까지 열리고 있었다. 들에 촉촉하고 따뜻한 기운이 돌자 주인장은 뜨락에 련못공사를 시작했고 공사에 나도 동참했다. 주인장이 로프줄을 늘여 못의 륜곽선을 표시했다. 그 선을 따라 석회가루를 뿌려 원하는 련못의 형태를 표시했다. 포크레인까지 동원되여 굉음으로 동네를 깨우며 마당의 언땅을 노크했다. 포크레인의 큰 손이 벌레들이 사는 땅속을 짚어내려가자 깊고 어두운 세계가 층층이 드러났다. 기계가 갈수 있는 마지막 깊이에서 주황빛 진흙바닥이 드러났다. 거기서부터 공기는 시린 기운을 뿜었다. “련못을 만들려면 일조량이 좋은 곳이 적당하지.” 그 무슨 비법을 계수해주듯이 주인장이 련못공사를 벌리고있는 우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주위에 해볕을 가리는 나무나 집채들이 있는곳은 피해야지, 나무가 우거지며는 잎이 련못에 떨어져 썩어들면서 수중의 산소 부족과 물을 오염시키게 되는거요. 될수록 깊이 파야 돼. 련못의 깊이가 낮으면 련못 전체가 얼어 버릴수 있다고” 부친을 위한 련못을 만들기위해 공사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것 같았다. 포크레인이 딱지를 뗀 구덩이속에 들어가 여럿이서 쟁기를 들고 파고 다져서는 땅을 편평하게 고른뒤 비닐 시트지를 깔았다. 강화유리섬유로 만들어 진것이라는 시트지는 내구성이 강하고 동파의 념려가 없어 저온에 강하며 쉬이 썩지 않는다고 했다. 시트지 위에 세멘트를 입혔고 마르기를 기다려 방수제를 발랐다. 주인장이 아침마다 강으로 나가 하나 둘 정선하듯 주어 온 무늬결 고운 호박돌로 련못 테두리를 쌓고 세멘트로 발라 주었다. 련꽃 종근을 가득 싣고와 못에 심었다. 날이 한결 풀리자 못에 고기들을 넣어주었다. “흔히들 못에 붕어를 넣지만 피라미도 괜찮지. 갈겨니도 좋아, 피라미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피라미에 비하면 눈이 크고 검지. 몸 량측에는 검은 자주색 세로 띠가 있다네, 저기 보이지 저 놈” 주인장이 련못속을 굼니는 붕어, 피라미, 갈겨니를 짚어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벌거숭이가 되여 무법자처럼 뛰놀던 고향마을의 강을 떠올렸다. 그렇게 인공련못을 만드는데 옹근 봄과 여름을 보냈다. 농장마을 언덕우의 산수유나무잎새가 한결 푸르러 지자 련못에 수련의 둥근잎이 둥둥 뜨기 시작했다. 둥근 잎사이로 물고기들이 물을 굽어보는 이들에게 먹이를 달라고 수면에 호화롭게 떠올랐다. 그리고 드디여 련못에서 분홍빛 수련이 꽃을 피웠다. 꽃잎속에 금빛 수술이 화려한 수련은 귀태가 나고 제법 운치가 있었다. 잠못드는 밤이면 나는 풀벌레들의 울음이 가득한 련못으로 나가곤했다. 벌레울음소리속에 나는 밤사이 수련이 몇 송이나 벙글었는지 헤여보군했다. 어느 비 오는 밤, 나는 또 잠못 이루고 련못가로 나왔다. 이제 막 피어나는 련꽃이 송얼송얼 비를 맞고 있다. 툭 또르르르.. 꽃잎에 구르는 물방울이 은빛으로 달려와 꽃받침에 모였다가 련잎에 떨어진다, 또르르 또르르 비방울은 굴러 련잎 가운데로 모이고 있었다. 비물이 고여 무거워지면 련잎은 스스로 머리를 숙여 자신을 비워내고 있었다. 비우지 않고서는 다시 채울 수 없음을 나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를 돌아보았다. 비울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채워만 온 내가 부끄러워졌다. 무엇을 잃고 무엇을 잊고 살았는지도 모르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련꽃은 피였는데 완상(玩赏)할 이가 따로 없구만” 주인장이 다가와 우장도 없이 얼빠져 서있는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련못은 만들어졌지만 주인장의 부친 로화백은 고향에 오지 못했다. 련못에 꽃이 잎새를 펼치기에 앞서 그만 붓자루를 떨구며 눈을 감고 만것이다. “’련꽃은 눈으로 들여서 마음으로 느끼는 꽃이다.’고 련꽃을 좋아했던 선친은 말씀하셨네. “ 주인장도 나처럼 비오는 날 잠못이루고 감회에 젖어 련못가로 나온것이였다. “다가서기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는 꽃이지만 또 많은 가르침을 주는 꽃이라 선친은 말씀하셨지” 역시 화가의 길을 걸었다 접었다는 환갑년의 주인장은 평소의 육두문자를 날리던 농장주답지 않게 깊은 화두를 꺼내들었다.  “련꽃을 마음에 들이면 번뇌를 씻은 평정한 마음을 가질수 있다고 선친은 말하셨네. 련꽃은 비록 진흙탕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잎과 꽃은 오히려 더욱 정갈하지. 무욕의 평정한 마음은 무한한 안락과 평화의 나래를 펼쳐준다는데 선친께서 가르치셨던 그 간단한 리치를 난 여태 실천해 오지 못했지. 서울 최고의 화랑을 꿈꾸었던 내가 시골로 내려와 촌 무지렁이가 되여서 그리고 련꽃을 완상할줄 아는 이들을 보내고서야 이제야 늦게나마 느낀바라네.”  “우리 연변에도 련이 난답니다. 두만강 홍련이라고” 내가 그 감흥에 물젖으며 답했다. “그럴테지,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고향의 것이 더 아름다울것이네” “이보게 연변 나그네, 이제 고향의 꽃을 완상하러 가시게. 더 늦기전에 말일세.” 그렇게 말하는 주인장은 우리들의 로임을 체불하는 악덕업주와는 달리 선친을 닮은 탁월한 예술인 같기도 하고 전설속 련못가에 칩거해 사는 철인(哲人)같기도 해 보였다. 힘든 나날, 련못의 풍경과 그 고즈넉한 시간, 그리고 순백의 꽃송이들로 텅 비였던 내 가슴은 그득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는개비(안개보다는 굵고 이슬보다는 작은 비)가 내렸고 는개비가 내린 며칠후 마을에서는 련꽃축제가 열렸다. 련이 마지막 꽃 입술을 뗄때는 반드시 는개비가 온다고 주인장이 말했다. 린근마을에서는 물론, 서울에서도 련꽃체험을 즐기려는 가족들이 삼삼오오 몰려 왔다. 마을 회관마당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마을의 농업경영인들과, 생활개선회, 마을부녀회원들의 주최로 련꽃의 잎, 줄기, 꽃, 열매를 사용해 각종 밥, 떡, 차, 죽, 짱아찌 등의 음식 만들기로 이어졌고 련꽃잎 미용팩 시연회도 개최했다.   날 찾아 오신 내님 어서오세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라이라이야 어서오세요/ 당신의 꽃이 될래요.   회관지붕에 달아 맨 스피카에서는 트로트의 녀왕 장윤정의 노래가 들려왔다.   사랑의 꽃씨를 뿌려 기쁨을 주고 서로 행복 나누면 라이라이라야/ 당신은 나의 나무가 되고 라이라이라야/ 나는 당신의 꽃이 될래요.   마을은 숫제 명절기분이였다. 농장주인이 이날은 모든 이들에게 휴가를 주어 나도 행사장으로 나갔다. 련꽃밥을 시식하는곳에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나는 회장에서 나누어주는 일회용 식기를 들고 줄에 섰다. 련꽃잎을 따서 련잎으로 감사 쪄낸 련꽃밥은 “신장기능을 보강해주고 해독, 지혈, 설사에 효능이 있는것으로 알려져 최근 웰빙붐을 타고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안내원이 설명을 거듭했다. 사람들은 줄지어 련꽃과도 같은 분홍빛 유니폼을 입고 “농장마을 련꽃축제”라는 띠를 가슴앞에 두른 도우미들이 퍼주는 련꽃밥을 식기에 받았다. “맛있게 드세요” 도우미가 방긋 웃으며 련꽃밥을 한주걱 봉고밥으로 퍼담아 주었다. 련꽃몽우리가 터지는듯한 은근하면서도 상냥한 목소리, 왠지 그 소리가 귀에 익었다. 흠칫 소리의 임자를 쳐다보았다. 그순간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나의 놀라는 거동에 목소리의 임자도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밥주걱이 떨어져 나갔다. 둥근 련꽃을 담은 그 둥근 얼굴이 중등을 자른 연의 구근처럼 시르죽었다. 얼굴은 늦가을의 련꽃처럼 함북 일그러져 들었다. 그녀가 유니폼 자락으로 와락 얼굴을 감싸쥐였다.   어디서 무엇하다 이제왔나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라이라이야 어서오세요/ 당신의 꽃이 될래요.   스피카에서 경쾌한 노래는 그냥 울리고 있었다.    마을회관앞에도 련못이 있었다. 련못의 지름은 어느 학교의 운동장만할지도 모르겠다. 그 가장자리에 가만히 서서 바라보면 반대편의 끝자락이 아드막히 느껴지는 정도의 크기이다. 그 끝에서 나는 회관쪽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안해는 련꽃씨처럼 작게 보였다. 행사장의 귀퉁이에 숨어서 바람에 쓸리는 련꽃잎처럼 비칠거리며 사라지는 안해의 뒤모습을 지켜보다가 저도모르게 련꽃밥을 한입 떠 입에 넣었다. 향긋한 향이 푹상 올라왔다. 한입 가득 환장하게 향기로운 실의를 머금고 울걱거리다 나는 그만 목이 꺽 메여 가쁜 눈물을 쏟고 말았다. 눈물의 련꽃밥을 먹던 그날 밤 나는 또 잠들지 못하고 련못가로 나왔다. 련잎들 사이로 올라온 분홍빛 꽃봉우리들이 어딘가를 향해 가리키는 손짓 같았다. 나는 그 손짓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가기로 했다. 드디여 귀국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고향의 련못은 스스로 꽃잔치를 벌리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렸던 나는 주체못하고 혀끝으로 터져오르는 탄음(彈音)을 금치 못해 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려 사람 하나없는 호젓한 마을에서 외로움에 부대끼면서도 련꽃잎은 만개해 있었다. 그동안 타향의 련못가에 앉아 처음에는 수련과 붕어며 피라미며를 보고 있지만 나중엔 련못 속에 비쳐진 구름이며 별이 보였고, 그 다음에는 얼굴 찌프린 내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안해의 둥근 얼굴과 얼굴조차 익히지 못한 아들애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기도 했다. 타향의 차거운 바람이 일어 련못속 풍경을 물살이 곧잘 헤살지군했다. 그리운 영상들은 오간데 없이 흐려지면 물살을 타고 외로움이 밀려 왔다. 그동안 나는 련못의 주인장보다 련못을 더 즐겨 찾았었다. 비록 내가 일군 련못이지만 사실 잠시 머물다 돌아가는 나는 이 련못의 주인이 아니였다. 주인일 수가 없는것이다. 그저 돈을 바라고 고향을 내쳐두고 온 나는 길떠난 나그네이고 어쩌면 그들에게는 귀찮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련못의 실제 주인은 그 곳에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는 그들이였고 나는 다만 그 남의 련못에서 잠깐 완상을 흉내내는 어설픈 주인이였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드디여 나의 련못가에 이렇게 섰다. 고향의 련꽃을 보겠다는 마음 하나 껴안고 길을 나섰던 나는  손대면 톡 터질듯이 봉싯한 련봉오리를 점도록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버린 련꽃은 잘도 피여나고 있었다. 금수술 빛나는 해를 품고 강건한 련잎 중심에서 튼튼한 꽃대가 올라왔고 꽃대는 푸른 하늘을 향해 천연한 자태로 웃고 있었다.   두만강 홍련이라는 학명의 이 꽃은 일억 삼천 오백만년전에 벌써 이곳에 구근(球根)을 묻고 가지를 치고 꽃잎을 펼쳤다고 했다. 방석만한 련잎이 못을 가득 덮은 사이사이로 청초한 련꽃이 고개를 비죽 내밀어 세상을 둘러본다.    련잎은 새가 군무를 하듯 하늘 향해 날개를 펴고 있었다. 그로서 련꽃은 어디론가 날아가려는것 같기도 했고 금방 날아와 날개를 접으려는것 같기도 했다. 어떤것은 금방 피여있고 어떤것은 벌써 다 져서 련밥을 익혀가는것도 있었다. 이제 물속에서 얼굴은 내밀고 어른 손만한 봉오리를 쳐든것도 있었다. 그 여린 꽃을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할가 싶었다.  두만강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련못은 향기로 흔들렸다. 련향이 천지에 그윽하다. 련꽃향은 몸으로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다시 맡아보니 련꽃 향기만이 아니었다. 물냄새, 진달래꽃 냄새, 버드나무의 냄새, 이 냄새들은 련꽃향기에 섞이어 바람이 들깨워주는 기억에 따라 낯선듯하면서도 익숙한  향기가 되여 나의 코속을 마음속을 헤집었다. 이 환장할만큼 지극히도 친숙한 향기는 내 고향마을의 냄새였다. 련못에서는 다양한 수서생물들이 터를 잡아 서식하고 있었다. 물방개와 소금쟁이 같은 곤충들이 그리고 마름과 개구리밥과 물달개비와 부레옥잠 같은 물살이 식물들이 련꽃과 함께 천년만년 살고지고있다. 련잎이 수면을 촘촘히 덮은 못은 뭇 생명체들의 공동체적인 삶의 현장을 지키며 살고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아름다운 못을 버리고 뿔뿔이 헤여져 떠났던것인가? 련못은 멀리 다른 곳의 련못에서 서성이며 못난 자신을 비추며 옹색하게 살아온 나를 돌아보게 하였다. 아들애가 련잎을 해빛 가리개로 쓰고 신바람 나게 달려 왔다. 고추잠자리가 놀라 푸드득 날개짓을 했고 청개구리도 풍덩 못에 뛰여든다. 아들애는 나에게 플로라이드 사진기를 내밀었다. 이 풍경을 놓칠수야 없지하고 나는 조촐한 사진기일망정 못을 향해 조리개를 맞추며 셔터를 눌렀다. 한여름 정오의 강렬한 해살이 련잎에 촘촘히 떨어져 내린다. 해살에 반사되는 눈부신 수면에서 련꽃은 더욱 소담스럽고 청초해 보였다. 어쩌면 저리 잡념도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가. 툭!  사진이 떨어져 내렸다. 나는 사진을 꼭 손아귀에 품었다. 그리고 가슴앞에 대였다. 빨리 인화되라고, 그리웠던 그 모습을 빨리 현시하라고. 내 가슴에서 련꽃 한점이 바야흐로 피여나고 있었다.    “길림신문” 2014년 3월 27일 ​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꽃 - 장윤정 ♬
7    피안교 (彼岸桥) 댓글:  조회:2983  추천:23  2012-02-03
 2011년 “연변일보” CJ문학상 수상작품  . 단편소설.   피안교 (彼岸桥)    김 혁       새로축조된다리를 바라보며그녀는고향의옛다리를떠올려보았다. 고향마을과 시가지를 련결해주는 하늘다리, 굵다란 동아줄에 의지해 그 무슨 작은 요정들이 건너는 동화속 다리인양 반공중에 걸려서는, 바람부는 날이면 단오날 그네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던 하늘다리… 그 다리를 활용하지 않으면 십여리 길을 에돌아가야 했기에 마을사람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그 다리에 몸을 싣곤 했다. 아이들은 그 다리를 건너 시가지 공원으로 희귀동물을 보러 갔고 젊은이들은 그 다리를 건너 시가지의 비디오방으로 한국드라마를 보러갔고 로인네들도 그 다리를 건너 시가지의 장터로 장보러 갔다. 어느 날인가 결국 그녀도 그 다리를 건너가고 말았다. 아버지의 굳은 만류도 물리친 채 손잡고 하늘다리를 건너 비디오방을 다니며 사랑이 싹튼 남편과 함께 시가지의 학교로 전근해 갔다. 민영교원이라는 서러운 홀대의 딱지를 달지 언정 겨우 학생 몇몇에 우사를 방불케 하는 촌마을 학교가 아니라 시가지의 층수 높고 채광 좋은 교실에서 귀티나는 시가지애들을 상대로 교편을 잡고싶었다. 그리고 시가지의 학교에서 민영교원이라는 딱지를 겨우 벗은지 얼마 안되여 그녀는 이번에는 시가지의 큰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고향으로 향한것이 아니라 출국붐의 장대한 대오에 합류해 한국으로 날아갔다. 남편의 굳은 만류를 물리치고서였다. 그렇게 한국에서13년을 지냈고 겨울이 다가오는 처처(凄凄)한 계절. 그녀는 드디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시가지로 들어오면서 기억속에 아련한 다리를 지나다 그녀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경아성이 튀여 나왔다. 어머, 다리가 변했네요. 예, 1억이나 부어서 다시 세웠답니다. 이제 때깔 많이 변했죠 이곳도… 택시기사는 분명 오랜만에 돌아오는 귀향객에게 관광안내원처럼 자상히 설명해 주었다. 쌍방향6차선도로, 숨통 트이게 훤한 다리로 차량이 마음껏 오가고 교두에 곁들인 부속광장에는 손으로 지구를 보듬는듯한 추상의 조형물이 솟아있는 운치있는 다리를 그녀는 차창밖으로 넋을 잃고 내다보았다. 타향의 품삯팔이에서 온몸 골골샅샅에 밴 채 응어리로 남아도는 피곤을 풀 사이도 없이 그녀는 다리부근에 음식가게 하나를 차리려고 돌아쳤다. 그동안 서울의 갈비집에서 일하면서 어깨넘어로 배웠던 재간으로 갈비집 하나를 차릴 예정이였다. 10년간 손톱 벗겨지게 일한 대가로 두둑해진 염낭사정으로는 가게 하나를 내고 운영하기에는 족했다. 가게를 내줄 건물주인에게 임대료를 내러 가다 그녀는 지금 강변도로에서 그만 용트림쳐 오르는 추억에 발길이 묶인것이였다. “10년이면 뽕밭이 바다로 변한다”더니 이 자그만 시가지는 그새 많이 변했다. 불과 십여년 사이에 꽤 큰 도시로 변하고, 사람들은 터져날듯 많아지고 사람들의 생활도 뒤집힐듯 변해버렸다. 변한건 시가지뿐이 아니였다. 그녀의 신상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었다. 결혼생활이 결국 조종을 울린것이였다. 촌 마을 한 학교의 체육선생이였던 남편은 잘 생긴 얼굴, 큰 키에 적당히 단련된 몸을 갖고 있는 그녀의 첫사랑이였다. 그동안 “기러기 아빠”의 생활에 쭉줄린 나머지 안해더러 돌아오라고 전화에서 매일이고 닥닥질을 했던 남편은 10년채 되던 해에 더는 참아내지 못하고 결별을 선포했다. 남편의 결별선언을 듣고 뿔없는 소처럼 일하기만 했던 그녀는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병가를 내고 앓아 누었다. 서로 팽팽히 당겨대던 희망의 줄다리기 한쪽 끝을 남편이 홀연 놔버렸기때문에 그녀가 뒤로 자빠진건 당연했다.   귀향해서 맨 처음 한 일이 어쩌면 리혼수속이였다. 딸애의 부양권은 남편이 가졌다. 그동안 엄마라는 존재는 추석이나 설명절때만 걸려오는 전화속의 목소리로만 알아왔던 딸애도 아빠쪽을 원했다.그녀는 주저앉고 싶을 만큼 아득해졌다. 이런것인가? 이런것이였던가? 내가 바랬던것이? 그녀는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잉어처럼 싱싱한 청춘에 고향을 떠나 이제 단물 빠진 껌처럼 질기고 뻣뻣해 보이는 얼굴로 돌아온 그녀는 마흔이 훌쩍 넘은 터수의 중년이였다. 그저 무양하게 곧게 뻗어 있는 다리라 믿었던 하늘다리에서 홀연 돌개바람을 만났을 때처럼 그녀는 당혹스러웠다. 발아래로는 아직도 건너야할 거대한 협곡이 밑도 끝도 가늠하기 어려운 깊은 아가리를 벌린 채 존재하고 있었고 이제 그 다리를 어떻게 건너얄지 손잡아줄 사람도 없는 이 순간 아찔한 절망감과 당혹감으로 그녀는 그저 상실감의 동아줄만 부여잡은채 얼어붙고 말았다. 아이의 얼굴만은 한번 보여달라고 간청했다. 두살때 떠났으니 이제 열다섯살 된 딸애를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피자집에서 딸애와 만났다. 쭈볏거리며 자기앞으로 다가온 딸애의 어깨를 겹치고, 등허리를 부여잡고 다독였다. 자기 키를 넘게 훌쩍 웃자라버린 딸애를 의식하며, 어쩐지 자기 피붙이와도 서먹서먹해진 자신을 의식하며 그녀는 또 한번 눈물을 쏟으려 하고있었다. 아무말도 없이 피자의 가녁을 야금조금 뜯어먹는 딸애를 그녀는 자우룩이 젖어드는 눈으로 내내 지켜보았다.딸애는 꼭 처녀적 자기를 닮았다. 볼록한 이마에 초승달눈이며 가끔 코잔등을 찡그리는 모습까지도… 덩그마니 쌍꺼풀 진 딸애의 큰 눈은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그 눈은 남의 눈을 맞추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고있었다. 상처입고 두려워 떠는 짐승의 눈이 저럴가. 불안함이라고도, 슬픔이라고도 할수 있는 그 눈동자의 떨림에 그녀는 마음이 저릿했다. 깨끗한 차림새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손이 가지 않은 아이, 사랑의 손길 하나 결여된 어줍은 아이를 그녀는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피자 접시를 비우고나서 딸애는 몸을 일으켰다. 저녁자습을 나가야한다고 했다. 그런 딸애에게 그렇다할만한 위안의 말 한마디도 못해 주고 그녀는 그저 응 가봐!하고 응낙하고만 말았다. 그러다 딸애에게 주려고 지갑에서 챙겨왔던 돈다발이 그제야 생각나 딸애를 쫓아 나갔다. 어스름이 내리는 길거리에서 딸애는 어느새 어둠에 스며들고 없었다. 목덜미를 타고 체온을 낮추는 밤바람에 몸을 옹송그리고 그녀는 코잔등을 찡그린채 멍하니 피자집앞에 서버렸다. 가슴이 저린지, 쓰린지, 슬픈지, 그저 멍하게 얼빠져 있었다. 이런 꼴 바라고 내가 그렇게 긴 시간 타향에서 그렇게 독기 하나 품고 손 지문 지워지도록 돈을 벌어왔던가! 그녀는 화대를 채 못받고 손님을 쫓아나온 뒤안길의 녀자처럼 돈다발을 손에 든채 길녘에 서서 그만 서럽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길가는 사람들의 의뭉스런 눈길들이 그녀를 바라고 몰부어졌다.   이 십수년간 그녀는 붐비는 다리를 건너는 차량처럼 종착역이나 기착지 같은것을 생각할 사이도 없었다. 그저 다리를 꼭 지나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고향의 현실을 망각한채 머리속에서 홀로 축조되고있는 판타지속 다리를 겅중거리며 허위단심 넘었다. 그동안 그녀는 그렇게 희망과 욕망의 이차선 다리우에 보잘것없이 서 있었다. 한국에 가서 맨처음 갈비집에서 일했다. 분필을 고누잡고 칠판에 판서하던 손으로 기름이 진득하게 달라붙어 번지는 하얀 그릇의 전두리를 행주로 수세미로 박박 문지르고 세제를 듬뿍 풀어 씻고 또 씻었다.얼굴이 불판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온 몸이 땀에 젖어 몸에서 꿉꿉한 냄새가 날 정도로 일했다. 주인장아낙의 시푸르뎅뎅한 얼굴과 거칠고 천한 언사가 마음에 들지않았지만 그런 일자리라도 차려진것이 그녀에게는 감사한 일이였다. 일을 마치고 탕개풀려 마주한 식사시간, 주인장이 손님이 먹다남긴 갈비를 밥그릇에 담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먹어. 먹을만해. 코잔등을 찡그린채 잠간동안이나마 그녀는 아득해졌다. 그녀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주변 사람들, 그들은 호기심과 홀대를 가득 담은 두눈의 초점을 그네들 형용어로는 “옌벤”에서 왔다는, 툽상스러운 함경북도 말씨를 구사하고있는 어딘가 어리쳐 보이는 그녀에게 모으고 있었다. 절망과 락담에 물젖어 그 손님들이 뜯다만 갈비 한접시를 단숨에 다 먹어버렸고 그런 그를 가게주인은 그냥 괴물보듯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동물원 철창안쪽에서 먹이를 먹는 더러운 동물이라도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밤늦게 일을 끝내고 월세를 맡은 자취방에 돌아왔다. 몸 하나 겨우 뉘일만한 작은 방에 관속 시체처럼 반듯하게 누워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지금 생각하면 가슴속에 일산화탄소가 들어차는것 같다. 햇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환기도 통풍도 되지 않아 늘 숨막히던 반지하 자취방. 그녀는 침침한 거기 에 처박혀, 조도(照度)낮은 알전구의 빛을 바라고 수선스레 날개를 터는 날벌레들과 함께 하며 고향의 물소리를 이명(耳鸣)으로 들었고 그 우에 가로놓인 하늘다리를 함께 건넜던 남편을, 그 다리가 있는 마을의 학교에서 평생 교편을 잡았던 아버지를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전한 옆구리를 의식하곤 엉엉 울기도 했다. 그때마다 자취방밖에서는 길 잃은 바람소리가 요란했다. 강가 강변도로우로 어둠이 성깃성깃 내리고 있다. 주위의 가게들이 불빛을 토해내고 도로변의 가로등들이 초파일에 사찰을 찾는 신자들이 추켜든 제등(提灯)처럼 일제히 불을 밝혀 든다. 산개하는 그 불빛들에 도시는 은성(殷盛)한 빛무리의 향연이다. 리혼수속을 마치고 고향마을을 찾았다. 놀랍게도 하늘다리는 그대로 있었다. 삭풍에 떠는 하늘다리에 “위험! 사용금지”라는 패쪽이 달려 바람에 덜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다리앞에 점도록 서있었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이 하늘다리는 마을사람들의 희망의 유일한 통로였지만 이제 그 다리를 기억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세월동안 무수히 건넜을 다리. 오늘은 왜 이렇게 애틋하게 다가서는것일가! 전장에서 돌아온 귀환병처럼 그녀는 아버지 앞에 마주섰다. 어질러진 채로 가라앉아 있는 집, 그리고 그 안에 고향에 홀로남은 아버지가 천년의 세월을 지나온 미이라처럼 수분없이 앉아 있었다. 이제야 과연… 돌아오는가 보구나! 숨가쁜 기침에 감동을 섞어 아버지는 그녀를 맞아주었다.많은 말을 하려 했으나 기침이 아버지의 말을 끊어버렸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길듯이 쿨룩거리는 기침은 선뜻하고 요란스러웠다. 싸락눈이 내려 앉은듯한 흰 머리칼, 시든 배추 겉잎같은 쭈글쭈글한 얼굴주름, 그리고 얼굴 곳곳에 앉은 검버섯, 꺾쇠인양 휘여진 허리… 하지만 숲속에 묻혀사는 산짐승의 눈처럼 눈동자는 청청하게 살아 있었다. 그 눈동자만이 당년의 마을학교 교장이였던 그이의 인끔높은 신분을 말해주는상 싶었다. 그녀의 코잔등이 찡그려지고 입술은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불효한 이 딸이 돈 많이 벌어왔으니 이제 옛말하며 삽시다! 하며 아버지를 만나 울지 않으려 했는데 막상 얼굴을 대하고 나니 주책없이 눈물이 앞서 번성거렸다. 그녀는 돋솟아 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기침에 괴롭게 꿈틀이는 아버지의 등줄기를 두드려 주었다. 더 긴 안부를 생략한채 아버지는 서둘러 고향마을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고향의 학교는 이미 페교되다싶이 되였는데 아직 아이 네명이 남았다고 했다. 학교의 건물이 목공소로 변했고 교실 하나만 남았는데 귀청을 찢는 전기톱, 전기대패의 소리속에서도 애들은 공부를 계속했다고 했다. 이제 한 학기만 남으면 초중으로 갈 시간인데 마지막 한사람으로 남아 가르치던 선생도 한국으로 로무를 가버렸다고 했다. 부모가 출국해서 돈이라도 있는 애들은 그런대로 시가지 학교로 전학했지만 대책 구할길없는 할미나 이모에게 얹혀있는 불쌍한 애들은 이제 소학도 바로 마치지 못하는 꼴이 되고 만다고 했다. 자신은 이제 애들을 가르칠 수준도 여력도 안되니 딸애더러 그 아이들을 마저 가르칠수 없겠냐고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갈그랑대는 음성으로 아버지는 긴말을 단숨에 털어놓았다. 나… 당장 맛집 하나 차릴건데요. 우색(忧色)이 완연한 아버지의 얼굴을 걱정스레 보면서도 그녀는 할수무가내라는듯 자르듯 말했다. 아버지의 농도짙은 한숨이 방안의 먼지를 흔들었다. 아버지의 그런 얼굴을 안쓰레 지켜보면서 그녀는 또 한분의 병색짙은 로인장의 얼굴을 머리에 떠올렸다. 이집 저집 문둥이처럼 옮겨다니면서 닥치는대로 일하다가 나중에 그녀는 중풍환자의 간호를 맡게 되였다. 중증환자에 대한 간호였지만 갈비집처럼 시시각각 들볶지 않아 좋았다. 무엇보다 품삯을 갈비집보다 훨씬 더 받아서 그게 좋았다. 풍맞고 쓰러져 때까치같이 마른 몸이 된 고래희의 할머니였다. 간호하기 쉬우라고 밀었던지 할머니는 까까머리를 하고 있었다. 박박 밀어버린 두상의 표피를 내밀고 뾰족이 솟아오르는 백발, 잿빛 장막이 시야를 가린것처럼 혼혼한 기운의 눈, 풍에 들려 얼레빗처럼 우로 휘여져 올라간 슬픔을 자아내는 합죽한 입매… 이제 어떤 의사 표시도 자신의것이 될수 없는 몸, 병마의 망토자락에 들씌워진 로인은 한갓 사육 당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물 컵을 머리맡에 놓고 퇴침을 베고 누워 틀이를 뺀데서 입가 주름이 묵은 대추처럼 쪼글쪼글 오그라든 입술로 우물거리며 할머니는 하루종일 무언가를 복창했다. 서억가아모오니이부울… 서억가아모오니이부울… 물론 그녀는 그 전언을 알아들을수 없었다. 병이 쾌도를 보이고 발음이 말 배우는 아이들처럼 정확도를 잡아갈때야 그녀는 그 소리가 할머니가 부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간곡히 불러젖히는 소리였음을 깨달게 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할머니는 실제로 비구니였다고 했다. 하지만 속세의 인연을 잊지못해 사찰에서 도망을 나왔고 남자를 만났고 자식도 보았다고 했다. 그러다 병으로 그 남자를, 익사(溺死)사고로 자식을 련이어 잃는 비운한 삶의 길을 걸으면서 다시 버렸던 불도를 생각했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귀의의 마음을 먹었는데 중풍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그녀는 깨지기 쉬운 유리를 다루듯, 뿌리를 보이면 죽는다는 묘종(苗种)을 옮기듯 조심스럽게 할멈을 간호했다. 할머니가 탕약을 드실 시간을 정확하게 시간을 지켰고 정성스레 손을 씻고 비뚤어져돌아간 입귀에 경건하게 약물을 흘려넣었다. 그녀의 정성이 하늘을 울렸던지 드디여 할머니가 몸을 추슬리고 일어섰다. 볼에는 건강한 화색이 돌았고 돌아선 입매의 부드러운 미소는 건강을 되찾은 기쁨과 마음속의 평화를 내비치고 있었다. 몸이 차도를 보이자 할머니는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비구니 회관으로 나갔다. 꼭 몇해만이였다고 했다. 회관이라니 로인들이 화투나치고 신민요나 배우는 로인활동실처럼 생각했는데 아니였다. 회관을 꼭 사찰을 닮게 지었다. 소박하게 지은 비구니 회관은 영화의 한 장면을 스틸하기라도 한 듯이 절제돼 있고 담백했다. 열린 회관의 문사이로 탱화와 그앞에 설치된 불단이 보였다. 그런데 비구니 회관앞의 풍경에 그녀가 설둥한 기색을 지었다. 회관 정문앞 강도 내물도 없는곳에 나무다리 하나가 놓여져 있는것이 아닌가? 피안교다. 예? 피. 안. 교. 말사이에 휴지(休止)를 넣어 할머니는 한자한자 끊어 발음했다 사바 중생덜은 속진(俗尘)을 다 떨치지 못했응께 아무런 고통과 근심덜이 없는 열반 세계로 가려면 이 다리럴 건너야 한다. 피안은 깨달음의 열반세계이다. 이 피안굘 건너며 우리는 세속의 마음덜을 청정하게 씻어럴 버려얀다. 그렇게 때국이 앉은 마음덜을 씻어내고 닦아내면 그 안에 니가 보인다. 불교강론같은 할머니의 말에 알똥말똥해하는 그녀를 보다가 할머니가 또 말했다. 싸게(얼른) 돌아덜 가그라. 어디로요? 그녀가 다시한번 떨떠름해져 코잔등을 찡그리며 물었다. 니 갈곳으로덜, 집 생각에 진종일 혼구녕 열린 사람모양 하는줄 알고덜 있응께. 싸게 돌아덜 가그라. 그녀는 몸을 오소소 떨었다. 할머니의 그 한마디가 자장면 그릇에 씌운 랩을 벗겨내듯 그녀의 속마음의 연막을 벗겨낸것이였다. “청초는 년년록이나 왕손은 귀불귀(春草年年绿王孙归不归)니 우리 인생 늙어지며는 다시 젊어지지 못하느니라”. 긍께 싸게 돌아덜 가그라. 돌아덜 가서 쇠같은 남정 잘 받들고 토끼같은 딸내미 잘 키우고 아직 땅 널찍할때 뗏장 한장이라두 묵직한 쪽으로 떠서 조상님 묘자리에 덮어덜 드려라. 여그서 속아지 없는 사람들께 욕덜 보면서 알탕갈탕 돈 모아 나종에 할 도리가 그것이 아니드냐. 긍께 이제 더는 객지서 발바닥에덜 불나게 살지 말고 니 갈곳에덜 니 가얄곳에덜 싸게 돌아덜 가그라. 입으로 알싸한 독풀 냄새같은 탕약냄새를 흘리며 그녀의 손을 꼭잡고 할머니는 그 동안 묵혀두었던 그녀에 대한 괘념(掛念)들을 털어놓았다. 할머니의 곱아든 손에서 전해온 뜨거운 맥박이 고요하면서 강렬하게 고동치며 그녀의 몸을 장악해나갔다. 어쩌면 자신이 여직 건너온 다리는 허상의 다리였다. 그 수많은 허상을 헤치며 여기에 도달해 있다. 그런데 도착한 지점의 끝에서 되돌아보니 처음 출발했던 곳은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자신의 중심을 지탱해주던 철심 하나가 쑥 빠져나가는듯한 상실감을 느껴 그녀는 진언을 바라는 신자의 눈매가 되여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며 섶을 깔끔하게 여민 옷매무새. 할머니는 옛날의 비구니로 돌아가 있었다. 절름이며 피안교를 넘어 맵싸한 향불 냄새가 새여나오는 회관으로 할머니는 들어갔다. 그러다 문앞에서 할머니는 몸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 할머니는 웃고있었다. 비뜰어진 입귀를 쳐들며 명주실처럼 가늘게 웃고있다. 웃으며 할머니는 그녀를 향해 손을 저었다. 싸게 돌아덜 가그라!   … 밤안개에 젖어드는 다리는 이승의것 같지않게 신비스럽고 령묘해 보였다. 강변도로를 허청허청 걸으며 그녀는 다리가 그려내는 풍경의 언어를 조심조심 읽어 내려갔다.어제를 떨치고 새로운 위용을 자랑하는 다리를 지켜보며 그녀는 강한 언질을 받았다. 그녀는 새롭게 건너야할 다리를 마주하고있었음을문뜩깨달았다. 자기가 왜 속살이 다 닳도록 고향을 향하는 연어의 처절한 회귀처럼 긴 시간을 에돌아 이곳으로 돌아왔는지를 알것만 같았다. 딸애의 초점잃은 눈길, 갈그렁이는 아버지의 목소리, 목공소의 톱질소리속에 이어지는 랑랑한 글소리… 그녀가 짓뭉기고 외면해온 시간의 흔적들이 다리아래의 강물과 더불어 아우성치며 지나가고 있었다.맛집 가게 하나 차리려는 욕심보다 더 지그시, 더 오래 뒤통수를 잡아끄는 힘의 정체가 무언지 이제야 알것같다. 다만 작은 힘이라도 견우와 직녀의 오작교를 만들어 주던 까막까치의 모습이 되여 고향에 버려진 애들을 돕고 싶었다. 그녀는 며칠전 금방 번호를 맞춘 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버튼을 눌러 몇번이나 찾았던 영업방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합니다. 가게 그만둘려 합니다. 나지막하나 무게가 실린 목소리로 그녀는 끝내 이 한마디를 뱉고야 말았다. 조명장치가 돼있는 다리는 그 무슨 발광체처럼 온몸 자체로 빛을 발하고 있다. 빛은 진실한 색조의 모본단결처럼 그녀의 눈동자를, 그녀의 마음을 다잡아 끈다.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시켜왔던 방황의 아픈 시간들을 저 따스한 빛살아래 녹여버리고 온유함을 얻고 싶었다. 싸게 돌아덜 가거라! 어디선가 할머니의 말씀이 환청인듯 들려와 그녀는 다리에 오르기 앞서 잠간 뒤를 돌아봤다. 피. 안. 교… 할머니가 들려주던 전언을 떠올려 보았다. 고개를 드니 대교의 운치를 보여주는 거대한 날개형의 조형물이 파란 불을 밝혀들고 있다. 이 밝은 빛은 아마도 어둠이 지치도록 아름다운 나래짓을 멈추지 않으리라! 바람에 새집이 진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그녀는 어떤 장력(張力)에 끌리듯 다리로 다가갔다. 다리는 활짝 몸을 열어 그녀를 받아들였다.   - 끝-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6    미정 댓글:  조회:3528  추천:19  2010-11-10
   김혁 문학 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5    옥상만가(屋上輓歌) 댓글:  조회:3441  추천:33  2009-06-01
. 단편소설 . 옥 상 만 가 (屋上輓歌) -  중국조선족문제테마소설계렬    김 혁   * 이 한 부의 작은 소설을  1990년대 중기 3만여명의 한국초청사기피해자들에게 삼가 드린다.  - 저자 ㄱ ...옥상에서 본 낮달은 그렇듯 가까웠다. 손을 펼치면 잡힐듯한 달은 가까스로 안색을 쓰며 한낮의 빨래줄에 걸린 구접스런 아낙네의 속곳마냥 훤한 중천에 대중없이 걸려있었다. 달은 만궁이 된 활같기도 했고 옻칠이 매끄러운 경대의 서랍속에 들어있는 엘레빗같기도 했다. 사내는 옥상에 말뚝처럼 뻗쳐서서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빗에 생각이 미치자 사내의 잡초처럼 무정한 눈섭이 움씰했다. 며칠전엔가 무심코 체경을 들여다보다 놀랍게도 흰 머리 몇대를 발견했다. 논밭의 돌피를 가려내듯 흰 머리칼을 악지스럽게 뽑아내쳤다. 그결에 검은 머리칼도 함께 뽑혔고 사내는 그만 빗살 몇가치를 분질러 먹고말았다. 이빠진 빗은 합죽이 할망구처러 불썽사나워보였다. 사내는 덴겁히 경대우에 놓여진 화장품설명서로 빗을 덮어버렸다. 그러다 다시 화장대서랍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다 다시 쓰레기통에 슬그머니 던져버렸다. 그런데 제수가 어느결에 그 빗을 쓰레기더미속에서 귀신같이 뚜져내였다. 《이 빗이 그저 빗인줄 아세요.한국산이야요. 한국산!》 제수는 빗을 물증처럼 쳐들고 사금파리 긁듯 변형된 소리로 말했다. 물론 제 남편과하는 말이였지만 그 소리는 옆칸에 있는 사내가 들을수 있을 정도로 높았고 분명했다.한국제라면 빗마저 좋을가? 그 빗을 쓰면 뭐 염색 안하고 약 안써도 흰머리가 검은 머리 될가? 사내는 이렇게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리고 해종일 남의 집 장독대 깬 애가 훈장의 눈길 피하듯 제수를 감히 정시하지 못했다. 그만큼 맞아서 부어오르기라도 한듯 눈두덩이에 유난히 살이 많은 제수의 눈빛은 마냥 장마철 하늘처럼 흐렸고 도무지 개일줄 몰랏다. 기실 제수에게는 빗이 많았다. 쥐이발처럼 빗살이 촘촘한 앙증맞는 빗이 있는가 하면 회자수의 칼처럼 무지스레 큰 빗도 잇었고 고대무사의 랑아봉처럼 괴상하게 생긴 빗도 잇었다. 그렇게 많은 빗중에서 빗살 몇가치를 분지른 일이 사내에게는 칠거지악을 범하기라도 한듯 두고두고 단죄할 일로 치부되였다. 조카애가 연필 깎다가 필촉을 분지르자 제수가 필요 이상으로 악청을 질렀다. 《그래 잘헌다. 잘해! 다 꺾어먹어라, 먹어! 연필도 꺾어먹고 집안기둥뿌리도 꺾어먹어.》  그 말속에 분명 자기를 향한 가시가 섞여있음을 잘 알고있었지만 사내는 항변거리를 잃고있었다. 이제 제수앞에서의 아주버님의 도고함 같은것은 사내에게 없었다. 아침엔 모두부, 점심엔 두부볶음, 저녁엔 두부장을 대충 응부해 던져주다싶이 하는 메뉴가 단조롭기 짝이없는 음식도 그릇소리 낼세라 눈치를 봐가며 먹어야 하는 처경이였다. 일일이 여삼추같았지만 동생네 집에 얹힌지도 어언 넉달째 가까워온다. 사내는 자기가 저서편으로 짜부라져가고있는 낮달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도 때도 모르는듯하지만 체념한듯 모두들앞에 무기력하게 떠있는 창백한 낮달이...   겨울탈곡장처럼 호젓한 이 옥상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것은 눈두덩이에 유난히 살이 많은 제수의 눈빛이 점점 빙점아래로 추락해내리던 어느날이였다. 집에서 빈둥한둥 놀고있지만 왕모처럼 리유없이 당당햇고 또 자기에 대해 한입 가득 떼문 과일속에 옹송그리고있는 벌레처럼 질색하는 제수와 한공간에 있기 어려워 일없이도 집을 나서군 했다. 오늘은 어데로 가서 씨나락처럼 자잘하게 널린 시간을 까먹을가 궁리하던중 랑하에 낸 비상구를 발견했고 움덮개같은 그 비상구문을 따고 올라서보니 생각보다 훌륭한 옥상의 공간이 펼쳐져있었던것이다.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뚜껑을 열어젖힌 솔같은 안테나 열두개가 부착되여있었고 널직한 헛간이 없는 아빠트단지에서 분명 어느 늙은네가 부득부득 우겨서 가져왔을 김치독(혹은 장독?)세개가 설둥한 기분으로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보다도 더 어울리지 않게 자전거 한대도 있었다. 안장의 해면도 다벗겨지고 바퀴의 김도 빠진 헐망한 자전거는 해부실의 골조표본처럼 앙상한 모습으로 옥상우의 한 귀퉁이에 넘어져있었다. 분명 안테나 부품을 담아왔을 종이박스 한개도 있었고 안장공들이 마시고 버렸음직한 빈깡통콜라병 네개도 뒹굴고 있었다. 어중간한 뙈기논만큼 면적이 넓은 광고판이 옥상의 이마우에 죽쳐앉아잇었다. 아래에서 그 광고판을 한동안 쳐다본덕 있었다. 광고판에는 수기를 건뜩 쳐들고 하늘로 날아가는 비행기 한대가 그려져있었고 그 아래쪽에는 비행기보다 엄청 더 큰 한복차림의 아가씨가 극속의 요정처럼 찬란한 웃음을 지으며 안내자인듯 한손을 쳐들고있었다. 그리고 광고판에는 이런 글발도 큼직히 씌여있었다   한국행 비행기표판매(서울특별할인)   본 판매처에서 비행기표를 구입한 분들은 무료로 공항까지 모셔다 드립니다. 광고판에는 네온싸인이 둘레를 치고있어 밤에도 엄청 큰 그 아가씨는 의연히 엄청난 유혹의 웃음을 발산하고있었다. 광고판이 던져주는 그늘밑에 종이박스를 펴고 누우니 제법 아늑한 휴식터가 됐다. 옥상평면에 콜타르를 칠했기에 냄새가 조금 나긴 했지만 제수가 쓰는 야릇한 향수내가 밀도 짙게 배인 집안보다 좋았고 시공중인 가까운곳의 공터에서 울려오는 신음으로 시끌시끌 했지만 제수의 밑도끝도 없는 투덜거림에 비하면 오히려 듣기에 편했다. 비오는 날을 제하고는 사내는 꼭꼭 옥상우로 오르군했다. 그 무슨 선경속에 지어진 다락방처럼 옥상이 사내에게는 둘도 없는 보금자리였다. 때론 해종일 옥상에 누워 까딱치 않았고 어느 한번인가는 옥상에서 밤을 지낸적도 잇었다. 동생과 제수가 말세처럼 싸움을 벌렸는데 그 내용인즉 또 한번 구실못하는 아주버니의 존재로 인기된 설전이라 피해서 옥상으로 올랐다가 그만 잠이 깜빡 들었던거였다. 한여름이라지만 열기가 식혀진 새벽녘에는 은근히 추워 잠을 깨였고 그 시간에 다시 들어가기도 무엇해 옹송그리고 앉아버렸다. 추위와 서러움을 잊어보련듯 깜박깜박 사라져가는 새벽별을 구명선을 쫓아가듯 집요히 세고 또 세였다. 이렇게 사내는 옥상의 환경에 차츰 습관이 되였고 높은 옥상에서 작은 몸에 담긴 버거운 근심걱정을 해소하는것이 사내의 일상의 전부로 되였다.                                  ㄴ   사내는 화장실의 거울속에 비친 자기를 남보듯 유심히 뜯어보았다. 눈자위가 어쩐지 맑지 못하고 흐릿했고 수염터기는 중등을 꺾은 돌피처럼 다시 집요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그 볼썽사나운 모습을 선들한 면도칼로 박박 밀어버렸으면 시원하련만 동생네 집에 면도칼은 없고 대신 전동면도기를 사용하고있었다. 전동면도기를 쓰니 어쩐지 시원치 못한데다가《면도기 함께 쓰면 피부병 옮는답니다.》는 제수의 지론에 제수가 자리를 비운다음 도적면도를 겨우 하다보니 사내의 턱주가리는 마냥 불효자식을 둔 아비의 산소마냥 그닥 깨끗치 못했다. 거울속에서 사내는 또 틈사리를 비집는 흰머리 몇대를 보아냈다. 이제 그것을 뽑기마저 귀찮아졌다. 제수가 집을 비운뒤면 사내는 살초제가 비에 씻긴 풀처럼 잠시나마의 생기라도 찾은듯하였다. 공밥먹는것이 안쓰러워 일이나마 좀 찾아하려 해도 완벽함에 가깝게 깔밋하게 꾸며진 현대화한 아빠트에서 무지렁이 농촌사내가 찾아할 일은 보이지 않았다. 구들장 뜨끈뜨끈하게 불이라도 때맞추 때주려해도 스팀시설이 있는 집이였고 간혹 무거운 액화가스통이나 바꾸어주려 해도 액화가스까지 들어와잇었다. 제수가 하는 본을 내여 진공청소기로 집안청소를 하려 했으나 흡진기를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라 눈가까이에 쳐들고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허우적거렸다. 마침 그 모습을 제수가 보고《그거 청소기야요. 장난감 아닙니다.》고 조소를 흘리는 바람에 그 일조차 찾아할수 없었다. 다행히 소학교에 다니는 조카애를 아침저녁으로 데려다주고 맞아주는 일이나마 그에게 차려졌다. 그 일조차 없었더라면 사내는 아마 옥상에서 더는 내려오지 못했을런지도 모른다. 그일말고도 사내가 하는 일이 또 하나 있었다. 제수는 결벽증세처럼 집안을 닦고 털고 또 닦았다. 화장실의 욕조며 세면대도 매일같이 시악에 가깝게 박박 닦았다. 허나 수세식 변기통만은 부시기 싫어했다. 공연히 코를 싸쥐였고 그저 소랭이에 물을 듬뿍 담아서는 불끄는 사람처럼 와락와락 끼얹군했다. 그것을 보아내고 사내가 변기통을 부셔주었다. 그런 구접스런 일을 사내는 명심했고 열심히 했다. 순간에는 더러웠고 야속했지만 하고난 뒤면 웬지 속이 편했다. 아무렇거나 일거리만 접하면 한가슴 꽉 미여지게 실렸는 근심과 걱정과 한을 잊고 덜어낼수 있을것 같았다.   여느때처럼 사내는 수세식변기의 물을 틀었다. 물은 변기속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었고 꿀꺽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변기통을 멀거니 들여다보며 사내는 자기의 행복이며 희망이며를 이렇게 흔적도 없이 꿀꺽 삼켜버린 장본인을 생각햇다. 또 한번 코김 섞인 한숨을 하앟게 내쉬고나서 사내는 걸레를 집어들었다. 닦지 않아도 관찮을 변기통속에 세척액을 뿌렸다. 끈적한 세척액은 변기통속에서 송진처럼 눅진히 흘러내렸다. 사내의 가슴속에서 그렇게 피고름이 흘러내리고잇었다.   딩동!초인종이 울렸다. 제수가 왔냐부다고 사내는 덴겁히 달려나가 문을 열어제끼느라 부시럭거렸다. 안전장치가 여러겹으로 된 방범문을 사내는 어쩐지 열기 어려워했다. 그저 문설주에 박은 못에 문고리끈을 돌돌 감쳐매였다가 다시 돌돌 풀어내던 고항집의 사립문과 달리 도깨비주문을 외워야 열리는 전설속의 동굴문처럼 문을 열기가 지극히 어려웠다. 제수의 내놓은 야유속에 소학생계집애인 조카가 문을 손쉽게 따는것을 희한한 눈길로 지켜보았던 그였다. 간신히 문을 열어젖히고보니 낯모를 아낙네가 문켠에 서있다 껴안고잇던 보따리를 내밀며  《김밥 사십소.속 많이 넣고 참기름 많이 바른 김밥인디용.》하고 홍두깨 내미는 소리를 한다. 집에 온 하루 박혀잇노라면 이런 불청객을 만나는 수가 많다. 바닥에 깔쪽무이판을 팔러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연기 청소를 하겠느냐며 찾아오는 사람도 잇고 어느 한번은 식칼 파는 장사군마저 찾아온적 있었다. 《안삽니다.》 덜 좋은 기색으로 밀치며 문을 닫으려는데 아낙이 문고리를 잡아쥐였다. 애원처럼 간청한다. 《사십소. 한토막에 1원50전씩 하는걸 1원씩 드릴께용, 이거 한국김으로 만든건디.》 《안산다는데 왜 이럼둥? 정말 이상한 아줌마네.》 증을 버럭 내며 체면에 철판을 깐 장사군을 흘려보던 사내의 눈빛이 일순 일상한 빛으로 번져나갓다. 이윽고 사내의 입에서 반가운 음성이 신음처럼 튕겨나갓다. 《아니, 이거 아니시오?》 《부산댁!》,고향에서 인기가 유포했던 녀자. 산재지역에서 이사를 온데서 말투가 함경북도투성인 이 지여과는 달랏고 남편이 마을에서 맨 처음으로 부산으로 로무를 가게 된데서 지어졌던 별명이였다. 빚을 져서 나간 그남편이《노가다》판에서 사고로 비명에 죽은데서 손해배상비를 받느라 변호사를 청한다,북경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찾는다 하며 진동한동 뛰여다니다 끝내는 손해비 못받고 죽는다며 농약을 마셨다가 되살아나는 험고를 치르며 동네 부산히 굴어 쌍증의 이미지로 별명을 굳힌《부산댁》이였다. 상대에서도 사내를 알아보고 환음을 질렀다. 사내는 저도모르게 서둘러 아낙을 집안으로 청해들였다. 《우와~, 삐까뻔쩍 잘 해놓구 사는구만 용,잉.》 얼음에 자빠진 소처럼 지릅뜬 눈으로 집안을 둘러보던《부산댁》의 감탄이 자지러졌다.     《끝내 성공했시용잉.목돈 잡아온다구 헐랑 떠난지 몇해 자알 되더니만용. 와-이거 학교 운동장같습니다. 이만치로 집장만할라면 돈냥 많이 부셨지용 잉.》 《부산댁》의 경탄이 발에 발을 잇는 바람에 사내는 미처 해석할 틈도 없었다. 그리고 제집이 아니라 동생네 집이라 까밝히기도 어려웠다. 《날래 앉으시쥬.》   그저 자리만 거듭 권했다.《부산댁》은 권하는 쏘파가 아니라 주단을 깐 땅바닥에 훌렁 앉아버렷다. 《그동안 어떻게 지웠습니까?실루 오래간만인데유.》   사내는 오랜만에 만나는 동네 사람에게서 고향소식이나마 귀동냥해 들으련듯 다잡아 물엇다.《부산댁》이 사내를 힐끗 쳐다보았다. 눈망울에서 벼락불처럼 스쳐지나가는 착잡한 심경을 사내는 순간이였지만 분명 보았다. 《부산댁》은 공연히 그릇을 감싼 보자기를 꽁꽁 비끄러맸다가 풀었다 다시 비끄러맸다. 코를 훌쩍 치걷고나서 방금 전과는 달리 힘겹게 한마디를 짜냇다. 《말마시용. 말두 마시라구용. 미친년 오밤중에 소탄다드니만 나가 꼭 그 꼴인디용》...                                        ㄷ 사내는 아스팔트와 황토길이 린접된 곳에서 뻐스에서 내렸다. 시교에서도 한참 떨어진 고향까지 곧바로 대여가는 뻐스가 있긴 했지만 그러자면 차표가 좀 비싼편이였다. 예전 같으면 외식뒤끝에 호기스레 받지 않을수도 있을 거스름돈값이였지만 지금에 와선 땡전마저 금쪽같게 여겨지는 처경이였다. 이마가 익어번질듯한 땡볕을 이고 사내는 먼지가 풀썩이는 황토길을 따라 스적스적 걷기 시작했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마음의 묵달밭에 비해 그런대로 길량켠에 펼쳐진 논밭에서 벼의 자람새는 좋은 편이였다. 오래만에 맡아보는 순수한 물내음 땅내음에 사내는 연신 코방울을 벌름거렸다. 느닷없이 만난《부산댁》의 출현은 사내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못이겨 사내는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고향길에 발을 들여 놓은것이였다. 곰바지런히 다리를 놀려 사내는 드디여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있는 촌소학교까지 닿았다.원체 학생래원이 적어 조용하던 학교운동장에는 이상할만치 사람 하나없었다. 교학중이나보다고 사내는 토담아래에 쭈크리고 앉아 기다렸다. 그러던 사내가 홀연 스스로 머리통을 철썩 때렸다. 방학중이라는 생각이 무딘 더듬에 뒤늦에 잡혔던것이다. 토담곁에서 사내는 엄마치마꼬리를 잃어버린 미아처럼 한동안 서성거렸다. 교정가까이에 있는 물가에서 애들이 왁자지껄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막무가내로 그곳으로 향했다. 마을길로 자전거 몇대가 달려 오고있었다. 사내는 덴겁히 강가의 버드나무에 몸을 숨겼다. 사내애 몇몇이 자전거를 타고 어데론가 신나게 달려가고있었다. 탈옥한 죄수처럼 나무뒤에 숨어서 사내는 낯익으면서도 낯설은 애들의 모습을 헤아려보았다. 이 몇년간 애들이 물오이 크듯한데서 마을의 누구네 집 애들이라는것을 겨우 알아볼수 잇었다. 자전거가 멀리 사라져서야 사내는 나무뒤에서 몸을 일으켜 강으로 다가갔다. 깝치동이 사내애 몇이 옅은 물목에서 송사리떼처럼 어우러져 놀고있었다. 사내가 애들을 불렀다. 물장구치던 애들이 일순 손을 멈추고 일제히 사내쪽으로 머리를 돌렷다. 그중 한 애가 발가벗은 몸으로 고추를 달랑이며 부끄럼없이 뛰여왔다. 해볕에 그을려 오지독같아뵈는 애에게 딸애 이름을 대며 아느냐고 물었다. 《예- 그녀자앨 그럽니까?》   잘 안다는듯 소리질러놓고 애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술깡치》계집애라니??사내는 연유를 따져물었다. 애는 남의 별명을 부른것이 안됐다는듯 박박 깎은 머리를 싹싹 긁으며 어줍게 해석해주었다. 그 녀자애의 할머니가 돼지를 치는데 그 애와 함께 작은 밀차를 밀고 향에서 꾸리는 술공장에가서 술깡치를 받아오군 한다고 한다. 할머니를 도와나선 녀자애의 몸에 술깡치냄새가 배여 반급애들로부터 그런 별명으로 불린다는것이였다. 오지독같아뵈는 애의 말을 들으며 사내는 스프링처럼 튕겨오르는 흥건한 울음덩이를 울대뼈를 덜걱이며 연신 삼키고 있었다. 애가 볼가봐 얼른 머리를 돌렸으나 밤이슬같은 눈물방울이 그만 눈귀로 꾸역 배여나오고 말앗다. 《근데...손님은 누굽니까?》 애의 이상한 눈매가 사내를 향해 찔러왔다. 사내는 엄지로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을 찍어내였다.그리고 신문지에 싸서 겨드랑이에 꼭 끼고왔던 물건을 애에게 내밀었다. 딸애에게 전해달라고 백당부를 했다. 그 속에는 사내가 딸에게 주는 선물이 들어있었다. 선물이란...조카애가 쓰다 버린 연필꽁다리와 크레용 몇개 과일냄새나는 고무 지우개, 주물다가 싫증나 버린 고무떡, 얼룩 곰모양으로 만들어졌으나 곰의 한쪽귀가 떨어진 연필깎개 그리고 때가 좀오른 인형하나였다. 가정조건이 윤택한지라 조카애는 연필도 몇번안쓰고 버렷고 인형도 새로운 양식이 나오면 산지 얼마 안되는곳도 던지군했다. 그런걸 주어모았다가 다시 주려니 제수가 쓰레기 장사군이냐며 질색했다. 하여 딸애에게 주려고 꿍져두엇던것이엿다. 조카애보다 두살가량 우였지만 여직 향마을을 벗어못보고 할머니를 도울수 있게끔 웃자라있는 딸애에게는 남의 퇴물림일망정 하늘이 내린 복음처럼 반가운 례품일것이였다. 누가 볼가봐 집에도 들리지 못하고 인차 자리를 뜨면서 사내는 연신 고개를 꺾어 마을쪽으로 눈길을 돌렷다. 몇몇 지붕너머로 텔레비죤 안텐나가 넘어질듯 찌그러져있는 자기집쪽에 시선을 박았다. 죄송하꾸마,어마이!죄송하꾸마, 죄송하꾸마... 사내는 혼 나간 사람처럼 입속말로 자꾸만 중얼거렸다. ...옥상의 장독대우에 진 콜라병이 놓였다. 사내는 돌덩이 하나를 주어들고 콜라병을 향해 던졌다. 콜라병을 맞히지 못했다. 다시 한번뿌렸다. 콜라병은 여전히 넘어지지 않았다. 까닭없이 울화가 치민 사내는 가까이 다가가며 돌멩이를 힘껏 내쳤다. 쩔그렁! 파렬음이 울렸고 콜라병대신 장독대가 그만 깨여져버렸다. 그와 함께 사내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와지끈 깨여지는 소리를 분명듣고 잇었다. 장독대처럼 으깨진 마음을 사내는 어떻게 수습햇으면 좋을지 몰라했다. 옥상의 변저리로 다가가 바닥을 짚고 골만 내민채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꿈길인양 거리가 아득히 보였다. 거리에선 둥지털린 개미떼처럼 사람과 차량들이 오글거리고있다.그 어떤 이질감으로 사내는 아래쪽을 향해 흥건한 침덩이를 뱉았다. 침은 높은 곳의 실족자처럼 오래도록 떨어져내렸다. 그 침에 집요한 시선을 달고 사내느 키들키들 영문 모를 웃음을 혼자서 웃었다.                        ㄹ   1층집 문 손잡이에 벼룩신문 한장을 돌돌 말아 꽂고 어느 곽밥집의 광고를 붙였다.   2층집 문 손잡이에 벼룩신문 한장을 돌돌 말아 꽂고 어느 곽밥집의 광고를 붙였다.   3층집 문 손잡이에 벼룩신문 한장을 돌돌 말아 꽂고 어느 곽밥집의 광고를 붙였다.   자질구레하기 짝이 없고 해종일 층계를 오르내려야 했으며 게다가 사람들의 눈총을 덤으로 얹어야 하는 일이였기에 너나가 꺼려했지만 사내는 이 일을 선뜻 접했다. 동생의 주선으로 어느 광고회사의 허드레 광고원으로 잠간이나마 취직을 한것이다. 옛날급진 인사들이 네거리를 삐라를 살포하듯이 거리와 골목, 가가호호를 돌며 광고문을 내붙였다. 가련할 정도로 적은 박봉에 또 언제 어디서 쫓겨날지 모를 직업이였지만 사내는 일에 신명을 바쳤다. 눈두덩이에 유난히 살이 많은 제수에게 생활비라 이름지어 받쳐 올리고싶엇고 조카에게 필갑 한통이라도 사주고 싶엇다. 그래야만 아무일에라도 자기를 혹사해야만 위구로 쭉쪽린 마음을 위무할수 있을것 같았다. 전위선질병에 대한 치료며 유방 살리는 크림이며 포경수술이며 치질근치며 툽상스런 문구가 적혀진 광고문들을 한아름 꿍져안고 사내는 땀에 눈알까지 젖어서 층계를 오르고 층계를 내렸다.   농가에서 자라 뼈를 굳혔기에 사내는 원체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사지가 욱신거려 못배기는 성미엿다. 가래질,후치질...농사일에 막힘이 없었고 이불장 짜고 유선 방송을 놓을줄도 알았으며 종자 다른 흑태(검정콩)도 심었고 병아리도 까고 물고기도 키우고 한데서 가근방에 이름이 자자한 감농군이였다. 그렇게 흙에 묻혀 살면서도 항상 달긋한 미소만 휘뿌리며 지내왔던 사내의 얼굴에 무거운 암운이 서리게 된것은 요몇년사이의 일이였다.   할수무가내로 동생네 집에 얹혔던 애초에 사내는 어느 골목길에 자전거 수리점포 하나를 차렸다. 원체 손부리 탐탁한데다가 마음씨 허랑해서 손님들이 많이 들었다. 더우기 도회지에는 자전거를 교통용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수자를 셀수 없는 별처럼 많았고 거의 모두가 의표는 그런대로 보아줄만 했지만 잔손질 같은데는 전혀 숙맥인 량반 타입들이여서 수입이 짤짤했다. 눈두덩이에 살이 유난히 많은 제수에게 고기,채소값을 내줄수 있었고 조카애의 군입질먹이도 도맡아 사주었다. 그러던 사내의 점포에 어느날인가 염마전의 사자같은 녀석이 나타났다. 엄랑이 모지락스럽게 크고 살벌해보이는 녀석은 사내가 일껏 형체라도 일구어놓은 점포를 산산이 짓부수었다.   녀석은 사내의 고향에서 강을 하나 사이둔 한족마을의《쑹개》라는 자였다.사내는 쑹개네 집에서 5푼리자로 거금을 빌렸다. 사내네 마을에서 이렇게 한족마을에 가서 변놓이돈을 맡는 조선족들이 많았다. 태반을 넘겼다. 한족사람들은 조선사람들이 내버린 밭을 헐값으로 맡아 부쳤고 그렇게 번 돈으로 쌓아올린 밑천을 다시 조선사람들에게 변놓이를 했다. 년이 지나도록 사내네 집에서는 원금을 물지 못했을뿐만아니라 리자가 원금을 훨씬 넘겼다. 리자도 싫으니 원금이라도 돌려달라고 극성부렸지만 그렇게 농부일생 다 바쳐도 만져못볼 거금을 물어내는수가 없었다. 하는수없이 빚으로 처분해 밭을 내주었고 소를 팔았다. 그래도 안되니 집마저 팔았다. 허나 산같은 빚짐에서 겨우 돌멩이 몇개를 덜어내는 시늉에 지나지 않았다. 원체 마을에서 싸움질에 지릅났고 구치소에도 들렸다 온적 있는《쑹개》의 인내가 드디여 한계를 넘었다. 사내를 잡아다 자기집 김치움에 가두었다. 물 한모금 주지 않았다. 그렇게 돼도 불모로 잡힌 사내를 구해줄 사람이 없었다. 빚군의 다닥질에 더는 못배기고 안해는 집이고 딸년이고를 버리고 가출해버렸다. 어느 한번 발신주소도 없이 돈 몇천소시를 부치고는 지금껏 종무소식이다. 청도의 어느 한국합자기업에서 한국사람들을 상대로 밥을 해준다는 애기를 들었다. 또 누군가는 서울지하철에서 봤다고 했다. 이젠 동생의 손을 더 바란다는것도 참 어려운 일이였다. 동생에게서 언녕 적잖은 액수의 돈을 꾸었던것이다. 기실 동생과는 동부이모의 사이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버린 뒤 맏이인 사내는 어머니를 모셨고 동생은 창졸한 결혼과 함께 분가를 하였기에 어쩐지 동생과의 사이가 서름서름 해젔다. 한낱 촌녀자인 어머니와 소학교에 다니는 딸애로서는 빚군들의 횡포에 그저 떨고 있을뿐이지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빛 한불기 없고 습기가 지근거리는 어둠속에 쥐새끼 울음소리만이 찍찍 섬찍하게 들려오던 그 김치움에서의 시간을 사내는 영영 잊을수가 없을것 같았다. 다행히 《쑹개》의 로모가 가만히 김치움을 열어주어 이튿날엔가 사흩날엔가 몸을 뺄수가 있었다. 숨어있다가 또《쑹개》의 눈에 띄였고 광분하는《쑹개》의 삽날에 잔등을 찍혔다. 향위생소에서 응급처치를 대충하고는 그날로 사내는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파출소에 신고하라고 곁에서 권유를 했으나 스스로 자초한 일이였고 바꾸어 처경을 따져보면 자기도 그렇게 많은 돈을 남에게 떼우고 온곱게 기다리고만 있을수 없을것 같았다. 그렇게 꿈에 보기마저 두려웠던《쑹개》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듯 점포에서 만났던것이다. 한낮의 아닌 횡포에 길가는 사람들이 나서서 시비를 따졌고 누군가는 110방폭경찰대대에 신고전화를 넣었다. 그 란리통에 사내는 자전거수리기구고 뭐고 팽개치고 사람들의 틈바구니속에서 다시 한번 행적을 감추었다. 그리고는 여직껏 내내 눈두덩이에 살이 유난히 많은 제수의 수모를 감내하며 깁에만 붙박혀있었던것이다. 그러면서 한사람을 찾았다. 함께 흑태를 심어 가꾸던 《검정콩》이라 불리는 검정콩처럼 얼굴이 검실검실한 이웃을 감질나게 찾았다. 촌에서 맨먼저 치부를 했고 맨먼저 도회지로 나온 순발력있는 친구였다...     4층집 문 손잡이에 벼룩신문 한장을 둘둘 말아 꽂고 어느 곽밥집의 광고를 붙였다.   5층집 문 손잡이에 벼룩신문 한장을 둘둘 말아 꼭고 어느 곽밥집의 광고를 붙이...려던 사내는 등뒤에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섰다. 늙수그레한 로파 하나가 어느결에 등뒤에까지 와 서있었다. 이어 또 한명의 로파가 헐씨금이며 층계로 올라왔다. 로파들의 짓물린 눈확에서 사내는 적의를 읽었고 이어 두 로파의 팔에 죄다 붉은 완장이 둘러져있음을 보아낼수 있었다.   《무슨 짓거릴 하고있소, 지금?》 먼저 올라온 로파가 카랑카랑한 소리로 따져물었다.   《광,광고원인뎁쇼?》   로파들의 느닷없는 위세에 질려 사내는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거렸다. 《그게 제집 문창이라고 아무데나 바르고 붙여유?》   뒤미처 올라온 로파가 더 큰 소리로 채무했다. 로파들이 소리소리 지르는 바람에 굳게 닫혔던 방범문들이 열렸고 집주인들이 하나 둘 뛰쳐나왔다. 《할마이들 잘 붙들었어요. 그렇찮아도 이런 얌치없는 광고쟁이들 만나면 단단히 혼뜨검 줄려 했는데. 이 문짝 좀 보세요, 마마투성이 만들어놓은걸.》 《이건 시용을 흐리우는 행위입니다.》 《이런 사람 처치하는 법규가 나와야는건데...》 《요즘 잔 물건이 자꾸만 잃어지는데 이런 사람들 꿀꺽한것이 틀림없어요.》   사각 지대로만 알았던 아빠트층계에 어디에서 왔는지 순식간에 숱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문에 더덕더덕 나붙은 광고딱지를 두고 중구난방 의분을 토해냈다. 사내는 일순 자기를 어떻게 주체했으면 좋을지 몰라 쩔쩔 매였다. 천하죄를 혼자 지은듯 묶인 사람처럼 서서 말매를 맞기만 했다. 완장을 낀 로파 둘이 전체 거주민들을 대표하여 사내에게서 벼룩신문과 광고문들을 압수했다. 그리고 벌금을 하라고 했다. 저그만치 200원을 내라고 했다. 사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호주머니 구석에서 땡전 몇푼만 달그락거릴뿐 어중간한 액면의 지페장을 만져본지도 아주 오래되였다. 그 무표정한 기색을 거역으로 알고 사람들의 분노가 바람을 맞은 불씨처럼 더 크게 살아올랐다. 완장을 찬 로파 둘이 다시 한번 거주민들을 대표하여 사내의 호주머니를 들추었다. 겨우1원50전을 들추어냈다. 그러자 이번엔 벌로 문에 붙인 광고문들을 청소해내라고 했다. 누군가 물 한바께쯔를 가져왔다. 또 솔까지 가져왔다. 사람들의 분노는 이제 조금 사라진듯했고 대신 막간극을 보듯 흥미에 절은 눈길들이 사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있었다. 사내는 지령을 받은 로보트처럼 솔을 넘겨받았다.머리속은 해빛에 드러난 사진종이처럼 하얗게 비여있었다. 사람들의 살같은 시선을 뒤통수에 따갑게 느끼며 솔에 물을 뭍혀 기게적으로 문짝을 박박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의 틈바구니속에서 김밥보자기를 든《부산댁》이 환영처럼 보였다. ...《부산댁》은 달팽이집같은 세방에서 살고있었다. 생활의 틈바구니에 찡긴 사람들의 피여날줄 모르는 메마르고 야윈 흔적이 처처에서 보이는 집이였다.   《나 이런데서 살아용, 그 집에 비함 허청간 같지유,잉.》    부산댁은 지저분하게 널린 옷가지들을 치우며 자기네 루추한 모습을 보이는것이 무안한듯 연신 토를 달았다.    컵술 두개를 놓고 김밥을 만들다 남은 끄트머리를 안주로 하여 둘은 낮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사내는 접용당한 마음을 잊으련듯 덧없이 술을 들이켰고 《부산댁》은 그 마음을 무마해주련듯 곁들어서 함께 마셨다.《부산댁》은 독한 소주도 남정네 못잖게 잘했다.   《속창이 타서 재가 될 땐 그래도 이 빼갈이  젤이지용.》    남편을 해외에서 잃었고 그 손해배상비를 받아낼려고 소갈데 말갈데 헤매다보니 집안이 쑥밭이 돼버렸다. 외지서 시집온지라 함께 아파해줄 사람,속시원히 기대여 울 사람도 없는데 그런 와중에 고맙게도 딸년이 총기가 있어 음악쪽에 큰 기량을 보이는지라 그것이 살아나갈 계기가 됐다. 딸애를 위해 집 팔고 저건이 좋은 도회지로 단연 이사를 하고보니 지금 이꼴이란다. 김밥장사도 애초에는 돈냥 될만하더니 여사인 한국주방장까지 모신 전문 김밥집이 서는 바람에 그저 입심이나 하기에 족하단다.   《나 한국 갈꺼애용. 뼈를 부시든 피를 바치든 한국 나갈꺼애용.》    지금의 곤경에서 벗어나고 태깔을 벗으려면 그래도 한국으로 나가얀다고《부산댁》은 추병을 뒤에 바싹 달고 벼랑까지 이른 소장처럼 결연히 말했다.   《빛깔나진 못해도 남부럽진 않게 자알-살던 우리가 왜 이런 험지에 빠졌는지 쇠통 모르겠습니더.》   《부산댁》의 락담에 옮아들어 사내도 술 한잔에 탄식 한번 뱉아냈다. 그리고 대창이나 하듯이 이번엔 자기 신세담을 풀었다. 김치움에 갇히던 얘기며 녀편네를 찾아 낯설고 말도 통하지 않는 산동에서 헤매던 얘기며 눈두덩이에 살이 많은 제수가 어려워 잔기침도 소리 죽여가며 해야하는 처경이며...사내가 애기를 하는동안《부산댁》은 코방을을 잡고 찬 바람을 들이키며 내내 울었다.   《나가용! 우리 꼭 한국 나갑시다용. 나갔다와서 잘 살아봅시다용!》 차마 더 들어 내기 어려운듯 사내의 말을 중등 자르며《부산댁》이 또 한번 철규처럼 부르짖었다.   《가야지 가! 근데 그게 어디 동네마실 가는것처럼 그렇게 쉬운 일인감...》   《부산댁》의 류황불처럼 황황 피여오르는 눈길을 피하며 사내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컵술 두개를 더 가져다 마셨고 두사람은 취기에 흠씬 젖어들었다. 술기운에 발가우리해진《부산댁》의 도화볼에 언뜻 눈길이 미치는 순간 사내는 부지중 녀자를 머리속에 의식했다. 그동안 빚에 물려 음지쪽에서만 허우적이다보니 따스한 녀자의 몸을 가까이 한지도 까마득한 어제로 잊혀졌다. 동생네 집에 얹혀있으면서 무의식간에 두사람이 방사를 치르는 소리를 들은적 있었다. 생활이 윤택하니 마음도 편했고 마음이 편하면 향락을 탐하는 법.동생네 부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짓에 탐닉하고 있는것같았다. 그때마다 사내는 자기가 외려 덜미를 붉히며 덴겁히 자리를 피하군했다. 자리를 피해 옥상에 올랐고 하늘과 맞닿을듯한 옥상에서 맞은편 마천루꼭대기에 부착된 광고판에 그려진 금발머리 녀자를 보며 자위를 했다. 주리고 억눌린 몸과 마음을 간신히 달랬다. 허무같이 진묽은것이 한처럼 뿜겨나와 빛광이 란무하는 거리로 후둑후둑 떨어져내리는것을 실의에 빠져 지켜보군했다.   《부산댁》의 얄쌍한 얼굴에서도 사내는 분명 혼자사는 녀인의 허망함과 갈구 같은것을 단 취기가 아닌 다른 흔적으로 보아냈다. 두 사람은 자연스레 엉켜졌다. 접때 남편을 잃고는 농악을 마시고 쓰러진 부산댁을 사내가 손잡이뜨락또르에 싣고 시가지 병원까지 호송했다. 그때 본 풀꽃초럼 싱싱한 부산댁에 비해 지금의 부산댁은 많이 시들어있었다. 탄력 잃은 육체라도 주린듯 탐하던 사내는 끝내는 부산댁의 귀전에 굵다란 눈물방울을 떨구고 말았다.                                   ㅁ   사내는 지은지 시간이 꽤 오래된 시교쪽의 어느 구식 아빠트단지에서 문칫거리고 있었다.꼬깃꼬깃 접은 종이쪽지를 펴들고 다시 한번 번지수를 확인한 뒤 페갱같은 시커먼 복도로 들어섰다.세멘트가 다 떡어져 벽돌장이 벌겋게 보이는 층계로 올랐다. 그러는 사내의 손에  《고량주》두병이 들려있었다. 사내는 지금《검정콩》이라 불리우는 고향의 이웃을 찾고있는중이였다.《검정콩》은 항구의 《사두》들과 친교가 있어 가만히 밀항을 조직하고있었다. 절차가 엄격한 정상적인 로무로 한국에 나가지 못한 사람들, 위장결혼,가짜비자가 들통난 사람들은 모두가 《검정콩》에게 밀항을 의뢰했다. 배의 밀창에 숨어 사흘이고 나흘이고 큰숨 바로 못쉬며 해상순라대의 눈을 피해야 하는 잠입이였지만 사람들은 너나가 요행수를 바라고《검정콩》을 찾았다.《쑹개》에게 점포가 박살이 난 그날에 사내는《검정콩》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은 모두부 점심은 두부볶음, 저녁은 두부장을 겨우 먹으면서도 눈두덩이에 유난히 살이많은 제수의 랭대를 받아야하니. 그럴때마다 결심을 더굳혔다. 남 다 자는 밤에 옥상에서 왕별을 바라보며 오직 이길밖에  없다고 속마음을 뼈물어 먹었다.   자꾸만 거처를 옮겼기에 콩크리트숲속에서 《검정콩》을 찾기란 바다속의 바느찾기로 어려웠다. 추수가 좋은 흑태밭을 버린채 도회지로 나온뒤 《검정콩》은 조강지처와 리혼을 했다. 도회 에서 딸라암거래를 하고있는 녀자와 눈이 맞았고 배가 맞아버렸다. 풍대한 몸집의 그 녀바를 《검정콩》의 소개로 한번 만나본적 있었다.《부산댁》에게서 요행 《검정콩》의 거처를 알아내고 시한탄의 점화단추를 누르듯 조심스레 그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 바로 언젠가 본적 있는 그 풍대한 몸집의 녀자가 머리를 내밀었다. 은근히 공경스런 표정을 지으며 사내는 《검정콩》을 찾는 다고 했다.녀자는  사내의 아래우를  못볼 풍경을 보는듯한 눈길로 어보더니 문을 쾅 닫아버렸다. 돈냥깨나 벌더니 마른 위세를 부리나보다고 사내는 한숨 한번 지었다.술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이웃을 위해 술까지 사들고 왔는데...아침나절에 조용히  동생에게서 술 살 돈을 질렸다. 동생은 안해의 눈을 피해 지하공작이라도 하듯 형의 손아귀에 50원짜리 한장을 잽싸게 쥐여주었다.  그렇게 어렵게 한 걸음인데 꼭 만나고 가야지 하고 사내는 다시 한번 초인종을 눌렀다. 응대가 없다. 이번에는 이웃이며 친구사이라 밝혀야겠다고 생각하며 길게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왁살스레 열렸다. 스리퍼를 끌고 나온 녀자는 사내앞에 두팔을 가새지르고 우뚝 뻗쳐섰다.   《어쩌자는거예요?용건이 뭐예요?》   돌처럼 딱딱한 기색을 짓고 녀자가 채중기 잔뜩 담은 소리로 물었다. 그 소리에는 란폭한 적의가 섞여있었다.   《급히..급히 만날 일 좀 있어서...》   녀자의 덜충함과 위악적인 자세에 사내는 조금 당황해지고있었다.   《몰라서 그래요? 아니면 빚진거라도 잇어 그러세요?》   사내는 그만 오리무중에 빠지고말았다.   《우...우린 친구지간인데...이...이웃사이였다구요.》   사내의 진지한 모습에 녀자는 그제야 표정을 조금 풀었다. 웬 일인지 정체불명의 한숨을 쉬였다. 입술새로 어눌하게 한마디 내뱉았다.   《그 사람...죽었어요.》   ...옥상의 장독대우에 빈《고량주》술병이 놓였다. 사내의 흐릿한 눈길에 술병이 둘로 보였다. 사나운 개를 쫓기라도 하는듯 병을 향해 돌맹이를 던졌다. 병을 맞히지 못하고 대신 또 하나의 장독대가 깨져버렸다.   사내가 감좋게 키워오던 희망은 또 한번 장독대처럼 산산히 박산나고말았다. 하늘처럼 지체 높이 믿고 찾던《검정콩》이 죽었다. 밀입국자들을 싣고 또 한번 모험의 파도를 탔다가 그만 해상순라대와 마주치게 되였는데 조직자의 신분이 무서워 바다에 뛰여들어 도망가려다 빠져죽고말았단다.강을 낀 마을에서 자랐다지만 단숨에 헤염쳐 넘을수 있는 강에 살던 작은 《송사리》가무변의 바다에서 용빼는수가 없었던것이다. 이튿날에 시신이 발견되였고 해상순라대에 의해 신원이 확인되였다. 이 참사는 밀입국단 속조치에 단호히 나서고있는 형국에서 해외의 매스컴들에게까지 대서특필로 보도되였다고 한다. 그 장안의 화제를 빚군들의 독아를 피해 동생네 집에 몯혀살던 사내는 아는수가 없었다.   사내는 옥상의 대형광고판이 만들어낸 그늘속에 해종일 앉아있었다. 《검정콩》에게 선사하려 들고갔던 《고량주》를 자기가 다 마셔버렸다. 취기와 울화가 화염이는듯 타올랐으나 어떻게 해소할길이 없었다. 소태같은 입을 다시던 사내의 충혈된 눈길에 깔고 앉은 신문중의 소식기사 한편이 잡혀들었다. 《서울 첫 직항이 드디여 이루어져》라는 표제의 톱기사였다. 사내는 엉뎅이에서 신문을 뽑아내였다. 반나마 찢어진 신문을 눈가까이에 쳐들고 보았다. 술트림을 섞어가며 식자본 떼는 애들처럼 소리내여 읽기 시작했다.   《조선족들의 관심사였던 서울직항이...꺼억...드디여 이루어져 첫 취항식을 가졌다.MD90려객기는... 아침 7시50분...꺽...50분에 떠나 오전 10시 50분에 서,서울에...꺽...도착하게 된다. 전세기 형식으로 비준이 내렷지만 실상은...꺽...전국매표망을 통해 티,티켓을 팔고있는바 153개 좌석이 몽땅 팔렸다고 한다.》   트림으로 쓰려나는 가슴을 문지르며 사내는 신문을 접었다.   (세시간이면 서울 갈수 있다아?)   본능적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서편하늘에 가슴이 섬찟하게 피빛노을이 번져가고 있었다. 사내의 손에서 신문이 짓이겨졌다. 신문을 뭉그려 커다랗게 덩이를 만들었다. 비칠거리며 옥상의 변저리로 다가갔다. 신문덩이를 층집아래로 뿌려던졌다. 신뭉덩이느느 풍력을 빌어 빙글거리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떨어져내렸다. 옥상에 엎드려 골만 내민채 사내는 그 가벼운 실추를 무겁게 내려다보았다.                                ㅂ 가려마 하는 사람은 가고야 만다더니 부산댁이 서울로 떠난다고 했다. 대구에서 사는 어떤 령감태기와 결혼의향이 오갔는데 드디여 비자가 내려왓던것이다. 떠나도 바래줄 사람조차 없는지라 사내와 둘이서 어느 괜찮아보이는 음식점에서 송별찬삼아 마주 앉았다. 사내는 손에 쥐고있던 구슬을 털린듯한 허전하기 짝이 없는 마음이였다. 동병상련의 처경에서 그동안 어설프게나마 마음도 주고 정도 주면서 서로서로 자꾸만 오금 꺾이는 신심을 부추겨주었는데...원체 근심걱정으로 구겨졌던 사내의 마음에 이 소식은 더 킁 응달을 만들어주었다. 엊저녁 동생이 그를 랑하로 불러내였다. 불도 켜지 않은 랑하에서 형의 손에 돈 500원을 쥐여 주었다. 그리고 랑하에 서서 형제간은 참으로 오랜만에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수의 동생이 명년에 대학입시를 볼 나이인데 더 좋은 환경을 위해 누님네 집에 와 묵으면서 공부를 하게 된다고 했다. 느닷없이 그로 말하면 엄청 많은 액수의 돈을 넘겨받고 일순 어정쩡해졌던 사내의 무딘 더듬에 그제야 무언가 어둠속의 륜곽처럼 잡혀들었다. 진한 어둠속에서 그 표정을 읽을수는 없었지만 사내는 난감한 기색으로 변형되여있는 동생의 얼굴모양을 감득할수가 있었다. 그것은 분명 무언의 축객령이였다. 동생이 집으로 들어간 뒤에도 사내는 어둠의 동아줄에 얽동인듯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있었다. 그러다 몽유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말없이 옥상으로 올라갔다...그렇게 한푼 동냥마저 거절당한 거지같은 참담한 기분을 단말마로 지탱하고있는데 《부산댁》마저 떠난단다.   떠나는《부산댁》은 일희일비에 혼반죽된 착잡한 모습이였다. 두고 가는 딸애에 대한 걱정담을 많이도 했다. 항간에 전문 출국부모들의 자식을 위해 꾸린 기숙방이 많앗는데 그곳에 애를 맡기고 떠난다고 했다. 그런 기숙방도 많고 그런곳에 기거하고있는 애들이 엄청 많은것을 보고 놀랐다는《부산댁》이엿다.   《그 맘보가 여리디 여린것이 애들틈새에 찡겨 밥한술 나물 한점이라도 제대로 얻어먹을런지》하고 부산댁은 희색이 도는 얼굴로 말하다가도 지절해지는 눈시울을 하고 사이사이 코를 훌떡거리기도 했다. 덤덤한 기색으로 그런《부산댁》과 마주 앉은 사내는 실어증환자마냥 말을 잃고있었다. 혼자생각에 빠졌다가도 부산댁이 소리를 높이면 흠칫 놀라 깨서는 술잔만 기계적으로 들었다. 그리고 사내는 다급한 뇨의를 느꼈다. 급격한 정서파동이 있을 때면 마냥 있게 되는 괴의쩍은 버릇이였다.   화장실의 변기앞에 섰는데 어쩐지 일을 치러낼수 없었다. 한가슴 가득 청태처럼 낀것을 시원한 오줌발로 씻어내리고싶었다. 사내는 두눈을 느스름히감고 모지름을 썼다. 겉에 누군가 다가와서 변기앞에 마주섰다. 기분좋게 일을 보며 그러는 사내를 이상한 눈매로 지켜보았다. 그 사람에게 눈길이 미치는 순간 사내의 얼굴이 낮도깨비를 본듯 경련을 일으켰고 입으로는 헛바람 섞인 이상한 비명이 새여나갔다. 이발쑤시개를 물고 지근지근 씹으며 변기앞에 마주선 그 사람은 사내가 이 세상 가장 무서워하는 두억시니 같은 존재인《쑹개》였던것이다. 사내는 혁대도 조르지 못하고 바지궤춤을 쥔채로 후닥닥 화장실을 뛰쳐나갔다.   허허벌판에서 단신으로 맹수떼에 쫓기는 사람처럼 뛰고 또 뛰였다. 음식점을 멀리한 어느 뒤안길에 접어들어서야 뛰기를 멈췄다. 전주대를 짚고 서서 깊은 수심에서 수면우로 금방 떠오른 사람처럼 학학거렸다.한식경이 지나서야 사내는 파충류의 촉수처럼 뒤잔등에 달라붙은 공포를 물리치고 마음을 수습할수가 있었다. 무거운 위안의 매돌로 신경줄의 떨림을 누르고나니 그제야 혼자 두고 온《부산댁》에게 생각이 미쳤다. 허나 다시 그 음식점으로 돌아갈 용기가 사내에게는 없었다. 오도가도 못하고 길녘에 그렇게 섰는 사내의 눈앞으로 뻐스 한대가 느릿느릿 지나가고있었다. 차체에 어느 려행사의 자호를 큼직히 박아넣은 관광뻐스였다. 뻐스에서는 밝고 들뜬 표정을 한 이국관광객들이 창밖으로 흥미로운 눈길을 던지고있었다. 그 너무나도 행복해보이는 무리를 쳐다보는 사내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조되여갔다. 막무가내로 서있던 사내는 순간에 행위의 좌표를 정한듯햇다. 사내는 길의 화단에서 반토막 남은 벽돌 한장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사내는 잰걸음으로 관광뻐스를 뒤쫓아갓다. 뻐스 뒤면의 차창을 향해 벽돌장을 힘껏 내쳤다...                              ㅅ   집중광이 사내의 얼굴을 향해 쏟아져내렸다. 수천만개의 동침처럼 얼굴을 찌르는 그 강렬한 빛줄기에 사내는 눈도 바로 뜰수 없었다. 빛의 열기때문이였던지 얼굴로 팥죽땀이 골을 지으며 흘러내렸다.   《당신 정신이 온전한 사람 맞어? 술에 취하지도 않았다는 사람이 퍼런 대낮에 미친소같이 객기는 왜 부려? 객기는??멀쩡한 뻐스에 돌은 왜 던지냐말이야. 그게 어떤 찬지 알어?한국유람객들을 실은 차였다구.사람이 상하지 않았기에 다행이지 ,큰 코 다칠본했어. 이 사람 국제망신 혼자서 다 시키는구먼...》   한입에 물어 삼킬듯 으르렁이는 채문소리가 사내의 귀에는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뒤로 탈린 손목에 채인 수쇠에만 온 정신이 쏠려있었다. 처음 실감해보는것이였기에 그 감수는 살갗을 칼로 에이듯 강렬한것이였다. 두리모자 몇몇이 번갈아가며 따졌으나 사내는 줄곧 입을 열지 않았다. 기왕 내쳐진 몸이니 체념을 방패로 하고있는 사내였다. 심문실의 문이 덜크렁 열리면 또 두리모자 하나가 들어섰다. 그사람을 향해 모두다 공경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해바쳤다. 《이 허수룩한 나그네가 쇠통 불지 않네요.》   유난히도 넓은 어깨를 가진 그 사람이 사내곁으로 다가왔다. 바싹 다가서며 사내를 불렀다. 《이봐요-아저씨...》   사내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빛에 질린 눈을 좁히며 상대를 헤아려보려햇다. 살벌한 장소에서 저으기 부드러운 호칭을 듣고 설등해진 사내의 얼울고 순간에 손바닥이 짝 날아들어 귀뺨을 호되게 후려쳤다. 목이 한바퀴 돌아가는듯했고 눈앞에서 별무리가 쏟아져내렸다. 미처 정신을 수습하기도전에 한번 두번 세번 네번...우악진 손바닥이 숨쉴사이 없이 뺨을 강타했다. 이대로 죽고마는가보다 하고 숨넘어가는 신음을 억억 토해내는데 매질이 멈추어졌다. 사내의 바른편 볼이 삽이에 찐빵처럼 벌겋게 부풀어올랐다. 두리모자는 손바닥을 털어대더니 거친 숨을 삭이며 담배 한개비를 뽑아 물었다. 사내의 얼굴이 한껏 비틀어짠 걸레처럼 처참히 일그러져갔다. 볼에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발가벗기우고 네거리에 내쳐진듯 해일같은 수모감이 사내를 형체도 없이 삼켜버렸다. 목줄기를 죄인 사람처럼 몸부림치다 사내는 급기야 울음과 함께 피고름에 덩이진 말마디를 뱉아냈다. 《...한국사람들에게...한국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햇으꾸마...가산 박박 끌어모은 돈에다가 5푼리자 내고 맡은 돈을 몽땅 사기 당했으꾸마... 한번두 아니구 세번이나 세번이나 말입꾸마... 가산 털어 모은 돈을 리자내고 빌린돈을... 어흐흐흑...》                             ㅇ   꿈결처럼 밤비가 내리고있다. 그리고 비에 젖은 도시에서는 경제 무역박람회가 한창이였다. 곳곳에서 한국산제품전시회가 열리고있었다. 거리는 숫제 명절분위기였다. 하늘에는 애드벌룬이 떠있고 마천루마다는 네온싸인으로 령롱했으며 광고현수 막이 칠색무지개처럼 드리워져있었다.   행인 몇몇이 길복판에 멈추어서 웅성이며 웃쪽을 쳐다보고 있었다.떨어져내리는 비방울에 눈시울을 좁히며 쳐다보는 그 시선들이 머무는 곳에 광고판 하나가 있었다. 옥상의 이마전에 세워진 그 대형의 광고판에는 하늘 향해 수기를 건뜩 쳐든 비행기가 그려져있었고 그 아래쪽은 비행기보다 엄청 더 큰 아가씨가 극속의 요정처럼 유혹으로 덩이진 웃음을 지으며 어디론가 안내하듯 한손을 쳐들고있는 모습이였다. 그리고... 네온싸인으로 둘레를 친 그 불밝은 광고판앞에 웬 사내 하나가 두팔을 드린채 뻗쳐서서 비내리는 거리를 멍하니 내려다보고있었다... "도라지" 1997년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4    적(笛) 댓글:  조회:3970  추천:39  2009-03-29
    .중편소설. 적(笛)                           김   혁                    1   ...운무(云霧)가 흐르고 있었다. 운무와의 혼빈속에 그 지층을 꿰지르고 따라서 개여울이 흐르고있었다. 암바위뒤에는 로송 하나가 서있는데 우거진 잎새가 정자를 이루고있었다. 바위밑 둘레에는 꽃 몇송이가 피여있었다. 자주빛을 머금은 꽃은 여울이 주는 자그마한 한기에도 이파리를 하르르 떨고있었다.   발자국 소리 하나가 새벽의 끈적한 고요를 찢었다. 분명 길섶에 기장차게 자라난 풀잎을 차며 오는 소리였다. 허나 그 소리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온곱게 간헐적으로 들려오고있었다. 운무를 엷은 문발처럼 열고 그 발자국소리의 임자가 륜곽을 드러냈다.    그 사람은 흰 빛갈의 바탕에 검은 헝겊으로 가녁을 넓게 꾸민 학창의를 입고있었다. 관골은 높이 솟았고 인중이 깊었다. 눈확에는 검은 테가 둘레를 치고있었다. 허나 그에 반해 검은 자위는 짙고 또렷했고 흰자위는 밝았다. 잘 쪽찌잖은 상투머리에서 머리칼 몇오리가 흩어져내려 야윈 뺨을 치고있었는데 그로 해서 무표정한 얼굴에 별다른 내용과 기품을 첨가해주는상싶었다.   여울께까지 와서 그 사람은 질척한 물녘을 가볍게 저며딛고 쭈크리고 앉았다. 품너른 소매를 접어올렸다. 좀 작은편, 허나 기름한 손가락이 드러났다. 그 사람은 서서히 손을 물에 담갔다. 새벽물은 뼈를 찔렀다. 그 사람은 손을 맞비비며 오래도록 씻었다. 다음 두손을 소쿠리지어 물을 담뿍 떠서 입에 넣었다. 목을 뒤로 젖히고 하늘을 우러러 두볼을 풀무잣듯 자았다. 이어 혼탁한 물을 한켠에 뿜어냈다. 이러기를 한동안...다음 손을 펴들고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손등에 얼기설기 긁힌 생채기가 보였다. 바위틈새에 돋은 약재를 뽑아내려면 손에는 생채기가 자꾸 나군 했다. 그 생채기에 물을 다시 몇번 끼얹었다. 다음 풀대가지 하나를 꺾어들었다. 손톱사이에 밀어넣고 각질에 집요히 엉켜붙은 때를 말끔히 후벼냈다. 왼쪽 무명지의 손톱이 키를 돋구고있는듯했다. 그 손톱을 바위의 꺼끌한 표피에 대고 잦게 문질렀다. 세세한 절차가 끝나자 그 사람은 바위로 올라가 정좌하고 앉았다. 한기가 우로 치받쳤지만 그는 전혀 무감각한 표정이였다. 품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생초비단에 길죽한것이 돌돌 감겨져있었다. 그 사람 숨을 꺽 죽이고 생초비단을 한겹한겨 풀어내렸다. 드디여 물건이 드러났다. 두뽐 남짓한 그것은...피리엿다! 순간 여직껏 돌의 표피처럼 딱딱해있던 그 사람의 얼굴이 놀랍웁게 변조되여갔다. 코방울이 벌름거렸고 입술이 떨렸다. 그 사람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적셨다. 숨을 흡 들이마시고나서 피리를 집어들었다. 눈시울이 스르륵 깔려졌다.   그 무슨 진기품을 다루듯 손가락들이 조심스레 피리의 혈(穴)을 하나하나 눌러짚었다. 소리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밀집히 앙금져있는 새벽의 운무를 모난 칼끝처럼 금그으며 소리는 그물그물 기여올랐다. 반공중에 기여올라서는 추락했다가는 다시 튕겨오르면서 빈 공간에 은빛이 소리물을 짜고있엇다. 피리소리와 함께 산자락아래에 널린 농가들의 아침이 시작되였다. 아낙들이 동이 이고 고무신을 자박자박 끌며 우물가로 모여들었고 남정들은 하품을 삼키며 외양간에 찾아들어 마소를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깝치동이들이 잠기가 대롱대롱 묻은  눈시울을 집어뜯으며 마당가녁에서 바지춤을 까고 밤새도록 참았던 장난끼 같은것을 쫘악 내 쏘았다.   산자락에서 우켠으로 치우쳐들어가면 계곡이 입을 벌리고 있다. 아름드리 분비나무, 황철나무, 자작나무, 떡갈나무 우듬지들이 하늘변으 ㄹ가리우며 들어섰는데 계곡 그 입구에 이제는 퇴락해버린 구름집(중들이 수도하는 집)하나가 있었다. 새벽기운이 다하고 저자거리로 나가는 우마들의 목에 걸린 방울소리가 산자락아래로 난 자드락길에서 구을 때면 피리부는 사람은 잠간 구름집으로 들어가군했다. 보리가루를 빻아 만든 떡에 산나물무침 등으로 조반을 치르고는 다시 그 바위께로 나오군 했다. 이어 피리소리는 그칠줄 모르고 다시 울렸다. 높이 쳐든 두팔이 시큰둥해나고 열성껏 오무렸던 입술이 자주빛이 되면 피리소리는 잠간 멎군 했다. 그때면 그 사람은 손가는대로  풀대를 꺾어 입에 집어넣고 지근지근 씹군 햇다. 싱그러운 풀의 원액(原液)이 온 입안에 엉켜들고 식도를 따라 혈관을 따라 온몸에 잦아들면 그의 몸은 풀잎새처럼 다시 일어섰고 신들린 피리소리는 다시 이어지군 했다. 그러다가도 그 어떤 관능같이 유발되는 깨도의 밀착에 구름집으로 달려들어가 이미 벼루에 담가놓은 붓을 들어 마지(麻紙)에 대고 무언가 정신없이 적군했다.   누군가 악사의 피리소리는 홰치는 닭소리보다 준확하다고 말했다. 또 누군가는 악사의 피리소리는 읍내의 파루(새벽을 알리는 북소리)소리처럼 어김없다고 말했다. 여하튼 악사는 해마다 여름이 늦드는 이 산을 찾았고 이 산을 찾았고 이맘때면 어김없이 산자락에 앚아 피리를 불군했다.                              2    산자락아래로 난 자드락길은 개암나무에 가리워 토막이 나 보였다. 그 길로 수레바퀴 구으는 소리가 들렸다. 피리가락에 혼신을 쏟고잇던 악사의 귀바퀴가 움찍했다. 그 소리는 한간에서 흔히 듣는 우마차의 구름소리와는 조금 이색적인데가 있엇던것이다. 소리에 익숙해진이라만이 미세한 파장의 변화에서 대상무을 준확히 가려낼수 있는것이였다.   소리의 도(道)를 깨치려 고심했던 악사는 그 누구에 비해 귀가 밝았다. 소리의 환몽속에 잠길 때면 온갖 만물의 동(動)적인것은 물론 정(靜)적인것조차 소리의 의미로 그의 뇌리에 락인되군 하였다. 그는 지어 해가 빛을 발산하는 소리를 들을수 있엇으며 그름이 청공을 떠가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으며 연기가 허공을 톱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으며 꽃잎이 물에 떠가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그의 인상에 있어서 해빛의 소리는 싸르락싸르락 이남박의 흠을 스치는 백옥미 이는 소리였고 구름의 소리는 바가지를 물에 엎어놓고 물매기 장단을 치는 소리엿으며 연기의 소리는 서까래를 기여가는 작은 벌레의 소리였으며 곷잎의 소리는 거문고의 약선을 섬섬옥수로 쪽 훑어내는 소리였다. 하기에 그 어떤 소리도 그에게는 무심히 들리오지 않앗으며 그만큼 그의 귀는 소리를 포박하는데 버릇되여온것이였다.   이어 악사느느 분명 자기쪽으로 다가오는 발자욱소리를 들었다. 그 자욱소리도 여느 사람들보다 달랐다. 걷다가는 돌부리도 차고 기품없이 털썩털썩 되는대로 내치는 소리가 아니였다. 한마리로 시골무지랭이들의 그 무지스러운 발자욱소리와는 동이 다른 소리였다. 악사는 적어도 마을사람이 아닌 읍내사람,혹은 귀골높은 길손임을 단졍했다. 발자욱소리가 가까와왔고 곁에 와 뚝 멎은 때까지 악사는 피리에서 입과 손을 떼지 않앗고 그 불청객의 도래로 하여 피리가락의 음조 역시 풀리지 않고있었다.   《여보시오 거사님(벼슬을 마다하고 심산에 붙박혀 지내는 사람)!》     그 사람은 낮은 소리로 불렀다. 차분한 그 소리의 밑바닥에는 공경한 비슷한것이 깔려있는듯했다. 허나 악사는 여전히 반쯤 내리뜬 눈도 치뜨지 않고있었다.   《거사님이 지금 불고잇는것은 향가(鄕歌)가락이 아니십니까?》   악사의 피리소리는 여전히 끊기지 않고잇엇다. 그 사람 한수 더 떴다.   《지법(指法)은 옳바른것 같습니다. 헌데...호흡의 절주가 좀 빠르다 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향가라면 구선짐에 그 격조를 두고잇으나 향촌에 대한 사념의 정을 일관시켜 면면한 애수도 가끔 끼여넣음이 좋을듯합니다. 하기에 이럴 땐 지법도 느슨히 호흡도 빠름속에 늦음이, 늦음속에 빠름이 있게 혼반시켜야 하지 않을가요?》   악사의 피리가락 음조가 삐익-외곬으로 나갔다. 장장 30여년간을 피리와 벗해온 그의 취기(吹技)에 대해 진맥해낼 사람은 이 세상에 한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던 그였다. 그 사람은 재너머에 있었다. 재너머 양지바른 명소에 목비 하나를 앞세우고 진토를 뒤집어쓴채 한줌의 재로 사위여 누워있엇다. 그는 악사의 스승이였다. 그런데 오늘 누군가 언감 그의 앞에서 감놓아라 배놓아라 수선을 똘고있는것이였다. 한가닥의 염오가 솟아올랐으나 그와 함께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벌떡 한귀를 쳐들었다. 필경은 산속애ㅔ서 사람이 그리웠던 그였다. 악사는 번쩍 눈을 치떴다. 미목이 청수하고 옷차림도 화려한 남아 하나가 그의 앞에 서있엇다. 말그대로 옥골선풍이였다.   《뉘시오?》   악사 그 사람한테서 어떤 기품을 느끼며 따져물었다.   《지나가던 빈객이 거사의 피리소리에 환혹해 이렇게 찾아들었습니다. 거사의 경지를 깨뜨린것 같은데 하다면 죄송하기 짝 없구려.》   그 사람 흔연히 대꾸하며 악사곁으로 다가왔다.   《빈객도 악리(樂理)를 깨치려다 성사 못한 사람인데 오늘 거사의 피리소리에 촉동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에는 성근한 빛이 갈마들고있었다.   《초야에 묻혀서 해종일 피리와 짓거리하는 사람에게서 뭘 느껴받을거 잇다고 그러오?》    악사 그 사람의 공경을 무질러버렸다.   《아니올시다. 이런 시구가 있지요.    창생은 한낮에도 조으려만    산속의 로자(老者)는 밤에도 깨여있네.》    악사 빙그레 웃음지었다.   《그렇다면 나를 로자에 은유한거구만. 세속을 간파한 로자가 되려면 동이 뜨오. 기어코 나를 은유하련다면 이런 시구를 읊음이 지당할듯하오.    아침에도 귀뚜라미처럼 중얼거리고    저녁에도 부엉이처럼 중얼거리는    너 쓸개빠진 로자여!》   《훗하하하-》   두사람 함께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어 손에 들려진 피리를 응시하더니 악사 웃음기를 거두며 정색한 낯빛으로 입을 열엇다.   《선인들은 음악을 가르치는것으로 사람들의 심성을 바로 잡고 나라를 다스리려 했소. 헌데 지금 그러한 악성(樂聖)이 적어졌고 따라서 악리를 써내려는 사람조차 없어지고 말았구려.》   그 사람 악사의 말에 흥심을 느끼며 귀담아듣고 있었다.  《사람이란 본시 칠정 육욕이 마음속에 엇갈려 잇음으로 하여 너나의 심성은 하나같이 바르게 간직되기 어렵소. 심사가 좋지 못하면 자연히 몸도 그에 따라 균형이 깨지고 행위도 절차를 잃어버리게 되지. 음악이 사람들의 귀에 익도록 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젖도록 하면 혈맥은 항상 조화롭게 되고 온고운 심성을 항상 가질수 잇는것 아니겠소.》     악사 저으기 흥분되며 바위에서 내려 그 사람 가까이로 다가갔다.    《예로부터 가무승평한 나라는 모두가 태평성세를 누려올수 있었던거요! 그로써 백성을 안무하고 나라를 안정케 하여야 하오. 여기에 악의 현모와 공리가 있지 않을가.》   그 사람 연신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야말로 귀밝은 리치입니다. 거사의 재주와 애기에 흠뻑 취했네그려!》   홀연 그 사람 청구 하나 내들었다.  《거사의 피리소린 실로 벽계수처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주는 청쾌한 소리군요. 저...청컨대 거사께서 한곡조 더 불어줄수 없을가요. 도원곡(桃園曲)이라든가...》   악사의 안색이 순간에 엎어졌다. 악사 옆눈으로 그 사람을 흘려보았다. 이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곡이라면 활량들이 저자거리에 나서 돈냥이나 끌기 위한 곡이 아니겠소. 난, 그런 곡을 불 심경은 못되는가 보오.》   그 사람의 얼굴에 약간 아쉬운 표정이 얼비쳤다. 그 사람 악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거사의 수련을 깨쳐 미안하고 좋은 깨도를 받아 고맙습니다.그럼 빈객은 이만 자리를 뜨려 합니다.》악사 따라서 읍하고 나서 다시 바위우에 올라 정좌하고 앉았다.  떠있는 기분을 곰삭이고나서 다시 피리를 집어들엇다. 길목까지 나갔던 그 사람 다시금 터진 청아한 피리소리에 귀 기울여 말뚝모양으로 섰다가 가재걸음치며 사라져버렸다.                              3   날이 저물었다. 별이 하나 둘씩 들추어 나오고있었다. 기름을 아끼려 등을 켜지 않은 구름집에서 사제향(사향으로 만든향)한대가 타오르고있었다. 그 한점의 불은 아무런 조명작용도 하지 못하고있었지만 어둠을 누비는 향내음은 어둠의 농도를 묽혀주고있는듯했다. 률리 맑은 피리소리가 향내음과 뒤엉켜 방의 구석구석에 밝음 못지 않은 생기를 돋쳐주고있었다. 수수깡으로 결은 천정에는 거미줄이 흐늘흐늘 수없이 드리우고있엇다. 향내음의 촉동에 적막에 감겨들려는 신심을 부추겨 세우며 구름깔개 (참나무를 엷게 밀어 곁은 자리)우에 앚아 악사는 피리를 불고있는것이였다.   문뜩 요란한 발자국소리가 울리더니 누군가의 왁살스런 손짓에 문이 벌컥 열어젖혀졌다.  《어이구 깜깜이야. 이거 코 베먹어두 모르겠군 그래.》   구리종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어둠에 익숙한 악사 얼른 부시에 깃을 달아 등에 불을 붙였다. 방은 삽시간에 어둠의 포박에서 풀렸다. 악사 눈이 새그러워 눈시울을 좁혔다. 그의 앞에는 거쿨진 몸매를 한 사내 하나가 서있었다. 그 사내의 한손에는 술항아리, 다른 한손에는 보자기가 들려있었다. 악사는 그 사람이 계곡의 입구에 닿기전에 벌써 누군가 자기의 거소쪽으로 오고있고 그 발걸음소리에서  그 사람이 다름아닌 자신과 함께 악리를 익혔던 사형(師兄)임을 기수챌수 있었다.   《여봐 동생. 그렇게 도닦는 스님모양만 꾸미지 말고 우리 한잔 먹어보자꾸나. 자, 이제 고만 피린 걷어장지구. 뭐니뭐니 해도 사내 생겨서 술생긴것 아니겠냐.》   사형은 손수 구석쪽에서 대접이며 간새가 들어있는 그릇이며를 찾아내여 벌려놓았다. 닷새배보자기를 풀어헤치니 잘 삶겨져 구수한 내가 코를 푹쑤시는 소갈비 한짝이 드러났다. 일면 요란통을 벌리면서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괜스레 악(樂)에 미쳐가지고 멀쩡한 사람 다 버려놓았네. 차암. 성정이 모질지 못해 그런지 난 차마 못보아내겠다.》   소매깃으로 대접을 닦아내고서 사형 항아리의 술을 철철부어 악사앞으로 내밀었다.  《나 근자에 약주를 들지 않는걸 사형도 알고있지 않습니까.》   악사 벙시레 웃으며 밀막았다.  《그 좋은 술도 끈고. 너 정말로 극락갈려구 그러잖아. 》  《적적한대로 혼자 드세요. 제가 지켜보고있으리다. 》   사형 기분 접질려하며 혼자서 술대접을 기울였다. 악사 그저 갈비 한토막을 집어들고 조용히 뜯기만 했다.   《네가 술을 입에 대지 않을줄 번히 알면서두 말동무나 해주러 왔다.》   사형 혼자서 부어라 마셔라 했다. 입과 손을 닦고나서 악사 또다시 피리를 집어들었다.  《허참, 이거 짜장 상감마마나 된 기분인걸. 술마시는데 한켠에서 풍악까지 잡혀주고 좋다! 나 취도록 마일거니 너 그 염병할 피리나 계속 빨고있어.》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사형의 눈길에는 측은한 빛이 갈마들고있엇다. 다시 올리는 피리가락을 타고 악사의 몸은 환몽의 돌계단을 밟기 시작햇다.   그들은 원체 셋이였다. 초동머리적 악사가 첨거해있는 이산자락을 감도는 강에서 송사리, 메기를 반두질해서는 방아간에서 쌀훔치고 찬장에서 된장, 고추장 후무려내고 울바자틈사이로 애호박, 풋고추를 따서는 강녘에 솥단지 걸고 천렵을 즐기며 어우러져 놀던 셋이였다.   서늘한 물에 발잠그고 발가락으로 강바닥의 조약돌 굴리며 풀피리 꺾어 불기도 했다. 셋은 풀피리도 제법 잘 불었다. 그 간단하기 그지없는 자연의 《악기》였지만 신묘한 입놀림, 손놀림으로 어른네들이 늘 부르는 향가를 제법 옮겨냇고 술상머리에서의 권주가며 툽상스러운 육담가의 음조까지 죄다 섭렵해들이며 그 조그만 입으로 뿜어내군 했다. 그 광경에 환혹해 길 지나가던 싱거운 령감 하나가 기어코 자청해내서 그들에게 악리를 가르치고 피리를 배워줬다. 그 령감은 원체 궁악에 조예깊었으나 벼슬을 마다하고 음악의 현모를 찾아 입산하던 왕궁의 악공이였다. 령감은 이 마을의 뒤산에 있는 퇴락한 구름집에서 자신의 평생의 재간을 집대성하여 《악론》을 펴내기 시작했고 자기 희마응ㄹ 세 제자에게 기탁하여싿. 허나 악론을 절반도 못써내고 령감은 지쳐눕고말았다. 각혈하면서도 령감은 피리를 놓지 않고있엇다. 때로 그 적의 일곱구멍으로 피의 분수가 치솟기도 했다. 그 혈혼의 아픔을 딛고 범인들로서는 깨칠수 없는 악리가 씌여졌고 범인들이 낼수 없는 현묘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자연을 그렇게 사랑햇던 령감은 자연에서 자신의 생의 소리를 마감했다. 강가에서 돌베개를 베고 피리를 안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림종시 세 제자는 령감의 두리에 개벙하게 둘러앉아 령감의 마지막 소원대로 피리를 불었다. 눈물을 씹으며 장단곡(腸斷曲)가락에 스승의 혼을 실은 꼭 상여를 태워 멀리멀리 바랬다.   세 제자가운데서 둘째엿던 악사는 악기다루는 재주가 제일 밭은편이였다. 맏이의 소리는 음조가 데퉁스러울망정 구성졌고 셋째의 소리는 음조가 높을 망정 격앙이 있엇다. 허나 둘째의 소리만은 마냥 한본새로 진척이 없었다. 허나 그에게는 남다른 성정미가 잇엇다. 빛나는 진주를 빚기 위한 조개의 몸부림같은 그것-그것은 바로 인고(忍苦)의 성정미였다. 이 한점을 엿보아낸 스승은 맏이와 셋째의 재주를 격찬하였지만 둘째의 둔감에 대해서도 도를 넘은 타매의 언동 같은것은 따로 없엇다. 셋은 스승의 묘소앞에서 다 꼬지 못하고 간 악론의 률을 마저 꼬기로 서약하였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그네들의 아직 옅은 재주로는 스승이 이미 자욱을 뗀 심오한 리론의 명맥을 이어내려갈수 없었다. 그러던중 셋째가 맨처음으로 서약을 파기하고 피리를 버리기로 하였다. 셋째가 혀아래소리로 그 의사를 내비쳐보이자 맏이는 하늘이 낮다하게 길길이 날뛰엿다.  《뭐라구? 스승의 성묘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네가 배신하려 들다니 짜식, 한주먹에 평토제르 ㄹ차려줄가보다. 》   악사 광분하는 맏이를 겨우 밀막아내였다.  《좋아. 네가 기어코 스승의 뜻을 기이련다면 그 속죄로 스승의 묘앞에서 피리를 불어얀다. 동류석별곡(同類惜別曲)을 불어! 하루낮 하루밤을 내처 불어얀다.》   셋째는 아무 말도 없이 피리를 들고 스승의 묘소를 찾았다. 목비앞에 앉아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동류들아 석별가 들어보소    동류정애 자별하나    리별하면 다 잊나니    한오백년 노니자던 인정    일조에 끊는단 말인가...》   셋째는 한루낮 하루밤을 내처 그렇게 한곡조를 되풀이하여 불고 또 불었다. 맏이는 그만 가슴이 질려 아무 말도 못했다. 그저 비지숨만 몰아쉴뿐이였다. 기력을 탕징해버린 셋째 비칠거리며 일어섰다. 스승의 묘소와 사형들을 휘둘러보고나서 아무 말도 없이 산을 내렸다. 그러는 그의 손에서 피리가 미끌어떨어져 돌서덜밭에 뒹굴었다.   셋째의 탈적(脫籍)에 그렇듯 유감천만해하던 맏이도 종내는 피리를 내려놓고 말았다. 둘째는 아무 말도 못했다. 쓴 약 마시듯 체념을 삼키고있었다.  《내가 못난이야. 난 셋째와 한바리에 처실어야 할놈이다. 둘째야! 그렇게 말없이 서만 있지 말고 날 욕해다오. 때려다오. 둘째... 둘째야 이럴 땐 좀 모질게 구박줘야 하는거다. 으흐흑...》   악사 창연한 기색으로 굳어져 자기 무릎가에 머리를 처박고있는 사형을 내려다보앗다. 이윽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  《사형...》   맏이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쳐들었다.  《형도 스승의 묘소앞으로 갑시다. 가서 을 불러봐요.》   《그래그래. 내 불지 불어... 난 항렬로 맏이니깐 너희들 세곱되게 사흗날 사흘밤을 불면서 속죄하련다.》   허나 하루밤도 채 못불고 맏이는 묘소앞에서 고부라져 코를 골고있엇다. 악사가 스승의 묘소를 찾아 산자락에 치달아올랐을 때 인기척에 잠을 깬 맏이는 피리를 주어들고 부는 생색을 내려 햇다. 악사 다가가 피리를 앗아들었다. 두손으로 량끝을 잡아 무릎뼈에 대였다. 뚝 분질러버렸다. 참대의 파편이 허공에 튕겼다.   지금에 와서 재기 발랄했던 셋째는 읍내사람들이 우러르는 현령(縣令)이 되였고 품성이 돈후했던 맏이는 육포 하나를 차려 마을에서 꽤 유족한 갑부로 탈바꿈하였다...  《후-》부지중 한숨이 섞여들어 피리의 음조가 탁음으로 변조되였다. 악사 피리에서 입을 떼엿다. 맏이 홀연 흥심한 표정으로 악사의 앞에 손을 내밀엇다.  《자, 그 피리를 인다오.》  《왜요?》  《이 백정의 손으로 나도 한곡조 불어보련다.》   악사 마지못해 피리를 넘겨주었다. 넌들한 코물을 훌쩍 치걷고나서 맏이 기름방울이 대롱히 달린 다박솔수염틈바구니에 피리를 처박았다. 이어 소방두같은 손으로 피리의 혈을 더듬어 짚었다. 마디마디 순대토막을 이어놓은듯이 풍대해진 손은 이정의 그것 같지 않았고 그 동작도 매우 서툴렀다. 헛바람소리에 섞여 곡조가 울렸다. 허나 그 곡조는 고르롭지 못한 호흡에 의해 자주 끊기군햇다. 문뜩 곡조가 뚝 끊기더니 터진 보뚝처럼 갑자지른 기침이 한무더기 터져나왔다.  《안... 안되겠어. 쿨룩쿨룩, 술에 절고 쿨룩...육븉이에 절고 해서 이젠 심기르 ㄹ바로잡지 못하겠단 말이야. 일전에 내가 피리불면 그 소리에 동네계집들이 삭신이 오그라들어하며 질질 묻어다니잖앗나, 쿨룩쿨룩...》   맏이는 방금전의 곡조, 일전에는 그렇듯 신들리게 다루었던 악기의 실패에 대해 완연 무감각해잇었다. 현실에 배부른 표정으로부터 그 실패를 일상중의 허드레 실수거리로 여겨 괘념하지 않고 어덴가 만족어린 표정만을 짓고잇다는데서 악사는 어지간히 놀랏다. 슬며시 그의 손에서 피리를 잡아빼였다. 피리에는 술내음과 기름기에 엉겨진 걸직한 타액이 발려져있었다. 악사 질색을 하며 옥소매로 피리를 문질럿다. 악사의 기분전환을 시수채지 못한채 맏이는 소갈비에 엷게 붙으 ㄴ고기발을 이발로 긁기에 열심하고있엇다. 기분나쁜 이질감이 가슴에 흘러들었다. 악사 그만 고개를 틀고말았다. 누우런 메돼지기름이 담겨진 등에서 불심지가 뿌지직 신음을 지르고잇엇다. 그아픈 연소를 이윽토록 지켜보던 악사 응어리진 한숨을 토하고 나서 머리를 들었다.  《형,나도 한잔주오.》   악사 피리를 내려놓고 술대접을 집어들었다.                                                             4   ...무명필,피물, 패물함, 쌀자루가 악사의 앞에 놓여잇엇다.  《뭐요? 그날 그 사람... 그 사람이 상감마마였다고???》   악사 경악해마지않으며 자리에서 몸을 후닥닥 일으켯다.  《그렇소이다. 다름아닌 임금님이였지유.》   악사와 무르을 마주한 셋째사제-현령이 기름진 목소리를 뽑으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수수한 복색차림으로 자신에게 존대어를 괴여올리면서 그렇듯 진지하게 악론에 대해 귀담아듣던이가 다름아닌 만민의 군주인 임금이였다는 느닷없는 사연에 악사 그만 설둥해지고말았다.  《임금은 사형의 악기다루는 재주와 그 악론설에 그만 감복했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내여 이렇게 많은 물목을 하사했는데 내가 그 사람들을 대동해가지고 예까지 왔지요.》  《이거, 이거 웬 감투끈인지... 나 아직도 오밤중이군 그래.》   악사 어쩔바를 모르며 손에 들려진 피리만 연신 매만졌다.  《그날 임금께서는 비복을 하고 사냥하러 갔다오는 길에 마침 이곳을 지나치다 사형의 피리소리를 듣게 되였소이다. 원체 악기를 즐기셨던 까닭에 하늘같은 존재를 잊으시고 평민의 신분이 되여 사형과 만난거지요.》  《그런줄 모르고 난 방약무인하게 놀면서 혀가는대로 지껄여댔지 않고 뭐요.》  《아니올시다. 임금은 사형의 매 한마디를 곱새겨두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구 궁궐에 허다한 악공들이 있다 하지만 사형의 재주와 비하면 어설프기 짝없다고 하더랍니다. 》   악사 여직도 어리친 기색이 되여 구름집이 다하게 올망졸망 놓인 물목들을 눈빗질하였다.  《그런데...나같이 악기나 말아먹는 비천한 놈에게 이렇게 많은 귀품을 내려주시다니.》  《그뿐이 아니옵니다.》   현령 한보 다가앉았다. 열기 가득한 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형같은 인재들을 널리 섭렵하고저 보름내로 궁궐로 입시하라는 분부도 내리셨습니다.》   악사의 피리를 틀어잡은 손이 부지중 떨리고있엇다. 그의 두눈에서 면면한 감동이 출렁거렸다.  《둘째사형의 처경을 두고 맏형과 저는 여간만 간집을 달구지 않았더랫는데...사형에게도 해볕이 드는 날이 종내는 왔구려. 하늘의 뜻인가 봅니다.》   현령 악사보다도 더 흥분한 기색이였다. 악사 이윽토록 아무 말도 못했다. 구름집 구석의 무더기로 쌓아놓은 악론에 관한 저서들이며, 이빠진 벼루며, 몽당붓이며를 자기의것 같지 않게 새삼스런 눈길로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궁궐에 입시하면 탁월한 악공들과 접촉할수 잇고 악리에 정통한 바다건너의 외인, 그리고 체계적인 악론저서도 접촉할수 있을거요. 그 정수에서 깨도를 받는다면 스승의 평생추구를 마무리하는데 큰 조력이 될것 아니겠소.》  《악론도 악론이거니와 여직껏 불운하게 지내신 사형께서 부귀의 진미도 좀 맛보셔야지요.》   악사 서글프게 웃어보이고나서 몸을 일으켰다. 현령과 함께 구름집을 나섰다. 구름집 문전에는 물목을 지니고 왔던 관차들과 현령의 뒤를 묻어온 청지기 몇명이 공손히 대기하고있었다. 악사 그들의 틈바구니를 빠져나와 산중턱으로 치달아올랐다. 자그만한 목비가 세워진 묘소앞에 꿇어앉아 피리를 꺼내 들었다.   읍내로 향한 길, 들춤질하는 가마우에 앉은 현령은 산자락을 타고 내려와 환청같이 들려오는 그 피리소리에서 사형이 어데로 가있는지 짐작해낼수 잇엇다. 피리의 음률에 따라 현령의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률동하였고 입가로 곡조가 흥얼거리며 새여나왔다. 허나 그 흥얼거림은 얼마 못가서 곡조의 음부 몇개를 홀라당 까먹고 끊어지고말았다. 완연 다른 줄기의 곡조가 현령의 입에서 이어져나왔다. 그것은 간밤 자기의 거소에서 읍내서 장가락 꼽히는 명기가 타던 거문고곡조였다. 허나 그 곡조의 흥얼거림 역시 썩 개운치 못했다. 희한과 내구심 등으로 혼반이 되여 사제의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이 지어지고잇엇다.                                 5   붓을 연적에 내려놓으며 악사 당혹감을 금치 못해하였다. 어스름이 내리는데 분명 구름집쪽을 향해 다가온느 발자국소리...늘 찾아주던 사형의 자욱소리는 완연 아니였고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꼭 몇점이라도 집어다주던 마음씨 허랑한 돌배집할매의 발자국소리도 아니였다. 쓰던 글을 중둥무이하고 다시한번 귀를 도사리던 악사 부지중 몸을 부르르떨고말았다. 돌밭을 달그락달그락 즈려 밟으며 오는 소리, 그것은 분명 녀자의 발자국소리였다.   사형과 사제가 련이어 서약을 파기한 마음의 상처를 채 씻기전에 새로운 아픔들이 스승의 《악론》답습에 불면 불휴하고있는 악사에게 언거번거 덧놓여졌다.   사금이 아끼듯해오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애를 잃었던것이다. 애녀석들끼리 술래잡이를 하였는데 덴겁이 숨을 곳을 용뇌하던 그 자식이 드레박줄에 매달려 우물속에 곤두박혀버렸다. 물은 깊지 안앗으나 우물벽체로 둘쑹날쑹 내민 모난 돌에 머리를 박았던것이다. 그를 찾지 못한 애녀석들은 그의 존재를 가맣게 잊고 놀음에 싫증나자 뿔뿔이 헤여져 집으로 가버렸고 악사는 한밤을 패며 애를 찾아 산곬을 누볐다. 이튿날아침 마을의 한 아낙이 맨처음으로 물길러 나와 드레박을 당겨보니 즐벅한 피물이 담겨져 올라왔다. 그날로 산자락에는 작은 봉분 하나가 생겨났다. 악사는 울음조차 울지 못하였다. 그날 밤 마을사람들으느 산쪽에서 울려오는 피리소리를 들을수있었다. 가슴을 찢는 그 곡조에 온 마을이 잠을 잃었다.   다음 안해, 조강지처로 알았떤 그의 안해가 그를 버리고 야밤도주를 해버렷다. 마을로 가끔 찾아들던 읍내의 소금장사와 눈이 맞고 배가 맞았떤것이다. 투전놀이에도 이름있고 발달목침도 이마빡으로 받아 쪼갠다는 보통분수는 넘는자였다. 악사는 안해를 찾을양으로 읍내에 있느 ㄴ그자의 집을 찾았다. 결국 도척같은 그 놈의 골받이에 타작마당의 북데기처럼 늘어지고 말았다. 허나 악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자네 울바자곁에 쭈크리고 앉아 피리를 뽑아들었다. 터진 입술로 쭈크리고 앉아 피리를 더듬었다. 향가도 아니고 별곡도 아닌 무질서한 잡음, 늙은네들의 한숨같기도, 사금파리쪼박을 맞비비는것 같기도 한 불규칙적스러운 음조가 야음을 찢었다. 그것은 깊은 통한과 허망스러움이 스민 소리였다. 발길질로 내쫓으면 다시 기여와 불고...그러기를 몇번이나 거듭하자 그자 역시 맥이 진했던지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북두칠성이 앵돌아질무렵, 삽짝문이 조용히 열렸다. 익숙한 몸매 하나가 머리를 기웃이 내밀었고 이어 악사의 앞으로 와서 털썩 끓어앉았다.  《죽여주세요...》   악사 피리에서 입을 떼였다. 흐트러져 내려온 머리카락새로 안해, 지금은 남의 안해로 된 그 안해를 째려보았다. 안해는 겁기에 질린 눈길로 남편의 처참한 궁상을 곁눈질해보고있었다.  《가자...돌아가자...여직껏 같이 지낸 정분을 봐서라도.》   안해 머리를 쳐들어 악사를 바라보다 그의 눈길과 맞부딤하자 덴겁히 눈을 아래로 깔았다.  《가자!돌아가-》   악사 급기야 안해의 손목을 감쳐쥐였다. 안해 왼고개를 탈며 손을 뺐다. 집요한 당김에 비해 그녀이 거부 역시 강했다.  《더러운 년!》   악사 피리를 들어 그녀의 볼을 힘껏 후려갈겼다. 그녀는 피할념도 않았고 신음성도 지르지 않았다. 얼굴에 대뜸 시뻐걱ㄴ 멍자욱이 줄을 그은것이 희음스레한 별빛이 보였다. 안해의 눈확에 그들먹히 고였던 눈물이 드디여 주르르 넘쳐흘렀다. 어깨를 달싹이던 안해 울음기섞인 소리로 입을 열었다.  《쓸개빠진 년인줄을, 미친년인줄을 저도 아옵니다. 조련찮은 가군님을 둔것도 아옵니다. 허나, 허나...》   안해 머리를 쳐들어 악사를 정시하였다.  《...그 피리에서 그 이라는데서 쌀이 나옵니까? 무명이 나옵니까? 부끄런 애기지만도 마을서 촛손꼽히는녀잘 색시로 맞아들이구 저한테 은비녀를 꽂아주어보았습니까? 금팔찌를 끼워 주어보았습니까? 애녀석이...그 다 못가고만 애녀석에게 엿가락이라도 뻐끈히 녹이게 해주었댔습니까? 사형처럼 넉넉한 재물이 있습니까? 사제처럼 높은 귀골이 있습니까?》   련달은 물음의 홍수앞에서 악사 그만 아연해 지고말았다. 답변을 잃고  았다. 그 물음물음에 한마디 대답조차 줄수 없는 자신을 놀랍게 의식하였다. 한생을 유한히 살게 해주마하고 호기에 넘쳐 맞아들였던 안해, 그 안해에게 자기가 준것이 뭣이며 그 안해를 위하여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인가는 자문이 새삼스레 들었다. 남들의 광이 나는 살림에 부러운 눈매를 짓는 안해를 보고 머리는 길지만 세치보기 소견이라고 까박을 주었고 빈궁에 시달려 바가지를 긁을때면 제쪽에서 외려 증을 버럭내였던 그였다. 오늘에 와서야 가정이란 존재를 뇌리에 떠올려보게 되엿고 사내의 손에서가 아니라 안해의 가녀린 손에 의하여 한가정의 명맥이 여직껏 이어져왔음을 숙지(熟知)할수 있었다. 이한 상념에 악사 멍청한 꼴이 되여 점도록 그 자리에 뿌리내려있엇다. 여직껏 청고했던 그의 심신을 휩싸며 자격지심이 엄한처럼 밀착해왔다. 진득한 한숨을 한번 짓고나서 악사 다시 한번 눈앞의 낯익은듯하면서도 낯선 안해를 소상히 뜯어보았다. 다음 악사는 몸을 돌렸다. 휘청거리며 몇걸음 가다가 겨우 한마디를 힘아리없이 내던졌다.  《잘살아봐...》   며칠후 악사는 입산을 해버렸다.   ...발자국 소리는 가까와지고있엇다. 그 소리는 혼자뿐망의 소리가 아니였다. 나귀의 자국소리, 투레질소리 그리고 분명 견마잡이인듯한 남성의 저력있는 걸음소리와 뒤섞여 들려오고 있엇다. 발자국소리는 구름집에 와 뚝 멎었다.  《어서 들어오도록 해라.》   분명 어줍게 서잇는 녀자의 심기를 헤아려 악사 피리에서 입을 떼며 그녀를 불러들였다. 조용히 문이 열렸다. 치마자락을 사뿐 쳐들며 그녀 문을 넘어섰다. 하얀 코신의 앞코숭이가 얼핏 드러났다. 사라졌다. 그녀 살며시 머리우로 감쳐썼던 남바위를 벗었다. 곧은 가리마, 땀이 함씬 배인 반듯한 아니, 반쯤 내리감은 눈, 안존한 코마루, 꽃잎을 문듯한 입술... 구름집안이 삽시에 훤히 밝아졌다. 악사가 권하는대로 그녀 깔개우에 몸을 틀고 앉았다.  《어떻게 이렇게 루추한 곳으로...그것도 밤길에 대여 왔소?》   악사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그녀 어줍은 기색이 되여 입을 열었다.  《악사님의 피리소릴 듣고 넋을 놓고 그 소릴 따라왔나이다. 》   악사 참지 못하고 웃었다.  《예서 읍내까지 몇리더냐?》  《아니, 분명 들었사옵니다.》   그녀 두손을 가슴앞에 모아쥐였다.  《마음으로 듣고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추월가(秋月歌)의 곡조였습니다.》   악사 몸을 흠칫 떨었다. 방금전 그는 진짜로 추월가 한곡조를 불었던것이였다. 악사 어리친 표정으로 눈앞의 그녀를 다시금 새삼스레 뜯어보았다...   이 녀를 만난것은 해포전의 일이였다. 어느 한번 읍내로 갔다가 사제인 현령의 손에 이끌려 기녀들이 운집해있는 춘향루로 갔다. 《음악을 깨친다는 사람이 녀자를 모르고서야 어이 되겠습니까? 한번 만나보십쇼. 웬간한 녀자가 아닙니다. 이 현령의 수청도 감히 거절하는 녀잡니다. 천금일소(千金一笑)라고 여느 청루녀자들과는 완연 다를겁니다...》   춘향루 앞골목까지 와서 낯꽃을 확 붉히며 주자를 놓으려는 악사의 옷자락을 현령은 기어이 잡아쥐였다...두사람 실랭이를 벌리는중에 악사 홀연 몸을 흠칫했다. 춘향루에서 들리고 있는 웃음소리, 노래소리, 거문고소리...그중에서 유독 한가락의 싱그러운 거문고소리만을 악사는 가려듣고있엇다. 그저 유홍자의 처경에서 멏곡조 뜯을줄 아는 그만한 재주가 아니였다. 분먕 악에 대해 어느 정도의 수련을 쌓은 그런 솜씨였다.  《저 거문골 타는 녀자를 뵙고싶다.》   악사 밀막던 방금전과는 완연 다르게 웨치다싶이 말했다. 이렇게 만난것이 바로 이 녀자였다...  《한곡조 듣고싶습니다...다문 한곡조라도 듣고퍼서 예까지 외람되게 찾아온것입니다.》   그녀 청구의 눈매로 악사를 쳐다보았다.  《밖에 같이 온 사람 있잖느냐? 먼길을 배동해온 사람을 저러헥 내쳐둘순 없지.》  《자리가 협착하여 들어오지 말라고 했삽니다. 춘향루에 있는 부목(땔나무 해들이고 불때는 머슴)이옵니다. 쇤네가 하도 지청구를 해서 나귀를 몰고서 밤길을 대여주었습니다.》   그녀의 진한 청구의 눈빛에 밀려 악사는 피리를 입에 가져다대였고 그녀는 곰상궃게 악사의 곁에 앉아 곡조 가락에 말려들었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악에 미친 사람이였다. 왕궁의 악공으로까지 발탁되였댔으나 그 탁월한 재주를 시기하여 곁에서 간계를 놓는 바람에 파면당하고 귀향하였다. 청빈을 못이겨 어머니는 오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녀는 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녀 역시 음악에 현혹했으나 현금같은 악기 하나 변변히 갖출수 없는 찌든 처경이였다. 하여 아버지는 삼실 여섯가락을 나무판대기우에 매고 잎으로 소리가락을 흥얼거리며 그녀에게 현금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악에 대해 배웠고 사람사는 도리를 배웠다. 악기 아닌 악기에 매달려 삼실을 튕겨대며 악경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딸애의 모습, 그것은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살같이 아픈 육감의 밀착이였다. 그 모습으 ㄹ보다 못해 아버지는 아래입술을 지그시 악물었다.   달도 없고 별도 없는 어느날 저녁, 아버지는 야음을 타서 읍내의 한 부호네 집으로 잠입해들었다. 간거하게 현금 하나를 흠쳐내였다. 돌각담을 뛰여넘다가 너무도 긴장한 나머지 현금을 담안에 떨구어버렷다. 현금의 가락이 듣그러운 악음으로 울엇다. 그 소리는 고요한 밤대기속에서 여느적보다도 높이 울렸다. 아버지는 그때 뛰여야 했다. 허나 그 현금으 ㄹ다시 주으러 들어갔고 그만 가노(家奴)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도적으로 치부되여 감나무에 거꾸로 달리웠다. 날샐녘까지 혹독하게 물매를 맞았다. 그것이 빌미로 되여 아버지는 드러눕고 말았는데 생명이 경각에 달했다. 그녀의 길쌈으로 아버지에게 약을 갈아대기가 어려웠다. 약점 바로 곁에 춘향루라는 기생집이 있었다. 매일 약점으로 드나드는 청초한 소녀, 그 수심에 잠긴 얼굴에서 불운한 처경을 엿보아내고 춘향루의 주인이 연거번거 약값을 선불해주었다. 결국 아버지는 구해내지 못했고 그 엄청난 빚을 치르지 못해 그녀는 청루에 륜략된 몸이 되였다. 춘향루주인의 흉산(凶算)에 들었던것이였다.   이한 뼈저린 연고가 있음으로 하여 그녀와 악사는 첫만남으로부터 의기투합될수 있었다. 더우기 음악이라는 이 하나가 그들의 공감을 유발시켰으며 끈끈한 동아줄처럼 그들을 한데 얽동여 떨어질수 없게 하였다...  《호-어쩜.》   악사가 한곡조를 끝내자 그녀는 두손을 가슴앞에 사려쥐며 가벼운 한숨을 지었다. 그 재주에 너무나 감복한 나머지 감탄이 그만 한숨으로 변용되여 나온것이였다. 그녀는 넋을 놓고 악사를 바라보았다. 그 빛나는 눈길에서 점직함을 느낀 나머지 악사는 고개 돌려 그 눈길을 피해버렸다.  《오늘이,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계시옵니까?》   그녀 은근한 소리로 물었다. 악사 설둥한 기색을 지으며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칠울 초엿새날, 분명 악사님과 처음 만났던 날이엿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감미로움에 젖어있었다. 악사 그 소리에 몸을 흠칫 떨었다. 그 기간 청루에서 벌어들인 한푼 두푼의 뼈돈으로 지묵도 사주고 묵달밭같던 가슴에 정도 심어주면서 악사를 음으로 양으로 많이 도왔던 그녀였다. 또 일개 청류녀자였지만 그녀에게서만 《악론》을 계속 펴나갈 내조의 힘을 얻었던것이다. 악사 고개를 돌려 그녀를 정시하였다. 그녀 악사의 눈길을 정차게 받아들이였다. 면면한 감회와 애모쁨에 출렁이고있는 눈길, 그 눈길속에 진한 사랑의 색조도 어울려잇음을 악사는 감득할수 있었다. 악사 덴겁히 눈을 돌려버렸다. 그녀 한걸음 다가앉았다.  《악사님...》   불러놓고는 이윽토롯 멈칫이다가 그녀 드디여 입을 열었다.  《청추에서 사는 몸이라 쇤네를 얕보고있지 않사옵니까?》  《아니, 아니다 절대루.》   악사 덴겁히 소리를 높여 말했다. 접품이나 언행이 퍽 유하고 숙성한 그녀에게서 비천을 느껴본적이 없는 악사였다. 또 청루의 녀자지만 그녀의 삐여난 미모에서 별다른 잡념도 가지지 못했던 그엿다. 접촉이 잦았지만 그들사이엔 이성적인 친교는 없었다. 기실 그들은 악(樂)을 위한 사형사매(師兄師妹)의 역으로 어우러지고있는것이였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시온다면 오늘 저녁...》   그녀 악사의 손을 당겨 잡았다. 여유있고 애정어린 눈으로 악사를 지켜보다가 혀아래소리로 말했다.  《쇤네를 드리고싶습니다.》   낮고 자닝스러운 목소리였지만 악사에게는 돌사태같은 진동음이였다. 악사 덴겁히 손을 당겨 뽑았다. 허나 이번에는 몸 전체가 품으로 콕 실려들었다.  《악사님을 만난 그 이후로부터 기(技)만 팔고 몸은 팔지 않았더랫씁니다. 비록 이미 더럽혀진 몸이지만두 다시한번 가꾸고 싶어졌습니다. 꺼리지만 않는다면 악사님께만...단 악사님에게만 드리고싶었습니다. 너무나 불운하게 지내오신 악사님에게 녀자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행복을 드리고싶었습니다.》   그녀 축축히 젖은 소리로 말하며 악사의 목을 끈끈히 삼쳐안았다. 그 서슬에 악사 뒤로 벌렁 넘어졌고 그녀 홍칠로 달아오른 볼을 악사의 마른 볼에 맞부벼댔다.  《임금의 부름을 받은 애기를 들어삽니다. 그렇게 되면 악사님과의 지란지교(之蘭之交)도 일약 진대가지 부러지듯 마는구나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앗삽니다. 청루의 몸인지라 떠나는 악사님에게 드릴만한것이 없는것이 마음이 걸려와요. 이 몸을 드리고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한몸은 작열하는 불덩이 같이 정염에 불타고있었다. 밀착해오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육체, 그 현란한 육향에 악사 부지중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른 손으로 피리를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뿌지직-피리, 그 참대의 표피와 손바닥의 마찰음이 요란히 울렸다.  《안돼... 이, 이럼 안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의 차분하고 섬세한 손더듬에 악사는 여직껏 고독만 반초해오며 잠자고있던 남성이 서서히 일어섬을 거부할 길 없었다. 그녀 옷고름을 풀어내렷다. 반라체가 된 무르익은 몸매, 순백의 눈부신 육체가 드러났다. 등잔 불빛의 광환에 어려 그녀의 뽀얀 살결은 진한 색조를 머금고 있엇다. 타령의 음조처럼 늘차게 어깨우로 흘러내린 머리발, 전주곡처럼 조용히 뻗어내린 목줄기를 타고 뉘연히 선을 긋다가 휑가래쳐오르는 곡조의 높이처럼 너무나도 급작스레 부풀어오른 곤혹적인 젖가슴. 그 묵직한 유방의 가녁에 차분한 곡조처럼 비껴 머물은 아름다운 그림자...그녀는 짜장 응고된 한수의 음악이였다. 그녀 수줍게 치마폭을 올리고 생활에 대한 묘연하나 필연의 희마응로 솟구고잇는 악사의 커다란 집념에 자신의 애모쁜 정감을 밀어붙였다.  《아흐흑...》현금의 선을 훑어내리듯 그녀의 입에서 감창이 터져나왔다. 대보름날 떵방아 찧듯이, 한가위날 그네판 구르듯이, 타작마당 씨를 까불리듯이 그녀는 춤굿의 변화많은 춤사위먀냥 신들린듯 악사를 탐닉하고들었다. 거부의 몸짓을 힘아리없이 버리며 악사 격정에 끊어질듯 비틀리고있는 그녀의 허리를 두손으로 꼭 잡아주었다.   홀연 바깥으로부터 어험! 하는 마른 기침소리와 무료한듯 발끝으로 자갈을 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곡이 바뀌는 소절사이의 쉼표처럼 그녀 무춤 동작을 멈추었다. 허나 집요한 정감의 소요에서 헤여나오지 못했다. 그녀 눈시울을 내리깔고 머리를 뒤로 한껏 젖혀버렸다. 반쯤 열린 그녀의 붉은 노래소리로 나마 부끄러움을 위장해보려는 알큰 심사에서였다. 아래우로 요분질하면서 그녀 소리를 뽑았다.   《사랑 사랑 사랑이야   봄바람에 넘노나니 꽃을 물고 즐긴 사랑   원앙처럼...짝을 지어   마주 둥실 떠노는 사랑   어화, 어화둥둥   연연히...고운, 고운...사랑   네가 모두...사...랑...이로구나》   악사 자신의 령혼을 그 곡조에의 음률에 붙들어매였다. 음률의 사래긴 밭우에서 두사람 짜장 한개의 음부로 화하여 뒹굴었다. 숨가삐 울리는 음조에 끌려 여직껏 경직되엿던 그의 정감은 깊은 늪으로 자꾸만 자꾸만 빠져들어갔다. 그 곡조에 따라 너울거리는 불빛이 그네들의 찬연한 정사를 비쳐보고있었다.                               6   셋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악사의 입궁을 앞두고 사형이 풍성한 주연을 차렸던것이였다. 악사는 억병으로 여느때보다도 술을 많이 마셨다. 주기에 구시월 단풍처럼 불깃해진 얼굴에 그로서는 보기 힘들던 기쁨의 웃음이 어려 열기의 빛을 더해주고있었다.  《내 그럴줄 알았지. 그럴줄 알았어. 나 비록 락수가 처마밑의 돌절구를 구멍뚫는 심오한 리치까지는 채 깨쳐알지 못하지만 사제의 끈기에서 그 앞날의  룩이 아슴히 안겨오더군 그래. 매지구름이 쫘악 끼였던 우리 동생의 하늘에도 훤한 별이 쭈욱 비집고 드는 날도 있구만 그래.》   맏이가 술, 기름에 얼룩진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감개에 젖어 너스레를 떨었다. 악사 사형과 사제의 잔에 술을 듬뿍 부었다. 다음 자신도 한잔 따라들고나서 그들을 둘러보았다.  《형, 그리구 동생 이 못난이때문에 그 기간 로고가 많았소. 여하튼간에 나의 입궁이 스승의 평생의 소망을 이루는데 유조한것 같아 기쁘기 한량없구만. 자, 그런 뜻에서 이 술을 기꺼이 받아주오.》  《그래. 묵자, 묵어, 이 아니 기쁜 일손가 묵어야지. 취토록 묵고 마시면서 우리 셋이서 만단정회를 풀어보자.》   맏이가 맨먼저 굽을 내였다. 그런데 셋째는 어쩐지 묵연한 기색이였다. 술잔을 멀거니 내려다보는 셋째의 거동에서 그제야 여직껏 색다른 기분으로 죽쳐앉아잇는 그를 맏이는 기수챌수 있었다.  《웬 일이냐? 우리 현령어르신님은...》   졸다가 불리운 사람처럼 현령은 바삐 응수하며 술잔을 쳐들었다.     《어디 말짼거나 아니냐?》   술잔을 만지작이다가 현령은 이윽해서야 입을 열었다.  《이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기쁜 마음들에 동침을 꽃는것 같아서...》   악사 입가까지 가져다댔던 술잔을 되내려놓았다.  《우리들지가넹 무슨 넘지 못할 마음의 벽이라도 있느냐?》  《그러기에 더 말치 못하는겁니다.》  《아하. 툭 깨놓고 말해라, 사내눔들이 갑자지르긴?》   맏이가 증을 버럭 냈다.  《그럼 나 툭 깨쳐 말하리다.》   악사를 바라보던 셋째가 술잔을 쭉 굽내였다. 그리고는 잠겨든 어성으로 입을 열었다.  《사형이 임금의 신변으로까지 발탁되였다니 나도 애초엔 기뻐했더랫습니다. 헌데 사형은 지금 너무나 좋은 꿈을 꾸고 계십니다. 그곳에 가서 악론을 계속 펴보려는 사형의 심성이 얼마나...짧은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는 말이지?》   셋째는 악사의 질러오는 눈길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접때 임금이 하사한 문물을 지니고 온 관차중에 사제와 천교가 밭은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의 말에 좇아보면 임금이 사형을 부른것은 그 무슨 악리를 깨치려는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니라면?》  《소문이 나면 재미적을 일이지만두 그 관차가 취중에 토파합디다요. 임금님은 매번 내시들의 거들음을 받으며 궁녀들을 점지하여 침상에 오르군 하는데...》   현령이 악사를 힐끈 곁눈질해 보았다.  《...그때마다... 그때마다 침전어구에서 악공 하나가 유연한 피리곡조를 내야 그 일을... 행하는데 버릇됐다고 합더이다.》   짤그랑! 악사의 손에서 술잔이 미끌어떨어지며 조각이 났다. 악사의 불깃하던 얼굴이 삽시에 험악하게 변조되여갓다. 몸을 부르르 떨던 악사 자리르 차고 일어났다. 문을 콱 떠박질러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사형! 사형-》   셋째가 붙쫓아나섰다. 뜰의 담께까지 달려가서 악사는 한손으로 돌각담을 짚고서 몸을 옹송그렸다. 어깨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방금전까지만도 앞길이 소연히 밝게 보이는것 같아 기뻐마지 않았던 악사였다. 그런데 그한 마음에 세찬 작달비가 한무더기 쏟아져내리며 미진하게 그려보던 감몽에 사정없이 길고 깊은 균렬을 준것이였다. 이윽고 악사는 머리를 쳐들었다. 별빛에 드러난 그의 얼굴에 눈물자욱이 얼룩져있었다. 별빛에 드러난 그의 얼굴에 눈물자욱이 얼룩져있었다. 하늘을 바라고 악사는 넋을 놓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일월성신이여, 진세를 굽어보고 살피는 일월성신이시여, 나 둔감한 머리와 미달한 재주로나마 악리의 절정에 오르려고 로심초사해왔는데 어이, 어이 남의 유흥이나 보태주는 활량이 역애만 그치겠나이까?이 비천한 악기쟁이로 말하면 크게 욕될 일이 아닐는지도 모르나 우리 스승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받들어왓던 그 악(樂)으로 놓고 말하면 심한 치욕이 아니겠나이까? 신성한 악을 더럽히는것이 아니겠나이까?》    현령이 다가가 악사의 어개에 손을 얹었다. 악사 으깨진 심정을 수습해들이며 소매자락으로 눈굽을 닦았다. 셋째를 뒤돌아보며 이사이로 말을 내뱉었다.  《나 입궁 안한다!》  《안될 일이옵니다. 사형!》   셋째가 필요이상으로 펄쩍 뛰였다.  《임금의 칙지온데 어떻게 언감 거역한다구 그러십니까?》  《아무리 자존한 임금이기로서니 그래 내 악사의 자존이고 뭐고를 하루밤 궁녀처럼 마음대로 주물리우란 말이냐?》  《경치게 엄턱스런 소릴 하지 마십쇼. 사형, 일국의 군주로서 자기 뜻을 어긴자에 대해서 무슨 엄벌이든 행하지 못하겠습니까? 큰 변고를 치르자고 이러십니까?》   셋짼느 악사의 팔뚝을 부여잡으며 당황망조해마지않았다.  《나 비록 미천한 백정이긴 해두 한마디 삐쳐보자.》   어느새 맏이도 따라나와있었다.  《심산 초야에 묻혀 여뀌풀로 썩느니보다 그런대로 화려한 궁전에서 수긍하고있는편이 더 낮지를 않겠느냐?》   맏이가 상냥조로 나왔다. 악사 그들을 둘러보며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스승의 뜻을 너무나 잘 알지 못하고있소. 사형도 그렇구 사제두...》    악사 머리를 쳐들었다. 구름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뼈무는 그였다. 비록 한마리의 나비가 남기고 떠난 빈 고치나 다름없는 한산한 구름집이였다. 허나 그곳에는 그를 맞아주는 석굴이 있고 산초가 있고 산화가 있고 계곡이 있고 절벽이 있고 송(松)이 있었다. 산의 그 유원한 맛에 흠뻑 심취해버린 악사였다.  《작달비속을 내처 가더라도 낮은 처마밑에 목을 꺾고 싶지 않소!》    악사 대문을 박차고는 계곡쪽을 향한 길로 사라져 버렸다. 왜소하나 그 어떤 결의로 깎아내린듯한 그 작은 체구를 맏이와 셋째는 멍하니 지켜보고있었다.                            7     춘향루의 그녀에 대한 비보를 접한것은 그로부터 며칠후였다. 읍내에서 갑부줄에 꼽히는 한자가 춘향루로 찾아와 거금을 내치고 그녀에게 수청을 요했다. 그녀 기(技)만 팔지 몸은 팔지 않는다고 거부했다. 취기에 절은 그자 수욕이 발작하여 야수처럼 그녀에게 덮쳤다. 그녀 광분하는 그자의 귀때기를 물고 늘어졌다. 더러운 욕구를 달성치 못한 그자 짜장 리지를 잃고 말았고 그녀를 주먹으로 쳐눕히고 실랭이를 벌리는통에 깨여진 그릇쪼각으로 그녀의 얼굴이며 몸매를 성한 곳 없이 째여놓았다.   악사 악연히 놀라며 그녀를 찾아 읍내로 달려왔다. 춘향루로 치달아올랐을 때 탕개풀려 누워있던 그녀 시위에 놀란 새처럼 후딱 몸을 일으키더니 벽쪽을 향해 돌아앉으며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제발.》   악사 그녀의 두손을 잡아떼려 햇으나 그녀의 거부는 집요했고 강했다.  《보지 말아요. 제발 물러가주세요.》   이어 그녀는 목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그의 드러난 손, 손목과 목덜미에  얼기설기 버얼건 상처자욱이 깊숙이 배여있음을 악사는 보아낼수 있었다. 분노가 갈퀴발처럼 일어 악사의 가슴을 허비였다.     《개놈새끼! 짐승같은 놈새끼!》   악사 악에 받쳐 부르짓고나서 몸을 훌쩍 일으켰다.   악사 단걸음에 읍내 북판에 위치하고있는 관청으로까지 뛰여왔다. 관청의 높다란 널대문곁에 백성들의 설분을 관청내에 전갈하기 위한 커다란 북-신원고(伸 鼓)가 세워져있었다. 북채가 보이지 않자 악사는 피리로 북을 힘껏 두드렸다. 둥!둥!두웅-드디여 대문이 삐걱 열리더니 가암른 몸집을 한자가 머리를 쑥 내밀엇다.  《웬 놈이 이렇게 성가스레 구는거냐?》  《나 현령을 만나 긴히 여쭐 말이 있소.》   포졸같아뵈는 그자는 파의파립이 악사의 복색을 가려보자 입을 삐쭉이며 눈알을 굴렸다.  《현령께서 심기가 좋지 못해서 오늘 일체 면회 거절이다.》  《나 현령의 사형이니 어서 현령과 만나도록 알현케 해주오.》   포졸 동공을 키웠다.  《네가 엄감 현령의 사형이라면 난 현령의 아비쯤은 될거다.》   대문이 쾅하고 닫혀졌다.  《여보시오!여보시오-》   악사 목청 깨져라고 소리지르며 연해연방 대문을 두드려 댔다. 허나 더는 응대조차 없엇다. 커다란 실의를 느끼며 돌아서려던 악사 대문앞에 쭈크리고 앉았다. 피리를 뽑아들엇다. 깊은 통한에 절은 피리소리가 관청의 대문을 두드리며 흘러나왔다. 대문이 다시 열렸다. 허나 이번에는 포졸의 야윈 낯짝이 아니라 낯익은 사제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니, 사형께서 어찌하여? 오실거면 미리 전갈해둘것이지?》   현령 황급히 그를 대문안으로 모셔들였다. 그 모양에 방금전의 포졸이 한켠에서 어리친 기색이 되여 멍하니 악사를 바라보고있었다.  《춘향루 녀자의 일은 어떻게 할 작정이냐?》   동헌(곤청의 대청)에서 악사 정곡을 찌르며 대번에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자, 우선 안채로 들어가 숨이나 돌리고 애기해봅시다.》  《아니, 예서 먼저 정답해봐라.》   셋째는 낯살을 찡그렸다. 이윽토록 말을 꺼내지 못하고있었다.  《현령이란 한개 읍내의 부모맞잡이다. 그러한 처신으로 비록 기녀라 하지만 그 역시 하늘이 낸 몸인데 그들의 아픔과 재화를 못본척할수 있겠느냐. 흉범을 잡아 오라를 지워야지!》   악사가 설분에 길길이 뛰는데 비해 현령은 담담한 표정이였다. 딱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사형도 아다싶이 그자는 읍내에서 엄지로 꼽히는 부잡니다. 그자의 재력으로나 위세로는 읍내에서 큰 기침 할만허죠. 우로는 왕궁 아래로는 시골나부랭이에 이르기까지 세도가 커서 광청에서마저 용빼는수가 없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그래도 비뚤어진 권도는 용인할수 없다. 그만한 의리조차 잡지 못한다면 그 관모부터 벗어던져라.》   악사 증을 버럭 내였다. 한동안의 혈기가 곰삭은 뒤 악사 또다시 따져물었다.  《춘향루 주인들은 어떻게 할예정이더나...기녀들을 치고 있는 그네들이...》  《그들에게 이미 사죄금을 보내왔더랍니다.》  《사죄금...흥! 아무리 옆채기가 불룩한 갑부라 하더라도 금액이 얼마면 그 설분을 풀수 있다더냐?》   셋째 한결 음밀해진 소리로 말했다.  《대단합더이다. 사죄금으로 춘향루를 죄다 살수 있게끔 맞먹을 돈을 보내왔다 하더이다. 그러게 이쪽에서도 잠자코 있는거죠. 참, 사형도 지금 세월엔 한쪽눈을 질끔 감고 사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악사 부지중 허무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사제의 뉘연히 군살이 오르기 시작한 허연 얼글을 건늬여보았다. 웬지 사제의 얼굴이 퍽 낯설어보였다. 일전보다 행실이 퍽 오활해진 사제를 두고 그 어떤 염요감 비슷한것이 욱 치밀었다.  《그래 종내는 주체할 길 없단 말이지.》   현령이 켕긴 표정으로 머리를 가로 저었다. 천착할듯한 눈길로 사제를 쏘아보던 악사 피리를 으스러지게 쥐고 불쑥 한마디 했다.  《나 생각을 고쳐 왕궁으로 갈 예정이다.》                               8   방에는 끈적한 침묵이 흐르고있었다. 벽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있던 그녀 갸냘픈 소리로 그 침묵을 찢었다.  《미천한 쇤네를 위해서 그 높은 지조를 버리고 입궁하려 한다면 악사님의 생각은 틀린겁니다.》  《아니요!》   악사 그텨쪽으로 몸을 내밀며 말한다.  《나 이제 입궁한 뒤 임금의 위풍을 빌어 그 귀축같은짓을 서슴없이 지르는 놈들을 주멸하려오. 왕궁의 명의원들을 불러 임자의 모습도 환원시켜드리고...그렇게만 될수 있다면 내가 좀 곤욕을 참아보지.》  《아니올시다!》   그녀 덴겁히 내뿜었다.  《쇤네는 이미 버린 몸이옵니다. 제가 밥먹고 있는 일은...바로 이 얼굴 한장입니다. 그것을 쇤네는 잃었습니다. 쇤네는...단념했습니다...》     그녀의 소리가 울먹이는 소리로 변조되여갔다.  《...쇤네는 아버지 만나러 가겠습니다. 황천의 주막에서 그이와 만나...현그을 켜겠습니다.》  《그런말 마라! 살아야 해! 나처럼 이렇게 산속에서 짐승처럼 구을면서두 살아야 해!》   악사 천둥같이 소리질렀다.그녀 탄력잃고 습하게 변해있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아니옵니다.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옵니다. 이 모습으로... 쇤네는 도저히 이 세상을 살아갈수 없삽니다.》   그녀 서서히 몸을 돌렸다. 본능적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던 손을 천천히 내리웠다.  《아!!!》악사 저도 모르게 비명을 뽑고말았다. 주먹으로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그것은 깨뜨러진 하나의 도자기였다. 완만한 질감과 현요한 무늬로 장식되여 광채를 뿜던 도자기에 어설기 금실린듯한 그런 형국이였다. 그녀의 얼굴은 성한 곳이 라곤 없었다. 일전의 청초한 미모를 뽐내던 그 얼굴이 지금은 꿈속에서나 보았던 악귀의 그 얼굴 같은 형상으로 악사의 눈앞에 놓여있는것이였다. 눈물이 깊숙이 배인 그녀의 상처자국을 따라 여러곬으로 어지러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입궁할 생각은...단념해주십시오.》   악사의 앞에 처참한 몰골 그대로 체념하고 앉아 그녀는 잠겨든 소리로 입을 열었다.  《악사의 스승님도 그렇고 쇤네의 부친도 그렇고 악리의 현묘를 깨치려다 성사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였습니다. 그 크나큰 장거를 악사님이 맡아가고있습니다. 악사님은 큰일 할 사람입니다. 그런 중임을 깨치지 못하고 사사로운 정분에 매워 입궁하고 남의 유홍받이나 돼서는 완됩니다. 이러는것을 황천계신 스승님께서도 알고계신다면 결코 수락해들이지 않을겁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길 없어 그녀의 말은 자주 동강이 났다.  《원체 쇤네가 그렇게 장한 일을 하시고있는 악사님을 내내 받들려 했는데 이제 더는 그렇게 할것 같지 못하옵니다. 하늘은 언녕 쇤네의 운명을 점지했나봅니다. 가탈만 자꾸 지는 운수사나는 팔자를요. 그저 단 하나...악사님을 더는 받들지 못하는것이 가슴저리울뿐...》  《자꾸 그런 신수 불길한 소릴 하지 마라.》   악사 그녀의 말을 주웅 잘랐다.  《저의 이 몰골로 악사님을 받들수 없습니다. 깨끗한 모습으로 꾸며져야 할 악사님의 곡상이 저의 흉측스러운 모습으로 해서 그 맑은 률리가 깨여져선 안되는것이옵니다.》  《내가 입궁해서 명의원을 보낸다잖아!》  《입궁, 그 입궁만은 단념해주십시오. 범은 주려도 풀은 뜯지 않습니다. 입궁하는건 악사님의 본의와 어긋난 일입니다. 악사님은 구름집으로 돌아가셔얍니다. 그 집으로 가서 피리를 들어얍니다.》   악사 눈을 습벅거리며 저도 모르게 배여나온 물멀기를 지웠다. 그녀는 진정 악사를 악리의 반석우에 올려주기 위해 주추와 서까래를다듬는 역할을 해왔던것이였다. 그러한 그녀를 위해서라면 악사는 섶을 지고 불속에라도 뛰여들수 있을것 같았다.  《나 꼭 입궁하고말거야!》   악사 용단을 내리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녀 엎어지며 악사의 발목을 부둥켜안았다. 추연한 눈빛으로 악사를 올려다보았다.  《악사님의 소견이 그렇게 얕으시면 안됩니다. 그건 피리를 버리는것과 같삽니다! 그건 피리를 모독하는 처신이옵니다!》   악사 그녀의 몸을 부추켜 일으켰다. 그 력력한 상처자욱들을 에모삐 어루쓸고나서 몸을 홱 돌렸다.  《기다려줘. 1년이든 10년이든...》  《안되옵니다-》등뒤에서 그녀의 다급한 부름이 들렸으나 악사 개의치 않고 춘향루를 내렸다. 아래층의 문을 빠져 몇걸음을 내쳤을 때였다. 루각에서 피타는 부름성이 울려나왔다.  《악사님-》그녀가 루각우에 나타났다. 봉두란발에 하얀 소복차림인 그녀는 그 어떤 가상스러운 각오를 한듯한 모습이였다.  《추월가를 불어주세요. 제 생각 날때면.》   루각아래를 향해 그녀는 목청 다해 웨쳤다.  《피리에 미안한 처신을 해선 안됩니다.-》   말을 맺음과 함께 그녀 루각우에서 몸을 훌쩍 날렸다.  《안돼!!!》   악사 울부짖으며 두팔을 펼치고 그녀를 받아안으려 미친듯이 뛰여갔다. 허나 때는 늦었다. 스러진 한점의 락화처럼 그녀는 치마폭을 날리며 곧추 추락해내려 루각아래의 돌계단에 머리를 박았다. 현금의 굵은 선을 튕기는듯한 질타성이 악징의 종지곡처럼 들려왔다.                            9  《...거사의 재주를 어여삐 살피시사 입궁시켜 악공으로 삼을 지어니 즉일로 행하라!》   관차 하나가 한무릎을 꺾고 앉아 어필을 쳐들고 높이 읽었다. 악사 부복하고 머리를 땅에 대이고있었다. 구름집아래로 난 자드락길에 말탄이들이 두줄로 늘어섰는데 빈 가마 하나가 대기하고있었다. 왕궁에서 보낸 관차들이 대각소리 높이 울리며 악사의 입궁을 맞으러 온것이였다. 그들속에는 그들을 대동하고 온 사제-현령의 얼굴도 보였다. 이윽고 몸을 일으킨 악사 현령을 한켠으로 잡아끌었다. 관차들이 보이잖는 곳까지 와선 입을 열었다.  《나 간밤에 야밤도주를 해버릴것 그랬네.》  《사형, 환장한거나 아닙니까? 입궁을 하랍시고 행차마저 들이닥쳤는데 웬 지각머리없는 소릴 하고있습니까? 지금...》   악사 들숨 한번 길게 그었다.  《그래 나더러 악론의 편찬을 버리고 한생을 남의 노리개로나 륜략하란 말이냐?》  《소릴 죽이십쇼. 사형 이 대목에 와서 웬 망령이십니까? 언감 군주의 청을 거부했다가 가차하면 목을 낮출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형께서 주자를 놓아 모면한다손쳐도 온 마을 온 읍내의 관련된이들이 그로 해서 재화를 입을것 아니겠습니까?》   현령 구름집쪽을 힐끗힐끗 보며 어성을 낯추어 말했다. 그러는 그 소리는 몹시 떨리고있엇다.  《일개 청루의 아녀자 마저도 절개를 굽히지 않으려고 육골이 스러짐을 마다치 않았는데 여직껏 악리의 탑을 쌓아왔다는 내가 부귀와영달을 바라 허리를 꺾는단 말인고?》   악사 진득한 한숨을 내쉬였다. 품속에서 피리를 꺼내들었다. 자신의 체취와 손때가 올라 반들거리는 그 피리를 처음 보느 ㄴ물건처럼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그 혈(穴)들마다는 꼭 마치 하나하나의 눈이 되여 악사를 쳐다보는것 같았다. 눈을 깜박이며 악사와 힐문하는듯했다.   (정녕 입궁하시려는겁니까?)   순간 깡그리 참살돼버리나 다름없던 리성의 한귀가 엄혹한 현실의 부하를 밀쳐내며 고개를 번쩍쳐들었다. 악사 한숨처럼 한마디 내뱉었다.  《먼저 가서 준비를 서두르게나. 나 인차 따라설테니.》  《왜 그러십니까?》  《나 마지막으로 이 구름집앞에서 한곡조 뽑고싶어 그래.》   악사 피리를 쳐들어보였다. 그러는 악사의 얼굴로 그 어떤 비장한 결의 같은것이 비쳐보이고있었다.  《입궁을 거를 생각같은건 아예단념해주십쇼.》   현령 한마디 력점찍어 이르고는 연신 뒤를 돌아다보며 물러갔다.   악사 피리를 들고 아침마다 수련하군 하던 그 개여울앞의 바위께로 다가왔다. 손을 깨끗이 씻고 입을 가셔낸 뒤 바위우에 정좌하고 앉았다. 피리를 불기 시작햇다. 무애곡(无碍曲)의 선률이 흘러나왔다. 여느때보다도 혼신을 다해 불었다. 눈확으로 넘쳐흐르는 눈물이 볼으 ㄹ타고 내렸고 손짬으로 스며 피리의 혈마다에 흘러들었다. 짜거운 눈물을 씹으며 악사는 음울한 선률의 곡조를 불고 또 불었다. 이윽해서야 곡이 끊었다. 악사 피리에 얼룩진 눈물을 옷자락에 문질러 깨끗이 닦았다. 다음 자신의 기름한 왼손을 이윽토록 내려다보았다. 오른손 하나면 악론을 편찬하는 붓대를 잡기엔 족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들숨을 길게 긋고나서 악사 여울가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어들었다. 그 돌이 작아보여 조금 더 큰 돌을 찾았다. 그 돌이 유연해보여 모난 돌을 찾아들었다. 묵직한 돌의 중량을 한동안 가늠해보았다. 떨리는 왼손을 펼쳐 바위우에 놓았다. 그러는 악사의 눈에 뱀의 그것 같이 무서운 발광체가 번뜩이고있었다. 눈을 질끈 감으며 악사 돌을 추겨들어 왼손가락을 힘껏 짓찧었다. 피가 얼굴에 튕겼다. 악사 짧고 다급한 비명을 지르며 돌멩이를 떨구어버렸다. 전신이 부르를 떨렸다. 비지숨을 몰아쉬던 악사 다시한번 돌멩이를 주어들었다. 뺨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입귀로 물며 돌멩이를 주어들었다. 뺨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입귀로 물며 돌멩이를 추켜들었다. 한번...두번...세번...극심한 동통이 뼈짬으로 스며들었고 그 아픔은 또 흥건한 땀 방울로 화해서 일신의 모공으로 배여나왔다. 미친듯한 자학에 악사의 손, 범인(凡人)들로서는 도저히 낼수 없는 곡조를 더듬어내던 그 손가락이, 그 범상치 않은것들이 악사의 신체의 한부분같지 않게 떨어져나갔다. 악사의 학창의 앞자락이 피칠갑이 되였다. 드디여 피로 얼룩진 돌멩이를 떨어뜨리며 피가 샘솟듯 하는 손, 그 페해버린 조막손을 움켜잡고 악사 그자리에 무너져내렸다. 피리! 바위우에 정히 놓아둔 피리가 보였다. 피투성이 된 손을 떨며 악사 피리를 집어들었다. 아픈 육체,아픈 마음,아픈 눈길로 그 피리를 멀리로 힘껏 내쳤다. 반공중에서 호를 그리며 날던 피리는 개여울에 가서 철렁하고 떨어졌다. 여울에서 빙그르르 맴을 돌다가  피리는 서서히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들쑹 날쑹 박힌 돌에 부딪치기도 하고 급류에서 몸부림치기도 하다가 피리는 드디여 저멀리 시야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쏴,쏴아- 솔에 불리는 바람소리가 들렸다.   따각!따각! 딱따구리가 단단한 각질부리로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가 들렸다.   돌돌돌돌...여울이 자갈을 핥으며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후꿍,후꿍,후유휴꿍! 시뻑건 울음을 토해내는 소쩍새의 소리가 드렸다.   맴, 매-앰 독새풀짙은 논뚝에서 풀뜯는 소의 파장음이 들렸다.   악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어떤 정물처럼 고착되여있었다.   그는 짜장 자연의 소리속에 화해버리고있는것이였다....                                                    도라지 94년 5월호    
3    와 늘 (중편소설) 댓글:  조회:4057  추천:43  2009-01-09
. 중편소설 . 와 늘   김 혁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 박인환 “목마와 숙녀”중에서   조춘 (早春) 너를 처음 만난건 5월이였지? 아마? 푸르름이 신들린 무희(舞姬)의 치마자락처럼 마악 산자락을 덮으려 하고, 해빛이 구태여 어깨전 까지 찾아와 툭툭 건드리고는 올올이 부서져 내리던 5월, 그래, 5월이였다. 흔히 봄은 아름다운 계절이라하지만 또한 사람들이 쉽게 잊혀져하는 계절이기도 하지. 봄이 쉽게 잊혀짐은 여름의 지긋지긋한 더위도, 가을의 못견딜 쓸쓸함도 겨울의 몸서리치는 추위도 아닌 온화함으로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버려서일가? 하지만 봄날이. 그 봄날이 오래도록 잊혀지지않음은 나의 시인 된 흥감스러운 감성때문일가? 아니면? 잊지못할 그날 네가 남긴 인상의 락인때문일까? 그래, 5월이였다. 정확히 5월의 첫주 월요일이였지.      그날 서울에서 시인들이 왔고 시인들은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는 시인”의 생가를 가보고싶어했다. 잡지사 시 편집인 내가 그네들의 향도를 맡기로 했다. 고향의 산야와 고향의 시인에 대한 향도를 맡기엔 내가 가이드 못지않은 적임자라 난 생각했지 그런데… 서울서 오신 시인님들은 려행사와 이미 련락이 되여있었고 가이드도 이미 배당되여 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뿌리치고 나올수도 없고 나는 어쩐지 잉여인간이 된 기분으로 그네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려행사의 자호가 큼지막하게 찍힌 관광뻐스에 올라야 했다. 그리고 서울서 오신 귀하신 손님들이 한참 기다리게 해놓고 늦게야 등장했다. 넌. 안녕하세요? 오늘 가이드를 맡은 심예나입니다! 허겁지겁 뻐스로 올라와 좌석등받이를 손으로 잡고 넌 말했다. 필요이상으로 소리높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네 작은 입술, 립스틱은 심하게 번져져 있었다. 그리고 양광이 지극히도 찬란한 차창밖을 내다보며 뱉은 다음 말, 그말은 이렇게 오래동안 널 기억하게 만들었다. 오래동안, 오래동안… 오늘 날씨 와늘 좋지요? 서울서 오신 시인님들은 일순 머리를 갸웃했고 다음순간엔 설둥해져 버렸다. 사실 윤동주시인의 생가는 이곳에서 와늘 가깝슴다. 시인 한분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 한마디 물읍시다. 와늘이란 무슨 뜻이죠? 낯꽃을 확 붉혔다. 넌. 그리고 미처 해석을 가하지 못했다. 넌. 그 모습이 안쓰러워 내가 곁에서 해석해 주었다. 이 말 함경북도 방언인데… 아주, 영, 대단히, 썩 이런 뜻으로 쓰입니다. 아~ 네~ 시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머리를 끄덕이였다. 처음 보는 풍경과 처음 듣는 방언에 그들은 즐거워하고있었다. 그럴수록 넌 몸둘바를 모르고있었다. 하지만 일신에 배여 체질화된 방언을 넌 쉽게 버리지 못해 했다. 잠시 내릴가요. 와늘 볼만한 곳 또 있어요. 너에게서 와늘이란 방언이 튀여나올때마다 사람들은 미묘한 눈길로 널 지켜보았고 저마다 눈이 빛나며 얼굴에 감추지 못하는 웃음이 묻어 났다. 널 지켜보며 사람들은 모두 유쾌해했고 즐거운 기대와 궁금증으로 가득 차 했다. 급기야 한 시인이 이죽거리며 불렀다. 이보세요 와늘 아가씨 웃음소리가 차안에서 얽혔고 이렇게 너의 별명은 붙여졌다. 와늘이라고. 와늘 촌스럽고 와늘 우숩고 와늘 귀엽기도 한… 그리고 일견에도  초짜 가이드였다. 너 “와늘”.     너의 해설은 관광수첩 몇페지를 읽고 설핏 버무린 느낌이였다. 윤동주 생가로 가던 중 여러곳에 차를 세우고 고향의 명물들을 소개해 주었지만 많은 곳을 틀리게 말하고 있었다. 반일의사릉에서 년도를 잘못 말했고 15만원 탈취 의거현장에서 넌 의거를 주도했던 최봉설의 성씨를 틀리게 리봉설이라고 말했다. 내가 곁에서 일일이 시정해 주었다. 일면 난 안쓰러움을 금치 못했다. 이러다 내가 네 밥통을 깨뜨리는건 아닌가 하는 위구심에. 하지만 외지서 온 이들에게 우리의 력사는 제대로 알려주어야 했다. 드디여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한 시인”의 생가에 이르렀다. 생가 퇴마루에, 우물가에, 생가 가까이의 교회옛터에 숙연함을 머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생가 전람실에서 윤동주 관련 서적을 고르고있는 나의 옆구리를 네가 쿡쿡 찔렀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하여 난 너의 뒤를 따라나섰다. 구석쪽으로 가서 네가 소리를 죽여 물었다. 저… 윤동주 친구 이름이 뭐든가요? 문 뭐였던가요? 문익환, 그분 한국에서 알아주는 목사야 아. 맞다 문익환, 그럼 윤동주 사촌 이름은요? 송씨라고 있잖아요. 난 그만 실소를 머금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네가 한마디 속살거렸다. 이 책값 제가 낼게요. 학비 낸 셈 치고요.   그리고 넌 기어이 책값을 물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실랑이질 하기도 그렇고 해서 나는 네가 선물하는 “윤동지 시 해제”를 받아들고 말았다.   코를 찡긋 하고 웃으며 네가 말했다.   “오늘 와늘 감사했슴다”     그런 네 눈이 짓궂은 개구쟁이 같았다. 순간 왠지 엉터리 가이드에 어처구니를 머금었던 난 네가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늘”. 자두알처럼 동그란 얼굴형의 널 다시 바라보았다. 작은 몸집에 비해서 너의 목소리는 랑랑했고, 매우 적극적인 인상이였다. 넌 순진무구, 단순 그 자체였다. “와늘”.    감흥을 싣고 돌아서던 뻐스는 어느 유원지에 멈추어 섰다. 시골 음식점에 들려 시인들은 이곳의 일품인 토닭을 맛보았다. 진짜 알곡 먹여 기른 닭, 이곳 토닭 와늘 맛잇어요! 하고 네가 극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몸 담고있는 려행사와 음식점간의 교역을 념두에 둔 과장적인 광고 티가 좀 나긴 했지만 음식은 참말로 훌륭했다. 서울서 오신 손님들은 토속 막걸리로 해갈을 했고 토종 닭다리를 뜯었다. 도회지 인스턴트 음식에 찌든 입맛을 확 사로잡는 시골음식에 감흥에 넘친 술잔들이 돌았다. 한잔 드세요 와늘 아가씨! 취흥에 몇몇 시인이 너의 별명을 부르며 권주를 했지만 넌 완연 막아버렸다. 사업시간엔 절대 술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와늘 진지하시네 와늘아가씨가!     권주자의 말에 술판이 웃음으로 뒹굴어졌고 나도 그만 따라서 웃고 말았다. 더불어 술 몇잔 마셔주고 나는 그들의 격정을 방치한채 밖으로 나왔다. 음식을 포식한뒤의 게나른한 자의 유흥으로 뜨락을 거닐던 난 보았다. 유원지의 뜨락에 부설되여있는 회전목마를. 그리고 회전목마에 실려 가고있는 너 “와늘”을 어딘가 툽상스러운 회전목마였다. 말이나 동물의 형태도 아닌 그냥 안장을 만들고 페인트 칠을 올린 수동식 회전목마, 그마저도 칠이 벗겨져 녹물이 든 쇠붙이가 드러나 보였다. 그래도 목마는 잘도 돌아갔다. 목마를 빙그르르 돌려놓고 넌 잽싸게 목마에 뛰여올랐다. “와늘”. 나무가지에 매달려 꿀밤 찾는 다람쥐처럼. 날씨는 너무 맑아 쨍그랑쨍그랑 명랑하게 소리내여 웃는것처럼 보였다. 잘게 찢어진 목화송이 같은 구름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오월의 화사한 태양이 머리우에서 빛살을 흩뿌리고있었다. 푸르고 청정한 공기를 안고 계절을 앞질러 화사한 너의 치마자락이 부풀어올랐다. 정오의 빛줄기는 직사광으로 내리비쳤고 그 아래 너는 발광체처럼 빛났다. 길고 풍성한 머리털이 흩어져 후광처럼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머리칼이 뒤로 날릴때면 길고 아름다운 목선이 드러났다. 빛줄기아래 귀바퀴의 연골이 투명해 보였고 그 연골을 타고 찰랑이는 머리칼의 끝머리마다에는 해빛은 묻어있었다. “와늘” 넌 그 간단한 작희(作戏)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또 때론 아주 힘있게 넌 회전목마의 리듬을 만들어내고있었다. “와늘”. 영화의 한 장면을 스틸(剪辑)하기라도 한듯한 그 장면에 일순 멍해지고 말았다. 난.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사람처럼 한동안 그자리에 서버렸다. 목마의 회전을 따라 나의 눈길도 나의 머리도 움직이고있었다. 한 자락 신선한 산소를 들이키는 듯한 상큼함을 느껴 나는 장력(張力)에 끌리듯 너에게로 다가갔다.    접붙이마다 녹이 슬기 시작한 회전목마의 삐걱대는 소리, 하지만 그 소리가 왜 내게는 청동악기의 연주소리처럼 들려온걸가? 놀랍게도 너의 회전에 따라 잃어버렸던 내 세포 하나 하나의 감각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와늘”. 삐걱거리는 회전목마의 쇠소리에 뒤섞여 너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도 흘렀다. 그리고 난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시인의 단전(丹田)에서부터 올라오는 어떤 감흥을 느끼고있었다. 따스한 피줄속에서 돋아 오르는 순(筍)같은것을 근지러움으로 감지했다. 하늘은 그야말로 투명에 가까운 블루(蓝色) 톤이였고 봄의 지열이 아지랑이처럼 피여올랐다. 해빛이 색실이 풀리듯 회전목마를 휘감는다. 슬슬 깃을 단장하기 시작한 봄 새들이 여러 가지 목소리로 지저귄다.  바람을 가르며 목마가 돈다. 빛속에서 너의 모습은 신기루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저만치 한 무더기의 사과 꽃이 보였다. 근처 과수원에서 접붙이를 해와 울타리 대용으로 심어 놓은 꽃, 그래. 넌 꽃이였다. “와늘”. 항거할수 없는 봄날의 꽃이였다. 넌 빛과 풋풋함을 흩뿌리고있었다. “와늘” 그리고 풋풋함의 저변을 묻어 동인들의 시 한수가 내 귀바퀴를 맴돌았다.   너의 푸른 뼈속엔 산골 물소리 랑랑하고 들바람 내음이 풋풋하다 네 산뜻한 눈동자엔 령롱하게 해살이 깃들고 맑은 구름이 쉬였다 간다 네 옆에서 나는 물가에 산속에 대숲에 유유히 살아가는 어진 사슴이다 … … … - 박설매 “란아 너의 이름으로”       시의 음절을 안고 넌 돌고있었다. 그 눈부신 회전은 슬로우모션(慢镜头)처럼 느릿느릿 돌다가 정지되여버렸다. 문뜩… 나의 머리속에 나의 심방속에 영원히, 영원히. 그리고 못나게도 그날부터, 시나브로 봄이던 그날부터 난 널 기억해 버렸다. “와늘”.       나 방   모색(暮色)이 창연한 연길로 관광뻐스는 그제야 도착해 서울서 오신 려행객들을 이 작은 시가지의 낯설은 거리에 꾸역꾸역 토해냈다. 하지만 서울사람들의 여흥은 계속되였고 난 손님들을 섬기는 립장에서 그 여흥을 묻어갈수밖에 없었다. 그 대오에는 너도 끼여있었다. 관광뻐스와 함께 사라지려는 너를 어느 시인인가가 함께 가요! 와늘 아가씨~하며 손목을 잡았고 막무가내라는듯 너역시 따라나섰다. “와늘”. 서울에서 온 시인들은 감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서울 명동의 축소판인듯한 이 작은 도시를 누볐다. 보신탕도 마시고 양꼬치구이도 뜯었다. 다방에 가서는 윤동주를 읊고 김소월을 읊고 릴케를 읊었고 노래방에 가서는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갔어도”를 열창했다. 그리고 맥주며 소주며 콜라며 각약각색의 술이며 음료며가 너를 향해 몰부어졌다. 수고많았어 “와늘”씨! 원샷! 연변 아가씨! 술 못합니다. 술 와늘 못합니다! 하다가 겨우 몇잔 마셨는데 노래방 쏘파에 류탄(流弹)에 격중 된 사람처럼 넌 픽- 쓰러지고 말았다. “와늘” 정말 주량이 “와늘” 적은 모양이였다. 서울손님들은 그런 널 내쳐두고 그냥 18번을 열창했고 뒤처리는 내가 나설수밖에 없었다. 널 부축해서 노래방을 나와 택시에 앉혔다. 어데냐? 살고있는 집이 어데냐고? 내가 쓰러져있는 널 깨워라도 볼 요량으로 소릴 높여 물었고 다음순간 또박또박 대답했다. 넌 선생님, 우리 술 한잔 더 해요.     사실 멀쩡했다. 넌. “와늘” 멀쩡했다. 손님들이 끈질기게 술 권할가 연극을 놀았다고 했다.     선생님도 내가 와늘 취한줄 알았죠.     깔깔 웃어댔다. 넌.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작고 령롱한 구슬처럼 택시안을 뒹굴었다. 나도 그만 따라 웃고 말았다. 하루의 피곤이 그 웃음 한방에 날아가는듯 한 느낌이였다. 사실 나도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알콜로 질퍽해가는 그 자리를 언녕 뜨고싶었던것이였다. 그런데 너의 깜냥에 끌려 나도 은연중 탈출구를 연것이다. “와늘”. 우리들의 웃음에 감염된듯 뭐가 그리 우수워요?하고 택시기사도 멋모르고 따라 웃었다. 웃음을 실은 택시는 네가 원하는 곳을 향해 달렸고 어정쩡하면서도 재미난 기분으로 난 널 따라서고 말았다. “와늘”.     북대의 밤시장. 방수포로 하늘을 이고 네변을 두른 조야한 밤시장의 음식난전에서 우린 마주앉았다. 여름의 전조(前兆)가 풍기는 5월의 밤, 금방 개장한 밤시장에서 난 흔쾌히 돈지갑을 열었다. 무얼 먹겠는가고 물으니 뻔데기를 먹겠다고 했다. 놀랍게도 앳된 처녀애가 그런 징그런 놈을…    와늘 맛있슴다. 잡숴보세요 한번.    드디여 뻔데기 튀김 한 접시가 올랐다. 술 한모금 비우고 노르스름하게 튀겨진 뻔데기 하나를 집어 아삭아삭 씹어먹었다. 와늘 맛있게 먹었다. 너 “와늘”. 평소 웬간한 주량이고 안주도 가리는 쪽이 없는 나였지만 뻔데기만은 먹어보지 못했다. 잡숴보세요. 먹는다고 죽지않아요. 영양가만 높은걸요. 바삭바삭하면서도 뒤맛이 고소하답니다. 와늘 맛있는데요. 너의 간청에 못이겨 나는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자기 몸에 대고 시약(试药)하는 약사의 기분으로. 종이장을 씹는듯 어딘가 퍽퍽한 느낌, 그런데… 아닌게 아니라 뒤맛이 고소했다. 환장하게 고소했다. 저도모르게 또 한점 집어 입어 넣고 말았다. 다시 한번 작고 령롱한 구슬이 내 신변에서 구을렀다. 웃으면서 사실 오늘이 가이드 첫날이라고 말했다. 너 “와늘” 그럴줄 알았어. 그렇게 티가 많이 났어요? 그래 와늘 많이 났지. 내가 과장된 표정으로 너의 어폐를 흉내냈지만 넌 웃지않았다.   나 아마 가이드 감이 아닌가 봐요.     걱정을 뿜으며 넌 연거퍼 술잔을 비웠다. 난 오늘 저지른 너의 몇가지 실수를 지적해 주었다. 부끄러운듯 넌 술만 들이켰다. 듣는둥 마는둥 했지만 난 나대로 윤동주라는 시인의 청고한 일생이며, 시인이 소외된 사회며, 관광지보호의 중요성이며에 대해 열기를 뿜으며 말했다. 말해놓고 나스스로 무안해 졌다. 그만큼 너처럼 나도 대화가 필요했나보다. 처음 만나는 가이드와 이렇게 말 주머니를 열고 대화거리를 만드는걸 보면.  이번엔 제 얘기 들어보실래요. 취기에 눈시울이 발가우레해진 네가 입을 열었다. 사뭇 진지한 표정이였기에 나도 진지하게 귀를 빌려주었다. 낮은 톤으로 너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넌. 가끔씩 뻔데기 튀김을 입에 넣어가면서.   넌 업둥이였다고 했다. “와늘”. 다섯살때 양모가 업어왔는데 친부모의 얼굴은 생각나지 않지만 양모의 집에 온 첫날은 그 나이에도 또록또록 생각이 난다고 했다. 유난히 넓은 양모의 집이 추워 보였고 공격적인것 같이 뾰죽한 양아버지의 코가 무서웠고 안고 다독여 주었지만 양모에게서 풍기는 향수냄새가 낯설었다고 했다. 그렇게 남의 집 양녀로 자랐는데 고중에 입학하던 해, 정을 붙여온 양어머니가 뺑소니차에 치여 죽었다고했다. 뒤미처 양아버지는 중국 녀자와 재혼하고 그 녀자의 고향인 관내로 따라 가버렸다. 또 한번 원치않게 낯선 세상에 내쳐져야만 했다. 넌. 학비를 대줄 사람도 없고해서 고2에 사회로 나오고 말았다고 했다. 친구네 집을 떠돌다가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미장원에 잠시 취직했다.  미장원에 몇해째 붙박혀 있는데 머리하러 오던 단골인 려행사의 책임자가 가이드에 의향이 있나고 물어서 처음 나섰다는것이였다.   아직 어린 육신에 토네이도(龙卷风)처럼 들이닥친 인생의 불행에 대해 넌 아프게 말했다. 생맥주 한모금에 뻔데기튀김 하나씩 씹어가며. “와늘”. 그리고 이야기하고있는 너의 눈은 모호한 슬픔과 갈등, 그리고 약간의 불안기 같은것을 가득 담고 있었다. “와늘”   더는 크게 뜰수없는 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네 그 이상 더는 작아질수 없는 작디작은 귀로 바람소리, 새소리 그리고 세상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네 하늘이 어찌하여 나를 만들었는지 나는 그것을 몰라도 좋네 더는 작아질수 없는 가슴에 바늘귀 같은 뙤창을 만들고 푸른 하늘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나도 시간의 하늘을 오가는 한오리 바람인줄 알았네   - 김동진 “말하는 이끼”   화장을 지우며 눈물이 흘러내렸고 네 왼쪽 눈가장자리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드러났다. 그건 태짐이였다. “와늘”. 팥알처럼 도드라진 하나의 푸른 태짐(胎痣).   어머 들켰네. 사실 나 눈물짐 있어요. 그래서 맨날 울며 살 팔자래요. 모두들…   나의 시선을 의식하고 핸드백에서 화장솔을 끄집어 내여 넌 눈가를 문질렀다.   싫어요. 남들앞에 눈물짐 보이는거   바삐 화장을 고쳤고 잠간새에 태짐은 사라져버렸다. 화장으로 생기를 되찾은 얼굴로 넌 말을 이었다.   사실 제 이름 심예나 아니얘요. 건 려행사 사장님이 달아준 이름이고요. 제 진짜 이름은… 듣고서 웃지 말아요. 제 진짜 이름은 심순애랍니다. 좋아하던 연극의 주인공 이름을 본따 지었대요. 울 양아버지가. 이름이 와늘 웃기죠? 령롱한 구슬이 또 한번 구을렀다. 하지만 네 눈귀에 아직도 완고하게 맺혀있는 이슬을 난 보았다. “와늘”. 네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하나의 형상이 내 눈앞에서 그물거렸다. 그건 나방이였다. 한 마리의 나방이였다. 이제 겨우 뻔데기속에서 탈출한, 하지만 높고 너넓은 세상의 하늘에서 작은 나래를 어찌할지 주체하지 못해 파득이는 나방. 딱 한 잔이라고 했던 술은 두잔 석잔으로 이어졌고 그날 우린 밤늦도록 밤시장에서 앉아있었다. 눈까풀이 풀어질 때까지 술을 마셨다. 밤시장의 음식난전마다에는 알전구가 밝혀져 있었다. 알전구가 뿜는 희윱스르레한 불빛아래 눈물짐이 있는 처음 만난 녀자와 마주해 난생처음 씹어보는 환장할 맛의 뻔데기와 환장하게 우울한 이야기들, 내 시인의 감수로서는 환장하게 인상적인 밤이였다.  “와늘”.         재 회   사실 그 무렵 나 역시 환장하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내 책상물림이라 글외에는 또 글밖에 모르는 청빈한 문인과 몇해를 힘들게 살아준 안해는 두손을 들었고 리혼수속을 마치자 곧 출국을 해버렸다. 그리고 화는 단으로 오지 않았다. 모두들의 말처럼 화는 쌍으로 왔다. 혼인의파렬로 몸부림하는 나에게 또 한번의 타격이 왔다. 내가 여태 근무하던 잡지사가 정간되고 만것이다. 우리 말로 된 유일한 시 전문지가 우리 말의 위축으로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그 “페지”를 닫아버리고 만것이다. 난, 사거리에서 엄마의 치마꼬리를 읽어버린 미아(迷儿)처럼 되여버렸다. 격심한 실의끝에 난 한숨을 거두었고 눈물을 닦았다. 눈물을 흘린뒤의 보다 명징(明澄)해진 시선으로 현실을 정시했다. 그만큼 의연하고 담대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였다. 정말이지 이제부터 내가 혼자 가야할 길은 멀었다. 리혼한 안해에게로 집은 넘겨졌고 둥지털린 멧새처럼 난 시급히 엉덩이를 놓을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세방집을 찾아 나섰다. 이곳저곳을 누볐고 어눌하게나마 세방주인과 실랑이질하며 방세를 깎고하면서 겨우 북대부근에 집 한채를 세맡았다. 이사짐은 많았다. 많은 이사짐은 모두다 책이였다. 삼륜차부들을 동원해 책을 날랐다. 볼썽사나운 한 시인을 동반해 보들레르와 릴케와 뿌쉬낀과 김소월과 리상과 윤동주가 일렬로 나를 따라 작은 세방으로 붐비며 들어갔다. 어머, 책이 와늘 많네! 층계에서 이사짐의 행렬을 보고 누군가가 놀란 소리를 뿜었다. 그 소리, 그 익숙한 말마디에 나는 문뜩 멈춰 서고 말았다. 책짐을 든채로. 그래 너였다. “와늘”. 이 세상에는 수많은 만남이 있고 그중에는 인차 잊혀질 만남도 많았지만 난 순간에 널 기억해 내고 말았다. “와늘”. 너도 미구에 날 알아보았다. 어머, 선생님! 이사하세요? 어머 묘하네. 와늘 묘해! 어폐를 쓰는 그 버릇은 여전하구나. 공교롭게도 나의 세방주인은 네가 아는 분이라 했다. 넌 내게서 이사집을 앗아냈다. 굳이 함께 날랐다. 드디여 이사짐을 다 나르고 땀을 들이고 있는데 네가 누군가와 함께 들어섰다. 나에게 인사시켰다. 제 남자친구얘요. 그래? 반갑네 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 앤 나의 손을 받아주지 않았다.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찌르고 키 큰 맨드라미처럼 서서. 그저 안녕하세요! 한마디만 던져왔을뿐이였다. 그렇게 말하는 애의 키가 압도적으로 컸다. 대보름날 민속춤을 추는 사람들이 나무다리를 짚고선듯 엄청 컸다. 그런데 솔직히 첫 인상이 좋지않은 애였다. 손님에게 일별의 목례조차 없는애. 크지만 비쩍 마른 몸에 온 얼굴이 좁쌀을 한 되박 쏟아붓기라도 한듯 여드름투성이였다. 강파르고 뾰족한, 그리 너그럽지도 않은 성품이 보이는 아이였다. 미안하지만, “와늘”.       그 앞에 서니 넌 도토리처럼 작아보였다.  하지만 그애의 겨드랑이밑에 끼여 웃고만 섰는 네 얼굴은 엄청난 키 차이에도 불구하고 밝아보였다. 선생님의 이 세집 제 남자친구 이모부가 세주는 집이랍니다. 오, 그래? 키도 크고 좋구나 남자친구 난 본의에 없는 덕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흡독하는 사람 같은 인상의 네 남자친구는 아무말도 없이 사라졌고 넌 나의 이사짐을 풀며 도와주려했다. 잘 생겼죠? 내 친구? 너의 물음에 엉.하고 난 애매한 단답을 주고 말았다. 하지만 넌 나의 반응을 느끼지못하고있었다. 이사짐을 정리하고있는 내곁에서 끝없이 남자친구 이야기를 했다. 잘 생겨서 좋고 키가 커서 좋고 이모부네가 잘 살아 좋고… 묻지도 않는 남자친구에 대한 칭찬을 이어댔다. 남자친구 덕분에 힘든 가이드직도 때려치우고 집에서 그냥 논다고했다. 이때 네게서 투명한 새소리가 울렸다. 내가 흠칫했고 넌 웃음을 토했다. BP호출기의 소리였다. 내 남자친구 사준거랍니다. 옆구리에서 BP를 떼내 보이며 네가 자랑했다. 날 부르네요. 그리고 경쾌한 뮤지컬 배우의 보법으로 넌 집에서 뛰여나갔다. “와늘”.       우 기 (雨季)   혼인이 조종을 울리고 직장을 잃은뒤로 난 전전긍긍 이 도시를 떠돌아 다녔다. 뿌리잘린 부초(浮草)처럼. 네 남자친구의 이모부가 세를 주는 세방집도 기한이 찼고 난 또 세집을 옮겨야만 했다. 얼마후 난 이 시가지의 서쪽 가장자리에 자그만 세책방 하나를 차렸다. 남자친구네 집에 올때마다 내 방을 노크하고는 어줍은듯 들어와서는 돌각담처럼 무져있는 책무지 앞에서 내가 타주는 싸구려 막대커피를 마시며, 재깔이던 너를 더는 볼수 없었다. “와늘” 책 안 읽는 풍토의 이곳에서 책방수입은 보잘것 없었다. 수많은 관념과 방향들로 들어차 있을것 같은 저 두꺼운 책들도 결국은 나의 생활에 대한 향방을 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책상물림인 내가 뾰족히 찾아할 일거리도 없고 하여 난 책방에 매달려 입칠을 하고있었다. 확실한 내 일을 갖고 몰두하다보니까 인생에 좀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한편 아직 페간당하지 않은 우리말로 된 순문학지들에 열심히 투고했다. 몇줄 안되는 시와 내 이름 석자가 적혀나온 문학지들을 받아들고는 법열(法悅)을 느끼듯 기쁨에 몸을 떨군하였다. 그리고는 나의 시가 적힌 그 문학지들을 책방의 세책코너에 꽂아두기도 했다. 읽는 사람도 없을터지만. 그것이 그무렵 내 인생의 전부였다. 사라져버린 꿈과 랭혹한 현실에 대한 인식 때문에 아름답지만 뼈아픈 시를 쓰고 인생이며 문학이며에 대하여 고민하는, 고작 몇평방메터의 책방에서 수백권의 책을 임대하면서 임대료를 챙겨 살아가는 이 시대 서러운 시인일뿐이였다. 난.   그날도 비 내리던 날이였다. 하늘은 연신 더러운 비물을 재빛 도시의 정수리에 무진장 흩뿌리고 있었다. 난 비오는 날이 싫다. 책에 누기가 드는건 물론 가슴도 습해지는 그런 날이. 그래서 여느때보다 일찍 문을 닫으려는데 해종일 손님없던 책방에 비소리를 들려주며 문을 밀고 녀자 하나가 뛰여들었다.     전화 한통 합시다! 녀자는 급박하게 수화기를 쳐들었고 급박하게 버튼을 눌렀다. 푼돈이라도 끌려고 난 책방에 공용전화를 가설했고 때로 책 임대료 한잎도 못받는 날에 외려 전화비값이 더 많을때도 있었다. 오빠야? 나야! 한 마디를 떼놓고 녀자는 울기 시작했다. 녀자의 어깨가 톱질하듯 오르내렸다. 밖에선 비가 내렸고 책방안에서는 눈물이 내렸다. 울음섞인 코멩멩이 소리로 녀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수화기가 그 무슨 고해상사를 하는 신부의 창구인듯이 많은 말을 했다. 시끄러운 곳이나 먼 곳에서 거는 듯 높은 목소리다. 실내를 가득 채우는 녀자의 톤이 높은 소리가 비소리의 단조음을 갉아먹었다. 어떻게 지내? 아프지는 않아? 음식은 입에 맞고? 고기는 먹여줘? 하루 몇시간씩 잠을 재워? 한 방엔 몇이 들어 있고? 그 사람들 오빨 괴롭히진 않아? 난 괜찮아. 몸상태도 좋고. 정말이야 와늘 좋아…. 나는 흠칫 녀자에게로 눈길을 주었다. 드디여 끊나지 않을것 같던 통화가 끝났다. 얼마얘요? 녀자가 호주머니에서 짤깍돈을 꺼내여 세면서 나에게로 다가왔다. 아직도 그치지 못한 울음이 딸국질처럼 이어지고있었다.   난 아무 대답도 못했고 녀자에게 들붙은 시선을 거두어 들이지도 못했다.  비물이 떨어지는 긴 머리칼, 회가루라도 뒤집어 쓴것처럼 창백한 얼굴, 발갛게 질린 눈가에 또렷이 박힌 눈물태짐.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 선이 울퉁불퉁하게 부어있었다. 그래 너였다. “와늘” 어머, 선생님? 급기야 너도 나를 가려보았다.  눈물에 씻겨진 네 눈동자는 까맣고 깊었다. 덩그마니 쌍꺼풀 진 큰 눈은 경계심으로 가득했고 또 그것은 한없이 텅 비여 보였다.  첫 만남때보다 넌 유약해 보였고 조금은 지저분해 보였다. “와늘”. 애초의 미려한 모습은 오간데 없었다. 헐렁한 옷이 네 피부에 눅진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비에 젖은 바지에 척척 감긴 네 다리가 마냥 무겁게 보였다. 흰 양말에 든 검은 흙물이 보였다. 끈적하고 탁한 공기가 네 주위를 감돌고있었다. 비물에 흠뻑 젖은 너의 일신에선 꿉꿉한 냄새가 날것만 같았다. 넌 중량 없이 허허 안개바다에 떠있는 사람처럼 처연하게 보였다. “와늘”. 그리고 들먹이는 높은 가슴 그 아래로 배가 선연하게 불어있었다. 난 결례(缺礼)라는것도 잊은채 뚫어지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드러난 목이며 팔이며가 너무 말라있었지만 배만은 베개라도 품은듯 툭 튀여나와 있었다. 너의 작은 몸속에 분명 또 하나의 숨결이 숨어 있었다. 겨우 한두해 보지 못했더닌 넌 산월을 앞둔 녀인네로 되여 내앞에 나타났다. “와늘” 보도랑이 터진 물처럼 너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푸른 태짐우로 흘러넘쳤다. 동전을 움켜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넌 울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내면서 네가 입을 열었다. 낮게, 조금은 부끄러움이 섞인듯한 소리로 물었다. 라면있어요? 뭐? 뭐라고? 잘못 듣기라도 한듯 내가 다시 물었다. 라면 있어요? 뜨끈한 라면 먹고픈데 부끄럽게, 하지만 또박또박 넌 말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봐! 난 쏜살같이 책방을 뛰쳐나갔다. 우산도 쓰지않은채 길건너 슈퍼까지 달려가 라면이며 짠지들을 샀다. 합자기업에서 만든 라면이 아니고 비싼 수입제 라면 몇개를 사들었다. 다시 비를 가르며 돌아와 책방뒤에 붙은 작은 자취방에 들어가 라면을 끓였다. 달갈도 넣을가? 네가 머리를 까땍가땍했다. 달걀을 깨넣었다. 두개를 넣었다. 이젠 홀아비생활이 몸에 배인지라 나 라면만은 그런대로 잘 끓였다. 라면이 다끓자 짠지봉지의 입구를 이발로 물어 찢어서는 짠지를 라면 그릇에 몽땅 부어넣고는 선채로 넌 라면을 건져 먹기 시작했다. 후르륵~ 후르륵~ 그 무슨 음식 빨리먹기 오락쇼에 나간 사람처럼 빨리도 한그릇을 비웠다. “와늘”. 네가 상기된 얼굴로 들이붓듯 허겁지겁 라면 한그릇을 다 비울 동안, 나는 우두커니 앉아 너의 둥근 등만 애처롭게 지켜보았다. 굽은 등은 먹이를 뜯는 맹수의 뒷모습처럼 굼지럭거린다.   미안하다 정말 너무도 먼먼 길을 너는 외로이 홀로 걸어왔구나 다시 한번 마주서서 생각해 봐도 미안하다 정말…   - 윤청남 “꽃이 꽃으로 보이는 순간”   그런 질문 따위는 하지 말아야 옳은거라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너의 그 심하게 불어오른 배를 자꾸 의식해 나의 질문은 터져나오고야 말았다. 어떻게 된거니? 매워서 실실거리며 입가로 번져진 국물자국을 휴지로 닦다가 네가 다시 입을 비죽이며 울기시작했다. 울음에 사연을 담아냈다. 남자친구에게, 키큰 맨드라미 같은 그 남자친구에게 일이 생겼다고 했다. 원체 남자친구의 이모부가 들어있는 집과 세를 놓는 세방집은 모두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한국에서 부쳐 보낸 돈으로 이모네가 산것이라고 했다. 동생네 집에 얹혀있는 아들 때문에 매달 어김없이 학비며 생활비들을 부쳐왔다고 했다. 그러던 어머니가 어느날부터인가 소식이 끊겼고 그날로부터 이모와 이모부의 태도는 급변했다. 그녀와 결혼할 요량으로 집을 내달라고 하자 그때로부터 남자친구와 이모네는 전쟁이 시작됐다고 했다. 집의 소유권을 두고 법놀음까지 벌렸다고 했다. 실랑이가 오가다가 이모부가 남자친구의 귀뺨을 때렸고 남자친구가 우직함을 참지못해 재떨이로 이모부의 머리를 깠다고 했다. 이모부는 중태에 빠져 입원했고 모질게도 이모는 그런 조카를 고소했다고 했다. 그래서 3년의 실형을 받고 “콩밥”을 먹고있는 중이라고했다. 남자친구가 판결받기 전날 그녀도 임신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비는 그냥 내렸고 비처럼 습한 어조로 넌 진창길처럼 엉망이 된 네 신세를 이야기했다. “와늘”. 말을 마치고 너는 울었다. 한동안 울었다. 깊은 오열이였다. 너무 깊어서, 나는 그 순간 너를 건드리지 못했다.  지금까지 넌 허방위를 걸어온 듯했다. “와늘” 네 이야기를 들으며 목구멍으로 무언가가 뜨겁게 치밀어 올라 나는 자주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왜 내 삶의 테두리에는 사연 아픈 사람들만 있는거지? 문뜩 네가 내 팔뚝을 잡았다. 급박한 어조로 말했다. 날 여기 있게 해주세요! 있을데가 없어요.  애원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러면서 넌 불안한 시선을 연신 좌우로 날려보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후두둑 무너져 내릴것만 같이 지쳐 있는 그 눈빛이 새삼스레 내 가슴을 후벼냈다. 오래 가진 않을거애요. 이제 법원판결이 나서 집 찾으면 나갈게요. 잠시 진지한 침묵이 실내를 감쌌고 스스로도 그 침묵이 싫어져 난 머리를 끄덕이고 말았다. 네 모습이 혼란스러운 탁류속에 떠내려가는 한가닥 지푸라기 같아서. 그리고 이 순간엔 목석이라도 머리를 끄덕이였을것이였다.     작고 초라한 내 자취방에 이 몇년간 손님을 치르지 않았다. 네가 첫 사람이였다. 이렇게 카메라의 줌렌즈로 눈앞에 바짝 끌어다 놓은것처럼 불쑥 나타난 너와 난 참으로 묘한 인연으로 엮어져 한 처마밑에서 한 솥밥을 먹게 되였다. 큰 물고기의 배에 붙은 작은 흡반어처럼 책방에 붙여 지은 작은 자취방에서, 이제 겨우 몇번 만났던 남녀가.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나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자 넌 무거운 몸으로 일을 손에 잡았다.    나를 도와 돌려온 책들을 정리하고 파손된 책들을 손질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해 창고에 박혔던 책들이 서렬을 찾았고 낡고 너덜너덜 하던 책들이 새옷 단장을 했다. 책방의 창문을 필요이상으로 알른알른 닦았다. 그때로부터 우리 책방의 유리는 그 무슨 의류전시장의 창문처럼 그렇게 깨끗하고 맑아졌다. 청결함을 좋아하는 그것이 곧바로 네 깨끗한 마음의 표출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와늘” 집안 구석구석 빗질을 하고 닦기를 반복했다. 물건들이 제 자리로 정리되고 방에 윤기가 흐렀다. 나의 밀린 빨래도 기어이 앗아내 해주었다. 음식도 네가 끓였다. 아침이면 들려 오는 나지막한 도마소리, 기름타는 냄새, 그리고 슬리퍼를 잘잘 끌고 오가는 너의 발소리... 불편함보다 그 어떤 충만감이 작은 방을 들먹히 채웠다. 꽤 오래된 홀아비생활로 부잇하게 거미줄 어렸던 내 방과 내 심성이 먼지를 털고 일습을 개비하기 시작했다. “와늘”. 하지만 네 얼굴엔 물 그림자 같은 수심기가 마냥 어려있었다. 일을 하다가도 잠시 손을 놓고 멍하니 앉아서 바보 같은것, 바보 같은것하고 혼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배속의 아이를 위해 저녁이면 가끔 산책을 나가곤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내가 널 배동해주었다. 어스름이 내리고 한낮의 화끈했던 열기가 삭아드는 초저녁 도시의 가녁을 우리는 노량으로 거닐었다. 어느날 네가 내손을 더듬어 잡아 쥐였다. 그리고 부여잡는 네손엔 힘이 들어가 있었다. 혼자서 생활의 중량을 감싸안은채 추운 비속을 가르며 온 넌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나 보다. “와늘” 그 손을 난 꼭 사려쥐여 주었다. 신혼에 아기를 가진 부부처럼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산책을 했다. 세간의 눈길을 난 의식하지도 않았고 피하지 않았다. 이렇게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한 관계가 어디있을가만은 사랑이 필요한 너에게 조금이라도 위무(慰撫)를 줄수있다면 어떡하든 좋다고 난 생각했다. 그건 또 어찌보면 외로웠던 나 자신에 대한 위무이기도 했다. 산책으로 책방 가까이에 있는 공원에도 자주 갔다. 그곳에는 회전목마가 있었다. “와늘”. 밤의 어둠을 썰며 음악을 안고 돌아가는 회전목마는 이승의 그것 같지않게 신비스럽고 영묘해 보였다. 목마가 돌고 음악이 울리고 아이들의 웃음이 어우러져 천국의 풍경을 그리고있는 그곳을 넌 무척이나 좋아했다. 기쁨의 회오리에 잠긴 아이들을 지켜보며 넌 속삭이듯 말했다. 나도 저렇게 이쁜 애를 낳을거애요. 우기였다. “와늘”. 우기에 우리는 또 만났다. 이렇게 습습한 우기속에 여의치 못한 운명을 가진 사람이 한사람도 아니고 두사람이 있다는 건 슬픈 일인데, 이상하게도 슬프지만은 않았다. “와늘”. 우리는 서로의 체온으로 애써 상대의 눈물을 말려주었고 젖어드는 가슴에 온기를 주고있었다. 거부할길 없이 우리몸을 두다리며 쏟아져내리는 세간의 장대비를 피하고 막아주며 우린 살아가고있었다. “와늘”. 책방에는 수업을 끝낸 학생들로 점심나절에 손님이 가장 많았고 오전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더구나 기분이 찜찜한 우기라 요사이는 손님이 거의 끊기다 싶이 되여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것 같은 오전, 그런데 그날은 오전나절에 웬 손님이 뛰여들었다.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뭉그적거리다 손님은 계산대쪽으로 다가왔다. 아침에 네가 깨끗이 닦아놓은 바닥에 큼직한 발자국을 내며 다가와 물었다. 순애 여기 있습니까? 일순 멍혀졌던 나는 순애라는 이름이 너의 본명이였음을 급기야 떠올렸고 마주한 사람의 키가 엄청 크며, 그 사람의 머리가 까까머리이며, 그가 누구라는것을 뒤미처 알아보았다.     인기척을 듣고 뒤방에서 네가 머리를 내밀었다. 예리한 날에 상처를 입을 때 나는 비명 같은 소리로 넌 불렀다. 오빠!- 녀석이 네 앞에 몸을 내던지더니 서러운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한쪽 다리를 꿇은채, 녀석은 깨지기 쉬운 유리를 다루듯 네 둥시런 배우에 손을 올려놓고 울었고 넌 불어난 몸 때문에 녀석을 안을수도 없어 그저 손을 뻗쳐 녀석의 박박 밀어버린 머리통을 만지며 울었다. 나는 조용히 책방을 빠져나오고말았다. 두 사람의 시간을 갖게해주고싶었다. 나오고보니 불시에 가출한 소년처럼 갈 곳이 업어졌다. 그 시간을 난 찜질방에서 먹고자며 보냈다. 형형색색색의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찜질방에서 혼탁한 온도에서였던지 아니면 딱딱한 목침때문에서였던지 꼬박 잠못 이루고 뒤척이였다. 그런데 왠지 허전한 이 감정은 또 뭘가? 무언가 설명 못할 미진함 같은것이 발목을 잡아채는 듯한 끈끈한 느낌? 이튿날 책방에 돌아와 보니 뜻밖에도 책방앞에 경광등(警光灯)을 단 경찰차가 서있었고 푸른제복의 경찰들이 서슬퍼렇게 보였다. 난 난생처음 파출소로 불려갔다. 너와 내가 무슨 관계인가고 경찰들은 매눈을 하고 어조를 살려 물었다. 경찰들의 질문에 난 일순 대답을 잃었다. 너와 난 대체 무슨 관계였던가? “와늘”? 경찰에 진술할념 않고 난 스스로에게 묻고있었다. 다른곳도 아닌 파출소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경찰들의 채문앞에서 난 너와의 관계에 대해 새삼스런 답을 구하고 있었다. 그저 언젠가 려행길에 엉성하게나마 가이드를 해준적 있는 녀자. 내가 들어있던 세방집 주인의 조카의 녀자친구, 그렇게 알게된 면목으로 불쌍해서 내 집에 잠깐 아주 잠깐 묵게 해준 녀자… 이렇게 설명하기로는 세간의 리해는 물론 나 자신의 해석도 모자랐다. 사실 좁은 자취방에서 너와 지내며 난 우리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적있었다. 그때면 이상하게도 TV의 “동물세계”프로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떠오르군했다. 작은 소(沼). 그 푸른 소에 몸을 담근 코뿔소며 소에 다가와 물을 마시는 령양이며 양의 뿔우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있는 새며… 이런 진풍경이 자꾸 떠오르군 했다. 너와 나는 그렇게 덥고 목이 마르고 해바라기를 하고싶어하는 소며 양이며 새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각자의 수요는 있지만 서로를 다치지 않고 서로를 리해하며 의존해 지내온 순하디 순한 온혈동물. 그렇지않을가? “와늘”? 탕! 경찰이 손으로 사무상을 내리쳤다. 아마 내가 대답을 거부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넘이 어떤 넘인지 알아? 탈옥범이라고! 탈옥범! 경찰이 나를 향해 소리소리 질렀다. 결국 내가 고용한적 있는 책방의 영업원이였다는쪽으로 아퀴를 지었다. 어디있나요? 그애? 진술을 마치고 난 너의 행적부터 물었다. 뿌즈도우! (不知道)! 퉁명한 대답으로 너의 행적은 일축되여버렸다. 파출소에서 나오니 밖은 그냥 비의 세상이였다. 거리의 축축함이 달라붙듯이 나에게 다가왔다. 몸이 가늘게 떨렸다. 옷깃을 올린채 비물 추적거리는 거리를 가로질러 책방으로 왔다. 책방에 돌어서서 영업할념도 하지않은채 난 창 가까이의 의자에 앉아 버렸다. 장마철의 축축하고 후덥지근한 열기를 안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굵은 비방울이 창문을 타악기처럼 두드렸다. 힘있게 때리고는 아픈듯 몸을 허물며 주르르 흘러내리고……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허무하게 유리창으로 부서져내리는것 같다. 언젠가는 화창한 해빛이 스며들던 창, 네가 호호불며 극성스레 닦은데서 현실감없이 환장하게 빛나던 창, 지금 그 창에 얼룩을 내며 그 창을 때리며 차가운 비만 턱없이 내린다. 차겁게 그리고 허무하게. 이 차거운 비에 그 무거운 몸으로 너 어디 갔느냐? 밖에는 어둑시니 같은 어둠이 웅크리고 있는데 너 어디 있느냐? “와늘”?     몽 롱 (朦胧) 끝내 나는 서점을 부도내고 말았다. 나 같은 이들은 책을 쓰고 책을 만들어도 책을 팔줄은 모르고있었다. 책 안읽는 풍토에 하필이면 책으로 장사를 하려했으니 부도를 낼수밖에. 그렇게 세간의 눈에 비친 난 언제나 모자라고 서러운 시인일수 밖에 없었다. 안쓰러워보였던지 동인들이 일자리를 알선해 주었다. 작은 신문사에 취직했다. 큰 잡지사에서 오랜 편집으로 있던 내가 연예계 스캔들이나 스포츠계의 어둠을 들추며 어수룩한 독자들의 말초를 자극해 부수를 올리는 그런 신문사에서 밥줄을 이으려 뛰여다녀야 했다. 그래도 꿈은 그냥 가지고있었다. 예전처럼 현란하지도 않고 색채도 바래진 흑백의 꿈, 그 때문에 한결 더 현실같아보이는 소박한 꿈은 그냥 꾸고 있었다. 그 작은 꿈은 시집 하나를 내는것이였다. 여태 써놓은 그렇게 많은 시중에서 딱 100수의 정수만 골라 가위에 내 이름 또박이 찍어박고 장정도 아치(雅致)하게 내고싶었다. 그 누가 읽지 않더래도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동인들께, 내 못난 시를 수첩에 베껴두고있을 흔치않을 독자들께 싸인하여 척 내여줄 그런 시집 하나 내고 싶었다. 다행이도 요즘 세월에 보면 유치하고 진부하고 어리뜩하기 짝이없을 그런꿈을 들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어느 한번 신문사의 회동에서 취기에 나의 꿈을 역설했는데 자리에 끼여 내곁에 앉았던 광고부 부장이 듣고서 시집에 협찬해줄 사람을 찾아준것이였다. 어느 건강원의 사장님이였다. 말이 건강원이지 농촌에서 상경한 아직 촌티를 벗지못한 녀자애들에게 후다닥 단기훈련을 시킨후, 똑 같은 유니폼을 입히고 술 취한 나그네들의 목줄기며 발가락이며 허리통이며 간간이 다른곳이며를 주물러주는 그런 안마업소였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따질 계제가 못되였다. 좋은 작품을 량산해도 팔리지않고 자비출판을 해야만하는 풍토가 야속했지만 그런 자비출판이라도 할 밑천마저 마련하지 못나는 자신한테 화가 났고 따라서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가상스러운 각오까지 머금은 나였다. 때묻은 돈이건 코묻은 돈이건 그 돈으로 바꾼 것이 깨끗하면 되지않나?하고 스스로를 위안하고있었다. 난. 사장님에게 한턱 내면서 술로 공략하라고 광고부장이 귀뜸해 주었다. 이건 국이다, 이건 나물이다며 세세히 일러주는 광고부장의 제안에 따라 난 사장님을 청했다. 당연하다는듯 마다하지 않았고 친구까지 하나 달고왔다. 눈이 연필심 구멍만하게 뚫리고 주독에 절은듯 코가 유난히도 빨간 사내였다. 광고부장과 함께 그들을 손님이 문전성시를 이룬 어느 유명한 맛집에 청했다. 첫대면에 나는 그들과 맞지않고 겉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귀한 척 해보았지만 내재되여있는 그들의 천박성은 금세 드러났다. 하지만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책 한권을 꼭 내고야말겠다는 각오를 머금고 주억거리며 그들과 어긋나는 궤도를 맞추어 공전하려고 부득부득 애를 썼다.    나이에 비해 이마가 지나치게 벗겨오르고 갓 출품한 오지독처럼 반들반들한 건강원 사장님과 객반위주(客反为主)로 감놓아라 배놓아라 말도 많은 “딸기 코” 친구는 술을 엄청 마셨다. 2차로 간 노래방에서 나와서도 사장님의 취흥은 제어가 되지않았다. 자기가 아는 술집으로 가자고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다. 글쟁이들 사는거 받아먹을려니 속이 더부룩하구먼. 목소리에는 베푸는 자가 보이는 거만함이 묻어 있다. 사장님의 자가용에 앉아 허깨비처럼 흔들거리며 달렸다. 한참 달려서 시가지 변두리에 있는 처음 와보는 술집으로 왔다. 난 “관청에 들어선 소”처럼 어색하게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조명을 적게 쓴 홀 안은 어두우면서도 탁했다. 신문지 글씨를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도(照度)가 낮다. 벽면에 모조품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사장님이 반고흐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모르고 그냥 걸었는지 죄다 반고흐의 그림들이였다. “해바라기”며 “론강의 별밤”이며 “의사 가제의 초상화”며… 홀에서는 쉰듯한 목청의 팝송이 흘렀고 결이 그대로 드러난 목재 마루바닥우로 웨이터들이 기분좋은 구두소리를 내며 걸어 다녔다. 유독 불이 환한 길다란 바엔 갖가지 종류의 양주가 들어차 있었다. 사장님이 한병 청했다. 이런 술 마셔봤어? 시인? 이거 나뽈레옹 꼬냑이야! 비싼 술이라고. 사장님이 양주에 넣는 얼음조각을 먼저 집어 입에 넣고 서걱서걱 씹으며 말했다. 나보다 겨우 한두살 위인 사장이 반말을 틱틱해가며 시종 건방을 떨고 있었지만 난 참았다. 외려 난 여태 비싼 양주 한번 마셔보지못한 처지의 자신한테 화가 나 있었다. 깔끔하고 뒤끝도 개운했지만 결국은 40도가 넘는 독한 술인지라 목이 연탄을 삼킨듯 했다. 난 알프스산을 공략하는 나폴레옹처럼 독기를 품고 그 술을 공략했다. 술이 몇순배 돌자 사장이 문뜩 웨이터를 불러 녀자를 요구했다. 인차 녀자들이 나왔다. 굽높은 신으로 나무바닥을 탕탕거리며 다가와서는 향수냄새를 폭탄처럼 터뜨리며 우리곁에 털썩 드러앉는다. 밤을 먹고 사는 녀자들인지라 화장기 진했고 로출도 심했다. 미니스커트가 감싼 엉덩이들이 풍선처럼 터질듯 했고, 몸을 틀때 잘록한 허리가 금방이라도 끊어질것 같았다. 부담스럽게 밀착해 앉아 요란스럽게 몸을 비트는 그들의 몸짓에서 단내가 났다. 그녀들의 도발적인 에로티즘에 사로잡혀 일순 멍해졌는데 사장이 내곁의 녀자를 불렀다. 흐느적거리는 눈빛으로 자기곁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나의 허락도 없이 자기녀자와 바꾸어 앉혔다.. 나 좀 살이 붙은 녀잘 좋아해. 흐흐     허연이를 드러내며 낄낄댔다. 성긴 이 사이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술집바닥에 굼닌다. 폭발하는 순간의 화염을 보듯 염색하고 란발한, 내곁에 앉았던 녀자는 기다렸다는 사장에게로 다가갔다. 넘어지듯 그에게 안겨들었다. 우와, 양귀비구먼 아주 그냥 죽여주는데… 사장이 녀자의 도드라진 엉덩이를 찰싹 치면서 입술이 벗겨지게 웃었다. 제가 양귀비면 사장님은 뭐애요? 녀자가 코소리를 내며 애교를 떨었다. 난 네 시아버지다. 어머 오빠도 아니고 사장님도 아니고 하필 시아버진 왜요? 당태종이 제 아들의 녀잘 빼앗지 않았더냐. 그러니 양귀비면 내가 오늘 저녁은 당태종, 네 시아버진거지 크크큭… 사장이 야비하게 웃었다. 웃으면서 녀자의 목이 훤히 패인 분홍빛 상의의 옷섶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오늘저녁 어디한번 시아버지와 즐겨볼가? 녀자는 만수받이로 받아주고있었고 사장은 우리가 보는앞에서 내놓고 녀자를 만지고 주물고 했다. 독한 술이 돌았고 질퍽한 육두문자가 오갔다. 그 어울리지않는 좌석에서 나는 반고흐의 그림속 “가제 의사”처럼 식지로 관자놀이를 짚고 있었다. 거칠고 천한 언사와 행동들에 난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꼭지가 맹렬히 뜨거워 지는것 같다. 내가 왜 이자리에 있지? 지금 대체 뭘하고 있는거냐? 하는 반문이 들었다. 그리고 저들이 필요로 하는것은 뭘까. 세상것 가운데 금전과 치환할수 없는것이 있을까.하는 자문을 구했다. 나는 그렇게 욕망의 틈바구니에 보잘것없이 앉아있었다. 문뜩 엄습해오는 질문들에 해답을 찾지 못해 몸부림하며 그 해소법으로 곁의 녀자가 따라주는 대로 술을 마셨다. 맨숭한 정신으로는 견딜수가 없었다. 더 강한 알콜을 계속 위속에 머리속에 주입했다. 먼 길을 강행군한 것 같은 피로감이 엄습한다. 질량을 헤아리기 어려운 무력감이 온몸을 덮쳐온다. 곁에 바싹 밀착해 앉은 녀자의 물컹한 살 때문에 에어컨을 튼 방이였지만 더웠다. 땀이 났고 위가 쓰렸고 머리가 폭발할것만 같았다. 욕이 나올것만 같았다. 이대로만 간다면 난 저 고민하는 모습의 “가제 의사”를 그려낸 반고흐처럼 자기 귀를 뎅겅 베여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취한 게 아니고 분명히 지쳐 가는 거였다. 소주에 맥주에, 소주와 맥주를 섞은 혼합주에, 위하여! 원샸!을 수없이 웨치고 나서 사장님이 곯아떨어졌다. 드디여 끝나려보다 안도의 숨을 쉬는데 범없는 골에 삵이 나타났다. 사장님의 친구가 이번엔 그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냥 술을 청했다. 역시 사장처럼 작은 안마업소를 차리고있다는 그 “딸기 코”친구는 사장못지않게 바람을 잡고 구름을 타고 있었다. 사장의 술배동녀였던 폭발머리녀자를 핧듯이 바라보던 “딸기 코”가 한사코 몸을 트는 녀자의 옷섶으로 부득부득 손을 밀어넣어 녀자의 부푼 가슴을 잔뜩 움켜쥐였다. 그리고 길고 날렵한 혀가 녀자의 얼굴로 덮쳤다. 다음순간, 녀자가 찰싹 남자의 뺨을 때렸다. 썩을 놈! 이를 앙다물고 녀자가 투명한 고음을 질렀다. 나 원 드러워서. 참자참자 했더니 이젠 별 허접쓰레기가 다 건드리고 지랄이야. “딸기 코”의 얼굴이 불판처럼 시뻘겋게 달궈졌다. 땀구멍이 숭숭한 붉은 코가 벌름거렸다. 어허 이 년이? 미쳤나? 야, 너 거기에 금띠 두른 팔자는 아니잖아, 이년아? “딸기 코”는 욕설 한번에 덤 한번으로 녀자의 가슴을 툭툭 건드렸다. 내가 만졌다. 왜? 만지면 어떡할래? 이 순 걸레 같은 년, 이 순 창녀 같은… 어떤 기를 모아들이듯 거친 숨을 들이마시던 녀자는 아주 길게 야- 이- 개-새-끼-야!하고 앙칼지게 내지르며 맥주병을 들어 “딸기 코”의 이마빡을 깠다. “딸기 코”가 비명도 지르지못하고 폭삭 거꾸러졌다. 순간 난  나는 아득해 졌다. 멍청한 눈길로 맥주거품에 섞여 피가 솟는 “딸기코”의 이마와 피처럼 붉게 루즈를 바른 녀자의 폭언이 쏟아져 나오는 입술을 쳐다보았다. 무성영화처럼 아무도 들리지 않았다. 기분이 얼얼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다행이 크게 상하지는 않았다. 부근의 병원분원을 찾아 몇코를 꿰멘뒤 야단칠 여력이 없었던지 “딸기코”는 택시에 앉아 집으로 가버렸다. 뒤수습을 마저 하려고 다시 술집으로 왔는데 광고부장은 란동에도 곯아떨어져 있는 건강원 사장을 챙겨 사라지고 없었다.     난 미간을 일그러뜨린 채 맥주병을 휘두른 그 폭발머리 녀자를 찾았다. 웨이터 하나가 화장실쪽을 가리켰다. 난 거칠게 화장실문을 와락 열어젖혔다. 사실 난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어떤 허탈감과 함께 알수 없는 분노가 목구멍까지 차 올라왔다. 이런 추잡한 란동이 벌어졌다는데 대해 그리고 이런 란동의 중심에 청고한 시인으로 자처하던 내가 끼여있다는것에 화가 났다. 화장실의 세면대에 녀자가 엎드려 있었다. 녀자는 토악질을 해대고있었다. 오페라를 부르듯이 소리높혀 구역질을 하고있었다. 오늘 장소를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으로 생각되는 그 녀자를 격한 소리로 불렀다. 여보세요! 아가씨! 나 좀 봅시다! 녀자가 세면대에서 꺼수수 풀린 머리를 쳐들었다. 순간, 내 머리속에서 하얀 새떼가 화르르 날개를 펴며 날아갔다. 토악질을 하던 녀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있었고 눈물이 번져져 화장기가 지워진 얼굴이 추례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아이새도우(眼影)가 벗겨져 시커먼 눈물줄기로 흘러내리는 녀자의 볼에서 난 무엇을 보았던가? 눈물에 땀에 화장이 벗겨진 눈가에 드러난 그것은 푸른 태짐이였다. 난 덫을 밟은 사람처럼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순애? 너 순애 맞냐? 그래.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믿기어렵게도 너였다. “와늘”. 너를 끌고 꿈의 자락에 이끌리듯 술집을 나와 밤시장에 앉았다. “와늘”. 너는 토하자 속이 좀 개운하니 술을 더 마시자고 했다. 사실 나도 술이 말짱 깨여있었다. 안주를 청하려니 아무것도 싫다고 했다. 그냥 술이면 된다고 했다. 그러던 네가 철제화로앞에서 양고기꼬치를 굽고있는 주인장을 불렀다. 저 여기 뻔데기 있어요? 뻔데기 튀김이 올랐다. 너와 처음 만났던 그 5월의 밤이 환영으로 떠올랐다 사라졌다. 뻔데기 튀김을 안주로 맥주 몇잔을 들이켰다. 양주에 타던 목에 랭동이 잘된 맥주를 구명환처럼 부어서 삼켰다. 술 한모금 하던 네가 속이 쓰리다며 잔을 내려놓았다. 거품이 삭은 맥주잔을 내려다보며 넌 길게 하품을 했다. 부스럭거리며 핸드백에서 무언가 찾았다. 한동안 뒤적여 무건가 끄집어 내였다. 담배였다. 몸서리치도록 빨갛게 메니큐어를 한 손톱으로 한 개비를 끄집어내여 입에 물었다. 리이터를 찾았다. 라이터가 없는 모양이였다. 이봐요! 불이 없나요 불? 네 목소리는 자정으로 가는 밤시장을 흔들었다. 곁에서 수타면(手墮面)을 먹고있던 련인인듯한 한쌍의 눈길이 너에게 몰부어져있었다. 입에 잔뜩 문 국수발을 끊치않은채, 짧은 미니스커트에 불량인형처럼 화장하고 담배를 꼬나문 너의 일신을 훑어보고있었다. 순간 나의 얼굴이 먼저 달아올랐다. 주인장이 다가와 라이터를 켜주었다. 고개를 숙여 불을 붙혔다. 깊게 패인 앞섶으로 커다란 가슴의 륜곽이 거침없이 드러났다. 나는 덴겁히 시선을 돌렸다. 맛나게 한모금 빨고나서 도넛(圈饼干)처럼 동그란 담배연기를 토해내고는 그 얇은 연기의 망사를 뚫고 넌 나를 말똥하니 쳐다보았다. 화장을 고쳐 한 얼굴에 푸른 태짐은 사라졌고 숱 많은 인조눈썹이 달려졌다. 그런 너를 난 잘못 부른 이름에 뒤돌아보는 사람처럼 생경하게 쳐다보았다. 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근데 아저씨! 술집에서처럼 여전히 간드러진 소리였고 칭호도 이전처럼 선생님이 아니고 아저씨다. 근데 왜 저런 사람들과 다녀요? 돈 좀 있다고 세상 유세 다 떠는 저런 새끼들하고. 아저씨 맞아요? 그 김동주인지 윤동주인지처럼 시 쓴다는 아저씨. 나는 나인데 넌 네가 맞느냐?       난 가라앉은 소리로 대답했고 물었다. 맞아요. 나 “와늘”인데 네가 깔깔 웃었다. 웃음이 밤시장을 뒤흔들었다. 거품 같은 웃음이였다. 나는 온몸에 전기가 오른듯 소름이 돋았다. 나 이제 와늘이란 말을 안해요. 그게 언제일인데. “와늘”인 죽었어요. 그 촌시런 “와늘”이는 넌 숨이 막힐듯 웃어댔다. 웃음소리는 천막안에 가득히 명멸했다. 헛바람이 새는듯한 그 웃음소리는 자못 방탕하기까지 했다. 수타면을 먹던 한쌍의 눈길이 또 한번 너에게 쏠렸다. 천장 쪽에서 푸드득 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소리에 놀란듯 나방 한 마리가 천장에 달린 알전구에 제 몸을 부딪치고 있다. 나방의 날개짓에 따라 불빛이 어지러워졌다. 나는 말없이 나방의 란무를 지켜보았다. 알전구의 빛줄기가 만들어내는 빛의 반경안에서 나방은 어지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빛을 갈구하며 날아들고는 가까이하다가는 뜨거워 튕겨나는 나방의 몸짓은 애처롭게 보였다.     어찌된 일이냐? 어떻게 된거냐? 난 너의 사정이 궁금했다. 웬지 그 궁금증은 필요이상으로 컸다. 뻔데기를 한점 집어 입에 넣고 소리나게 씹으며 네가 되물었다. 스코필드라고 알아요? 스코필드? 외계인의 음성을 듣기라도 한듯 난 네 입을 지켜보았다. 그럼 “탈옥”이란 드라마는 보셨어요? 미국 드라마인데… 아, 그런 드라마 들어본것 같애. 지금 시청률 젤 높은 드라마지. 근데 자다가 봉창두드리냐? 드라마는 웬?      스코필드, 그 드라마서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죠. 근데는? 나는 궁금증이 나고 초조해 미칠지경이였다. 내 남자친구 별명이 스코필드래요. 스코필드. 오빠가 정말 스코필드처럼 잘 생겼잖아요. 웃을 대목이 아니였지만 네가 웃었다. 그 웃음이 또 한번 날 괴롭게 했다. 왜 스코필드냐구요? 드라마속 얘기처럼 탈옥을 시도했니까. 그래서 깜방에서 불리는 별명이 스코필드래요. 네가 두번째 담배를 꺼내물었고 또다시 새된 소리로 주인장을 불렀다. 여기요 불있어요 불? 내가 일회용 라이터를 가져다 불을 붙여주었다. 불을 붙여 물고 연기를 한숨처럼 토하더니 넌 말을 이었다. 희극을 연기하다가 갑자기 비극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얼굴을 바꾸어서 말했다. 오빠가 또 탈옥하다 잡혔어요. 이번엔 깜방밥 더 오래 먹어얄것 같애요. 녀석은 무려 세번이나 탈옥을 시도했고 중형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되자 녀석은 면회를 온 순애와의 절교를 선포했다. 이제 감옥에서 나오면 늙어갈 터이니 청춘을 아껴 다른 남자를 찾으라고 했다고 한다. 아이는 지우라고 덤덤하게 말했고. 그후부터는 면회를 가도 아예 만나주지를 않았다고했다. 그렇게 수십번 찾아가도 녀석이 만나주지도 않고 모질게 나오자 모든것을 체념했다고 했다. 아이를 키울 자신도 없고 자기처럼 낳아서 남의 업둥이로 보낼바에는 지우기로 마음먹었다고했다. 자신은 얼빠진 녀자, 이제 곧 태여날 아이는 죄수의 새끼라는 꼬리표를 달리게 하고싶지않다고 했다. 그리고 의사들도 말리는 인산(引産)을 기어이 강행하다가 하마터면 죽을뻔했다고 했다. “와늘”. 소리없이 나타난 눈물이 네 얼굴을 적셨다. 화장기 진한 얼굴에 흉터같은 길을 만들던 눈물은 곧 소금처럼 얼어붙었고 그 소금우로 새로운 눈물이 길을 만들었다.   나는 다시한번 너를 쳐다보았다. 진한 파운데이션 화장에 짙은 인조눈썹, 붉은 립스틱으로 입술을 도색한, 요염한 얼굴. 하지만 너의 제슈체어(行为)는 어색했고 짙은 눈화장에가려진 눈동자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난 마음이 저릿했다. 상처입고 두려워 떠는 짐승의 눈이 저럴까. 불안함이라고도, 슬픔이라고도 할수있는 그 떨림, 그 눈은 대상을 주시하는 눈이 아니라 안으로 잠긴 눈이였다. 거침없이 사위를 보고있지만 넌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뒤의 먼 곳을, 결국은 자기자신을 안으로 응시하는 듯했다. 그러고보니 네 몸체의 곡선은 당차지 않고 연약했고, 어딘가가 허술한듯 허물어져 보였다. 나는 휴지를 건네주었다. 휴지로 얼굴을 닦자 그 푸른 태짐이 다시 드러났다. 너의 끝없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그 눈물짐을 지켜보며 나는 몽롱한 혼돈속을 헤쳐나오고자 몸부림했을 너의 아픈 시간들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그 아픈 몽롱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네 손을 잡아주고싶어졌다. 끄당겨 주고 싶어졌다.   내 하늘에는 지난 사랑을 불러보는 시계 하나가 걸려있다 우걱거리는 그리움이 시계바늘을 타고 흔들흔들 달려나오면 그우에 어진 파초처럼 드러누워 비온뒤 보았던 하얀 목련의 죽음 같은 절망을 뜯어먹는다 뿌려진 상처로 시간은 얼룩지고 아픔의 맛은 비릿하고 사납다 이제 그 시계를 별밭에 부수어 이지러지게 하련다 그리고 다음날 노란 장미로 피여나 누군가의 입에 곱게 물려있게 하고싶다.   - 심명주 “보름달”   어수선한 그 밤이 지난뒤 넌 내가 남긴 전화번호대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제의한대로 내게서 타이핑(打字)을 배우겠다고 했다. 어차피 술집에서 쫓겨난 처지이고 나의 진지한 요구처럼 새 길을 걷겠다고했다. 저녁이나 휴일이면 넌 나의 거처로 찾아와 타이핑을 배웠다. 넌 오성(悟性)이 빠른 애는 아니였지만 부지런한 덕성이 있었다. 힘들게 허나 열심히 넌 타이핑을 배웠다. 네 숨결곁에서 네게서 풍기는 농익은 향기를 맡으며 너의 지법을 바로잡아주며 때때로 난 옆면으로 보이는 네 붉은 뺨에 입술을 가져다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했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는 아직도 명암이 또렷한 눈망울에서 소스라쳐 깨여나 다시 근엄한 선생의 모습을 짓곤했다. 어찌보면 너와 난 끊어질듯한 세실로 짠 인연으로 이어진 오랜 친구였다. “와늘”. 스쳐 지날수도 있는 가벼운 인연인줄 알았는데 우리들의 운명을 단단히 련결 지운 끈 하나가 이처럼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니. 그 동안 네가 겪은 고통, 네가 견뎌낸 시간들을 생각하며 난 동정에 젖었다. 그리고 동정과 련민이 인간의 천박한 속성과 한계를 뛰여넘을수 있다고 나는 믿었다. 인간적인 그런 량식(良识)을 끝내 믿으려고 했다. 어쩌면 그러한것들이 너를 향해 꿈틀거리는 한 가닥 욕망의 촉수마저도 둔화시키는것인가 보다. “와늘”. 근 한달동안의 신고를 거쳐 넌 자유자재로 타이핑을 구사할수있었다. 은빛 레루를 따라 들녘을 질주하는 기차의 절주와 같은 키보드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떤 성취감에 웃음을 머금었고 너 역시 어떤 자부감에 높은 가슴을 들먹이였다. 난 벼룩신문에 타자원으로 너를 취직시켜주려 했다. 비록 작은 광고지라 하지만 그 주접스러운 아수라장에서 너를 빼내여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늘에만 숨어 지내던 내 육신에게도 해빛을 만끽하게 해주고, 최소한의 표면적을 갖고 살던 령혼에게 너른 세상의 숨결을 주고 싶었다. 신문사 주필을 구워삶고 겨우 너의 일자리를 구했다. 드디여 면접보기로 한 날이 왔다. 화장 진하게 하지마라. 넌 화장 안하는 편이 낫다, 로출이 심한 옷 입지마라. 묻는 말에 주저하지말고 또박또박 대답해라. 전날 상차림을 앞둔 시어미처럼 곁에서 세세히 일러주었던 나는 너의 변모된 모습을 그려보며 신문사앞에서 즐거운 궁긍증으로 너를 기다렸다. 그런데… 넌 오지 않았다. 너에게로 핸드폰을 넣었다. 따르륵 따르륵 따르륵, 신호음 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넌 받지않았다. 나는 오래동안 이어지는 신호음 소리를 초조하게 듣고 있었다. 이윽고 전화가 끊어졌다. 뚜뚜뚜, 하는 날카로운 기계음이 나의 귀속을 깊숙이 찔렀다. 신문사앞에서 나는 풍선을 놓친 아이처럼 서글픈 얼굴로 굳어져렸다. 마음은 투명이 걷히고 연기가 자욱하기만 했다. 자꾸만 가슴 한 귀퉁이가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져 내리는 듯한 느낌에 손가락을 뚝뚝 꺾었다. 그날 넌 종내는 오지 않고 말았다. “와늘”   5월에는 온다고 했지 꼭 온다고 했지 5월은 왔는데 너는 아니 와라 … … … 5월을 적시는 단비는 내 오뇌의 쓴 술 숲은 무성해 가도 나는 수척해가라 짧아진 밤 길어진 실면 꽃은 웃어도 나는 울어라 5월에는 온다고 했지 꼭 온다고 했지 5월은 왔는데 너는 아니 와라   - 조룡남 “네가 없는 5월”   며칠뒤 뜻밖에도 네게서 메일이 왔다. 메일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짤막하게. 선생님께서 배워 첫 사람으로 선생님께 메일을 띄워봅니다. ㅎㅎ 그동안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잊지않을게요! ㅠㅠ 그리고 약속을 어겨서 미안했습니다. 지송~ 사실 난 시집가요. 서울로. 빠이빠이!       락화   드디여 시집이 나왔다. 겉봉에 내 이름 석자가 박히고 장정도 아치한 나의 첫 시집. “돈냥 좀 있다고 유세떠는 사장님”들의 적선을 받아서가 아니고 내 스스로가 악착같이 모은 적금을 부어서였다. 그런 인간들과 엮여서 시를 읊고 나의 미래를 꿈꾼다는것이 역겨워서 힘들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낸것이다. 서점가 진렬대에 꽂혀 몇 년이 지나도 누구도 보지 않을 시집일지라도 나는 홀아비생활에 아껴먹고 모은 돈을 부어 굳이 시집을 냈다. 그것은 어찌보면 궁핍한 한 시인이 밑바닥 생활을 바꾸어보려는 몸짓이자, 지성이 소외당하는 이 뒤틀려진 세상에 내미는 도전의 출사표였라고나 할가? 시집이 인쇄소에서 출고하던 날 나는 작은 세방집에 책들을 무져놓고 그 싱긋한 인쇄잉크의 향을 맡으며 시집의 행간에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몇해간 홀아비로 지내온 볼썽사나운 인생을 반추해 보았다. 백기를 들고 내게서 떠난 짧은 혼인의 녀자를 그려보았고 청춘을 바쳐왔지만 정간을 맞아야했던 우리 말 잡지의 운명에 대해 떠올려 보았고 곤고했던 책방에서의 나날들을 떠올려 보았고 어수룩하지만 이젠 정이 붙는 작은 주간지에서의 생활들을 떠올려 보았다.  나의 재능과 나의 노력에 보상이라도 주련듯 동인들이 모여서 출간기념회를 열어주었다. 분에 넘치게 이 시가지에서 가장 좋은, 한인들이 꾸리는 외국독자기업 호텔에서 치러주었다. 시인협회 회장의 치하가 있었고 평론가들의 평문이 있었고 꽃바구니가 올라왔고 덕담이 넘쳐 흘렀다. 출간식의 모든 식순이 끝나고 호텔 정원에 모여 합영을 남겼다. 사진사의 배치에 따라 앉고 서며 서렬을 정하고 있는데 갑자기 호텔 대문밖에서 대문밖에서 갑작스런 소음이 끓었다. 장마기 홍수의 포효소리같기도 이동하는 동물들의 발구름같기도 한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 지더니 불쑥 대문께에 한무리의 사람떼가 나타났다. 그들은 서로 서로 팔을 겯고 몇줄의 종대(纵队)를 짓고 있었다. 저마다 마스크를 끼고있었는데 마스크에는 붉은 칠로 x표가 쳐져있었다. 저마다 충혈된 눈동자를 가진, 기름에 절은 머리카락 사이로 허연 비듬을 달고 있는 똑같은 인상을 가진 사람들이였다. 그 인상은 한결같이 하얀 분노에 달아올라 있었다. 성난 행렬은 대문의 수위를 사정없이 밀쳐버리고 곧바로 정원으로 쳐들어왔다. 호텔 정문앞까지 대여와서 멈추어섰다. 앞장선 한사람이 운을 떼였고 그를 따라 우렁우렁 구호를 목청껏 웨쳐댔다. 한국 사기범들을 응징하라! 한국정부는 사기피해자를 우선 입국시키라! 동포 고용허가제를 강행하라!    그들은 모두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들, 그리고 그 상처를 벗어나려고 안깐힘을 쓰는 자들이였다. 한국으로 가려다 브로커들에게 사기를 당한 한국출국사기피해자들. 우리 주간지에서도 전재한적있는 김혁이라는 소설가의 장편르포에서 우리들은 사기피해의 실태를 놀랍게 읽었었다. 출국붐, 그 열기에 휘말려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뛰는식으로 너나 할것없이 출국행렬에 붐비며 끼여들었던 사람들은 출국사기라는 덫에 치여 비명을 지르고 신음하기 시작했다.  저그만치 3만명, 그 피해액이 3억에 가깝다니 놀라운 수자가 아닐수 없다. 급박한 부(富)에 대한 집착과 열망은 허점을 보였고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이 그 허점을 파고든것이였다. 소팔고 집문서 땅문서 들이밀고 그래도 안되면 고리대까지 맡아 브로커들에게 내밀었다가 돈도 떼우고 출국도 못한 사람들의 절망은 하늘에 닿았다. 하여 벼랑 끝까지 내몰린 사기피해자들끼리 뭉쳐 정부청사앞이나 사거리에서 시위를 벌린 일도 수차 있었다. 그러다 오늘은 이 시가지에서 유명짜한 한국인의 독자기업까지 쳐들어온것이였다. 구호를 웨치는 사람들의 목줄기에는 굵은 지렁이가 섰고 목청은 쉬여있었다. 울분에 찬 소리를 쥐여짜다가 누군가 참지못하고 돌멩이를 들어 호텔 출입문을 향해 뿌렸다. 잘그랑! 회전유리문이 박살났다. 그를 선두로 하여 시위자들은 너나없이 돌멩이를 찾아들고 뿌리기 시작했다. 호텔경비원이며 직원들이 뛰여나와 시위자들과 몸싸움을 벌렸고 욕지거리소리, 비명소리, 창문깨지는 소리 그 와중에도 드팀없는 구호소리… 호텔은 삽시에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되여 버렸다. 합영을 남기려던 하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 흩어져 버렸다. 무양하던 나의 출간기념회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시위자들의 소란속에 창졸하게 마무리되고말았다. 남의 경사의 날에 이게 무슨 난동이야. 재수에 옴붙네. 동인들이 가자고 잡아끌었으나 난 그자리에 못박혀 버렸다. 그네들의 아픔과 처절한 몸부림에 동조하고있는 나의 눈길은 시위자 중의 한 사람에게 몰부어져 있었다. 맨 앞장에서 새처럼 투명한 고음을 지르며 돌을 뿌리고있는 녀자, 돌이 창에 까지 닿지 못하자 또다시 돌을 찾아들고 사력을 다해 뿌리고있는 녀자, 웅크리고있는 거대한 몸체의 호텔이 그 무슨 자신의 생을 송두리째 위협하고있는 괴물이기라도 한듯 머리카락이 바람에 새집이 진 녀자는 호텔을 향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돌멩이를 날리고있었다. 그런 녀자의 붉은 x표가 쳐진 마스크우로, 눈가에 또렷한 태짐 하나가 보였다.     너였다. 틀림없이 너였다. “와늘” 혼란의 폭이 도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110 경찰까지 동원되였다. 그제야 시위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란장속에 네가 밀쳐 넘어지는게 보였다. 나는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달려가 너를 부추켰다.     왜 사람을 잡아! 우리가 뭘 잘못한거야! 놔, 놔아!     상처입은 짐승처럼 몸부림쳤다. 넌 격투하듯 온몸으로 거부했다. 넌. 목청 터져라 악다구니를 질렀다. 넌. 그런 너의 입에선 상하기 직전의 비릿한 우유같은 냄새가 났다. 진정해! 나야 나. 진정해 순애, 심순애!     그제야 휩뜨고 겉돌던 실핏줄이 도드라진 눈이 나의 몸에 와 정착했다.     선생님! 네가 마른 입술을 떨며 목메여 불렀다.   전장으로부터 돌아온 패잔병들처럼 우리는 밤시장에 마주 앉았다. 포옹을 한다거나 유난을 떨며 재회의식을 갖는다는것은 우리 둘 다에게 쑥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였다. 일전처럼 술도 마시지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넌. 입술은 까칠하다 못해 허물 같은 살갗을 드러내고 있다. 네 몸 구석구석에 차지게 들러붙어 있는 고단함을 나는 보았다. 온 하루 격정의 신돌림에 지쳐 배가 고팠던 넌 수타면 한그릇을 단숨에 비웠다. 술마시라고 내가 청한 뻔데기튀김을 후식처럼  씹다가 입을 열었다. 몇번째였더가? 난 또다시 네가 걸어온 아픈 행보의 이야기에 귀를 빌려줘야 했다.     광고지에서 국제혼인광고를 보고 서울서 온 청혼자를 만났다고 했다. 나이가 많고 말이 많은게 흠이였지만 너의 눈에는 괜찮은 재력가로 보였다고했다. 그와 함께 이 생애 최고의 석달을 보냈다. 장백산에 올라 천지도 보고 북경으로 가서 의화원도 거닐고 샹해로 가서 상해타워(塔)에도 올라보고… 한국사장님이 급히 출국한 몸이라 현찰 지닌게 적다고 하자 자기가 물장사하면서 모은 돈을 서슴치않고 내놓았다. 돌아가서 요청장을 보낼터니 곧 서울로 와요. 이제 할일이라면 행복만 깨작깨작 누리는거애요!하고 단키스를 남기고 사장님은 서울로 날아갔다.  하지만 요청장은 오지않았고 님도 나타나지 않았다. 서울주소로 전화를 해보았지만 존재하지않은 번호라는 기계음만 들려올뿐이였다. 혼인을 주선했던 혼인소개소도 어느샌가 꼬리를 사리고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울분을 안고 사기피해자협회에 몸을 의탁하게 된것이였다. 난 정말 지지리 운도 없는 년이지요? 평생 눈물 흘리며 살 팔자라더니… 쉬이 기우는 마음을 가진 녀자에게 내려진 하늘의 벌일지도 모른다고 넌 말했다. 그런 너의 음성은 일전과는 달리 간신히 새여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붉어진 눈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몰라 했다. 넌 그 모습을 보는 난 가슴에 각진 소금을 뿌린것 같이 따갑고 쓰라렸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넌 표정을 바꾸며 자신의 얘기에 엉뚱한 조항을 달았다. 그리고 그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나 꼭 한국 나갈거애요! 밀입국을 해서라두요. 꼭 그길로만 가야하겠니? 소스라쳐 놀라며 내가 물었다. 갈거얘요! 무릎이 부스러지더라도 나갈 거얘요! 목소리가 의외로 단호했다. 그리고 눈빛은 열에 들뜬 것처럼 깊고 강했다. 그 결단에 나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난 밀입국의 위험성에 대해 역설했고 출국의 좁은 소로에 붐비는 요즘 세태에 대해 비난의 말을 했다. 그런데 네가 펄쩍 뛰였다. 그럼 어떡해요? 나더러 어떡하라구요? 엄만 죽고 남자친군 감빵 가고 혼자인데. 언제봐도 혼자인데. 나더러 어떡하라고요? 다시 술집가서 주물리고 비탈리며 물장사해요? 아님 재주도 안되는 가이드 노릇 해먹어요? 그렇찮음 몇푼 안되는 돈 받으며 팔목 쑥 빠지게 타자나 하면서 살아요?     목소리가 걷잡을수 없이 높아졌다 말의 사소한 뉘앙스 차이에도 넌 예민하게 반응했다. 상궁 지조(傷弓之鳥)한 너의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너는 자신에게 몰부어진 그런 불리익들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건지 알수없어했다. 낯빛이 심한 혼돈으로 무눌져 심각한 어지러움에 자맥질하는것 같았다. 뒤죽박죽인 인생의 장본인이 앞에 있기라도 한듯 나를 향해 소리소리 질렀다. 어거지로 리치에 닿지않는 질문들을 얼기설기 엮다가 감정이 상승과 하강을 몇 번인가 반복하고 난 뒤에야 넌 가까스로 평정을 찾았다. 죄송해요. 선생님! 나 힘들어서 그래요. 화투패의 불길한 운세를 들여다보듯 마뜩찮은 표정으로 넌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깜깜해요. 세상이. 앞이, 앞이 보이지 않아요… 너의 퀭한 눈그늘이 섬뜩하도록 어둡게 느껴졌다. 그래. 세상은 호락호락 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아. 하지만 참고 견디느라면모든것이 다 풀릴거야. 다 잘 될거야. 무슨 말인가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난 위로의 말을 갖다붙였다. 하지만 그저 추상적인 위안을 련발하고 말았다.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가리사니가 서질 않았다. 그래서 그저 너의 맥없이 늘어뜨린, 공기처럼 가볍고 물에 젖은 휴지만큼한 너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날 점도록 넌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수천년의 세월을 뚫고 일어난 미이라처럼 수분없이 앉아 있었다. 팍 사그라질 듯한 모습으로. 그날 이후로 난 또 너와의 련락이 끊겼다. 피해자들과 함께 합숙한다고는 하지만 그곳이 어느곳인지 몰랐다. 다시 난 내 생활의 반경안에서 숨가삐 채바퀴돌리듯하며 널 잊어가고 있었다.   어느하루 사회면을 맡은 기자가 나를 불렀다. 나의 주당붕우(酒党朋友)인 그는 나와 못하는 말이 없는 사이였다. 대박이애요. 대박. 좋은 기사 하나를 건졌는데 주필이 이번주 톱기사로 내기로 했다는것이다.    절강성 녕파에서 밀입국 했지 뭡니까! 스물다섯명이. 네. 밀입국자 모두가 조선족이지요. 곁에 모여드는 편집들을 보고 사회기자가 대박감 뉴스의 내용을 말했다. 좁은 배 밑창 물탱크에 돼지싣듯 빼곡하게 밀어 넣고 문을 닫고 그물을 씌워 위장했다 합니다. 그런데 통기성이 나빠서 그 스물다섯이 덜컥 질식사했지않고 뭡니까! 나 원 세상에!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밀입국 조직했던 넘들이 몽땅 잡혔대요. 하지만 잡은들 뭐합니까! 모두 죽어버렸는데. 아주 돌아버렸어요. 돈에 그냥 환장들을 한 거지요 편집들이 혀를 찼다. 사회부 기자가 컴퓨터에 CD를 밀어 넣었다. 공안국 외사과에서 복사해 온 사진자료와 동영상을 곁들어 보여주었다.     문제의 선박이 나타났다.     무장한 해경들이 선박을 훑는다.     검거된 밀입국자들이 렌즈에 담겨졌다. 렌즈를 피하며 옷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다.     질식사한 밀입국자들이 선박의 갑판에 놓였다. 방수포로 몸이 덮여 그 무슨 커다란 어물처럼 놓여있다.      렌즈가 시체의 수를 확인하련 듯 한구 한구 훑고 지나갔다. 잠시만요! 나의 시망막을 찌르는 무엇이 있어 나는 엄청 높은 소리를 지르고말았다. 컴퓨터에 달려들어  급박하게 동영상의 단추를 뒤로 젖혔다.     시체가 다시 나왔다. 그중 한구에 이르러 정지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코르크 핀(押钉)으로 꽂아놓은 듯 정지됐다.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눈시울을 좁히며 난 그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숨이 탁 막혔다. 혈관을 흐르던 피가 얼어붙는듯 했다. 방수포 밖으로 익사자 하나의 얼굴이 반쯤 드러나와 있었다.  마네킹같이 경직된 살갗의 익사자, 그 눈가에 태짐 하나가 또렷이 보였다. 난 홀로 밤시장으로 나왔다. 겨울이 다가오는 처처(凄凄)한 계절. 밤시장의 천막이 바람의 손길에 뒤척이고 있었다. 날씨도 추워져 이제 며칠후면 밤시장도 문을 닫을거라고 했다. 뻔데기 튀김을 청했다. 주인장이 철이 아니여서 신선하지못하다며 다른 특색의뉴를 추천했지만 난 굳이 뻔데기 튀김을 요구했다. 식도를 타고 흘러내리는 소주의 아린 기운을 느끼며 뻔데기 튀김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고소하지 않았다. 마분지를 씹는듯 했다. 아, 퍽퍽한 이 느낌, 목이 메는 이 느낌. 왜 그때 그맛을 찾을수 없을가? “와늘”! 어느새 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나의 볼을 간지럽혔다. 나는 어두워져 가는 초겨울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막에 달린 알전구 주위에는 박명(薄明)이 서려있었다. 알전구가 만들어내는 옹색한 불빛아래 볼썽사납게 홀로 앉아 나는 못나게도 울고있었다. 눈물짐이 있어서였던지 내내 눈물을 흘리며 살아온 녀자를, 어느 허허바다에서 무주고혼이 됐을 기구한 그 녀자의 짧은 생을 그리며 내가 무슨 그녀의 상주(丧主)이기라도 한듯 슬픔의 술잔을 비웠다. 입가로 흘러드는 짭조름한 눈물을 빨다가 난 보았다. 알전구의 빛을 따라 날아예는 나방을. 초목이 얼어드는 이 겨울에 무슨 나비일가만은 난 분명 보았다. 혼혼해진 눈 기운으로. 처절한 나방의 몸짓을.환영으로 보았다. 수선스레 날개를 터는 나방을 보며 난 너를 떠올려 보았다. 그래 그 나방은 바로 너였다 “와늘”   꽃의 시간은 끝났다 아름다운 꽃들은 다 떠나갔다 가버린 꽃들의 표적으로 나비의 날개 하나 꽃잎대신 꽃대우에 말라서 얹혀있고 … … … 너를 위해 꺾은 꽃이 영원한 아픔의 표본으로 박물처럼 누워있는 가을언덕우에 영원한 사랑의 미이라로 나도 말라서 굳어져 꽃과 함께 합장될가 꽃을 심듯 꽃을 파묻는 이로 나는 이제 나를 파묻어 꽃을 심을가 내 상복입는 리유를 나만은 안다   - 조광명 “꽃 가신 뒤길에”       영 춘 (迎春)   다시 봄이다. 은밀하게 그러나 사실은 재빠르게 변화하는 계절처럼 나의 신상에도 큰 변화가 일었다. 편집부 부장으로 승격했고 하필이면 요즘 같은 세월에 못난 시인을 돋보며 사랑한 어떤 과년한 처녀와 새 가정을 이루었다. 소형 임대아파트에서 살림을 시작한 우리는 적금을 부어 넓고 쾌적한 새집도 한채도 마련했다. 이렇게 내 삶은 새로운 출항의 깃발을 올렸다. 금방 일떠선 아파트구역은 신록을 입은 산처럼 깨끗했고 새집들이 한 사람들의 얼굴은 환한 미소로 들떠있었다. 아파트 구역에 슈퍼며 세탁소며 로인활동실이며가 들어섰고, 광장에는 간단하지만 어떤 감흥을 주는 조각물이 섰고 운동기구도 설치되여 있었다. 아이들이 즐길수 있도록 수동식 회전목마도 놓였다. 천방지축 제멋대로인 아이들이 곡예를 하듯 회전목마에 매달려 있다. 더러는 핫도그나 붕어빵 같은 것을 입에 물고 있었다. 과일나무에 매달린 원숭이처럼 회전목마에 매달려 지칠줄 모르고 돈다. 아이들의 환성에 광장에서 먹이를 쫓던 햐얀 비둘기 몇 마리가 날아올랐다.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 한줄기가 불어와 낯설고 먼 곳의 향기를 묻혀 놓는다. 그 향기와 목마의 풍경이 나에게 어떤 찰나의 기억을 실어준다. 하지만 그 기억의 내용이 무엇이던지 나는 흐릿해 했다. 그 기억은 마치 감광제(感光剂)가 고루 발리지 않은 필림과도 같았다. 어느 부분은 환히 빛나며 뚜렷이 떠오르고 어느 부분은 아주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즐기던 명시나 잠언, 한 포기 풀이나 꽃, 시인들의 모임이나 송구영신 등 극히 례사로운 일들이 떠올랐지만 나는 끝내 그 기억의 내용을 더듬어내지 못했다. 기억이란것은 굉장한 에너지여서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을 원했던 그곳으로 굴려간다지만 이제는 너무 멀리 와버려 떠올릴수 없는 과거의 기억들. 회전목마에 매달린 아이들을 재미나게 지켜보다 아파트 단지에서 금방 개장한 슈퍼로 들어갔다. 새집들이 한터라 이것저것 생필품들이 자꾸만 수요되였다. 어서 오세요! 슈퍼의 젊은 녀주인이 반겨 맞아주었다. 저, 방향제 있습니까? 화장실 냄새 제거하는 그런 방향제. 네 있습니다. 녀주인이 명랑하게 대답했다. 국산으로 드릴가요? 아니면 외제쪽으로… 문뜩 그녀가 말을 멈추었다. 나를 뚫어져라하고 지켜보았다. 왜요? 얼굴에 무엇이라도 묻었나 턱을 만지며 난 그녀의 당돌한 눈길에 일순 당황해 했다. 절 모르시겠어요? 난 뜨악해하며 그녀를 유심히 뜯어보았다. 화사한 얼굴을 한 30대의 녀자. 눈매며 입언저리가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 들긴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었다. 미안 합니다. 누구신지… 그녀가 계산대에서 명세를 적으려고 놓았던 볼펜을 집어들었다. 볼펜을 들어 눈가장자리를 쿡 찍었다. 그것은… 하나의 태짐을 방불케 했다. 아~ 나의 입으로 신음이 새여나갔다. 지그재그 모양을 그리던 기억의 빛이 머리를 뚫고 쏜살같이 지나가는 듯하다. 나는 머리 속에 잠자고 있던 몇가지 단상들을 끄집어 올렸다. 금방 얼핏 본 슈퍼의 이름이 “순애 슈퍼”였던것이 떠올랐고 슈퍼에 들어오기전 회전목마를 보면서 기억을 살리려고 했던 조각나고 분해된 내용이, 잊혀졌던 그 짙은 기억의 원형이 순간에 퍼즐조각이 맞추어지듯 온전한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순애? 심순애! 녀주인이 힘차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너였다. “와늘”. 그간 무사하셨죠. 선생님? 너 배 탔다 잘못되지 않았어? 내가 떨떠름해지며 물었고 령롱한 구슬이 구는 소리로 네가 웃었다. 아이 선생님도. 누가 죽어요! 이렇게 멀쩡한데, 막 이렇게 잘살려하고있는데… 슈퍼 전체를 안을듯 두팔을 활짝 벌려보이며 넌 다시 환한 웃음을 지었다. 난 다시 나름대로 머리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온갖 상상이 소다를 넣은 빵처럼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요즘 세월에 어쩌면 너 같은 사연을 품은 사람이 한 둘일가? 밀입국하다 죽은 녀자는 아마 몸에 너와 비슷한 태짐을 가진 녀자였을거다, 너는 무양하게 출국했고, 출국해서 열심히 일해 돈 많이 벌었고, 몇해후엔 이렇게 잊을수 없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여유가 생기자 더 아름다워지려고 눈물 짐도 빼면서 성형했고, 슈퍼도 차리고 막 성업을 시작하고 있고… 현실감을 붙잡기 위해  다시 널 바라보았다. 이건 순간에 떠오른 나의 판단이였지만 적중한것 같았다. 네 얼굴에서 피어오르는 온유함, 기쁨, 밝음을 난 똑똑히 보았다. 너의 더 예뻐지고 더 생기 오른 얼굴이 그를 말해주고 있고 너의 떠나지 않는 웃음과 마음속의 어떤 그윽하고 힘찬 상태가 그를 증명해 주고있었다. 오늘 개업 첫날입니다. 지금 막 시작이얘요. 어때요? 와늘 좋지요? 네가 장난기로 옛날의 사투리를 구사했고 너와 나는 파안대소를 했다. 슈퍼의 남향으로 낸 창으로 양광이 미여지게 들어와 차넘쳤다. 그 창으로 아파트 구역이 훤히 내다보였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가 첫눈에 보였다. 그 풍경이 흘러와 우리들의 마음에 스민다. 어느 볕바른 날, 유원지에서 돌아가던 회전목마가 얼핏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우리는 세월이 이끄는 대로 따라서 돈다. 각자의 삶을 돈다. 정해진 궤도와 짝져진 순서대로 순응해 가다가 끝내는 내 생의 회전방향을 깨달게 되고, 내가 돌아온것의 속도가 얼마나 덧없는것이엿던가를 깨닫는다. 이렇게 원륜(圆轮)의 세월을 허위허위 돌다 멈추어보면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나를 만날것만 같다. 내 삶의 출발 지점에서나 볼수 있었던 아직도 청춘인 나와 아직도 남아있는 그런 순수함을… 그러니 회전은 본래의 그 자리로 돌아가는것이다. 가득 찬 찌꺼기를 시간을 통해 버리고 그 자신으로 돌아가는것이다. 그 여여히 돌아가는 목마의 회전을 너는 홀린듯 지켜보고있다. 그 동안 넌 참말로 백년 하청(百年河淸)의 세월을 걸어온것만 같다. “와늘” 해볕에 젖은 빨래를 말리듯이 넌 인생의 신산스러움이 곳곳에 상처처럼 남아있는 축축한 과거를 말리고있다. 그리고 희고 바삭거리는 새 옷감이 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있다. “와늘” 어두운 미로를 헤매다 간신히, 드디여 출구앞에 선 넌 지금 찬란한 빛살의 세례를 맞받고 서있다. “와늘” 봄의 절정답게 해살은 더욱 부풀어오르고있고 성하(盛夏)의 꽃처럼 화사하고 푸른 너의 미소도 따라서 부풀어 오르고있다. 계절은 사뭇, 아니 와늘 좋다. 그렇지 아니한가? “와늘” ! "연변문학" 2009년 1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    바람과 은장도 댓글:  조회:4182  추천:51  2008-05-14
. 중편소설 .   바람과 은장도   김 혁      얇은 사 하아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비 일레라…  두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 조지훈의 “승무(僧舞)”중에서 (1)    바람없는 호수는 면경(面镜)과도 같다. 호수가에는 상록수들이 바자처럼 둘레를 치고 그 둘레의 저변을 따라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여있다. 하얀 의상의 녀인들이 그곳에서 노닐고 있다. 나무그늘에서 턱을 고이고 앉아있기도 하고 꽃가지를 꺾어 코밑에 대보기도 하고 호수물에 섬섬옥수를 담가보기도 한다.  “따가닥 따가닥…” 홀연 잦은 말발굽소리가 녀인들의 유흥을 비집고 들려왔다. 녀인들은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연미복차림의 신사 하나가 껑충한 가라말을 타고 다가오고있었다. 고수머리에 깊숙한 눈, 날카로운 코마루에 사랑스러운 턱을 가진 애젊은 신사였다. 신사는 천착할듯한 눈길로 녀인들은 하나하나 참빗질했다. 그 타는듯한 따가운 시선을 피해 녀인들은 하나 둘 머리를 떨구어버렸다. 신사의 눈길이 맨나중에 선 녀인의 몸에 와 멎었다. 신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헛바람섞인 감탄이 새여나왔다. 첫눈에 선뜻 안겨오는 아름다움이 일신에 배여있는 여자였다. 고니처럼 미끈하게 뻗은 하얀 목에 태짐 하나 박힌 것이 신사의 눈길을 포박해갔다. 신사는 말등자를 밟고 내려 녀인쪽으로 다가갔다. 홀연 호수가 설레이였다. 기류를 이루며 파문을 이루며 물매미를 짓더니 돌고돌아 호수는 한장의 커다란 레코드음반으로 변해버렸다. “봄날원무곡”의 선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신사는 하얀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녀인은 마다하지 않고 신사의 손을 받았다. 두사람은 가볍게 잔디우로 미끄러져갔다. 랑만의 왈쯔가 시작되였다. 녀인들은 곡조에 맞춰 두손으 사려잡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봄날이 왔어요, 봄날이 왔어요.     아, 얼마나 아름다워요…”     “두부요- 뜨끈뜨끈한 두부 사세요!”     “콩물, 기름튀기요- “     홀연 하나의 악청이 무르익어가는 곡조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현수의 입가에 실렸던 미소가 거두어졌고 잠기 자부룩하던 두눈이 번쩍 뜨이였다. 끈끈한 잠의 포승줄에서 풀려나온 현수는 마른기침을 꿀꺽 삼키고나서 두팔을 쭉 뻗으며 아흐흑 기지개를 켰다. 살구꽃이 망울을 터치는 계절이 왔지만 새벽대기는 아직 카랑하게 매웠다. 현수는 일어날념 않고 이불을 턱밑까지 당겨 덮었다. 바람벽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 달력 하나가 결려있었고 장발의 팔등신 미녀가 선정에 가까운 웃음을 던져오고있다. 현수는 그 달력 미녀의 시원히 뻗어내린 목을 지켜보았다. 그가 찾고저 하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침대머리에서 담배갑을 찾아들고 한 개비 붙여물던 현수는 검댕이가 게발린 성냥가치를 들고 달력앞으로 다가가 그 미녀의 목에 점을 쿡 찍었다. 태짐같은것이 또렷이 박혀졌다. 그 “태짐”을 현수는 한동안 지켜보았다.   “우리 선생보다 못해…”  현수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옷장의 전신체경에 팬티바람의 건장한 동체가 비껴들었다. 현수는 쑥스럽게 웃으면서 식지로 달력을 문질렀다. “인공태짐”이 순식간에 지워졌다. 침대머리에 놓인 탁상시계가 막 일곱시를 가리키고 있다. 현수는 TV를 틀었다. 작달비 내리는 소리가 나며 화면에서는 눈꽃이 아물아물 흩날렸다. 현수는 손바닥으로 TV를 탁 쳤다. 화면이 나타났다. 흉부가 유난히 발달된 녀자가 5분간 건강미체조를 배워주고있었다.  “하나 둘 셋 넷…둘둘 셋 넷 머리를 뒤로 돌리며 허리도 함께 돌립니다. 팔은 위로 쳐들고 자, 하나 둘 셋 넷…둘둘 셋 넷”   현수는 그 박자에 보조를 맞췄다. 벅차게 팔다리를 저으며 또 한번 입속말로 되뇌였다.   “우리 선생보다 못해.”   “5분간 건강미체조”가 끝나자 가스로에 불을 달고 냄비에 라면 세개를 털어넣었다. 그리고는 체경앞에 다가가서 코밑과 턱에 허옇게 뻑뻑 비누칠을 해대기 시작했다.    예술단에서 거리쪽을 향했던 기숙사를 비워 영업방으로 대외에 세주는 바람에 독신자배우들은 세방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단위에서는 마지못해 세방비의 일부를 대주었다. 그만큼 세방살이 독신자가 몇이 못되였다. 무용조에는 장현수 한사람뿐, 악대에 둘이 있었는데 세사람이 세방 하나를 맡고 합숙하고있는터였다. 그나마 열련에 빠져있는 한사람은 거의 미래의 처가집에 붙박혀있는터여서 현수와 첼로 켜는이 둘이서 지내는 때가 많았다. 황보라는 괴상한 두자 성씨를 가진 그 친구를 현수는 그 괴까다로운 성과 이름을 제쳐놓고 직설적으로 “첼로”라고 불렀다. 생김생김도 첼로를 방불케 하는 비만형의 친구였다. “첼로”는 요사이 어느 나이트클럽에 가서 첼로 대신 전자풍금을 쳐주면서 일당 30원씩 벌군 했다. 상품경제 바람이 불어치니 “숭어도 뛰고 망둥이도 따라 뛰는” 형국이였다. 밤늦게 되면 나이트클럽의 그 많은 독실중에서 한칸을 찾아들고는 밤참도 얻어먹는 재미를 보고있는터에 현수는 그만 “독수공방”의 꼴로 되고만것이였다… 국수가 다 끓었다. 때와 같이 면도를 끝낸 현수는 파란 무우처럼 싱싱해 보이는 턱주걱을 기분좋게 만지면서 가스로앞에 마주선채로 국수를 건져먹었다. 절인 오리알 하나를 이마에 대고 딱 깨여서는 열심히 호벼먹었다. 다음 무대는 등장하는듯한 경쾌한 보법으로 살구꽃 화사한 거리로 뛰쳐나갔다.   (2)   “… 라는 제목의 무극입니다. 옛날 어느 한 고을에 사랑하는 남녀가 있었답니다. 사랑이 무르익어 혼수날까지 받아두었는데 총각이 그만 수자리를 나가게 됐지요. 두사람은 눈물뿌리며 재상봉을 기약했어요. 처녀는 몸에 지니고있던 은장도를 사랑의 징표로 총각한테 주면서 영원히 변심않겠다고 서약했어요. 총각은 매일이고 그 은장도를 만지고 들여다보고 하면서 험난한 역고를 치러냈지요. 드디여 귀향날자가 돌아왔어요. 그런데… 영원히 기다려주마하던 그 처녀는 그 기간의 고생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을의 어느 한 제 아비벌 되는 갑부와 눈이 맞아버렸어요. 총각은 처녀의 배신을 꾸짖으며 마음을 돌려세우라 권유하면서 사랑의 징표인 은장도를 내보였지요. 허나 처녀는 매정하게 그 은장도를 뿌리쳐버렸어요… 이에 총각은 은장도로 그만 처녀를 찔러버렸답니다. 그리고 은장도를 강에 내던지고는 자기도 그 강물에 뛰여들었지요. 이렇게 … 이렇게 아름다운 전설을 무대에 올려보는겁니다…”     차수경은 자기가 구상해왔던 무극의 경개를 감개에 젖어 이야기했다. 휴계실에서 그녀를 마주하고 개벙하게 둘러앉은 무용수들은 열심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차수경이 몇해간 뼈물러 창작해온 대형무극이였다. 3년에 한번 꼴로 년말에 있게 될 전국무용콩클에 이 극을 꼭 내놓으려고 고심하고있는 그였다. 그만큼 애젊은 나이에 1급무용가로까지 발돋움한 그녀의 창작은 언제나 남보다 신선하고 무거웠고 충격력이 있어 모두들 신중히 수긍해 들이고있는터였다.   “그런데… 장현수 지금 뭣하고있는거얘요. 멍하니 망석중이 돼가지고.”   차수경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 한번 깜짝이지 않고 사색에 잠겨있던 현수는 그제야 몽상에서 깨여났다. 고개를 떨구며 귀밑을 붉혔다. 방금전까지도 차수경선생의 젖혀진 옷깃우로 곱게 뻗은 하얀 목줄기에 박혀있는 까만 태짐을 쑥스럽게, 그리고 황홀경에 가깝게 지켜보고있던 그였다. “그담… 는 그게 또 뭐얘요?” 맨 등뒤에 앉아있던 무용수, 라고 점명된 녀자무용수는 주먹만큼 큰 사과하나를 들고 소리를 죽여 야금야금 뜯어먹다가 자기를 점명하는 소리에  엉겁결에 소리높여 응수했다.   “옛!” 그통에 웃음잔치가 벌어졌다. 먹새가 크고 무엇이든 잘 먹어주는바람에 “흡진기”라는 별호를 가진 그녀는  온 하루 이몸이 뻐근하게 씹어대지 않으면 직성이 풀려하지 않는 성미였던것이다.    “이제 두고봐요. 그렇게 이어대다간 몸집이 로씨야 아줌마처럼 돼가지고 무대에도 오르지 못하잖나.”    선생의 책망에 그 무용수는 헤식게 웃으며 등뒤에서 비닐구럭 하나를 어줍게 내밀었다. “잡숴보세요. 차수경선생님.” 구럭에는 철 아닌 사과가 수북이 담겨있었다.    “히야, 사과다, 사과!”     무대조형을 이루듯 여기저기서 손들이 번쩍번쩍 쳐들렸다. “가만!” 차수경이 “흡진기”의 손에서 사과구럭을 앗아냈다.    “의 턱은 조금 있다 내기로 하고…” 차수경은 방금전의 구상을 이어나갔다. 모두들 시무룩해졌다가 다시 진지한 차수경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     “…지금 우리 춤들이 태깔을 벗지 못하는 까닭은 표현방법과 수법들이 비슷하고 또 단일화 된데 있다고 보여져요. 에서는 이런 재래식격식을 버리려 해요. 완전히 파격해 버리는겁니다. 무대공간과 구도선사용에서는 일전에 써오던 평형식, 대칭식, 2등분식의 틀을 깨고 가- 만…” 손으로 형태를 지어가며 이야기하던 차수경은 구럭에서 사과를 끄집어냈다. 유난히 붉은 사과 두개를 남녀주역모양으로 복판에 놓고 푸르스름한 사과를 단역모양으로 배렬시키며 조형을 구축해냈다. “… 틀을 깨고 불평형수법으로 형태며 립체미를 자연 그대로 형상화해 줍니다. 자 보세요…”    차수경의 손놀림에 따라 사과들은 동(动)적인 모습으로 꼭마치 춤추는 무용수들의 모습으로 변조되여갔다. “붉은 사과 그러니 바로 저 주역은 내꺼다.” 장현수가 그 움직임을 자세히 지켜보며 입속말로 소곤거렸다. 오기가 가득 묻은 그 어조에 곁에서 남자무용수 하나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임마, 너무 자신하지 마. 이 극단의 주역은 네가 뭐 도거리한줄로 알고있니?”     차수경의 격정에 넘친 무용강의가 한단락 끝나자 모두들 사과의 성찬을 벌려나갔다.    “헌데 차선생님, 우리 예술단에서도 처음인 이 대형극을 올리려면 30만원이나 든다고 하잖았어요?”    누군가 극의 운명을 괘념하듯 질문을 내들었다.   “네. 어제 지도부회의서 통과됐어요. 문화국과 예술단 10만원 대가로 하고 나머지 20만원은… 내가 맡기로 했어요. 찬조를 받아 온다든가…”    “네? 선생이요?”    “기실 30만원이란 많은 돈일수도 있지만 또 적은 돈일수도 있지요. 지금 동쪽단지에 짓고있는 호화 아빠트를 봐요. 비싼건 50만원, 제일 싼것이라도 20만원이나 하잖아요. 극만 공연된다면 집 한채의 향수에만 비기겠나요?” 차수경은 어덴가 결의에 어린듯한 어조로 말했다. 하디만 그 어조가 무거운 중하에 짓눌려있음을 모두들은 느낄수 있었다. 차수경의 손에서 유난히 큰 사과를 넘겨받던 현수는 어덴가 랭각되여가는 기분을 전환시켜보련듯 화제를 바꾸었다. “참, 사과맛이 일품인데.”    “때이르게 먹을수 있어 그렇지요. 한근에 4원50전이나 되는걸요. 알고나 잡숴요.”   “흡진기”는 성찬의 주인공으로 된 그 자체에 희열을 느끼며 득의연한 어조로 말했다.   “철을 당겨 먹는다, 딱 그것만 아니고… 사과는 모든 과일중에서 유난히 독특한 것, 뭐라할가? 사연이 많이 깃들어있는 과일이얘요!”    제법 사색이 되여 말하는 현수에게로 눈길이 일제히 쏠리였다.    “자 봐요.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서 이브가 아담에게 넘겨준 사랑의 징표가 뭐얘요. 바로 이 사괍니다. 사과! 그때 아담은 이렇게 사과를 먹고나서…” “야, 문자쓰지 마라, 지가 뭐 아담이라도 된듯한 기분으로 말해 제끼고있네.”    “아담이 장현수라면 이브는 또 누구예요? 가만. 방금 누가 현수씨한테 사과를 넘겨줬던가요?”    “흡진기”도 현수의 말을 꼬리물며 이죽거렸다. “, 허튼소리 말아요.” 웬지 차수경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질렀다.    “아담과 이브말고도 또 하나 있지.”     현수가 사과를 한입 떼물며 롱탕질을 계속 쳐댔다.     “사과를 따먹으라 귀띔해준 뱀! 징글징글한 뱀 말이얘요!” 현수가 뱀을 형용하며 험상궂은 모양을 짓는 바람에 “흡진기”가 “워메- ”하고 기급한 소리를 질러댔고 따라서 또 한번 웃음보가 터져올랐다. 차수경도 따라 웃으며 살며시 사과를 깨물었다. 그러다 새그러워 낯살을 찌프렸다. 그 찌프린 모습마저 현수에게는 아름답게 보였다.   (3)   “첼로”가 거울앞에 마주서서 넥타이를 조여매고있다. 머리를 정연히 벗어넘기고나서 턱밑에 돋은 여드름을 열심히 쥐여짰다. 출근할 때는 봉두란발에 아무 옷이나 대강 걸치고 초라한 행색을 짓던 그가 저녁에 나이트클럽에 갈 때면 각별히 몸단장에 신경을 쓰는것이였다. 침대우에 젖버듬히 누워 TV에 정신팔려있던 현수가 꼬집는 소릴 했다. “야야. 선뵈러 가는거냐? 어둑시그레한 구석에서 건반이나 두드려주면 고작인데 누가 널 보아줍시산다고 뿌리고 바르고 야단이냐.” “첼로”는 그 풍대한 체대에 걸맞게 사람좋은 웃음을 짓고나서 느릿느릿 대꾸를 했다.     “그럼 넌 뭐냐? 저녁마다 치고박는 저 무협편이나 보는게 네 생활의 전부냐?”    “야, 내가 그저 눅거리 영화에만 정신 팔려있는줄 아냐? 난 저 치고박는 무술동작들에서도 춤의 률동을 찾아본단 말이야.” “말 한번 잘 배웠다, 너.” “첼로”는 코김섞인 웃음을 웃었다. 그 비아냥이 흐르는 모습에 현수는 정색해지며 화제를 내들었다. “그건 롱담으로 치구, 차암, 시끌시끌한게 요즘 세월이다. 나야 합동공처지니 나가서 떡팔든 약팔든 괜찮지만 너희들은 뭐냐. 당당한 예술단 량반님네들이 무도장 한구석에 가서 치고 불고 아래선 좋다고 볼따구니 붙이고 손 쥐고 엉뎅이 흔들고.”    현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목청을 살렸다.    “네가 하는 직업 뭐냐? 음악의 황후로 불리는 바이올린의 아버지처럼 생긴 첼로 아니고 뭐니? 음악가의 인격이고 뭐고가 다 없고 우아한 예술이 술냄새, 커피냄새에 절고 유흥에 취해서 흥청거리고있으니.”    “첼로”는 여전히 느릿한 소리로 격정을 가볍게 받았다.    “우리 예술단서 아르바이트하지 않는 배우 몇이나 되니? 성악조, 악대, 무용조 통틀어봐라. 지휘가선생도 어느 초중학교애의 피아노교학을 해주고 있고 성악조서 그 벨칸토 잘하는 박씨있잖니? 그마저 요사인 밤가수로 여기저기 뛰여다닌다던데.”    “그래! … 벨칸토로 성에 가서도 1등, 2등까지 해옵신 분들이 그 좋은 목청을 바꾸어 염소감기앓는 소릴 하면서…” 현수는 벌겋게 흥분하며 말을 계속했다.    “온몸을 막 학질환자 떨듯하면서 하고 바보 같은 가사를 주어댈 때면 난 막 죽어버리고싶어. 염오감 그리고 염세감이 막 든단 말이야.” “너무 심각하지 마라. 얘, 너처럼 예술이요. 인격이요 하고 있다간 하늬바람마시고 살겠니? 그리구 요즘 세월엔 예술이요, 인격이요 하면서 정색해하는 사람 대체 몇이나 된다고 그래? 지금 세월엔 돈 없으면 예술도 허물어지고 돈 없으면 인격도 기운다.” 현수는 저도 모르게 어성을 높였다.   “차수경선생님 있잖니? 그리구 나 장현수 있고.”    첼로공명함 같은 불룩한 배에 혁띠를 조여매면서 “첼로”는 의연히 낮지도 높지도 않은 소리로 말했다.  “너 아직도 염분 더 보충해야겠다.”   “뭐야, 나보다 겨우 두달 앞선 놈이 시뚝하긴? 그래 넌 염분을 너무 자셔 옥체가 그리 좋으시냐?” 다시 히죽거리며 롱탕을 쳐대던 현수는 홀연 TV화면을 바라보며 동공을 키웠다. TV에서는 아릿답기 그지없는 녀인 하나가 나와 생리대 광고를 하고있었다.    “표, 부드럽고 편안합니다. 번거로운 나날에 녀성들의 건강은 , 가 지켜줍니다…”    “아니 저게 누구냐?…” 현수의 입에서 헛바람 섞인 소리가 새여나갔다. 철이르게 치마차림을 하고 나온 미모의 광고모델에게 현혹돼버린 감탄만이 아니였다. 우아하게 틀어얹은 머리, 부드럽고 그윽한 눈, 상아를 쪼은 것 같은 운두높은 코마루, 풍만한 오렌지빛 입술, 그아래로 연연히 흘러내린 하얀 목에 까만 태짐 하나… 도시녀성의 세련미를 일신에 풍기고있는 그 광고모델은 다름아닌 차수경선생이였다. 홀연 TV가 작달비내리는 소리를 내며 화면은 온통 아물아물 눈꽃으로 메워졌다. 현수는 침대에서 뛰여내려 TV를 박살낼듯 후려쳤다. 화면이 다시 밝아졌다. 분명 차수경이였다. 방금정의 광고대사를 다시한번 되풀이하고있었다.   “번거로운 나날에 녀성의 건강은 , 가 지켜줍니다…” 현수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현수의 눈에 차수경선생이 저렇게 즉물형으로 보이기는 처음이였다.    “선생님이, 선생님이 저런 광고를 하고있다니?”    “봐, 너의 지체높으신 안무가선생마저도 저렇게 구접스럽지 않은 광고를 하고있지 않니?”    “첼로”는 때나 만난듯 현수를 시까슬러주었다. 자존심이 상처를 받은 양 현수가 벌컥 소리소리 질렀다.    “야, 임마 여덟시가 넘었어. 네가 빨리 가서 톱질해야 그 주린 사내놈들이 다른 녀자 허리를 안아볼수 있지 않니? 그러니 빨리 꺼져! 가!… “ “역시 너는 염화나트리움을 더 보충해야겠어. 너무 격동하지 마라. 차수경이 너하고 무슨 사지어금이기에… 너의 안무지도, 과년한 로처녀, 그저 그런 정도인거지.”    현수의 흐려진 기분에“첼로”는 얼른 세집방을 빠져나가버렸다. 으깨진 심정으로 한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던 현수는 체증기를 발설하며 TV의 채널을 드르륵 돌려버렸다. 다른 채넬에선 쏘세지광고가 나오고있었다. 드르륵 돌려버렸다. “회춘령”보약광고가 나오고있었다. 드르륵 돌려버렸다. 주권시장의 인상폭명세가 나오고있었다. 온통 상품과 금전이 란무하는 세계였다. 현수는 텔레비죤의 플라그를 콱 빼여버렸다. 하나의 광란하던 세계가 갔다. 창문을 드르렁 울리며 어스름이 내린 거리로 바람이 일기 시작하고있었다. 현수는 창틀에 붙어서서 바람이는 거리를 언제고 내다보았다.   (4)   무극 “은장도”의 훈련은 본격적인 시작단계로 들어갔다. 련습홀에서 차수경이 극조인원들에게 열심히 시범을 해보이고 있다.    “… 자 다음은 주인공 남녀의 열련장면입니다.” 반듯한 이마에 함함히 배인 땀을 씻어내리며 차수경이 장현수를 불렀다. “자, 장현수 나와봐요.” 웬지 아침부터 볼이 밤알처럼 부어서 훈련에 열중하지 않는 그를 짐짓 시범상대로 불러낸것이였다. 차수경은 현수의 두어깨를 손으로 잡고 외다리로 오연하게 선 학과 같은 자태를 지었다.    “…절주에 따라 자연스레 회전하다 중심을 남측의 팔에 주며 계속 한다리를 지점으로 다른 한 다리는 오금죽이기를 했다가 다시 높이 쳐듭니다. 남자분은 그 힘을 빌어 녀자분의 허리를 뒤로 꺾어…” 차수경이 말을 채 잊지 못하고 교성을 질렀다. 현수가 란폭함에 가깝게 차선생의 허리를 뒤로 꺾었던것이다. 그 사위대로 주저앉아버렸던 차수경이 허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아니, 싸리단 꺾고있는거얘요 지금! 좀 더 집중해서 해요.” 현수는 데퉁스레 다시 차수경의 자세에 수긍해나섰다.    “자 오른쪽 비껴 앞 사선방향으로 몸을 향하여 남자분이 이끄는대로 끌려갑니다. 다음 두팔은 기본위치에서…” 차수경은 또 한번 동작을 맺지 못하였다. 현수가 콱 잡아제끼는 바람에 위치보다 멀리 뿌리워나가듯해서 비칠거렸다. 팔이 쑥 빠지는듯했다.    “아니? 저치가 오늘 왜 저래?”    “식혜먹은 고양이상 해가지고.”    “돈거나 아냐. 선생하고 저게 뭐니. 시건방진 자식!”     좌중이 웅성거렸다. 차수경은 당혹한 표정으로 현수를 지켜보았다. 여태껏 없었던 일이였다. 그 누구보다 춤의 세세절절에 열성을 보여왔고 그로 해서 전업생들을 엎누르고 마냥 주역을 빼앗아왔던 장현수였던것이다. 장현수는 모두들의 눈총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외려 그 어떤 도전이 출렁이는듯한 눈길로 차선생의 원망과 의혹에 가까운 눈길을 맞받고있었다. “들어가요.” 차수경은 굳이 책망하지 않았다. 여전히 당혹함에 커다랗게 쳐들린 눈길로 현수의 훤칠한 뒤어깨를 지켜볼뿐이였다. … 퇴근하자바람으로 차수경은 박물관을 찾았다. 무대도구로 쓰일 은장도 실물을 찾아보려는것이였다. 뜻밖에도 박물관입구에서 장현수를 만났다.    “여긴 웬 일이죠?”     “조금 구경거리가 있어서요. 선생은요?” “나 여기에 소장해둔 민속복장이나 은장도가 없나 보러 왔어요. 무대도구를 본따 만들어야지요. 관장실이 몇층인지?” 차수경이 마악 들어가려다 무춤 맘춰섰다.    “아깐 어찌된 일이죠?”련습홀에서 있었던 현수의 반상적인 거동을 떠올리고 차수경이 심각히 채문하였다. 장현수는 대답을 기피하고 대신 청탁 하나 내들었다. “저와 함께 구경 하나 합시다. 그런 다음 답안 드리지요.” 현수는 2층전시청으로 올라갔다. 입구곁에 앉았던 수수깡 같이 마른 중국인령감쟁이한테서 관람권 두장을 사들었다.    “뭔데요?” 차수경이 오리무중이 되여 물었다. 현수는 입구곁에 붙여진 포스터를 가리켜보였다.    “천년전 미녀의 웃음을 보시렵니까? 강소성에서 출토된 천년전의 녀자시체  성 박물관에서 기증특별전시. 기상천외의 구경거리를 놓치지 말기를 바람. 관람권 성인 20원, 아동 10원.” 차수경은 순간 기겁을 했다.    “안돼요. 난 이런걸 못보아내요.”    “아니 선생님은 보셔야 합니다. 꼭 보셔야 합니다. 보고나면 느낌이 많을겁니다.”    현수는 뒤걸음치는 차수경의 팔목을 부여잡았다. 안들어가겠다고 부등부등 우기는 것을 현수가 강압에 가깝게 끌고 들어갔다. 전시청에는 사람이 몇몇밖에 없었다. 대청 한귀가 수족관(水族馆)의 커다란 어항을 방불케 하는 유리함 하나가 놓여있었고 너나가 호기심에 쳐들린 눈매로 들여다보고있었다. “보세요. 선생님.” 눈을 딱 감았던 차수경이 본능적으로 눈시울을 언뜻 쳐들었다. 깡깡 말라버린 수목 같은 눈 귀 코가 시커먼 문지광 같고 간신히 붙어 색바랜 의복사이로 살은 문드러져 떨어지고 륵골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굴왕신 같은 형상 하나가 걸레처럼 그속에 구겨박혀있었다. 순간 기분나쁜 이질감이 들며 욕지기가 울컥 올라왔다. 차수경은 입을 막으며 덴겁하여 전시청을 뛰쳐나왔다. 층계의 란간을 부여잡으며 눈물이 쑥 나오도록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다. 장현수가 어느새 따라나와 그곁에 섰다.    “왜, 왜 강요하는거예요? 왜 이렇게 무례해요?” 차수경은 눈귀로 배여나온 물멀기를 지우며 알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현수를 쳐다보았다. 장현수는 머리를 숙였다.    “용서하십쇼. 헌데 선생님- “    장현수는 필요이상으로 목청을 한옥타브 높였다.    “선생님은 이런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저 녀자, 저 전시청에 누워있는 천년전의 녀자 말입니다. 생전에 귀골높은 신분이였는지 비천한 천민이였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천여년이 지나서 자신이 전시품으로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본의 아니게 남들의 구경거리로나 되여버렸지요. 지금 사람들은 짜장 돌아버렸습니다! 돈에 미쳐버린거죠. 원체 저런 출토품들은 과학연구용으로 엄밀히 소장되여야지 않겠습니까? 헌데 돈에 미쳐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끄집어내고 또 광대처럼 내세우고있는겁니다…”    “그런데는요?”    벌겋게 흥분하며 달변을 쏟아내고있는 장현수를 보며 차수경은 그게 나와 무슨 관련의 끈이 있느냐는듯한 눈길을 던져왔다. 지페장들을 차곡차곡 모아쥔 전시청입구의 문지기령감이 련인들사이의 사랑싸움을 엿보는듯한 흥미로운 기색으로 이쪽을 유심히 지켜보고있었다.    “선생님도 그런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함께 하고있지 않나 하는 로파심이 들어서 그럽니다. 주제넘는지 모르겠지만두…”    장현수는 꽈배기처럼 배배탈린 소리로 말을 이었다.    “엊저녁 광고를 보고 텔레비를 박살내고싶었습니다. 그게 뭐얘요, 그게… 선생님은 신분있는 사람입니다. 국가 1급안무가란 말입니다. 이 바닥에서 선생님의 높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그렇게 지체높으신 선생이 그런 광고를 다 하다니요…”    차수경은 장현수의 말을 곰곰히 들어주고있었다. 그러다 나지막이 웃었다. 어덴가 자조의 그늘이 드리운듯한 웃음이였다.    “모두다 우리의 무극을 위해서였어요. 사실 광고제작사에서 높은 값으로 다가오기에 …”    “고작해야 2천원좌우겠지요. 그렇다면 그런 구접스런 광고를 몇차례나 해야겠습니까? 열차? 백차? 그러다 선생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엉망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은 단지 개체적 존재만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우리 전 예술단의 징표로 되는 인물이란 말입니다. 어찌 그런 선생님을 일상용구 같은 허드레물건이나 지어… 그런… 구접스런 물건과 병령시킬수 있습니까?”    현수는 기성을 지르다싶이 하고 있었다. 차수경은 엷게 웃으며 현수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그래 이 일로 그렇게나 화딱지 나셨어요? 여하튼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장현수는 차수경선생을 직시했다. 그러다 선생의 빼여난 미모와 기품에 기가 질려 고개를 떨구어버렸다. 이윽고 용기를 내여 혀아래소리로 여태껏 뼈무르고있던 말을 또박또박 뱉어냈다.    “아마… 제가 선생님을 … 선생님을 사랑하고있나봅니다.”   (5)      장현수는 중심거리의 호화로운 아빠트단지앞에 한동안 서있었다. 시가지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주택을 신건, 이 도시의 갑부들이 자신의 호기를 현시하고있는 곳이였다. 그 아빠트의 2층에는 장현수의 외삼촌이 살고있었다. 홀라당 벗겨진 머리, 쌍둥이를 잉태한 막달 산모같은 뒤주배… 장현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염오하는 사람은 단둘뿐이였다. 한사람은 오페라“오쎌로”중에서 간계로 오쎌로와 에디모스나의 사랑을 깨뜨린 이아고였고 다른 한사람은 바로 이 외삼촌이였다. 외삼촌은 장식회사 몇개를 차려 이 시가지에서 다섯손가락안에 꼽힌 갑부로 살쪘다. 돈가리에 높직이 올라앉자 그가 맨처음 한 일은 가정성원의 그루바꿈이였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자기보다 스물여섯살이나 어린 처녀애를 맞아들였다. 그 바람에 그 안해가 달리고있는 장식회사 트럭앞에 몸을 던져버렸다. 하나밖에 없는 누님인 장현수의 어머니가  꾸짖자 무지막하게 누님과도 절연을 선포했고 또한 타매하는 조카 장현수에게 귀쌈을 갈기고 발길로 차서 내쫓았다. 그때로부터 외삼촌은 장현수의 뇌리에서 가장 혐오스런 인물로 메모되였던것이다. 그렇게 근 3년간이나 찾지 않던 외삼촌의 집을 오늘 현수는 찾으려 하고있는것이다. 한동안 멈칫거리다가 현수는 용단을 내린듯 들숨을 길게 한번 긋고나서 아빠트의 2층으로 치달아올랐다.    땅거미가 내리고 도시의 상공으로 별이 하나 둘씩 들추어 나올 때 현수는 외삼촌의 집을 나섰다. 휘파람으로 “맥주통 뽈까”의 경쾌한 선률을 불며 , 엄지와 식지를 맞부벼 딱딱 소리를 내며 어깨바람이나서 길을 가는 현수의 얼굴은 발가우리하게 상기되여있었다. 사물사물 좋아지는 기분을 주체할길 없는 현수였다. 뜻밖에도 외삼촌이 일전의 험상을 바꾸고 느닷없이 이것저것 괘념의 물음을 묻기도 하고 저녁 한끼까지도 푸짐히 대접해주었던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현수가 궁극스레 말을 돌려가다 낯에 두툼히 철판을 깔고 차선생의 무극의 협찬에 대한 의향을 내비쳤을 때 외삼촌이 커다란 흥심을 보였던것이다.    “차수경이라… 나두 그 녀자 얼굴 알고있다. 춘향이 뺨치게 잘생긴 녀자지. 너희들 단위서두 기둥으로 씌우고있는 것 같더구나. 요사이 광고에 자주 나오는 그 녀자 맞지? 그런 사람 가리켜 절세가인이라 하는거야!” 외삼촌은 연신 차수경에 대한 격찬의 말을 하였다. 그 용모에 심취됐던지 무극제작비용의 엄청난 액수를 듣고도 외삼촌은 놀라는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그러면서 주말쯤에 한번 면담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외려 자기쪽에서 아퀴를 지었던것이다.    현수는 경쾌한 선률우에 뜬듯한 보법으로 달렸다. 앞에 전화박스가 보였다. 설레발치며 급급히 전화버튼을 눌렀다.    “살랑살랑해요. 이 총각 전화통을 부셔먹고말겠네.”    전화박스속의 풍대한 몸집을 가진 아낙이 격동에 전화버튼을 피아노건반 두드려대듯하는 현수에게 온곱지 못한 눈길을 던졌다. 허나 차수경선생에게 한시바삐 이 소식을 알리고픈 현수는 그 데퉁스러움을 개의치 않았다. 벌씬 웃으며 그 아낙에게 거수경례를 척 붙여보였다. 그리고는 수화기에 귀바퀴를 바싹 붙였다.    “좋아도 해쌌네. 녀자친구 찾는 길인감.”    “뚜-“ 신호음이 울리더니 이어 말소리가 들려 왔다.    “여보세요?” 차수경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수저를 두드리는것 같은, 신변가까이에서 속삭이는듯한 그 자닝스런 목소리에 현수는 느닷없는 아슴푸레한 현기증의 발열을 느꼈다. 전화박스속의 염세스러운 모양을 지은 아낙을 방임한채 지어 자신이 전화를 걸고있다는 현실을 깜박 잊은채 현수는 환각의 늪에 몰입돼갔다.    현란한 조명이 내린다. 무대우로 운무가 굼실굼실 흐른다. 높아가는 곡조속에 차수경선생과 둘이서 무대가 좁다하게 격정의 춤사위를 벌린다. 관람석에서 갈채가 터져오른다. 카메라의 섬광이 번쩍인다. 생화바구니가 올라온다…     “여보세요?” 다시한번 소리높여 채문하는 소리에 현수는 정상상태로 환원할수 있었다. 허나 그 여흥의 동아줄에서 풀려나오지 못한듯 엉뚱한 통화를 하고말았다.    “사랑합니다. 차수경선생님!” 아무런 화답도 들리지 않았다. 무언가 곰삭이는듯 높은 숨소리가 들리더니 전화가 철컥 끊겼다. 현수는 한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버튼을 눌렀다. “접니다. 장현숩니다. 선생님, 그런게 아니라…”    “허튼짓 그만두세요. 장현수! 다시한번 분명히 말해주지만 우린 동료지간이얘요. 적절히 말하면 사제지간이란 말이얘요.”    “선생님, 선생님 그런게 아니라…”    전화가 또 한번 끊겼다. 장현수는 덴겁해 다시한번 버튼을 눌렀다. 받아주지를 않았다. 장현수는 진득한 한숨을 내 쉬였다. 기좋게 키워가던 비누풍선이 금세 터져버려 울상이 돼버린것같은 실망감을, 그것보다 가배로 되는 실망의 중하를 현수는 느끼고있었다. 현수는 뜨직이 몸을 돌렸다.    “이봐요 저 총각, 전화비는 내잖고 례장감으로 쓸 작정인감?”   전화박스속에서 앙칼진 소리가 터져나왔다. 거리에서 찬바람이 일고있음을 현수는 그제야 느낄수 있었다.    “거스름돈은 안받으려나?- ”    장현수는 몸을 잔뜩 옹송그리며 옷깃을 여몄다. 가로등아래 외로운 그림자를 흘리며 미적미적 걸음을 옮겼다. 답답하고 울적하고 쓸쓸하고 외로왔다.   (6)        비가 내리고있었다. 현수는 뻐스정류소의 간소한 비막이 처마밑에 좋이 두시간은 서있었다. 정류소 맞은켠에 숯불갈비집이 보였다. 갈비집의 호화스로운 간판의 네온싸인이 비안개속에 더 눈부셨다. 갈비집앞에 “벤츠”한대가 주차해있었다. 현수의 외삼촌 차였다. 현수는 여태껏 그 차를 지켜보고있었다. 갈비집을 나와서 그 차를 탈 사람을 기다리고있는것이다. 밤은 이슥했고 게다가 비까지 내리고있어 거리에는 사람 하나 없이 한산했다. 점퍼깃을 올리고 두팔소매에 손을 집어넣은채 현수는 그 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서있다. 올 들어 처음 비답게 내리는 억수의 비, 그 비에 유보도 변두리의 살구꽃이 떨어져내리고있다. 거리에 랑자한 그 락화를 보며, 그 슬프게 아름다운 꽃을 황홀이 지켜보며 현수는 단조로운 시간의 나락을 야금조금 기억의 편린으로, 그 편린의 날카로운 모서리로 썰어내고있었다.      현수는 춤을 좋아했다. 소학교때부터 소년궁 무용조에 뽑히여 기량을 보여온 그였다. 뭐 어째도 공부에 집념해서 대학엘 가야 한다!는 어머니의 모성애에 짙은 념려도, 사내놈이 분 바르고 연지 찍고 무대우에서 진동한동 달아다니는 꼴이 뭐냐?는 친구들의 조소도 그에게는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그만큼 한곡의 좋은 음악이면 밥을 거르고 들을수 있고 그 음조에 혼을 매달고 눈물 그들먹해지는 자신의 음악감각과 롱구선수를 방불케 하는 자신의 매끈한 신장만으로도 춤에 전생의 인연의 끈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현수는 목소리가 이상스런 음조로 뒤틀려지고 코밑이 별스레 가무스레해지던 사춘기의 그해, 맨처음 차수경선생의 춤을 보았다. 그때 차수경선생은 승무를 추었다. 발군(拔群)의 위세로 빼여난 미모, 하얀 베적삼, 너울거리는 긴 소매… 끈끈한 가락에 연연한 춤사위를 벌려가다가도 잦은 가락에 숨가쁜 경쾌로 신들린듯 무대가 비좁게 감동의 보따리를 하나하나 터쳐주는 차수경선생, 게다가 밝은 조명아래 붉은 입술, 하얀 옥치의 웃음과 득달한자의 그것 같은 그윽한 눈매. 그 서기롭고 아름다운 모습은 수천명 관중들을, 그리고 예술의 겹대문앞에서 바장이고있는 한 소년을 뇌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장현수는 기립하고 갈채를 보내고있는 관중들사이에 끼여 죽어라고 박수를 쳤다. 어느새 감동의 눈물이 눈확으로 그득 넘쳐나오고있었다. 그날 저녁 차수경선생이 장현수를 찾아왔다. 꿈결에 찾아왔다. 수경선생의 얼굴은 처음 보는듯하면서도 그렇게 익숙했고 또한 그렇게… 요염했다. 아침에 깨여나 장현수는 이부자리가 축축히 젖어있음을 부끄럽게 발견했다. 장현수의 소년은 이렇게 완수되였다. 양말 한짝 씻어보지도 못했던 그는 그 요자리를 힘겹게 씻어 가만히 널며 자신이 춤과 어쩔수 없는 연분을 가지고있고나 하고 다시한번 생각했다. 그후 장현수는 시적으로 벌린 브렉댄스콩클에서 단연 1등을 했다. 그 평심위원들중에는 차수경선생도 들어있었다. 차수경선생을 그렇게 가깝게 하고 선생의 손에서 증서와 상금을 받아쥐던 그때를 현수는 죽어도 잊을수 없었다. 그후 예술단에서 전국소수민족운동회를 맞으며 대형광장무를 기획, 군중역을 사회에서 초빙했는데 장현수가 쉽게 입선됐고 그중 출중한 표현으로 하여 파격적으로 예술단에 입적했던것이다. 이렇게 장현수는 차수경선생의 호흡곁으로, 예술의 전당으로 운명적인 한보를 내딛게 되였던것이다.    … 갈비집의 흔들이문이 열려졌다. 외삼촌의 잘 구워진 찐빵을 방불케 하는 얼굴이 나타났고 그 어깨너머로 차수경선생의 청초한 모습이 보였다. 두사람은 비에 쫓기다싶이 해서 차에 올랐다.     “저, 선생님-“      현수 달려가며 불렀다. 비소리에 두사람은 듣지 못하고있었다. 헤드라이트가 켜지고 엔진이 울리더니 차는 비속을 헤갈랐다. 현수의 연줄로 차선생과 외삼촌은 면담을 가졌고 장식회사에서 강개하게도 20만원의 협찬금을 주기로 일은 잘 진척되였다. 어느사이에 매스컴에서도 이를 보도했다. 민족문화의 축제를 위한 기업계의 훌륭한 동참이라고 높이 칭송했다. 여하튼 차수경선생에게 큰 조력을 줄수가 있어서 현수는 내심 기뻤다. 오늘저녁도 친구들없는 하숙집에 홀로 앉았노라니 차수경선생이 못내 그리웠다. 자기 주변에 아교풀처럼 끈끈히 도배된 선생의 형상을 지워버릴수가 없었다. 출근해서 매일 만나는 얼굴이였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둘이서 만나 무슨 이야기든 끝없이 하고싶었다. 그저 조용히 마주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허나 차선생은 마냥 현수의 만남의 전화요청을 딱 잘라버리군 했다.     “장현수, 나에겐 현수보다 두살이나 이상인 동생까지 있어요. 씨도 덜 여문 소릴 그만두세요.”    “또 취한거나 아니세요?”     “오늘 지도부에서 무극의 남주역을 현수에게 맡기기로 초보로 합의되였어요. 그러니 허튼 생각 집어치우고 사업에나 집념하세요.”      이렇게 잘라버리군 했다. 그럴수록 차선생에 대한 현수의 경모와 련모는 장작이 덧놓여지는 잉걸불처럼 점점 더 세차게 타올랐다. 하여 선생의 집을 찾아가던둥 도중에 숯불갈비집으로 들어가는 선생과 외삼촌을 극적으로 목격하고 망부석처럼 굳이 가다린것이였다. 차가 비안개속으로 형체를 감추고있었다. 현수는 본능적으로 차를 쫓아 뛰였다. 차는 시가지 서켠으로 뛰고있었다. 외삼촌이 선생을 저택으로 전송하려는것임이 분명하다. 현수는 지름길로 차선생의 집을 향해 뛰여갔다. 코스를 뛰는 선수의 사명감처럼, 구명선을 뒤쫓는 물에 빠진자의 욕구처럼 정신없이 뛰였다. 진창길을 철썩철썩 밟으며 얼굴로, 입귀로 흘러내리는 비방울이며 땀방울을 푸푸 뿜어내며 억척스레 뛰고 또 뛰였다. 그러면서 웨치다싶이 되뇌이였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선생님!” 차선생의 집 가까이까지 뛰여갔을 때 마침 차의 도어가 열리고 선생이 나왔다. “감사합니다.” 차를 향해 손을 저어 보인 차선생이 손채양으로 비를 맞으며 현관으로 뛰여들어가려 했다. 현수는 달려가며 갈린 소리로 웨쳤다.    “선생님!- “    차수경이 무춤 멈춰섰다. 몸을 돌리고 손채양아래로 상대를 헤아렸다.    “아니, 장현수 어찌된 일이얘요! 이 큰 비에…”    “… 갈비집서… 나오는걸… 봤습니다… 그래서…”    현수 숨이 턱에 닿아 말했다.    “그래 여기까지 따라 달려왔단 말씀이세요?” 차수경은 악연히 놀라며 흰김이 서려오르는 현수의 머리며, 함씬히 젖어버린 일신, 흙감발이 된 신을 훑어보았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거센 숨을 곰삭이느라고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그러는 그 얼굴에는 순진한 어린애 같은 행복한 표정과 사춘기의 불안감, 그리고 성숙에로 달리고있는이들의 고민과 추구가 혼반죽되여있었다. 차수경의 붉은 볼에 감동의 파장이 머물렀다. 자기보다 여섯살은 손아래인 제자에게서 뜻밖의 사랑의 고백을 들었을 때 차수경은 그저 웃고 지나치려 했다. 현수가 춤에 그 누구보다도 천부가 있다는것과 그 뛰여난 예술감응력에 가끔씩 놀라 다시금 그를 지켜본적 있었다. 그만큼 그에게 각근한 배려도 주었었다. 그리고 박력은 있지만 세련미가 없는 애젊은 피라고 생각했다. 그저 그뿐이였다. 그러던 얼마전 현수가 그에게 작은 열쇠 하나를 주었다. 설둥한 기색이 되여 그 열쇠로 자물쇠가 달린 노트를 연 순간부터 차수경은 그만 전설속의 온갖 칠정오욕이 담겨있다는 판도라의 함(盒)을 잘못 연것과 같은 심경이 되여버렸다. 그속에는 한 소년의 사춘기의 황홀한 꿈과 예술에 대한 미칠듯한 추구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꿈과 축구의 구구절절과 갈피갈피에는 차수경의 형상이 짙게짙게 배여있었다. 차수경은 그 집요한 추구앞에서 일순 어쩔바를 몰랐다. 그저 어린아이 타이르듯 어르기만 했다.     “난 현수가 생각하는것처럼 그렇게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니얘요. 그저 사업에서 남보다 조금 빼여났달뿐이죠. 여덟시간 밖의 차선생은 그렇지 않아요. 게으르고 매정하고… 지어… 남몰래 담배까지 곧잘 피우거든요.”     이렇게 타일러도 허사였다.     “선생님! 선생님의 결점까지도 모조리 사랑하고싶습니다.”      현수가 자신과 예술사이에 레루장처럼 긴 같기부호를 긋고는 자신을 련모하고 지어 우상화하고있다는데서 차수경은 놀라왔고 우습강스러웠고 자랑스러웠고 또 불안했다. 현수는 말없이 내리는 비속에 체념하고 서서 차수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둠속에 유난히 빛나고있는 그 시선을 피해 차수경이 덴겁히 눈길을 돌렸다. 매양 그 무어나 다 태워버리고 오조시킬듯한 눈길이였다. 그 눈길에 닿으면 빙점아래의 붉은 수은주도 대번에 가열점에로 쭉 오르며 용해되여 암장처럼 뿜겨나올 것 같았다.      “그만 … 돌아가요.”       차수경은 눈께까지 흘러내린 현수의 머리칼을 쓸어올려주었다. 그 손을 현수가 와락 부여잡았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현수는 차수경의 허리를 감쳐안아 젖은 품으로 콱 끌어당겼다. 젖은 몸으로부터 한기가 느껴졌다. 불의식간의 놀라움과 한기에 차수경은 몸을 오싹 떨었다.      다음 순간 뜨거운 입술이 얼굴에 날아들었다. 차수경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꺾었다. 그러는 선생을 장현수는 놓아주질 않았다. 부잇한 비안개속에 뒤로 젖힌 하얀 목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 목에 , 그 까만 태짐에 현수는 떨리는 입술을 대였다. 현수에게는 뿌연 비안개가 무대로 비쳐주는 으늑한 조명처럼 생각되였고 비소리는 관현악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조로, 그리고 자신과 선생은 생활의 거대한 회전무대우에 선 작은 배역으로 생각되였다. 밀고 부여잡고, 둘은 비속에서 조용한 춤사위를 벌렸다…   (7)       차수경이 무용련습홀의 거대한 거울앞에서 홀로 열심히 뛰고 있다. 차수경에게 있어서는 남보다 퇴근시간이 반시간가량 늦게 되여있었다. 그 반시간에 구상과 기량을 무르익히는데 버릇되여온 그였다. 그러는 차선생의 모습을 장현수는 마냥 문짬으로 지켜보아 왔었다. 장현수는 한동안 비싯거리다가 문을 밀고 무용홀로 들어섰다.     “엊저녁의… 무례함을… 용서해주십쇼.”      장현수는 남의 집 장독대를 부시고 훈장앞에 불리운 학생 같은 꼴을 지었다. 경직되였던 몸을 풀며 차수경이 한켠에서 타올을 집어들고 이마며 목으로 내배인 땀을 씻어내렸다.     “마침 잘 왔어요. 지금 극의 마지막 장절이 탐탁치 못해서 홀로 익혀보는중이얘요. 주인공이 사랑하는 처녀를 은장도로 찌르는 그 장면 말이얘요. 주인공의 하나하나의 동작에는 안타까움 그리고 허망스러움이 깃들어야 하는건데… 그저 상식적이고 평면화된 동작을 지어서는 안돼요.”      차수경은 현수 말은 못들은둣 완연 스승의 모습으로 돌의 표피처럼 딱딱한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 차수경이 한켠에 놓여진 록음기의 테이프를 풀었다. 무극의 곡조가 나왔다.      “자, 이리봐요. 잡념을 버리고 열심히 따라해요.” 차수경이 자세를 지으며 한켠에 멍청한 꼴을 짓고있는 장현수를 불렀다. 장현수는 그제야 덴겁해 응수하며 선생의 곁으로 다가섰다. 싱긋한 땀내가 섞인 체취가 담담히 끼쳐왔다. 장현수는 그 훈향을 흡 들이마셨다. 선생을 따라 돌고 뛰고 구을렀다. 홀연 선생의 목에 눈길이 가 닿았다. 하얀 목의 태짐부근에 발가우리한 입도장의 흔적이 알렸다. 비 내리는 엊저녁을 떠올리며 장현수는 불의불식간에 낯꽃을 확 붉혔다. 은연중 동작이 흐트러졌고 그 동작을 마무리짓지 못한채 현수는 비틀거렸다.      “안되겠어요. 그만.”      차수경이 거울속으로 장현수의 눈길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장현수는 반찬먹다 들킨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다시 시범을 잘 봐요. 좀더 집중해서 해요.” 차수경이 곡을 다시 풀고 시범을 해보였다. 처절한 음조에 동작을 맞추던 그가 홀연 입을 열었다. 춤을 추면서 이야기했다. 방금전의 딱딱함을 벗은 어덴가 회한이 푸근히 담겨진 소리였다.      “나에게도…사랑했던 사람이 있었어요…”       장현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차선생의 사랑담이였다.     “지금 단위에 신진들이 많이 바뀌여 저의 과거를 잘 모를뿐이지요. 그이도 무용배우였어요…”      차수경은 여전히 춤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대신 춤에 깊이 빠져있었다. 아니면 과거에 대한 추억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 우린 무용파트너였어요. 그이가 리몽룡을 맡으면 제가 춘향이 되고 그이가 로미오를 맡으면 제가 쥴리에트로 되고… 모두들 하늘이 내린 짝이라 했어요.  그인 춤기량이 높고 완연예술에 빠져버린 사람이였어요. 우리가 지금 하고있는 의 초보구상도 그이가 내놓은것이였어요. 경모하고 사랑할만한 사람이였지요. 우린 지독하게 사랑을 했댔어요… 그러던 어느 한번…”     차수경의 춤사위가 조금 늦추어졌다. “… 림장의 생활을 반영한 무용을 만들려고 그인 림장으로 갔어요. 눈내리는 수장으로 말이예요. 생활체험을 한답시고 벌목공들과 함께 채목을 했지요… 그러다…”      차수경이 맴을 돌았다. 고통스러움을 잊으련듯 빠르고 격렬한 회전을 하였다. 다시 느린 보법으로 돌아와 차수경이 축축히 젖은 소리로 숨가쁜 추억을 이었다.      “그러다 그만 넘어가는 통나무에 다리를 치였어요… 다리… 한쪽다리가 아니고 두다리가 모두 엉망이 되였어요. 분쇄성 골절이 됐던거얘요. 치료의 가망은 전혀 없었어요. 나중에 다리를 자르고말았지요…”      차수경은 극정을 이야기하듯 기억의 반추에 삽입되였던 추억을 춤사위에 담아 풀어내리고있었다.      “… 그인 완연 절망했어요. 그인 무용가였어요… 무용가가 두다리를 잘랐으니 그 고통인들 어디에 비할 수가… 그가 옥생각을 먹을가봐 우린 그의 신변에서 예리한 철기며 약이며를 죄다 집어치워버렸어요…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절망의 심연에서 구할수 없었어요… 그의 침방에는 제가 선물한 그림 한폭이 있었어요… 드가(德加)의 … 너무나 아름다운 파스텔화였지요… 그인 그 액자의 유리를 깨고 그 유리조각으로… 그 유리조각으로… 손목의 정맥을 베였어요…”      곡이 끊겼고 차수경은 춤사위에 맞춰 조용히 무너져내렸다. 그 동작 그대로 한동안 그 자리에 무너져있었다. 련습홀에는 썰물후의 모래사장 같은 참담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 한켠에 장현수는 돌처럼 뿌리내여있었다. 소절마다 추를 달아맨듯 무게를 느끼게 하는 그 말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오는 감정의 굴절에 빠져버린 그였다. 이윽고 차수경이 몸을 일으켰다. 타올로 눈언저리를 문질렀다. 다시 스승의 그것과 같은 메마른 표정이 그의 얼굴에 지어졌다.     “자, 오늘은 이만해요.”     차수경이 휴게실로 가려 련습홀의 문을 열다말고 몸을 돌렸다. 여전히 그 꼴 그대로 서있는 장현수를 바라고 나직이 한마디 했다.     “그후로 전 모든 사랑을 물리쳐버렸어요. 기실 전 이미 시집간 녀자얘요. 예술에게 시집가버린거죠.”   (8)         일요일, 장현수는 해종일 네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시가지 변두리의 자그마한 례물점까지 뒤져서야 원했던 그림 하나를 살수 있었다. 정교하고 사치한 액자에는 파스텔화 한폭이 끼여져있었다. 하얀 의상차림의 무용수가 무대복판에서 아름다운 춤자태를 짓고있는 그림이였다. “참 좋은 그림이죠. 지금 세월에 인상파대가 드가의 명작까지 알고 사가는 사람이 드문데…” 월봉의 3분의 1을 잘라서 서슴없이, 그것도 희색이 만면해서 그림을 사고있는 장현수를 보고 점원은 알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현수는 곁들어 라이터도 하나 샀다. 점화단추가 붉은 심장모양으로 된, 짤깍 켜지면 불과 함께 명곡 “솜다리”의 곡조까지 은은히 들려오는 앙징맞게 예쁜 라이터였다. 하숙집으로 돌아와 장현수는 그 라이터의 한귀에 예리한 칼끝으로 무언가 새겨넣었다. 도금칠이 벗겨지며 “장현수”라는 이름 첫자 자모중의 ㅈ자가 새겨졌다. 사랑의 징표삼아 장신구 같은 라이터를 먼저 선물하고 “춤추는 무녀”는 몇달후 정월께, 선생의 생일날에 드리려는 들큰한 환상을 하였다.      저녁엔 합숙하고있는 “첼로”와 함께 한식관으로 갔다. “첼로”가 술 한잔 사겠노라고 잡아끌었던것이다. 두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해낼수 없으리만큼 풍성한 음식이 차려졌다.     “아니 오늘은 이게 어찌된 일인감? 자기 머리비듬도 남이면 주잖던 첼로님께서…”      구두쇠로 통하고있는 친구의 반상적인 거동에 현수는 동공을 키웠다. “먹어라 먹어.” “첼로”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현수앞에 찬을 자꾸 집어주기만 했다. 술이 몇순배 돌고 술기운이 화닥화닥 피여오르자 “첼로”는 그제야 본제를 꺼내들었다.     “이것이 우리들사이의 으로 될것 같다.”     “건 또 어느 장단에 붙여 하시는 말씀인지…” 김치찌개를 훌훌 불며 떠마시던 현수가 경아의 낯빛을 지었다.     “나 직업바꿈을 하려고 그런다.”     “네 그 풍만한 옥체에 싸이판으로 로무 나가려 그러니?”     “아니 롱담 아니고 진짜야!”      “우리 예술단이 메마른 시국에 적만 남겨두고 홀라당 빠져 굿이나 보려구.”      “아니 완연 버렸어. 지금 세월에 직업이 다 뭐니?”      “뭐? 버렸다구? 대체 어떤 직업이기에? 어디 대통령자리라도 비였더냐?”      “멍첨지한테로 가려고 그런다.”     “멍첨지라니?”     “멍멍! 강아지 말이야. 애완견사육회사 있잖니?” 장현수는 입에 물었던 맥주를 푸! 내뿜고말았다. 입가에 맥주거품이 게발린채 네거리에서 낯도깨비나 만난 기색을 지었다. 호주머니를 부산히 뒤지며 담배를 찾았다. “첼로”가 복무원을 불러 “락타”한갑을 요구했다. 담배를 절반쯤이나 태우고나서야 현수가 입을 열었다.    “너 돌았다. 완전히 돌았어.”    “막지 마. 그리고 비웃지도 마, 난 이미 용단을 내렸어.”     “너 네가 어떤 신분인지 알고나 있니? 넌…”     “첼로”는 현수의 말을 중등 잘랐다. 현수의 본을 내여 말을 받았다.     “알고있어. 를 다루는 연주가야. 하지만 지금 세월에 음악만으로는 허기진 배를 못말려.”    “그렇다고 그 연주가의 손으로 강아지 털이나 쓰다듬고 강아지 똥이나 쳐대야 한단 말이냐?” 현수는 숭어마냥 몸을 벌컥 솟구며 열기를 뿜었다.    “그건 비단 제 자신의 인격을 낮추는것일뿐만아니라 신성한 음악을 모독하는거야. 아무리 애완견장사가 돈벌이 잘돼도 그렇지. 그래 네 존안에는 음악이고 예술이고 개보다 못해보이느냐?”  “교과서 읽지마. 넌 아직 세상돌아가는 리치에 참눈이 밝지 못해…”    “첼로”는 담담한 기색으로 현수의 상설 같은 노기를 가볍게 받았다. 그 무여지한 배포유에 현수는 그만 기가 딱 질렸다.     “됐다 됐어! 소귀에 첼로타기로구나. 에이- 김샌다. 술이나 따라아, 임마!”    현수는 억병으로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현수가 소리소리 지르는 바람에 무슨 변고라도 생겼나싶어 한식관 마담이 뛰여왔다. 이미 취기가 오른 현수는 마담을 보고 피씩 웃어보였다.     “별일없을테니 걱정말아요. 아줌마, 친구사이에 한잔 들어가니깐 너무너무 좋아서 그래요. 그러게 자꾸만 걱정스런양 하지 말라니깐요. 우린 예술단서 일봅니다. 난 춤추고 저 놈은 첼로켜고, 자 봐요, 아줌마. 이 자식 꼭 마치 챌로처럼 생겼죠…”     현수는 “첼로”를 등뒤로 껴안고 그의 풍대한 배를 손가락으로 박자 짚으며 다른 손의 식지로는 첼로의 코밑에 대고 밀고 당겼다. 마담이 풀럭 실소를 뿜었고 곁두리의 복무원들도 그 모습이 재미나다는듯 기침소리처럼 쿡쿡 웃었다. 그 웃음이 멎기도전에 현수의 장난기 묻었던 얼굴이 험상궂게 변조되여갔다.     “그런데 이 첼로가 지금 줄이 끊어져버렸어요. 망가지고있단말이얘요!” 하면서 현수는 주먹으로 “첼로”의 그 풍성한 배허벅을 모질게 들이박았다…     “첼로”는 취하여 자기를 주체하지 못하며 자꾸자꾸 무너져내리는 현수를 끌다싶이해서 하숙집으로 향했다. 밤바람이 불어왔다. 여름날의 혼탁함을 실은 바람이였다. 갑갑해난듯 현수가 자축자축 활개치며 네거리가 터져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이딸리아민요 “여름날의 마지막 장미”의 구절이였다. 악청을 지르다싶이 노래를 불렀다.     “여름날의 마지막 한송이 장미가 /피여나고있네/ 장미의 모든 반려는 죽어갔다네/ 그래도 장미는 계속 피여나려 하네…”   (9)       수확의 계절에 무대에 올린 “은장도”는 풍요론 수확을 가져왔다. 관중들이 접하기 어려운 무극극종이였지만 번마다 만좌를 이루어 예정했던 공연기일을 연장해야만 했다. 그에 따라 외성의 조선족잡거지역들을 돌며 공연해 역시 선풍을 일으켰다. 여느 매스컴이 말하다싶이 “극은 그 묵직한 예술력량으로 불황의 늪에 빠진 연예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있었다. 이날은 선전부 부장이며 문화국 국장이며 주요지도자들이 극을 관람하고 극에 높은 격찬을 주었다. 극이 끝나자 배우들은 스스로 밤시장에 모여 축하의 성찬을 벌렸다. 주역을 맡은 현수의 기쁨은 그 누구보다 절정에 닿아있었다. 그런데 웬지 그 성찬에 녀주역이며 안무인 차수경선생이 보이지 않았다. 차선생과 이 격정을 함께 나누고픈 현수는 저으기 허전한감이 들었다. 며칠전 어줍게 라이터를 선사했을 때  소리없는 웃음과 함께 말없이 받아주던 차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라이터로 담배 한가치를 붙여물고 어스름이 내리는 창가에서 춤에 대한 구상(혹은 저돌적인 이 제자에 대한 생각?)을 하고있을 차선생을 그려보았다. 들큰한 웃음을 입귀에 물며 현수는 기쁘게 술을 많이 마셨다. 밤은 자정으로 다가온다. 홀로 하숙집을 향할 때까지도 현수는 기쁨과 격정을 곰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중심거리를 지나치던 그의 눈에 외삼촌의 집이 보였다. 늦은 밤이였지만 불이 밝혀져있었다. 현수는 저도 모르게 외삼촌의 집으로 치달아 올라갔다. 부풀디부푼 이 격정을 아무와라도 함께 나누지 않으면 그 체증된 기쁨에 질식할것만 같았던것이다. 2층으로 올라가 조금은 미안쩍게 허나 상기된 얼굴로 현수는 초인종을 눌렀다. 응대가 없다. 다시한번 길게 눌렀다. 역시 응대가 없다. 실망감을 안고 층계를 내리는데 절컥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잠옷바람의 외삼촌이 문을 반쯤 열고 기웃거리고 있었다. 아 외삼촌!” 현수는 반색해하며 뛰여갔다.      “현수로구나. 헌데 오밤중에 왜?”    “한밤중인데는요. 외삼촌네 집인데 그런 허물도 세워야 합니까?”     현수는 끼니때 찾아온 손님을 보듯 귀찮은 표정을 짓고있는 외삼촌을 밀치다싶이하며 접대실로 들어가 쏘파우에 벌렁 주저앉아버렸다. 잠옷깃을 여미며 한켠에 켕긴 표정으로 섰는 외삼촌을 보며 현수가 말했다.    “극이 잘돼서 너무 기뻐 그럽니다. 여하튼 외삼촌이 고마웠어요. 그렇게 큰 도움을 주어서.”     외삼촌의 얼굴에 어덴가 힘든 웃음이 지어졌다.    “오늘 령도들도 관람하러 갔댔다면서. 전국콩클에 이 극을 내보기로 합의가 다된 셈이더라. 래일저녁 내 한상 차리고 단장님과 배우들을 청할란다. 축하해줘야지.”     외삼촌은 역시 그 자리에 엉거추춤 선자세로 말했다. 그러면서 자주 침실쪽을 곁눈질했다. 흥분의 도가니에 흠씬 빠져들었던 현수는 뒤늦게야 외삼촌의 궁한 표정을 읽어낼수 있었고 따라서 옷걸이에 걸려있는 녀자용 핸드빽을 보아낼수 있었다. 딸 같은 녀자를 맞아들이고 전처를 비명에 가게 하며 야단법석을 떨던 외삼촌은 그 애젊은 처녀와도 두해를 채 지내지 못하고 갈라져버렸다. 그리고 여태 혼자서 지내고있는터였다. (령감태기. 그러니 가만히 군재미를 보고있었고나. 실로 안스러운 걸음을 했는걸.) 현수는 침실쪽을 곁눈질하며 속웃음을 웃었다. 허나 다음 순간 버림받은 외삼촌댁의 참사가 떠올랐고 녀자를 주리게 밝히고있는 외삼촌에 대한 염오가 욱 치밀어올랐다. 황홀함이 끊기고 체증된 심경이지만 조카인지라 축객령은 내리지 못하고 오만상만 찌프리고있는 그 모양이 얄밉고 우스워 현수는 배포유하게 그 자리에 눌러앉아 떠날념을 않았다. 악동들 같은 장난기 묻은 웃음을 지으며 탁자우에 놓인 담배갑에서 담배 한개비를 꺼내물었다. 그러면서 딴전을 부렸다.     “외삼촌, 이 조카의 연기가 괜찮았죠?”     “응 좋았다, 좋았어.”      외삼촌은 다른 곳에 눈을 팔며 대답을 괴여올렸다. 현수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꿀꺽 삼키며 라이터를 켜들었다. 불이 확 일었다. 그리고 음악이 터져나왔다. 낮고 연연한 가락이였지만 현수에게는 신경을 지끈 란타하는 질타성처럼 들렸다. 현수는 몸을 흠칫 떨었다. 명곡 “솜다리”의 음조였다. 현수의 입에서 담배가 떨어져나갔다. 현수는 라이터의 뒤면을 뒤집어보았다. 커다랗게 커다랗게 클로즈업되며 현수의 시야로 예리한 창끝처럼 박혀들어오는 “ㅈ”! 현수는 라이터를 팽개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앞을 막아서며 기급한 소리를 지르는 외삼촌을 밀치며 침실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시몬스 침대우에 이불을 잔뜩 끌어 머리까지 뒤집어쓴 몸뚱아리가 보였다. 현수는 달려들어가던 그 서슬대로 이불을 콱 제껴버렸다. 풍만한 알몸뚱이를 한껏 옹송그리면서, 하얀 살갗을 한사코 가리면서 얼굴을 죽어라고 베개에 틀어박는 녀자… 그 와중에도 그만이 가질수 있는 유연하고 아름다운 목에 박힌 태짐을 현수는 분명히, 분명히 보았다. 현수의 수정체에 불이 피여 황황 일었다. 현수의 입에서 괴상한 절규가 터져올랐다. 현수는 미친 사람처럼 침방을 뛰쳐나와버렸다.     층계를 달아내리다 넘어져 콩단처럼 뒹굴었다.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깊은 호수에서 악어에게 쫓기는 려행자처럼. 깊은 수림에서 늑대에게 쫓기는 심마니처럼, 허깨비에 놀라 쫓기는 야행자처럼 죽어라고 뛰고 뛰였다. 밤택시 하나가 그의 앞을 스치다 까악! 쇠갈기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머리가 불쑥 나오고 욕설이 터져나왔다.    “죽고싶어 환장냐? 쌍놈새끼!” 허나 택시를 방임한채 욕설도 듣지 못한채 현수는 뛰기만 했다. 그러다 그 체력의 한계를 넘고 또 넘어서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가로등을 짚으며 길녘에 서버렸다. 단김을 헉헉 뿜어내였다. 하늘 향해 머리를 한껏 젖혀버렸다. 밤하늘의 자그만 별들이 소슬한 가을바람에 오돌오돌 떨고있었다. 안주하지 못한 령혼들이 방황하는것 같은 별, 그 별이 현수에게는 뭉근한 시각적 괴로움이였다. 현수는 머리칼을 집어뜯으며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아! 아!! 아!!!”     응고된 슬픔을 도무지 깨뜨릴수가 없어 목울음도 뿜겨나오지 않아 그저 고함만 지르고 또 질렀다.   (10)     장식회사에서 마련된 축하연회는 시가지에서도 가장 호화로운 회관에서 있었다. 모두들 즐거워하며 식탁에 둘러앉았다. 현수만이 침체된 모습이였다. 염병을 앓고난듯 표상이 우울하고 해갈했다. 여느때와 달리 빗지 않고 눈께까지 흘러내린 머리칼사이로 사람마다를 째려보고있었다.     “다음은 우리의 무극에 두터운 협찬을 주신 장식회사의 최경리께서 축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필줄 모르는 깡마른 체구의 단장이 평소와는 달리 필요이상으로 격동하며 소리높여 말했다. 박수가 터져올랐다. 한동안 지속된 요란한 박수가 끊겼다. 그런데 한사람의 박수소리만은 끊길줄 몰랐다. 현수였다. 의자에 젖버듬히 앉아 현수는 야유어린 자세로 박수를 짝짝 쳐대고 있었다. 곁에서 팔을 당겨내려서야 박수는 멎었다. 현수의 외삼촌이 비대한 몸집을 힘들게 일으켰다. 마른기침을 두어번 짜내고는 입을 열었다.     “에- 우리는 무극 에 많은 돈을 협찬했습니다. 허나 민족문화의 번영을 기리는 의미에서 본다 할 때…” 또 박수소리가 울렸다. 한사람의 박수소리였다. 현수였다. 곁에서 덴겁해하며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외삼촌이 마른기침을 또 한번 깇고나서 말을 이었다.     “…민족문화의 번영을 기리는 의미에서 본다 할 때 이 돈은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니라고 봅니다. 또한 아주 유용하게 쓴 돈이라고…”     최경리가 밤새껏 구사해낸 화려한 연설은 또 한번 현수의 박수소리에 끊겼다. 이번에도 곁에서 제지를 했고 단장의 아니꼬운 눈초리가 질러왔다. 최경리는 말을 채 마무리지 못하고말았다. 현수쪽을 힐끗 건너다보고나서 어색한 웃음을 띄우며 잔을 추켜들었다.     “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 다 함께 잔을 듭시다!”    모두들 의자를 덜컥이며 일어나 잔들을 맞쪼았다. 허나 현수만이 그 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무용조의 친구가 그를 당겼다.    “너 오늘 왜 그래? 기쁜 날인데 한잔 들어야지.”    “나 술 끊었다. 그저 약수면 돼!”   그 친구는 알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현수의 컵에 약수를 듬뿍 부어주었다. 현수는 한모금 찌우다가 짐짓 오만상을 찌프렸다.    “이 약수가 왜 이래? 분명 가짜저질품이야. 어이, 복무원- “     애된 얼굴을 가진 처녀접대원이 달려왔다.    “이 물맛이 그닥잖구만, 표 약수가 있나?”     말세가 트집스러웠다. 인차 약수병이 바뀌였다.    “어? 이 물은 더 한심해. 수도물을 그대로 넣어 팔잖아.
1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댓글:  조회:4685  추천:62  2008-04-03
. 중편소설 .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제3회 "김학철 문학상" 수상작품) 김 혁   놈은 멋있었다. 놈은 부드러운 순백색의 털을 가졌다. 눈빛은 짙은 에메랄드색이다.     삼각형의 귀, 엷은 핑크 색의 입과 동침 같은 은빛수염, 입 벌리면 드러나는 호랑이의 그것 같이 날카로운 렬육치(裂肉齒)...    견갑부(肩甲部)에는 감색의 털이 조금 섞인 나비 모양의 무늬가 있다. 목과 가슴의 풍성한 털이 인상적인데 조그마한 녀석이 그 무슨 사자처럼 갈기를 가지고 있다.    꼬리는 길고 풍성하며 높이 추켜 올라가 있다. 원산지가 노르웨이, 인위적으로 교배된 품종이 아니라 여러 대를 거쳐 북유럽의 춥고 혹독한 환경속에서 살아남은, 자연선택에 의해 탄생된 품종이라 한다. 성격이 까칠한듯 하지만 아빠트에서도 곧잘 적응을 하는 장모종(长毛种)의 고양이, 애묘인(愛猫人)들의 총애를 무척이나 받는 놈이다.     그런데… 나는...  놈이 싫다.     고양이를, 우리 집에서 1년도 더 살아온 고양이를 버리기로 했다.     1 한 잡지사에 있는 동료에게 고양이를 주기로 했다. 편집부에서 시 편집을 맡고 있는 후배이다.    -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 중에는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대요. 신비스러운 이미지와 개인주의적 성격이 예술가들에게 공감을 준다고 할수 있죠. 외국영화서 보면 깃털 펜을 든 시인 곁에 탐스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장면이 자주 나오지 않아요. 시 편집이 고양이의 턱밑을 간질이자 놈은 가래 끓는 듯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감사의 표시로 한턱 쏜다며 후배가 퇴근길에 맥주집으로 청했다.     - 근데 선배님은 왜 고양이를 안 키우려 하세요?     술 몇 잔이 돌자 시 편집이 나를 보고 물었다.     - 고양이를 왜 안 키우냐고? 음... 그냥    후배의 진지한 질문에 어눌하게 입술을 움직이다 나는 애매한 대답을 주고 말았다. 그리고 그 질문에서 한 녀자를 떠올리고 말았다. 고양이 같은 호동그란 눈매를 가진 한 녀자를.    그녀는 마거릿 미첼의 작품을 각색한 동명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녀주역을 꼭 닮았다. 주인공 스칼렛 역을 맡은 배우 비비안 리가 평소에 “고양이 눈매를 가진 녀자”라 불렸듯이 둘의 눈매는 닮은 데가 있다. 그래서 그녀의 별명을 내가 “비비안 리”라고 지었다. “비비안 리”는 내 소설의 애독자이다. 처음에는 문학지에서 나의 략력에 실린 주소를 보고 조심스레 문안메일이 왔다. 나의 전부의 소설을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몇부의 소설에는 깊이 빠져있었다. (실은 나 스스로 보기에도 별로인 작품임에도 말이다.) 소설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수와 작가에 대한 궁금증 등으로 메일이 몇 번 오간 뒤에 그녀에게서 만날 수 없겠냐는 간청이 왔다. 그래서 만났다. 요즘같이 문학의 위상이 땅바닥에 떨어진 시국에 팬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팬 쪽에서 만나고 싶다는 청구는 과히 기분 나쁜 일이 아니였다.     어느 봄날, 그녀가 자주 간다는 차집에서 만났다. 들어서는 그녀를 보는 순간, 즐거운 기대나 궁금증 같은 것을 가지지 않았던 나는 테이블에서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우리가 흔히 보아온 녀성문학인이나 문학애호가라면 두터운 도수안경에 복고적인 풍의 옷차림의, 머리는 비상하나 외모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지어 못나기까지 한 이들이 다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기존의 인상들을 엎질러버리며 미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배시시 웃어 보이며 들어서는 모습이 더없이 당차고도 단아했다. 이른봄이라 사람들의 옷차림은 아직 두껍고 칙칙했지만 그녀의 복장은 계절을 앞질러 엷고 화사했다. 블루의 상의와 스커트가 매치 되는 투피스 차림, 패션 잡지를 한 페이지 찢어 놓은 그림 같았다.  부드럽게 웨이브 진 긴 머리, 선연한 주홍색 립스틱, 핑크 빛 아이새도우(眼影)... 본능적인 관능미와 정제된 세련미가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도출해내고 있는 녀자였다. 못나게도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엄지로 안경테를 연신 추어올리며 오랜만에 문학이니 인생이니 하는 대단한 명제에 대해 감상적이고도 격조 높게 담론했고 그녀는 핑크 빛 아이새도우를 바른 눈시울을 깜박이며 들어주었다.     그 후로 우리는 자주 만났다. 고료나 편집비가 나올 때면 나는 그녀를 불러서 같이 술을 마셨고, 그 동안 묵혀두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곤 했다. 얼굴바탕이 좋은 녀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가식이나 허영 같은 것이 조금 보이긴 했지만 녀자는 총명, 령리, 눈치 따위로 끝내주는 녀자였다. 그 무렵 나는 천사가 따로 없다고 믿고 있었다.    순백색의 털에 에메랄드빛 눈을 가진 장모종의 고양이, 고양이는 이런 그녀가 키우던 고양이였다. 그녀처럼 고귀한 품종의 고양이, 그런데 지금 나는 그 고양이가 싫다. 내가 버리려던 참에 내여준 고양이를 받아 안고 괜스레 흥분하는 시 편집과 술을 억척스레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따자 언제 나와 같이 자잘한 생필품들이 너절너절 널려있는 빈방, 어지러움과 고요가 마중한다.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리모컨을 찾아 들고 TV를 향해 버튼을 눌렀다. 고요가 싫어져 집에 들어서면 내가 제일처음 하는 동작이다. TV는 왁자하니 소란한 소음을 쏟아낸다. 지루한 드라마 프로는 건너 띄고 오락쇼 프로를 틀었다. 사회자가 입담을 자랑하고 무대아래우가 웃음으로 자지러진다. 하지만 화면 가득 메운 웃음소리도 나의 기분을 상승시키지 못했다. 소리가 엄청 높았지만 볼륨을 조절하기조차 귀찮아져 버려둔채 나는 그대로 쏘파우에 무너져 내렸다. 안해가 한국으로 나간지 어언 7년째이다. 그때 겨우 걸음마를 타던 딸애가 이제는 학교를 다닌다.    몸이 잰 안해는 그 누구보다 순발력이 있어서 사람들은 내게 처복이 있다고들 했다. 출국 붐에 세상이 들썩거리자 안해가 가만있을리 없었다. 작가님이라 우러러보고 시집왔더니 책에서 읽은 거 빼고는 아는 게 없는 나를 두고 식상한 나머지 안해는 돈벌이를 위한 출국을 유일한 비상구로 삼았다. 나는 그런 안해를 막지 않았다. 막을 수도 없었다.     남들과 근사하게 아니, 남보다 더 잘사는 꿈에 신명을 걸고 시악을 박박 쓰는 안해에 의해 우리 집은 변모되기 시작했다. 강을 낀 아빠트단지의 알맞은 층수의 집, 그리고 그 집안을 채우고 있는 초대형TV, 에어컨, 세탁기, 김치랭장고와 가스오븐레인지, 지어 전기압력밥솥에 이르기까지 각종 브랜드제품들이 다 안해덕에 마련된 것이다. 나의 두번째 소설집도 안해덕에 자비출판을 할수 있었다, 작품량은 적지 않은데 호주머니사정이 안되여 감질내다가 첫 작품집을 낸 5년후에야 안해덕분에 제본 훌륭하게 나올수 있었다. 황금 알을 품은 거위 같은 안해를 둔 나를 보고 모두들 복이 홍수로 터졌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낄 때야말로 가장 불안한 순간일수 있다. 요즘 내게는 행복이라는 말보다는 차라리 견디고 있다는 말이 나을 거 같다.    언제나 그렇게 대개는 계란 프라이 하나에 딱딱하게 굳은 빵 한 조각, 틱틱한 우유. 아니면 전기밥솥 안에서 하루를 묵은 밥과 시여 빠진 김치를 대충 올려놓고 볼 가심하는 을씨년스러운 식탁, 다른 애들보다 옷차림은 화사하지만 어미의 자리가 빈 데서 어딘가 풀죽어 있는 아이의 모습… 3년이면 돌아온다던 안해는 7년째 되건만 오지 않는다. 이제 안해의 존재는 나와 아이에게 있어서 그리움 따위의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보름마다 걸려오는 국제전화속의 판에 박은 목소리, 사진첩에 꽂혀있는 사진처럼 정물적인 것, 그리고 퍼런 액면의 지폐 같은 것이였다. 나는 안해가 3D업종에 혹사하면서 부쳐 보낸 돈으로 일껏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은연중 안해에 대한 원망의 싹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외롭기 짝이 없었다. 외로워 미칠것만 같았다. 그 외로움의 표출로 매일 술을 마시고 TV의 마지막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궁싯거리며 뽀얗게 밤을 새우는 내 모습, 오한이 들만큼 질식할 듯한 정적 속을 서성이는 나의 이런 모습들이 스스로 보기에도 소연(蕭然)하다.     그리고 자제하기 어려운 금욕의 시간들... 늘 같이 하다가 혼자 눕는 이부자리가 얼마나 헛헛한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혼자만의 체온으로 버텨내야 하는 이불 속은 아무리 난방온돌바닥이 절절 끓어도 허전하고 쓸쓸했다. 뼈 마디마디에 남아있는 한기는 어쩌지 못했다. 처음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육체적 욕망따위는 누룰수 있다고 나는 믿었다. 가정을 위해 타향에서 손 지문이 지어지도록 일에 혹사하는 안해를 두고 떠올리는 육체적 욕망은 곧 오욕의 덩어리였다. 내가 욕망을 따라가려 할 때마다 멀리에 있는 안해가 그 견고한 얼굴을 들이밀며 붙잡았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흐르자 몸과 마음에 욕망의 열기가 터질 듯이 고여 왔다. 그때마다 내 안에서 사막의 초열(焦热) 같은 괴성이 소리를 질렀다. 그 괴성은 나의 온 몸을 들쑤셨고 그 발열은 나의 온 몸을 태우려 했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들도 온통 이런 적막과 무미함으로 채워진 인고의 시간들이리란 상상에 두려움을 금치 못해 했다. 그러다 튕겨져 오르는 음악의 클라이막스 부분처럼 현이 끊어지기 직전의 고뇌의 분출구에서 그녀를 만난 것이다.    여러 번의 만남이 있은 뒤의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여 그녀를 편집부 동료들이 벌리는 은밀한 파티에 초청했다. 모두가 마누라를 출국시키고 볼썽사납게 남은 남편들이 모여 벌리는 파티, 모두는 자기가 지금 사귀고 있는 애인들을 현시라도 하듯 동참시켰다. 요즘 같은 세월에 애인 하나쯤 끼고 있는 것은 무슨 천기(天機)와 같은 비밀스러운 일이 아니였다. 좀 그런 모임이라지만 편집부에서 한다 하는 인물들 거의가 참가하는 모임이라 빠질수도 없었는데 번마다 혼자 참석하는 나를 보고 파티의 우두머리 격인 편집부장이 웃음을 날렸다. - 너 혹시 고자 아니여? 부장의 웃음소리는 내 고막을 란타하며 방에 가득히 명멸했다. 헛바람이 새는 듯한 그 웃음소리는 자못 방탕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정색을 하면서 목에 잔뜩 힘을 주어 다소 경멸 섞인 어투로 부장은 덧붙였다. - 다음에도 외짝으로 오면 사람들 앞에서 확인부터 해 볼 것이니 그리 알고 잡도리 한다 실시!     사실 가속이 출국한 중에 나와 50대의 수필편집이 밖에 넘보는 녀자가 없다. 그래서 그 동아리들은 나와 그 로편집사이에 같기 부호를 그어주고 있었다. 생각 끝에 나는 그녀를 불렀다. 가짜 애인 역을 맡아 달라고 갑자르며 말했다. 그녀가 웃었다. 허리 까부러지게 웃었다. 그러나 흔쾌히 동의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을 닮은 “비비안 리”를 이끌고 들어선 나를 본 평집부장의 안경테가 코 마루에서 집장(執杖)고도 뛰기를 했다. 부지런히 오가던 수저를 멈춘 채 나를 쳐다보는 다른 동료들, 그들이 끼고 앉은 이젠 익숙해지기까지 한 애인들의 얼굴은 반신반의 그리고 경악 그 자체였다. 그날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워 데리고 온 왕자라도 된 기분으로 나는 즐거운 주말을 보냈다.     2차 3차 끝날 것 같지 않던 파티가 드디여 파하고 내가 그녀를 집에까지 바래주었다. 그녀는 몹시 취해 있었지만, 그러나 취기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눈빛은 상쾌한 물방울처럼 나를 향해 툭툭 튀고 있었다. 그 눈은 사랑에 달뜬 십 대의 소녀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파트로 오르는 층계에서 바램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나를 그녀가 불러 세웠다. 휴~ 하고 그녀가 이마로 내려온 앞머리를 입김으로 불어 올렸다. 그리곤 말했다. - 우리 진짜 애인 하면 안 돼요? 현관의 창으로 새여든 달빛이 층계를 은백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알콜에 사로잡힌 나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헤맸다. 그 시선을 받은 녀자가 쓰러지듯 내 몸에 안겨들었다. 그러면서 녀자는 내 뺨을 감싸 쥐였다. 내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 사이로 녀자의 혀가 들어왔다. 혀는 뜨겁고 부드럽고 미끈거렸다. 순간 당황했고 가슴이 더워졌다. 이러는 거 아니라고, 이러면 안 된다고 뜨거워나는 가슴을 달랬지만 몸은 뜨겁게 절절이 끓고 있었다. 그 동안 용케도 참아 왔다고 느꼈는데. 나는 어느 결에 팔로 녀자의 등허리를 감고 말았다. 녀자의 집으로 달려 올라가 우리는 카펫 우에서 뒹굴었다. 서두르며 서로를 가졌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초토화 된 사막을 건너와 물웅덩이를 만난 려행자들처럼 서로를 마셨다.     이윽고 녀자는 커피를 끓였다. 일을 치르고 나면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별난 취향이였다. 컵에 설탕을 넣고 충분한 크림을 얹고 뜨거운 커피를 부어 저었다. “연와(燕窩)”커피, 어쩌면 내가 즐기는 커피였다. 처음 다른 녀자와 침대우에서 마시는 커피, 야릇했고 달콤했다.     그 그윽한 향기처럼 사랑은 느닷없이 다가왔다.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의 쓴맛이나 떫은맛과 같이 고통이 따르지만. 곧이어 감미로운 뒤맛으로 바뀌여 입 속에 오래도록 추억과 흔적으로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커피를 즐기듯 사랑도 중독이 되는걸가?     커피잔을 놓고 녀자는 나의 가슴에 뺨을 붙이며 안겨들었다. 잘 익은 복숭아 빛으로 녀자는 두 볼이 물들어 있었다. 풍성한 저녁식사 뒤에 따라나온 후식을 즐기듯 달콤하고 평안한 모습이였다. 녀자가 입을 열었다.     - 3년이 됐어요. 혼자 있은 지가…     남편이 로무수출로 한국에 나갔다고 했다. 시골학교가 페교되면서 체육교원이였던 남편과 작문지도교원이였던 자기는 일조일석에 직업을 잃었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은 배를 탔고 자기는 상경했다고 했다. 녀자의 목소리가 내 온 몸에서 웅웅 울렸다. 녀자가 커피 포장지에 그려진 둥지 속의 한 쌍의 제비를 지켜보며 말했다. - 우리 이렇게 가끔 즐겨요. “연와” 커피를 마시듯이. … 이런 그녀. 이런 그녀와 키우던 노르웨이 산 고양이, 그런데 지금 나는 그 고양이가 싫다. 그래서 남에게 주어버리고 오는 길이다.     2 아침, 출근하자 시 편집이 들어서는 나를 보고 다짜고짜 물었다.     - “톡소플라스마”라고 들어 봤어요?     목소리가 다급하고 진지했고 나는 오리무중에 빠지고 말았다.     - 톡 소 플 라 스 마?     시 편집이 허겁지겁 설명했다.    - 임산부에게 치명적인 병균이 아니고 뭡니까! 류산을 유발하고 무뇌증과 같은 기형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요.     - 그런 데는??     - 그런 데라니요. 그 병균이 고양이 몸에 들어있다지 않고 뭡니까?     그제야 나의 더듬이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시 편집의 안해는 지금 임신중, 녀석을 빼닮을 소심한 성격의 후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있었던 것 이였다. 녀석이 병원체(病原体) 샘플이라도 넘겨주듯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양이가 들었는 종이박스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 되돌려져 온 고양이를 사무실에 그냥 둘 수도 없고하여 핑계를 대고 남보다 앞당겨 퇴근했다. 집에 들어서서 장물(贓物)을 어디에 감출지 몰라하는 범죄자처럼 나는 종이박스를 든 채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 고양이의 눈매를 닮은 그녀- “비비안 리”가 어느 날 무언가 들고 나타났다. 전기 밥솥 박스였다. 그런데 박스속에 든 것은 밥솥이 아니였다. 고양이였다.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했다. 함께 키우자고 했다. 그러는 그녀의 얼굴이 아이처럼 빛났다. 그녀가 고양이 눈을 닮았던지 고양이가 그녀의 눈을 닮았던지 그 두 쌍의 눈매가 지켜보는 중에 나는 얼떨결에 고양이를 수납해 들이고 말았다. 그녀는 진짜 고양이를 좋아했다. 고양이와 머리를 맞대고 알고도 모를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핸드폰 카메라로 고양이의 재롱을 찍어 간직하기도 했다. 때때로 치솔모가 굵은 치솔로 고양이를 씻어주기도 했다. 긴 털을 살살 비벼 땟물을 씻어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빼고 큰 수건에 감싸고 물기를 닦아냈다. 헤어 드라이기를 “약(弱)”약으로 고정해 놓고 젖은 털을 말리며 천천히 빗으로 빗겨주었다. 그러면 고양이의 털이 보기 좋게 윤기가 흘렀다. 그의 애틋한 손짓은 고양이를 그리고 보는 나를 나른한 행복감에 잠기게 했다. 그녀 때문에 고양이에 대한 학문도 늘었다. - 이쁘죠? 고양이? 털이 좀 길지만 기름기 많아 손질이 거의 필요없고 털도 잘 안빠져요.  - 고양이는 상온(常溫)의 음식을 좋아해요, 랭장고에서 금방 꺼낸 음식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또 너무 뜨거운 거나 너무 매운 것도 주면 안돼요. 요구르트 잘 먹어요. - 고양이는 씹지 않고 그대로 삼키는 동물이얘요. 그러니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닭고기나 물고기 등뼈는 너무 딱딱해서 소화시키지 못하고 위장에 상처를 주는 일도 있으므로 주의해 주세요. 아셨죠. - 고양이에게 주면 절대 안되는 것이 뭔지 아세요? 양파, 양파입니다! 양파를 고양이가 지속적으로 먹으면 적혈구가 파괴되어 빈혈을 일으킨대요.  독락(獨樂)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는 종알거렸다. 그렇게 좋아하는 고양이를 신변에 두지않고 우리 집에까지 가져 온 데는 원인이 있었다. 우선 나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원인은 실상 다른데 있었다. 동생부부가 출국하여 조카를 그녀가 맡고 있는데 말썽꾸러기 그 애가 고양이를 몹시 구박한다고 했다. 고양이 보호대책을 강구하던 중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도수안경에 순한 머리칼을 가진 자상한 모습의 내가 고양이를 잘 돌볼수 있으리라 그녀는 믿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고양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고양이에 대해 관대할 수 없었다. 고양이가 가구나 벽, 카펫이나 방석 따위를 발톱으로 할퀴고 물어뜯는 것을 용인할수 없다. 더욱이 서재로 뛰여 들어 책이라도 호비고 뜯기라도 하면… 하지만 그녀의 청이라 거절할수 없었고 또 애들이면 그러하듯이 딸애가 무척이나 좋아했다.. - 우리 사랑의 견증인이야요 이 고양이가. 고양이 볼 때마다 날 생각하세요. 어느 날, 격정의 순간이 지나고 침대우에서 게나른히 커피를 마시고 있는 벌거벗은 우리를, 어느새 다가왔는지 고양이가 이상한듯 지켜보고 있었고 그 고양이를 껴안아 쓰다듬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눈매를 닮은 고양이를 나는 역시 “비비안 리”이라 불렀다…     야오옹! 가정용 전기제품 박스속에서 고양이가 울었다. 박스를 젖혔다. 나를 향한 고양이의 눈이 더욱 호동그랗게 보였다. 그 에메랄드 빛의 눈은 분명 “왜 나를 버리려 하죠?”라고 묻고 있었다. 현관에 선 채로 생각에 빠졌던 나는 고양이가 들어있는 박스를 들고 다시 집을 나섰다. 아빠트단지 정문을 나서서 백여메터 쯤 가면 길은 두 갈래로 나누어지고, 바로 거기 길녘 가로등 곁에 철제 쓰레기 분리 수거함, 4개가 놓여있다. 쓰레기들을 비닐주머니에 넣어 집 출입문 곁에 놓으면 아빠트 청소부가 쓰레기 수거함까지 가져가도록 돼 있지만 나는 층계를 내려 멀리 쓰레기 수거함까지 손수 가져갔다. 그럴수 밖에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이는 다른 폐기물과는 다른 것이였으니깐. 나의 서재 창으로 거리쪽이 보인다. 쓰레기 수거함이 놓인 그 방향이. 집으로 돌아와 왜서였던지 나는 창가에 다가섰다. 엄지로 안경테를 추어올리며 거리쪽을 향해 시선을 박았다. 빨리 청소부가 다가오고, 쓰레기를 수거하다 박스속의 고양이를 확인하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리고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청소부에 의해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고양이는 부양되겠지… 누군가 쓰레기 수거함쪽으로 다가간다. 나는 긴장하며 창에 얼굴을 붙혔다. 중고품 TV의 화면처럼 멀리의 풍경은 흐릿하나 그런대로 가려 볼수 있었다. 허리를 구부정히 하고 수거함에 다가간 그 사람이 쓰레기를 뒤진다. 왠지 옷차림이 괴상했다. 귤색 노란 조끼를 받쳐 입은 청소부가 아니였다. 봉두란발, 꾀죄죄한 입성, 일견에도 분명 거지였다. 거지가 박스앞에 쭈크리고 앉는다. 비닐 테이프로 봉한 박스를 열어젖힌다. 순간 갇혔던 고양이가 용수철처럼 튀여오른다. 거지가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고양이의 난데없는 출현에 기겁초풍했을 거지의 얼굴이 떠오르고  짤막한 비명이 예까지 들리는듯 하다. 뛰쳐나온 고양이는 한동안 사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곧추 아빠트 단지쪽으로 뛰여온다. 아빠트 철책 사이로 빠져 들어와 아빠트 광장을 가로지른다. 나는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저도모르게 귀를 세우고 무언가 기다렸다.    한동안 지나자 아닌게아니라 꿈결처럼 출입문쪽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는 절박했다. 그리고 잦게 울렸다. 울음소리는 아마 아빠트 랑하를 가득 메울것이다.  문을 열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자 고양이가 풀쩍 조약해 오르며 내 품에 안겼다. 꽃순 같은 입속을 보이며 울었다. - 야아아옹~ 오늘 저녁 나는 이 괴기스러운 울음소리를 들으며 또 지리한 밤을 새야 할 것이다.     3 유난히도 추웁던 이 겨울이 끝나는 출구에서 나는 가상한 결정을 내렸다. 한바탕의 혼란과 망설임, 고심끝에 내린 결정이였다. 고양이 눈매를 닮은 그녀, 그 동안 나에게 경희와 사랑(?)을 주었던 그녀- “비비안 리”와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나는 그렇게 베고 자르고 할수 있는 단호한 성격은 아니였다. 비밀 실험으로 희귀한 묘종이라도 키우듯이 세간의 눈을 피해 조심스레 키워 온 그녀와의 사랑의 싹을 그냥 비밀한 하우스 속에 키우고 싶어했다. 내 마음에 떠돌던 메마름에 감로수를 부어준 그녀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했던 내가 그녀와의 사랑을 매듭 지으려 마음먹은 것은 다름 아닌 안해쪽의 느닷없는 변고때문이였다. 안해가 귀국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돌아오라고 애걸하듯 호소하듯 해도 조금만 기다려줘요!하고 매몰차게 거부하며 오로지 돈 버는 재미에만 환혹해 있던 안해가 드디여 귀국하겠다고 했다. 사실 너 나가 붐비며 출국돈벌이라는 외곬으로 밀려들고 있어 인력시장이 부하상태, 일거리 찾기가 쉽지 않고 임금 또한 오를줄 모르고 외려 내려갈 조짐이라 했다. 그보다도 오랫동안 음식점에서 막일에 혹사한데서 얻었던 안해의 관절염이 더는 지탱하기 어려운 정도로 심해졌던 것이다. 전화를 받으며 나의 머리속은 하얗게 비여있었다. 홀아비 생활에 질린 나머지 그렇게 안해의 귀국을 원했던 나였지만 이 순간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몰라했다. 며칠 후, 절교의 통첩을 준비하고 그녀와 만났다. 무얼 먹고픈가 물으니 우육면이 먹고싶다고 했다. 사실 마지막 만찬이니 만큼 더 근사한 곳에서 만나려 했는데. 주문한 면이 나왔는데도 나는 수저를 든 채 머뭇거렸다. 다시 보아도 그녀는 아름다웠다. 음식을 씹는 입매가 싱그러웠고, 고개를 약간 치켜들고 이발로 국수발을 뽑아 올릴 때의 턱과 턱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목선이 티없이 고왔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얘기를 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가리사니가 서질 않았다. 심각한 어지러움에 나는 자맥질하고 있었다. 비밀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에 가득 찬 어제와 복잡한 오늘과 수없이 다가올 래일들을 뭉뚱거릴 한마디의 말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저가락을 면발에 꽂았다. 팔꿈치를 식탁우에 올려놓고 두 손을 맞잡으며 군색하게 나는 입을 열었다. - 저… 이제… 그, 그만… 만나요 우리. 더듬으며 갑자르며 매우 힘들게 한마디를 뱉어냈다. 목에 걸린 생선 뼈를 토해내는 사람처럼… 그리고 기다렸다. - 뭐?! 갈라져? 나를 무슨 술집 여자로 알았어?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게? 악청을 지른다던가 그녀가 내 얼굴에 먹다 남은 음식을 끼얹는 등등의 격한 행위를… 상상하며 기다렸다. 그녀가 머리를 쳐들었다. 염색한, 길고 숱 많은 머리털이 흩어져 후광처럼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작은 귀고리가 귀볼에서 흔들렸다. 내가 사준 귀고리였다. 휴~ 하고 그녀가 입김으로 앞머리를 불어 올렸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입가에 가는 명주실 같은 엷은 주름이 지어지며 미소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 생각밖의 미소에 나는 당황해 지기까지 했다. 그녀가 나를 향해 짓고 있는 그 미소 속에 사람을 꿰뚫어보는 힘이 느껴져서 나는 몹시 무안해졌다. 그 미소가 나의 마음을 어지럽고 갈래지게 했다. 어정쩡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어색해져 왼손을 말아 쥐고는 입에다 대고 두어 번 잔기침을 뱉아냈다. 그녀는 다시 머리를 숙이고 그릇 속의 면을 휘젓는다. 얼굴은 내내 생각 속을 헤매는 표정이다. 그 얼굴은 내가 가진 고민과 아주 큰 공통분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 이렇게 끝나네요 우리…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또 끝나면 또 어떤 방식으로 끝나려니 궁금했는데… 독백처럼 그녀는 아주 작고 어눌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면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그릇 속의 면은 금세 식어 있었다. 표면에 떠오르기 시작한 촛농 같은 기름덩어리를 저가락 끝으로 밀어내며 그녀는 다시 면을 건져먹었다. 먹는 것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뭉때리려는 듯 하다. 집까지 바래다 주려 했으나 그녀는 혼자 택시를 잡았다. - 잘 가. 그렇게 손들을 엇갈리며 작별인사를 하다가 이것이 마지막 인사라는 느낌에 소스라쳐 놀라며 나는 가슴 밑바닥을 흔들고 지나가는 어떤 진동을 느꼈다. 찌르르하고 배속에서 앙가슴을 거쳐 머리까지 치솟아 오르는 그 떨림은… 미련? 아니, 말하자면 막연하고 알 수 없는 불안감 같은 것이였다. 택시는 가버렸고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찌르고 우육면 집 앞에 나는 오래도록 서 있었다. 혼자 단골로 가던 맥주집을 찾아 술을 엄청 많이 마셨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중얼거리며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기다려지던 월요일이였는데… 안경도 벗지 못한 채 쏘파에 너부러졌다가 새벽, 갈증에 잠을 깼다. 주방으로 가서 랭장고를 열어보았다. 랭장고마저 텅 비여 내 속을 우울하게 했다. 생수 한 컵을 단내 나는 입속에 부어 넣었다. 그러다 나는 보았다. 랭장고 곁에 도사리고 앉은 고양이를. 랭장고의 불빛속에 푸짐한 몸체를 한 고양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힘들어? 하고 고양이가 묻는 것 같았다. 고양이의 눈매는 천착할 듯 나를 핥고 있었다. 순간 그 눈매가 남의 속을 꿰뚫는 인간의 그것을 닮았다는 섬찍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정처럼 차게 빛나는 고양이의 도도한 눈을 바로 정시하지 못했다. - 우리 사랑의 견증인이야요. 이 코냥이가 전기밥솥 박스에 고양이를 들고 나타나  “비비안 리”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안해가 오기 전 고양이부터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날 새벽 나는 하였다. 그녀에게로 전화를 넣었다. - 그쪽에 선물한 거니 마음대로 처리하세요. 옛날처럼 그냥 기르던지, 아니면좋은 주인 찾아 주던지…    그녀의 목소리 톤이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옛날이라는과거형에, 한 때라는 시간으로 한정 지어지는 관계에 나는 새삼스런 서글픔을 느꼈다. 그 아주 허무맹랑한 태도는 나로 하여금 이 고양이에 대한 마지막 미련을 버리게 했다. 그래서 며칠 전 나는 또 고양이가 종이박스를 넣어 들고 집을 나섰다. 작은 시가지에 하나밖에 없는 륙교(陆桥), 그 우에 애완동물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언제부터였던지 애완동물 장사군들이 도시의 주요한 위치인 이곳에 운집해 들었다. 간혹 공상국이나 도시관리소 일군들이 나타나면 도망가고 단속이 뜸해지면 또 찾아 들곤  했다. 그래서 이곳은 사실상 애완동물시장으로 간주되여 있었다. 박스를 들고 허위단심 찾아와보니 애완동물 장사군들은 거개가 한족 아낙네들이였다. 그리고 륙교우에 펼쳐진 “애완동물 시장”에서는 거의 모두 개를 팔고 있었지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몰려든 이들은 거개가 한창 호기심 많을 나이의 10대와 화려한 옷차림의 유한부인들이였다. 나는 그 틈바구니에 끼여들어 기웃거렸다. 장사군들중에 반갑게도 조선말이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그쪽으로 다가갔다. 고양이를 요구하지 않냐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 그냥 그저 줄 터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머리를 저었다. - 고양이보다는 개를 좋아해요 요즘 사람들… - 왜요? 나는 떨떠름해지며 물었다. - “개는 주인을 섬기지만 고양이는 주인이 섬긴다”잖아요. 옛말에 - 그래도 한번 보세요. 노르웨이산 명품이라는데요 나는 고양이를 박스속에서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마디로 못박아버리고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장사에만 여념없다. 신통하게 새끼 노루를 닮은 애완견을 들고 지나는 사람들과 호객행위를 한다. 나는 연회석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처럼 한 구석에 서 버렸다. 일순 다음의 행동반경을 구할수 없어 했다. 륙교를 지나는 쿵쾅거리는 발자국소리가 새삼 요란하다. 그렇게 서있는 나의 팔뚝을 누군가 툭툭 쳤다. 열살 푼 되여보이는, 머리가 구리철사처럼 빳빳이 선 애 녀석이다. - 그 고양이, 내가 갖고픈데 히~ 녀석이 쭈볏거리면서도 또박또박 말한다. - 고양이 좋아해? - 예! 녀석이 머리를 까땍까땍한다. - 좋은 애로구나! 동물을 사랑하고     나는 그 무슨 큰 상을 시상하는 사람처럼 덕담을 란발하며, 트로피(奖杯)를 넘겨주듯 고양이를 애의 손에 냉큼 넘겨주었다. 고양이를 받아 든 녀석의 입이 귀밑에 걸렸다. 귀엽다는 듯 고양이 머리에다 마구 입방아를 찧었다. - 감사합니다! 녀석은 나를 향해 허리를 굽석해 보이고 나서 고양이를 안고 겅중겅중 뛰여갔다. 종이박스에 고양이를 담아 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빈 종이박스를 들고 나는 녀석을 눈바램했다. 녀석과 “비비안 리”는 재빨리 륙교아래로 사라졌다… 또 월요일이다. 월요일이면 나는 그녀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해 했다. 햇과일의 달콤한 과육을 씹듯 한 그 맛, 생생한 환희와 야생적인 즐거움을 잊을 수 없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잘려진 몇 컷의 필름처럼 버려졌기에 외려 너무나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때로 맨 몸에 나의 헐렁한 와이셔츠를 걸치고 쏘파우에서 열심히 다듬던 메니큐어를 바른 발톱으로 클로즈업(放大)되고, 때로 주방에서 영양가 높다는 쪽을 골라 나에게 기어이 권하던 브로콜리(西蘭花)로 클로즈업되고 때로 침대우에서 나의 갓 면도를 한 푸른 턱을 비비던 붉은 뺨으로 클로즈업된다. 그녀의 훈향도 난 기억하고 있다. 살갗을 근지럽히던 냄새, 몽환제를 품은 듯 그 동안 퇴화된 내 세포들을 하나하나 깨워놓던 냄새, 아침 이슬에 젖은 꽃처럼 화사하고 푸른 그녀, 그녀가 품고 있던 그 꽃은 이제 지고, 집안엔 이제 그 숨결이 없다. 어질러진 채로 가라앉아 있는 집안, 예전처럼 홀아비만이 볼썽사납게 남은 방에선 알싸한 독풀 냄새 같은 것 만이 난다. 그녀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 어려울 때면 TV를 켠다. 짐짓 분위기를 살리는 오락쇼 프로를 찾아본다. 볼륨을 높여놓고 듣는다. 보고 나면 곧 잊어질, 저질에 가까운 프로라도 보면서 시간을 잊고 자꾸만 헛헛해 지는 마음을 무마하려 한다… 높은 TV소리 사이를 비집고 초인종이 울렸다. 그간 홀로 지내면서 사람이 그리운 나에게 초인종소리는 마냥 반갑다. 달려가 문을 따던 나는 그만 눈 확을 키우고 말았다. 사내애 하나가 문 켠에 서있다. 분명 며칠 전 륙교에서 만났던 그 애, 머리칼이 구리철사처럼 빳빳한 그 애를 나는 대번에 알아볼수 있었다. 예기치 않은 애의 등장이 놀라웠고, 왜 나를 찾아 왔는지도 궁금했다. 사내애가 들고 온 종이박스 하나를 내 앞에 쑥 내민다. 이번에는 전자레인지 박스다. 순간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나는 직감으로 알아차릴수 있었다.  - 고양이를 돌려드리려고요. 아빠 엄마가 모두 출국하고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애라고 했다. 할머니가 만수받이로 애의 청구를 다 들어주는데 그 할머니마저 아직 일을 할만하다며 나이를 속이고 출국하게 되여 고양이를 키울 사람이 없다고 했다. - 그럼 너 어디서 사니? 저도 모르게 애의 신상이 걱정되여 문가에 선채 내가 물었다.     할머니가 가면 이모네가 맡기로 했단다. 이모네 집에 애 말고도 사촌 몇이 함께 얹혀 산다고 했다. 출국 붐에 한집 건너 한집씩 난장이 돼버린 요즘, 별 이상한 일도 아니였다. 애는 박스안에 손을 넣어 고양이 머리를 자꾸만 쓰다듬었다. 그러는 애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애는 지금 잠시는 떠나는 할머니보다 내놓아야 하는 고양이 때문에 더 서러운가 보다. 허리를 굽석해 보이고 나서 애가 몸을 돌렸다.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 듯 목각인형처럼 걸음이 어색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누르는 애에게 내가 몸을 내밀며 순간에 떠오른 의문을 물었다. - 근데 너 어떻게 우리 집을 알어? 우리 집 아래층인 8층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애,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본적 있다고 했다. - 고양이를 부탁해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힘과 함께 애가 소리치듯 말했다. 그러는 녀석의 소리는 물기에 젖어 있었다.    그 사이 “비비안 리”는 박스속에서 뛰쳐나와 천연덕스레 쏘파우에 올라가 있다. 녀석은 에메랄드 빛 눈으로 나를 지켜본다. 그 눈이 짓궂은 개구쟁이 같다.   4   오전나절이여서 그런지 공공뻐스에는 사람이 적었다. 하여서인지 그 녀자의 통화소리는 더욱 유표하게 들렸다. 내 앞자리에 앉은 녀자, 40대로 보이는 녀자의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린다. 전화벨소리는 핸드폰마다에서 흔히 들을수 있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곡이다. “오너라 오너라 아주 오나”… 한번 전화를 들면 수다가 넘친다. 타령조의 그 전화벨소리가 녀자에게 말문을 열도록 주문을 거는 것 같다. 벨소리 울리기 바쁘게 핸드폰을 열고 바보처럼 소리높여 말하는데 적어도 3개 역을 지나도록 녀자의 통화는 끝날줄 모른다. 그 소리의 홍수속에 나는 종이박스를 잔뜩 껴안고 무가내로 앉아있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새여나와 좌중의 눈길을 끌면 어쩌랴 싶었는데 녀자의 투명한 고음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 출국했던 애초에 안해에게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전화가 왔다. 전화는 번마다 안해쪽의 수신부담으로 걸려왔고 내 쪽에서 높은 전화료금을 부과하며 전화를 하지 말라고 안해는 당부했다. 바쁘다, 힘들다, 돌아가고 싶다, 미칠것 같다… 라고 안해는 울음 잔뜩 섞인 소리로 처음 해보는 서비스 업종의 어려움과 그곳 사람들의 동포에 대한 차별시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 냈다. 잦던 전화는 보름에 한번씩 한 달에 한번씩으로 뜸해 졌다. 통화내용도 괜찮다, 견딜만하다로 바뀌였다. 그러다 전화는 한 달에 한번도 아니고 명절때만 걸려왔다. 통화내용도 낡은 레코드 되 풀듯 그저 딸애에 대한 문안과 부탁뿐이였다. 어느 한번 안해와의 통화가 일곱 달이나 없었다는 생각에 후딱 놀라기 까지 했었다. 그날도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안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날따라 전화는 타이밍이 맞지 않게 울려 왔다. 나와 “비비안 리”가 한창 격정의 고조에 오르고 있는 시점이였다. - 받지마 그녀가 헐떡이며 나의 허리를 잔뜩 껴안았다. 하지만 거실 탁자에서 전화벨소리는 집요하게 울렸고 나는 오징어 빨판처럼 내 몸에 감긴 그녀의 손을 뜯어내고 침대에서 뛰여 일어나고 말았다. 왜 이렇게 늦게 받느냐? 잠들었냐? 또 술 많이 마시고 쓰러진 거나 아니냐?고 버릇처럼 묻는 안해의 물음에 나는 그저 응응 하고 웅얼거리며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거친 숨과 함께 나는 당황감과 안해에 대한 죄의식 같은 것들을 삭이고 있는 중이였다. 흡사 안해가 벌거벗은 나의 몸을 의식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져 활처럼 몸을 옹송그렸다. 열린 침실 문으로 “비비안 리”의 모난 시선이 나를 찔러왔다. 수화기를 든 채 갑자르고 있는 나를 침대쪽에서 그녀가 반라의 몸을 드러내고 이상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를 향해 한 쌍의 유두가 도발적으로 추켜져 있다.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일순 당황했으나 나는 수화기를 내려 놓지 못했다. 그녀가 뒤로 나의 벗은 몸을 껴안았다. 풍성한 가슴이 비누거품을 가득 머금은 목욕용 스펀지(海綿)처럼 나의 등을 문질렀다. 귀속에는 안해의 높은 소리가 가득 차고 등에는 그녀의 풍성한 몸이 가득 실린다. 어질머리가 인다. 나는 그녀를 제지할념 못했다. 실랑이질 하다 안해가 눈치를 챌가 봐서였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내 몸 구석구석을 훑는다. 그녀의 손놀림에 맞춰 나는 호흡을 고르고 몸을 비틀고 있다. 힘들게, 괴롭게. 핑크빛 매니큐어를 한 손톱이 나를 제동하는 것 같다. 그녀의 뜨거운 혀가 나의 귀등을 핥는다.  이어 그 혀는 도료를 잔뜩 머금은 한 자루의 붓처럼 나의 전신을 화선지로 삼고 훑기 시작한다. 턱선을 타고 목선을 타고 내려 딱딱해진 유두에 머물렀다가 배꼽에도 머물렀다가 아래배 쪽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한껏 긴장해진 “나”를 한입 베여 물었다. 그녀의 대담한 터치에 나의 입으로 헛바람소리가 새여 나갔다. 고문같던 통화가 끝났고 수화기를 놓음과 함께 나는 그녀를 와락 밀쳤다. - 장난하냐? 장난해? 그녀가 탁자에 머리를 쪼으며 넘어졌고 곁에서 고양이도 놀라 펄쩍 뛰였다. 이마를 감싸 쥐던 “비비안 리”가 몸을 후딱 일으켰고 재빨리 옷을 주어 입었다. 조금 전 까지 풀어헤쳤던 긴 머리는 보라색 구슬 핀 속에 단정히 묶여졌고 그녀의 표정도 금세 다른 사람으로 바뀌여져 있었다. 조금은 미안해져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 미안해 다치지나 않았어? 그녀가 나를 와락 밀쳤다.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나의 어깨를 강하게 밀쳐냈다. - 왜? 지 마누라 한테서 전화가 오니 금세 내가 부담스러워 졌어요? 현관에로 나서며 그녀가 소리소리 질렀다. 그의 눈에 확 붉은 기운이 몰려들어 있었다.  - 사실 나도 힘들어요. 힘들다구요. 어제 전화를 받았어요. 우리 그이가 일하다 다쳤대요. 힘들게 얻은 일자리서 짤릴가봐 다친 몸으로 그냥 일한다해요. 그런데 난 이게 뭐얘요! 그럼에도 이렇게 눅진눅진한 여자가 돼 있다는 것이 나 스스로도 더러워요! 그녀의 소리는 빨랐고 건조했다. 주르르 설음을 뱉어 놓고 나서 그녀는 문을 쾅 차고 나가 버렸다…  … 뻐스 속을 휘저으며 전화벨은 그냥 울렸고 녀자의 통화는 끝날 줄 모른다. “오너라 오너라 아주 오나” - 예 한국 수속하는 사람이 맞슴다. 40일내로 비자 나옴다. 예 꼭 나옴다. 백프로 나옴다 “오너라 오너라 아주 오나” - 수원남자임다, 전자회사 대리임다, 마흔여섯인가… 아, 마흔여덟. 키는 64 음… 여하튼 60은 넘꾸. 키가 좀 작고 나이가 좀 있긴 한데…  집 있고 승용차도 있담다. “오너라 오너라 아주 오나” - 예 한국 수속하는 사람임다. 예 이 광고 장기유효임다. 근심마쇼. 녀자의 소리는 감내이상으로 높았다. 파렬음이 섞인 거북살스런 소리다.  통화내용이 만천하에 공개되여도 녀자는 개의치 않는다.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뛰는 격으로 출국열에 들 뜬 사람들에게 출국수속을 해주고, 섭외혼인 중매를 해주고 떼돈을 챙기는 거간군, 요즘 세월에는 잘 나가는 신종의 직업이다. 나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고양이를 두고 내릴 기회를 호시탐탐 내리던 나는 그 고문 같은 소리를 피해 예기치 않던 다음 역에서 내리기로 했다. 좌우를 살폈다. 모든 사람의 눈길은 그 통화에 신명을 건 녀자에게 몰부어져 있다. 나처럼 이마살을 모은채… 차장이 정류소의 이름을 말하기 바쁘게 탈출하듯 뻐스에서 뛰여내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재우쳤다. 그러면서 입속말로 되뇌였다. 안녕! “비비안 리”! - 이보쇼! 문뜩 부름소리 하나가 곰바지런한 나의 발목을 사로잡았다. 나는 못들은 척 하고 걸음을 빨렸다.  - 이보쇼! 안경 끼고 쥐색 양복 입은 분! 파렬음이 나의 인상착의까지 정확하게 짚으며 울려 왔다. 나는 멈춰 설수 밖에 없었다. 뻐스속에서 독주라도 하듯 전화쇼를 펼치던 그녀였다. 들고 쫓아온 종이박스를 내민다. - 정신을 들고 다님까? 물건 들고 다녀야지 - 저… 이거 제 물건 아닌데… - 아니긴 뭐가 아임까? 젊은 나이에 치매라도 왔슴까? 내 분명 안고 오른걸 봤는데두…    볼멘소리를 툭 질러놓고는 박스를 내 품에 와락 떠민다. 그러면서 또 한마디 한다. - 뭐 안에 죽은 아기라도 들었슴까?  가만히 버리게… 묘하게 한번 웃더니 또 옆구리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꺼내든다. 수다를 쏟아내며 상가쪽으로 걸어간다. 투.두.둑. 느닷없이 비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올 들어 첫 비다. 비 줄기가 제법 굵어지기 시작하자 미처 우산을 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를 피해 뛰여 간다. 지하도로 뛰여들어가는 이들,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이들, 우체국으로, 꽃집으로 들어가는 이들… 첫 비라 비를 맞으면서도 즐거운 표정들이다. - 야옹! 천변(天變)을 알아챘는지 박스속에서 고양이가 운다. 양복을 벗어 박스를 덮었다. 굵은 비방울에 와이샤츠가 눅진하게 피부에 달라붙는다. 비방울이 안경알우로 주르르 흘러내린다. 첫 비가 내릴 즈음에 만났던 우리, 우리를 스쳐간 시간들, 손가락 사이로 마음 사이로 빠져나간 시간들이 부서져 내리는 것 같다. 첫 비가 내리는 변경도시의 번화가, 그곳에 종이박스 하나를 든 채 내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서 있다.   5 밤하늘에 달 하나가 덩그마니 떠 있다. 9층집 높이에서 달은 손을 뻗치면 잡기라도 할듯 가깝다 그리고 크다. 나는 달의 장력(張力)에 끌리듯 창가로 다가갔다. 창을 열어젖혔다. 작은 환기창이 아닌 옹근 전체의 창을 열어젖혔다. 추위를 떠나온 봄이였고 그래서 올 들어 처음으로 창을 크게 열어젖힐수 있었다. 그 크게 열린 창으로 나는 고양이를 내던졌다. 그리고는 덴겁히 창을 닫았다. 커튼을 가렸다. 불 밝히지 않은 거실에서는 오락쇼 프로의 웃음소리가 터져 오르고 있었다. 높이 틀어놓고 어둠속에서 들으려니 웃음소리도 왠지 불안한 음조로 변형되여 들리고 있었다. 거실 바닥에는 빈 술병이 연주를 마친 취주악기처럼 아가리를 크게 벌린 채 내 버려져 있다. 술병을 들어 귀가에 흔들어 보았다. 술이 없다. 슈퍼에 전화를 걸어 더 주문하려다 귀찮아져 그만두었다. 사실 오늘 마신 량도 만만치 않다. 마른 낙지 다리를 입에 넣고 허겁지겁 씹었다. 입아귀가 찢어져라 씹었다. 아래턱에서 힘이 빠졌지만 아귀아귀 그 무슨 불안처럼 씹고 씹었다. “비비안 리”도 마른 낙지를 좋아했다. 그녀 “비비안 리”, 그 고양이 “비비안 리”도. 그녀가 붉은 입술을 O형으로 만들며 낙지다리를 씹을 때면 나는 곧바로 이상한 충동을 느끼군 했다. 그래서 한참 먹고 있는 그녀를 침대에 쓰러뜨리기도 했다. 그리고는 둘이서 달아오른 몸을 엮고 문어처럼 흐느적거렸다. 그녀와 나는 침대에서 고양이는 그 아래에서 낙지의 향연을 벌리곤 했다. 어느 날 한낮에 “낙지의 향연”을 벌리고 있는데 출입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 오늘이 무슨 요일이던가? 그녀의 몸우에 엎딘 채 내가 물었다. - 화요일 - 오, 마이갓! 똥됐다! 그녀와 나는 월요일이면 우리집에서 만났다. 주말이면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던 딸애가 오는 날이기에 만날수 없고 또 홀아비 살림에 난장이 된 집안을 장모님이 때때로 집을 거두어 주려 오시기에, 그래서 한 주동안, 가장 바빠야 할 월요일이 우리에게는 만남의 날이였다. 웬일인지 월요일에 장모님이 왔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수치까지 계산해야 하는 내가 치졸스러워 보이겠지만 여하튼 우리에게는 월요일이 그 무슨 미사의 날같이 빠칠수 없는 날로 여겨졌고 이날이면 어김없이 만나서 육체의 향연을 즐기곤 했다. 미치도록 서로를 원했던 우리는 이날 위험 수위를 잊은 채 또 만났던 것이다. 우리는 둥지를 털린 개미처럼 헤매였다. 서두르며 침대를 수습하고 그녀를 옷장속에 숨기고 그녀의 신발을 컴퓨터 테이블 밑에 감추었다. 나의 예감대로 장모였다. 장모는 따로 소지한 우리 집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왔다. 하지만 장모는 겹겹이 잠긴 방범문을 여는데 매번 서툴렀다. 그 서투름이 우리에게 금쪽 같은 대피의 시간을 만들어준 것이다. - 엊저녁 편집부서 회식 있어서 술 좀 과했습니다. 늦잠 자느라고 장모가 따져 묻지 않았지만 나는 늦게 문을 연 사연에 주해를 달았다. 핑계에 신빙성을 가하느라 짐짓 하품까지 만들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하품이 신통치 않았다. 집안을 둘러보는 장모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나 스스로 보기에도 민망했다. 집을 거두기에 앞서 육체의 향연에만 급급했던 집안은 문자 그대로 난장이였다. 하지만 언제고 장모는 미주알고주알 까발리는 법이 없다. 다른 집 같으면 장모님의 입방아가 오죽하랴만 하지만 워낙 말수적은 장모는 그 그늘을 구태여 잔소리 같은 표현에 담아내려 하지 않았다. 화려한 경력은 없지만 퇴직후 가두에서 오래동안 주임직을 맡을 만큼 대바른 성품과 사리에 밝기로 정평이 난 장모는 아낙없이 홀로 지내고 있는 사위의 처경에 대해 누구보다 리해해 주었다. 때때로 찾아와 맛있는 찬거리도 가져다 주고 어지러워 진 방도 치워 주곤 했다. 장모는 또 예전처럼 아무 말도 없이 쓸고 닦고 씻고 만들고 하였고, 그 동안 나의 신경은 온통 옷장쪽에 쏠려 있었다. 옷장속에서 “형벌”아닌 형벌을 받고 있을 그녀가 미안했지만 거기까지 배려할 게제가 못 되였다. 장모가 걸레를 들고 옷장가까이로 갔을 불안한 시선을 연신 좌우로 날려보내고 있던 나는 기겁하며 장모의 손에서 걸레를 앗아 들었다. - 제가 좀 할게요. 방 닦는 것쯤은 저도 할수 있습니다. 낚아채기라도 하는듯 걸레를 앗아냈고 그러는 나를 장모가 의아쩍은 눈길로 쳐다 보았다.  - 앗취! 공교롭게도, 하필이면 이때 옷장속에서 재채기 소리가 울렸다. (오, 마이갓!) 나는 순간 얼음구덩이에 빠진듯 했다. 차고 매끄럽고 각진 당황함의 모서리리 어느 곳을 잡아야 할지 몰라 절절 매였다. 장모가 옷장쪽을 쳐다보았다. 그 잠깐 동안의 일별이 나에게는 영원인 것처럼 여겨져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였다. 장모가 입을 열었다. - 계절이 바뀌는 때이니 감기 조심하게나.  이전 같으면 옷장을 뒤져 꿍져둔 속내의 따위를 찾아냈을 장모가 다행히 오늘만은 옷장 문을 열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감이 극을 향해 치닫던 시간이였다. 고양이에게 따뜻한 국에 밥까지 말아 주고 나서야 장모는 몸을 일으켰다.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청결을 찾은 집을 휘둘러보았다. 장모의 주름이 더 깊어졌음을 나는 새삼 느꼈다. 주름사이로 미지근한 피로 같은 것이 느껴졌다. 떨꺽! 목에 고인 침을 소리나게 삼키고 나서 역시 아무 말도 없이 문을 나섰다. 나는 서둘러 옷장을 열어젖혔다. - 옹이에 마디라더니, 요긴한 대목에 재채기 하면 어떻게 해! 나 오늘 죽는 줄 알았어 나는 탕개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녀도 얼빠진 듯 침대모서리에 앉아버렸다. 무생물체 같은 얼굴로 표정 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요즘 들어 그녀의 무표정은 늘 무언가 참고 인내하고 있는 듯한 무거운 인상을 주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 인내의 대상이 바로 자신의 곁에 부적당하게 끼쳐있는 나라는 부조화였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감당하고 있는 부조화의 대상이 정말로 나였다면 우리들 사이에 비밀스러이 웅크리고 있는 것을 풀어야 될 것이라고 나는 단정을 내린 적이 있었다. 무심한 척하고 있었으나 그 눈빛 속에서 나는 쉽사리 불안을 읽어내고 말았다. 둘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그 분명한 불안이 나는 서글펐다. 나는 다가가 그녀를 껴안았다.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다친 짐승을 감싸고 어루만지듯이, 천. 천. 히. 그녀는 고양이처럼 내 가슴에 고개를 기대고 손길에 얌전하게 등을 내맡겼다. 그리고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울기 시작했다… …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낙지를 씹다 말고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집안 구석구석에 배였는 그녀의 소리와 냄새, 언제면 이 소리를 지워질수 있을가? 혹 돌아온 안해가 이 냄새 이 소리를 맡아내고 들어낼수 있지 않을가? 소리는 그냥 울렸고 환청을 의심하던 나의 입귀에서 낙지꼬리가 떨어져 나갔다. 소리는 출입문 쪽에서 울리고 있었다. 의식이 허공에 아연하게 떠서 기계적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다음순간, 나는 힘이 빠지기 시작하는 종아리를 접고 벽에 기대여 쪼그리고 앉아 버렸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솜털이 일어나는 듯한 소름이 온몸을 쓸고 지나갔다. 현실감을 붙잡기 위해 눈확을 키우며 다시 문밖을 바라보았다. 문가에 고양이가 도사리고 있었다. 방금 전 내가 9층에서 내던진 고양이가 눈망울을 크게 열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6 8촌 동생이 왔다. 낯가림이 심한 나는 친지들과의 교왕이 적은 편이였다. 그러니 8촌의 뻘수면 나에게는 남과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 8촌 동생은 남보다 달랐다. 얼굴에 두툼히 철판을 깔고 다가왔다. 형! 형! 하면서 외려 촌수가 밭은 4촌이나 6촌보다 더 자주 나타나곤 했다. - 나 본디 롱구선수 감인데… 돈 있는 집에서 났더라면 체육학교 가서 롱구했을 건데… 녀석이 늘 입에 달고있는 말이다. 키 큰 거 빼고는 장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녀석, 키가 커도 어중간히 큰거 아니다. 180이 넘는다. 녀석은 나에게서 괴물 같은 존재, 지금 버리려는 고양이 만치로 귀찮은 존재다. ...내가 던진 고양이가, 그것도 9층에서 내던진 고양이가 다시 돌아왔다. 그것은 어찌보면 한차례 기이한 체험이였다. 9층 높이에서 추락한 고양이가 아무 탈 없이 돌아오다니?! - 야옹! 어디가 말째인지 아니면 배가 고픈지 고양이는 자주 운다. 아주 작은 소리인데도 권태롭고 적막하기만 한 방의 정적 속에서 그것은 제법 큰 소리로 들렸다. 고양이 소리는 마치도 주술적인 힘을 지닌 북소리처럼 어둠 저편으로부터 갑자기 그리고 은밀하게 나를 덮쳐 온다. 그 소리 속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어떤 불길한 파괴의 냄새를 감지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안해와 내가 일껏 이루어온 것들을 밑바닥부터 송두리째 휘저어 놓고, 그리고 어쩌면 머잖아 그것들과 가차없이 결별해야만 하는 최악의 상태까지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는 위험스러운 사실을 예고하는 것 같게 들렸다. 때문에 전에는 자주 들어왔을 고양이 울음소리에 나의 불안과 초조함은 배가해 가기 시작했다. 고양이 울음소리 속에 컴퓨터의 검색창에 “고양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왜 아무렇지도 않는 것일까?”라고 쳐 넣고 답을 구해 보았다.     해답이 여러 개 나와 있었다. 엄지로 안경테를 추어올리며 허겁지겁 읽었다. “그 비밀은 귀 안과 눈 속에 있습니다. 고양이 귀 안에는 평형감각을 주관하는 반고리관이 있습니다. 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뛰여내리거나 떨어지면 자극을 받아 뇌로 반고리관의 평형상태를 전합니다. 눈 속의 수정체에도 자극이 더해져 자신의 머리위치가 뇌에 빠르게 전달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들에 의해 고양이는 재빠르게 머리의 위치를 바꾸어 몸도 방향을 바꾸어서 다리를 지면에 착지할수 있습니다. 고양이의 회전 락하와 착지를 가능케 하는 것은 유연한 등뼈와 다리의 골격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터운 발바닥의 쿠션, 게다가 겨드랑이 밑과 다리 부분의 막이 락하산 역할을 해 줍니다. 아무튼 고양이는 몸의 구조상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회전 락하로 한군데도 다치지 않고 착지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불이 났을 때 20m높이에서 뛰여내려도 상처를 입지 않은 고양이도 있다 합니다…” -  20메터 높이서 뛰여내려도 다치지 않는다? 이거 액션배우 뺨치게 생겼구만 느닷없이 밀려오는 망연자실함에 나는 실없는 소리를 되뇌였다… … 동생이, 8촌동생이 오는 날은 우리 집 수난의 날이다. 랭장고속 식품이 거덜난다던가, 아끼던 CD가 깨여진다던가, 일껏 골라 산 재미난 모양의 맥주병 따개가 잃어진다던가 오늘도 들어서기 바쁘게 녀석의 입에서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튀여나온다. - 헝님! 나 돈 한번 꿔주송! - 돈은 왜? 나는 천정 등에 닿을듯한 녀석의 머리를 위태롭게 바라보았다. - 나두 로무 나갈까 하우. 동생이 마음 한번 다잡고 열씨미 돈 벌어볼려 는데 한번 꿔주송! 울 가문에 헝님네 젤 가는 부자아니우! 이제 떼돈 벌면 리자도 다 쳐 드릴테니. 꿔주송! 나의 두뇌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녀석의 입막음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의 마음은 바빠지고 있었다. - 사실은… 그럴듯한 거짓말을 짜내려다 나는 엉뚱한 쪽으로 내 뱉고 말았다. - 장모님이 위독하셔. 큰 병으로 진단 나와서… - 뭐유? 그럼 암이란 말이우? 나는 차마 말 못하고 머리를 끄덕이는 시늉을 했다. “미안합니다. 이 천둥벌거숭이를 막으려고 내가 그만…” 나는 속으로 본의 아니게 불치병 환자로 치부된 장모님께 용서를 빌었다. 한편 요즘 친지친우간에 우애가 이렇게 까지 땅에 떨어졌나하는 자문이 스스로 들었다.  돈이 엄청 들 것 같다. 미안하다! 니가 어쩌다 청 드는데… 키가 컸지만 녀석의 머리통은 작았고 그만큼 지극히 단순했다. - 정 그렇다면야 별수 없지. 환자집에 돈 꾸러 왔으니 내가 무지한 놈이우. 엄청난 거짓말로 녀석의 진지한 청구를 밀막아 버리고나니 일순 녀석에게 미안했다. 다른 보상이라도 주고픈 생각이 일었다. 그러는 나의 눈에 발치에서 어른거리는 고양이가 보였다. - 정말 저 고양이 네가 가져라 - 어허, 왜 하필이문 고양이를 주시우? 줄라면 돈이나 꿔줄 것이지 - 너 고양이 고기도 먹을수 있다면서 말해놓고 스스로도 놀랐다. 왠지 오늘의 나는 잔인한 별종으로 둔갑해 버렸다. 사실 녀석에게 특기가 하나 있었다. 롱구쪽이 아니다. 녀석은 음식탐이 심했다. 그리고 괴이했다. 무어든 잘 먹어 주었다. 하늘에 나는 건 비행기 빼고, 땅우에 네발 달린 건 책상 빼고는 다 먹을수 있다는 녀석이다. 어느 한번, 밤참 먹으로 녀석과 함께 야 시장으로 나갔다가 녀석이 털이 까시시한 병아리의 형체가 그대로 들어잇는 곤계란을 구워먹는 것을 보고 진저리 치며 놀란적 있다. 그런 나를 보고 그때 녀석이 무용담을 펼쳤다. - 나 고양이 먹어 봤수. 쥐고기도 먹어 봤지. 고양이 고기 범고기와 맛이 꼭 같수. 개그맨 같은 허세로 말하는 품이 범의 고기까지 맛 본 듯한 양이다. - 거짓말 없기우. 나 정말 가져다 먹을거유. 녀석이 고양이를 추켜올리며 입을 쩌억 벌렸다. 대사를 하듯이 과장된 소리를 내였다. - 니가 내 밥이로구나 히히 벌건 혀바닥과 드러난 목젖, 마치 외국영화속 드라큐라(吸血鬼)를 보는 것 같다. 랭장고속 먹을 것을 결단내고서야 이튿날 떠나는 8촌 동생에게 나는 촌마을 학교에 전해주라고 아이들에게 맞을 책과 잡지들을 묶어 주었다. 그런데 녀석은 무겁다며 뿌리쳐버렸다. 대신 고양이만은 안고 갔다.     7 4월의 해맑은 태양이 머리 우에서 빛살을 흩뿌리고 있다. 푸르고 청정한 공기, 력동성과 온기가 물씬 풍기는 봄이 새삼 느껴진다. 길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우에서 햇살은 더욱 부풀어오르고 그 길을 내가 가고 있다. 손에는 종이박스를 든 채… 고양이는 9개의 목숨을 가졌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 것 같다. 고양이가 목숨이 매우 질긴 동물, 죽었다가도 되살아나는 영악한 동물이라던 옛사람들의 말 그른데 없다.  고양이가 돌아왔다. 녀석이 되돌린 것이다. 햇나물 팔러 시내 장터로 오는 마을 아낙에게 부탁해 우리 집에까지 되돌려 왔다. 뒤미처 전화로 녀석이 전하는 고양이를 돌린 리유는 간단했다. NBA 롱구 스타 요명이 먹지 말라고 했다나. 요명이 공익광고에서 야생동물을 먹지 말라고 호소했다는 것이다. - 요명이 누군데? 내 우상 아니우? 요명도 안 먹는다는데. 내가 어찌 먹수! 나 돈 있는 집서 났더면 롱구 할 사람인데… 나 이제부터 곤계란, 고양이 고기 이런거 안 먹수. 그때 싸스도 이래서 온거 아니우!  끓어오르는 속을 누르며 그러면 마을 아무 사람에게나 주고 말지 구태여 먼 길 떠난 장군에게 짐이 되게 예까지 돌려왔는가 묻자 명색이 작가분이 기르던 고양이인데 함부로 취급할수 없었다고 했다. 녀석! 잡아먹겠다며 덥석 안고 가던 때는 언제고. - 키만 컸지 롱구뽈도 만져 못 본 녀석이 맨날 롱구타령은… 짜식, 요명좋아하네. 짜증이 끓어올라 수화기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녀석이 말하던 그 광고가 저녁 프로 중간에 방송되고 있었다. 요명은 미국에 본부를 둔 유명 동물보호단체와 함께 동물보호 캠페인에 나선 것이였다. - 참, 너와 나는 참말로 악연이다. 악연 잠시의 려행에서 돌아오기라도 한듯 집안 구석구석을 어슬렁거리다 내 발목에 감겨 드는 고양이를 발로 치워버리며 내가 불쾌감을 내뱉었다. - 그렇다면 그녀와의 인연은? 어떤 인연이라 말해야 할가? 스스로 무심코 내뱉은 말에 나는 스스로도 자문을 구하지 못했다. … 포장도로를 벗어나 농로에 오르자 산개하는 푸른빛이 더 실감되였다. 인공의 소음 대신 점점 자연의 향기와 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생각 밖으로 시교에도 사람들의 발길은 무성했다. 어떤 이는 도보로, 어떤 이는 자전거로 산자락을 향한다. 등산객들은 아닌 것 같았다. 차림새도 등산복장이 아니고 평소의 입성, 저마다의 손에는 커다란 비닐물통들이 들려있다. 나이 지긋한 한 남정네와 물으니 나의 예측대로 산기슭에 약수터가 있다고 했다. - 헌데 그쪽에선 왜 물통 아니고 종이박스를? 물 받으러 가는 거 아닌가 봅니다. - 아. 네 그냥, 허허. 나는 마땅한 답변거리가 떠오르지 않아 멍청한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남들이 보면 의문스러울 법도 했다. 산길을 약수 뜨는 물통도 등산용 장비도 아니고 종이박스를 들고 가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론리적, 리성적 설명이 불가능했다. 사람 없는 쪽을 찾다 보니 어느 새 산중턱 소나무 숲에 까지 왔다. 해볕이 쨍쨍한 날이였지만 막상 숲에 들어서니 숲바람이 바람이 우수수 소리내며 내달리고 있다.     종이박스 뚜껑을 조금 열고 쟁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땅을 파려니 삽 같은 마땅한 쟁기가 없었다. 도시 사는 사람 집이고 더욱이 글 쓰는 사람 집이니 그럴법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국자였다. 목제자루가 자주 빠져 버리려던 국자, 그것이면 흙을 팔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자문과 자조가 들었지만 나는 이미 자신을 주체할길 없어 하고 있었댜. 고양이는 이미 내 생활 전체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제 고양이만 눈앞에서 사라지게 할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수 있을 것 같았다. 산속 어딘가에서 나로서는 이름 모를 새가 청아한 울음을 토한다. 그 괴이쩍게 들리는 투명한 고음속에서 나는 국자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완연한 봄임에도 땅은 채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겉흙을 치우기까지는 쉬워도 정작 깊게 파려니 힘이 들었다. 상자크기만큼 파면 되는데… 땅을 파면서 나는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를 떠올려 보았다. 벽에 가두어 놓은 고양이의 울음소리에서 죄의식을 느끼는 환상적이고 괴기스런 단편소설. 실제 서양에서는 고양이를 건물의 벽 속에 넣은 채 건축하면 악령에게서 건물을 지킬수 있고 또 쥐들이 범접하지 못한다는 미신이 있었다. 실제로 런던에서는 18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의 보수 공사 중에 고양이의 사체가 여럿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고양이는 오랜 이전으로부터 인간과 함께 해온 집짐승으로서 고대 애급에서는 고양이가 숭배의 대상이기까지 했다. 기르던 고양이를 잃거나 죽으면 가족이 눈썹을 잘라 죽음을 슬퍼했다는 풍속도 있다. 그러나 서양의 중세시대에 들어서면서 “고양이 수난시대”가 열렸다. 고양이를 이교도의 상징이자 사탄의 앞잡이로 연결해 마녀들이 기르는 사악한 동물로 취급했다. 마녀에 대한 공포와 혐오로 사람들은 고양이의 꼬리를 자르거나 귀를 잘랐고 모의재판을 거쳐 화형을 하거나 교수형을 하는 등 “고양이 학살 놀이”를 하기까지 했다. 이 풍조는 미국에까지 번져 15세기 말엽부터 18세기에 걸쳐 고양이는 심한 박해를 받았다고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던 그녀에게서 듣고 또 요즘들에 고양이에 대해 심각한 콤플렉스를 앓는 내가 인터넷에서 수집한 고양이에 대한 일화들이다. 어찌되여 나는 고양이학살에 광분했던 그 시대 사냥군처럼 돼 버린 것이다. - 어흠! 구덩이를 파느라 끙끙대고 있는 나를 향해 소리가 날아왔고 그 소리가 바로 등뒤에서 울려 나는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다. 솔숲에서 점퍼차림의 사내가 헛목청을 가다듬으며 나왔다. 바지춤을 추슬리며 다가오는걸 봐선 용변을 보다 나온 것 같다. - 지금 뭐 하는 겐가? 산속에서    귀밑머리에 희끗한 새치가 보였지만 사내의 눈매는 매웠고 목소리는 저력감 있었다. 나는 순간에 그 기세에 눌려버렸고 답변거리를 찾느라 낑낑댔다. 국자를 손에 든 채… 사내가 발로 종이박스를 건드렸다. 야옹! 고양이가 구원을 바라는 듯 울었고 발톱으로 박스를 박박 긁어댔다.  - 고양인가? 지금 고양이를 묻으려는 겐가? 반말로 사내가 물어왔고 나는 공채에 나선 신인배우처럼 예하고 공손하게  대답을 올렸다.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움츠러 들어 있었다. - 왜?     - 저… 집에 안 좋은 일 있어… 방, 방토를 좀 해볼려구… 더듬기까지 하며 겨우 변명거리를 찾아 냈다. 그럴듯한 변명거리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데 그 사람의 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 참 못 됐구먼 이사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그런 지랄춤 추는 겐가? 형법에 동물학대죄도 있다는 거 모르는 겐가? 97년에 수정한 형법에 동물학대죄가 규정 돼있다고. 형법 260조! 경하면 1년이하 유기도형 먹고 구류, 관제 먹을수도 있고, 벌금형도 있다고. 엄중하면 1년이상 5년까지 갈수 있다고! 버럭 호통 치는 그 량반앞에서 나는 문자 그대로 고양이 앞에선 쥐 모양이 되여 버렸다. 그래도 명색있는 신분인데 누구의 호통질과 삿대질 받는 건 처음이였다. - 그런데… 구박 받으면서도 나는 궁금증을 참을수 없어 의문점을 하나 내 들었다. - 어떻게 되여 법률지식에 그렇게 해박하신지… - 나 변호사 35년에 정년 퇴직한 사람이요 왜? 아, 자꾸만 처져 내리는 안경테를 검지로 추어올리며 나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러다 종이박스를 내밀었다. - 그럼 선생님께서 이 고양이를 가지시던가… 버럭 호통이 또 한번 울었다. - 이 사람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겐가? 어디서 갖고 왔으면 어디로 돌려가아! 누군가 손에 쥐여준 연극대본을 들고 전전긍긍하다가 엉겁결에 무대에 나가서는, 어설프게 연기를 하고 내려오는 배우처럼 나는 종이박스를 들고 향해 휘적휘적 산을 내리고 말았다.  종이박스를 그대로 내동댕이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나를 향해 고정시킨 시선이 있을 것 같았다. 뒤덜미가 어쩐지 서걱거렸다. 약수 뜨러 산을 오르고 내리는 모든 사람들마다 의심과 호기심을 가득 담은 초점을 내게 모으고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나를 타매할것만 같았다. 오늘 하루 마치 자신이 연극 무대우에 서 있는 느낌이다. 고양이 때문에 요즘 들어 나는 본의 아니게 코등에 분칠한 광대가 되여버렸다.     8   처치곤란의 고양이는 이제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정신은 온통 고양이에게 쏠려져 있다. 열번 못해주고 한번 잘해줘도 그 한번을 기억하는 개라면 열번 잘해주고 한번 못해줘도 그 한번을 기억하는 고양이라 한다. 고양이가 자기를 버리려 하고 지어 없애려는 나의 의도를 충분히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생각되였다. 고양이 발바닥에는 연한 육구(肉球)가 있어 소리를 내지 않고 걸을 수 있다. 컴퓨터를 치다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면 고양이가 어느새 뒤에와 옹송그리고 있다. 스멀스멀 상기되는 공포에 잠을 설치기가 일쑤다.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괴물이 머리맡에서 성큼성큼 걸어 다니는 것 같은 절박한 위기감이 나를 짓눌렀다. 가르랑. 가르랑. 고양이가 목구멍으로 내는 소리가 들린다. 뒤로 팔을 뻗으면 정삼각의 고양이 머리에 손가락이 스칠 것 같다. 얽히고 설킨 그 음산한 숨소리에 모골이 쭈뼛해지면서 진저리를 친다. 적막한 귀속에 가득 담긴 그 소리는 잠 속으로까지 밀려들어와 소용돌이치며 떠돌다가 식은땀으로 밀려나온다. 밤에 깨여 어둠을 더듬으며 화장실로 가다가 고양이에게 발이 걸채여 와들짝 놀란 적도 있다. 조도 낮은 화장실 조명 속에서 맹수처럼 두 개의 눈이 번쩍인다. 고양이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라서 불티가 탁탁 튈 것만 같다.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약 14년이며, 최고 31년의 기록도 있다고 한다. 고양이의 한 살은 사람으로 치면 15세와 맞먹는 나이라고 한다. 6개월의 고양이는 10살의 어린이와 비교가 되며 한 살된 고양이는 18세의 청년과 맞먹는 나이이고 두 살된 고양이는 24살에 해당된다고 한다. 두 살 이후에는 고양이도 조금씩 로화가 되여 1년마다 사람의 나이로 4년에 해당된다고 한다. 6년생인 “비비안 리”는 40세, 어쩌면 나와 나이가 꼭 같다. 녀석은 몸부림치는 이 시대 40대의 인간들과 꼭 같이 생존을 위해 발악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신화서점에 들리고 정류소로 가려고 거리를 가로지르는 지하도 층계를 내리다 그녀- 고양이의 임자를 보았다. 선글라스를 머리띠처럼 이마전에 올리고 있었다. 머리를 높이 틀어 올려 깨끗한 목덜미, 내가 무수히 입맞춤 했을 그 목덜미가 오늘따라 환장하게 눈부시다. 그녀의 익숙한 웃음이 지하도에 차고 넘쳤다.  그러나 다음순간 도수안경을 밀며 나의 코마루가 움찔했다. “비비안 리”는 다른 남자와 같이 있었다. 훤칠한 키의 준수한 남자, 건강미가 일신에 풍기는 남자와 팔을 겯고 있었다. 그 남자는 언젠가 “비비안 리”의 핸드폰속에 저장된 사진속에서 보았던 그 남자, 바로 그녀의 남편이였다. 아주 잠깐 나는 몸이 굳었다. 놀라움과 더불어 가벼운 질투 같은 것이 일었다. 어깨를 스치는 순간 나와 그녀의 눈이 시선이 섬광처럼 부딪혔다. 휴~ 그녀가 입김으로 앞머리를 불었다. 그리고 그녀는 황급히 나를 외면했다. 별안간 머리가 텅 비여 오는 듯한 느낌에 나는 멍청하게 그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치 무인지경을 가듯이 그렇게 나를 지나쳐 가버렸다. 한번이라도 돌아볼 줄 알았지만 그녀는 남편의 팔뚝에 매달린 채 그냥 그렇게 가버렸다. 층계를 오르는 그녀의 구두소리가 또각또각 내 심장에 와 박혔다. 그녀에게 들붙은 시선이 거둬지지 않아 나는 층계에 못박히고 말았다. 아직도 뭔가 묘연하고 암담하기만 한 응어리가 발걸음을 자꾸 옥죄였고 목구멍으로 무언가가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아 나는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귀볼을 간지럽히며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말들이 아직 귀바퀴를 맴돌고 있는데 우리는 이미 서로를 떠나 버렸다. 그와 몸을 섞고 그의 몸을 어루만지며 열락에 들뜬 시간들이 한낱 춘몽이였다는 자각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했다. 부드러운 혀로 그의 몸뚱이의 세세한 부분까지 핥으면서 그는 내 것이라는 충만감에 전률하곤 하지 않았던가. 사귀여 온 동안 내내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환상에 뜨겁게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그것을 정리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지하통로에서 어깨를 스쳤지만 그 멀지 않은 듯 먼 거리의 의미를 나는 다시 한 번 고통스럽게 확인했다. 만나서는 마치 자신을 소진시키듯 살을 섞고, 푸슬푸슬하게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만 우리였다. 응집된 환상이 깨여진 뒤면 인간들은 자아를 찾아 뿔뿔이 흩어져 간다. 그 깨여진 환상의 조각에는 현실, 우리들 각자의 새로운 시작이라는게 던져져 있을 뿐이였다. 무엇 때문인지 스스로도 분간키 어려운 온갖 감정들이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엉켜져서 가슴 한 귀퉁이가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져 내리는 듯한 느낌에 나는 손마디를 뚝뚝 꺾었다. 절교한지 한달 만에 보는 그녀, 기묘하고 쓸쓸하기만 한 재회였다.     … 알아듣기 어려운 경제론단 프로를 켜놓은 채 나는 TV앞에 멍하니 앉아 상념에 빠져 있다. 그런 나의 무릎으로 고양이가 스르륵 기여 올랐다. 천연덕스럽게 내 품으로 기여드는 고양이를 보는 순간, 불쑥 혐오와 허탈감이 뒤엉켰다.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짐승 한 마리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키는 것을 나는 느꼈다.    고양이의 몸에 손을 얹었다. 요즘 나 못지 않게 시련을 겪고있는 녀석은 살이 몹시 빠져 있다. 갈비뼈가 만져진다. 그 갈비뼈의 개수를 세는 듯 하다가 나의 두 손이 고양이의 목을 잡아 눌렀다. 나의 내면 깊숙이 웅크리고 있던 것이 투두둑 터져 나왔다. 나는 몹시 곤혹스러웠고 속에서는 알 수 없는 반란이 일고 있었다. 미쳤어, 내가 미쳤어! 자신에게 채찍을 내리치듯 나무라면서도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고양이의 투덕거림이 손으로 전해져온다. 나는 이 순간 쾌감을 느낀다. 녀석이 움직임이 힘차다.  필사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비비안 리”의 몸이 터질 듯 팽팽하다. 둥근 갈비뼈 밑에서 툭, 툭, 툭, 진동이 느껴진다. 유리섬유처럼 털이 뻣뻣해 진다. 경련이 시작된다. 필사적으로 숨을 들이쉬려는 고양이의 턱이 벌어진다. 눈이 돌아간다. 네 개의 다리가 나무 막대처럼 꼿꼿해진다. 경련과 고통스러운 호흡이 번갈아 이어진다. 문득 “비비안 리”가 숨을 크게 들이쉰다 불그스름한 거품이 “비비안 리”의 코구멍과 이빨 틈으로 흘러내린다. - 힘드냐? 나도 힘들다… 그러니 차라리 죽어, 빨리 죽어!    나는 나직하게 넋두리하듯이 하며 고양이와 함께 몸부림쳤다. 이때 출입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내가 흠칫 하는 사이 죽은 줄로 알았던 고양이가 최후의 발악으로 몸을 솟구며 내 손에서 벗어났다. 녀석은 고통에서인지 공포에서인지 목구멍으로 그르렁대는 소리를 내며 주방쪽으로 사라졌다.     장모였다. 여느 때와 같이 짠지 등속을 가져다 주고 어질러 놓은 집을 거두어 주려 온 것이다. - 집에 있었구만 힘들게 문을 따고 들어온 장모가 거실 복판에 서있는 나를 보고 놀란 기색이였다. - 그런데 자네 어디 아프기라도 하남? 얼굴색이 왜 그래? 장모의 이상한 눈초리가 나를 찔러온다. 분명 붉게 상기되였을 내 얼굴을 상상하며 구차한 변명을 둘러댔다. - 아, 운동 좀 하느라고요 - 밖에 나가 소풍이라도 좀 허지 날씨도 따뜻한데. 뭐니뭐니 해도 건강이 첫째일세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며 장모는 집안 구석구석을 치우기 시작했다. 이마에 흠씬 배인 땀을 씻으며 나는 고양이의 종적을 살폈다. 손등이 얼얼해 나서 그제야 살펴보니 붉은 줄 네 개가 선명히 그어졌고 그 줄을 따라 살갗이 보풀처럼 일어나 있다. 분명 고양이 발톱에 할퀸 것이다. 베란다에서 잘 거두지 않아 희뜩희뜩 말라 가는 화초에 물을 뿌려 주시던 장모가 문뜩 나를 불렀다.  - 사위, 나 좀 보세 아마 아끼는 화분을 잘 거두지 않아 화가 나신 모양이다. 물 조로로 꽃에 물을 주고 늘어진 잎 파리를 걸레로 닦아주며 장모는 입을 열었다. - 나 이 말 할가 말가 고민이 많았네만… 한 번만 물읍세     장모가 머리를 돌렸다. 그런 장모의 얼굴은 꼿꼿하게 들려 있었다. - 그 날… 옷 장속에 숨어있던 사람은 누군가? 나는 찬물이라도 뒤집어 쓴 듯 몸을 흠칫 떨었다. 장모가 오랫동안 뒤집어 썼던 나의 비밀의 한 자락을 잡아채어 매몰차게 벗겨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부자리 속에서 기어코 우리의 수치스런 알몸은 드러나 버린 것이였다.     장모는 구태여 나의 답변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다시 조로를 집어 들었다. 구멍이 좀 막혔던지 물 줄기가 간신히 새 나왔다. 장모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 처자가 좀 잘 살아보겠다고 외국가서 애면글면 손톱 벗겨지게 일하는데 그게, 그게 사람 된 도린가? 자넨 책 읽은 사람이니 이런 리치는 나보다 더 잘 알겠소마는 내 굳이 한 마디만 해야겄네. 이 한마디도 못 하다간 내 속이 뒤집혀서 못 살 것 같아 그러네. 장모의 소리는 메마른 저수지처럼 갈라져 있었다. 화분 잎 파리를 닦는 그의 손이 눈에 띄이게 떨리고 있었다. - 물론 홀아비 처지로 한 두해도 아니고 7년 8년 지내온 사위 처지도 리해 할만하이. 아직 젊은 나이에 참고 견디려니 오죽하겄나? 허지만 자네 같은 처지가 어디 한두 집인가? 그렇다고 집집마다 자네처럼 처사한다면 요즘 같은 세상 성한 집이 남아 있을란가 모르겄네. 장모의 떨리는 목소리는 채찍이 되여 나를 후려쳤다. 그 소리는 고요하면서 강렬하게 고동치며 내 몸을 장악해나갔다. 극심한 부끄러움과 죄의식이 나의 온 몸을 강타했다. 살갗 깊숙이 박히는 장모의 시선을 받아내며 나는 뒤미처 장모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 애 어미한테는 알리지 않겠네. 남들처럼 돈 벌어 와 갔고는 오히려 갈라지고 부서지고 하는 꼴 난 볼수가 없네. 다음 달이면 애 어미가 돌아오겠는데 이제 좀 자제해 주게나. 자네가 누군가. 책 쓰는 사람 아닌가. 내 딸 뿐 아니라 나도 자네가 맘에 들었네. 자넨 이 집안의 자랑이자 희망이기도 허지. 이 희망을 이 집안을 하루밤 정분 때문에 그렇게 쉽게 부서뜰릴겐가. 왜 그러나 이 사람아~ 장모의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 들었다. 말을 잇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애증만을 꺼억 거릴 뿐이였다. 남향 창으로 미여지게 들어오는 해빛에 장모의 얼굴에는 굴곡마다 진한 그림자가 생겨나 있었다. 나는 장모의 얼굴에 깊숙하게 깃든 주름과 그 주름에 앙금진 음울한 그늘을 보았다. 그것은 예의 피곤함이였다. 형언하기 어려운 짙은 피곤함이였다. 금방이라도 후두둑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이 지쳐 있는 장모의 지친 눈빛이 나의 가슴을 후벼냈다. 그 눈길을 보노라니 마치 커다란 엿 한 덩이를 목구멍으로 겨우 삼키고 있는 듯한 기분이였다. 이윽고 한숨 같은 심호흡으로 머리속을 정돈하고 나서 장모가 말을 이었다. - 난 자넬 믿네. 신분있는 사람이니만큼 우리가 믿는 사람인 만큼 조신있게 처사할수 있으리라 믿네. 장모의 말에서는 여러 가지 느낌이 묻어 났다. 그 참담한 진정을 나는 숙연한 마음으로 들었다. 그 말들이 풍겨내는 체념과 초월의 냄새를 나는 맡을수 있었다. 마침내 나는 고개를 깊숙이 떨어뜨리고 말았다. - 죄송합니다!   9 고향은 번개를 맞은 괴사목(愧死木)을 방불케 했다. 학교는 페교되고 비운 채 떠나버린 집들은 이영이 곰삭아 주저앉고 있었다. 봄이라지만 전간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젊은 층이 죄다 도시로 해외로 나가버려 로인네 몇몇이 남았으니 그럴법도 했다. 그럴수 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던 나는 참담한 기분으로 나를 낳고 키워 주었던, 이제는 살풍경으로 남은 그 곳을 점도록 지켜 보았다. 팔 목 시큰하게 들고 온 종이박스를 내려놓을 것도 잊은 채…  요사이 편집부에 허리케인(龍券風)이 몰아쳤다. 그것은 우리로 말하면 7시 황금뉴스 시간에도 톱뉴스로 나올만한 참말로 특대뉴스였다. 수필편집의 로친네가 귀국했다. 로씨야로 옷장사를 나갔다 4년만에 돌아왔는데 그가 새삼스럽게 우리 편집부를 찾아 왔다. 그런 인상을 가져서 였던지 로씨야 녀인들처럼 풍성한 몸매를 한 그녀는 편집부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남편, 수필편집의 얼굴에 책상우에 놓여진 두툼한 사전을 집어 던졌다. 카랑카랑한 악청이 사무실을 강타했다. - 빵 부스러기 같은 령감태기, 기껏 공대해 주었더니 바람을 펴!!! 유독 다른 녀자에게 한 눈 파는 일 없이 곧은 직(直)자로 살아오려니 여겼던 ,그래서 편집부내에서 놀림 과녁으로 되였던 그에게 밖에 둔 녀자가 있었다고 했다. 사진을 찍어 숨겨두었는데 어찌구려 그 사진이 귀국한 호랑말코 같은 로친에게 발견된 것이다. 세대차이는 못 말릴 듯 했다. 디카(디지털 카메라) 세월에 하필이면 필카(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뽑아 간직해 두었으니 걸릴 법도 했다.  - 황홀한 바람 피워 볼려면 “까게베”를 배워야 돼, 눈치가 빠르고 몸이 빨라야지. 그보다 중요한건 증거나 단서를 남기지 말아야는 거야. 간첩 같은 스릴 그 스릴을 즐기는 거라고   수필편집의 로친네가 울고불고하며 한바탕 벌린 공소의 굿 장단을 파하고 돌아간 뒤 스산한 분위기를 무마하련 듯 부장이 우스개를 피웠다. 하지만 웃음이 들리지 않았다. 모두는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모습이였다. 누구보다 나의 뇌리를 선점한 건 나의 장모님의 얼굴이였다. 무너져 내릴 것 같던 장모의 눈빛, 그 락망과 희망이 교차한 눈길을 며칠 내내 잊을수 없었다. 곁의 눈을 살피며 나는 슬그머니 핸드폰을 열었다. 핸드폰 속에 저장된 그녀의 사진이 문득 생각 났던 것이다. 핸드폰 속 비밀한 파일속에 그녀, “비비안 리”가 있었다. 그녀의 눈매를 닮은 고양이를 안고 있다. 사진 속에 갇힌 시간들이 보인다. 그녀의 둘레를 꽉 채우고 있는 비밀한 나날들. 그녀 곁에 나도 보인다. 이제 보니 왜서였던지 우리의 얼굴들은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표정을 하고 있다. 남몰래 어울려 있음에 대한 비밀함, 혹은 힘든 삶의 도피에서 맛본 향수의 모습이 라 할까. 이제 그 모습을 지워야 한다. 지워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힘겨운 리별. 이 리별이 힘들었던 건, 우리에게 무수한 만남들이 있지만 어떤 만남은 꼭 헤여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미리 생각하지 못한 충동이 자초한 것이 기때문이리라. 한숨 한번 짓고 나서 나는 단연히 삭제버튼을 눌렀다… 중세기 고양이 학살에 광분했던 그들처럼 고양이와의 전쟁을 벌리던 나는 뒤늦게 흩어진 리성을 수습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고양이를 그렇듯 미워하고 버리려하고 지어 죽이기까지 하려 했던 것이 단지 애완동물에 대한 무감각한 정서따위가 아니라 그녀와 남겼던 즉물적인 사랑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하지만 지우기 어려운데서 다른 곳에 투영된 변형된 아집임을 뒤늦게 깨우칠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미안쩍은 생각이 드는 고양이를 버리되 정중하게 내가 나서 자란 고향에 버리기로 했다. 겸사겸사 오랫동안 발길이 미치지 못했던 고향에도 가볼 겸. 인품 순후한 그곳이면 누군가 나의 고양이를 거두어주고 잘 키워 줄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사람처럼 동구밖에서 나는 박스를 열어젖혔다. 갑갑했던 고양이가 용수철처럼 튀여나왔다. 만곡된 허리를 펴며 꽃잎 같은 입술을 열며 기지개를 쭈욱 켰다. 나는 고양이의 보법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떴다. 다행히도 따라오지 않았다. 해바라기를 하는 듯 고양이는 그 자리에 웅크리고 꼼짝하지 않는다. 탈출하는 사람처럼 먼지를 일구며 걸음을 재촉하다가 나는 뒤를 돌아다 보았다. 보다 강렬해진 봄 해살이 쏟아지고 그 빛 속에서 고양이의 모습은 신기루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뻐스에서 나는 길게 별렀던 살인을 마친 킬러처럼 단잠에 곯아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먼지투성이의 몸을 샤워기 밑에 들이 밀었다. 따뜻한 물줄기에 그 기간 온몸 골골샅샅에 밴 채 응어리로 남아돌던 피곤이 싹 풀리는 듯 했다. 홀가분했다. 묵은 각질을 벗겨낸 것 같은 후련한 심정이였다. 겨우겨우 촌극을 벌여 나는 드디여 고양이에서 벗어났다. 그 동안 자신의 보따리를 버려야 한다는 강박증에 나는 줄곧 시달린 듯 했다. 나에게 씌워진 모든 감정과 책무, 그 동안의 삶을 속박했던 육신의 욕망, 그리고 그 주기에서조차 벗어난 기분이였다. 무성했지만 귀찮아 내버려두었던 수염도 깎았다. 뺨과 턱에 비누를 허옇게, 신명나게 칠하고 면도칼을 들었다. - 옛날 애급사람들은 고양이를 잃으면 한쪽 눈썹을 밀어 기념했대요    어데선가 내레이션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고소를 머금으며 나는 면도를 시작했다. - 오, 마이갓!    면도를 끝내고 무우 밑둥처럼 매끈하고 수염 터기가 파란 턱을 기분 좋게 만지던 나의 입으로 헛비명이 새여 나갔다. 어느결에 왜서 그랬던지 나의 왼쪽 눈썹의 절반이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   안해가 왔다. 드디여 안해가 돌아왔다. 공항터미널에서 나를 보고 처음 한 안해의 말은 “당신 눈썹이 왜 그래요?” 였다. 과거는 흔적을 남긴다. 집에는 아직도 모서리마다 고양이에게 긁힌 자국이 어딘가 있고, 내 얼굴에도 그 흔적은 남아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안해를 껴안았다. 오래도록 그리고 꼭 껴안아 주었다. 안해는 눈에 띄이게 얼굴이 갸름해져 있었다. 그는 이 몇년동안 마치 다른 시간의 경계를 지나 이 곳으로 온 것처럼, 여리고 화사하던 얼굴빛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눈빛은 열에 들뜬 것처럼 깊고 강했다. 가늘던 목소리도 명료하고 무겁게 변해 있었다. 그날 저녁, 참말로 오랜만에 안해와 정을 나누었다. 첫사랑 그때처럼 다소 민망하고 부끄러워하면서 하지만 격렬하게 서로를 가졌다. 오래동안 덮었던 솜이불 같은 친근한 느낌이 몸을, 마음을 감쌌다. 버릇처럼 내가 커피를 풀었다. “연와” 커피 한 잔을 받쳐주는데 안해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록차를 마신다고 했다. 커피를 버리고 다시 록차를 풀었다. 뜨거운 록차를 마시며 우리는 7년이라는 세월의 시차(視差)에 담겨진 많은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귀국 후의 그 며칠은 친척친지들과의 해후상봉의 술자리가 발에 발을 이었다. 그리고 안해는 오래전에 원했던 것을 하나둘 현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기물도 사들이고 가물도 바꾸었다. 이제 옛말하며 잘 살아봅시다. 흥분한 안해의 얼굴과 몸짓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느 날, 딸애와 함께 쇼핑을 마치고 돌아온 안해의 눈이 여느 때보다 빛나며 얼굴에 감추지 못하는 웃음이 묻어 났다. 커다란 쇼핑백에서 무언가 끄집어 냈다. 안해가 사온 물건에 궁금증을 가지며 눈길이 주던 나는 급기야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입에서 소용돌이처럼 맴도는 비명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 오, 마이갓! 그것은 한 마리의 고양이였다. - 애가 하도 졸라서 사줬어요. 그 동안 집에서 고양이 기르다 잃어버렸다면서요. 짙은 에메랄드 색 눈빛을 하고 견갑부(肩甲部)에 감색의 털이 조금 섞인 나비 모양의 무늬가 있고 목과 가슴의 털이 풍성한 고양이는 호랑이의 그것 같이 날카로운 렬육치(裂肉齒)를 드러내며 나를 바라고 야옹!하고 울었다.   "도라지" 2008년 3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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