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http://www.zoglo.net/blog/jinzhehu 블로그홈 | 로그인

※ 댓글

<< 4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    

방문자

홈 > 나의 소설

전체 [ 7 ]

7    [단편] 검은빛 댓글:  조회:881  추천:0  2019-07-09
검은빛 김철호   1. 외가마을에 이상한 녀인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녀를 ‘영자아지미’라고 불렀다. 영자아지미는 철길 너머(사람들은 철길 너머 마을을 ‘철북’이라 불렀고 이쪽을 ‘철남’이라 불렀다.) 강이네 륙간초가집 외양간을 수리해 온돌을 놓은 곁칸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방학이 되여 놀러 갈 때마다 우린 그녀를 가끔 만나군 했는데 외할머니가 ‘영자아지미’라고 부르라 해서 그냥 그렇게 불렀다.  영자아지미는 어쩌다 외할머니네 집으로 놀러 오기도 했다. 인기척도 없이 문을 밀고 들어와서는 아래목에 꼬부리고 누워있는 외할머니 곁에 우두커니 앉아있다가는 들어올 때처럼 그렇게 살그머니 일어나서 가버리는 것이 고작이였다. 그래서 우린 그녀가 언제 들어왔는지 또 언제 돌아갔는지 모를 때도 있었다. 외할머니도 그녀가 들어올 때에도 그랬거니와 나갈 때에도 별 반응이 없었다. 오면 오고 가면 가고 그저 맘대로 하라는 눈치였다.  그녀의 거동을 조금 더 자세하게 묘사하면 이렇다.  그녀가 집(외할머니네 집)에 들어설 때면 우에서 말했듯이 소리없이 문이 열린다. 빠끔 열린 문으로 먼저 커다란 검은 수건뭉치가 쑤욱 들어온다. 검은 수건뭉치는 신발 벗는 곳을 살핀다. 신발들 속에 외할머니 신발이 있기만 하면(외할머니 신발이 없으면 검은 수건뭉치는 도로 밖으로 나가버리고 문이 소리없이 닫긴다.) 어깨가 들어오고 한손이 따라 들어온다. 거의 동시에 한쪽 발이 들어오는데 그 손과 발은 마치 뒤따라 들어오는 다른 손과 발을 이끌어들이는듯해보인다. 두 손, 두 발이 다 들어서면 꺼부정한 작은 몸집이 끌려들어와 더듬더듬 기여서 외할머니 곁에 간다. 신발은 너무 컸기에 벗을 필요 없이 저절로 벗겨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언제나 검은색의 커다란 헝겊수건(할머니는 그 수건을 ‘숄’이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무슬람 녀성들이 머리를 가리기 위해 쓰는 ‘히잡’이라고 부르는 머리수건 같았다.)을 푹 쓰고 있었는데 얼굴 전체를 수건으로 완전히 가리고 있어 얼굴은 말 그대로 수건뭉치였다. 말할 때면 수건이 겹쳐진 곳을 빠끔 열고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우린 그 말을 통 알아듣지 못했다. 외할머니만은 그래도 항상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중얼거림이 끝나면 수건은 감옥문처럼 다시 철커덕 닫혀버렸다. 수건이 겹쳐진 곳을 좀 트인 것은 말이 새나오라고 그러는 것이지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거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것은 전혀 아닌 것 같았다. 때문에 수건 속에 감춰진 입, 코, 눈, 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우린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가냘픈 목은 그 무거운 머리통을 지탱해줄 힘을 잃은 모양이였다. 어깨 중간에 겨우겨우 붙어있는 머리통은 늘 바닥을 향해 꺾여있었다.  그래서 우린 그녀가 없을 때에는 그녀가 곰보여서 그런다는 둥,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있어서 그런다는 둥, 코가 삐뚤어졌거나 외눈박이거나 아니면 귀가 떨어져서 그런다는 둥 하면서 킬킬거렸다. 그럴 때마다 외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면 못쓴다고 핀잔주었다. 외할머니의 두둔이래야 기껏 ‘불쌍한 녀자’라는 한마디 뿐이였다.  우린 그 ‘불쌍한 녀자’가 말하는 것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몇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인상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란리’가 일어나기 전까지도 우린 별의별 추측을 다해보았지만 끝끝내 그녀의 얼굴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축 처져보이는 치마저고리는 몹시 낡은 것이였는데 몇군데 기운 자리가 있었다. 흰바탕이였을 치마저고리는 꺼무룩한 색갈로 변해있었고 신고 있는 것은 남자용 검은 고무신이였다. 그녀는 커다란 검정고무신을 질질 끌고 다녔다. 더욱 이상한 것은 빛에 대한 그녀의 강력한 민감성이였다. 그녀는 그 어떤 빛에도 기겁을 했다. 빛은 그녀에게 공포의 대상인 것이 분명했던 것 같다. 동생 태식이가 금방 소학교 1학년 두번째 학기 공부를 마친 뒤였으니 아마 1960년 아니면 1961년 쯤일 것이다. 여름방학이였다. 친척이 없었던 우리는 방학이 되자 부르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가 살던 시내에서 8리 남짓 떨어져있는 절골의 외가집으로 뛰여갔다.  그러나 신나던 방학, 동년의 꿈을 익혀주던 그 해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우린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여름방학에 발단이 된 일이 겨울방학에 터져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만들었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리고 그 후 다시는 외가마을로 놀러 가지 않았다. 아니 놀러 가지 못했다.    2. 그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였다. 그 우연 때문에 우리는 그녀가 더 신비해보였고 우스워보였고 멍청해보였다. 그 일이 있은 뒤 우리는 그녀가 나타나기만 하면 그녀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별 해괴한 짓거리를 다 부렸고 결국엔 그녀를 기로에로 밀어넣고야 말았다.  그 때 민가에서 사용하던 전등스위치는 거의 다 끈으로 당겨 켰다 껐다 하는 것이였다. 외가집 정주와 웃방 문틀 모서리에 끈을 드리운 감자알 만큼한 까만 스위치가 달려있었다. 끈은 벽을 따라 구들 언저리까지 내려와있었다. 잠잘 때 손으로 그것을 잡아당기면 전등이 꺼지게 되는데 쓰기가 아주 편리했다. 잡아당기면 ‘딸깍!’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아주 재밌고 귀여웠다. 그 소리와 함께 방안이 환해지고 그 소리와 함께 방안이 캄캄해진다. 그래서 장난꾸러기였던 태식이는 쩍하면 그 끈을 ‘딸깍! 딸깍!’ 잡아당기군 했다. 태식이의 그 같은 소행을 미리 대처하기 위해 외할아버지는 낮이면 스위치 끈을 아예 옷걸이로 박아놓은 못에 높이 걸어놓군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의 첫 사건이 생기게 된 바로 그 날이였다.  우리 형제는 밖에 나가 실컷 놀다가 해거름 때가 되여 돌아왔다.  영자아지미가 와있었다. 외할머니는 아래목에 꼬부리고 누워있었다. 솥에서 뭔가 끓고 있었다.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강냉이가 솥에서 한창 삶기고 있었던 것이다.   태식이와 나는 맥없이 벽에 기대여 앉아 강냉이 익기만을 고대 기다렸다. 묵직한 엉뎅이가 벽에 의탁되여있는 몸뚱이를 아래로 자꾸 잡아당겼다.  일은 그 스위치끈 때문이였다. 무슨 영문인지 그 날 스위치끈이 못에 걸려있지 않고 벽에 축 드리워있었다. 적중히 말하면 스위치끈이 태식이의 등에 눌려있는 상태가 되여있었다. 태식이와 나는 가지런히 벽에 기대여 앉아있었다. 태식이가 맥없이 벽에 기대일수록 엉뎅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있는 몸뚱이는 자꾸 아래로 흘러 등뒤에 눌리우고 있는 스위치끈을 고도로 팽팽해지게 만들고 있었다.  밖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졌고 영자아지미는 돌아가려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기미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영자아지미를 할머니가 만류하고 있었다. 아마 강냉이가 익으면 먹고 가라고 그러는 것 같았다. 영자아지미는 기어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얼굴을 푹 가리운 수건을 조금 드티면서 할머니와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 때였다. 갑자기 장난기가 도진 나는 발로 태식이를 툭 건드려버렸다. 아래로 흘러버리려고 엉뎅이에 몰려있던 태식이의 몸이 나의 발길질에 쭉 미끄러져 구들 우에 벌렁 쓰러졌다. 결과적으로 벽에 붙어있던 태식의 잔등이 스위치끈을 잡아당기는 역할을 해주었다.  딸깍!  야무진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어둑어둑하던 집안이 대뜸 환해졌다.  갑자기 새된 비명소리가 집안의 공기를 마구 찢었다. 그 비명은 괴물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고 멱 따이는 짐승의 발악소리 같기도 했다.  나는 머리가 곤두서는듯한 두려움을 느꼈다. 태식이는 어느새 일어났는지 구들 중간에 장대처럼 서서 가느다란 다리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비명의 주인은 영자아지미였다. 뒹굴듯이 구들에 쓰러지면서 푹 눌러쓰고 있는 수건 우에다 저고리까지 마구 뒤집어쓴다.  너무도 순간적이고 돌발적이였다.  -불(전등)을 죽여라! 불을 죽여라!  외할머니가 소리쳤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있었던 우리 형제는 마구 뒤척이면서 욱욱거리는 영자아지미를 놀란 눈길로 바라볼 뿐이였다. 그 모습에 처음에는 두려웠고 다음에는 당황했다. 그러나 몇초 사이에 우리의 감정은 대뜸 변해버렸다. 영자아지미가 하는 꼬락서니가 너무 재미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영자아지미가 왜 저런다니 하는 의구심으로 똘똘 뭉친 눈길을 주고 받으면서 그 해괴한 장면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맥없이 아래목에 꼬부리고 누워 까딱하기를 싫어하던 외할머니가 잽싸게 일어나더니 한걸음에 달려와 스위치끈을 잡아당겼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집안은 대뜸 캄캄해져버렸고 신비하게도 구들 우에서 욱욱거리며 죽는 시늉을 하던 영자아지미가 허리를 쭉 펴면서 아무 일 없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루에 내려섰다. 손더듬이로 신발을 찾아 신은 영자아지미는 문을 열고 구렁이처럼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3. 며칠 후였다. 우리 형제는 일밭에 간 할머니를 기다리면서 돌담 밑에서 유리알 치기를 놀고 있었다.  -영자아지미다!  태식이가 낮게 부르짖었다. 머리를 쳐드는 순간 나는 그저께의 흥분이 살아나면서 검은 그림자에 눈길을 박았다. 어슬녘인지라 작은 몸뚱이에 매달린 그녀의 길고 검은 그림자는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얼굴 전체를 수건으로 둘둘 감싸고 어적어적 걷는 모습이 병든 닭 같아보였다. 몹시 꾸부정한 허리는 거의 곱사등이였다. 그래서 더욱 움푹해보이는 가슴은 가냘프기 그지없었다.  커다란 검은 고무신이 난쟁이 작은 키를 만드는 다리와 다리를 움직여주는 발을 담고 있었다. 그녀가 움직이는 것은 마치 그 고무신이 끌어주기 때문인 것 같았다. 누가 신던 고무신인지는 몰라도 허우대 큰 사나이의 신이였음은 틀림없어보인다. 움직일 때마다 헐렁한 속에 담겨져있는 맨발이 금방 밖으로 빠져나올 것 같았지만 용케도 발끝을 고무신 앞코숭이에 갖다 넣었다.  신 끌리는 소리가 질질 나는 가운데서 그녀는 어디론지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그녀의 뒤모습을 우리 둘은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량손에 유리알을 그득그득 쥔 채 얼이 빠져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담모퉁이에서 사라지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이 쪼르르 달려가서 그녀의 그림자를 뒤쫓았다. 그녀의 그림자는 마을 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발볌발볌 그녀의 뒤를 따랐다. 낮은 돌각담으로 경계를 해놓은 뙉밭이 펼쳐진 산기슭에까지 간 그녀는 우리가 한눈 팔 새에 어디론지 감쪽같이 사라졌다.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하얀 꽃이 한창 피여있는 감자밭과 그 뒤로 펼쳐진 강냉이밭이며 콩밭을 두리번두리번 바라보았다. 거뭇한 산그림자에 덮인 밭들은 무시무시해보였다.  금방 앞에서 서럭서럭하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키를 살짝 낮추었다. 검은 그림자가 감자밭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앉은 채 그림자 가까이에 가려고 오리걸음을 했다.  감자밭에서 검은 그림자가 계속하여 움직이고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서럭서럭하는 흙 긁는 소리가 계속하여 들렸다.  이젠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코앞에서 났다. 우리는 앉은 걸음으로 살살 감자포기새로 스며들었다. 우리가 머리를 빠금히 내밀면서 그녀의 짓거리를 바라보려고 하는 찰나 우쭐 하고 검은 그림자가 일어섰다. 태식이와 나는 죽은듯이 감자밭 속에 잠겨버렸다. 겁에 질린 태식이는 쌕쌕 숨을 몰아쉬면서 눈을 딱 감고 있었다.  그녀가 끙 하고 움직이자 뭔가가 담긴 검은 자루가 가냘픈 어깨 우에 얹어졌다. 감자포기를 헤치면서 그녀가 밭에서 나갔다. 우리는 몸을 옹송그리고 죽은듯이 가만있었다.  그녀가 지나쳐갔다. 머리를 감싼 검은 수건 속에서 할할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마을 쪽 깊숙이 걸어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우리 둘은 간신히 허리를 펴면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정찰병처럼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그녀의 뒤를 쫓아 다시 마을을 향해 반달음쳤다.  그녀는 우리 집(외가집) 문 앞에서 꾸물거리다가 다시 허리를 펴면서 검은 주머니를 어깨에 멨다.  담모퉁이에 몸을 숨긴 우리는 그녀의 짓거리를 계속하여 추적해볼 마음으로 숨 죽이고 있었다. 집마당에서 나온 그녀는 반대방향인 좁은 마을길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철길이 있었다. 외가집 동네는 철길로 두동강 나있었는데 앞에서 이미 말했다 싶이 그녀의 집은 철북에 있었다. 사람들은 저쪽으로 굽이돌아있는 달구지길로 다니지 않고 금을 그어놓은 것 같은 오붓한 오솔길을 애용하고 있었다. 그녀도 지금 그 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철북은 철남보다 조금 둔덕진 곳에 있기에 올리막길이였다. 하얀 올리막 오솔길이 동서로 뻗은 철길을 뚝 끊어놓으면서 철남과 철북을 이어놓는다. 낮이면 그 길로 기차를 조심하라는 어른들의 말을 무시한 조무래기들이 정신없이 건너가고 건너오고 한다.  그 올리막 오솔길에서 그녀는 지금 네발걸음을 하고 있었다. 기다 싶이 걷고 있는 것이였다. 낡을 대로 낡아버린 꺼무룩한 저고리에 꺼무룩한 치마, 거기에다 검은 수건으로 머리까지 온통 감싸고 있었기에 그녀는 하나의 자그마한 검은 괴물로 보일 뿐이였다.  -뿡!  갑자기 천지를 진동하는 괴함이 울렸다. 대가리가 시커먼 기차가 구불구불한 검은 연기를 토해내면서 박두하고 있었다. 그녀가 철길에 금방 들어서고 있는 때였다.  우리는 저쪽으로 달려오는 기차와 이쪽의 영자아지미를 번갈아보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우람찬 동음을 울리면서 기차가 휙휙 지나쳤다. 쿵쿵 하는 기차바퀴소리가 우리들의 가슴을 밟으면서 정신을 태쳐놓고 있었다. 기차는 철북과 철남을 사정없이 절단해버리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지나가는 기차이고 그럴 때마다 기차를 향해 환성을 올리군 했지만 지금은 속이 한줌 만해서 지축을 울리는 육중한 괴물을 눈이 휘둥그래 바라볼 뿐이였다.  드디여 기차는 괴함소리를 싣고 서쪽으로 멀리 사라져버렸다. 맥이 끊겼던 하얀 오솔길이 이어졌다.  -영자아지미는?  -글쎄, 어디 갔지?  우리는 오솔길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둘의 눈길은 허둥대면서 그녀의 그림자를 찾아 헤매였다. 기차길을 건너간 오솔길, 그 오솔길로 사라진 그녀의 그림자가 끝내 우리들의 시야에 잡혀왔다. 자루를 멘 그녀는 기차길에서 2메터 쯤 떨어진 길가에 처박혀있는 바위 우에 댕그랗게 앉아있었다. 짐처럼 놓여져있었다.  사람들이 그 곳에 짐을 놓고 잠시 쉬곤 하는 것을 여러번 본 일이 있는 자그마한 바위였다.    4.  외할머니가 소리치고 있었다. 동네가 떠나라고 소리치는 외할머니의 목소리는 금이 선 놋그릇을 잡아두드리는 것 같았다.  아마 저녁 먹을 시간이 된 모양이였다.  -이 강개(감자) 어데서 난 거냐? 다리갱이 분질러놓기 전에 제대로 대라!  외할머니는 아까 영자아지미가 갖다놓고 간 대여섯알 되는 감자를 손가락질하면서 얼굴이 감자가 되여 소리쳤다.  우리의 사정얘기를 듣고서야 후- 한숨을 몰아쉬더니  -흑, 주제에…  하면서 감자를 키에 와락와락 담는다.  -영자아지미가 남의 밭에 것을 훔친 거 아니예요?  -아니다!  밥상에 마주앉은 후에도 외할머니의 금이 선 놋그릇 두드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밥에 정신이 팔린 우리는 외할머니의 말을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영자아지미가 전등불빛이거나 강한 해볕 같은 것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전등불빛 같은 데에 관심이 없고 주린 배를 채울 일이 급하기만 한지라 우리는 머리를 수굿하고 우적우적 씹기만 할 뿐이였다.  그 후 꽤 오래동안 영자아지미가 외할머니를 찾아오지 않은 것 같다.  개학이 되여 래일이면 집에 돌아가야 했다. 그 날 영자아지미가 외할머니를 찾아왔다. 그러나 그 장소에 우리는 없었다. 외삼촌과 함께 꼴 베러 앞산에 갔던 것이다. 꼴단을 소잔등에 싣고 돌아오는 길에서 그녀를 만났다. 만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저렇게 우리를 지나쳐가는 것을 보았다. 머리를 감싸고 있는 검은 수건, 질질 끌리는 검은 고무신… 비루먹은 같은 그녀의 모습은 더럽고 불쌍하기만 했다.  -빛을 겁나하는 아지미다!  태식이가 저쪽으로 멀어져가는 그녀의 뒤모습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히히 웃었다.  -그럼 못써!  외삼촌이 태식이의 입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핀잔을 줬다. -아지미는 아픈 사람이다. 그래서 빛을 싫어한단다.  -아픈데 왜 해빛을 싫어하나?  -그건 니들 알 것 없고… -그럼 해빛도 싫어하나?  -응, 그래서 흐린 날이거나 새벽 아니면 저녁때에만 밖에 나오는 거란다.  -야, 우습다. 그런데 오늘은 왜? 해가 저렇게 밝은데… -글쎄 말이다. 이런 날이면 얼굴을 마구 감싸! 봐, 저렇게!  -와, 그런데 용케 걷네.  -길을 어떻게 알가?  집에 도착해서야 그녀가 해가 바짝 난 날인데도 왜 밖에 나왔는지를 알게 되였다. 우리가 래일 돌아간다고 복숭아 한바구니를 갖다놓고 간 것이였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 뒤울안에 류달리 크고 달콤한 복숭아가 달리는 복숭아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나와 태식이는 달려들어 정신없이 복숭아를 먹어댔다. 복숭아털에 찔려 볼타구니가 얼얼해났지만 시원하고 새콤한 맛에 취해 바구니를 놓을 생각을 안했다.    5. 앞에서 말한 큰일은 그 해 겨울방학에 생겼다.  친척이 별로 없는 우리는 방학만 되면 외할머니네 집으로 출동했다. 우리가 도착하기만 하면 외할머니는 깨진 놋그릇 두드리는 소리로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욕설을 퍼부으면서 닦아세우기도 하는 외할머니를 나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외할머니는 겉으로 그랬지만 속으론 우리를 무척 사랑했다.) 태식이는 그 깨진 놋그릇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기만 하면 기가 죽어 나의 등뒤에 몸을 숨기곤 했다.  외할아버지는 겨울만 되면 집에만 박혀있었다. 여름방학 때에는 솔직히 외할아버지를 몇번 보지 못했다. 우리가 잠에서 깨여나면 벌써 밭에 나가고 없었으며 우리가 잠든 뒤에야 들어오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는 높은 목침을 베고 누워 항상 무슨 책을 느긋이 읽고 계셨다.  외삼촌은 겨울에도 집에 붙어있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가 어디에 가있다가 한해 겨울이 다 지난 다음에야 어슬렁거리며 나타나는지를 몰랐다. 우린 그것이 더 좋았다. 쩍하면 벌을 세우거나 심부름을 시키는 외삼촌의 부재는 우리에게 넘치는 해방감을 안겨줬다. 빛을 싫어하는 영자아지미의 일을 우린 잊은 지 오래다. 하얀 눈과 얼음, 메주콩얼군 것과 이따금 어디에서 꺼내다가 녹여주는 얼군 과일이 겨울 간식거리로 우리의 마음을 다 빼앗았을 뿐이였다.  우리는 마당의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고 커다란 눈무지 속을 파 ‘집’을 만들기도 했다. 그 ‘집’은 너무도 아늑했다. ‘집’ 안에 제법 깔개까지 펴놓고 살림을 꾸리기까지 했다. 우리 또래로는 철북에 강이, 철남에 순이가 있었다. 이들은 가끔 우리 눈집에 마실 와 한가정이 되여 놀다 가군 했다. 순이가 제 집 바둑이까지 끼여주어 그 재미가 알콩달콩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의 ‘집’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지나갔다.  -빛을 겁나하는 아지미다!  태식이가 지난 여름방학 때 일을 기억해낸 모양이였다.  영자아지미는 검은 솜옷을 입고 있었다. 발등까지 덮고 있는 큰 솜옷이였다. 신은 검은 ‘왕바신’(검은 천 밑에 솜을 넣어 지은 솜신)을 신고 있었다. 역시 누가 신던 것을 물려받은 같은 커다란 신이였다. 붕대처럼 머리를 감싼 검은 수건의 끝자락이 왼손에 감싸쥐여있었고 꾸부렁한 나무지팽이가 오른손에 쥐여져있었다. 그녀가 우리들의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눈 밟는 소리가 뿌드득뿌드득 났다.  순이네 바둑이가 달려나가면서 콩콩 짖어대더니 그녀의 솜옷을 물어뜯었다. 그녀는 끙끙 소리를 내면서 나무지팽이로 바둑이를 쿡쿡 찔렀다.  -개새끼, 이리 와!  순이의 목소리에 바둑이는 ‘집’ 안으로 뛰여들어오고 그녀는 간신히 ‘집’ 앞을 지나 외가집 문고리를 잡았다.  -나 알거든. 저 아지미 빛을 무서워하는걸.  -알어. 누구나 다 아는데 뭐.  -그래? 그런데 왜 빛을 무서워한대?  -몰라!  -이상하지 않니?  -이상하긴 뭐?  순이와 태식이가 재밌게 말을 주고받으면서 놀고 있었다.  걸음 빠른 겨울해는 어느새 서산에 잠겨버리고 집집의 창가에 반디불 같은 전등불이 반짝거렸다. 허지만 외할머니네 창문만은 거무죽죽했다. 영자아지미가 아직도 집안에 있는 모양이다.  강이가 눈집에서 나와 영자아지미를 불렀다. 함께 철길을 넘어가려고 그러는 것 같다. 강이의 부름소리에 대답은 없고 이윽해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검은 그림자가 집안에서 새여나왔다. 순이는 바둑이가 콩콩대면서 뛰쳐나가려고 하는 것을 소리쳐서 저지시켰다. 영자아지미만 보면 바둑이가 저렇게 란리라는 것이다.  강이가 앞에서 걷고 영자아지미가 강이의 발자국소리를 쫓으면서 뒤를 따랐다.  철북과 철남 사이에 작은 골짜기가 있는데 바로 오솔길 옆에 파여있다. 그 골짜기에 샘줄기가 있는지 봄가을이면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어른들은 그 물을 ‘쇠오줌물’이라고 했다.) 겨울에는 건물이 얼어붙어 아이들의 놀이터를 만들어준다. 이제 강이는 영자아지미와 함께 그 얼음판 우를 지나 철길을 넘어야 한다. 그래서 강이가 영자아지미와 함께 가려고 한 것이다.    6. 일은 그 얼음강판 우에서 벌어졌다.  외할아버지가 만들어준 썰매가 얼음판 우에서 은을 냈다. 나무토막 밑에 쇠줄을 둘러만든 썰매는 나와 태식을 태우고 쏜살같이 질주한다. 귀뿌리를 때리는 바람결은 아찔하기만 했고 아래까지 미끄러져 내려오던 썰매가 꼰지면서 눈 속에 뒹구는 재미 또한 짜릿하기만 했다.  우리는 썰매를 끌고 철길 밑까지 올라간다. 거기서부터 얼음강판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얀 얼음판이 마을어구까지 쭉 뻗었다. 애들은 철길가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한 애가 타고 내려가면 잠간 뜸을 들였다가 다음 애가 뒤따른다.  우리 둘은 썰매가 하나이기에 내가 탄 후 끌고 올라오면 태식이가 타고 태식이가 끌고 오면 내가 타고 그랬다.  그 날은 겨울해가 차겁게 반짝거리는 오전이였다.  쏜살같이 아래까지 내려온 후 우를 바라보니 아까부터 나무꼬챙이를 갖고 놀고 있던 태식이가 그 꼬챙이로 순이의 엉뎅이를 찔러대면서 장난치고 있었다. 순이는(순이는 썰매가 없었기에 태식이와 내가 양보하여 태워보이군 했다.) 강아지를 안고 돌면서 태식이를 피하고 있었다. 때론 자지러진 비명소리가 들렸다. 꼬챙이에 이상한 곳을 또 찔린 모양이다.  내가 썰매를 끌고 중간까지 올라왔을 때였다. 철길 우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영자아지미였다. 쨍한 대낮에 영자아지미가 나타난 것이 이상했다. (그가 그 시각에 왜 나타났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영자아지미는 태식이와 순이가 쫓거니 쫓기거니 하면서 장난치고 있는 곳에 다가서고 있었다. 얼굴을 둘둘 감싼 검은 수건과 발등까지 덮은 검은 솜옷, 영자아지미는 한눈에 검은 표가 난 사람이였다.  오솔길은 태식이와 순이가 장난치는 바로 옆으로 뻗어있었다. 얼음판이 오솔길을 범하고 있는지라 누군가 재를 퍼다가 오솔길에 펴놓아 다니기 편하게 했다. 재가 덮인 그 길 우로 영자아지미의 커다란 ‘왕바신’이 걸어오고 있었다.  -저 아지미, 빛을 두려워해!  태식의 놀림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지 마!  순이가 옆에서 못마땅한 소리로 태식이를 저지시키고 있었다.  -저 아지미, 빛을 두려워해! 겁쟁이야!  태식이는 신나는 모양이였다. 나무꼬챙이를 높이 치켜들고 차겁게 떠있는 태양을 가리키면서 캘캘 웃는다.  -겁쟁이야, 겁쟁이야! 빛을 두려워한대, 겁쟁이야!  순이가 말릴수록 태식이는 더 우쭐해서 야단이였다. 나무꼬챙이는 흔들흔들 춤췄다.  그녀가 순이와 태식의 옆을 스쳐지나갈 때였다. 하늘하늘 춤춰대던 태식이의 나무꼬챙이가 그녀의 머리수건에 걸려버렸다. 거의 동시에 재를 펴놓은 길에 있던 그녀의 한쪽 ‘왕바신’이 얼음판을 밟고 있었다. 그녀는 휘청했다. 머리를 감싼 수건자락을 쥐고 있던 두 손이 허공을 향해 허우적거렸다.  태식이는 나무꼬챙이를 힘껏 잡아챘다. 길고 더러운 검은 수건이 나무꼬챙이에 걸려 그녀의 얼굴에서 벗겨져버렸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안았다. 그 비명소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금수의 비명보다 더 싫은 비명소리였다. 아마 빛을 막으려는 발악이였을 것이다. 그녀의 절망에 젖은 울부짖음은 순간 커다란 공포가 되여 나의 가슴을 긁었다. 나는 솜옷 속의 피부가 토돌토돌 닭살이 되는 것을 느끼면서 목을 잔뜩 움츠렸다. 태식이의 나무꼬챙이에 걸려버린 그녀의 검은 수건은 살랑살랑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기발처럼 펄럭거리고 있는데 검은 기발을 추켜든 태식이 역시 그녀의 비명에 놀라 멍해있었다. 놀라움에 크게 확장된 태식의 눈은 금방 툭 튕겨나올 것만 같아보였다. 공포의 그림자가 꺼멓게 물든 태식이는 당장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그녀의 비명보다도 백일하에 드러난 그녀의 흉상에 아마 더 놀랐을 것이다. 태식이의 나무꼬챙이에 의해 말끔히 벗겨져버린 그녀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였다. 머리카락 한올 없는 그녀의 머리통은 회칠한 것 같은 호박대가리였다. 때문에 움푹 들어간 눈확이 더 검어보였는지 모르겠다. 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유리알 만큼한 검은 구멍이 펑 뚫려있었고 코는 뭉그러져있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입이였다. 비명이 흘러나오는 입에는 입술이 없었다. 휘딱 뒤번져진 살 사이에 먹이에 달려드는 짐승 것 같은 이발이 이몸과 함께 로출되여있었다. 틀림없는 마귀의 얼굴이였다.  태식이는 그 무서운 얼굴 앞에서 기가 죽어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허공을 향해 허우적거리면서 평형을 잡으려고 애쓰던 그녀의 ‘왕바신’ 두짝은 그만 얼음판을 밟고 말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얼음판 우에 나동그라졌다. 우리가 썰매를 타고 신나게 내려오던 그 얼음판 우에 쓰러진 그녀는 썰매처럼 미끄러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발에 신겨져있던 ‘왕바신’은 어느새 벗겨졌는지 그녀는 맨발바람이 되여있었다. 다리부터 미끄러져 내려오던 몸뚱이가 휘익 돌면서 머리가 앞서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니 거꾸로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는 판이였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머리를 감싸려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불쌍하고 가련하게도 그녀는 머리를 도무지 감싸지 못하고 있었다.  썰매를 안고 있는 나의 옆을 쏜살처럼 미끄러져 지나치는 그녀는 계속하여 외마디 비명을 질러댔다.  아래까지 미끄러져간 그녀는 그래도 간신히 땅을 짚고 일어섰다.  그녀는 얼음판의 미끈거림에 애써 저항하다가 휘청거리면서 허공을 향해 얼마간 허우적거리더니 끝내 얼음판 우로 사지를 뻗었다. 갑자기 조용해졌다. 비명이던 그녀도 강판 우에 쓰러진 채 잠잠해졌고 소란을 피우던 애들도 고정된듯 제자리에 못박혀버렸다.    7.  -죽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피던 강이가 고함을 쳤다.  다리에 힘이 풀린 태식이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와 하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순이는 쏜살같이 마을로 뛰여갔다.  애들은 슬몃슬몃 쓰러져있는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자취만 있어도 대뜸 도망쳐버릴 준비를 잔뜩 한 채 목을 쑥 빼들고 그녀한테로 다가섰다. 난생처음 보는 그녀의 얼굴이다. 무드러지고 이그러진 그녀의 얼굴은 지옥문을 열고 간신히 기여나온 악귀의 얼굴이였다. 그 얼굴을 누구도 감히 찬찬히 보지 못하고 있었다. 소름이 끼치는 그 얼굴을 누가 감히 바라볼 수 있겠는가.  태식이는 아까 그 자리에 퍼더버리고 앉은 채 계속하여 흐느꼈다. 겁에 잔뜩 질린 울음소리였다. 마을로부터 어른 몇이 뛰여왔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그 속에 끼여있었다.  순이는 약삭빠르게 달려가 그녀의 수건을 찾아왔다.  외할아버지가 그녀을 둘쳐업자 외할머니가 순이의 손에서 수건을 받아쥐더니 그녀의 얼굴에 마구 휘감았다. 순식간에 그녀는 다시 지옥문 안에 갇혔다. 어른들은 그녀를 업고 부축하면서 철길을 넘어갔다.  애들은 얼음강판에 남아서 저렇게 멀어져가는 어른들의 무리를 바라보면서 하나하나의 작은 점이 되여 서있었다. 태식이는 계속하여 왕왕 울고 있었다.   8.  그 날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태식이가 자주 악몽에 놀라 깨여서는 킥킥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조른 원인도 있었지만 눈만 감으면 그 악마 같은 얼굴이 덮쳐와서 도무지 잠을 청할 엄두를 못 냈다.  아직 하늘에 별이 총총한 새벽인 데도 태식이는 책가방을 챙겨 갖고는 빨리 집에 가자고 보챘다.  그 때까지도 외할머니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는 신문종이에 담배를 굵직이 말아서 뻑뻑 피웠다. 독한 담배연기가 코를 찔렀으나 집에 가야 한다는 급한 마음 때문에 우리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겨울바람에 외양칸 문이 삐꺽해도 회칠한 듯한 영자아지미의 호박대가리의 롱간이 아닌가 싶어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밖에서 자박자박 눈 밟히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문이 삐꺽 열렸다.  이슬이 도롱도롱 맺힌 태식이의 까만 눈동자가 겁에 질려 문을 쏘아보았다.  태식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나도 겁에 질린 채 열리는 문에 살며시 눈길을 박았다.  기운을 너무 많이 소진한 탓에 허리가 더 꾸부정해진 외할머니가 들어서면서 캑캑하고 잔기침을 한다. 태식이가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이불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고 나도 덩달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였다. 외할머니는 눈이 파릿파릿해있는 우리들을 한번 눈빗질하고는 그대로 부엌에 내려앉는다.   나무가지 꺾는 소리가 뚝뚝 났다. 아침밥 지을 모양이다.  -어찌됐는가? 하는 외할아버지의 물음에 외할머니는 강이 에미가 지키고 있다고 외마디 대답을할 뿐 다시 말이 없다.  아침밥을 대충 먹은 우리는(태식이는 아예 숟가락을 들지도 않았다.) 외할아버지가 모는 달구지를 타고 외가마을을 떠났다. 태식이는 솜뭉치 같은 외삼촌의 ‘따창’(북방의 한족들이 입는 긴 솜외투)과 개털모자 속에 파묻혀 달구지에 실려있었다.  암소가 끄는 달구지는 소리만 덜컹덜컹 클 뿐 너무 느리고 더디여서 빨리 집에 돌아가려는 우리들의 마음을 도무지 알아주지 않았다.  철길을 건넌 후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 달구지는 느릿느릿 재에 올랐다.  -태식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였어요.   -알고 있다.  -영자아지민 너무 무서웠어요.  -무섭다, 무섭다!  태식이는 또 무엇을 떠올렸는지 기겁을 하며 무섭다를 련발했다. -나도 처음 봤다.  -안 무서웠어요? -허허…  마침 일요일이여서 집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 있었다.  태식이가 달구지에서 놀란 토끼처럼 뛰여내려 어머니 품에 안기면서 와- 운다. 따창과 개털모자는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태식이와 나의 책가방을 들고 죄진 놈처럼 머리를 푹 떨군 채 달구지에서 내렸다.  무슨 못된 짓을 하고 외할머니께 쫓겨난 게 틀림없다고 하면서 사나운 눈길로 쏘아보는 아버지에게 외할아버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녀자 얼굴 왜 그렇게 망가졌답니까? -글쎄 난들 어떻게 알겠나.  -애들 무척 놀랐겠어요. 그 녀자 마을에 온 지도 10년 넘었다면서요? -원자탄이 터져서 숱한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이 난 해에 왔으니까 45년 광복되는 해일 거다.  -그럼 15년 쯤 됐겠습니다. 그런데 여태 그런 몰골인 걸 다들 몰랐단 말입니까? -자네 가시에민(장모) 안 것 같네만… -엄마는 알고 있었단 말이예요.  -그 녀자 참 이상합니다. 어데서 온 녀자랍니까?  -글쎄, 알 턱 있나. 마을에 와서 장일민이라는 사람을 찾기만 하다가 없으니 어데 갈 데 없다면서 눌러앉은 게 여태… -장일민이라고 누굴가요?  -그 마을에 장씨 성 많잖습니까?  -많지. 그런데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다네. -혹시 부대에서 싸우다 죽었다는 장일룡이 아닐가요. 그 렬사증이 내려온 장철순의 큰아버지…  -그 사람은 43년도에 죽었다고 그러더라. 소부대가 연변에 들어올 때 따라들어왔다가 저 매지허리(산이름)에서 일본놈들과 싸우다가 총에 맞아…  -옛날 혁명자들이야 가명을 많이 썼다고 그러던데…  -그 녀자가 찾는 사람이 장일룡이라고 하더라도 이상합니다. 그 녀자가 하필 혁명자를 왜 찾을가요.  -혹, 그 영화에서 나오는 지하당… 가명으로만 련락이 가능했던 지하당이 아니였을가요?  -단선련락이 끊기자 더는 자신을 증명해줄 사람이 없게 되여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안타까운 그런 사람 말이요?  -글쎄 말임다. 그러다가 포로되여 731부대에 끌려가 생체실험을 당했거나 일본에 끌려갔다가 불행하게도 원자탄이 쾅 하는 바람에… -니들 소설을 쓰는구나. 소설을…  이것은 그 날 우리 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외할아버지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주고받은 얘기들이다.    9.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후론 우린 다시는 외가집으로 가지 않았다. 아니, 두려워서 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그 해 겨울방학 외가집에서 일을 저지르고 온 며칠 후 영자아지미가 죽었다고 한다. 그 소식도 퍽 후에야 알았다. 그런데 그 죽음 역시 신비하기만 했다. 영자아지미의 시신이 마을 밖에 세워져있는 혁명렬사비 앞에서 발견된 것이다. 쓰러져서 육신을 까딱 움직이지도 못했다는 그녀가 어떻게 그 먼 렬사비 있는 데까지 갔댔는지도 역시 알 수 없는 일이였다. 그 렬사비는 외가마을의 혁명렬사들을 기념하여 세운 것인데 비문에는 장일룡을 비롯한 몇몇 장씨 성의 렬사들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그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찾으려고 하는 장일민을 발견하고저 한 것이였을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의 그 일을 떠올리기만 하면 나는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 흉물스러운 얼굴, 그 악마의 부르짖음, 그 귀신의 허우적거림… 꿈결에도 소스라쳐 깨여나게 하는 그 무섭고 흉한 꼴, 그것은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되여 여태껏 나를 따라왔다. 그 검은 그림자는 또 갈퀴 같은 물음표가 되여 나의 상상력을 불러주기도 했다.  그녀가 찾는 장일민은 누구일가? 그녀는 과연 누구일가? 외가마을 공동묘지의 잡초 속에 파묻혀있는 그녀는 내 가슴 속에 이상한 빛이 되여 지금도 새하얀 공간에서 까맣게 반짝이고 있다.  그건 검은빛이다.  등불과 해빛을 질색해하는, 아니 그것에 공포를 느끼는 검은빛이다. 
6    [소설]허공장장 일화(김철호) 댓글:  조회:1479  추천:19  2009-06-03
단편소설 허공장장 일화 꽃분이네 집 창가에서 또다시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동네사람들은 귀를 강구면서 경탄해하는것이였다. 금방 산 “꾀꼬리표” 라지오록음기가 고장난바람에 그러지 않아도 말썽이던 꽃분이네 집 창가엔 요사이 부부간의 말다툼이 노래소리 대신 흘러나와 듣그럽게 동네사람들의 귀를 자극주었던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다투막질소리 대신 또다시 아름다운 선률이 흘러나오는것이 아닌가?! 아마 상식이 없은탓에 조절할줄 몰라 록음기가 고장난줄로만 안 모양이였겠다. 마당에서 서성거리면서 이웃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입과 눈을 찡긋거렸다. 이때 꽃분이 어머니가 쪽걸상을 들고나오더니 마당 한쪽에 앉으면서 언제나 손에 놓을새 없는 뜨개질감을 잡는것이였다. 얼굴에 홍조가 발가우리하게 어린 꽃분이 어머니는 오늘 무척 기분이 나는 모양이였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한쪽 꼬리가 축 처져 심술이 드레드레 매달려있는것 같던 눈섭이 련속 춤을 추어대는가 하면 지금 한창 건드러지게 흘러나오는 남성독창에 맞춰 한쪽 발로 박자를 쿵작쿵작 치고있었다. 아낙네 서넛이 저마다 쪽걸상을 갖춰들고 꽃분이 어머니 옆에 가서 앉았다. 그녀들은 자기네가 갖고간 일감을 다듬질하면서 꽃분이네 집 창가를 힐끔힐끔 건너다보며 그속에서 흘러나오는 (아마 미남자일) 그 목소리 좋은 독창가수의 노래소리를 들으면서 좋아들했다. “‘꾀꼬리’가 병난줄 알았는데…” 옆에서 누군가 이렇게 묻자 꽃분이 어머닌 이때를 기다렸다는듯이 입이 함박만해지면서 웃었다. 그통에 어금이에 박아넣은 금이가 석약볕에 번쩍 하고 빛을 반사했다. “나도 영 숨이 넘어간줄 알았죠뭐.” “그래 아무 일도 없는걸 가지고 원앙이 다툰건 아닌가요?” 이쪽에 앉은 아낙네가 슬쩍 구루를 쳐보는것이였다. “고장 안나다니요. 한심하게 마사졌댔죠뭐.” 꽃분이 어머닌 이쪽저쪽을 번갈아보며 좋아서 또 웃었다. “금방 이사온 허공장장님 모르나요. 거 우리 꽃분이와 한반 다니는 허일 아버질말이예요.” 금방 이사온 허공장장님을 왜 모를수 있겠는가. 아낙네들은 저마다 허공장장네 집쪽을 피끗 바라보았다. 얼마전 새로 이사온 허공장장님이 “무선전공장”의 부공장장이라는것을 누가 말치 않아도 다 아는 이녀들이였다. “글쎄 그분은 정말 귀신같아요. 눈에 현미경을 걸었는지 손에 자석을 달았는지 그저 척척척 하더니, 호호호… 난 귀신께 홀리나 했죠뭐.” 꽃분이 어머닌 그저 신이 나서 련속 웃기만 했다. “그런데 꽃분이 어머닌 어느새 그런 뒤문을 다 보아뒀나. 정말‘팔방미인’이군요. 히히…” “그거야 내 낮바닥이 소볼기짝처럼 두터우니 그런거죠. 난 애아버지와 한바탕 다툰 끝에 숙제공부하러 허일네 집에 가있는 딸애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피난가려고 그 집에 갔더랬지 않았겠나요. 그때 피뜩 이런 생각을 했던거래요. 무선전공장의 공장장님이니까 록음기같은건 애들 놀이감처럼 여길거라구말이예요. 때마침 일요일이라 공장장님이 집에 계셔서 난 마구잡이로 제기했죠. 처음엔 두손 내흔들면서 거절하더니 허일이랑 꽃분이랑 마구 매달리며 흥흥거리니 하는수 없는지 말씀이 없는거 아니겠어요. 난 불이 펄쩍나게 뛰여와서 록음기를 들구갔죠. 그분은 록음기 뒤덮개를 열더니 이리저리 훑어보겠죠. 그러던것이 뭐 관인지 돈인지 하는 귀에 생소한 부속품이름을 말씀하시면서 영 못쓰게 된것 같다지 않겠어요.” “저런 큰일났군요.” 아낙네들은 혀을 끌끌 찼다. 꽃분이 어머니도 그때의 그 락태상이 되였던 꼬락서니를 보여줄양으로 잔뜩 우거지상을 해대면서 한숨까지 훌 내쉬였다. 그러던것이 또다시 쾌활한 안청으로 여럿을 둘러보며 웃었다. “그분은 집에 부속품을 예비로 둔것이 없으니 지금 당장 수리할수 없겠은즉 저녁에 와보라는게 아니겠어요. 저녁에 가보니 글쎄 우리‘꾀꼬리’가 목청 하나 변치 않은대로 청맑게 노래하지 않겠나요. 호호호…” 꽃분이 어머니는 찔끔 솟구치는 눈물을 손등으로 꾹 눌러버리면서 기쁨에 겨워 깔깔 웃어댔다. “참, 대단하구만요.” “아무렴, 무선전공장의 공장장이니까 범상해선 안되지.” 아낙네들은 허공장장님을 구구히 춰올리는데 야단스레 우짖는 한떼의 새무리 같았다. “아니, 저기 그분이 와요.” 누군가 이렇게 말해서 아낙네들은 머리를 솟구치며 골목 저쪽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가 골목길로 허공장장님이 자전거를 끌고 들어오는데 락조가 토해놓은 혈색에 물올라서인지 온후하고 인품좋게 생긴 둥실한 얼굴에 점잖으면서도 도량과 예지와 높은 기품이 풍기는 모습이였다. 허공장장님은 꽃분이네 집 마당앞을 지나가면서 아름다운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것 같더니 보기만 해도 듬직하고 신뢰감을 주는 두툼한 입술을 빙긋 열며 꽃분이 어머니를 향해 한마디 묻는것이였다. “그래 별다른 문제는 없습데까? 솜씨가 서툴어서…” “아유, 어려운 말씀을 다… 금방 사왔을 때와 꼭 같습데다요.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좋아요?” “은혜라니요. 이웃끼리… 허허 참, 또 다른 문제가 보이면 인츰 알리시오.” “정말 감사해요.” 꽃분이 어머니는 벌써 자기집마당까지 간 허공장장님의 뒤에 대고 연신 허리 굽혀 절을 올리면서 치하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송구스레 앉아있던 아낙네들도 꽃분이 어머니의 정서에 감염되여 경모에 찬 눈길로 허공장장님의 름름한 모습을 숭엄히 바라보는것이였다. 허공장장님은 집에 들어서자 열이 오른 얼굴을 식히려고 선풍기의 전류꼭지를 누르고 적삼깃으로 부채질하면서 쏘파에 철썩 들어앉았다. “어이쿠!” 뭔가 와싹하는 소리가 나기에 놀라서 펄쩍 뛰여일어난 허공장장님은 앉았던 자리를 홱 돌아다보았다. 이런, 거기에는 그가 제일 즐겨피우는 “봉황”표 담배 두보루가 놓여있지 않는가. 물론 금방 너무 요란스레 앉는바람에 포장한 종이가 찢기긴 했어도 그속으로 비쳐나온 노오란 권련은 군침이 꿀꺽 솟게 눈뿌리를 뺐다. (이거 마누라가 헴이 드는 모양이군.) 허공장장님은 슬쩍 담배 한갑을 집어들고 코에다 대고 냄새를 큭큭 맡아보다가 갑을 터치고 한대 집어내여 입에다 꼬나물었다. 노루친 막대도 삼년 우려먹자고 드는 안해에게서 한번도 이런 대접을 받아본적 없는 허공장장님은 오늘 별일이라면서 구수한 담배연기를 힘껏 들이켰다. 저녁상에 마주앉은 허공장장님은 더욱 놀랐다. 반찬거리는 색이 변치 않았지만 전례없이 “불로주” 한병이 목을 빼들고 밥상우에 덩그렇게 올라앉아 있지 않는가. 허공장장님은 힐끔 안해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오늘 자신의 귀빠진 날이 아닌가고 속으로 슬그머니 계산도 해보았으나 근본상 달수가 맞지를 않는다. 안해는 알았다는듯이 노르끼레한 눈확주위에 잔주름을 앉히면서 의미있게 웃었다. “아까 꽃분이 어머니가 가져왔댔어요.” “뭐라구?!” 허공장장님은 들었던 술잔을 딱깍 놓으면서 눈을 부릅뜨고 안해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어쩌면 이웃의 례물을 어떻게 받는단말이요. 더구나 꽃분인 허일과 한반 다니는데… 당장 돌려보내오.” “쯧쯧, 눈알이 튕겨나오겠어요. 담배도 갑을 터쳤지 술도 마개를 뽑았지. 인젠 어떻게 되돌려요. 수고하셨다고 가져온건데 받는것도 성의지요.” “뭐, 수고했다구. 흥, 수곤 무슨놈의 오그라질 수고야!” 허공장장님은 기분이 상해 아무 내막도 모르고 받아먹기만 하려는 안해를 외면하고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선전공장의 부공장장이라는 체면이 그로 하여금 꽃분이 어머니가 록음기를 들고오는것을 막지 못하게 했던것이다. 수년간 행정사업을 해온 그가 라지오를 알면 얼마나 알고 더구나 록음기를 알면 또 얼마나 알겠는가? 황차 가마공장의 부공장장으로부터 무선전공장의 부공장장으로 금방 전근되온 그가말이다. 덮개를 뜯고 보았댔자 누먼 중 갈밭에 든것 같았다. 허공장장님은 장님이 개천 나무리듯 여기 저기서 얻어들은 라지오부속품들의 이름을 주어대면서 돈벌이에 눈이 빨개 질량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한바탕 기업관리형편을 비판한 다음 눈섭새에 내천자를 누비면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거 전자관이 마구 타버린것이 틀림없습니다. 영 벙어리가 된걸 보면. 계기도 없고 부속품도 예비로 둔것이 없으니 저녁에 와보십시오.” 꽃분이 어머니가 가슴이 한줌 되여서 돌아간후 허공장장님은 인차 공장 독신숙소에 전화쳐서 허주활이를 찾았다. 그가 금방 전근되여왔을 때 주활이는 같은 허씨라고 우정 공장장사무실까지 찾아와서 인사하면서 금후 많이 가르쳐 달라고 하던 낯이 운동장같은 젊은이였다. 공장장님이 장기를 잘 논다는 소문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엊저녁에는 장기판까지 갖춰가지고 공장장님이 퇴근하기를 접수실에서 꼬박 한시간이나 기다렸다면서 찰거마리처럼 달라붙는통에 저녁을 굶어가면서 아홉시까지 백병전을 벌린 일까지 있었다. “여보게 주활이, 엊저녁 결판을 마저 깨지 않으려나?  뭐, 그러겠다고. 좋아, 그럼 우리 집에 오라구. 마침 일요일이라 할일도 별로 없고… 에끼, 어렵긴 뭐가 어렵다고 우는 소리야. 지지리 못나긴… 그럼 인츰 오게나. 저 그리고 올 때말이야, 만능계기를 갖구 오라구. 글쎄 오면 알거니까.” 허공장장은 그제야 “후유ㅡ” 한숨이 새나왔다. 허주활은 1분도 안되여 고장난 곳을 찾아냈다. 나발에 붙은 선에 연물이 적게 발리워서 떨어져있었던것이다. 연물 한방울을 떨구었더니 선은 나발에 착 붙어버렸다. “왕ㅡ” 하고 나발에서 음향이 터져나왔다. 허공장장님은 흥이 난김에 점심을 굶으면서 저녁 4시까지 장기를 들었다. 수고는 허주활이 하고 수고값은 자기가 받아먹자니 어쩐지 가슴이 트릿해났다. 허나 무슨 별수가 있는가 허공장장님은 불로주를 부어놓은 잔을 건뜩 들어 굽을 쭉 냈다. 안해는 해쭉 웃으면서 열무김치 한쪼박을 날렵하게 짚어서 주인의 입에 제꺽 넣어주었다. 어느날 허공장장님의 안해는 요먼저 꽃분이 어머니가 가져왔던 “불로주”를 마지막 반주술로 잔에 꼴똑 부어주면서 좁쌀같은 눈을 쪼프리더니 전에없던 웃음을 웃었다. “여보, 은행집에서 록음기가 고장났다면서 당신이 좀 수고해주길 바라더구만요.” “뭐라구?” 허공장장님의 눈확은 한뽐이나 째져서 보기 망측해졌다. 내가 그걸 수리해? 그런 재간이 있으면 여북 좋게. 저건 여태껏 같이 살았다는게 남편의 재간통이 어디에 가 붙었는지도 모르고있으니 헛데리고 살았지, 에익. “여보, 당신은 여태 아무것도 모르고 납드오. 날 그래 수리쟁이로 만들어놓을 작정이오, 엉?” “여봐요. 누가 당신더러 수리쟁이가 되라고 했나요. 저절로 실컷 소문놓구는 흥!” 이튿날 퇴근해보니 은행집 록음기가 와있었다. 허공장장님은 천둥같은 화가 치밀었으나 울며 겨자먹기였다. 어쩔 방법이 없었다. 또 요먼저처럼 허주활이를 불러왔다. 물론 결판을 못낸 장기의 승부를 가르는것이 전제여고 왔던김에 고장난 록음기에 손을 대보라는것이 후제였다. 모든것이 원만히 되여 은행집에서는 이튿날 또 술담배를 가져왔다. 물론 안해가 허공장장님 몰래 슬그머니 받아두었다. 안해는 만면에 꽃이 펴서 더 예뻐보였으나 허공장장님은 하루밤새에 낯에 잠이 폭 돋더니 영감티가 났다. “여보, 다신 이런짓을 말기요. 내가 무선전공장의 공장장이면 뭐 록음기박사인줄 아오. 난 금방 전근됐고 또 행정을 책임진 부공장장이란 말이요.” “아니, 그럼 여태껏 어떻게 수리했게요? 아야, 그럼…” 안해는 불현듯 정신이 든듯 외마디소리를 쳤다. “다 그 장기친구가…” “아니, 그럼 이걸 어쩌나요?” 남의 손을 빈것도 모르고 남편이 언제 그런 재간을 배워뒀을가 하는 희한한 생각에 동네에 다니며 까치배때기같은 소릴 잔뜩 한 안해는 락태상이 되여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머리만 길었지 소견은 짧은지라 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제부터 내가 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겠으니 일이 분망하다는 핑게로 딱 잡아떼오.” 차츰 사람들은 허공장장앞에서 공손히 인사하게 되였다. 물론 허공장장은 아주 겸손하게 처신할줄 알았다. 그런데 요즈음 길 건너편에까지 소문이 가서 “지식청년무선전수리부”에서는 고문으로 그를 초빙하련다는 초청장까지 보내왔다. 물론 허공장장님은 그 일을 절대 접수할수가 없었다. 류비는 세번만에 제갈량을 초가집에서 끌어냈다지만 “지식청년무선전수리부”의 류비제씨들은 여섯번이나 벽돌기와집에 찾아왔으나 초빙해가기는커녕 지금까지도 그토록 현능한 허공장장님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있었다. 안해가 전문적으로 마당에 나서서 허공장장님이 집에 계시지 않는다고 방패를 쳐놓았던것이다. 허공장장님은 무더운 여름밤에도 집에 꾹 박혀있어야 했다. 엊저녁이였다. 아홉시가 넘었는지라 모든 방어태세를 다 낮추고 시름을 활 놓은 허공장장님은 한여름밤의 더위를 막으려고 바깥에 나와서 파초부채질을 슬슬 하면서 바람을 쏘였다. “허공장장님 아니신가요?” 은방울 굴리는듯한 녀인의 고운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돌아보니 파마머리를 곱살하게 내리드리운 어여쁜 처녀가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있었다. 순간 허공장장님은 가슴이 섬찍해났다. “지식청년무선전수리부”가 피뜩 생각났던것이다. 끝끝내 당하고마는 “체포”, 허공장장님은 머리가 오싹해났다. 국에 덴것이 랭수를 보아도 땀이 돋는가보다. 허공장장님은 급기야 아니라고 도리머리를 치고는 자기집쪽을 가리켰다. “저 집에 가서 찾아보오.” 처녀는 집쪽으로 들어갔고 허공장장님은 집을 멀리 피해 으슥한 곳에 숨었서 그 처녀가 나오기를 꼬박 한시간이나 기다렸다. 후에야 그녀가 허일이네 반주임선생님이였다는것과 그날 여러 집을 방문하다보니 늦게 찾아오게 되였다는 사실을 알고 허파터지게 한바탕 웃긴 했으나 속은 어쩐지 열탕 마신것처럼 썼다. 그럭저럭 뻗치다나니까 “지식청년무선전수리부”에서도 인젠 기권해버리고말았는지 다시 찾지 않아서 허공장장님은 출입을 시름놓고 할수 있었다. 오늘 퇴근할 때 허공장장님은 자전거페달을 스쩍스쩍 밟으면서(허공장장님은 출퇴근을 검박하게 자전거로 한다.) 자기를 그렇게  혼내놓던 “지식청년무선전수리부”앞을 지나오면서 높직이 걸려있는 패쪽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 패쪽이 거룩해보였다. 그가 금방 수리부 문앞을 지나쳤는데 눅군가 “허공장장님!”하고 소리쳐불렀다. 피뜩 돌아다보니 홀태바지를 입은 청년남녀가 수리부앞에서 서성거리고있었다. 허공장장님은 가슴이 후두두해났다. 허공장장님은 모르겠다 하고 페달을 힘껏 디디면서 젖먹던 힘까지 다 내여 골목길로 해서 자전거를 냅다 몰았다. “허공장장님!” 뒤에서는 계속하여 그를 불렀다. 허공장장님은 그럴수록 기세를 올렸다. 목구멍에서 가죽타는 냄새가 나고 바지가랭이에서는 비파소리가 났다. “아이고… 허공장장님,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그렇게 속도를 냅니까? 기력이 참 좋으십니다그려.” 추격자 역시 헐한 사람이 아니여서 끝끝내 따라잡았던것이다. 허공장장님은 놀라면서 돌아다보니 이웃에 사는 시1중 어문교원 오선생님이였다. 그제야 시름을 활 놓은 허공장장님은 속도를 늦추었다. 아래다리가 후둘후둘해났다. 등골에서는 도랑물이 좔좔 흐르는것 같았다. 이런 꼴사나운 일이라구야. 허공장장님은 그만 사맥이 뚝 떨어지는것 같았다. 그는 헐떡헐떡 숨을 몰아쉬면서도 빙그레 웃음을 날려보냈다. “내 좀 급한 일이 있어서…” 오선생은 허공장장님의 소개로 무선전공장에서 일본의 부속품을 가져다 생산하는 천연색텔레비죤을 사게 되였는데 지금 안테나선을 사가지고 오는 길이라면서 구구히 말하는것이였다. “허공장장님, 저녁에 꼭 건너오십시오. 공장장님의 덕분에 시제품을 다 사게 되였는데 와서 맥주도 한잔 할겸 집구경도 할겸 꼭 나오십시오.” “시간이 있는데로…” 허공장장님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저녁에 오선생의 안해가 세번이나 내보내서 허공장장님을 모셔오게 했다. 푸짐히 차려놓은 주안상앞에 다정한 이웃들이 모여앉아 텔레비죤방송시간을 기다리면서 맥주잔을 기울였다. 신호가 나왔다. 칠색단을 드리운것 같은 신호는 눈이 시게 현란했다. 집안은 삽시에 환락으로 끓었다. 절목소개가 끝나고 소식보도가 지나자 이어서 텔레비죤소품이 시작되였다. 손님과 주인은 허물없이 껄껄, 킬킬 웃으면서 즐거운 저녁 한때를 보내고있었다. “효과가 참 좋습니다. 허공장장님, 금년에 귀공장에서 이런 제품을 많이 생산하게 됩니까? 우리도 기회를 보아 하나 들어와야겠는데… 허허허…” 건너집 장씨가 엉뎅이를 들춤질하면서 허공장장님에게 다가앉았다. “그럼요. 이번에 광주에 가서 일본사람들과 교섭했는데 수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참 묘하단말입니다. 이것이 좋거든요.” 허공장장님은 이마를 툭툭 쳤다. “결정권있는 사람들이 조금만 실수해도 나라에서 많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내항(전문일군)이 아니고선말입니다.” “아무렴요. 허공장장님같은분이 실무를 책임졌은즉 실수가 있을리 있겠습니까?” “그렇고말고요!” 옆에서 추슬러주자 한잔 들어간 허공장장님은 그만 어깨가 으쓱해났다. “아니, 아니, 나야 언제나 아무것도 아는게 없지요. 저는 행… 칵…칵…” 허공장장은 짐짓 기침질을 하면서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리곤 맥주잔을 조심히 상우에 놓으면서 여럿을 둘러보는데 입가엔 늠실늠실 웃음이 파도치고있었다. 오선생은 맥주잔을 도로 허공장장님의 손에 쥐여주면서 히쭉 웃는데 무척 감동된 모양이였다. “허허… 오선생, 정말 이 손끝 세개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답니다. 책임이 크지요.” 허공장장님은 만년필을 쥐였을 때의 자세로 세손가락을 굽혀보였다. “그렇지요. 지도간부들이란 석자이름으로 큰일을 해내니깐요.” “하하하…” “흐흐흐…” 집안은 웃음으로 끓었다. 바로 이때 오색이 령롱하던 화면이 문뜩 새까매졌다. 웃음꽃 피였던 얼굴들은 삽시에 흐려져버렸다. 여럿은 긴장한 기색으로 허공장장님의 얼굴을 한결같이 쳐다보았다. 마치 그 얼굴에서 신비한 힘이 비쳐나와 새까만 화면에 조화로운 색조를 부어넣을수 있기나 한듯이 오로지 허공장장님의 얼굴만 얼이 빠져 쳐다보는것이였다. 허공장장님은 가슴이 섬찍했다. 얼굴에 벼룩이 매달린듯 근질근질해났고 한쪽 입귀는 별스럽게 푸들거렸다. 그는 조심스레 전류꼭지를 몇번 눌러보았다. 아무 효험도 없었다. 누군가 뒤덮개를 열어보자고 했다. 그러나 허공장장님은 손을 홱 내저었다. “그건 절대 안됩니다. 폭발합니다!” 그바람에 오선생의 안해는 쇠꼬챙이를 맞비비는듯한 새된 소리를 질렀고 이웃 손님들은 능구렁이라도 밟은듯이 화닥닥 자리에서 뛰쳐일어나기까지 했다. “그런게 아니라 잘못 건드리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제야 모두들 안도의 숨을 훌 내쉬였다. 허공장장님은 손수건으로 이마에 돋은 땀을 문지르곤 눈살을 몇번 쪼프렸다폈다하면서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아무튼 난처한 자리는 피하고 봐야 했다. “이건 꼭 만능계기가 있어야 검사할수 있습니다. 아마 큰 고장은 아닐겁니다. 새거니깐요. 제가 곧 공장에 갔다오겠으니 오기전에 절대 손대지 마십시오.” 점잖은 사람이 떠나겠다는데도 누구 하나 일어나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언녕 그러길 바랐다는 눈치들이였다. 갑자기 바깥에 나섰기때문이여서인지 눈앞이 캄캄해져서 허공장장님은 벽모서리를 더듬어짚고 몇초란 휴식해야 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로 걱정이 구름처럼 일어섰다. 이 밤중에 허주활을 찾아가자니 지난 두번의 일까지 한데 겹쳐지여 자신의 모든것이 다 드러날것 같아 걱정이요, 아니 가자니 안타까이 기다리는 오선생네 일가에 미안하기 그지없었어 걱정이였다. 이럴 때 다른 급한 사정이 생겨서 난처한 장면을 면하고 봤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허공장장님은 오다나니 저도 모르게 공동변소 있는데까지 왔다. 변소안에서 기침질하는 소릴 들으니 녀자변소켠이라 허공장장님은 허둥지둥 남자변소쪽으로 몸을 피했다. “아이쿠!” 허공장장님은 허공을 딛는것 같은 감촉에 외마디소리를 지르고말았다. 그러나 어쩔새 없었다. 잇달아 콩크리크바닥에 딱 하고 턱이 맞쪼이는가 싶더니 뒤골이 떡 하고 부딪쳤다. 숨이 칵 막히고 눈앞에서 불꽃이 팔팔 일어났다. 풀썩 하더니 재가루와 함께 고약한 냄새가 코를 쿡 찔렀다. 발을 잘못 옮겨 그만 재구뎅이에 빠지고말았던것이다. 위생국에 몇번이나 제기하였으나 고쳐주지 않아 지금까지 그럭저럭 쓰고있는 동네 공용재구뎅이였다. 허공장장님은 끙끙 앓음소리를 했다. 그런데 도무지 허리를 펼수가 없었다. 땅에 닿은 다리가 찌륵찌륵 아파나는게 깡깡 얼어붙은 커다란 성에장에라도 집히운듯했다. 허공장장님은 콩크리트로 된 구뎅이벽을 간신히 짚고 서서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키는 입술을 꽉 사려물고 참기 어려운 진통을 이겨가면서 구뎅이에서 나오려고 웃모서리를 향해 뻗쳤다. 순간 허공장장님은 몸이 갑자기 허공에 둥둥 뜨는것 같았다. 어쩐지 몹시 홀가분해지는것 같았다. 왜 그럴가? 그렇지, 이걸 핑게로 난 그 장소에 안가도 되니깐. 흐흐흐… 나야 이제 며칠 앓게 되겠는데 날 청하러 오지야 않겠지. 아이구 고맙기루, 하느님이 도와준거로구나. 정말, 잘된 일이야, 잘된 일이구말구! 허공장장님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다. 상처는 크지 않았다. 놀라서 신경이 긴장해진외에 몇곳이 경한 타박상을 받았고 왼쪽 종이뼈가 실금이 갔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여 며칠 치료한후 집에 나가서 몸조리를 잘하기만 하면 아무런 후유증도 없을거라고 의사는 몇번이고 안심시켜주었다. 이웃에서 련달아 병문안을 왔다. 그들은 저마다 과일즙이며 통졸임, 사탕, 과자를 사오느라고 적지 않은 돈을 팔게 되였다. 그러나 유능한 지도간부가 불행을 당했은즉 몇푼 돈을 아낄 이웃은 또 아닌것이였다. 그날 저녁 한자리에 앉았던 오선생과 그의 처, 그리고 이웃인 장씨도 왔다. “우리때문에 허공장장님이 이렇게 불행을 당하셨습니다. 전 괴로와 죽을 지경입니다.” 오선생 내외간은 눈물이 글썽하여 사과했다. 허공장장님은 온후하고 인품좋게 생긴 둥실한 얼굴에 인자한 웃음을 담고 가장 궁굼한 문제를 물었다. “그래 텔레비죤은 어떻게 됐습니까?” “거…” 오선생은 그만 송구스러워서 무릎만 두손으로 싹싹 문지르면서 처를 바라볼뿐이였다. 그의 처 역시 아궁이앞에 앉았을 때처럼 빨개진 얼굴을 다소곳이 숙이고 숨이 한줌만해 앉아있었다. “오선생, 근심마십시오. 크게 고장났다면 되물릴수도 있고 아니면 바꿔드릴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오선생은 시무룩히 웃었다. 허공장장은 영문을 알수 없어 여럿을 돌아보았다. “제가 어찌도 재간이 신통한지 글쌔, 이어놓은 전기선에 전기가 통하지 않았던겁니다. 개천에 버릴 위인인겁죠. 히히…” 허공장장님은 무슨 말인지 리해가 서지 않아서 띠룩띠룩 눈알만 굴렸다. “남들이 못쓴다고 줴뿌린걸 어느땐가 제가 주어들였댔어요. 그것을 저이가… 후ㅡ돈을 좀 아끼자 하다가 곤욕을…” 그 말에 저마다 제마끔의 웃음을 킬킬, 껄껄 웃었다. 허공장장님은 따라 웃긴 했으나 허무해지는 심정을 어쩔수 없었다. 그들이 돌아간후 허공장장 내외는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여보, 우리 또 이사해야겠소.” “왜요? 여북 좋은 이웃인가요. 옛말에도 세잎 주고 집사고 천냥 주고 이웃 산다 했는데 이좋은 이웃 두고 이사가긴 어데 간다고 그래요.” “이웃이야 좋구말구.” “그런데 왜요?” “글쎄 살아가자면…”   1986년《천지》제11기
5    [소설]노다지타령(김철호) 댓글:  조회:1679  추천:12  2009-05-13
단편소설 노다지타령 ㅡ생태균형록 “노다지 노다지 금노다지 노다진지 지랄인지 알수가 없구나…” 하복씨는 자기의 생활주제곡 “노다지타령”에 맞춰 어깨를 들썽거렸다. 또 무슨 수가 난 모양이였다. “히히… 여보, 마누라!” 남편의 호출에 설씨는 제꺽 중간문을 건너 매대를 벌려놓은 건너칸으로 넘어왔다. 하복씨는 병신모양으로 눈을 찔끔거리면서 안해를 향해 손마선질했다. “마누라 이걸 좀 보라니까.” “이게‘모태주’가 아닌가요?” 설씨는 혀를 끌끌 차면서 남편곁에 다가섰다. 글씨는 몰라도 눈썰미가 빠른 설씨는 남편이 들어보이는 금칠을 먹인 포장곽을 보고 해시시 웃었다. 인젠 눈에 익어 명표술담배는 제꺽제꺽 알아본다. “오랑액”이요, “분주”요, “량우”요… 그런것들은 벌써 포장부터가 눈에 환하게 안겨온다. “흐흐… 또 건너왔군요.” 설씨의 눈초리에서 웃음이 똑똑 떨어졌다. “벌써 열세번째라니까. 여기 이 연필로 찍어놓은 자릴 보오.” 하복씨는 “모태주”엉뎅이를 들어보이며 또 그 병신스런 웃음을 날렸다. “에이구. 돌돌이두 잘 한다. 자꾸 돌돌이해 되돌아오니 저 량반 입이 째지지. 그러다 개구리사촌되겠어요.” “쯧쯧 이게 자꾸 돌아야 우리 집에 하복(下福)하지. 보오. 접때 임자가 이 집을 팔자구 할 때 내 뭐랍데…” “에이구, 어쩌다 큰 똥 하나 뀌여놓곤 두구두구 우쭐하긴…” 하복씨는 안해에게 악의없이 눈알을 딜딜 굴려놓고는 닭알광주리나 다루듯이 손을 놀려 “모태주”를 매대밑에 감춰놓았다. “참, 요놈 한병에 250원이라지. 그래두 없어서 못사는판이니… 흥, 돈들두 썩었지.” “당신은 들어가서 저녁이나 자시고 나오세요. 그동안 매대는 내가 볼게.” 설씨는 남편의 흥을 깨칠세라 조심스레 아뢰였다. “응… 그럼 오늘저녁에 좀 갈증을 말려본다.” “병맥주 한병 터쳐요.” “그만둬. 그래두 근들이가 좋단말이요. 병들이는 손님을 위해 봉사하게 하구. 제길, 그게 아니믄 쇠통 문턱두 안넘어선단말이야. 똑같은 소오줌물인데두…” “에이구, 하나 터쳐요.” “쯧쯧, 위인민복무를 모르오.” “에이구, 쇠깍쟁이!” 그러건말건 하복씨는 비닐맥주잔에 근들이맥주를 떠들고 건너문을 넘어서며 흥얼댔다. “노다지 노다지 금노다지 노다진지 지랄인지 알수가 없구나…” 이곳은 몇해전까지만 해도 거북등처럼 키낮은 집들이 어깨를 비집고 들어앉아있던 주택구였다. 더럽고 어지럽고 좁고 분주한 골목길가에 그래도 상점 몇집이 간판을 내걸고있어서 골목몰골이 이루어졌지만 비오는 날이면 차라리 양돈장이라고 해야 격에 맞아보였다. 걸죽한 진탕이 골목길에서 이리저리 밀밀 밀려다니면서 문턱이 낮은 집들에 침입하여 사처에서 아우성소리가 터지는가 하면 성미급한 량반이 철렁거리고 지나가면서 옆사람에게 진탕을 갈겨놓아 욕설이 불꽃튕기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녀편네없인 살아도 장화없인 못산다는 골목으로 시가지판에 악명이 자자했다. 어느때부터인지는 모르나 이곳에다 새 층집을 짓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하복씨는 복떨어지길 눈빠지게 기다렸다. 이주(動遷)뀀에 들기만 앉은자리에서 돈벌고 나앉을판이 되겠으니말이다. 그렇게 되면 몇해채 모은 돈에다 이주비까지 합쳐서 네거리에 나가 괜찮은 집 한채를 살수 있잖은가. 전민상업의 길에서 이 하복이의 만만찮은 솜씨를 한번 펼쳐보이리라. 하복씨는 궁리할수록 어깨가 으쓱해났다. 아닌게 아니라 이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시정부 제씨들이 매미차에 앉아 몇번 왔다갔다 하더니만 뒤따라 측량기를 멘 사람들이 빨간 기발, 파란 기발을 이쪽저쪽에 꽂으면서 올리뛰고 내리뛰고 했다. 잇따라 이주동원을 하고 집값을 흥정하느라 야단이였다. 이사짐을 나르는 자동차, 밀차, 손잡이뜨락또르들이 해종일 부릉부릉, 힝힝, 토토토토거렸다. 그런데 “하복상점”앞길까지 금을 긋고 그뒤 한줄은 다치지 않았다. 천재가 아닌 하복씨는 코앞에 닥친 불행으로 하여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는지 모른다. 이제 남향으로 고층건물이 일어서면 자기네 집은 음달에 들건 물론이려니와 현대주택구와 빈밀굴사이에 끼인 꼬락서니가 통 오리밑구멍에 달린 똥달개신세가 될판이 아닌가! 하복씨는 망했다고 가슴팍을 두들겨팼다. 속도전의 불바람을 일으켜 새 층집은 여섯달 보름만에 출태하여 소소리높이 하늘을 치받고 솟았다. 얼마후 하복상점앞으로부터 저쪽 대통로까지 콩크리트길이 네각을 쭉 뻗고 드러누었다. 알고보니 새 아빠트는 시정부의 주택이였다. 남향으로 키를 돋구고 선 시정부아빠트의 그늘밑에 그러잖아도 꼴불견인 “하복상점”은 거인앞에 선 곱새같아 보여 하복씨는 어금이가 갈려졌다. 손님아라는건 가물에 콩싹이였다. 이런판에 간판이라도 큼직하게 해달아보자! 하복씨는 2백원 돈을 던져버리고 집채만큼한 새 간판을 만들어 내걸었다. 그즈음 안해 설씨는 재수 옴붙은 고장을 떠나버리자고 남편과 몇차례 설전까지 치렀었다. 그때마다 하복씨는 무슨 생각에 그랬는지 엉뎅이에 썩살이 배기도록 버티고앉아서 자릴 안뜬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손님들이 차츰 찾아들기 시작했다. 아낙네들은 멀리 네거리까지 나가기 싫어서 “하복상점”문고리를 당겼다. 애들도 코묻은 돈을 쥐고 곧잘 뛰여들었다. 어찌하다 통이 큰 손님들이 찾아드는 때도 있었다. 와서는 무슨 “‘삼오패’권연이 없소?”, “무슨 술이 없소?”하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술담배이름을 들이댄다. (있긴 개뿔 있어! 이 어르신님은 여태 그런걸 그림자두 못봤어!) 하복씨는 속으로는 이렇게 욕해대면서도 곁으론 웃음을 살살 발라대면서 작은 상점이여서 팔리지 않을가봐 “고급상품”을 갖추지 못했노라고 두손을 비비며 량해를 구했다. 그런데 그런 손님들가운데는 단골손님은 없고 언제봐도 거개가 낯선 손님이라는것이 하복씨의 흥미를 무척 끌었다. 어떤 손님은 상점에 들어와서 이리기웃 저리기웃 하면서 상점안을 할깃할깃 참빗질 얼레빗질 해보다가도 “아무것도 없군” 하면서 업수여기는 눈길을 찔갈기고는 힝하니 나가버렸다. 그럴 때마다 하복씨는 속으로는 “별 강아지 무엇같은것들!” 하고 욕해댔지만 곁으론 잊지 않고 “또 오시우다”하고 입치례를 했다. 후에야 하복씨는 그 무슨 기미를 알아차렸다. 사자던 물품이 없어 손님이 썩썩 머리를 긁적거리면 하복씨도 잇달아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하복씨는 머리를 썩썩 긁던 손님들이 한숨을 훌 내쉬면서 푸른 하늘이 낮노라고 코대를 잔뜩 쳐들고 으리으리해 서있는 길건너 아빠트를 창너머로 건너다볼 때마다 이상야릇한 무엇을 느끼군 했다. 그러던것이 햇병아리가 껍데기를 까고 머리를 내밀듯 무엇인가 터득해냈다. 찾아드는 손님들은 모두가 “특수사명”을 갖고있는 사람들이였다. 그러니 이 하복상점의 경영방침도 고쳐져야 할게 아닌가? 하복씨는 무릎을 탁 쳤다. 이튿날, “하복상점”은 종일 문을 열지 않았다. 하복씨는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훑었다. 친구를 만나 뒤문을 찾고 돈을 먹이고 마음을 팔고사면서 “오량액” 세명에 “모태주” 한병, “삼오패”권련 한상자, “중화패”권련 두상자, “아스마”권련 한상자를 획득해가지고 힘차고 기세높이 “노다지타령”을 부르면서 귀가했다. 상품은 불이 펄 나게 팔렸다. “오랑액”은20원씩 더 붙였는데도 군말없이 사갔고 “모태주”는 자그만치 50원이나 더 붙였지만 오히려 감지덕지해서 거스름돈 5원은 받지도 않고 달아나버렸다. 마치 누가 빼앗기라도 할듯이 꼭 부둥켜안고 가는 꼴이 우숩광스럽기까지 했다. 며칠새에 4상자의 고급권련도 거덜이 나고말았다. 하복씨는 다시 엉덩짝에 마파람을 일궜다. 그래도 언제나 공급이 수요와 어깨를 같이 할수 없었다. 골머리를 앓는판에 하루는 웬 젊은 각시가 상점을 찾아왔다. 면목이 꽤 서먹서먹한 녀자였다. “어서 들어오쉬우다.” 하복씨는 병신스러운 웃음을 날리며 례절스레 녀손님을 맞았다. 그새 상점안을 좀 현대화해놓아서 웬간한 손님앞에선 목대를 쳐드는 하복씨였다. “참, 이 상점에 뭐 없는게 없구만요. 깨끗두 하구…” 젊은 녀인은 오금을 녹일듯한 웃음을 선물하면서 별로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다가섰다. “헤헤… 뭘요.” 하복씨는 웬일인지 좀 어깨가 처짐을 느꼈다. 그는 면구스레 녀인을 바라보았다. 짙은 향기가 꽃밭인양 풍겨왔다. 요염하게는 화장하지 않았는데 어데서 풍겨오는 향내인지 견딜수 없는 자극을 연해연방 주었다. 말쑥하고 깨끗한 얼굴은 토들감자같은 자기 녀편네의 얼굴짝과 비하면 상아와 두꺼비랄가. 제길할. 이제 백만장자가 되는 날이면 재미를 실컷 볼테다. 그러면 저 등신같은 년편네가 지랄이나서 앙탈쓸거야. 히히히… “저, 여보세요.” “엉… 예.” 꿈속에서 소스라친 하복씨는 입가에 매달린 침방울을 조심스레 닦으면서 의연히 아까의 그 송그스러운 태도로 미녀를 바라보았다. 녀인의 얼굴엔 별스러운 홍조가 떠올라있었다. “저, 이 상점에서‘모태주’두병 사지 않으려는지요?” “아이참, 딱 한병밖에 없는데 그나마 값이 좀…” 하복씨는 녀인의 말을 풀이 못하고 제좋은 생각을 하면서 매대밑에다 숨겨놓은 “모태주”를 끄집어내려고 하였다. “아니, 사려는게 아니라…” “그럼유?” “저한테 두병쯤 있는데 지금은 쓸모가 없구 또 집에다 적치해둘 필요두 없구 해서… 이 상점에서 혹시…” “아… 아… 알만합네다요. 헤헤… 그럼 얼마에유?” 하복씨는 점점 붉어지는 녀인의 탐스러운 얼굴을 맘껏 눈요기를 하였다. “지금 그런게 한병에 얼마씩이나…” 하복씨의 장사골이 대뜸 팽 돌았다. “2백원쯤 하면…” “그럼 180원에 넘겨가지세요.” “헤헤… 170원에 넘겨주세유.” “그럼… 10원쯤이야뭐.” 녀인은 들고왔던 들가방속에서 술병을 조심스레 끄집어내여 매대우에 올려놓았다. 틀림없는 진품이였다. 세상에 이런 복이 어데 있는가?  두병이면 순리윤이 백원도 넘어될게 아닌가. 하복씨가 넘겨주는 돈을 돈지갑에 찔러넣고 곱게 눈인사를 날리며 나가는 미녀를 점도록 바라보던 하복씨는 불현듯 집안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마누라!” 설씨는 나오면서 하품질을 짜악 했다. “아니, 이게 모… 모태…” “에익, 반벙어리상을 하면서… 이렇게 생겨먹은건‘모태주’라라고 하잖습데.” “그래, 고게 정말‘모태주’구만유. 어데서?” “저절루, 쉿!” 하복씨는 큰 비밀이라도 말하듯이 주의를 일으켜놓고는 안해의 귀에다 대고 쏙닥거렸다. “어떤 반편이… 히히… 곱게는 생겼더구만… 허허… 글쎄 이걸… 170원에 넘겨주구… 히히… 냅다뺐단말이요.” “누구게유? 이게 그래 진짜 옳아유?” “이런 등신을… 진짜가 아니믄 뭐 이 하복이가 동네집계집에게 속히울 둔재로 보여?” “호호… 그거야 그렇잖구유. 그런데 그녀가 누구게?” “알게 뭐야! 저기 시정부아빠트 중가문으루 들어가는걸 보아 아마 무슨 처장의 마나님쯤 되겠지. 히히…” 하복씨는 그녀인의 아름답고 인상좋던 얼굴을 그려보면서 연신 히히 웃어댔다. 물론 하복씨는 “모태주” 두병으로 100원에 꼬리가 붙은 순수입을 올렸다. 그후에도 그 녀인이 몇번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물품을 사러오는것이 아니라 고급술이나 고급담배같은것을 팔러 오군 했다. 참, 별일이지. 그후에 그런 녀인이 더 나타났다. 리유라면 자기네 집에는 그런게 필요없다는것이였다. 남편이 담배를 안피운다거니 술을 뗐다거니… 하복씨는 그런 “리유”에는 귀가 솔깃해지지 않고 그저 그 고급물품들에만 눈길이 쏠렸다. 얼마 안되여 “하복상점”엔 고급물품들이 제법 구전해졌다. 이젠 사자던 물품이 없어 한숨쉬며 머리를 긁는 손님도 별반 없었다. 하복씨는 열이 올라서 종적으로 횡적으로 다리를 놓고 나래를 펴면서 상품경제의 새 길을 탐구했다. 하복씨는 상품회수대상자의 사회적위치를 알아내는것을 첫 과업으로 내세웠다. “설계도”가 그려졌다. 시정부아빠트의 1층은 거개가 과장동지들이 차지하고 계셨고 2층은 부시장, 부장님들이 차지하고 계셨고 3층부터는 과원동무들과 각종 잡동사니 형제들이 보금자리를 틀고있었다. 방구조도 물론 달랐다. 120평방메터로부터 45평방메터까지 각양각색이였다. 하복씨의 “설계도”에는 몇층몇호는 xx과장동지, xx부장동지, xx처장동지, xx부시장동지… 라는것이 깨알처럼 적혀있었다. 그래서 손님이 와서 물건을 사들고 어느 현관으로 들어가는것만 보아도 어느 국장네 집, 혹은 어느 처장네 집으로 들어가는구나 하는것을 빤히 보아낼수 있었다. 두번째 과업으로는 탐문이였다. 탐문은 대개 낮에 한다. “그런 집”들을 찾아다니면서 처리할 물품이 없는가고 묻는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으나  차츰 낯이 익고보니 그것도 별일이 아니였다. 고급술, 고급과자, 고급사탕, 고급권련, 고급… 좌우간 고급무엇이 그런 집들에는 너무 많이 쌓여서 문제였다. 자칫하면 쓰레기통에 들어갈판이였다. 그러니 문앞까지 찾아와서 처리해주겠다는것을 마다할리 없었다. 흥정은 물품을 보고 정했다. 곽에 좀 손실이 간것이 있으면 값이 뚝 떨어졌다. 미관이 첫째이니까. 아무리 높이 주어도 본값보다 20ㅡ30%씩 낮춘다. 세상에 이런 장사가 어데 있는가? 어디에 가서 도매해오기보다 몇곱절 나은판이니말이다. “설계도”가 있으니 손님을 위해 봉사하기도 좋았다. 어떤 어리숙한 사람들은 앞문에서 쫓겨와 뒤문으로 찾아왔는데 어느 문이 제문인지 몰라 이마에 근심을 한보자기 달고서 높다란 시정부사택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그럴 때면 하복씨는 그 사람옆에 다가서서 히물히물 웃는다. 웃음으로 먼저 인심을 슬쩍 사놓고는 잇달아 “정보”를 제공해준다. “저… 어는 처장동지네 집을 찾는거나 아닌지요?” “아… 아니…” 도적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은 틀림없이 이런 일에 처음인 사람이기에 일반적으로 통이 그닥 크지 않다. “그렇다니까. xx처의 xx네 집을 찾아야겠는데 통 소경이 갈밭에 든 격이군그래. 당신 아마 잘 알겠지?” 입심좋게 이쯔음을 말씀하시는분들은 이런 일에 썩살이 박힐대로 박힌분들이여서 통이 여간만 크지 않다. 사람에 따라 물건값이 오를수도 내릴수도 있고 있을수도 없을수도 있는 이것이 하복씨의 새로운 상업경영예술이다. “그 집이 저기 저 문으로 들어가 저 2층 오른쪽입지요.” “오, 그럽습니까? 그럼 거저는 못들어가구… 좀 뭘…” “그 량반은 얼굴 한번 붉혀가지구 다니는 일 없잖구 뭡니까? 그저 손가락새에다 하루종일 불을 때면서 다닙지요. 헤헤… 그것두 말짱‘삼오’를 태워주는데 참, 어르신님이 높은 자리에 계시니 입두 높으신거죠. 헤헤…” “음… 그러시우.” 손님은 매대우를 뚜릿뚜릿 살핀다. “뭘 찾습니까?” “글쎄 빈손으로야 어떻게… 그런데 어째 보이질 않군요.” “헤헤… 그런게 어데 있습니까?” “그럼 어쩐다.” “여기 몇보루 있긴 있는데… 사실은 높은 가격으로 가져와놔서…” “얼맙니까?” 하복씨는 문밖을 힐끔 넘어다보고는 세손가락을 펴보인다 손님은 뭉치돈을 매대우에 팽개치고는 하복씨가 넘겨주는 담배보루를 가방안에 밀어넣고는 굽석 인사하고 나갔다. “히히히…” 하복씨는 이마의 잔주름을 식지로 쪽쪽 펴대면서 금방 나간 손님을 창너머로 내다보면서 실컷 비웃었다. 사실은 손님이 찾아가는 그집 주인량반은 담배를 안피우는 “고상한”분이였다. 그러니 이튿날 아니면 사흗날이면 그 담배보루가 도로 하복씨의 매대밑으로 되돌아올수 밖에 없는것이다. 세상에 별 묘한 노릇도 다 있지. 요런것을 생태균형이라 하는게 아닐가. 장사가 아무리 팔고사는 짓이라 해도 요런 장사놀음 세상에 어데 또 있으랴. 이것이야말로 진짜 하복식장사인것이다. 팔고 팔아버린것을 도로 문전에 가서 사들이고 혹은 안주인들이 들고와서 팔아버리고… 세상에! 팔자치고 나앉은 팔자는 이 하복뿐인가 싶다. 어느때부턴가 하복씨는 재미있는 궁리를 하나 해냈다. 즉 물품을 팔때마다 그 물품에 살그머니 표기를 해둔다. 누구도 모르는 곳에 연필로 알릴듯말듯 점을 찍어놓거나 체크를 해놓는다. 그래서 자기한테서 사간 물품이 몇번이나 돌돌이를 하는가를 보았다. 어떤것은 세차례 또 어떤것은 일곱차례… 이렇게 돌돌이를 하는데 참 재미있었다. 그러는 동안 곁에 씌였던 비닐종이가  해여져서 하복씨가 솜씨를 보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새 비닐종이를 얻어다가 잔재간을 살짝 피워놓기만 하면 물품이 새것으로 제꺽 둔갑한다. 얼마나 재미있는 놀음이가. 달마다 초하루날이 있듯이 물품이  되돌아오는 날이 꼭 있었다. 오늘도 “모태주”가 되돌아왔던것이다. 그것도 열세번째로… 기록이였다. 하복씨는 웃음통이 흔들흔들 했다. “노다지 노다지 금노다지 노다진지 지랄인지 알수가 없구나…” 하복씨는 자기의 생활주제곡 “노다지타령”을 흥얼대면서 사이문으로 건너왔다. “여보, 인젠 들어가서 거두매(설거지)나 하오. 덕분에 껄… 코구멍으로 생맥주냄새가 물씬 풍겨나왔다. 기분이 좋았다. “여보세유.” 설씨는 남편이 나타나자 기다렸다는듯이 해쭉 웃었다. “그게 또 팔려갔어유.” “양, 어느게…” “그 열세번째 건너왔던‘모태주’…” “정말이요?” “참, 당신의 날벼락을 맞자구 거짓말 하겠슈. 이번엔 저 맨마지막현관문으루 들어가는걸 보아 아마 인사처…” “쉿, 누가 듣겠소. 그 사람들의 일을 우리가 비밀로 지켜주어야 한다니까. 그래 밑바닥에 표해놓았소?” “아불싸!” 설씨는 울상이 되였다. 하복씨는 큰일이나 저지른것처럼 안해를 찔 흘려보았다. “명심하라는데두.” “다음부턴 꼭…” “음, 그러니 또 순수입이 50원에 꼬리가 달릴판이로구나!” “쉿, 손님이 와유.” 문이 열리더니 손님이 들어왔다. 낯선 손님이였다. 하복씨는 사람좋게 히쭉 웃으면서 손님을 맞았다. “뭘 요구합니까?” “좀 좋은 술과 담배를…” 손님은 명표술과 명표권련을 한아름 안고 기분이 좋아서 나갔다. “또 오세유.” 하복씨는 어깨를 들썽했다. “노다지 노다지 금노다지 노다진지 지랄인지 알수가 없구나…” 하복씨는 자기의 생활주제곡을 부르면서 다시 손님인지 로획물인지를 기다리고있었다.   1990. 3. 28. 열길에서   1990년 6월 16일 흑룡강신문 제3면 “진달래”부간
4    [소설]의자(김철호) 댓글:  조회:1384  추천:16  2009-04-14
리직려행을 떠났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이 달포만에 돌아왔다. 그간 해변가 모래밭에서 피부를 그슬린 탓에 벌거우리해진 얼굴에 퍼그나 젊은 기운이 돌았다. 아직은 능히 지도직책을 더 맡을수 있는데도 빌어먹을 나이때문에 물러서잖으면 안되게 됐던 그다. 능력이 있으면 3, 5년을 더 책임지울수 있다는 문건이 있는데도 기어이 자리를 내라는 통에 훌쩍 리직휴양려행단 행렬에 끼이고말았던것이다. “여보, 내가 왔소!” 울안에 들어서자 마국철이 소리쳤다. 혼자의 목소리가 쩌ㅡ엉 울릴뿐 대답이 없다. 성큼 퇴마루에 올라서면서 마령감은 타고난 색스폰소리같은 목청을 터쳤다. “여ㅡ보ㅡ오!” 그래도 잠잠하다. “이게 어데 가 뒈진게 아니야!” 색스폰소리는 고음 쏘까지 올라갔다. “애개개…” 어디선가 로친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객실문이 여닫기는 소리, 정주 미닫이가 드륵ㅡ열리는 소리가 분주히 들리는가싶더니 현관문이 펄쩍 열린다. 키작은 로친의 양파대가리같은 머리가 불쑥 튕겨져나왔다. “왔어유?” 함박 웃음을 오르라문 얼굴에 겁기가 좀 서린 비굴함이 살짝 발려있었다. “퉤!” 아까부터 혀끝으로 뚜져내다 못뚜져내서 애나 죽을것 같던 고기찌기가 금방 빠져나왔다. 괘씸한 그 고기찌기를 탁 뱉아버리는 순간, 에익 시원하기만 했다. 로친은 낯을 찡그리면서도 웃음만은 그냥 발라둔채 령감 손에서 퍼그나 무거워보이는 크렁크를 받아쥐였다. 그리고는 옆으로 몸을 탈면서 령감이 들어가게끔 쯤을 내주었다. 현관문을 가로타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은 머리를 돌리면서 로친께 부탁의 말씀을 올렸다. “트렁크를 조심하오. 마사질게 있소.” “뭔데유?” “글쎄 그런게 있어!” 그러고는 성큼 문턱을 넘어섰다. 그런데 아불싸! 뒤따르던 로친의 얼굴이 그만 새파랗게 질린다. 마령감이 무릎노리를 붙들면서 그자리에 폴싹 물앚고있었던것이다. 댕댕하게 켕긴 얼굴은 파랗다못해 까맣게 색이 죽어간다. 이마의 퍼런 힘줄은 푸들푸들 뛰고 입술은 파르르 떨린다. 풍이 오는게 아닌가? 로친은 트렁크를 덜렁 놓으면서(주의를 준걸 깜박 잊고) 령감께 다가갔다. “왜 이래유? 갑자기…” “으흐흥… 아이쿠…” 마령감이 연신 무릎노리를 주물러대면서 서슬이 돋친 눈을 험악하게 지릅뜨고 오만상을 찡그린다. “아파… 아파… 뒈질… 이건… 아이쿠…” “참, 령감님두, 눈은 보라는겁지 뭐 띠꼬리에 지르구 다니라구 뚫어진겐줄 알아유.” “아이쿠… 이건 갑자기 어데서 나진 물건짝이야?” “호호… 순철, 그 사람이, 아니 그 김국장어른이 가져온거예유.” “그 자식은 왜 이따위걸 가져왔대?” “볕쬐임이랑 할 때 베란다에다 내다놓고 앉으면 좋다더구만유.” “좋긴 뭐가 좋아. 정 생각해줄려면 차라리 흔들의자나 가져올게지. 더럽게…” “그렇게 생각했다가 괜뒀다더구만유. 베란다가 그닥 크잖지 또 령감은 사무실에서랑 언제나 까딱않고 앉아 사무를 보는 습관이랑 있다면서유. 그래서 이렇게 네발이 든든한 의자를 손수 만들어온게라누만유.” “뭐, 손수?” 한달전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은 자기 무릎을 쳐놓은(사실은 자기가 박았지만) 장본인ㅡ꽤나 그럴듯하게 만들어져보이는 의자를 아니꼽게 보면서 간신히 허리를 폈다. 숨이 좀 돌아서는 모양이다. “자식, 국장자리에 올려놨더니 할일 없는 모양이지. 이따위걸 다 만드는걸 보니. 다들 눈이 멀었지. 나두 멀구… 쯧쯧… 그런데 그자식 언제 이런 재간을 익혀뒀나?” “순철이… 아니, 김국장, 그 어른네 집의 가구는 말짱 손수 만든거라더구만유. 대학 두개씩 나오면서 어느새 배워둔 재간인지 참 능력있는 사람이라니깐유.” “자식, 부국장질 합네 하면서 전문 못된 짓만 해댔군. 뒈질…” 마령감은 덩그렇게 놓여져있는 의자를 이리저리 흔들어보았다. 무릎이 아직도 새큼해나는 모양, 한손으로 계속 주물러댄다. “이게 견딜가?” 찔끔 로친을 쏘아본다. “참나무로 만들었다던데유.” 령감의 우람진 체구를 바라보며 로친이 힐끔 눈길을 던진다. 마령감은 석마짝같은 엉뎅이를 의자레 털썩 실었다. 삐꺽, 어데선가 들리는 의자의 신음소리다. 그는 엉뎅이를 이리 움찔 저리 움찔해보았다. 삐꺽소리가 다시 없었다. 틀림없이 소리가 난것 같은데… 머리를 수그리면서 자꾸 엉뎅이를 비탈아보았으나 소리가 나지 않았다. “금방 무슨 소릴 못들었소?” “글쎄유.” 마령감은 석마짝같은 엉뎅이를 자꾸 들었다놨다 하면서 신경질을 부렸다. 꼭 못쓰게 만들어야 시름을 놓을 잡도리 같다. “여보쉬, 그게 쇠붙이루 만들었대두 못배기겠어유. 그렇게 둔중한 몸집으로 조겨대면 돼유?” 마령감은 눈을 흘기면서 로친의 양파대가리같은 동그란 얼굴에 박힌 좀 불룩 튕겨나온 밉상한 눈을 쏘아보다가 벌떡 일어나 객실로 들어갔다. … 오전나절의 해볕은 참 좋았다. 쨍하니 쏟아지는 해볕이래도 아직은 독기가 오르잖아 볕쪼임하기가 안성맞춤이다. 마령감은 달포가량 해변가에서 이런 해볕보신을 단단히 한탓에 그새 퍼그나 허리통에 힘감각이 커보였다. 마령감은 베란다에 나서서 쏟아져내리는 해볕을 맘껏 쏘이면서 태권도도 아니요 무술동작도 아닌 즉흥적인 동작ㅡ주먹질, 발길질, 머리질을 해대다가 갑자기 기능잃은 기계사람마냥 허공을 긋던 주먹질을 그대로 둔채 굳어져버렸다. “저, 여보!” “예ㅡ에” 로친의 목소리를 듣고야 동작을 풀면서 머리를 돌린다. “거, 의자를 들어오오. 베란다에 놓고 해볕쪼임이랑 하라고 우리 그 김국장어른님이 만들어왔다는 그걸말이오. 나 좀 앉아 보게스리.” “무거운걸 내가 어떻게…” 로친의 짜증섞인 말이다. “그것 하나 못들 주제면 서산에 가 등록하고말거지 숨통은 왜 품고다녀.” 마령감은 눈을 지릅뜨고 방안을 노려보면서 씹어삼킬듯이 이발을 악문다. “당장 못들어올가!” “예ㅡ에.” 로친의 천만 주눅이 든 목청이다. 키작은 로친이 양파대가리같은 머리를 갸우뚱거리면서 간신히 의자를 들어왔다. 문턱을 몇개 넘느라고 무척 힘겨웠던 모양, 주름이 쪼골쪼골 패인 이마에 땀방울이 뾰족뾰족 내돋혔다. 한달전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은 의자를 닁큼 받아서 쾅 소리나게 콩크리트바닥의 베란다에 놓았다. 그리고는 또 그 석마짝같은 엉뎅이를 의자에 쾅하고 놓았다. 잠시 만족스러운 표정이 흘렀다. 한달전 마국장답다. 위엄도 있고 자태도 의젓하다. “떨그럭…” (엉?) 마령감은 자취소리 들은 토끼마냥 눈을 휘둥그래 뜨고 귀를 벌쭉 강구었다. “금방 떨그럭 하는 소릴 들었지?” 마령감은 다시 힘껏 엉뎅이질해댔다. “떨그럭, 떨그럭…” 확실히 소리가 났다. 로친은 아첨기가 함빡 발린 웃음을 날리면서 금덩이가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은듯이 령감 보고 좋아했다. 마령감은 눈살을 치키면서 음흉하게 웃는다. 눈에서는 적의의 빛까지 번뜩거렸다. “떨끄럭, 떨그럭…” 석마짝같은 엉뎅이를 흔들 때마다 그 소리가 더욱 요란하다. “이렇단말이오. 편안히 해볕쪼임을 하라고 손수 만들어왔다는 의자가 이렇게 떨그럭대니 편안할수가 있소?” 의자에서 내린 마령감은 다시 두 손으로 의자 등받이를 거머쥐고 마구 흔들어댔다. 떨그럭소리가 분주하다. 머리를 수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의자를 흔들던 마령감의 입귀가 갑자기 일그러지면서 눈꼬리에 다가가 붙는다. “의자다리가… 하하… 의자다리가…” “의자다리가 왜요?” “짝짝이란말이요. 여보, 사람도 한쪽 다리가 길고 한쪽 다리가 짧으면 어떻게 서있게 되는지 알겠지? 또 걸을 때면 어떤 꼬락서니니라는것두말이요?” “그게사 삐뚤스레 서있게 되고 걸을 때면 뻐꾹, 뻐꾹…” 로친은 제법 절름발이상까지 해보였다. “하하하…” 마령감은 못참겠다는듯 웃음보를 터뜨렸다. 남들의 병집을 뚱겨주고 쩔쩔매는 꼴을 볼 때마다 잘 웃던 그런 호걸찬 웃음을 껄껄 웃었다. “이런 주제에 뭐 의자를 만들어 선물한다구. 흥, 무슨 일이나 이따위로 어설프단말이요. 난 의자를 만들라면 이렇게 만들진 않겠소.” “당신, 톱질 한가락 할줄 알던가요, 못질 한망치 할줄 알던가요? 목수일엔 숙맥이면서두 흰소린…” “뭐야, 안하니 그렇지, 한다면 그렇다는거야. 잔말말구, 냉큼 톱을 가져와!” “톱은 왜서유?” “이 다리갱일… 저기 저 긴쪽을 좀 잘라버려야겠어.” “당신 되겠어유?” “이런… 어서 못가져오겠어!” “에ㅡ에” 양파대가리가 깜쪽같이 집안으로 사라져 들어가더니 또 깜쪽같이 나타났다. 조금후 녹쓴 톱 한자루가 한달전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의 손에 쥐여졌다. 로지심이 금방 벼린 선장을 손에 들고 우쭐대면서 득의에 차서 히쭉 웃던 때보다 더 양양해서 녹쓴 톱을 흔들어댄다. 무릎을 꿇고 엎딘 마령감은 머리를 콩크리트바닥에 착 붙이고 한쪽 눈을 지긋이 감고 역사하다가 콩크리트바닥과 의자다리 시이에 손톱눈의 4분의 1 되나마나한 쯤사리가 있는것을 발견했다. 연필꽁다리로 길다고 보여지는쪽의 의자다리에 벨만큼 겨냥해 금을 그었다. 그리고는 멱딴 돼지를 엎어놓고 튀할 때처럼 의자를 희뜩 엎어놓고는 금이 긋긴 자리에 톱날을 걸었다. “자, 붙잡소!” 로친은 거세당하는 수퇘지 다리갱이를 붙잡듯이 걸상다리를 붙잡고 올롱한 눈길로 령감만 바라볼뿐이다. “스륵, 스륵…” 녹쓴 톱이긴 하나 그만하면 괜찮게 베여지였다. 걸상이 옳바로 놓였다. 다시 석마짝이 메쳐졌다. “떨그럭…” 의연히 어데선가 재수없는 소리가 들린다. 마령감은 머리를 빼끔 하면서 의하스런 귀를 강군다. 틀림없이 떨그럭소리가 났다. 다시 엉뎅이를 탈아보았다. 계속하여 소리가 났다. 마령감은 사타구니새로 의자다리를 굽어보면서 이마살을 잔뜩 찡그린다. (무슨 놈의 감투끈이람. 금방 긴쪽 다리갱일 베버렸는데두?) 마령감은 다시 콩크리트바닥에 코마루를 붙이고 한쪽 눈을 지긋이 감았다. 음, 좀 훤해보이는 쯤새가 알렸다. 길다고 베버린 다리가 아니라 이번에 저쪽것을 베여버려야 했다. 금방 너무 들이벤것 같았다. 이쪽 다리갱이에다 손톱눈으로 금을 긋고(연필꽁다리가 어디로 굴러갔는지 찾을 방법이 없었다.) 다시 의자를 휘뜩 엎었다. 로친은 라태함이 없이 그 짧고 약한 팔로 의자다리를 붙잡아주느라고 성의를 다했다. “스륵, 스륵…” 다시 의자가 옳바로 놓여지고 석마짝이 쿵 메처졌다. 음, 마령감의 입귀가 실룩한다. 이번에야 하는 배심이 기분좋게 입가에 발려졌다. 량감님의  대사에 한몫 알뜰한 힘을 보태줬다는 자호로 어깨가 달싹해진 로친은 손바닥을 살살 비비면서 해시시 웃는다. 석마짝이 아무리 굴려져도 의자는 벙어리 그대로이다. 그럼 그렇겠지. “어떻소?” “소리가 없어유.” “보오. 이제야 내가 톱질 한가락 할줄  모르는 놈이라고 비웃질 않겠지.” “호호호…” 호들갑스레 웃으면서 양파대가리를 흔들던 로친의 입이 갑자기 조금 뾰죽이 삐여져 나온대로 그만 고정되여버렸다. 눈길도 퍼그나 놀람스럼 모양, 까딱 움직이지 않는다. 의자다리쪽을 뚫어지게 쏘아보던 로친은 령감의 잔등을 조심스레 앞으로 민다. “몸을 좀 앞으루 숙여유. 그렇지, 뒤다리가 들리게스리. 응 됐어유.” 로친의 손엔 나무쪼각이 쥐여져있었다. “이게 다리밑에 끼웠더구만유.” 로친은 퍽 송그스런 모양이다. 구슬픈 눈길로 령감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톺았다. 로친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떨그럭소리가 화답이라도 하듯이 징그럽게 들렸다. 마령감은 다시 콩크리트바닥에 이마를 대고 의자다리를 들여다보았다. 저런, 저쪽 다리갱이가 콩크리트바닥에서 이렇게ㅡ손가락두께만큼이나 들여있었다. 엄청난 간격이 일견에 알렸다. (너무 벴군.) 스륵스륵… 떨그럭 떨그럭… 스륵스륵… 떨그럭 떨그럭… … … “여봐유, 이렇게 한정없이 베기만 하면 될가유?” “무슨 놈의 잔소리가 이리두 많아!” 잘못된것이 다 로친의 탓인양 쏘아보는 마령감의 눈길엔 불꽃이 튕겼다. 스륵스륵… 떨그럭 떨그럭… 한달전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의 이마에선 구슬같은 땀방울이 시내물처럼 흘러내였다. 그러나 마령감은 결사적이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빌어먹을 다리갱이들이 걸맞지를 않는다. 이쪽이 길잖으면 저쪽이 길고 이쪽을 베면 저쪽이 들리고… 인젠 한뽐은 남아 베버린것 같다. 멋지던 의자가 단통 앉은뱅이 의자로 돼버렸다. 이런 꼴불견이라구야. 의자라기보다 아이들이 타는 썰매라고 하는편이 나을것 같다. 그래도 한달전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은 손을 뗄념없이 머리를 콩크리트바닥에 착 붙이고 눈초리를 실오리처럼 만들어가지고 어느 다리갱이가 더 긴가고 가늠해보기를 그만두려 하지 않는다. “꽉 붙잡으란 말이오. 오뉴월 손 언놈이 남의 일하듯이 너펄뜨레 붙잡지 말구 좀 성의를 보이란말이오.” 마치 여지껏 모든 잘못이 다 로친이 잘 붙잡아주지 않는탓에 있는듯 으르렁대는 령감을 주눅이 들긴 했지만 반항기가 서린 눈으로 곱잖게 쏘아보던 로친은 다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의자다리를 잡는다. 손가락두께만큼에다 그어놓은 금에 톱날이 걸렸다. 스륵스륵… 한창 내려가던 톱날이 뭔가에 걸려 턱 서렸다. 그통에 의자를 붙잡고있던 로친이 휘청 끌리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의자다리를 붙잡은채 비틀 몸을 쌔리웠다. 찰라, 톱날이 비탈리면서 쟁그랑 끊어지고말았다. 한달전의 마국장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의 얼굴은 단통 문어대가리처럼 시뻘개졌다. 로친의 얼굴은 7월의 떡갈나무잎처럼 새파래졌다. 콩크리트바닥에 버티고앉아 한손으로 가슴을 문대면서 다른 한손으로 콩크리크바닥을 쓸던 로친이 갑자기 새된 소리를 질렀다. “이 바닥을 좀 봐유. 이쪽이 이렇게 꺼져있었구만유. 여기에다 의자를 놓으니 그 다리갱이가 방정할수 있었유.” 엉? 마령감은 둥굴소 눈이 되여 콩크리트바닥을 바라봤다. 꺼져있는 자리가 일견에 알렸다. 한달전의 마국철ㅡ지금은 그저 마국철인 마령감은 씩씩 황소숨을 톺더니 발을 탕 굴렀다. “도끼를 가져와!” 소리를 꽥 지르면서 광기어린 눈길을 휘저었다. 로친의 조금 빼여져나온 밉상이눈이 금방 빠질것만 같다. “도끼를 해선 어쩌려구요?” “이런 잔소리라구야! 가져오라면 가져오는거지!” “예ㅡ에.” 로친은 문턱에 걸려 넘어지면서 집안으로 사라져버렸다.   1997년《천지》 9월호  
3    [소설]산딸기.2(김철호) 댓글:  조회:1318  추천:18  2009-03-04
5   그해 여름방학에 나는 연길에 가서《언어연구소》의 리소장을 만났다. 그는 이전에 나의 론문을 추천하고 발표해준분이다. 학생시절에 나는 언어연구에 관한 론물 몇편을 발표하여 인기를 끈적이 있었다. 그때 리소장은 나에게 많은 조언을 주었다. 이번에도 리소장은 나더러 론문을 써보라고 했다. 흑석에 돌아온후 나는《우리 말 토에 관하여》라는 소론문을 리소장에게 부송했다. 얼마후 나의 론물이《언어연구》잡지에 발표되였다. 그때 나는 얼마나 기뻐했던가! 그러던 어느날 최교장선생님의 알선으로 어느 사범학원졸업생인 공사중학교의 한 총각선생이 선보러 나한테로 찾아왔다. 나는 좋은 말로 그를 되돌려보냈다. 그날 만룡이는 시물시물 웃으면서 나를 골려주었다. 《조선생님, 기쁘겠습니다. 인젠 흑석도 리별이겠군요. 섭섭한데요…》 말은 이렇게 해도 그의 눈엔 서운한 마음이 비껴있었다. 나는 그의 눈에서 그 어떤 갈망으로 불타는 절절한 광채가 번뜩하다가 가뭇없이 사라짐을 보아냈다. 나는 웃으면서 만룡의 롱을 받았다. 《흑석이 얼마나 좋아요. 흑석의 물은 얼마나 맑고 흑석의 산딸기는 얼마나 단가요. 내가 그까짓 공사마을 중학교가 부러워 떠날것 같아요? 천만에, 나는 할머니가 지어주는 음식이 세상 제일 맛있어요. 파란 햇완두를 얹고 지은 조밥, 시원한 열무김치, 빨간 고추장, 취쌈, 깨잎, 구운감자… 그보다 뜨거운 할머니의 정성을 팽개치고 가면 어디로 간다구 그래요…》 어느새 왔는지 할머니가 채소바구니를 들고 우리옆에 서있었다. 그도 나의 말을 들었는지 슬며시 눈굽을 찍는것이였다. 나는 순박하고 어진 드들을 속였다. 마음에 없는 말을 했으니말이다. 그러나 만룡이는 단통 헤벌쭉해지더니 어린애마냥 좋아했다. 《정말입니까? 아무튼 저에게 초중과목까지야 가르쳐주고 가야지요.》 《그다음엔 제가 아무데를 날아간대도 의견이 없겠군요. 호호호…》 그는 시물시물 웃으며 머리를 썩썩 긁기만 했다. 그 이튿날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날이 횅창 밝아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는 쌀을 씻고있었다. 나는 이부자리를 포갠후 카텐을 거두면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만룡이가 마당 한복판에 말뚝처럼 버티고 서있었는데 그의 발치에는 잘 패놓은 장작들이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한손에 도끼를 쥔채 만룡이는 우두커니 수양버들을 바라보면서 히죽이 웃을을 짓고있었다. 이상히 여긴 나는 그의 눈길을 따라 수양버들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창문을 살며시 열었다. 청신한 공기가 페부를 적셔준다. 산간마을으 아침공기는 맑고도 시원했다. 호기심에 끌려 수양버들에 눈을 준 나는 그만 어이없이 웃고말았다. 한쌍의 고운 새가 나무가지에서 쫑긋쫑긋 뛰여다니면서《련애》를 하고있었다. 만룡이는 입을 벙글서 벌리더니 새를 보고 혼자 중얼거리는것이였다. 《날아가지 말아라. 거기에 둥지틀고 알을 낳고 살란말이다. 우리 집이 얼마나 좋니! 나와 할머니는 다 좋은 사람이다. 날아가지 말어. 날아가지 말어…》 나도 어느새 새들의《련애》에 정신이 팔렸다. 암컷은 그만 수컷에게 반하고말았다. 수컷은 부리로 암컷의 깃을 다듬어주면서《사랑》을 고백했다. 그들의 사랑이 바야흐로 무르익으려는 순간 정지문이 덜컹 열리더니 할머니가 물통을 들고 나가 구정물을 버드나무밑에 활 던졌다. 그바람에 놀란 한쌍의 새는 저 멀리로 날아가버렸다. 《야, 할머니두 참…》 《엉?!》 만룡이가 다시 뭐라고 말하려고 머리를 드는 순간 나와 그의 시선이 마주치게 되였다. 그는 머리를 썩썩 긁더니 쑥스레 웃으면서 도끼를 들어 나무를 패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만룡이가 나에게 애욕을 갖고있는게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순간이였다. 하늘땅이 바뀌면 몰라도 그가 어찌 나한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품겠는가… 나는 사범졸업생이고 그는 나에게서 몇글자 배운 학생에 지나지 않으니말이다.   6   그해 가을의 어느날이였다. 하학후 집에 돌아오니 만룡이와 할머니가 큼직하 항아리를 앞에 놓고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나는 의혹에 찬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만룡이는 말없이 낡은 편지 한통을 나에게 주었다. 그것은 만룡의 아버지의 유서였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씌여있었다. 《…나는 조선어를 연구하는 가운데서 좀 과겨간 말을 하였다 하여 세상의 버림을 받았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해볼 생각이였다. 그런데 쇠약한 이 몸이 령혼을 배반하려 한다. 애절쿠나, 의기쇠진한 이 몸이 기름이 다한 등잔이 됨이. 이 자료더미를 너에게 맡긴다. 꼭 아버지의 유언을 현실로 되게 하여라. 뜨락 앵두나무밑에 묻어둔다…》 만룡이는 항아리속의 기름종이에 싼 물건을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그리고 말없이 조용히 기름종이를 풀었다. 두툼한 노트들이 구둘에 쌓였다. 그것은 언어연구에 관한 재료들을 정리해놓은 노트들이였다. 그중에는 내가 지금 집필하고있는 론문에 극히 필요한 재료도 있었다. 력사적근거가 충분하고 준확하여 나의 론문에 그 자료를 인용하기만 하면 례문이 아주 명철할 그런 자료였다. 나는 어찌도 기뻤던지 보배나 주은듯 했다. 만룡이는 나를 보면서 침통히 말했다. 《조선생님 덕분에 나는 새로운 천지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글을 통해서만이 볼수 있는 천지입니다. 저는 하마트면 평생 까막눈이 되여 아버지가 어떤 유언을 남기고 가셨는지도 모를번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서가 할머니의 농밑에 있었습니다. 할머니도 여태 그것이 뭔지 모랐습니다.》 《이걸 조선생님이 맡아 쟤 아버지의 유언을 실현시켜주우.》 이렇게 말하는 늙은이의 눈엔 눈물방울이 맺혀있었다. 나는 격동된 심정으로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나의 두번째 론문이 인차 집필되였다. 나는 원고를《언어연구》잡지사에 발송했다. 원고는 인차 채용되였다. 그때 나는 얼마나 기뻤던가! 나는 희망의 고봉에라도 오른듯 했다. 이 기쁨을 나누고싶어 나는 하숙집으로 뛰여왔다. 집은 텅 비여있었다. 웃방문을 열어보니 만룡이가 요를 펴놓은채 학습장을 한구들 가득 널어놓고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나는 갑자기 만룡이의 학습정황을 알고싶었다. 나는 그의 학습장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문자를 다루는것이 이전보다 훨씬 제고되였고 글씨도 퍽 여물었다. 그날 나는 우연히 요밑에서 만룡의 일기책을 발견했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훔쳐보았다. 아래것은 그날에 본 만룡의 일기 몇토막이다. 《오늘 조선생님과 함께 산보했다. 더워서 조선생님을 속이고 아래목에 내려가서 목욕하고 왔다. 돌아오는 길에 산딸기를 따왔다. 조선생님은 딸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조선생님은 나를 어찌도 쏘아보는지… 조선생님이 나를 쏘아볼 때 나는 그가 성을 내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공사마을 총각선생님이 선보러 왔다. 그가 우리 집으로 들어올 때 나는 그를 쫓아버리고싶었다. 어쩐지 그 사람이 곱지 않게 보였다. 그러면서도 조선생님이 훌륭한 사람을 만나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 간절했다.》 《오늘 조선생님이 나더러 라는 작문을 지으라고 했다. 우리 집 식구는 나와 할머니 둘뿐이 아닌가? 그런데 웬 일인지 로 첫머리가 떼여지는것이였다. 나는 조선생님이 볼가봐 부랴부랴 를 로 고쳤다. 조선생님은 필경 우리 집 식구가 옳은데 왜서 우리 집 식구로 될수 없는가? 조선생님이 영원히 우리 집 식구가 되였으면 좋으련만…》 그 일기장을 이만큼 기억한것도 그것이 하도 나의 마음에 크게 자극을 주었기때문인것 같다. 나는 일기책을 팽개치고 부랴부랴 방에서 뛰쳐나왔다. 아, 만룡이가 그런 생각을… 나는 나의 가슴속에도 만룡이와 꼭같은 생각이 있다는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불현듯 그를 좋아한 자신을 발견했던것이다. 그가 목욕하는것을 훔쳐보았을 때부터였는가? 아니면 그보다 퍽 전 그의 어글어글한 두눈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였던가… 아무튼 나는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다는것만은 사실이였다. 나는 만룡이로 하여 끓어오른 그 무엇이 나의 가슴속에서 튕겨나오려 한다는것을 몇번이고 느꼈다. 그것으로 하여 나는 또 수치감까지 느낀적이 있었다. 물론 만룡이의 눈이며 곱슬머리며 몃진 체구에는 처녀들의 눈을 끄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사회에 내놔도 그런것은 아니다. 그는 나한테서 글 몇자를 배운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나는 그를 나의 미래의 생활과 련계시켜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바야흐로 문단에 두각을 드러낼 내가 어찌 만룡이와 함께 생활의 천평우에 오를수 있겠는가? 아무리 내가 자기희생을 한다쳐도 그 천평을 어찌 평형잡을수 있겠는가? 미구하여 내앞에 펼쳐질 길은 오색령롱한 주단이 깔린 희망의 길일것인데 그 길을 만룡이가 나와 함께 걸을수 있겠는가? 한때 내가 그를 동정하고 그 처지를 가긍히 여겨 그에게 지식의 대문을 여는 열쇠를 주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정이였지 결코 련정을 아닌것이였다.   7   한달후《언어연구》편집부에서 나를 림시편집으로 빌려쓴다는 통지서가 왔다. 할머니는 몹시 서운해했다. 내가 할머니에게 림시로 가서 일을 보는것이라고 말씀을 드려도 할머니는 보물을 빼앗긴듯 몹시 억울해했다. 떠나던 날 할머니와 최교장네가 동구밖까지 나를 바래주었다. 만룡이는 소수레로 나의 짐을 사자툰까지 실어다주었다. 뻐스역에 도착하여 수레에서 나의 짐을 부리우던 만룡이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걸 어쨌습니까?》 나는 쓸쓸히 웃었다. 《그것》이란 만룡 아버지의 유물을 말하는것이다. 아침에 만룡이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나는 그것을 방에 숨겨두었다. 어쩐지 나는 그것을 받을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것이 더없이 귀중한것이긴 하지만 내가 만약 그것을 받는다면 만룡이는 내가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는것으로 잘못 생각할가봐 두려워 두고 온것이였다. 나의 생각은 얼마나 유치하고 미련했던가. 그러나 나는 그런 내속을 숨기며 슬쩍 딴전을 댔다. 《오해마세요. 그건 만룡 아버지의 유물이예요. 나는 감정상에서 부친의 유물과 아들을 갈라놓을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토록 귀중한 유물을 내가 어찌 차지할수 있겠나요.》 《그 말은 틀렸습니다, 틀렸습니다!》 만룡이는 펄쩍 놀라 부르짓었다. 그는 나를 원망스레 쏘아보다가 몸을 돌려 오던 길로 되돌아 줄달음을 놓는것이였다. 뻐스는 한시간후에 떠났다. 뻐스가 금방 떠나자 만룡이가 언덕길에 나타났다. 그의 어깨엔 큼직한 보짐이 메워져있었다. 《그것》이였다. 차가 떠난것을 본 만룡이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않아버렸다. 나는 코마루가 시큼해나서 제꺽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었다. 다시 머리를 들어 차창밖을 내다보니 만룡이는 보이지 않았다. 현성에 도착한 나는 연길로 가는 기차를 기다려야 했다. 아직도 반나절 시간이 있었다. 나는 시내구경도 하고 식당에 가서 저녁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저녁차를 탔을 때엔 날이 이미 어두웠다. 자리를 정해 앉은후 습관적으로 차창밖을 내다보던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말았다. 만룡이가 플래트홈으로 들어서고있었던것이다. 황황히 자창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이글거리는 숯불 같았다. 그가 보짐을 그냥 메고있는것으로 보아 나를 찾고있다는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차창을 열면서 그를 불렀다. 나를 발견한 만룡이는 노루처럼 풍풍 뛰여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로 보짐을 창문으로 올리밀었다. 그제야 그는 만시름을 놓은듯 숨을 훌 몰아쉬는것이였다. 나는 량심의 가책으로 하여 가슴이 막 미여지는듯 괴로왔다. 그러나 만룡이는 헐떡헐떡 숨을 몰아쉬면서도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있었다. 그 웃음은 그렇듯 천진하고 가식없는 순결한 마음이 담긴 웃음이였다. 나는 목이 메여 멍하니 만룡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발차를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자 만룡이는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왔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려고 바깥으로 몸을 내밀었으나 그는 나를 바라볼뿐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물기가 빛을 뿜고있었다. 차는 서서히 떠났다. 《조선생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만룡이는 입술을 깨물고나서 겨우 한마디를 한다. 순간 나는 귀중한것을 놓치는것만 같아 한사코 손을 뻗쳤다. 말룡이도 손을 들어 나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점점 속력을 내는 렬차는 우리들 사이를 갈라놓고야말았다. 나는 옥죄여드는 가슴을 붙안고 점점 멀어져가는 말룡이를 바라보았다. 집에 갔다가 사자툰까지 달려와 마지막 뻐스를 타고 현성까지 와서 차시간을 놓칠가봐 또 역전까지 달려왔을 만룡이를 생각하니 나는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이제 현성에 아무런 친척도 없는 저이가 이 밤을 어디에서 셀가? 나는 차창으로 휙휙 스쳐지나가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두볼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순간, 나는 뭔가 그리워졌다. 초가삼간 온돌우에서 저녁상에 마주앉아 웃음꽃을 피우던 저녁이 그리웠다. 남포등밑에서 코를 끄슬리며 만룡이에게 글을 가르쳐주던 때가 그리웠다. 갑자기 나는 시장기를 느꼈다. 이맘 때면 할머니가 찹쌀구이나 감자를 구워주겠지 하는 생각에 나는 가슴이 물클해났다. 이 모든것이 이젠 끝난 이야기거리로만 남았구나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옥죄여들었고 무언가 나의 몸에서 가장 귀중한것을 잃은것만 같았다. 꼭 있어야 할 그 무엇이 몸에서 갈리여 나가는것만 같아서 나는 더없이 아쉽고 슬펐다. 그래 내가 귀중한 그 무엇을 잃지 않았단말인가? 나는 애틋한 감정을 잃었을뿐만 아니라 주요하게는 신의를 저버렸다. 순박하고 어진 만룡이와 할머니의 나에 대한 그 깨끗한 신의를…   8   며칠전 뜻밖에도 만룡이가 나를 찾아왔다. 지금 마을에서 소형수력발전소를 세우고있는데 자기가 그 공정을 책임졌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자기들이 그린 설계도와 공정계획표를 지구농전국으로 심사받으러 오던길에 들렸노라고 했다. 그는 큼직한 구럭을 내놓으면서 어색하게 얼굴을 붉혔다. 《할머니가 어찌나 가지구 가라는지… 도시엔 이보다 더 좋은것이 많다고 해도 그냥 참… 이건 이슬밭에서 따온것입니다.》 그것은 생신한 산딸기였다. 향기를 풍겨주는 흑석의 산딸기였다. 나는 코마루가 저려나서 가까스로 할머니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만룡이는 할머니가 여전히 정정하다고 말한후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집에 또 사범졸업생 선생님 한분이 들었습니다. 남선생님이십니다. 할머니는 기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냥…》 떠날 때 그는 나에게 슬며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지난번 학교에서 초중졸업시험을 칠 때 나도 쳐보았습니다.》 《그래서요?》 《성적이 수수했습니다. 래년부턴 고중과목을 배우려 합니다. 그리고 늦지만 않으면 통신학부같은것도… 히히… 다 꿈같은 소리지요.》 《해요. 꼭 될수 있어요. 학습자료는 내가 제때에 구해드리겠으니 꼭 해봐요.》 만룡이는 히죽이 웃다말고 돌아서서 걸어갔다. 그러던 그는 되돌아서서 어색하게 나를 바라보며 머리를 썩썩 긁는다. 순간 나는 어쩐지 답답해나면서 몰래 가슴이 높뜀을 느꼈다. 저이가 뭘 말하자고 저럴가? 그는 주밋거리더니 멋적게 입을 열었다. 《전, 결혼했습니다. 중학생이라고 뽐내던 이쁜이가 저의 안해로 되였습니다.》 그는 손을 들어 한번 휘젓더니 인차 돌아서서 털썩털썩 앞을 향해 걸어갔다. 순간 나의 가슴속에서는 무엇인가 덜컹 떨어지느것만 같았고 알지 못할 그 어떤 욕망이 머리를 쳐드는것만 같았다. 나는 달려가서 만룡이를 막 붙잡고싶었다. 그라나 나는 그렇게 할수 없다는것을 자감했다. 만룡이는 오늘도 흑석에서 발전소공정을 하느라고 땀벌창이 되여 일하고있을것이다. 80년대에 들어섰으나 아직도 남포등신세를 지고있는 고향을 변천시키느라고 변변치 않은 지식을 리용하고있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만룡이는 비록 아버지의 유물에 대하여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은 나에 대한 도전인것이다. 그날 나는 그 한구럭의 산딸기를 갖고 거리에 나섰다. 나는 거리모퉁이에서 장난치고있는 조무래기들에게 산딸기를 한줌한줌 나누어주었다. 그들은 좋아라고 날뛰며 달려갔다. 애들의 뒤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흑석의 산딸기를 먹을 자격이 없는 자신을 뼈저리게 느꼈기때문이였다. 언제, 언제 다시 흑석의 산딸기를 먹을는지? 아, 잊지 못잊을 흑석이여! 못잊을 산딸기여!   1983년《아리랑》(연변인민출판사)  
2    [소설]산딸기.1(김철호) 댓글:  조회:1267  추천:12  2009-03-04
1   흑석이 어디에 있는가? 나는 흑석이라고 불리우는 마을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터였다. 허지만 그곳이 항시 나의 마음속에 둥지를 틀고앉아 미묘하고도 야릇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고장이여서 나는 가끔 이렇게 자문하기도 한다. 검은 돌이 많다고 흑석촌이라고 부르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심산벽지에 자리잡은 마을주변과 개울가며 산비탈에는 온통 거무칙칙한 돌천지이다. 허지만 흑석촌은 매우 아름다운 고장이였다. 산기슭에 오붓이 들어앉은 아담한 마을앞으로는 수정같이 맑디많은 벽계수가 감뛰며 흐르고 앞산뒤산에는 울울창창한 숲이 꽉 우거졌는데 그속에는 약재같은 보물이 쌔고버렸다. 그런데 이렇듯 좋은 고장에 아직도 전가가 들어가지 못했고 또 교통이 말째여서 사람들의 한탄을 자아내군 한다, 흑석촌은 연길에서부터 기차로 하루, 뻐스로 반나절, 또 소철을 타고 몇시간을 좋이 가야 닿는 장백산의 막치기였다. 1981년 여름, 나는 졸업배치장을 지니고 흑석학교에 찾아갔다. 차에서 내려 자주 들추는 소수례에 옹송그리고 앉아 흑석땅에 들어섰을 때의 나의 감정은 미개척지에 첫발을 들여놓는 풋내기 탐험가의 그런 신비감과 놀라움, 그리고 의혹감에 사로잡혔다. 나는 학교 가까이에 있는 박할머니네 집에 하숙을 정했다. 그 집은 할머니와 그의 손자뿐인 단출한 식솔이여서 내가 들어있기에는 알맞춤했다. 그날 저녁 나는 할머니와 같이 가마목에 자리를 폈다. 말끔하고 깨끗한 장판방에서 자라는것을 나는 뜨끈뜨끈한 가마목이 소원이라고 우겼다. 할머니는 호두알처럼 주름살이 가득 잡힌 얼굴에 웃음을 띠우며 혀를 끌끌 찼다. 손자는 목장에 가고 없었다. 이튿날 자리에서 일어나니 벌써 가마에서는 흰김이 물물 피여오르고있었는데 구수한 토장국냄새가 구미를 당겼다. 그런데 할머니는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문득 바깥쪽으로부터 소곤소곤 말소리가 들려왔다. 창가에 다가가 카텐을 들고 여겨보니 할머니가 웬 젊은이하고 이야기를 하는것이였다. 나는 오래동안 깎지 않아 귀까지 푹 덮은 수세미같이 텁숙한 머리와 이슬에 젖어 꼴불견이 된 옷주제가 눈에 띄자 들었던 카텐을 슬며시 놓아버렸다. 대체 누굴가? 발자취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창가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두손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올렸다. 이윽고 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할머니가 들어서면서 반색했다. 《어이유, 벌써 일어났소? 푹 잘게지. 얘야, 날래 이리와 선생님께 인사나 올려라.》 터벅터벅 나던 발자취소리가 문전에서 뚝 멎었다. 《이 꼴 보지, 촌바우가 돼놔서 이렇다오.》 할머니는 젊은이를 재촉해서 집에 끌어들였다. 젊은이는 수집은 처녀애마냥 한동안 주밋거리다가 겨우 입을 뗐다. 《선생님, 오시느라 욕보셨겠습니다.》 《아니, 별 말씀을, 펠 끼치게 됐어요.》 나는 맞인사를 하면서 그를 찬찬히 뜯어볼수가 있었다. 강대처럼 억세고 다기진 몸매, 농촌에서 흔히 볼수 있는 건강하고 병없는 그런 사나이였다. 얼굴은 먼지가 끼여 거무죽죽했으나 두 눈만은 맑고 어글어글해 보였다. 상큼한 코날, 두리두리한 얼굴, 훤한 이마, 입귀쪽으로 내려오면서 까칠하게 돋은 수염… 나는 첫눈에 정력이 왕성한 서른살쯤 되는 사나이로 보았는데 그가 개울에 나가서 세수하고 돌아왔을 때 그만 아연해지고말았다. 비누로 머리를 감아 보기 좋은 곱슬머리엔 함치르르 윤기가 돌았고 금방까지 거무죽죽하던 얼굴은 발가우리하게 상기되여 방금 꽃물을 들인듯했다. 그날 나는 최학구교장선생님을 통하여 할머니네 가정형편을 다소나마 알게 되였다. 할머니의 손자는 만룡이라 부르는데 어려서 부모를 여읜 그는 할머니슬하에서 외롭게 자랐다는것이였다. 만룡의 부모들은 모두 1957년의 수난자들이였는데 그들이 우파모자를 쓰고 이 산골에 왔을 때 만룡이는 두돌이 갓 지난 어린애였다고 한다. 1958년, 전국적으로 교육을 보급시키는 열조가 일어났다. 그때 만룡의 부모들은 자진하여 흑석에다 학교를 꾸렸다. 헌데 1961년의 조절정돈과정에서 흑석학교를 해산시켰다. 그후 만룡의 부모들은 불행하게도 이름모를 병에 걸려 한해를 사이두고 타계의 사람이 되였다고 한다. 최학구교장선생님한테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어쩐지 자꾸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해 목장에 갔던 만룡이는 좀해서는 집에 내려오지 않았었다. 나는 할머니가 손자를 몹시 그리워한다는것을 여러번 눈치챘다. 한번은 할머니가 밥상에 수저를 한모 더 놓은 일까지 있었다. 해도 할머니는 목장에 가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만룡이더러 큰일 없이는 절대 산을 내려오지 말라고 부탁하더라는것이였다. 만룡이도 어쩌다 일이 있어서 마을에 와서도 밤을 넘기지 않고 그날로 목장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할머니가 민망스러웠다. 《할머니, 어쩌면 이럴수 있나요. 어쩌다 온 사람을 쫓다니요…》 내가 이렇게 말할라치면 할머니는 나의 어깨를 도닥이며 히죽히죽 웃기만 하였다.   2   조석으로 개울가에  살얼음이 지기 시작할 때 만룡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밥은 집에서 먹고 자긴 쇠돌이네 집에서 잔다면서 이불짐은 가져오지도 않았다. 나는 말없이 쇠돌이네 집에  가서 그의 이불짐을 꿍져왔다. 《웃방이 그저 비여있는데 그렇게 하면 돼요?》 나의 말에 만룡이는 무중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부자연스레 모자채양을 움켜쥐는것이였다. 모자는 이미 다 해지고 색도 난것이 더 쓰고 다닐것 같지 않아 보였다. 하나밖에 없는 친인을 떨어져서 여름내 산에 들어가 있다가 집이라고 찾아온 불쌍한 사람을 보노라니 나는 어쩐지 목이 꺽 메였다. 그때 나는 웬 일인지 만룡이가 몇호짜리 모자를 쓸가 하는 생각이 부지중 떠오르면서 저도 몰래 얼굴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우리는 한집에서 살게 되였다. 만룡이는 웃방을 차지했다. 만룡이는 웃방문으로 출입했고 눈이 펑펑 쏟아질 때까지도 개울에 나가서 세수를 했다. 그러던것이 내가 방문을 문풍질해놓아서야 그는 주간출입을 하게 되였으며 차츰 나와 한두마디 말을 건늬기도 하였다. 저녁이면 나는 남포등을 켜서 창문가에 걸어놓고 책상에 마주앉아 학습하기도 했다. 때론 책을 펼쳐놓은채 바깥에 나갔다 오기도 했으나 누구나 나의 물건을 다치지 않았다. 그런데 한번은 누군가 나의 책들을 건드려놓았다. 나는 은근히 성이 났다. 그러던 어느날 바깥에 나갔다가 들어온 나는 한창 두터운《조선말사전》을 무릎에 펼쳐놓고있는 만룡이를 보았다. 그는 내가 들어온것도 모르고 자주 책장을 번지기만 하였다. 그 모양이 얼마나 우습고 얄미웠던지… 혹 무슨 글쪽지같은것을 책속에 끼워넣은줄 알고 저러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어처구니 없어 그만 쓴웃음까지 나왔다. 《버릇없이 선생님것을 다쳐 쓰냐? 엉.》 할머니의 꾸짖음에 뭐라고 대꾸하려던 만룡이는 나를 발견하고 쭈물거리며 일어섰다. 그는 먼지도 묻지 않은 책뚜껑을 팔소매로 쓱쓱 닦은후 조심스레 그것을 책상우에 놓고 벌쭉 입을 열었다. 《이 책이 참 멋진데…》 《아니, 사전이 멋있다고요?》 아마 그때 나의 얼굴이 수수떡처럼 벌개졌을것이다. 마음이 어질고 정직한 사람으로만 생각해왔던 만룡이가 이렇게 사람을 놀린다고 생각하니 모욕을 당한것 같아 입술마저 떨려남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태연스레 책을 책꽂이게 얹으면서 마음을 눌렀다. 내가 아무 말도 없자 만룡이는 주눅이 들어 훌쩍 방으로 뛰여들어가고말았다. 할머니는 나의 손목을 끌어 자기옆에 앉히더니 쭈글쭈글 주름이 간 손으로 나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정답게 말씀했다 《성내지마우, 쟤가 버릇없어 그렇소. 재미있는 그림이나 있는가 해 그랬겠지. 쟤는 낫놓고기윽자도 모른다오.》 《녜?》 나는 할머니의 말에 두눈이 데꾼해졌다. 《쟤는 나처럼 까막눈이라오. 애비에미는 모두 큰학교를 나왔는데 쟤는 유치원도 다녀보지 못했다오.》 할머니의 목소리는 솜뭉치가 땅에 떨어질 때처럼 가벼웠으나 나는 도리여 철없는 어린애가 우뢰소리라도 들으듯이 깜짝 놀랐다. 선량하면서도 총명해보이는 만룡이가 머리통이 텅 빈 문맹이라고 생각하자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갖고있는 우리 조선족은 자기들의 후손이 20세기 80년대에 문맹이 있는것으로 하여 치욕을 느낄것이다. 예로부터 서발장대 휘둘러도 거칠것 없는 구차한 살림이라 해도 자식들에게 꼭 글공부만은 시켰다는 우리의 조상들이 아니였던가. 나의 놀라움은 어느덧 원망으로 번져갔다. 어쩌면 하나밖에 없는 손자를, 일찍 부모를 여읜 불쌍한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나는 끝내 가슴속에서 고패치던 원망을 할머니앞에 쏟고야말았다. 《할머니, 생활이 아무리 고달팠어도, 처지가 아무리 험악했어도 어찌 소학교공부도 시키지 못했어요, 녜? 할머니는 나빠요.》 할머니의 움푹하게 꺼져들어간 눈엔 눈물이 그득 고여있었다. 그가 슬며시 눈을 내리감자 두눈귀에서 수은처럼 부서진 눈물방울들이 주름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얼기설기 잡힌 주름살과 훌쪽하니 패워들어간 그의 볼에는 갖은 고초를 다 겪어온 암담한 지난날이 력연히 어려있었다. 후에 최학구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는 그 까닭을 알게 되였다. 이고장 아이들은 이전에 모두 50리밖에 있는 공사마을 학교에 다녔다는것이였다. 만룡의 부모가 흑석촌에 학교를 꾸리면서부터 아이들은 몇년간은 그래도 앉은자리에서 공부할수 있게 되였다. 그때 만룡이는 겨우 대여섯살밖에 안되는 어린애였다. 그후 학교가 해산당하고 만룡의 부모들이 다 타계의 사람이 되였다. 그래서 학교갈 나이가 된 만룡이는 학교갈수가 없었다. 한것은 50리밖 공사마을에 숙소를 정할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우파분자의 후대인 만룡이를 뉘 집에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렇다하여 어린 만룡이가 50리를 걸어다닐수도 없었고 소철을 타고 다닐수도 없었다. 그후 만룡이가 17세나던 해에 학교가 다시 앉았으나 배움의 철을 놓친 만룡이는 마음뿐이지 학교에 다닐수 없게 되였다. 열일곱살을 먹은 만룡이는 글공부보다도 소몰이에 더 재미를 붙였고 입에다 밥을 떠넣을 일이 더 요긴했다. 그러던 그는 이젠 벌써 25세의 피끓는 젊은이가 다되였다. 그는 고민했다… 그후부터 그는 나의 책엔 손을 대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늘쌍 애수의 그림자가 비껴있었으며 빼앗긴 시절에 대한 애달픈 심정과 원한, 증오의 물결이 사품치고있다는것을 나는 엿볼수가 있었다. 1957년의 수난자ㅡ만룡의 부모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갔다면 그 후대는 암둔의 상징물로 이 세상에 남아있어야 한단말인가? 아!...   3   검푸른 하늘에 초생달이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걸려있던 어느날 저녁, 차겁고 희미한 달빛은 나무토막우에 앉아있는 만룡이를 쓸쓸히 비춰주고있었는데 그 모양은 마치 거치른 석공의 손에서 다듬어진 석상 같았다. 날씨는 잠풍했으나 어쨌든 겨울은 겨울인것이다. 차디찬 한기를 마시면서  고민에 싸여있는 그 모습을 보니 나 역시 가슴이 쓰라렸으며 울적해졌다. 순간 나의 머리속에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우연히 모래를 뚜지다가 반짝하고 빛나는 금알맹이를 발견했을 때의 그런 심정이라 할가. 아니면 시인이 생활의 대해속에서 갑자기 예술적종자를 발견했을 때의 격정이라고나 할가. 나는 매우 흥분되여  만룡이를 불렀다. 그때 나의 생각은 이러하였다. (나는 교원이다. 그에게 지식을 전수해줄수 있다…) 나의 부름소리를 듣고 만룡이는 대번에 나의 앞까지 달려왔다. 그때 우리는 다 바깥의 으스름한 달빛아래 서있었다. 만룡이가 나의 신상에 큰변이라도 생겼나 해서 지켜보는 그 모양이 꽤나 우스웠다. 《결심이 있나요? 결심만 있다면 꼭 될수 있어요.》 두서없는 애매한 말을 듣고 만룡이는 더 쩔바를 몰라했다. 그제야 나는 성급한 자신을 나무리며 그더러 집으로 들어가자고 졸랐다. 우리는 할머니앞에 가서 앉았다. 《할머니, 전 만룡에게 글을 가르치려 해요.》 두사람은 한동안 멍하니 나를 쳐다만 보고있었다. 그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듯이. 그러나 나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할머니, 만룡 부모님들의 일생은 불행했어요. 그런데 만룡의 일생마저 그렇게 되게 할수 있어요? 만룡은 꼭 문화지식을 갖춘 새시대의 청년으로 되여야 해요. 세계가 변혁하는 오늘 눈뜬 소경이 되여가지고는 아무 일도 해낼수 없어요. 글을 배워야 해요.》 나는 그들이 알아듣건말건 연설조로 나의 마음을 토로했다. 만룡이는 매우 난처해했고 할머니는 영문을 몰라 멍해졌다. 《내가 이제 글을 배운다…》 만룡이는 못믿겠다는듯이 머리를 절절 가로저였다. 허지만 일종 호기심에 사로잡혀있던 그의 어글어글한 두눈은 금시 희망과 믿음으로 불타고있었다. 그제야 할머니도 영문을 알아차리고는 나의 손목을 꼭 잡더니 입술을 바르르 떨다말고 겨우 이렇게 말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면 쟤를 좀 눈뜨게 해주오. 나같이 늙은거야 까막눈이면 누가 뭐라오. 해두 저 얘야 새파란게… 내 그 은혤 눈에 흙이 들어간대두 잊지 않겠으니 제발…》 《할머니두 참… 전 교원이니까 그건 저의 직책이지요.》 나는 송구스러워 할머니의 손을 꼭 마주잡았다. 만룡이는 연송 무릎은 주먹으로 쿡쿡 치면서 흘분상태에 처해있었다. 만룡이는 총명했다. 얼마되지 않아서 그는 책을 볼수 있었고 산수문제도 풀수 있었다. 마치 숭숭한 해면에 물이 스며들듯이 그는 글을 잘도 배워넣었다. 눈깜박할 새에 몇달이 흘렀다. 이듬해 만룡이는 목장에 가지 않고 마을에서 일했다. 하여 그는 나의 강의를 매일 들을수 있었다. 어느 한번 만룡이는 내가 그더러 읽어보라고 준 이야기책을 할머니에게 또박또박 읽어드렸다. 할머니는 너무 좋아 눈물까지 흘렸다. 할머니가 밤마다 우리에게 밤참을 마련해주었다. 기름기 차르르한 찹쌀구이를 저가락에 꿰여 우리에게 주었다. 그런데 언제나 딱 두개씩만 구워서는 한사람에게 하나씩 주군 했다. 철부지애들이여서 다투기라도 할가봐 두려워하듯이 우리들을 곱게 흘겨보고는 어서 먹으라고 재촉했다.  흑석의 감자는 또 얼마나 맛있었던가? 쪄놓으면 떡떡 터진 속으로 솜같은 감자살이 미죽미죽 나왔다. 할머니는 우리가 찰구이를 다 먹고나면 부엌에 파묻어둔 개지같은 감자를 꺼내여 재를 툭툭 털어서는 한사람에게 하나씩 나누어준다. 더 먹고싶어도 없다. 딱 두개만 구웠으니깐 먹기 싫어도 먹어야 했다. 아니면 할머니가 성을 냈다. 처음엔 난 좀 면구스러워 만룡이와 마주앉아 먹지 못했다. 그러나 차츰 허물없는 사이가 되여버렸다. 나이를 따지면 만룡이는 나보다 몇달 앞선 동갑이다. 그러나 그는 번마다《조선생님, 조선생님…》 하면서 나를 존대해 불러주었다. 나는 반대로《만룡이, 만룡이…》 하면서 학생을 대하듯 그를 불렀다. 그러나 학습이 끝나고 밤참을 먹을 때면 우리는 소꿉시절의 동무가 된듯싶었다. 그가 목이 메여서 꺽꺽거리는 모양이 하두나 재미가 있어 나는 입을 싸쥐였고 그도 나의 코등에 묻은 재를 보고 우습다고 킬킬거렸다. 그럴 때면 할머니도 한옆에서 대견스레 웃고있었다.   4   세월은 빨리도 흘러 벌써 여름이 짙어가고있었다. 심록색 나무들은 바람이 불면 다정한 련인들처럼 부드럽게 속살거리고있었다. 산머리의 파란 하늘에서는 하얀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떠돌고 산과 밭은 날따라 푸른살이 오르는것만 같았다. 어느 한가로운 일요일, 나는 만룡이와 함께 들구경을 나갔다. 나는 오솔길옆에서 풀 한포기를 뿌리채 뽑아쥐고 한창 들여다보다가 던져버렸다. 만룡이는 내가 던진 풀포기를 주어다 뿌리를 털며 입을 열었다. 《이것은 질경이라고 하는데 씨는 약재로 쓰고 잎은 먹기도 합니다.》 《그런가요?》 《이 타원형의 길죽한 잎사귀와 삐여져나온 꽃대에 맺힌 하얀꽃을 보십시오. 이삭모양으로 피여난것이 얼마나 묘합니까? 질경이는 함박꽃처럼 그렇게 곱지도 않고 국화처럼 오래오래 피지도 못합니다. 그저 이렇게 수수히 누가 보든말든간에 두메산촌 오솔길가에 소리없이 피여났다 소리없이 사라지지요. 나같은 시골사람처럼말입니다. 허허허…》 《만룡인 참 멋지게 말하는군요.》 나는 환성을 올리며 손벽까지 짱짱 쳤다. 만룡이는 쑥스레 머리를 돌리더니 분비나무숲속으로 달려갔다. 나도 그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얼마 가지 않아서 우리는 숲을 나섰다. 아, 나는 경탄해마지 않았다. 앞에 파란 풀밭이 깔린 평지가 펼쳐져있었던것이다. 해볕은 풀밭에 무더기로 쏟아져내려 신비로운 빛을 반사해주고있었다. 나는 그처럼 깨끗한 풀밭에서 걸음을 옮겨놓기가 저어되였다. 두부모를 떨어뜨려도 깨여지지 않을것 같은 파란 잔디가 가쯘히 한벌 쭉 깔린 풀밭이였다. 나는 시골처녀가 궁전의 주단을 밟듯이 조심스레 풀밭을 밟으면서 사뿐사뿐 걸었다. 《아, 날씨가 몹시 찌물쿠는군. 나는 저아래 목장엘 가보겠습니다.》 나의 행동에 시답지 않은 눈길을 팔고있던 만룡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가 가건말건 들꽃을 꺾으면서 앞만 향해 걸어갔다. 얼마 안가서 언덕아래서 조잘거리며 흐르는 개울물이 나타났다. 나는 개울물에 발을 잠그고 앉아 싱그러운 풀냄새를 한껏 마셨다. 흐뭇이 취해왔다. 나는 어쩐지 혼자 있는것이 고독스럽기만 했다. 만룡이가 가버린것이 괘씸하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다. 그가 신변에 있다면 이 자연의 야생미앞에 더 취할것만 같았다. (오솔길가에 소문없이 피였다 사라지는 질경이꽃, 그것이 자기같다 했지. 시골총각같으니, 못난이…) 거울같은 개울물에 둥글넙적한 만룡이의 얼굴이 비끼는것 같아 보인다. 그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시물시물 웃는다. 갑자기 정갱이에 무엇이 걸리자 나는 인차 그것을 손으로 쥐여보았다. 어디선가 떠내려온 풀포기였다. 나는 제멋에 웃고는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개울물을 따라 아래로 달렸다. 계곡을 줄달음치는 개울물은 붉고 노랗고 푸른 각가지 색으로 조화부리며 솰솰 흘러가고있었다. 나는 꽃묶음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면서 개울을 따라 자꾸자꾸 내려갔다. 나는 꽃묶음에서 꽃을 한송이 한송이 뽑아선 내물에 띄워보냈다. 동동 떠내려가는 꽃을 쫓아가던 나는 갑자기 첨벙청벙 들려오는 물장구치는 소리에 놀라 머리를 쳐들었다. 순간 나는 그만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눈을 딱 감고말았다. 한 사나이가 미역을 감고있었는데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알몸이 해빛에 번들거리고있었다.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손가락 쯤새로 사나이의 뒤모습을 훔쳐보았다. 함치르르 윤기도는 곱슬머리, 그것은 만룡이였다. 일순, 나의 피가 몽땅 얼굴에 모인것만 같았다. 그런것도 모르고 만룡이는 씩씩거리면서 물을 떠서는 몸에 끼얹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의 정갱이에는 내가 띄워보낸 꽃가지들이 무더기로 걸려있었다. 나는 몸을 홱 돌렸다. 헌데 그 끌밋한 체신, 윤기 번지르르한 피부를 만룡이 몰래 훔쳐보았다는것을 느꼈을 때 나는 이상스럽게도 이름할수 없는 모진 수모를 당한것만 같았다. 만룡이가 나에게 그 어떤 모욕이라도 준듯이 통분했고 통분할수록 만룡이가 얄미웠으며 얄미울수록 그의 건강한 체구가 눈앞에 다시 떠올라 종당엔 두눈에 뜨거운것이 고였다. 나는 달아오른 얼굴을 싸쥐고 냅다뛰였다. 나는 달리다가 그만 풀에 걸려 꼬꾸라졌다. 폭신한 풀이 담요처럼 나를 포옹해주었다. 나는 얼굴을 풀속에 파묻고 흐느꼈다. 나는 갑자기 그 어떤 갈망을 느꼈으며 따라서 뭔가 그리워졌다. 부지중 자신의 가슴속에 싹트는 알지 못할 그 무엇이 생겨남을 느꼈으며 그것으로 하여 불안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어쩔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이성을 그렸던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그리는 총각은 만룡이가 아니였다. 나는 나와 학력이 비슷한 총각을 못내 그렸던것이다. 그날 나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나이도 이만큼 먹었으니 인젠 부모님 신변에 가고싶다는 사연을 만장같이 썼다. 편지피봉을 봉하고있는데 만룡이가 털썩털썩 마당에 들어섰다. 그는 저고리에 무엇인가를 가득 싸안고 집안에 들어섰다. 나는 금방전에 그의 알몸뚱이를 본것으로 하여 가슴이 실없이 두근거렸다. 헌데 그런것을 모르는 만룡이는 외려 멀쑥한 얼굴에 천진한 웃음을 띠우고있었는데 그것이 나를 시름놓게 했다. 만룡이는 저고리에 싼것을 책상우에 와그르르 쏟아놓았다. 그것은 향긋한 냄새를 풍겨주는 빨간 열매였다. 《산딸깁니다. 흑석의 특산인 산딸깁니다. 달콤하고 시원하기로 유명하지요. 자 어서 자셔보십시오.》 《만룡인 언제 이런 익살을 배웠나요?》 나는 웃으며 산딸기를 입에 집어넣었다. 당금 사르르 녹는것 같다. 익을대로 익은 산딸기는 향기롭고 달았으며 시원했다.       
1    [소설]봄비속의 얼굴(김철호) 댓글:  조회:1795  추천:46  2008-09-01
《모병위속래(母病危速來)》 급전을 받은 나는 사형판결을 받은 죄수마냥 마구 떨었다. 차창밖에서는 솜털같은 촘촘한 비발이 끝없이 내리기만 하였다. 나는 그때처럼 어머니가 그리워본적은 없었다. 어서 어머니곁으로 가고싶었다. 희백색 하늘, 고요히 내리는 봄비, 문발처럼 드리운 그속에 어머니의 모습이 환영처럼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 자애로운 웃음, 순한 눈길이 눈앞에 환히 안겨오는 것 같았다. 어느 모로 보나 어머니는 수수한 살림집 부녀 그대로였다. 흰 무명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받쳐입고 머리엔 흰 수건을 치고 젖은 손이 마를새 없는 그런 녀인이였다. 광복전 절골에 가서 금광일을 하던 아버지는 마을의 한 부농의 딸과 눈이 맞았는데 그가 나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선후로 우리 다섯남매를 낳았다. 나의 우로 녀자애를 하나 낳았는데 조산으로 잃고 나도 팔삭둥이로 태여났다. 형제들가운데서 내가 제일 약골이였다. 희초리같은 아래다리며 아롱아롱한 가슴팍엔 살점이라곤 없었다. 어머니는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동생들 몰래 나의 손에 쥐여주군 하였다. 마디가 굵직하고 키도 큰 동생 준도는 동네애들과 싸울 때면 늘 나의 역성을 들어주었다. 어느땐가 강에 나가 썰매를 타다가 준도와 나는 얼음구멍에 빠져 덜덜 이를 쪼으며 집에 들어섰다. 어머니는 준도를 욕질해서 옷을 갈아입게 하고는 나의 언손을 자신의 젖가슴에 품어주었다. 《이새끼 준철아, 넌 엄마 아들이고 난 아니야! 난 다리밑에서 주어온 애래!》 준도는 퍽 컸을 때까지도 이렇게 나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한번은 준도가 지나가는 자전거에 치여 무릎과 허리를 상했다. 내가 울면서 준도를 업고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는 낯이 파랗게 질리더니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만 휭하니 바깥으로 나갔다. 얼마후 어머니는 자적거쟁이를 집에 끌고 와서 준도앞에서 잘못을 빌게 했다. 그 일이 있은후부터 어머니에 대한 준도의 생각은 퍽 달라졌다. 하루는 길가에서 대정금을 주은 나는 기뻐서 깡충깡충 뛰여서 집으로 돌아 왔다. 나는 동생들앞에서 대정금줄을 탱탱 치면서 시뚝해했다. 그때 어머니가 들어왔다. 어머니는 대정금이 어디에서 났는가고 물었다. 내가 곧이곧대로 대자 어머니는 종래로 있어본적 없는 눈길로 나를 쏘아보는것이였다. 《넌 어느때부터 이런 나쁜 애가 됐니? 동생들앞에서 그런 본을 보여, 엉! 다른 사람이 떨군걸 주어오는 것은 훔친거나 같아!》 내가 머리를 푹 떨구고 아무 말도 없자 어머니는 불호령을 내렸다. 《냉큼 제자리에 갔다놓고 못올가! 맞아죽기전에!》 나는 아수운대로 대정금을 원래의 지리에 가져다놓았다. 준도는 뻐드렁이를 드러내고 처음으로 나를 형이라고 불렀다. 《형, 엄만 공평해!》 소학교 4학년때였을 것이다. 준도아래로 녀동생 하나가 있었는데도 어머니 배는 또 남산만했다. 어머니는 그런 몸으로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의 림시공으로 나무껍질을 벗기는 일을 하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저녁밥까지 다해놓고 일하러 갔다. 점심밥을 가마안에 넣고 저녁밥은 높은 덕대우에 얹어놓았다. 우리는 하학한후 가마안의 밥을 나누어먹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 밥은 우리의 배를 채워주지 못했다. 금방 밥을 먹었는데도 돌아앉으면 꼬르륵 하고 배속에서 개구리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우리 집은 그래도 괜찮았다. 다른 집에서는 솔껍질을 벗겨다 떡을 해먹거나 풀뿌리를 파서 삶아먹고있었다. 해거름때만 되면 우리 형제는 배가 고파서 맥없이 방구석에 쪼크리고 앉아 이제나 저제나 하고 어머니가 퇴근하여 올것만 기다리였다. 그러다가도 정지문이 삐익 열리고 육중한 어머니의 배가 들어오면 환성을 질렀다. 그날도 연기만 지꿎게 기여 다니는 골목길을 목빠지게 바라보다 못해 준도가 나에게 밥을 먹자고 하면서 턱으로 높은 덕대우를 가리켰다. 내가 머리를 살래살래 젓자 준도는 흥하고 코방귀를 뀌더니 바깥에 나가 큼직한 목데기를 주어들고 왔다. 그것을 벽밑에 놓고 덕대의 밥그릇을 내리우려고 하였다. 준도는 발끝을 들고 밥그릇에 손을 댔다. 순간 밥그릇이 준도의 머리를 치면서 땅에 떨어졌다. 새빨간 수수밥이 한구들 널렸다. 덩지가 큰 밥덩이는 구들우에서 데굴데굴 굴러대기까지 하였다. 혼비백산한 우리 형제는 구둘에 널린 밥을 주어서 그릇에 담았다. 준도는 애물이였다. 밥그릇에 맞아 이마에 닭알이 생겼는데도 대수로와 하지 않고 히죽거리며 구둘에 널린 밥을 연신 입으로 주어넣었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우리 책망하지 않았다. 밥이 눈자리나게 축갔는데도 모르는체하면서 우리들 그릇에 골고루 퍼주고는 살며시 바깥으로 나가는것이였다. 이슥해도 어머니가 들어오지 않으니 준도와 나는 슬그머니 나가보았다. 헛간에서 인기척소리가 나기에 살며시 들여다보니 어머니는 쪼크리고 앉아 뭔가 먹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어머니가 우리들 몰래 무얼 먹는다고 생각하자 나는 불만스러운 생각에 앞서 일종 야릇한 감정이 가슴에서 굼실거렸다. 무엇이길래 우리 몰래 저렇게 먹을가? 우리는 슬그머니 어머니의 등뒤에 가 섰다. 비술나무껍질! 순간 준도와 나의 눈을 허공에서 부딪쳤다. 몸을 돌린 어머니는 우리를 발견하고 일어섰다. 어머니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옷자락을 툭툭 털고는 정겹게 우리들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엄마, 다신 밥을 훔쳐먹지 알겠어!》 준도는 어머니의 무릎을 끌어앉았다. 나도 어머니의 옷자락을 잡았다. 어머니는 우리가 기특한 듯 웃음을 머금고 한품에 안아주었다. 《남들이 다 먹으니 나도 좀 입질해본것이지 배고파서가 아니야.》 그후부터 우리는 다시는 밥을 훔쳐먹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몰래 어머니가 계속하여 대식품을 먹고있는줄을 누구도 몰랐다. 한번은 기름타는 냄새에 자다 깨여나보니 부엌아궁이에서 비쳐나오는 불빛에 어머니의 흐트러진 머리그림자가 벽에 비치여 언뜰거렸다. 나는 힐끔 부엌을 내려다보았다. 어머니는 불을 끄집어내여 아궁이앞에 모아놓고 남비로 한창 밀가루떡을 굽고있었다. 종시 잠이 오지 않았다. 떡도 먹고싶었거니와 어머니의 소행도 불만스러웠다. 밤대거리를 마친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상을 챙겨주었다. 아버지는 군소리없이 구운 떡을 먹었다. (흥, 아버지에게는 구운 떡! 우린 매일 뻘건 밥!) 《준철아, 안자니? 안자면 입질해라.》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자 나는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다. 어머니는 인차 자그만치 떡을 떼여 나에게 주었다. 그래도 좋았다. 준도랑 복순이랑 저렇게 세상 모르고 잘 때 한입이라도 먹으니 여북 좋은가! 그런데 꼼지락거리다 뒤이어 복순이도 일어나 앉았다. 아버지는 준도와 복순이에게도 주라면서 떡을 밀어냈다. 《이 철없는것들이 언제면 셈이 들가?》 떡을 얻어먹었지만 어머니에 대한 불만은 우리들 가슴에 맺혀있었다. 하루는 밤중이 되도록 아버지가 퇴근하지 않자 어머니는 금방 태여난 준태를 업고 도시락을 챙겨갖고 나와 준도를 앞세우고 아버지의 직장으로 갔다. 아버지는 용수직장에서 두만강의 물을 끌어들이는 일을 보고있었다. 그날 아버지는 강가에 나가서 일하고있었다. 두만강으로부터 곧추 물탕크 있는데까지 기다란 물도랑이 나있었다. 물도랑옆에 화토불을 피워놓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우리가 낯익은 아저씨에게 알은체를 하자 그 아저씨는 물도랑을 향해 《어이-》 하고 소리쳤다. 아버지는 한창 가슴치는 물도랑에 들어가서 성에장을 몰아내고있었다. 힐끔 이쪽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조금후 기슭으로 나왔다. 고무옷을 입은 어버지는 이발을 맞쪼았는데 입술은 새파랗게 색이 죽어있었다. 누군가 술고뿌를 주자 아버지는 반나마 담겨져있는 술을 단꺼번에 쑥 마셔버렸다.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물도랑의 성에장을 밀어내는 용도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성에장을 밀어내지 안는다면 물도랑이 얼어붙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공장에서 수요하는 물을 공급못한다는것이였다. 우리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숭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해 아버지는 영광스럽게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어머니의 눈가엔 자랑과 행복감이 고요히 빛나고있었다. 어머니는 다정한 이웃 녀인들이 마실을 오면 부끄럼을 타는 소녀마냥 짐짓 낯을 붉히면서 살그머니 자랑하군 했다. 《우리 집에선 당원이 됐다우. 그러니 우린 당원가속인거유.》 아버지는 애당초 집일을 할줄 몰랐다. 그러나 우린 어머니가 그것으로 하여 불만의 소릴 하는걸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톱질, 대패질, 망치질을 곧잘 했다. 지어는 벽을 바르로 구둘도 뜯어고치였다. 우리가 아버지에게 의견을 보일라치면 어머니는 우리를 타일렀다. 《아버진 당원이니 공장일에 힘다해야 한다. 집일은 그저 잔손질뿐이니 내가 해도 되는거다. 너희들도 이렇게 방조해주니 얼마나 헐하니!》 그렇게 금슬이 좋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만 다투었다. 그것은 내가 열서너살 먹었을 때 일일 것이다. 외지에서 살던 할머니가 갑자기 찾아왔던 것이다. 어머니는 할머니를 반겨맞았지만 아버지의 눈길은 심술스러웠다. 어느날 저녁 나는 어버지와 어머니가 강변뚝밑에 마주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누가 효자랄 것 같소? 누가? 어느때는 뿌리치고 가던 것이 죽게 되니 기여든단말이요. 어머니가 언제 한번 나를 아들로 생각한적 있었소? 우리가 금방 살림을 꾸렸을 때에도 늦지 않았댔지. 그러나 어머닌 못들은체했단말이요.》 《글세 아무리 어머니가 잘못했어도 우린 다 어머니의 자식이 아닌가요? 이번에 우리 집에 온 것은 마지막 길을 가자고 온것인데 이렇게 대하면 어떻게 해요?》 《어떻긴 뭐가 어떻다고?》 《남들이 웃어요. 당원가속에서 그런다고 남들이 웃는단말이예요. 그리고 어머니도 고생이야 막심하셨지 않아요? 이 자리 저 자리 옮기면서 숱한...》 어머니가 흐느껴 울었다. 어버지는 쭈크리고 앉더니 성냥을 드윽 그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성냥불빛에 비치는 아버지의 얼굴은 참으로 무서웠다. 눈살이 잔뜩 찌프러지고 얼굴의 근육은 모두 지렁이처럼 일어나서 꿈틀거리고있었다. 며칠이고 깎지 않은 수염은 꺼칠했다. 그때로부터 10여년이 지난 다음에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툰 원인을 알았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첫돌이 되던 해에 쏘련으로 돈벌러떠나간 할아버지를 8년동안이나 기다리다 못해 아버지를 버리고 재가를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밥을 빌어먹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후 할머니를 각박하게 대하진 않았다. 할머니가 세상뜨던 해에 어머니는 림시공일을 잠시 그만 두었다. 어머니는 매일 할머니의 속옷을 빨아입혔고 대소변을 받아냈다. 밥도 한술두술 떠서 대접했다. 그때 할머니의 몸에는 무슨 이가 그렇게도 많았는지 모를 일이였다. 어머니는 매일 이를 잡아주었다. 화로불을 웃방에 들여다놓고 어머니는 할머니의 머리털을 번지면서 보리알같은 이를 주어 화로에 넣으면 툭툭 하고 이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어머니가 한번이라도 낯을 찡그리거나 심술스런 말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우리는 할머니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제 식솔만 해도 한구둘인데 나까지 애를 먹이니 손부리 터질거야. 일찌감치 죽어버려야지. 왜 죽자 해도 죽어지지 않누.》 할머니가 목메인 소리로 이렇게 말할라치면 어머니는 인자스럽게 웃으시며 할머니를 위로하시는것이였다. 《어머니 근심말아요. 맘놓고 오래오래 사시기만 하면 돼요.》 아, 어머니! 그렇게도 맘좋은 어머니가 무슨 급병이기에 전보를 다... 나는 전보지의 글자가 혹시 잘못 찍히지 않았나고 의심스레 다시다시 펼쳐보기도 하고 정신이 돌지 않았는가고 허벅지를 꼬집어보기도 했다. 기차마저 나를 놀려주는지 아주 느릿느릿 달리는 것 같았다. 《차가 연착된건 아집니까?》 《연착되다니요? 아주 정시인데요.》 《그런데 왜 이제야?》 《호호호 급하신 모양이군요.》 렬차원처녀는 곱게 눈을 할겼다. 나는 머리를 싸쥐였다. 상해복단대학의 입학통지서를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몹시 기뻐하셨다. 그러나 그때 어머니의 눈엔 물기가 고여있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도 못오겠구나. 공부가 바쁘겠는데 급하다고 널 부르겠니. 이 에미가 죽었다는 기별이 가도 와선 안돼. 그저 공부만 잘해야 돼. 알겠니?》 아, 어머닌 그때 모든걸 알고계신것이였구나. 시골에서 상해라고 하니 오금을 쓰지 못하고 히히닥거렸지만 어머닌 언녕 짐작하고계셨구나. 어머니는 우릴 얼마나 진속으로 사랑해왔는가! 그러나 자식은 어시의 속을 다는 몰랐다. 지금도 어머니에게 욕을 주던 일을 생각하기만 해도 몸서리난다. 《문화대혁명》때 중국의 대다수 사람들이 받은 그런 재난이 우리 집에도 들이닥쳤다. 처음에는 어머니 성분으로 하여 말썽을 들었다. 우리들은 이렇게 자라면서도 어머니가 착취계급의 피를 타고났다는 것을 감감 모르고있었댔다. 홍위병조직에 들려고 신청서를 쓰면서 어머니의 출신과 사회관계를 밝혀야 했다. 준도와 나는 다 중학교 1학년생이였다. 나는 학교에 한해 늦게 붙어 준도와 같이 다니였던 것이다. 우리는 둘 다 홍위병조직에 들지 못했다. 그러지 않아도 말이 무겁던 어머니는 아예 벙어리가 된 듯 종일 가도록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가사만 보았다. 우리는 어머니가 어떻게나 괘씸했던지 배에 태워 두만강물에 띄워보냈으면 하는 심정이였다. 준도가 더했다. 그는 어머니앞에서까지도 착취계급이라고 욕했다. 자신의 몸에도 착치계급의 피가 섞였으니 두만강물에 뛰여들어 씻고씻는대도 그 더러운 것을 씻을 방법이 없게 되었다고 한탄하면서 외가집 조상들을 물귀신이 될 두상들이라고 쌍욕을 했다. 참 이상했다. 그렇게도 맘좋고 착하신 어머니가 부농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기억되지만 어머닌 평생 한가지 노래밖에 부를줄 몰랐다. 오막살이 우리 집에도 광명한 새아침 밝아왔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오막살이가 아니라 팔간기와집에서 산해진미를 먹고 자란 기생충이라니. 《엄만 빈하중농 피를 얼마나 빨아먹었어?》 어느날 준도가 이렇게 물었다. 어머니는 낯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입술을 파들파들 떨었다. 썩 후에야 어머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난 그때 죽고만싶었다. 자식의 앞길을 망쳐먹고싶은 어시가 세상에 어디 있겠니. 너의 외할아버는 구두쇠라 해도 유명한 구두쇠였다. 돈이라 하면 눈에 불을 켰지. 땅도 사고 소도 장만하고 소작도 주었다. 그래도 우린 이밥 한번 배를 두드리면서 먹어보지 못했단다. 믿어지지 않을거다. 난 발가락이 삐죽이 나오는 신을 신고 다녔단다. 너의 외할아버지가 여간 미웠으면 집을 뛰쳐나와 너의 아버지께 왔겠니. 불쌍한 언니가 너의 외할아버지의 핍박에 못이겨 맘에 없는 사내한테 시집을 갔었지. 나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아우성치며 울던 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구나. 지금은 어느곳에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이모가 남조선 어디에서 잘살고있다는 소문이 바람처럼 퍼졌다. 어머니는 가두에 끌려나가 비판까지 받았다. 1967년 유명한《k.8.2무단적사건》때 아버지는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눈에는 눈물도 없었다. 목석처럼 시체를 마주보던 그 암담한 눈길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아버지를 입관하여 수레에 싣고 떠나는데도 어머니는 우두커니 앉아서 허공만 바라보았다. 그러던 것이 외마디소리를 지르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후부터 어머니는 쩍하면 실신한 사람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모진 것이 세월이고 빠른 것 역시 세월이다. 세월속에서 아이들은 몰라보게 커가고 어머니는 무섭게 늙어갔다. 어머니의 성분과 사회관계로 하여 남들이 다 가는 공장, 학교를 가지 못하고 우리 형제는 농촌으로 내려갔다. 신체가 남달리 좋은 준도는 해마다 군대모집때면 미칠 지경이였다. 다행히 아버지문데가 풀려서 우리 형제중 한사람이 아버지대신으로 공장에 들어갈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체질이 약한 나를 데려가려 하였으나 나는 준도를 떠밀어보냈다. 해마다 민공판으로 떠돌면서 잔등에 묻은 모래가 떨어질 새 없고 코등이 늘 딩딩 부어다니는 꼬락서니가 꼭 일을 칠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시험제도가 회복되자 나는 생산대 비준을 얻고 집에 가 복습하게 되었다. 그때 어머니가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이마의 잔주름을 활짝 펴면서 대견스레 웃는 것이 나의 눈에는 함박꽃보다도 더 예뻐보였다. 《대학에 가거들랑 꼭 1등을 해야 한다.》 어머니는 마치 내가 대학시험에 합격이라도 된 듯이 이렇게 부탁하는것이였다. 공장에 들어가서 나무껍질 벗기는 일을 하는 어머니는 일이 매우 고되였으나 언제나 얼굴에 웃음기를 담고있었다. 밤대거리때에도 낮에 쉬지 않고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 술병을 사들였다. 어머니는 술공장과 계약을 맺고 날마다 술병을 주민들 손에서 사들여서는 술공장에 넘겨주어 웃돈을 벌었던 것이다. 얼마 더 벌지 못하면서도 어머니는 그 일을 아주 열성스레 했다. 우리가 말리면 어머니는 《이제 준철이가 대학에 가고 또 복순이도 인차 대학시험을 치겠는데 돈이 있어야 뒤를 대줄게 아니냐?》라고 하였다. 평시에 푼돈도 쪼개쓰던 어머니가 통이 커져서 매일 닭알과 고기를 사다간 공부를 하는 나한테 입에 맞는 반찬을 해주었다. 어머니의 장부책은 아주 볼만했다. 성냥 한갑 값으로부터 동네집 아무개 딸이 설에 와서 세배를 올렸을 때 세배값을 주었다는 50전 돈도 장부에 올라있었다. 그런데 요사이것은 하나도 장부에 오르지 않았다. 아마 어머니는 요사이처럼 손이 크게 돈을 써보신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아름찬 돈수자를 장부에 올리지 못하고있는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버지의 사망비가 나와서 저축한 돈도 있다고 어머니가 쩍하면 외우지만 그 돈을 바라고 통이 크게 돈을 쓸 어머니가 아닌 것이다. 어머니가 들어왔다. 나는 장부책을 보다가 웃었다. 《아이, 별거 다 끄집어내가지구 그랜다. 가져오너라. 인젠 아궁이에 넣어야지.》 《건 왜요?》 《세월이 이렇게 좋아졌는데 낡은 문서를 해서 어따 쓰겠니?》 《그래도 이건 없애지 말아요.》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장부책 하나를 대충 펼쳐보다가 한곳에 눈길을 멈췄다. 11월 3일 사탕 한봉지. 준철. 《엄마, 이건 뭐예요?》 《그건... 오, 그날 네가 공량 바치러 오지 않았댔나?》 나는 멍하니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농촌에 내려가서 처음으로 소수레를 몰고 시내로 공량바치러 왔다가 집에 잠간 들렸을 때였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검은 솜외투에 새끼줄을 질끈 동인 내가 가없어보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새 낯이 까맣게 타고 수염도 꺼실꺼실 돋은 것이 장해보여 그랬는지 나의 터부룩한 머리를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은 떨렸다. 길에다 소수레를 세워놓고 들어왔기에 인차 떠나겠다고 하니 어머니는 옷섶을 헤치고 이리저리 뭔가 찾다가 조금 기다리라면서 옆집으로 나가는것이였다. 나도 바깥으로 나왔다. 《돈 한 1원 없소?》 《50전밖에 없는데요.》 《그거라도 주오. 인차 갚아줄게.》 옆집에서 이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참, 엄마두.) 어머니가 나오자 나는 아니꼽게 어머니를 쏘아보다가 볼멘 소리로 말했다. 《전 가겠어요.》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쥉쥉 걸어갔다. 시내를 거의 벗어나갈가 했을 때 어머니가 뒤따라 왔다. 어머니는 뭘가 종이에 싼 것을 나의 호주머니에 밀어넣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에 둘렀던 털수건을 나의 목에 돌려주는것이였다. 거기엔 둬냥되는 사탕알이 들어있었다. 나는 한알을 입에 넣고 씹었다. 그때는 그 감정을 미처 다 몰랐는데 지금 장부책을 보니 어쩐지 가슴이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나는 희망대로 대학에 붙었고 이듬해 복순이도 중등사범학교로 갔다. 후에 막내동생 준태는 중학교에서 직접 군대에 나갔다. 준도도 자기의 뜻대로 자동차를 몰고 있다. 열손가락에 어느 손가락인들 깨물면 아프지 않으랴만 부모들이란 다같이 자식을 귀여워하나 다같이 믿는건 아닌 것 같다. 어머니는 언제나 준도로 하여 머리가 세여진다고 나에게 말했다. 준도는 폭주가였다. 독한 배갈을 컵들이를 했다. 담배를 피워도 고급담배밖에 피울줄 몰랐다. 준도는 공가의 일을 해주면서도 담배나 술을 주머니속에 쑤셔넣어주지 않으면 심술을 부리기가 일쑤였다. 그의 공구함속에는 언제나 술과 담배가 빌 새 없었다. 한가지 좋은 습관이라면 공자만은 봉투채로 어머니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그와 늘 다퉜다. 돈을 헤프게 쓴다고 닦아세우군 했다. 네가 한때 먹어치우는 돈이면 준철이는 한달 생활소비를 하겠다고 핀찬을 했다. 그럴 때면 준도는 사내라면 좀 통이 커야지 형처럼 속이 비좁고서야 대학을 나와도 큰일 못할거라고 비웃군 한다는것이였다. 준도의 친구는 거개가 도박을 놀기 좋아했다. 그러나 준도만은 도박을 놀지 않는다고들 했다. 우연히 한번 도박판에 끼여들었다가 한달 로임을 몽땅 잃고말았다고 한다. 그것을 안 어머니는 어찌도 성을 내셨는지 범같은 준도마저도 혼쌀을 먹었다. 어머니는 나와 복순이에게 달마다 소비돈을 부쳐보냈다. 나에겐 30원, 복순에겐 15원씩 부쳤다. 복순이는 사범학교이기에 국가에서 식비를 대주었던 것이다. 나는 송금통지서를 받을 때마다 귀전에서 나무껍질 벗기는 도끼질소리며 병사리가 부딪치는 장그랑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가슴이 쩌릿해났다. 어머니가 고생하는걸 생각하니 돈 한푼이라도 헤프게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달마다 5원씩 모았다가 방학때면 꼭 어머니의 옷감을 떼가군 했다. 그런데 지난 겨울방학이였다. 어느날 복순이는 고방구석에 엎디여 쿨쩍쿨쩍 울고있었다. 나는 급기야 복순이를 잡아일으키면서 웬 일인가고 따졌다. 복순인 말없이 보꾸레미를 내앞에 밀어놓는것이였다. 헤쳐보니 거기엔 어머니의 속옷들이 들어있었다. 깨끗이 빤 옷들이였다. 찬찬히 보니 깁고 깁지 않은것이란 없었다. 지어는 빤쯔마저 여얿곳이나 기운 자리가 있었다. 《오빠, 녀자들에겐 빤쯔가... 오빤 몰라요. 지금 이렇게 빤wM마저 기워입은 녀자가 어디에 있어요? 우린 거미새끼들이예요. 어머니가 이러는줄도 모르고... 오빠고 나고 다 못났어요! 못났어요!》 복순이는 목이 메여 말도 잘 잇지 못했다. 어머니는 물리개옷을 입으면 입었지 자기절로 새옷을 사는 습관이 없었다. 그날 우리 오누이는 백화점에 나가서 어머니의 속벌을 몽땅 사왔다. 어머니는 우리를 몹시 나무람했다. 그럴게면 책 한권이라도 더 사서 읽거나 학용품이라도 더 사서 쓸것이자 왜 이렇게 못나게 노는가고 푸념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주는 사랑을 모르는체하면서 외면했으나 그 눈속에 담겨져있는 물방울을 우린 언녕 보아냈다. 개학하여 돌아갈 때 어머니는 역에까지 나와 바랬다. 별수럽게 나의 얼굴을 애잔한 빛을 담은 눈길로 바라보는것이였다. 어머니의 눈동자엔 뭔가 하많은 것이 담겨져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뭔가 나에게 말하려고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끝내 아무 말도 안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떻게 편치 않기에... 그렇게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차에서 내린 나는 허둥지둥 집마당에 들어섰다. 집은 조용했다. 필경 사람들이 있을텐데 왜 이리도 조용할가? 나는 벌컥 문을 떼고 들어섰다. 집식구들이 다 모여있었다. 복순이도 군대에 간 준태도 이미 와있었다. 나의 출현에 저마다 놀람을 금치 못했다. 복순이의 입술은 세워놓은 닭알처럼 고정되여버렸고 준도의 눈섭은 제비날개마냥 파닥거렸다. 《어머닌?》 나는 제 목소리 같지 않게 부르짖었다. 《오빠!》 《형님!》 복순이와 준태는 나의 품에 와락 안기면서 엉엉 울어댔다. 《형님!》 준도는 무릎을 꿇고 앉더니 머리를 땅바닥에다 맞쪼으면서 엉엉 울었다. 《대체 어머닌 어디 갔어? 엉?》 그제야 옆집에서 내가 온줄 알고 우르르 달려나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다니... 나는 사람들의 말을 믿을수가 없었다. 형제들에게 부축되여 어머니 묘앞까지 왔으나 난 그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의 무덤을 치며 목놓아울었다. 《어머니 이게 웬 일이세요? 말 한마디 없이 자식을 저버리다니요... 어머닌 뭔가 저하고 말씀하려 하셨는데... 깨여나세요. 아들이 왔어요. 준철이 왔어요. 준철이 왔어요!》 어머니는 영영 돌아가셨다. 3일분의 공자를 받으려고 《5.1》절에 일을 나가셨다가 와이야줄이 끊어지며 굴러떨어지는 통나무에 치여 잘못되였던것이다. 병원에 가서 6시간만에 숨졌는데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단다. 우리 형제는 련 며칠 울음으로 보냈다. 동네에서와 친척되는분들이 련이어 와서 동무해주면서 마음을 굳게 먹으라고 우리를 달랬으나 우린 앞이 막막하여 살것 같지 못했다. 어머니의 존재가 이처럼 위대하다는 것을 우린 비로소 느꼈다. 우리 형제는 어머니의 농궤를 열었다. 복순이가 궤속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여놓았다. 우리가 방학이면 사오군 한 옷감들이 그속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지난 방학때 복순이와 함께 사왔던 속벌도 다치지 않은대로 있었다. 맨밑에 보자기 네 개가 있었는데 보자기마다에 꼭같은 물건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모두가 우리 네 오누이들의 첫날옷감들이였다. 그리고 옷감속에는 500원짜리 저금통장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모두 우리 네 오누이의 이름으로 저금한것이였다. 우리 네 오누이는 또다시 목놓아 울었다. 현금 2천원과 첫날옷감, 이것은 어머니의 피땀이였다. 어머니는 마지막 한방울의 피까지 고스란히 우리에게 바쳤다. 우리의 미래에 바쳤다...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5년철이 지났다. 고향산기슭에 자그마한 봉분 하나를 남겨놓고 그저 소리없이 가셨다. 눈녹은 언덕에 파란 풀잎이 봄꿈에 녹아있다. 그속에 어머니께서 잠드시고 있다. 영원히, 영원히... 연변대학문학반졸업작품집《그녀의 세계》1987년 연변인민출판사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