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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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지능화시대는 조선족의 광명시대 댓글:  조회:2849  추천:0  2018-03-09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대회 기간 중 남들은 어쩌고저쩌고 술렁거려도 무심히 지나쳤는데 어느 신문에서 볼거리 뉴스를 하나 발견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개발한 지니톡(GenieTalk) 번역기가 출시되어 인기몰이를 한 것이다.한국어 기반으로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8개 말의 일상용어들을 거의 완벽한 정도로 통번역하는 것이다.그는 음성과 이미지 글자를 인식하고 즉시 역출(译出)할 수 있는 기능으로 언어가 불편한 손님들에게 택시 찾기,호텔 예약,상품 구매,명소 관광 등 안내를 담당해 주기에 충분하였다.지능화시대,언어 장벽이 사라지는 세상 변천의 무상함을 절감하였다.   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의 세평을 검색하니 숱한 외국어 학습자들이 고생바가지를 뒤집어쓰고 공부할 이유가 있겠냐는 김빠진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비주류 어종의 학도생들 정서가 더 곤두박이를 친다.언어 생활의 지형에 심각한 변혁이 일 것은 명약관화이고 특히 영어 이외의 언어는 지망생들의 수량적 감소로 이어질 것이 기성 사실화로 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최첨단 통번역 기기도 언어 생활에 완전무결하게 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인간의 정감,정서의 미묘한 차이 그리고 상황에 따라 유머와 숨겨진 뜻을 전달해야 하고 고저장단 악센트를 써야 하는게 언어이다.특히 만무일실의 책임을 요구하는 계약언어,기술언어들과 문화 작품 등은 더욱 사람의 몫이 된다.하여 대량적인 중하급 언어 활동은 번역기 대체가 가능하나 고급언어는 인간만의 령역이 되는 것이다.   번역기 보급으로 중한 언어의 희망자가 줄면서 조선족 이중언어의 희소가치가 폭증할 것은 의심할 바 없다.조선족 사회는 비록 인국 감소의 고전을 겪고 있지만 다가오는 제4차산업혁명의 물결을 우에서 이중언어에 힘입어 광명시대를 맞아온다는 새 희망을 보게 된다.우리는 심리학, 언어학, 교육학,생리학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이중언어의 발전연구를 진행하면서 시대적 준비를 해야 한다.   조선족 사회에는 민족문화허무주의 근시안적 착각과 이중언어가 아이에게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부모 측은지심이 뿌리 깊다.이것은 유소년 시기의 잠재력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우려이다.미국의 한 언어학자는 유소년기의 언어습득 능력은 어른보다 70% 이상 높은데 이 생리기가 지나면 (13세전후) 이미 습득한 언어 이외에 어려워진다고 말한다.또한 이 시기에 맞춰 다중언어를 주입하면 또 하나의 ‘언어의 뇌’가 형성되어 일생 동안 리득을 본다고 설파한다.   이중언어를 핵으로 한 조선족문화 위상은 가파른 상승 일로를 걷고 있다.기성세대는 후대의 언어교육에 로심초사(劳心焦思)의 공을 들이고 용전여수(用钱如水)의 돈을 쏟아야 한다.랑패해도 속 탈 일은 없고 실패해도 제노릇이 되고 손해나도 본전은 넘어 나온다. (끝) 길림신문 2018.3.6
163    일자리가 후대의 미래다 댓글:  조회:2403  추천:0  2018-03-01
제4차산업혁명이 세계적 화두가 되면서 일자리가 곁달아 론제의 중심에 떠오르고 있다. 인공지능에 배제될 과잉 인력의 생계와 직결되는 심각한 사회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부의 대응책이 필요할 것이지만 차세대와 기성세대 개개인은 정면으로 맞설 준비가 있어야 한다.   지난해초,독일 아디다스그룹이 로동자가 500명인 중국 신발회사를 본국에 철수하고 인공지능 로보트공장을 설립하였는데 전원 12명이 원래 원가의 55%로 동일한 생산량을 실현하여 세계가 경탄했다. 현재 국내외의 산업,행정,서비스 업체 곳곳에서 인공지능 기기와 마주하게 된다. 미구하여 의사,변호사,증권투자 등 인기직도 ‘전자일군’에게 겁탈당한다는 의아한 세월이다. 오늘의 자동차 운전수가 래일은 술기군 취급을 당하게 되여있다. 학자들의 이구동성이다.   미래의 과학연구나 행정관리 등 사회정상 분야는 극소수 최정예의 령지가 될 것이고 지식의 공유화가 실현되여 일반 지식인도 고급 기술자로 쉽사리 등극한다. 지식의 수명은 ‘노루꼬리’가 되고 업무 장악은 ‘약과 먹기’로 된다. 전통 일자리는 20년내에 65% 이상 사라지는데 대비해 인간 직접 상대의 서비스업이 우후죽순으로 탄생될 것이다. 때가 되면 시험만점 만물박사가 고급 인력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융합적 창의력이 차넘치고 대중의 공감을 부르는 인문학적 매력이 있어야 일인자로 되고 왕좌 일자리에 앉는다. 미래학자들의 고견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신기해도 결국 인간이 설계한 론리회로에 따라 움직일 것이고 그냥 인간 관할의 령역이 된다. 그는 결코 인간 본연의 가치인 투명한 도덕성, 따뜻한 인성, 타문화에 대한 리해와 배려를 대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보 수집에 능하고 인간 교제 솜씨가 있고 다양한 인맥과 파트너십을 구성하는 기능이 있어야 일자리를 무난히 파고들 수 있다. 류추해보면 조선족은 지능사회에 적격인 인재 집단이라 해도 실언은 아닐 것이다. 력사가 증명하고 현실이 수긍한다.   이제 조선족은 미래 좌표를 어디에 설정해야 하는가. 지난 몇십년 동안 조선족은 중국의 개혁개방과 세계화 발전의 선두에서 달렸으며 세계 7000만 한민족이 중국과 교류하는 교두보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여왔다. 조선족은 문화를 무기로 본국과 세계 발전에 기여하면서 민족사회를 발전시킨 쾌거를 이룩하였다. 조선족이 가장 세계화된 민족이 되는 것도 문화라는 이 동력원이 있기 때문이였다. 중한 두 문화가 융합된 조선족문화, 이 문화는 새시대 일자리 절벽을 넘을 수 있는 불후의 무기로 된다해도 넘침이 없다.   현재 조선족사회는 인구의 이동,감소와 문화 위축이란 선와에서 해탈하지 못하고 있다.핵심적 고민거리는 교육 위축인데 그중에서도 기성세대의 낡은 사상 잔류가 난제이다. 문제 풀이와 암기식 공부에 몰두하며 대학 진학이 최고 목표라는 함정에서 헤여나지 못하고 고학력이 철밥통이란 전근대 관념도 뿌리가 깊다. 더구나 민족문화를 멸시하고 홀시하는 민족허무주의 의식이 상당히 완고하다. 내 아이들이 학력을 취득하되 더우기는 좋은 일터로 가도록 길을 열어주고 혈한을 쏟아야 한다. 민족문화의 가도를 달리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현대 사상을 심어줘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보급되면 기업의 경영 방식과 환경이 판이해지고 고용구조도 쇄신될 것이다. 지금 재택근무제,일자리공유제,원격근무제,집중근무제 등 다양한 탄력근무제가 류행되는데 오라지 않아 일파만파로 확산되게 된다.평생 한 직장이라는 사상에서 탈피해야 하고 일생 동안 적어도 2,3개의 직장에 근무하거나 동시에 2개 이상 회사에 근무할 기능도 갖추어야 한다. 조선족은 문화자본에 의지하여 최대급속으로 적응할 수 있다.   현실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민족문화를 버리는 부모들이 속출하고 있다. 중국에서 사는데 민족문화가 소용없다는 원생물 단세포식 사고이다. 중국이기에 민족문화 가치가 높아진다는 점,중국 조선족이기에 극적인 발전을 가져왔다는 력사사실은 민족문화의 선진성을 공인하는 명증이다. 더우기 이중언어는 두 외국어 효능을 발생하는 무상의 보물이고 지능화 시대의 일자리를 찾아내는 시추기 작용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 중한융합문화인 조선족문화는 번영시켜야만 한다.   새시대를 살자면 일자리가 첫째이고 일자리가 미래이다. 기성세대들은 민족문화가 립신양명을 실현하는 탄탄대로라는 진리를 후대의 사상에 주입해야 한다. 연변일보 2018.2.28
162    참삶의 최우선 조건 댓글:  조회:2318  추천:0  2018-02-26
정유년이 365일, 그 8760시간을 어디다 써버렸는지 아리숭한데 무술년이 찾아온다.가치는 날고 말은 뛰고 산간 석암들은 좌이부동으로 세상 만물과 같이 새해에 돌입한다.허나 삼라만상은 잠잠한데 지구 생태계의 독재자로 군림한 인간만이 송구가 아쉽고 영신이 즐겁다며 시끌거리는 같다.   해마다 이때면 례년 행사로 친구 모임이 벌어지는데 나름대로 입수한 뉴스와 눈동냥귀동냥 정보를 가지고 집합하다보니 이야기판은 늘 백화만발 백가쟁명의 생동활발한 국면이고 권커니 잡거니 술잔이 몇 순배 돌면 취담취설(醉谈醉说) 연출이 불문률처럼 막을 올린다.이번 모임의 오가는 말 가운데서 목소리 톤이 가장 높은 친구 연설이 인상적이었다.설이 박두하니 년하 메시지들이 날아오는데 이왕이라면 그런대로 즐거웠고 ‘나그네 말죽 먹이 듯’ 회답도 보냈는데 정년퇴직 후부터는 이런 인사범절이 질색이란다.더구나 그닥찮게 보던 친구들이 내 쎄다고 입김 큰 소리를 전해올 때면 실소리 생소리에 대포도 놓으며 맞장단을 쳐야 제격인데 짝진 기분에 응답이 고역이란다.그들은 지식도 사상도 일재간도 나보다 어방없는데 감투 사냥에 령악하고 관운(官运)이 좋아 상감마마 관복(官福)을 누리며 으시댄단다.부언하여 나도 제 푼수를 잘 알고 처신했더면 웬만한 강산은 쥐락펴락할 호랑이었을 거라며 우통을 썼다.     그 열변을 들으며 속이 씁쓸하고 귀가 따가웠지만 의기투합한 이심전심(以心传心)이 원인인지 ‘자기를 아는 자가 현자’라는 자지자명(自知者明) 리치에는 수긍이 갔다.세월의 징검다리를 뛰넘으며 살아오다 인생의 가을하늘에 몰골을 여겨보니 어색하게 비치는 나이다.차분히 생각해 보면 내가 무엇이고 어디에 써먹을 ‘원자재’인지를 불문에 부치고 무작정 덤빈 업보가 아닌가 본다.지난날 삶의 현장을 돌아보면 무엇을 이뤄도 보고 실패나 좌절을 피하려 애면글면했지만 늘 밀운불우(密云不雨) 형국에서 탈출하지 못하였던 자신이다.오늘 내 삶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자가당착 교훈의 창고를 뒤져보니 나를 잘 알아야 참삶을 산다는 소견의 진리성을 골수로 느끼게 된다.    특히 생계 전쟁에 출진한 전사들에게 있어서 내가 무슨 ‘재료’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더 결정적 의미가 있다.내가 나무인데 강철이라 고집하면 인생이 희극 놀이가 되고 자신이 나팔꽃 풀이 분명한데 장미꽃을 피우려 한다면 뜬구름만 잡게 된다.자신의 지능지수(IQ), 감성지수(EQ)와 천성을 포함한 생득 기질부터 나의 강점과 복잡한 생존 여건을 알아가며 성취 가능한 분야에 투신해야 한다.쾌락을 추구하는 범인의 삶이거나 가치를 추구하는 아인(雅人)의 삶이거나를 막론하고 내라는 물질의 ‘물리 화학적 성질’에 대한 분석 판단이 정확해야 바른 길에 들어설 수 있다.자지(自知)가 자신(自信)의 전제로 되어야 하고 자기의 본바탕 그대로 완벽히 인식하는 것이 희망을 열어가는 선결적 필수조건이라는 것이다.     자기를 알았다면 오로지 자신이 되어야 한다.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로 되는 것이라 말한다.사람은 늘 타인을 배우고 타인이 되려는 심리적 경향을 가지게 된다.그러나 량약은 체질에 맞아야 좋은 약이고 고가 패션도 체형에 맞아야 고급 옷이 된다.그렇다면 자기 본체에 대한 자아진단이 우선이다.위하여 늘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남이 평판을 귀담아 듣고,남의 찬사에 현혹되지 말고,남의 비판을  감수(甘受)해야 한다.이리하여 자기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수립해야 한다.   현대인은 자아의식이 발달하고 아집이 세며 집착이 강하여 외부의 정평을 쉽사리 마이동풍(马耳东风)으로 흘려버린다.물건의 무게를 알려면 저울추를 봐야 하듯  내가 어떤가를 알려면 남의 눈에 비춰봐야 한다.허심탄회하면 진보하고 자만자존하면 락후한다는 현인들의 교시는 명기해야 할 지침이다.그리고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극소화시키고 무효화시키는 노력은 평생의 과업으로 떠메야 한다.   오늘의 세계는 자동화, 디지털화를 넘어 지능화시대의 해일을 맞고 있다.새 세상을 마주하여 시대를 따르는 여세추이(与世推移) 정신으로 자기에게 알맞는 전문성을 키우지 않는다면 도태의 신세를 면하기도 어렵다.하여 남의 뒤를 여영부영 따르지 말고 자아개발과 자아실현의 아성을 구축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임을 류념해야 할 것이다.   내 ‘재질’을 알고 자기의 적재적소(适材适所)를 분명히 판가름한다면 인생 대성(大成)은 말고라도 유유자적 호강살이는 별문제일 것이라 단언한다. (끝)   2018-02-23일 연변일보 원문,
161    조선어 리탈의 심적 원인 댓글:  조회:3973  추천:0  2018-02-12
일전 친구가 부탁하는 대졸생 구직자를 만났는데 조선말은 유아기 수준이고 글은 생판이었다.애초 중국어라도 밥그릇은 충분하다며 조선어를 포기하였는데 일자리를 찾으려니 선택 공간이 비좁고 거대한 무형 손실이 감지됐단다.복수불반(覆水不返)의 재난적 실수라며 부모들에 대한 불만도 내비쳤다.이런 현상의 뿌리는 인간의 잠재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인간에게 있어서 어떤 사물에 대하여 소유했을 때는 무감각하나 상실하면 그 가치가 재생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데 심리학에서 불가용성 효과(Effect of Unavailability)라 한다.모든 인간은 자기 장점이 있으면서 늘 홀시되거가 느끼지 못하고 있다.대신 타인의 장점에 대하여 민감하고 부러워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이것은 ‘이 산에서 보면 저산이  높아 보인다-这山望着那山高’는 감각감정으로서 여기서 해탈하지 못하면 자기의 내재적 가치를 상실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이것은 인간성의 약한 고리가 아닌가 본다.   다음,인간은 자아중심사고가 주도적 위치를 점하도록 되어있기에 동일한 상황의 비교에서 일반적으로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남의 짐이 더 가볍게 보이는’ 착시 현상이 생긴다. 이때 외부의 정보가 부족하거나 틀린다면 겉이 속이라는 직판 결론을 내리게 된다.이것은 인간이 사물의 표상에 려과없이 미혹된 결과로서 인간이 쉽게 범하는 인지 착오이다.심리학에서 자기중심적편파( 自我中心偏误)라고 한다.   그다음,인식론적 시각에서 보면 인간의 인식은 편면적이고 단편적인 감성적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추상적 사고를 거쳐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리성적 인식으로 나가게 된다.이러한 외부 감각을 기초하는 외계 대상에 대한 인식이 정확히 개괄되지 못한다면 사물의 본질을 포착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오류적 판단에 따라 우행우거(愚行愚举)를 범하게 된다.인간이 보편적으로 범하는 인식론적 착오의 근원이다.   이러한 착오 동기의 발생을 방지하는 처방전은 정보의 지속적인 소통과 투명성에 있다.우리에게는 민족문화의 귀중성,세계적 가치성,미래의 전망성을 밝히는 진지한 분위기 조성이 절실히 필요하다.특히 부모들은 민족문화의 가치를 원형 그대로 인식하고 유물인식론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그중 개혁개방 40년 력사 속의 조선족발전사는 감동적인 력사교과서이다.   인생의 첫걸음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부모가 자식의 생살여탈(生杀与夺) 절대권을 거머쥔 ‘독재자’이다.그렇다면 부모들이 ‘독재주의’ 권력을 행사하기 이전에 시류를 바라보는 예지를 가지고, 인류의 문화다양성과 중화민족의 문화발전을 추진한다는 고귀한 차원에서 민족문화를 아이에게 전승해도 유익무해할 것이다. 2018-02-11  / 길림신문 김인섭
160    교토삼굴(狡兔三窟)의 지혜 댓글:  조회:2329  추천:0  2018-01-29
‘교토삼굴-狡兔三窟’이란 사자성어는 ‘토끼도 굴 세 개를 파고 산다’는 속담의 류의어로서 말글에 자주 오른다.살면서 기정 목표를 향해 나가되 후퇴의 대피처와 불의사태의 대비책을 마련해 놓고 삶의 안전계수를 높인다는 의미일 것이다.요즘 한 송년회에서 유명 투자그룹 한국부대표의 경력을 들으면서 이 명언을 테마로 붓방아를 찧고 싶었다. 올해 40대 후반인 그는 이 동네의 본토박이이다.대략 30여 년 전 소학교 입학시 부모들이 조선어가 소용도 없다며 자초에 타민족학교에 보냈다.그런데 아버지가 돌연히 전향하여 ‘토끼도 굴이 세 개’라며 도로 조선족학교에 중도입학시켰다.나라가 개혁개방 로선을 수립하는데 써먹을지 모른다는 리유도 작용하였다 한다. 대학 문을 나와 일터를 선택하는데 결국 중한 이중언어의 장점이 있었기에 한국 대그룹에서 높은 대우로 영입하였다.그후 그는 소학교의 조선어 기초에서 민족어 공부에 정진하면서 승승장구로 업적을 쌓아 신뢰를 쌓았고 지속적 발전 토대를 마련하였다.현재 회사의 한국부대표로서 맹활약하는데 사업이 성업이라고 으시댄다.그 아버지가 어망간 휘두른 손질이 러키펀치(幸运拳)로 되어 케이오승(击倒获胜) 쾌거를 이룩한 사례이다. 현대 생활의 회전 주기가 짧아지고 내용이 복잡해 지면서 인간 생활에는 많은 불확실 요소들이 루적되고 있다.이런 현실에서 자기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 영재들,무작정 진공을 들이대다 전후좌우가 막혀 장렬하게 ‘전사’한 용사들,실현의 불가능성을 간파하고 만회 시간이 안되어 주저앉은 엘리트들의 경험 교훈은 명기해야 할 바이다. 이제 10~20년 후의 후대들은 첩첩산중을 헤치는 삶의 변곡점에 이른다.평생 직업은 미구하여 구시대 유물로 될 것은 명약관화이다.이제는 인공지능이 대체 안되는 특화된 인간성을 보유하여야 선택의 길이 넓어진다.다양한 인간들과 감각적 교류로서 인맥과 파트너십을 구성해 나가는 자가 선두주자가 된다.이 인간 대 인간의 교류 무기인 이중언어와 다중언어 그리고 매력적 민족문화가 살자리 개발의 공분모가 된다고 사회가 공인한다. 기성세대들은 후대에게 여러갈래 선택의 길을 열어주기에 고심해야 하고 피격시의 은신처,익수(溺水)시의 구명구,실패시의 지팽이를 만들어 주는 미래 감각이 있어야 한다.력사 검증을 거친 민족문화 가치가 중국과 세계에서 상승 일로를 걷는다는 사실을 더도 덜도 없이 전승해야 한다. 지능화시대에는 극소수 외 절대다수는 평생 직장이 있을 수 없다.위하여 두개 굴을 팠다는 본문의 사실은 귀감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만약 영리한 토끼처럼 굴 세개을 파 준다면 그 미래는 더 찬란할 것이다.우리 후대들은 완전히 가능하다.그런데 성불성 책임은 부모들께 있다.  길림신문 2018.1.26
159    문화리력서 댓글:  조회:4056  추천:0  2018-01-25
제4차산업혁명이 현실화 되면서 ‘달리는 말에 채찍질’이란 괘속도 수사법이 표현한계에 이르렀다.타임머신(时光机器)을 타야 급변하는 세월의 변속과 등속을 유지한다는 설법이 과학계에 생겨났다.매일 줄지어 탄생하는 인공지능 신물신품들은 인간을 장미빛 세계로 유혹하면서 목황황(目䀮䀮) 공황장애에도 빠지게 한다.   최근 알리바바 그룹이 항주에 무인상점을 열어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스마트폰으로 이차원코드를 인식하고 입점한 후 상품을 들고 나올 때면 인공지능센서가 자동적으로 가격을 정산하고 구매자 알리페이(支付宝)에서 금액을 인출한다.관리의 편리성과 신속성,계산의 실시간성과 정확성 그리고 인건비의 대량 절감 등 승수효과가 매력적이다.   몇몇 나라에서 무인차가 등장하며 세계적 화제가 되었다.인공지능이 방향조절,속도가감.진퇴동정(进退动静)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동차다.우리 나라도 핵심기술이 개발 완료 상황인데 대비해 미국에서는 관련 법안이 제정되었고 미구하여 상품화 생산에 진입한다는 멧시지다.에너지 절약,환경 개선,교통체증 해소 및 경제성과 편리성에다 제조원가 절감,인력 삭감 등 시대적 장점이 부각되면서 전통 자동차 업계는 깊숙한 고민에 빠졌다.    근간에 많은 나라의 제조업,행정,금융,에너지,유통,의료 등 전연 분야들에 인공지능이 도입되고 지능화가 가시화되면서 인력이 배제되는 현상이 이는 동시에 생계에 절박한 일자리는 어쩌냐!는 아우성이 일고 있다.일각에서는 때가 되면 새 일터가 생길 것이라며 위사(慰词)를 던지지만 인력의 절대과잉으로 발생하는 일자리절벽을 어떻게 뛰어넘는가?에는 명답이 없다.   일전 한국의 한 로봇전문가와 미래 일자리에 대해 담론했다.오래지 않아 사회의 리드 계층인 행정관리,과학연구,안전보위 등 분야의 인력은 현재 대비로 90% 이상 줄고,제조업 전선도 70% 이상이 준다는 얘기다.새 지식이 우후죽순이고 지식 수명은 짧아지고 배우기는 손바닥 뒤집기로 쉬워진다.대신 인공지능이 대체 불가능한 인간 대 인간의 서비스 업종이 대량 파생된다.그때면 인간과의 직접 교류에  필수조건인 문화적 매력과 다중언어 기능을 품은 자가 ‘문화리력서’를 제출한다면  어쩔 수 없이 일인자로 뽑힌다.학자의 그럴싸한 견해다.   조선족의 영원한 터전은 거대한 중국이고 으뜸의 거래 상대는 세계 7000만 동족이고 세계적 기대는 중한우호교류의 교두보라는 이것이다.이 천혜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새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 민족은 문화를 무기로 다각화적 다원화적 취직 준비에 만전 기해야 한다.민족 문화가 로동시장에서 망거목수(网举目随)의 즉효를 봤다는 력사는 명기해야 할 바이다.   지능화시대에서 살 후대를 위하여 문화 번영의 탄탄대로를 열어가는 것,이것은  기성세대가 짊어져야 할 성스로운 사명이다. 길림신문 2018.1.22
158    작은 부탁 댓글:  조회:2368  추천:0  2018-01-19
2017년이 작별없이 사라졌는데 륙십갑자에 따라 지어진 정유년도 무술년으로 넘어간다.세계의 다수 나라들이 양력 1월1일을 새해로 다루는데 대비해 우리 나라에서는 음력설에 새해맞이 무게가 실려있다.이상하게도 어떤 나라들은 3월 중순이나 4월이 신년인가 하면 춘분 혹은 하지날에 설맞이 행사를 치르는 민족도 있으니 세상이 실로 천자만태이다.그러나 부동한 민족이 부동한 문화방식,세계관과 신앙에 따라 설맞이에 명절색을 띄우며 앙천축수하여도 번영창성이나 부귀공명을 바라는 마음 하나는 일매지다.   지난날 이맘 때면 이 자신도 늘 요행수나 노리고 공떡을 바라며 천행만복이 구천직하로 떨어지라 들먹거렸는데 재수는 늘 용케도 비켜가고 찬송가처럼 외웠던 기원사는 그냥 공념불이 되면서 유야무야 한 해가 되풀이 되었다.이런 까닭에 작년에 세신 때면 송구영신이란 프로그램을 아예 지워버리고 매일매일을 새해로 삼고 살자는 결의를 다지였었다.그런데 주위에서 또 다사다난한 한해였는데 새해는 어쩌고저쩌고 부산을 떨고 있으니 겉잡을 수 없는 심동(心动) 이 덩달아 일어난다.집단의식에 어쩔 수 없이 끌리는 것도 인간의 제어불능  본능욕이 아닌가 본다.   자기 의지를 떠나 주어진 지리적 여건이나 사회 환경에서 살아야 하고 거기에 걸맞는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는게 인간의 숙명이다.그러니 주위 생활 요소들이 변하면서 기존의 리념과 바람이 따라 바뀌는 것 역시 불가항력 변증법칙으로 봐야 한다.사람들이 년륜이 늘고 신체생리의 구동력과 세간에서 활동 반경이 줄면서 자기 미래에 대한 희망은 서서히 줄고 욕망도 그냥 소박해 진다는 사실도 이 합법칙성의 소산일 것이다.자신도 이 법칙의 한계를 초월하지 못하는 느낌인데 반대로 아이들 앞날에 대한 희망은 시너브로 더 커지고 이름 모를 근심걱정이 속구석에서 그냥 붙어도는 연유는 어디에 있을가.넘어야만 했던 인생 곡절과 감내해야 했던 시대적 고초, 이런 현실에 덜미를 잡혀 살아온 가닭일가.지난날 겪었던 사실(史实)들이 기억의 화석으로 남았다가 때가 되면 자꾸 불끈거린다.오늘도 황량하고 힘들었던 길에서 결실과 보람을 탐닉하며 써내려 온 경험집에서 무엇을 골라 내 아이들께 설파하려는 갈증이 일어난다.     인간이 자아의식이 터서부터의 생활은 선택과 포기의 련속이 아닐 수 없다.성공을 희망하면 안일을 포기해야 하고,영예를 얻으려면 사욕을 포기하고,인민 공복이 되려면 부패를 포기해야 하고, 남을 신임을 얻으려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체경을 앞에서 보면 뒤면을 못 보듯 무엇을 소유하고 취득하려면 그 대립면을 포기해야 한다.어떤 일에 집착한 나머지 시비곡직과 선악청탁을 분별없이 외면하면 늘 인생 자체를 포기하는 사태를 맞기도 한다.요즘 항간에서 립신양명하려면 기회 선택이 우선이라는 설이 넘치고 있다.그러나 정확한 포기가 없는 선택이라면 부어놓은 정성의 다소를 막론하고 간단히 도로나무아미타불(徒劳南无阿弥陀佛)이 된다는 교훈이 무시되는 같다.그렇다면 옳바른 선택과 정확한 포기는 이음동의어(异音同意语)로 봐야 마땅하다.사람이 살아가려면 갈래갈래 나뉘는 로터리(环状交叉路)를 수시로 지나야 하는데 이 때의 정확한 포기 가치는 옳바른 선택의 중요성을 훨씬 릉가하게 된다.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한가지에 결사적 노력을 해야만 했던 우리 세대,우리들에게는 참고 견디며 투쟁하는 것이 최상의 미덕이고 지혜였다.자주 선택의 터전이 너무도 척박했던 시대적 원인도 있었지만 선택과 포기의 변증법에 숙맥이었던 자기부족이 실패와 좌절을 초래하는 내적원인이었다는 더욱 절감하게 된다.그 시절 첨예한 고민에 빠져 우왕좌왕하던 어두운 기억들이 아직도 처절한 가슴앓이로 남아있다.오늘은 정보와 기회들이 파도처럼 덮치는데 수많은 호기와 도약의 찬스의 홍수 속에는 버려야 할 대량의 무용지물과 오사리잡것들이 뒤섞여있다.불가능성과 가능성이 얼기설기 헷갈리는 이런 세상에서 혹독한 시련을 참고 견디는 정신만이 찬양을 받던 시절은 먼 력사로 되였다.선택의 폭과 깊이가 급속히 넓어지고 깊어지는 때 물심량면의 효과를 어떻게 극대화하는가는 선택과 포기가 얼마나 귀중한지 모른다.때문에 유해물과 장애물을 포기하는 지혜의 가치가 빛나는 것이다.   말글에는 ‘한 번 실족이 천고의 한이 된다’는 관용어가 자주 등장한다.추론해 보면 페기물 눌러두면 한생의 후회를 빚는다는 뜻이다.물욕이 넘치고 인심이 박해지는 세상일수록 실리를 위해 묘언이나 묘수를 앞세우는 론리가 금물임을 명기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어떤 일에 전력투구하더라도 포기 프로그램을 늘 련동시키야 함을 좌우명으로 지켜야 한다.   지난날 포기불능 증후군(综合症)이 골병이 되어 좌충우돌하던 나를 돌아보니 왜 그리도 둔감했을가 우습다.세상 만물의 더미에서 불량품과 말짜들을 적시적기에 골라 포기하는 용단이야말로 참삶을 살아가는 첫 요건임을 통감하고 있다.하여 마주오는 지능사회를 무난히 살자면 선택 고수가 되기 이전에 포기 달인이 되어야 한다고 호소하게 되는 것이다.   정유년 세모와 무술년 정초,이것이 내 아이들께 보낸 작고 지극한 부탁이다.   (끝) 2018-01-19 연변일보
157    무례와 불손의 부메랑 <自作自受> 댓글:  조회:2635  추천:0  2018-01-19
지난해 한국에서 방영된 ‘청년경찰’ 영화가 재한 조선족의 범죄를 침소봉대(针小棒大)로 과장하고 민족 실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안기어 조선족 단체들과 지역 지성인들이 제작사를 향해 거센 반론을제기했고 관련 단체들도 ‘공동대책위원회’를 설립하고 항의해 나섰다. 영화 배경이 된 한국 서울시 대림동은 3D(더럽고,무겁고,위험한) 로동 현장에서 핏땀을 쏟아내는 재한 조선족들이 집거하는 터전이고 정보를 공유하고 향수를 달래면서 병주고향(并州故乡)으로 살아가는 공회당이기고 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사가 범죄소굴로 만들며 겨례의 차디찬 가슴을 허비는 행실은 무지의 극치라고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그 친구들은 그저 무심히 내던진 오작(误作)이라며 건성으로 얼버무려도 고혈을 짜내면서 기시를 받는 동고지인(同苦之人)들의 흉통에 진통약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한국의 발전에서 불가결의 존재이고 중국의 민간 ‘외교사절’인 동반자에게 오물을 들씌우는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캐묻는 것도 도를 넘는 처사가 아닌것 같다. 한국의 대표적 연구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재한국 외국인의 범죄에서 조선족은 외국인 중 최하치이다.기타 강력범죄도 내국인보다 무척 낮은 수준이고 조선족이 한국의 법제도와 사회에 대한 인식 수준도 한국인을 믿돌지 않는다는 평가이다.더구나 거주민과 지역 사회의 공동한 노력으로 대림동의 범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되는 현실인데 실상이 왜곡되고 있으니 그 영화의 진상 규명도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 만연되는 저출산,고령화,3D업종의 거부 등 원인으로 발생한 로동력의 대량 수요와 중국의 개혁개방이 합류되어 산생한 시대적 산물의 하나가 조선족의 한국 진출이다.이는 두 나라와 전체 민족이 공동히 발전하는 동력이었지 결코 생계를 위한 일방적인 구걸이 아니었다.한국인도 세계로 나가야 하고 국내서도 다양한 외국인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타인을 영입하고 자기도 해외로 진출해야 나라가 튼튼해 진다는 건 일반적 상식일 것이다.손님을 존중하는 이것은 현대인들이 떠메야 할 숙명이고 풀어야 할 과제이고 반납해야 할 부채이기도 하다.살아가는데서 인정의 엎음갚음이란 생활 론리는 지켜야 할게 아닌가.   간혹 인터넷에서 한국 관련기사의 댓글란을 번져보면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에게 퍼붓는 넨장욕들이 줄줄히 떠오른다.주요 리유라면 한국인들 골수에는 자기 우월성과 오만성이 박혀있고 타국인도 약해 보이면 간단간단 멸시하고 차별해 버린다는 이것이다.더우기 한국에서 류학한 경험자들이 되려 유력한 맞장구를 쳐댄다는 사실이다.대방의 문화의 정수를 인정하고 평등하게 화합하는 신뢰성을 보여야 대방이 협력자로 되고 아니라면 골칫덩이 적수로 된다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중국에서 감도는 혐한 정서를 보면 타자를 포용하지 못한 부메랑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재한 조선족들의 삶도 수많은 시대적 아픔을 겪으며 지금은 생계형으로부터 거주형 및 생활형으로 전화되고 있다.그들은 대림동을 안전하고 정결한 문명 지대로 건설하여 현지인들과 공생하는 근거지로 만들기에 각성을 높혀가고 있다.다문화 생활의 정착을 위한 한국정부의 정책적 추진, 화합을 주장하는 현지 지성인들의 공익사업과 대다수 한국 국민들의 외국인에 대한 관용은 세찬 주류를 이루고 있다.문화계와 언론계의 소수가 필봉을 거칠게 내저어도 결국은 시대 조류에 휘말리게 된다.   조선족들도 처지를 바꿔 헤아린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철학으로 진지한 성찰을 진행해야 한다.범죄의 방지에서 련대책임을 지고 공동한 노력을 기울이고 한국인들 눈을 찌프리게 하는 수많은 락후한 구습과 적폐 등 하위 문화를 근절해야 한다.현지의 관습과 특성을 파악하고 한국인들의 거부 정서를 초래하는 원인들을 부지런히 찾아내며 자아개정을 해야 하고 누구나 민족의 대표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특히 한국인들의 섬세한 언행범절과 근면한 로동정신에서 뭔가를 배워야 한다. 곱게 보이면 대부분 차질이 무마되는게 인간 세상이다.‘고운 놈 미운데 없고 미운 놈 고운데 없다’는 인간 근성은 누구도 꼭 같다.   타인의 존엄을 훼손하면 인과보응이 당연하고 남을 상대접하면 극진환대가 지당하다.서로간  존경이 오가야 한다.공생공영이 숙명인 우리 민족들 속에서 ‘청년경찰’이 평화와 화합을 숙성하는 ‘발효효소’가 되기를 바란다. 연변일보 2018.1.17
156    제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취직 처방전은 어디에 댓글:  조회:2056  추천:1  2018-01-15
요즘 현금자동입출금기,인터넷,스마트폰 등 전자매체를 리용한 돈거래에 친숙해지다보니 긴간사가 아니면 실체 은행은 멀리해도 지장이 없다.입금,출금,이체,재테크(理财) 같은 일상적 돈취급을 컴퓨터 시스템에서 진행하면 365일 24시간 어느 때 어디서든 무료 혹은 최저의 수수료로 편리,효율,정확,신속성이 결합된 자동처리 서비스를 받게 된다.   오늘 본인 사인이 필수인 사항으로 은행을 찾았다.그런데 고객 대기석이 전보다 무척 썰렁한데 창구 행원들의 표정도 퍼그나 어두워 보였다.볼일을 끝내고 서비스 담당자와 고객이 적다는 서두로  한담을 시작했는데 그 친구는 단도직입으로 본론에 돌입한다.당신이 안다니는 것처럼 남도 마찬가지일 것이니 한적할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냐 이것이다.돈 관련 정보들이 전자파로 변하여 대기 속을 날아다니니 인공 업무량이 대량으로 줄고 은행 감원을 실시한다는 소문에 행원들의 속내가 불편하다는 실토정이다.   은행 문을 나서며 제4차산업혁명이 은행에 도착한다는 강한 느낌이 일었다.요즘 알리페이(支付宝),위챗페이(微信支付),인터넷뱅킹,모바일뱅킹,비트코인(가상화페) 등등 무현금거래가 줄줄히 등장하며 금융 거래량은 기하급수로 증가하나 무인화 작동이 급증하여 금융업은 엄청난 구조적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심지어 구멍가게도 이차원바코드(二维码)로 돈을 주고받는데 가게 쪽은 가짜지페를 확인하고 거스름 돈을 계산하는 수고를 덜 수 있어 현금이라면 눈을 찌프린다.하여 손이 꿈뜬 로인들이나 스마트폰에 생소한 순민들이 멀쩡한 지페를 들고 ‘지불난민’으로 전락하는 딱한 모습도 볼거리가 된다는 이야기다.   최근에 들어 많은 나라 수뇌들과 전문가들도 제4차산업혁명을 입버릇처럼 외치는데 선진국일수록 그 소리가 높아지고 일자리 타령으로 넘치고 있다.미국 대통령도 한국 대통령도 일자리가 아니면 글이 안되고 말이 안되는데 마치 ‘일자리위원장’이 된 듯하는 분위기이다.그러나 그들은 고용창출이라 호언장담하며 가슴을 치면서도 제4차산업혁명이 로동시장에 주는 충격을 피해가는 적절한 처방전은 내밀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와 밥자리가 당장 절박한 과제가 되고 있으니 많은 직업사회학자들은 고용정책의 유연화를 부르짖으며 교육강화와 잡셰어링(일자리나눔)이란 론조를 부르짓고 있다.지금부터 미래 로동자에 대해 창의력 교육을 실시하고 로동시간과 임금을 줄이는 대신 열이 할 일을 스물에게 나눠주어 일자리를 늘인다는 일설이다.그렇다면 미래의 확론은 잠시하고 일자리가 밥그릇을 채우지 못하는 아이러니와 부조화가 당장 제기될 것이다.   오늘 은행의 변화처럼 바로 닥쳐올 로동의 상대적 공급과잉과 절대적 수요부족이란 이 절체절명(绝体绝命)적 모순에 대해 인간은 정면으로 부딪칠 준비가 있어야 한다.조선족은 두 가지 문화를 차고 있으니 그래도 밥줄 근심 쯤이야 버려도 될 것이나 다른 인민들은 어떻게 살아야 될가? 주제 넘은 근심을 해본다.천주성자(天主圣子)가 풀어갈 난제이다.  길림신문 1월 12일자
155    조선족의 긍정적 자아의식 댓글:  조회:2560  추천:0  2017-12-24
지난 14일 본지에 실린 이란 일문에서 세계라는 시각에서 미래 방향타를 잡는 작자의 긍정적 자아의식을 보아냈다.고난의 력사 속에서 수립된 새 가치관의 축도로 보아진다.세월의 파도에서 좌지우지하던 민족이 일천지하에서 자리매김하려는 이러한 새 사상에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여세추이(与世推移)의 철학 정신이 내비치는 이 객관적 시각에 명견만리 명단(名断)란 고평(高评)을 주어도 리유가 충분하다.   모든  시대에는 특정한 과제가 있고 그 시대인은 걸맞는 소명을 안게 된다.개혁개방에 따른 변혁이 조선족을 빈곤, 좌절과  패배의식에서 탈출하는 목표를 향해 나가도록 촉구하였다면 우리 구성원들은 세계를 무대로 희노애락의 시대를 압축하여 왔다.물론 공동체 해체,인구 격감,교육 위축 같은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명암이 헷갈리는 위기를 무난히 넘어온 결과 민족사회의 부피는 줄었어도 속대가 굳어지고 현대주의 사상이 뿌리를 내렸고 세계 무대에서 새 터전을 마련하였다.이 기상은 조선족 사회가 세계화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명증이다.   이젠 구시대의 발상으로 미래를 마름질하고 리해관계를 규정한다면 력사를 역행하는 위험동작이 될 수 밖에 없다.그 동안 비록 조선족에 대한 비관적인 논조가 끊임없었지만 조선족은 개혁의 물결에서 나라 정책과 세계 질서를 성공적으로 활용하면서 세계 발전의 선두에 섰다고 자신할 수 있다.조선족 사회에는  지속적 발전을 인도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형성되었고 이미 형성된 경제적 기반도 미래 사회의 주추돌이 되기에 충분하다.지금 수많은 조선족 민간 단체들과 문화 단체들이 한국을 중심으로 세계무대에서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   개혁개방은 민족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조선족의 현실과 미래는 한국를 떠나서 운운할 수 없게 되었지만 전세계를 향하는 수많은 지류가 동시에 이러지었다.지난 세기 90년대 초반부터의 민족적 대이동은 결국 농촌으로부터 도시에 진출과  한국에로 줄지은 붐이었느나 오늘에는 중국 각지에 조선족 집거지가 형성되고 한국에까지 조선족 타운이 정착하는 추세를 이루고 있다.국내에서 수많은 조선족 기업들이 규모화와 브랜드화적 발전을 이룩하고 있으며 대한국 투자와 창업도 급증하고 있다.이것은  민족사회 발전의 새 기원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요즘 일본에 800여 개의 조선족 기업이 자리잡았다는 매체 소식이 전해온다.그리고 산업계,학계,언론, 재계와 많은 글로벌회사들에서 조선족 인재들이 중견으로 활동한다는 쟁쟁한 소식들도 끊임없다.민족 엘리트들은 각 분야에서 특수한 기능을 발휘하여 조선족 이미지는 가파로운 상승 곡선을 귿고 있다.조선족의 문화 항선은  일본 땅에서 민족사회 금자탑으로 승화된다고 갈채를 쏟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그 땅에서 민족사회 구조의 맹아가 싹트고 성장하는 양상이 이채스럽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조선족은 ‘중국조선족'이던 시대를 지나 동북아조선족과 글로벌조선족으로 진화하고 있다.유러시아대륙에서 중국 굴기와 더불어 조선족 사회는 세계 한민족이 중국과 교류를 진행하는 현대화적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는 기대가 다시 설레이고 있다.이것은 조선족에게만 주어진 자원이고 새로운 력사적 기회이다.물론 여기에는 조선족이 자기 문화자원을 경제자원과 자연자원으로 전화시키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위하여 우리는 민족문화에 대한 력사적 비판의식과 명철한 긍정적 자아인식을 가져야 한다.   보는 바와 같이 조선족은 민족적 자긍심을 가질 사회적 및 력사적 기반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그러므로 우리 기성세대들은 중국 조선족 특색의 문화를 더욱 잘 전승하고 발전시켜여야  한다는 력사적 책임을 훌륭히 짊어져야 한다.그리고 후대들에게 이 발전력사을 이어가야 할 신성한 책임을 각인시키고  의무를 감당해야 할 핵심사상을 주입시켜야 한다.   조선족이 세계를 무대로 민족중흥의 새날을 열어가는 뱃길은 활짝 열려있다.다만 소망의 성불성은 하기 나름이다.우리는 모든 역경을 숙명으로 감내하며 오늘처럼 전진해야 한다.변혁의 시대에 순행하면 융성하고 답보하면 퇴보하고 역행하면 쇠망한다는 론리,이것이 력사의 불변칙임을 명기하자.  (끝) 2017-12-01흑룡강신문
154    도덕의 자본화 기능 댓글:  조회:3441  추천:0  2017-12-06
 가리봉이라면 한국인들 인상 속에서 조선족 집거지,비위생 지역,범죄 다발지 이것이었다.그런데 요즘 매체에서 보니 지역의 관리자들과 지성인들의 노력에 거주민들이 동참하여 주거 환경이 재빨리 개선되고 범죄가 격감하여 지역민들이 찬사가 쏟는다는 멧세지다.준법정신과 도덕심을 인간의 의무에서 보면 지극히 간단한 상식이지만 재한 조선족들에게 있어서는 뿌리 깊은 적폐이고 주거 초기부터 지탄 받던 난치의 병집이었다는 시점에서 보면 결코 작은 진보로 볼 수 없다.   현재 재한 중국인들은 생활 양태는 입국 초기의 생계형과 치부형을 훌쩍 뛰여넘어 취직형、상주형과 안거형(安居型)으로 전화되고 있다.그러므로 지역의 규제와 행위규범에 따라 행동거지의 높낮이를 가름면서 현지인들과 정서적 통합을 실현하는 것이 필수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향후 장기적으로 생활한다는 불가피성으로부터 보면 그 사회의 륜리 준수는 외국인들 언행의 마지노선(最后防线)이 되어야 한다.그렇다면 가리봉의 조선족 이미지 상승은 틀림없이 도덕 정신의 향상으로 각인되어 취직,비지니스,창업과 현지 교류에서 상당한 자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진다.    자본은 리익을 위해 투입된 밑천을 말한다.그의 목적은 투입된 밑천을 초과하는 재부를 창조하는 것이고 리익과 효과성의 극대화 창출이다.매개 인간이 그 사회에 비쳐진 도덕 수준의 고저는 그의 경제활동 성과의 다소고저에 직결되는 강한 반작용을 하게 된다.여기에는 가치관념,행위규범,민속민풍,생활관습 등등 보편적 생활에 반영되는 행위와 가치관이 포함된다.이 시각에서 볼 때 조선족들이 자기 거주 주위의 환경을 개선하고 사회 질서를 지키려는 의지는 생활의 전부 분야에서 긍정적에너지(正能量)로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것이다.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현재 기업주들의 신용,정직,준법 등 도덕성 요소들에 대한 고차원적 추구가 전례없이 높이고 있다.그들은 회사내 도덕 건설을 인력의 자본화와 무형자산 증대의 일환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정직한 사업가들은 도덕적 이미지 향상을 기업 건설의 핵심적 위치에 놓고 또한 톡톡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불확실성으로 충만된 시장경제 바다에서 도덕의 정화가 기업 발전을 추동하는 필수적이고 특수한 원동력이 되고 있는 현실을 절대 홀시 할 수 없다.우리 나라의 실천에서 봐도 기업 조직의 선진적 도덕문화 건설은 어김없이 조직,개인과 사회에 득이 되는 일석삼조(一石三鸟)의 풍성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오늘 사회에서 정의을 주장하며 사회 도덕을 지키는 인간일수록 사회적 신용이 높아지고 그의 급부(给付)는 더 큰 대가와 보상을 받게 된다.즉 한 인물이 사회에서 얼마나 바른 삶을 살고 있는가에 따라 그 사업의 성패와 득실이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풍부한 도덕자본의 소유자일수록 그의 길은 더 넓어지고 그 보상은 커지고 불가능한 일도 저절로 풀려나간다.지어 눈앞의 손실도 절로 피켜가고 벼락적 성공을 이룩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비지니스 관계 혹은 거래가 이루어질 때 대방은 우선 당신의 륜리 품성을 가늠하는 것이 인간사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어떤 사업을 착수하기 이전에 사회가 자기에게 주는 도덕적 평가를 반성하고 타인 안목 속의 나를 잘 확인하여야 한다.       도덕을 순자본으로 해석한다면 그를 다만 리익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게 되어 도덕의 본연인 리타(利他)﹑헌신적 고상한 정신을 릉멸하는 자가당착(自家撞着)적 모순을 배태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그러나 도덕이란 ‘자본’은 사회적 활동에서 수많은 이득을 얻도록 하는 음성적 작용만은 틀림없다.고상한 정신은 거액의 '리자 수익'를 창출하고 파괴적 도덕은 상환불능의 빚으로 되어 리자에 리자에 붙여가며 사람을 괴롭힌다. 심지어 피타는 노력도 거품으로 만들며 파산으로 내모는 사례도 수없이 많다.도덕의 자본화란 명제가 파생하는 리론적 시비는 학문인들의 일이지만  ‘마음이 고와야 옷깃이 바로 선다.마음이 고우면 신명이 굽어본다’는 소박한 도덕철학은 명기하고 살아야 할 지혜이다.    이국 땅에서 숙명적으로 살아갈 우리 겨례들이 참신한 관습과 성숙된 사고를  현지인들에게 각인시킴으로서 그 미덕이 타향살이의 간난신고를 뛰어넘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을  희망한다.   (끝) 연변일보 20`7.12.6
153    걸으며 생각하며 댓글:  조회:4099  추천:0  2017-12-01
증년(增年)하며 온다는 심리적 변화인가 무력감,무위감과 무료감(无聊感) 등 이상감각이 스멀거리며 감지된다.그래선지 원래 웬만한 용무가 아니라면 나들이가 질색이더니 요즘엔 늘 원인불명의 충동이 일며 어디론가 가고 싶은 생각이 불뚝거린다.오늘도 심심해 나더니 100년사를 자랑하는 근처의 식물원을 돌아보려 털고 일어난 것이다.이 동네에 와 살면서 강산이 두번이나 변했는데 지척에 두고도 가보지 않은 관광명소이다. 입구에 세워진 조감도를 보니 여기에는 중국 북방의 거의 전부 교목들이 자라고 있고 타국 수종과 극지식물도 다수가 귀화되어 생장하고 있다는 얘기다.록음이 우거진 계곡에 조성된 자그마한 인공호수를 중심으로 주위에 정교한 조형물들과 여러가지 대중 서비스 시설들이 축조되었는데 사계절 전천후(全天候)로 관광과 레저를 즐기는 명당으로 충분하다.게다가 희귀멸종위기식물의 번식,자생지 재현, 신품종 개발, 화단 조성 등 자연복원 프로젝트가 속속 진행되면서 식물학 데이터뱅크(资料仓库) 로 불리우며 전문학자들과 대학생들이 운집하는 과학연구와 교육 장소이기도 하다.심청색으로 청푸르른 나무숲과 종종색색의 백화가 릴레이를 펼치는 화단들은 단지 관상 공간이 아니라 식물계를 번영시키고 생태계 가치를 살려내는 보고라 해야 할 것이다. 북방 식물의 본산(本山)이라 불리는 이 공원을 거닐면서 유서깊은 이 자연경관이 몇세대 지성인들의 심혈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오늘도 제복을 정히 차려입은 정원사들은 전지가위를 들고 무더위 속에서 여름 정지에 정진하는 진지한 모습을 선보인다.나무밑 제초, 화단의 풀뽑기와 병충해 방지에 전념하는 원예사들의 여념이 없는 자태와 홀로서기 어려운 나무들에 지지대를 세우는 년장자들이 더위 속에서 고전을 겪는 모습은 가상하다고 형용이 된다.이 천혜의 관광지는 세세대대 로동자들 노력의 생생한 력사 기록인 것이다.바로 그들의 기름땀이 이 촌지의 땅을 식물창고,관광지,레저명소로 건설하였고 관객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면서 도시의 꾸밈새에 생기와 활력소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대자연의 순환에 따라 오는 여름인데 오늘의 감회는 사뭇 다르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의 수확을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해야 한다.그러나 그 씨앗이 싹트는 봄을 거쳐 숲을 이루며 열매를 맺는 결실은 여름의 고역이라는 단계를 넘어야만 알찬 수확을 얻는 것이다.그렇다면 뭇사람들에게 자연과 교감의 기회를 만들어 주고 멎진 추억을 만드는 이 관광지에는 인간의 지혜와 땀과 열의가 가득 담겨있고 속을 말리는 심사숙고와 슬기로운 실천이 쏟아져있을 것이다.목적한 바를 이루려면 개조해야 할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가능성과 현실성을 가늠하면서 지속적이고 섬세한 사업을 전개했다는 명증인 것이다.   지난날 치기와 만용을 부리며 내달리던 나를 돌아본다. 새싹을 틔우던 약관(弱冠)의 20대와 체면의 승화를 꾀하던 이립(而立)의 30대는 희망을 향해 도전하며 치닫는 나날의 연속이었다.대자연의 칠팔월 같은 불혹(不惑)의 40대 장년세월은 결실을 위해 나름대로 호흡 조절을 하며 담금질과 면려(勉励)를 지속하던 고난의 길이었다.그렇다면 인생의 초가을이라 부르는 지천명 50대에는 풍성한 결과물과 웃음보따리를 앞에 놓고 빈정거려야 되지 않았을가.그런데  이순(耳顺)이 되고 봐도 별로 내놓을 게 없어 황당하기도 하다.더구나 어쩔수없이 사회의 가장자리에 밀리는 현실이 박두하고 있는데 받아들이자니 참 어렵다.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을 꿰뚫는 지혜를 지녔다라면 좋았을텐데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그런 재치가 없었다.그러면서도 늘 청운만리의 과욕을 부리고 착실한 실천을 외면하면서 개구리 뜀질로 살아왔다.거기다 교만에 잠기며 인생 여름의 필수 작업을 허투루한 업보가 삶을 랑비하고 지치게 한 원흉이 아닐가 본다.’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라는 전언을 새겨본다.여기서 류추하여 ‘여름에 하루 잘 못하면 겨울에 백날을 굶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높이 서서 멀리 보기 전에 낮게 서서 자세히 보는 것,닫는 말에 채찍질 하기 전에 띄염띄염 걸어도 황소 걸음을 걷는 것,대업을 바라기에 앞서 이소성대(以小成大)의 정신으로 모든 작은 일들을 부러지게 하는 것,이것이 인생의 좌우명이어야 한다.간혹 젊은이들과 인생담을 나눌 때면 이것이 내 생의 실패작에서 얻은 교훈이라고 뇌까리기도 한다. (끝) 2017-09-01연변일보 원문.
152    지능화시대의 민족문화 가치 댓글:  조회:1920  추천:0  2017-11-28
요즘 매체들에 ‘제4차 산업혁명, 지능사회’란 고급개념이 자주 등장되고 새 인공지능 기기의 개발뉴스가 줄지어 전해오면서 지능사회의 시류가 뜨겁게 감지된다. 많은 선진국들의 정부 부처, 사회단체, 공공기관들과 대기업들은 사업계획을 발표하거나 어떤 행사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제4차 산업혁명을 키워드(关键词)로 떠올리며 새 문명 시대를 맞는 모습이 력력하다. 그러나 조선족 사회의 여론 마당은 즘즘한 분위기다. 민족 매체들이 제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에 대해 다루는 것을 보면 대체로 파편적이고 표피적인 수준이고 명확한 개념과 정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대비책은 없다싶이하다. 남들이 서두를 때 준비가 없다면 그 피해가 후대에게 전가되지 않을가 우려된다. 사실상 무인행정, 무인상점, 무인자동차, 드론(무인비행기)배송, 무인은행 등등 지능사회의 ‘맹아(萌芽)’들이 우리 곁에 깊이 파고 들어 일상 생활과 불가분리의 련계를 가지고 있다. 지난 5년간 스마트폰이 생활의 뿌리를 흔들었듯이 제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오는 새 생산력이 우리의 삶을 밑기둥부터 뒤엎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광의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을 모든 산업과 행정 및 인간의 의식주행 활동에 도입하는 과정이고 그 결실로 지능사회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 특징을 요약하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 판단, 추리에까지 침투하여 인간을 체력과 뇌력 로동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사회에 자세한 추단은 어려워도 기존의 사회, 경제, 문화, 산업 등 모두가 상전벽해로 바뀔 것만은 틀림없다. 물론 인류에게 혁신적 혜택을 가져올 것이지만 인간의 로동, 교환, 분배, 소비의 모든 생활은 충격을 받게 되고 매 인간은 새로운 도전과 위기를 넘어야 한다. 우리는 후대들이 무엇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모든 학과가 고도로 융합되고 전문가 독점 분야도 일반인이 가능한 산업 무인화와 지식 공유화로 되는 신화시대이다. 지식의 수명은 전례없이 짧아지고 지식과 기술의 장악은 일필휘지(一笔挥之)로 쉬워진다. 그렇다면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강대한 힘은 정보수집, 인간지간의 감성교류, 파트너십(伙伴关系) 구성 등 기능에서 나온다. 이 원천이 바로 문화인데 그 원동력의 비축에는 시간과 애쓰는 노력을 들여야 장악이 가능하다. 지난날 기성세대가 기계처럼 일했다면 새 시대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사람처럼 일하게 된다. 인류는 무한경쟁을 떠나 포용과 조화를 이뤄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였다. 우리는 민족문화의 전승과 교육에 지극 정성을 쏟아야 하는데 그중 조선어한어 이 이중언어의 가치성은 밤낮 말해도 과분하지 않다. 후대를 조선어와 한어라는 이 두 문화세계에서 맹활약하는 선두주자로, 민족문화로 장점을 발휘하고 약점을 보강(补强)하며 위기사경을 탈출하는 참신한 문명인으로 키워야 한다. 지능화시대는 조선족문화의 번영창성, 가치상승의 르네상스(文艺复兴)의 새 력사라고 단언하기 싶다. 물론 노력이 전제이다.  길림신문 2017.11.27
151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치다 댓글:  조회:2434  추천:3  2017-11-16
친분이 있던 한국 친구와 15년 만에 만나 환담을 즐기였다. 그는 중한일 3국을 오가며 20여년간 무역을 벌였고 초기부터 조선족 파트너들과 인연이 깊어 조선족사회를 손금 보듯 잘 아는 친구이다. 대담 가운데는 조선족 이야기가 시나브로 많았는데 필자는 그중 조선족의 새 발견이라는 말구에 귀가 끌리였다. 개혁개방 후 조선족사회는 인구 감소, 공동체 해체, 인구대이동, 교육 위축 등 생사존망의 위기를 겪었지만 여전히 나라 건설과 국제교류에 매진하면서 든든한 경제기반을 구축하였고 요동치던 민족사회도 연착륙(软着陆)을 이루고 있다. 민족의 3, 4세들은 이미 새 가치관을 수립한 인적자원을 형성하였고 흩어진 구성원들은 민족사회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긍정적 미래를 키우고 있다. 이것은 민족문화가 맺은 결실이다. 현재 재일 조선족이 7만명에서 10만명 가량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역시 세계화 물결에서 성장한 새 세대로서 상당한 학력과 기반을 닦았고 첨단기술, 국제무역, 제조업, 대중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실력 창업자들이 륙속 탄생하고 있다. 일본에서 조선족 한명이면 타민족 3명의 리용가치와 효률성을 낸다는 소문도 있다. 조선족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각이 밝아지고 있다. 보다시피 민족문화가 순발력을 발휘하여 민족을 다급한 고비에서 넘겨주었고 수많은 대항적 모순을 유연하게 소화하고 세계 사회 심부에 파고 드는 지혜를 실어주었다. 민족문화는 조선족들에게 경제, 문화, 인적교류 등 모든 면에서 자국과 타국에 기여하는 핵동력을 부여해 주고 있다. 그중 이중언어는 일본어를 쉽게 받아 들이는 천연적 구조로서 남들은 조선족만의 문화 유전자라며 불가사의 신비라 말한다. 조선족문화와 일본문화의 근친성은 조선족의 또 다른 천연 우세가 아닐 수 없다. 들머리 화제로 돌아와, 조선족의 미래가 넓어지고 인재 수요도 증가 일로로 나가는데 인구는 반대로 감소된다. 그런데 민족문화를 포기하는 상황이 그냥 벌어진다는 소문이 끊임없다. 그 발상은 멀쩡한 눈으로 앞을 못 보는 오산이다. 저쪽에선 부러워 침을 흘리고 제쪽에선 제풀에 내버리는데 이것이 인간이 쉽게 걸리는‘물 속에서 물 귀한 줄 모르는’즉‘귀중불감증’의 증세, 바로 그거다. 내 친구가 씁쓸해했다. 동북아시아는 유러시아대륙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여기의 핵심 원소는 중일한 3국이고 조선족은 이 무대 심장부인 중국에서 3국 문화를 소유한 문화 강자이고 현재는 화상(华商), 한상(韩商), 일상(日商)을 겸지우겸(兼之又兼)한 일인삼역(一人三役) 기재(奇才)들이 속출해야 한다는 국제적 기대가 부풀고 있다. 그런데 그걸 버리는 소행은‘산토끼를 잡으려다 집토끼를 놓치는’오동작이고 나라에 유해무익하고 민족을 뒤걸음질치게 하는 거친 처사이다. 내 친구의 말이다.  길림신문 2017.11.15
150    늦가을 날 혼잣말 댓글:  조회:4556  추천:0  2017-11-10
별일없이 며칠간 두문불출하다 잔뜩 가라앉은 기분이나 추스를 료량으로 집 뒷산으로 산책을 떠났다.   이 동네는 대륙성 계절풍 기후에 속하고 동북의 최남단 해변에 위치하고 있어 해양 특성이 짙은 편이다.하여 상강이 지나면 은행나무들은 단풍을 맞아 이파리들이 조락을 서두르나 다른 활엽수들은 대개 짙은 록색을 확보하면서 사람들에게 가을날의 시원한 정취를 안겨준다.하지만 초목들이 한살이 정리에 서두르는 자연의 숭고한 섭리를 헤아려보며 계절이 남기는 의미에 대하여 찰나적인 자문자답이 불끈거리기도 한다.이 맥락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이 줄지어 떠오르며  이 가을의 상념은 좀 무겁고   란잡하다.   속절없는 세월을 따라 쉼없이 달려왔는데 다가오는 무술년이면 오락가락하던 생계 마당에 종지부를 찍고 다른 의미의 생활에 방향을 틀고 내 인생은 새 전환기에 들어서게 된다.어쩐지 제풀에 가슴 부위가 후줄근해 지면서 어깨가 낮아지고 과거를 반추하는 시간이 시나브로 많아진다. 청춘과 정열을 밑천으로 세상살이 스타트라인(起跑线)에서 출발하여 화복의 산맥도 수없이 넘고 아득한 희로애락의 초원도 지나왔다.정작 일터의 골라인(终点线)이 밟히게되니 뒷등에서는 찔리는 통증이 감지된다.돌아서서 지난 발자취를 헤아려보니 탐욕에 눈이 멀었던 시절의 어리석은 소행들이 인과응보로 되어 고민거리들을 자초한 것이 아닌가 불안이 생긴다.불타는 홍엽들은 부유인생(蜉蝣人生)을 살고 있다는 처연한 기분에 북을 돋구어 준다.    대자연의 초목들이 고색을 내비치는 절박한 이 시절에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도처에 피여나는 들국화가 감동의 기분을 곰삭아 내고 있다.뿌리내린 땅의 비옥이나 척박에 연연하지 않고 찬가을을 맞아 꽃을 뿜어내고 싱싱한 잎사귀를 피워내는 그 자태야말로 삼라만상 속의 백미(白眉)이다.잔꽃,소엽과 가냘픈 수관으로  강직한 진실을 소박한 모습으로 드러내는 겸손함인가 본다.만추의 계절에  개화와 토향(吐香)을 연출하는 그 대견한 모습은 인간의 눈길과 가슴을 매혹하기에 충분하다. 으슥한 수림속에서 그가 전달하는 멧세지는 ‘목 마른 사람에게 들리는 물소리’ 이고 생명의 절대적 진수와 활력소가 아닐 수 없다.     도전이 이어지던 지난 세월에 나름대로 원칙의 틀에서 자아실현을 위해 무엇을 우직하게 고집하며 살아오다 귀착지에 이르러 보따리를 풀어보니 남들께 보일만한 뭐가 없어 황당하기도 하다.속세의 생존년대 구분법을 짚어보니 이젠 이순의 문턱을 넘어섰는데 자기는 인생의 이모작 초입에서 무엇을 해야하나 갈피를 잡지못해 허둥대는 풋내기로 복원된 모습이다. 그래도 ‘인생은 60부터’라는 사촉에 현혹되어 미래 요행수를 바라며 어디에 덤비기 싶다는 심사만 지우기가 어렵다.가부간에 우선  ‘맥도 모르고 침통을 흔드는’ 웃음거리를 만들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야 할 터이다.    다른 삶에 돌입하는 길목에서 지난날 쌓은 좌우명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곰곰히 명상하고 있다.지금부터라도 세속의 천박한 가치에 연연하지 말고,우직한 졸장부의 틀에 매이지 말고, 매일매일 자기삶의 뜰을 한바퀴 돌면서, 적정 안경을 걸고 세상 만물을 심시세람(审视细览)하며 꼿꼿이 살아야 할 것이다. 물신주의에 함몰되어 리타(利他)와 리기의 경계선에서 위태롭게 넘나들던 짓들도 살판뛰기이니 이제는 금물이다. 분수에 넘는 바람은 절대 절제하고 오만 방자의 ‘미세먼지’와는 아예 담을 쌓고 벽을 친다.    과거 일상에서 기를 쓰고 토해냈던 언사들은 꿍얼거려도 잠꼬대일 것이고 늦으나마 웨치는 각성의 소리도 남들에게는 조지약차(早知若此)의 넉두리가 될 것이지만 그래도 내 아이들과는 듣든말든 곱씹을 생각이다.더우기 '춘불경종추후회(春不耕种秋后悔)'라는 진리는 귓등으로 듣더라도 틈만 보이면 되풀어 보려한다.   이제 생활전선에서 퇴장하면 뒤가 켕길 일도 없고 애들도 내 노릇은 내 한다고 호언하니 거칠 것도 없다.그저 홀몸으로 어느 한 모서리를 찾아 정성을 쏟고 가졌던 생각이나 실천해 보려 한다. ‘소 힘도 힘이요 새 힘도 힘’이라 하였다. (끝)   2017-11-10 연변일보
149    지능화시대의 취직 준비 댓글:  조회:1765  추천:2  2017-11-02
요즘 무인공장, 무인자동차, 무인매장, 무인사무실 등등 새 사물들이 줄줄이 등장하며 무인이 세계적 화두가 되고 있다. 오늘은 일본의 백화점에 안내로봇이 등장하여 독자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생한 뉴스가 전해온다. 인간 로동이 인공지능에 대체되는 비디오 장면을 보며 당혹감마저 느껴진다. 로봇은 고객의 물음에 따라 상품의 가격, 기능 및 소재를 일본어와 영어, 그리고 화면으로 소개하고 고객의 수요에 따라 목적 장소까지 안내하고는 원 위치로 정확히 돌아온다. 페점후 상품 태그(标签)를 확인하고 재고정리하며 수자도 계산해놓는다. 초인간적으로 령민한 감응신호장치의 작동으로 고정물과 사람사이에서 통로의 광협장단(广狭长短)을 판단하고 장애물을 피하며 전후좌우로 움직이는데 그야말로 신비 세계의 체험이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에서는 2025년이 되는 때 한국내 현재 일자리중의 61.3%가 지능기기에 의해 대체된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것은 단순로무직, 관리직, 사무직 등의 일반 직종 뿐이 아니고 변호사, 의사, 교수, 과학연구 등 많은 분야가 망라된다. 오래지 않아 전통 일자리에는 천지지변이 발생할 것이란 확언이다. 지능과학의 발전으로 새 지식의 창조와 습득이 전례없이 빨라지고 업무지식 학습도 손바닥 뒤집듯 쉬워지는 대신 로동시장은 다양화, 세분화와 분할화(碎片化) 되고 로동형태에도 상전벽해의 변혁이 일어날 것이라는 판단이다. 현재 상식으로 행해지는 주5일 근무제는 유연 근무제로 바뀌여 자택근무, 주2일 혹은 3일 근무제, 시간제, 요일제 같은 림기응변 방식들이 보편화되고 일상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갈 후대들은 평생 공부의 준비가 있어야 하고 일생동안 적어도 5개 이상의 직종에 적응할 대비가 있어야 한다. 또 2개 혹은 3개의 직장에 동시 근무할 마음가짐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도래할 로동시장의 수요라고 전문가들과 유식 기업인들이 입을 모은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현재의 교육 환경을 탈피할 수 없더라도 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하여 그 세월의 필수 인프라로 부상할 언어기능(핵심기능), 정보수집기능, 소통기능과 정감교류기능을 육성하기 위하여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 기본기능이 바로 그 불확실한 시대의 도전과 역경을 극복하는 비결이고 비법이다. 생물세계의 종(种)은 힘이 세여서가 아니라 외부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해야 만 생존할 수 있다. 인간도 다를 바 없다. 오직 닥쳐오는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력사의 흐름에 그때그때로 순응해야 설자리와 살자리가 차례지는 것이다. 조선족은 천부적이고 나라의 지원을 받는 중국어, 조선어 이중언어 소유자이다. 이것은 지능화시대에 있어서 조선족의 최대 문화자원이고 무수한 갈등과 미로를 헤쳐나가는 만능열쇠라는 것이다. 길림신문 2017.11.1
148    남의눈으로 본 《청년경찰》 댓글:  조회:2457  추천:0  2017-10-29
한국 영화《청년경찰》이 빚어낸 론란이 그냥 발효하고 있다.한국 땅에서 차별과 수모를 받으며 누적된 상처가 긁히어 발로되는 아픔일 것이다.   영화가 조선족을 악역으로 내세우고 애꿎은 대림동마저 마적굴로 만들어 500만의 관객에게 전염성 메시지를 건넸으니 혈한을 쏟던 조선족들이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다.그들은 이미  한국 생활의 부조화 단계를 뛰어넘어 지역 사회에 융합되고 지역민들과 화합을 이루는 새 시대를 열었는데 이 친구들이 지엽으로 나무숲을 가리는 시나리오를 꾸민 편협한 사고가 이상하다.꺼지는 불에 기름을 쏟고 ‘동족상잔’ 정서를 부추기는 행태이니 피해 당사자들과 지성인들의 반발은 리유가 충분하다.이 작품을 반민족적이라 문책하면 도를 넘지만 그의 사촌 친척이라면 모자람도 없다.   대림동은 재한 조선족들이 ‘코리안 드림’을 펼치며 일궈낸 집거지로서 한국에서 일명 차이나타운이라고도 부른다.그들은 몇십년간 설음을 이겨내며 생계 전쟁을 거치면서 여기는 이미  한국,중국,조선족 문화가 어울린 독특한 문화지역으로 변신하였으며 미래 한국의 다문화사회 모델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도 부풀고 있다.물론 조선족들의 범죄나 후진적 작태들이 오래동안 이슈화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초기 적응이라는 원시 수준을 뛰어넘어 지역사회 건설에 책임지는 성숙된 이방인으로 변신하고 있다.그런데《청년경찰》이라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오늘 한국 속의 조선족 사회 형성은 주류사회의 드팀없는 지원,지지와 지도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단언한다.조선족들도 병주고향(竝州故鄕)을 건설한다는 진지한 감정으로 자체 도덕 개선의 절박성을 인식하며 주인적 자태로 나서고 있다.현실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단점을 들추고 침소봉대식으로 과장하며 동족 화합의 숲에 악병(恶病) 바이러스를 뿌려댄다.자기보다 나은 사람이면 환대하고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이면 멸시하는 한국 사회의 저급문화의 발현이라고 지성인들이 말하고 있다.   지난 50,60년대 한국이 어렵던 시기 수많은 한국 남녀들이 독일에 건너가 그 나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광부와 간호사로 되어 핏땀을 쏟으면서 가난한 조국에 종잣돈을 만들어 보냈다.수만으로 헤아리는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에 매혹되어 쓸만한 수단은 다 부려가며 가난한 조국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가.또 중국을 내놓고도 미국,유럽 지역에서 한국인들의 범죄가 쟁점으로 되어 한국에 먹물을 들씌우던 무색할 통양(痛痒)도 수없이 있었다.이것은 오늘 조선족의 '코리안 드림'과  궤적(轨迹)을 같이 하는 한국 력사의 단면이다.그렇다면  영화의 제작진들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명철한 사고로 조선족의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청년경찰》을 도문질타(到门叱咤)할 때 삶의 개선을 위해 찾아간 조선족들은 그 나라의  법질서와  인민들에 책임을 지는 신실한  자태가 있었던가 성찰이 있어야 한다.지연,혈연,인연 등등 연고 문화가 뿌리깊고 혹독한 상하서열과 위계질서를 지켜야 하는 한국 땅이었다.자기 치부를 감추는 가추불외양(家丑不外扬)  심리와 아니꼬운 남이면 흉을 가배로 불궈놓는 속심은 인간 본성의 일부분이다.어느 외인이던 그 공동체 속에서 불미스런 행위를 저지른다면  랭대는 말말고 공격의 과녁이 되고 동네북이 되는 현실은 자연스러운 인간세태이다. ‘한가마밥을 먹은 사람이 한울음을 우는’ 필연성도  당연한 인지상정으로 각인되고 있다.그럴진대 재한 조선족들고 같은 처지면 똑 같아 진다는 역지개연 (易地皆然) 의 당위성으로부터  영화의 매개 측면을 고루 인식하고 만약 내라면 어떻겠나 관대하게 헤아려봐야  할 것이다.   현재 조선족 사회는 한국에 정착하는 추세를 이루고 있으며 많은 경제,문화,예술 단체들도 이미지 개선과 소통,상생,화목을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대림동이 ‘조선족 수도’로 격상한다는 소문도 파다하다.뭐라해도 한국 땅은 조선족들에게 있어서 매력이 넘치는 땅이 틀림없다.그렇다면《청년경찰》을 향해 진상 규명과 시비 판단을 호소할 때 영화 소재를 제공한 당신은 무었이었던가를 동시 고민해야 마땅하다.특히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종시속(从时俗)의 고마운 실천이 관철되였던가를 내성(内省)하고 반성해야 한다.       언행범절의 곱냐밉냐에 따라  ‘주러 와도 미운 놈 있고, 가지러 와도 고운 놈 있다’는 세속의 도리는 따져볼 만한 리치이다.조선족들에게 ‘가지고도 고운 놈’이 되는 지혜가 없을 것인가. (끝) 2017-10-28 흑룡강신문
147    개구리 증후군 댓글:  조회:1603  추천:0  2017-10-26
오랜간만에 친구들과 마주앉아 말보따리를 풀어 제끼고 즐거운 한 시각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한 친구가 자기 집 아이는 조선족 소학교를 다니는데 초중부턴 타민족 학교에 전학시켜 벼슬 공부를 시킨다며 ‘난쟁이 키 자랑’하듯 으스댔다.조선어는 소학교만 나와도 글 보고 소통하는 데 넉넉하다는  리유를 들먹들먹한다.중국인데 한어를 잘하면 족하고 민족어는 떠듬거려도 지장이 없고 한국에 가서도 밥벌이엔 부족이 없다며 주어섬겼다.그까짓 조선어라며 비죽거리는 모습에 기분이 말째지며 ‘삶겨지는 개구리’를 련상하였다.   지나간 19세기 말, 서방 과학자들의 실험 결과이다.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순간에 뛰쳐나오지만 그의 최적온도인 15℃에 맞추고 서서히 가온하니 느긋이 잠겼다가 뜨거움을 느낄 때는 신경이 마비되여 도약력을 잃고 죽으러 가더라는 것이다.그들은 이 현상을 ‘개구리 증후군’으로 작명하였고 그후 점진적인 변화에 무감각하다 위기가 오면 ‘쪽도 못 쓰고’ 령락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비유어로 리용되었다.이를 연원(渊源)으로 변화에 둔감한 무신경이면 ‘변화무지 증후군’, 현실에 안주한 무사태평이면 ‘비전(希望)상실 증후군’이란 신조어가 파생되기도 하였다.   지난 세기 90년대 초,개혁개방이 급물살을 탈 때 조선족은 자기의 문화 특히는 이중언어에 힘입어 궁핍에서 신속히 해탈하고 민족사회 재건의 경제 및 사회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그래도 그 당시는 그 조선어 수준에다 힘만 있다면 밥벌이는 넉넉했고 상당한 적금도 이룰 수 있었다.다름이 아닌 민족문화가 불시에 괴력을 발휘하여 조선족을 중국의 민족 속에서 선두주자 자리에 밀어올린 것이다.이 사실은 문화 저력의 거대성을 립증하였다.이것은 또 그 차원의 문화가 그 력사에 적응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지난해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의 바둑 9단 이세돌과 미국 구글그룹이 개발한 인공지능프로그램(人工智能程序)인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서 이세돌의 참패는 인류에게 새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였다.인간은 사상혁명을 앞세우고 미래 수요에 높낮이를 맞추는 고민을 해야한다는 계시이기도 하다.지능사회가 돌격해 오는 때 미래 인재의 핵심적 력량은 인간만이 가진 인본주의 정신과 광활한 정보력으로 타인과 심각한 교류를 진행하며 자신의 활동 공간을 넓혀가는 것이라고 한다.여기의 핵심은 더 고차원적인 이중언어 혹은 다중언어 능력이다.그 친구의 뜻대로 간다면 그 때의 그 아이는 마주해야 할 경쟁에서 사대육신(四大肉身)의 어느 쪽에 기능불구나 부자유가 발생할 것이 틀림없다. 우리나라도 지능화 발전의 전략 경보를 울리며 새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그런데 친구의 말처럼 자식을 가르친다면 변천을 따르기 커녕 되려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상승하는 온도를 느끼지 못한 것일가.오늘의 지식이 10년 간격을 두고 상당 부분이 무용물이 되는데 말이다.주입식 교육과 세간의 무사주의(无事主义)에 푹 젖은 ‘온수 속의 개구리’가 아닌가 싱거운 걱정이 앞선다.   기성세대는 후대에게 사유재산을 만들어 주기가 급급해도 더 큰 가치는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다.옛날 어느 현자가 아들에게 고기를 주지 않고 그물짜기를 가르쳐 부자로 키웠다는 이야기는 명기할 귀감이다.포식한 배를 어루쓸며 매일매일을 까먹듯 하지말고 간혹 머리를 돌려 주변의 변화를 살피는 게 시대적 삶이겠다.갑자기 뭔가 느껴지는 때면 길몽(吉梦)도 대몽(大梦)도 죄다 탁발승 나무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내 친구가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도 늦다는 ‘토끼와 거북이 경주’의 교훈을 살리고 ‘삶겨진 개구리’가 되지 말기를 바란다.고부가치 자본인 민족문화에 눈을 돌리고 아이의 이중언어를 완벽한 원어민 수준에 인상하는 층계를 만들어 전승시켜야 한다.그리고 민족문화와 이중언어가 지능사회를 살아가는 활주로라는 귓띔을 귓등으로라도 들어줬으면 좋겠다. 연변일보 2017-10-25
146    조선족 이중언어의 핵심가치 댓글:  조회:1948  추천:2  2017-10-12
지난 세기 90년대 초반부터 발을 뗀 조선족의 대이동과 출산기피의 만연으로 인구가 격감되면서 민족 공동체가 해체된다는 아우성으로 들썩거렸다.그런데다 누가 장본인이었던지 ‘불난 집에 부채질’하며 아이들을 타민족 학교에 보내는 선풍을 일구었는데 조선족 학교는 입학생의 급감으로 심각한 위기에 몰리었다.그 결과로 민족 인재가 격감하고 이중언어 수준이 급하락되는 양상이 오늘 벌어지고 있다.이리하여 요즘 민족 인재의 수급관계(需给关系)의 엄중한 실조가 발생하여 조선족 이중언어의 가치를 재고양해야 한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높아가고 있다. 조선족 언어는 중국 특색의 중한이중언어(中韩双语)이다.개혁개방 30년 이래 조선족 이중언어는 민족의 발전과 나라의 건설에서 탁월한 역할을 하여왔고 국제 경제문화 교류의 마당에서 특유의 작용과 매력을 발산하여 타민족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되어 왔다.오늘의 기성 세대들은 지난날 아이들을 민족어에서 리탈시킨 득과 실을 따져보고 그 처사가 독인가 약인가를 곰곰히 되새겨야 한다.한국어 사용인구는 세계적 순위에서 제 13위를 차지하지만 그 경제성,문화성과 침투성으로 말하면 10위 이내일 것이라는 일반적 평가이고 급속히 발전하는 중국은 신흥 대국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이것이 바로 조선족 이중언어의 잠재적 가치 원천이다. 중국 조선족 사회는 해외 한민족이 중국에 진출하는데서 교두보이고 역참(驿站)이었다는 사실은 세인이 공인하는 바이다.이 력사적 변혁 속에서 그 발전을 추진하는 데서  조선족의 이중언어가 결정타를 치는 도구였을 뿐만 아니라 해외 한민족이 조선족과 불가분리적 뉴대를 형성하는 리유도 이 이중언어가 불가결 요소이기 때문이다.중국의 국제적 교류와 세계 한민족의 대중국 진출에서 련결 고리가 되는 이 이중언어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더 높은 차원의 세계적 문화자원으로 승화되고 있다.이와 같이 조선족 이중언어의 가치는 그의 국제성에 있다. 조선족이 세계화의 물결과 합류하는 길에서 이중언어는 경제적 유용성과 효용성의 거대한 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립증하였다.이 력사 과정에서 조선족은 이중언어로 대량의 비지니스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세계화 교류의 지식을 습득하였다. 뿐만아니라  국제적 네트웍을 구성하였고. 그 충실한 일원으로 발돋음하였으며 우리 나라 발전의 길에서 선두주자 지위에 서게 되었다.우리의 이중언어가 중국 건설에 기여하고 한민족 경제교류를 추진하고 민족사회의 건설에서 전략무기라는 이 점은 이중언어의 선명한 경제적 시장가치를 실증하고 있다. 우리의 이중언어는 이미 민족의 공동체와 민족성을 지킨다는 협애한 공간을 뛰어넘어 중한 문화교류를 추진하고 중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번영시키는 데서  탁월한 작용을 일으키었다.또한 중국문화와 한국문화의 력사적 련대성과 현실적 발전에서 우리는 이중언어가 시종 불가결의 요소라는 사실(史实)을 보게 된다.우리는 이중언어의 발전을 중한 문화교류를 추진하고 두 나라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동시에 자체의 문화를 업그레드시켜 세계 문화의 보고(宝库)에 풍부히한다는 높이에서 인식해야 한다.그가 중국과 한민족의 문화 융합을 추진하고 인류 문화를 추진하는 데서 강력 촉매제라는 이것은 중국특색 조선족 이중언어의 문화적 고부가가치이다. 타산지석의 철학으로 이중언어 왕국인 싱가폴을 살펴본다.그들은 550만 인구의 700여평방킬로메커의  촌토척지(寸土尺地)에서 ‘아세아 네마리 룡’으로 떠오르는 경제기적을 이루었다.물마저 수입에 의거하는 자원 극빈국에서 경악할 번영을 이뤄낸데는 태통령으로부터 시종 이중언어 교육을 발전의 핵심 전략으로서 실시한데 있다고 말한다.그들의 발전 모델에서 우리 조선족도 이중언어 강족(强族)이란 힘으로 번영을 시도한다면 결코 과욕이 아니라는 판단을 이끌어 내게 된다. 다가오는 지능화시대는 언어 강자의 시대이다.조선족은 시대를 선도한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부터 이중언어를 배우고 또 잘 배워야 한다.민족의 전체 성원이 우수한 바이링궐(二语人),트라이링궐(三语人),멀티링궐(多语人)로 육성되어 세계 민족의 수림 속에서 우수한 구성원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면 결코 몽상가의 몽상은 아닐 것으로 본다. 연변일보 2017-10-11
145    '청년경찰'과 우리의 자세 댓글:  조회:1790  추천:1  2017-10-11
한국 영화《청년경찰》이 남긴 어두운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다. 영화 제작자들은 흥행 효과와 인기 영합에 무게를 두고 사회적 후과에 대한 참작이 부족하였다며 모호한 사과도 표시한다. 그러나 조선족을 어두운 이미지로 포장하고 애꿎은 집거지마저 범죄의 소굴로 묘사하면서 500만 관객을 낚아내여 동족 화합을 꺼꾸로 돌리는 악효과를 초래하여 대중의 분노를 유발하고 리성을 흐리게 하였다. 색안경이 걸린 시선과 무리한 추리로 작성된 시나리오다. 고난에 찬 조선족 생활상에서 부정적 일면을 골라내여 과장기법을 기묘하게 써가며 사회 전체에 먹물을 뿌려댄다. 자기보다 약한 타민족과 이방인을 차별시하는 제노포비아(仇外心理) 요소가 아직도 한국사회 저변에 뿌리가 깊다며 지성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질타한다. 그러나 서로간의 리해와 량해가 깊어가는 오늘에도 구시대 배타주의가 문화시장에서 유령처럼 떠다니는 현실은 우리의 고민을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동향에 대하여 과분한 감성적 해석이 필요없다.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점멸(点灭)하는 편협한 사고로서 민족 화합과 세계화를 지향하는 주류사회에 휘말려있을 뿐이다. 시대 흐름이 이러하니 우리는 되술래잡기나 ‘이에는 이(以牙还牙)’ 식 앙갚음 역공을 들이댈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에게 보내는 하나의 비판 정보로 수용하는 것이 성숙된 사고가 아닐가 본다. 필경 한국땅에서 현지인들의 눈을 수없이 찌프리게 하였다는 전력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특히 립장을 바꾸어 생각한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철학으로 《청년경찰》 사건을 랭철히 생각해야 한다. 지난날 한국에서 발생하였던 여러건의 조선족 강력범죄는 우리의 이미지에 사정없이 악영향을 끼치였고 그 여파가 상당히 남아있다. 어느 사회에도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개별건이지만 타인에 대비하여 범죄 비례가 낮고 극소수라는 사실로 자신을 위안할 수 없다. 우리는 현지인들과 권익이 부동한 이국의 집단으로서 내국인과 비동류 관계에 처한 ‘손님’임을 명기해야 한다. 손님이 주인집에서 악행을 저질렀다면 주인보다 천백배의 질책을 받을 것은 인간세상의 지극한 당연지사이다. 《청년경찰》은 민족 화합과 중한 두 나라 공동 발전을 저애하는 반작용적 문화상품이다. 여기서 묘사된 조선족의 일그러진 모습은 순수한 파괴적 비판으로서 우리가 뜨거운 항의를 제출하는 건설적인 반비판도 지극히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의 창을 활짝 열고 비판, 반비판과 자기비판을 동시 진행하는 개명하고 정의로운 행동으로 생동한 조화마당을 조성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렇다면 중국조선족은 숙성한 모습으로 세인 앞에 용립(耸立)할 것으로 보아진다. 비판을 거부하는 심리는 인간이 고유한 본능이다. 그러나 ‘비판이 싫다면 비판을 달갑게 받으라’는 리성적 교시가 우리 민족 비판의 문화 속에 뿌리 내리기를 기원한다. 길림신문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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