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이 노부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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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로벌한인 비지니스네트워크와 인적자원 댓글:  조회:6076  추천:0  2014-08-27
--한인 비지니스네트워크를 통한 인재육성과 취업을 중심으로—     일본 아시아경제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카사이 노부유키 Ⅰ머리말 Ⅱ한인비즈니스네트워크 (1) 코리안네트워크의기점 (2)한인네트워크의현황 Ⅲ재외동포들의조국지원사와특징 -재일동포들의사례- (1) 재일동포의모국공헌 (2) 재일 동포의조국지원모티베이션 Ⅳ한국취업난과유학생송출 Ⅴ일본에있어서외국인취업-유학생을중심으로 (1)유학생수락상황 (2)대학생취업상황 (3)유학생취업대응 Ⅵ 기업이유학생을보는눈길 Ⅶ 맺는 말 ✍✍✍✍✍✍✍✍✍✍✍✍✍✍✍✍✍✍✍✍   Ⅰ머리말 한국경제발전은수출과투자의호순환에의해초래된다.수출을촉진하고공업화를진행하면서그에 대한투자를확대하는그런 일련의과정을정부정책이지원한다는 것이다.이「한국발전모델」은그 이후후발도상국의교훈으로된다.그러나이논리는국내공급요인을설명하는것이고해외수요요인이결여되어있다.간단하게말하면한국수출이어떻게해외시장에서소비되었는가소비시장은어떻게형성되었는가해외시장망은어떻게형성되었는가등시점이결여되어있는것이다. 이를테면 국산차제 1호현대포니가캐나다에수출되어최초로 북미 자동차수출로서주목받았다.캐나다에서는「Car of the Year」를수상한다.그런기세로미국시장진출을도모하였지만배기가스규제에걸려수출이 안 되었다.1986년현대는포니엑셀을생산하여미국에수출을 성공했다그리고엑셀은포츈잡지에서「Best Product #10」로선발되었다. 이러한초기자동차수출을지지한것이사실은해외 교포들이었다.당시캐나다동포들은고국에서처음으로수입된 자동차를솔선해서세컨드카로서구입했다.그리하여캐나다시장의돌파구로되었다.그것은엑셀이미국에진출했을때에도재미동포들이구입자로되는심리효과를조성했다.이와같이한국의류가일본시장에진출했을때에도재일동포들이시장개척자로되었다. 이러한사실은교포아니해외국민들이한국발전에있어서수출품소비시장형성에 대한공헌인 것이다. 그리고이것은해외에있어서소비시장뿐만아니라금융시장형성생산거점형성그리고노동시장형성으로확대되어갔다. 본고는해외에거주한동포비즈니스네트워크의현황을확인한기초에서일본을사례로재일동포들의모국공헌유학생수락과인재육성에관해서고찰한다.   Ⅱ한인비즈니스네트워크 (1) 코리안네트워크의기점 일찌기일본은식민지건설에있어서한반도를영토적점유는성공했지만, 한민족전체를제국신민으로끌어 들이지는 못 했다.그것은제국밖에존재하는한민족이있었기때문에이다.해외에 있는 제국신민이아닌한인들의존재는한반도지배를근간(根幹)과하는일본제국의기초를뒤흔드는존재였다.게다가지배물리적장치로서식민지에확장된철도,해운, 우편등인프라와제국통치권력은대항네트워크를수반한것이다. 이러한대항네트워크는여러나라의 한인사회를연결시켜사람들과정보의유통경로로되었다.이런경로를통해반일운동이나독립사상또근대적인공화사상이한반도에파급했다.예를들면 1900년대중순부터극동러시아에서발행된「해조신문」「대동공보」「권업신문」이나미국으로발행된「신한민보」등한인사회의한글신문은태평양을멀리해논설과기사를서로게재하거나지면논쟁도펼치거나했지만이것은당시 국경을넘은한인네트워크를나타내고있다. 「신문지법」에따라언론이어렵게통제되고있었던시기에재외한인사회의신문은모국신문을대신하여애국계몽과독립사상의진원지로되어당시형성중에 있었던한국의민족주의를주도했다.1) 이러한역사과정에서나타난대항네트워크는전후재외동포의코리안아이덴티티에근거하는모국과해외코리안을연결하는비즈니스네트워크로전개되어갔다.해외에이주한한인들은단지근대의소용돌이에말려들어간것은아니라오히려근대시스템에능동적으로대응하는것으로서조국건설에 상관되어왔다. 한민족내셔널리즘은한반도사람들과해외이주한사람들이상호작용과정에서구축된것이다.코리안네트워크는화인네트워크와는달리경제분야를넘어정치적(또는시민사회) 네트워크로서가능성을가지고있다.화인네트워크는 3연(혈연, 지연, 업연)을기초로하는패트리어티즘을정신축으로 하지만코리안네트워크는해외국민이라는내셔널리즘을정신축으로하는특징이있다.2)   (2) 한인네트워크의현황 재외동포는한국의국가건설경제발전의중요한일군들이다。이전에는이민자에대해「나라를버린사람」이라고보이지 않는차별도있었다.나라가어려울때민족이위기에처해 있을때등냉대를 받 은적도 있었다.그런데도해외이주는끊임없이현재는한반도에거주하는한인의 10프로에 달하는 700만명이세계 각국에서살고있다. 재외공관에서작성한공관별재외동포현황을정리한 2013년판「재외동포현황」 (격년) 3)에의하면 2013년 176개국・지역에 7,012,492명교포가살고있다. 그중에서는 1991년부터중국조선족으로불리는중국동포구소련 12개국으로 구성된주권국가의느슨한연합체인독립국가연합체(CIS)에거주했던동포그리고 2003년부터귀화한재일동포도포함되어있다.나라별로보면역사적이주자가많은중국이 257.4만명으로가장많고다음이민이번성했던미국 209.1만명강제연행등에의해이주한일본 89.3만명이해외동포3 대국으로그후에는캐나다(20.6만명)러시아(17.6만명)우즈베키스탄(17.4만명)오스트레일리아(15.7만명)카자흐스탄 10.5만명) 10만명이상이거주하는나라가 있고 통계상가장소수인 나라는서인도제도내에위치한영연방왕국의일국인발바도스에 1명이 있다. 이를테면해외거주자를종합하면코리안네트워크로자주말하지만그범위는막연히사용되고있다.현재유엔가맹국이 193개국이고한국재외동포는 176개국에살고있어그비율은91%에이른다. 이것이코리안네트워크의최대영역이라고말할수있다.즉코리안네트워크이란 수량적으로볼때한국을중심축으로한세계적민족네트워크인것이다. 분단상태에있는나라의민족으로서이러한해외민족과제휴를어떻게도모하는가하는문제는국가개념보다민족통합・제휴를어떻게도모할것인가우선된다.즉어떤국가체제로할까는통합・제휴된민족의선택이다.그러나현존하고 있는분단국가에서는그조건중에서민족이어떠한국가체제형태로수렴할까에따라그선택사항이정해질것이다.간단하게말하면현상국가가민족통합에어떻게대처를하는가하는것이다. 한국의 재외동포정책은지금까지어떻게되어있냐하면그다지따뜻한것은 아니었다.이민자에대한정책은 1902년공식이민선(1905년에는중단) 이래역사가있지만국적을포기한사람들에게눈길을돌리지않았다.예를들면현행주민등록법에서는해외거주자가스스로이주국의영주권등을포기하지않는한한국주민등록을할수없게규정되어있기때문에이주하면 주민등록이말소되어국민으로서의자격박탈로 되고한국적을유지한재외국민은국내에서외국인취급을받는상태다.이러한상황에대해기민정책이라고한다.     표 1 세계에펼쳐지는동포네트워크    (단위:명) 지역별/연도별 2007년 2009년 2011년 2013년 비율(%) 전년대비증감율(%) 총계 7,041,684 6,822,606 7,167,342 7,012,492 100,0 -2.16 동북    일본 아시아    중국 소계 893,740 2,762,160       3,655,900      912,655 2,336,771 3,249,426                      904,806 2,704,994 3,609,800 892,704 2,573,928 3,466,632 12.73 36.70 49.44 -1.34 -4.85 7.15 남부아시아/대양주 384,474 461,127 453,420 485,836 6,93 7.15 북미 북미   캐나다       소계 2,016,911 216,628 2,233,539 2,102,283 223,322 2,325,605 2,075,590 231,492 2,408,490 2,091,432 205,993 2,297,425 29,82 2.94 32,76 0,76 -11.02 -0.42 중남미 107,594 107,029 112,980 111,156 1.59 -1.61 유럽 645,249 655,843 656,707 615,847 8.78 -6.22 아프리카 8,485 9,577 11,072 10,548 0.15 -4.73 중근동 6,440 13,999 16,302 25,048 0.36 53.65 출전: 외무부  [2013 재외동포의현황] 2014년에서작성.   그러나이러한상황개선을큰인상준것은 2006년노무현대통령이국가기념일로제정한「세계한인의날」이며각재외동포단체가공동으로세계한인회장대회를실시한것이다.예를들면 2013년 개최된 대회를연합뉴스는다음과같이보도했다.   세계 73개국한인회(재외한국인단체)의회장들과간부약 380명이한자리에모인「세계한인회장단대회」가 18일서울에서개막했다. 21일까지한국신정권의국정과제를반영하여한국국내젊은이들의해외취직지원이나차세대한인회의활성화등을상담했다서울시내호텔에서이루어진개막식에는박근혜대통령과여야당대표자들국회의원들등포함한약 500명이출석했다. (연합뉴스2013/06/18)   제도적으로는 2009년 2월 12일에공포된개정공직선거법에서주재와 유학등사정으로중장기적으로해외에거주하는한국국민뿐만아니라일본태생재일한국인을포함한해외영주자들도선거투표가가능해진것이다.게다가해외동포로결성된세계한상대회와해외한인무역협회등모국에서 개최될때에는고노무현대통령을시작으로이명박전대통령박근혜대통령이초대되어해외동포들과의일체화를어필하고있다. 특히박정권에서는교포에대한정책지향이강해지고있어선거공약에서는①통합적한편체계적인동포정책의추진②차세대동포에대한한글교육지원의대폭강화③차세대경제인을포함한글로벌한인경제인네트워크의강화④모국국제개발협력사업에유학생및차세대동포들이참가할수있는방안작성을내세웠다. 이에따라 2013년 7월 9일재외동포정책위원회에서「재외국민용주민등록증발급」등을포함한재외동포정책추진계획이발표되었다.이안에는해외영주권자로국내에 30일이상체류목적으로입국하는재외국민들에게주민등록증발급차세대교육지원재외공관에서법무협력관에의한무료법률상담법률구조공단의사이버법률상담지원책재외동포국내출입국편의및체류안정화의향상을도모하는「재외동포대상복수국적허용확대」추진영주귀국희망고령동포들의복수국적허용연령인하등지원책이다. 이러한배경에있는것은무엇보다도국민의이해가높아진것이다。그것은재외동포재단이㈜한국리서치와명치대학교에위탁실시한「2013년도재외동포에대한국민인식조사」에서국민의 67.2%가재외동포에대해「한국국민으로서동질감」을느끼고있고 56.3%가재외동포한국발전기여도에대해서긍정적으로평가하고있는사실이있기 때문이다.4) 이상과같이국민이교포에게돌리는눈길은따뜻한시선으로크게바뀌어오고있어향후국가건설에해외국민은빠질수없다는의식이정착되고있다. 그림 1 세계에펼쳐지는코리안네트워크    (단위:명) 유럽615,847 아프리카10,548 중국2,573,928 중동25,048 남아시아태평양485,836 일본892,704 캐나다205,993 미국2,091,432 중남미111,156   다음에지금까지국가건설에가장공헌해온재일동포를사례에그지원과특징을고찰한다.   Ⅲ재외동포들의조국지원사와특징-재일동포들의사례- 5) 그럼해외국민은모국공헌에대해어떻게임해 온것일가.본장에서는일본에거주한동포들의대처를사례로고찰한다.재일한국인들은전후약70년간여러가지조국지원을실시해왔다。여기에서는그지원사로부터몇개특징을정리하고싶다. 조국지원프로젝트는그목적과내용이시대와함께변화되고있는데특징이있다.그것은조국고향지원을필요하는상황이크게변화해왔기때문에이다.그배경에는한국이이전에전재상황에서선진국에까지급속한발전을이룬한국사회가 큰 변화를유래했기 때문이다.재일한국인들은한국경제발전사회변용에맞추어그시대에따른지원내용을변화시켰기때문이다.재일동포 지원사의특징은다음과같이정리한다.   (1) 재일동포들의모국공헌 ①구호・구조형지원(1940년대~60년대) 이지원은한국이국토전에서싸운한국전쟁(한국동란)에의한국가고향의전재피해를 입었을때고향사람조국사람들에대한구호활동구조지원으로 이루어진것이다.이는전후지원사의초기에서볼수있는특징적인타입이다.구체적으로는 6・25(한국전쟁) 의원금(1950년~53년)초기의고향발전사업(53년, 62년)아시아반공자유센터건설(62년)방위송금사업(67년)등의원금이송금되었다.또자연재해에의한재해민들에게구호지원을했다.순천 수해구호기금사업(62년)모국식량난구호사업(63년)모국수해의연사업모국가족부양금송금사업(65~66년)모국한해재해민구원사업(67년)모국수해구호사업(69년)등이있다.그리고고향발전사업은그후에도계속되어 1970년대새마을운동지원으로인계되어간다. ②망향형지원(1970년대~80년대) 1950년대 60년대고향지원활동은재일한국인들의그후의모국지원에불을지폈다고해도과언은아니다.그활동은조국애라는극히개인적감정에의지한스스로의조국애라고 하는강한마음으로조국발전에공헌하는지원활동을구체적인형태로표현하는 방법이점차정착되었다。즉이시기조국을멀리떨어진타국에서도지원활동을통해조국발전에구체적으로참가할수있었던 것이다.고향의새로운정보・실정을수집할 수 있음에따라서지원내용도고향사람들이갖고싶어 하는것필요한것으로증가했기때문에그지원효과도높아졌다. 이러한지원활동으로서일련의고향발전사업이있었고그것이새마을운동지원의피크로달했다.기술한바와같이새마을지원활동에서는재일1세가묘목을모으고 2세 3세가그것을새로운마음으로고향에심으러가는「새마음운동」으로이루어졌다.그것은확실히이시기의망향형지원의전형이었다. 그성과는고향고향의친족・지연자들의친밀한생활환경개선인프라건설투자촉진식수지역확대등으로남아 또지원도시와시골과의교류촉진으로 되었다.다만정부의새마을운동에참가했다는형태로 되었기때문에모처럼 재일한국인들의지원도한국인들의 기억속에는 없는 것이다. ③국제이벤트형지원(1990년대~2000년대) 이타입의지원활동은한국이국제적으로크게비약한계기로된국제적인이벤트를측면으로 지원한것이다. 가장대규모적지원은약 8년에걸쳐활동을계속한 88 서울・올림픽송금사업일것이다. 1981년 9월 30일 IOC 총회에서 1988년하기올림픽대회개최지가서울시로정해진 이래 8년동안올림픽개최를지원하기위해재일한국인들은민단을중심으로조직적으로실행했다.그결과지원총액 50억엔 넘는자금으로건설된올림픽회관(대한체육관본관)테니스코트올림픽풀등체육제시이다. 그리고민단부인회에서하루 10엔모금으로보내진경승지(景勝地)의수세식화장실 15 시설은현재까지활용되고있다. 재일한국인들의올림픽지원에서나타난특징은국제적빅이벤트개최에 대한강한참가의욕이다.즉 7년간이라는장기간에걸친지원활동을계속유지한것부인회지원활동에서 보다싶이각단체가독자적자율적으로지원을실시한것재일한국인대부분이지원활동(기부금참관쇼핑투어응원활동등에참가)에참가한것또재외동포들의지원총액99%를재일한국인지원이차지한것등에그의욕을나타냈다.이러한조국지원정신은그후의국제이벤트지원활동으로인계되어대전시엑스포개최지원(93년)한일공동월드컵개최(2002년) 등은이러한이벤트형지원방식이정착된것이다. ④위기대응형지원(1990년대이후) 1997년에일어난모국 IMF 통화위기에대해서재일한국인들은한국에 있는 자기들의계좌로일본에서외화송금을지원하는「일본엔화송금캠페인」(기간: 1997년 12월~98년 3월말)을개시했다.당초송금목표액수를 120억엔으로전망하여 시작했지만 1998년 1월말에는이미목표액을추월하여 139억 1300만엔에이르렀다.확실히위기에강한재일한국인들의모국애이다。이운동은 1998년 3월 11일에열린 49회정기중앙위원회에서 IMF 극복까지무기한연장으로결정하였다.그결과공식적으로집계된송금금액은 1년남짓한 동안 780억 6300만엔에달했다. 이지원이가진의미는지원에 참가한일반재일한국인들에 대하여외화송금노하우를가르쳐 주고 그후 일반사람들의자발적자금송금지원방식으로확립된 것이다.민단은재일동포 12만세대에대해서「1세대 1 통장 10만엔이상」의엔송금캠페인을지도하여엔송금에관해서외화저금계좌개설(외화통장작성)이필요한 것등「송금노하우」를철저하게했다.이러한글로벌시대의경험은 2008년 9월에일어난리만손크를 기점으로발단한세계금융위기때에도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재일한국계은행에서한국에 있는 자기구좌에송금하게 되였다.이런 상황에서 볼수 있는 바와 같이 재일동포들은 모국위기에재빠르게대응할수 있는힘을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다. ⑤재해대응형지원 한해수해화재태풍피해등천재지변・인재지원은여러가지로 해 왔지만 그모티베이션루트는한국전쟁전재지원애국심이형태를바꾸어지속적으로진행해 왔다.한국은전재로치명적인타격을받았지만전후부흥에힘을쏟아왔다.먼저 해야할주택기업시설공공시설도로도시하천상하수도등생활・산업인프라에투자를해왔다. 그러나방재와관계되는공사가 많아 특히도시이외방재건설은늦어졌다. 그때문에 60년대~80년대한국은태풍한발큰비수해등자연재해에약했고, 많은피해를입었다.예를들면 1962년 8월에전라남도순천지구를중심으로큰피해를낸폭풍우또 1965년에는 6월중순 60년만의큰가뭄에휩쓸렸던농촌에 7월 15일、 16일에대폭풍이중부지방을덮쳐 1925년대홍수이래대참사를일으켰다. 치산치수공사의지연피해가보다심대한 것이다. 재일한국인들은모국의이러한참사에반드시계속적으로지원해왔다. 이러한재해지원은모국지원의가장기본적인타입이며자연재해뿐만아니라화재・건물붕괴피해등재해민구호재해지역재흥등에크게공헌을 한 것이다.   (2) 재일한국인들의조국지원모티베이션 ①내셔널리즘과패트리어티즘 재일한국인들의모국공헌은강한애국심이다.그런데재일한국인들이한국을표현하는언설은조국모국또는본국등여러가지이다。대사림()에의하면조국이란조상때부터쭉살아온나라자신이태어난나라를의미하고모국이란그사람이태어나자란나라조국고국을가리키고본국이란그사람이태어나자란나라또자신의 국적이있는나라로정의 한다.그외향국은 고향(故郷)향리(郷里)으로 말하며출생국은태어난국가 태어난고향을가리키는언설도있다。민단출판물에서도그언설의사용은여러가지이고필요에따라서구분하여사용하기도 한다「민단 50년사」참조). 이러한여러가지의미를가지는언설을구분하여사용해 온것은각각가지고 있는의미를문의에따라적용해왔다고하는사정은물론이고, 5세에까지미치는재일한국인들의입장이조상나라출생국국적국등과 같이다양화하고있기때문이다.그러나 어떤 언설을사용하더라도 자기가그루트로한국한국민족향토에대한애정모정사모는변하지않을것이다.그구상을표현하는언설을입장에따라조국애모국사랑이라고말하지만엄밀하게는조국애와모국사랑의의미는다른것이다. 원래조국애는애국심의한형태로일반적으로애국대상은조국(조상나라)모국(출생국)본국(국적국)거주국(현주국)으로나눌수있어이중 어느것을사랑해도애국심이다.그리고애국심은내셔널리즘과패트리어티즘으로대별된다.내셔널리즘(국수주의민족주의국가주의)이란국가형성과정에서거기에귀속하는국민으로서가치를존중하는것이며그국민에게귀속하는것이스스로의최대가치로되는것이다.그러나패트리어티즘은국가형성이전부터존재한것으로사람들은국민으로서의식없는출신지나특정향토(파토리어)의일원으로서지역및지역민에게애정애국주의・애향주의・조국애・향토애를느끼는정(情)을의미한다。이러한내셔널리즘과패트리어티즘의차이를개념도에나타낸것이그림 2이다.   패트리어티즘 나라 국민의 자각없음 내셔널리즘 ②모국지원의모티베이션 재일한국인들의조국지원에서나타나는모티베이션은기본적으로태어나자란공동체나향토를사랑하고사랑하는 패트리어티즘에의지해왔다고생각할수있다.그기초로된것은한국전쟁후전재동포구원활동과고향발전사업에서 새마을운동으로연결되는일련의향토지원활동으로보여져일반적인인도지원을넘는강한 패트리어티즘의현상이라고이해할수있다.이와같은 지원활동은자연재해화재등재해민에 대한사례에도볼수있다.그러나조국이발전하고재일사회도발전되면조국공헌의모티베이션도서서히변화되어포스트・패트리어티즘의시대에들어가점차내셔널리즘의특징을나타내게된다.그계기가된것이서울・올림픽지원과  IMF 지원활동이다.여기에서는향토발전이라고하는것보다국위발양이라고하는국가적행사에참가의식이나국가위기탈각을위해한역할을감당하는모티베이션으로변화하고있다.즉국가국민의일원이라는의식을간파할수있다.그러나그활동과정은제도적요인에서해외국민으로해외지원이다.이러한애국심은세계금융위기에외화송금운동과국보남대문소실모금활동등에인계되고있다. 여기서취급한조직적지원에서는재일한국인들의애국심은패트리어티즘에서내셔널리즘의변화로 생각할수있다.이변화배경에는지원활동을종합하여온민단이본국에서인정하는 재일유일한정부대행기관이며일부예산도박정희시대부터받은조직인것으로재일한국인의애국심특히내셔널리즘형성에영향을주고 있다.하지만조직적지원이외개인적지원경우는이러한바이어스가 없는 순수한지원과비즈니스로서의지원활동이많다.그모치베이션은패트리어티즘에가까운것으로추측된다. 지금까지도재일한국인은「위기에강한해외국민」으로서국난시에는자발적패트리어티즘적인지원활동실적도많고따라서그들의내셔널리즘은조직요인과개인심리가섞어 있는 것이라고 말할수 있다.그런데도개개인의애국심은여전히패트리어티즘에의지하고있어각자의고향에 대한애향심지연・혈연자들에 대한생각은재일한국인들의지원모티베이션의기저적(基低的)심리라고할수있다.   Ⅳ한국취업난과유학생송출 대학생취업이동기시대에들어간 지도오래된다.특히주목받게되는것은 1997년 IMF 위기이후실시된기업개혁후로와크와우트와계열기업의정리통합도산등상태화로 되어아침에 출근해서하루종일공원등지에서시간을 보내는해고자들의화제로 된 이후이다.그후  2000년대에걸쳐취업자수증가경향을보였지만 2003년에는경기침체영향도있고제조업부문에서의노동을흡수해 왔던서비스 산업도한계점에도달되었다. 그 배경에는임금상승은대기업이흡수한것고용보호제도에의한해고및재취직용이성이손상되어노동시장유동성이없어진것화학・정보통신등수출산업이중국특수수요등에서 순조로운 매출이 이루어진 것이다.반대로 중소기업과내수산업에서는중국의저임금생산거점진출을 위하여설비투자와소비가줄어들어고용없는성장현상이심화했던것이다. 그결과수출주도형경제구조와고비용저효율체질의영향으로수출부문과내수부문이명암(明暗)으로 구분되어 대학신졸업자고용수요를좁혔던것이다. 게다가대기업그룹(상위 30)・공영기업・금융기관등취업인기가높은부문이중도채용을늘렸던 것이다.이를테면 당시통계에는 전 고용에서차지하는중도채용비율은 97년 40.7%로부터 02년에는 81.8%로배증하고있어중도채용의존도가높아지고있다.그것이반복되면대학졸업자들의취업기회를실업자와전직자가빼앗아간다고말할수있다.이러한상황속에서 2008년에일어난리만쇼크로금융업증권업등인기직종고용은격감했다. 젊은층실업률은여전히심각하다。 2013년제 4분기의실업률을보면 15세부터 19세는 10.3% 20세~29세는 7.8% 전체실업률 2.8%에비해 2.8~3.6배로높다.즉대졸자등신규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국내노동시장이한계시장으로되어대학교육이유리한취직으로연결된다는신화는이미사라지고오히려교육비부담의무게가출산률저하의요인뿐만아니라내수억제를가져 오는악순환으로 되고있다. 고용노동부가 12년 4월에발표한「2011~2020 중장기인재수급전망과정책과제」에서는 20년까지단기대학졸업이상신졸업자에대한노동수요전망은약 416만명으로공급전망약 466만명부터 50만명이나적어 질것으로 예상되어대졸자가과잉공급되고있는현실이있다. 이러한상황속에서한국정부는해외유학과해외취업을적극적으로지원하고있다.해외유학정책은 1955년에문교부가「외국유학자격시험및설정에관한규정」을제정하여 그때로부터유학지원을실시해왔지만실제는 70년대후반부터서서히본격화하게된다. 77년국비유학생제도 79년의해외유학에관한규정제정에따라사실상유학문을열었다.  81년에유학자격시험제도를사비유학생에게면제했지만 86년에는사비유학시험을제정한후폐지되는등완화와규제가반복해졌다.최종적으로 94년에유학시험이폐지되어 2000년에해외유학이전면적으로유화되었다.이러한유학송출정책에의해서 2000년대초에는 15만명정도가  11년에는 26만명으로피크를맞이 했다.6)   출전:한국교육개발원의교육통계연보、문부과학성독자적인조사국립국제교육원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에서작성   해외취업지원에서는지금까지뿔뿔이흩어져온지원체제를통합하여한국고용노동부와한국산업인력공단이주관하는해외취직지원책 K-Move 프로젝트를시작해각국기업에최적화시킨인재를육성함과동시에한국젊은이들을위해서해외취직처를찾아 주는지원을실시하였다。그이외상기 표에 따른공공기관에 의한지원과각대학에서실시하는유학지원제도또유학알선전문민간기업등적극적으로해외유학사업을전개하고있다. 표2주요송출공공기관 기관명 담당부서 송출형태 한국산업인력공단 해외취직국 해외취직/해외연수 해외건설협회 플랜트수주지원센터 해외취직 건설기술교육원 특수교육부 취직연수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국외농업기술팀 해외인턴 여성가족부 국제협력담당관 해외인턴 문부과학부 대학지원관 해외인턴 한국무역협회 인사 해외인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연구팀 취직연수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대외협력부 해외인턴 출전: 한국산업인력공단 (http://www.worldjob.or.kr/machineryIntroForm.do) 에서작성.   창조경제를견인하는글로벌인재를해외에서육성하는것은박정권의인재육성의일환이며해외취업의촉진도노동공급과잉대책의도움되어취업패러다임(paradigm)의전환을가져올것이다.향후그들이해외코리안네트워크강화에기여가기대된다.   Ⅴ일본에있어서의외국인취업-유학생을중심으로7) (1)유학생수락상황 일본의외국인유학생수락은 1983년「21 세기에유학생정책에관한제언」및 1984년「21 세기에유학생정책전개에대해」라고하는두가지문부성의유식자회의보고에의해정책범위조가만들어졌다.이안에서제언된방침이「유학생 10만명계획」이라고불려 2000년까지 10만명의수용을목표로한다고하는것이다.이계획이책정된이후유학생수용수는성장을보여수락실적이전기(1983년~1992년)의수용목표로하던 4만명예정보다 2년빨리 1990년에도달했다.(그림참조)그러나순조롭게성장해온수용수도계획후기에들어가면신장율이늦어져95년 53,847명을피크로 1997년이되면 5만명정도로감소됐다..2000년에는 64,011명으로이계획은목표에는달하지못 했다. 2008년 7월 29 일문부과학성에의한「유학생 30만명계획」이책정되었다.일본이세계에서보다열린나라로발전하는「글로벌전략」의일환으로 2020년에외국인유학생을 30만명으로늘려 외국인대학생들에 대하여 졸업후의사회수락태세개선등 정책을실시하여일본사회글로벌화를목표로 한다.   그때에고도인재수용정책도제휴시키면서나라・지역・분야등 고려하여, 우수한유학생을전략적으로모집할 것이다。그 방책은다음과같다. 1. 일본유학권유 ~일본유학동기부여와원스톱서비스전개~ 2. 입시・입학・입국입구개선~일본유학원활화~ 3. 대학등글로벌화추진~매력있는대학만들기〜 4. 수용환경만들기~안심하고공부에전념할수있는환경구축~   (2) 대학생취업상황 일본은 1990년대첫버블붕괴후 20년에이르는경기침체가계속되어왔다. 유효구인배율도 1991년을 피크로급락변해구인수보다구직자수가웃돌게되어대졸생취직율도70프로전후까지하락하여취직빙하기로불리게되었다. 1990년후반부터 2000년대전반에걸쳐상황은한층더악화되어 1999년에는유효구인배율이 0.48(파트를포함하지않으면 0.39)이되어대졸생취직율도 60프로정도로내려갔다.또2.5%전후였던실업률도5% 전후에로상승했다. 그런데도 2000년대중순부터는경기가향상되어취직상황도호전되고 유효구인배율도 1.06(파트를포함하지않으면 0.94)까지회복해대졸생취직율도 70프로까지회복실업률도4%정도까지저하했다.그러나회복한것은도시가중심이며지방에서는여전히취직난이계속되어있다.아르바이트나파견노동자라고하는비정규고용율도계속증가되어취직상황은도시와지방대기업과중소기업의격차가양극화이다. 이런 상황속에서세계금융위기동일본대지진이일어나 2000년대말에는다시취직상황이악화되어실업률은5% 정도상승하고 2009년에는유효구인배율도 0.47이되어대졸생취직율도 60프로까지 내려가서다시취직빙하기로 되었다.2012년에발족한아베내각의경제정책(아베노믹스)은디플레・엔고로부터탈각을목적으로대담한금융정책기동적인재정정책민간투자를환기하는성장전략의이른바[3 개화살]정책을실시했다.그결과현재는유효구인배율대학생의구인배율및취직율이회복과정에있다(그림참조)최근취직상황은「빙하기」와학생측의「판매자시장」어느쪽인것일까.문부과학성의조사(문부과학성: 2014) 에의하면아베노믹스효과도있고서서히「빙하기」부터「판매자시장」으로변화하고있다(그림참조).     2014년에는가장많았던「어느쪽도아니다」 46.6%「빙하기」37.8%로 2위가되었다.「초빙하기」와「빙하기」의합계는 44.9%에오르고있는한편판매자시장이라고보는의견( 「아직판매자시장」과「상단한판매자시장」의합계)은 8.5%에머무르고있다。여전히올해졸업자학생에게있어서는어려운상황이계속되고있는것같다.     (3) 유학생취업대응 ①유학생대일관(対日観) 일본에유학한학생은유학에대해어떻게생각하고있는것일까.유학생조사에서는유명한주식회사디스코캐리어리서치(주)가 2013년 2월부터 3월에걸쳐실시한유학생들의앙케이트로부터해석해보자. 일본에유학을한것(그림)에대해서「몹시좋았다」49.8%「좋았다」45.5%로합해 95.3%가좋았다고감상을가지고충실한학생생활을보내온 것으로 볼수 있다. 다음은유학전후같은질문을하여그변화를보고있다.유학전에불안하게생각한것(그림)로많은것은「유학・생활비용」65.5%「어학역부족」49.2%「생활습관・가치관차이」35.1%등이지만실제로유학한다음에는그러한수치가내려 가서예상했던 정도로곤란하지않은것같다.한편「취직활동」에대해서는유학전에불안하게생각한학생은 32.9%인데비해실제로어려웠다는 42.8% 가 선택했다.일본기업글로벌채용확대를배경으로유학생채용에적극적인기업은증가되고 있지만그런데도일본에서취직활동에곤란하다고느끼는유학생은적지않은것으로명시되었다.   출전: 「2014년도조사결과(2013년 4월발행) 외국인유학생의취직활동상황」주식회사디스코캐리어리서치에서 작성.     ②유학생 취업활동 취직을한다면어느나라기업이좋을것인가라고하는물음(복수회답)에대해서일본에유학하고있기때문에「일본계기업」으로취직을희망하고있다는유학생은 97.5%로역시압도적으로많다.그외에는「미국계기업」33.5%「유럽계기업」28.3%로계속되어있다.한편일본인학생은대부분이일본기업에취직을바라고있어해외취업에희망자는유학생에비해상당히적고글로벌인재가요구되는 현재일본인학생들의국내지향에개선이요구된다. 취직하고싶은이유는「자기스킬업과캐리어형성을위해」 68.4%로 가장많아유학생은기술경험과스킬을쌓으면서스스로능력을높이기위한준비를 계통적으로세워장래목적이나승진플랜캐리어업플랜을구체화명확화하는이른바자기의캐리어패스를일본기업에기대하고있다는것을알수 있다.두번째는「경제적으로자립하고싶다」61.5%「안정된수입을확보하고싶다」58.8% 자율적인 생활형성에 기대가높다.일본인학생들과달리수입과지위보다스킬업에의욕적인유학생들의자세를엿볼수있다.반대로일본인학생은경제적안정자율을지향하고사회적공헌자국에서살고 있기때문에주위의눈길에유학생보다신경쓰고있다. 취직기업을선택할때에중시하는점(그림)을 31항목선택사항중에서 5항목까지선택한결과가장높았던항목은「장래성이있다」 56.0%과작년같이기업안정성을바라는경향을나타냈다.다음에는「사업 내용이매력적」38.8%「직장분위기가좋다」25.8% 사업 환경에관한항목을대답했다. 작년에비해크게포인트를떨어뜨린항목은「유명기업이다」「젊은이들이활약할수있다」「급여・대우가좋다」「대기업이다」등에서 2014년도졸업생은안정지향은있지만반드시대기업유명기업대우등을선택하는것이아니라직장환경을우선하는것이분명했다. 취업활동을선택할때기업연구에서 알고싶은것(그림)「외국인유학생채용실적」 86.2%로가장많고지금까지어느정도외국인채용실적이있었는지 관심이크다.그것은필기해답에 있어서「우수하면채용한다고해도, 실제로유학생을채용하고 싶어 하는지모른다」(문과남학생해답) 라는 해답이 많고 기업이어느정도유학생채용에대해서생각하고있을지제일신경쓰이는부분이라는것을알수있다。다음「직장내분위기」53.8%「실제사업내용」44.9% 직장환경에관한항목이계속되지만그객차은크고채용에관한걱정이 많다는것을알수 있다. 일본에서취직할때에불안하다고느끼는것(그림)에서는유학생들의 마음을잘나타내고있다.가장 많은 해답은「직장인간관계를잘 할수있을까」44.4%「고객대응을문제없이할수있을까」33.4%「비즈니스매너로실패하지않을가」29.8%「일본상습관에친숙해질수있을까」29.8% 등유학생으로서자신이일본사회일본기업에서충분히실행할수있을까등자신의사업사회성에대한개인적인불안을많이느끼고있는모습을엿볼수있다. 면접등취직활동에서기업이꼭평가해주었으면하는 것(그림)  일본인과 비교하여해답을보면유학생들의특징이잘나타난다.이해답은선택사항에서5항목까지선택한다。「이문화대응력」49.8% 「어학력」 43.4%「팀・워크력」40.3%, 「유연성」38.2% 순서로 된다.상위 2항목에서는유학생들이자신을갖고 있어일본인들에게서는거의볼수 없는능력이다.한편「주체성」「달성지향」「규율성・윤리관」「계획성」「상황판단력」등자기관리능력이요구되는항목에서는유학생이뒤떨어지는결과로되었다。이질문에서는유학생이외향적인데대하여일본인은자기규율등이내향적이다는특징을나타내고있다. 출전: 그림7과동일.   출전: 그림7과동일.          기업이유학생을보는시선8) 외국인유학생을채용하는목적(그림)에대해서는전체적으로문과・이과에의한큰차이는없다.「우수한인재를확보하기위해문과(73.2%)이과(83.0%)가장많고기업은인재확보에기대하고있는것같다。특히이과는기술자를포함해인재를넓게요구하고있다.다음은「해외거래처에관한업무를실시하기위해」「자사해외법인에관한업무를실시하기위해」「외국인으로서완성・국제감각등강점을발휘시키기위해」「일본인사원에영향도포함한사내활성화때문에」 4항목이50%에서40%로차이가없다.앞의 2항목은해외요원으로서외국인유학생을기대하여뒤의 2항목은외국인감가치관을회사내에환원받는것을기대하고있다。 외국인유학생채용을위해서강구하는시책(그림)가장많았던것은「취직정보사이트고지」 56.8%그다음에「대학에서개최하는기업설명회출전」53.8%「자사홈페이지고지」50.8%까지과반수에달하고 있다. 그러나기업이많이활용하고있는것은넓리인재를모집할수있는공식사이트와대학설명회를이용하고있지만인턴쉽이나사내인맥또유학생회등개인을특정하는모집방법이적은것이특징이다. 일본인과비교한입사후 3년간정착율(그림)은큰차이없다고말할수있다.다만 1000명이상대기업은일본인보다높다고대답하는기업이전체평균보다높고반대로일본인과비교해서낮다고대답하는기업도 25.3%와  4분의 1회사로대기업안에서 볼때정착율이높은기업과낮은기업이혼재하고있다. 외국인사원에만족도(그림)는전체 57.1% 「기대대로」또는「기대이상」이라고회답했다. 1000명이상대기업은「예상이상」이 10.3% 평균보다높기는하지만「판단이서지않는다」라고회답한기업도 36.8%로많다.대체로유학생채용에관해서는만족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지금까지외국인유학생채용실적이 있는기업의외국인 유학생 채용에 의한 사내에의 호영향 (그림19)의항목에서는「일본인사원에게의자극・사내활성화」가 71.1% 가장많은기업이해답했다.다음에「글로벌화추진에의이해의식양성」56.3%「이문화・다양성이해향상」55.5% 순서로 직장과 직원의의식변혁으로연결되었다는해답이많다.앞의「외국인사원만족도」가높은것은회사내・직원에게호영향이라고볼수있어기업이기대하고있는해외요원보다역할이높을지도모른다. 외국인유학생을채용하는것으로사내에서일어난「문제」(그림)에서는「문화・가치관생각의차이에의한트러블」59.1%「언어문제로인한의사소통면트러블」50.5%, 「담당부서부담증가」43.0% 상위에올라직장에서마찰로발전하는케이스로염려된다.개인적으로염려되는유학생은협조성순응성어학수준이낮은등의요소가담당부서의부담을높이고있다。이러한유학생은대학시절에도그다지변하지않는상황이었을지도모른다.먼저유학생자신이자각을가지는것사회성을높이는것이필요하다.그뿐만아니라받아들이는쪽에서도담당자를붙여 주는등충분한배려가요구된다.       Ⅶ 맺는말 본고에서는해외코리안네트워크를통한인재육성이라고하는시점에서해외코리안의세계분포현상재일동포를사례로한모국공헌역사와특징및그들의모국지원심리적특징을고찰했다.이러한해외동포의 관한 전제분석을참고로하면서일본에외국인유학생수락취업에관해서고찰했다。그경우한국유학생들만취업동향을전체적으로파악하는것이자료적으로어렵기때문에한국유학생을포함한조사를참고로했다. 내국민은앞에서지적한대로국민의 67.2%가재외동포에대해서「한국민으로서동질감」을느끼고있다. 그리고 56.3%가「재외동포한국발전의기여도」에대해긍정적으로평가하고있다。한편해외국민은조국지원에나타나는모티베이션이기본적으로태어나자란공동체나향토를사랑하고사랑하는패트리어티즘에의지하여왔지만조국이발전하여 재일사회도발전하면그모티베이션도서서히변화하여포스트・패트리어티즘의시대를거치고내셔널리즘으로서의식을나타내게된다.즉그들도해외국민으로서의자각과자신을가지게되어있다. 따라서내국민에대해해외에있어서받아 들이는역할을완수하게되는것이다. 이상을전제로서일본시장에서유학생수락은「30만명계획」으로보여지듯이증가경향이있다.외국인유학생취업에대해서도수락기업의약60%가「기대이상」또는「기대대로」이다고회답하고있다.한편유학생은일본에서취업하고싶어 하는사람은 97.5%로 압도적으로높다。 이런가운데서내국민의해외취업을한층더촉진하기위해서는몇가지대책도필요하다. 1 장기해외인턴쉽과그지원 한국에서는해외인턴쉽은활발히진행되고있어많은성과를올리고있다.그러나많은 것은 1년미만이며충분히연수하지못하고또생활도기업숙소등기업내에서생활하는것이많다.따라서파견국사회생활에접할기회도많지않다.일반적으로기업에는신입사원을채용하면정사원이되기전에「견습기간」이있어준사원자격을얻을수있다.인턴쉽을보다사원에가까운대우로연수하기위해서는해외기업과협력하여장기적으로연수하고그것이끝난뒤정사원이될수있는제도와그것을위한지원책을검토할필요가있다. 2 교포기업과제도적제휴 교포기업네트워크를한층더활용하기위한방책과지원이필요하다. 그들이조직하는비즈니스네트워크도많이존재한다.예를들면일본에서대표적인 조직으로는한국인연합회한국상공회의소한국청년상공회, 한국기업연합회세계한인무역협회 5지회한국농식품연합회한국음식업협회민단한식네트 협의회등있고각각많은재일동포기업들이가입해있다.세계이러한동포기업그룹과의제휴에의한해외인턴쉽해외취업을제도적으로실시하는것이필요할 것이다. 이미이러한기업을활용한해외인턴쉽도실시되고있다。예를들면세계한인무역협회의국제통상전략연구원에서는한국대학에있어서학생들을지망국별로나누고재일기업이라는설명회를개최하고있다.이러한부분적으로실행되고있는학생과동포기업의면담기회를세계동포채널을활용하여제도적으로국가가지원하는방책이검토할필요가있을 것이다.                                         주리스트   1 카사이노부유키조선족네트워크의상대화[OKTA 지바지회차세대무역스쿨] 2012년. 2 1과동일. 3「2013 재외동포의현황」외무부 2014년. 4재외동포재단이 ㈜한국리서치와아케치대에위탁, 실시한「2013년도재외동포에대한국민인식조사」를참고. 5 본장은이하의문헌및각종보도자료참고로했다. * 재외동포재「모국으로향하는재일동포의 100년발자국」2008년. *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50년사」1997년. *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신문」각호. * 카사이노부유키재일한국인들의조직적모국지원활동「한국의경제발전과재일한국기업인」나가노신이치로우편저 2010년. 6 나가시마마리코「한국의유학생정책과그변천」 웹매거진「유학교류」2011년 4월호 Vol. 1. 7 본장에서는학생조사에서권위가있는이하의조사결과를사용했다. 주식회사디스코캐리어리서치. 「외국인유학생의취직활동상황」2014년도조사결과 2013년. 8 본장에서는학생조사에서권위가있는이하의조사결과를사용했다. 주식회사디스코캐리어리서치「외국인사원의채용에관한기업조사」앙케이트결과-2013년 9월조사 2014년.                        
5    재일 조선족의 이주와 조선족네트워크의 상대화 댓글:  조회:1091  추천:0  2011-09-02
1머리말   글로벌시대의키워드는세계공통수준이다. 간단하게말하면국가를초월한 활동에는차별이없는것이다. 민족의국제적이주는그하나의사례이지만 이활동은아직도「공통수준」에이루어진 것은아니다. 그렇기때문에이주민족들은다양한「민족개성」과「민족문화」를구사하고이주지에서정착화를도모해왔다. 근년의특징은 인터넷의보급에의해이주 민족이다양한「민족네트워크」를형성하여지역,시간을초월한정보공유, 행동공유그리고사상공유를강화하고있는것이다. 그러나이주민족의네트워크는개개의민족특성을반영하기 때문에그의형상, 규모, 영역, 관리상황등네트워크 바람직한 자세도다양하다. 본고는중국조선족이일본에서의이주역사와그들의민족네트워크의특징을분명히하는 것을목적으로한다. 그것을위한구성은우선중국조선족이일본에서의이주 사를간단히개괄한후그들이일본정착에있어서 어떠한민족개성과특성을발휘해왔는가를분석하기위해서이른바조선족네트워크에대해그특징을 명확히하는것으로민족개성과특성에접근한다. 그리고 특징을분명히하기위해 다른민족네트워크와비교로 고찰한다. 마지막으로이것을근거로조선족네트워크가향후일본정착에있어서 어떠한의미를 갖는가를생각하고자 한다.   2 중국 조선족이일본 이주의 개요 재일조선족은언제쯤일본에온것일까?  1980년대중반중국에서 대학교원들의해외연수가인정되였고그당시연변대학의중국조선족교원도포함되어있었다고한다. 따라서 중국조선족중에서그들이처음으로전후일본생활을경험한 것으로된것이다. 그후중국개혁개방정책의진전에 따라중국조선족의해외진출도증가되었다. 당초에는한반도나러시아연해주에의혈연・지연을찾은 유출이많았지만점차젊은학도가미국, 일본등교육 선진국에유학나가거나노동자가비즈니스 찬스를찾아 한국,일본에진출되었다. 일본은1989년 입관법 개정을계기로 주재 외국인수가급증하였고1990년대에는유학생입학규제가완화되여 대졸자, 고졸자 유학생이증가되었다. 그리고 같은시기에 일본IT관련기업이중국동북지방에서조선족IT기술자를스카우트하는등조선족이  일본기업취직기회가확대되었다. 현재는가족까지포함해8~10만명에이르며특히수도권에는5만명좌우가거주해있다고 하지만정확한인수는파악되어있지않다. 일본으로이주한조선족들은오랜시간  정착하면서중국적을일본적으로국적을 변경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선택은역사적경위가있는재일 한국인이나재일 조선인과는분명히다르다. 일본에귀화한한국계일본인도증가하고있지만그러나그들은일본거주와국적은같은 의미가 아니다. 한국인이라는자부심 넘치는 민족의식과모국 의식이강한재일 한국인이많기 때문이라고생각된다. 이점에서 재일 조선족의의식은다르다. 이전에는한국・조선 국적인그들도중국이주로중국적이되어한번국적변경을  경험한 적이 있어다시  일본적으로변경하는것에대해재일 한국・조선 국적인보다정신적저항이적다고볼수있기때문이다. 오히려재일생활에서중국적을고집하는것보다도일본적을변경하는것이여러가지 편리를얻을수있기때문에 중국 조선족은합리적인이민인 것이다. 사견으로는일본인과의혼인자는거론할 필요도없지만  생활이안정된사람,기업 경영자, 10년이상의장기정주자등  국적변경자가많다.  (다음호에 이음)
4    (3) 재일 중국조선족의 극복 과제 (카사이 노부유끼) 댓글:  조회:2007  추천:42  2010-09-07
일본에서 볼때 재일 조선족은–선배민족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3) (4)재일 중국조선족의 극복 과제   카사이 노부유끼 ➀개인 네트워크의 한계 재일 조선족의 강점은 개인 네트워크가 윤활한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이러한 네트워크는 동족 의식으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네트워크를 확대 충실하려고 하면  충분하지 않을수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의 네트워크는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극히 내향적이고 그 규모는 결코 크지 않다.  원래 개인 네트워크란 그 기능이 한계적이고 그 한계적 범위내에서만 보다 밀도가 진한 관계를 쌓아 올리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규모와 범위가 확대되어 그 관계가 복잡, 대중화되면 개인 네트워크는 한계에 이른다.   ②  재일 조선족간의 온도차  재일 조선족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는 결코 튼튼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것은 그들의 역사적 의존성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중국에서의 그들의 출신지는 산재(散在), 분산되어 있어 일본에 도래한 그들은 그 출신지에 의해 동향의식(同郷意識) 가치관에 온도차이가 있다.  재일 조선족은 한국에 재류하고 있는 노동자층과는 달리 기업가, 기술자, 학도 등 엘리트층이 중심인 것이 특징이다. 또 중국에서의 그들의 전통적 중심도시는 연변조선족자치주로서 주 소재지는 연길시이며 연길시 출신 또 연변대학출신이 그들의 정점이 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주 소재지 출신자와 다른 지방도시 출신자 또는 지방 도시 출신자 사이에는 각각 동향성에 근거한 가치관의 온도차이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개인 네트워크 형성의 원인이 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견(私見)에서는 해외에서 한정된 거주자가 형성하는 사회에 있어서 이러한 온도차이를 제거하여 협조성을 높일 필요가 있으며 그 근원인 중국 사회에서 형성된 생활방식, 가치관 및 역사적 의존성은 일본사회에서는 필요없을 것이다.  오히려 차세대를 위해서도 민족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일본 사회에서의 역사적 의존성을 새롭게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즉 1세의 동향성에 의한 횡적인 온도차이를 배제하고, 다음의 세대와의 종적 제휴를 지금의 1세 세대가 간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선배  도래인의 경험으로 보면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1세가 아니라 2세 3세에 의해 가치관의 전환이 진행되며, 그 후세대로 1세 2세에 없는 새로운 가치 정의가 생기기 때문에 현재의 1세의 온도차이는 당분간 계속 될 것이다.   ③ 새로운 민족 네트워크 시스템  향후 다른 가치관을 넓리 받아 들여 하나의 사회를 형성·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한계적 개인 네트워크를 초월한 기능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예를 들면 재일 한국국적인 조직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재일 조선족의 강점인 네트워크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민족적 특성에 배려하면서 현재의 개인 넷트워크와는 다른 새로운 민족 네트워크 시스템의 필요성은 높아질 것이다.  재일 화교·화인이나 재일 한국인은 타운 (공생 지역)을 만들어 거주의 장소만이 아니고 그지역을 관광자원으로 하고 있다. 재일 조선족타운은 가능한가 라고 물으면 지금은 시기 상조이다. 현재 그들이 거주하거나 기업하고 있는 지역은 수도권일 경우 신오오쿠보 코리안타운 및 그 주변이나 아키하바라로부터 케힌토호쿠선 연선 사이타마 근교가 많다. 아직도 선적 공생지역(線的共生地域)을 형성하고 있으며 향후 면으로서의 거주지역을 형성할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그러나 조선족타운을 형성하면 거기에서부터 동족성·지연성에 근거하는 새로운 네트워크 시스템 형성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④ 시대 뒤에서 가는 강점  현재 재일 조선족사회의 중심은 1세이며 3세 4세의 중심 즉 3대 4대의 역사를 갖고 있는 선배도래인의 성숙사회와 비교하는 것은  적당하다고는 할수 없다 . 그러므로 선배도래인 1세와 재일 조선족 1세들의 비교로부터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재일 화교 최초의 도래는 150년전, 재일 한국조선인은 130년전, 재일 조선족은 25년전으로 1세 도래인과는 100년 이상의 시간 차이가 있다. 재일생활에서 이 차이는 지극히 크다. 시간적인 차이보다 국제환경이나 일본 사회의 외국인 수락숙도에 있어서 천지 차이이다.  즉 재일 조선족 1세는 그 생활에서 선배도래인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으며 한편 그들의 경험을 배울 수 있는「후발성 이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2세 3세의 생활을 통찰함에 있에서 이「유리성」을 어떻게 다면적으로 살려 갈것인가가 현재 1세에게 주어진 문제이다. 선배 사회는 보고(宝庫)이다.   ⑸ 에필로그 조국과 떨어져 해외에서 생활하는 민족을「디아스포라」라고 표현하는 언설이 있다.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는 희랍어로「흩드려진것 」이라고 하는 의미로 잘 알려진 예에서는 팔레스타인의 밖에서 이산하여 헤어져 사는 유태인을 가리켜 그 이외에도 그리스인 페니키아인 아르메니아 화인등을 들수 있다.   즉 본국외에 거주하는 집단을 디아스포라「정치상의 이유등에서 본국을 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라고 부른다. 그러나 디아스포라는 그 근저에 피상적 비참한  사정을 배경으로 한  이주집단이라고 하는 비관적 함의가 있다. 그 의미에서는 재일 한국인1세나 중국 동북지방(간도)에 유출한 조선족1세들은 확실히 이러한 민족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뉴커머라고 하는 현대 해외 코리안과 같이 스스로 성장 기회를 찾아 세계에 펼쳐지는 민족집단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디아스포라의 개념에는 맞지 않는다. 조선족 뉴커머들도 이 예에 빠지지 않는다.  현대 재일 조선족을 비롯한 해외코리안과 같이 자기 발전과 본국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포함한 민족발전형 확산은 세계에 펼쳐지는「협노(協労)집단」이다. 그리고 그들은 민족 아이덴티티에 유지해 세계에 펼쳐진 월드 와이드·파트너인 것이다. 이 원고에서는 재일 조선족 2세 3세등 자손에 대한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보다 좋은 사회를 남기기 위해서 선배 도래인의 재일 생활경험을 분석해 왔다.  하지만 사실 선배인들은 2대 3대전에 간도(間島)로 이주한 중국 조선족 1세이며 자기들의 부모, 조부모이다.  왜냐하면, 재일 조선족들이 전승하려고 하는 문화는 그 모두가 1세부터 계승한 것이며, 중국이라고 하는 타국땅에서 계속 유지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향토인 고향의 산과 땅은 이동하지 않지만, 거기에 뿌리 내린 문화와 사회는 사람을 통하여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다.   (끝) 注) 1) 카사이 노부유키 「동아세아 세차례 조류」 「제3회 재일 중국조선족 국제 심포지엄:동북아세아 공동체의 가능성과 코리안네트워크의 역할」2009년12월. (笠井信幸 「東アジアの三つの波」第3回 在日本中国朝鮮族国際シンポジウム「東北アジア共同体の可能性とコリアン・ネットワークの役割」2009年12月) 2)요미우리신문 2007년12월28일.(2007年12月28日付け読売新聞)   (일본어) 3)필자의 현지조사(2008년9월). 4) 카사이 노부유키「동아시아의 문화센타 요코하마 중화가-중국인은 서양문화의중계인-」『항도(港都)요코하마의 문화론』코바야시 테루오 편저 관동 학원 대학 출판회 2009년 (일본어) (東アジアの文化センター横浜中華街 ―中国人は西洋文化の介添人― 『港都横浜』 5) 카사이 노부유키「재일 한국인들의 조직적 모국 지원 활동」 『한국의 경제 발전과 재일한국기업인』나가노 신이치로 편저  도서출판 말글빛냄 2010년.   *재일 조선족및 그사회에 대한 연구는 일본에서는 아직 거의 없고 이원고는 필자의 일상적인 연구관심사로부터 친필 한것이다. (在日朝鮮族およびその社会に関する研究は殆どなく、本稿は筆者の日常的な研究関心からまとめたものである)。 글 싣는 순서 ⑴ 프롤로그 ⑵ 재일 조선족의 특징과 그 모습    ➀ 중국인은 재일 조선족의6배, 한국인은 재일 조선족의 5배   ② 개인네트워크와 집단형성력    ③ 중국조선족의 다언어 우월성  ⑶ 재일 조선족이 선배민족에게서 배워야 할점   ➀ 민족 아이덴티티 유지강화― 청나라인, 재일화교, 화인들은―   ② 민족 유지의 힘― 재일 한국인들은―  ⑷ 재일 조선족의 극복과제    ➀ 개인 네트워크의 한계    ② 재일 조선족사이의 온도차    ③ 새로운 민족네트워크 시스템    ④ 시대 뒤에서 가는 강점  ⑸ 에필로그    
3    (2) 재일 조선족이 선배로부터 배워야 할 것 댓글:  조회:2047  추천:49  2010-08-28
일본에서 볼때 재일 조선족은–선배민족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2)재일 조선족이 선배로부터 배워야 할 것카사이 노부유끼➀ 민족 아이덴티티 유지 강화―청나라인 재일 화교. 화인들은?―   재일 화교, 재일 한국인은 이미 4세 5세 시대에 들어가고 있다. 재일 조선족은 1세 중심으로 2세 아이들이 출생하고 있다. 선배 민족의 1세 2세들은 일본에서 정착을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해 왔다. 거기에는 각각 민족의 독특한 방식을 볼 수 있다. 청나라인을 루트로 하는 재일 화교·, 화인은 관제묘 마조묘라고 하는 정신문화를 정착시켜 현재까지 계승해지고 있다. 4) 요코하마 중화가에서는 춘절기간에 사자무용, 용무, 중화 무용, 쟁,등의 민속 예능을 실시한다. 특히 사자무용 예능은 요코하마 중화가에서의 가장 역사가 있는 문화 예능으로서 알려진다. 재일 화교 1세 상당수는 광동 출신자가 대부분이고 그들의 향토에서 전해지는 남방 사자무용을 반입한 것이다. 관제제, 마조제, 국경절 등 연간행사에는 반드시 사자무용을 하며 중화 청년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재일 화교·화인 세대를 넘은 민족 아이덴티티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능 문화계승에 의한 민족 아이덴티티의 유지강화는 중요한 수단이다. 재일 조선족사회에서도 적지만 이러한 예능활동은 볼 수 있으나 아직까지 개별적 활동역역(領域)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 있어서 민족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래지 않아 조직적인 민속 예능의 실현이 필요하게 될것이다.  차세대에 대한 민족교육에 의한 문화전승도 중요하다. 재일 화교, 화인은 요코하마 중화학교를 비롯하여 많은 학교를 가지고 있으며 재일 한국인은 도쿄 한국학교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기회는 일반교육 뿐만 아니라 민족문화 전승기회로서도 유효하다.  재일 조선족은 아직도 그 규모가 작고 전문적 교육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치바 OKTA가 년간 1차 개최하고 있는「차세대 무역 스쿨」에서  20대~30대의 차세대가 참가하여 비즈니스 교육을 받고 있다. 그리고 재일 조선족여성회에서는 매달 한번 모임활동중, 2개월에 1 번씩은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중국어 기초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전통민속문화교육에서는 옛 동화등을 교육하고 있다. 그외 전문교육으로서는 조선족연구학회가 주최하는「연구회」「국제 신포지움」은 젊은 조선족 연구자들의 수업 장소가 되고 있다.   (일본에 있는 한국·조선학교) ★ 학교법인 백두학원, 건국학교(오사카시 스미요시구)    건국유치원, 건국초등학교, 건국중학교, 건국고등학교   ★ 학교법인 금강학원(오사카시 니시나리구)   ★ 학교법인 쿄토국제학원(쿄토시 히가시야마구)         쿄토국제 중학교·고등학교        쿄토한국 중고등학교          ★ 도쿄 한국학교 초·중·고등부(도쿄도 신쥬쿠구)   ★ 나고야 한국학교(나고야시 나카무라구)   주:나고야 한국학교는 주로 일본 사회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장소가  되고있으므로 보통 포함 되지 않는다   ★ 학교법인 도쿄 조선학원. ② 민족 유지의 힘-재일 한국인들은-  재일 한국인의 민족성 유지특징의 하나는 조직력이다. 민단(民団)(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 본부를 핵심으로서 전국에 지부가 퍼져 있는 조직으로서 지금까지 재일 한국인 사회의 통일을 지켜 왔다.   2차대전후 재류한 재일 한국인들은 조직력과 애국심을 갖고 계속 일본에 거주해 왔다. 전국에 흩어진 재일 한국인들에게 조직적인 행동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을 통합하는 기능이 필요하였고 그 역할을 이루어 온 것이 1946년 10월 3일에 창설된 민단 이다. 재일 한국인의 조직력과 애국심은 모국이 곤란한 상황에 있을 처해 있을 때에 진행해 온 지원활동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5)  재일 조선족은 아직 이러한 민족을 통괄하는 조직은 없지만 민족성 유지를 도모한다면 장래적으로는 전국에 흩어진  조선족을 뭉치게 하는 핵심기능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조직은 단지 지휘, 관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문제나 고민 또 민족적 과제등을 거리낌 없이 상담하며 민족적으로 대처하는 유효한 기능이다.   단지 재일 조선족이 중국, 한국, 북한의 중간적 존재인것을 고려하면 국민으로서 재일 화인·화교와 합류해야 할지 혹은 민족으로서 재일 한국·조선인 사회에 융합해야 할지 또는 제3 선택으로서「우리식 」으로 독립적인 기능을 가져야 할지는 아직도 불투명하다.  독립심이 강한 민족성을 고려하면 독자적인 기능을 가질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해: 4) 카사이 노부유키「동아시아의 문화센타 요코하마 중화가-중국인은 서양문화의중계인-」『항도(港都)요코하마의 문화론』코바야시 테루오 편저 관동 학원 대학 출판회 2009년 (일본어) (東アジアの文化センター横浜中華街 ―中国人は西洋文化の介添人― 『港都横浜』 5) 카사이 노부유키「재일 한국인들의 조직적 모국 지원 활동」  『한국의 경제 발전과 재일한국기업인』나가노 신이치로 편저  도서출판  말글빛냄 2010년.글 싣는 순서 ⑴ 프롤로그 ⑵ 재일 조선족의 특징과 그 모습    ➀ 중국인은 재일 조선족의6배, 한국인은 재일 조선족의 5배   ② 개인네트워크와 집단형성력    ③ 중국조선족의 다언어 우월성  ⑶ 재일 조선족이 선배민족에게서 배워야 할점   ➀ 민족 아이덴티티 유지강화― 청나라인, 재일화교, 화인들은―   ② 민족 유지의 힘― 재일 한국인들은―  ⑷ 재일 조선족의 극복과제    ➀ 개인 네트워크의 한계    ② 재일 조선족사이의 온도차    ③ 새로운 민족네트워크 시스템    ④ 시대 뒤에서 가는 강점  ⑸ 에필로그 
2    (1) 재일 조선족의 특징과 그 모습 댓글:  조회:2398  추천:39  2010-08-26
일본에서 볼때 재일 조선족은–선배민족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아시아경제문아연구소 수석이사  수석연구원 카사이 노부유키 笠 井 信 幸 ⑴  프롤로그 그들은 스스로를「중국 조선족」이라고 한다. 「중국」이란 중국에 거주 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일본에 입국한 그리고 중국국적을 소유하고 있는 등 의미가 있으며,「조선족」이라는 중국 국내의 55개의 소수민족중의 하나로서 중국거주 해외코리안 등 뜻이 담겨져 있다. 즉 중국조선족이란 중국에서 일본에 도래(渡来)한 조선족, 중국국적을 가진 조선민족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한반도로부터 일본에 도래한 조선민족과는 구별되여 있다. 하지만 일본인이 보면 조금 특이한 느낌이 든다. 일본 출입국통계는 국적별로 입국자가 구분되여 있고 민족별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국적에 의해서 중국인, 한국인등과 같이 나누어 지고 있다. 그런 경우에는 그들은 중국인이다. 그리고 일본 체재, 거주 또는 교우 (僑寓)(호적을 옮기지 않고 거주하는 것) 하고 있는 외국인을 재일 미국인、 재일화교 등으로 부르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일본에 거주・교우 하고 있는 중국에서 일본에 도래한 조선민족들을「재일 조선족」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다만 일반적으로 중국조선족을 가리키는 경우에서는 그들을「중국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재일 조선족은 언제부터 온 것인가?  최초 일본에 도래한 정확한 년도는 알 수 없지만 대개 1980년대 중순에 중국정부에서 정책적으로 교원들의 해외 연수가 인정되여 그 중 연변대학 조선족 교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해외에 나오는 것이 금지되여 있었다고 하기 때문에 그들이 처음으로 되지 않을가 추측된다.  그러나 일본통치시대 잔류고아(残留孤児)들이 조선족들과 결혼한 일본인은 예외이다. 90년대에는 유학생 입학규제가 완화되어 대졸자, 고졸자 유학생들에게 유학문이 열렸다. 또한 그 무렵에는 일본의 IT관련 기업이 중국 동북지역에서 조선족 IT기술자를 중심으로 스카우트 하여, 일본기업 취직기회도 확대되었다. 그 후 유학생이나 일본어 연수생이 일본에서 공부하고 졸업한 후, 취직 혹은 기업(起業), IT업종을 중심으로 한 기술자의 일본으로의 도래도 증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는 재일 조선족은 가족까지 포함해 6~7만명에 달한다고 하는 특히 수도권에는 4~5만명이 거주해 있다고 말하지만 정확한 인원수는 파악되어 있지 않다. 중국에서 해외로 출국하는 조선족의 국제 비교는 대단한 규모가 아니다. 2010년 연변주 공안국, 출입국 관리국의 발표에 의하면 2003년부터 연변주민이 매년 출국하는 나라는 50여개국이며 가장 많이 출국한 해에는 95개국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중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이 80% 정도로, 러시아에는 5~7%, 일본은 5% , 북한은 4%정도로 근린 제국에 출국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일본에 입국한 조선족들은 아직까지 일본에서도 소수민족이다. 본고에서는 재일 조선족을 일본사회 및 일본인의 시점으로부터 파악하고 그들의 민족성 및 그 특징 일본사회에서의 정착과정 그리고 향후 과제를 고찰한다. 이럴 경우 일찍 동아시아로부터 도래한 청나라인, 한반도로부터 도래한 조선인의 사례를 참고로 한다. ⑵  재일 조선족의 특징과 그 모습     ➀ 중국인은 재일 조선족의 6배, 한국인은 재일 조선족의 5배 동아시아에서 일본으로 들어온 민족의 물결은 지금까지 3차례 있다.1) 제1차의 물결은1859년 일본의 개국(開国)을 계기로 유럽 상인과 함께 청나라 사람들이 도래(渡来)한 것이다. 제2차 물결은 1876년 (일조 수호조약: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한, 한반도로부터 노동자와 유학생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제3차 물결은 1980년대 중반무렵부터 유입(流入)한 재일 조선족이다. 이 물결은 새롭지만 아직도 작은 물결이다.  현재 일본거류자 6~7만이라고 하며 또한 수도권 거주자는 4~5만명이라고도 한다. 재일조선족의 유입·거주는 아직도 인구 규모도 적고 역사적으로도 25년  길지 않다.  참고로 청나라인(재일화교)은 150년 역사를 가지고 있고,  재일 조선족의 6배, 마찬가지로 한국등 조선인은 130년 재일 조선족의5배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② 개인 네트워크와 집단 형성력 재일 조선족은 개인적 네트워크를 구사(駆使)하여 정착을 진행시키고 있다. 그들은 집단화, 조직화가 뛰어난 민족이다. 그것은 고향을 떠난 역사가 길고 중국내에서도 소수민족으로서 살아 가기 위한 지혜였다. 국내의 거주지에서도 살아 가기 위한 동족 커뮤니티를 만들어 왔다. 해외에 진출하여서도 그 방법은 변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도 연변대학 출신으로 이루어진 연변대학 교우회, 누구도 참가할 수 있는 천지협회,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치바 OKTA(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 본부는 한국, 일본지부중의 하나임), 학자·연구자·대학원생을 대상으로한 조선족연구학회, 동북아청년련의회 등 6개 팀을 포함한 재일 조선족축구협회, 재일 조선족여성회, 재일 조선족 인터넷사이트로서 유명한 SHIMTO, 그 외 업계, 학생등의 소규모 조직· 네트워크화된 집합체가 있다.  그 배경에 따르는 것은 강한 동족의식을 가진 개인적 네트워크이다. 창업한 회사가 사원을 모집할 경우, 능력을 요구하는 불특정 다수보다는 동족을 모집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일본에서 취업이 어려운 동족에게 취업 기회를 주는 효과를 가지는 것과 동시에 민족을 수렴하는 효과를 가지며, 7만의 회원수를 가지고 있는 SHIMTO 등 위의 각 조직을 활용하여 응모하는 경우도 많다.    ③ 중국 조선족의 다언어 우위성    다언어의 특징은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에 능숙한 다언어, 우위성이다. 동아시아에서 이 정도 민족단위로 다언어 우위성을 갖고 있는 것은  중국 조선족뿐이다.  50대에서 30대 후반의 1세들의 상당수는 고국에서 일본어 기초가 있는 사람도 많고 일본에서 일본어 습득이 다른 민족에 비해 지극히 빠르고 일본어교육이 거의 필요없을 정도의 언어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중국내에서 일본어가 뛰어난 민족이라고 알려져 온 우위성이 향후 계속 유지될지는 의문된다.  그것은 1세의 년대가 배워 온 그러한 일본어 습득 기회가 급속히 감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변에서는「40세 이상 90% . 30세 이상 60%는 일본어를 안다」고 한다. 한편 「25세 이하는 30%가 상한(上限)」이라고 하며 “일본어 세대”는 확실히 축소되고 있다.2)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3)  가. 일본어교육 환경 변화   * 1990년대에 들어 와서 일본어반이 격감한 것   * 일본어 교사들이 전근이나 전직을 피할 수 없게 된것   * 일본어 수준 높은 중견(中堅) 이상 교원 감소   * 일본어 교육  자체 질이 떨어진 점    * 남은 교원 일본어 연수 기회가 없고 교원교육 질 저하   * 새로운 교재 나와 있지 않은 것   * LL교실등 교육설비 부족   나. 학생들의 영어과목 선택기회 증대   중학교에서 외국어 선택은 대학 입시나 IT기술 습득등 계획적으로 많은 학부형들이 학교측에 영어반을 마련하도록 하고 아이들에게도 영어를 추천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일본어를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그러므로 외국어를 주로 영어로 고등학교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증가한 것이다.   해외 유학에는 영어취득은 필수이며 유학한 선배들이 유학처에서 영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이 고생하고 있는 경험으로 일본어보다 영어를 우선하는 동기가 강하다.  다. 제도적 이유   대학입시에서 유명한 대학 리공계 학부나 일부 문과계 학부에서는 영어를 수험 필수로 하기때문에 일본어 수험이 불리하게 되어 있다.   제도적 요인의 제일 큰 문제점은 국가교육위원회 입시센터 영어출제 범위의 공표(公表)이다. 수험생들은 이런것에 의한 충분한 준비가 가능하지만 한편 일본어는 공표되지 않기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적절한 수험대책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일본어입시 문제도 비교적 어렵기 때문에 영어 선택자 보다 입시 성적 저하의 불리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향후 일,중,한국의 언어로 중국 조선족의 어학 우위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앞으로 뉴커머(新参者)가 유리한 것은 일,중.한.영의 4개국어로의 언어 우위성의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글 싣는 순서 ⑴ 프롤로그 ⑵ 재일 조선족의 특징과 그 모습    ➀ 중국인은 재일 조선족의6배, 한국인은 재일 조선족의 5배   ② 개인네트워크와 집단형성력    ③ 중국조선족의 다언어 우월성  ⑶ 재일 조선족이 선배민족에게서 배워야 할점   ➀ 민족 아이덴티티 유지강화― 청나라인, 재일화교, 화인들은―   ② 민족 유지의 힘― 재일 한국인들은―  ⑷ 재일 조선족의 극복과제    ➀ 개인 네트워크의 한계    ② 재일 조선족사이의 온도차    ③ 새로운 민족네트워크 시스템    ④ 시대 뒤에서 가는 강점  ⑸ 에필로그 *편자주: 본 론문은 23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대회의실에서 재외한인학회(회장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가  일본의 조선족연구학회,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BK21교육연구단과 공동으로 개최한 `한.중.일 협력시대 조선족의 역할'세미나에서 발표되였습니다. 
1    프로필 댓글:  조회:1732  추천:66  2010-08-26
프로필성  명: 카사이 노부유키 출신지: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 현  직: 아시아경제문화 연구소 이사· 수석 연구원 국제통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 조선족연구학회 부회장, 동아시아경제경영학회 부회장관동학원대학 겸임강사대동문화대학 겸임강사동경전기대학 겸임강사 전문 분야: 개발경제학, 한국경제론, 동아시아경제론 재단법인 국제개발센터 연구원, 한국서울대학 경제연구소 객원교수, 수명(秀明)대학 국제협력학부· 대학원 교수, 야마구치 대학 겸임강사, 츄쿄대학 겸임강사, 일본대학 겸임강사등을 역임. 저서·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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