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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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편소설] 하류의 물살 댓글:  조회:12108  추천:60  2008-11-11
[중편소설] 하류의 물살 량춘식     고동색으로 침묵하고있는 언덕에 나는 앉아있다. 나는 이것이 마지막 고독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은 여느때처럼 황페하고 적막한것이 아니라 탕개가 풀리며 어느 정도 감동하기까지 한다.     구태의연한 풍경이라서 두만강하류는 아름답기만하다. 삼국이 린접해있는 국경선이다. 왼편으로 로씨야의 트럭과 송아지만큼 큰 개짖는 소리, 오른편으로 조선의 기관차의 고동과 닭들의 홰치는 소리가 련속부절히 들려와 못가보는 이웃이기만하던 력사의 비망록이 안개의 강으로 한가슴 흘러들기만한다. 짙은 회백색, 흑청색의 두만강하류는 그 흐름이 완만하고 수많은 잔주름이 미명의 빛속에 잘디잘게 쪼개진다. 짙푸른 엽록소가 물든 강변갈숲과 진붉게 물기오른 피빛버들숲을 어루쓸고 나가는 하늘빛 동쪽 저 멀리 무연히 바다가 누워있다. 동해란다. 저 바다로 모국의 강릉이나 속초항에 가 대일수 있기도 하다면… 봄이면 청록색, 여름이면 짙푸른 파랑, 가을이면 감청색, 겨울이면 짙은 남색의 상공으로 계절따라 터새, 철새, 나그네새들의 울음이 그 얼마나 이 가슴을 쪼개고 애끓였던가.     나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강하구의 얕은 언덕에 앉아있었다. 삼각지와 넓은 바다가 잘 내려다보였다.     강하구는 물살이 완만했다. 민물과 짠물이 서로 섞였다. 그곳에 물고기들이 서식했다. 수심 얕은 수토사이가 산란에 적당하기때문이다. 새우무리와 조개무리의 민둥뼈동물도 모여들었다. 새들은 주린 배를 채웠다. 그리고 날개를 손질하며 쉬다가 떠났다. 그럴적마다 이 마음은 곧잘 감동했고 아쉬운 나머지 핑글 더운 눈물이 고여오르군 했었다. 도요새의 유연한 비행을 두고, 갈매기의 기류에 따른 묘한 상승을 보며 너희들이야말로 삶이란 그물에 걸려 헐떡이는 인간들과는 달리 가고픈 곳 다 다니며 자유의 신이라는 부러움으로 마음의 날개를 끝없ㅇ 퍼득이였던것이다.     내가 못가본 곳은 너무나 많다. 국경선너머는 말고 조국의 수도 북경은 물론 성소재지인 장춘마저 못가본, 비행기는 말고 파란 렬차 한번 못타본, 자전거만 타는 한심한 농투사이니 말이다. 그래도 제일 가고픈, 자나깨나 그리는 품의 강심(江深)이 있다. 안해가 있을 그 어디에―서울의 어느 김밥집이나 부산의 고삭은 나루배아래 바람등받이에 새우잠 자는, 강릉이나 영동의 어느 두메산골 감자밭이나 두만강 철교란간을 붙잡고 흐느끼는 오, 어쩌면 이제는 속초항에서 동해를 거쳐 배가 연변 훈춘에 와닿아 속초항만에서 환향의 기회를 기다리며 쪽잠 들고있을 그곳으로 찾아가고픈것일가. 그런데 왜 자꾸 안해를 , 사랑하는 안해의 처지를 이토록 슬프게만 매여놓고있을가. 어느때 어느 남자 문뜩 딸라띠를 해띠고서 눈이 까매서 기다릴 이 나그네를 찾아올지 뉘 알랴. 하긴 생각이 처량하게만 흘러드는것도 리해가 갈것 아니냐. 고향을 떠날적에 자그나마 온 방천마을의 남녀로소가 한사람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송별을 고할적 3년만에, 두만강변의 해당화 세번 지고 필적에 환향하리라 맘놓으라며 맹세하던 안해가 아니던가. 그런데 3년이 지나고 또 3년이 오도록 《돌아가겠어요.》하는 대답이 올줄은 모르고있는 형편이다. 문득문득 날아드는 송금표, 많으면 륙천 팔백원, 적으면 일천 이백원씩 희열에 들뜨기보다는 오히려 고맙고 미안스럽고 가슴아프기까지 해나서 받아보는것은 개인날 궂은날 가리잖고 발이 부르트도록 서울에서 부산으로, 강릉서 영동으로 자리를 부엌데기처럼 옮기며 바꾸어온 《피땀》이였던것이다.     여보, 이젠 제발 돌아와주오. 덕분으로 아이들까지 대학 보내고 페결핵으로 황천객이 다됐던 어머니도 편히 살아서 신수 멀끔하구먼. 저금한 돈도 적잖은데… 이렇게 바다 건너 수없이 새처럼 편지가 날아갔어도 《더 벌어야죠…》라는 한마디 애매한 대답뿐인걸 어쩌랴.     돈이 안해를 악마로 만들었는가? 돈을 벌기 위해 태여났을가? 말도 안된다. 안해여, 그대의 봄같은 숨소리와 말소리, 수정같은 눈동자와 박씨 같은 가쯘한 이, 고운 얼굴과 앞가슴과 숫눈무지 같은 하반신, 그리고 해바라기 같은 정과 도덕과 량심은 그대 혼자만의것이 아니어늘… 그러나 내 지금 별수 있으랴. 언젠가 안해가 말했듯이 삶이란 결국 그런것, 어부가 그물코를 시작하여 끝맺을 때까지 한코를 뜨면 열코을 나가야 하고 열코를 뜨면 백코를 나가야 하는, 결국 그런 한코, 두코의 그물이 자기를 쳐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굶고 주려 마르게 하는 《마귀그물》이란걸 알면서도 한사코 떠나가는게 인간인것이다. 이때문에 나는 고통스럽다. 애당초 허욕에 날치며 안해를 풀어보낸것이 지금은 그것이 돈으로 지지리 어두운 고독만을 바꾸어오고 귀체(貴體) 스스로 귀체의 모든것을 해친다고 해야 할지를.     그립다, 그리워서 망망한 바다가 보이는 하류의 삼각지로 나간게 아닐가. 마를수 없는것이 바다라면 여기 두만강하류의 풍족도 영원할것이다. 황어, 산천어, 청어, 정어리, 쏘가리, 가재미, 꼴뚜기, 송어, 련어, 용어들이 은빛 번뜩일 때 그보다는 오월, 련어철에 몇십근 지어 백여근씩 되는 련어들이 알을 쓸고저 무리쳐 오르는데 한마리만 잡아도 사람이 실컷 먹고 나머지를 도끼로 찍어 돼지를 먹인다고 한다. 얼마나 아까운 짓인가. 인간들이란 린색하기 짝 없다. 하류에 수없이 고기가 많다는 선입감때문일것이다.     물속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가. 그 어떤 고갈이라던가 하는것을 느낄수 없을텐데. 이런 느낌이 나에게 던져준 상상이였을가. 나에게는 언제부턴가 하류가 안해의 미끈한 하반신으로 착각되군 했다…     얼마나 맑지고 청청한가. 700리 두만강의 상류, 중류가 오염이 없었으니 하류야 거울면 같이 유유했었다. 푸른 강역에 차돌을 쏟아부은듯 오붓하게 들어앉은 방천마을이다. 길섶에 어렵잖게 굶어죽은 시체를 볼수가 있고 류리걸식하던 《대약진》세월에도 방천마을사람들은 초근목피(草根木皮)를 운운하지 않고 살수 있었다. 훈춘이 중국의 맨 북쪽구석에 위치해있으니 훈춘에서도 70키로메터의 심산수레길을 조여야 대일수 있는 700리 두만강 맨끝쪽, 동해가 훤히 바라보이는 마지막 산속마을이니 오지도 한심한 오지였다. 태여나 죽을 때까지 기차 못타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해는 낡은 자전거를 구해다가 타고 다니는 박가를 자전거 탈줄 안다고 촌장으로 선거했었다. 그토록 구석이라 해서 정치불문인것은 아니였다. 마을의 어느 집에 반도체라지오가 있었고 열흘에 한번씩 우편배달이 다녔으며 간혹 경신향정부에서 《공작대》들도 다니군 하여 정책조달이 되고 생산대회의가 띠염띠염 열리군 했던것이다. 이른봄, 종자구입때나 한여름 종종의 일때문의 수레나들이보다는 늦가을이나 한겨울속의 징구량 바치는 일이 제일 대사로 나서는것은 코흘리개도 아는 사실이였다. 푸름한 신새벽에 개털모자에 고드름을 붙이며 징구량을 꽉 박아실은 수레대오가 산길을 조인다. 뚜꺼덕 삐삐덕, 이랴쨔쨔 소리가 골안을 들었다 놓는데 자칫하다간 좁은 얼음서린 길에서 탈절되여 천길나락으로 굴러 황천객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그래도 새벽, 낮, 밤을 교체하면서 해해년년 어김없이 완수하군 하는 징구량임무였다. 《대약진》 그 세월에는 쭉정이마저 날려 얻은 낟알까지 깨끗이 실어가게 되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배고파 우는 아이를 업고 촌장을 삿대질하며 욕질을 했다.     《욕은 당연히 제가 먹어야 합니다. 진작 준비가 되여있으니깐요.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우린 우리 마을이 위치하고있는 때문에 굶어죽을수 없을겁니다. 두만강하류에서 바다에서 오르는 물고기들이 펄떡펄떡 뛰놀고 늪도 있고 벼라별 약재와 산짐승들이 낳은 산도 있지 않습니까… 견딥시다. 나라의 곤난을 함께 떠멥시다…》     촌장의 예견대로 방천마을은 류리걸식하는 사람들을 볼수 없었다. 어느 집에서 메돼지를 잡아도 스무호남짓한 사람들이 골고루 나눴고 아이만큼씩한 송어를 잡아도 큰 가마에 끓여서 온 마을  남녀로소가 명절인양 모여 먹군 하였다. 그때 마을에 첫손 꼽히는 《부호》가 있었으니 호주의 성명이 윤철룡이요, 별명이 《손톱눈》이다. 이름과는 달리 키 작고 강마른 철색의 나그네여서 보는 사람을 무안케 할 정도인데 그런 사내가 떡구시같이 실한 아낙과 일곱딸을 낳아 기르면서 잘산다는게 믿어질수 없는 사실이다. 세층으로 된 집앞 뒤주에는 강냉이, 호박, 벼섬이 그득 쌓여있었고 돼지, 게사니, 오리, 닭들이 울어제끼고 바람에 펄럭거리는 흰 이불안과 딸들의 속내의며가 꽃같이 피여난 빨래줄 받침용장대기의 아득한 끝초리로 언제나 말린 물고기들의 기름튀김을 련상시켜오군 하여 아래도리까지 뻐근해나도록 사람을 죽여준다. 그래도 기막힌 깍쟁이다. 배추김치를 넘볼라치면 먹던 김치를 손톱으로 찢어서 주는가 하면 산치기에서 도시락 구워먹을 때 곁의 네 장정들이 말린 붕어튀김을 축낼가봐 미리 한마리를 주어들고 네몫으로 빡빡 쪼개주더라는것이다.     윤가는 사람들에게 늘 《잘 먹기 위해 부지런해라》고 말한다. 윤가는 확실히 잘 먹어댔다. 많이 먹어서 그런게 아니라 영양이 고루 가도록 각양각색의 음식장만에 신경을 쓰는것인데 열두가지 네발짐승의 고기, 열두가지 날짐승의 고기, 열두가지 물고기, 열두가지의 김치, 열두가지의 알곡밥, 열두가지의 알류, 기름류의 정상적인 음복이였다. 그외에 세가지를 금하고있었는데 술, 담배, 도박이였다.     윤가는 사람들이 《하늘에서 황금이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할적마다 《시간이 곧 황금이여》 라고 말을 받군 했단다. 윤가는 빠짐없이 생산대 일에 참여하는외에도 점심시간이나 이른아침, 지어 달빛아래에서마저 자류지를 뚜지군 했는데 그뒤엔 숫돌처럼 음식함지박을 인 안해가 따라다녔다. 일하고 먹고 일하고 먹고… 먹고 일하고 먹고 일하고… 비내리는 야밤에 배 타고 그물 늘이는, 주먹눈이 터지는 겨울에 옹노 놓고 덫도 놓는 나그네는 눈코뜰 새 없이 보내는것 같지만 그의 휴식이 과연 어떤 틈사리였는지 마냥 고동색 얼굴은 윤기 돌고 쾌감이 흐른다.     마을에서 윤가를 두고 《아유, 그 아즈반님이야 세상 복 혼자 굴러가겠죠》 라며 부러워하고 질투하는건 아낙네들이였고 윤가네 가축을 호시탐탐 노리는건 어중이떠중이 청년들이였으며 《손톱눈도 쪼개여 쓰는 눔이여》 라며 공연한 욕지거릴 퍼붓는건 당연히 아낙의 바가지 긁는 소리에 잠을 설치군 하던 나그네들이였다.     《사내대장부로 태여났으면 올방자 척 틀고 앉아 공대받으며 살아야지. 저 같이 한뉘 궁둥이를 하늘에 쳐들고 손톱발톱이 모지라지도록 살어야 쓰것냐, 쯧쯧.》 하고 저주를 퍼붓는건 아버지였다. 그러면 어머니는 되려 아버지를 꾸중한다.     《두상짝요, 일에는 굼뱅이고 묵는데만 악돌이 되여 술 묵고 담배 피고 도박 치고 뉘  과부엉뎅짝만 살피고 다니는… 애고애고, 윤가처럼 살았으면 내사 춤구갔구만…》     우리 집은 움막과 다를바 없었다. 뒤처마가 땅과 거의 맞닿아있어 닭들이며 오리가 오르내렸고 돼지까지 이영을 뚜져서는 엄지만큼씩 꾸부정대는 시허연 굼뱅이를 파먹어댄다. 어머니는 병약한 녀자였다. 아버지가 호주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가난은 이리처럼 덮쳐들었다. 우로 누이 셋이나 달도 못차 죽어버리는 바람에 나, 아들이 나이 지긋해서 본 대잇기자식이였으니 참말로 다행이 아닐수 없었던것이다. 어머니의 전부의 희망은 이 아들이였다. 아무리 봐도 잘난 자식이고 총명한, 큰일을 해낼 인재로 성장할것 같았다. 아버지는 술만 얼근하면 내 이마를 다독거리며 《너 이담 크면은 몇살부터 술 마시겠노》, 《너 이담 크면 몇살부텀 도박 놀겠노》 같은 롱지거린지 진담인지를 하고선 곧잘 낄낄거렸고 《너 이담 크면은 윤씨네 막낭딸에게 장가들거라. 며늘감이 드러났거둥.》 이런 말도 정색해서 곧잘 하군 했다.      1966년 여름, 700리 두만강은 전례없이 혼탁했고 물도 불었다. 하늘은 산증에 걸린 아낙처럼 쉴새없이 비를 쏟았고 골물과 산사태까지 쏟아져 흘러든 두만강은 곬을 넘어 광활한 밭들과 인가를 범람해버려 시누런 흙탕물길로 뱀과 죽은 가축들이 쉴새없이 떠내려갔다. 방천마을은 높직한 산등성이에 자리잡고있었기에 가축이나 가장집물은 손해보지 않았다지만 그래도 강역밭들이 몽땅 물에 밀렸다. 이만해도 다행이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풀이 죽어 얼굴이 시커매서 한숨만 풀풀 내쉬였고 머리를 떨구고 다녔다. 수전과 한전이 몽땅 거덜이 났으니 쌀 한알 없이 추운 겨울을 어찌 난단 말인가. 수십개의 마을들에서 향정부에 원조를 요구했고 향정부에서는 현에다 손을 내밀었다. 쌀은커녕 한절반 뜬 강냉이가 인구당 백여근씩 차례진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럴법도 했다. 불었던 물이 다 빠진 때는  마침 가을배추, 무우철이였다. 모두들 얼이 쭉 빠져 정신을 못차리고있을 때 그래도 윤가가 선참 아낙과 딸 일곱을 데리고 떨쳐나섰다. 제일 막내딸 윤수연이가 열살이였으니 우로 롱구선수 같은 딸들의 로동효률은 실로 경탄을 자아낼만했다. 밭을 일구고 배추와 무우, 파를 심는데 검은 흙고랑이들이 강역에서, 산비탈에서 우쭐우쭐 터를 넓혀가고있었는데 그제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분분히 묵밭일구기에 나서기 시작을 했다. 농사란 심어서만 되는게 아니였다. 바야흐로 자라기 시작을 하는 무우, 배추에 충재까지 뻗치게 되였는데 그 심한 정도는 온 벌의 풀과 나무잎들을 볼수가 없을 정도였다. 길에 나다니기조차 끔찍했다. 발을 옮겨딛기조차 바쁘게 털벌레들이 지천으로 기여다녔다. 수재에 어혈이 든지라 련이어 닥친 충재앞에서 사람들은 어째보지도 못하고 기운을 내풀고는 《끝장이다, 끝장!》하며 실망을 해버렸다. 그러나 윤가는 강역밭과 산비탈밭에 아낙과 딸들을 내몰았다. 저마다 삽과 낫을 들었다.     강역밭은 대개 뙈기뙈기를 합해 두헥타르는 될상싶었는데 바야흐로 무우와 배추가 배가 불러가도록 싱싱하게 자란 밭이였다. 그런걸 왜 벌레에게 《소탕》 당한단 말인가. 그들은 땀을 철철 흘리며 밭둘레에 도랑을 빼기 시작했다. 옹근 이틀밤낮을 싸워서야 밭둘레에 두만강물을 끌어들일수 있게 되였다. 그러니 벌레들이 밭에 범접을 할수가 없게 되였다. 산비탈둘레에는 들에서 베여온 깔과 새로 불을 질러 재를 쌓았는데 털벌레들은 재무지를 넘어오지 못했다. 막내딸 수연이까지 밤을 새며 벌레와 싸우다보니 입술이 갈라터지고 감기까지 걸렸다. 가을에 무우,  배추, 파 풍년이 들어 린근마을의 한족들과 쌀, 기장, 조와 바꾸고 돈을 번건 말할것도 없는데… 그해에 내 나이 윤수연이보다 한살이 더 많았으니 열한살, 소학교 4학년이였고 수연의 웃반이였다. 그래도 복식반이였기에 우리는 허름한 교실에서 이웃으로 앉아 공부했다. 나는 키꼴 큰 아버지를 닮았는지 힘을 셌지만 항시 다른 애들이 구워온 감자랑 훔쳐먹기에 여념을 했으므로 공부에는 뒤전이여서 벌을 서군 했다. 수연이는 가만 볼라니까 엄마, 아버지는 잘난데가 없이 꼴불견이건만 어데를 골라서 닮았는지 곱게도 생겼고 공부도 1등이여서 언제나 선생님 칭찬을 독차지하고있었다. 공불 못하면 애들의 눈에 나기 마련이고 그러고보면 자신도 풀이 죽는다. 그런데 나, 이 김석룡이는 어찌하여 단연 이름이 높아졌던가. 너무나 우연한 기회에 선생님과 애들을 놀래웠던 일은 지금까지도 그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풋풋풋, 삐삐삐, 삐삐용, 끄르르륵 쫑쫑…     새들의 아름다운 목청이 두만강가로부터 신새벽을 깨웠던 모양이였다. 교장실 창유리 같이 알른거리다고 우리 반의 깨여진 창유리처럼 부서져 반짝이는 두만강의 수면에 대고 조약돌총질을 실컷 하고서야 교실에 들어섰다.     《서랏! 또 지각이야! 또 숙제 못해왔겠지? 어제 수연의 기름개구리튀김을 네가 훔쳐먹었지? 너 대갈통이 호박이라면 삶아나 먹제이. 쓸데가 없는 놈, 들어갓!》     산수선생님의 뾰족구두코가 내 여윈 엉뎅이를 조긴다.      그다음 시간은 작문시간이다. 벌써 배에서 꼬르륵꼬르륵 기아의 변주곡이 울린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간지른다. 틀림없는 쏘가리튀김일것이였다. 네발이든 두발이든 하늘의것이든 산의것이든 물속의것이든간에 고기냄새이기만하면 틀림없는 수연의것이다. 눈길은 손만 뻗치면 대일 수연의 책상안으로 들어간다. 나의 손이 나갈무렵 느닷없이 선생님이 와 서있었다. 별수없이 흑판을 보았다. 거기엔 커다란 판서 《아버지》가 씌여있었다. 귀신의 작간이랄가, 쓰고싶은 충동이 물기둥처럼 일며 생각하고 느껴오던 일들이 물보라처럼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작문이 뭔지도 모르는 놈은 드디여 삐뚤삐뚤 모지라진 연필글씨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에 이란 별명을 가진 한 아버지가 있다. 깍쟁이란 뜻이다.      집도 제일 덩실하고 돼지, 닭도 제일 많이 치고 쌀도 제일 많다. 또 논밭도 제일 많다. 뭐나 다 많지만 달라고 하면 깍쟁이 쓴다.     작년 설날에 우리 집에서 꾸어먹은 쌀 백근 받으러 왔댔는데 아버지와 다투었다. 한마을에 살면서 제일 잘살면서 그깟 백근 받으러 남자답지 못하게 다니는가고 하니 은 꾸어간것은 친아비의것이라두 한냥 차이 없게 받는게 사는 도리라며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돌아간 다음 어머니는 안받는것만도 이안해죽겠는데 그런 량심없는 소릴 칠수 있는게 사람이냐고 한바탕 다투었다.     며칠전 어머니에게 떠밀려 아버지는 또 에게로 무우 백근, 배추 삼백근을 외상내러 가는수밖에 없었다. 무슨 방법이 있는가? 겨울은 오는데. 그이는 원래 외상치기는 없는데 한마을이니 안면을 봐준다면서 그 손톱 긴 손으로 아버지의 식지를 쥐여 손도장을 찍어버리더라는것이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씨근거리면서 이러며 욕설을 퍼부었는데 엄마처럼 나도 한숨이 나갔다. 은 잘사는데 우리 집은 왜 못살가? 은 시간을 금싸락처럼 여기고 일하는데 아버지는 빈둥빈둥 놀기만할가?      아, 나에게도 아버지가 있었으면.》     시간이 끝나기 5분전, 선생님이 나의 작문을 애들앞에 랑송했다. 애들이 《우와―》 큰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수연이는 머리를 숙이고 가방끈만 만지작거리고있는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쓰다보니 수연이 아버지를 써버렸는데 수연이가 어떻게 생각할지가 그냥 가슴에 머물러와 밤잠까지 설쳤다.     이튿날은 일요일이였다. 밖에서는 마가을 궂은비가 구질구질 내리고있었다. 아버지는 대자로 누워 코를 골고있었고 어머니는 늦아침때식을 익히고있었다. 나는 옷을 입고 도로 이불안을 헤맸다. 그때였다.     《석룡아!》     쨍쨍한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아유, 이게 뉘냐? 윤아즈버님네 막낭공주가 워짠 일루 다 우리 집으로 왔어? 어서 들어와, 응?》     뭐야? 그럼 수연이가 왔어? 나는 총알처럼 튕겨일어나 문밖을 나섰다. 수연에게 닭장같은 우리 집안을 보이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수연이는 비닐로 지은 비옷을 입고 샐쭉 웃어보이고있었다. 그 모양은 흡사 일찍 허물없이 사귀여온 딱친구인듯했다.     《가자, 우리 두만강으로 나가자. 이렇게 잔잔한 비가 계속되는 날엔 잉어랑 붕어랑 멸치랑 쏘가리랑 다 물린다더라. 옜다, 이건 네 낚시대, 요건 내 낚시대, 그리고 이건 고기미끼, 요건 지렁이, 히히.》     수연이는 내가 말할 사이도 없이 련주포를 쏘고는 특별히 나를 위해 준비한 낚시대까지 넘겨주는것이였다. 그러나 나는 우물쭈물했다. 춥고 비까지 내리는 날에 엉뚱하게 낚시질이라니, 그런데도 뜻밖으로 수연이의 《접대》때문에 싱숭생숭해나는 기분이 난처하기까지 했다.     《싫단 말이지? 낮잠이나 자면 떡이 생기니? 부지런하면 먹을것도 생기고 100점도 생기고…》     우리는 탁 트인 조약돌밭에 앉아있었다. 눈앞으로 청빛의 물살이 무겁게 꿈틀대고있었고 황둥오리인가 도요새인가 하는 새들이 비상을 하고 쏘련과 조선을 이어놓은 시커먼 철교가 두만강을 가로질러 길게 가로누워 침묵하고있었다.     아버지한테 배운거였다. 소녀는 구수하게 굽은 종주먹만큼한 두병덩이를 물살이 면면한 수면에 탁 던져놓고는 나의 낚시찌를 뿌려놓고 자기도 조금 떨어진 곳에다 낚시터를 정하고 앉았다.     《네가 쓴 작문을 울 아빠께 내용 곧대로 알려주었지.》     소녀의 말소리는 수면을 미끌며 바이올린소리처럼 타고 왔다.      《그래 뭐라던?》     궁금해서 물었다.     《……》     《눈물 흘리더라…》     《뭐야?》     나는 깜짝 놀랐다. 걔 아버지가, 눈물도 깍쟁일 걔 아버지가 울다니, 왜 울었단 말인가? 내가 더 묻기도전에 두눈이 둥그래진 나를 바라보면서 수연이 말을 이었다.     《울 아빤 혼자서 여덟식솔을 먹여살려. 아득바득 벌어서 일전 한푼 아껴쓰거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울 아빨 깍쟁이라면서 온역 피하듯 해왔지… 네 글이 너무 기특하다고 하더라. 막 힘이 난다고.》     낚시질은 생각보다 재미났다. 부끄러웠지만 수연이가 알려주는대로 동동이를 톡톡 치며 끌고가거나 동동이가 물속으로 쑥 꽂히거나 비스듬히 드러누울 때를 겨냥하여 채면 영낙없이 고기가 아가미를 찍힌채 낚시대가 휘도록 물속을 이리저리 요동질하다 끌려나오군 했다.     두만강하류에 이토록 고기들이 많은데 낚시질에 너무 늦게 미립이 트이는것이 후회되였고 수연이가 아무쪼록 감사하고… 철부지소녀애가 다 낚아내는 고기를 아버지는 한번도 낚아온적 없었으니. 그래도 아버지는 내가 잡아온 고기를 껍질을 발라 생회치고 말려서 기름튀기하고 어탕을 만들고 군불에 굽어내면서 술을 한병 또 한병씩 비워냈다. 시름시름 앓는 엄마때문에 낚아오는 고기를 렴치없이 《임무완성》하군 하는 아버지가 미욱스러웠지만 그래도 아버지이니 방법이 없었다. 나는 완전히 《귀신》이 되였다. 신새벽에 나가고 밤낚시질세계속에 깊이 빠져버렸다. 수연이란 소녀를 까마득히 잊은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였다. 물론 수연이가 더는 찾아온 일도 없지만 그는 언제나 학교에서 찾아와 《어제아침도 낚시질 나갔지?》 《숙제를 돌보면서 낚아라.》 하며 부탁들을 부지런히 해댔다.     수연에게서 배운 낚시질은 추운 겨울 얼음구멍에서도 할수가 있어 온 겨울방학을 두만강 얼음아이가 된건 더 말할것도 없겠지만 괴상하게 재미나던 일은 이듬해 여름, 그러니까 오곡이 홰치며 자라던 7월중순께였다.     그날 학교 교장이 5, 6학년의 제일 머리 큰 남자애들과 녀자애 몇을 불러들였다. 물론 내 키가 제일 컸다. 아쉽게도 우리가운데는 수연이가 없었다. 우리에게는 《홍소병》이라는 붉은 완장이 왼팔에 껴졌다. 하늘에 오른 기분이였다. 다음은 날이 선뜩선뜩한 낫 한자루씩 차려졌다. 우리는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강역에 나가 풀을 베여오라거나 산에 올라 싸리같은걸 베여오라면 큰일이였다. 뱀이 우글우글하니 말이다. 그뿐인가. 말모기, 등에, 날파리떼가 지천으로 날치니 말이다.     《이 낫은 혁명의 낫이다. 류소기의 를 고취하는 자본주의길로 나아가는 놈들을 베는것이다.》     《목을 베랍니까?》     교장의 말에 나는 낫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애들이 킬킬 웃어댔다.     우리는 교장의 뒤를 따라 마을 《소탕》을 떠났다. 집집이 울바자를 뛰여넘어 한창 검푸르게 기운을 쓰고 자라는 옥수수며 콩이며 오이, 고추 같은 곡식과 남새들을 용서없이 베여버렸다. 우리 집의 남새밭을 다칠 때는 앓는 엄마가 울었고 나도 울었다. 그래도 나는 낫질을 했다. 《혁명》을 하기때문이였다. 수연이의 집 앞뒤울의 남새밭이 제일 컸고 오리랑 가지랑 고추랑 참 탐스럽게 자라있었다. 어떻게 알고 달려왔는지 수연이가 눈가에 눈물이 가랑가랑해가지고 집앞에 서있었다. 어쩐지 가슴이 아팠다. 수연이의 가냘픈 어깨와 흐느낌소리와 나에게도 쏠리고있는 눈길을 차마 서리찬 낫으로 벨수는 없을것 같았다.     《나 배 아파. 똥 누고 올겁니다.》     나는 낫을 던지고 바지춤을 쥐고 수연이네 울안을 벗어났다.     수연이네 집은 마을의 투쟁대상, 개조대상으로 지목되였다. 앞울, 뒤울, 산비탈, 강역에 일군 밭들이 몇자루의 낫에 쫄딱 망했고 돼지, 개, 거위, 닭들은 생산대의 양돈장에 빼앗겼다. 그러니 아주 하루새에 부자로부터 알거지가 된 셈이였다. 윤가는 긴 고깔모자를 쓰고 《반당반사회주의분자》라고 쓴 패쪽을 목에 걸고 조리돌림을 당했고 그뒤로는 집식솔들이 저마다 《자본주의꼬리》라는 패말을 걸고 줄을 지어 따라야 했다. 공작대라는 사람이 얼마나 지독한지 조금의 틈서리도 주지 않고 끌고다녔다.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시퍼런 대낮에 코를 곯던 아버지가 밤을 패며 투쟁대회에 참가하는가 하면 호박넌출, 오이넌출, 당콩넌출, 박넌출을 베여던지는데 제일 열성분자였다. 얼마 안가 아버지는 대뜸 벼락출세를 하여 《빈하중농대표》, 《빈협주석》으로 당선되였다.     우리 집에는 손님이 빌새 없었다. 현에서 파견해내려보낸 공작대, 촌장, 부녀주임, 민병련장, 교장, 지어 향파출소장까지 찌프차를 타고 들이닥치군 했다.      더욱 믿을수 없는 일은 아버지에게 돈이 많게 된것이다. 어렵잖게 1원, 10원, 몇십원씩 뽑아 개 한마리 사오라, 양 한마리 잡아라 한다. 그보다는 전에 본척도 않고 지냈던 사람들이 닭도 가져오고 마른 물고기, 고사리, 꿩 같은 《례물》을 들고 오는것이였다.     《엄마, 흥부가 알거지 되고 아버지같은 놀부가 부자되는 이 세월이 참 별났지, 안그래?》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어데 가서 절대 그런 말 번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머니는 몹시 겁이 많은 사람이였다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수연이네야말로 마을이 가난에 헤맬 때마다 꾸어주고 외상쳐주어 사람들의 기아를 제거해주었던 유일한 《은인》이란 느낌이 어린이 맘에 뿌리깊이 내린것이였다. 우리 집만 봐도 그러잖은가. 일하기 싫어하는 아버지때문에 거의 해마다 수연이네 량곡을 꾸어왔고 재작년 어머니가 병이 도져 현병원으로 갈 때도 결국은 수연이네가 돈을 선대해주었었다. 마을 회계에게마저 돈이 말라있던 그 세월에 유족하게 사는 《손톱눈》이 없었더라면 어머니는 어떻게 되였을가. 그런데 아버지는 지금 발벗고나서서 수연이네 집안을 헐뜯고있다…     마을에서는 심심하면 《손톱눈》을 투쟁하는 대회를 열었는데 엄마가 예견한대로 학교에서도 《자본주의꼬리》인 수연이를 비판한다는거였다. 나는 이 주요한 정보를 아버지의 입을 통해 알았다. 내가 안달아난 마음을 눅잦힐길 없어하고있을 때 더욱 악연할 소식이 전해왔다. 래일, 수십리 떨어진 향중심소학교에서 전 향 중소학교 《자본주의꼬리》비판대회를 여니 모두 저녁전으로 각 소학교 《자본주의꼬리》대표인물을 향정부에 압송해야 한다는것이였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제 수연이는 점심을 먹고 학교에 들어서는 즉시로 붙잡힐 판이였다. 그래, 수연이를 빼돌리자. 이것이 짧은 순간에 내린 결단이였다…     짐작했던바와 꼭 같았다. 대수사가 전개되였다. 향에서 내려온 군대와 공작대 그리고 교장과 홍위병, 홍소병들이 천라지망을 늘였다. 두만강변을 서캐 훑듯했지만 헛물만 켰다.     천만다행이였다. 수연이를 우리 집 뒤울안 다락에 숨겼으니 말이지 두만강변의 어느 원두막이거나 산의 나무숲에 피신시켰더라면 경을 칠번했다. 마을을 벌컥 뒤집혔으나 《빈하중농대표》이고 《빈협주석》이 사는 우리 집에 대해서는 의심할수도 없었고 언감생심 범접할 담도 없을거였다.     수연이는 우리 집 다락에서 옹근 한주일이나 피신해있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수연이 엄마가 알고 나의 어머니가 안다. 그렇지만 수연이 어머니는 우리 집에 올수가 없는 사람이요, 나의 어머니도 아버지 눈치만 살필뿐 뒤울다락에 주의를 돌릴수 없는 처지다. 수연이는 다락에서 고통스러웠지만 잘 먹고 잘 잘수 있어 내가 마음을 놓을수 있었다. 개고기, 양고기, 물고기에 이밥과 찰밥에 기장밥까지 먹을수 있었다. 밤이면 모기가 문다고 모기장까지 쳐주었고 무서워할가봐 내가 다락 2층에서 자기까지 했다. 그때는 왜 그랬을가? 수연이를 어째 그토록 끔찍이 대해주었던가? 단 한가지, 사람은 량심이 있어야 한다. 그것뿐이였다. 수연이네 돈이 엄마를 살렸고 수연이네 쌀이 기아에 모대기고있던 우리 집을 불렸고 수연이가 나의 라태를 깨우는 낚시질을 배워주었지 않은가. 그러나 총명하고 말쑥한 수연이를 두고 언제 한번 이성을 느껴보았다거나 장래의 색시감으로 넘본적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천진한 소년이였다.     두만강은 쉼없이 흘렀다. 소박하고 동정심 많던 천진스런 시절도 흘러가고 막 매스터배이션을 식은 죽 먹듯해가는 열정의 소용돌이에 휘감겨들었다. 《문화대혁명》도 끝나고 손에 장알이 박히도록 일만하다가 귀향하여 농촌마을의 처녀총각이 돼버린것이다. 수연이네 집은 손잡이뜨락또르까지 갖춘 《부자》가 되고 우리 집은 다시 빈곤호가 되여버렸다. 그사이 나와 수연이는 동년때와는 달리 너무나 일반적인, 어쩌다 만나면 《어델 가니?》 라는 보통 인사말이나 하고 지나는 남남의 관계가 되여버린것이다.     수연이는 더는 동년의 그 고운 모습이 아니였다. 해볕에 그을다 못해 가무잡잡해진 얼굴색이며 할매손처럼 터실터실해진 손이며는 일밖에 모르는, 정이 뚝뚝 떨어지게 만드는 촌녀의 대표형상이였다.     아버지가 빈정대는 말처럼 나는 《늦된 놈》이 옳았다. 스물네살을 먹었지만 련애대상에 대하여 고민할줄 모르고있었다. 내 생활권이란 기껏해야 두만강하류에서의 그런 무질서한 답습이였던것이다.     하류는 유유하고 묵묵했으며 고독하기까지 했다. 그런 강하구에 서서 탄식의 숨소릴 죽이곤 했던 나자신을 두고 언제까지 이렇게 오래오래 백치같은 사람이 되여야 하느냐를 스스로 묻군 했었다. 그럴수록 허탈하기만했고 머리는 텅텅 비여오고만 있었다. 그래 안그런가? 뭘 알고 고중졸업을 했단 말인가. 이토록 허무하려고 세상에 태여났단 말인가. 나는 고개를 처박고 앉아있었다. 그럴 때마다 저앞 낮은 삼각지류 상공으로 깨액깨액, 삐삐삐삐 하고 우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와서 눈길을 그리로 던져본다. 흡사 이 무언의 사내가 스스로 묶어놓은 어떤 완고한 기반에 목이 잠기여 흐느낌도 없이 통곡하고있는 느낌이였다. 그보다는 지금 이 시각도 마당가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이 아들에 대한 알지 못할 축복의 기도를 드리며 서있는 어머니의 가녀린 목줄기와 애달픈 마음이 안겨와서 이 넓은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주고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인가 나는 유유하고 번들거리는 하류의 숲속을 문득 생각해보게 되였다. 물속은 맑고 물의 흐름속도가 빠르나 부드러울것이요, 은빛의 생명체들을 품어가는 모체의 요람일것이라는것, 그 물속세계를 헤매고싶다는 즐거움에 앞서 이름못할 짜릿한 쾌감을 맛보았던것이다. 그러한 신비감이 차츰차츰 식어가고있을무렵,  나에게는 하나의 현실로 인한, 참으로 뜻밖의 이성이 오래 갈앉았던 쪼각 배런듯 불쑥 떠올랐다.     그날은 한여름의 석양무렵이였다. 노을빛에 수면은 금붕어의 등어리처럼 번뜩번뜩 빛났고 한낮의 폭양에 의해 풍기는 열기속에 도요새의 울음마저 나무숲이나 갈숲으로 잦아든지 오래다. 나는 아주 날렵하고 익숙한 솜씨로 미끼를 뿌리고 낚시찌를 손질하고있었다. 황혼무렵에 낚는 고기들이야 팔뚝같은 잉어나 붕어가 아니면 둔한 송어였다. 어둠에 가리우기전의 수면은 나붓기는 불꽃처럼 아름다왔다. 소녀의 묵독이요 요조숙녀의 미소다. 까닭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자신을 의심하며 고요한 수면에 붉고 푸른색의 동동이를 띄울무렵 물 끼얹는 소리와 쨍한 비명소리가 간간히 귀전을 쳐온것이다. 강변 수양버들이 음특하게 고개를 숙인 그아래 갈숲너머로 눈이 둥그래졌다. 노을 머금은 수면에 라체의 상반신이 초상으로 안겨들었다. 《아!》 짧은 경탄이 샜다. 수연이라니?! 폭포머리는 함함히 까만 빛발을 뿌리고 흰대접같은 젖무덤은 두개의 핑그빛 자그만 유두를 보이며 박통처럼 부풀어있었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내 심장의 박동이 맹렬함을 느꼈고 그토록 음탕한 놈이 나라는 사실을 승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하등 필요없는 아버지의 쥐똥같은 젖꼭지를 바라보듯이, 내 배꼽을 들여다보며 연구하듯이 수연이의 상반신에 눈길을 걸고있었다.     그러면서 아주 간곡히, 조금의 주저도 없이 하회를 기다리고있었다. 드디여 그녀의 늘씬한 허리가 물우를 솟구치면서 하신까지 드러났다. 그녀는 약간씩 흐느끼고있었다. 음모가 여실히 드러났다. 새까만 음모는 동년적 수연이의 하얀 필기장에다 연필로 마구 락서를 해놓은것 같은거였다. 그때의 울음먹던 모습이 지금 시각처럼 느껴졌다. 로동에 근육진 시허연 허벅지가 은밀스런 자궁을 황궁인양 받들고 미끈히 솟았다. 내 아래도리가 뻣뻣하다못해 돌덩이를 달아맨듯 불편을 느끼다가 그만 사정을 해버리고 스스로 부끄러운 나머지 슬그머니 주저앉아버리고말았다… 두만강에서 목욕을 하는 수연의 라체를 본후부터 텅 비고 녹쓸던, 실망과 자비의 언덕에서 끝없이 방황하고 갈앉고 추락하던 나의 심상에 변혁이 일었다. 그렇다, 저 녀자를 사랑하리라. 해볕에 그을은 얼굴과 장알박힌 두손이 두만강의 표상, 인상이라면 수연이의 옷속에 감추어진 라체야말로 풍족한 은밀의 생명체들을 키워가는 두만강하류의 속성과 같은것이리라. 우선 돌부처같은 마음속에 사랑부터 키워가라. 저 녀자를 사랑하고 저 녀자의 사랑을 받을수가 있다면 그 사랑이 어쩌면 이 둔해버린 사나이의 운명을 좌우지하여 망각된 앞날을 해빛으로 선사받을지도 모를 일이였던것이다.     나는 수연이의 하반신을, 밤속의 달빛같던 하반신을 사랑했다. 눈감으면 떠오르고 눈떠도 아른거렸다. 거기에는 살숲의 그늘도 있고 사막의 오아시스도 있으며 들판의 오곡향기 그윽할것이기때문이였다. 그렇게 옹근 한해를 짝사랑만 하고있던 아릿하던 어느날, 문득 내 나이 스물다섯이라 수연의 나이 스물넷이겠는데 그녀는 왜 여적 독수공방하고있을가? 라는 자문에 후닥닥 놀라버리고말았다.     나는 고기를 낚기 위하여 지어 살얼음 낀 강에 들어서서 낚시가 걸리지 않도록 바닥의 돌들을 들어내고 풀줄기와 검불과 묵은 나무덩굴을 악쓰고 뽑아내고 언덕의 앉을 자리를 치고 미끼, 낚시찌, 동동이에 이르기까지를 열심히 노력하듯 수연이를 《낚을》 방법을 최대한으로 강구해야 했다.     동년적 잠만 몰아오던 궂은비 내리는 낮에 수연이가 낚시대 두개를 들고 우리 집을 찾아왔던 일이 푸른 무늬 간 동동이처럼 떠올랐다. 나는 흥분을 했고 용단이 섰다.     오후부터 날씨가 흐리기 시작하더니 저녁무렵을 잡아 갈꽃같은 비살이 부드럽게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박동하는 내 심장소리를 들으며 밖을 나섰다. 될수 있을가? 사랑의 성패감이 임습하면서 수연이를 국경선너머로 비상하는 백설의 고니로 우상시켜오고있었다. 그럴수록 나자신이 졸렬하게만 느껴지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조금후 나는 높뛰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수연이네 앞마당을 들어서고있었다. 빨래줄에 이불안을 걷고있던 수연이와 정면으로 맞띄웠다. 수연이의 눈길이 내 손에 쥐여진 두대의 낚시대에 와 걸리며 놀라운 빛을 반짝이였다.     《가자, 두만강으로 나가자. 이렇게 잔잔히 비가 계속되는 날엔 잉어랑 붕어랑 멸치랑 쏘가리랑 다 물린다더라. 옜다. 이건 네 낚시대, 요건 내 낚시대, 그리고 이건 고기미끼, 요건 지렁이…》     동년적 수연이가 나에게 하던 말 그대로 옮겼다는걸 난 잊지 못하고있었다.     우리는 강하구의 얕은 언덕에 앉아있었다. 먼 바다가 녀인의 부른 배에 띤 푸른색 비닐띠처럼 안겨오고있었다. 거기로 하류가 뛰여가고있다. 수면우로 동동이 둘이 나란히 떠있었고 물촉새 한쌍이 수양버들가지에 앉아 삑삑, 삑삑 하고 다정히 사랑을 주고있었다.     《수연아, 나 죽고싶다.》     찾고찾은 첫마디였다. 녀자의 두눈이 똥그래지더니 이내 까르르 웃어버린다. 난  결이 난 나머지     《내가 죽으면 속 시원컸지? 너…》     하고 버럭 고함까지 질렀다.     《콱 죽어라! 이 두만강에 뛰여들어라. 고기밥이 되구말게스리.》     그녀는 뾰로통해서 내쏘았다. 정말이지 뜻밖이였다. 내가 죽기를 원하는 수연이라니?! 억이 막혔다.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악만 받치다가 막 일어서려는데      《네가 죽으려면 나와 함께 죽자!》     라는 뜻밖의 비감서린 음성이 나의 심장을 틀어쥐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고 백치처럼 녀자의 얼굴을 들여다볼뿐이였다. 나의 검고 툭 튀여나온 관자놀이를 일별하면서 락심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나 너 이러는게 마음에 안들거든. 하긴 그래. 우린 이 낳은 희생품이지. 모든 꿈을 잃었거든. 그렇다고 해종일 세월만 탓하면서 앉아 늙을수야 없잖아.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뭘 좀 하고프다고 생각되는 일땜에 노력해보고싶잖아?》     《그래 하고픈 일 있지. 널 사랑하고픈 일…》     어떻게 이런 말이 튀여나갔는지 몰랐다. 죄를 지은것처럼 목을 움츠러뜨리긴 했지만 그 시각 동년적의 수연이를 다락에 감춰두고 밤낮을 《경위》서던 일이며가 눈앞에 선해와서 일루의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가슴이 설레였다. 수연이는 이윽토록 강물소리를 들으며 말이 없었다. 드디여 무겁게 입을 열었다. 경신향정부에서 사업하는 총각의 청혼을 억지로 물리치고 아버지에게 뺨까지 맞았다는것, 엊그저께 훈춘현우전소에서 사업한다는 총각한테서 청혼이 들어왔는데 이제 나이때문에 더 미룰수 없다는 대목까지 들었을 때 나는 눈앞이 캄캄해나며 현기증까지 일었다.     《수연아, 날 살려다오. 네 나 버리고 가면 난 죽는다, 응? 수연아…》     난 비루하게 나왔다. 눈물을 찔끔찔끔 짜면서 구걸했다.     《네가 이렇게 나오니 나도 별수 없구나. 이렇게 하자꾸나. 마을소학교에 교원 한명 수요하는데 약 반달후 시험을 친다더라. 시험내용은 어문은 작문을 쓰고 수학은 초중 1학년교과서 내용까지를 범위로 한대. 그때 나도 치를건데 이번 기회에 네가 을 하면 내 네게 시집을 가마.》     수연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표연히 가버렸다.     나는 넋잃고 두만강만 바라보았다. 세상에 강이 많고많아도 두만강은 단 하나이다. 난 두만강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난 내 가슴에 십자가를 긋고 두만강에 기도했다.     《주십시오. 이 못난 놈에게 그대를.》     나는 이 기회가 내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도박》이란걸 명백히 알고있었다. 작문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수학은 소학부분의 분수응용문제부터 복습해야 했다. 눈앞이 캄캄해났지만 높은 언덕이나 강톱에서 저 바다로 묵묵히 흘러드는 하류의 번뜩임이나 뽀얀 물안개를 바라볼적마다 두주먹이 불끈 쥐여지군 했다. 나는 코피를 쏟았다. 소학교 선생님들을 찾았고 몇십리를 걸어 중학교재를 얻으러 다녔다.     모여온 수험생들이 어떤 꼴이란걸 손금 보듯했지만 수연이만은 무서웠다. 결과는 뻔했다. 수연이가 1등이였다. 맥이 탁 풀렸다.     나는 옹근 열흘이나 두문불출했다. 음식맛도 잃고 밤에도 자반뒤집기를 했다. 얼굴은 창백하고 온몸의 힘줄이 쪽 빠져버린듯 사지가 나른해났다. 절망의 변두리에서 방황하고있을 때 아닌 밤중에 홍두깨런듯 마을 소학교장이 우리 집으로 불쑥 들어섰다. 나는 그 어떤 직감이 머리를 쳐들면서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래일부터 학교에 출근하오. 1학년 학생들을 맡아 ㄱ, ㄴ, ㄷ, ㄹ부터 시작해 배워주오. 허허, 축하하오.》     나는 울었다. 목 긴 황둥오리처럼 꺼억꺼억 울었다.     《엄마가 죽었나, 울긴…》     교장이 말려서야 교장의 손을 틀어잡고 울음을 그쳤다.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이 은공을…》     기실 난 속으로는 《수연아, 이제야 어쩌겠니?…》 하며 쾌자를 부르고있었다.     학교에 출근하던 날에야 나는 수연이가 그예 《과학농예사》가 되련다며 교원자리를 나에게 양보한 일을 알게 되였다. 너무나 미안했고 쑥스러웠다.     한치마폭 달빛이 넘쳐나던 그날 밤, 그러니까 소학교원이 되던 이튿날이다. 그녀 생각이 간절하면서도 부끄러워 만날 엄두를 못내고 쩔쩔 매던 나에게로 수연이의 쪽지가 날아들었다. 너무나 뜻밖이였다.     《저녁 낚시질 나가자. 그 낚시터.》     나는 온몸을 전률했다.     달빛아래 하류가 길게 드러누워있었다. 풀빛도 양류의 설렘도 없지만 하류는 수연이의 하신처럼 우유빛이런듯 번들거린다.     《나 결정했어. 너한테로…》     《……》     나는 대답대신 길게 숨소리를 그었다.     수연이는 나의 두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지친듯 잔디언덕에 스르르  누워버렸다. 나는 그녀를 탐욕스레 내려다보았다. 늘씬한 허리와 긴 다리가 요람처럼 느껴졌다. 드디여 나의 몸이 거칠게 기여올랐다. 그녀는 순순히 내맡겼다. 두눈가에 달이 뜨고 입가로 행복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그리고 풍만한 가슴으로부터 난생처음 맡아보는 형언할길 없는 냄새가 피여오르고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처녀의 냄새일것이였다. 머리가 아찔하도록 유쾌하고 아릿한 흥분을 갖다주는 향기였다.     《문화대혁명때 난 너의 집뒤 다락뒤주에서 한주일이나 숨어있었지. 무서웠지만 잘 먹던 일이… 그리구 무사했고… 난 벌써 그때부터 널 나의 랑군님으로 점찍어두었지 뭐야… 호호.》     우리의 사랑은 열렬했지만 녀자측의 강렬한 반대를 받았다. 수연이는 종종 우리 집 뒤울 다락에서 잠을 잘 때가 있었다. 동년적에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속에 몸 감추었던 다락뒤주, 오늘은 아버지 매를 피하여 몸 감추어야 할 다락뒤주가 되다니… 털면 먼지밖에 없는 건달놈새끼때문에 우리 수연이가 망쳤다고 욕설을 퍼부었지만 우리는 언제나 강턱의 얕은 언덕에 앉아 강물의 거침없는 흐름처럼 사랑을 나누었다.     우리는 결혼을 위하여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었고 삑삑삑삑 하고 물촉새가 울었다. 외투를 펴고 알몸이 된 우리는 흥분의 극치에 다달아 모기도, 강바람도 모르고 거칠게 헐떡이고있었다. 이따금씩 간간히 기러기의 울음소리 같은것이 들려오고있었고 유치원애들의 박수소리 같은 소리가 중부리도요의 날개짓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수연이에게 태기가 들어서기도 전에 전혀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수연이 아버지가 두만강에 걸린 그물 빼내러 들어섰다가 수중고혼이 돼버리고만것이다. 그물 한코 째지는게 아까와 깊은 물에 들어섰다니 결국 깍쟁이 심리가 《손톱눈》을 해친거였다. 우리의 약혼을 악쓰고 반대해나선 수연이 아버지가 《룡궁》으로 간것을 두고 나는 물론 수연이앞에선 무조건 비감에 싸여있었다.     《가시아비를 잃었으니 결혼때 돼지는 뉘 잡겠소?》     나의 말에 수연이는 더 서럽게 울었다.     우리의 결혼날자는 동지달 초이레날로 정해졌다. 아버지가 누구보다 기뻐했다. 맨날 술이다. 그러다가 무서운 소식이 터졌다. 아버지가 술에 취한채 두만강얼음구멍에 빠져 수중고혼이 되였던것이다.     《아버님을 잃었으니 결혼날에 북채잡고 술타령, 까투리타령은 뉘 불러요.》     그 말에 난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울지 말아요. 와 가 룡궁에서 만나 인간세상을 담론하며 즐거운 락을 누려갈거죠.》     우리는 서로 어이없이 웃고말았다. 이게 바로 인생이고 연분이란건가.     교장은 나를 《떨떨이선생》이라고 불렀다. 안해의 치마밑에서 설설 기며 산다는 뜻이였다. 나는 교장이 미웠다. 린색하길 그지없다. 나는 교수를 잘했지만 교장은 학기마다 《ㅏ, ㅑ, ㅓ, ㅕ》를 배워주라고 했다. 난 6학년을 배워주고싶었다. 후에 안해가 닭알 열알을 교장집에 《선물》하고서야 난 1학년담임을 벗어나게 되였다.     안해는 나를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곧잘 핀잔준다. 일하기를 싫어하고 봉건통이란 뜻이다. 안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하고 지어 걸죽한 욕설을 퍼부을지라도 난 대꾸 한마디 없이 욕설을 들어만주거나 아니면 술쩍 피해버리군 한다. 나는 나의 이런 성격이야말로 군자답다고 자처하고있는터였다.     두만강은 쉼없이 흘렀다. 그러나 예전의 강이 아니였다. 맑고 푸르던 강이 언제부턴가 혼탁해지기 시작한것이다. 조선 청진시에서 흘러든 화학성물질이나 중국 연변의 석현종이공장 같은데서 흘러든 오물들이 그거였다. 그토록 흔하던 민등뼈동물들은 구경하기가 어려웠고 고니같은 희귀한 새들은 볼수조차 없었다.     안해는 나이 사십대에 접어들면서 머리도 희끗희끗해지고 얼굴에 그물같은 잔주름이 널렸다. 이른아침에 영근 풀섶이슬을 모르고 풀에 손대기 싫었지만 건들건들 휘파람으로 일터에서 돌아오는 안해를 맞고 저녁 설겆이도 해주고 《밉다가도 고와져요》라는 평을 들어보는 나다. 터놓고 말해서 그래야 안해의 이불속을 기여들수가 있었던것이다. 그래, 그 둥글고 부드럽고 긴 하반신의 생존이 나의 소유라는게 얼마나 신비스럽고 다행스런 일인지 나는 안다.     《영구한 사랑은 하반신에 있나보우.》     《무슨 뚱단지같은 철학이야요?》     《강하류가 깊고 넓어야 흐름폭이 거창할게 아니요. 하류가 좁고 옅어 자갈이나 나무등걸 같은것이 보인다면…》     《강하류를 녀자의 허벅지에 비기다니요?》     《수연의 얼굴은 변했지만 하반신이야 더욱 튼튼해졌고 빠졌질 않겠소. 난 수연의 하반신을 사랑하오.》     나는 자신의 라태함을 잘 알고있었지만 고칠수 없는 놈일거라는걸 알고있었다. 그게 나를 괴롭혔다. 나는 왜 이런 사내로 태여났을가. 부지런한 인간과 라태한 놈을 인간세상에 다르게 만들어내놓은것도 조물주의 탓이겠다. 내가 알바 뭐야. 개가 건너다녀도 도움이 된다는 5월의 논밭이나 젖먹이애가 울음소릴 내도 가을걷이에 흥이 난다는 계절에 발길 하나 손끝 하나 내밀줄 모르고 책이나 붙잡고 방구석에 나뒹굴고 코고는 멀쩡한 이 남편을 두고 수연이가 얼마나 골이 났으랴. 말하라치면 직사포였고 끈질기고 내밀성 드센 녀자였지만 왜소하고 선비냄새가 다분한 남편을 두고 언제부턴가 원망 한번 없이 모든것을 그러려니 하고 여기고 버텨보는 그녀였던것이다.     남들은 우릴 거꾸로라고 말했다. 남자란것이 모든게 다 약한데 녀자가 욕심이 세고 괄괄한 아낙이란다.     그렇다, 나라는 놈은 왜 이 꼴이지? 놀고 또 놀아도, 먹고 또 먹어도 달랑깨비마냥 비쩍 마르기만하고 안해는 일하고 또 일하고 찬물만 꿀떡꿀떡 들이켜고 된장에 생미나리 같은걸 뚝뚝 찍어먹어도 몸뚱이만 쇠같다.     《방귀 뀐 놈이 구리다 한다》는 말은 대통령의 연설을 초과한다. 부엌데기처럼 해가지고 다닌다, 집안이 돼지굴같다, 국이 짜다, 못사는거 다 네년 탓이다… 갈수록 학생수가 줄어들어 학교가 망가진다는 말이 나돌아서부터는 더 그랬다. 교원직에 있다고 농포안해를 은근히 얕잡아보아오던 긴 나날들이였건만 안해는 그 모든것을 받아안았으며 그보다는 남편이 지식인이라고 뭇아낙네들앞에 자랑하고 자호감까지 가지군 했었다.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드는 돈은 아름찼다. 소학교때는 모르겠던데 중학교에 자식 둘을 보내고나니 학비가 엄청났다. 뭐 들을라니 고중에 가면 더 험하고 대학에 가면… 류학 보내자면… 자식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눈앞이 다 캄캄해난다.     《소처럼 머리만 틀어박고 끙끙 일만하고 머리를 못쓰니까 이 집이 서발막대 휘둘러 걸릴게 없잖아…》     《집안팎일 손톱 하나 까딱 안하구있다가 그딴 소리 지를 면목 서나보죠…》     《자식들이 내 머릴 닮아서 총명한것만도 대득이야.》     《……》     가난은 우리 부부사이에 간단없는 다툼질을 가져다주었다. 그럴 때마다 남들이 왁살스럽다고 그러는 안해, 수연이쪽에서는 늘 지고만다. 그리고는 집안사람들 몰래 가만히 눈물을 흘리군 하던, 밤 깊도록 무언가 깊은 고민에 자반뒤집기를 하면서 두만강물소리에 귀기울이던 안해였다.     우리 집에서 안해가 더욱 《죽일 년》이 된건 그 이듬해 두만강하류가 국경선 삼국의 언덕을 뭉청뭉청 물고뜯던, 강우량만 잔뜩 상승하던 계절이다. 원래 병약하던 로모가 자리에 드러누웠다. 페결핵이였다. 향병원의 의사는 두달을 못넘긴다고 《사형선고》를 내렸다. 가끔씩 토혈하고 파랗게 질긴 얼굴을 들어 이 아들을 올려다볼적마다 그 눈망울에 말 못할 숙원과 애달픔이 차있는것을 력력히 읽어낼수가 있었다. 가난하게 사는 자손들을 두고 때이르게 천국에 갈수 없노라는, 이 아들의 살림이 펴이고 손주들이 잘되는것을 보고 가야겠다는 그런 간절함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안해는 돼지, 개, 게사니, 닭까지 죄다 팔아서 돈을 만들었다. 겨우 로모의 생명을 칠성판에서 구해냈으나 돈은 약 사고 하는 치료비에 밑빠진 항아리였다. 그 무렵, 나에게도 액운은 떨어지고야말았다. 마을 소학교가 학생고갈로 인해 부도난것이였다. 나의 교원생활이 한창 꽃같이 피여나고있을 계절에 때이르게 찬서리가 내릴줄은 뜻밖이였다.     《어쩌겠소. 선생에 대해서 우에선 다른 표시가 없더구만. 농사를 짓는것두 살아가는 길 아니겠소? 자, 이 술로 서로의 갈길을 축복합시다…》     교장을 따라 향중심소학교로 《벼슬》 가는 교원들과 하강(下崗)된 우리 몇은 웃음과 울음속에 폭음을 했다. 아, 이 일을 어머니가 안다면, 안해가 안다면, 자식들이 안다면… 배신감과 억울함 그리고 자비감으로 몸을 떨었다… 밤은 악마의 날개를 한껏 펼쳤고 그아래로 먹빛의 강이 무섭게 꿈틀거린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목놓아 흐느꼈다. 그때… 아, 나의 여윈 어깨를 잡아주는 힘이 느껴졌다. 안해였다. 우리는 삼각주의 얕은 언덕에 오래오래 앉아있었다. 안해는 삶의 조폭함에 한껏 짓눌려버린 남편앞에 오래동안 계획했던것이라기보다는 무정한 현실에 대처해 고민하고 시도해온 앞날에 대한 도전을 솔직히 토의하고 정리하고있었다. 그러는 수연이앞에 언제나 자신만은 철학적이고 인위적이며 과학적이라던 나의 고전은 어리석음에 불과한것이였다고, 현실에 대처할줄 아는 삶적분석과 삶에 대처한 행위자가 곧 수연이라는 점에 놀라고 머리가 숙여진것이다. 그는 자신의 말에 흥분하고있었고 나는 감동하고있었다… 안해는 두만강을 이야기하고있었다. 주요하게 하류에 대해서였다. 두만강하류는 곧바로 동해와 합수되여있지만도 좀 섞였을지라도 짠물보다는 민물이며 거슬러올라갈수록 완연한 민물이라는것, 이때문에 수많은 바다고기들이 알쓸 계절을 놓지지 않고 찾아들어 후대를 번식하는 요람이 되는것이다. 송어를 례들어보자. 송어알은 불색을 띤것도 있고 핑크색을 띤것도 있으며 날이 감에 따라 포도색을 띠기까지 하는것이다. 아름다운 색반이 아니고 탐스럽고 향기로우며 알갱이 정도가 큼직하여 다른 물고기들이나 지어 민등뼈동물들까지 악쓰고 먹으려드는 식종에 속하는건 말할것도 없다. 송어는 후대의 번식률을 높이기 위해 매년 5월에 접어들면 기후와 서식환경이 맞춤한 두만강하류를 거슬러오르는것이라고 한다. 그런 후대번식을 위해서라면 송어들은 수천리물속을 밤낮 가르는데 민물은 하류를 찾아 알을 쓸고 원만한 려행을 다한 다음이면 날개가 다슬어 끊어지고 찢어지고 몸뚱이가 군데군데 살이 떨어지고 피멍이 들며 죽기까지 하는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거기다 비하면 인간은 너무나 단순하고 라태하다. 할아버지가 부치던 밭을 아버지가 부치고 그담엔 그 아들이 부치고… 이런걸 《세세대대》라고 부른다. 《세세대대》는 조상이 건립한 마을에서 살아왔고 그들이 짓고 살던 집에서 살며 그들이 씻고 닦으며 쓰던 그릇들을 사용한다. 《세세대대》는 조상들이 쓰던 땅을 쓰고 강, 호수… 그렇다. 그 터를 쓰고 산다. 그러니 삶의 권안에서 개미 채바퀴 돌듯하여 그 방식이 너무 단조롭고 딱딱하며 신맛이 날 정도가 아닐가. 계절따라 자유자래로 사는, 짠물과 민물의 리용을 활성화하는 송어를 그래 찬탄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러고 볼 때 인간들도 례외가 아니다. 고향마을을 떠나 산에 올라 숯을 굽고 고사리를 꺾거나 현소재지나 도시로 들어가 콩나물장사를 하여 돈을 벌수도 있다. 돈만 벌수 있다면, 깨끗한 돈만 벌수 있다면 그 어데든 갈수가 있는것이다. 이대로 앉아서 땅에 모든걸 맡기고 산다면 미래와 경직된 인간이요, 락엽같은 생일것이다. 그래, 가야지. 랠 아침 뻐스 타고 훈춘시로 들어가겠어요. 번영하는 병경도시 훈춘시에서 세방 잡고 서시장에서 콩나물이나 남새를 넘겨받아 장사할거야요. 그렇게 장사폼이 잡히면 매대 하나 사서 통이 크게 벌어볼거야요… 별밭이 펼쳐졌다. 금싸락들이 무수히 떨어져서 강물이 빛났다.     안해가 떠나던 날 아침, 나는 뻐스에 오르는 안해의 뒤모습을 묵묵히 일별했다.     《당신!》     안해의 갈린 목소리가 돌아서는 나를 불러세웠다. 눈확이 푹 꺼져버리고 관골이 튀여나온 안해의 얼굴이 처참해보였다. 울고있었다. 눈물이 찰랑 흘러내리고있었다. 손을 젓고 돌아선다. 여윈 얼굴이여도 실팍지고 근육진 하반신이 나의 애처로와진 마음을 다독여오고있다.      안해가 가고난 한주일은 밤마다 악마의 밤이 되였고 날마다 옥중의 날이였다. 너무나 그립고 그리웠다. 늘씬한 안해의 허리가 꿈에 황둥오리처럼 날아오고 날아갔다. 《쿨룩쿨룩》하는 로모의 기침소리가 찬 집안은 관속처럼 느껴지기만했다. 꼬빡 두주일만에 나는 훈춘행뻐스에 몸을 실었다.     서시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팥죽처럼 끓고있었다. 그속에서 안해를 찾는다는것은 전혀 가망성이 없어보였다. 남새를 파는 곳을 찾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렸지만 안해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배가 고팠지만 먹고싶은 생각이란 조금도 없었다. 안해를 못찾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오후 한시 반 뻐스를 잡아타야 한다. 차비밖에 없다. 머리를 떨구고 락망에 싸여있을 무렵, 얼핏 시야로 한 모습이 날아들었다. 안해였다! 하마트면 소리까지 지를번했다. 구석쪽으로 안해가 벌려놓은, 얼핏 보기에도 싱싱한 남새주위로 신사타입의 남정 몇지 값을 흥정하고있었다. 속이 세게 활랑대고있었고 찡, 눈굽이 젖어들었다. 나도 몰랐다. 왜 그런지를. 어둑새벽에 남새를 넘겨받아 밥술도 온전히 뜰 사이없이 어둠녘까지 줄창 사구려에 혼신을 달굴 안해, 그 안해를 너무 고생시킨다는, 그 안해를 도시의 구석에다 외롭게 버렸다는, 그 안해를 어중이떠중이 남정들의 웃음속에 야유와 조소속에 빠뜨리고있다는 죄책감으로 핑글 더운 눈물이 고이는것이였다. 그러나 그 동정속에 깊이 빠질수록 사랑하고픈 안해를, 그곁에 가닿아 《여보!》 라는 말 한마디 건네볼 용단이 서질 않았다.     《너, 너 석룡이 사구려를 부르며 살어, 이 못난이…》     이런 무형의 야유가 쇠몽치로 되여 뒤통수를 후려치는것이였다. 해질녘까지 나는 안해의 뒤모습에 젖어있었다.     그래도 어둠이 좋았다. 남들이 알게 뭐야. 안해를 누님인양 어깨를 붙이고 거리를 거닐었다. 얼마나 다정했는지 웃고 떠들기도 했고 뻑 하고 안해 볼에다 입맞춤까지 했다. 거리는 천당같았다. 산데리야색등이 교묘한 조소를 날리고 수은등과 섬광등들이 금전의 위력을 턱대고 뻐기고 색스폰소리에 녀가수의 흐느러진 노래가락에 주정뱅이들과 신사들이 저마끔 고아대고있었다.     시원한 맥주 한고뿌에 고소한 양고기뀀 한대도 참고 군침만 넘겼어도 즐거웠고 행복했다.     밤이 깊어 우리는 우리의 《굴》로 돌아왔다. 8평방메터짜리 세집이였다. 창호지같이 누르끼한 전등불아래 우리는 널통같은 집안구들에 이불 한짝 편채 피곤한 몸을 내던졌다. 그러나 우리는 이내 서로 흥분을 하기 시작했고 사랑의 도가니에 빠져버리기 시작했다. 수연이의 하반신은 여전했다. 매끌했고 보드라왔으며 높았고 요람인듯 느껴져 정신을 아뜩하니 죽여주고있었다.     《두만강은 여전하죠?》     그녀의 그윽한 눈속에 유유히 하류가 흐르고있었다.     《그렇소. 맑고 푸르오.》     《강의 최고리상이 뭔지 아세요?》     《뭔데?》     《바다로 흘러드는거죠. 바다는 행복한 세계, 격정의 세계로 강은 이를 위해 쉼없이 흘러요. 바위에 부딪치고 소용돌이에 휘말려들면서 얼고 폭우에 견디면서도 조금의 탓이나 비관이 없어요. 강을 이룬 수천수만개의 물방울들이 다 그래요. 어느 하나의 물방울도 쉬려하거나 어느 물방울의 덕을 입으려 하지 않지요. 이게 바로 강이예요. 두만강의 맑고 푸르름이 여기에 있고 폭넓은 하류의 유순하면서도 드팀이 없는 흐름이 여기에 있잖을가요. 우리 인간들을 두만강에 비길 때 우리는 얼마나 리기주의적이고 파렴치하기까지 하며 또 퇴페적인가요? 더럽고 춥고 피땀을 흘리는 일은 하려 하지 않으며 영예롭고 호의호식하는 인간이 되려 하는 인간, 남을 시키고 리용하여 자기 배를 불리는 사람, 남의 등을 두드려 간을 내여먹자고 드는 인간들이 욱실대는가 하면 자포자기하고 비관실망에 젖어 어떤 일에 어째보지두 못하고 주저앉아 무골충이 돼버리는 인간들이 얼마나 가소로운가요… 그래요, 난 언제나 일에 지치거나 자존심이 상하던가 비관에 젖어들 때면 자연 두만강을 생각하게 돼요. 두만강을 생각하노라면 사지에 뻐근히 힘이 생겨나고 심장이 뛰고 정신이 분발되군 하지요…》     나는 안해의 근육진 몸뚱이우에 업혀있었지만 어째보지도 못하고 사지가 풀려있었다. 참 멋적었고 부끄러웠다. 한숨만 푸푸 토하다가 김빠진 공처럼 굴러내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긴 나날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수 없었다. 대체 난 어떤 인간형에 속하는걸가? 어찌 보면 안해가 말한, 그 듣기만해도 지긋지긋해나는 부패한 인간형에 속하는 같기도 했다. 어느날엔가 드디여 난 그 어떤 이름할수 없는 공포감속에 떨기 시작을 했다. 도저히 짐작키 어려웠고 형언할길 바이없었다. 무시무시한 정신이상증세가 틀림없었다. 두만강하류가 급격히 붓는다. 온통 흙탕물이다. 번개가 장검을 휘두르고 우뢰가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며 창살같은 비를 퍼붓는다. 사나운 파도가 시작된다. 내가 모는 고기배가 뒤번져진다. 《손톱눈》이 내 배꼽을 뽑으며 웃어제낀다. 먹빛 물결속이 깊이 잦아든다… 그렇게 헛소리를 내지르면서 한주일을 혼수상태에 처박혔다가 깨여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여버렸다. 그래, 수치스러울게 뭐란 말인가. 어떤 놈은 인간이고 어떤 놈은 쌍놈이란 말인가. 황제는 황제대로의 한숨이 있고 백성은 백성나름의 홀가분이 있는거다. 관직을 가진 놈들은 그 놈대로의 싫은 짓과 질투와 시기의 긴장한 삶이 있는거고 땅파먹고 사는 놈은 역시 잘살자고 버둑질대는 그런 삶이 아닐가. 함께 인간세상에 태여났다는 점이 평화로운 감득일 때 살기 위해 서로 다른 힘을 써감이 뉘가 뉘를 비웃을 자격이 있겠는가. 그런 야유적배심을 가진자야말로 비렬하고 퇴페적인간이겠다…     인간세상이 어둑새벽처럼 안겨온다. 안해가 나에게 낳아드린 새 인간세상이였다. 새벽이니만큼 조금 흐린 하류처럼 투명하진 못해도 어떻게 어디로 해서 노저어가야 하는지를 가려볼수가 있는ㄱ서이였다. 그렇다. 나는 돼지를 길렀고 닭, 오리, 게사니를 기르게 되였다. 부끄러울게 뭔가. 내 삶을 내가 사는데. 량반틀을 차려 살다간 로모도 굶겨죽이고 아이들 공부도 못시키고말텐데. 오, 안해 홀로 지쳐죽이겠다… 나는 두무남짓한 수전도 다루었다. 정작 시작해보니 못할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자식들이 맘놓고 공부에 접어드는게 좋았다. 로모도 쿨룩쿨룩 기분이 난다 그러신다.     그해 겨울은 주먹만큼한 눈이 터져 온통 푹신한 흰세계속이였다. 내가 지은 량곡을 헛간에 쌓아놓고 기지개를 켜며 겨울을 보냈다. 개짖는 소리, 돼지 우는 소리, 오리 깃터는 소리, 게사니 목빼는 소리, 닭이 홰치는 소리가 모두 내것이였다. 안해에게도 치하의 편지를 몇번이나 받았다. 얼마나 멋진가. 이런 호방한 삶의 풍격을 안해가 가르쳐준것이란걸 차츰 잊으며 자아만족에 혼신을 앗길제 울긋불긋 가을을 타고 안해가 문뜩 나타났다. 영 돌아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백오십리밖의 훈춘시로 가 옹근 두해 반을 고생하다 돌아온 셈이였다. 그새 그립고 그리워 달포사이를 누비고 다니고싶었던 내가 아니던가. 왔다니 무한히 즐거웠지만 한편 속이 비여오기도 했다. 병석에서 항시 칠성판을 건너다보는 로모와 다 큰 아이의 공부 뒤바라지를 하려면 얼마나 막연한 금액이 수요될지 모른다.     《영 내려오고말았지요.》 라는 뒤에는 해석도 타산도 더 없었다. 안해는 굳어져있을뿐이였다. 그토록 명랑하고 쇠소리나던 그제날의 수연이가 아니였다.     사랑 사랑 내 사랑     연지곤지 찍고서     렐 모레 온다나     어화둥둥 내 사랑     레시바를 귀에 꽂고 앉아서 팝송에 맞춰 발장단을 치던 내 만족했던 생활이 끝나가고있음에 나는 차츰 처참해지고있는것이였다. 나는 내가 끝없이 끝없이 추락하고있다는 자비감에 몸을 떨었다. 밤이 그 점을 증명해주고있었다. 하류의 물소리 들으며 향기 맡던 밤, 마주보며 웃고 얘기하던 밤, 키스하며 숨막히던 밤, 풀밭에 뒹굴던 밤, 신혼의 야릇하던 밤, 아기자기 사랑의 밤들이 그 얼마나 황홀했던가.  나에게 그런 밤들이 다시 있을가. 수연이의 얼굴에서 그걸 예고받고있었다.     하나 또 하나의 밤속에 나는 살아있었으나 죽어있었다. 내 몸에 달려있는것들이 시퍼렇게 멍이 든채 역할들을 발휘 못하고있다. 내 욕망은 곁에 누운 안해의 비파같은 한숨소리에 의해 꺼지고 내 에네르기의 발동기들도 안해의 시퍼런 불을 머금은 눈살에 의해 죽어버린다. 《손톱눈》, 수연이의 아버지가 아이고 아이고 《배고프다》 울며 날아오고 《주정뱅이》 나의 아버지가 미친듯 웃어제끼면서 긴 날개로 시커멓게 날아간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밤들이였다.     안해가, 옹근 한주일동안이나 수인같던 안해가 박씨같이 하얀 이를 드러내여 활짝 웃었다.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성공에로 향한 확신에 찬 발로였다.     안해는 나뿐만아니라 키 넘는 아들딸까지 데리고 산책나섰다.     저녁노을에 온 삼각지가 귤빛으로 물들고 평화를 포인트하며 해오라기가 노을빛을 마시고 날아옌다. 해오라기뿐이 아닌 꼬마물떼새, 흰목물떼새, 중부리도요, 민물도요, 원앙, 청둥오리, 황오리, 왜가리, 고니, 기러기, 농병아리 등 수십종의 철새와 나그네새들이 먹이를 쫓아 하류의 삼각지를 점령하고있었다.     우리 네식구는 하류가 유리처럼 내려다보이는 삼각지의 낮은 언덕에 가지런히 앉았다.     건조한 9월의 저녁바람이 대기를 꽉 채워 불었다. 강가의 작은 벌레나 물고기나 조류도 살이 오르고 겨울을 날 생물들은 벌써부터 겨우살이준비에 착수했다. 식물은 뿌리를 더욱 견고하게 대지에 박고, 먹이를 쫓는 동물들의 싸댐도 한층 분주했다. 각양각색의 목청으로 새떼들의 우짖는 소리와 날개치는 소리가 강변 갈대밭을  덮는다. 저 새들의 힘찬 비상이 이제 여기 두만강하류 삼각지로부터 다시 망망한 바다로 이어지리란걸 우리는 잘 알고있었다.     인간들의 삶의 방식도 저 새처럼 부단히 이동이 되느라면 더 경험이 넓어지고 깊어길것이며 생활도 보다 윤택해질것이라고 안해도 말하고있었다… 아니, 새들이 우리에게 말해오고있는거였다. 우리 철새들은 여름에 그 한대의 추운 지방에서 번식하여 가을이면 지구의 반을 가로지르는 려행길에 오른다. 떠날 때를 안다. 얇은 해살아래 파르스름하게 살아있던 이끼류와 작은 떨기나무가 재빛으로 시들고 긴밤이 저 북방의 찬바람을 몰아올 때쯤이면 려정의 차비를 차린다. 여름동안 부쩍 큰 새끼들도 날개를 손질하며 천봉만학을 아찔히 굽어보며 헤가를 하늘길을 필연적 려행길로 아는것이다.     처음 떠날 때 우리는 무리를 이룬다. 그러나 창공으로 가로질러 쉬지 않고 날 때는 다만 혼자 날뿐이다. 마라손선수가 42.195키로를 완주할 때 오직 자기자신의 극기와의 싸움이라고 말했듯 작은 심장으로 숨가빠하며 열심히 열심히 혼자 날아간다. 그렇다고 방향이나 길을 잃는 법은 없다. 혼자 날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다. 5백만년전 신생대부터 새들은 그런 고통의 긴 려행을 터득하였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할수 없는 바다와 하늘이 맞물려있는 무공천지에 길을 열어 봄, 가을 두차례는 대이동으로 장식해온것이다. 오직 생활환경에 적응키 위해서라는 한마디로 치부해버린다면 인간도 거기에서 례외일수는 없다. 오히려 인간은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라태하고 간사하고 비렬하고 봉건적이여서 생활권안에서 수인이 되고 생활이 노예가 되고있지 않는가…     안해는 무척 격동하고있었고 가끔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하고있었다. 아이들은 서정시같은 구변과 의미심장한 말뜻에 깊이 눌려 사색의 하류를 헤맸고 나도 그 말속에 숨은 오묘함때문에 마음을 바쟁이고있었다.     그날 밤을 나는 잊을수가 없다. 그날 밤이 있었기에 나는 오늘까지 살아온 지난날이 누구보다 행복했음을 알고있으며 또 기다림으로 푸르게 창연함을 믿고있는것이리라.     그날 저녁, 안해 수연이는 아이들을 먼저 집으로 보내고나서 나와 단둘이서 강변 갈숲을 찾았다. 정말이지 그러리라고는 생각밖이였다. 주저심 많고 자비심 많은데다 몸집이 왜소한 나를 수연이가 유치원아이를 안듯 번쩍 들어 안아버릴줄이야. 삽시에 온몸이 땅땅 굳어지는 감에 허둥대면서 나는 내가 하류의 수심을 비상하는 한마리의 송어가 되였음을 알았다. 그녀에 의해 우리는 서로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라체가 되였더. 그녀는 강이 되여 나를 이리저리 뒤번지며 히스테리적으로 즐겼다. 해덩이처럼 힘껏 발기된 나의 그것을 알았을 때 나는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그래, 난 남자, 나의 남자는 수연이가 준것이야!… 하류는 길게 드러누웠고 달빛에 시허옇게 안겨들었다. 밤깊도록 농병아리의 울음소리가 그칠줄 몰랐다.     안해를 기다리는 그 한달을 1년맞잡이로 보냈다. 대련시로 나가 늦어서 한달만에는 꼭 소식을 보내리라던것이 반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묘연했다. 반년하고 열흘이 더 지난 어느날, 문득 편지 한통이 날아들었다. 이게 뭔가? 한국 서울에서 오다니. 꿈만 같았다. 눈물로 아롱진 글구들이 하늘끝 기러기떼처럼 날아든다.     당신, 그간 가내일동이 무고한지요?     이제야 소식을 전하게 된걸 용서하세요.     난 지금 서울시의 한 골목 음식점에서 약간의 휴식시간을 쪼개여 이 글을 쓰고있어요.     …당신은 너무 뜻밖일거야요. 그러나 모든걸 량해하며 너그럽게 받아주시길… 확실히 생명을 내건 모험이였지요. 한해 반을 훈춘올라가 번 부스럭돈을 전부 밀어넣고 대련에서 야밤에 밀항배에 올랐던거야요. 악취풍기는 선창밑 까막나라속에 갇혀 열물까지 다 토하며 옹근 사흘낮밤을 모대겼을 때는 이 내 육실한 몸이 락엽처럼 엷어진듯했어요… 어느 누군가는 서리찬 비수에 배를 푹 박히고 선지피 콸콸 흘리며 바다에 처박혔다던데, 또 언젠가는 밀항배가 파도에 부서져 60여명 밀항자들이 몽땅 룡궁 갔다던데. 또 그들은 옹근 나흘밤을 고생끝에 한국땅에 가대였는데 《만세》를 부르던 그 찰나에 철컥철컥 하고 수쇄가 채워졌다던데… 나는 아무 탈 없이 하느님이 보호해주셔서 밀항에 성공한거예요.  이 수연이가 배에서 다 죽을것만 같았던 둥둥 뜨는 몸이였지만 한국땅에 한발을 디디고 섰을 때는 사경에서 헤매던 딸이 어머니 품에 안긴듯 울음이 터졌고 다음엔 기쁨에 못이겨 북받치는 힘을 누를길 없었지요… 한국에 들어서니 모든게 생각처럼 되지 않았어요. 일자리가 나서주질 않았고 그나마 어쩌다 맡은 일거리도 고용주가 부도를 맞는 바람에 일값마저 치러주지 않고 훌쩍 사라져버리다보니 한달간은 거리이 개죽 같은걸로 연명하는 신세가 되였댔어요. 그러다가 요행 구명은인을 만난거예요. 그 언니의 소개로 지금의 《부두어탕집》에서 멸치구이일을 하게 되였는데 고용주가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거든요… 첫월급을 받았어요. 중국돈으로 7천 5백원이야요… 막 울었어요. 뼈빠지게 몇해씩이나 버는 돈을 단 한달만에 벌다니요.     한국에 와서 난 아버지 《손톱눈》을 더욱 새롭게 알게 되였어요.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씀씀이가 계획없이 헤프고보면 보뚝 터뜨린 물이라고 그래요. 아버지가 생전에 혼자의 힘으로 벌어서 어떻게 그 많은 우리 집 식솔들을 먹여살리수 있었겠는가를 알수 있어요. 술, 담배, 도박을 멀리했던, 일밖에 몰랐던 아버지께 절 드리고픈 마음이예요.     중국에 사는 조선사람들은 모국 사람들의 두가지 삶의 방식만은 꼭 배워야 한다고 해요. 시간을 다투어 열심히 뛰며 일하는것과 번 돈을 꼭 쓸데에 쓰되 그 씀씀이마저 《깍쟁이》여야 해요…     고동색으로 침묵하고있는 언덕에서 나는 움쭉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안해에게 써보낸 편지의 내용을 다시한번 수개해본다.     여보, 나 이제 더는 예전의 그런 린색하고 야비한 바보로 살아갈수 없구만. 《남자》, 《인테리》라는 새똥의 작용보다 못한 허영심으로 안해의 등만 처먹고 살아온 인생이 부끄럽구만.     그러나 이건 어느 모로 보나 수연이앞에서 하는 주제넘는 흰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구만. 하긴 그렇다고 부득불 승인하지 않을수가 없구려.     수연이는 나의 하류요. 하류의 물이 뻗으면 상중류의 수원이 충족해져 수천헥타르에 달하는 옥토에 생명수가 흘러드는게 아니겠소. 하류가 엄청 수통이라면 상류가 고갈이 되고 하류가 꽉 막히면 홍수가 지는걸 뉘 모르겠소. 그러니 내내 유유히 뻗어만 주는 수연이가 우리 생활에 기쁨과 희망을 갖다주는게 아니겠소.     너무 오랜 시간을 지체했소. 맑고 푸른 하류의 묵묵한 수고를 그저 지켜보고만 지내왔으니. 아니 《응당》이요, 《천연적》이요에 붙여왔으니 말이요. 말하자면 그대를 보호하고 작업률을 덜어주도록 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왜 진작 못했던가를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는구만.     하류여, 내 사랑하는 두만강하류여, 그대는 아름답소. 그대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고상한 지조까지 지녔으며 내 그대 인격미와 체격미에 더욱 혹할것 아니겠소. 그대가 내내 건강한 미를 갖도록 그대 언덕에 풀을 심고 나무를 심고 화초를 심어 얼기설기 하얀 뿌리들이 물의 살을 거뿐히 하리오…     그렇소. 이젠 돌아올 때가 된것 같소. 《내가 돌아가면 언젠가 내가 번 돈이 거덜이 날게 아니겠어요…》 이런 말 마우. 수연이가 더는 지치지 않도록 내가 나섰단 말이우. 푸르디푸른 두만강하류에 《그물양어장》을 앉히기로 향정부와 계약을 맺은거요. 물론 수연이가 벌어보낸 돈이 은을 낸거지… 애들은 시중학교에 보내고 나와 로모가 강변에 삼간집 짓고 오리, 닭 치고 팔뚝같은 물고기들을 기르며 하류에서 수연이를 기다리겠단 말이요…     기지개를 켠다. 시야로 넘실대는 황홀경이 날아든다. 나는 뉘연한 강하류의 턱과 변을 따라 갖가지 나무와 풀과 화초의 뿌리로 하얗게 하얗게 엉키고있다…   (연변문학 2002년 제2호)  
2    [중편소설] 정신무진(2) 댓글:  조회:2907  추천:84  2007-12-21
[중편소설] 정신무진 량춘식  6. 죽으라, 내 육체여 이튿날도 그랬다. 안개 같기도 하고 연기 같기도 한 그것이 몸밖으로 새여나올듯이 목구멍으로 스멀스멀하며 퍼져오르면 생고기를 씹는듯, 녹물을 마신듯 비린내가 입안으로 진동한다. 게다가 이를 사려물고 되넘기느라면 게트름이 어쩔수 없이 새여나왔고 구역질이 튕겨오른다.  치과를 찾아간다고 술을 한 이틀 끊어놨더니 몸속이 온통 이런 증상이라니, 이발이야 빼여버려 그만이지만 이건 또 무슨 병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시원히 검사를 하고 약이라도 지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술이라도 맛있게 마시려 해도 이깟 증세의 병증이 없어야 될거니깐. 이제 술은 안해의 상징인데야! 백강, 하류의 물살은 거창했다. 물굽이가 숲에 가리는듯하더니 긴 턴넬을 뽑았고 전속으로 얼마간을 달리는가싶더니 뻐스는 팔면통시에 와닿았다.  돈 일원이라도 아끼고저 터덜터덜 걸어서 시병원에 들어섰다.  일층의 자궁유방 검진실앞에는 녀자들이 줄느런히 늘어앉아 기다리고있었고 이층의 간센터, 삼층의 신장, 페, 척추센터앞에는 검진으로 나선 해쓱하거나 부추김을 받는 병인들이 가끔 보였다.  종합검진을 받았다. 아마 난생처음 들어서는 프로급병원인가보다. 혈액검사, 소변검사, 허파MPT촬영,위내시경검사를 하는데 온오전이 걸렸다. 돈이 아까와 3원짜리 랭면으로 점심을 넘기고 첫사람으로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검사를 받았다. PET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신체부위와 장기안의 암세포뿐아니라 앞으로 발전할수 있는 악성변중세포를 확실히 촬영해내는 첨단장비라고 의사가 말했다.  검진을 마치고 이틀을 기다리라 했다. 그 이틀동안을 어떻게 보냈던지 모른다. 흉막염이나 페, 위나 비장에 문제가 생기면 어쩔가 큰 근심이였다. 일단 결핵에 걸리면 소 한마리에 개 열마리는 먹어놔야 깨끗이 치료된다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또 위벽이 마사졌거나 비장에 문제가 생겼다면 호주머니가 아닌 이상 뒤집어볼수도 없어 속이 바질바질 탔다.  퉁공기와 옥공기에 더운 물을 떠놓고 나는 중얼거렸다. 이제부턴 술을 적당히 마셔둘테요, 내가 건강해야 아이의 래일을 볼수 있잖아. 그리고 여보, 당신 돌아오는 날까지… 술을 이틀째 끊으니 단통 입맛이 도는 느낌이였다. 쌀밥을 앉히고 감자를 썰어놓고 장도 끓여서 먹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둬술 드네 했는데도 배가 부른것처럼 더 구미가 없었다. 배속에 가스가 차오르면서 게트림이 나고 구역질도 느껴졌다. 그래도 밥을 떠넣고 씹어서는 넘겼다. 넘길 때마다 래일과 함께 눈물이 고여올랐다.  종합검진 사흗날아침은 날씨도 청량했다. 무엇보다 몸이 거뿐한 느낌이 들었는데 아들과 안해의 얼굴이 번갈아 날아들었다. 살것 같았다. 밥이 들어가니 몸이 춰서는게 아닌가. 아무런 고민도 없이 날듯이 뻐스에 올랐다.  시병원에 이르니 오전 아홉시 반이였다. 의사가 기다렸다는듯 맞아주었다. 의사는 우리 시병원에 갓 들여온 의기가 고첨단장비라고는 하지만 의사들이 아직 조작경험과 검진결과에 대한 분석력이 깊지 못할수도 있으니 한번 더 큰 병원엘 가 다시 검진을 하면 어떨가를 물어왔다.  ―아니, 뭐 종양이라도 생겼다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단통 눈이 둥그래져서 걸고들듯이 물었다.   의사는 주의사항을 적어주었다. 술, 담배, 섹스는 끊고 잠을 많이 잘것,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산책을 할것, 청국장을 많이 먹을것, 고등어 꽁치 등 푸른 생선을 많이 먹을것… 등이였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채 오래도록 일어날수 없었다. 간암, 이건 간암이란 말이 아닌가. ―그 어떤 불치의 병도 초기에 발견했으면 괜찮을겁니다. 가능성이 있지요. 설령 우리의 검진이 백프로로 들어맞다고 장담을 못하니까요. 나는 녀자들이 줄지어 앉아있는 자궁유방 검진실앞 복도를 지나서 병문을 나왔다. 제정신이 아니였다.  몇백원을 다 쓰고 호주머니엔 뻐스비만 남은듯했다.  뉘 정신으로 집까지 왔는지 몰랐다.  퉁공기와 옥공기가 뚱그렇게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부지중 중얼거렸다.  ―돈은 죽음을 관리하는 가장 문명한 도구야. 그런데 정신은 죽음을 압도하는 가장 철저한 공구란 말야. 정신이 죽음을 앞당길수도 미룰수도 있다는 도리를 난 믿는다. 그럼 나의 정신은 누가 무르게 만든것일가. 나는 잘 알고있었다. 이대로 무너진다면 달포안으로 몸이 말라 죽어갈것이란것을. 하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 치자. 그러면 어째서? 이제 간암으로 첨단설비검진이 나온 이상 죽음의 순서를 결정하는건 오직 돈밖에 없잖은가. 나에겐 돈이 없다. 아, 아들에겐 절대로 말할수가 없다. 일본에 있는 안해에게도 아니, 이젠 남의 안해가 된 계복에게 알린다? 무슨 소용 있으랴. 언제까지 살을 저미는 암세포확장의 진통을 겪다가 죽지 말고 아예 자살을 하는게 도리일것  같았다.  간암! 간암!!… 미칠것  같았다. 장밤 눈을 커다랗게 뜨고 깜깜한 집안속을 죽은 넋으로 떠다녔다. 그래, 이만큼 살아도 오래 버틴 셈이구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배반을 받은지 일년이 넘도록 살았으니 이건 나로서는 기적이랄밖에. 이젠 죽어야지. 이건 하느님의 뜻일거였다. 죽어서 천당 가자. 천당에서 계복이를 데려가야지. 계복이와 다시 련애부터 새롭게 시작을 하는거야. 그래, 이젠 죽자. 어떻게 죽을가… 농약을 마실가, 안돼. 창자가 너무 아프다던데. 절벽산에서 뛰여내릴가, 안돼. 콩가루가 되고나면 천당에서 계복이가 날 알아 못볼거야. 뒤강에 얼음을 끄고 돌을 달고 익사할가, 안돼. 얼마나 차갑다고… 죽어도 안락사버금으로 가는 죽음을 택해야 하는거야. 그게 뭔데? 오, 술이여, 내 아픔과 고통과 죽음마저 무마해줄수 있는게 오직 너란 말이지… 그래, 죽으라 내 육체여. 술속에서 저도 모르게 천천히 즐겁게 죽으리. 나는 《죽으라 내 육체여》라고 술에 내 육체를 내여맡겼다. 그러나 《죽으라 내 령혼이여》는 하지 않았다. 정신이 죽으면 육체도 죽는다. 그러나 육체가 죽어도 정신은 살아있는 법이다. 내 정신, 령혼은 천당에서 계복이와 화합하여 행복의 구들이 놓일것이라고 난 믿고있었다.  나는 내 육체를 죽이고저 노력했다. 술이 들어가 간암세포에 영양분이 되게 하고저 시도했다.  나는 천천히 나를 죽이는데 성공하고있었다.  7. 고향의 《 암 》 번연히 알면서도 최대 수치란걸 알면서도 해남도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알면 가슴 아파 공부못할줄을 알면서도 나는 그럴수밖에 없었다.  ―돈 좀 꾸시우. 우리 아들이 방학에 오면 곱배로 갚아드릴터이니.  ―돈 좀 꾸시우. 이제 우리 안해가 일본서 돈 부쳐보낼터이니… 새빨간 거짓말을 꾸며댔다. 십원도 꾸었고 일원도 꾸었다. 꾸어준것이 아니라 《쯧쯧, 어쩜 이 지경이 되다니》 혀를 차면서 불쌍해서 건네준 돈들일것이다.  아들은 달마다 어김없이 돈 백원씩 백오십원씩 부쳐보냈다. 했건만 그 돈으로 꾸어낸 돈을 갚아주지 않았을뿐만아니라 계속 걸인이 되여갔다.  세상 일은 첫걸음을 떼기가 바쁘단 말이 있다. 그 어떤 천한 일이든 일단 맘 먹고 시작만 뗐다면 되려 즐겁고 하고싶은 일로 되여 남들이 어떻게 보는줄을 모를 지경이 되는것이다.  《천천히 죽어》가는 길은 어려웠지만 그 어려운가운데서도 즐거움이 있을줄이야. 돈을 5원 꾸었다면 마른명태 하나에 술 한근 사들고 하루 세끼를 맛있게 살수가 있는거였다. 가물에 단비라고 맛도 말끔하게 가난한 가운데 뾰족하게 도드라짐을 어이 알랴. 술은 자꾸 당겼다. 간경화복수나 간암환자들이 술이 더욱 당긴다는 말을 봐선 내 병이 간암일것은 분명하렷다.  먹고싶은것을 먹자. 먹고싶은걸 먹지 않고 죽겠는가. 암세포야 뭐든지 가리잖고 자란다는데 구태여 이것저것 가리겠는가. 하루에 마시는 술만도 거퍼 한근 지어 한근 반이 되니 아들이 부쳐오는 고깟 백원돈으로 어찌 담당하랴. 그렇다고 막 죽기는 싫은 나인지라 걸인이 되여야 했던것이다. 빌어서 먹든 꾸어서 먹든 저녁에 어스름이 깃드는 집안 구들우에 밥상을 놓고 창가로 뵈는 깜빡이는 별들이나 달빛을 빌어 술이 넉근한 퉁공기를 들어 옥공기와 맞부딪쳤다. 그 술맛이 그처럼 달콤할수가 없었다. 목구멍으로 술이 넘어간뒤 녹이고 씹는 소금이나 알사탕, 땅콩, 이리꼬구이들이 그처럼 맛있을줄이야. 부엌아궁이에는 기본상 불을  때지 않는다. 저녁에는 전등도 켜지 않는다. 텔레비는 고장난지 오래다. 록음기도 페품이나 다를바 없었다. 핸드폰은 눅거리로 팔아치웠다. 전화비때문에 전화는 벙어리가 되였다.  동네에 나서면 뉘집 개들의 꼬랭이를 베여서 불에 구워 술안주 하고픈 생각이 굴뚝 같다. 두부파는 한족 녀자의 손마디를 끊어서 기름에 튀해 먹고싶었다. 니 손가락 하나에 값이 얼마냐, 술안주 해먹고싶다. 그래놓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키들거렸다. 돼지를 보면 엉뎅이살이 먹고싶고 잡을수 있다면 쥐새끼도 삶아서 개고기처럼 먹고싶었다.  배 고플 때는 닥치는대로 먹었다. 길섶에 나뒹구는 생감자알이나 무우도 와삭와삭 씹어먹었고 뉘네 금방 내던진 먹다만 국수오라기도 쉬파리를 쫓고 쥐여서 먹었다. 그래도 감기에는 걸리지 않고 설사를 하는법 몰랐다. 걸인의 우세는 거기에 있었다. 이런 생들의 건강은 병도 왔다가 달아나는 모양인지 모를 일이였다. 어쩜 내 암이 걸인생활로 더 악화되지 않고있는지도 모를 일이던것이였다.  나는 우거지든 들나물이든 쓰레기더미의 음식물이든 먹고서 배가 부르면 슬금슬금 뒤동산으로 오른다. 높으직한 뒤산 언덕에 나무잎을 꺾어서 펴고 누우면 두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정신이 새삼스러워난다. 이리저리 머리를 돌리며 아래우와 좌우를 시야로 담는다. 그러면 별난 생각들이, 종래로 해못본 깨달음들이 련달아 생긴다… 밤이면 하늘은 고달프게 잠든 땅을 내려다본다. 그러다도 낮이면 하늘은 땀 흘리는 땅을 내려다본다.  밤이면 땅은 금덩이로, 천당으로 뜬 달과 별을 쳐다본다. 그러다도 낮이면 땅은 바람부는 구름을 쳐다본다.  나는 밤이면 찬 구들우에 누워 아무것도 안보일 천정만 바라본다. 그러다도 낮이면 술 한잔에 아름다운 몽유와 환청으로 갈 밤을 위해 걸인으로 떠돌이한다.  밤과 낮― 밤은 꿈이며 낮은 현실일뿐이다.  나는 꿈과 현실의 공간에서 나를 찾을수 없었다.  ―막 죽다니 그게 될소리냐. 나도 모르게 죽어가야 하는게야!! 그건 나의 좌우명으로 된지 오래다.   뒤산은 한겨울에도 해볕으로 따스했다. 량쪽으로 큰 산들이 바람을 막아주는 탓으로 적설우에 누워도 소르르 잠들게 따스하다. 어느날, 나는 문득 너무 따뜻함에 놀라며 눈을 떴다. 해살이 물처럼 흘러내리는 공간으로 논이 보였다. 두부모처럼 틀을 쳤고 가두어넣은 논물이 거울처럼 번들거린다. 써레를 놓는 사람, 모를 꽂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데 이게 언제 봄이 왔지? 나는 눈을 씻고 다시 보았다. 파란 수건, 빨간 수건, 노랑 파랑  때깔 고운 녀인들의 고운 모습도 보인다. 녀인들이란 늙은이들만 내놓고 깨끗이 출국이요 큰도시로 나간 마을에 웬 녀인들이란  말인가. 옳았다. 싹모 나온 한족녀자들일거였다, 단 몇집뿐의 모내기라도. 걸인, 여적 마을안으로 돌면서 비라리를 했지만 이젠 한번 들로 나가봐야겠던것이다.  배가 고프다. 집에 가봤자 씹다남은 명태꼬랑지와 껍질밖에 더 뭐가 있으랴. 아지랑이속을 걸었다. 다리가 자꾸 맥없이 헛질린다. 이랴, 이랴… 소  때리는 중늙은이가 다루는 논이 첨 띄였다. 논머리에 비닐보퉁이가 보인다. 가서 헤쳐보았다. 챠, 이게 뭐야. 찰떡에 만두에 이밥, 달걀지짐에 소고기장졸임에 고추장 거기다가 시큼털털한 막걸리가 있잖은가. 수저를 보니 세사람몫이였다. 에라, 세상에 도적질을 모르는 걸인이 있다더냐. 나는 비닐에다 찰떡이며 밥이며 고기며를 세몫으로 나눈 한몫씩만 주어담아 사라졌다.  이튿날도 들로 나갔고 사흗날도 들로 나가 일군들의 밥과 찬과 막걸리를 훔쳤다. 그러다가 나흗날만에 드디여 들켜서 물매를 맞았다. 한마을 사람들이여도 날  때렸다. 그중 중늙은이가 나서서 말렸다.  ―관두게. 가족도 잊고 고향도 잊고서 제 좋을 볼장 보구 사는 그 안해가 나쁜 년이지… 그런 화냥년들때문에 지금 세월에 불쌍한 나그네들만 녹아나잖았나. 어찌 됐든 우리 동네의 《암》이야. 죽여버리지두 못하구 감옥에 처넣지두 못할 《암》이라구… 8. 죽는 육체를 부르는 죽는 정신 내 육체여 천천히 죽어가자던 나는 들에서, 모내기에 열성이 오르고있는 남녀로소들이 보는데서 물매를 맞으면서 더 살아 뭣하랴 절망을 한것이다.  ―이 놈들아, 때리겠거든 음식도적인 나만 욕하면서  때릴것이지, 죽이겠거든 이 못난 놈의 행실만 탓해 죽일것이지 불쌍한 내 안해는 뭣 하러 끼여서 욕질이냐… 나는 맞으면서도 그 말만 웅얼거린것이다.  그날 밤 난 집에 들어와 대성통곡을 했다. 계복아, 내 사랑하는 안해야, 사람들이 널 가족도 잊고 고향도 잊은 제 좋을 장만 보구 사는 나쁜년이라구 손가락질을 하는구나. 내 어찌 그런 말을 듣고 가만있을수 있겠느냐. 네 비록 지금 날 버린채 타향에서 군사내와 재미있게 살고있다 해도 난 남들이 널 욕보이게 할순 없구나. 생각나겠지? 20여년전 내가 《나쁜집 애》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던 나날에 그 엄동설한을 무릅쓰고 달려와 막에 홀로인 나와 설을 쇠주던 일을, 처녀들이란 나를 온역 피하듯하던 그 세월에 너만은 어쩌라고 구들 잘 고치고 물고기 잘 잡는 《인재》라며 한사코 날 사랑한것인지 지금 생각하면 참 얼마나 다행이며 꿈도 못꿀 일인지 그저 하늘의 뜻이랄밖에. 영원히 장가들 꿈이라곤 엄두도 못내고있은 내가 후영의 칡벼랑늪에서 그대 처녀를 알게 될줄이야. 지금 이 시각 생각만 해도 온몸이 경련을 일으키도록 흥분을 하는, 내게는 달처럼 이 세상이 다하도록 단 하나뿐일 사랑을 웬 놈들이 험담을 하게 내버려둔단 말인가, 내 안해가 설령 그렇게 되였다 한들 내 안해에겐 죄가 없다. 다 이 못난 놈, 아들놈 하나 공부시킬 돈 못벌고 가난하게 산 이 놈의 탓이지… 온 저녁을 그렇게 갈파하다가 드디여 깨달은것이 죽자, 내가 죽어야 더는 안해를 험담할수 없을게 아닌가. 그거였다.  나는 생각했다. 간암에 걸린 내가 여적 죽지 않고 살아있음은 내 정신이 죽지 않고있었기때문이란걸. 정신이 살아있어봤자 공갈과 비방으로 짓찧어질것인데 차라리 죽어서 령혼이 머나먼 앞날이 가있는 안해에게로 가 머무는게 그럴법하였던것이다.  나는 막 죽음을 이 갈았다. 찬구들에 눈 펀히 뜨고 누워있었다. 거의 매일을 굶다싶이하고 나날을 보냈다. 어떤 날은 물도 마시지 않았다. 상우에 놓인 퉁공기와 옥공기가 나를 뚱그렇게 내려다본다. 술이 마시고싶어졌다. 물이 마시고싶어졌다. 뭐건 막 먹고싶어졌다. 그러나 이 악문채로였다… 그런데도 나는 잘 죽어지지 않고있었다. 그러나 내 몸은 차츰씩 못해갔다.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눈확이 푹 꺼지고 관골이 흉하게 드러나있었다. 내 몸은 검불처럼 가벼웠고 마른 뼈우로 가죽이 늘어져 겉들렸다.  ―이제 곧 죽는가봐. 그런 중얼임이 바람을 향해 목탁을 치면서 읽는 중의 천수경처럼 들렸다. 바로 그 순간이였다. 한 녀인의 챙챙한 목소리가 내 귀전을 쳐오는게 아닌가. 그건 계복이의 음성이였다. 이십여년전 후영의 칡벼랑늪가에서 내 목을 끌어안고서 내 귀에 하던 말이였다.  ―우리 죽으면 령혼이 이 칡벼랑늪에 와 만납시다. 우리 죽으면… 내 죽는 정신은 어데로 가고있었다. 그리고 내 육체는 거멓게 색이 죽어가고있었다.   9. 먼저 가 머물리 나는 동네의 《암》이기에 내 꼴을 사람들에게 보이고싶지 않았다. 그들이 내앞에서 내 안해를 저주했기에, 나를 죽이지 못해하기에 나는 그들을 만나길 꺼려 한다.  내가 맘속깊이 기대한 날이 온것 같았다. 창공에 보름달이 걸린것이다… 우리는 그날 밤 칡벼랑가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늪에 금황빛의 보름달이 떴었다. 보름달을 보면서 보름달이 우리들의 마음의 융합이라고 계복이가 그랬을 때 나는 남자답지 못하게 울었다. 내가 사람의 늙음과 따르는 필연의 죽음이 아쉬워 그런다고 그 원인을 말했을 때 계복이는 사람의 마음 즉 령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며 저 물속 둥근달이 우리들의 령혼을 만나게 할것이라고 했던거였다… 난생처음 녀자와 흠뻑 취해 나눈 말이라서 그런걸가, 그 말은 왜 방불히 어제 한 말처럼 내 귀에, 가슴에 생생한것일가. 내 정신은 후영의 칡벼랑아래 늪가운데로 잠겨있을 금황빛 보름달께로 쏠리고있었다.  후영, 아득했다. 줄배로 강을 건너야 하고 강을 건너서도 시오리길이 잘되였다. 더구나 결혼하고 이십여년이나 못가본 곳이다. 언젠가 누가 그랬듯이 후영이란 그 섬땅은 인간들에 의해 버려진지 너무 오래된 땅이라고. 1991년에 마을의 마지막 농호가 부치던 논이 뿌려진채로였다니 그 긴시간을 섬의 변화가 어떠한지를 상상할수마저 없는거였다. 온갖 짐승들이 욱실대고 잡초가 성하여 나무숲이 꽉 들어차 방향을 분별할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이제 일어서야 한다. 기어코 이 밤에 가 닿아야 한다. 그리고 칡벼랑에서… 이 밤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을 하니 걷잡을수 없게 헉헉 울음이 터진다. 아들아… 내 아들아, 이러는 아버지를 용서해다우. 아버지에게 있어서 아들, 너만큼이나 너의 어머니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거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가. 이승에서 내 사랑을 이루지 못할바하곤 저승에서 령혼사랑이라는걸 해보려 하니 오히려 네가 이런걸 알면 아버지의 처사가 옳다고 할지도 모르겠구나, 아들아 넌 이미 성공한 셈이니 이 아비는 맘 놓고 네 어미와 만나러 간다. 기운을 내여라, 언제든 이 아비의 령혼이 널 지켜주고있겠으니까. 이 추레한 몰골로 이 허약한 약골로 이제 거기까지 갈수 있겠는가. 내 36도 체온이 찬구들을 덥히려는듯 여윈 등허리를 붙이고 뗄줄을 몰랐으니 몸속의 밸까지 차겁다못해 고드름이 생긴것 같다. 몸이 차다못해 고환과 항문사이의 거리도 줄어든것 같이 여겨졌다.  다리를 들어 엉뎅일 일으키려는데 여위여 뼈가 질린 쪽의 항문 괄약근이 열렸는지 똥물이 나와있었다. 아아, 이 정도가 될줄도 모르고 누워만 있었으니. 나는 내 몸속을 알았다. 간암증상은 이런가. 벌벌 가마목으로 기였다. 거기에 대야가 있었다. 대야에 가마속의 녹낀 물을 퍼담고 바지를 벗고 사타구니를 씻기 시작했다. 깨끗한 몸이여야 내 령혼도 맑아지고 냄새가 없을것이였다. 누구는 《널 배반한 네 안해의 령혼이야 똥보다도 더러울거 아냐》 그럴지 모르지만 난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안해가 날 배반한것은 전적으로 내가 사내구실을 못하고 안해를 가난하게 살게 한때문일것이며 가난때문에 자식의 학비마저 댈수 없었기때문이라고. 그리고 안해가 타향에서 다른 사내와 사는 동안, 그동안은 즐겁고 행복한 동안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사이에 떠도는 간악한 아픔과 교활한 고통이 동반된 가시방망이로 살속을 휘젓는 세탁과  같은 추리의 과정인것이며 속죄와 반성의 과정이란걸 난 안다. 안해와 그 사내와의 매 한번의 교합이야말로 최초의 계복이가 저 황야에 버려졌다가 번개와 우뢰에 깜짝깜짝 놀라며 원래의 계복이로 회귀하는 과정임을 나는 믿는다.  나는 또 안해의 아름다움이, 흰피부로 알리는 뻗어간 파르스름한 심 줄들이, 사금처럼 빛뿌리는 이발들이, 흰절벽과도  같은 목이, 젖냄새 같은 발걸음 모습이… 나에게는 황홀경이지만 이 세상 모든 사내들에게는 악과 불행과 공포의 형체로 안길것이라는걸 말이다.  안해는 아주 짧은 기간을 녀성일것이다. 선량하고 요염하고 유혹적일것이다. 그러나 차츰 연분홍으로 분장한 속이 빈 갈대일것이며 뱀의 분신일것이다. 드디여 변하는 악과 변하지 않을수 없는 필연의 결구일것이란걸 난 안다.  오직 나에게만은 불변의 현혹이며 무지개빛갈의 사랑일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사내들이여, 조용히 물러서라, 두말없이 잘못을 깨닫고 머리 숙여라. 왜? 내가 안해의 속으로 령혼이 되여 머물러가기때문이리라. 나는 몸을 꼬부렸다. 간일것이다. 칼로 도려내듯 아프기 시작을 한다. 그리고 입에서 역한 냄새가 났다.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냄새였다. 냄새는 혐오할수록 더욱 날카롭게 느껴지는 모양이였다. 간이 작용을 잃으니 속에 들어간 음식물이 없음에도 창자, 그리고 위벽이 마구 썩어내는 모양이였다.  20여리길! 최후의 도박을 하리라. 그곳에서 안해를 《상봉》한다고 여기고있었다. 내 정신은 거기에 가 극치를 이루고있는거였다. 상봉의 금황빛의 달속에 가 나 먼저 머물리라 한것이였다.  10. 나는 죽었다.  집안에는 먹을게 없었다. 창가에 기웃이 들여다보는 달이 재촉을 한다. 달이 서산에 떨어지거나 구름에 가리기전에 밤도와 목적지에 가닿아야 했던것이다.  나는 울음이 없었다. 색바랜 지성이 공상과 악을 낳았고 악이 울음을 매장했다. 그 대신 몸을 떨게 하는 영화는 눈앞에서 시나브로 상영되고있었다.  계복이는 거기 있었다… 그해 겨울이 물러가고 어김없이 계절은 바뀌였다. 로농들은 후영에로 나를 불렀다. 구들이 뜨뜻하고 술추렴도 하려면 내가 필요했던거였다. 다른 일은 바빠서 못하고 식모일은 할수 있다는 조건으로 계복이도 내려온것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눈치 못채게 주의하여 사랑했다. 몇달전의 추운 겨울속에 설도 함께 쇠고 창백한 달이 비추던 칡벼랑늪의 얼음우와 막의 구들에서 포옹도 했건만 그 정도 더 깊지 못했다. 남들의 눈이 무서워 몇번 만날 기회마저 주어지지 못하고만 우리 사이였던것이다… 우린 더는 참을수 없어했다. 사랑이 극도에 처하면 남들이 어떻게 보는것도 모른다.  후영의 달은 밝았다. 어둠이 깃들면 난 《고기그물 보러》하고 막을 나섰고 계복이는 《남새 다듬으러》 하고 나선다. 우린 칡벼랑늪가에 이르면 말 한마디 없이 한몸이 되여 뒹굴었다. 번개식련애를 하고 막에 나타나야 했던것이다. 그런데도 들통이 났다.  막의 로농들은 《나쁜집 애라도 얼마나 착하고 재간있수. 갸들이 좋아하게 모른척하라구.》 너도 나도 감싸주던 일은 죽을 때까지도 잊을것 같지 않다. 로농들은 너희 둘이서 실컷 사랑을 하라며 웃 생산대막으로 막을 비우고 놀러 갔다가 한밤중에야 왔고 터줏대감령감은 나를 불러서 엄숙하게 《암만 봐두 녀자측 부모들이 동의할것 같지 않으니 애를 배게 하려마. 그럼 별수 없이  음흠.》 하며 방법까지 대주었다. 결국 우린 서로 이 악물고 노력을 했다. 그러나 여름은 빨리도 흘러 계복이는 호랑이 같은 아버지한테 불려 마을로 돌아갔다.  마을로 돌아가서 비밀이 탄로났다. 계복이 아버지의 부름따라 마을 민병련에서 나를 감금하였다. 생산대의 반공실 헛간을 한칸 내여 나를 가둔것이다. 하루 세끼를 녀동생이 밥을 날랐다. 창살이 박힌 구멍새로 들이밀어주었다.  밤이면 전등도 없이 캄캄한데서 보냈고 낮이면 민병들과 함께 부업을 가 남포에 불을 다는 위험한 일을 해야 했다. 민병들이 수군거렸다.  ―문화대혁명이 끝난지 언젠데 뭐 아직도 사람을 못살게 굴다니. ―저 민병련장새끼가 그 계복이를 탐해서 이러는거 맞지. 우리 한반에 다니던 동창들이 가만히 위안해주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때론 내가 불을 단 남포에 맞아서 죽고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계복이와의 사랑을 생각할 때면 힘이 솟군 했다.  기적이 발생될줄이야. 감금된지 사흗날밤에 똑똑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안의 빗장을 빼고 널문을 여니 계복이였다. 계복이가 나에게 쇠를 써는 톱을 들이밀었다. 나는 아주 잠간새에 구석쪽으로 쇠창살을 하나 썰어냈다. 밑둥만 썬 창살을 슬쩍 벌리니 계복이가 기여들어올수 있었다. 우린 또다시 열렬했다. 매일 밤중마다 한몸으로 타올랐다. 긴 가을이 다 갈 때까지 계복이는 애가 들어설줄 몰랐다. 초겨울에 난 된감기에 걸리게 되면서 풀려서 집에 오게 되였다. 엄동속에서도 우리의 사랑은 후영의 구들처럼 뜨거웠다. 계복이는 그 무슨 핑게를 대서든 잠간씩 내게로 왔다가군 그랬다.  세월은 나와 계복이를 놓고 양공질을 하는것일가. 계복이 집에서 계복이와 마을 민병련장의 혼사를 억지로 결정하고 혼사날까지 잡을 무렵, 그러니까 문화대혁명이 끝난지도 2년이나 되던 1977년 10월의 어느날, 나의 아버지의 《우파분자》, 《부농분자》 등 억울한 루명이 뒤늦게야 현위에 의해 벗겨진것이다. 기쁨은 겹쳐서 들어왔다. 현교육국에서 사람이 내려와 정책락실로 나를 향중심소학 교원으로 자리를 준것이였다. 비록 정식교원이 아니고 림시 월급을 받는 대과교원이지만 그건 실로 내가 꿈도 못꾼 일이였다.  인간이란 그런가보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변한다더니 소학교엔 후영의 칡벼랑늪에 가물치처럼이나 탐스런 처녀교원들이 많았다. 지나온 사랑에 지치고 맥을 잃었던지 내가 깜빡깜빡 계복이를 잊고있을 때 거의 달포나 보지 못한 계복이가 내앞에 불쑥 나타났다.  계복이는 노을빛 블라우스에 수박색 미니치마를 받쳐입었고 왼쪽 가슴에다 반짝이는 만년필을 꽂았다. 그는 자기도 마을 소학교 민반교원으로 사업하고있다고 자랑하고나서 아버지가 그러는데 너희 둘다 교원이니 약혼에 동의한다고, 그러나 요구조건이 있는데 꼭 올 가을안으로 결혼을 해야 된다는것이였다. 거기다가 계복이가 자긴 아마 자꾸 토악질이 생기는걸 보아 임신한것 같다고 암시를 주는게 아닌가. 우린 그렇게 그해 겨울에 결혼을 하였다. 결혼후 안해는 오상중등사범학교 함수를, 나는 연변대학 조문학부 함수를 하면서 교원사업을 하느라 정열을 불태웠다. 그런 눈코뜰사이 없이 바쁜가운데서도 젤 재미나는 일은 휴가일에 계복이가 나따라 후영으로 칡벼랑늪의 가물치를 잡으러 갈 때다. 시커멓게 치렁치렁한 깊은 그 늪으로 그 누구도 못들어간다. 유독 헤염재간이 좋은 나만이 들어갈 엄두를 낸다. 반두를 쥐고 벼랑굽을 더듬거리면 요동치는 가물치가 풀떡풀떡 걸려나온다. 안해는 내가 던진 가물치를 받아 다래끼에 넣을 때마다 흥분하여 산이 떠나가게 소릴 지르군 한다. 그 소리가 얼마나 은은하든지 나는 내내 온몸에 기운이 배군 했었다… 안해의 그 은은한 목소리가 자꾸 부른다. 나는 밤속을 휘청거리고 걸었다. 이틀이나 굶은 몸이 무슨 맥으로 20여리를 걸어낼가. 굵직한 몽둥이를 지팽이로 찍으며 자꾸 발작을 내여디딘다. 강도 어떻게 건넜던지 모른다. 강물에 달이 기웃거렸다. 오래만에 배줄을 당긴다는 느낌도 없이 당겨 건넜던거였다.  강을 건너고부터는 어림짐작으로 첩첩한 산을 따라 굽이굽이 휘둘러간 철길을 따라 내려갔다.  얼마나 긴 시간을 걸었을가. 드디여 맘속의 그 섬으로 굽어드는 표적, 왕릉 같이나 솟은 소산이 눈에 띄였다. 하마트면 알아보지 못할번했다. 철길역이기에 기어이 알아본것이리라. 순간 얼마나 흥분을 했던지 모른다.  그러나 너무 오래 인적이 닿지 않은 섬은 전혀 알아볼수 없게 변해있었다. 관목숲이 꽉 우거진 섬은, 아니 인간들에 의해 버림받은 섬은 너무나 잔혹하게 혹독하게 모습을 달리하고있었으며 그런 악렬한 환경으로 나의 앞길을 막고있었다. 거기다가 얼핏 들어도 귀에 익은 적현사와 은화사 그리고 늘매기 같은 독뱀들의 울음소리들이였다. 위험은 도처에 은페해있었다. 칡벼랑늪을 찾아가는 길이란 근본 존재하지 않고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사위가 코앞도 알아보지 못하게 캄캄해진것이였다. 쭉 머리끝까지 공포증이 엄습했고 목덜미에 찬기운이 돌았다. 그리고 전신에 닭살이 돋아있었다. 수백마리의 독사들이 내 아래다리로부터 기여오르고 늑대들이 시퍼런 불덩이를 뚝뚝 흘리며 날카론 이발을 드러내고 내 뒤덜미를 덮쳐오는것  같았다. 그저 이렇게 죽고싶지 않다는 생각, 오직 그 한 생각으로 난 악이 되받치고있었다. ―계복아아, 나 왔단 말야아… 어떻게 그 소리가 산악을 메아리로 들렸는지 몰랐다.  삽시간에 온 후영의 관목숲에서 울어대던 뱀의 울음소리와 잡음이 뚝 멎고 삼라만상이 고요하였고 구름을 헤치고 나온 달이 금황빛으로 은실은실 쏟아져내리는것이였다.  분명히 내앞으로 길이 열리는것  같았다. 아니, 령혼의 안내였을거였다. 나는 죽음직전의 유령의 착한 작간일거라는 깨달음을 가지며 더욱 떳떳하고있었던것 같다.  바루 저기로 꿰지르자. 방향은 명확했으나 잡풀과 관목이 어우러져 꽉 막아나선데다 발목을 넘는 물과 아마 논을 풀었던 자리라 흙두렁이 때아니게 발목을 걸어넘기는바람에 넘어지고 또 걸렸다. 거기다 뱀이나 짐승때문에 한보를 내걸으면 몽둥이로 둘레를 두드리고 해야 했다.  ―마지막 고통의 몸부림이다. 이제 곧 정신적아픔과 육체적아픔이 없는 계복의 령혼이 누워 기다리는 천국의 따스한 구들로 나가리니… 그런 중얼임이 끊임없이 내 입에서 나가주고있었다.  나는 기진맥진했다. 십여메터를 나가는데 십여분씩도 더 걸리는것 같았다. 사람이 움직이는게 아니고 주검이 무엇에 의해 흔들리는것이라고 하는게 적절할것이다.  창공에 달은 창백했다. 후영에서 고생하는 아들의 여윈 어깨를 붙잡고 통곡을 하던 어머니의 핼쑥한 얼굴처럼 창백했다.  ―어머니, 천국에 가면 어머니도 뵐수 있잖습니까. 그런 중얼임으로 어머니 령전에 용서를 비는 찰나, 시야로 번들거리는 뭣이 날아들었다. 은실은실 쏟아지는 달빛아래 그것은 한폭의 수채화 같았다. 침엽림 활엽림을 들쓴 칡벼랑이 날카롭게 솟고 그아래로 롱구장만큼한 치렁치렁한 늪이 극히 원시적형체로 안겨든것이다.  나는 내 미칠듯한 흥분을 안다. 이승에서의 안해 잃은 삶이 정녕 그 얼마만큼한 고역인지를. 지옥생애를 해탈하려는 내 목적지, 칡벼랑 늪이기에… 나는 극구 내 흥분을 진정시키며 늪가 억새풀우로 몸을 던졌다. 달이 내려다보고 닭모이를 뿌린듯 금황빛의 옥수수알 같은 별들이 반짝거린다. 바람은 살랑살랑 내 볼을 어루쓸고 잠들었던 풀벌레들은 일제히 카톨릭노래런듯 간단히 연주를 끝내곤 잠잠한다.  늑대무리대신 사람냄새를 맡은 북대황 말모기들이 아귀아귀 접어들어 피를 빤다. 그것들은 저고리에까지 침을 박고 흡혈을 하는 판이다. 스르륵 뱀 한마리가 내 목을 타고 넘어간다. 전문 육식을 한다는 들쥐 한마리가 찍찍 하고 동료들을 불러 여러마리의 큰 쥐들이 내 육체를 에워싸고 파란 눈알을 반짝인다. 어데선가 우어우어 하고 늑대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승은 인간사이의 모순과 리기를 위한 비렬한 삶때문에 약자는 토혈을 할 신음에 젖어야만 하는데 그치는게 아니라 병마와 짐승들까지 시시각각 생명을 노리것이니… 나는 한시급히 이승을 떠나리라 한것이다.  기운이 좀 들었던가 나는 내 몸을 꿈질거리고 벌벌 기였으며 지팽이를 짚고 일어서서 마지막으로 이승의 주위를 눈박아 살피고 헉 긴숨을 들이켰다.  나는 지팽이를 버리고 나무사이에 몸을 의지하여 한나무 두나무를 잡고서 칡벼랑을 톺아올랐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그제날 계복이와 둘이서 가지런히 앉으면 생산대 탈곡장의 벼짚가리우 같던, 뛰여내려도 푹신한 북데기우라 위태로울것도 없던… 내 어깨에 다소곳 플라스틱머리댕기 맨 처녀 머리가 기대인 처녀총각이 달빛으로 아래 늪 수 면우로 거울 같은 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가을은 밤이 길었다.  드디여 나는 그 찍어낸듯한 벼랑길로 그우에 서있었다. 아래로 늪이 달을 잉태해있었다. 물속의 달은 계복이로 변해 웃고 손젓는다. 육체는 어디다 두고 령혼인가 유령인가 이 늪에 와있다고, 나를 기다린다고, 이승의 못된 인간들에게 껍질인 육체만 남겨두고 우리 둘의 넋은 천국으로 날아오른다고 나는 나의 정신으로 굳게 믿고있었다.  나는 인간세상에 대한 그 어떤 미련도 련민도 없었다. 고통과 아픔과 죄악만이 찬 세상이니  말이다. 시선이 가 머문 자리, 늪속의 대야 같은 달속엔 리혼도 배반도 사기도 기다림도 없는 곳이였다… 나는 안깐힘을 써서 뛰여내렸다. 풍, 쏴륵 하는 청각의 맞힘소리와 함께 코끝이 아려나면서 내 정신은 날고있었다. 죽는구나 아니, 안해가 힘껏 끌어당기는구나. 드디여 안해의 령혼과 융합이 되누나 그런 바늘끼 같은 생각이 곧 죽음의 짧은 과정임을 깨닫지 못하며 나는 죽었던것이다.  11. 조개와 가물치 독자들은 내 이 글을 보면 소설 같은 과장이라거나 거짓이라고 웃을지도 모른다. 룡궁에서 자라를 타고 간 가지러 륙지에 나왔다는 《토끼전》의 한 대목을 읽고 표절한게나 아닌가고 손가락질을 할것이다.  분명히 난 익사했을텐데, 그리고 왜 안해는 그림자도 뵈지 않는가. 이건 아름답기 그지없을 천당이 분명할텐데 왜 이리 아프고 춥고 비린냄새만 찼을가. 그런 불평과 의혹으로 아마 정신이 들었을것이다.  의식이 회복됨에 따라 나는 발부위가 심하게 아파남을 느꼈다. 그런 아픔이 완전히 정신이 들게 했을 때 나는 늪가에 머리를 처박고 물에 잠겨있었는데 코끝에 물이 일렁거리고있었다. 원래 나는 뭔가 커다란것을 안고있었다. 아, 난 죽지 않았구나. 천국의 문지기가 날 접수하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아니, 그게 아니라고 깨닫고있었다. 안해의 령혼이 없기에 난 천국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게 분명했다.  내 발부위가 심하게 아파나고있었다. 이건 뭣이 날카론 이발로 물어뜯는 과정이였다. 나는 둔덕에 기여나오고저 버둥거렸다. 풀을 잡고 몸이 둔덕에 오를 때에야 나는 원래 나를 물에 둥둥 뜨게 한 커다랗게 안긴것이 조개였음을 알아보았다. 작은 가마뚜껑만큼한 조개였다.  조개는 물속을 헤염친다. 일단은 밑바닥의 모래나 흙속을 파고들어 보이지 않다가 먹어야 할 시간이 오면 돌덩이가 튕기듯 쑥 솟아올라와 단단히 닫혔던 동근 껍질을 벌려 부유하는 생물이나 걸려든 물고기를 집어서 소화시켜버린다.  조개는 한마리의 가물치를 단단히 집고있었는데 반근은 실히 될 가물치의 몸통부위까지 삼키고있었다.  그런 가마뚜껑 같이 큰 조개를 내가 타고있다니 이건 아무래도 신기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간밤 내가 뛰여내린 자리는 늪중 깊이를 알수 없는 깊은 수중인데 어쩜 내가 이곳 둔덕까지 조개를 타고 나온것일가… 아니, 이건 뭐야, 또 무엇이 내 발을 갉아먹는다. 나는 둔억에 안깐힘을 써서 기여오르며 발을 들었다. 에크, 이게 뭐야. 날카론 톱이로 물고 놓지 않는건 뱀무늬처럼 생긴 한뼘이나 되는 가물치였던것이다. 가물치란 놈은 메사구보다 더한 놈이다. 육식을 하고 산다. 작은 고기, 썩은 짐승의 고기, 좌우간 고기면 다 먹고 사는 놈이다.  내 발바닥의 살점은 보기 흉하게 뜯어먹히운채로였다. 피가 흘러내려서 뚝뚝 떨어졌다. 다시 보니 내 턱주가리와 손등, 팔도 살점이 군데군데 허비우고 뜯겨서 피가 흥건히 내배고있었다. 대체 내가 죽지 않고 둔치까지 나와 숨이 붙어있은게 조개가 나를 태워서 나온것인지 가물치들이 내 살점을 뜯어먹느라 물어당겨서 나온것인지 알턱이 없었다.  늪은 고즈넉했다. 그리고 수면은 검푸렀다. 아름다운 늪이였다. 계복이와 사랑했던 늪이였다. 오매에도 잊지 못할 곳이여서 죽으면 계복이가 있을 천국에로 가 살수 있다고 늘 느끼고 느끼다가 드디여 찾은 사랑늪이 아니던가. 아, 그런데 사랑늪속의 가물치들이 산채로 내 살을 뜯고 베여먹다니… 언녕 마귀늪이 된지 오래구나. 가물치에게 뜯기운 군데군데 상처들이 소금을 뿌린듯 콕콕 쏘고 아팠다, 벌써 진물이 나고 고름이 흐르는듯 누우런 부패막이 씌우기 시작을 한다. 이가 갈렸다. 이를 옥물었다.  그 아픔이 내던져져 익사에 성공못한 의혹서린 정신과 더불어 점점 내 오랜 공상과 착각을 쫓고 씻어내고있으면서 리지를 되찾고있는거였다… 무엇이 나를 이 꼴로 만들었는가? 정신이다. 내 정신의 비관실망과 타락이 내 육체를 죽음에로 내몬게 아니란 말인가… 그래, 살아야 한다. 암이라도 랑만적으로 살아냈다던 기적적인 인간들이 많다던데, 살수 있는데까지 살아서 아니, 이 악물고 노래하고 춤 추면서 살아낼 때, 그 쓰고 고통스런 삶은 내 정신상 보람되고 영웅스런 자호로 될것이 아닌가. 《니 아비는 암에 걸려서도 내게 한마디 알려주지 않았고 또 이 꼴이라도 악으로 버티고 산다…》 로부터 아들에게 끈질긴 의력의 유전성을 확보시켜주어야겠다고 깨닫는 순간에는 기운이 흘러듦을 느꼈다.  뭐든지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둔치에 꺼꾸로 엎뎌서 막 사라지려 하는 조개를 붙잡았다. 작은 쇠가마를 들어올리는것만큼 무거워났다. 희귀하였다. 사발만큼한 조개가 있다던데 가마만큼한 조개를 잡다니 이게 그래 개혁개방이 되여 고향을 떠난지 오랜 농민들이 보고퍼 오랜 시간을 자란… 원시세계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조개껍질을 벌리고 빼낸 가물치를 쥐여들었다. 손톱으로 껍질을 찢어발기고 새하얀 속살을 생것채로 씹어먹었다. 씹으면서 자꾸 울었다. 생명을 너무 소홀히 대한 단순하고 무지한 어제를 생각해 울었다. 이제 살아가야 할 일을 생각해 울었다… 배신을 당하고도 련민을 하고 더러운 사랑을 수호하고 어제의 내가 아니고 더러운 년을 저주하기 위해 하루라도 더 버티고 살아야 한다는 리념에 감동하며 울었다.  가물치대가리와 지느러미를 떼던지고 다 먹어버리고 누웠다. 누워서 이른아침의 하늘을 보았다. 새들이 우짖고 풀벌레들이 극성스레 울어옜다. 나는 정신이 들고 맥이 남을 느꼈다. 나는 묵직한 돌멩이를 주어들고 힘껏 큰 조개껍질을 깼다. 붉고 누르무레한 색갈의 조개속살이 나왔다. 물씬 비린내가 풍겼다. 속에는 거마리들이 우글댔다. 그 거마리들을 주어내고나서 날이 선 돌쪼각으로 조개속살을 베여내서 입안에 넣고 씹었다. 질겼고 비렸다. 꿀꺽 넘기고마는게 나을상싶어서 그냥 넘겼다. 울컥 토악질이 나오면 목구멍으로부터 밀려나온 조개고기를 다시 넘겼다.   작은 가마만큼한 큰 조개였지만 속살은 한공기도 차지 않았다. 나는 그걸 끝내 다 넘겨버렸다.   조개껍질이 해살에 비취색으로 번뜩거리는걸 바라보며 《나는 악한 인간이야. 이제부턴!》 그런 생각이 들었고 웃음이 나가고있었다. 참으로 너무 오래만에 웃어보는 웃음이였다.  12. 내 삶을 낚다 나는 너무 오래동안 나를 잃었다. 단순하고 천진하고 무지하기까지 했던 내 정신을 믿은 결과로 인해 삶을 곡해해온것이였다.  이제 내 기억속의 아름다왔던 후영은 그늘로 어두웠다. 후영의 칡벼랑늪에는 내 사랑이 없다. 늪속에 잠긴 금황빛달이 천당이요, 계복이의 령혼이 머문 자리요… 하는것들은 허상이요, 정신질병이 일으킨 착각이였다. 늪에는 내 살점을 도려먹는 무서운 가물치들이 우글거린다.  나는 그 가물치들을 잡고저 했다. 가물치들을 돈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것이다. 한마리의 가물치를 잡을 때마다 안해가 가족과 사랑을 어쩜 그리 쉽게도 배반할수 있는데 대한 복수의 과정으로 페허된 내 마음터에 조금씩조금씩 안위와 복구의 영양토를 펴가리라 한것이다. 그런데 생각처럼 가물치가 잡히겠는지 그런 근심도 없잖았다.  젊어서 원체 《물고기박사》란 별명까지 달고다녔던 나지만 너무 오래 자연과 거리를 멀리한때문에 그런 재간이 있는건지 의심할 지경이였고 있더라도 자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 단 한마리라도 잡자. 나의 악을 기르고 그 년을 저주하는 표징으로서 자신을 고무하리라! 가물치, 가물치는 귀한 고기다. 옛말에 정승이 먹는 고기라 했으니 가히 《귀족물고기》겠음을 알수 있다. 주둥이가 뾰죽하고 날카론 톱이발이며 몸뚱이는 둥글다. 육식을 하기에 요동을 치면 그 힘이 대단하다.  나는 아침에 점심밥을 준비했고 낚시대와 초롱그물을 들었다. 헛간에 오래동안 묵어있었더라도 잘 보관했기에 쓸만했다. 그리고 작은 알루미늄가마도 하나 넣었다.  젊었을적에는 20리길을 한시간 반이면 족히 걸어냈으나 이제는 그 배로 시간이 들었다.  단 한마리라도 낚을수가 있을가. 그러나 뜻밖이였다. 낚시에 풀메뚜기를 잡아 꿰여 뿌리니 냉큼 동동이가 물속에 쑥 끌려들어간다. 잡아당기니 낚시대초리가 활등처럼 휘면서 끊어질듯한다. 얼려서 겨우 끌어내보니 근반이나 갈 싯누런 가물치였다.  세상에 젤 낚기 힘든 물고기가 가물치라던 말이 떠오르며 고개가 저어진다. 약아빠지고 밤새 개구리 지어 뱀까지 잡아먹어 배를 불린 놈이라 웬간해선 낚시찌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가물치가 이게 웬 일이란 말인가. 낚시찌를 보기 바쁘게 물다니, 생각해보니 모두 인간들때문이겠다. 가물치들이 오랜 세월 태고연한 원시림속에서 인간들의 흔적을 잊고 살다보니 멍청해진것일게고 낚시찌에서 인간냄새를 맡고 물어내는것일거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안해 잃고 불쌍한 사람의 삶을 돕기 위해 헌신을 하는것이나 아닐는지. 점심무렵을 넘기지 않았는데도 잠간새에 열댓근이나 실히 되게 낚았다. 비닐주머니속에서 그것들은 황금빛으로 풀떡거린다. 탐스런 놈들이였다. 오래동안 처음으로 기쁨이란걸 느껴보았다. 어쩔수 없이 안해생각이 났다. 계복이가 가물치를 다래끼에 주어담으며 내던 그 은은한 목소리가 맺혀온다. 그러나 단념해야 했다. 《나쁜 년!》 그랬다. 등걸불을 지피고 알루미늄냄비를 걸었다. 기름을 붓고 고추장을 좀 풀고 가물치국을 끓였다. 아, 맛있었다. 술생각이 났으나 참았다. 이제 술이란 저녁이나 아침에 속이 아플 때나 냄새가 날카로울 때에만 조금씩 마셔서 아픔을 마취시키리라 다진것인데. 가물치 열댓근도 얼마나 무겁던지. 땀이 그칠줄 모르고 흘러내린다. 이 가물치를 한근에 5원씩 사는 사람이 있을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비척비척 걸어서 거의 해질녁에야 동네가 보이는 간이역에 닿았다. 혹시나 해서 간이역 플래트홈에서 서성거리는 한족에게 가물치를 내보이며 사겠는가 물었다.  ―한근에 10원씩 줄터이니 아니, 그저 백오십원에 다 넘기우고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시장을 다 돌아도 가물치란 볼수 없단다. 초식어인 잉어나 붕어, 초어따위들은 흔하지만 육식을 하고 크는 물고기는 유독 메사구밖에 볼수 없다고 그랬다. 특히 초식어보다 육식어의 고기가 더 구수하고 영양가가 높다는데에 눈길을 모을수도 있겠지만 육식어인 메사구, 가물치고기는 사람의 혈액을 맑게 하고 항암작용을 논다는데서 초식어보다 육식어의 값이 껑충 뛰여오를거라고 그랬다. 그러니 보구 죽자 해도 없던 희귀한 가물치를 한근에 12원씩인 메사구값보다도 눅게 주었으니 나는 몰라도 한참은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몰랐던것이다.  그날, 돈 백오십원을 받고 나는 내가 간암환자라는것도 잊고서 흥분을 했다. 걸음걸이도 씨엉씨엉이였다. 안해를 잃고 얼마나 긴 시일을 술과 동무해 살아왔던가.  요란하게 화장만 추구하는 녀자일수록 사랑의 버림과 가깝고 술만 죽여내는 남자일수록 저승과의 거리가 가깝다.  나는 그 점을 잘 알고있었으므로 이 악물고 비관을 멀리하려 애썼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였지만. 그 어려운 억제와 견제의 과정에 억울하고 원망스럽고 후회하는 돌이킴앞에 가슴 찢어지게 하는 슬픔을 못이겨할  때가 가끔이군 했다. 내 인생이란 이게 뭐냐. 안해의 배신을 당하고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고 암에 걸리고 걸인이 되여 물매를 맞고 손가락질을 받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느님은 나에게만 한벌 또 한벌의 족쇄를 채우는지… 그 최악의 경우에 처했더라도 난 어찌하여 살리라 한건지 나는 나를 끝내 감동하고 나를 이기리라 다진것이였다.  나는 매일 가물치를 낚았다. 간이역에서  전문 도매장사군이 날 기다려서 맞돈으로 넘겨받는다.  겨울이 다가올 때까지 나는 꼬빡 하루도 빠짐없이 후영으로 나다닌것이다.  첫눈이 내리던 그날, 나는 무심결에 거울을 보았다. 거울속에는 몹시 초췌하고 검누른 사내얼굴이 있었다. 문득 나는 내가 오랜 시일을 간암이란걸 잊고 지내온 나 자신이 간암확진이 내려서 지금껏 옹근 한해 반이나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왜 나는 죽지 않어? 칡벼랑늪에 투신자살도 안되고 억망으로 퍼넣는 술로도 간암이 폭팔되지 않고… 내 병은 참으로 질기다는걸 믿으면서 나는 먼 해남도에서 비용때문에 작년 음력설에도 못온 사랑하는 아들이 한없이 그리워나며 더운 눈물이 핑글 고였다.  나는 살얼음이 낀 철에도 벼랑늪가에 앉아 낚시로 의력을 길렀고 얼음이 꽝꽝 얼었어도 얼음에 구멍을 빼고 낚시찌를 넣었다.  어떤 날에 나는 많으면 열둬마리, 적으면 한두마리밖에 낚지 못했지만 그건 나의 전부의 삶의 방식이였다.  나는 매일 가물치를 먹었다. 마지막엔 의무적으로 먹었다. 가물치고기가 항암작용을 한다고 굳이 믿고있기에… 가물치는 《약》이였다. 못된 년으로 만들어진 약이였다.  나는 결국 내 부활을 낚고있었다. 13. 인생은 이런가 《죽음》이란 두자는 한시도 내 뇌리를 떠난적 없었다. 한달을 더 살수가 있을가, 어쩜 몇해를 더 살수 있을지도 모르지. 죽음이란 신신펀펀할 때 급작스레 찾아든다던데… 그런 생각과 함께 끊임없이 속이 아프고있었다. 별로 먹은것도 없이 디젤유나 쇠비린내 같은 냄새가 게트림으로 올리밀었고 간부위와 위 그리고 대장으로부터 홍문에 이르기까지 쓰리고 아리기도 했고 하루에 한번 꼴로 칼로 베듯 쭉 아파날 땐 정신이 까빡 잃어지고 눈앞이 캄캄해난다.  술은 이 악물고 마시지 않으려 했지만 혹간 밤중에 진통을 제거하느라 꿀꺽꿀꺽 마셨다. 그리고 인이 박힌 술은 자꾸 꿀물인듯 당긴다. 밥은 당겨서 먹는다는것보다 억지로 넘긴다고 해야 적절할것이다. 그저 몇숟갈이면 벌써 트림이 나오고 배가 불러진다.  나는 매일 새벽에 눈만 뜨면 력서를 마주한다. 또 하루를 살았다는 표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유일한 혈육인 아들과의 상봉의 날과 가까와지리란 표기이기도 했다. 이제 아들을 본다면 죽어도 뭐 한이 있을성싶잖다고 느껴도 보았다. 아들아, 코밑이 검실검실하니 수염도 나고 더욱 청년답겠지. 아들아, 이 아비는 단 너만 믿는다. 이 세상에서 단 너만이 이 아비를 생각하고 아파할것 아니냐. 이번 음력설엔 꼭 왔으면 하는데… 오직 너의 성공을 바랄뿐이다. 이번 음력설엔 제발 왔으면. 그저 그런 바램일뿐이구나… 밤마다 무당이 굿을 하듯 먼 해남도남쪽을 바라고 꺼꾸로 엎뎌서 두손을 합장하고 손을 부비고 또 부볐다.  나는 조금만 걸어도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고 사지가 나른해나며 눈앞에 별이 반짝이던 전과는 달리 몸이 많이 나아지고있다는 느낌이였다. 매일 20여리 후영을 갔다올수 있다는게 보통사람도 바쁜 노릇인데 말이다. 내가 정말 암환자일가, 왜 이럴가, 확실히 점심나절마다 늪가에서 끓여먹는 가물치고기때문일가. 그게 진짜로 항암역할을 하는 모양이라고 의심하고있었다. 그보다는 매일 몇십원씩 버는 돈에 정신이 분발된다는것, 그것은 확연한 일이였다.  그래, 살자! 나는 살아가고있는거야… 그러면서도 나는 그냥 죽음이 꿈뜰 찾아올 어느날인가를 무섭게 의식하고있었다, 역시 뼈만 앙상하고 얼굴색이 주검 같은 나의 꼴을 거울로 들여다보면서. 겨울은 깊어가고 폭설이 터지면서 나는 후영을 갈수 없게 되였다. 나의 주려마른 맥꼴로 어찌 혹독한 겨울을 헤칠수가 있으랴. 이제는 전화할 때마다 음력설무렵에 웬간하면 가리라던 아들의 말대로 아들만 기다리던 나였다.  나는 말려둔 가물치고기를 구워먹군 했고 가끔씩 메사구를 사서 탕을 끓여서 먹는걸 잊지 않았다. 항암에 기운이 있다고 믿어서였다. 나는 완강하게 살았다. 위가 쓰린지 창자가 잘리는지 간의 종양이 크느라고 그런지 몸통속이 마구 진통이 날 때는 술을 꿀럭꿀럭 들이키곤 그랬다.  아들은 내내 전화가 없었다. 그믐날밤까지 전화가 울리지 않았다. 밖에서는 눈만 소리없이 내려서 쌓이고있었다. 속이 진통이 시작되자 난 술을 마셨다. 술이 몸에 퍼지자 제발 오늘밤도 죽지 말자, 새날을 보리라. 그런 생각속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가. 잠결에 감은 눈까풀이 강렬한 빛발을 받으며 이마에 손길이 느껴지고있는것이였다. 꿈결이겠거니 가느스름히 눈을 뜨니 집안에 전등이 켜진게 아닌가. 그와 함께 자길 빤히 내려다보고있는것은 아들일거였다. 그래, 내 아들이 왔구나, 아들이… 그런데 다시 여겨보니 이건 안해, 계복이가 아닌가?!… 내가 이거 칡벼랑늪속 금황빛달궁에 들어선게 아닌가. 거기서 안해와 만난것이로구나. ―여보, 나… 나야요. 제가 왔어요, 여보… 그제날 안해의 그 은은한 목소리 그대로였고 분명히 집안을 울리고있었다. 난 내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아팠다. 생시였다. 정말 안해가 옳았다! 나는 화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나는 뒤로 비실비실 물러나면서 앞에 앉은 계복이를 뚫어지게 바라만보았다. 5년전의 그 계복이가 아니였다. 많이 겉늙었다. 람루한 의복차림새에 량어깨는 좁아지고 뼈골이 날카롭게 안겨온다. 얼굴은 누르끼했고 눈확과 관골이 두드러졌고 턱이 뾰죽했다.  ―당신, 계복이 옳아? ―나… 나야요, 미안해요… ―많이 못쓰게 됐구만. ―당신도 왜 이 지경이 됐나요? 흑흑… 안해는 죄송스러운 눈빛으로 울고있었다. 그런 안해의 육체와 눈빛과 눈물이 모든걸 다 말해오고있었다. 더 물을게 뭐란 말인가. 나는 안해를 힘없이 품에 끌어안았다. 내가 되려 여위였으나 단단할 안해의 품에 안기고있었다. 그리고 나는 쇼크했다.  안해가 내 인중을 눌러주어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고 꺽꺽거리다가 터뜨린 보물처럼 소울음을 퍼질렀다. 슬프고 슬픈 울음이였다. 울면서 넋두리로 물었다.  ―이제 또 떠날거야? ―떠나단요. 우리 서로 이렇게 안고 살거야요… 실로 꿈만  같았다. 안해의 뜻밖의 출현앞에 나는 거의 미칠듯한 흥분상태에 처해있었다. 할 말 못할 말을 가리지 못했고 슬픔과 분노와 기쁨을 주체할길 없어했다.  ―여보, 아무 말도 하지 마오, 돈을 못벌어가지고 왔대도 그게 뭐 대수요. 가장 근본은 우리 둘의 사랑이 변치 않은것이잖소. 상봉, 이 이상 또 뭐 바랄것 있단 말요. 그랬으나 안해는 한사코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이실직고하고있었다. 안해가 일본에 가서 뜻밖으로 맹장염에 걸려 입원치료비가 없어 죽음의 경각에 처해 길어구에 쓰러졌을 때 중년사내의 도움을 받아 살아났고 그 은혜로 《갇혀》 그의 안해질을 하는 막대한 대가를 치렀다는 솔직한 하소연은 끔찍스럽기도 했다…  그 사내는 일본인이였고 도박군이고 건달이였다. 그러니 나이가 사십을 바라보도록 장갈 못들고있던참인데 마침 다 죽어가는 곱살한 녀인을 구해주게 된거였고 굳이 안해로 《만든》것이였다. 달아나지 못하게 려권과 기타 출국서류를 앗아내여 주지 않았고 친척들까지 동원하여 감시였다. 사내는 물론 암펌 같은 시어미까지 한사코 임신을 시키기 위해 발광을 했단다. 피임약을 먹다가 들켜서 물매를 맞군 했는데 갈비뼈 두대가 나가고 코등의 뼈가 끊어도 졌으며 시어미와 시누이들한테 뜯기워 머리가 무더기로 빠지기도 했단다. 그래도 죽을 생각은 없었단다. 악을 쓰고 살았단다. 다행한 일은 애가 들어섰으나 술 먹은 사내의 발길질에 류산을 한거였고 그담엔 더는 임신을 할수 없은거란다. 5년 3개월하고 열이레란 긴 시일을 두고 한시도 남편과 아들과 고향을 잊어본적이 없단다… 끝내 려권과 출국서류를 찾아냈고 탈출에 성공한것이란다. 《내가 당신을 이 지경으루 만들었군요, 내가…》 그러며 안해는 목놓아 울었다.  ―이건 하늘의 뜻이요. 하늘이 나를 고험한거라구. 우리 사랑을 고험한거라구… 어쩜 난 암이 아니라두 다른 사고로 일찍 죽었을런지두 모르지. 당신이 일본에 나갔고 그런 《배반》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살아있은건지두 모르잖어. 난 이겼소. 당신이 날 사랑하는 그 마음때문에 이겼구 석달을 못넘긴다는 간암에 항거하여 여적 살아온거 아니겠소. 난 행복하오. 여보, 인생이란… ―불행이든 행복이든 지어 죽음과 환생까지도 전혀 뜻밖으로 되여있는게 인생이지요. 어리광대극 같지요. 정말 인생이란 그런것일가요… ―그런것일망정 우린 우리 사랑을 흐트러짐 없이 지켜낸것이잖소. 금전에도 천당에도 유혹되지 않는 사랑은 얼마나 보귀한것이오. 더우기 지금 세월에 말이오… 한희와 비애가 차넘치던, 안해가 집에 들어선 그날은 2005년 양력 4월 20일의 한밤중이였다.  14. 보내야 할 땅 그렇게 가지 말라고 말렸던 일본땅엘 안해는 갔었고 가서 생명을 잃을번하고 벗어나지 못해 발버둥질 친 《생지옥살이》를 면치 못한것이였다.  그것이 죄의식으로 되여 안해는 내내 죄송스러워했고 눈물지었다.  안해는 그간 몇번이나 나를 끌고 병원으로 가 암인지를 재확진하고저 했으나 번마다 나의 굳은 고집앞에 손을 들고말았다. 간암이겠지, 아니 죽을 때가 되면 죽겠지. 검사한다고 암이 나을가. 그보다는 암도 나의 강인한 삶앞에 손을 들고만거야! 가 아집으로 깊이 배긴때문이였다.  간암!! 나는 간암환자― 2년이 가깝도록 나는 왜 죽지 않고있을가? … 나는 구경 언제 죽는가?… 아, 무섭다. 《병원》이란 두글자가 젤 무섭다. 젤 추악하고 젤 저주스럽다. 그건 염라왕이나 다를바없게 나를 몸서리치게 한다… 의사놈들은 구경 의사인지 백정인지 알바없게 나를 혼동시키고있다. 한번은 감기에 걸려 주사를 맞았는데 주사를 맞고 집에 와 앉은것이 쿡 하고 엉덩이에 못이 박혀서 튕겨일어나 보니 그때까지 내 엉뎅이에 주사바늘이 꽂혀있은채로였던것이다. 의사란 놈은 아마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시각까지 밤에 흘레붙는다거나 술 처먹을 생각만 골똘했을가. 곁집의 아줌마는 맹장수술을 한지 이태동안을 배안에다 가위를 넣고 다녔는데 의사는 왜 가위도 꺼내지 않은채 배를 꿰맸을가. 사람들은 그런다. 건장한 사람도 병원엘 들어서면 병자가 된다고… 위암이 더 붓지 않으면 이 여윈 놈이 당뇨병이나 고혈압환자가 될지도 모를것이며 이제 석달을 못넘긴다는 사형판결을 받을것이 불보듯할게 아니란  말인가… 아아, 닭살이 돋고 뒤덜미에 찬기운이 인다. 으스스 떨린다.   그래, 아는것보다 모르는게 낫지. 녀인은 의심하지 말고 믿고 데리고 살아야 행복하듯이 암이란 놈은 모르고 사는게 도리여 편할것이라고… 아프다, 또 아파난다. 위속에 지푸라기가 쌓이고 가시방망이가 들어있는 느낌이다. 밥도 조금씩 하루에 열서너끼로 나누어 먹건만 왜 소화되지 않고 구토하고 설사를 하는건지… 간이 작용을 못노니 위액이 마를것이고 위벽이 염증을 일으킬거였다. 한번씩 아픔에 입술을 악물고 땀벌창이 될 때면 안해는 그저 내 머리를 붙안고 흐느낌을 먹는다.  안해의 고통은 더 이를데 없었다. 남편의 《사형선고》만 해도 앞이 막막한데 일본에 나갈 때 꾼 10만원이 20만원으로 불어 빚독촉이 심했고 그러니 친척간이 원쑤간으로 번지고있는 판국이였으니 그저 죽지 못해 사는 꼴이였다. 직업도 띄우고 《사형선고》를 당하고 주위 사람들을 원쑤로 만들고… 어느날 나는 오래동안을 두고 고민해오던 말을 안해앞에 했다.  ―여보, 당신이 아까와서 차마 말 못꺼냈소만 이대루야 살순 없잖겠소. 밤낮 랭수 한사발 떠다놓고 귀신한테 빈다구 죽을놈이 안죽을수도 없는거구. 은행대부금을 내여 한국엘 나가 버는게 어떠하오… 불은 불로 끄구 독은 독으로 치랬다구 빚도 빚을 더 지는 방법으로 더 큰 돈을 버는 길을 열어야지… ―사신이 시시각각 당신을 위협하는  때에 내가 당신 놔두고 어찌 떠날수 있겠어요. 나때문에 당신 그런 몹쑬 병을 얻은건데 이제 또 어찌…흑흑. 안해는 내 목을 끌어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아니요. 남편을 살리기 위하여, 빚을 갚고 우리 자식을 류학보내기 위하여 한국엘 나가는게 아니겠소. 나는 아마 당신을 기다리느라 더 아득바득 살수 있을것이오… 안해는 그렇게 한국으로 떠나게 된것이였다. 출국비자는 희망이였다.  ―한국엘 가면 일본에서보다 한결 안심하고 돈 벌수 있을거야요. 말이 안통하는 일본에선 걸음마다 걸채이고 넘어져 코를 깼다면 한국에선 걸음마다 기운이 날걸요, 날따라 해외나들이 시책이 좋아진다는 고국이잖아요. 이번에는… 이번에야… 그날 밤 안해는 출국비자를 안고서 아기처럼 기쁨에 겨워 울었다.  안해는 귀가 반년만에 다시 집을 떠나게 되였다. 나는 몸이 말째여서 연길공항까지 배웅할수 없었다. 그저 집문앞에서 배웅으로 앙상한 손짓만 했을뿐이였고 안해가 보이지 않을 때부터 눈물만 좔좔 흘렸을뿐이였다. 안해도 소리내여 울면서 갔을것이고… 동경을 해탈하고 서울행에 오르는 안해를 바라는 내 마른 육체는 해질녁까지 추풍에 나붓기고있었다… 죽을 때까지 이 악물고 분투해야 하는게 인간의 종지가 아니랴. 그런 종지는 또 변함없는 사랑이라야 싱싱한 생명력을 갖고있는거고… 돈은 죽음을 관리하는 가장 문명화된 도구다! 사랑은 죽음을 이겨내는 영원한 주제이다!!… 정녕 지금 세월에 변함없는 사랑이란 그 얼마나 보귀한지… 2007년8월18일 ( 2007년 11월호) 
1    [중편소설] 정신무진(1) 댓글:  조회:2432  추천:62  2007-12-21
[중편소섫] 정신무진 량춘식 ―동경을 해탈하고 서울행에 오르는 안해를 바라는 내 마른 육체는 해질녘까지 추풍에 나붓기고있었다.   1. 구 들      ―구들은 예술이야요. 안해가 하던 말, 그 말을 난 잊을수 없어한다. 죽음이 닥쳐 이발로 밸을 물어 끊는 아픔의 시각에마저 기억할것이며 죽어서도 천수경처럼 읊조려갈것이다.  어떻게 그런 말이 다 나왔을가, 공부가 통 머리에 들어가지 않아 16세 어린 나이에 생산대에 나와 일했다는 그녀의 입에서 《구들은 예술이야요》 그런 말이. 또 나는 여적 안해의 그 말을 잊지 못해하는것일가. 그 말을 하던 때가 언젠데, 하긴 오랜 세월이 흘러갔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난 안해를 내놓곤 이 세상 어떤 녀인도 사랑할수가 없음을 믿는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인간이기에 그때, 먼 앞날 안해가 날 버릴수도 있을거라는 신화 같은 예측을 해본적이 없었다. 설령 그런 비극이 온다손쳐도 난 내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안해만을 기다리며 살리라고… 그 암흑한 세월에 10년을 녀자애들과 말 한마디 나누어보지 못하고 살아온 《인간온역》이던 나에게 감히 말을 건네고 웃음을 짓고 사랑까지 한 그녀를… 1975년, 중국의 《암흑》(문화대혁명)이 장장 10년만에 결속이 되던 해였다. 여름은 지글지글 끓었다. 나는 그냥 삶이 고독하고 허기찼다. 해방전(1947년)에 교육사업에 참가한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동냥온 거러지가 한 성씨(안동김씨)라는데에 동정이 가 한해를 밥 주고 재우며 돌봤다는것을 조건으로 성분을 부농이라 매김받았고 그 미열로 인해 《부농분자》,《반당반사회분자》로 된때문이였다. 그러니 그 억울한 루명을 벗기전에 나는 언제든지 《나쁜》집안의 자식이였다.  그 지루하고 긴 턴넬속 같던 나날에 아버지는 억울히 억눌렸고, 어느해는 보수 없이 애들을 글 배워주고 밤엔 투쟁을 받았고… 그런 무거운 공포의 벽속에 갇혀 나는 10살부터 19살까지를 맞고 왕따당한게 아닌가.            나는 그런, 몹시 힘든 길을 가는 애였다. 정신이 한껏 고갈되고 육체마저 비쩍 말라 뼈만 앙상했다.  ―야, 너 이불짐을 싸고 랠 아침 후영으로 일하러 가라. 생산대장의 부름이였다.  평범치 않은 1975년, 그해 여름에 마을로 내려온 고중졸업생들을 통털어 귀향지식청년이라고 칭한다. 난 국가배급을 타먹던 집 애였으나 촌에 내려와 《로동개조》를 하기에 지식청년이란 이름을 달수가 없었다. 《지식청년》이란 《도시나 현성》을 상징하기에 《귀향지식청년》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닐수 없었다.  귀향지식청년들, 그 19살무리는 없었다. 이튿날 이불짐속에 책들을 꿍져넣은채 나만이 후영으로 가는 소수레에 오른것이였다. 곁에는 마을의 로농 몇이 담배대통만 풀썩풀썩 날리고. 난 중국에 4인무리가 꺼꾸러진 지금에도 의연히 문화대혁명에 의한 후유증으로 인해 왕따당하는구나를 소태처럼 씹어야 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후영은 마을에서 20리도 더 되게 떨어진 곳이다. 무너지듯한 산아래로 철길이 아낙년의 허리띠처럼 둘러가고 철길따라 백강이 흐르는데 백강이 ㅅ자형으로 갈라져서 가두어넣은 십여헥타르의 옥토가 바로 후영이란다.  백강이 깊어서 소와 수레를 함께 배에 실어서 건넸다. 배줄이 챙챙하고 울었다. 시커먼 물굽이가 하늘을 업고 몰려오고 몰려가며 당금이라도 배를 들어엎을듯 기세찼다. 나는 너무나 무서워 소꼬랭이를 꼭 틀어잡았다. 물에 빠지면 젤 믿을게 소였다. 무시로 뱀이 강물을 따라 헤여가고있는게 보였다. 그때마다 닭살이 돋았다.  점심은 허리에 처맨 벤도밥을 풀어서 수레우에서 먹었다. 너무 멀었다. 덜커덕거리는 수레때문에 밸이 아팠고 여윈 엉뎅이에 물집이 졌던지 아려서 수레에서 내려 걸었다.  산그늘이 들 무렵에야 목적지에 당도했다. 로농들을 따라 땅굴막으로 들어서기전에 허리띠를 잡고 숲을 찾았다. 잠간 헤쳤는데도 굉장히 아름다운 늪이 나타났다. 칡벼랑을 세우고 수면은 잉크빛으로 고요했다. 돌멩이 같은 조개도 살고 팔뚝만치 실한 가물치도 산다는 늪이 이 곳이란 말인가. 황홀했다. 잠간 취했다. 그러나 로농의 부름소리가 날 끌어가버렸다.  섬에는 땅굴막이 동서로 백보가량 사이두고 두개나 있었다. 1생산대와 2생산대의 막이였다.  썩은 나무토막으로 세운 구새만 아니라면 막인지 흙무지인지 분간키 어려웠다.  땅을 가슴깊이로 파고 지은 땅굴막에 들어서면 가운데를 봉당으로 구들이 량쪽으로 갈라져 놓였다. 연기가 나서 때시걱마다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불이 잘 들지 않다보니 눈물코물을 짜면서 먹는 밥이 맛있은적 없고 구들도 가마목을 내놓곤 랭돌이다. 그러니 후영으로 올라온 사람마다 얼마 있지 못하고 치질이 나오고 랭병으로 허리가 아파서 《페인》이 되여 되내려간다. 그나마 《정배살이》 외딴 섬이라 두부마저 먹을수 없어 때식마다 호박잎따위를 숭숭 썰어넣고 끓인 장국이나 호박채를 먹을뿐이다.  자는것과 먹는것이 말째고보면 만병이 찾아들기 마련이고 사는게 지긋지긋할것이다.  한여름이라 벼들이 소리치며 자라는 때여서 농군들은 나날이 증가되여 막안에 든 사람이 열댓이나 되였다.  나는 그저 굽석굽석 하라는 일만 했고 그런 와중엔 짬짬이 사람들 눈을 피해 외국어(일어), 한어로 된 소설책이며를 외우고 보는데 정신이 팔렸다. 그런통에 로농들의 잔소리가 늘 붙어다녔다. 일군들은 거개가 환갑을 바라보는 늙은이들이였고 유독 나 혼자 청년이였다. 난 패기라곤 없었다. 그들이 기면 나도 기고 그들이 누우면 나도 눕고 그들이 연기에 콜록거리면 나도 같이 콜록거렸다.  그러던 어느날, 내 가슴에 달이 떴다. 가슴이 설레여 숲을 찾아들어 자주 오줌을 누었다. 풀벌레들의 극성스런 울음이 반가왔다.  생산대장의 딸, 나보다 두살이 어린 리계복이였다.  우리 집 앞으로 고래등같은 집이 계복이네 집이였다. 이른아침에 고기그물로 비늘이 번뜩이는 붕어를 잡아들고 들어설 때와 가끔씩 문밖의 나무그늘에 앉아 외국어를 암송낼 때 그냥 바자틈으로 날 재미있게 내다보다가 내 눈길과 마주치고는 얼굴 붉히던 계집애였다. 걔가 언제 저렇게 탐스럽게 컸는지 참 모를 일이였다.  난 가정배경이 《나쁜 집 애》이기에 걔를 똑바로 볼 엄두를 못내고 말 한마디 나누어보지 못한 처지였다. 그런 계복이가 어떻게 되여 후영엘 다 올수 있단 말인가. 밥짓는 할멈을 도와 식모로 왔다고, 상등로력을 웃도는 12부씩 받으러 왔다고 그랬다. 그래 네 아비가 생산대장이니까 뒤문거래로 공수부자하러 온거구나. 그래도 그렇지, 이 험한 골이 밤에 전등도 없는 까막나라, 범과 늑대무리들이 소를 물어간다는 이 험한 골로 새파란 1등처녀가 환장할려고 온게란  말인가… 하여튼 계복이가 온 연유를 난 알 필요가 없었다.        이튿날, 난 일터에서 쉼참을 리용하여 막으로 달려왔다. 무더기로 쓸어나오는 연기에 계복이가 목을 꺾고 줄기침을 터뜨리는게 안쓰러웠던것이다.  난 가마를 들어내고 삽으로 부뚜막안을 두뼘정도 더 파고 놋돌고리를 낮추었다. 다음 구새목아래 개자리를 파헤쳤다. 이런 변이라고야. 구들지식이란 0점이였다. 연기는 의례 높은 곳으로 향한다. 연기가 평평한 구들곬을 흐르게 하는 흡인력을 가지게 하는데는 개자루가 반메터좌우 깊어져있어야 하는건데, 마치 주먹을 당겼다가 내미는 힘의 산생처럼 구들곬으로 흘러나온 연기가 갈앉았다가 구새로 쓸어나가는 힘의 산생을 말이다.  ―오빤 이거야. 계복이가 엄지를 내밀며 량볼에 보조개를 피웠다.  불은 훅훅. 소리를 내며 빨아당기고있다.  ―너의 공수를 오늘부터 1부씩 더 올린다.  막장 터줏령감이 공수책을 꺼내보이며 공포했다.  ―니 그 구들고치는 기술을랑 뉘기헌티 배웠노? 이잉? 난 대답할수가 없이 그저 머리만 떨구었다. 문화대혁명때 투쟁의 혹형에 못이겨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한 할아버지한테 보고 듣고 배운것임을 뉘 알랴… 앞의 농막에서도 날 《모시러》왔다. 나도 뜻밖이였다. 13세 소년때 보아 기억한것이 실효를 발휘할줄이야. 난 단통 《책벌거지》로부터 《구들박사》로 불렸다.  내가 어떻게 구들이 뜨겁게 불이 들도록 고쳐냈는지 모른다. 그때문에 계복이가 뜻밖으로 나를 잘 대해주고 말까지 걸어오군 하니 난 더 기운이 났다. 계복이가 때시걱마다 맛갈스런 음식을 만들게 늪에 나가 손더듬으로 굵은 가물치를 어렵잖게 잡아들였다. 이상도 했다. 로농들이 아무리 손을 넣어 더듬어도 다치지 않는것을 내 손이 버들뿌리속을 넣어 더듬으면 가물치대가리가 쥐이는 일이. ―넌 오전만 일하구 오후엔 고기나 잡아와라. 그렇게 난 쉽게 공수를 벌어내는 《기술자》로 떠받들렸다.  고추장을 풀어놓고 깨잎과 가지를 숭숭 썰어넣은 얼벌한 가물치에다 빼갈을 얼근히 마시고 뜨끈뜨끈한 구들에 등과 배를 붙이면 잠도 잘 온다.  호롱불을 끈 막안엔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코를 곯지 않는건 오직 그녀와 나뿐일거였다. 난 느꼈다. 그녀가 어쩜 나때문에 후영을 찾아온것일지도 모른다고… 난 그녀를 사랑하고있는거였다. 그러나 나 혼자만 알고있는 일이였다. 어쩜 영원히… 그러나 새록새록이 아침마다 계복이가 ―구들이 얼마나 뜨뜻한지, 구들은 예술이야요. 챙챙한 목소리로 떠들 때마다 난 한없이 가슴 설레군 했다. 그때마다 난 문밖을 나서서 숲속을 찾았다…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이른아침이면 난 늪으로 나갔다. 수면에 솟은 절벽을 마주하고 심호흡도 하고 손더듬으로 고기도 잡았다. 그때면 계복이도 쌀 일러 나오군 했다. 그의 그윽한 눈동자와 발그무레 상기된 모습을 나는 감히 바라볼수가 없었다.  나는 졸장부였다. 점점 다가오는 계복이를, 기회를 내주군 해도 뒤걸음질만 치고있는 나에게 그녀는 그저 남모르게 안타까워할뿐이였으리라… 그러나 난 그때 예감이 있었다. 만물이 나름대로 자기 마당이 있고 통하는데가 있는것과 같이 이 《나쁜 집 애》를 좋아하는 녀자가 있는것이라고. 저 고풍스런 칡벼랑늪이 그걸 증명한다고 믿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도 가고 그녀도 간지 오래다. 추운 겨울바람속에 나는 몇몇 로농들과 벼, 콩 양창을 하느라 눈코뜰사이 없었다. 설대목이 가까워올수록 집생각이 간절했고 문만 열면 볼수 있을 계복이가 못내 그리웠다.  큰눈이 내리고 바람이 자고 일은 끝날줄 몰랐다.  그믐날 전날, 결국 나 혼자만 남아 쌓인 벼무지와 콩마대를 지키기로 되였다. 밖에서 눈보라가 아우성치고 밤정적을 가끔씩 찢으며 승냥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믐날 아침, 새들의 지저귐소리에 잠을 깨여 문을 여니 조용히 눈이 내리고있었다. 왜 그런지 울컥 설음이 북받쳤다. 다병한 어머니와 억울한 루명을 마저 벗지 못한 아버지와 세 녀동생들의 파리한 얼굴이 번갈아 떠오르며 올음이 비명처럼 터뜨려졌다. 점잖은 소의 울음처럼 울었다. 울다가 불쑥 드는 생각이 있었다. 혼자라도 설을 설처럼 쇠야 한다고 말이다.  오전에는 덫으로 벼북데기에 내리는 참새를 무려 이십마리나 잡아냈고 오후에는 백강에 나가 얼음을 끄고 개구리와 손바닥만큼씩 큰 붕어를 스무근도 넘게 잡았다.  아무리 《나쁜 집 애》라도 어찌 설 쇠라고 술 한근 고기 한근도 보내주지 않은채 내버려둔단 말인가. 그리고 아들을 찾아올수도 없게 《감금》받는 우리 처지야 칼로 생살을 저며낼만큼 아들이 불쌍하고 아까와나리라 속이 무너지며 얼음끄기에 지친 몸을 끌고 막에 거의 다달을 무렵이였다. 나는 부지중 나의 눈을 의심했다. 구새에서 분명히 연기가 나고있는게 아닌가. 눈 씻고 다시 보아도 밥 짓는 연기였다. 저럴수가? 도무지 짚이는데가 없었다.  문을 떼고 들어선 나는 눈앞의 정경에 대뜸 입이 벌어졌다. 겨울하늘에서 선녀가 솜외투 솜바지를 입고 내린거였다. 계복이가 소고기 닷근에 술 한통을 사들고 온게 아닌가. ―울 어머니와 조건을 잡아 다툼질하고 친구네 집에 간다고 나왔거든요. 계복이가 부끄러워하며 변명투로 나온다. 그리고 그는 부끄러움이 가셔지기도전에 막안의 나무기둥을 붙잡고 울었다. 난 그가 왜 우는지 알수 없어 멍해졌다. 그가 겨우 말했다.  ―흑흑, 어쩜 이럴수가… 여기서 홀로 설을 쇠단요, 우리 함께 설 쇠요. 그 말을 듣고 단통 목이 꺽 막혔다.  계복이는 막을 떠나지 않았다. 소고기를 푹 삶았고 참새고기를 기름에 튀겼고 물고기회를 쳐서 우린 술을 들었다… 그날 밤 구들은 따가왔다… 참으로 아프고 쓴 회억의 구들― 우리의 구들은 마냥 따가왔다가 언제부터인지 랭돌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밖에 석탄과 나무가 있지만 구새는 연기가 나기 바쁘다… 나는 치질에 걸렸고 허리가 아팠으며 몸의 어느 부위가 녹이 쓸어 썰그럭썰그럭 소리를 내는것  같았다. 그래도 ―구들은 참 예술이야요. 안해의 그 말은 그냥 내 귀에 쟁쟁 울려온다… 안해가 없는 구들― 지금은 그 구들에서 뜨뜻했던 그 시절의 구들우에 가지런히 누워 창가에 걸린 달을 보며 얘기를 나누던 행복했던 일들을 떠올릴적마다 나는 홀로 중얼거려본다.  ―리계복씨, 나 혼자 있어도 곁에 그대가 누운 같구만… 난 그저 행복할뿐이오.                                                                                                           2. 사 발 우리 집에는 사발도 많았다. 옥사발, 알루미늄사발이 있는가 하면 퉁사발, 된장을 끓여먹는 돌사발도 있다. 세월의 흔적이요 사랑의 축적이였다.  안해는 날 끔찍이도 아낀다. 아니 난 안해를 파르스름히 윤기도는 옥사발처럼 고와한다. 우리가 어떻게 맺어진 사랑이라고. 구들 잘 고치고 물고기를 잘 잡아들이는 덕에 자기는 《총명하고 재주 좋은 총각》에게로 시집간다며 농약(기실은 제조약물)을 마시고 자살까지 할번한 일로 아버지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평범치 않은 사랑이였다.  하루 세끼 식탁에는 옥사발에 수북이 담은 이밥, 사기사발에 담긴 국, 퉁사발에 뜬 숭늉물에 된장이 벌렁벌렁 끓는 돌사발이 오르군 한다.  어느날 안해가 밥상을 마주하고 오래동안 근심하고 생각한것을 터놓았다. 이를테면 지금 남자들은 한국이요 일본이요 어뤄쓰요 하며 돈을 무지무지 번다는데 우리처럼 근근히 소비돈밖에 될수 없는 공자에만 매여달려서 살아서야 어찌 아들의 공부뒤바라지를 할수 있겠느냐는 무거운 화제였다. 하긴 그랬다. 안해는 촌소학교에서, 나는 목릉시의 모 중학교에서 교원사업을 하고있었는데 둘의 로임을 합하여 천원도 되지 않았으며 집값이 짐작없이 폭등하는 시내에서 살수가 없어 자전거를 타고 한시간씩이나 걸리는 고향의 산골오지에 그냥 집을 잡고 출근하는 우리였음에랴. ―남들이야 어떻게 살든 관계할것 없잖소. 교원들의 공자도 오를 때가 오겠지. ―그게 생각대로 될가요, 그리고 언제까지… ―어찌하든 출국할 생각은 하지 마오. 녀자와 사발은 내돌리면 깨여진다구 조상들이 그러잖았소. 내가 꽥 소릴 지르는바람에 안해가 들었던 사발이 떨어지며 깨여졌다. 안해는 깨여진 사발쪼각들을 주워모으면서 울고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남들 자식처럼 잘 입히고 잘 먹이지 못하는 처지가 안타까워 울었다.  그로부터 몇년이 흘러간 1998년 8월, 아들 학일이가 초급중학교 졸업생이 되자 나도 안달아났다.  ―퉁사발은 떨어져도 안깨져요. 돌사발도 안깨져요. 옥사발, 사기사발도 꼭 깨진다는 법 없지요. 사발마다 넘치게 채워가지고 돌아올래요. 급하면 담장도 뛰여넘는다는 뭣 같이 안해는 자식의 전도를 위해 몸을 내번지는거였다. 나는 내가 리자돈을 꿔서 한국엘 나가보려 했지만 《이틀 일하고 사흘씩 허리가 켕기는 사람이 죽자고 그러는가》면서 기어코 자신이 나가야 한다는거였다.  나는 안해를 말렸다. 했지만 안해는 소학교에 사표를 낸채 흑룡강성 계서시에 사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9만원을 내고 일본에 나가는데 성공한것이다. 연길항공에서 비행기에 오르는 안해는 그 모습이 아름다왔다. 저 같이 섹시한 녀자가 리계복이던가… 가슴이 오리오리 찢겼다.  ―가지 말라는데도… 비행기에 오르는 안해뒤에 대고 난 비명처럼 씹었다.  3. 부엌아궁이 부엌아궁이는 시커맸다. 부엌아궁이속으로 길게 아물아물 안해가 웃는다. 그렇게 가끔씩 나는 백치처럼 부엌아궁이속에 끈질기게 눈길을 걸고 안해를 찾군 했다.  아들을 밥 챙겨주어 학교에 보내고난 뒤면 전화통만 붙잡고 앉았다.  꼬빡 두해동안은 전화통이 불이 났다. 머나먼 동경에서 걸어오는 전화속의 안해 목소리는 그저 구들에 누워 비단이불을 머리우까지 끄집어 덮고서 귀속에 소근거리는 간질거림과 같은 그런 설레임이였다. 바쁘게 버는 돈이라서 얼마 안되는 돈이라도 꼬빡꼬빡 부쳐와 자식 학잡비와 집살림은 근심걱정이 없었다. 그러던 이태후의 어느날부턴가 달포가 지나고 한해가 저물도록 송금표도 더는 볼수가 없고 그저 단 두번의 전화만 받았을뿐이였다. 첫번의 전화내용은 아이앞으로 한해 학잡비 3천원을 보냈다는것, 다음 전화내용은 어느 대학에 록취되였냐는 간단한 물음에 그치지 않았던것이다. 그로부터 긴 시간동안을 남모르게 생활상 쪼들리고 정신곤핍증에 시달려야만 했던것이다.  안해가 집을 떠나 5년만에, 그러니까 아들이 대학에 록취되던 이듬해에야 나는 완전히 안해로부터 배신을 당한 자신을 믿을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아들이 먼저 알고 한해가 되도록 비밀에 붙였을줄이야. 아들은 이 아비가 불쌍했던지 주일마다 전화를 걸어오군 했다. 비행기를 타고도 여섯시간씩이나 걸린다는 머나먼 해남도에서 걸어오는 전화였다. 전화내용은 번마다 같은 내용이였다. 《아버지, 저녁은 뭘루 드셨나요? 아끼지 말구 고기두 사 드셔유…》 뭐 그런것들이였다. 그런 일상적인 전화통화가 계속되던중 어느날엔가 전화속으로 울음먹는 아들의 문안이 들릴줄이야. 아들이 왜 운단 말인가. 그리워서도 아닐것이고 설대목도 아닌데다… 이번에는 내쪽에서 그 연고를 캐고들어서야 아들이 《어머니가 일본에 딴살림 꾸리고있어요…》 하고 실토한것이다. 넌 어떻게 그걸 알았냐? 고함을 질렀을 때 아들은 《어머니도 많이 웁디다. 목이 다 쉬였구요. 뭐 그런 연고가 있었다나요… 그 남자와 살지 않으면 안될… 어머니도 생활이 쪼들리니 내 학비만 빠듯이 부쳐준다고… 아버지께 한없이 미안하다고…》 아들도 목이 메여했다.  하늘이 무너질듯 눈앞이 까매났다. 난 구들에 엎딘채 오래도록 일어나지 못했다. 찬구들에서 꺽꺽거렸고 그러다도 기절을 했다. 하루밤 몸부림끝에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가 찬구들우에 잠을 깼을 때는 창문가로 숫돌빛의 새벽이 새여들 무렵이였다.  나는 내가 신령의 부름을 받았음을 느꼈다. 전신에 땀이 내배고 량볼이 확확 불 붙는듯, 예리한 안광과 명철한 사색속에서 채찍질하고있었다.  부엌아궁이앞에 안해는 앉아서 웃고있었다. 오라고 손 젓는다. 나와 안해는 후영의 부엌아궁이앞에 서성이는 처녀총각이였다. 계복이가 말했다.  ―지금부터 어떤 역경이 부딪쳐도 절개 굽히지 않고 우리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 증거루 이 《약물》을 마십시다! 그러고 계복이는 사발에 찬물을 붓고 거기에 부엌아궁이속의 가마밑굽재를 긁어서 풀었다. 시커멓게 그을림이 떴다. 어렷을적 종이를 태운 재를 먹으면 공부를 잘한다고 그래서 종이재와 부엌의 그을림까지 먹던것처럼 우리 둘은 절반씩 갈랐다. 그리고 꿀물인듯 꿀꺽꿀꺽 마셨다.  부엌아궁이속의 가마밑굽재, 그건 내 령혼의 뭔가를 상징하고있었다. 희망의 끈이고 액을 물리치는 부적으로 보였다.  나는 부엌으로 내려갔다. 옥사발에 검댕이 재를 담아 물을 붓고 저었다. 걸직했다. 마시기전에 난 허드레처럼 소릴 내질렀다.  ―내 안해는 그 누구도 앗아가지 못한다. 내 안해가 남의것이 되다니… 잠간 유린당할수도 있겠지… 내 안해는 곧 리지를 회복할것이다!! 그리고 꿀꺽꿀꺽 마시니 그제야 웅웅거리던 머리가 트이고 정신이 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약수》라기보다 《신수》를 마신 기분이였다. 나는 또 불이 다 죽어 재만 남은 새벽에 슬슬 기여일어나 부엌아궁이에 머리를 들이밀어도 본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 거울엔 숱검뎅이투성이인 걸인 하나가 보인다. 검뎅이가 묻은 내 골은 안해의 사랑이 묻은 골이 아닐가… 그런 정신상태에 처해있을 때, 나는 이미 학교로부터 무단결석때문에 경고처분 세번째만에 강위에서 제명된후였다… 4. 퉁공기와 옥공기 우리 집에 찬장으로 구리빛공기, 보시기가 하나 보인다. 할아버지적부터 전해내려온 퉁공기였다.  나는 퉁공기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한번도 퉁공기를 써본적은 없다.  ―네 할아버지가 한평생 저걸(퉁공기)로 술 부어 마셨지 뭐가. 술만 얼근하면 퉁공기를 마주하고 말했지. 퉁공기야말루 사내 맘을 닮았다고. 할머니가 천수경처럼 퉁공기를 마주하고 하던  말이다. 그 말의 오묘한 깊이를 그제야 알것 같았다.  퉁공기, 퉁공기는 언제봐도 구리빛이다. 옥공기곁에 놔도 그 현란한 빛갈에 물들지 않는다. 찬장속에 홀로여도 고독을 모르고 엄동속에 추울수록, 한여름의 폭양속일수록 더욱 그 빛갈이 칼날처럼 쨍하다. 퉁공기는 떨구어도 깨여질줄을 모른다.  상징적이였다. 기독교신자처럼 치명적으로 나갔다. 막을수 없었다. 정신의 극기를 모았다. 나는 퉁공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천천히 그리고 무거운 안위가 되고있었다. 상우에 씹던 명태쪼가리라도 올리고 퉁공기에 술을 붓는다. 아니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퉁공기 맞은켠으로 옥공기도 놓고 수저도 차렸다. 자, 마시오 계복이. 그런 중얼임으로 퉁공기의 술을 들이키고는 계복이 몫으로 부어놓은 두공기의 술도 말끔히 마셔버리군 했다. 처음에는 한주일에 한번꼴로 마셔두었지만 차츰 그 차수가 빈번해갔다. 오기와 번열로 마시던 술을 차츰 상징으로 마셔대다가 나중엔 한탄이 술을 마시게 했다. 전화소리만 울리면 불에 덴 소처럼 뛰쳐일어나 전화기를 부여잡는다. 《여보》라고 부르면 대방에서 아들의 애원조가 들린다. 《아부지, 또 술 취했어… 제발 좀…》 아들은 강경하다가 나중엔 부탁과 애원조로 나온다.  자존, 정진, 기대, 노력, 기쁨, 행복, 악, 모지름… 모든 심리방선이 그앞에서 무너지고있음을 실감했다. 어쩔수 없었다. 안해를, 그 풋풋하고 싱싱하며 심장 같던 안해를 일본의 어느 사내놈에게 앗기다니 억장이 무너질수밖에… 난 속이 좁은 인간이다. 내 눈에 더 다른 녀자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옥공기를 바라고 슬프게 묻는다. 안해야, 네가 나에게 해준게 뭐냐? 돈 몇만원 부쳐왔다고? 그 돈을 이 몇년간 아들을 공부시키고 먹고사는데 썼을뿐이 아니냐. 날 배신하려거든 어느 누구처럼 고대광실을 지을만큼한 돈이라기보다 적어도 십만원쯤이야 돈을 보내주어얄게 아냐. 이게 뭐야. 난 량손에 쥔게란 없이 안해 잃고 돈을 쥐지 못하고… 애초에 너희도 몰랐을거야. 내가 비극을 저지른다는것을. 인간이란 그런거야. 번연히 알면서 빠져들어가는게 인간상정이라던데… 넌 깨여진 옥사발! 난 널 저주한다. 아니, 저주하다니, 그럴수 없어. 난 널 사랑해, 사랑한다구. 그댄 꼭 돌아올거야. 뒤동산에 진달래가 피고 뻐꾹새 우는 봄날에 계복이는 꼭 나에게로 돌아올거야. 돈도 싫어. 그저 빈 몸으로 와줘. 몸이 와주기만 하면 돼. 그랬다. 저녁마다 술이 들어가면 그렇게 말했다. 뼈로 말했다. 피로 말했다.  구들은 차갑다. 차츰 불도 며칠에 한번꼴로 피우다나니 바닥과 구들엔 간이국수, 깡통찌꺼기들이 나뒹굴고 여름엔 파리가 기승을 치고 겨울엔 창유리와 벽에 얼음이 드레드레 언다.  홍문이 아파난다. 홍문과 고환의 거리가 졸리면서 오줌줄기도 가늘다. 허리가 아프고 밸이 탈린다. 술이 과한 날에는 이튿날 잠을 깨고보면 홍문의 괄약근이 조금 열렸는지 똥물이 나와있었다.  불을 때자, 불을 때야지 하면서도 몸은 점점 더 가증스러워난다. 어떤 날 불 때러 부엌으로 내려갔지만 부엌아궁이속으로 골을 디밀어 그 컴컴한 아궁이속 끝쪽에서 안해가 나오는 환청으로 흥분을 해보군 하였으니… 미친놈이 다된것일가? 아니, 난 미치지 않았다. 미치지 않는다.  나는 운동이랍시고 몸을 움직여본다. 오래 살아야지. 오래 살아야 자식의 찬란할 래일을 볼수가 있을것이고 안해가 돌아올 날까지 버티여낼게 아닌가. 나의 눈길은 또다시 구들우의 밥상께로 가 걸린다. 퉁공기와 옥공기가 나와 계복이처럼 마주 앉아 즐거운 기분을 뿌려준다. 나를 손짓한다. 그것은 내 고독의 세계에 인이 박히고있는 유혹이 아닐수 없었다. 5. 이발 문밖에 나서서 먼 산들이 어둠속으로 불려가는 저녁무렵이면 그리움보다 더한 아픔이 나를 울린다.  홍문이 아프고 허리가 아픈데다 이발까지 아플줄이야. 안해가 있을 땐 어디 아픈데라곤 없었댔는데. 조금만 불편해도 안해가 긁어주고 만져주고 자근자근 눌러주면서 《내 손이 약손》이야를 불렀는데. 퉁공기에 술을 마실 때 짝태나 땅콩따위 질기고 딴딴한것만 씹어먹은 탓도 있으리라. 이제 더는 그깟것들을 입에 넣을순 없었다. 그래, 두부안주를 왜 생각못했을가. 모든 고민과 아픔은 술로 대처하다보니 밥도 며칠씩 먹지 못할 때가 보통이니 그럴수록 신체는 더욱 약해질밖에. 나는 문득 이제 더 명태와 소힘줄따위를 사먹으려 해도 돈이 떨어졌음을 느꼈다.  마을 소매점에서는 비싼 명태를 맞돈이 아니고는 주지 않기에 린근마을 한족동네로 가 두부집에 들르는수밖에 없었다. 다행으로 두부는 이름만 적고 수자를 그어 외상치기할수 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아버지 굶어죽는다. 너 돈 좀 부쳐주렴아. 엄마와 련계하면 넌 돈을 얻을수 있잖아.   내 아들은 효자였다. 한주일새에 300원짜리 돈깍지를 받을수 있었다. 얼마 안되는 돈으로 부실한 아비까지 돌보느라 아들은 실로 얼마나 근검절약하고 속 태우는지 나는 알고있었다. 그렇지만 무슨 방법이 있으랴. 난 이제 더는 일할 맥이 없었으며 병 있고 술중독이 온 놈이였다.  돈만 생기면 큰 술통에다 술부터 사 채웠다. 그리고 두부값도 몇십원이나 물군 했다.  어느날 아들이 전화에서 말했다. 아버지땜에 엄마한테 학비를 몇천원이나 높이 불렀다고… 죄송스럽다고 그랬다. 야야, 뭐가 죄송스럽냐, 이 아비를 배반한 그런 나쁜 년한테는 련민을 집어치워라 고만. 그랬다. 아들은 전화에서 한참이나 울음을 먹는갚더니 모기만큼한 소리로 《그쪽 엄마한테도 뭐 말 못할 곤난이 있는가봅니다. 전화적마다 목소리가 영 떨리고 쉰걸 보믄…》 하였다. 그날 밤 난 나의 허벅지를 꼬집고 까드득까드득 이발을 갈면서 울었다. 이게 뭐란 말인가. 글쎄 잘 살겠다고 나간것이 너마저 불편해지고있는 꼴이라니 너도 못살고 나도 이 꼴이 되고 우리 집은 철저히 깨여진것이냐.  이발이 아파난다. 우리 가문에 남자들 유전적으로 암에 걸린 사람 없고 오복에 속하는 이발병이 없었다는데 난 왜 이발통증에 견딜수가 없는겐가. 왼쪽 볼이 떡을 문것처럼 부었다.  두부를 먹어도 쩡쩡 아파난다. 술을 억망으로 들이켰다. 술에 취해서 잠들군 했다.  술은 좋았다. 그리움도 아픔도 마비시킨다.  그러나 필경 술은 육체를 해친다. 술을 마신 이튿날이면 속이 쓰리다못해 열물까지 토하고나면 아픈 속을 푸느라 또 술을 마신다. 술로 이어지는 나날은 길고 길었다. 몽롱한 의식속에 모든 기억과 소원들이 취해서 쓰러져있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못견딜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술을 마셔온 원인을 단 두가지로 귀납할수 있었다. 하나는 취중 즐거움 즉 안해와의 지난 행복했던 일들을 현실처럼 환청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 그리울 때 그 아픔을 얼리기 위한것이였다. 그런데 이제 이발이 아픈것을 견뎌내기 위해 술을 마신다면 너무 마셔야 하기에 속이 폭팔할것 같았다.  ―돈은 죽음을 관리하는 가장 문명화된 도구다! 나는 그렇게 소태 씹듯이 중얼거려보았다.  나는 아들이 부친 돈을 넣고 떠났다. 백강 굽이굽이 뻐스는 달린다. 짙푸른 여름풍경속에 돈 벌어와 이제 시내에 들어가 살아요. 하던 말이 떠오르며 쿡 하고 쓴웃음이 나갔다. 안해의 희고 가쯘한 이발들이 박씨처럼 날아가고 날아온다.  팔면통시 구강병원에서 의사는 이발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아―의사가 불렀다. 입을 짝 벌리자니 자꾸만 울컥거린다. 그럴 때마다 아래배에 기운을 뻗쳤다. 그래도 구역질은 멎지 않는다. 구역질은 안개나 연기처럼 깊은 곳에서 피여오르기도 했다. 대부분은 그러다가 종잡을수 없이 사라졌다. 안개 같기도 하고 연기 같기도 한것이 몸밖으로 새여나올듯이 목구멍으로 스멀스멀하며 퍼져오르면, 어금이를 지그시 물어서 그것을 몸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러노라면 합작이 잘되지 않을 때 의사는 내 입에 아예 자갈을 물렸다. 자갈사이로 안이 들여다보이는 동안 나는 한숨이 나오고 눈물이 나오고있었다. 의사는 이몸에 마취주사를 찔렀다. 단통 아래턱이 뻣뻣해나며 돌이 달린듯 불편해난다. 그때에야 난 불에 덴듯 놀라며 의사를 밀치고 벌떡 뛰여내렸다. 의사는 깜짝 놀라며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겨우 말이 나갔다. 왜 마취주사를 놓느냐, 이를 두대나 뽑아야 된다고, 이 한대 하는데 값이 얼마나 되냐, 뭐 이백원씩이라구… 난 그저 이를 뽑아만 달라, 새 이는 싫다… 그러고 다시 벌렁 드러누워서 기다리는데 안해가 일본에 나가 번다는것이 이 꼴을 하고있다니 설음은 또 분개를 타고 목구멍으로 치민다. 그 치미는건 다시 미역가닥이 부패한 냄새나 쇠녹의 비린 내음으로 바뀌여 치민다. 내 구역질은 심히 날 못살게 굴고있는거였다.  ―왜 자꾸 뒤채입니까? 의사가 참다못해 역정을 쏟았다.  ―속이 자꾸 구역질을 하고 가스 같은 공기로 차올라서요. 별 일입니다. 그리고 냄새도 생전 못맡던 냄새로 차고요. ―왔던김에 속시원히 시병원엘 가 검살 해보세요. 요즘 상해와 일본에서 새 의료기를 들여왔다던데. 병이란 미리 알아서 처치해야죠. 안그러면 키우거나 죽음밖에 기다릴것 없지요. 이발 두대나 뽑았다. 혀가 헐렁 들어가 앉았다. 허전했다. 생을 함께 하지 못하고 락오된 안쪽 이발 두대가 한없이 아까왔다. 내 이발 하나 건사 못하는 주제니 안해도 가버렸잖아. 그런 모멸감에 몸을 떨었다. 사내의 능력이란 도대체 뭘가… 참으로 알수 없는 문제였다. 그건 철학이였다.  ( 2007년 11월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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