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경호
http://www.zoglo.net/blog/lijinghao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홈 > 전체

전체 [ 37 ]

17    흙과 모래의 이야기 댓글:  조회:5020  추천:73  2005-11-15
흙과 모래는 또 다투기 시작하였다. “모래야 너는 왜 그 모양이야! 언제나 제고집만 세우고 좀 자세를 낮추어라. 그래봤자 너나 손해보지!” “아니야, 이것은 내 인격이야! 조직이 흩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절대 타협을 하지 않아!” 모래는 성나서 말했다.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만 생각하면 절대 굽어드는 일이 없는 모래알이다. “그러니까 속담에까지 흩어지 모래알이라는 말이 있지, 조직에 있으면 마음에 들던 안 들던 그대로 묵인하면서 비위를 맞추어 가면서 되는대로 섞여서 사는것이 제일 좋아, 옛날 조정을 봐도 그렇지, 어느 바른 입을 가진 충신이 좋은 끝장이 있는것 있어?” 흙은 예까지 들어가면서 모래를 설복했다. “그게 어디 신하탓이야! 그것은 임금이 눈깔이 어두워서 그런거지” 모래는 정말 화가나서 낯이 지지벌개나면서 말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눈깔 먼 무능한 소인배들이 권력을 손에 쥐고 거기에 어디에나 잘 발라맞추는 진흙 너가 있어서 사회가 이 모양이 되였잖아! 이 모든 것은 바로 너같은 놈 때문이야!” “얘, 모래야! 너 기껏 생각해서 잘 되라고 귀띰해주니까 인젠 뭐 나까지 껴들어 말도 안되는 소릴하고 이 야단이야! 나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지, 듣기 싫으면 너 맘대로 해! 인젠 관계도 안 할테니까!” 흙은 너무 성나서 낯이 검붉어지면서 사라졌다. “나는 언제나 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는 모래다. 흩어져 있을지라도 흙처럼 흐물떡거리며 사는 일은 결코 없어!” 모래는 맹세하듯 말했다. 이리하여 모래는 강바닥에서 아까운 시간들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끝내 홍수가 터졌습니다. 많은 진흙과 모래는 홍수에 씻겨 아래로 아래로 밀려내려 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거세찬 물결이지만 모래의 지조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홍수가 지난후에 보니 모래는 제 고집을 세워 그냥 남아 있는데 흙은 다 씻기워 내려가고 말았다. 홍수가 지난후 사람들은 다음의 홍수르 대비해 재빨리 수리복건 사업을 하게 되였다. 이번 수리복건 사업을 책임진 호호가 먼저 말했다.“기상대의 예측에 의하면 다음에는 더 큰 홍수가 터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홍수방지를 잘하여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보호하는것을 담보하는 전제하에서 좋은 의견이 있으면 제출하여 주십시요” 수리전문가인 옥저씨가 먼저 발언을 하였다. “이번 홍수가 증명하다싶이 흙은 비록 조작하기 쉽고 말을 잘 듣지만 비가 오면 다 씻기워 가고 맙니다. 그러나 주장이 센 모래는 안 씻기워 갔습니다. 이는 마치 IMF당시 한국의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일심으로 외세의 눌리지 않고 자기의 개인 재산마저도 모두 받쳐 국가를 보호하고 경제를 지탱해나간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이에 비추어 저는 이번 수리시설은 흙을 쓰지 말고 모래로 할것을 주장합니다. ” “모래는 개별주의가 심하고 고집이 너무 세여 한데 뭉칠수 없습니다. 모래로 성을 쌓는것은 말그대로 모래성이여서 헛수고 입니다.” “아닙니다. 모래는 자기의 주견이 있어 그런 겁니다. 우리는 이전에 모래의 그런 주견을 채납하지 않고 또 그들의 주장을 한데로 묶어주지 않고 한데로 인도하여 주지 않은데에 그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변사람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자기의 언어도 거절하여 배우지 않고 자기의 자존심도 지키지 못하니 자라나는 아이들이 자기의 말도 모르고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자라지 않습니까? 그 결과 인구가 대폭 줄고 민족이 동화되여 가고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제가 보건대 관건은 이제 모래를 잘 이끌 세멘트를 파견해 그들로 하여금 한데 뭉치도록 하는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꼭 자기의 모든 능력을 다하여 임무를 훌륭히 완성할 것입니다.” 비상시기인지라 옥저전문가의 의견은 즉시 채납이 되였다. 세멘트는 공사장 현장에 파견되여 가는 즉시에 모래들의 정황을 요해하고 또 모래들의 각종 의견을 수집하고 종합하여 재빨리 모래들을 하나로 뭉쳤다. 마음이 통하고 의견이 통일되고 뜻이 같아지니 모래들은 마침내 한뜻으로 바위처럼 단단한 새 금성철벽을 구성하였다. 얼마후 또 장마가 지고 홍수가 졌다. 이번 홍수는 먼저 홍수보다도 더 커서 마치 성난 사자마냥 으르렁거리며 모래와 세멘트가 손잡고 있는 방축을 향해 무너뜨리려고 기를 쓰며 덮쳐들었다. 그러나 홍수의 이런 시도는 오산에 지나지 않았다. 옛날의 흙으로 만든 방축과는 달리 세멘트와 모래로 만든 콩크리트방축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홍수는 이렇듯 견강한 모래와 세멘트의 견강한 저항에 끝내 항복하고 얌전하게 물러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덕에 흙은 그 큰 홍수에도 밀리워 가지 않고 자기를 보존할수 있었다. 홍수가 지난후 흙은 부끄러운듯이 모래에게 사과를 했다. “내가 네 덕에 살았구나! 네가 없었으면 내가 지금 어느곳에 가서 정처없이 헤매고 있을지도 모를번했어. 역시 너는 강해…, 그리고 고마워” 모래는 너무도 강해진 자기에 스스로도 놀라면서 세멘트를 바라보았다. “세멘트야 감사해, 다 네가 우릴 하나로 묶었기 때문이야!” “아니야, 그래도 너희들이 모두 강하니까 그런거지, 너희들이 흙처럼 자기주장도 없고 남의 풍에 놀면 절대로 그 큰 홍수를 막아낼수 없었지” “아니야, 네가 아니면 우리는 근본 뭉칠수도 없잖아!” 모래와 세멘트는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손잡고 강둑을 드팀없이 지키고 있었다. 그러는 모래와 세멘트를 보면서 흙은 “자기주장밖에 고집할 줄 모르던 저 녀석이 저렇게 변할수도 있다니, 참 모를 일이군! 하여간 대단해…”하고 중얼거리며 대견한 눈길로 모래를 쳐다보았다.
16    자리 댓글:  조회:4334  추천:78  2005-11-04
지난 9월3일 나는 연길시 동쪽의 하룡촌에 갔댔었다. 토요일인데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기념일이 였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 때문에 시내와 하룡촌을 통하는 14선로 중형뻐스는 그날 따라 붐비였다. 비록 점심때여서 사람이 적다지만 역시 열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들어오는 뻐스에 몰려가고 있었다. 나는 느적느적 사람들의 꽁무뉘를 따라 뻐스 문어구에 다가갔다. 중국의 어디에서도 볼수 있는 자리싸움이 벌어질 판이다. 드디여 마지막 사람이 내리자 사람들은 일시에 문을 향하여 몰린다. 이럴때에는 힘이 있는 사람이 우세인 법이다. 앞에 있는 한 50여세 되여보이는 중년사나이가 두 팔로 차문을 떡 집고 버티고 막아서자 다른 사람들은그의 겨드랑밑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손자인듯한 어린애한테 어쩔수 없이 차례를 양보할수 밖에 없었다. 가까스레 기다려 다 올라가자 나도 드디여 차에 올랐다. 올라가보니 자리가 두개가 남아 있었다. 자리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티격태격 밀고 닥치고 했던것이다. 그러나 내가 앉으려고 하니 “유우옌(사람이 있다)”이라고 한다. 나는 엉겹결에 다음 자리에 앉으려 하니 뒤에서 언제 올라왔는지 벌써 두사람이 와서 번개같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버렸다. 체질적으로 남과 시닥질을 하기 싫어하는 나는 늘 안해로 부터 행동이 굼뜨고 욕심이 없다고 핀잔을 듣는다. 이 자리에 안해가 있으면 또 푸념을 할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저도모르게 쓴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찾아 서 있었다. 차는 드디여 떠났다. 하룡촌은 지금 연길시의 관광명소로 부상하여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다니지만 시내서 하룡촌으로 가는 길은 꼬불꼬불, 울퉁불퉁 말이 아니다. 길은 이미 낡아서 볼품없이 파괴되였던 것이다. 나의 몸은 차체와 함께 이리저리 치우치면서 몸가누기마저 어려웠다. 이때에야 나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저으기 부러워 났다. 자리 찾기에 밀고닥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할만 했다. 자리는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언어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구석구석에서 모두 자리에 관한 말을 찾을수 있다. 자리는 어떠한 대상이 한정한 합당한 곳에 있어야 함을 가리킬때 쓰는 말이다. 설 때에는 제자리, 설자리, 선자리, 앉을 때에는 앉을 자리, 앞자리, 뒤자리, 옆자리, 자리를 정리하는 것은 자리정돈, 누울때에는 누울 자리, 잠자리, 이부자리, 돗자리, 삿자리, 보금자리, 집에는 집자리, 사람이 죽어서는 묘자리, 마음에는 마음자리, 하늘에는 별자리…… 자리에 관한 말은 정말 적지 않다. 속담에 철없는 사람은 “앉을 자리 설 자리 모른다”는 말도 있고, 또 “자리보고 발을 펴라”는 말도 있다. 한곳에서 오래 생활하면 자리가 잡히고 생활하다 불편하면 자리를 뜨고 한다. 나는 옛날 국장자리를 넘보다가 지금은 단념하고 말았다. 나의 체질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에도 자리가 있는데 어느 일본학자는 “언어와 피는 자리와 주인과의 관계”라고 말을 한적이 있다. 이외에 자리와 같은 말로 쓰이는 언어도 적지 않다. 예하면 좌석(상등석, 평민석, 호화석), 석(나라의 주석, 공회주석), 위치 등도 모두 자리를 뜻하는 언어들이다. 동방 철학사상의 원형으로 되는 주역에서도 자리에 대하여 특별히 중시하였다. 대성괘에서 2효와 5효에 처해있는 효를 得中이라 하며 제일 중요한 자리로 본다. 또 효가 제자리를 차지하는가 못 하는가 하는것이 괘의 성질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음의 자리에 음효가 들어가고 양의 자리에 양효가 들어가면 제자리에 있다(得位, 當位)고 한다. 제자리에 못 들어가면 不得位 혹은 失位이다. 그러고 보면 주역은 기실 자리에 관한 학문인 것이다. 자리는 정말 중요하다. 한어에 약한 내가 금방 대학에 갔을때도 제일 처음 배운 말이 “짠디팡(자리 차지하기)” 이다. 사회에 나오니 일자리 찾기 짠디팡에 두달을 기다려서야 겨우 취직이 되였다. 그러면 사람은 왜 자리를 찾는것인가? 자리를 찾는것은 안정을 찾으려는 것이다. 자기자리를 찾지 못하면 안정되지 못하고 안정되지 못하면 마음이 불안하고 마음이 불안하면 일을 하되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책을 보되 글이 머리에 들어오지 아니하며 궁리를 하되 문제를 해결할수 없다. 이 시간이 길어지면 정신이 불안하고 소화불량이 오고 스트레스로 신경쇠약이 오며, 작은 일에도 화를 내며 침착성을 잃어 대인관계에 실패하고 정신장애로 신체건강이 파괴되고 사업에도 아차! 하는 사이에 실패를 맛볼수 있다. 현실생활에서 우리는 각 분야에서 모두 자리의 존재를 실감하게 된다. 정치분야에서 보면 정치에도 자리 다툼이 있다. 어느 사회도 훈구세력(조선조에서 공훈을 세우고 정권을 이미 장악한 세력)과 신진세력간의 세력다툼이 있다. 어떤 파든지 자리를 잡고 있으면 그 세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보수주의자가 된다. 훈구세력은 자기의 낡은 세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온갖 힘을 다 쓰고 신진세력은 훈구세력의 낡은 세력을 타파하기 위하여 온갖 힘을 다 쓴다. 여당과 야당의 싸움이 바로 그렇다. 여당은 자기의 이익과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분투하고 야당은 여당이 되기 위하여 여당이 하고자 하는 일을 사사건건 저애한다. 경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생산력이 발전하여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새로운 생산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생산관계는 처음에는 생산력의 발전에 적극적인 추진작용을 한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이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생산력이 기존의 생산관계와 부합되지 않는다. 특히 낡은 세력들이 형성한 이익분배계통이 고정되면 온갖 부패가 부화된다. 이때부터 새로운 생산관계와 기존의 생산관계 사이의 암투가 시작된다. 사람의 몸에도 자리 바뀜이 있다. 이것이 바로 신진대사이다. 낡은 세포는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고 나서는 자연히 자기의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주어 생명체의 기능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이때 낡은 세포가 제때에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암 같은 질병도 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자리가 있다. 사람이 젊어서는 몰라도 나이 좀 들면 자나깨나 고향생각이다. 그래서 제자리에 돌아오려 한다. 사람이 운명하는것도 제자리에 돌아가는 것이지만 살아 생전에 그리운 고향에 가는 것도 공동한 염원이다. 제자리를 찾지 못해 타향에서 사는 사람들의 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다. 그래서 정년퇴직하면 고향에 돌아가려 한다. 하다못해 죽어서 뼈라도 고향에 묻히려 한다. 어떤 사람은 연길은 돌아오는 자리라고도 한다. 외국가서 돈 벌고는 외국의 그 좋은 생활환경도 마다하고 그리운 산, 그리운 강, 그리운 사람을 찾아서 연길로 돌아온다. 대도시에 가서 사업에 지쳐 있다가도 고향으로 돌아온다. 장춘토배기 동창생이 있는데 장춘태생이고 조선말도 잘 못하는 처지지만 일본에 가서 돈 벌고는 요즘은 항목을 찾아달라고 성화다. 우리 민족이 많은 연길에 와서 투자하고 사업하며 살고 싶다고 말이다. 이 또한 자리 찾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점을 감안해볼때 우리 연길은 경제만 경제라지 말고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평온한 마음의 자리를 깔아주는것 역시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도 마음자리를 못 찾으면 안 된다. 방황하고 고독하여 술마이고 성깔부리고 놀음질에 빠지고 지어는 싸움질 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자기 마음자리를 찾지 못해 살인까지도 서슴치 않는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연애에서나 혼인에서 실패했다고 자살하는 예도 있다. 그러고 보면 연애나 혼인도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한 것이다. 오직 이 자리를 찾아 온전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사회에 나가 큰일들을 할수 있는것이다. 家和萬事成이 바로 이 말이다. 또 治天下者는 먼저 修身齊家 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이로보면 가정의 자리위치의 중요성을 알수 있다. 언어에도 자리가 있다. 위에서 어느 일본학자가 말한 “언어와 피는 자리와 주인과의 관계”라는 이 말이 바로 그 관계를 말하고 있다. 그 민족의 언어의 자리는 피라는 말인데 단군의 피를 물려받은 조선족이면 조선말을 해야 편하다는 말이다. 때문에 자기 자리에 알맞는 자기 말을 할줄 아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자기자식을 한족학교에 보내는건 제자리에 앉히는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때와 장소에 따라 자리가 따로 있기 마련이다. 사람은 언제나 제자리에 앉아야지 남의 자리에 앉으면 안된다. 우리 사회의 분쟁은 모두 제자리에 안 앉고 남의 자리를 넘보는데서 생기는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급은 상급의 자리를 넘보고 상급은 물러갈 때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떡 차지하고 앉아서는 자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자기 자리를 위협하는 자들에 대해 경계하고 타격한다. 물론 자리 다툼이 나쁘다고만 볼수 없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이러한 자리싸움이 부단히 일어나야 한다. 이런 싸움이 없고 오히려 고요하다면 생기가 없어지고 멸망이 가까와 진것이다. 옛로마가 바로 그 예이다. 옛로마는 그때 당시에 너무 강해 누구도 옛로마의 자리를 위협할수 없었다. 결과 사회는 부패해질대로 부패해지고 사람은 나태해 질대로 나태해져 결국에는 명망되였다. 이토록 자리는 우리의 일생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자리가 좋으면 모든일이 다 뜻대로 되는것도 아니다. 젊은 사람을 자리에 앉혀 놓으면 갑갑해서 못 앉아 있는다. 활기에 가득 찬 이때에는 자리 보다도 뭔가 보고 싶고 탐구하고 싶고 실천하고 싶고 어떤때는 싸우고도 싶다. 미국의 은행에 가 보면 직원들이 자리에 앉아 못 있게 한다고 한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나태해지고 사업효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자리는 어찌보면 또 마약과도 같다. 너무 편하고 황홀하여 좀 취해 있느라면 바깥은 벌써 도끼자루가 썩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지금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는 손오공이 곤두박질하는것 보다도 더 빠르다. 학교를 필업하고 분배받은지 어제 같은데 지금 보면 사회나 사람들의 의식에나 천지개벽이 일어나고 있다. 옛날의 가난뱅이가 부자가 됐는가 하면, 옛날의 깡패가 철학가가 되여 정치를 논한다. 아름다운 옛 동창은 벌써 주름이 가득 늘고, 얼마전의 높은 산은 오간데 없고 호수가 생기고 골프장이 생겼다. 진보하려는 사람에게는 안일한 자리가 적이다. 앉을 사이도 없이 쉴새없이 뛰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보금자리를 찾아 쉼을 쉬는 여유를 향수해야 실패없는 인생을 살수 있다. 총적으로 자리를 찾는것은 우주의 법도이다. 이 자리를 찾는것을 잘 장악하고 이용해야 하며 때에 따라 바란스를 잘 맞우어 자리를 바꿀줄도 내줄줄도 알아야 한다. 자리에 너무 미련을 두는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자리를 찾는 마음과 자리를 뿌리칠수 있는 마음,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지혜이며 성공의 금열쇠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민족은 지금 어떤 자리에 처해있으며 또 찾아가야 할 자리는 어떤것일가?
15    韓流와 寒流 댓글:  조회:4389  추천:92  2005-10-24
중국말에 “식시무자위준걸야識時務者爲俊杰也”라는 말이 있다. 류비가 제갈량을 찾으러 갈때 나오는 말이다. “식시무자”는 세상의 변화를 정확히 포착하고 정확하게 판단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말에는 또 “철부지”라는 말이 있다. “철부지”란 철을 모른다는 말이다. 철에 맞추어 옷을 갈아 입고 철에 맞추어 파종도 하고 기음도 매고 물도 줘야 농사를 제대로 지을수 있다. 또 사람이 철에 맞추어 옷을 가라 못 입으면 꼭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만다. 나는 농민의 자식이다. 농촌에서 자라고 농촌에서 몇달간 농사일까지 해온 나는 제딴엔 농사일을 아노라고 친구들과 떠벌였는데 어느 해인가 터밭이 있는 집으로 이사해 채소 농사를 지으면서 자기의 바탕을 진짜로 알게 되였다. 어느때 밭에 거름을 내고 어느때 밭을 번지고 밭갈이를 하고 파종하고 또 어느때 기음을 매고 비료를 주는지 하나도 아는것이 없으니 이런 철부지 라고서야! 부모님께서 내가 공부하기에 열심하니 공부나 하라고 밭의 일에 손을 못 대게 하신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하는수 없이 매사마다 물으며 농사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이것이 철을 모르는 대가이다. 다행으로 철을 아는 분이 계셔서 알려 주셨으니 말이지!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나 아무런 법칙없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주기적으로 변한다. 혹은 춘화추동, 혹은 생노병사, 혹은 생장염장, 혹은 원형이정 등등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모두 마디가 있는데 이런 마디를 철이라고 한다. 24절기가 바로 그것이다. 바람따라 돛을 달 듯 철을 아는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상만사는 다 철이 있고 또 그 철을 놓치면 농사나 일을 망치기 싶상이다. 우리의 육체와 또 우리네 정신 및 건강마저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존재한다. 지어는 인간세상 마저도 철이 있고 때문에 그 철을 아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위에서 말한 제갈량이 바로 그러한 철을 아는 사람이다. 때문에 류비가 세번이나 제갈량을 찾아가는 미담이 전해지는 것이다. 인간세상에서는 철을 시국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시국을 아는자를 준걸이라고 하는 것이다. 철은 능히 알수 있는것이다. 정신만 차리고 잘 관찰하면 얼마든지 알수 있는것이다. 마치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면 가을이 왔음을 알수 있는것처럼 말이다. 설사 깊숙한 기온의 변화가 잘 알리지 않은 암방에 있더라도 낙엽의 소리를 들으면 가을이 왔음을 알수 있는것이다. 경제사회, 문화생활, 사회발전 등에도 모두 계절이 있다. 그러면 지금은 무슨 계절인가? 고도로 발달된 물질문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들뜨게 한다. 돈을 위하여, 명예를 위하여, 지위를 위하여 정신없이 뛰게 한다. 이러한 대가로 사람들은 많은 것을 얻었다. 그중의 많은 사람들은 즉 돈을 바라던 사람은 돈을 벌고, 명예를 추구하던 사람들은 명예를 얻었다. 지위를 바라던 사람들은 당연히 지위를 얻었다. 남을 속이고 속고, 인정, 사정 안보면서 자기의 속을 채우기 위해 정신없이 뛰던 사람들이 얻을것을 다 얻고 나니 인젠 자기의 본래의 모습이 그리워 진다. 나는 왜 사는가? 내 주위의 사람들은 왜 나를 괴상한 눈으로 보는가? 사람들은 왜 나를 피하는가? 사람들은 왜 나를 무서워 하는가? 이때에야 사람들은 고독감을 느끼게 되고 무엇인가 잘못되였음을 느끼게 된다. 또 자기가 이때까지 살아온 삶을 검토하게 된다. “인생하자미요, 왈의왈식연후에 왈색이라”, 즉 인생의 재미는 기본으로 되는 의식주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세상의 색다른 빛을 추구하게 된다는 뜻이다. 사람은 칠칠야밤에는 대낮을 그리고 햇볕이 쨍쨍한 대낮에는 서늘한 밤을 갈망한다. 이는 모든 인간의 속성이다. 운동하면 쉬고 싶고 쉬다 나면 또 활동하기 싶다. 배운것이 있으면 써먹으려 하고 모르는게 있으면 또 배우려 한다. 놀음에 지친 사람은 조용히 살고 싶어하고 조용히 보내던 사람은 나가서 기분 좋게 놀고 싶어 한다. 서구는 물질문명이 발달하였지만 동방의 정신문명을 지향해왔고, 동방은 서구의 물질문명을 지향해 왔다. 경제의 발전과 생활의 여유는 자연스럽게 마음의 공허를 인식하게 되고 새로운 사상을 갈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법칙이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간이 물질문명에 대한 추구와 이룩한 성과는 사람의 마음에 자기자신을 찾으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필경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떠나 너무 먼곳까지 왔던 것이다. 바로 이때 韓流가 불어온다. “韓流”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인 침투로서 한국인의 세계관과 인생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韓流는 寒流처럼 자기의 사욕을 채우기에 달아올랐던 우리의 머리를 시원히 식혀 준다. 사람들은 이제야 느낀다. 오, 이 세상에는 욕심을 채우는거 내놓고도 정이라는 것이 있구나! 사람들은 이제야 정을 갈망하고 찾기 시작한다. 정으로 철철 넘치는 인정미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찾기 쉽지 않다. 오직 韓流에서 찾을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여 韓流는 초원의 들불처럼 전 세계를 누비며 불타오른다. 한류가 중국에 불어치니 중국에는 한류를 거부하는 세력이 자라난다. 그러나 빈통을 물속에 넣으면 자연히 물이 새여 들어가기 마련이다.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시대와 사회라는 물결속에 들어있다. 그러한 마음의 갈망의 외침소리는 이러한 무리들이 결코 막아낼수 없는 것이다. 한류가 이 일을 못해내면 인도류든지 공자나 노자류든지 꼭 이 일을 하게 돼 있는것이 세상사다. 이 흐름을 막으려는 것은 귀막고 방울 도적질하는 격으로 허사이다. 텅빈머리를 지금의 사회와 시대라는 물결속에 넣으면 자연히 자기를 찾는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물이 거세찬 물줄기로 새여 들어오기 마련이다. 진정으로 성숙된 인간은 철을 알아야 한다. “지금은 무슨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무슨 철이다.” 라고 딱 짚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기업가도 철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기업가들이 한류에 힘입에 경제상에서 이룩한 성과를 보면 이를 알수 있다. 물론 연변의 김치도 이 덕에 호황을 이루었지만! 지금은 이런 寒流의 문화가 시급한 때이다. 마음의 고유의 주파수를 울려 공명을 일으키게 하는 문화가 급시적이다. 특히 세계에서 제일 빠른 템프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이런 문화가 더욱 시급하지 않는가고 생각한다. 경제가 상대적으로 침체된 연변의 기업도 이러한 형세에 눈을 뜨고 목적있게 힘을 주입한다면 연변의 재기에 큰 발판이 되지 않겠는가고 생각한다.
14    한류와 연변(1) 댓글:  조회:4382  추천:86  2005-10-18
텔레비를 자주 안 보는 나지만 우연한 경우에 텔레비를 보면서 우연히 호남텔레비죤 방송국에서 《대장금》을 하는 것을 보게 되였다. 저녁 10시부터 11.30분까지 하는데 이때 평시 같으면 온 하루의 일정에 지쳐 피곤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 나지만 인터넷상으로 그렇게 들어오던 《대장금》인지라 특수한 일만 없으면 피곤도 마다하고 보는것이 이젠 일과로 되였다. 정말로 훌륭한 드라마였다. 한국의 드라마는 한류라는 거센바람을 타고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었다. 2005년9월22일 북경청년보에는 《하나의 장금이 6섯 지방을 풍행》이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기사를 실었다.《대장금》태풍이 도서, 뮤지컬, 음식, 여행……으로 불어치고 있다.《대장금》은 방영해서부터 드라마의 극절정이 고조에 이름에 따라 시청률이 부단히 제고 되고 있다. 장사, 성도, 귀양, 해구, 란주, 라싸, 남창, 우루무치, 서녕 등 9개 도시의 시청률은 이미 5%를 초과하였다. 24개 도시의 시청률은 10%를 초과하였으며, 라싸는 12.58%라는 시청률로 전국에서 제일위를 차지한다. 이외에 《대장금》의 边际효응도 대중의 생활속에서 확대되여 가고 있다. 도서, VCD, 여행, 음식 등 여러방면에 모두 “장금열”이 일고 있다.■ 북경에는 한국산이 베스트셀러가 되였다. ……■ 장춘에서는 “장금”웨딩드레스 촬영이 유행되였다. ……■ 상해에서는 한국유람에 “장금”풍경구는 필수이다. ……■ 중경에는 고객들이 “장금”채만 주문한다. ……■ 라싸에는 “장금” VCD가 공급이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 남경에서는 절목집행자가 “민정호”로 화장한다. ……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을 통하여 이와 유사한 내용은 너무나도 쉽게 볼수 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부득불 문화경제시대가 닥쳐왔음을 실감하지 않을수 없다. 옛날에 그렇게 못나고 부끄럽게 알아왔던 우리의 문화와 풍속습관이 이렇듯 사람을 울리고 웃길 줄을 누구도 상상 못했으리라! 한류란 무엇인가? 한류란 기실 한민족 문화의 흐름이다. 한민족의 고유문화가 아직은 공백으로 되여 있는 세계 민중의 메마른 가슴으로 샘물이 흘러 골짜기를 따라 내물, 지어 도도한 강물을 형성하듯 만들어 지는 문화의 흐름이다. 남들에게는 없었던 혹은 남들에게는 미약했던 혹은 남들에게는 소외당했던 그러한 문화가 한류라는 바람을 타고 춘풍에 만물이 소생하듯 재생시키고 심어주고 하는 것이다. 50년대 초까지만 하여도 폭탄구뎅이만 널려 있던 한국이 불과 몇십년사이에 서구의 자본주의가 몇백년을 거쳐 발전해 온 그 엄청난 차이를 극복하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앞서가는 지금의 현실, 정말로 불가사이한 일이지만 이는 이미 현실이 되였다. 물론 한국국민들의 분투와 노력도 있었겠지만 그 외에 홀시 할수 없는것이 바로 문화이다. 솔직히 문화라는 차원이 없다면 한국은 인구가 한국의 몇십배나 되고 지역이 한국의 100배나 되고 자원이 풍부한 중국에 비해 너무나 처참한 경지에 처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국토의 면적과 자원의 매장량과 인구수와는 관계없이 한국은 이미 발달한 나라의 행렬에 들어서 있고 또 중국이 따라잡아야 할 대상이 되였다. 나는 이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 아니겠는가고 생각한다. 문화의 힘은 이렇듯 대단한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볼때 나는 중국의 한 편벽한 곳에 위치한 우리 연변도 다른 지역보다 더욱 힘차게 발전해 나갈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한국의 문화는 곧 우리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해낼수 있는것이면 응당 우리도 해낼수 있는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를 간단히 정리해 보니 우리 연변사람들도 상당한 부자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먼저 복장부터 보자! 한복은 지금 우리 연변에서는 큰 행사때만 입는 옷인데 정말로 세상에서 드물게 좋은 옷이다. 여성들의 치마저고리는 여성들의 모습과 몸매를 한껏 돋보이게 한다. 지금 이러한 한복의 가치를 알고 또 한류의 영향하에 중국과 향항의 연예인들도 앞다투어 한복을 입고 등장한다. 이름 모를 이 가수가 입은 한복을 보면 대뜸 이것을 느낄수 있다. 나는 텔레비에 나오는 가수들이 우리 민족의 전통복장 한복을 곱게 입고 나오는 모습에 마음이 감개가 무량해지곤 한다. 또 나의 주위의 한족친구들은 이런 말을 한번쯤은 한다. 조선족녀성을 선량하고 단아하고 인자하지! 나는 이생에 한번만이라도 조선족녀성과 살아봤으면 좋겠네! 라고! 나는 봉건통이 심해서 인지 우리민족의 여성이 다른 민족과 결혼해서 우리 민족의 끌끌 남아들을 홀아비로 만드는것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여성도 우리 여성처럼 훌륭하게 될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또 방법도 제공할수는 있다. 이것이 그래 거대한 재부가 아닌가? 산동성 위해시의 한 어마어마한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한번은 이런 부탁을 하여 왔다. 연변에서 전업에 맞는 조선족 필업생을 모집하여 가겠다는 것이다. 친구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연변의 각 학교를 돌아다니며 보았다. 연변대학, 연변과학기술대학, 연변공업학교 등 학교를 돌아다녔으나 이미 시기가 지나 필업생들이 다 일터를 찾아 떠난 상태라 헛걸음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몇달 기다려 다음기의 학생을 모집하기로 하였는데 그 회사에서는 이 일을 매우 중시하여 그 그룹의 동사장이 몸소 왔었다. 그리고 연변대학에 가서 재학생들을 만나고 실습을 위해의 그 기업에서 하기로 약정했다. 일이 이쯤하면 끝이 난 줄로 알고 나는 이 일을 싹 잊고 말았는데 썩 후에야 위해의 그 친구로 부터 또 연락이 왔다. 이전에 오기로 했던 학생들이 한명도 안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더러 연변대학에 가서 다시 알아보아 달라는 것이다. 연변대학에 가서 알아 봤더니 학생들은 이미 그 보다 더 큰 회사, 더 좋은 회사에 연계하여 나가고 없었다. 필업도 하기전에 벌써 분배가 다 되여버린 조선족 필업생의 현황, 이것이 바로 우리민족의 실정이다. 삼개국 언어를 자유로 구사할수 있는 천혜의 조건으로 인하여 공급이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인재시장, 이것이 또한 우리의 우세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시장도 인식하지 못하고 지금도 자식을 한족학교에 보내 한족으로 만들기에 열심하는 부모들이 정말 한심하다. 자기 언어도 모르고 자기 문화도 모르고 완전히 생소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이들, 조상님들께서 선진적인 언어를 창조하여 전하여 주셨건만 잠시의 가난과 괴로움을 참지 못하여 멀리 팽개치는 이들, 정말로 안타깝다.
13    한류와 연변의 자원(2) 댓글:  조회:3929  추천:82  2005-10-18
고유의 문화를 중시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한개 개체의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지금의 아주 유행되는 말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것이 있다. 지속이 가능한 전제하에서 발전한다는 것이다. 지속이 안 되고야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자기의 옅은 판단으로 자기의 문화가 낙후하다고 여기고 자기의 문화를 모두 집어 치우고 남의 문화를 통째로 가져다 보급하다 보면 실패하기가 당상이다. 모택동도 맑스주의를 중국의 문화에 접목시켜 모택동사상이라는 새로운 중국문화를 만들었기에 성공할수 있었지 맑스주의 그대로 옮기면 중국 혁명은 실패의 길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진정한 맑스주의는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과 때와 장소에 맞게 하라는 것이 그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이것을 실사구시라 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늘여 놓는 이유는 단 한가지, 즉 자기 문화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연변은 그렇게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자기의 많은 문화를 잊어가고 있고 또 어찌 보면 유적지 보호면에서까지 이런 점들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연길시의 동쪽켠에는 성자산과 욕지산이 있다. 나란히 서있는 이 산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곧이곧대로 말해주고 산 증거이다. 경치가 좋기로 뛰여난 이 산들은 동하국의 옛수도로서 선인들의 지혜와 안광을 역역히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산들은 지금 무지한 우리들로 인하여 턱도 없이 파괴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지로 되여 버릴 이 산을 보면서 나는 얼마나 속이 탄지 모른다. 우리의 자원과 문화를 왜 이리도 못 알아주는가?! 이 산을 개발하여 옛 공주들이 목욕하던 자리를 개발하고 성터도 개발하고 봉화대도 개발하면 무궁한 재부를 창조할수 있겠건만! 이외에도 연변에는 많은 유적지가 있다. 발해유적지, 항일유적지 등등이 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산을 파괴하는 행위도 적시적인 관리가 요청된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산을 숭배하여 왔다. 산의 모든것이 모두 더없이 보귀한 것이다. 우리 민족은 장성한 남성을 ‘사나이’라고 부른다. ‘사나이’의 어원은 ‘산 아이山兒孩’인데 즉 산의 자식, 산의 아이라는 말이다. 산은 神과도 통해 하느님의 아들이신 환웅천황을 일컷는 말도 된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의 역사상에서 많은 현인들은 정계에서 하야한 후 산골에 자리잡고 사당을 꾸리면서 자기의 학문을 전수하는 일이 무수하다. 이러한 원인으로 인하여 우리 민족에게 산은 특수한 의미를 가지고 보호되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실에서 산을 파되하는 행위는 거침없이 행해지고 있다. 팔가자 림구에 선봉림장이라는 곳이 있다. 풍경이 절세라 할 만큼 원시림이 꽉 차있고 기이한 봉우리들이 솟아 있어 국가급 공원이라고 한다. 그런 선봉도 듣는 말에 의하면 스키장으로 개발한다고 한다. 몇백년 고히 자라 형성되였을 원시림을 모두 파괴하고 찍어내서 민둥이 스키장을 만든다고 한다. 이것을 추진하기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제 정신이 있는지 묻고 싶다. 대학교 동창생으로 河南省 焦作市의 환경보호국에서 일하는 친구가 연변에 와서 혀를 차며 하는 말이 “하늘이 이토록 맑고, 산이 이토록 푸르고, 물이 이처럼 맑은 곳은 참으로 드물다. 연변에 와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10여개의 종이공장과 10여개의 세멘트공장으로 인하여 하류와 하늘이 오염된 자기의 지방에 비하면 정말로 천당같은 곳이라는 것이다. 인류는 사는 방식은 각양각색이고 문화는 달라도 친환경 생태환경에 대한 욕구는 모두 마찬가지 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도시의 환경이 오염되고 또 교통이 편리하여 산길을 다니는데 크게 지장이 없어지자 산을 찾는 사람들이 날따라 늘어나고 있다. 뼈속으로 부터 산을 그리는 민족혼은 다시 깨여나서 산에서 자기를 찾고 조상을 찾는 모습으로 보고 싶다. 지금은 산이 보배중의 보배이다. 산에서 나오는 각종 산품은 무공해로 인정되여 높은 값을 받을수 있고 휴식일만 되면 도시에서 찌든 몸매를 산골에 가서 풀려고 도시를 벗어 시골로 가는 뻐스마다 초만원을 이룬다. 이에 맞추어 산마다, 골짜기마다 별장이 들어서고 휴가촌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다. 이는 산이 얼마나 많은 재부를 창조할수 있는가 하는 잠재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외에 우리의 민속 놀이도 매우 인기다. 사물놀이, 칼춤 등등… 나는 문예에 문외한이여서 좋은 줄은 알지만 잘 종합은 못 하겠다. 그러나 발굴만 해내면 꼭 대단한 시장이 열릴것이라고 장담한다. 인젠 많은 자원을 소모하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훼손시키는 상품을 생산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철제품을 깎아서 상품으로 만들던 시대도 이미 지나갔다! 지금은 디지털시대이고 IT시대이고 문화의 시대이다. 우리의 독특한 문화와 창의력, 아이디어를 팔아라! 우리의 환경을 보호하고 우리의 자원을 아끼자! 우리의 문화를 보호하고 우리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빛내이자! 일찍 나는 자기의 승급, 자기 자리의 보존, 자기의 더러운 욕심을 만족하기 위하여 자기 할아버지를 팔아먹고 남의 집 돈있고 권세있는 할아버지를 모시는 사람들로 인하여 격분한 적이 있었다. 자기는 가만히 놀고 있다가 떡이 다 되니 먼저 입을 다시며 접어드는 사람들, 그들은 영원히 시대의 찌꺼기로 밖에 남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참하고 선하고 아름다운것이 가치가 있는 시대이다. 코앞의 이익만 보지말고 조금 멀리 보면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재부를 느끼게 된다. 우리의 문화가 바로 무상의 거대한 재부이다. 우리의 풍속이 바로 무상의 거대한 재부이다. 우리의 생태환경이 바로 무상의 거대한 재부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바로 무상의 거대한 재부이다.
12    모아산과 연길시민의 환경보호의식 댓글:  조회:3636  추천:72  2005-10-10
생활수준의 제고로 인하여 연길시민들의 일상생활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먹을 걱정, 입을 걱정으로 충만되였던 시민들의 일상생활은 이미 정신적인 향수와 건강의 향상 등 생활과 생명을 즐기는 방식으로 점점 바뀌여 간다. 이런 변화는 연길시 공공뻐스 43선을 타고 모아산에 가 보면 현저하게 느낄수 있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모아산에서 이러한 현상을 느낄수 있는것인가? 이는 아래와 같은 원인들이 있다고 본다. 그중 하나는 등산운동을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대자연의 품에 안겨 삼림의 혜택을 누리기 위한 것이다. 거기에 교통이 편리하고 경제적이여서 원하기만 하면 아무때나 왕복차비를 2원만 팔고도 공공뻐스 43선을 타고 10여분 후이면 모아산에 도착하여 등산과 삼림욕을 즐길수 있다. 등산운동은 유산소운동으로서 많은 운동항목중에서도 비교적 좋은 운동항목이다. 등산운동의 우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신체건강에 좋은 운동이다. 산속의 시원한 공기를 마실수 있어 오염된 도시공기에 절은 몸을 푸는데는 제격이다. 골고루 신체 각부분을 움직이게 하여 건강향상에 효과적이다. 둘째, 운동이 격렬하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너무 약한 운동도 아니여서 여러 부류의 체질에 알맞는 운동이다. 등산운동은 장시간의 운동으로서 인내심을 키우고 심장이 든든해진다. 셋째, 땀을 많이 흘리게 되면 몸속의 노페물이 말끔히 배출되면서 활력이 되살아나 저항력을 제고 시킬수 있다. 넷째, 많은 질병을 치료할수 있다. 관절염이라든가 폐나 기관지관련 호흡계통병들을 치료할수 있다. 다섯째, 경제적이고 편리하다. 교통비는 인민페1원이면 자기의 체력이나 기분에 맞는 적당한 곳에서 내려 등산할수 있다. 모아산에 올라 갈때면 또 특별한 장비도 필요없다. 나는 어떤 때는 퇴근길에 구두신은 채로 출근하던 복장 그대로 모아산 등산을 즐기군 한다. 모아산은 국가급자연보호구로서 삼림이 우거지고 야생동물들이 뛰놀고 있어 각종 오염으로 충만된 연길시에 비하면 맑고 깨끗한 공기와 한적한 환경으로 인하여 마음과 정신이 상쾌해지고 스트레스 해소에 매우 효과적이다. 또 생태계와 피부로 접촉함으로써 생태계를 이해하게 되며 경쟁의 사회에서 극도로 비좁아졌던 마음도 여유를 가져 느슨은 마음을 가질수 있게 된다. 같은 오찬도 모아산에 와서 자리를 펴고 하면 더욱 맛있고, 친척, 친우들과 함께 하면 그 친정을 더욱 돈독히 할수 있다. 이토록 연길에는 천혜의 모아산이 있어서 등산을 즐기고 지친 몸을 푸는 연길시 주민들의 좋은 거처로 자리잡아 가고 있지만 아쉬운 점은 이러한 모아산이 또 우리의 시민들의 손에 의하여 오염되고 파괴되여 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경절 휴가기간에 모아산을 찾은 나는 모아산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보고 경악하였다. 사처에 널려있는 쓰레기와 쓰레기더미, 아무 나무에나 걸어 놓은 쓰레기 주머니, 사처에 만든 길을 보면서 나는 우리의 시민들의 의식이 얼마나 시대에 뒤쳐지고 있고 격에 맞지 않는가를 느끼게 되였다. 과연 안타까운 일이다. 그처럼 귀중한 모아산을 우리의 시민들은 아직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우리는 우리에게 소중한 모아산을 잘 보호하고 아낄 의무가 있다. 지금 모아산은 우리 연길시민들의 생활과 떼여 놓을래야 떼여 놓을수 없게 되였다. 모아산은 우리의 휴식터이고 우리의 얼굴이고 우리의 보이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사람의 얼굴에 낀 때처럼 모아산이 오염되면 시민으로서의 우리 또한 민망스러운 일이다. 우리의 민족은 예로부터 문명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착한 민족이라 하였다. 하지만 모아산을 보고 누가 이를 믿겠는가!
11    부엌의 감자 댓글:  조회:3619  추천:70  2005-08-21
-민족융합과 문화브랜드에 대한 사고감자는 조선인에게 독특한 의미가 있다. 19세기 조선시대 백성들이 전염병과 굶주림에 허덕이며 끼니마다 무엇으로 빈창자를 달랠가 근근하고 있을때 전라도감사 서유구가 감자를 배양하는데 성공하여 사람들을 기아에서 구해냈다. 이때로부터 감자는 우리민족의 생활과 떼여 놓을래야 떼여 놓을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 이조말기 더는 굶주림과 조정의 등살에 배겨내지 못하게 된 조선농민들은 가만히 월강하여 중국의 간도지방에 와서 밭을 일구고 감자농사를 시작하였다. 그때 월강하면 목숨이 위험했다. 청정부는 조선농민을 발견하기만 하면 가차없이 붙잡아 월강죄로 투옥시키고 지어는 목 숨까지 빼앗아갔다. 그러나 굶어죽느냐 붙잡혀 죽느냐하는 두개의 갈림길에서 많은 조선농민들은 그래도 후자를 택했다. 그것은 굶으면 무조건 죽지만 월강을 하면 붙잡히지만 않으면 살아남을수가 있기때문이다. 19세기 80년대초 청정부에서 ‘이민실변’정책을 실시하면서 동북지구개발에 대한 조선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합법적으로 거주하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일본인들의 조선침략으로 인하여 더욱 많은 조선의 난민들이 중국으로 몰려들었다.우리 할아버지도 그때 월강하여 연변에 와 정착하였다. 내가 어릴때 많은 식구로 무어진 우리집은 구차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감자는 이때에도 우리가족의 주요한 식품의 하나였다.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의 구차해진 시기에는 우리들 생존에서 감자의 가치가 더 높아졌다. 우리집에서는 늘 감자를 주식으로 삶아먹고 구워먹고 하기가 일쑤였다. 쌀이 매우 긴장한 시기라 쌀한알이라도 누룽지로 붙을가봐 어머니는 늘 감자를 엷게 썰어서 가마에 펴놓은 다음 쌀을 넣고 밥을 하는 것이였다. 이렇게 하여 생긴 누룽지를 우리는 감자가마치라고 불렀는데 맛이 참 좋았다. 생활이 부유해진 지금도 그 옛날의 감자가마치를 회상하면 군침이 저절로 돈다.감자는 통화식물목 가지과의 식용식물인데 여러해살이풀로서 원산지는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의 고원지대이다. 조선의 문학예술종합출판사에서 출판한 조선사화전설집 제13집에는 ‘서유구와 종저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야기는 1831년 전라감사 서유구가 강필리의 저서 ‘감저보’에서 감자에 관한 내용을 보고 어떻게 싹튀우는 방법을 고안해내 감자를 키우는 방법을 보급함으로써 백성들을 기근에서 구해주었는가 하는 내용을 적고 있다. 감자는 올감자와 늦감자로 나눈다. 올감자는 지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찍 성숙되여 8월이면 파서 먹을수 있다. 늦감자는 벼가을이 끝나고 나서 10월이면 파내는데 잘 보관하여 두면 온 겨울뿐만 아니라 이듬해 봄까지도 먹을수 있다. 감자는 추위를 무서워 하는데 얼면 빨리 변하여 썩을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일부러 감자를 얼구어 언감자떡이나 언감자밴새를 해먹을 때도 있다. 겨울감자가 어는것을 막기 위하여 보통 김치움에 구뎅이를 더 깊게 파고 묻거나 임시 먹을 감자는 아예 부엌에 뭍거나 쌓아두고 먹을 때도 많다.모든 식물은 4계절을 타는데 봄이면 싹트고 여름이면 성장하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으며 이는 기후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후란 기온의 변화를 말한다. 그런데 부엌은 실외의 추운날씨와는 달리 부엌아궁이와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늘 더운 기온을 보존하고 있다. 이리하여 부엌의 감자는 늘 봄이 온것으로 착각하고 때이르게 싹트고 생장한다. 그러나 식물이 정상적으로 싹트고 성장하려면 해빛과 기온, 토양 등 조건이 모두 구비되어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싹트고 있는 식물에게 있어서는 해빛이 특히 중요하다. 그러나 어두컴컴한 부엌밑에 무슨 해빛이 있겠는가? 해볕을 받지 못한 감자싹은 푸른 물을 좀처럼 써보지 못하고 해쓱하게 자란다. 잎도 나지 못하고 모든 정력을 아끼고 집중하여 해빛을 찾아 온갖 간난신고를 다 겪으며 끝없이 끝없이 줄기만 뻗힌다. 희미한 불빛이 보여도 그쪽으로 뻗는다. 때문에 부엌의 감자줄기는 긴것은 1메터 이상씩 뻗어나가는데 빛을 찾기 위하여 그 무거운 석탄덩어리 사이를 용케 비집고 나오다나니 곧게 나오지 못하고 꼬불꼬불하다. 어릴때에는 그것이 희한하고 재밌고 또 그 생명력에 감탄하기도 했었다. 생명의 힘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얼마전 친구의 소개로 연우포럼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연변대의 허명철씨가 쓴 ‘사과배와 조선족문화’라는 글을 읽어보게 되였는데 어쩐지 저도 모르게 그 옛날의 부엌의 감자가 회억되였다. 내가 부엌의 감자를 회억하게 되였던것은 아마 연변의 조선족문화와 부엌의 감자사이에 어떤 류사점때문이 있기때문이 아닌가 싶다.살길을 찾아 정든 고향을 등지고 월강하여 중국땅으로 이주해온 조선사람의 신세가 어찌보면 빛을 찾아 헤매는 부엌의 감자 같다. 위로는 청정부의 혹독한 억압과 착취, 아래로는 생존의 강한 욕구, 살려면 반드시 빛을 찾아야 한다. 빛, 빛, 빛은 어디에 있는가? 조선족들은 민족과 민족사이의 차별과 학대도 운명 적으로 달갑게 받아들이며 또 그것을 감소하기 위하여 이민족들과 동거하면서 이 중국의 동북땅에 새로운 문화를 펴나갔다. 빛은 어디에 있는가? 빛을 찾기 위해 조선족은 용케도 청정부의 멸망과 위만주국의 멸망도 지켜보았으며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목숨걸고 싸우기도 하고 장개석과의 중국해방전쟁에도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어는 조선전쟁에까지 참가하면서 끝내 중국에서의 자기의 자리를 찾고 조선족자치주를 건립했다. 이는 연변의 조선족들의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기념비’의 대가이다. 이 모든것을 어찌 조선족들의 빛찾기 운동이라고 말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 뿐만아니다. 문화대혁명시기에는 ‘중국혁명은 연변에서 하고 연변의 혁명은 연변의 조선족이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앞다투어 공산당중앙의 호소에 열렬한 반응을 보였고 맹세도 보였다. 이러한 피타는 노력으로 연변의 조선족들은 중국땅에서 많은 승인을 받고 있다. 중국인민지원군군가도 우리 조선족이 지은것이고 또 적잖은 장군과 과학가들도 배출하였다. 어찌보면 연변의 조선족은 중국이라는 이 낯설은 땅에서 부엌의 감자싹과도 같이 자기의 재능을 힘껏 과시하면서 살아 왔다고 볼수 있다.그런데 이 거룩하고 눈부신 업적의 건너편에는 컴컴한 터널이 놓여있다. 그것은 조선족인구의 감소와 조선족민족문화의 소실이다. 허명철씨의 ‘사과배와 조선족문화’는 이러한 현실에 눈을 뜨고 빛을 애타게 찾으려 모지름쓰는 울부짖음이다. 하긴 그렇다. 짐을 배에 실으려면 먼저 든든하고 넉넉한 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라는 이 짐을 실을 배——조선족이 지금 아주 급속한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하여 총인구가 하강선을 긋던 조선족은 설상가상으로 빛을 찾기 위해 한족과의 통혼이 늘어나는가 하면 한족화 되기 위하여 조선학교를 퇴학하고 한족학교에 전학하거나 아예 직접 한족학교에 진학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족문화로 무장된 이런 새일대들을 보노라면 저절로 한숨이 나간다. 문화를 실어야 할 배가 점점 헐망해 지고 없어져 가니 허명철씨를 비롯한 지성인들이 어찌 조선족문화의 앞날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허명철씨는 우리민족의 빛을 찾는 도경을 새로운 브랜드전략에 기대해본다. 참으로 안광이 있는 제의라 하겠다. 우리 연변을 놓고 보면 자원의 우세와 교통의 편리와 지리적위치 등 방면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우월한 점이없다고 한다. 우리 연변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면 조선족자치주라는것이고 그 다음은 연변의 자랑인 장백산이라고 생각한다. 전에는 목재가 많이 났는데 이젠 그것도 옛날 소리이다. 이러한 연변의 실정에는 브랜드전략이 제일 알맞는다고 생각한다.내가 이 글을 쓸때도 사람들은 감자와 사과배와 민족문화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고 묻군 하였다. 나의 이러한 다른 사람들과는 틀리는 생각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고 배척하기를 습관화한다. 지금의 현대문명은 남들과의 차이가 현저할수록 매력이 있고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청년들은 괴상한 옷을 지어 입고 괴상한 머리 스타일을 하고 괴상한 신을 신고 다닌다. 자기의 특유의 매력을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이다. 비록 년세가 드신이들에게 있어서는 못 마땅한 일이지만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인기이다. 그리고 지금은 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특유의 상표, 눈에 확 뜨이는 이름을 선택하여 짓곤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비판의 문화환경속에서 살아 온 우리 중국의 조선족은 이를 무서워 한다. 혹시 누가 정치범이나 외국특무의 명목으로 신고하지나 않을가 하는 우려심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의 매력은 바로 남과 다른데 있다고 본다. 오늘날 브랜드가 이렇듯 사람들에게 흡인력이 있는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민족의 고유의 특성을 살려 다른 민족과 지역과는 다른 어떠한 특정을 보여주었을 때 그 생명력은 오히려 생각보다 더 커지는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조선의 각종 물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김일성마크, 김정일마크, 각종 우표, 신문 등이다. 이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것이 더욱 가치가 있다는 도리를 증명한다. 중국말의 物以稀爲貴라는 속담이 이런 것을 가르키는 것이다.아래에 문화의 브랜드를 찾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에 대하여 미천한 견해를 밝히려 한다. 즉 문화의 융합문제이다. 이는 오히려 브랜드문화의 발전에 역효과를 발생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하다싶이 민족은 그 민족문화를 실은 배와도 같기 때문에 문화의 융합을 다루기 전에 그 민족을 꼭 언급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먼저 융합의 뜻을 알아보자. 융합이란 말의 뜻을 고찰하여 보면 두가지 이상의 금속같은 고체의 물질을 액체상태로 될때까지 가열하여 녹인후 골고루 잘 섞어서 하나의 물체로 만드는것을 의미한다. 철을 고온에서 녹이고 거기에 적당한 량의 탄소를 넣으면 강철이 되기도 하고 눅쇠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금속들을 섞으면 스테인레스도 된다. 지금 우리 주위의 많은 물질들은 융합을 통하여 만들어 진것이다. 물론 사과배도 돌배와 사과의 겐의 융합을 통하여 만들어 졌다고 볼수 있다. 문화의 융합과 민족의 융합은 어떠한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는가?민족과 문화의 융합은 물질의 융합과 마찬가지로 99%철, 1%탄소 하는 형식으로 영원히 고정되여 있지 않고 선진적이고 우세를 점한 하나의 민족과 문화가 후진적이고 열세에 처한 다른 민족과 문화를 동화시켜 버리는점에서 유사하다. 융합의 열매는 민족문화의 동화이다. 민족의 융합은 결과적으로 민족의 동화이다. 중국의 한족은 지금까지 거대한 불랙홀처럼 주위의 허다한 소수민족을 흡수하면서 자기를 살찌워 왔다. 홍콩의 한 학자가 통계한데 의하면 지금의 한족가운데의 80% 정도는 다른 민족이 동화된것이지 순수한 한족 즉 황제의 자손이 아니라고 한다. 그들도 처음에는 지금의 우리 중국의 조선족처럼 빛 찾기 운동에서 모대기다가 결국 부지불식간에 동화되여 간 것이다. 김용의 소설속의 모용씨의 가족이 바로 그 예이다. 그렇다면 민족과 문화의 융합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 차이점이 시간상에서 나타난다고 본다. 민족의 융합이 실현되기전에 문화의 융합이 먼저 진행된다. 문화의 융합은 서로 다른 두가지 민족을 먼저 커뮤니케이션하게끔 하는데서 나타난다. 이러한 민족문화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두가지 민족의 거부감이 점차 사라지고 호상 대방을 이해하고 승인하게 된다. 이러는 중에서 약소민족은 강한 민족의 우월한 점을 보아내고 강한 민족의 문화를 접수하기 시작한다. 다시말하면 공동언어가 생기게 되는것이다. 이쯤하면 우리는 문화의 융합이 시간저군제임을 볼수 있다. 민족문화의 융합은 민족의 융합에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민족문화가 통하니 민족도 점차 차이를 좁히면서 나중에는 민족의 융합을 이루어 낸다. 민족의 융합과 민족문화의 융합은 서로 융합을 추진하는 작용도 한다. 민족의 융합의 진행은 민족문화의 융합을 더욱 촉진하여 그 템프를 가속화시킨다. 다른 한방면으로 민족문화의 융합은 더욱더 민족의 융합 즉 동화를 가속화시킨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옛날 일제가 조선 강점시기 때처럼, 또 동북의 홍산문화가 사라진것 처럼, 마치 3000년전 동이문화가 사라진것처럼 결국에는 약소민족의 민족문화는 사라지면서 강대민족의 민족문화로 대체되고 약소민족은 점차 동화되여 사라지고 만다. 결국 민족문화를 실을 배—민족이 없어지므로 민족문화도 결국에는 사라지고 마는것이다.때문에 나는 연변문화의 양식을 한민족과 한족문화의 특색을 살려가면서 새로운 제3자의 문화를 건설해야 한다는 견해와 의견을 달리 한다. 나는 그 결과는 반드시 중국의 2백만 조선족인구의 동화로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마치 부엌의 감자를 감자라고 할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현실은 부엌의 감자보다도 엄준하다. 부엌의 감자는 그래도 생활환경이 악렬할뿐 다른 잡종은 안 섞였는데 우리민족은 생활환경이 저기압일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와 혈연의 침투로 인해 동화하여 나가기 때문이다(혹시 어떤 사람은 생활환경이 저기압이라는 말에 반대 의견이 있을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민족이 자기의 민족학교로 가지 않고 타민족학교로 전학해 나가는것은 우리민족의 언어를 가지고는 장래에 진학이나 승진에 있어서 제한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할수는 없다. 이런 무형의 기운을 나는 저기압이라고 생각한다.)그러면 우리민족은 자기의 빛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융합해야만 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문화는 융합하는 수도 있지만 공존하는 수도 있다. 나는 연변의 상황에서는 융합보다도 공존하는편이 더욱 좋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인디안인처럼, 중국의 많은 소수민족들처럼 그렇게 동화되지 않고 자기의 문화를 지켜나갈수도 있다.그렇다면 연변조선족문화는 어떤 속성을 가져야 하는가? 첫째, 우리는 하느님의 자손이며, 단군의 자손이다는 우리민족의 신화를 계속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둘째, 우리에게는 우리의 고유문화가 있다. 즉 풍류도의 정신과 화랑도의 정신, 거기에 지금까지 선지자들이 유불선문화를 쪄내서 만든 문화를 지켜야 한다. 셋째, 우리의 명절과 풍속을 잊지 말고 지켜나가야 한다. 넷째, 우리의 언어와 문자를 계속 사용하여야 한다. 우리의 문화는 이러한 속성을 주추돌로하는 전제하에서 새로운 길을 탐색해나가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빛을 찾아 살길을 찾아 헤매도 남의 아버지를 제 아버지로 알고 모시며 자기의 친 아버지를 오랑캐라고 해서야 되겠는가? 자기가 모르고 한 일이라고 해서도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 연변의 조선족들의 빛찾기 운동은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그 형세는 갈수록 더욱 엄준하여 진것 같다. 우리민족의 미래를 염려하면서 허명철씨는 브랜드문화를 펼쳐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호소하였다. 이에 대하여 나 또한 동감을 표시한다. 기실 언녕부터 브랜드 문화를 중시하고 발전시켜야 했다고 본다. 브랜드문화를 성공적으로 펼치려면 무엇보다도 문화의 차이점에 모를 밖고 그 차이점을 융합시키고 동화시키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차이점을 클로즈업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연변에서 여러차례의 문화행사가 있었지만 어찌보면 그 효과가 그다지 리상적이지는 못했다고 볼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문화적 행사에 있어서 우리 특유의 문화를 선보인다면 오히려 사람을 흡인하는 큰 자원이 될수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한다. 우리민족의 특유의 가야금, 퉁소, 장단 등을 대폭적으로 보급하여 아주 초대규모로 펼쳐보이고 또 거기에다 다른 민족의 문화행사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다면 큰 효과를 일으킬수 있다. 그리고 민속복장도 그렇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우리민족의 옷단장을 세상에 자랑하는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거기에 탈명절, 민족씨름절, 그네뛰기절 등등 을 보편화 규모화시키면서 나아가면 끝내는 민족의 브랜드를 훌륭히 이루어 낼것이라고 생각한다. 차이점을 융합시키거나 축소시킬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이점을 확대화시켜 남다른 이미지로 우리의 경제와 문화를 구축해나가야 하는것이다.솔직히 브랜드문화의 건립과 문화의 융합의 문제는 모순되는 문제이다. 문화가 융합되면 차별이 없어지므로 결국에는 브랜드문화의 건립을 이룰수 없다. 브랜드문화는 차별을 확대화하는 것이므로 또 융합도 이루어 낼수 없다.허명철씨는 조선족의 일원으로 태어났다면 나의 존재에는 조선족다운 그 무엇이 체현되여야 한다고 하였다. 조선족의 일원이란 조선족의 피가 섞여있음을 말하고 조선족다운 그 무엇이란 자기의 아비를 알고 섬겨야 함을 말한다고 생각한다.총체적으로 중국의 조선족이 빛을 찾자면 문화의 융합의 길을 걸어서는 안된다. 문화는 공존을 쟁취하고 될수록이면 자기 문화의 우점을 살리여 차이점을 확실히 하는 점에 모를 박고 브랜드문화를 펼쳐야 한다. 오직 이렇게 하여야 만이 자기 민족의 존엄을 지키고 피의 순결성과 민속의 정통성을 지켜낼수 있다. 또 자기의 진정한 조상을 잊지 않음으로써 후손만대가 떳떳하게 살아나아 갈수 있게 할수 있다.
10    세상에 이런 일이….? 댓글:  조회:3869  추천:83  2005-08-18
며칠전 한 한족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화룡시팔가자 림업국에서 일해 오시다가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늙은 양주가 살고 있는데 틈이 있으면 아들, 딸집을 돌아다니시는 것이 두 노인의 유일한 쾌락이라 하겠습니다. 이 할아버지와는 제가 몇달전 그 마을에 가서 휴양을 할때 면목을 익힌 사이입니다. 그 한족할아버지가 산골에서 근 50년을 살아 왔는데 림장에서만 30년을 일해왔다고 합니다. 그때 림장에서 일하는 다수 사람들은 조선족이였으므로 이 할아버지는 조선족을 많이 접촉하여 왔다고 합니다. 그는 조선족의 노인을 존중하고 형제가 우애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탄식하며 지금의 조선족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림장마을에 지금 조선족집이 두집이 있는데 그중 한 집에는 나이가 90여세 되는 안노인 한 분이 계신다고 합니다. 이 안노인의 남편은 일제 때 일제의 경찰국에서 경장을 하였다고 하는데 일찍 세상을 뜨고 자식으로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두고 있다고 합니다. 아들은 연길에서 사업하고 딸과는 앞뒤 집에서 살고 있는데 생활비는 정부에서 발급하는 100여원의 생활보조금이 고작입니다. 아들과 딸과 모순이 있어 아들은 몇년이 되도록 찾아 보기는 커녕 문안 한번 하는 법도 없습니다. 사위는 호랑이 같은 사위인데 할머니한테 손찌검도 하는 그런 무뢰한이 랍니다. 세상에서 불쌍한 것이 부모 마음이라고 그 할머니는 날마다 아들, 딸 생각 손자, 손녀 생각에 눈물이 그칠 새 없습니다. 어찌도 울고 울었는지 눈이 초점을 잃고 부옅게 되였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새끼들 생각에 울고 또 웁니다. 낮이면 자식들의 모습이 보이겠는가고 딸집의 울바자밖에서 서성입니다. 정신도 혼몽해지는지 넉두리를 쉼없이 합니다. 밤에는 혼자서 울다가 넉두리하고 그리고는 또 울고 합니다. 그러나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제 정신을 찾아 인사도 하고 얘기도 나누면서 다정하게 보냄니다. 그 할머니의 옆집에는 기독교신앙을 하는 한 한족할머니가 계시는데 마음씨가 매우 곱습니다. 그 한족할머니는 늘 이 조선할머니를 찾아 이야기도 나누고 일도 하면서 다정하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사위가 장모님을 구박하는 행위가 생겼습니다. 이 할머니는 사위집과 얼마간 떨어져 사는데 그것마저도 눈에 거슬려 할머니를 연길에 사는 아들집에 압송해가는 것이였습니다. 안가겠다고 몸부림치는 힘없는 할머니, 울고 불고 소리치며 애걸하는 할머니, 그러나 사위는 이러한 할머니의 애탄 부르짖음도 들리지 않는듯 합니다. 온 마을의 주민들이 떨쳐나서서 손가락질 하건만 들리지 않는듯 합니다. 왜소한 할머니는 끝내 세바퀴 뜨락또르에 실리워 마을을 떠나갑니다. 애간장을 태우는 할머니의 울음소리는 온 마을 사람과 사면을 둘러싼 높은 산들마저 슲어서 흐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정말로 우리 이 지구땅에 이런 일이 있어도 되는 겁니까? 정말로 예의민족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우리 백의 민족에게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 되는 겁니까? 우리의 교육은 어디로 갔습니까? 우리의 민족의 얼은 어디에 갔습니까? 하늘은 높이 떠서 굽어만 보고 있는 겁니까? 조상님은 저 세상에서 보고만 있는 겁니까? 90여세의 노인이 잘못했기로 무슨 그렇게 용서 못하는 죄가 되는 겁니까? 민족이 지금 출생율의 저조함으로 인하여 영혼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효자를 낳게 되면 차라리 자식이 없는게 났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식은 독소마냥 자기와 남과 민족을 부식하고 더럽히고 해치는 것입니다. 그 사위도 언젠가는 늙을 때가 있겠건마는… 나는 우리 조선족의 문제는 출생률이 저조한것이 주요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얼을 뺏기웠다는 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젖을 주는것이 엄마라고 양심마저, 조상마저 팔아버리는 이런 인간들은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받아서 그런겁니까? 어떠한 세계관이 지배해서 그런겁니까?글을 쓰는 이 마음은 어쩌면 이리도 슲을가요? 안타까움이 머리털부터 발끝까지 푹 젖어 한량 없습니다.편집후기: 기실 제가 언젠가 촬영을 하러 이 산골마을에 갔댔는데 면바로 이 할머니의 옆집에 들게 되였습니다. 깊은 밤에 자식이 그리워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며 흐느끼는 할머니의 울음소리는 나에게 깊은 추억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 위의 그 한족할아버지로 부터 사위가 할머니에게 행패질하며 온 마을사람들을 앞에 두고 끌고 갔다는 말에 마음이 심이 상했습니다. 어찌보면 저와 관계가 없는 일이라겠지만 그렇게 생각이 안 되고 꼭 제몸에서 발생한 일 같네요. 위의 내용은 사실이며 한마디의 거짓이 없음을 첨부합니다.
9    환경보호의식은 연변인민의 얼굴 댓글:  조회:3627  추천:78  2005-08-16
일전에 연변대학에서는 중화일본철학회가 주최하는 국가급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전국적으로도 비교적 교모가 큰 이 회의는 중일한 삼개국의 고도로 되는 중시를 불러 일으켰다. 일본 학술재단과 연변대학의 후원을 받고 일본주심양영사관 총영사와 중일한 삼개국의 거물급 학자들이 모인 이 자리는 정말로 연변을 자랑하고 장백산을 세상에 알리는 좋은 기회였다. 회의는 연변대학의 교장으로 부터 관련부문의 고도로 되는 중시로 아주 성공적으로 진행되였으나 몇가지 일이 회의 참가자들을 기분 나쁘게 하였다. 그중의 하나는 도시중심에서의 경적을 울리는 일이다. 연길시 공안국 교통관리부문에서 일찍 도시중심에서 경적을 울리는것을 명문으로 금지시켰지만 몇년이 지나도록 잘 집행이 되지 않는다. 차들이 끊임없이 경적을 울리며 오가는 상황을 보면서 거리에 나선 회의참가자들은 매우 기분이 잡쳐있었다. 정말로 연길시의 한개 시민으로서 낯이 뜨거워나는 순간들이였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런 꺼리낌도 없이 차창으로 피우다만 담배꽁초를 버린다더거나 또 붉은등신호와 푸른등신호를 확인하지 않고 길을 가로질러 다니는 현상도 문제점이다. 차를 주차위치에 세우지 않고 손님을 태우기 위해 아무데나 세우니 뒤의 차는 또 앞의 차가 가지 않는다고 경적을 울리고 이러다나니 경적소리가 끊이질 아니 하는 것이다. 이는 정말로 시민들의 소질을 반영하는 문제여서 우리 시민들이 깊이 반성할바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 문제는 장백산에 올라 갔을 때이다. 손님들을 모시고 장백산에 올라가면서 보니 언제 그랬는지 천문봉으로 산언덕에 통신용 빛케블을 묻었었다. 장백산의 일초일목도 함부러 꺽지 못한다는 규정과는 상관없이 주위의 그 귀중한 풀들과 꽃들은 땅과 함께 파헤쳐져 더러운 흑룡처럽 꾸불꾸불 위로 뻗었다. 정말로 살풍경이였다. 이렇듯 귀중한 자연자원을 이렇게 마구 관리하는 장백산관리일군들에게 정말로 실망이다. 이는 또 하나의 우리의 환경보호의식을 발로하는 현상이다. 짚차를 바꿔타고 천문봉까지 올라가는 사이는 또 전문가들의 불만과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시간을 아껴 빠른 속도로 낭떠러지를 지척에 둔 굽이를 질주하는 짚차는 차에 앉은 손님들로 하여금 이리저리 몸을 부대끼며 또 다시 겁을 잔득 먹은채 손에 땀을 쥐게끔 하였다. 그렇듯 아름답고 웅위로운 절세의 경치도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하고 나서야 겨우 흠상할수 있었다. 천문봉에서 내려온 손님들은 안도의 숨을 내 쉬면서 안전히 내려온데 대하여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또 불만이 오갔다. 외국에는 이러한 길에 삮도나 전기용차로 대체하는데 짚차로 가니 성스러운 장백산의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하며 생명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다. 사람이 남에게 존경을 받자면 남들에게 존경을 받을만한 수행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연변은 지도층으로 부터 시민에 이르기 까지 이러한 수행이 갖추어져 있지 못하고 있는 같다. 특히 환경보호의식은 더욱더 선진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바라건대 이런 일들이 하루빨리 해결을 가져왔으면 좋겠다.
8    인생의 비결 댓글:  조회:3055  추천:66  2005-07-07
석가는 왕족으로 태여나서 백성들이 삶을 위해 허덕이며 사는 모습을 보고 자기가 진리를 깨달았다고 생각하였다. 즉 '저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전생에 죄를 지어 이생에서 저렇듯 고생하고 있구나'하고. 그리하여 석가는 윤회설을 설립하고 인생을 윤회설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죄를 지으면 끝없는 고(苦)에서 뻣어나지 못하고 윤회하게 된다. 또 죄를 짓는 정도에 따라 윤회하는 등급도 부동하게 된다. 석가의 이러한 가르침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부모 혹은 자식 혹은 아내나 남편을 외롭게 남겨두고 윤회를 벗어나기 위한 수행을 하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떠났다. 다시는 苦를 안 거치고 영원한 삶을 살겠다는 속심에서 였다. 苦가 없는 삶, 그것은 정말로 있을수 있으며 또 가능한 삶인 것인가? 이는 자연의 법칙을 떠난 환상적 삶이라고 밖에 할수 없다. 우주의 만물은 모두 똑같은 우주의 법칙을 떠날수 없다. 우주의 법칙은 간단히 음과 양의 법칙으로 볼수 있다. 또 다시 말하면 수축과 팽창의 법칙이다. 우주는 이런 음양의 주기적인 교체로 발전을 이루어 왔던것이다. 이는 우주의 보편적인 법칙이다. 어떠한 사물의 발전도 이러한 과정을 떠날수 없다. 일찍 맹자는 이러한 말을 한적이 있다.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腑 窮乏其身行 行弗亂其所爲 是故 動心仁性 增益其所不能.뜻인즉 "하늘이 이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고자 할때 반드시 먼저 그 사람더러 하고자 하는 뜻을 괴롭게 하고; 근골을 지칠대로 지치게 하고; 굶주림에 허덕이게 하며, 길을 떠남에 있어서 로비도 없게 하는데 그 원인은 마음과 성질을 연마하여 그가 할수 없는 일도 할수 있게 하려는데 있다"이다. 맹자의 뜻의 苦는 석가가 말한 뜻과는 상반대이다. 석가는 苦를 전생에서 지은 죄 때문이라고 보았지만, 맹자는 오히려 苦는 하늘이 그 사람에게 내려준 축복으로 보고 苦의 시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인생을 이해할수 없으니 절대고 큰 일을 할수 없으니 苦를 보약으로 알고 받으란 말이 되겠다. 많은 사람들은 苦속에서 苦를 이겨내지 못하고 좌절당하고 만다. 그러나 안일한 생활만 추구하여서는 결코 성숙을 이루어 낼수 없다. 그러나 또 苦만 있는 삶은 또한 찬성할바가 아니다. 음양의 각도에서 보면 苦는 음에 속한다고 볼수 있다. 반대로 일들이 순순히 풀려나가는 것은 양에 속한다. 우주의 법칙에 의하면 사람이 발전을 하려면 꼭 두가지를 다 겪어야 하는것이다. 苦도 겪어야 할뿐만 아니라 또 인생의 환락도 느끼면서 성공의 희열도 느껴야 하는것이다. 어떤 사람은 겸손은 미덕이라고 한다. 그러나 겸손은 사람의 타고난 자질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고 사그러지게 할수 있다. 그렇다고 가라지처럼 고개를 가득 쳐들고 살아야 된다는 것도 아니다. 그 결과는 가을의 서리에 꼭 꺾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때를 맟추어 겸손할땐 겸손하고 자부할땐 자부하고 희노애락을 빠짐없이 다 고루 겪어야만 제대로 성숙될수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달갑게 받아들이며 사는 삶이야 말로 인생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한다.
7    우리의 삼림은 누가 지켜줄것인가? 댓글:  조회:3182  추천:77  2005-06-03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인류가 제일 숨가쁘게 느끼게 되는것은 경제후진이 아니라 환경문제이다. 20세기 80년대부터 자연환경은 인류의 끝없는 탐욕에 대하여 엄숙한 경고를 해왔지만 인류의 자연파괴 행위는 계속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자연환경의 참혹한 파괴와 이와 관련된 기후이상, 기후온난화, 토지사막화와 지진, 화산의 부단한 폭발 등은 지성인으로 하여금 경제발전보다도 자신과 그 후손의 생존위협을 숨가쁘게 직감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환경파괴행위가 꺼리낌없이 진행되고 있어 사람의 가슴을 조이게 하고 있다. 얼마전 필자는 모아산국가공원, 룡정의 대포산(비암산남쪽에 위치해 있음), 룡정시구룡촌 뒷산에 오르면서 매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수많은 소나무들이 허리 잘리운 채 여기저기 쓰러져 있지 않겠는가! 소나무는 사철푸른 그 잎과 동지섣달에 조차 허리굽힘이 없이 떳떳이 서있는 그 강경한 의지와 꿋꿋한 자태로 인하여 뭇사람들의 한결같은 찬미를 아낌없이 받아안고 있었지만 지금 무지한 인간들에 의하여 무정히 허리잘리워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일행은 나무를 마음대로 찍은 이 무자비한 행위에 분개하였지만 그보다 더 한심한 사건에 아연해질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조금 더 내려가니 산발아래 토막토막 잘리운 소나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때문이다. 그것은 목재가공공장이였다. 누구의 허가를 맡고 하는 행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의 사지를 자르는 것과 같은 잔인함과 아픔을 느꼈다.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여 인간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동물과는 다른 지적인 사유와 량심이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의 개인리익을 위하여 공유의 삼림에 손을 대는 것은 옳은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지하고 탐욕스러운 인간들로부터 지구, 이 인류 생명의 요람은 전례없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하늘, 땅, 바다, 공기는 이미 오염되여 있으며 지진, 화산, 태풍, 홍수는 인류의 생명재산을 위협하고 있다. 인류가 개발한 화학약품과 구멍난 오존층은 생물변이를 유도하고 있고 새 류형의 전염병은 생물의학에 거대한 도전을 걸고 있으며 지구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바로 이런 대변혁의 시대에 눈뜨지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자기손으로 자기뺨치는 행위는 정말 사람을 안타깝게 하고있다! 우리의 삼림은 누가 지켜주어야 하는가? 바로 우리 자신이 아끼고 지켜주어야 한다.!2002-04-10
6    황야의 과학적가치(번역고) 댓글:  조회:3311  추천:82  2005-06-03
한뙈기의 반듯한 잔디밭에서 당신은 ‘잔디밭을 보호하는 것은 사람마다 책임이 있다’, ‘생명은 보귀하다, 나의 생명도’, ‘작은 풀은 아름다워 짓밟기 애석하다’와 같은 계시판과 보호용울바자를 볼수 있다. 록색환경보호조류가 꿈틀거림에 따라 사람들은 점차 록색은 생명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았다. 록화가 하루 빨리 효과를 보게하기 위해 한때 중국에는 풀을 심는 열조가 도시와 농촌을 휩쓸었다. 어떤 지방에서는 대량의 인력, 물력, 재력을 동원하는데 서슴치 않았으나 왕왕 힘은 많이 들이고 성과는 적었다. 이런 잔디는 덥고 추운것에 약하고 볿히고 눌리우는데 약하고 가물과 장미에 약하여 마치 온실안의 애싹과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귀하지 않는 생명’이라고 인정받는 야생잡초들은 비록 해마다 쇠퇴와 번영을 반복해가지만 사람들이 밟던 자르던 심지어 태워버리던 완강하게 살아나가고 있다. 그야말로 ‘들불은 다 태울수 없고 봄바람이 불면 또 살아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만 인공잔디만 알고 야생잡초는 중시하지 않고 잔디와 들풀을 구별시하여 대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오직 인공가치만 승인하고 황야의 가치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럼 황야는 도대체 가치가 있는가? 있으면 얼마나 있는가? 생태학가들은 황야는 생명의 에덴동산이라고 한다. 황야는 인위적인 교란을 받지 않았거나 인공적인 개조가 비교적 적은 자연의 ‘원 바탕’이다. ‘황야’라는 단어에는 야생물종이 인류의 관리와 제한을 받지 않았다는 함의가 내포되여 있다. 황야는 일종 다양성, 원생성, 개방성, 조화성, 특질성, 취미성으로 충만된 자연계통이다. 지금 일부 생태학가들은 대폭적으로 잔디를 심는 작법에 대하여 근심이 태산같다. 심지어 록색황막화라고까지 부르지만 반대로 황야에 대하여서는 특별한 정을 기울여 생명의 에덴동산이라고 부른다. 오늘, 미국과 중국대만에는 모두 황야보호협회와 류사한 조직이 있는데 이러한 조직들에서는 사들이고 세를 내거나 세를 놓는 방식을 통하여 황야의 보호권과 관리권을 취득한 후 울바자를 치고 보호함으로써 대자연으로 하여금 마음껏 자생자멸하게 하여 인류의 자손후대들이 조상들이 남겨놓은 황야에서 자연의 신비를 탐구하고 생명의 의의를 깨닫고 독특한 감수가 생기고 좌절경험도 체험할수 있는 기회가 있게 하고 있다. 생태학자들은 황야는 사회체계, 경제체계, 문화체계와 달리 독릭적이고 유구한 생태체계라고 한다. 황야는 은행과도 같지만 절대로 제멋대로 본금을 꺼내면 초과지불(카드론)을 초래한다 어떤 사람은 자연의 만물은 인류가 있은 후에야 비로서 쓸모있는 물건으로 되여 가치를 가지게 되였다고 여긴다. 그러나 사실은 인류가 생긴지는 겨우 300만년도 채 안되지만 생명의 20~30억년의 려정에서 자역적 생명지탱계통은 이미 매우 효과적으로 기순환, 물순화, 광합작용, 물질전환, 에네르기 전환, 정보전달, 물종의 존망 같은 것들을 운행하여 왔다. 이들은 어느 하나도 황야자신의 가치 즉 생명지탱가치의 체현이 아닌것이 없다. 인류의 생존은 반드시 자연에 의뢰하고 자연에 그 뿌리를 두어야 한다. 심지어 인류가 자연을 파괴한후의 회복, 오염물의 분해, 병충해의 조절과 공제도 모두 황야에 의뢰하여야 한다. 아래의 수치는 황야의 생명지탱가치를 나타내고 있다. 1 m3황야초지가 함유하고 있는 내용물에는 개미류, 거미, 쥐며느리, 딱정벌레, 파리 각 1000마리; 지렁이, 천족충 등 각2000마리; 달팽이 등이 각8000마리; 각종 선충, 유충, 연체동물 20000~1200000마리가 있고 또 한 스픈의 초지에는 원생생물 100만개, 진균 50억개, 세균 2000만개가 함유되여 있다. 황야의 내용물은 실용성, 풍부성, 다양성과 가재생성으로 우리 생존에 적합한 가원을 구축하여 인류로 하여금 편안한 물질적생활을 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런 경제가치는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인류사회의 경제체제는 반드시 황야의 운행법칙을 존중하고 복종하는 기초상에서 구축되여야 하며, 가재생성 자원 즉 동식물에 대하여서는 절도있게 사용하여야 한다. 석탄, 석유와 같은 불가재생자원에 대하여서는 정당하게 리용하는 동시에 태양에네르기, 바람에네르기와 같은 대체품을 찾기에 노력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지표의 부단한 증장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제한된 황야의 경제자원은 공급과 수요의 모순이 생기게 되고 심지어는 공급이 끊어질수도 있다. 참말로, 황야의 경제가치는 과학기술수준의 제고에 따라 올라갈수도 있고 절제있게 또 무해하게 리용될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가 대지의 경제가치를 영원히 지속적으로 리용하려면 반드시 황야를 보호하는 의식으로 대지와의 화해를 구하고 일체 ‘닭을 잡아 알을 꺼내’는 생산방식을 금지하여야 한다. 황야는 은행에 비하면 그 자원은 저금이고 또 저금은 리식으로 인하여 날따라 늘어나며 수요에 따라 때때로 찾아 쓸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로 쩍하면 본금을 찾아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초과지불(카드론)을 초래할수 있다. 황야속의 풀지 못한 과학적 수수께끼는 하나의 읽어보지 못한 책과 같다. 황야는 그 신비하고 풍부하고 복잡한 원시속성으로 인하여 많은 과학가들을 흡인하여 과학가들이 지식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대상으로 되였다. 만약 화석 지어 활화석인 황야가 이세상에 다시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생명려정의 과학적근거를 발굴해낼수 없게 된다. 황야의 과학적 수수께끼는 아직도 매우 많아 마치 아직 열독하지 않은 책과 같다. 오직 이 잔존하고 있는 황야에서야 만이 우리는 류실된 열독소재들을 다시 찾아낼수 있다. 황야를 소멸한다는 것은 마치 단 하나밖에 없는 그것도 절대로 위조품이 아닌 커다란 책을 불살라버리는 것과 같다. 지구의 황야속에는 아직도 인류에게 채 알려지지 않은 물종이 매우 많다. 지금 인류가 명명한 물종은 약 175만종에 달하지만 과학가들이 예측에 의하면 자연계의 물종은 1000만종 이상이라고 집고있다. 20세기70년대말 동남아 벼들은 황애병독으로 인해 대면적으로 말라 죽어 백만무에 달하는 벼가 재해를 입었다. 과학가들은 연구를 통하여 반드시 황애병독에 저항할수 있는 벼를 찾아내 잡교하는 방식으로 항병유전자를 고산벼에 이식하여야 해결할수 있다고 여기고 세계각국의 종자유전자창고를 발칵 뒤집었다. 그러나 황애병독을 저항할수 있는 유전자를 찾을 수 없었다. 재해는 만연되고 인류는 기아의 위협을 받았다. 얼마후 과학가들은 끝내 인도의 한 산골짜기에서 한 그루의 야초와 흡사한 황애병에 저항할수 있는 야생벼를 발견하였는데 이 야생벼의 항병유전자를 대폭적으로 벼에 이식하여서야 비로소 이 큰 재난을 피면하게 되였다. 3년후 이 산골짜기에 저수지를 건설하였는데 황야의 원모습은 다시 찾아볼수조차 없었다. 만약 이 야생벼를 몇년만 더 늦게 찾아냈다면 항병유전자를 가진 그 ‘작은 풀’을 어디에 가서 다시 찾을 수 있겠는가? 현재 인류가 식용하고 있는 량식작물 중 80%는 10가지 식물에서 온다. 단일 작물농경지의 확대와 더불어 농업생산이 황야에 주는 압력은 날따라 커진다. 농약, 잡교품종, 방사성원소 등 생물유전자의 돌변을 유발한 가능성은 날따라 커진다. 때문에 황야속의 자연선택된 유전자저장고 즉 유전다양성을 보호하는 것은 더욱더 중요하다. 그것은 누구도 우리가 벼의 황애병과 같은 재난을 다시 입을수 없다고 보증할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야생물종을 인공물종고에 옮기고 동물은 동물원에 보존하는데 열중하고 있는데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호가 아니다. 과학가들은 생물다양성을 보호하는 제일 중요한 조치는 ‘그 자리’에서 보호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오직 황야를 통하여야 만이 물종의 유전성을 보존할수 있다. 실험실에서 유전자재조직이나 복제는 결코 황야의 자연선택을 대체할수는 없다.
5    리경호프로필 댓글:  조회:3589  추천:76  2005-06-01
상공 리경호 1964년생 약력:1988년 길림대학환경과학학부 졸 2007년 연변대학외국철학석사 졸 직함: 고급공정사 흥취: 등산, 촬영(연변촬영가협회회원) 핸드폰:15344383535 메일주소:lijingho@hanmail.net
4    연과 얼레 댓글:  조회:3299  추천:56  2005-06-01
많고많은 일요일이지만 정말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들과 함께 보낸 일요일은 손꼽을 수 있다. 내가 틈이 있어 집에 있으면 아들애가 또 친구나 친척집에 놀러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들애와 약속하고 뜻있는 일요일을 보내기로 하였다. 물론 오늘 활동의 선택권은 아들애에게 있었다. 아들애는 연을 띄우자고 건의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연을 사가지고 부르하통하강변에 나갔다. 연은 풍연 또는 지연이라고도 하는데 중국어로는 풍쟁(風箏)이라고 한다. 연은 연, 연줄, 얼레로 구성되였는데 우리가 어릴때에는 대가지를 가로 세로 또는 모로 엇맞추어 고정해 놓고 그 위에 문풍지종이를 붙이고 실로 꿰메서 만들었는데 지금은 풀라스틱으로 색상도 아주 곱게 맞추어 파는데 일잡상점에 가면 쉽게 살수 있다. 우리는 여러종류의 연중에서 나비연을 선택하였다. 때는 봄이라 바람이 잦고 건조했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연을 띄우기에 분주하였다. 나는 어느새 아들애를 따라 완전히 동년으로 돌아갔다. 연을 띄우는데는 재주가 필요했다. 그저 올리뿌려서는 연이 잘 뜨지 않는다. 우리는 연을 띄운 경험이 별로 없었으므로 아들애가 얼레와 연줄을 쥐고 앞에서 뛰면 나는 연을 쥐고 따라가다가 연이 솟구치는 힘이 생길때 연을 놓는다. 그러면 연은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그때면 바람으로 생기는 부력으로 손에 쥔 실이 팽팽해지는 것을 느낄수 있다. 어떤때는 연이 불시에 떨어 질때도 있다. 무턱대고 달리기만 해서 되는것도 아니고 수요에 따라 당기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하여야 한다. 마침내 우리는 연을 높은 하늘에 뛰워보냈다. 맑은 하늘에도 우리의 나비연이 하늘에 또 하나의 풍경을 그려가며 날아옌다. 나의 시선도 연을 따라 움직이다가 결국에는 마음까지도 연을 따라 하늘에서 둥둥 떠다녔다. 사람의 마음은 어찌보면 저 연과 같다. 연이 얼레를 못떠나는것처럼 얼레도 연을 못떠난다. 사람의 마음도 사람의 육체를 떠나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이 육체를 떠나면 그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육체도 마음을 떠나지 못한다. 마음이 떠난 육체는 식물인이다. 이점에서 보면 사람과 마음, 그리고 연과 얼레 사이에 떨어지지 못할 의뢰성이 있는 것이다. 몸은 저 얼레와도 같이 마음이 사람을 떠나지 못하게끔 꼭 잡고 있고 사람의 마음은 또 연처럼 육체를 중심으로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칠수 있다. 지금, 사람들은 영혼이 없다고들 한다. 영혼과 마음의 구별은 그것이 육체를 떠나 존재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데서 구별이 된다. 그러나 만약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이러한 가설은 모두 허망한것으로 되고 만다. 왜냐하면 이때에는 마음이 바로 영혼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완전히 죽는것이 아니라 일부는 살아있다는데 있다. 그것이 바로 유전자다. 사람은 자기가 죽기 썩 이전에 혹시나 자기가 죽을것을 대비해 후대를 배양한다. 즉 자기의 유전자를 배양하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사람이 완전히 죽는다는데에 대하여 수긍할수 없다. 또 현실적으로 이는 성립이 될수 없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마음과 영혼을 구분할 필요가 없을 뿐만아니라 많은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 마음이 연과 같은 또 다른 이유는 둥둥 떠다니며 자유스럽다는데 있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로 종잡을 수 없다.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하나로 즉 일심으로 집중하는것을 수행의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떠돌아 다니는 마음이 만약 자리를 잡지 못하면 이때는 아주 위험하다. 이때에 사람들은 마음을 걷잡지 못하는데 우리는 고독이라고도 한다. 남자와 여자는 마음을 걷잡기 위해 결혼을 하고 맹세도 한다. 나그네의 마음이 계속 돌아치는것은 집에 마음을 잡아둘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때는 고독을 달래기 위해 껨에 정신을 팔리거나 도박에 정신에 팔리거나 연구에 정신이 팔리거나 수행에 정신이 팔리거나 한다. 이를 나는 연이 얼레를 찾는 과정이라고 본다. 연이 없는 얼레는 그러면 무엇이냐? 그것은 돌멩이와 바위와도 같다. 그는 그저 얼레일 뿐이지 아니 연이 없는 얼레는 얼레라는 이름조차도 어울리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연이 없는 얼레라고 부를수도 없다. 아들애는 연을 띄우면서 계속 신나게 놀고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애의 환락에 찬 모습이다. 참으로 부모의 마음이란 미묘하다. 아들애가 즐거워하면 어쩔수 없이 즐거워지는 것을! 자식을 키워본 이는 모두 경험해보았겠지만 정말로 온 가족의 희로애락은 자식한테 달려있다. 자식이 행복하면 부모도 행복하고 자식이 불행하면 부모도 불행하고, 자식이 즐거우면 부모도 즐겁고 자식이 슬프면 부모도 슬퍼한다. 자식, 자식이 뭐길래? 아무리 째지게 곤난한 집일지라도 자식만 있으면 희망이 있고 웃음이 있다. 우리말에 “소팔아 자식 공부시킨다”는 말이 있다. 농군에게 소는 생명처럼 귀중하다지만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그런 생명같이 귀중한 소도 팔아서 희생시킬수 있다. 나는 자식만 필요 된다면 자신의 그 귀중한 생명도 바칠수 있는 부모가 적지 않다고 장담한다. 그렇다면 조상과 후손의 사이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것인가? 나는 연을 띄우고 있는 아들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연과 얼레가 바로 조상과 자손의 관계가 아닌가고 생각하였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끝이다. 무슨 영혼이고 조상이고 있겠는가” 하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상님은 생전에 자신의 영혼이 담겨진 유전자를 자식의 몸에 심어줌으로써 무한의 생명을 꾀한다. 이런 관계로 조상님은 분명 수많은 자손들의 몸속에 살아 계신다. 그것도 물질적으로 즉 유전자의 방식으로 살아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조상과 후손은 유전자를 이 연줄에 의하여 연과 얼레처럼 긴밀히 얽혀져 있다고 본다. 결국 조상님은 바로 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얼레를 잊지 못하여 얼레의 주위에 둥둥 떠돌며 맴돌아치고 있는것이다. 나는 문득 저세상에 가신 아버님의 얼굴이 머리에 떠올랐다. 일본놈의 감옥에 끌려갔다가 모진 고문에 불치의 고질병을 얻고 시름시름 앓으시다가 끝내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15세의 어린나이에 호주가 되여 모친과 동생들을 거느리고 용케도 8.15광복과 새중국의 창건을 맞고 토지혁명, 합작사, 대약진, 문화대혁명도 용케버텨내시고 그 바쁜 살림에도 일곱자식이나 키워내시고 나의 대학공부까지도 마감시키신 아버님이시다. 지금의 말로 하면 정신이 없는 사람이다. 이전에는 제 혼자 몸 거두기도 바쁜 세월에 열식솔을 거느리고 억세게 살아오신 그 이유가 수수께끼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여 보면 아버지가 그렇게 살아오신 이유가 이해될뿐만 아니라 아버지야 말로 진짜 인생을 가장 멋지게 사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상님들의 대를 있는 임무를 원만히 완수 하셨을 뿐만아니라 그 뿌리를 일곱갈래로 확대하여 뿌리와 가지가 더욱 건실하고 무성하게 하셨으니 이보다 더 훌륭한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아들 하나밖에 두지 못한 자기가 아버님께 부끄러워 보였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의 목적은 행복을 추구하는데 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인생이란 일종의 사명일뿐 목적은 아니라고 본다. 전반 삶의 여정과 목적에서 보면 인생은 하나의 절차 혹은 과정으로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따라서 애정에 빠져 사는 사람, 재부에 빠져 사는 사람, 권세에 빠져 사는 사람, 허영에 빠져 사는 사람은 진정한 인생을 즐길수가 없다. 그것은 진정한 행복은 인간의 최고의 목적을 실현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3    기공, 타령, 춤 댓글:  조회:3147  추천:57  2005-06-01
몇년간 기공을 해오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오늘 이른 새벽에 일어나 강변에 나가보았다. 대지는 고요하고 오직 달빛만이 어두운 밤하늘을 휘뿌옇게 밝혀주고 있다. 가을을 알리는 차가운 바람이 이따금씩 몸에 불어쳐 엷게 입은 옷을 꿰뚫고 피부에 스며들어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우스스 떨었다. 하는수없이 나는 모두뜀을 뛰기 시작하엿다. 마침 이른 새벽이라 사람 그림자라곤 얼씬하지 않아 모두 자기 세상 같아서 발로는 뜀질하고 팔을 또한 마구 휘젓기 시작하였다. 잠시후에는 아예 익숙한 덩더쿵 조선춤으로 번져가기 시작하였다. 입으로는 쿵작자 박자가 저절로 흘러 나오고 팔은 이리저리 비틀며 춤을 추니 대지와 맑은 물소리와 정신은 전에 없던 조화를 이루며 조용히 마음 명상에로 나래쳤다. 이어서 팔을 거둘때에는 숨을 들이쉬고 팔을 뻗칠때에는 숨을 내쉬니 인츰 온몸에 기가 통하며 한기는 가뭇없이 살아지고 유쾌한 기분으로 들어간다. 일찍 기공의 진짜 뿌리는 우리 배달겨레에게 있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새겨 듣지는 못하였는데 오늘 보니 조상님들이 뭐 할일 없어서 밤낮 흥타령이나 부르고 춤이나 추었는가 하였더니 알고보니 이런 영문이였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민족은 타민족에게 노래와 춤에 능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유명했지만 그것이 그저 유쾌히 보내자는것뿐이 아니라 일종 신체자질의 제고에 그 목적이 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올방자 틀고 허리 쭉 펴고 앉는 앉음새, 온몸의 탕개를 탁 풀어놓는 타령 박자들, 태극권과도 흡사한 덩더쿵 춤 이 모든것이 바로 기공에서 늘상 강조하는 기본이 아닌가?! 아! 그야말로 조상님들은 우리가 지금 말하는 소위 기공이 생활에 몸에 깊숙히 배여 있었던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노래와 춤을 다른데로 이끌어나가는 인간들이 가소롭기도 하고 근심스럽기도 하다. 끝으로 우리 모두 우리의 오랜 생활습성을 지켜나가야만 될 필요성을 느끼며 다같이 조상님께 감사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상님 감사하옵니다.
2    나무잎의 찬가 댓글:  조회:3463  추천:72  2005-06-01
즐거운 토요일, 매주 토요일이면 우리 등산팀은 한 주일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몸의 피로를 풀고저 등산길에 오르곤 한다. 오늘 우리 일행은 성자산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산의 공기는 유달리 맑아 폐를 적셔 주었고 밟히우는 락엽의 소리는 귀맛을 돋구었다. 때는 4월말이지만 락엽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가파로운 언덕길인지라 얼마 안 올라가서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까지 찼다. 그래서 우리는 락엽위에 앉아 잠시의 휴식을 취했다. 바싹 마른 봄바람 때문인지 락엽은 잘도 말라 쏘파에 앉은 듯 편안하고 푹신푹신 하였다. 언제나 감사한 낙엽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삼림에 대하여 그토록 많은 찬미의 글을 써왔으나 나무잎에 대하여서는 글을 아껴왔다. 하긴 나무잎으론 가구도 만들수 없고 집도 지을수 없고 또 종이 공장에서는 종이를 만들수도 없으니 어찌보면 나무가 보배라면 나무잎은 제일 가치가 적은 ‘보배’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여 나무의 각도에서 볼때 나무잎의 공헌이 제일 크지 않은가고 생각해본다. 나무잎의 공능과 작용을 정리하여 보니 아래와 같았다. 나무잎은 나무의 폐이다. 나무의 호흡은 대부분 나무잎의 기공으로 이루어 진다. 신진대사에 필요한 산소를 흡입하고 신진대사에서 산생한 이산화탄소를 밖으로 내보내는 공기교환 작용은 주요하게 나무잎에서 진행된다. 만약 한그루의 나무가 잎이 없으면 그 나무는 호흡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여 죽어버리고 말것이다. 그러니 나무잎을 나무의 폐라고 하는것은 하나도 과장된것이 없다. 나무잎은 또 나무의 에네르기 공장이다. 누구나 알다싶이 나무잎은 녹색을 띠고 있다. 그것은 나무잎의 엽록소를 이용하여 광합성작용을 통하여 태양에네르기를 화학에네르기로 변환시켜 탄수화물에 저장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놓고 보면 소화계통에 해당한다고 말할수 있다. 생장에 수요되는 에네르기를 공급받지 못하면 그 나무는 생장은 고사하고 살아 남을수 조차 없게 된다. 그러므로 나무잎은 나무의 생명활동에 있어 그 중요성은 더 말할나위 조차도 없다. 나무잎은 또 나무의 심장이라고 말할수 있다. 사람은 심장을 통하여 혈액순환을 유지함으로써 신진대사에 필요로 되는 영양분을 공급하고 신진대사과정에서 생긴 로페물을 밖으로 배출한다. 이런 혈액의 정상적인 순환은 힘있게 박동하는 우리의 심장에 의거하고 있는것이다. 그런데 나무에는 심장이 없다. 나무는 나무잎의 수분을 공기중에 증발시킴으로써 땅속으로부터 나무에서 나무의 수분의 증발로 인하여 생기는 수분의 부족부분을 보충하고 있다. 물론 이때에 나무는 나무의 생장에 수요되는 광물질과 영양분을 물에 용해시켜 가지고 뿌리로 부터 흡수하는 것이다. 만약 나무잎에서의 수분의 증발이 없으면 이 수분의 류통과정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나무잎은 나무의 심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나무잎은 또 나무의 감시군이고 보호병이다. 나무잎에서는 각종의 화학물질은 휘발함으로써 많은 세균과 병독을 죽이고 또 세균과 병독으로 부터 나무를 보호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1헥타르의 삼림은 약30키로그람의 살균소를 분비하는데 백후, 페결핵, 리질 등 질병의 병균을 죽인다. 공기중에는 갖가지 많은 세균과 병균이 존재하는데 백화점이나 영화관 같은곳의 매립방메터의 공기중에 약 49700개가 있지만 삼림속의 세균은 약 1000개 라고 한다. 거의 50분의1이다. 나무의 살균력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 수치인것이다. 나무잎의 공능과 작용은 이처럼 많지만 이보다 나를 더욱 경모하게 하는것은 이러한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나무가 수요되면 나무잎은 언제나 자기를 희생한다는 것이다. 먼저 나무가 꽃이 피기 시작하면 벌써 나무잎은 성장을 중지한다. 그것은 나무잎의 양분을 절약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이다. 꽃이 지고 열매를 맺고나면 나무잎은 열매의 성장을 위하여 나무잎은 자신에게 공급되는 수분과 양분을 감소시켜 결국 말라죽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일편단심으로 나무만을 위하여 살아온 나무잎, 나무의 건실한 성장과 열매의 성숙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은 받쳐왔던 나무잎, 그는 이렇게 서서히 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처량한 가을바람은 나무의 이런 처지를 위안해주기라도 하듯이 나무잎을 쓸쓸히 흔들어주면 나무잎은 끝내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런데 나무잎의 사명은 여기에서 그치는것이 아니다. 나무잎은 낙엽으로 되여 나무밑에 떨어져서 서서히 썪는다. 결국은 양분높은 부식토로 되여 나무가 다시 흡수할수 있는 푸석푸석한 토질을 형성한다. 측정에 의하면 비가 내릴때 약 20%는 나무가 흡수하고 나머지 80%는 지면에 떨어지는데 이는 지면에 대한 충격을 감소하여 수토류실을 매우 효과있게 방지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부식토는 또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그 푸석푸석한 공간에 수분을 많이 저장하여 두어 나무가 혹독한 가물속에서도 더욱 건실하게 성장하게끔 하는데 쓰인다. 삼림이 저수지라는 말도 이래서 나왔는가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라져서도 나무잎은 한결같이 나무를 위해 서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정신인가! 나는 나무잎을 보면서 나의 부모님을 회상했다. 내가 어릴적에 부모님께서는 처마밑에 제일 귀한 손님을 접대하려고 해물고기를 달아두곤 하셨댔는데 내가 장성한후 집에 가면 그것은 의례 나의 몫으로 되였었다. 내가 이미 장성하였으니 이제는 부모의 부속물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이며 “남”이라는 뜻이리라. 그 구차한 살림에 시름시름 않는 연로한 몸을 이끌고 나의 학비를 장만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하시던 부모님, 다 자라면 “남”이 되는 자식인데 부모님은 무엇을 바라고 하셨을까? 자식의 금의환향이 였을가? 나는 그러한 부모님에게 보답해드린것이 정말로 생각나지 않는다. 물론 그래도 부모님은 나를 탓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자기 삶에 모대기는 자식을 안타까이 바라보시다가 다시 못 올 길을 영영 가신 부모님들이 셨다. 정말로 나무잎과도 같은 인생이시다. 세월이 흘러 나도 어느덧 초중생아들을 둔 아빠로 되였다. 인제 나는 부모님의 인생을 다시 직접 체험할수 있게 되였다. 나도 나무잎으로 될 때가 된것이다. 모든것은 자식을 위해서! 지금의 나는 이 한마디면 모든걸 해석할수 있고 설명할수 있다. 자식에게 보다 훌륭한 교육환경을 지어주고 자식에게 더욱 건강한 신체를 마련해주고 덕도, 지도, 체도 모두 훌륭한 사회에 쓸모가 있는 한 인간으로 양성하는것이 나의 욕심이고 목표이다. 그리고 보다 훌륭한 환경을 마련하여 우리의 자손들이 깨끗하고 청신한 공기를 마시고 맑은 물을 마시며 무공해 식품을 먹게 하고 무공해 의류를 입게 하는것이 나의 일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자원을 남겨두어 자손들이 사용할수 있게 하기 위하여 나는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낭비하는 행위와 단호히 싸워왔으며 나 자신도 될수록이면 공공뻐스 등 대중교통도구를 이용하였고 될수 있으면 보행을 택하거나 자전거를 사용하여 왔다. 회상하여 보면 이 역시 나무잎으로 되기 위해서이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지어 자식을 위하여 탐오하고 강도질하는 등 범죄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행위에 대해서 까지도 조금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였다. 비록 사회의 질책을 받고 도덕과 법률의 징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 귀중한, 자신의 일생을 걸고 분투해온 자신의 명예와 직위를 가지고 도박하는 행위를 통하여 나는 그러한 인간들의 자기의 자식을 위해서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나무잎 같은 마음을 보았고 또 그 가운데서 어떠한 우주의 법칙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위의, 스스로 그러한,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우리의 마음의 어쩔수 없는 운명의 흐름을 느꼈던 것이다. 생명은 연속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미래에도 생명은 연속되고 있다. 사람은 그저 나무잎과도 같은 존재이다. 자기의 생명을 계승할 후대를 위해서라면 나무잎처럼 자기를 휘생하는 인간은 또 다시 생명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아니, 기실 인간은 나무처럼 죽지 않는지도 모른다. 매개 부모는 나무잎에 해당하다. 나무잎이 4계절을 한번씩 주기로 하는것처럼 인간은 일생을 하나의 주기로 하면서 영원한 삶——유전자라는 이 ‘나무’를 위해 생존을 영위해 나가는것이다.
1    저의 글을 읽는 분들에게 댓글:  조회:3393  추천:94  2005-06-01
먼저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감사를 드립니다. 아시다싶이 지금 전세계적으로 환경문제는 아주 심각한 정도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날로 가심화되는 이러한 상황을 우리가 개변하지 않으면 누구도 개변해줄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하면 이런 상황을 개변하여 우리의 후손들에게 살기좋은 락원을 남겨줄수 있을까요? 저는 이 문제를 수년간 고심해 온 결과 글로 저의 마음을 표달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시다싶이 환경문제가 가심화되고 자원이 날따라 고갈되는 원인은 모두 사람의 세계관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옳바른 세계관만 가진다면 우리는 환경문제도 자원문제도 무서울것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이 세계를 보는 옳바른 안복을 가지는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어째서 사는지를 잊고 살고 있습니다. 우주는 어째서 생겨나고 어떻게 생겨나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인생은 그 본질이 무엇이고 그 의의는 무엇이며 또 사람이 왜 태여나서 모든 고생을 다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지? 등등에 대하여 생각도 못해본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인제는 더는 그대로 살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신이 깨져야 합니다. 저의 글은 옆을 두드려서 속을 진동하는 목적으로 쓴 글입니다. 글마다 우주의 무한한 그 비밀을 드러내는데 포인트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수평제한으로 글이 본의와는 다르게 잘 다루어지지 못하고 나타내고저 하는 뜻이 잘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같습니다. 바라옵건대 독자 여러분들께서 미숙한 글이라도 읽어주시고 꼭 저의 본의를 파악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만약 본의가 잘 파악이 안될 경우에는 메일이나 전화를 리용하여 저에게 글의 본뜻을 물어도 좋습니다. 그럼 우리 다 같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해 최선을 다 합시다. 감사합니다.
‹처음  이전 1 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