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뙈기의 반듯한 잔디밭에서 당신은 ‘잔디밭을 보호하는 것은 사람마다 책임이 있다’, ‘생명은 보귀하다, 나의 생명도’, ‘작은 풀은 아름다워 짓밟기 애석하다’와 같은 계시판과 보호용울바자를 볼수 있다. 록색환경보호조류가 꿈틀거림에 따라 사람들은 점차 록색은 생명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았다. 록화가 하루 빨리 효과를 보게하기 위해 한때 중국에는 풀을 심는 열조가 도시와 농촌을 휩쓸었다. 어떤 지방에서는 대량의 인력, 물력, 재력을 동원하는데 서슴치 않았으나 왕왕 힘은 많이 들이고 성과는 적었다. 이런 잔디는 덥고 추운것에 약하고 볿히고 눌리우는데 약하고 가물과 장미에 약하여 마치 온실안의 애싹과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귀하지 않는 생명’이라고 인정받는 야생잡초들은 비록 해마다 쇠퇴와 번영을 반복해가지만 사람들이 밟던 자르던 심지어 태워버리던 완강하게 살아나가고 있다. 그야말로 ‘들불은 다 태울수 없고 봄바람이 불면 또 살아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만 인공잔디만 알고 야생잡초는 중시하지 않고 잔디와 들풀을 구별시하여 대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오직 인공가치만 승인하고 황야의 가치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럼 황야는 도대체 가치가 있는가? 있으면 얼마나 있는가? 생태학가들은 황야는 생명의 에덴동산이라고 한다. 황야는 인위적인 교란을 받지 않았거나 인공적인 개조가 비교적 적은 자연의 ‘원 바탕’이다. ‘황야’라는 단어에는 야생물종이 인류의 관리와 제한을 받지 않았다는 함의가 내포되여 있다. 황야는 일종 다양성, 원생성, 개방성, 조화성, 특질성, 취미성으로 충만된 자연계통이다. 지금 일부 생태학가들은 대폭적으로 잔디를 심는 작법에 대하여 근심이 태산같다. 심지어 록색황막화라고까지 부르지만 반대로 황야에 대하여서는 특별한 정을 기울여 생명의 에덴동산이라고 부른다. 오늘, 미국과 중국대만에는 모두 황야보호협회와 류사한 조직이 있는데 이러한 조직들에서는 사들이고 세를 내거나 세를 놓는 방식을 통하여 황야의 보호권과 관리권을 취득한 후 울바자를 치고 보호함으로써 대자연으로 하여금 마음껏 자생자멸하게 하여 인류의 자손후대들이 조상들이 남겨놓은 황야에서 자연의 신비를 탐구하고 생명의 의의를 깨닫고 독특한 감수가 생기고 좌절경험도 체험할수 있는 기회가 있게 하고 있다. 생태학자들은 황야는 사회체계, 경제체계, 문화체계와 달리 독릭적이고 유구한 생태체계라고 한다. 황야는 은행과도 같지만 절대로 제멋대로 본금을 꺼내면 초과지불(카드론)을 초래한다 어떤 사람은 자연의 만물은 인류가 있은 후에야 비로서 쓸모있는 물건으로 되여 가치를 가지게 되였다고 여긴다. 그러나 사실은 인류가 생긴지는 겨우 300만년도 채 안되지만 생명의 20~30억년의 려정에서 자역적 생명지탱계통은 이미 매우 효과적으로 기순환, 물순화, 광합작용, 물질전환, 에네르기 전환, 정보전달, 물종의 존망 같은 것들을 운행하여 왔다. 이들은 어느 하나도 황야자신의 가치 즉 생명지탱가치의 체현이 아닌것이 없다. 인류의 생존은 반드시 자연에 의뢰하고 자연에 그 뿌리를 두어야 한다. 심지어 인류가 자연을 파괴한후의 회복, 오염물의 분해, 병충해의 조절과 공제도 모두 황야에 의뢰하여야 한다. 아래의 수치는 황야의 생명지탱가치를 나타내고 있다. 1 m3황야초지가 함유하고 있는 내용물에는 개미류, 거미, 쥐며느리, 딱정벌레, 파리 각 1000마리; 지렁이, 천족충 등 각2000마리; 달팽이 등이 각8000마리; 각종 선충, 유충, 연체동물 20000~1200000마리가 있고 또 한 스픈의 초지에는 원생생물 100만개, 진균 50억개, 세균 2000만개가 함유되여 있다. 황야의 내용물은 실용성, 풍부성, 다양성과 가재생성으로 우리 생존에 적합한 가원을 구축하여 인류로 하여금 편안한 물질적생활을 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런 경제가치는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인류사회의 경제체제는 반드시 황야의 운행법칙을 존중하고 복종하는 기초상에서 구축되여야 하며, 가재생성 자원 즉 동식물에 대하여서는 절도있게 사용하여야 한다. 석탄, 석유와 같은 불가재생자원에 대하여서는 정당하게 리용하는 동시에 태양에네르기, 바람에네르기와 같은 대체품을 찾기에 노력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지표의 부단한 증장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제한된 황야의 경제자원은 공급과 수요의 모순이 생기게 되고 심지어는 공급이 끊어질수도 있다. 참말로, 황야의 경제가치는 과학기술수준의 제고에 따라 올라갈수도 있고 절제있게 또 무해하게 리용될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가 대지의 경제가치를 영원히 지속적으로 리용하려면 반드시 황야를 보호하는 의식으로 대지와의 화해를 구하고 일체 ‘닭을 잡아 알을 꺼내’는 생산방식을 금지하여야 한다. 황야는 은행에 비하면 그 자원은 저금이고 또 저금은 리식으로 인하여 날따라 늘어나며 수요에 따라 때때로 찾아 쓸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로 쩍하면 본금을 찾아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초과지불(카드론)을 초래할수 있다. 황야속의 풀지 못한 과학적 수수께끼는 하나의 읽어보지 못한 책과 같다. 황야는 그 신비하고 풍부하고 복잡한 원시속성으로 인하여 많은 과학가들을 흡인하여 과학가들이 지식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대상으로 되였다. 만약 화석 지어 활화석인 황야가 이세상에 다시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생명려정의 과학적근거를 발굴해낼수 없게 된다. 황야의 과학적 수수께끼는 아직도 매우 많아 마치 아직 열독하지 않은 책과 같다. 오직 이 잔존하고 있는 황야에서야 만이 우리는 류실된 열독소재들을 다시 찾아낼수 있다. 황야를 소멸한다는 것은 마치 단 하나밖에 없는 그것도 절대로 위조품이 아닌 커다란 책을 불살라버리는 것과 같다. 지구의 황야속에는 아직도 인류에게 채 알려지지 않은 물종이 매우 많다. 지금 인류가 명명한 물종은 약 175만종에 달하지만 과학가들이 예측에 의하면 자연계의 물종은 1000만종 이상이라고 집고있다. 20세기70년대말 동남아 벼들은 황애병독으로 인해 대면적으로 말라 죽어 백만무에 달하는 벼가 재해를 입었다. 과학가들은 연구를 통하여 반드시 황애병독에 저항할수 있는 벼를 찾아내 잡교하는 방식으로 항병유전자를 고산벼에 이식하여야 해결할수 있다고 여기고 세계각국의 종자유전자창고를 발칵 뒤집었다. 그러나 황애병독을 저항할수 있는 유전자를 찾을 수 없었다. 재해는 만연되고 인류는 기아의 위협을 받았다. 얼마후 과학가들은 끝내 인도의 한 산골짜기에서 한 그루의 야초와 흡사한 황애병에 저항할수 있는 야생벼를 발견하였는데 이 야생벼의 항병유전자를 대폭적으로 벼에 이식하여서야 비로소 이 큰 재난을 피면하게 되였다. 3년후 이 산골짜기에 저수지를 건설하였는데 황야의 원모습은 다시 찾아볼수조차 없었다. 만약 이 야생벼를 몇년만 더 늦게 찾아냈다면 항병유전자를 가진 그 ‘작은 풀’을 어디에 가서 다시 찾을 수 있겠는가? 현재 인류가 식용하고 있는 량식작물 중 80%는 10가지 식물에서 온다. 단일 작물농경지의 확대와 더불어 농업생산이 황야에 주는 압력은 날따라 커진다. 농약, 잡교품종, 방사성원소 등 생물유전자의 돌변을 유발한 가능성은 날따라 커진다. 때문에 황야속의 자연선택된 유전자저장고 즉 유전다양성을 보호하는 것은 더욱더 중요하다. 그것은 누구도 우리가 벼의 황애병과 같은 재난을 다시 입을수 없다고 보증할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야생물종을 인공물종고에 옮기고 동물은 동물원에 보존하는데 열중하고 있는데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호가 아니다. 과학가들은 생물다양성을 보호하는 제일 중요한 조치는 ‘그 자리’에서 보호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오직 황야를 통하여야 만이 물종의 유전성을 보존할수 있다. 실험실에서 유전자재조직이나 복제는 결코 황야의 자연선택을 대체할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