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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불효자는 웃는다(궁금이) 댓글:  조회:1360  추천:0  2020-05-11
    “이제 한 10년을 살겠는지”       엄마가 소파에서 돈지갑에 항상 넣고 다니셨던 내 사진을 들여다보며 외우시던 말씀이다. 그러나 내 지갑에는 엄마 사진이 있어본 적 없다.       오늘은 모멘트에 온갖 엄마에 대한 내용이다. 나는 지금처럼 위챗이 없었을 때에도 다른 매체를 통해 오늘이 어머니의 날이라는 걸 알 정도로 등한했고 엄마는 그런 명절이 있는 줄도 몰랐다. 엄마에게 있어서 자신의 명절보다는 팥죽을 만드는 동지가 더 기억하고 싶은 날이였다. 당신의 손으로 자식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 그것 하나만 남았기 때문이다.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았을 시기에 식자재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집에서 할 수 있는 몇가지 명절음식이 있었건만 이제 마음만 먹으면 밖에서 뭐나 배달이 되는 시기에 엄마가 내놓을 수 있는 음식은 동지팥죽이 유일했다.        “이게 영 맛있다.”       엄마의 기억으로는 내가 잘 먹었던 음식이라서 번마다 성의껏 만들었겠건만 그 사이 내 입맛이 변했는지 아니면 엄마의 손맛이 변했는지 나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어드리는 그런 아주 쉬운 일도 바로 하지 못했다. 지금은 젊은 부부사이에서도 안해가 해놓은 음식을 남편이 깨작이며 잘 먹지 않으면 짜증을 낸다. 그런데 엄마는 내 저가락이 한번도 가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먹겠지 하며 다음번에도 똑같이 지속적으로 기억속의 음식을 꾸준히 만드셨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게 그게 전부였고 그 몇가지 안되는 음식의 련속이 전에 아들이 잘 먹었던 걸 해주고 싶은 엄마의 간절한 소망의 순환이였다.        그 순환도 엄마가 혼자 계실 때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냥 쌀밥에다 랭장고 안에 있는 짠지 같은 걸로 대충 때우셨다. 간혹 사전에 전화를 하지 않고 집에 들어서면 그런 간이식사를 하시다가도 어째 전화도 하지 않고 왔냐며 화들짝 일어나서는 주방에 들어가신다. 본인은 그렇게 최소한의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면 되였어도 자식에게는 다문 한가지라도 따뜻한 료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엄마 보고 싶다.”       엄마는 종종 한숨을 쉬면서 외할머니를 외우셨다. 나는 엄마 년세에도 엄마가 보고 싶구나 싶으며 그 한숨에서 묻어나오는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현실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느낀다고 그걸 메워드리지는 못했다. 내 빡빡한 술 일정에다 이튿날 숙취해소 단계까지 겹쳐서 엄마와 따뜻한 대화도 별로 없었다. 혼자 계시는 시간이 많을수록 엄마는 외할머니에 대한 생각이 많이 몰려왔던 것 같다.        “언니 보고 싶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외할머니에서 당신의 언니에 대해 외우셨다. 엄마와의 정과 자매간의 정은 어떻게 구별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다 생전일 때에도 엄마는 외할머니보다는 언니를 더 많이 만났던 것 같다. 언니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도 옆에 있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 우리는 언제 죽겠는지...”       “어우~무슨 죽겠소...”       자매간에 오고간 대화다. 이렇게 언니와 같이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오래 가야 되는데 언젠가는 우리도 저 세상 사람이 될 것이라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엄마의 말에 언니는 아주 초연하게 웃으며 저렇게 대답하셨다. 자매간에는 화투를 놀아도 누가 패를 나눠주냐는 문제에서 귀찮으니 서로 하라고 밀어내는 “애 같은” 행동도 하면서 그렇게 서로 의지하는 둘도 없는 친구 같은 자매였다. 어떤 감정은 아들도 딸도 남편도 대신하지 못하는 그런 특수 구역이 있다. 그래서 엄마와 언니는 형제자매중에서도 각별하게 친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후에 엄마에게는 어쩌면 언니가 엄마 같은 존재였을 지도 모른다.        요즘 드라마에서 딸이 리혼을 숨겨온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순간에 쓰러지는 장면을 봤다. 아버지는 길 옆에 있는 동전 노래방 기계에서 마이크를 들고 고성방가하며 참았던 혹은 안해나 자식들 앞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속을 푸느라 애쓴다. 자식이 애물이다.        효도는 뒤북에서 항상 더 뉘우치고 반성하고 통탄한다. 아무 쓸데없는 후회를 하면서 가끔 뒤늦은 눈물도 흘리고 이렇게 뻔뻔하게 글에서도 들먹이면서 지난날을 돌아본다. 우리는 자기가 먹어가는 나이도 잘 실감하지 못하면서 부모님의 년로해가는 진척에는 더 무딘, 세월의 무정한 흐름에 대한 맹점을 안고 산다.        옆집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분이 사신다. 할아버지는 이 아빠트에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퇴직하신 뒤로 재직 때보다 몰라보게 년로해지셨다. 원래 할머니는 검을 어깨에 메고 운동도 다니시고 아주 활약하셨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밖에 잘 나오시지 않는다. 자식들은 다 분가해서 제 살기에 바쁘고 자기 애 키우기에도 정신이 없다.        “자식은 키워봤자 그냥 그런 거네”       엘리베이터에서 아들며느리를 바래고 들어오면서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다.  한때는 회사에서 중층간부로 한자리 하셨던 할아버지신데 이제 허리도 휘고 걸음걸이도 빠르지 못하신 걸 보면서 나의 불원한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자식에게 바라는 건 없지만 자식 또한 생각처럼 해드리지도 못하는 게 영원히 진행중인 기다란 방정식 풀이이다.        어머니의 날에 허구픈 웃음만 나온다. 울음도 자격증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오늘이다.       불효자는 웃는다. 중국조선어방송(계정)
80    좋은 때는 빨리 간다(궁금이) 댓글:  조회:1468  추천:0  2020-05-09
원래 사흘만 쉬던 5.1절을 무려 닷새나 쉬였는데도 지나오고 나니 금방이다. 정년 퇴직을 하지 않는 한 아무리 긴 휴일도 결국에는 출근으로 마무리된다. 하물며 두달씩 되는 학교 방학도 때가 되면 개학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술을 끊어본 사람은 술자리의 지루함을 절실히 느낀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별것 아닌 한마디에도 크게 웃고 떠들고 금방 했던 말을 또 반복하며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마신다. 그걸 맨정신으로 지켜보는 사람은 안 웃기더라도 적당하게 반응을 해야 되고 들었던 말도 꼬박꼬박 다시 들으면서 시계만 들여다 봐야 한다. 그러나 주인공들에게 있어서는 그게 술의 매력이고 어떤 원인으로 즐거웠던 기분이 좋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무르익어가는 술자리의 시간은 언제나 빨리 흐르고 그 자리에 끼인 비음주자는 일각이 삼추다.  가끔 사회생활에 지칠 때면 텀벙거리며 발걸음을 겨우 떼는 애들을 내려다보면서도 아무 생각 없었던 저 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가 주는 대로 먹고입고 매일 할 일이란 마을의 애들이랑 어울려 노는 것뿐인데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시골에서 자랄 때는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만날 흙바닥에서 뛰여다니며 놀았으니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는 건 시간과 차수의 문제다. 그래서 항상 무릎에는 피딱지가 떨어질 새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는 또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빨리도 아물었다.  지금은 다 금지옥엽이라서 애가 어쩌다 한번 살짝 엎어져도 기겁을 하며 이러저리 살피느라 정신이 없지만 당시에는 애들은 워낙 그렇게 크는 거라고 여겨서 그냥 내버려뒀다. 오히려 피딱지가 거의 떨어질 무렵에 간질간질해 나면 그걸 살살 뜯어내는 것도 일종 재미였다. 그때는 그러고 자랐다.  그런데 이런 무념무상의 행복한 시간을 넉넉히 잡아 3살부터라고 쳐도 학교에 들어가기까지 고작 5년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 생각도 걱정도 없는 시기는 전반 인생에서 짧디짧은 5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소학교는 다른 마을에 있어서 걸어다니기에는 좀 멀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학교는 원래 그렇게 다니나 보다고 별 생각 없이 다녔다. 오히려 하교길은 마을의 애들이 같이 몰려다녀서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다. 시골에서는 지금처럼 소학교 때부터 악기 공부를 시키거나 기타 학원에 다녀야하는 부담도 없고 숙제는 더 쉬웠다. 후에 도시 중학교에 가면서 친척 할아버지네 집에서 공부할 때 보니 그 집 손녀는 할머니의 감독하에 바이올린을 배우느라 눈물을 똑똑 떨구며 고생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도시에서 태여났더면 악기 하나 쯤은 익히고 자랐겠건만 지금 다시 돌아가서 선택하라면 그래도 시골 소학교생활이 좋았다. 그런데 이 시기도 5년밖에 되지 않는다.  다음은 중학시절인데 이팔청춘이라고 무수한 작가들 손에서 아름답게 묘사되지만 어찌 보면 제일 방황하는 시기이고 많은 선택과 희생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공부에 시간을 희생해야 되고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방황하고 선택해야 되는 시기다.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이 가장 걱정하고 골치거리라고 생각하는 사춘기도 바로 이 시기에 든다. 이성에 눈은 떴는데 마음대로는 되지 않고 여러 면으로 오는 많은 제약을 받으며 모순 속에서 아프게 성장한다. 거기에 정점을 찍는 대학입시는 1년이란 시간을 거쳐 피를 말린다. 한국에서는 군대를 다시 가라면 기겁을 하던데 나는 중학교 시절이 그에 못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제일 철두철미하게 정해진 시간표에 짜놓은 궤적 대로 움직여야 하는 게 이 시기다. 텔레비죤도 마음대로 보지 못하고 게임은 더 사치다. 야간자습은 당연한 일상으로 여겨야 하고 과외 수업은 선택이라 하지만 결국은 필수다. 부모님들의 립장에서는 애들이 불쌍하고 덜 고생시키고 싶지만 다른 집 애들이 다 그렇게 하는데 내 아이만 풀어놓기도 쉽지 않다. 결과야 어떻게 되든 뭐라도 해야 시름이 놓이는 게 자식 둔 부모의 심정이다. 설령 그 결과가 아이의 미래와 상반되더라도 그 당시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미 다 지나온 중학교 생활이라고 함부로 얘기했는데 단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지금의 학생들은 또 나름대로의 보람있고 풍부한 경력들이 있으리라 믿으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시기는 앞의 두 단계보다 1년이 더 많은 기껏 6년이다. 대학입시를 마치면 책을 태워버리는 학생에 원없이 게임방에만 묻혀 있는 학생, 저들끼리 려행을 떠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치렬한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오히려 어딘가 허전함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다. 물론 생각대로 되는 게 공부밖에 없다는 희한한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대학입시가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인 만큼 큰 압력을 이겨내야 하는 시련임에는 틀림없다.  여기에 비하면 대학은 그야말로 락원이다. 우선 련애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어려운 사춘기도 넘기고 교정에 널린 게 선남선녀다. 잘못 고백했다가 상대방에게 차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만 극복하면 무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기가 드디여 눈앞에 펼쳐진다. 저녁 자습도 가고 싶으면 가고 싫으면 안 가도 되고 도서관에는 다른 목적으로 가 앉아 있기도 한다. 뭐니뭐니해도 선생님의 이 한마디 말씀이 아주 사람을 편하게 해줬다. “지금 자네들의 시험이야 뭐 마지막 한달을 바싹 머리를 싸매고 하면 다 넘어가지.” 선생님들의 소중한 금과옥조가 많았음에도 저 한마디가 그렇게 사람을 시름 놓이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평소에도 너무 노는 같아서 공부를 좀 해야 되지 않나 걱정이 생겨날가 하면 선생님의 저 말씀을 떠올리며 어차피 놀 바엔 쓸데없는 걱정을 다 털어버리고 신나게 놀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여러가지 신나는 일들은 이미 전의 위챗에서 많이 우려먹어서 이 자리에서 누누히 반복하지 않고 아무튼 이렇게 신나는 시간도 기껏 4년이다.  이렇게 해서 20년이 흐른다. 80세까지 산다고 했을 때 4분의1은 유년시절과 학생시절이라는 두 단계로 훌쩍 지나가버린다. 그 다음부터는 이 두 단계를 고대로 거쳐야 하는 후대를 만들어야 하고 그 애가 20세가 되면 그때는 이미 인생의 반이 지나간다. 사람마다 좋은 때가 나름이겠지만 오직 나이상 좋은 때는 이렇게 어정쩡해서 지나간다. 물론 빨리 지난다는 건 바꾸어 말하면 지루하지 않았다는 얘기로도 된다.  5월도 벌써 두번째 불금이다. 아침에는 비까지 잔잔하게 내려 한결 청신한 하루였다. 가정의 달 또 하루의 아름다운 밤이다. 중국조선어방송넷
79    비움의 행복(허연주) 댓글:  조회:1545  추천:0  2020-05-08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들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다. 넘쳐나는 물건 속에 허우적대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많은 공감을 느낀 책이였다. 언제부턴가 SNS에는 은근슬쩍 자신의 값비싼 소유물을 로출하면서 과포장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얼마나 더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믿는 가치관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정반대로 버릴수록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역시 미니멀리스트이다. 삶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을 두고 살아가는 삶을 일컬어 미니멀리즘(极简主义)이라고 한다.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필요한 것만 놔두는 미니멀리즘이 인기이며, 생활 속에서 자본주의의 소유욕보다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미니멀리스트(极简主义者)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가구와 그릇, 의류 소지품 등 물질적인 소비를 줄이고 맛집 투어, 영화, 공연 등 ‘경험소비’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쓰기도 하며 불필요한 련락처나 인맥, 물건 등을 정리해서 ‘보다 소중한 것’에 집중하는 것을 지향한다. 미니멀리즘을 접한 건 5년 전 회사법인장이 《소제력》이라는 책을 추천하면서였다. 불필요한 것을 줄여서 사용공간을 넓히고 깨끗이 청소하는 것을 기본으로 마음가짐을 똑바로 하면 진정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는 내용이였다. 지난해, 나 역시 120평방메터의 아빠트에서 60평방메터 남짓한 작은 아빠트로 이사를 오면서 많은 물건들을 버려야만 했다. 큰것부터 버리기로 했다. 침대를 버리고 매트리스만 들고 왔다. 그러니 안방 천장 높이가 높아지면서 훨씬 큰 공간이 확보되였다.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책들은 정리하여 위챗 모멘트에 공유하고 필요한 지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물론 그 후로 더 이상 책을 사는 일도 없었다. 필요한 책은 대여해서 읽거나 전자책을 리용해 책들을 줄였다. 주방은 70% 이상을 비워냈지만 사는 데 조금도 지장이 없었다. 나머지 30% 되는 물건중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걸 보면 아직도 버려야 할 것들이 참 많다고 느껴진다. 늘 언젠가는 쓰겠지 하고 놓아두는 물건들은 버리고 보면 무난하게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옷장의 옷들도 절반 이상을 비워냈다. 돌이켜보니 충동구매가 많았던 리유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즉흥적으로 사들였거나, 고가 브랜드를 세일기간에 사들였거나, 년말파티를 위해서 장만한 드레스와 같은 각양각색의 옷들이 옷장을 꽉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옷에 대한 애착이나 소중한 느낌은 별로 없었다. 대신 정말로 자주 입는 제일 기본적인 옷들은 몇벌밖에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달에 세번 이상 입지 않은 옷들은 과감히 버렸다. 그랬더니 몇벌 안되는 옷중에서 전에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조금 더 아끼거나 소중해지는 옷들이 생겼다. 이런 체험을 몸소 해보니 어떤 것이 진정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였다. 그 후로 물건을 구입할 때도 꼭 필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번 더 함으로써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좋은 습관도 생겨났다. 이런 미니멀리즘은 물건에 한해서 그친 것이 아니라 음식과 인간관계로도 확장되여갔다. 한꺼번에 많은 량을 하여 음식쓰레기를 남기던 데로부터 마트에서 필요한 량만 구입하여 제때에 해먹을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써 음식쓰레기를 줄였고, 휴대폰에 저장되여있던 1300개에 달하는 련락처들중 필요한 300명만 남기고 지워버렸다. 위챗에 있는 대화가 없는 분들과 모멘트 공유를 안하는 분들을 모멘트에 공지를 한 후 불필요한 인연들을 삭제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도 정리되였다.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면 여유가 생긴다. 이렇듯 미니멀라이프는 더 큰집, 더 많은 물건 등 남들보다 더 좋은 것을 향한 소유욕과 남과의 비교 속에 정해진 눈높이에 맞춘 기준을 좇던 삶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물건에 대한 소유욕과 집착을 버릴수록 공간 뿐 아니라 마음까지 쾌적한 상태를 즐길 수 있었다. 대신 체험가치를 늘여갔다. 더 많은 시간을 독서로 채우고 맛집탐방이나 야구련습, 암벽타기 등으로 마음과 정신적 체험을 더해갔다. 인터넷쇼핑몰이 생겨난 후로 그 어떤 물건이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만큼 집에는 물건들이 넘쳐나고 있다. 부분적 지역에서는 아직도 ‘소유=행복’이라는 문화가 주류이지만 미니멀리즘을 체험한 주변인들로부터 비우는 행복의 소소한 기쁨들을 많이 듣고 있는 요즘, 허세와 소유욕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절제와 배우는 삶을 통해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는 시간은 참으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연변일보  (저자는 자유기고가.)
78    양꼬치의 의문의 1승(궁금이) 댓글:  조회:1566  추천:0  2020-05-08
북경시가 4월 30일 0시부터 방역 등급을 1급에서 2급으로 낮추면서 5.1절련휴기간 인원 류동이 다소 회복세를 보였다.  5월 1일,  2일,  3일 쇼핑센터를 비롯한 실체상업을 대표로 하는 북경시 인원 류동 회복률은 각기 49%,  46%,  47.3%에 달했다.  한편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방역지침을 잘 지켜가고 있다. 방역의 일상화가 종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건 바로 이런 경각성을 계속 확보하라는 의미이기도 한다. 그런데 필요한 생산과 생활은 이어져야 되니 2급 방역에서도 1급처럼 과잉대응을 할 필요는 없다.  1급일 때에도 자동차 바퀴를 소독하는 등 과잉 소독은 필요없다고 루차 얘기해 왔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일상 환경에서도 일정 량의 세균은 존재하며 이런 세균은 사람의 면역력으로 통제가 가능하다. 그런데 모든 세균을 다 죽여버리면 우리의 면역계통이 취약해지는 페단이 생길 수 있다. 우리가 야생에서 사는 새한테 먹이를 갖다주는 심성은 착하지만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먹이로 하여 새의 먹이활동 능력에 영향줄 때는 오히려 역작용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도리다.  지난 3개월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이미 많이 자각적이 됐다. 북경시는 소식발표회에서도 발표인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대중교통, 공원이나 학교 등 규정된 장소 외의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침을 내렸다. 그래도 아직 밖에 나가면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이 극히 드물다. 좋은 현상이다. 아침에도 지하철역에서 나오면서 마스크를 벗었는데 마주오던 행인이 머리를 90도로 돌려서 피해간다. 고무적인 행동이다. 한국은 어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속 거리두기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제기된 게 밥상문화의 개변이였다. 쉽게 말하면 숟가락을 섞지 말고 반찬은 개인 접시에 담아 먹자는 취지다. 국이나 찌개가 많은 우리 음식의 특성상 냄비 하나에 숟가락 여러개가 들락날락하는 게 전에는 그렇게 기피 대상이 아니였다. 그런데 이 시기를 겪고 나면서 식사습관이 많이 바뀌여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의미에서 양꼬치는 썩 이전부터 이 지침을 잘 지켜오는 모범이였다. 누구도 양꼬치 하나를 반만 훑어먹고 나머지 반은 옆사람한테 쥐여주며 먹으라는 일은 없다. 아무리 닭살 련인 사이라도 이런 일은 하지 않는다. 숟가락과 저가락도 굳이 써야 할 필요가 없는 게 또한 양꼬치이다. 물론 다양하게 시켜놓고 먹다보면 쓸 수도 있겠지만 양꼬치집에서 한정식을 차릴 일은 없다. 그 사이에 양꼬치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미식가들을 배려해 포장은 물론 꼬치를 구울 수 있는 가마까지 가정집에 들어오는 사진들을 모멘트에서 심심찮게 봐왔다. 아직까지는 무난하게 밖에서 모여 회식을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닌 만큼 꼬치 애호가들은 더욱이 그제날의 양맥을 그리워했다. 양맥은 치맥을 본받아 양꼬치+맥주 이렇게 해서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어학자분들께는 실례되는 일이지만 본 위챗에서만 류통하는 내부용어로 대외로는 무효함을 밝혀둔다.  양꼬치의 추억은 지난세기 80년대 중후반으로 거슬러간다. 다른 데서는 언제 시작됐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살았던 곳에서 처음 접했을 때는 저맘 때였다. 가격도 싸고 고기도 큼직하게 꽂았고 가마도 지금처럼 연기가 밑으로 빠지는 그런 선진 설비가 아니였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에 와서 연기에 그을은 그 맛이 더 정통맛이였던 걸로 여겨진다. 심지어 지금은 숯불도 아니고 전기로 바뀌여서 자욱한 연기 속에서 먹었던 그 시절 그 맛이 더욱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북경에서 양꼬치는 처음에 주로 신강음식점에서 많이 만났다. 신강꼬치는 전의 고향의 후더운 인심 때보다도 비교가 되지 않게 컸다. 고기토막도 컸고 꼬챙이도 굵고 길었다. 물론 가격도 그에 비례한다. 고향에서 만든 양꼬치 홍보영상에 의하면 우리의 양꼬치도 신강양꼬치에서 계발을 받고 개발되였다고 한다. 청출어람 성어람이라더니 유래는 거기에서 했지만 훨씬 거족적으로 발전시켜 종류를 수십가지로 개발했고 맛도 다양하게 승격됐다.  북경에서 우리 민족이 경영하는 양꼬치집은 초기에는 다 작은 규모였다. 특히 여름에는 길거리에서 쪽걸상에 앉아 맥주를 병채로 들고 즐기는 로천양꼬치도 적지 않았다. 당시 한국인들은 양고기를 저렇게도 해먹는다고 신기하게 생각했고 불결한 음식으로 여겨져 다가가기 주저했다. 그런데 한번두번 가더니 다음부터는 자기네가 먼저 가자고 손을 잡아끄는 정도에까지 이른다. 나중에는 한주에 한두번 정도 찾지 않으면 생각날 정도로 양꼬치를 선호했다. 지금은 서울에서도 조선족이 집거해있는 곳은 물론 국회의사당에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서도 자그마한 양꼬치집을 본 적이 있다. 간판도 중국어를 음역해서 달았다. 양꼬치의 생명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였다. 짠지 장사로부터 시작해 대도시에 진출한 조선족의 근면성과 생존력은 충분히 인정을 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방역 등급이 조절되면서 딱 한번 후배들하고 꼬치집을 찾았는데 너무 기대하다가 갑자기 만나서 그런지 아니면 이제 집에 박혀 있는데 습관되여 그런지 모르겠으나 기대치에 부응할만한 그런 맛과 효과가 나지 않았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더니 우리가 못 먹어본 건 아니지만 그동안 너무 오래동안 양꼬치와 헤여져 있었던 것 같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상의 간격도 불가피하다더니 이게 양꼬치와의 인연에서도 적용될 줄은 몰랐다.  광고혐의상 양꼬치집의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체인으로 된 이 음식점은 구조가 컨테이너를 개조한 형태로 되여 있어 사회적 거리든 생활속 거리든 자연적으로 두게 되여 있는 우점을 갖추고 있다. 옆 테이블과 금방 붙어앉은 것 같은데 유리로 격리되여 마스크보다도 더 확고한 안전장치로 된다. 그리고 웃부분은 또 틔여있어서 밀페된 공간도 아니다. 물론 선견지명이 있어서 이렇게 설계한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상황에서는 아주 유리한 구조로 되여 양꼬치의 의문의 1승에서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전에 어른들은 숟가락으로 떠야 할 밥을 저가락으로 헤집으면 식사례절이 없다고 교육시켰다. 저가락에 문외한인 서양인들은 한때 포크에 초점을 두고 저들의 음식문화만 선진적인양 근거없이 떠들었던 적도 있다. 지금도 양복 웃주머니에 수건을 꽂고 잘 익지도 않은 고기를 칼로 썰어야만 신분 있는 식사로 각인시키는 드라마 장면을 볼 수 있다. 한편 양꼬치는 이런저런 화두에 오를 필요가 없이 저가락, 숟가락, 포크에서 자유로운 음식으로 되였고 생활속 방역에서도 상대방의 음식에 손이 갈 일이 없는 독립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연기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먹던 양꼬치한테 오늘과 같은 날이 올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세상사는 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중국조선어방송넷 
77    이쁘장한 녀승무원의 두 얼굴(궁금이) 댓글:  조회:1443  추천:0  2020-05-07
선배가 모멘트에 올린 글에서 이런 사연을 읽었다.        한국 모 항공사의 봉사가 친절하다기에 일부러 그 항공사를 선택해 미국행에 올랐다. 입국 심사에서 영어가 딸려서 도움을 받고저 주변을 살피는 중에 마침 그 항공사의 승무원을 만난다. 반가운 나머지 영어 소통이 잘 되지 않아 그런데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졌다. 승무원이 려권을 들여다보더니 영어로 “중국인”이란 한마디만 해버리고 그냥 가버린다. 비행기 안에서 꿀이 떨어지던 그 상냥함은 온데간데 없고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도 없고 오직 비행기 안에서만 기계적으로 친절한 로봇이였다.        그냥 거절해도 모르겠는데 “중국인”이라고 뱉은데는 어디에서 오는 우월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은근히 자기는 한차원 우에 있는 국적의 사람이라는 오만함이 배여있다.         직장생활에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부장이나 사장은 부하 직원이 보내온 문자나 특히 단체방의 메시지에 금방 답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아무리 간단한 메시지더라도 잠깐 뜸을 들이고 회답하는 게 상사의 령도예술이라면 예술이다. 무게감과 권위감을 주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지만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는 메시지도 전달한다. 한편 내가 당신의 상사라는 인식을 각인시켜주려는 뜻도 없지 않다. 많이 포장을 했는데 본질은 하다못해 사소한 세부에서라도 부하와 구별되고 싶은 우월감이다.         또 이런 현상도 볼 수 있다. 저녁 식사약속이 되여 있는데 그 자리에 어떤 “고급 인물”들이 나오는지 반드시 확인하는 높은 분들이 있다. 쉽게 말하면 나와 대등하거나 나보다 높은 급별의 인물이 참석하냐를 확인해야 한다. 밥 한번 먹는데 초대를 해준 사람이 고맙고 중요하지 그것보다는 그 자리에 어떤 급별이 참가하냐를 따지는 것도 변상적인 자체 우월의식이다. 그게 친구들 사이 모임이라면 더 심각한 문제다. 대접은 해줘야 받는 거지 스스로 요구해서 받는 게 아니다. 그냥 옆구리를 찔러서 절을 받았다고 한들 그 절은 억지 성분이 다분해서 영양가가 별로 없다. 그냥 “그래 그렇게 간절하다면 내가 한번 대우해준다.”는 식으로밖에 다른 의미가 없다.         “나는 이쁘면 다 착한 줄로 알았습니다.”        “자기문제연구소” 소장이 한 말이다. 별난 연구소가 다 있는데 아무튼 연구소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고 저 말의 의미를 잘 새겨보면 항간에서 흔히 말하는 얼굴값을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자기가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특히 이쁜 녀성들은 스스로도 이쁘다는 걸 알고 산다. 스스로 안다는 건 어디에서든 무의식간에라도 티가 난다는 얘기다. 이걸 자신감으로 인정해 이쁘게 봐주는 게 정상이지만 동시에 이쁘면 다 용서가 되는 맹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제복 차림 승무원의 예쁜 얼굴에서 그런 차가운 기운이 흐를지를 누가 알았을가. 그런데 엄연하게 벌어진 일이라면 특정 장소에서 보여지는 얼굴과 그 사람의 내면 세계는 판이하게 다른 량면의 인격체라는 얘기다. 개인의 인격은 제쳐놓고라도 제복을 입었다는 건 그 회사의 이미지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는 건 리해가 어려운 일이다.        미국행에 나온 일이니 그 나라 얘기를 잠깐 하면 미국이란 나라는 다른 나라의 인권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로 2위 가라면 굉장히 섭섭한 나라다. 특히 인종차별시 문제에서는 그렇게 떳떳하고 자유로운 립장이 아님에도 말이다.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시기를 경유하면서 그 마음속 깊은 곳에 배인 차별시 의식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아시아계 사람을 만나면 무분별하게 차별시하는 현상을 다룬 뉴스를 여럿 봤다. 그 사람이 미국 국적이여도 피해가지 못했다.  이러면 또 오해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런 뉴스를 우리나라 매체에서 본 게 아니고 미국의 우방국 매체에서 접했음을 혹시나 하는 로파심에 밝혀둔다.         인권, 자유, 평등을 입에 달고 사는 나라 국민의 취약한 인성은 선배의 산책길에서도 보여졌다. 더 한심한 건 자신도 아시아계 사람이면서도 선배를 차별시 대우를 했다는 대목이 코미디다. 아시아계 할머니가 10메터 밖에서부터 선배를 보고 멀찌감치 떨어지라고 손사래를 쳤단다. 그 순간에는 자신의 정체를 잠깐 망각하고 사는 걸가. 아니면 나는 피부만 황색인종이지 따지고 보면 나도 아메리칸이란 우월감일가. 진짜 어이가 없다.         요즘은 한국문화사 책을 읽는다. 일찍 640년에 신라에서 시작돼서 703년에 견당 류학생이라고 해서 당나라에 류학을 오는 사람이 늘었다. 당시 정권에서 소외된 불만 귀족층이나 몰락 귀족층 또는 6두품이 활로를 모색하려고 적극적으로 당나라에 류학을 왔다고 나와 있다. 신라 하대에 와서 837년에는 당나라 국학에서 류학중인 학생수가 2백명이 넘었는데 이들은 당나라에서 공부가 끝났는데도 돌아가려 하지 않아 나중에는 외교문제로 제기됐다. 그래서 공부 년한이 10년이 찬 백여명을 집단 귀국시키는 조치가 내려질 정도에까지 이른다.        이 례를 드는 목적은 과거든 현실이든 어디에 가서 어떻게 도금을 했든 뿌리를 잊으면 안된다는 말을 하려는 취지다. 어느 시기든 선진국이 있고 잠시 발전이 늦은 나라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상은 돌고 도는 거다. 어느 나라 어떤 곳에 살든 다 평등한 지구촌의 일원이지 누구는 달나라나 별나라에서 온 사람이 아니다. 우월감은 주변에서 인정해주는 거지 스스로 매기는 점수가 아니다.        호박에 애써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        우선 바탕이 돼야 한다.   중국조선어방송넷 
미국에서는 1월 20일에 처음 확진자가 나온 이후 현재까지 약 100일간 확진자가 100만 명을 초과하고, 사망자도 6만 명이 넘었다. 확진자 수가 전 세계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감염 사태 이후로 미국 당국은 방역에 무능할 뿐 아니라 걸핏하면 ‘책임 전가’에 심지어 생각할 수도 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여러 의혹 앞에 미국 정치인들은 국제사회의 우려에 답하고 더욱이 자국민들에게는 성심껏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질문1: 감염 사태 당시 의료진들을 왜 보호하지 않고 실정을 호소하면 오히려 해고했는가? 미국 병원의 경우 의료진들에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도록 한다.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표준에 의거해 간호사들이 분무 치료, 호흡기 및 관도 삽입 시에만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했다. 미국의 수 백 명에 달하는 의사와 간호사 및 관련 종사자들은 방호 장비가 잘 갖쳐지지 않는 상황에서 일해야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일부 간호사들은 마스크를 자가 구비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오히려 거절 당해 스스로 일을 그만 두던지 아니면 해고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코로나19가 급증하기 시작한 첫 달에 미국 전역의 약 4만 3000명 의료진들이 해고를 당했고 시간이 지날 수록 해고당한 의료진이 오히려 늘어났다. 의료진들은 긴 시간 바이러스에 완전히 노출되는 상황에서 방호 조치도 허술한데 어떻게 이들이 방역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겠는가? 질문2: 2019년 9월부터 시작된 미국 내 독감 유행으로 사망자가 2만 명이 넘었는데 이 중 코로나19 환자는 도대체 몇 명인가?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의 최신 추산에 따르면 2019년 9월부터 유행한 독감으로 3000여 만 명이 감염되고 사망자 수가 2만 명을 넘었다. 로버트 레드필드 CDC 센터장은 최근 일부 독감 사망자 중에는 코로나19 환자도 있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2만 명 이상의 독감 사망자 중에 도대체 몇 명이 코로나19 환자인가? 미국은 독감을 핑계로 코로나19 상황을 덮은 것은 아닌지? 질문3: 2019년 7월 메릴랜드 주에 위치한 미군 최대 생물학무기 기지 포트 데트릭을 왜 갑작스레 폐쇄한 것인가? 포트 데트릭은 미국 최대 생물학무기 연구센터다. 폐쇄 직후 폐렴 혹은 유사한 폐렴 확자들이 나타났다. 거의 같은 시간 미국 독감이 대유행에 들어갔고, 2019년 10월 미국 다수 기관에서 코드명 ‘Event201’이란 글로벌 전염병 훈련을 조직했다. 12월에 우한에 처음 코로나19 확진자가 나타났고 2020년 2월에 코로나19가 전 세계 전역으로 퍼졌다. 이러한 사건들이 연관성을 갖는 것은 아닌지? 질문4: 감염 사태를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거액의 주식을 매각한 의원들은 왜 문책 당하지 않는지? 미국 하원 정보위원장이자 공화당원인 리처드는 정기적으로 코로나19와 관련한 하원 측 보고를 들었다. 2월 상중순경 미국 감염 폭발과 주식시장 붕괴 전 대중들에게는 코로나19 사태를 미국이 막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대량의 주식을 매각했다. 다수 미국 하원의원들이 미국 언론을 통해 주식을 매각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중 케리 하원의원은 트럼프 정부 특별 경제 태스크포스팀원이다. 이들 의원들은 내부 거래로 주식을 매각하고 대중에게는 감염 현황을 감춘 것은 아닌지? 만약 내부 거래가 사실이라면 왜 문책 당하지 않는 것인지? 질문5: 감염 사태가 전 세계로 퍼진다는 것을 조기에 알았는데도 왜 방역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가? 3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로 감염이 확산되기 전에 이미 코로나19가 대규모 전염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감염 사태 후 그는 “말라리아 약이 코로나19 치료에 사용될 수 있다”, “소독제 주입으로 코로나19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바이러스는 독감과 같이 기적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등의 기가 찬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백 만 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하고 사망자도 6만 명이 넘으며 수 천 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미국 언론 보도를 보면, 백악관 관리들이 매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를 한 후 심각한 정치적 경제적 파장 가능성을 제시한다. 감염 사태의 심각성을 예측했다면 왜 조기 방역에 나서 지금처럼 통제불능 상태가 되는 것을 막지 못했는가? 질문6: 감염 사태는 도대체 언제 처음 미국에서 발생했는지? 왜 전문가들에게 조사를 의뢰하지 않는지? 미국 감염 사태 초기에 있었던 의혹이 점점 늘어간다. 최근 확인된 미국의 첫 코로나19 사망자는 2월 6일로 3주나 앞당겨졌다. 이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의 여성 사망자는 여행 경력이 전혀 없어 본국에서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점은 시체 부검을 다음 날 했는데 CDC 측은 2개월이 넘게 지난 후에야 발표해 사실 누락 혹은 은닉한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또 미국 대규모 감염이 그때 이미 시작되었다는 의미는 아닌지? 심지어 앞서 이미 감염 상황이 발생한 것은 아닌지? 왜 WHO 전문가들에게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언제 처음 발생했는지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지 않는지?도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질문7: 미국은 구소련 국가에 세운 여러 생물실험실에서 도대체 어떤 비밀 연구를 진행하는지? 미국은 구소련 국가에 여러 생물실험실을 세웠는데 그 기능, 용도, 안전 면에서 현지 주민과 주변 국가의 우려를 사고 있다. 감염 사태에서 미국은 국제사회의 우려와 현지인들의 생명, 건강, 안전에 책임감을 가지고 직시해야 한다. 미국의 해외 생물실험실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가? 질문8: 몇 천 명의 항공모함 승조원들의 목숨을 구한 영웅 함장 브렛 크로지어 함장을 왜 해임했는가? 미군 ‘루스벨트호’ 항공모함 브렛 코로지어 함장의 구조 서한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모함 내 감염증의 급속한 확산과 해군 고위층의 안일한 반응이 폭로되면서 마침내 승조원 2700명이 하선 격리되는 조치가 내려졌다. 그리고 코로지어 함장은 감염증에 대한 대처가 전문적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임 당했다. 몇 천 명의 승조원 목숨을 자기 직업을 걸고 지킨 영웅 함장은 왜 언론 폭로로만 위기에 대응할 수 있었을까? 질문9: 미국은 자국 방역 타임맵을 공개할 수 있는지? 감염 사태 후 미국의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고, 책임을 중국에 전가하는가 하면 WHO를 위협해 자국 방역의 무능력을 덮으려고만 했다. 한국은 미국과 같은 날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지만 이후 양국의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다. 연일, 의학 학술지 랜싯의 리차드 편집장 등 보건 문제 전문가들은 감염 변화 타임랩을 상세하게 정리했고 미국이 WHO에서 감염 사태 정보를 제일 처음 들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자국 방역 타임맵을 공개해 미국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지? 질문10: 미국은 약 2개월간 중국 관광 금지 외에 어떤 효과적인 방역 조치를 취했는가? 미국 언론은 일찍이 1월 하순에 미국 국가안전위원회에서 백악관에 보고서를 제출해 코로나19의 미국 내 전파 위험성을 경고하고 재택근무, 시카고 등 크고 작은 도시 봉쇄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백악관 측은 3월 13일에야 이러한 조치를 취했다. 백악관 측은 감염 사태에 대한 공개토론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했고, 2월 하순 미국 질병통제 전문가들에 대한 금지령까지 내렸으며, 모든 공개 발언은 반드시 펜스 부총리실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미국 언론은 “1월 31일부터 3월 13일까지 백악관 측이 중국 여행 금지령 발표 외에 어떤 효과적인 조치를 취했는가?”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번역: 조미경) 인민망(人民網)
75    개나리 사진이 없었던 봄(궁금이) 댓글:  조회:1149  추천:0  2020-04-30
벌써 4월도 하루만을 남겨두고 있다. 북경의 오늘 최고 기온은 32도 주말은 33도로 일기예보에 나와 있다. 우리는 이렇게 어정쩡해서 봄을 보내고 바야흐로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고온에 약하다고 해서 여름이 많이 기다려졌지만 그래도 이대로 흘러가버리는 봄은 허무하기도 하다. 올해 봄은 사람들의 복잡한 심경속에서 특수한 계절로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해마다 초봄이면 아침 산책길에 개나리가 언제 꽃을 피우나 유심히 살폈다. 어떤 해에는 성급한 개나리가 겨울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버젓이 피여 있는 걸 보면서 꽃의 세계에서도 성격이 무섭게 급한 이들이 있구나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첫송이 개나리꽃을 찍기 시작해서 노랗게 무성할 때까지 찍고 또 찍었던 개나리를 올해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멘트에 올리는 사진에서조차도 보기 드물게 이 봄은 지나갔다.  지난 주말에는 식물원에 다녀왔다. 해마다 봄이면 이 곳에서는 튤립의 잔치가 열린다. 갈 때마다 장관이고 볼 때마다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대면적에서 갖가지 색상으로 교차시켜 설계해놓은 원예사들의 지극정성을 우리는 눈으로 호강하고 사진으로 기록만 하면 된다.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몰리면 안되니까 사진도 여유를 가지고 각도를 찾아가면서 찍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또 약 5분의 1일 꽃들은 이미 진 상태여서 거의 막차를 타고 꽃구경을 했다. 하지만 미적인 감수는 충분히 만끽하고 온 가는 봄의 주말이였다. 어느 계절에도 마찬가지지만 여러 할머니들이 기다란 렌즈가 달린 사진기를 들고 작업하는 장면이 참 보기 좋다. 휴대전화의 카메라가 아무리 진화해도 예술의 의미나 성격에서는 전문 사진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옆에서 보기에도 휴대전화로 찍으면 왠지 성의가 덜해 보이고 묵직한 사진기로 렌즈를 돌려가면서 찍어야 뭔가 작품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은 나만 그런지 모르겠다. 이건 마치 글씨체가 예술이면 펜으로 써도 충분히 미가 살아나지만 그래도 붓으로 완성한 서예작품보다는 어딘가 무게감이 결여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봄은 좋아”란 제목으로 꽃 위주의 사진 작품을 모멘트에 련재하는 선배가 계신다. 워낙 촬영에 조예가 깊은 선배지만 올해 봄은 더욱이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누구나 다 만날 수 있는 꽃이지만 벌과 꽃의 만남은 한결 생기와 숨결을 부여해주고  담벼락우에 핀 꽃을 포착하는 관찰력은 색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은 생활에 대한 열애와 미에 대한 추구와 식을줄 모르는 열정을 그대로 작품에 반영한다. 손가락으로 누르고 카메라가 찍지만 결국엔 마음의 창-눈의 발견이다. 어쩌면 꽃과 자연은 우리 옆의 커다란 빈자리를 애써 메워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모멘트에 시를 올리는 친구가 있다. 늦은 저녁에 귀가하다 만나는 가로등도 다시 쳐다보고 창가에 소박하게 핀 꽃에서도 애수를 느끼고 구름에 반쯤 가려진 달에서도 누군가를 떠올리는 애절함은 본인 외에는 아무도 잘 안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질 거면 왜 피였냐는 꽃에 대한 감정 기탁은 그 시를 쓴 사람만이 안다. 그 외의 사람들은 기껏해야 가끔식 만나는 친구일 뿐이다. 어떤 자리는 누구도 대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시에 담은 애환은 그냥 시에서 마무리하고 간혹 전화 한통 받아도 항상 밝은 목소리인 친구가 있어서 좋다. “김현철 이 분은 오빠가 일년 쓴 글을 하루에 기가 막히게 종합했네. 두 사람 배합이 잘 되오.” 그제 위챗 “봄에 만난 가을”을 보고 사촌동생이 보내온 문자다.  “다 쉽지 않다”는 내가 썼지만 김현철님의 글을 보면서 어떤 내용은 내가 그렇게 썼던가 싶게 되새겨보게 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여야  보배라더니 이리저리 널어놓은 위챗을 김현철님이 이렇게 잘 모아서 분석해놓으니 내가 좀 쑥스러울 정도로 원작보다 해몽이 더 좋다. 나는 전에 나온 두 책도 한장도 펼쳐보지 않았다. 내가 쓴 위챗이지만  스스로 다시 읽는다는 게 손이 오그라들 것 같아서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그런데 그걸 샅샅이 읽고 분석했다니 고맙기만 할 따름이다.     “내 하루도 수필이 될까요?” 동창이 김현철님의 글을 모멘트에 돌리면서 남긴 글이다. 뻔한 얘기지만 누구의 인생도 유일하다. 유일하다 함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기 때문이고 그 구별이 글로 옮겨지면 그게 곧 수필이다. 다만 우리는 매일 수필을 만들어가지만 그걸 기록하여 발표하지 않을 뿐이다. 혹자는 일상생활의 이야기들은 무게가 없어서 문학성이 결여된다고 하지만 문학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공감하는 분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책 소개글을 많은 사람들이 돌려주는 걸 보면서 다른 분들의 글도 내가 그렇게 해드렸었던지 돌아보게 된다. 전에는 댓글마다 일일이 답복을 드리다가 나중에는 소위 바쁘다는 핑게로 일절 답글을 못했는데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모든 댓글을 반드시 확인은 한다. 그리고 댓글에 따라 위챗의 소재와 방향도 찾고 더욱이는 거기에서 힘을 많이 얻는다.  개나리는 놓쳤지만 이 봄에 많은 분들의 따뜻한 모멘트가 있어서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텨왔다. 사실 “생활이 없는 글은 없다”로 한단계 마무리할가 생각도 했었지만 이 글에 달린 댓글은 물론 김현철님이 또 저렇게 써주셨는데 자취를 감추기도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제도 작사가들의 지혜를 빌려서 조금 쉽게 하루를 넘기고 이제 5.1절련휴 환충기도 있으니 이틀만 더 견지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오늘의 위챗을 완성한다. 래년의 개나리는 분명 더 아름다울 것이다. 중국조선어방송넷 
74    이러한 ‘바이러스’ 유포죄는 벗기 힘들다 댓글:  조회:1467  추천:0  2020-04-28
[인민넷 사설] 현재 미국 코로나19 확산세가 맹렬한 가운데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연일 치솟아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를 걱정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미국에서 가장 흉악한 모습을 드러내며 생명을 앗아가는 대참사극이 벌어지는 이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또한 가장 흉악한 모습을 드러내며 사방에 동일하게 흉악한 ‘정치적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편견과 오만적인 선동으로 거짓과 트러블을 만들어 인류의 코로나19 공동 대응력을 흐뜨리고 전 세계를 대항과 충동 국면으로 몰아넣으려 한다. 그는 인류가 코로나19라는 공동의 적을 당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국제기구와 의학 전문가들의 과학적 논거는 무시한 채 계속해서 중국을 모욕하며 공격한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중국이 제때 감염 현황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비방했는데, 중국이 “모든 샘플을 없애버렸다”는 망언에 ‘배상’ 청구를 선동해 ‘단체사기’를 꾀하는가 하면, 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의 감염 사태 ‘허위정보’를 조장했다고 비난했다. 또 한 언론 사설에서는 미국 정보기관을 책임졌던 국무장관이 미국 국무원을 ‘중앙정보국화’하고 있다며, 냉전 사고로 경거망동하게 도발과 대항을 일삼고, 미국에서 생명을 앗아가는 비극과 국민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사방에서 트러블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실은 망각한 채 끊임없는 중국 먹칠하기로 주의를 다른 데로 돌려 책임을 떠넘기고 죄까지 남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사방에 ‘정치 바이러스’를 퍼뜨리며 아무 말이나 지껄여대는 것을 미국 언론조차 보고 있지 않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책임감을 가진 지도자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에 폼페이오 장관은 그의 ‘애정 사업’만 쫓으며, 감염 사태 발발의 책임을 베이징으로 돌리기 위해 열심이다.” 또 “폼페이오 장관이 감염 사태에서 보여준 모습은 역대 최악의 국무장관으로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폼페이오 장관의 중국을 향한 무분별한 비난은 사실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갑작스런 코로나19 감염 사태에 중국은 즉각 WHO측에 상황을 보고했고 또 즉각 세계 각국과 코로나19 유전자 정보를 공유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와 더불어 방역 협력을 펼친 것은 확실한 사실이자 모든 이가 목격했다고 국제사회도 말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과 중국 정부는 시종일관 인민의 생명안전과 신체건강을 우선적 위치에 두고 전국민의 평등한 생명권, 건강권 등의 기본 인권을 충분히 보장하며 지원과 치료에 집중함으로 모든 코로나19 환자들이 무료 검사와 치료를 받도록 최선을 다했다.힘겨운 노력으로 중국은 2개월 만에 방역에서 중요한 단계적 성과를 거두며 14억 중국인의 생명안전과 신체건강이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전심을 다해 인민 봉사에 나섰기 때문이고 아울러 정부는 중국 인민의 신뢰를 받았다. 인류가 직면한 갑작스런 감염 사태에서 누가 가장 먼저 주의를 주었는가? 누가 생명구출을 가장 우선에 두어 모든 희생을 감수했는가? 누가 가장 철저한 방역 및 전국적 동원령을 내렸는가? 누가 과학연구 결과를 공개하고 투명한 정보로 국제사회와 공유했는가? 누가 취약한 방역 국가와 지역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국제적 의무를 다했는가? 이들 모두가 틀림없는 사실이며 누구도 이를 없애거나 바꿀 수 없다. 인류 공공의 적인 코로나19에 대한 공동 대응이 가장 시급한 때,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감염 사태를 빌어 트러블을 만들어 중국을 적수로 하는 같은 편을 만들어 황당한 ‘정치 바이러스’를 퍼뜨려 국제사회의 방역 협력을 깨뜨리고 있다. 이러한 가치의 전도와 논리의 붕괴는 잘못과 계략을 감춘 채 설명할 수밖에 없다. 감염 사태 극복은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규칙을 무시하고 시비를 흐리며 국제협력을 깨뜨리는 것은 미국 학자의 말처럼 ‘바이러스 공범자’로 불려야 한다. 방역은 부적절하고 감출 수록 더욱 드러난다. 눈앞의 병은 고치지 않으면 더욱 심해진다. 폼페이오 장관 무리들은 계속된 반(反)중 감정의 발언을 멈추고 때와 맞지 않는 냉전적 사고는 버리며, 인민 평등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존중하고 보장할 뿐 아니라 사실을 직시한 채 입을 다물고 공론에 귀 기울여야 한다. 바이러스는 인종과 국경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각국이 함께할 때 반드시 이번 글로벌 방역전을 승리할 수 있고. 이는 시급한 당면 과제이자 유일한 선택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거짓과 트러블로 바이러스가 소멸되지 않고 먹칠하는 공격이 생명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을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중국과 함께 마주해 양국 정상 간 중요한 공감대를 이행하고, 협력으로 방해를 제거해 전 인류의 생명안전을 지키기 위한 책임을 다하며, 중·미 관계가 올바른 궤도로 발전할 수 있도록 추진하는 것이 양국 국민의 근본 이익에 부합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바라는 기대라는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번역: 인민망 조미경) 원문 출처: (2020년 4월 27일 03면)
73    고대 역병과 인간 윤리(전월매) 댓글:  조회:1480  추천:0  2020-04-23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전염병에 주목되어있는 요즈음이다. 그렇다면 중국고대에는 전염병에 대해 어떻게 기재되어 있을까? 고대에는 전염병을 역병(疫病), 온역(瘟疫)이라 했다. '역'은 '돌림병'이라는 의미이고 '온'은 체온이 올라가서 열이 난다는 뜻이다. 역병은 일찍이 중국 고대 사료인 나 등에 '사계절에 발생하고 백성이 시달리는 질병'으로, 에도 '모두에게 전염되고 증상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질병'으로, 청나라 에는 '의로운 병(义病)'으로 기재되어 있다. 역병은 빈부격차,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고 증상이 같다는 것이다. 역병은 고대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저승사자였고 심지어 한 국가를 망하게 하는 원흉이었다. 중국의 경우, 유행성 감기, 기침, 폐렴, 결핵, 말라리아(疟疾,학질), 페스트(鼠疫), 장티푸스(傷寒), 콜레라(霍乱), 천연두(天花, 홍역), 나병(麻风病,문둥병) 등의 전염병은 시대마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했다. 한나라시기에는 페스트가, 남북조시기에는 천연두가, 당나라시기에는 말라리아와 나병이, 명나라시기에는 페스트가, 청나라시기에는 페스트와 콜레라가 유행했다. 삼국시기 위나라 문학가이자 조조의 넷째 아들인 조식은 에서 "건안 22년, 역병이 돌았는데 집집마다 죽는 이가 생기는 아픔을 겪고 방마다 애통의 흐느낌이 울렸다.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혹은 멸족하여 사망하였다."고 참상을 적고 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崇禎)시기에는 지지리도 추운 겨울에 발생한 페스트가 전국에 퍼져 백성들은 무더기로 죽어나가고 외부로는 반란군의 침입을 받아 더 회생할 여력이 없어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고 기재되어 있다. 고대는 과학지식과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였기에 대부분 사람들은 전염원을 귀신의 농간으로 여겼다. 중국에서 의원은 춘추전국시기이후부터 있었다 하지만 많은 백성들은 신에게 제를 지내며 치료하려 하였다. 남북조시기에 천연두가 창궐하여 집집마다 "두신상(痘神像)"을 만들어 제를 지내 빌었는데 그 두신상 얼굴은 곰보자국이었다. 고전소설 에도 왕희봉의 딸 대저가 홍역을 치르게 되면서 왕희봉이 두창여신을 모셔다가 치성을 올리게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고대인들은 역병이 인간의 윤리와 관련이 있다고 인식하였다. 개개인의 도덕수양이 부족하면 질병이 몸을 덮칠 수 있고 그것은 자식에게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군자라면 질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고 걸리더라도 자신의 도덕수양에 의하여 치료가 되고 완쾌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수양은 질병의 치유에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지괴소설 에는 서진(西晉)시기 한 동자가 말라리아에 걸린 부친의 약을 구하고자 바깥에 나갔는데 어떤 사람이 "품격이 고매한 군자가 어찌 그런 역병에 걸리느냐?"라고 비아냥거렸다는 대목이 있다. 지괴소설 에는 국주씨에게 태어날 때부터 말 못하는 질병을 가진 아들 셋이 있는데 그는 이것이 자신이 유년시절에 저지른 살생 행위에 대한 징벌과 경계라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자신이 진심으로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고 뉘우치면 아이들의 병이 나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고대인들의 인식 속에는 도덕윤리가 지상의 것이었고 그에 따른 인과보응의 사상이 뿌리내려 있었다. 이는 통치계급의 이데올로기, 통치수단, 고대인들의 무지 등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다른 한편, 인간의 인성교육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점은 무시할 수 없다. 고대인들은 자신의 인격 수양을 쌓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자아에 대한 성찰과 반성, 더불어 타자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베풀 줄 알았다. 신라시기, 한국의 주술적 성격을 띤 향가 도 그런 맥락에서 읽힌다. 처용이 자신의 아내 미모를 흠모하여 사람의 형상을 꾸며 밤에 몰래 들어와 동침하는 역신(疫神, 전염병을 옮기는 신)을 다툼이나 싸움이 아닌 노래로서 감화시켜 물리친 것, 역신이 물러간 것은 처용의 군자 품격과 인간의 행위를 초월하는 도덕윤리 행위에 감화해서였을 것이다. 그 외에도 전염병에 대한 선진적이고 독창적인 인식들을 볼 수 있었다. 조식은 에서 사람들은 "역병이 귀신이 농간하여 벌인 일이라 여기는데" 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밝히면서 귀신과 미신을 반대하고 있다. 명나라 말기, 의술가인 오우가(吳又可)는 에서 "역병이라는 것은 바람, 추위, 열, 습도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늘과 땅 사이의 어떤 기운, 공기에 의해 전염된다", "한약이 온역 치료에 유효하다"는 당시로는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역병의 참상을 목격하고 선인들의 논저를 기초로 역병에 관해 치밀하고 깊이 있는 관찰과 논증을 거쳐 중국에서 역병 전문 저서 을 저술하였다. 중국영화 (2013)에는 망해가는 명말(明末) 숭정황제 집권시기, 전쟁과 온역으로 인한 백성과 병사들의 참상과 떠돌이 의사인 오우가가 그 참상을 목격하고 역병을 연구하고 퇴치하기 위한 격리, 한약 복용 등의 실천 과정이 리얼하게 재현되어 있다. 에도 보면 왕희봉은 딸의 홍역 치료를 위해 두창여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외에도 남편인 가련을 다른 별채인 서재에 보내 격리시키고 의원을 청해 한약을 짓고 복용을 시킨다. 환자는 점차 부스럼이 떨어지고 고비를 넘겨 병이 나아 완쾌한다. 반면 아버지인 가련은 서재에서 격리하는 동안 취사원 마누라와 바람이 나있었다. 관례적인 고대인의 인식으로 볼 때 딸이 홍역을 치르는 기간 재계를 해야 할 부친이 그러지 아니하고 죄를 짓고 있으니 그 죄가 딸의 죽음으로 묘사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작가는 여기에서 격리와 한약의 치료 등의 과학적 의료 기술의 힘을 제시하는 데 여기에서 대가인 조설근의 질병에 대한 선진적인 인식을 볼 수 있다. 역병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한 나라를 멸망시키고 한 문명을 멸망시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생활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기도 하였다. 고대인들에게 제일로 여겨지는 인간의 윤리도덕과 끊임없는 인격 수양 쌓기는 모든 것이 물질과 이익이 우선시되는 우리 현대인들이 되찾아야 할 부분이 아닌지 심사숙고하게 한다. 2020.3. 7 전월매 약력 :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학박사  現천진사범대 한국어학과 부교수  동북아신문 편집/기자  재한동포문인협회 해외이사. 출처/동북아신문
72    생명 존중, 데이터 수정의 근본 논리 댓글:  조회:1719  추천:0  2020-04-20
[인민망평론] 우한시 코로나19 방역 지휘부는 17일 를 발표하고, 4월 16일 24시까지 확진자 수가 325명, 사망자 수가 1290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왜 수정 후 데이터와 앞서 발표한 데이터 간에 차이가 있을까? “우한시가 데이터를 숨긴 것은 아닌지”란 의혹의 목소리가 불거졌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러한 의혹 제기는 타당하고 현실적 논리도 성립한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보느냐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어렵지 않다. 복잡한 이론적 논증이 필요하지 않고 그저 상식선에서 가능하다. 자연재해, 돌발사고, 공중보건사건이 발생하면 새로운 단서와 확실한 증거에 근거해 누락되고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초기 집계 데이터를 산정하는 것이 각국에서 취하는 관례다. 우한시 코로나19 방역 지휘부는 이번에 특별 조사팀을 구성해 여러 팀에서 온라인 측면과 오프라인 측면의 누락 없는 철저한 집계를 실시했다. 이러한 수정 작업은 일반적 관례이자 적극적인 보완 작업으로, 사실과 역사에 대한 책임이자 생명에 대한 책임이다. 이는 가장 기본적 논리이면서 가장 기본적 상식이다. 상식선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선 우한시가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감출 필요가 있는가? 모든 일에 최소한의 가늠을 해본다. 만약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가져올 수 있는 것이 미비하고 심지어는 스스로를 진흙탕에 빠뜨리는 일인데 과연 누가 그렇게 하려고 할까? 관련 데이터를 숨기는 일은 결국은 터질 수밖에 없는 화약고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리스크를 안은 댓가는 씻을 수 없는 치욕과 비난인데 이로 인해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는가? 수치를 조금 줄인다고 승진되고 부자가 될 수 있나? 아니면 미국 의원들처럼 감염 사태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틈을 타 대량 주식 매각으로 이익을 얻으면 되는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자극성’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오히려 후베이성, 우한시 관련 관료들의 감염 사태 초기 대응 부실을 문책했다. 이와 관련한 사례들은 얼마든지 예로 들 수 있다. 다음으로 만약 진짜 데이터 정보를 숨겼다면 데이트 ‘축소’에 책임을 면할 수 있는가? 우한시는 이번 감염 사태의 오염지역으로 검사 대상자, 확진자, 사망자 수가 엄청났다. 평화롭고 조용한 시대에 어떤 데이터라도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정보가 다원적이고 광범위하게 유통하는 사회에서 대형 공중보건사건이 발생하면 현미경 아래 놓이게 되는 것이다. 데이터 일부를 축소한 책임을 묻지 않고 적어도 처벌을 가볍게 하는 논리가 성립된다고 하자 그렇다면 왜 더욱 그런 일을 자행하지 않는가, 데이터를 좀 더 ‘적절하게’ 만들면 책임을 회피하기 더욱 좋지 않겠는가? 과정에서와 최종 공개되는 데이터를 비교하면 그 오차는 합리적 범위 안에 있다. 통계학 일반 원리에 따르면 이는 통계 방식의 누락에 속하는 것이지 고의적인 숨기기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밝힌다. 셋째, 앞뒤 데이터의 차이는 왜 발생하나? 이는 기술적 문제로 다양한 객관적 조건의 제약을 받으며, 해당 통보에서 이를 충분히 설명했다. 갑작스런 감염 사태 초기, 바이러스 핵산 검사력도 매우 미비했고, 중증 및 위중증 환자에 대한 치료 자원도 매우 취약한 상태다. 후베이 특히 우한의 방역 요구치와 치료력에는 큰 격차가 벌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국가라도 사각지대, 누락 등 즉각적인 대처와 집계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지금 각국의 상황이 이를 충분히 뒷받침해 준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감염 사태의 간사함과 인류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더욱 발견한다. 선진국과 개도국을 막론하고 갑작스런 감염 사태 앞에 어떤 국가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제한적 의료자원을 중증 및 위중증 환자에게 집중하는 것은 감염 초기 가장 이성적 결정이다. 감염 사태를 겪는 국가나 사회라면 생명과 관련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체감했을 것이고 더욱이 두 달여 전에 사태를 맞아 돌을 만진 후 강을 건넌 것은 중국과 중국인들이었다. 전국적인 지원과 각종 방역 조치로 후베이와 우한은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감염 사태라는 시련을 통해 중국인들은 국가가 ‘인민 중심’임을 확실하게 보았다. 시종일관 인민의 생명안전과 신체건강을 우선에 두는 것은 중국의 변하지 않는 기조다. ‘고의적 숨기기’와 같은 만리장성(중국)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단기적 시각은 중국 정부의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중국은 투명과 공개만이 조속히 감염 확산을 막고 또 정상적인 경제사회 질서를 조속히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풍파를 겪는 국가라면 이를 깊이 체감할 것이다. 실사구시는 중국의 일관된 입장이자 원칙으로 이러한 감염 사태에서 중국은 이 원칙을 고수한다. 생명 존중이란 이름으로 진행한 데이터 수정 작업은 실사구시 원칙의 실천이다. 세계 어느 곳이든 공정심을 가진 이라면 확실한 사실 속에서 하나의 결론, 즉 중국은 실사구시 준칙을 고수하고, 도의를 중히 여기며 이를 위해 행한다는 것을 도출할 수 있다. (번역: 조미경)
71    중국, 국제기구의 역할 발휘 적극 지지 댓글:  조회:1519  추천:0  2020-04-14
[사설] “중국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리더십을 발휘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역 조치를 마련하고 총력을 다해 코로나19의 국경 간 전파를 막는 것을 지지한다.” 얼마 전에 열린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G20 특별 화상 정상회의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연설 발표를 통해 국제기구가 역할을 발휘하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세계는 중국이 중요한 시기에 보여준 대국의 모습이 전 세계 코로나19와의 전쟁에 중요한 역량을 불어넣었음을 함께 목도했다. 중국은 WHO에 기반한 코로나19 정보 공유 강화 및 전면적이고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방역 지침 확대를 G20에 건의했고, G20의 소통 조율 역할을 발휘해 정책 대화와 교류를 강화하자고 호소했으며, 세계 공중보건 안전 고위급 회의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다자협력을 강조한 이런 건의는 국제 조율을 강화함으로써 현재 코로나19 도전에 대응하는 높은 자각성을 방증한다. 인류는 동고동락하는 운명공동체이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인류가 완승을 거두어야만 각국 국민의 생명 안전과 건강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습격했을 때 비상대응은 국제 조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국제기구가 역할을 발휘해야 한다. WHO는 보건사무를 담당하는 유엔 전문기구로 신종 전염병의 조기 검사와 경보, 방역 전략 조율, 진료 및 치료 방법 공유 및 국제 지원 결성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으며, 위험을 분담하고 안전을 공유하는 글로벌 공중보건 비상 협의체 마련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 WHO는 여러 곳의 실험실 가동, 글로벌 검사 네트워크 구축 가속화, 국제 역량 동원, 과학연구와 혁신업무 가속화, 유엔재단 및 관련 협력 파트너와 코로나19 연대대응기금(COVID-19 Solidarity Response Fund) 출범, ‘기본 보건 서비스 지침’ 발표 등 코로나19 공동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 조율에 최선을 다하면서 국제 및 지역기구와 함께 적극적인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세계 공중보건 사업을 위해 기여하는 것은 책임이자 의무이며, 인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 G20 정상들이 코로나19 대응 특별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공통인식은 세계의 기대를 담고 있다. 각 측은 WHO를 포함한 관련 국제기구와 함께 노력해 각자의 직책 범위 안에서 모든 필요한 행동을 취하기로 승낙했다. WHO ‘코로나19 전략적 대비 및 대응 방안’ 중의 자금 부족을 조속히 메우고, WHO 코로나19 연대대응기금과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에 재원을 제공하는 등 국제 코로나19 방역 행동을 조율하는 측면에서 WHO의 직책 강화를 완전히 지지하고 승낙한다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이런 약속들이 적극적으로 이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 분야에서 중국은 시종일관 다자주의를 주창하고 실천하고 있으며, 국제기구가 역할을 발휘하는 것을 지지한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중국은 WHO와 긴밀히 협력해 왔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중국이 전염병을 보고하고, 분리된 바이러스와 염기서열을 WHO 및 세계와 공유한 빠른 속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이는 말로 형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우한에 파견된 WHO 전문가들의 현지 시찰, WHO-중국 합동 전문가 시찰팀의 업무 진행 및 경험 공유, 물자 지원 등의 분야에서 중국은 WHO 업무의 확고한 지지자이다. 중국은 WHO의 코로나19 대응 국제 행동 지원을 위해 WHO에 2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는 ‘글로벌 연대 상부상조 정신을 구현’한 자선 행위로 불리고 있다. 일치단결해 전염병 마귀를 퇴치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일각에서는 음흉한 심보로 WHO를 모독하고 비방하고 있다. 인류의 생명 안전이 무너지는 것을 거들떠보지 않는 행위의 폐해는 코로나19 자체 못지않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 글로벌사무연구소 에릭 버글로프(Erik Berglof) 교수는 기고문을 통해 WHO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트집을 잡는 축에 속하며, 이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면서 “코로나19에 승리하려면 G20 정상은 국제기구와 협력해야 하는데 우선적으로 WHO와 협력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WHO는 현재 유일하게 세계의 건강을 이끌며 필요한 관여를 요구할 수 있는 신뢰 기구”라고 말했다. 국제 의료학술지 ‘랜싯(The Lancet)’ 온라인판은 사평을 통해 “WHO가 글로벌 대응 업무를 조율하는 중에 발휘하는 핵심 역할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에 만연하는 코로나19에 승리하려면 강한 힘을 모아야 한다. “유엔 창설 이래 최대의 시험대에 오른 국제사회는 더 강하고 더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일치단결해 정치게임을 버리고 어려움을 인식하는 것만이 이번 위기에서 함께 승리할 수 있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또다시 국제사회에 보낸 호소는 각국이 높은 경각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유엔이 직면한 시험은 국제사회에 대한 공동 시험이다. 연대 협력해야만 승리의 힘을 얻을 수 있고, 생명 안전을 공유할 수 있다. (번역: 인민망 이인숙)  원문 출처: 인민일보
70    역병과 문명의 발전(엄정자) 댓글:  조회:1699  추천:0  2020-04-08
인류는 수천 년에 걸쳐 역병과의 전쟁을 반복해왔는데 이런 전쟁은 인류 력사와 문명의 변화발전에도 영향을 주었다.    가장 오래된 감염증 류행 기록은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의 력사를 기록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인데 거기에는 그리스 아테네의 역병에 대해서도 기록되여 있다.   이 전쟁에서 해군력이 막강한 아테네는 거의 무적의 육군을 가지고 있는 스파르타와 동맹국들을 이기기 위해서 우세한 아테네해군으로 스파르타군을 해변에 묶어 두려 했다. 아테네 군대를 지휘하고 있던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인들을 성벽 뒤로 후퇴시켰는데 원래 인구가 많던 도시에 주위 주민들이 몰려들면서 아테네는 질병의 온상이 돼버렸다.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시체를 태우는 장작불 위에 주인 없는 시체들이 던져졌다. 부모는 자식을 잃고 자식은 부모를 잃고 3년도 안 되여 성벽 내 주민 중 1/3을 잃음으로써 아테네는 전력을 잃게 되였다.    거기에다가 "전쟁 초기에 그리스 군대를 이끈 페리클레스마저 전염병의 희생자가 되여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북아프리카에서 갑자기 찾아온 전염병이 아니였다면 아테네가 스파르타를 전쟁 초기에 물리쳤을 것이고, 그랬다면 세계사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였을 것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아테네 전염병과 펠로폰네소스전쟁)   1531년, 에스파냐의 식민지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1475-1541)의 군대가 168명에 불과한 병력으로 잉카제국의 8만 군대를 무너뜨린 것도 천연두 때문이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전쟁보다 천연두로 죽은 사람이 더 많았기때문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열어놓은 길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병균을 전파하는 경로가 되였고 이는 원주민들의 문명을 멸망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고 한다. 16세기 유럽인들은 14세기에 페스트로 인한 2차 대역병을 치르면서 온갖 병원균을 지닌 병원체가 되였는데 면역력 없는 원주민들은 그런 유럽인들을 접촉만 해도 병에 걸려 몰살당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같이 역병은 인류의 문명을 파괴하는 살상 무기가 되였는데 다른 한편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본 하면 사람들은 사무라이(侍)나 인자(忍者)를 떠올린다. 그러데 이런 사무라이의 탄생은 역병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지금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나라(奈良) 도다이사( 東大寺)의 대불(大佛)도 역병이 없었으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한다.    대불의 제작이 시작된 것은 서기 745년. 쇼무천황(聖武天皇)이 왕위에 올랐던 8세기 전반이다. 덴표(天平) 9년(737년)에 일본에는 천연두가 류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데 당시 국정을 담당하고 있던 후지와라 4형제마저 천연두로 잇따라 사망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덴표시대는 연년(連年) 가뭄·기근이 지속했고, 덴표 6년(734년)에는 대지진으로 크게 피해가 생겨 사회가 불안해진 시대였다.   도다이사( 東大寺) 대불의 건립계획은 쇼무천황이 이러한 사회 불안을 해소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려는 바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역병이 대불을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천년이 지나는 동안 이 대불은 수차 손상되기도 했으나 보수를 거쳐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어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천연두의 종식 후 저조한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농민의 토지 사유를 인정하는 '간전영년사재법'(「墾田永年私財法」)이 시행되였는데, 이것은 역병에 의한 피해로부터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사회 부흥책으로서의 일면이 강했다. 그런데 점차 '사유화'가 종신권리로 발전하면서 자신의 토지나 재산을 지키기 위한 무사(武士)가 필요했고 그렇게 태여난 무사가 조직화되면서 귀족과 황족을 위해 일하는 사무라이(侍)가 생기게 되였다. 역병이 없었다면 사무라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유럽에서는 14세기에 류행한 흑사병이 르네상스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르네상스 이전까지 중세 유럽은 1000여 년간 신(神)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하지만 흑사병 창궐에 무기력했던 사제들 때문에 교회의 권위가 흔들리며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열리게 되였다.    보카치오는 1348년 페스트의 참상을 목격하고 이듬해부터 『데카메론』(Decameron 1353)을 집필했다.    1348년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흑사병이 만연하였다. 이 역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지체 높은 젊은 부인 일곱명과 귀족 청년 세명이 피에솔레 언덕의 아름다운 별장으로 피신가게 되였다. 그들은 하루에 한명씩 왕이 되여 그날의 주제를 정한 뒤 각자가 한편씩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하였는데 수난일을 제외하고 2주에 걸쳐 열흘간 100편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고난 끝에 행복을 찾는 이야기, 역경을 이겨 낸 연인의 이야기, 재치로 위기를 모면한 이야기, 기발하게 상대를 조롱하는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 아래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춤과 노래로 하루를 마무리하였는데 보름째 되는 날 그들은 각자가 떠나온 곳으로 돌아갔다.   성과 쾌락에 관계된 재미난 여흥 거리 이야기 모음집이라 할 수 있는 『데카메론』은 구체적인 사물과 체험을 구체적인 언어로 재현하는 리얼리즘의 방식으로 인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오랜 시간 동안 종교의 억압적인 지배하에 숨 막혔던 사람들에게 인간의 본체적인 인성에 눈을 돌리게 하였고 생명의 힘을 느끼게 하였다.   또한, 인쇄술도 없었고 종이도 귀한 시대에 설화(說話) 형식의 단편 문학은 일반 민중들에게 전달되기 쉬워서 빠른 속도로 퍼질 수 있었다. 여기에 사용된 이탈리아어는 이른바 보카치오식 산문이라는 것으로서 오래도록 산문의 본이 되였다.   요즘 일본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가 확대되는 추세를 보인다. 정부는 오늘 「긴급사태 선언」을 내렸다. 회사는 물론이고 학교도 휴교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태는 17세기의 유럽에서도 일어났었는데 그때도 흑사병 때문에 학교가 휴교했다. 그 때문에 당시 잉글랜드 케임브리지대학에 다니던 아이작 뉴턴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였는데 휴교로 사색할 시간이 많아졌던 뉴턴은 그 와중에 만유인력을 발견했다고 한다. 미적분도 이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사람들에게 위기가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쩌면 그 휴교가 없었다면 인류의 발전에 혁신을 일으킨 만유인력이 발견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달이 왜 지구를 둘러싸고 도는지도 몰라 인조위성도 못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 정부로부터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외출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에서 많은 사람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학교는 휴교나 인터넷수업을 고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불가피하게 경제의 발전에 브레이크를 건다. 토요다 (豊田) 같은 대기업에서마저 일부 공장을 가동하지 않고 있으니 중소기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기업의 생산 규모가 축소되자 경영자들이 인건비를 줄이려고 신입사원 인입을 취소하는 바람에 올해 졸업생 중에는 취직 내정(內定)이 취소된 학생들이 많다. 이미 아파트를 빌고 이사까지 한 그들이 갑자기 취직이 취소되니 4월부터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가 문제가 되였다. 다행이 정부가 6조엔의 원조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급한 불은 끄지 않을까 싶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런 상황이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하던 4차산업혁명의 도래 시기를 앞당기고 있는 것 같다. 4차산업혁명에서 주되는 사업인 다양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클라우드 컴퓨팅 및 빅데이터 산업, 그리고 인공지능(AI)산업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를 공제하고 억제하는데 아주 큰 작용을 하고 있다.   중국 IT 기업 "알리바바" 산하의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는 2월 11일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책으로서 "알리페이 건강 코드"를 본사가 있는 저장성 항주시 등에서 실험적으로 도입하여 1주일만에 100개 도시로 확대됐다고 한다.   알리바바 산하 앤트파이낸셜이 운영하는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 건강 코드'는 애드온 앱으로 알리페이의 사용자 건강상태를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 QR코드로 표시한다.   이 QR코드는 사용자가 입력한 개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성되며 초록색이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나 노란색의 경우 1주일, 빨간색의 경우 2주간의 자택 대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노란색' '빨간색' 판정은 자진신고 해야 하며 건강상태 외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와의 접촉, 감염지역 출입 등이 기록되며, 대중교통 리용 데이터도 담겼다.   덕분에 제때 감염자를 알아낼 수 있었고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았고 사태를 빠르게 수습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코로나 앱을 인입하였는데 확진자의 격리장소, 동선(動線) 같은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확진자들이 방문했던 곳을 점으로 찍고, 선으로 련결해 이동경로를 쉽게 보여주어 신속한 업데이트가 될 뿐 아니라 전체 통계도 볼 수 있어서 코로나 19를 현명하게 피하는 수단이 되였다.    또한 '코백 플러스'를 리용하여 주위 약국의 마스크의 현황을 보여주기때문에 구매 확률을 높여줬고 코로나 19와 관련된 국내 현황, 세계 현황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확진자 발생지역 역시 확인 가능하였다.   이런 앱을 리용함으로써 한국은 코로나 19를 보다 유효하게 억제한 나라로 인정받게 되였다.   일본은 개인정보 류출이 우려되여 이때까지 이런 앱 사용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은 일본도 인터넷 앱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몰고 있다.    코로나 19의 확산은 세계적으로 의료붕괴를 일으키고 있다. 불어나는 환자 수에 대응할 의료진의 수가 모자라는 상황 속에서 의료용 로봇의 필요성이 제기되여 이미 의료붕괴가 일어난 이탈리아에서는 의료로봇이 사용되고 있다.    전염성이 강한 환자에 대한 치료 간호가 앞으로는 로봇을 통해서 진행된다면 의료 종사들이 감염되여 의료붕괴가 일어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19와의 전쟁은 인류력사상에서 IT산업과 AI의 신속한 발전을 필요를 하고 있으며 이는 4차산업혁명의 발전 속도를 촉진할 것이다.    지금은 상황때문에 피동적으로 인터넷으로 수업을 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것이 미래 교육의 실험 모델이 될지도 모른다.   오늘 도쿄와 오사카 등 7개의 도(都) 부(府) 현(県)에 「긴급사태선언」이 내렸다.   외출 자숙령이 내렸고 "환기가 잘 안되는 '밀페공간', 다수가 모이는 '밀집장소', 가까이서 대화나 발성을 하는 '밀접장면'을 피면 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사람들의 생활은 더욱 불편해지고 감염자가 더 많이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겨울이 길고 추워도 봄은 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역병이 무서워도 인류는 역병과의 전쟁에서 이겨왔고 그때마다 인류의 문명은 발전하였다.   코로나 19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번 고난을 이겨낼 때 인류는 또 한걸음 크게 성장할 것이다.  프로필   이름: 엄정자(厳貞子) 경력: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교사, 길림신문사 기자 역임, 현재 일본 ECC외국어학원에 재직 중, 동북아신문 일본지사 대표,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대표 겸 회장,  연변작가협회 회원, 일본조선학회 회원,    수상경력:  수필 「화산 우에서 사는 사람들」  제9회 『도라지』 장락주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수필 『감나무에 담긴 정』  제1회 同胞文學 安民賞. 수필부문 우수상,   작품집:  수필집 『금 밖에 나가기』 연변인민출판사. 2011년,  평론집 『조선민족의 디아스포라와 새로운 엑소더스』연변인민출판사, 2014년.    
69    우리 식이냐, 한국식이냐 댓글:  조회:1739  추천:1  2020-04-07
얼마 전 한 위챗단체방에서 ‘피드백’이라는 단어를 놓고 열렬한 쟁론이 벌어졌다. 외래어사용을 반대하여 ‘건의’로 바꿔야 한다면서 화두는 던져졌다. ‘글에 대한 피드백’이라고 할 때 ‘피드백’은 글을 읽은 후의 느낌이나 개선방향, 쉽게 말해 ‘반응’을 뜻하는 어휘이므로 단순한 ‘건의’보다는 내포가 넓다. 하여 조선어에 대응되는 합당한 어휘가 없을 시에는 한국식 대로 외래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찬성립장이였다.     결론이 어찌되였든지를 막론하고 언어에 관한 대화가 오갔다는 것에 필자는 위로를 느끼며 량측 모두에게 내심 박수를 보냈다.  4년전에 반포된 조선말새규범에 대해서는 모를지라도 적어도 조선어와 한국어의 차이에 대해서는 문자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알아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어와 조선어의 차이에서 외래어는 구우일모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조선말사전에 오르지 않은 외래어일지라도 한국에서 표준어로 쓰이고 내용이나 어감상 꼭 필요할 경우라면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기에  ‘피드백’은 필자 또한 자주 사용하는 어휘이다. 게다가 ‘디저트’를 ‘대지트’라든가 ‘그룹’을 ‘그루빠’처럼 조선말 사전이나 규범에 맞게 쓴다는 것이 꼭 매끄럽지만은 않을 때가 많다. 외래어를 놓고 한국식으로 쓰냐 우리 식으로 쓰냐 하는 것은 그닥 가치 있는 쟁론이 아니라고 본다. 화제가 ‘랭면/냉면, 비률/비율, 드디여/드디어’와 같이 고유어나 한자어에서의 차이에 대해 언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으로 이 글을 적는다.    조선어와 한국어는 의사소통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1443년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에 기초한, 문화적 뿌리가 동일한 언어이다. 그러나 1950년대초 우리가 중국에서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면서 우리의 언어도 ‘중국 조선어’가 되였다. 조선과 한국이 분단된 지 70여년, 중국 조선어로 불리우기 시작한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 중국 조선어와 한국어는 많은 면에서 이질성을 갖게 되였다. 하지만 도서, 텔레비죤, 인터넷 등 매체를 통해 한국어를 많이 접하게 되고 일상에서부터 시작하여 한국제품을 더 선호하게 되여 한국어가 우리들의 생활에 침투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게다가 정규출판물이 아닌 각종 온라인계정에 ‘로인, 오래동안, 진렬, 도리여…’가 아닌 ‘노인, 오랫동안, 진열, 도리어…’ 등 한국식으로 쓰여진 글들이 부지기수이다. 이러한 상황은 기성세대들의 언어생활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혼란을 조성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필자의 딸애 역시 한국어사용자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말로 된 도서가 한정되여있다보니 지금까지 한국의 책들을 무더기로 사들여서 읽게 하였는데 학교에 가고 나서 얼마 안 지나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그래도 처음 한국식 표기 대로 쓴 것을 발견했을 때는 우연일 거라고,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맞게 쓸 거라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며칠전 한시험지에서 ‘내일 뭐 할까?’,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등 한국식 표기로 쓴 것을 여러개 발견했을 때 조선어로 먹고사는 사람으로서 슬프기 그지없었다. 이런 애들이 한둘이 아닐 테니 선생님들의 애로점도 만만치가 않을 것이다.  몇년전 ‘중국 조선어와 한국어 표기’에 관한 론문으로 학술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때 한국의 한 대학교 교수가 “만약 자녀가 대학의 한국어과로 진학하거나 졸업하여 한국회사에 취직하게 된다면 그 때도 한국어가 아닌 조선어를 쓰게 할 것이냐?”고 질의를 해왔다. 확실히 그럴 상황에 대비하여 대도시에 진출해 사는 조선족들은 2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때 가서 딸애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이지 지금 내가 미리 닥달할 일은 아니라면서 조선어를 고집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조선말을 가르치고 고등학교, 대학교 진학시험을 조선말로 치러야 한다는 당면의 리유를 제치고라도 우리가 한국사람이 아니고 조선족인 만큼 우리의 언어도 한국어가 아닌 조선어여야 마땅한 것이 아닐가. 중국땅에 일떠선 우리 민족의 첫 민족대학과 첫 민족출판사가 조선어라는 매개가 없었다면 70여 성상의 빛나는 려정이 있었을가! 그간 또 얼마나 많은 조선어 관련 학자들이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부단히 조선어규범을 수정하고 보충하면서 올곧은 길을 걸어왔는가. 10년에 한번씩 변하는 새 규범에 적응하기 어려워 툴툴댄 적도 있지만 우리 자체의 언어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고 늘 감사히 여겨야 할 일이다. 그리고 충실한 사용자가 되여야 할 것이다.    적어도 조선어와 한국어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두음법칙(래일/내일)과 사이시읏(뒤문/뒷문), 그리고 ‘구뎅이/구덩이, 도리여/도리어, 피였습니다/피었습니다’처럼 기저형 설정에서의 차이는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그외에도 ‘나무군/나무꾼’이나 ‘페교/폐교’, ‘톱이/톱니’와 같이 라렬하자면 수두룩하니 많으나 교육이나 출판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사용자들에게까지 요구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요즘은 우리말로 된 온라인계정이 참 많다. 지면에 발표된 글을 전재하는 형식으로 된 계정은 그나마 문자가 깔끔하게 다루어졌지만 그 외 많은 온라인계정을 보면 언어사용이 적절치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식 표기를 따르려는 시도가 많은데 그것도 어휘만 한국식으로 표기할 뿐 띄여쓰기나 문장부호를 보면 한국어문법을 제대로 섭렵한 경우가 드물다. 어영부영이라고 표현해야 할가! 각자의 선호도가 다르고 언어환경이 다르기에 한국식을 많이 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한국어가 아닌 조선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연변교육출판사 계정 
68    [사설] 미국 빈곤 격차의 냉혹한 현실 댓글:  조회:1730  추천:0  2020-03-20
미국 일각에서 당당하게 다른 나라 인권을 놓고 이러쿵저러쿵할 때 미국 사회 서민들의 삶은 빈곤 격차로 인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값비싼 비용으로 사람들은 검사를 받지도 못한다”, “현실은 미국인 40%가 400달러의 갑작스런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작년에만 미국인 33%가 치료를 포기했다” 미국 하원은 최근 코로나19 감염 사태 관련 청문회에서 이어지는 질문에 미국의 빈부 격차와 취약한 의료보장 현실을 드러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발표한 가 밝힌 다량의 사례들은 부강한 미국이란 가면 뒤에 빈곤 격차 심화라는 냉혹한 현실이 존재함을 알렸다. 미국은 서방 국가 중 빈곤 격차가 가장 심각한 나라다. 미국인구조사국의 통계 데이터를 보면, 지난 50년간 미국 지니계수는 줄곧 상승해 2018년 최고치 0.485에 달했다. JP모건체이스는 미국 상류층 가정 10%가 전체 가정 순자산의 75%를 차지한다고 보고했다. 연방준비제도 측도 1989년부터 2018년까지 상류층 가정 1%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3%에서 32%로 증가했지만 최저층 가정 50%의 자산 증가는 제로라고 밝혔다. 미국 경제학자 폴은 사회 상류층 소득의 비약적 증가는 사회 저층에게 대부분 압박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라고 보았다. 자본으로 인한 양극화가 ‘부가 갈수록 소수에게 집중되는 현상은 이미 다수 미국인이 합리성과 도덕성 면에서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인식을 초래했다. 2018년 미국은 빈곤 인구가 3970만 명을 기록했다. 미국 주택도시발전부처의 데이터에 따르면 매일 밤 적어도 50만 명은 돌아갈 집이 없다. 미국은 현재 유일하게 수백만 인구가 굶주림에 시달리는 선진국이다. 미국 아동보호재단에서도 이러한 냉혹한 현실을 꼬집었다. “전 세계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1/5이 넘는 어린이가 매일 뭘 먹을지, 어디서 자야할 지를 고민하는 현실 앞에 직면한다.”라며, 미국은 1280만 명의 아동이 빈곤 상태에 처해 있고, 5세 이하는 350만 명으로 이 중 160만 명이 극도의 빈곤 상태에 있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냉혹한 현실 속에서 미국 일각은 여전히 큰 소리를 치며 미국을 모범적인 ‘민주 악사’로 포장하고 있다. 미국 저층민은 냉혹한 ‘낙담 골짜기’에 빠져 있고, 미국 정부는 엄청난 민간부채를 짊어지고 있다. 미국은 국민의료보험을 시행하지 않는 몇 안되는 선진국의 하나다. 미국 국가통계국이 작년 11월 밝힌 통계자료를 보면 2018년 2750만 명이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갤럽 측 조사에 따르면 미국은 1500만 명이 비싼 약값으로 처방약 구매를 미룰 수 밖에 없고, 6500만 명은 비싼 의료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한다. 미국인들은 미국의 건강안전시스템이 코로나19 감염 사태를 감당할 수 없고, 따라서 감염이 점차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미국의 빈곤 격차는 안정적 장기 추세로 이는 미국 정치제도와 미국 정부가 대표하는 자본 이익으로 결정된 것이다. 유엔 최빈곤인권문제 관련 조사관은 미국의 “최빈곤 상태 존재는 위정자들의 정치적 선택이다”라고 지적했고, 영국 학자는 미국의 심각한 빈곤 격차의 근본적 원인을 미국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시스템, 즉 사유화, 시장화, 자유화를 핵심으로 부자의 이익을 수호하기 때문이라고 직언했다. 미국 정부가 ‘가짜 인플레이션율’로 수백만 빈곤 인구를 ‘제거’하는 방법을 시도하려 하지만 언론은 “정부가 빈곤인구 수와 이들을 도울 방법보다는 그저 숫자 게임에 치충한다”라는 말로 이를 비꼬았다. 미국이 만약 인권 문제를 정말로 문제 삼고자 한다면 장기간 미국 사회를 괴롭힌 빈곤 격차 문제는 왜 고민하지 않는가? 미국 일각에서 당당하게 다른 나라 인권을 놓고 이러쿵저러쿵할 때 미국 사회 서민들의 삶은 빈곤 격차로 인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미국엔 굶주리는 아이들, 갈 곳 없는 가난뱅이, 치료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어째서 미국 일각에서 스스로를 본보기를 삼으라고 하는가? 전 세계는 당연히 이를 본보기를 삼을 수 없다! 빈곤 해소에서 한 사람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인권 수호자’ 미국은 이러한 약속을 책임질 수 있는가? 현재까지 그들 마음속에는 이러한 의지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번역: 조미경) 인민일보/인민망 편역
67    [두만강칼럼]위기상황과 국민의식(서옥란) 댓글:  조회:1749  추천:0  2020-02-25
극한적인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 나라와 국민의 수준을 분명히 들여다볼 수 있다. 최근 무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는 그 감염범위가 늘어남에 따라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였다. 중국 당과 정부 및 인민들은 이번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막강한 응집력과 단결력, 즉 멋진 국가이미지와 국민이미지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습근평 주석은 인민대중의 생명안전과 건강을 시종일관하게 첫자리에 놓고 코로나19 예방통제 인민전쟁, 총력전, 저격전의 승리를 따낼 데 대해 강조함으로써 전국 인민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안겨주었다. 중앙 및 호북성을 비롯한 여러 지방정부에서도 일심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전염병 폭발 초기에 일부 사람들은 확실히 불안에 싸이고 일부 리기적인 면도 드러냈다. 알베르 카뮈가 쓴 장편소설 《페스트》(1947)에서는 흑사병이란 재앙에 직면한 알제리 오랑시의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을 떠올리고 있다. 전염병을 피해 은신하는 시민들, 하느님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는 신부, 페스트에 맞서서 자신의 천직을 다하는 의사들 등 장면들은 재앙 앞에서의 부동한 인간들의 부동한 본성을 보는듯이 그려냈다. 최근 몇년간 전염병을 주제로 다룬 한국의 영화 《감기》, 《부산행》과 같은 작품에서도 강한 치사률을 가진 전염병 앞에 선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을 통해 인간의 리기심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위기 앞에서 인간은 흔히 나약해지고 인간본성의 가장 어두운 일면을 드러내게 된다. 특히 전염병이 발생할 때 인간의 공포심과 리기심, 타인에 대한 배척심리가 강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있었던 극단적인 사례들도 있다. 이를테면 에볼라 발병 이후, 에스빠냐의 어느 한 환자의 애완견도 감염되였는데 정부에서는 그 애완견을 안락사를 시켰다. 그러자 그 환자는 불만을 품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와 여러가지 도경을 통해 정부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미국 텍사스주의 한 대학교 학장은 아프리카 나이제리아 출신의 입학지원자들을 무턱대고 거부하였다. 에볼라에 감염된 미국의 한 간호원은 자신을 격리한 데 대해 거세게 반발하면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기까지 하였다. 이번 코로나19의 사태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마스크를 먼저 가지겠다고 격렬한 몸싸움까지 하며 충돌을 일으켰다. 또한 덮어놓고 무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혐오하거나 인터넷 공간에서 언어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못난 행위를 보여주기도 했다. 기실 남을 위한 배려와 헌신정신 또는 리타(利他)정신은 결국 자기를 위한 것(利己)이기도 하다. 거리에 나설 때 마스크를 꼭 끼고 침을 함부로 뱉지 않으며 입을 팔소매로 막고 기침과 재채기를 하는 등 사소한 일들은 자신을 보호하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행위이다. 이번 코로나19 저격전에서 깊은 배려심과 희생정신으로 전체 인민들을 고무시키고 한마음한뜻으로 뭉칠 수 있게 한 아름다운 장면들도 속속 나타났다. 바이러스 감염을 무릅쓰고 불철주야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리고 있는 의료진들의 모습, 그들의 희생정신과 인간애는 14억 중국인민과 세계인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직책을 다하는 《페스트》라는 소설에 나오는 의사들처럼 이들의 인간다움이 있었기에 우리는 공포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위기의 극복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다가 일터에서 쓰러진 사람들도 적지 않다. 늘어나는 환자를 수용하기 위하여 건축로동자들은 열흘 사이에 건축면적이 3만평방메터에 달하고 근 2천여개 병실을 갖춘 화신산(火神山)병원을 일떠세우는 기적― ‘중국속도’를 창조하여 세계를 놀래웠다. 필을 놓으면서 필자는 국가나 민족이 위기에 처할 때 우리 모두가 철통같이 뭉친 강한 집단의식을 보여주어야만이, 우리 모두가 리기심을 버리고 서로 배려하고 포용하고 상생하는 성숙한 국민의식을 가져야만이 눈앞의 재앙을 일거에 깨끗이 물리칠 수 있다는 도리를 부언하고 싶다.   길림신문/서옥란(연변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
원래는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페염과 같은 시기는 물론 평소에도 사람의 속을 긁는 부면적인 내용은 가급적이면 언급하지 않기로 자신을 자제하기에 애써왔다. 같은 값이면 서로가 웃을 수 있고 더욱이 지금처럼 어려울 때에는 마음이 한결 밝아지는 내용을 찾으려 노력하고 참았지만 눈으로 보이는, 옆에서 들리는 여론들이 심경을 불편하게 만들며 가만 놔두지를 않는다.   아픈 다리에 찜질 한다는 뜻의 한어의 성구가 혹시 우리말에 대응되는 사자성어가 있지 않을가 싶어서 설마 하면서도 검색해 봤다. 아니나 다를가 떡하니 나와 있었으니 “낙(락)정하석”이다. 함정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도와주기는 커녕 도리여 괴롭히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비슷한 사자성어로 하정투석도 있다.    그야말로 옥편 하나를 옆에 놓고 한어의 모든 성구를 대역하면 없는 사자성어가 과연 있을가 라는 의구심도 든다. 이렇게 봤을 때는 우리말에 한자어가 70%를 웃돈다는 학설도 너무 보수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쉽게 즐기자는 취지의 한국 연예프로에 봐도 저렇게 어려운 사자성어를 써놓고는 그게 또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괄호를 치고 한자를 적어놓는다. 그러다보니 죽을 사자와 죽일 살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혼용하는 자막도 보인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페염에 대한 초창기 보도에서  우리나라의 성 이름을 한어발음으로 표기하다 보니 한국의 개별 언론은 호북성(후베이성)을 하북성(허베이성)이라고 하는 것도 봤다. 애매한 하북성이 순식간에 여론의 초첨이 될 번 했다. 바늘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예민한 이 시기에 하북성으로서는 환장할 일이다. 호북성과 하북성이 헛갈리는데 그럼 산서성과 섬서성은 어떻게 구분할지 심히 걱정된다. 하기야 또 뒤에 한자를 적어놓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학교 때 은사님 강의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공식 문서에 찍는 도장을 지칭하는 우리말 단어 “공인”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음 ‘공장’을 그대로 갖다 써놓고는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뒤에다 다시 한자를 밝혀놓는 신문을 봤습니다.”    도장의 뜻으로 우리말에 “공장”이라는 단어가 없는 건 제쳐놓고라도 언어의 경제성으로 봤을 때도 괄호에다 한자까지 합치면 지면에서 네개 음절을 더 차지하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가. 하물며 우리말로 된 신문은 독자가 한자를 한글자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글이 완성되여야 한다. 그렇다면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접했을 때 뒤에다 괄호를 치고 친절하게 알려준다고 해서 그게 배려일가. 독자가 알아보지 못하거나 다른 뜻으로 리해할가봐 념려하는 배려심이나 로파심은 가상하나 언어문자도 엄연한 과학이다. 사전에 있든 없든 내가 편한대로 적어놓고 다시 한자를 밝혀놓는 식이면 길거리에 뿌려지는 전단지를 만드는 지하구멍가게도 언론이다.   최근 서울 시장이 2015년 메르스사태로 서울이 위기에 처했을 때 북경시가 도와줬다며 이번에는 서울이 도울 차례라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그에 앞서 삼성과 LG도 선뜻이 성금을 내놓으며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이 마당에 또  한국의 개별적인 “정의”의 언론이 가만있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개괄하면 내 코가 석자인데 남의 걱정을 할 때냐는 거다. 다시 말하면 국내  수급도 어려운데 왜 남의 일에까지 신경쓰며 퍼주냐는 비난이다. 그럼 2015년에 북경시는 돈이 남아돌고 물자가 썪어나서 도왔을가. 명색이 기자인데 생각을 좀 하고 기사를 쓰자.   그리고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일찍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라고 했고 최근에는 “코로나-19”라고 밝혔음에도 왜 일부 언론은 아직도 굳이 “우한페렴”이라고 고집하는지 그 의중이 무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마당에 옆에서 동정하고 우려해주는 건 좋은데 꼭 신규확진자와 사망자수에만 눈이 아홉이 돼서 공포를 조성하는 심리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사선을 넘나들며 고생하는 의료진을 포함해 우리가 하고 있는 노력과 희생은 잘 보이지 않고 아픈 곳만 꼬집고 사정이 있는 불가항력적인 결과만 부풀려 보도하는 언론이야 말로 백신이 시급하다.    그럼 여기서 나는 중국이 아니고 다른 나라에 사니까 이 나라의 룰에 따르겠다고 주장한다면 그것도 열번 양보한다 치자. 그런데 이런 나라에 가 있는 개별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또 괜히 그쪽 립장에 서 있는 걸가. 그러고는 자기는 아주 알권리가 잘 보이는 높은 곳에라도 서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를 이른바 “안타깝게”  바라본다. 뭐 또 백번 양보해서 많은 시간을 그 나라에서 커왔으니 생각이 바뀔수도 있다고 치자. 그래도 낳은 정이라는 게 있는데 이 조국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해서 살림살이가 얼마나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중국에 살 때는 안 그랬었는데 그 나라에서 살면서 그런 말만 듣고 그런 그림만 접하다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에 끌려가게 되나 보다. 그런데 항상 잘난 척 하는 그 나라도 대범하고 투명한 것처럼 떠들지만 번마다 지나오고 보면 결국에는 저들의 리익을 위해 우리를 공격한 것으로 밖에 되지 않았다.    먼 례를 들지 말고 국가 안보를 리유로 우리나라 통신장비업체 화위를 공격했던 미국은 다른 나라의 정보를 하나도 빼내지 않고 성역에서만 살아왔을가. 아쉽게도 미국이 “크립토AG”라는 스위스의 암호장비 회사를 통해 수십년간 다른 나라 심지어는 동맹국의 기밀정보까지 빼냈다는 사실이 최근에 드러났다. 이 스위스 암호장비 업체의 실소유주가 바로 미국의 모 기관이였다. 이건 우리나라 언론에서 보도한 게 아니고 워싱턴포스트가 독일의 ZDF방송사와 함께 모 기관의 비밀자료를 입수해 밝힌 보도이다. 그럼 이 대목에서 또 서방의 달이 더 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워싱턴포스트가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가 나빠서 악의적인 보도를 한다고 두둔해 나선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그 나라에서 꿩을 기어코 닭이라고 하겠다면 그건 그 나라의 마음이라고 치자. 그런데 그 나라에는 살고 있지만 국적이 우리나라인 사람들까지 덩달아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출 필요까지야 있을가. 아무리 애를 써서 그들의 힙합 장단에 맞춰 흐물거려도 우리의 아리랑 뿌리는 어디 가지 못한다. 괜히 용을 쓰지 말자. 사촌이 기와집을 사도 배가 아프다고는 하지만 도대체 누가 사촌이고 누가 남인지 정도는 가리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이 시기에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훼방은 놓지 말자.    그게 인간 도리의 최저 양심이다. 글 궁금이/중국조선어방송넷 
65    이데올로기적 편견도 바이러스다 댓글:  조회:1715  추천:0  2020-02-14
중요한 시기 국제사회는 정의와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선택과 중국에 대한 선의, 중국 편에 서고자 하는 데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인류의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된 힘이 모든 감염 사태를 반드시 승리하게 할 것이다. 신종 코로나 감염 사태 앞에 세계는 중국과 동고동락하며 중국을 응원하고 가슴 따뜻한 온정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적과 같은 감염 사태에 대응해야 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미국 일부 정치인들은 중국을 비방하는 정치적 쇼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들은 중국과 중국 제도를 공격하고, 중국과 타국 관계를 이간질하며, 도덕과 문명 마지노선까지 짓밟으며 이데올로기적 편견과 냉전사고 바이러스를 만들어 정상적인 국제관계를 공격한다. 이 얼마나 대비되는 모습인가? 정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반전이다! 중국의 대응 노력과 성과와 관련해 최선을 다하는 중국 공산당의 인민 봉사에 대한 근본적 취지와 전국 인민들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이끄는 집권력을 놓고 전 세계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가 중국을 칭찬할수록 힘겨루기에 빠진 미국 정치인들은 더욱 안절부절해 한다. 연일 떠들썩하게 각종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다른 사람의 위기를 틈타 불 난데 부채질하는 격의 비열한 수법을 자행해 인류문명의 기본 마지노선은 물론이고 인성조차도 찾아볼 수도 없다. 이들은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억누를 길 없는 심보로 공공연하게 감염 사태 가운데 “중국의 실점이 미국의 득점일 수 있다”고 말하며, ‘남의 불행으로 이득을 보려는’ 악독한 속셈을 보였다. 미국 일부 정치인의 편협함과 고집스러움으로 인해 두려운 마음이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두려움은 바로 이들이 중국 경제 사회발전과 인민 생활의 부유, 국가번영과 강대함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황당한 논리에서 보자면 중국 공산당은 중국 인민들이 역사적 성과를 거두고, 비약적 발전을 거듭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바로 미국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으면 한 치 앞도 나아갈 수 없고, 이들의 끊이지 않는 황당한 발언도 주류 언론의 지휘봉이 될 수 없다. 국제사회는 몇 십 년간 중국 공산당 주도로 8억 명이 넘는 중국인이 빈곤에서 탈출했고, 4억 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중등소득계층에 진입해 전 세계에 엄청난 발전 기회를 가져왔다고 인정한다. 올바른 도는 사람 마음에 있다. 최근 중국 공산당의 전국적인 감염 사태 대응 행동은 세계로부터 존중과 칭찬을 얻었다. “중국 공산당은 전례 없는 안전조치를 취했고, ‘중국속도’로 의료 시설을 신설하는 동시에 예방수단을 보안해 중국 공산당의 뛰어난 통치력이 드러났다”, “중국 공산당이 취한 정치적 정책과 보건 방역 조치는 인류 전염병 역사상 이정표가 될 것이다” 국제사회는 중국 공산당의 주도로 중국이 이번 감염 사태를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 능력, 통제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책임감과 성실함을 가진 중국 공산당은 바로 중국의 행운인 동시에 세계의 복이다. 우스운 것은 미국 일부 정치인들은 일찌감치 판단력이 흐려져 현실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즐기고 있다. 자연계 바이러스가 인류에 가하는 해에 대한 대처로 국제사회가 긴박하게 돌아가는데, 이들의 심리는 “여유를 부리며” 이데올로기적 편견과 냉전사고 바이러스를 퍼뜨릴 시기라고 여긴다. 그래서 일각에서 “중국은 이미 미국의 첫 번째 지정학적 라이벌이 되었다”고 떠들어대고, 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빌미로 중국과 이웃나라 관계를 이간질하며 심지어는 언론에 유언비어를 퍼뜨려 중국이 아프리카에 질병관리본부를 지어주고 아프리카 대량 유전자 데이터를 훔쳐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때를 막론하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유언비어는 스스로의 이미지를 망쳐 결국 망신을 당하고 만다. 퓨 연구센터가 작년에 실시한 조사 데이터를 보면, 응답자 중 45%가 미국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위협으로 본다고 응답했다. 안타까운 것은 스스로가 자초한 화가 미국에도 적지 않은 해를 가져올 수 있는데 위협 또한 크지 않을 수 있을까? 이데올로기적 편견과 냉전사고 바이러스는 결국 국제관계의 재앙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전염병 때 양심이 보이고, 위기 때 진심이 보인다. 중요한 때에 정의와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선택과 중국에 대한 선의, 중국 편에 서고자 하는데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인류 운명공동체 의식은 이미 국제사회 주류가 된 동시에 각 국민의 감염 대응에 대한 공동 행동이 되었다. 인류의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된 힘이 모든 감염 사태를 반드시 승리하게 할 것으로 모두가 확신한다.  원문출처 인민일보/번역: 인민망 조미경
64    응답한 건 시대가 아니라 양준일이다 댓글:  조회:1709  추천:0  2020-02-07
[대림칼럼]   [대림칼럼] 응답한 건 시대가 아니라 양준일이다 -우리가 받은 선물- 글/전은주 시인·문학평론가       1. 한국사회의 이중성   한국사회는 요즘 '양준일 신드롬'으로 뜨겁다. 90년대 한국사회는 낯설고 이상한 가수였던 1969년생 '양준일'에게 돌을 던졌다. 한국어가 서툴고 영어를 마구 쓴다는 리유로 재미교포였던 그에겐 철퇴가 내려졌다. 그는 90년대 초반 파격적인 안무와 가사, 패션 센스로 젊은 청중을 후끈 달구었지만 당국은 그를 '선정적 퇴페'로 몰아 방송출연 정지를 내렸다. 그런 그에게 아무도 노래를 주지 않았고 비자도 연장해주지 않았다. 출입국 관리소의 어떤 직원은, "나는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다는 게 싫어!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 이 도장은 절대 안 찍어줘! 너는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어!" 라며 증오로 비자 연장을 거절했고, 그 20대 초반의 청년은 히트곡 몇과 궁금증만 남긴 채, 황급히 한국을 떠나야만 했다.    30년이 흐른 뒤, 한국사회는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 '20세기를 살아온 21세기의 천재'로 양준일을 다시 소환해냈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자신이 겪었던 모국에서의 아픔을 담담하게 얘기하는 양준일을 보며, 겸손하고 성숙한 그 모습에 손석희 앵커마저 미안함과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의 대중들은 그 시절을 보상이라도 하듯 '양준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30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사회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가? 지금 이 사회에는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였던 ‘스무살의 양준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걸가? 만일 '22세기 양준일'이 등장한다면 세상은 선뜻 그를 열렬히 환영해줄가?     얼마전, 녀성의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설리는 악플러들의 온라인 '조리돌림'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나치게 앞선 그녀의 녀성적 권리는, 아직 많은 이들에게 포용받기 힘든 '노매너'였던 것이다. 한때 '리틀 싸이'로 인기를 얻었던 십대 소년 역시 다문화가정의 자녀라는 리유로 악플러들의 총알받이가 되고 말았다. 세상은 더 글로벌하고 더 자유롭게 변하고 있지만, 나와 '다르다는 것'은 여전히 '틀린 것'이 되고 너무나도 쉽게 적대적 공격의 대상이 되고 만다.    물론 이제는 30년전처럼 직접 무대를 향해 돌을 던지지는 않겠지만, SNS의 익명뒤에 숨은 무차별 공격의 칼날은 더욱 예리해졌다. 지난 2019년을 돌이켜봐도,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성차별, '노키즈존'에 관련된 아동차별, 지역갈등, 임대아파트, 다문화, 장애인 등등, 세상은 차별과 편견으로 넘치고 있다. 오히려 30년전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세분화되고 잔인해졌다. 설령 악의가 없다 하더라도 우리도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2019)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세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30년전에는 응답받지 못했던 그가 50대가 되여 다시 세상의 부름을 받고 빛을 보게 된 리유는 무엇일가?    2. '현재'를 찾은 사람   사라진 가수를 찾는 프로그램인 '슈가맨'에 양준일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움과 미안함이였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남편으로서 50대가 된 그는, 현재 미국의 한 식당에서 서빙을 하며 매달 월세와 생활비를 걱정하면서 살고 있다. '슈가맨'에서 그를 찾았을 때도, 프로그램을 위하여 한국에 오면 그 며칠 사이로 일자리를 잃게 될가봐 망설이기도 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울컥했던 것은, 그가 안타까워 보여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하는 그의 태도가 너무나도 담담했고 또 소박했기때문인 것 같다. 다음날 jtbc 뉴스 룸에서 손석희 앵커가 사람들이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슬퍼했다고 하자 그는 오히려 웃으면서, "저는 슬프지가 않았어요. 사실(현실)이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슬퍼한 것은 무엇일가? 어쩌면 그가 착함을 가장하지 않고 선량함을 위장하지 않는 것에 슬퍼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슬프게 본 '가난'을 그는 '사실'(현실)이라고 한다. 참 그랬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가난은 슬프고 궁상맞은 것이였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사실(현실)은 그 자체로 소박해서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진다. 무엇때문에?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가? 나는 왜 오래동안 '가난'을 부족한 것, 숨기고 싶은 것, 모자란 것들로 규정하고 무엇때문에 그렇게 오래동안 부끄러워하고 감추고 싶어했을가?    양준일의 30년동안의 삶은 분명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그가 스스로도 표현했듯이 마치 롤러코스터 같았을 것이다. 그는 오래동안 투명인간으로 살았다고 했다. 어쩌면 그는, 가수의 꿈을 접으면서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모국이 밉고 원망스러웠을 것이고,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가?" 하며 스스로를 미워하거나, "사람들은 왜 나를 알아주지 않을가"라며 사람들을 탓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쯤 그는 시대를 잘 못 만나 좌절한 '비운의 천재'로 우울하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천재'들을 여러 만난 적이 있다. 드문드문 만난 천재들의 등장은 모두의 부러움과 놀라움의 대상이 되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만난 그들은 대체로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천재'가 되여 있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함께 시대를 탓하거나 안타까워하며 동정을 보내거나 손가락질하거나 또는 당연하다는 듯, 이미 예견했었다는 듯 뻔한 반응들을 보였다.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지극히 보편적인 패턴이였다. 시대를 잘못 만났거나, 부모를 잘못 만났거나, 상사를 잘못 만났거나, 친구를 잘못 만났거나, 대체적으로 우리들의 '실패'는 늘 뭔가의 '탓'과 련결되였다. 오죽하면 얼굴도 보지 못한 조상 탓과도 련결시킬가. 특히나 천재로 불렸던 사람마저도 실패하는 '세상'이라면, '나'라는 개인의 실패 정도는 당연하다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스스로에 대해 위안거리로 삼기도 했다. 우리는 대체로 우리들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의 탓이나 외부적 상황 탓으로 돌려왔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 악화되지만, 한사코 스스로의 책임에서 도망치면서 살아왔다.   평범한 사람들도 그럴진대, 아주 잠시라도 인기의 중심에 섰던 스타라면 더더욱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어려운 삶을 살고 있더라도 "나도 한때는 잘나갔었는데"라는 과거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현재 위치를 인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평생 거지로 살면서도, 어린 시절에 점쟁이가 왕이 될 상이라고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심지어 자신이 왕이 된 줄 착각하다가 죽을 때도 '짐이 붕어한다'라며 죽었다던 이야기도 있지 않는가!    그런데 양준일은 그 패턴을 깨뜨린 채 귀환했다. 분명히 가난한 데, 비참하지는 않은 사람으로! 그 리유는 그가 뉴스 룸에서 했던 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실패를 바탕으로 미래를 가늠하는 그 '쓰레기'같은 생각들을 비우고 버려내고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살면서 나는 왜 존재 하냐는 퀘스천마크가 굉장히 큰데, 나 자신의 편견을 버리기 위해, 노력을 생활처럼 해왔습니다"   자신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 한마디를 그는 쉽게 했지만, 실천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나 생각에서는 좌절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면 될 것 같지만, 막상 힘든 현실이 닥치면 이내 용기를 잃고 부딪쳐 보기도 전에 "안 돼", "못 해!"라고 부정하기 쉽다. 그러한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이 어쩌면 자신에 대한 자신의 편견인지도 모른다. 그 한 겹을 벗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만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양준일은 어쩌면 자신의 허상을 비워냄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서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는 20대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욕심대로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을 걸 알아. 하지만 걱정 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수밖에 없어."   그는 결코 자신의 과거를 원망으로 채우지 않았다. 물론 그도 수없이 시대를 탓하고 자신을 알아주지 못한 모국을 탓하고 자신을 탓했을지도 모른다. 또는 수시로 거침없는 증오와 원망이 그를 덮쳤을지도 모른다. 어쩌겠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시 비우고 버리는 행동을 통해 그는 매일 자신의 '현재'와 만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는 '필연적'으로 다시 모국으로 돌아와, 그의 과거와 현재가 모두 자신에게 소중한 시간들이었음을 증명해냈다.    우리는 별 것 아닌 일에도 쉽게 "난 안돼!",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말을 가끔 한다. 과거의 실패의 경험으로 미래를 미리 예측하고 포기해 버린다. 그 실패의 순간마저도 그때 자신의 실력으로 최선을 다했고, 그것이 '완벽'했음을 믿지 않는다. 그가 한 것처럼 끝없이 '자기 성찰'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현재에서 늘 도망쳐 팔자 탓, 세상 탓만 하다가 영원히 '2019년의 양준일'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열광해야 할 것은, 그의 노래나 춤보다도 그가 스스로 비워내여 얻은 '깨우침'이며, 그가 그의 '현재'를 찾은 일일 것이다. 비록 그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양준일의 귀환'은 우리가 받은 가장 멋진 선물이 될 것이다! 흑룡강신문 
63    새해를 맞으며 나누는 인사말의 계시(박병대) 댓글:  조회:1810  추천:0  2020-01-14
해마다 낡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즈음이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따사로운 위챗인사말이 봄나비같이 춤추며 찾아와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더해준다. 세상에 나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고 많은데 그들만이 나한테 설인사를 보냈다는 것이 더없이 고맙다. 그러면 나도 급급히 회답인사를 보내고나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어른이나 문우들한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말을 올리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졌다.   옛날 농경사회에 살 때 우리는 설날을 맞으면 부모님이 해주는 새옷을 갈아입고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어르신들을 찾아가 세배를 올리고 떡조각이나 엿가락 하나씩 받아먹던 동년시절이 눈에 삼삼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있다.   가난했던 그 시절에 부모님의 고초를 모르는 나는 설을 맞을 때가 일년중 가장 행복했었다. 그리하여 늦가을이 가고 첫눈이 내릴 때부터 설날이 며칠 남았나 손꼽아 기다리군 했다.   사회가 발전하니 설인사를 하는 방도 많이 바뀌였다. 동네어른들께 세배를 올리는 옛법은 슬쩍 사라졌고 먼 곳에 계시는 친인들한테만 인사편지를 올리는 것만이 설전후의 일과로 되였다가 얼마 안지나 전화문안이나 년하장 보내기가 성행하더니 이메일시대를 거쳐 위챗세상에 들어서니 인사편지도 골동품이 되고 누군가 위챗에 올린 멋진 년하장을 복사해 란발하는 것이 시체멋으로 되여버렸다. 보내기 간편하고 위챗을 열어보고 한번쯤 즐길 수는 있지만 어쩐지 깊은 감동을 받기는 정성들여 쓴 편지만 훨씬 못한 듯 하다.   너도 쓰고 나도 쓰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설문안의 중심문구를 가만히 음미해보노라면 떠오르는 생각이 많아진다.   이 세상에 오는 복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으며 복을 많이 받으라는 것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많이 먹으라고 권하는 것과는 다르잖는가? 많이 받고 싶어도 욕심대로 되지 않는 것이 복이거늘 왜 자꾸 많이 받으라는 것일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마 새해에 복을 많이 받기를 바란다는 인사말을 간략한 것이란 뜻으로 리해하면 되는 것을 구태여 인사말을 미주알고주알 따지는 것도 례가 아닌 듯하였다. 그래서 입을 꼭 다물고 있노라니 새삼스레 깨우쳐지는 것이 있다.   《천자문(千字文)》에 '화인악적(祸因恶积)이요, 복연선경(福缘善庆)'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나름대로 풀이하면 "화는 악이 쌓여 생기고 복은 착한 일을 한 보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또 항간에 '덕은 쌓을수록 복이 더 생긴다"는 말도 있다. 그러니 새해에 복을 많이 받으시라는 말의 참뜻인즉 "새해에 덕을 쌓아 복을 많이 받으시라'는 뜻으로 리해가 된다. 생각할수록 참 현명한 말이다.   새해 첫날부터 사람들을 좋은 길로 안내하는 이 인사말은 우리 모두에게 깨우침을 주고 힘을 주니 들을수록 감미롭고 정다워진다. 그래서 어르신들과 친우들에게 다시 한번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말하고 싶어진다. 료녕신문
62    [두만강칼럼]정겨운 ‘지옥’(심명주) 댓글:  조회:2013  추천:0  2019-12-19
이국에서 살며 된장국 냄새만 맡으면 역겨움을 느낀다던 고향친구가 있다. 살던 곳과 물리적으로 뛰여넘을 수 없이 떨어져있는 사람에게 고향은 정신적 ‘울렁증’이다. 그러면 한곳에 죽치고 사는 사람에게 고향은 어떤 존재인가? ‘마지 못해’ 사는 오래된 ‘부부관계’이다. 낡투를 뒤집어쓰고 온갖 전통과 세습으로 뭉친 집합체, 지켜야 할 풍속들이 켜켜이 쌓인 곳, 결코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비박한 과거가 타투흔적처럼 남은 곳, ‘쉰내 나는 이곳을 떠나는 것이 소원’이라고 넌덜머리를 치면서 또 살아내는 곳이다. 려행에세이에서 김연수작가는 그 고향을 두고 ‘정겨운 지옥’이라고 칭했다. 그런 치렬하던 고향 감정의 경계를 허물어주는 곳이 있다. 바로 온라인이다. 시공간의 경계가 사라진 온라인의 가상세계. 이젠 아무하고나 24시간 소통이 가능하고 초당으로 생사를 확인하고 분당으로 소식을 공유한다. 경제 돌기와 정비례로 불어난 지구적인 인구 류동시대에 서로 상생하며 급시우같은 존재로 온라인은 우리 생활에 깊숙이 천착했다. 이왕의 어떤 수단으로든 대타가 어려운 역동으로 오프라인과 경계가 허물어져 갖가지 정보의 공유와 전달의 스피드, 생활의 편리 등 편익에 우리 삶은 졸부처럼 시간과 공간의 폭리를 얻었고 감정의 폭리도 얻었다. 파생으로 각종 명목의 다양하고 활발한 온라인 가상 모임장― 위챗그룹같은 것이 람발한다. 공감대가 불어났다. 사람이 외로울 사이가 없어졌다. 잇달아 가족애, 향수… 이런 단어들이 빛을 잃었다. 그런 온라인 때문에 도래한 ‘몸 따로 정신 따로’의 ‘량다리’시대, 요즘의 시대이다. 더불어 실체와 가상의 줄다리기에서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온라인 찬양 군단이 넘쳐난다. 온라인 ‘고향’설까지 제기된다. 그러면 과연 가상에 고향을 대타할 만한 감정의 안식처를 세울 수 있을가? 대답은 “노”이다. 코로 들이마시는 사람 냄새가 풍기는 곳, 몸의 귀소본능으로 로후에 ‘지옥’일지언정 찾아가 드러눕고 싶은 땅이 고향이다. 태줄이 묻히고 부모가 살았던 곳,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이컨텍츠, 스킨십이 곁들인 만남과 소통, 이 모든 걸 이루는 고향은 오로지 정신적인 것도 아니고 몸만 남은 곳도 아닌, 량자가 분리될 수 없는 혼합실체이다. 온라인 출시로 십년도 안되는 사이 느리던 소통 방식이 철저히 깨진 것만은 사실이다. 온라인의 혁혁한 공로이다. 뛰여넘을 수 없는 거리로 오는 괴리감도 단연 단축되였다. 그러면 온라인은 정신기탁의 믿음직한 공간일가? 그것도 의심스럽다. 우선 온라인의 영향력은 절대 과소평가하지 못한다. 실제로 온라인이 가진 힘은 막강하다. 그러나 온라인의 가상공간은 결코 청정지역은 아니다. 정신기탁을 하기에는 너무 혼잡스럽고 시비가 란무하며 더우기 온라인 힘을 역리용하는 ‘댓글부대’, ‘온라인 홍위병’이 기승 부리는 곳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온라인의 영향력에 대해 무시하고 소통에 소극적인 것이 문제인듯이 과대평가도 기피할 문제이다. 온라인이라는 가상세계의 힘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현실적인 행동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곳은 현실을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는 도피처일 뿐이고 유토피아의 란잡한 허상이다. 조직화된 가상 속의 활력을 이끌어내는 힘은 더욱 치렬하게 조직되여 움직여야 하는 현실에 있다. 때문에 실체가 우선이다. 모든 가상은 실체를 위한 존재이다. 실체를 떠난 가상은 아무리 화려한들 그것은 떠도는 유령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은 우선, 도덕과 법규의 미숙한 불모지인 온라인에 만능의 온라인 몰카같은 것을 출시시켜, 저질스럽고 치졸한 손가락 터치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인간탈’의 곪아가는 정신들을 물샐틈없이 엄벌하는 것이 더 급선무다. 아울러 거침없이 쳐들어오는 온라인에서의 바르고 건강한 구조체계, 그것을 고민하는 것이 거시적인 우리 현실의 고향― 지구를 더욱 정겨운 ‘지옥’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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