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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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2018중국료녕심양조선족민속문화절을 맞으며 댓글:  조회:1375  추천:0  2018-09-13
석천   최근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 표성룡 회장 등은 심양에서 9월 하순에 2018중국료녕심양조선족민속문화절 개최를 알리며 조선족사회 성원들의 폭넓은 참여와 지지를 부탁하였다.     기자회견에 초대된 중앙인민방송국 조선말방송 등 국내 조선족언론매체 기자들도 주최측의 민족 단합을 위한 큰 그림과 파워 넘치는 추진력에 감탄하고 고무되고 격앙된 모습이였다.    조선반도에서 중국대륙으로 이주해온 우리 민족이 동북에 집거해 살다 개혁개방의 물꼬가 트면서 연해 대도시로 인구대이동을 하여 뿔뿔이 흩어지는 현황에서, 동북3성의 중심지인 심양에서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고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우기는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으며 민족을 가슴에 안고 부흥을 꿈꾸는 비전의 장을 펼치기 위한 취지라는데서 한번 해볼만 하고 또 통 큰 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번 행사 기획을 보면 우리 민족의 민속놀이에 문화관의 문예공연과 노래자랑, 조선족 장기대회와 배구시합, 그리고 기업상품전시까지 곁들면서 내용이 알차고 형식이 댜양하다. 그 참가 범위와 규모가 크고, 기업인들에서 예술인, 그리고 일반인까지 참여하며, 십대에서 여든까지 남녀로소 동소동락하는 민족 대축제의 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런 경제와 민속문화가 아우러진 전국 최대규모의 행사를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을 비롯한 조선족 단체들이 불과 2개월 시간에 기획 추진하였다 하니 감탄과 놀라움이 앞선다. 주최측 료녕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와 심양시조선족련의회는 이미 두번 조선족민속절을 공동 개최하면서 서로 두터운 신용과 협력 관계를 맺었고 탄탄한 노하우를 쌓았는 바 이를 바탕으로 전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3방이 손잡고 이번 행사를 추진하게 된 것이라 한다.     성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장덕수 회장은 이번 행사의 최대 특점은 전통적이고 문화적이고 민족적인 것을 돌출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 기자는 "엄청난 경비가 들 것인데”라며 료녕을 치켜세웠다.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의 인솔하에 료녕성 조선족 단체들의 로고를 치하하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전국적인 행사가 료녕에서 시작하였지만 이 행사의 원만한 성공과 이런 행사의 지속적인 개최를 위해서 료녕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 여러 곳의 조선족사회 민간단체나 민족성원들이 하나된 자세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민족의 화합의 장을 통해 민족 경제와 문화의 단합 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주류사회에 단합된 우리 민족의 위상을 각인시키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료녕신문 2018.8.11
139    무술년 화두(3) 언제까지 ‘타향살이’일가? 댓글:  조회:2617  추천:0  2018-01-30
“아빠 엄마 빨리 돌아와요”, “아빠 엄마가 보고 싶어요”… 고사리같은 손으로 또박또박 적은  학생들의 글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에는 어딘가 말못할 서글픔이 도사린다. 조선족학교에 가면  편부모 학생이 많은데 리혼이 아니라 다수가 한국행이 주 원인이라고 한다. 새로운 ‘리산가족’ 으로 하여 우리 애들이 당하는 슬픔과 아픔의 현실 앞에서 한국 가야 돈을 벌 수 있다는 론리는  더는 통하지 않고 참담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올해는 우리 나라가 개혁개방을 한지 40년이 되는 해다. 중국의 ‘G2’라는 거족적인 발전과 눈 부신 성장은 우리에게도 많은 기회와 혜택이 주어지게 하고 있다. 한국에 가서 기술을 배워 귀국 하여 고향땅에서 경제실체를 일구었거나 도시에 아빠트를 사고 신시민이 되였거나 하는 등 사례가  적지 않다. 먼저 먹는 곶감이 달다고 언제까지 한 나무에만 매달려있겠는가?     2018년 새해가 밝아왔다. 개혁개방의 물꼬가 트면서 세세대대로 농경민족으로 살아오다가 재빨 리 대도시로, 국외로 이동하여 ‘품팔이’ 민족으로 살아왔다면 새시대에는 사고방식이 바뀌고 생 활패턴이 달라진 ‘글로벌’ 민족으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중화민족의 어엿한 성원이다. 백년전 중국땅에서 ‘타향살이’를 하였다면 백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에서의 ‘타향살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인제는 ‘타향살이’에 종지부를 찍어 야 하지 않을가!               석천/료녕신문 2018.1.29
138    무술년 화두 (2) 노래와 '술타령’도 센스 있게 댓글:  조회:2651  추천:0  2018-01-29
 “당신네 민족은 어쩜 기회만 있으면 노래와 춤판을 벌이기 좋아하오?” 모 시의 한 간부가 어느 한 민족단체의 민속절행사를 하겠다는 청시를 받고 한 말이란다. 치하인지 펌하인지 얼핏 들어서는 분간하기 힘들다.    노래와 춤을 즐기고 술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천부’인것 같다. 그래서인지 흥겨운 멜로디가 나오면 저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이고 술이 몇순 돌면 춤판이 벌어지기 일쑤다. 처음에는 신사처럼 마시던 술이 좀 거나해지면 어느새 욕지거리와 고성이 터져나오고 혀꼬부라지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알콜은 분위기를 돋구는 흥분제이면서도 판을 깨고 몸을 망가뜨리는 ‘독약’이 되기도 한다.    어쩌다 한족친구들과 술상에 마주 하면 당신네 조선족은 술을 많이 한다며 술잔을 자주 권해온다.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많이 마시는게 아니라 즐겨 마시는 것이라고 ‘변명’해보지만 그 ‘변명’이 잘 먹혀들지 않아 곤경을 당한때도 한두번이 아니다.    우리 말 속담에 자리를 보며 다리를 펴라는 말이 있다. 항상 장소와 분위기를 보며 노래와 춤판을 벌이고 적당하면 스톱할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나 넘치면 흐르기 마련인 것은 철리인즉 ‘적가이지(适可而止)’ 중국 성구의 뜻을 잘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요샌 무슨 동호회요, 친목회요 하는 단체가 많은데 한번 가보고 두번 다시 가기 싫은 단체도 적지 않다. 그 원인인즉 별다른 주제(내용)가 없고 만나서 떠들고 번마다 노래와 술판으로 바이바이하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라 년말년시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행사의 화려한 겉치레보다 알찬 내용이 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항상 이미지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주류사회에서 ‘알콜민족’이 아니라 흥과 멋을 알고 센스 있는 ‘아리랑’ 민족으로, 중화민족 대가정의 떳떳한 일원으로 ‘중국의 꿈’ 실현에 우리의 힘을 보태자.     석천    료녕신문 2018.1.25
137    무술년 화두(1) 설마 이럴수가... 댓글:  조회:2734  추천:0  2018-01-22
우리 말 속담에 설마가 사람 죽인다는 말이 있다.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 하는 믿음이나 방심으로 예상치 못한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일전 심양 모 구의 조선족학생중 조선족학교 학생이 570명인데 반해 한족학교에 다니는 조선족학생이 500명 된다는 수치를 접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런 현상은 현재 성내 여러 도시에 다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최근년간 조선족학생 수의 급감으로 조선족사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실제적으로 이런 수자를 마주하니 마음이 한결 더 무거워지고 착잡하기 그지없다. 그 주관적 원인이라면 최근 3년간 신입생들의 학부모가 외독자인 ‘80후’라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차세대가 민족언어에 대한 관심과 중시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원인도 있겠지만 당면 조선족학교에 존재하는 문제도 결코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 하나는 조선족인구의 대이동으로 동북3성 위주의 조선족집거지에서 남방 대도시와 국외로 신속하게 뻗어나가면서 조선족학교의 학생원이 급감되였다. 두번째는 교사대오가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못해 악성순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교사대오 질이 떨어지고 있다. 세번째는 대입 가산점이 25점에서 5점으로 감소되여 민족학교의 우세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는 민족학교의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며 학교마다 ‘몸부림’을 하고 있다. 민족학교의 간판을 보유하기 위한 막판 수로 십여년전부터 한족학생을 받아들여 이중교육을 시범적으로 실시하기도 했다. 심양 등 조선족이 상대로 집거한 지역보다 철령, 안산, 본계 등 산거지역에서 앞장서고 있고 또 일정한 경험을 축적하였다. 이러한 조선족학교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있는 심양시조선문서점 관계자는 조선족학교들에서 이중언어를 리용한 ‘국제학교’로 발전한다면 공립학교의 우세를 살려 한족학생을 모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족학교로 갔던 조선족학생도 끌어올 수 있지 않겠냐는 담대한 생각도 털어놓았다. 방심은 인젠 금물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지 않으려면 조선족학교는 물론 조선족사회의 성원 모두가 우환의식으로 대안 모색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석천 료녕시문 2018.1.19
136    1,000일의 기적 댓글:  조회:3669  추천:1  2015-01-14
              --- 료심땅에 피여난 “애심화”                   2015-01-12     2015년 1월 10일 우리 성 조선족사회성원의 아름다운 꿈과 희망, 미래발전의 비전을 갖고 료녕성한마음애심(同舟愛心助困)기금회가 드디여 고고성을 울렸다.      한마음애심회의 탄생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 박성관리사장을 비롯한 중요멤버들의 솔선모범역할과 끈질긴 노력, 사심없는 봉사정신, 그리고 각계 조선족사회 구성원들의 동참하에 함께 이뤄낸 기적이라 할수 있다.      성조선족애심기금회가 걸어온 3년미만인 시간인 1,000일은 그 성원들에게 간고하고 힘든 나날들이였지만 불우이웃과 소외된 계층에게는 희망과 사랑으로 넘치는 나날들이였고 조선족사회 구성원들에게는 사랑, 봉사, 나눔, 배려의 문화가 정착되는 순간들이였다. 천일에 성조선족애심회에 동참한 사람이 무려 2만 6천여명이라는 놀라운 수자에 정비례해 하루에 2만여원이 모금되면서 성조선족애심회는 천일에 천만원 초과 모금으로 국내 유일한 조선족자선법인단체로 이 세상에 탄생할수 있었다.      이는 전성 24만 조선족 더 나아가서는 전체 조선족사회의 발전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깊은 력사적의의와 현실적의의를 갖는다. 성민위 관계자는 "성조선족애심자선사업의 속도가 이렇게 빠르고 동참범위가 이렇게 넓고 인지정도가 이렇게 높고 대내외 영향력이 이렇게 크고 이룩한 성과가 이렇게 현저한것은 전혀 보기드문 일"이라고 치하를 아끼지 않았고 주심양한국총령사관 신봉섭총령사는 2015년 새해벽두에 나타난 "해외동포사회에 류례가 없는 일, 중국동포 백년이민사에 큰 획을 긋는 쾌거"라며 동포사회의 저력을 크게 과시하였다고 했다.      료심땅에 피여난 애심화는 어느 한사람의 힘에서가 아니라 조선족사회성원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속에서 2015년 겨울에 피여난 생명력이 강한 한떨기 꽃으로 조선족과 한족 등 여러 민족이 한데 어우려져 피여난 민족단결의 꽃이요, 또 국경을 초월하여 피여난 중한우의의 꽃이다.      한마음애심회는 오늘날 금전사상이 팽창되고 도덕이 상실되고 인정이 메말라져가는 현실사회에 사막의 오아시스마냥 불우하고 소외된 계층에게 한줄기 감로수가 되여 삶의 용기와 희망, 사랑을 주는 아름다운 실천으로 애심을 주축으로 단합된 조선족사회의 응집력과 호소력을 보여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조선족사회의 문명발전을 의미하며 나아가 한개 민족의 성숙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조선족애심회가 천일에 이뤄낸 기적을 기껍게 보면서 "사람마다 모두 사랑을 보낸다면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것이다"는 노래가사의 진미를 다시한번 느껴본다.       석천   
135    市長을 찾지 말고 市場을 찾아라 댓글:  조회:3694  추천:0  2014-09-02
얼마전 국무원은 “가까운 시기 동북진흥 지지의 약간한 중대정책조치에 관한 의견”("의견"이라 략칭)을 출범했다. 동북에 다시 기회가 온것이다. 2003년 국가에서 "동북지역 등 로후공업기지 진흥전략을 실시한데 관한 몇가지 의견"이 발표된지 10년만에 다시 찾아온 기회다. 사람의 일생에서도 이처럼 좋은 기회가 두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하는데 이렇게 기회가 두번 온것을 보니 동북사람들은 행복한것 같다. 새중국 창립후 공화국 중공업의 중심지였던 료녕을 중심으로 한 동북3성은 개혁개방이란 거세찬 력사의 조류에 떠밀려 경제지표가 낭떨어지에 떨어지다싶이 하여 10년전 동북진흥정책이 나왔다면 이번에는 GDP 증가속도가 전국 31개 성의 배렬순중 후 10위로 처지는 현실을 감안해 동북지역의 지속가능발전을 지지하기 위한것으로 생각된다. 한 나라의 한 정책을 물고 살면서 좋은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남들한테 처져야 하는 그 리유는 무엇일가? 당의 18차대표이후 중국의 개혁개방은 전면적 심화단계에 진입하였고 이 시대 사람들에게 부여된 숙명은 개혁, 개혁, 또 개혁이다. 남방지역을 드나들며 사업하는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적 있다. 동북지역은 최근년에 경제가 얼어붙어서인지 큰 식당들이 분분히 문을 닫고있지만 남방은 오히려 큰 식당은 사전 예약이 없이는 앉을 자리가 없다. 동북지역은 비즈니스 상담에도 기업인 한명에 두세명의 관원이 따라붙는 관위주의 경제활동이 많지만 남방은 기업인 위주의 경제활동이 활발하다. 그래서인지 중앙8항규정정신이 나와도 경제활동엔 별로 지장이 없고 경기가 여전히 활기를 띠고있다. 당18차 3중전원회의는 시장의 "결정적" 역할을 강조하고있지만 동북에서는 아직도 시장(市場)을 찾는것이 아니라 시장(市長)을 찾고있고 그 시장의 결정적역할에 의거하는 비중이 더 큰것이다. "의견"이 무엇보다 먼저 "행정을 간소화하고 권리를 이양하라(簡政放權)"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하고있는 까닭도 동북지역인이 대담하게 고정된 틀을 깨지 못하고있기때문이다. 10년전 락오하고 시대발전에 처진 동북을 보고 매체들은 "동북현상"이라고 일컬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오명"을 던져버리고 새 라운드의 동북진흥정책 실시에 걸맞게 21세기 번영하는 동북아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동북현상"을 만들어낼수 없을가?                                              석천 료녕신문 2014-9-1  
134    운남 고대력사문화의 상징 숭성사삼탑(5) 댓글:  조회:2762  추천:0  2014-08-30
2013-05-17 운남 곤명에 다녀오다 운남 대리에서 또 하나의 경관은 숭성사삼탑(崇聖寺三塔)이다. 신비의 땅 대리성을 찾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경유해야 할 곳이 바로 숭성사삼탑이다. 숭성사삼탑은 대리고성의 북쪽에서 1.5킬로메터 상거해있었는데 창산자락에 의지하고 이해와 잇닿아있는 삼탑은 하나의 큰 탑과 두개의 작은 탑으로 구성, 모두 불탑이다. 하늘을 향해 거연하게 솟아있는 삼탑의 웅위로운 모습은 마치 한폭의 아름다운 자연풍경화와 같다. 숭성사삼탑은 대리시 “문헌명방(文獻名邦)”의 상징이요, 운남 고대력사문화의 상징이며 또한 중국 남방의 가장 오래면서도 가장 웅위로운 건축의 하나이다. 1961년 3월 국무원이 공표한 첫패의 전국중점문화재보호단위로 되였고 5A급 명승지로 되여 국내외 관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고있다. 숭성사삼탑의 력사는 오랜 세월로 거슬로 올라간다. 소개에 따르면 숭성사삼탑은 남소왕 권풍우시기(기원 824ㅡ859년)에 만들어졌다. 큰탑을 “천심탑(千尋塔)”이라 불렀는데 방형 밀첨식의 벽돌탑으로 높이가 69.13메터, 도합 16층으로 구성되였다. 그뒤 남북에 두개의 탑을 각각 쌓았는데 높이가 모두 42.19메터, 도합 10층으로 한쌍의 팔각형의 벽돌탑을 이루고있다. 이 삼탑을 구축하게 된데는 당시 대리에 늪지가 많아 수환(水患)이 엄중해 이를 진재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 전하는데 의하면 이 세개 탑을 쌓을 때 흙 한층을 깔고 탑 한층을 쌓은 뒤 흙을 파내는 방식으로 한층한층 탑을 쌓아갔는데 당시 탑을 쌓기 위해 놓은 다리의 길이가 10여리에 달하였다. 고서에는 동원된 석장이 770만명, 400만근의 금을 소비했고 8년에 완성됐다고 기록돼있다. 숭성사삼탑이 지어져 천여년을 내려오면서 온갖 시련을 다 겪었는데 력사적으로 30여차의 지진세례를 겪었다. 명정덕 9년(기원 1514년) 대지진으로 하여 “천심탑”이 두자 가량 갈라져 마치 쪼개진 대나무 같았는데 신기하게 열흘이 지나 저절로 봉합되였다 한다. 1925년 대리대지진때 민가의 99%가 무너졌지만 “천심탑”은 꼭대기의 정보찰(定寶刹)만 흔들려 떨어졌을뿐이였다. 사람들은 돌기반이 없는 이 삼탑이 그렇게 강한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서있는것을 보고 신기함을 금치 못하고있다. 다만 “천심탑” 량켠에 삼족정립으로 일떠선 남북의 두 탑이 지진으로 하여 안으로 약간 기울어졌는데 이렇게 400년을 내려왔다하니 넘어질 우려는 없는것 같다. “거꾸로 선 삼탑공원(三塔倒影公園)이 있는데 호수가에 비친 삼탑의 모습 또한 가관이여서 관객들은 이 “사탑(斜塔)”의 풍경을 렌즈안에 담지 않으면 더 없는 유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숭성사 역시 매우 가관이다. 삼탑에서 전기밧데리차를 타고 15분 가량 올라가면 숭성사가 문득 눈앞에 나타나는데 숭성사의 장관 또한 이를데 없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탑이 완공되자 또 규모가 방대한 숭성사공사를 시작하였다. 여러 조대의 확충을 거치면서 송나라 “대리국”시기에 이르러서 숭성사는 극성시기에 도달한다. 당시 대리국에는 불사가 곳곳에 분포돼있었는데 작은 불사가 3천개, 큰 불사가 8백개에 달하였다. 남소국을 이은 대리국시기 불교는 더욱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대리국을 “불국(佛國)”, “묘향국(妙香國)”이라고 불렀으며 당연히 숭성사는 국가불교행사의 중심지로 되였다. 이 숭성사는 대리시에 가지 않은 사람도 김용의 무협소설 “천룡팔부”를 읽은 사람이라면 결코 생소하지 않다. 이 무협소설에 나오는 천룡사가 바로 숭성사이다. 사내 8메터 높이의 관음상이 있었다는걸 보면 숭성사의 장관함을 엿볼수 있다. 1년에 한번 3월이면 대리고성은 관음거리로 변해버렸는데 그 향내가 성내를 진동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현재 볼수 있는 숭성사는 재축한 숭성사이지 원래의 숭성사는 아니다. 숭성사의 사원은 청나라 함풍년간 소각되고말았다. 국가에서는 2005년 4월 대규모의 복원공사를 개시하여 숭성사삼탑에 약 100년간 “탑만 있고 사원이 없는” 력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삼탑 보호를 핵심으로 력사를 존중하고 또 력사를 초월하여 국내외 유명한 사당들의 분포특점을 감안해 당, 송, 원, 명, 청 등 력대 건축특색의 정수를 잘 살려낸것이 현재의 숭성사이다. 대리시의 웅위로운 삼탑과 장관을 자랑하는 숭성사를 바라보면서 고풍연한 아름다운 건축의 자연미와 함께 지혜를 깨닫게 하고 인생의 철리를 터득게 하는 불교문화의 진맛을 느껴본다.               오 지훈기자  
133    해발 3천여메터에서 펼치는 예술의 향연(4) 댓글:  조회:2813  추천:0  2014-08-30
 2013-04-19 운남 곤명에 다녀오다 여기는 해발 3,100메터 세계 유일 최고 높이의 로천예술극장. 북반구 최남단의 대설산, 국가중점풍경명승지 옥룡설산(玉龍雪山)을 무대배경(도로 하나를 사이두고있음)으로 펼쳐지는 대형 원생태가무공연이여서 장관인데다 선진적인 조수(造水)와 연무(烟r? 효과가 자연경치와 하나로 어울리면서 더욱 가관이다.         장백산천지의 모양과 흡사한 옥룡설산. 나시족 특색의 음악이 높게 두른 빨간 담장내(옥룡설산의 남쪽 돌벼랑을 쪼아서 만든 극장)에 울리면서 말을 탄 사내들이 납함하며 무대우로 등장한다. 험준한 차마고도를 한순간에 오르지 못해하는 안타까운 표정들… 이내 차마고도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사내들은 술을 마셔댄다. “일이 있거나 없거나 술, 돈이 없어도 술, 친구가 와도 술, 술좌석을 마련하고 질퍽하게 마시며 놀아대세”. 노래와 춤이 극치에 이르면서 술과 인연이 아주 두터운 나시족들의 생활세태가 물씬 풍겨온다. 이어 무대화면이 바뀌여 어깨에 광주리를 짊어진 녀성들이 무대의 지(之)자형 비탈길을 한발자욱 한발자욱 힘겹게 오른다. 남정들이 생사를 모르는 차마고도로 떠나면 집 안팎의 힘든 일, 무거운 일은 모두 집에 남은 아낙네들의 몫이다. 려강지역 소수민족들의 고달픈 생활 원모습이 그대로 재연되는가운데 한쌍의 청춘남녀가 사랑을 위해 순정(殉情)하는 장면이 펼쳐져 관중들의 눈시울이 촉촉히 젖어난다. “누나 제발 가지 말아요!” 순정을 위해 떠나는 청춘남녀를 향해 웨치며 좇아가는 총각애, 친구들도 “옥룡제3국”(비단, 미주, 산해진미, 금은보화… 이 천연락원에 가면 그들의 령혼이 영원한 행복을 누릴수 있다고 함)에 가서 전생에서 나누지 못한 애틋한 사랑과 행복을 누리라며 눈물을 휘뿌린다.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펼치는 “인상 려강” 대형쇼 옥룡설산 주변 500여명의 나시족, 이족, 바이족, 묘족, 장족, 한족 등 민족들이 한데 어울려서 한시간동안 펼치는 이 “인상려강(印象麗江)” 대형 원생태가무쇼는 “고도마방”, “설산을 마주하고 술을 마신다” 등 6개 부분으로 구성, 민족색채가 짙은 노래와 가무, 복식으로 이 지역 소수민족의 오랜 력사문화와 풍속세태를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재연하고있다. “인상 려강”은 유명한 감독 장예모의 또 하나의 력작이다. 2006년 이 쇼가 화려하게 막을 올리면서부터 현재까지 매일 국내외 관객들을 맞이하고있다고 한다. 설이 방금 지난 고원지대의 쌀쌀한 날씨에 로천극장에 한시간동안 움추려있을라니 온몸이 떨린다. 다행히 9시가 넘자 해살이 얼굴을 내밀었지만 이내 구름에 가리웠다 나타났다 반복하여 춥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난생처음 고산지대의 로천극장에서 소수민족의 풍속세태를 체험한다는 내심의 기쁨속에서 추위를 잊은듯 예술의 향연속에 빠져들어갔다. 이제서야 가이드가 스케줄을 다그치는 영문을 알수 있었다. 엊그제 려강고성에 도착하여 짐을 내려놓기 바쁘게 고성안을 돌다나니 심신이 지칠대로 지쳤는데 아침 6시 반에 조찬을 먹고 7시에 출발해야 한다는것이다. 약 한시간 달리니 옥룡설산으로 향하는 관광뻐스들이 줄지어 올라가고있음이 눈에 띄였다. 다행히 길을 재촉하였으니 말이지 늦게 출발하였다면 9시 정각에 펼쳐지는 이 “인상려강”과 인연이 닿지 않았을수도 있다. 옥룡나시족자치현 경내에 위치해있는 이 옥룡설산은 남북길이가 35킬로메터, 동서너비가 13킬로메터로 면적이 960평방킬로메터에 이르며 고산설경이 해발 4천메터에 펼쳐있는데 마치 설산의 허리가 운무에 둘러쌓여있는것이 멀리서 바라보면 한마리의 은백색의 거룡이 휘감은듯 하여 옥룡설산이라고 불렀다 한다. 옥룡설산은 나시족을 비롯한 이 지역 소수민족의 성산인데 옥룡설산의 화신이자 나시족의 보호신 “싼둬”를 위해 해마다 성대한 “싼둬절”을 거행한다. 옥룡설산은 또한 동식물왕국으로 갖가지 생태류형이 구전한데 이 횡단산맥은 고산동식물이 가장 집중된 지역으로 “천연고산동식물원”과 “현대빙천박물관”으로 불리운다. 옥룡설산 동쪽의 넓은 평지-깐하이즈(甘海子), 산비탈로 흐르는 옥룡설산의 눈석이물이 달빛이 푸른 하늘에 비껴 거꾸로 쏟아져내렸다는 란웨구, 그리고 “옥룡제3국”의 입구 윈싼핑(云杉坪) 등 눈앞에 펼쳐지는 황홀경을 보는 순간만은 그대로 려로의 피로는 물론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장사진속에서 긴 시간 대기하고 밧데리차(電甁車)를 련속 갈아타며 강행군하던 고달픔이 잊혀진다. 려강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또 해발 2,800메터 높이에 위치한 려강고성이다. 800여년 유구한 력사를 지니고있는 려강고성은 지난 2011년 7월 국가5A급관광풍경구로 되였다. 이에 앞서 1986년 국가급 력사문화명성으로 명명되였고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였다. 자고로 장터와 중진(重鎭)으로 유명한 려강고성은 면적이 3.8평방킬로메터이며 현유 주민이 2,600세대에 2만 5천명이 살고있다. 그중 나시족이 다수이며 30%의 주민이 동은기제작, 피모피혁, 방직, 량조업을 위주로 한 전통수공업과 상업활동에 종사하고있다. 동파문자로 쓴 간판 어둠이 깃들고 불빛이 환한 려강고성을 거니노라면 길 량켠으로 죽 늘어선 나시족건축의 상가들, 눈부실 지경으로 진렬된 특산물과 별미음식들, 끊임없이 쏟아지는 인파들… 려강고성의 야경은 그야말로 매혹적이다. 거기에 고풍연한 모습을 살린 려인숙, 그리고 여기저기서 울려나오는 나시족의 음악, 더욱 관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곳은 술집, 커피숍 등 캐쥬얼오락장소이다. 려강고성의 밤문화에 푹 젖어 려인숙에서 며칠 더 머물고싶다는것이 많은 관광객들의 소원이라고 한다. 려강시는 운남성 소수민족주거의 대표지역이다. 운남성에 살고있는 소수민족이 26개인데 그중 려강시에만 22개에 달한다하니 가히 소수민족의 고장이라 할수 있다. 그중에서도 자체의 독특한 생활풍속세태와 왕성한 생명력으로 찬란한 민족문화를 창조하고 세계에 자랑하고있는 나시족이 대단하다는 인상을 느꼈다. 전국에 도합 32만 5천명의 인구를 가진 나시족은 운남과 사천, 서장에 살고있는데 려강시에만 22만명이다. 나시족은 자기의 집거지인 려강고성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켰는가 하면 나시족동파고적(표음과 표의성분을 겸한 상형문자로 그 문자형태가 갑골문보다 더 원시적이여서 세계 유일의 살아있는 상형문자라고 불리우기도 함)도 세계기억유산명록에 등재하였으며 기타 소수민족과 공유하는 “삼강병류”(三江倂流, 란창강과 노강, 금사강을 가리킴)를 세계자연유산에 등재시켰다. 그래서인지 나시족은 “소민족 대문화”로 자칭한다고 나시족가이드가 자랑스레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나시족은 30여만, 자체 민족의 학교가 없지만 민족언어를 구사할줄 아는 인구가 10여만명이라고 한다(그러나 최근년 관광업 흥기로 점차 줄어들고있다). 장엄한 산과 그림같은 풍경, 유서깊은 문화, 살아숨쉬는 전통으로 하여 려강시는 실로 매력적이다. 언젠가 운남을 찾는 기회가 다시 생기면 소수민족의 고장€?려강에서 소수민족의 이색적인 생활에 한번 푹 젖어보고싶다.                        오지훈기자  
132    차마고도에서 마방의 흔적을 더듬어(3) 댓글:  조회:2038  추천:0  2014-08-30
 2013-03-22  운남 곤명을 다녀오다 새벽에 아침을 대충 요기하고 대리시에서 관광뻐스에 올라 려강(麗江)시로 출발하였다. 대리시의 명산 창산너머로 붉게 타오르는 동녘해를 뒤로 하고 한시간쯤 더 달려 굽인도로에 들어서자 지금 달리는 이 길이 중외에 유명한 차마고도(茶馬古道)라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그 순간 저도모르게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수년전 한국 KBS의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기때문이다. 중국 서남부에서 가파른 협곡에 난 길을 따라 차(茶)를 운반하는 마방(이 길을 따라 물건을 교역하던 상인조직을 호칭하는 말)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담은 기록편이다.         마방들이 쓰던 마구들 차마고도는 실크로드보다 2천년 앞서 만들어진 인류의 가장 오랜 교역로로 중국 서남부의 운남성, 사천성에서 서장을 넘어 인도까지 이어지는 륙상무역로이다. 운남성, 사천성의 차와 서장의 말을 교환하였다고 하여 차마고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나라 이전의 기원전시기에 중국 서남부 운남성과 사천성에서 생산되는 차와 서장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형성되였고 당송시대를 거쳐 번성하였으며 네팔, 인도, 유럽까지 련결됐다. 1천년전 서장 불교가 서장의 주도인 라싸를 통해 운남과 사천 지역으로 전래되기도 했다. 차마고도는 길이가 약 5천킬로메터에 이르며 평균 해발고도가 4천메터 이상 높고 험준한 길이지만 눈에 덮인 5천메터 이상의 설산들과 금사강, 란창강, 노강이 수천킬로메터의 아찔한 협곡을 이루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이 세 강이 이루는 삼강병류협곡은 200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되였다.         속하고성의 미식거리 도중 우리는 창녕현에 위치한 운남룡윤다업그룹유한회사에 들렸다. 회사의 홀 한가운데는 당년 마방들이 쓰던 말안장이며 여러가지 차제작도구들이 진렬되여있었다. 중국 유명 브랜드 “일품(壹品)”차제품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전문 보이차를 가공, 생산, 판매하는 회사였는데 이 보이차체험관은 곤명체험관과 함께 세계의 첫 전문 보이차체험관이란다. 보이차는 전국 최대 차생산지인 보이시[普耳市, 원래의 사모(思茅)시가 보이시로 개명, 차마고도의 주요 역참이였다]에서 생산되는데 보이차가 마방들에 의해 험난한 길을 따라 서장으로 운반되였다 한다. 체험관에서 팡진메이(磅金妹, 나시족처녀들의 호칭)가 따라주는 보이차를 시음하며 차잎이 차병으로 만들어졌다 다시 둥글거나 옛날 옆전 등 여러가지 형태의 차로 제작되고 저장되는 전반 과정을 료해하였다. 마방들의 흔적은 또 려강 속하고성(束河古城)에서 볼수 있었다. 속하고성은 려강평원에서 온전하게 보존된 역참으로서 1997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였다. 웅장한 돌대문을 지나 상가들이 촘촘히 늘어선 마을길을 걷노라니 돌다리와 석판로(石板路), 상마석, 마과두의 정원이 눈에 띄였고 룡천사에는 명대벽화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도로 한켠의 도랑으로 물이 흐르고있어 속하고성은 한결 아늑하고 청신한 느낌이다. 마을 한복판에 이르니 이곳이 마방들이 려장을 풀고 쉬면서 물건을 교역하는 사방가(四方街)라고 한다. 가로세로 30메터가 될가말가한 사방가는 사명팔방으로 다섯갈래의 길이 뻗어있었고 물도랑이 주변을 둘러싸고있었다. 그 뒤의 건축에는 “팔방청음(八方聽音)”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빨리 와봐요. 여기가 마방들의 장터래요.” 뒤를 돌아보니 배낭을 짊어지고 문득 나타난 한국류학생들의 즐거운 비명이다. 한국인들이나 서양인들은 말타고 꽃구경하듯 가이드를 졸졸 따라 빠듯한 스케줄에 쫓기는 중국인들과 달리 직접 배낭을 메고 관광지를 답사하고 려인숙에 투숙하면서 당년 마방들의 생활을 체험하고 그 숨결을 느끼는데 려행의 즐거움이 더 크다고 한다. 사방가는 려강에서 가장 오랜 장터였는데  밤에는 야시장이 펼쳐져 팔고 사고 먹고 즐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아 사방가의 야경은 “속하8경”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속하고성을 유유히 거니는 유람객들도 많았지만 말을 타고 도로 한가운데를 힘있게 달리는 어른, 애들이 있었는데 모두가 재미있는듯 즐거운 표정이다. 말을 타고 속하고성을 한바퀴 도는데 50원에서 100원, 부르는게 값이였다. 운남에서 생산되는 보이차를 서장으로 운반하기 위해, 또 세계 어느 민족보다 차를 즐겨마시는 서장인들이 있었기에 차마고도가 생겨났다. 과거에는 이 지역 사람들의 생계의 길, 죽음의 길이였지만 오늘은 황금알을 낳는 세계 유명 관광지로 되여 수많은 려행자들의 로망으로 떠오르고있다. 천길 낭떠러지와 고산협곡에 그제날의 가파롭고 비탈진 차마고도는 직접 보지 못하였지만 이번 려행에서 차마고도와 마방들의 흔적과 숨결을 느낄수 있어 몸은 비록 고달팠지만 려행은 즐거웠다.            오지훈기자  
131    신비의 땅 대리에서 삼도차를 마시며(2) 댓글:  조회:1893  추천:0  2014-08-30
2013-03-08  운남 곤명에 다녀오다 운남에 다녀왔다면 바이족의 고향 대리(大理)시를 빼놓을수 없다. 거리가 곤명에서 약 320여킬로메터로 심양에서 단동까지의 거리였지만 렬차로 7시간 이상 달린다고 한다. “렬차가 자동차보다 더 뜨다.” 이른바 항간에서 말하는 “운남 18괴(十八怪)”중 하나다. 전날 밤 9시에 렬차에 올라 이튿날 새벽 4시 반에 대리에 도착하자 대리역밖으로 숱한 인파가 쏟아져나온다. 전국 각지에서 대리를 찾는 유람객행렬이다. 7시 반이 넘었지만 날이 완전히 밝지 않아 주변은 어두움이 채 가시지 않았다. 대리고성을 찾은 유람객들은 쌀쌀한 찬바람속에서 고풍연한 성문을 배경으로 연신 샤타를 눌러댄다. 다행히 집에서 준비해간 깃털외투를 걸쳤으니말이지 방한복을 지니지 않았더라면 유람은커녕 추위에 떨고말았을것이다. 대리시는 “봄의 도시”로 불리우는 곤명보다 기온이 10도는 더 낮은것 같다. 더우기 해발 2천메터의 고산지대라니 더 말할것 없었다.        흥겨운 가무공연을 펼치고있는 바이족들 고색이 창연한 성문을 보니 여기가 한때 운남의 중심지라는 말에 실감이 간다. 대리시는 운귀고원에 위치한 도시로 4천여년전 바이족의 조상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곳이다. 기원 937년 당나라의 도움으로 남소국이 건립돼 500년간 존속, 그뒤 대리국이 건립돼 역시 300여년 존속되다 후에 원나라에 의해 멸망되였다 한다. 현재 다민족이 거주하고있는 대리시는 바이족이 65%이상으로 중국 유일 바이족자치주이며 인구는 61만명이다. 먼동이 트지 않았지만 간혹 어깨에 물건을 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보이였고 조금 지나니 상가들에서 하나하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대리고성의 중심도로 량옆 모두 3, 4층 상가건물들이였는데 하얀색의 건물들은 하얀것을 숭배하는 바이족의 풍정세태를 그대로 보여주고있었다. 관광코스를 따라 걸어가니 문득 “양인(洋人)의 거리”라고 쓴 간판이 눈에 띈다. 2차세계대전때 서양인들이 여기서 거주하면서 장사를 하여 이 거리가 섰다고 한다. 여기저기 세워진 유람코스안내판에는 중문뒤에 영문, 그리고 한글, 일어가 씌여있었는데 그만치 많은 한국유람객들이 다녀가고있음을 말해주었다.       대리고성의 성문 대리에서 가장 인상깊은것은 창산(蒼山)을 마주하고 이해(耳海)유람선우에서 바이족들의 “삼도차”(三道多)를 마시며 흥겨운 가무를 구경하는것이다. 대리시경내에 있는 창산과 이해는 국가급자연보호구다. 창산은 대리시의 록색생태병풍으로 19개 남북주향의 봉우리로 구성, 해발 3,728메터이다. 이해는 국내 유명한 7대 염수호의 하나로 “고원명주”로 불리우는데 남북길이가 40.5킬로메터, 동서너비는 3~9킬로메터 된다. 사람들이 대리에 오고싶어하는 리유중 하나가 대리고성을 제외한외 창산과 이해라 한다. 유람객이 많이 모여드는 관광성수기에 이해풍경구에서는 다섯척의 대형 유람선을 띄운다. 설기간이지만 이날 세척의 유람선을 띄웠는데 한배에 보통 1천여명이 탈수 있다. 한시간남짓 이해를 신나게 달리는 유람선에서 창산을 마주하고 사진을 찍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그보다 “금화”(바이족은 처녀를 금화라고 부름)가 부어주는 삼도차를 마시며 공연을 보는것도 즐겁다. 유람선 2층에 마련된 좌석에 앉으면 바이족청춘남녀들의 흥겨운 노래와 춤이 시작되고 금화가 돌아가며 차를 붓는다. 그들이 세번 부어준 차를 다 마시고나면 노래와 춤도 끝난다. 삼도차의 첫잔은 쓰고 두번째 차는 달며 세번째 차는 수정과 같은 맛이다. 이른바 “일고이첨삼회미”(一苦二甛三回味) “삼도차”는 바이족의 차문화로 원래는 남소국시기 여러 나라의 사신을 접대하는 례우였는데 현재는 손님을 접대할 때의 습관으로 변화되였다.  금화의 고향에 오니 영화 “다섯송이 금화”가 생각난다. 바이족이 다수인 대리에는 이삼일 건너 명절이라며 명절때면 젊은 청춘남녀들이 공원도로 량켠에 죽 늘어서서 서로 노래를 통해 사랑과 삶의 내용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기약한다. 이 공원이 바로 대리에서 유명한 호접천(蝴蝶泉)공원이다. 창산의 한 봉우리아래 위치한 호접천은 풍광이 수려하고 샘물이 맑아 천하에 보기드문 기관€?나비들이 향연을 펼친다. 3, 4월이 되면 수천마리의 이름모를 나비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회의를 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호접천이다. 특히 이곳에서 바이족의 삶을 보여준 영화 “다섯송이 금화”가 촬영되면서 호접천은 중외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대리시의 “하관풍, 상관화, 창산설, 이해월”을 일러 “대리4경”이라 했고 예로부터 많은 시인들이 이 “풍화설월”로 유명시구를 세상에 남겼다. 또한 바이족의 문화자원과 다민족문화가 융합발전한 대리지역은 중원문화와 이역문화, 그리고 토배기문화가 충돌되고 교류되면서 찬란한 남소대리문화와 특색있는 바이족문화를 만들어냈다. 누군가 대리시는 력사가 유구하고 소수민족의 찬란한 문화가 숨쉬는 곳이여서 “삼도차”처럼 시간을 갖고 음미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번에 말타고 꽃구경했으니 조금은 아쉽다.                      오지훈기자  
130    “천하 제1기관” 석림과 아스마의 전설 (1) 댓글:  조회:1941  추천:2  2014-08-30
 2013-02-22  운남 곤명에 다녀오다   운남성 곤명시 석림이족자치현에 위치한 석림풍경구는 하늘높이 치솟은 수천개의 기암괴석들이 거인마냥 우뚝 서서 이뤄진 돌의 수풀림이다. 곤명에서 80킬로메터 떨어진 석림풍경구는 차로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할수 있다.   석림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하는 인파들   석림풍경구 입구 정면에 “국내외 손님들이 세계자연유산 €?운남석림에 찾아오신것을 진심으로 반깁니다”라는 프랑카드가 걸려있어 설을 맞는 기간에도 유람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고있음을 실감할수 있었다. 풍경구내에서 화려한 복장차림의 이족들을 만나 소수민족의 풍정을 느낄수 있었다.   중국 최대 전통명절 춘절이였지만 풍경구는 말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뤄 석림풍광을 제대로 볼수 있을가 은근히 로파심이 앞서기도 했다.   석림풍경구는 갖가지 기암괴석과 특이한 봉우리, 거대한 돌기둥이 우뚝 솟은 카르스트지형으로 국가급풍경명승구다. 3.6억년전만해도 석림일대는 망망한 바다였다. 그러나 2.7억년전에 바다속의 석회암이 바다물에 부단히 충격되여 무수한 용구(溶構")와 용주(溶柱)를 남겨놓았는데 후에 이곳의 지각이 부단히 상승되고 오랜시간 침적이 생겨 점차 륙지로 변하였다. 바다물이 물러간다음 억만년의 뙈약볕과 비물에 부식되고 풍화되고 또 지진을 거치면서 동화세계와 같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오늘의 기경이 만들어졌다. 석림풍경구는 1982년 국무원에 의해 국가급풍경명승구, 2004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지질공원, 2007년 5월 국가 66개 5A급관광경구의 하나로 지정되였고 2007년 귀주성의 려파(藜波), 중경의 무륭(武隆)과 함께 중국 남방카르스트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였다. 또한 석림부근에는 자운동(紫云洞), 천생교(天生橋), 장호(長湖), 월호(月湖), 대첩수(大疊水)폭포 등 유명한 관광지가 많이 있다.    석림풍경구 정상에 올라 굽어본 석림의 기암괴석들   석림풍경구의 주요 유람지역인 리자영석림은 면적이 12평방킬로메터로 석림호, 대석림, 소석림과 리자원 몇개 부분으로 구성되였다. 길이 5,000여메터 되는 유람코스를 따라 리자영석림에 들어서니 누군가 읊었다는 해학시(打油詩)가 문뜩 떠오른다. “먼곳에서 봐도 큰돌, 가까이 봐도 큰돌. 돌이 과연 크구나 정말로 큰돌들이구나.” 보통 높이가  5∼10m, 큰것은 30∼40m여서 이런 해학시가 나올법도 했다. 그러나 이곳의 돌들은 일반 돌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절묘한 시폭인양 매일 국내외 유람객들의 발길을 끌고있다. 공작새가 깃을 다듬거나 봉황이 날개를 펴거나 서우가 달을 바라보는 모양의 돌들, 당승, 오공, 팔계, 사승을 닮은 돌들, 또 관음, 장군, 사병과 같은 돌, 그리고 아스마와 비슷한 돌들이 무수히 나타난다. 이밖에 죽순, 버섯, 옥관화 등 식물과 같은 돌들이 유람객들의 발목을 잡았다. 한곳의 “종석”이라는 돌은 손으로 두드리자 여러가지 울림소리가 나 더욱 유람객들의 찬탄을 자아냈다. 리자영석림은 말그대로 커다란 자연석경의 예술보물고여서 갖가지 동물과 식물들이 상상의 날개를 타고 우리 앞에 펼쳐진다.   빨간 글씨로 큼직하게 새겨진 “석림” 두 글자가 있는 석주를 배경으로 유람객들이 걸음을 멈추고 삼삼오오 모여들어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없다. “석림”글자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지 못하면 아마 석림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한것과 같다는 가이드의 해설로 하여 유람객들의 자리다툼은 더 세다. 이 “석림” 두 글자는 석림의 상징으로 석림담배뿐만 아니라 석림을 대표하는 여러 곳에서 모두 이 글자를 사용한다고 한다. 원래 이 글자는 1931년 주종악이라는 사람이 행서체로 써서 석주에 조각하였는데 문혁시기 홍위병들에 의해 파괴되였다. 개혁개방후 관광사업을 발전시킨다고 하여 이미 파괴된 글씨체를 회복할수 없어 그 우에 다른데서 찾아낸 예서체의 “석림”(현재의 “석림”)을 새겨넣었다고 한다. 그제서야 원래 자리에 글씨는 보이지 않고 왜 하얀 흔적만 남겨놓았는지 하는 궁금증을 해소할수 있었다. 중국의 특정세월이 남겨놓은 생생한 력사현장이다.    뜨거운 열정으로 펼치는 이족의 노래와 춤   아름다운 자연석경과 함께 아스마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진 석림은 이족, 바이족 등 여러 소수민족들의 집거지로 “가무의 고향”, “씨름의 고향”, “현대민간회화의 고향”으로 불리운다. 어렸을 때 영화 “아스마”를 본 기억이 있어서인지 아스마전설의 고향 석림에 몸을 담그니 더욱 친근감이 다가온다. 이 지역에서는 처녀들을 모두 아스마(이족어로 아름다운 처녀라는 뜻)라 부르고 총각들은 용감하고 근면한 뜻으로 아허이(阿黑)라고 부른다. “아스마”는 아스마의 전설을 토대로 하여 이족청춘남녀간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아스마에 얽힌 사연은 다음과 같다. 먼 옛날 어느 한 가난한 집에서 어여쁜 딸을 보았는데 이름을 아스마라고 했다.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는 아스마를 많은 총각들이 사모했는데 아스마는 고아로 태여난 아허이를 사랑하면서 그가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래서 그들은 약혼까지 했는데 부자집 아들이 아름다운 아스마를 마음에 들어해서 돈과 재물로 유혹했지만 아스마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부자는 아허이가 먼 곳으로 양몰이를 나간 사이에 아스마를 강제로 잡아다 자신의 아들과 혼인을 시키려고 했지만 아스마는 끝까지 응답하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아허이가 밤낮으로 달려가 아스마를 구해 둘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화가 난 부자가 뚝을 터뜨려 그들은 그만 물에 빠지게 된다. 후에 아스마는 강가의 돌로 굳어지고만다…   미궁과 같은 석경속을 요리저리 에돌면서 아스마를 방불케 하는 돌, 그리고 전설속의 아허이와 아스마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자리를 쳐다보노라니 저도 모르게 그 전설속에 빠져든 느낌이다. 석림의 한 곳에는 푸른 물이 찰랑이는 호수와 그 곁에 이족처녀와 같은 암석이 있었는데 매일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암석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있었다. 이 암석이 바로 운남석림의 대표인 아스마석봉이다.   빠듯한 반나절의 석림풍경구 스케줄로 이족 사니인들의 소박하면서도 호방한 씨름경기, 풍격이 독특한 혼례식은 보지 못했지만 풍부한 전설, 찬란한 민족의상,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는 노래와 춤을 엿볼수 있어 약간이나마 그 아쉬움을 달랠수 있었다.                오지훈기자
129    조선족서예가 조진빈씨 작품 유엔기구에 소장 댓글:  조회:1711  추천:0  2014-08-30
 2014-08-19    12점이 유엔 관련기구에 영구 소장       본사소식 지난달 유엔에서 있은 "유엔 2014년 국제생태예술전"(이하 유엔전으로 략칭)에서 조선족서예가 조진빈(趙振斌)씨의 12점 작품이 유엔 관련기구에 영구 소장돼 화제를 모으고있다.      금번 유엔전은 "2014년 유엔지소발전 고위급정치포럼, 지속도시및록색창신테마회의" 일환으로 캄보디아왕국정부, 유엔문명련맹생태위원회, 유엔국제생태안전합작기구, 세계정당기후및생태련맹, 유엔청년부권(賦權)및도시안전위원회 등 단체의 공동 추진하에 7월 2일부터 8일까지 미국 뉴욕유엔본부빌딩 전시홀에서 개최되였다.   국제생태안전합작기구 총간사, 세계정당기후및생태련맹창시주석, 유엔청년부권및도시안전위원회 집행주석 장명군(蔣明君)의 요청으로 조진빈씨는 이번에 도합 14점을 출품하였는데 그중 두점이 유엔 관련기구의 잡지에 채용되였고 국례목란꽃 8점과 "오도(悟道)" 등 12점이 유엔 산하 세계정당기후및생태련맹, 국제생태안전합작기구에 영구 소장되였다. 이번 행사는 지속발전을 추진하여 록색생태안전을 수호하자는것을 주제로 하여 생태와 예술의 융합을 통해 세계 각국이 지속발전과 생태안전에 관심을 돌리고 공중에게 자연환경을 보호하자는것을 호소함과 동시에 예술형태로 지속도시 및 록색창신을 전시하여 환경위기와 생태위기가 직면한 준엄한 정세를 관심하고 지속발전의 중요성을 널리 알려 전인류가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공동히 나서자는데 취지를 두고있다.   장명군주석은 일전 유엔북경주재 비서처를 통해 조진빈씨에게 소장증서를 전달하고 그를 "국제생태안전합작기구", "세계정당기후및생태련맹"의 례품(禮品)예술가로 지정함과 동시에 중국국제생태화원 부원장으로 임명하였다.   또 다른 소식에 의하면 지난달 7월 26일부터 14일간에 걸친 "중국꿈" 미국의 려행 중국팀이 부분 예술가들의 작품을 지니고 미국에서 중국꿈 정신을 고양하고 홍보하였다. 그중 조진빈씨가 쓴 "중국꿈"(해서체, 이번 유엔기구에 의해 소장됨)작품도 선정되여 세인에게 홍보되였다.   이번 수상소감에 대해 조진빈씨는 "중국꿈, 중국의 문화예술이 국문을 나와 세계에로 진출해 나라와 인민을 위해 영예를 빛내는데 보탬이 되였다는데 가슴이 뿌듯하고 중국꿈과 민족꿈을 이룩하는데 조그만한 힘이라도 이바지하고싶다"고 전했다.   현재 본계시에 살고있는 조진빈씨(1952년생, 흑룡강성에서 출생)는 중국예술가연구센터 명예부주석, 세계예술가협회 리사(국제), 중국서법가협회 회원, 중국미술가협회 회원, 중국서법연구원 리사, 국제미련(美聯)상무리사, 중국장군부장서법원 화사(畵師), 고급원사, 현역 중국인민해방군 모 보병사 장비부 공정사, 상교(上校)계급이다. 선후 미국, 일본, 싱가폴, 한국, 타이, 향항 등 나라와 지역 전시회 조직위원을 맡았고 연경서법원 부원장, 국제서법교류창의서법 상무리사, 동방문화예술련의회 서법부 학술위원, 문화부 문화시장발전센터 특별초빙 서법가, 중국국제예술가협회 종신고문, 고급서화사, 중국서화교역센터 관리위원회 상무위원 등 여러 직을 맡고 왕성한 창작과 사회활동을 하고있다.      오지훈기자         "중국꿈" 미국의 려행 중국팀이 조진빈씨의 "중국꿈"작품을 지니고 미국에서 홍보하는 장면. 이 작품도 유엔기구에 영구 소장되였다.           국제생태안전합작기구 총간사 장명군씨(왼쪽)와 함께. 작품 "강하호해"(江河湖海) 역시 이번에 유엔기구에 영구 소장되였으며 조진빈씨의 대표작중 하나다.  
128    조진빈씨 중앙텔레비죤 신화망 등 중앙매체의 뉴스인물로 댓글:  조회:1530  추천:0  2014-08-30
 2013-03-29    본사소식  삼생(중국)서법원 원장 조진빈씨(1952, 조선족)는 지난 1월 19일 북경오동귀예술관에서 있은 “어보가화(御寶嘉和) 2012€?013 세말년초대형예술경매대회”서 상상외 대성공을 거두어 중앙텔레비죤, 신화망 등 중앙급매체의 뉴스인물로 되였다.   조진빈씨는 처음으로 이런 국내 대형경매대회에 참가하여 서화작품 7점을 출품, 원래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모두 경매되여 매우 기쁘다고 감회를 털어놓았다. “40여년 심혈을 쏟았다. 최근년에 중국문화시장의 예술작품 경쟁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고 시장을 면밀히 고찰한끝에 이번에 출품을 결심하게 되였다. 이번 경매를 통해 나의 예술작품가치와 예술지위를 인정받은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경매를 조직한 북경어보가화국제경매유한회사는 중외 예술품의 감정, 평가, 경매, 기업재산권경매, 토지사용권 및 부동산을 경매하는 전문회사이다. 이번 경매에 참가한 작품은 도합 650여점, 그중 서비홍 등 대가의 작품(유품)도 있어 경매대회의 높은 차원과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경매률은 30~40%에 그쳤는데 작품들이 창의력이 떨어지고 규범화되지 못한것이 주되는 원인이고 대가들의 작품은 그 진가를 가려내기 어렵다는것이다.   2003년 1월 중국서화교역쎈터에서 발급해준 서화예술작품수장증서에 의하면 조진빈씨의 서화작품 판매윤격(潤格)제시가격은 4만원/평방자이다.   현재 그는 중국예술가연구쎈터 명예부주석, 중국국제예술가협회 종신고문, 국제서법교류창의서화 상무리사, 중국서화교역쎈터관리위원회 상무위원 등 여러 직을 맡고있다. 그의 작품은 국제 및 국내 대형전시에서 2백여차 금상을 수상한바 있으며 부분 작품은 국가기념관, 박물관에 의해 소장되였다. 그는 문화부와 국무원발전연구쎈터에서 수여한 “국수상금질상장”과 세계 16개 나라에서 련합으로 수여한 “세계서법가예술명인”영예칭호도 수여받았다. 그는 또 1996-2010년 중화인민공화국지식산권국으로부터 50여개의 명브랜드와 원생태표식, 제품방위표식 등의 디자인설계특허증서를 취득하였다.   중국문헌출판사에서 출판한 “서법중국”에 중국서법계 파워인물 18명을 소개, 그중 조진빈씨의 작품도 수록되였으며 중국국제우표수집망, 중국우표책발행조직위원회에서 공동발행한 당18차대회기념 소장우표책자에도 “중국예술대사 조진빈”기념우표책자가 들어있다.   조진빈씨는 고향 본계에 1만여평방메터의 개인작품전시장을 갖추고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이고있다. 사진은 조진빈씨의 작품을 소개한 부분 기념우표집과 책자들이다.                         오지훈기자  
127    기부 왜 우린 린색할가 댓글:  조회:3620  추천:7  2014-08-15
요즘도 중국은 "궈메이메이(郭美美)"로 시글벅쩍하다. 그가 누구의 작은 첩(包二奶)이라느니, 도박에 개입했다느니 또 유명 축구선수와 불륜관계를 가졌다느니... 아무튼 그가 몇년전 "중국적십자회상업총경리" 신분으로 사칭해서부터 그의 이름은 중국에 널리 알려져있다. 이런 그가 언론에 로출될 때마다 참지 못하고 일어나는 기관이 바로 중국적십자회다. 얼마전 적십자회의 한 관계자는 궈메이메이가 과시하는 부와 적십자회, 국인들이 기부한 기부금 그리고 항목자금과는 아무런 련관성이 없다고 해명하였다. 해명할수록 의심은 더 커지고 불만의 목소리는 더 높아지기마련이다. 실지로 밑이 구리지 않다면 구태여 나서서 해석할 필요가 있을가. 한번 네티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궈메이메이사건이 없다해도 적십자회의 썩은 장부내막을 누가 알아, 그 많은 자금이 어데로 흘러갔는지", "적십자가 아무리 청백을 호소해도 누가 믿을가, 신용이 실추되였는데", "궈메이메이가 없다치고 적십자회가 깨끗할수 있을가". 바로 자선을 권장하고 기부문화를 창도해야 할 기관이 거대 기부금의 자취에 대해 제대로 밝힐수 없기때문이다. 이것이 현재 기부문화가 중국인과 거리가 먼 주요원인의 하나다. 국외에서는 자원봉사나 애심을 통한 여러가지 도경을 통해 인도주의를 고양하고 자선과 기부를 고취한다. 기업이 애심을 위한 기부금을 냈을 때는 일정하게 세금을 감면해준다. 그렇지만 중국은 오히려 그것을 근거로 세무기관이 추징금까지 받아낸다. 그러다보니 기업이나 단위에서 불우이웃을 위한 돈을 내라하면 그 돈이 누구의 손에 들어갈지 모른다며 선뜻 내려 하지 않는다. 리재민을 위한 기부금이나 물자까지 중간에서 꿀꺽하는데다 적십자회의 궈메이메이사건까지 불거져나왔으니. 사람마다 항상 사랑과 감사한 마음을 갖고 그것을 타인에게 베풀려고 할 때만이, 또한 이러한 애심문화가 전 사회에 정착될 때만이 비로소 우리도 기부에 린색하지 않을것이다.   석천 인터넷료녕신문  2014-08-15  
126    교육부의 "붉은선"을 두고 댓글:  조회:3334  추천:2  2014-07-18
일전 교육부는 “교원이 규정을 위배하고 학생 및 학부모의 사례금 등을 받는 행위를 엄금할데 관한 규정”을 발표하여 6가지 "붉은선"(紅線)을 만들고 이를 어기고 선물이나 사례금을 받을시 그 정형에 따라 엄하게 처리할것을 경고하고나섰다. 실지로 교사절이나 새 학기에 선생에게 어떤 선물을 드려야 할지 고민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은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배금주의, 개인주의, 도덕상실 등 부정기풍이 전사회적으로 만연되면서 지식을 전수하고 사람을 가르치는 교육목적과는 달리 부분 학교에서 직무의 편리를 리용하여 학생 및 학부모에게 선물이나 사례금을 강요하고 또 선물이나 사례금의 값에 따라 학생을 차등화하는 현상도 존재하고있다. "붉은선"은 선물을 주고 받는것이 당금 사회의 인정세태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선물에서 뢰물로 변형되여 여러가지 부패, 비리와 얽혀지면서 문란해진 교육계 기풍을 바로잡기 위해 내든 "철퇴"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일각에서 교원들의 수업열과 학생들의 성적제고에 영향주지 않을가 우려할수 있지만 선물이나 사례금을 주지 않는다고 하여 교원을 존경하지 않고 교육을 중시하지 않는다는것은 아닌것 같다. 갈수록 거세지는 학교의 부정기풍을 막기 위해 교육기관에서 수차 관련 규정을 내렸으나 이번 "일안쌍사"(一案雙査, 당사자의 책임과 학교나 교육부문 주요책임자들을 문책한다는것)처럼 사상 가장 엄한 조치는 처음이라 생각된다.   우리 말에 훈장의 똥은 개도 안먹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교원의 로동은 그만큼 고된것이다. 교원의 로동을 존중하고 교원에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는 성의와 이질화되고있는 선물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본다.                                                                      석천 료녕신문 2014-7-18  
125    우리에게 소중한것 댓글:  조회:4040  추천:3  2014-06-17
얼마전 동창생의 로부가 돌아가셨다. 아흔도 훌쩍 넘었으니 가히 장수했다고 할수 있었고 자녀들도 로부에게 효도를 다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정작 추도회를 열어 마지막 효도까지 다 할 생각이였지만 부친의 생평을 기록해둔것이 별로 없었다. 급급히 촌간부한테 부탁하여 대충이라도 줄거리만 적어와서 다행히 큰 실수는 모면할수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필자도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생존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대수럽지 않게 생각하던것이 이 순간만은 커다란 구멍이 뚫린 느낌이였다. 우리 개개인의 가족사는 단순하게 개인의 가족사가 아니라 촌의 력사요 민족의 력사요 더우기 일제 식민지 치하 쪽박을 차고 중국으로 이주온 한많은 우리 민족사의 한부분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거창한 민족사도 결국 개개인의 력사가 합쳐져서 씌여지고 잘 보존되여온것이 아닐가! 도시진출과 출국바람, 그리고 도시화바람으로 우리 조상들이 피땀을 뿌려 황무지를 개간하고 살와왔던 삶의 터전이 점차 사라지고있다. 촌이 없어지기전에 촌사를 쓰려해도 쉽지 않다. 소중하게 보관해왔던 족보나 사진 등 자료들이 "문혁"바람에 하루아침에 재더미로 되였는가 하면 초창시 멤버들이 고인이 되여 모두 다시 돌이킬수 없는 세월로 되였기때문이다.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월경민족으로, 농경민족으로 허구한 세월을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의 1세, 2세의 력사는 더없이 소중한 자료의 한부분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누군가에 의해 잘 정리되여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개개인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자신의 가족사부터 잘 기록해두자. 료녕신문  6월 16일자
124    료녕 올해 빈곤부축중점지역 수험생 20점 내려 록취 댓글:  조회:1716  추천:0  2014-06-17
 2014-06-12 본사소식 일전 “료녕학생모집고시넷(遼寧招生考試之窓)"에 의하면 료녕성교육청에서는 “2014년 료녕성중점대학 농촌학생모집 특별계획”(아래 “계획”이라 략칭)을 제정하고 우리 성 빈곤부축 개발사업 중점현(시) 학생들에 대해 록취통제점수선보다 20점 내려 모집하기로 하였다. 우리 성에서 “중국농촌빈곤부축개발요강(2011-2020년) 실시 관련 의견”에 따라 확정한 빈곤부축개발 중점현(시)는 모두 15개, 조양, 건평, 카좌, 북표, 릉원, 의현, 부신, 장무, 강평, 수암, 환인, 청원, 신빈, 서풍 등이다. 그러나 상기 지역내 중학교 고중 3년을 다녀야 우대정책을 향유할수 있다고 규정하고있다. “계획”은 대학입시성적(대학입시 정책성 가산점 포함)에서 료녕성 일반류형 본과 제1차 록취통제점수선은 20점(20점 포함) 내려 모집하며 심양농업대학, 료녕공정기술대학 지망생은 대학입시성적(대학입시성적 정책성 가산점)이 료녕성본과2차 록취통제선에 도달하면 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기자가 신빈현조중과 환인현조중 교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알고있는가고 묻자 며칠전에 알았지만 금년에 처음으로 나온 정책이여서 우리 조선족학생들이 가산점과 이번에 20점을 낮춰을 모집하는 우대정책을 함께 향유할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기다려봐야 한다고 하였다.  한편 빈곤지역 농촌학생들을 록취통제점수선에서 20점 내려 모집하는 대학은 아래 25개 대학이다. 료녕대학, 중국의과대학, 심양공업대학, 료녕의학원, 심양항공항천대학, 대련의과대학, 심양리공대학, 료녕중의학대학, 료녕과기대학, 심양약과대학, 료녕공정기술대학, 료녕사범대학, 료녕석유화공대학, 심양사범대학, 심양화공대학, 발해대학, 대련교통대학, 대련외국어대학, 대련공업대학, 동북재정대학, 심양건축대학, 대련대학, 심양농업대학, 대련공정학원, 대련해양대학 등이다.                                                                                                    오지훈기자
123    롯데백화점 침체속 심양쇼핑시장에 연착륙할수 있을가? 댓글:  조회:2150  추천:0  2014-06-17
심양롯데백화점 오픈 2014-06-10   침체속 심양쇼핑시장에 연착륙할수 있을가? 중국내 최대 투자규모 5월 31일, 심양롯데백화점이 정식 오픈하였다. 소개에 의하면 롯데백화점은 해외점포중 7번째로, 중국에서 다섯번째로 문을 연 롯데백화점으로 중국내 최대규모다. 지하 1층∼지상 7층 규모에 연면적 12만 2천㎡, 매장면적 7만 3천㎡로, 입점 브랜드수는 420여개다. 이번 심양점 개점은 2017년까지 심양에 백화점, 쇼핑몰, 테마파크, 호텔 등이 복합된 "롯데타운"을 만드는 롯데그룹의 대규모 프로젝트 "롯데월드 심양"의 첫단계 오픈이다. 롯데그룹 계렬사 7곳이 참여하는 이 프로젝트의 총투자비는 3조원(한화)으로 중국 최대규모다. 올해 백화점과 영플라자, 롯데시네마가 1차로 문을 열고 래년에는 대형마트, 2016년 쇼핑몰과 테마파크가 조성된다. 2017년에는 호텔, 오피스, 아빠트까지 준공돼 연면적 116만㎡ 규모의 거대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 잠실에 조성중인 제2롯데월드의 1.4배 크기라고 한다. 심양지역 특성을 고려해 롯데백화점측은 백화점과 함께 영패션 전문관인 영플라자를 동시 오픈해 중국의 젊은 고객을 공략할 계획이다. 롯데백화점의 중국 점포중에서 영플라자가 백화점과 함께 문을 여는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화점에도 심양의 최대 백화점인 탁전(卓展)백화점보다 2배 많은 영패션브랜드가 들어가고 또 중국인에게 인기있는 더페이스샵과 스킨푸드 등 중가 화장품브랜드와 가전브랜드 쿠쿠도 입점하였다. 특히 개점일에는 젊은층의 발길을 끌기 위해 “별에서 온 그대”로 중국에서 인기가 높은 배우 김수현(롯데백화점 전속모델)의 사인회를 열어 롯데백화점의 오픈을 알리기도 했다. 심양쇼핑몰의 생력군 역할 할가 롯데백화점이 오픈한지 얼마안되여 료심지역 지방신문인 시대상보는 상당한 지폭에 심양롯데백화점의 운명을 걱정하는 글을 실었다. 신문은 “가격우세 없고 별로 브랜드 인기 없이 단지 우상을 통한 흡인력이 떠나간 롯데백화점 심양에서 얼마 지탱할수 있을가”라는 제목하에 현 심양쇼핑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심양롯데백화점의 현황을 세세히 보도하였다. 수년전 “쇼핑천국”을 꿈꿔온 심양은 이미 중국내 쇼핑몰이 가장 많이 집결된 도시로 부상하였다. 아직 오픈하지 않았거나 건설중인 쇼핑몰을 계산하면 심양의 쇼핑몰은 이미 심양지역과 주변 구매수준을 훨씬 초과하여 엄중한 과잉현상을 낳고있어 심한 우려를 자아내고있다. 일전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은 상주인구가 천만명도 되지 않은 심양시에 쇼핑몰면적이 이미 800만평방메터에 달해 현지주민의 소비수준을 초과했다면서 심양상업부동산이 과잉되였다고 보도한적 있다. 중량련행(仲量聯行)의 통계데이터에 의하면 심양쇼핑몰 공실률은 24.3%로 중국내 부성급도시 1위를 점하였다. 한정된 소비시장에 상점이 지나치게 많고 소비자들이 분산돼 상업기업의 영업액이 떨어지면서 대형 쇼핑몰에 입주했던 기업들이 륙속 문을 닫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본의 메이커 상업기업인 서무, 이스탄이 륙속 문을 닫았는가 하면 메이메이(대만)와 상타이(타이)도 철거하는 불운을 맞았다. 당면 저조하고 침체된 심양쇼핑시장에 진출한 롯데백화점이 연착륙할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있다. 심양롯데월드 프로젝트는 지난 2008년에 심양북역 부근에 들어서기로 계약을 체결하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수년간의 건설을 거쳐 먼저 백화점을 오픈시킨것이다. 그러나 롯데백화점의 상품이 심양 기타 상점 가격과 비교하면 별로 우세가 없고 특색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시대상보의 기자는 상점내 입점한 브랜드상품이 심양 여러 시장에도 있고 가격방면에서도 우세가 없음을 발견했다. PSALTER 의류브랜드인 경우 구매시 20% 할인혜택을 주었는데 뉴마트에서는 구매액이 99원일 때 50원을 반환해주어 우대폭이 더 컸다고 했다. 그리고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기타 의류브랜드나 일부 화장품도 다른 상점에 있었는데 다른 상점에서는 판촉행사가 많았지만 롯데백화점에서는 아직 별다른 판촉이 이뤄지지 않았다. 롯데백화점을 찾은 류녀사는 “한국상점이라 하여 한국상품이 싼가 해서 왔는데 중가나 태원가의 상점 가격보다 싸지 않다”고 하였고 오씨 녀사는 “옷이 절말 비싸다. 보통 호가가 2,3천원인데 그리 큰 브랜드도 아니고 정말 한국브랜드가 맞는가?”하고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또 다른 고객에 의하면 입점한 상품이 30%가 한국산이라 하는데 실지 다수가 중국산이였다. 이 고객은 인터넷에 들어가 홍보하고있는 녀성의류브랜드 15개를 검색했는데 두개만 한국산이고 기타는 북경과 상해산이라고 했다.   롯데백화점안에 국내 브랜드가 많고 국제 일류 브랜드가 적은것은 심양내 상점이 많아 고객이동이 적고 임대료가 비싼데 반해 매출액이 보잘것 없어 새로 오픈한 쇼핑몰에 쉽게 입점하지 않은게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 이번에 오픈한 심양롯데백화점은 중국내 다섯번째, 한국 소매시장의 반을 차지하고있는 한국 롯데그룹 이 거대 상업함대의 중국진출은 최근년 들어 썰물마냥 거세다. 롯데백화점만 이미 5개인데 롯데백화점 중국본부 안세영총재에 의하면 2015년까지 25개를 오픈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런 거센 투자에도 불구하고 현재 오픈한 백화점의 실적은 락관적이지 못하다. 제일먼저 중국에 진출한 북경롯데은태백화점은 2008년에 문을 열어 당해 거액의 결손을 냈으며 결국 중국합자측과 헤여지고말았는데 순 한국모식으로 경영하였기에 중국소비자들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것이 그 원인이였다고 한다. 중국 시대마트 주식 인수로 중국내 신속하게 확장하고있는 롯데마트의 경우도 그 실적이 일반적이다. 2012년 안휘 회북에 2.8억원을 투자한 롯데마트는 오픈한지 2년 시간도 안돼 2천만원의 적자를 내고 휴업상태다. 이밖에 청도에 입주한 롯데마트도 적지 않은 적자 상태로 운영중이라고 한다. 롯데그룹의 중국내 경기부진에 대해 관련 매체에서는 중국 경제 성장속도가 느려진것과도 무관하지 않지만 중국내 적합한 경영방식을 찾지 못하고있는것도 중요원인의 하나라고 분석하고있다. 한마디로 수토가 맞지 않은것이다. 롯데백화점은 심양쇼핑시장에 생력군으로 나타났지만 당면 침체속 심양쇼핑시장을 뚫고나갈수 있을런지 또 시종 태원가와 중가를 중심으로 이뤄진 심양쇼핑시장분포도에 하나의 굴직한 선을 그을수 있을런지 귀추가 주목된다.              본사기자
122    이런 참사가 더는 발생되지 말기를 댓글:  조회:5366  추천:6  2014-04-27
: 2014-04-24 한국 "세월호" 침몰은 세인들에게 너무나 큰 아픔과 충격을 주었다. "세월호" 침몰로 하여 수백명의 학생들과 사람들이 조난당하였는데 이 속에는 한국에 가서 악착스레 벌어 새살림을 꾸리려던 조선족 예비부부가 끼여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조난자 구조관련 뉴스가 실시간으로 전해지고있는 가운데 일전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시에 살고있다는 40대의 조선족남성이 주심양한국총령사관을 찾아 "세월호" 참사 유가족 위로에 써달라며 성금 3천원을 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포사회에서 진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키고있다. 이 박씨라는 남성은 몇년전 동생이 한국에서 일하다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안산에서 치료할 때 고국의 고마운 분들의 정성어린 관심과 도움을 받아 호전되였다면서 이번 참사소식을 접하고 룡정에서 심양까지 꼬박 15시간의 기차를 타고 와 성금을 전달하고 유가족들에게 희망을 메시지를 전한것이다. 한국의 주요 매체들은 이 소식과 함께 중국조선족사회의 훈훈한 동포의 정을 한국사회에 널리 전했다. 대단하지도 않고 요란하지도 않은 박씨의 소박한 언행에서 한방울의 은혜를 샘으로 갚는다는 말의 진미를 음미해본다. 참사 발생후 실시간으로 이 뉴스를 접하고있는 우리들의 마음도 안타깝고 비통하기는 마찬가지다. 발생하지 말아야 할 참사로 인해 무고한 생명의 죽음, 더우기 이 세상에 무한한 동경심과 희망으로 부풀어올랐던 십대 꽃나이들의 죽음은 비단 이번 참사와 련결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살고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분노하게 한다. 좀더 일찍 비상조치를 댔더라면, 좀더 일찍 효과있는 구조를 했더라면 하는 수많은 아쉬움을 뒤로 한채 무정하게 침몰된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더는 발생되지 말기를 바란다. 또한 조난자들에 대한 심심한 조의와 함께 이번 참사의 유가족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싶다.                                                       석천
121    책속에 흠뻑 빠져보자 댓글:  조회:3568  추천:1  2014-04-25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世界讀書日)이다. 이날을 며칠 앞두고 세계 유명한 작가, 노밸수상작 "백년동안의 고독"(百年孤獨)의 작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작고하면서 금년 "세계 책의 날"의 의미가 더욱 부각되고있다. "세계 책의 날"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로 독서 출판을 장려하고 저작권제도를 통해 지적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해 1995년 유네스코에서 정한 날로 매년 4월 23일이다.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에스빠냐 까딸루니아 지방축제일인 "세인트 조지의 날"에서 유래됐고 또 세계 유명 작가 쉐익스피어(영국), 세르반떼스(에스빠냐)가 사망한 날이다. 이때부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날을 기념하기 시작하였고 중국은 2004년 중국도서관학회에서 전민독서를 주창하면서 "세계 책의 날"이 중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여 현재는 매년 기념하고있다. 금년 "세계 책의 날" 주제는 "지구와 나"로 독서가 이미 지구촌사람들의 일상에서 떨어질수 없는 한부분으로 되였음을 강조한다. 매년 4월 독서는 사회생활의 핫명사(熱詞)로 되였고 금년은 더욱 뜨거운 분위기다. 북경에서는 3천명의 애독자가 한자리에 모여 "론어", "사설"(師說) 등 경전을 집체로 열독하는 가관한 장면을 펼쳤다고 한다. 심양에서도 매년 4월을 "전민독서의 달"로 정하고 책기증, 할인판매, 랑송랑독회, 명사강좌 등 여러가지 의의있는 활동을 벌이고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독서열은 아직 그리 높지 못하다. 일전 중국보도출판연구원에서 조직한 제11차 전국 국민열독조사에 의하면 국민 인구당 종이도서 열독량은 5권으로 전해보다 0.4권 늘어났고 성인 디지털 열독방식 접촉률은 처음으로 절반이 넘었지만 50% 이상의 성인 국민들의 열독량은 아직도 매우 낮다. 우리 민족의 독서량도 저조한것으로 나타났다. 몇년전 우리 성 조선족인구로 풀어본 조선문도서열독현황을 보면 8명당 한권으로 집계되여 독서에 대한 심한 우려를 자아내고있다. 책은 지식의 무진장한 보물창고로 사람들의 성장에 주는 영향은 매우 크다. 한권의 좋은 책은 한사람의 인생을 개변시킬수 있다. 한민족의 정신경계는 어떻게 보면 전민족의 독서수준에 의해 좌우지된다고 할수 있다. "세계 여러 곳에 사는 사람들, 늙었거나 젊었거나 또는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또는 병있거나 건강하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독서의 진미를 찾을수 있고 모두 인류문명을 위해 커다란 기여를 한 문학, 문화, 과학, 사상 대사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감사를 드릴수 있으며 모두 지적재산권을 보호활수 있다. 이것이 유네스코가 "세계 책의 날"을 정한 참뜻이다. 세계 언어거장 쉐익스피어는 "생활에 책이 없으면 빛이 없는것과 같고 지혜속에 책이 없으면 새에게 날개가 없는것과 같다."고 말한적 있다. 중국의 옛 성현들도 "만권의 책을 읽으면 만리길을 갈수 있다"고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독서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갈수록 어필되면서 독서를 통해 종합자질을 제고하고 평생학습을 실현하며 조화사회를 건설하는 등 방면에서의 의의를 알게 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있는 가운데 "열독"을 립법화하여 국가의 명절로 정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있다. 독서의 좋은 점은 매우 많다. 어휘가 풍부해지고 문장력이 좋아지고 좋은 사상들을 배울수 있고 간접 경험을 통해 인생을 배울수 있고 교양이 생기고 많은 지식을 얻을수 있고 자신의 정신세계를 넓힐수 있다. 최근에는 치매예방도 가능하다고 하니 가히 "만병통치약"이라 할수 있다. "성공하는 사람은 하루 밥을 굶어도 책읽기는 끊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필요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서는 책이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아이들에게서 옳바른 가치관과 태도형성은 물론 인생의 고민들을 해결하는데도 커다란 도움이 된다. 심양조선문서점의 한 관계자는 필자에게 "지금 애들이 불쌍하다. 마땅한 조선문도서가 없어서 중문책으로 읽거나 아예 책을 읽지 않게 되여 독서률이 날로 떨어지고있다. 조선문출판사들에서도 좋은 책을 출판하려고 안깐힘을 쓰고있지만 아이들의 독서요구를 따르지 못하고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독서는 가장 근본적인 교육수단이다. 독서를 단지 개인일이 아니라 전사회적인것으로 전 민족적인것으로 간주할 때만이 진정한 독서열이 형성될것이며 따라서 민족의 자질도 한층 향상될것이다. 매일 시간이 없다고 푸념하지 말고 "세계 책의 날"을 계기로 하여 책속에 흠뻑 빠져보자. 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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