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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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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신시대 조선족향촌문화건설의 키워드 댓글:  조회:1247  추천:0  2021-02-18
신시대 조선족향촌문화건설의 키워드 허명철(연변대학 미래연구소 소장) 2021년 중앙1호문건에서는 사회주의정신문명건설을 강화하고 "문명한 향풍, 량호한 가풍, 순박한 민풍(文明乡风,良好家风,淳朴民风)"의 형성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시대 조선족향촌문화를 건설함에 있어서 무엇을 핵심키워드로 선정할 것인가. 이는 우리가 국가차원의 향촌문화진흥전략에 보조를 맞춰가면서 조선족향촌문화의 비약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자못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신시대 조선족향촌문화건설에 있어서 우선시되여야 할 키워드는 이 땅에 정착하면서 창조되고 전승되여온 자체민족의 전통문화를 꼽을 수 있다. 마을공동체에 있어서 전통문화는 촌민들의 일상생활과 생산활동을 규범하고 공동체성원을 결속시키며 공동체내부사회 질서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대체불가의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새농촌건설, 아름다운 향촌건설, 향촌진흥전략 등 날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정책적 환경 속에서 현대향촌문화건설에 박차를 가함에 있어서 1차적으로 집단기억을 구축하고 정체성을 각인시키며 문화자신감을 심어주는 민족전통문화를 키워드로 설정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진다. 또한 이러한 연고로 현재 조선족사회에서도 잊혀져있고 단절되여있던 민족전통문화를 발굴 정리하고 문화전승기지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특색마을건설, 그리고 다양한 급별의 무형문화재신청이 하나의 붐을 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민족전통문화를 키워드로 하는 조선족향촌문화건설은 민족공동체를 유지해나가고 민족정체성을 지켜간다는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적 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향촌문화산업개발 차원에서 놓고 보아도 나름대로 매우 유익한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도시와 농촌의 련결망 속에서 인구이동과 문화적응 등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단절이라는 곬을 메워가면서 문화적으로 페쇄가 아닌 열림을 지향해가고 있는 조선족향촌의 또 다른 모습에 비추어볼 때 현대성이라는 키워드를 설정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 같다. 사실상 오늘날 향촌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촌민들의 일상생활은 도시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현대적이다. 부뚜막에 내려가 땔나무를 지펴서 밥을 짓고 구들을 덥히던 과거와는 달리 집집이 전기장판이나 난방보이라를 사용하고 있고 도시인들처럼 주방에 전기밥솥이나 가스레인지가 기본으로 갖춰져있다. 뿐만 아니라 농업현대화의 혜택으로 힘든 육체로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지어 1년에 평균 10개월은 한가한 여가생활을 보내기도 한다. 반면 일상적인 물질생활에서 현대성을 과시하고 있는 촌민들에게 있어서 가장 심하게 느껴지는 갈증과 소망은 도시인들처럼 현대문화시설을 활용하는 문화생활이 아닌가 싶다. 촌민들의 현대적인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실효적인 경로가 바로 현대성 요소들이 반영되는 신시대 향촌문화건설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향촌문화구축에 있어서 현대성을 키워드로 선정해야만 하는 당위성은 오늘날 조선족농촌마을의 구조변동이 잘 대변해주고 있다. 초기 조선족마을공동체는 대체적으로 혈연(血缘), 인연(姻缘),지연(地缘)으로 맺어진 친인척이나 이웃들로 구성되었고 절대다수 로동인구가 농사일에 종사해오면서 상대적인 안정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조선족마을의 사회구조는 농사일에 종사하는 촌민들, 경작지를 양도하고 양로하는 촌민들, 간부로 임명되여 주재하고 있는 도시인, 그리고 마을의 경작지를 도급 맡고 농사짓는 외래인구, 전자상거래 등 비농업에 종사하는 농민 아닌 농민 등 다양한 신분소유자들에 의해 구축되여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시장경쟁에 물들고 시장의식을 키워온 현대판 조선족농민들은 도시인 못지않게 일상생활에서 현대성을 보여주고 있다. 농촌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순박하고 진정성이 돋보이는 인정, 협동적이고 상부상조하는 공동체문화라고 한다면 시장경제는 공과 사가 분명하고 인정사정 없는 랭혹한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을 련상시킨다. 농업을 하나의 경영항목으로 간주하고 토지와 농산물을 자본 또는 상품으로 여기는 농민이라면 자연히 시장경제의 룰(법칙)을 지켜야 할 것이고 이러한 룰이 점차적으로 몸에 배이게 되면서 일상에서 기존과는 다른 생활방식이나 행위방식을 보여주게 된다. 그러므로 현시대 조선족향촌문화건설에 있어서 우리는 변모해가고 있는 향촌사회구조화에 초점을 맞추어 촌민들의 일상생활에서 이미 익숙해지고 습관화되여있는 현대성 요소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선족향촌문화건설에 있어서 홍색문화를 또 하나의 키워드로 설정해야 하는 중요성이 제기된다. 우리는 하경지선생이 남긴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기념비"라는 문구를 자주 사용하며 또 이 문구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린 선조들로 우리는 민족적 긍지와 자호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한편 달리 생각해보면 마을마다 세워져있는 기념비는 우리들이 지금껏 영위해왔던 향촌문화 내면에 민속을 징표로 하는 민족문화유전자만이 아닌 홍색문화유전자도 있음을 시사해준다. 즉 이주시기와 혁명전쟁 년대를 경유해오면서 우리민족이 구축 및 전승해왔던 향촌공동체문화는 민족문화와 홍색문화라는 두개의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아울러 이 두개의 유전자가 조선족문화의 중추를 이루고 있기에 우리는 오늘날까지 민족적인 ‘소전통’과 국가적인 ‘대전통’을 아우르면서 우리만의 문화를 창출해낼 수 있지 않았을가 싶다. 따라서 우리는 신시대 조선족향촌문화를 건설함에 있어서 그동안 망각되여왔던 홍색문화유전자를 되살리고 이를 하나의 키워드로 설정하여 조선족향촌문화뿐만 아니라 나아가 전반 조선족문화를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놓고 본다면 새농촌건설과 향촌문화진흥에 동참하고 신시대 조선족향촌문화를 건설해가려면 민족, 현대, 홍색 이 세개의 키워드를 핵심으로 기본축을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조선족문화를 재조명함에 있어서도 조선족공동체라는 경계를 넘어서 사회주의문화건설과 중화민족문화부흥, 나아가 인류문명공동체라는 넓은 플랫폼에서 조선족문화의 존재적 가치와 전승의 의의를 해석해야 한다. 이렇게 되여야 만이 현재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여있는 조선족문화도 그 빛을 발할 수 있고 인류문화재라는 높은 차원에서 전승될 수 있으며 진정으로 중화민족공동체의식구축과 인류문명에 기여할 수 도 있다고 보아진다. 인민넷 조문판
연변주 부련회 제1임 주임 김찬해의 생애사를 통해 본 조선족 녀성해방 려정 방미화 김찬해(1905-1972)는 중국 조선족혁명가이며 연변주 부련회 제1임 주임이며 연변 녀성해방운동의 선구자이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족녀성해방의 선구자 김찬해의 생애와 항일활동과정, 연변으로의 이주와 녀성해방사업과정을 통해 녀성해방의 양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김찬해는 1905년 4월 21일 경상남도 김해음 지내동 김해 김씨 부자집 장녀로 태여났으며 본명은 김필수이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공부 성적이 마을에서 남자애들 이상으로 우수했던 김찬해는 단지 녀자라는 리유로 서당에서 공부를 할 수 없었으며 어머니를 도와 가사로동에 종사해야 했다. 그는 봉건사상의 속박하에 가사로동과 매서운 시집살이에 얽매여야 하는 녀성들의 현실이 너무나도 불평등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인식은 그를 끝내는 서울로 가출하도록 추동했다. 1922년 가을, 서울의 사촌오빠 집으로 가출한 뒤, 김찬해는 오빠의 지지하에 서울 동덕녀자대학교에 입학했다. 어릴 적부터 공부에 대한 욕망이 강한 찬해는 동덕녀자대학교를 졸업한 후 진학을 하려고 했으나, 혼자의 힘으로 진학이 어렵게 되자 1926년 서울동덕녀자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였다. 당시 학교에 재직 중인 권태희라는 선생님한테서 조선독립사상, 녀성해방과 사회주의사상을 전수받았고 녀성동지회, 녀자청년동맹 등 단체에 가입했다. 그 후에 또 '조선공산주의청년회'라는 비밀조직에 가입하여 공산주의사상을 더한층 접하게 되며 스스로의 재능을 발휘하여 비밀임무를 잘 완수해냈다. 이에 서울지역 책임자 고광수는 김찬해를 의식적으로 사회주의혁명의 일원으로 양성하기에 노력했으며, 따라서 김찬해는 쏘련의 사회주의혁명에 동조하게 됨과 동시에 조선독립혁명의 녀성지하공작자로 성장했다. 1928년 10월, 김찬해는 조선공산주의청년회의 추천으로 모스크바 동방로동자공산주의대학(이하 동방대학)에 가서 공부할 수 있게 되였다. 동방대학은 김찬해가 반일투사로 되는 데 있어 또 하나의 전환점이였는데 바로 이 곳에서 그는 혁명가의 길에 들어섰다. 동방대학에 입학한 김찬해는 맑스-레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을 더욱 확고히 했으며 특히 10월혁명을 통해 인민들이 봉건사상의 압박에서 해방되고 녀성들도 남성들과 똑같이 사회주의일원으로 되였을 뿐만 아니라 남성들과 똑같은 평등한 권리를 부여받은 혁명결과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바로 이 시기에 그는 인생의 혁명동반자 림민호를 만나게 된다. 동방대학에 입한한 지 2년이 지난 1930년 김찬해와 림민호는 백년가약을 맺고 이듬해에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1932년 5월, 4년간의 동방대학 공부를 마치고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어느 휴양소에서 아들을 키우면서 국제로동운동 연구를 하고 지하사업에 관한 지식과 재능을 익히던 도중, 같은 해 9월 국제직업동맹 중앙본부로부터 조선의 함흠과 흥남 지구에 가서 홍색로동조합을 조직하라는 임무를 맡게 되였다. 이에 림민호가 먼저 모스크바를 떠나 김창섭이라는 가명으로 조선 함흥에 가서 활동하게 되였고, 가을 쯤, 김찬해도 아들을 모스크바 국제고아원에 맡기고 조국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려는 마음으로 반일혁명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1935년 1월, 김찬해는 본격적으로 혁명활동을 전개하려고 조선 함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는 10월혁명 선전삐라산포사건이 일제에 발각되면서 원산운수로동자 조직이 검거되여 자신의 신분이 폭로된 것을 모르고 있었고 결국 반역자의 밀고로 체포되였다. 함흥에서 3년 반의 도형을 받은 그는 감옥에서도 감옥생활개선 투쟁을 벌이고 외부동지들과 련락하여 비밀정신을 전달하면서 옥중투쟁을 엄밀히 진행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투항한 후 동방대학에서의 학습경력으로 인해 로씨야어에 능숙한 김찬해 부부는 돈화에서 쏘련 홍군의 통역, 련락원으로 일하면서 그들을 협조하여 일본군과 위만군 부대의 무장해제, 치안유지, 토비숙청 등 사업에 종사했다. 1945년 9월 20일, 돈화 영화관에서 돈화현 민주동맹 성립을 선포하고 림민호가 위원장으로, 김찬해가 민주동맹산하의 부녀부 부장으로 임명되였다. 민주동맹 부녀부 부장으로 당선된 김찬해는 광범한 녀성들을 동원하여 국민당토비들과 투쟁했고 또 돈화 부녀부의 명의로 조선전쟁 전선지원 집회를 열어 방직운동을 진행했다. 김찬해의 령솔하에 돈화 녀성들은 군복을 짓고 헝겊신을 만들어 전선에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담가대, 구호대를 조직하여 부상병을 이송하여 간호했으며, 전쟁의 나날에 돈화의 녀성들은 남편을 대신해 농사를 지으면서 생산을 복구시켰다. 1949년 2월, 연변사범학교에서 사업중이였던 김찬해는 연변지위 조직부로부터 부녀사업을 책임지고 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1949년 12월 연변지방사업위원회 부녀사업위원회 부서기로 임명되였다. 그리고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구 성립에 잇달아 9월15일부터 20일까지 연변조선족자치구 제1차 부녀대표대회가 연길에서 거행되였으며 대회에서는 정식으로 연변조선족자치구 민주부련련합회를 성립했다. 대회에서는 김찬해를 제1차 부녀련합회 집행위원으로 선거했으며 그 이후부터 그는 연변의 첫 부련회 주임으로 녀성해방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나갔다. 부련회 주임으로 재직하는 동안 김찬해는 우선, 남녀평등의 조건이 문화라고 지적하면서 문명퇴치에 정력을 기울였다. 그는 직접 혁명가요를 배워주면서 녀성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의식을 제고시켰다. 결과 녀성들이 가마목에서 글을 읽는 열조가 일어났으며 곳곳에 야학교, 동학반이 일떠섰다. 그리고 문화사업이 나라건설과 녀성해방사업의 근본임을 지적하면서 동학반을 농민학교로 건설하는 일을 적극 지지했다. 다음으로, 문명퇴치와 함께 남녀평등과 녀성해방사업도 김찬해 녀성사업의 중요한 부분이였다. 김찬해는 남존녀비 사상, 시부모의 학대, 가무전담 등을 녀자에 대한 불평등한 현실을 예리하게 비판했다. 즉 온 하루 가사로동에 시달리지만 남자들은 다리를 꼬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녀자들이 바삐 보내는 것을 빤히 보기만 하는 것은 녀자에 대한 불평등이라고 인식했다. 김찬해는 당시 봉건사상의 영향하에 가정에서나 사회적으로나 억압받으면서 살아왔던 녀성들을 대상으로 회의, 강연 등을 조직하여 녀성해방에 대해 선전했다. 그와 동시에 례절교양에도 중시를 돌렸다. 녀성으로서 가정에서 시부모를 잘 모시고 남편을 잘 공대하고 아이를 잘 기르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정은 학교와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훌륭한 녀성이 있는 집은 훌륭한 학교에 다니는 것과 흡사하다고 선전했다. 그 다음으로, 김찬해는 조선족 녀성들도 쏘련 녀성들과 마찬가지로 당과 정부의 령도 밑에 고향건설에 이바지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에 쏘련 녀성들을 따라 배우는 열조가 일어났으며 조선족 녀성들은 너도나도 사회주의건설에 뛰여들었다. 당시 농업생산뿐만 아니라 공업건설에 참가하는 녀성로동자들도 해마다 증가되였다. 마지막으로 녀성해방의 필수조건으로 녀성아동사업도 대단히 중시했다. 무엇보다도 해산할 때 의료위생과 보건이 큰 문제였다. 의료조건이 락후하다보니 집에서 해산하는 녀성들이 많았는데, 그러한 녀성들 중에는 난산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꽤 있었다. 때문에 부련회에서는 조산사훈련반과 보모훈련반을 꾸려 조산사와 보육간부를 양성했으며 낡은 해산방법을 타파하고 새로운 해산방법을 선전했다. 그리고 임신부의 산전, 산후 보양에 대해서도 잘 료해하도록 했다. 그외에도 아이 돌봄도 녀성들을 해방시킴에 있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생산로동에 참여하고 사회적 진출을 실현하고자 해도 어린애를 돌볼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였다. 어떤 녀성들은 아이를 업고 논밭에 나가 김을 매기도 했는데 어린애를 업고 김을 매다보니 생산효률도 높지 못하고 또 어린애의 건강에도 해가 되였다. 어떤 때에는 논머리에 아이를 재워놓고 일을 하다가 미처 돌보지 못한 사이 어린애가 논도랑에 빠지는 소동이 일어난다든지 어린 아이를 집에 두고 나갔다가 아이의 불장난 때문에 화재를 일으키는 등 일련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만이 녀성들이 실제로 가사로동에서 해탈되여 사회로 진출할 수 있었다. 부련회에서 김찬해가 추진한 녀성해방활동들은 조선족 녀성들이 일정한 정도에서 녀성해방을 실현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례하면, 문명퇴치, 생산로동을 통한 경제적 지위 향상, 녀성보건사업, 보육원 건설 등을 통해 녀성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는 향상되였으며 녀성들은 기존의 관습이나 관념에서 벗어나면서 일정한 정도에서 녀성해방을 실현했다. 우선, 녀성들은 교육을 통해 문맹에서 벗어났으며 교사 등 직업을 통해 사회적 진출을 실현했다. 1957년 연변주 부련회 사업보고에 의하면, 문맹에서 벗어난 녀성이 60%를 차지해 신문, 잡지를 볼 수 있게 되였고 직접 편지를 쓸 수 있게 되였다. 다음으로, 경제적 활동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높였다. 1949년, 연변에는 고무, 방직, 농기, 제조, 석탄, 도자기, 가구 등 지방 공업이 64개가 있었으며 108개 수공업생산합작사가 있었다. 1949년도에는 이러한 공장에 녀직원이 902명(상업 부문 포함)이였으나 1956년에 이르러서는 6,479명에 달했으며 그중 683명이 선진생산자와 선진공작자로 당선되였다. 그 다음으로, 녀성보건사업, 탁아소 및 보육원이 건설됨에 따라 녀성들은 몸, 양육, 가사 등 녀성 역할에서 일정하게 벗어나 자유롭게 사회적 활동에 종사할 수 있게 되였다. 이와 같이 김찬해가 부련회에서 녀성해방사업을 추진하는 동안 조선족 녀성들은 가정에서 사회로 진출했으며 녀교사 등 직업에 종사함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켰다. 그러한 의미에서 녀성들은 일정한 정도에서 녀성해방을 실현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김찬해는 반일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반일투사로서의 강인함과 완강함으로 기존의 녀성성, 성역할 등을 해체했으며, 가정으로부터 사회로 진출하여 반일투사로서의 정체성을 생성했다. 뿐만 아니라 첫 부련회 주임으로서 당선된 이후 녀성해방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사회적 진출을 남녀평등의 가장 큰 조건으로 인식하면서 사회적 활동 및 지위에 큰 중시를 돌렸다. 반일혁명 및 녀성해방사업 과정에서 김찬해는 새로운 젠더 정체성의 수행을 통해 해방과 자유의 틈을 찾아가고자 했으며, 연변 녀성들을 이끌고 평등한 세상을 구축하기에 노력했다. 녀성해방의 가능성은 바로 이와 같은 기존의 성 정체성을 해체하고 새로운 성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인민넷 조문판
146    왜 우리는 병 보이러 대도시로 떠나야만 하는가 댓글:  조회:1199  추천:1  2021-01-13
왜 우리는 병 보이러 대도시로 떠나야만 하는가 허연화 우리는 주위에서 큰병에 걸려 북경, 상해, 한국, 일본에서 치료받았다는 얘기를 종종 듣게 된다. 고향에서라면 인맥도 있고 환자의 간호도 여러 사람이 부담할 수 있지만 대도시에서는 경제적 부담도 크고 뭐나 낯설기까지 하여 환자도 가족도 많이 힘들다. 하지만 많은 환자들, 특히 암환자들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높은 의술을 기대하며 대도시를 선택한다. 하지만 지금은 신종코로나페염으로 인해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을 받는 시기이다. 요즘 대도시에 들어가자면 지방에 따라서 PCR검사증명을 받아야 하고 대도시에 도착해서도 격리기간이 필요하며 병원예약도 더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다. 그뿐만 아니라 환자가 이동중에 감염될 위험이 있으며 간호하는 가족이 당뇨 등 지병을 갖고 있다면 이동중에서 미지수가 많아 길 떠날 때 주춤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외국에서 산지도 어언 18년이 가깝다. 하지만 필자가 고향을 떠나기 전이든 지금이든 많은 연변사람들은 큰병에 걸리면 연변에서가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 치료받으려고 한다. 분명 18년 동안 우리 연변 사회는 발전했고 의료계통도 진보했는데 왜 우리는 큰병에 걸리면 아직도 고향에서 치료받는 것이 불안한 것일가. 불안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가? 우리는 자신이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 일반주민은 연변의 의료상황에 대해 어느 만큼 알고 있는가? 주로 어떻게 정보를 수집하는가? 병원홈페이지에는 기본정보가 있다. 의사소개와 각 학과의 력사, 의료설비대수 등등. 일본의 병원홈페이지와 비교해볼 경우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면에서 많이 부족하지만 이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같다. 하지만 실제로 가족이 큰병에 걸렸을 경우 현재 정보로는 너무 부족하다. 하여 많이는 입소문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게 지금 연변의 상황인 것 같다. 누구누구는 어느 병원에서 초기간암진단을 받고 고주파열치료(RFA, radiofrequency ablation)를 받았는데 오히려 간경화가 심해져서 다시 북경으로 들어가서 치료를 받았다거나, 어느 병원은 사실 간장과 심장 치료기술이 낮은 상황이여서 병원 의사 가족도 상해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거나 하는 등등의 얻어들은 것들로 병원선택을 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객관적인 판단기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연변의 의술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 신뢰도가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얻어들은 소문이 아닌 객관적인 판단수치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연변의 의료계통에서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병원의 각 학과의 소개가 매우 상세하다. 례를 들면 그 학과에서 주로 성과가 있는 병에 대해 공개를 하며 또한 각 병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질병원리를 알기 쉽게 소개하며, 각종 치료 방법 및 위험에 대해서도 그림까지 첨부해서 설명하며, 치료건수와 성공률 모두를 공개한다. 자기 병원의 수치와 현재 일본국내평균수치, 국제평균수치를 같이 보여줌으로써 환자에게 비교적 객관적이고 포괄적인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연변의 병원홈페이지에서도 외국의 자료를 참고하여 상세한 정보공개를 검토하기 바란다. 우리 연변은 중고등레벨의 의사가 더 많이 필요하다. 가장 빠른 방법은 인재유치이다. 흔히 인재를 유치하려면 높은 대우를 주어야 한다. 수입격차가 심했던 20년전이였다면 이 말은 맞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단순히 액면으로 보는 수입만 볼 것이 아니라 얼마 만큼 저축할 수 있고 그 돈으로 어느 만큼 소비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연변의 전체 경제력 상승과 생활소비환경의 개선으로 연변은 더 이상 후진지역이 아니다. 먹을 것이 풍부하고 대도시에 비해 집마련하기가 어렵지 않으며 분위기잡을 럭셔리한 커피점도 여기저기 있으며 공기 또한 얼마나 좋은가. 연변은 인재를 끌어들일 매력이 너무 많다. 조사에 의하면 북경, 상해 등 도시로부터 중소도시로 이주하는 조선족이 최근몇년래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대도시에서 마련한 집을 팔고 그 돈으로 더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연변을 선택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지 높은 수입이 아닌 높은 삶의 질과 여유로움을 어필하여 인재를 끌어들어야 한다. 또한 자기 민족뿐만아니라 다른 민족과 외국의 인재도 끌어들이는 포용력도 필요하다. 사실 고령화시대인 지금 세계의 곳곳에서 인재쟁탈전이 일어나고 있다. 이민연구에서 보아도 못사는 곳에서 잘사는 곳으로 인구이동하던 시대로부터 지금은 라이프스타일 추구형의 인구이동으로 변화하고 있는바 사람들의 움직임을 추동하는 요인 또한 매우 다양성을 나타내고 있다. 사람들은 소비와 경쟁이 주도하는 사회에 의문을 던지며 자신의 소비관을 다시 돌이켜보고, 인생의 가치와 진정한 행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 이번 신종코로나페염의 류행은 우리 삶의 여러면을 변화시켰다.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곳에서 출근형태를 온라인근무로 변화함으로써 회사도 대도시로부터 지방으로 이사하는 사례도 많이 나타났다. 그들이 이런 판단을 내린 것은 긴급상황에서의 일시적인 대처라기보다 통신기술의 발전과 안정성을 바탕으로 한 기업의 장기적인 미래상 때문이다. 이번 류행성 바이러스의 영향범위와 장기화를 통해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 이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현재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느꼈기에 여태까지의 상식과 가치관을 벗어나 새로운 근무방식, 재택근무의 확대와 부업의 인정을 검토하는 기업도 많이 나타났다. 연변의 통신기술 발전 특히 인터넷보급률은 전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다. 연변은 이 우점을 발휘하여 기업유치를 해볼 수도 있고 의료계통에서는 온라인원격수술을 도입할 수 있으며 대도시의 전문가들과 온라인으로 리얼타임에 교류할 수 있다 .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의사가 결핍한 지역의 수술과 지도를 온라인으로 함으로써 지역의료의 안정을 유지하고 높은 질의 치료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연변은 또한 지리적인 우세를 활용하여 한국과 일본의 권위적인 의사를 부르는 노력도 해볼 수 있다. 일본에서 뇌동맥종양의 권위인 카미야마 히로야스의사가 일본의 의료프로그람에서 일본 전국의 자신을 필요로 한 환자한테 가서 수술하는 모습을 보고 참 좋은 시스템이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특히 65세에 퇴직하기에 너무 아까운 많은 전문의사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다. 장기적이 아닐지라도 우리 연변에도 이런 전문가를 불러들일 수 있는 네트워크의 구축이 필요한 것같다. 의료계통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국내외에 있는 여러 전공의 인맥을 풀가동하여 가능성을 의논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연변의 주요 병원의 의사들은 너무 바쁘다. 의술을 증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울 새가 없을 정도로 일인당 부담이 크다. 누군가는 대도시 의사들은 더 바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대도시에는 평균실무능력이 높은 의사들이 서로 일을 분담하는 환경이 형성되여있다. 또한 새로운 인재들도 줄 서서 들어오고 있다. 우리 연변의 상황은 어떠한가. 능력이 있는 의사들이 적지 않게 스카우트당해서 고향을 떠나고 햇내기의사들을 이끌어줄 대선배가 부족하지만 병원은 변함없이 매일 환자로 붐빈다. 그럼 고향을 떠나는 의사를 어떻게 떠나지 못하도록 잡을 수 있을가. 스카우트를 받아 가면 대우가 연변보다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우만으로 외지를 선택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것보다 자식의 교육환경이 결정적 요인이 될 때가 많다. 연변보다는 큰 도시이니까 교육환경이 좋을 것이며 대도시일 경우 자녀의 대학입시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면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통신기술이 발전한 요즘에서는 교육환경에서의 지역차이는 충분히 줄일 수 있다. 인터넷에서 가장 최신 참고자료를 주문할 수도 있고, 온라인강의로 유명학원의 강의를 들을 수도 있는 등 질 좋은 교육자원을 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북경, 상해 외의 지역일 경우 대학입시에서 유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닐 것이니 2세교육이 더 이상 큰 차이를 형성하지 못할 것이다. 신종코로나페염이 우리의 가치관을 흔들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비교적 안전한 연변에 유능한 의사를 남겨두고 연변으로부터 류출된 의사를 재유치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병원뿐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를 양성하는 교육부문의 교사인재도 류입이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의 퇴직교수들을 단기적이라도 교사진에 초빙하는 방법도 조선족류학생이기에 할 수 있는 관계망활용일 것 같다. 그리고 가벼운 부상과 질병 및 만성질환은 큰 병원이 아니라 작은 병원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일본의 의료기관은 크게 ‘진료소’와 ‘병원’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시민들이 흔히 다 병원이라고 말하기에 진료소를 ‘종합병원’과 상대하여 ‘일반병원’이라 한다. 이 두가지는 병원 침대수, 진료 과수, 시설, 의사와 간호사 인수, 역활 등 면에서 다 다르다. 가장 쉽게 말하면 일반병원은 개인병원, 전문병원 등 작은 규모의 병원을 말하고 큰병에 걸리면 일반병원의 소개서를 가지고 종합병원으로 가는 형식을 취한다. 소개서가 없을 경우 수속비를 두세배 더 지불해야 하며 아예 종합병원의 수속도 할 수 없는 곳도 많다. 건강검진에서 요구되는 조건에 부합되는 판정을 받은 사람만이 소개서가 필요없이 종합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큰 병원의 부담을 덜어주고 작은 병원의 질을 높여 균형적인 의료환경형성에 유리하다. 연변만이라도 일본의 이 경험을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역의료라는 말이 있다. 그냥 어느 지역의 의료라는 뜻이 아니라 보건예방, 질병치료, 재활치료 등 여러면으로부터 의료를 생각하는 자세이다. 즉 병에 걸린 후 치료하는 의료가 아니라 넓게 지역주민의 생활에도 주의를 돌리며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의료활동을 가리킨다. 례를 들면 연변에는 음주로 인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간암환자도 이에 따라 국내 평균수준보다 높은 편이다. 이는 우리 조선민족의 술문화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편 한국돈벌이가 정상상태화된 현대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 한국돈벌이로부터 일시적으로 해방된 사람들은 고향에서 술자리가 많다. 옛날에 비해 건강의식이 높이진 지금도 아버님세대들은 술을 많이 마신다. 지역의료의 시점으로 보면 연변의 특정상황을 파악하여 ‘술과 건강을 생각하는 교실’을 많이 개설하고 의사, 간암환자, 환자가족과 교류하는 이벤트를 다채롭게 꾸며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실제로 일본 오사카의 한 지역에서는 ‘방연교실’을 2년 동안 개설하여 흡연과 건강을 생각하는 이벤트를 많이 만든 결과 2년 사이에 흡연자수가 절반이나 줄어드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놀랍지 않은가. 이는 특수사례가 아니다. 보건예방의 의료에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아건강상태에서의 여러가지 민간조치가 세계적으로 중시를 받고 있다. 짜게 먹고 기후가 건조한 것도 우리 연변의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기후적, 민족적 특성으로 인한 지병의 다발률은 보건예방의 큰 노력이 필요하다. 연변에서 우리 부모님들이 이상한 약을 파는 모임에 참가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 약이 좋다고 믿는다기보다 사람이 그리워서 모임에 가는거라 하니 정부, 가도, 의료계통이 협력하여 건강교실을 만들고 같이 모여 노래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감으로써 사기피해도 줄이고 연변사회에 공헌도 할 수 있다. 우리 연변의 의료가 질병치료 개선뿐만 아니라 병들기 전의 보건예방과 치료후의 재활 등 이 세가지를 포괄했을 때만이 진정으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지역사회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너무 리상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 현실의료계통의 내부상황은 많이 복잡할 것이며 갈 길이 아직 멀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개개인의 힘과 창조력을 믿어야 한다. 저가락철학을 떠올려보자. 하나의 저가락은 매우 간단하고 작다. 하지만 저가락의 작용은 매우 크다. 또한 하나의 저가락은 쉽게 부러뜨릴 수 있지만 한묶음의 저가락은 힘장수도 부러뜨리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모두 자신의 작은 힘으로 우리의 부모형제들이 살고 있는 고향을 보다 안심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지혜를 모아보아야 할 것이다.   인민넷 조문판 
145    조선족사회에 남성학(男性学)이 필요한 시점 댓글:  조회:1251  추천:2  2020-12-11
조선족사회에 남성학(男性学)이 필요한 시점 리화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딸만 줄줄이 네명 낳은 죄로 대를 끊기게 했다고 평생 기를 못 펴고 살았다는 어떤 할머니. 그래서 숙명처럼, ‘당연하게’ 시동생네 아들 하나를 양자로 들여야 했다는 서글픈 이야기. 오로지 아들을 보자는 집념으로 딸을 내리 8명이나 낳고 아홉번째로 끝끝내 귀하디귀한 아들을 봤다는 아래 층 할머니… 어려운 형편 때문에 그토록 다니고 싶었던 공부를 그만두고 장차 집안의 '큰 사람'이 될 오빠, 남동생 뒤바라지를 위해 고된 농사일을 해야만 했다는 어머니들. 딸이라서 이런저런 차별대우를 받았던 어린 시절의 서러움이 두고두고 울분을 토해도 가셔지지 않는다는 언니, 녀동생들… 마치 아득히 먼 조선시대 일들 같지만 이게 바로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 언니들 그리고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네 아픈 추억들이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결혼은 자녀 특히 아들을 낳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으며 이는 유교적 부계친족원리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즉 부계적 혈통의 계승을 목적으로 하는 가족에 있어서 부자관계는 모든 대인관계의 중심에 있었으며 형제관계는 물론 부부관계마저도 이러한 부자관계에 종속되여있었다. 따라서 결혼한 녀성은 대를 이어나갈 아들을 출산함으로써 비로소 시댁의 정식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부계친족 안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였다. 한편 안해가 아들을 낳지 못할 경우 남편은 공공연하게 소실을 맞는다든지 아니면 부계 친족내에서 양자를 들이는 등 보조적인 방법을 취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은 제발 아들이기를 기대하는 절실한 마음을 담아서 딸들에게는 ‘후남’,'말녀', '말희', 아들이 아니라서 '언년', 그리고 아들에게는 귀하게 얻은 아들이라서 '귀남', '귀동' 등등 웃긴다기보다는 더 슬픈 울림이 인상적인 이름들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귀한 아들들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 시작했다. 딸을 낳았다면 무의식간에 터져나오는 부러움과 환호소리, 첫째가 아들이면 다음에도 아들일가 봐 둘째 낳기를 주저주저하는 분위기. 아들만 둘이라면 '대놓고' 안쓰러운 눈길들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남아선호사상이 빠르게 사라지고 대신 딸의 가치가 유난히 돋보이는 시대적 변화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아들 선호로부터 딸 선호로 바뀌게 되였을가. 그 리유를 더듬다보면 남성과 녀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및 가족 내 남편과 안해의 권력과 역할변화에 대응하는 조선족사회의 젠더질서 재편성 즉 이른바 '남성성', '남성다움'/'녀성성', '녀성다움'의 새로운 정의 규정에 생긴 불균형을 감지하게 된다. 미국의 녀성인류학자 마거릿·미드(Magarret Mead)는 일찍 1930년대 뉴기니아 세 마을에 대한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쓴 《세 부족 사회의 성(性)과 기질》이라는 저서에서 우리가 흔히 본질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남성성/녀성성이 사실은 개별 사회의 력사적 과정에서 생성됨을 지적한다. 따라서 남성성과 녀성성의 내용은 각 사회의 집단적 생존 전략 특히 성별에 따른 남녀의 생계활동 참여와 인구 재생산·육아 활동의 내용에 의해 좌우지된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가족에 있어서 남편은 밖에 일 즉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생산로동에 종사하고 안해는 집안 일 즉 가사나 육아, 돌봄로동에 종사하는 것으로 역할분업이 이루어져왔으며 따라서 남편은 '바깥사람', 안해는 '안사람'으로 불려왔다. 새 중국이 창건된 후 조선족녀성들의 높은 취업률과 사회적 활약에도 불과하고 이러한 가정내 역할분담은 쭉 이어졌다. 또한 남녀평등을 기본국책으로 하는 정치적 대환경 속에서도 아들을 낳지 못하면 시댁에 당당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로후가 크게 걱정됐다. 우리의 전통관념에 있어서 그 만큼 아들은 부모의 로후를 봉양해 마땅한 보험 같은 존재였으며 그에 비해 "딸은 아무리 좋아봤자 출가외인이요,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도무지 눈치가 보여서 말이다. 그런가 하면 '근면하고 헌신적이며 온순한' 조선족의 녀성성·녀성다움은 과히 '자랑할 만한' 민족적 표상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전통적인 젠더규범에 기초한 녀성성의 이미지는 가족생활에서의 구체적 실천을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되여왔다. 반면에 이렇듯 우수한 녀성상과 달리 조선족남성들은 '권위적이고 게으르며 술을 좋아하고 허풍을 좋아하는' , '문제적 남자'로서의 이미지를 굳혀오면서 때로는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편 우리 밖의 세상은 어떤 변화들을 겪어왔을가. 서구의 초기 산업화사회에서 남성이 생계 부양자이자 공적인 일을 맡고 녀성은 이른바 사적 령역인 가정에서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가정주부로 되는 과정을 거쳐 산업사회 후기 녀성들의 대거 경제활동참여는 곧바로 가정과 일을 량립시켜야 하는 근대적 녀성성의 위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거대한 녀성해방운동과 더불어 녀성학, 페미니즘의 지적 탐구가 시작되였으며 20세기말에 이르러서는 드디여 녀성들의 어깨에 지워졌던 이중적 역할 규범들이 크게 완화되였다. 녀성이 일터에서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으며 최고의 정치지도자나 경영인, 연구자로 자리매김하는 게 더 이상 놀랄 만한 일들이 아닌 것으로 됐다. 이러한 녀성성에 대한 재정의와 더불어 정복과 경쟁의 표상으로 굳혀진 기존의 남성성에 대한 녀성들의 '파괴'와 '남성다움'의 재구축 또한 빠르게 진행되였다. 례를 들어 녀성을 강하게 리드해나가고 무뚝뚝하고 외모나 단장에 대한 무신경한 남자대장부로부터 친절하게 소통할 줄 알고 보살핌에 능하고 유모아적이고 청결한 신사의 이미지로 말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젠더질서의 변화와 맞물리듯이 우리 조선족사회 역시 1990년대를 전후로 큰 변화들이 생긴다. 조선, 로씨야 보따리장사부터 해외이주로동에 이르기까지 조선족녀성들은 분야를 막론하고 가정 경제에 크게 한몫 했으며 의사결정권 등 가족내 권력구조에서도 안해의 목소리가 더 힘이 있는 듯한 가정이 다수를 차지하지 않을가 할 정도로 역전세를 보이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남편이 안해와 함께 가사로동, 육아를 분담하는 게 보통 현상이고 보란듯이 아이를 앞에 안고 다니는 아빠들이 흔하다. 그런가 하면 이제는 딸이 아니라 아들이 '시집'간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결혼한 딸 가족과는 밀접하게 왕래하면서 딸 신세를 '대놓고' 본다. "잘난 아들은 사돈댁 아들, 못난 아들이 진정한 내 아들”이라는 우스개소리가 나올 만큼 며느리는 어렵고 아들은 부담스러운 존재로 되여버렸다. 과거에는 잘 키워놓기만 하면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서 부모를 봉양했던 든든한 아들들이 말이다. 아들의 이러한 가치변화는 앞서 언급했던 젠더질서의 재편성과정에서 녀성과 남성 사이에 생긴 불균형이 중요한 원인이 아닐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즉 녀성성에 비해 거의 변한 것이 없는 남성성에 대한 고정인식과 막연한 기대감, 사실 우리는 아직까지도 남자가 녀자보다 여러가지 조건이나 능력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젠더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결혼식은 남자 집에서 더 많이 지출해야 하고 아들을 장가보내려면 집을 장만해주거나 상응한 경제적 지원을 해줘야 하며 출산은 시댁에 후손을 낳아주는 것이기에 몰라라 하면 욕을 먹는다. 반대로 딸 가진 부모에게 이 모든 것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기에 해주면 고맙고 안 해줘도 그만이다. 거기에 가정의 생계는 남편의 의무라는 전통적 가치관 역시 변함이 없다. 그래서 아들은 결혼후에도 필요할 경우 부모가 경제적 지원을 해줘야 하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여버리고 아들 키우기가 점점 힘든 시대가 되는 것이다. 모든 조선족 남성들을 통털어 하나의 균일한 집단으로 규정하는 시각에는 문제가 많다. 제도적인 젠더특권을 누리면서 녀성을 억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녀성의 립장에서 배려하는 남성도 있고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만도 벅차서 역차별을 당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모두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우수할 수도 없고 또 우리가 무조건 부정적으로 야유하고 실망할 만큼 형편없는 것도 아니다. 1990년대로부터 페미니즘, 녀성학에 자극되여 본격적으로 등장한 남성학의 대표적인 시각중 하나가 남성내부의 차이와 불평등 연구이며 남성이 힘들고 괴로운 사안의 대다수가 녀성우위에서 오는 게 아니라 무리하게 남성우위체제를 유지하려는 데서 발생한 부작용이라는 게 그 대표적인 주장이다. 현재의 우리에게 필요한 시각이기도 하다. 남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네 남편이고 형제고 아들들이며 가족이다. 남성성과 남성다움도 전통적인 '강한' 이미지로부터 해탈되여야 함을 인지해야 하고 그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함음으로써 환상에 가까운 집착을 버려야 한다. 이 또한 새로운 차별과 편견의 불씨가 될수 있기 때문에. 시대의 발전에 걸맞는, 진정으로 평등한 젠더질서의 재구축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지금이다. 남아 선호 사상이 해체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지만 또 다른 특정 성별에 대한 선호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아들이든 딸이든 우리에게 오는 아이들은 다 똑같이 귀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다.   인민넷 조문판 
144    녀성사회조직에서 녀성의 발전을 보다 댓글:  조회:1221  추천:2  2020-11-18
녀성사회조직에서 녀성의 발전을 보다 김화선 연변대학 사회학과 2019년 11월에 연변대학녀성연구중심에서는 제1회녀성사회조직회장포럼을 개최한 데 이어 2020년 11월에도 연변대학에서 제2회녀성사회조직회장포럼을 조직했다. 제2회 포럼에서 연길시 5개 녀성사회조직의 리더들의 발표는 참신함과 명확함, 그리고 다채로움으로 학계와 민간에서 온 회의 참석자들에게 지적 자극과 감동을 동시에 안겨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제1회 녀성사회조직회장포럼에서는 연변조선족녀성발전촉진회, 연변녀성평생교육협회, 연변사회교육연구회, 연변민들레문화교류협회 등 50~60대 기성세대들이 이끄는 녀성사회조직이 애심활동과 사회교육을 공동분모로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에 밝은 에너지를 확산시키고 사회교육/평생교육으로 녀성들의 종합소질을 향상시키고 지속적인 성장을 촉진해온 수십년의 력사를 부각한 점이 특징적이였다고 하겠다. 제2회 녀성사회조직회장포럼 제2회 녀성사회조직회장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한 연변민족교육연구회 , 연변커피문화교류발전협회, 책마니아독서클럽, 연변조선족전통문화연구소, 연길알뜰육아장터 등 5개 녀성사회조직의 5명 리더중 30대가 세명, 40대가 두명이다. 이들은 대졸학력은 기본이고 석사학위, 박사학위를 취득한 분도 있고 해외류학경험도 있는 지식녀성이란 점, 그리고 자신의 직장을 갖고 있는 동시에 사회조직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포럼에 참석한 인문사회과학분야의 학자들이 5명의 차세대 녀성리더들의 발표에 감탄과 동시에 깊은 감수를 받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 학자들은 지식에 대한 불타는 의지와 욕망을 가진 대학생,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지식을 전수하는 립장에 있는 분들이다. 그런데 차세대 녀성리더들은 자신의 견식으로 현실문제를 직시하고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쳐가면서 학자들에게 새로운 발전공간을 개척하는 데 필요한 앞선 생각, 참신한 아이디어를 보여주었다. 둘째, 새 시대의 지식녀성들이 전통적인 녀성문화공간이였던 가정공간, 직장공간을 넘어서 사회조직공간까지 넘나들면서 다층화된 사회적 신분을 가진 새로운 녀성주체로 새롭게 부상하면서 새로운 연구대상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해외류학을 다녀와서 연변에 새로운 문화적 풍기를 가져왔으며 고향경제문화건설에 사명감을 갖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들이 젊고 사회조직을 리드한 력사도 짧지만 우수한 소질을 갖춘 이들한테서 학자들은 민족의 희망, 지역 경제문화사회의 발전에 대한 기대를 해보게 되였다.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 연변녀성평생교육협회(연변대학녀성평생교육총동문회)회원들 수십년 동안 헌신적으로 녀성사회조직을 이끌어온 기성세대 리더들도 차세대 리더들을 통해 풍부하고 다채로운 녀성사회조직의 다양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서로 존중하고 공동성장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직의 리더로서 회원들이 누구나 다 멋있어지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마음가짐과 창의적인 프로그람을 만들어가는 것이 리더의 직책이라고 조언을 주기도 한다. 국무원에서 2019년 9월에 발표한 백서에 의하면 중국정부는 몇십년의 노력으로 중국녀성들의 문맹률을 크게 줄였고 9년제 의무교육제도를 통해 교육에서의 성차별을 없앴다. 개혁개방 40년 동안에 고중단계 교육을 보급시켰고 2017년에 이르러서 대학교 학생중 녀대생의 비률이 52%를 넘고 녀연구생 비률이 48%가 넘었다. 직업교육, 평생교육을 받는 녀성인구도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녀성들의 교육수준이 현저히 높아짐으로써 가정, 직장, 사회조직에서 녀성들의 역할이 한층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녀성들이 추구하는 가정, 직장, 사회조직에 대한 가치관에도 변화가 생기여 한층 아름답고 자유로운 녀성문화와 가정문화, 남녀평등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되였다. 2021년부터 시작되는 ‘14.5’계획기간에 우리 나라에서는 남녀평등기본원칙을 견지하고 가정건설에서 녀성들이 특수한 공헌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우리 나라가 현대화한 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일조할 것을 바라고 있다. 지식녀성들의 리더역할이 더 필요되는 시점이다. 글 인민넷 조문판  
143    방언과 지역문화 전승 댓글:  조회:1201  추천:0  2020-10-28
  근래에 음악, 영화, 문학, 예술 등 창작에서 지방방언요소를 내포한 작품들이 독특한 풍격과 창의성으로 인하여 각광을 받고 있다. 심지어 너무 많은 방언요소들로 인하여 거품현상이 일어나지 않느냐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이다. 조선족가수들이 전국적인 무대에 나설 때도 조선족문화의 독특성을 내포함으로 하여 특색적인 작품으로 전국 관중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역특색이 농후한 방언과 지역문화배경은 특색 있는 작품 창작의 원천이 되고 있다. 중국어에 “일반수토양일방인(一方水土养一方人)”이라는 말이 있다. 즉 한 지방의 풍토가 한 지방의 특색 있는 문화와 생활습관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방언도 이러한 지역의 풍토에 의하여 형성된 언어문화이다. 인류의 력사적인 이동과 집거, 재이동으로 인하여 지역에 따라 부동한 언어가 형성되였다. 력사적인 언어 전승과 보존의 차이로 인하여 여러 지방의 언어들에는 많은 고대언어가 전승되여 보존되여있다. 일본어가 당음으로 불리우고 우리말에 절강 오월, 복건 민남방언과 비슷한 발음의 단어들이 많은 것은 고대의 언어들이 보존되여왔기 때문이다. 개개의 방언은 모두 그 지방의 독특한 문화를 내포하고 있는바 문화를 전승하는 매체이다. 중국 전역에는 북방방언, 산서(晋)방언, 오(吴)방언, 민(闽)방언 등 10대 방언 외에도 또 100여가지 방언이 있다고 한다. 복건성의 경우, 민남방언, 객가(客家)방언이 주류를 이루면서도 크고작은 방언 지역이 형성되여 산 하나를 넘으면 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방언의 차이가 심하다. 또한 인구의 이동에 의하여 특수한 방언섬들이 형성되였다. 즉 한 마을 혹은 소수 마을들이 주변 방언과 완전히 다른 방언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반도에도 경상도방언, 전라도방언, 충청도방언, 경기도방언, 강원도방언, 황해도방언, 평안도방언, 함경도방언 팔도방언에 제주도방언까지 더하여 9대 방언이 있다. 조선족사회의 경우, 주로 팔도방언이 이주민들과 함께 전하여왔지만 이주인구 수와 집거 여부에 따라 주로 함경도방언, 경상도방언과 평안도방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방언섬들도 두루 만날 수 있다. 즉 연변지역의 충청도마을, 경상도마을 등 집단이주에 의하여 형성된 마을들에서 주변의 함경도방언과는 다른 방언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사투리라고 표현하는 방언은 지역문화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1940년대에 같은 조선족마을 내부에서도 남부 출신과 북부 출신 이주민들 사이에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고 하면 밎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도 현지조사에서 이러한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너무나도 의외적이여서 “진짜입니까?” 하고 다시 확인하여보았었다. 그 만큼 조선반도에서 중국으로 이주하여온 사람들이 같은 조선사람이라고 한 마을에 모여살았지만 그 만큼 지역적 문화적 차이가 컸던 것이다. 일본식민주의세력에 의하여 ‘남선사람’, ‘북선사람’ 등 차별적인 용어가 사용되였고 이를 받아들였던 것은 그 만큼 남북 출신간의 차이가 컸음을 설명한다. 하지만 광복 이후 벼농사의 보급과 공동로동에 의하여 새로운 지역 민족공동체가 형성되고 지역언어 또한 교류와 융합을 거쳐 새로운 지역방언으로 탈바꿈하게 되였다. 목단강지역 같은 경우, 함경도출신이 다수이지만 경산도출신도 많음으로 하여 경산도방언요소가 다분히 포함된 함경도방언으로 정착하게 되였다. 중국이라는 대환경 속에서 한어의 문화요소도 다분히 포함시킴으로 하여 조선족사회에서 사용되는 우리말은 우리만의 정서와 고향의 정을 느낄 수 있는 문화적 상징이 되였다. 지금도 간혹 위챗그룹들에서 드문드문 요즘 접하기 드문 이러한 사투리 언어들을 고의적으로 사용하면 그룹 성원들이 고향 향수애에 흠뻑 젖어있고 지나간 고향 생활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곤 한다. 이는 이러한 방언이 우리만의 정서, 우리만의 문화, 우리만의 고향의 정을 듬뿍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방언이 지역적 정서, 지역만의 문화특색을 나타냄으로 하여 국가적 차원에서의 교류에 저애가 된다. 이로 인하여 일찍 진시황시대부터 문자통일을 통하여 문자를 통한 교류를 추진하였고 명나라, 청나라 시기에는 관방용어와 더불어 음운서를 편찬하여 널리 표준어를 사용하도록 권장하였다. 명나라시기에 제정한 남경지역 언어를 표준으로 하는 남경 관용어가 표준어로 되여 조선반도에까지 보급되였었다. 오늘날 우리말 한자음 발음의 일부가 명나라시기의 남경음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지적도 있다. 근대 이후 서방의 국민국가체제가 보편적인 국가건설체제로 자리잡으면서 표준어는 국가의 강력한 추진하에 더욱 추진되였다. 학교교육을 통하여 표준어의 교육이 일관적으로 추진되였고 지방방언의 사용이 금지되였다. 표준어사용의 중요성 또한 높아가고 있다. 글로벌화, 도시화 시대의 급격한 인구이동과 도시인구의 급속한 팽창으로 인하여 표준어는 더는 선택적인 언어, 외부인과 만났을 때만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여러 지역 출신 사람들 사이의 소통에 꼭 필요한 언어로 부상하였다. 이에 따라 방언의 사용환경은 날로 위축되여가고 있으며 중국 전역에서 방언은 전례없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상해말을 지역자존심으로 여기기로 이름난 상해에서 토배기 상해출신 자녀들마저 상해말을 아예 알아듣지 못하는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다. 필자가 있는 항주도 소학생들 가운데 일부 항주말을 알아듣는 학생들은 있어도 항주말을 할 줄 아는 학생은 이미 찾아보기 어렵게 되였다. 가족의 련대를 굉장히 중시하는 객가의 방언도 소실되기 쉬운 위태로운 언어로 지정되였다. 방언전승위기를 극복하려고 여러 지역들에서 지역특색이 있는 방언을 살리기 위한 캠페인들이 진행되고 있다. 2015년, 중국 언어자원보호프로젝트가 실시되여 지역 방언과 소수민족언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상해, 복건, 항주, 소주 등 여러 지역들에서는 지방방언 텔레비죤프로그람 개설, 공공뻐스 지역 언어 안내방송, 유치원 지방 언어교류 행사, 지방 언어 이야기시합 등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큰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실용성과 인문성, 지역성의 선택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실용성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연변을 포함한 조선족집거지 학생들의 일상용어도 이미 한어로 변하여가고 있다. 이는 민족적인 차원의 문제임과 동시에 상해와 같은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도시화 시대, 다매체 시대에 실용성에 대한 추구라고도 볼 수 있다. 민족적 정서와 고향의 정이 넘쳐나는 고향 방언 환경에서 자라난 우리 세대조차 한국과의 교류가 심화됨에 따라 고향의 말을 점차 멀리하고 있지 않는가 반문하고 싶다. 지역문화 보존 차원에서 방언과 민족언어 보존과 발전을 역설하고 싶지만 커다란 력사적 흐름 속에서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방언의 형성, 발전이 지역의 풍토에 의하여 형성되였듯이 현시대의 빠른 인구류동과 교류의 풍토가 지역적 특색과 지역발전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로 인한 균일화, 표준화가 추진되면서 서두에서 언급하였던 지역적 특색, 지역문화가 특색 있는 문화창작의 원천이 되고 지역살리기의 든든한 기초가 되고 있다. 지방언어를 지역 특색문화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중시하고 지역 활성화와 특색문화 창출에 활용하면서 지속적인 발전의 길을 함께 힘을 모아 모색하여야 하지 않을가 생각한다.   [안성호 략력] 성명: 안성호(安成浩) 성별: 남 출생년월: 1976 소속: 절강대학 한국연구소 전공: 력사학, 문화인류학, 지역문화연구, 조선족사회 학력: 일본 고베대학 학술 석사, 박사 할빈사범대학 력사학 학사 경력: 일본국립민족학박물관 외래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절강대학 한국연구소 부교수 겸직: 절강성중한경제문화교류연구회 비서장 중국사회학회 중일전업위원회 리사 겸 부비서장 주요 론저: 저서로는 《族群社会发展与变迁: 朝鲜族社会调查研究》(浙江大学出版社), 편저로는 《韩国研究》12辑, 13辑 등이 있으며, 주요론문으로는 《中日韩海洋文化研究动向与展望》, 《문화적 자각을 통한 조선족문화의 변화양상》, 《문화적 시각으로 보는 조선족과 축구》, 《在日中国朝鲜族社会网络与文化适应》 등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 인민넷 조문판 
142    글로벌 백신전쟁과 국제사회의 협력 댓글:  조회:1299  추천:0  2020-10-19
  글로벌 백신전쟁과 국제사회의 협력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글로벌전략연구원 리천국 현재 전세계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대혼란을 겪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생산이 중단되고 경제성장이 멈추거나 심지어 마이너스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어 사상 최악의 국가적 위기에 직면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루적 확진자수는 3600만명을 넘어섰고 확산세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지 않아 새로운 대책을 찾아야 할 판이다. 2020년 상반년에는 세계 각국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과 전파 방지에 총력을 다했다고 한다면 하반년부터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백신을 앞다투어 개발하느라 바쁘다. 과거의 사스와 같은 전염병은 백신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사라져 현실적으로 백신개발이 상대적으로 절실하지 않았지만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류행기간이 길고 완치가 쉽지 않아 백신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2020년 9월,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신종코로나바이러스백신 후보 물질은 300여개에 달하는데 그중 약 40개가 림상시험 단계를 밟고 있으며 9개는 최종 단계인 림상 3상에 도달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백신이야말로 이번 신종코로나페염 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는 최종의 비밀무기이고 또 전세계가 정상적인 생산과 성장을 회복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발전 력사를 돌이켜보면 백신이 나온 뒤에야 인류는 비로소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을 철저히 통제할 수 있었고 인류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2020년 8월 11일, 로씨야가 세계 최초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백신을 개발해냈다고 선포하였다. 불과 하루 뒤에 브라질 지방정부가 로씨야와 백신 테스트와 대규모 생산에 관련된 각서를 체결하였다고 선포하였고 얼마 안지나 라틴아메리카, 중동과 아시아의 20개의 국가가 로씨야에 10억개의 백신 구매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씨야의 백신개발에 뒤질세라 미국은 세계 여러개의 저명한 의약회사와 60억개가 넘는 백신예약구매계약을 맺었다. 미국은 방대한 자금을 저명한 의약회사에 지원하는 대가로 백신을 개발한 뒤에 우선적으로 미국에 백신을 판매할 수 있도록 협의를 보고 있다. ‘신맨하튼’으로 불리우는 미국의 백신개발계획에 의하면 대량의 자금으로 백신개발주기를 단축하여 다른 나라에 앞서 수억개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확보하게 된다. 백신 개발과 확보에 있어서 유럽련맹도 미국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미국과 유럽련맹이 거의 전세계의 저명한 의약회사의 백신생산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기타 많은 발전도상의 국가가 구매할 수 있는 백신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나타나게 된 주요원인은 단지 미국과 유럽련맹이 자금과 기술실력 때문 뿐만 아니라 백신의 글로벌 산업사슬의 분포가 불균형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다수 백신 연구개발과 생산은 북아메리카, 유럽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개별 국가에 집중되여있고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와 대다수 아시아국가는 거의 백신을 연구하고 생산할 능력이 없어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현재 백신개발에 있어서 선두를 달리고 있고 또한 백신이 개발된 후 발전도상의 국가들을 도와줄 것을 약속하고 있다. 사실상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지구촌으로 변해가고 있는 만큼 어느 한 나라만 백신을 보급한다고 하여 신종코로나페염이 종식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최후의 한 국가가 신종코로나페염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야말로 인류가 신종코로나페염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우리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국제사회가 함께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백신문제를 정치화하고 일방주의와 극단적인 사익을 추구한다면 세계공공위생질서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기에 앞으로 국제사회의 협력과 련대가 매우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인민넷 조문판 
141    신종코로나페염이 전하는 메시지(권진홍) 댓글:  조회:1945  추천:1  2020-08-24
코로나 19가 발생한 후, 코로나와의 전쟁 속에서 겨울이 가고 봄, 여름이 지나고 이젠 립추도 훌쩍 넘기면서 가을에 들어서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라는 공포에 떨면서 4개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신종코로나페염이 얼른 종식되였으면 하는 바람 속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없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새삼 느끼기도 한다.   신종코로나페염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전세계 확진자가 2200만명을 넘겼고, 사망자가 77여만명이 된다. 지금 이 시각도 확진자가 늘어나고 사망자가 생기고 있다.   신종코로나페염이 발생하고 점차 심각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전염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였고 력사 속에 기록되여있는 전염병들의 기록들을 찾아보고 있다. 전 유럽을 죽음의 장으로 만들었던 흑사병(페스트), 인디안을 몰살하다싶이 한 천연두, 1차세계대전의 종말을 가속화시켰다는 스페인독감, 그리고 또 크고 작은 다른 전염병들… 이렇게 인류는 수시로 예상치 못한 전염병의 위협을 받아왔다. 일정시간마다 찾아오는 전염병으로 인간들은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렀다. 력사의 긴 흐름 속에서 보면 이번 신종코로나페염도 력사의 한페지에 불과하겠지만 이번 신종코로나페염은 좀 다른 점도 있다. 예전의 페스트나 천연두, 스페인독감 등은 일부 지역에서 유독 심각했다고 한다면 이번 신종코로나페염은 세계 전역에 퍼져 구석구석 안전한 곳이 없이 위해범위가 유독 크다. 그래서 인류력사상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공동의 적이 되여 전 인류가 합심하여 퇴치하려고 하는 첫 상대로 된 것이다.   이번 신종코로나페염이 전 인류의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 특징이 몇가지 있다. 하나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전파지역의 광범위성이다. 비록 극소수의 몇몇 나라에서 아직 확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안전지대로 자부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안전지대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 만큼 퍼져있다. 또 하나는 전파속도이다. 물리적 거리가 상대적으로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사이에도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전파되고 있다. 그리고 다지역 동시발생성이다. 어느 한 특정지역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이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지구촌의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허무하게도 이 공공의 적의 확산에 인간들이 창조한 문명이 일조를 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2001년 9월 11일의 세계무역센터 테로가 과학기술과 통신망 등의 현대 문명이 테로의 도구로 될 수 있음을 립증했다면 이번 신종코로나페염 역시 현대문명이 혜택만 있는 것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전에 인간에게 있어서 지구는 어마어마한 공간이였다. 대륙사이는 서로의 존재를 몰랐고, 그러니 당연히 왕래도 없었다. 중국의 ‘비단의 길’, 당승의 서역행, 정화의 대원정, 콜롬부스의 항해 등 어쩌다 기적의 길들이 생겨도 짧게는 몇달, 많이는 몇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야 가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컸던 지구가 이젠 마음만 먹으면 바로 련락이 닿을 수 있고 아주 짧은 시간내에 왕래할 수 있는 ‘지구촌’, 하나의 작은 마을이 되여버렸다. 장자 글 속의 붕새는 하루에 구만리를 날아간다. 교통수단이 발전하지 못했던 옛시절, 일반사람은 상상조차도 불가능했던 거리이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의 ‘붕새’는 무한히 커보였던 지구를 ‘지구촌’으로 만들어주었고, 그 덕분에 전에는 지구의 한 귀퉁이에서만 일어나던 일들이 순식간에 한바퀴 돌면서 동시발생이 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인간들은 지구 저쪽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로 알 수 있고, 쉬이 가닿을 수 있다는 성취감에 빠져있었고, ‘마을’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한껏 즐겼다. 륙로, 수로, 항공으로 얼기설기 얽혀진 지구촌은 인간사회의 발전과 생활에 많은 편의를 제공한 동시에 신종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바이러스의 전파에도 더할나위없이 좋은 통로를 만들어준 셈이다. 바이러스 역시 기생에 적합한 생물체에 정착하고 그러한 생물체가 많을수록 생장도 빠를 것이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니 늘 인간이 밀집되여있는 곳에서 대량의 죽음이 생기고 왕래가 빈번한 지역들 간에 전파되기 마련이다. 역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옛말은 그른 데가 없는 것 같다.   신종코로나페염이 시작되고 계속 이어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인간이 자연의 보복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리유는 인간이 스스로 지구의 주인으로 자처하면서 무분별하게 파괴와 채취를 하여 자연이 노해서 징벌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럴 듯한 말이다. 교통수단과 같은 인류문명이 창조한 도구 외에 자원 람용, 핵무기 개발과 사용, 무차별한 채벌, 생물 먹이사슬 파괴 등등 전문가가 아니라도, 그리고 전문적인 설명이 아니라도 수긍이 가는 례는 많고도 많다.   사실 력사 속의 인간들도 매번 큰 재앙이 있을 때면 공포에 빠지면서 반성하곤 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홍수, 지진, 해일 그리고 전염병 등 재앙의 정도가 심각할수록 반성의 목소리도 커지는 것 같다.   가능한 한 편한 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것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도 인간의 본능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래서 평화로운 시기에는 지구의 주인으로 자처하면서 자연의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능력을 한껏 부풀린다. 자연에 대한 모든 행위를 합리화하고 오직 그것만이 인간이 더 잘 살아가는 길인양 서로를 세뇌시킨다. 그러다 정작 어느 날, 자연이 갑자기 꿈틀거리면서 요동을 치면, 그래서 죽음의 공포가 느껴지면 얍삽한 모습을 바로 드러낸다. 절망, 공포와 함께 반성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하늘을 찌를 듯하던 인간의 능력은 한없이 보잘것없는 것으로 변신한다. 그래서 삶에 대한 갈망을 여러가지 형식적인 것에 기탁한다. 부처에게 빌고 옥황상제를 비롯한 모든 신들에게 빌고,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무엇인가에 기도한다. 죽음의 위협을 느끼는 정도가 심할수록 무엇인가에 의지하는 마음은 더 간절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소위 상류층, 부유층이라고 자부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일수록 더욱 전전긍긍한다.   이처럼 인간은 결코 평소에 떠벌이는것처럼 강하지도 않고 유능하지도 않으며 지구의 유일한 주인도 아니다. 다만 인간들은 오직 재앙이 떨어져 죽음의 공포를 느낄 때만 자기의 한계를 인정할 뿐이다. 위험성이 멀어졌다고 생각되는 즉시 안일해지고 교만해지고 선택성망각증에 걸린다.   이번 신종코로나페염 위기를 중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직시하고 상응한 대책을 세웠다. 전 국민이 외부출입을 제한하도록 하면서 의료진과 지원자들, 림시병원 건설자들 등 방역에 투여된 인원들은 신속하고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임으로써 신종코로나페염과의 전쟁을 개시했다. 동(动)과 정(静)의 호흡으로 신종코로나페염을 치료하고 바이러스의 전파경로를 차단시켰다. 3개월간 신종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을 거쳐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은 상대적 안전지역으로 전환되였고 우리 모두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였다.   죽음의 신이 언제 누구에게 덮칠지 모르는 시기에 전 국민은 정부의 호소에 발맞춰 상당히 절제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많은 사람들은 자원봉사 등을 통해 초자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매일 늘어나는 확진자수, 사망자수에 가슴 아파하고 마음을 졸이고 무서워했다. 3개월후, 우리는 아주 제한된 범위에서만 움직이던 데로부터 점차 활동반경이 넓어지게 되였고 이젠 중국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관광촉진사업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차차 자유가 주어지고 예전의 일상으로 조금씩 복귀하자 처음보다는 좀 먼 거리에서 늘어나는 확진자, 사망자는 하나의 수자로만 인식되고 있다. 위험이 좀 멀어졌다고 인식된 지금 사람들은 놀라운 수자에 혀를 차고 입으로는 여전히 자연의 징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절실함은 무뎌졌고 성찰과 절제도 퇴색되여가는 느낌이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보다 인류에게 더 큰 위협을 주는 문제들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에도 주의를 일으키지 못하고 신종코로나페염이 중심문제로 떠오른 것에 아쉬워하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자연이 주는 시련은 어느 한 지역, 한 나라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가 공동으로 노력해야만 하는 사안들이기 때문에 이번 신종코로나페염을 계기로 다 같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식이 생기고, 그러한 체제를 마련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이다. 자연생태 악화, 기후온난화, 에너지고갈 등이 서서히 물밑파도를 형성하여 거세차게 인류를 휩쓸어버릴 수 있는 더 공포적인 재난으로 되는 것을 대비하여 미리 개선하고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지속적으로 생존하고 발전하는데 필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현실에 기반하여 발전적 시야로 장기목표를 세우기로 유명하다. 일례로 ‘두개 백년’이라는 분투목표는 1997년에 처음 발의하여 올해까지 23년을 달려왔고 올해는 신종코로나페염 위기 속에서 첫 백년 분투목표를 향해 최후질주하고 있다. 그리고 향후 30년간은 두번째 백년 분투목표의 실현을 위해 전 국민이 합심 협력할 것이다. 자연의 징벌이란 말을 입에 달고 있는 우리 개개인도 눈앞의 편의추구보다는 좀 더 멀리를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한 듯싶다.   우리 모두가 평소의 아주 작은 일로부터라도 조금이나마 자제를 할 수 있다면, 절박할 때의 내심 성찰을 현실화한다면… 개개인의 노력은 너무나도 미소하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여기에 참여한다면, 장시기 동안 이어나가고 차차로 이러한 문명체제가 만들어진다면 력사는 계속 쓰여지고 지구촌은 더 오래동안 빛을 발하지 않을가 싶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인간은 이 지구에 더 오래동안 존재하기 위해서는 머리 숙이는 것을 배워야 한다. 력사는 절대 어느 소수의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수의 이름이 기록되였을 뿐이지, 그 몇몇 소수에 의해 씌어진 것은 아니다. 소수자의 리론에 다수의 협력이 합세하여 력사를 쓰고 새로운 문명이 탄생된다.   중국은 자고로 물아일체, 만물일체라는 화합사상을 문화적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무작정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승리라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할 시기이다.   2005년부터 ‘록수청산이 금산은산’이라는 표어가 절강성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하였고 2018년부터는 전 국민의 리념으로 도약시켜 자원절약과 환경보호에 국가적 차원에서 노력을 하고 있다. 또 우리 나라에서는 2012년에 ‘인류운명공동체’ 가치관을 발의했다. 지구촌의 촌민으로 서로 간의 거리가 단축된 현시대에 인류운명공동체 의식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어느 한 구석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나와는 무관하다는 식의 무관심은 인간들을 위험으로 빠뜨리는 일환으로 되고 있다. 이젠 방관자는 없다. 너나할것없이 다 당사자이고 책임주체인 시대가 온 것이다. 운명공동체 의식을 발휘하여 인류에게 다가온 사안들을 다 같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신종코로나페염은 아직 진행중이다. 상대적 안전지역에서도 다시 불쑥불쑥 튀여나와 빨간 신호등을 켜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금의 신종코로나페염도 점차 력사 속의 한페지로 넘어갈 것이다. 언제나처럼 위기 속에서 기회를 잡는 인류는 또 한차례의 발돋움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완치의 방법이 없어 일정기간마다 인류의 생명을 앗아가는 페스트처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역시 다시 침범해올 수도 있다. 지금은 현시대의 사람들이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인간과 자연의 다양한 면을 보면서 더 큰 재난을 대비하는, 아니 더 큰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절제의식을 가지고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단계인지도 모른다. 경종이 울릴 때만이 아니라 절제된 행위가 몸에 베여있는 습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권진홍 략력]   성명: 권진홍(权震红)   성별: 녀   출생년월: 1976.8   소속: 북경련합대학 관광학원   전공: 조선어학   학력: 연변대학 조문학부 문학 학사 연변대학 조문학부 문학 석사 연변대학 조선-한국학원 문학 박사   경력: 북경련합대학 관광학원 부교수 (2007.7 – 현재)   인민넷 조문판 
140    혁명화가 한락연선생을 기리며 댓글:  조회:1668  추천:1  2020-08-07
[정음문화칼럼] 혁명화가 한락연선생을 기리며 리성일(중국사회과학원)   2020년 7월 30일, 우리민족의 걸출한 혁명가이고 예술가이신 한락연선생(1898-1947)의 서거 73주기가 된다. 얼마전에 중국미술관이 제작한 《한락연 탄신 120주년 중국미술관 소장 한락연작품전 작품집》이 문화예술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였다. 이 작품집은 2018년 5월부터 9월초까지 전시된 여러 작품과 자료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되여 한락연선생의 작품집은 중국미술관과 심천관산월미술관이 2007년에 편집, 출판한 《열혈단심 주화혼―한락연 회화예술전》, 《한락연회화작품집》 등 여섯권이나 된다. 여기에 이미 작고한 중앙당학교의 최룡수 교수가 주필한 《한락연을 기리며(缅怀韩乐然)》(민족출판사, 1998년 출판, 2017년 재판), 룡정한락연연구회의 김동수 주임이 주필한 《한락연기념활동문헌집》(연변대학출판사, 2012년), 장효서(张晓西), 위아리(魏亚利) 두분이 저술한 《한락연전》(연변인민출판사, 2012년),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김혁선생이 저술한 《한락연의 이야기》(연변인민출판사, 2013년) 등을 합치면 한락연 연구 및 소개에 관한 단행본이 10권에 달한다.   특히 중공료녕성당위연구실과 료녕성중공당사인물연구회가 2016년에 편집, 출판한 《료녕당사인물전》(제2권) 한락연편은 지금까지의 연구를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 료녕성당사연구실의 라점원(罗占元), 왕은보(王恩宝) 두 연구원은 최룡수 교수 등 학계의 연구업적과 자료를 바탕으로 한락연선생의 혁명활동과 업적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고찰, 정리하였다. 이러한 연구와 자료발굴과 함께 한락연선생에 대한 평가도 점점 심화되고 있다.   원 중앙통전부 부부장이며 원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리덕수 주임은 한락연선생에 대하여 “정치상에서 다섯가지 첫번째”라고 평가했다. 우선, 한락연선생은 1923년에 당에 가입한 중국조선족중의 첫 공산당원이라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동북지역 첫 당조직 건설을 위하여 최초의 당원들을 발전시켰으며 당조직 건설에 직접 참여하였다. 세번째는 흑룡강지역에서 우리 당의 교통소와 련락소를 처음 건립하였다. 네번째는 중국조선족중에서 처음으로 유럽에서 진행된 국제반파쑈전쟁에 참가하였으며 프랑스에서 중국의 항일투쟁활동을 조직, 참여하였다. 다섯번째는 국공합작시기에 조선족출신으로서 국민당 소장신분을 가지고 국민당 고층인원에 대한 통일전선사업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평가와 함께 한락연선생에 대한 예술상의 평가도 매우 높다. 중국 외교부의 강기민(康冀民) 대사는 한락연선생은 “문화예술상의 다섯가지 첫번째”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첫번째는 동북지역에서 봉천미술전문학교(동북지역 첫 미술학교)를 창설한 교육가이다. 두번째는 신강 키질석굴(克孜尔石窟)을 처음으로 고고발굴한 중국인 화가이다. 세번째는 유화와 수채화를 체계적으로 리용하여 서북지역의 사회풍모, 인정풍토와 인민들의 생활을 그려낸 인민예술가이다. 네번째는 처음으로 미술, 촬영, 창작 등 방식을 결합하여 국내외 항일활동을 보도한 전선기자이기도 하다. 다섯번째는 미술창작에 있어서 동, 서방문화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특출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그에 대하여 북경언어대학의 성성(盛成) 교수는 “중국의 피카소”라로 칭하였다.   2018년 5월, 중국미술관은 한락연선생의 부인인 류옥하(刘玉霞)녀사가 공화국창건후에 국가에 기증한 135점의 그림작품과 새로 발굴한 자료, 키질, 벽화, 영상 등을 결합하여 ‘실크로드 우의 무지개―한락연 탄신120주년 작품전’을 개최하였다. 같은 해 7월 2일, 중국공산당 창당 97돐을 기념하여 심포지엄이 중국미술관에서 열렸으며, 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이며 중국미술관 오위산(吴为山) 관장은 한락연선생에 대하여 예술가, 고고학자, 혁명가이며, 특히 중국미술계의 첫 당원이라고 강조하였다. 나아가 그는 한락연선생은 장기적으로 당의 조직, 련락 및 정보활동에 종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자로서 신강 키질석굴 예술을 체계적으로 발굴, 연구, 정리한 첫 중국인 화가라고 높게 평가하였다.   2019년 1월, 중앙미술학원 미술관에서 개최한 ‘선구자의 길―프랑스 류학파 예술가와 중국 현대예술(1911-1949)’ 전시회에 서비홍(徐悲鸿), 오작인(吴作人), 상서홍(常书鸿) 등 중국의 유명한 대화가들과 함께 한락연선생에 대한 소개와 작품이 전시되였다. 중앙미술학원 설계학원 원장 김일룡 교수는 한락연선생은 신강 키질석굴에 대하여 가장 일찍 예술고고학을 연구한 학자로서 문물의 발굴, 정리 및 보호에 있어서 탁월한 기여를 했다고 강조하였다. 키질석굴은 기원 3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석굴이며, 돈황막고굴, 운강석굴, 룡문석굴과 함께 4대 불교석굴의 하나이기도 하다.   한락연선생의 고고학 업적은 높게 평가되여 2015년말에 신강 구자연구원(龟兹研究院)은 키질석굴 내부에 한락연동상을 세웠다. 이 동상은 1947년에 한락연선생과 함께 갔던 네명 학생중의 진천(陈天) 화가의 아들인 진운강(陈云岗)선생이 직접 제작, 증정한 것이다. 현재 진운강선생은 국가화원(国家画院) 조각원의 집행원장이며, 키질석굴 고고발굴에 참여한 한락연, 진천, 조보기(赵宝琦),번국강(樊国强),손필동(孙必栋) 등 다섯분의 조각상을 제작하고 있다.   2018년 11월, 중국조선민족사학회 한락연연구전업위원회(2017년 5월 설립)는 한락연선생의 모교인 남경예술학원(전신은 상해미술전문학교)을 방문하여 자료 발굴, 교류 협력에 관하여 의논하였다. 남경예술학원 학보 《미술과 설계》 2018년 제6기는 본 호의 명가로서 한락연선생을 전문 소개하였으며 민국초기 현대 미술교육제도의 보급자, 시험사라고 높게 평가하였다. 방문기간 연구회 일행은 대학 캠퍼스내에서 선서 모습을 하고 있는 한락연선생의 동상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되여 한락연선생의 동상은 룡정 락연공원, 신강 키질석굴과 남경예술학원까지 합쳐 세 곳에 모셔져있다.   특히 고향인 룡정에는 한락연연구회가 설립되여있으며, 락연공원, 한락연동상과 락연정이 만들어져 룡정시의 중요한 애국주의교육기지와 관광명소로 되고 있다. 2018년 9월에 연변주당위 선전부, 룡정시 당위와 인민정부는 ‘한락연탄신 1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룡정에서 성황리에 개최하였으며, 새로 건축한 룡정시당안관 1층에 한락연전시청을 전문 설치하였다.   이외에 룡정실헙소학교에는 한락연예술단, 한락연장학금, 룡정고급중학교에는 한락연서화실과 화극 이 만들어졌으며, ‘락연컵’ 미술시합도 룡정에서 여러차례 개최되였다. 다년간의 노력으로 인하여 한락연선생은 중국조선족의 첫 당원으로서 중국인민해방군군가의 작곡가 정률성선생, ‘영화황제’로 불리웠던 김염선생 등 조선족 문화거장들과 함께 우리 민족의 문화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2021년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현재 중공당사인물연구회는 《중공당사중요인물사전》을 집필중인데 여기에 한락연선생이 들어간다고 한다. 또한 작가 김혁선생도 《한락연평전》을 래년에 출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왔다. 이외에 지난해에 만들어진 한락연 다큐멘터리에 이어 여러가지 예술작품들이나 작품전시회도 기획중에 있다고 한다. 특히 한락연선생의 따님인 한건립녀사는 중국조선민족사학회 한락연연구전업위원회와 함께 선생에 관한 업적과 자료 수집, 발굴 및 선전에 모든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건립녀사는 자신의 아버지의 혁명업적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조선족들의 력사와 민족적 긍지를 고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수차 강조하였다.   한락연선생의 혁명생애와 예술업적에 대한 칭송은 오늘날에도 계속 널리 전파되고 있으며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는 한락연선생과 같이 매우 많은 혁명선렬들이 있으며 그들의 생명과 선혈로 인하여 오늘의 평화와 행복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다가오는 당창건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국가와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 헌신한 혁명선렬들의 업적을 기리고 널리 알려 후대들을 교육하는 사업이 시급히 전개되여야 할 것이다. 인민넷 조문판  리성일 략력   성명: 리성일(李成日)   성별: 남   출생년월: 1971.3   소속: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글로벌전략연구원   전공: 동북아국제관계   학력: 일본 게이오대학 법학박사 북경대학 국제관계학원 법학석사 북경대학 정치학&행정관리학부(현 정부관리학원) 법학학사   경력: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글로벌전략연구원 조리연구원(2013.1 – 현재) 한국 동서대학교 국제학부 조교수(2008.9-2012.9) 일본 게이오대학 법학부 방문연구원(2008.3-2008.9)   주요 론저: 저서로는 《중국의 조선반도정책》(2010, 일본, 게이오대학출판사), 공저로는 《조선반도의 질서 변혁》(2013, 일본, 게이오대학출판사), 《조선반도와 국제정치》(2005, 일본, 게이오대학출판사), 《조선족 3세들의 서울이야기》(2011, 서울, 백산서당), 역서로는 《일본의 미들파워외교》(2015, 사회과학문헌출판사) 등.   “中日关系:转型中的博弈与磨合”(2015), “中韩建交与中国—朝鲜半岛关系的结构变革”(2014), “日本解禁集体自卫权的举措与影响”(2014), “朝鲜族研究的现状及课题-中日韩三国为中心”(2014), “东亚地区合作:中国的视角”(2014), “中国朝鲜族在中韩关系发展过程中的作用”(2013) 등 20 여편 론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  
139    중국의 농촌진흥전략정책에 대한 소고 댓글:  조회:1621  추천:0  2020-07-23
신종코로나페염이 전국에 큰 충격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2월 5일 중앙은 ‘3농’사업과 관련된 1호문건을 발표하였다. 특히 지난 2018년 이후에 시행된 농촌진흥정책 추진전략의 가속화에 계속 박차를 가한다고 분명히 표명하였다. 이는 중국정부가 초요사회 건설목표의 달성을 위한 중요한 마감년도이자 빈곤퇴치 난관공략의 마지막 해인 2020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농촌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특히 ‘3농’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하여 2004년부터 2020년까지 무려 17년간 줄곧 이를 중앙 1호문건으로 취급해왔는데 그 위치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신종코로나페염으로 연기되여 2020년 5월 22일에 개최되였던 ‘량회’에서도 농촌빈곤퇴치문제와 농촌진흥전략을 유기적으로 잘 결합시켜 더욱 현대적인 농업생산 발전을 도모한다는 향후의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농촌진흥전략”(乡村振兴战略)’이라는 공식적인 개념은 2018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2018년 9월, 중앙과 국무원에서는 을 전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그 발전방향성에서는 경제건설, 정치건설, 문화건설, 사회건설, 생태문명건설, 당의 건설을 통한 농촌관리체계 구축, 즉 농업•농촌현대화를 이루고자 하였다.   그 내용을 대체적으로 살펴보면 2020년까지 농촌진흥전략제도의 틀과 정책 체계를 재확립하고 2035년까지 결정적인 진전을 거둬 농업, 농촌의 기본적인 현대화를 이루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어 2050년까지 강농, 혜농, 부농(强农、惠农、富农)의 단계가 실현되여 전면적인 농촌진흥을 이룬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또한 네단계 농촌발전구상도 구체적으로 담았다. 여기에서 2 단계 농촌진흥정책의 핵심으로 실현해야 할 과제로는 1, 2, 3차 산업과의 융합발전을 이룩하고 도농주민의 생활수준 격차를 좁혀 지역적 빈곤으로부터의 탈피를 추구하며 농촌기반시설을 확충하고 농민 거주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2035년까지 실현하고자 하는 3단계 핵심과제는 농민 취업 수준을 높이고 상대적 빈곤에서 벗어나서 공동부유의 발걸음을 내딛으며, 도농 기초공공서비스의 균등화를 실현하고, 도농 융합발전체제(기구)를 완비시켜 농촌의 문명건설과 농촌관리체제 완비 및 농촌생태환경의 호전과 아름다운 농촌을 실현하는 것이다. 2050년에 이루고자 하는 큰 그림은 농촌의 전격적인 진흥 및 강농, 혜농, 부농을 실현을 통해 리상적인 농업사회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감안할 때 2020년은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밖에 없다. 괄목해야 할 점은 중국정부가 그동안 경제의 빠른 성장과 더불어 전체적인 국민소득수준과 도시화률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2019년말까지 중국의 1인당 GDP는 1만딸라를 넘어서 10276딸라에 도달하였다. 2019년의 중국의 도시화률도 60% 이상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약 5.6억명에 달하는 인구가 농촌에 거주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2019년말까지 농촌의 빈곤인구를 9500만명 해소하였고, 농촌의 빈곤률을 2% 이내로 감소시켜 력대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중국정부의 큰 노력의 좋은 결실에도 불구하고 2019년말까지 아직 여전히 52개의 빈곤현이 존재하고 있고, 빈곤률이 10% 이상을 치지하고 있는 빈곤촌도 1113개나 현존하고 있다. 따라서 2020년까지 계속 농촌진흥정책체계의 확립을 보다 강화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2단계적인 목표실현의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중국 전체 인구의 약 40%가 농촌인구로 된 현재로서는 농촌인력의 로령화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때문에 농촌의 현대화 개조를 통하여 생산성을 높여 소득을 끌어올려야 할 사항과 농촌의 로후복지 증대 등 여러 사회문제점도 반드시 동시에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지난 농촌문제의 해결에서 여러 가시적인 성과를 이룬 것을 바탕으로 중국으로서는 ‘3농’문제가 이미 유럽 등 발달국과 마찬가지로 농장, 식료품, 미래를 뜻하는 3F(Farm, Food, Future)와 직결되여 지속적으로 키워나가야 할 과제로 거듭나게 되였다. 여기서 농촌의 새로운 활력소를 찾고, 식료품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건전하고 친환경적인 농촌사회구조를 키워가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 대두하였다.   이러한 국가적인 대형 핵심프로젝트의 재원조달도 괄목해야 할 부분이다. 농촌진흥정책을 펼치기 위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조달할 중국의 국가적 예산지원금은 약 7조원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막대한 자금의 조달은 2019년 1호문건에서도 거론되였는데 주로 정부적 재정자금, 금융자본, 사회자본 등 3박자로 함께 이루어지도록 규정하였다.   농촌진흥전략정책에 소요되는 정부적인 재정자금은 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지원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실제로 2019년말까지 전국적으로 중앙 및 지방정부의 농업수리용 재정지출총액은 이미 2.2조원 규모나 이루어져 전년 동기 대비 약 7% 늘어난 상황이다. 금융자본의 지원방식은 주로 중국인민은행의 주최로 여신, 담보, 증권, 선물, 리스, 신탁 등 다양한 금융방식을 활용하여 농촌자금력지원에 총력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2019년 6월 국무원에서는 (《关于促进乡村产业振兴的指导意见》) 정부문서를 내놓았는데,현급 금융기관들은 현지의 예금을 잘 활용하여 농촌진흥산업에 사용할 것을 권장받았다. 이러한 조치로 향후 약 10조원의 농업대출이 각 현급의 농촌진흥발전사업에 조달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정부적으로 정책금융기관들도 장기 저금리대출을 농촌진흥전략발전에 많이 지원해줄 것을 권장받아 농촌시장의 다양한 자금수요의 충족을 주고자 하고 있다. 사회자본방식은 주로 농촌토지시장의 활성화 추구 및 민간상공자금의 투자격려방식을 거론할 수 있다. 즉 새로운 《토지임대법》의 출범 및 갱신으로 토지임대를 통해 약 전체 농촌의 3분의 1 농지의 류동성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지금까지 약 1조원 규모의 민간상공자금도 전국의 농촌진흥발전사업에 활용되고 있는데 향후에 그 지원규모를 더욱 확대하여나갈 계획으로 정부적인 차원에서 이를 적극 격려하고 있다.   비록 중국정부의 이러한 거시적 차원에서의 지원은 력대급이지만, 중국의 농촌진흥전략은 현 시점에서 여전히 해결해야 할 점이 있다. 대체적으로 첫째로는 도시와 농촌간의 소득수준의 격차가 해소의 해결점이다. 례컨대 2018년말까지 중국 전체적인 도시의 1인당 소득수준은 농촌보다 2.7배나 높은 편이기에 격차해소의 어려움이 여전히 크다. 둘째로는 농촌의 사회보장제도에 여전히 취약한 부분이 많은 점이다. 락후한 지역은 여전히 농촌 의료시설이 부족하고 의료수준이 떨어져 의료환경에 취약점이 많다. 그리고 농촌의 문화, 체육 활동 다양성이 부족하고 기본생활보장제도와 양로보험제도가 새로운 갱신도 시급하다. 셋째로는 농촌의 인프라투자도 여전히 부족하다. 농촌지역은 전통적으로 기반시설이 부족한 상황인데 수요 대비 공급의 측면에서 지역별 투자의 불균형문제점이 존재한다. 지역별로 보면 주로 서부지역의 기초시설 공급수준이 동부보다 낮고 각 지역별의 내부적 공급의 상황에서도 비교적 큰 격차가 있어 이에 대한 보완성도 커보인다.   신종코로나페염 팬데믹(세계적 대유류행)으로 올해 세계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불황을 겪게 될 것이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했다. 올해 세계경제는 3% 역성장이 불가피하기에 향후 5년간도 글로벌경제는 결코 락관적이지 못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현재 신종코로나페염 전염병상황을 먼저 경험한 중국과 한국의 진정세가 세계적으로도 두드러지진 점이다.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이라는 말처럼 자국민의 먹거리 해결문제와 글로벌 식료품관련 시장의 수요전망도 획기적으로 커보인다. 이러한 글로벌시장에서 중한간의 비즈니스협력의 활성화가 보다 기대된다. 또한 중국의 농촌진흥정책전략에서 볼 수 있다싶이 2020년의 농촌빈곤퇴치를 계기로 향후에 스마트농업 등 4차산업관련 농업혁신분야에서도 더욱 큰 경쟁력을 키우고자 할 것이다.   중한 량국은 비록 2015년 중한FTA체결과정에서 농업분야에서 타결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농업분야에서의 보다 커질 잠재력이 있는 글로벌적인 시장성은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포스트코로나시대에 들어선 지금, 향후 농업분야에서 중한 량국의 더욱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국제협력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인민넷 조문판 
138    전염병과 함께 발전해온 우리의 력사 댓글:  조회:2057  추천:1  2020-07-07
전염병과 함께 발전해온 우리의 력사   최선향(장강사범학원)   지난 6월 28일, 전세계 신종코로나페염 루적 확진자가 1천만명을 돌파, 사망자는 50만명을 넘어섰다. 몇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던 신종코로나페염 확산이 래년 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지구화로 하나가 된 지구촌에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노마디즘적(미확정적)인 삶을 살아오던 많은 이들의 일상이 전염병으로 인해 많이 바뀌였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인적, 경제적 피해를 입게 되였다.   신종코로나페염을 겪으며 자연 전염병과 함께 해온 인류의 력사와 우리 조상들의 삶을 돌이켜 보게 된다. 력사를 돌아보면, 질병은 인류의 출현과 더불어 끊임없이 발생하였으며, 이를 치료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여왔으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만물이 력사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되여왔듯이 질병 역시 시대와 장소 등에 따라 변화,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질병 가운데서도 전염병은 전염성이 강해 사망자를 속출하는 등 인간의 정상적인 삶의 활동을 방해하였다. 14세기 중엽, 인류 력사상 가장 심한 질병으로 꼽히는 페스트(黑死病)가 류행할 당시 유럽에서는 사망자가 약 2500만명으로, 유럽 인구의 1/3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사회에서 전염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아주 컸다. 전염병이 돌면, 한 집안이 공동화(空洞化)되는 것은 흔한 일이였으며, 가족 구성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병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아 가정이 일시적으로 해체되는 경우도 많았다.   《고려사》에 예종(睿宗)5년(1110년) 4월에 “‘금년에 전염병이 크게 돌아 시체와 해골이 길에 널렸으니 해당 관청에 명령하여 그것을 거두어 묻게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니 왕이 이 제의를 좇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시체와 해골이 길에 널렸다”는 표현은 전염병으로 길거리에서 죽었거나 전염되여 죽은 사람을 제때에 묻어주지 못했던 전염병의 참혹함을 보여준다.   고대사회에서 전염병은 한 집안과 마을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 군현(郡县)에 타격을 주기도 했다. 조선왕조의 《세종실록》에 세종29년(1447년) 11월, 황해도에 번진 역병이 해주 지역의 인구수를 무려 1/5수준으로 전락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과장된 것일 수도 있으나 전염병이 해주지역에 준 타격은 아주 컸던 것으로 보인다.   가진 것 없는 일반백성들의 경우 전염병의 위험 앞에 적라라하게 로출되여있었다. 그러나 지배층이라고 해서 그것을 완전히 피해갈 수 있은 것은 아니였다. 학자들은 고려시대의 경종이나 예종, 인종 같은 국왕도 두창이나 홍역 같은 전염병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시대 왕실이나 고위관료들 역시 천연두(天花) 등 전염병에 걸렸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일기를 보면 전염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매우 컸다. 전염병이 돌면 사대부들은 발병지역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일시적으로 거처를 옮기는 ‘피접(避接)’을 많이 행했다. 일반백성들이나 노비들은 전염병을 피해 객지를 떠도는 류이민이 되거나 혹은 전염병에 걸리면 초막이나 피병소(避病所) 등에 ‘격리’되였다.   전염병이 창궐하면 감염을 두려워해 시체를 집단적으로 방치하는 상황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는 조선시대 지배층이 구축하고자 했던 유교적 인륜 질서를 무너뜨리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는 연산군 2년(1496년)에 “전 판관(判官) 박소정의 온 집안이 온역(瘟疫)에 걸려 부처(夫妻) 및 딸이 일시에 모두 죽었는데 그 아들 박석, 박질, 박무 등이 소렴(小斂)한 뒤에 병을 피해 나가서 지금 세 달이 되도록 시체를 빈 집에 두고 오히려 렴빈(斂殯)하지 않았다 하옵니다. 이 일은 실로 풍교(風敎)에 관계되오니, 해사(該司)로 하여금 그 아들을 국문하여 치죄하소서.”라는 기록이 있다.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했던 조선시대에 사족 신분으로 부모의 시신을 세 달 동안 방치하고 형제들이 모두 피접을 갔다는 것은 유교적 륜리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였다. 그만큼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컸다는 이야기다.   1821년, 조선에 콜레라(霍乱)가 최초로 발병한 이후 거의 3~4년 간격으로 류행하였는데 한꺼번에 전체 인구의 5% 이상이 사망할 정도였다. 콜레라가 만연하였던 조선시대의 상황을 살펴보면, 1886년도 서울에 대한 미국의 선교사이며 의사였던 알렌의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가난하고 잘 먹지 못하고, 바깥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주로 병에 걸렸고, 대체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였다 한다.   전염병은 전염성과 집단적 류행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소수 의사들의 노력만으로는 통제하기 어렵다. 중국 력사상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 3대 전염병의 대류행은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전기, 원조(元朝), 청조(淸朝) 시기에 있었다. 그러나 명조는 정부가 시체와 유골을 매장하고, 방(坊)을 설치하여 격리시키고, 관리를 파견해서 시찰하며 약을 나누어주고, 조세의 감면과 관을 하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데서 전염병의 류행 빈도수가 많이 줄었고 류행하는 범위도 축소되였다고 한다.   인류 력사의 흐름을 보면 전염병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사회에 많은 피해와 혼란을 초래하였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진정되거나 소리 없이 사라졌다. 또한 일부 전염병은 변종을 거듭하며 극성기와 소강기를 반복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전 인구를 대상으로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하였던 전염병 가운데서 일부는 시간이 지나면 면역력을 갖추지 못한 어린아이들이 주로 감염되는 소아병으로 정착하였다. 례컨대 유럽에서 천연두와 홍역은 16세기 이후 소아병으로 뿌리를 내렸다.   질병이 발생하고 전염되는 데는 세균, 바이러스라는 자연적인 원인도 있지만, 병균을 전염시키고, 증식시키는 사회적 요인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한 시대의 류행 질병을 연구하다 보면 기후변화, 전쟁, 국제관계와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 구조 및 변동 등과 련결되여 그 시대의 전체적인 사회상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인류의 력사는 전염병과 같은 우발적인 요소들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수많은 굴곡을 겪으면서 발전해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는 과거 그 어느 시기보다도 물질적으로 풍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지만, 인류가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영국의 력사가 토인비는 그의 저서 《력사의 연구》에서 인류의 력사를 ‘도전과 응전’의 법칙으로 설명했다.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인류의 성공적 응전이 인류의 문명과 력사를 발전시키는 바탕이 된다고 보았다. 그러고 보면 전염병은 많은 사망자와 사회적 불안, 공포를 야기하고 인간관계를 단절시키는 파괴적인 질병으로, 자연이 인류에게 던진 크나큰 도전이다. 그러한 도전 앞에 인류는 기존의 사회적 관계와 세계관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새롭게 재구성하는 ‘대응’과 응전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련마하며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한, 그리고 잘 살아가기 위한 노력으로 지금까지 문명의 꽃을 피워왔다.   근대 과학혁명 이후 과학이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모든 문제가 과학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는 과학만능주의 의식을 가지게 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류는 우주관광시대의 서막을 열었고 민간인들까지 우주려행을 떠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신종코로나페염은 과학만능주의에 젖어있던 이들에게 과학의 한계와 자연 앞에 겸허하지 못한 인간의 교만함을 깨우치게 해준다. 신종코로나페염을 겪으며 인류는 아프고 힘들지만, 현대 과학과 현존의 생활방식, 가치관 등에 대한 자아성찰을 거쳐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전염병과 공존하며 발전해온 우리의 력사와 같이…   인민넷 조문판 
137    산책자의 즐거움 전월매(천진사범대학교) 댓글:  조회:1493  추천:2  2020-06-26
산책자의 즐거움    전월매(천진사범대학교) 20세기 가장 중요한 비평가로 손꼽히는 발터 벤야민은 자본주의에 물들기 시작한 19세기 빠리와 20세기초의 베를린을 배회하며 ‘산책자’라는 화두를 던졌다. 벤야민이 말하는 산책은 우리가 말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는 낯익은 것이 붕괴한 도시의 거리에서 군중의 팔꿈치에 떠밀리여 기꺼이 회상에 잠기는 일이다. 또한 새로운 경험을, 순간적으로 스쳐지나는 의미심장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깨여있는 일이다. 도시산책은 근대에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해명의 물꼬를 열어주는 키워드였다. 조선은 근대이후 도시개념이 등장하였다. 20세기초, 조선작가들도 철도역이 서고 포장도로에 차가 달리며 병원이나 학교의 근대체재와 제도들이 들어서는 도시풍경을 산책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산책의 미학’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박태원의 소설 이다. 소설은 주인공 구보씨가 정오에 집을 나와 하루종일 식민지 경성(서울) 시내를 이리저리 배회하다 새벽 2시에 귀가하는 것이 전부다. 구보는 하루 동안 특별한 행동을 하지도 않고 남다른 사건을 경험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동하는 장소와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촉발되는 상념들인 행복과 욕망과 고독과 불안과 초조와 기대가 펼쳐지며 과거회상과 함께 주인공의 산만하고 파편된 내면의식이 전면에 부각된다. 이러한 주인공을 우리는 ‘산책자’라 부른다. 산책자가 관찰한 도시 풍경과 거기에서 촉발된 주관적인 내면의식은 근대도시와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삶의 체현이자 작가의 사회현실에 대한 의식 반영이다. 도꾜 류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 실업자로 경성거리를 하루종일 헤매는 것은 당대 조선의 정치 경제적 상황과 련관지어 보면 단순한 소일거리로 해석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 식민지하에서 관료가 되는 것도 간접적이나마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동조하는 것이기에 의식 있는 지식인들에게는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산책은 일제의 왜곡된 식민지 정책으로 인해 소외된 지식인의 현실에 대한 반영이자 그러한 식민지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의 산물이라는 의식을 갖는다. 이렇게 보면 구보가 산책하는 도시 경성이야말로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글은 작가 박태원의 소설가로서의 자의식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결국 가난하고 고독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는 존재, 소설가로서 세속적 행복을 포기한 채, 고독하게 식민지 조선의 부정적 현실을 들여다보는 것, 소설가로서의 각오를 드러낸 자기반영적 소설이기도 하다. 그외에도 김광균의 , 리상의 , , 일련의 무의시 등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에서는 근대도시의 풍경을 통하여 근대인의 소외와 고독과 상실, 숨막히고 팍팍한 근대의 일상에서 도피하고 탈출하고자 하는 심경을 표현하였다. 현대로 와서 김연수의 리상문학상 수상작품 에서도 산책자의 즐거움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 속의 화자들은 모두 산책의 즐거움을 아는 인물들이다. 산책은 인간에게 최고의 유희이다. 산책자는 내가 속한 곳, 내가 살고 있는 곳의 풍경과 세상을 돌아보며 생각하고 사유하고 사색한 것을 글로 적어내는 것이다. 산책자의 시선은 공간적으로 도시, 농촌, 지역, 세계 모든 세상을 아우르고 시간적으로 고전, 근대, 현대, 당대를 넘나들며 나와 너, 그를 포함한 자아와 타인, 세상사람들의 다양한 삶과 경험들… 세상물정의 모든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욕망과 소외와 불안과 기억과 명예와 권력과 자살과 죽음 등의 세속의 리얼리티들이 들어있으며 로동과 인정과 분투와 성숙과 행복 등의 좋은 삶을 열망하기 위한 노력과 일상의 이야기들, 철학과 사상과 종교와 가치와 신념 등의 추상적이고 높은 경지의 정신적 세계들이 있다. 핵심은 산책자가 이러한 대상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사유하고 사색하며 글로 풀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생각하고 사유하고 사색한다는 것, 생각의 힘, 사색의 힘은 인간으로서의 특권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사색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인간의 실존적 의미를 사색과 련결시켰다. 쇼펜하우어는 에서 “스스로 사색하여 얻은 진리는 산 수족과 같은 것으로 그것만이 정말로 우리 자신의 것이다. 스스로 사색하는 사람의 정신적 작품은 정확한 빛과 그림자의 배합, 부드러운 색채의 완전한 조화로 생생하게 약동하는 한장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인다.”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사상과 의식을 가질 것을 주장하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자아를 알면 세상 모든 일이 이미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기에 자아를 아는 일은 진정 타인과 세상을 아는 일이다. 레브 똘스또이는 자아를 타자들 앞에 놓고 새롭게 인식하였으며 부단히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경주할 때 비로소 사회를 위한 글이, 새로운 문학의 국면이 창조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외부적으로 보면 귀족의 신분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똘스또이는 그럴 필요도, 필연성도 없었지만 자아를 타자 세계에 비추어 성찰함으로써 그 당시 상식화되고 당연시되는 농노제도에 회의할 수 있었다. 그의 그러한 의식이 시간과 시험을 견딜 수 있는 , , 와 같은 명작들을 낳을 수 있었다. 산책자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인간세상에 대한 사랑을 안고 경쟁과 투쟁대신 상호부조와 련대를 가져야 한다고 문학거장들은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산책자의 사회의식은 조선의 선비정신과도 련결되여있다. 조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선비정신은 개인적 차원에서 도덕적 삶과 학문적 성취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행동으로 나타나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구비하고 수준높은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면서도 이질적 존재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글로 풀어내는 일, 이는 글쓰는 이의 문체이자 풍격이다. 어떠한 글쓰기 기법이 좋은 것인지 레브 똘스또이, 체호브, 김유정 등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으로 증언하였다. 똘스또이는 문학은 고매한 리상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로씨야 농노의 오두막집의 벽을 뚫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쉽게 씌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체호브는 대중이 리해할수 있을 만큼 쉽게 써야 한다고 하였고 김유정도 생생히 살아숨쉬는 순박한 언어와 뚝심있는 해학, 익살스러운 재치가 결합된 글을 통하여 증명하였다. 독자들에게 읽히는 글의 감염력에 의해 훌륭함이 결정되는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산책자,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과 세상을 만나며 그 속에서 자신과 타인과 세상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보듬어주고 치유하고자 하는 용기와 의지와 노력에 그 즐거움이 있지 않을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즐거움이 확산되여 합창이 될 때 상처받은 사회는 치유의 희망을 보게 되는 것이다. 2020년 6월 21일  
136    주문빈렬사를 기리며 리성일(중국사회과학원) 댓글:  조회:743  추천:0  2020-06-15
포스트코로나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는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가 허명철 이번 신종코로나페염 전염병을 겪으면서 우리들의 일상에서 나타난 가장 큰 이변은 소독제로 손 씻기, 기침할 때 옷소매로 입 가리기, 집 나설 때 마스크 착용하기라 하겠다. 사실 력사적으로 놓고 보면 개인위생과 공공위생 등은 질병의 류행과 무관하지 않았다. 1450년대 프랑스 빠리에서 페스트가 만연될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목욕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체가 물과 접촉하게 되면 땀구멍이 확장되여 병균이 체내에 쉽게 침투할 수 있다는 론리때문이였다. 따라서 그 시대 사람들이 매일 세수하고 얼굴 닦는 것은 건강과 청결을 목적으로 한 위생습관이라기보다도 사회적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였으며 개인위생청결은 사회적 례의규범이였지 위생규범은 아니였다. 공공생활에서 밖에 로출되여있는 인체부위는 주요하게 얼굴과 손이다. 따라서 세수(손을 씻는다는 의미)하고 얼굴을 닦는 것은 체면을 유지하는 하나의 예술로 간주되였다. 하지만 이 같은 위생습관과 형상관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적공간에서 이루어졌을뿐 사회적인 공적 령역으로 확장되지는 않았다. 이와 달리 17세기 페스트가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될 당시 사람들은 공적 령역을 통해 페스트를 예방 통제하고자 시도했다. 당시 페스트에 전염된 사망자가 나타나게 되면서 공포를 느낀 도시 사람들은 시골로 피신가려고 했고 시골 사람들 또한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이들 도시피난민들의 입주를 막아나섰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시 도시로 돌아오게 된 시민들은 외부와의 교통단절로 인한 식량난마저 겪게 되면서 출구가 없는 죽음의 함정에서 탈출하는 방안을 모색하던 중 공공질서와 공공위생의 필요성을 의식하게 되였고 사회공공위생법령과 같은 여러가지 공공정책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개인위생을 지키는 것이 단순 체면유지만이 아닌 생명건강과도 직접적인 련관성이 있음을 깨달았고 깨끗한 물에 손을 씻고 목욕하게 되면 피부의 세균도 씻어버릴 수 있다는 위생관념도 수용되였으며 잇따라 도심에 대중을 위한 공공목욕시설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번 페스트사태를 계기로 사람들은 처음으로 개인위생을 지키는 것은 단순 나 개인의 건강만을 위한 것이 아닌 공동체내 모두의 건강을 위하는 것이며 위생을 지키는 것이 건강에도 리롭고 질병예방에도 유조함을 인지하게 되였다 아울러 이 같은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전 사회적인 공공위생의식 및 공공위생시스템을 구축하는 밑거름으로 되였다. 우리는 이번 신종코로나페염 전염병상황을 공공위생돌발상황으로 규명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공공이라는 점에 류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향후 포스트코로나시대에 접어들게 될 우리들의 삶에 매우 중요한 가치지향성을 시사해주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신종코로나페염 전염병상황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책략으로 사회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행위수칙을 강조해왔고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자주 손 씻기, 자가격리 등 방식을 적극 권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밀집되여있는 공공장소는 여전히 신종코로나페염 전염위험지역으로 지목되고 있는데 이는 공공정책 또는 공공시설의 미흡함도 원인이 되겠지만 공공령역에 드나드는 우리 개개인의 공공의식과 실천행위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보아진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위생을 지키고 청결을 유지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기본상식으로 되고 있지만 이는 개인차원을 넘어 공공위생도 잘 지켜가야 한다는 자각으로까지 연장되여있지는 않다. 시민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응당 갖춰야 할 시민의식이 결여되고 의무와 책임을 망각하고 있기에 도심을 가로 지나는 강물에 페기물을 던져 악취를 풍기게 하고 눈에 띄지 않는 구석구석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도 서슴치 않는다. 지어 사람들이 산책하고 휴식의 한때를 즐기는 공원 산책로에도 애완견들의 배설물이 널려있어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평소 우리는 집안이나 옷에서 약간이라도 이상한 냄새가 풍기면 바로 향수나 페브리즈를 치면서 냄새제거에 급급하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공공령역에 발을 들여놓으면 우리의 행위는 완연 달리 표현될가. 공공위생규범을 준수하고 공공도덕질서를 지키는 것이 우리 모두가 공존하고 공생하는 길이라는 소박한 도리를 몰라서일가. 솔직히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로서 공공령역을 구축해가고 있지만 공공의식이 자각에 이르기까지는 본능의 작동으로 종종 벽에 부딪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행동은 흔히 욕망의 지배를 받게 되며 욕망은 또한 개인의 이익 내지 수요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만의 욕구, 나만의 안일함을 앞세운 행위는 공공리익과 갈등을 빚게 되며 이러한 사적 욕망의 지배를 받는 개개인의 행위는 결국 공공질서와 규범을 무색하게 하고 공공위생의 란잡함을 초래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두가 익숙히 알고 있는 는 이야기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우공이 산을 옮기겠다는 정신과 대대손손 이어간다는 의지력에 감탄을 보낼 수 있지만 산을 옮겨야 하는 리유 내지 동기에 대해서는 찬성표가 쉽게 던져지지 않는다. 우공이 산을 옮기겠다는 동기는 지극히 단순한바 집을 드나드는 길을 막고 있다는 것이 고작이다. 자연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삶의 터전이고 삶의 자원이다. 이런 공공자원을 나의 집 앞길을 막았다는 리유 하나만으로 파헤친다는 것은 공공자원에 대한 파괴일 뿐만 아니라 모두의 리익을 침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처럼 나만의 리익, 내가 속한 집단의 리익만을 추구하면서 자연에 선전하고 생태를 파괴한 결과 우리 인간은 자연의 엄청난 보복을 당하고 있지 않는가. 나만의 리익, 나만의 편리를 주장하면서 사회공공생활에 피해를 주거나 공공위생을 지키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이번 신종코로나페염과 같은 또 다른 공공위생돌발사태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바야흐로 포스트코로나시대에 접어들게 되며 향후 어떤 형식의 공공위기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번 신종코로나페염을 계기로 우리는 기존의 공공에 대한 인식을 반성해 보면서 성숙된 공공의식을 키워가고 ‘소아(小我)’가 아닌 ‘대아(大我)’를 지향하는 자각된 공공행위를 권장해나가야 한다. 물론 지금처럼 매일 손을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양호한 자아보호의식을 강조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공공위생의식을 키워가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가 공공위생을 지키지 않고 공공령역에서의 청결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밀집되여있는 공공령역이 자칫 바이러스가 번식하고 전파되는 위험구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신종코로나페염과의 전쟁이 지구전으로 전환되여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우리의 일상도 신종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수많은 바이러스와 동반하게 되는 만큼 공공위생위기상황이 만연되는 것을 방지하고 통제하는 효과적인 통로로는 공공위생, 공공질서, 공공도덕 등이 주요한 키워드로 인지되여야 한다. 공공(公共)이라 함은 공(公)적인 령역에 너와 나 우리 모두(共)의 참여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집합체로 형성되는 공공령역은 나와 무관한 령역이 아니라 바로 나도 참여하고 있기에 이루어지는 령역이다. 그러므로 이번 신종코로나페염 전염병상황을 계기로 우리들의 공공의식도 새롭게 정립되여야 하고 이러한 공공의식을 바탕으로 자각된 공공령역을 구축해나간다면 우리는 포스트코로나시대에 발생 가능한 그 어떤 공공위생돌발상황도 유연하게 대응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인민넷 조문판
134    신종코로나페염과 함께 나타난 ‘자숙경찰’ 댓글:  조회:1531  추천:0  2020-05-22
신종코로나페염과 함께 나타난 ‘자숙경찰’   허연화     ‘자숙경찰’이란 말을 처음 듣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자숙경찰’이란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페염이 확대되면서 일본에서 생겨난 말이다.   일본에서는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대응에서 정부가 국민에게 ‘자숙요청’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도시봉쇠와는 달리 강제력이 없다. 즉 자숙이라는 명목이니 할지말지는 각자에 맡기며 정부에서는 부탁하는 형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자숙경찰’은 집단적이라기보다 개인적인 경우가 많다. 구체적으로는 휴업요청에 응하지 않거나 응하지 않았다고 착각한 가게에 협박전화를 하거나, 가게 문앞에 협박종이를 붙이거나, 인터넷에서 확정되지 않은 정보를 전파하여 인신공격을 한다거나, 다른 지역 차번호를 손상시키고 욕설을 퍼붇는다거나, 외출자숙에 응하지않고 밖에 나다닌다고 아이들을 욕하거나 경고하는 등 행위로 나타난다. 이외에 이들의 공격대상에는 려행자거나 려행자라고 착각한 사람들, 마스크를 끼지 않은 사람, 큰 도시에서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 병원계통에서 일하는 사람 및 그 가족들 등도 포함되여있다.   실제로 일본 각 지역마다 휴업요청에 응하지 않는 가게를 고발하는 전화가 한달에 몇백통 들어온다고 한다. 오사카만 해도 고발전화가 4월 한달 동안에 500건 이상 들어왔다고한다.   우에서 말했다 싶이 일본정부는 음식점등 가게에 대해 휴업요청은 했지만 강제력은 없다. 영업을 할지말지는 각 가게의 판단에 맡겨있다. 헌데 왜 ‘자숙경찰’들이 이리 난리를 피울가?!   일부 학자들은 여기에 대하여 일본의 법의 허술함을 지적한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해외 다른 나라들도 강제적으로 도시를 봉쇄하고 인간의 이동을 통제하는데 일본은 왜 못하는가?! 진정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자유와 인권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일본의 법률이 신종코로나페염과 같은 특별긴급상황에 대처할 법률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도 이번 신종코로나페염 위기를 통해 일본의 바이러스 연구 및 대처가 선진국답지 않게 예상밖으로 세계후진상황에 놓여있다는 진실이 밝혀짐과 동시에 이에 반한 법률대책 또한 하나의 맹점이였을 것으로 추적된다. 거기에 새로운 법규를 투입하고 정식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일본 사회문화가 합하여져 이번 일본정부의 “놀라울 정도의 무능함”을 보여주게 된 것이라고 판단된다.   신종코로나페염이 발생한지도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일본의 감염자 PCR검사상황은 현저한 개선이 보이지 않으며, 정부의 ‘자숙요청’이라는 미지근한 대응에 ‘자숙경찰’들이 여기저기에 나타나서 ‘정부대신’ 직접 ‘질서정돈’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는 ‘정의’를 행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라는 인류의 ‘큰 적’을 앞에 두고 볼 때 모든 바이러스감염을 확대할 것 같은 사람이나 행위는 공격과 비판을 받아야하며 배척해야 할 것 즉 자신이 하는 행위는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이들은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영업을 하고 있는 가게가 왜 휴업하지 않는지, 본질적인 리유가 무엇인지 이들은 사실 관심이 없다. 일본정부의 보상금 등 보호조치가 뒤밭침해주지 않는 한 얼마나 많은기업과 개인가게가 파산의 위기에 처하게 되고 가족이, 사람이 벼랑 끝에 몰려있는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는 데 말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도꾜에서 야끼니꾸(구이고기집)가게를 운영하는 조선족 오너의 얘기를 들어보면 현재 도꾜의 많은 가게가 이미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라 한다. 이분도 가계수입이 적자이기에 그만두고 싶지만 현재 상황으로선 가게를 그만둘 경우 몇백만엔(1만엔 약630인민페 )이라는 가게정리비용이 든다고 한다. 즉 지금 손님이 없어 적자일지라도 영업을 하는 게 그만두기보다는 나으니 견지할 때까지 견지해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종코로나페염이 가장 심각했던 4월 한달 동안은 거의 대부분 가게가 휴업을 했으며 현재 재영업을 시작했어도 정부의 요구에 따라 저녁8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자숙경찰’현상을 일본특유의 원인으로부터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 샐러리맨의 생산력 높임의 근거이기도 한 일본의 집단주의의식이다. 흔히 “일본인은 집단주의, 미국인은 개인주의”라고 말하듯이 일본의 집단주의는 긍정적인 평가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번 신종코로나페염을 일본의 집단주의각도로 보면 “대부분 사람들이 집에 머물러있다. 왜 가게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사람과 달리 가게에 나오는가? 왜 규칙을 따르지 않는가?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는 건 응당한 것이다”하는 론리구조가 되는 것이다.   ‘자숙경찰’이란 단어는 사용하지 않지만 이와 비슷한 행위는 이번 신종코로나페염이 발생한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극단적인 례로 바이러스 확대 초기에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중국인 및 아시아인에 대한 공격과 차별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비판의 태도를 표시한다. 특히 중국인으로서 중국인이 바이러스 취급을 당하는 것에 대해 격분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감염이 확대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감염상황이 중국보다 심각해지자 극소수의 사람들은 미국인, 유럽인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에서 들어오는 중국인마저도 공격하고 배척한다. 물론 중국 국내사람들의 분노를 도발한 사례를 보면 감염사실을 감추고 중국에 귀국한 사람, 중국에 들어온 후 오만한 태도로 인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전개하듯 구체적으로 되여있다. 제목도 도발적이다. “나 유럽에서 왔는데 이 대우인가?(他们在国外装孙子,回国当大爷!)” 문장을 읽어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글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며 입국하는 과정에 보인 사람들의 행위의 ‘극도의 리기적’임을 질책하게 된다. 그리고 겨우 안정되여가는 중국의 신종코로나페염 현황에 변동이 있을가 봐 불안감에 떨게 된다. 일부 사람들의 옳지않은 행위가 극대화된 개별사례인데 사람들은 어느 순간 해외로부터 귀국하려는 류학생, 장기체류자들 대부분이 이러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토론의 전개는 드디여 주제를 벗어나 중국의 사회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외국거주 중국인을 면비로 치료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세금과 국가에 대한 공헌 얘기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해결과는 점점 멀어 왜지밭으로 벗어나간다. 중국의 사회보험이 보급된지 얼마 되지 않는 상황에서 많은 해외 류학생과 장기체류 중국들인이 위챗의 토론여부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 중국에 돌아가지 않는 많은 사람들도 말이다.   랭정하게 생각하면 사실 리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극대화된 일부 사례의 급속한 인터넷전파가 문제였다. 비상상황에서 중국 국내사람들에게 자아보호 본능이 나타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필자는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며 마음을 진정시켜본다. 그런데 왠지 모를 쓸쓸함이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몰려나와 어쩔 수가 없다.   미국의 중국인 공격에 분노하는 우리가 왜 누군가를 또 공격하고 있을가?   왜 우리 인간은 이렇게 두개의 전혀 다른 자대를 가지고 자기와 남을 평가하게 될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공포, 여러모로 제한을 받는 일상생활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의 증가, 언제 끝날지 모를 불안함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이 모든 것이 분출의 대상을 찾고 있다.   스케이프 고우트화(scapegoating) 라는 사회학적 단어가 있다. 본질적인 원인은 따로 있는데 책임을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전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일본의 ‘자숙경찰’과 같은 행위가 세계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스케이프 고우트화의 하나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의 불만과 불안의 원인은 따로 있는데 희생양을 따로 만든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본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 데 몰두하는 게 우선이다. 서로 원망하고 앙갚음하고 적대시하는 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본성이 리기주의적이라고 환경사회학에서는 말한다.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으로 인간의 ‘자아합리성’이 인간을 파멸로 나가게 만든다고 경종을 울린다. ‘죄수의 딜레마’게임은 이러하다. 공동으로 붙잡힌 죄수를 자백시키기 위하여 각자 다른 방에서 사법거래를 건다. “본래 5년징역이지만 어느 한쪽이 자백하고 다른 한쪽이 묵비할 경우 자백한 쪽은 석방하고 묵비한 쪽은 10년 징역으로 한다. 만약 량쪽 다 자백했을 경우 본래 대로 둘다 5년 징역. 만약 둘다 묵비한다면 증거불충분으로 감형하여 둘다 징역2년.” 사법거래내용으로부터 보면 두 죄수한테 가장 좋은 것은 마음을 하나로 하여 배신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가장 좋은 결과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게임을 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자백하여 상대방을 배신하는 선택을 한다. 왜냐하면 자백하는 것이 가장 리익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자백하고 다른 죄수가 묵비하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리익, 내가 자백해서 다른 죄수도 자백했을 경우 본래 대로 5년징역일뿐, 하지만 내가 묵비를 했는데 상대방이 자백을 하면 나는 10년징역이라는 큰 리스크가 동반된다. 인간의 리기주의본성으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없이 나는 자백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인간 개인한테 유리한 합리적인 선택이 사회전체에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기에 이것을 또 사회적 딜레마라고도 부른다. 즉 ‘자숙경찰’은 특별한 극단적인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즉 우리는 누구나 ‘자숙경찰’로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아합리한 선택을 하는 우리의 본능을 정시하고 그것이 가져오는 파멸적인 결과를 피하기 위하여 힘을 합쳐야 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차별하는 데 쓸데없이 힘을 빼지 말고 문제의 본질을 찾고 해결하는 데 노력하자. “아니면 다 같이 망한다”.   우리는 이런 사회적 딜레마를 벗어나는 노력을 이미 하고 있다. 의료종사자에 대한 격리가 있는가 하면 세계적으로 의료종사자에 대한 응원의 박수와 라이트업이벤트가 전개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협박전화와 협박장으로 힘들어하는 차이나타운음식점을 응원하는 메시지와 응원주문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의 취약성, 오만함, 가능성, 아름다움 등등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일본의 유명가수 사다마사시의 Happy Birthday(탄생을 축하합니다)라는 노래가사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누구나 한두개 마음속 깊이 열지 않는 방이 있다. 열심히 사는데 상처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 …… 하기에 Happy Birthday ! Happy Birthday! 어제까지의 당신은 죽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래일부터의 당신이 나는 좋습니다. 축하합니다.”   인민넷 조문판
133    전염병류행기간, 우리네 삶의 이야기(리화) 댓글:  조회:1773  추천:0  2020-05-07
전염병류행기간, 우리네 삶의 이야기(리화) 연변대학 사회학과 리화 지금 세계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인한 대혼란을 겪고 있다.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코로나페염 세계적 대류행(pandemic)을 선언했고 5월 6일 기준 확진자는 370만 명 가까이 육박해왔으며 25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속출했다. 벌써 몇달째. 차고 넘치는, 진위를 가릴 수 없는 각양각색의 정보들에 일희일비하고 언제 자신의 생존반경범위에 불쑥 들이닥칠지 모를 바이러스의 공포에 전전긍긍하는 나날들. 우리는 바야흐로 끝이 어디인지, 그 끝이란 게 과연 있기는 한 건지 도무지 예측 불가하여 불안한 전염병류행기간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공포의 바이러스에 의해 우리네 평온하던 일상 역시 조금씩, 아니 크게 변해가고 있다. 학교에 가서 뛰여놀고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종일 집안에 갇혀서 컴퓨터와 핸드폰을 마주해야 하고 경기불황으로 실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파산에 직면한 자영업자들이 부지기수이다. 결혼식이 무기한 연기되고 대학 졸업생들의 취직활동이 정지되고 토플, 류학, 각종 국가 자격증시험도 련달아 취소되였다. 마스크착용이 일상화되였고 어디를 가든 건강코드(健康码) 제시와 지역이동의 신고가 의무화되였다. 솔직히 음력설 즈음까지만 해도 호북성을 비롯한 극소수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는 신종코로나페염의 위험성을 그다지 실감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나서 금방 전국으로 퍼진 바이러스의 위협. 여기 연변에서도 어느 날 갑자기 약방이나 백화점에서 흔히 보이던 마스크가 자취를 감추고 위챗이나 인터넷에서만 고가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뒤이어 최초 감염자가 발견되고 도시는 모든 기능을 중단시켰다. 사회구역은 봉페식 관리에 들어갔고 한 가구당 하루에 한번, 한명씩 생활필수품 구입을 하도록 통제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층 번호를 누르는 티슈를 걸어놓았고 매일 소독수를 뿌렸다. 메이퇀마저 영업을 정지한 상황에서 온 집 식구가 집밥을 고집하는 '삼식이'로 되여버렸고 양고기뀀이며 랭면이며 먹고 싶은 것 투성이라는 '아우성'들이 여기저기서 울려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상황이 2월 말쯤이면 끝날 것이라는 빗나간 예상들을 했었고 학교들 또한 3주간의 온라인수업을 준비하도록 요구했다. 일본,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중국의 전염병상황'을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지원해줬다. 중국에서는 확진자 수가 확연히 줄어들고 일상으로의 복귀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듯 보였다. 그러나 이내 일본,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각지로 퍼져버린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그리고 귀국의 발걸음을 다그치는 사람들로 인해 또 다시 들썩이기 시작한 해외류입 신종코로나바이러스와 또 한번 멀어진 일상생활. 세계화된 지구촌에서 전염병은 국가와 지역의 장벽을 너무나 쉽게 뛰여넘는다. 국제적 경계가 없는 질병 바이러스에게 뚫지 못할 방어벽이 없다는 점을 우리는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교수는 베스트셀러 저서 《총, 균, 쇠》에서 세균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론리를 펼친다. 인간의 거의 모든 전염병은 동물에서 온다고 한다. 한편으로 인류는 약 8천년~6천 500년전의 신석기시대로부터 지속적으로 전염병의 고통을 받아왔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신석기혁명에 기인한 농업의 시작과 함께 인간은 가축과 더불어 모여 사는 정착생활양식을 취하게 되였으며 이는 또 역설적으로 인간이 병균의 숙주 역할을 하고 부단한 접촉과 교류를 통해 그 병균들을 전파, 확산하는 데 큰 기여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의 전 지구적 신종코로나페염 전염병상황은 21세기에 들어서 한층 활발해진 지역, 국가 간의 빈번한 인구이동과 긴밀한 련결성이 바이러스확산이라는 붙는 불에 얼마나 '신나게' 키질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국가•민족 간의 상호 배타와 혐오가 아닌 국제적 협력과 련대의 필요성을 새삼스레 깨닫게 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 의미 없는 사연과 사물은 없다. 혹독한 대가를 지불했고 여전히 진행중인 재난이지만 우리는 신종코로나페염을 통해 적지 않은 것을 보았고 배웠고 깨달았다. 전국 각지로부터 무한에 파견된 의료일군들과 거주지역 병원 의료종사자, 방역일군들, 사회구역, 정부 공무원, 경찰들의 로고에 감사하고 그들의 렬악한 근무조건에 가슴 아파하고 그들의 고상한 인간성에 감격했다.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오고가고, 주고받는 마스크에 깃든 정에 감동했고 인연의 소중함과 생명의 고귀함을 온전히 되새겼다. 신종코로나페염이 아니였으면 이러한 것들이 이렇게 또렷이 보였을가. 세계보건기구가 국제적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하듯이 당분간 우리는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보잘 것 없는 개개인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책임이고 선택에 불과하지만 질서를 지키고 남을 배려하고 함께 하는 요즘 우리네 평범한 일상이 어찌 보면 마땅한 치료제도, 백신도, 그 어떤 것도 기약할 수 없는 현재를 살아가는 가장 큰 지혜이자 원동력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몇달간의 경험과 성과가 이를 증명하기도 하기에.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이하는 속성으로 인간의 면역체계라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그 생존을 이어나간다. 인간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하나 또 하나의 바이러스를 물리치면서 버텨왔지만 바이러스 또한 끈질기게 따라붙어 항상 새로운 변종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다. 2세기 후반 유럽의 천연두로부터 시작하여 콜레라, 페스트…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2014년 에볼라바이러스, 2015년 메르스, 현재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언제나 위기를 극복하고 력사의 흐름을 주도해왔다. 신종 코로나페염은 사상 초유의 강적임이 틀림없다. 후세에 필히 기록되고 오래도록 전해질 오늘날의 우리네 삶, 누구 하나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민넷 조문판
132    아침엽서에서 나를 만나다(김화선) 댓글:  조회:1649  추천:0  2020-05-04
내가 한 지인으로부터 위챗으로 매일 아침엽서를 받아온지도 벌써 일년 반이 넘는다. 토요일인 오늘도 그분한테서 “좋은 아침입니다! 다시 오지 않는 소중한 오늘 행복하게 보내세요”라는 아침엽서를 기쁘게 받아보았다. 그러나 일년 반전에 나는 아침엽서를 몇번 받아보고는 마음속에서 ‘이상하다, 그분이 왜 나한테 매일 아침엽서를 보내지?’ 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마음속의 의문을 풀게 되였다. 나는 그 지인분이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많은 분들에게도 똑같이 아침엽서를 보내드린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지인분이 아침엽서를 모멘트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챗 친구들에게 1대1로 보내주었기에 받는 사람 립장에서는 나만 받는 아침엽서로 간주되여 더 소중한 마음으로 읽어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같이 정성담아 아침메시지를 보내주는 것을 견지해간다는 것이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닌데 그 분이 매일 해내고 있는 것에 대해 받는 우리의 립장에서 놀랍고 감탄하게 된다. 신종코로나페염 전염병상황발생 이후, 개인 커뮤니티내에서 아침엽서를 주고 받는 지인들이 늘어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아침엽서는 대개 화려한 색상의 꽃을 밑바탕으로 한 디자인을 선호하고 있으며 그 우에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 “상쾌한 아침”, “월요일 아침”, “3월의 첫 아침”, “꽃피는 4월의 첫 아침”등으로 시작한다. “좋은 아침!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 셋째도 건강, 오래오래 함께 해요.” “좋은 아침! 따뜻한 마음으로 동행하는 길엔 나눔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인생은 우리가 함께 하는 려행입니다. 늘 건강과 사랑이 함께 하시길!!!” “행복한 아침! 이왕에 사는 거 폼나게 살아요, 언제봐도 당신이 짱이야. 폼 나게 사는 지름길은 건강입니다. 늘 건강하세요.” “상쾌한 아침! 희망과 꿈, 사랑과 행복이 당신을 찾아갑니다. 평화롭고 복된 멋진 날 되세요…” 아침엽서는 주로 건강과 행복, 사랑을 기원하는 밝은 메시지를 전해준다. 지인으로부터 매일 받는 아침엽서가 나에게 그토록 인상깊게 남는 것은 그전에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기분좋은 체험이기 때문이리라. 우리 민족은 일반적으로 새해를 맞으며 서로 덕담을 주고 받거나, 결혼식날 같은 특수한 기념일에 웃 어른으로부터 미래가 밝기를 바라는 덕담을 듣는 등 덕담 문화는 있지만 매일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식을 치르는 문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매일 아침 5시 경, 동북 변강의 날이 밝을 무렵에 건강, 행복, 사랑을 기원하는 예쁜 아침엽서를 받아 읽고 나면 마음속으로 저도모르게 오늘 하루를 건강하게, 즐겁게, 의미 있게 보내야겠다는 의식을 갖게 된다. 건강, 행복, 사랑, 쾌락 등 사회의 보편적 가치는 우리가 매일을 살면서 마음으로, 언어로, 행동으로 손수 만들어가야 하는 것들이다. 평소에는 집과 직장 사이를 오가면서 늘 시간에 쫓기듯 살아오던 직장인들이, 지난 2개월 동안 신종코로나페염 방역기간에 공간이동이 없이 집에만 폭 박혀 지내면서 마음의 여유, 시간적 여유을 찾게 되여 그동안 보고 들은 건강비결을 하나하나 실천해볼 수 있게 되였다. 특히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를 전승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방법은 사람이 갖고 있는 자체 면역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음식, 운동을 통한 건강 챙기기에 심혈을 몰붓는 이들이 늘어났다고 할 수 있다. 필자도 집안 청소를 구석구석 하면서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것, 저녁이면 더운 물에 발을 담가 몸을 덥혀주는 것, 생강대추홍탕 차를 만들어 마셔 몸의 습기를 빼는 것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내 몸 건강을 챙기려고 노력해보았다. 개인의 건강과 행복은 가정의 건강과 행복과 갈라놓을 수 없다. 이번 신종코로나 전염병상황 발생 초기, 사람들은 이번 전염병상황이 결속되면 우리 사회에 임산부가 늘어날 것과 리혼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은 적이 있다. 사실 2018년에 우리 나라 리혼률은 이미 38%에 달하였고 중경시, 료녕성, 길림성, 천진시, 흑룡강성의 리혼/결혼 비률은 50%를 넘어 전국에서 앞자리를 차지했으며 상해시와 북경시의 리혼/결혼 비률은 48%에 달하여 그 뒤를 이었다. 중국 사회학자들이 놀랍게 이야기한 것처럼 “중국가정이 신속히 붕괴되고 혼인이 종결”되는 현상이 초래되였다. 당사자들이 혼인의 질이 낮다고 판단하여 리혼을 하고 재혼을 통해 혼인의 질을 높이려 한다면 그것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은 혼인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 “말하는 방식”이라고 입을 모은다. 즉 상대방의 약점만 골라 말하여 칼보다 더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하기 방식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리해하고 배려하는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말하기 방식이 부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혼인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한다고 한다. 말하기 방식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정서조절능력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정서에는 아주 화난 상태로부터 평온한 상태까지 약 4개 단계가 있는데 이 4단계의 정서를 잘 조절하여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행복한 혼인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연길시에 소재한 《연변가정교육문화원》은 2003년에 설립된 민간사회조직으로서 지난 16년동안 ‘행복한 가정과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를 조직의 목표로 삼고 ‘어머니행복학교’, ‘부부행복학교’, ‘가정해부학학교’등 교육프로그람을 운영해 온 전문교육기관이다. 이 문화원에서 교육받은 수료생은 5000여명에 달하고 연변의 많은 가정들이 교육을 통해 행복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수료생 대부분이 녀성이고 남성의 교육참여률이 낮은 편이다. 중국의 2016년도-2017년도 리혼안건에서 73.4%는 안해가 먼저 리혼을 제기한다는 통계수치로 볼 때, 행복한 가정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남편들이 더 애써 배우고 노력을 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아픔을 겪고 있는 와중에 한국사회에서는 n방 사건이 터지고 우리 나라에서는 대도시 모 상장회사의 법률을 전공한 고위직 간부가 미성년 양딸을 4년 동안 성폭력했다는 혐의를 받는 사건이 불거져서 사회적 화제가 되고 있다. 이에 공안국에서는 조사조를 내와 조사결과를 제때에 사회에 공포하겠다는 통보를 냈다. 미성년자를 보호하는 것은 문명사회와 법치사회의 최저선이다. 그런데 미성년자 대상 성폭력사건은 근절은커녕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범죄협의자들은 보통 문화수준이 높고 가정에서 훌륭한 아들이거나 아빠, 직장의 훌륭한 직원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중인격자로서 양의 가죽을 쓴 승냥이들이다. 미성년자 성폭력 사건의 발생은 사실 가해자와 피해자 두 가정에 모두 큰 타격을 주는 범죄사건이다. 과연 우리는 건강한 사회를 무엇으로 진단하고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 이번 신종코로나페염 전염병발생상황을 온 국민이 일심이 되여 통제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최저선을 넘어서는 미성년자 성폭력 범죄사건도 국민의 힘으로 철저하게 밀어붙여 철저한 조사결과를 얻어내고, 범죄자 처벌법을 완성해가고 성폭력방지 예방교육 프로그람을 비롯한 다양한 조치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생활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이 있다. 행복을 얻으려면 넒은 마음으로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오는 많은 번뇌, 불쾌한 감정들은 치유하고 포용해야 한다. 매일 아침 5시경 내 핸드폰으로 어김없이 날아드는 아침엽서는 인생선배인 지인들이 나한테 내가 이 세상을 이 만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수많은 고마운 사람들과 사랑하는 순간들 덕분이라는 것을 깨우쳐주면서 내가 넓은 마음을 갖도록 격려하는 것만 같아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인민넷 조문판 
131    신종코로나페염 전염병상황과 속죄양(안성호) 댓글:  조회:1853  추천:0  2020-03-31
안성호(절강대학 한국연구소) 며칠전에 필자는 호북성이 봉쇄를 해제한 첫날 5000만 호북사람들이 울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바이러스가 사라지고 있지만 편견이 사라지지 않아 외지로 향한 호북적 사람들이 곳곳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기피당하고 있는 서러운 사연들이였다. 하지만 이는 호북사람들만이 당하고 있는 일이 아니다. 세계적 범위에서 확산되고 있는 신종코로나페염 전염병상황으로 인하여 우리는 수많은 사회현상들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한쪽으로는 “무한 힘내라, 중국 힘내라”는 응원소리를 듣고 방호물자 기부 등 감동적인 장면들을 목격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심각한 기피, 차별 현상을 겪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지역에서는 중국인 기피 현상, 아시아 이외 지역에서는 동양인에 대한 심각한 기피, 차별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신종코로나페염발생국가에 대한 오명화도 요즘 련일 관심사가 되고 있다. 신종코로나페염발생국가에 대한 오명화 그리고 바이러스류행지역 출신 사람들에 대한 기피, 차별 현상은 미지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과 타자에 대한 경직된 인식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이번 신종코로나페염 전염병상황으로 인하여 처음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인류사회는 자연재해와 전염병 등 극복하기 어려운 재난이 들이닥칠 때마다 본인의 사회집단에 속하지 않는 타자를 속죄양으로서 악마화하여 배척 내지 징벌함으로서 재난을 극복하려 하였다. 즉 속죄양을 희생시킴으로서 본인이 속하여있는 군체를 보호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인류사회에서 보편적인 현상이였다.   극단적인 실례가 1923년에 발생한 일본 관동대지진후 조선인에 대한 대학살이다. 1923년 9월 1일, 도꾜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역에 진도 7.9급의 초강력지진이 발생하여 사망자, 행방 불명자가 14만명, 이재민 340만명에 달하는 엄청난 재난이 발생하였다. 재난의 혼란과 사회 불안 속에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방화하였다’, ‘우물에 조선인이 독을 넣었다’는 등 근거없는 류언비어가 란무하면서 조선인과 조선인으로 의심받았던 중국인이나 일본인까지도 학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6천명 이상이 류언비어에 의하여 일본 자경단에 학살당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 대만의 력사학자인 왕명가(王明珂)는 독약 고양이와 속죄양이라는 쩨마로 진행한 강좌에서 력사적으로 마을마다 보편적으로 존재하였던 챵족(羌族)사회의 독약 고양이 사례를 소개한 적이 있다. 챵족 마을마다 독약 고양이가 존재하는데 마을에 어떤 부녀가 정기적으로 밤에 독약 고양이로 변신하여 사람고기를 먹는 등 끔찍한 나쁜 짓을 한다는 이야기들이다. 마을의 약소한 변두리에 위치한 부녀들이 늘 악의 상징인 독약 고양이로 지목되였다고 한다. 마을에 불상사가 일어날 때마다 이는 독약 고양이의 소행이라고 지목되여왔다고 한다. 전통적인 챵족사회에서는 불안정성과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늘 존재하였다고 한다. 독약 고양이 사회현상의 존재는 사람들이 외부로부터 오는 위기와 공포심을 극복하고 마을 구성원들의 응집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였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 중세기 녀성 무당에 대한 박해를 비롯하여 인류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으로 외계의 ‘악마’의 침입이 ‘우리’의 순결과 단결을 파괴하였으므로 ‘우리’가 집단적 폭력으로 이러한 공포를 없애고 하나의 사회집단을 응집시킨다는 것이다.   신종코로나페염이 무서운 전파력과 사망률로 세계적으로 크게 류행하면서 인류사회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게 되였다. 이러한 공포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켜내기 위하여 신종코로나페염 류행지역 출신 타자에 대한 공공연한 기시와 사회적인 박해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이러한 기시는 왕명가가 말한 사회집단이란 범주도 타파하여 보다 미시적인 자기 주변 가족 범주로 축소되고 있다. 즉 아무리 친한 친척, 지인이라도 신종코로나바이러스와의 련관성이 고려될 때 무조선 기피와 기시의 대상이 되여버려 극단적으로는 아빠트단지에서의 퇴출까지 강요하는 것이다.   미지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필자도 마찬가지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릴 때 외출 자체를 꺼리게 되였고 돌아오면 열심히 소독하군 하였다. 하지만 타자에 대한 지나친 기피와 차별은 우리가 꼭 극복해나가야 할 과제이다. 바이러스발생국가에 대한 오명화와 바이러스류행지역 출신자에 대한 차별현상은 바이러스접촉사를 감추는 등 바이러스확산에 부채질 할 수 있다. 자아중심주의 시각에서 타자에 대한 오명화와 기피는 사회적 배려를 저애하고 위기처리에 저애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자칫하면 지역주의와 민족주의, 공포주의로 번져나갈 위험이 있다. 근래에 류행되고 있는 자국중심주의와 민족주의강화 현상은 이미 인류사회 발전에 붉은 신호등을 켜고 있다. 이번 신종코로나페염 전염병상황으로 인하여 더욱 심해지지 않을가 필자는 우려하고 있다.   2020년 3월24일에 진행된 도꾜대학 2020년 졸업식에서 고노카미 학장은 신종코로나페염 세계적 확산에 대하여 근년에 자국제일 주장이 눈에 띄이지만 한정된 지역의 리해관계에만 향한 행동이 알마나 무력한지는 이미 잘 알려져있다고 지적하였다. 의학원 학생대표 발언으로 무한출신 중국류학생이 선정되여 국가와 지역을 단절하여 의학을 론할수 없다고 하였다. 지당한 지적들이다. 신종코로나페염 전염병상황 극복을 위하여 국가와 지역을 초월한 인류운명공동체의 협력과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환자에 대한 배려로부터 시작하여 신종코로나페염발생국가에 대한 오명화와 지역출신 기피현상을 극복하여 보다 문명적이고 성숙된 사회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가 생각한다.
130    바이러스와 대국이 벌리는 21세기형 인민전쟁(박광성) 댓글:  조회:2036  추천:1  2020-03-03
지난40년간 경제호황으로 승승장구해온 우리 나라가 최근 들어 예상치 못한 강적을 만나 전민이 동원된 인민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 강적은 지난날의 제국주의국가도 아니요, 홍수와 지진과 같은 큰 자연재해도 아닌 오직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바이러스이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안겨 인구가 14억 되는 세계대국이 총동원되여 결사항전을 벌리고 있다. 우리 머리 속에 전쟁이라면 총소리가 울리고 폭탄이 터지는, 인간사이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전쟁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사이의 대전은 21세기에는 더이상 일어날 것 같지 않고, 오히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 주요 전쟁형식이 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사이버공격이라든가, 환경재앙과 같이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말이다. 이번 전쟁도 명백히 그런 전쟁에 해당된다. 이번 전쟁의 가장 큰 난관은 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다음 공격목표는 어딘지? 적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이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러니 전방, 후방이 따로 없고 온 나라가 전쟁터로 된다. 게다가 적이 교활하기 짝이 없어 사람을 통해 전파되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피해야 하며, 이를 위하여 대다수 사람들이 집에 앉아있는 것으로 참전하고 있다.  사람들이 외부활동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니 사회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하여 고요함 속에서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된다. 세계공장으로 불리는 산업대국이 한달넘게 정상적인 생산활동을 할 수 없었고, 일년중의 가장 중요한 장사대목인 설명절에 도시들의 주요 거리가 텅텅 비여있었다. 세계력사를 보면 전쟁이 사회의 생산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흔히 대전후에 새로운 강국이 탄생하지만, 이번 전쟁은 생산활동을 위축시켜 경제위기감을 초래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이번 전쟁은 새로운 전쟁형태에 대한 우리들의 준비가 아직 미흡함을 보여줬다. 몇십년의 경제호황으로 물질적 풍요로움을 만긱하던 성세의 대도시였지만 적의 공격이 시작되자 초기에는 의료자원이 부족하여 몰려드는 부상자들을 미처 수용할 수가 없어 큰 피해를 내야 하는 상황이 나타났다. 평소에는 무엇이든 모자람이 없어보였지만 정작 일이 터지니 많은 것이 부족한 상황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가 현재 누리는 물질적 풍요의 기초에 아직 취약한 부분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쟁은 또한 우리 사회 지적수준의 빈약한 일면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각종 과학연구 지표에서 세계 앞자리를 차지하고, 방대한 연구자집단을 보유하고 있는 과학기술대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작 갑자기 들이닥친 적을 앞에 두고 처음에는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과학기술이 무기로 투입되여야 하는 관건적 시기에 그 전력의 한계가 드러났으며,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여 수천만명이 밤낮없이 진행한다는 지식생산이 국가와 인민이 필요로 하는 관건적 시기에 제 역할을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화성탐사까지 할 수 있다는 오늘날 인류의 과학기술수준이 정작 인간몸에 침투한 바이러스 몇마리를 못 죽이는 현실을 보면서, 인간 자체에 대한 연구의 한계를 실감하게 만든다.  이번 전쟁은 또한 발달한 통신기술이 인간사회를 흥하게 할 수도, 망치게 할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그것이 평소에는 사람들에게 무수한 편리를 가져다 주지만, 위기시에는 위기를 대폭 증폭시켜 사회의 안정을 해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랭정하게 말하면 이번 전염병상황이 엄중한 건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아직 치료방법이 없거나 약이 개발되지 못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질병들이 무수히 많다. 그리고 그에 의하여 사망되는 인수도 이번만 못지 않다. 그렇다면 이번은 왜 이렇게 흉흉할가? 이는 현시대의 발달한 통신기술과 련관되여있다.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사회적 사안들이 쉽게 이슈화되며 부정적인 소식일수록 더욱 날개를 달고 날아다닌다. 더우기 이런 정보는 전파되는 과정에서 더욱 자극적으로 변이되여 일상생활의 무료함을 느끼는 일부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로 인해 공포심리는 더욱 증폭되고 사람들의 의념세계를 어지럽힌다. 미래 전쟁에서는 적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입질’때문에 망할 수도 있음을 충분히 보여준다. 이와 같은 부족점을 드러냈지만 동시에 국가와 사회가 가지는 있는 강대한 능력과 저력도 보여줬다. 우선은 국가가 험난한 전쟁 앞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안정적이고 강력한 조직력, 통제력, 동원력을 보여줬다. 자칫하면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일발의 순간이였지만 국가령도체계가 강력하게 작동하여 중앙으로부터 가두에 이르기까지 일사분란한 움직임으로 끝내 무분별한 확산을 막아내고 사회의 안정을 유지해냈다. 무서운 역병을 마주한 인구 14억 되는 나라가 이와 같은 성과를 이루어냈다는 것은 인류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일이다.  의료일군들, 해방군장병과 경찰대원들, 기층의 공무원과 사업일군들의 헌신적인 분투도 사람들을 감동하게 만들었다. 마스크를 너무 오래 끼고 있어서 얼굴에 흠집이 간 간호원의 얼굴을 대중들이 오래동안 기억할 것이며, 추운 겨울에 가두의 길목에서 보초를 서면서 방역을 도왔던 평범한 기층일군 노력 또한 대중들이 잊지 못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묵묵한 실천이 력사의 원동력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일찍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전쟁 앞에서 국민들도 적극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류사에서 전무후무한 도시페새를 묵묵히 이겨내고 있는 무한 시민들, 될수록 외출을 자제하라는 호소에 호응하여 한달여간 집에서 조용히 머무른 다수의 국민들,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악랄한 바이러스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인민대중이 력사 창조자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세계사를 보면 인류는 큰 재난을 겪으면서 성숙되여왔다. 13세기-14세기 유렵을 강타한 흑사병이 그후 문예부흥이라는 인류사 흐름을 바꾼 사상문화혁명으로 이어졌고, 두차례의 세계대전이 인류에게 평화의 지고무상함을 일깨워주었다. 이번 인민전쟁 역시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가져다 줄 것이다. 사람이 큰병을 앓고 나면 인생을 깨우치듯 사회도 큰 재난을 겪고 나면 성숙된다. 이번의 인민전쟁이 우리 나라를 성큼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인민넷 조문판 
129    2020년 중국경제 전망(김부용) 댓글:  조회:1655  추천:0  2020-02-03
2020년 중국경제 전망 한국 인천대학교 동북아국제통상학부 부교수 김부용 2019년 중국경제 평가 2019년 중국경제 성장률은 6% 초반일 것으로 전망된다. 설령 중국의 성장률이 6%에 약간 못미친다 할지라도 미국(2.4%), 한국(2%), 일본(0.9%), 독일(0.5%) 등 경제대국에 비해 월등히 높을뿐더러 인도네시아(5%), 아르헨띠나(3.1%) 등 개발도상국보다도 높고 인도(6.1%)와 비슷하다. 또한 종적으로 중국의 GDP(2018년 기준)가 미국의 66% 수준인데, 일본의 GDP가 미국의 67% 선이던 1994년 일본의 성장률은 1%에 불과했다. 중국만 놓고 보더라도 현재 GDP가 1992년의 10배인데 과거와 같은 높은 성장률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근본적으로 2015년 이후 중국의 성장률이 7% 아래로 떨어진 것은 경제 체질개선을 위한 구조개혁에 기인한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과거의 수출과 투자 위주의 성장에서 내수 소비가 견인하는 성장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더불어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수요 측면의 개선보다 중장기적으로 중국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정책기조 하에, 13차 5개년 계획기간(2016년―2020년)에는 공급측 구조적 개혁에 방점을 두었다. 즉 뉴노멀 시기에 접어든 중국이 과도한 투자와 부동산 개발 및 높은 레버리지 비률에 의존해온 과거의 량적 성장에서 벗어나 질적 성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성장률의 하락은 불가피하고, 중국정부는 성장률 하락을 감내하면서라도 경제체질을 개선시키겠다는 것이다.  2020년 중국 경제 전망1: 성장률 목표치는‘6% 좌우’로 설정할 전망 2020년은 중국에 의미 있는 한해이다. 중국은 두개 백년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인 2021년까지 전면적인 초요사회를 실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사회주의현대화를 실현하여 강대국의 대렬에 들어서는 것이다. 중국은 초요사회 실현을 위해 2020년 GDP를 2010년의 2배로 높인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또한 2020년은 13차 5개년 계획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14차 5개년 계획을 준비하는 해이기도 하다. 이런 점으로 보아 중국정부는 2020년 성장률 목표치를 6% 좌우로 설정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성장률을 6.1%로 가정할 때 2020년 GDP를 2010년의 2배로, 그리고 13차 5개년 계획에서 목표한 성장률(6.5%)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성장률이 6.1%, 2019년 성장률을 6.2%로 가정할 경우에는 6% 성장률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사실 6%에 살짝 미달한다 해도 중국경제에 큰 타격은 없다. 중국의 목표성장률은 2011년까지 8%대 성장률을 이어왔으나 이후 7.5%, 7%, 6.5% 순으로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사실 중국의 성장률은 고용지표와 련관시켜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년간 약 750만명의 대졸자를 배출하고 있으며, 신규 취업자수는 약 1,200만명에 달한다. 중국의 GDP성장률 1%당 고용유발자수가 11차 5개년 계획 기간(2005년―2010년)의 100만명에서 2018년에는 206만명으로 늘어났으며, 2020년에는 210만명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따라서 6%의 성장률이면 1,200만명의 신규고용에 문제가 없으며, 6%에 살짝 미달해도 대량의 실업사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중국정부는 2020년 6%의 성장률 달성을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잡고 목표치를 설정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최근 4차 경제 센서스 결과가 발표되며 중국 국가통계국이 2018년 및 과거 몇년의 GDP를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쳐 이슈가 되고 있다. 이번 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2018년 GDP가 기존 발표한 잠정치보다 2.1% 증가했다. 중국 언론에서 얘기하듯, 2014년―2018년 GDP 성장률을 년평균 0.05%씩 상향조정하게 될 경우 2020년 성장률은 5.8~5.9%이면 충분하다. 이 경우 중국은 목표성장률을 5.5~6%라는 보다 탄력적인 구간으로 설정할 가능성이 크다. 2020년 중국 경제 전망2: 확장적 재정정책과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경기부양 지난 12월 10~12일 개최된 중앙경제사업회의에서는 안정적인 경제운영을 강조했다. 합리적인 량적 성장과 함께 질적 성장도 이뤄야 한다며 공급측 구조적 개혁의 심화에 박차를 가할 것도 강조했다. 정책기조의 표현은 ‘안정’이지만 실제로는 소폭의 ‘부양’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거시경제정책으로 전년도와 비슷하게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온건하면서도 융통성 있는 통화정책을 제시했다. 재정정책과 관련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품질과 효률을 높이는 동시에 구조조정을 더욱 중시해야 한다”면서 수요와 공급 모두에 도움이 되고 승수효과가 큰 선진제조, 민생, 인프라 건설 분야로 자금을 투입해 산업생산과 소비를 업그레이드시킬 것을 제시했다. 또한 사천성과 서장자치구를 련결하는 천장철도와 같은 대형 인프라 사업과 통신네트워크 건설도 언급했다. 따라서 2020년 의료•교육•문화•양로 등 민생 관련 인프라 건설과 궤도교통, 반도체와 같은 첨단제조업, 5G 등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가 예상된다. 한편 새로운 감세정책은 없을 전망이다. 2018년과 2019년에 대규모 감세정책을 추진해 추가로 추진할 여력이 없기도 하고 정책효과가 2020년에도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화페정책과 관련해서는 “기업발전을 위해 충분한 자금을 제공하되 무차별적인 퍼붓기는 지양해야 한다”면서 민영기업과 중소 령세기업의 융자난 완화를 강조했다. 중국정부는 2020년에도 지준률과 LPR을 인하함으로써 제조업에 대한 융자를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요약하자면, 이번 중앙경제사업회의 정신은 소폭의 부양책으로 경기를 안정시키되 대규모 돈 풀기는 지양하며,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경제의 질적 향상을 중요시해 나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2020년 중국 경제 전망3: 미중 무역협상과 트럼프 재선 여부가 주요 영향요인 2020년 중국 경제 주요 영향요인으로는 미중 무역협상과 트럼프 재선 여부, 기업 부채문제 등이 있으며 특히 미중 무역전쟁이 여전히 가장 큰 영향요인이다. 현재 중미 량국은 1단계 합의가 이루어져 징벌적 관세중 일부가 완화될 예정이며, 무엇보다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무역 및 투자 활동을 위한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된다는 점에서 중국경제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농산물 구매 규모라든지 시기,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 금융시장 개방, 환률 조정 그리고 미국의 단계적 관세 취소 및 인하를 둘러싼 구체적인 실행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주석: 본 원고는 《성균차이나브리프》 제8권 제1호(통권 54호)에 게재된 저자의 에서 발췌한 글임. 인민넷 조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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