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겨주던 단풍이 한 잎 두 잎 락엽으로 떨어져 내리면 지나온 한해를 마감하는 길목에 들어서게 된다. 바람에 날려가고 날려오는 락엽을 밟으며 산책길에 나서면 저도모르게 락엽보다 가을의 마지막 “선물”이라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새에 눈길이 간다. 오헨리의 명작 “마지막 잎새”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페병으로 절망에 빠진 한 소녀가 창문너머로 보이는 담쟁이덩굴 잎이 다 떨어지면 생을 마감한다고 괴로워한다. 그런데 혹독한 추위에도 단 한잎만 지지않고 벽에 달라붙어 있다. 자신의 생을 마감할 그 잎이 떨어지길 기다리던 소녀는 나중에야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 잎새는 평생 화가라는 명함 한장 내밀지 못했던 무명 화가가 마지막 유작으로 소녀에게 그려준 “생명의 잎새”였고 화가 생애의 최고 걸작이였다. 마지막 잎새까지 다 떨어지자 소녀에게 희망을 주려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 혼신을 다하여 “생명의 잎새”를 그려놓고 숨진 늙은 화가의 숭고함에 지금도 한껏 경의가 간다.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는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살리기 위한 무명 화가의 숭고한 예술혼이 아름답게 그려진 작품으로 오헨리의 단편소설중 가장 유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렌리는 이 소설을 감옥에서 썼다. 은행 직원이였던 오헨리는 공금 횡령 혐의를 쓰고 타국으로 피신했다가 안해가 위독하다는 련락을 받고 귀국했지만 안해의 림종을 지키지 못하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어찌보면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는 위독한 안해에게 주는 “생명의 잎새”이기도 하다. 비록 그 잎새가 오헨리의 안해에게는 “생명의 잎새”가 되지 못했지만 그 “잎새”는 희망의 상징으로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필자는 올해 가을 피치못할 사정으로 병원신세를 한 열흘간 지게 되였는데 그 때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또 한번 읽었다. 문학에 어섯눈이 뜨면서 명작가의 명작에 대한 호기심으로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첨 읽었다. 그러나 이 소설을 다시 읽으니 감회가 예전과 같지않다.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는 마치도 필자에게 주는 “희망의 잎새”가 아닐가싶은 생각이 든다. 절망한 자에게는 희망을, 허무한 생을 사는 자에게는 생의 숭고함을 알게하는것이 곧 명작임을 절감했다.
오헨리가 그린 “잎새”에 비견이 될 “횃불”이 있는데 그 “횃불”은 시인 엠마 나자루스의 시 “새로운 거상”이다. 이 시는 미국 독립 100주년 축시로 자유녀신상 받침대에 새겨졌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지치고 가난하고
자유를 숨쉬기를 열망하는
가련한 사람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폭풍우에 시달린
고향없는 자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황금의 문 곁에서 내가
희망의 횃불을 높이 들리니 …”
한해를 마감해야 할 길목에서 오헨리를 만나 엠마 나자루스까지 거들게 된것이 행운이 아닐까. 지나온 한해가 “보람찬” 한해였나 아니면 “다사다난”한 한해였나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또다시 새로운 기대에 젖어 “송구영신” 준비에 분주해진다. 분주함을 잠깐이나마 뒤로하고 희망을 주는 “잎새”와 “횃불”을 떠올려보면서 마음을 추스려봄도 좋을듯 싶다.
오헨리와 작별인사를 나누기전 필자가 물었다.
“감옥에서 시작된 창작생애에서 무려 3백여편의 단편소설을 남기게 된 비결은?”
“눈을 돌리는 곳마다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세상만사가 모두 작품의 소재가 됩니다. 오늘 당신과의 만남에도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일상적이고 진부한 삶이라도 진지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상상력을 독자들은 작가의 마술적 힘이라고 평가하고 있는데”
“마술적 힘이 아니고 난 그저 독자들의 가슴을 한순간이나마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오헨리가 독자들에게 주려는 그 따스함은 생의 희망이고 용기이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닐가. 오헨리는 독자들에게 누군가가 “마지막 잎새”를 그려주기를 기다리기보다도 자신이 먼저 남에게 “마지막 잎새”로 남아줘야 한다는 계시를 주고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새 하나마저도 무심히 지나칠수 없게 해주고 새해에 대한 기대를 더 부풀게 해준 오헨리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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