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절 뒷산에는 절 주변을 따라 흐르는 시냇물이 있다. 산중턱에 있는 샘물에서부터 시작되는 그 냇물은 장마철이면 퍼그나 깊어지기도 한다.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이면 조금만 틈만나면 시냇가에 가서 발을 담근다. 큰 돌위에 앉아 돌돌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그 시원함에 더위가 싹 가신다. 주변에서 뻐꾹뻐꾹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를 들으면서 그렇게 발을 담그고 있노라면 내가 수행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범천의 신선님인지 알수가 없다.
참선을 한다고 승방에 앉아있을때보다도 이럴때면 더 무엇인가 떠오르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행복추구가 인생의 목표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인간이 쾌락을 쫒는 과정이 인생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말을 한 사람들이 전부 아직 금강경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으리란 생각을 해보았다. 금강경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어서 느낀 사람이라면 그렇게 경솔하게 인생을 평가하지는 못할것이기 때문이다.
금강경은 불교계에서 학술적인 연구로 굳이 구분을 한다면 반야부에 속한다고 한다. 그럼 무엇이 반야일까? 대체로 말한다면 대지혜, 큰 지혜라는 뜻이라고 한다. 옛날에 불경을 번역하던 사람들은 참 책임심과 신앙심이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책임심과 신앙심만으로도 그것은 어렵다. 불경에 대한 투철한 이해와 깨달음이 없이는 불가능했을것이다.
요즘 사미로서 금강경 외우기에 달라붙은 우리 중 제일 어린 오진(悟眞)은 공부하기 싫어서 뺑소니치기 일쑤다. 너무 외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왜서 반야바라밀을 그냥 대지혜라고 번역하지 않았는가 하는것이다. 그러면 알아보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쉬운데 말이다.
그 말도 일리가 있는듯 하지만 그 당시 불경을 번역하신 대덕(大德)이나 고승(高僧)들은 대중들이 잘못 이해할 소지가 있거나 문구상 뜻 전달이 오해 소지가 있을 듯한 단어들은 그냥 음으로 직역하고 그 뒤에 주해를 다는 방식을 취했던것이다.
우리 말로는 공기의 기(氣)도 기고, 무술을 수련하는 사람들의 경락사이에 흐르는 기나, 의학에서 말하는 체내의 기(氣 방귀같은…)도 기라고 한다. 그런데 영어로 그걸 번역하라면 가스라고 하던지 아니면 에너지라고 번역할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번역하기에는 그 기라는 단어가 단순하지 않은것이다. 당시 반야라는 말을 큰 지혜라고 번역하지 않은것도 아마 그 때문이였던것 같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반야지혜는 보통의 지혜가 아니다. 그것은 득도(得道), 오도(悟道), 해도(解道), 수증(修證) 등 과정을 통하여 생사를 해탈하고 범인의 경지를 벗어난 지혜이다. 그것은 우리가 쉽게 이해하는 총명하고는 분명히 다르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도(道)이며 그 도의 근본적인 지혜를 가르킨다. 근본적인 지혜란 그럼 또 무엇일까? 현대적인 관념으로 비유하자면 일반적인 총명과 보통 지혜를 초월한 형이상학적인 생명의 본원과 본성을 가르킨다. 그것은 머리로 생각해서 얻어지는것이 아닌 마음과 몸의 수련과 검증을 거쳐 얻어내는 그러한 지혜이다. 이러한 지혜가 바로 반야인것이다. 그래서 지혜라는 말은 반야라는 말을 대표하지 못한다.
말로 표현할수 없는 그 반야를 얻으려면 몸으로 체험해야만 하는것이다. 체험이 없이 얻는것은 단순한 세속적인 지혜일수 있다. 그러나 반야는 몸소 수지(受持)하지 않으면 얻을수가 없다.
더운 여름 시원한 물속에 발을 담그면 시원할것이라는 지혜로운 생각도 좋지만 직접 그 시원한 물속에 발을 담그고 그 느낌을 얻는것처럼 지혜와 반야는 분명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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