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가을은 도시보다 훨씬 빨리 다가온다. 산기슭의 단풍나무가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하는듯 하더니 어느새 서리가 내리고 아침저녁으로 소슬한 가을 추위에 승복을 여미게 된다.
산사의 가을 하늘도 도시의 가을하늘보다 훨씬 푸른듯 싶다. 가끔씩 우리 절 주변의 도시들에 내려가 보면 뿌연 자동차 매연에 하늘마저 뿌옇게 보일때가 많다. 도시와 시골의 경계는 요즘 그렇게 공기로 구분할수 있는듯 싶다. 도시의 사람들은 삼림욕을 한답시고 시골을 찾는다. 시골사람들은 삼림욕이고 뭐고 보다는 돈이 중요하여 그냥 무작정 서울을 바라고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서있는 위치에서 자신의 자리와 경계를 찾게 된다. 경계(境界)라는 말은 중국글자의 직역문이다.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라고 한다면 현상(現象)이라는말이 비슷하지 않을까싶다. 주해까지 단다면 현상을 나타낸 그 자리라고 말할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자연계에서의 관념일뿐 진정한 번역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우리말의 가장 가까운 뜻은 경계의 직역보다는 경지라는 번역이 더 가깝다. 경지는 경지일뿐이다. 번역의 정확성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직역을 하고 그 뜻에 주해를 다는것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 당나라의 시인은 ‘천강유수 천강월, 만리무운 만리천’<千江有水 千江月, 萬里無雲 萬里天>이라는 시로 자신의 경지를 나타냈다. 하늘에는 달이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땅위에 있는 천만갈래 강물속에 비워진 달은 매 강물마다 그 그림자를 나타낸다. 하늘에 구름한점 없을때면 하늘은 일망무제한 맑은 하늘일 뿐이다. 깨달음이나 앎이나 도(道)를 닦는 사람들이 이러한 경지를 가지고 있다면 쉬운일이 아닐것이다. 그만큼 시인이나 도인이나 작가나 아니면 음악가나 모든 직업과 인생살이에 사람들은 그 경지를 담고있다.
중국의 고대의 약산(藥山)선사는 ‘구름은 청천하늘가에 있고 물은 병속에 있다네’ 라고 읊었다. 그것은 자연과 하나된 표현인것이다. 하늘의 구름은 하늘가에 떠있고 병속에 물은 그대로 상위에 놓여져 있다. 하나는 높은 하늘가에 떠있어서 멀고 요원(遙遠)하지만 하나는 바로 손끝이 닿는 탁상위에 있어서 그렇게 가까운것이다. 그것이 바로 경지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인생에는 수시로 이러한 경지를 느끼게 된다. 고통스러울때는 고통스러운 생각이 가득 머리속에 차고 고통이 아직 오지 않을때에는 고통이 곧 다가올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그것은 고뇌의 경지일것이다. 기쁠때는 생각만해도 흥이나고 득의양양하다.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하기 싫어한다. 앞을 내다보면 얼마남지 않은 세월이지만 힘들고 어려운것만 떠올라서 싫다.
우리의 주지스님은 일흔이 넘은 나이시다. 우리 절은 비록 작지만 절안의 마당 변두리에는 어쩌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서 나무그루터기로 자그마한 걸상들을 만들어서 놓은것들이 있다. 이 가을날 해볕이 내리쬐일때면 주지스님도 해볕쪼임을 할겸 그 나무걸상에 가끔씩 앉아계신다. 주지스님은 참으로 자애롭고 편한 분이시지만 그래도 우리는 참으로 어렵게 대한다. 특히 우리 중 제일 어린 오진은 주지스님을 무서워까지 한다. 나는 절에 있으면서 한번도 주지스님이 오진을 꾸짖거나 나무람하는걸 들어본적이 없다. 그런데도 오진은 주지스님을 어려워하신다. 물론 나도 주지스님이 많이 어려운것은 사실이다. 주지스님께서는 그 나무걸상에 혼자 앉아 계시다 저도 몰래 고개를 흔들며 피식 웃을때가 있다. 무슨 생각을 하시다 그러시는지는 알수 없으나 아마 당신의 소년시절을 생각하면서 그러시는게 아닐까 싶다. 어르신들은 옛일을 떠오리며 그때 그 경지를 되살려 보는것이다. 그때는 참 철도 없었지 하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것이 모두 경지라면 경지이다. 경지는 느낌으로 깨달아야지 말로서 전달할수가 없는것이다. 부처님께서 부족한 인간의 언어로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시려고 하셨지만 그것은 방법이고 방편일뿐이다.
수련을 하던 공부를 하던 우리 모두는 한순간 한걸음마다 부동한 경지를 느낀다. 글쓰기가 직업인 사람이라면 오늘은 이러한 영감이 떠올랐다가 내일은 또 다른 영감이 떠오른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면 어떤 그림을 그릴때 문뜩 특별한 심득을 느낄때가 있다. 그것이 그 상황에서의 경지인것이다. 장인이라면 집 리모델링 일을 하면서 벽돌 한장 올려놓고 시멘트를 한번 바르는데 다시 손댈곳이 없이 평평하고 깨끗하게 될때가 있다. 그때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어떤 느낌을 얻는다. ‘아~원래는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는 그 순간이 그의 경지인것이다. 때문에 경지는 모든것을 담고 있다. 불법을 배우고 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한치의 진보가 있어도 그 순간의 경지가 다르게 느껴진다. 수련의 높이만큼 인생의 경지가 달라지는것이다.
맹자(孟子)는 그의 저서에서 ‘공자는 동산에 올라서 내려다 보고 노(魯)나라가 작다고 여기고, 더 높은 태산(泰山)에 올라서 내려다보고 천하는 작다고 했다.’ 그것이 높이 올라가면서 느낀 공자의 경지를 말한것이다.
불법을 배우지 않고 수련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경지가 있을까싶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경지는 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고뇌의 경지가 있는것이다. 옛사람들의 시를 보면 “백년 삼만육천일 병중이 아니면 근심속이라네” 라고 했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경지이다. 번뇌망상으로 가득차고 아픈 걱정, 늙어가는 두려움등으로 가득찼다. 안질이 어두워져서 걱정이고 머리가 희여져서 안타깝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번뇌망상을 은근히 즐기는듯 하다.
불법을 배우는것은 지대한 용기가 없으면 할수 없다. 삼보에 귀의 한다고 ‘삼귀의’노래도 부르지만 진정 마음으로 삼보에 귀의하는 경지가 중요하다. 옛사람들은 ‘불법을 배우는것은 대장부가 하는 일이지 제왕장상(帝王將相)의 용기로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제왕장상은 가지기 위한 용기라면 불법을 배우는것은 버리기 위한 용기이기 때문이다. 진정 불법을 수지하는 사람들은 뛰여난 경지, 흉금, 기백을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그들의 그런 경지를 제왕장상의 욕심으로 가득찬 자그마한 용기가 어찌 비할것인가?
이러한 경지는 모두 실상반야(實相般若)에서 온다. 그 근본적인 도, 혹은 깨달음, 혹은 그 형이상학적인 무언의 지혜의 반야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진정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지혜는 무궁무진한것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불법을 배우는 사람들을 <무사지(無師智)>라고 부르기도 하고 자연지(自然智)라고 부르기도 했다. 자기 본신이 가지고 있는 지혜의 창고가 깨달음을 통하여 활짝 열리는 순간 스승이 없이도 이 세상의 지혜를 다 알게 되는것이다. 그렇게 천상천하 모르는것이 없는 경지가 바로 경지반야인것이다.
반야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니 문자반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수 또한 없다. 이 글을 쓰게된 인연(緣起)은 블로그에서 누군가 우연히 보고 남긴 꼬리말때문이다. 글을 쓸때는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나절로 써서 즐기려고 했었는데 누군가가 보고 꼬리말을 하나 단것이 인연이 되여 게으름을 죽이고 계속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것이다. 문자를 다듬는다는것은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문자속에는 엄청난 지혜가 들어있다. 문자는 우리의 언어를 기록하는 작용을 하면서 만들어졌다. 우리 한국사람들의 사상과 생각을 부호로 적어놓은것이 한글이고 중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을 부호로서 표현한것이 중국글이다. 기타 영어나, 독일어나, 러시아어 같은것도 모두 그들의 사상, 언어의 기호인것이다. 문자 역시 그 경지가 있다. 아름다운 글을 읽으면 마음속에 형언할수 없는 환희심이 일어난다. 그것이 바로 문자의 경지인것이다. 아름다운 글을 만들려면 문자에 대한 지혜가 있어야만한다. 어떤 사람들은 필만 들면 명필이고 명작이 나온다. 어떤사람들은 말 한마디 해도 문장이 만들어지고 멋지게 표현된다. 한마디 한마디가 아름답고 우아한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높은 문학적 경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문자반야이다.
한국의 사찰에서 가장 많이, 널리 읽히는 책이 <금강경>일것이다. 우리 나라의 대부분 경전을 우리는 중국을 거쳐서 들여왔다. 중국에서도 금강경은 아주 중요한 경전으로 종단에서는 널리 읽히고 있다. 금강경을 번역한 구마라집(鳩摩羅什)의 뛰여난 문자반야 덕분이 아니겠는가 싶다. 우리 글은 소리글이기에 그 소리만 들어서는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래서 경전을 이해하고 수지하기 위해서는 중국어 공부가 필요한것이다. 인도나 스리랑카에 가서 원시경전을 배우기 위해서 어학을 배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뛰여난 문자 반야를 소지하지 못하고는 그냥 현재 있는 <금강경>이나 사찰에 소장되여있는 팔만대장경만 가지고도 우리 평생 배우고 닦기에는 충분한 내용이다. <법화경>도 그렇고 <유마경>도 그렇고 그 문장의 한글자 한글자가 빛이나고 아름답다. 중국고대 문학의 또 다른 형태의 문자표현 형식을 이룬것이다. 후에 소설 <서유기>의 주인공이 였던 현장법사를 비롯한 여러명의 법사님들도 <금강경> 경전을 번역하였지만 (구마라집)의 번역처럼 문자가 아름답고 뛰여난것은 아니였다. 그것이 바로 문자반야의 차이인것이다.
때문에 똑같이 공부하고 글을 읽어도 누구나 다 문학가가 되는것은 아니다. 똑같은 수행자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그냥 수행을하는 사람으로 인생을 마감하지만 어떤 사람은 부처의 경지에 이른다. 그것은 문자반야와 절대적인 관계가 있는것이다.
내가 예전에 시를 배우면서 써놓았던 시조 한편이 있다.
어릴적에 글을 배울때는 천자문을 외우고 공자, 맹자의 글을 외우느라 진땀을 뺏는데 그것은 공부의 경지때문인것이다. 둥글고 네모난건 이런저런 우리의 인생살이 지식과 경험들인데 억지로 알려고 할때는 안되던것이 어느쯤 나이드니 절로 알리게 되는것임을 말한것이다. (스승님이 보시면 젊은놈이 나이소리 한다고 욕 엄청 먹을 각오하고있음.ㅋㅋ) 승패와 영욕은 어찌보면 우리의 마음속의 경지인데 그걸 깨달을때가 언제일까 하는 감탄을 한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그 당시 글을 적을때의 경지일뿐이다. 논어를 보면 공자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삼십에 서고 사십에 의혹되지 않는다’(三十而立, 四十而不惑)라는 말이다. 너무 유명한 말이기에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듯 싶다. 좀더 확실하게 하기위해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세우고, 삼십에서고 사십에 흔들리지 않았다. 오십에 하늘의 명을 알았고 육십에는 이순(耳順-어떤의견에도 순수하게 귀를 기울인다는 말), 칠십에는 마음에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에 어긋남이 없었다.”로 돼있다.
공자 스스로의 생애를 요약한 말로 전해지지만 한편 그분의 인생에서 발전을 거듭하는 순간순간의 경지를 기록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에는 뛰여난 문학적 소양을 갖춘 작가님들이 정말 많다. 그만큼 뛰여난 감수성과을 가진 민족인것이다. 불교계를 볼때만해도 뛰여난 큰스님과 선사님들이 참말 많으시다. 우리 스승이신 단지스승님도 아주 훌륭한 분이시다. 지난번 스승님이 사찰을 내려갔다가 돌아오실때 가져오신 책에는 법정스님의 책도 몇권있었다. 공부시간이 끝나서 휴식할때 우연히 법정스님의 “버리고 떠나기”란 책을 읽고 그분의 높은 경지에 환희심이 절로 나는걸 느꼈다. 나는 법정스님을 직접 뵌적은 없지만 그분의 높은 경지와 문자반야가 그러한 주옥같은 글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싶다.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거움과 환희심이 일게끔 하여주는 그런 문장이 문자반야의 결과물인것이다.
옛날에 중국 청나라시절에 어느 작은 절에 물을 길어나르는 스님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릴적에 글 한자 배운적 없었는데 어느날인가 깨달음을 얻고 반야바라밀을 얻었다고한다. 그 순간 예전에 배운적없던 글도 쓸줄 알고 그림도 잘 그렸으며 시마저 지었다고 한다. 당시 청나라 시절에는 남자들도 긴 태머리를 길러야 했는데 과거를 보는 젊은이들이 그 스님을 찾아가서 어느어느 문장이 어느 책에서 나온 말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 분은 바로 그 말은 어느책 어느페이지에 나온 말이라고 알려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사람들이 찾아가서 중국의 고전 명작인 “홍루몽”중의 한구절을 물어봤는데도 틀림없이 대답하더라는것이다. 당시 중국은 아편전쟁이 한창일때였는데 어느 부자가 아편을 떼고 싶으나 그 인이 박혀서 고통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스님을 찾아가서 중이 되겠다고 했다. 스님이 그의 간절한 요구를 들어줘서 머리를 깍는데 또 아편인이 발작한것이다. 눈물, 코물이 흘러내리고 고통스러워 발버둥치고 있을때 그 스님이 그의 등을 한번 탁 치면서 “벗어라”하는 순간 괴로움이 사라지고 해탈을 얻었다고 한다. 물론 그후부터 그는 다시 아편을 손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좀 신비하게 들리는 이야기지만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보통사람들은 반야를 신통력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우리의 총명으로 생각해내는것이 아니기때문이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기억력이 남다르다. 소동파는 “금생(今生)에 글을 읽기는 이미 늦었다”라는 시를 쓴적이 있다. 우리가 많이들 말하는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적절한 시기다.’와 완전히 틀린 말이라서 의아해 하겠지만 소동파가 가리키는 바는 다른곳에 있다. 즉 책은 일찍 읽어야한다는 말이다. 이 생에서 하는 공부와 읽는 책은 내생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었을때는 과거 천만번의 윤회와 삶속에서 배운 모든 지식들이 모두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글 읽는 속도가 느려서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읽는다. 이 글처럼 길게 쓴 글은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한번에 열줄을 읽을수 있으며 한번 읽은 글을 쉽게 잊어먹지도 않은다. 그것이 문자반야의 경지반야 인것이다.
우리 사찰은 너무 작아서 스님들이 거처하는 방도 몇칸되지 않는다. 지난 봄까지만해도 오정과 오진은 한방을 썼다. 이번 여름에 불전옆의 산중턱을 기둥삼아 세워져 있는 옛날 창고로 쓰던 작은 방을 치우고 따로 자리를 내었다. 스승님이 지휘하시고 우리가 한달간 일해서 마침 가을이 되기전에 마무리지었다. 아직 어린 오진이 외따로 떨어져 있는 그 방에 가기 싫어해서 내방과 바꾸어 주었더니 너무 좋아서 몇번이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새방이라고는 하나 건물자체가 참 오래된 건물인데다 바로 뒷쪽벽이 산중턱이라 축축한 습기가 배여나왔다. 요즘은 추위때문에 온돌방에 나무를 주워 불을 지피니 제법 따뜻해져서 살만하다. 우리 사찰은 내가 있기전부터 재래식 남방을 써왔다. 요즘은 석유보일러나 전기보일러도 꽤 많이 나왔다고하지만 가난한 절에서 그런걸 살 엄두도 나지않고 또 별 필요도 없었다. 절밖을 나가면 여기저기 널린것이 나무들이라 우리가 부지런만 하면 땔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절 아래 봉래마을(필요상 가명을 썻음)은 그나마 큰 마을인데도 요즘은 경기가 나쁜지 많은 집들에서 석유보일러를 빼버리고 연탄보일러를 쓰고 있다. 그런데 그 연탄도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모두들 걱정하는 모습이였다.
텅빈 방안에는 공부할때쓰는 작은 책상 하나하고 이불장 하나빼고는 아무것도 없다. 창문이 앞쪽에 한개 달리고 옆면에 한개 있으나 뒤면은 산중턱이라 창이 없다. 그래서 허연벽이 보기가 흉한듯해서 나절로 종이를 얻어 시조 한편 써서 붙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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