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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먼곳의 작은절 -행자스님의 수행일지

먼곳의 작은 절 행자중 오능(悟能)의 이야기 7- 여시아문(如是我闻)
2016년 02월 17일 11시 18분  조회:2102  추천:0  작성자: 行者金文日
먼곳의 작은 절-행자오능의 수행일지7-如是我闻
  먼길을 떠나시는 스승님과 오공사형은 새벽녁에 길을 떠났다. 봉래마을에서 직접 서울로 들어가는 버스가 없어서 봉래마을에서 인근 도시로 이동하였다가 다시 기차를 바꾸어 타야 했다. 그래서 새벽예불을 드리기전에 일찍 향공을 올리고 길을 떠나는것이다. 스승님과 오공사형이 없으니 절 전체가 텅 빈 감이 든다. 주지스님은 요즘따라 더욱 정진하시는듯 거의 예불전을 벗어나지 않고 계신다. 주지스님의 염불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 실은 내가 듣기에는 주지스님은 목탁도 잘 두드리시는것같다. 우리 스승님은 목소리는 참 아름답고 좋으시나 목탁을 잘 두드리지 못하신다. 스승님의 말처럼 음치인듯 싶다. 스승님은 목탁소리없이 경전을 외우시라면 줄줄 잘도 외우시나 목탁을 두드리기만 하면 잘못하신다. 그래서 옛날에 주지스님께 많이 야단맞으셨다고했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그렇게 음치인거야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타고난 고유함을 가지고 있는듯 싶다. 아침 예불때 몇년전까지만 해도 목탁치는 일은 내가 했었는데 이제는 오진의 몪이 되였다. 목탁을 치면서 경전을 읽다보면 그 아름다운 운율에 심신이 취해버리기도 한다.
 왜서 목탁을 치는지 물어보는 나에게 그것은 정진의  정신이라고 스승님은 말해주었셨다. 목탁은 중국어로 보면 목어(木魚)라고도 한다. 우리 절에는 없지만 어떤 큰 사찰에 가게되면 물고기모양의 큰 목어가 있는데 그것을 줄인것이 현재의 목탁이다. 물고기는 밤이고 낮이고 간에 눈을 뜨고 있다. 물고기의 휴식은 눈을뜬채 가만이 있으면 자는것이다. 잠간의 휴식이면 된다. 절에서 우리가 목탁을 두드리는것은 그런 물고기의 정신을 따라배우자는데 있다. 수련하고 깨우침을 얻으려는 사람은 그런 정진하려는 정신이 있어야한다. 주야를 불문하고 깨우침을 얻으려는 노력이 비로서 결과를 가져다 줄수있는것이다. 금강경 제 일품의 뜻은 바로 모든것은 인연의 다름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온다고 설하고 있다.
  절에서 우리는 공부할때 스승님의 법문이나 경전에 대해서 의문이 있을때면 열렬한 토론을 벌린다. 토론을 벌릴때는 사형, 사제도 없고 스승제자도 없다. 분명하게 서로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 이해를 검증받는다. 그렇게 하시라고 주지스님부터 가르치신다. 때로는 선이나 명상도 좋지만 경전의 가르침을 바로 이해하고 하는 수행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나 개인적인 느낌일지 모르지만 <금강경>을 수지하려면 단순히 선 이나 명상으로는 부족하다. 길을 헤쳐나가는 사람을 우리는 지도자라고 하고 리더라고도 한다. 그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는 사람을 우리는 추종자라 부른다. 부처님은 그러한 길을 먼저 걸으셨고 그 과정에서의 심득과 빨리 얻을수 있는 그 길을 가르쳐주셨다. 인생에는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중요하다. 스승님과 오공사형이 서울로 갔지만 떠나실때 한참을 고민하셨다. 그냥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다시 버스터미널에서 서울가는 버스로 갈것인지 아니면 기차를 갈아타고 갈것인지를 고민했던것이다. 그러다가 최종 가까운 버스터미널까지는 버스로 가고 서울까지는 다시 기차로 가기로 결정내린것이다.
수행을 하는 우리도 그러한 검토가 필요하다. <금강경>도 보고 이해하고  <능엄경>도 배우고 수지하고 <화엄경도>연구하고 공부할필요가 있다. 경전하나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는 분들도 가끔 불교 공안(公案)을 보면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극소수의 사례들이다. 내가 볼때는 그렇게 돈오(頓悟)를 이룬사람들은 전생의 수많은 세월동안 쌓은 수련과 노력의 결과로서 금생에 깨달음을 얻은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분의 깨달음의 인연이 되는것이다.
  제대로 수행을 통하여 금생에 부처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팔만대장경중에서 어찌 우리 자신에게 잘 맞는 수행법이 없을것인가. 모두 방법반야바라밀일뿐이다.
오진은 스승님의 말씀이나 주지스님의 말씀을 전달할때면 장난처럼 항상 “여시아문, 스승님께서 능엄경을 가져오시랍니다.” 하고 말한다. 꼭 그앞에 여시아문(如是我聞)을 붙인다. 여시아문이란 말은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말씀에 책임지는 태도에서 적은 말이라고 할수 있다.
  <금강경>은 아난존자가 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적은것이다. 불경을 읽다보면 모든 경전의 앞머리에 “여시아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아난이 그 말씀을 외워서 적어놓은것이다. 이 정도 상식은 초심불자정도면 다 알 상황이지만 오진은 의문이 있었다. 팔만대장경의 그 많은 경전을 한사람의 머리로 기억한다는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신은 중국한자 천자문 공부도 머리가 터지게 아픈데 아난존자는 어떻게 그렇게 잘 기억하는가 하는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불가사의한 부분이있다. 그러나 불가사의가 불가능사는 아니다.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록할 사명을 가지고 태여났다고 한다. 부처님에 대한 일대기나 전설은 많고 많으나 아난존자에 대한 전설은 별로 없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사람의 뒤에는 그 분을 받쳐주고 힘이 되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모든 경전을 아난존자가 전부 외운것은 아니였다. 일부 빠뜨리거나 기억을 못하는 부분은 그 당시 함께 경을 들었던 기타 오백명의 이미 깨달음을 얻은 라한님들이 보충하고 증명함으로서 경전의 수록을 마친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아난존자는 범천의 신이셨는데 사바세계에 탄생하셔서 부처를 이루시는 부처님을 보필하기 위하여 부처님을 따라 태여났다고 한다. 어찌됐건 부처님의 동생으로 태여났고 부처님을 평생 모시며 경전을 배우고 나중에는 마침내 득도를 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경으로 남기는 일을 하게 된것이다.
  우리 스승님은 주지 스님한테서 법문을 배우셨다고 한다. 우리 절도 왕년에는 스님들도 많았고 시주공양도 많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주지스님께서 주지가 되신후부터는 법문을 하고 신도들의 보시공양을 받는것 보다는 수련과 정진에 힘을 쏟으셨다고 한다. 내가 절에 들어오던 그때까지만해도 절에는 여러스님들이 계셨다. 후에는 이런저런 사유로 혹은 수행정진을 목적으로 각자 절을 떠나가신것이다. 스승님은 주지스님의 법문을 듣고 이해하신것을 다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나도 스승님한테 듣고 이해한것을 지금 오진에게 가르친다. 그것이 바로 내가 들은바를 전달하는 <여시아문>이다. 우리는 삼보에 귀의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불법에 귀의하고 승단에 귀의한다고 한다. 그러나 승려들은 부처님과 불법에 귀의하면 된다. “여시아문”의 많은 경전들을 수지하고 독송하는 과정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따르게 되는것이다. 모든 불법을 배우는 첫째가 수지와 독송이다. 수지한다는것은 믿고 따른다는 말이다. 이어서 경전을 독송하는것이 중요하다. 경전을 독송할때 오진처럼 뜻도 모르고 그냥 외우고 읽는것도 좋지만 제일 좋게는 그 뜻을 이해하고 읽는것이 중요하다.  
오진을 가르치려고 보니 오히려 내가 배우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처음 금강경 법문을 들으면서 알뚱말뚱 떠오르는 느낌을 적었던 수행 일지가 생각나서 찾아보니 책장밑의 종이박스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때 금강경의 법문을 배우면서 그 여시아문이란 말을 듣고 밤중에 잠자리를 차고 일어나서 적어놓았던 시 한편이 있다.
 
잠을 자면 꿈이 오고
눈을 뜨면 근심이다.
 
얻음을 기뻐말라 하면서도 기뻐하고
잃음을 슬퍼말라 하면서도 슬퍼한다.
 
오늘 듣고 내일 잊으니 아난존자 부러웁고
알면서 행하지 아니하니 부처님께 부끄럽다.
 
도라고 부르는것은 도가 아니요
사랑이라 부르는것은 사랑이 아니다.
 
애타게  찾는것은 쉽게 흩어지고
찾지 않아도 함께 있는 그것은 영원하다.
 
불법은 불법이 아니여서 불법이고
들었으나 들은것이 없으니 <여시아문>이다.
 
  스승님은 출장을 가시면서 몇번이나 당부를하셨다. 가을에는 바람이 심하니 저녁에 불당의 창문을 잘 단속하고 불을 조심하라고 몇번이나 이르셨다. “예, 예”하면서 잔소리처럼 흘렸지만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일어나서 절 건물들을 돌면서 한번 다시 살펴보았다. 부처님께서도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까봐 45년간 “잔소리”를 하셨다. 우리의 마음속도 산사의 창문처럼 단속을 잘해야 한다. 좋은 말을 듣고 좋은 법문을 배우되 해롭고 나쁜 말은 들어도 생각해서도 안된다. 잘못 들어온 그 바람에 불법을 밝히던 촛불이 쓰러지면 오히려 화재가 나듯이 우리 맘속의 촛불도 잘못된 바람에 휩쓸리면 불타버리고 재가 되여 우리를 파멸시킬지도 모른다. 항상 <여시아문>의 법을 따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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