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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자작시) 새언덕에 인간수업
2012년 08월 28일 09시 05분
조회:9930
추천:1
작성자: 최균선
(1980 년대자작시 )
새언덕에 인간수업
내가는 대명동
룡정서 뻐스타고 백칠십리
삼합ㅡ명동, 대소가는 길은
첩첩산발을 넘는 고개의길
구름도 쉬여넘는 외진령길,
오르며 아흔아홉굽이50리
내리며 50리 아흔아홉굽이
골깊고 산높아서 험난하고
유서도 깊어 깊은 오랑캐령
먼옛날 우리네 할배할매님들
남부녀대로 휘여휘여 넘을제
흰옷의 지친그림자 울었다는
망향의고개, 설음의 령길이요
조동령 내려 한왕산 쳐다보며
전설의 下马来 지나 명동이라
하루에 겨우 한번 차통한다는
하늘아래 첫동네, 심심산골요
남문열면 점심해 이마에 닿고
북문열면 나무단이 굴러든다는
도목나무에 이밥먹고 산다는곳
무릉도원 이렇든가 경개도좋네
로송아래 애솔도 청청한 언덕
절당같이 덩실한 명동중학교요
종을쳐서 아이들을 불러들이여
랑랑한 글소리 시골을 풍미하오
1980년 7월 26일
시골의 사계절
시골엔 봄이 노량으로 찾아든다
한왕산 벼랑굽 진달래 수줍더니
산에산에 멋대로 자란 살구나무
제멋에 겨워서 웃음꽃 화사하고
겨우내 침묵한 대동골 몸푸는가
고패치는 두만강가 늙은수양버들
긴머리 실실이 풀고 그네를 뛸때
종다리 지종, 뻐꾹이소리 싱겁다
사월을 밀어내고 흐믈대던 오월도
유월 록음방초에 슬며시 숨어들고
지글거리는 여름, 매미네들 극성에
개구쟁이들은 두만강뱀장어가 된다
스쳐가는 산들바람을 가지에 걸어
무더위가 흐믈흐믈 그네를 뛸때에
개나리 참나리꽃 여름을 반겨웃고
만록총중에 함박꽃님 흐드럽구나
다락논에 벼이삭이 노란물감 들때
더기의 조밭머리에 저 허수아비님
헌삿가쓰고 두팔을 허우적거리며
참새떼의 성화를 말리랴 분주하다.
대동골 골골에 송이버섯 캐고나면
가을은 쫓기듯 물러가고 하늘높아
산을넘은 갈바람 산마다 불지르고
청산은 백설속에 꿈꾸듯 말이없다
화로불에 감자익는 냄새 구수한데
까치도 얼어죽을 함박눈 쏟아지면
겨울해는 중대가리에 원두알구을듯
긴 삼동이 봄을 잉태하고 태질한다.
1981년 12월 20
시골의 명상
달빛머금어 청산은 말이 없는데
벽계수는 무슨 사연을 주절대노
가지말라 막아선 바위야 비켜라
바다의 푸른꿈에 춤추며 가노라
우등불에 어둠빛이 숨박곡질하고
달이 하밝아 별도 새초롬해졌는데
반딧불 꾀여드는 숲속 부엉바위에
부엉이 부엉부엉 고독을 울어싼다
내리라는 산천어는 어드메 잠들고
고기발에 감개무량 월색을 베고잔다.
외로운 밤구름 달희롱하며 떠도는데
새벽빛이 어느새 저만치 달려오누나
산골길, 시골선비 조으는 발걸음에
새벽달빛만 차디차게 휘감겨드는데
재넘은 골바람이 밤끄트러기 쫓느라
싸늘한 휘파람소리 나무가지에 건다.
두만강 흐린물 한에 목메여 갈린소리
귀가에 서러워 더욱 이슬젖는 이 발길
하염없는 생각이 생각이랑 즈려밟누나
아, 못잊을 시골의 밤, 홀로 서정이여!
1982년 8월 15일
두부사시오
두부사시오. 두부를 사가시오
한모에 25전, 콩도 바꿈니다.
어제는 하마래 오늘은 합전촌
두부를 사시오. 햇두부입니다
개혁이라 시골에도 도거리농사
상품경제 돈바람 훈장도 꼬시여
뚝딱뚝딱 두부방 나절로 지었소
간판은 없어도 최선생네 두부집
둥글이 사놓고 수레랑 갖춰놓고
일요일 도목나무랑 실어들여서
첫새벽에, 점심때, 나무를 패고
콩을 갈아 아침두부 한판대기…
마을사람들 선생이 할일이냐고
손가락질에 뒤공론 구구하여도
어쩌냐,시골훈장 반농사군이라
내땀흘려 아글타글 잘사자는데
명동중학교 5년은 다사분주해
또다시 마디진손에 장알박히고
시골애들의 순박한 마음속에도
아바이 어문선생님이 다되였소
탈출기 박군의 등짐나무, 쉰두부물
락심천만 시쿤 체험을 나도 겪었네
남이야 뭐라하든 “두부를 사십시오”
인생도 가지가지 이게 내인생이여,
1984년 10월 14일
둥글이야, 너도 힘들지?
골이 깊어서 50리 긴긴 대동골
땔나무하러 가는길 하도나 멀어
소방울 왈랑절랑 숫눈길 헤친다.
이랴! 낄길, 어서가쟈, 둥글아!
왈랑절랑 귀맛좋은 워낭소리에
골골에 산새 언잠에서 깨여나고
심산속 풍경은 눈속에 차디찬데
나무군의 단김이 언몸을 녹인다
둥글아, 얼러덩 발구채 메야지
삭정이랑 토막문티 끌어내리자
점심 네여물에 삶은콩 서리끼고
허리에 찬 주먹밥도 동태되누나
수레채 휘도록이 넘치게 싣고도
욕심껏 몹쓸 욕심을 덧실었더니
내리막엔 후거리 궁둥이 홈파고
올리막길 미끄러 힝힝 숨차하네
고맙다. 내 둥글소야, 너도 힘들제?
너는 평생 부림당하여 고역치르고
내사 찾아하는 고생은 인생고여서
너와 나 사는 양상 피장파장이지?
나를 위해 날과 함께 치러야 하는
너의 로고를 낸들 어이 모를소냐?
나도 너를 닮아서 인고의 정한을
네 힘줄처럼 검질기게 참고살리라
어허 저, 해가 저무는데 날래가쟈!
왈랑절랑 방울소리 어둠을 헤쳐라
한많은 인생길 열두나아리랑고개를
내정든 둥글아, 이랴, 쩌쩌 힘내자!
1983년 1월 14일
떠나고도 그리워
도시라 교수청사도 으리으리
운동장은 학생들로 메워지고…
멋쟁이 선생님들도 도고하야
시골선상님은 촌계관청이런가
긴장을 받들고 교단에 오르니
턱밑까지 밀려드는 숨결들과
수십쌍 눈빛들에 마음도 숨차
생각났다, 시골학교 이왕지사…
만출석,모두 와봤댔자 열네명에
눈에 길이막혀 조동애들 못오면
예닐곱 순박한 눈빛들도 엉성해
강의도 서글퍼 시들해질듯 했지
아침, 산에 소를 놓고 젖은대로
점심, 나무를 패던 차림 그대로
천방지축 교실에 들어서는 날도
인정과 리해로 맞아주던 눈길들…
시골태생의 운명을 바꾸어보자고
구지욕에 가슴불태우던 그들이라
심혈을 쏟아붓고 정성을 다하며
정들어버렸던 그들이라 생각는가
가시려면 저들만이라도 졸업시켜
중점고중 가는모습 지켜봐달라며
팔소매를 눈물로 적시던 심애랑
홍희랑 명철이랑 내가 미웠으리
구구구 말씀 많아도 비둘기패라
병주고 약주고 눈감고 야옹하며
그런듯, 그럴듯이 좋은말 하다가
배반을 두고 떠나온 명동중학교
어디면 눈빛이 별같지 않으랴만
그 진실한 마음들을 저버렸거니
이애들앞에서 내가 무슨말 하랴
도시학교 첫수업은 엉터리였다.
1985년 4월 4일
두만강아, 다시 네물결에
두만강아, 시골에 두고온 네물결
여기서 또다시 만나니 반갑구나
님찾아 너를 건너서던 옛그날도
네물결 내아래종아리를 휘감았지
닭쫓던 개 울쳐다보듯이 하고서
추격의 총소리 섬찍하게 남기며
해동의 강판을 천방지축 넘어서
요행이 쓰러지던 곳 어디쯤인가
우리할배 아들업고 건넜다는 강
나와도 운명처럼 여기 속삭이네
해뜨는 어느 바다가에 내첫사랑
너의 세찬물결을 기억하고 있나
왔노라, 두만강아, 너를 찾아서
아니, 도회지의 새 생활을 찾아
인생의 세번째 굽이를 돌아드니
어두운 강물만 처절썩 말이없네
1985년 5월 21일
비내리는 골목길
봄비는 단비라해도
도시에도 단비인가
밤비내리는 골목길
홀로걷는 마음이라
괴로워 웃으며 살자
날개면 해도 웃으리
래일을 바라고 나는
인생-고해도 들이켜
고진감래 웃음되니
궂은날의 비발처럼
하염없이 울지마라
고달파도 웃으시라
1985년 6월 23일
허울꽃은 피고지나
춘풍세우 피는꽃 향기로운데
자고깨면 새라새로운 간판꽃
네거리에 보란듯이 피여나라
쳐다보니 동방무역유한공사
돌아서면 중화무역유한공사
금강산, 태평양, 요란도해라
얼떨떨 시골신사 들어갔다가
락심천만 돌아서니 웬일이요
탁상우에 빈말무역 공성났냐
아참, 우서웁다. 좋은 세월에
번영할사 흥성한 상업시대라
허울공사 경리씨는 어이우노
1985년 7월 28
너, 나의 사랑아
사랑해, 못잊어 생각나서
나서면 저도몰래 가는곳
고운님 내님의 웃음꽃이
기다려 반겨주는 곳아뇨
세상풍파, 인간군상들과
희노애락 그품에 숨겨도
만나면 변함없이 묵묵히
맞아주는 내님 따로있네
말없는 무한사랑에 취해
바다밑 하늘끝 시공간에
나를 이끌어 데려다주신
내사랑의 영원한 품이여
볶은콩 골라먹는 애같이
미친년 달래캐러 나서듯
찾아가고 들춰내서 안는
내생활의 다시없는 반려
보고 또 봐도 보고싶은
내사랑 그이름 책이라오
어제도 이밤도 래일밤도
피여고운 만년화 좋아라
1985년 10월 20
먼저 웃으시라
잘났노라 으시대는 벗이여
웃으시라 먼저 마음대로요
허위로 가면에 웃음칠하며
순박과 성실을 비웃으시라
웃지않는 내가슴도 웃음샘
분투가 골방에서 못질하며
명동골 선생님 기다렸다가
마감에 가슴치며 웃으리라
맨나중에 웃는이가 제일로
통쾌하게 웃는다고 하거늘
웃어도 진실이 눈물나도록
웃으리라, 이 시골선상님도
1986년 2월 16일
강건너를 바라보며
두만강변 황혼빛이 서러운데
강건너마을 밥짓는 저녁연기
홀로선 내마음처럼 까라지네
바라보니 눈덮힌 상봉우리도
구슬픈 꿈에 잠긴듯 울울한데
봄의 숨결은 예이제 생생하다
두만강물은 다시 주절거리고
묵은 덤불속 새싹은 웃으련만
내마음의 고드름 언제 녹을가
저기 강건너 눈물젖은 기슭에
오롱이 조롱이 내조카들 선듯
아아, 찢기여 아물지못할 상처
아리고 쓰리여 가슴뭉클하구나
주루룩 눈물이 소리없이 내리여
혈육의 정에 불붙는 마음식히뇨
언제나 오려나? 배고픔 모르는
보통의 생활도 아득한 꿈이런가
민이식위천이 용납못할 일이던가
알수 없어라, 이 저녁, 웨이리도
눈물겨운지, 어쩌다 이밥덩이에
목이메여 김치물마시던 입들이여
멀리 가까이 도깨비불같은 전등빛
너는 이밤 고달픈 꿈을 잠재울가?
아아, 나는 몰라라, 알수도 없구나
공연히 울고싶어서 울음을 참으니
더구나 눈물이 앞서 울음을 캐네
그러나 오, 운단들 무슨 소용이랴!
1986년 3월 13일
락원은 아니였네그려
동에서 서에까지 한참이면 닿고
북에서 남에까지 한동안 걸리는
여기 변강의 작은 도시 도문은
시골살던 훈장님께는 천국이라
한해도 몇번씩 세집을 옮기느라
니야카에 이사짐싣고 다니여도
아이들은 시내산다고 좋아라꿍
도시부인 되신 당신은 어떠신지
도시의 인정사정 환멸을 안기여
나날이 날이 갈수록 나는 무섭네
박봉에 학벌도 없는 시골선생님
가시낀 업심을 밥먹듯 당하느니
알겠소, 얼굴만있는 도시인줄을
소가 살찌는 시골이 싫어오시니
워낙 송충은 솔잎먹고 사는게라
체험은 절실한데 경험은 늦구려
1986년 5월 14일
나의 가슴은
서러움도 그 모진 괴로움도
찍소리없이 깊숙이 묻어두고
새희망을 싹틔우는 대지의
너그러운 흉금 왜 못되는가?
좌절, 자격지심, 배반…그 모든
티끝과 묵은 덤불을 소리없이
차분히 바닥깊이에 갈아앉히고
해와 달을담는 호수가 못될가
저 흰눈떠인 백두산 련봉처럼
가슴깊은 곳에서 용암이 끓고
천지의 폭포처럼 쏟아드리우며
묵어빠진 정한 쏟아내지 못할가?
1986년 7월 21일
도시에는 얼굴만 있네
향촌에는 풋풋한 서정이 있더만
도시에는 저보아 얼굴만 있구나
가면구에 덧칠까지한 저 양자에
순박과 성실은 에라잇, 비켜섯!
교수연구 나름대로 쌓은 경험인데
론문평의는 얼굴이 제일 기준인가
이 세상 제일 고명한것 관계학인줄
도회에서 살면서 어섯눈을 떳노라
직함평의도 졸업장이 절대치되고
교수안을 써보지 못해도 고급교원
웅장은 내가 먹고 생선은 네먹어라
얼렁뚱땅 마대치기 교수님 많소이!
지위도 명예도 내게는 인연없다만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서로들
제잘난 멋에 사는 인생극장인데야
안빈락도는 시골훈장님의 몫이겠지.
1987년 1월 20일
사랑의 속삭임
남몰래 입속으로 외워보아도
큰애기 얼굴에 노을이 피고
총각들 가슴에 파문이 이는
내이름 예이제 사랑이란다
불러서 한없이 정찬 이름
들어서 언제나 고운 그부름
다감한 마음들을 하나로 이어
푸른꿈 안겨주는 신비로운것,
어떤 이는 나를 두고
활짝핀 인생의 꽃이라 한다지
재빨리 남먼저 꺾지않으면
청춘도 속절없이 스러진다지?
그대여, 너무 서두르지 마시라
일찍피는 앉은뱅이꽃 빨리 시드나니
채피기도전에 아뿔싸 꺾어놓으면
훈향도 썩어 독즙이 되리니
나를 두고 어떤이는
정각에 떠나는 급행렬차라 한다지
때맞춰 급급히 타지 않으면
애석의 눈물만 남겨준다는…
그대들이여,부디 신중하시라.
사랑의 선풍이 회오리친 자리는
생을 허송한 로인의 골방같아
서글픈 참회의 한숨 서리치리니
그러면 나는 정녕 무엇인가?
달빛아래 산보, 키스? 아니면
오 다정다감한 나의 벗들아
속일수 없는 내속삭임 들으렴아
나는 하나의 손(ㅡ놀라지 말지어다)
임자따라 길어도 짧아도지는
때따라 뜨거워도 차가워도지는
변화많은 신비로운 손이란다.
그대를 다정하게 껴안아
행복의 봄동산에 이끌어줄수도,
그대를 무정하게 떠밀어
고통의 심연속에 빠뜨릴수도,
때로는 별같은 눈매,높은 젖가슴에
이끌리는 탐욕의 손 될수도 있으리
허나 생활의 고삐 단단히 잡는
성실한 젊은이가 나는 더 좋더라
파란많은 인생의 먼먼 바다에
리상의 돛배 둥실 띄워놓고
어엿차 힘차게 노저어가는
억센 손이 되고프단다.
때가 오면 청첩없이도
내 그대들 마음의 들창 열리니
참사랑의 노래 엮기까지는
마음의 금선 쉬이 튕기지 마라
하기에 벗들이여
힘겨울 때 지팽이 되고
어려울 때 희망의 손길 될 때
굳게 잡으렴아 복된 노래 엮고저…
《청년생활》 1983년 1기
사랑꽃도 피고 지는가?
아니더라.
사랑의 꽃은
젊은 가슴밭에만 피는
그 한철 꽃이 아니더라
세월이 울리는
퇴각의 북소리에
끓던 정열도 식어
심장은 만가를 엮는데
애탄하는 나그네야
해가졌느냐? 참인생은
불혹부터라고 하거니
이제 곧 진미를 맛보라
참으로 참사랑이였음을, 너
늦어서 뒤늦게 깨달았을 때
아쉬워 돌이켜 되새겨보며
가슴을 탕!친단들 무엇하리
님이라 부르던 한창시절은
농가의 꿈자리에 시들었고
당신이라 부르던 님얼굴에
밭고랑 줄줄이 그어지는데
사랑꽃 풍기던 향기는 남아
아쉬워 더욱 감회로우리라
사랑이 참사랑 보듬거니와
저보아, 석양도 멋들지않냐?
1987년 9월 9일
유감시
이 한생에 그냥
되새겨보는 단어는
“유감” 그 하나여라
유감의 에누리없는
선물은 단지 그 하나
막무가내한 후회여라
1987년 12월 26일
개방시대 점입가경
농토에 청춘을 묻어버리고
시골훈장님에 자족하던 나
도시진출하니 촌계관청이라
놀랍고 경이로운것 많소다
개혁이라 개방에 좋은 세월
팔고사지 아니하는것 없구나
돈에 웃고 사랑에 울고지고
순정도 개혁, 정조도 개방해…
고리삭은 시골샌님 어서와요
도처에서 유혹이 손짓하누나
애인이 무엇이고 정부는 뭣?
비너스의 미묘한 웃음 난당임,
곤혹의 인생극에 방종이 주인공
애정의 희비극이 고조에 달했나
인간의 마음도 두만강처럼 흘러
흐는것이 순리라고 나를 꼬시네
사내의 심장은 속일줄 모르나니
뛰는대로 고동치는대로 하라요
남자여, 따라 오시라, 요리조리
남몰래 감각만 찾아 가만히와요
녀자여, 미안!나는 나는 못해!
정염의 골방에 자극이 짜릿해도
진흙탕에서 어떻게 솟은 나인데
순간위해 앞날을 구겨박으리까?
방황의 광야, 곤혹의 깊은 숲에
반딧불 반짝반짝 내가 홀리울제
가슴의 골짜기에서 메아리소리…
배반당했던 고통을 벌써 잊었냐?
량심을 찍는 두려운 쌍도끼로는
미모의 녀자가 으뜸이라 했거늘
개방에 랑만이 극치를 이룬단들
도덕이 바닥을 핥으면 어쩔고?
아리랑 인생길에 열두나고개를
함께 울고웃으며 손잡고 넘어온
조강지처의 눈치무서워 그러느냐?
너를 다시 잃고싶지 않아서더냐?
정감을 짜내면 곧 치약같은것이요
솟아서 마를줄 몰라야 샘물인것을
마셔도 마시여도 정갈한 나의 샘을
구태의연 시리도록 마시며 살란다!
1988년 4월 12일
산이여, 그래서
산은 저리 높디높아서
그래 너무 좋더라구요
산우에서 구름을 잡는
개꿈을 꾸던 철부지땐,
산은 노 드팀이 없어서
그래 모올래 좋더라구요
뭇산의 봉우리 될랴하고
야심차던 젊은 그시절엔,
산마다 푸릇이 푸르러서
그래서 하냥 좋더라구요
급급히 가는 봄을 바래니
이 시각은 더더욱 감회라…
1988년 5월 19일 (봉오동저수지에서)
님이여
님이여, 그대
청청 하늘에 하얀
구름한송이 떠가면
내 그리움인줄 알아다오
저기 저구름이 가다가
주루룩 한줄기 비내리면
참다참다 끝내는 못참은
이내 눈물인줄 알아다오
1988년 6월 19일
떠나가는 지인에게
저 하늘엔 별들도 많고
이땅엔 사람사람 많아
붐비는 인생 장거리에
아는이 많기도 하건만
솔직함을 비웃는 속세에
밝은 마음의 거울속에서
진솔하게 마주웃어주는
지인지기 그 몇몇이던가
지기여, 그대 떠나가도
걸음걸음 행운만 딛기를
비는 내마음을 기꺼이
디딤돌로 괴고저 하노라
1988년 7월 23일
오늘의 이 심사
울적한 오늘의 내 심사
눌과 더불어 풀어갈고
사람들 단술만 즐기는것을
내사 오늘에야 알겠구나
천하시비무소정인데 (天下是非無所
오히려 시끌대니 귀따갑다
내 차라리 벙어리 석삼년을
귀머거리 두석삼년을 살가봐
1989년 1월 13일
시혼이여
내 철모르던 그 시절부터
멋모르고 시혼을 따랐건만
얄미웁더라, 시혼은 종시
나를 띄워주지 않았더라
세월은 늙고 시혼도 시들해
참다못해 한소리 웨쳐본다
시혼이여, 괴까다로운 시여,
너는 어이 지어지는것이냐?
ㅡ분노가 시를 낳는다 하였거늘
무병신음되고 수수께끼된다면
시의 위기는 현대풍타고 오리
차라리 내 무딘 붓을 접으리라
1989년 8월 14일
생각의 여울목에서
노을이 흐른다 두만강 물결따라
석양은 강북,강남을 물들이누나
황혼을 깔고 교두보에 멍청하니
생각이 생각을 부르며 쫓아간다
흘러와도 흘러가도 흐린물결은
처절썩 호소하느냐 장단을 치냐
이강산 락화류수에 세월은 가고
하많은 사연들이 씻겨간줄 아냐
인생길은 오불꼬불 오솔길이요
이런저런 생각많은 동물인지라
노상 생각의 여울목을 건너도다.
오는 새아침에도 해지는 저녁도
얻기위한 인생이라 잃어서 죽냐
인정세계 풋풋한지 나는 몰라라
소풍에 담소담략 인생을 즐기나
리기와 허위와 진실이 함께걷네
하염없는 생각을 쫓아가는 생각
강건너 남양땅에도 해는 졌는지
국경너머 내형님 내 어린조카들
그냥 밥이나 잘먹고 있는것인가
닳아버린 꽁다리분필처럼 오늘도
모지라진 하루해가 피같이 타네
생각하며 살면 얻는것이 있는가
생각해봐도 그저 생각은 생각뿐…
1989년 10월 1일
락조
락조가 비꼈노라 불타는 물결이여
물새가 울며나는 강변에 헤매노니
동해의 흐름에 내마음을 실어다오.
삭풍에 흩날리는 락여귀근 유정타
청춘을 묻어버린 인생의 저언덕에
내넋도 고이잠들면 얼마나 좋으랴
1989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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