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http://www.zoglo.net/blog/cuijunshan 블로그홈 | 로그인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 미발표작품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기행

고시조와 현대시조
2013년 01월 02일 12시 50분  조회:12291  추천:2  작성자: 최균선
                                 고시조와 현대시조                         
 
(특강재료)             
 
    여러분, 특강이라고 할 것은 없구요 함께 조선시대를 풍미하였던 “시조”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도록 합시다. 자기 민족의 언어환경 속에서 자라온 여러분은 이질적인 한국어 (조선어)의 정형시인 시조를 흔상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고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문학사를 배우고 한국의 시조에 깜깜이면 좀 곤란할 것입니다. 긴말 접어두고요, 자, 그럼 이제 시조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시조(時調)는 고려 중엽에 발생한 전통시 양식의 하나로 조선시대에 유행한 시가이죠. 고려 후기에 이르러 신흥 사대부들이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경기체가 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유교적 이념을 표출하기 위해 또 다른 표현 형식을 개척하는 과정 에서 창안된 순국문학 양식입니다.
    시조의 기원은 한시기원설, 별곡기원설,민요기원설,향가기원설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있어요. 시조라는 명칭은 ‘시절가조’에서 나온 것으로서 시절가란 이 시절의 노래라는 뜻인데요 여기에 곡조를 뜻하는 조가 붙은 것입니다. 그리고 옛 가락, 또는 본디의 가락이라는 뜻을 가진 고조에 상대되는 개념을 지닌 말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시조를 가리켜 단가라고도 하는데 이는 노래의 길이가 짧은 데서 연유한 것입니다.
   시조의 명칭이 ‘가락’ 또는 ‘노래’와 연관이 깊은 것은 시조가 본래 노래로 향유 되었던 사실과 관계가 깊은데 오늘날 한(조선)민족이 시조라고 부르는 것은 본디 가곡이라고 부르는 음악의 노랫말, 똑같은 노랫말을 가지고 시조라는 음악으로 노래 하기도 했기때문인데 이것은 오늘날 그대로 내려오고 있는 음악적 관습이에요.
   시조의 형식은 전체가 초, 중, 종장의 3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 장은 3-4자 정도로 된 네 개의 단어 또는 어절로 되어 있어요. 이 말 덩어리들은 마디 또는 토막 혹은 음보라 불려요. 따라서 시조의 한 장은 대체로 15자 안팎이 되며 작품 한 편은 대체로 45자 안팎이 되지만, 이런 형식을 글자 수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규칙은 없었기 때문에 글자 수에 변화가 많은 것도 형식적인 특징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종장의 첫째 마디는 반드시 3자로, 종장의 둘째 마디는 대체로 5자가 넘도록 표현하는 경향이 굳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시조의 형식을 설명할 때 두 개의 마디가 합쳐야 뜻이 있는 말이 되여야 하기에 이를 ‘구’라 하여 시조를 3장 6구의 형식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3행으로써 1연을 이루며, 각 행은 4보격으로 되어 있고. 이 4보격은 다시 두 개의 숨묶음으로 나뉘는데, 그 중간에 사이쉼을 넣게 되어 있고. 각 음보는 세 개, 또는 네 개의 음절로 구성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초장 : 3, 4, 3, 4
중장 : 3, 4, 3, 4
종장 : 3, 5, 4, 3
    하지만, 이 기본형은 어디까지나 가상적인 기준형일 뿐, 고정적인 것은 아니지요. 즉, 기본형이라는 거예요. 음수율을 살펴보면, 3, 4조 또는 4, 4조 기본운율인데 이 기본운율에서 1음절 또는 2음절 정도를 더 보태거나 빼는 것은 무방해요. 하지만, 이미 알고 있듯이 시조의 종장에 제1구는 3음절로 고정되며, 제2구는 반드시 5음절 이상이어야 한는 규칙이 유전되어 왔습니다. 종장의 격식도 격식이려니와 시조의 주제가 심화, 확충되는 부분이므로 특히 알심들이는 부분이 됩니다
   흔히 초장의 3,4,3,4 하는 이것이 바로 자수율로서 말 그대로 시조 율격을 이루는 근간으로 보았던 것인데 한국 조윤제선생이 이 자수율로 고시조의 1,000여편을 분석해 본 결과 자수율에 맞는 작품의 수는 30%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자수율을 대신해서 나온 것들이 음수율, 음보율 하는 것인데, 즉 시조의 율격은 소리의 길고 짧음으로도 조화시킵니다. 음수율외 소리의 장단이 서로 잘 어울려도 율격이 이루어집니다. 이상의 형식적 전형은 평시조를 가리킨 것이고, 이와는 달리 그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사설시조는 형식에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시조의 종류를 일반적으로 다음 같이 분류하고 있습니다.
    평시조 : 전체 (초장 · 중장 · 종장) 45자 안팎의 단형시조.
    엇시조 : 평시조의 초장, 중장 중 어느 한 구가 길어진 시조.
    사설시조 : 사설 시조 : 3장 중 두 구 이상이 평시조보다 길어진 시조.
    양장시조 : 초장과 종장만으로 된 변형된 시조.
    단장 시조: 종장만으로 멋을 내려고한 변형 시조. 그 밖에 형식적 특징으로 내용 상 연결된 2수 이상의 기본형을 나열하여 한편의 작품을 이룬 경우를 연시조라고 합니다.
    옛시조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유교적 충의사상을 노래한 시조들이 많죠. 말하자면 절개와 의리, 회고, 경물을 읊는것, 안빈낙도, 풍류 등 관념적인것이 대부분입니다…자연 속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삶을 노래하는 작품들도 많은데 이러한 작품들 역시 순수한 자연을 노래한 것이라기 보다는 유교적 충의이념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기녀들의 작품에는 그들의 애정 세계가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양반·귀족처럼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주변 생활이 중심이 된 재담(才谈), 욕설, 음담 (淫谈),애욕 등을 서슴없이 대담하게 묘사,풍자하고, 형식 또한 민요,가사, 대화 등이 섞여 통일성이 없는 희롱사(戏弄词)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시조는 조선시대의 특유의 문학양식이지만 지금도 그 전통을 살려 시조창작이 맥을 끊지 않고 한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어요. 고시조의 형식이 갖는 자질 가운데서 오늘에 남겨진 것이 있다면 첫째는 시조가 3장으로 씌어진다는 것, 둘째는 시조의 각 장이 대략 15자 안팎이라는 것, 셋째는 그러한 형식에서 글자의 수가 엄밀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다는 정도입니다.
    이러한 형식성을 낳게 만들었던 여러가지 조건들은 시대 발전과 더불어 이미 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시조는 노래로 부르는 것이라든가, 정해진 음악이 있어 그 음악성에 부합하는 작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든가, 그 노래에도 엄격한 규칙이 있다든가 하는 것들은 이미 시조의 기본 자질이 아니라는 설명이 되겠습니다.
    시조는 시대별로 갑오(甲午)1894년 이전 시조를 '고시조'(古時調)라 하고, 그 이후 시조를 '현대시조' 라 부릅니다. 현대 시조는 우리 민족의 성정(性情)에 가장 알맞은 문학 양식인 시조를 민족시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고시조의 형식상의 제약을 탈 피하여 현대인의 생활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한 시조로서 노래 가사라는 면을 벗어나 명확히 시라는 의식하에 씌어졌는데 작가(시인)들이 읊었고 평시조가 주류를 이루며, 연시조가 많습니다.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구별점이 무언가구요? 네, 고시조가 주로 유교적 충효사상을 다룬데 비해, 현대시조는 주제가 다양하고 개성적 자아의 내면을 표현하였는 데 현대인의 다양한 정서와 가치관을 다루지요. 다음 사색적이고, 관조적이며 이미지, 상징 등 현대시의 기법을 도입한것입니다. 내용상 감각적이며 실제적인 생활을 다룬만큼 현실에서 많이 취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형식상에서도 정형성을 벗어나서 비교적 자유스러워서 자유시에 접근할 정도로 파격을 하는 경우도 있고 3연6행(句别排行)의 시조가 많으며 자유시 형태를 취합니다. 순수한 우리말을 많이 사용한것이 이채롭고 표현상에서 회화적,시각적이고 제목을 달고 작자를 밝히고 있습니다.  
    개화기 이후 3.4.3.4 의 고정된 형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성과 감정에 알맞은, 비교적 자유로운 리듬으로써 지어졌습니다. 근년에 자유시와 비슷한 형태로 행과 연을 나누어 배치, 구성하여 짓는 경향이 강하며 현대적인 생활 용어로 느낌이나 생각 을 표현하고 있어요. 또한, 개인 정서와 생활에 밀착된 다양한 주제를 표현하며, 다양한 표현 기교를 사용합니다. “비”'  라는 시조를 예로 들어봅시다.
 
                 그대  (2)  그리움이(4) 고요히(3) 젖는 이 밤(4)
                 한결(2) 외로움도(4) 보배인양(4) 오붓하고(4)
                 실실이(3) 푸는 그 사연(5) 장지 밖에(4) 듣는다(3)
 
     그런데 이 시조의 시행을 현대시처럼 배치할 수도 있습니다.
                      
                       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인양 오붓하고
 
                            실실히
                               푸는 그 사연
                                   장지밖에 듣는다           
 
    원문보다 감각상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또 시조면서도 현대맛이 나이지요. 진행상 매끄럽지만, 기본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거니와 더구나 초월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현대시조에서 추구할 것은 중요하게 사상(철리)이에요. 그냥 옛시조처럼 음풍영월하 거나 일상잡사, 연정을 읊조릴 수도 있으나 현대시조인만큼 정형시로서의 시조의 특색을 살리면서 지성적인 계시성이 있어야 읊조려볼 가치가 있게 될테죠.
    그냥 “달아 달아 밝은 달아”하면 리태백이 노던 달이 나오게 될 것이고 광한궁에 상아의 고독쯤밖에 더 나올게 없을 것입니다. 시조라는 형식은 옛것이지만 문화전통 인만큼 계속 계승 발양되어야 한다면 현대시조의 현재적 좌표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 필요하고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대시조는 그저 현대+시조라는 명칭에 그칠게 아니라 현대성과 시조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명실상부하게 역사적 사명을 다한 고시조의 빈 공간을 메꿀 수 있는 충전이 되고, 되돌아와 시조성을 확보해야 자유시와 또 다른 현대시조의 미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현대성을 무시하고 시조성만 고집하면 현대인의 까다로운 미의식에 걸맞는 공감대를 확충하기 어렵거니와 복고주의 혹은 국수주의 경향에 맴돌게 될것이고 반대로 시조성을 무시하고 현대성에만 편향한다면 자유시와 한물밥이 되여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자유시의 변종쯤으로 되고말 것입니다.
    현대시조라면 시행배렬 같은 형식미, 표면적인 현대감각이 문제인것이 아니죠. 고시조가 갖지 못한 현대적 사상, 정감을 침투시켜 시조가 거듭나야 할 이유가 증명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현대시조라면 그냥 글귀나 맞추고 감정을 희롱하는것으로 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시조는 현대사상을 담는 그릇이 될뿐입니다. 약탕관은 옛것이라도 새 처방으로 지은 령약을 얼마든지 다릴수 있다는 말이지요. 시조의 뿌리는 깊으나 새롭게 가꾸지 않으면 뿌리부터 썩고 나중에 꽃도 피지못하는 고목이 되여질테니까요. 자유시와 경쟁하려면 문제는 어떻게 가꾸어야 고시조가 우리 민족의 문학의 백화원에서 다시 꽃피울 수 있느냐입니다. 거두절미하고 현대시조라면 무엇보다 현대인이 공명하고 기꺼이 받아들여 새겨보는 사상(일상적인 것이라도) 이 담겨 명멸해야 할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시조 한수 예로 들어보자요.
                      
                      나비야 청산가자 범나비 너도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서나 자고가쟈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닢에서나 자고가쟈
  
    이 시조에서 드러난 의미는 어느 한량이 나비에 기탁하여 꽃과도 어울려 보려하고 잎과도 어울리려는 방종한 기질을 호탕하게 노래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선비의 호탕한 의미지향이 아니예요. 작품의 의미지향은 나비와 함께 가는 길이 순탄치 않은 것을 암시하고 있어요.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면 지친 몸을 꽃에 의탁해야 하고 거기서 박대를 받으면 잎에라도 의탁해야 하는, 미래의 전망이 불투명한 고단하고 암울한 행로를 노래하고 있는것이 심층적 주제입니다.
    시인은 단 세 줄의 시행에서 바로 이러한 관계를 꿈꾸고 이러한 대동세계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의 시적 자아는 개체의 욕망으로 일그러진 마음이 아니라, 갈고 닦은 마음이며, 자연이나 우주 같은 마음이라야 가능합니다. 대단하죠? 이렇게 갈고 닦은 깊은 생각을 담은 것이 이 시조의 궁극적 “의미”이며 이러한 시적 의미가 독자의 정서와 완벽하게 부합되어 노래처럼 불리워진 것입니다. 시가 '음성과 의미의 조화적 통일체'란 말이 여기서 확인된 것입니다.
    현대시조는 고시조의 음악적 음율을 상실하고 노래하는 시에서 읽는 시로 전환됨에 따라 남은 것은 시조가 갖는 '형식장치' 뿐입니다. 이제 현대시조는 고시조처럼 시조 창의 변주곡에 담아 시적 의미와 정취를 심오하게 하는 수단을 더 이상 가질 수 없으므로, 악곡적 음율이 사라진 공백을 언어의 음성적 자질로 미봉하여 음성과 의미의 조화적 통일체를 실현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만큼 시창작, 특히는 시조창작에서는 시어 하나의 선택과 배치에서도 음악적 율조를 활용해야 하고, 듣는 시에서 읽는 시로의 전환으로, 시각적 조형미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어의 내적 질서를 바탕으로 고시조의 선율적 기능에 버금 가는 율동적 실현과 공간적 조형미를 창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언어의 음성적 질서에서 구해야 하므로 그만큼 '언어를 대상화'하게 된 것이지요.
    노래하는 시에서 읽는 시로의 전환은 음악적 율동에서 언어의 음성 자원을 동원한 율동으로 바뀌게 되고 이에 따라 시적 표출에서 “언어를 대상화”하게 된 사정은 현대시조나 현대시나 마찬가지입니다. 한어시도 운률을 중시하고 있잖아요. 그러나 그 지향점은 정반대였으니 현대시는 이전의 전통시가였던 고시조의 엄정한 형식 장치에 대한 반발과 거부의 시정신으로 나아가고, 현대시조는 그것을 적극 수용하여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현대시가 전통적 율격으로부터의 해방을 이념으로 삼아 개성적 율동을 지향하면서 과격하고 극단적 방향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자유시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현대시의 이러한 자유율적 행로도 시의 멋과 맛이고 전통율격에 대한 이탈과 거부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소월, 한용운, 김영랑, 서정주의 절창은 전통율격을 철저히 외면한 데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창조적으로 수용하고 변용하는 데서 오히려 가능했습니다. 소월시 [진달래꽃]이 시조는 아니지만 그 아름다운 조선말의 음률미를 지금까지 따를 시가 없습니다.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소월시에는 친근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인의 정서에 공감되기도 하거니와 4음3보격이라는 전통율격에 바탕을 두고 엮어졌기 때문이죠. 전통율격은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와 더불어 우리 말의 율동적 아름다움을 가꾸어온 경험적인 미의식의 결정체로서 우리 민족의 심미적 공감에 의해 공유하던 율동형이 양식화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고, 전통율격양식의 리듬을 타고 실현된 것이기에 여러분도 감미로움을 느끼고, 또 쉽게 암기하여 마음에 새겼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고시조이든 현대시조이든 그저 음풍영월에 만족할 것이 아니고 형식미 추구에서 체현되는 현대멋이 아니라 사상, 시조의 주제적의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구별이라면 구별일것입니다. 여기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언어적 이해가 잘 안되면서도 열심히 청취하고 의문점을 구김없이 제기하면서 적극 호응해준 여러분들이 돋보이고 대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010년 3월  23일 
                      
                                                  빈해대학 한국어연구쎈터 ( 최균선)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2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820 인생살이 이모저모 2019-02-26 0 4339
819 (잡문) 진실과 허구의 비애 2018-11-26 0 4454
818 (잡문) 인간다운 삶, 비인간적인 죽음 2018-11-23 0 4558
817 (잡문) 땅, 바다, 하늘 그리고… 2018-11-23 0 4657
816 (잡문) 웃기는 참회 2018-11-16 0 3603
815 (잡문) 시와 시인의 아리러니 2018-11-09 0 3527
814 숲속의 대변론 2018-11-09 0 3672
813 그저 미중부족만이 아닐세그려 2018-11-09 0 3552
812 (잡감) 우문현답 2018-10-05 0 3702
811 (잡문) 진리를 평범하게 말해보다 2018-10-05 0 4042
810 (칼럼) 문학사랑 인간사랑 2018-09-30 0 3855
809 (수필) 구름에 실어본 명상 2018-09-28 0 4203
808 (문화칼럼) 문학혼 2018-09-20 0 4126
807 (잡문) 작가의 량지 2018-09-20 0 4002
806 ( 잡문) 작가정신을 기리다 2018-09-20 0 4226
805 ( 칼럼) 왜 기어이 “북한”이고 “주민”이 되냐? 2018-09-20 0 3707
804 (잡감) 숙명인가? 비애로다 2018-09-14 0 3608
803 (잡문) 엉터리들을 엉터리로 론함 2018-09-03 0 4366
802 자기 부정이 기꺼운 일인가? 2018-08-24 0 4666
801 딱해진 우리네 문학 2018-08-18 0 3863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