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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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사는 맛
2013년 10월 02일 19시 26분  조회:8409  추천:1  작성자: 최균선
                                                   세상을 사는 맛
 
                                                       최 균 선
 
    인생이란 무엇이냐? 하고 묻는다면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격일것이고 한걸음 물러나서 대관절 세상을 사는 맛이란 뭐길래?하고 묻는다면 또 너무 심각할텐데…
    득의한자는 인생을 향그러운 술이라 할것이며 부귀공명한자는 인생을 무지개라 할것이며 누구누구는 또 어쩌구저쩌구 할것이다. 나로 말하면 후반생은 그래도 운이 튼 셈이지만 전반생은 하도 험악한 민초인생을 살아서인지 세상사는 맛이 쓰다고 해야 할지 달다고 해야 할지 답이 막연한 인생숙제이다.
    불가에서는 인생을 망망고해라고 한다. 누구의 약속을 받고 온 이 세상이 아니라 아무 준비도없이 빈주먹을 쥐고 우연히 온 이 세상이다. 그러나 이미 온바하고는 사는맛이 깨소금같이 오래오래 살았으면 좀좋으랴만 억겁으로 헤아리는 무한세월에 비하면 풀잎에 아침이슬같은 짧은 인생이여서 두고두고 무슨맛을 느껴볼수도 없게 되였다. 이래저래 허무하기만 한 인생이다.
    누군가 노래에서《인생은 무지개란다. 아, 무지개란다》라고 했더라만 느끼는 인생은 희극이요, 체험하는 인생은 비극이란 말이 있지 않던가? 젊은이의 상상속에는《즐거워라》가 씌여있지만 살고보면 체험속에는《괴로워라》가 씌여있음을 지성인은 공통하게 절감하고있다. 그러니 무지개같다는 인생타령은 수박겉핥기로 세상을 알고 하는 뜬 소리요, 희망에 속한 기대라고나 할가?
    세월이, 네월이 가는가? 우리 인간들이 이 세상에 총망히 왔다가 가는 과객들인가? 우리가 잠간 머물러있는 이승에서 시간은 어데서 오고 어데로 가는지 누구도 모른다. 그나마도 우리 생활의 시계는 무미하고 단조롭고 텅 비고 메마른 시계이다. 우리는 다 이 텅빈 시간의 노예로 어떤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며 산다.
    발길이 가는대로 걷고걷는 인생길에 고달픈 길손들인 우리의 인생락은 무엇일가? 서유럽의 한 철인은 인생마당에 세가지 락이 있다고 했다. 그것인즉 녀인의 가슴과 말잔등과 책이란다. 3천궁녀를 거느린 력대의 제왕들이나 탕아들은 녀인의 가슴 우에서 발설의 쾌락을 느끼며 살았을것이고 일대천교 칭키스칸같은 영웅들은 들뛰는 말발굽으로 천하를 주름잡는 정복욕으로 인생을 장식했는지 모른다. 책속에서 문명의 들창을 하나 또 하나 열어온 인류의 선구자들은 창조의 희열로 살았을것이지만 그것은 선택된 선지선각자들만이 느낄수 있는 락일뿐이다.
    그랑데같은 황금미치광이들은 재부를 축적하는 재미로 살고 한여름 서늘한 그늘 밑에서 노래만 부르는 매미처럼 한가로운 사람은 여유로운 재미에 살고 무거운 수레를 끌고 비탈길 오르는 황소처럼 한생을 구슬땀으로 목욕하는 사람도 일하는 그 멋에 살지모른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세상사는 맛 ㅡ단맛, 쓴맛은 다 살아가는 과정에 있음은 자명하다.
    복속에 화가 화속에 복이 있는 인생이지만 살아가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이런저 런 불행을 안고 산다. 그중에서 제일 불행한자들은 제 할 일 찾지 못하고 무위도식 하며 몽유병처럼 인생마당을 맴도는자들이리라. 인간은 리상의 화신이 아니라 조건속의 존재물이니 말이다.
    두주먹 불끈 부르쥐고 숨차게 뛰여도 자칫 뒤처질수 있는 우승렬패, 적자생존의 세상인데도 술 잘마시고 춤 잘추고 노래 잘부르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안고 사는 우리 배달족속들 가운데 날이감에 따라 격에 맞지않는《매미》들이 늘어가고 있음 을 어떻게 보아야 할가? 아직도 《아니놀지 못하리라《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부르기 좋아하는 민족은 이 땅에서 우리 민족밖에 없을것이다.《게으름병》이라는 몹 쓸병이 마을마을에, 도시의 골목골목에 만연되기 시작한것은 언제부터였던가? 인간의 어떠한 결함이든 다 고쳐줄수 있지만 유독 무직업자 ㅡ유민에 대해서는 교육해낼수 없다고 대성인 공자님이 말씀했다.
    불볕 쏟아지는 건축공사장에서 동이땀 쏟으며 생활의 벽돌을 열심히 쌓아가는 관내사나이들의 구리빛 얼굴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그들의 땀에 절은 가 슴들에 사는 맛이 깃들어있는지 않다고 말할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우리네 난부자 든 거지ㅡ신사님네들은 진잎 먹고 잣죽트림을 하려 할뿐 인생의 쓴맛을 보려하지 않는다. 저 유명한 만리장성은 몽골인들의 말발굽을 막지못하였지만 눈에 흔하게 띄우는 마작청마다에서 쌓아가는《장성》은 남녀로소를 가두어놓고 라태를 부화시키고있다.
    바로 이렇게 사는 멋때문에 할아버지가 심은 사과나무에서 손자가 사과를 따먹게 된다는 과정과 인내의 철학을 진저리나 하며 그 옛날 우리 할배들이 망국의 한을 짓 씹어 삼키며 무딘 괭이로 일구고 우리네 아버지들이 피로 지켜 땀으로 걸구어 온 자 신들이 보금터마저 헌신짝 내버리듯하고 부평초같은 삶을 안일고 행운에 기탁하는 사 람들이 얼마던가? 이 산에 앉아 저 산이 높은것만 바라보며 공연히 팔소매만 걷어올 리고있는 사람들의 인생이야말로 싱거운 인생이 아닐수 없다.
    어떻게 대운이 튼다해도 인생은 단것과 신것을 함께 먹도록 주어졌다. 인생살이를 한송이 포도를 먹는방식에 비유한 재미있는 서술이 있다. 어떤 사람은 먼저 신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신것을 먹은 연후에 가슴설레이는 희망을 안고 단것을 먹으려 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먼저 단것을 먹은후 아름다운 추억속에서 신것을 먹는다. 첫부류의 사람들이 포도를 먹는방식은 고전적이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젊어서 한 고생은 은을 주고도 못산다는 인생철리를 깨닫고있는 사람들이다. 현대인들속에는 먼 저 단것을 먹어치우고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 관계치않는 사람들이 더많다. 이런 사람들은 급공근리(急功近利)적이요 목이 마르면 소발자국에 고인물도 약수라고 마실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금세에 신것만 먹으려 하면서 단것은 두었다가 래세에 먹으려한다. 이런 사람들은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는 근검정신은 잘알고있다. 비록 물을 가두기만 하는 저수지와 같은 삶을 살지만 곰이 옥수수따기식으로 무모하게 사는 사람들보다는 퍽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다.
    또 내내 단것만 먹으려 하는 맹랑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신것을 먹어야 할 때 아예 살고싶은 마음이 없어한다. 안해나 남편이 외국에 로무일군으로 나가 서 기시받고 눈물 흘리며 땀에 절은 돈을 벌어들이건만 그야말로 유한계급으로 호강 하기 일쑤이다. 특히 집에 두고 간《귀공자》,《공주님》들이 이류의 단맛보기에 더 열중하고있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단것, 신것 다 맛보았지만 어떤 맛인지 모르거니와 원래의 맛마저 잊고만다. 이런 사람들은 늘 희망에만 매달려있다가 실망의 쓴 술잔을 들게 된다. 행운은 언제나 달에 걸려있는것이 아니던가? 어떤 사람들은 신것을 먹어 보고는 나머지 포도알은 죄다 달콤할것이라고 단정해버린다. 그러나 흔히 헛다리짚기 식으로 너무 일찍 좋아한 셈이다. 마지막 포도알마저 신것일수 있기때문이다. 오늘의 맑은 하늘만 쳐다보며 언제 밀려올지 모르는 비구름은 예상하지 못하는 단순한 사람 들이다.
    포도가 수백종이듯이 한송이 포도송이도 그맛이 꼭같은것은 아닌지라 사람에 따라 느끼는 맛이 각양각색일수밖에 없다. 례컨대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포도는 꼭 신것일것이라고 선험적으로 판단하는데 자신이 쥔 포도가 달것이라고 믿고있기에 나중에 예상과 다르게 되면 자신의 포도가 세상에서 제일 신것이라고 운명을 원망한 다.
    철학적사유를 하는 사람들은 신것도 단것도 먹을수만 있다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예술형사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포도가 좋읁 술로 빚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먹으면 더 취할것이라고 믿는다. 아니면 건포도가 된 다음 먹으려한다. 메마른 인생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려 하지않고 가능한한 가미하고 가꾸어가면서 사는 운치있는 사람들이다.
    매우 많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리해득실부터 앞세우면서 자신이 남보다 손해볼가봐 안달하고 량껏 먹지못할가봐 속을 썩인다. 이런 사람들은 경쟁의식이 있고 생활의 강자로 될 기질이 있는지 모르나 자칫 참새 방앗간 지나는격이 될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어둠속에서만 포도를 먹게 되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운수에 맡기지 않으면 손더듬으로 고를수밖에 없다. 만약 신것을 골랐다면 자신이 불우하다 고 한탄하고 혹 단것을 먹었다 해도 아름다운 포도의 색갈은 볼수 없다. 생활의 장님들이라 할수 있다. 그들은 주어진 운명에 순종하며 인생의 긴 턴넬속을 무작정 걷고 걷는 타입들이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요행심리가 곧잘 나온다. 이를테면 달나 라 광한궁에서 절구질하는 옥토끼가 은절구공이를 든채 제집 가마안에 떨어져 삶기 지나 않을가 하는 환상속에서 늘 요행을 바라고 긴목을 빼든다.
    어떤 사람들읁 신포도 몇알을 먹고 포도는 죄다 신것이라고 단정해버리고 어떤 사람들은 단 한알의 단것을 떼먹고는 미만한 인생에 감격하고만다. 이들은 다 코끼리 다리를 만져보고 코끼리는 기둥같다고 하고 배를 만져보고 코끼리는 바람벽같다고들 말하는 장님들과 같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한차례 좌절에 눈물코물 쥐여짜는 약지자 (弱智者)들이다.
    혹 어떤 사람들은 신것과 단것을 통채로 삼켰으나 미각이 마비되여서 시고 단맛을 분별하지 못하거나 시든달든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했거나 하루밤 통곡해보지 못하고 그저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도일 (度日)할수 있다. 세상에 완전완미하거나 맛이 똑 같은 포도송이는 없다. 오직 최적 의 먹는 방식만이 있을뿐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에필로그가 없는 길고 짧은 소설에 비유할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별생각이 없이 훌훌 넘겨버린다. 그러나 명지한 사람들은 한페지 한페지 알심들여 읽으면서 사고하고 음미한다. 그들은 두번다시 읽을수 없는 생활의 책이라는것을 잘알고있기때문이다. 남이 써가는 인생노트를 어깨너머로 보면서 장훈이야, 멍훈이야 하면서 혼자 흥분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제 목숨을 제가 산단는것을 잊고 있는 격이다.
    이렇듯 생명은 하나의 발견과정이 아니라 창조과정이다. 환언한다면 당신은 자신을 발견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창조하는것이다. 그속에서 사는 맛이 느껴 진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가 하는 발견에 급급해 하지말고 누구를 만들것인가에 급급해해야 할것이다.
     아무튼 세상을 사는 맛은 당신이 빚고있는 지금의 생활, 그  자체일뿐이다.
 
                                         2003 년  7 월 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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