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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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와 민초
2015년 04월 10일 08시 57분  조회:5810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잡초와 민초
 
                                       최 균 선
 
   잡풀이란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대수롭지 않은 여러가지 풀이라고 풀이한다. 만물의 척도로 자처하는 인간들이 제멋대로 대수롭지 않게 불러버린것이다. 누가 어느것은 잡초이고 어느것은 정종의 풀이라고 단정할수 있을것인가? 우쭐하는 풀은 조물주의 예술품일가? 난쟁이풀들은 장난삼아 만든 졸작일가?
   모든것이 대칭되지는 않아도 조화로운 대자연이다. 산풀이든 들풀이든 홀로 자라지 않고 군체를 이루어 오손도손 대가족으로 산다. 그렇게 함께 하면서도 의지가지 없기도 한 풀은 지구와 더불어 영원히 그렇게 살아갈것이다.
   밤하늘은 별빛을 빌어 이제 곧 조락을 재촉하는 가을밤의 사연을 읊조리며 싸늘 한 밤 찬공기에 더 올똘해지는 풀꽃, 꽃이라 피여서 자족하는 조촐한 모습, 봄이면 봄마다 뒤질세라 새싹이 트고 작은 꽃송이가 피고 태양의 한계절 자기답게 살다가 조용히 지는 작은 소망과 무성하던 계절의 그리움들 안고 오늘도 오롯이 생명을 호소하는 무명초를 보며 풀의 리페를 생각하게 된다.
   제나름대로 덕목을 지니고있는 풀은 서로를 닮아가려 하지 않고 원래 생긴 제모습을 자랑하며 만록총중에서 가장 겸손하다. 풀은 가장 낮게 살아왔으므로 동량과는 인연이 없다. 어디서나 푸르게 웃는모습, 하나의 줄기로도 생명을 지탱해가며 대롱대롱 진주이슬을 이고 선 그 모습이 예쁘다.
   풀은 생장에는 극성이지만 무욕무탐이다. 들판이나 절벽이나 강둑이나 계곡이나 혹은 꽃밭이나 나무아래나 소신껏 서식한다. 사람들이 알아주건말건 유유자적하게 살다가 마감한다. 머리를 들면 태양을 우러르고 머리숙이면 갈한목 추겨주는 단비, 궂은비의 속삭임소리를 듣는다. 시름걱정없이 흘러가는 꽃구름을 쳐다보고 부는 바람 따라 나울거린다. 갖가지 벌레들을 불러들이며 날새들과 더불어 화목하다.
    풀은 유약하지만 굴강하다. 광풍이 불어치면 휘둘리다가 바람잦으면 본연을 찾아 의연하다. 폭우가 내리면 허리굽히고 림리하게 맞다가도 비그치면 꿋꿋이 일어서는 풀이다. 키낮은 풀이라도 뜻은 높고 강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굴강한 정신을 키운다. 외세에 의해 보금터가 옮겨지더라도 곧 정착지로 되여 번식한다.
   풀은 말이 없지만 무언으로 고할줄 안다. 묵은 덤불을 헤치고 고개를 내밀어 봄의 도래를 알리고 록음방초 승화시로 무성함을 시사하며 새벽찬서리에 시들어 조락의 가을을 알리고 바싹 마른자태로 긴긴 겨울의 혹독함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풀이 악착하다지만 풀은 악행을 모른다. 가꾸어주지않든, 학대하든 풀의 본연은 착하다.
   잡풀의 끈질긴 생명력은 생명력의 상징이다. 뿌리째 뽑아버려도 햇볕에 마르고도 악착스레 흙의 몸 어느 한구석에 비집고 들어가 새 삶터를 잡는다. 수백수천의 발길이 즈려밟는 학교운동장 같은데서도 매버리면 어디서 날아왔는지 온갖 풀들이 금새 싹을 틔우고 보란듯 고개짓한다. 풀씨는 아마 바람과 함께 살면서 틈만 생기면 새여 드는가 보다. 자기중심적이고 리기적인 인간들의 발밑에서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리라. 들풀은 약자인듯 강자이이기도 하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지만 풀은 정성을 들이지 않아도 아무데나  자리잡으면 기어이 머리를 내밀고 생명찬가를 엮는다. 심지어 돌틈에서조차 생생하게 살아서 숨쉰다. 뿌리없이 떠도는 부평초도 풀이려니와 먼지처럼 떠돌다 정착하기도 하고 천고의 밀림속 썩어가는 진대나무 몸둥이위에서도 제법 새 생명으로 터를잡고 살아서 꿋꿋하던 나무의 혼을 기리는것같은 장할손! 풀이로다.
   풀은 벼랑끝에 매달려 살아가기도 하지만 아찔함을 모른다. 뿌리채 뽑히여도 다시 뿌리박고 재생을 도모할수도 있다. 풀은 재생은 고집하면서도 이변(异变)은 바 라지 않는다. 숙명에 순종하며 본분을 지키는것이다. 제몸이 무너지고 꺾어지면 새 봄에 그 자리에서 새싹을 틔운다. 베여서 묶어놓으면 풀단이요 무져놓고 흙을 덮어놓으면 록비로 된다. 자기의 희생으로 황금의 물결을 에워오기도 하는것이다.
   이 지구촌에서 그냥 무명초로 억천년을 그렇게 살다가 죽어가고 그렇게 다시다시 살아나서 생태평형을 유지하며 록색운동에 지칠줄 모른다. 벌도 나비도 못본체하고 흔하디 흔한 잠자리도 하찮게 보고 스쳐가는 바람과만 잠간 속삭이고 아무도 보아주 지 않는 그 쓸쓸함에도 고독을 모르는듯 고즈넉이 대지를 수놓아간다.
   바람새 모질면 엎드릴줄도 알고 한바탕 휘몰아치다가 지나가면 곧장 일어서는 풀, 폭우가 내리면 고스란히 맞고 눈보라 채찍질해도 뿌리깊은 봄꿈을 키우며 납짝 엎드리는 풀. 홍수가 휩쓸어간 강기슭에도 제일 먼저 허리펴는 풀, 둥글게 휘여들고 둥글게 일어설줄 아는 그런 자세가 무명초들의 성격인가?
   기실 대자연속에는 잡풀이란게 없다. 어느 풀이나 봄날이면 대자연을 록화하는 록색의 생명이다. 생명은 조물주의 품안에서는 평등한 생존권리를 가지고있다. 풀은 외계에서 오는 모든 강타들을 인내로 이겨간다. 그러나 그런 생사박투에서 풀은 비명 한번 지른적이 없다. 씨앗을 품는 풀, 작은 꽃을 피워올리는 풀, 열매없이 뿌리만으 로도 번성하는 풀, 가냘픈 그 몸 어디에서 그런 생명욕 이 넘치는 걸가?
  《구약성서.시편》에서《풀은 아침에 꽃이 피여 자라다가 저녁에는 베인바되여 마르나니라.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榮華)가 들의 꽃과 같으니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 지나니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 로다》라고 읊었는데 《풀꽃》은 이 티끌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뜻한다.
  《론어, 안연(论语。颜渊)》에“(초상지풍, 필언(草上之风,必偃)”에서 공자는 웃사람의 덕행은 바람같고 재하자(在下者)의 덕행은 마치 풀과같다고 하였다. 풀은 바람을 따라 눕는다는 뜻으로서 지도자의 덕치와 교화가 백성들에게 영향을 주고 감화시킬수 있 음을 은유적으로 설파한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민초”라고 자칭하였는지 모르나 확실히 민초들은 잡풀 과같은 생을 살아왔고 살아간다.
   백성을 풀이라고 할 때 권력은 바람이라 할수 있다. 그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먼저 일어날가? 아니면 바람따라 눕고 바람따라 일어날가? 풀은 아마 허리를 후려 치는 낫날보다 먼저 일어날수도 있다. 그런 풀들을 너무 닮아가면 이중성격의 인간이 되고 파스칼이 질타한 생각하는 갈대가 되는걸가?
   그러나 가녀린 풀들도 잘 꼬아놓으면 나무단을 묶는다. 민초들의 힘도 그와 다를바가 없다. 한점의 불꽃도 료원의 불길로 타오르는데는 잡초ㅡ들풀의 연소성에 힘입는것이 아니랴, 이 지구위에 모든 생명은 필요에 의해서 존재하는것. 잘나고 못나고를 누가가늠한단말인가. 묻거니와 존재를 인정하며 사는 공존의식이 문명을 자랑하는 우리 인간들에게 풀처럼 짙게 물들어있는가?
   이 지구촌에 원래부터 잡초란게 없듯이 누구나 나서부터 민초인지 아닌지를 예견하지 못한다. 민초로 살면 민초이고 립신양명했다면 민초가 아닐수도 있다는 말이다. 살아도 죽어도 자기식대로 사는 잡풀들의 삶의 색깔, 이 점에서 우리 인간은 그것들 보다 못하지 않을가싶다. 생존의 자유, 순수의 생명,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돌참, 노박이로 살아온 끈기, 이런 모습이 배달민족의 애환이 담긴 삶처럼 가까이 다가와서 화단에 화사한 꽃들보다 더 애착이 가고 찬미하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다.  


                                  2008년 7 월 20 일             (연변문학 2015년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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