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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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씨수상록 37<2>) 긍정사유의 저변
2016년 06월 05일 05시 42분  조회:5161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긍정사유의 저변
 
                                                                       진 언
 
    사람이 한시각도 사유하고 숙고하지 않으면 그는 식물인과 다름없다. 사유란 세상을 꿰뚫어보는 마음의 눈이다. 세상은 부단히 변화한다. 이런 변화에 적응해 나가기 위해서는 사유가 세상보는 눈이 되여야 한다. 생각하며 살것인가 남의 생각을 따라 살것인가. 늘쌍 사유하고 숙고한것은 무엇이든지 점차 마음의 경향이 된다.
    사유는 유전자 풀(Pool)과 같다고 한다. 생물은 새로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미리 보유하고있던 유전자 풀을 통해 자기를 유지한다. 사유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상황에 부딪쳐 그런 사유의 풀이 있기에 가지가지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며 살아갈수 있다. 그런데 사유는 급변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사상해방, 관념갱신같은것이라고나 할가, 그것은 생물의 종의 진화가 돌연변이를 리용해서 진행되는것과 같다. 사유의 진화도 돌연변이를 통해 질적변화를 가속화된것이다.
    흔히 말하는 정사유란 곧 바른 생각이다. 좋지 않은 생각을 버리고 좋은 생각을 하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긍정적인 사유이다. 불교의《잡아함》에 “해뜨기전에 밝음이 비치듯이 괴로움의 사라짐에는 먼저 정견(正見)이 나타나고 이 정견이 정사유(正思惟) 내지 정정(正定)을 일으키며 정정이 일어남으로써 마음이 해탈한다.”고 설파하고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정견으로부터 바른 생각이 나오고 그로부터 바른 선정과 해탈이 나온다는 도리이다.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정사유는“생각해야할것(可念)”과“생각하지 말아야할것(不可念)”에 대해 옳바로 판단하고 실천하는것이라고 말한다. 생각하지 말아야 할것이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는 “출리(出离)”의 마음가짐을 가지는것을 말하고 성내지 않고 분노를 잘 다스리는 “무에(無恚)”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함을 말하고 어리석음을 잘 다스리는 “무치(無癡)”의 마음가짐을 가지는것을 말한다.
    그래서 보통 긍정적으로 사유하라는 말을 잘 한다. 그런데 다른것에 거부감을 가지지 말고 동조해야 내가 안전할수 있다는 처세술이 곧 긍정적인 사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은 자기가 보는만큼 넓어있고 생각하는만큼 의미가 있게 된다. 그저 보고들어서 알기보다 더 요긴한 문제는 단순히 정보로써 맹신하는것이 아니라 누가 (무엇이) 옳고 누가(무엇) 그른지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것이다.
    니체는 쓰고있다. “비록 온통 밝지는 않다하더라도 드디어 수평선은 다시 자유롭게 나타났던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우리의 배는 다시 모험을 떠날것이다. 위험을 무릅쓸것이다. 인식을 사랑하는 자의 모든 무모성이 다시 허용된다. 바다, 우리의 바다가 다시 열리고있다. 아마도 이와같은 자유의 바다가 아직까지 없었으리라.” 니체가 말하다싶이 사유의 바다, 사상의 바다에는 풍랑이 사납다. 온건파가 아닌 생각이 세상을 주도한다. 용기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더욱 강하게 만든다.”
     니체는 이렇게 긍정적사유를 호소하면서도 “도덕에 대한 복종은 노예적이며 허영이며 리기적이며 체념이며 음울한 광기이며 사상을 버리는것이며 절망적인 행위이다.”라고 부정하기도 하였다. “매서운 눈초리로 천부의 손가락질을 대하고 머리숙여 유자의 소가 되련다”는 로신은 당시 세상을 많이는 부정적으로 보면서“…참담한 인생에 두려움없이 직면하여 림리한 선혈을 두려움없이 정시”하라고 호소하였다.   
    로신처럼 용기없이는 진실을 밝힐수 없고 불리익을 감수하지 않으면 진실을 말할수 없는 인생현장이다. 그만큼 긍정적사유이든 부정적사유이든 환경에 달린다. 인간에게는 본성적으로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들이 전하고자 하는 이미지나 메시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 대상으로부터 신속하고 용이하게 그 이미지나 메시지를 감지하게 되고 또한 재빨리 감응하는 성향이 있다. 례하여 예쁜꽃들이나 그 향기앞에서는 그 누구라도 혐오의 감정이 발동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 꽃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이나 향기의 강한 호소력과 이미지와 메시지에 의해 우리 마음에 내재한 섬세한 미적감성이 신속히 반응하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꽃들이 만개한 봄날이라 하더라도 만일 황사가 진하게 끼였다든가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거나 바람이 불게 될 경우엔 그러한 주위에서 일어나는 부조화나 불협화음이나 가해요인들에 의해 꽃들이 손상되고 추락되거나 희석되며 큰 안목으로 바라볼 때 미의 질감이 현저하게 탕감되고만다. 이는 꽃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깎아 내리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뿐아니라 종족보존을 위해 꽃이 필요로 하는 튼실한 열매를 맺는일이 어려워진다고 볼수도 있는것이다.
    세상은 제눈으로 본대로 생겨먹은것이 아니다. 오로지 허상의 벽을 뚫고 깊이 투시해야만 진실한 세상속이 감지된다. 한눈 뜨고 한눈 감고 귀막고 입을 봉하는것이 현명해진 인문환경에서 자유분방한 사유는 늘 무형의 벽에 부딪친다. 그래서 사유가 허망 헤매는것이다. 옛글에 “대저 겨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천지사방의 위치가 바뀌고 모기나 등에가 살을 물면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나니 인의는 참혹하여 끝내 분하게 만듦으로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힘이 매우 크다.”고 이르고있다.
    사유의 돌변은 “이단사설”을 낳기도 하는데 돌변이 없다면 사유의 진화도 없다. 사유의 돌변이 없다면 마치 리조말기 선비들의 사유층차에 머물고만다. 그때, 세계는 벌써 급속히 변화되고 동탕하고 있었지만 선비들을 지배했던 세계관은 언녕 “페경기” 에 이르렀다. 유가사상에 목을 맨 그들에게는 세계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사유의 돌연변이가 없었다. 그결과 무기력하게 나라를 잃고 가슴을 칠수밖에 없었다.
    대개 사람들은 득의할 때 왕왕 관방에서 승인하는 시점에서 세계를 긍정적으로 보다가 역경에 처했을 때에야 비로소 각도를 바꾸어 세계를 보려하거나 심지어 반면으로 보려한다. 다른 한 각도로 적대방을 볼 때 편견과 아집을 깨뜨릴수 있으며 더 확실하게 인생의 본질을 투시할수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자기의 두려움은 저 섬뜩한 대방의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마냥 부정하려고만 든다.
    부정, 거부심리라는 이 불가피한 음영은 자기들의 사고를 질식시키고 있는줄을 모른다. 그래서 대방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살리며 콩이야 팥이야 하다가 추측이 헛다리를 짚은후면 손자밥떠먹고 천장을 쳐다보는식으로 체면에 철판을 씌운다. 결국 사유가 화석이 되는것이다. 사유의 화석화근원이 무엇인가? 그네들은 마냥 적대방을 깎아내리워야 자신이 강해지는듯한 착각을 가지고 자아를 만족시키려드는데 세상에 그처럼 불쌍한 넋들이 없다고 풀이하고있다.
    원래 긍정적사유의 심리바탕은 자신심이다. 자신심은 긍정판단에서 가장 유력한 동력이다. 적대방이의것은 좋아도 아니기만 바라며 “흥”소리를 앞세우는것은 그저 부정사유가 아니라 저능아의 사유이다. 여론으로 밥을 벌어먹고사는 사유화석자들이 특정대상을 사팔뜨기눈으로 보는것은 자신심의 부재를 말해준다. 부정적시각으로 보는것을 비판적사유방식이라고 인식하는데 기실 비판성사유란 론리방법을 기초로 한 일상적사유의 실제와 심리경향의 발전과 결합한 일계렬의 비판성사유기교이다.
    비판성사유는 사유과정, 통찰과 분석과 평가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으며 긍정적 판단으로 진행되여 유형,무형의 사유반응과정을 얻기 위해 과학적근거로 하여금 일상 상식과 일치하도록 시도한다. 이 시점에서 비판적사유를 한다해서 죄다 긍정적으로 생각할줄 모르는것은 사유관성의 편향이라 할것이다. 아무튼 긍정사유가 그 사람을 지배해야 할것이다.
                        
                                                           2014년 6월 5일 (단풍잎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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