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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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인생의 철길따라
2011년 07월 26일 15시 25분  조회:9401  추천:3  작성자: 최균선
                              인생의 철길따라


                                                       최균선
 


    아이때는 화룡선 철길을 넘어 “3.1”학교로 오가며 기차에 앉으면 어떻게 좋을가 빈궁리도 수없이 하였고 멀리서 기차가 달려오는가 맟춰보느라고 차고 뜨거운 레루에 귀를 바싹대고 듣는 멋도 좋았고 어쩌다 생긴 옛동전을 레루우에 놓고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다가 더없이 납작해진것을 보며 환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그렇듯 내 동년의 무의식속에는 기차를 두고 자주 랑만적인 환상이 나래쳤다.

    내 꿈은 기차를 타고 멀리 가는것이였다. 칙칙, 푹푹 연기를 내뿜으며 비암산굽이를 돌아 사라지는 기차이든, 삼봉동고개를 벌레처럼 기여가는 기차이든, 그리고 내가 내릴역이 어디일지 모르면서 그냥 가고싶었다.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기나 긴 산굴도 지나고 산설고 물설은 만리이역에 이른다 하더라도 그냥 가고싶었다.
    철길이 언제, 어떻게 놓였든간에 기차는 나에게는 신비, 경이, 선망 그 자체였다. 철길이 두갈래인것은 기차바퀴가 량쪽에 달렸기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철길이 나란히 뻗어나갔지만 영원히 한점에서 만날수 없음을 알리없었고 기차길도 끝나는 곳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내 동년의 언덕엔 상상의 철길이 길게길게 뻗기시작했고 그래서 꿈에 온밤을 기차를 타고가는 때도 많아졌다.

    그렇게도 육중한 기관차와 길다란 렬차들의 무게에도 무너져내리지 않고 철길이 철길로 버텨가는것은 그위를 질주하는 렬차들에 상봉의 희망과 리별의 아픔이 실려오고 실려가기에 그만큼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에 뻗디고 있는것인가? 철길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빨리가고 빨리 돌아오기 위해 시작한것인가…물론 이런 고급스러운 생각을 해본것은 세월이 많이 흘러간뒤의 일이였다.
    하나하나의 침목들은 량쪽에 놓인 레루를 잡아당기여 저마끔 외길이 되지 않도록 하는 친선목이기도 하다. 만남의 정거장, 리별의 정거장 플래트홈에 철길은 말이 없고 끈질기고 묘망하지만 사람들은 그 어디쯤에서 반가운 사람을 다시 만날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달구고있다.

    몇해전 처음으로 산동반도남단 해변가까지 먼먼 려정을 오면서 다시 동년의 그 환상을 꿈꾸듯 이어보았다. 산을 넘고 평야를 주름잡고 대교를 건너 가로세로 뻗은 철길, 이 땅에 얼기설기 얽힌 두줄기 철길을 따라 가고 가노라면 머나먼 곳 어드메 쯤에서 누구인가와 눈물로 포옹할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인간이 길게 늘여놓았다는 고마움이 앞섰다. 몇천만리 먼 곳에서 떠난이들이 먼곳에서 빨리 만나려는 그 마음을 렬차가 싣고가니 누군인들 철길이 고맙지 않으랴!

    환영처럼 스쳐지나는 산발들, 차창밖의 신작로에 먼지구름을 일구며 달리는 자동차들, 철길가에서 손을 흔드는 촌아이들, 저 멀리 산허리에서 풀을 뜯는 소떼, 공장굴뚝이 토하는 검은 연기, 드넓게 펼쳐진 옥수수밭과 밀밭, 깊게 패인 계곡, 굽이치는 산등성이, 도시의 고층건물, 아담한 농가, 스산한 농가의 지붕들을 얼없이 내다보느라면 일종 인생의 향수가 아닐수 없다.
    누구든 돈만 더 팔면 침대표를 사서 편안히 누워갈수 있다. 그러나 인격의 척도가 호화렬차의 침대칸에서 현연되지는 않는다. 누우나 앉으나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다를것 없고 종착역에 이르면 다 두발로 내려야 한다. 그러니 마른명태에 맥주를 마시며 려로의 피로를 달래는 정취를 느껴보는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고달픈 려행이지만 그 모든것들이 나를 깊이 빠져들게 하여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종착지를 생각한다. 모일 모시에 기차가 역에 들어서고 길게 기적이 울리고 려객들이 꾸역꾸역 쏟아져내릴것이다. 일단 도착지에 내리면 생활의 한페지가 또 새롭게 펼쳐진다. 직업병같이 분필가루를 축복의 꽃보라처럼 생각하고 학생이면 다 사랑하고픈 나로서는 충실한 삶의 연장선을 긋는다고 할수 있겠다.

    그러나 타향에 떠도는 몸이면 언제 어디서나 철길에 감심하게 되는것은 떠남이 막부득이한 사정이였더라도 고향에 돌아가려는 마음이 그 무엇보다 더 절실하기 때문이리라.  그렇듯 만남의 길은 리별의 길보다 언제나 먼저 마련되여있다. 그래서 렬차가 출발하기전에 가슴속에 돌아올 길이 그려지는것은 리별의 아픔때문일것이다.
    아무리 먼곳이라도 갈곳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돌아올 곳이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행복한가? 가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사정에서 떠나는 사람의 모습은 처절하지만 언제 돌아올지 분명히 알리고 떠나가는 사람의 뒤모습은 기다림으로 거룩한것이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떠났다가 뚜벅뚜벅 돌아오면 어떤 형용사도 무색해지는 그때, 송이송이 고향의 민들레와 더불어 반가움, 회포, 감개무량뿐이리라.

    인생길은 참으로 두갈래 철길과 흡사하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기 인생렬차가 있고 자기만의 생활의 궤도가 있다. 다만 출발역도 도착지도 씌여있지 않은 공백차표를 쥐고 인생렬차에 올라 세월의 궤도를 따라 가기는 다 같다. 철길이 어떤 곳에서 갈라지듯 인생의 궤적은 바뀔수 있으나 궤도는 벗어날수 없다.
    학생일때는 이른아침 눈을 비비며 학교길로 종종걸음치고 하학하면 곯은배를 달래며 터벅터벅 돌아와 숙제책에 머리를 틀어박아야 하였다. 해해년년 밭갈고 모를 내던 그때는 날마다 뜨는 해와 더불어 일밭으로 나가고 땅거미를 밟으며 돌아오고 그리고 자고… 밝는 날 다시 밭으로, 논으로 나가 허리휘도록 일하고 또 일하였고…

    후반생에 어쩌다 교단에 오른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학교로 달려가고 교단에 분필가루 날리고 숙제검사를 하고 시험지를 매기고…그렇게 30년을 로보트처럼 오고가다가 홀가분 절반, 허무 절반을 안고 사무한신이 되였다가 다시 사립학교들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해왔다. 여생을 석양처럼 불태우고 있다고 말하기엔 머석한 일이니 궤도를 벗어날수 없는 낡은 기관차가 역구내를 왔다갔다하는것과 같다고나 할가,

    철길가에 수많은 간이역은 어떤 사람에게는 종착역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출발역이 될수도 있다. 그런데 인생의 철길에서 어디가 나의 출발역이고 어디쯤이 나의 특정된 종착역인가? 인생의 철길에는 간이역이 없다. 때론 어데선가 내려서 쉬고 싶은데 그럴수 없다. 유감도, 고달픔도, 오늘의 무거운 짐도 아무데나 나름대로 부리울수 없다. 그렇게 나는 간이역이 어디인지 모르고 지금도 덜커덩거리며 굴러간다.

    인생의 철길은 자신이 놓고 싶은대로 놓는것이 아니지만 철길에 턴넬이 있기마련이듯이 인생철길에도 나름대로의 턴넬이 있다. 그것은 반드시 넘어가야 할 인생의 아리랑고개를 뚫는 길이다. 턴넬같은 인생길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것을 느끼게 한다. 어떤 때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턴넬같은 어둠속에서 오래오래 몸부림쳐야 한다. 아무리 긴 턴넬이라도 밝은 천지가 뚫려있기에 우리는 능히 인내하는것이다.

    가고가도 끝없을것처럼 굽이쳐간 철길도 종착역에 도달하면 철길도 끝나는 곳이 있다. 철길 끝나는 곳에 서면 마침내 기차도 더이상 달리지 못하고 멈춰버리고 그로 인해 더 뻗을수 있을것 같다는 가능성과 그럴수 없을거라는 현실이 공존하는 공간... 그것은 가능성이자 한계의 공간이기도 한것이다.

    철길이 끝나는 곳에 서면 어떤 느낌일가?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곳이 그야말로 절망의 벼랑이 될수도 있을것이고 성공한 자에게는 목표달성을 의미할수도 있을것이다. 인생의 철길도 마찬가지다. 결국 철길이 끝난 그 곳에 무성한 잡초처럼 허무할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종착역이란 어떤 곳인지 감이 잡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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