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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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비밀
2008년 01월 30일 10시 07분  조회:2764  추천:38  작성자: 최균선

아름다운 비밀

 

 

이야기꼭지

 

       옛날, 천제의 아들 환웅이 《아들 낳고 낳으며 인륜지락을 누리게 해줍 시사.》하고 간절히 비는 웅녀의 소청에 그만 잔정을 못이겨 가연을 맺고 어찌구저찌 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야기는 그런 케케 묵은것이 아니고 무둑이 깔린 세월 락엽속에 내내 묻혀있던것을 오늘 비로소 펴내보이는 진실한 비밀얘기이다.

       하긴 그래서 은사권 침해로 경치지나 않을가 걱정은 되면서도 인간의 자발적 행위동기에 대한 심리적인 해부가 되고 그런 행동이 나오게 신비로운 원인 대한 설명이라도 될듯싶어서 그냥 조심조심 엮어보려는건데 독자들이 읽고나서 꾸며낸 엉터리소설이라고 피씩 웃어버릴런지…각별한 기대심리도 얹어두는바이다.

      

1.       《선녀동의 가인》

 

칠백리 두만강 푸른  물결따라 처처 내리노라면 문전옥답에 고고청산을 병풍같이

두르고 오붓이 모여앉은 마을이 나지는데 물농사 짓고 도목나무 때는 세외도원 이라 지명은 선녀동이다.

       예로부터 술있는 강산에 걸사가 많고 산수 좋은 곳에 미인이 나듯이 마을에서 확실히 가인이 드믄히 난다고들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 이쁜녀도 선녀동 태생인데 원래는 이름이 리분녀인것을 아이적부터 어찌나 이쁘고 참했던지 동네어른들이 아예 이쁜녀라고 부른것이 그냥 어져서 지금도 이쁜녀로 알려지고있다. 이쁜녀는 아닌게아니라 얼굴이 동탕하고 몸매 또한 단아하여 그림의 선녀같은데다가 마음씨마저 비단결이여서 원근에 소문난 가인 이였다.

       녀자에게는 미모가 말없는 추천장이라는데 이쁜녀는 정들이 시골에서 아들 낳고 낳으며 깨쏟아지게 살겠다며 스므살 잡던해에 끼끗하고 착실한 뒤집총가에게 시집 갔다. 그런데 단꿈이면 쉽게 깨여지는 법인지 잔치하여 열흘만에 새신랑이 붉은 띠에 붉은 꽃을 달고 조선전쟁에 나가게 되였다.

       찰떡같고 꿀떡같던 밀월이 반도 여물기전에 독실한 남편을 사지판으로 보냈으니 구곡간장에 서리고 맺히는 아쉽고 쓰리고 그리운 정이야 이를데 있었으랴! 그러나 나라, 고향, 부모형제 지킨다며 첫사람으로 나서던 열혈의 용사, 리별의 눈물겨운 시각에도 믿음과 축복의 웃음꽃을 피워질줄 알던 의젓한 랑군을 말없이 고이 보내드린 이쁜녀였다.

       남편이 전선에서 싸울 , 이쁜녀는 홀로 시아버님 모시고 집안살림 물이 나게 하여 모범며느리로, 밭일도 장정처럼 해제끼며 전선원호사업에도 열성다하는 사의 안해로 , 지는 솟는 달에 마음 상하여도 기다려 일편단심 순정을 지켜가 시골의 《동정녀》로 살아갔다.

       기다림이 기다림을 낳고 그리움이 그리움을 마중하는 허구한 나날 남편 장수는 서울해방기념이라며 사진한장, 락동강전투에서 공을 세웠다고 편지 한장 보내오고는 그후 일자무소식이였다. 독수공방 외로운 베개가에서 손톱여물 쏠며 이제나 저제나 할 때에 마침내 그 몹쓸놈의 전쟁도 끝나고 덕삼이랑 후에 떠난 순금오빠랑 다 돌아 왔다. 한건만 눈물젖은 옷고름 입에 물고 동구밖에서 일구월심 기다리고 섰는 이쁜녀 의 사랑하는 장수는 돌아올줄 몰랐다.

    참으로 녀인들이 기다림에 지칠줄 모르는것은 기다림끝에 오색찬란한 희망의 무 지개가 서고 그 무지개너머 못견디게 끄는 유혹이 있기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님 이 돌아오면 오롱조롱 아들딸 키우며 떡호박속같이 달착지근하게 백년을 살고질 시골 《동정녀》의 꿈은 어이 그리 묘연한지…

    별 총총 숨박곡질 하는 밤이나 달빛 푸르러 유정한 밤이나 외로워, 너무 서러워 눈물로 베개를 절이면서도 밝는 날이면 고운 웃음 피워야 하는 그녀였고 기약없이 수 절하는 며느리의 청승맞은 꼴이 눈에 지겨워 빈대통만 돌아앉아 뻐끔뻐끔…속썩은 한 숨만 태우는 그녀의 시아버지였다.

    그때마다 그때마다 이쁜녀는 순정의 망울을 터치던 선녀바위 로송아래에서 절명 의 치마고름 매듭져보았고 수집음 타며 랑군의 등허리 밀어주던 두만강 백사장에 외 신짝 벗어놓고 떠도는 비구름에 피울움도 실었다. 울다가 흐느끼다가도 남편 장수가 벌씬 웃으며 집에 들어선것만 같아서 천방지축 집으로 달려가기 몇번이였는지 모른다.

    《며늘아가, 용타! 우리 장수놈 죽을놈 아니지, 우리 기다려보자구, ? 죽지 말고…으흐흐…》하고 락루하시는 시아버님 봐서라도 차마 목숨을 버리지 못하는 현 실인데 살자니 불없는 화로에 속절없는 청춘을 말려야 하는 그녀의 인생이였다.

    두만강에 성에장 떠내려 겨울이 가고 백바위 도래굽에 진달래 붉어 봄은 또 오고 랑군님이 심은 과일나무에 능금은 익어서 가을을 전하는 새에 어언 긴긴 십여년이 훌 쩍 가벼렸다. 무정세월 약류파라.

    그녀의 생홀에서 유일한 의탁이라면 일 하나뿐이였다. 호조조라, 인민공사라, 대 약진의 불바람속에 청춘도 사랑도 뜨거운 피도 묻어버리자고 실로 많은 일을 해왔고 또 억차게 해왔었다. 절반 하늘을 떠인 산골의 무쇠녀인이라고 이름나고 여예 들썽할 때 녀자의 잔정도 스러지는가싶더니 그것이 오히려 무형의 사슬이 되여짐을 소스라치 게 깨달았을 때 터지는 울음은 더구나 피맺혔다. 현실은 너무나도 불공평하였다.

    유혹도 난당이였고 류언비어도 끔찍스럽던 청상과부의 10여년을 철옹성으로 지키던 정조의 쪽문이 바시시 열리며 탄성을 잃었던 정감의 건반우에 마침내 인생의 변주곡이 울리게 되였으니 녀인의 사랑이란 마음밭에 예고없이 작열하는 갈망의 숯불 이였던가! 아니면 또 한번 장난치는 운명의 혹독한 조롱이던가?

 

2.     봄날의 밀사

 

긴 재등에 아지랑이 타고온 새봄이 실없이 해롱거리며 부푸는 그녀의 가슴을 간 지르던 어느 날, 생산대 정치대장이며 대대부서기인 허일이가 웬 간부옷차림의 사나 이를 데리고 분녀네 삽작문에 들어섰다.

《저, 분녀동무, 시아버지 집에 계시오? 이분은 사회주의교육공작대로 현에서 내려온 동무인데 이 집에서 먼저 식사시켜야겠소. 분녀가 작식도 잘하구, 또…좌우간 수고해줘야겠소.

허일이 노상 그러하듯 정나미 떨어지는 웃음을 물고 구구히 소개하건만 이쁜녀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얼이 쑥 빠저나가는듯이 머리가 어질어질 해나고 가슴이 후두두 뛰였던것이다.

 《이쁜녀! 내 왔다구, 내가 장수란말이요!》이렇게 웨치며 사나이가 덥썩 껴안 아줄듯한 환각에 빠질 때 그녀는 한걸음 훌쩍 나서며 두눈을 꼭 감았다.

《아! 장수씨, 왜 인제야 와요? ? 어데가 있다가 인제 와요? 흑…》하고 울부 짖으며 그립던 그 품에 와락 안기려는 순간, 그녀는 다시 두눈을 번쩍 떴다.

갱핏하면서도 힘덩어리로 째워진 끼끗한 체구, 인자한 그속에 굳센 빛도 담고 심 장을 꿰뚫어보는듯 형형한 눈길, 닿이면 금시 녹여버릴듯 정열적인 선명한 입술, 정이 폭 고이는 다복수염터…모든것이, 그 모든것이 천백번도 꿈에 보고 눈물로 적셔 보던 그 모습, 순간도 못잊던 남편, 장수의 그것이였다. 눈에 좀 설다면 시골사나이 의 흙냄새와 후더운 기품대신 활달하면서도 서생티나는 너무도 현혹하는 미남아의 풍 채였다.

《아, 어쩌면 세상에…10년도 넘었으니 저렇게 변할수도…이게 꿈인가?…》

방문을 열고 나오던 장령감도 두눈을 슴벅거리며 말뚝처럼 굳어져버렸다.

《아니? 이 사람, 자네가!?…》

분녀와 그의 시아버지의 반상적인 거동에 허일이도 그 사나이도 어정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촉기빠른게 허일이였다.

《아, 저어 이 분은 리억철동무인데 현조직부에 령도동지요!

허일은 일부러 큰소리로 또박또박 말하였다. 그제야 억철이라는 사나이도 얼굴을 살짝 붉히며 인사를 올리였다.

《저, 로인님! 그리구 아주머니, 아마도 신세를 좀 져야하겠습니다.

억철이라는 허일의 소리에 착각에서 벗어나려던 분녀는 또 한번 움찔 놀랐다. 눈 만 감으면 눈에 삼삼한 주인공의 그 웅글지고 정차던 목소리가 다시 가슴에 메아리쳐 오는듯했던것이다. (, 아니였구나. 그런데 어쩌면 목소리마저…호)

드디어 그녀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실망에 찢긴 가슴을 꼭 누르며 곱삭 인사를 했다.

《아, 네에, 참 무슨 말씀임둥, 저어 어서 방으로 들어가십소.

《어험, 이 사람 며늘아기야, 내 눈이 잘못된가보이. 이거 참 미안허웨다. 그만 후유ㅡ》

억철이는 수수께끼 같은 장면에서 처음엔 좀 별스러운감이 들었지만 뒤미처 깨닫고 보니 사람 좋아보이는 이 집 고부에게 대뜸 인정이 푹 쏠리였다. 그는 마루에 성큼 올라서며 로인을 부축해주었다.

《웬 말씀입니까? 그럴수도 있지요. 제가 공연히 두분을 놀래우신것 같군요…》 분녀는 오도가도 못하고 놀란 가슴 부둥킨채 얼없이 섰다가 허일의 열기띤 눈길

이 얼굴 근지럽게 핥아대는 바람에 정주칸으로 쫓겨들어갔다.

    그날 저녁 분녀는 뉘정신에 밥을 지었는, 또 어떻게 설겆이를 마쳤는지도 몰랐 다. 시아버지와 사나이가 구면이 여의한듯 한담을 펴낼 때 그녀는 뒤뜨락 살구나무아 래에서 슬피슬피 울었다.

    어찌 울지 않으랴! 그녀의 사랑은 미래에로 뻗어있다기보다 과거전체로부터 우러 나오는 그런 사랑이였거늘 그립고 그립던 첫사랑을 꿈같이 현연시켜준 멋지고 름름한 젊은 사나이에게서 안겨진 충격파에 오래동안 잠자던 녀자의 특성이 태동하기시작했 던것이다. (서른 대여섯 되였을가? 그이와 동갑일지도…아아, 내가 무슨 엉뚱한…)

    그녀는 제풀에 얼굴 붉히며 한창 몽글기 시작한 꽃송이들을 애꿎게 잡아뜯었다. (그인 정말 살아나 계신지?…피덩이 하나 남기지 못하고 가셨구나. 야속한 사람, 복 없는 사람…) 그녀는 자기가 녀자구실 한번 못해보고 늙어온것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 이 찢기였고 인생에 망연자실했었다.

    (아들 하나 낳았더라도 이렇게는 외롭지 않으련만, 내 팔자가 사납기도 하지…) 이렇게 생각할수록 가신 님이 불쌍했고 또 밉기도 했다. 느끼고 사랑하고 괴로워하고 몸을 바치는, 이 세상 모든 녀자들이 가지고있고 향수하는 그 본성을 나는 어찌하여 잃어야 하느가? 누구때문에?…이렇게 방황하는 외로운 넋이 창막한 밤하늘에 날아오 를 때 둥근 달도 오열에 떠는 시골의 《동정녀》를 측은히 굽어보며 황금의 그네줄을 길게 늘이여 애달픈 그 마음을 고요히, 조용히 흔들어주고있었다…

   

3.     사랑의 칠현금

 

꿈도 고달픈 봄밤을 그녀는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녀는 헤여나올길 없는  자기의

슬픔에 매달려 속을 앓으면서 전쟁이 파놓은 구뎅이 밑바닥까지 내려가 그 깊이를 재이며 애탄과 눈물로 그 구뎅이를 메우려 애썼건만 끝내 메우지 못하고 날을 밝 혔다. 아침을 지으면서도 그녀의 마음과 생각이 말을 주고받을 때 밖에서 장작을 패는 도끼질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다심한 시아버지가 또 망녕인가싶어 부엌문 을 펄쩍 열다가 그만 홀린듯 서버렸다. 런닝그바람으로 도끼를 휘두르는 장골사 내의 팔과 가슴에서 건강미를 자랑하듯 근육들이 푸들거리고있었다. 그녀의 가슴도 공연히 푸들푸들 뛰놀았다. 도끼질을 할 때마다 이마우에서 춤추는 앞머리가 눈뿌리를 뺏다. (그이도 저렇게 채좋은 곱슬머리였지…호ㅡ)

     《허허, 젊은이 거 팔로군작풍을 발양하는가 원, 어서 관두고 이리 들어오 게나.

방문이 열리며 울리는 시아버지 말소리에 분녀는 제꺽 문을 닫고 돌아섰다. 시아

버지의 말소리가 다시 정주칸으로 옮겨왔다. 

《이 사람, 애기네. 아침 다되였겠지비?

《네에ㅡ 곧 챙겨드려갔꾸마.

제꺽 대답을 올리느라 그런지 그녀의 목소리는 몹시 갈리고 떨려있었다.

억철이는 분녀가 떠주는 랭수에 시원스레 세수를 하고 구속없이 밥상에 마주앉아 걸탐스레 아침밥을 우겨댔다. 그것을 훔쳐보는 분녀는 몰래 웃음을 삼켰다…

스믈한살, 숯총각으로 조선전장에 나가서 줄창 전선부대에서 싸워온 그는 군인의 호방하고 대바르고 소탈하면서도 돈후한 기품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인정많은 사내였던 억철이는 분녀와 차차 친숙해짐에 따라 그녀의 사람됨에 깊은 애착을 느끼게 되였고 말보다 행동하는 자기 성미 그대로 진정 살뜰한 정으로 그녀를 아껴주고 생각해주었다. 그러는 자신에 대해 때로 이상야릇하게 변한다고 꾸짖어도 보았지만 처음에 볼때의 인상이 각별해서인지 아니면 시골가인의 미모에 혹해서인지 아무튼 무더기로 그냥 쏟아지는 인정을 그로서는 알수 없었고 말려낼수도 없었다. 그러나 애정의 샘터라는 동정심 그것만이 아니라 한 불행한 녀인을 뜨겁게 포옹하는 전사의 품, 그것이기도 하였다.

랭상모판을 만들때였다. 뼈소까지 쩌릿해나는 차디찬 물속에서 입술을 사려물고 그 누구보다 먼저 들어서고 한번 논둑에 올라 랭기를 말림도 없이 끈질기게 일손만을 다그치는 분녀의 모습을 마음의 눈으로 지켜보던 억철이는 현성에 갔다오던 길에 목 긴 장화를 사다가 부엌에 슬며시 놓아주었다. 이튿날, 촉기빠른 아낙네들의 시새운 눈총이 분녀를 쩔쩔 매게 했을 때 그도 공연히 멋적은 짓을 했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렇다고 그것때문에 구애되고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기회만 있으면 분녀의 일손을 두손 걷고 해주었다. 장작도 패주고 터밭도 갈아 남새도 함께 심고 울바자랑  손질해주었다. 결코 농촌사회주의공작대대장의 신분으로서 지어낸 공작이 아니였다.

남자들은 생각하고 녀자들은 느낀다. 분녀는 빈 구석없이 각근하게 생각해주는 억철에게 감격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억철이의 웅숭깊은 마음속에서 설설 끓는 그것이 그녀가 느끼고 더 없이 느껴보고싶은 그런것이 아니였음을 언녕 알았다면 그 녀의 고통과 번뇌는 사랑으로 여물어가지 않았을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저러나 여느 아낙네들의 걸직한 입담에는 곧잘 응수하는 억철이가 오직 분녀에게만은 아슬한 절벽같이 쳐다보였는지? 거리감이 그녀에게 더욱 불붙는 련정을 가지게 했는지 모른 다. 이제 남성을 진정 알고 받아들일수 있는 한창 나이 서른한살이였으니…

억철이의 정나미도는 모습이 시각마다 눈에 비껴들고 호방한 웃음소리가 귀맛좋 게 들릴 때는 진종일 힘드는줄 모르고 일하다가도 그가 일단 회의에나 가고 없는 날 엔 손맥이 절로 풀어지고 신들린 사람처럼 텅빈 마음에 늙음이 대번에 덮쳐드는듯싶 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녀는 숫처녀의 풋사랑같은 자기의 련정에 스스로 민망 스러워져 달뜬 제 마음을 열백번도 넘게 꼬집어가면서 질책도 해보았고 또 반발심 비 슷한것이 울컥 솟아서 (내가 얼없지, 처자가 있는 남자인데…사나이속은 우렁이속같 이 모두 엉큼하다는데 우정 틀거지를 피우는지 누가 알게?)하고 억지도 써보고 제 쪾에서 저만치 거리도 놓아보고 했지만 나중엔 그저 또 막연한 기다림과 그리움만 가 득 남을뿐이였다.

그런데 제마 빌어 남의 마음을 떠본다고 능갈친 허일이가 언녕 분녀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는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하긴 일배치마다 꼭꼮 억철이와 자기를 붙여놓고 제가 둘러리를 서는것이 좀 이상은 했지만도. 어제 긴재등에 조이홰지도 억 철이와 분녀, 허일이 셋이서 한조가 되여서 했다. 탑을 잡은 허일이가 밭머리를 돌 때 그 멀끔한 얼굴에 야멸찬 웃음이 얼핏 스치는것을 본듯도싶은 분녀였지만 원체 상 대도 하고싶지 않은 허일이였던지라 눈결에 흘려보내고 그저 반공중에 높이 떠서 울 어예는 종다리소리에 마음의 선률을 고르며 봄날의 서정에 함뿍 취해 일손만 놀리였 다. 손은 절주있게 대뚜베를 두드렸지만 정감은 마음밭에 벌써 파랗게 움터 꿈꾸는 련정의 새싹에 단비를 뿌리고있었다.

아침에 허일이가 분녀를 불러내였다.

《저, 한가지 의논할게 있어서…억철동무로 말하면 현에서 온 지도동지인데 돌림 식사를 하는것이 너무 각박하지 않소? 동무가 고생이겠지만 오늘부터 주숙을 도맡소. 대무위원회에서도 토론이 있지 않았소? 그러니…물자는 생산대에서 책임질거요.

허일은 그저 집행하라는듯이 그녀가 무엇을 해석할 새도 없이 훌쩍 가버리였다. 그리하여 억철이가 분년네 팔간집 한웃방에 이불짐을 내려놓고 조석으로 얼굴을 대하 다보니 그들은 자연히 더 친숙해지고 분녀에게는 마음의 기둥이 생긴셈이였다. 그녀 는 전에없이 집안에 화기가 도는듯싶어졌고 마음은 햇솜처럼 보송보송해 있었다. 빌어온 행복이라도 좋았다. 사랑은 녀인들을 아름답게 해준다더니 며칠새 젊음과 아름다움은 뭇눈길에 띄일만큼 이쁜녀에게 황홀한 후광을 씌워주었다.

 

4.     무르익는 서정

 

어는덧 풋나무를  철이 돌아왔다. 분녀는 여느해보다 일찍 서둘렀다. 겨울

나겠는지…억철이가 한웃방까지 뜨뜻이 덥힐 생각을 앞세운것이다. 남정들이 있는 집에서는 겨울에 도끼나무를 팡팡 해내리기에 별로 감심하지 않았지만 분녀 풋나무라도 많이 하면 고작이였다. 그런데 올해는 겨울을 때고도 봄나무걱정이 을만큼 다북이 해놓게 되여 어찌 좋은지 모르겠다. 남편없는 설음이 더구나 뼈저리게 사무치는 나무철이였던것이니 억철에 대한 고마움이 자연히 과부설음으로 번져져서 눈물이 찔끔 나왔지만도말이다.

    어느 , 억철이가 공사로 회의하러 간다며 떠나자 생산대 소수레에 발구를 싣고 나무재골로 떠났다. 억철이가 알면 부득부득 앞설것이 걱정이여서 수레텀까지 혼자 끌어내리고 그다음 손을 작정이였다.

    점심때가 기울무렵, 네발구채 박아싣고 산을 내릴 두고 새끼생각이 던지 가파로운 내리막전부터 잰걸음을 치던 암소가 마침내는 광증이 난것처럼 네굽을 놓는데 섬약한 팔힘으로 아무리 고삐를 낚아채도 막무가내였다. 아예 놓아버리려 해도 외통길이라 비켜설 곳도 그럴 겨를도 없게 되였다. 넘어만지면 발구밑에 들어갈 판이였다.

    끌리며 걸채이며 겨우겨우 지탱할 길옆 언덕배기로부터 억센 팔뚝이 불쑥 뻗치더니 소코뚜레를 틀어쥐고 나꿔어채자 발구짐이 저쪽 언덕배기에 박히 더니 소도 무춤했다. 서슬에 충격받은 분녀가 앞으로 꺼꾸러지려는 찰나에 세고 탐탁한 가슴팍이 그녀의 상체를 받아주었다. 얼결에 구원의 품에 몸을 맡기고 머리를 들어보니 억철이인지라 저도 모르게 마음껏 품에 실려들었다. 땀벌창에다 한껏 달아오른 그녀의 모습에 측연해진 억철이는 한동안 그린듯 지켜섰다가 그녀를 살며시 떼내여 길섶에 세워주었다.

    《참 아슬아슬했소. 마침 달려왔으니 말이지. 이런 일도 녀자몸으로 해야 하니 에잇, 쯧쯧…》

    처녀처럼 수태를 머금은 그녀는 그저 머쓱해하는 기색으로 억철이를 할끗 쳐다보 고는 고개를 수그렸다. 그녀는 온몸이 포근해지던 한순간의 감각을 영원히 기억속에 새겨넣으며 가슴 가득 감미로움을 채우고 서있었다. 이윽해서 산을 내리니 억철이가 소수레까지 메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많은 나무를 녀자손에…그런데 생산대에서 이런 일은 생산대에서 도와주게 되여있잖소? 아침에 말이나 하든지…쯧쯧…》

    억철이는 또한번 늙이처럼 혀를 끌끌 찼다.

    《어찌 남의 손을 빌겠어요. 혼자 사노라면 이보다 더한 일…》

    분녀는 뒤말을 가무려버리고 머리수건을 내리썼다. 순간, 억철이는 입에서 《왜 재가를 하지 않습니까?》하는 말이 불쑥 튀여나올번 했다. 그러다가 문득 고태 의연하고 무의무탁한 그녀의 시아버지 장령감의 얼굴이 떠오르며 그저 한숨만 쉬고말 았다. 나라 수많은 전사의 안해들에게서 사랑과 행복과 의탁을 빼앗아간 전쟁을, 전쟁판을 벌린 원쑤들을 새삼스레 저주하면서 슬며시 분녀늘 쓸어보았다. 나무가 지에 긁히워 피터진 손을 옷섶에 감추는 분녀의 모양이 얼핏 실려왔다.

    《아니, 좀보지, , 이리 내시오.

    억철이는 그녀의 손을 확신있게 잡아다가 하얀 손수건으로 살뜰히 싸매주었다. 그는 아직도 청초하고 아릿다운 얼굴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거칠고 마디진 분녀 손을 잡은채 철학자와 같은 근엄한 기색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전사의 안해들은 영광스럽다고들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러나 영광의 눈물속에 어린 불행 비극을 누가 가슴으로 느껴보았던가?)

    한편 억철에게 점도록 손을 잡히고 앉은 분녀의 가슴에서 일만 잔나비 널뛰듯하 면서 리성의 울타리를 마구 뒤흔들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밀물처럼 들이닥치는 격정에 그녀는 억철이의 헤쳐진채 있는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열에 떠서 속삭였다.

    《외로웠어요. 못견디겠어요…흑…전…》

    억철이는 분녀의 고통스러운 내심의 모대김과 숨기다못해 드러나기 일쑤이던 다른 정을 언녕 느끼고있었지만 그녀의 이렇듯 갑작스러운 행동에는 어지간히 당황하 않을수 없었다. 흥분에 잔뜩 떨리는 분녀의 상체를 본능적으로 껴안은 그는 깃을 잃은 한마리 작은 새의 애처러운 울음소리에 마음이 여리어지듯 한껏 다잡아오던 음이 자기답지 않게 구멍이 뚫리는것을 무섭게 자각했다.

    《분녀!진정하오. 울음도 그치구, 자기를 잃어서야 안되지…》

    비는듯 사나이 철석간장을 후벼대는 그녀의 울음소리…억철이는 정신이 아찔해났 . 열정이 열정을 달구는 정화의 침묵은 그렇듯 무겁고 짧았지만 고패치는 사색은 그렇듯 깊고 무거웠다. 억철이는 어느 참호, 어느 돌격의 산비탈에 쓸어졌을 전우를 그려보았다. 그렇다. 억철이는 당원된 참된 자각과 인간성에서 결코 량심에 꺼리끼는 일을 영원한 자책의 저울판에 올려놓고싶지 않았다.그는 주저없이 자기의 위치로 아왔다.

《분녀동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선뜻 헤여나온다는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요. 쉬운 일도 아니구, 하지만 나오구 보면 그보다 개운한 일은 없을거요. 이쁜녀, 이쁜녀는 참한 녀자가 아니요? , 이렇게…》

억철이는 자기 가슴에 부득부득 파고드는 그녀를 살며시 떼여놓고 자리에서 일어 섰다. 파아란 하늘에서 가을해가 재글재글 끓고있었다.

분년는 형언할길 없는 수치감과 비애에 모부림치며 다시 나무단우에 쓰러졌다.

 《아, 하느님 맙시사, 어쩌라나요?…》

억철이가 나무수레를 몰고 동구밖에 이르렀을 허일이가 기다렸다는듯이 다가 왔다.

《아니, 이거 , 미안하게 되였습니다. 우리 사업에 비구석이 많다보니…리과장을 수고시키는군요. 분녀동무두 , 한마디 귀뜸이라도 했더면…》

    허일은 이렇게 설레발치면서 야릇한 눈길로 분녀와 억철이를 한줄에 꿰고있었다. 억철이는 허일이가 순전히 겉발린 말을 하고 있다는것을 알면서도 역겨움에 완곡함을 얹었다.

    《뭘요. 한 당원전사가 할수 있고 해야 할 일을 할뿐입니다. 이 역시 사회주의교 육이지요. 허허…》

    하긴 입이 쓰거워 침이나 뱉어주고싶은 그이기도 했다. 피어린 싸움터에서 한목 숨 내대고 지켜온 그 모든 성스러운것에 버러지같이 너절한 작자들의 “락원”도 끼 여있다고 생각하니 울분과 환멸감이 욱 치밀었다. 억철이는 결김에 길가에서 거치장 스럽게 딩굴고있는 큼직한 조약돌을 힘껏 걷어차 개울창에 처넣었다…

 

5.     색정광의 암전

 

나무터에서 그 일이 있은후 분녀의 마음속에는 더구나 치렬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억철이는 예이제없이 그녀를 쌀뜰하게 대해주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 오는 애우하듯 부드러운 눈길은 그녀로 하여금 슬픈 방황에서 헤여나와 새 언덕 에 오르도록 힘과 용기를 주었다.

분녀는 하나의 고결한 넋이 안겨주는 더없이 귀중한 인간애의 감로수에 푹 젖어있을 때는 슬픔에 찢기는 가슴에 검질기게 갈마드는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 나기도 했다. (아서라. 그이는 처자가 있는 남자이다. 나느 귀속을 잃은 령혼을 끝까지 지켜야 할 녀자다…) 이렇게 자기를 찾기도 했지만 사랑의 힘은 지어먹은 마음을 사흘이 못넘게 쫓아버렸다.

이미 분출하기 시작한 정염의 불길은 무시로 그녀의 몸과 마음을 연소의 쾌감으로 휩쌌다. 이때마다 자기 인생과 운명의 궤도에서 뛰쳐나와 순박한 자기 성격과 다감한 심장이 시키는대로 갈망의 절정에로 치달아올랐다.

이쁜녀의 사랑은 풋내기 처녀애의 그런 시적인 련정보다 철학적사색을 거친 30대초의 성숙되고 분방한 정열로 옹근 정신세계를 백열화하고있었다. 이러한 사 랑은 위험천만한것이였다. 마치 다 큰 애에게 덮친 홍역과 같이 기어이 아무 흔적이나 남기고야 물러갈 그런것이였다.

억철이는 억철이대로 사회주의교육운동을 힘있게 벌려나가고있었다. 제방귀 놀란 노루처럼 황황해진것은 허일이였다. 그의 “소왕국”을 억철이가 깨뜨리려 하고있다. 자기 발밑에서 무너져내리는 모두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허일이 니였다. 잠간만, 그의 위인됨을 알아보자. 체대도 알맞춤 크고 이목구비도 번듯 한데다가 구변까지 좋은 40대의 사나이인데 젊어 한때는 어느 국영농장에서 권총 보위간부로 무척 위세도 좋아하는 고질이 있어서 결국 어느 농촌에 쫓겨갔는 거기서 몇번 솜씨를 펴다가 겨우 출당을 면하고 여기 세외도원 같은 선녀 동에 락향거사로 묻혀살게 되였다.

범없는 골안에 슬기가 왕질한다고 이사와서 인차 당소장이 되고 대대부서기 까지 올리췄다. 권세가 있게 되자 동남풍을 빌게 되였다. 못된 버러지 장판방에 모로 기듯이 하고싶은 짓은 다하고도 제노라 활개짓하고 다니였다. 핑게핑게 막간에미처럼 발전대상이요 공작관계요 하면서 해반주그레한 녀자면 과부고 유부 녀고 홀락질해내는데 그에겐 외전도 많이 전해지고있다.

어느 버덕마을에 있을 일이란다. 사원들은 일밭으로 몰아내고 자기는 농가집부녀와 한창 희닥질하는데 마침 어리숙한 남편이 집에 들어오게 되여 경악 했을 도적이 매를 든다고《왜 함부로 허가없이 일터를 떠난거요? 냉큼 돌아 가오.》하고 녀자우에 누운채로 호령질했다는 기문도 있다.

한번은 《노루사건》이라는건데…어느 하루 얼모르고 마을에 내려왔다가 마을사람들이 떨쳐나서 투기는 바람에 급해맞은 노루란놈이 마침 열려져있는 과부네집 뒤문으로 뛰여들어 방문을 걷어차고 내뛰였다. 그런데 집안에서 멱따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하도 수상쩍어서 몰려가보니 실한오리 걸치지 않은 허일 이가 과부에게 엎어진채 넋을 잃고있었다…후에 어찌하여 퍼진 소문인지 그날 노루란놈이 마침 구들에서 과부를 뭉개고 있는 허일이를 타고 넘어 뛰다가 그만 골통을 뒤발로 걷어차는 바람에 추태가 드러났던것이다.

원래 허일이가 선녀동에 이사와서 첫눈독을 들인것은 분녀였다. 그런데 울타 든든하면 동네집 개가 얼씬하지 못한다고 분녀가 자기의 정조처럼 깨끗하고 성실한 첫사랑을 지켜 하도 매섭게 노는 바람에 지금껏 군침만 흘리며 냠냠거릴 뿐이였다.

억철이가 마을에 점을 잡자 뒤가 켱겨 쩔쩔 매던 허일은 되짜듯 말짜듯 “한”  품은 “미인계”를 짜냈는데 억철이와 분녀를 천방백계로 어울려놓으면 음양이 부딪칠터이니 억철이는 망신보따리만 지고 주자를 놓을것이요 꼬리잡힌 분녀가 순순히 안겨들것이라고. 그러나 허일은 오산해도 한참 오산했다.

억철이는 총망중에도 인정을 보듬을줄 아는 사나이면서도 명석한 두뇌와 자기 행위준칙을 가진 사업가였고 당원이였던것이다. 그의 도덕적관찰력은 매의 눈처럼 투철하면서도 그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독특한 감각은 허일로서는 도저 알수 없는 신비로운 깊이와 자유자재한 유난성도 가지고있어 그의 적수가 아니였던것이다.

그러던 어느 , 공교롭게도 억철이가 공사회의에 갔다오다가 찬비를 맞아서

촉한에 걸려 눕게 되였다. 호시탐탐하던 허일이가 노루고기와 닭알꾸레미를 분녀에게 맡기며 너스레를 떨었다.

    《리과장이 몸져누웠다기에 사람을 시켜 잡아온거요. 객지에 와서 고생이지… 분녀가 호리해 주어야겠소. 곁을 떠나지 말고…

    (, 부조도 말고 제상다리도 차지나마오.) 분년는 이렇게 속으로 코방귀를 면서도 물건은 받아두었다. 억철이가 몸을 춰세우는것도 문제였던것이다. 며칠뒤였다. 허일은 곡식자람새를 돌아보고 오는 장령감을 동구밖에서 은근히 불러세웠다.

    《저, 긴히 여쭐 말이 있어서…오래 벼르던 말이긴 해도 어찌 들을지 몰라서…》

    《난 그렇게 갑자르는게 질색이랑이, 말이 있으면 털어놓고 말하시우다.

    워낙 성미가 콸콸한 장령감은 벌써 어떤 긴장감까지 가지고 재촉했다.

    《하긴 해야 말이지만두, 내정문제여서…》

    《아따 중이 자리근심하듯 좀자르긴 어서 말하시우.

    《다른게 아니라 댁에 며느리가…지금 마을에서 좋지 못한 소문이 도는데…혹시 정말 공작대와…》

    허일이는 우정 서발너발 늘구어붙이면서 장령감의 기색을 훔쳐보았다.

    《뭐이라구?? 어느 생벼락을 맞을 년눔들이우? 그게, ?! 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어두 유분수지, 렬녀춘향이 같이 수절하는 며느리를…에익, 고현놈들…》

    장령감은 뒤말은 삼키고 넌지시 지켜보는 허일을 무섭게 쏘아보면서 장죽을 내저었다.

    《하긴 노엽게 되였습니다. 우리 당소조에서두 연구해 보았지만…제발 그런 일이 없기만 바라지유. 분녀동문 명성도 있는 군소가정인데…》

    장령감은 얼굴이 철색이 되여 부르르 떨고만 있었다.

    《사실인가는 지내보면 알거지유. 드는 돌이 없이야 낯이 붉을수는 없는게구…》

    《뭐, 지내보구 안지내보구 있소? , 나원, 더러워서…》

    똥본오리처럼 주절대는 허일을 아랑곳없이 장령감은 힝하니 자리를 떴다.(어허, 세상두 허무한지구, 으흐흐…인젠 누굴 믿고 살아가누…) 가슴을 치며 넉두리하며 휘칠휘칠 걸어가는 장령감을 지켜보는 허일의 얼굴에 삵의 웃음이 넘치고있었다.

   

6.     청동의 기사

 

장령감은  그날부터 식미도 잃고 귀만 동냥을 가면서 밤잠도 멎었다. (후ㅡ유, 

늙은게 세변부지였지…오는 비를 어이 막으며 자리를 뜨려고 우는 참새를 어찌 탓하 ! 내가 욕심이 사나워서…)

    장령감은 젊어서 한때 장사한답시고 떠돌다가 집에 들면 그리고 감창스럽게 감겨 들던 마누라가 생각되면서 며느리가 가긍하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어느 산귀신이 였을지도 모를 장수를 생각하면 분통이 터졌다.

    《이눔들, 어데 두고보자. 아들없는 집이라구 없수임도 한심하구나. 뉘놈들때메 장수가 돌아못오는게여, !

    장령감은 무는 개보다 짖는 개가 밉다고 허일이가 그런 말을 넌지시 하던것을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열에 억철이의 잠꼬대에 증이 버럭 나는것도 어쩔수 었다. (오냐, 경주돌이라구 옥돌이라더냐? 허일이 같은 비단보에 개똥도 있을라니 공작대고 현간부고 허울만 벗어보일 때는 죽고 죽고 해보자!)

    장령감은 며칠째 두만강가에 나앉아서 장수가 사냥에 쓰던 비수를 썩썩 갈며 연히 윽윽하였다. 그러다가는 꺼이꺼이 울었다…

    어느 저녁, 밥상을 물리던 장령감이 며느리에게 일렀다.

    《이 사람, 오늘 상칙난 집에 가서 밤을 새우게 될거네. 삽짝이랑 닫게.

    령감은 의미있어 말하건만 분녀는 무심히 들었다. 밤이 깊어갔다. 가담가담 룩거리던 시아버지의 기침소리도 고독을 쫓는가싶더니 집안은 괴괴하기가 소름이 끼칠지경이였다. 너렁청한 정주칸 가마목에 댕그랗게 누웠노라니 오만가지 잡념이 박꼭질한다. 그녀는 불현듯 억철이가 목이 마르면 어쩌나싶어지면서 한웃방 억철에게 들어가 보고싶은 마음이 불붙듯해졌다. 적막이 갈망을 낳았던것이다.

    그녀는 꿀물을 진하게 풀어들고 퇴마루에서 머뭇거리다가 유령처럼 방에 들어섰 . 사나이 체취가 가슴을 실없이 활랑거리게 한다. 분녀는 석유등잔에 불을 켜면서 문득 야릇한 감정이 솟구침을 느꼈다. 바로 이때 삽작문밖에 붙어섰던 그림자 하나가 마을쪽으로 들고뛰였다.

    가물거리는 등잔불아래 고요히 잠든 억철이의 모습은 청동의 기사마냥 숙연해 보였다. 전선으로 떠나기 전날 , 다하지 못한 사랑에 지친듯 코를 골던 남편의 모습이 우렷이 재생되여 왔다. 분녀는 억철이의 반듯한 이마에 살짝 손을 얹어보았다. 열이 한결 내린것 같았다. 그는 억철이의 부드럽고 따스한 손우에 자기 손을 포개 여보았다. 그리다가 급기야는 자기가 환장했다는 수치감도 잊고 억철이의 손을 가슴 대였다.

    부드럽고 민감한 젖무덤을 거쳐 짜릿하게 전해오는 이성의 전류에 몸이 차차 달아오르더니 학질이 온것처럼 덜덜 떨리였다. 그녀는 자석에라도 끌린듯이 사나이품 와락 뛰여들었다.

    《…빌어요. 미칠것만 같아요. 한번만이라도 사랑해줘요. ?!

    분녀는 실성한 사람처럼 억철이의 얼굴에 볼을 대며 중얼거렸다. 죽은듯 혼곤히 잠들었던 억철이는 뜨끈뜨끈하고 팽팽히 헤기워져있는 분녀의 젖무덤이 가슴에 뭉클 안겨지자 소스라쳐 깨여났다. 순간, 야릇한 녀인의 체취가 허파에 스며들었다. 꿈이 아니라는것이 무섭게 확인되였다.

    몸에 피줄이 소스라치며 일어서고 심장이 돌진을 재촉하였다. 그냥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귀뺨을 쳐서 내쫓을것인가? 그러나 어느것도 할수 없었다. 사선을 문턱넘듯이 나들며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생명의 궁극에서 표현되는 모든 망의 내용도 체험한 억철이, 주어진 생활속에서 향수를 찾을줄 알았고 생활을 보다 의미롭게 꾸며나갈줄도 아는 다정다감한 사나이는 난생 처음 이런 곤경에 빠져 보았다.

    기이하게 씌여지는 인생의 씨나리오에서 하나의 배역을 맡는가? 아니면 리성과 감정선을 교묘히 조합해 나가면서 생활의 론리를 구현해 나가는 랭철한 연출가가 될것인가? 피는 끓고 리지는 고함친다. 전사는 꿈속에서도 자기를 다스릴줄 알아야 한다고…억철이는 마구 돌진해오는 녀인의 타는 입술을 용케도 피하면서 태동하는 인의 묵직한 상체를 간신히 떠받들어 올리며 일어나 앉았다. 땀이 빠졌다. 그러나 생사결단하고 품속으로, 품속으로 감돌아드는 리지를 상실한 녀인의 품에서 벗어난다 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소리없는 “육박전”이였다.

    《분녀! 나도 분녀를 사랑하오. 이건 진정이요! 말을 먼저 듣고 다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려주오. 분녀, 정신 챙기란말이우.

    《난 몰라요. 미친년이예요. 한번만이라도…못참겠어요. 당신 같이 훌륭한 분에게서…》

    분녀는 더구나 응석부리듯이 억철이의 품에서 요동쳤다. 몸에 굽이굽이 감도 감동의 여울에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감각ㅡ그 하나만을 고집하는듯 싶었다.

    《그럼 좋소!내 말을 들은 다음에도 늦지 않으니 약속하겠소? , 그저 이렇게 얌전하게 있으라구, ?

    억철이는 이러한 장소에서 이러한 녀인에게 이야기가 격에 맞지 않는줄 알면서도 달리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

    《…한 전우의 이야기요. 듣고 나면 마음을 알것이요…나는 후퇴당시 부상 입어 대오를 잃고 헤매다가 서울부근 산속에서 전우를 만났는데 역시 정찰병이 였고 나와 같은 연변내기였소. 나와 동갑이였고 성미도 비슷해서 우린 대번에 생사지 교가 되였소. 하긴 그와 나는 생김새도 비슷했지…3.8선을 넘어 어느 산등성이에서 우리는 기지맥진해 쓰러졌소. 내가 심했소. 전우는 산골짜기어귀에 외딴 집이 보이자 나에게 먹을것을 얻어준다며 혼자 산을 내려갔소. 조밥 한솥 잦힐쯤해서 갑자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들려왔소. 나는 전우가 잘못 걸린줄 알고 무작정 마주 달려내려갔소. 마침 산기슭에서 우리는 만났소.

“억철이!개놈들에게 걸렸소. , 금방 조밥이요. 받으라구, 그런데 빌어먹을 주인집년이 스파이였소…아차, 저놈들이 여기로 오네. 어서 뛰자구!”하고 전우는 사연을 대강 말해주고 나를 앞세웠소. 놈들은 총질하며 바싹 쫓아왔소. 전우가 나에게 말하더군,

“억철이, 둘이 함께 뛰다간 붙잡히겠소. 저쪽으로 뛰라구! 이쪽 으로!산넘어 동굴에서 만나자구! ?! 그런데 놈들은 내가 있는 쪽으로 몰려왔소. 이때 저쪽에서 “개놈들아, 여기 있다!올테면 오너라!”하는 웨침소리와 함께 따발총소리가 울렸소. 그는 나를 위해 죽음과 위험을 자기쪽으로 당겨갔던거요…난 그날 , 이튿날 아침까지 기다렸지만 그는, 그처럼 훌륭한 사나이는 돌아 오지 않았소.

나는 눈물과 함께 조밥을 씹으며 북으로 향했소. 만나기를 믿으면서…》

억철이의 눈에서 뜨거운것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분녀는 꼼짝않고 듣고있었다.

《그는 고향집에 선녀처럼 고운 젊은 안해가 있다면서 자랑처럼 외웠소. 생사 판가름하는 어려운 고비마다에서 초인간적인 힘을 내군했소. 어떻게나 승리하고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며, 자기 힘은 안해가 보내주는것이라고 했소. 전선으로 떠나올 공세우고 성한 몸으로 돌아온다고 기다리라구 약속했다오…》

억철이의 이야기는 끝났다. 침묵, 고요…비애가 심장의 고동을 갈앉히고있었 . 그녀는 억철이의 품에서 스르르 미끄져내렸다. 포효하던 감정의 준마에서 떨어진 분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아아ㅡ》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여나갔다.

그때 방문뒤에 붙어섰던 그림자도 《으으…헉ㅡ》하는 신음소리를 내였다. 분녀의 시아버지였다. 사연은 이러하였다. 장령감이 상가집에서 애꿎은 담배와 싱갱 이질 허일이가 찾아왔다. 밖에서 후망질하다가 분녀가 억철이 방으로 들어가고 불이 켜지자 《옳지!》하고 무릎을 치고 장령감에게로 뛰여갔던것이다.

장령감은 사람같지 않은 허일이가 잔뜩 불어대는 소리를 반신반의하면서도 거의 로망에 가까운 격분을 안고 뛰여와서 방문뒤에서 엿듣고섰던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며느리의 말소리도 들리고 억철이의 말소리도 들리자 채수염을 떨면서 베개밑에 비수 생각하였다.

《잘한다! 이눔들, 이제 너부러져서 세상을 모를 어디 보자, 한칼에 그저 푹…》 하며 잔뜩 벼르고섰다가 그만 억철이의 이야기에 신음소리를 냈던것이다.

 

7.     마음속에 솟는

이틑날 아침,

장령감은 손수 두마리를 잡고 술까지 받아왔다. 분녀는 속내를 알길없는 시아

버지의 거동에 속이 조마조마해서 상을 챙겼다.

    《이 사람, 억철이! 이리 내려오게, 이름 부른다구 허물말구, 자ㅡ 이리 다가 앉게나!

    장령감은 자기의 잔과 억철이의 잔에 술을 가득 부었다.

    《그런데 진수성찬을…다 같은 자식벌인데 그저 그렇게 여겨주십시오.

    평소에 그렇게 소탈하고 무랍없던 억철이였다.

    《며늘아가야! 자네도 술잔을 가지고 이리 오게, 숭허물 없으니…》

    분녀는 더구나 수삽해졌다. 시아버지도 시아버지려니와 억철이와 어찌 마주 앉나 싶어지며 푸주간에 끌려가는 양의 모양이 되였다.

    《억철이, 먼저 내구 식미를 돋구게나. 여간 속이 엷어졌겠나? 고생도 정말 많으이. 자네를 아들처럼 생각하겠네.

    억철이는 절에 색시격으로 시키는대로 할수밖에 없었다.

    《자, 여게 한잔, 젊은이에게 한잔 붓게! 며느리에겐 내가 붓어줍세. 말이야 바른대루 우리 며늘아기 좋은 사람이지비…》

    이렇게 말하는 장령감의 얼굴에 전에 없이 석연한 빛이 서렸다.

    《자! 어서 잔두 들게, 젊은이처럼 직심이고 대바르구 후더운 사람은 처음 일세. 어쩌면 우리 장수눔과 그리 신통한지…며느리두 조금 들게. 어서!

    억철이는 술을 삼키는지 소태를 씹는지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령감은 정이 뚝뚝 흐르게 권하고있었다.

    분녀는 왈칵 솟구치는 눈물과 면괴한 감을 금치 못하여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날 장령감은 해종일 문을 닫아걸고 붓을 날려 만장지서를 썼다. 그런후 손수 큼직한 봉투까지 만들고 날아갈듯한 초서체로 《××현당위원회 조직부 앞》이라고 써넣었다. 그가 무엇을 썼는지 어떻게 보냈는지 아무도 몰랐다.

    며칠후, 억철이가 현으로 소환되여 가고 마을에 공작대가 오게 되였다. 억철 이가 떠나던 , 장령감은 자기 퇴마루에 서서 마을사람들의 배웅을 받고 있는 철이의 뒤모습을 점도록 지켜보고있었다…

    억철이는 긴재등에 올라서자 다시 한번 마을을 감명깊게 굽어보았다. 떠나올때까 분녀가 보이지 않는것이 못내 가슴에 걸려있는것이다. 어째서인지 가슴이 알알해 났다.

    《여기서 기다렸어요. 억철동무!

    느닷없이 들리는 분녀의 애절한 목소리에 억철이는 어찌 반가운지 모르겠다.

    《분녀! 여기 있었구만, 끝까지 앵돌아졌나 했지? 원…》

    《이렇게 급히 돌아가실줄은…저를 용서해주시겠어요? 죄지은 나쁜 녀자예요. 동무에게…》

    《분녀, 무슨 말이요, 내가 외려 죄가 많은 사람이요. 이쁜녀! 사랑의 고백은 신성한거요. 사랑이 실책으로 되는건 우리 인간의 영원한 비애일것이요. 나도 가슴이 무겁소. 한없이…》

    억철이는 이불짐을 내려놓고 분녀를 불러 나란히 앉았다.

    《떠나기전에 몇가지 알리려고 했는데…내가 이미 해당부문과 조선인민군총부에 편지를 띄웠소. 내가 증인이니까 문제가 어떻게든 락실될거요.

    분녀는 말이 없었다. 무엇을 말한단 말인가?

    《분녀! 행복은 분녀와 같은 녀인들에게 속해야 하오. 시아버지 만년의 생활은 내가 조직적으로 배치하겠소. 불행과 고통속에 주저앉아 통곡만 하는건 현실적이 못되니까. 분녀는 행복을 키워가야 하오. 행복이 있을거요…》

    억철이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마음속에 씌여진 말은 더욱 많았다.

    《자, 여기서 이만 작별합시다. 사노라면 우리 웃으며 만날 때가 있겠지? 서로 마주보는 청산은 만날 날이 없지만 사람은 인연이 있으면 만난다지 않소? 하하하…분녀! 부디 기쁘게 웃으며 살아가기를 바라오!

    억철이는 분녀의 손을 오래오래 뜨겁게 잡아주었다. 분녀는 억철이가 돌아서는 찰나에 령롱한 빛을 뿌리는 눈물이 어린것을 보았다.

    《훌륭하신분! 부디 건강장수하세요!…》

    분녀는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였다. 억철이는 한번 힘있게 저어보이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분녀는 억철이가 긴재등을 넘어갈때까지 그린듯  자리에 지켜섰다…

    다시 기약이 없이 억철이는 갔다. 그런 시각, 이쁜녀의 마음속에 하나의 거룩한 탑이 높이 높이 솟고있었다.

    시골의 가인, 이쁜녀는 영원의 탑을 부여안고 자기의 청춘의 눈물을 휘뿌렸다.

    눈물은 깨끗한 심장의 성스러운 감동에서 우러나온 눈물이였으며 방우방울 땅우에 떨어져도 다시금 하늘로 솟아오를 눈물이였다…

 

 

                                           199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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