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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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봄날
2008년 01월 30일 10시 33분  조회:3620  추천:35  작성자: 최균선

잃어버린 봄날은 오는가.

 
                                                                           

 
                                            ㅡ청춘은 창졸한 마음으로 써내려가는 인생의 제2막이다ㅡ
 
마침내 꿈이 이루어졌다. 연변1중의 입학통지서가 날아온것이다. 마적달중학교를 나와서 지구중점고중에 붙는다는것은 천국의 꿈이였다. 아버지는 그 우악진 손으로 내 어깨를 쥐여박고는 와락 끌어안았다.
《장하다. 아들아! 너는 나의 꿈도 이루었다. 자식, 정말 잘했어!》
마을사람들은 개천에서 룡이 났다고 놀라움을 한가득 모았고 학교에서는 미래의 북경대학생이 나왔다며 전례에 없었던 특별히 의연금을 모아주기도 했다.
마침내 개학날이 되였다. 나는 만리창공을 주름잡는 초고속비행기에나 오르는듯 한껏 들뜬 마음을 뻐스에 실었다. 어머니는 속도를 내는 뻐스에 매달리기라도 할듯이 따라오며 손을 흔드시였다. 눈굽이 젖어들었다. 다심하시던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꼭 명패대학에 가고 박사도 되리라고 윽별렀다. 무연한 훈춘벌은 뒤로 흐르고 나래돋힌 희망은 창창한 앞날에로 질주하였다 8월의 하늘은 유난히 푸르렀고 차창으로 흘러드는 벼향기는 더없이 향긋했다.
나는 건너편 차창가에 붙어앉아 창밖에 넋을 놓고있는 장미의 옆모습을 슬며시 훔쳐보았다. 그도 마음이 웬간히 들떠있다는것을 읽을수 있었다. 장미는 한마을에서 태여나 유치원도 함께 다닌 소꿉친구였고 소학교에서도 한책상에 앉은 짝꿍이였다. 이성의 계선이 야릇하게 금그어지는 초중에 올라와서도 부반장을 한 장미는 앉은석동 반장인 나와는 자별나서 쉬쉬한 염문까지 날지경이였다.
등교도 함께 하고 고개를 넘는 굽이굽이 하학길도 함께 긴 그림자를 끌며 걸었다. 내가 있는 곳에 장미가 있었고 장미가 있는 곳에 나의 눈길이 박혀있었다. 그러면서 도 얼마나 다투었는지 모르고 얼마나 화해의 웃음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만큼 둘의 가슴에 우정의 무지개다리가 곱게 튼튼히 걸쳐져있었다. 그래서 장미가 이번에 나를 젖히고 마적달중학교의 녀자장원이 되였지만 질투비슷한 감정커녕 내일처럼 기뻐하며 우리 사이에만 있을수 있는 축하를 주고받았다.
장미가 내게 달아준 별명은 흰둥이였고 내가 그에 붙여준 별명은 가시였다. 그애 는 그 빨갛고 죄꼬만 입을 꼭 다물고 있기를 좋아했지만 일단 앵돌아진다 하면 그야 말로 가시돋힌 말로 콕콕 찔러대기를 서슴치 않았다. 나는 말로써 그애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내가 사내애로써 우습게도 그애를 조금 무서워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가 무작정 좋았고 많은 일에서 즐겁게 져주었다. 마을에 실없는 아줌마들은 드러내놓고 천생배필이라고 엄마에게 롱을 걸기도 했다. 
장미는 자기에게 박힌 집요한 눈길을 의식했던지 내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얼굴 에 패인 보조개에 미소가 남실거렸고 크고 까만 눈에는 아름다운 동경에 빠진 소녀에게만 있을수 있는 꽃물결이 얼른거리고 있었다. 장미의 웃는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 나의 마음속에 여지껏 느껴보지 못한 아리숭하고 미묘한 잔물결이 일었다. 례의 장미 특유의 눈이 말하고있었다.
《흰둥이, 너 지금 속이 빈 고무풍선이 되여있지? 조심해, 놓치기만 하면 다시 잡지 못하고 마는거야》
나의 눈길이 전파를 날린다.
《가시야, 이제 너의 그 가시를 내가 싹 뽑아버릴거다, 그냥 져줄수 없어…누가 더 높은 리상의 고봉에 오르는가는 저기 연변1중에서 시작되는거다…》
잔뜩 열기띤 눈길속에서 전파가 오가는 새에 뻐스는 훈춘시내를 벗어나는듯 싶더니 어느새 초모령을 톺느라 부릉릉거렸다. 약골인 장미아버지가 멀미가 나는지 딸을 밀어내고 차창에 머리를 내밀자 장미는 코를 싸쥐고 나의 아버지를 쫓아내고 내 곁에 나비처럼 날아앉았다. 말동무가 없던차 잘 되였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가시야, 너 집에다 가시를 싹 빼놓고 와야하는데, 연길시내애들 늬 그 가시를 받아주지 않을걸,》
《정말 흰둥이가 아니라 할가봐 걱정이니? 시내애들 눈이 네개라니? 뭐라드라, 서울이 무섭다니까 어디서부터 긴다고 했던가?》
《나와도 더는 가시를 내들지마, 어쨌든 나는 그냥 찔리지만 않을테니, 알았지?》
《애, 천룡아, 너 이름이 정말 아깝다야, 네가 정말 머저리룡은 아니니? 학교가서 촌티나게 기죽지 말아라. 누가 뭐라든 우리 훈춘을 웃기는 일이 없이 공부 잘해야 해, 선생님도 열당부했잖아?》
………………
드디어 동경의 땅 연길에 들어섰다. 넓다란 거리가 미여지게 북적거리는 인파를 바라보는 나의 가슴은 울렁거렸다. 이제 3년 지나면 나도 시내빠이가 될것이다. 아무 렴, 내가 누군데 이 작은 연길바닥에서 또 한번 솟구쳐 하늘을 날게 될것이다. 뻐스 에서 내려 연변1중으로 오는 동안 산골에서 잔뼈를 굳힌 시골내기로서는 연길의 거리가 그야말로 다른 세계가 아닐수 없었다. 즐비한 고층건물들과 번창한 거리도 황홀했거니와 내 꿈이 피여날 연변1중의 웅장한 청사에는 더구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버지와 함께 재무과에 가서 돈을 물고 숙사를 찾아 나의 침대에 간단한 생활비 품과 옷가지서껀 넣은 허수룩한 가방을 던져버린후 내가 편입된 반을 찾아갔다. 주내 각곳에서 온 아이들은 서로 서먹서먹해 하면서도 은근히 의기양양한 모습들이였다. 원래 시골내기라서 수집은 나는 꾸어온 보리자루처럼 한켠에 말없이 서서 아이들의 옷차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촌학교들에서 왔음직한 친구들도 많았지만 나보다는 다 시내티가 나는 옷들을 떨쳐입고 폼을 내고있었다.
       나의 눈길은 어느새 장미를 찾고있었다. 녀자애들의 본성이 그래서인가 푸접이 없기로 락제생인 장미가 어느새 몇몇 애들과 면목을 터놓았는지 소근대고있었다. 워낙 타고난 미모를 등대는판인지 전혀 주접이 들어있는 모양이 아니였다. 하긴 아무 리 눈빗질해도 우리 반에서는 물론 웅기중기 모여선 녀자애들속에서도 한눈에 띄일만 큼의 얼굴들이 보이지 않았다. 장미는 그렇게 삐여진데가 있는 녀자애였던가?  
       다른 녀자애들은 깔깔대며 자기반에 속한 남자애들속에 백마왕자라도 있나해서 렴탐하듯 가끔씩 이쪽에 눈길을 흘렸지만 장미는 아예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본성 그대로 잔뜩 도고해있는 자세였다. 그만큼 내 눈길이 장미를 놓치지 않고있었다. 장미 가 내 눈길을 의식하지 못했을리 없었다. 처음으로 장미와 눈길 한번 마주치지 못하 는것이 얼마나 속이 뒤집히는 일인지 절실히 느꼈다.
    마적달에 있을때도 늘 깔끔하게 입고다녀서 멋쟁이란 놀림을 받은 장미였지만 오늘따라 장미는 시내녀자애들에게 조금도 짝지지 않은 차림새였다. 한쌍의 볼우물이 움씰거릴때마다 웃는듯한 얼굴인데다가 티없이 맑고 애티나는 한쌍의 커다란 눈은 어글어글하여 웬간히 차려입어도 돋보이게 생겨먹은 그애는 다른 녀자애들처럼 곡선 미를 뽐내려고 몸에 찰싹 붙은 옷을 입지 않았지만 녀자애들이 질투할만도 한 미끈한 체격때문에 더구나 이목을 끌었다. 내곁에 남자애들의 눈길이 녀자애들쪽으로 모아 지고 있었는데 분명 장미에게 초점이 박히는것이 분명했다. 까닭모를 질투심 비슷한 감정이 나를 휩쌌다.
       그렇게 동경하던 연변의 최고 고중에 왔으니 마음인들 평온하랴, 오늘따라 장미 의 얼굴은 유난히 환하였다. 어느때보다 정기넘치는 눈은 자주 깜박거렸고 긴 속눈섭에는 호기심과 내심으로부터 분출하는 환희와 무엇인가 다짐하는듯 결연한 빛이 매달려있었다. 나는 갑자기 전문 장미를 연구하는듯한 느낌이 들면서 점직 해졌다.
    나도 새옷을 입고 멋을 낸다고 했지만 다른 애들에 비하면 관청에 잡혀온 촌닭의 꼴이였다. 나는 저도모르게 찝질한 감정에 사로잡혀 의기소침해졌다. 장기병자인 어머니가 일을 못하다보니 아버지 혼자서 밭일을 하는 우리 집은 마을에서도 가장 어렵게 사는 집이였다. 개학첫날부터 나의  자존심이 별스럽게 비틀어졌다.
아버지가 곤백번 잘하라고 이런저런 당부를 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지경이였지만 내귀에는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슴속에는 허영심만 가득차서 고무풍선처럼 높이 날고있었다. 그것이 나를 천길나락으로 밀어뜨릴것이라는것을 내가 어찌 생각 이나 했으랴, 허영심은 긍지가 아니라 오히려 비굴의 표식이요 보기에 광채로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한송이 꽃과 같다는것, 그리고 허영심으로 빚어진 불행과 슬픔은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다는것을 알게 된것은 모진 세파를 겪고난후였다.
비교의 대문을 열면 불만이 기다리고 자족의 대문을 열면 행복이 들어오는 법이 다. 하건만 개학이 되여 한달후부터 나는 이런저런 구실을 대여 집에서 돈을 가져와 서는 류행멋을 피우기시작했다. 수요가 아니라 허영으로 과소비하는 자신이 스스로 자기의 전도를 저당잡히고 있다는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무시로 변하는 내 욕망의 체구에 알맞는 화려한 외투는 있을수 없었다. 만약 내가 좀더 머리가 명석한 놈이였다면 공부를 잘하는것으로 심리평형을 찾고 자기를 단속했을것이며 훌륭한 학생이 될수도 있었고 좋은 대학에도 갈수 있었을것이다.
장미도 일년이 못넘어 많이도 변했다. 워낙 시내아이들에 있을수 없는 대자연이 하사한 미의 바탕이 훌륭했던 그애는 학교의 꽃으로 되여 같은 녀자애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였고 멋쟁이 남자애들에게는 선망의 백조공주가 되였다.
2학년에 올라와서 나는 떄이르게 사랑병까지 앓게 되였다. 어떠한 리유도 수요하지 않는 감정이 있다면 바로 장미에 대한 내 사랑의 감정일것이다. 그런데 나의 고백에 경미는 놀라웁게도 사람을 시까스르는듯한 대답을 던졌다. 우리는 드디 어 마적달의 본새로 티각태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아도 한번 너를 혼내워줄 생각하고 있었어. 너 지금 제정신이리라고 생각하고있니? 네가 지금 어떤 모양이 되였는지 마음의 거울에 비춰봐라. 사람이 그게 뭐니? 넌 흰둥이긴 했어도 순박한 멋도 있었는데 지금은 마적달의 천룡이가 아니야, 개학날 늬아버지가 점심도 안자시고 그냥 돌아가겠다는것을 울아버지가 억지 로 끌고 가서 국수를 대접했대. 왜 그랬는지 알기나 해? 후에 아버지에게서 그 말을 듣고 내가 다 가슴이 알찐해났어, 그리고 바보처럼 놀아대는 네가 더없이 미웠다. 그런 아버지를… 얘, 나 너와 더 할말이 없어졌다구.
난 너에게 더는 흥미없어, 자꾸 해석하지도 말고 같은 맹세를 반복하지도 말아, 우리의 우정선은 애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는한 연장될수 있을지 몰라, 나를 잘 알기에 사랑하게 되였다고 말할수 있지만 사랑하기에 더 알게 되였다고 말하지 말아라,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네가 배반을 식은죽먹듯 할지 누가 알아? 부모님의 기대도 꺼리낌없이 저버리는 네가 남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장담할수 있어?   
네가 이제라도 환골탈태하면 몰라도 알락달락한 궁리를 싹 접어라. 난 열번 죽어도 꼭 일류대학에 갈 작정이니까…우리 함께 좋은 대학에 가자던 약속은 안했던 거로 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는 말인데 네가 영탁이를 질투하고 그와 겨루느라고 엉망을 캐는데 나 참 우습더라. 왜 남자새끼들은 다 그모양이니? 난 아무에게도 관심 없으니 공연히 저혼자 씩씩거리지 말고 이제라도 졸업증이라도 타기에 노력해… 》
장미가 연해연방 기관총질을 쏴대였지만 나는 헛총질 한번 못해보고 부옇게 몰리다가 매몰차게 돌아서는 장미의 뒤모습에 자격지심만 매달았다. 나는 장미의 매섭고 거짓없는 질타을 듣고 또 고민에 빠졌다. 물론 사랑은 시작부터 필연적이 아니기에 론리적으로 발전할수도 없지만 더구나 참을수 없는것은 나의 천사를 먼저 챌수도 있는 라이벌이 눈앞에서 도시출신의 우월성을 뽐내며 거들먹거리는것이였다.
그애는 시의 어느 령도어른의 귀공자인데다 생기기도 기생서방처럼 밴질밴질하게 생겼다. 그러나 그가 누구의 아들이건 얼마나 잘생겼건간에 나는 절대로 내 녀자를 빼앗길수 없었다. 권력을 나누어가질수 없듯이 사랑도 절대 나누어 가질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장미가 보아주든 말든 황소와 배때기 크기를 자랑한 개구리처럼 어리석게도 나의 라이벌과 옷차림이며 사나이 풍도랑 비기느라 안간힘을 썼다.
나는 귀신에게 홀린듯 고급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며 인터넷방에 드나들고 친구들에게 한턱 내기도 하여서 학교에서 아주 의리가 돈독하고 흉금도 넓은 친구로 소문나있었다. 우리 짝패들은 쩍하면 학교에 나가지 않고 록상청에도 가고 당구실에서 시간을 소모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학습성적이 말이 아니였다.   
고중2학년이 끝날때까지 나의 이름은 58명중에서 거꾸로 3등이였다. 아버지가 성적표를 보자고 하면 이핑게 저핑게 대면서 용케도 피해갔다. 방학에도 집에 가지 않고 PC방에 사정하다싶이 하여 심부름군으로 일하면서 어중이떠중이들과 몰려 다녔다.
나는 때때로 아버지가 뼈빠지게 농사지어 쌀을 판돈을 겨우겨우 부친다는것을 생각하며 량심을 붙안고 괴로워도 해보았지만 이제 돌아서려면 너무 멀리 왔다고 아 예 체념해버리고 알건달학생으로 나굴렀다. 집에서 후무려내온 돈으로는 친구들과 어 울려 멋을 내기에는 판부족이였다. 나는 뺑덕에미처럼 이애저애에게서 돈을 꾸기시작 했는데 웃돌 빼서 아랫돌 괴우는식으로 맞추어가다보니 3학년에 올라갈 무렵에는 내 힘으로는 도무지 내릴수 없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학교에 나가면 빚군들이 에워싸는 바람에 며칠이고 숙사에 돌아가지도 않고 거리 의 삽살개들의 집에서 얻어먹고 자고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나의 주머니가 텅텅 비 게되자 그렇게 의기충천하던 거리의 친구들도 차츰 백안시하기 시작했다. 먹어라 써라하는 가운데서 맺은 우정은 한가닥 실개천처럼 인차 물이 마르고 더러운 바닥이 드러났다. 드디어 친구들이 문전박대하다가 아예 문전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나는 그제야 허위적인 우정에 환멸감을 느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대학입시가 눈앞에 다가왔지만 나에게는 강건너 불이난 집을 보는듯 했다. 나는 졸업증만 가지면 아버지더러 빚을 내서 일본류학수속을 할 작정이였던것이다. 그러나 우선 다른 애들에게서 꾼돈을 물어주어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씻은듯이 싹쓸이해 온 집에서 더 우려낼 기름이 없는줄 알면서도 손을 내밀수 없었다.
    평범한 감각은 좀체로 우리들을 나쁜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 인간의 모든 잘못은 유혹과 추구의 날개밑에 숨어있다. 큰 실수는 굵은 바줄처럼 여러갈래의 섬유로 만들 어진것이다. 그것은 내가 늘 기억하고있던 명구들이였지만 지금의 나에게 다 개나발 같은 소리밖에 더 안되였다.
       며칠 밤을 궁리하다가 일확천금하는 길밖에 없다고 작심했다. 기회를 보아서 다른 반 애들의 침실에서 값진것을 후무려내는것이였다. 마침 기회가 왔다. 여느 때처럼 제일 마지막으로 침실을 나오다가 함께 잘 어울려다니던 아래학년의 담배 친구가 들어있는 침실문이 빼끔히 열려져있는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아닌보살하고 그애 이름을 불렀다.
       ㅡ철주야. 안에 있니?
       대답이 없었다. 하건만 혹시 빈침실에 슬쩍 후무릴 값진것이 없나해서 대범하게 문을 열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여기저기 눈빗질하다가 아래층침대의 베게밑에서 핸 드폰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꿈쩍 놀라서 식은 땀을 뺐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번개같 은 생각이 손을 뻗치게 했다. 삼성패 한국핸드폰이였다. 나는 담방이라도 덜미를 잡힐 것같아 후들거리는 다리로 침실문을 나섰다. 층계를 내리려고 발을 내디디려는데 복도 귀퉁에 있는 위생실에서 한 아이가 나오더니 휘파람을 불며 침실로 들어가는것 이 곁눈에도 보였다. 그 침실이였다.
       나는 층계를 세계단씩 뛰여내려 숙사를 빠져나온후 교실로 향하지 않고 교문밖에 서 택시를 불러탔다. 시내의 핸드폰중고품매대에가서 별로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2천원에 팔았다. 한국핸드폰이 금방 사용되기 시작한 때이고 워낙 새것이여서 생각 밖에 그만큼이래도 받을수 있었다. 나는 뛸듯이 기뻤다. 이젠 빚을 다 물고도 친구 들과 한상 퍼지게 차려먹을수 있게된것이다.
그러나 좋은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학교보위과선생님이 나를 불러 조용한 칸에 데리고 들어가더니 다짜고짜 주먹닥질해댔다. 도적이 제발 저리다고 지은 죄가 있는 나인지라 찍소리 못하고 다듬이질 당했고 낱낱이 이실직고했다. 하지만 돈은 이미 빚으로 거진 나갔고 식당놀이까지 하다보니 주머니속엔 잔돈밖에 안남았다. 숙사의 특대절도안건은 이렇게 인차 들통이 났고 처벌이 곧 내려졌다.
       학적제명에 핸드폰값 3천백원을 배상하고 벌금 5백원까지 내야 했다. 눈앞이 캄캄한데 부모가 직접와서 도장을 찍고 결산해야 한다는것이다. 소낙비가 억수로 쏟 아지는데도 아버지가 달려왔다. 나에게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고난 아버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질렸다. 그 큰 주먹을 들어서 한주먹에 내골을 박살내려고 입술을 앙당그 려물던 아버지는 한동안 노려보기만 하다가 맥없이 주먹을 내리웠다. 얼굴에 얼기설 기 얽힌 밭고랑같은 주름살에 눈물이 덧거니 맺거니하였다. 땅꺼지게 내쉬는 한숨은 예리한 비수마냥 내 가슴에 박혔다.
       아버지는 너무 억이막혀 말문이 닫겼는지 아무 말도없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마라초를 말았다. 그러는 아버지의 모습을 곁눈질하면서도 나는 앞으로의 머나먼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았고 천문수자같은 빚을 아버지가 어떻게 갚고 어머니 병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며 온집이 어떻게 살아갈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았다. 담배연기에 사래들면서도 연거퍼 두대나 태우고난 아버지는 내 팔을 세괃게 잡아쥐고 교장실로 향했다.
       아버지는 교장선생님을 보자 다짜고짜 무릎을 털썩 꿇는것이였다.
《죄송합니다. 정말 보기 부끄럽습니다. 다 제가 아비구실을 잘하지 못하고 교육 을 잘하지 못한 탓입니다. 학교에서의 처리는 다 지당합니다. 구류소에 집어넣지 않은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
난데없이 뛰여든 사람이 잡담제하고 무릎부터 꿇고 눈물범벅이 되여 사정하는것 을 어정쩡해서 바라보던 교장선생은 그제야 갈피를 잡았는지 아버지를 부추겨세우며 핀잔조로 말했다.
《이게 무슨 행동입니까? 어느때라고…참, 할말이 있으면 앉아서 천천히 이야기 해도 되는데 이렇게 사람을 난처하게 굴다니요? 》
《아닙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벌금은 얼마라도 내겠습니다. 배상도 하구요. 다만 저 애에게 고중졸업증만은 내주시여 살길을 틔워주십시오. 예? 제가 이렇게 무릎꿇고 빌겠습니다. 》
사십이 갓넘은 젊은 교장앞에서 50대 중반인 아버지가 무릎을 꿇은채 일어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이 아픈지 쓰린지도 몰랐다. 후에 안일이지만 아버지는 집에서 기르던 암소와 송아지까지 다팔아서 빚을 갚고 졸업증만 가지면 다른 현의 어느 고중에 재학시켜서라도 대학시험을 치게 하려고 작심했던것이다. 아버지로서는 내가 죽이고싶도록 미웠겠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학교에서 쫓겨나게 할수 없었던것이다. 나는 시골중학교때까지는 아버지의 자랑이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기보다 퍽 아래인 교장선생에게 말끝마다 님자를 개여올리면서 손이야발이야 빌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굶어죽어도 자기가 못한 대학공부를 아들에게 시킨다고 뼈무르던 아버지의 마음이지 이미 타락할대로 타락한 구제불능의 탕아로 된 나는 배움의 성당 에 들어설 마음이 꼬물만치도 없었다. 아버지가 고중졸업증을 가지기나 했는지 어쨌는지 나는 알지 못하고 먼저 학교를 나와 무작정 역전으로 가는 뻐스에 넋을 잃은 몸을 실었다. 고향마을에 돌아갈 용기가 없었던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내 척추가 끊어날것이고 불효막대한 놈이라고 욕하며 튕길 침방울이 나를 익사시킬것만 같았던것이다.  단돈 몇원밖에 없는 나는 연길에서 안도까지 가는 표를 끊어가지고 심양행렬차에 가만히 올랐다. 어릴때부터 나를 무척 귀여워해주시던 이모에게 가서 잠시 숨어있을 작정이였다. 그러나 나는 어떤 수를 쓰든 렬차원들의 눈을 피해 끝까지 가야할 내 신세가 한심했다…
운수좋게 심양역을 무사히 빠져나오긴 했지만 어데로 가서 이모의 집을 찾아야 할지 막연했다. 밤새도록 찾고 이튿날 점심때까지 찾아서 겨우 초인종을 누르니 낯 선 녀인이 나와서 얼마전에 새 아빠트로 이사갔다고 했다. 그야말로 인생고가 시작될 판이였다. 련사흘 공지란 공지를 다 찾아다니며 일거리를 얻으려 했으나 어데서 굴러온 놈이냐고 욕만 먹고말았다. 하얀 얼굴에 갱핏한 내 체구가 그들의 마음에 탐탁하게 여겨지지 않을수도 있었고 원체 조직적으로 도급맡은 일에 나같이 중뿔나게 찾아든 놈을 받아들일수 없다는것을 나는 후에야 알았다.
아무값도 가지 않은 내 눈물이 그제야 지난 3년간의 악몽을 씻어주었다. 나는 주린배를 안고 대합실구석에 쭈크리고 앉아 뼈저리게 느꼈다. 응당 지식의 씨앗을 뿌려야 할 나이에 사악의 잡초만 키웠을뿐만아니라 옹근 봄을 잃어버린것이다. 몸에 지녔던 돈이 거덜나고 진짜 알거지가 된 나는 후들거거리는 다리를 끌며 지향없이 걷고 걸었다. 발자국마다에 회한이 고이였는지도 모른다.
심양시 제일중이라고 요란한 간판을 건 으리으리한 교문앞을 지나며 보느라니 대 도시아이들답게 청신하게 차려입은 남녀애들이 웃고떠들며 들락날락하였다. 나는 다시 한번 복속에서 복을 모르고 허송한 나의 봄날을 생각하였다. 한번 가버린 봄이 이제 다시 못올줄 알면서도 가슴을 어루쓸는 나자신이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같이 여겨졌고 인간쓰레기같았다.
나는 자존심은 살아서 어느 식당에 들어가 남이 먹다 남은 음식찌끼라도 얻어먹 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냥 빈속으로 돌아다니다가 해질녘 역으로 나가는 길도 잃고 해서 채소도매시장안으로 들어갔다. 장사군들이 다 가고 날이 어두우면 생고구마쪼각 이라도 얻을수 있을가 해서였다. 잔뜩 굶주린 사람에게는 점심때가 따로 없고 목이 몹시 갈하였을 때 마시는 물에서 확실히 어떤 맛을 느낄수 있는법이다.
날은 차차 어두워졌다. 여기저기 어둠을 헤치며 다니던 나는 더는 지탱하지 못하 고 쓰러졌다. 배고픔과 비바람에 열이 올랐던모양이다. 내 젊은 목숨이 이렇게 낯선 거리바닥에서 허무하게 끝나는가싶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점점 의식을 잃어버렸다.
이튿날 내가 깨여났을때는 어둑시그레한 곳에 누워있는것을 발견했다. 나는 놀라운 눈길로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구석쪽에 남새가 무져있는것을 보아 남새창고 같았다. 그제야 보니 침대란 두개 긴 걸상우에 널판지 몇잎을 편것이였고 거적을 두벌 깔고있었다. 침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람통으로 만든 난로가 있었고 난로우에 놓인 자그마한 납가마에선 무엇인가 끓고있었다. 내가 깨여난것을 보자 나보다 두어살 이상이 돼보이는 청년이 사람좋게 벌씬 웃어보였다.
《아, 마침내 깨여났구나. 》
말을 마치자 가마안에서 죽같은것을 사발에 퍼담아들고 침대가로 다가오더니 친절하게 말했다.
《보아하니 며칠 굶은것같군. 먼저 이 죽으로 위를 다스리라구.》
학교에 있을때 같으면 더러워서 구역질했을 나였지만 여윈개 언똥을 가리랴! 사흘이나 굶은 놈에게 체면이 있을리 없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도 생략해버리고 입천장이 데는줄도 모르고 련거퍼 세사발이나 마셔버렸다. 천하일미는 진수성찬에 있는것이 아니라 허기진 배에 있다는 말의 의미를 체험으로 새기는 판이였다. 그러는 내 꼴이 기막혔던지 청년이 껄껄 웃었다. 더운죽이 들어간 위에서 사지에 맥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쎄쎄닌!)하고 뒤늦은 인사치례를 했다. 말이 끝나 자 이 며칠 죽도록 고생한 일이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황소울음이 터졌다.
청년이 담배를 권하며 한식경이나 안위해서야 나는 겨우 울음을 그쳤다. 청년은 내가 순서없이 엮어대는 말을 묵묵히 듣고나서 깊은 한숨을 토하더니 차지도 덥지도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구만, 허 이거 나와같은 룸펜이 이 심양거리에 또 한명 나타났군그래. 그런 데 장차 어떻게 할 작정인가?》
내가 그저 머리만 절레절레 흔들자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조선족이지? 나 이름은 왕명이구, 산동 량산박부근에서 왔어. 이제 직접 체험하고 보니 절실하게 느껴지겠지? 기실 우리는 잘못 판단했기에 버리지 말아야 할 길을 다 가지 못하고 한걸음이 천고의 한이 될 그 길을 걸은거라구  그 길은 가면 갈수록 비탈지고 험난해지면서 낭떠러지로 뻗어간 길이야, 안그래? 》
나는 그의 《우리》란 말에 신경이 살려졌다.
《방금 우리라구 했지? 그럼 형님도 나와같은 경력을 겪었단 말이요?》
《그래 맞다구, 나도…내가 저지른 착오는 더구나 황당하고 대가가 침중했어, 내가 한쪽다리를 절게 된것은 무리싸움에서 칼에 찍힌후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고 신경이 좀 잘못된 탓이라네. 게다가 나에게 맞은 애의 집에서 무리지어와서 우리 집을 박산냈어. 어머니는 분김에 강에 뛰여들어 죽고말았어, 내가 어머니를 죽인거지,  
아버지는 낫을 들고 나를 찍어죽인다고 길길이 뛰였어, 나는 별로 살고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본능적인 공포심에서 집을 뛰쳐나왔지, 그리구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집에 돌아가지 못했어. 아버지가 농사지어서 고중까지 보내주었는데 보답은커녕 이렇게 속만 태워주니 내사 불효막심한 개놈이지.
난 밤마다 혼자 생각하면 정말 한심하네. 도무지 자신을 용서할수 없는 죄인이 된 오늘 내가 계속 살아야 하는가를 의심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네.》
그는 말을 채마치지 못하고 두손으로 더부룩한 머리칼을 마구 잡아뜯으며 오열을 토하였다. 나는 다리꺾어진 노루가 한굴에 모인다더니 세상에 이런 공교로운 만남도 다 있냐싶으면서 그를 와락 그러안고 함께 꺼이꺼이 울었다.
그날부터 나는 왕명을 형님이라 부르면서 함께 남새장사를 시작했다. 매일 꼭두 새벽에 일어나서 삼륜차를 몰고 먼곳의 시교에 가서 직접 밭에서 남새를 넘겨다가는 아침시장에서 팔았다. 우리는 힘은 넘치고있으니까 아끼지 않고 부지런히 뛰였으며 남보다 눅게 팔았다. 그러다보니 너른 마당쓸기를 하면서 많은 단골까지 만들어 놓았다. 비록 일은 고되였지만 하루 순리윤이 몇십원씩 되였다. 게다가 잘곳이 있고 먹을것이 있어서 힘드는줄 몰랐다.
월말이 되여 결산해보니 돈이 적지 않았다. 집세 물세를 다 떼고도 두어달 지나서  한사람앞에 천원이 차례졌다. 나는 똑같이 가질수 없다며 견결히 사양했다. 그러나 그 의 고집은 나보다 더 검질겼다.
《더 말 말게!동생, 과거는 과거로 굳어져있게 내버려두자구. 응? 우리가 비록 오 다가다 만난 친구이긴 해도 의기상투하지 않았어? 이렇게 제힘으로 돈을 벌어서 먹고 잘수 있으니 우리도 구제불능아는 아닌것같아, 하하하…》
말을 마친 그는 백원짜리 한장만 꺼내여 안주머니에 넣더니 어디로 나갈 차비를 했다.
《형, 어데로 가려구?》
《나 벌써 3년동안 집에 안갔다구. 집에서는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있 지, 늦게라도 효성을 조금 할가구 우정국에 갔다오겠네.》
그렇게 말하는 왕명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고있었다. 얼굴은 더없이 비통한 모습이여서 보기조차 민망했다. 나도 온밤 잠들수 없었다. 정말 아버지는 어떻게 하고 사는지… 어머닌 병이 더 위중해졌을것이다.
나는 악몽같던 지난날을 돌이키며 눈물을 삼켰다. 그러면서 묘망하고 또 도피 할수도 없는 나의 인생행로를 생각하며 오래도록 울었다. 그래 한번 실족했다해서 이제 금방 시작된 인생행로의 끝까지 유감과 참회를 가지고 가야한단 말인가? 내 청춘을 그냥 이렇게 남새시장과 시교를 전전하면서 썩여야 한단말인가? 나는 고통 속에서 자기를 반성했고 후회속에서 자신을 해부하였다. 자기 청춘과 래일을 가지고 장난질한 나를 진짜 현대머저리라고 해야하리라
담방이라도 차표를 사가지고 고향으로 달려가고싶었지만 참았다. 이미 늦어진 길을 다그쳤대야 지금 곧 남들을 따라잡을수도 없는바하고 조금이라도 돈을 모으고 싶었다. 그날 밤, 나의 심사를 손금보듯 꿰뚫어보는 왕형이 연신 맥주병을 따며 일장 설교를 토해냈다.
《동생, 내말을 잘 들으라구, 내가 동생처럼 길가에 쓰러졌다가 한 마음씨 고운 젊은 중에게 구원받아 절에 가서 한달동안 몸조리 할 때 그 박식한 중이 나에게 하던 말이야, 절망이란 의지박약자의 결론이야, 오직 한가지 상황에서만 절망은 돌이킬수 없이 철저한데 바로 사형집행서를 받는것이라는거야, 목숨이 붙어있으면 곧 희망이 있게 된다. 희망은 생명이고 생명도 역시 희망이다. 사람은 죽었지만 희망은 떠돈다. 절망하지 말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하지 않는가?  
절망은 우둔한자의 리유일뿐이다. 절망이 한걸음 나서면 자멸이요 돌아서면 무서운 악을 낳는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뒤를 돌아볼줄 모른다. 사나운 운명이 지꿎게 뒤따라오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기때문이다. 세상에는 절망에 빠질 처지가 있는것이 아니라 처지에 절망하는 사람이 있을뿐이다. 설혹 너의 형편이 절망하지 않을수 없더라도 절망은 하지 말라. 이미 끝장난듯 싶어도 결국은 또 새힘이 생겨나 기마련이다…》
마디마디 페부를 찌르고 힘을 주는 말이였다. 나는 살아갈 용기를 찾았다.왕형과 나는 제각기 3륜차를 몰고 남새를 실어다 팔았을뿐만아니라 낮결이면 페품수구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공동체》는 의좋게 꾸려졌으며 우정은 생사지교로 더 극진하게 되였다. 나는 서점에 가서 고중교과서들을 한벌 사다놓고 저녁이면 왕형 에게 물어가며 늦깎이 고중공부를 했다. 왕형은 워낙 특별히 머리가 좋아서 그번 싸움만 아니였더면 제남대학에라도 갈 우수생이였다는것이 과목마다에서 알렸다.
왕형은 부지런도 했거니와 장사리속도 나보다 몇배 나았다. 그러나 돈을 더 많이 가지려는 티도 없이 제친동생처럼 생각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강개하게 나오는 왕명 을 보며  량산박호한들중 누구의 후예가 아닌가고 생각했고 우스개삼아 캐여묻기도  하였다. 왕명은 그저 웃어넘겼지만 산동사람들의 전통인 무술 몇가지는 좀 익힌게 있다면서 쯤이나면 가르쳐준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서 무술을 채배우지 못하고 이듬해 그와 갈라지지 않을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늦기전에 학업에 달라붙어야 할것같았다. 내 생각을 말하 자 왕명은 친동생과 갈라지는듯 애석해서 눈물까지 지으면서도 극구 잡아두지는 않았 다. 내가 그만한 돈이면 연변에 나가서 어느 사립학교같은데 들어가 일년 다니고 대 학시험을 칠수  있지 않는가고 권유했지만 그는 상한 다리를 쳐들어보이며 허구프게 웃었다.
《아무튼 나는 포기했어, 너나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라구, 약속하는거야. 응? 내가 종종 전화할테니까, 이 량산박형을 잊지말라구, 우리 중국말에 집에서는 부모에게 의지하고 타향에서는 친구에게 의거한다는 말이 있지, 내가 이제 남새 점이나 꾸리고 돈벌이 되면 동생의 학비도 보태줄지 모른다구, 하하하…》
말만 들어도 고마웠다. 우리는 플래트홈에서 계집애들처럼 서로 부등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영원한 형제지정을 맹세했다.
《동생, 같은 돌에 두번 걸려 넘어진다는것은 세상에 웃음거리가 되는거야, 명심하라구! 응?》
점차 속도를 내는 렬차를 따라오며 손저어주는 왕명의 사나이다운 모습을 나는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넣었다. 후회는 인생에 대한 가장 좋은 해석이 된다고, 누가 말했던가. 차창가에 머리를 구겨박고 석별의 정과 쓰라린 후회를 씹노라니 어느새 차창에 어스름이 깃드는듯싶더니 칠백리료동벌이 완전히 어둠속에 잠겼다.
인생은 응당 잘못을 범해야 한다. 잘못은 견식을 늘여주기때문이라는 말을 믿어야 할지 나는 알수 없다. 기차는 숨가쁘게 씩씩거리며 밤을 누비며 나갔다. 아니 새벽을 향하여 달려간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동안 왕형은 많이도 속삭였다. 꿈이 있는 사람은 모두 희망의 협곡에서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 지난날 너에게는 깜박이는 불빛이 있었고 오늘날 너에게는 타오 르는 불빛이 있다, 그리고 미래에는 너의 운명과 인생길을 비추는 광명이 있을것 이다. 희망이 도망치더라도 용기를 놓쳐서는 안된다.  희망은 때때로 우리를 속이 지만 용기는 힘의 입김이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무엇이냐? 가냘픈 풀잎에 맺힌 아침이슬같고 위태로운 가는 거미줄과도 같다. 희망은 잔디풀처럼 날때부터 떨지만 그래도 생명의 령혼이고 마음의 등대이고 성공의 향도자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에게 있어서 희망이란 한잔의 술, 마시기도전에 쏟혀버린 쓴 술이였다. 내 인생의 려정에 다시 해가 솟을 래일! 막연한 느낌속에도 젊은 패기는 뜨거운 피속에서 고패치였다…
아아, 잃어버린 봄은 과연 오는가?!!
 
 
                                   2006 년 6 월 20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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