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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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를 쓰는 방법.4
2008년 10월 06일 03시 51분  조회:1463  추천:42  작성자: 최룡관
 

제4장 이미지의 류형


  이미지 류형에 대한 설이 여러가지이다. 5관을 통한 감각에 기대여 나누는 류형이 있는가하면 수사법류형에 기대여 나누는 류형도 있고 이미지 생성과정에 기대여나누는 류형도 있다.

  필자는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류형으로 이미지를 나누어보고싶다.

  첫째로는 형태이미지, 둘째는 사물이지미, 셋째는 관념이미지, 넷째는 복합이미지등 네가지로 나누어 고찰해 보고자한다. 형태이미지라는것은 시 자체가 어떤 형태로 씌여졌는가 하는것이고 사물이미지라는것은 사물을 이미지화한것이고 관념이미지란것은 관념을 이미지화한것이고 복합이미지라는것은 사물이미지와 관념을 함께 리용하여 시를 쓴것이라겠다.




 아래에 한 류형씩 살펴보도록 하자.


제1절 형태이미지


   시를 읽기전에 우리는 먼저 시의 형태와 만나게 된다. 바로 <<오성의 최초의 가장 단순한 언제나 있는 어떤 표출은 현실세계의 직관이다>> 라고 한 훗살의 말과 같은 것이다. 홍문표는 <<문학작품은 그자체로서의 독립적인 내용과 형식을 지니>>고 있다면서 <<고유한 존재 양식과 구조를 통해서>> <<문학을 인식할수있다>>고 하였다.

   형태이미지란 시가 어떤 형태로 <<표출>>되였는가를 <<직관>>하는것이라고 하겠다.

    왜 시의 형태를 살펴보아야 하는가? 시도 태여나면 하나의 사물이며 하나의 객관존재이다. 추상적인 사물인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사물이며 직관적인 사물이다. 시자체가 모양을 갖고 있다. 이 모양은 행과 련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행과 련의 구분이 여러 가지이듯이 시의 모양도 여러가지 형태이다.  시의 어떤 형태는 어떤 사물의 모양을 본딴것도 있고 지어는 기하학적 도형을 본딴것도 있다. 시의 이런 형태는 사람들에게 어떤 상태나 분위기를 느끼게도 하고 어떤 감각을 주기도 한다.

                 나의 내부에도

                 몇마리 새가 산다

                 비유의 새가 아니라

                 기왓골을

                 쫑

                 쫑

                 쫑

                 옮아 앉는

                 실재의 새가 살고 있다

  박남수의 시 <<새>>(40)이다. 시인은 비유의 새가 아니라지만 실제는 비유의 새다. 상징적으로 씌여진 이 시에서 의태어 <<쫑 쫑 쫑>>세 글자를 각기 한행으로 함으로써 새가 정말 <<기왓골>>을 <<쫑 쫑 쫑>> 옮겨 앉는 모습을 보는것만 같다. 시작의 넉줄과 결속의 두줄사이에 <<쫑 쫑 쫑>>을 행으로 배치하여 새가 지붕의 기와장사이를 넘나드는 모습을 우리앞에 펼쳐주기도 한다. 또 맑고 가볍고 경쾌한 그것은 이 시의 형태와도 관계가 없지 않다.

  아폴리네르(프랑스)는 <<연무>>라는 시 2련을 이렇게 쓰고있다.

  그리고 또 나

              는

                태

                 운다

                 권련초

                 를, 덧없

                 이 탄다

  형태이미지라겠다. 연기가 타오르는 모양을 글자로 나름대로 그려놓은것이다. 밑에다 세글자씩 석줄 그다음 두글자, 그다음 한글자씩 두줄인데 글자위치가 다르다. <<그리고 또 나>>는 한줄로 위를 막고있다. 연기가 피여올라가는 모습이래도 좋고 우에서 뿜어내려오는 모양이래도 좋다. 아무튼 연기의 운동과 비슷하게 <<연기>>라는 시를 쓰고있는것이다. 한 사물을 쓰면서 그 사물의 형태를 그림처럼 밝혀보려는 시인의 마음 표현이라 하겠다.

그이는

산이였다사

시절푸른정기를

뿜어내는산이였다검

은구름은산을덮고번개로

정수리를치고우박은허리를갈

기고소나기는정갱이에서울부짖었

다소나기가지나가자맑은하늘아래산의

웅좌는생채기한오리없이드틴자리도없이

원점에올방자를틀고온건히오연히앉아있었다!

 그이는

  산이였다지

  각이파도쳐도닻

  을내린배처럼영원히

   침몰될수없는그런산세월

    의한자리를증언해우뚝엎딘그

    런산이였다산은갔다하루아침에터

     자리엔애기잔디밭눈시린이슬의꿈터파

     아란아침공기가안개처럼부서진답부서지며

     쨍ㅡ소리나는씨앗을마음밭에한알씩떨구어준다

  필자의 졸작 <<원점에 오연히>>라는 첫련이다. 김학철옹의 서거를 맞고 쓴 이 시는 모두 2개련인데 각 련은 11행으로 산모양을 그렸다. 가장 철저한 맑스주의 신봉자이며 사상가이며 문학가이며 로홍군의 최후의 분대장이며 우리 민족의 위대한 대표인 그이를 추모하는 시를 쓴다는것부터가 아름찬 일이였다. 그래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산의 형상과 <<짝>>을 맞추었고 언어로 산을 그리였다. 11줄로 두개의 련을 만든것도 그이의 한생은 누구와도 비길수 없는 홀로의 위대한 일생을 살으셨다는 감격을 표현하려는데 기인되였다. 11줄의 두개의 련은 산우의 산이다. 산우의 산은 높은 산이다. 김학철은 산우의 산 즉 일상적인 세태를 떠난 높은 산이다. 이런 추앙의 뜻을 기리느라고 산우의 산이라는 형태이미지를 직조하였다.

  옛날에 우리 조상들은 평시조를 3행으로 썼는데 지금 시인들은 3행으로 쓰는것이 매우 드물다. 정형적인 3행시조형식을 파괴하여 2행 2행 3행으로 련을 구성하기고 하고 초장 1행, 중장 2행, 종장 3행으로 련을 구성하기도 하고 열두행으로 주르르 늘여쓰기도 한다. 시인이 시조의 모양을 자주 고치는것은, 형태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어 시의 신선함을 기하기 위한 의식적인 작업이라겠다.


제2절 사물이미지


  시를 분류할 때 사물을 표현한 시와 관념을 표현한 시로 나누는 경향이 일반화되여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물이미지란 사물을 쓴 시이다. 그런데 그 이미지에는 개념이 개입되지 않는경우라고 해야 할것같다. 순수하게 사물만을 노래한 시이다.

  어떤 사물을 노래한다고 하여 그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쓰는 사물이미지가 아니다. <<짝>>을 맞추어 변형시켜야 한다. 변형을 통하지 않으면 새로운 이미지가 탄생되지 않는다. 앞에서 이미지는 창조적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필자가 말하는 이미지에는 언제나 <<창조적>>이란 규정어가 붙은것을 말한다.

  <<현대시구조>>에서 후고 프리드리히(독일)는 스페인 시인 살리나스의 이런 말을 절록한다. <<순수시의 전제조건은 시가 가능한 한 사물과 테마로부터 벗어나는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언어의 창조적운동이 자유로운 공간을 가지기때문이다.>>

  순수시란 사물이미지로 구성된 사물시쪽이고 관념이미지로 구성된 관념시는 이데올레기쪽이라고 알면 될것 같다.

  살리나스의 말은 사물이미지가 창조되려면 가능한 그 사물이나 테마에서 벗어난 상상을 해보아야 한다는것이다. 가령 나무라는 시를 쓸 때 나무는 땅에 뿌리 박고줄기가 있고 가지를 뻗치고 숱한 푸른 잎들을 키운다고 하면 설명이지 시적이미지는, 사물이미지는 못된다는것이겠다. 왜냐하면 이런 문장은 언어로 그린 그림의 일종이라고 부를수있겠는지는 모르지만 창조적상상으로 그려진것이 아니며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쓴것에 지나지 않기때문이다.

  사물의 새로운 이미지를 발굴하는 방법을 가리킬 때 문덕수는 19세기 영국의 코울리지 말을 례로 든다. 그 말인즉 <<서로 반대되거나 또 불일치한 성질들을 균형하거나 타협시키는 힘>>을 써야 한다고. 그 힘이란 바로 상상이라겠다.


          은빛 그리고 구리빛 마차들

강철의 그리고 은빛의 배머리

거품을 때리고

가시덤불들의 그루터기를 일으켜세운다

황야의 강들

그리고 거대한 썰물의 궤적이

선회하면서 동쪽을 향하여

숲의 기둥을 향하여

부두의 방파제를 향하여 줄지어간다

그 모서리에 빛의 소용돌이가 부딪친다

                              -랭보<<바다>>전문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기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불꽃처럼 타다가

껴져도

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문덕수 <<꽃과 언어>>전

푸른 잔디를 뚫고 서있는

체조장시계탑우에

파란 기폭이 바람에 부서진다

무거운 지팽이로 흰구름 헤치고

교회당 기울어진 언덕을 걸어가노라면

밝은 해빛은 화분인양 나려퍼붓고

거리는 함박꽃같이 숨을 죽였다

                       -김광균 <<가로수(1)>>


  상기한 세편의 시는 모두 순 사물만 쓴 사물이미지이다. 세수가 다 사물과 사물을 <<짝>>을 맞추어주면서 <<균형과 타협>>을 이룩하고 있다. 어떤 개념과 주장도 드러내지 않고 사물만 노래하고 있다.

  랭보는 바다에 가보지 못하고 이 시를 썼다고 한다. 그의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바다>>만으로도 알고 남음이 있겠다. 그는 <<바다>>에서 <<은빛 그리고 구리빛 마차들>> <<가시덤불들의 그루터기들>> <<숲의 기둥>> <<빛의 소용돌이>>등 언어를 창출하여 바다와 바다의 파도를 표현하고 있다. 기이하고 생생한 언어구사를 새로운 창조라고 아니할수 없다.

  문덕수는 <<꽃과 언어>>라는 짧은 시에서 언어를 <<나비>>, <<기발>>, <<밀물>>, <<불꽃>>, <<꿀벌>> 등으로 연해연방 변형시키면서 시를 끌고나간다. 일상적인 눈길이라면 아무런 련관성이 없는 이러한 사물들로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재구성해 낼수 없을 것이다. 어느 이미지도 낡투가 나거나 고로한 냄새가 전혀 없다.

  김광균의 <<가로수(1)>>도 읽을수록 멋이 돋는다. 가로수를 <<파란 기폭>>으로 이동시켰고 또 다시 <<흰 구름을 헤치는>> <<무거운 지팽이>>로 이동시키면서 이미지의 신선함을 추호도 죽이지 않고있다. <<화분>>같은 <<해빛>>, <<함박꽃>>같은 <<거리정적>>도 직설적이기는 하지만 사유의 독특성으로 이채를 뿌린다고 하겠다.

  세수의 시는 모두 특정된 사물의 한계를 뛰여넘어 새로운 사물과의 <<짝>>을 이룸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내는 공동성을 갖고있으며 그 어떠한 개념도 개입되지 않고 순수하게 사물이미지만으로 직조되여있다. 그리하여 원래의 사물인 <<바다>>, <<꽃>>, <<언어>>, <<가로수>>들은 원래의 의미보다 다른 새로운 의미로 확충되여 나가고있다. 원 사물들뿐만이 아니라 시인이나 독자도 새로운 에네르기를 주입받고있다고 하겠다.

   연변의 녀류시인 심예란씨가 사물이미지를 어떻게 쓰고있는가를 보자


가을.2

심예란


가을은 

어룽어룽한 범가죽


산이 들쓰고 으르렁

들이 들쓰고 으르렁


찬 바람이 락엽화살로

범가죽을 벗긴다


예란시인은 가을을 쓰느라고 하지만 실제 등장시킨 사물은 가을이 아니고 범가죽이다. 가을에 단풍든 산야를 보고 범가죽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떠올리고있다. 여섯줄의 시에는 개념이라고는 보이지 않을뿐만 아니라 시에다 시인의 어떤 의도를 부여하려는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사물의 운동만이 보인다. 이렇게 사물만을 떠올리며 이미지를 짜나가는 시가 사물이미지이다. 우리는 이 시를 보고 가을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맛보게 된다.


제3절 관념이미지


  사물이미지는 사물을 노래한 시이고 관념이미지는 의지를 노래한 시이다.

  관념이미지는 추상적인 관념에 기대여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관념을 시로써 표현한다. 사랑, 고독, 리상, 그리움 하면 우리는 이런 언어들의 색깔도 볼수 없고 소리도 들을수 없고 모양도 볼수 없다. 또 살아가노라면, 더욱이는 시를 쓰노라면 이따금 새로운 사물적이미지가 아니고 추상적인 깨침이 올 때도 있다. 령감이라 하여도 좋을것이다. 이런 추상적인 깨침을 그대로 써놓으면 시가 안 된다. 그것을 이미지로 재구성해 놓아야 시가 되는것이다.

  사랑, 고독, 리상, 그리움같은것들은 시의 영원한 주제로서 많은 시인들이 가작을 써낸 텍스트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이러한 주제는 시인의 붓끝에서 다루어질것이며 새로운 가작들이 태여날것이다. 고리는 어떻게 쓰느냐이다. 길은 오직 한길- 상상의 날개를 훨훨 저어서 새로운 이미지를 짜놓아야 할것으로 알고있다. 이 짠다는 말은 물수건의 물을 짠다는 의미가 아니라 천과 같은것을 짠다는 의미이겠다.

  스페인 시인 로르까는 관념이미지로 세계의 명시를 썼다.


절규의 타원은

산에서

산으로 간다네

올리브밭에서

푸른 밤중에 일어서는

어두운 무지개 됐네

아아!

비오라이 현인듯

절규는 긴 바람줄을

울게 하였네

아아!

(굴속의 사람들이 등불을 드러내보이네)

아아!

                              -<<절규>>전문

  후고。프리드리히가 <<익명성령역의 거장>>이라고 명명한 로르까의 <<절규>>는 현대시사에서 한자리를 온건하게 차지하고 있는 가편이라겠다. 천재적인 시인 로르까는 <<절규>>를 천재적으로 변형시키고있다. 그는 <<절규>>를 <<타원>>으로 변형시켰다가 또 다시 <<무지개>>로 변형시키고 재다시 바이올린밭(비올라이밭)으로 변형시킨다. 세차례의 변형으로 시를 짜내려가면서 사람대신 동굴속의 불빛만 보이면서 현대시의 거대한 령역인 익명화의 대가적본질을 드러낸다. 추상적인 사물을 물화하여 구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는것은 현대시의 주요한 수법의 하나라고 하겠다.

  우리는 어떤때 령감이 뇌리를 치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그 령감이 사물적이미지로 와닿는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느낌으로 와닿을 때가 많다. 버리기는 아깝고 쓰자니 깡깡 마른 언어의 느낌일뿐이다. 무조건 구체적인 형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함은 당연한 도리이다. 김현승의 <<절대의 신앙>>이 하나의 보기로 될것같다.

당신의 불꽃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여듭니다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품어줍니다

                  -<<절대의 신앙>>전문

  시는 여섯줄 두개련으로 마무리되여있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과 바람을 표현한 관념이미지라 하겠다.

  이 시에 대하여 문덕수는 <<오늘의 시작법>>에서 해석을 달고 있다.

  <<이미지에 대한 사상적추구가 더욱 치렬한 모습을 보여주는같다. 단지 <불꽃>과 <눈송이> 련결이지만 <불꽃>은 신의 뜨거운 사랑을 <눈송이>는 믿음이 식은 약한 신앙을 상징하고있다. <불꽃>과 <눈송이>라는 대립이미지가 종교적상징을 내게 되기까지는 그것이 비록 직관적으로 이루어졌다하더라도 이 시인의 신앙적체험이 밑받침되여 있는것이다.>>

  우리가 마땅히 류의해야 할 점은 절대신앙이라는 이 추상적명제를 한마디 추상적언어사용도 없이, 론리적인 풀이도 없이, 개념적인 해석도 없이 <<불꽃>>과 <<눈송이>>라는 두 사물의 물질운동으로 표현했다는데 있다. 실은 론리적인 개념이지만 론리적역설로 표현한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예술화한 것이다.


장미여, 너의 빛깔은 슬픔이다

모발은 떨린다

청명한 정오에 미풍에 일렁인다

별의 고리가 바람에 떨린다

나의 마음도 보이지 않는 별과 함께 떨린다


  이 시는 일본의 니시자키준자부로가 쓴 <<슬픈 노래>>의 앞부분이다. 제목은 <<슬픈 노래>>지만 준자부로는 <<슬픔>>을 <<장미>>와 <<별의 고리>>의 움직임으로 대용하고있다. 관념을 물질화한것이며 관념을 관념으로 해석한것이 아니라 장미와 별이라는 사물로 해석하고있다. 관념적인것을 사물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관념이미지라겠다. 화학반응에서 볼수있는 이런 치환적인 방법은 추상을 구상화함으로써 형상이 화면처럼 눈앞에 떠오르게 한다.


마음이 문이 열린다

그러면 난

마음이 눈 뜨고

마음의 귀 열고

마음의 길을 간다

......

오늘밤 난 또 장님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볼수있겠지

아름다운 이야기 들을수 있겠지

그리고 별들의 목메이는 향기

맡을수 있겠지


  리성비씨가 관념적인 제목 <<명상>>이다. 시인은 명상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상적인 사물의 운동 즉 이미지로 표현하고있다. 추상어 <<마음>>과 <<문>>, <<눈>>, <<귀>>, <<길>> 등등의 구상어들이 조합되면서 명상이라는 개념을  이미지로 펼쳐보이고있다.

   관념이미지는 추상의 구상화에 의하여 산생된다. 이 이미지는 일상적인 론리나 개념으로 해석되는것이 아니고 습관적인 눈길로 보아내는것이 아니다. 오직 예술의 방법, 시적인 방법으로써만이 해석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관념이미지로 씌여진 시는 이데올로기 시쪽으로 나아가게 되고 사물이미지로 씌여진 시는 무의미시쪽으로 나가가 된다고 말하는 시인이나 비평가들이 많다. 전자는 밝아놓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후자는 언어장난을 금하기에 류의해야 한다.


제4절 복합이미지


  사물이미지와 관념이미지에 대하여 어설프게나마 살펴보았다. 이제 이미지의 마지막 류형 복합이미지에 대하여 보기로 하자.

  현대시에는 사물이미지만으로 구성된 시가 있고 관념이미지로 구성된 시가 있는가 하면 이미지와 관념이 혹은 관념과 이미지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여있는 시도 있다. 이러한 이미지를 나름대로 복합이미지라고 지칭해본다. 복합이미지는 개념화된 시구와 이미지화된 시구가 호상 결합되여 이루어진 경우라 하겠다. 이런 이미지는 친절감이 들면서도 상징이나 은유의 빛깔로 하여 음미할 가치도 곁들어있다고 볼수있다.

  릴케의 <<가을날>>이란 시 한수를 보자


주여, 때입니다

여름에는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에 결실을 명하십시오

열매위에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주시고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송이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계속 고독하게 살것입니다

잠을 자지 않고 책을 읽지 않고

긴 편지를 쓰고

그리하여 락엽이 뒹구는 가로수길을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헤매일것입니다.


   이 시에서 1련은 첫 두행은 관념, 3,4행은 이미지로 구성되였고 2련은 첫행은 관념, 두번째행은 이미지, 세 번째행은 관념, 네 번째행은 이미지로 구성되였고, 3련에서는 관념과 이미지가 교차적으로 혼용되고있다.


바다가 륙지로 되지 않는 까닭은

쉽게 사랑하고

쉽게 리별하고

그리움을 망각해 가고있는

무리들이 늘고있기 때문이다


바다가 륙지로 되지 않는 까닭은

섬마을 아이가

크레용으로 매일매일 그려가는

빨간 일력이 유난히

유난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바다가 륙지로 되지 않는 까닭은

매일 꽃을 보고도 얼굴 붉힐줄 모르고

새벽의 맑은 공기를 활보하며

목마름이란 단어를 점점 잊어가기 때문이다


바다가 륙지로 되지 않는 것은

그리움이 그리움으로 피게 하고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으로 되게 하고

아픔이 아픔으로 되게 하고

기다림이 기다림으로 되게 하고싶기 때문이다。


  시인 리임원씨가 쓴 <<바다가 륙지로 되지 않는 까닭은>> 전문이다. 전형적인 복합이미지시라겠다. 제목부터가 관념으로 시작된다. 첫련과 마지막은 관념으로 서로 조응시켰고 가운데의 2,3련의 첫줄은 관념으로 시작하면서 시인의 고견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2, 3련의 내용이 아름다운 이미지로 구성되여 전형적인 복합이미지시를 이룩하고있다고 하겠다.

    북방문단의 로시인이라고 불리우는 리삼월시인이 사물이미지와 관념을 어떻게 결합시켰는가를 살펴보자.


나비.1


락엽이 한벌 깔려서

해빛 밝아진 땅에

노랑나비 한 마리 떨어지다


림종의 저린 경련에

몸을 떨지 않았던들

나비와 락엽을 분별할수 없는

노란색 나비 한 마리


안타까운 굼벵이의 허울을 벗고

몸을 곱게 치장하느라 들인

그간의 공력에 비기면

너무나 짧은 노랑나비의 한생


당금 저승길에 오르면서도

삶의 미련을 잊을수 없어

노랑나비는 마감 한번

보호색속에 몸을 숨긴다


꽃이 간 길을 밟고 가는

노랑나비 림종은

이렇듯 아름답고 슬프다.


  이 시에서 3련의 처음으로부터의 석줄과 4련의 첫두줄과 제일 마지막줄은 이미지인것이 안니라 관념이다. 그리하여 이 시는 복합이미지시에 속하는 경우라 하겠다. 시인은 나비의 아름다운 일생을 노래하면서 나비의 언어를 파보고있다.

   관념과 사물이미지가 어떤 경우에 어떻게 결합되여 복합이미지를 이루는가에 대답은 시를 쓰는 때의 시인의 나름에 관계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시인의 몫이다. 시인이 어떻게 쓰고싶으면 어떻게 쓰면 된다. 사상성과 감각성이 결합된 이러한 시는 서로 보충하면서 정확한 효용을 리드하고있는것이라겠다. 복합이미지 시를 쓸 때 이미지도 새롭게 써야 하거니와 관념도 새로운것을 쓰기에 류의하여야 한다. 남들이 다 알고있는 관념을 쓰면 시가 고루하게 되면서 시의 낡투를 면하지 못하게 된다.

  이로써 이미지의 네가지 류형을 살펴보았다. 어떤 류형의 시를 쓰든 중요한것은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것이다. 비슷하거나 남을 따라가는 아류풍의 이미지가 아니라 시 쓰는 시인의 내면을 파헤치면서  창출해낸 이미지, 이러한 이미지만이 시인을 시인이라 부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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