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 있는 양갱 전문점 오자사는 3.3㎡(1평)밖에 안 되는 작은 가게다. 하루에 만드는 양갱 수도 150개뿐. ‘한 뼘’에 불과한 이 가게에서 벌어들이는 연매출은 40억원에 이른다. 60년 전통의 오자사가 ‘1평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유다.
경기가 나빠지고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청년실업자나 주부, 퇴직자들이 작은 가게에 눈을 돌린다. 주변에 소자본, 소규모 점포 창업에 뛰어든 사람은 많지만 막상 성공했다는 사람은 드물다. 오자사의 이나가키 아츠코 사장은 말한다. 그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돈이 없고 기술이 모자라거나 아이템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고. 평범한 음식이라도 제조나 서비스, 직원 관리 등에서 분명한 경영철학과 마인드를 갖춘다면 단 1평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직 한국에서는 오자사처럼 6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성공을 거둔 한 뼘 가게는 나오지 못했다. 30%를 웃도는 자영업자 비율과 매년 오르는 물가와 임대료, 게다가 자본과 경쟁력을 갖춘 대형 프랜차이즈 공세 속에서 한 뼘 가게들이 살아남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오자사를 꿈꾸는 한 뼘 가게를 찾아봤다.
한 뼘 창업 뜨는 까닭
섣불리 수억 투자했다 망하기 십상
소자본·소규모 창업은 경기 불황기에 알맞은 창업 형태다. 적은 창업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노릴 수 있어 저가형 창업으로 불린다. 과거 무점포나 33㎡(10평) 이하 배달 전문점 창업비(임대료, 권리금 제외)는 2000만~5000만원 정도였지만 요즘은 물가가 올라 5000만~1억원은 족히 든다.
이렇게 투자해도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한 달에 채 100만원도 안 된다. 통계청 조사(2011년 말 기준, 전국 8700가구 표본조사)에 따르면 도시 자영업자 중 소득 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82만5350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의 자영업자 수(1월 말 기준)는 547만3000명. 약 100만여명의 자영업자들은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버는 셈이다.
원가와 임대료는 오르고 수입이 줄어들면 대형 가게라도 버틸 재간이 없다. 맛과 품질, 매장 인테리어 등에서 또 다른 차별 포인트를 줘서 달라진 소비자 입맛과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요즘 창업 트렌드는 ‘3S’로 요약된다. 매장 크기는 작고(Small), 아이템은 가벼우면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Slim),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셀프(Self) 창업이 대세다. 한 뼘 가게들도 3S 형태로 진화하면서 불황 타파에 나섰다.
샐러드 테이크아웃 전문점은 다이어트에 관심 있는 여성들이 선호한다.
스몰(Small): 특수상권에 숍인숍
대학로 서울대병원 부근. 대로변 모퉁이에 위치한 16.5㎡(5평) 남짓 가게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다. 2010년 9월 문을 연 ‘해피소뿡이’다. ‘행복한 작은 붕어’라는 뜻의 해피소뿡이는 붕어빵 전문점이다. 해피소뿡이는 1호점인 대학로점을 시작으로 1년 만에 매장을 57개(2011년 기준)로 늘렸다.
창업비 반값으로 줄어
기존의 팥만 들어가던 붕어빵에서 탈피해 피자토핑, 떡볶이, 불고기, 참치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안의 내용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붕어빵 틀을 만들어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해피소뿡이를 만든 김영길 대표는 지난해 말 서울역 편의점 안에 한 평 남짓의 숍인숍(Shop-in-Shop) 가게를 처음 열었다.
기존 16~20㎡(5~6평) 매장 크기를 반으로 줄여 붕어빵 틀과 냉장고 등 최소 비품만 구비했다. 한 뼘 가게지만 매장을 편의점 출입문 앞쪽으로 빼내 행인들이 주목하고 구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순수 창업비(점포 임대료, 권리금 제외)는 4000만원에서 절반 수준인 1500만~2000만원으로 줄었다. 하루 평균 매출은 40만원 안팎 선. 김 대표는 “소규모 점포라도 창업자들이 기대하는 하루 매출액은 높다. 차라리 매장 크기를 더 줄여 저비용 고효율 구조를 만드는 것이 생계형 창업자들에게 낫다”고 말했다.
해피소뿡이는 백화점, 마트, 놀이공원(스키장, 워터파크), 극장, 지하철 등 특수상권을 적극적으로 노린다. 유동인구가 많은 데다 임대료나 권리금도 가두 매장에 비해 덜 들기 때문이다. 전체 57개 매장 중 40%인 20여개 매장이 특수상권에 입점했다. 김 대표는 “요즘엔 커피가게뿐 아니라 외식과 관계없는 인테리어 점주도 매장 안에다 숍인숍 형태로 가게를 열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가 말하는 한 뼘 가게의 성공 요인은 물류 시스템과 위생. 해피소뿡이는 물류를 본사에서 공급받지 않고 풀무원에 OEM 방식으로 맡겼다. 가맹점주가 재고를 파악해 원하는 메뉴와 수량을 요청하면 풀무원에서 직접 공급해주는 방식이다.
김 대표는 “본사에서 일방적으로 제품을 공급하면 점주와의 갈등이 생기기 쉽다. 전문업체에 아웃소싱을 한 덕분에 재고 상황에 따라 매일 아침 배송이 가능하고 식품 안전성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슬림(Slim): 샐러드 테이크아웃
올해 1월 서울 한남동에 문을 연 샐러드 전문점 그린바스켓(Green basket). 각종 샐러드에 치킨, 연어, 소고기를 얹고 수제 드레싱을 가미해 판매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지하 매장이지만 인근 한남동과 이태원 일대 입소문이 나면서 3월 일평균 매출 80만원을 돌파했다.
매출 호조에 힘입어 회사는 곧 6~10㎡(2~3평) 규모의 테이크아웃 판매점을 강남과 여의도에 출점할 계획이다. 지하 1층에 위치한 본점 매장의 크기는 100㎡(30평). 한 뼘 가게는 아니지만 월 임대료는 230만원으로 인근 1층 33㎡(10평) 매장보다 싼 편이다.
여성 고객 80% 이상
소규모 점포를 출점하게 된 계기는 매장에서 먹는 고객보다 테이크아웃으로 사 가는 여성층이 많아지면서부터다.
이창한 그린바스켓 사장은 “전체 고객 중 80%가 여성이고 외국 손님 비중도 20%에 달한다. 단골은 아예 정기권을 끊어 배달을 해주고 있다. 매장을 크게 줄여 테이크아웃 판매점 형태로 내면 임대료도 줄이고 혼자서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본사에서 샐러드를 공급하고 판매점에선 드레싱만 해서 판매하는 식이다.
수익이 얼마나 될까. 샐러드의 평균 판매가격은 7000원. 판매점에서 매입하는 가격은 판매가격의 60%인 4200원. 단순 계산하면 한 개당 2800원이 떨어지는 셈이다. 하루 100개를 판매한다고 가정하면 일매출은 70만원, 순수익은 28만원 정도 된다. 소규모 점포다 보니 임대료와 권리금 부담도 적다. 혼자 운영한다면 월세, 관리비 등을 감안해 월 500만원 이상 순수입을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사장은 “자체 개발한 수제 드레싱을 제외하고 채소나 과일 등 샐러드류는 모두 아웃소싱하거나 점주들이 믿을 만한 곳에서 자체 공급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계절에 따라 들쑥날쑥한 채소와 과일 가격은 위험 요인이다. 한파나 수해 때 식자재 가격이 껑충 뛰면 수익이 감소할 수 있다. 이 사장은 식자재 원가를 25% 수준으로 맞춰 판매점 마진율을 30~40%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33㎡(10평) 규모로 운영되던 해피소뿡이는 숍인숍으로 편의점에 들어가 창업비를 반으로 줄였다.
이동형 플라워숍은 상업지역, 출퇴근길, 축제, 졸업식, 공연 번화가 등 유동인구가 많고 꽃 수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판매가 용이하다는 장점을 갖는다.
셀프(Self): 이동형 플라워숍
경차에 꽃을 싣고 판매하는 이동형 플라워숍도 등장했다. 팝페라가수 겸 성악가인 강태욱 씨가 그 주인공. 성악가로 활동하면서 온라인 꽃 배달 사업을 해온 그는 2월 말 라돌체플라워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기아자동차의 박스카인 레이를 활용한 한 뼘 꽃 배달 사업이다.
강태욱 대표는 “20년 전 유학 시절 때부터 한국도 유럽처럼 자연스러운 꽃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고심 끝에 이동형 꽃 프랜차이즈 사업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업성이 있을까 싶지만 1년간 온라인 꽃 배달 사업을 하면서 시장성과 사업성을 확인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스스로 운전해 이동하면서 판매
방법부터 독특하다. 꽃 배달과 이동형 점포로 쓰이는 레이 차량가격을 제외한 순수 창업비는 1170만원. 가맹비(600만원), 차량 인테리어비와 판매 물품비(250만원), 보증금, 교육비 등이다. 전국 2만개 화원과 제휴를 해 도매가격으로 꽃 공급이 가능하다. 레이 차량이 없는 사업자는 월 45만원으로 차량 렌털이 가능하다. 차량에 꽃을 싣고 정해진 구역 내에서 이동하면서 꽃을 팔고 배달을 하는 모델이다.
일종의 노점인 셈인데, 불법단속의 우려는 없을까. 강 대표는 “각 차주마다 집으로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허락된 사유지에서 판매하면 문제 될 게 없다. 저녁 7시 이후 차도만 점거하지 않으면 공영 주차장이나 건물 앞에서도 꽃을 팔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해진 구획 내에서 이동 판매와 꽃 배달을 하면 월 순수익 200만원을 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궁극적으로 삼는 목표는 고급 화환(花環) 시장이다. 국내 꽃 시장은 연간 4조원이고 그 가운데 조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50%로 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강 대표는 “소득 수준이 오르면서 남들과 다른 디자인의 화환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 늘었지만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꽃 브랜드나 사업자가 없는 실정이다. 10년째 화환가격이 10만원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형 꽃 배달을 통해 회사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화환 디자인을 고급화해 고급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 한 뼘 창업의 특징
❶ 매장 크기 10㎡(3평) 이하 미니 점포(Small) -숍인숍, 전문 판매점, 이동식 점포
❷ 간편·다이어트 아이템(Slim) -개량 붕어빵, 샐러드 테이크아웃
❸ 1인 혹은 부부가 운영(Self) -창업비 2000만원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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