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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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경희궁의 밤
2008년 09월 25일 15시 52분  조회:3470  추천:106  작성자: 이승률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

Ⅱ. 경희궁의 밤



  12시경 연길 공항에 도착해서 마중 나온 이상열 사장(전 연길기독실업인회 회장)과 함께 “장사부 삼계탕”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숙소인 덕명(德銘)호텔로 갔다. 전신자 교수와 민박회 일행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일일이 반갑게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눈 후 방을 배정 받아 짐을 풀었다.

이번 캠프에는 모두 12명이 참석하였다. 그 중 2명은 일행의 자녀들이었으며, 부부조가 2팀(서영 교수 부부, 전신자 교수 부부)이었다. 우리 민박회 일행들은 전신자 교수 내외가 초청하는 저녁 만찬 시까지 자유 시간을 갖기로 했다. 타 지역에서 온 일행들이 모두 시내구경을 나갔고, 나는 방에서 그냥 쉬기로 했다.

그러나 내 성미에 어디 그냥 쉴 수가 있겠는가.

곧 바로 백두산 가는 일정 외에 연길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만나볼 사람들의 명단을 짜고, 전화로 미리 스케줄을 잡아 나갔다.

우선 오늘 오후에 가장 먼저 만나봐야 할 분으로 최후택 교수(연변대)가 연락이 되었다. 30분이 지나지 않아 그가 호텔 방으로 찾아왔다. 그는 지난해에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을 집필할 때 조선족 이민사 관련 자료 및 통계자료를 수집하여 번역 해 주신 분이며, 또한 나중에 중문판 (제목: 동북아시대의 조선족사회)을 낼 때 1차 기초 번역을 맡아주신 분으로 내게는 참으로 귀하고 고마운 분이시다. 최후택 교수께서 오셔서 방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는데, 서울 회사의 이수정 비서로부터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회장님, 박영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동북아시대와 조선족」책자가 대한민국 학술원에서 2008년 기초학문 육성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축하해요”라는 내용이었다.

그 소식을 듣자 나는 갑자기 벅찬 감격을 느끼고 최후택 교수의 손을 힘껏 움켜잡았다.

참으로 공교롭게도, 책을 저술할 때 나의 파트너가 되어 자료수집과 번역일을 맡아 주셨던 장본인을 만나는 시간에 이런 기쁜 소식을 받게 되다니...

나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눈물이 핑 돌았다.

최 교수도 아이처럼 맑은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지으며 연신 축하의 인사말을 전해 왔다.

그러지 않아도 며칠 전에 박영사의 안종만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대한민국 학술원에서 지금 심사중인데, 며칠 있으면 좋은 소식이 있을테니 기다려 보라는 전갈이었다. 나는 반신반의 했으나, 그 결과를 오늘 비서가 보내온 문자메세지로 확인한 것이다.

나는 참으로 기쁘고 감사했다.

특히 오늘 연길에 와서 소수민족 학자들의 모임인 「민박회」 행사를 갖는 첫날에 이런 기쁜 소식을 듣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심정이었다.

최 교수께서 돌아가고 난 다음 나는 의자에 앉아 한참동안 눈을 감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갑자기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뜨거운 열기가 솟아오르며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그동안 18년에 이르는 세월동안 연변과기대 사역을 통하여 만나고 교제했던 많은 중국인들 특히, 조선족 지도자와 청년들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졸저「동북아시대와 조선족」책을 펼치면 첫 페이지에 이런 글을 써 놓은 게 기억난다.

“1990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만 16년이 넘는 세월동안‘연변’땅을 드나들면서, 그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연변과학기술대학의 동역자들과 사랑하는 조선동족들에게 이 책을 드리고 싶다. 저자는 감히 이들을‘역사의 새벽을 깨우는 선구자들’이라고 부른다.”

이건 내 진심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조선족 사회를 이 시대의 독특한 창의적인 집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자질과 문화적 특질을 실감있게 깨닫고 있지 못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걸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반도 분단을 뛰어넘어 동북아사회를 하나의 역사공동체로 거듭나게 하는 일에 유용한 중간 매체역할을 할 수 있는 선구자적 집단이라고 믿어진다.

참고로, 지난해 일본 구마모토市에서 열린 “ 제7회 환황해 경제·기술교류회의 ”에 갔을 때, 나는 한 분과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 본적이 있었다.

1가지 언어만 사용하는 그룹, 2가지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그룹, 그리고 3가지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그룹을 별도로 구별하여 자리 이동하도록 했더니 그때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1가지 언어 또는 2가지 언어 사용자 그룹으로 모였는데, 유독 3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그룹은 모두 조선족 출신의 일본 유학생들과 취업인력들이었음이 밝혀졌다.

나는 그때 얼마나 놀라고 기뻤는지 모른다.

그 많은 한국인들, 일본인들, 중국인들 가운데 3가지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두 조선족 출신이라니!

이건 얼마나 대견스럽고 훌륭한 일인가!

내가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을 통해서 깨닫게 된 역사의식은 양대 국가사이에 끼여있는 변경 소수민족의 이중문화 형성과 문화적 특질이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는 초국가적 탈(脫)중심화 현상의 용도로 유익하게 쓰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동북아 지역의 조선족 사회야 말로 가장 대표적인 이중문화 구조의 촉매집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그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얻은 나의 최종 결론이었다.

가슴 벅찬 감격속에서 한참을 묵상기도하며 앉아있는데 누가 방문을 노크했다.

얼굴에 번진 눈물을 닦고 방문을 열어보니 전신자 교수가 복도에 서 있었다.

방에 들어오라고 해서, 3박 4일간의 프로그램 일정과 경비에 대해 다시한번 의논했다. 그런데 전 선생께서 자꾸만 내 표정을 살펴보며,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캐묻는다.

나는 자초지종을 얘기 해 주었다.

그도 너무나 기뻐하면서, 오늘 저녁 만찬에서 공식적으로 축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그는 이런 일은 「민박회」를 위해서도 큰 경사라고 말 하면서 방을 나갔다.

시내 나갔던 사람들이 다 돌아오자, 우리 일행들은 전신자 교수의 부군되시는 손춘일 교수의 자가용차와 택시 2대에 분승하여 저녁 만찬 장소인 「경희궁」으로 갔다.

「경희궁」은 조선족 000사장이 경영하는 대표적인 조선족 한정식 집이었다.

이번 「민박회」 모임에 참석한 소수민족들의 면모는 이렇다.

몽골족 : 우런 박사(女, 내몽고사범대학 민속학 사회학원 교수),
         고와 박사(女, 중앙민족대학 중국소수민족언어문학학원 교수)
         애리(고와 박사의 딸, 소학교 4학년),
         진영충 박사(女, 내몽고민족대학 몽고학학원 교수)
장족 : 기진옥 박사(男, 중앙민족대 민족학 사회학학원 교수)
한족 : 서영 박사(男, 내몽고대학 예술학원 교수)
다워얼족 : 우언퉈야(서영박사의 부인)
위구르족 : 장궈웬 박사 (女, 북경 우전대학 민족교육학원 교수)
           완호탠(장궈웬 박사의 아들, 중학교 3학년)
조선족 : 전신자 박사(女, 연변대 사회학과 교수)
         손춘일 박사(男, 연변대 민족연구원 원장, 전신자 교수의 부군)
한국인 : 이승률 박사(男, 연변과기대 대외부총장, (사)동북아공동체연구회 회장)

도합 일곱 족속이 모였으며, 아이들까지 합쳐 12명이 이번 모임의 일행들이었다.

경희궁 식당에 들어서자 타민족 출신 회원들은 식당 내부 인테리어와 한식 가구, 비품, 방석, 의복 등의 디자인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었다.

특히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던 서영 박사가 가장 깊이 매료당한 것 같았다.

‘경희궁의 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 일행들의 요청에 따라 순서대로 나오는 한정식의 재료와 만드는 조리법등을 종업원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술은 맥주와 고량주 두 가지를 각자가 편한대로 마시기로 했다.

전신자 교수가 좌중의 대화와 놀이를 주도해 나갔다.

그는 상이 다 차려지자 술잔을 채운다음 이렇게 인사했다.

“오늘 이 민박회 자리는, 이 회장님께서 뒷받침해 주시지 않으셨으면 할 수 없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특별히 축하 할 일이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저술하신 동북아시대와 조선족 책이 대한민국 학술원에서 사회과학부문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다같이 이 회장님을 위해 축하합시다. 건배”

각자 돌아가면서 건배사와 함께 축하 인사를 해 주었고, 어떤이는 축하 노래와 함께 춤도 춰 주었다.

특히 몽골족 고와 박사와 그의 딸 애리가 서로 마주보며 추는 몽골 민족춤은 일품이었다. 그러다가 전신자 교수가 다시 정색을 하며 일어나서 연설을 하듯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은 오늘 이 회장님께서는 이 자리에 오시지 못할 뻔 했습니다. 내일 열리는 북경 올림픽의 개막식에 참석할 수 있는 입장권 두 장이 당첨됐는데, 그걸 민박회 모임에 참석하시기 위해 중국사회과학원에 있는 이문 박사에게 선물로 보내드리고, 자신은 오늘 여기에 오신 겁니다. 우리 모두 이 회장님의 사랑과 우정에 감사드리며, 다시한번 건배합시다. 건배”

일행들은 전 선생의 이 말에 크게 감동이 되었는지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 졌다. 그리고는 연신 또 내게 와서 잔을 채우며 감사한 뜻을 표했다.

특히 서영 박사가 일행을 대표하여 신의를 지키는 아름다운 정신이라는 내용의 인사말을 하면서 건배 제창이 있었다.

그리고는 경극 '적벽가'의 한 소절을 불러 주었다. 나도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화답했다.

“나는 여러분들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우리는 소수민족들의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면서, 마음을 합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 시대는 바로 공존과 상생의 시대입니다. 이웃과 이웃간에, 민족과 민족간에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이 사랑의 능력이야말로 중국과 한국, 그리고 동아시아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원동력이 될겁니다. 민박회는 이와같은 일에 인생을 나누는 동지들이 될겁니다. 우리들의 사랑과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건배!”

나는 그날 밤 크게 대취하였다.

너무 기분이 좋았고, 또 의미있는 모임인지라 그 의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어디 그게 나뿐만이었겠는가.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한껏 부풀어 고무풍선처럼 충만해 있었다.

고아 박사의 딸 애리가 연신 자리를 돌아다니며 빈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예쁘고 귀여웠다. 또 같이 따라온 장궈웬 박사의 아들 완호탠은 그때그때마다 스냅을 찍는 사진사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그런데 내가 그날 크게 실수(?)를 한 게 있다. 술과 식사가 어느정도 진행되자 분위기가 다소 소강상태에 들어가는것 같아서 남아있는 맥주와 고량주를 활용하여 폭탄주를 만들어 한잔씩 차례대로 돌렸다.타 민족인 그들은 숙맥이어서 그런지 여태껏 폭탄주를 한번도 마셔본적도 없고, 얘기 들어본바도 없다고 했다.

나는 시범을 보여줬다.

맥주 글라스에 7할정도 술을 담은 후 고량주를 채운 작은 잔을 퐁당 빠뜨리는 방법으로 폭탄주를 제조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원샷으로 마신 후 머리위에서 딸랑 딸랑 소리내며 잔을 다 비웠다는 확인을 하도록 가르쳤다. 그런 후 내가 자리에 앉는 동시에 옆사람이(미리 제조해 둔 잔을 들고)일어나서 내가 했던 것처럼 잔을 비우고 딸랑딸랑 소리까지 낸 뒤 다시 자기 자리에 앉도록 가르쳤다. 소위 말하는 파도타기를 가르친것이다. 이 “ 파도타기 폭탄주”를 세바퀴정도 돌리자 나를 제외한 9명의 어른들이 모두 다 혼비백산해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취한 모습이 되었다. 그들은 맛이 어떠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독하면서 맛있고,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한국이 짧은 기간안에 세계에서 12위권 경제대국이 되고, 또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게 바로 이 폭탄주 위력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이 폭탄주야 말로 세상을 이기는 비밀병기라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좌중이 떠나갈 듯 웃었다.

경희궁의 밤은 이렇게 위대한 사랑의 핵폭탄(?)을 터뜨리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흥겹게 깊어갔다.

그것도 일곱 족속들이 모인 사뭇 이질적인 자리일 수 있었지만 우리들은 결국 하나가 되었다. 하나됨의 역사의식은 이렇게 소통하는 사랑의 능력으로 꽃피우는 우정의 한마당,“파도타기 폭탄주”와 같은 아름다운 헌신의 연합정신이 아니겠는가!

아, 이 귀하고 감칠맛 나는 화합주를 한껏 마시고 싶어진다.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글 싣는 순서
Ⅰ. 민박회
Ⅱ. 경희궁의 밤
Ⅲ. 백두산 소수민족 올림픽
Ⅳ. 올림픽 이후 중국의 과제
Ⅴ. 흐름의 미학
Ⅵ. 실크로드 사역과 신 노마드 운동
Ⅶ. 거듭나는 천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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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성자 : 대형
날자:2008-09-25 18:45:03
멋 있는 신사 이승률 박사! 이박사와 같은 적극적이고 열정적이고 지성적이고 활약적인 인생 태도와 삶을 본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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