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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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국경이 무너지고 있다
2009년 01월 05일 07시 26분  조회:3517  추천:50  작성자: 이승률

첫 번째 이야기  동북아는 우리의 미래다  
<新 풍속도>

동북아, 국경이 무너지고 있다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부총장




이미 3년 전의 일이다. 모스크바 코스타(KOSTA:한국유학생회) 강의를 마치고 귀국하던 길에 북경을 경유하게 됐다. 그런데 그날, 공항의 국제선 청사탑승구역 곳곳에 대형 화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공항직원에게 물었더니 설날을 맞아 고향을 찾는 대만기업인들에게 중국 정부가 특별히 대만 타이페이로 직항하는 항공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비록 상설 항공편은 아니었지만, 중국과 대만간의 직항노선이 시작된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그동안 중국본토와 대만 사이에는 이른바 3불통(不通)이라고 하는 장벽이 있었다. 통행·통상·우편교류가 그것이었는데 그 중 통상과 우편교류는 이미 무너졌고, 마지막 남아있던 직접통행금지조항마저 이날을 기해서 끝내 무너진 것이다. 

        ‘2005년 1월 29일은 우리 중국인들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날, 주요뉴스를 진행하던 아나운서들은 모두 이렇게 흥분했다. 중국과 대만의 TV와 신문들은 앞 다투어 직항항공이 뜨고 내리는 감동적인 활주로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날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에서 각각 출발한 비행기들이 타이베이(臺北)와 카오슝(高雄)의 공항에 도착했다. 실로 56년만에 중국과 대만을 가로막고 있던 이념의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오래전부터 동북아시대를 위해 달려온 나에게 그 사건은 무척이나 감동스러웠다. 하지만 그 사건을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의미있게 받아들일 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후 일본에 갔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나는 설연휴를 기해 후쿠오카에 갈 일이 있었다. 마침 일본 건국기념일(2월 11일)과 겹쳐 일본관광객과 대만과 홍콩, 상해, 청도 등에서 설 휴가를 즐기기 위해 온 중국인들이들로 호텔이 북적댔고 내가 일행과 함께 노천온천탕에 갔을 때도 탕안에는 한국과 중국, 대만 등에서 온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원래 아시아 사람들은 목욕탕 같은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쉽게 말을 걸지 않는다. 대개는 아시아인 특유의 숫기없는 성품 때문이고 일부분은 말을 걸어봐야 별로 좋을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아시아인들 사이의 오랜 불신과 비하심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아시아인들 사이에 이런 오랜 감정의 장벽이 많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오고 있었다. 거기에는 한류열풍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확실히 과거보다는 아시아인들 상호간에 호감을 갖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추세였다.

그런데 그날 그 노천온천탕에서 나는 그 진면목을 확인했던 것이다. 모두 알몸으로 탕 안에 앉아 있었으니 조금은 어색하고 쑥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국과 일본, 대만사람들과 진지하게 각자의 모국어와 서툰 영어를 섞어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어, 일어, 영어와 한국말이 하나의 공간 안에 떠돌며 격의없이 어울려 대화하는 정경을 바라보는 것이 내게는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꿈꾸고 바라는 공생하는 아시아의 모습이 결코 멀지 않다는 사실에 감격을 금할 길이 없었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대륙에서 온 중국인 상인들과 대만 청년들이 지난 1월 29일의 직항항공운행에 대해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었다. 그들은 중국 정부가 2030년까지 해저터널을 뚫어 중국 베이징과 대만의 타이베이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정치적 대립감정 없이 서로의 감정을 나누었다.

그런가 하면 나가사키(長崎)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다는 50대 일본인 한 사람이 더듬거리는 영어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일본에서 불고 있는 ‘욘사마’열풍과 한류의 영향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혀를 내두르면서 소니, 히타치, 후지쯔 등 일본 10대(大)기업들의 순이익을 모두 합쳐도 이루지 못한 ‘순이익 100억불’ 실적을 한국의 삼성전자가 단독으로 이뤄낸 일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 사람이 한국에 대해 적대감을 나타내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는데, 오히려 그는 일본의 경제재건 뿐 아니라 한일간 FTA를 위해 문화교류와 경쟁과 충격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해 나를 무척이나 감동시켰다.

홍콩의 투자자문회사에서 일한다는 한 30대 중국인은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화상대회를 한국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그동안, 부동산, 물류 등 전통산업에 주력해왔던 화상기업들이 최근에는 IT·금융·게임·에너지 부문 등으로 투자영역을 확대해가는 추세이므로 이 분야의 한국기업들과 윈-윈(Win-Win)관계 형성을 기대할만 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나도 그동안 외신을 통하여, 세계 500대(大) 화상기업들의 시장가치만 6천억 달러에 이르며, 또한 전 세계 곳곳에 약 6천만 명에 이르는 화상들이 동남아, 북미 등에 네트워크를 구축해놓고 그 활동영역을 빠르게 확장해가고 있는 만큼, 한국기업들이 화상들과 세계무대로 동반진출 할 경우 상당한 시너지효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러던 중에 뜻하지 않게 일본의 한 노천온천탕에서 중국 화상들의 세계경영전략과 투자계획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한·중·일의 시장통합에 관한 기대와 관심은 비단 나와 같은 몇몇 사람들 소수만의 생각이 아님을 다시한번 감격스럽게 확인을 한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대화가 오고 갔다. 앞으로 동북아시장통합을 이룩하려면, 정치와 경제는 나라마다 그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고 그래서 마찰도 뒤 따르지만, 기술과 문화는 함께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기술과 문화교류를 통해 중·일·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제시한 사람도 있었고, 중국·한국·일본의 수도를 잇는 ‘베세토(Be-Se-To) 관광벨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으며, 이때 각국 주민들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동북아 통일 한자체’를 제정해서 공용화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기도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성주박사의 지론을 빌려 동북아 통합시장이 ‘다양성 속의 하나’를 이룬 유럽연합(EU)과 같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선 정치적 타협과 제도권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미래 동북아의 주역인 한·중·일 젊은이들에게 ‘친구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민간차원의 노력이 더 급선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동북아 FTA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주역인 아시아 경제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동북아의 젊은이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교류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동북아 삼국 젊은이들의 문화, 학술, 기술 교류를 위한 대규모 공동펀드 (가칭 에라스무스 펀드 Erasumus fund)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일본인 중년신사가 대화를 이어갔는데 그의 발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는 중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 중국과 한국간의 역사왜곡과 영토분쟁 등으로 인한 단절의 벽을 깨고 동북아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장 시급한 과제가 삼국 공동역사연구회 및 공동역사교과서를 만들어 내는 일이며, 화합과 통일을 의미하는 ‘화(和)의 철학’을 동북아 3국이 공유하고 있는 만큼, 서로를 이해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각국이 솔선수범하며 노력하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라는, 매우 고차원적인 의견을 제시해 내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최근 ‘중국은 날아가고, 일본은 뛰어 온다’ 는 말이 유행하는 반면 한국은 북한 핵문제와 내부적인 갈등과 분열로 좌충우돌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한·중·일 FTA 문제는 삼국간의 이해충돌로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어 가슴이 답답하던 차에 뜻하지 않던 이 온천대화를 통해 깊은 위로와 치유를 받았다.

이날 내가 느낀 것은 한·중·일 구성원들 사이에선 어느 새 국경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역사적인 앙금과 풀어야 할 숙제가 우리들 사이엔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가 과거의 기억은 흘러가는 시간에 흘려보내고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새로운 이웃이 되고 싶어하고 있었다. 동북아시대는 그렇게, 가슴을 열고 마음을 나누는 일부 동북아인들을 통해 이미 시작되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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