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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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림프구의 상생매직-공생을 위한 후퇴
2009년 05월 06일 08시 13분  조회:3721  추천:40  작성자: 이승률
 

여덟 번째 이야기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T림프구의 상생매직-공생을 위한 후퇴


우리 몸은 매일 수많은 바이러스, 세균 등의 외부침입자와 싸워야한다. 침입자의 종류가 다양하듯이 이에 대항하는 아군인 면역세포의 종류도 다양한데 이 면역세포의 대장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게 T림프구라고 하는 세포다. T림프구는 병원균과 싸우기도 하지만, 어느 것이 병원균인지를 구분해 다른 면역세포들에게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인체에서 세포의 수가 제한돼있기 때문에 T림프구의 ‘레퍼토리’도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의 T림프구는 항상 제한된 수임에도 최대한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몸을 보호하는데 T림프구가 어떻게 다양성을 확보하는가 하는 경로를 밝히는 것이 지난 10년간 생명공학자들의 주요한 연구대상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미 국립보건원 산하의 국립암연구소(NGI)에 있는 한 한국인 생명공학자 박정현 박사가 그 비밀을 풀었다. 권위 있는 전문면역학회지인 이뮤니티(Immunity)에 실린 그의  논문에 따르면, T림프구는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인터류킨7이라는 호르몬을 차지하려고 경쟁한다는 것이다. 인터류킨7은 T림프구에 ‘여기 공간이 충분하니 여기서 살라’는 생존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체내에는 일정한 양의 인터류킨7만 존재한다. 때문에 경쟁에서 승리한 소수의 T림프구만 살아남고, 결국 T림프구는 특정 종류만 남아 다양성을 상실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T림프구는 늘 특정한 수를 유지하며 몸의 항균체제를 유지해왔다. 학자들은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경쟁과 다양성의 패러독스’로 부르며 불가사의하게 여겼다. 그런데 박 정현 박사는 철학자인 아버지 박순영 교수의 조언을 통해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조언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경쟁만으론 사회가 건강하게 생존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해선 나눔과 양보가 필요하다


박 정현박사는 아버지의 조언에 영감을 받아 생태계의 생존원칙인 ‘약육식’과 강자생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T림프구를 다시 관찰했다. 그 결과 놀라운 현상을 발견하게 됐다. 한번 인터류킨7의 생존신호를 받은 T림프구는 12시간 동안 다시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동안 다른 T림프구가 인터류킨7을 차지할 수 있도록 양보하는 것이다. 이걸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T림프구는 인터류킨7을 흡수하는 수용체를 몸 안으로 끌어들인 뒤 12시간동안 밖으로 내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유전자가 GF11이다.

 

박정현박사는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쥐의 몸에서 GF11유전자를 제거했다. 그러자 이 쥐의 T림프구는 보통 T림프구와 달리 인터류킨7을 끊임없이 독식하기 위해 수용체를 들이밀었다. 그 결과 전체 T림프구의 수와 다양성이 줄어들면서 신체의 면역기능이 떨어졌다. 결국 평균 수명이 2년인 실험쥐는 3개월도 못돼 죽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는 인체의 면역세포 속에 상생의 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무척 감동스러웠지만, 그보다, 과학자인 아들에게 경쟁과 다양성의 패러독스를 넘어 공존과 상생의 여지를 발견할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을 마련해준 철학자 아버지의 도덕적 영성에 더 탄복했다.


몸속이나 인간세계나 다를 게 무어 있으랴.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대 강국들의 패권주의적인 대립과 알력, 북한 핵문제와 6자회담의 진로, 남북한 통일과 인접국가간의 영토분쟁 및 역사왜곡현상 등 이 모든 동북아 국제관계의 문제들을 풀어내는 데도 이런 ‘상생의 원칙’을 적용한다면 공존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중국 북경대 탕웨이교수는 21세기를 가리켜 ‘동서문화가 서로 대립하고 배척하는 몰이해의 세기가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보완하며 서로 배우며 성장하는 세기’라고 정의했다. 미국의 저명한 문명비평가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 21세기의 핵심역할을 할 나라가 한국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대부분 극단적인 집단주의에 빠지고 있지만, 한국은 아시아적 특징과 함께 미국적 개인주의와 유럽적 가치관을 모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오랜 세월, 주변강대국의 거센 영향력 속에서 생존해오는 동안, 한국은 독보적인 생존의 면역시스템을 갖추게 되었고, 공존과 상생을 생존원칙으로 하는 글로벌시대이자 지식정보화 시대인 오늘날에 와서는 그 중간자적 정체성(Identity)과 민첩한 위기관리능력이 Digital Multiple Leadership으로 발전하는, 전화위복의 행운을 안았다는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 박사는 바로 이 점에 착안, 한국의 경쟁력과 다양성 있는 미래가치를 한류(韓流)열풍과 연계시켜 다음과 같이 극적으로 평가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한국을 멸시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 여성들이 한 한국 남성배우, 그러니까 누구더라, 아, ‘욘사마’를 쫓아다닌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하하하, 만약 유럽연합(EU) 모델이 아시아로 수출된다면, 한국이야말로 아시아 연합을 주도할 가장 이상적인 국가다.”


작년 연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한 일간지를 통해 같은 조언을 한 바 있다.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크며,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 성장속도도 가장 빠르다. 동시에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도 갖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의 비중은 기대만큼 크지 않다........


        아시아는 현재 통합공동시장이 없는 유일한 대륙이다. 중남미와 북미는 자유무역지대 건설을 꿈꾸고 유럽은 단일국가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아프리카연합도 아프리카합중국 건설을 열망하고 있다. 그런데 왜 아시아 함중국 건설은 안된다는 말인가. 물론 아시아만의 특수성이 있을 것이다. 역사와 문화의 다양성, 끊이지 않는 정치영토 분쟁, 다자간 협력 경험의 부족, 한 두 국가에 집중된 권력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노력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인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나는 변화를 보고 싶다. 아시아가 통합되고 국제사회와 연계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특히 나는 조국인 한국이 큰 일을 해나가길 기대한다.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내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한국은 북핵 6자회담에서 다자외교의 수완을 보여주었다. 이제 한국과 아시아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과 성공경험을 국제 현안 해결에 쏟아부어야 할 차례다.


여기에 대해 세계적인 석학인 미국 예일대 폴 케네디교수는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네 마리 코끼리 사이에 앉아있는 작은 동물이다. 이런 작은 나라의 생존전략은 네마리 코끼리와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들이 날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섣불리 친 중국정책을 펼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면서 어느 쪽이든 치우치지 않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세계는 한국의 그런 역할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의 말에 동감이다. 그는 한국이 작은 나라라고 해서 강대국들 사이에서 위축될 필요가 없이 오히려 지정학적인 위치를 이용해, 네 나라가 자유롭고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 완충지대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나는 그 역할이 마치 강대국을 세계무대 위에 올려놓고 평화와 화합의 춤을 추도록 하는 조련사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친(親)중국이니, 反美니, 적이니, 동지니 하며 네 편, 내 편을 가를 이유도 없어진다. 네 마리의 코끼리들에게 한반도가 없어서는 안될 절대적인 존재임을 부각시키면서, 세계 역사 진로의 새로운 드라마를 연출하는, 동북아의 피스메이커의 역할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여기에 우리의 살길이 있다. 네 마리의 코끼리 모두가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씨를 뿌리려면 먼저 밭을 갈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동북아 FTA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이것이 서로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모두의 평화공존과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갈등을 통합하고 역사를 바꾸어가는 진정한 리더십(Syncretic & Transforming Leadership)이 필요하다. 미국 윌리엄스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제임스 맥그리거번스는 그런 리더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위대한 리더는 사람들을 높은 가치목표로 이끌어야 한다. 경제적 번영은 실제적인 문제이며 어느 곳에서나 항상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리더는 단지 실제적인 문제만을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목표로 사람들을 끌고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리더의 모습이다. T&T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동북아시대를 열어가야 할 동북아인 모두가 바로 이런 리더십을 발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 각자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어야 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입장에서 공동선을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통합적인 사고의 능력을 키워야 할 때다. 국가 간 개체의 한계와 속성을 뛰어 넘어 ‘인류라는 큰 틀’의 경지를 통해 새로운 국제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각국 안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굴, 확장해나가는 새로운 의사소통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화 시대의 국제협력 흐름에 적합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문화와 전통을 이끌어가는 것이 이 시대 우리 동북아 인들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사명이요 그 의무가 아닐까.  


인체의 면역시스템을 가능케 하는 것은 약육강식의 룰이 아니었다. T림프구의 상생본능이 인체를 건강하게 지켜가는 것이다. 생태계에서 물리적으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T림프구가 인터류킨7을 혼자 독식하지 않고 다른 T림프구와 나누고 양보함으로써 자신의 역할도 완수하고 자신의 생명도 최대로 연장시켜가는 상생의 본능! 지금 동북아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발휘해야 할 역할이 바로 이 상생본능을 전파하는 것이다. 


동북아의 미래는 동북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중․일 삼국이 새로운 공동체적 대안을 갖고 서로 벽을 허물고 상생, 협동, 융합의 신문명 시대를 열어가기만 한다면, 그 흡인력으로 아시아를 품고 인도와 중앙아시아, 중동까지 융합시키는 Fusion Power가 되어서 마침내 아시아 합중국시대를 열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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