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시작한 어떤 일이 잘 마무리되였거나 성공했을 때, 혹은 그와 반대로 좌절되거나 실패했을 때 쉽게 생각나는것이 하나 있다. 내가 어릴 때 난생 처음 만들어 본 눈사람이다.
이른 아침부터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는 날이였다. 오후 늦게 눈이 그치고 하늘도 개이면서 날씨는 꽤나 포근해졌다. 나는 인적이 드문 집 뒷들에서 눈사람을 만들었다. 눈에 얼어서 벌겋게 된 두 손을 가끔 겨드랑이에 끼워 녹여가면서 추운 줄도 모르고 열심히 작업했다. 눈사람의 머리에는 낡은 맥고자를 주어다 씌워 주고 숯덩어리로 눈썹과 눈을 만들고 할머니 몰래 움에서 빼내온 당근을 깎아 코와 입을 만들어 주었다. 어른들이 만든 눈사람보다는 왜소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눈사람이였다. 그 날 밤 나는 혼자서 예쁜 눈사람을 만들었다는 성취만족감에 도취되여 달게 잠들수 있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뒷들에 쫓아갔다. 그러나 나는 눈앞에 펼쳐진 뜻밖의 광경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뒷들에 있던 반쯤 무너져버린 담장까지도 간밤에 기승을 떨며 몰아치던 눈보라에 묻혀 있었고 내가 만든 눈사람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한동안 허탈감에 빠져 울먹이였다.
나는 지금도 마음에 드는 글이나 론문을 마감했거나 학생들이 만족해하는 강의를 끝냈을 때, 혹은 남들을 위해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했을 때 가끔 나름대로의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소년시절 처음 눈사람을 만들었을 때 내가 느꼈던 희열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또한 하던 일이 좌절되거나 실패했을 때 가끔 느끼게 되는 실의도 눈보라에 묻혀진 눈사람을 두고 울먹이던 그때의 허탈감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은 실패와 성공 그리고 그에 따르는 괴로움과 즐거움으로 점철된 것이기도 하다. 자연인으로서 한 사람이 태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게 된다. 아무리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있을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실패한 사람의 경우라도 역시 나름대로의 크고 작은 성공의 희열을 느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성공으로만 이어지는 인생이나 반대로 실패로만 이어지는 인생은 있을수 없다.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아이가 두어발쯤 떼여 놓다가 넘어진다. 아기는 울면서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는 두팔을 벌려 아기를 안아줄 자세를 취하면서 《걸음마-쩍쩍》 아기를 격려해 준다. 아기는 다시 일어나 엄마의 품을 향해 걸음을 익힌다. 넘어지는 아픔을 경험하지 않고 걸음걸이를 배운 사람은 신화에서 등장하는 인물 외에는 없을것이다.
크고 작은 실패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에게는 성공의 기쁨이 기대될수 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생겼을것이다.
젊었을 때 나는 스케이팅을 무척 즐겼다. 그런데 스케이트를 처음 배울 때 잘못 넘어져 뒤통수에 달걀만한 혹이 생긴 적도 있었고 심지어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는 고통을 당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가장 크고 아픈 실패는 첫사랑이 깨여진 결말이였다.
대학을 다닐 때 나는 내가 신명(晨鳴)이라고 부르던 사천성에서 온 녀자애와 첫사랑에 빠지게 되였다. 2년 정도의 열애관계는 《계급투쟁》이 사회생활 전반을 좌우하기 시작하던 불행했던 그 시대를 맞이하면서 삐꺽거리게 되였다. 내가 조선족출신이였기때문이였다.《문화대혁명》을 경험해 본 조선족사람이라면 《조선수정주의특무(朝修特务)》라는 《모자》가 란무하던 그 시대를 잊을수 없을 것이다. 《조선》이나 《남조선》과 멀리 떨어진 북경에서 공부하는 학생이였기때문에 나 자신이《조선특무》로 지목되거나 의심받은것도 아니다. 다만 그 많은《조선특무》들이 득실거리는 《조선족》중의 한사람이였기 때문에 신명이의 집식구들은 모두 우리의 사랑을 반대해 나섰다. 《문화대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우리는 갈라졌다. 나는 거의 두달정도 숙소침대에 누워 두문불출하면서 《로신전집》을 읽었다. 그것은 첫사랑의 실패가 몰고온 마음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나의 안간힘쓰기였다.
첫사랑의 실패는 가장 참담한 방식으로 나에게 《민족》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었다. 그것도 내가 중앙민족대학 《민족리론과 민족정책》이라는 학과목에서 배울수 없었던 심층적인 것을 터득케 했다.
그때의 깨달음이 《조선족》에 대한 나의 사랑의 씨앗이 되였고 나의 학문의 에너지가 되였다.
암울했던 그때 내가 썼던 시 한수를 인용해본다. 한문으로 썼던 그 시를 우리말로 번역하기 번거로워 그대로 적는다.
실패는 우선 우리에게 불행과 고통을 가져다준다. 실패가 클수록 우리가 감수하게 되는 불행과 고통도 커진다. 그러나 그 고통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에게 실패는 우리가 감수했던 고통을 위해 치러는 대가보다 더 값진 깨달음을 선물해준다. 그 깨달음이 있기때문에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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