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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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름도 없이 이 세상을 살면서
2006년 01월 25일 00시 00분  조회:4920  추천:55  작성자: 황유복
이름도 없이 이 세상을 살면서



나는 지금까지 이름도 없이 이 세상을 살아왔다. 《이름 없다》라는 말을 사전에서《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아니하다》라고 풀이하고 있는것만 보아도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자기 혼자만 사용하는 이름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간혹 례외가 있을수도 있다.

보통 이름하면 본명(本名)을 가리킨다. 《호(號)》,《자(字)》, 《필명》등 본 이름 외에 부르는 이름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름은 역시 본 이름이다. 본질적으로 따지면 이름은 남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한 사람, 한 사람마다의 기호(記號)이다. 그런데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의 문화수준과 취향, 그리고 시대적 영향때문에 우리는 주변에서 중복되는 이름을 자주 듣게 된다. 례를 든다면 1960년대 이전에 작명된 이름가운데 《춘자》, 《영자》, 《숙자》하는 식의 이름이 자주 중복되였으나 《문화혁명》기간에 지어진 이름에는 《설매》, 《홍매》하는 《매》자가 든 이름이 자주 나타났다. 그러나 중복되는 이름도 역시 남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개인의 이름이다. 《춘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는 이름이 중복되는 녀성이라는것외에는 아무런 련관성이 없다. 다시 말해서 그 《춘자》들을 한 개 무리로 묶을 수 있는 아무런 공동분모도 없다.

그 대신 어느 《개인》보다도 어떤 특수 부류에 속하는 《그룹(群體)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호칭이 있다. 우리 민족 습관에서 《남편이 죽어서 혼자 사는 녀자》들을 《과부》라 하고 《아버지가 죽은 뒤에 태어난 자식》들을 《유복자(遺腹子)》라고 부른다. 유복이란 뜻은 아버지가 자식을 어머니배속에 남겨두고 죽었다는 뜻이다. 《과부》라는 이름이 그렇듯이 《유복》이란 이름도 어느 개인의 이름이 아니고 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룹인》호칭일 뿐이다. 그래서 《유복》도 태여나서 남들과 구별하기 위한 개인의 이름이 지어지게 되고 다만 어릴 때 마을 사람들 사이에 《아명(兒名)》처럼 《유복》이라고 불리우는 경우가 가끔 있을뿐이다.

그런데 나는 시골에서 유복자로 태여나서 이름 지어주는 사람이 없어 어려서부터 막연하게《유복》으로 불리였다. 내가 살던 동네에 또 다른 《유복》이 있었지만 그 소년은 개인의 이름이 따로 있어 학교 다닐 무렵에 《유복》이란 딱지를 뗄 수 있었다. 그러나 남들과 구별하기 위한 개인 이름이 따로 없는 나는 《유복》이란 이름을 학교에까지 갖고 갔다. 그때의 광경이 가끔 새삼스럽게 머리에 떠오른다.

1950년 초봄, 일곱살 생일을 갓 지낸 나는 고향인 쌍하진에서 제2완전소학(조선족 소학)에 입학하게 되였다. 그때만 해도 봄학기에 학생모집을 할 때다. 시골에서 소학교 입학 등록하는 날이 되면 명절을 지내는 기분이 된다. 학부모들은 새 옷으로 차려입은 애들을 데리고 학교에 나와 운동장이나 현관에 삼삼오오 몰려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애들은 교도주임 사무실 밖 복도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한 사람씩 불려 들어가 입학 등록을 하게 된다. 등록할 때 신입생들의 지능(IQ)을 검사하기 위하여 본인 이름과 부모의 이름, 고향 그리고 10이나 100까지의 수를 세게 하는데 그것도 시험이라고 우리는 무척 긴장해져 있었다.

드디여 차례가 되여 사무실에 불려 들어간 나는 테이블을 사이 두고 맞은 편에 앉아 있는 교도주임 앞에 서게 되였다. 테이블 옆 의자에는 나를 사무실로 불러들인 젊은 녀자선생이 앉아 있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김선생이라고 하는 그 녀는 나의 첫 학기 담임선생이였다. 교도주임이 낀 각테 안경때문인지 형언할 수 없는 위압감에 눌린 나는 겁에 질려 버렸다.

《성이 뭐냐?》교도주임은 생각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질문하셨다.
《황가예요.》
《이름은?》
《유복이예요.》

그 동안 등록부에 무엇인가를 적던 교도주임은 머리를 들어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또 다른 이름이 있을 것 아니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 물음을 도무지 리해할수 없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였다는 느낌이 앞서면서 《이제는 퇴짜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옆에 앉아 있던 김선생이 종이에다 무엇인가 적어서 교도주임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교도주임이 머리를 끄덕여 수긍하자 김선생은 일어서서 그 종이 장을 나에게 건네주시면서 《있을 유(有)》자에 복《복(福)자, 너의 한자 이름이다.》라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 후에 있은 일은 거의 기억되지 않는다. 등록을 마치고 사무실 문을 나설 때 김선생이 따라 나오면서 《축복 받을 이름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고치지 말아라》고 당부했다.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어 고맙다는 인사말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사람들을 피해 교실 뒤에 있는 살구나무 숲으로 뛰여 들어갔다. 부들로 삼아 신은 신발자국과 함께 눈물자국이 채 녹지 않은 숲속 흰 눈 위에 뚜렷이 찍혀졌다.

두 살 때 여의게 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던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 가끔 김선생을 어머니로 생각해 보군했다. 그런데 한 학기가 지나고 김선생은 어디론가 멀리 시집갔고 그후 에는 종무소식이였다.

좀 더 커서 나는 입학 등록 때 있었던 대화의 뜻을 깨우치게 되였다. 내가 주장했던《유복》이란 이름은 어느 개인의 이름이 아닌 《아버지가 죽은 뒤에 태여난 자식》들 모두가 사용하는 《그룹인》의 이름이였고 설사 어느 개인이 류용하더라도 배《복(腹)》자를 한자 이름으로 쓰기에는 너무나 고민되는 일이였기때문에 교도주임이 그렇게 나를 쳐다보았던것이였다. 그리고 김선생은 《有福》이라는 우리말 동음 한자로 《遺腹》을 대체시키는 방법으로 내가 계속 《그룹인》 의 이름을 빌려 쓸수 있도록 배려해준것이였다. 뿐만 아니라 글자가 변했기 때문에 적어도 한자 이름만은 내 개인의 이름을 갖게 된셈이다.

대학을 진학하면서 나는 이름으로 인한 새로운 갈등을 경험하게 되였다. 1961년 9월, 중앙민족대학 력사계에 입학한 후 친하게 된 동창들이나 은사들로부터 《有福》이란 이름은 너무 촌스러우니 고치라는 종용을 자주 받게 되였다. 그들은 하다못해 《有》자를 한어에서 동음자인 《友》자로 고치라고 권고해 왔다. 그들의 호의를 받아드린다면 이름의 한어 음은 변한게 없지만 우리말 발음은 《우복》으로 변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지금까지 없었던 내 개인의 이름이 생기게 되고 다시는 《그룹인》의 이름을 빌려 쓰지 않아도 되는 리점이 있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유혹이 생길 때마다 이름을 고치지말라고 당부하던 김선생의 말씀이 떠올라 나는 한족들이 촌스럽다고 하는 이름을 그대로 고집해 왔다.

1966년 6월,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문화혁명》이 발발하면서 나는 이름 때문에 생각 밖의 시련을 겪게 되였다. 《문혁》초기의 《홍위병》들은 《네가지 낡은 것을 타파 (破四舊)》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나의 숙소 문 밖에 홍위병들의 《대자보》가 붙여졌다. 《봉건주의 악취가 물씬 풍기는《有福》이란 이름을 24시간 내에 고치라. 그렇지 않을 경우 《혁명적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라는 일종의 최후 통첩이였다. 그 당시 소위 《혁명적 조치》라는것은 사람의 머리에 종이로 만든 고깔을 씌우고 거리에 끌고다니거나 《투쟁대회》를 열어 《투쟁》하는것이였다. 고민끝에 나는 그 어떤 가혹행위가 가해지더라도 이름만은 고치지 않기로 작심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또 한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시간을 보내느라고 《맑스, 엥겔스, 레닌, 쓰딸린 어록》이라는 작은 책을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엥겔스 어록가운데서 《가난한 사람은 유복하다》라는 구절을 읽게 되였다. 《맑스, 엥겔스 전집》제1권 제561페이지에 수록된 《런던에서 온 편지⟫라는 글에서 발췌한 어록이였다. 나는 흥분되여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그 이튿날 아침, 대여섯명의 홍위병들이 찾아왔다. 나는 그들 두목에게 《어록》을 읽어보라고 했다. 그러고나서 《너희들은 혁명도사의 가르침을 무엇으로 여기느냐. 엥겔스께서 가난한 사람은 유복하다 하셨는데 너희들은 도리여 봉건주의로 몰아부치고 있으니 도대체 어쩌겠다는거냐》라고 기분 좋게 훈계할 수 있었다. 그들은 《미안》과 《용서》를 련발하면서 물러갔다. 그 후 나는 《궁인시유복적(窮人是有福的)》이라는 여섯 한자로 전각 인장을 만들어 호명(護名)용으로 사용하게 되였다.

다시 십여년이 지나 개혁개방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였다. 1980년, 나는 중국 조선족 종교문제 현지 조사를 해보았다. 조사 보고서는 국가 민족사무위원회와 국가 종교국에 제출되였고 일년이 지나 《중국 조선족 종교문제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였다. 보고서에 우리말 성경출판의 필요성이 제기되였고 그 후우리말 성경 출판과 관계되여 국가 종교국의 도움으로 《성경》을 입수할 수 있었다. 짬이 나는 대로 조금씩 읽어보다가 나는 또 한번 깜짝 놀라게 되였다. 《성경》의 《누가 복음⟫제6장에서》 가난한 자는 유복하나니》라는 구절을 읽게 된 것이였다. 다시 엥겔스 어록과 대조해 보니《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희 것임이요》라는 전 구절을 엥겔스는 《성경》에서 인용했던 것이였다. 그것이 확인 되는 순간 나는 우선 김선생을 생각하게 되였다.《아, 그 분은 크리스천이셨구나. 그래서 부모 없는 가난한 어린이를 위하여 《有福》이라는 한자 이름을 쉽게 생각할수 있었고 《축복 받은 이름이니 고치지 말라》고 당부하셨구나.그후 나는 여러 사람을 통해 수소문 해보았으나 김선생을 다시 찾을수 없었다.

《성경》에서 한자 이름의 원류를 찾았을 때의 흥분이 가라앉고 차분해진 나는 《그래도 한자 이름만은 내 개인의 이름》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던 꿈에서 깨여나고 말았다. 2000여년 전에 생긴 유대민족의 신화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난한 자》, 《굶주린 자》, 《우는 자》들을 축복하여《有福》하다 하였으니 나의 한자 이름 역시 《그룹인》이름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우리 말 이름도, 한자 이름도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불혹지년》을 코앞에 두고 뒤늦게야 이름이 없음을 깨닫게 되였으니 어딘가 허전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그렇다 해서 그 나이에 이름을 새로 짓는다는 것도 싱거운 일이고 또 왜서인지 김선생의 당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 나는 계속 이름도 없이 살아가고있다. 이름은 어디까지나 한사람의 기호에 지나지 않으니까 없다 해서 못살것도 아니고 이름없는 대신 나는 좀 더 개성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있다고 생각해 보니 그런대로 살맛이 난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이름은 없어도 나만의 인생철학과 가치관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200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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