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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녀성들의 전통미담-- 8
2013년 12월 05일 11시 50분  조회:3356  추천:12  작성자: 강순화

                               

                                     (12) 리론수학교수 리증숙

 

   1932년 일제의 통치하에 허덕이던 시기 리증숙은 화룡 서성구 고성촌의 한 빈농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증숙이가 일곱 살 나던 해에 고생스레 살아오던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혼자 간신히 끌고 나가는 집생활은 그야말로 째듯이 가난했다. 신이 없어 맨발로 다니고 옷이 없어 기워 입었으며 월사금을 제때에 내지 못하여 몇 번이고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럴때면 증숙이는 아버지와 같이 낮이면 남의 집 삵일을 하고 밤이면 등잔밑에서 배우지 못한 과목을 자습하였다. 이처럼 이악스레 공부하여 최우등성적으로 소학교를 졸업하였다.

   돈있는 집 애들은 우등생이 못되여도 룡정에 있는 중학교에 척척 갔지만 증숙이는 돈이 없어 그렇게 하고 싶은 공부도 할수 없었다. 그는 묵묵히 아버지와 함께 농사일을 하였다. 14살밖에 안되였지만 집안의《어머니로》되여 밥짓고 옷도 빨고 꿰맸으며 아버지 버금으로 가는《주요로동력》으로 되어 벼모도 내고 기음도 매고 가을도 했다.

   어려운 가난속에서도 그가 품은 뜻은 굳었다. 그는 삯일로 한푼두푼 모이고 또 모여 학비를 준비하여 가지고 룡정으로 갔다. 때는 1947년, 2년동안이나 공부를 못하고 일만 했으니 붙지 못할것이라고 아버지는 생각했는데 딸은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증숙이는 헐망한 집 한칸을 얻어가지고 집에서 가져온 쌀과 콩, 옥수수로 번갈아 죽을 쒀 먹으면서 공부하였다. 증숙이가 3학년이 되었을때 기진맥진한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부모없는 고아로 된 그는 하늘이 금시 무너져내려 앉는것 같았다.

   의지가지 없게 된 증숙이는 단임선생님을 찾아 서럽게 울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돌아가겠다고 말하였다. 단임선생은 어떤 방법을 대든지 중퇴해서는 절때 안되며 공부 잘하는 증숙학생은 꼭 대학에 가서 나라의 인재가 되어야 한다면서 그를 고무 격려하였다.

   때마침 정부에서는 곤난한 학생들에게 조학금을 주는 제도를 실시하였는데 증숙이는 1등조학금을 받게 되었다. 해방된 나라가 그에게 베풀어준 첫 은혜였다. 학급에서도 구제활동을 벌려 선생님은 좁쌀 20근, 동학들은 입던 옷과 신, 그리고 소비돈까지 모아주었다.

   증숙이는 나라의 은혜, 그리고 선생님과 동무들의 사랑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공부에 더욱 힘썼다.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을 졸업하였으나 가정형편에 인차 고중에 진학할수 없었다. 그는 할수없이 룡정식량공급소에 들어가 출납원으로 일하면서 낮에는 출근하고 밤에는 고중과목을 이악스레 자습하였다.

   아홉달이 지난 어느날 증숙이는 결연히 사직하고 길립고중으로 찾아갔다. 그때 학교에서는 한창 학기말시험복습을 하고 있었는데 증숙이가 입학하려 왔다니 교장선생은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못했다. 글쎄 어느 학교에서인들 한학기를 못배운 학생을 받으려 하겠는가?

   하지만 마음을 굳게 먹은 증숙이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돈이 없어 인제야 왔으니 시험쳐보고 합격이 안되면 물러가겠다고 재삼 사정하였다. 학교에서는 그의 지성에 감동되여 시험칠 기회를 주었는데 고중이라고는 하루도 못다녀 본 증숙이가 시험에서 85점이라는 높은 성적을 따냈다.

   정말 기적이다! 선생님들은 눈이 둥그래졌고 증숙이는 입학에 성공했다. 남보다 늦게 왔기에 곱절 노력해야 하였다. 수업시간에는 정신을 가다듬었고 하학후엔 기본개념을 거듭 복습하고 어려운 참고서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갔다. 그는 각별히 수학을 즐겨 항상 학급의 1.2등을 쟁취하였다.

   1952년 증숙이는 영예롭게 우리나라의 최고 학부인 북경대학 수학력학학부에 입학하였다. 그해 증숙이는 전 학부의 유일한 조선족 신입생이였다.

   나라의 수도 북경, 우리나라 최고 학부인 북경대학에 들어서고 보니 마치 다른 별세계에 날아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연박한 지식을 소유한 교수들, 사고력이 비상한 동학들, 무진장한 지식의 보물고--북경대학도서관 ... ... 증숙이는 이 많은 책으로 어서 빨리 자기의 머리를 무장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고, 이 많은 교수들의 지식을 하루빨리 배워내지 못하는 것이 조급해 났다.

   그는 1분1초를 아끼면서 공부하였고 시간만 있으면 도서실에서 수많은 세계의 저명한 수학가, 과학자들의 저서와 명작, 전기들을 읽었다. 수학에 대한 취미, 탐구욕은 날따라 굳어지고 깊어졌다.

   1956년 우수한 성적으로 북경대학을 졸업한 그는 결연히 변강도시 연길시에 와서 우리민족 지식인들을 양성하는 대학교단에 올랐다.

   35년간 리증숙은 연변대학에서 수학분석고들수학, 미분방정식, 수학물리방정식 등 과목을 3천여시간 강의하였으며《상미분방정식》,《상미분방정식정성리론》등 몇십만자에 달하는 대학교 교재를 써냈고 련속 3년간 수학학부 주임공작도 맡아 하였다.

   1978년도에 부교수로, 1988년도에는 교수로 되었으며 그가 쓴《다-빙 방정식의 주기해》,《례나드방정식령해의 전국안정성에 관하여》등 론문들은 성,주 우수론문상을 탔으며 학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실로 리념과 포부가 굳고 간난곡절을 맞받아나가는 패기가 있으며 부단히 신념에 박차를 가하는 강의한 의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길림성수학학회 상무리사, 연변조선족자치주과학기술협회 부주석을 역임했으며 연변조선족자치주와 길림성, 그리고 전국의《3.8》붉은기수 영예도 받아 안았다. 연변대학 수학학부 교수 리증숙은 인생의 붉은 노을을 여전히 과학탐구와 인재양성의 성스러운 사업에 바쳐나가고 있다.


                     (하회: 겨레의 구슬 -- 국가1급 안무가 최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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