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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춤의 미
2019년 08월 19일 14시 13분  조회:791  추천:0  작성자: 김춘식

      미술에서는 가리고 숨기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미술이 벌이는 수작이 번번이 그렇다. 보이기 위해 오히려 잘 숨겨야 하고, 드러내기 위해 마침내 더 비밀스러워야 한다. 감출 줄 아는 재주를 높이 친다는 얘기다.

  그림에 깃든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송휘종은 그림을 매우 좋아했는데 한번은 천하의 화가들을 시험해보고자 "꽃밭 거닐고 돌아가니 말발굽도 향기로와라(踏花归去马蹄香)"란 제목을 내였다.제목의 뜻을 보면 꽃,돌아가다,말발굽인즉 구체적으로 보이는 물건들이라 표현하기가 비교적 쉽지만 향기는 일종 냄새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어 그림으로 표현하기에 어렵기에 수험생들을 곤란하게 하였다.어떤 수험생은 말을 타고 답청하고 돌아오는데 손에 생화 한 묶음 쥐어있는 것을 그렸고 어떤 수험생은 말발굽에 몇 떨기 꽃잎이 묻은 것을 그렸다……하지만 '향'자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오직 한 사람만이 훌륭한 구상을 하였는데 그가 그린 것인즉 한 필의 말이 질주하는데 말발굽 뒤에는 몇 마리의 나비가 춤추며 쫓고 있는 화면이었다.이 그림은 꽃밭을 거닐다 돌아가는 말의 발굽에 아직 짙은 꽃 향기가 가득 묻어있음을 형상적으로 표현하였다.이 그림은 간접표현의 수법을 운용하여 무형의 '향기'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였다.

  송조 때 한번은 화공(그림쟁이)을 모집하게 되였는데 주임 시험관은 "심산에 숨은 고찰(深山藏古寺)"이란 제목을 내고 수험생들더러 그리게 하였다.수험생들은 저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세심히 구사하며 전심하여 그린 그림을 주임시험관에 갖다 바쳤다.주임시험관이 첫 번째 그림을 보니 고산준령이 잇닿은 산 아래에 한 채의 고찰이 그려져 있는지라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새로운 뜻이 보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이어 두 번째 그림을 본즉 수림이 울창한 높은 산에 한 갈래 고요하고 외진 오솔길이 있고 나무 우거진 곳에 고찰의 탑 꼭대기가 비껴있었다.주임시험관은 여전히 머리를 저었다.심산과 고찰이 그림 속에 체현되기는 하였지만 새로운 창의가 없었기 때문이다.계속하여 세 번째 그림을 주어 든 주임시험관은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이 그림에는 고찰도 없고 탑 꼭대기도 없이 높은 산에 구름과 안개가 감돌고 산기슭에는 맑고 투명한 한 갈래 개울물이 흐르는데 개울물 옆에서 한 노승이 물을 들이마시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계곡이 흐름은 물줄기가 긴 깊은 산을 의미하며 노승은 고찰을 상상케 하는바 창의가 신선하고 풍부하여 제목의 의경을 아주 철저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그림에서는 가리고 감추어야 묘미가 싹튼다

  ''등 돌린 미인 난간에 기대네

  섭섭해라, 꽃다운 얼굴 안 보여

  불러도 불러도 돌아서지 않으니

  어리석게도 그림 뒤집어서 본다네''

  청나라 시인 진초남의 '뒷모습의 미인도에 부쳐'라는 제목의 시다.행간에 비치는 호기심에 웃음이 날 지경이다.

  세계적인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신체적인 약점이 있었다.오른쪽 뺨에 깊고 흉측한 흉터가 있었던 것이다.전쟁터에서 승리의 훈장으로 달고 온 것이었지만 보기가 무척 흉했다.어느 날 자신의 초상화를 남기겠다며 최고의 실력을 지닌 한 화가를 왕실로 불러들였다.하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화가의 입장에서는 그 흉측한 상처를 커다란 화폭에 담아야 한다는 사실이 영 깨름직하였다.고민하던 화가는 알렉산더에게 책상에 팔꿈치를 얹어 손을 턱에 받치고 앉으라고 부탁한다.그러자 뺨에 있는 상처는 턱을 받친 손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였다.화가는 무사히 그림을 그렸고 알렉산더대왕도 그 그림을 보고 크게 만족해 했다.화가의 지혜가 놀랍지 않은가?약점을 덮어주고 전체적인 조화를 꾀함으로써 멋진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어찌 그림에서뿐이랴.일상생활에서도 감춤의 미학이 작동한다.나는 가끔 라디오로 가수들의 건들어진 노래를 들으면서 그 가수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언젠가 한번 봤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그런데 정작 TV에 나타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실망이 크다.그들이 출연할 때의 차림새나 동작,자세가 내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너무 많았다.결과 때론 그들이 출연하는 대목이 나오면 아예 다른 채널을 바꿔버리기도 하였다.그냥 라디오로 들어오던 때와 TV에서 그들의 출연모습을 볼 때의 감수가 완전히 달랐다.

  "감추면 꽃,감추지 못하면 꽃이 아니다".이는 15세기 일본의 배우이자 연극 이론가인 제아미가 한 말이다.뭐든지 다 드러내 보여주는 것보다 감추듯 하여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더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다.

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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