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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와 미국의 교차로에서~ 김 광림의 보스턴통신(4)
기차로 횡단해본 미국(4)
미국의 노후한 철도
7월29일, 낮에 시카고 시내관광을 잘 하고나서 저녁켠에 숙박한 호텔에 돌아가 짐을 정리하여 시카고중앙역에 갔다. 시카고중앙역은 건물외관이 유럽의 궁전같이 장엄하였는데 역구내에 들어가보니 의외로 시설이 단조롭고 승객들로 붐비었다. 기차가 떠날시간이 되면 승객들이 길게 줄을 쳐서 기다리고 또 대합실이 붐비는 모양을 보니 마치도 후진국의 기차역같았다. 실은 Emeryville역에서 시카고까지 3일간 기차로 오면서 보니 미국의 기차들은 차내시설이 비교적 노후하고, 기차안에서 세수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고 기차속도가 그리 빠른 편이 아니었다. 좋은 점을 찾아보면 좌석이 널찍하고 Emeryville역에서 시카고까지 오는 기차는 승객들이 차창밖을 잘 내다볼 수 있게 사방벽을 유리로 만든 전망차량을 별도 설치하였다.
듣자니 미국인들은 자동차나 비행기를 많이 이용하다니 기차를 이용하는 승객이 그리 많지 않아 철도회사가 적자가 많이 생기고 그 때문에 철도의 시설개량에 그리 투자를 못하고 있다 한다. 이러다니 동아시아의 기차들보다 시설이 많이 노후해보이고 속도도 그리 빠르지 못한 것 같다. 승객들은 생활형편이 그리 유족하지 못한 사람들이거나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장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기차좌석도 절반이상이 비어있었다.
동부의 평야와 산맥
29일 저녁 9시반경에 기차가 보스턴, 뉴욕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보스턴과 뉴욕을 가는 기차가 일정구간까지 같이 가다가 도중에서 서로 분리되어 각각의 종점으로 향하는 운행방식이었다. 기차는 시카고를 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Indiana주 경내를 통과하였지만 밤중이라 차창밖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바뀌어 30일 새벽 두시반 경에 기차가 Ohio주 경내의 Toledo역에 잠시 정차하였다. 그 후부터 기차안에서 쪽잠을 잤는데 내가 자는 사이 기차는Ohio주, Pennsylvania주 경내를 다 통과하여 아침 7시경에 일어나보니 이미 뉴욕주 경내에 들어왔었다. 밤사이에 Indiana, Ohio, Pennsylvania 세 주를 지나면서 도대체 어떤 자연경관인지 살펴보지도 못한 것이 아쉬웠다. 특히 잠자는 사이 기차는 5대호중의 하나인 Lake Erie라는 호수연안을 줄곧 달렸는데 호수 풍경을 조금도 보지 못하고 지난 것이 후회되었다.
30일 아침 7시경에 깨어나보니 밖은 여전히 평야인데 중부의 대평야에 비하면 수목이 더 많고 도시나 산업시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중부에서 보던 것 같은 끝없이 펼쳐지는 강냉이밭, 콩밭같은 풍경은 보이지 않고 수림속에 강냉이밭, 콩밭이나 목초지가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오전 9시경에 Buffalo-Depew역에 들어섰는데 여기부터 뉴욕주 경내였다. 기차는 계속 평야를 달렸다. 오전 10시경에 뉴욕주의 Rochester역을 지나면서부터 소택지가 많이 보였다.
오후 1시경에 뉴욕주의 Utica역을 지나면서부터 산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산이 그리 높지 않았으나 수목이 꽉차게 자라고 있었다. 오후 2시 40분경에 기차는 Albany-Rensselaer역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뉴욕과 보스턴에 가는 차량이 서로 분리되었다. 이 역을 지나면서부터 수목이 더 농밀해지고 산이 높아졌다. 동부의 대산맥인 Apparachian산맥의 중심부를 기차가 통과하고 있었다. 큰 산맥인데도 기차가 통과하는 지점은 산이 대단히 높지 않아 해발 약 1000m 정도가 돼 보였다. 지도를 보면Apparachian산맥은 미국 동부의 제일 큰 산맥이고 남북으로 긴데 북부지역은 산이 그리 높지 않다. 기차가 산림지역을 통과하는 중에 자그마한 소택이 여기저기 자주 보이고 산속의 분지에는 강냉이밭이나 기타 밭, 목초지가 꽤 보였다. 동부의 산을 보면 수목들이 서부나 중부와도 다른 것 같고 수목의 밀도가 높았다. 보스턴에 도착한 후 주변의 수림을 보니 떡갈나무, 단풍나무 등 동아시아의 북부지역에서 많이 보는 수종이 이 지역에 많았다. 그런 면에서 자연 경관은 나에게 더 친숙감을 주었다. 가끔 계곡이 나타나는데 울창한 수림과 어울려 경관이 참말로 아름다웠다.
오후 4시반경에 Pittsfield역을 통과했는데 이 역부터 기차가 Massachusetts 주 경내에 들어섰다. 여지껏 오랜 노정을 여유를 가지고 달려왔는데 기차가 정작 Massachusetts주에 들어서니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는 최종목적지 보스턴은 과연 어떤 도시인지? 나는 거기서 1년간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겠는지? 내가 과연 하버드대학교에서 연구자들속에 제대로 끼여나 들겠는지? 하는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면서 일종의 중압감이 밀려왔다. 그러다니 여유가 없어지고 자꾸 시계를 보면서 종점역에 도착하는 시간을 의식했다. 기차는 오후6시가 지나서 Worcester역을 지났는데 여기부터 산맥이 보이지 않았다. 오후 1시부터 산림지역에 들어섰는데 오후 6시경까지 줄곧 산림지역을 기차가 달렸으니 동부의 Apparachian산맥도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겠다. 그 후도 8시 직전에 Framingham역에 도착하기까지 평야지역에도 수풀이 울창하여 외관으로는 산림지역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Framingham역을 지나면서부터 기차는 보스턴 외곽에 들어선 것 같았다.
오후 8시40분에 기차는 예정시간보다 약 30분 앞당겨 보스턴 남부역에 도착했다. 25일 오전에 캘리포니아의 Emeryville역을 출발하여 30일 밤에 보스턴에 토착하기까지 6일간의 시간이 걸렸고 기차를 탄 시간만 정확하게 76시간이 된다. 정말 멀고도 먼 여정을 달려왔다. 매일 매일 보는 풍경이 새 것이니 지치는 줄 모르고 그런 풍경을 보면서 달려왔다. 여정을 마치고나니 미국에 대한 자신감이 들었다. 미국의 서부부터 중부, 동부까지 대충 봤으니 이제는 미국의 어디에 가도 자신있게 다닐 것 같고, 동아시아에 돌아가서도 미국 얘기하면 끼어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스턴남부역에서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의학연구를 하고 있는 같은 조선족 출신 김 만수박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보스턴에 옮겨오면서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 고민하던 터에 조글로사이트에서 김 만수박사가 칼럼을 발표하던 일이 생각나서 연락처를 찾아서 메일 보냈더니 대뜸 전화를 해주고 보스턴에서 집찾는 일을 발벗고 도와나섰다. 덕분에 마음드는 집을 찾았고 김 만수박사가 기차역까지 마중해주었다. 미국의 한국인들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한국에서 미국에 이민 오는 경우 공항에서 마중한 사람이 어떤 직업인가에 따라 이민자의 직업이 결정된다고 한다. 이런 얘기가 좀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겠지만 중국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 와서 하버드대에서 수년간 포스터닥을 하고 있는 김 만수박사가 기차역에서 나를 마중해주었으니 나도 보스턴에서 운수가 형통할 것 같아서 기뻤다.
이번에 기차로 미국횡단여행을 하면서 미국의 풍경가운데 동아시아와 현저히 다름점이 눈에 띄었다. 그것인즉 어디에 가도 담장이나 울타리를 거의 볼 수 없는 것이다. 도중의 어느 도시나 마을에서도, 기차역에서도 담장이나 울타리가 아주 드물었다. 대체 기차역은 개찰구도 없고 승객들이 제집처럼 마음대로 드나드는 그런 구조였다. 미국의 도시에서 실지 생활해보아도 그런 점을 느끼는데 대체 개인 집은 담장도 없거니와 울타리조차 아주 적다. 대학교들도 담장을 보기 힘들고 정문이라는 개념도 별로 없다.
중국, 한국이나 조선, 일본을 가보면 담장이나 울타리가 없는 집이나 공공시설을 찾기 힘들다. 대체 벽돌이나 돌, 흙으로 담장을 두르거나 나무가지로 울타리를 치게 된다. 공공시설들도 그런 담장이나 울타리에 둘러쌓이고 정문이 꼭 있기 마련이다. 왜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역시 정착을 특색으로 하는 농경문화와 이동을 특색으로 하는 유목문화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현상이 아닐까? 같은 동아시아에서도 몽골같은 유목민족사회에서는 사람사는 건물에는 담장이나 울타리를 보기 힘들다. 담장이나 울타리문화의 극치가 바로 중국의 만리장성이 아닐까? 동아시아의 사회에서는 현재도 사람들의 관념속에 개인집은 울타리 정도는 있어야 안정감이 있고 아담지다는 느낌이 든다. 완전히 울타리마저 없앤다면 허전한 감이 드는 것이 아닐까? 반면 미국에서는 개인집이 너무 담장이나 울타리로 둘러쌓이면 오히려 답답하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버드대의 도서관과 도토리나무
보스턴에 도착한 다음 날, 즉 7월31일에 하버드대학교 캠퍼스를 구경나갔다. 내가 버클리에서 멀고 먼 여정을 지칠 줄 모르고 달려온 최종목적지가 바로 여기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먼저 캠퍼스라도 구경하고 싶었다.
하버드대학교 캠퍼스에서 제일 가까운 역인 하버드광장역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붐비고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보스턴지역에 종합대학, 단과대학 합쳐서 60개가 넘어되고 그 때문에 인구중에 젊은층이 특히 많다고 한다. 역에서 나가니 하버드대학교 캠퍼스가 바로 그 옆이었다. 사람들이 보통 찾아가는 하버드대학교 캠퍼스는 Harvard Yard라고 불리우는 하버드대내에서도 제일 오래된 자그마한 마당이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벽돌로 탄탄하게 지어진 붉은 색 건물들이 이 마당을 둘러싸고 마당안에는 넓은 잔디밭과 오래된 수목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그 이상 더 특별해 보이는 곳은 없었다. 천하의 하버드대 캠퍼스가 결국 이런 것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지 처음부터 관광지를 생각하여 캠퍼스를 만든 것이 아닐테지 하고 이해가 갔다.
놀라운 것은 하버드대 캠퍼스에 관광객이 거의 넘치다 싶이 하는 것이었다. 단체관광객들은 길게 줄을 지어서 가이드를 따라다니고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온 관광객도 아주 많았다. 관광객의 얼굴들을 보면 보통의 미국인이나 서양인들이 많았지만 아시아인들도 꽤 많았다. 얼굴을 잘 살펴보고 대화를 들어보면 중국대륙, 대만, 홍콩, 한국, 인도인들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일본인이 적었다. 아시아인들은 가족끼리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좋은 자극받게 하기위하여 찾아오는 것 같았다. 하버드대 캠퍼스에서도 교육열이 높은 아시아인들의 모습이 그래로 드러난다. 중국인, 한국인, 인도인 세계에서 교육열이 제일 높은 민족들이 하버드대 캠퍼스를 제일 찾는 것 같았다.
과연 말로만 많이 듣던 하버드대였다. 내가 1년간 체류하던 UC 버클리도 미국의 명문대학교이고 연구분야에서는 국제적인 평가가 대단히 높은 대학교이다. UC 버클리 캠퍼스도 아주 아름답고 입학을 원하는 학생들이 구경하러 많이 찾아온다. 그런데 하버드대 캠퍼스는 단지 학생들만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부모, 소문만 듣고오는 일반 관광객들로 매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고, 마치도 학력숭배의 성지를 찾아오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일등이 되라고 하고, 일등만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나의 의식속에도 이런 일등지상주의, 또는 일등콤플렉스가 있었기에 하버드대까지 찾아온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일등만 바라보는 것이 과연 옳은 지 하는 회의감이 들고 일등만 찾아가는 모습이 좀 안되기도 했지만 아시아에서 온 젊은이들이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동경과 의욕의 눈빛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 일등주의도 하나의 좋은 자극과 발전의 동력이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은 하버드대를 찾아보고 이 대학교의 외관상의 다른 점이 두가지가 느껴졌다. 캠퍼스지도를 보면 도서관이 아주 많다. 하버드대 전체에 90개 이상의 도서관이 있다하는데 대학교에 도서관이 이렇게 많은 대학을 나도 처음 본다. 총장서가 1530만책이라 하고 세계에서도 네번째로 장서량이 많다고 한다. 물론 대학교의 장서량치고는 세계 제1위는 의심할 바가 없다. 역시 책이 많은 대학교가 좋은 대학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버드대학교에서 주로 공부하게 될 얜칭도서관은 동아시아전문도서관인데 이 도서관을 잘 이용하면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어느 나라에 있기보다 동아시아연구를 하기 쉽다고 한다. 나도 그후에 얜칭도서관에 자주 가봤는데 웬간한 대학교의 중앙도서관보다 크고 동아시아의 도서들이 정말 많이 들어있는데다 귀중도서도 많았다. 그래서 동아시아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 도서관을 선호한다. 이만큼 대학교의 진정한 힘은 우선은 책에서 나오는 법이다.
또 하나 하버드대 켐퍼스에 많은 것이 떡갈나무이다. 수령 수백년이 되는 떡갈나무가 여기저기 서있는데 가을이 되면 도토리가 거기서 와르르 떨어져 내린다. 떡갈나무는 보스턴 지역의 산야에 제일 많은 나무 같고 도시의 가로수도 떡갈나무가 제일 많다. 떡갈나무하면 동아시아에서는 어떤 인상일가? 보통은 도토리나무라고 불리우는데 산림속의 어디에도 제일 흔하게 보이는 나무이다. 나무가 수질이 튼튼하고 도토리 열매를 많이 맺고 땔나무로서 잘 사용되는데 사람들은 보통 관상수목으로서는 누구도 도토리나무를 떠올리지 않는다. 너무 흔하게 보아서 그럴까? 아니면 외관이 수수해서 일까? 아무튼 동아시아에서는 도토리나무가 시내의 가로수가 되거나 대학교 캠퍼스를 장식하는 관상수목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런 도토리나무를 하버드대에서 많이 보게 되니 남다른 감개가 떠올랐다. 동아시아의 근대화는 일본의 문호 나츠메 소세키가 일찍히 지적하다싶이 내발적인 것이 아니고 외발적인 요소, 서구의 문명적인 충격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 때문에 근대화과정은 실질적으로 서구화의 과정이었고 그런 과정에서 오래동안 서구적인 것이 숭배되고 토착적인 것이 경시되었다. 오늘의 현실에서도 동아시아의 학문연구의 현주소, 특히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분야를 보면 서양에서 일어나는 학문의 유행을 따라다니기에 급하고 독자적인 학문체계가 잘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버드대의 캠퍼스에서 자라는 토착적인 도토리나무를 바라보면서 내발적인 발전이란 바로 이런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버드대도 영국의 명문대학교들을 따라만 다녔다면 오늘의 하버드대의 명성이 있었겠는가? 보스턴의 자연속에 제일 많이 자라고 있고, 그런 토착수종을 대학교 캠퍼스의 여기저기 심어놓은, 또는 원래 있던 그대로 자라게 하는 하버드의 모습에 이런 것이 하버드대의 명성을 뒤받침하는 진정한 동력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토리나무는 분명 튼튼하고 허식이 없고 열매를 많이 맺는 나무이다.
(2010년9월9일, 미국횡단기차여행기 이상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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