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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와 미국의 교차로에서~
김 광림의 보스턴통신(6)
벌거숭이 김문학-<김문학 解體新書>(2)
4. 김 문학 그는 누구인가?
김 문학이를 제대로 평가하자면, 김 문학이가 어떤 작가이고 또는 어떤 학자이고 그의 저서들은 어떤 성질의 작품이며 가령 학술저서라고 한다면 어떤 유형의 학문분야의 저서들인가 이런 기본적인 문제가 먼저 해명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자연히 김 문학이가 쓴 저서들을 중심으로 이런 분석이 진행되어야 하며 그의 이력서 등 자료도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활 수 있다. 그럼 여기서 먼저 김 문학의 저술활동의 경과를 간단히 추적해보겠다.
김 문학이 본격적으로 저술활동을 시작하여 책을 많이 내 놓기 시작한 것이 1997년에 한국에서《벌거숭이3국지》(창공사)《바람난 중국인, 변화하는 중국땅》(김 문학, 김명학공저,시공사)를 내면서부터이다. 그 후부터는 이 책들을 일본에서 번역하고 새로운 책들을 다수 출간하였다. 그러고 보면 1997년이 김 문학이 본격적인 저술활동을 시작한 원년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김 문학이 출판한 책의 수량인데 김 문학 본인은 조글로에서 58종의 책을 냈다하고 일본에서 출판한 책들에서는 저자소개에서 수년전까지는 30여종이다가 2,3년사이에 50여종을 냈다고 나오는데 필자가 대체적인 통계를 해본데 의하면 약 40종에 가까운 것 같다. 필자가 아직 존재를 잘 모르는 저서들도 있을 수 있다.이 가운데는 같은 내용의 책을 한국에서 그리고 중국조선족출판사에서 낸 것이 있고, 같은 내용의 책을 한국, 일본, 중국에서 서로 번역하여 낸 것이 많기에 엄밀하게 말하면 원저들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히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러더라도 현재의 중국조선족출신치고는 이처럼 많은 저서를, 그 것도 중국, 한국, 일본에서 두루 출판했다는 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평가해주는 사실이고 재능도 상당히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저서를 많이 낸 김 문학을 우리는 어떤 작가 또는 학자로 평가해야 하는가? 이 점은 김 문학을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필자는 이 문제를 해답하기 전에 김 문학의 저서를 다음과 같이 분류해보고 싶다. 여기서 특히 설명을 달지 않은 책들은 일본어로 된 저서들이다.
(1)동아시아비교문화론-《벌거숭이3국지-일중한삼국비교문화론》,《일본인 중국인 한국인-신동양삼국비교문화론》, 《섬나라근성 대륙근성 반도근성》《이래도 되는가?-일중한 표면의 얼굴, 뒷면의 얼굴》(이 책은《일본인 중국인 한국인-신동양삼국비교문화론》을 재판한 것으로 보인다)
(2) 중국문화론-《호색과 중국문화-중국의 역사는 밤에 만들어졌다》,《훈(混)의 중국인-일본인이 모르는 행동원리의 심층》,《사랑과 욕망의 중국 4000년사》(이 책은《호색과 중국문화-중국의 역사는 밤에 만들어졌다》의 서로 다른 출판사의 재판인 것 같다)
(3) 중국,일본소개서-《칼을 품은 중국인》(한국에서 《바람난 중국인, 변화하는 중국땅》을 일본어로 번역 한 책 같다), 《일본문화의 수수께끼》(한국에서 낸 책), 《코리언드림-한국과 중국조선족》(한국에서 낸 책)
(4) 한국비판서-《한국국민에 고한다!-일본거주 한국계중국인의 통곡의 조국비판》, 《또 다시 한국국민에게 고한다! -반일이라는 어리광을 그 만닥치라》(이상의 책들을 다시 정리하여 중국에서《丑陋的韓國人》이라는 제목으로 2005년에 山东人民出版社, 大地出版社에서 출판하고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출판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한국인이여 상놈이 돼라》(우석,1999)가 이 책들과 내용이 비슷하지만 일본에서 낸것과 중국에서 낸 것과는 완전히 같은 내용같지 않다.)《우스개소리 일한결별선언-좋지 않으냐 억지로 친하지 않아도》(공저)
(5)중국비판서-《중국인민에게 고한다!-「문화대국」이 듣고나서 억장이 무너지는 통분의 조국비판》(이 책은 한국에서 《반문화 지향의 중국인》이 책의 한국어판인 것 같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책을 중국에서 출판했다는
(6) 일본비판서-《제3의 모국 일본국민에게 고한다! 일본에 귀화한 한국계중국인에 의한 警世的일본론 》(이 책이 일본에서 나온 것이 2007년이고 2008년에 중국에서《新丑陋的日本人》(金城)으로 번역되었다.
(7) 명언집, 소설,산문-《현명한 인생술-보통인의 명언이 가르친다》, 《천마의 이야기》(소설), 《裸戀》(한어로 냈다고 하는 산문집)
(8)번역-《仮面世界与白色世界-日本文化与朝鲜文化的比较》(金良基원저,遼寧教育出版社, 1989), 《日本人的缩小意识》(李御寧원저,張乃麗譯,金文學審稿,山東人民出版社, 2003),《韩国人的心,这就是韩国人》(李御寧원저,張乃麗譯, 金文學審稿, 山東人民出版社, 2007),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번역, 조선 총독부지음,북타임,2010)
이상 김 문학의 저서를 약간 빠뜨린 것이 있을 수 있으나 필자가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조선어 저서들을 종합하여 분류해본 결과이다. 이런 종합한 결과에 의하여 분석해보면, 김 문학은 문화평론가, 사회비평가, 번역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한편, 산문집 한편도 있다. 그러나 번역이 실지 그리 많은 것은 아니고, 아직까지 소설이나 산문에서 사회에서 확실하게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 결국 문화평론가, 사회비평가가 현재까지의 김 문학의 저서에 대한 제일 합리적인 평가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문화평론가, 사회비평가로서의 김 문학의 진가는 어떤 것이고 동아시아 사회에서 어떤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인가? 필자는 김 문학의 몇권 정도의 동아시아문화론은 김 문학의 문화평론가로서의 지위를 확립시켜주는 것이고 독특한 점이 보인다고 판단한다. 그 독특함이란 동아시아의 중국, 한국, 일본을 다 아우르는 비교문화론적 저서들이 그리 많지 않기에 내용의 심도를 둘째치고더라도 일단 이런 저서들을 여러권 쓰고 그 것들을 동아시아의 여러나라에서 출판했기에 김 문학하면 사람들은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또는 중국문화,한국문화,일본문화 어쩌고 하는 소위 비교문화적인 책들을 냈다고 기억하게 된다. 필자는 일본의 어느 큰 서점에서 김 문학의 어느 동아시아문화론 저서가 '아시아를 이해'라는 좋은 책 시리지 가운데 들어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면 이런 책들이 동아시아의 문화계 또는 학술계에서 어떤 정도의 평가가 나오는가 알아볼 필요도 있는데 그 객관적 기준이 이런 책들이 어떤 문화상, 또는 학술상들을 받았는가 하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김문학이 동아시아문화론 저서로 아직 어느나라에서 어떤 확실한 문화상, 학술상을 수상했다는 정보는 없다.
본인이 조글로에 올린 저서리스트에 보면 일본과 중국에서 “일본국제기금교류상”, “연변일보문학상” “요녕신문문학상” “장백산모아모드 문학상”등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일본국제기금교류상”이란 일본에 오래 있는 나도 구체적으로 무슨 상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 “일본국제교류기금상”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이 상은 상당한 성과나 연륜이 있는 사람들이 받는 것이고 그 상의 수상자리스트에서 김문학의 이름은 확인하지 못했다. 나머지 중국에서 받은 상들은《조선족대개조론》,《한국인이여 상놈이돼라》등 저서에 의하여 조선족문학상을 3개 받은 것이 아닌가 추축된다.
김 문학의 동아시아비교문화론 그리고 중국문화론도 학술적인 견지에서 보면 국민성비교가 특징적으로 나타나는데 필자는 솔직히 김 문학이 아주 정력을 넣어서 쓰고 있는 국민성비교가 학문적 방법론이나 과학적 정신이 결여된 것이 많다고 생각하며 그 때문에 취미성, 화제성은 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학술저서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어느 민족도 좋고 어느 정도의 성향을 보여주는 국민성이 있기는 하나 그 것이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고 시대와 사회의 발전단계에 따라 바뀌기 쉽고 어떤 법칙처럼 나타나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 특히 현대사회는 국경을 넘은 민족간의 교류가 아주 많아 정지된 시각으로 국민성을 판단하기 점점 더 어렵다. 예를 들면 김 문학은 중국은 대륙근성, 한국은 반도근성, 일본은 섬나라근성으로 국민성 분석을 하기 좋아하는데 현대의 많은 한국인, 일본인들의 활동공간이 이미 그런 반도, 섬나라는 지리적 환경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그런 정지된 시각으로는 한국의 삼성이나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의 국제적인 활동을 전혀 분석해낼 수 없다. 또 상대적으로 국토가 그리 크지 않고 단일민족인 한국과 일본을 다민족국가이고 국토가 거대하고 풍토가 서로 많이 다른 중국과 단순하게 국민성비교를 하는 자체가 학문적결과를 도출해내기 어렵다. 김 문학은 조글로에 올린 글에서도 일본총독부가 조선인들의 성격을 분석한 자료를 보고서 놀랐다고 하지 않았는가. 김 문학은 조선인들의 성격이란 성급한 것이 특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자료에서는 식민지시대 조선인들의 성격이 悠長하다고 나와서 본인의 생각과 다르더라고 쓴 것 같다. 결국 조선인도 시대에 따라서 국민성이 다르게 나오는 것이 자명하다.
국민성 연구는 학문분야에서 심리인류학이라 불리우는데 그 대표적인 연구가 미국의 인류학자 Ruth Benedict의 《국화와 칼》(1948)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2차세계대전중에 집필한 것이어서 저자가 일본을 방문하지 못하였지만 그대신 미국내의 일본인이거나 전쟁포로들을 상대로 대량의 설문조사, 면접등을 하면서 과학적인 방법에 근거하여 일본론을 쓴 것이다. 그러더라도 필자의 이해로는 국민성연구가 현재의 문화인류학에서는 그리 주목받는 분야가 아닌 것 같다.
김 문학의 중일한 삼국의 국민성에 관한 언급들을 보면 일부 문화인들의 글에서 착상을 빌려오는 경우는 많으나 자신이 동아시아 삼국에서 사회조사를 진행하고 대량의 사람들을 면접하면서 그런 실증적인 연구활동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리얼리하게 다가오는 결론을 보여주는 경우는 겨우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내용이 취미성, 화제성은 있으나 그런 내용에서 진실로 도움이 되는 지식을 습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비교문화론이라 학문에 대하여서도 언급해보자. 한마디로 비교문화론이란 너무 막연한 분야이다. 인간의 문명한 삶을 다 문화라 지칭한다면 무릇 인간과 관계되면 문화란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정신문화, 생활문화, 거주문화 등 문화란 이름을 단 개념을 거의 무수하게 사용한다. 이럴진대 이런 방대한 문화를 비교한다는 것은 언제나 비교의 대상이 명확해야 하고 초점이 잘 맞추어져야 설득력 있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동아시아비교문화론, 또는 중일한비교문화론이라는 것도 막연한 비교이면 취미성, 화제성이나 추구하다가 말장난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러니 나의 협소한 풍문으로도 비교문화론으로 학위논문을 탔다는 소문을 아직 못 들었고, 미국에 와보니 비교문학, 대조언어학 등 학문분야는 있어도 비교문화라는 구체적인 학문분야는 없다고 들었다. 내가 일본의 동경대학에서 석사, 박사과정을 비교문학비교문화전공에서 공부했는데 거기서 공부하면서도 비교문학은 구체적인 학문분야로 인정되고 그런 내용에 대하여 학술논문을 많이 쓰고 있었으나 비교문화론이라는 이름으로 쓰는 학술논문을 보지 못했다. 이 정도로 학계에서도 비교문화론이란 정체성이 애매한 분야이고 오히려 문화평론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김 문학이 동아시아비교문화론을 지향하면서 잘 거론하는 두 인물이 있는데 한명은 중국의 林 語黨선생이고, 한명은 한국의 李 御寧선생이다. 두분 다 중국, 한국의 언어, 문학, 문화연구의 대가들이고 중국론, 한국론에서 잘 알려져 있는 분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너무 가벼운 비교문화론을 마구 써냈다고는 보기 어렵다. 林 語黨선생은 필자가 그분의 글을 그리 많이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李 御寧선생의 한국론이나 문화론은 수선 사용하는 한국어가 화려하고 현란하여 대뜸 언어의 대가라는 점을 느낀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아주 풍부하다. 그런데도 이분의 한국론이나 비교문화론을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보면 적지 않은 관점들이 오랜 시간의 考驗에 견디기 어렵고 그 때 그 때의 읽는 재미로 끝날 때가 많다.
한가지 사례를 들면 1965년에 한국에서 낸 《흙속에 저바람속에》가 이 분의 한국론의 대표작인데 한국이 아주 가난하고 산업화에 막 들어서기 직전에 쓴 글이어서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보는 눈이 어딘가 어두운 그늘이 많이 보이고 그리 낙관적이 되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이책이《恨의 문화론-한국인의 마음속에 있는 것》 으로 번역되었는데 번역서의 이름대로 한국인의「恨」의 정서가 이 책의 한국인론의 키워드였던 것이다. 그러나 李 御寧선생도 현재의 한국인론에서는 이런 개념을 거의 쓰지 않고 있고, 한국의 젊은 세대들한테 「恨」의 정서가 그렇게 어필되는 개념이 아니다. 한류붐을 이루는 문화콘텐츠에도 밝고 명랑한 것이 주축이지 결코 어둡고, 슬픈 이미지의 「恨」의 정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恨」의 정서란 어디까지나 일제식민지의 억압, 조선전쟁의 비극을 거치면서 두드러진 정서이지 한국인의 역사속의 영원한 정서는 결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낙관적이고 華奢함을 즐기는 풍류의식도 한국인의 역사속에서「恨」의 정서 이상으로 찾아볼 수 있다.
또 하나 사례를 들어보면 일본에서 문화인들 사이에 일본은「나무의 문화」, 「서양은 돌의 문화」라는 개념을 쓰는 분들이 많은데 내가 미국에 와보니 이런 개념이 아주 피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주택을 나무로 많이 짓고 있어서「나무의 문화」라는 개념이 설득력이 있는데 미국에서도 단독주택은 대부분 목조건물이다. 「서양은 돌의 문화」라는 개념은 서양의 궁전식 건물이나 성곽을 이미지한것 같은데 일본에서도 옛날 성곽은 거의다 돌로 지은 것이다. 그러니 일본의 주택과 미국의 주택, 일본의 성곽과 서양의 성곽을 비교해보면 너무 쉽게 일본은「나무의 문화」, 「서양은 돌의 문화」라는 단정하는 것은 피상적이라는 인상을 지울수 없다. 김 문학이 이런 개념을 인용하여 동아시아비교문화론에서 일본은「나무의 문화」,「중국은 돌의 문화」라고 하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중국에서는 돌로 지은 건물보다 벽돌로 지은 건물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북경의 자금성, 만리장성까지도 돌보다 거의다 벽돌로 지었다 볼 수 있다. 이러고 보면 한두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어느 특정민족의 문화를 재단한다는 것은 항상 편향성을 면치 못하고 이런 분야는 실사구시적이고 과학성이 요구되는 학문활동보다 비평론적인 성격이 강하다.
김 문학의 중국문화론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호색과 중국문화-중국의 역사는 밤에 만들어졌다》,《훈(混)의 중국인-일본인이 모르는 행동원리의 심층》,《사랑과 욕망의 중국4000년사》(이 책은《호색과 중국문화-중국의 역사는 밤에 만들어졌다》의 서로 다른 출판사의 재판인 것같다)를 분석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데 하나는 「混」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여 중국인의 행동원리를 분석한 것이고, 또 하나는 중국의 성문화를 해설한 책이다. 중국인의 행동원리를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로서「混」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이 개념이 의미하는 중국인의 행동심리는 지극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 책을 아직 내가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이 책에 대한 아마존닷컴의 상품설명(「BOOK」데이터베이스에서)「混」이란…적당하게 속이면서 재주있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바보, 가짜천국, 계약불이행, 인명경시 등은 당연한 것, 그러한 교활하고 강한 중국인과 잘 거래하는 방법이란」소개가 나오고, 이 책의 목록도
1장 일본인이 중국을 읽어내지 못하는 이유
2장 유아기부터 성장할 수 없는 중국인
3장 신체편중으로 정신을 잊어버린 나라
4장「混」이라는 행동원리
5장 한자가 결정지은 중국인의 사유방법
6장 비적이라는 폭력원리
종장 중국 및 중국인의 숙명 (대체 이상의 뜻임)
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중국인의 행동심리를 부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부각시키고, 「유아기부터 성장할 수 없는 중국인」「비적이라는 폭력원리」이라는 소제목이 들어있는 것을 보면 과연 학문적인 정신으로 쓴 중국문화론일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김 문학의 동아시아비교문화론, 중국문화론, 중국소개서, 일본소개서를 보면 거의 어느 책마다 들어있는 것이 에로스, 즉 성적담론에 관한 얘기이다. 이런 내용들이 책의 취미성, 화제성을 보태주는 요소는 되지만 반면으로 김 문학의 문화론의 격을 떨어뜨리는 요소이기도 하다. 한번 동경의 서점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이래도 되는가?-일중한 표면의 얼굴, 뒷면의 얼굴》이라는 책의 제2장 「일중한삼국의 뒤면 (불륜삼국지 얼굴, 가슴, 그리고 발 등)에 나와있은 내용같은데 일중한삼국 여성들의 제일 느끼는 성감대가 얼굴, 가슴, 발의 어느 쪽인가 하는 비교가 들어있었던 같고, 일중한 남녀가 이불안에서 하는 서로 다른 행위의 특징을 저자는 다 파악해낼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국에서 출판한 《일본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에서도 일본여성들의 은밀한 곳의 사이즈가 10대,20대, 30대가 서로 어떠하다는 내용들이 들어있어, 이 책을 돌려본 어느 조선족 여자유학생이 아주 불쾌하더라는 감상을 나한테 들려준 적이 있다. 이런 나의 기억이 혹시 틀렸다면 나는 김 문학에게 대단히 미안하다. 그러나 틀린 기억같지는 않고 이런 내용들이 결과적으로 김 문학의 학자로서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상과 같은 동아시아비교문화론, 중국문화론, 중국소개서, 일본소개서를 제외하면 김 문학에게는 적지않은 한국비판서, 중국비판서, 일본비판서( 지금까지는 1책으로 확인됨)가 아주 눈에 띄우고 있고, 수량적으로도 이상의 책들과 비슷하다. 한국비판서, 중국비판서, 일본비판서를 김 문학은 비교론적인 한국문화론, 중국문화론, 일본문화론이라 부르고 싶겠지만 필자는 핵심내용은 어디까지나 사회비판, 역사인식에 대한 비판에 있기에 사회비판서라고 분류하고 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을 사회비평가라고 부르는 것이 합리하다고 본다. 그외에 알려진 책들가운데는 소설 한편이 있고, 산문집 한책,번역서가 약간이 있어 문학자, 번역자로서의 얼굴도 김 문학이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국조선족들 가운데서 김 문학이 학술저서 58종을 낸 국제적인 대학자로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있기에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고 객관적인 자료로서 김 문학의 학계, 또는 문화계에서의 평가를 짚어보고 싶다.
김 문학이 일본에서 시간강사로 소속해 있는 후쿠야마대학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한데 의하면, 문예평론지나 학술잡지에 게재한 논문이 4개로 등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들이 중국조선족문화, 문학비평, 중국조선족문학과 재일조선인문학의 비교연구, 동아시아의 天女전설에 대한 비교문학적연구 등 이다. 저술활동이 화려하게 전개되는데 비하면 실지 문예비평지나 학술잡지에 게재된 논문수가 적고 저서들에서 전개한 동아시아국민성비교, 비교문화론같은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김 문학의 현재 일본대학에서의 지위인데 일본에서 출판된 저서들에서는 히로시마문화학원대학, 후쿠야마대학의 시간강사, 또는 강사로 나오는데 아마 정확하게는 시간강사가 아닐가 생각한다. 전임강사이면 소속된 대학교의 홈페이지에 꼭 나오는데 히로시마문화학원대학의 홈페이지에서는 확인이 안되고 후쿠야마대학의 홈페이지에서는 시간강사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동경의 방송대학의 객원교수라고도 후쿠야마대학의 홈페이지에 나오는데 그 대학의 객원교수일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이러고 보면 김 문학은 아직 일본의 대학에서 아주 안정된 교수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그 것은 수많은 저서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의 평가가 그리 높지 않다는 방증이 된다. 물론 운수가 좋아서 실력이 없어도 빨리 좋은 대학의 교수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도 있고, 운이 트지 못하여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으니 대학교의 자리가 학계의 유일한 평가기준은 아니다.
일본과 한국의 인터넷 백과사전 Wikipedia의 김 문학평가도 참고자료가 된다.
일본어판 Wikipedia의 김문학소개
김 문학 (남성,1962년-)은 중국조선족3세의 작가,비교문학자. 중화인민공화국 심양 출신. 1985년 동북사범대학 일본문학학과 졸업, 1994년 同志社대학 석사과정 수료, 2001년 히로시마대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현재 吳大學 사회정보학부 강사.저서에《벌거숭이3국지》, 《한국국민에 고한다!》,《또 다시 한국국민에게 고한다! 반일이라는 어리광을 그만닥치라》,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 대비판》 등이 있다.
조선민족인데 한국인과 중국조선족의 민족성의 차이에 대하여 쓰고 있다.
한국어판 Wikipedia의 김문학소개
김문학(金文學, 1962년~ )은 재중 조선족 3세인 작가로 비교문학자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선양 출신이다. 1985년 둥베이 사범 대학(东北师范大学) 일본문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 도시샤 대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2001년 히로시마 대학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지금은 구레 대학사회정보학부 강사이다. 형제인 김명학과 함께 일본에서 동아시아문화를 비교하는 글을 펴냈고, 일부는 한국에서도 출판되기도 했다.
이상의 인터넷 백과사전 Wikipedia의 일본어판, 한국어판은 어디까지는 담담하게 김 문학소개를 하고 있다. 김 문학의 입장에서 보면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는 불만도 나올 수 있는 소개이지만 현재로서는 일본과 한국의 인터넷백과사전의 상대적인 객관적인 평가가 이런 내용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소속대학의 이름이 원래는 구레대학이나 현재는 히로시마문화학원대학이라는 것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이상 분석한 내용에 근거하여 결론을 내린다면, 김 문학은 문화평론, 사회비평에서 다수의 저서를 출판했고, 조선족출신으로는 거의 전후전무할 정도로 다산작가이며 동아시아의 국경을 넘나들면서 활동하는 문필가인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런 활성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동아시아의 문화계나 학계의 평가는 확실히 정해진 것이 아니고 그의 대부분 저서들은 엄밀함 의미로서는 학술서라고 보기 힘들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김 문학을 높게 평가하는 점이 글쓰기를 굉장히 좋아하고 문인을 천직으로 여길 정도로 문화활동에 관심이 크고, 고서수집이나 유묵수집 등 문화적 취미가 강하며 문필활동에서 장인정신이 아주 강하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솔직히 많은 조선족 문인들이 따라배울 점이라고 판단한다.
설명: 필자가 쓰고 있는 이 연재는 문필가로서의 김 문학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조선족 지식인들에게 그 실상을 알리자는 데 주요목적이 있다. 그런 가운데서 과대포장된 이미지가 일부 실추될수도 있고, 인간적인 면, 사상적인 면에서 가감없는 비판이 가해질 수 있으나 그런 비판에 대하여 혹시 김 문학씨나 주변의 분들이 김 문학죽이기, 헐뜯기라고 너무 일찍히 단정하기 말고 인내성있게 연재가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기 바란다. 혹시 있을 저서의 제목이나 출판년대 등에 틀린 내용이 있어 수정이 필요하면 그런 수정에는 흔쾌히 동의하겠다.
참으로 이 연재는 필자로서도 쓰기 힘든 글이다. 살아있는 사람을, 그 것도 얼굴을 아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쓰고 어느 정도 비판을 가하기란 필자도 너무나도 인간적인 갈등을 겪어야 한다. 누구에게 덕담을 건네주거나 칭찬을 하기는 쉽지만 조금이라도 비판을 하기에는 비판하는 측도 너무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김 문학이 분명 조선족 지식인 사회의 찬반양론의 와중에 있는 인물이고 많은 사람들이 김 문학을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심정인 점을 고려하면 서로 마음이 아프고 뼈를 깍아내는 것 같은 고통이 있더라도 한번은 꼭 지나야 할 통과절차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것을 통하여 김 문학이가 한단계 더 발전이 있고, 조선족지식인 사회도 소모적인 논쟁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필자에게는 그 이상의 바램이 없다. 분석대상의 객관화를 위하여 글에서 김 문학선생, 김 문학씨 등 경칭을 생략하고 김 문학이라 호칭한다. 이 점도 부디 양해를 바란다.
2010년10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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