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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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강아지파》와 《도깨비파》
2006년 02월 26일 00시 00분  조회:4456  추천:45  작성자: 김관웅
《강아지파》와 《도깨비파》

김관웅


춘추전국시대에 제(齊)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제나의 임금 환공은 당시 제나라에서 으뜸가는 화공(畵工)을 불러서 그림그리기에 대해 의론하게 되였는데, 먼저 환공이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한다.

《자네는 이 나라에서 제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이 세상 만물가운데서 무엇을 그리기 제일 어려운고? 》

이에 그 화공이 다음과 같이 아뢰였다.

《강아지나 송아지나 망아지 같은 것을 그리기 제일로 어렵사옵니다》

이 대답에 환공은 의아쩍게 여기면서 되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강아지 같은 것들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익숙히 보아왔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니 좀만 틀리게 그려도 누구나 다 흉허물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옵니다. 그래서 자연히 제일로 그리기 어려운 것들이옵니다. 》

환공이 들어보니 사리에 맞는 말이라 또 다른 문제를 물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만물 중에서 무엇을 그리기 제일 쉬운고?》

이 물음에 화공은 아무런 사색도 없이 대뜸 입을 열었다.

《귀신이나 도깨비가 제일로 그리기 쉽사옵니다.》

이 대답에 환공은 역시 의아쩍게 여기면서 되물었다.

《그건 왜 그런고?》

이에 화공은 다음과 같이 아뢰였다.

《귀신이나 도깨비나 허깨비는 실제로 이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 않사옵니까?》

《그래 그렇지.》

《그러하오니 이 세상에 귀신이나 도깨비를 본 사람이 사실은 없사옵니다. 꿈속에나 보았겠지요. 누구도 보지도 못한 도깨비는 아무렇게나 그려도 되옵니다. 머리에 뿔이 하나 달려도 되고, 둘이 달려도 되고 백개가 달려도 무방하옵니다. 또 형체가 있어도 되고 형체가 없어도 되옵니다. 한마디로 아무렇게나 상상을 해서 그려도 누가 틀리게 그렸다고 할 사람은 없사옵니다. 그러하오니 그리기가 아주 쉽사옵니다.》

이 말에도 환공은 머리를 끄덕이였다고 한다.

이 고사(故事)가 어찌 회화에만 국한되는 얘기이겠는가. 문학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상하고 해괴한 이른바 《파격적인 이미지》, 《낯선 이미지》만들어내는 시작업은 마치도 화공이 귀신이나 도깨비나 허깨비를 그리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이를테면 초현실주의자들의 주장하는 것처럼 《꿈이나 광기, 환각》등 무의식세계를 자동기술법에 의해 마음대로 그려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마음속의 미친 생각, 허튼 생각들을 아무런 예술적 가공도 없이 자동적으로 기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깐. 그리고 한때는 미국의 선봉파들이 고양이 앞발에 붓을 비끌어 매여주면 고양이가 즉흥적으로 마구 찍어놓고 오려놓은 그림들을 명화라고 버젓이 갤러리에 전시를 해놓기도 하였으니깐. 사실 이런 미친 자들의 이른바 《예술실험》들은 이미 한물 갔다. 필자는 이런 황당한 예술적 추구를 하는 자들을 일러《도깨비류파》라고 명명하고 싶다.

그러나 예술사나 문학사에 오랜 예술적 생명력을 가진 작품들을 창작해낸 사람들은 대부분 제나라 화공의 말처럼 《강아지나 송아지나 망아지 같은 것을 그렸다.》 다른 실례는 그만두고 한국의 현대시문학의 력사만 대충 둘러보아도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를 시적인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오히려 오래오래 독자들속에서 사랑를 받아왔음을 잘 알 수 있다. 한룡운의 《나루배와 행인》,《님의 침묵》 이나 김소월의 《진달래》나 《접동새》, 정지용의 《향수》,《파도·2》로부터 당대의 서정주의《국화꽃이 필때까지》나 김수영의 《풀》이나《폭포》, 구상의 《초토》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우리가 일상에서 늘 가깝게 보고 평범한 소재를 취해서 이미지화를 했음을 알수있다. 그중 김수영의《풀》과 《폭포》 보기로 하자.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 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풀》전문 (1968년, 현대문학)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가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을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 《폭포》


김수영의 《폭포》는 정치적인 시로도 볼 수 있고 시인의 억압된 리비도가 시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실상황에 대한 분노로 환치되여 표현된 《은폐적 대리배설》의 시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가 씌여진 1960년의 4.19혁명 전야의 1950년대 후반의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할 때 으로부터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상징시라고 볼 수 있다.

《폭포》는 곧 《민중》을 가리키는 것이며, 《무서운 가색도 없이 떨어진다》는 표현은 민중이 집단적으로 뭉쳐 군중심리에 편승했을 때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집단행동은《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된다. 하지만 그 물결은 결국 《고매한 정신》이 되여 정의의 편에 기울어지게 된다는 것이다.평소에 잠복되여 있던 민중의 힘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다. 밤에는 실제로 모든 소리가 특별히 크게 들리는데, 기차의 기적소리라든지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특히 그렇다. 여기서 《밤》이 의미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어둡고 막막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하에서 민중의 힘은 《곧은 소리를 내며》떨어지는 것이다. 곧은 소리는 곧 정의 소리이며, 《민심이 천심이다》라고 했을 때의 《천심》이다. 힘은 곧 정의요, 힘은 힘을 부른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가 의미하는 것은 걷잡을 수 없는 힘의 파급효과
라고 하겠다. 우리는 이런 구절들을 통해 프랑스혁명 때 파리시내를 뒤덮은 데모군중이라든지, 4.19때 서울거리로 쏟아져 나온 데모대의 행렬 같은 것을 련상할 수 있다.

이런 시들은 비록 가장 평이한 소재를 다루었고 따라서 아무런 기교도 부리지않은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엄청난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김수영 같은 시인들을 《강아지류파》라고 명명하고 싶다.

우리문단의 시인들속에는 《도깨비류파》도 있지만 《강아지류파》도 있다. 필자는 그래도 《강아지류파》가 시문학의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도깨비류파》에 미혹된 일부 문학신인들은 그 동기는 아름답기 때문에 비록 《도깨비류파》의 현란하고 또 그래서 선동적인 선전에 잠시 귀가 솔깃해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문학의 정도에로 되돌아 설것이라고 믿는다.


2006.2.24일 연길 자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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