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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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100년전 서양은 일본을 어떻게 평가했는가?
2014년 06월 09일 09시 23분  조회:4870  추천:26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61)

100년전 서양은 일본을 어떻게 평가했는가?      
 
김문학          
 

  “만일 문명이란 말이 물질문명을 가리킨다면 일본인은 지극히 문명화된 민족이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일본인은 공예품마저도 증기기관차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도달할수 있는 최고의 완성도에 달했기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은 유럽문명권 이상으로 보급되였다. 지나(중국)를 포함해 아시아 타국에서는 녀성들이 완전한 무지속에 방치된데 반해 일본에서는 남녀 할것없이 가나와 한자로 읽고 쓸수 있다.”

  “일본인은 세계에서 제일 청결한 민족이란 점은 이론(異論)의 여지도 없다.” “이 나라에는 평화, 철저한 민족감, 풍족함, 완벽한 질서 그리고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잘 경작된 토지가 발견된다.”

  세계의 유적발굴과 광견병 예방법 등을 발견한 희대의 지식인이며 사회활동가인 에취.슐리먼(H. schliemann)이 청국과 일본을 방문하고 저술한 책 《청국과 일본》(1865년)에 나오는 말이다. “그 어디를 가나 호흡곤란에 빠지는 먼지와 걸식자들이 있는 불결한 청국”과 비해 일본은 최고 청결의 나라로 례찬한다.

  전술(前述)했듯이 대체로 백년전후의 서양인에 의한 한중일 동양 3국의 평가에서 중국과 한국이 상대적으로 낮은데 비해 일본은 우리가 불쾌를 살만큼 높다는것이다. 한중일과 세계 수많은 나라를 려행했던 비셥녀사 역시 쇠락하고 죽음에 향한 조선에 비해 일본은 “정체된 아시아”의 이미지를 일신시키는 활기찬 나라, 희망의 나라로 묘사된다. 동시대의 영국인 관찰가 조지 커든 역시 일본의 내각정치가는 “인재의 총집합체”로,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등 명치지도자를 만난후 그들이 걸출했기에 명치국가가 형성됐다고 판단한다.

  당시 서양의 평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거의다 일본의 청결과 함께 “친절”, “례의바름”에 대해 경탄을 금치 못하고있다.  뽀루뚜갈인 모라에스(Mores, 1854~1929)가 쓴 《일본정신》에서는 “일본인의 그 친절한 미소”를 경악한 사례로 들면서 “극단적일만큼 친절을 베푸는것”, “자연에 숭배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믿으며” “모든 사람에 대해 늘 미소를 보이는” 등 근대 일본인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있다.

  1876년에 출간한 미국인 청년교사 W.E.그리피스(Griffis, 1843~1928)는 《명치일본 체험기》에서 교육과 교양의 힘을 언급하면서 일본관료의 “례절바르고 세련된 신사앞에서 유쾌할수 있었다”고, 일본인의 철저한 친절에 가장 행복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미국의 동물학자 에드워드.S.머스(1838~1925) 역시 일본체험기 《일본의 그날그날》에서 “인력거군의 례의바름, 일본인의 동물애호심, 일본아이의 쾌활함, 외국인에 대한 관용, 일본의 안전성, 생활 구석구석에 나타난 미적 센스와 자연애” 등에 감복한다. 흥미로운것은 그가 1902년에 쓴 《중국과 중국의 가족보기》에서는 대조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이같이 당시 중국과 조선에 비해 일본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후한 점수를 주는것이 괄목할만한 현상이다. 가슴 아프지만 이것 역시 100여년 전후 일본에 비해 “후진성”을 로정했던 실모습의 “활사”이기도 하다.

  서양인들이 19세기 후반 일본에 친근감을 느끼고 례찬한 까닭은 영국식 산업사회와 같이 “문명”이 점차 침투되면서 자신들의 모습에 닮아간다는 호감에서였다. 20세기초기에 이르러 영국인들중에는 “일본이 우리보다 못하지 않다”고 단언하게 된다. 서양을 배우려는 일본인의 경이로운 호기심과 학습열에 탐복하며 그에 호응한다.

  그러나 일본인의 이같은 서양학습에 긍정하면서도 한편 급격한 변화에 풍자한 서양인도 있었다. 1889년에 출간한 피에르.로티(Pierre Lot, 1850~1923)의 《가을의 일본》은 일본의 “현기증 느끼게 하는 근대의 열의에 부조화스러움”을 발견하며 경묘한 터치로 “원숭이와 같아 보인다”고 일본인의 양복차림을 풍자한다. 서양문명의 노예로 된 일본인의 심성을 지탄한 문구였다.

  1904년 로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 대해 서양은 일본이 이미 영국적인 세계지배질서에 편승하였으며 일본인 역시 세계가 서양의 지배를 받게 된것은 서양인의 오유라기보다 비서양인의 후진성에서 기인된것이라는 인식이 증폭된다.  
 

이때 애급 출신의 지식인이며 민족운동가인 M.카밀(1874~1908)의 《떠오르는 태양》이 등장한다. 근대에서 세계무대에 존재감을 과시한 일본은 일로전쟁의 승리로 주목받는 나라로 되였다. 이 제목은 당연히 당시 서양에서 “해뜨는 나라” 일본을 지칭한 단어로서 그대로 아라비아어로 번역, 사용했던것이다. 아시아에서 돌출한 신흥세력으로서 일본에 대한 상징적의미를 불어넣은것이다. “일본 발전의 비밀”에 대해 카밀은 미카드 즉 천황 이하 정부의 대신, 관료, 서민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횡일한 애국심(민주주의정신)과 그에 뒤받침된 교육, 정치, 경제, 군사의 근대제도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카밀은 애급이 배워야 할것은 일본의 애국심, 근대적제도이며 “해뜨는 나라 일본”과 “해저문 나라 애급”의 비교를 통해 애급국민들이 가슴에 충격을 받아야 한다고 호소한다.

  서양에서 일본례찬론이 성세를 이루고 있을 때 영국인 일부에서는 일본의 모습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일본인이 매우 속을 내보이지 않고 교활하고 거만한 민족으로 보였으며 그 애국심과 “일본정신”, “국혼”에 포함된 위험성을 위구했다. 동경대학 교수로 있던 저명한 일본연구자 배짐.체임벌린(1850~1935)은 “무사도”에 대한 영국인의 맹목적 찬탄을 부정하면서 일본의 무사도적 팽창의 위험성을 일찍 간파했다.

  일본인의 서구화가 피상적 모방에 지나지 않았으며 결과 그로테스크한 “잡종”이 되였다고 평가한 서양인도 있었다. “물고기도 아니고 가축도 아닌 잡종”, “동양도 서양도 아닌 잡종”으로 일본인을 조소했다.

  1907년 로일전쟁후 실질적으로 조선을 식민지로 손아귀에 넣은 일본에 대해 영국과 서양의 여론은 비판이 속출했다. 주일영국대사 맥도널드도 일본의 진면목에 우려했으며 매켄지 역시 일본의 대조선의 “잔혹함”을 고발한다.

  그런데 영국은 일본이 1910년 8월 한국병합에 대해 묵시했으며 영국자국의 리익손실에만 치중했다. 영국은 일본의 조선지배를 당연시하며 조선이 이로써 효률적인 문명과 경제의 륭성을 이룩할수 있다고까지 여기게 된다. 마치 100년이 지난 오늘 북조선에 대해 미국이 견제하려는 그런 발상이 벌써 100여년전에 세계 렬강과 공범으로 존재했던것을 재발견할수 있다. 100년전의 비극은 사실 또다른 양식으로 오늘 분단된 우리 민족에 긴 연장선같이 남아있음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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