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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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근대 중일한의 "아시아주의"계보
2014년 07월 14일 14시 46분  조회:4706  추천:27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66)

근대 중일한의 "아시아주의"계보
   
 
김문학          


  100여년전 19세기말 동아시아의 학지적, 언설적 도가니였던 일본에서 “아시아주의”사상이 생성되는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근대 중일한 동아시아력사의 흐름속에서 조감해보아도 이  “아시아주의”사상, 건설, 구상은 지대한 의미를 지녔다. 왜냐면 동아시아의 근대사가 서양렬강과의 만남과 충돌, 수용을 축으로 전개됐으니 그것을 어떻게 스므드하게 해소시키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아시아련대적인 이 “아시아주의”가 탄생했기때문이다.

  이제 다시 21세기의 오늘 빈번히 제기되는 “동아시아공동체”구상은 직언하면 100여년전 동아시아의 선각자들이 발안했고 행동으로 실천해왔던 “아시아주의”사상이 그 밑거름으로 된것이다. 최근 중한일 등 동아시아에서도 재다시 “아시아주의”적 언설이 재등장하면서 동아시아의 련대를 강조하고있는 시점에서(그것은 또한 유렵 EU련합에 대응, 방법적인 수용으로서) 옛날에 륭성했던 “아시아주의”계보를 따져보는 의미는 더 현현된다. 이 계보에서 우리가 “동아시아공동체”를 창설하는데 많은 시사를 받게 되는것은 자명한 일이다.

  “아시아주의”가 일본에서 탄생된 탓으로 중국과 한국 학계에서는 늘 “화려한 미사려구로 포장한 침략사상”이라고 일축하는데 안주해왔다. 물론 “아시아주의”가 침략에 리용당한 면을 감안하면 비판해야 하는것은 지당하지만 또한 그중에는 안이하게 비판으로 일관시키지 못할 면도 실재했다는것을 망각할수 없다. 손문이 “아시아주의”의 기밝을 높이 들고 중국혁명을 통해 아시아의 련대를 소리 높이 주장한 일생을 상기하시라. 20세기 전반까지 중국의 많은 지식인, 정치가, 개혁파 그리고 한국에서도 “아시아주의”를 적극 호응, 수용하여 각기 조국의 근대화 성취에 밑거름으로 보탰던것이다.

  그런 “아시아주의”는 중한일에서 기다란 그리고 끈질긴 “계보”를 이루고있다. 당연히 그중에는 서로 주어하고 비판하면서도 적극적인 요소를 수용했던것이다.

  《탈아론》과 함께 획기적인 사상으로서 등장한 타루이의 《대동합방론》사상은 리상적인 “아시아주의”를 고안하여 일본과 조선이 련합하고 중국과 동맹을 무어서 서양 백인종과 대적해야 하는 구상을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아시아주의는 일본이 아시아의 “독선”적이 아닌 조선, 중국과 련대하여 일국주의를 초월한 형식으로 로정됐다. 이속에는 또한 동일한 문화, 문명, 민족(종족) 등 화두들이 섞이면서 아시아민족들의 마음을 매료시킬수 있었다.

  특히 서구렬강의 식민지배구도속에 전락된 청국(중국)에 있어서 “아시아주의”가 표방하는 서구문명과의 대항, 황색인종과 백색인종의 대결사상은 쉽게 당시의 중국 정치인, 지식인에게 공명을 불러일으킬수 있었다.

  초대 주일공사 하여장(何如璋)은 일찍 “아시아주의”를 리해하고 호응해나선 인물이였다. 그뒤 량계초, 장태영, 채원배, 손문이 그 중국적 계보를 줄줄이 잇는다.

  장태영은 아시아 약소민족의 련합, 동맹을 강조함으로써 황인종이 백인종에 대항해야 한다는 “아시아주의”를 표방한다. 1907년 그는 진독수 등 동지들을 모아 인도망명지식인과 함께 “아시아화친회(和親會)”를 설립하여 “반제국주의의 독립”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인생의 3분의 1 시간을 망명과 혁명활동으로 일본에서 지낸 손문에게 “아시아주의”사상은 자연 매력적이였다. 일본의 “대아시아주의”의 거울인 국가주의자 토야마(頭山滿), 우치다(內田良平) 등 “아시아주의”를 소리 높이 주장한 “대륙랑인(浪人)”들과 지극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손문은 “아시아주의”를 주장하는 한편 실천자이기도 했다.

  또한 지극히 “친일”적인 그는 일본의 메이지유신성공과 그뒤 벌어진 두차례 전쟁(청일, 청로)의 승리를 기뻐했으며 “아시아주의”에서 청조를 뒤엎고 한민족국가 재건의 적극적 요소를 찾았다.

  그리하여 그는 일본의 “아시아주의”에 적극 호응, 수용하여 중일련대의 아시아적 련맹을 통해 혁명전략을 실현하려 노력한다. 1912년 중화민국 성립후에도 원세개에게 밀려 반원투쟁을 전개할 때 역시 아시아주의를 빈번히 제기한다.  그뒤 일본의 침략확장에 직면해서도 손문은 끊임없이 아시아주의를 언급주장하면서 일본인에게 아시아주의를 실천하기를 원했다.  

  1913년 그는 일본방문시 한 연설에서 “일본의 문명체계와 민국의 문명계통은 동일하다”고 력설, “아시아인이 아시아를 관리한다”고 웨친다.

  그뒤 일본의 일국독선적인 “아시아주의”를 리용한 침탈의 진면목을 보아낸 손문은 일본의 정책에 실망하나 그는 여전히 아시아주의의 향수를 버리지 못했다. 1924년 코베에서 한 연설에서도 그 역시 “아시아주의 련대”로 일본의 침략을 막아보려고 부심한 흔적이 보인다.

  조선에서 “아시아주의”계보는 1884년 갑신정변을 주도한 개화파 리더 김옥균에게서 공명을 일으키며 이어진다. 김옥균이 일본망명시 구상한 “3화주의”는 조선의 개혁문제를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일한청 3국이 제휴하여 구미동첨의 침략을 방어하는것”이였다.

  여기서 그 소스가 된것이 바로 타루이의 《대동합방론》적인 아시아의 동맹사상이였다.

  그뒤 일진회의 이용구가 적극 “아시아주의”사상을 수용하여 한일합방을 시도한다. 그는 한일동맹으로  로씨야의 남하를 막고 아시아부흥을 통해 조선의 개혁이 살아남을 길을 선택했던것이다. 일진회와 그의 합방구상은 민족사관에서 “친일매국”으로 비판하기는 쉬우나 그의 아시아주의사상의 깊이에 대해서는 아직 좀 더 깊은 인식이 필요할것이다.

  1910년 안중근이 려순감옥에서 집필한 미완성원고 《동양평화론》은 김옥균의 3화주의사상이 담긴 “아시아주의”사상의 산물이였다. 생전 일본을 좋아했던 그는 로일전쟁승리때 일본의 승리를 위해 환호한 청년이였다. “한청일 3국이 련대하여 려순을 공동관리지로 정하여 동양평화의 본부를 두고”, “3국의 공동은행 설립”, “3국청년 공동군단 결성”, “두 나라는 일본의 지도아래서 상공업발전을 도모하며” 서양세력에 대항하는 구상을 그는 창안한다.

  “아시아주의”적 련대사상은 100년이 지난 오늘도 의연히 적극적인 요소로 “동아시아공동체”형성을 뒤바침하는 지적(知的)지침으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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