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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학 토론과 죽이기
1993년 ‘天’자 계열의 소설로 명성을 날렸던 북경 왕산작가가 중국형세를 해부하는《第三只眼睛看中國》란 책을 발표해 황하대륙에서 한바탕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저자는 이 책을 쓰고 나서 발표할 때 많은 시끄러움이 닥쳐올 것 같아 독일인의 이름을 차용해 독일작가가 쓴 것으로 만들었다. 허나 진실은 쉽게 밝혀지는 법이다. 독자들이 글을 읽는 과정에서 글 속에 아무개의 철학과 사상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틀림없이 왕산작가가 쓴 것이란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캐고 캔 끝에 저자가 밝혀졌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모택동시대 정책 다수를 옹호하고 등소평의 개혁개방에 의해 중국이 쑥대밭이 되어가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마디로 개괄하면 “문혁을 욕하지 않고 개혁을 찬성하지 않는다.”이다.
당시 학자 층부터 일반 독자들은 물론이고 강택민 주석을 비롯한 중앙영도들이 다수가 읽어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당과 정부정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의 글을 썼지만 그는 단두대에 오르지 않았고 책이 정간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의논이 들끓었다. 반대파들은 “便餐에 오른 한 접시의 밑반찬에 지나지 않을 만큼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고, 지지자들은 “연회만찬에 클라이맥스로 오른 잉어.”라 치하하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적으로 토론이 열렬했고 이를 평론하는 글과 그와의 인터뷰내용을 담은 단행본이 출간되었으나 저자를 반당반국가분자로 타도하자는 목소리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올바른 토론문화이다.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조선족이 이와 유사한 글을 발표했다면 같은 조선족이 상급기관에 바짓가랑이에 불이 이는 줄 모르고 뛰어다니면서 반동분자를 잡아 처단하라고 고발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이는 필자의 괜한 부질없는 노파심일까? 아니면 그것이 현실이 될 ······,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김문학 선생의 <개조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옳은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다. 저자가 조선족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려면 체질을, 즉 삶의 방식을 갱신해야한다는 취지에는 동감이다. 그러나 남도여창이라든가, 소아과 병동비유라든가 일부는 조선족현실에 맞지 않거나 표현이 지나쳐 충분히 반감을 일으킬 소지가 크고 혹자는 역겨울 정도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필자도 글을 쓰는 입장이지만 글이란 객관사실과 논리에 맞게 써야하는 것이 원칙인 것을 알고 있으나 때론 주관판단과 주관감정이 개입될 때가 많다. 그렇게 되면 부분적으로 독자들의 반대에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 또 글이란 일일이 전부 해석 식으로 쓸 수 없어 흔히 독자들의 오해를 사기도 한다.
<개조론>의 저자는 연변출신이 아닌 입장에서 연변을 논하다보니 아무리 현지조사와 자료 수집을 거쳤다 해도 완전완미하게 쓸 수 없고 아울러 오류가 나타나는 부분 또한 있다. 물론 미국인류문화학자인 루스·베네딕트는 일본생활체험이 전무한 상황에서《국화와 칼》을 지어낸 것이 세계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편협한 글이란 지적은 면치 못했다.
한 국가 혹은 한 민족을 평가하는 글은 모두 말이 많고 탈이 많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개조론>도 이러한 흐름을 면치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아울러 그 글은 독자에 따라 반대와 지지 및 이에 따른 퍼센트 확률도 다를 것이고 찬반양론이 들끓는 것은 정상이다.
여기서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정상적인 토론이냐? 아니면 인신공격과 인격목욕으로 죽이기냐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왕산작가의 작품에 대한 사회반응은 토론이라 말할 수 있으나 <개조론>에 대한 사회반응 및 이에 따른 반대파들의 입장은 머리에 토론이 자리할 틈이 없이 아예 죽이기에 열을 올려왔다는 것이다.
장정일 선생님과 같은 분들은 <개조론>을 “조선족사회현실에 맞지 않거나 일부 왜곡한 부분이 있어 반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는 식으로 평가한 반면에 과격한 분들은 학술적 접근이 아니라 아예 몽둥이를 들고 나와 두들겨 패려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말 속담에 “며느리 미우면 발뒷굼치 큰 것도 흉”이란 말이 있다. <개조론>의 과격한 반대론자들은 개조론이 미우니 저자에게 고깔모자를 씌우다 못해 이완용이 저리 가라이다.
분명히 이는 토로문화가 아니라 죽이기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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