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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산과 들이 파랗게 물들기 시작하던 어느날 아침이였다. 고선생은 갑자기 무슨 소리엔가 놀라 늦잠을 깨였다.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내다보니 무려 백여마리나 될 양무리들이 똥털을 희뿌옇게 날리며 집앞 길을 꽉 메워흐르고 있는 게 아닌가! 재수없이 웬 양무리가 내 집앞을 다 지나다니다니?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화가 사그라지기도 전인데 또 한바탕 무슨 소리가 들려오고 있어 내다보니 이건 뭔가? 덩치 큰 소무리들이 윙윙 비행기 프로펠러소리를 내며 날치는 똥파리들을 부르며 요란스럽게 집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온 겨울동안을 가두어 기르다가 봄이 오니 풀 뜯어먹이러 들로 내모는 가축들이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퇴직후라도 좀 조용히 살리라 맘 먹고 마련한 집이 아니던가! 세상에 태여나 엄마 젖 한 모금 못 먹고 자란 때문이던지 원체 왜소하고 여윈 몸이였는데 퇴직후에는 더욱 비쩍 마른데다 몸도 거두지 않아 정신병자를 방불케 했다… 나이 서른하고 다섯살이나 먹은 아들이 불쌍해서 못 보겠었다. 아버지와 맞지 않는다며 세집을 잡고 혼자 살아가는 저 아들 때문에 한시도 맘이 편할 사이가 없는데다… 외국 나간 안해까지… 속 탈 일은 그뿐이 아니였다!… 시에서 자전거를 타고 반시간도 넘게 가야하는 합작구 어느 회사에 출근하는 아들은 언제 장가를 갈런지 자기는 손주나 보고 죽겠는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쿡 하고 눈물이 솟구친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살던 아파트(46평방)를 팔아서 아들에게 15만원이나 하는 “홍기패” 자가용을 사준 것이다. 그래도 아들은 아버지가 좋다는 말 한마디 없다. 아마 얼떨하게 일 처리를 해놔서 엄마의 사랑을 못 받고있는 자기에게 자가용 열대를 사주어도 반갑지 않다는 뜻인지 모를 일이였다.
어떻게 살가? 퇴직후의 삶을 편히 살아야 한다는 것은 결국 아들을 장갈 보내고 설 때마다 손주에게 빨각빨각 소리나는 붉은 지페 몇장씩을 주어 손주들이 빵긋빵긋 웃는 것을 보는 게 아닌가… 에라, 이것도 저것도 다 가망성이 없을 것 같았다. 한낮은 고민과 방황으로 모대기더라도 한 밤중이야 편히 드러누워 코를 곯 집이라도 있어야 하는게라고 생각했다. 동료들처럼 몇십만원 짜리 아파트에 들어 살 수는 없지만 작고 헐망한 집이라도 꿈속에 안해와 엄마를 불러보면서 잘 집이야 엄마의 따스한 품과 같은 것이 아니랴!
나에게, 저금이 없는 나에게 집이 생길 수 있을가! 그렇다고 아들이 들어 사는 세집에 찾아갈 수도 없는 일이고 더우기는 얼마 안되는 저축한 돈을 다칠 수도 없는 일이였다. 언제 불쑥 세집에 살더라도 자가용을 굴리고 다니는 아들이 녀자가 나졌다면서 말을 떼고 혼사를 치르겠다고 한다면? 언제 불쑥 남 못 보는 밤마다 정신병자처럼 고래고래 욕설만 퍼붓던 자기가 큰 병에라도 걸린다면? 언제 불쑥… 손에 저금한 돈이 없고서야 어떻게 사람구실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농촌으로 가 널통 같은 세집에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몇날 며칠을 마른 라면을 씹으면서 거리의 구석구석을 훑고다니던 끝에 거리의 맨 끝으머리에서 집 한 채를 발견한 것이였다. 참으로 기적적으로 발견한 “신대륙”이였다. 70평방나마 될 아담한 벽돌기와집이였다. 남향으로 출입문 하나와 출입문 량켠으로 통 유리창문을 앉혔는데 해볕이 유난히 잘 비껴드는 집안은 난방설비까지 마련되여 있었고 보던 색텔레비죤과 세탁기는 새것 그대로였다. 집뒤로는 홍기하가 흐르고 풀숲이 아득하게 돌아눕고 있었다. 가슴이 뛰였다. “급한 사정으로 이 집을 헐 값에 팝니다.”와 련계전화가 있었다. 그 자리서 휴대폰을 걸었는데 만원을 부르는 것을 깎고 깎아서 3천원으로 락착지었다.
그 새집에 들어서 온 겨울동안을 얼마나 편히 지냈던지 몰랐다. 그 동안 퇴직하고 집에서 할 일이 없이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게 죽을 지경이라는 동료들 몇이 여러번이나 전화 왔었다. 배보국(퇴직전교연조장)은 한밤중에까지 전화를 걸어오는 것이 치매를 앓지나 않는지 의심 할 정도였다.
“고선생, 집에서 뭘하구 있어? 퇴직후 안해까지 없으니까 더 심심할게야. 너무 고독하면 통오리구이에 눅거리 술이라도 사가지구 우리 집으루 오라구? 들었어? 괜히 우울증에 걸리지 말구?”
“나의 안해가 못 가게 한다구! 미안해.” 어떻게 그런 거짓말이 다 나갔던지 몰랐다.
“머라?! 퇴직하더니… 아, 그게 정말여? 고선생도 녀자를 다 생각할 줄 알어? 녀자가 어데 좀 부실한가? 아니아니, 내 말은 아이가 너무 많이 딸린 보리만두 같은 아니아니, 이 주둥아리야! 영 늙은 할무니인가?”
“나 보다 열하구 세살이나 어린데 살색이 눈처럼 희구 체대가 배구치는 녀자처럼 섹시해. 나두 어떻게 그런 복이 다 나에게 차례졌는지 그저 꿈만 같다우.” 그렇게 말하고 통화를 뚝 꺼버리니 조장의 충혈이 진 도끼눈이 툭 불거지는 걸 보는 것 같아서 구들에 뒹굴면서 웃어댔다. 언제 이렇게 소리 내여 웃어본 적 있었던가!
새집에 들고부터 고선생은 정신이 분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밤중에도 보일 수 없는 집뒤로 흐르는 홍기하는 안해로, 전야는 어머니로 착각될 때가 종종이였다.
아니, 한번도 본적 없는 어머니, 그 어머니가 새집에서 꿈속에 나타났을 줄이야… 아마도 엄마의 신이 도움을 주는 집 같았다. 그러한 신성한 “엄마의 품”을 양무리와 소무리가 똥을 갈기고 털을 날리고 비린 냄새를 풍기면서 마구 짓밟고 소란속으로 몰아넣다니!…
2. 엄마의 얼굴
매일 양무리와 소무리가 집앞을 소란스럽게 지나다니는 통에 기분은 말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볼멘 소리를 쳤다가 양몰이가 삐우는 채찍에 생 눈알이 뽑힐가봐 두렵기도 했다.
그날 아침에 배조장이 또 휴대폰을 걸어왔다.
“고선생네 집을 찾아가니 이사를 가구 전화를 거니 안 받고.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더니 고선생은 퇴직한 후에 분에 넘치는 복을 받는 군. 쩟쩟. 하기야 내 눈으루 직접 보아야 맘 놓겠는데…”
“아 글쎄 도박쟁이 남편과 리혼을 한 절디젊은 녀인이 자기는 소설을 쓰는 작가와 사는 게 평생 소원이라면서… 헛 허허. 난 지금 똑 마치 청년시절루 되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여. 헛허허.” 지금껏 거짓말이란 해 본적 없이 너무 고정하여 어리숙하다는 말 까지 듣고 살아온 자기가 왜 배조장과는 거짓말을 하는지 모를 일이였다. 아니 배조장도 한번 속 앓이를 해보라는 고약한 마음까지 든다.
“고선생은 말야 인재야! 흐흐 왜 인재냐구? 개구리가 바다에 뛰여들었으니깐! ” 배조장이 쩍하면 교연조선생들 앞에서 하던 말이다. 그 때마다 고선생은 저절로 머리가 뚝 떨어지군 했었다.
원래는 그 곳을 가지 말았어야 했었다. 소학교에서 여러 잡지에 소설도 발표하면서 작문지도교원으로 잘 나가던 중 뜻하지 않게 고중으로 사업전근을 하게된 것이였다. 소학교장은 “나이 쉰 한 살이나 먹고 왜 자리를 뜨오? 몇해를 더 하면 소학교 초고급교사직함을 가질 수 있을런지도 모르는데.” 그러며 막았지만 큰 바다에 가서 헤염을 쳐야 사는 보람을 느낀다며 기어이 소학교를 떠난 것이였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조선어문교연조장인 배보국선생이 교무처를 찾아가 “소설 몇편을 썼다고 소학교원이 단번에 고중교원이 된다면 이건 누가 들어도 코웃음 칠 일입니다.”며 반기를 들고 나왔다고 한다. 하기야 고선생을 데려간 고중교장이 우연히 출판사로 갔다가 대학동창을 만나 해마다 고등입시시험에서 작문성적을 올릴만한 인재 한명을 받아야 겠는데 그런 속사정을 털어놓다가 동창으로부터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당신네 시에서 소설을 참 잘 쓰는 작문교원, 고아무개를 왜 데려못가오? 소학교가 무슨 관계요? 로신이 북경대학을 나오고 북경사범대학의 교수로 지냈던가?”그 말 한마디 때문에 청운을 탄 것이였다.
교장이 직접 물색해 온 인재라기에 고중교원들은 만나면 “작가선생님”하면서 깎듯이 대했다. 학교령도에서는 배조장이 다년간 맡아하던 고3 대학입시작문지도를 고선생이 맡아하도록 결정했다.
고급중학교 1학년은 물론 초급중학교 1학년도 가르쳐 본적 없는 고선생이 고3 대학입시작문지도교사로 교단에 올랐다. 가슴이 뛰였다. 상상속의 소설가선생님보다 실제로 교단에 오른 선생님은 너무 실망되든지 어떤 학생들은 얼굴을 찡그리기 까지 했다. 163센치미터의 작은 키, 왜소한 체구, 숭숭 얽은 곰보얼굴은 학생들이 잘 아는 로신이나 곽말약과 대비하면 서글프기까지 할 정도였다. 술상에서 배조장이 한 말이 떠올랐다. “고중학생들을 소학생들처럼 대하면 안되오. 상과시간에 목을 길게 빼들고 꿀룩꿀룩 광천수를 기울이는 걸 놔둬야 하고 책상에 엎드려 간간히 코를 고는 걸 놔둬야 하며 남녀학생이 소곤거리는 걸 놔둬야 하오.” 그 말의 뜻이 뭔지, 왜 고생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 알수 없었다. 고선생은 비록 소학교에서 왔지만 “전국중소학교교수경색”과 “전성중소학교교수경색”에서 여러번 최우수상을 받은 적 있는 “교학능수”였다. 기타 군더더기가 없이 40분교수에 5분을 지식강의를 마치고 35분동안 써내기를 하는 데다 써낸 작문마다 평정을 달아내는 고선생의 교학법은 자는 학생이 없는 흥미로운 작문시간이 되였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 일이다. 고선생이 고3작문교수에 자긍심을 느낄 때 일이 일어났다. 술을 좋아하는 배조장이 고선생을 데리고 술을 마셨는데 덩치가 황소같은 배조장이 “작가선생”이라고 이렇게 저렇게 올리추면서 술을 권하였다. 그날 밤 고선생은 재수없게 헌자전거가 도랑창에 박히는 바람에 얼굴을 벋겼다.
벋긴 얼굴 때문에 배조장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청가를 맡았다. 청가를 맡은 날 저녁무렵에 어떤 녀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작문시간을 배보국선생님이 보았습니다. 제목을 ‘헌자전거’라고 달고서 작문을 쓰라고 했습니다.… 듣자하니 선생님께선 몹시 아프다고 들었습니다. 어서 빨리 회복하여 작문을 배워주시길 바랍니다.” 고선생은 눈물이 핑글 고여올랐다… 일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벋겨진 관골에 시커멓게 딱지가 앉아 보기 흉하게 된 처지에 배조장이 교연조 선생들을 이끌고 병문안을 온 것이다. 코구멍만한 세집, 안해 없는 썰렁한 집안에 13명이나 되는 남녀교원들이 꽉 들어찼다. “그래, 술을 자제해야지. 그게 뭐요?” 어느 남선생이 안타까운 나머지 말했고 “선생님, 맘 푹 놓으시고 몸 조리 잘 하세요.” 어느 녀선생이 물기가 번들거리는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이 돌아간 후 고선생은 어쩐지 고맙다는 느낌보다는 쫄딱 망신을 당한 느낌이였다. 이제야 보니 작가선생이라는 게 술주정뱅이구나, 그러니까 아마 안해도 달아나 없겠지, 그러니까 아직도 세집에서 살지. 그런 인상만 안겨준 것 같았다.
그 날밤 자정무렵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휴대폰 속에 울리던 녀학생의 목소리와 녀선생의 관심어린 목소리가 귀가에 쟁쟁히 울려오면서 자신은 얼마나 오래동안 녀인의 관심어린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던가가 생각키우면서 목젖이 떨꺽 소리가 나게 서러웠다. 아, 엄마의 목소리도 저렇게 간절하고 정겨웠을거야. 소학교적 동학들이 엄마 손목 잡고서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이 부럽다못해 끝내 허리 꼬분 할머니를 조르고야 말았다. “난 왜 엄마가 없냐구? 엄마는 날 두고 어데로 갔어? 엄마는 미인이야? 어떻게 생겼지? 사진 내놔 봐? 앙앙. 나 엄마 보구싶단 말야… 할머니가 알려주지 않으면 난 공부도 안 할거야… 앙앙앙. 내 엄마 내놔-” 그날 할머니는 손주에게 깊이 감추었던 사실을 털어놓고야 말았다. 1957년 겨울의 어느날, 녀인은 멎지 않는 화열로 초불처럼 간들거리는 자기 생명의 마감 날자를 예감했던지 구령으로 쪼박이 종이에 붉은 고추밭을 정성들여 그려서 한돐도 안 찬 아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 쥐여주었단다. 그러자 아들은 하늘의 별을 머금은 듯한 눈동자로 엄마를 바라보면서 캐득캐득 소리내여 웃더란다. 엄마가 흘리는 눈물은 하염없이 아들의 량볼에 떨어지고… 사랑하는 아들과 사진 한장 못 남긴 채 하늘나라로 떠나간 엄마를 알아버린 후 더는 엄마를 내놓으라고 할머니를 애 먹일 수 없게 된 동년은 할머니를 엄마처럼 믿고 따르면서 커갔지만 그 할머니마저 하늘나라로 떠나갔을 때는 소년의 나이가 고작 14 살 때였다. 소년에게는 마지막 희망이 남았다. 아버지! 외국으로 돈 벌러 나갔다는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홀로 사는 것이였다. “너의 아버지는 늬 엄마가 널 임신했을 때 외국으루 돈 벌이 나갔어. 그러니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힘 내 살아야 한단다. 공부를 잘 하여 대학에 가는 날 늬 아버지가 돌아올끼다.” 는 할머니의 유언이였다. 그런데 의지가지 없는 손주를 홀로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간후라도 유일한 기다림이란 희망을 가지라고 쓴 거짓말일 줄은 누구도 모르는 일이였다… 소년은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병으로 사망한 아버지가 살이있는 줄로 여기고 기다림으로 희망차게 살았다. 하지만 긴 기다림은 늘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가려있었다. 눈 감으면 엄마는 저 하늘에 달처럼 걸려서 자길 보며 정겹게 웃어준다. 엄마의 웃음을 그려보며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소년은 불쑥 큰 아쉬움을 느끼면서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아아! 그게 무얼가? 엄마가 그려준 붉은 고추밭은 구경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가? 나는 왜 할머니께 그 비밀을 캐여묻지 못 했을가…
3. 개구리헤염
아침에 양무리, 소무리들이 똥털과 똥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집앞을 지나가자 이어 휴대폰이 울렸다. 배조장이 걸어온 전화였다.
“왜 자꾸 전화를 걸구 이러오? 집에서 소설책을 읽던가 아니면 집앞 광장으루 나가 광장무를 추는 할무니들 구경이라도 할 거지.” 고선생은 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화를 내고말았다. 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그런데도 대방에서는 좋은 말투로 나오고 있는다.
“실은 말요, 긴요한 일이 있어서 그러오. 래일 나의 생일인데 친구들 몇만 부르려고. 고선생만은 부부를 다 청하오. 꼭 동부인하고 와야 하오? 집 주소를 알려주오. 그럼 내가 친히 택시를 불러 모시러 갈게?”
“아, 그거 참 안됐구만이라. 부인이 어찌나 려행을 떠나자고 그러는지 마지못해 려행을 온거란 말요. 어딘가구? 말해두 모를거요. 태산이나 황산은 알겠지만 미산이라구 중국에서 황산 버금에 가라면 아쉬워 할 미산을! 금시초문이라구? 그럴거요. 언제오는 가구? 한주일은 걸릴거요. ”
“머잉?! 려행을 갔다구? 수미산이 아니구 미산이야? 그럼 갔다와서 따루 보자구?”
고선생은 자기처럼 낚시도, 마작도, 당구도 흥취가 없고 지어 남들이 다 하는 걷기운동이나 등산조차 할 줄 모르는 “퇴직백치”가 된 배조장의 처지가 우습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해났다. 이게 뭐람? 자기는 거짓말로 배조장을 우롱하고 배조장은 잔뜩 질투에 찬 나머지 진가를 확인하려 드는 유치한 “장난”을 벌리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퇴직후 옹근 한해동안이나 그림자도 볼 수 없던 배조장이 어느날 갑자기 휴대폰을 걸어온 게 아니던가! 일년동안을 사방을 둘러봐도 친구 하나 없고 자기가 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는 퇴직 생활을 고선생은 어떻게 지내느냐? 옥중생활도 할 일이 있고 동료들이 있어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른다는데 이건 옥중생활보다 못한 삶이 아니냐? 죄라도 범하고 감옥에 들어가 살가부다?… 제발 자기와 가까이 하고 놀아달라고 애걸하다 싶이 해온 배조장이 문득 비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고선생이였다.
1997년 가을, 새 아파트로 이사 나간 교원들이 살던 학교주택 몇 채가 나지자 그중 한 채가 조선어문교연조에 몫으로 떨어졌다. 개혁개방의 물결이 도도한 변강도시라 세집살이를 하는 교원들이 적잖은 현실이였다. 처녀교원들과 총각교원과 자기 집이 있는 교원들을 제외하고는 고선생과 과부선생간의 겨룸이 될밖에 없었다. 과부선생은 나이가 젊은데다 얼굴이 곱살하고 몸이 풍만하여 남편이 생기면 남편집으로 가 살지도 모르는 형편이였다. 하지만 결국 주택은 배조장의 역할로 과부선생에게로 넘어갔다.
“고선생이야 얼굴이 주글주글해가고 저승꽃이 피기 시작하잖아. 흐흐흐. 과부선생이야 살결이 눈처럼 희고 배구선수처럼 섹시하단말야. 그러니 누구와 놀아야 해? 흐흐흐.” 과부선생이 집들이를 하던 날 저녁 배조장은 술상에서 그렇게 롱담처럼 말하고 껄껄 웃었고 기분이 둥둥 뜬 나머지 과부선생을 안고 빙글빙글 돌면서 사교무를 추었었다.
고선생은 가배의 노력으로 고3대학입시작문교수에 박차를 가하느라 눈코 뜰 사이 없게 보냈다. 그러니 아들의 학습을 돌 볼 사이가 없었다. 매양 엄마 없는 집안에 들어서는 아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가? 아버지마저 한밤중에 들어서니 때식을 굶을 때가 종종일 때가 보통이였을 아들… 고1에 다니는 아들이 상과시간마다 컴퓨터 그래팩스와 프로그램 서적만 뒤적거리다 결국 중퇴를 하고야 말던 그해에 배조장의 아들은 중경리공대학에 합격된 영예를 안아왔다.
“보란말이오. 개구리의 족속은 올챙이지만 상어의 족속이야 상어가 아니겠소? 흐흐흐.” 배조장이 고선생이 없을 때 교연조선생들 앞에 한 소리였다.
소학교에서 고중으로 사업전근을 한지도 7년철을 잡던 어느 날 부턴가 고선생은 뭔가 고민이 들었다. 고중3학년작문과를 맡은 이래 성과는 주렁져 해마다 학교로부터 교학선줄군으로 표창을 받기도 했지만 총적으로 오지 말았어야 할 곳으로 온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이였다. 공연히 다른 학과 교수보다 교학수당금이 더 붙고 달 수당금도 높은 배조장의 보금자리를 빼앗아 하는 것 같은 량심적인 거리낌이 밤잠을 못 이루게 했다.
“고선생, 여기는 본과이상의 학력만이 직함평가에 참가하는 곳이니깐.” 배조장은 직함평가 때마다 그런 말로 고선생앞에 붉은 카드를 꺼내들군 했었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학교교무처에서는 현급고중이라 로교원 가운데 여럿이나 되는 “전과”학력을 가진 교원들의 직함평가 참가 문제 때문에 2년 반의 함수로 본과를 딸 수 있도록 각 교연조장앞으로 언녕 통지서를 내려보냈던것이다… 하지만 배조장쪽에서 되려 버럭 화를 냈었다. “고선생이 본과함수를 나온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요? 석사생들이 우글거리는 고중에서 반주임 한 학기 못 하고서 무얼로 점수를 딴다고 그러오? 듣기 싫겠지만 상어들이 헤염치는 바다에 뛰여든 개구리신세가 아니오? 헛수고를 하지 말라고 생각해서 그런거니까 감사하게 여겨야지.” 그때 고선생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한 수치, 방황, 고통들이 소설감이 아니냐 여기면서 고중이란 바다에서 끝까지 “개구리 헤염”을 치리라 주먹을 불끈 쥔 것이였다.
고선생은 고급중학교로 놓고 말하면 1급직함이고 배조장은 고급교원 등급(5급6급7급)가운데서도 젤 높은 등급에 들어 고선생보다 월급이 천몇백원이나 더 높았다. 어느 한번의 술좌석에서 배조장이 “고선생은 어느것 하나 나와 비길게 없다구. 크 흐흐흐.”라고 말하며 통쾌해하던 배조장이 퇴직을 당금 눈 앞에 둔 어느날, 고선생과 “난 고선생이 부럽다구.” 그런 말을 해오는 게 아닌가! 고선생이 못 들은 척 하려니 뜻밖의 내용이 담긴 말을 내뱉고 있었다.
“30여년을 교직에 몸 담그었다면 퇴직후 20여년을 더 살지 30여년을 더 살지 모르는데 대체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보낸단 말이오? 근심이 태산 같단 말이오! 고선생이야 글 재간이 있으니 매일 구상하고 소설을 쓰느라 얼마나 보람차오?” 하고 다 빠진 번대머리를 긁다가 남산 같은 배를 주먹으로 쿡쿡 박아댔다. 고선생은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배조장의 그런 모양이 불쌍하기까지 해났고 또 늘 우울하고 머리를 푹 숙이고만 다니던 자기가 긴 호흡이 나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아파트, 직함… 수두룩한 골치 아픈 일들을 매장할 수 있는 게 소설 쓰기였던 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정작 퇴직을 하고보니 점점 발표하기가 곤난해지는 소설쓰기도 역시 스트레스만 쌓이는, 자기의 “무덤”만 파는 일이라는 걸 배조장이 알가! 하기야 퇴직전에도 갇힌 신세였지만 퇴직후 역시 수인 꼴로 여생을 보내야 할 일이 그저 막연하기만 해난다… 퇴직후라도 정신상 고통이 없이 보내야 할텐데? 퇴직후 구경 무엇을 하고 살아야 매일 쾌활한 심정이 될 수가 있을가? 세상에 그런 게 있을가? …
4. 고갈(楛渴)
“쨩-” 채찍을 울리는 소리가 폭죽소리처럼 들린다. 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양몰이군이 긴 채찍을 겨드랑이에 끼운채 앞서 걷고 있었고 그 뒤로 흰 양떼들이 따르는데 맨 뒤로 흰 점 박이 얼룩 개 두마리가 혀를 뻬 물고 양들을 감시한다. 저 양몰이군이 부러웠다. 늘 즐겁고 행복할 것 같았다. 무슨 고민이요 방황이요 스트레스요, 고통이요가 있겠는가? 가없이 푸른 하늘. 흰구름송이, 푸른 들, 해빛, 또 유유히 흐르는 홍기하…
그렇다고 누가 고선생더러 양치기를 하라고 한다면 절대로 못 할것이다. 누구나 다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퇴직하기 이태전부터 고민해 온 문제는 퇴직한지 몇해가 지난 지금까지 고선생을 못 살게 군다. 월급으로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은 없다지만 온 하루 할 일이 없는 게 문제였다. 소설을 쓰려고 해도 속 탄 일들이 련이어 닥치군 하는 때문에 절필이 되고만 꼴이다. 어느 하루 낯 찡그리지 않은 날이 없고 마냥 우울해서 하루해를 지우군 한다. 눅거리 집이라도 갓 집을 사고 들었을 때는 뭔가 희망이 보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희망도 차츰 사라지고 만 것이다. 고선생은 갈수록 자기의 정신이 고갈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고선생의 절망을 부활시킬 건더기란 그 아무것도 없었다. 아파트, 직함, 안해, 아들의 장래문제… 어느것 하나 희망이란 없는 무정한 현실이 아닌가! 어느 날에는 죽으려고 홍기하에 나갔다가 강변에서 남이 먹다 던진 곽밥을 아귀아귀 먹어대며 히죽이 웃어뵈는 거지를 보고 야, 저런 거지도 저렇게라도 악을 쓰고 사는데 나라에서 주는 봉록을 타 먹는 내가 왜 죽는단 말인가? 그렇게 도로 집으로 돌아와버린 일도 있다.
휴대폰이 울렸다. 절대 받지 않으려고 맘 먹은 터였지만 또 맘이 약해지며 휴대폰을 들었다. 그런데 이건 뭔가? 후대폰에서 왕왕.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배조장이 울다니?! 대체 무슨 일로 저러지?
“배조장, 왜 우오? 무슨 일이 생겼소?”
“와앙앙앙… 흑응응흑흑. 나 철저히 망했어… 망했다구… 응흑흑. 나 죽고싶단 말야… 내 슬픈 처지를 누가 알겠나…”
“망하다니? 그게 대체 무신 말이요? 좀 똑똑하게 말해보라우? 응?”
“한해전에 안해가 페암으루 북망산으루 가더니 엊저녁엔 아들이…”
“뭣이?! 작년에 안해가 죽었다구? 저런? 왜 난 감감 모르구 있었나? 거기다 중경에서 잘 나간다던 아들마저 죽었단 말이요?!”
“내 안해가 죽은 걸 알면 자네가 속으로… 자네는 모를거야, 난 아파트도 다 팔았어. 난 떨거지 신세가 된지 오래다구. 아들이 경영하는 회사에 집 판 돈을 다 처넣었는데 끝내 회사를 만구하지 못하고… 아들이 자살을 선택했다가… 이걸 어쩌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아들을 보러 중경으루 가려니 돈이 없다구… 엉엉엉… ”
고선생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배조장의 안해가 죽은 일을 두고 고선생이 왜 기뻐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응당 아들의 회사가 부도난 일도 고선생과 비밀로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가. 어쨌든지 고선생은 배조장의 일을 두고 먼 산 보듯 할 수 없겠어 다우쳐 물었다.
“그래 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거요? 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도 있단 말이요?”
“세상이 이렇게 큰데 믿을 사람은 고선생 뿐이구만. 고선생, 나에게 돈을 꾸어주구려. 고선생이 집을 팔았다는 소문도 들었소. 그러니 돈 10 만원만 꾸어주오… 나 고선생을 ‘할아부지’라고 부를 게…”
고선생은 억이 막혔다. 배조장의 그 살집 좋던 안해가 죽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항우같은 아들까지 죽는다고? 아파트도 언녕 팔아치우고 세집에서 산다고? 오죽하면 나를 다 “할아버지”라고까지 부르겠다니… 내가 혹시 악몽을 꾸고있는 건 아닌지?… 아아! 망했고나! 배조장이 내 꼬락서니보다 더 모질게 망했고나! 그러나 고선생은 조금도 통쾌하지 않았다. 불시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에라이 악귀같은 놈아! 내 평생에 유감이라면 너 같은 놈을 만난게야!… 내 일만도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워 죽을 지경인데 어쩌라고 그러한 나만 물고 늘어지냐구?… 대체 왜 자꾸 나와 이래? 전생에 내가 늬 아비를 때려죽인 빚이라도 졌다는 게야? 왜 나만 붙잡고 이래? 나 좀 가만두라고? 응? ”
“왕와아아왕왕, 날 불쌍히 여기라우- 고선생은 죽을 때까지 나를 원쑤로 취급할지 모르지만 실지는 그런게 아니라우- 고선생이 작가로 우리 학교로 왔을 때 난 하루아침새 위신이 납작하게 되여 난 하마터면 우울증에 걸릴번 했다우- 고선생이 교학수당금이 높은 나의 고3작문지도 자릴 빼앗았을 때 난 죽고싶었다우- 녀선생들이 고선생을 작가라고 부르면서 아양을 떨 때마다 난 밤잠을 못 자고 밥맛을 잃었다우- 고선생에게 나의 조장자리를 빼앗길가봐 바늘방석에서 산 걸 누가 알겠냐구- 그러니… 자네야 일이 점점 잘도 풀려 양귀비같은 녀자를 얻어 살고 아들도 장가를 들어 달덩이 같은 손주를 안아 볼 수 있는게 아닌가? 엉엉흑흑. 나야 안해도 죽고 아들도 층집에서 뛰여내렸고… 좋아, 고선생까지 날 본척도 않는데 나 살아 뭐해- 나 사품치는 홍기하에 뛰여들거야- ”
대방은 또 왕왕. 울음을 터뜨리면서 이번에는 자기의 고선생에 대한 지난 날의 “권력행사”를 몽땅 고선생의 잘못으로 돌려버린다. 휴대폰을 꺼버리자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얼마나 절망했으면 저러랴… 안해가 죽은데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 죽고나면 살멋이 뭐가 있겠는가! 죽음의 변두리에서 헤매는 동료를 내버려두는 게 죽을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래, 배조장이 죽는 걸 가만 보고있을 수야 없지. 구해주자! 10만원은 몰라도 그간 아득바득 모은 돈을 꾸어주어야지. 베조장이 월급이 있는데 월급으로 얼마든지 갚겠지.
“이보라우? 10 만원은 없구 겨우 모은 돈 3 만원이야. 한해전으루 꼭 갚아줄 수 있겠지? 나 이거 생명 같은 돈이라구?”
“아이고, 할아부지- 3 만원이라도 꾸어주구려- 아이고, 할아부지- 제꺽 위챗으루 넘기라우- 나 심한 고통으루 며칠전에 중풍을 맞은 후 걸음걸이가 불편해 바깥 출입을 못 하니까… 고선생을 만나는 것두 고통스러운 일이니껜-”
배조장이 중풍까지 맞았다니 그 비참함에 비감까지 들면서 뜻 모르게 입술이 하는 휘파람소리가 휘호호- 나가는 동안 위챗상으로 3만원을 넘겨주었다. 눈 깜빡 할 사이 3만원이라는 거금을 흘려버리고 나니 수습할 수 없는 충동적인 행위를 느끼며 자기의 뺨을 호되게 갈겼다. 고선생은 “그래, 난 구명은인이야, 은인이고 말고!” 그런 말을 수십번이나 곱 씹으면서 자신을 안위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마음은 조금도 편하지 않고 갈수록 불안하기만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던 날 한밤중이였다. 낮이면 사업에 눈 코 뜰 사이가 없고 밤이면 자정무렵까지 되지도 않는 소설을 끄적거리다가 잠에 곯아떨어지군 하는 남편때문에 생과부가 되는 게 싫어 외국에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안해가 그리워 깜깜한 천정에 대고 “여보- 이제는 밤마다 자기를 사랑해줄게, 어서 돌아오오-“하고 불러 볼 때였다. 느닷없이 휴대폰이 울어댔다. 정말로 안해가 돌아오려나 휴대폰을 귀가에 갖다 댔다.
“고선생 맞죠? 나 배조장의 안해야요. 혹시 저의 남편이 고선생네 집에…”
“머…머…머잉?! 배조장의 안해? 죽었다고 하던데…” 고선생은 귀신을 부르며 나 동그라졌다가 다시 휴대폰을 잡았다. 휴대폰을 통해 배조장이 다단계판매집단에 들어 남의 돈을 몇십만원이나 사기를 치고 지금 공안의 추적을 당하고 있다는 것… 고선생은 그 자리서 피를 토하고 까무라치고 말았다…
5. 비밀
5월 중순께라 홍기하는 금삼각도시를 스치며 동해로 흘러드는 두만강하류와 내기라도 하는 듯 시커멓게 치렁치렁한 깊은 물살을 이루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고선생은 홍기하대교 한가운데 선채 현기증을 일게 흐르는 강물을 무섭게 노려보 고 있었다. 생각 할 수록 분하고 원통했다. 자기는 배조장에게 당해도 철저하게 당했다… 아니, 그게 다 자기의 사주팔자가 사나운 탓이 겠었다. 한뉘 엄마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이 살아온 자기, 아니, 어쩜 아버지와 엄마의 얼굴륜곽조차 알 수 없는 자기가 아닌가! 그러니 항상 우울해서 머리만 뚝 떨군 채 앞 발명 한마디 못하는 인간이니까 남의 없수임을 당한 게 아니란 말인가! 안해와 아들마저 자기를 배척하고 있는 삶을 더 살아서는 뭘한단 말인가! 배조장에게 돈 3 만원까지 떼우고 만 엊저녁은 그저 죽고싶은 생각으로 미칠것만 같았다. 나는 왜 죽을 생각만 드는 것일가? 결국 자기는 죽을 자격마저 없겠음을 깨닫고 만 것이였다. 엄마가 림종 때 한 돐도 안 찬 자기에게 붉은 고추밭을 그린 종이를 고사리 같은 손에 쥐여주었는데 그 붉은 고추밭이 상징하는 게 무엇인가를 깨치지도 못하고 이승을 떠난다면 저승에서 무슨 면목으로 엄마를 만난다는 말인가! “아들아, 넌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이승을 살지 못했구나. 넌 불효를 저질렀어. 되 돌아가 마저 엄마의 뜻을 지키고 오너라!” 라고 말이다!!
붉은 고추밭! 대체 그게 무엇일가? 고선생은 자기의 이마를 소리나게 탁 때리고나서 자기의 머리통을 싸쥐였다. 그 바람에 맥 없이 몸이 휘청거리면서 하마터면 다리위에서 깊은 강물로 떨어질 번 했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다리아래 저쪽켠으로부터 기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런저런! 이보게- 잠간만! 죽으려거든 내 얘기를 듣고 죽어도 늦지 않을 테니- 여게로 와 우리 잠간 얘기를 나누세-”
그렇게 소리 지르는 것은 양몰이군이였다. 고선생은 자기가 죽는 줄로 알고 그렇게 불러주는 양몰이군이 슬그머니 고마왔다. 고선생이 다리를 내려서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강변으로 다가갔다. 눈보라와 비바람에 얼굴이 붉으죽죽하니 주름투성이고 앞이가 다 빠져 검붉은 혀가 이 사이로 끼인데다 한쪽 다리를 절름거리는 고래희를 넘겼을 늙은이였다.
“자네가 이렇게 볼모양 없게 뼈만 앙상하니 여윈 걸 보니 뭔가 알것 같구만은 그래도 자네는 아직 한창 살 나이가 아닌가? 왜 그랴? 부모가 어떻게 준 목숨이라고 그렇게 쉬이 목숨을 끊으려고 하나? 불효 중 젤 불효가 뭔줄 아나? 자살이야! 저승에서 부모가 통곡을 친다구. 자네가 역경과 좌절앞에 머리 숙이지 않고 분투하는 것이 곧 행복과 복을 불러온다는 걸 기억하세. 전에 나도 내 신세때문에 죽음을 생각 해 본적 있었네만 결국 끈질기게 분투의 삶을 산 것이야… 전염병은 너무 일찍 나의 부모를 앗아갔어… 나는 머리가 총명한 내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15살때 학교를 중퇴했어. 벽돌과 모래실이를 했고 건설공지로 다니면서 강쇠 후리는 일도 했어. 소학교1학년에 다니는 동생은 이 형님을 아버지처럼 엄마처럼 따랐지. 동생은 형님의 소원대로 공부에 노력했는데 학기마다 최우등생이 되였어. 나는 동생이 대학을 갈 앞날을 그려보면서 죽을둥 살둥 모르고 일 했다구. 나는 층집을 짓는 일을 하다가 두번이나 죽을 번 했어. 한번은 5층에서 널판대기가 두동강나는 바람에 아래 그물에 걸리면서 모래무지우에 떨어져 옆구리 뼈 두마디가 나가고 또 한번은 3층에서 떨어졌는데 정갱이 뼈가 끊어져 이렇게 절름뱅이가 된거야. 동생이 ‘형님, 나 학교 안 다닐래. 나 때문에 형님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해, 엉엉.’ 서럽게 울 때마다 ‘형님이 동생을 출세시키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은 응당한 일이야. 이 형님은 네가 공부를 안 하면 살 멋이 없어. 들었어?’ 그렇게 동생을 공부 하도록 설복 하군 했어… 대학입시 합격통지서를 받던 날 동생은 이 형님을 붙안고 엉엉. 울었어. 비 내리는 날과 음침한 날이면 다리 통증이 심해지고 더우기 위병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해 관골이 무섭게 튀여나온 여윈 형님이 너무 불쌍해 보였기 때문이였어. ‘형님, 더는 일하마우, 난 아르바이트를 해서 얼마든지 대학공부를 할수 있으니…’ 동생은 대학을 가기 전날 밤 동창이 밝을 때까디 커다란 종이에 그림을 그렸어. 난 동생이 대학에 가니 흥분하여 잠이 안 와서 그러는가 여겼어. 그런데 그게 아니였어. 동생이 떠나고나서 며칠후에야 벽 가운데로 붙힌 그 그림이 나의 주의력을 끌줄이야. 아무리 봐도 그림의 제목이 이상했어. 가없이 넓은 풀밭과 풀을 뜯는 양 한마리 외에 아무런 내용도 없는 그림 아래로 ‘속죄’라는 두 글자가 씌여있었으니 말야. 제목이 ‘풀’이나 ‘풀을 뜯는 양’이면 몰라도 ‘속죄’라니… ‘속죄’면 어떻고 ‘양’이면 어떻다는 말인가. 그런데 누워도 앉아도 벽 한가운데 붙힌 그 그림에 시선이 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어. 그러노라니 언젠가부터 밥술만 떨어지면 발길이 풀밭으로 향해지는 걸 막을 수 없었어. 우울증까지 와 밤낮 널통같은 집에만 붙박혀만 있던 나는 풀밭과 강변을 돌아다니며 청신한 공기를 마시고 운동량도 저도 모르게 증가되여 밥맛이 돌고 위도 더는 아픈 줄 모르게 되였어. 매번 유유히 흐르는 홍기하 강변의 풀밭에 나가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들이 푸른 하늘에 흐르는 흰 구름송이들 처럼 느껴져서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어. 나는 차츰 어떤 아리숭한 철리가 내 머리에 들어오는 걸 느꼈어. 그런데 딱히 짚어서 무엇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더라고. 풀을 뜯는 한마리의 양은 동생같기도 하고 그 이슬 머금은 풀은 이 형님의 피땀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동생의 ‘속죄’는 형님에게 어떤 보람된 일이 나지도록 갚음이라도 하겠다는 뜻으로 쓴 ‘속죄’인지 모를 일이였어…
그러던 어느날, 나는 내가 풀밭에서 양몰이를 하는 꿈을 꾸고는 놀랐어. 마치 동생이 “형님, 양 두마리를 사서 길러요. 그게 몇년이 지나면 수십마리로 늘어날거야요. 돈이 있으면 가정도 이룰 수 있을거야요.” 라고 맣해오는 것 같았어… 양몰이 25 년 째인 쉰 살을 넘보던 어느 날, 벙어리 과부가 자진하여 내게로 시집을 왔는데 그 이듬해에 달덩이 같은 아들을 보았네. 나 지금 나이가 일흔하고 일곱이네만 아들은 대학 공부를 하구있지 뭔가!… 사람이 사는 비밀이 뭔줄 알어? 죽는 비밀이 절망이라면 사는 비밀은 정! 정이 드는 거라구! 난 풀, 똥과 정이 들었어. 왜 그렇게 보나? 난 양을 치지만 또 그 양똥으로 거름을 낸 파밭에서 해마다 몇만원씩의 수입을 거둔다네. 내 말을 너무 투박하게 듣지 말게나.”
“아, 똥!”
갑자기 고선생이 그렇게 비명처럼 소릴 질러버렸다. 그야말로 오래동안 긴 턴넬속을 헤매면서 찾던 엄마가 그린 “붉은 고추밭” 비밀이 드디여 풀린것이였다
6. 열쇠
고선생은 양몰이군 령감 앞에 허리 굽혀 인사를 올리기까지 했다. 그리고나서 집 쪽으로 정신없이 뛰여갔다. 마르고 여윈 몸이 풀줄기에 걸려 몇번이고 넘어지면서 달려가는 고선생의 뒤모습을 향해 양몰이군은 뭔가를 알았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벙그레 웃었다.
고선생은 오래만에 자기가 든 새집이 더욱 환해진 것 같았다. 흰 회칠을 올린 집 추녀아래로 어머니가 엮어 드리운 빨강 고추다래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였다. 고선생은 들판의 풀들이 양몰이군의 병을 뚝 떼고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들었다면 자기는 자기가 심어 가꾼 울의 붉은 고추밭이 자기의 우울증을 쫓고 건강한 삶을 되찾게 할 것이라는 걸 굳게 믿고있었다. 그렇다, 얼마나 쉬운 도리인가! 양이 풀을 먹고 싼 똥이 고추농사를 짓는데 비료가 된다. 저도모르게 고추농사를 짓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 때 땀을 뚝뚝 흘리는 로동은 건강으로 이끄는 약이 되여 밥맛을 돋우고 기운이 솟구치게 할것이 아닌가. 아! “풀과 똥!”, “고추와 똥!” 이렇게 쉬운 삶의 열쇠를 못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참으로 불쌍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이튿날 이른아침에 고선생은 집앞을 지나는 양몰이군령감을 붙잡고 물었다.
“령감님, 저 양똥을 사려는데 양똥 한근에 얼마씩 팝니까?”
“양똥을 사서 뭘하는데 쓰려구?”
“저의 집 울에 고추를 심으려구요.”
“고추를 심어? 허허. 거참 생각 잘 했어. 일에 재미를 붙히면 다 잘 될거여. 돈은 무슨 돈이람, 그저 가져다 비료로 쓰라구. 응? 그저. 허허허.”
소몰이군도 고선생에게 소똥을 맘대루 가져다 쓰라고 했다.
홍기하 물소리가 들리고 푸릇푸릇 진해가는 들녁이 시야로 안겨드는 도시 맨 끝으머리에 집들을 잡고 사는 그들이였다. 채소들을 심어야 하는 막바지 계절이라서 바쁜 시간에 쫓기는 고선생을 도와 양몰이군과 소몰이군이 짬짬히 도운 덕에 단 며칠만에 자갈들을 골라내고 양똥과 소똥을 뿌린 밭이랑을 짓는 일이 순조로이 끝났다. 그리고 고추모를 사다가 옮겨놓으니 집 뒤와 앞 울이 파랗게 고추밭이 되였다.
이제 고추밭이 붉어질 때까지 농사를 짓다보면 원망, 불평, 저주, 후회, 허욕… 들이 사라지고 식욕이 무지 당기는 건강체가 될 것이였다. 고선생은 비로소 엄마가 그린 그림의 주제가 “무병장수”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붉은 고추는 날아가는 새들도, 동물들도 먹지 않고 피하는 도고한 령물에 속한다! 무릇 고추를 먹는 사람들로 하여금 땀투성이로 만드는 붉은 고추, 붉은 고추가 던져주는 철리는 무엇일가? 땀 흘리며 고추를 먹는 사람들이 매운 맛을 들이고 식욕을 갖게 하는 것은 무릇 인생이란 땅과 귀결되여 있으며 땅에 정을 붙힐줄 아는 삶이야 말로 보람되다는 걸 알려주는 것일 것이다! 그런 도리를 깨닫게 한 어머니야 말로 이 세상 가장 선견지명이 뛰여난 위대한 분이 아니랴……
에필로그
고선생네 잎울 뒤울이 붉게 고추불길이 타오르던 가을의 어느 날, 한국에서 고선생의 안해가 왔다. 아들의 결혼식에 온 것이다… 십몇넌을 안해 없이 살아온 고선생이 기뻐한것은 말할것도 없다. 하지만 안해가 아들의 결혼식이 끝나는 대로 떠나겠다고 하는 걸 막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아들의 결혼식이 끝난지 열흘이 지나도 떠날념을 않는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언제 갔던가 싶게 아니, 쭉 자기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아기자기하게 살아온 것 처럼 고선생을 도와 고추를 따고 찾아드는 되거리 장사군들에게 고추도 팔면서 하루해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어디 그뿐인가. “당신…당신”하면서 고선생에게 달걀지짐도 해 주고 한국에서 배워왔다는 생선회도 곱게 떠서 저녁 술안주로 대접하면서 남편곁을 붙어다니는 게였다.
“한국에 안 갈 거요?” 고선생이 그간 한국에서 돈 버느라 바다바람에 주름이 거미줄처럼 얼기설기한 안해를 측은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순미를 따르려고 해요. 돈부자가 되려는 것도 안면을 따지는 것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도 다 자기 장식에 불과하지요. 10 억짜리 아파트를 가진 부자도, 서울시장도 부러워 하는 게 무병장수라는 당신의 말이 맞아요! 양몰이를 하고 살든 소몰이를 하고 살든간에 자기가 하는 일에 정을 느끼면 그게 곧 행복한 삶이 되는 것 아닐가요?…” ……
더욱 놀라운 일은 고선생이 붉은 고추밭 한가운데 음식상을 차리고 양몰이군과 소몰이군은 물론 고향친구들을 불러 석찬(夕餐)을 차린것이였다. 만찬의 주제는 “울 엄마 사진을 찾았어!”였다! 고선생의 어머니의 사진은 병풍가운데로 초상처럼 찍은 거폭의 사진으로 걸어놓았다. 흰 모시적삼에 베치마를 입은 녀인은 맨발 벗은 채로 붉은 고추밭 한가운데 서있었는데 바람결에 아미위로 검은 머리카락을 날리며 미소 짓는 약관의 모습은 소박하고 점직하면서 외유내강한 모습을 안겨주고 있었다. 익은 고추물이 든듯 량볼이 붉으므레 상기된 그 건강한 녀인의 모습이 그 얼마나 탐스럽고 아름다운지 몰랐다. 그때였다. 어려서부터 고선생과 한마을에서 자란 한 동료가 뭔가 발견하고 큰 소리로 웨쳤다.
“아니?! 저 초상 속의 녀인이 고선생의 안해의 얼굴이 아니오? 그렇다니깐! 대체…”거기까지 말하던 동료가 뒤늦게야 뭔가 낌새를 챘던가 자기의 입을 막고말았다. 고선생이 자기 안해의 처녀적 모습에 모시적삼과 베치마를 입은 것으로 어머니의 초상을 제작해낸 것이였다…
붉은 고추밭! 그 속에서 어머니는 하냥 웃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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