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조선어토의 활용
조선어의 미
리동혁
3. 조선어토의 활용
내가 조선한시들을 본격적으로 옮기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쥔 책은 《금강산한시집》이였다. 시의 소재들이 복잡하면 리해하고 번역하기 어렵기에 금강산이라는 풍경구역을 상대로 한 시들은 좀 쉽지 않겠느냐는 계산예서였다. 헌데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금강산에 가보지 못했으니 뭐가 뭔지 모르는 명칭과 말들이 적지 않았던것이다. 다행히도 같은 경물을 노래한 시들을 여러수 보면 대충 가늠할수 있어서 39날만에 310페지 되는 책에 실린 여러가지 형식의 수많은 시들을 죄다 옮겨보았다.
조선한시들을 옮기면서 제일 깊은 체험은 당시번역보다 훨씬 어렵다는것이였다. 잘 쓰이지 않는 한자들이 상당히 많은데다가 조선식한어들도 끼였고 어느 고장에 깃든 전설이나 옛일을 거든 작품들은 참고자료가 없는한 리해할수 없었다.
번역초기에 리조 중기의 문관 신석번(申硕蕃, 1596~ 1675)의 5언절구 한수를 옮기면서 깨달은바가 있었다. 제목은 “题万瀑洞(티완푸뚱, 만폭동에 씀)”.
책의 원문과 역문은 다음과 같다.
골깊은 만폭동
찾아와 보니
써놓은 글 많지마는
잘 쓴 글 없네
내 왔대도 신통한 말
찾을길 없어
이름석자 써놓고
돌아가노라 |
万瀑深深洞
从前善状稀
我来无好语
惟写姓名归
|
역문이 시행을 왜 그렇게 나눴는지 잘 모르겠는데 간결을 시번역의 제일원칙으로 삼는 나는 당연히 4· 4조로 옮기기 시작했다.
우선 “万瀑深深洞(완푸썬썬둥)”은 한시의 “측측평평측”을 지키느라고 “深深万瀑洞(썬썬완푸뚱)”이라는 뜻을 조절한것이니 번역에서는 실제 뜻으로 옮기면 된다. 원문에서 “深深”이라고 중복법을 썼으니 역문에서도 중복법을 쓰는게 저자의 의도에 어울린다. 그러면 “깊디깊은 만폭동에”라면 좋겠다.
6월 8일 아침에 이렇게 시작해서 몇번 고친 끝에 나온 역문은 다음과 같다.
깊디깊은 만폭동
에/ 좋은 글
이 드물더
니/ 신통한
말 나도 몰
라/ 이름 적고 돌아가
네.
진하게 표기한 부분들은 음악적효과를 노린 글자들이다.
조선어 “드물더니” 4글자로 “从前……稀(충첀… 씨, 전날에는 드물다)”는 뜻을 충분히 새길수 있는데 “더”는 한어의 “从前”뜻을 살린다. 게다가 “니”로 둘째구절과 아래구절들을 이어줄수 있으니 이는 한어시가 낳을수 없는 효과이다.
또 한어에서는 “我来……归(워라이… 꾸이)”로 내가 왔다가 돌아간다고 쓰는데서 글자가 3개만 들지만 조선어로 그런 뜻을 다 새기자면 너무 길어진다. 2011년 8월호 《연변문학》에 실린 “한역에서 끊어주기”에서 지적했다싶이 조선어사용자들은 시가를 감상할 때 기다리는 심리가 있다. 때문에 나중에 돌아간다는 말만 해도 왔었다는 뜻이 충분히 살아난다.
이 역문에서 내가 보탠것은 “나도”의 “도”뿐이다. 한어로는 “也(예)”자를 넣을 여지가 없어서 쓰지 않았으나 실제로 저자가 드러내고 싶은 뜻은 “나 역시”가 아니겠는가.
마지막 구절에서 이름을 쓴다는 말을 “쓰고”가 아니라 “적고”로 옮긴건 “적고”가 수량이 적다는 “적고”와 음이 같기에 앞의 “드물더니”와 어울려 미묘한 정서를 유발할수 있다고 보아서이다.
만약 “깊디깊은 만폭동에/ 좋은 글이 드물었네”라고 옮기면 어떻게 될가? 둘째구절에서 흐름이 툭 끊어져버린다. 조선어는 전형적인 교착어로서 토들이 명사, 동사, 형용사따위를 이어주어 말이 만들어진다.
이을수만 있으면 이어주라! 단단히 붙여줄수록 시구들이 혼일체를 이룬다! 이것이 만폭동시번역을 통해 얻어낸 소중한 결론이다.
얼마전 정인갑 선생은 리조란 말을 일본인들이 조선을 리씨의 왕조라 업수이여겨 낮추어 부른는 말을 한국인들이 줄곧 써오고 있다고 질타를 하더구만...
리조를 '조선'으로 하면 안되는 리유가 있나요?
아니면 멍청한 일부 한국인들을 흉내라도 내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