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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해남도의 명소들(3)
우리의 마지막 유람코스는 해남의 제일산이라는 동산령(东山岭)이란 산이다.동산령은 그리 크지도 않고 그리 높지도 않은 산이였지만 수려하고 웅위로와 보였다. 가이 드는《산은 높은데 있는것이 아니라 신선이 있어야 명산이고 물은 깊은데 있는것이 아니라 룡이 있어야 령험하다 (山不在高有仙则名, 水不在深有 龙则灵)》란 성구를 쓰면서 동산령의 유명함을 우리에게 선전하기 시작했는데 해남도에 유람오는 사람치고 이곳에 오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어어 이곳의 유람객은 천애해각의 두배가 된다는것이다.그것은 이곳이 동산이니 이곳에 오르면 동산 재기(东山再起)가 되기때문이란다.
우리일행을 인계받은 내부가이드는 산으로 오르며 동산령의 력사에 대해서 소개했 다. 동산령이 이름나기 시작한것은 남송때부터였다 한다.남송때 리강 (李纲)이란 사람이 항금명장인 악비를 두둔하다가 화를 입어 이곳으로 류배오게 되였는데 황제의 암매무능에 절망한 리강은 동산령(원래 이름은 필가산<笔架山))의 절에 출가하여 불문에 귀속하려 하였다.그런데 절의 주지가 그의 관상을 보고 불문의 사람이 아니고 오래지않아 동산에서 재기하여 크게 출세할것인즉 기다리라며 받아 주지 않았단다.과연 열흘째되는 날에 황제의 성지가 도착하고 그길로 조정에 입궐하여 4품 참장 (参将)으로부터 일약 일품 재상을 맡게 되였던것이다.이때로부터 동산재기 (东山再起) 라는 성구가 더 널리 쓰이게 되였다 한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리강을 기념하기 위해 리강이 머물었던 그 절자리에다 다시 큰절을 지었는데 조음사(潮音寺)라 이름지었다. 조음사는 력대로 내려오며 시종 향불이 끊어지지 않고 유명하였지만 개혁개방이후 더욱 유명하게 되였는바 그것은 불교가 국교로 되고있는 태국의 유명한 활불인 승왕(僧王)이 친히 와서 개광(开光) 하였다는것이다.그 활불이 개광한 곳은 전세계적으로 세곳밖에 없는데 두곳은 태국에 있고 한곳이 바로 이 조음사란다.그리고 개광할 때는 전국가부주석 영의인 (荣毅仁)의 아들이고 중국의 으뜸갑부인 영지건(荣智键)과 전군사위원회 부주석이였던 지호전(迟浩田)상장도 참석했다는것이다.그리고 해남도는 화교가 제일 많은 곳으로써 특히 석가모니탄생일같은 때는 참배하러 오는 화교가 너무 많아 국내인들은 아예 참배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는것이다.
과연 명산에 명찰(名刹)이렸다.정말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곳에 왔구나하고 모두들의 마음속은 행운스러움과 경의로움으로 부풀게 되였다.
우리를 인도하는 내부가이드는 스물대여섯되여보이는 청년인데 불문에 귀의 (皈依)하여 속가제자로 된지 5년이 된다고 한다.가이드는 아주 열정적이고 진솔해보여서 불가의 제자가 다르기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른 층계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가이드는 일찍 오기보다 면바로 와야 한다(来的早不如来的巧)고 하면서 오늘이 바로 관음보살의 탄생일(음력 2월1 9)이여서 여느때보다 사람이 많단다.올라가면서 가이드가 오른쪽으로 좀 먼곳에 개구리모양의 유명한 바위가 있다고 소개해서 바라보니 과연 앉은 개구리모양의 큰바위가 있었다.누군가 《홍루몽의 배경같다.》해서 찬찬히 보니 십여년전에 찍어 크게 인기를 누렸던 텔레비죤드라마 《홍루몽》의 자막의 바로 그 배경이 틀림없 었다.
과연 명산은 명산이렸다!
가이드는 또 올라간다음 조음사의 득도고승(得道高僧)들이 무상으로 점꽤를 해석해주고 관상,길흉화복을 보아주는데 용하다해서 감사의 뜻으로 돈을 주면은 모욕 하는것으로 되니 절대 돈을 줘서는 안된다고하면서 북경대학의 어느 교수의 례를 들어가며 신신당부를 한다.
오오 과연 인간세상의 정토(净土)로다!
조음사의 대문입구안에 들어서니 큰미륵불상이 모셔져있었는데 옆벽에는 개광때 찍은 태국의 승왕,영지건,지호전 등의 사진들이 걸려있었고 그 아래는 가치가 5억인민페가 된다는 오목(乌木)으로 조각한 18라한의 조각상이 사람들이 만져서 행운을 얻을수 있도록 맞춤하게 진렬되여있었다.
조음사안 정원에 들어서니 일요일장마당같이 붐비였는데 점괘를 뽑고 점괘해석지를 얻는 곳은 설기간 렬차출입구처럼 사람들이 땀을 철철 흘리며 밀고닥치고 하며 복새판이다.너무 밀치니 참을수 없었던지 토황색스님복을 입은 나이도 지긋하고 신분도 꽤 있어보이는 스님이 《밀치지 말어!》하고 버럭 성을 낸다.나는 득도고승이란게 어이하여 저리 참을성이 없을까 하고 좀 마뜩잖은 생각이 들었지만 인츰 그도 아직 속세인간인데 하고 리해의 마음을 갖는다.
관상을 보고 점괘를 해석하는 곳은 옆사랑채인데 가이드가 말한 득도고승 일여 덟명이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을 상대하여 하나하나 접대하고있었다.그런데 득도고 승들은 거의가 삼사십쯤 되여보이는 젊은 스님들이였다.내 상상속의 득도고승은 나이 도 지긋하고 은빛수염을 흩날리며 속세를 초탈한듯한 선풍도골(仙风道骨)의 모습을 한 형상이였는데 이 고승들은 옷도 암회색의 보통스님옷을 입고 기질도 뛰여난데 없는데다가 좀 경박하게 눈을 두리번거리며 때로는 녀유람객들에게 귀속말도 하고 하는것이 어쩐지 많이 실망이 갔다.하지만 원체 심히 경건한 마음을 품었던지라 부처님을 노엽힐가봐 애써 실망의 마음을 누른다.
두번째줄에 섰기에 두번째스님이 나를 보아주었는데 두루두루 좀 맞는것 같았다.밖에 향을 올리는데 가서 고향(高香)을 올린후 다시 오라해서 향을 올리는데 가니 향은 세가지 종류가 있었다.평향(平香)은 10원,중향(中香)은 100원, 고향 (高香)은 160원이란다.고향은 아무에게나 차례지는것이 아니라 했는데 내게 차려졌으니 별로 잘난것처럼 생각되며 어깨가 좀 으쓱해졌다.올라올쩍에 가이드가 향돈얘기를 피뜩 했는데 모두 재해지구에 기증한다했다.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부조한 셈치고 돈을 내고 엄지만큼 굵고 한발이나 되는 향 세대를 받은후 불을 붙이고 합례한후 향로에 꽂았다.사모무대방정을 열개쯤 한데 붙여놓은것 같은 향로에는 향들이 수수대처럼 빼곡히 꽂혀있었고 울안은 불난집처럼짙은 연기가 꽉 차서 하늘로 서서히 피여오 르고있었는데 그야말로 향불이 왕성하다(香火旺) 하겠다.
향을 파는데서 준 초대같은것을 되돌아가서 나를 보아준 스님에게 주었더니 스님은 기린이 그려진 종이장을 주면서 가서 기린을 모시면 모든일이 다 잘될거 란다.밖을 나오니 가이드가 내손의 종이장을 보고 나를 안내하여 건너사랑채로 안내 하였다.공예품같은것을 진렬해놓은 매대뒤에는 역시 속가제자인듯한 녀성이 여럿 서있었는데 종이장을 건네주라해서 건네주니 나무기린이 없어서 금기린을 주니 사백오십원을 내란다!또 돈을 내라다니.나는 속이 좀 섬뜩하였다.사기의 함정으로 빠져드는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피뜩 뇌리를 쳤다.또 이곳은 마지막 코스라 가져온 돈도 다 써가고있었던것이다.내가 좀 주춤하니 《잃는것이 없으면 얻는것도 없습니다! (不失则不得)》하고 그 녀자가 말했다.내가 어색해하며 정말 없다고 하자 그럼 나무기린을 줄태니 2백원을 내란다.금방 나무기린이 없다고 해놓고는 나무기린을 주겠단다.(줄가?어쩔가?)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계속 없다고 했다.《불가는 거짓말을 안합니다!(佛家不讲谎言)》하고 그 녀자는 좋지 않아하며 매섭게 쐐기를 박는다.나는 속이 뜨끔했다.기실 내호주머니를 다 털면 2백원은 있었던것이다.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견결히 없다고 했다.그러자 그녀인은 그러면 나가라 하는것이였다.나오며 보니 집안에는 적지 않은 유람객들이 있었다.
밖으로 나온 나는 속이 좀 찜찜했다.내가 정말 대자대비한 부처님에 대해 성의가 모자라지않나 하고 량심적 가책도 느껴본다.
사람들은 계속 밀고닥치며 점괘를 뽑았고 득도고승들앞에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의 대오는 줄어들줄 몰랐다.
터벅터벅 산에서 내려오면서 나는 좀 후회되는 마음도 들었다.두번 다시 오기 어려운 이 유명한 곳에 와서 불사(佛事)를 끝맸지 못했으니 얼마나 유감스러운가.하지만 나의 불교에 대한 인식으로 이곳의 소행들을 검토해보면은 이곳의 모든것이 군생을 제도하는 불교의 본의와는 어긋나게 순전히 돈벌이를 위해 돌아가는 사기극이 아니냐하는 생각을 뿌리칠수가 없었다.
불교에 대해 좀 말해보자. 불교는 기원전 5세기경에 인도에서 산생되였는데 그 창시자는 고다마 싯다르타(각자(觉者),성자라는 뜻에서 존칭으로 석가모니 <释迦牟 尼>라 부름)이다.그는 원래 인도의 왕자인데 이세상의 군생들을 륙도륜회(六道 轮回)의 고난에서 영원히 해탈시키기 위해 결연히 부귀향락의 생활을 버리고 왕국을 떠나 수년을 갖은 고생을 겪으며 탐색하며 수련하다가 보제수(菩提树)아래 칠칠사십구일을 좌선한후 크게 깨달아(大彻大悟) 즉석에서 부처가 되고 그법을 세상에 널리 전수하기 시작했던것이다.수련방법은 계(戒)를 행위규칙으로 삼고 집착심을 버리며 공의 마음으로 층차를 제고하여 우선 자신이 정과(正果)를 얻고 그다음 군생들을 제도하는것이다.때문에 수련자에게 있어서는 몸가릴 옷만 있으면 되였고 굶주림을 달랠 동냥밥만 있으면 족했다. 인간세상의 부귀영화나 명리같은것은 분토같은것이 되여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이 동산령의 조음사는 어떠한가?마치 돈찍는 공장같이 돌아가고있지 않는가? 스님들은 모두 돈찍는 공정사가 되여서말이다.따져보라.해남도에 유람오는 유람객이 하루에 6,7 만에 이른다. 그 사람들이 거의 이 동산령에 올것이고 또 부자들이나 돈있는 화교들은 가난한 선비인 나처럼 째째하게 놀지 않을것인즉 그 향돈만해도 어마어마한 천문수치가 되는것이다.정말 그들의 말처럼 모은 돈을 자선사업에 쓰는지?듣자니 요즘 어떤 스님들은 벤츠를 타고 오성급호텔에 들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대부자라는데 이 동산령의 스님들이 그 부류에 속하는 스님들이 아닌지?
에라,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렸다.덕(德)과 업(业)은 쌓은대로 갈것인즉 구중천에 계시는 부처님께서 속속들이 내려다보시고 옳고그름을 낱낱이 가리시겠지.
차에 앉아 떠나며 동산령을 되돌아보니 유람객들은 끈임없이 개미떼처럼 올라가 고있었고 조음사에서 피여오르는 향불의 연기는 하늘을 태울듯 뭉게뭉게 타래쳐 오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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