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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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자리"
2008년 08월 06일 23시 23분  조회:4342  추천:105  작성자: 려호길

요즘 서울의 중국동포문인들이 자주 가는 곳이 있다. 그곳이 다름 아닌 ‘노무현 자리’이다. 풀어 쓰면 ‘노무현이 앉았던 자리’ ‘노무현이 머물렀던 자리’이다. 노무현이 임기 중 앉았던 자리, 머물렀던 자리가 얼마나 많으랴만 중국동포가 운영하는 식당에 앉았던 ‘자리’는 중국동포들에게 있어서 각별한 자리임에 틀림없다.

그 자리를 탐낸 지 오래지만 나는 아직 그 자리에 앉아 보지 못했다. 그건 중국동포문인들이 모일 때마다 고향과 한국의 귀한 손님들을 배동하기 때문이다. 그 귀빈들을 당연히 ‘노무현 자리’에 모시고 나면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라보기’를 하고 ‘바라는 눈길’은 받아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

(남들 없을 때 가야지.)

휴일 날 홀로 식당을 찾아 떠났다. 인천에서 용산급행에 몸을 실으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웬만해서는 눈시울을 적시는 법이 없는 나지만 외롭고 괴롭던 한국생활에 마음이 엷어져 인젠 자주 눈물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조그마한 일에도 자주 감동을 받고 가슴을 들먹인다. 하긴 못사는 나라동포로 차별을 받다가 해빙기를 맞아 오늘날 방문취업제로 어깨 펴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중국동포로 거듭나기까지는 중국동포들의 절절한 애원과 동포애를 지닌 한국인들의 피타는 노력이 동반한 역사였다. 그 암울한 역사의 끝자락에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나서서 동포들의 한을 풀어주고 더불어 살아가는 대한민국으로 거듭났다. 하여 노무현전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이다.

신도림역에서 2호선을 기다리노라니 다시 감동이 온 몸을 전율한다. 2004년 당시 5700명에 달하는 중국동포들이 강제추방을 반대해 ‘고향에 돌아와 살기’라는 슬로건을 내 걸고 단식농성에 들어가던 그 나날들은 재한중국동포들이 실망으로 눈물짓던 시기였다. 그 때 서울조선족교회 단식농성장의 침울한 공기는 여기 신도림에서도 맡을 수 있었다. 김빠진 공 같고 삶아놓은 시래기같이 여기저기 널 부러진 농성자들이 이제나 저제나 하고 한국정부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가슴이 후둑후둑 뛴다. 마치 노무현전대통령의 집무실에 접근하는 기분이다. 신발을 벗기 바쁘게 미닫이문을 열고 곧장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노무현대통령이 앉았다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누구한테 사양할 일도 없다. 누구 눈치를 볼 일도 없다.

뒤미처 홀써빙이 쫓아왔다.

“물 냉 하나요.”

“저.......” 아가씨는 냉면 한 그릇 먹자고 안방까지 들어오나 하는 고까운 눈치였다. 나는 연변말로 “그럴 일이 좀 있소”하고 밀막아 버렸다. 아가씨가 나가자 나는 다시 자세를 고치고 앉았다. 누구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없다. 노무현전대통령이 왔을 때는 경호원들로 둘러졌을 방 주변에는 고향에서 맡던 음식냄새만 짙게 풍긴다. 2평 남짓한 작은 방에 네모난 나무식탁이 가운데를 점하고 ‘노무현 자리’옆에는 빨강방석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나는 노무현대통령이 이곳 중국동포식당에 왜 왔는지 모른다. 부근의 조선족교회단식농성장을 방문한 것은 오전시간이었다. 오전시간에 특별히 식당에 들릴 이유가 없다. 그럼 식사가 아니고 다른 일로 혹은 다른 시간에 찾았던 것일까. 나는 안면 있는 식당주인을 불러 문의해 보니 “글세, 왔다갔소.”라고 짤막히 대답할 뿐 자세한 사연은 회피하는 것이다. 주인은 소문을 내지 않는 것이 자기를 돕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것이었다.

나는 ‘노무현 자리’로 족했다. 이 자리에 앉아보고 싶어 특별히 인천에서 찾아온 것이 아닌가. 방바닥이 차츰 따스해 나기 시작했다. 노무현대통령이 서울조선족교회단식농성장을 찾았을 때는 국내적으로 여기저기에서 파업이 단행되어 참여정부가 엄청 곤혹스러운 시기였다. 거기다 불법체류 중국동포들이 단속 기일을 하루 앞두고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농성을 벌리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출하고 서울조선족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에 나뉘어 단식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 어려운 시국에 불법체류 중국동포들에게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란 결코 용의한 일이 아니었다.

노무현대통령은 저 만주에서 말달리던 겨레들의 말발굽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만주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이제 뒤늦게 찾아온 그들 후손들을 강제추방으로 몰아낼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내친걸음이었을 것이다.

“맞고요. 맞고말고요.”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중국동포들은 그 경산도 입말을 자주 흉내 내곤 하였다. 그러면서 터프하면서도 따뜻한 심성을 지닌 노무현대통령을 각별히 좋아했다. 조선족교회강단에 나타난 노무현대통령을 보고 동포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드디어 단식농성이 풀리고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보안대책으로 재입국정책이 나오고 방문취업제가 도입되면서 불법체류자들을 비롯한 중국동포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노무현 자리’에 앉아서 냉면을 후룩후룩 집어넣는 내 눈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이것이 중국동포들이 고국 땅에서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고 싶다. 지난날 이 아름다운 강산에 걸맞지 않은 차디찬 시선들, 성에 같은 음성들이 이제는 사라지고 있다. 그 아픈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고국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해외동포로 살아가는 길만이 재한중국동포사회를 기다리고 있다.

2008년 7월 13일 인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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