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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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의 세계에서 종횡무진하는 시
2018년 05월 01일 14시 35분  조회:2632  추천:1  작성자: 박문희

판타지의 세계에서 종횡무진하는 시

 

ㅡ박문희 시세계, 겸하여 하이퍼시를 말하다

 


1. 창작과 리론을 병진하는 시인  

여기, 한 시인이 있다. 바로 고희를 앞두고 첫 하이퍼시집을 내놓은 오늘의 출간기념식 주인공 박문희 시인이다. 나는 박문희 시인이 문학공부 일년만에 하이퍼시집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거야말로 대서특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퍼시를 시를 쓰고 있는 대부분의 시인들은 이전부터 동시도 쓰고 성인시도 써왔던, 이른바 기성시인들이였다. 그런데 박문희 시인은 아예 하이퍼시로부터 발자국을 뗐다. 우리가 시집의 출간을 두고 경이로와 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점이다. 필자는 박문희 시인과는 안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해서부터 알게 되였다. 그는 자신은 하이퍼시에 흥취를 갖고 있다고 하면서 가끔 자기가 쓴 시들을 보여주었고 조언을 바랐다. 그의 시심을 깨워준 사람이 최룡관 시인이다. 필자는 그가 시집을 펴내기 전에 이미 원고를 보았다. 나는 그의 시들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나이치고는 너무나 아방가르드적인 사유를 갖고 있는 분이였기 때문이다. 시집 원고《강천 여행 떠난 바람 이야기》(이하 략칭《이야기》)를 보고서는 더욱 놀랐다. 시 공부 일년만에 시집 한권을 내놓다니......이것은 우리 시단의 축복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경이로움을 두 번 맛보았다. 다른 한분은 고희를 눈앞에 두고 문학을 시작했던 방산옥 시인이다. 그분 역시 최룡관 시인의 계발과 지도를 받고 등단한 시인이다. 나는 이 자리를 빌어 유능한 제자를 배양한  최룡관 시인에게 감사를 드린다.

또 하나 필자가 박문희 시인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시인이 시 창작 초기부터 리론과 창작을 병진시키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데 있다. 이것은 엄청난 일이다. 우리 시단에서 시 리론과 시 창작을 함께 하고 있는 시인이 과연 몇이 되는가. 고 한춘 시인과 고 김파 시인, 그리고 최룡관 시인이 리론과 창작을 병진하는 시인들이였고 그 외에는 별로 없었다. 헌데 문득 시단에 깜짝 초입한 박문희 시인이 언감생심 리론과 창작의 병진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에 <무의식과 하이퍼시 창작>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무의식ㅡ깊은 바닷물속의 거대빙산>,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너머의 미지의 정신세계>, <무의식의 두가지 층ㅡ‘개인적 무의식’과 ‘집단적 무의식’>, <의식의 뿌리, 정신생활의 원천, 창조의 샘>, <맹목락관을 가로막는 언덕>, 시 창작 원천으로서의 무의식에 대한 인식작업>, <무의식세계의 발굴>, <영감과 주의력>, <무의식의 세계를 의식적 창작의  세계로 비약시키는 작업>, <상상력,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운동>, <이른 바의 합리적인 사고체계와 자아의식 범람의 거세> 등으로 나누어 무의식과 하이퍼시의 창작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중에서 한 구절만 인용해보기로 한다.  

“무의식의 발견은 당시에, 인간이 모든 행동을 자신의 의지와 의식하에 하여야 한다는 기존의 상식을 여지없이 깨버려 철학의 기반 전체를 흔들어버렸다. 특히 우리의 의식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대개의 모든 상념과 기억들은 저 깊은 바닷물속의 빙산처럼 무의 식속에 깊이깊이 내장되여 있으며 그러나‘무의식’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인간의 의식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일상사례를 통해 증명되였을 때 그것이 서방 철학계와 기타 모든 학술계에 가져다 준 충격은 과시 원자탄 폭격에 못지않은 것이였다.” (박문희, <무의식과 하이퍼시 창작>)

이 글을 읽어보면 본인의 리론보다는 주요하게는 칼 융 등의 무의식리론을 소개하는 쪽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한가지 부언할 것이 있다. 한국의 하이퍼시인들 중에 리론과 창작을 병진하는 시인들이 많다. 그들은 자기 리론의 신빙성과 정당성 내지 확고성을 목적으로 어떤 리론을 제기할 때 그 론거로 자신의 창작한 시를 례로 든다. 례하면 문덕수, 심상운, 오지현, 최지현, 이선, 이영지 등이다. 이것은 우리가 따라배워야 할 바라고 생각한다. 하이퍼시는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라 한창 진행중에 있다. 그러므로 하이퍼시에 대한 연구는 계속 진행되여야 한다. 이런 연고로 한국의 하이퍼시인들은 어떻게 하면 하이퍼시를 더 잘 쓸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의 승인을 받겠는가에 신경을 돋구고 새로운 리론의 탐구에 전력하고 있다. 그리고 하이퍼시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부동한 의견을 가지고 론쟁을 벌리기도 한다. 론쟁이 없이 이미 주어진 코스ㅡ탈관념, 무의미, 초월, 낯설기화, 다선구조, 이미지집합, 횡적구성 등으로만 나아간다면 시들 사이의 변별성이 없어지고 모든 시가 십시일반으로 비슷한 몰골이 될 우려가 있다. 우리의 하이퍼시들을 보면 별로 론쟁도 없고 자기의 리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아 조금은 유감스럽다.

이런 현상에 비해 자기 나름대로의 리론을 세워가면서 하이퍼시를 쓰고 싶어하는 박문희 시인의 거동이야말로 참으로 소중하고 따라서 하이퍼시를 쓰는 시인들뿐 아니라 우리 모든 시인들의 귀감으로 되지 않을가고 생각해본다.

《이야기》세계를 잠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야기》의 서평 <참신하고 신비한 가상세계>에서 최룡관 시인이 박문희 시가 갖고 있는 특성과 가치를 아주 깔끔하고 치밀하게 개괄하고 분석하였기에 사실은 할 말이 크게 없다. 본고에서는 다만 보충작업으로 주로 판타지와 디자인문제를 가지고 박문희 시에 관해 옅은 견해를 피력하고저 한다.

2. 거대한 판타지의 세계  

심상운은 2016년 최근에 《하이퍼시 3》발간사에서 “상상은 類推의 끈을 매달고 있지만 공상은 류추의 끈을 끊어버리고 무한한 미지의 령역으로 시인과 독자를 안내한다. (밑줄은 필자의 것) 그래서 하이퍼시는 현실적인 공간의 질서에서 해방된 상상과 공상의 세계를 시에 담아보려는 언어작업의 예술적 산물이다. 따라서 그 새로운 이미지의 공간은 현실과의 만남에서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 자률적이고 창의적인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대시로서의 가치(밑줄은 필자의 것)를 지닌다”고 말하였다.  

《이야기》의 세계가 바로 상상이나 공상에서 비롯된, 창의적인 세계이며 아주 환상적인 가상현실이다. 심상운은 여기서 아주 분명하게 하이퍼시를 현대시의 류개념이 아니라 종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이퍼시는 현대시의 우에 군림하는 존재인 것이 아니라 현대시의 새로운 한 갈래인 것이다. 적지 않은 하이퍼시인들이 하이퍼시를 현대시의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야기》에 들어가 보면 거개가 거대한 판타지로 되여있다. 판타지는 상상력의 확장을 떠나서 있을 수 없다. 하이퍼시에서 상상력의 확장을 주창한 사람이 이선이다. 그는 상상력의 확장을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 상상력의 순간이동으로 나누고 있다. 판타지가 상상력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상상력의 확장도 판타지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판타지와 상상, 이들 둘의 관계는 서로가 대방을 산생시키는 원인이 되고 결과로 되는 관계로서 상상을 통해 판타지가 생기고 판타지를 통해 상상이 생긴다. 다른 점은 상상은 류추의 끈이 있지만 판타지는 류추의 끈이 없다는데 있다.

하이퍼시의 특성의 하나가 상상력의 확장이 되겠지만 박문희 시에서 특히 환타지가 시의 기본수법으로 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우선 시제 《강천 여행 떠난 바람 이야기》부터 공상적이고 환상적이다. 이 시제에는 세가지 뜻이 담겨져 있다. 1. ‘강천여행’에는 무한히 광활한 공간이 제시되여 있고 2. ‘떠난’에는 상상력의 공간 이동이 암시되여 있으며 3. ‘바람이야기’에는 황당성과 과장이 앉아있다.  

몇수 살펴보기로 한다.    

보름달을 뚝 따다 상우에 걸어 놓고

녹쓸지 않은 개구리 합창 들으며

손주놈 도화지에 그림 그린다

세발 가진 예쁜 새 그린다

  

꼬맹이 고추 쳐들고 따발총 갈길 때

삼족의 새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온 동리가 횃불 되어 찾아 나섰다

우물 속에 빠졌나? 잔솔밭에 숨었나?

 

불현듯 저어기 밤하늘 쳐다보니

촐랑촐랑 흐르는 은하수 날으며

반짝이는 별들을 쪼아먹고 있었다

바구니에 큰 별을 주어 담고 있었다

 

 ㅡ<삼족오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아주 환상적이고 동화적이고 황당하다. 하늘이라는 공간과 땅이라는 공간이 겹쳐지고 있으며 그 속에서 엉뚱한 이미지들이 탄생한다. 1련에서는 그림으로서의 새가 만들어지고 2련에서는 살아있는 새가 만들어지고 3련에서는 땅에서 하늘로 날아올라 별을 쪼아먹고 큰 별을 줏는 새로 만들어진다. 순식간에 집으로부터 하늘로 공간이 확장되면서 미묘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우리 동네에 호수가 숱해 생겼다

호수에는 잉어, 붕어, 초어와

정의의 비수, 간교한 사기술

그리고 우주의 게임과 재밌는 현대신화들이

홀딱 벗고 자맥질한다

미니드론 타고 바다 자궁도 구경하고

은하수에 가서 낚시질도 한다

 

상냥한 상어 데리고 놀았다

코와 귀와 고추를 먹혔다

도망을 치다가 발가락을 뜯겼다

엉덩이 반쪽도 상납했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 구명대 하나

사 가지고 야반도주했다

쑤욱 시원히 빠져나왔다

 

ㅡ<핸드폰> 전문

이 시는 의식의 흐름, 무의식에 뿌리를 둔 판타지이다. 이 시는 꿈처럼 만들어졌다. 핸드폰만이 현실적인 것이고 그 외는 다 환상적이고 공상적이다. ‘은하수에 가서 별 낚시’를 하고 ‘돌고래와 함께 헤염을 치고’, ‘상어한테 코와 귀와 고추와 엉덩이를 먹’히면서 갖은 고통을 겪다가 구명대 하나를 사 가지고 야반도주했다는 이야기는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미묘하고 사이비한 것이 꿈이고 따라서 답이 없고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꿈이다.  

 <거룩한 식객>도 거대한 판타지의 세계로 만들어진 시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환상과 과장의 수법으로 오염으로 인기된 자연의 피해, 황사의 페단을 고발하고 있다. 이 시는 우에 렬거한 시들보다 더 엄청난 환상의 세계이다. 이 시에서 가상현실인 에덴동산은 사실은 현실세계와 겹쳐지기도 한다. 오늘의 세계는 물질문명의 폭압으로 자연이 엄중히 파괴되고 있다. 수많은 물종이 사라지고 있으며 삼림의 란벌로 생태계가 강간을 당하여 오존과 황사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시인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어제 이빨 좋으신 손님 한 분 찾아와

에덴동산을 잡수셨다

은빛 번뜩이는 귀중한 이빨로 

앞동산 큰 키 나무숲과

뒤동산 작은 키 나무숲을 

차례로 다 잡수시고 

고소한 흑토 짭짤한 백사장은

복판으로 흐르는 강물에 말아

맛나게 잡수셨다.

이 구절은 환상과 아이러니와 과장이 어울려져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보복이 얼마나 엄청난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이 시는 완전한 하이퍼시는 아니다. 하이퍼시에서는 이질적인 이미지들의 병렬적인 라렬임에 반해 이 시에서는 련이어지는 이미지들이 모두 뒤따라 나오는 시구, 잡수셨다, 너무 많이 잡수셨기에 곰바위가 이빨에 끼였고 낀 것을 빼니 이빨에 구멍이 뚫렸으며 식객에 의해 에덴동산이 망했기 때문에 돌고래, 호랑나비와 고추잠자리네 가족이 개암나무에 목을 매게 되며 그리고 ‘파랑새부부’, ‘다람쥐네 형제’가 이사를 가게 된다. 다시 말하면 매개의 이미지들은 류추가 가능하고 인과적 관계를 맺고 있다.

판타지로 만들어진 박문희의 시들에는 아주 멋진 구절들이 적지 않다. 례하면 <아득한 편지>의 마지막 련 ‘깡마른 꽃가지 초리끝에/가녀린 상념이/아슬아슬하게 매달린다’, 시집의 마지막 시 <봄은 꼬리 물고 찾아온다>에서의 마지막 련 ‘구겨진 햇살 살며시 들고/종알대는 개울물 들여다보는데/사시 륜회의 동음이/치마폭 날리며 달려오누나’와 같은 시구들은 과시 명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3. 하이퍼시에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한 리유  

우리의 대부분의 하이퍼시들은 너무나 탈관념, 뛰여넘기, 초월화, 무의식, 이질적인 이미지집합, 다선구조 등에 치우치다보니 몰골이 비슷한 점이 많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우리의 하이퍼시가 공식화, 도식화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술에는 정해진 공식이나 도식이 있어서는 안 되며 또 있을 수도 없다. 이런 연고로 한국의 하이퍼시클럽에서는 적지 않은 시인들이 하이퍼시에 새로운 디자인을 하여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물의에 오르고 있는 것이 탈관념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일정한 관념이입을 하자는 주장이고 사실상 그러한 주장이 실천으로 옮겨지고 있다. 례하면 리선의 시 (<귀속말하기>, 부제 <ㅡ때 장소, 시간, 그리고??>)이다, 한구절만 보기로 하자.

나뭇잎은 하늘을 한입 베여물고

파랗게 멍든 입술로 벙긋거린다('후욱 불어버릴가?'ㅡ귀속말로)

이런 표현은 기막히게 좋아서 기막히게 칭찬해주고 싶다. 이 구절에는 분명하게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자는 작자의 의도가 설명이 아닌 감각으로 인지되고 있다. 이 시는 디자인을 바꾼 시이다.

시인은 새로운 형식의 하이퍼시를 창작한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필자의 졸시 <귀속말하기>는 시의 디자인을 바꾸고자 고민한 시다. 하이퍼시가 무의미한 단어들의 조합이나 련과 련의 독립된 단절만 추구한다면 똑 같은 이미지와 형식의 시들이 량산될 것이다. 의미추구의 시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쉽게 쓸 수 있다. 아무렇게나 단어를 던지기만 하면 하이퍼시가 된다면 말이다. 개성을 추구하다가 비개성적인 작품들만 량산될 수 있다. 하이퍼시는 이름만 가리면 누구 시인지 모른다는  비난을 듣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이퍼시가 살아남기 우해서는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리선)

필자가 생각하건대 ‘시스템의 변화’가 바로 새로운 디자인일 것이다. 필자는 박문희의 시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수놓은 시들을 두루 보아냈다.

<봉황새>는 시의 탄생을 환상적으로 그리면서도 디자인을 가미한 유정서적인 시가 아닐가고 생각해본다.

약탕관에 오가잡탕 정히 달인다

해와 달의 폭포수에 약주 달인다

 

공룡의 비늘, 기린의 뿔, 삼족어의 발톱에

가스통 바슐라르,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문덕수의 시론에 

류협의 <문심조룡>도 털어놓고 달인다

 

한가위 눈부신 은쟁반 위에서

봉황새 한 마리 포르르 춤춘다

하이퍼시에서는 이미지들이 이질적일수록 좋다. 해와 달에게 폭포수가 있다는 표현은 대단히 엉뚱한 표현이다. 시인은 옹군 우주를 약탕관에 밀어놓고 달인다. 약탕관 안에는 력사와 전설(공룡의 비늘, 기린의 뿔)이 있고 철학(가스통과 아리스토텔레스)이 있고 현대문학(문덕수시론)이 있고 고전문학(문심조룡)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달인 약을 먹으니 은쟁반에서 봉황새가 태여난다. 박문희 시인은 이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시를 제대로 쓰자면, 훌륭한 시를 쓰자면 력사도 알아야 되고 철학도 알아야 되고 현대리론도 알아야 하고 고전문학리론도 배워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 두 련에는 새것의 탄생을 자축하는 시인의 기쁜 정서가 아련히 어려 있다. 심상문의 말대로 한다면 하면 지장수처럼 흐르는 관념이 체현되여 있다. 시인은 극력 탈관념, 무의식의 세계에 안주하려고 애썼으나 알게 모르게 자기의 감정이 체현된 것 같다. 현실이 비희고락으로 엉켜진 조합체의 덩어리이고 인간 자체가 육정칠욕을 가진 동물일진대 철저히 감정을 배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거나 지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고로 한국의 심상운, 리선, 이영지, 최지연 등 하이퍼 시인들은 비록 하이퍼시의 특징이 자유방임이고 애매모호함에 있지만 절대적인 탈관념을 반대하고 어느 정도의 관념을 주입시키려고 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들 하고 있다.

박문희의 <중국화>도 역시 감정이라는 색채가 묻어있는 시라고 보아진다.

개나리 화사한

선경대 벼랑 가에서

붓대 타고 계곡 내리다가

머루넝쿨에 걸렸다

머루 한알 따 먹고

잎 한잎 머리에 쓰고

넝쿨에 퍼더리고 앉아

주르륵 미끄럼질했다

빠알간 노을을 등에 업고

코스모스와 들국화 길섶에서

놀고 있었다

 

붓자루 마디에

빨간 잎이 생긋 피여난다

이 시는 한폭의 수채화를 방불케 한다. 상상을 통한 공간 이동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나중에 생뚱같이 ‘붓자루 마디에/빨간 잎이 생긋 피여난다’는 결미가 나타난다. 이 구절은 과시 명구이다. 독단일지 모르겠지만 시인은 표제를 <중국화>라고 달았지만, 내용을 보면 선경대의 아름다움에 취해 시인이 저도 몰래 시상을 무르익히는 과정과 마침내 시를 완성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필자는 류협이 말하는 隱과 秀를  떠올렸다.

“인간의 마음의 움직임은 지극히 먼 곳까지 닿아있고 문학적 정서의 변화는 지극히 깊은 곳을 드러내게 하는바 원천(源泉)이 심원(深遠)해야 지류가 생겨나고 뿌리가 깊고도 넓게 뻗어야 가지와 잎사귀들이 높고도 무성하게 자랄 수 있다. 그러므로 문학작품들 가운데서 정화(精華)라고 꼽힐만한 명작들에서는 모두 은(隱)과 수(秀)가 있기 마련이다. 은(隱)이란 글 밖에 있는 함축된‘말 밖의 뜻(言外之意)’을 지칭하며 수(秀)란 작품 안에서 가장 두드러진 말을 의미한다.‘은’은 文面에 드러나지 않은 의미와 복잡함과 미묘함을 통해 그 섬세함을 획득하고,‘수’는 한 작품 안에서 여타 다른 부분들과 비교되는 특출함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류협, «문심조룡», 제40장 <隱秀>)

모든 문학작품에 ‘은’과 ‘수’가 있어야겠지만 함축을 고도로 중시하는 시 작품일 경우 그것이 더더욱 중요한바 ‘은’과 ‘수’가 없는 시는 사실상 시가 아니다. 상술한 시에서 머루를 먹고 머루잎을 쓰고 머루넝쿨을 타고 골짜기를 내려올 올 때 코스모스와 들국화가 노을을 등에 업고 놀고 있었다는 것은 글안의 내용일 것이고 시인의 진정한 의도가 착상과정이라는 것이 곧 ‘은’으로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두 구절이 ‘수’일 것이다. 마지막 두 구절에는 시의 완성에 희열을 느끼는 시인의 감정이 다소곳이 서있다. 즉 희열이라는 다자인이 자연스럽게 입혀진 것이다.

하이퍼시에 새로운 디자인을 주문하는 것은 시의 소통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 하이퍼시의 코기러기라고 할 수 있는 심상운은 시의 소통을 가지고 무던히 고민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퍼시에서 기존관념의 해체와 단절은 시의 공간을 확대하고 시적 령감의 원천이 되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하여도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서 극복하여야 할 과제가 남는다. 그래서 기존관념의 해체와 단절을 소통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기법으로 하이퍼시는 다선구조 속에현실과 초월의 결합’이라는 구조를 정립하였으며 서사적 이미지 속에 의식과 무의식의 자연스러운‘합성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하이퍼시가 의식의 흐름 속에서 발생하는 덩어리이지만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과 초월, 이질적이고 단편적인 이미지들의 합성을 계기로 새로 열리는 의미의 공간은 기존의 시와 차별화를 이루는 바탕이 되고 독자들에게 즐거움도 안겨주는 시적 소통의 공간이 되고 있다.”(<하이퍼시 3집> 발간사, 심상운, 2016년 7월)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필자가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은 우리가 많이 사고해야 할 문제라고 의식된다.

하이퍼시는 하이퍼성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기법을 가지게 된다. 이런 여러가지 기법들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서로 얽혀있으며 또 어느 한 사람에 의해 규정된 것이 아니라 하이퍼시를 쓰는 시인들이 창작실험과정에서 점차 발견하고 보완한 것들의 총체적인 산물이다. 례하면 하이퍼시리론의 근본 바탕이 되는 초월과 뛰여넘기가 있기에 낯설기화나 탈관념, 다선구조, 이미지들의 병렬적 배합이나 횡적 구성, 이미지집합 가상현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이 가능해진다.

나는 하이퍼시의 한 독자로서 박문희 선생을 비롯하여 하퍼시에 정진하고 있는 분들께 다음과 같은 문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싶다. 우리 하이퍼시가 기본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탈관념, 낯설기화, 이질적인 이미지들의 집합, 성질이 다른 이미지들의 횡렬적 배치, 그리고 련마다 생소한 이미지들이 있어야 하고 심지어 행마다 성질이 다른 이질적인 이미지들이 놓여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는 결코 틀리는 말은 아니다. 다만 생산되여 나오는 이질적인 이미지들이 과연 얼마만한 가치를 갖느냐 하는 약간한 의문의 덩어리가 생긴다. 수많은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창출한다 하여도 독자에게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한다면 그 시는 문자유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을 우려가 충분할 것이다. 하이퍼시의 특징이 자유방임과 애매모호함에 있다 하지만 그 속에 찰나적인 흥분이나 미묘한 감각, 아련한 그 무엇, 이상야릇함, 섬찍함 등과 같은 것이 번쩍이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곧 감각적미의식이며 심상운이 말한 현실과 초월의 결합이나 의식과 무의식의 합성공간일지도 모른다. 심상운은 또 ‘독자들에게도 즐거움을 안겨주는 시적 소통의 공간’이란 말을 했는데 그 리유는 하이퍼시가 의식의 흐름 속에서 발생하는 이미지의 덩어리지만 그것이 결국은 현실과의 관계에서만이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결국 하이퍼시도 가끔 상상을 통해 그 의미를 얼마간 짐작할 수 있는 류추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 오늘 필자가 례든 박문희 선생의 하이퍼시들은 많은 면에서 류추의 여지가 있어 그 의미를 대강 짐작할 수 있는 시들이다. 상상력의 공간이 있는 시만이 독자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수 있다.

박문희 시들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비록 무의식이라 하지만 어떤 시에서는 사물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크고 허망하여 공허한 감을 주고 있는 것 같고 또 어떤 시에서는 낯설음이 확연히 드러나 진지함보다는 경박함이나 들뜬 감이 나는 것 같다. 

박문희 선생의 첫 하이퍼시집《강천 여행 떠난 바람 이야기》의 출간에 따뜻한 축하를 보낸다. 훌륭한 시집을 출간하여 우리 시단에 신선한 꽃떨기 한송이를 선물해주신 박문희 시인에게 감사를 드린다.

2018년 4월 5일

청명에 김몽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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