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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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의 능률적학습과 漢字교육
2008년 09월 30일 12시 03분  조회:6070  추천:115  작성자: 박문희

조선어의 능률적학습과 漢字교육

 

□ 박 문 희

 

1, 문제의 제기

 

중국 경내조선족의 조선어서사생활에서 한자를 페지한지 50 년도 넘는 오늘 한자혼용문제가 의연히 거듭 거론되는 까닭은 조선어에서의 한자페지가 조선어의 학습과 활용에 시종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어를 능률적으로 배움에 있어서 조선어한자교육이 필요한가 아니면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것이 한자혼용문제의 본질이자 요해처이다. 조선어를 효률적으로 배우기 위해서는 조선어한자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것, 아울러 한자교육을 거세해 버린 조선글전용정책은 조선어언어발전법칙을 어긴 것으로 우리 말의 발전제고에 걸림돌로 작용하므로 반드시 페지해야 한다는게 본고의 주장이다.

 

우리는 평소에 우리 말 조선어를 배움에 있어서 근본으로 되는 법칙이 있다는 점에 대해 주의를 돌리지 않고있다. 표음문자이면서도 대부분 어휘가 한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조선어는 영어와 같은 표음문자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자체의 특수한 발전법칙을 태성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면 그 법칙이란 무엇인가?

 

우리말 한자어 (례를 들어 “표음문자”)가 우리 조선어 표기법으로 표기되였을 때 “표, 음, 문, 자” 이 네 글자가 겉보기엔 아무런 뜻도 없는것 같지만 기실은 각기 자기의 뜻을 가지고 있는것이다. 여기의 “표”자의 뜻은 바로 “表” 이며 그 외의 다른 뜻(이를테면 彪나 瓢 등)이 아니다. “음(音)”, “문(文)”, “자(字)”도 마찬가지로 다 자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 그것이 조선어표기에 가리워 보이지 않을 뿐이다.

 

조선어 글자는 한자어휘를 형성하지 않았을 때는 개개의 글자가 무의미 철자에 불과하지만 일단 한자단어로 구성됐을 때는 그 한자들의 원뜻이 표층에 로출됐든 로출되지 않았든 개개의 글자가 독자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얘기다. 그 의미는 외부에서 부여한 것도 아니고 그 자체가 가지고 있다.

 

문제는 조선어한자를 가르치지 않으면 그런 의미가 머리속에 떠오를수 없다는데 있다. 그것을 눈에 보이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한자를 가르치고 필요한 경우에 그것을 로출시키는것이다. 우리 말 한자를 가르치면 그것이 머리속에 떠오르고 한자를 가르치지 않으면 그것이 머리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 이것이 바로 영어와 같은 다른 알파베트문자와 구별되는 우리 글 공부의 본연의 법칙이다. (기실 영어도 몇개 안되는 자모로 복잡한 언어를 표기하는데서 오는 리해의 혼란을 피면하기 위한 자기 특유의 해결방법이 있다.) 우리글 공부는 이 본연의 법칙을 떠날수 없는것이다.

 

이 법칙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조선어공부에 필연코 엄청난 대가를 치르지 않을수 없다. 이런 대가치르기는 력사발전의 굴곡성에 의해 때론 굴곡적으로 표현될수도 있다.

 

이를테면 50년대 초기 중국조선족 언어문자정책이 “조선어전용”방침을 채택하여 실시한 례가 그것이다. 당시 우리 조선족가운데는 낫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문맹이 많았다. 전 인민적 문맹퇴치 운동가운데서 우리 조선족은 우리 말 병음문자의 우세에 힘입어 문맹을 재빨리 퇴치하고 문화를 전면에 보급할수 있었다. 우리 민족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농민들에게 문화를 보급한다는 의미에서 조선어전용정책의 제정은 대다수 조선족군중의 념원을 반영했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조선어 자체의 학습법칙이 무효로 된것은 결코 아니였다. 단지 특수한 력사시기에 군중들의 문맹퇴치열망, 민족자주의식의 고조로 그 법칙이 잠시 은페되였을 뿐이였다.

 

결국 전 사회적 문화가 낮은 수준에서 탈피하면서 “조선어전용”정책은 그 한계를 드러냈고 따라서 “조한혼용”주장이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론쟁은 불가피한것이였다.

 

필연적 결과로 1953년도 “조선글전용”정책이 실시되여서부터 장장 50여년간 이 문제를 두고 론쟁은 그치지 않았다. 그중 일부 토론은 학계나 여론 기구에서 주도했고 일부는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토론때마다 “두가지 의견”이 팽팽히 대립되였지만 시종 일치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것은 주로 다음과 같은데 기인된다고 볼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토론의 근본과 목표가 시종 분명치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 토론 각방이 각기 자기의 론점 론거를 제시했으나 누구도 대방을 설득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반드시 짚고지나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십수차례에 걸친 전용이냐 혼용이냐 하는 토론이 겉으로 보기엔 두가지 의견이 대립하는듯한 양상을 보였지만 기실 따져보면 적어도 네가지 의견이 교차혼선을 빚은 상태였다는것이다.

 

례컨대 “조한혼용”회복주장은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일치한것이 아니고 대체로 두가지 견해였다. 즉 “한자어의 정확한 리해를 위해서는 한자어를 가르치고 적당히 신문간행물에 혼용해야 한다”(잠시 “리해론”으로 략칭함)는 견해와 “중국 조선족의 실정에서 조한혼용을 하면 한어학습에 리롭다”(잠시 “방편론”으로 략칭함)는 견해 이런 두가지였다.

 

“조선어전용”주장 역시 견해가 두가지로 갈린다. 한가지는 “한자어를 가르치지 않고 순 조선어만 가르쳐도 조선어리해에 아무런 불편도 없다”, “혹은 우리 민족언어를 발전시키는 장원한 관점으로 볼 때 이렇게 하는것이 더 리롭다”(잠시 “전용론”으로 략칭함)는 견해였고 다른 한가지는 “조선어전용을 하되 한자어도 별도로 가르쳐야 한다”(잠시 “별도론”으로 략칭함)는 견해였다(여기서 말하는 “별도”란 한자교육을 학교 교육내용에 넣지 않고 과외를 리용, 자원원칙에 따라 별도로 가르칠수 있다는것이다).

 

이 네가지 견해는 실상 모두가 독자적인 견해들인데 아마 토론목표의 불명으로 크게 두가지 주장(전용론과 혼용론)으로 나뉘여 교차혼선을 빚은것 같다.

 

례컨대 “리해론”과 “방편론”은 련계가 거의 없는, 그리고 “조한혼용”에 대한 리해와 풀이가 완전히 다른 견해다. 그럼에도 일치하게 “한자혼용”을 주장한다는 리유때문에 다 같은 “혼용론자”로 되여버렸다. 한편 “전용론”과 “별도론”도 기실 판판 다른 견해지만 “조선글전용”이란 측면에서 주장이 일치하기에 함께 “조선글전용론자”로 돼버린것이다.

 

몇가지 견해중 “방편론”은 “전용론”의 강한 반발을 부르지 않을수 없는것이였다. 그러나 “조한혼용”주장의 첫번째 견해 즉 “혼용론”은 본질적으로는 정확한 것이였지만 론점을 받쳐주는 론거와 문제해결의 대안제시가 미흡했고 그 론점에 대한 리해에 따른 동조자도 적어 결국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말았다.

 

이에 반해 “조선글전용”주장은 강력했다. 기성 “조선글전용정책”의 후광도 후광이였겠지만 그 정책을 지키려는 의지와 결의가 확고했고 “內外의 추세”도 이 주장을 뒤받침해주는 면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의 “방편론”에 대해서도 “리론우위”를 점하고 있었기때문이다.

 

이미 말했지만 “조선글전용”주장중의 두가지 견해(“전용론”과 “별도론”)는 실질적으로 다른 견해다. 일치하다면 이 두가지 견해가 모두 “민족언어의 자주성원칙”, “민족언어 수호”, “언어순결성 고수”란 이름으로 “민족의 감정과 大義”를 내세우고있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문제를 본다면 “한자혼용”주장중 “리해론”과 “조선글전용”주장중 “별도론”이 오히려 핵심문제에서 일치한 점이 있다고 볼수 있다. 왜냐하면 “별도론”은 “전용론”과는 달리 조선어공부에 대한 조선말한자어의 유용성을 인정하고있기때문이다.

 

원래 “조한혼용”이냐 “조선글전용”이냐 하는 토론은 의당 “우리글을 효률적으로 습득하고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한자교육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목표를 두어야 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친 토론은 이 근원적인  핵심문제는 별로 건드리지 않고 단 “우리글의 순수성을 확고히 지키느냐 아니면 섞어쓰기로 우리글에 흠집을 내느냐” 하는쪽으로 번졌는데 그 결과 토론은 학술의 범위를 떠나 마치  “민족문화지키기”문제를 둘러싸고 진행된 공방전인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키는 후과가 초래됐다. 이런 토론풍토에서 “조한혼용”을 주장하는 론자에게는 자칫 복고주의자, 민족언어말살론자 등의 감투가 날아들기 십상이였고 그들은 또 “조선어”의 “자주적발전”과 “순결성확보”를 방해하는 “위험인물”로 간주되기도 했다.

 

과거의 토론이 시종 문제의 근본과 핵심을 분명히 짚지 못했다고 하는것은 바로 이 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의 언어를 어떻게 효률적으로 배우고 가르치고 발전시킬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떠나 이른바 “민족언어의 자주성원칙”, “민족언어 수호”, “언어순결성 고수”란 명분을 내걸고 민족정감을 내세우는데 지나치게 치우침으로써 토론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술성연구와는 거리가 먼, 거의 “정치적 리념가르기”에 가까운 기로에 빠져들게 된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리념화”한 토론방법에서 뛰쳐나와 진정한 학술토론의 견지에서 이 문제를 고찰한다면 기실 “한자교육”, 나아가 “조한혼용”의 필요성, 합리성을 보아내기 어렵지 않은것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조한혼용”의 의미는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조선어를 능률적으로 배움에 있어서 조선어한자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것이다. 바로 이런 취지에서 아래에 “조한혼용”(“한자교육”필수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의 합리성과 필요성을 몇가지로 나누어 규명하고자 한다.

 

우선 조선글의 한계와 조선어한자의 효용 문제를 말하겠다.

 

 

2. 조선글의 한계

 

조선글은 글획이 적고 표기법이 간단하여 문자를 익히기가 쉬운 반면에 표음문자로서 개개의 글이 독립적의미를 갖고있지 않기에 새로 접하는 신출한자어의 경우에 그 단어의 뜻이 일목료연히 안겨오지 않는 페단이 있다.

 

원인은 우리의 말과 글이 청각성 어휘와 시각성 어휘로 나뉘여진다는데 있다. “아버지, 어머니, 하늘”과 같은 청각성어휘는 귀로 듣는 즉시 뜻이 리해되는데 그것은 어려서부터 말로 배워익혀 이미 몸에 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수”나 “배식”이라 하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듣는 것만으로는 그 뜻을 분명히 알기 어렵다. 왜냐하면 “배수” 에 “配水, 排水, 倍數, 陪隨, 拜手, 拜受” 등 여러가지 의미가, “배식”엔 “配食, 陪食, 培植, 倍殖”등 각종 의미가 있어 뜻을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어휘들을 한자로 표기해 놓으면 그 뜻들이 보는 즉시 명료해진다(물론 배우지 않으면 봐도 모른다). 이러한 시각적 언어를 조선글로만 표기해도 개념을 리해할수 있다고 하는것이 “조선글전용”이 안고있는 모순이다. 필경 읽을 줄 안다는것과 그 뜻을 안다는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문분야용어의 경우 조선글의 한계는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례: “증기타빈이란 汽罐에서 발생된 고압증기를 低壓力부분으로 引渡하여 軸車주위에 부설된 回轉翼을 고속으로 회전시키는 機關이다.” 이 문장에서 한자를 모두 조선글로 바꾸어 넣는다고 하자. 한자어의 뜻들이 확연히 안겨올 것인가? “기관”이란 두 동음어는 또 어떻게 리해하겠는가? 순 조선글로 표기된 이런 단어들을 한두개만 정확히 리해하자 해도 피곤할텐데 이런 전문 용어들로 꽉 차 있는 두툼한 기술서적을 읽어 내려 가자면 그 고초가 얼마나 막심할것인가 ?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말로 풀어 쓰면 해결이 된다는 론리가 있다. 그러나 이런 론리에도 무리가 있다.

 

례: “그의 작시금비론에 동조하고 싶은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었다.” 가령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하자. “작시금비론” 이란 말은 “초면상태” 에서 그 뜻을 바로 리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말을 “어려운 한자어”로 치부해서 “과거를 긍정하고 현실을 비난하는 론조” 따위 “쉬운 말”로 바꿔 쓸 것인가? 답안은 매우 간단하다. “쉬운 말”로 바꿀 것 없이 그것을 “昨是今非論”이라고 한자로 표기해 놓으면 된다. 보는 사람은 보는 즉시 그 뜻을 알고 또 쉽사리 잊지도 않을 것이다. 그 다음번엔 “작시금비론”을 한자로 표기하지 않아도 금방 알아 볼수가 있는 것이다.

 

력사적으로 형성되고 전통적으로 계승되여 온 생명력 있는 말들을 필요 이상으로 이른바 “알기 쉬운” 새로운 고유어합성이나 새로운 한자어로 “다듬는”다면 오히려 력사와 전통을 단절시키고 언어의 천박성만 증대시키는 언어혼란을 빚어낼수 있다. 조선말한자가 완전히 페기처분당한 오늘 현실에서 우리 조상들이 오랜 시일에 걸쳐 신고스레 다듬고 벼려온 맛갈지고 아름답고 짜임새 좋은 한자어들이 무참히 배격당할 위험은 항상 우리곁에 도사리고 있다. 

 

우리 글이 배우기가 쉽다는 말은 이미 正說로 굳어진듯하다. 그러나 이 說이 자칫 우리 글을 해치는 함정이 될수 있다는데 류의할 필요가 있다. 조선글이 선진적이고 한자가 락후한 문자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 론자들은 “한자는 한뉘를 배워도 다 못배워내는 반면에 조선글은 몇년 지어 몇달이면 다 배워낼 수 있다”는 극언도 서슴치 않고 한다. 이와 같은 오도로 하여 많은 학생들이 조선글을 읽을 줄만 알면 다 배운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며 심지어 조선어는 배울게 없다고 여기는 학생도 결코 소수가 아니다.

 

기실 세계상의 모든 언어와 마찬가지로 조선어 역시 한 평생 배워도 다 배워낼수 없다. 1996년에 출판된 엣센스국어사전에는 우리 글 어휘가 15만어가 수록되여 있다. 근 50년간 조선글을 읽어왔고 20여년간 신문사 편집으로 일해온 필자의 소견으로는 우리 글이 결코 쉬운 글만은 아니라는것이다. 내심 두려운 일이 한가지 있다. 한자교육을 계속 지금처럼 배격해 나간다면 우리 글이 세상에서 배우기가 가장 힘든 글로 전락되지 않을가 걱정이다. 아니, 이미 전락된지가 오래되여 이미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심각한 불감증을 앓고 있는 그 과정일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글이 안고 있는 한계를 의도적으로 인정치 않고 조선어를 세계적으로 가장 뛰여난 글이라고 극찬만 하는 것은 설사 그 동기가 뜨거운 민족애와 민족적 긍지감으로부터 출발한 것일지라도 실질상 리론적으로나 학술적으로 미흡한 점이 많으며 실천적으로도 해로울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말 공부가 조선글 전용으로 인해 비능률적으로 진행된다 할 때 그것은 우리의 전반 교육수준향상에 계속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3 . 조선어한자의 효용

 

표음문자인 조선글에 대비해 표의문자인 한자의 가장 큰 우점은 바로 그것의 “表意性”에 있다. 글자마다 뜻을 가짐으로써 글자와 글자를 련결해서 새말을 지어내는 강력한 造語力을 지니고 있다는것이 바로 한자의 妙所다. 新出 한자어의 경우, 각 한자의 訓과 音을 익히고 그 훈들의 결합인즉 그 한자어의 뜻이란 점을 발견하면 그 단어의 뜻을 똑바로 리해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 배운 한자와 이미 배운 한자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한자어의 일차적인 뜻은 자동적으로 리해되여 어휘확장이 아주 능률적으로 이루어진다. 리해에 토대한 학습능률의 제고로 어휘습득량이 확장됨에 따라 일부 한자의 파생적의미도 어렵잖게 파악하게 되여 어휘의 2차적 뜻 리해도 가능해진다. 따라서 한자어 해득효과는 기하급수로 늘어나게 된다.

 

례를 들어 訓에서 제시한 “천(天)”자의 뜻은 “하늘”로 되여 있다. 여기에 새로 익힌 한자를 결합시키면서 “天地”, “天宮” 등으로 어휘를 확장해 나가다 보면 “天”字가 “하늘”이란 뜻 외에도 “자연의, 천연적인, 타고난, 선천적인, 임금, 하느님” 등 파생적 의미도 지니며 또 그것을 토대로 다른 추상적의미도 이끌어 낼 수 있음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알게 된다. 하여 “天理, 天生, 天命, 天性, 天成, 天賦, 天子…”의 뜻을 쉽게 파악하고 기억할 수 있으며 나아 가 “天長地久, 天藏地秘” 등이 가지는 추상적 의미까지 류추해내는 추리력과 창의력도 스스로 키우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 文理가 확 트이게 되여 學力은 급속도로 제고될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자교육을 완전히 배격해 버린 상태에서의 조선말 한자어는 무의미철자의 집합체와 다름이 없어서 상기한 바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동참”을 “같이 참가함”이라고만 해석해 놓으면 학생은 ”동”자의 뜻이 뭔지 “참”자의 뜻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기계적으로 그 뜻을 암기해야 한다. 그러나 “同(같이할 동)”자와 “參(참여할 참)”자를 각각 가르치면 선생이 해석할 필요 없이 학생은 자동적으로 “동참”의 뜻을 알고 기억하게 된다.

 

리해된 것이라야 빨리 기억할수 있다는것은 정한 리치다. 반대로 리해되지 않은 것은 왕왕 여러차례의 반복을 거쳐야 비로소 기억이 가능하다. 바로 우리의 학생들은 조선글로 표기된 한자어에서 뜻감을 잡을만한 아무런 표식도 없는 무수한 무의미철자묶음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느라 기막힌 고역들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한자어의 리해를 돕는것은 한자교육일뿐이다.

 

한편 한자는 글획이 많고 복잡하며 글자수가 너무 많아 평생을 배워도 그 일부분을 겨우 배워내나마나 한 기막힌 약점도 가지고 있다. 3000년 전 한자의 자종은 3500자가량이었는데 2000년 전에는 약 1만자, 한자가 조선반도에 들어갔던 1500년 전 삼국시대에는 약 2만6000자가 됐고 오늘날 큰 자전에는 약 5만자가 실려 있다. 만약 이 5만자를 다 배워야 문자생활이 가능하다면 한자는 언녕 도태돼 버린지도 옛날이였을것이다.

 

그러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학술연구를 포함한 일반적인 문자생활에 있어 5만자의 한자 자종이 모두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필요한 글자만 2 ~ 3천자 정도 골라 배워도 조선어학습에 충분하다. 한국의 比峰출판사에서 동양고전을 번역하면서 분석해 보니 <論語>에 등장하는 漢字는 1500여자,  <孟子>에는 1800여자 정도였다. 일본에서 상용한자로 쓰고 있는 것이 현재 1945자다. 일본은 한국보다 한자를 훨씬 많이 혼용하고 있음에도 1945자의 상용한자를 사용하면서 아무런 불편이 없다한다.

 

전문 한자만 사용하는 우리 나라의 경우 현대의 각종 출판물에 쓰이는 한자를 사용빈도가 높은 순서대로 통계를 낸 결과 950자가 90%, 2400자가 99%, 3800자가 99.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경대 언어학과 연구팀은 漢字 3000자만 알면 나머지 한자는 저절로 리해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1988년 국가교육위원회와 국가어언문자공작위원회가 공동으로 ‘현대한어상용자표(現代漢語常用字表)’를 발표했는데 상용자 2500자와 차상용자 1000자 등 합계 3500자였다. 이 3500자만 알면 중국 모든 출판물의 99.48%를 커버한다고 한다. 이 정도의 한자는 학습에 큰 어려움도 없고 오히려 청소년의 뇌력강화 훈련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이미 과학적으로 립증된 상태다.

 

“전용론”은 대개 조선글에 대비해 한자가 락후하다는 설을 많이 편다. 하지만 우리 조선족 학생들 경우 소학교 때부터 한어를 主과목으로 배우는 상황에서 한자가 락후하고 배우기 힘들다는 리유를 내세워 조선어한자를 배격하는것은 무리하다.

 

한어한자와 조선어한자의 관계 등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래 “한자교육의 방법론”에서  좀 더 설명할가 한다.

 

 

4 . 한자교육의 당위성

 

우에서 언급한 리유로부터 한자교육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조선글에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메울수 있는것이 漢字일진대 굳이 그것을 배우지 말아야 할 리유가 없는것이다.

 

한자교육은 “조선어학습의 능률제고”외 다음과 같은 리유에서도 당위성을 가진다. 한자교육은 민족전통교양에 유리하다. 례컨대 우수한 우리 민족전통으로서의 륜리도덕이 허물어져 가고 있는 마당에 한자교육을 전통교양에 효과적으로 활용할수 있다. 한자안에 인성교육의 모든 요소, 충과 효의 도리, 옳바른 국가관, 보편적인 인류애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자교육은 모든 사회분야의 진보에 유리하다. 한자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면 한자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과 능력으로 사회에 보다 훌륭히 봉사할 수 있다. 언어학 연구분야를 보자. 한자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어학연구에서 과연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인가? 한자어학습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만큼 풍성할 수 있는 문화적유산으로부터 멀어지게 됨으로써 놓치는것도 많을것이다.

 

우리는, 만약 한자사용을 완전히 페기한다면? 이런 문제를 스스로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한자사용이 완전히 페기된다면 그에 따라 사라지게 될 단어도 엄청나게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단어들은 한자에서 떨어져 나와서 의미와 소리로만 존재하다가 점차 기억에서 잊혀지게 될것이다.

 

우리 민족이 수천년간 사용해온 한자를 기반으로 한 지적사유의 령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결코 한자공부문제를 간단히 대할수 없는것이다. 다른 건 제쳐놓고라도 우리말 사전에서 한자어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한자표기를 전부 없애버린다고 가정해보자. 우리의 언어문자생활이 과연 어떤 경난을 치를것인가 하는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일전에 어느 분이 “한자혼용은 취할바가 못된다”면서 “우리 말의 페단에 대한 해결을 한자에 국한시키는것은 과학적이지 못하며 우리는 한자 없이도 독자적으로 우리 글을 더 합리하게 더 효률적으로 만들수 없겠는가에 연구의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자 없이도 독자적으로 우리 글을 더 합리하게 더 효률적으로 만들려는 그 “량호한 념원”은 십분 가상치만 그러나 이 말은 아주 훌륭한 우리 말을 완전히 뒤엎고 새로 만들자는 주장에 가까운 것으로 가능성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발상 자체가 언어발전법칙과는 전혀 동이 닿지 않는것이다.

 

부대적으로 언급할 말이 있다. 필자의 짧은 관찰(일면적일수도 있으니 연구의 참고로만 삼아주기를 바란다)에 따르면 조선글전용주장은 대체로 두가지 부류에서 온다. 한 부류는 조선어를 쉽게 배우려는 이들이다. 리해가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필자는 조선어를 쉽게 배우려는 생각을 가지고서는 결코 조선어를 제대로 배워낼수 없다고 귀띔하고 싶다. 다음 한 부류는 한자교육을 받은 일부 학자들이다. 이미 漢字교육을 받은 이들이 아직 한자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 조선말漢字를 가르쳐줄 대신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데, 그 底意를 도저히 알수 없고 리해가 되지 않는다.

 

 

5. 한자교육의 방법론

 

한어를 배우고 있는 중국조선족의 실정에서 한자교육을 실시하면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나타날가봐 우려하는 이들이 있다. 이를테면 일각에서 “한어한자와 조선어한자 사이에는 차이가 적잖이 존재하는데 중국 조선족의 실정에서 한자어를 가르치면 학생들의 학습상 혼란이 조성되지 않겠는가?”하고 우려하는것이 그것이다. 이런 우려는 아주 현실적으로 제기되였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사고해보면 이 문제가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 기실 모든 언어간에 차이가 없을수 없듯이 조선어한자와 한어한자 사이의 差異의 존재도 필연적이다. 이를테면 “입찰계약(入札契約)”, “입찰매매(入札買賣)”와 같은 한자어는 한어에서 “投標合同”, “投標交易”으로 표시되는데 그것은 필경 두가지 부동한 언어체계인만큼 차이의 존재는 확실하다. 한편 대량 엄존하고 있는 이런 현상은 기실 조선어가 오랜 세월 자체의 언어발전법칙에 의해 발전해왔다는 유력한 근거로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이 한자교육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리유로 될수는 없다. “혼란”이 올수 있다는 리유로 한자교육을 포기하는것은 조선어를 보다 높은 수준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포기하는것과 같기 때문이다.

 

“조한혼용”을 실시한다면”百聞不如一見”을 한어발음으로 읽거나 인명 “金鑫”이나 “盧春艶”을 “김신”, ”로춘연” 등으로 잘못 발음하는 현상이 생길가봐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지금 바로 시험적으로라도 신문 간행물에서 “조한혼용”을 실시한다면 이와 같은 현상이 필연적으로 대량 나타나게 될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의 출현은 결코 선생이 둔재이거나 학생이 저능아여서가 아니라 50여년간 한자교육을 페지하고 조선글전용 정책을 실시한 필연적악과이다. 訓과 音을 제대로 가르친다면 이런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 “한자어音讀法”을 가르치지도 않고 한자를 “음독법”대로 읽으라고 요구할수 있단 말인가?

 

한어 한자와 조선어 한자의 차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비교를 통해 언어를 습득하는것은 언어공부의 좋은 방법이다. 옅은 곳으로부터 깊은 곳으로 점차 배워 나가다 보면 학생들은 자연히 두가지 언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지하게 될것이며 언어의 비교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게 될것이다. 이른 바의 혼란이란 배우지 않아 모르는데서 생기는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자의 뜻, 훈과 음독법을 가르치면 배운 학생이 평생 활용할수 있다. 가르치지 않으면 학생이 평생 혜택을 볼 수 있는 엄청 큰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많지는 않지만 가끔 “한자교육은 한어과에서 해도 된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러나 두말할것 없이 한자교육은 조선어과에서 행해져야만 한다. 그것은 한어과의 교수목적은 학생들의 한어 열독, 서사, 회화 능력을 키워 주는데 있지만 조선어과의 한자교수목적은 우리 말 한자어에 대한 학생들의 인지, 식별 능력과 서사능력을 높여 조선어 학습효률을 극대화하기 위한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어과에서는 한어병음으로 한자를 가르치고 조선어문에서는 訓과 조선말 音讀法으로 한자를 가르친다. 그러나 량자의 교수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다면 상호보완의 효과를 볼수도 있다. 이는 조선어 한자교수의 유리한 조건으로 활용이 가능할것이다. 그리고 한자교육은 가급적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것이 좋다. 이것은 중국과 한국의 경험있는 전문가들의 공통한 주장이다. 이 점을 리해하기는 어렵지 않을것이다.

 

그외 “조선어한자는 번체자인데 그대로 배워야 하는가?”하는 물음도 제기된다. 필자의 소견엔 중국 조선족의 실정에서는 간체자로 배워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한자를 배우는 것은 선차적으로 한자어에 대한 리해를 도움으로써 조선어를 능률적으로 배우자는것이기 때문에 어려운 번체자를 꼭 배워야 할 리유가 없기때문이다. 간체자를 배움으로 해서 생기는 일부 구체 문제는 전문가들이 공동연구를 해서 결정을 짓던지 하는 특수방법을 대서 해결하면 그만이다. 솔직히 한국 학생들이 한자를 배우기 어려워 하는 주요한 원인중 하나가 바로 번체자를 가르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중국의 간체자를 채용하지 않는데는 나라와 민족의 체면문제가 깔려 있겠지만 그러나 결과 혹사당하는것은 한자사용자와 학생들뿐인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조선어전용”을 하는 전제하에서 한자교육을 학교 교육계획과는 무관하게 별도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있는데 이런 견해는 조선어한자교육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와는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합리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요점을 말하면, 한자교육을 진행하면서도 학교 교재, 사회 신문간행물과 도서출판물들에서 혼용 혹은 병용을 하지 않고 조선어전용만 한다면 한자교육의 효과를 半減시키는 효과만 낳게 되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한자교육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역할 외 아무런 리점도 없는것이다.

 

그러나 현재 많은 학교 교장들과 교원들이 “조한혼용”이나 한자교육문제에 대해 저촉적인 경향을 보이는것은 주로 학생부담과 교원들의 부담이 큰데서 생기는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어과에서 한자교육을 한다고 하면 원래의 교수내용에 한자교육내용을 가첨해서 그만한 부담이 액외로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아무튼 조선어 한자를 더 배워야 하니 학생들의 학습부담이 더 중해질건 뻔한 일이 아닌가?”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기실 불필요한 것이다. 만약 정부 차원에서 한자교육을 학교교육에 정식 도입한다면 이것은 조선어교육의 중대한 개혁으로 되는만큼 적어도 수년간(례컨대 3년 내지 5년 지어 더 긴 시간)의 준비과정과 시험과정이 있게 된다. 50여년간 실시해온 조선어전용정책으로 인해 조선족 소학교와 중학교 지어 대학교의 관련 학과는 전부 조선어전용일체화로 돼 있으므로 우선 교재가 재편찬돼야 하며 그에 따라 교원양성도 해야 한다. 그외 보도출판 분야 편집일군 양성, 사회에로의 조선어한자 보급, 여러 경로를 통한 한자혼용실험, 한자혼용실정에서의 언어규범화 후속조치 제정 등 代案들도 필연적으로 따라세우게 된다. 말하자면 한자교육정책은 정부 차원에서 상당시일을 두고 계획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펴내여 실행하게 되는것이다.

 

이런 장원한 목표하에 계획적으로 편찬된 교재는 결코 학생들에게나 교원들에게 액외의 부담으로 되지 않으며 반대로 한자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해득력과 학습효률이 현저히 높아짐으로 해서 궁국적으로는 학생들의 학습부담이 크게 줄어들게 되며 조선족교육의 전반 소질이 크게 향상할수 있게 되는것이다. 한자교육, 나아가 “조한혼용”이 가지는 중요한 의의도 바로 여기에 있다.

 

 

6. 결론

 

표음문자이면서도 대부분 어휘가 한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조선어는 자체의 천성적 발전법칙을 가지고 있다. 表意문자인 漢字는 조선어 한자어휘 리해에 큰 도움을 주기에 학생의 학습능률제고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자교육이 거세된 조선말한자어는 무의미철자의 집합체와 다름이 없어서 그것을 기계적으로 암기하자면 기막힌 고역들을 치러야 하며 따라서 학생들의 학습취미를 크게 떨어뜨릴수밖에 없다. 이로 하여 우리의 조선어는 쇠퇴의 위기에 처해있으며 이미 엄청 큰 대가를 치렀음에도 여전히 불감증을 앓고있는 상태다. “조선글전용”정책은 우리 말의 발전제고에 걸림돌로 작용하므로 반드시 페지해야 한다.

 

“한자교육”과 “조한혼용”정책은 정부차원에서 중대한 개혁내용으로 연구, 제정되여야 하며 학교교육에 정식 도입되여야 할뿐만 아니라 전반 사회에 일반화되여야 한다. 수년간의 준비과정(교재편찬, 교원과 편집일군 양성, 제도 제정 등)을 거쳐 점차 완정한 정책으로 정착시키고 실시중 부단히 정비보완한다면 조선어학과의 발전을 효과적으로 추진할수 있으며 아울러 조선족교육의 전반 질을 크게 향상시킬수 있는것이다.
 

[2007년 8월 중국조선어학회 제15차학술토론회(장춘)에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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