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한동안 한국의 모 단체장들하고 한중전자상거래플랫폼구축사업건으로 중국에서 한다하는 전자상거래회사들을 찾아 다닌적이 있었는데 그 와중에 항주의 알리바바1688와 북경의 혜총망을 방문하게 되였다.소위 중국대륙을 남북으로 각각 B2B업무를 분할했다고 자랑하는 당사자들이니...
사석에서 한국 중앙정부 총리급 누구누구 라인이고 정부 경제관련 모 부처 설립에 아주 중요한 막후작용을 했다며 자랑을 떠는 그 단체장은 중국측과의 회담석상 때마다 한국의 경쟁력을 강조하면서 항상 “한국의 경제영토썰”을 거창하게 설명하였다. “작은 국토,넓은 경제영토”라며, 국토는 전셰계의 0.07%에 달하지만, 미국 유럽연합 중국이란 3대경제권과 모두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면서 한중전자상거래플랫폼구축의 필요성을 열심히 역설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한국경제인들의 야심으로 벅찬 “경제영토”란 개념에 대해 한국국내에서도 찬반논란이 있는 모양이다.그중에 강은천의“FTA 경제 영토 3위? 기황후가 기가 막혀”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이 왜 그렇게 국민의 욕을 먹으면서까지 '식민지 근대화론'에 집착하나 궁금했었다. 그런데 한미 FTA와 TPP의 전개를 보니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식민지 근대화론이야말로 한미 FTA를 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며 이를 열정적으로 추진한 사람들에게 부합하는 근대 역사관이 아닐 수 없다.
'약육강식과 우승열패의 세계에서 강자가 정한 방향대로 나아가지 못하면 저 멀리 뒤처질 테니 주권의 일부를 내주더라도 그 길에 합류해야 한다.' 이것이 이완용 같은 개화파와 오늘날의 FTA파가 공유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주권을 양보해야 시류 편승을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왜 1905년이나 1910년의 이완용처럼 행동하지 않겠는가?
2014년 3월 11일 한-캐나다 FTA가 타결되자 언론은 일제히 '세계의 62%가 우리의 경제 영토가 되었으며 이는 세계 3위의 기록'이라는 협상 당국의 자화자찬을 쏟아냈다. 을사조약으로 대일본제국과 그 식민지들이 사실상 우리 영토가 되었다고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 만약 그렇다면 좀 더 정확한 비유의 대상이 있다. 13세기에 원의 부마국이 된 고려다.
원의 간섭을 받게 된 고려는 거대한 세계 제국을 자신의 경제적, 문화적 영토로 삼게 되었다. 원 황실의 피가 섞인 고려 국왕은 황제의 사위로 제국에서 높은 지위를 누렸고, 수많은 고려 귀족과 승려와 상인이 대륙을 누비며 '팍스 몽골리카'의 혜택을 받았다. 미국, EU, 캐나다, 호주 등과 FTA를 맺고 이들 거대 경제권을 자유롭게 누비게 된 대한민국 관료와 기업인은 원 간섭기 '충(忠)'자 돌림 왕들과 부원배들이 느꼈던 자유와 자부심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기쁨이 대륙으로 끌려간 20만 고려인과 파탄지경에 이른 500만 농민 때문에 줄어들겠는가?
그러고 보니 <기황후>라는 드라마가 역사 왜곡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공녀(貢女)로 제국에 끌려갔다가 황제의 여인이 되어 모국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기황후야말로 FTA 시대 세계 무대를 노리는 한국인의 멘토로 적합하지 않은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출세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통상 관료, M&A 전문가, 로비스트 등으로 활약하면서 한미 FTA의 체제의 정점에 올라 있는 '검은 머리 미국인'들을 보라. 기황후의 음덕을 입고 고려를 좌지우지하던 기철 무리의 환생이라고 하면 지나친 상상력의 발동일까?
그런데 고려는 30년 가까이 죽자고 싸우면서 버텼기 때문에 '부마국'이라는 지위라도 누릴 수 있었다. 몽골 제국에 복속한 나라들 가운데 국체를 보존한 곳은 고려뿐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무슨 자산이 있어 정글과도 같은 FTA, 나아가 TPP 체제에서 몽골 제국 하의 고려와 비슷한 지위라도 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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