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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30] 가장 뜻 깊었던 신변의 영웅 취재
2020년 01월 14일 11시 06분  조회:4409  추천:0  작성자: 오기활
“인생 칠십고래희”라더니 어느덧 내가 73살 나이를 먹었다.

그러니 내가 하늘나라에 계시는 량 부모의 합한 나이(어머니32, 아버지40)보다 1년을 더 살았으니 이만하면 나의 명운이 좋은 셈이다고 하겠다.

지난 인생년륜을 손꼽아보면 농민으로 9 년, 당정기관에서 11년, 《연변일보》기자로 22년, 정년퇴직후 《길림신문》특별 기고인으로 있으니 나의 천직이 기자인셈이다.

지금까지 기자생활을 돌이켜보면 가장 뜻깊은 취재가 1986년부터 30년을 이어온 신변의 ‘라성교’ 고만길에 대한 취재이고 가장 뿌듯했던 취재가 1990년 제11차 아시아경기대회(북경)취재이며 가장 벅차게 일했던 시기가 ‘백성의 신문’으로 ‘연변25시’(《길림신문》부간)을 꾸리던 3년이다.

오늘 30년을 이어온 고만길 취재길을 반추해본다.

첫번째 취재

1986년 12월 24일 오후 2시 30분 경, 도문시교통국 도로관리단의 20여명 양로공들이 현지 시공원 고만길(34살, 조선족)의 인솔하에 도문-훈춘 도로 ‘K+700m’구간의 길닦이공사를 막날로 마무리를 할 때 북강 남쪽강변에서 몇몇 어린애들이 도문 북강물에 개구리가 있다면서 아직 채 얼어붙지 않은 강물옆 얼음판에 엎드려 물밑을 살펴보다가 림철섭(6살), 리동환(7살)이 그만 강물에 빠졌다.

마침 이 정경을 지켜보던 양로공들이 “아이가 물에 빠졌소!”라며 급한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 만길이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입었던 등산복을 벗어 팽개치고 맹호같이 강변으로 달려가더니 긴 목이 달린 솜신을 신고 장갑을 낀 채로 사품치는 강물 속에 뛰여들어 60여메터나 떠내려 간 철섭이를 구하고 거꾸로 들어서 물을 토하게 한 후 철섭이를 업고 가파롭기로 65도가 넘는 높은 강뚝을 톱아올라 1,000메터도 더 되는 도문시방송국 종업원주택구의 어느 집에 철섭이를 맡기고 다시 강변으로 달려왔다. 다행히도 구원된 동환이를 업고 철섭이를 맡긴 집에 눕혀놓았다. 애들이 정신을 차리자 그는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1987년 2월 고만길 취재를 마치고 도문 북강 현장에서 물에 빠진 애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뒤줄 좌로부터 고만길, 필자, 양로단 당지부서기 박봉구).
 
그날 저녁 동네 사람들이 위문하러 만길이네 집을 찾아와서야 그의 안해가 알게 되였다.

이 소식을 접한 나는 도문시당위 오명일 부서기를 만나 상황을 소개하고 고만길을 도문의 살아있는 ‘라성교’로 도문시 정신문명건설의 훌륭한 본보기로 수립하기로 했다.

1987년 1월 3일부터 나는 근 40여 일 동안 고만길의 부모, 형제, 고만길이네 동네 분, 학교동창, 고만길이 하향했던 촌, 그가 일하는 공사현장과 부근 마을, 고만길의 도움으로 사경에서 벗어난 사람들, 고만길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과 기타 많은 목격자 등 120여명을 찾았으며 좌담회도 조직했다.

석자두께의 얼음이 하루저녁에 언 것이 아니였다.

지난 15년간 고만길은 사경에 처한 사람을 5명이나 구했고 만난 사람들마다 고만길을 ‘걱정도감’, ‘의무리발사’, ‘수리공’이라며 무슨 일에서나 한몫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고만길은 남을 위해 태여난 사람같다”며 감동을 먹었고 그는 선후 5차례 본 단위와 도문시교통국의 선진생산자로 평선되였다.

나는 고만길의 감동적인 사적을 제때에 도문시당위에 회보했다.

1987년 3월 10일, 도문시 당위와 정부에서는 전 시 문명건설 동원대회를 열고 고만길에게 ‘자기를 잊고 남을 구원한 훌륭한 로동자’라는 칭호를 수여하고 그에게 1등공을 기입했다.

1987년 3월 13일 《연변일보》(조, 한문)는 고만길의 사적을 〈생사를 가늠하는 천평우에서〉라는 제목으로 장편통신을 발표하였다. 그 뒤를 이어 1987년 8월 7일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와 정부에서는 대회를 열고 고만길에게‘자기를 잊고 남을 구원한 훌륭한 로동자’라는 칭호를 수여했고 1988년 5월 28일에 길림성교통청에서는 도문에서 전 성 교통계통표창대회를 열고 고만길에게 ‘뢰봉학습 우수로동자’라는 칭호를 수여하였다.

하여 지난 세기 80, 90 년대에 전 사회적으로 뢰봉학습 운동과 함께 고만길을 따라배우는 열조가 일어났다.

1988년 2월 14일 도문시인민정부에서는 전 시 년말 사업총화대회에서 나에게 공을 기입, 표창했고 아울러 《연변일보》 사상 처음으로 기자가 지방정부의 표창을 받은 소식을 1면에 발표하였다.

두번째 취재

2012년 2월 29일, 나는 모주석이 ‘뢰봉을 따라배우자’고 호소한 49주년, ‘뢰봉학습 우수로동자’고만길을 따라배우는 학습열조를 일으킨 25주년을 기념하여 두번째로 고만길을 취재하였다.

그런데 내가 여러 곳을 수소문하여 겨우 찾은 고만길은 뜻밖에도 뇌출혈로 대수술을 받고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언어장애로 겨우 말을 이었는데 2011년 5월 12일, 왕청-라자구간 도로건설 시공현장에서 갑자기 급성 뇌출혈로 쓰러져 왕청현병원에 호송되였다. 그 후유증으로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되고 언어장애가 왔다.

고만길은 지난 80년대에 조직의 배치로 연변교통학교에서 3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도문시건설국 시정관리처 기술자로 있었다. 그런데 단위가 경영불황으로 몇년간 로임조차 주지 못하다 결국 파산된데서 고만길은 58 세에 연변교통관리소의 림시 기술원으로 초빙되여 밥벌이를 하는 신세가 되였다.

고만길은 자기네 생활이 궁핍한데도 “자기네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며 기초생활보조를 신청하지 않아 녀동생이 보다 못해 최근에야 신청했다 한다.

“지금 큰병에 걸리고보니 당년에 그 많은 좋은 일을 한 것이 후회되지 않는가?”는 기자의 물음에 고만길은 “아무런 후회도 없습니다. 죽는 사람을 보고 누가 살리려고 하지 않겠습니까?”고 했다.

고만길의 안해에 따르면 수술후 고만길은 몸을 좀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병원복도층계의 손잡이에 의지하며 하루에도 몇번씩 1층부터 12층까지 오르내리며 재활치료를 견지하였다. 그리고 화장실이 불편하여 시내 아빠트를 세집을 맡을 때도 신체단련을 위한다며 4층을 선택했다고 한다.

고만길은 강철같은 의지로 “나는 병마를 꼭 이겨낼 것입니다.”며 몇번 반복해서 말했다.

취재후 필자는 고만길의 현황을 시당위 해당 부문 책임자에게 회보하고 시당위와 정부에서 수립한 도문의 산 ‘뢰봉’을 방문할 것을 건의하였다.(알아본데 의하면 방문을 조직하지 않았다)

세번째 취재

2012년 3월 31일은 해외로 진출한 고만길의 아들(고청남)의 결혼식 날이다.

필자는 이를 계기로 또 한번 고만길 가정과 고만길이 구원한 림철섭의 어머니를 취재하였다.

생각밖으로 25년전에 고만길의 사적을 제공했던 장정구씨를 만났다.

장정구는 “만길이가 남을 돕는 ‘병’은 못 고칩니다. 2년전에 만길이 친구의 병문안으로 병원에 갔다가 내 동생이 덮개 없는 하수도 구멍에 빠져 척추며 턱이며 골절되여 병원치료를 받는 것을 보고 ‘반드시 확실한 사고분석을 해야 한다’며 주동적으로 나서서 당사자가 제공한 선색에 따라 며칠 동안 조사를 하더니 그 덮개 없는 하수구가 도문시 모 회사의 하수구라는 것을 확인하고 회사를 찾아다니며 수차나 교섭한 끝에 회사에서 책임을 지고 수만원을 배상했습니다. 우리는 하수구에 빠진 것이 본인의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만길의 덕분으로 동생이 경제적인 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고 했다.

고만길의 아들 고청남은 “당과 정부에서 우리 아버지에게 큰 영예를 주어 우리도 영광스럽습니다. 아버지는 늘 국가의 유용한 인재가 되여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사경에 처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응당한 일입니다. 나도 그런 환경에 띄우면 선뜻이 나설 것입니다.”고 했다.

림철섭의 어머니 류영희는 “그날 철섭이가 물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 임신 수개월 된 애를 잃었습니다. 철섭이가 사고를 당한 후 아이하나만 키우는 것이 불안하여 둘째로 딸을 낳았는데 벌써 23살입니다. 고만길의 덕분에 우리는 아들 살리고 딸까지 얻었으니 그를 잊을 수 없습니다.” 고 했다.

네번째 취재

2016년 6월 25일, 도문시 천남화장터 유체고별식에서 고만길(1954,2,2.ㅡ 2016.6.21)의 추도식이 있었다. 이날 고만길이 하향했던 도문시 석현진 송림촌의 촌주임과 당년의 집체호 정치호장 허송철이 소식을 듣고 고인을 추모했다.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고 이들의 비통과 함께 비까지 내렸다.

“..고만길동지는사망전까지 부인에게 위탁하여 당비를 제때에 납부한 훌륭한 당원입니다.....고인의 죽음에 하늘도 눈물을 흘립니다.”
도문시 향상가 부유사회구역 당사업 책임자의 추도문중의 한구절이다.

림철섭의 어머니(류영희)에 따르면 림철섭은 대련민족학원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연구생공부를 마친 후 지금 일본 모 회사의 영업경리로 있습다.

철섭이는  고만길을 잊지 않으려고 1986년 12월 24일의 1224를 핸드폰번호 꼬리수로 선택했다.

지나온 30년간 고만길취재는 그가 자기가 한 일을 말을 내지 않기 때문에 그야말로 힘든 취재였고 감동적인 취재였다.

 30년간의 취재에서 그가 자기로 자기의 사적을 말한 시간이 모두어 보면 기껏해야 한 시간이 푼한 정도로 기억에 남는다.

장정구씨의 말이다.

ㅡ   만길이는 조만에 자기가 한 일을 말하지 않습다

1971년에 그가 오공5대 저수지에 물에 빠진 동렬이(간질병환자)를 구해내고서 만길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이 일을 알면 아이들이 동렬이를 놀려줄 것이니 누구도 말을 내지 말라고 당부를 한데서 동렬이가 죽은후인 15년만에 그 일이 공개되였습다...

  고만길취재는 필자에게는 영웅을 따라 배우는 과당이였다.

부언으로 필자는 각급 당과 정부에서 당년에 수립한 영웅(모범)인물에 대한 경상적인 중시와 관심은 당과 정부에서 초심을 잊지않고 사명을 명기하는 중요한 내용임을 밝힌다.

필자는 고인의 명복을 빌고 또 빈다.

  / 오기활
 
                                                     [ 길림신문 ]  202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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