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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혹과 매혹의 경계를 뻔질나게 드나들던 아들녀석이 결국 혹애의 나락으로 깊이 추락할줄은 전혀 뜻밖이였다. 그 ‘사람 한번 미치게 하는 잔디밭운동’-축구에 말이다!
가뜩이나 학습부담으로 운동이 부족한 고중단계에 좋은 휴식의 방편을 얻었답시고 초기엔 쾌재를 불렀으나 시나브로 녀석이 축구에 아주 주화입마(走火入魔)의 증세를 보이는데는 저으기 근심과 걱정이 치고 박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대 관심사인 연변축구팀의 관련 뉴스를 일일이 체크하는건 둘째 치고 국내를 넘어 국외 축구상황에까지 무한정 촉수를 뻗쳐나가는데는 생각 밖의 저쪽이였고 거기에 동아리를 무어 각종 장비로 무장하고 정기적인 활동을 펼쳐나가는데는 아차! 해도 이미 쏟아진 물이였다. 오히려 궐자가 싸구려축구화 때문에 망신만 당했다며 감각 무딘 부성애를 호소하는데는 당장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고급축구화 한컬레를 사주는 도박사적인 용기까지 과감히 동원해야 했다. 세상에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더니…
헌데 그놈의 축구화가 고작 열흘도 가지 않아 코등이 따질 줄이야! 단통 짝퉁으로 의심을 했으나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요, 그렇다고 해서 던질 수도 없는 ‘발그릇’이라 하는 수 없이 눈을 흘기는 아들놈 대신 신기료장수를 덜레덜레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안해가 알려주는 시장통 뒤골목에 들어서니 이런저런 생활용품들을 닥치고 수선하는 난전과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는데 그중에는 내가 찾는 신기료장수들도 여럿이 포진해있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마분지 쪼박에 ‘조선족수리’라고 쓴 신기료 난전이 보이 길래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선조들의 말씀이 떠올라 그리로 향했다.
“어서 오십쇼!”
뒤굽이 가느다란 녀사용 뾰족구두에 열쌔게 기름칠을 올리고 있던 40대 초반의 상고머리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간질간질 웃는 얼굴에 먹이 쫓는 수탉처럼 제창 고개를 갑삭거리는 품이 마치 당신 할아버지의 신이라도 내민양 금세 공짜로 수선해줄 그런 기색이였다.
“축구화잼까? 어찌 됐음까? 자, 이리 주쇼. 내 좀 보기쇼. 오, 여기 코등이… ”
손을 보던 녀사용 뾰족구두를 한쪽에 밀어두고 내가 내민 축구화부터 이리저리 살펴보던 상고머리가 곧 기계를 덜커덕거리며 구두수선에 달라붙었다.
보매 시시부레한 공사라 굳이 허리까지 구부정해가지고 열심히 지켜볼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일단 난전 앞에 놓인 손님용 쪽걸상에 엉뎅이를 붙이고 앉았다. 어쭈, 편안히 엉뎅이를 붙이고 앉으니 뭔가 버릇처럼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요즘 세월 무슨 초면인사 같은 그놈의 한마디가 말이다. 그래서 심심파적으로 지나가는 물음처럼 툭! 하고 던져보기에 이르렀다.
“아저씬… 한국에 안 가요?”
“한국?”
상상외로 상고머리가 힐긋 나를 스쳐보더니 엉뚱하게 반문했다.
“남조선 그램까?”
“남조선?!”
어랍쇼! 불각시에 한방 죽 떠먹은 기분이였다. 하긴 중한수교 전에는 다들 그렇게 부르지 않았던가. 결코 틀린 말도 아니였기에 옳다는 양으로 고개를 끄덕였더니 이번에는 코방귀를 살짝 곁들인 이른바 ‘썩소’를 피식거리는 것이였다.
“누기나 거기 간다구 해서 다 덕대돈을 버는건 아니잼둥? 여기서두 잘만 일하믄 먹구사는건 근심없습꾸마. 거기 가믄 돈을 잘 번다고 해두 노라리는 어디 가나 매한가집지. 목에 떡함지를 처달아두 게으른 놈은 굶어죽는다는 말이 있잼둥.”
그러면서 상고머리는 낮은 소리로 재빨리 소곤거리는 것이였다.
“내 낮에는 신수리를 하고 저녁에는 다른 일을 한다꾸마.”
“?”
일시 얼빤해가지고 상고머리의 면전에 물음표를 날리는데 궐자가 기다렸다는듯 씨익 뒤를 다는 것이였다.
“사우나에 가서 둬시간씩 때밀이를 하는데…”
“때밀이?”
“내 하루에 얼매 버는지 암둥?”
“얼매를?”
상고머리가 당장 입귀를 삐죽거리더니 ‘지난해 대학동네에다 120평방메터짜리 새 아빠트를 마련하고 차도 한대 새로 뽑았다’며 시뚝해서 내 등뒤를 가리키는 것이였다. 고개를 돌려 상고머리의 손끝을 따라가 보니 멀지 않은 주차장 끝머리에 멋진 승용차 한대가 기세등등해 서있는 것이 아닌가.
“남조선이 무슨… 여기서두 잘만 하믄 부러울게 없습꾸마. 아임둥?”
빈정거림 같은 상고머리의 올곧은 말에 나는 그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제딴에는 신수리로 생계를 유지하는 인생이 보기가 참 안돼서 걱정하듯, 권고하듯 꺼내본 화두였는데 오히려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갔으니 말이다. 말한 본전은 커녕 새로 할 말마저 잃어버린 채 머쓱해서 앉아있는데 상고머리가 수선을 끝낸 축구화를 쓱 내밀었다. 뭔가 면구스러워 얼른 자리를 뜰 생각에 급급히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갑을 찾으며 수선료금을 물어보았다.
“25원임다.”
“뭐?”
어마지두 터지는 내 물음에 상고머리가 그런 반응이 나올줄을 미리 알았다는듯 입이 삐죽해서 부연하는 것이였다.
“축구화는 원래 비싼 신이길래 오래 전부터 이 가격임다.”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수선료금을 지불하기에는 현금이 부족했다. 할 수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상고머리가 인차 자기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위챗 금액지급 프로그램을 리용해 수선료금을 지불하자 상대방의 이름이 금세 내 스마트폰 형광막에 떠올랐다.
“‘후건신(候建信)’! 뭐야?”
순간 나는 멍해졌다. 이건 뻔할 뻔자, 타민족 이름이 아닌가?
“당신… 조, 조선족이 맞소?”
내가 스마트폰에 현시된 이름과 상고머리를 번갈아보며 의아한 눈길을 던지자 상고머리가 곧 능갈맞게 히히 웃더니 “맞심다! 맞심다!”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불량기가 있는 소년한테 은근슬쩍 엿 먹은 기분이였다.
‘짝퉁 축구화, 짝퉁 조선족, 짝퉁… ’
그때였다. 저쪽으로 삐익 돌아앉아 녀사용 뾰족구두에 계속해서 기름칠을 올리고 있던 상고머리가 무슨 변명처럼 중얼거리는 것이였다.
“자기게라구 해두, 아무리 좋은게라구 해두 던지거나 쓸줄 모르믄 쓸데 없지무. 남의게라두 잘 배워서 제대로 쓰문 좋은게 아임둥?… ”
찰찰 기름기 도는 우리 말 솜씨보다 어딘가 서투른 바늘솜씨로 징검징검 수선 받은 짝퉁축구화를 내려다보며 나는 그만 그 자리에 멍하니 그루 박히고 말았다. 불쑥 오래전부터 즐겨 써오던 사투리를 언제부터인가 써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순간 볼멘소리 한마당이 혀끝에서 사투리로 미끌거렸다.
“글쎄 ‘한국’이나 ‘남조선’이나 다를게는 없지만, 그렇다구해서리 ‘조선족수리’는 말로만 하는게 아이재이유? 그러챈소? 제, 와늘 제맘대리구만!”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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