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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에 있어서 민족종교의 의미
허명철 (연변대학교 민족학연구소)
Ⅰ. 인류문화와 종교
주지하는바와 같이 인류사회의 형성과 더불어 탄생한 최초의 문화형태는 종교이다. 인간이 창출한 초기의 종교문화는 비록 자연의 위력에 대한 敬畏意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지만 인간의 영혼을 啓示하여 참된 삶을 지향한다는 종교의 본연적인 취지를 드팀없이 실천해 왔었고 또한 이러한 궁극적인 목표의식과 실천행위를 통하여 인류역사와 문명의 맥을 끈끈히 이어오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종교를 인류역사발전의 창조적인 원동력이자 전반 인류문화의 발상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역사적으로 놓고 보면 우리는 하늘을 숭상하고 인간의 생명과 양심을 비롯한 모든 가치ㅢ 근원으로서 하늘의 인격성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창조해 왔었으며 나아가 하늘과 땅과 조화를 이루는 天地人 三才의 同格性을 바탕으로 한 사고의 틀을 형성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은 경천사상, 인간존중사상, 생명존중사상, 조화정신 등 문화적 기틀을 형성, 유지해 오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1) 따라서 우리는 하늘을 도덕적인 양심의 근원으로 생각하였고 하늘을 인간생명의 존재근거로 삼았으며, 하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을 삶의 가장 존귀한 가치로 간주하여 왔다.
이로부터 우리 민족의 근원적인 사상인 “인간중심”사상,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사상[홍익인간 사상]은 곧 하늘의 뜻을 받드는 것이 된다. 하늘이 만물을 낳아 기르지만 그 중에서 인간만이 하늘의 그 뜻, 사랑과 애정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하늘은 곧 사람을 통하여 그 똣이 존재할 수 있게 되며, 사람을 통해서 그 뜻을 지상에 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하늘과 인간은 뜻으로 통하는 존재이며, 하늘과 인간은 同格이 되는 것이며, 하늘의 뜻을 받드는 것이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되며,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 곧 하늘을 받드는 것이 된다. 이러한 사상은 근대 민족종교운동의 효시로 되고 있는 동학에서 인내천으로 표현된다.
아울러 근대화 물결의 충격과 외세의 무력침략에 의해 민족문화는 물론 주권마저 유린 당하는 수난기에 있어서 우리 민족의 전통사상은 여러 민족종교단체들에 의해 계승되어 인존사상, 선민사상, 해원상생사상, 후천개벽사상 등 형태로 그 맥을 이어왔으며 또한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국권회복과 민족자존을 위한 주체적인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는바 이러한 운동은 단순한 민족운동의 차원을 초월한 天道로써 어지러은 인간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고자 하는 평화운동이요 상생운동이기도 하였다.
이제 하나의 지구촌에서 공생공존해야 하는 인류는 평화의 소중함을 ㄷ욱 실감하고 있지만 물질적인 생존과 번영을 위한 민족 간, 국가 간의 치열한 경쟁은 또한 피치 못할 것이며 그에 따른 민족문화의 생존을 위한 이른바 문화전쟁도 역시 피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이 경제적인 성장을 추구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문화적인 성장과 가치추구도 홀시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제 있게 될 문화전쟁에서 살아남아 우수한 문화를 재창출하고 인류의 행복에 이바지 하고자 한다면 우선 전통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하며 전통문화 특히 도덕문명으로써 인류평화를 실현하여 진정한 지상천국을 건설하는데 그 궁극적 목적을 두고 있는 민족종교문화에 대해서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현재까지 우리는 자체민족문화유산의 중요한 부분이며 또한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민족종교의 근본정신에 대한 정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학문적인 차원에서 놓고 볼 때 사실 조선족사회의 민족종교운동연구는 일제시기 조선(한)민족종교운동에 대한 종합연구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며 해외 조선(한)민족종교운동사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지난 일제시기 조선족사회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던 민족종교운동에 대한 연구가 오늘날 조선족사회의 민족적인 삶의 질 향상과 민족정체성 확립에도 유조하다고 할 때 이러한 작업은 더욱 절실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놓고 보면 우리의 先人들은 경제적인 삶의 어려움 때문에 중국동북지역으로 이주해 왔었다. 그 만큼 경제적인 풍요로움에 대한 추구가 조선족사회에 있어서 일차적인 목표로 되어왔던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 경제적인 삶에 만족을 느끼지 않았으며 보다 높은 삶의 경지를 지향하는 정신적인 기둥이 있었고 추구가 있었던 것이다. 모종 의미에서 말하면 이 같은 정신적인 기둥이 바로 전통문화를 통해 우리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종교적인 신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바로 이러한 정신적인 支柱, 문화적인 바탕을 근대 격변기에 탄생했고 민족의 자주적 독립과 평화의 실현을 위해 줄기차게 진행해 왔던 민족종교운동에서 찾아보고자 하며 지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활발히 진행되었던 민족종교운동과 그 사상에 대한 총체적인 고찰을 토대로 오늘날 물질주의, 향락주의, 실용주의가 합리화되고 있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우리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가고 나아가 인류문명의 진보와 문화창달에 기여할 수 있는 그 도경을 찾아보는데 중점을 도고자 한다.
Ⅱ. 조선족사회형성에 있어서의 민족종교의 역할
우리 민족이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 이주해 오게 된 동기를 요약해 본다면 정치적, 경제적, 시대적 원인 등으로 다양하게 구분된다. 경제적인 삶을 위해 이 땅에 건너온 파산된 농민이 있는가 하면 정치적인 원인으로 동북지역으로 건너와 민족사상의 함양, 배일정신의 고취, 독립운동기지 건설, 무관학교의 설립 및 반일무장단체 조직에 주력해온 독립운동가들도 있다. 물론 우리가 현재 주목하고자 하는 민족의 전통문화도 解放欲求나 革新欲求나 再生欲求를 반영하는2) 신생한 민족종교단체들에 의해 이 에 전파되었다.
신생한 민족종교가 빠른 시일내에 동북지역에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만주라는 신천지에서 “神人”, “眞人”이 강림하고 출현한다는 당시 사람들의 소박한 종교적 심성과 관련된다.3) 이들은 대부분 생활난으로 이주하였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讖言說의 “眞人”과 “勝地”가 동북지역에 있다는 소문을 믿고 월강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재해로 인한 사회적 불안 속에서 생존의 출구와 구원을 갈구하는 민중들이 삶에 대한 희망을 “他者”로부터 얻으려 하는 욕망과 욕구를 반영하는 종교적 심성의 표출로서, 이러한 종교적인 심성에 의한 그 어떤 “預言에 대한 盲信”은 일종의 행위동기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4) 여기에 외국 선교사들과 민족종교단체들에서 선교 혹은 반일을 목적으로 이 지역에 이주한 민족구성원들을 주목하게 되고 상당수의 독립운동가들 또한 “宗敎救國論”에 입각하여 종교적 형식을 사회결사의 모체로 간주하게 됨에 따라 종교는 조선인 사회의 응집력을 결집하는 일종의 유대역할을 하게 되었고 宗立학교는 민족의식과 독립 정신을 함양하고 민족계몽교육운동을 전개하는 전초지로 되었다.
이와 같이 이주민들이 소유하고 있던 초기의 소박한 종교적 심성은 종교단체와 독립운동가들이 뚜렷한 목표의식과 실천동기를 부여함에 따라 이들의 삶 자체도 단순한 경제적 목표를 초월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공동체적 삶의 의의세계를 구축하게 되었고 개인적인 신앙생활도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신앙생활을 놓고 보면 민간신앙을 비롯하여 기독교, 천주교, 불교, 유교 이외에 조선에서 유입된 천도교 ․ 시천교 ․ 청림교 ․ 대종교 ․ 증산교 ․ 원종교 등 각종 민족종교들이 있었는데 이러한 민족종교는 당시 조선족사회에 정신적 기탁으로 되고 삶의 희망을 심어주면서5) 그들이 삶의 터전을 닦고 민족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족사회에서의 종교적 생활은 동학운동의 영향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동학운동을 효시로, 민족종교에서 주장했던 “事人如天”의 평등사상과 “後天開闢” 등 사상은 망국의 서러움을 겪고 있는 민족에게 희망을 안겨주었으며 “하느님”(시천주)을 誠, 敬, 信을 다하여 지성껏 모시면 신통하여 “無極大道”를 크게 깨달아 현존사회를 개조하여 후천개벽을 실현하여 지상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는 주장은 당시 일제의 식민지통치 하에 있는 우리 민족의 염원을 반영하였는바 이러한 교의나 주장의 내면에 안받침 되어 있는 사상은 현존의 “일제식민지통치는 멸망하고 조선은 독립된다”는 반일민족독립사상이었다.
당시 민족위기의 역사적 상황에서 동북지역으로 망명한 애국지사와 독립운동가들은 국권회복의 수단으로써 종교전도와 애국계몽교육을 결합시키면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였으며 이 지역에서 진행된 민족종교운동도 개인적인 신앙의 차원을 넘어 민족문제, 국권회복과 민족독립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종교적 저항으로 전환되었다.
특히 민족종교단체들에서 설립한 종립학교는 반일민족교육운동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민족정신을 환기시키고 평등과 자유와 같은 근대적 민주의식을 키우는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사상적 ․ 조직적 및 대중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19년 기독교 ․ 천도교 ․ 청림교 ․ 공교회를 중심으로 용정에서 일어난 “3.13만세운동”을 효시로, 4월 말까지 만주지역 조선인들은 약 80여회의 집회를 거행하였고 117,450명이 참가하였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동북지역에서 일어난 우리민족의 만세시위운동에는 민족종교지도자 및 단체들이 앞장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6) 뿐만 아니라 동북지역에서 독립운동이 점차 무장투쟁으로 전환되던 시기에도 역시 종교계에 몸담고 있던 민족주의자들이 무장투쟁을 주도하였는데 각 독립운동 단체의 구성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종교인이었다.7)
일제시기 적극적으로 민족운동에 참여했었고 또한 이미 학계의 연구작업을 통해 널리 알려진 대종교는 민족종교인 동시에 반일독립운동단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8) 대종교에서 진행한 반일독립운동은 중광단 ․ 흥업단 ․ 정의단 ․ 군정부, 그리고 북로군정서와 서로군정서의 활동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이미 많이 연구가 되어 있기에 본문에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구체 내용들에 대해서는 大倧敎總本司에서 펴낸『大倧敎重光60年史』, 1970]
대종교 외에 동북지역에서 적극적으로 반일투쟁을 벌린 민족종교단체로는 청림교를 들 수 있다. 20세기 초 동학과 단군신앙으로 민족의식과 민족혁명전통을 보존, 계승하여 설립된 청림교는 1919년부터《야단》을 조직하여 반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20년 5월에는 “민족의 번영과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각 독립운동단체의 연합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고 당시 “전 민족이 신뢰하는 대한군정서와 합병”하기로 결정하였다. “야단”은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와 연합하여 반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림교신도들을 동원하여 각 반일독립단체에도 병력과 군수품을 공급하였다. 1920년 봉오동전투시 청림교는 신도들을 동원하여 병력과 군수품을 지원하였으며 그해 10월에 있은 청산리전역에서도 북로군정서와 연합하여 일제침략군을 타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병력과 군수품을 지원하였다.9) 그뒤 반일독립무장투쟁이 저조기로 진입하게 되자 청림교는 1920년대 후반기부터 단군을 비롯한 조선의 역대 개국시조를 신앙대상으로 삼고 용정에 영모전을 건축하고 개국시조들의 공덕구석비와《유태묘결명》비사까지 세워놓고 장기적으로 “멸왜기도”를 드리면서 광범한 신도들에게 반일민족독립사상을 선전하였다.10)
결론적으로 말하면 민족종교는 다양한 동기와 목적으로 중국동북지역에 건너온 온 이주민을 중심으로 하나의 민족공동체사회를 결성함에 있어서 하나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으며 전반 조선족사회가 정신적 ․ 실천적으로 반일민족교육운동과 무장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중추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즉 특정 종교를 배경으로 조직된 각 독립운동단체 구성원과 조선족들은 종교를 통하여 하나의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고 나아가 사회적 ․ 경제적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11)
Ⅲ. 현시대에 있어서의 민족종교의 의미
세계의 냉전질서가 무너지고 통신기술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하여 인류역사는 이미 一日生活圈이라는 지구촌시대에 접어들게 되었으며 조선족사회 개개 성원들의 생존무대도 단순 집거지역 내지 거주국이 아닌 지구촌 곳곳으로 펼쳐지고 있다. 장시기 동안 동북지역에서 삶의 터전을 영위해 왔던 조선족들은 거주국의 개혁개방 정책의 실시 및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에 힘입어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으로 진출하시 시작하였으며 이주시기 조선(한)민족의 디아스포라에서 현재는 조선족사회자체의 디아스포라를 연출하고 있다. 물리적 공간의 디아스포라는 그래도 나름대로 경제적인 삶의 향상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민족공동체적 응집이 결여된 정신적인 디아스포라로 이어진다면 참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가에서는 흔히 재중동포사회 혹은 조선(한)민족 자체를 유태인과 비교하면서 동방의 유태인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물론 나라를 잃고 지구촌 곳곳에서 디아스포라식 삶을 살아왔다는 점에서 우리는 유태인과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겠지만 정신적인 삶에서는 단연 명백하게 구분된다. 종교적 심성이 안받침 되어 있는 유태인들의 정신적인 결속력은 세인이 공인하는 바이다. 유태인들은 자체의 민족종교를 바탕으로 하는 정신세계를 갖고 있으며 자체민족의 지혜를 집대성한 “탈무드”로 후대들에게 계몽교육을 실시한다. 다시 말하면 유태인들은 물리적 공간에서는 디아스포라이지만 정신적인 삶에서는 그들만의 신앙세계가 있는 것이다.
전반 이주시기(광복이전까지 -- 필자 주)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조선족사회에서는 민족의 지성인들과 선각자, 종교단체들에 의해 나름대로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왔고 민족의식과 민족의 얼을 간직해 왔다. 이 같은 종교적인 목표의식과 실천행위는 조선족사회의 형성과 발전과정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선족사회의 간판으로 되어 있고 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교육도 바로 종립(宗立)학교인 서전서숙이 그 효시로 되고 있으며 민족역사의 한 폐지를 장식하고 있고 민족의 긍지로 되고 있는 “3.13”반일시위에도 종교단체와 종교인들이 주력으로 앞장에 나섰었다. 따라서 당시 중국 동북지역에서 일어났던 종교운동, 특히 민족종교운동은 조선족사회의 공동체적 문화의식의 형성과 정신적인 삶의 추구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는 것은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민족교육은 서전서숙의 교육이념을 이어오지 못하고 근근이 우리말로 강의하고 우리글로 된 교재를 사용한다는데 그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민족학교들에서 배양된 후대들은 자체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지 못한 채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만일 우리들 스스로가 주체적인 자각으로 민족문화를 지켜가고 민족의 얼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적극 모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정 정신적인 디아스포라가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현실적으로 전혀 극복할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제시기 우리는 민족종교운동을 통해 민족문화를 지켜왔으며 나라와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한 힘을 키워왔으며 민족의 개개 성원들에게 정신적 기탁으로, 마음의 고향으로 되었었던 소중한 경험들이 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공간도 우리들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현대적인 기술 수단과 자유로운 사이버 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다.
비록 세계화시대가 도래되고 지구촌이념이 형성되기 시작한지는 불과 몇십년에 이르지만 국경과 이념을 초월한 정신적인 일체화는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세계적인 종교의 탄생과 함께 이미 실천되어 왔던 것이다.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종교적 신앙생활은 공동한 신념으로 보편적인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지향하는 사람들을 일체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하나로 될 수 있는 가능한 도구도 종교적 신념차원의 정체성확립을 통해 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우리들이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면서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가면서 민족의 대의를 추구해 간다면 우리는 진정 통합된 민족으로 될 수 있을 것이며 그 어떤 기적도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거족적인 “3.13반일시위”와 “청산리전역”은 이 점을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다.
민족의 화합과 발전을 위하여, 세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서 우리는 小我가 아닌 大我가 될 수 있는 자체 민족의 얼을 키워야 한다. 얼빠진 민족은 국경이 무의미해 지고 있는 지구촌 시대에 존중을 받는 지구촌 일원으로 될 수 없으며 지구촌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Ⅴ. 향후의 과제
한 개 민족공동체로서 조선족사회에서 지켜가야 할 민족정신은 바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행정 속에서 면면히 이어내려 오면서 고스란히 지켜온 민족의 얼임은 자명한 것이다. 이러한 민족정신 내지 민족의 얼이 담겨 있는 그릇은 그 민족의 심성에 자리잡고 있는 종교적 신념이 아니겠는가? 종교를 삶의 궁극적 가치에 대한 추구라고 할 때 우리는 나름대로의 종교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가치의식의 혼돈으로 삶의 사거리에서 방황할 때 자각적인 종교적 정서와 정신적인 추구가 더욱 필요시하다. 이러한 종교적인 삶은 단순 단체적인 생활을 떠나서 개개인의 심성수련을 통해서 진행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개체적인 삶의 경우에는 가능할진대 내가 민족공동체에 소속되고 한 개 민족의 성원이라고 할 때 그럼 민족적 존재로서의 나의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여기에는 공동체적인 삶의 자세와 추구가 수요되는 것이다.
종교는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형식으로 세속적이고 원심적인 생활자체를 반영하고 있었으며 사회통합성의 절대형식인 것이다. 종교의 원초적인 삶으로 하여 인간이 일종의 일치성으로 형성된 응집 ․ 결속인 것이다. 개인과 집단의 관계가 “승화 ․ 헌신 ․ 충성을 합일화한 특징”을 지닐 때 이것이 바로 종교성적인 관계로 되는 것이다.12)
우리가 오늘날 자본이 지배하는 현실생활 속에서 경제적인 삶을 위해 도시로 진출하고 해외로 나가는 것은 응당 긍정할 바이다. 하지만 단순 경제적인 삶에 만족을 느낀다면 오히려 삶의 빈곤을 의미하게 된다. 우리는 인구이동으로 해체되고 있는 기존의 집거구역은 도시에 새로이 일떠서고 있는 코리안타운으로 대처할 수 있지만 물리적 공간에 일떠세운 코리안타운 역시 점점 상실되어 가고 있는 정신적인 삶의 집거구역을 대체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가 단 한번만이라도 “내가 누구인가?”, “우리 민족은 대체 어떠한 민족인가?” 하는 궁극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면 우리는 이 같은 정신적 허무를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해 갈려면 21세기 지구촌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자아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민족문화교육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하며 개개 성원들에게 민족의 얼을 심어주는 것이 급선무로 되고 있다. 특히 근대 이주민족으로 다민족국가에서 생존하고 있는 재중동포사회에서는 그 동안 단절되었던 민족적인 것을 발굴 정리하여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족공동체적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따르고 있는 것만 사실이다. 특히 종교에 대한 인식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전반 사회적 분위기에서 조선족사회에 필요한 것은 形態化한 종교보다도 민족정체성을 간직하고 공동체의식을 키워가는 그런 종교적 신념과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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