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날 아침, 군이는 자명종소리에 눈을 떴다. 흐릿한 기분속에서도 군이는 주방쪽에 귀를 기울였다. 대개 전날 밤 아버지께서 술을 과음한 아침이면 주방이 고요한 채로 있었다. 그러면 군이는 조용히 일어나서 저절로 라면을 끓여먹지 않으면 빵같은것으로 대충 아침을 에때우고 학교로 가군 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아니였다. 주방에서 장국 끓는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던것이다. (몹시 피곤하실텐데 어떻게 일어났을가?) 군이는 어쩐지 아버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밤에 너무도 매정하게 아버지를 대했다는 자책감도 머리를 쳤다. 군이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평소에도 군이는 간혹가다 식탁을 닦거나 수저를 놓는 일 같은것을 돕군했었다. 군이는 별 생각없이 주방으로 가다 말고 흠칫 멈춰섰다. 어제밤, 그런 모습으로 아버지를 대하고 아침에 별 일 없었던듯 아버지 앞에 나타난다는것이 스스로도 무척 싱겁게 느껴졌던것이다. (어떻게 할가? 아침, 먹어? 말어?)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쩜 이 기회를 빌어 아버지에게 뭔가를 경고해 놓는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을 메고 나오는 군이를 보고 아버지께서 입을 열었다 <<벌써 학교에 갈려구?>> <<네.>> <<아직은 일찍한데. 아침을 먹구 가야지.>> <<생각 없어요.>> <<아버지가 겨우 일어나서 장국까지 끓여놨는데 생각이 없다니? 그러지 말구 얼른 와서 한술 뜨구가거라.>> 군이는 아버지의 서운한 목소리를 등뒤로 흘리며 문을 빠져나왔다. 자기로서도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가 알수가 없었다. 다만 역시 뭔가를 해냈다는 그런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할 다름이였다. 시계를 보니 정말 등교시간이 이르기는 했다. 군이는 시원한 아침공기도 마실 겸 천천히 걸어서 북동뻐스역까지 가기로 했다. 거기서 3선뻐스를 타면 학교까지 갈수가 있었던것이다. 군이는 가로수를 요리조리 걸어 지나면서 가끔 손바닥으로 가로수를 탁탁 건드려보기도 했다. 그러는 새에 어느덧 북동시장부근에 도착했다. 북동시장 앞마당의 아침시장은 발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매대우에 즐비하게 올라있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보노라니 군이는 새삼스럽게 배 고파 옴을 느꼈다. (아침을 먹고왔던걸.)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군이는 왼손을 호주머니에 넣어 보았다. 소비돈이 만져졌다. 군이는 먹고싶은 음식을 골라 매대를 훝기시작했다. 노오란 콩기름이 반지르르 돋아난 입쌀밴새가 못견디게 군이의 식욕을 당겨주었다. 군이는 입쌀밴새를 파는 매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얼굴에 주근깨가 가담가담 보이는 40대쯤 되여보이는 아주머니가 매대 뒤에 서있었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쌍까풀눈이 빛나는것이 젊었을 때는 꽤나 이뻤을 모습이였다. <<몇개를 줄가? 금방 쪄낸 떡이라 아직도 따뜻하다.>> 아주머니가 떡함지를 덮은 꽃부리담요를 젖히며 군이에게 알은체를 했다. <<하나에 얼마예요?>> <<하나에 30전씩 한단다. 몇개를 줄가?>> 아주머니가 다시 물어왔다. <<다섯개를 주세요.>> <<그래 다섯개라. 다섯개 값만 내라. 하나를 더 넣었다. 다섯개를 가지고 배불릴수있겠니?.>> 아주머니는 입쌀밴새 여섯개를 비닐봉지에 넣어 군이에게 넘겨주며 사람좋게 웃어보였다. <<잘 먹겠습니다.>> 군이는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올리고 몸을 돌렸다. <<엄마, 아이, 무거워라. 빨리 받아요.>> 군이는 걸음을 옮기다말고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어쩐지 귀에 익은듯 해서 머리를 돌렸다. 책가방을 멘 녀자애가 매대우에 떡소래를 내려 놓으며 엄살을 부리고있었다. 그 녀자애를 보는 순간 군이는 깜짝 놀랐다. 매대우에 떡소래를 내려놓고있는 그 녀자애는 분명 미림이였던것이다. (미림이가, 아니 미림이가 방금 저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불렀잖아?) 군이는 도무지 자기의 귀를 믿을수가 없었다. 그랬다. 미림이가 방금 그 아주머니를 분명 엄마라고 불렀던것이다. (어떻게 된 일이지? 미림의 어머니는 큰 간부가 돼서, 상해의 어느 판사처에서 일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미림이는 잠시 이모와 함께 산다고 한것 같은데?) 군이는 궁금해서 도무지 견딜수가 없었다. 군이는 걸음을 돌려 다시 입쌀밴새를 파는 매대앞으로 걸어갔다. <<엄마, 그 분들이 오늘 산보를 간대요? 웬 떡을 이렇게 많이 산대요? 나까지 고생시키면서.>> 미림이가 행복한 투정을 부리고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이런 일이 날마다 있었으면 좋겠다. 입쌀밴새를 한가마 더 판다는게 어디니? 감사하다, 미림아. 네가 마지막 가마를 담아 왔기에 망정이지, 그 떡이 다 되기를 기다려 나왔더라면 늦을번 했잖니?>> 아주머니가 미림이를 건너다 보며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옳구나, 저 분이 분명 미림의 어머니구나.) 군이는 신대륙이나 발견한듯 두눈이 화등잔이 되여 미림이를 바라보았다. <<미림아!>> 미림이가 머리를 돌렸다. 군이를 발견하는 순간 미림이는 깜짝 놀라며 흠칫했다. <<구…군이야.>> <<미림아, 여기서 만나네.>> <<저…저, 학교에 갈게요.>> 미림이는 군이의 손을 끌고 매대를 지나며 연신 내려오지도 않은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시장마당을 다 지나서야 미림이는 군이의 손을 놓았다. 얼굴에는 여전히 당황스러운 기색이 력연했다. <<미림아, 너의 이모, 참 이쁘더라.>> 군이가 얼굴에 묘한 웃음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어쩜… 군이야…>> <<나 방금 다 들었다. 미림아, 정말 뜻밖인데?>> <<군이야, 제발 빈다. 다른 애들에겐 말하지 말아라 응? 너, 어제밤 메신저가 생각나지. 나 원래 요즘 시간을 타서 너에게 사실을 말하려고 했단다. 너에게 만은 이 사실을 말해도 될것같은 믿음이 생겼거든.>> <<어제 밤에 네가 말하던 너만의 비밀이 이것이였니?>> <<그래, 사실 나도 이런 비밀을 속에 넣고있는게 너무너무 힘들었단다. 학급 모든 친구들에게는 몰라도 꼭 누군가에게는 이 비밀을 털어놓고싶었단다. 군이야, 난 널 믿는다.>> <<고맙다. 헌데 도대체 어떻게 된거니?>> 군이는 미림에게 진심으로 물었다. <<군이야, 우리 아빤 정말 나쁜사람이 아니였다.>>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미림의 눈에는 어느새 마알간 이슬이 맺혀 반짝이고있었다. 군이는 그 이슬을 보는것이 두려웠다. 수정같은 이슬뒤에 미림의 말못할 아픔이 숨어있을듯싶어서였다. <<미림아, 괜찮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마라!>> <<아니다, 군이! 너, 꼭 들어줘!>> 군이는 다시 머리를 돌려 미림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릿한 슬픔을 그들먹 담고 반짝이던 미림의 눈길이 강경하게 번져가고 있었다. <<군이야, 사실 난 아빠가 없어!>> <<어! 세상뜨셨니?>> <<아니.>> <<그럼?>> <<나도 몰라, 내가 어릴 때 아빠는 로씨야에 돈벌러 갔었거든. 그 뒤로 난 아빠를 한번도 본적이 없어.>>
미림이는 군이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그말을 들으며 군이는 은근히 미림이에 대한 련민을 느끼고있었다. 미림의 약간 떨리는듯한 목소리가 무대에 선 주인공의 독백처럼 담담하게 들려왔다. <<전에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소문이 자자했어.>> <<무슨 소문?>> <<아빠는 로씨야에서 조폭으로 되여버렸대.>> <<뭐, 조폭?>> 순간 군이는 온몸으로 전률을 느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흉측한 문신을 한 흉악한 조폭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래, 한 마을에 살던 사람이 로씨야에서 돌아와 그렇게 소문을 퍼뜨렸거든.>> <<그래, 그게 사실이라니?>> <<몰라, 마을에서는 불 안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겠냐구 했어. 나중엔 아빠가 조폭들의 무리싸움에서 맞아죽었다는 소문까지 돌았거든.>> 미림이는 잠간 말을 끊고 길에서 실북나들듯 오가는 차량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래말을 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흑룡강성 해림에서두 멀리 떨어진 시골마을이였어. 아빠가 로씨야로 돈벌러간다구 떠난후 엄마는 집에서 농사일도 하구, 짐승개들도 키우면서 정말 열심히 사셨거든. 이듬해에 아빠는 한번 집에 다녀오셨어. 돈도 꽤 벌어오신것같았어. 나에게 고운옷이랑, 예쁜 놀이감이랑 가득 사다주셨거든. 아빠는 얼굴에 수염이 되게 많았어. 미림아~ 하면서 나를 훌쩍 들어올려 그 꺼슬꺼슬한 수염에다 나의 얼굴을 문대는데, 내 얼굴이 막 뜨거워 나는거 있지?…>> 이야기를 하는 미림이의 얼굴에는 순간 홍조가 피여나기 시작했다. <<그번에 와서 두어달 집에 계시다가 아빠는 또 로씨야로 가셨어.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그렇게 떠나서도 한 일년간은 종종 전화도 오고 물건도 인편에 들어왔대. 내가 2학년에 올라간 그해로부터 아빠에게서는 소식이 완전히 끊겼어. 마을에 나가면 애들이 나에게 <깡패네 계집애>라며 돌멩이를 뿌렸어, 그래서 난 마을을 나가기 싫어했어. 그러니 친구도 없었구. 학교에 가서도 나는 늘 왕따를 당했거든. 억울함을 당하고 내가 울며 집에 들어가면 엄마도 나를 끌어안고 울었어…>> 미림이는 남의 이야기를 하는듯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엮어나갔다. 군이는 그러는 미림이를 정말 달나라에서 온 손님을 바라보듯 뚫어지라 지켜보기만 했다. <<그후로 엄마는 할아버지네 집에도 잘 안다니구, 외가집에도 잘 가지 않았어. 간혹 우리가 가도 그들은 우리를 썩 반가와 하는 눈치가 아니였구. 엄마는 차츰 말수가 적어졌어. 그러던 어느날 엄마는 나보고 연변으로 나가자는 거야. 남들이 모르는 곳에서 나더러 시름놓고 크라면서 말이야.>> 미림이는 큰 짐을 덜어놓은듯 <<호->>하고 가는 숨을 내쉬였다. 그 한숨소리와 함께 군이는 미림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미림이는 두 눈을 살풋이 내리깐채 가끔 입술을 감빨고있었다. 잠간 침묵이 흘렀다. <<너 여기에 친척이있니?>> 군이는 침묵을 깨야 되겠다싶어 입을 열었다. <<아니야. 아무도 없어.>> <<근데 어떻게 여기 와서 자리를 잡았니?>> <<엄마가 연룡도에 나왔다 갔거든. 알아 봤대. 날 공부시킬수 있는가를. 지금 우리 연룡도시도 조선족학교는 학생수가 줄어들어 학교에 붙겠다는 애들은 호구를 따지지 않구 다 받아드리지 않아?! 엄만 날 공부시킬수만 있으면 된다는거야, 그래서 한 이틀 조용히 짐을 꿍져가지구 도망치듯 여기 연룡도에 나오게 된거야.>> <<하지만 너의 엄만 직업도 없잖니? 힘들어 어떻게 사니?>> <<우리 엄마? 직업이 많아. 새벽에 일어나선 입살밴새를 만들어가지고 아침시장에 나가거든. 그것을 다 판후에는 출근을 해.>> <<어디로?>> <<새로 지은 지하상가가 있잖니? 옷매대인데 남의 옷을 팔아주고있어. 우리엄마, 일을 잘 해서 로반(매대주인)아지미가 되게 좋아 한대. 전번에는 나를 주라고 로반아지미가 새옷도 사줬다. 이거야.>> 미림이는 자기가 입은 하늘색 셔츠를 만져보이며 들떠서 이야기 했다. 얼마나 비쌌것인지는 가늠할수 없었지만 무척 깨끗하고 정갈해 보였다. 군이는 미림이가 입은 옷으로부터 천천히 미림의 얼굴로 눈길을 가져갔다. <<미림아, 너, 엄마를 이모라고 애들에게 소개하면서 엄마께 미안하지 않았니?>> 미림의 얼굴이 삽시에 흐려졌다. 잠간 무거운 구름이 스쳐지나는듯싶더니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미안했지. 그런 말을 하고 난 날, 집에 돌아가면 엄마 얼굴 보기가 죽도록 싫었단다. 그래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지. 하지만 고향에 있을 때 나를 없신 여기던 애들을 생각하면 거짓말을 꾸며서라도 새 학교에선 애들 앞에 당당히 나서고싶었어. 앞으로도 난 당당하게 살거야! 군이야, 난 정말 너를 믿는다.>> 군이를 바라보는 미림의 눈에서는 일종의 믿음과 애원의 빛이 진하게 비쳐지고있었다. 군이는 미림이를 바라보며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시름을 놔라, 미림아, 너 날을 믿어도 된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그리구 군이야, 우리 아빤 정말 나쁜사람이 아니였단다.>> 미림이의 목소리에는 진정 아버지에 대한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미림아, 넌 정말 지금도 너의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군이는 미림이를 바라보며 도전적으로 물었다. 미림이는 두 눈을 깜빡이며 오돌차게 대답했다. <<그럼, 믿고있단다. 아빠는 나쁜사람이 아니라구, 친구를 잘못 친해서 나쁜 일을 했을 뿐이라구 말이다. 우리 아빠가 정말 조폭이 됐다면 그 일은 용서할수 없지만 우리 아빠란 사람은 진짜 좋은 사람이라구 난 믿고있거든. 글치? 군이야!>> <<어… 그, 글치>> 군이는 인차 말끝을 흐려버렸다. 나쁜사람이 아니면 조폭으로 되였겠는가? 너무도 상식적인 일이였다. 하지만 갈망어린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며 <<글치?>>하고 물어오는 미림이 앞에서 군이는 차마 <<아무리 뭐라 해도 너의 아빠는 조폭이야!>>하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 군이야. 너라면 그렇게 생각할줄 알았다. 넌 리해심이 강한 애니까. 넌 다른 애들하구 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해. 첨부터 그렇게 느껴졌다. 군이야!>> 미림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살며시 군이의 손을 꼭 쥐여주었다. 군이는 짜릿한 전률 같은것을 느끼면서 슬며시 미림이의 손에서 자기의 손을 당겨 뺐다. 별안간 미림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너, 수집어하는구나. 군이야!>> <<뭘? 내가 뭘?>> <<아니다. 너, 어제 밤, 엄마편지를 보구 울었지?>> <<아니라는데.>> <<피~ 너, 엄말 3년이나 못봤다면서. 너처럼 감상적인 애가 그래 엄마편질 받구두 안울어?>> <<야, 너네 엄마두 저녁에 늦게 들어오니?>> 군이는 순간 엄마의 편지가 떠올라서 엉뚱한 물음을 미림이에게 던졌다. <<어? 늦게들어오는가구? 엄마가? 아니, 우리 엄만 4시반에 퇴근이거든. 퇴근하자마자 입쌀을 씻어서 퍼지우구, 저녁을 지어 먹은 다음 입쌀을 이고 가공공장에 가서 가루를 내오구, 그 다음은 밴새소를 만들구, 그러면 한 10시가 되나? 그리구는 자거든. 왜?>> 미림이는 얼음에 박밀듯 엄마의 하루를 엮으며 이상하다는듯 군이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그냥 물었어.>> <<이봐. 군이, 너 또 날 못믿는거지? 말하다 마는걸 보라니까.>> 군이는 정말 미림이의 믿음에 보답하지 못하는것 같아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는 맨날 늦으셔.>> <<왜? 일이 많나보구나. 너 아빠, 작가라했지?>> <<응.>> <<그러게, 작가들은 원래 일이 많은 거야. 작가들은 창작소재를 찾느라구 취재를 다녀야 하잖아. 그래서 그런거지 뭐!>> <<그렇지? 미림아, 우리 아버지 그래서 늦는거지?>> 군이는 이렇게 미림이에게 다짐을 따듯이 말해놓고는 스스로도 우스운지 히히 웃어버렸다. <<넨들 어찌 알겠니? 나두 모르는걸.>> <<아니라니까. 내 생각에 작가들은 다 일이 많을것 같다. 그렇잖으면 어떻게 그 재미나는 소설이랑 시랑 써내겠니?>> <<하지만 우리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것 같다.>> <<왜?>> <<우리 엄마가 편지에 썼는데, 우리 아버지가 엄마의 믿음을 갉아먹구 있대.>> <<어떻게?>> <<우리 엄마, 한국에 있어두 아버지가 엄마의 믿음을 갉아먹는걸 다 안대. 엄마는 나에게 우리가정을 함께 지켜가자구 했다니까.>> <<어떻게?>> <<몰라.>> <<너네 아버지 혹시 바람났니?>> <<뭐야? 바람났다니?>> 군이는 별안간 미림이의 말에 격한 감정을 느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미림이도 깜짝 놀랐다가 인차 입을 열었다. <<미안, 군이야! 나 별 궁리없이 한 소리야. 속에 넣지마. 응?!>> 군이는 순간 머리속에서 뭔가 쿵 하고 작렬하는 소리를 들었다. 무서운 생각이 굴뱀처럼 꿈틀꿈틀 치달아올랐다. (그래, 내가 왜 이 점을 생각 못했을가? 엄마는 편지에 아버지가 바람났다고 꼭 집어 쓰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런 뜻이 아닌가? 늦은 귀가, 향수냄새, 이상한 잠꼬대. 그래 엄마가 귀띔해주던 그런것들이 바로 아버지가 바람난 증거를 잡으라는 소리가 아닌가? 아버지가, 아버지가…) <<미림아, 어른들은 참 못돼먹었지?>> 군이의 엉뚱한 물음에 미림이는 이상하다는듯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몰라. 암튼 어른들은 참 치사하단 말이야.>> <<건 사람나름이지뭐, 난 우리 엄마를 애들에게 이모라고 소개하고있지만 속으로는 정말 존경한단다. 우리 엄만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사람이야. 우리 엄마도 어른이거든.>> <<그럼 우리 아버지만 치사해지는가?>> <<아버지를 어떻게 그렇게 말할수있니? 너의 아버진 작가가 아니니?>> <<미림아, 난 우리집에 무슨 일이 일어날가봐 정말 무섭다.>> <<군이야, 그렇게 멋진 아버지가 지켜주는데 뭐가 무서워 그런 생각을 하니?>> <<몰라, 암튼 그런 예감이 든다니까. 정말이야, 세상이란, 참! 미림아…>> 군이는 뭔가를 더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군이를 바라보며 미림이도 뭔가 더 물으려다 말고 머리를 숙였다. 둘은 조용히 학교를 바라고 발걸음을 다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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