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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최동일 신작

단편소설*블랙홀
2010년 03월 10일 21시 49분  조회:2441  추천:0  작성자: 동녘해
“까…만…것…”
진이는 금방 식자를 하는 악동처럼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글자를 오려나갔다. 하지만 밑판이 딴딴한 섬유판이여서그런지 도무지 글자가 뜻대로 오려지지 않았다. 진이는 제대로 오려지지 않았다고 느껴지는 글자를 찾아 다시 한획한획 힘을 주어 오렸다. 너무 도정신을 하여 글자를 살펴서인지 차츰 눈동자가 뻣뻣해났다. 진이는 글자에서 눈길을 떼고 머리를 들어 천정을 쳐다보았다. 얼기설기 잔금이 간 천정 중간에 달려있는 일광등이 자극적인 빛을 뿜어대고있었다. 그 빛속에서 일광등옆에 어지러이 박혀있는 파리똥 같은 까만것들이 기분 나쁘게 눈을 괴롭히고있었다. 진이는 괜히 신경질적으로 퉤하고 바닥에 헛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눈굽을 꾹꾹 찍었다. 그러다가 걸상에서 벌떡 뛰여일어나 손에 들었던 열쇠뭉치를 호주머니에 넣은후 오른손 손가락을 폈다 꼬부렸다 반복하면서 섬유판으로 된 긴 걸상웃면을 살폈다.
“김태룡 이 곳을 다녀가다.”
“리룡 기다려 복수할테다”
“최호 개 같은 새끼”
진이는 자기가 오려놓은 글자들옆에 란잡하게 씌여져있는 다른이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저도 몰래 “픽!” 하고 실소가 터져나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이어 또다시 딴딴한 섬유판우에 뭔가를 오리고싶다는 욕망비슷한것이 머리속을 치고들어오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진이는 다시 딴딴한 섬유판으로 된 걸상우에 엉뎅이를 붙이고 앉아 호주머니에서 열쇠뭉치를 꺼내들었다. 일여덟개의 열쇠가 한데 꿰여진 열쇠뭉치는 꽤나 묵직했다. 진이는 그 속에서 이것저것 고르다가 집 출입문열쇠를 찾아들었다. 끝이 뾰족해서 글자가 잘 오려질것 같아서였다. 진이는 열쇠를 쥔 오른손에 젖 먹던 힘을 다하여 또박또박 글자를 오리기 시작했다.
“…속…도… 보…이…지… 않…는… 세…상…”
진이는 잠간 멈추고 자기가 이미 오려놓은 글자들을 작품이나 감상하듯 조용히 읽어보았다.
“까만것, 속도 보이지 않는 세상. 까만것, 속도 보이지 않는 세상. 까만것, 속도 보이지 않는 세상”
진이는 이 몇 글자 안되는것을 단숨에 세번이나 읽어버렸다. 자기로서도 어째서 이런 글을 여기다 락서했는지 알수 없었다.
(왜서일가? 다른이들이 락서한것을 보고? 아니면… 그런데 까만것은 뭐지?)
진이는 오른손 식지에 열쇠고리를 걸어들고 빙빙 돌리면서 잠간 두눈을 감았다.
(까만것은 뭐지? 일광등빛이 눈을 자극하여 죽겠구만 자꾸 까만것이 떠오름은 무엇때문일가?)
진이는 삼검불처럼 어지러워지는 사색을 정리하려다가 웬지 가슴속이 갑갑해나서 “후—” 하고 긴 한숨을 톺아올렸다. 그 자리에 그채로 잦아들고싶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진이는 걸상에 눌러앉아 짚단 쓰러지듯 몸을 뒤로 날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뒤통수가 얼얼해났다. 하지만 진이는 그대로 벽에 등을 맡겨버렸다.
머리속이 하얗게 비워지는듯 했다. 하얀 공간에서 까만것이 머리 떨어진 파리처럼 앵앵 애처롭게 돌아치고있었다. 진이는 그 까만것이 지지리도 역겹게 생각되였다. 까만것은 머리속을 어디라 없이 헤덤벼쳤다. 까만것을 따라 우왕좌왕 하던 진이는 갑자기 오싹 몰려오는 한기를 느꼈다. 온몸이 오스스 떨려오더니 저절로 어깨가 안으로 오그라들었다. 진이는 움씰 어깨를 떨었다. 이어 까만것은 스물스믈 엉뎅이쪽으로 날아내렸다. 따라서 엉뎅이에서 도 찬기운이 서려올랐다. 진이는 차거워지는 엉뎅이를 두어번 움씰움씰 하다가 걸상에서 벌떡 뛰쳐일어났다.
모를 일이였다. 집안은 확확 겨불내가 나도록 무더운데 몸에서는 왜 영문없이 한기가 느껴지는것일가?
까만것이 엉뎅이로부터 쓩— 날아오르더니 곧추 대뇌쪽으로 달리는듯 했다. 순간 진이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진이는 자리에 굳어진듯 서있다가 허둥지둥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옮긴다해야 여섯평도 되나마나한 공간이여서 어디라없이 마음놓고 걸을수도 없는 곳이였다. 진이는 머리속을 헤덤벼치던 까만것처럼 벽구석을 따라 목적없이 맴돌다가 출입문가에 떡 하고 멈춰섰다. 쇠창살웃부분이 딱 진이의 눈높이와 일치를 이루고있었다. 진이는 두손으로 쇠창살을 부여잡았다. 손바닥으로부터 찌르는듯 한기가 느껴졌다. 진이는 그 한기와 내기라도 해보려는듯 더욱 으스러지게 쇠창살을 끌어잡았다. 차츰 한기가 아니라 아픔 같은것이 느껴졌다. 진이는 손에서 힘을 빼면서 쓰러지듯 쇠창살에 이마를 박았다. 퉁 하고 소리를 내며 이마에서 짜릿한 아픔이 느껴져왔다. 진이는 잠간 이마를 쇠창살에 던지고있다가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쇠창살너머로 쇠창살만한 하늘이 보여왔다. 쇠창살밖의 까만 하늘에는 별 하나 보이지를 않았고 그 하늘아래의 도시도 까만 세상 그대로였다. 진이는 또 한번 으스스 몸을 떨었다. 연길의 하늘아래에도 이렇게 까만 곳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못하고있던 진이였다.
진이는 쇠창살밖의 까만 하늘과 집안의 자극적인 일광등빛이 지지리도 불협화음을 이룬다고 생각하면서 일광등 전원을 찾아 눈길을 돌렸다. 네 벽면을 다 살펴도 전원 같은것은 없었다. 밖에서 전원을 공제하게끔 설치된것 같았다. (나절로 일광등을 끌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쳐들자 진이는 웬지 울고싶어졌다. 진이는 손바닥을 쫙 펴서 얼굴을 감싸쥐고있다가 몸을 돌려 터벅터벅 걸상에가 앉았다.
지독하게 신경을 건드리던 까만것이 또다시 진이의 머리속에 날아들었다. 진이는 그 까만것을 피해 머리를 저으며 두눈을 꼭 감고 벽구석쪽으로 앉은걸음을 해갔다. 동쪽벽면과 남쪽벽면이 이어지는 구석에 몸을 끼우고 앉은 진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잦아들기라도 하려는듯 한껏 몸을 옹송그리며 두눈을 꽉 감아버렸다.
갑자기 “삐이익—” 하는 쇠붙이 긁히는 소리가 울리더니 “들어가!” 하는 날이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이는 본능적으로 번쩍 눈을 뜨며 걸상에서 튕겨 일어났다. 철문이 반쯤 열려져있었는데 문밖에는 접대 진이를 접수해서 안에 던져넣던 몸집이 갱핏한 젊은 경찰이 서있었다. 이어 뚱뚱한 체구에 상고머리를 한 진이또래의 남자애가 머리를 푹 숙이고 이리저리 몸을 탈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젊은 경찰은 철문을 “쾅!” 하고 소리나게 닫으면서 신경질적으로 안에 대고 소리쳤다.
“말썽 부리지 말고 얌전히 있어!.”
이어 “드르륵—” 하고 쇠가름대를 당겨넣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간새였다.
집안에서는 다시 숨박히는 정적이 흘렀다. 방금 들어온 남자애는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서서 황황한 눈길로 구석구석을 살피고있었다. 눈에서는 살기 같은것이 번뜩이고 퉁퉁한 두볼이 푸들거리고있었다.
“씨팔!”
남자애는 갑자기 오른팔을 힘껏 뿌리치며 이사이로 한마디 내뱉었다. 허망 뿌리워져버린 오른팔은 공제를 잃은 자전거페달마냥 어깨를 의지해서 흔들흔들 춤을 췄다.
(과연 오늘밤을 무사히 넘길수 있을가?)
진이는 자기를 향해 엉금엉금 기여오는 공포같은것을 의식하고있었다.
“야, 담배 있어?”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터졌다. 진이는 걸상에서 용수철마냥 튕겨일어나며 남자애를 향해 떠듬거렸다.
“어…없어.”
“씨팔, 죽어두 생각못했잖아. 담배 주어넣을 새도 없이 당했다니까.”
생각밖으로 남자애의 목소리는 방금 “야, 담배 있어?” 하고 소리치던 때보다 많이 누구러들고있었다. 진이는 두려움이 찰랑이는 눈으로 남자애를 바라보면서 애매하게 머리만 끄덕거렸다. 남자애는 두손을 호주머니에 찌른채 진이쪽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더니 머리를 픽 돌려 찍 하고 이사이로 침을 날리며 진이의 옆에 털썩 들어앉았다. 진이는 그러는 남자애를 피해 한뽐 옆으로 피해 앉으며 부러 머리를 들어 천정을 쳐다보았다. 얼기설기 잔금이 간 천정에 여기저기 박혀있는 파리똥 같은 까만것들이 기분 나쁘게 진이를 내려다보고있었다.
“까만 점 하나, 까만 점 둘, 까만 점 셋…”
진이는 영문없이 머리를 쳐들고 파리똥 같은 까만것을 세는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게 생각되였다. 하지만 진이로서는 그 시각 그 놀음을 내놓고 더 이상 할것이 없다고 생각되였다. 그 놀음만이 뚱뚱한 남자애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무마시켜줄것 같아서였다.
“까만 점 넷, 까만 점 다섯, 까만 점 여섯…”
“야, 너 뭔 일루 들어왔니?”
“저…”
진이는 남자애가 갑자기 던져오는 물음에 깜짝 놀라 셈세기를 멈추고 벌떡 일어서서 남자애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남자애의 굳어진 입가에 가는 웃음이 지나가고있었다.
“너 여기 첨이지?”
남자애가 물어왔다.
“그래.”
진이는 남자애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럴줄 알았다. 하지만 괜찮아. 첫 한번이 두려운거야. 자주 드나드느라면 괜찮아질걸. 씨팔, 일찍 잠이나 자두자. 래일 구류소에 가면 너두 팔자가 달라질걸.”
“구류소?”
진이가 다잡아 물었다.
“그렇지, 구류소!, 너 사람을 찾았니?”
“무슨 사람을?”
“하하, 완전 초딩이네. 사람을 찾아 돈을 쓰구 나가지 않으면야 구류소는 떼놓은 당상이지. 너, 랠 면보(面包) 사다줄 사람이나 있니?”
“뭐? 면보?”
“이런, 너 랠 하루 그대로 굶어야겠구나. 여긴 이런곳이야. 일찍 잠이나 자두자.”
남자애는 “짝—” 하고 하품을 하더니 걸상에 쪼크리고 누웠다.
“구류소?”
평소 너무나도 어렵사리 들어버리던 세글자가 세개의 큰 갈구리로 되여 진이의 가슴을 허볐다.
“구류소!”
영화나 텔레비죤드라마에서 자주 보아 익숙한듯 하면서도 자기의 몸뚱아리가 그 안에 들어갈수 있다고는 생각조차 못해오던 진이였다.
(정말 내가 그 안에 들어가는것일가?)
진이는 몰려오는 긴장때문에 손가락이 짜릿짜릿 설맥을 하는것 같았다. 진이는 왼손으로 오른손 손가락을 자근자근 주무르면서 연신 입술을 깜빨았다.
“씨팔.”
남자애의 석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이는 잡생각을 멈추고 머리를 돌려 남자애를 바라보았다. 남자애는 꿈을 꾸는지 뭐라고 입을 씨물거리며 돌아눕더니 드르릉드릉 코를 골기 시작했다. 곤한듯 하— 벌린 입귀로 멀건 느침이 주르륵 흘러내리고있었다.
(어쩜 이 애는 여기 와서까지 이렇게 코를 골고 느침까지 흘리며 편히 잘수가 있을가?)
진이는 자기의 옆에 쪼크리고 누워있는 이 남자애가 외계인이나 되는듯 신비하게 느껴졌다.진이는 앉은걸음으로 남자애를 향해 다가갔다.남자애는 그줄도 모르고 여전히 드르릉드르릉 요란하게 코를 골아대고있었다. 진이는 허리를 약간 굽히고 찬찬히 남자애를 내려다 보았다.입술에 엷은 보풀이 일어나서 여간만 안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모로 누운 왼쪽 눈귀에 맑은 물이 고여있었다. 
(설마 눈물일가?)
진이는 그 맑은 물이 가슴에 맞혀서 그저 스쳐지날수 없었다. 진이는 허리를 좀더 굽혀 남자애의 왼쪽 눈귀에 눈길을 가져갔다. 눈귀에 맺힌 맑은 물은 남자애가 코를 고는 소리에 울려 무시로 떨어지려는듯 흔들리고있었다.진이는 무의식간에 손을 내밀어 남자애의 눈귀에 맺힌 맑은 물을 씻어주었다. 순간 남자애가 진이의 손길을 느꼈는지 몸을 흠칫하면서 오른손을 왼쪽 눈귀로 가져가더니 그 맵시로 몸을 번져눕다가 좁은 걸상에서 대책없이 퉁하고 떨어져내렸다.진이는 깜짝 놀라면서 걸상에서 벌떡 일어섰다.
“씨팔, 꿈이였잖아.”
남자애가 부시시 기여 일어나며 궁시렁 거렸다. 진이는 숨을 죽이고 그러는 남자애를 살펴보았다. 남자애는 손등으로 두눈을 쓱쓱 부비면서 걸상에 가 앉더니 “짜악—” 하고 달콤하게 하품을 하고는 쩝쩝 마른입을 다셨다.
“씨팔, 에잇— 담배.”
남자애는 신경질적으로 걸상에서 일어서더니 황황해서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서북쪽 구석 변기가 놓여있는 쪽으로 다가가던 남자애는 변기 뒤켠에서 필터에 좀 남은 담배꽁초를 발견하고 보물이라도 발견한듯 소리쳤다.
“아, 담배!”
남자애는 담배꽁초를 주어 코밑에 가져다대고 킁킁 소리내며 길게 담배냄새를 맡더니 호주머니를 들추기 시작했다. 웃옷호주머니로부터 바지호주머니 그리고 안에 입은 내의호주머니까지 들추던 남자애가 또 신경질적으로 소리질렀다.
“씨팔, 라이타.”
“어…없어.”
진이가 반사적으로 걸상에서 벌떡 일어서며 떠듬거렸다.남자애는 허둥대던 손길을 멈추고 진이쪽에 눈길을 박았다.
“야, 너 아직 안 잦니?”
“안 잦어”
“왜? ”
“잠이 안와서…”
“하하, 완전 도련님이네. 이런데서는 못자겠다 이거니?”
남자애가 진이를 향해 벌씬 웃었다. 그러는 남자애를 향해 진이도 억지로 웃어보였다. 남자애는 담배꽁초를 코밑에 가져다 킁킁 거리더니 입으로 후후 하고 몇번 불고는 정성스럽게 호주머니에 넣으며 두덜거렸다.
“씨팔, 라이타 챙길 새도 없이 당했잖아. 씨팔, 오늘은 재수에 옴이 붙었다니까. 근데 너 어째 잡혀왔다구?”
남자애가 두손을 탁탁 마주쳐 털면서 진이쪽으로 눈길을 박았다.
“저…저…”
진이가 어떻게 말했으면 좋을지 몰라 꺽꺽 거리자 남자애가 또 남의 애기를 하듯 말꼬리를 풀어나갔다.
“씨팔, 땐스(电视)라는게 뭐 볼게 있어야 보지. 재미없어서 잠이나 자자구 준비를 하고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거야. 난 그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는구나 생각하면서 아무 근심도 없이 문을 따줬지. 씨팔, 들어온 놈들이 누군지 알어? 짭새들이야.”
“뭐? 짭새?”
“허허허, 경찰말이야, 아무나 잡으러 다니는 짭새, 경찰 알지?.”
“그들이 왜?”
“씨팔, 며칠전에 꺼멀(哥们)들하구 집에서 얼음을 했거든. 근데 어느 놈이 불어버린거야, 나 어느 놈이 불었다는걸 대충 알것 같거든. 천천히 결산하는거지 뭐.”
“얼음이라면 마약이 아니니?”
“그치, 근데 마약까지라고는 할게 없구. 그냥 흥분제로 노는거니까. 하지만 랠 아침 여기서 못나가면 내 인생도 쫑 치는거야. 강제제두숴(戒毒所)에 가서 애좀 태워야 할거니까. 석달이야. 말이 제두숴(戒毒所)지 로죠숴(老教所)와 같은거야. 씨팔.”
“어떻게 하면 여기서 나갈수 있는데?”
진이가 기여들어가는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애가 별일 아니라는듯 대답했다.
“아까 들어올 때 아버지에게 똰씬(短信)을 보냈거든. 하, 그 나그네가 그때까지 어느 안마방에 가 있는지 전화는 안받는다 이거야. 아침이나 되면 똰신을 들춰보겠지. 좋기는 한번 전화를 더 해보는건데. 저 짭새들이 핸드폰을 압수 한거야. 아, 너 핸드폰 있지?”
남자애가 진이쪽으로 다가섰다.
“없어, 내것두 들어올 때 압수당했거든.”
“저런, 너두 큰걸 범했구나. 참, 너 어째서 여길 들어왔다고 했지?”
남자애가 다시 진이에게 물어왔다.
“저… 사실은 어떤 나쁜 년을 때려주었거든.”
남자애의 눈이 반짝 빛났다.
“뭐? 어떤 나쁜 년을 때려주었다구? 허허허… 너 실련당했구나. 그치?”
“아니, 실련은 무슨.”
“그럼 어떤 나쁜 년인데? 말해봐. 어떤 년인데. 어떻게 조처해야할가를 내가 알려줄게. 말해봐.”
남자애가 진이의 앞에 다가서며 신나는듯 졸라댔다.
(과연 어떻게 나쁘다고 표현하면 좋을가?)
진이는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생각하고싶지 않은 지난 토요일오전의 기분 나쁜 그림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참, 그날은 지독하게 재수없는 날이였어.”
진이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그날 진이가 다니는 학원의 강사님이 특수사정이 있다면서 오전 강의를 일찍 끝낸다고 했다. 학원친구들은 어쩌다가 차려진 시간을 그저 보낼수 없다면서 모아산으로 산책을 가자고 합의를 했다. 날씨마저 화창한지라 진이도 모아산으로 가는데 동의를 했다.
그들은 기분나서 정상에 오르는 시합을 하기로 했다. 맨 꼴지로 오른 사람이 친구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내기로 합의를 보았다.
“아싸—”
친구들은 모두 꼴지는 자기와 상관이 없는듯 기뻐서 야단이였다. 진이도 시원한 산바람을 한껏 페부로 삼키면서 모아산으로 오기를 참 잘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친구끼리 가족끼리 련인끼리 히히… 호호… 와하하하… 웃으며 소리치며 산으로 오르는 광경은 공부에 찌들렸던 마음을 한껏 달래주기에 충분한것 같았다. 진이는 기분 좋게 모아산 정상에 도착하여 료망대에 올랐다. 진이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천천히 눈길을 돌려 푸른 물결이 출러이는 평강벌이며 고층건물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서는 연길시며를 둘러보았다. 눈길이 료망대남쪽끝을 지나 비암산이 있는쪽으로 가는 순간 진이는 눈익은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버지?!”
도무지 믿을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모아산으로 올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진이였다. 진이는 설마 하는 생각으로 눈을 부비면서 다시 그 낯 익은 얼굴을 찍어 보았다. 손에 샘물병을 들고 어떤 녀인을 향해 빙그레 웃는 남자는 분명 아버지였다. 녀인은 팔이 짜른 까만적삼을 입고있었다. 지나치다싶게 긴 목을 감싸고 흘러내린 까만적삼은 녀인이 입은 흰 바지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진이의 눈을 심하게 자극하고있었다.
(까만것? 흰것?)
순간 진이의 머리속에는 정체 모를 흑백의 그림들이 언뜰언뜰 스쳐지나갔다. 진이는 애써 정신을 집중하여 아버지옆에 서있는 그 녀인을 쏘아보았다. 황황 타는 진이의 눈길이 녀인의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 녀인은 힘겨운듯 두눈을 내리깔며 머리를 숙이는것이였다. 진이는 녀인을 향해 퉤 하고 건가래를 뱉어버리고는 격분으로 하여 두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사실 진이는 아버지가 이 시간에 웬 녀인과 함께 모아산에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진이는 아버지를 향해 씨엉씨엉 걸어갔다. 아버지는 그 녀인이 벌써 진이의 눈길에 주눅이 들어있는줄도 모르고 여전히 벙글벙글 웃으면서 그 녀인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진이는 그러는 아버지에게 날이선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버지, 여기서 뭘 하고있는거예요?”
갑작스러운 진이의 출연에 아버지는 깜짝 놀라 멍해 있더니 얼굴을 붉히며 떠듬거렸다.
“너… 어… 어떻게 이곳을”
“아버지야 말로 어떻게 이곳에 왔어요? 지금 뭘 하고있는거예요?”
“그래, 바람이나 쏘이려구…”
“네, 아버지도 정녕 바람이 필요했어요?”
“지…진이야.”
“됐어요.”
진이는 하산길을 따라 허둥지둥 달려내려갔다. 등뒤에서 “진이야—진이야—” 하고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바람에 날려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진이를 쫓아오지 않고있었다. 진이는 눈물이 앞을 가리우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아침에 있었던 장면이 주마등처럼 진이의 눈앞을 스쳐지났다.
아버지는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셨다. 전기밥가마에 쌀을 씻어 안친 아버지는 화장실에 들어가 샤와를 하고 나오셨다. 그때에야 잠자리에서 일어난 진이는 방금 수건으로 닦아내서 함치르르한 머리칼을 거울앞에서 손으로 쓰다듬는 아버지를 이상한듯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침에 웬 샤와예요?”
“허허허, 아침에 샤와를 하는것도 이상한 일인가? 그새 아버지가 너무 구질구질하게 살았나보다. 인젠 아버지도 몸을 가꿔야지.”
“네.”
진이는 전에없이 들떠있는 아버지를 심드렁하게 바라보면서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우에 앉았다. 웃음이 번지르르 번진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니 저도몰래 호기심이 발동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사실 진이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평범할래야 더 평범할수 없는분이셨다.
시내 큰 공장에 출근하는 아버지는 그래도 한때는 잘나가던 월급쟁이였다. 공장 경기가 좋아서 달마다 어머니에게 로임봉투를 가져다 바치는 날이면 아버지는 허리를 쭉 펴고 어깨를 살구면서 가장으로서의 체면을 살려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진이가 열살나던 해부터 공장은 내리막을 쳐오더니 나중에는 일군을 절반이나 줄였다. 차간에서 기술자로 일하시던 아버지도 그번에 밀려서 후근일군으로 옮겨 앉게 되였다. 그 바람에 로임이 줄반이나 줄어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되자 집은 광풍을 만났듯 조용할 새가 없었다.
“어떻게 살아요? 어떻게.”
어머니가 이렇게 불을 달면 도화선은 확확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서는 폭발하군 했다.
“나더러 어쩌라는거요? 어쩌라냐구? 낸들 이렇게 살구싶어서 이렇게 사는줄 아오?”
“남자라는 사람이, 세대주라는 사람이 무슨 방법이라도 돼야지, 공장에서 한달에 7백원을 준다고 그대로 앉아 7백원을 받으며 식구들을 굶겨죽여요?”
“굶겨죽이다니? 남편이 벌어들이는 7백원이 적으면 7천원씩 벌어주는 나그네를 찾아 살게지. 누가 다리라도 잡는가?”
“그게 새끼까지 싸놓은 나그네가 할 소린가요? 안깐의 기를 톡톡 채워주는 재간이면 어디 가서 은행이라도 털겠어요. 아이구, 내 팔자야.”
“에잇, 새까만 세상, 다 망해버려라.”
아버지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면서 손에 잡히는대로 마구 뿌려던졌다. 이때면 진이는 당금 터질것 같은 집구석에 쪼크리고 앉아서 무시로 날아다니는 베개며 비자루를 피해 몸을 숨겨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전쟁은 하루 또 하루를 이어갔다.
어머니는 고리대를 얻어서 외국로무수속을 한다고 헤덤비더니 진이가 열세살 나던 해에 끝내 성공을 하여 외국으로 나가셨다.
말이 거칠고 성격이 팩하여 아버지를 힘들게 하던 어머니였지만 남편을 커하고 자식을 끔찍해 하고 가족을 중히 여기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강한분이셨다. 어머니는 외국으로 가서 석달이 지나면서부터 집에 생활비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비록 한달에7백원을 받는 후군일군에 지나지 않았지만 누구처럼 나쁜 생활습관에 물젖은분이 아니셔서 어머니가 보내오는 생활비는 될수록 저축을 하면서 달마다 받는 월급으로 알뜰하게 생활을 조직해나갔다. 아버지의 참다운 행실은 한 시내에 사는 외가집식구들의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어머니는 가끔 전화가 와서는 외할머니가 전화에서 이야기를 하더라면서 아버지대한 고마운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어머니가 외국으로 가서 3년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어머니가 보내온 돈으로 진이네 학교옆에 아빠트 한채를 사서 장식까지하고 이사를 했다. 집들이를 할 무렵 어머니는 외국에서 날아와 진이와 아버지와 함께 그 기쁨을 만끽하셨다.
아빠트에서 한결 나아진 살림을 하면서 진이는 어렵게 찾아온 가정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한번 느낄수 있었다.
“생활이 좋아지니 아버지도 몸을 가꿀 생각을 하셨나봐.”
그날 아침 진이는 이런 생각을 굴리면서 멋진 옷을 쪽 빼입고 집을 나서는 아버지를 눈바램해주었다. 그렇게 나간 아버지가 웬 낯모를 녀인과 함께 모아산으로 데이트를 온것이였다.
분명 찌는듯한 태양아래 나무그늘이 늘어진 오솔길을 걷고있었건만 진이는 불빛 한점 없는 까만 어둠속을 헤집는 기분이였다. 까만 나락속으로 들어가다가 어딘가에 쿵 떨어져내릴것만 같은 공포도 무시로 머리속을 엄습해오고있었다. 진이는 더는 걸음을 지탱하지 못하고 길섶을 찾아 앉았다.
그날저녁 진이는 밖에서 방황을 하다가 늦게야 집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벌써 진이가 좋아하는 갈비찜이며 갈치구이를 해놓고 진이를 기다리고있었다. 진이는 주방에서 달려나오는 아버지를 아는체도 하지않고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 안으로 문을 잠가버렸다.
“진이야, 나와서 밥을 먹어라. 밥 먹으면서 아버지의 말을 좀 들어보렴.”
아버지가 진이의 침실문을 살랑살랑 두드리며 애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진이는 아버지의 그 목소리마저 가면으로 똘돌 뭉쳐진것 같아서 이불을 머리우까지 올리쓰고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참이나 더 문을 두드리다가 지치셨는지 잠잠해졌다.
진이는 머리끝까지 올리썼던 이불을 내리우고 꼭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부잇한 달빛이 창문으로 비쳐들었다. 진이는 두눈을 슴뻑이며 흘러가는 둥근달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도 저 달을 보고있겠지? 어머니가 오늘 아버지의 행실을 보셨다면 얼마나 괴로와 하셨을가?)
생각이 자리를 틀수록 진이의 가슴은 칼로 에이는듯 아파났다. 진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손바닥으로 연신 넙쩍다리를 어루쓸며 입술을 감빨았다.
(이렇게 맥을 놓고 앉아만 있을수 없어. 아버지하고 뭔가 결판을 내야 해. 아버지가 큰 일을 치려하고있는거야. 아버지를 이대로 놔둘수 없어.)
진이는 벌떡 일어나 아버지를 찾아서 객실로 나갔다.
“아버지!”
진이는 객실에서 벌어지고있는 정경에 깜빡 놀라 선자리에 굳어졌다. 그때 아버지는 올방자를 틀고앉아 강술을 입에 쏟아넣고있었다. 술은 벌써 얼마나 마셨는지 밑굽에 좀 남아있을뿐이였다. 아버지는 진이의 불음소리에 흠칫 놀라면서 머리를 돌렸다. 술독이 오른 아버지의 얼굴은 벌겋게 충혈되여 있었고 푹 꺼져들어간 두눈은 무시로 슴뻑거리고있었다. 아버지를 보는 순간 진이는 가슴이 뭉클해나며 코끝이 시큰거렸다.
“왜 이래요? 아버지!”
“진이야, 내 아들아.”
아버지가 갑자기 꺼이꺼이 울음을 터치셨다. 아버지는 바싹 야윈 주먹으로 구들을 탁탁 내리치면서 넉두리를 했다.
“진이야, 아버지를 리해해다구, 아버지가 누구땜에 버티는데. 진이야, 아버지는 절대 네 엄마에게 미안한 짓은 한적이 없단다. 이게 어떻게 지탱해가는 집인데. 진이야. 아버지를 리해해다오.”
진이는 괴로움에 떠는 아버지를 멍하니 지켜보다가 와락 아버지를 안아서 아버지의 침실에 들여다 눕혔다. 아버지는 기어이 진이와 속심의 말을 한다면서 다시 기여일어나셨다.
“됐어요. 오늘은 그만해요.”
진이는 아버지를 향해 무겁게 한마디 하고는 문을 닫고 객실로 나와 앉았다.
(아버지를 리해하라구? 과연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리해할수 있는데.)
사색은 삼거불처럼 엉켜지기만 했다. 진이는 쏘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머리를 쳐들었다. 디룽디룽 구슬을 단 갓으로 멋을 낸 무리등옆에 언제 묻었는지 파리똥 같은 까만 점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저것들이 언제부터 묻어있었을가?)
하얗게 바래져가는 머리속에서 파리똥 같은 까만것들이 유표하게 자리를 잡아가고있었다.

“그래서 너의 아버지와 데이트를 하던 그년을 때려주었다는거니?”
남자애가 시물시물 웃으며 물었다.
“그랬지. 아버지가 괴로와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녀와의 거래가 절대 아버지의 본심이 아니였음을 알았거든. 꼭 그 여우 같은 년이 아버지를 꼬시고있다고 단정을 한거야.”
“그래서?”
“그래서 기회를 타 아버지의 핸드폰을 몰래 훔쳐보았지. 난 어제야 끝내 그년이 사는 집을 알아냈거든. 오늘 기회를 살피다가 그년이 어디론가 다녀오는 길을 뒤쫓았어. 그러다가 으슥한 골목에서 손을 썼는데 그만 재수 없을라니 옆을 지나던 순라경찰들에게 잡힌거야.”
“세상에!”
남자애가 자기 일이라도 되는듯 손바닥으로 무릎을 내리치며 아쉬워했다.
“그래 인젠 어쩔려니?”
남자애가 진이의 옆에 다가 앉으며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진이는 맥 없이 “휴—” 하고 거친 숨을 톺아올리고는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근데 너 왜 그 녀자를 그렇게 미워하니?”
갑자기 남자애가 진이를 향해 엉뚱한 물음을 던졌다. 그 바람에 진이는 또다시 외계인을 바라보듯 남자애를 건너다보며 어이가 없다는듯 실소를 지었다.
“너라면 그래 그년이 곱겠니?”
“곱지는 않겠지만 그다지 미울것도 없을것 같은데”
“너의 아버지를 꼬셔서 나쁘게 만드는데도 밉지 않을것 같다구?”
“참!”
남자애는 제쪽에서 되려 어이없다는듯 진이를 바라보면서 절레절레 머리를 젓다가 입을 열었다.
“너의 아버지, 뭐 어린애라도 되니? 그 나이에 뭐 꼬시고 꼬시우고가 있니? 녀자가 곁에 없는 나그네가 녀자를 밝히고 남자가 곁에 없는 녀자가 남자를 밝히는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뭐? 인지상정?”
진이는 남자애의 말을 되네이며 눈길을 돌려 남자애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인지상정’과 같은 고급스러운 말을 쓰는 남자애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던것이다. 남자애는 그러는 진이의 심중을 읽었다는듯 픽 웃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내말이 우스워? 허허허… 여기 와서 이러구 있지만 나도 한때는 학교에서 손꼽히는 “꼬마작가”였다구. 난 너의 아버지도 리해 할만하구 그 녀자도 리해할만 하거든. 서로 좋아서 못 살겠다는데 네가 뭐 사이에 끼여들것 까지 있니?”
“그럼 외국에서 뼈빠지게 버는 우리 어머니는 어쩌라구?”
“너의 어머니가 외국에서 어떻게 보내는지 너 알고있니? 물론 뼈빠지게 돈을 벌고있겠지. 허허허… 나의 경험을 얘기 해줄가?”
“뭐? 경험?”
“그래, 경험. 이면에서 난 너의 선배라구 할수 있지.”
“선배라구?”
“그래, 선배. 우리 어머니도 외국에 간지 5년철이야. 그새 우리 아버지는 바람이 아니라 폭풍이 난거구.”
남자애는 진이를 바라보며 시물시물 웃어주었다. 진이는 남자애의 그 웃음이 괜히 역겹게 느껴지면서도 또 “선배”요 “경험”이요 하는데는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진이는 남자애를 향하여 넌지시 물었다.
“그렇다면 너도 나와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는 말이니?”
“참 이거 말이 통하네. 그렇지. 나도 첨엔 너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거든. 하지만 아버지가 나의 말을 듣고 허파에 들어찬 바람을 뽑아버릴수 있었겠니? 몇번 아버지를 혼내워준다고 가출까지 했던적이 있었지. 하지만 내 따위가 어디가서 혼자 살수 있었겠니? 가지고 나간 돈을 며칠간에 다 불어먹은후이면 다시 그 집구석에 들어오는수 밖에 없었지? 아버지는 할수없이 집에 들어온 나를 하찮은 버러지 대하듯하면서 아버지처럼 안 살려려거든 공부를 잘해서 출세를 하라는거야.”
“너의 아버진 어떤 사람인데?”
“평범한 로동자였지. 급이 있는 간부들처럼 돈이라도 잘 벌면 왜 안깐을 외국에 돈벌러 내보내겠는가 하는거야, 아버지 말도 틀린것은 없지. 자기 안깐을 외국에 내돌리고싶은 나그네가 어데 있겠니?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니까 너나없이 안깐들을 외국으로 내돌리는거겠지?”
남자애는 험한 세상을 다 살아본 나그네처럼 “후—” 하고 긴 한숨을 내쉬고는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진이는 그러는 남자애에게 새록새록 호기심이 동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넌 가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가족?”
남자애가 진이를 향해 짤막하게 한마디 되묻고는 스르르 두눈을 감았다. 진지해지는 남자애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진이는 괜한 물음을 물었나 하고 후회를 했다. 갑자기 남자애가 입술을 꽉 깨물더니 두 볼을 푸들푸들 떨었다.
“그날 오후 학교에서 소측험을 마치고 평소보다 훨씬 일찍 집에 돌아와보니 녀자의 신이 바닥에 보이는거야. 난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았을가 하고 제 좋은 생각을 했지. 나는 ‘누가 왔어요?’ 하고 소리치며 뛰여가 다짜고짜 아버지의 침실문을 밀어열었어. 맙시사. 아버지가 급히 침대를 내려서고 홀랑 벗은 한 녀인이 이불을 당겨다 가슴을 막는거야.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막 미칠것만 같았어. 나는 주방에 달려들어가 식칼을 뽑아다가 미친듯이 그년한테 달려들었지. 아버지가 나에게 덮쳐왔어. 하지만 눈에 달이 오르니 아무것도 두려운것이 없었어. 나는 아버지를 옆으로 동댕이치고는 끝내 식칼로 그년의 엉뎅이를 찔러버렸어. 이웃에서 발견하고 110에 신고를 한거야. 나는 그 길로 파출소에 끌려갔지.”
남자애는 말을 마치고 쩝쩝 입을 다셨다. 진이는 어쩜 남의 이야기를 하는듯 덤덤해있는 남자애에게 조르듯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찌됐니?”
“흥, 나는 결국 행정구류 보름만에 풀려나왔거든. 내가 나오는던 날 아버지가 구류소문앞까지 마중을 왔었어. 풀이 죽어 나오는 나를 보고 아버지가 뭐라했는지 알아?”
“뭐랬게?”
“허허허… ‘얌마 너 이번에 엄마가 보낸 돈을 5천원이나 말아먹었다’ 이러는거야. 그래서 내가 ‘그 돈 아니면 내가 어떻게 되는건데요?’ 하고 물었지. 아버지가 사람을 통해 돈을 쓰지 않았더라면 내가 로동교양을 할뻔했다는거야. 하하… 돈, 참 좋은 물건이지. 그래 , 엄마가 외국에서 돈을 잘버는거 아니야? 그때로부터 난 무서운게 없어졌어. 그랬지. 돈만 있으면 무서운게 없는거야. 돈만 있으면 참 살기 좋은 세상인거지.”
남자애가 어깨를 으쓱하며 두팔을 쩍 벌려보였다.
진이는 도도하게 이야기를 엮어가는 남자애의 얼굴을 이윽토록 지켜보았다. 남자애는 자기의 이야기에 괜히 흥분되는듯 연신 손사래를 해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돈이 있으니 친구들도 구름처럼 모여드는거야. 처음 구류소에 갔을 때 아버지가 돈을 많이 넣어주었기에 나는 안에서 하나도 힘들게 살지 않았거든. 형님들이 구석구석 나를 돌보아준거야. 들어가서 사흘만에 나는 변기옆의 쌰푸(下铺)에서 형님들옆에 눕게 됐지. 돈이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 구류소에서 나와 며칠 안되자 안에서 친한 형님들이 나를 찾아온거야. 쳇, 나의 전성시대가 열린거지. 아래개방지에서 난 일거에 솟아올랐거든. 아래개방지에서 따팡(大胖)이라면 알만한 애들은 다 알아. 얼음두 형님들 덕분에 그 맛을 알게된거야. 챠— 얼음을 하고난후의 그 붕— 뜨는 기분, 뭐라구 표현해야 하나? 하하하… 나 인젠 여기 단골손님이 됐어. 이 파출소에 모르는 경찰이 없거든.”
남자애는 또다시 그 황홀경에 빠진듯 손벽을 짝짝 쳐댔다. 진이는 그러는 남자애를 지켜보다가 혼자말 비슷이 중얼거렸다.
“엄마들이 그 돈을 벌자면 엄청 힘들텐데.”
“흥, 힘이 들겠지”
남자애는 픽 랭소를 하며 진이를 힐끔 쳐다보더니 아래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 어머니 보구 빨리 돌아오라고 해봐. 돌아오는가. 힘들어도 외국생활이 더 좋은가보지 뭐. 가족? 난 안 믿어. 지금은 가족이 없는 세월이야. 우렁이속 같은 새까만 세상이거든.”
“왜 그렇게만 생각하니? 아버지어머니들은 그래도 가슴에 자식들을 품고 살텐데.”
“자식? 말 한마디 잘하고있네.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5년이 되도록 외국에서 떠돌게? 말이야 좋지. 자식 대학공부시키자고 외국에서 손이 발이되게 번다구? 그러는 사람이 내가 이 지경으로 돼도 왜 안돌아오는거지? 생각할게 뭐 있어? 돈, 돈이면 되는거야. 그래서 난 인젠 아버지의 녀자들을 미워 안해. 좋잖아. 외국에서 어머니가 소비돈을 보내주구 국내서는 그년들을 찾아가 아지미아지미 하고 살갑게 둬번 불러주면 또 돈이 생기는데. 아버지도 두눈을 찔끔 감구 못보는체 하는거야. 누이 좋고 매부 좋은거지 뭐. 이게 세상인거야. 새까매서 속은 들여다 볼수 없지만.”
남자애는 말을 마치고 입을 쩝쩝 다시며 두 손바닥을 탁탁 털어대더니 또 한번 하하하 웃었다.
“어떤 놈이 쓴거야, ‘까만것, 속도 보이지 않는 세상’ 하하하… 그놈도 나만치나 답답한 놈이네. 하긴 제딴에 그놈의 속을 보아낼수 없을 테지.”
남자애는 진이가 걸상우에 오려놓은 글자를 가리키며 껄껄 웃어댔다. 진이는 그러는 남자애를 보면서 웬지 몹시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이는 벽에 등을 기대고 두눈을 스르르 감았다.

첫눈이 내린 전야처럼 하얀색으로 뒤덮인 벌판은 끝이 보이지 않을만치 허허 넓었다. 진이는 하아얀 벌판을 걸으면서도 자기가 까만 턴넬속을 허이허이 헤쳐간다고 생각하고있었다. 등에다 산더미 같은 짐을 지고있는듯해서 몹시 숨 가쁘고 힘들었다.
진이는 걷고 걷다가 잦아드는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선자리에 주저 앉았다. 갑자기 발이 닿인 땅이 쿵 하고 꺼지면서 자기가 정처없이 아래로 내리 꼰지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이가 머리를 숙여보니 아래는 깊이가 보이지 않는 까만 동굴이였다. 진이는 뭔가를 잡으려는 욕망으로 손을 허우적 거렸다. 진이의 옆으로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도 어머니와 비슷한 사람도 스쳐가고 스쳐오고 했지만 누구 하나 진이를 잡아주지 못하고있었다. 진이는 그것이 너무도 안타까와 가슴이 터지는듯싶었다.
이때 어디선가 “진이야—진이야—” 하고 애처롭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이는 그 부름소리를 찾아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임자를 잡으려고 두손을 허우적 거리다가 어딘가에 머리를 부딛치며 두눈을 번쩍 떴다.
“자식, 팔자가 좋네. 잠꼬대까지 다 하구.”
누군가 자기의 머리를 툭 내리치고있었다. 진이는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철문이 반쯤 열려져있었고 몸집이 갱핏한 젊은 경찰이 어느새 들어와 진이의 곁에 서있었다.
눈에 잠기가 가득찬 젊은 경찰이 석쉼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서진, 나가.”
“…”
진이는 속에서 널장같은것이 쿵 하고 떨어져내렸다.
(진짜 구류소로 가는것이 아닐가?)
진이는 지푸라기라도 잡고싶다는 말의 참뜻을 그 시각에야 진정 깨치는듯싶었다. 진이는 머리를 돌려 황급히 남자애를 찾았다. 남자애도 경찰의 소리에 놀라 잠을 깼는지 걸상에 웅크리고 앉아서 손등으로 눈을 부벼대고있었다. 진이는 구원이라도 청하는듯 남자애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남자애의 퀭하니 뜬 눈길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진이는 입술을 감빨며 남자애가 앉아있는 걸상우에 눈길을 던졌다.
“까만것, 속도 보이지 않는 세상”
접대 이를 옥물고 오려놓은 글자가 아렴풋이 진이의 눈에 안겨들었다. 진이는 천천히 머리를 들어 쇠창살밖으로 새까만 하늘을 바라보았다.
“뭐해? 빨리 안나가구?”
그때 젊은 경찰이 꽥 하고 소리쳤다. 진이는 절망한듯 머리를 푹 숙이고 뚜벅뚜벅 철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컴컴한 복도를 따라 서너메더쯤 걸어가자 젊은 경찰이 직발실과 갈라 놓은 철문을 열었다.
“삐이익—”
쇠붙이가 엇갈리는 소리가 청승스럽게 고요를 깨고있었다. 그 소리에 진이는 또 한번 으스스 몸을 떨면서 젊은 경찰을 따라 철문을 넘어 직발실에 들어섰다.
“진이야.”
갑자기 귀에 익은 목소리가 진이를 불렀다. 진이는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고 목소리의 임자를 찾았다. 아버지가 컴퓨터를 올려놓은 책상옆에서 진이를 부르고있었다. 아버지의 옆에는 그 밉살스러운 녀인이 서서 오들오들 떨고있었다. 진이는 아버지를 부르려다 말고 눈길을 돌렸다.
아버지가 진이쪽으로 허둥지둥 다가왔다.
“진야, 너 어쩜… 이게 무슨 꼴이냐?”
아버지가 진이의 손을 잡았다. 진이는 괜히 신경질적으로 아버지의 손을 힘껏 뿌리쳐버렸다. 아버지는 다시 진이의 팔을 부여잡으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미안하다. 지…진이야.”
“왜 왔어요?”
진이는 차거운 목소리로 한마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아버지는 부들부들 몸을 떨고있었다. 진이는 아버지의 그 모습을 보고싶지 않아 아예 창문쪽으로 머리를 돌려버렸다. 아버지는 진이의 팔을 흔들면서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진이야, 다 아버지를 탓해라. 다 아버지의 불찰이니까. 하지만 너 저 아지미에게 그러는건 아니였는데. 어서 저 아지미께 사과를 해라. 아지미두 널 용서해 줄거다. 아지미의 용서를 받구 우리 빨리 집으로 가자.”
아지미에게 용서를 빌라는 말에 진이는 머리를 돌려 그때까지도 책상옆에 요지부동으로 서있는 녀인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듯 하던 녀인의 눈길이 진이의 차디찬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 녀인이 흠칫 하더니 인차 진정을 하며 입을 열었다.
“너 진이가 맞구나. 어제밤 너에게 당한후 나는 집에 가서 많은 생각을 굴려보았단다. 남편을 병으로 먼저 보내구 오늘까지 나는 딸 하나를 키우면서 맹세코 남에게 미안한것 없이 살아왔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보고 ‘이 나쁜 년 죽여버리겠다.’고 이갈리게 나를 증오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던거지. 그러다가 접대 모아산에서 나에게 쏘던 너의 눈길이 떠오르더구나. 그래서 혹시나 하여 너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던거다. 너의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네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기에 함께 여기를 찾아온거구…”
진이는 눈 한번 깜빡 하지 않고 녀인의 말을 들어주었다. 어쩜 변명 같기도 한 말이였지만 진이로서는 그녀가 뭐라고 하는지를 똑똑히 들어보고싶었고 그 변명속에서 아버지의 청백을 가려내고싶었다.
녀인은 또박또박 아래 말을 이어나갔다.
“나와 너의 아버지는 네가 생각하는것처럼 그런 사이가 아니란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한 마을에서 함께 자란 송아지친구거든. 서로 외롭게 사는 처지라 오래전부터 속탄 말도 해오구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기도 했단다.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것처럼 그런 남 부끄러운 사이는 아니란다. 내 딸의 인격을 걸고 맹세하지만 정말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란다.”
여기까지 말한 녀인은 갑자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쥐더니 지친 몸을 지탱하지 못하는듯 선자리에 쪼크리고 앉으며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서진, 여기에 서명을 하구 아버지를 따라 집에 가서 잘 반성을 해봐. 세상 어떤 일이 있어도 길을 막고 사람을 때리는건 위법이야. 알겠어?”
젊은 경찰이 손가락으로 서류를 툭툭 치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이는 그러는 경찰 쪽으로 다가가 경찰이 가리키는 곳에 “서진”이라고 서명을 했다.
아버지가 쪼크리고 앉아 어깨를 들먹이는 녀인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녀인은 겨우 몸을 움직이며 손등으로 눈굽을 찍었다.
“진…진이야, 집에 가자.”
아버지가 진이를 바라보며 떠듬거렸다. 진이는 터벅터벅 아버지의 뒤를 따라나갔다.
영원히 밝지 않을듯 까맣던 하늘귀가 서서히 들리며 불깃불깃한 잔광을 내뿜고있었다.
멀리서 새 아침이 열리는것 같았다.
까만것,
진이는 속으로 까만것은 모름지기 살아지게 되여있는 모양이라고 나름대로 생각을 굴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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